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
시를 있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에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8


세상은 ‘자식 잃은 엄마‘를 “슬픔의 상징”으로 생각하나, 정작 그녀는 충격과 분노,무력감과 굴욕 감 등에 시달리며 네네 울었을 뿐, 그런 감정과는 다른 ’슬픔‘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48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강간’

타인을 ’안다고 여기는‘ 태도는 언제나 위험한 곳이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완전한 동력이다. 이런 폭력은 ’말 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에게 권력이 있을 때 발생한다.  59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다‘ 육체적 강력한과 정신적 건강, 혹은 개인적 안가는 거야 사회적 강간.  61


한 시인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불행한 편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행이 주관적으로 학원 하는 말을 하는 것은 부주의한 일이다. 당사자가 ‘나는 불행하다’고 말한다 해서 타인이 아무 때나 ‘그는 불행하다’라고 말할 자격은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당사자가 그 말을 할 때는 설사 신세 한탄의 형식을 취 한다 해도 그것이 자기 직시의 효과를 발휘해 자신의 현재를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겠으나, 타인이 그런 말을, 그것도 그를 그 불행에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의사도 없이 할 때는, 그런 말이야말로 그가 미래의 다른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꺾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67

늙는 것은 나나 그대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 그 자체라는 뜻이 아닌가.  80


누구도 힘들 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 인생은 질문 하는 만큼만 사라지기 때문이다.   87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8
8

단지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천사가 학교 않으면 쓰러질 뿐인 우리 불안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90


시인 랭보는 10대 후반에 짓이기듯이 선언했다. “사랑은 제발명 되어야 한다” ([착란1]) 이 선언에 담긴 취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 시대 사랑은 부르주아적 놀리 와 관습에 오염 되어 단지 이익의 거래가 되었을 뿐이며, 사랑의 아름다운 귀결로 간주 되는 결혼이라는 것은 차가운 멸시를 먹고 사는 괴물 일 뿐이다.’ 랭보가 말한 것은 팔 명이 아니라 재발명이다. 어떤 가치 혹은 제도의 재발명을 요청 하는 사람은 혁명적이다. 기존의 것은 가짜라고, 진짜는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93


메리 올리버 의 <기러기>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당신 몸의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게 두어요.
절망에 대해 말해보세요. 당신의 절망ㅇ을, 그러면 나의 절망을 말해줄게요.
그러는 동안 세상은 돌아가죠.
그러는 동안 태양과 맑은 조약돌 같은 빗방을은
풍경을 가로질러나아가요.
넓은 초원과 깊은 나무들을 넘고
산과 상을 넣어서.
그러는 동안 맑고 푸른 하늘 높은 곳에서
기러기들은 다시 집을 향해날아갑니다.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당신의 상상력에 자기를 내맡기고
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맃쳐요, 격하고 또 뜨겁게
세상 만물이 이루는 가족 속에서
그대의 자리를 되풀이 알려주며.  108-109

자신이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책ㅎ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고질적 습관이 아닌가. 이 시의 ㅣ도입부는 바로 그런 대다수 독자의 자학적 자의식을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성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112

“그저 당신의 몸의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게 두어요,.
인간성(정신성)을 내려놓고 우리안의 동물성(육체성)이 이끈느 길로 가라는 것. 물론 그 동물성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폭력적 동물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극복해야 도달할 수 있는 “부드러운 동물성”이다.   112-113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건 일어났다’가 맞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악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132

인정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즉 외로울 때, 그것은 고통이자위험이 된다. 그것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찬미하는 '고독'과는 얼마나 다른가.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위대한 일은 한결같이 시장터와 명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진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12) 그렇다면 차라리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을 분리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한나 아렌트처럼 말이다. "고독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있는, '홀로'이다. 그러므로 하나-속의 둘(two-in-one)이다. 반면 외로움 속에서 나는, 모든 타인들에 의해 버려진, 그야말로 하나 one다." (『전체주의의 기원) 요컨대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나를 둘로나누어 대화하게 만든다는 것.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의 어려운 문장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한 인간이 '개별화' 되려면 '고독화'라는 이상한 말로옮길 수밖에 없다)를 겪어야 한다는 것. “개별화, 그것은 인간이자신의 약하고 보잘것없는 자아를 완강하게 주장하여 그가 세계라여기는 바로 이런저런 것에다 자신을 펼쳐나가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개별화란, 오히려 개개의 인간이 그 속에서 비로소처음으로 모든 사물의 본질적인 것에 가까이 이르게 되는, 즉 세계의 가까이에 이르게 되는 그런 고독화이다.”(『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그러니까 고독 속에서만 "처음으로" 사물과 세계의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한편 알랭 바디우는 기존의 지식과 언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하고 그 '진리'에 관통당한 자가 그것에 충실하기를 고집하면 고독에 처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는이지에서 백상현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덧붙였다. “누구도 금지된사랑에 매달린 두 사람을 동정하지 않는다. 누구도 도청을 사수했던 그들의 죽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갈릴레이의 미친 지동설을 믿지 않는다. 귀를 자른 화가의 작품을 아무도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독 속의 그들은 당신들의 평범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미래는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에."(고독의매뉴얼』)  138-139

서시 - 한강
어느날 운명이 찾아와
나엑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  150


“애국심은 사악한 자들이 내세우는 미덕이다(Patriotism is a virtue of the vicious.)” - 오스카 와일드  164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은, ‘평상시에’ 누군가의 사랑이 다른 누군가의 사랑보다 덜 고귀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유사시에’돈도 힘도 없는 이들의 사랑이 돈 많고 힘있는 이들의 사랑을 지키는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리하여 ‘언젠’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이런 것도 애국이라면, 애국자가 될 용의가 있다.  168


”조금 아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깊이 마시지 않을 거라면 피에리아의 샘물을 맛보지 말라.“ 알렉산더 포프의 장시<비평론(An Essay on Critisism)>의 215~~216행이다. 조금 아는 사람이 위험한 것은 그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안다. 이어지는 대목이 이렇다. ”얕은 한 모금은 뇌를 취하게 만들지만, 많이 마시면 다시 명철해지리라.“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이젠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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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인간이란 어디서나 다 마찬가지니까 말야. 사람들은 대개 오로지 생계를 위새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다가 약간 남아 돌아가는 자유시간이라도 생기면,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져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단 말이다. 아아, 이것도 인간의 운명이라고 할 것인가!  18

5월 22일
어린애처럼 아무 분별도 없이 그저 빈둥거리면서 하루를보내는 것, 인형이나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부질없이 옷을 벗겼다 입혔다 하는가 하면, 엄마가 과자를 넣고 잠가둔 서랍 근처를 자못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것, 그러다가 갈망하던 물건을 손아귀에 넣으면 볼이 뿌듯하게 그것을 입에 쑤셔넣고 먹으면서 <더 먹을래!> 하고 졸라대는 것, 이런 생활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행복한 생활이라는 것이지. 한편 자기들의 하잘것없는 사업이나 정열에 대해서까지도 화려한 이름을 붙여놓고, 그것이 마치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어마어마한사업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하겠지.그렇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네들에게 복이 있을진저!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식한 사람, 여유 있게 사는 시민 하나하나가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을 손질하여 낙원으로 꾸밀 줄 알고, 불행한 사람마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면서도 끈기 있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이 햇빛을 다만 1분 간이라도 더 오래 쳐다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렇지. 그런 사람은 말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속에서도 자유라는즐거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라도 감옥 같은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의 감각 말이다.  22

5월 26일
나는 앞으로는 그저 자연에만 의지하자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
반면에 뭐니뭐니 해도 모든 규칙은 자연의 진실한 감정과 자연의 정다운 표현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 말은 너무 심해. 규칙이란 단지 제한을 하고 쓸데없는 덩굴을 베어낼 따름인데〉라고자네는 말하겠지. 이것 보게! 내가 자네에게 비유를 하나 들어주지. 그것은 사랑의 경우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청년이어떤 아가씨에게 연정을 품고, 날이면 날마다 아침 일찍부터밤늦게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며, 모든 정력과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자기가 그녀를 위해 온몸을 바치고 있음을 줄곧 나타내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때 속물 하나가, 즉 어떤 공직에 종사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젊은 양반, 내 말 좀 들어봐요!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단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돼요. 자기의 시간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일하는 데 쓰고, 다른한쪽, 즉 쉬는 시간을 여자에게 바치도록 해야지요. 당신의 재산을 헤아려보고 꼭 필요한 경비를 뺀 다음, 나머지를 가지고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것쯤은 나도 말리지 않아요. 그것도 너무자주 해서는 못쓰고 여자의 생일이라든가 세례일 같은 날에만해야지요. > 만약에 그 젊은이가 그런 충고에 따른다면 그는 쓸만한 인물은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젊은이라면 어떤 영주에게나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애인으로서의 그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마지막이지. 아아, 나의 벗들이여, 무엇 때문에, 천재의 물결이둑을 뚫고 터져나와 큰 홍수를 이루며 콸콸 쏟아져 내려와서,그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 일이 이렇게도 드물단 말인가!사랑하는 벗들이여, 천재의 흐름 양쪽 기슭에는 태연자약한 신사들이 산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자(亭子)나 튤립 꽃밭,채소밭등이 혹시나 못 쓰게 될까 봐, 서둘러 둑을 쌓고 토목 공사를하는 등, 앞으로 닥쳐올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  24-26

8월 15일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인간에게 없어서 안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84

8월 18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85

형제여, 그때를 회상하는 것만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것이다. 그때의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다시 불러내어,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내 정신은 이렇게높이 복돋워진다. 그리고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안한 상태야말로 한층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내 영혼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혀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무한한 생명의 무대는, 내 앞에서 영원히 벌리고 있는 묘지의 심연으로 변하고 말았다. 세상만사는 모두 사라져가는데 자네는 <이것이 존재한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만물은 번갯불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리며, 그 존재의 완전한 힘이 지속되는 일은 지극히 드물고, 아아! 거센 물결에 휘말려 들어가서 바닥에 가라앉고, 바위에 부딪혀서 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네 자신과 자네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좀먹어 들어가지 않는 순간이란 하나도 없으며또한 자네가 파괴자가 아니거나 파괴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란 한순간도 없다. 지극히 무심한 산책조차, 수많은 불쌍한 벌레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저 단 한번 발을 디딘 것이 개미들이 공들여 쌓아올린 탑을 짓밟아 없애고 그 조그만 세계를 무참한 무덤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니다, 이 세상에서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 천재지변, 자네들의 마을을 휩쓸어버리는 홍수나 자네들의 도시를 삼켜버리는 지진 따위가 내 마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대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침식의 힘, 그것이다. 바로 그 힘이 만들어낸 것은 그 사람의 이웃과 그 사람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그것을 생각하며, 하늘과 땅과, 그리고 그곳에서 작용하는 온갖 힘에 둘러싸여, 나는 불안스레 비틀거리는 것이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영원히 집어삼키고, 영원히 되새김질하는 괴물뿐이다.  87-88

8월 22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89


12월 24일
물론 나도 매일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터이지만, 자기 자신의 표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108


1772년 1월 8일
형식적인 의례에만 모든 관심과 주의를 다 쏟고, 자나깨나 염두에 두는 일이라곤 어떻게 하면 식탁의 서열에서 한 자리라도 상좌에 끼여 들어갈 수 있는지, 몇 해를 두고 오직 그것만을 노려보고 있다니,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그런 꼴이란 말인가!
..
원래 지위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며 가장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물게나 있는 일인데,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로 어리석은 친구들이다!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장관에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장관들이 비서에게 지배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제일 상위를 차지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게 통찰을 하고 남들을 손아귀에 장악하여 스스로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힘과 정열을 집중시킬 수 있을 만한 수완과 지략을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10

9월 3일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곬으로 그녀만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133-134

10월 26일
인간이란 이다지도 허무한 것인가, 자기의 존재를 참으로 확신할 수 있는 곳에서도, 자기의 존재를 정말로 깊이 새겨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자기가 사랑하는 연인의 추억이나 마음속에서까지도 인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말이다!  146

11월 3일
과거에 모든 행복의 원천이 내 가슴속에 깃들여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결국 모든 불행의 원인이 내 마음속에서 잠겨 있다. 전 같으면, 넘쳐흐르는 감저으이 소용돌이 속에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천국이 뒤따르고 세계 전체를 사랑스럽게 껴안는 마음을 가졌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인물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마음은 이제 죽어버렸고, 어떤 감격도 거기서 흘러나오지 않으며, 이미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그리고 이제 나의 감각은 상쾌한 눈물 덕에 생기를 되찾을 때가 없을 뿐 아니라, 나의 이마에는 불안에 겨워 주름이 잡힌다. 내 삶에서 단 하나의 기쁨이었던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한없이 괴로워하고 있다. 내 주위의 온갖 세계를 만들어냈던 그 생명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147-148

12월 1일
빌렐름! 내가 자네에게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써 보냈던 남자, 행복하고도 불행한 그 난ㅁ자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서기로 있었다. 그는 남몰래 노테를 사모하다가 마침내 사랑을 고백했고 그 때문에 파면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미쳐버렸다.  158

12월 14일
확실한 것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곧바로 혼란과 암흑이 있다ㅏ고 짐작하는 법이지. 그것이 우리 인간 정신의 특징이란 말이다!  172

12월 20일
로테는 이제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동생들은 아무도 곁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과 영원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과성실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마음속으로 남편을 좋아하고있었습니다. 남편의 침착성과 그 믿음직함은 좋은 아내로서 평생의 행복을 그 위에다 쌓도록 하늘이 정해 주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남편의 존재가 자기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한편 그녀에게는 베르테르의 존재도 퍽 소중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서로알게 된 당초부터 두 사람의 마음은 그처럼 아름답게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었던 겁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교제와 이제까지 겪어온 여러 가지 일들은 지울 수 없는 인상을 그녀의 마음속에아로새겼습니다. 그녀가 흥미로워했던 것은 무엇이든 그와 함께 나누었기 때문에, 만일 그가 떠난다면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시 메울 수 없는 공허가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아아, 이럴때 베르테르를 그녀의 형제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녀는 얼마나행복할 것인가! 그를 그녀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과 결혼시킬수만 있다면,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관계를 완전히 전과 같이회복시킬 희망을 가져볼 텐데!
로테는 자기 여자 친구들을 차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어디엔가 난점이 있어서 베르테르의 배필로서 어울릴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깊은 생각에 잠기는 동안, 그녀는 또렷하게 의식한것은 아니었지만, 베르테르를 자기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것이 자기 마음속의 은근한 소원임을 지금 처음으로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그를 자기 곁에 붙잡아두는 일이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또 허용될 수도 없음을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늘 쾌활하고거리낌없었던 그녀가 이제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잃고 우수와비애에 짓눌려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가슴은무겁게 조여들었으며 먹구름의 기운이 그녀의 눈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181-182

로테는 간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전부터두려워해 왔던 일이 드디어 결판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짐작도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방향으로 판가름이 나고 만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깨끗하고 가볍게 흐르던 그녀의 피가 열병에 걸린 것처럼 들끓고 갖가지 감정이 아름다운 그녀의 마음을 극도로 뒤흔들어놓았습니다. 그녀가 가슴속에 느낀 것은 베르테르의 포옹에서 생겨난 불길이었던가? 아니면 그의 불손한 태도에 대한 불쾌감이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지난날의 거리낌없던 천진성과 근심 걱정 없던 자신에 비해 현재의상태가 불만스러워서일까?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고백을 해도 마음속에 거리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고백할 만한 용기도 나지 않는 그런 장면을 그에게 어떻게 고백할것인가? 이미 상당히 오랫동안 두 사람은 서로 침묵을 지켜왔다. 그런데 이제, 자기 쪽에서 이 침묵을 깨뜨리고, 하필이면지금 이 적당치 못한 시기에 뜻하지 않았던 사건에 관해서 남편에게 고백해야만 될 것인가? 베르테르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염려되는데 하물며 이와 같이 뜻하지 않던 불상사에 관해서 어떻게 말할수 있을 것인가? 거기다가 남편이 자기를 어디까지나 공정한 눈으로 보고,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일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 자기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고 이해해 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자기는 언제나 남편에게 투명한 수정처럼 숨김없이솔직하게 털어놓았으며 자기의 어떤 기분이나 감정도 숨긴 일이없고 또 숨길 수도 없었는데, 이제 남편 앞에서 자기 기만을 할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차례로 그녀를 괴롭혔고 당황 속으로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녀의 생각은 끊임없이 베르테르에게로 되돌아왔는데 그녀에게는 그가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존재였습니다. 그녀로서는 그를 버린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를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르테르는 로테를 잃어버린다면, 이세상에서 그에게 남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로테가 그 순간 뚜렷하게 자각은 못했지만, 베르테르와 남편과의 사이에 뿌리 깊은 위화감이 얼마나 무겁게 그녀의 마음을억눌렀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이해심이 많고 그렇게 착한 마음씨를 가진 두 사람이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의견차로 말미암아, 서로 침묵을 지키게 되었고, 각자가 자신의 정당성과 상대방의 부당성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태는 더욱 얽히고 악화되어 마침내 모든 운명이 걸려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가서도 그 매듭을 풀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태에 이르기 전에 좀더 일찍이 두 사람이 지난날처럼 행복한 친밀감으로 가깝게 지냈더라면, 사랑과 관용이 번갈아서 그들의 마음을발랄하게 하였더라면, 그리하여 서로 흉금을 털어놓았더라면, 아마도 우리의 친구는 구원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201-202

로테! 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위ㅐ서 이 몸을 바치는 행복을 누려봤으면 했던것입니다!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을 다시 찾게 해드릴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기꺼이 용감하게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아, 가까운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친구들에게 백 배의 새로운 생을 북돋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숭고한 사람에게만 부여된 일입니다.  210



작품해설
대체로 괴테의 여성에 대한 사랑은 헌신적이었으며, 사랑을 할 때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상례였다.  221

괴테의 사랑은 결코 고답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작가 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진지하고 헌신적인 사랑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의 여성에게 적어도 그 순간만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겸허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230-231

브라운슈바이크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있던 예루살렘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저을 품고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은 괴테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라이프치 대학 시절부터 괴테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특히 상관과 원만히 지내지 못한 그의 성격, 유부녀를 사랑하여 생긴 괴로운 관계 등이 괴테에게 실감을 준 것이다. 더욱이 자살한 권총이 케스트너가 예루살렘에게 빌려준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더욱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괴테 자신의 체험과 연결되어 이 작품으로 결정을 이룬 것이다.  233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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