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에서 고전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 안내서이다. 'e시대의 절대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고전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판한 책이다.
그렇기에 책은 읽기가 편하다. 
개인적으로 1부의 내용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사기를 접하게 된 계기로 시작하여 사기가 어떠한 도움을 주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에 대해 그리고 사기 전체 130편의 형식에 대한 설명들이 쉽지 않은 사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사기의 형식을 설명하는 파트는 열전 70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것 같다.
시대적인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기에 전후 문맥을 모두 비교해 보면서 읽은 몇개의 장 이외에는 연결이 잘 되지 못하였는데, 설명을 보면서 시대적인 구분과 열전의 종류들을 구분해 보면서 좀더 사기에 다가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선정했을 때 총 3부의 구성 중에 1부의 부분만을 보려 했다. 
사기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명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2부인 본문 발췌 부분도 읽고 싶어 졌다. 그리고 마지막 3부의 사마천 연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사기를 읽으면서 좀 난해 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사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고전이 고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고, 깊이도 있다는 점을 알게해준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좀 더 독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을 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해설. 
그것이 1부에 있기에 분명 미숙한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해설서에 따라 여러 챕터를 나누어서 읽어본다면 덜 힘들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사기를 접했을때의 생각이 난다. 무작정 덥벼들어 고행하듯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렇게라도 끝까지 읽어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중도에 덥어버렸다면 다시금 사기를 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이므로 이제 우리 입장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째, 현실적인 중국인의 코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문화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셋째, 중국인의 통일 관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33-43
(사실 이부분은 밑줄 긋는게 큰 의미가 없다 11페이지 전체를 읽어야 좋을것이라 생각든다)

'항우 휘하에서도 계포는 용맹으로써 이름을 날렸으니 장사이다. 그런데도 구차하게 노예가 되다니 무슨 망신인가. 그러나 계포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기에 그렇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태연했다. 언젠가는 실력을 발휘할 날이 있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제국의 명장이 되었다. 생각이 있는 자는 함부로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찮은 인간들이 감상에 젖어 자살하곤 하는데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몰려 뭘 더 해보려고 해도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유심히 읽어보면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49

<사기>를 읽으면 실패한 인생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띕니다. 역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데 <사기>에는 왜 이렇게 실패한 인생이 많을까요? 사마천은 세속덕인 성공과 실패에 착안하여 인물을 선별한 것이 아닙니다. 설령 실패했다 하더라도 실패한 인생으로부터 역사적 의미를 발굴하여 그들이 현실에서 당한 고난과 고통을 후세의 명예로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54


알고 보면 간단한 <사기>의 형식
본기(本紀)
우선 12편의 '본기(本紀)'를 설정하여 황제(黃帝)로부터 한무제까지 12명의 제왕을 기준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연대별로 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편년체로 이루어진 공자의 <춘추>형식을 인물 위주로 개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기'는 무슨 뜻일까요? 본(本)은 근본, 기(紀)는 기(記)의 뜻으로 기록. 그러므로 본기는 '근본이 되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본기'에는 정책의 반포 및 개정, 관리의 임명과 파면, 정잰이나 자연 재해, 외교 등의 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건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와 관련된 결정권은 항상 항제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서술하면서 연관된 국가 대사를 언급하면 가장 근본적인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본기는 시대순으로 배열된 것입니다. 
사기는 통사이고 '본기'는 기본적으로 편년체 형식이므로 중간에 연도가 비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기> 12본기에는 진본기, 항우본기, 여태후본기 도 있습니다. 물론 당시 천하의 권세가 항우와 여태후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26-127

표(表)와 서(書)
10개의 표(表)를 만들었습니다. 태사공자서에서 그는 '같은 시대인데도 연도 표기가 달라서 연대를 명료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10표를 짓는다.
예를들어 춘추전국시대 각 제후국들은 제각기 연도를 기록했기 때문에 상호 공유하는 사건의 흐름이나 인물의 행적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각 제후국의 연ㄷ를 통합하여 표로 만들어 주면 언제 무슨 대사건이 발생했는지 훑어만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사마천이 표를 만든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표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본기나 세가 혹은 열전 등과 상호 보완되도록 기획하였습니다.  130
8개의 서(書)를 마련하여 국가의 중요한 제도를 테마별로 정리하였습니다.  133

세가(世家)
세대 세(世), 집 가(家). 대대손손 이어지는 가문이란 뜻입니다.
북극성과 바퀴 축은 '12 본기'에 등장했던 황제 혹은 패왕을 말하며, 28개 별자리와 30개 바퀴살은 그 황제나 패왕을 보필했던 제후 왕, 혹은 공신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34

열전(列傳)
전형적인 인물을 통하여 시대상을 보여주는 참신한 역사 기술 형태입니다.
열(列)은 열거하다, 전(傳)은 전하다. 그러므로 '열거하여 전한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열거하여 누구에게 전한다는 것일까요? 의로운 사람, 탁월한 사람, 기회를 포착하여 대성한 사람들의 행적을 열거하여 후세에 전한다는 뜻입니다.

백이, 숙제, 노중련, 굴원과 같은 인물은 의로운 사라에 속합니다. 
관중, 범저, 여불위, 이사와 같은 인물은 기회를 포착하여 대성한 사람에 속합니다.
손자, 오자서, 소진, 장의, 인상여, 유경과 같은 인물은 물론 탁월한 인물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잔혹한 혹리(酷吏)나 곡학아세의 공손홍, 그리고 호모에 가까운 영행 집단, 조폭에 가까운 유협(遊俠)집단, 코미디언에 가까운 골계(滑稽)집단, 심지어 점쟁이 군상들은 과연 어디에 속할까요? 그러므로 '열전'의 인물은 윤리 도덕적 판단으로 선정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역사적 의미를 기준으로 기록했던 것입니다. 

열전의 인물은 누구 하나라도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 점을 파악해야 <사기>를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전'이 '본기'나 '세가'보다 훨씬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전'에 기록된 인물의 신분을 극히 다양합니다. '본기'에 기록된 제왕, '세가'에 기록된 후작들을 제외한 인물 중에 의롭거나 탁월하거나 대성한 사람들이 '열전'에 수록되엇ㅅ브니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활약했던 기록이므로 '본기'나 '세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흥미진진한 것입니다.  139-141

열전 70편의 배열 원칙, 시대순 밑 역사적 사회적 의미
연대를 기준으로 하되 인물의 성격이나 사회적 의미를 참고하여 배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연대 별로 7대 범주로 나누고 그 의미를 약술해 보기로 하지요.

1. 백이열전,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사마양저열전. 손자오기열전, 오자서열전, 중니제자열전(7편)
상고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인물입니다. '백이열전'을 첫머리로 장식한 것은 심오한 뜻이 담겨 있지요. '열전'의 작성 기준과 의미를 담았으므로 요즘으로 말하면 책 첫머리의 '일러두기'라 봐도 무방합니다. 관중과 안영은 법가, 노자는 도가, 사마양저와 손자 그리고 오기는 병법가로서 춘추시대의 탁원한 인물들입니다. 오자서는 춘추시대의 명재상이며, 중니(공자)의 제자들은 춘추시대의 유가 학파들이죠.

2. 상군열전, 소진열전, 장의열전, 저리자감무열전, 양후열전, 백기왕전열전, 맹자순경열전, 맹상군열전, 평원군우경열전, 위공자열전, 춘신군열전, 범저채택열전, 악의열전, 염파인상여열전, 전단열전, 노중련추양열전, 굴원가생열전(17편)
전국시대 인물들입니다. 전국시대의 국제정세는 진(秦)나라가 주도했으므로 진나라 인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상군(=상앙)은 진나라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수훈을 세웠고, 소진은 합종 전략, 장의는 연횡 전략을 각각 구사했던 바 모두 진나라가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저리자, 감무, 양후, 백기, 왕전 등은 모두 진나라의 명재상이거나 맹장ㄷㄹ로서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진나라를 제외한 함곡관 동편의 여섯 제후국 인물들입니다.
맹자와 순자(=순경)는 전국시대 유가 학파의 계승자 겸 집대성자였으며, 맹상군, 평원군, 위공자(=신릉군), 춘신군은 모두 진나라에 대항했던 각국의 귀공자들이었습니다. 범저와 채택은 객경(客卿)으로서 진나라 귀족 양후를 축출하고 대성했으므로 그 뒤에 수록했습니다. 악의는 연나라 명장이며, 염파와 인상여는 조나라 명장 및 명재상이었고, 전단은 제나라 명장으로 그 나라의 흥망성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걸출한 인물이었습니다. 노중련과 굴원은 의로운 인물이었는데, 노중련열전과 추양과 가생을 더불어 기록한 이유는 비슷한 계열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3. 여불위열전, 자객열전, 이사열전, 몽염열전(4편)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이 임박했던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격변과 관련되 인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상으로서 진시황제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여불위, 진시황제를 암살하려 했던 형가의 행적, 진시황제의 천하통일과 통일후 일련의 역사적 조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이사, 진 제국의 건설 및 만리장성 축조와 관련되 몽염 등을 차례대로 기록하였습니다. 

4. 장이진여열전, 위표팽월열전, 경포열전, 회음후열전, 한신노관열전, 전담열전(6편)
진 제국이 무너지고 항우와 유방의 초한(楚漢)쟁패가 시작 되었습니다. 항우와 유방은 이미 '본기'에서 다루었으므로 이 시기에 활약했던 전국시대 각 제후구그이 후예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조나라, 위표는 전국시대 위나라, 한신은 전국시대 한나라, 노관은 전국시대 연나라, 전담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후예들로 각기 연고지이ㅔ서 활약하였습니다. 한편 팽월과 경포 그리고 회음후는 모두 유방을 도와 한 제국 건립에 공한한 비유씨(非劉氏) 제후 왕들이며 모두 반란죄로 처형되었습니다. 이상 6편의 열전을 초한쟁패의 혼란기에 활약했던 풍운아들입니다.
 
5. 번역등관열전, 장승상열전, 역생육가열전, 부근괴성열전, 유경숙손통열전, 꼐포난포열전(6편)
한고조 유방이 한 제국을 건립할 때 음양으로 수훈을 세웠던 공신들이며 한고조에 이어 여태후 시절까지 충성을 다하여 한 제국의 유지 및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입니다.

6. 원앙조착열전, 장석지풍당열전, 만서장숙열전, 전숙열전, 편작창공열전, 오왕비열전, 위기무안후열전(7편)
한 제국 효문제와 효경제 시절의 문신과 무장들을 다루었습니다. 

7. 한장유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위장군표기열전, 평진후주보열전, / 남월열전, 동월열전, 조선열전, 서남이열전, 사마상여열전, 회남형산열전, / 순리열전, 급정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 대원열전, 유협열전, 영행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 화식열전(22편) 
한무제 시절의 다양한 인물을 기록하였습니다. 위 22편을 인물의 성격이나 행적으로 다시 세분하면 대략 5개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장유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위장군표기열전, 평진후주보열전 등 5편은 북방 기마민족 흉노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남월열전, 동월열전, 조선열전, 서남이열전, 사마상여열전, 회남형산열전 등 6편은 흉노를 제외한 주변 이민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순리열전, 급정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등 4편은 한무제 시기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인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월열전, 유협열전, 영행열전, 골계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등 6편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인물 중심으로 엮은 것입니다. 마지막 화식열전은 한무제 시기를 중점적으로 서술했지만 경제를 중심축으로 하여 사마천 시대까지의 중국경제 문제를 인물에 기대어 서술한 내용입니다.  142-146

열전의 표제 기준
열전의 표제는 일정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관직으로, 작위로, 봉읍지로, 호치으로, 성명으로, 성씨만으로, 시호로, 생(生)이나 자(子)는 '선생님'의 뜻으로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관직, 작위, 봉읍지, 시호 등으로 명명한 것은 일종의 예우며, 생(生)이나 자(子)로 불러주는 것도 일종의 존칭이라 하겠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사마천은 그대로 채용했을 것입니다.  147-148

열전의 종류 : 전전, 합전, 유전, 부전

전전(專傳) : 전적으로 한 명만을 기록
'전전'이란 오로지 한 명만을 전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오자서열전, 상군열전, 소진열전, 위공자열전, 전단열전, 여불위열전, 회음후열전, 한장유열전, 사마상여열전 등이 그러하지요.

합전(合傳) : 둘 이상을 대등하게 기록
'합전'이란 두 사람 이상을 대등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손자오기열전, 중니제자열전, 저리자감무열전, 백기왕전열전, 맹자순경열전, 평원군우경열전, 범저채택열전, 염파인상여열전, 노중련추양열전, 굴원가생열전, 정이진여열전, 위표팽월열전, 한신노관열전, 번역육가열전, 부근괴성열전, 유경숙손통열전, 계포난포열전, 원앙조착열전, 장석지풍당열전, 만석군장숙열전, 편작창공열전, 위기무안후열전, 위장군표기열전, 평진후주보열전, 회남형산열전, 급정열전 등이 그러하죠. 
표제부터 두 명 이상의 인물 성씨 혹은 성명을 나열했기 때문에 첫눈에 '합전'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합전'으로 처리했을까요? 
대략 다음 4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합전의 4가지 이유
첫째, 학술적으로 연관된 인물.
노자한비열전, 손자오기열전, 중니제자열전, 맹자순경열전, 편작창공열전 등이 그러합니다. 한비자는 법가이나 그 원류는 도가의 노자입니다. 손무, 손빈, 오기는 모두 병법가입니다. 공자의 제잗르은 당연히 공자를 원조로 삼았습니다. 맹자와 순자는 전국시대 유가학파의 거벽입니다 편작과 창공은 명의들입니다. 이들의 학문은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으므로 합쳐서 서술한 것이죠. 
비슷하거나 관련된 학술 인물을 합쳐서 서술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노자한비열전처럼 원류로부터 영향까지 그 맥락을 살필 수도 있고, 중니제자열전처럼 해당학파 제자들의 활약상을 통하여 유가사상이 중국의 정치 및 사회이ㅔ서 주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업적이 비슷한 인물. 
관안열전, 백기왕전열전, 번역등관열전, 역생육가열전, 유경숙손통열전, 장석지풍당열전, 위장군표기열전 등이 그러합니다. 관중과 안영은 제나라 명신들로 진시황제의 천하 통일에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 등은 전투로 유방을 보좌하여 한 제국 건립에 공한하였습니다. 역이기, 육가는 변사로서 정적을 설복하거나 정책을 제시항 한 제국의 건립 및 안정에 공헌하였습니다. 유경은 관중 땅에 도읍지를 정하는 문제 및 흉노와의 선린 정책을 건의하였고, 숙손통은 조정과 종묘의 예법을 마련한 점에서 모두 한 제국의 안정에 공헌하였습니다. 정석지와 풍당은 한문제에게 직언하며 공정한 법 집행과 사심 없는 행정으로 청명한 정치를 일구었고, 위청과 곽거병은 한무제의 친척으로 흉노와의 전투에서 수훈을 세웠습니다. 이렇듯 업적이 비슷한 인물을 합쳐서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처리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업적이 비슷하므로 중복된 사건은 간명하게 처리하면서 편폭까지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해당 시기에 어떤 인재와 어떤 정책이 주효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삶이 비슷한 인물. 
범저채택열전, 염파인상여열전, 위표팽월열전 한신노관열전, 회남형산열전, 장이진여열전, 원앙조착열전, 위기무안후열전, 평진후주보열전 등이 그러합니다. 범저와 채택은 모두 변사로서 진나라에서 대성했다가 적절한 시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산뜻하게 물러났습니다. 염파와 인상여는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며 조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위표와 팽월은 초한상쟁 시절에 전국시대 위(魏)나라 지역을 근거지로 항우와 대항하여 한 제국의 건립에 간접적으로 공헌했습니다. 한왕 신과 노관은 흉노에 투항했고, 그 자손들은 다시 한 제국에 귀의하였습니다. 회남여왕 유장 및 회남왕 유안, 그리고 형산왕 유사는 모두 한고조 유방의 종친으로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습니다.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위(魏) 지역의 명사들이니데 문경지교에서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원앙과 조착은 질투와 알력으로,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은 외가 신분으로 암투를 벌이다 자멸하였습니다.. 공손홍과 주보언은 주변 이민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견의 합치와 불일치로 암투를 벌이다 공멸하였습니다. 이들의 삶은 상호 긴밀하게 ㅇㄴ관되었거나 업무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죠.
삶이 비슷한 인물을 합전으로 처리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기전체란인물 위주의 서술입니다. 그런데 사건을 서술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관련된 인물을 언급하게 됩니다. 중요한 인물일수록 같은 사건을 동일하게 되풀이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중복 서술은 불가피해집니다. 이런 경우 삶이 비슷한 인물을 합전으로 처리하면 관련된 사건이나유사한 사건의 경우 일괄 서술할 수 있으므로 사건의 전후맥락을 분명하게 전개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편폭 또한 크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넷째, 성품이나 인생관이 비슷한 인물.
계포와 난포는 모두 협객으로 한때 노예로 전락했으며 의리와 신의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만석군 집안과 장숙은 모두 신중한 성격과 돈후한 인품으로 그 당시 군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급암과 정당시는 인품을 도야하며 청렴한 정치에 힘써 세인의존경을 받았습니다. 노중련과 추양은 평민으로서 세도가에게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였습니다. 굴원과 가의는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추었지만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울적하게 생을 마감했으며 두 사람 모두 사부(辭賦)의 대가였습니다.
성품이나 인생관이 비슷한 인물을 합전으로 처리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해당 시기에 어떤 인재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햇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인물 군상이 간명하게 정리되므로 다연히 편폭도 깔끔하게 줄어듭니다.
이상으로 보건대, 두 사람 이상을 묶어 한 편으로 처리했던 기준은 학술적인 관계, 비슷한 업적, 비슷한 삶, 비슷한 성품이나 인생관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손자오기열전, 백기왕전열전, 노중련추양열전, 굴원가생열전, 편작창공열전 등에서 보다시피 수십 수백 년 떨어진 인물을 한 편으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여러 명을 한 편으로 처리하면서도 어떻게 흔적 없이 통합시켰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를 보는 안목과 문학적 수양이 관건인데 이런 문제에 있어서 사마천의 혜안과 박력이 돋보입니다.

부전(附傳) : 덜 중요한 관련 인물을 덧붙여 첨부
'부전'이란 중심인물 밑에 덜 중요하나 인물을 첨부하여 서술하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 '합전'과는 구별됩니다. 역사에는 중요한 인물과 사건 이외에도 덜 중요한 인물이나 덜 중요한 사건이 있게 마련이죠. 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동일한 비중으로 모두 살리려다 보면 기전체와 같은 인물 위주의 역사 기술에서는 편폭이 폭증하여 전체적으로 잡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 인물의 행적을 집중적으로기록하면서 그와 관련된 인물을 가볍게 언급해주면 편폭이 간결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도 경제적으로 안배할 수 있게 됩니다. '부전'은 기저체 형식에서 이렇듯 무척 경제적인 서술법이므로 비단 열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본기, 세가, 서, 표에서도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관안열전은 관중과 안영을 중심인물로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숙아와 월석보도첨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포석아와 월석보는 관안열전에 첨부되면서 그 인물과 행적이 후세에 전해진 셈입니다. 오자서열전의 신포서와 백공, 상군열전의 공숙좌와 조량, 맹상군열전의 풍환, 평원군우경열전의 모수와 이동, 위공자열전의 후영과 주해 그리고 모공과 설공, 춘신군열전의 이원과 주영, 범저채택열전의 수가와 위제, 염파인상여열전의 조사와 조괄 그리고 이목, 전단열전의 태사교녀와 왕촉, 여불위열전의 노애, 이사열전의 조고, 장이진여열전의 관고와 조우, 회음후열전의 괴통, 역생육가열전의 주건, 원앙조착열전의 등공, 평진후주보열전의 서락과 엄안 등등이 모두 관안열저노가 마찬가지로 관련된 인물을 덧붙여 서술해준 경우입니다.
'부전'에서 첨부하는 인물은 그저 관련된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 인무로가 비슷한 유형의 인물도 덧붙여 언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자손이나 친척을 더불어 언급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전(類傳) : 비슷한 직업이나 유형의 인물을 통합하여 기록
'유전'이란 비슷한 직업이나 유형의 인물을 모아 기록한 열전입니다. '유전'의 유(類)는 종류의 뜻으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성어를 떠올리면 쉬비게 이해될 것입니다. 자객열전, 순리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유헙열전, 영행열전, 골계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화식열전 등 10편이 이에 해당됩니다. '유전'의 명칭만 봐도 특수한 계층이나 집단이 역사와 사회에 간과할 수 없는 존재로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전'의 설정은 전체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감하고 섬세하게 분류하여 간명하게 통합해야 된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예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유전'은 그저 비슷한 유형의 인물만을 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인물 집단이 역사와 사회에 하나의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또한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집단은 하나도 없습니다.  148-158

사마천의 의도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아니엇으나 결과적으로 인물 위주의 역사기록 형식 중에서 <사기>보다 완벽한 모습이 없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정사(正史)의 모델로 여거 대대로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고러사>도 <사기>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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