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

생각/인물 2010. 9. 3. 03:39



유영만 대학 교수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1963년 충북 음성 출생.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 취득. 삼성인력개발원과 안동대를 거침. 60권에 가까운 책을 쓰거나 번역하면서 지식생태학자·교육공학자·자기개발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농담처럼 ‘들이대학교 저질러학과 뒷수습전공’이라는 말을 하지만, 삶을 꾸준히 개척해 온 학자다. 그 개척의 과정에는 공고 졸업 후 용접공으로 일할 때 처음 참모습을 알게 된 책이 함께했다. 



유영만 교수의 블로그




‘청춘(靑春)’을 생각하면 ‘푸름’과 ‘봄’이 떠오른다. 나뭇잎이 가장 싱그러운 때를 뜻하는 것이 푸름이요, 사계절에서 가장 먼저 오는 계절은 봄이다. 그만큼 활력도, 의욕도 넘치는 시기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청춘들은 그렇지 못하다. 무언가에 억눌려 있고, 고민에 짓눌려 활력이 사라진 상태이다.

그런 청춘들에게 활력과 의욕을 넣어주고자, 한 지식생태학자가 나섰다. 한양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유영만 교수. 그는 지식생태학자로 자신의 책 <
청춘 경영>을 통해 주눅이 들어 있는 학생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 이야기하는 ‘청춘 경영’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청춘 시절을 활력 있고 의욕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유영만 작가는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지식생태학자’로 불리고 있다. 생소한 학문인 ‘지식생태학’은 과연 무엇일까? 

지식생태학은 현재 기업에서 하는 ‘지식경영’에 대해 ‘과연 지식이라는 것이 경영의 대상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지식경영’은 지식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사람들의 지식을 저장한 후, 사람들이 없어도 언제나 지식을 꺼내어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데이터베이스화 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에 대해 저자는 ‘지식을 사람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사람이 없어도 그 사람의 지식을 남겨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람이 회사에서 퇴근하면 (그 사람의)노하우나 지식도 함께 퇴근합니다. 예를 들어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이 그 노하우를 매뉴얼로 제작하여 배포해도 그 원래의 맛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매뉴얼이 아니고 그 사람을 만나 직접 배워야 그 솜씨를 배우죠. 지식생태학은 지식을 나눔에 있어 시스템이나 기술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만남 속에 어떤 조건과 문화를 만들면 지식을 서로 나누는 역동적인 현상이 만들 수 있는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재미있고 즐거운 일터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지식생태학이죠.”




지금은 지식생태학자로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작가이지만, 그가 과거에 용접을 전공한 공업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공업고등학교에서 용접을 전공하여 졸업 후에는 한국전력에 입사하여 사회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왠지 모를 허전함에 방황을 했다고 한다. 

“하루 하루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 피 끓는 젊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할까요. 목적 없는 방황 탓에 술로서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방황을 하며 보내던 어느 날, 작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책! 

여느 때와 같이 술집에 가려던 작가가 우연히 서점에서 보았던 고시체험수기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합격한 이의 수기를 보고 난 작가는, 이를 계기로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이후 술을 끊고 사법고시를 합격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했고, 마침내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작가가 가진 책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사법고시 합격의 목적과 장학금을 위해 했던 공부는, 작가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공 서적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찾아가며 읽었으며, 나중에는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고 한다. 이에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더욱 많이 읽었고, 하루에 A4 1장씩 글을 쓰자는 철칙도 정했다고 한다.

“필요에 의해서 했던 공부가 이제는 지적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내가 책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처럼, 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글을 쓰지 않아 펜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A4 한 장씩 글을 쓰는 연습도 했죠.”

이렇듯 열심히 노력한 작가는 비록 사법고시를 보진 못했지만,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후 해외유학까지 다녀와 교육공학자가 되었다. 해외유학 후 유명 대기업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지만 그는 몇 년이 지나고 과감히 퇴사를 감행, 대학강단에 서게 된다. 스승에게 한 약속, 강단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킨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걱정이 생겼다고 한다. 수업이나 혹은 상담하면서 만난 학생들을 보면 방황하는 청춘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눈에 초점을 읽은 학생을 많습니다. 몇 년 동안 입시에 치여 살다가 대학에 와서 갑자기 자유를 얻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죠.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 지도 모르고, 목적의식도 없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게다가 현실적인 걱정도 많죠. 너무 일찍부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작가는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용으로 책을 써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었다. 온실 속에서 자라 약한 그들에게 거칠고 강하게 자란 잡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지금 청춘들이 겪는 시련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청춘들은 빠르고 쉬운 길만 찾는 것 같습니다. 역경 속에 경력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빛나는 경력은 부딪치는 역경 속에서 생겨나는 법이죠. 큰 비행기가 높이 오래 날아가려면 긴 활주로가 필요하듯 청춘 시절에 겪는 시련은 높이 날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청춘들이 많은 고민보다 몸으로 부딪히고 실행에 옮겼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요즘 학생들은 무언가 실행에 옮기기 전에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고민이 고민을 만들어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몸으로 부딪히며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해보라 충고한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생각에 근거한 행동이 바꾸는 겁니다. 너무 생각만 많이 하지 말고 도전하고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청춘이란 시기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고 찾는 시기입니다. 그 탐색과 실험 속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돼지는 45도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매일 땅만 보며 살죠. 그런 돼지가 하늘을 보려면 뒤로 넘어져야 합니다. 사람도 실패하고 넘어지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실패는 넘어져서 일어나길 거부하고 포기했을 때죠. 여러 가지 도전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생의 지혜를 만들어 나가는 배움의 과정입니다.”

유영만 작가는 꿈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는 ‘꿈은 꿔오는(빌려오는) 것’이란 신영복 교수의 말을 빌려 자신의 꿈이 어디 있는지,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꿔올 것인지 알아보라 했다.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낮에도 꿈을 꾸고, 함께 그 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의 그의 저서는
  • 등.. 여러저서가 있다.. 그리고 '청춘경영'도 있다




    공부선수보다 전문인으로 키우자!


    이러한 시대변화에 부응하여 점차 우리 사회도 학력(學歷)보다는 학력(學力)과 실력(實力)이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으로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가 할 수 있는 분야, 하고 싶은 분야에 힘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개성을 찾아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과목을 다 잘하는 공부선수를 기르기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인접분야에 대한 폭 넓은 안목을 지닌 사람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을 겸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특정 분야의 지식과 기술만 알고 남과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는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극단적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내 자식을 공부 잘 하는 공부선수로 양성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왜 이런 공부를 해야 되며, 그런 공부가 나의 미래 삶에 어떤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어려서부터 일상생활과 관련지어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르침의 과정에서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변할 것이다. 그리고 첨단 테크놀로지가 사회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자라나는 세대들의 가치관과 인생관도 많은 부분 바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거시적인 사회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많은 것이 변화해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해야 가치가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인간적 접촉을 더욱 중시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인간적 만남을 통해서 서로 나누고 함께 가는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작은 것도 나름대로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자연과 벗삼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자녀들에게 부여해야 한다.


    각박해지는 삶, 경쟁이 치열해지는 삶일수록 학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인지를 생각해 보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첨단의 유행도 좋지만, 그러한 첨단의 유행을 가능케 했던 역사의 뒤안길을 탐색해 보면서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오늘날의 사회발전과 미래의 디딤돌이 되는지 탐구하는 기회도 가져보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해서 그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 나가면서 소박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학부모들이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부모의 생각과 교육관이 변할 때 비로소 우리 교육이 바로 서게 되지 않을까?



    부모들이여 변화에 주목하라!


    이제 학부모들은 사회변화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날로그 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탈바꿈하면서 폐쇄적 연줄 공동체가 개방적 관심 공동체로 바뀌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세대는 주로 정(情)과 연(緣)에 근거한 폐쇄적 가족집단주의를 근간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연대망을 구축했다. 여기에는 인간적인 정과 혈연, 지연, 학연이 얽혀 있다.


    그러나 디지털 네트워크상의 개방공간에서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연줄망에 입각해 있는 기존 제도권에 대한 다양한 도전이 이루어진다. 명령과 통제에 대한 순종과 복종, 타협과 아부를 뛰어넘어 기존의 권위와 지위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세대는 철지난 정보까지 자기와 폐쇄적 연줄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공유했다. 하지만 개방적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정보의 수평적 무한복제가 가능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개방성이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인식과 관심을 같이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무런 연줄 없이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아날로그 시대가 정보를 소유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았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를 공유하고 남과 다르게 활용하고 가공하는 것에서 그 가치를 찾기 때문이다.


    또한 아날로그시대가 줄 잘 서면 출세하는 ‘앞으로 나란히’의 시대였다면, 21세기 디지털 시대는 ‘옆으로 나란히’의 시대다. 그래서 자기와 수평적 관계망을 무한대로 확산하면서, 자신이 보유하지 못한 전문성은 수평적 관계망을 통해 타인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차력(借力)이 뛰어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농업적 근면성을 발휘하여 열심히 일하면 출세하는 소위 ‘개미’형 인간이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지식정보화 시대는 혈연, 지연, 학연 등의 폐쇄적 공동체를 벗어나, 시공을 초월하여 자신과 관심을 같이하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든지 관계의 줄을 이어가는 ‘거미’형 인간이 출세하는 시대다.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다양한 전문 영역간의 의사소통과 사귐, 그리고 지속적인 연결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는 또한 개미와 같이 열심히 일하는 농업적 근면성보다는 남들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쉬면서도 끊임없이 머리를 써서 부가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지식노동이 필요한 시대다. 산업화, 아날로그 시대의 노동의 개념으로 보면 베짱이가 그늘에서 노래를 부르고 노는 것은 노동이 아니지만, 이를 지식 정보화 시대의 노동개념으로 새롭게 해석하면 엄청난 창조행위, 두뇌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유영만/한언) 중에서 -


    유영만의 <용기>중에서

     

    용기의 첫 번째 적은 망설임입니다.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말은 '내일'이라고 하지요.

    '내일부터 운동을 시작하겠다.'

    '내일부터 책을 읽겠다.'

    하지만 한 번 미룬 사람은 내일이 오늘이 되면 또 '내일 하겠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은 그냥 실천하는 것입니다


    [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47>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한양대 교수
    학습자를 즐겁게 해 ‘지식의 자연분만’을 이끌어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캠퍼스를 찾았다. 3월의 대학가만큼 생기가 넘치는 곳도 많지 않다.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3월의 신입생은 좀체 주눅 들지 않는다. 지식생태학자로 인정받는 유 교수를 만난다는 기대감이 넘쳐서인지, 인터뷰 약속 시간에 비해 한 시간 앞서 대학 정문에 들어섰다.


    ◇교육공학을 전공한 유영만 교수는 학생과 젊은이에게 관심이 많다. 그는 ‘남들보다 잘하는 것’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잘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 그는 “방황과 역경을 거치면 남과는 다른 무늬를 지니게 돼 삶이 훨씬 풍성해진다”며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할 때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제원 기자
    대학 구내 서점에 들렀다. “모교와 수많은 책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유 교수의 육성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남들보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하고, 장학금이 보장된 공고에 다니고, 대학도 뒤늦게 들어간 그를 키운 게 책이었다고 고백해 왔다. 서점 직원은 학기 초여서 교재가 많이 팔린다고 했다. 딱딱하고 읽기 거북스러운 책들이 좁은 서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토익책을 비롯한 어학용 교재도 다수 눈에 띄었다. 교양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수업용 대학 교재는 10년 전이나 20년 전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독서를 강조하지만, 정작 대학 구내에는 읽을 만한 책이 없는 현실을 다시 목격하니 씁쓸했다.

    서점을 둘러 본 뒤에 약속 시간에 연구실을 찾았다. 대학 업무 때문에 총장실을 방문한 그는 아직 부재중이다. 연구실 앞의 복도를 오가며 그와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의 저서를 꺼내들고, 질문용으로 적어둔 문장을 살펴봤다. 마침 사진기자가 캠퍼스에 도착했다. 보통 인터뷰 중간에 사진 기자가 합류하는 관행을 고려할 때, 취재 준비 시간이 꽤 길어진 셈이다.

    유 교수와 약속을 잡던 과정이 떠오른다. 일정을 서로 확인하니 인터뷰할 수 있는 날짜가 별로 없었다. 유 교수가 바빠서였다. 여기에다가 신문제작 여건을 고려해 월·화·수요일 오후에만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조건을 내건 상황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관심이 많고, 지독하게도 바쁘게 산다. 그런데 바쁘다는 표시는 크게 하지 않는다. 다른 학자보다도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하지만, 각종 저작물 등 내놓는 결과물은 탁월하다. 개인 홈페이지(www.010000.pe.kr)와 블로그를 둘러보면서 이런 평가에 수긍하게 됐다. 그의 인터넷 공간에는 각종 이야기와 사색이 담겨 있다. 그것도 풍부하고 깊게. 깊어야 넓어질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글마다 묻어났다. 읽는 글마다 잘 읽혔다. 노련한 글솜씨와 경험을 들려주는 과정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생각을 할 즈음 6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함께 연구실 문을 열자 조그마한 ‘식물과 책의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책과 식물에 대한 예의일까. 연구실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신발을 벗는 곳 옆에 그가 쓴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간의 역서와 저서가 57종이라고 한다. 삼성인력개발원과 안동대에 재직할 때도 몇 권의 책을 썼지만, 대부분은 2001년 한양대로 옮긴 뒤부터 본격적으로 저술한 책이다.

    바쁜 와중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학교의 보직도 학과장·교수학습개발센터장 등 공식적으로 세 개다. 잘 알려진 학자이다 보니, 각종 모임과 기관의 강연도 빈번한 편이다. “사색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밤에 술 약속을 끝내고 힘들 때에도 글을 씁니다.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세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는 조어인 ‘피치(PITCH)’로 이를 설명한다. ‘피치’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그 무엇’이기도 하지만 영어의 다섯 단어에서 어두 음을 따서 만든 단어이기에 여러 뜻이 담겨 있다. 열정(Passion)·혁신(Innovation)·신뢰(Trust)·도전(Challenge)·행복(Happiness)의 창을 통해서 그는 세상을 바라본다.

    “즐거운 학습·건강한 지식·보람찬 성과·행복한 일터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이 과정이 제대로 되면 ‘지식 임신’이 가능하고 ‘지식의 자연 분만’이 저절로 이뤄지게 돼요.”

    설명을 듣다 보면, 그가 개념 정리와 구조화, 관계도 창출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에게 정보를 받아들이는 창은 곳곳에 열려 있다. 그에게 글의 소재와 원료가 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독서와 미디어는 기본이고 동영상과 영화도 수시로 본다. 일련의 활동은 자신의 글을 보다 쉽게 풀이하는 과정에 요긴하다.

    “대학의 개론서는 ‘개소리하는 책’이다”고 과감히 말하는 그에게 책은 독자친화적이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그의 전공의 성격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교육공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교육과 기술학이 결합한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유 교수는 “학습자를 즐겁게 해서 교육 대상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어 내는 데에 핵심을 두고 있다”며 “학습자들이 바로 고객인 셈”이라고 강조한다.

    지식은 자연친화적으로 생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생명체와 생태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현존하는 생명체는 대부분 수만년의 경쟁을 뚫고 존재하고 있다. 생태계는 이들의 축제의 공간이다. 지식의 생산·유통·소비 흐름에 생태계의 원리를 접목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학문은 세상에 도움이 안 돼도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학문이 보호돼야 할 이유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가 학자들이 하는 농담을 풀어놓는다. 파리의 앞다리 연구를 석사·박사·교수·학파 수준에서 설명한다. 이야기를 듣고 한참 웃었다.

    “석사는 파리의 앞다리가 몸통에 미치는 영향을, 박사는 앞다리 발톱의 성분이 몸통에 미치는 영향을, 교수는 앞다리 발톱의 때가 파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고 하지요. 교수들이 앞다리의 때를 1년 된 것, 까만 것 등으로 나누며 분석할 때 학파가 형성된다고 하며 웃습니다. 하하. 부언하자면, 박사들은 ‘나만 모르는 게 아니고 다 모른다’고 하고, 교수들은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우겨야 한다’고 하지요. 농담이지만 농담만은 아닌 게 우리 현실이어서 안타까울 뿐이지요. …”

    파편적 지식의 발견에 목말라하는 학자군을 에둘러 비판한 말이기도 하지만, 대중에 책임을 지지 않는 문화를 희화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학자나 지식인이 자신들만의 성(城)에서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유 교수의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됐다. 지식인은 물론 지성인이라면 말하기와 글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민하는 힘과 노력을 바탕으로 표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런 인식이 10년 남짓한 기간에 57종의 책을 내놓은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생각하는 학자의 사명은 일반 학자의 인식과는 다르다. 이는 그가 이어령·윤석철·정민 교수 등의 저서를 자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읽는 학자의 글에서는 고민하는 노력과 표현하는 힘이 동시에 느껴진다. “동문이기도 한 정민 교수의 책은 독자로서도 감동을 받는다”는 고백에 진정성이 묻어난다. 정 교수를 설명하는 표현이 뇌리에 남는다. “고전에서 건져 올린 상상력을 풀어놓는 학자. 펄럭이는 물고기처럼 싱싱해서 좋다.”

    “책이 만들어낸 사람”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유 교수. 그에게는 공고를 졸업하고 용접공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이들을 보게 됐다. 행복한 모습을 보고, 주경야독했다. 가난 때문에 ‘까무러칠 정도’로 공부했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은사인 김종량 총장을 비롯한 이들의 도움 덕택이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친 그에게는 꿈이 있다. 장학재단 설립이다. 이를 통해 적어도 한양대의 교육공학을 선택한 모든 학생이 장학금으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도록 하고 싶다. 이는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고등학생 때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 사회에 진 빚을 갚는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쑥스럽게 말하는 그를 쳐다보면서 취재기자로서 바람이 생겼다. 그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앞으로도 수차례 더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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