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전부터 이 책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간서치(看書痴)라 불리는 이덕무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서자로 태어나 가난을 물려받고, 양반도 평민도 ...어디에도 끼일 수 없었던 그는 암울할 수 밖에 없는 젊은 시절을 책을 보면서 그리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며 보내었다.
결국엔 불혹의 나이에 가까왔을때는 조정에 들어갈 수 도 있었다.

이덕무에 대한 이야기들은 간간이 책들에서 많이 인용이 되어있음을 보았고, 최근에는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1,2'에서 그가 검서관으로 일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책은 아무래도 정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에 이덕무의 내용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의 행적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은 더욱 와 닿았다.

그의 친구들인 유득공,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백동수, 이서구, 박제가등과 함께 젊은 시절 백탑의 추억들은 서자였지만, 그가 젊은 시절 흔들림 없이 책에 파뭍힐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붕우유신(朋友有信)' 그에게 진정한 벗들이 있었기에 힘든시절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책의 인물 설명의 내용을 맨 먼저 적어본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조선 정조 때의 문인, 실학자. 자는 무관(懋官),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菴) 아정(雅亭). 서자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박학다식하고 시와 문장을 잘하여서 젊어서부터 많은 저술을 남겼다. 17년간 살던 대사동(大寺洞)에는 비슷한 처지의 서얼 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가까이에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었기에 이들은'백탑파(白塔派)'라 불렀다. 또한 이덕무는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와 더불어 중국에까지 알려진 사가시인(四家詩人)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1778년에는 사실 일행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으며, 1779년에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었다. 규장각에서 여러 서적의 편찬, 교정, 감수에 참여하였으며, 많은 시편도 남겼다. 검서관을 하면서 외직도 겸해 사근도 찰방, 적성 현감을 지내기도 했다. 1973년에 병으로 죽자 그의 제주와 능력을 아끼던 정조가 특별히 명하여 유고 문집 <아정유고>를 펴게 하였다. 저서로는 <기년아람>, <사소절>, <청비록>, <뇌뢰낙락서>, <이목구심서>등 수없이 많은데, 아들 이광규가 모두 정리하여 <청장관전서> 71권 33책으로 펴냈다.



내가 읽은 책 속의 옛 어른들은 날마나 시간을 정해두고 책읽기에 힘써야 한다고 하셨다.  19
하고난 날 좁은 방 안에 들어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날마다 책 속을 누비고 다니느라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때론 가슴 벅차기도 하고, 때론 숨 가쁘기도 하고, 때론 실제로 돌아다닌 것처럼 다리가 뻐근하기도 했다. 
못보던 책을 처음 보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21
책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일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24
굶주림 - 밥을 먹는 것보다도 굶주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추위 - 가난은 겨울에 더 비참한 법이다. 때로는 감각없는 손의 상태가 궁금해, 구부리기도 하고 펴 보기도 하면서 무사한지 확인하였다.  25
근심걱정 - 생계가 막막한 서자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 한스러운 것은 내 처치를 자자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것.
기침병 - 집은 제대로 불을 때지 못해, 온 식구가 추위에 시달리고 병들기 일쑤였다. 한번 박작이 시작되면 목과 가슴이 쓰리도록 아프고, 온몸은 격렬하게 흔들려 나중에는 뱃가죽까지 아파 오는 것이 기침병이다.  26
나는 애써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귀한 책을 보면 갖고 싶고, 좋은 책을 보면 오래도록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싶었다.  31

붕우유신이라, 오륜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한자리를 내어 주는 것은 오직 이 항목뿐이다.  38
"여기, 방 한 칸을 만들려고 합니다. 편안하게 책도 읽고, 저희도 자주 찾아와 함께 지내고..."
"......"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47
.....
서재가 완성된 날, 벗들이 내 집에 모여들었다. 아내는 모처럼 조촐한 술상을 차려 내었다. 집을 짓는 틈틈이, 밤새워 바늘을 놀려 가며 애써 마련해 둔 것이리라...(부부유별)  49
청장관(靑莊館)이라는 나의 호를 따서, 서재에 '청장서옥(靑莊書屋)' 
청장은 푸른 백로를 말한다. 필요한 만큼만 먹고사는 맑고 욕심 없는 새라고 한다.  49
사람들은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책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통로가 어찌 눈뿐이겠는가?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책 속에는 또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나는 또한 그림을 보듯 책을 본다.
어떨 때는 책에서 냄새가 나기도 한다.  50-54

술기운에 마음이 편해졌는지 박제가는 이런 말을 하였다.
"운명이란 게 어디 별것인가요? 저는 나를 마음대로 하려 드는데, 나라고 저를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얽어매어 놓은 사슬 한 겹이라도 내 반드시 풀고 말 것입니다."  72-73
"어제는 저 거미줄만 보았을 뿐, 거미의 꽁무니에서 실이 나오는 것은 미처 보지 못하였습니다. 거미는 어제도 오늘도 부리전히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요.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합니다. 제가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든 사물은 제 모습을 더 세밀하게 보여 주니까요."  75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抄書)
책을 바로잡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評書)
책을 쓰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曝書)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곳에서 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호기로운 서재 이름이었다.  126
이서구와 나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하였다.... 글자 하나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며 적절하게 씌어졌는지 파고들었다.  129
박제가의 꼿꼿함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분노까지 담고 있어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서구는 어떤 상황에서건, 누구 앞에서건 냉정하고 담담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다하였다. ... 
강의 도중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옆에서 빠뜨림 없이 기록하면서, 거침없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나지막이 혼자 감탄하였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주저하지 않는 이서구는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132

홍대용은 "공에는 위, 아래가 따로 없어. 어디가 가운데라 할 수도 없지. 중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동쪽 변두리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겠으나,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도 북쪽의 큰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우리는 서양 사람이라 부르지만, 그들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동양 사람이겠고, 그러니 자기만이 중심이라 자만할 것도, 변두리라 기죽을 것도 없다네."  158
중국을 사모하는 작은 나라들은 중국의 제도를 따르고,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중국의 학문이 전부인 양 여겼다.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중국 것이면 충분하였다.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의 문장마저 중국의 것을 따르지 않으면 비난을 받았다. 내 나라 산천과 내 나라 백성의 풍습을 노래한 글은 변두리풍이라 하여 하찮게 여기고 한심하게 여겼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떠한 나라든지 가운데가 될 수 있고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처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159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이 나의 마음에 의미 있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나의 시가 될 수 있다.  168
연암은 "자네들의 눈과 귀를 그대로 믿지 말게. 눈에 얼핏 보이고 귀에 언뜻 들린다고 해서, 모두 사물의 본 모습은 아니라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先入見)이다.  176
변화를 거부하고 선입견에 사로잡힌 고루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기준 이었다. 사심없이, 오로지 백성들의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선생의 순수함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했다.  181

박제가의 취향은,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지적하여 해결 방도까지 내놓는 태도였다.  229
"옛말에 가진 것이 있어야 지킬 양심도 있다고 했다."  237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 어렴풋이 실감이 났다.  238
나의 벗들은 책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최선을 다해 실천하고자 했다.  240

역사는 책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보다, 팔딱팔딱 뛰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자리해야 한다. 246
옛사람들과 우리, 그리고 저 아이들, 또 먼 훗날의 다른 아이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속에, 제몫의 세월만큼은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뒤돌아보기도 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는 사람도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249
나도 옛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애할 수 있을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250
먹을 듬뿍 묻힌 글씨는 진한 향을 내뿐고 있었다.  252

손자는 아들과는 또 달랐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나도 아직 젊은 아비라 그랬는지, 나만의 고민이 많았다. 나의 눈길은 자주 내 속으로 향해 있거나, 집 울타리를 넘어 세상으로 향했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지 못했다.  259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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