'철학'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2.12.10 (세계사를 바꾼) 철학의 구라들 (上) - 폴커 슈티어링 이룸 2007 03100
  2. 2012.12.06 청춘의 고전(삐딱한 철학자들의 위험한 영화 보기) - 김성우외9 알렙 2012 03100 1
  3. 2012.10.30 철학의 위안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03840
  4. 2012.09.17 아름다운 파괴 - 이거룡 한길사 2010(2000) 03100
  5. 2012.01.28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사계절 2011 03100
  6. 2012.01.0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2 03840
  7. 2011.11.24 상처 받지 않을 권리-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프로네시스 2009 03100
  8. 2011.11.10 철학, 삶을 만나다 - 강신주 이학사 2006 03100
  9. 2011.10.25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 우에무라 미츠오 비룡소 2009 44160 1
  10. 2011.10.19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 배병삼풀어씀 사계절 2005 43150
  11. 2011.09.23 전방위 글쓰기 - 김봉석 바다출판사 2008 03810
  12. 2011.05.26 행복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The Discovery of Happiness) - 스튜어트 매크리디 휴머니스트 2010 03900
  13. 2011.05.26 희망, 인문학에게 묻다 - 신동기 엘도라도 2009 03000
  14. 2011.04.24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5. 2011.03.01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2006 03100
  16. 2010.12.14 노마디즘 [nomadism]
  17. 2010.12.11 파토스 [pathos]
  18. 2010.12.10 아포리즘, 철학을 위한 아포리즘 1
  19. 2010.12.05 촘스키, 미래의 정부를 말하다 - 노암촘스키 모색 2006 04300
  20. 2010.12.03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드니로베르 베로니카자라쇼키치 강주헌 시대의창 2002 03300
  21. 2010.12.03 노암 촘스키 [Avram Noam Chomsky, 1928.12.7~],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
  22. 2010.09.2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학파) - 책내용들 3 1
  23. 2010.09.2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학파) - 책내용들 2
  24. 2010.09.17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와 명상록
  25. 2010.09.16 아이히만 (Eichmann, Karl Adolf)
  26. 2010.08.27 8월 12일에 서점을 갔다..
  27. 2010.08.20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


철학 입문서로 출간된 책이어서 시대별 분류를 하여 대표적인 철학자들 50여명을 소개한다. 

개관과 철학자들의 핵심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나, 개관들만 옮긴다.

내용에서 발췌하려 하다가 그것보다는 개관들 전체 내용을 통해 정리해 보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옮긴다.


철학의 구라들 (下) 보러가기 


1. 고대(Ancient times) 철학

-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철학보다 먼저 세계를 근본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것은 신화(이 말은 어원적으로 '말' '이야기' '알림'등의 뜻을 가진다)였다. 예를들어, 호머 시대의 창조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태초에 만무르이 여신인 에우리노메가 있었다. 이 여신은 벗은 채로 카오스에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이 여신은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여신은 바다를 하늘로부터 분리시키고 파도 위에서 홀로 춤을 췄다." 에우리노메는 큰 뱀인 오피온과 짝을 이뤘다. "그런 다음 에우리노메는 비둘기의 형상을 취하고서 파도 위에 내려앉아 자신의 시대를 위해 '세계를 품은 알'을 낳았다. 오피온은 여신의 분부에 따라 이 알이 부화하도록 알 주변을 일곱 번 돌았다. 이 알로부터 현존하는 모든 것이 생겨났다. 태양, 달, 행성, 별 들이 생겼고 산, 강, 나무, 풀, 동물 들이 있는 지구가 생겨났다."

기원전 6세기 초, 소아시아의 해변에 있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에서는 세계를 신비적이고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몇몇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사유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150년 전에 개념적으로 분석하는 철학의 길을 걸었으며, 신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참다운 세계와 가살의 세계를 구분할 줄 알았다. 세계와 그 해석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통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철학과 신화는 서로 섞이면서 독자성을 띠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자연의 통일성을 확신한 그들은 근원을 추구햇으며, 다양한 현상의 원인이 되는 하나(一者)를 추구했다. 그들은 세계를 가장 근본적으로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와 같은 최초의 사상가들은 근원 질료에 대해, 남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근원 형식에 대해, 에베소 출신의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보편 법칙에 대해, 그리고 아테네의 아낙사고라스 같은 사상가들은 질료적인 원소와 질서를 만들어 내는 근원적 힘에 대해 질문했다. 압데라 툴신의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 고전철학

'지혜의 교사들'인 소피스트들은 기원전 5시기에 그리스 고전철학으로 접어드는 과도기에 주로 활동했다. 그들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그들은 고대 도시 국가에서의 공동생활을 둘러싼 문제를 생각했으며, 인간적인 인식 행위의 타당성을 검토햇다. 그들의 수업은 다면적인 교양과 뛰어난 대화술,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간이라는 계몽된 새로운 이상에 맞춰져 있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반대 입장도 수용할 수 있는 대화술을 통해 모든 인식을 상대화했다(아테네의 프로타고라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대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시기에 철학의 중심지가 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철학적 사유는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절정에 달한다. 그들은 선(善)의 문제를 다양하게 사유했고, 선은 결국 진(眞)과 미(美)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선한(좋은) 삶이라는 이상을 위해 살고 죽었다. 선을 아는 자가 선하게 행동한다고 확신한 소크라테스는 동시대 시민들을 대화로 끌어들여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펼치며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자극했다. 개인은 자신 안에 있는 보편적인 선을 인식해 행위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나눈 대화의 목적은 덕의 보편적인 본질을 해명하고 규정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인 보편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고심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플라톤 철학의 기본 방향을 보여 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 개념 속에서 무시간적인 근원 형상들을 본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들은 이 근원형상들의 불완전한 모사에 불과하다. 이 근원 형상이 곧 이데아(idea)이다.현재의 언어 용법과는 달리, 이데아란 결코 주관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고 지속적이고 영원한 존재를 의미한다.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물질적인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 저편에 제2의 비물질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이는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이데아의 세계이다. 이데아들 중의 최고의 이데아, 즉 선의 이데아를 순수하게 정신적으로 살펴본 철학자만이 국가의 질서를 절대적인 이데아의 질서와 조화시킬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범위를 넓히고 체계화했다. 그는 논리학의 아버지, 범주론의 창시자, 그리고 방법적으로 엄격한 경험 과학 연구의 개척자로 불린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의 이데아는 개별적 사물들 저편에 분리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별 사물들에 내재한다. 모든 사물은 완전한 자기 운동을 하며, 자신의 이데아(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형상(form)'이라 부른다)에 이미 존재한 자신의 소질을 현실화시키고자 한다. 모든 것은 자기 안에서 자신의 목적과 본분과 발전의 계기를 갖는다. 나중에 괴테는 이데아를 "생동적으로 발전해 가는 각인된 형상"이라고 말한다. 세계에는 완전성을 향한, 중용을 햔한, 선을 향한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만물을 움직이는' 신을 향한 점진적인 운동이 있다. 


- 헬레니즘 철학과 로마 철학

그리스의 도시 국가는 인도까지 뻗어 간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제국에 편입됨으로써 기원전 4세기에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고전기 이후의 그리스 문화인 헬레니즘 시대에 동양과 서양은 서로 긴밀하게 만난다. 문화 중심지가 바뀌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매우 전문적인 경험적 연구가 행해졌다. 철학에서는 주로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이 논의되었다. 행복하기 위해 개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피쿠로스주의자, 스토아주의자, 회의주의자 들은 새로운 역사적인 도전과 개인의 방향 및 힘의 상실에 대해 상이한 방식으로 대답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사회에서 벗어나 철학을 하며, 현실을 아주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덕스럽고 평정을 잃지 않은 삶과 운명의 장난에 흔들리지 않는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다(키티온의 제논), 회의주의자들은 대립적인 철학적 입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행복을 이끌어 낸다(피론), 세 학파의 창립자인 에피쿠로스와 제논 그리고 피론은 모두 아테네에서 활동했다.

로마는 기원전 2세기부터 그리스를 정치적으로 지배했다. 키케로는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철학을 소개하며, 자신의 글을 통해 라틴어로 된 철학 언어를 심어 놓았다. '휴마니타스(Humanitas)'(인간성)라는 용어는 철학의 지혜를 정치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이상적인 조어의 예라 할 수 있다. 수사학과 철학은 하나로 합쳐졌다. 말을 잘하고 덕이 있으며 다면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이러한 언어와 이성의 통일을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삶에서도 실현했다(로마의 퀸틸리안).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시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철학적 입장들이 혼재했다. 인도로부터 동양 철학이 흘러들어 왔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도 있었다. 근원에 대한 물음이 다시 되살아났다. 세계 종말론이 생겨나고, 죄악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염원이 절실해졌다. 이로부터 교조적인 진리곤을 가진 철학(종교)적, 신비적 구원론이 등장했다(바빌론의 마니교).

3세기에 신플라톤주의가 이집트의 플로티노스를 필두로 생겨난다. 그는 마지막 주자로 그리스어로 된 위대한 철학 체계를 세웠고, 고대 후기의 구원에 대한 욕구를 비기독교적인 내용으로 표현했다. 세계의 모든 사물은 빛으로 가득 찬, 신적인 일자가 빛을 발해 생겨난 것이다. 세계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절대자의 완전성이 넘쳐 흐른 것이다. 이 철학의 목표는 악의 원리로 파악된 물질, 즉 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질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일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고대 기독료 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계시라는 역사적 사건이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앙이 '이교도적인' 철학자들에 대항하여 철학적인 수단으로 방어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방어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4세기말에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된다. 

476년에 게르만 족 출신의 용병 대장 오도아커는 서로마 제구그이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켰다. 서로마 제국은 몰락했다. 하지만 비잔틴의 동로마 제국은 천 년 이상 더 존속해 고대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보존했다.  




2. 중세(medieval times) 철학 

- 기독교적인 토대

중세 철학은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중세 철학은 대략 5세기경에 시작하여 15세기까지 이어지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476년부터 아메리카가 발견된 1492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대략 천 년에 걸친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시대에 이어 천 년 동안의 중세 시대가 이어진다. '중세(Mittelalter)'(두 시기의 중간 시대, 과도기)라는 개념은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개념일 뿐이다. 역사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한 시대를 특징짓는 관련 요소들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간'에 있는 것 역시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펼친 고대의 초기 기독교 사상이 중세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따라서 주제의 관점에서 볼 때 중세 철학은 이미 2세기경에 시작된 셈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앙이 철학의 바탕을 이룬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확신들이 바탕이 되고 있다. (1)세상은 무에서 창조되었다. (2)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장 8절), (3)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전능한 신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포괄하는 세계를 무에서 창조해 이 세계를 존재하게 했다. 이는 초자연적인 진리이며, 신이 인간에게 직접 전달(계시)했다. '무에서 창조하였다'는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세계는 시초가 없다'는 고대 철학적 세계관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이제는 신이 의지 작용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은 건축가처럼 이미 주어져 있는 혼돈스런 원질료를 질서 정연한 우주로 만드는 것(플라톤의 학설)이 아니라, 창조자이자 생산자로서 물질을 존재하게 하는 자이다. 만물이 존재하는 것은 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이 전제될 때 가능하며, 신은 피조물인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한다. 

(2)신약 성경은 특히 '신의 사랑'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그리스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자족적인 신이 불완전한 피조물에게 다가오고 심지어 자비심에서 세상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치욕스러운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자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자신 이외의 것들을 움직이는 신적인 존재를 전제했고,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일방적으로 사랑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독교적인 사유와 다르다. 인간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면서 인간과 신,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에는 사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3)세계는 시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약속된 신의 왕국이 도래하는 종말도 있다. 그리스철학은 세계의 진행 과정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언제나 반복하는 원환 운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은 천지창조에서부터 출발해서 중심인 그리스도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단선적으로 진행된다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철학이 표방하는 '허황된 원환 운동'을 무신론적인 '코미디'로 분명하게 거부한다. 서양의 연대인 기원전(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오기전)과 기원후(A.D.=Anno Domini, 주님의 해)는 신이 시간 속으로 들어 왔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관찰 가능한 모든 사건은 신과의 관련 속에서만 해석되어야 하고, 모든 경험적 지식은 형이상학에 종속되어야 한다. 역사는 의미 충만한 구원사이지, 그리스도와 무관한 사건들이 무작위로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다. 인간은 시작과 끝이 계시되었기 때문에 세계사를 신의 눈으로 조망할 수 있으며, 세계사의 흐름은 의미 있고 목적 지향적으로 전개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고대의 정신적인 이상은 조화(Einklang)이다. 이러한 조화는 우주 질서와 일치되는 현세의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중세의 정신적인 이상은 구원이다. 구원은 신만을 바라보는 가운데 사후에 얻어지는 내세의 지고한 복을 의미한다. 


- 교부 신학

교부 신학(Patristik)은 2~7세기에 이르는 교부들의 가르침이다. 라틴 계열의 서방에서뿐 아니라 그리스 계열의 동방에서도 교부들의 중심적인 문제는 계시의 내용을 해명하고 그것을 지키며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저서는 아주 미약하지만 철학적인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그들에게 참다운 철학이자 계시로 받아들여졌다.

교부들은 고대 철학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등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박해와 문학적인 공격을 받게 되자 기독교 신앙을 합리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기술(변증론)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철학적인 개념과 사유 방식이 접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전기 이후의 그리스 문화인 헬레니즘이 기독교화 되었으며, 동시에 기독교도 헬레니즘화 되었다.

예를 들어,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철학에 개방적이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그리스도의 예언자이자 순교자로 보았으며,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렀다. 이에 반해 터틀리아누스는 아테네와 예루살렘을 전혀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안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철학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철학적 논증을 도입하기도 한 것은 스토아 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철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3세기에 기독교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교리서를 저술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적인 계시는 인간을 현혹시키는 철학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와 사도들의 전통적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만이 진리이다."

교부 신학은 고대 말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활동에 힘입어 4세기와 5세기에 절정에 도달했다. 그는 (신)플라톤적인 색채를 띤 기독교 사상의 개척자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순수한 이성 그 자체는 너무 유약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은 성경과 교회의 권위를 필요로 한다. 신앙이 우선이고 통찰은 그 다음이다. 인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은 지성이 아니라 의지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능동적인 사랑 속에서 드러나는 의지는 신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신국론>은 "유약한 기독교 신은 410년에 서고트인들이 로마를 정복할 때 속수무책이었다"는 이교도들의 비난에 대항해서 수행된 기독교에 대한 가장 위대한 최후의 변론이다. 

계시냐, 철학이냐의 다툼은 부분적으로는 수백 년에 걸친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4세기에 펼쳐진 그러한 논재으이 예는 신인(神人)론이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가장 완전한 신이면서 동시에 가장 완전한 인간일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에 따르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일한 속성이 동일한 관계에서 자신에 속하면서 동시에 속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기독론(그리스도의 인격성에 대한 교리)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 스콜라철학

켄터베리의 안셀무스는 11세기에 "신앙은 이성적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스콜라철학은 신앙과 지식,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 스콜라철학의 목표는 포괄적이고 빈틈없는 체계, 즉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 모두를 통일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철학은 계시된 진리를 더 이성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진리의 연관성을 더 명료하게 드러내야 하며, 이성의 관점에서 제기된 발론을 해소해야 한다. 

교부 철학자들은 개인별로 활동하면서 각자의 저서를 통해 영향력을 얻었다. 반면 스콜라철학자들은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 부설 학교, 나중에는 대학을 통해 활동했다. 스콜라철학 시기는 학교의 시대(Schola는 school을 의미한다)이며, 뛰어난 교사들의 시대이다.

초기 스콜라철학의 시기(800~1200년경)에는 안셀무스처럼 신의 존재를 성서의 도움 없이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 증명하고자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시의 논리학이 차용되었다. 11~12세기경에 살았던 아벨라르두스 같은 사람들에 의해 진술과 반론의 형태를 띤 스콜라적인 논쟁 방식이 발전되었다. 11세기에 세상에 대한 멸시가 나타났으며(페트루스 다미아누스, "육체는 구린내 나는 덩어리이다"), 12세기에는 자연철학적인 이론들, 언어철학 및 역사철학적 사변들(샤르트르 사원 학교), 종교적 진리의 신비적 체험(끌레르보의 베르나르) 등이 나타났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가 여전히 아주 폭 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약 1300년까지에 이어졌던 스콜라철학의 절정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비롯한 여러 저서들이 아랍인들의 해석이 가미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의 대명사로 통했고, 고대 사상이 점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아랍철학과 유대철학이 충돌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도 확대되었다. 최초의 대학들인 볼로냐대학(1158), 파리대학(1170), 옥스퍼드대학(1200년경)등이 설입되었다. 옥스퍼드대학은 자연과학 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로저 베이컨), 프란체스코파와 도미니크파와 같이 새로운 수도회가 생기면서 서로 경재의 양상을 보였으며, 신비주의자들은 신과의 직접적인 합치를 추구했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13세기에 기독교의 전통(아우구스티누스)과 고대 사상(플라톤,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종합이 이뤄졌는데 보다벤투라, 알버트 경,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그 주역을 담당했다. 이러한 종합은 '통합(summa)'(전체, 총합)이라고 불린다.

스콜라철학의 체계를 세운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는 신앙과 지식 그리고 계시의 진리와 자연적 이성의 진리,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참다운 철학은 언제나 올바르게 이해된 신앙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신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이성이 인간에게서 차지하는 위치와 같다."

스콜라철학에서는 수백 년동안 계속 반복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인간, 선과 같은 보편 개념은 어떤 가치를 찾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른바 보편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보편 개념은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관념에만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보편 논쟁에는 극단적인 두 입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개념)실재(realism, 이 용어는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문제 삼는 근대의 인식론적인 '실재론'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이고, 다른 하나는 (개념)유명론(nominalism)이다. 실재론의 중세적인 입장은 인간의 사유와는 무관하게 보편 개념의 실재성을 주장한다. 즉, 개별적인 사물들이 창조되기 전에 그 사물의 원형에 대한 신의 생각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명론은 보편 개념에 어떠한 독자적인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 개념들은 단지 이름(nomina)일 뿐이며 정신적으로 부풀려 생각한 결과일 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편 논쟁에서 중계자의 위치에 선다. 그는 보편자의 존재를 3단계로 구분한다. (1)보편 개념은 신의 정신 속에 내재하는 창조적인 사상으로서 사물들에 앞서 존재한다(ante res). (2)보편 개념은 형태를 만들고 현실화시키는 형상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케이아) 창조된 사물들 속에 존재한다(in rebus). (3)보편 개념은 추상으로서, 다시 말해 인간의 사유속에서 존재하며 사물들 이후에 존재한다(post res).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 계열의 대표자인 하인리히 겐트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성의 지배를 너무 많이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그에게서는 의지가 주인이고 지성은 시종이었다. "주인이 길을 잃지 않도록 시종이 밤에 등불을 주인 앞에 들고서 주인을 인도해 가듯이" 지성은 의지를 인도한다.

대략 1500년까지의 후기 스콜라철학 시기에 이서에 대한 스콜라철학의 신뢰는 점차 사라졌다 신앙과 지식의 통일 불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점차 퍼져 갔다. 이성은 교회의 가르침을 증명할 수 없으며, 믿음은 이 가르침을 순종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신에 대한 사변적인 인식 대신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나타난다. 완고하고 복고적인 입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비주의가 영향력을 얻기 시작했다(토마스 캠펜),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후기 스콜라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판적인 역할을 한 대표자는 14세기에 보편 논쟁을 첨예화시킨 위리엄 오컴이다. 그에 의하면 개별적인 사물들만이 존재하며, 보편 개념은 사유할 때 사용되는 기호일 뿐이며, 일종의 언어적 허구일 뿐이다. 근대의 문턱에서, 심지어 이미 근대의 문턱을 넘어선 시기인 15세기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을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각색하여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신은 인식될 수 없다. 신은 은폐되어 있다. "나는 신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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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임, 무협지, 만화, 드라마, 페이스북에 빠지거나 심지어 마약을 찾기도 하는 것 같다. '철학'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유수현)  6


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처음에는 이단이 된다.  9


고전을 읽는 것은 늘 어렵다. 기존의 시각을 도그마처럼 따르면, 오히려 쉬워진다. 고전은 어렵게 읽어야 한다. 또 인문 고전 독법에는 따로 왕도가 없다. 늘 새로운 해석을 찾아 읽는 게 최선이다.  10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갚되 은혜로 하라.

<노자> 63장 입니다. 거기보면 "위무위(爲無爲)" 즉 무위를 행하고, "사무사(事無事)", 즉 일삼음이 없음을 일삼아라. 그리고 "보원이덕(報怨以德)", 원한을 갚되 은혜로 하라. 이렇게 나옵니다.  24


공자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은혜를 갚겠는가?" 먼저 당신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어떻게 갚겠는가? 당연히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은혜를 갚는 것이 맞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갚느냐는 거죠. 공자의 답은 이렇습니다. "곧음"으로 원한을 갚고 은혜로 은혜를 갚아야 한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제가 충분히 따라서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5


<한시외전(韓詩外傳)>이란 책에는 공자의 제자 수제자 세 사람이 등장. "당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있고 당신에게 잘 대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들은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하겠느냐?" 하니까.

자로(子路, 기원전 543~480년경-말보다주먹, 반란에 연루되 갓끈을 다시묶고 앉은채로 죽어감)는 "남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 주지 않으면 나도 잘 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26


자공(子貢, 기원전 520~456년경-현실수완이 뛰어나 공자학단의 재정 문제 실질해결자)은 "남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 주지 앟으면 나는 그와 함께 상황에 따라서 잘해 줄 만하면 잘해 주고 잘해 줄 만하지 못하면 나도 잘해 주지 못한다."

안회(顔回, 기원전 521년경~?)는 "남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 주지 않아도 나는 잘 대해 줄 것이다."

이 말은 일단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말은,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겠느냐를 묻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논어> 의 어떤 구절이 나온다로 할 때에, 그 말의 객관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의미를 당신은 어떤 삶의 원리로 받아들여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를 포함한 물음들입니다.  27


공자는 이 세 사람의 대답을 듣고서 어떻게 말했을까요?

"자로의 주장은 야만인들의 주장이다. 자공의 말은 친구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말이고, 안회의 말은 가족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말이다."

이 가운데 객관적인 해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동일한 두 눈이 분명이 힜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의 깊이가 다를 뿐이죠. 


보원이덕, 원한을 갚되 은혜로 하라. 공자의 말씀은, 측별히 그렇게 하는 거는 불가능하다. 쉽지 않으니, 직(直곧을직), 다시말해 내 마음이 원하는 바대로 가라. 그런 뜻입니다. 즉 정직하다는 말은 '자기의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행하라는 뜻입니다.  29


'보원이덕' 이말에 대해서 하상공은 이렇게 처방을 제시합니다. "재앙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싹수부터 끊어 놓는다." 이 말은 조금 더 쉽게 풀면 이런 뜻입니다. "평소, 천하에 두루 행할 만한 도를 닦고 백성들을 위해서 선을 행하라. 그러나 너에게 반역하는자, 황제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을 행하였거나 행하려는 자. 그런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천하의 안녕을 위해서 재앙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끊어버려라."  34-35


유학자 왕필은 보원이덕에 관해 "작은 원한의 경우에는 보복하고 말 것이 없다. 그러나 큰 원한의 경우에는 천하 모든 사람들이 죽이고 싶어하므로 모두 똑같이 생각하는바, 그것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덕이다."

작은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사적'인 원한이라고 할 수 있어요.  36


작은 원한(小怨)의 경우 사적인 것이므로,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개입시킬 여지가 없는 거다.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겁니다.  37


왕필의 해석은... 철저하게 유가의 정신이지 '노자'의 사상에서 나올 수 있는 논리가 아닙니다.  38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고전 속에 원하는 진리가 있어서 그것을 우리가 해석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 그 가치를 고전에 새겨 넣는 작업, 그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46



루소의 자유개념이 칸트의 자유 개념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자유 개념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52


니체는 "우리의 살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태도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죠. 이게 바로 푸코가 말한 실존의 미학이고, 이게 루소가 몸소 보여준 자유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첫 출발점입니다.  63


'자유'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유와 반대가 되는 단어, 즉 '지배'와의 대조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델1은 '지배를 간섭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관해서입니다. 이때, 자유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지상)주의 모델입니다. 모델2는 '지배를 강제로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이때, 자유는 '자율'이 되죠. 자유는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을 하게 되어 자율적인 인간드링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모델입니다. 모델3은 '지배를 예속으로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이때, 자유는 '해방'이 될 것입니다. 이 모델은 자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통해 실현될 가치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65


자유주의라는 단어. '리버테어리언(libertarian)'같은 단어들은 '진보적'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였어요. 지금은 자유지상주의자로 알고 있는데요. 원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최초로 썼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단어의 원초적이 ㄴ의미는 바로 무정부주의죠. 모든 지배를 거부하는 것이비니다. 지배 없는 삶, 이게 무정부주의자들의 꿈입니다. 자유주의의 두 가지 의미도 이로부터 출발합니다.

첫 번째,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과 MB를 대표로 하는 주유주의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 주제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애덤스므스류 혹은 신자유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을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는 심지어 유전자까지도 이기적(selfish gene)이라고 했지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들은 협력이나 이타심마저도 어떻게 이기심으로 환원해서 설명할지를 많이 고민합니다. 또, 게임이론을 가지고 정교하게 수리적으로 분석해서 겉보기에는 이타적이고 협조적인 행위들이 어떻게 이기심으로부터 출발하는지를 보여주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 등장한 겁니다. 이게 극단적인 보수적 자유주의죠. 

그런데, 자유주의를 도덕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루소를 이어받은 칸트와 롤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개인을 이기적 존재나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 선의지가 있는 '도덕적 개인'으로 봅니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한데, 도덕적 개인이라고 해서 남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나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그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런 태도입니다. 이게 자유주의의 도덕화이고, 이것이 오늘날 복지자유주의 곧 복지국가의 모델이 됩니다.

자. '이기적 개인'을 근대 용어로 말하면, 바로 부르주아지입니다. 부르주아지는 오늘날 (사적인) 시민계급이라고 얘기하는데 현대의 자본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잘 구분하셔야 할 것은, 부르주아지를 의미하는 '사적인 시민'과 루소가 말하는 '공적인 시민' 입니다.  65-67



'인륜'은 독일어에서는 원래 'Sitte'에서 유래하는데, 관습이나 습관을 뜻합니다.

법을 안 지키면 처벌을 받지만, 관습을 안 지킨다고 해서 감옥에 가거나 하진 않아요. 그냥 비난을 받을 뿐이죠. 어쨌든 공동체는 각기 그 나름대로 관습이 있고, 그 속에서 사는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관습이 몸에 배어서 따라가게 되지요.  122


상호의존... 내가 상대방의 인질이 되면, 자기중심적, 이기적 태도를 바꾸는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도 남한의 인질이 되어야 하지요. '상호 인질'이 되는 것이지요.  133


우리말로 '성(性)'이라고 번역되는 말은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 이렇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섹스와 젠더, 많이 들어보셨죠? 섹스는 생물학적인 성입니다. 젠더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길러진 성이죠. 그래서, '여성답다' , '여성스럽다' , '여자가 재수 없게...' 할 때의 성이 젠더이고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저 여자(sex)는 남자(gender)같애"나 "저 남자는 여자 같애."라고 말할 때, 앞의 여자(혹은 남자)는 섹스, 즉 생물학적 성이죠. 젠더는, '여자 같아' , '여성성' , 

여자로 길러짐' , '여자로 길러짐', 이런 얘기고요. 역시 "저 여자는 남자 같애"라고 할 때에, 뒤에 나오는 남자의 의미는 젠더로 사용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섹스나 젠더 이외에 섹슈얼리티(성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 대두. 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의 필요성. 성적 욕망이나 정서, 판타지, 성적 매력, 성 정체성 등을 의미하고, 신체적 영역을 넘어서 정서, 심리, 무의식 차우너의 심층적 의미구조들로 성의 범위를 확대시킨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국어로 성(性), 성성(性性)이라고 번역하는 이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굉장히 커요. 우리가 성관계라고 하는 것을 섹스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르기로 한 이유가 있어요. 해부학적인 성, 생물학적인 성을 일컫는 개념인 섹스를 성관계의 의미로 사용하게 되면 성기 삽입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두어서 이야기하게 되죠. 그래서 성행위, 성관계 등을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적인 문제로만 남겨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창출하게 된 데에는 성적 욕망이나, 성적인 정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환상, 성적 매력, 성 정체성, 의미 등등, 이런 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굉장히 큰 의미로 사용해야 된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성기 삽입 차원의 성관계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어떤 친밀한 행위들, 어떤 친밀한 정서까지도 우리는 포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차원이죠.  143-144


차별이 '다르기 때문에...'라면, 차이는 '다르지만...'을 전제한다.  150


평등, 공평함이란 단지 동일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특수성, 차이, 경험, 맥락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이 ㄸ고같이 세 개여서, 차별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개별적인 특성, 경험, 다양성 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차이가 아닌 차별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151


음양의 특성... 음양에 대한 초기의 생각은 주나라 때 생겨났는데요. 이 때에는 햇볕의 있고 없음에 따른 단순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춘추 시대의 음양 개념의 특징은 음양이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춘추 시대에는 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 등의 여섯 가지 기 개념으로 셜명되었습니다. 풍은 바람이고요, 우는 비, 회는 어두움, 명은 밝음입니다. 하지만 이 여섯개의 기운 중에 풍, 우, 회, 명은 음양의 개념으로 포섭이 되었습니다. 풍은 바람이니까 건조함이죠? 건조함은 어디에 배속될까요? 양이겠지요. 비는 음에, 어두움은 음에, 밝음은 양에 배속이 되겠지요?

이렇게 되니 음양 두 기만으로도 다른 네 개의 기를 설명할 수 있으므로 음양을 제외한 네 개의 기는 점차 사라지고 음양 두 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154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과연 명쾌하게 설명 가능할까요? 오히려 애매함, 모호함을 통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요?  165


<계몽의 변증법>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왜 인간은 진정 인간적 상태로 진입하지 못하고 새로운 야만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177

이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계몽의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걔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얘기하겠지만, 동일성 사유에 기초한 계몽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기 유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자기의 체계에 꿰맞추는 자기 유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지요. 타자를 부정하는 자기 유지는 역설적으로 자기 유지에 실패할 운명에 처한다는 거죠. 체계의 틀을 맞추느라 놓쳐버린 자신의 본능, 감성, 개성, 인간성 등을 잃게 된다는 거예요.  179



시푸 : 사부님, 아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대사부 : 시푸, 그냥 소식이 있을 뿐일세, 좋고 나쁜 것이란 없어.

....

대사부 : 이 나무를 보게, 내가 원하지 않아도 복숭아씨는 복숭아 나무가 돼.

시푸 : 하지만 복숭아로는 타이렁을 물리칠 수는 없어요.

대사부 : 가능할지도 몰라, 자네가 포를 이끌어주고 믿어만 준다면.

시푸 : 도와주세요, 사부님.

대사부 : 아니야, 그냥 믿는 수밖에. 약속해줘, 시푸. 그 아이를 믿겠다고...     <쿵푸팬더> 중에서  249


(시푸가 용의 전사로 포를 받아들이고 훈련시키기 시작하면서)

시푸 : 쿵푸는 수련할 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너는 꽝이야. 그런데 그건 내 잘못이었어. 너를 5인방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려고 했으니까.                        <쿵푸팬더>중에서  258


적어도 자신의 옳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옳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했죠.  259


수영을 시작할 때 물에 뜨기 어려운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관계를 맺기 어려운 것은 그 이전의 익숙함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것이죠. 여기서 필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이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266


(용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포에게)

대사부 : 국수냐 쿵푸냐? 너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너무 집착하고 있구나. 이런 말이 있어.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아무도 모르지, 그러나 오늘은 선물이지. 그 선물을 소중하게 다루렴.    <쿵푸팬더> 중에서  267


나의 경험과 생각의 한계를 인식하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하나씩 비워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 속의 내가 아닌 진정한 나에 이르게 되고, 이를 통해 나는 세상의 길, 세상의 결을 따라 '노닐 듯'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도 타인에게, 타인도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며,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逍遙遊 거닐소 멀요 놀유)' 입니다.  270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의 생각과 가치를 비판하고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자유롭고자 하는 장자의 철학.  271


Kritik'(비판)과 'Krisis'(위기)의 어원이 똑같더군요. 'Krise'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철학과 철학함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상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이며 그 사상의 힘을 현실의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고하는 것은 철학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77


마키아벨리즘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듯이 기만과 위선을 의미한다면,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주의자기 아니었습니다.

"책의 운명은 그 독자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웃지 않고, 슬퍼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오직 이해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오직 그를 '이해하기'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81


그는 '현실 정치학'을 만들어낸 최초의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데요.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주장하지요. 즉 <군주론>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기술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저작은 사실판단이지 도적, 윤리가 개입하는 가치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286


당시 이탈리아는 다섯 개 국가로 분열돼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고민했던 것, 그가 꿈꾸었던 것은 국가의 통일이었죠. 그래서 책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이 군대예요. 마키아벨리가 제일 싫어하는 군대는 외국 군대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군대를 주장합니다.  287


마키아벨리는 소위 중세적 위계질서를 깨려고 합니다.  288



'던바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 수는 150여명이며, 강도 높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친구 관계는 12명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죠.  319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자신의 생명이 말하는 욕망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밖의 것들에 눈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내 삶은 공허하지' , '왜 나는 열심히 사는데 안 되지'라고 자꾸만 자신을 닦달합니다.  322


'네가 트루먼을 아느냐?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하나? 나는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normal life)을 살 기회를 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겨운(sick) 곳이야. 시헤이븐(seahaven)은 천국이지. 트루먼은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 시도하지도 않았지. 자네가 괴로운 건 트루먼이 그런 세상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트루먼 쇼> 중에서  363


진실을 향해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366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는 세금이 높다고 하지요. 수입의 50%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고 하잖아요. '네가 번 돈은 다 네 것이 아니다. 반 이상 내놔'하면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치는데 쓰겠죠. 개인의 수입을 사회로 완원시키는 것인데, 이런 것도 사회주의입니다. 사실 내 것이 온전히 내 것인 것은 아닙니다. 내가 수입을 많이 올려 부자가 되었다고 했을 때, 그건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지 때문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금을 많이 내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습니다. 그리고 걷은 세금이 투명하고도 적절하게 잘 쓰이고 있다고 믿으면 세금 저항이 크지 않겠죠. 믿지 못하겠으면 어떻게든 세금을 안 내려고 할 거고요.  386


저는 얼마 전에 한 학술 발표회에서 우리나라를 아류제국주의 국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대외 정책에 합류하면서 또 그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피지배 계급을 양산하는 거죠.  388


강자는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약자는 현실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따라서 미래는 약자에게 있습니다. 위로가 되나요?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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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근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관습들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는다.  21


몇 세기 동안 절대다수에게 지켜져 내려오는 신념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들이더라도 어떤 일에 틀릴 수 있다는 가르침. 사람들이 틀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동성의 특성을 꼬집기 위해서 소클테스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사는 것을, 도자기를 굽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에 비유햇다. 직관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도자기나 구두는 상상조차 할 수없다. 하물며 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더욱 복잡한 일을 어떻게 근거나 목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31


소크라테스는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검증하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플라톤의 초기와 중기의 대화편에서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투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투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 부유하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 있다.

4. 최초의 진술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 용기 있는 행동은 전투에서의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또다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리는,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잇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존재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그 주장에 담긴 오류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무엇을 빗대어 말햇든지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더 우월하다.  35-37


소크라테스에게 직관에서 나온 진실은 버팀대도 없이 옥외 대좌(臺座)에 놓인 조각상과 같았다. 그 조각상은 강한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론에 대한 자각과 이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진실은 쇠줄로 땅에 고정된 조각상과 같았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방법 한 가지를 약속했는데, 그런 여론이라면 우리는 비록 폭풍우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끄떡없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38-39





소크라테스는인간 존재란 살다보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도 있기 때문에 간혹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진실과 인기가 없는 것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 더 덧붙였다. 곧,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오류라고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기가 없는 현상 그 자체에 관심의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인기를 잃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44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혹평을 할까?

우리는 비평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45


진정한 체면은 다수의 의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논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48


비록 그 문제가 수사학 선생이나 막강한 장군, 혹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테살리아 출신 귀족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49


소크라테스 :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비난, 그리고 의견에 마구잡이로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아니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의견에만 관심을 가지겠는가?

크리톤 :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존중한 필요 없이 단지 몇 명의 의견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훌륭한 의견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이야말로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으 ㄹ갖춘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민중이 우리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의의 문제에 대해서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겠지.' <크리톤>  50-51


특정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힘.  53


'만약 그대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면, 그대들은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오.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자면, 사실 나라는 존재는 신에 의해서 글자 그대로 이 도시에 달라붙어 있소. 아테네로 말할 것 같으면, 커다란 순종 말(馬)처럼 거대한 몸집때문에 게을러지기 쉬운데 그래서 쇠파리의 자극이 필요한 곳인 것 같소... 만약 그대들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대들은 나의 생명을 구해주겠지요. 그러나 나는 곧 그대들이 졸음에서 깨어나서 성가셔하면 아니토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격에 나를 해치우고는 계속 잠을 청하리라 생각하오.' <변명>  55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자신의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중하게 처신하다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수줍음은 간혹 교만으로, 남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은 아첨으로 오해받는다. 누구나 그런 오해를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은 바짝 타들어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의도했던 것들이 아니기가 십상이다. 가혹한 적들은 힘있는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무고한 철학자에게 불공평하게 쏟아지는 혐오에서 우리는, 정의를 실천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달리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을 확인할 수 있다.  60


우리는 편견이 사라지고 질투가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옳지 못한 명분을 품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못되었다고 비난받을 때 무조건 자신이 옳다는 식으로 어린 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거부의 정당한 명분보다는 단순히 거부하는 자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61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두 가지 강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두 가지 환상이란 바로 대중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과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2




II.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사모스라는 초록빛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300권의 책을 집필햇다. 비록 잇따른 재난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져버렸지만.

그의 철학이 단번에 두드러지게 되었던 것은 감각적 쾌락을 강조한 점 때문이었다.  71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가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그때까지 유쾌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이처럼 진솔하게 털어놓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와닿았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철학 학교를 열었다. 학교는 모두에게 입학을 허락했으며 함께 어울려 살면서 쾌락을 연구하도록 장려했다.  72


'쾌락(pleasure)'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면 쾌락을 얻는 어떤 삶의 방식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75


쾌락주의(Epicureanism)의 핵심에는, "무엇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까?"라는 질문 못지않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대답하는 데에 우리 모두가 서툴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76


'의학의 경우, 육체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면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듯이, 철학 역시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단상>

에피쿠로스의 시각에서 보면, 철학의 임무는 우리 각자가 원인 모를 우울증과 욕망의 충동을 해석하도록 도와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때에 그릇된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돌보아주는 것이었다.  78


그곳에는 으리으리한 집도 없었다. 음식도 소박했다. 에피쿠로스는 포도주보다는 물을 마셨으며, 빵과 채소와 한줌의 올리브로 꾸며진 만찬으로도 행복해했다. "마음 내킬 때마다 잔치를 베풀 수 있도록 내게 치즈 한 단지를 보내주게"라고 그는 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그렸던 한 남자의 진솔한 취향은 이러했다.  79


행복, 에피쿠로스의 구매 리스트

1. 우정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주요 교설>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세네카의<서한집>에서 인용  80

진정한 친구들은 절대로 우리를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이 ㄴ자아이다.  81


2. 자유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에피쿠로스가 친구 메노이케우스에게 설명했듯이,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82


3.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집적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83


"실제로 일어날 시점에 아무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어떤 일(죽음/역주)을 두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했다. 인간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어떤 상태를 두고 미리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살마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냉정한 분석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은 에피쿠로스의 친구들에게 "정원"밖의 무분별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그들을 괴롭혔을지도 모를 많은 내밀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83-84


부유하다는 것이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펼쳤던 주장은,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3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욕망이 있다.' <주요 교설>  84


세가지 분류는 행복이란 몇몇 복합적인 심리적 재상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지, 물질적인 결과물과는 상대적으로 관계가 적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85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86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또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값비싼 물건을 갈망하는 순간에 그것을 사는 것이 옳은지를 자신에게 엄숙히 물어야 한다. 

'모든 욕망에는 다음과 같은 조사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갈망해마지않는 것들이 성취될 경우, 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그 욕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티칸 어록>  88


조사방법은 적어도 다섯 단계를.

1.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한 가지 세워라.

 - 휴일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별장에 살아야 한다.

2. 그 설계가 잘못일 수도 잇다고 상상해보자. 욕망의 대상과 행복을 연결하는 것에서 예외적인 것들을 찾아보라. 욕망의 대상을 소유해도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 별장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쓰고도 여전히 불행할 수 수도 있지 않을까?

 - 별장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휴일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3. 한 가지 예외라도 발견된다면, 그 욕망의 대상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 예컨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별장에서도 비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예컨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나는 텐트에 묵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4. 행복을 엮어내는 데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설계는 지금까지 나타난 예외까지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 호화 별장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다만, 그 행복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한에서, 나는 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5. 이제 진짜 필요한 혼란스러웠던 애초의 욕망과는 매우 다른 것인 것 같다.

 - 행복은 훌륭하게 장식한 별장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  89-90


값비싼 물건들이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지 못하는데도, 우리가 그런 것들에 그렇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두개골 옆면에 구멍을 뚫게 만든 편두통 환자가 저지른 것과 비슷한 오류 때문이다. 말하자면 값비싼 물건들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91


우리 인간이 그토록 쉽게 암시에 걸려드는 존재가 아니라면, 아마 광고가 그처럼 널리 유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5


'기분을 모든 선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면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쾌락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사회적 부의 축적이 행복의 증대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값비싼 재화들이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욕구들은 우리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 그런 욕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98


행복은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는 대부분 금전적인 것이 아니다.  100




III.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 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12


세네카에 따르면 분노는 열정의 통제 불가능한 촉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추론의 오류에서 나온다. 이성이 언제나 루이의 행동을 관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그도 인정했다. 만약 차가운 물 세례를 받으면 우리에게는 몸을 부르르 떠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두 눈 앞으로 손가락을 홱 움직이면 우리는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노는 육체적 반사(反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이성적인 사고를 거쳐 고수하게 된 어떤 관념들에 근거하여 터져나올 수 있다. 그렇지 깨문에 그 관념들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화를 쉽게 내는 성격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좌절에 봉착할 때, 우리가 얼마나 서투르게 반응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것을 정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단적으로 결정된다. 

가장 격한 분노는 존재의 기본 원칙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일어날 때 터져나온다.  114


우리는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불완전성과 화해해야만 한다. '심술궂은 존재들이 심술궂은 짓을 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아니면 당신의 적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에게 성가시게 굴고, 또 당신의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당신의 하인이 못된 짓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말인가?' <분노에 관하여>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117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예상치 못햇던 것에 가장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또 따라서 모든 것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운명의 여신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없으므로"), 우리는 늘 마음속에 재앙을 당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제안했다.  119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두려운 것이기는 해도 - 세네카가 과감하게 말했듯이 -  결코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악(惡)들이 실제로 자신에게 닿기 전에는 절대로 악을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장례행렬이 문 밖을 지나가도 우리는 절대로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때 이른 죽음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장례를 설계한다. 아이가 어떤 옷을 입을까, 군에서는 어떻게 처신할까,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어떻게 물려받을까 등등.'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23


우리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124


세네카의 사전 숙고

'[현명한 사람들은] 하루를 생각으로 연다...' <분노에 관하여>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운명도 도시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있다.' <도덕에 관한 서한>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고, 우리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아이를 낳게 되오.'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모든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으로 어떤 일이든 다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야 한다.' <분노에 관하여>  125


금심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경우 당사자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최선의 결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과, 최악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게 된다. 짐작컨대 근심에 빠진 사람은 당연히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문화적, 성적, 사회적 행위에서도 즐거움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130


'철학자들은 돈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누구도 지혜로운 자에게 가난의 운명을 지우지 않았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그리고 그의 실용주의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이르러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운명의 여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경멸할걸세.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보다 좋은 반쪽을 선택할걸세.' <행복한 삶에 관하여>  133


'현명한 사람은 아무것도 잃을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불변성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자족할 것이다... 만약 질병이나 전쟁으로 한쪽 손을 잃게 되거나, 사고로 한쪽 다리 혹은 두 다리를 모두 잃는다고 해도 현명한 사람은 남은 것에 자족할 것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세네카가 "자족한다"라는 표현으로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세네카의 말은 모순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한쪽 눈을 잃은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쪽 눈을 잃는다고 해도 삶은 가능할 것이다. 눈이나 손의 정상적인 숫자는 단지 만들어진 관념일 뿐이다. 그런 입장을 말해주는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난쟁이이더라도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더 크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친구 없이 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친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족적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34


무생물의 조롱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지거나 서랍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경우 우리는 종종 짜증을 내곤 한다. 연필이나 서랍과 같은 무생물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좌절로 이어지고 이러한 좌절감은 한갓 무생물이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이 추가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은 마치 주인이 애착을 가진 어떤 지식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주인에게 부여한 지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암시를 전하는 듯하다. 


생물체의 조롱

다른 사람들이 말없이 자신의 성격을 비웃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에도 앞의 경우처럼 예리한 아픔을 느낀다. 

스웨덴의 한 호텔에 도착한 직후, 나는 짐을 들어주겟다는 호텔 종업원과 함께 방으로 갔다. 그 종업원은 "당신 같은 남자에게는 짐이 버거울 것 같군요"라고 짓궂게 "남자"를 강조하며 (단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암시하면서) 싱긋 웃는다. 그 사람은 북유럽 특유의 금발이고(아마 스키 타는 사람, 아니면 엘크 사냥꾼일까. 먼 옛날이엇다면 전사였을 것 같다), 말씨는 단호하다. "무슈는 이 방을 좋아하게 될 거요"라고 그가 말한다. 또 "될 거요"라는 표현에는 명령의 냄새까지 풍긴다. 나중에 그 방이 차량의 소음으로 늘 시끄럽고 샤워 시설이 신통치 않으며 텔레비전이 고장난 것으로 확인될 때, 그 종업원의 암시들은 음모의 증거로 돌변한다.

달리 숫기가 없고 과묵한 사람이었다면, 야비하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기분에 부글부글 끓다가 급기야 소리를 지르거나 난폭한 행동은 물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것이 당연히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and)"로 연결되는 절(節)이 들어 있는 문장을 버리고 "... 하기 위하여(in order to)"로 연결되는 절이 든 문장을 취하고 싶어진다.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졌고 그리고 지금 나는 약이 올라 있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and now I am annoyed)"는 생각에서부터 "나를 골려주려고 연필이 책상에서 떨졌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in order to annoy me)"라는 의견으로 도약시키려는 유혹을 느낀다.  135-137


세네카는 그런 판단착오레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정신의 나약함"과 관계가 있다.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는 그들의 성향 뒤에는 자신이 조롱당할 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해코지의 표적이 되고 잇다고 의심할 때에는 누구든 혹은 무슨 일이든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게 된다.

'"그렇고 그래서 오늘 나를 만나주지 않았군.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면서 말이야." "그 자는 거만하게 퇴짜를 놓은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비웃었어."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기는 커녕 테이블 아래쪽 자리를 주었어." <불변성에 관하여>  139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140


자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과자 장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자를 팔기 위해서라고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사진에서 처럼) 로마의 한 호텔 1층에 있는 건축업자는 벽을 수리하는 척하고 있을지 모른다(1). 그러나 그의 진짜 의도는 위층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남자를 괴롭히는 것이다(2).

비열한 해석 : 건축업자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다. 

우호적인 해석 : 건축업자가 망치를 두드리고 있고 내가 그 소리에 괴로워하고 있다.  141



외부의 소음과,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속의 생각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을 엉뚱한 대본에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바깥의 모든 것들이 미친 짓거리라도 좋다. 내 마음에 불안의 요소만 없다면.' <도덕에 관한 서한>  142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여행가방이 운송 도중에 분실되엇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몇 조가 지나면 체념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자의 창시자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잃엇을 때 어떻게 처신햇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보고했다. 

'제논은 배가 조난되어 그의 모든 짐이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물질에 조금 더 초연한 철학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로군."' <영혼의 평정에 관하여>  147


'겨울은 차가운 기후를 몰고온다. 그러면 우리는 몸을 떨어야 한다. 열기를 몰고 여름이 돌아오면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기후는 건강을 훼손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병에 걸려야 한다. 어쩌다가 야생 짐승을, 아니면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파괴적인 인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법이다. 이 법을 우리는 따라야 하고, 준수해야 한다... 당신이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51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Quid opus est partes deflere?  Tota flebilis vita est.'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52




IV.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통증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의지하기만 해도 된다.' <수상록>III

'가장 행복한 삶은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다.' - 소포클레스  158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된 결과,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정과 안식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상록>I  163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크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이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상록>III  164


'만약 [남녀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첫번의 실패로 그만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보다는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더 낫다....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사람은 다양하고 부담 없는 감정 분출을 통해서 전주곡처럼 몇 차례 가볍게 시험을 거쳐야 한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는 영원히 성교에 적절치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완고하게 매달려서는 결코 안 된다.' <수상록>I  169-170


몽테뉴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배제하려는 전통적인 인간의 초상을 흠잡았다. 그 자신이 직접 책을 쓰기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수정하려는 뜻에서였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은퇴햇을 때 그는 책을 쓰고 싶었지만, 어떤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점차로 그의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자리잡아갔는데, 그 책은 너무나 엉뚱하여 그의 서재의 반원형 서가에 꽂혀 있던 천 권 가량의 책과는 달랐다. 

몽테뉴는 자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저자로서 엄청난 수치심을 감수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 활동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묘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수상록> 서문에 그 뜻을 밝혔다.

'아직도 자연의 중요한 법칙들의 달콤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묘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그대들이게 분명히 밝힐 수 있소.' <서론>의 주  173-174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두 개의 진영으로, 말하자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눌 때 드러나는 그 오만함과 신속함이다. 우리의 경험과 믿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곧잘 무시당하곤 한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말 그래? 참이상하군!" 하고 말하면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종의 경고를 하는데, 그런 말에는 우리의 정당성과 인간성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약간 담겨 있다.  178


여행하면서 몽테뉴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관념들이 지방에 따라서 얼마나 뚜렷하게 달라지는 지를 관찰했다.


바젤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타지 않았으며 저녁식사때는 예닐곱 가지의 코스 요리를 즐겼다. 바덴에서는 매주 수요일은 생선으로만 식탁을 꾸몄다. 스위스의 가장 작은 마을이었던 바덴은 고작 2명의 경찰에 의해서 치안이 유지되었다. 독일인들은 15분마다 종을 울렸고, 심지어 1분 단위로 종을 울리는 마을도 있었다. 린다우에서는 모과로 만든 수프를 내놓았으며, 고기 접시는 수프에 앞서 나왔고, 빵은 회향(茴香)으로 만든 것이었다.  178-179


몽테뉴를 괴롭혔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나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사가 검증을 거치지 않고도 꿋꿋이 고집하는, 자신들의 난방장치가 상대의 난방장치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그 맹신이었다.

'어느 나라 할것없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야만스럽거나 충격적으로 비치는 관습이나 관행이 있게 마련이다.' <수상록>III  182-183


학살의 이면에는 추잡한 추론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분리하는 작업은 전형적으로 귀납법의 형태로 진행된다. 그 방법에 따르면 특별한 예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추론한다(논리학자들의 설명처럼, 관찰을 통해서 A1이 0이고, A2도 0이고, A3도 0이라는 결론을 얻으면, 우리는 모든 A는 0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지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만났던 지적인 사람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을 찾는다. 그래서 만약 <그림1>처럼 보엿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림2>처럼 보였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리고 <그림3>처럼 보였던 또 다른 지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우리는 지적인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검정 옷을 즐겨 입고, 엄숙하게 보이는 존재들이라고 결정짓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4>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리석은 존재라고 얕보고 훗날 그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  19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무엇이든 야만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자기 나라의 관습이나 사고방식 외에는 달리 진실이나 올바른 이성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 자기 나라에서 완벽한 종교와 완벽한 정치 형태,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가장 발전되고 완벽한 방법을 찾게 된다.' <수상록>I

가치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관습들이 결점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국적과 친숙함을 선(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


프랑스에서는 코가 막히면 손수건에다 코를 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런데 몽테뉴의 한 친구는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코가 막히면 바로 손에다가 푸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면서... 그는 나에게 지저분한 콧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콧물을 받기 위해서 미리 깨끗한 리넨 손수건을 곱게 접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도 그의 말이 전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관습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관습을 보았더라면 흉측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낯설음을 깨닫지 못했다.' <수상록>I  193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수상록>II  194

우주의 진실을 논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의문스럽다고 느껴지면, 몽테뉴는 비슷한 방식으로 고대의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우주 이론들을 몽땅 모아놓고 비교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그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모든 질신을 꿰뚫고 있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에서 어이없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비교 연구햇으나, 몽테뉴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고 빈정거리듯이 고백했다.  195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 담긴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룬 중요한 인물드에게서조차 엄청난 오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I  196


'흔한 친구나 우정이라고 브르는 것들은 우연 혹은 유사함으로 연결되는 친밀한 관계나 면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들은 서로를 격려한다. 그러나 직ㅁ 내가 이야기하는 우정에서는 영혼들이 서로 한데 우울리며 녹아들기 때문에 두 영혼을 결합한 솔기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상록>I

만약 만흥ㄴ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몬테뉴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많은 것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면, 우정이 그토록 소중하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199


그의 책은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발걸기였다 그는 서점을 찾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의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개인에게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나는 대중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의 가장 은밀한 사고들을 꿰뚫고 있는 서점의 진열대를 나의 가장 충직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수상록>III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역설에 감사해야 한다. 저자들이 말을 걸 사람들을 찾지 못한 까닭에 씌어진 책들의 수를 감안하면, 서점이야말로 그런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목적지가 아닐까?  201


만약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것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할 때,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유익하고 적절한지를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수상록>II

우리로 하여금 더 낫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만이 배우고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205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어의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켰다...' <수상록>II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 <수상록>I  207


나는 어떤 일로도, 심지어 그렇게나 소중하다는 학문을 얻는 일로도 머리를 싸맬 생각은 없다. 책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만약 책을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부분을 곰곰 생각하느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결코 없다. 한두 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어떤 책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 <수상록>II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서가에 책을 1,000권이나 꽂아두고,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통달한 사람의 입장에서 장난스레 젠체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 몽테뉴 자신이 철학적 해설을 풀어놓으면서 독자들을 졸리게 만드는 그런 애매모호한 신사로 비치기를 즐겼다며느, 그것은 엉큼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게으름과 느림을 되풀이하여 선언했던 것은 지식과 훌륭한 글쓰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허물기 위한 전략적 방법이었다.

몽테뉴가 암시했듯이, 인문학 분야의 책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지루한 내용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213


어려운 책들은 예외 없이 우리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명쾌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자를 무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든지, 아니면 책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을 우둔하다고 결론 내리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몽테뉴는 우리에게 차라리 저자를 책망하는 쪽을 택하도록 부추겼다.  214


평이하게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쉽게 읽히지 않는 산문이야말로 지식의 표상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어리석은 존재로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5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서 아이디러를 얻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을, 우리 자신들마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심리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저자들을 만나면 누구나 그드르이 글을 인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우리르 더 잘 아는 것 같다.  218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안다. "이건 키케로가 말한 거야" "이건 플라톤의 도덕률이야"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것들이야"라고,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면, 앵무새도 우리만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  224


몽테뉴의 암시에 따르면,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서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은 학식만 높고 현명함에서는 크게 처지는 산더미만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책들에 대해서 쓴 책이 많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들을 서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모든 책들은 해설로 가득채워져 있다. 진정한 저술가가 없는 실정이다.' <수상록>III

몽테뉴는 흥미로운 지혜란 어느 인생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제아무리 소박하다 하더라도, 옛날의 그 많은 책에서보다 우리 자신에게서 더 위대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25-226


'당신은 보다 풍성한 요소를 갖춘 삶만이 아니라 당신의 평범한 개인적 삶도 도덕철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수상록>III  227




V.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염세주의자로 성장하는 쇼펜하우어.

자살이 분명한 아버지의 죽음이후, 열일곱 살 소년 쇼펜하우어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큰 재산을 물려받는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내 나이 열일곱이던 때, 학교 교육은 한번도 받지 않은 채 나는 석가모니가 젊었을 적에 병든 사람이나 노인,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랬던 것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지냈다. 진실은...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만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악마의 작품인 것 같은데, 그 악마는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생명체들을 존재하도록 했다. 나의 경험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그렇다는 믿음이 늘 나를 지배했다."  234-235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철학교수 자리를 얻으려고 시도한다. 그는 "철학개론", 즉 "이 세상과 인간 정신의 정수에 관한 이론"이라는 강의를 맡는다. 학생 다섯 명이 수업을 듣는다. 가까운 건물에서는 그의 라이벌인 헤겔리 300명의 청중에게 강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239


이 철학자는 하루를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매우 엄격하게 지낸다. 그는 아침에 세 시간 글을 쓰고, 한 시간 동안 플루트(로시니)를 연주하고, 그리고 말을 파는 시장인 로스마르크트에 있는 영국식 식당 엥리셔 호프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흰색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다. 그는 식사를 할 때면 다른 소님들이 알아보는 것을 꺼려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면 경우에 따라서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클럽인 인근의 카지노 소사이어티의 도서관을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그는 이 세상의 비참함을 가장 잘 알려준다고 느끼고 있던 신문 <더 타임스>를 읽는다. 저녁 무렵이 되면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개와 함께 마인 강변을 따라 두 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밤에는 오페라 공연장이나 극장을 방문한다.  242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할 경우에 대비한 위안이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버림받을 때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위안이 그것이다. 우리는 단 며칠 간 희망을 품은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좌절의 깊이에 낭패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262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본래부터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성격도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고, 얼굴도 못생기지 않았다.

당신은 언젠가는 (당신의 턱과 그의 턱이 생에 대한 의지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조합을 이룬다는 이유로) 당신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연스러움을 느낌으로써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살마들을 용서하는 법을 일찍이 배워야 한다.  263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인류사에 종의 번식을 위해서 애 쓰느라 다른 인간을 사랑했던 수많은 인간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273




VI.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나움부르트에 있던 홀어머니와 열아홉 살의 여동생에게 편지를 쓸 때, 니체는 자신의 식사와 학업 진도에 대한 보고 대신에 자제와 체념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요약하여 보냈다.

'삶이란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또 삶을 즐길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삶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것을 얻기를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해야 합니다.'  280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비법... 밑그림.. 매일매일 일상의 일화들을 적어두어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92


모든 삶은 다 힙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을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뇌는 정신적 공활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니체가 존경했던 몽테뉴가 <수상록> 마지막 장에서 설명했듯이, 삶의 기술은 역경에 처할 때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조화처럼, 달콤하고 거칠고, 예리하고 단조롭고, 부드럽고 떠들썩한, 다양한 음색뿐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구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수상록>III

그리고 약 300년 뒤, 니체는 그런 사상으로 회귀했다.

'우리가 만약 비옥한 들판이라면, 어떤 것이든 다 흡수하지 않고 그저 흙바닥을 통과하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어떤 사건이나 사물, 사람에서도 유익한 비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1-302


'재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그다지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서도 훌륭한 업적은 남긴 사람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그들은 부족한 자질을 일궈가면서 스스로 위대함을 획득하여 (우리가 표현하는 것처럼) "천재"가 되었다. 그들 모두 장인(匠人)의 근면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어서 감히 훌륭한 완성품을 내놓기 전에 각 부분들을 정확하게 구축하려고 애쓴다. 그들이 그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황홀한 완성품이 주는 효과보다, 보잘것없고 신통치 않은 것들을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작업 그 자체에 보다 많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5


'미움과 시기, 탐욕, 그리고 지배욕이라는 감정들은 삶의 지배적인 감정인데....이런 것들은 삶이라는 총체적인 경제에서는 기본이며 필수이다.' <선악을 넘어서>

부정적인 뿌리들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것은, 동시에 한참 뒤 그 뿌리에서 자라날 식물 줄기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질식시켜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부터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일구지 못하는 사실에 당혹해야 한다.  307


그리스인들은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피하려 하지 않고 세련되게 활용했다.

'모든 열정에는 단지 재앙으로 작용하는 단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열정은 당사자를 어리석음의 무게로 짓누른다. 그리고 조금, 아니 한참 지나면 열정들이 영혼과 결합하여 스스로를 "영성화"하는 단계가 찾아온다. 아주 옛날에는 열정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람들은 열정 그 자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열정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열정과 욕망이 지닌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에서 연유하는 불쾌한 결과를 피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인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모조건 뽑아버리는 치과 의사에게 우리는 더 이상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우상의 황혼>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라고 요구했다.  310


니체 또한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행복이란 고통을 치르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314


높은 곳을 오르는 등정의 고통을 감내하기를 요구했다.  315


모든 괴로운 상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재앙이다... 나쁜 기후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비슷하게 우둔한 짓이다.

'인간의 병 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시르는 방식에서 비롯되엇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이른바 위안들이 어리석게도 실질적인 치유책으로 생각되었다. 알려지지 앟은 사실은... 고통을 곧장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일반적으로 더욱 깊이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서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328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철학


소크라테스(470-399 기원전)는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올바른 지적 인식을 통하여 진리를 실천함(지행합일知行合一)으로써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참으로 그에게 부당하게 언도된 사형을 그가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용기"라는 미덕 때문이었는데, 그 용기마저 지식, 득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에피쿠로스(342?-270 기원전)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로 오해하고 있는 쾌락을, 쾌락의 첫째 항목으로 그가 들었던 위(胃)의 쾌락마저, 양이나 희귀성에서 찾지 않고 그 자신에게 가장 맛있는 것에서 찾았다. 그의 쾌락은 욕망을 절제하고 친구들과 안온하고 겸허한 생활 속에서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지는것, 즉 "올바른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쾌락이었다.

자신이 가정교사를 했던 네로의 명령에 의해서 자진(自盡)해야 했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 기원후 65)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세네카의 이성은 세네카에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는 준엄한 도덕성과 의무의 준수를 모토로 한 스토아 학파의 대성자였으나, 그의 사생활은 안락과 부(富)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에 따른 아파테이아(apatheia : 당당하고 유연한 심경)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스토아 학파의 실천자였으며, 순명(順命)의 현자였다.

몽테뉴(1533-1592)는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한 에세이스트로서, 파스칼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랄리스트(moraliste)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의 힘이 주도하던 철학 세계에서 인간의 벌거벗은 자연의 모습, 곧 육체와 본능의 힘을 해방시켰다. 섹스의 언급을 금기시한 당대의 위선을 뛰어넘은 몽테뉴의 용기는 "국경"이라는 국민적 편견의 장벽까지 서슴없이 돌파하고 있다. 이런 사상적 궤적을 보여주는 몽테뉴 역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염세주의 철학자로서 알려진 쇼펜하우어(1788-1860)는 끝없는 욕망의 연쇄로서의 생(生)은 고통이며 그 고토으로부터의 해방은 죽음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가 인간 종(種)의 존속을 위해서 작용한다고 파악함으로써 사랑이 생을 지배하는 이유를 발견한 철학자가 되었다. 사랑의 감동에 냉담하기만 했던 철학의 역사에서 사랑으로 인한 슬픔을 치유해주는 유례없는 철학자가 되엇던 것이다.

강자의 도덕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초인"을 "힘에의 의지"의 상징으로서 구체화한 니체(1844-1900)는 행복은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을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절한 고독과 무명(無名), 나쁜 건강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니체는 우정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명성과 부와 행복을 공격하지 않았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무조건 뽑아버리는 의사가 결코 아니었다.  330-331


행복은 올바른 인식에 의해서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삶을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길에서 동반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이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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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음으로 못 갈 곳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갈 수 있는 곳만 갑니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게 그래요.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합니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거의 전적으로 마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이란 이렇듯 한정되고 갇혀 있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관념은 자동적으로 자기방어 메커니즘으로 작용합니다. 되짚어 보는 걸 싫어합니다. 기분 나빠해요. 따지고 보면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지만, 우리는 흔히 스스로가 만든 관념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 안주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9


지금까지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관념들을 한번쯤 되짚어보자는 것이 나의 의도였습니다.  10



나는 여러분이 틀레 박힌 교양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에너지가 충만한 원시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양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맹점을 안고 있습니다. 문명은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법이거든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일탈을 꿈꾸는 괴짜가 되기를 원합니다.

일상은 일탈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6


나는 가장 '나'다울 때 세계적인 인물이 됩니다.  17


우연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연은 묻고 또 묻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우연히 일어납니다. 준비한 사람에게만 의미있는 우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대해 묻고 또 묻다보면, 문득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18


힌두교는 인도인의 삶 자체라 할 수 있어요.  27

여러 세대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되어 온 종교입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라 할 수 있지요.  27

공통 경전이 없습니다.  29

힌두교인들은 포교나 개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들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지만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도인드르이 뿌리 깊은 생각입니다. 진리가 유일하다고 해서 여기에 이르는 길조차도 유일한 건 아닙니다.  30


고대 인도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좀 괴짜였던 것 같아요. 하루는 왕이 신하에게 명해서 성안에 살고 있는 모든 소경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데려다 놓고 소경들이 만져보게 했지요. 각기 다른 부위를 만져본 소경들은 당연히 다른 말을 햇습니다. 머리를 만져본 소경은 뭐라 했겠어요? "코끼리가 마치 항아리 같다"고 했어요. 그러자 귀를 만져본 소경은 "무슨 소리냐, 코끼리는 부채 같다"고 했지요. 배를 만져본 소경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코끼리는 벽 같다"고 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요? 서로 의견이 다르니까 다투게 되었지요? 코끼리라는 하나의 실체를 놓고 자기가 만져본 부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코끼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소경들의 잘못은 코끼리 그 자체를 잘못 안 게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분적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못이지요? 자기가 안 지식은 전체 코끼리에 대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것을 몰랐기 때문에 서로 다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분을 부분으로 알때, 그것은 전체를 바르게 알 수 있는 바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게 되면, 소경의 지식처럼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지식이 되고 말아요. 코낄리는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코끼리의 일부인 다리는 마치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코끼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됩니다.  31-32


무엇을 종교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 종교는 우선 무엇보다도 깊이를 추구하는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일상적인 삶의 표면을 따라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가는, 깊이에로의 추구가 곧 종교 아닌가 합니다. 폭보다는 깊이가 훨씬 중요하지요.  32


종교는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종교를 잊어버리고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종교는 이성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체험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4



한 주간 별일 없었어요? 별일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사실 늘 별일이고 별일이어야 합니다. 

'별일 없는 삶'은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일이라는 게 뭡니까? 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누구도 같은 강물을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우리가 건너는 삶이라는 상물은 순간순간 처음이고 별일입니다. 삶은 늘 처음일 때 최고일 수 있어요. 알다시피 최초는 최고와 통하거든요.  45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변화에 대한 감정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심지어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한 모습이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면, 그는 생명 없는 아파트나 다름없어요. 끝장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건 변한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늘 새로울 때 사람이든 삶이든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48-49


인도 사회는 전반적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유연해요.  51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될 때, 자유가 있습니다.  5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혹 각자의 개성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사회적인 차원이든 종교적인 차원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일은 절대 무차별의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건 죽음입니다. 의미 있는 통일은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화라는 표현이 오하려 적합할 수 있지요. 조화라는 게 뭡니까? 붉은색 일색이라면, 노란색 일색이라면 무슨 조화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겠어요? 파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하다못해 흰색이라도 섞여야 조화라는 것이 의미를 지니고 아름다움도 생겨나는 법입니다. 모두가 똑같다면 조화도 없고 다름다움도 없습니다. 변화가 없다면 생명 있는 유기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차이가 없다면 조화도 아름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도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자기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6-57


어떤 문화든 그 구성요소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미 생명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아도 괜찮습니다.

너와 나의 하나 됨을 추구하기 이전에, 우선 너와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너와 나의 하나 됨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어요.  57


유행(fashion)이라는 말의 일차적인 뉘앙스는 틀을 깨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 유행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일종의 구속이며 병입니다. 주체는 없고 추종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수요자만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옷을 입고 얼른 대중 속으로 숨어버려요. 그러고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지요. 그러나 유행이란 으레 문득 왔다가 문득 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익명성에 의지한 편안함이라는 것도 당연히 잠깐일 수밖에 없어요. 대중 속에 숨는가 싶으면, 이미 그들은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저만큼 가고 있어요. 나의 익명성은 금방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면 다시 허겁지겁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따라 가기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보는 유행이라는 것은 일종의 병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따라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편집증입니다. 그것은 남과 다른 것이 두려운 공포증이지요. 우리 사회가 유행이라는 중병을 앓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행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있어요. 판에 박힌 저울대의 눈목으로 모든 사람을 저울질하고, 이 저울대에 맞지 않으면 낙오자로 소외되는 우리 사회의 통념이 문제지요.  59-60


여러분 중에 한 번쯤 체념 안 해본 사람은 없겠지요? 의식하든 않든 여러분 아니 정도면 누구나 체념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물론 체념의 순간을 지켜본 사람은 드물 겁니다. 사실 중요한 건 그건데, 내 마음에 어떤 감정 혹은 상태가 일어났을 때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게 명상입니다. 명상은 거창한게 아니지요. 내 마음의 변화를, 일렁거림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게 명상이지요.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놀라운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감정은 잡아두는 순간, 에너지로 변합니다.

체념의 순간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체념할 때, 나의 마음을 지켜본 적이 있어요? 체념의 순간에 언뜻 편안함이 있습니다. 체념이란 분명히 내가 바라는 게 아닌데, 그런데도 체념하고 나면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66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어요. 차라리 포기하고 체념해버리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67


모든 체념이 다 의미 있는 초월로 통할 리는 없습니다.

체념이 의미 있으려면 우선 가능한 것에 대한 체념이어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자발적인 체념만이 의미를 지닙니다. 그걸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포기하는 것, 그게 체념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여자 태권도 올림픽 출전자를 뽑는 시합이 있었지요. 이때 재미동포 출신 여자 선수가 결승전에서 부상당한 자기 동료와의 시합을 기권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의 실력으로 볼 때 자신보다는 부상당한 동료가 올림픽에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포기지요. 의미 있는 체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녀(石女)가 "나는 아이 낳는 것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석녀가 아이 낳는 것은 아예 가능성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 없으면 욕망이 일어날 리가 없고, 일어나지 않은 욕망에 대한 체념 혹은 포기라는 것은 한 마디로 웃기는 일입니다.

우선 가능성이 있어야, 그래야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게 욕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않습니다. 욕망이라는 건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가능성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아예 가능성이 없으면 기대하는 마음도 전혀 일어나지 않아요. 가능성이 없으면 아무런 욕망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정말 외로운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아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함께 해 줄 사람이 있는데 지금 그렇지 않을 때, 누군가가 와 줄 사람이 있는데 오지 않을 때, 그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참으로 '올이도 갈 이도 없는'(날 찾아올 사람도 내가 찾아갈 사람도 없는) 사람은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부재(不在)'를 통하여 '존재(存在)'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랑이란 것도 바로 이런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별을 통하여 느끼잖아요?  68-69

가능한 것을 포기할 때,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69


일어난 욕망의 결과는 결국 기쁨이냐 또는 열 받는 거냐,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길게 보면 기쁨이나 노여움은 욕망의 결과라기 보다는 연속입니다. 문제는 기쁨이나 노여움이 일어났을 때, 그때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겁니다. 이때 포기가 필요합니다. 체념이 필요해요. 여기서 체념이라는 것, 혹은 포기하는 것은 일어난 감정을 잡아둔다는 것입니다. 일어난 감정을 잡아둘 때, 증폭도니 에너지가 일어나요. 예를 들면 생각해 봅시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남모르는 선행을 했을 때, 그 일을 두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닌다면 어떻겠어요? 일시적으로는 우쭐해질 수 있겠지만 뒤끝은 허전할 겁니다. 허전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가슴속에 묻어둘 때, 더합니다. 기쁨은 내 안에 가두어둘 때, 오히려 새끼를 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래 잡아둘수록 기쁨은 배가합니다. 씨앗을 땅에 묻어 둔다고 그게 어디 갑니까?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감정을 잡아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71-72


일어난 감정을 잡아 두었을 때, 그 뒤끝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것대 대한 체념이 모두 의미 있는 체념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잡아둔 데 대한 애프터 서비스라고나 할까요. 그래요 자신이 그 감정에 솔직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발적인 체념이었는가를 알 수 있어요. 그 뒤끝에 후회가 따르는 체념은 초월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도피라 할 수 있습니다. 도피는 도피일 뿐이지요. 문제의 해결은 아닙니다.  72-73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 자신을 과거에 가두는 것처럼,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은 미래에 자신을 가둡니다.  84


업과 윤회는 하나의 믿음이 지니는 두 측면이라 할 수 있지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닙니다. 업은 윤회로 설명될 수 있고, 윤회는 업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업의 다른 말이 윤회라면, 윤회의 다른 말은 업입니다.  86


<우파니샤드>는 인도의 여러 경전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경전으로 꼽힙니다.  89


업설이나 윤회설은 숙명론이 아닙니다. 업의 자기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 이면에는 항상 업의 초월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힌두교는 '구제(救濟)의 도(道)라 할 수 없어요. 모든 행위는 업을 남긴다고 가르치지만, 또한 어떤 행위는 이미 쌓은 업을 삭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오히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96


참으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건강하지 못할 때,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비뚫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치 눈에 벼이 났을 때 눈을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잘못되고 몸이 병들었기 때문에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이나 건강에 대한 욕구가 부쩍 늘어났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건강합니까?  107-110


요가는 넓은 의미에서 길(道)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해탈 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요가라고 합니다. 

요가라는 말의 어원을 따지자면, 이 말은 원래 '결합하다' '멍에를 매다'라는 의미의 범어 동사 '유즈(yuj)'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가라는 것은 '결합' 또는 '멍에를 매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셈입니다. 그러면 뭘 결합하느냐? 우선 몸과 마음을 결합하여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개체가 궁극적 실재와 하나 되는 것, 그게 요가입니다. 그렇다면 결합이란 무엇이냐, 그건 자유를 의미합니다. 

합일은 완성이며 자유입니다. 유기적인 관계에 있어야 할 두 부분이 따로 노는 것, 그것은 갈등이며 구속이지요. 이에 비하여 합일은 자유라 할 수 있어요. 몸 따로 마음따로 논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마디로 괴롭습니다.

하나로 결합되어 합일될 때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는 기쁨입니다. 해탈은 다른 말로 자유라 할 수 있지요.

자유라는 건 늘 피 냄새를 풍기는 인내를 요구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 끝에는 기쁨이 있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건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란 하나 됨에 있지요. 둘이 하나로 합일될 때,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 사이에서의 자유란 조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섹스에 몰두하게 되는지 알아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녹아 합일하는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일상 속에서는 쉽게 체험되지 않는 자유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조화란 쉽지가 않아요.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조화한 언제나 '투쟁'이 요구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서양 철학자 중에 여러분이 잘 아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사람은 '투쟁은 조화'라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만나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투쟁을 통하여 가능할 수 있습니다.  110-112


투쟁의 과저을 거친 평화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약속합니다 숱하게 싸우고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둘 사이에 자유가 있습니다. 의리라는 것도 생기고 어지간한 일로는 서로 갈라서지 않는 법입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설사 쌍욕을 듣는다 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저 그런 사이에서는 당장 안색이 변할 것입니다. 거기에 자유는 없습니다.  113


인도에서 요가의 역사는 무지 무지 길어요. 심지어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 문명 유적에서 출토되는 인장에서도 요가 자세를 취한 수행자를 볼 수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힌두교의 각 종파는 각기 제 나름대로 다양한 요가 전통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빠딴잘리(Patanjali)라는 성자가 요가를 일목요연한 체계로 정리하고 <요가 스뜨라>라는 문헌을 남겼습니다.  115


<요가 수뜨라>에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요가 수행의 8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요가는 다리를 꼬고 앉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로 윤리적인 준비단계(禁戒,Yama)가 요구됩니다. 윤리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요가를 닦을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금해야 할 다섯 가지, 즉 살생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남의 것을 춤치지 말 것, 음란에 빠지지 말 것, 불필요한 소유를 탐하지 말 것 등이 강조됩니다. 이 첫 단계의 다섯 가지 계율은 요가 수행체계가 불교나 자이나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교의 경우오ㅓ 마찬가지로 요가에서도 오계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불살생입니다. 불살생은 모든 계율 중의 으뜸이라 할 것입니다. 


요가의 두 번째 단계는 내외의 청정, 시니에게의 헌신 등이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단계(勸戒, niyama)입니다. 이 단계 역시 윤리적인 준비단계라 할 수 있지만, 첫 번째 단계가 주로 금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두 번째 단꼐는 일종의 권장사항이라 할 수 있지요.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덕목들입니다. 알다시피 윤리라는 것은 주변 환경고 나의 조화를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윤리 규볌이라는 것은 나와 주변 사람들이 서로 이해의 지평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룰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차 괴롭습니다. 설사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윤리 규범은 은연중에 우리를 강제하는 힘을 지닙니다. 물론 요가는 윤리적인 차원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너머로 깨고 나아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초윤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초윤리는 결코 윤리를 무시하라는게 아닙니다. 윤리적인 단계를 딛고 넘어서야 합니다.


세 번째 단꼐는 어떤 요가 자세를 취할 것인가를 익히는 좌법(坐法, asana)의 단계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요가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요가하면 흔히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비쩍 마른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요가의 여러 단계 중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단계가 바로 이 좌법의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익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요가 수뜨라>에는 수많은 좌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전에서는 원래 8만 4천 가지의 좌법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84가지 정도가 전해질 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빠딴잘리는 이상적인 요가의 자세로 적합할 수 있는 기준을 두 가지 들고 있습니다. 우선 요가 자세는 편안해야 하고,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기준에 부합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가 바로 결가부좌입니다. 결가부좌 알지요? 어른들은 양반다리라고 하고 아이들은 아빠 다리라고 부르는 그 자세가 바로 가장 대표적인 요가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기 특수한 목적에 따라 여거 가지 자세들이 응용될 수 잇습니다. 경전에서는 이상적인 자세로 권장되지만, 체형에 따라 불가능한 자세도 있을 수 있지요.


네 번째 단계는 호흡조절(調息, Pranayama)입니다. 이 단꼐는 앞의 좌법과 함께 하타요가(hatha-yoga)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요가 수행자가 윤리적인 준비를 하고 좌법을 익히는 것을 결국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호흡조절이야말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흡은 마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이 급해질 때 저절로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급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려 할 때는 요가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심호흡을 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아랫배까지 밀어 넣었다가 천천히 밷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진정됩니다. 

이와 같이 호흡은 마음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호흡을 연구하고 제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게 당연하지요. 호흡법을 익히는 것도 무척 긴 시간을 요하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우리는 대개 요가에서 가르치는 호흡법과 정반대의 호흡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배가 들어가고 숨을 내쉴 때는 오히려 배가 나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만 있을 뿐 멎는 숨이 거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 예입니다.

호흡은 마음작용과 관련해서 중요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됩니다. 한두 주일쯤 밥 안 먹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잖아요? 며칠 동안 잠 안 잔다고 죽나요? 그러나 단 몇 분만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만큼 호흡은 우리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육체적인 건강을 위하여 단전호흡을 하고 복식호흡이 권장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건강하려면 밥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숨을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할 수 있어요. 중국에서 양생법(養生法)의 하나로 널리 행해지는 기공법도 요가만큼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요가의 다섯 번째 단계는 수행자가 자신의 감관을 제어하는 단계(制感, pratyahara)입니다. 방금 마차의 비유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인간의 감관 또는 욕망은 말과 같습니다. 길이든 아니든 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내달리는 것이 말입니다. 오죽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겠어요? 우리의 감관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요. 대상이 있으면 곧장 쫓아갑니다. 늘 바깥으로 향해 있는 것이 감관이지요. 제감은 이와 같이 바깥으로만 내닫는 감관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마치 거북이 사지를 두꺼운 갑 속으로 끌어들이듯이 바깥을 지향하느 감관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욕망은 제어될 때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어요. 사실 모든 감정이 그래요. 사람의 깊고 얕음은 결국 일어난 감정을 어떻게 잡아 두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기쁘다고 떠벌려 버리면 남는 건 허전함이지요? 그러나 기쁨을 꾹 눌러 뱃속 깊이 넣어 두면 두 배 세 배로 새끼를 칩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씨앗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씨앗을 땅 위 환한 곳에 보기 좋게 전시해 두면 싹이 트나요? 싹은커녕 말라 버리잖아요? 씨앗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묻어 두어야 싹을 틔우고 몇 갑절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나면, 일단 어두운 곳에 묻어둘 필요가 있어요. 묻어 둔다고 그게 어디 가나요? 기쁨을 가슴속에 간직해 둔다고, 보이는 곳에 떠벌리지 않는다고 없어지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마치 묻어 둔 씨앗이 저절로 싹을 틔우듯이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잘 묻어 두면 저절로 싹을 틔우고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어요. 마치 한 톨의 씨앗이 싹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과정에서 그 본래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묻어 두면, 잡아 두면 새로운 차우너의 에너지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노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난 감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일단 잡아 두면 우리에게 득이 되는 에너지로 변합니다.

감정이란 일단 일어나면,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누를수록 오히려 맹렬하게 덤비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잖아요?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걸 조용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어난 감정을 일단 잡아 두고 지켜볼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애게 일어난 감정을 내가 가만히 지켜본다는 것, 물론 그건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해져야 비로소 우리가 내면의 깊이로 침잠할 수 있는 준비운동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지 과정이 끝나면, 다음 단꼐부터는 수행의 중점이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겨갑니다.

여섯 번째 단계인 집지(執持, dharana)는 한정된 심적 영역에 마음을 한정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은 오관의 배후에 있는 내적 감관입니다. 마음이 감관에서 떨어져 있으면, 설사 눈이 보고 있다 해도 보는 것이 아니며, 귀가 듣고 있다 해도 듣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앟으면 설사 감관이 대상을 향해 있다 해도 인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바로 앞 단계에서 감관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감관과 분리될 때 완전해진다고 볼 수 있지요.

피상적인 표면을 따라 부유하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치 나비가 이 꽃 저 꽅을 분주히 옮겨 다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이런저런 대상들을 끊임없이 옮겨 다닙니다. 집지의 목적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한 대상에 집중하도록 하며,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때는 재빨리 원래의 대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이동과 방해의 빈도가 낮을수록 집지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요.


일곱 번째 단계는 정려(靜慮, dhyana)입니다. 범어로는 이 단계를 디야나(dhyana)라고 하는데, 흔히 불교에서 사용되는 선(禪)이라는 말은 바로 디야나에 대한 한자어입니다. 정려는 우리의 마음이 선택된 한 대상을 향하여 아무런 장애 없이 흐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을 더욱 내면으로 거두어들여 한 대상에 대해서만 유지시킴으로써 집지의 단계에서 정려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살펴볼까요?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한 대상에 대하여 단 몇 초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눈을 감고 스스로의 마음을 한번 지켜봐 보세요. 어때요? 숱한 대상들이 왔다 갔다 하지요? 친구 얼굴도 떠오르고, 지난번에 갔던 호프집 맥주잔도 떠오르고, 있다가 점심시간에 만나야 할 사람도 떠오르고, 아무튼 온갖 대상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집지의 단꼐에서는 그 이동의 빈도가 낮아집니다. 잠잠해진다 이겁니다. 잠잠해지는 정도가 점점 깊어져서 정려의 단계에서는 마음이 더 이상 대상을 옮겨 다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한 대상만 그 내용으로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가변적이며, 대상의 범위 내에서 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가의 마지막 단계는 삼매(三昧, Samadhi)입니다. 이 말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요? 독서삼매니 삼매경에 빠졌다느니 하잖아요? 원래 범어로는 사마디(samadhi)라는 말인데, 한문으로 음역되는 과정에서 삼매가 된 것입니다. <요가 수뜨라>에서는 이 단계를 "선정이 한결같은 상태에 있어서, 그 대상만이 빛나고 자기 자신은 없어진 것같이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요? 아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정려의 단계도 그렇거니와 삼매는 사실 말로 설명되는 세계, 혹은 우리의 이성이 논리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삼매는 이해의 대상이 되는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 알아야 하는, 증득(證得)해야 하는 언표불가능의 세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삼매의 단계에서는 수행자의 자아의식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정려의 단계에서는 비록 마음이 오직 하나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아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수행자 자신과 대상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할 수 있지만 삼매의 단계로 진전되면 이러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요가 수뜨라>에 따르면, 삼매의 상태에서 수행자는 고차적인 직과을 얻습니다. 이러한 직관은 우리가 두뇌에 한정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완전히 새로운 경지라 할 수 있지요. 이때 수행자는 명상의 대상이 지니는 깊고 오묘한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이름과 모양을 갖추고 나타난 세계의 본질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ㅣ있게 되는 것입니다.  116-125


요가는 반드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125


생각해 보면, 요즘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분주합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나 가능할까? 왜 웃어요? 사실 똥을 눌 때 우리의 의식이 맑아져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화장실이야말로 깊은 생각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합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하려하면 뭐합니까? 내면의 뜰이 황폐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돌아서면 허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바깥일에 분주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대게 사람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 여유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잇습니다. 삼식대가 되고 사십대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누구나 바깥일에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125-126


후기 힌두교(7~8세기경)의 딴뜨라 전통에 이르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단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ㅅ기이 뚜렷해집니다. 높이 평가할만한 통찰입니다. 딴뜨라(tantra)는 힌두교의 꽃이라 할 수 있지요. 특히 인산의 성(性)에 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딴뜨라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차원이 전혀 달라요. 인도사회에서 여자의 지위가 급상승하는 것도 이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지요. 남녀의 구분은 마치 칼로 두부 자르듯 그렇게 나눌 수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137-138


칼 융에 따르면 인간의 에고(ego)는 아니무스(animus 男)와 아니마(anima, 女) 모두를 지닙니다.  138

지금까지 우리는 이 점을 무시해왔지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고 가르쳤습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능항 한 남자 속에 있는 여자는 무시되고 억눌려왔습니다. 

여자 속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상적인 인간상은 우리와 달라요. 남녀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아내가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한 개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남녀 양성을 동시에 구유(具有)한 인간이야말로 조화롭고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140


딴뜨라 전통에서 섹스는 합일을 의미합니다. 합일은 완성이지요. 섹스는 몸을 매개로 남녀의 벽을 허무는 작업입니다. 마침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무(無)로 떨어지는 순간, 그게 일어납니다. '나'의 상실을 통하여 무한을 체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합일은 적어도 누적된 상호 교감의 끝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도 전통에서 남녀의 합일은 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한 개체로서의 남자와 한 개체로서의 여자의 합일이 아니라, 한 개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합일입니다. 각 개인은 우주를 축소한 소우주이기 때문에 갈등과 부조화의 궁극적인 해소는 오직 각 개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게 딴뜨라의 가르침입니다. 성교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다른 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지요.  143-144


아무튼 정신적인 기쁨이든 육체적인 쾌락이든 우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여 '너'에게서 혹은 어떤 대상 속에서 '나'혹은 나의 생각과 동질적인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기쁨이나 쾌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쁨이나 쾌락의 대상은 지극히 주관적인 측면을 지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에 끌립니다.  144


우선 서로 끌리는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끌린다는 것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끌리는 둘의 자연스런 만남을 통하여 합일이 있을 수 있어요. 합일은 절대로 강제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145


우빠니샤드에서는 이른바 브라흐만과 아뜨만의 합일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원래 그 둘은 하나였는데, 시작 모를 무지 때문에 마치 분리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윤회 속의 인간이지요. 또한 수행을 통하여 그 본래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해탈이며 완성됩니다.  146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는 딴뜨라에서 남녀의 성교로 나타나는 셈이지요.  147


한 사람 속에 여자와 남자가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인간이 되는 것처럼, 한 사람 속에 이성과 감성은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요. 사실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만이 지극히 감성적일 수 있습니다. 한 개인 속에서 그 둘은 변증법적인 발전을 한다고 볼 수 있지요.  148


전통적으로 인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연속체로 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닙니다. 외적인 마음이 몸이고 내적인 몸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빠니샤드에서는 인간을 다섯 겹(kosa)의 동심원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일 바깥에는 '음식으로 된 나'(annamayakosa)가 있어요. 이것은 물질적인 몸이라 할 수 있는데, 외부 세계의 물질적인 대상들을 경험하고 향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안쪽에 '생기로 된 나'(pranamayakosa)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호흡과 신경계통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요. 다시 그 안쪽에 '의근(意根)으로 된 나'(manomayakosa)가 있고 이보다 내밀한 곳에 '식(識)으로 된 나'(vijnanamayakosa)가 있습니다. 이 두 겹은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층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환희로 된 나'(anandamayakosa)가 있어요. 환희로 된 나의 본질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소 엇갈립니다. 인간의 참된 자아 그 자체라고 보는 견해와, 단지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불과하는 견해로 양분됩니다. 

아무튼 이 다섯 겹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우빠니샤드의 인간 이해는 서양의 심신 이원론과 완전히 달라요. 다시 말하여 가장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몸은 의식 또는 더 나아가서 자아 그 자체와 연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몸에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몸에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얼굴에 나타나잖아요? 몸에는 그 사람의 내적인 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몸은 그 사람의 내적인 성향과 수준에 대한 외적인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지요. 인도 사람들의 사고로 보면 음식으로 된 나로부터 적어도 식으로 된 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심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해요. 모두가 물질적입니다. 이 문제는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물질적인 몸이든 마음이든 모두 쁘라끄리띠라느 근본물질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물질적인 몸과 마음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얼마다 더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합니다.

몸이 마음과 별개가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될 때, 몸은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몸은 부정되고 배척되어야 할 '똥통'이 아니라, 그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요. 요가가 의미를 지니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연속적이기 때문입니다.  168-170


몸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봐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없어요.  172


대개 사람들은 힌두교 하면 요가와 명상 또는 초월과 신비주의를 생각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힌두교만큼 현실을 중요시하는 종교도 없어요. 궁극적으로 해탈을 추구하지만, 해탈이란 반드시 죽어서 이루는 게 아닙니다. 몸을 가진 산 사람도 얼마든지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봐요. 또한 해탈의 추구는 철저하게 세속의 삶을 터전으로 합니다. 청빈을 권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어느 기간까지는 돈을 벌고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그것은 궁극적으로 버리기 위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을 모른 체 하지도 않아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과정을 통하여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감정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라 합니다. 그 속에서 욕망의 실체를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욕망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서 욕망을 초월하는 방법을 가르쳐요.

이와 같이 힌두교가 세속의 삶ㅇ르 부정하지 않ㅇ르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해탈에 이르는 사다리로 이해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과 관련을 지닙니다.

체화된 삶  172


힌두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몸은 윤회의 결과인 동시에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윤회의 원인은 업 때문인데, 업은 체화된 인간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어요. 

요즘 우리 주변에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잇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것의 반발이라는 측면도 있고, 알량한 장삿속이 이를 부추기는 점도 있겠어요. 그러나 어떤 점에서 보면, 몸이 뜨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우리의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라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동안에는 의식되지 않습니다.  173


사람의 이름은 평새을 함께 하는 것이지만, 정작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됩니다.  176


이름은 단지 부르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를 책임지자고 있는 것입니다.  180


몸이 마음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몸을 따라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둘 중에서 마음이 먼저라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마치 닭과 꼐란의 관계처럼 아주 모호한 구석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요.

가장 바깥에 있는 마음이 몸이고 가장 안에 있는 몸이 마음이라 할 수 있거든요.  186


어둠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처럼, 맹목이라는 말도 이유없이 푸대접을 받는 게 아닌가 합니다.

순수한 행위는 맹목적입니다. 맹목적인 행위만이 순순할 수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목적이 들면 이미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즈니스가 있을 뿐이지요. 사고파는 거래가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랑은 맹목적이어야 해요.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그래요. 남녀 간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뿌리지요. 눈멀고 귀먹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만 맹목적일 때 이해를 따지지 않는 불가사의를 만들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고귀하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그것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199-200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터부시해 온 맹목은 느낌 또는 감정에 대한 맹목이ㅏㄹ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여 흔히 우리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감정이나 느낌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맹목적이지 말라는 말은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의미했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을 맹목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200


만일 느낌에 대한 맹목이 위험을 내포한다면, 극서은 순수와 통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것은 이미 더럽혀진 것보다 오염되기 쉬워요. 사람이 순수하면 이용당하기 쉽고 물건이 순수하면 사용하기 쉽지요. 이렇게 보면, 느낌에 대한 맹목은 위험하긴 하지만 맹목적인 것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느낌이나 감정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을 무조건 비난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교묘히 이용되고 악용되는 사회가 오히려 문제지요.  201


가능한 것데 대한 체념이 가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맹목은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가치 있는 맹목일 수 있어요. 목적을 잊어야 맹목적일 수 있는 반면에 목적일 잃어버린다면 이미 그것은 가치 있는 맹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잃어버린 맹목, 나를 잃어버린 맹목의 가장 분명한 징후는, 내가 그것을 그만두고자 했을 때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맹목은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지요. 빠져든다는 징후는 후회가 일어나는 것, 후회가 점점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주객이 뒤바뀐 것이지요.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이지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맹목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본질로 향하는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맹목은 깊이에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종교가 중요하고 사랑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사랑이 혹은 맹목적인 종교가 우리를 내면의 깊이로 침잠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종교보다 강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종교나 사랑은 일상사의 표면에 부유하는 이런저런 사실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로 침잠하는 것이지요. 폭보다는 깊이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203


우리 사회에 맹목적인 것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얕고 허전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203-204


자신의 삶 속에 적어도 한 가지는 맹목적인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종교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삶 속에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맹목적인 한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맹목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그래도 사람은 순수하다는, 순수할 수 있다는 최후의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맹목의 불씨가 꺼지고 없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참으로 희구하는 목적지에 이를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4


콩나물은 부드러운 만큼 아주 민감해요.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금방 잔 뿌리가 많아져서 못쓰게 됩니다. 통상 검은 보자기로 시루를 덮어 두는데, 깜박 잊고 그냥 두면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서 콩나물 머리가 금방 푸르게 변해요. 보기 흉해지지요. 

미미한 빛이라도 받으면 콩나물은 금방 변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도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내면의 개안(開眼)은 그래요. 시루에 놓인 콩나물이 하루에 몇 번씩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한 것처럼, 여러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얻는 지식이 꼭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콩나물은 절대로 물을 껴안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물이 콩나물 사이로 설렁설렁 지나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콩나물이 물을 안고 있다면, 금방 썩어버립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지식을 안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이 썩어버려요. 

적어도 인간의 내적인 성장을 염두에 둔 지식은 그렇습니다. 콩나물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아까워도 그냥 설렁설렁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콩나물 사이로 물이 설렁설렁 지나기지만 때가 되면 자라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마치 콩나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물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충실하듯, 여러분도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변화는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207-209


인도 사람들은 세계의 역사를 순환론적인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 순환의 주기라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어요.

흔히 우리가 무지무지 긴 시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겁(劫)'이라는 말 알지요? 이 말은 원래 '깔파(kalpa)'라는 범어의 한역(漢譯)입니다.

인도 사람들의 시간관에 따르면, 1겁은 우주의 생성, 유지, 파괴가 일어나는 한 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은 86억 4천만 년입니다. 그야말로 겁나게 긴 시간이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겁나게 긴 이 1겁은 브라흐마(Brahma)라는 창조신의 입장에서는 단지 하루에 불과합니다. 브라흐마는 하루를 1겁으로 하는 백 년을 삽니다.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는 실로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인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와 같은 우주적인 시간이 흐르고 있어요.  216-217


내가 보기에 인도의 가장 큰 매력은 느리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233


네 단계의 삶을 통하여 부와 욕망 그리고 자기 본래의 의무를 실현함으로써 결국 해탈을 이루자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첫 단계(學生期, 1~25세)는 금욕과 학습의 기간이라 할 수 있느넫, 이 기간 동안에는 경전(베다)를 공부하고 카스트의 구성원으로서 각자가 해야 할 의무를 익히는 데 전념합니다. 남녀의 성적인 접촉을 금하는 금욕이 강조되는 기간이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단계(家住期, 26~50세)로 접어듭니다. 결혼은 남녀가 정신적 육체적인 사랑을 하고, 이를 통하여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들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물론 자식을 낳고 대를 잇는 것도 중요해요.

세 번째 단계(林捿期, 51~75세)는 앞의 두 단계를 통하여 이룬 경제적인 기반과 가업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숲으로 들어가 명상에 임하는 단계입니다. 손자가 생기거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 대개 이 단계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마지막 단계(遊行期, 75~100세)는 숲에서 나와 운수(雲水)의 길을 떠나는 시기가 됩니다. 이때는 탁발이 주요 생계수단이 되지요.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주유하며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명상한 내용들을 현실 속에서 다시 몸으로 확인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있눈 유행자(遊行者)를 흔히 산야신(Sannyasin)이라 부릅니다. 산야신은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포기한 자라 할 수 있지요.

힌두교인이라면 누구나 산야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겱구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삶은 그 너머의 무엇을 가리키는, 그 너머의 어디엔가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들에게 종교가 곧 삶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닙니다. 삶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자기초월적 상징체계'라 할 수 있어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에 불과한 것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삶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산야신이 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은 부(富)와 몸의 욕망을 삶 속에서 이루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인생의 네 단계 중에서 두 번째 단계는 실상 여기이ㅔ 전념하는 단계라 할 수 있어요.  237-238


욕망은 피하고 억제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바르게 시현될 때 비로소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 힌두교의 입장이라면, 불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3


옥상에 있는 물탱크는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스위치가 올라가서 더 이상 물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욕망은 달라요. 어느 정도 차면 '그만'하고 자동스위치가 켜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망은 양적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더 채워라'하는 것이 욕망이거든요.  244


정신적인 추구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성취를 필요로 합니다.

힌두교의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가 시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입니다. 해탈이라는 고도의 정신적인 욕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인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46


인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포기의 철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삶을 통하여 애써 샇아 올리지만, 그것은 결국 버리기 위하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만이 벌리 수 있지만, 버리지 앟는 한 가진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각자의 고통이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것은 결국 버리지 못하는 자들의 고통이며,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사회의 병통이라 할 것입니다. 일찍이 니체가 경고한 것처럼, 물질의 풍요가 지니는 의미를 곡해하는 한 우리는 '가축 무리의 푸른 목장의 행목'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249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자기 본래의 의무를 지니는데, 각자의 의무는 그가 전생에 쌓은 업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봅니다.

자억자득(自業自得)이라는 업의 논리에서 보면, 카스트에 따른 의무의 차별은 전혀 불평등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여 전생에 아주 못된 짓을 많이한 사람이나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이나 이생에서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산다면 오히려 그것은 불평등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250-251


법 앞에 평등 또는 신 앞에 평등은 '업 앞에 평등'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셈이지요.  251


인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본래의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의무의 실천은 아주 중요시합니다.

의무의 실천이 강조되는 것은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과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인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는 의무의 실천, 부, 욕망의 실현, 해탈 이 네 가지 입니다.

따라서 의무의 실천은 자기의 해탈을 위하여 필수적인 권리이며, 나아가서는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인도 사람들에게 의무는 기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의 해방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253-254


알다시피 인도는 편안하게 아름다운 곳을 관광하는 데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가까운 방콕이나 홍콩이 훨씬 낫지요. 싼 맛에 인도를 여행하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동네 커피숍이 싸고 편할지도 모릅니다. 인도 여행은 적어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도 여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행이지요. 고정관념은 깨부수는 고행이라 할 만합니다. 인도 여행은 계획이 엉망으로 헐클어질수록 오히려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계획된 시간에 계획된 루트를 따라 비행기로 혹은 기차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면, 단체 관광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은 이미 인도 여행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대로 차편이 허락하는 대로 기차가 가능하면 기차를 타고 버스가 가능하면 버스를 타야 합니다. 이것저것 따져서는 여행이 불가능하지요. 무작정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떠나는 사람은 철학자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맹목적 충동에 따라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도 여행은 목적을 생각하며 떠나는 철학자보다는 차라리 맹목적인 충동에 충실한 방랑자에 어울리는 여행입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그런 여행이 어울리는 곳이 인도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예약 없이 삼등칸 기차를 타고, 발 들일 틈 없이 빼곡히 들어앉은 맨발의 사람들 틈에 끼여 함께 짜이를 마시며 그들의 체념과 기다림과 담배연기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밤기차에 시달리며, 때로는 화장실 입구 통로까지 밀려나와 쭈그려 앉은 채 밤을 새더라도, 그러는 가운데 한 가닥이나마 허망 분별과 이별할 수 있다면, 고정관념에 찌든 나의 현존을 직시할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길을 떠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 여행이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오히려 충격과 당혹감입니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느낌이 있으면 그것으로 여행은 성공입니다. 충격이 있다면 대성공이지요. 느낌이 일어날 때, 충격으로 몸을 떨 때, 이에 반응하는 나를 내가 지켜보는 것, 그것입니다. 느낌에 충실한 것, 그것으로 여행은 이미 명상일 수 있습니다. 

외부 세계와 나의 내면이 직선으로 대면했을 때 문득 일어나는 충격, 이에 대한 싱싱한 의문에 충실한 것,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 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도 여해에서 잊어버리되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26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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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자의 책은 <철학, 삶을 만나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자들과 그 내용들에 대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신선함을 느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책을 모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책을 모두 읽고 인터넷 서점에서 저자의 도서들을 모두 검색해 보았고, 도서관에서도 검색을 해 보았다.
인기가 있는지 대출중인 책들도 있었다.
철학자의 철학적 해설서가 대출 중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보기 쉽지는 않다. 그런면에서 인기가 있나보다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우연하게 저자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첫 느낌은 생각하던 것 보다는 젊어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은 자유로움 이었다. 
젊은 진보적인 철학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강의 스타일 역시 첫인상처럼 이었다.
신선하고 깔끔했으며 말의 힘이 논리적이며 설득적인데 크게 치우침이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읽은 책은 <상처 받지 않을 권리>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어 그의 해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것인지에 대해 언급해 주고 있다. 이 책 역시 즐겁게 읽었다.

이후로 <철학vs철학>이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도 발췌독하기도 하였다. 이 책들도 앞으로 정독을 하려 생각중이다.

이 책은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또한 최근에 나온 책중 하나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권의 책들보다는 가볍에 접근하고 있었다.
물론 해설서에 가까운 책들이기에 철학책으로 보기에는 모두 가벼운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본 책들 중에서만 보면 가장 가벼운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스타일은 그대로 묻어났다.
새로운접근방법이라든지 가볍에 읽으면서도 생각을 자극해 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48명의 철학자가 언급되면서 그들에 대한 철학중에 한 부분을 발췌하는 내용이기에 어렵지 않다. 그리고 다양한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내용들이 철학자들의 주된 내용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조금씩은 더 근접해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이 된다.


머리말
저는 책을 읽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책을 집필하는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책이란 무엇ㅇ니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책이란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점에 들러 새롭게 출간된 책들을 뒤적이가닥, 제 마음을 동요시키는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책들이 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소수의 책만이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이런 경우 누가 저의 마음을 엿보기라도 하듯이 저는 서둘러 책을 구입하여 서점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장 한 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곤 합니다. 
삶의 고뇌가 쌓인 민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고 했던가요? 페이지 마다 절절하게 아로새겨진 알지 못하는 저자의 고뇌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제 마음에 젖어듭니다 저자는 1,000여 년 전의 사람일 때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저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나 아주 먼곳에 살고 있는 사람일 때도 있습니다. 엄청난 시공간을 넘어 책이란 매체를 통해서 저자가 저와 접속되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5-6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쉽게 풀어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누구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불행히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가 페르소나(persona)라면, 후자는 맨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14-15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니체... 그는 갇혀 있지만 갇혀 있는 줄 모르는 이웃들, 혹은 갇힌 줄 알지만 그것에 익숙해진 이웃들의 정신을 깨우는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철학자이다.  21
세계관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세계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22
니체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가 순간의 굴욕과 비겁을 선택할리는 없다.
들뢰즈(Gilles Deleuze retour 1925-1995)는 영원회귀로 응축되는 니체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윤리적 강령으로 해석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차이와 반복>  25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유롭고 싶은가?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6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 라캉 <에크리>
우리는 금지된 것만 욕망한다.  30
라캉은 정신분석학의 사명을 '세상에 태어날 때 주체는 타자(the other)로부터 욕망되는 자로서건 아니면 욕망되지 않는 자로서건 간에 타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잇어야만 한다. 정신분석의 방법을 고안함을써 프로이트가 밝인 진리의 본성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 <에크리>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당신이 소망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과거 타자가 욕망했던 것, 혹은 금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31

페르소나와 맨얼굴 - 에필테토스 <엥케이리디온>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 로마 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햇다고 한다. 바로 이 가면이 페르소나이다.  33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맨얼굴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의 맨 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맨얼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34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잇는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 - <엥케이리디온>  38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잊지 말자! 맨얼굴이 없다면, 페르소나를 쓰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에게 맨열굴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맨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불핸히도 맨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39

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 - 이지 <분서>
진정한 인문학자는 일체의 허영과 가식을 걷어내고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을 볼 수있는 아이와 가은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1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스비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 <속분서(續焚書)> 성교소인(聖敎小引)  43
이지의 글을 읽다 보면 니체를 떠올리게 된다.
니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대목, 즉 정신의 자기 변형을 다루고 있느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우리 정신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는 '낙타'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일체의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딸는 정신이다. 마치 낙타가 주인이 등에 짐을 올리면 아무런 저항 없이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사자'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낙타와 달리 사자의 등에는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어떤 짐도 올릴 수가 없다. 짐을 올리려면 사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일체의 억압을 부정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 즉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정신이다.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ㅎ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44

자유인의 당당한 삶 - 임제 <임제어록>
죽은 아이 때문에, 그리고 미래의 부와 명성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과연 행복이 가능할까?
스님 임제(臨濟 ?-867)sms '이미 일어난 생각은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그대들이 10년 동안 행각(行脚)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불법에는 복잡한 것이 없다. 단지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 <임제어록>  47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 <임제어록>  50

쇄락의 경지 - 이통 <연평답문>
'일찍이 저는 '사태를 만났을 때 고체(固滯)가 조금도 없다면, 곧 쇄락(灑落)의 경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 마음이 확연히 크게 공정해져 남과 나라는 편벽되거나 치우친 생각이 없게 되면, 아마도 도리에 대해 하나로 꿰뚫게 될 것입니다. 가령 일에 당해 꿰뚫지 못하여 마음속에 편벽되거나 치우친 바를 조금이라고 벗어나지 못한다면, 곧 고체와 관련된 것이니 모두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 <연평답문>  54
누군가와 관계할 때, 충돌과 대립으로 힘든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잇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잇따.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이토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얼음처럼 고착된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까? 공정함을 잃어버리고 남과 나를 구별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인가?
우리가 할 수있는 최선은 부단히 자신의 마음이 좁아져 있지 않은지 반성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과 삶은 이전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56

공이란 무엇인가 - 나가르주나 <중론>
모든 집착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부재하게 될 때 발생한다.  57
불교는 이런 우리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空)의 지혜를 알려준다. 공이란 순야타라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어로 옮긴 말이다. 불교에서는 공을 깨닫게 된다면, 모든 집착을 버리고 외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경지를 진여(眞如 tathata)라고 표현한다.  58
'내가 없는데 어찌 나의 것이 있을 것인가. 나와 나의 소유가 없으므로 그는 나라는 의식도 없고 소유하려는 의식도 없는 자가 된다 ....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라는 새악이 없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집착은 없어질 것이다.' - <중론>
'나'는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불변하는 자아를 말한다.  61
나이 들어 주름진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젊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주름을 보면서 자신이 마주쳤던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는 삶, 그것은 젊고 탱탱한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62

해탈의 지혜 - 혜능 <육조단경>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집착을 낳는 경우가 많다. 집착은 항상 부재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63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든 집착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닦느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불교가 강조했던 자비(慈悲)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집착은 우리 자신을 고통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고통에 빠진 타인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68

습관의 집요함 - 라베송 <습관에 대하여>
'만들어진 습관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있다. 변화가 지나가버린 것이라면, 습관은 그것을 낳은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다. 게다가 습관은 그것이 습관인 한에서 그리고 그 본질 자체에 의해 그것을 낳는 변화에만 관계될 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그런 변화가 존재하지 않아도 존속하는 것이다 ... 바로 이것에 의해 습관이냐 아니냐가 가려진다. 습관은 따라서 단지 어떤 상태일 뿐만 아니라 어떤 경향이자 어떤 능력이기도 하다.' - <습관에 대하여>  76
우리의 동일성(identity)을 규정하는 제일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80

생각의 발생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다.  82-83

관점주의의 진실 -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 되어 잇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있음에서 함으로>  93
관찰자로서 내가 존재하는 한 내가 보는 세계도 존재하는 것이고, 관찰자로서 내 친구가 존재하는 한 그가 보는 세계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세계일까?  95

언어 너머의 맥락 -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나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 철학적 탐구
우리는 '나느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적이 있을까?  100
'어떤 낱말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 <철학적 탐구>  101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04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하다 - 맹자 <맹자>
'사람의 일을 모두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106
'천명'이란 무엇이며, 나아가 그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107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난 뒤, 조용히 그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  110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메노이메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12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 - 칸트 <실천이성비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 사실 '자유=책임'의 논리는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121
칸트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인간이 자유로울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햇던 철학자이다.
'이성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순수하고 실천적인 법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 다시 말해 자유의 자율을 표현한다.' - <실천이성비판>  122
어떤 행위가 사회적 통념에 맞느냐 그르냐가 쟁점이 아니라, 행위자가 자율적인 선택을 했느냐 타율적 선택을 했느냐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123
칸트는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고 부르고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타율적인 사물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124

집단의 조화로부터 주체의 책임을 -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타자를 자신과 얼굴을 맞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자로 인식하는 집단성이다. - <시간과 타자>  128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 사르트르 <존재와 무>
상대바이 현재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가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를 버리는 것도 역시 그의 자유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라고 햇던 것이다.  138

타인에 대한 배려 - 공자 <논어>
자공이 물었다. '평생동안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 <논어> 위령공편  142

사유의 의무 -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라혀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천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으모가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잇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 <예루살렘 아이히만>  154
아렌트는 더불 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155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156

기쁨의 윤리학 - 스피노자 <에티카>
삶에서 만날 수박에 없는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현장에서 기쁨과 유쾌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162

선물의 가능성 - 데리다 <주어진 시간>
'선물이 주어지는 조건으로서의 이런 '망각'은 선물을 주는 쪽에서만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는 쪽에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는 주체에게 선물을 되갚아지거나 혹은 기억에 남겨지거나, 아니면 희생의 기호, 다시 말해 상징적인 것 일반으로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상징은 즉시 우리를 또 다른 상환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은 주는 쪽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선물로 드러나지도, 선물로 의미되지도 않아야만 한다. - <주어진 시간>  166

사랑의 지혜 - 장자 <장자>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타자란 우선 나와는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소통(疏通)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소통이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트다'라는 뜻의 '소(疏)'와 '연결하다'는 뜻의 '통(通)'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통이란 개념은 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통은 구체적으로 막혔던 것을 터서 물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무로가 같은 것이 흐를 수 없다.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으로 선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비움'이나 '잊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워야만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타자에 대한 선입견은 나와 타자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는 것, 그래서 타자와 연골되기 위해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타자와의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 자신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즉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비우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194-195

웃음이 가진 혁명성 - 베르그송 <웃음>
'유연한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생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기성적이 ㄴ것 그리고 집중에 반대되는 방심, 요약하자면 자유스러운 활동성에 대립되는 자동주의, 이것이 결국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고 하는 결점이다. - <웃음>  219
누군가 우리의 행동을 보고 웃는 다면, 분명 그것은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 우리는 자신의 삶이 기계적이고 무반성적으로 영위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상대방의 웃음을 통해 유연하고 활동적인 삶을 회복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220

운명은 존재하는가 - 왕충 <논형>
낚싯줄을 던지지 않느다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불확실한 결과가 충분히 예견될지라도 과감하게 낚싯줄을 던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잡으려고 했던 물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오만할 일도 아니고, 잡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두 일을 하고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려라!  259

미꾸라지의 즐거움 - 왕간 <왕심재전집>
'도를 얻으려는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생선 가게에서 그는 우연히 드렁허리가 잔뜩 들어있는 대야를 보았다. 드렁허리들은 서로 얽히고 눌려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보았다. 미꾸라지는 드렁허리들 속에서 나와 아래로 위로, 혹은 좌측으로 우측으로, 혹은 앞으로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신묘한 용과 같았다. 그러자 드렁허리들은 몸을 움직이고 기운이 통해서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되었다. - <왕심재전집> 추선설  261
'드렁허리들의 몸을 움직이도록 하고 그들의 기운을 소통시키고 그들의 삶의 의지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삶의 의지를 회복시킨 것은 모두 미꾸라지의 공이었다. 미꾸라지가 즐겁게 움직인 이유는 드렁허리들을 동정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드렁허리들의 보답을 바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미꾸라지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그렇게 햇을 뿐이다.' - <왕심재전집> 추선설
그저 미꾸라지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싶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소통과 공감은 동정심이나 혹은 일체의 보답 의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삶을 가장 즐겁게 영위할 때 소통과 공감은 기대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263
지금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만으로 소통과 공감의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의식적인 노력은 어느 순간 우리를 지치게 하고 무디게 만들 수 있다. 왕간이 걱정했던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지속 가능한 소통과 공감의 세계를 꿈꾸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삶과 자신의 내면을 더 치열하게 성찰해야 한다. 타인과 공감하며 공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에 부합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까지 말이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세계에 삶의 의지를 가져다주는 즐거운 미꾸라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64-265

결혼은 미친 짓이다 - 헤겔 <법철학>
결혼을 했든 아이를 낳았든 간에 상대방의 자유를 긍정하지 않늗다면, 사랑은 그만큼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서 이성복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너'가 자유로운 결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까지 말이다. 이런 기다림을 유지한다면, 다시 말해 사랑하는 타자의 자유를 긍정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항상 푸르게 유지될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295

우발성의 존재를 위하여 - 들뢰즈 <천 개의 고원>
'사랑'은 '마주침' 이전에 결정되어 있는 숙명적인, 혹은 필엱거인 것일까? 아니면 사랑은 마주침이 일어난 뒤에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물음은 철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추상화될 수 있다. '의미가 마주침에 선행하는가? 아니면 의미는 마주침 뒤에 오는가?' 혹은 다음과 같이 풀 수도 있다. '필연성(necessity)이 우선적인가? 아니면 우발성(contingency)이 우선적인가?'  298
사랑을 숙명적이라고 본 다는 것은 나무의 이미지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10년 동안 매주 토요일 떠나간 연인을 기다릴 수 잇는 아름드리 고목과도 같은 삶,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오지 않더라도, 아니 오기 전에 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은 나의 사랑이야.' 반면 사랑을 우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들뢰즈가 제안햇던 리좀의 이미지를 딸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여행을 계속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서, 자신의 기쁨이 지속되는 한 그 사람과의 마주침을 끈덕지게 될 것이다. 물론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한때 기쁨을 주었던 그 사람에게 결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300-301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서 -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하위징아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쁜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잇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가 두 가지 의미로, 혹은 두 가지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놀이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 자체로 향유되고 긍정되는 현재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경우처럼 미래를 위해 소비되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현재이다. 우리에게는 첫 번째 현재, 즉 긍정적인 현재가 필요하다. 오직 이런 현재로 충만한 삶만이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303-304

진정한 진보란 무엇일까-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진정한 진보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만이 아니라 앞으로 여기에 살게 될 후손들에 대한 관심이 있느냐의 여부로 결정될 수 있다.
'인간이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며, 따라서 변화된 인간은 다른 환경과 변화된 교육의 산물이라는 유물론적 학설은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이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설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두 가지 부분-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은 사회를 초월해 있다.-으로 나눌 수밖에 없게 된다. -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316


에필로그
독서라는 여행을 위하여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행을 제대로 다녀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일상생활이 바빠서인지, 그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이 여행지를 다녀온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제대로 된 여행일까?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여행으로부터의 배움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음식도 그들의 행동도 모두 낯설게 느껴질 테지만, 애정을 갖고 그들과 살을 부대끼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그들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행으로부터 배우는 두 번째 배움은 첫 번째 것보다 더 심오하다.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320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 가지 차이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여행을 가는 일과 유사하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 이중적인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과 저자의 속내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차츰 책과 저자에게 충분히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차이에 대한 감각을 얻게 될 것이다.  321
진정으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독서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삶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배움의 경험을 제공하는 독서도 있을 수 있다.
영민하고 섬세한 철학자 들뢰즈는, 두 가지 종류의 독서법이 있다고 전한다.
첫 번째 독서법을 '우선 책이란 속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자라고 생각하고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든가 혹은 썩고 타락한 사람들이라면 어휘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는 책은 전번 상자에 담긴 상자, 혹은 그것을 담는 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석을 담고, 해석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결국 책에 대한 책을 쓰게 되고, 같은 식으로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 <대담>
첫 번째 독서법은 놀이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은 책을 어휘나 의미를 찾는 것과는 무관한 하나의 기계(machine)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작용을 하는가, 어떻게 작용을 하는가?" 하느 것만이 문제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 만일 작용이 없으면, 감응이 없으면, 그럼 다른 책을 집어 들면 된다. 바로 이것이 강렬한 독서이다. 무엇인가 발생하든가 아니면 아니든가, 그뿐이다. 아무런 설명할 것도, 이해할 것도, 해석할 것도 없다.' - <대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 좋다는 말을 듣고 그곳 명승지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안달루시아와 감응하고 있는가? 만약 안달루시아가 우리에게 작용을 한다면, 우리는 그곳에 머물면 된다. 반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안달루시아가 어떤 작용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안달루시아로부터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안달루시아를 갔어도 가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삶을 흔들어버리는 책이 있다. 나의 허영을 부수고 내 맨얼굴을 보도록 만드는 책이다. 혹은 내가 고뇌하는 것의 실체를 때로는 절망적으로, 때로는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책일 것이다. 이런 책을 읽을때 우리는 노동하는 독서가 아니라 감응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 '강렬한 독서'법이다.  322-325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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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유명한 책이다. 저자의 책은 여러권을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6,7년쯤 전이라고 기억한다.(물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읽으면서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에게 더 많이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책은 저자의 처녀작이기도 하고 20대 중반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통찰적 부면은 가히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한국 사람에게는 더욱 크게 와 닿을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교적인 효 사상에 입각하여 교육을 받았기에 감정을 표출해내는데 매우 서툴다. 그러기에 어느새 감정의 새새함을 잊고 있는데 이 책은 그것을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는 표현들이 곳곳에서 박견될 수 밖에 없다. 
쉽게 읽히면서도 깊은 표현과 철학적인 사유가 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표지를 찾기위해 책을 검색해보니 '2010 대학 신입생 추천 도서'라고 한다.
신입생때 읽고 졸업하고 읽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지적인 성장 사유의 성장을 이루었는지 가늠해보기에도 좋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새해 첫 책으로 읽은 것은 시기에 맞게 책이 들어왔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해보기 위해서 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이전 사랑의 모습을 간직한채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수동적으로 한 걸음 뒤에서 할 수 있는것이 비교 관찰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는 관찰자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렇지 않나 생각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해 보기위해 책을 선택하였다.

다시금 저자의 내면의 감정 서술에 감탄해 가면서 더불어 나의 생각들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자 후기에서는 이 책이 95년도에 <로맨스>(한뜻출판사)라는 책으로 번역이 되었었다고 한다.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표지의 영문 제목을 보았다. <Essays in Love> 이다. 미국에서의 제목은 <On Love>라고 한다.
95년도의 번역은 미국식으로 제목을 정했다. 지금은 위의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제목이 참 우리에게 깊은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11
클로이를 만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딱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2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1905-94 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작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19
클로이의 휴가 이야기는 지루했다. 그러나 지루함은 이제 흠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일상 대화의 세속적 논리에 따라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22-23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 슬픔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냐 단순한 망상이냐? 시간[이 또한 그 나름으로 거짓말을 하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26

가장 매력을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39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잇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게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41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본능적이고, 반성하지 않으며, 자연발생적이다. 이에 반해 생각은 신중하고, 말려들지 않으려 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내가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성적 교류의 근본법칙을 어긴 것이다.  52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65
클로이가 나와 함께 자고 나에게 잘해줌으로써 오히려 그녀에 대한 내 평가 점수가 낮아졌다면, 그것은 혹시 그녀가 그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심한 전염병에 감염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68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딸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72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절대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맑은 눈으로 물의 깊이와 성질을 완전히 조사할 때까지는 도약을 유보한다. 부모 노릇, 정치, 예술, 과학, 부엌에 비치할 적당한 간식에 관하여 철저하게 의견 교환을 한 뒤에라야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현실 [우리가 알기 전에 태어나는 사랑]에서는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 유토피아가 현실과 위험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75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78

왜 나는 나의 일용할 양식을 파는 신문 판매소 주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93
신문 판매소 주인의 샌들은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서 신문과 우유를 얻고 싶을 뿐이지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내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그의 신발은 나에게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95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 [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97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 무한히 많은 사람드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맞은편 욕조에 누워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왜 우리의 욕망이 이 특정한 얼굴, 이 특정한 입이나 코나 귀를 선택했는지, 왜 이 목의 곡선이나 보조개가 우리의 완벽성의 기준에 그렇게 정확하게 응답했는지 묻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의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들의 얼굴 풍경만큼이나 독창적이고 특색있는 방식으로 매력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재규정한다.  98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119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120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나의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연인 사이에 실제로 일치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120
사랑은 내가 그녀의 몸짓, 세이프웨이에서 우리와 함께 줄을 섰던 사람들에게는 달리 해석되었을 수도 있는 몸짓에 내가 부여하기로 결정한 어떤 것일 뿐이다.  121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122
연인들은 의심하고 캐물으려는 철학적 충동에 대립되는, 믿고 신앙을 가지려는 종교적 충동에 굴복한다.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130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143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이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나비를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나는 나비에 관심이 많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144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많은 부분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로 구성된다.  169
나는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으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한시적인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73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대나 기억이라는 보호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 [천국의 개입은 논외로 하고]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헌신릉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이 비유를 사랑으로 옮긴다면,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181
사랑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무시무시한 의문이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이냐 하는 의문이다. 이것은 마치 건강과 힘이 충만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려는 것과 같다.  186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할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192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또 훠씬 덜 즐거운]질문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완전한 오만으로 기울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한 겸손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겸손한 연인은 자신이 무엇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거부당하는가?' 배반당한 연인은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서 오만하게도 절대 자신의 몫이 아닌 선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사랑을 베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이 답을 듣게 되면 질문을 했던 사람은 자만과 우울 사이에서 위험하게, 예측할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1-202
모든 삐침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209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너그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죄책감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달라고 삐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210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야. 느끼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강렬해진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220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이 비도덕적 행동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고통이나 쾌락과는 관계없이 의무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무감에만 인도되어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는 도덕적이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도덕률에 일치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행동이 도덕률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질의 결과로 이루어진 행동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칸트 이론의 핵심은 도덕성이란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동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예상되는 보답에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랑을 줄 때에만 도덕적이다.  223
나는 나에게 쾌락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에 따라서 클로이에게 어떤 도덕적 딱지를 붗일 것이냐를 결정했다. 나는 세계와 그녀가 이 세계 속에서 가지는 의무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학자였다.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뿐이다.  225-226
사랑이 없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자유라는 것이 버림받을 자유를 의미한다면 자유란 대체 무엇인가?  226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 무방비 상태에, 아무런 권리도 없이, 도덕률도 초월해서, 충격적일 정도로 어설픈 요구만 손에 든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228

고통을 겪으면서 무한히 지혜로워진 나는 물론 그녀가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녀를 용서하고, 동정하고, 그녀에게 선심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무한한 안도감을 주었다.  247
클로이가 떠나는 바람에 나는 죽을 뻔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도덕적으로 높은 자리라는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순교자였다. 
예수 콤플렉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정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자기 증오에서 생겨난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나는 나를 받아들이려는 어떤 클럽의 회원이 되지 못했다. 예수 콤플렉스 역시 나를 클럽 문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자기 사랑의 결과이며, 내가 클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내가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49
자기 혐오를 피해가려고 약점을 미덕으로 바꾸는 연금술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업삳. 나의 고통이 예술 콤플렉스로 진화환 것에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 건강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 혐오와 자기 사랑 사이의 미묘한 내적 균형에서 이제 자기 사랑이 우세한 위치에 있었다. 클로이가 나를 버린 것에 대한 나의 최초의 반응은 자기 혐오적인 것이었다. 우리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계속 클로이를 사랑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러나 예술 콤플렉스가 생기면서 그 등식이 뒤집혀, 이제 클로이가 나를 찬 것은 클로이를 경멸할 만한, 잘해야 동정할 [기독교 미덕의 모범] 만한 증거로 해석되었다. 예수 콤플렉스란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 어떤 여자보다 클로이를 사랑했는데, 이제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내가 그 견딜 수 없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엇다. 그러나 버림받아 절망적인 상태일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행복에 겨운 오르가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텔 방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정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251

헤어짐이 없었던 것 같은, 우리가 여전히 함께하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지기도 햇다.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서 오디온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가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져서 나는 클로이가 없는 현재로 거세게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길에 욕실에 클로이가 빗을 두었던 자리가 이제는 비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빗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찌르는 단검처럼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고,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253
변화의 거부는 세계가 내 영혼을 반영하지 않는단는 것, 내가 거기 살든 살지 않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살아 있든 죽었든 관계없이 움직여가는 독립된 실체임을 일깨워주었다.  255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나는 잊기 시작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몇 달 뒤, 나는 런던의 그녀가 살던 동네에 갔다가,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56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들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아니면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실수를 무한히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식사, 죽음, 돈에 지혜로워질 수 있듯이 사랑에도 지혜로워지고 싶다는 야심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  259
지혜는 사랑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사랑은 커피나 담배처럼 완전히 끊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포도주 한 잔이나 초콜릿처럼 가끔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랑은 지혜가 대표하는 모든 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일까? 현자들도 사랑 때문에 이성을 잃게 될까, 아니면 몸만 어른이지 정신을 아이인 사람들만 이성을 잃는 것일까?  260
복잡한 문제들을 파고들다보면 가끔 도달하게 되는 순진한 상식으로 나는 가끔 묻곤 했다.[마치 답을 봉투의 뒷면 정도에 다 적을 수 있는 것처럼]. "왜 우리는 그냥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262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낭만적 실증주의가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유일하게 유효한 지혜는 다시 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금욕주의적 충고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첼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사무실 생활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나는 그녀의 눈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나는 금욕주의적 철학을 내팽개치고 클로이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모조리 되풀이하는 이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270
사랑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사랑이 지혜롭지 못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금욕주의는 다른 사람과의 애정에서 생기는 위험 사막에서의 삶보다 더 큰 인내심이 있어야만 직면하게 되는 위험에 대항하는 서툰 방어였다. 금욕주의는 감정적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도사적 존재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적 요구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할 뿐이었다. 금욕주의자가 아무리 용감하다고 할지라도 최고의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 즉 사랑의 순간에는 결국 겁쟁이에 불과했다.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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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심리학 책이나 계발서로 오인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부제를 보면 더 이해가 잘 되는 것 같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문학자 네 사람과 철학자 네 사람의 직관과 이성, 혹은 문학과 철학으로 서로를 비추어가면서 이해를 시킨다. 
그러면서 저자의 철학적 견지와 그들의 견지의 조합과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시대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유혹, 그로인해 생기는 욕망 책의 표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시, 돈, 유행, 망상, 불안, 허영 도박, 매춘.. 이러한 욕망에 대한 보고서이다. 우리는 왜 그러한 욕망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유지하면서도 빠져 나오기 힘든것인지, 과연 우리가 가진 욕망에 자신의 욕망인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인지... 드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가져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고 있다. 
라캉의 말처럼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우리는 냉정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전 여러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다시금 마음 아픈 표현을 들었다.
"삶이 바빠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것이 맞는건지 아닌지에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그것은 삶이 바빠서가 아니라 세상의 달콤한 유혹과 바빠야 한다는 세뇌에 의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책에서 그러한 부면에 대해 문학과 철학을 결합하여 설명해 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 하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짐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이 필요함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생활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로써 무엇이 있는지에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시대의 젊은 철학자인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생각의 빌미를 가지고 그것을 확장해 나가는 시간이 된다면 정말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머리말 -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친숙하다는 거스 그것은 무엇인가에 길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친숙한 삶을 낯설게 성찰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집어등(集魚燈)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물고기(魚)를 모으는(集) 등불(燈)이란 뜻입니다.  5
자본주의의 집어등은 어선의 집어등보다 더 큰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를 끊임없는 노동의 현장으로 다시 내몰기 때문입니다.  6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익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7

프롤로그
우리 스스로 일상의 모습을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14
자본주의는 각자의 노동을 통해서 살아가고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노동으로 계속 내몰기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쓰도록 유혹하는 장치를 함께 고안했습니다. 끊임없이 화폐를 소비하게 하려면 유혹의 장치는 그만큼 강력할 수밖에 없겠지요.  19
자본주의의 진정한 목적은 또 다른 소비를 위해 다시 노동하게 하는 데 있지요.  21
자본주의적 삶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범해서 우리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어 있고, 그로부터 상처 받는지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22

I.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 이상 vs 짐멜
1. 돈, 내 것이 아닌 욕망의 분열
화페경제가 바꾼 우리 정신세계 

마르트스 이후 가장 철저하게 돈의 논리를 성찰햇던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  35
그의 작품은 대부분 돈 유행 감각 장신구 등 대도시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에세이 풀의 글입니다.  37
짐멜이 "화폐경제는 개인과 소유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매개된 관계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이 둘 사이에 거리가 생기도록 만든다."라고 지적.  29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짐멜은 개인주의의 진정한 기원을 엿봅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단절된 이러한 물질적 조건에서만 개인주의의발로가 가능했다고 판단했지요.  43
화폐경제가 낳은 개인주의가 얼마만큼 우리 삶을 지배하는지 다음 사례.
나는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릅니다. 편의점 점원은 아르바이트로 임시 취업한 나이든 아저씨였지요. 그런데 이 점원이 점잖은 말투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면 해롭다고 충고합니다. 이때 나는 매우 불쾌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이 든 점원의 충고는 나를 하나의 인격으로, 혹은 자기보다 미성숙한 인격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가 삼촌이라면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이므로 충고를 받아도 그리 불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이 든 점원과 나는 상품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관계, 즉 비인격적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경우 우월한 것은 점원이 아니라 구매자인 나입니다. 나는 돈이라는 화폐를 가졌고 반면 그는 상품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달리 말해 나는 이곳에서 담배 사기를 그만두고 다른 편의점으로 갈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불리한 입장은 내가 아니라 나이 든 점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개인주의로 무장한 젊은 손님의 내면을, 마치 잔소리 많은 어머니처럼 간섭해 상처를 주었지요. 만일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이 상점에 젊은 손님들은 발길을 끊겠지요. 그리고 그 나이 든 점원 역시 해고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불쌍한 점원은 왜 해고되었는지 끝내 모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다시 말해 돈이 가진 힘과 그것을 가능케 한 개인주의의 위력을 이해했다면, 그는 젊은 손님에게 어른스런 충고를 하지 않았겠지요. 화폐경제에서 중요한 사실은 누가 돈을 가지고, 누가 상품을 가지는자라는 문제일 뿐입니다.  45
내가 종교적 안식을 주리라!
과거의 초월 종교는 신이라는 초월자가 인간에게 닥친 무든 난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라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초월 종교는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관념적 해법만을 신도들에게 제안했을 뿐입니다. 대부분 초월 종교는 마음의평정을 되찾으라고 하지요.  47
현실적으로 돈을 사용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해버립니다.  50
돈이라는 신의 지배에 빠진 현대인들을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짐멜은 과연 어떤 방법을 제안했을까요? 아쉽게도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일종의 세속종교로 규정했던 마르크스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실마리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서의 그대의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일 뿐이다.' 51-52
마르크스가 꿈꾼 인간의 삶은 "사랑을 사랑으로서만, 신뢰를 신뢰로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52
타자의 타자의 타자의 ..... 욕망
화폐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적응된 우리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만 원짜리 식사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54
구두쇠는 축적한 화폐를 통해 실질적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관념적 행복에 빠지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구두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만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유년 시절의 경제적 트라우마로부터 구두쇠는 돈이야말로 절대적 힘이 있음을 체득합니다. 돈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떠나는 순간, 그에게는 유년 시절에 각인된 경제적 트라우마, 즉 경제적 공포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행한 구두쇠와는 완전히 다른 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 또한 구두쇠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 오사와 마사치는 '사랆들의 일상적 관념 속에서 화폐는 사회적 산물의 일정 부분에 대한 청구권을 표시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완전히 편의상의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 그럼에도 상품의 물신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55
마르크스는 '화폐퇴장자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 반면에, 자본가는 합리적인 화폐퇴장자이다.'  56
구두쇠는 신념이나 행동에서 일관되게 화폐를 물신숭배합니다 반면 평범한 우리는 신념으로는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를 부정하지만, 행동으로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를 수행하지요. 이 점에서 보면 평범한 우리가 오히려 구두쇠보다 더 무지한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자신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59
모든 타자가 내가 가진 화폐를 욕망한다고 맹목적으로 믿기 때문에 나는 화폐를 욕망합니다. 오사와 마사치는 이것이 바로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 혹은 화폐의 물신성의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60

2. 도시, 즐거운 지옥의 현기증
공간과 일상의 관계
공간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배경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에는 인간을 길들여서 그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공간의 지배력은 거대한 자연적 공간과 공간을 분할하여 만든 건축물과 같은 인공적 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공간이 지닌 지배력을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상의 '권태'가 지닌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77
짐멜은 "인간은 차이를 본질로 하는 존재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때그때의 인상이 선행하는 인상과 구분되는 차이에 의해 촉발된다." 만약 새로운 인상이 이전의 인상보다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상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행하는 인상과 뒤따르는 인상의 차이가 클때 발생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새로운 인상을 강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이 새로운 인상은 우리 삶에 '부담'으로 인식됩니다.  80
해외여행, 시골과 도시..
우리가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에 대해 일일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시골이나 소도시 사람은 정서적인 반면 대도시 사람은 지적일 수박에 없다는 짐멜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나 정서적 관계에 더 의존하는 소도시적 삶에 비해 대도시의 정신적 삶이 어떻게 해서 지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띠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소도시의 정서적 관계들이 정신의 더 무의식적인 층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단절되지 앟은 지속적인 습관화 과정을 통해서 가장 잘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의 지성(intellect)은 우리 정신에서도 가장 투명하고 의식적인 상층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성은 우리의 내적인 힘들 중 가장 적응력이 탁원한 것이다. 자신 앞에 펼쳐진 다양한 현상들의 현저한 차이점들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지성은 어떤 충격이나 내적인 동요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리듬에 적응하기 위해서 훨씬 더 보수적인 사람들만이 외적 충격이나 내적인 동요를 겪게 된다. 물론 수펀 가지의 개별적 경우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형적인 대도시인은 자신의 삶을 뿌리째 위협하는 외부 환경의 흐름이나 그 모순들을 방어할 수 있는 기관(=지성)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대도시인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해 심장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머리로 반응하게 된다.'  81-82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삶의 환경과는 현격히 구별되는 이런 자극적이고 복잡한 도시의 사건들에 일일이 반응하면, 우리는 대도시에서 하루도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과 무관한 모든 일은 그저 냉담히 남의 일로 간주해야 합니다.  85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지적으로 파악하여 그 사건으로부터 받게 될 정서적 충격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만 합니다. 대도시에 적응한 도시인들이 짐멜의 표현처럼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해 심장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머리로 반응하게 된"셈입니다. 도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전략이지요.  86
자유로움의 빛과 그림자
짐멜 '... 오늘날에도 대도시인은 소도시에 가면 적어도 비슷한 종류의 답답함(restriction)에도 대도시인은 소도시에 가면 적어도 비슷한 종류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소속되어 살고 있는 집단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래서 타인들과의 관계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잡단은 더욱더 쉽게 개인의 업적들, 생활양식 및 사고들을 감시하게 되며, 어떤 양적 질적 변종도 전체의 틀을 깨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87
도시인이 시골이란 공간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의 감정 이면에는 도시라는 공간이 만들어준 '자유'의 감정이 전제되어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88
짐멜 '... 대도시의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장 잘 느끼게 마련이다. 이것은 자유의 이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대도시만큼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달 드러내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89
비록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더라도, 그것은 영화 속의 풍경처럼 나의 배후에 소리 없니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신경과민을 피하기 위한 이런 거리두기라는 도시인 특유의 삶의 태도가 바로 '자유'라는 감정의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이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로 도시의 암묵적 윤리라고 봅니다.
자유로움의 감정은 사람들을 원치 않는 고독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가끔 도시인들은 가족을 통해서 자신드르이 고독을 치유하려고 합니다.  90
도시인들에게 가족이란, 도시의 삶 속에 관념으로 존재하는 시골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골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자시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는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도시생활과 가정 생활은 미묘한 긴장관계와 보완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짐멜, 질적 개인주의를 말하다
소극적 자유를 특징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칸트를 대표로 하는 '양적 개인주의'의 입장이라면, 적그적 자유를 표방하는 개인주의는 니체를 대표로 하는 '질적 개인주의'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 개인주의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비록 수적으로는 구분되지만 동일한 인간성을 보편적으로 공유한 존재가 됩니다.
칸트의 정언명령(Kategorische Imperativ), 무조건적인 도덕명령이 가능했습니다.  94
니체에게 모든 개인은 타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단독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니체가 말한 '본성'이나 '본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진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 가진 고유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니체가 볼 때 이런 개인의 고유한 본성과 욕망르 부정한다는 것은, 개인의 삶 자체를 범죄적으로 매도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짐멜은 칸트나 니체의 사례를 언급하며 대도시가 인간에게 두 종류의 자유, 즉 두 종류의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합니다.  96
짐멜의 논의를 역사적 순서로 정리하면, 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 그러나까 대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에 인간은 '공동체주의'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업 자본주의와 대도시가 점차 발달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양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호 불간섭으로 규정되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소극적 의미의 자유라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고, 이에 따라 서서히 자신만이 가진 단독성(singularity)을 깨닫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망이 이전시대보다 더욱 강해집니다. 짐멜은 이것이 바로 '질적 개인주의'의 기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가 명확하게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특이성 혹은 질적 고유성을 표현하려는 욕망은 사실 도시적 삶이 가져다주는 고독을 극복하려는 데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97



II.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 보들레르 vs 벤야민
3. 유행,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강박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보들레르는 19세기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 시인입니다.
보들레르를 통해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내면에 남긴 원형적 트라우마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14
보들레르에게 파리가 매춘부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춘부는 돈을 가지고 오는 손님이라면 그가 누구든 관계없이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고혹적인 여인처럼 사랑스러운 곳입니다. 둘째, 파리라는 곳을 향유하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지면서 결국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매춘부와 같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116
산업자본은 필요이상으로 상품들을 사들일 만큼 소비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해야만 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로운 상품'을 계속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입니다. '새로운 상품'이 아케이드에 들어오면, 기존 상품들은 '낡은 상품'이 되어버리고 결국 아케이드에서 추방되고 말지요. 바로 여기서 '유행(fashion)'이 가능해졌습니다.  119
벤야민, 미완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을 인정한 철학자입니다.  124
저급한 수준의 마르므스주의는 문화와 같은 상부구조가 경제라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문화를 별도로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셈입니다. 경제 운동이나 경제 관계를 알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벤야민은 문화와 같은 상부구조가 나름대로 독자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비록 경제가 문화를 결정할 수도 있지만, 경제가 표현되는 문법과 문화가 표현되는 문법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지요.  125
19세가 자본주의의 수도 파리를 연구함으로써, 벤야민은 진정한 자본주의의 기워노가 역사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126
벤야민에 따르면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역사는 전혀 진보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억압하는 자들만이 진보를 주장해왔습니다. 이것은 당시 독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벤야민의 경험과 성찰로부터 유래했습니다. 파시즘이 강하게 등장했을 때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파시즘의 경향에 대해 강ㄺ하게 저항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도리어 무기력해지고 말았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무기력함은 그들이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진보라는 이념을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결국 해결된다고 보는 진보에 대한 맹신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억압적 상태, 즉 '비상 상태'를 도리어 은폐시켜버립니다.  129
백화점 혹은 욕망과 허영의 각축장
벤야민은 아케이드를 통해서 백화점이란 제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패션에 대한 욕망을 우리에게 각인시켰는지 보여줍니다.  130
팔레 우아얄(Palais-Royal)은 19세기 파리에 있던 아케이드들 가운데 한곳입니다. 초창기 아케이드에는 창녀들과 노숙자들이 더 많았지만, 부르주아 사회가 발달하자 경제적 부를 소비하는 실제 걔층으로서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창녀들과 노숙자들은 아케이드로부터 점점 추방당하지요. 
처음에는 민중적 요소도 지녔던 아케이드가 이제 부르주아 여성들의 과시욕의 전시장이 되면서, 서서히 백화점의 형태로 탈바꿈했습니다.  131
당시 파리 상점들은 눈부실 만큼 화려한 장식들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이려는 미적 전략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자 종업원들이 대거 채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 파리에서의 소비 행위가 주로 부르주아 여성들이 주도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찰제 판매와 정가 판매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은 아케이드가 스스로 고급 이미지로 포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32
자신이 남보다 두드러진다는 의식은 명품 매장에 들어서는 여성을 보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결국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백화점은 고가의 상품을 사는 사람과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휸련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겟다는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134
벤야민이 백화점을 종교적 도취에 바쳐딘 사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유함과 허영을 과시하기 위해서 고가의 상품들을 구입합니다.  135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은 <법의 목적>에서 '오늘날의 의미에서 패션은 개인적인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갖고 있으며, 이를 올바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패션의 본질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패션에는 어떤 사람이 상류사회에 속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외적인 기준이 포함되어 잇다. 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설령 ...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패션이 아무리 싫더라도 그런 유행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136-137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오히려 탐욕스럽고 잔인할 뿐만 아니라 질투심으로 가득 찬 허영의 존재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가 인간이 평화스럽고 인자하며 합리적이기를 꿈꾸었습니다.  137
예링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변화욕, 미적 감각, 겉치레를 좋아하는 것, 모방본능"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입니다.  138
패션의 소멸은 중간계급이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존엄에 눈을 뜨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겟지요. 그러나 예링은 상황이 그렇게 되도록 산업자본이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139
패션의 에로티시즘
벤야민은 에두라르트 푹스(Eduard Fuchs 1870~?) 인용 '예링의 패션론에 대한 푹스의 견해. "반복해서 말하는 부분이지만 패션이 빈번하게 변화하는 것은 계급적인 구별을 두고자 하는 관심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두 번째 이유로서는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매출을 향상시켜야 하는 사유재산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을 들 수 있는데 이것도 ...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이 두 번째 이유를 예링은 완전히 무시했다. 세 번째 이유도 그는 간과했다. 즉 패션이 에로틱한 자극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신 유행하는옷을 입은 남자 혹은 여자의 에로틱한 자극이 그때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떠오를 때 그런 목적은 보다 효과적을 달성될 수 있다.'
푹스에 딸면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햇다. 상류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걔급적인 구별을 두려는 욕망이 있기에 가능했다. 다음으로 패션은 계속 매출을 올려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패션은 인간에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140-141
옷은 분명 성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성적욕구의 충족에는 도리어 방해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옷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옷은 아예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패션과 관련된 산업자본이 우리에게 개입하는 결정적 대목입니다.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든다면, 그것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겠지요.  145
무기적 존재인 옷에서 사람들이 성적 어필을 느끼는 일종의 물신숭배 현상이야말로 벤야민이 보기에 패션이 유지되는 근본 조건이었습니다.  146
보들레르의 충족되지 않는 갈망
우리는 매혹적인 상품 앞에서 강력한 구매 욕구를 느낍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구매해서 소유하게 되면 예전의 그 강렬했던 욕망은 곧 사라져버립니다. 구매욕은 구매가 실제로 이루어지면 동시에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나를 흥분하게 하는 구매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구매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매혹적인 상품을 관음증적으로 주시하기만 하면 됩니다.  151
벤야민의 연구물을 보관했던 조르주 바타유, 그의 생각은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욕망을 부여한다"는 통찰을 전제로 해서 전개됩니다. 
경제 사정으로 지금 당장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 더욱 강렬한 구매욕을 느끼게 하듯이 가질 수 없는 존재는 인간에게 도리어 강렬한 소유 열망을 심어주게 마련입니다. 이런 금지와 금기의 대상이 성적 대상에 적용될 때 우리가 품는 열망을 에로티시즘이라고 부릅니다.  154-155
이런 우리의 욕망 구조를 가장 잘 포착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산업자본주의의 시선이었습니다.  155

4. 도박과 매춘, 명멸하는 망상
보편적 도박장으로서의 사회
대부분 자신이 가진 가치, 예를 들어 학점 토익점수 대화술 미모 지식등을 팔아서 취업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고 지적하기도 했지요.  167
신의 주사위, 우연성의 경이로움
이제 종교의 자유를 얻은 대신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된 모든 인간은 돈이라는 새로운 신을 믿고 그것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은 기독교의 신과는 다르게 매우 세속적입니다.  173
기독교의 신이 '초월적(transcendent)'이라고 정의된다면 자본주의의 신은 '내재적(immanent)이며 동시에 초월적'입니다.
기독교의 신은 내세에서 그 존재 여부를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반면 돈은 현세에서 가장 확실하게 그 전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돈은 더 강하게 우리를 지배합니다.  174
매춘에서 사랑을 꿈꾸다!
매춘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매춘부의 탄생이라는 문제 역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있습니다. 매춘부는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 존재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매춘부나 노동자는 자신의 육체, 혹은 자신의 능력을 팔아야 합니다.  184
벤야민은 '파리의 많은 젊은 여성의 미덕에 위기가 닥치는 시기가, 연중 특정한 시기가 있다.... 새해 공현제(1월 6일), 성모와 관련된 축일이 다가오면 소녀들은 선물을 주거나 받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내고 싶어 한다. 또 새로운 드레스나 유행하는 모자를 갖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금전적인 수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 며칠간 매춘에 종사해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특정한 시기나 특정한 축제일에 즈음하여 방탕한 행동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184-185
주목할 점은 파리의 젊은 여성들이 몸을 팔아 번 그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선물, 옷이나 모자 등을 만들어 파는 산업자본입니다.  186
과거 아케이드나 백화점이 여성들의 허영심을 증폭시키고 과소비를 부추겼듯이 당시의 산업자본은 기념일 드을 이용하여 파리의 젊은 소녀들이 몸을 팔도록 부축겼습니다.  187
매춘이란 결국 사랑이 자본주의에 지배될 때 파생되는 현상입니다. 우리 자시의 인격이 아니라 내가 가진 돈으로 사랑을 사는 행위이니까요. 매춘부는 그녀를 안고 잇는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가 가진 돈을 사라합니다. 
매춘부가 사랑을 통해서 매춘부로서 수명을 다한다는 사실. 벤야민은 왜 이 사실에 주목했을까요? 그것은 자본주의가 사랑을 아무리 자본의 논리로 포섭하려고 할지라도, 사랑은 자본의 한계를 돌파할 어떤 힘이 있음을 알아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해피엔딩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자본을 영속적으로 압도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191
지금은 배우자의 조건 중 경제 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입니다. 나에게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사람을 남편으로 사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매춘의 논리에 가장 가깝습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허락하는 첫 번째 조건이 돈 문제라면 누구도 이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사랑이 찾아들면 더는 매춘 행위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벤야민이 사랑과 매춘 사이의 비극, 그리고 이 사이에 개입되는 자본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두었던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벤야민은 사랑이 자본주의와 결합되면 결국 매춘으로 변질된다는 점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192-193



III.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 - 투르니에 vs 부르디외
5. 불안, 가난한 이웃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
로빈스 크루소와 타자의 발견
현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차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사유했다는 데 있습니다. 들뢰즈 이전까지 서양철학에서 '차이'는 '동일성(identity)'이라는 개념과 짝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일성'의 지배를 받는 개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 알던 모습과 '차이'가 나 보입니다. 외모도 이전과 다르게 몹시 호리호리해졌고, 생각도 무척 냉소적으로 변한 듯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 친구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그 친구에게 변하지 않은 측면, 즉 동일성의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이 먼저 전제되어 있지 않는 한, 지금 변한 친구의 모습을 간파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동일성을 우위에 두는 사고의 한 가지 전형입니다. 만약 그 친구가 예전에 내가 알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면, 우리는 그 친구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겠지요.
그런데 들뢰즈는 이와 다르게 생각합니다. 동일성보다 차이가 먼저 라고 주장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그 친구의 모습은 수많은 타자 그리고 수많은 사건과 마주치고 그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아 형성된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겟지요. 그런데 만약 그 친구가 당시에 자신이 마주쳤던 것과는 다른 타자 및 사건들을 조우했다면, 아마도 그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지 ㅇ낳았을까요. 그렇다면 오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구가 왜 이전과 모습이 달라 보일까요? 그것은 서로 보지 못한 사이에 그 친구가 수많은 차이를 겪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동일성이란 다양한 타자 그리고 사건들과의 우발적 마주침으로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동일성이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효과일 뿐입니다.  206
들뢰즈가 중시했던 차이라는 개념은 타자와의 마주침으로만 경험되는 것입니다.  207
무엇인가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수중에 있는 돈을 무도 사용해버린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필요한 무엇인가를 구매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상품으로든 교환 가능한 잠재적 돈을 모두 소비한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비축해둔 돈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13
구조화된 구조이자 구조화하는 구조
부르디외는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서 '미래에 대해 행위자가 가지는 행위의 성향은 특정한 물질적 존재 조건 하에서 만들어지며, 특정한 객관적 기회의 구조 -하나의 객관적인 미래- 라는 형태로 파악된다. 구조화된 구조(structures structurees)라고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성향은 구조화하는 구조(structures structurantes)처럼 작동한다.'
'습관(Habit)'의 어원인 라틴어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부르디외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서, 그는 아비투스를 '구조화된 구조이자 동시에 구조화하는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행위자의 내면에 만들어진 습관적 구조로서의 아비투스가 '구조화된 구조'인 이유는 그의 말대로 그것이 '특정한 물질적 존재 조건'에서 형성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217
아비투스가 '구조화된 구조'일 뿐만 아니라 '구조화하는 구조'이기도 한 이유는 이것이 세계에 대한 행위자의 실천을 낳는 능동적 힘으로서도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두 종류의 아비투스가 있다. 
하나는 '미래가 있는 사람'의 아비투스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가 없는 사람'의 아비투스입니다. '미래가 잇는 사람'의 아비투스란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이 가지는 아비투스입니다. 반대로 '미래가 없는 사람'의 아비투스는 전자본주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비투스를 의미합니다.  219
부르디외에 따르면 전자본주의적 인간과 자본주의적 인간 사이의 결정적 차이점은 '미래'와 관련된 시간의식에 있습니다.  220
미래란 자본주의적 인간의 내면에서는 '가능성의 장'으로서 이해됩니다. 이에 반해 미래는 전자본주의적 인간의 경우에는 '잠재적으로 올 것'으로서 표상됩니다.
'가능성의 장'으로서 미래란 다양한 경우의 수들 가운데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잠재적으로 올 것'으로서의 미래는 이전에도 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올 것입니다.  221
전자본조의적 인간 vs 자본주의적 인간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와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가 서로 유사해 보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슐라르(Gaxton Bachelard 1884~1962)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 사이에는 건널 수없는 인식론적 단절(rupture epistemologique)이 있는 샘입니다.  226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의 특성을 파악하다 보면, 그와는 구별되는 우리 내면의 자본주의적 아비투스 또한 명료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227
농민들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증여의 논리로 사유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는 결국 인간과 자연을 한 가족이나 혈족 혹은 공동체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증여란 기본적으로 가족이나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230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자연이 표상되기 때문에, 농민들의 노동은 강박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농부들은 만약 자신들이 끊임없이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신이 어김없이 분노를 드러내리라고 믿습니다.
전자본주의 촌락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쉬지 않고 일합니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이란 구별이나 '수익성이 있는 노동'과 '수익성이 없는 노동'이란 구별도 부차적 차원으로 물러나게 된다.'  232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혹은 수익성 있는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도으이 구별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중요한 것입니다. 
전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에게 노동은 그 자체로서 수단이며 목적이기도 합니다. 단지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그드르이 노동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어떤 해에 수확량이 증가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부지런한 노동에 대한 자연의 선물, 혹은 자연이 내린 보답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자신의 재주와 능력으로 수익을 올린 것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지요.  233
이런 이유로 과거 전통 공동체에서 가장 비난받았던 행위는 다름 아닌 무위도식이었습니다.  234
지금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한 가지 대안으로, 동양의 전통 사유가 각광을 받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산업자본이 일으킨 환경 파괴의 대안으로 생태철학이 강조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동양철학이나 생태철학이 기본적으로 전자본주의적 삶과 사유 형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37
혁명의 최소조건
<세계의 비참>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이 사회를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물론 부르디외는 성급하게 자신의 전마을 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부분 사람드르이 환상, 즉 진보와 번영을 약속한다는 장밋빛 전망을 산산이 부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습니다.  238
부르디외는 "미래를 가능성으로서 가지지 않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239
그가 보기에 알제리 사람들이 혁명을 꿈꿀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가능성으로 가지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미래를 잠재성으로만 간주한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셈이지요.  241
전자본주의 시대의 알제리 농민들은 노동을 통해 자연을 겁탈하지만,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복수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자연에 대한 능동적 조작이 아니라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수동적 태도로 간주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은 자연이라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 의미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자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응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자연이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농민들의 태도와 매우 유사하게, 자본주의 사회에 속하는 실업자들 또한 실업과 실업의 문제가 항상 내재하는 자본주의 체계를 직시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혁명의 주체나 능동적 주체가 되기보다는 몽상으로 도피하거나 운명론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이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자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여력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럴 경우 그들은 자신의 노동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직시하겠지요. 마찬가지로 도시 실업자들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체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이때 비로소 그들은 자신의 실업 문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를 직시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243
"미래의 현실주의적인 전망은 실제로 현재에 직면할 수단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것이다." 라는 부르디외의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영속적으로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이 '현재에 직면할 수단'을 프롤레타리아로부터 박탈하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244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직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들을 보십시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부모님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들은 병원에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병이 있음을 짐작하지만 치료할 여윳돈이 없어서 걱정만 할 뿐입니다. 의사의 냉정한 진단은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겠지요. 가족이 짊어질 부담이 그들에게는 더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웃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며 자신의 병을 키우지요. 마침내 말기 암과 같은 치명적 병으로 판명되고서야, 그들은 부르디외가 말했듯이 '자기포기'나 아니면 종교에서 치유를 구하는 '마술적 조급함'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이웃들 가운데는 마치 말기 암을 선고받은 가난한 자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생계의 어려움이나 실직의 고통이라는 문제를 자본주의 체계와 관련해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취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245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서 '우리는 계급의식 속에서, 경제적 필연성의 압력이나 사회체계의 모든 객관적 결정에 반하여,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춘 주체의 성찰적 행위를 볼 수 있어야만 한다. 현재 상황에 대한 반란은 다으모가 같은 경우에만 합리적이고 명시적인 목적으로 지향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런 목적에 대한 합리적 의식의 구성을 위한 경제적 조건이 주어질 경우, 다시 말해 현재의 질서가 그 자체의 소멸 가능성을 포함하며 동시에 이 사실로 인해 그 질서의 소멸을 기도할 수 있는 행위자를 생산하는 경우에만 반란은 혁명으로 전환도리 수 있을 것이다.'  246
아비투스의 대결
어느 곳에 갔을 때 자신의 아비투스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비투스가 그곳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아비투스를 의식했다면, 이것은 새로운 환경이 자신의 아비투스와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환원할 수 없는 외부, 혹은 타자를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254

6. 허영, 내면 깊숙한 소외의 논리
판단력 비판 vs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
칸트는 매우 규칙적으로 자기 삶의 규율을 준수했던 인물로 이미 당시에도 유명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령, 즉 무조건적 도덕명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266
내가 타인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타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유를 가진 존재로 대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것이 자본주의하에서 가능할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최종 목적이고 인간은 언제든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간주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붕괴되겠지요.  267
연구자들은 칸트의 철학적 위대함을 그가 진(眞), 선(善), 미(美) 세 영역을 구별했다는 데서 찾았습니다. 칸트로부터 우리는 동일한 대상이라도 최소한 세 가지 영역으로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가서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을 내려다보면, 두터운 스모그 층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해가 질 무렵 서울은 휘황한 보라색 아우라를 띤 도시가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론적 관심'을 두고 바라본다면, 스모그가 보라색을 띠는 이유를 대기에 섞인 오염물질 그리고 석양의 태양광선의 파장이 가진 특징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바로 진리(眞)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보라색의 스모그를 진리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관심' 혹은 '윤리적 관심'을 통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경우 우리는 사리사욕을 위해서 매연을 배출하는 인간의 비윤리성을 탓하지요. 이것이 바로 윤리(善)의 영역입니다. 한편 '이론적 관심'이나 '실천적 관심'을 포함한 일체의 관심을 배제하고, 다시 말해 시종일관 '무관심'으로 보라색 스모그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보라색으로 뒤덮인 서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것이 아름다움(美)의 영역입니다.  269
분별력이 있는 사람, 혹은 배운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칸트에 따르면 동일한 대상이나 사건을 필요에 따라 이론적 관심으로, 실천적 관심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270
취향, 분별하기와 구별짓기
칸트의 미학, 혹은 상류계급의 미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관심하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겠지요.  276
가라타니 고진은 영화나 소설을 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문화적 학습 덕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무관심'하게 보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되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78
<이솝우화>에는 포도를 먹고 싶었던 여우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도가 손에 닿지 않자, 여우는 그 자리르 떠나며 말합니다. "흥!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어떤 것을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을 때 인간은 그것의 가치를 폄하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신포도 이야기는 이런 인간의 특징을 잘 보여주지요.  282
허영의 뿌리
<구별짓기>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자본 이외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자본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가 문화자본(capital culturel)입니다. 이것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미적 감각 그리고 사람들이 소장한 작품들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학력자본(capital scolaire)입니다. 이것은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따거나 국가고시와 같은 시험제도를 통과해 얻는 자격 혹은 지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관계자본(capital de relation social)입니다. 이것은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을 얻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인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르디외가 주목하는 세 가지 자본들은 모두 경제적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세 가지 자본들은 지속적인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세 가지 자본들은 하류계층에서 상류계층으로 직접 진입하려는 벼락부자들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84-285
경제적 자본은 상류사회와 비교해볼 때 결코 뒤지지 않았지만, 신흥 부자들은 상류사회가 가지는 아비투스, 특히 미적 취향을 함께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게 되고, 자식들을 명문 대학에 보낼 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재력을 투입합니다. 
그렇다면 하류계급의 사람들이나 벼락부자들이 왜 상류사회에 편입되려고 할까요? 그것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허영(vanity)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인간은 본성이 선하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조차 인간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86
독재자도 훌륭한 통치자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하고,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지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도둑도 정직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을 느끼겠지요. 이것이 바로 사람의 허영입니다. 허영(虛榮)이란 한자는 '비어 있다'라는 의미의 '허(虛)'라는 글자와 '꽃이 화려하게 핀다'는 의미의 '영(榮)'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실은 비어 있지만 겉은 매우 화려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찬양하고 칭찬해주는 특성을 자신들의 본성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영혼의 특성이라고 믿어버립니다.  287
인간은 자신이나 남들이 부정하고 싫어하는 특성들을 단지 우연적인 것 혹은 외적인 것으로 애써 폄하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288
허영심이란 모든 인간이 가진 것입니다. 따라서 '성적=칭찬'의 도식만을 강요한 사회 구조에 여학생 개인보다 더 큰 책임이 있음을 우리는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289
산업자본주의는 상류계급의 구별짓기의 욕망 혹은 허영의 논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전자본주의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시대가 신분사회엿다는 점입니다. 신분에 따라 옷도 다르게 입고 집도 다르게 지었습니다. 물론 미적 감상을 포함한 여가 생활도 확연히 구분되었겠지요. 이미 사회 곳곳에서 신분에 따른 확연한 구별이 이루어졌기에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낼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본 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이전과 달라집니다. 이제는 주어진 선천적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자본을 확보해야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자본이 있다는것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별도로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틈을 파고들면서 산업자본주의는 화려한 소비사회를 만듭니다. 경제적 자본을 확보한 부르주아 계급은 소비라는 과시 행위로 자신들이 남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있음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상류계급이 미적으로 선호하는 모든 아이콘은 사실 19세기 산업자본을 상품화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92
타자의 힘, 혹은 인간의 진정한 빛
노동의 세계, 즉 자본주의 세계에서 미래란 가장 중요한 시간이자 동시에 가장 불명확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면 여러분은 무한한 교환 가능성으로서의 화폐를 얻겠지요. 동시에 회사가 부도나서 월급을 받을 수 없는 가능성도 병존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걱정에 시달리며 여러분의 의식은 항상 불안한 미래를 향해 있고, 현재는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괴로운 순간쯤으로 억누릅니다.  300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미래의 좋은 삶, 장밋빛 삶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고된 노동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각자의 삶을 경건하게 검열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본주의나 기독교가 제공하는 달콤한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우리의 현재와 삶은 깊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재의 순간이란 있을 수 없게 되지요.
자신의 삶이 초월적 목적이 아니라 내재적 목적이 있다는 것, 삶은 놀이의 주체이지 결코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 나아가 오직 현재만이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삶의 철학자 니체라면 놀이의 아비투스를 획득한 로빈슨을 초인, 즉 위버멘쉬라고 불렀을 테지요.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이 대지의 뜻이다. 너희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맹세코 이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런 자들은 스스로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독을 타 사람들에게 화를 입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생명을 경멸하는 자들이요, 소멸해가는 자들이며, 이미 독에 중독된 자들인바, 이 대지는 그런 자들에게 지쳐 있다.'
니체는 현재라는 시간 그리고 내재적 삶을 부정하는 모든 초월주의를 허무주의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한 초인은 바로 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인간입니다.  303-304
그것은 자기 삶 자체를 수단이자 나아가 목적 그 자체로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초월적 가치나 목적에 현혹되지 않는 삶, 그 자체로 긍정적인 삶을 되찾습니다.  304



IV.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 유하 vs 보드리야르
7. 쇼퍼홀릭과 워커홀릭, 금단의 무기력 너머 
바람부는 압구정동의 불빛
1980년대는 산업자봅눚의가 우리에게 발전과 번영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서서히 깨닫게 된 시대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그것이 곧바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지성계의 화두가 되었으니까요. 당시의 지성계가 극복해야 할 화두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 였습니다. 그 한 가지는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의 철권통치였다면, 다른 한 가지는 노동자와 도시 빈민 그리고 농민들의 척박한 삶을 초래한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대학생들은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러한 고민은 시위의 형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311-312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청각의 시대는 지나고 화려한 영상을 자랑하는 시각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것은 매혹적인 소비문화에 물들게 하여 비판적 감각을 무디게 하려는 정부의 정책과도 맞물렸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낮에는 정치와 경제 문제로 격렬한 시위에 참여했고, 밤에는 화려한 시각 문화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지성계는 사회참여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부르디외가 이야기 했듯이 취업 걱정이 전혀 없었던 당시의 대학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312
당시의 대학생들은 상당히 사변적이고 이념 지향적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몽환적인 유흥문화, 네온사인, 백화점 그리고 칼라 텔레비전의 시각적 화려함과 현란함 등이 자신의 주머니를 열도록 고안된 못된 장치들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모리로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각적 말초신경은 냉철한 머리와는 반대로 그 화려한 욕망의 집어등을 은밀히 더듬고 있었지요.
바로 이때 소비문화에 대해 매우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본 한 명의 시인이 바로 유하입니다.  313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오징어]
오징어들은 화려한 불빝, 즉 어선의 집어등이 뿜어내는 '찬란한 빛'에 포획되어 죽어갑니다. 유하는 우리의 신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314
유하는 소비문화의 폐단을 모조리 산업자본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산업자본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가장 잘 파악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이용했을 뿐입니다.  320
낡은 것은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라
자본주의 역사에 대해..
서양에서는 절대왕조와 함께 발전햇던 상업자본의 황금기가 있었지요. 17세기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이끌었던 대항해의 시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18세기말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산업자본주의의 힘이 상업자본주의 시대에 막을 고하게 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이 이윤을 획득하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상업자본은 공간의 차이, 다시 말해서 가격의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이윤을 획득합니다. 가령 동해에 위치한 강릉에서는 오징어 가격이 서울보다 쌉니다. 만약 강릉에서 오징어 가격이 1000원이라면, 서울에서는 오징어가 가격 2000원에 팔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인은 강릉에서 오징어를 1000원에 사서, 서울에서는 2000원에 팝니다. 결국 그에게는 1000원의 이윤이 남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상업자본이 항상 각양 각종의 신기한 특산물이 나는곳, 다시말해 가격 차이가 나는 곳을 찾아서 멀리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17세기와 18세기 초까지 영국과 네덜란드가 경쟁적으로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에는 유럽에 없는 진귀한 특산물들, 다시 말해서 엄청난 가격 차이를 보이는 상품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다르게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깁니다. 예를 들어 MP3를 만드는 산업자본은 계속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여 기존 제품들이 유행에 뒤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소비자들에게 기존 제품을 버리고 계속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에 구입한 제품과 새로운 제품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공간의 차이처럼 시간의 차이가 원래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행위, 다시 말해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산업자본의 행위 자체가 시간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327-328
유행은 소비자들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우선적으로 창출되는 것입니다.
산업자본이 창출하는 유행은 대중매체의 발달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대중매체는 대가로 제공되는 산업자본의 광고료를 통해서 유지됩니다.  328
구독률, 시청류르 그리고 조회 수가 높을수록 대중매체는 산업자본으로 부터 광고비를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다.
보드리야르는 "객관적 기능의 영역 안에서 사물들은 교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런 명시적 의미의 영역 밖에서 어떤 사물이라도 무제약적인 방식으로 대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객관적 기능의 영역이란 구체적 사용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사람들의 이동을 편하게 하는 객관적 기능이 있으며, 아파트는 사람들의 주거를 편하게 해주는 객관적 기능이 있습니다. 객관적 기능의 영역에서 자동차는 아파트를 대신할 수 없겠지요. 
반면 객관적 기능의 영역을 넘어서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329
현재 산업자본은 광고를 통해서 우리가 가진 '낡은'것을 폐기하고 '새로운'것을 구매하도록 유혹합니다.
광고에서 소개되는 새로운 세탁기에는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한 에로틱함, 새로움, 행복함이란 '기호가치'가 강하게 부여된 것입니다.  331
여러분 집 안이 사용하지 않는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면, 이것은 이미 산업자본주의가 열어놓은 소비사회의 유혹에 포획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허영 같은 감정이 있기에 산업자본의 기호가치가 작동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비사회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통찰이 중요한 이유도 그가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 혹은 허영이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333
금욕은 어떻게 사치가 되었나
근대사회란 산업자본 주의에 입각해 새롭게 구성된 사회, 그러니까 18세기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되어 19세기에 거의 완전한 모습을 갖춘 사회를 말합니다.  334
좀바르트는 '어떤 시대라도 사치가 일단 존재하면, 사치를 더욱 증대시키는 그 밖의 동기들 역시 활기를 띠게 된다. 즉 명예욕, 화려함을 좋아하는 것, 뽐내기, 권력욕, 한마디로 말해서 남보다 뛰어나려고 하는 충동이 중요한 동기로서 등장한다.... 그렇지만 사치가 개인적이며 물질주의적인 사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향락이 확기를 띠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에로티시즘이 생활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우리가 논의하는 시대에 적용해보자. 거대한 사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즉 부(富)도 있고, 사랑의 생활도 자유로운 상태였고, 다른 집단을 압도하려고 하는 몇몇 집단의 시도도 있었으며, 또한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19세기 이전에는 전적으로 향락의 중심지였던 대도시에서의 생활도 있었다.'  340-341
좀바르트에게 사치란 특정 시대만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가까운 것으로 사유되었습니다.
좀바르트는 사치가 인간이 가진 허영이라는 욕망, 즉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으려는 욕망에서 기원한다고 보았습니다. 스스로를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별하려는 욕망에서 사치가 발생했다고 본 것입니다.
좀바르트는 <사치과 자본주의>에서 '부(富)가 축적되고 성생활이 자연스럽게 또 자유스럽게 혹은 대담하게 표현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사치도 함께 유행한다.'  341
소비, 자본주의 생산성의 비밀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자유롭게 분출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각을 갖습니다. 그렇지만 보드리야르는 냉정하게 지적합니다. 우리가 가진 '욕구와 그 (욕구의) 충족은 오늘날에는 다른 생산력(노동력 등)과 마찬가지로 강요되고 합리화된 생산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349
산업자본주의에서 자유란 분명 소비의 자유입니다. 돈이 부족하거나 아예 돈이 없을 경우 우리가 부자유의 느낌, 심지어는 심각한 우울증을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자신을 타인과 구별해줄 수 있다고 믿는 상품들을 구매하지 못할 때 우리는 우울증을 겪습니다.
돈이 없으면 우울하고, 돈이 있으면 명랑해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산업자본이 우리의 욕망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분명한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자유와 부자유의 느낌을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자신이 산업자본에 길들어 그런 자유 혹은 부자유의 느낌을 가진다는 사실을 또한 망각하기 쉽습니다.  350
수족관에 갇힌 낙지의 삶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의 임금 가치보다 훨씬 더 비싸게 소비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핵심 비밀이자 신비입니다.  362
자본가로부터 주어지는 임금은 더 큰 자본의 형태로 다시 회수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윤택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노동자가 다시금 소비자가 되어서 자본가의 상품을 구매해주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잉여가치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는 반드시 이러한 메커니즘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63

8. 교환, 대가 없는 나눔의 마법
문명의 빛 반대편에 서려는 시인의 의지
만약 돈이 없다면, 우리가 소망하는 자유로운 욕망의 실현은 불가능해질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사회에 사는 셈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삶은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품과의 관계에서는 주인으로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그 이면의 돈과의 관계에서는 무기력한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가니까요.  367
사랑이란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감정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은 자본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소망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본주의는 늘 인간의 무한한 진보와 변영을 약속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곧바로 정면에서 거부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의 노쇠함과 그에 이어지는 필연적 죽음입니다.  375
'공산당 선언'에서 '생산의 거울'까지
베버 역시 생산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사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바르트나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의 잉여가치가 오직 유통과정에서만, 다시 말해 한때 노동자였던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에만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베버와 달리 이들 후자의 견해는 소비중심주의라고 부릅니다. 보드리야르가 생산중심주의를 비판했던 이유도,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자본조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377
보드리야르는 아직까지도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생산중심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오래된 사유의 관행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378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그 누구도 마르크스의 사유를 피해갈 수 없지요. 그렇지만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를 배신하려고 합니다. 그는 마르크스 역시 생산중심주의라는 거울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379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어떠한 억압이라도 감당해야 했지만, 유통과정에서 노동자는 곧 소비자로 바뀝니다. 소비자라느 ㄴ위치에 있을 때에만, 노동자는 산업자본에 대해 나름대로 자율성을 얻지요.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유통과정, 혹은 소비의 영역을 중시했던 것입니다.
소비 영역은 소비자가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산업자본의 음모, 나아가 소비자의 허영을 부추겨 소비를 촉진하려는 산업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소비 영역에서 전개되는 이 같은 산업자본의 음모와 전략을 폭로하는 것, 바로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평생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그는 사물이 가진 서로 다른 네 가지 차원의 논리를 해명합니다.  381
'기호와 차이의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소비의 논리를, 그 논리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논리로부터 구별해낼 필요가 있다. 네 가지 논리가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①사용가치(use value)라는 기능적 논리, ②교환가치(exchange value)라는 경제적 논리, ③상징적 교환(symbolic exchange)의 논리, ④가치(value)/기호(sign)의 논리. 첫 번째는 실제적인 작용의 논리이다. 두 번째는 등가(equivalence)의 논리이다. 세 번째는 애매성(ambivalence)의 논리이다. 네 번째는 차이의 논리이다. 또한 유용성의 논리, 거래의 논리, 증여의 논리, 신분의 논리. 물건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 '상품' , '상징' 또는 '기호'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것만이 소비라는 측수한 영역을 규정짓는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다이아몬드는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도구'일 수도 있고, '상품'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잇고, 아니면 '기호'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도구'의 측면에서 바라본 다이아몬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가장 견도한 광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도구로서의 다이아몬드는 '사용하기'라는 기능적 논리를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름답기만 할 뿐 무엇인가르 자를 때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면 이것은 결국 사용가치가 별로 없는 다이아몬드에 불과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드리야르는 '사용가치의 기능적 논리'를 '실제적 작용의 논리' 혹은 '유용성의 논리'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는 '상품'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1억 원으로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됩니다. 이때 상품으로서의 다이아몬드는 '교환가치'라는 경제적 논리를 따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한 개는 자동차 5ㄷ개가 컴퓨터 100대와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이아몬드 한개의 교환가치는 자동차의 5배, 혹은 컴퓨터의 100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화폐는 바로 이런 다이아몬드의 교환가치를 가장 편리하게 수량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한 개의 교환가치는 현재 1억 원으로 매겨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너무 많이 채굴되거나 혹은 소비자의 구매가 별로 없다면, 다이아몬드의 교환가치는 1억 원 아래로 다시 떨어지겠지요. 이 때문에 보드리야르는 '교환가치라는 경제적 논리'를 '등가의 논리'나 '거래의 논리'에 딸느 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이아몬드는 '상징'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사랑하는 딸의 결혼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상품으로서의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1억 원으로 다른 것을 살 수도 있겠지요. 혹은 1억 원 상당의 다른 상품과 다이아몬드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물로서의 교환은 앞서 말한 등가 교환과는 다릅니다. 내가 다이아몬드 하나를 선물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느 ㄴ상대방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교환'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선물로서의 다이아몬드는 '양면성의 논리'나 '증여의 논리'를 따른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애매성으로 번역된 'ambivalence'라는 단어는 가치가 애매하다는 뜻입니다. 기존 등가교환에서 본다면, 다이아몬드 한 개와 장미꽃 한 송이 사이의 교환이란 매우 애매하겠지요.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는 '기호'의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도 바로 이 네 번째 측면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상류계층에 속하므로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호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이아몬드는 보드리야르가 말했듯이 '신분의 논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기호'의 측면이 앞서 말한 '상품'의 측면과 그 의미가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교환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다시 말해 구입한 상품이 고가일수록 그것은 구매자의 더 높은 사회적 위상과 신분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류계급은 고가의 제품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고가의 제품을 아무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과시하려는 허영심으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382-384
   도구 상품  상징 기호 
 가치 사용가치 교환가치 상징가치 기호가치 
 작동 논리 작용성  등가성  애매성  차이성 
 적용 영역 유용성의 차원  거래의 차원  증여의 차원  신분의 차원 

생산중심주의에서 살펴본다면,, 인간의 노동력을 중여주거나 아니면 확장 시켜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 '도구'로서의 사물이란 개념은 샌상중심주의에 잘 부합됩니다. 또 '상품'으로서의 사물도 당연히 생산에 도움이 됩니다. 높은 교환가치에 상품이 팔리면, 그만큼 산업자본은 생산력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기호'로서의 사물도 생산중심주의에 잘 부합됩니다. 인간이 가진 허영심과 욕망을 증폭시켜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이라ㅗ 고가에 사들이게 한다면, 산업자본은 막대한 잉여 가치를 남길 수 있겠지요.
보드리야르는 생산의 거울을 깨고자 했던 철학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도구', '상품', '기호'라는 세 가지 사물의 측면을 부정ㅎ적으로 생각했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측면들은 모두 생산 중심주의와 직접 관련 있기 때문ㅇ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가지 관점만 남은 셈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물이 가진 '상징'으로서의 측면입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어떤 교환도 기대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증여의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385
보드리야르는 '상징'으로서 사물이 가진 측면이 사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산업자본주의의 마수로부터 구원해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보았습니다.  386
불가능한 교환을 꿈꾸며!
모스(Marcel Mauss 1872~1950)가 1925년 발표한 <증여론(Essai sur le don)>.
모스의 연구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가 부의 축적을 제일의 목적으로 간주하는 사회인데 반해, 증여의 사회에서는 부의 축적이 아니라 오히려 부의 지출이나 베풀기를 가장 중요한 덕목 혹은 가치로 믿는 사회였습니다. 모스는 증여의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증여하는 사람이 지출이나 베풀기를 통해 얻는 것, 즉 증여가 대가로 얻는 것은 위신이나 명예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증여는 결국 이 사회에서 위신이나 명예와 대등하게 교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타유가 강조한 것은 증여의 핵심이 교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증여 자체가 함축하는 과잉 및 그로부터 이어지는 손실이란 논리엿습니다.  396
보드리야르는 뇌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사용가치나 교환가치, 혹은 기호가치로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선물에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그리고 기호가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사랑이나 애정의 표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가치, 즉 '상징적(교환)가치'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398
<암호>에서 말년의 보드리야르는 자신이 바타유의 충실한 제자였음을 시인합니다. 바타유는 생산중심주의가 종국에는 파국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지요. 하지만 그는 유리가 '불유쾌한 파멸'보다는 '유쾌한 파멸' 즉 선물의 놀리를 선택할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산업자본주의의 집어등에 걸려 있는 우리에게는 바타유와 보드리야르의 이야기가 언뜻 보아서는 이해되기 어려운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단적으로 말해 하나의 고유한 선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생산력의 증가, 다시 말해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일종의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면에서는 산업자본이 설치해놓은 집어등에 사로잡혀 스스로 교환 가능한 존재라고 받아들이며 체념합니다.  403
자전거로 달리는 영원회귀의 길
교환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은 장미와 와인에 교환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교환을 하면, 장미가 가진 고유성과 와인이 가진 고유성을 부정해야만 합니다. 만약 부정하지 않는다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무엇이든 서로 교환되려면 그것이 가진 생생한 질들을 추상해야 합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부여준 것이 바로 '돈' 입니다. 장미는 1만 5000원의 가치가 있고, 와인도 1만 5000원의 가치가 있으므로 서로 바꿔도 된다는 논리를 가능케 한 것이 돈입니다.
그런데 만약 교환만을 염두에 둔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향유할 수가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오직 교환 가치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404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실천적 명령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에 따르면 니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니체는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기독교를 허무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니체는 이 순간의 삶과 현재의 절대적인 것으로 긍정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 대목에서 영원회귀라는 니체의 주장이 출현했습니다. 바로 지금 그리고 이곳의 삶, 그리고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선택은 영원히 반복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논리에 따라 만약 현재 사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 행복하지 않은 삶이 어떤 주기를 가지고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현재의 삶 속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위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심사숙고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411
니체가 제안한 영원회귀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세속적 형태의 염세주의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자본주의 논리를 신봉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현재의 고된 노동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그 대가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리지요.  412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뢰즈, 그러니까 니체 자신이 말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413
유하와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에 의해 포획된 우리 삶이 얼마나 우울하고 초라해졌는지 잘 보여줍니다.
부르디외는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와는 분명 다르지만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어떠한 힘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414
우리는 후손들이 자본주의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후손들을 위한 앞 세대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그런 사회가 가능해진다면, 미래에 도래할 인간들은 매 순간 펼쳐지는 자신들의 삶을 단순한 수단으로 생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그 자체로 향유되는 영원한 현재가 되겠지요.  415

에필로그
자본주의 사회는 피상적으로 보면 이전 사회보다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의 자유를 위새서 돈의 노예가 된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세요. 수중에 돈이 없을 때 얼마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고 느끼는지 말입니다. 가령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가 돈이 있을 때만 가능한 그런 성격의 것이라면, 그것은 돈의 자유이지 우리 삶의 자유일 수는 없습니다.  423
자본주의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회복하려면 여기에서 다룬 인문학자 여덟 명의 사유 또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날개옷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그들의 사유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어왔으며, 또한 진정한 자유를 얼마나 오랫동안 잃고 살아왔는지 자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424
"선생님,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 말씀대로 취업은 자본주의에 포획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느 ㄴ취업을 해서는 안 되는 건가요? 취업을 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이것은 무척 심각하고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 좋은 성적, 좋은 영어 점수. 지금까지 그들의 삶은 모두 자본주의가 내세운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에 입각한 이 같은 삶의 원칙을 직접 심어준 것은 바로 그들의 부모입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보다 인간은 훨씬 더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고 합니다.
독립하기 전까지 인간은 주위의 절대적 보살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유아 시절에 필요한 사랑과 관심은 단순한 허영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생존과 결부된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아 시절부터 인간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 이 가운데 특히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 어머니가 기뻐한다면, 아이들은 가능한 한 성적을 올리려고 애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우리의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인 셈입니다.  425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욕망이란 단지 부모의 욕망이 내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젊은 학생들이 자본주의 논리에 의구심과 회의를 품을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회의는 그들이 이제 부모의 절대적 영향으로부터 구성된 욕망이 아닌 자신만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업을 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라는 그들의 질문 이면에는 생황의 절박함과 불안감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426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품은 상처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자각하면, 우리 실천도 그만큼 치열하고 집요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 책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상적인 대안이나 구체적인 해법들을 제안하기보다, 우선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은 삶을 묘사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상처를 감지한 문학가들 그리고 누구보다 치밀하게 상처를 해부한 사상가들의 시건을 빌린 것도 이 때문이지요.
상처를 상처로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간정히 소망해 봅니다. 더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4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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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나온 결론으로 제시된 '공동체'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공동체는 결국 공동체의 규범과 규율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양산의 계기가 될 수 있기에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 시도는 좋으나 이것이 '동물농장'이 되지 않는다고 보장 할 수 없다.
미시적으로 볼 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큰 문제 양산이 될 것이다.
어쩌면 유지하기 위해 '멋진신세계'로 변형되어야 할지도 모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손쉬운 대답은 종교에 의지하는것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것 처럼 이것 역시 대안이 되기에는 힘들다.
인간은 절대적 불변이 있다. 바로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 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답이 존재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어렵다. 어렵고도 답이 없다. 그렇기에 변화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끝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기력하게 하긴 하지만, 지금 보다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변화를 하고, 그것이 병이 될 때 아니 병이되려할 때 또 다른 대안의 변화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만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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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단어는 참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사람은 철학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틀려 지겠지만...

누구나 공감을 하면서도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는, 뭔가 벽이 있는 느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지 않을까.
성찰하는 삶.. 대체 성찰하는 삶은 어떠한 삶인가... 막연하게 느낌은 오지만 뚜렷하게 무엇이라 표현하기 힘든..
사유..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

절대 철학은 우리에게서 가깝지 않다.
허나 철학은 우리에게서 매우 가깝게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무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부터가 철학이 아닐까... 우리는 선택의 결정의 순간에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나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라면 고민을 깊이 하게 된다.
고민... 고민이 생각이고 인생을 위한 고민이라면 지나온 과거와 가까운 미래에서 먼 미래까지의 고민을 한다는 것..이것은 성찰이기도 하고 사유이기도 한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생활에 밀접히 가까이 있는것이 철학인 것이다.
물론 그런면에서의 철학은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저자는 철학적 사유에 대해 자신의 지식과 사유를 통해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친숙하기에 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들 몇가지를 통해 철학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여러 철학자들의 말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챕터의 말미에는 독자가 더 읽어봄직한 책들까지 소개해 주고 있다.

철학 .. 이것에 조금은 더 다가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시작하며
제 이야기가 농담이 되느냐 진담이 되느냐는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5
철학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으려면, 한대 그랫던 것처럼 그것은 삼에 대한 성찰이자 기록이어야만 합니다.
이 책이 무엇보다도 만남에 대한, 그리고 만남을 위한 것이라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철학과 삶이 만나는 오작교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6

프롤로그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음미하고 싶을 뿐입니다.  12
철학적 사유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삶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자명한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것.  13
음미되지 않은 삶은 맹목적인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14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 회한에 가득 차서 사랑에 대해 반문해보는 것은 너무 때늦은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사랑의 가치와 그 의미에 대해 한번쯤 반문해보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점이 바로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15
철학은 우리에게 '내가 나중에 알게 될 것을 지금 알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우리에게 불편함과 당혹감을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16
칸트(I. Kant 1724~1804)의 용어를 빌려서 말해봅시다. 
철학이 없는 삶이 맹목이라면 삶이 없는 철학은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17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1.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사실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2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앟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입니다.  23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낯섦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점.  25
'인간이란, 설령 순수하다고 가정된 정신이라 할지라도, 참된 것에 대한 욕망, 진실에 대한 의지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진실을 찾지 않을 수 없을 때에만, 그리고 우리를 이 진실 찾기로 몰고 가는 어떤 폭력을 겪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진실을 찾아 나선다.' <프루스트와 기호들> 들뢰즈(G. Deleuze 1925~1995)  28
생각이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찾아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외적인 '사건'의 발생, 그 사건과의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그 사건의 기호에 대한 '해석'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진정한 생각..  29
들뢰즈는 이런 낯섦의 의미를 찾는 것을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어쩔 수 없는 의지... '생각'이란 것은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으로 바꾸려는 자기 배려라는 것이죠.  30
죽음은 크게 세 종류로 우리게게 경험됩니다. 첫째는 '1인칭적 죽음'으로서, 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2인칭적 죽음'으로서, 너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3인칭적 죽음'으로서, 익명적인 그들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 가지 죽음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집니까? 즉 어느 죽음이 가장 여러분에게 고통을 줍니까?  32
왜 아내의 밤늦은 귀가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 나의 뇌리를 지배하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행실은 그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다시 질문해본다면, 왜 어떤 경우에 나는 사건의 의미를 찾는 사람, 즉 기호의 해석자가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고 단순히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6
'특수성(particularity)' 과 '단독성(singularity)'.
어떤 책 한 권이 눈앞에 있다고 합시다. 그것은 인쇄소에서 찍은 많은 책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이 책을 보다가 인쇄가 정확히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당장 책을 구입한 서점에 가서 '동일하지만 다른' 책과 바꿀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특수한'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특수한(particular)'이라는 표현은 바로 '동일하지만 다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첫 선물로 받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책의 첫 번째 면에는 그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절대적으로 다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책을 보다가 앞서와 마찬가지로 책이 파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할까요? 아마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바로 이 책을 '단독적singular)'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9
타인을 사랑하는 데도 바로 이 두가지 태도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타인을 단독적인 존재로 사랑할 수도 있고, 아니면 특수한 대상으로 사랑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것을 단독적인 것으로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호'를 감지라혀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40

사건이 분출하는 기호는 분명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기호가 어느 한 방향의 의미만을 강제하지 앟고, 오히려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모순율(law of contradiction)  43
우리가 기호를 해독하려고 하는 것은, 그 기호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내용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45
만약 어떤 기호에 하나의 의미만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생각을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하나의 의미로 확정된 것은 더 이상 '기호'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요.  46
무의미는 바로 우리의 생각을 끌어당기는, 사건이 분출하는 기호가 가진 힘.
무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의미를 채우도록 강제하는 힘, 즉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47

2.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
삼단논법(Syllogism)
대전제 :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전제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   론 :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51
삼단논법은 '철학이 무엇인지?' 혹은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삼단논법의 순서대로 대전제가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에 소전제가 떠로르고, 마지막으로 결론이 머릿속에 떠오르나요?  52
'질문자(puestioner)'의 마음속에서 삼단논법을 발견하려는 사유의 방향은, 전제와 결론이라는 순서와는 사실 대립되는 것이다.....다시 말해 질문자는 자신의 사유를 전제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결론으로부터 전제에 이르는 방향으로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전통적 논리학의 그리스적 기초> 에른스트 갑(Ernst Kapp 1808~1896)  
캅의 주장에 따르면 삼단논법의 순서는 우리의 사유 순서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54
삼단논법에서 중요한 것은 논증이 구성되는 순서, 즉 대전제→소전제→결론이라는 순서가 우리가 생각하는 순서와는 반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55

철학적 사유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선 어떤 것에 대해 의미 있는 주장을 내세웁니다. 만약 이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주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어떤 근거를 찾는 것이니까요.  56
'참된 철학자는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고, 사유와 생활에서 단순하고 정직하며, 따라서 이 말의 가장 깊은 의미로서 이해된 '반시대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가르쳐줄 수 있는 자이다.' <반시대적 고찰> 니체(F. W. Nietzsche 1844~1900)  62
철학은 '우리'라는 특정한 공동체에서는 수용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새로운 주장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철학은 진정한 철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참된 철학자'를 '반시대적'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65
철학이 지향하는 새로움은 한때의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65-66
'철학은 반시대적이며,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반시대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반하는,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이다.' <차이와 반복> 들뢰즈  67
반시대적인 철학은 끝없는 운동과 생성을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생성이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나 생성된 뒤의 상태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70
철학은 '지금-여기'를 비판적으로 다루지만, 또한 동시에 '아직은 없는' 세계를 꿈꾸는 학문입니다.  71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로 설명하거나, 데카르트를 스피노자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작업입니다. 이런 시도는 단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반복하거나 스피노자 철학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철학자를 고유명에 입각해서 사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철학 책을 읽어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73
참된 철학은 'now-here' 와 'no-where'의 사이에 있으려고 하는 의지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no-where'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now-here' 를 반성하고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감, 혹은 낯섦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이 주는 조망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이 올랐던 봉우리에 직접 올라가 보아야만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준 조망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의 삶과 사유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한 철학자도 분명 있습니다. 이 철학자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삶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시선을 얻게 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가 그 성장에 오를 수 있도록 그를 직접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자가 보았던 것을 직접 한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만약 그의 조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서둘러 내려오면 됩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 여러분 앞의 선배 철학자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두 종류로 구분될 것입니다. 자주 올라가고 싶은 봉우리 같은 철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올라가고 싶지 않은 전망을 가진 철학자들도 있겠지요.  75-76
이런 훈련도 결국 여러분만의 산봉우리를 찾기 위한 연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입니다.  76

3. 철학의 은밀한 두 가지 흐름
'우발성(contingency)' 과 '필연성(necessity)'
일체의 다른 목적이나 필연성 없이 두 가지 사건이 만났을 때, 우리는 이런 사태를 '우발적이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필연성'은 이렇게 두 가지 사건이 만났을 때, 비록 겉으로는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모종의 질서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80
서양철학사에 면면히 흐르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유 경향이 필연성의 철학과 우발성의 철학.  96
앞으로 과거의 철학자들을 읽어나갈 때, 혹은 여러분의 삶을 철작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106
우리의 존재한 확고 불변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여러분, 그리고 저 자신은 무한한 우발적인 만남의 결과, '....와.....와....'로 설명될 수 잇는 우연한 만남의효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불안해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이것은 괴로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지금과는 또 다른 사람, 혹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축복 말입니다.  109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4. 사랑 그리고 가족 이데올로기

"도대체 '사랑'이나 '가족'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묻고 숙고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사랑과 가족을 우리에게서 낯선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어려운 문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가족'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 우리의 일상적인 의지에 반한다는 사실입니다.  117
헤겔은 말합니다. 사랑은 두 사람의 통일이자, 그것에 대한 의식이라고 말입니다. 사랑 속에서 나는 타자와 '하나'라는 전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나는 그 전체 속의 한 부분으로서의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됩니다. 결국 헤겔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하나'에 대한 경험이자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9
'부부 사이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사라의 감정(Empfindung)이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이 통일은 아직 아무런 객관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법철학 강요> 헤겔
헤겔의 말처럼 내가 하나라는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이것이 상대반으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 점에서 헤겔은 결국 사랑이 유아론적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잇다는 것을 은연중에 시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120
결국 그의 사랑, 즉 '하나'로의 열망과 열정은 쉽게 성공할 수 없는 시도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2
'그는 감동과 애정을 갖고 집안 식구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아마도 누이동생보다 그 자신에게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이처럼 공허하고 편안한 명상 상태에 있는 그의 귀에 새벽 세 시를 치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그의 머리가 저절로 밑으로 푹 수그러졌다. 그리고 콧구멍으로부터 마지막 숨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변신> 카프카  125
카프카에게 가족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며, 오히려 가족이란 유기체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랑을 생산해낸다는 것입니다. 
카프카의 말대로 가족이 사랑을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헤겔의 말대로 사랑이 가족을 만드는 걸까요?  127
현대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Alain Badiou 1937~ )는 '하나'라는 헤겔적 이념을 거부하면서, 사랑을 '둘'로 사유하려고 했던 중요한 철학자이다.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관계, 탈-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런 둘에의 '접근'이다... 사랑이란 것은 만남의 사건에 대한 충실성 속에서, 둘에 대한 진리의 생산이다.' <철학을 위한 선언>
바디우에 따르면 '둘'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족 논리에 포획되었거나 아니면 상대반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유아론적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따라서 바디우가 강조한 '둘'이란 진정한 사랑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공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130
우리는 계속 그(녀)의 심연을, 그 무한성을 더듬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착각에 일순간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오만이지요. '아! 그(녀)는 키스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33
방법론적 고독이란 우리가 나의 '바깥'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침묵 속에서 나의 외부에 있다는 사실, 그래서 만약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자 은총이라는 사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리이자 '둘'의 진리인 것입니다.  
바디우의 지적이 옳다면 우리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에서도,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사랑에서도, 그리고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사랑에서도 여전히 '둘'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남편과 아내는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즉 '둘'의 요소로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지 그들은 자식으로부터 자신들 혹은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봅니다. 이것은 결국 나르시시즘(narcissism), 즉 전형적인 유아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우리는 남편으로서 아내를, 아내로서 남편을, 어머니로서 자식을, 아버지로서 자식을 진정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라는 사랑의 진리를 반드시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느 ㄴ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그들로부터 사랑받기는 원한다면 말이죠.  136

5. 국가라는 가장 오래된 신화
'스톡홀름 증후군'의 메커니즘은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우선 인질들은 자신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인질범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 것을 고마워하며, 결국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인질들은 자신들을 구출하려고 하는 경찰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느끼게 됩니다. 경찰들이 자신들과 인질범들 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인질범들도 인질드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역류시킨 인질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오히려 경찰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인질들과 인질범들 사이에 '우리'라는 기묘한 믿음의 공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139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인질들처럼 박정희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자행했던 억압과 탄압의 요소들을 대부분 잊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를 보릿고개를 없애준 사람,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우리 민족을 고질적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사람으로 기억하려고만 합니다.  141
박정희가 우리에게 각인시킨 국가주의라는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혹은 국가에 대한 스톡홀름 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국가를 사유할 때 발생하는 불쾌함을 견딜 필요가 있습니다.  143
'국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개인에 선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국가는 전체이며 개인은 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국가만이 자족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144
'교환하기보다는 강탈하는 편이 빠른 길이다. 지속적으로 강탈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다른 적으로부터 보호한다거나 산업을 육성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원형이다. 국가는 더 많이 그리고 계속해서 수탈하기 위해 재분배해줌으로써 토지나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고 관개 등 공공사업을 통해 농업생산력을 높이려고 한다...그러므로 강탈과 재분배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교환'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본정신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1941~ )  146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국가를 하나의 신적인 실체가 아니라 교환관계로 숙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47
'주종 관계란 사람들의 상호 의존과 그들을 결합시키는 서로의 욕구가 있기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것은, 미리 그를 다른 사람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처지에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 루소  148
통치자가 이미 피통치자가 자신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우월한 힘을 가진 통치자와 그렇지 못한 피통치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부등가교환이 됩니다. 다만 '국가는 더 많이 그리고 계속해서 수탈하기 위해 재분배하는 것일 뿐입니다.'  148
피톤치자는 국가가 자신을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바로 여기에 피통치자가 부등가교환을 등가교환으로 착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지요. 
고진의 분석이 옳다면,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 통치를 영구히 하기 위해 경제개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49
국각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를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는 마치 출산업자와 소 사이의 관계와도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49
'오므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퍼주어야만 한다.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만 한다. 제거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높여주어야만 한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이라고 말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덕경>  151
국가는 기본적으로 약탈의 역사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약탈만으로는 효과적으로 이윤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곧 자각하게 됩니다.  이제 피약탈자는 국민으로 변하게 된 것이지요.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이전에는 국가가 보호하는 일차적인 대상이 농민이었습니다. 국가의 힘과 부는 무엇보다도 농민의 농업생산력과 농민이 구성하는 무력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156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 이제 국가의 논리는 자본의 논리와 결합됩니다. 국가가 수탈과 재분재의 대상을 농민이 아닌 자본가와 노동자로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57
다국적기억(multi-national enterprise)이 많은 미국의 경우 이들의 세계화로의 충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권장해야만 합니다. 그들로부터 미국은 막대한 세금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지요.  161
세계화의 시대에 국가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모습을 더 효율적으로 바꾸고 있을 뿐이지요.  162

국가는 수탈과 재분재라는 역동적 교환관계로 유지되는 기구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은 재분배라기보다 압도적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수탈이라고 말해야겠지요. 문제는 이렇게 수탈되고 있는 대다수 국민이 스스로 국가 없는 사회를 꿈꾸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너무나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162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 강해져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자유를 양도해버리고 국가권력에 복종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런 메커니즘에 완전히 적응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될 겁니다.  163
약육강식의 논리는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럼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강한 사람에게 복종하지도 않고 약한 사람을 지배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유인의 의지일 것입니다. 자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할 것이라는 용기와 확고한 자유정신 말입니다.  166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고, 강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아직 많은 사람이 이런 야만의 상태를 문명의 상태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것이라고 해서 항상 올바른 것은 결코 아니겠지요.  167

6. 살아 있는 형이상학으로서의 자본주의
화폐는 우리에게 교환의 수단인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교환의 목적이기도 하다. 돈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사려는 사람에게 화폐는 교환의 수단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품을 가지고 돈을 벌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화폐가 교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 그 이상의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화폐가 나의 손을 떠나는 순간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실하고 이제 상품이라는 유한한 가능성만을 소유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제 화폐를 가진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하게 되고, 상품을 가지게 된 사람은 상대적으로 노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 노릇을 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실제 모습입니다.  171
'화폐는 무엇이 자신으로 바뀌었는지를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상품이든 상품이 아니든 간에 모든 것이 다 화폐로 전환 가능하게 된다.' <자본론> 맑스  172
화폐가 신성한 왕좌에 오르게 되자, 역으로 화폐가 아닌 모든 것은 이제 상품의 자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맑스는 '인간의 상거래에서 제외되고 있는 성스러운 물건들' 마저도 이제 화폐에 의해 상품으로 전락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성스러운 물건들에는 인간 자신도 예외 없이 포함됩니다.  173
자본주의 경제학 책을 본 분은 알겠지만, 여러분은 질적으로 차이 나는 독립적인 인격체, 즉 고유한 삶의 가치를 갖는 자유로운 주체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구매자가 요구하는 상품으로 팔려야만 하는 '노동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애석하게도 여러분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규격화되고 만들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하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잘 팔릴 수 있도록 가꿔야만 합니다.
자본가의 구미에 맞도록 여러분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174
그래서 맑스는 자본주의 시대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고 정의 했던 것입니다.  175

한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화폐를 편집증적으로 소유하려고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굶어 죽어도 화폐를 쓰지 않고 오로지 화폐를 소유하려고만 하는 구두쇠, 즉 맑스가 이야기한 '화폐퇴장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176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다... 사용가치는 결코 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며, 어떤 하나의 거래에서의 이윤 역시 그러한 목적이 될 수 없고, 다만 이윤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운동 자체만이 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있다. 이 절대적인 치부에의 충동, 이 정열적인 가치 추구는 자본가와 화폐퇴장자(구두쇠)에게 공통된 현상이지만, 화폐퇴장자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 반면에, 자본가는 합리적인 화폐퇴장자이다. 화폐퇴장자는 화폐를 유통에서 끌어내버림으로써 가치의 쉴 새없는 증식을 추구하지만, 보다 영리한 자본가는 화폐를 끊임없이 유통에 재투입함으로써 가치 증식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자본론> 맑스  176-177 
왜 구두쇠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두 번째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본의 증식이 단지 유통 과정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177
결국 자신이 가진 우월한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화폐를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암초를 오디세우스처럼 지혜롭게 잘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암초는 화폐를 유통 과정에서 빼내어 금고에 담아두려고 하는 '얼빠진' 생각이겠지요. 반면 두 번째 암초는 유통 과정에서 볼 수도 있는 손해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암초를 현명하게 잘 피했다면, 여러분은 '영리한 자본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79

더 이상 잉여가치가 생기지 않는다면 산업자본은 마치 게걸스런 괴물처럼 다른 곳으로 먹이감을 찾아 이동해야만 합니다. 
저렴한 원료가 있고 값싼 노동력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신들의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곳이 있다면 산업자본은 그곳이 어디든 주저 없이 찾아갈 겁니다. 그래야 잉여가치가 발생할 수 있고, 따라서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윌리엄 탭은 이런 게걸스러운 산업자본의 운동을 '부도덕한 코끼리'라고 비유했던 것입니다.  188
윌리엄 탭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이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계 상류층의 20%가 세계 GDP의 86%를 얻고 있고, 하위 20%는 고작 1%를 얻으며, 중간의 60%는 겨우 13%만을 얻는다. 전 세계 200대 부자들의 수입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수조 달러나 늘어 두 배가 되었다. 세계 3대 부자의 자산은 가난한 48개국의 모든 소득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아 졌다.' <부도덕한 코끼리>  191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품으로 그리고 화폐를 신으로 만드는 체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고단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 올지 모를 먼 훗날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우리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 더 힘든 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행복은 우리로부터 더 멀어지겠지요. 그러나 사실 자본주의 속에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단지 소비의 행복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단지 소비의 행복, 소비의 자유만이 존재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아니 그런 방법마저도 완전히 잊었다고 말해야 옳을 겁니다.  197
가난한 자를 보호하면 가난을 지속시킬 뿐이라는 궤변으로 그들은 자유주의 원칙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198
'새로운 봉건주의를 만들어내려는 자본의 뻔뻔함이 극도에 달한 이 시대에 세계적 금융기관, 초국적 기업 그리고 정부가 우리로부터 무엇을 약탈해가려고 하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명심해야만 한다. 자본의 권리보다 인권이 더 중요한 것이다.' <부도덕한 코끼리>  199
자본주의에 맞선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맞서는 것과 같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용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의 후손까지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0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7.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부처라는 말은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의 '붓다(Buddha)'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영어로 '부디즘(Buddhism)'이라 불린다.
'붓다'라느 말은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
"성불(成佛)하십시오!"라며 합장할때, 성불은 '부처(佛)가 된다(成)'는 뜻.  206-207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은 유명한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사성제'는 글자 그대로 '네 가지(四) 성스러운(聖) 진리(諦)'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은 '고통' , '집착' , '소멸' , '방법' 즉 '고집멸도(苦集滅道)'로 정리될 수 있는 네 가르침입니다.
네 가지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불가치하게 '고통'이 찾아오는데, 그 고통의 원인은 바로 '집착'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의 고통은 결과이고, 집착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죠. 마음의 집착만 제거하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 바로 '소멸'입니다.
집착을 어떻게 제가해야 할까요? 바로 '방법'이란 것이 집착을 제거하는 가정을 말해주는데, 싯다르타는 집착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여덟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팔정도(
八正道)라고 하는데,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동(正業), 올바른 생활(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집중(正念), 올바른 참선(正定)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209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된 대상의 관념 속에는, 같은 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었을 때의 관념보다 더 적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의 관념에 더하여, 다른 것에 의해 그 대상이 없어졌다는 표상까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진화> 베르그손  215
베르그손은 '집착'이란 현상이 인간에게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가지고 있고, 또 그 기억에 따라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15
'나의 기억이나 기대에 따르면 그 친구는 지금 카페에 있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이곳에 없네.'
'친구가 없네'라는 생각은 결국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 없네'라는 생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베르그손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마음속에 있다'는 사태와 '마음 바깥에 있다'는 사태 사이의 차이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친구가 없네'라는 생각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는 그가 있어야 하지만, 내 마음 바깥에서는 그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16
불교는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항상 불교는 마음이 왜 고통에 사로잡히는지 진지하게 숙고합니다.  217
집착을 제거하려면 우리는 초인적인 의지를 가져야만 합니다.  218
'원효법사는 '나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단지 나의 마음이고, 모든 대상이 단지 나의 의식이다라고 하셨던 것을 들었다. 그러기에 아름다움과 추함은 나에게 있지, 실제로 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겠구나.' <종경록> 연수(延壽 904~975)  219

큰 스님이 몽둥이를 들고 제자의 머리 위로 흔들며 말했다. "이 몽둥이가 잇다고 해도 너는 맞을 것이고, 이 몽둥이가 없다고 해도 너는 맞을 것이다. 만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너는 맞을 것이다. 이 몽둥이가 있느냐, 없느냐?"
'몽둥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있다는 것은 없는 것이고, 없다는 것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
이런 대답을 한다면 여섯 대나 맏을 것이다. 몽둥이에 대해 '있다'는 말을 3번, '없다'는 말을 이미 3번이나 말했기 때문이다.  230
위의 화두의 대답은 하나가 아니다.
'바람이 시원합니다' , '새가 울고 있습니다' , '하늘이 푸릅니다' , '개울 소리가 맑습니다'...
핵심은 우리가 몽둥이에 집착하느냐, 집착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겠죠.
몽둥이에 집착했기 때문에, 우리는 몽둥이가 아닌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231
원효 스님의 말처럼 집착이란 결국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속에 갇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집착은 여러분의 삶을 유아론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232

8.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어떤 구체적인 외적 강요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간섭과 강요의 흔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주체가 되려고 할 때, 외적인 간섭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체란 내면화된 공동체의 규칙, 즉 초자아를 거부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50
니체 만의 고유한 사유 방식, 즉 '계보학적인(genealogical)'사유.
계보학적인 사유는 어떤 주어진 것을 정당화하기보다 그것의 기원이나 발생 과정을 추적하는 사유 방식입니다.
'도덕의 계보학'이란 인간이 도덕적 존재라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이 어떤 발생 과정을 거쳐서 생기게 되었는지를 해명하는 작업입니다.  252
길에 떨어진 지갑을 주웠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우리의 내면에서는 두 가디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주웠다고 해도 지갑을 돌려주지는 않을 거야. 애초에 잃어버린 사람의 잘못이지 뭐"라고 속삭이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으로는 "만약 누군가가 너의 지갑을 땅에서 주워서 너에게 돌려 주지 않는다면, 너는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겠니?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이나 너나 모두 지갑을 돌려받기를 원하지 않을까? 그러니 너는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해"라고 말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바로 이 후자가 보편적 입법자의 목소리입니다.
칸트도 이런 양심의 명령을 실천이성의 자율적인 목소리라고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니체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런 양심의 목소리는 훈육의 결과로 인간에게 내면화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253
흥미로운 것은 칸트의 도덕법칙, 즉 양심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하나의 숭고한 '목적'으로 드러나자마자, 우리의 구체적인 삶은 그 목적에 종사해야만 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점입니다.  255
'도덕이 본래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는가'이다. 우리는 자신이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며,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희망하지만, 이런 희망은 오직 도덕에 종교가 첨가되는 경우에만 비로소 가능하다' <순수이성비판> 칸트  
카늩는 자신의 윤리학이 결국 행복의 윤리학이 아니라고 자백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윤리학을 흔히 의무의 윤리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56
그에게 있어서는 우리의 구체적 삶이 '수단'아라면, 내면에 있는 보편적 입법자가 곧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보편적 입법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합니다. 그의 욕구야 말로 나의 숭고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편적 입법자의 욕구를 총족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나의 삶 전체를 '수단'으로 삼아야만 하는 것 아닐까요?  257
칸트의 말대로 자신의 행위를 자유롭게 숙고해서 결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유로운 주체는 반드시 행복해지려는 주체 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259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생활 자체를 수단으로 만드는 고등학생들이 있습니다. 또 취업이란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대학 생활 자체를 수단으로 만드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또 월급을 받기 위해서 한 달의 삶을 수단으로 만들고 마는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얻기 위해 물 위로 솟구치는 놀이 공원의 돌고래처럼 살아간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목적이 달성되는 아주 짧은 순간에는 일말의 행복과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지속적인 즐거움과 행복의 상태에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방법은 바로 수단과 목적의 일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60 
'놀이는 임무가 전혀 아니다.' <호모 루덴스> 호이징하(Huizing 1872~1945)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행동을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행동을 '놀이'라고 부릅니다.  261
니체가 제안하는 참된 주체, 즉 즐거운 주체가 되는 방법을 엿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칙에 대한 증오와 운명애, 공격성과 동의는 차라투스트라의 두 얼굴이다. 성서에 호의적이고 다시 성서를 적대시하는 차라투스트라, 그는 여전히 특정한 방식으로 칸트와 싸우고 있다. 도덕법칙 안에 있는 반복의 시험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외귀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이것은 칸트류의 형식주의이지만, 칸트를 그의 고유한 영토에서 존복해버리는 형식주의이다. 여기에 (칸트의 명령법이 함축하는 시험보다) 더 멀리에까지 이르는 시험이 있다. 이는 미리 가정된 더떤 도덕법칙에 반복을 결부시키는 대신, 도덕을 넘어서는 어떤 법칙에 반복을 결부시키기 때문이다.' <차이와 반복> 니체  263
니체는 '법칙에 대한 증오'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운명애'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64
영원회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원회귀가 옳다면 여러분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우울하고 불행한 일들,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해야만 하는 행동을 하겠습니까?
1000년 뒤에도, 2000년 뒤에도 똑같이 반복될 것인데도요? 아마 여러분은 가장 자유로운 행동, 가장 즐거운 행동, 가장 행복한 행동을 하려고 애쓸 겁니다. 그런 행동은 앞으로 영원히, 다른 삶에서도 반복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워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265

9. 타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고독하기 때문에 사랑을 찾아 나선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사랑이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고독에 빠지게 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분명 어떤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로 하여금 내가 하듯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사랑의 고독을 안겨다줍니다.  268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잔 하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장자> [지략(至樂)]편  271
우리가 자신과 타자와의 차이를 긍정하지 못한다면, 혹은 사랑이 언제나 '하나'가 아니라 '둘'의 진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의 사랑 역시 이런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73
타자의 외모를 보고서 우리는 그가 어떤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와 만나서 부딪히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 사람이 나와 다르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타자성을 다 알수 있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 이 점에서 그 사람은 나와 같지 않구나.'라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상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274
내가 타자의 삶의 규칙을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타자가 나의 삶의 규칙을 받아들인 경우에만, 우리에게는 낯선 타자란 것이 소멸하게 됩니다.  275
협소한 유아론은 우리를 고독한 주체로 만들어 타자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하도록 만들지만, 타자에게 극심한 폭력을 가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확장된 유아론은 자신이 믿고 있는 삶의 규칙을 타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결국 폭력과 억압을 낳을 수 있습니다.  278
자신의 문명이 지닌 의미 체계를 일방적으로 다른 문명에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가진 의미 체계를 다른 사람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식의 유아론은 표면적으로는 유아론인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바로 이런 착각 때문에 확장된 유아론이 타자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79

타자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친숙하고 편안한 세게에 낯섦과 불편함을 가지고 오는 무엇입니다. 타자가 규칙적이고 편안한 나의 삶을 불규칙적이고 불편한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 타자가 나와는 다른 삼의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의 삶을 가장 낯설게 만드는 사건은 바로 타자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삶의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니까요.  279

'선물이 존재하려면, 어떤 상호 관계, 반환, 교환, 대응선물, 부채의식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만약 타인이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을 내게 다시 돌려주거나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또 반드시 돌려주어야만 한다면, 나와 타인사이에는 어떤 선물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이런 반환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상당히 긴 유예 조건들을 계산하여 이루어지든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특히 타인이 내게 동일한 것을 직접 되돌려주는 경우에 이점은 훨씬 더 분명해진다.' <주어진시간1> 데리다  286
'반드시 돌려 주어야만 한다면' 그것 역시 선물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군요. 과연 여러분은 데리다가 말한 의미의 선물을 건넨 적이 있습니까?  287
역으로 말해 우리가 교환관계에 빠져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타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89
대가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사실 타자와의 사랑르 회복하겟다는 의지와 동일한 것입니다.
결혼한 신혼부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침에 아내가 차려주는 정성스런 식사를 남편은 하나의 선물로 받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위해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식사를 차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남편이 갖는 행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제 월급날 남편이 가져다준 월급봉투를 아내는 선물로 받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해준 식사의 대가로 남편이 월급을 건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궐급봉투를 받고서 행복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이 부부느 여전히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부부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아내의 식단이 좀 더 나아집니다. 월급을 받고 아내는 남편의 수고를 떠올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돈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기에 바쁩니다. 그녀는 남편이 남편으로서 당연히 돈을 벌어와야 한닥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쩌다 아내가 저녁에 늦게 들어와 저녁식사라도 차려주지 않으면, 남편은 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 집에서 밥도 하지 않는다고 구박합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식사를 차리는 것이 아내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선물의 관계가 뇌물의 관계로 변질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92-293
우리는 선물의 논리 이면에 타자와의 사랑이란 심오한 진리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야만,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선물을 건넬 수 있습니다.  294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망각해야만 하는 것이 기도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물으 주는 지혜와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295

에필로그
연꽃은 깨끗하고 맑은 물에서는 향내를 풍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썩어가는 시궁창 같은 물에서 피어날 때에만 그윽한 향기를 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낯설게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 넘어져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넘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01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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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도서이다.
간결하고 입문서로서 출간된것같다.
그렇지만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한 핵심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에게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것은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철학은 대답이기 전에 물음이다.(9)' 바로 물음즉 질문이다. 스스로 질문들을 해 나갈 때 의문점과 미심쩍은 것들이 해소되면서 하나의 깊은 생각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은 청소년에게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생각하고 고민해 볼 점을 시사하고 있다.
책은 서양 철학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철학자 5명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핵심적인 사유거리를 지적해주고 있다.
매우 짧은 내용의 책이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을 말한다.








1. 플라톤 할아버지의 이데아
플라톤 
진정한 존재는 이 세상 너머에 있다는 이데아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이데아는 서양 철학에
서 생각의 기본이 되었습니다.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2,400년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어험, 안녕한가. 내가 플라톤이라네.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여기에 도형을 몇 개 그려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게.
자, 어느 것이 삼각형인가?
물론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네.
그렇지만 사실 이것은 삼각현이 아니라네.
삼각현은 내각의 합이 180도여야 하거든.
그런데 이것은 그렇지 않지. 살짝 일그러져 있으니까 말이네.
그래도 우리는 삼각형을 원이나 사각형과 구별할 수 있다네. 

전부 지워 버렸네.
좀 전까지 있었던 삼각형, 원, 사각형은 인간의 역사에서 아니, 
우주의 역사에서 사라졌다네.
두 번 다시 똑같은 것은 그릴 수 없지.
다시 한 번 삼각형을 그리겠네.
아까의 삼각형과는 상당히 다르지.
게다가 이것도 정확히는 삼각형이 아니라네.
그래도 역시 이것은 원이 아니라 삼각형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왜 아까 전의 그림도 이 그림도 삼각형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알겠나?

그 이유는 우리가 삼각형이란 무엇인지, 원이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정한 삼각형의 모습, 그것이 이데아라네.
아까 그렸던 삼각형이나 원이 이제는 어디에도 없듯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는 없어진다네. 
그래도 이데아는 없어지지 않지.
그래서 이데아야말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라네.  










































2. 데카르트 아저씨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아저씨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무엇이든 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벗어나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원리를 찾았습니다.

안녕? 침대에서 인사해서 미안. 나는 데카르트란다.
잠꾸러기로 보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
그래!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의심하고 의심스러운 것들을 자꾸자꾸 없애 나가면 돼.
그럼 의심스럽지 않은 것, 확실한 것만 남을 테니까.

먼저 인간의 감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오해나 착각을 잘하지. 
물이 든 컵에 넣은 빨대는 꺽어져 보이지만 사실은 꺾어진 것이 아니야. 먼 곳에 있는 것은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지 않아.
인간의 감각이란 참으로 신기하네!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어떨까?
이 세상이 만약 꿈이라고 친다면 역시 신기하지.
왜냐하면 꿈이란 것은 깨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
나는 지금 침대 위에서 이것저것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쟁터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몰라.

그럼 수학은 어떨까?
나는 수학이야말로 학문의 기본이라고 생각해ㅐ.
왜냐하면 정말 확실한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
1 더하기 1은 2.  정확히 맞잖아.
그런데 어쩌면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속여서 
1 더하기 1이 사실은 3인데 2라고 생각하게끔 한 것은 아닐까?
아니, 물론 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그래도 의심해 볼 수는 없겠지.
아,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하군. 완벽하게 확실한 것은 없을까?
그런데....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한 이유는 내가 의심하기 때문이지.
여기서 내가 의심한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어. 
그렇다면 의심하는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거야.
나는 의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3. 칸트 선생님의 자유
칸트 선생님은 200년쯤 전에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비판 철학을 내놓았습니다. 
나아가 인간이 도덕적 행동을 할 때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했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제가 칸트입니다.
아! 5시입니다. 일을 마쳐야겠습니다. 
저의 좌우명은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랍니다.
제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은 제가 딱딱 시간 맞춰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몇 시인지 알았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버스 안에 사람이 참 많습니다. 
경우 앉았습니다. 휴우.
아! 할머니 한 분이 오십니다. 자리를 양보해야겠습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승객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제발 발을 밟지 말아 주.... 아야야야!
휴, 겨우 도착했습니다. 완전히 녹초가 되었습니다. 만약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앉아서 올 수 있었을 텐데...
그래요,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양보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양보한 까닭은 '자리를 양보하시오.'라는 소리가 드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 하다면 ... 하시오.'처럼 조건이 붙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자리를 양보하시오.'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리를 양보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꾸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명령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욕망과 감정에 지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참아야만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입니다.
















4. 마르크스 선배의 노동의 소외
마르크스 선배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이제까지 다른 철학자들은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해석만 했는데 마르크스 선배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노동은 사람의 본질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과정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도 자신이 생산한 것을 갖지 못합니다. 즉,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선배는 노동자가 노동의 소외를 겪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녕. 내가 바로 마르크스야. 
오늘 나는 일하러 왔어.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네. 슬슬 일을 시작해야 겠다. 상품을 진열하자. 부지런히 부지런히.
"어서 오십시오." 돈도 받아야 해.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
일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
시간당 4,000원이고 여덟 시간 일했으니 32,000원이야. 
자, 이제야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응? 뭔가 이상하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던가?
그래도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잖아. 
알았다!
내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나의 본질을 조금 잘라서 파는 거야.
그래서 일을 하면 싫증이 나고, 일을 마치면 나 자신을 되찾는 이런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지.
이런 사회는 반드시 바꿔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더 공부해야겠다. 자, 힘내자!






5. 사르트르 형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 형은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은 현대에 사르트르 형은 지금까지의 철학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질이 똑같다고 보는 시각을 버렸습니다.
사르트르 형은 인간의 본질보다도 실존, 즉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생각했습니다.

이야, 반가워요. 제가 사르트르예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드리지요.
여기 연필 한 자루 있어요. 연필은 무엇을 쓰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지요. 이것이 연필의 본질이에요.
쓰기 위한 도구로 길이와 굵기와 무게와 재질이 정해졌어요.
그리고 그와 같은 종류의 연필이 많이 만들어져서 그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만약 이 연필이 초콜릿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떨까요?
먹으면 맛있기야 하겠지만 쓰기 위한 도구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음, 역시 맛있네요. 
연필의 크기가 이렇게나 거대하다면 쓰기 위한 도구로는 역시 도움이 되지 않지요. 
만약 신이 있어서 이러저러한 존재라고 본질을 미리 정해 놓았다면 인간도 연필과 다를 바 없겠지요.
하지만 신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태어난 의미는 없는 것일까요?
그래요. 우리는 아무 의미도 없이 태어나 버렸어요. 
태어난 의미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면 돼요.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먼저 나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있지요.
그 다음에 우리는 날마다 여러 가지를 결정하고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신존 자체가 의미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제 이해가 되나요? 그렇다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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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교수의 강의를 몇 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의가 일단은 재미있게 진행된다. 강의에서 청중을 재밌게 하는것이 일단은 성공의 시작이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강의는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강의 내용에서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열의가 있었다. 그래서 듣는이로 하여금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기라도 하듯 내용이 재밌게 풀어 쓰여 있다.
출판사의 주니러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것을 보면 청소년들에게 풀어쓴 논어를 보며 한 걸음 다가올 수 있게 하는 취지지만, 성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의 풀어씀 즉,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풀어쓰려 하지만 주관적인 해석을 담고 있기에 자칫 주견이 없다면 따라 가야만 할지라도 주견을 세우기 위한 학습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논어의 즐거움을 준다는 생각을 한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저자는 비뚤어진 유교 사상에 반대하며 논어야 말로 깨어있는 내용이고 융통성 있는 글이라고 말한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조선의 멸망은 당시 유교의 비뚤어진 해석으로 오만하고 편협한 사회였기에 그러하였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잘 읽지 않는 책' 이라 표현하였다. 논하고 말한다는 뜻을 가진 논어에 대한 고리타분함을 가진 사람에게도 좋을 듯 싶다. 재밌게 읽히고 시대에 비출 수 있게 하고 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논어(論語)>란 '논하고 말하다.'라는 뜻이다. 
'진리를 논하시고 말씀하신 책, 즉 <논어>가 된 것이다.
노자가 잘 지적했듯, 원래 '진리는 이름을 갖는다면 참된 진리가 아닌 것이요,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건 영원한 이름이 아닌 법'이다.(<도덕경>)  17

공자는 현대적으로 말하면 '운전기사'로 부터 '공장 기술자', 그리고 '목장 관리인' 같은 육체 노동을 두루 경험했던 것 같다. 그러면 서 철저한 자기 점검의 미덕을 갖추었던 그였기에 점차 주변의 인정을 받아 더 큰 임무를 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23

1. 학이(學而)편 - 배워야 사람이다.
배움과 익힘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보통 여섯 가지 기술, 곧 육예(六藝). 즉 예(예절)와 악(노래와 춤), 홨기, 마차몰기, 글쓰기, 셈하기등이 그것이다. 예와 악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요구되는것이고, 활쏘기와 마차몰기는 국토 방위에 필요한 기술이며, 글쓰기와 셈하기는 관리나 지식인으로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이는 것이니, 모두 고대에 지식인이자 무예를 겸비한 성인 남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기예들이다. 
한편 텍스트 중심으로 육예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첫째 중국 고대의 시집인 <시경(詩經)>, 둘째 중국 고대의 정치와 역사를 서술한 <서경(書經)>, 셋째 국가와 계급 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규정한 <예기(禮記)>, 넷째 음악에 대한 이론서인 <악기(樂記)>, 다섯째 점치는 책인 <역경(易經)>, 그리고 공자의 조국인 노나라 역사책인 <춘추(春秋)>를 꼽는 경우도 있다.  32

공자 말씀하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6:18)
... 우리는 배움의 성취가 단지 '알고/모르고'사이의 이분법이 아니라 좀더 깊은 차우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34

벗이란 배움과 익힘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35
단 한 번 만나도 속을 드러내어 함께 흐느낄 수 있는 살마, 그 사람이 벗이다.  36

제대로 사는 삶이란, 배우고 익히는 길을 가는 도중에 속에서 터져 나오는 희열에 몸을 떨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나의 길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참된 벗을 만나 흔쾌한 즐거움을 나누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배우고 익히며 '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인생에서 얻는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그대가 확고하게 '나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을 적에야 참된 친구, 진정한 벗이 생겨남을 잊지 말하는 것이 공자가 내리는 가름침이다.  37

세속적 욕망의 성취에 인생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남의 비평(인정, 비난, 칭찬)조차 말갛게 벗어나 내 속에 깃들인 진리를 확인하고 또 즐기며 사는 담담하고 고요한 상태, 이것이 인생의 목표 즉 '배우고 익히는 삶'의 궁극처라는 것이다.  38

나의 길은 남의 칭찬이나 비평에도 상관하지 않고, 또 배움의 기쁨으로부터도 벗어난 탈아(脫我)의 세계로 난 길을 걷는 것이다.  39

주변의 시비와 관계없이, 또 물질적 곤궁과도 관계없이 자신 앞에 놓인 그 길을 확고하고 확신에 찬 걸음으로 내딛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 길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길이 아니라, 내가 걷지 않을 수 없는 길이 된다. 그럴진대 남이 알아주든 않든 성낼 까닭이 없는 것이니, 그제야 군자(君子)라는 이름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41

2. 위정(爲政)편 -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육예(六藝)라고 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법학, 의학, 정치학, 경영학, 공학 등등이 두루 다 배움의 대상에 속할 것이다.  44

공자 말씀하시다. "힘이 부족하다는 건, 힘껏 달리다가 지쳐 쓰러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지. 한데 지금 자넨 옳게 한 번 달려 보지도 않은 채, 못한다고 지레 선을 긋는구먼."(6:10)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47

공자 말씀하시다. "지위가 없다고 근심할 것이 아니요, 전문가가 되지 못함을 근심할 일이다. 요컨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근심할 까닭이 없고, 오로지 내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을 일이다."(4:14)
내가 세운 '나의 길'에 매진하여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그에 합당한 자리가 자연히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전문가가 되지 위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무엇인지를 찾아 가는 주체적인 인간, 내 인생을 내가 주도하는 인간이 되기를 권하는 것이다.  47

'귀가 순해졌다.' - 보통 우리는 '남의 말을 듣는다'고 하지만 실은 '내 식'대로 이해하는 데 불과하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내 속엔 내 과거와 미래, 욕심과 계획들이 엉켜 있어서 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고, 왜곡되거나 퉁겨 나가 버린다. 남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식대로 '오해'한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이란 '오해 하는 동물'일지 모를 정도이다. 게다가 오해를 바탕으로 '말하기'에 나서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분란과 다툼이 발생한다.  53

이렇게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말하는 나' 또는 '보는 것을 진리로 삼는' 에고(ego)가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와 자연에 대해 평가하던 내가 사라지고, 그 평가하는 '나'조차 남을 대하듯 지긋이 살펴보는 그런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54

3. 팔일(八佾)편 - 문명은 숨을 쉰다.
공자는 예의 참된 의미는 예식 순서에 따라 절하고 분향하고 하는 형식이 아니라, 도리어 그 형식 속에 깃든 '공경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64

공자 말씀하시다. "사람으로서 사람답지 못하다면 예는 어디다 쓸것이며, 악(樂)은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3:3)
어떤 젊은이가 '예의 근본'을 여쭙자, 공자는 '위대한 질문'이라고 무릎을 치면서 참다운 예는 형식이 아니라, 그 형식 속에 깃든 '예의 정신'에 있노라고 천명한다.
임방이라는 젊은이가 예의 근본을 여쭈었다. 
공자, 무릎을 치며 외쳤다. "기막히구나. 이 질문! 예는 사치하기 쉬운 경향이 있는데 실은 검소한 것이 예의 근본이요. 장례식은 남의 눈을 의식해 호화롭게 하기 쉬운데 실은 슬픔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 장례의 본다 정신에 합당하니라."(3:4)  66

인간은 악(樂)을 통해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유 의지를 발휘한다. 인간은 피치 못해 더불어 사는 존재이긴 하지만, 개미처럼 사는 동물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고 자기 세계를 만들고 표현함으로써 인간다움을 획득한다. 아니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가 어쩌면 자기 세계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악(樂), 예술의 건설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공자느 ㄴ예술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긍정하고 또 중시했던 사람이다. 
공자 말씀하시다. "시에서 흥취를 얻어, 예의 뜻을 알고, 악에서 성취하리라."(8:8)  67

"사람에게 먼 계책이 없으면 언제나 가까운 데서 근심걱정이 생긴다."(15:11)
유자가 말했다. "예(禮)의 용도는 화목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옛 임금님들이 하신 정치는 다 화목을 아름답게 여겼으니, 작고 큰 정책들이 화목을 성취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너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화목함이 좋다고 하여 여기에 빠지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니 엄정한 예로써 뼈대를 세워 주지 않으면 화목함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법이다."(1:12)  70

공자는 두 방면에서 덮치는 야만의 사태를 두려워하였다. 사회를 버리고 자기 몸의 안전만 취하는 이기주의가 그 하나요, 또 하나는 국가(또는 집단)가 개인을 위협하는 폭력을 발휘(전체주의)였다.  
이 두 방향 사이에서공자는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하였다. 자칫 이 전통문화가 사라지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으리라고 몹시 절박해 하였다. 이에 그는 예와 악을 통해 '전체에 기울지도 않으면서, 개인에 머물지도 않는' 중용의 길을 보존하려고 내내 애를 썼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와 악의 내부조차도 염려하였다. 예도 고이면 썩고(형식주의), 악도 넘치면 줄줄 흘러내린다(매너리즘). 예와 악은 서로 긴장하면서 보존되어야 했던 것인데, 인간의 문명을 안팎으로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공자는 깊이깊이 깨달았던 것이다. 공자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흔들리는 인간다운 삶을 지켜 내려고 예와 악의 변주를 내내 주장하고 또 연주한 것이었다. 그 척박하고 어려운 시대에!  71

4. 이인(里人)편 - 사랑의 길.
공자 말씀하시다. "... 군자란.. 황당하고 당혹한 때에도 인을 실천하느니."(4:5)  79
물질적 욕망과 명예에 대한 집착, 곧 부귀나 빈천에서 벗어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그가 군자다.

공자 말씀하시다. "군자란 어느 곳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없고, 꼭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없어서 다만 적잘함에 따를 뿐."(4:10)

공자 말씀하시다. "군자란 남에게 베풀 것(德)을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하며, 군자는 제 잘못을 생각하고 소인은 남을 탓하니라."(4:11)

공자 말씀하시다. " 옛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자칫 몸이 그 말을 따르지 못할까 염려해서였다."(4:22)

공자 말씀하시다. " 아껴서 실수할 일이 적은 법."(4:23)

"군자란 말은 더듬거려도 실천은 민첩하게 해 내려는 존재."(4:24)
이렇게 보면 은을 체득한 군자의 몸짓은 우선 과묵하게 실천하는 사람이며, 둘째 자기 책임을 앞세우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며, 셋째 물욕과 명예욕 같은 세속적 가치를 벗어나 남을 배려하고 사양하는 살마이니 '세속 속의 성인'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겠다.  80-81

공자 말씀하시다. "인이 어디 먼 고셍 있으랴. 내가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곧 인이 이르는 것을."(7:29)
인은 멀리 있지 않다. 도리어 내 주변, 내 곁에 있을 따름이다. "자기 주변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 바로 이것이 인을 찾는 방법"(6:28)이다.  82

번지가 인을 여쭈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사람을 아낌이지!"(12:22)
상대가 아까워서 손을 갖다 대기조차 어려운 마음, 이것이 '사람을 아낌(愛人)'이요. 곧 인이다. 상대방을 내 몸보다 귀하게 여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부족한 것은 메줘 주고 넘치는 것은 걷어 내어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인(仁)인 것이다.
그러니 집안에서 효를 통해 익힌 상대(부모)에 대한 사랑을 사회로, 국가로, 천하로 점차 베풀어 나가는 것이 인의 길이다. 그 상대방은 이제 친구, 동료, 연인, 회사, 국가가 될 참이다. 아니 시인 윤동주가 <서시(序詩)>에서 읊었듯,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함. 이 것이 인이다. 애틋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마음이. 또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인의 실천이란.

5. 공야장(公冶長)편 - '자공'이라는 제자
스스로를 철저하게 객관적을 성찰할 수 있는 눈.
자기 성찰의 눈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그 끝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르게 되는 법이다. 소인배는 이런 성찰의 자세가 없기 때문에 남의 잘된 것을 보면 꼭 나븐 점을 찾아 비난하고, 자기가 한 일은 훌륭하다고 잘못 자부하는 것이다.  89-90

"가난한데도 즐길 줄 하는 삶"
가난을 즐겨하는 미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가난을 가난으로 여길 겨를이 없음, 또는 물질적 조건이 나의 일상 생활을 침해하지 못하는 그런 '경지'를 이른다. 이미 가난은 내 마음속에 찌꺼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난의 콤플렉스를 벗어던진 말간 평화의 자리다. 그러므로 공자가 제시한 새로운 삶, "가난한데도 즐기고, 넉넉한데도 예를 좋아하는 삶"은 '가난/부유함'과 같은 물질적 조건, 또는 욕망에서 벗어나 ㄴ곳이다. 이제야 하치 한여름의 태풍이 지나간 해맑은 하늘처럼, 티 없고 왜곡 없이 사물을 바로 볼 수있는 세계가 열린다.  92

물질에 대한 욕망 또는 결핍의 그늘을 벗어 버린 자리에 참된 인간의 삶(일상)이 존재하며, 그 일상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궁극적 가치를 뜻한다는 깨우침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문제의 핵심은 물질적 욕망이지, 물질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94

6. 옹야(擁也)편 - 멋진 녀석들
공자가 맹지반을 칭찬한 것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음'. 즉 겸손함 때문이다. 용기는 육신의 힘 자랑이 아니라 그 힘으로 얻은 공을 뻐기지 아니할 때에야 얻어지는 것이다. 쉽게 오해하듯 용기는 센 주먹이나 날랜 발길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용기의 집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그러므로 용기는 정의, 덕성 같은 말과 깊이 관련된다.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용기 없는 짓이다."(2:24)라는 지적은 이 대목에서 유용하다.  103

용기란 힘을 발휘하는 것, 즉 '몸의 윤리'가 아니다. 용기는 벌써 겸손과 겸양이라는 '마음의 윤리'인 것이다. 이렇게 용기는 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공자가 전쟁터에서 얻는 요익 가운데, 공로를 뻐기지 않고 사양하며, 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특별히 중시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발전하면 유교에서 숭상하는 덕으로 승화된다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공자가 맹지반을 크게 칭찬한 까닭이 이 지점에 있으며, 또 수천 년을 흐른 오늘날 우리들 눈에조차 그가 멋있게 보이는 것도 그의 '용기-덕-사양하는 마음'이 가진 보편적 호감 때문일 것이다.  105-106

공자가 제자 칠조개에게 벼슬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그는 "저는 아직 그 자리를 맡을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5:5)  106

차가운 자기 성찰과 더불어 가난과 부유함이라는 물질적 조건 너머에 인간다움이 있다는 가르침의 핵심을 파악한 제자에게서 큰 기쁨을 느낀 것이다.   107

<논어>에는 "민자건이 스승을 모실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였다"(11:12)는 평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평소에 무척 과묵한 살마이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집에서는 효도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니, 공자가 그리워하던 군자의 상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공자가 "군자란 말은 어눌하면서 행동은 민첩한 사람"(4:24)이라 고 정의한 대목이나 "사람됨이 강직하고 굳세고 소박하고 말은 어눌할 때 인(仁)한 경우가 많더구나."(13:27)라는 경험론을 편 것도 민자건의 경우에 들어 맞는다.  111

7. 술이(述而)편 - 공자의 학교
"배우고 싶은 자는 누구든 와라!" 이것이 공자 학교가 갖춘 가장 큰 특징이었다.  116

배우려는 이에게는 다 열려 있는 문, 그러나 옳게 배우려 들지 않는 이는 남겨 두지 않는 엄격함. 이것이 공자 학교의 모습이었다.  118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다'는 원칙.  119
요컨대 질문할 줄 아는 자가 제자이며, 그 질문에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자가 스승이다.  120

8. 태백(泰伯)편 - 성왕의 계보

9. 자한(子罕)편 - 공자의 사생활
위대함이란 저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어떤 신비가 아닌 일상생활 주변에서 빚어지는 중용적 삶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알아채야 한다.  142

중용이란 한 사안이 가진 둘 이상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그 당시에 합당한 이치를 찾는 것이지. 결코 '이것도 흥, 저것도 흥'하는 식의 포용주의가 아니다.  145

매일매일 삶을 산책하듯, 관찰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삶. 이것이 공자의 일상생활이었던 것이다.  150

내로라고 뻐기지도 않고, 남을 시기하지도 않으면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 이것이 공자의 진면목일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눈 밝은 제자는 공자를 모순된 단어로 묘사하였으니, 나는 이 역설적인 표현 속에 공자의 참된 모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께서는 따뜻하면서도 엄격하였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무섭지는 않았고, 공손하시면서도 태연자약하셨다.(7:37)  151

10. 향당(鄕黨)편 - 공자의 웰빙
함부로 먹지 않고 함부로 입지 않음,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고 선택하는 섬세한 대응, 이것이 유교에서 꿈꾸는 인간다움의 틀, 곧 문명성이다.  160

웰빙이란 비싼 음식과 신선한 공기가 아니라 섬세한 미적 감각을 일상생활 속에서 관철할 때 빚어지는 아름다움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주변의 사소한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에서 웰빙이 이뤄지는 것이다.  165

11. 선진(先進)편 - 사제 : 안연과 스승

12. 안연(顔淵)편 - 진리 또는 '매트릭스'
안연이 여쭈었다. "인(仁)이란 무엇입니까?"
공자 말씀하시다. "'내'가 실체라는 생각을 넘어 관계라는 각성에 이르면 '인'이 되지. 단 하루라도 '내'가 실체가 아니라 관계라는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온 세상이 본래부터 사랑으로 충만한 것임을 환히알게 되리라. 무론 이런 진리는 스스로 깨닫는 거지 결코 남이 해 줄 수는 없는 거야."
안연이 그 길을 물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눈에 보이는 게 독립된 개체라는 생각을 버려. 둘째, 세상이 관계가 아닌 개체로 이뤄졌다는 말은 믿지 마. 셋째, '나를 알아 달라'는 소릴 하지 마. 넷째, 이기적인 행동은 하지 마(나를 남에게 접속해!)."
안연이 흐느끼며 말했다. "제가 비록 명민한 녀석은 아닙니다만 죽는 날까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잡겟나이다."(12:1)  179-181

인간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잠잘 때나 의식이 없을 때도 스스로 움직이는 심장 박동을 갖고 있다.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제 스스로 그렇게(自然)' 변화하는 자연의 리듬과 동질적이다. 인간과 자연은 본래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또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사람은 '본래적으로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관계적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관계 맺는 존재다. 복례란 이런 인간의 본래적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질리고 환원되기의 뜻이다.  183
요컨대 극기복례란 나를 개체로 인식하려는 눈(시각)과 귀(청각)의 편견에서 해방되어 내가 원래 남(바깥)과 '관계'를 맺을 때에야 참된 나를 이룰 수 있다는 진실을 제대로 알고 또 올바르게 회복해가는 실천을 의미한다.  184

눈에 보이는, 거울에 비치는 개체도 이뤄진 세계는 진실이 아니라 도리어 환상(매트릭스)이다.  185

요컨대 개체로서의 내가 환상(매트릭스)임을 깨닫는 순간 세계는 하나의 꽃으로 피어남을 알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이것이 진리요 인이다.  187

진리로 가는 네 가지 길을 정리하자면 '제반 행동, 즉 듣고,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서 두루 에고를 벗어라'는 것이다. 관게 맺기, 곧 예(禮) 속에 진리가 깃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관계를 순조롭게 만드는, 남과의 접속을 원활하게 하는 접대와 응대의 기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소학(小學)>에서 교육을 바로 관계 맺지 훈련, 이른바 "응대하고. 대접하며, 빗질하고, 청소하느 ㄴ방법", 곧 응대소쇄(應對掃灑)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리란 실은 사람 사이의 관꼐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접속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189

공자 말씀하시다. "... 인이란 내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 주고, 내가 갖고 싶으면 남도 갖게 해 주는 실천이지. 우리 일상의 주변에서 사랑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인을 실천하는 법이지."(6:28)
인을 실천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이 될 필요가 없고 대통령이 될 필요가 없다. 살아가는 "일상의 주변에서" 그저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남들도 갖고 싶겠거니"하면서 '미루어 헤아리는 마음가짐', 바로 여기서 피러나는 것이 인이라고 가르친다.  191

13. 자로(子路)편 - 정치란 무엇인가
공자는 인(仁)을 설명하면서 '정치란 곧 소통'임을 강조한 바 있다.  193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곧 나와 남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못할 경우 원망이 생긴다. 여기 원망이란 요즘 말로 하자면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인해 쌓인 화병, 그것이 곪아 터져 나온 정쟁이 될 것이다.  194

즉 공자에겐 '말이 서로 통하는 상태'가 정치의 원형이다. 공자가 꿈꾼 좋은 정치는 '말이 통하는 문명 사회'라는 점을, 말의 소통은 한마디로 '신뢰'로 개념화된다.  
공자가 꿈꾼 문명 세계란 마의 소통, 곧 약속과 실천이 살아 있는 곳임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195

공자는 관계의 직분, 즉 명분(名分)을 어김은 곧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까지 경고하는 것이다.(3:13, 9:11)
따라서 야만 상태에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가 언어와 약소긍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정치학은 정명론(正名論)으로 귀결되는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명분에 합당한 '정당성'에 따라 정치적 힘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196

공자의 위대한 점은 폭력을 정치의 전모로 이해하는 당시 정치가들에게, '좋은 정치란 폭력이 아니라 언어로 형성되는 신뢰의 힘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데 있다. 이 점은 동양의 정치사상 발전사에서 분수령에 해당하는 것이다. 공자는 그 이전까지 샤먼의 힘(신화)과 폭력의 힘(무력)에 의해 주도되었던 정치 세계를, 말과 약속이 실천되는 인간 세계로 전환시킨 최초의 사상가였다.  197

유능한 경영인은 직원들의 나쁜 점을 들추면서 이것 고쳐라 저것 고쳐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의 큰 목표를 제시하고 그쪽으로 분위기를 잡아나가면 장점들은 모이고 단점은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옳게 알아서 제자리에 맞게 쓰는 것은 인정(仁政)의 승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208

14. 헌문(憲問)편 - 선비가 걸어온 길
요컨대 수기치인이란 선비가 공직에 취임하여 남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훈련이 심화되어 자립하게 됨에 따라, 거기서 번져 나오는 에너지(aura)에 주변이 끌려드는 것이다.  215

공자는 선비를 두 유형으로 나눠보고 있다. 
하나는 달사(達士)요, 또 하나는 문사(聞士)다.
달사의 요건으로서 그는, "정직한 인격성과 정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들을 것, 또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이에 반해 사이비 선비, 즉 문사란 겉으로는 도덕적인 선비 같지만 실제로는 업무 처리에나 능한 '기술적 지식인'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218

15. 위령공(衛靈公)편 - 평천하의 길 : 공자대 자로
공자는 힘이 아니라 덕으로 정치를 행하는 것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유일한, 그리고 올바른 길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225

군자란 "가난한데도 (자기 길을) 즐길 줄 아는"(1:15) 존재여야 했다. 그러니 군자를 '짐짓 곤공할 줄 아는 존재'로 본 것은 내력 있는 방응인 것이다.  228

공자가 가르치고자 한 미덕은 무턱대고 힘을 발휘하는 거이 아니라 '무엇이 정의인가'를 판단하고, 또 '올바른 시대정신'을 찾는, 즉 '정의를 찾는 노력'이었다.  231

공자는 지금 당장은 비현실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문명을 옳게 되살리려면, 군자란 '문화 시대의 지도자'로 새롭게 개념 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그 새 시대를 준비하는 군자의 키워드가 '수기이경(修己以敬)'이라는 언어였다. 이를 통해 자기 책임성, 성찰성 그리고 내향성을 갖춘 존재가 군자이며, 또 그가 발휘하는 힘이 폭력이 아닌 '매력'으로 전환될 때에야 인간다운 사회, 문명적 질서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235

둘러 가는 것 같지만 '덕성을 통해 주변이 끌려드는' 매력의 힘, 이것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이끌 동력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235

16. 계씨(季氏)편 - 공자의 정치경제학 : 분배냐 성장이냐
계씨는 주나라 재상보다 더 부유하였다. 그런더ㅔ도 염유가 그를 위해 세금을 수탈하여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저 놈은 우리 학생이 아니다. 얘들아! 북을 울려서 성토하여도 좋으니라."(11:16)
아무리 탁월한 기예와 지식을 갖고 있어도,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기술 만능의 사고 방식은 재난을 부르게 된다는 공자의 도덕주의적, 또는 성찰적 가치관을 여실히 볼 수 있는 대목. 
이거을 오늘날로 끌로와 해석하자면, (정치) 기술의 사회적 의미, 수단이나 방법의 도덕성에 주의해야 한다는 공자의 경고로 볼 수 있다. 공자 가르침의 핵심은 용맹이나 지혜에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재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도덕적 성찰에 있음을 이 대목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  246-247

도덕적 가치 판단...

공자의 정치 경제학은 빵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정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자에게 정치란 부의 축적을 꾀하는 경제에 종속된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사회 정의의 수립에 핵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균등한 분배,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 그리고 안정된 생활, 이 세 가지가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라는 것이다.(즉 "대개 고르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모자라지 않고, 평안하면 기울지 않기 때문이다.")  250

17. 양화(陽貨)편 - 공자가 미워한 것들
양화 편은 특별히 인간 공자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253

이 편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은 쿠데타 세력의 초청에 마음 흔들려 하는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공자 모습이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공자의 분노와 증오를 많이 기록해 놓았다. 제자인 안연조차 "화난 마음을 다른 데서 풀지 않고, 두 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6:2)의 경지를 얻었다고 한 점을 염두에 두면, 분노해야 할 대상에게는 뜨겁게 분노하는 것이 곧 성인의 풍모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역시 유고의 한 특징이다. 
분노해야 할때 분노하지 못하는 것은 참된 용기가 아니다. 이 편의 후반부 핵심은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2:24) 라는 구절로 대변할 수 있으리라.  254

공자 말씀하시다. "천한 놈드로가 국가 대사를 함께 할 수 있겠더냐? 그 놈들은 자리를 얻지 못하면 얻으려고 전전긍긍하다가, 일단 얻고 나면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정녕코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들 땐, 못하는 일이 없는 놈들이다."(17:15)
자리나 지위란, 스스로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얻게 되는 것이다(4:14)  257

사람이 참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미덕을 필요로 할까. <대학(大學)>의 가르침을 받들자면, "멈춰야 하는 곳에선 멈출줄 아는 것(知止)"이 그것이리라. 
처한 곳이 추운 데라면 추위에 멈추고, 더운 곳이라면 더위와 더불어 버티는 것. 추위에 떨면서도 따뜻함을 구걸하지 않고, 더위 속에서는 또 뜨거움을 버텨나가는 것, 이것이 사이비가 아닌 '참'으로 가는 길이다.  262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님도 미워하는 것이 있는지요?"
공자 말씀하시다. "미워하는 게 있지. 남의 잘못을 떠벌리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데 있으면서 윗사람 헐뜨든 것을 미워하고, 용맹스럽기만하고 예가 없는 것을 미워하며, 과감하기만 하고 꽉 막힌 것을 미워한다네."
공자가 물었다. "자네도 미워하는 것이 있는가?"
"주워들은 걸로 자기 지식인 양 여기는 짓, 불손함을 용기로 아는 짓, 그리고 고자질을 정직으로 여기는 것으 미워합니다."(17:24)  263

18. 미자(微子)편 - 나의 길을 가련다
공자가 위나라에서 경쇠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삼태기를 짊어진 사람이 지나다 듣고는 말했다. "쓸쓸한 마음이 소리에 들어 있군."
다 듣고 나서 또 말했다. "흠! 천박한데, 그 소리가.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으면 또 그뿐. '물이 깊으면 옷을 입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걷고 건너라'했거늘."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깔끔하구먼. 하나 그게 어려운 건 아니지!"(14:42)  268
은둔자의 비판은 '시대에 맞춰 그에 걸맞게 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렇게 물이 깊은 때(곧 암흑 시대)에는 은둔하는 것이 옳은데, 뭐 그렇게 미련이 남아 사회에 개입하려 하는 것이요!"라는 질타가 된다.
이에 대해 공자는 "깔끔하구먼. 하나 그게 어려운 건 아니지!"라는 날렵한 뒷발차기로 응대한다. 곤자는 은둔자드르이 뜻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한 몸 보전하려고 세상사에 깨끗이 미련 버리는 일, 그깟 것이야 나도 하려 들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것은, 더럽고 추악하지만 '그럼에도', 아니 더럽고 추악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세상사 속으로 참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길"에 있다는 것이다.  269-270

공자는 은둔자들이 사회적 예의(손님을 접대하고, 자식들을 소개하는 행동)는 실천하면서도 막상 정치적 재난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벼슬 살지 않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정치적 무관심'은 지식인으로서는 옳지 않은 행동이다.  272

그는 시대의 혼란과 소통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보았던 것이다.  273

19. 자장(子張)편 - 우정이란 무엇인가
공자 말씀하시다. "도움이 되는 벗이 세 종류요, 손해를 끼치는 벗도 세 종류가 있다. 정직한 벗이 도움이 되는 첫 번째요, 약속을 꼭 지키는 벗이 두 번째요, 견문이 넓은 벗이 세 번째다. 손해를 끼치는 벗으로는 꽉 막혀 세상 넓은 줄 모르는 녀석이 첫 번째요, 알랑방귀 뀌는 녀석이 두 번째요, 간사한 녀석이 세 번째다."(16:4)

친구는 친구요, 형제는 형제다.(형제는 한 핏줄로 태어난 동기同氣이니 하늘이 맺어준 자연적 관계, 즉 천륜天倫이요, 친구는 의義, 즉 뜻이 맞아서 맺어진 사회적 관계, 즉 인륜人倫이니 차이가 있다.)
친구를 사귀는 데는 나름대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사귄 친구 사이에도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은 안평중에게 공자는 '친구를 참 잘 사귀는 사람'이라고 평한 것"(5:16)이리라.
그러니 친구가 잘못한다고 지나치게 끌어안고서 안달복달할 것은 없다. 몇 번 충고해 보다가 고치지 않으면 그냥 '이제부터 나와는 길을 달리 하니 친구가 아니다'라고 절교하면 그만이다. 구태여 친구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의리가 어쩌고, 우정이 어쩌고' 해가면서 나서다간, 괜한 봉변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렇게 봉변을 당한 다음에야 '넌 내 친구가 아니다'고 절교해 본들 맞은 뺨만 더 아플 뿐이다.  284

자유가 말했다. "임금을 섬긴답시고 자주 '아니 되옵니다'라고 간하다간 공욕을 치르는 경우가 생기고, 친구 사이라고 지나치게 조언하다가는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4:26)

자공이 우정을 여쭈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충고를 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되, '아니다'싶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스스로 욕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12:23)  285

진정한 벗은 나와 같은 존재거나 '또 다른 나'이다.  286

20. 요왈(堯曰)편 - 진리의 계보학
중용이란 무엇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음을 뜻하는 최적의 상태, 곧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용의 관건이다. 이것은 건강의 의미와도 직통한다. 말하자면 비만도 아니요 영양실조도 아닌 한 중간, 이것이 건강이요 또 그것이 '몸의 중용 상태'다. 따라서 중용이 지향하는 좋은 정치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290

"좋고 나쁜 것의 두 끝을 잡아서 그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을 백성에게 베풀었다"는 말은, 중용 정치학이 최적의 상태를 찾는 과정이지 이것과 저것을 섞은 회색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잘 말해 준다. 중용은 차라리 극단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291


<논어>의 인생이란 '내내 배우고 또 익히며 살다가 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298


에필로그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하기, 이것이 <논어>의 중요한 주제다.
나아가 배움과 가르침이 <논어>의 중요한 주제인 바, 그 요체는 '짐승 같은 인간을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또는 '야만의 세계를 어떻게 문명의 세계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그 과제의 초점에 효(孝)가 존재한다.  303

맹자는 인간을 둘러싼 관계망이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고 본다
오륜(五倫)이다.
(1)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2) 남편과 아내의 관계
(3) 국가와 국민으로서의 관계
(4) 형과 아우의 관계
(5) 동료 또는 친구 관계

유교의 학문이란, 이 다섯 가지 네트워크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하는 학문인 것이다. 유교에서 최고 대학이 성균관이요, 그 성균관의 본관이 명륜당(明倫堂)이다. 명륜당이란 곧 '네트워크(倫)를 환하게 익히는(明) 교실(堂)'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유교 학문이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관계(네트워크)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것일 따름이다.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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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라는 표현에 호기심이 생겼다. 
글을 쓰는데 전방위적으로 쓸 수 있다는것은 그만큼 많이 알고 더 많이 조사하고 공부할 때나 가능할 텐데, 저자는 얼마나 다방면에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표지의 날개에 제일먼저 눈이 간다.(개인적으로 보통은 목차를 먼저 본다.)
대중문화 평론, 영화 평론, 만화 평론, 신문잡지사 기자, 칼럼연재.. 상상마당 '전방위 글쓰기' 강의..등
다방면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듯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강의를 하는 사람이니 혹 내용이 관념적이지는 않을까?
딱딱하게 원론적인 내용을 나열한건 아닐까?
강의를 하고 있으니 생색을 내기 위한 교재로써의 출판을 한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내용을 읽으면서 그런 의구심들은 사라져 갔다.
우리가 글을 쓰는 써야 하는 이유들 부터 시작하여 글쓰기의 기본기에 충실할 것 또한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이 글을 쓰는데 있어서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을 예시로써 설명으로써 전개해 나갔다. 
뒤로 갈수록 압축해서 써내려가면서 밑줄그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좋은 의미로써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의미로써도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든 글을 쓰게 되어 있고, 써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특정 사람들만이 글을 게시하였으나 지금은 매체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질은 높아지기는 커녕, 더 낮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것은 왜 일까?
저자도 언급한 기본적인 글쓰기를 모르기 때문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볼 수 있다. 
글이란 것은 주관적이지 않을수 없지만, 좀더 객관적으로 좀더 정의롭게 좀더 올바르게 쓴다면 그 글은 호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왕 글을 쓴다면 좀더 확고한 내용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ㅎ 물론 이 블로그도 소통이라는 면에서는 멀지만... 그렇다고 소통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내용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에 대한 내용들이 여러번 언급되는 게 그의 놀라운 글쓰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책을 몇 권을 읽어보았긴 하지만.. 매우 다방면의 글을 쓴 사람이었다.
그가 새로운 분야의 글을 쓸 때, 관련 자료들의 방대한 양을 섭렵하고 정리하여 준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글을 쓰는 모습에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가 보이는 것을 넘어서 이면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서 해야하는 노력은 분명 필요할 것이다.


글쓰기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다.  12
글쓰기를 통해서 모든 이가 창작자인 동시에 주체적인 소비자, 대중이 되는 창조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13

우리가 글을 쓰는 몇 가지 이유
 - 글쓰기는 소통이다. 
 - 글쓰기는 세계의 재창조이다.
 - 글쓰기는 노동이다. 

글쓰기의 필수 교양 세 가지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첫째, 철학적 사고는 글쓰기의 토대다.
이 세상에서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35
     경험적 사고 -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 보편적인 진리를 깨닫는 과정.
     연역적 사고 -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면서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숲의 전체적인 모양만 보고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 역시 잘못이다. 일반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경험과 논리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철학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 나름의 보편타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37
즉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하기 위하여 철학 공부를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38
철학을 공부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것이 필요한 이유는 각각의 개인이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행동과 글 자체가 바뀌기 때문이다.  39

둘째, 경제를 알아야 리얼한 글쓰기가 가능하다.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바로 철학과 경제학이었다. 
작가들은 세상이 요동치는 현장에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물적 구조를 이루는 경제를 보는 눈도 있어야 한다.  42
모든 것에는 경제가 개입되어 있다.  43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을 쌓아 두고, 평소 경제 뉴스를 귀담아듣거나 신문의 국제정치면을 꼼꼼하게 읽는 것 정도로 충분하다.  44

셋째,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덤은 글쓰기의 자양분이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에 의해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E. H. 카가 말한 것처럼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다. 즉 현재의 관점이나 시대정신에 따라 과거의 역사가 재해석되거나 새로벡 조명된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가 만들어진 것이고, 과거의 일들은 현재와 미래에 계속해서 반복된다.  45
현재를 아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반추하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시각을 갖고 역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46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더라도, 사실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다.  47

창조적 글쓰기의 원동력, 나만의 세계관
첫째,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곧 나다.
글쓰기는 남의 생각이나 행동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다. 나의 세계관, 나의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없다.  51
인간은 필연적을 환경의 산물이고 주변에서 영향을 받는다. 즉 이 세계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만의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있어야만, 또 그것이 절실해야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57

둘째, 모든 것은 변한다. 세계관도 변한다.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 번 완성한 세계관을 바꾸지 않고 일생을 살아가는 것은 대개 미련한 사람이 할 짓이다. 
정말로 인생관이 확 바뀔 정도로 거대한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성인이 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방식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란 많지 않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58
세계관이 변화하는 것은 결코 창피하거나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바뀐 세상을 분석하고 자신의 찰학을 정립하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62

셋째, 나의 세계를 표현하는 글쓰기
 - 일기 쓰기
일기의 역할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에서 나에게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나의 하루 행동에서 되짚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는 것.  64
 - 목적이 분명한 편지 쓰기
일기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라면 편지는 '타인에게 나를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66
일기를 제외한 모든 글은 대상이 누구이고 그들에게 무엇을 알리거나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일기가 글쓰기의 기본을 다져 준다면, 편지는 글쓰기의 모든 것을 알려 준다고 할 수 있다.  67

아는 만큼 쓴다, 풍요로운 글씨를 위한 다독(
多讀)첫째,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배우는 독서 훈련
다치바나 다카시의 어떤 책을 읽든, 그 안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는 물론이고 그것들을 통해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혜안을 발견할 수 있다. 
다카시는 어떤 분야에 대한 취재나 대담을 요청받았을 때 그 분야에 관한 책을 적어도 열 권 이상은 읽는다고, 그리고 책을 써야 한다면 대형 책꽂이 한 개 반의 부피와 맞먹는 양의 책을 읽는다고. 그렇게 해서 읽은 책과 나오는 책의 비율을 따진다면 약 100 대 1 정도라고 한다.  69
1인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관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주장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뒷받침할 수많은 정보가 있어야만 한다. 올바른 입장만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법에서 배워야 할것은 엄청난 정보량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면 그 분야에 대해 파고들어야 한다. 시작은 언제나 독서다.  71

둘째, 글쓰기는 독서에서 시작된다.
책을 읽는 주된 이유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다. 
독서는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73
교양만 갖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되도록 많이 읽고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76

생각이 담긴 글쓰기
첫째, 문장은 육하원칙의 기본부터 시작하라.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98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기사를 쓰는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육하원칙이다.
머릿속의 이야기를 옮기는 데만 급급하여, 자신의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는 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99

둘째, 모든 것은 인상에서 시작한다.
내면의 분석 없이 단지 표피만을 놓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인상이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본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할 때,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느낌을 먼저 말한다.  102
인상비편은 아니지만 '인상'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작품이나 대상,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큰 울림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인상을 받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자신이 받은 인상에서 출발해 다양한 것을 채워 가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03

셋째, 인상적인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글을 쓰기 위한 테마와 아이디어가 나온다.

넷째, 인상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비평이란 사실 별것 아니다. 어떤 작품, 어떤 대상의 속성을 따지고 가리는 것이 바로 비평인 것이다.  113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글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다.  125

문학 작품을 분석할 때 가장 쉽게 쓰이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다. 
내용은 이야기와 주제이고, 형식을 플롯이나 문제로 볼 수있다.  131

영화 비평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화를 들여다보는 자신만의 눈이다.
약간의 통찰력과 지식만 있다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내려면 작품 내면을 파고 들어야 한다.  146

대중문화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그에 대한 글을 쓰려면 사람들이 어떤 대중문화에 매혹되는지, 어떤 대중문화가 그들을 사로잡는지 살펴봐야 하낟. 그것이 곧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노골적인 무의식일 수 있다. 어쨌거나 문화상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 의미를 분석해야 한다.  161

TV에는 저속한 개그 프로와 버라이어티 쇼도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토론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편견만 없애면 개그와 버라이어티 쇼에서도 얼마든지 요긴한 내용을 배울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배척이 아니라 적절한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읽어 내는 일이다.  162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글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글이기도 하다. 흔히 에세이를 작가의 영혼이 그대로 내비치는 글이라고 한다. 아무리 포장하고 감추려고 애를 써도 에세이에는 모든 것이 내비친다. 안이 텅 빈 사람이 쓴 에세이는 공허해 질 수밖에 없다. '내'가 흔들리면 에세이도 흔들린다. 그러니 에세이는 가장 신중하게 써야 할 글이다.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나'를 반성하는 마음가짐으로 써야 할 글이다.
에세이는 쉬운 글이기도 하다. 그냥 진솔하게 쓰기만 하면 안에 있는 것들이 투영된다. 차분하게, 정직하게 글을 쓴 사람에게 에세이는 출발점이자 끝이 되는 글이다.  203


지속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단지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에는 동인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든가, 장기적인 목적으로 글쓰기를 지향한다든가 등의 목적 말이다. 혹은 단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든가, 뭔가 상업적인 목적이 있다든가 등의 부정적인 욕망일지라도 상관없다. 글을 쓰기 위해 투자해야 할 에너지와 시간 등을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건 동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저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동인을 찾는 것이다.
가볍게 동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즐거운 취미생활이나 오락도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211
중요한 것은 쓰는 일을 취미로 삼는 일이다. 글쓰기가 취미로 정착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느긋하게 생각해도 된다.
누구나 시작은 비슷하지만, 꾸준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면, 글로 세상에 무엇을 알리거나 소통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일관성이 필요하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그리고 꾸준하게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정도다.  212




일상에서 철학을 다듬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것을 회의(懷疑)하는 것이다. 일본의 작가 기리노 나쓰오가 대학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회의하라'였다고 한다.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을 의심해 보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모든 것을 뒤집어 보고, 두 눈에 보이는 것의이면을 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남이 보여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뒤집어 보고 파고들어 집적 확인해 보는 것. 그것이 세상의 본질을 보는 유일한 방법이다.  41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씩 읽으면서 하나의 주장에만 빠지지 말고,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무리해서 읽지 말고, 메모를 하고 싶다면 일단 다 읽은 다음에 시도하고, 주석과 색인도 주의 깊게 읽고, 책을 읽으면서 그 정보와 논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라.  77

가장 쉬운 방법은 내 기억에 강하게 남은 무엇인가에 대해, 쓰는 것이다. 왜 기억에 남게 되었는지 그 이유만 찾아가도 한 편의 글이 나온다. 제일 좋은 방법은 메모다. 뭔가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는 것이다.  101

중요한 것은 새롭게 발굴하는 일 이상으로 기존의 것들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이다. 
남들이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이디어이고,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의 요건이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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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행복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다.
행복이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행복이란 것이 누구나 비슥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행복은 그 자체만으로 모든것을 상쇄시키는 것일까?
행복이 무엇과 구분되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고자 엮은것이라 생각이 든다.
제목처럼 행복에 대한 이론들이 들어있다.
인도에서 중국에서 그리스에서 중세에서 유대에서 기독교에서 불교에서 유교에서 철학에서 운동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행복에 대한 많은 생각들과 이론들이 거론된다.

행복은 쾌락과는 구분될 것이다. 쾌락만을 위한 쾌락은 결코 행복이 되기에 부족함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물질적인 것들이 행복에 해당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의 영속성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때론 사람의 마음과 육체가 더 힘들어질 수 있기도 하다.
철학적인 생각들이 행복을 발견하게 하기는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그것은 깊이의 부재의 시대에 더욱 한계를 드러내게 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부면에서도 행복을 논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의지의 면에서 행복이라 표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행복이라하기에는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으로 무언가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여러가지를 논하고 현대까지 논한후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의 가치기준의 차이로 행복의 느낌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위한 자신만의 잣대가 있을 수 있으며, 있어야 한다.
책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 자기계발서 같은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의 실행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책에서 여러 각도의 행복론에 대한 내용들을 통해 행복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행복은 만족인가?
어쩌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족한다고 모두 행복해 지는 건 아니기에 ...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다.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완전한, 완벽한 행복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에 조금더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며, 그렇기에 만족은 필요하다. 또한 어느정도의 쾌락도 필요하다.
그리고 깊이있는 생각들을 통해 좀더 영속적이 될 수 있는 방법과 생각들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행운이나 불운에 영향을 받지만, 운의 변화에 익숙해지면 누구나 자기가 타고난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주위 환경에서 행복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15
진정한 행복이란 단순히 '주관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삶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23
우리가 행복을 얻었는지 어떤지를 자문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을 자문하다 보면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만큼 행복할 자격이 잇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럴 자격이 없을 가능성을 돌이켜 보게 되기 때문이다.  26
성찰이 비관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않는다면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다.  28

불교에서는 어떻게 행복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불행이나 고통을 피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으로 인간 조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 행복은 좀 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고통의 조건을 피한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34
따라서 윤리적, 정신적인 노력의 최고 목표는 고통의 원인과 그것을 없애는 수단을 알아내어 고통의 부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삶은 고통이고, 고통은 욕망에서 나오며, 따라서 욕망을 버리면 고통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도 철학자들은 '니르바나'(nirvana :열반, 해탈)라고 불렀다.  37
힌두 철학자들은 '해탈'을 궁극적인 지복(도덕적 또는 정신적 완성과 동의어)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42
궁극적인 지복은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접촉과는 관계없이 영혼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측면을 깨닫는 것이다.  44

중국읜 3대 사상 - 도교, 유교, 불교 -은 모두 '복' 보다는 '락'을 더 자주, 더 폭넓게 고찰했다.  49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속담이 있다. '지족자상락(知足者常樂)'이라는 속담인데,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늘 즐겁다.'는 뜻이다.  이 사상의 원천은 노자의 무욕(無慾)철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52
장자는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자는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았는가? 지위를 지키기 위해 늘 불안에 사로잡혀 밤낮으로 힘들게 애쓰는 귀족은 육체적 생명을 돌보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필연적으로 슬퍼할 운명을 타고났으니, 오래 살면서 불행과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면 슬픔이 연장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57
중국 문화는 종교적 의미에서 신에 초첨을 맞추지 않는다. 중국의 철학과 종교는 뚜렷한 경계선이 없이 하나로 합쳐진다. 딸서 중국인들은 종교적으로 철학을 생각하고 철학적으로 종교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67

플라톤은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삶 자체가 바람직해야 하고, 그 자체로서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며, 현자가 가장 원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욕망만 만족시키는 삶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가능한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모든 생물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기능이고, 행복은 이 기능을 잘 수행하는 데 있다.  98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여가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99

수피는 순간에 산다는 뜻이다. 이는 순간을 '위해' 쾌락주의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본질과 핵심을 찾는 일에 완전히 헌신하는 것이다.  143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궁극적인 최대의 행복이라는 것은 중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78

페트라르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고전시대의 철학을 교묘하게 뒤섞어 행복을 다룬다.  183
너는 교황의 지위나 제국, 또는 권력과 부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댜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 페트라르카  185
조지프 홀주교(1574~1656)는 1608년에 출판된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에세이에서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세상을 알면서도 세상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19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평생 동안 최고의 미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최고의 미덕은 철학적 명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194
플라톤은 행복이란 영생불멸의 영혼이 육체에 갇혀 있다가 죽음으로 육체에서 해방된 뒤 신을 명상하며 즐기는 것이다.  195
데카르트읜 견해에 따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완전히 만족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199

18세기 사상가들은 열정적으로 인간학 연구에 달라붙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추동력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208

'통제감'은 우울한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습득된 무력감'의 정반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느낌.  237
낙천주의는 개인의 행복 수준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건강과 면역 체계의 상태와도 상관관계가 있다.  238
가장 중요한 사교술은 자기 자신이 사귈 만한 가치와 보람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42

흥미로운 결과는 '삶에 대한 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가 자살률도 가장 높다는 것이다.  255
영국 런던 대학의 조지 브라운과 티릴 해리스가 1970년대에 처음 시작한 중요한 연구는, 절친한 친구는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막아준다고 지적했다.  258
부부 불화의 원인을 조사해보니, 부부 양쪽의 행복 수준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태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주의적'태도를 가진 여성들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배우자와 대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겪게 된다고 여겨진다. 반대로 '전통적인' 여성들은 갈등이 생길 때 '감정 조작' 같은 기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겪게 된다고 여겨진다. 가장 행복한 아내는 이 양극단 사이의 중도 노선을 걷는 아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263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가장 강렬한 행복감은 사랑에 빠졌을 때 생겨난다. 그 밖의 행복한 사건으로는 결혼이나 약혼, 자녀 출산, 휴가, 학위 취득, 승진 등이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영역은 가정생활이고, 그 다음이 우정, 3위는 일, 4위가 여가 활동이다.  276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예외적인 정신 건강은 다음 여섯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1. 자아실현자들은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친구들은 그들이 역동적이거나 매력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력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논다.
2. 그들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동시에 현실적이다.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에게는 반성적인 면이 있다. 때문에 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따라서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3. 그들은 삶에 대해 열정을 갖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다른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정력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들은 현재를 위해 살고, 다가오는 날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발성과 기력이 넘쳐 흐른다.
4. 그들은 독립된 개인이다. 생각이 깊고 열정적인 그들은 옳다고 생각할 때만 남의 의견에 따른다. 그들은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래서 개인주의자로 여겨진다.
5. 그들은 타인의 욕구에 민감하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타인의 욕구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타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6. 그들은 영적 체험을 한다. 자유나 진선미 같은 숭고한 대상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있기 때문에,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이런 신비적 체험을 인식할 가능성이 더 높다.     277-278

우울증 환자는 치료하기 위해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전투에서 절반은 이긴 셈이다.  283
인지행동 요법은 우리의 기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290
필라델피아의 에어런 벡은 사고방식을 바꾸도록 환자들을 훈련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환자들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을 탓하지 않고(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힘에 부치는 일을 너무 무리하게 벌이지 않고(처음부터 지나친 야심을 갖지 않으면 시패할 확률도 그만큼 줄어든다), 현재에 좀더 정신을 짖중하는(과거에 연연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훈련을 받는다.  291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인생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한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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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학문인 인문학을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인간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고 소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인간이 인간은 이해하고 살아간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엄청난 발전의 속도 속에 그것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어쩌면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라고 하면 누구나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인문에서의 생각은 생활에서 무의식속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선택에 의한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깊이있는 생각 공감하고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생각, 그것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으며, 그것이 가능해 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인문학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문사철' 문학과 역사와 철학..
인문의 틀이다. 세 가지에 대한 고루한 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한 분야라도 고려해 보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이 책은 잘 정리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인문학의 어려움을 기본적인 지식의 부족에서 시작하는데, 저자는 15개 테마의 기본지식을 고려하고 있다. 표현대로 하자만 '바탕지식'이다.
기본적인 틀을 알고 깊이 있게 가자는 주제로 15개의 바탕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체계적인 강의나 토론회가 아니라면 모든 테마를 두루 살피기는 그것도 개인적으로 살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탕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관심있는 테마들을 하나씩 선정하여 알아가면서도 이웃테마들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세상 어느 지식 하나 인문학이 아닌 것이 없다. 어느 분야 하나 인간을 위하지 않은 지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5

서양인을 만난다면 그들 문화를 형성해온 두 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철학과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14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중요한 능력으로 'High Concept'(창의성)과 'High Touch'(좋은 인간관계를 설정하는 능력)을 들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는 <부유한 노예>에서 다니엘 핑크의 두 인간형을 'Geek'(엉뚱한 사람, 기발한 사람)와 'Shrinks'(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는 사람, 인간을 잘 이해하는 사람)로 표현한다.  15
수학여행의 기원은 18세기 영국 귀족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의 귀족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사를 붙여 교육에 힘썼고, 소년기를 벗어나면 유럽 대륙으로 수학여행을 보냈다. 기간은 3년으로 프랑스, 독일과 같은 국가들을 돌며 여러 가지 경험과 함께 문물을 배웠다. 이때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지성인들과의 만남이었다.  18

모든 게임의 시초는 전쟁의 역사로부터 비롯된다.  33
사마천은 '대게 서민들은 상대방의 부가 자기 것의 10배가 되면 이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이를 모서워하여 꺼리며, 1,000배가 되면 그의 심부름을 기꺼이 하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노복이 된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라고 말한다.  52

신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다.  59
동양삼국에 고사성어가 있다면(표의문자), 서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표음문자)  65
동양의 고사성어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면, 서양의 신화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69

성경에서는 조직경영의 중요 원칙 중 하나인 'Span of Control(통제범위의 원칙)' 즉 한 사람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원칙이다.  79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름 아닌 연기(緣起)다. 연기의 의미는 나와 다른 이들이 모두 연결되어 우리 모두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이고, 나아가서는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의미다. 하나는 같은 입장을 의미한다.  158

1997년 영국은 18년 만에 노동당 정권으로 토니 즐레어 총리는 정치 스승인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을 반영해 18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제 2의 길인 신자유주의에 부분적인 수정을 가한다.
규제를 없애 사회 구석구석까지 경쟁체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빈곤계층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 역시 사회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 것이다. 
신 자유주의에서 약간 방향을 튼 새로운 정책은, 자기 상승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교육과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의료과 같은 부문은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복지정책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제1의 길인 복지개념, 제2의 길인 신자유주의에 이어, 제3의 길로 부르는 이 길은 신자유주의와 같은 명확한 개념이 없다.  225
현실적으로 힘을 가진 미국과 같은 나라가 생각을 바꿈으로써 신 자유주의는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이 극단적으로 노출되어 호되게 당하고 난 뒤 할 수 없이 방향을 틀 수도 있다.  226
IMF는 2차 대전 직후에 설립된 국제기구인 만큼 당시 국제사회의 패권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긴급금융과 같은 주요 사안은 85% 이상의 의결을 필요로 하는데, 미국이 바로 절묘하게도 17%의 결정권을 쥐고 있다.  234

16세기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계약을 주장한 홉스(1588~1679년)가 개인의 생명보호를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내세웠다면, 로크(1632~1704년)는 한 걸음 더 나가 사회계약의 중심을 재산권보호에 두었다.  243
사회계약이 장자크 루소(1712~1778년)로 넘어가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이제부터는 '자유'가 중심 사상을 이룬다.  244

일본의 역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국가 형태이전(BC1만년~ AD3세기)
2 천황통치시대(4세기~1192년)
3 막부시대(1192~1868년)
4 메이지 유신 이후(1868~현재)    259
전쟁은 기본적으로는 전력 싸움이다. 그리고 그 전력의 바탕은 다름 아닌 지식욕과 학습이다.  273

우리나라 역사는 크게 7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삼국시대 이전( ~BC18년)
2. 삼국시대(BC18~676년)
3. 남북조시대(676~936년)
4. 고려시대(936~1392년)
5. 조선시대(1382~1910년)
6. 국권피탈기(1910~1945년)
7. 대한민국(1945~현재)

중국의 역사는 삼황5제의 전설시대와 하 은 주 진 네 왕조시대를 거쳐 
1. 한(BC207~AD220년)
2. 위진남북조(220~581년)
3. 수(581~618년)
4. 당(618~907년)
5. 오대십국시대(907~960년)
6. 북 남송시대(960~1279년)
7. 원(1279~1368년)
8. 명(1368~1644년)
9. 청(1644~1911년)
10. 중화민주 및 중화인민공화국(1911~현재)

일본의 역사는 청황통치시대를 지나 막부시대를 맞이하는데, 막부는 
1. 가라쿠마 막부(1192~1333년)
2. 무로마치 막부(1338~1467년)
3. 전국시대(1467~1573년)
4.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73~1603년)
5. 에도시대(1603~1868년)     306

성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항상 3대 또는 최소 2대가 걸린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두 왕의 재위기간 100년(391~491년)
백제는 동성왕, 무령왕, 성왕 3대 재위기간 75년(479~554년)
신라는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3대 76년(500~576년)에 걸쳐.  320
재주복주(載舟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324


의미를 따지고 전례를 찾고 논리를 동원하고 큰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는 인문학이 적격이다.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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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자
  생애: 1473년 2월 19일 (폴란드 토루인) - 1543년 5월 24일
  학력: 파도바대학교 의학과
  경력: 1520년 프라우엔부르크 대교구장
           1516년 알렌슈타인교회 평의원
           1516년 엘름란드교구 회계감사역
           1512년 프라우엔부르크성당 신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 Mikołaj Kopernik 미코와이 코페르니크/ Nikolaus Kopernikus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년 2월 19일 - 1543년 5월 24일)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가져온 폴란드 혹은 프로이센 태생의 천문학자이다. 여러 가지 이름표기는 그가 태어난 곳(폴란드)과 그의 모국어(독일어) 그리고 그가 즐겨 쓴 라틴어를 감안하여 세 가지 언어로 표기한다. 인공원소 코페르니슘의 이름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그는 라틴어, 폴란드어, 독일어, 그리스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모두 말할 수 있었다.

흔히 대담하고 획기적인 생각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태양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겉보기 운동과는 달리,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혁으로 불리는  '과학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1543년에 출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에서 그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천명했는데, 이것은 당시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중세의 우주관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만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전체를 동시에 밝혀주는 휘황찬란한 신전이 자리 잡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자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혹자는 그것을 빛이라 불렀고, 혹자는 영혼이라 불렀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의 길잡이라 불렀으니 그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태양은 왕좌에서 자기 주위를 선회하는 별들의 무리를 내려다본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체계는  전통적인 교회의 입장과  다른 것이었지만,  적어도  당대에는 탄압받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청의 일부 인사들은 그의 이론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물론 비판이 없지는 않았다. 예컨대 그와 동시대인인 종교개혁가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나  하늘의 덮개,  해와 달이 아니라  지구가 회전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발버둥치는 오만불손한 주장이 나왔다. 그 바보는 천문학 전체가 뒷걸음치는 걸 바라고 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과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 (지동설의 부각에 대한 괴테의 언급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체계가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세계관을 바꾸어놓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요컨대 그것은 ‘점진적 혁명’이었다.

종교개혁이 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교황청에 등 돌리게 만들었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신으로부터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지구와 그곳에 사는 인간의 우주적 의미를 보잘것없는 차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은  정말로 신의 사랑을 독자치하는 존재인가?  무한한 우주를 창조한 신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왜 굳이 지구로 보냈단 말인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서양 중세의 우주관, 인간관, 세계관의 뿌리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관측 결과와 완전히 부합한 것은 아니어서, 이후 많은 과학자들 특히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뉴턴 등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문명세계에 사는 우리들 중 지구가 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생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현재의 폴란드 중북부에 있는  당시의  한자동맹 도시인 토룬(폴란드어 Toruń, 독일어 Thorn)에서 관리이자 주철업을 하는 아버지 니콜라스 코페르니크와  당시의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지방 출신인  어머니 바르바라 바첸로데 사이에서  네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토룬에서 초등 및 중고등학교를 다닌 후 코페르니쿠스는 1491년 당시 독일의 작센에 속했던 폴란드 남부지방의 대도시 크라카우(현 크라쿠프)로 가 대학에 입학하여 1494년까지 수학 및 천문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495년 이탈리아의 볼로냐로 가 삼촌의 권유로 신학과에 입학한다. 이탈리아에 머무르면서 코페르니쿠스는 또한 로마 및 파도바 대학에 등록하여 강의를 들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 유해 발견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숨을 거둔 이후  고고학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그의 유해를 찾으려 노력해 왔다. 1807년 나폴레옹은 그의 무덤을 찾다가 실패하였고, 폴란드 공산 정권는 정부와 교회의 관계가 껄끄러워 유해 찾기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다.
2005년 8월  14세기에 건축된  플라우엔부르크 대성당 제단 아래를 파고 들어가자  여러 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중에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보이는  아래턱이 없는  두개골과 다리뼈 등이 나왔다. 유골은 사망 당시 연령이 60 ~ 70세로 추정되었다. 부러진 코, 왼쪽 눈 위 흉터 등 두개골의 특징이 현존하는 코페르니쿠스 초상화에 나타난 모습과 일치하였다.
2008년 11월 20일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유전학 전문가 마리 알렌은 기자회견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책에서 나온 두 가닥 머리카락의 DNA가, 그의 유해로 추정되는 뼈의 DNA와 일치한다'라고 밝혔다. 유해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아 아래턱 부분은 소실된 상태였다. 뼈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약 70세 가량 노인의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는 코페르니쿠스가 죽었을 때의 나이와 일치한다.

2010년 그의 장례식은 500년만에 폴란드에서 다시 치려졌다.
폴란드 국민과 고위성직자들은 그를 국민적 영웅르로 기리며, 최고의 예우를 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칸트가 자신의 인식론상의 입장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말입니다.
일단  단어의 뜻부터  면밀히 보게 되면  코페르니쿠스는  몇 천년동안 천동설을 믿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동설을 주장하며 잘못된 관념에 대해 경종을 울렸던 사람이죠.

그와 같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여지껏 인식해오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보편적 관념에 일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칸트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인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합시다. 다이아몬드 자체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 눈에는 다이아몬드가 보입니다. 다이아몬드 그 자체에 대해 우리는 인지하는 것이죠.

그러나 칸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주관적으로 다이아몬드를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빨간색 안경을 쓰고 태어난 아기는 평생 빨간색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죠?
그와 같이 인간의 인지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눈의 인식이라고 해도 이것은 인간의 눈이 인식한 것이고 다이아몬드를 완전히 인식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눈이 몇 만 화소를 보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보다 더 높은 화소나 우리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꿀벌의  눈의 시각과  우리 눈의 시각이 다르듯이 말이죠.

이러한 혁명적 사고는 근대 인간중심주의에도 큰 영향을 끼쳤죠.
과거 천년 이상 지배해온 유럽 크리스트교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사상이었죠.

그 당시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고 우리가 밥을 먹듯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무신론적 사고도 가능하며 (칸트는 유신론자지만) 인간중심사회인 르네상스를 이끄는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대상을 객관적으로만 바라본 철학에 인간은 주관적으로 인식한다는 큰 사고의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짧은 논문을 통해 지동설에 관한 구상 세워

코페르니쿠스는 외삼촌의 도움으로 1496년 이탈리아로 가서 볼로냐 대학에서 신학, 법학, 고전학을 공부했지만 주된 관심은 천문학이었다. 파도바 대학, 페라라 대학 등에서도 공부한 그는 1500년 로마에 머무르며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했다. 페라라 대학에서 교회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의학도 공부한 뒤 귀국한 그는 1505년경부터 플라우엔부르크 성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법학 지식으로 교구 행정에 참여했으며, 수학 지식으로 통화(通貨)와 경제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성당 참사회 입장에서 그는 매 우 쓸모가 많은 ‘준비된 인재’였다.

 

1513년 코페르니쿠스는 성당 참사회의 상회에서 800개의 돌과 석회를 구입했다. 천문 관측을 위한 지붕 없는 탑을 쌓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천문 관측기술의 한계 탓에, 그의 관측이 새로운 천문이론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1514년에는 교황의 비서관으로부터 교회력 개정을 위한 회의 참석을 요청 받았지만 거절했고, 다만 달력 개정을 위해서는 태양과 달의 관계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는 의견만 제출했다.

 

1510~1514년 사이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 천문체계에 관한 개략적인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짧은 논문으로 작성했다. ‘천체 운동에 관해 구성한 가설에 대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소론(小論)’, 줄여서 [소론]이라 일컫는 논문이다. 논문 제목은 코페르니쿠스 자신이 아니라 그것을 필사하여 유포시킨 이들이 붙인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논문을 소수의 지인들에게만 배포했다(정식 인쇄본 출간은 1878년). 이 논문에서 그는 본격적인 수학적 설명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천문학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지구가 움직이는 태양 중심 체계를 가설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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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애

   1] 폴란드의 부유한 상인 아들로 태어남

   2]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가톨릭교회 신부인 외삼촌 루카스 바첼로드 밑에서 자랐다.

   3] 외삼촌의 도움으로 1495년에서 1505년까지 약 10년간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이아의 볼로냐 대학과 파도바 대학 등지에서 법학, 의학, 재정학, 수학 및 천문학 등을 배웠다.

   4] 당시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각 대학은 그리스 고전 번역에 활발하게 참여하였고

   5]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시대의 문헌을 번역하거나 당시의 번역 서적을 읽으면서 고대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6] 1500년경에 처음으로 천문학자들과 월식의 광경을 관찰하면서 월식의 진행 방향 등 천문학적 현상을 자세히 그려 주변 사람의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2.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가 갖는 모순을 발견하였다.

   1] 1512년 고국으로 돌아온 코페르니쿠스는 교회 일을 도우면서 교회의 옥상에 관측시설을 설치하고 천문학 연구에 심취하였다.

   2] 천체를 관측하면서 당시 행성 운행표가 갖는 오류를 발견하여 그 원인을 찾는데 골몰하였다.

   3] 또 프톨레마이오스의 라틴어 번역서인 알마게스트를 접한 후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체계가 실제 관측 사실과 다른 모순점을 발견하였다.

3. 코페르니쿠스가 보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는 행성의 정지와 역행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다.

   1] 우주가 수적 조화에 따라 운행된다는 피타고라스적 신념이

      1) 플라톤에게 영향을 미쳤고

      2) 코페르니쿠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우주의 단순하고 아름다운 체계를 보여주지 못했다.

   3]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토대로 만들어진 달력은 수정과 보완에도 불구하고 오차가 쌓였다.

      - 간접적이긴 하지만 천문학 체계의 변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4. 고대 그리스 천문학 문헌 가운데 태양중심의 우주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함

   1]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의 태양중심설

      1) 관측을 토대로 한 천문학적 연구소산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

      2) 불 숭배라는 종교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고 추측되는 직관의 산물

   2] 코페르니쿠스로서는 하나의 발판을 마련한 셈

   3] 이후 무려 30 년이 넘도록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대신할 하나의 대안을 완성해 간다.

5.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중심의 우주 체계 대신 태양 중심의 새로운 우주 체계를 고안하였다.

   2] 코페르니쿠스는 1510~1514년 사이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코멘타리올루스(Commentariolus)라는 짧은 논평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3] 코페르니쿠스는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자신의 논문의 출판을 보류한 채 가까운 친구들에게 돌렸다.

   4]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우주 체계를 발전 시켜 1530년에 책으로 완성하였다.

   5] 그 책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채 코페르니쿠스가 사망하던 1543년에 뉘른베르크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revolution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6] 그 책의 출판을 주도한 루터파 목사 오지안더(Andreas Osiander)는 책의 서문에서 지동설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어 종교와 마찰을 피하고자 했다.

      1)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은 사실을 기록 한 것이 아니라 천문학자들이 더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편리한 수학적 도구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2) 오지안더의 서문 덕분에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은 신학적 반발을 피할 수 있었고 교회의 금서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6. 책의 발간과 관련하여

   1]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조심스럽게 출판한 이유는 그의 성격과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2] 기독교 사회에서 평생 신부로 재직하면서 천문학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지구중심설 대신 태양중심설을 주장하는 것을 기독교 사회에 대한 모욕이라고 여겼다.

   3] 기독교 사회에서 평생동안 사회적 안위를 누리며 산 사람으로서 천문학을 연구하도록 하고 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시켜준 지구 중심설을 깨뜨린다는 것은 신중하면서 겁이 많았던 코페르니쿠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4]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혁명가 스타일은 아니었다.

7.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 천년이 넘도록 진리로 군림해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 맞서 새로운 체계를 세운 발상의 전환에 대해서 경의를 표함

8.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나타난 지동설

   1]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기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처럼 주전원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2] 행성의 순행이나 역행도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함

9. 코페르니쿠스 우주체계의 한계

   1] 행성의 원운동을 고수하는 제한된 개혁이다. -> 주전원을 다시 도입

   2] 우주가 천체에 붙어있는 투명한 수정구로 둘러싸여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3] 지구가 빠른 속도로 자전하면서 공전하는데도 사람들이 지구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10. 코페르니쿠스 평가

   1] 최초의 근대적 천문학자

      1)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을 포함하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깨뜨렸다는 점과

      2) 태양중심설을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2] 최후의 고대 천문학자

      1) 일정한 원운동에 의해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였다.

   3] 토마스 쿤의 평가

      1) 프톨레마이오스적 천문학자인 동시에 최초의 근대적 천문학자이며

      2) 혁명을 주도한 인물이라기보다는 혁명의 기반을 다진 천문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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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한 '자기이해'와 '자아실현'은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일어난다.  8
이라고 한 것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들을 저자의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해 놓은 책이다. 
나오는 문학중에 읽어본 책도 있고, 읽어보지 못한 책들도 있었다.
책 내용을 알든 모르든 저자는 작품이해를 위한 설명들과 자신의 철학적인 생각들을 풍성하게 들려주고 있기에 따라가면서 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책이라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으로 읽으면서는 따라가기도하고, 다른 생각들을 하기도 하며.. 내용을  중심으로 재해석해 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특히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들중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먼저 읽어보려고 생각한다.
근래 게으름으로 인해 읽고 바로 올리지 못하니 그간 기억이 가물거리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의 생각처럼, 나는 내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벌써 이러한 삶을 진정 원하게끔 되어 있다는 말인가? 나는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여전히 나의 성격 안에 속박되어 있는데, 어째서 내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일까?   34
낭만주의자들에게 자기 실현이란 단순한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신적인 것을 닮아가는 것이며 진리의 구현이자 구원이 길이었다.  46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수선화에서  55

인간의 내면에서 부성적 양심은 끊임없이 "네가 잘못하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피할 수 없고, 내 마음에 들고 싶으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라고 말하며,
모성적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에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라고 말한다는 거지요.
즉 부성적 양심은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모성적 양심은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자신에게 말한답니다.  67-68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모성적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부성적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서로 균현을 이루어 성숙해진다는 겁니다.  
자신의 내면에 부성적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그는 외적으로는 냉정하고 난폭한 사람이 될 것이며 내적으로는 강박신경증 등에 시달리게 되지요. 하지만 반대로 모성적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내적으로는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판단력을 잃기 쉽고, 외적으로는 현실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히스테리나 알코올 중독 같은 각종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성적 양심에 의해 내적으로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을 종용하거나 꾸짖는 부성적 양심에 의해 외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거지요.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알고, 복종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지만 노예가 아닌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성장의 진정한 의미'  68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이끌림에 몸을 맡겨라.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마술적 힘이 
우리를 감싸, 사는 것을 도와주리니...   헤세/삶의 단계  71

시기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인 데 반해, 질투는 자신이 이미 소유한 것을 경쟁자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이다.  100
집요한 소유욕의 바탕에는 상대가 자기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알고보면, 사랑이란 '하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며, 그 대상은 '행위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닌 겁니다.  112

상대를 그의 '어떠어떠함'으로 판단하지 않고 오직 그의 '있음' 자체를 존중하며, 상대의 고통과 불행을 나의 고통과 불행으로 인식하는 것이 모든 윤리의 바탕이다.  131
인간은 자신의 '어떠어떠함'이 아니라 '있음'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과 그것이 주는 안식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되며, 그럼으로써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135

단지 일상에 빠져, 하루하루를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면서 무의미하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없어도 그만인 남아도는 존재, 곧 '여분의 존재'라는 거지요.    145
독서광이라면서 무비판적으로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타인이 축적한 지식에서 찾는 것이기에 무의미하다는 거지요. 때문에 독서광은 비록 지식인이지만 여분의 존재라는 겁니다.  150

키프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이 산다는것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것입니다. .. 인간이 되려면 인간적으로 행위하라는 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의 의미입니다.
사르트르는 행위 하되 과거가 아니라 현재,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상태에 따른 행위가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실존임을 강조한 거지요.  152

하이데거는 권태란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기분'이라 했습니다.  165
<고도를 기다리며>가 주는 지루함은 단순히 '흥미없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적 구조에서 나온 '존재론적 권태'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지요.  166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에서 권태를 '표면적 권태(oberflchige Langweile)'와 '깊은 권태(tiefe Langweile)'로 나누었습니다.
자기 자신이나 상대 때문에 생기는 이런 저런 특수한 상황에 의해 붙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허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지루해지는 것이 '표면적 권태' 또는 '비본래적 권태'이지요.
아무런 이유가 없이 "아무튼 그냥 지루해" 라고 표현되는 무조건적인 권태가 있는데, 이것은 '깊은 권태' 또는 '본래적 권태'입니다. 문제는 이 권태에 대해서는 '시간 죽이기'가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하이데거는 '깊은 권태'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곧 '실존(Existence)'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능성(seinsknnen)'을 기획하고 그것을 따라 산다는 것을 말하지요. 이러한 행위를 '기획투사(Entwurf)'라는 용어로 표현했습니다. 
기획투사는 자신의 존재가능성에 스스로를 던져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이지요.  180-181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의 서두에서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196
편협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인간의 지성이 자신을 넘어서는 (부조리한) 현실과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광경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없을 것이다.  200
카뮈는 저 영원한 승리자인 시지프처럼 끊임없이 반항하라는 겁니다. 사막에서 벗어나려 하지도 말고 쓰러지지도 말고 그저 버티라는 겁니다. 병균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며 건강이 의지의 소산이듯, 부조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은 의지의 소산이라는 거지요. 그렇게 반항하며 버티다보면, 오랑에서 페스트가 물러가듯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겁니다.  203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살아가는 것  209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 사는 세계를 '공적영역', '사적영역', 그리고 '사회적 영역'으로 구분.
인간은 '공정영역'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잇을 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지식까지도 얻을 수 있다.
'사적영역'을 개인이 자신과 자신이 가진 사적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세계라 정의.
아렌트는 '자기 자신의 사적인 장소를 갖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220-221

헉슬리는 인간에게는 행복과 안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자유라는 거지요. 설사 불행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할 자유를 가질 권리를 인간은 원한다는 겁니다.  276

어떤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그것에다 맞추려는 사람을 프로크루스테스라고 하고, 그런 획일화 작업에 사용되는 폭력적 도구를 일컬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합니다.  281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실현방법에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에 불과하며, 진정한 유토피아는 그 이상뿐만 아니라 실현방법에서까지도 인간의 자유, 존엄성, 사랑과 같은 인류보편적 가치들이 존중되어야만 한다는 거지요.  302
물은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지만,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옛말을 감안해본다며느 팬옵티콘이든, 전자 팬옵티콘이든,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즉 우리는 분명 사회가 가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의해서 제조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거지요.  304

우리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상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연히 옛날의 어떤 냄새를 맡게 되면, 우리는 갑자기 도취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이미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상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득 고인의 낡은 장갑 한 짝을 보기라도 하면, 우리는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일종의 은총, 무의식적 추억이라고 하는 한 묶음의 꽃다발에 의해서 말입니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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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용어이다.

노마디즘은 이러한 노마드의 의미를 살려 철학자 이진경이 들뢰즈의 저서 《천()의 고원》(1980)을 강의하면서 남긴 글을 정리하고 보충해서 2002년 출간한 책의 제목으로, 우리말로는 유목주의로 번역된다.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도 쓰인다.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한다. 철학적으로는 철학·문학·정신분석·신화학·수학·경제학 등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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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신문에 실린 서면 인터뷰입니다


- 한국에 처음 노마디즘이라는 용어가 전래되고 자리를 잡게 된 과정은?

 노마디즘은 본래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1968)에서 등장한 개념이었습니다. 그것을 고병권, 이진경, 고미숙이 주도하는 ‘수유 너머’와 이정우가 선전하고 전파시킴으로써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노마디즘을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이데올로기, 미래의 대안이 될만한 이데올로기로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노마디즘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먹히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과 『호모 노마드』가 번역 출간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 ‘수유 너머’와 이정우의 주장에도 더욱 힘이 실리게 됩니다.

 

『21세기 사전』를 보면, 이정우의 추천사가 실려 있습니다. 저는 이정우가 자크 아탈리의 주장이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확대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노마디즘은 정말 현대사회의 모든 생활과 연관돼 있는 것 같다. 교육, 직업, 쇼핑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는데, 이럴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면? 

교육, 직업, 쇼핑 등 현대인의 생활을 모두 노마디즘적 패턴으로 귀속시키려는 경향이 생겨난 것은 자크 아탈리 때문입니다. 본래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어서 노마디즘이 모든 생활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자크 아탈리가 그렇게 주장한 것이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들뢰즈의 철학적 개념인 노마디즘을 사회문화적 용어로 변환시켰습니다. 그리고 노마디즘이라는 용어를 현재의 모든 패턴을 설명해주고 미래를 예언하는 요술방망이로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주효했던 것이지요.

 


- 한국인들은 유목민적인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와중에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 근하게 된 계기는?

저의 문제의식은 진보와 보수(특히 시장만능주의자들) 모두가 노마디즘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진보와 보수가 특정한 사상에 모두 공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노마디즘을 매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개인적인 계기도 없진 않습니다. 4-5년 전쯤인가요. 당시 조선일보는 몽골 유목민의 수장으로써 세계를 점령한 칭기즈칸을 재조명함으로써 노마디즘 선전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친분이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노마디즘을 매개로 조선일보와 타협하는 것을 보고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지금도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다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 자신을 진보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들도 노마디즘을 진보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노마디즘이 진보주의자들의 사회적 비판의식을 불식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마디즘의 기묘한 논리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이를 계속해서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노마디즘은 간단히 말해서 ‘이동의 담론’입니다. 들뢰즈의 노마디즘은 철학적 ․ 정신적 이동에 대한 담론이고, 아탈리의 노마디즘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이동에 대한 담론이죠. 진보주의자들은 노마디즘에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와 생활태도’를 연상하고, 보수주의자들은 노마디즘에서 이동이 갖는 해방성, 창조성, 생산성에서 친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을 발견합니다. 그 결과 진보와 보수가 모두 노마디즘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압도적 다수가 노마디즘에 대해 별다른 반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노마디즘의 현실적 기반이 되는 것은 자동차, 비행기, 노트북, 인터넷, MP3, PDA, 디지털 카메라, 텔레비전, 휴대폰, 네비게이션 같은 첨단기술 제품들입니다. 그것들이 현대인의 이동을 가능케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노마디즘은 친기술주의적 경향을 갖습니다. 이러한 첨단 제품은 대개 초국적 자본이나 대자본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노마디즘의 친기술주의적 경향은 자본에 대한 관용 혹은 찬양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 결과 진보주의자들이 자본의 논리에 자연스럽게 포섭되는 양상이 전개됩니다.


 

- 현 대학생들이 노마디즘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88만원 세대’라 불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청년 실업의 문제는 비단 우리 사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청년 실업이 이렇게 만연하게 된 데는 자본주의의 경제 구조 자체의 결함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자동화 기계화 되는 것도 청년 실업을 높이는 주범입니다. 자본주의와 기술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가 젊은이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젊은이들은 친자본주의적 친기술주의적 경향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최전선에 노마디즘이 있습니다. 노마디즘의 시작은 68혁명을 배경으로 들뢰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들뢰즈의 노마디즘은 68혁명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노마디즘이 회자되는 현실은 68혁명 시기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지금의 현실에 고스란히 적용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의 노마디즘은 들뢰즈의 정신보다는 아탈리의 몫이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건강했던 이데올로기가 세월이 흐르면서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변질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나는 대학생들이 자신을 옭죄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기술만능주의의 입지를 넓혀주는 노마디즘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는 플라톤의 경우처럼 격투기선수일 수도 있고 아우렐리우스에픽테토스처럼 황제나 노예일 수도 있으며, 스피노자처럼 첨단 과학의 기술자일 수도 있고, 라이프니츠처럼 외교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목동은 될 수 없는가? 양을 치며 유목하는 민족을 통해 한 종교가 탄생한 이후 목자의 이미지는 종종 사상을 지배해왔다. 가령 하이데거는 ‘존재의 목자’라는 인상 깊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목자의 이미지, 즉 지킴이의 이미지와는 다른 목동의 이미지는 없는가? 물론 있다. 그것이 노마드(nomade, 유목민)이다. 땅에 뿌리내리고 토박이로 살며 정체성과 배타성을 지닌 민족을 이루기보다는, 어떤 정해진 형상이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바람이나 구름처럼 이동하며 삶을 정주민적인 고정관념과 위계질서로부터 해방시키는 유목인의 사유가 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쿠체(John Maxwell Coetzee)의 작품인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야만인이란 바로 유목민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런 인상 깊은 구절을 이 책에서 읽는다. “유목민들은 1년에 한 번씩 우리를 찾아와 교역을 한다오. 내가 지난 20년 동안 치안판사로서 싸워야 했던 문제는 가장 저질적인 마부들이나 농사꾼들이 유목민인 야만인들을 모욕하고 경멸한다는 사실이었소. 특히, 그 경멸이라는 것이 식사예절이 다르고 눈까풀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의 뿌리를 어떻게 뽑을 수 있겠소?”


이 인용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인종주의에 대한 고발만을 부각시키려고 이 구절을 읽은 것은 아니다. 정주민들은 위계적 정체성을 꾸미고 사는 자들이다. 그들의 정주를 가능케 하는 경계(또는 국경)가 이미 배타적 정체성의 표현인 위계를 내포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카인이 가축을 치는 아벨에게 그렇게 했듯 이런 정주민들은 유목민들을 증오해왔다. 아마도 근본적으로는 유목민의 도래가 정주민들이 꾸며온 모든 체계와 질서를 와해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리라. 유목민은 정주민들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자들이며 거기에 동화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쿠체는 말한다. “나는 역사의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나는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행방불명된 백성들에게조차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노마드에 대해 사유했던 대표적인 철학자 질 들뢰즈 역시 마찬가지로 이야기한다. “노마드에게는 역사가 없다.”


국가와 같은 형식을 통해 거주하는 자들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역사를 가지지 않으므로, 노마드는 정체성 없는 익명의 힘으로 들이닥쳐 정주민을 파괴한다. 정체성 없는 이러한 힘의 침입을, 그 파괴력을 강조하여 ‘전쟁 기계’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전쟁 기계의 기원은 황제의 주둔병이 되기를 거부하고 유목 생활을 하는 양치기한테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노마드의 출현으로 인한 파괴를 들뢰즈는 “탈영토화의 형식으로서 탈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거 유목민들의 삶이 보여주듯 말이다. 그리고 이런 노마드의 출현은 어쩌면 해묵은 정주민의 삶에 새로운 가치와 법을 도입하는 ‘창조’의 사건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막에서 이루어지는 히브리인의 원정, 지중해를 횡단하는 반달 부족의 원정, 스텝을 가로질러 가는 유목민의 원정, 중국인의 원정.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곳은 언제나 탈주선 위에서이다”(들뢰즈). 그런데 민족들이 투쟁하는 대륙에서뿐 아니라 철학의 평원에서도 동일하게, 노마드의 침입과 창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철학에서 주목할 만한 노마드의 발견은 칸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처음에 형이상학의 통치는 독단론자의 지배 아래서 전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독단론자의 입법에는 예전 야만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입법은 내란으로 인해 점점 무정부상태로 타락했다. 그 다음 회의론자들이 등장했는데, 그들은 정주하여 개간하는 일을 싫어하는 유목민과 같아서 종종 시민적 단합을 파괴했다.” 이 구절은 독단론적 성격을 가지는 합리론과 회의론으로 치달은 경험론의 싸움을 전제국가와 유목민의 극적인 상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륙의 독단론이 국가를 세우면, 영국 경험론의 노마드는 그것의 전제적 성격을 간파하고서 시민적 단합을 파괴한다.

 

그러니 영토를 닦아 합리론자들 이상의 체계를 세우려는 독일인들에게도 노마드는 하나의 위협일 수밖에 없다. 들뢰즈는 저 칸트의 구절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과 같이 노마드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독일은 끊임없이 토양을 갈고 다져야 한다. 다시 말해 건립해야만 한다. 건립하고 쟁취하려는 열정이 독일의 철학에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즉 그리스인들이 원주민들을 통해 소유했던 것을 독일은 정복과 창설에 의해 소유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영국은 독일에게 하나의 강박관념이다. 왜냐하면 영국인들은 철학의 내재적인 구도를 이동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토양으로 여긴다. 즉 그들은 그 구도를 바다 위의 섬에서 섬으로 옮겨 다니며 천막을 치기만 하면 되는 열도에 둘러싸인 어떤 세계로 취급하는 노마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텐트만 있으면 된다.”


그리스인들이 원주민처럼 그들의 일상적 삶과 일상적 언어를 통해 철학을 생래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면, 독일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겐 생래적이었던 사유를 학문적 개념의 형태로 애써 복원하여 다시 거주지를 형성해야 했다(예컨대 우리가 상실한 그리스 말의 어원적 의미를 애써 일깨우며 사유를 진행한 하이데거에게서 보듯이 말이다). 반면 경험론자들은 유목민들로서, 개념을 텐트에 넣어가지고 다니다가, 오로지 경험에 노출시켜 개념이 작동하는지 않는지 시험해본다. 이러는 사이 비경험적인 체계로 지어진 정주민의 거주지는 무너지는 것이다.

 

결국 노마드는 철학의 경험주의적 성격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 개념이다. 노마디즘의 한 예를 보도록 하자. 자신의 철학을 경험주의라고 칭하기도 하는 레비나스는 예술 철학의 문제와 관련하여, 정주적 성격을 지니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반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유목주의(nomadisme)는 정주 상태로의 다가감이 아니다. 그것은 거주지 없이 체류하는 것이며, 대지로 돌아갈 수 없음을 나타내는 일종의 관계이다.”

‘인간은 시적으로 대지 위에 거주한다’라는 횔덜린의 시구를 내세우며, 하이데거는 예술을 거주함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로 이해했다. 횔덜린의 시 ‘라인 강’은 라인 강이 본래적으로 있어야 할 거주의 자리를 밝혀준다. 예술작품으로서 그리스 신전은 그리스 민족이 본래적으로 거주하며 살아가는 자리를 열어준다. 이에 반해 레비나스는 유목적 삶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뿌리내림과 거주함의 바깥, 고향 상실이 본래성이다!” 예술은 우리가 익숙하던 거주의 자리에서 벗어나 우리를 유목민처럼 낯선 지역으로 내몰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레비나스의 노마드적 사유는 매우 흥미로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노마드라는 말을 통해 중요한 성찰을 진행한 또 다른 철학, 바로 또 다른 경험론자 들뢰즈의 철학을 위해 노마디즘의 정수 자리를 남겨 두어야겠다. 정주민적인 사상가들이 동일성이나 유비 같은 개념의 울타리 속에 가축들을 가두어 놓듯 존재자를 가두었다면, 어떤 개념의 울타리도 없이 존재자들을 방목하고자 했던 것이 들뢰즈의 노마드적 존재론이다. 들뢰즈는 주저 [차이와 반복]에 ‘방목하다’라는 말의 고대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구절을 남기고 있다.

“방목하다라는 말의 목축적 의미는 나중에서야 토지의 배당을 함축하게 된다. 호메로스 시대의 사회는 방목장의 울타리나 소유지 개념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당시 사회의 관건은 땅을 짐승들에게 분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짐승들 자체를 분배하고 짐승들을 숲이나 산등성이 등의 한정되지 않은 공간 여기저기에 배분하는 데 있다. 노모스는 우선 점유의 장소를 지칭하지만 그 장소는 가령 마을 주변의 평야처럼 명확한 경계가 없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노마드’라는 주제 역시 탄생한다.”

 

애초에 가축을 가르는 일은 울타리를 치는 목축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명확한 경계가 없는 장소에 가축을 풀어놓는 일, 유목이었다. 방목의 이러한 의미를 존재론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어떤 개념적 울타리를 통해 존재자에게 존재를 배분했던 것이 아니다. 경계 없는 존재 위에 존재자를 직접 풀어놓는 것이 관건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철학사를 통해 경험론적 사유가 이 과제에 도전해 왔다.


가령 로마 시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읽어보자. “단일한 것으로 지각된 순간 속에는, 이성이 발견해내는 수많은 순간들이 숨겨져 있다. 이런 까닭에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모든 종류의 시뮬라크르들(이미지들, 흔적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평균적 지각이 동일성을 지닌 사물로 보는 것의 배후에는 수많은 지각의 순간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이라면, 이 동일성의 원천으로 저 피안에 있는 이데아를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충실하자면, 동일한 사물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순간의 수많은 다른 지각들이 있을 뿐이다. 이는 동일성의 개념(울타리)에 매개하지 않고 존재자를 직접 존재의 대지 위에 풀어 놓는 존재론적 유목이 아닌가?


이러한 유목적 사유는 계사(繫辭)에 대한 들뢰즈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는 보통 계사를 통해, 주어 자리에 오는 동일성을 지닌 실체에 술어 자리에 오는 필연적이거나 우연적인 속성을 귀속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험 안에 있는 것은 동일성 개념이나 그에 부속하는 성질 개념에 매개되지 않는 감각들이 아닐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 ‘하늘은(est/is) 푸르다’는 동일성 개념에 매개된 존재자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임’과(et/and) ‘푸름’이라는 두 속성이 이웃하고 있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즉 계사의 정체는 접속사인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임’과 ‘푸름’의 가변적인 배치(agencement)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랭보의 표현을 빌려 “모든 감각들의 무질서(un dérèglement de tous les sens)”라 일컬을 수 있는 세계이며, 개념의 울타리 없이 존재자를 존재 위에 풀어 놓는 사고이다.


모든 감각들의 무질서로부터 정주민의 도시를 위협하는 유목민의 저 전쟁 기계가 생겨난다. 이것은 재앙인가? 오히려 존재자들을 동일성이나 신학적 질서를 표현하는 유비 같은 개념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직접 존재 위에 개방하여, 존재자들을 새롭게 배치해보라는 행운이 우리 손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억압적 효과들을 발휘하는 개념의 체계 바깥에서 존재자들을 방목해볼 최초의 행운, 유목적 삶의 행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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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스 [pathos]

생각/내용 2010. 12. 11. 10:04


철학상의 용어로 정념() ·충동 ·정열 등으로 번역되며 로고스(로고스란건.. 쉽게말해서.... 옳은것을 찾아가는 분별력을 가진 이성을 뜻하고요..파토스란건.. 주위상황에따라 변하는 기분.... 그러니까.. 쾌락이나.. 뭐 그런거요.. 그런걸 뜻해요..)와 상대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어 paschein(받다)에서 파생된 말로 근본적인 뜻은 ‘받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광의로는 어떤 사물이 ‘받은 변화상태’를 의미하고, 협의로는 특별히 ‘인간의 마음이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수동성 ·가변성이 내포되며 그때그때 내외의 상황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받는 기분 ·정서를 총괄하여 표현한 말이다.

이성의 판단과는 다른 원천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쾌()’ ‘고()’의 정()이 기본이 되고 고전윤리학에서는 쾌 ·고의 정을 이성의 판단에 따르도록 하는 것을 ‘덕()’이라고 하였다.

파토스는 종종 이성의 명령에 반항하기 때문에 스토아학파에서는 이것을 병()이라고 하였다.

파토스는 각성적() 의식보다도 의식하()의 근원충동()에 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인간 존재의( 또는 ) 존재상황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인간 존재의 근원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학에서는 대상의 자극을 받아서 생기는 감정을 말하며 특히 현대에는 감정의 격앙 ·격정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1만원을 주웠는데.. 그것을 찾아줘야한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있고.. 옳은 것이죠..이것이 로고스죠.. 그렇지만... 그것을 찾아주느냐 않찾아주느냐에 대한 갈등..... 이것이 파토스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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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에 "Children can learn many things on the internet"이라고 인터넷의 유익한 점을 명시해놓고

바로 아래는 곰 인형이 옷을 벗는 사진을 놓아서 앞의 "Children can learn many things on the internet"이 반어적인 문구가 되게 만들었네요.

즉, 애들이 인터넷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외설적인 사이트나 야한 동영상 같은 걸 보고 정서상

유해한 것도 배울 수 있다고 한 것이지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기서 페이소스 또는 파토스는 곰 인형이 털가죽을 벗고 있는 데 있네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인형이 털 껍데기가 벗겨져 있거나 눈알이 없거나 한 것은

아이들이 오래 가지고 놀면서 의도치 않게 훼손시킨 것, 또는 고장낸 것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어린이의 천진난만함, 순수함을 나타내는 곰 인형의 털가죽이 벗겨져 있는 것은

의도된 것이지요. 외설적인 사이트에서 누드 모델을 흉내낸 것이랄까. 그로 인해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이 훼손된 것을 보여주네요.

그러니까 곰인형이 환기시키는 어린시절의 순수가 훼손된 모습으로 제시되어

페이소스를 자아낸다고 볼 수 있죠. 게다가 그 위에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문구는

그 원인이 인터넷의 유해 사이트에 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여 이 페이소스를 통해 광고의 설득력

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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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名言)이나 격언(格言), 잠언(箴言)은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는 말 또는 학문 등의 핵심을 간략하게 외우고 말하기 쉽게 그 내용을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 속담과도 비슷한 말이며 보통 속담은 일반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나와 그 작자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고 명언은 저명한 사람의 발언 또는 문장이나, 작자는 불명하나 널리 알려진 고전에서 유래한 것을 가리킨다.


아포리즘에 대한 정의 (모리와 함께  화요일)

 

Aphorism: An aphorism is a short witty sentence which expresses a general truth or comment.

아포리즘은 일반적인 사실이나 의견에 대한 짧은 재치있는 문장을 말한다

- 출처: Collins Cobuild Advanced Learner’s English Dictionary


아포리즘깊은 진리를 간결하며 압축된 형식으로 표현한 짧은  (금언격언잠언경구 )

- 출처민중서림 엣센스 국어사전

 

아포리즘이란 위의 사전적 정의와 같이 짧은 형식으로  금언을 말합니다

아포리즘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게  책은

바로 모리와 함께  화요일인데요 (Tuesday with Morrie)

노교수와 제자사이의 대화에서

노교수의 아포리즘을 제자가 경청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모리의 대표적인 아포리즘을 보기로 할까요?

 

Accept what you are able to do and what you are not able to do.

Accept the past as past, without denying it or discarding it.

Learn to forgive yourself and to forgive others.

Don’t assume that’s its too late to get involved.

 

너가 할수 있는 것들과 할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라

과거는 과거로써 받아들이되 그것을 부정하거나 버리려 하지 말아라

너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남을 용서하라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단정하지 말아라

- 출처: Tuesday with Morrie

 

위의 아포리즘을 사랑에 대해 제가 재해석 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너가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라

남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남이 너를 사랑하게  수는 없다

지나간 사랑은 과거로써 받아들이되

그것을 애써 지우려하지말고버리려 하지 말아라

과거는 과거로써 아름다울 뿐이지다만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끝에는 당신 그리고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고 나를 용서하고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남을 용서하라

 

사랑이 끝났다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네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때다

지금 행동하라





“내가 누구인지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

 

그는 책의 서문을 그렇게 썼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반인반수의 사티로스(Satyros)가 되기를 원했다. 사티로스는 얼굴은 사람이지만 몸은 염소이며, 머리에 작은 뿔이 난 디오니소스의 시종이다. 주신을 모시는 시종답게 술과 여자를 좋아하며, 과장된 표현과 몸짓으로 우스꽝스러움을 자아내는 급이 뚝 떨어지는 잡신이다.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며 디오니소스의 시종을 희망한 이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그리고 이 책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제목과 서문도 파격이지만, 본문은 한 술 더 뜬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질문을 던지고 차례로 응답한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세상에!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깜찍한 소녀들도 “난 너무 예뻐요”를 노래할 때는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콧수염을 기른 근엄한 얼굴의 19세기 철학자가 정색을 하고 “난 왜 이렇게 현명한가”라니!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니체는 도발적으로 글을 썼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글을 물고기를 낚기 위한 낚싯바늘로 표현하기도 했다. 독자를 유혹하기 위한 글이라는 것이다. 요즈음 인터넷 용어로 말하면, 그는 ‘낚시질’의 원조인 셈이다. 그의 낚시질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그는 [선악의 저편]에서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떠한가”는 질문을 던지고, [도덕의 계보]에서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단정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우상의 황혼]에는 ‘망치를 들고 철학 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모두를 위한 책이면서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개인적으로 니체는 공손한 사람이었다는 게 니체 전기 작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글로 보는 니체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거만하고, 무례하며, 위악적이다. 그는 굳이 그 점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과장한다. 그는 왜 존경 받는 성인이 되기보다 지탄 받는 사티로스가 되기를 희망했을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답을 안다.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도전을 한 무신론자이며, 객관적 진리를 향한 형이상학적 전통에 반기를 든 반형이상학자이고, 보편적 도덕 가치를 정초하는 시도 자체가 무망하다고 본 비도덕주의자다. 그러한 도발적 주장 때문에 니체 철학은 한편으로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비합리적인 철학의 전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용감한 철학으로 상반되는 평가를 받아왔다.


잠깐! 여기서 짚어보자. 니체는 신을 믿지 않은 최초의 무신론자인가? 아니다. 역사의 시계를 멀리 돌릴 필요도 없다. 니체가 철학의 스승으로 삼았던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도 신을 믿지 않았다. 니체는 형이상학에 반기를 든 최초의 반 형이상학자인가? 아니다. 형이상학을 반대한 근대 철학자는 너

무 많아서 거론하기조차 힘들다. 대체로 근대 경험론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에 반대한다. (David Hume)은 형이상학 책은 불태워버리라고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또 물어보자. 니체는 도덕적 가치의 보편성을 의심한 최초의 인물인가? 아니다. 도덕적 회의주의의 흐름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 이후 도덕적 보편주의를 주장한 철학적 흐름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니체 철학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가?

 

그 비밀의 열쇠는 니체가 주장한 내용에서 찾지 말고 니체가 주장한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니체 철학은 아포리즘(aphorism)의 철학이다. 그가 쓴 글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경구에서부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비교적 긴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아포리즘이다. 아포리즘은 간결하지만 다의적이다. 쉽게 전달되지만 모호하다. 누구나 쉽게 니체를 읽지만, 니체 철학의 이해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는 왜 이렇게 글을 썼을까? [차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피와 아포리즘으로 쓰는 사람은 읽혀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산과 산 사이를 가장 빨리 가는 길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가져야만 한다. 아포리즘은 봉우리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듣게 된 자들은 키가 크고 높이 솟은 자여야 한다”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아포리즘은 천천히 음미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아포리즘은 사물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포리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을 낯설게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지각 경계를 흔든다.












니체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신은 죽었다”는 말도 그렇다. 이 말은 관찰에서 나온 주장이 아니다. 신의 죽음은 ‘소식’의 형태로 전달된다. 그 소식을 전하는 자는 ‘광인’이다. 1인칭 시점으로 즐겨 글을 쓰는 니체가 이 대목에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광인을 등장시켜 그 소식을 전한다. 그런데 그게 묘하다. 광인은 이 소식을 기쁘게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광인은 시장 바닥에서 신을 찾다가 마침내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외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절규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어떻게 우리는 모든 살해자 중에서 살해자인 우리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가?”라고.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존재가 우리의 칼 아래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며, 이제 누가 우리를 위해 속죄를 해줄 수 있는가 묻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신의 죽음이라는 놀라운 소식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니체는 이 광인이 전하는 신의 죽음을 이렇게 맺는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날 광인은 몇몇 교회에 뛰어들어 신의 진혼곡(requiem aeternam deo)을 불렀다고 한다”.     

 

[즐거운 학문]에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광인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인물로 바꾸어 무덤덤하게 한 마디 한다. “저 사람들은 아직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모양이지”.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사건을 ‘근래의 최대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이 사건을 극화해서 전한다. 영어권 세계에 니체 철학을 소개한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은 이 극화된 장면이 성가에서 차용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신의 죽음은 과학적 관찰이 아니고, 형이상학적 고찰도 아니며, 19세기 유럽문화에 대한 니체의 상황 진단이다. 이 극화를 통해서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주장처럼 신은 원래 없었으며 단지 인간의 속성이 외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우화적 표현은 광인이 전하는 신의 죽음이라는 사건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을 조롱하고 비웃은 당대 유럽 문화에 대한 고발에 초점을 맞춘다. 신의 죽음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신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신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신의 죽음 이후에 또 하나의 신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신을 죽이고 난 후, 그 신이 남긴 흔적은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새로운 신을 만들어 죽은 신의 자리를 메웠다.      

 

그렇다면 새로운 신은 누구인가? 니체는 그것을 콕 짚어서 주장하지 않는다. 아포리즘을 통해서 기독교 신의 죽음과 새로운 신의 조짐을 경고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새로운 신을 과학으로 읽는다. 종교적 미신이 사라진 자리를 과학적 미신이 차지했다고 바라본다. 어떤 이는 새로운 신을 근대(modernity)로 읽는다. 종교적 신화는 죽었지만, 이성과 계몽을 축으로 하는 근대 신화가 새롭게 생겨났다고 본다.

 

니체는 신이 남긴 유산을 완전히 털어버리기를 원한다. 신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이 죽었다는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또 다시 아포리즘을 동원한다. 그 아포리즘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때로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초인을 통해서, 때로는 디오니소스라는 그리스 주신을 통해서, 때로는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라는 한때 그가 숭상했던 인물에 대한 혹독한 실명 비판을 통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아포리즘이 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과 예술의 장에서 주로 논의되던 니체를 철학의 장으로 이동한 20세기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그것을 니힐리즘(nihilism)으로 읽는다. 니체는 그의 초기 작품 [비극의 탄생]에서 세계의 근저는 그가 스승으로 삼은 디오니소스적인 심연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 심연을 덮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노력이 영원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플라톤이 세운 이데아의 왕국은 그런 영원한 세계를 지향한 것이며, 기독교가 만들어낸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플라톤 철학을 대중화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는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나 플라톤 철학이 말하는 이데아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감내하지 못하는 인간이 자기 보존을 위해 만든 조건일 따름이다. 삶의 자기 보존을 위해 만든 것을 니체는 ‘가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모든 가치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곧 ‘니힐’(nihil)이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디오니소스적 심연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니힐리즘의 역사다.


이런 틀에서 보면 기독교는 니힐리즘이고, 플라톤 이후 지금까지 서양 형이상학도 니힐리즘이며, 도덕의 보편 가치를 주장하는 도덕주의자도 니힐리즘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적 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 그리고 도덕적 세계를 최초로 부정한 철학자도 아닌 니체가 왜 그렇게 위험한 철학자로 취급되었는가 하는 단서를 하나 움켜잡는다. 니체는 지금까지 인류가 세운 모든 가치 체계가 니힐리즘이라는 점을 통찰한 철학자다.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인류가 세운 고귀한 가치를 집어 던진다. 그래서 니체는 고귀한 성인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저속한 사티로스가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풍자(satire)는 그 어원이 바로 사티로스에서 온 말이다. 니체는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독한 말을 내뱉기 위해 사티로스를 희망한 것은 아닐까?

 

지난 세기 후반기에 니체 읽기, 또는 니체 식으로 세상 읽기는 하나의 사조로 퍼져나갔다. 그 불을 지핀 것은 프랑스어권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원화된 세계를 해석하는 틀로 니체의 아포리즘을 이용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단 하나의 니체 철학이 있다는 점에 반대한다. 니체 철학은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푸코는 니체 철학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니체 철학이 우리 삶에 어떤 효용성을 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니체 철학이 본질적으로 복수주의(pluralisme)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니체를 니힐리즘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창조적인 생성의 철학자로 적극 해석한다. 생성과 다원성, 그리고 얼핏 보기에 무질서하고 엉뚱해 보이는 우연성이 니체가 제시한 아포리즘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진 니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로 니체만큼이나 오만했고, 니체처럼 음울했던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떠올린다. 니체는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히브리스(hybris)라는 위험한 단어는 모든 헤라클레이토스주의자의 시금석이다. 바로 거기서 그가 자신의 스승을 이해했는지 또는 오해했는지 드러내 보일 수 있다”.

 

히브리스는 무례하고 거만함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술 마시고 방자한 행동을 하는 것도 히브리스 범주에 들어간다. 타인을 모욕하고 수치심을 주는 행위, 자신을 과시하면서 잘난 체 하는 행동도 모두 히브리스다. 그리스인들은 히브리스를 잘 다스리는 데서 미덕이 나오고, 히브리스가 날뛰는 데서 악덕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비극은 히브리스가 날뛰는 데서 오는 불행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니체 철학에 따르면, 히브리스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니체가 꿈꾸는 미래의 철학이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 하는 여부는 히브리스가 가진 이중성을 이해하는 데 달려있는 셈이다. 물론 니체와 니체주의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반면 니체에 반대하는 이들은 니체 철학 자체가 히브리스이며 니체의 철학적 사유가 정지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러셀이 니체 철학을 일종의 낭만주의적 흐름으로 보는 이유다. 어원적으로 보면, 니체 철학이 크게 의존하는 아포리즘이라는 말에는 이미 경계를 확정 짓는 지평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은 니체의 기획이 히브리스의 위험성을 뛰어넘는 생각의 새 지평으로 보는가, 아니면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철학적 히브리스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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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자유주의는 최소한의 국가 개입을 제외한 모든 개입에 반대하는 것을 주된 사상으로 주장한다....결론 자체보다 추론이 훨씬 더 중요하다. 
훔볼트의 [국가행위의 한계]에서 국가는 '인간을 국가의 자의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으면서 인간 개인의 목적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은 그 본질상 자유롭고 탐색적이며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조재이기 때문에 결국 국가는 대단히 반인간적인 제도라는 결론이 나온다.  10
만약 어떤 사람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즉 자기의 관심과 에너지와 힘으로 일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요구나 지시에 반응할 뿐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존경할지 모르나 그 사람의 인격은 경멸한다.'  13
훔볼트는 만약 자유가 자유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까지도 생각할 수 없도록 사회의 토대를 파괴한다면 사회생활에 대한 국가 개입은 정당하다는 데 동의한다.  19
고립된 인간은 속박 당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20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무능력은 도덕적·지적 힘의 결핍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  42


신자유주의는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를 정의해 주는 패러다임이다. 정확하게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이익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분야에서 사회르 ㄹ지배하도록 허용한 정책과 조치를 가리킨다.  97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힘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경격적인 시대를 대표하는 이념이다.  99
신자유주의는 시장 경제를 반대하는 세력을 억누르면서, 단순한 경제시스템을 넘어 정치와 문화까지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하고, 정치적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정부다.  100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들어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즁요하면서도 필연적인 부산물 즉, 탈정치화된 국민들의 무관심과 냉소를 낳게 된다.  101
신자유주의 선거의 선택과 토론의 질은 여러 면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일당독재이던 공산주의 국가에 더욱 비슷하다.  102
신자유주의는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를 만들어내며, 공동체가 아니라 쇼핑센터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 결과로, 기가 꺾이고 사회적인 무력감을 호소하며 뿔뿔이 흩어진 개인만이 존재하는 원자사회가 남게 된다.  103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절대적인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104
촘스키는 자유시장이라는 신화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시장은 결코 공정한 경쟁터가 아니다.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지닌 거대기업이 대부분의 경제를 지배한다.  105
신자유주의 이념에 도취된 기업도 정부만큼이나 위선적이다.  106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야말로 촘스키 정치사상의 뿌리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낙관주의에서 출발해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 다양성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정치형태를 모색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이다.  114

촘스키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정치사상가이며, 주류 정치권과 대기업 집단, 매스미디와 교육을 장악한 인텔리 전문가들의 선전공세를 벗어나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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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전 될 때 민주주의(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노학자의 열정이 그의 모든 글에서 느껴진다.  4
촘스키는 미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미국은 범죄국가'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촘스키적 분석 방법을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어야 한다.  6

프롤로그
그는 도사(導師)도 아니고 철인(哲人)도 아니며 정치 투사도 아니다. 우리에게 생각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지식인이다. 
그가 전하는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11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 하라는 것이다.
"누구라도 내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정치계와 사회집단이 우리에게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만의 생각만이 필요합니다."
노암 촘스키의 책들은 미국의 정치 상황을 명쾌하고 정밀하게 분석하기도 하지만, 서구 민주주의에서의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2
누군가에게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그것이 곧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16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 년전부터 그랬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22
사회가 자유로워 질수록 무력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25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합니다.  28
선생님은 '지식인'을 어떤 사람이라 정의 하십니까?  마음가짐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지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 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저명한 지식인이 곧 진정한 지식인이라 말할 수 는 없습니다. '테크노크라트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에 분란의 씨앗을 뿌리는 무책임한 지식인도 있기 때문.  31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37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46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신자유주의 라는 이름 아래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입니다.  59
정교하게 꾸며진 전략의 결실이 바로 여론 조작입니다.  67
개똥철학 즉 사람드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지배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으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68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71

자본주의는 없다.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87
사람은 현지 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없지만, 유기적 존재인 기업은 그런 권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89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90
우리는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기적 결과가 무시되어 정책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습니다.  96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회계상의 이동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자나라들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기업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 입니다.  111
미국을 대표하는 제약기업 중 두 회사, 릴리와 스미스클라인이 주의사항을 제대로 기재하지 안은 약품들을 유통시켜 8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기소당했습니다. 이때 두 회사는 80명을 죽인 대가로 겨우 8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길거리에서 80명을 죽였다면 곧바로 사형실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113
법이 존재하고 사법권이 운영되지만, 권력자에게는 커다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115
여론의 압력이 더해질 때는 어떤 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117
여론이 잠에서 깨어나 압력을 가하면 모든 것이 별할수 있습니다.  119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121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연방최고법원이 기업에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 기업이 법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125
그후로 기업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식 그 권리를 확대시켜 나갔다.  126
각 정부는 모든 협상을 비밀리에 진행합니다. 국민이 반대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27
기업계는 이제 국가 정책까지도 당당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에게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지배하고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130
문제는 세계화 입니다.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점을 지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입니다.  133
시장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계화는 미국식 모델을 전 지구에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화의 목표이고 결론입니다.  135
세계화 자체는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계화는 민간 기업과 국가가 쌍둥이처럼 밀착해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135
경제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직접 소유한 부의 크기입니다.  136
1991년 부터 1998년까지 상위 0.5%는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상위 10%에 속한 국민도 요령껏 재미를 보았지만, 다음 10%에 속한 국민 중 80~90%는 수입과 자산이 1998년까지 실질가치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몰론 그 아래 단계의 국민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137
국민이 지배계급의 독선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화된 힘으로 그 문제를 주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143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미국에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거의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입니다.  149
군부가 이처럼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는?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155
정부는 야만적인 무력의 사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도 국민의 정신 통제까지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더욱 교묘한 방법이 사용됩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과 영국에서 홍보산업이 월등히 발전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겁니다.  157
기업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세계는
첫째, 텔레지전입니다. 이것은 각 가정마다 잇어서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과도 단절시키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둘째, 엘리트 계급이 우려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158
정치계를 주름잡는 엘리트 집단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59
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문제의 학설에 접근하는 순간부터 대단한 내용이 있을 것이란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한 개인을 신격화하면, 그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입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63
기존 생각에 변화가 있을 때 혁명이 일어납니다.  164
모든 형태의 지배구조를 찾아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는 지배구조는 부당한 것입니다.  165
내란의 성격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정치체제와 내란의 관계를 일반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167
때때로 국민은 세상사를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지만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언론은 민간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일 뿐입니다.  168
대중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69
적잖은 고통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171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인터넷은 거대한 시장입니다. 대기업은 인터넷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홀용하려 합니다. 인간의 소외를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말입니다. 결국 대중이 이런 음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터넷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181 
미국의 공영 텔레비전은 지나칠 정도로 편협한 시각을 보입니다.  185
권력층은 비난하지 않는다. 이거이 그들의 원칙입니다. 가난한 흑인은 암살해도 상관없지만 권력을 움켜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191
정보(Information)는 적잘한 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정보라 표현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198
비판정신이 실종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 경쟁 때문이 아닙니다. 깊이가 없는 커뮤니케이션 탓입니다.  199
내 생각에, 현재으 인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기억을 지워 없애려고 고안된 것입니다.  201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라면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자유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비밀로 감추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문서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220

에필로그 
양식(良識)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다고 믿을 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 친위대원이 될 수도 있고 성인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230


촘스키는 모든 '주의(-ism)'와 이중 잣대를 거부한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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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어학자로서 변형생성문법 이론으로 언어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1960년대부터 활발히 사회운동에 참여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별칭언어학 혁신의 아버지
국적미국
활동분야어학
출생지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
주요저서《언어 이론의 논리적 구조》(1955) 《통어론적 구조 Syntactic Structures》(1957) 《통어 이론의 제상 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1965) 주요작품


1928년 12월 7일 미국의 펜실베니아주(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정의 2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William Chomsky)는 저명한 히브리어 연구자였으며 촘스키가 언어학자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언어학수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1955년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9년에 언어학자인 캐롤 슈워츠 촘스키(Carol Schatz Chomsky)와 결혼했으며, 1950년대에는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qibbutz)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56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교수가 되었고, 1966년 석좌교수, 1976년부터는 연구교수가 되었다.  

그는 1951년부터 1955년까지 하버드대학교의 특별 연구원으로 선임되었는데, 이 기간에 《변형 분석 Transformational Analysis》이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변형생성문법 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이론의 기본 틀을 정립하였다. 그는 1955년 논문의 내용을 발전시켜 《언어학 이론의 논리적 구조 The Logical Structure of Linguistic Theory》라는 책을 집필하였고,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이 책은 등사판으로 유포되었다가 1975년에 정식 출간되었다). 그리고 《통사 구조 Syntactic Structures》(1957), 《통사론의 여러 측면 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1965), 《생성문법 이론의 여러 문제 Topics in the Theory of Generative Grammar》(1966), 《영어의 음성양식 Sound Pattern of English》(1968, Morris Hall과 공저), 《언어와 정신 Language and Mind》(1968), 《언어지식 Knowledge of Language》(2000), 《최소주의 언어이론 The minimalist program》(2001) 등의 저작으로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며 언어학의 혁명을 주도하였다. 

촘스키는 현대 언어학의 발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언어학자이다.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 이론은 개개의 언어수행(performance)에 앞서 존재하며 그것을 생성시키는 인간의 보편적인 언어능력(competence)과 언어규칙에 대한 탐구로 언어학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는 ‘촘스키 혁명’, ‘언어학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 언어학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의 언어 이론은 인지과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들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촘스키는 언어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비판과 사회 참여에 앞장서는 실천적인 지식인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6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기점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1967년에는 국방성과 국무성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저작과 강연, 대담, 영상물 등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대외 정책과 정치·경제·매체를 장악한 권력을 비판해 왔으며, 직접 실천 행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야만성에 대한 비판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활발한 사회 참여 때문에 그는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하며,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 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1995)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언어학 이외에도 정치학, 철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80여 권의 저서와 1천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특히 강대국의 패권적인 대외 정책과 언론, 지식인의 유착 등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활동에 앞장서, 《숙명의 트라이앵글 -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Fateful triangle : the United States, Israel and the Palestinians》(1983), 《여론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Manufacturing Cons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Mass Media》(1988, 에드워드 허먼과의 공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What Uncle Sam Really Wants》(1996),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Profit over people : neoliberalism and global order》(1999),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Year 501, The Conquest Continues》(2000), 《불량 국가 Rogue states》(2001) 등의 저작을 남겼다. 이러한 저작들과 강연, 대담 등을 통해 그는 다국적기업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문제와 강대국의 대외 정책에서 나타난 폭력성, 이에 융합된 사회 내의 권력 등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글들은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널리 읽히며 큰 영향을 끼쳤다. 


변형생성문법 [變形生成文法, 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

미국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가지고 있던 난점을 타파하고, 언어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언어구조를 기술해야 한다는 N.촘스키에 의하여 제안, 발달된 문법.

변형문법·생성문법이라고도 한다. 종래의 미국 구조언어학에서는 분석 대상의 언어가 실제 회화에서 사용된 언어, 즉 언어체(corpus)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 능력은, 화자가 전에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문장을 포함하여 무한히 많은 수의 문장을 생성,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실제 회화에서 사용된 언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있을 수 있는 문장도 연구 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문법적으로 옳은 모든 문장, 그리고 바로 그것만을 생성해 낼 수 있는 언어규칙을 명시적으로, 또 엄밀히 수학적으로 형식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렇게 형식화된 언어규칙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언어능력, 또는 언어습득 기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문법은 언어보편성()을 그 주장의 근저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선천적으로 언어습득 기제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을 체계화하여 변형생성문법의 기본 틀을 이루고 있는 이론이 발표된 것은 그의 《통사이론의 제양상: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1965)에서였다. 이것은 나중에 표준이론으로 불리게 되는데, 문법의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① 통사부문():이것은 크게 보아 기저()와 변형규칙()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저는 다시 범주규칙인 구절구조규칙() 부문과 어휘부()로 구성된다. 

구절구조규칙에는 순환규칙()이 포함되어 있어서, 종래의 단문 외에도 여러 복합문과 무한히 긴 문장이 생성되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구절구조규칙은 시발부호인 S(문장)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단계에는 복합부호()로 불리는 여러 가지 문법적 정보를 가진 자질()의 복합체를 이루게 된다. 

한편 어휘부에는 단어들이 각각의 문법적 정보를 담은 자질의 복합체와 함께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어휘가, 자질들이 서로 상치됨이 없이 구절구조규칙에 의해 생성된 구조에 삽입되고 여기에 필수변형규칙이 적용되어 하나의 심층구조가 생겨난다. 

한편 변형부분은 필수변형규칙과 수의변형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심층구조는 이러한 변형규칙의 적용을 한 번 혹은 그 이상 받아서 표면구조로 도출된다. 그러나 변형규칙은 의미를 바꾸지 않는 제약을 가지고 있으며 기본변형규칙으로는, 첨가·삭제·대치() 등이 있다. 

② 의미부문():통사부문이 생성적 부문인 데 비해, 의미부문은 해석적인 부문이다. 즉 통사부문에 비해 생성된 심층구조의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는 부문으로 각 어휘에 대한 의미를 나타내는 부문과,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에로 의미를 조합해 가는 투사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③ 음운부문():이 부문도 의미부문과 마찬가지로 해석부문이다. 변형규칙의 적용을 받고 도출된 표면구조를 실제 언어와 같이 음성적 요소를 부여하는 부문이며, 일련의 음운규칙이 존재하며, 각각의 음운자질의 다발로 되어 있다. 이에 의하여 표면적으로 같은 문장일지라도, 심층구조에 차이를 두어 두 가지 이상의 해석을 가능케 함으로써 종래의 구조주의 문법이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쉽게 해결하게 되었다.

그후 이 이론은 크게 보아 두 갈래로 발전하게 된다. 변형규칙이 과연 의미를 변화시키지 않는가, 또 심층구조라는 것이 촘스키식의 통사구조가 아니고 의미구조가 아닐까 하는 등의 의문이 제기되면서, 확대표준이론으로 불리는 촘스키와 그의 제자 L.자켄도프의 이론은 의미해석을 심층구조와 표면구조에서 각각 해줌으로써 난점을 해결하려 하는 해석의미론()의 입장을 취하였고, 

그의 또 다른 제자들인 J.D.매콜리, E.J.바크, G.레이코프, T.로스, C.필모어 등은 변형규칙이 의미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심층구조가 곧 의미구조라는 주장의 생성의미론()의 입장을 취하였다. 다시 다른 관점에서 보아 전자를 어휘론자(), 후자를 변형론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후 변형문법은 주로 촘스키 계열의 제자들에 의하여 계속 수정·보완되어 왔으며, 근래에는 표면구조를 더욱 심화하여 모든 의미해석을 표면구조에서 하는 이른바 수정된 확대표준이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의하면 표면구조는 표준이론의 표면보다 훨씬 추상적인 구조이며, 이것은 이동변형이 일어나고 남긴 흔적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러한 의미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표면구조를 보강된 표면구조라고 부른다. 

최근의 변형문법은 이러한 체계를 더욱 발전시켜서, 문장구조 내의 지배와 묶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하위의 몇몇 규칙들(지배이론·묶음이론·주제이론·추상적 격이론·통제이론 등)의 상호작용으로 보편문법과 개별문법을 기술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한 보편문법은 다음의 네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어휘부(lexicon), ② 통사부:범주부문·변형부문, ③ 음운형태부문(PF-component), ④ 논리형태부문(LF-component). 

이 가운데 특히 변형부문에는 단 한 개의 변형규칙, 즉 명사구이동 변형규칙(Move NP)만 존재한다.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

촘스키는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동티모르와 코소보사태 등 약소국에 내정에 개입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 매체 역시 국가 이데올로기를 위해 모든 뉴스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다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의 저서

정치
  • 《지식인의 책무》(2005) 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 (1967)
  • · American Power and the New Mandarins (1969) ·
  •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하여》(2003) Problems of Knowledge and Freedom: The Russell Lectures.(1972)
  • 《숙명의 트라이앵글》(2001) The Fateful Triangle: The United States, Israel, and the Palestinians. (1983, 1999)
  • 《해적과 제왕》(2004) Pirates and Emperors: International Terrorism and the Real World. (1986)
  • The Soviet Union Versus Socialism (1986) ·
  • 《여론조작》(2006) Manufacturing Cons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Mass Media * (1988)
  • 《테러리즘의 문화》The Culture of Terrorism. (1988)
  • 《환상을 만드는 언론》(2004) Necessary Illusions (1989)
  •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2000년) Year 501: The Conquest Continues. (1993)
  •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2004) The Prosperous Few and the Restless Many.(1993, 2003)
  • Deterring Democracy (1992) ·
  •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1996년) What Uncle Sam Really Wants(1992)
  • 《노암 촘스키의 미디어컨트롤》(2003) Media Control: The Spectacular Achievements of Propaganda. (1997, 2002).
  • 《냉전과 대학》 (2001년)The Cold War and the University.(1997)
  •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1999년) Profit over People: Neoliberalism and Global Order.(1999)
  • 《불량국가》(2001) Rogue States: The Rule of Force in World Affairs (2000)
  •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2001) Chomsky on Mis-Education (2000)
  • 《촘스키 9-11》(2001) 9-11 (2001)
  • 《촘스키 사상의 향연》 Chomsky on Democracy and Education(2002)
  • 《패권인가 생존인가》(2004) Hegemony or Survival: America's Quest for Global Dominance (2003)
  • Objectivity and Liberal Scholarship (2003) ·
  • 《권력과 테러》Power and Terror: Post-9/11 Talks and Interviews.(2003)
  •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Middle East Illusions: Including Peace in the Middle East? Reflections on Justice and Nationhood. (2003)
  • 《촘스키, 미래의 정부를 말하다》(2006) Government in the Future.(2005)
  • 《촘스키의 아나키즘》(2007) Chomsky on Anarchism (2005)
  •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2006) Imperial Ambitions: Conversations on the Post-9/11 World.(2005)
  • 《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2006) Failed States: The Abuse of Power and the Assault on Democracy (2006)
  •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2005)
  •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2009) Perilous Power. The Middle East and US Foreign Policy. Dialogues on Terror, Democracy, War, and Justice (2006)
  • 《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2008) Interventions.(2007)
  •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What We Say Goes: Conversations on US Power in a Changing World.(2007)
  • 미국의 이라크 전쟁 Iraq under siege
  •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Penser le XXI siecle par le monde diplomatique 2000 par le monde diplomatique
  • 전쟁과 평화
  • 노엄 촘스키와의 대담 (한국과 국제정세)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Deux heures de lucidite : entretiens avec Noam Chomsky
  •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 Arguments against G8
  • 시대의 양심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Louder than bombs : the progressive interview


언어학 

  • 《생성문법론》Syntactic Structures (1957)
  • Current issues in linguistic theory (1964)
  • 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 (1965)
  • Cartesian Linguistics: A Chapter in the History of Rationalist Thought (1966)
  • 영어의 음성체계》(모리스 할레와 공저) (1968년) The Sound Pattern of English (1968)
  • Conditions on Transformations (1973)
  • The Logical Structure of Linguistic Theory (1975)
  • 《지배.결속이론:피사강좌》Lectures on Government and Binding: The Pisa Lectures (1981)
  • 《언어지식》 (2000년) Knowledge of language: its nature, origin, and use (1986)
  • 《장벽이후의 생성문법》 (1993년)
  • 《언어와 지식의 문제》 (1994년)
  • 《최소주의 언어이론》 (2001년) The Minimalist Program (1995)
  • New Horizons in the Study of Language and Mind (2000)
  • 《촘스키 자연과 언어에 관하여》 On Nature and Languag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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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121년 4월 26일 - 180년 3월 17일)이다. ‘철인황제(哲人皇帝)’로 불리며, 5현제 중 한 사람이다. 중국의 역사서 《후한서》에 기술된 ‘대진국왕(大秦國王) 안돈(安敦)’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끝났으며, 군인 황제 시대가 도래하였다.

생애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도미티아 루킬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3살 때 아버지가 죽자 3번이 집정관을 연임한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베루스에게 입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질이 특출하였던 그는 하드리아누스의 눈에 띄었다. 136년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후계자로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를 공표하였고, 같은 해 마르쿠스는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의 딸 케이오니아 아파비아와 약혼하여 일약 로마 정계 전면에 부상하였다.

그러나 138년 콤모두스가 죽자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의 고모부인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를 양아들로 맞아들여 새로운 후계자로 삼았는데, 나중에 그는 제위에 올라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하드리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마르쿠스를 자신의 양아들로 입적하였다. 이때 마르쿠스의 이름은 마르쿠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로 바뀌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나중에 마르쿠스의 약혼을 파기시켜 자신의 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와 약혼시켜 결혼시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루키우스 베루스와의 공동 통치를 한 뒤에 단독 황제가 되었다.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시리아 속주에 있어서의 파르티아의 침공 등 수많은 전쟁에 슬기롭게 대처하였다. 지금까지의 5현제의 관습을 타파하고 친아들인 콤모두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여 5현제 시대는 끝나게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기 180년 3월에 게르만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다뉴브 강의 진중인 시르미움 근처에서 병에 걸려 급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하드리아누스 영묘에 안치되었으며, 원로원은 그를 신격화하였다.

한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사색과 철학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쓴 《명상록》이라 불리는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정신적 스승이었던 에픽테토스세네카와 함께 스토아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금욕과 절제를 주장하였으며 수많은 명언을 남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였다. 전쟁터에서 틈틈이 쓴 그의 <자성록> 12편은 로마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인 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언제나 인정이 많고 자비로워 백성을 널리 사랑하였으나 정책상 크리스트 교도를 억눌렀다. 그의 유명한 저서인 <명상록>에는 철학인으로서의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로마 제국 16대 황제
재위 기간 공동 황제:161년 3월 7일 - 169년
단독 황제:169년 - 180년 3월 17일
타고난 이름 136년 이전-카틸리우스 세베루스
136년 이후-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황제 이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공동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
후임 황제 콤모두스


















로마 제국 16대 황제/161년 3월 7일 - 169년/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제국 16대 황제/161년 3월 7일 - 169년/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 기마상은 고대 세계에서 살아 남은 몇 안 되는 조각 작품 중 하나다. 기독교도들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로마 기마상을 파괴했지만, 이 작품은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의 조각상으로 오인하고 내버려두었다. 이 조각상은 2세기부터 로마 시내에 세워져 있었으나 1980년 공해를 피해 실내로 옮겨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121년 4월 26일 -180년 3월 17일)이다. ‘철인황제(哲人皇帝)’로 불리며, 5현제 중 한 사람이다. 중국의 역사서 《후한서》에 기술된 ‘대진국왕(大秦國王) 안돈(安敦)’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끝났으며, 군인 황제 시대가 도래하였다.

생애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도미티아 루킬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3살 때 아버지가 죽자 3번이 집정관을 연임한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베루스에게 입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질이 특출하였던 그는 하드리아누스의 눈에 띄었다. 136년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후계자로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를 공표하였고, 같은 해 마르쿠스는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의 딸 케이오니아 아파비아와 약혼하여 일약 로마 정계 전면에 부상하였다.

그러나 138년 콤모두스가 죽자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의 고모부인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를 양아들로 맞아들여 새로운 후계자로 삼았는데, 나중에 그는 제위에 올라안토니누스 피우스가 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하드리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마르쿠스를 자신의 양아들로 입적하였다. 이때 마르쿠스의 이름은 마르쿠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로 바뀌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나중에 마르쿠스의 약혼을 파기시켜 자신의 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와 약혼시켜 결혼시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루키우스 베루스와의 공동 통치를 한 뒤에 단독 황제가 되었다.게르만족의 침입이나 시리아 속주에 있어서의 파르티아의 침공 등 수많은 전쟁에 슬기롭게 대처하였다. 지금까지의 5현제의 관습을 타파하고 친아들인 콤모두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여 5현제 시대는 끝나게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기 180년 3월에 게르만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다뉴브 강의 진중인 시르미움 근처에서 병에 걸려 급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하드리아누스 영묘에 안치되었으며, 원로원은 그를 신격화하였다.

한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사색과 철학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쓴 《명상록》이라 불리는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정신적 스승이었던 에픽테토스세네카와 함께 스토아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금욕과 절제를 주장하였으며 수많은 명언을 남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였다. 전쟁터에서 틈틈이 쓴 그의 <자성록> 12편은 로마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인 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언제나 인정이 많고 자비로워 백성을 널리 사랑하였으나 정책상 크리스트 교도를 억눌렀다. 그의 유명한 저서인 <명상록>에는 철학인으로서의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2001년 아카데미 5개 부문 수상작인 영화 ‘글래디에이터’ 끝부분에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망나니 아들 콤모두스가 반란에 실패한 막시무스(러셀 크로)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쇠사슬에 묶인 막시무스는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콤모두스에게 말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죽음이 우리에게 미소 짓고 다가오면 미소로 답하라’고 말했지.” 그러자 콤모두스는 “그 친구도 죽을 때 웃었는지 궁금하군”이라며 ‘그 친구’와 막시무스를 비웃는다.

그러자 막시무스는 ‘그 친구’가 바로 콤모두스의 아버지라고 알려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막시무스는 미소로써 죽음을 맞는다. 막시무스야말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을 실천한 ‘진정한 아들’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영화 속 막시무스는 가공의 인물이고 두 사람의 대화도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음이 우리에게 미소 짓고 다가오면 미소로 답하라’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180년 3월 17일 사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였다. 그는 죽음을 기뻐하라고 당부한다. 죽음을 자연의 한 과정으로 기다리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 맞는 태도라는 것이다.

“지나온 날을 헤아리지 말며, 그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 데려 온 것은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연출가의 명에 따라 무대를 떠나듯이. 아직 연극의 5막을 다 끝내지 못했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인생에서는 3막으로 극이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가의 소관이지 네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요컨대 인생의 종말이 언제 오건 평정을 잃지 말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라는 당부다.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는 다 같이 행복을 추구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학파가 ‘쾌락’에서 행복을 기대한 것과 달리 스토아 학파는 ‘지혜’를 통해 행복을 추구했다. 그들은 감정을 억제하고 용기 있게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귀감으로 삼았다.

노예를 ‘살아 있는 도구’로 간주하던 고대 세계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평생 노예 출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55~135)를 스승으로 흠모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에픽테토스에게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형제라는 만민평등사상을 배웠다. 스토아 철학이 로마법, 특히 만민법의 기초가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로마법은 그 후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 법체계에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와 ‘만민평등의 휴머니즘’은 우리 시대에도 빛을 발한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A bust of Faustina the Younger, Marcus' wife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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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usoleum of Hadrian, where the children of Marcus and Faustina were bur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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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 of Vologases IV, king of Parthia, from 152/53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이른 아침,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오늘도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거만한 사람, 남을 속이거나 중상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이러한 악덕(惡德)은 선악에 대한 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의 본질은 아름답고 악의 본질은 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잘못 범하는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 혈통을 같이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성(理性)과 신성(神性)의 일부를 나누어 갖는다는 뜻에서 동류지(同類者)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해를 입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내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추악한 일에 빠져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동류자들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을 기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치 손발이나 눈시울이나 아래윗니처럼 서로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적대시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우주 만물은 줄곧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다. 우연히 발생하는 일도 자연의 원리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며, 모든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다스려지며 모두 이 섭리와 관련이 있다. 만물은 그 섭리에서 흘러나오고 우주 전체의 이익도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당신도 이 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밖의 모든 것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본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그 본성을 계속 간직하는 것은 선(善)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신의 섭리인 자연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자연의 한 속성(屬性)이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것은 부분적으로 변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도 변한다. 그런 원리를 이해하고 또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그에 따라 행동하라. 자연의 변화에서 만족을 찾으라. 그리하여 고뇌없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신들에게 감사하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라. 

당신은 지금까지 이 우주의 작은 부분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을 태어나게 한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당신은 변화에 의해 생성(生成)의 원리 속으로 되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천년이나 만년이라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지금도 죽음은 다가오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아직 능력이 있을 때 선한 일을 하라. 

이웃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관심을 쏟고 그 일이 정당하고 신의 뜻에 합당한가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절약할 수 있다.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타락한 모습을 돌아봄이 없이 곧장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날아갈 뿐이다. 

사후에 명성을 남기려고 연연해하는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역시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떠한 명성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을 통해 전해지다가 결국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설사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그들의 기억 역시 영원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당신이 이미 죽은 후에 그들의 찬양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살아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뜻이 있겠는가? 고작해야 어떤 편의(便宜)가 제공될 뿐이다. 아무튼 당신이 후세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소모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연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현재를 잘못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든 아름다운 것은 결국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 자체에 본성이 있는 것이지 어떤 외부적 요소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찬양이 아름다움이란 본질의 일부분이 될 수는 없다. 찬양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자연물, 예술 작품, 자연 현상 등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그런 찬사가 필요하지 않다. 법칙이나 진리, 자비심, 겸손 등이 찬양을 받았다고 해서 더 미화되고 비난을 받았다고 해서 손상되는가? 또 금이나 상아, 자수정, 하프, 단도, 관목 등도 그러하단 말인가? 

만약, 죽은 후에도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남는다면 대기는 어떻게 태고적부터 이 수만은 영혼들을 수용해 왔을까? 그리고 육체가 썩지 않는다면 대지는 어떻게 아득한 옛날부터 그 속에 매장된 시체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시체들은 한동안 땅속에 머물러 있다가 이윽고 분해되어 다른 시체에 장소를 비워 주는데, 이처럼 영혼도 얼마 동안 대기 속에 머물러 있다가 변화하고 분해되어 우주의 창조적 원리에 따라 불과 같은 성질이 되었다가 이윽고 새로운 영혼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아마도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서 매장되는 시체의 숫자만큼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매일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어 그들의 육체에 묻히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된 동물들은 그들을 잡아먹은 동물들의 피와 공기와 물과 같은 성분으로 변하여 사라진다. 이처럼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이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과 형상 및 형상적인 것의 원인을 구분짓는 분석법으로써 알 수 있다.

철학자 테모크리토스는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다면 많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필요한 일만 하라. 사회적 동물로서의 이성이 요구하는 일만을 이성에 따라 행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휼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정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거의가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시간을 즐기게 되고 반면에 근심이나 불안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이 일은 꼭 필요한 것인가?' 라고 물어 보라. 또 우리는 불필요한 행동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사상까지도 깨끗이 버려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류(萬有)로부터 주어진 자기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는 사람, 올바르게 행동하고 자신의 인자한 성품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런 선인의 생활이 당신에게도 적합한지 한번 시험해 보라.

당신은 저 여러 가지 일들을 본적이 있는가? 보았다면 이제는 사물의 다른쪽 면을 보라. 마음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도록 단순한 마음을 가져라. 누가 당신에게 피해를 주는가?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밖에 안 되니 상관하지 말라.

 

아우렐리우스/명상록Marcus Aurelius ; Ta eis heautond에서

이해와 감상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황제의 입장을 떠나 한 사색하는 생활인, 그리고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철학자로서 자신의 사상과 체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로서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스스로 인생을 올바로 살기 위하여 경계한 것, 행한 일을 반성하고 스토아적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충고한 것, 귀감이 될 만한 다른 사람의 글을 발췌한 것 등으로 그 내용이 구성되어있다.

 이 글은 그때그때 체험에서 우러나온 단상(斷想)들을 바쁜 틈틈이, 즉 전시(戰時)의 진중이나 청사를 돌보는 사이에 쓴 것이며, 어릴 때부터 익혀 온 수사학의 재능을 십분 발휘한 아름다운 문장이라 평가된다.

 편의상 전체를 12권으로 나누고 있지만 일정한 기간에 어떤 주제를 놓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그 논리적인 체계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우렐리우스의 스토아 철학의 사상적 기반은 이 책에 일관된 흐름을 부여함으로 내용상으로는 하나의 체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체계화된 사상일수록 그 사상의 내용에 우주론, 인간론, 그리고 정치 사회론 을 모두 담고 있어야 하며, 이 게 가지는 상호 모순됨이 없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명상록'은 단편적인 철학적 수상(隨想)들을 모아놓은 것임에도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으며, 글을 읽어 내려감에 따라 각 구절마다 이에 그의 사상적 깊이를 새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은 그가 평생을 두고 연구하고 고민했던 스토아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갖가지 삶의 국면을 굳건한 사상적 바탕 위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흔히 '명상록'은 스토아 철학의 진수를 설명한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에픽테토스의 '어록(語錄)과 함께 고대의 양서로 손꼽히고 있다.

 '명상록'은 어떤 초기 편집자에 의해 12권으로 분류되었는데, 첫째 권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뒤 섞여 있어서 각 권의 내용을 만족할 만하게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그 대략의 요점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제1권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로 배우게 된 교훈이 겸손하게 언급되어 있다. 제2권은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제3권은 진정한 자유인 신에 대한 복종에 대해, 제4권은 기회의 부재에 대해, 제5권은 운명과 역할에 대해, 제6권은 내면적 삶의 절대적인 중요성에 대해, 제7권은 충동의 억제와 자기 만족의 추구에 대해, 제8권은 마음의 평정에 대해, 제9권은 자발적인 의지와 인간을 지배하는 운명에 대해, 제10권은 기인의 주변 환경과 그에 관한 성찰에 대해, 제11권은 이타주의(利他主義)에 대해, 제12권은 죽음에의 초월에 대해 씌어 있다.

 제1권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터득한 것이 아니고 조상, 부모, 스승, 신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의 겸손함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기가 처한 위기, 상황, 환경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제2권부터는 '명상록'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않은 단편적인 글들이라 내용도 다소 중복되고, 또 축약된 말들이 있어서 어려운 곳도 있으나 앞에서 스토아 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을 읽었다면 아마 별 무리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먼저 자연, 즉 우주에 대한 견해부터 보기로 하자. 자연의 법칙인 운명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스토아 철학의 입장이듯이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주 만물은 줄곧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다. 우연히 발생하는 일도 자연의 원리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며, 모든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다스려지고 사물과 관련이 있음을 명심하라. 당신도 이 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본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그 본성을 계속 간직하는 것은 선(善)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명상록> 제2권 2장)    

  그리고 그는 인간이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순간적으로 살다 가는 덧 없는 존재라 하여, 각 권에서 명성이나 부(富) 등을 하찮은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죽은 후에 명성을 남기려고 연연해하는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역시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떠한 명성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을 통해 전해지다가 결국은 사라져버리고 만다…당신이 이미 죽은 후에 그들의 찬양은 무의미한 것이다.(<명상록> 제4권 19장)

  그는 또 죽음이란 것을 다른 사물로의 분해, 변화로 보았으며, 자연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해악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명상록 의 전반적인 특징을 한마디로 지적한다면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떠한 외부의 자극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으며 평정을 누릴 수 있는 능력있는 존재라 하였다.

  지금 당신이 외부적인 어떤 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명상록> 제8권 47장)

 참고 자료

 아우렐리우스와 스토아 철학

  스토아 철학에서는 자연(Dbysis)이라는 말이 잘 쓰인다. 보통 자연이라고 하면 산과 강과 대지와 짐승과 초목 등을 포함시켜서 생각하지만 소크라테스 이전의 헤라클레이토스(BC 전 535∼475)의 계통을 잇는 스토아 학파에서는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오고 나서 거리로 돌아가는 근원적인 것, 또는 능산적 자연 (能産的 自然)을 의미한다. 또한 좁은 의미에서는 인간의 자연이라든가 포도의 자연이라고 하는 경우처럼 사물의  

본성(本性)을 의미하기도 한다. 광의의 자연은 종교적으로 말하는 신과 같은 것으로 그것은 우주, 로고스, 운명과 동일한 개념이다.

  스토아 학파는-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에서도-자연에 따는다는 마을 자주 하는데 이것은 신, 또는 우주의 질서에 따르고 또는 그것에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에 따른다는 것은 협의로는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예로 든다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것, 곧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이성(理性)을 따르고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우주의 이성, 곧 광의의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의 이성에 따르는 것은 우주의 이성에 따르고 자연의 본성에 따르는것이다. 자연이 대우주라면 인간은 그 일부분인 소우주이다. 이러한 스토아 사상이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주의」의 사상적 모태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 육체라는 점에서는 동물과 공통되고 영혼이라고 점에서는 동물과 공통되고 영혼이라는 점에서는 신과 공통된다. 스토아에는 영혼은 혈액에서 증발된 것이라고 하는 견해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우주의 로고스의 한 조각이 인간에게 깃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성이 깃들어 있는 이상 인간은 다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별, 계급, 피부색깔, 국적을 넘어선 동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스토아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이 성립된다.

  그런데 이성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지만 그 작용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인식론적으로 이론이성(理論理性), 도덕적으로 실천이성으로 가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가끔 이성을 헤게모니콘(지도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종교적 윤리적 색채가 농후한 후기 스토아세서 본심 또는 양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온갖 욕망을 통제하고 지도하는 능력으로 스토아 철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외계(外界)는 모두 결정되어 있어서 불변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숙명적인 필연이다. 따라서 스토아 학파에서는 필연을 필연으로 인정하고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뿐 외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외계는 우리의 의지 밖에 있어서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 우리들의 생각뿐이다. 그러나 일단 철저하게 마음과 생각을 바꾸면 외계가 변한 것과 동일한 대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마음의 전환은 행복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죽음을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고 생각한다. 혹은 원소에의 해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나 결국은 원래의 것으로 복귀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죽음은 조금도 무서운 것이 아니다. 곧 '무섭다고 하는 사념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공상을 제거한다면 죽음은 자연의 작용이다' '해체를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 무서운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자연의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러한 전환을 이루면 죽음은 고통스럽거나 무서운 갓이 아니라 평범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아 철학은 영혼의 불멸을 말하지 않는다.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원소로 해체된다고 한다.

 한편 스토아에서는 자살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죽음을 자연의 필연적 과정으로 보는 스토아 철학으로서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는 것이 신의 명령이라면 죽는 것도 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완수하고 육체적으로 남의 폐를 끼칠 만큼 노쇠했거나 병에 걸리면 이 세상에서 떠나가라는 신의 신호로 알고 자살해야 한다. 이 경우 제멋대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닌 자살이야말로 우주의 질서, 신에 뜻에 합치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또한 아타테이아 또는 아타락시아라는 말을 스토아 철학에서는 쓰고 있는데, 전자는 부동심(不動心), 무정념(無情念)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평정(平靜)이라는 뜻이다. 외계의 사물은 본래 우주의 질서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외물을 뒤쫓고 있는 한 대해의 조각배처럼 번롱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마음에 아무런 욕망도 갖지 않고 어떠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음에 평화는 교란되지 않는다. 이 마음의 평화가 바로 인간의 행복인 것이다.

 

참고 자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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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121∼180)는 121년 로마에서 집정관 아니우스베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안토니우스 황제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정치가로서의 삶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세 차례나 집정관을 지내면서 정치에 관한 식견을 넓혀 양부 안토니우스 황제를 도왔다.

 그는 스토아 철학에 심취하여 나중에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 사상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명저인 명상록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161년 안토니우스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그는 일찍이 플라톤이 이상국가의 정치 형태로 제시했던 철인왕(哲人王)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싸우거나, 아니면 전염병 퇴치와 타락된 도덕의 회복을 위해 애쓰면서 지냈다.

 그는 175년 반란을 일으켰던 시리아 총독 카시우스가 자신의 부하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오히려 자비로서 용서해줄 기회를 잃은 것을 슬퍼할 정도로 적군까지도 사랑하려는 박애주의적 일면도 지니고 있었다. 그간 재위 기간은 로마제국의 전성 시대로 일컬여지는 이른바 '5현제(賢帝) 시대'에 속하는데 96년부터 180년 사이인 이 무렵에는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 영토의 확장이 어느 시대보다 월등하였으며 아우렐리우스 역시 이전 황제들의 선정(善政)을 유지하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색 혹은 명상의 황제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그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에 몰두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색의 기록이 바로 '명상록' 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살펴 보면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재위 161~180)로 한자명으로는  안돈(安敦). 로마 출생.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로, 후기 스토아파(派)의 철학자이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양자가 된 후 140년 로마의 콘술(집정관)이 되었고, 145년 안토니누스의 딸(사촌누이)과 결혼, 161년 안토니누스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로 즉위하였다. 당시의 로마제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변방에는 외적의 침입이 잦았으며, 특히 도나우강(江) 쪽에서는 마르코만니족 및 쿠아디족이 자주 침입하여 그 방비에 힘썼다. 그 동안 페스트가 유행하여 제국은 피폐하고, 게르만족과의 전쟁에 시달리면서 발칸 북방의 시리아 및 이집트 등의 진영(陣營)에서 병을 얻어 도나우 강변의 진중에서 죽었다.

 유명한 《명상록(冥想錄)》은 이 진중에서 쓴 것으로 스토아적 철인의 정관(靜觀)과 황제의 격무라는 모순에 고민하는 인간의 애조(哀調)가 담겨 있다. 여기에서 그의 철학은 본질적으로는 반 세기 전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한층 내면적으로 침잠해 들어오는 철학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것은 불이며, 신적(神的)인 세계 영혼으로 관통되고 살려지게 되고 지배받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도 세계 영혼의 한 유출물에 불과하여 죽으면 자연히 세계 영혼에 귀일하게 된다.

 물질적 ·육체적인 세계의 모든 것은 이 신적인 이성에 의하여 운명적 ·자연필연적으로, 그러면서도 신적 ·합법칙적으로 끊임없이 생멸변화(生滅變化)하고 있다. 따라서 개물(個物)·개인(個人)은 그 이름도 기억도 이 필연의 운동 속에서 소멸되고, 망각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자연필연의 이법(理法)을 확인하여 이를 신의 섭리라 믿고, 외적인 어느 것에도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없이 주어진 운명을 감수하며, 내적으로 자유롭고 명랑하고 조용하고 경건하게 그의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있어서는 철학자와 황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그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쇠퇴하였다. 로마시에는 ‘마르코만니전쟁’을 부조(浮彫)한 기념주(記念柱)와 그의 기마상(騎馬像)이 있다.

스토아학파

키프로스의 제논이 스토아 포이킬레에 창설한 철학의 한 유파.

 BC 3세기부터 로마 제정(帝政) 말에 이르는 후기 고대(古代)를 대표한다. 키프로스섬 태생의 개조(開祖) 제논과 그 제자로서 적빈(赤貧)과 노동으로 이름 높던 소아시아의 아소스인(人) 클레안테스, 그 제자로서 스토아파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킬리키아의 항구 도시 솔로이(솔리)의 크리시포스, 스토아 학설을 로마 사람에게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만든 로도스섬의 파나이티오스, 종교적 경향이 강한 오론테스강 하반(河畔)의 아파메아인 포세이도니오스, 로마황제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 파의 주요 인물들이다.

 제논이 아테네의 광장에 있던 공회당 ‘채색주랑(彩色柱廊)’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제자들을 ‘스토아파’(柱廊의 사람들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스토아파 철학은 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고전기(古典期) 그리스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좋은 가문 출신 사람들의 철학이 아니라, 변경(邊境) 사람이나 이국인의 철학이었으며, 그리스 문물이 좁은 도시국가의 틀을 넘어서 널리 지중해(地中海) 연안의 여러 지방에 미친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철학의 여러 파와 스토아파 사이의 대립은 격렬하였다.

 고전기까지의 철학의 여러 학설을 수용하여 일반화 ·통속화한 점에서 절충주의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 기반에는 고전 철학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단지 로마시대 사람들의 저작을 제외하고는 스토아파의 저작은 오늘날 거의 전해지지 않아서 연구상 어려움이 있다.

 애지(愛知:철학)는 논리 부문과 윤리 부문, 자연 부문으로 나뉘나, 이들은 각각 독립된 분파가 아니라 서로 나누기 어렵게 결합되어 있어 하나의 지혜를 사랑하고 구하는 애지를 구성하는 3요소가 된다.

 지혜는 ‘신의 일과 사람의 일에 관한 지식’이라고 정의되지만, 이것은 사물에 관한 관조적(觀照的) 지식이 아니라, 인간생활에서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처리하기 위한 실천적 지식이다. 지혜의 이러한 실천적 성격에 스토아파의 특징이 있으며, 이 원리에 바탕을 두어 스토아철학은 고대철학원리의 주체적인 반성철학이 되었다.

 애지(愛知)는 이러한 지혜를 습득하기 위한 ‘삶의 기술(ars vivendi)’의 연습이며, 이러한 재주를 갖는 사람이 현자(賢者)인 것이다. 그리고 현자의 지혜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충동’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병으로서의 정념(情念)이 있다. 이 정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데에 ‘활달한 삶의 흐름’이 있다. 스토아파의 현자의 이상은 바로 거기에 있다. 스토익이라고 불리는 비정한 금욕주의적 심정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자의 유덕한 삶이란 이성을 갖춘 유한한 개개의 자연물(인간)이 자연에 의하여 부여된 그대로의 자기의 ‘운명’을 알고, 운명대로 살아감으로써 본원(本源)인 자연과 일치하는 ‘동의(同意)’의 삶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 그 자체가 이성적 존재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자기귀환(自己歸還)에의 활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현자는 모든 자연물의 근원인 자연 그 자체로서의 신과 일치한 자이며 신과 같은 자, 바로 신 그것인 것이다.

 스토아 철학의 특징은, 이와 같은 자연존재에서의 개별성(個別性)과 전체성(全體性)의 두 계기의 강조와 양자의 긴장 관계에 있으며, 이것에 의하여 스토아 철학은 고대철학 원리의 집성인 동시에 다음 시대의 철학원리를 준비하는 것이 되었다. 언어연구 ·논리학 ·인식론에서도 구체성과 개별성을 중요시하는 스토아 철학은 전통철학에 없었던 새로운 요소를 많이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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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의 기사 - 아우렐리우스


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거대한 석상이 터키 남부의 고대 로마 유적지 사갈라소스에서 발굴됐다고 한다.

   

기나긴 로마역사를 통해 수많은 황제들이 있었고 또한 모두 이름들이 복잡한 관계로 웬만하면 다들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들이지만 아우렐리우스 만은 웬지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영화 '글라디에이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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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 막시무스에게 황제자리를 물려주려다 아들 코모두스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그는 자애로운 황제였지만 졸지에 망나니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인물로 기억된다.

 

실제로는 아우렐리우스는 전쟁을 지휘하다 도나우강 근처에서 병으로 객사했다고 한다. 아들이 있기는 있었지만 지 아비를 죽이고 황제자리를 차지할 만큼 패륜아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당시의 로마사회가 못난 아들에게 로마황제 자리가 계승되는 것을 용납치 않았었다.

 

5 명의 뛰어난 황제가 연속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대물림으로는 불가능하다. 전임황제가 뛰어난 후계자를 지정하여 그가 피붙이던 아니던 간에 황위를 계승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으로 안다. 물론 아우렐리우스 사후에는 그것도 깨지고 완전 난장판으로 접어들지만 말이다. (만약 진짜로 황제자리에 눈이 멀어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하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들 코모두스가 아니라 당시 가장 잘나가는 총독이었다는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였을 것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 도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다만 검의 달인에 카리스마 넘치는 장수가 아니라 스토아학파 철학자였을 뿐,

 

글라디에이터 버젼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시오노의 주장에 따르면 설령 아우렐리우스가 영화에 나오는 대로 장수 막시무스를 총애했다고 하더라도 막시무스의 '국가관' 때문에 황위자리 승계를 권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 황제가 되라는 아우렐리우스의 권유에 막시무스는 자신은 이번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제의를 거부한다.

 

당시 로마인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질로 가족보다 국가를 우선에 놓는 공복의식을 가장 중요히 여겼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우렐리우스 같이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황제였다면 막시무스의 이 대답을 듣는 순간 자질부족으로 판단 '대권?후보리스트'에서 제외시켰을 거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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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us Aurelius

 

우리에게 아우렐리우스를 친근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이회창 씨다. 92년 대선에 김대중 후보에 맞서 출마했던 이씨는 TV토론에서 감명깊게 읽은 책이 뭐냐는 질문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이라고 답한다. 김대중 씨가 김구선생의 백범일지 라고 답해 지극히 평범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것에 비해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당시 이회창 씨 보좌진들은 이씨의 그 답변 때문에 몹시 당황해 했다고 한다. 유권자 중 도대체 몇명이나 생전에 아우렐리우스 라는 이름이나 들어 보았을 것이며 설령 그의 명상록을 읽어보았다고 해도 이회창 씨의 지적인 면을 높이사기 보다는 그저 잘난척 하는 것으로 간주 거부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명상록 답변 때문에 대략 백만표는 날아갔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이씨는 선거에 졌다.

 

이회창 씨가 안읽은 책을 읽었다고 거짓말 하지는 않았겠지만 요즘 보여주고 있는 그의 작태를 볼 때 명상록을 제대로 읽은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지하에 있는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사람이 저런 행동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정말 어이없어 할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고대 로마인들과 그들의 역사는 은근히 소외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대 로마제국의 유산은 현재 서구문명의 뿌리이자 주춧돌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석상 발굴소식을 계기로 로마사를 한번 관심있게 읽어본다면 유럽과 미국문명을 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뿐더러 덤으로 그들의 공세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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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영혼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121∼180) 


노예에서 황제까지: 스토아 철학의 힘 
뒷골목 건달과 영웅의 차이는 힘에 있지 않다. 힘세고 싸움 잘하는 것으로 친다면 뒷골목 건달이 영웅호걸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건달은 건달 이상이 되지 못한다. 늙고 병들거나 더 주먹 센 사람이 나타나면 사정없이 비난받고 짓밟히는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영웅은 힘을 잃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권위와 명예를 잃지 않는다. 
건달과 영웅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명분과 도덕심에 있다. 건달은 결국 자신과 똘마니들만을 위해 살지만 영웅은 진정 "정의를 위해" 산다. 따라서 영웅이 힘없이 무너진다해도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따르는 것이다. 로마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帝國)의 역사만도 1,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로마가 단순히 힘만 센 국가였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치 힘만 센 뒷골목 건달처럼 말이다. 로마는 사람으로 친다면 '영웅호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국가였다. 그렇다면 로마제국을 '영웅호걸'로 특징 지웠던 명분과 도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스토아(Stoa) 철학이다. 역사상 스토아 철학만큼 한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념은 드물다.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중에는 에픽테투스(Epictetus)같은 노예출신도 있고 세네카(Seneca)같은 정치인도 있으며 이 달에 살펴볼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같은 황제도 있었다. 노예부터 황제까지 제국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던 스토아 철학은 로마를 진정한 강자(强者)로 만든 숨은 힘이었던 것이다. 

"황금시대"에 태어난 꼬마 철학자 
이제 이야기를 이 달의 주인공 아우렐리우스에게로 돌려보자.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태어났다. 당시 로마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 아래 최고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구석구석 살피는 꼼꼼한 어머니 밑에서는 가정이 번창할 수밖에 없는 법, 하드리아누스는 제국 이곳저곳을 세심히 챙기느라 일평생을 '출장' 다녔던 황제로 유명하다. 황제가 출장을 마치고 오랜만에 로마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황제 로마 귀환 기념 주화"라는 희한한 화폐를 찍어냈을 정도로 말이다. 수도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겠지만 치밀한 하드리아누스의 눈에 황제가 될 '재목'이 눈에 안 띄었을 리 없다. 그 재목은 바로 아우렐리우스였다. 
아우렐리우스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최고 관직인 집정관을 3 번이나 지냈을 정도의 명문이었다. 다만, 할아버지만큼이나 유명했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는 외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확실히 아우렐리우스는 황제가 사랑할 만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밤늦게까지 공부에 몰두했고 타고난 건강체질은 아니었지만 달리기, 레슬링, 매사냥 등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 어린이를 기특하게 여기지 않을 어른이 얼마나 있겠는가? 게다가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지나친 욕심과 쾌락추구는 결국 고통으로 연결된다고 보고, 어떠한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Apatheia)을 강조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스토아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이미 십대 무렵부터 깨달은 바 있어 따뜻한 침대를 버리고 항상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잤고, 최고의 오락거리였던 검투사 경기와 마차경기도 멀리했다고 한다. 
이런 '꼬마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금욕적인' 태도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이었다. 황제는 그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여 '베르시무스(Versimus)'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는데, 이 말을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정말 진국인 아이" 정도가 될 듯 싶다. 

황제가 될 때까지 
황제는 아우렐리우스를 교육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이 '꼬마 철학자'가 최고 수준의 교사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그 결과 아우렐리우스를 가르쳤던 스승만도 열 일곱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나 사회 지도층이 되기 위한 "엘리트 코스"가 있는 법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이 엘리트 코스를 충실하게 밟아 나간다. 여덟 살 때 이미 제사장이 되었고 이후 재무관, 집정관, 호민관, 원로원 의원 등의 출세가도를 순조롭게 밟아 나간다. 실로 황제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출세 속도였다. 
확실히 황제는 그를 후계자 감으로 생각했던 같다. 이 점은 젊어서 죽은 하드리아누스의 양아들이 남긴 딸과 그를 약혼시킨 점에 있어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꼬마 철학자'가 하드리아누스의 다음 황제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렸다. 꼭 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이 현명한 황제는 후계자로 52세의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를 지명하고 그를 자신의 양아들로 받아들인다. 단, 안토니우스가 아우렐리우스를 다시 양자로 받아드리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로써 지금으로 보아서는 조금은 해괴한 '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이차이는 열 살밖에 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새롭게 얻은 '아들'이 마음에 들어 할아버지가 맺어준 약혼을 깨버리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족 구성은 '해외 토픽감'이었을지 몰라도, 이 가족을 구성한 할아버지의 선택은 '정치적으로'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하드리아누스의 뒤를 이은 안토니누스는 정말 훌륭하고 뛰어난 황제였다. 그가 다스리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 시기의 로마가 너무도 안정되고 평화로워서 도무지 '기사화' 될 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사람들은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라고 불렀다. 이는 '경건한 안토니누스'라는 뜻이다. 그는 '경건'이 별명이 될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이었고 또한 이성적인 삶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스토아의 가르침에도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런 성품은 '아들'을 가르치는 데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 번은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을 가르쳤던 가정 교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고 있었다. 이를 본 안토니누스는 다음과 같이 아들을 위로한다. 

"...현명한 이의 철학도 황제의 권력도 감정을 절제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단다. 그럴 때에는 네가 사나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참을 수밖에 없지..."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세상일은 모두 우주적 이성(Logos)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결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마음의 평온을 깨는 어리석은 일일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logos)을 발휘하여 우주적 이성(Logos)의 깊은 뜻을 깨달아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의 평화, 즉 부동심(不動心:Apatheia)을 찾아야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가르침대로 평생을 살았다. 후에 자식을 잃은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자기자신을 타일렀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내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지만 그대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참으로 강하고 건전한 삶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위기와 시련에 처해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로마인의 강인함은 바로 이러한 스토아의 이념에 있었다. 

흔들리는 팍스 로마나 
161년,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숨을 거둔다. 이로써 이제 마흔 살의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그가 물려받은 제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그 자체였다. 전쟁도 없었고 경제도 번창했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랬을 뿐 로마는 이미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빈부의 차이가 심하게 벌어졌고, 세금과 착취를 견디다 못한 중소 농민들이 토지를 버리고 수도 로마로 몰려드는 바람에 수많은 사회 문제를 낳고 있었다. 제국은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막지도 못하고 못 가진 자들의 생계를 안정시키지도 못한 채 속주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이용한 '빵과 서커스'로 사회 불만을 겨우 잠재우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위기의 로마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이는 무너지려는 둑을 주먹으로 막는 것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이었다. 
162년, 로마의 '전통적인 라이벌' 파르티아가 침략해 온다. 그러나 철학자 황제는 전쟁에도 능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쉽사리 파르티아를 격파했을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확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승리와 정복은 예상치 못한 재앙을 가져왔다. 이 지방에서 유행하던 페스트가 제국으로까지 흘러 들어온 것이었다. 곳곳에서 역병이 돌았고 수많은 시민이 죽어갔다. 또 큰 홍수가 거듭하여 일어나기도 했다. 나아가 166년에는 게르만족이 제국의 방위선인 다뉴브 강을 돌파했고, 168년에는 사르마텐 족이, 169년에는 무어인이 국경을 넘보았다. 아우렐리우스는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느라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명상록}, 그리고....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그 가운데서도 철학자였다. 그의 명작 {명상록}은 반란과 침략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시절에 군대 막사나 전쟁터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에는 원래 "내 자신을 훈계함"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보내는 훈계였던 셈이다. 인간의 잔인성이 판을 치는 황량한 전쟁터에서도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이 이성을 일깨우고 마음의 고요를 찾는 철학자의 면모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명상록} 곳곳에는 그의 인간적인 번민과 철학적 사색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세계는 우주에 비하면 미세한 점에 불과하고, 인간의 삶도 찰나일 뿐이다....인생은 투쟁이고 세계는 낯선 이를 위한 임시 수용소일 뿐이며, 죽음 뒤에 얻은 명성은 허무하다. 그런 우리에게 유일한 버팀목은 철학뿐이다. 철학은 우리 자신 속에 거룩한 정신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은 악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일 뿐이라고 말해 준다....우주적 이성에 따라 일어나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일 리 없다..." 

"인간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한다." 
계속되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로마의 재정상태는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아우렐리우스는 부족한 재원을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침략을 통해 약탈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으로 한다면 '자선 바자회'라 할만한 것을 실시한다. 황제가 가지고 있던 보석부터 일상 생활에 쓰이는 가구까지 모두 거리에 내놓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는 위기에 부딪혔을 때 국가 지도자가 제일 먼저 앞장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였겠지만 로마시민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는 크게 효과가 있었던 듯싶다. 이제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선사한다. 
또한 아우렐리우스는 매우 관대한 사람이었다. 175년, 반란을 일으켰던 시리아의 총독 카시우스(A.Cassius)를 부하장교들이 죽였을 때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베어진 목을 직접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카시우스와 다른 이들 사이에 오간 반란에 관한 수많은 편지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모두 불태워 버렸다. 
사실 그의 관대함은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이성(logos)'를 가지고 있다. 이 이성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우주적 이성(Logos)'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은 피부가 하얗건 거멓건, 라틴어를 쓰건 게르만어를 쓰건 간에 모두 존중해 주어야 할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면 이성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도 존엄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로마가 내세우던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는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모두 '우주적 로고스'에 따른다면 다른 민족의 이성적 인간들이 만든 법도 로마법과 마찬가지로 존엄한 것이다. 그렇다면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본래 있는 것이 민족과 문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자연법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민족의 합리적인 문화나 풍습도 우주적 로고스에 따르는 것으로 당연히 존중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정복이란 곧 약탈과 파괴를 의미했던 고대 문화 속에서도 로마만큼은 오히려 정복당한 민족을 나와 같은 이성을 가진 '동포'로 보고 보호하고 존중했다. 로마의 대 제국은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포옹과 관용 위에서 가능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제국의 이념에 너무도 충실한 사람이었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 그리고 제국의 몰락 
이제 아우렐리우스에게도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다. 항상 전쟁과 재앙에 시달리던 이 고단한 황제에게 180년, 다시금 도나우 강변이 시끄러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는 게르만의 침략이 단순히 약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북쪽에서 접근하는 또 다른 민족의 공격에 밀려 제국으로까지 넘어오는 것임을 간파했다. 그래서 이들을 로마 국경 안에 정착시키고 질병으로 인구가 줄어든 제국의 새로운 노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나아가 아우렐리우스는 도나우 방어선을 넘어서까지 새롭게 영토를 넓힘으로써 아예 제국이 다시는 게르만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지 않도록 하는 '최후의 전쟁'을 벌이려고 했다. 그러나 우주적 이성은 이러한 황제의 뜻을 받아드려 주지 않았다. 게르만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페스트로 쓰러지고 만다. 
죽음의 순간에도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다운 담대함을 잃지 않았다. {명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은 그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제 헤어지는 마당에 남은 사람들을 고약하게 대하지 말라...그대의 가족과도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부드럽게 이별하라. 자연(우주적 이성)이 그들을 그대와 결합시켰듯이 이제 자연이 다시 그대를 그들과 떼어놓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 후, 황제 자리는 철학자 아버지와는 다르게 야비하고 잔인한 성격의 아들 코모도스(Comodos)에게 넘어가게 된다.(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글레디에이터(Gradiator)"는 이런 시대 배경을 소재로 한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원래 많은 자식들이 있었으나 모두 병으로 죽고 코모두스 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현명한 아우렐리우스였다고 해도 이러한 '최악의 경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듯 싶다. 아들은 파탄에 이른 로마를 아버지만큼 기술적으로 통치하고 조절할 만한 능력이 없었고, 이후 로마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자연을 따르라." 
스토아철학은 원래 기원전 4세기 말,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에 의해 출발한 철학이다. 원래 스토아철학은 혼란한 사회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한 은자(隱者)의 철학이었다. 그러나 명상과 깨달음을 강조한 불교가 역사상 많은 국가에 있어서 통치이념이 되고 반성과 봉사를 강조한 기독교가 서양 중세를 지배한 이념이 되듯이 스토아철학도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선 대제국의 통치이념으로 발전해 나갔다. 개인을 훌륭하게 만드는 철학은 사회도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해준 셈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삶은 우리에게 철학적 반성을 통해 성숙한 개인은 또한 훌륭한 사회 지도자도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항상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라. 이것이 수학 한 문제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더 여러분들을 훌륭한 사회 지도자로 만들어주는 길일 것이다. 아우렐리우스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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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집문당 교양선 12, 김병호 옮김, p 205
 이번 책 소개는 지금 거의 상영이 끝나려는 영화 "글래디에이터 Gladiator"로 시작하려 한다. 30 년 전 거의 동일한 내용의 영화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세 번째 소개한 책인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 영화의 감동이나 가치, 그리고 웅장한 기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나 그림, 음악, 책에서 받는 감동은 개인적인 것이어서 남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여기서는 다른 기록과 비교하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창조력[?]을 발휘하였는지를 검토해 볼 뿐이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혼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시작되는 기원후 180 년 기번이 아래와 같이 말한 시대이다.
 "만일 세계사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또 번영했던 시기는 어느 시기였는가를 질문받는다면, 사람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아마 도미티아누수 황제의 사망(96 년)부터 코모두스 황제 즉위(180 년)까지의 시기를 들 것이다(네르바 황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이르는 이른바 5 현제(賢帝) 시대이다). 이때는 광대한 로마제국의 전 영토가 덕과 지혜로써 지도된 절대권력 밑에 통치되고 있었다."[로마제국의 쇠망, 1 권, p 123]
 처음으로, 영화와 역사가의 견해가 다른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 중의 하나인 아우렐리우스 황제(121 - 180; 참고로 삼국지의 유비는 161 - 223 이다)와 코모두스의 관계이다. 기번은 코모두스를 망친 것은 아루렐리우스의 편애, 과중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영화에서는 코모두스가 폭군이 되는 이유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이제 겨우 14 - 15 살밖에 되지 않은 그(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을 황제 권력의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시켰던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가장 사랑을 받았던 아들이 원로원과 군의 환호속에서 즉위하였다. 그가 행복한 젊은이를 왕위에 오르게 했을 때 그 주위에는 단 한 사람의 배제해야 할 경쟁자도 없었거니와 벌줄 적대자도 없었다."[P 131]
 이 아들 코모두스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었다.
 또한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77년 마르쿠스는 16세의 아들 코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했다. 그들은 협력하여 도나우 강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마르쿠스는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여 제국의 북쪽 국경선을 확장·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180년 마르쿠스가 아들 코모두스를 국정의 최고 조언자로 임명하고 난 직후 군대 사령부에서 숨을 거두었을 무렵 거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코모두스는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그를 완전한 후임자로 임명한 후에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것이다.
 기번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부황인 마르쿠스의 사후까지 코모두스는 대병단의 지휘와 콰디족 및 마르코반족을 상대로 어려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P 132]
 또한 기번은 영화의 주인공의 하나인 황제의 딸 루실라(Lucilla)에 대해서 영화와 전혀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183 년 어느날 밤, 코모두스가 자기의 숙소인 내전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둠에 잠긴 콜로세움의 좁은 주랑(柱廊)을 막 벗어나고 있을 때, 잠복하고 있던 한 자객이 검을 빼어 들고 습격하였다. ...
 코모두스 황제의 누님이며 루키우스 벨루스의 미망인인 루실라가 제국의 서열 3 위의 지위에 있는 것이 미흡하여 참지 못한데다가 황후인 파우스티나에 대한 질투심까지 결부되어 이처럼 자객을 무장시켜 동생 [코모두스]의 생명을 노리게 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라 해도 이 무서운 음모에 대하여 현재의 남편이며, 유능한 원로원 의원이자 충성스러운 인물이기도 한 클로리우스 폼페이아누스[이 사람은 영화에 나오지 않으나 여기 언급되는 모든 인물 중 가장 오래 살아 남은 사람이다]에게 이 행동을 상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그녀의 정부들 중에는 무모하기 그지없는 야심가들도 있었는데 이런 자들은 그녀의 바람기뿐만 아니라 보다 광기어린 집념에까지 기꺼이 봉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런 음모자들은 물론 엄벌을 받았다. 그리고 파렴치한 루실라도 처음에는 유형에 처해졌으나 뒤이어 사형을 받았다."[p 133]
 즉 루실라가 먼저 코모두스를 암살하려 하였으며, 영화와 달리 코모두스보다 먼저 죽었다.
 물론 코모두스가 좋은 황제였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 중 막시무스[Maximus]가 있다. 이 사람과 영화의 막시무스는 동일 인물이 아닐 수 있다.
 "이와 같은 폭정에 쓰러진 무고한 희생자 중에서도 가장 애처롭게 여겨지는 것은 퀸틸리아누스가의 형제들인 막시무스와 콘디아누스 두 사람이다. 이 두사람의 형제애는 그 이름이 오랫동안 망각되었다가 빛을 보게 되어, 후세에까지 향기로운 회상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 막대한 재산을 이어 받았는데도 두 사람에게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고, 이 형제가 협력해서 쓴 한 논문('농업론'이라 하는 것)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지만, 일생동안 무엇을 해도 두 사람은 완전히 일심동체였다. 이들의 덕행을 존중하고 그들의 화목한 우애심을 기뻐한 두 안토니우스 황제[임주(任註); 아우렐리우스의 전임황제와 아우렐리우스]들은 한날 한시에 두 사람을 모두 집정관으로 임명하였었다. 그후 마르쿠스 황제는 다시 그리스 속주의 민정과 군사권을 이들 두 사람의 공동관리로 위임했는데, 여기서도 이들은 게르만인과의 전쟁에서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동정심이 많았던' 코모두스 황제의 잔인성은 마지막 죽음에 있어서까지 이 두 사람을 '일심동체'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p 134]
 막시무스가 게르만과의 전쟁에서 대 승리를 거둔 것이 이 영화의 몇 안되는 진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코모두스에 의해 사형당했다.
 영화에서 막시무스의 자식과 부인이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했다는 것은 사실이기 어렵다. 로마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것은 노예나 로마 시민이 아닌 경우에 한하였다. 그러므로 로마의 체제에서 아무리 폭군 코모두스라 하여도 장군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재판 없이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친위대를 시켜 원로원 의원에게 자살을 명한 것은 역사책에 나온다. 로마인이 법 체계를 존중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 시민이라는 이유로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다.
 코모두스가 결정적으로 로마 시민들의 인심을 잃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투기장의 우리에서 100 마리의 사자가 단번에 내몰려 나온 일도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손에서 던져진 100 자루의 투창은 그 사자 무리가 투기장 안을 날뛰며 돌아 다니는 사이에 단 한 자루의 빗나감도 없이 모두를 맞혀서 한 마리 남김없이 사체로 만들고 말았다. 거대한 덩치의 코끼리 몸뚱이도, 코뿔소의 가죽도 그가 던지는 창끝을 막아낼 수 없었다. ...
 그러나 하층계급의 일반민중들조차 이것을 너무 지나친 행위라하여 분노와 치욕감을 느낀 것은, 자기 황제가 하필이면 일개 검투사로 분장하고 등장해서 국법이나 습관도 천한 직업으로 낙인찍어 놓은 그런 직업인의 흉내를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연출했을 때였다.
 ... 황제는 투기사 역을 담당하여 실로 735 회나 싸웠다."[p 142]
 실제로 코모두스는 상당히 훌륭한 검투사였다. 영화의 막시무스가 앞에서 설명한 그 막시무스라면 코모두스에게 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30 년 전의 영화에서는 위의 사실을 위해 마지막의 황제의 싸움을 투창으로 하는 것으로 꾸몄다. 물론 그 영화에서도 코모두스가 죽지만 비겁한 승부는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악인을 더 비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날이 갈수록 비겁한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일까?
 코모두스는 여러 사람들을 죽이더니 드디어는 자기 측근에게 죄를 씌워 죽이기 시작하였다. 코모두스의 죽음에 대해서 기번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윽고 그의 가족들조차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운명도 끝장이 났다. 동료나 선임자의 죽음을 보고 깜짝 놀란 애첩(愛妾) 마르키아, 시종무관장 에클렉투스, 근위대 장관 레투스, 이 세 사람이 포악한 군주의 바보같은 변덕으로 혹은 갑작스런 국민의 분노로 언제 [자기들의] 머리위에 떨어질 지 모를 죽음의 운명을 저지하기로 결의하였다."[p 144]
 시종무관장과 근위대장과 더욱이 애첩까지 황제의 반대편에 가담했다는 것은 실제로 황제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반(離叛)한 것이다.
 "때는 마침 황제가 동물사냥으로 기진맥진하였을 때였다. 포도주 한 잔 권하는 기회를 마르키아가 이용하였다. [독약을 먹였다] 황제는 침실로 물러났으나 점차 독과 취기가 온몸에 퍼져서 신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역기(力技)를 직업으로 하는 건장한 젊은이 한 사람이 침실로 들어와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않고 황제를 목졸라 죽이고 말았다. 시내는 물론 궁중에서도 황제가 죽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사체가 비밀리에 황궁으로부터 밖으로 운반되어 나왔다. 바로 이것이 현명한 군주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외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온갖 권력을 휘둘렀고, 재위 13 년간에 몇 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활을 폭력으로 억눌러 온 대상이던 이 폭군을 쓰러뜨리는 일은 이처럼 매우 간단했던 것이다.(디오-카시우스, '로마사' 제 73 권 22 절, 헤로디아누스, '로마사' 제 1 권, '황제열전' 제 7 권 제 17 절)[p 144]
 적어도 코모두스는 경기장에서 죽지 않았다.
 여하튼 코모두스는 자기 아버지에 비해 논의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영화 제작자는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이제 명상록으로 돌아가자. 나는 여러분이 이 사람을 황제가 아니라 홀로 선 한 사람의, 고독한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 고백록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기원 후 백년 경에는 두 사람의 대(大) 스토아 철학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노예로 에픽테토스이고, 또 한 사람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은 로마인의 위엄을 간직하고 견실한 생활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크게 힘이 되었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다. "철인왕(哲人王)의 사상이 담겨 있는 〈명상록〉은 오랜 세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왔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에 관한 백과사전의 내용이 매우 많아 본문 다음에서 소개하였고, 여기서는 스토아 철학에 대한 간단한 내용만을 소개한다.
스토아 철학   Stoicism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
 모든 탐구의 목표는 평온한 마음과 확실한 도덕을 낳는 행동양식을 인간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토아 철학의 특성과 영역
 초기 스토아 철학은 이전 철학과 달리 지식의 추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헬레니즘 철학을 대표한 스토아 철학은 보편적이고 평온하며, 질서있는 존재와는 거리가 먼 생활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삶의 방편(ars vitae)을 내놓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기에 영원한 우주질서와 불변적인 가치의 근원을 드러내는 일은 이성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은 곧 인간 존재가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이성의 빛이란 세계 전체에 경이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여 질서있게 살아가는 기준이다. 스토아 도덕철학도 세계가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도시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이 도시의 충성스런 시민으로서 덕과 올바른 행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일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스토아 도덕철학은 도덕 가치, 의무, 정의, 굳센 정신 등과 같은 덕목에 중심을 두고 보편적인 우애와 신처럼 넓은 자비심을 강조함으로써 가장 호소력 있는 학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스토아 학파는 처음 형성된 후 2세기까지 그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이후 사상의 발전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후기 로마 시대와 중세에 이르는 동안 스토아 도덕철학의 일부는 그리스도교·유대교·이슬람교 등이 인간과 자연, 국가와 사회, 법과 제재에 관한 이론을 형성하는 데 적용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스토아 철학의 개인중시 사상 및 갈등과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설은 실존주의와 비정통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다시 주목받았다.

책 내용
<1>
1. 나는 조부 베루스에게서 선량한 행실과 격정의 절제를 배웠다.
2. 아버지의 명성과 회상에서 겸손과 남성적인 기질을 배웠다.
3. 어머니에게서는 경건과 인덕(人德), 그리고 나쁜 행위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을 배웠으며, 부자들의 습성에서 멀리 떠나 소박하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이 것 이상의 배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의 배움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4. 증조부로부터는 공립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가정에서 훌륭한 스승을 모셔 배우되, 이런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동양에서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배웠으나 서양에서는 집에 모셔서 배웠다. 결국 현재 문화가 깊은 나라들에서 말썽인 과외공부가 그 시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5. 나의 스승에게서는 경기장의 경주에서 청(靑), 백(白)의 어느 편을 들어서도 안되며, 또 검투사(劍鬪士)의 격투에서는 둥근 방패를 든 편을 들어서도 안 되고 모난 방패를 든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노역(勞役)을 견디고, 욕망을 줄이며, 자기 손으로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며 남의 비방에 귀를 귀울여서는 안된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임성삼의 주(註); 스승에게서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하며, 참된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6. '디오그네투스'에게서는 번거로운 일에 열중하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번거로운 일에 열중하면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주문(呪文)인 악귀를 쫓는 마술사나 요술가의 말을 믿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이것을 믿게 되면 자신의 이성을 믿지 않게 된다. 자기의 판단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싸움을 시키기 위한 [독]수리 등속을 기르거나 이러한 일에 열중하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지금으로 말하면 사냥, 낚시 등의 취미생활을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용인하고 철학을 숭상할 것, 특히 우선 '바키우스'를 비롯하여 점차로 [여러 좋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것] 등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결과 어릴 적부터 대화하는 것을 배우고, 널판 침대와 가죽 옷, 그 밖의 그리스식 단련에 속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7. 루스티쿠스에게서는
[임성삼의 주(註);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물론 그 당시에는 중요한 사람들이었겠으나 우리에게는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의 성격을 바로잡고 또한 수양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배운 것은 궤변의 시합이나 공리공론(空理空論)의 붓을 들거나, 번거로운 권고의 변설을 휘두르거나, 또는 많은 수양을 쌓은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거나, 허식적인 자선(慈善)행위를 하는 이러한 그릇된 길에 빠지지 말고, 또한 수사학이나 시와 노래나 화려한 문자를 배격하는 것 등이었다.
[임성삼의 주(註); 친구에게서 좋은 것을 배웠다.]
 또한 외출복의 정장을 한 채로 방안을 걸어다니거나 이와 유사한 일을 하지 말며,
[임성삼의 주(註); 예절은 집에서도 지켜야 한다. 집에서는 집의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한 예절이다.]
편지를 쓰되 "시누에사"라는 곳에서 어머니에게 써 보낸 것처럼 소박하게 쓸 것,
나를 모욕하고 또 무례한 짓을 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들이 화해의 뜻을 표하면 곧 마음을 풀고 융화할 수 있는 기풍을 기를 것,
[임성삼의 주(註); 단지 무례한 자가 화해의 뜻을 표하기 전에 그들에게 내가 아첨으로 화해의 뜻을 전해서는 안된다.]
무릇 책은 정독하여 표면적인 이해에 만족하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이를 위해 나는 현재 거의 모든 책의 중요한 구절을 적어 여러분에게 보내고, 이런 주석을 붙이는 것이다.]
말이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는 경솔하게 맞장구를 치지 말 것 등등을 가르쳐 주었다.  .....
8. 아폴로니우스에게서는
의지의 자유와
끝까지 목적을 관철하는 것을 배우고
또한 한동안이라도 이성(理性)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하지 말며,
심한 고난을 당하거나 ...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생하더라도 언제나 태연자약(泰然自若)한 태도를 취할 것,
[임성삼의 주(註); 참 어려운 것을 배우셨다.]
그리고 용감무쌍한 동시에 매우 유순하며
자제(子弟)를 가르칠 때는 성급해서는 안 된다는 산 실례(實例)를 분명히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철학상의 여러 가지 큰 원리를 해설하는 것과 같은 자기의 경험 또는 숙련 등은 조그만 재능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자각하고 있는 것을 그에게서 발견하였다.
 뿐더러 친구의 신세를 지면서도 결코 비굴해지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게 관과하지 않는 태도를 역시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9. 세크스투스[플루타르크의 손자, 혹은 조카]에게서는
인자스러운 성격과 자부(慈父)의 미덕에 의해 가꾸어진 가정의 본보기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 허식이 없는 엄숙한 태도며,
친구들의 이득을 자상하게 고려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나 분별없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 등을 배웠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나, 유쾌한 얼굴로 대하여, 자기를 융화시키는 재능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와의 교제는 어떠한 아부보다도 즐거웠으며,
그 때문에 그는 교제하는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생활에 필요한 처세의 강령을 발견하는 동시에,
그것을 총명하고 조직적인 형식으로 질서를 세우는 재능도 갖고 있었다.
그는 분노는 물론이고 어떠한 감정도 절대로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모든 감정에 벗어나 있으면서도, 애정이 매우 깊었었다.
그는 떠들썩하게 과시하지 않고서도 칭찬의 의사를 표시할 수가 있었으며, 허식없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10. 문법학자 알렉산더에게서는
남의 흠을 잡기를 삼가며,
천한 말이나 그릇된 문법이나,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방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경우에 사용해야 할 올바른 표현을 교묘히 가르쳐 주되 직접 그 말로써가 아니라 다만 이에 대한 답변이나, 찬동의 표명이나 또는 질문과 같은 형식을 빌어서 시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11. 프론토우에게서는,
폭군이나 군주에게 어떤 질투와 위선이 존재하는가를 간파할 것과,
[임성삼의 주(註); 폭군과 군주를 동일하게 취급한 것을 인정하자.
어떤 기관이든지 기관장의 성격에는 동일한 면이 있다.]
우리 사이에서 귀족이라고 부르고 있는 자들에게는 대체로 자부(慈父)의 성격이 결핍되어 었음을 간파할 것을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프론토우는 나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12. 플라톤학파의 알렉산더에게는
자기에게 여가가 없음을 남들에게 때때로, 그리고 부질없이 말하거나, 또는 그것을 편지로 써 보내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급한 일에 몰린 것을 구실로 삼고, 친한 사람들과의 교제에 필요한 의무를 게을리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13. 카테울스에게서는
어떤 친구가 자기의 결함을 발견한 경우에, 비록 그것이 무리한 억지라고 하더라도, 이를 모른 체 방임하지 말고, 그 사람을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힘써야 함을 배웠다.
그리고 스승들에 대하여는 도미티우스와 아케노도투스의 고사(故事)를 본받아 언제나 옳은 말을 하고,
또 자기의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배웠다.
14. 사랑하는 형제[역주(譯註); 저자는 형제가 없었으므로 사촌 정도였을 것이다] 세베루스에게서는
자기의 친족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정의를 사랑할 것을 배우고, 또한 그에게서 트라세야, 헬베디우스, 카토, 디온, 브루터스 등에 대하여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자기의 친족을 사랑하는 것은 '중용'에서도 나오는 중요한 덕목이다.
나중에 나오는 여러사람은 과거 공화정의 인물들이다. 과거의 사람에 대해 배우는 것도 큰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만인을 위해 동일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정치적인 주장, 즉 평등의 권리와 언론상의 평등한 자유를 인정하고 통치하는 사상과 ,피치자(被治者)의 거의 모든 자유를 존중하는 왕자다운 통치의 관념을 배우게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그 시대의 이 황제가 지금 민주사회의 대부분의 정치가보다 더 진보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철학에 대한 자기의 입장은 종시 일관하여 변함이 없어야 하며, 선한 일을 행하고,
기꺼이 남에게 베풀며, 선량한 희망을 품고, 친구들에게서 스스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을 것을 그에게서 배우게 되었다.
그는 자기를 배척하는 사람들에게도 자기의 진의를 감추지 않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구들은, 그의 의향을 억측할 필요가 없이 분면하게 알게 됨을, 나는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15. 막시무스에게서는
[임성삼의 주(註);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으나, 내가 앞에서 소개한 그 막시무스일 가능성이 있다.]
자제를 배우고,
또한 다른 일에 미혹되지 않으며 병들었거나 그밖에 모든 경우에 쾌활하고 상냥하며 무뚝뚝한 어느 덕성이나 적당히 조절하여, 불평을 하지 않고, 자기 일을 처리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언행이 일치하고, 그가 하는 일은 모두가 한결같이 악의에서 우러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무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놀라는 얼굴을 하지 않았으며, 서두는 법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무슨 일에나 방치하지 않았으며, 당황하지도 않았다.
 실망하거나 자기의 곤경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일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사회생활에서 자기의 잘못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면 안된다. 그저 묵묵히 인정하는 것이 가장 나은 길이다.]
언제나 인자스러운 행동을 하였고, 남을 용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모든 허위에서 떠나 있었다.
 그는 연단(鍊鍛)을 받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의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아무도 그에게서 멸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를 그에 비해 뛰어난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즐겁게 유머를 곧잘 하는 재능도 갖고 있었다.
[임성삼의 주(註); 적어도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주인공 막시무스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16. 나의 아버지[전왕(前王); 양부, 안토니우스 피우스]에게서는 온유한 기질과 사물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하고 나서 굳은 결의를 한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임성삼의 주(註); 바로 전(前) 로마 황제에 대한 언급이 이렇게 16 번째로 나중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이 분도 또한 로마의 5 현제(賢帝)의 한 분이었다. 아래의 사항을 보면 최고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남들이 명예롭게 생각하는 일에 허영을 구하지 않고, 노고와 정진을 사랑하고, 대중의 이익을 위해 건의하는 사람들의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각자의 공과 과에 따라 상과 벌을 주어 일을 불공평하게 처리하지 않는 그 견실(堅實)성, 민활한 행동과 사면(赦免)에 있어서 경험이 풍부한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지려(智慮) - 그러한 것들을 나는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웠다. ...
당신을 일반 시민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당신의 신하에 대해서도 함께 식사를 나누거나 출타할 때에 필요한 시종 등 모든 의무를 면제시켰다. ...
 아버지는 모든 중요한 일에 대하여 용의주도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 첫눈에 보이는 외관만으로 만족하여 탐구를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성격상 친구를 오래 사귀며, 곧 싫증을 내거나 또 애정을 마구 표시하는 일이 없고, 언제나 만족하고 쾌활한 얼굴을 하였다.
 또한 모든 사물을 훨씬 이전부터 내다보고, 사소한 일도 허실없이 미리 준비해 두고, 세속의 갈채나 아부를 재빨리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라의 통치에 필요한 일에 대하여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국고금의 훌륭한 관리인이 되고자 애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돌아오는 비난을 참을성 있게 견디곤 하였다.
[임성삼의 주(註); 왕으로 오랜 기간을 견딘 사람이 전 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에서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5 황제 시대의 다섯 번째 황제가 네 번째 황제에 대하여. 그러나 그 훌륭한 황제들의 행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행동과 다른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아버지께서는 제신(諸神)에 대하여 결코 미신적인 일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번 책 소개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강조한 사항이다. 시오노나나미의 말대로 지도자는 어느 시대든 미신에서 자유롭다.]
 또한 선심을 써서 남의 환심을 사거나, 백성들에게 아부하여 민심을 우롱하는 일도 없었다. 모든 일에 근엄하고 견실하며, 결코 비열한 생각을 하거나 행위를 하는 일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런 능력있는 사람들이 이렇게하여 "로마의 평화"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신기한 기호(嗜好)에 빠지지도 않았다.
[임성삼의 주(註); 언제나 그 시대의 기호에 빠지는 사람이 국가의 수장(首長)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다음 황제 코모두스는 그 당시의 기호인 검투(劍鬪)에 빠져 매일 아침 곰이나 사자를 한 마리씩 죽였다. ]
 그리고 어느 모로나 생활을 즐겁게 하고 행운을 윤택하게 공급하는 것이라면, 자랑하지도 않고 천시하는 일도 없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
 그를 가리켜 궤변가 또는 교양이 없는 경솔한 사람이나, 현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그를 보고 원만하고 완벽하며, 특히 아부를 떠나 모든 공사(公私)의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또 아버지께서는 진실한 철학자들을 존경하는 한편, 단지 철학자인 체하는 인간에 대하여도 결코 비난하지 않고, 이들에게 쉽사리 속지도 않았다.
 좌담에도 뛰어나, 남에게 불쾌한 태도를 취하는 법이 없고, 좌석의 분위기를 즐겁게 조정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건강에 대하여 상당히 주의하였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지도 않고, 육신의 외모에 마음을 쓰지도 않았으며, 또 전혀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이와 같이 조심하는 까닭에 내과의사의 진찰을 받고 약을 쓰거나, 외과의사의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
 그는 일부러 꾸미는 일이 없이, 국가의 제도와 법률을 지켜 나갔다. 또한 변화와 혼란을 좋아하지 않고, 같은 지위에 머물러 동일한 일을 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두통이 일어난 후에도 곧 기분을 새롭게 하고, 원기 왕성하여 평소의 사무를 보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비밀이 적었다.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고, 단지 공적인 일에 관한 것뿐이었다.
[임성삼의 주(註);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다음 황제의 진술이니 믿을 수 있다.]
 그는 민중의 구경거리, 관공서의 건축, 국민에 대한 자신의 시여(施輿)물 등에 대하여는 신중하고 경제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뿐, 굳이 개인의 행위로 손에 넣을 수 있는 허명(虛名)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정에 없는 시간에 목욕을 하는 법이 없었다. 호화로운 거실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의 음식물과 옷감이나 색깔 또는 비복(婢僕)의 미모에 관심이 없었다. ...
 그에게서는 잔인성, 앙심, 난폭 또는 이른바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점은 전혀 없었다. 뿐더러 무슨 일이나 조사에 착수할 때에는 시간 여유가 많은 것처럼, 침착하고 순서를 따라 재빨리 계속적으로 진상을 캐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에 관한 기록, 즉, "많이 소유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고, 소유하면 남용하게 마련인 재화를, 그는 소유하지 않고서도 견디고 소유하고도 적절히 즐길 수 있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적용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17. 나는 선량한 조부, 선량한 양친, 선량한 자매, 선량한 교사, 선량한 교우(交友) 및 선량한 친족과 친구 등등, 거의 모든 선량한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데 대하여, 신들(諸神)에게 감사하고 있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지 않다.]
  또 하나 내가 신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것은, 이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나 내가 해를 입히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은 점이다.
[임성삼의 주(註); 그러나 황제의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 권력을 주고 곧 죽음으로써 로마에 막대한 피해를 미쳤다. 그의 능력 범위 밖이었을까?]
 
 나는 본래 기회만 있었더라면, 이러한 과오를 범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들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시험에 빠지는 우연의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
 내가 통치자로서 혹은 아버지로서 모신 사람은, 내게서 모든 자만심을 제거해 주고, 적어도 남자로서 호위병이라든가, 호화로운 정장이라든가, 혹은 횃불, 석상(石像) 같은 허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궁정에서 생활하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와 같이 생활할 수 있어야만, 자기를 한 사인(私人)이나 다름이 없는 풍습에 젖게 하면서도, 천한 사상을 갖지 않고, 또 행동을 조심하면서 통치자로서의 알맞은 태도로 공익(公益)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가 가장 융성한 이 때의 황제의 소박한 생활 모습을 증언해주고 있다.]
 또 다시 신들에 감사할 것은 나에게 준 한 사람의 형제[역주(譯註); 의형제 루키루스 베루스]가 그의 도의적인 성격상 언제나 나를 깨우쳐 주고, 그의 존경과 우애가 나를 기쁘게 하여 주며,
또한 내 자식들은 어리석지 않고, 육신적으로 불구자가 아니며,
[임성삼의 주(註); 하지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준 아들 코모두스는 뛰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수사학과 시, 그밖에 다른 학문과 예술에 능통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만일 내가 이런 일에 정진할 수 있었던들, 아마도 나는 거기에 철저히 얽매이게 되었을 것이다. .....
[임성삼의 주(註);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능통하지 못한 것도 복이다.]
 나는 아마도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터이지만, 앞으로는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육신은 오랫동안 그러한 생활을 영위해 왔었다.
 내가 매우 유순하고, 애정이 깊고, 그리고 단순한 아내를 갖고 있는 것도,
[임성삼의 주(註); 역사적으로 이 황제의 아내이며 전 황제의 딸에 대하여는 여러 말이 있다. 위의 표현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뒤에 백과사전에서는 위와 같은 개념이지만...]
내 자식들을 위해 많은 훌륭한 선생들을 초빙한 것도,
[임성삼의 주(註);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1 권의 130 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황제의] 도움을 요청 받고 모여든 학덕 높고 유식한 교육고문들은 소년 '코모두스'의 편협한 마음을 열어주어 점차 심화되어가는 악덕을 교정하여 곧 인수받을 제위에 합당한 인물이 되게 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원래 교육의 힘이란, 처음부터 그런 교육이 거의 불필요할 정도로 본바탕 자체가 훌륭한 인간이라면 또 몰라도, 그렇지가 못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거의 효과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이 옳은가? 잘 생각해보자. 역사에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간성이 덜 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자주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건실한 체하는 철학자의, 전혀 재미도 없는 강의 따위는 놀기 좋아하는 간신배의 한마다 속삭임에 의해 순식간에 잊혀져 버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지성적인 황제와 유능한 학자들이 모든 힘을 다해 교육을 시켜도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이 코모두스만은 아니다.]
 또 내가 철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을 때 궤변학파(詭辯學派)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역사가와 삼단논법(三段論法)과 추리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혹은 천체 현상의 관측에 몰두하지 않게 된 것도, 신들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이러한 모든 일에는 신들과 운명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이야기; 명상록의 1 장을 거의 모두 옮겼다.
 이 장의 첫 부분은 이 황제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배운 내용이다. 사람은 책에서 보다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도 우리 주위의 분들에게 어떤 좋은 점을 배웠는가를 명상(冥想)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상당히 많은 부분을 16 절의 전의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이상적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17 절 이후는 자기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이다. 살면서 감사할 줄 모르면 좋은 사람일 수 없다.]
<2>
1. 아침에는 우선 이렇게 생각할 일이다. 즉 자기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자, 은혜를 모르는 자, 교만한 자, 사기꾼, 질투하는 자, 비사교적인 자와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임성삼의 주(註); 이런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로마 황제였다.]
 이 모든 일은 사물의 선악에 대한 무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한 것이 아름답고, 악한 것이 추한 데 대하여, 그 본성을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의 성질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비단 같은 혈통이나 종족에 속할뿐더러 동일한 신의 예지를 동등하게 나눠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손상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추악한 것을 나에게 떠맡길 수 없고, 나는 자기의 동포들에게 화를 내거나 증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2. 내가 어떠한 존재이건 간에, 단지 한 고깃덩이와 호흡과 지배적인 부분[정신]에 불과한 것이다.
 그대의 책을 버리라. 이제 그대 자신을 현혹시키지 말라. 그것은 허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한 사람의 늙은이다. 더 이상 [스스로를] 노예로 삼지 말라. 꼭두각시처럼 비사회적인 행동의 끄나풀에 조정되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처지에 불만을 품어도 안 되고, 미래에서 물러나서도 안된다.
3. ... 우주는 많은 원소(元素)의 여러 가지 변화에 의해 유지되는 동시에 많은 원소가 복합된 여러 가지 사물의 변화에 의하여 유지된다. 그대는 이 원리로 만족하고, 이 원리를 언제나 그대의 견해로 삼으라.
[임성삼의 주(註); 현재의 화학과 별로 다른 개념이 아니다. 단지 화학의 원리를 정신에 끌어들여 철학으로 만들었다.]
 책에 대한 갈망을 버리라. 그것은 고민하는 일이 없이, 쾌활하게 성실하게, 그리고 충심으로 신들에게 감사하면서 죽기 위해서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 또한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5. 어떤 순간에도 한 로마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원만하고 순박한 위엄을 지니는 동시에 사랑과 자유와 정의감을 갖고, 당면한 일을 처리하고, 다른 여러 가지 잡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충실히 사고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정말 좋은 말이다.]
 만일 온갖 부주의와 이성의 명령에 대한 감정적인 반항과 모든 위선, 이기심,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을 버리고, 오직 이것이 마지막 일인 것처럼 실생활에서 하나하나 실천해 간다면, 그대는 스스로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실 생활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좋은 방법이다.]
 그대가 아는 바와 같이, 조용한 생활, 신들의 생활과 같은 삶을 보내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실로 근소한 것이다. 신들은 이러한 것을 행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밖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기독교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6. ... 각자의 생명은 충족되어 있다. 그런데 그대의 영혼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행복을 남들의 영혼에 맡기고 있는 동안에 그대의 생명은 고갈된다.
8. 인간은 남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만,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에 빠진다.
10. ... 참으로 철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그[테오프라스토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쾌락을 위하여 저지르는 비행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저지른 비행보다 더욱 비난을 받아야 한다. ...
12. 만물은 얼마나 신속히 소멸하는 것인가. 육신은 우주 속으로 사라지고, 그 기억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현상은 무엇인가? 특히 쾌락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또한 고통으로 인간을 두렵게 하며, 물거품 같은 명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것들은 얼마나 무가치하고, 얼마나 비열하며, 얼마나 사멸하기 쉽고, 또 얼마나 말라 죽기 쉬운가 하는 것에 대하여는 예리한 지능만이 깨닫기 마련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명상록에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덧없다는 것이다. 허무의 관념으로 실 생활의 건전함을 내세우자는 논리가 '스토아' 철학의 원리인 것 같다.]
14. 인간은 설령 삼천 년을 살든, 또는 일만 년의 몇 배를 살든, 그래도 역시 모든 인간이 잃는 생활은, 현재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생활일 터이며, 또한 그 생활은 현재 그가 시시각각으로 잃고 있는 생명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가장 긴 생애나 가장 짧은 생애가 동일하게 된다. ...
[임성삼의 주(註); 이런 개념이 이 책의 끝까지 반복하여 나온다. 앞으로는 생략할 것이다.]
17. 인간의 생애는 하나의 점(點)으로, 물질은 유전(流轉) 속에 있고, 지각(知覺)은 우둔하고, 육체의 됨됨은 썩을 운명에 있으며 그리고 영혼은 선풍(旋風) 같고, 행운은 예측할 수 없으며, 명성은 비판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요컨대 육체에 속하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고, 심령에 속하는 것은 꿈결 같은 운무(雲霧)이며, 생활은 하나의 투쟁이고, 또한 나그네의 행로이며, 그리고 사후의 명예는 망각이다.
[임성삼의 주(註); 황제부터 온 로마 사람이 이러한 허무 속에 있을 때, 기독교가 그들에게 희망과 빛을 주었다. 이 시대에 로마에서는 맹렬하게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었다.
  즉 스토아 철학은 로마 사람들의 마음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메마르고 허무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메마른 마음에 기독교의 복음이 비와 같이 스며 들어갔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하나 철학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 능욕하거나 가해(加害)하지 말고, 쾌락을 초월하여, 목적이 없는 행동을 하지 말며, 또한 허위나 위선에 찬 행위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행동 여하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모든 일과 모든 운명을 자기 자신이 태어난 원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감수하며, 끝으로 죽음에 대하여는 모든 생물이 그 구성 분자로 환원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유쾌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임성삼의 주(註); 그러나 철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유쾌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기독교의 영생(永生)을 택하게 된다. 그 길이 현세에서는 아주 힘든 순교의 길이라도...]
                           이상은 칼눈툼[다뉴브강 남쪽에 있는 판노니아의 한 고을, 야만족과의 싸움으로 이곳에서 3 년 동안 머물렀다고 함]에서 적었다.
<3>
1. 우리는 자기의 생명이 나날이 소모되고 감퇴되어 간다는 것을 염두에 둘 뿐만 아니라, 또 하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즉 가령 어떤 사람이 장수를 한다고 해도 과연 그 분별력이 존속되어 사물을 충분히 분간할 수 있으며, 신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능력을 보유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비단 우리가 날로 죽음에 접근해 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에 대한 능력과 이해력이 먼저 쇠퇴되기 때문이다.
2. 만일 사람들이 우주에 생성된 사물에 동정과 깊은 통찰력을 갖는다면, 어느 의미에서나 쾌감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맹수의 벌린 턱에서도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에 못지않는 쾌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또한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서도 일종의 원숙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또 젊은 남녀의 매력 있는 사랑스러움도 맑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이다.
3. 히포크라테스(BC 460 - 377 경)는 많은 병을 치료하고 나서, 자기가 병에 걸려 죽었다. 칼데이의 박사들은 많은 사람의 죽음을 예언하였으나, 이윽고 운명은 그들도 앗아갔다. 알렉산더, 폼페우스, 카이우스, 시저 등은 그렇게 번번이 대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전장에서는 몇 십만의 기병대나 보병대를 닥치는 대로 살육하였지만, 이윽고 그들 자신도 죽음을 당하였다.
4. ... 우리는 만일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지금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하고 물으면, 공명정대하게 곧 "이러저러한 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만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
[임성삼의 주(註); 동양에서는 "혼자 있을 때의 마음을 조심하라."는 말이 여러 책에 있다. 또한 율곡 선생님의 "격몽요결"에 이와 거의 완전히 같은 말이 있다.]
5. 무슨 일이든지 마지못해 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깊이 생각한 연후에 행하되, 마음에 혹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인위적인 허식으로 자기 사상을 장식하여서도 안 되며, 말이 많은 사람이 되거나 많은 일에 매여 너무 분주하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신성(神聖)으로 하여금 자기의 수호신이 되게 하고, 남아답게 생각이 깊으며, 정치에 관여하고, 로마인으로서, 지배자로서, 자기의 직분을 지켜나갈 때에는 언제나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한 사람처럼 진퇴(進退)를 결정하고, 아무런 서약도, 어떤 사람의 증언도 필요없이 묵묵히 행동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인들은 이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또한 쾌활해야 한다. 외부에 원조를 구하지 말며 타인이 주는 평화를 바라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남아는 남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서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그 당시 세계의 주인으로 자부하고 있던 로마인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6. 인간 생활에 있어서 그대가 만일 정의, 진리, 절제, 견인(堅忍)보다 더 선한 것을 발견한다면 ... 그대는 거기에 전심전력을 위탁하라. 그리고 그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락하도록 하라.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는 다만 단순히, 그리고 자유롭게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을 고수하라.
8. 세련되고 정화된 인간의 정신 속에는 썩은 것, 부정한 것, 꿰매어 붙인 상처 같은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또 언제 죽음의 손에 잡히더라도, 마치 연기를 끝마치기 전에 무대를 떠나는 배우에 대한 비난처럼 미완성의 생활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도 비굴한 데가 없고, 또한 허식도 없으며, 큰 집착도 느끼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사물을 등지는 일도 없고, 탓할 만한 일도 없으며, 피난처를 찾는 일도 없다.
[임성삼의 주(註); 이 황제가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황제를 힘없고 병든 노인으로 묘사한 영화는 진실이 아니다. 그는 죽을 때 59 세밖에 안되었었다.]
10. ... 그리고 가장 길다는 사후의 명성도 역시 짧은 것으로 대대손손(代代孫孫) 그것을 전하는 것은 다만 가엾은 인간들이며, 그들 자신이 매우 신속히 죽어가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자들이므로 먼 옛날에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알 리가 없다.
[임성삼의 주(註); 죽은 후의 명성에 대하여까지 정확히 분석하였다.
나의 집 사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 중 이 줄 친 부분만은 틀렸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그의 글을 읽으며 그의 마음을 알고 그와 함께 느끼고 있으니까.]
16. ... 자기의 가슴에 심어 놓은 신성(神聖)을 모독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인상에 의해 그것을 훼방하지 않으며,
신에 순종하고,
진리에 어긋나는 일은 일체 입밖에 내지 않으며,
[임성삼의 주(註); 논어에 나오는 비례물언(非禮勿言; 예절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는다)]
또한 정의에 위배되는 것은 일체 행하지 않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역시 논어의 비례물동(非禮勿動)]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단순하고 겸손하며, 분수에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느 누구에 대하여도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자기가 한 평생 도달하려는 목적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
2. 어떤 행위를 하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또한 기술상의 완전한 원리에 따라야 한다.
......
 명성에 대한 욕망이 아마도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보라, 모든 사물이 얼마나 신속히 망각되는가를.
10. 모든 사물은 정당한 이유에서 생긴다는 것을 명심하라. 만일 깊이 관찰하면, 그대는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무엇을 하든지 선인(善人)이 될 것을, 다시 말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선인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행동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엄밀한 의미에서 선인'이 될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 비슷하게도 될 수 없다.
율곡 선생님의 "격몽요결"의 첫 귀절은 다음과 같다.
初學 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              須(모름지기 수)    期(기약할 기)
처음 학문을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뜻을 정하기를
반드시 완전한 사람(성인 聖人)이 되기로 스스로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성인을 선인과 거의 같이 해석한다.]
12. 우리는 언제나 다음 두 가지 규칙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하나는 지배와 입법을 맡은 자는 인류의 이득을 위해서만 명령을 내릴 것.
 또 하나는 만일 근처의 어느 사람이 그대의 미망을 제거해 주고 그대의 그릇된 견해를 씻어 준다면 아낌없이 의견을 변경할 것. 그러나 이 의견의 변경은 정의나 혹은 공공의 이익과 같은 어떤 확실한 이유에서 행해야 하며, 그것이 기분 좋게 보인다든가, 또는 명예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 변경해서는 안된다.
17. 스스로 만 년 동안이나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죽음은 그대 위에 걸려 있다. 그대가 사는 기간은 그대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선량하라.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이 책의 기본 법칙이다. 이 논리에 대해 잘 생각해보자.]
18. 나의 이웃 사람이 말하고, 또 행하며, 혹은 생각하는 것을 알려고 애쓰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을 올바르고 순결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은 괴로움을 모면하게 될 것이다.
 아가톤(그리스의 비극작가. BC 447 - 400)이 말한 바와 같이, 남의 타락된 도덕에 눈을 돌리는 일 없이, 다만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 어느 의미에서나 아름다운 것은 모두 그 자체에 있어서 아름답다. ...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진리, 인애(仁愛), 겸손이 칭찬을 받아서 아름다운 것이 되었으며, 비난을 받으면 더러운 것이 된다는 말인가? 비취, 황금, 상아, 자수정 등이 칭찬을 받지 않으면 밉게 보이는가?
[임성삼의 주(註); 칭찬을 바라는 데에 대한 경고]
24.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언제나 "이것은 불필요한 일이 아닌가?"하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불필요한 행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까지도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질없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된다.
28. 간악한 성격, 비겁한 성격, 완고한 성격, 짐승 같은 놈, 어린애 같은 사람, 동물적인 인간, 우둔한 자, 거짓이 많고 비천하고 기만적이고 포악한 자
[임성삼의 주(註); 이러한 온화한 분도 이런 사람들에 의해 수난을 받고 나면 이런 글을 남기게 된다.]
31. 그대가 배운 기술은,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이를 존중하고 만족하라. 그리고 그대 자신을 폭군이나 노예로 삼지 말고, 온 몸과 정신으로 가진 것 일체를 신에게 맡긴 사람과 같이 여생을 보내도록 하라.
33. 전에 귀에 익었던 말도 지금은 낡아 버렸다. 마찬가지로 옛날에 유명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오늘날에 와서는 낡아 버렸다.
34. 자기 자신을 기꺼이 운명의 여신 크로토우에게 맡겨, 그녀가 그대의 실을 마음대로 짜도록 하라.
[임성삼의 주(註); 운명의 여신은 각 개인의 운명을 계속 실로 짜서 그 사람의 삶을 만들어 간다고 그리스 신화에 나와있다.]
35. 기억하는 것도, 기억되는 것도, 다 함께 단 하루뿐인 것이다.
48. 다음과 같은 것을 언제나 마음속에 새겨 두라.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병자에게 자주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이윽고 자기 자신도 죽어갔는가를. 얼마나 많은 점쟁이들이 남의 죽음을 떠들썩하게 예언하면서, 자기도 덧없이 죽어갔으며, 또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과 불멸에 대하여 끊임없이 해명하고 스스로 죽어갔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무수한 사람들을 살육한 연후에 자기도 죽어갔으며, 또 얼마나 많은 폭군들이 자기는 불멸의 화신이나 되는 것처럼 몸서리치는 횡포를 감행하여 생사의 권한을 한 손에 휘두른 연후에 죽어갔던가. 또 얼마나 많은 도시가 멸망했던가. ... 인생이 얼마나 덧없고 얼마나 무상한가. ... 자연에 순응하여 지나가고 ...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그대의 나그네 길을 끝맺도록 하라.
[임성삼의 주(註); 이 시기에 사람들이 착한 행동을 하게 하려면, 이런 빈약한 논리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로마에서 광범위하게 기독교가 퍼져나간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의 한계를 보는 것으로 여겨진다.]
49. 언제나 사나운 물결에 부딪치면서도 굳굳하게 서 있으며, 주위의 사나운 물결을 다스리는 곶(岬; 산허리 갑)처럼 있으라.
<5>
1. 아침에 일어나기 싫거든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즉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또 그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파송된 일을 지금 하려고 한다면, 내가 어찌 그것에 불만을 느낄 수 있겠는가?
2. 성가시고 귀찮은 모든 잡념을 깨끗이 버리고, 마음을 안정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7. 아테네 사람들의 기도 - 비를, 비를, 오 제우스여, 아테네 사람들의 경작지와 들에 비를 내리소서
 우리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일 기도를 한다면, 이와 같이 단순하고 기품이 높은 양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9. 정당한 원리에 따라서 모든 일을 하였는데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대는 혐오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며, 또한 불평을 하지 말라. 그 경우에는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서 자기가 한 일이 거의가 인간의 본성과 일치하면 스스로 만족을 느끼고 그대에게로 돌아오는 것(철학)을 사랑하라. ...
11. 나는 지금 나의 영혼을 무엇에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자문(自問)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자문하여야 한다.
 즉 지금 나의 지배성능이라고 말하는 영혼은 무엇을 파악하고 있는가?
[임성삼의 주(註); 앞으로 지배성능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게 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가? 어린이의 영혼인가? 허약한 여자의 영혼인가? 가축의 영혼인가? 폭군의 영혼인가? 혹은 들짐승의 영혼인가?
17. 불가능한 것을 구하는 것은 광기(狂氣)이다. 그리고 악한 자가 악을 저지르는 것은 당연하다.
20. 자기는 인류에게 선을 행하고, 그들의 결점을 참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인간은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30. 신들에 대하여, 부모에 대하여, 자녀에 대하여, 스승에 대하여, 그리고 그대의 유년과 소년 시절을 돌보아 준 사람들 - 친구, 친척, 노비들에게 대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는 어떻게 행동해 왔는가? 그대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소행에 대하여 다음의 말이 합당한가를 생각해 보라.
 언행 중에서 그 어느것도 아직 사람을 해친 적이 없다.
<6>
1. 우주의 실체는 순종이며, 또한 유화(宥和; 용서할 유, 화할 화)이다.
3. 정밀하게 고찰하라. 어떤 사물에 대하여도 그 특수성과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임성삼의 주(註); 이런 지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6. 복수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해자와) 같은 무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18. 사람들은 실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동일한 시대에 살면서, 자기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좀처럼 칭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기가 아직 보지도 못하였으며, 또한 결코 볼 수도 없는 후세의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에 커다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24.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마부(馬夫)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동등하게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이 황제의 입에서 나온 것이 신기하다. 이 황제가 죽은 1800 년 후인 현대에도 상당한 수의 전 세계 관리들의 의식 수준은 이 황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29. 육체가 아직 쇠퇴하지 않는 동안에 심령이 먼저 쇠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임성삼의 주(註); 육체가 왕성한 20 대에 심령부터 쇠퇴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30. 지나치게 황제의 세도를 부리거나, 그런 버릇이 붙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대는 자기 자신을 단순하게, 선량하게, 진실하게 꾸밈새가 없이, 정의의 벗, 신들의 숭배자가 되어 친절하고 애정이 깊고 모든 일에 정당하게 행동하도록 힘쓰라.
 그대는 철학이 그대의 인격을 완성시키려고 원한 그 상태에 언제나 있으라. 신들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도와주어라. 인생은 짧다.
 이 지상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열매는 경건한 마음씨와 사회적인 행위뿐이다. 모든 일을 안토니우스[먼저 황제]의 제자로서 행하라. 이성에 적합한 행위로 일관한 그의 절제, 모든 사물에 대한 그의 경건, 그의 침착, 그의 우아함, 허명(虛名)의 멸시, 사물을 이해하려는 노력... 등등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는 부당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공박하지 않고, 어떻게 참았던가.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얼마나 태연자약하였던가. .....
47. 매우 가치있는 가르침의 하나는 그대의 생활을 진리와 정의 속에서 보내고, 거짓말쟁이나 의롭지 못한 자들에게도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이다.
48. 그대 자신을 즐겁게 하려면, 그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미덕을 생각해 볼 일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눈부신 활동이나, 두 번째 사람의 겸손이나, 세 번째 사람의 관용이나, 또는 네 번째 사람의 그 밖의 미덕을 생각할 일이다. 미덕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 속에 나타나고, 그것이 될 수 있는 한 풍부하게 나타날 때만큼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러한 실례를 우리 눈으로 언제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49. 그대는 자기의 체중이 150 kg에 달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명에 있어서도 정한 연령 이상을 살지 못한다고 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51.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의 견해를 자기의 행복처럼 생각한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감각에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분별력을 지닌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위를 자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3. 다른 사람이 말하는 일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되도록 말하는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도록 그대 자신을 길들게 하라.
[임성삼의 주(註); 황제의 가장 큰 자격이다.]
54. 벌집 전체에 이득이 되지 않는 것은, 개개의 벌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제국의 황제로서의 좋은 말이다.]
<7>
1. 사악(邪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그대가 자주 보아 온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치 조차 없다.]
3. 쓸데없는 일거리, 무대 위의 광언, 양의 무리, 소와 말의 무리, 창술(槍術)의 연습, 강아지에게 던진 뼈다귀, 연못의 물고기에 던진 빵, 무거운 짐을 나르는 개미의 노동, 혼이 난 생쥐의 줄도망, 실에 조종되는 인형 ---
이러한 것들 속에서 즐거운 얼굴을 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그대의 의무일 것이다.
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명성에 의해 칭찬을 받은 연후에 망각 속에 묻혀 버렸던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명성을 찬양해 마지 않던 많은 사람들도 벌써 옛날에 죽은 것이다.
8. 미래의 일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러한 일에 직면할 필요가 생긴다면, 현재 그대가 사용하고 있는 이성이 그대를 도와줄 터이므로.
12. 그대는 똑바로 서라, 그렇지 않으면 똑바로 세워지지 못할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결코 똑바로 섰다고 할 수 없다.]
15. 누가 무엇을 하든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나는 선량해야 한다. 마치 금이나 에머럴드, 또는 자색 옷은 언제나 "누가 무엇을 하거나, 또 무슨 말을 하거나, 나는 에머럴드이며, 내 본래의 빛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24.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다. 그것을 자주 되풀이하면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다시 명랑성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절멸되어 버린다.
27. 그대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것 만큼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하여는 최선의 것을 선택할 일이다.
29. 어떤 사람이 저지른 비행(非行)은, 그것이 행해진 곳에 그대로 내버려 두라.
[임성삼의 주(註); 여기 저기에 가서 말하지 말라.]
31. 인류를 사랑하라. 신에게 순종하라.
[임성삼의 주(註); 이런 개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지 모른다. 기독교의 중심 사상을 이미 가지고 있다.]
34. 모래의 더미가 그 전 모래의 더미 위에 덮이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전에 행한 일은 나중에 행한 일에 덮쳐진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 보라.
36. 안티스테네스에서 --- 선을 행하고 비난을 받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임성삼의 주(註); 현대 사회의 장점은 많이 있다. 그러나 "고귀(高貴)"에 대한 개념을 잃은 것은 슬픈 일이다.]
37. 마음이 명하는 대로 여러 가지 얼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천한 일이다.
그리고 뜻대로 자기를 통제하고 이끌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39. 불멸의 신들과 우리 자신에게 기쁨을 줄지어다.
49. 사십 년동안 인생을 관조(觀照)한 것은 만 년 동안 인생을 관조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현재 이상의 것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57. 오직 그대에게 일어나는 일, 그리고 그대의 운명의 실에 짜여지고 있는 일만을 사랑하라. 그 이상 적합한 일이 있는가?
58. 오직 그대 자신을 섬기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선인이 되고자 다짐하라. 언제나 이를 염두에 두라.
62. 그대는 어떤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원하는가. 그들은 어떤 이해력을 갖고 있는가를 언제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대는 실수로 비행을 저지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들의 의견이나 정욕의 원천을 주시하면, 그들의 칭찬을 원치 않을 것이다.
64. 고통을 당할 적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즉 이것은 불명예가 아니다. 또 나의 지배적인 영지(靈智)를 나쁘게 하지도 않는다고.
[임성삼의 주(註); 이 황제도 고통을 받은 적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65.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갖고 있던 심정이 어떠하였는가를 연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가 사람들에 대하여 언제나 올바른 태도를 취했으며,
신들에 대하여 경건하였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인간의 사악함을 헛되니 고민하지 않고,
어떠한 사람의 무지에도 휘말려 들어가는 일이 없었으며,
우주에서 보내온 몫으로서 자기에게 닥친 일은 무엇이건 지체 없이 받아들여, 그것을 잘 견디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가엾은 육체의 여러 가지 정욕에 대하여는 동정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기 이해력을 어둡게 하지 않았다는 것 등등,
이러한 일이 과연 어떠했던가를 탐구해야 한다.
67. 설령 세계가 그대를 마구 욕하고 꾸짖을지라도, 또한 야수가 그대의 수족을 물어서 갈갈이 찢더라도, 모든 강제에서 벗어나 극히 안정된 마음을 갖는 것은, 그대의 권한에 속한다.
 이러한 소동 속에서도 정신을 안정하게 하고, 주위의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며, 또한 모든 대상을 자기의 의사대로 사용하는 것을 아무도 훼방할 수 없다.
72. 그대가 어떤 선한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이 이를 인정할 경우에, 여전히 바보와 같이, 어찌하여 이 두 가지 사실 이외에 제 삼의 것, 즉 선행을 하였다는 명성을 얻거나, 칭찬을 받기를 원하는가.
<8>
1. 그대가 그 여생을 그대의 본성이 원하는 대로 보내게 되면 그것에 만족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그대의 본성에 따라서 행하되 다른 어떠한 것에도 휩쓸려서는 안 된다. 삼단논법(三段論法)에도, 재물 속에도, 명성에도, 향락에도 ...
5. 그대는 자기 업무에 시선을 돌리고, 동시에 선인(善人)이 되는 것이 자기의 의무임을 기억하여,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이를 행하며, 또 그대에게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말을 하되 선의(善意)와 겸손과 성실로써 해야 한다.
8. 그대는 책을 읽을 여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대는 오만을 억제할 여유는 갖고 있다. 그대는 쾌락과 고통을 초월할 여유를 갖고 있으며, 명예욕을 초월하고, 어리석은 배은망덕(背恩忘德)자를 괘씸하게 여기지 않을뿐더러, 그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는 여유도 갖고 있다.
10. 쾌락은 선도 아니고, 유용한 것도 아니다.
22. 그대가 그토록 고민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 그대가 오늘보다 내일은 더욱 선량해지려고 하므로.
30. 원로원에서도 누구에게나 아는 체 말고 온당하게 이야기하라. 순박한 말을 하라.
33. 부귀나 영화는 교만에 흐르지 말고 받아들이라.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36. 미래도 과거도 그대를 괴롭히지 않으며, 다만 현재만이 그대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50. 어떤 오이는 쓰다. 이것은 버리는 것이 좋다.
길 한복판에 나무더미가 놓여있다. - 이것은 피하여 지나가면 된다.
이것으로 족하다.
세상에 어찌하여 이런 것이 만들어졌는가?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첨부하지 말라
.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51. 어떤 사람이 맑은 샘물가에 서서 샘물을 저주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샘물은 계속해서 맑게 치솟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 속에 흙덩이나 오물을 던져 넣더라도, 샘물은 곧 그것을 순화시켜 금방 깨끗해질 것이다.
61.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의 마음속으로 돌아가게 하라.
<9>
4. 악을 저지른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고약하게 만들므로, 자기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12. 그대는 비참한 노예처럼 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동정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것 때문에 일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대의 정신을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중시켜, 사회적인 이성이 요구하는 대로 그대 자신을 움직이고, 또한 그대 자신을 억제하라.
17. 위로 던져 올린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악이 아니다. 또한 던져 올린 것이 선이 아님은 물론이다.
20. 다른 사람이 저지른 악행을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그대의 의무이다.
42. 어떤 사람의 뻔뻔스러운 행위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할 때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런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쓸어버릴 수 없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원해서는 안된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도 이 문제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10>
5. 그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태초부터 그대를 위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원인의 얽힘은, 영원한 태초부터 그대의 존재가 이에 부수되는 사건을 일으키는 그물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라플라스의 악마" 즉 기계론적 인과(因果)론이 이 시대부터 있었다.]
8. 무화과 구실을 하는 것이 무화과이며,
개의 구실을 하는 것이 개이고, 꿀벌 구실을 하는 것이 꿀벌이고,
인간의 구실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
12. 만일 그대가 사물을 분명히 볼 수 있다면 뒤를 바라보지 말고 이 길을 줄곧 가도록 하라.
37. 누가 무엇을 하고 있건, 그것을 볼 적마다 되도록 "이 사람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하고 생각해 보는 버릇을 가지라. 그러나 그대는 그대 자신이 그것을 실행하여 우선 체험해 보라.
<11>
18. 그대가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곧 인간다운 인간이 되도록 하라.
22. 시골 쥐와 도시의 쥐에 대하여, 그리고 도시의 쥐의 전전긍긍함과 두려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임성삼의 주(註); 이 분도 이솝이야기의 참된 독자였다.]
24. 스파르타 사람들은 그들의 공개 구경거리를 보일 경우에, 외국 사람들에게는 천막의 그늘진 자리를 제공하고, 그들 자신은 아무 곳에나 앉았다.
25. 소크라테스는 페르디카스 궁정의 초대를 사절할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장 나쁜 부덕(不德)으로 멸망되고 싶지 않습니다.
즉 나는 내가 갚을 길이 없는 은혜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30. 그대는 노예이다. ----- 언론의 자유가 그대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으므로
[임성삼의 주(註); 황제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 거의 같은 이야기가 당태종의 "정관정요"에 나온다.]
36. 어떤 사람도 우리에게서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빼앗을 수는 없다.
[임성삼의 주(註); 논어에도 나온다. 큰 군대의 지휘자는 포로로 할 수 있으나, 필부에게서 뜻[의지]을 빼앗을 수는 없다.]
<12>
10. 인간에게는 큰 능력이 부여되어 있다.
즉, 인간은 신이 허용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으며, 신이 부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
14. 등불은 꺼질 때까지 한결같이 빛나는가?
그리고 그대 속에 있는 진리, 정의, 근엄(謹嚴)은 그대가 죽기 전에 소멸하는 것일까?
20. 무엇보다 생각이 따르지 않는 일이나 목적이 없는 일을 하지 말라.

임성삼의 이야기;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주인공 막시무스의 "자식과 아내와 함께 농사짓고 살고 싶어하는 소망"이다. 앞에서 내가 이 영화의 여러 오류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막시무스의 소망은 실제로 위대한 로마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 영화보다 280 년 전[기원 전 100 년]까지는 로마의 군대는 모두 자영(自營)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기 농토를 지키고, 가족과 함께 농사짓기 위한 소망을 가진 병졸들은 침입자들에 대항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결과 한니발, 피로스 등의 그 당시 능력있는 외국 장군들이 이탈리아 반도에 침입한 것을 물리쳤으며, 그 여세를 몰아 카르타고와 그리스를 점령하였다. 방어만으로는 계속되는 침입을 근절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는 전형적으로 용병을 사용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일단 강해진 로마는 점령지에서 들어오는 값싼 농산물로 인해 자영 농민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그락쿠스 형제의 개혁]. 또한 광대한 국토를 지키기 위해 먼 곳까지 농민이 파병될 수 없었다. 그 결과 임금을 받는 직업군인이 군대의 주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 군인들도 일정기간 근무하면 변방에 자기의 땅을 분배받아 지주가 될 수 있었다.
 평화로운 삶에 대한 소망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정식 이름은 Caesar 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 본명은 Marcus Annius Verus(~161).
121. 4. 26 로마~180. 3. 17 판노니아 빈도보나(지금의 빈) 또는 시르미움.
로마의 황제(161~180 재위).
 스토아 철학이 담긴 〈명상록〉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서양에서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해온 인물이다.
초기생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로마의 콘술(집정관)을 연임하는 중이었고 프라이펙투스(장관)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것은 원로원에 들 수 있는 특권을 뜻하는 명예로운 직책이었다. 고모는 황제에 즉위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과 결혼했고 언젠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제위를 계승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의 외할머니는 로마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집안의 상속녀였다. 이처럼 마르쿠스는 플라비아누스 황제(69~96)를 구심점으로 하여 사회·정치 권력이 집결되어 있던 새로운 로마 체제에서 가장 이름난 몇몇 집안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이 체제의 기풍은 그의 태도와 행동에 배어들었다. 로마 제국을 처음으로 지배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공화국 말기의 지배계급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방사람을 경멸하고 거만하며 냉소적이고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도회지 로마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로마 체제는 도시와 지방출신의 황제들이 고루 다스렸으며, 진지함과 훌륭한 일을 개발하고 경건과 신앙심을 더욱 진작시켰다.
 어린 마르쿠스가 장차 특출한 정치적 인물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황제에 즉위하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 136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이때부터 L. 아일리우스 카이사르라 불림; 임성삼의 주 - 이 사람은 마르쿠스의 아들이 아니다.)가 제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같은 해 어린 마르쿠스는 콤모두스의 딸 케이오니아 파비아와 약혼했다. 그러나 138년초 콤모두스가 죽고 그후 하드리아누스 황제마저 세상을 떠나자 파혼했다. 콤모두스가 죽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마르쿠스의 고모부였던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나중에 자신의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하도록 하고(나중에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됨; 마르쿠스의 전 황제), 대신에 안토니누스에게 콤모두스의 아들과 마르쿠스 두 젊은이를 양자로 삼으라고 명령했다. 이때 마르쿠스의 이름은 마르쿠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로 바뀌었다.
 이리하여 마르쿠스는 17세 이전에 공동 황제에 즉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40세가 되어서야 황제에 즉위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속으로 콤모두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장차 황제가 될 한 젊은이 또는 두 젊은이 모두를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안토니누스 황제 아래에서 마르쿠스가 쌓은 오랜 기간의 예비황제 교육은 스승이었던 프론토와 주고받은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프론토가 당시 사회의 주요문인이었지만 수사(修辭)가 몸에 밴 음울한 현학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프론토가 편지에 나타난 것만큼 생기없는 인물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두 젊은이와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천재적인 감수성과 진솔한 교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하고 진지하며 지적인 마르쿠스는 스승의 한결같은 고급 그리스어와 라틴어 낭독방식에 점차 싫증을 느꼈으며, 대신 한때 노예였으나 스토아 학파의 주요 도덕철학자인 신앙심 깊은 에픽테투스의 〈담론 Diatribai〉을 탐독했다. 이때부터 마르쿠스는 주로 철학에서 지적 흥미와 정신의 영양분을 구했다.
 한편 마르쿠스는 정력적인 황제 안토니누스 곁에서 통치술을 배웠으며 공직을 맡기도 했다. 마르쿠스는 140, 145, 161년에 콘술이 되었다. 145년 사촌이었던 황제의 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와 결혼했으며, 147년에는 공식상 황제직의 주요권력형태였던 '임페리움'(황제권)과 '트리부니카 포테스타스'(호민관의 권한)를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르쿠스는 일종의 연하의 공동 황제가 되어 안토니누스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주요국정을 결정했다(그보다 10세 가량 어렸던 양동생도 적당한 시기에 주요공직을 맡았음). 161년 3월 7일 안토니누스가 사망하던 날 두 형제는 함께 콘술이 되었다.
로마 황제 시기
 마르쿠스가 황제에 즉위하는 과정은 순탄했다. 그는 이미 합법적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완전한 황제자리에 올랐다(이때부터 그의 이름은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 양동생도 마르쿠스의 강한 요청으로 공동 황제가 되었다(이때부터 그는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받음). 루키우스 베루스가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다는 증거는 없다. 이렇게 하여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는 동등한 법률상 지위와 권력을 갖는 공동 황제가 탄생했다. 그러나 루키우스 베루스의 업적은 뛰어난 황제 마르쿠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대부분의 재위 기간 동안 변방지역에서 전쟁을 치르고 큰 전염병, 도덕의 타락에 맞서 싸우는 등 중요한 국정은 철저히 마르쿠스가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마르쿠스는 국내정치에서 건설적으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고 독창적인 기풍을 세우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틈이 없었다. 그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분야는 법률분야였던 듯하다. 수많은 법령을 공포하고 사법판결을 확정했으며 민사법의 비정상적이고 가혹한 조항을 제거하고 노예·과부·소수민족같이 국가의 혜택을 적게 받는 계층의 비율을 줄였으며 상속 분야에서 혈연을 인정한 것 등을 업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마르쿠스의 개인적 공헌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법령 개선의 유형은 혁신적이기보다는 전통에 따른 것이었고, 법령은 단지 사회와 법구조를 세련되게 만들었을 뿐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마르쿠스는 위대한 입법가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보호한 헌신적인 실천가였다. 더욱이 이러한 법률적 활동에는 특별히 스토아적인 요소는 없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보면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의 시대는 법과 사회의 관계가 이전보다 오히려 퇴보하기 시작한 때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통치기에는 형법에 따른 처벌에서 차별 적용을 받는 '호네스티오레'(honestiore:상류층)와 '휴밀리오레'(humiliore:하류층)라는 두 계급이 서로 구분되기 시작했거나 더욱 뚜렷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휴밀리오레는 형법에서도 언제나 가혹하게 처벌받았다.
 정치가로서 마르쿠스의 자격을 문제 삼는 논란은 아주 다양하게 제기되어왔다. 그중 한 예가 그리스도교도의 박해와 관련된 문제이다. 마르쿠스는 그리스도교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재위하는 동안 어떠한 조직적인 박해도 가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도의 법률상 지위는 트라야누스 황제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도는 얼마든지 처벌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수배당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불안정한 그리스도교도의 지위는 제국의 안정기와 번성기에는 아무런 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 시에 지역 주민은 그리스도교도를 고발하고 행정관은 중앙권력의 명령에 따라 법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 177년에 리옹에서 일어난 순교도 바로 이런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도가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의 재위기간 동안 그전보다 많은 피를 뿌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신은 결코 박해를 주도하지 않았다.
 161년 동방의 중심세력 파르티아가 시리아 지역을 침략했다. 162~166년의 전쟁은 명목상으로는 베루스가 지휘하여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침공함으로써 승리했지만 실은 황제 휘하의 유명한 가이우스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장군이 결정적인 공을 세운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대가 퍼뜨린 전염병은 수년 동안 로마 제국 전역을 휩쓸었으며, 게르만족의 침입과 함께 제국의 안정기에 익숙했던 시민들의 도덕의식을 약화시켰다.
 167년 혹은 168년에 마르쿠스와 베루스는 도나우 강을 건너 게르만족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의 등 뒤에서 게르만 유목민족이 엄청난 기세로 이탈리아를 침입하여 아드리아 해의 요충지였던 아퀼레이아를 점령했다. 위급한 사태에 직면하자 제국의 군사적 취약함과 재정구조의 경직성이 드러났다. 군대를 재편성하기 위한 절망적인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제국의 재산이 경매되었다. 마르쿠스와 베루스는 게르만족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169년 베루스는 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도나우 강 국경선을 되찾기 위해 마르쿠스는 온 힘을 기울여 3년간 더 싸워야 했으며, 또다시 3년간 보헤미아 지방에서 싸운 끝에 잠시나마 도나우 강 건너 부족들을 평정할 수 있었다.
〈명상록〉
 마르쿠스가 골치 아픈 국정 수행기간 동안 추구한 사상과 비록 역사적으로 매우 값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일상 정치사상을 좀더 자세히 알려면 〈명상록〉을 읽으면 된다. 그가 이 책을 쓰면서 어느 정도로 타인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명상록〉은 전쟁을 수행하고 통치하는 동안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책으로, 논증적인 글과 경구가 번갈아 나타난다. 어떤 면에서 이 글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 〈
 <명상록〉은 로마인의 가장 내밀한 사상을 다 모아놓은 것이지만 놀랍게도 그리스어로 쓰여졌는데, 이는 당시에 여러 문화들이 통합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마르쿠스의 사상을 찬탄해왔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까다로움과 히스테리가 뒤섞인 마르쿠스 사상의 병리학적 측면이 더 눈에 띈다. 마르쿠스는 항상 이룰 수 없는 행동목표를 추구하고 있었으며, 사색 속에서 그 자신을 포함한 인간 일반과 물질 세계가 덧없고 야만스럽고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세상을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떤 희망도, 심지어 영원한 명성에 대한 희망도 없이 의무와 직책에 얽매여 있었다. 평생 동안 병고에 시달렸으며 만성 위경련으로 고통받으면서 매일 많은 약을 복용했던 것 같다. 〈명상록〉의 책갈피 속에서 풍기는 종말론적 분위기는 약물중독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더 확실하고 중요한 점은 마르쿠스의 불안이 다소 과장된 형태이긴 해도 그 시대의 풍조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철인왕(哲人王)의 사상이 담겨 있는 〈명상록〉은 오랜 세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왔다. 그 사상은 마르쿠스 자신의 것이긴 하지만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스토아주의의 도덕철학이고,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우주는 지성이 지배하는 하나의 통일체이며, 인간의 영혼은 신이 가진 지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혼돈과 변화의 한가운데 홀로 내던져진다 하더라도 더럽혀지지 않고 순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확한 이해의 부족 탓이겠지만 마르쿠스 사상의 한두 측면은 스토아 철학을 벗어나 플라톤주의에 가까웠다. 플라톤주의는 당시 에피쿠로스주의를 제외한 모든 이단 철학을 다 끌어안아 신플라톤주의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종류의 영혼불멸의 위안을 받아들일 정도로 스토아주의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마르쿠스가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국경지역을 평정하고 있는 바로 그때 이집트·스페인·영국 등은 반란과 침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전에 베루스 아래에서 일했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장군은 175년에 이르러 로마 제국의 동방지역과 이집트까지 사실상 통치하게 되었다. 그해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장군은 마르쿠스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을 우연히 듣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마르쿠스는 북부 지역의 미정복 부족들과 평화조약을 맺고 아비디우스의 반란군을 진압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반란 장군 아비디우스 카시우스는 부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마르쿠스는 그 기회에 동방지역을 평정하고 시찰할 목적으로 로마를 떠났다. 그는 안티오크·알렉산드리아·아테네를 방문했으며, 아테네에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엘레우시스 제전을 참관했다. 그러나 이 비의적(秘儀的) 제전은 그의 철학관점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은 것 같다. 도나우 강 지역 원정에도 동반했던 황비 파우스티나는 이 여행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전 로마 시민은 극진한 경의를 표했으며, 마르쿠스도 〈명상록〉에서 사랑과 존경의 글을 그녀에게 바치고 있다. 어떤 고대 사료는 그녀가 정직하지 못하고 충성심이 없었다(즉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와 함께 모반을 꾀했다고)고 쓰고 있지만, 이러한 비난은 아무 설득력이 없다.
 177년 마르쿠스는 16세의 아들 콤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했다. 그들은 협력하여 도나우 강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마르쿠스는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여 제국의 북쪽 국경선을 확장·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180년 마르쿠스가 아들 콤모두스를 국정의 최고 조언자로 임명하고 난 직후 군대 사령부에서 숨을 거두었을 무렵 거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
평가
 마르쿠스가 단 하나 살아남은 아들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은 비극적 역설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콤모두스는 뛰어나지 못한 황제임이 나중에 드러났다. 그러나 다음의 2가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 고대 사료를 보면 황제란 원로원의 지배계급을 만족시켰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따라 훌륭한 황제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황제가 되기도 한다.
둘째, 콤모두스가 북부지역의 전쟁을 서둘러 마무리한 것은 아버지처럼 고집스럽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팽창주의를 추구한 일보다 현명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들이 대를 이어 황제가 되도록 결정한 점을 들어 마르쿠스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개 마르쿠스가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유능한 '철학자'의 길을 걸은 뒤 다시 노골적으로 세습왕조를 고수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잘못 생각한다. 이것은 역사학적으로 지지받을 수 없는 주장이다. 사실상 마르쿠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약 마르쿠스가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삼지 않았다면 이것은 그에게 죽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정치가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도량이 아주 넓은 정치가는 결코 아니었으며 현자(賢者)도 물론 아니었다. 한마디로 그는 역사적으로 과대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이미 몰락의 징조가 숱하게 드러난 제국의 금빛 휘장 아래서 혼란스런 방식으로 대제국을 통치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 어떤 혹독한 평가일지라도 그의 고귀한 품성과 헌신성을 가리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그는 매우 꼼꼼하게 비용을 따지면서도 또한 서슴지 않고 그 비용을 치른 인물이었다.
부동심 : M. 아우렐리우스, 이영조 역, 풍림출판사, 1985
명상록 : M. 아우렐리우스, 강연호 역, 삼연사, 1981
자성록 : M. 아우렐리우스, 김병익 역, 범조사, 1979
Marcus Aurelius : Anthony Birley, Eyre & Spottiswoode, 1966
Roman Society from Nero to Marcus Aurelius : Sir Samuel Dill, Meridian Books, 1956
Marcus Aurelius:His Life and His World : Authur S. L. Farquharson, D. A. Rees(ed.), Basil Blackwell, 1951
Kaiser Marcus : Ulrich von Wilamowitz-Moellendorf, Weidmann, 1931
Der historische Wert der Vita Marci bei den Scriptores Historiae Augustae : J. Schwedemann, 1923
Marcus Aurelius, a Biography : Henry D. Sedgwick, Yale Univ. Press, 1921
Marc-Aurele et la fin du monde antique : Ernest Renan, Calmann-Levy, 1885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오현제  五賢帝      Five Good Emperors
로마 제국의 최고 융성기를 주재했던 다섯 황제.
 네르바(96~98 재위), 트라야누스(98~117 재위), 하드리아누스(117~138 재위),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가 그들이다. 이들의 재위 계승은 혈통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네르바는 도미티아누스의 암살자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입양된 후계자들인데 선임자들과 아무 관계가 없거나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먼 친척관계 정도에 불과했다. 마지막의 두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흔히 안토니누스 일가라고 부르며 이 호칭은 때로 두 사람뿐만 아니라 공동황제 루키우스 베루스(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입양된 후계자)와 콤모두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까지 포함하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오현제 시대의 로마 제국은 북부 브리타니아에서 다키아까지,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영토확장을 이룩했다. 제국은 굳건해졌고 방어태세가 완벽했으며 상당한 통일성을 지닌 속주 행정제도가 제국 전역을 포괄했다. 속국들이 하나하나 속주로 재편되었고 이탈리아의 행정제도도 많은 면에서 속주와 동일하게 편성되어갔다. 이 모든 과정과 더불어 제국의 백성들도 언어와 문화면에서 로마화했다. 오현제 시대는 내정이 안정되고 선정이 베풀어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취약점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권력이 완전하게 황제의 수중에 집중되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해 놓은 '이원집정제'는 1세기에 이미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그 당시 형식은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으로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원로원은 더이상 통치도구가 아니라 황제 휘하의 귀족집단으로 전락했고 주로 선거에 의해 콰이스토르(재무관)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 아니라 황제에 의해 곧바로 귀족지위를 얻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행정관들의 몫으로 남겨둔 제한된 행정분야는 더욱 협소해졌고 그들의 관할권은 점차 황제가 임명한 그리스 관리들의 수중에 넘어가는 추세를 보였다. 황제 휘하에 행정부서가 완전하게 조직되어 국가관료기구로 인정받게 된 것은 주로 하드리아누스의 작품이었다. 그는 장관직책을 자유민들 수중에서 빼앗아 에퀴테스(기사계급) 출신의 행정관들에게 맡겼다.
 이 모든 변화는 불가피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이로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권력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가져왔다. 이같은 폐해는 강력한 군주들이 중앙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잘 드러나지 않기는 했지만 심지어는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치세 때에도 제국 전체의 힘이 약해졌고 그에 상응해 제국정부 자체에 대한 압력이 갈수록 가중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초기적인 몰락의 징후를 보인 현상들로는 특히 제국 중심지구의 갈수록 심해지는 인구감소, 끊임없는 재정난, 속주 지방행정의 부패성, 모든 계층이 이제는 갈수록 짐만 되어 가고 있는 지방행정관직을 맡기 꺼리는 것 등이 있었다. 180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고 난 이후 로마 제국은 급속하게 내전의 혼란에 빠져들어갔으며 193년 콤모두스가 암살되고 결국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승리를 거둘 때까지 내전이 계속되었다.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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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3. 19 독일 졸링겐~1962. 5. 31 이스라엘 텔아비브.
제1차 세계대전 때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오스트리아 린츠로 이주했다. 1932년 4월 린츠에서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11월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1933년 린츠를 떠나 바이에른 레히펠트의 '오스트리아 군단'이라는 테러리스트 양성학교에 들어갔다. 1934년 1~10월 다하우에 있는 SS부대에서 일한 뒤, 베를린의 보안국(Sicherheitsdienst/SD) 중앙본부의 유대인 담당부서에서 일했다. SS 내에서 꾸준히 승진했으며 오스트리아 합병(1938. 3) 뒤에는 유대인을 추방하는 임무를 띠고 빈으로 파견되었다. 1년 뒤 같은 사명을 안고 프라하로 갔다.
1939년 히믈러가 국가안전국(Reichssicherheitshauptamt/RSHA)을 창설했을 때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담당부서로 전보되었다. 1942년 1월 베를린 근처 반제에서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아이히만은 이 문제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대량학살을 뜻하는 이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홀로코스트).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58년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과 이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나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리에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러한 조치가 아르헨티나 법을 위반했다는 여론이 진정된 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다. 1961년 4월 11일에서 12월 15일까지 계속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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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의 비극-아무 생각 없는 삶의 비극]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장교 출신입니다. 그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대인 수는 약 600 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 패망 후 아르헨티나에 가족과 함께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숨어 지내다,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발각, 강제 연행되어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 받아 결국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런 아이히만이 재판에 섰을 때 세계 언론은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를 보기 위해 취재 열풍이 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열풍은 단 2 주만에 식어 버립니다. 그것은 아이히만이,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성 격파탄자나 정신 이상자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히만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친위대 장교이면서도, 그는 유대인 여자를 정부(情婦)로 두었습니다. 그는 나치의 정강(政綱)도 몰랐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위대도 그저 친구의 권유에 등 떠밀려 들어간 것이라 합니다. 그를 추적, 관찰한 현대의 유명 철학자 하이데거의 제자 아렌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지극히 가정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 그래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일상 생활에서 아주 근면했고 무능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다. 다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가 엄청난 범죄자가 된 것은 순전히 성찰의 부재(thoughtlessness)였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비극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서 찾았고, 그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악'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기에 아무 생각 없이 명령을 따랐고, 아무 생각 없이 살기에 함부로 그렇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요즘 흔히 일어나는 성폭행, 사기 등의 온갖 비극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 는 우리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결코 할 수 없을 그런 일들을, 아무 생각이 없기에, 그저 내 욕심, 내 삶만 바라보기에 아무 생각 없이 범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무심코 버리는 담배 꽁초, 무심코 빼무는 담배 연기, 전철 간에서 흔히 보는 주위를 생각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짙은 애정 표현도 그런 아무 생각 없는 삶의 한 단면입니다.


더구나 인터넷이나 언론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부추기고 세뇌시키면 사람들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아무 생각' 없어집니다. 옳다고 하는 일에 옳음에, 그르다고 하는  일엔 그름에 취해, 그리하여 쉽게 분노하고 흥분하여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마녀 사냥을 하며 온 세상을 흔들어 놓습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모르고, 부추기고 세뇌하는 세력들에 의해 마치 스탈린의 '쓸모 있는 바보들'처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이 짜 놓은 각본대로 흘러갑니다.

 

아무리 이성을 찾아라, 편견을 갖지 말고 세상을 똑바로 보라, 한 면만 보지 말고 사물의 양면(中道)을 모두 보라, 제대로 알고 말하라 고 일러 드려도, 그렇게 시작된 아무 생각 없는 아우성, 행동은 도무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비극은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만 갑니다.


당신들은 아무 생각 없는 것이 아니노라 강변하시겠지만, 그래서 당신도 이성이 있고 나름대로 당신의 길을 간다고 하시겠지만,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는 분들'입니다. 다만 교묘한 방법으로 세뇌되어 세뇌 되신지도 모 른 채 '남 따라 장에 간다'는 속담처럼, 분노에 사로 잡혀 머리끝까지 원통함과 증오로 차 올라 아무 생각 없이 남이 짜 놓은 각본대로 가실 뿐인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가, 그렇게 광란의 분노를 내뱉은 분들이 나중에 사물의 진실을 알고 말씀하는 한 마디가 단지 '그 때는 그게 사실인 줄 알았다!'며 자신에겐 아무 책임도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일입니다. 고작해야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더할 뿐, 그 분들에게 더 이상의 잘못은 자신에겐 없습니다.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다른 분을 비통에 빠뜨렸는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다른 분들의 삶을 방해했는지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보는 우리나라는, 이렇게 온통 아무 생각 없는 분들의 생각 없는 삶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삶의 성찰보다 그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일색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성형 중독, 비쌀수록 잘 팔리는 상품들, 그저 즐기고 자극적인 내용의 TV 드라마들, 난무하는 악플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모습도 그런 아무 생각 없는 우리 모습의 반영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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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사상가다. 그의 지적 계보를 잇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의사소통행위 이론'으로 1980년대에 널리 알려진 데 반해, 아렌트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그의 저작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아렌트의 사상에 알게 모르게 기대고 있는 '시민의 정치참여'가 이 땅에서 대중적 슬로건이 된 것을 감안하면, 그를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고 해야 할 정도다. 그 뒤늦음을 만회하려는 듯 그의 주요 저작이 속속 우리말로 옮겨지고 있고, 탄생 100돌을 맞아 지난 달에는 아렌트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최근에 번역된 것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은 난이도 높은 그의 사상서 중에서 유일하게 대중적 저작이다. 1961~1962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시대 유대인 학살 실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의 재판 과정을 이야기체로 풀어 쓴 것이 이 책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은 아렌트에게 대중적 명성을 안겨 주었고 동시에 그를 엄청난 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저작은 책의 대중적 성격과는 상관없이 아렌트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를 포괄하고 있어 그의 사상을 살필 수 있는 용이한 통로를 제공한다.

감정 앞세우지 않은 이야기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의 원고는 애초에 잡지 < 뉴요커 > 에 연재한 기사였다.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돼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자 아렌트는 대학 강의를 중단하고 < 뉴요커 > 특파원 자격으로 그의 재판을 취재했다. < 뉴요커 > 는 지식인들, 특히 교육 받은 뉴욕 사람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은 대중 잡지였다. 독일 출신으로 나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이라는 아렌트의 '신분'이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 재판의 현장 취재 기자라는 '신분'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렌트의 글은 연재되자마자 유대계 사회의 거친 분노에 휩싸였다. 아렌트가 홀로코스트라는 참극의 희생자인 유대인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마치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듯 국외자처럼 사건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다. 실제로 글 안에서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에 유대인 사회가 어떻게 협력했는지 밝혔을 뿐만 아니라, 그 야만의 집행자 아이히만을 묘사할 때도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홀로코스트 범죄의 책임자라기보다는 희생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히만은 '유대인 절멸'을 기획하고 교사한 사람들, 곧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나치 지도부의 명령을 받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나치당의 강령도 알지 못했고 히틀러의 < 나의 투쟁 > 도 읽지 않았다. 그의 직급은 나치 친위대의 중간관리자(중령급)에 지나지 않았다. 히틀러는 그를 대면할 기회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며, 설령 대면했다 해도 아이히만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법을 준수하는 '건실한 시민'이었던 아이히만은 명령받은 일을 이행하는 것을 의무라고 느꼈고, 유대인 전문가로서 그들을 수용소에 배분하는 일을 착실히 수행했다.

'양심'의 문제가 여기서 불거졌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의 양심은 상부의 명령을 정확히 행동에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는 피고석에서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아렌트는 양심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건에 제약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상주의적 열정도 한몫

이상주의적 열정도 아이히만의 정신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 운동인 시온주의에 열렬히 공감했으며, 그들이 이상주의자라는 점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의 이상주의는 관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였고, 그것도 과격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독특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이상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 심문에서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주의자로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이히만은 난데없이 나타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칙과 명령과 '주어진 이상'에 맞추려고 노력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이히만이라는 인간형이 이렇게 분석되고 난 뒤, 이 책으로 하여 결정적인 의미를 띄게 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이히만은 스스로 악인이 되려고 한 적도 없었고, 반듯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기까지 했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아렌트는 이 '순전한 무사유', 곧 사유하지 않음이야말로 아이히만의 진정한 특성이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 없음'은 바꿔 말하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사회적 환경에 제약된 양심을 품고 이상주의로 무장하고서 이 '무사유'를 실천할 때 얼마나 가공할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이히만은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아렌트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의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유일한 특징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아렌트는 정치의 영역을 시민들이 저마다 인격을 걸고 의견을 표출하여 경쟁하는 장으로 여겼다. 그 정치 공간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훈련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상적인 공론장이다. 그런 정치의 장이 마련되고 강화할 때 아이히만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것은 우리가 언제든 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말한다.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차이와 평등의 정치철학' 한나 아렌트 따라읽기 붐

한나 아렌트 저작의 한국어판은 10년 전인 1996년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대표작인 < 인간의 조건 > (이진우·태정호 옮김)이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것이다. 1958년에 미국에서 나온 < 인간의 조건 > 은 아렌트를 정치철학자로서 우뚝 세운 저작이다. 아렌트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평가받는 데 이 책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그의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실존주의를 재해석해 자신의 정치철학의 밑돌로 삼았다. 그는 인간에게 부여된 실존적 조건을 '복수성' 혹은 '다양성'에서 찾았다. 인간은 서로 다른 차이의 존재이며 따라서 인간들의 삶은 전체로 볼 때 언제나 복수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차이는 인간이라는 보편성의 지평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을 아렌트는 평등이라고 불렀다. 다름이 없다면 인간은 교류하고 소통할 이유가 없으며, 평등하지 않다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 인간의 조건 > 출간 뒤 2000년대에 들어 '아렌트 르네상스'라 할 만한 현상이 벌어졌다. < 혁명론 > (홍원표 옮김, 한길사 펴냄) < 과거와 미래 사이 > (서유경 옮김, 푸른숲 펴냄)이 잇따라 나왔고, 1971년 저작 < 정신의 삶1-사유 > (홍원표 옮김, 푸른숲 펴냄)과 < 칸트 정치철학 강의 > (김선욱 옮김, 푸른숲 펴냄)도 출간됐다. 아렌트는 애초에 < 정신의 삶 > 을 '사유' '의지' '판단'이라는 칸트의 세 기획에 맞추어 3부작으로 내려고 했는데, 그 중 '정신'편만 완성했다. 유고를 갈무리한 < 칸트 정치철학 강의 > 는 이 기획의 '판단' 편에 해당한다.

'의지'편은 현재 번역중이며 또 아렌트에게 학자로서 첫 명성을 안겨준 1951년 저작 < 전체주의의 기원 > 도 한국어판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 < 정치의 약속 > < 공화국의 위기 > 등이 푸른숲에서 나올 예정이다. 이들이 빛을 보면 한나 아렌트 르네상스의 명실상부한 실체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김선욱 숭실대 교수가 쓴 < 정치와 진리 > (책세상 펴냄) <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 (푸른숲 펴냄)은 국내 아렌트 전공자가 쓴 아렌트 해설서로서 아렌트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 노릇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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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범 아이히만, 아르헨티나에서 덜미 잡히다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 예루살렘의 법정 피고석에 앉아 있다. 아데나워 총리 시절(1949~63)의 독일인은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았고, 교사들은 그 주제를 피했다. 그들은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잊으려 애썼던 과거와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그때 오늘]

 

1960년 5월 11일 저녁 6시30분, 아돌프 아이히만은 늘 하던 대로 버스를 타고 일터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세 사람이 나타나 그를 승용차에 싣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한 주택으로 데려갔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서 온 ‘전문가들’임을 즉각 알아챘다. 어떠한 폭력도 사용되지 않았다.

1942년 1월 나치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을 수립했고, 아이히만은 그 책임자로서 유대인 집단 학살을 주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군에 체포됐다 1946년 탈출한 그는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 1958년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나치 전범 추적 단체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돼 9일 뒤 비밀리에 이스라엘로 이송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열었다. 1961년 4월부터 12월까지 계속된 이 재판에서 그는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1946년 11월의 여론조사에서 독일인 중 33%는 유대인이 아리아인과 동일한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12년간 나치 지배를 받고 난 직후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6년 뒤인 1952년의 조사 결과다. 수치가 더 늘어나 37%가 독일 영토에 유대인이 없는 것이 독일에 더 낫다고 밝혔다. 그들은 세계가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피점령국 사람들의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겪었던 전후의 식량·주택 부족 등에 주목하면서 스스로를 ‘희생자’로 간주했다. 1951년 바이에른주 판·검사의 94%, 재무부 직원의 77%가 나치 전력자였다.

전범 아이히만 재판은 독일이 ‘과거’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재판과정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실상이 낱낱이 조사되었기에 학살의 참상을 수백만 명에게 교육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 결과 히틀러를 위대한 정치가라고 믿는 서독인의 비율은 1955년 48%에서 1967년 32%로 하락했다. 갈 길은 아직도 남았다. 진정한 변화는 그 후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1970년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의 나치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었고,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이 살해되었다.

1979년 독일 텔레비전은 메릴 스트리프 주연의 4부작 미니시리즈 ‘홀로코스트’를 방영했다. 그제야 비로소 유대인의 고통은 독일 국민의 공공 의제가 되었다.

하지만 ‘집단적 기억상실’ 덕분에 나치 잔당에 의해 전후 독일의 놀라운 ‘경제 회복’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의’와 ‘경제’는 양립할 수 없는 걸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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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아이히만은 칸트 철학을 어떻게 독해했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마,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과정에서 칸트 철학과 그의 정언명령에 대해 읽은 적이 있고, 그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학살자의 심리와 독일이성철학이 결합되는 방식과, 독자와 철학자의 책이 오독되는 방식 그리고 그의 오독이 그를 흔들리지 않는 학살자로, 그리고 결국 그를 사형대 위에서 사라지게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난독증 에 대한 이야기… ^ ^

 

아렌트의 기록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한 거의 완벽한 정의를 내렸다고 한다.

 

아이히만 ,“칸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가 말하려 한 것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 법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질의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을 추진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칸트의 원리를 따르지 않았으며,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렌트는 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아이히만은 그가 살던 나치 제3제국치하에서, 즉 국가가 범죄를 합법화한 시대에서, 칸트의 정언명령이 더 이상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고, 이 같은 판단은 칸트철학에 대한 오독이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가령 나치의 법률가 한스 프랑크가 제3제국의 정언명령에 대해, “만일 총통이 당신의 행위를 알았을 때, 총통께서 승인할만한 방식으로 행위하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아렌트에 따르면, 칸트는 이런 식으로 주장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 칸트적 정신이란, 인간은 법에 대한 복종 이상을 행해야 한다는 것, 단순한 복종을 넘어, 법의 배후에 있는 원리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칸트 철학에서 그 원천은 바로 실천이성이었다. 결국 칸트에게는 모든 사람이 행위를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입법자이며, 인간이 자신의 실천이성을 사용하여, 법의 원칙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원칙들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며, 결국, 인간에게는 법에 대한 복종이상의 것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대인 문제를 최종해결을 수행하면서, 아이히만을 사로잡은 것은 실천이성이 아닌, 총통의 이성이었다.

 

아이히만의 내면에서는, 유대인 문제를 최종해결하라는 히틀러의 이성을 실천하기 위한 철저함이 보인다.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있다면, 아이히만이, 종전 무렵 하인리히 힘러를 위시한 다수 친위대들이 유대인 문제에 대한 타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가 끝까지 철저하게 견지한 비타협성이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그의 광신이 아니라, 그의 양심이라는 점이다.

 

종전이 가까워오고, 나치의 패배가 명약관화해 지면서, 친위대 내부에서는 그 수장 힘러를 위시해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온건파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합군 과 유대인들과의 모종의 협상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힘러와 그 부하 온건파들의 타협시도에 대해, 아이히만은 완강히 저항했다. , 총통 히틀러의 의지와 힘러의 의지가 충돌한 경우, 아이히만의 선택은 항상 히틀러의 유대인문제 최종해결 명령이라는 의지였음은 한치의 의심도 없었던 것이고, 협상을 모색한 친위대 온건파들의 관점을 그는 부패라 간주했다. 이 과정에서 만약 아이히만이 어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그것은 유대인 대학살을 명령한 그의 최고 상관인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아이히만의 양심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치시대의 양심은 다음과 같은 역설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문명화된 나라에서 살인과 관계된 양심이란, “살인하지 말라라면,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 시절의 법이란, 비록 살인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상적인 욕구와 성향에 반한다는 것을 유대인 대학살의 조직가들이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히틀러식 양심의 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는 살인할 지어다라고 속삭였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칸트 읽기와 그 오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인간은 법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상의 판단,실천을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치의 전범재판 중 하나였던, <뉘른베르크 재판>의 판례에 따르면, 비록 상관 혹은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인륜범죄라면, 명령을 단순히 수행한 자에게도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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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chmann in Jerusalem - Hannah Arendt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죄인에 대한 재판을 다룬 책임에도 불구하고 시온주의(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점만 해도 이 책의 흥미진진함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히만 재판은 그가 나치독일치하에서 유대인 관련업무만을 맡았던 공무원이기에 나치독일의 여러 민족에 대한 범죄로 기소된 뉘른베르크 재판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재판이 열리게 된 과정부터 독특했는데, 이스라엘은 아이히만이 살고있는 아르헨티나에서 국제법을 어기며 납치해왔으며 국제재판소를 여는게 더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 열렸다는 점입니다. 이것에 대해 아이히만 당사자에 대한 재판이 아닌 반유대주의에 대한 재판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로인해 예루살렘 재판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고 지적하는데, 피고를 위한 증인을 허용하지 않은 점 뿐만 아니라 잘못을 행하려는 의도가 범죄를 구성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가정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아이히만의 성장과정을 따라갑니다. 평범한 학생이 성장해 결혼을 하고, 감압정유회사에 취직하고 나치당에 가입했고 친위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당의 정강도 알지 못했고 '나의 투쟁' 도 읽지 않았습니다. 젊은 변호사 칼텐브루너의 "친위대 가입해보면 어때?" 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지 뭐" 정도의 신념으로 가입했던 것입니다. 그가 유대인 문제 전문가로 성장하며 맡았던 것은 나치당의 유대인 해결책과 동일했습니다. 추방, 수용, 학살에 이르기까지 유대인 정책이 변화할때마다 그는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아이히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마치 본디오 빌라도가 된 심정이였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고,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십자가형에 처한뒤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의 죄가 없다고 말한 바로 그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추방 및 수용은 몰라도 최종해결책, 즉 학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결국 자신의 양심을 무마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 방법이란 학살에 반대한 사람을 단 한명도 볼수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그토록 많이 학살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 중 하나는 바로 유대인 지도자들입니다. 유대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독일은 그 짧은 시기에 유대인을 그렇게 대량으로 학살할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나치는 유대인을 추방,이송하는데 있어서 유대인 공동체를 이용했는데, 명단을 작성하고 돈을 인수하고 기차에 태울수 있게 경찰력을 제공하는 등 유대인 중앙위원회는 유대인처리에 있어서 절대적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비밀을 맹세했고, 자기 민족을 파멸로 이끄는 새로운 권력에 취해 홀로코스트를 이룩함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합니다. 간혹 유대인을 구한 경우도 있었는데 헝가리에서 카스트너 박사는 47만 6000명의 희생자를 내고 1684명을 구출했습니다. 이러한 저명한 유대인은 전쟁중에도 학살당하지 않았고 그들을 위해 덜 저명한 유대인은 항상 희생되었습니다. 히틀러는 340명의 일등급 유대인에게 독일인의 지위를 부여했고 수천명의 반쪽 유대인은 모든 제약을 면제받았습니다. 심지어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의사들은 유대인 부대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위원회가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친 증거로 나치독일 점령국에서의 유대인 학살과정을 들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간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반응에 따라 유대인학살수치에 큰 영향을 가져옴을 알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무국적 유대인을 희생시키는데 있어서 오히려 프랑스 비시정부가 자발적으로 앞장섰으나 프랑스계 유대인을 포함시키려 하자 격렬하게 저항한 결과 25만명의 유대인이 살아남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벨기에의 경우 더 비협조적이였지만 나라가 작다보니 숨기가 어려워 피해가 좀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경우 독일의 반유대정책에 대해 대놓고 반대했고 무국적자마저 덴마크 정부가 보호해줬을뿐만 아니라 돈없는 유대인을 위해 덴마크시민들이 탈출비를 제공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완강한 저항을 보게 되자 정작 덴마크에 파견된 독일당국마저 베를린의 명령에 대해 거부심을 표하게 됩니다. 불가리아의 경우 더욱 완강한 정책으로 불가리아 유대인은 이송되거나 자연사가 아닌 죽임을 당한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됩니다. 그런 반면 루마니아의 경우 독일보다 더 극렬한 반유대정책으로 유대인학살의 원조격인 친위대마저 루마니아인들의 학살에 공포심을 느꼈으며 유대인을 구하기위해 개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독일의 도움 없이도 독일 친위대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3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그의 친척중에도 유대인의 피를 잇는 사람이 있었고, 교양있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친분을 나눴으며 자신이 맡은 유대인학살소(테레지엔슈타트)의 학살과정을 보고 경악했으며 그의 희망은 유대인의 발아래 확고한 땅을 두려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니스코 모험이나 마다가스카르 계획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최종 해결책이 다가옴에 따라 취소되었고 그는 변경된 정책을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판결문에서 그는 15개의 기소 항목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것은 유대인의 대량학살 및 폴란드인, 슬로베니아인 추방죄와 집시추방죄를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집시의 학살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이히만의 사면 청원서와 미국랍비중앙회, 미국개혁주의 유대교대표단 등에서 보내온 호소편지문을 모두 물리쳤고 몇시간뒤 아이히만은 교수형에 쳐해졌습니다.

아이히만은 사악한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았고, 누구를 죽일 어떤 의도도 없었으며,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지만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를 통해 그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사고의 무능력함을 지적했고, 그가 행한 모든 일은 그가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인식한 만큼 행동한 것이었다. 그는 경찰과 법정에서 계속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의무를 준수했지만 그 법과 조국, 숭고한 명령에 대해 사고하지 못했음을 지적했고, 설령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지지했고 인류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아이히만과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수 없기 때문에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주 평범하게도, 밀그램의 실험에서 버튼을 누른 대다수의 사람에 불과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아버지였고, 평범한 공무원이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누구라도 그처럼 될수 있는 평범한 악 이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이 예루살렘 재판의 성공여부(헌법재판소로서 정의를 부여하는 행위)만을 다루고 있다고 글을 마무리하지만, 역사속에서 유대인학살을 최소화할수있었던 좋은 예들(덴마크나 불가리아의 유대인정책 등)을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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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아이히만에 면죄부 준 용산 판결 / 조영관 한겨레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 용산참사 재판에서 형사합의27부는 특수공무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9명에게 최고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용산참사의 모든 책임은 농성했던 철거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나치의 고위 장교들 중 한 사람으로, 자신은 승진을 위해 특별히 근면했던 것을 제외하고 아무런 악의적 동기가 없었고, 스스로를 ‘오류의 희생자’라 주장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통해 ‘악’이라는 것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단순한’ 것이며, 그러한 행위의 본질은 악을 행하는 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하게 하는 ‘무사유성’이라고 보았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한국판 아이히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판결이다. 용산참사는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세입자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자, 정부가 공권력으로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정상’이라고 믿으며 작전을 수행했고, 결국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용산참사에 책임을 지고 있는 수많은 한국판 아이히만들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자신의 행위의 결과반성기회거부당했다. 합리적 해결을 바라는 수많은 시민들은 또다시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좌절감을 느끼며, 복종을 강요당했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던 구청 공무원, 경찰, 소방관, 용역업체 직원들은 사회 상층부의 행위양식에 또다시 적응해야 했다. 권력에 대한 ‘복종’이 만들어낸 행위의 무사유성은 더 거대한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다는 ‘악의 평범성’은 용산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너무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비극이다.

조영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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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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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들과...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의 책들이다..

글쓰기와 책쓰기와 관련된 내용들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늘 글을 쓰면 부족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더 제대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정확한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결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 보려한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하나에 빠져 몰입한 결과물을 낸 사람들의 생각과그들의 가치관을 본 받고 싶다..꼭 읽어보려는 책이다.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 그래서 다시금 찍어 보았다.
근래 가장 많이 읽히는 책들..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여러가지 핑계로..
나름대로 책을 본다는 착각이 정말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



인문학과 철학에 대해 점점 관심을 가져 나가고 있다..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기르기 위해 그리고 인식을 위해서..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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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밀은 천재적인 사상가로 유명하지만, 독서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평범한 지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영국 공리주의 지도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에게 천재 독서교육을 받은 뒤 천재적인 두뇌를 갖게 되었고, 20대 중반에는 천재 사상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의 독서법은 초등학교 때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데카르트 같은 천재 사상가들의 저작을 열심히 읽고 소화해서 그들의 위대한 사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독서를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초등학교 때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고,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와 깊이 있게 토론했다.


 

* 저학년 : 퀴로파이데이아, 소크라테스 ‘추상록’, 아드 데모니쿰, 아드 니코클렘, 플라톤 대화편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크라튀로스’ ‘테아이테토스’, 헤로도토스의 모든 저서, 디오게네스 라이르티오스가 지은 철학자들의 전기.


 

* 중고학년 : ‘로마사’, ‘플루타르크 영웅전’ 영국 역사의 정치적 개관, 교회사, 유클리드의 기하학 서적 전부,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 서적 전부, 스콜라 철학에 관한 각종 논문들.

 


 


 

철학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초급 과정 : 철학 고전 독서 목록 Ⅰ

 

1. 초급 1단계

- 파이돈(범우사), 논어(홍익출판사), 맹자(홍익출판사)


2. 초급 2단계

- 프로타고라스(범우사), 노자(범우사), 장자(범우사), 손자(범우사), 시학(문예출판사), 묵자(홍익출판사)


3. 초급 3단계

- 니코마코스 윤리학(서광사), 한비자(한길사)


4. 초급 4단계

- 의무론(서광사), 최고선악론(서광사), 방법서설(문예출판사)


 

* 중급 과정 : 철학 고전 독서 목록 Ⅱ


1. 중급 1단계

- 에우튀프론(서광사), 소크라테스의 변명(서광사), 크리톤(서광사), 프로타고라스(범우사), 손자(범우사)


2. 중급 2단계

- 소피스테스(한길사), 정치가(한길사), 한비자(한길사)


3. 중급 3단계

- 티마이오스(서광사), 영혼에 관하여(궁리)


4. 중급 4단계

- 범주론, 명제론(이제이북스)


 

* 고급 과정 : 철학 고전 독서 목록 Ⅲ


1. 동양 철학

- 논어, 맹자, 순자, 노자, 장자, 열자, 묵자, 손자, 한비자, 사기본기, 사기열전 등


2. 서양 철학

- 플라톤 : 소크라테스의 변명, 뤼시스 크리티아스 알키비아데스, 프로타고라스, 국가, 티마이오스,

  소피스테스, 정치가, 필레보스

- 아리스토텔레스 : 시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영혼에 관하여, 범주론 명제론, 소피스트적 논박

- 키케로 : 의무론, 최고선악론,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데카르트 : 성찰, 방법서설


 

독서 방법 4단계


1. 먼저 철학 고전 저자에 관해 쉽게 설명한 책을 읽는다. 이런 책들은 도서관이나 서점 에 가면 많이 있다.

2. 철학 고전을 통독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그냥 읽는다. 소리 내어 읽으면 더욱 좋다.

3. 정독을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할 때까지 몇 번이고 소리내어 읽을 것을 권한다.

4. 노트에 중요 구문 위주로 필사를 하면서 통독한다. 필사는 철학 고전 독서의 핵심이 라 할 수 있다. 필사를 통해 학 고전 저자의 사고 능력을 조금이나마 내 것으로 만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사를 하면, 몇 번이고 정독할 때도 이해 불가능하던 구절들이 한순간에 이해될 수 있다.

 

 

 

 

철학 고전 독서의 효과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이 『이솝우화』같은 책을 읽을 때 나는 키케로 같은 철학 고전을 읽었다. 물론 나는 키케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열광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사랑으로 격려해 주셨다

-르네상스 시대를 연 천재 인문학자 페트라르카


다른 귀족의 자제들처럼 나 역시 철학 고전 독서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건성으로 독서했던 그들과 달리 나는 철학 고전 독서를 아주 깊이 사랑했다. 특히 플라톤 철학은 따로 교수를 고용해서 교육을 받았을 정도였다. 이 책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심히 크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

 

나는 공식적인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저서들이 지닌 심오한 가치를 깨닫고, 철학 고전을 개인적으로 심도있게 공부했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나는 초등학교 시절 지진아였다. 그런 나에게 교장선생님은 철학 고전 독서교육을 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두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후일 캠브리지 대학생이 된 나는 노트의 첫 장에 아리스토렐레스를 필사했다. 그리고 노트 위에 이렇게 적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친구이다.”

-과학자 아이작 뉴턴

 

나는 10대 시절 외삼촌의 지도로 플라톤, 데카르트, 네테스 하임 같은 철학자들의 저작을 치열하게 읽고 소화했다. 철학 고전 독서가 나의 사고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내가 12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읽었던 책 중에는 변증신학 관련 서적들, 디포의 『기업론』이나 메이데 박사의 『선행록』같은 책들, 로크의 『인간오성론』이나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추상록』같은 책들이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기본적인 철학 고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들은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10대 시절에 내가 온 정열을 기울여서 읽었던 책은 철학 고전이다. 나는 플라톤, 키케로, 루키아노스, 테렌티우스, 볼테르 등이 쓴 철학 고전을 열광적으로 읽었다. 바로 이 책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
 

나의 최상의 즐거움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학자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일이다. 고전에는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있다.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책을 정말 열심히 읽어라. 특히 철학 고전을 온 힘을 다해서 읽어라. 이 책들은 여러분을 좀더 나은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월가 최고의 투자자 존 템플턴
 

나는 매일 새벽 5시부터 3시간 동안 독서를 한다. 내가 가장 즐겨 읽는 책은 플라톤의 저작들이다.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들 중에는 철학이나 역사를 외면하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없다. 양자역학을 창시한 어윈 슈뢰딩거는 그리스와 인도 철학의 전문가였고, 쿼크의 존재를 발견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머레이 겔만은 현대문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미네소타 대학 교수 김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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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글을 읽으며...  (0) 201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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