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00'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22.06.06 숫타니파타 - 법정옮김 이레 1999 03800
  2. 2018.10.31 우리는 독서모임에서 읽기 쓰기 책쓰기를 합니다 - 남낙현 더블:엔 2018 03800
  3. 2016.10.10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 이현우 현암사 2014 03800 1
  4. 2016.08.18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 서경식 창비 2006 03800
  5. 2016.07.21 표현의 기술 - 유시민 정훈이 생각의길 2016 03800
  6. 2016.07.07 마크툽 - 파울로 코엘료 자음과모음 2016 03800
  7. 2016.02.08 이젠, 함께 읽기다 - 신기수 김민영 윤석윤 조현행 북바이북 2014 03800
  8. 2015.10.12 서민적 글쓰기 - 서민 생각정원 2015 03800
  9. 2015.08.18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이만교 그린비 2009 03800
  10. 2015.07.29 서평 글쓰기 특강(생각 정리의 기술) - 김민영 황선애 북바이북 2015 03800 1
  11. 2015.07.08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장석주 중앙북스 2015 03800
  12. 2015.02.27 여행 정신(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삐딱한 안내서 -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 책세상 2013 03800
  13. 2014.12.10 나는 길들지 않는다(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 마루야마 겐지 바다출판사 2014 03800
  14. 2013.01.02 거장처럼 써라 (下) - 윌리엄 케인 이론과실천 2011 03800
  15. 2012.12.26 거장처럼 써라 (上) - 윌리엄 케인 이론과실천 2011 03800
  16. 2012.12.21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여행의 기술 -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 김영사 2011 03800
  17. 2012.11.29 하버드 글쓰기 강의(下) - 바버라 베이그 에쎄 2011 03800
  18. 2012.08.09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 이옥순 책세상 2002 03800 1
  19. 2012.04.13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다카시 청어람미디어 2001(1995) 03800
  20. 2012.04.10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사색기행 - 다치바나 다카시 청어람미디어 2005 03800
  21. 2012.04.07 지식의 단련법 - 다치바나 다카시 청어람미디어 2009(1984) 03800 1
  22. 2012.03.04 읽기의 힘, 듣기의 힘 - 다치바나 다카시외 열대림 2007 03800
  23. 2012.03.01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 알랭 드 보통 생각의 나무 2005 03800
  24. 2012.02.15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 해럴드 블룸 을유문화사 2011 03800
  25. 2011.10.21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설흔,박현찬 예담 2007 03800 1
  26. 2011.08.30 세계를 향한 무한도전 - 서경덕 종이책 2009 03800
  27. 2011.06.24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 톰 라비 돌베개 2011 03800
  28. 2011.04.22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 설흔 예담 2009 03800
  29. 2011.03.26 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 김영사 1992 03800 2
  30. 2011.03.22 책읽는 청춘에게 - 21인의멘토와 20대청춘 북로그컴퍼니 2010 03800 2



다시 이 책을 내며
부처에게는 자기 자신이 어떤 종교의 창시자라는 의식이 전혀없었다. 단지 눈 뜬 사람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을 뿐이다. 11

소 치는 사람
33
악마 파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34
스승은 대답하셨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는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25

무소의 뿔
38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 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9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7

60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재산도 곡식도, 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1

62
한번 불타 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2

69
홀로 앉아 명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3

71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4

천한사람
142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자비
143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144
만족할 줄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58

알라바카 야차
186
“성자들이 열반을 얻는 이치를 믿고 부지런히 배우면 그 가르침을 들으려는 열망에 의해서 지혜를 얻는다.

187
적절하게 일을 하고 참을성 있게 노력하면 재물을 얻는다. 성실을 다하면 명성을 떨치고, 베풂으로써 친구를 사귄다.

188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가정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성실과 자제와 인내와 베품, 이 네가지 덕이 있으면, 그는 저 세상에 가서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189
만일 이 세상에 성실과 자제와 인내와 베풂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널리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물어 보라.”  72–73

성인
213
홀로 걸어가고,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80

수칠로마 야차
270
“탐욕과 혐오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좋고 싫은 것, 소름 끼치는 일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또 온갖 망상은 어디에서 일어나 우리를 방심케 합니까. 마치 어린아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아 버리는 것처럼.”

271
“탐욕과 혐오는 자신에게서 생긴다. 좋고 싫은 것과 소름 끼치는 일도 자신으로부터 생긴다. 온갖 망상도 자신에게서 생겨 방심케 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아 버리는 것처럼.

272
그것들은 집착에서 생겨나고 자신에게서 일어난다.  101-102

바라문에게 어울리는 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코살라국에 사는, 큰 부자인 바라문들이-그들은 늙어 쇠약해 있었지만- 스승이 계신 곳에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서로 기억에 남을 만한 즐거운 인사를 나누더니 한쪽에 가서 앉았다.
큰 부자인 바라문들은 스승께 물었다.
“고타마시여, 지금의 바라문들은 옛날 바라문들이 지펴온 바라문의 법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바라문들이여, 지금의 바라문들은 옛날 바라문들이 지켰던 바라문의 법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고타마시여, 별 지장이 없으시다면, 옛날 바라문들이 지켜 온 바라문의 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바라문이여, 명심해 잘 들으시오. 내가 말을 해 드리리다.
“듣겠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284
“옛 성인들은 자신을 다스리는 고행자였소. 그들은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버리고 자기의 이상을 실천하였소.

285
바라문들에게는 가축도 없었고, 황금도 곡식도 없었소. 그러나 그들은 베다 경전 ㅗ이는 것을 재산으로 삼고 곡식으로 삼아, 브라만의 창고를 지켰던 것이오.

286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문간에 음식을 마련해 놓았소.

287
아름답게 물들인 옷가지와 이불과 집을 가진 시골의 잘 사는 사람들과 도시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을 찾아왔소.

288
바라문들은 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거나 굴복시켜서도 안 되었소. 그들이 문간에 서 있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소.

289
옛날의 바라문들은 사십팔 년 동안 순결한 몸을 지켰소. 그들은 지혜와 덕행을 추구했던 것이오.

290
바라문들은 다른 종족의 여자를 얻지 않았소. 또 그들은 아내를 사지도 않았소. 그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살고 화목해 하며 즐거워하였소.

291
함께 살면서 즐거워했지만, 바라문들은 월경 때문에 아내를 멀리해야 할 때도 결코 다른 여자와는 성의 접촉을 갖지 않았소.

292
그들은 순결과 계율, 정직, 온화함, 고행, 부드러움과 자비와 관용을 칭찬했소.

293
그들 중에서 용맹하고 으뜸가는 바라문들은 끝까지 순결을 지켰소.

294
이 세상에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 순결과 계율과 인내를 찬양했소.

295
쌀과 이불과 옷가지, 가구, 기름을 시주받아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소. 그들은 제사를 지낼 때 결코 소를 잡지 않았소.

296
부모 형제 또는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소는 우리들의 선량한 벗이오. 소한테서는 여러 가지 약이 생기오.

297
소에서 생긴 약은 실료품이 되어 우리에게 기운을 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또 즐거움을 주오. 소한테 이러한 이익이 있음을 알아 그들은 소를 죽이지 않았던 것이오.

298
바라문들은 손발이 부드럽고 몸이 크며 외모가 단정하고 명성이 있으며, 자기 의무에 충실하게 할 일은 하고 해서 안 될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소. 그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세상 사람들은 행복하고 번영했소.

299
그런데 그들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소. 점점 왕자의 부귀 영화와 곱게 단장하고 화려하게 입은 여인들을 보게 됨에 따라.

300
또는 준마가 이끄는 훌륭한 수레, 아름다운 옷, 여러 가지로 설계되어 잘 지어진 집을 보기 시작하면서.

301
바라문들은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미녀들에 둘러싸여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았소.

302
그래서 그들은 베다의 주문을 편찬하고, 저 감자왕에게 가져가서 말했소. ‘당신은 재산도 곡식도 풍성합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303
그래서 수레와 군사의 주인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말에 대한 제사, 인간에 대한 제사, 화살과 창에 대한 제사, 소에 대한 제사, 아무에게나 공양하는 제사- 이러한 온갖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바라문들에게 주었소.

304
소, 이불, 옷가지, 아름답게 꾸민 여인과 준마가 이끄는 훌륭한 수레며, 아름답게 수놓인 옷들.

305
쓸모있게 잘 설계된 훌륭한 집에, 여러 가지 곡식을 가득 채워 바라문에게 주었소.

306
이와 같이 해서 그들은 재물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또 그것을 저장하고 싶은 생각이 났던 것이오. 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많은 것을 갖고 싶어했소. 그래서 그들은 또 베다의 주문을 편찬하여 다시 감자왕을 찾아갔소.

307
‘물과 땅과 황금과 재물과 곡식이 살아가는 데 필수품이듯이, 소도 사람들의 필수품입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308
그래서 수레와 군사의 주인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수백수천 마리의 소를 제물로 잡게 되었소.

309
튼튼한 다리와 날카로운 뿔을 갖고도 결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소는 양처럼 유순하고, 항아리가 넘치도록 젖을 짤 수 있었소. 그런데 왕은 뿔을 잡고 칼로 찔러서 소를 죽이게 했던 것이오.

310
칼로 소를 찌르자, 모든 신들과 조상의 신령과 제석천, 아수라, 나찰들은 ‘불법한 짓이다!’라고 소리쳤소.

311
예전에는 탐욕과 굶주림과 늙음, 이 세 가지 병밖에는 없었소.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가축들을 죽인 까닭에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 생긴 것이오.

312
이와 같이 살생의 몽둥이를 부당하게 내려치는 일은 그 옛날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소를 죽인 것이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도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오.

313
이와 같이 예전부터 내려온 이 좋지 못한 풍습은 지혜로운 이의 비난을 받아 왔소.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볼 때마다 제사 지내는 일을 비난하게 되었소.

314
이렇게 법이 무너질 때, 노예와 서민이 둘로 나뉘었고, 여러 왕족들이 흩어졌고, 아내는 남편을 경멸하게 되었소.

315
왕족이나 범천의 친족 또는 제도에 의해 지켜지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생명의 존엄성을 버리고 욕마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큰 부자인 바라문들은 스승께 말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빛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106-114

젊은이 바셋타
620
..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1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움이 없으며, 집착을 초월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2
고삐와 함께 가죽끈과 가죽줄을 끊어 버리고 어리석음을 없애 눈을 뜬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3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굳센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4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잘 다스려 ‘최후이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5
연꽃 위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렵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6
이 세상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

650
..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653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220-227

동굴
772
동굴 속에 머무르며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뒤덮여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773
욕망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들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그를 해탈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면서 눈앞의 욕망에만 빠져 든다.

776
세상 사람들이 생존에 대한 집착에 붙들려 떨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어리석은 사람ㄷ르은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떠나지 못한 채 죽음에 직면해 울고 있다.

777
무엇인가를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물이 말라 가는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이 꼴을 보고 ‘내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해 집착을 버려야 한다.

779
생각을 가다듬고 거센 강을 건너라. 성인은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열심히 정진하여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272-274

으뜸가는 것
796
세상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들을 ‘으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생각에 붙들려 그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논쟁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797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과 도덕, 사색한 것에 대해서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그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밖의 다른 것은 모두 뒤떨어진 것으로 안다.

798
사람이 어떤 한 가지만 중요하다고 여긴 나머지 그밖의 다른 것은 모두 가치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커다란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본 것, 배운 것, 사색한 것, 또는 계율과 도덕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

799
지혜에 대해서도,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남과 동등하다거나 남보다 못하다거나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800
그는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도 특별히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실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쪽을 따르는 일이 없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다.

801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도 저 세상에 대해서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하는 편견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802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 티끌만한 편견도 가지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이 이 세상에서 어찌 그릇된 생각을 하겠는가.

803
그는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어느 한 견해만을 특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는다. 바라문은 계율이나 도덕에 이끌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에 이르러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281-283

늙음
805
사람은 내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284

809
내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안을 얻은 성인들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285

투쟁
874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고 잘못 생각하지도 말며, 생각을 가지지도 말고 생각을 없애지도 말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된다. 그러나 의식은 생각을 인연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305

무기를 드는 일
949
과거에 있었던 것(번뇌)을 지워 버리라.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라. 중간(현재)에도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해지리라.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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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데 있어 너무 소심하고 까다롭게 고민하지 말라.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더 ㅁ낳이 실험할수록 더 나아진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에린 시노웨이와 메릴 미도우가 쓴 <하워드의 선물> '전환점이란 지금가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야.'  26


율곡 이이는 "공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구나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7


'양질전환(量質轉化 헤아릴양 바탕질 구를전 될화)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양이 증가하면 질의 변화도 가져온다는 말이다.  119


아무리 감추려 해도 글은 그 사람을 닮아 있다. 사람과 글이 어떻게 닮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사람 안에서 나온 것인데.  147


책쓰기의 관점은 읽기, 쓰기에서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걸 사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과 한 알은 자연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때 사과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시선이 있다. 

'농부의 시선과 소비자의 시선.'

농부는 사과가 열매를 맺고 익어가기까지 과정을 함께힌다. 벌들이 꽃가루를 퍼트려 수분을 돕고 열매를 맺게 해준다. 병충해에 견디고 비바람을 이기며 사과는 자란다. 농부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맛있는 사과를 생산해낸다. 소비자는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를 고르는 데 집중한다. 이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책쓰기는 독자의 시선이 아닌 창조적 행위를 하는 생산자의 시선으로 하는 작업이다. 책쓰기를 통해 한 가지 명확히 깨달은 게 있다.  

책을 쓴다는 건 독자를 향해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적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175-176


<논어> "애태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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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러시아 문학으로의 초대

러시아. 딱' 세계의 6분의 1'입니다. 연방이 해체된 지금의 러시아만 하더라도 세계의 8분의 1 정도입니다.  12

러시아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상당히 짧지요. .. 러시아는 천 년 조금 넘습니다.  13

최초의 국가를 키예프 루시라고 합니다. '루시'가 '러시아'의 어원입니다. 자기들을 지칭할 때 "우리는 루시인이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루시가 나중에 모스크바 시대에 '러시아'로 바뀝니다. ..
그들에 따르면, 루시는 러시아에서 이민족, 즉 이질적인 존재를 뺀 것입니다.
그 다음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더 정확하게는 1240년에서 1480년까지가 몽골 지배기입니다. 타타르 러시아라고 불리는 시기입니다.  14

몽골의 대제국은 칭기스칸 이후 사한국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죠. 러시아는 킵차크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러다 15세기 후반 몽골 세력이 약화될 무렵 모스크바 공국 시대가 열립니다...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은 러시아를 지배하지만 몽골의 칸에게 충성하며, 매년 공물을 보냈어요. 흔히 러시아의 강력한 전제주의 체제를 몽골 지배의 가장 큰 정치적 유산이라고 합니다.  15

공동체에서는 국가가 생기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평등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사실 러시아는 무척 강한 공동체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농민 공동체인데, 러시아어로 '미르'라고 합니다. 미르는 뜻이 조금 복합적입니다. '세계'라는 뜻도 있고, '평화'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미르가 농민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미르는 결속력이 상당히 강해요.
러시아에 왜 이렇게 강한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을까요? 그들의 심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땅이 척박해서 그렇습니다. 땅이 척박해서 혼자서는 도저히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품앗이를 해야 합니다... 개인주의는 러시아 전통에서 볼 때 상당히 낯선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이라든가 사생활 개념이 좀 약합니다. 서구식 문화와는 차이가 있는 거죠. ..
러시아 사람들은 세계에서 인내심이 가장 강한 민족으로도 꼽힙니다. 또 러시아는 몹시 폭력적인 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폭력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러시아 사람들이 잘 참기 때문입니다. .. 이민 족의 오랜 지배 아래에서 또는 위임 권력 아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갖게 된 인내심입니다.  16-17

타타르 세력이 약화되지 러시아는 그들을 쫓아내고 모스크바 공국 시대를 엽니다. 그러면서 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가 처음부터 방대한 영토를 차지한 게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겁니다.
모스크바 공국 시대는 '제정러시아 시대'라고 하는데, 보통 '표트르 러시아'라고도 합니다. 표트르 대제가 세운 러시아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피터 더 그레이트(Peter the Great)'라고 부릅니다. 표트르 대제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근대 러시아를 만듭니다. 러시아사 시대 구분은 단순한데 18세기 이후를 모던(modern) 러시아, 즉 근대 러시아라고 하고 그 이전을 올드(old) 러시아, 즉 고대 러시아라고 합니다. 러시아는 고대와 중세를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19

러시아사를 크게 보면 '주인'이라고 할 만한 군주가 둘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근대 러시아를 만든 표트르 대제이고, 또 한 사람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건설한 스탈린입니다. 거기에 한 명 더 꼽자면 이반 뇌제가 있습니다. ..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스탈린이 러시아사의 '주인'입니다. 러시아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이반 뇌제는 이른바 전제군주의 절대 권력을 확립합니다. 피바람이 불었죠. .. 귀족들을 대거 숙청하고 자기 친위대를 만듭니다. 소비에트 시대의 비밀경찰인 KGB 같은 것의 전신이라고 할 만합니다. 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반란의 기미가 있으면 바로 숙청하면서 강력한 일인 지배 체제를 만듭니다.  20-21

표트르 대제. 최초로 해군을 창설하기도 합니다.
농경 국가로,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하던 러시아를 무역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항구가 없었어요. .. 표트르 대제에게는 특히 부동항, 즉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만드는 것이 숙원사업이었습니다. .. 마침내 스웨덴과 싸워 승리를 거둡니다. 이른바 북방전쟁에서 그렇게 승리하면서 어느 정도 교두보를 확보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서유럽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옮깁니다.
페테르부르크는 순수한 인공도시, 계획도시입니다.
18세기에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 새로운 도시였는데 지금은 가장 고풍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을 정도입니다...모스크바가 목조도시라면 페테르부르크는 석조도시입니다.  21-22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보면 모스크바의 귀족들은 다 점잖고 품위가 있습니다. 반면 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은 다 야비하고 음흉하게 그려집니다.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화는 과정에서 수천 명이 희생됐습니다. 큰 토목 공사였고 공사 과정이 험난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뼈 위에 세워진 도시' 혹은 '악마의 도시'라고 불렸습니다. .. 러시아 문학이나 문화사의 '페테르부르크 신화'입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신화적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신화의 시작이 푸슈킨의 <청동 기마상>이고 그다음 이어진게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연작'입니다. 그런 작품들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죠. 이게 20세기에는 안드레이 벨리의 소설 <페테르부르크>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의 도시 공간 자체가 신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여러 작품에서 소재 이사의 의미를 갖게 된 경우입니다.   23-24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가 이른바 제정러시아입니다. 1917년 2월에 2월 혁명이 일어나고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게 제정러시아의 끝입니다.  24

우리가 35년간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다면 러시아는 240년간 몽골 지배를 경험했거든요. 그런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점에서 비슷하고, 정서적으로도 비슷한 점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 독자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일체감을 느끼기 쉬운 문학이 러시아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25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끝나게 되죠. 그 이후를 '포스트 소비에트'라고 부릅니다. .. 키예프부터 따지면 여섯 개 시대, 즉 키예프 러시아, 타타르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 표트르 러시아(제정러시아), 소비에트 러시아, 포스트 소비에트 러시아(러시아 연방) 이렇게 시대 구분이 됩니다.  26-27

러시아 연방을 상징하는 문장은 '쌍수 독수리'인데 제정러시아 때인 15세기에 들어왔다고 하죠. 러시아는 모스크바가 로마와 비잔티움을 뒤이은 제3의 로마라는, 이를테면 기독교 선민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잔티움의 문장을 갖다 쓰기도 했는데 쌍두 독수리가 그런 기원을 갖고 있죠.  27

톨스토이도 러시어의 거장이지만 톨스토이 문학이 상대적으로 유럽 공통 문학, 보편 문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면,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은 러시아에서만 나올 수 있어요. 고골도 마찬가집니다.
러시아 작가의 계보는 푸슈킨에서 시작합니다. .. 그 다음 고골이고, 한 사람 더 들면 레르몬토프가 있습니다. 이 3대 작가가 러시어 근대 문학의 퇘를 만듭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1820년에서 1840년 정도까지입니다.
한 다리 건너뛰어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 리얼리즘 누학의 3대 작가가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이들 작가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가 1856년에서 1880년까지입니다.
마지막이 체호프입니다. 체호프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작가입니다. 별명도 '황혼의 작가'입니다. '가을의 작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체호프의 몇 년 후배가 막심 고리키입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시작하는 작가입니다. 고리키부터 20세기 작가로 치면 됩니다.  27-28

러시아 문학은 달리 말하면 인텔리겐치아의 문학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지식인 계급을 '인텔리겐치아'라고 합니다. ..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지식인이되 비판적 지식인을 말합니다.
책을 읽을 줄 알면 인텔리겐치아 자격으로 충분했습니다. 90% 이상이 문맹이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층이 그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텔리겐치아는 출신에 따라 귀족과 잡계급이 있었습니다. 잡급은 귀족도 아니고 농민도 아닌 부류인데, 대개는 성직자나 상인이나 의사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잡계급을 구성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대표적인 잡계급 출신의 작가입니다. 인텔리겐치아가 사회적 계급 또는 세력으로 대두되는 시기가 1830~1840년대입니다.  28-29

표트르 대제 때까지도 러시아에는 '문명'이 없었어요. 표트르의 사절단이 유럽을 일주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다 쑥대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밤마다 먹고 마시며 광란의 밤을 보낸 거죠. 황실이 그 정도였어요. 게다가 몽골의 침입과 지배 때문에 러시아는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못했어요.  30

인텔리겐치아는 183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서구파와 슬라브파로 나뉘게 됩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는 러시아를 사랑합니다.
서구파는 러시아를 '아이'로 봅니다. 잘 돌보고 훈육해야 하는 아이로 보는 거죠. 이때 서구파에게 중요한 건 미래입니다. 우리가 러시아를 미래에 어떤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유럽을 모델로 하자는 거죠.
반면 슬라브파는 러시아를 어머니로 봅니다. 중요한 건 러시아의 과거이고 전통입니다. 유럽 문명은 오염되고 타락했지만 러시아는 아직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독자적 가치를 보존해나가야 한다는 게 슬라브파의 주장입니다.
고골은 나중에 대단한 보수주의자가 되는데, 슬라브파를 지지합니다. 반면 투르게네프는 대표적인 서구파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골수 슬라브파입니다.  31-32

러시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푸슈킨의 시를 읽습니다. 거의 이유식 같아요. 러시아는 중등 교육 과정이 11년인데 이 기간에 배웁니다. ..
러시아도 독서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는것이 고전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는 겁니다.  32

 


2강 러시아 영혼의 정수 -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읽기

푸슈킨은 1799년에 태어났습니다.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관료제 개혁 이후에 세습귀족의 지위가 약화되는데, 푸슈킨 가문이 거기에 해당합니다.
명색이 귀족이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감당할 돈은 점점 줄어가던 집안이었어요.
푸슈킨은 러시아 최초의 '전업 작가'였습니다.  39-40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푸슈킨은 상대적으로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혜택이라고 한다면 아버지 서재의 책들을 마음껏 탐독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장서가 3,000권쯤 됐다고 해요.  40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 러시아에서 '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러시아사에서 보면 1914년 히틀러와의 전쟁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쟁입니다. 이 두 차례의 조국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러시아 사람들의 자부심입니다.  44

당시 귀족 청년들 사이에 '돈 후안 리스트'가 유행했는데, 자기가 유혹한 여자들의 목록을 만들어놓은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푸슈킨은 결혼 전에 이 목록에 있는 여자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49


<예브게니 오네긴>
내용은 한마디로 두 주인공 오네긴과 타치야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입니다.  52

고전주의는 개인의 개성과 자유보다는 규범이나 조화, 모범 등을 강조했습니다. ..
낭만주의는 자유와 개성을 예찬하고 규범보다는 파격을 좋아합니다. 형식을 그리 존중하지 않아요. 규칙에 대한 위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학적 유희가 가능하려면 규칙의 준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만약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위반이 의미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4-55

 


3강 절대 고독과 자의식의 탄생 -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읽기

레르몬토프는 십대 때부터 시 습작을 합니다. 27세에 결투로 죽은 요절 시인이라 천재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푸슈킨은 천재적인 시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반면 레르몬토프는 노력파였어요. 13세경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이십대 중반에 제대로 된 시를 쓰게 되니 10년간 습작한 셈입니다.  75

레르몬토프의 작품에는 내면의 자의식을 가진 주인공이 나타난다는 거죠. 러시아 문학사에서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인공 페초린은 오늘날의 독자들도 충분히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만큼 현대적입니다. 현대인이 갖고 있는 내면이나 자의식을 엿볼 수 있어서 어떤 연속성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근대적 인간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셈인데 이걸 계승하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내면 묘사는 거의 '창자'까지 드러내놓고 묘사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죠. 가장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부분까지 다 까발려놓습니다. 그게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현대성인데 그런 현대성의 기원을 바로 레르몬토프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85

<예브니 오네긴>이 '오네긴 연구'라면 <우리 시대의 영웅>은 '페초린 연구' 입니다.  88

러시아 근대 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작품으로 흔히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그리고 고골의 <죽은 혼>, 이 세 작품을 꼽습니다. 그런데 세 작품이 모두 특이합니다. <예브게니 오네긴>이 운문 소설이고, <우리 시대의 영웅>이 '연작소설'이라면, <죽은 혼>은 부제가 '서사시'라고 돼 있어요. 산문소설이지만 작가 고골이 그렇게 주베를 붙입니다. 1830~1840년대에 쓰인 이 작품들이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리얼리즘 산문소설들이 쓰이게 됩니다.  92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걸작을 써낼 수 있는 토양을 푸슈킨, 레르몬토프, 고골이 마련한 것인데, 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암중모색했던 작가들인지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쓴게 특징입니다. 동시대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합니다.  94

 

 

4강 웃음과 공포의 미스터리 -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읽기

고골의 풀네임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
실제로 '고골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따져들면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복잡하고 난해해집니다. 사실 작품뿐만 아니라 고골은 생애 자체가 미스터리입니다.  106

고골에게서 작가적 재능은 무엇보다도 유머나 풍자 쪽에 있었습니다.  110

고골은 전형적인 속물드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최고 작가입니다. 문제는 그런 재능과 그가 생각한 작가의 소명이 충돌하는 데 있었습니다.  111

1837년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푸슈킨이 결투하다 죽은 거예요.
고골 생각에 러시아 문단에는 두 작가가 존재합니다. 푸슈킨과 고골, 푸슈킨과 자신이 러시아 문학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연상인 푸슈킨이 앞에서 끌고 가고 자기는 뒤에서 밀고 가고, 푸슈킨이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는 부정적인 군상을 묘사하고, 그런데 푸슈킨이 죽은 겁니다. 고골은 '이제는 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명 의식이 더 강화됩니다.  116

그전까지 고골은 진보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작가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고골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당시 독자나 비평가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진보적인 작가'가 <친구들과의 서신 교환선>에서는 노골적으로 러시아정교와 전제주의, 농노제를 옹호합니다. 이 세 가지는 제정 러시아를 지탱하는 세 지주입니다. 관제 이데올로기였어요. 차르의 전제적 지배 체제 아래서 지주들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자유가 제약당하고 처지가 악화된 농노를 고골이 긍정한 겁니다.
1830~1840년대에 투르게네프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와 인텔리겐치아들이 농노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골은 농노제를 옹호하고 나선 겁니다. 완전히 따돌림당합니다. 고골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던 당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는 이에 고골을 신랄하게 비판한느 공개 서한을 발표합니다.
상심에 빠진 고골은 1848년에 팔레스타인 성지 순례까지 갔다 와서 다시 집필에 나서지만 진척이 안 됩니다. 마침내 오프티나수도원을 방문하는데 그곳 수도원장이 고골한테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네가 지금까지 쓴 것은 모두 악마의 작품이다." 고골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광신적인 신앙 때문에 지옥에 대한 묵시록적인 두려움을 품고 있었는데, 그 공포를 더 부채질한 셈입니다. 그래서 1852년 <죽은 혼> 2부를 태워버리고 열흘 뒤 반미치광이가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17-118

고골에게는 양면이 공존합니다. 무척 유쾌한 풍자적인 세계, 유머러스한 세계와 어둡고 음울하고 무서운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 고골 문학입니다. 그래서 고골은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작가입니다.  139

 

 

5강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출발 -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읽기

투르게네프의 장편소설 <루딘>이 발표도니 1856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출간된 1880년까지 25년 정도가 러시아에서 사실주의 문학이 꽃피운 시기입니다. 곧 투르게네프가 러시아 사실주의 장편소설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죠. ..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1818년 러시아 오룔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 쪽이 부유한 대귀족이었고 아버지 쪽은 상대적으로 몰락한 가문이었습니다. 이렇듯 가세가 차이나는 경우는 대개 정략결혼이죠. 투르게네프의 아버지가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부유한 노처녀와 결혼한 겁니다. 자전적 소설 <첫사랑>의 배경이죠.
아버지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투르게네프는 장교로서 보로디노 전투에서 수훈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려한 용모와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답니다. 23세의 나이에 부유한 여지주 바르바라 페트로브나와 결혼하게 됩니다. 바르바라는 농노가 5,000명이었다니 상당한 대지주였죠. 아버지 투르게네프 집안은 농노가 100여 명이었으니 꽤 차이가 납니다.  142-143

<첫사랑>의 아버지처럼 투르게네프의 아버지 또한 늘 바깥으로 도는 바람에 부부간에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때마다 부모 모두 자식들에게 분풀이를 하곤 했죠. 투르게네프는 여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어머니를 닮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상당히 포악한 성격이어서 어린 투르게네프를 아무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고, 특히 농노들을 많이 학대해서 어린 투르게네프가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러시아 농노제를 폐지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이른바 '한니발의 맹세'를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죠. 실제로 <사냥꾼의 수기>라는 작품집으로 농노제 폐지에 크게 기여합니다.  143

어쨌든 어린 시절 투르게네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단연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서 크게 영향 받을 기회가 없었던 반면 어머니로부터는 압도적 영향을 받았죠. 어머니 말고 투르게네프의 삶과 문학에 영향을 준 사람이 두 명 더 있는데, 오페라 여가수 폴린 비아르도와 당대의 비평가 벨린스키입니다.  144

1843년, 그러니까 투르게네프가 만 25세 되던 해 모스크바에 공연을 온 프랑스의 오페라 가수 비아르도를 만나게 됩니다. 투르게네프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유부녀였습니다. 당시 오페라 여가수들의 경우 자신의 후원자와 일찍 결혼을 하곤 했죠. 남편 이름이 비아르도입니다. 이 유부녀 오페라 가수에게 누르게네프는 그만 첫눈에 반합니다. ..
투르게네프는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일련의 장편소설을 계속 써나가면서도 사생활에서는 비아르도에게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남편과는 친구로 지내면서요.
벨리스키와 교우가 시작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모스크바대학 철학부에 입학했다가 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고골의 강의도 듣고 셰익스피어 작품 중 일부를 러시아어로 옮기기도 하고, 푸슈킨과 교류를 나누기도 하던 투르게네프가 베를린 유학을 다녀온 뒤 서사시 [파라샤]를 발표할 무렵입니다.
벨린스키는 19세가 전반기 러시아 최고의 비평가입니다. 러시아 문학이 낭만적 서정시에서 리얼리즘 소설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러시아 문학의 민중성을 강조한 비평가죠. 벨린스키와 교우하게 되면서 투르게네프는 비로소 사회적 문제의식에 눈뜨게 됩니다. 여성적인 데다 내향적이었던 그가 벨린스키를 통해서 사회문제로 눈을 돌리고 작가로서 소명의을 갖게 된 것입니다.  145

투르게네프에게 끼친 벨린스키의 영향은 나중에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을 벨린스키에게 헌정한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벨린스키는 1848년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 아들>은 1862년에 발표됩니다. 투르게네프는 대표작을 벨린스키에게 바쳤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는 벨린스키 옆에 묻힙니다.  147

흥미로운 것은 투르게네프의 생몰 연대와 마르크스의 생몰 연대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둘 다 1818년에 태어나서 1883ㄴ녀에 사망하죠.  147

한 번도 관찰자나 화자가 자기 주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못된 지주를 보라는 식의 호소도 없고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거나 주장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게 투르게네프 스타일인데 그저 간결하게 보여주기만 할 뿐입니다. 감정의 찌꺼기를 드러내지 않아요.
그런가 하면 투르게네프는 자전적 소설도 썼습니다. <파우스트>, <아샤>, <첫사랑> 등이죠. 1856년부터 1860년 사이에 쓰인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비록 러서아 사회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투르게네프를 이해하는 데 요김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8

<루딘> <귀족의 둥지> <전야>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연기> <처녀지> 이 장편소설 여섯 편으로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새기는데, 이른바 사회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여섯 편은 1856년부터 1877년까지 20년간 당대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가 어땠는지를 알려면 이 소설들을 보면 됩니다.  149

투르게네프는 가장 서구적 교양을 갖춘 작가입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실물 크기로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됩니다. '표면의 작가'라고도 불립니다. ..
그런데 깊이 들어가는 않아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인물의 추악한 면까지 들추어내는 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151

작가로서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은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그의 작품 중 당대의 독자나 문단으로부터 가장 격찬을 받은 작품은 <사냥꾼의 수기>지만, 가장 논란이 됐던 작품은 단연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1862년작인데 바자로프라는 니힐리스트를 다루어 화제가 된 소설이기도 합니다. 투르게네프가 니힐리즘이나 니힐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당사자입니다. 그러니까 니힐리즘의 철학자 니체와 함께 니힐리즘이라는 말에 상당한 지분을 갖는 두 사람 중 한 명인 셈이죠.  152

러시아 문학에서 말은 대개 여성을 상징하죠.  157

1840년대를 주름작았던 철학자가 바로 헤겔입니다. 러시아 문학에서는 헤겔이나 셸링 같은 독일 철학자들이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는데, 평론가 벨린스키가 대표적 헤겔주의자였어요. 벨린스키가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고 나머지 하나는 민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낭만주의의 대표적 장르인 서정시의 시대는 끝났고, 리얼리즘 산문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거죠. 그리고 벨린스키는 누구를 위한 문학인가, 즉 귀족계급(지배계급)을 위한 문학인가, 아니면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문학인가라느 물음을 제기하면서 민중을 위한 문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벨린스키의 이 두 가지 명제를 자기의 문학에 전적으로 수용한 작가가 바로 투르게네프입니다. 리얼리즘에 입각한 산문소설을 썼고, 민중성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물론 민중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러시아 사회의 전체적인 변혁을 위해서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지식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 전망을 모색해보려고 했어요.  168-169

파벨이 "그런데 도대체 바자로프는 뭐 하는 사람이냐?" 하고 바자로프에 대해 묻자 아르카디가 "그는 니힐리스트예요" 하고 대답합니다. "뭐라고?" 그는 니힐리스트입니다." 아르카디가 재차 얘기합니다. 그러자 니콜라이가 "니힐리스트라고? 내가 알기로 그건 라틴어 '니힐(nihil)', 즉 '무(無)'에서 나온 말인데, 그러면 그 단어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하고 묻자 이번엔 파벨이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해"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르키다가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입니다"하고 말하죠. 그러니까 세 사람의 입을 통해 니힐리스트에 대한 세 가지 정의가 나온 셈입니다.
니힐리스트라는 말이 당시에는 아주 생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뒤로 유행어가 되었죠. 1860년대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 그러니까 젊은 지식인들은 스스로 니힐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투르게네프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이들을 니힐리스트라고 부른셈이죠. 그런데 이 말이 보통 허무주의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좀 어폐가 있습니다. 원래 니힐리스트는 상당히 과격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죠. 그러니까 여기서의 부정은 파괴적인 부정을 뜻합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의미와 허무주의는 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니힐리스트라는 말은 테러리스트와 거의 동의어 였습니다.  170

한국인의 사고방식 가장 밑바탕에 흐르는 게 바로 허무주의거든요. '인생 뭐 있어'주의랄까요. 먹는 게 남는 거야, 다 먹자고 하는 거지 하는 식이죠. 정치적으로 진보니 보수니 하지만 대개는 다 껍데기라고 생각해요. 그냥 자기 지방 사람이 나오면 찍잖아요. 그기ㅔ 허무주의예요. 정치적 허무주의죠. 그런데 서구 사람들이게는 그런 세계관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다위니즘이 던진 충격이죠. 그냥 생명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 투르게네프에게서도 그런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뭔가 세상을 바꿔보려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노력이 있지만 결국엔 다 패배하고 말잖아요. 한 개체로서의 삶은 유한한 운명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그게 투르게네프의 비관적 염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투르게네프가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그와 같은 근본적 허무주의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것, 그 정도가 최대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183

 

 

6강 러시아적 수난과 구원의 변증법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

도스토예프스키는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간판스타죠.
러시아 문학은 두 작가에 의해서 양분될 수 있습니다. 더 확장하면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의 세계를 두 작가가 양분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비극, 톨스토이 소설은 서사시에 견주기도 합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시간이 대단히 압축돼 있다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방대한 분량임에도 주요 사건은 3일 동안 벌어진 것입니다. <죄와 벌<은 일주일 정도고요.  186

루카치의 유명한 소설 이론서인 <소설의 이론>이 사실은 도스토예프스키론의 서론 격으로 쓰인 것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근대 소설사 전체에 대한 개관이 필요하다는 판단인 거죠. 그래서 서론을 썼는데, 그 이후에 본격적인 도스토예프스키 이론은 쓰지 못했어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보고자 했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루카치는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현실에서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굳이 문학을 통해 우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루카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세계에 속한다"고 썼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려면 먼저 루카치가 소설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소설에서 '본질은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고 규정합니다. 세계의 본질을 시간 속에서 파악한다는 얘기입니다. 서사시는 무 시간적 세계인 것과 달리 소설은 철저하게 시간적 세계입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는 시간이 별 의미가 없어요. 톨스토이는 서사시적 스케일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루카치가 말한 근대 소설의 정식에 잘 맞습니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주인공 나타샤가 소녀에서 아이 엄마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다루면서 그 안에서 인물들이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녀여주니까요.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는 시간이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세계'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가 하면 나보코프는 상반된 평가를 내리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이류나 삼류 작가로 깎아내렸습니다. 어설프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설교적 문학을 그는 혐오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부인하면서도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188

도스토예프스키는 출신으로 보면 잡계급입니다. 아버지가 빈민 구제 병원의 의사였어요.
도스토예프스킹게 돈은 평생의 화두였죠. 작춤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에 태어났는데, 성장기에 특기할 만한 것은 10대 후반, 그러니까 1839년에 아버지가 농노들한테 맞아 살해된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병인 간질인데, 언제 처음 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191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인물들은 감정 기복이 아주 심한데, 알고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자체가 그랬습니다. 그의 생애를 고려하면 그런 인물들이 크게 이상하거나 작위적으로 비치지 않습니다. 자기가 겪은 감정을 그대로 묘사한 거니까요.  195

1867년, 도스토예프스키가 안나와 결혼했을 때 장장 4년 동안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결혼하고 나서 안나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돈에 쪼들려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바로 짐을 싸서는 남편과 함께 유럽으로 떠납니다. 빚쟁이들 때무에 러시아로 돌아올 수도 없었죠.  202

<죄와 벌>은 1866년 작품입니다.  205

서구에서는 철학을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느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주장하는 내요은 시시해도 상관없습니다. 중세 때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앉을까, 이런 걸로 논쟁하기도 했다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실없는 논쟁이지만 당시에는 진지했어요. 현대 영미권의 분석철학에서도 주제 자체는 사소해보이더라도 어려운 개념들을 동원해서 아주 정밀하게 논증해나갑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시시한 문제를 다루면 철학이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게 철학입니다. 방법은 반드시 논증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룰 수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가는 언어로, 화가는 그림으로, 작곡가는 음악으로, 영화감독은 영상으로 철학을 할 수 가 있어요.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게 바로 철학입니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입증하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입니다. 철학의 개념이나 이미지가 다른 것이죠.  207

러시아 소설에서 가끔 미국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 보통 다 자살합니다.  212

'카라마조프'는 러시아어로 '악에 문드러진'이라는 듯입니다. 그러니 악에 문드러진 집안 이야기입니다.  217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면 전체를 n분의 1로 나눠 가지는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그건 서구식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책임이 크다는 게 도스토예프스키식이고 러시아식입니다.  230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인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에겐 지름길이란 없었던 것이죠.  231

 

 

7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읽기

톨스토이는 러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대문호로 평가받는 거장이기도 합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통스토이는 1828년 야스나야 폴라냐의 톨스토이 백작 가문의 4남으로 태어난 걸로 돼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유년과 관련해서 중요한 대목은 일찍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183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가가 두 살 때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는 세 살 때고,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납니다. 말하자면 고아인 셈인데 이 때문에 성장기 대부분을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어머니의 부재가 톨스토이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커서 단지 불우한 어린 시절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의 여성상과 그의 문학에 나타나는 여성상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1844년 카잔대학교 동양어학부에 들어가는데 이곳에서 톨스토이는 여러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거의 10개 국어를 익혔다는군요.  234-235

1852년 잡지 <동시대인>에 [유년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합니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데뷔작이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유년시절]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이 작가로서 평생 다루게 될 두 가지 주제의 실마리를 보여주는데, 하난는 '죽음'이고, 하나는 '예술'입니다. 죽음은 주인공이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그려 보이죠. 그때의 낯섦, 공포, 슬픔 등을 그 나이의 시선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죽음 문제는 성 문제만큼이나 톨스토이를 평생 따라다니는 주제입니다. 예술 문제는 주인공이 시를 한 편 쓰는데, 운율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거짓된 표현을 집어넣게 됩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친찬을 받죠. 거짓과 기만이 칭찬받는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 나중에 톨스토이의 예술론으로 이어지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죽음과 예술 이 두 가지 주제가 데뷔작에 이미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36

젊은 시절엔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도 늦게 하죠. 34세 때인 1862년, 18세의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불화는 워낙 유명해서 관련 책도 많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이 평새에 걸쳐 일기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톨스토이는 이십대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60년 동안 일기를 썼습니다. 아내 소피야도 일기를 썼죠. 처음에는 상대방이 보라는 의미에서 쓰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오해가 해소되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후대 사람들이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남긴다는 차원에서 썼다고 합니다. ..
시비를 건 쪽은 톨스토이인데 자신이 청년 시절에 썼던 일기를 결혼하자마자 아내에게 읽으라고 보여줬답니다. 보통은 다 태워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자신의 치부까지 다 보여줘야 과거 생활이 정화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톨스토이가 가장 싫어했던게 거짓과 기만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행위라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때, 아무리 부부간이라 해도 지나친 셈이었죠. 현실은 보통 어느 정도의 기만과 가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237-238

톨스토이는 특히 여성 심리의 대가입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여성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
열네 살에 처음 성경험을 갖는데 그때 느꼈던 것까지 빠짐없이 적어놓았어요. 소피야와 결혼하기 전에는 마을의 젊은 아낙과 육체적 관계에 빠지기도 했죠. 지주였던 톨스토이는 경제적으로 보상을 해주면서 뉴부녀인 그 아낙과 계속 관계를 한 것입니다. 매번 자기비판을 하면서도 그런 관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결혼하게 된 계기도 빨리 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소피야가 갓 결혼해서 남편이 보여주는 일기를 보니 집에서 일하는 여지안 악시냐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 거예요. 몸집이 뚱뚱한 악시냐가 바로 톨스토이와 관계를 한 아낙이었으니 소피야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겠죠.
부부 모두 결혼생활이 끔찍했다고 술회했지만, 자녀를 모두 13명이나 낳았습니다. 1862년에 결혼해서 1863년 첫아이를 낳고, 열세 번째 이반을 1888년에 낳았어요. 1888년이면 부부 사이가 아주 안 좋았을때인데 그 이휴에도 부부관계는 계속된 걸로 돼 있습니다.  239

크게 다툰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28일 가출해서 11월 7일 객사합니다. ..
톨스토이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일기에 '나는 구제불능이다'라고 써놓기도 했죠. 그래서 결혼도 일부러 늦게 한 면이 있습니다. 청년 시절 숱한 여성편력을 경험햇으면서도 쉽게 결혼하지 못한 것은 누구든 자기와 결혼하고자 하는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거나 존경해서가 아니라, 자기 지위나 재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외모를 보고는 자신을 사랑해줄 여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런 콤플렉스는 결혼하고 나서도 없어지지 않아 아내 소피야와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자기를 사랑해줄 거라고 믿지 못한 것이죠.  240-241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구상한 것은 1825년 12월의 데카브리스트 봉기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조상 중에 봉기에 직접 참여한 인사도 있었기에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의 역사에 대해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데카브리스트 봉기는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데카브리스트 봉기에 대해 쓰려면 1812년 전쟁에 대해 먼저 써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쓴 게 <전쟁과 평화>인데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정작 데카브리스트 봉기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어요. <전쟁과 평화>는 1805년 부터 1820년경까지 15ㅕㄴ 정도를 다룬 대하소설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라는 국가의 정체성, 통일성을 모색한 작품으로서 의의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은 자발적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외부의 자극이나 충격이 있어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사춘기가 보통 그렇잖아요. 자기 정체성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비로소 남과 자신을 분리하고 자아 개념이 확고해지죠. 남과 자신을 분리하려면 당연히 타인의 자극이 있어야 해요.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정체성 또한 외부의 어떤 충격 때문에 생겨나는데, 러시아의 경우 1812년 전쟁이 그런 자극과 충격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쟁이 바로 타자 역할을 한 셈이죠. 그런 타자에 대한 반응으로 러시아란 무엇인가에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쟁 이후 러시아의 역사가 처음 쓰입니다.  242-243

톨스토이는 타자보다 '나'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과 대결했다면, 톨스토이는 에고이즘과 싸웠다고 생각되는데, 톨스토이의 경우 데뷔작부터가 자전 3부작이죠. 자기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이게 확장되면 러시아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통일성의 문제가 됩니다.  244

자신의 욕망과 도덕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또한 톨스토이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입니다.  244

<안나 카레니나>는 ..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레빈이 품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물음, 즉 죽음에 직면해서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삶의 신비나 의미에 대한 물음이 답변을 얻지 못하고 열린 채 남아 있게 되죠. 톨스토이는 이 작품 이후에 모든 예술로서의 소설을 부정하고 포기 하게 됩니다...
보통은 <안나 카레니나>출간을 기점으로, 즉 1878년을 기점으로 톨스토이를 전기와 후기로 나눕니다. 소설가 톨스토이와 그 이후의 사상가 또는 설교가로서 톨스토이를 대비하죠.  246

미학적 장치라는 것은 우회로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가 세상을 구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소설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미를 우회로로 생각한 것이죠. 반면 후기 톨스토이는 미를 기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으로 가는 지금길이 있다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소설이 짧아져요. 도덕적 교훈을 위해서는 방대한 소설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하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방 이야기> 등을 쓰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면 되지 공연히 복잡하게 사유하거나 우회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247-248

<부활>은 1899년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교도들이 캐나다로 이주할 수 있도록 비용을 대주기 위해서 쓴 소설입니다.  248

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은 세 가지가 가능합니다. 인간에 대해서 신이 밖에 있는 경우, 즉 절대적 타자로서의 신입니다. 유대교의 신을 보통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와 달리 기독교의 신은 좀 특이합니다.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신, 그리스도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었죠. 그런가 하면 내안에 신성이 내재하는 것, 즉 범신론적 신이고 불교적 신입니다. 저마다 부처인 거죠. 자기 안에서 신을 발견하는 겁니다. 톨스토이의 신과은 세번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동양사상에 매우 친화적입니다.
후기 톨스토이는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의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간디나 헨리 소로보다 톨스토이가 ㅁ너저 이른바 톨스토이즘이라고 불리는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을 내세우죠. 후기 톨스토이는 국가 폭력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국가조차 부정합니다. 대단히 과격한 사상이죠. 이런 부분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오직 종교적 사상가로만 읽옇는데, 일면적 수용이라고 해야겠습니다.  249

카레닌과의 결혼생활이 그녀에겐 '살이 있는 삶(불륜)'이 아니라 '죽어 있는 삶(결혼)'이었던 것이죠.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면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겟지만 브론스키와 만난 이후에 안나에게 가로놓인 건 '도덕적이지만 죽어 있는 삶(결혼)'과 '부도덕하지만 살아 있는 삶(불륜)' 사이의 양자택일입니다. 톨스토이는 두 사람이 처음 성관계를 갖는 것을 살인자와 시체의 관계에 비유함으로써 그 부도덕함을 드러내죠. 안나는 자기가 너무 큰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며 울고 있고, 브론스키는 살인자가 된 기분으로 서 있어요.  264

안나의 경우처럼 욕망이 우리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톨스토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육체노동입니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육체노도이고 또 하나는 육식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으로, 그래야 육체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요. 적게 먹고 노동으로 열량을 소비하면 그만큼 욕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거죠.  266

톨스토이는 동양의 우화를 예로 드는데, 나그네가 맹수에 쫓겨 우물에 빠집니다. 빠지는 순간 나무뿌리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밑을 보니까 용이 입을 쫙 벌리고 있어요. 밖에서는 맹수가 으르렁거리고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도 죽고 매달려 있다가 힘이 빠져 떨어져도 죽는 겁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관목 가지에 벌집이 있어서 꿀이 흘러내려요. 나그네는 그 꿀을 핥으며 잠시 도취돼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게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진리는 죽음입니다. 필연적 죽음. 그런데 자기의 이런 현실을 곧 삶의 진리를 직시하는 게 아니라 망각하고 기만하는 겁니다. 그렇게 기만하게끔 만드는  꿀에 해당하는 게 가정과 예술입니다. 후기 톨스토이는 그래서 가정을 부정하고 예술도 부정합니다.  267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결론적으로 톨스토이가 안나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열정과 제도적 결혼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입니다. ..
결혼 제도가 열정을 막을 수 없다면 곧 결혼 제도 안에서는 이 열정 문제가 해소될 수 없다면 비극적인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톨스토이의 결론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좋은 결혼과 나쁜 겨혼이 있다는 게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였지만, 결말은 그런 가능성이ㅔ 대한 회의로 마무리됩니다.  268-269

 

 

8강 코믹과 우수의 작가 - 체호프의 <갈매기>읽기

안톤 체호프는 세계적인 단편 작가이면서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는 푸슈킨에서 시작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마감하는 작가이기도 하죠.  272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카간로그라는 지방 항구도시에서 태어납니다.
체호프 가계도 농노였다가 장사로 성공하게 되죠. 하지만 철로가 개통되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잡화상이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해 결국 파산하자 김나지움에 다니던 체호프만 남ㄱ두고 가족은 모두 모스크바로 이주합니다. 그 후 5년 동안 체호프는 혼자 학비를 벌어가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죠.
어린 시절 체호프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많이 맞음 자랐다고 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았단가 대학에 가서야 자신이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다정다감하고 관대한 성격이었답니다. 용모에서도 그런 인상을 풍기죠.
공부를 열심히 한 데다 잘하기도 해서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합니다. 그러면서 가족과 다시 합류하게 되는데 합류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어요. 학비 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벌어야 했죠. 그래서 쓰기 시작한 게 콩트입니다. 신문과 잡지에 아주 짧은, 한두 페이지짜리 콩트를 쓰기 시작합니다 짤막한 작품들이 다 코믹하면서도 뭔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시기에만 400여 편 이상의 작품을 썼답니다.  274

이력 중 특이한 것은 1890년 그의 나이 30세 때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간 겁니다. 1880년에 데뷔해서 딱 10년 동안 작가로 활동한 다음이었죠. 1886년에 첫 작품집을 낸 뒤 문학상도 받고 작가로 인기도 얻었을 뿐 아니라 지명도도 있었는데 난데 없이 사할린으로 가겟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훌쩍 떠났습니다. 당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개설되기 전이어서 할린으로 가려면 육로로 마차를 타고 가야 했거든요. 가는 데만 6개월이 걸립니다. 3개월 정도 체류하고 돌아올 때는 배를 타고 와서 한 달 정도 걸렸고요. 아무튼 1년을 꼬박 사할린 여행에 바치게 됩니다. 남들은 유배형을 받고 가는 곳을 굳이 고생을 사서 하면서까지 다녀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체호프는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10년 동안 유머 단편을 쓰다 보니 작가로서 매너리즘에 빠진 겁니다. 더는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고 그저 판에 박힌 작품들만 쓰는 것 같다 보니 작가로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법합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더 알아야겠다고 판단하고 결행한것이 바로 사할린 섬 여행이었건 거죠.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사할린까지 가서 그가 한 작업이 면전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3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만든 면접 카드가 8,000장이라니까 거의 하루에 100여 장씩 만든셈입니다. 그만큼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석 달 동안 사람을 만나 면접 카드를 만드는 ㅇ리만 하고 돌아왔어요.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고는 <시베리아 여행>이란 기행문과  <사할린 섬>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됩니다.  275-276

문학사가들은 사할린 여행으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체호프의 관심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으로 평가합니다. 사할린 여행 이후에 쓴 작품 중에 대표작이 [6호실]이라는 단편인데, 체호프 작품을 읽어보신 분들은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겁니다. 분량도 길고, 아주 어둡습니다. 말하자면 체호프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섞어놓은 것 같은 작품이랄까요. 체호프에게는 드문 경우인데 사할린 섬 여행의 영향으로 이해됩니다.  277-278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처럼 핵심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대신 곱씹어서 음미해가며 읽어야 하는 게 바로 체호프의 작품입니다.  286

<갈매기>는 간단한 구도로 보자면 트레플료프 형과 니나 형 인물의 대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1

유한한 삶 속에서 순간순간이라도 제 목소리와 빛을 뽐내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작가 체호프는 이러한 즐거움의 권리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불행한 경험에 유폐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로 승화시키는 니나 같은 여주인공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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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는 <안네의 일기>, 빅토르 프랑클의 <밤과 안개>, 엘리 비젤의 3부작 <밤> <새벽> <낮>과 함께 나찌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진상을 전하는 증언 문학의 대표작으로서 지금도 널리 읽힌다.  22


1987년 4월 11일에 또리노의 레 움베르또(Re Umberto)거리에 있는 자택에서 자살했다.  23


67세의 쁘리모 레비는 아파트 4층 난간을 넘어 아래층의 홀로 몸을 던졌다.  27


생전의 쁘리모 레비와 면식이 있던 타께야마 씨는 "내가 아는 레비는 명랑하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지닌 쾌활한 인물로, 눈에는 지적 호기심이 넘치고, 언제나 농담을 즐겨 했다.(...) 그런 그가 돌연 자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회고한다.(<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역자후기)

그 부분을 읽을 때, 내가 바로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한나 아렌트의 [우리 망명자들]이라는 글이었다. 그 글은 <파리아(pariah, 차별받는자를 뜻한다)로서의 유대인>이라는 평론집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 중에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한참 나눈 후, 집으로 가서 가스를 틀어놓거나 마천루에서 뛰어내리는 기묘한 낙관주의자들이 있다. 우리가 선언한 쾌활함이 죽음을 곧바로 받아들일 듯한 위험스러움과 표리일체임을 그들은 증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생명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며 죽음이 최대의 공포라는 확신 아래서 자랐는데, 생명보다 지고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죽음보다도 나쁜 테러의 목격자가 되고 희생자가 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이 글을 쓴 것은 1943년이었다.  28-29


아렌트는 여기에서 망명 유대인드의 '동화' 지향, '성공' 지향을 비판하고 하이네, 카프카에서 채플린에 이르는 "'의식적 파리아'의 입장을 선호한 유대인 소수파의 전통"을 상기할 것을 주장했다. '파리아'라는 아이덴티티에 입각하여 차별과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모든 '파리아'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과 통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렌트는 망명 유대인의 자살 충동을 분석하고, "(그들은) 싸우는 대신에 또는 어떻게 하면 저항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대신에,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진술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 죽으면 이제야 그 사람이 완전히 어깨의 짐을 벗었구나 하고 쾌활하게 생각하"곤 한다. 결국에는 "자신도 얼마나마 어깨의 짐을 벗을 수 있길 원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자살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표면상의 쾌활함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항상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싸운다. 그리고 결국 일종의 자기 본위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29-30


1943년 7월 10일 연합군이 씨칠리아(Sicilia)섬에 상륙하자 이딸리아의 정세는 크게 역전되었다. 7월 25일에 파시스트정권은 내부적으로 붕괴하여 무쏠리니는 실각하고 바돌리오정권이 새로 들어섰다. 바돌리오정권은 독일과 관계를 끊고 연합국과 단독강화의 길을 찾아, 9월 3일 드디어 연합군과 비밀리에 휴전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9월 8일에 그것이 공표되자 독일군은 곧바로 북이딸리아를 점령해 감금되었던 무쏠리니를 구출하고, 그를 옹립하여 가르다(Garda)호반(湖畔 호수호 두둑반)의 쌀로(Salo)를 보넉지로, 흔히 '쌀로공화국'이라 불리는 '이딸리아사회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때부터 반파시즘 운동은 독일 점령군과 그들을 돕는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무장투쟁의 시기로 접어든다.  35


1943년 12월 13일 쁘리모 레비는 스파이에게 속아 산중의 외딴집에 갇힘으로써 어이없이 체포되고 말았다. 부대에 참가한 지 불과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38


즉결로 총살된 많은 빨치산과는 다르게, 유대인인 그는 다음 해인 1944년 2월 이딸리아의 포쏠리 디 까르삐(Fossoli di Carpi) 중계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죽음보다도 나쁜 테러의 목격자"가 되었다.  39


쁘리모 레비는 1919년 7월 31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기사(技師 재주기 스승사)였다. 지적인 중산계급 가정에서 자란 레비는 지역의 명문 마씨모 다젤리오(Massimo D'Azeglio) 고등학교를 나온 후 역시 같은 지역의 또리노대학에 들어가 화학을 전공했다. 무쏠리니의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쥔 때가 1922년임을 생각하면, 그는 소년기를 전부 파시스트체제 아래서 보낸 것이다.

''아리아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나 혹은 우리 세대의 전반에는, 파시즘에 저항해야 하며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아직 확실하게 의식화되지 않았다.'<주기율>  50-51


레비는 대학의 화학과를 함께 다니던 친구 싼드로 델마스뜨로(Sandro Delmastro)에게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물질에 대항해 이긴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물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때문에 그때 피나는 노력으로 구명하던 멘젤레예프의 주기율이야말로 한 편의 시였으며, 고등학교 시절 암기해온 어떤 시보다도 장중하고 소중했다. (...)

사물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에게 그 무엇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모든 독단, 증명 없는 단언, 유무를 대답할 수 없는 명령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가?' ([철], <주기율>)

쁘리모 레비에게는 화학과 물리학이 파시즘에 대한 대항물이었다. 그것은 '명료하며 하나하나가 증명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60


열여섯 살 때 화학에 심취한 그가 친구와 함께 몰래 전기분해 실험을 하는 이야기가 <주기율>의 [수소]라는 단편에 그려져 있다. 어린 쁘리모는 "부푸는 꽃봉오리나 화강암 안에서 빛나는 운모 그리고 자기 자신의 손을 보고" 마음속으로 부르짖는다.

"이것도 밝혀내고 말 테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다른 방법으로 모든 걸 밝혀내고 말 테다. 지름길을 밝혀 낼 테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말 테다, 문을 비집어 열어 보이겠어."

'이해'에 대한 간절한 욕망, 그것은 소년 시절부터 변함없이 쁘리모 레비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다. 과학정신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는 비합리적인 정신주의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통해 파시즘에 의한 부식으로부터 자신의 혼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아우슈비츠라는 이해할 수 없는 역(逆 거스를 역)유토피아의 세계에 던져졌을 때, 역유토피아를 지상에서 실현한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져갔다.  61


쁘리모 레비의 선조는 1492년 대추방으로 인해 에스빠냐에서 쫓겨난 유대인이며,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을 거쳐 1500년경에 삐에몬떼 지방으로 왔다. 그들은 또리노에서 거부당해 삐에몬떼 지방 남부의 농업지대에 정착하며 견직 기술을 도입했지만, "최전성기에도 대단히 수가 적어, 소수파의 상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73


쁘리모 레비는 또리노를 '진정한 고향'이라고 했는데, 실은 그가 태어난 1919년은 그의 선조 유대교도들이 또리노에서 살도록 허락되고부터 불과 70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싯점이었다. '고향'은 오랜 기간 그들을 계속 거부해왔던 것이다.  74


무쏠리니의 파시스트정권도 당초는 유대인 배격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이딸리아에는 망명 유대인이 유입되었고, 독일에서 압력이 강하게 들어왔다. 무쏠리니 측에서도 독일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할 방침을 정했고, 1937년 11월에 일본, 독일, 이딸리아는 삼국 방공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1938년 9월에 파시스트 정권은 인종법을 제정하여 일련의 반유대 조치를 선포했다.

이 싯점에 이딸리아에는 전인구의 0.1% 전후에 해당하는 약 5만 7천 명의 유대인이 살았다. 그 가운데 약 1만명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망명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도시에 살았으며, 1만 3700명이 살았던 로마를 필두로 밀라노, 뜨리에스떼에 이어서 쁘리모 레비의 고향인 또리노에는 네번째로 많은 3700명의 유대인이 살았다.  81-82


1939년 6월에 공포된 정부령에 따라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유대인은 유대인 고객과 환자만을 상대해야 했다. 또 유대인과 이딸리아인의 결혼을 금지하고, 유대인이 재산 소유, 특히 농지 소유를 제한했다. 1919년 이후에 국적을 취득한 귀화 유대인(쁘리모 레비의 일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의 국적을 박탈하고, 외국 국적의 유대인과 귀화 유대인에게 1939년 3월까지 재산을 포기하고 이딸리아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1941년 말까지 7천 명의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귀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이딸리아에서 반유대정책은 불완전하게 실시되었을 뿐이다. 법령은 외견상 독일에서 실시되던 것과 동일할 정도로 철저했는데, 이딸리아 정부는 그 법령을 철저하게 시행할 수 없었다. 실제 이딸리아에서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의 '혼합물(混合婚 섞일혼 합할합 혼인할혼)' 비율이 높았고, 상당히 많은 유대인이 군의 장교나 고급관료, 고위정치가 같은 직책에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이 이딸리아 사회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박해는 심리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곤란한 측면까지 있었다.(<절멸>)  82-83


쁘리모 레비는 자신을 유대인이라기보다 이딸리아인이라고 느꼈을 것이며, 그보다 이성에만 복종하는 '인간'의 일원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는 '유대인'인 것이 '주근깨'정도의 차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에 인종법이 공포되자, 기독교도인 학우와 교수는 대부분 쁘리모 레비에게서 멀어져갔다.  84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서부의 고도(古都 옛고 도읍도) 크라쿠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다. 본래 지명은 오시비엥침이지만 나찌 독일이 점령한 후 그와 같은 독일식 지명으로 개칭했다.  93


'아우슈비츠'라는 말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 마을과 그 주변 지역에 위치한 45개 강제수용소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아우슈비츠'는 수인의 수용, 노역, 절멸과 같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세 단계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거대한 수용소복합체였다. ..

1942년 7월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이 이송되기 시작해, 종전까지 폴란드에서 30만 명을 비롯해서 네덜란드에서 6만 명, 프랑스에서 6만 9천 명, 헝가리에서 43만 8천 명 등 다수의 유대인이 이송 수감되었다. 그중 이딸리아에서 이송된 7500명은 이들 중에서도 '소수파'였다.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희생자 수는 110만 명 내지 150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90%는 유대인이었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될 때, 1백만 벌 이상의 의복, 7톤의 모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구두와 안경이 발견되었다. 그 싯점에 살아남은 수인은 6만 5천여 명, 그 대부분은 철수하는 나찌에 의해서 '죽음의 행진'에 연행되어갔기 때문에 해방된 수인은 약 7천 명에 불과 했다. 쁘리모 레비는 이 행운의 7천 명 중 한 사람이었다.  96-97


유대인 희생자의 총수는 6백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97


도시 안의 폐쇄된 좁은 지역에 유대인을 몰아넣는 '게토화'정책. ..

바르샤바에서는 1940년 10월 12일에 게토 설치를 명하는 법령이 공포되었다. 게토는 십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벽으로 외계와 완전히 격리되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접촉은 단절되었다. 바르샤바 전역의 2.4%밖에 안되는 좁은 지역에 시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4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갇혔다.

주거 환경은 콩나물시루 속과 같아서 4인 기준의 방에 보통 10명에서 15명이 생활했다. 게토에 공급되는 식료품은 심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에 수인들은 기아에 시달렸으며 열악한 위생 상태와 함께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으로 하나둘 죽어갔다. 사체는 매장할 인력이 없어 며칠이나 도로에 방치되었다.  99


나찌 친위대(SS) 경제관리본부 본부장 오스발트 폴은 1942년 4월 30일 정부령에서 강제수용소에서의 노동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역(使役 부릴사 부릴역)이란 최고의 생산 상태를 얻기 위해서 말뜻 그대로 '소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해 9월 14일 법무장관 티라크가 괴벨스와 회담할 때 이 '소모'라는 말에 주석을 달아 "노동을 통한 절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반제 회의의 서기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증언에 따르면, 회의에서 '문제 해결의 여러 형태', 즉 여러 살해 방법이 솔직하게 토의되었고, 참가자들에게 "진심 어린 동의" 이상의 것을 얻어냈다. 회의는 한 시간 반 이상 걸리지 않았고, 그후에는 음식이 나와서 그들 모두는 점심 식사를 했다. "기분 좋고 조촐한 사교적 모임"이었다.

'아이히만에게 이 회의가 잊힐 수 없는 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최종적 해결에 협력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피비린내 나는 폭력에 의한 해결'에는 다소 마음속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 의문이 지금 풀린 것이다. "지금 이 반제 회의에서 당시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들이, 제3국의 법왕들이 발언했던 것이다." 히틀러, 하이드리히와 '스핑크스' 뮐러, SS나 당뿐만 아니라, 전통을 자랑하던 국가관료 엘리뜨들까지도 이 '피비린내 나는' 문제에서 서로 선두에 서려고 경쟁하는 것을 그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빌라도가 맛본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에게는 전혀 죄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01-102


영화 <쇼아>에도 등장하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필립 뮐러(Filip Muller)는 특별작업반으로서 사체 처리작업에 종사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가스실에서의 살육 모습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몇 알의 치클론 B가 가스실 바닥에서 승화하면, 희생자들은 절규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독가스를 피해 도망치려고 힘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때려눕히고, 좀더 살겠노라고 아직 독가스에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찾아서 쓰러진 사람들 위로 올라섰다.

15분 내에 가스실 안의 전원이 사망했다.

약 30분 후에는 문이 다시 열렸다. 사체는 탑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고, 앉은 채로 죽은 자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죽은 자도 있었다. 밑에는 아이나 노인의 사체가 있었다. 사체에는 녹색 반점이 있었고, 피부는 핑크빛으로 변해 있었다. 입에 거품을 문 사체나 코피를 흘리는 사체도 있었다. 대소변 배설물로 뒤범벅이 된 사체도 있었고, 임신중이 ㄴ여성 중에서는 출산이 시작된 경우도 있었다.

유대인으로 구성된 특별잡업반이 가스마스크를 착용하고 통로를 만들기 위해 문 근처의 사체를 잡아 끌어낸 후, 사체에 호스로 물을 뿌려, 사체 사이에 남은 독가스를 씻어냈다. 특별작업반은 그런 위에서 비로소 사체를 옮겼다. 

모든 수용소에서 사체의 구멍이란 구멍을 수색해 귀중품을 숨겼는지 확인했고, 죽은 자의 입에서 금니를 뽑았다.  105-106


약 9백만 명의 유럽 유대인 중 3분의 2가 살해되었다. 특히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유대인 주민의 9할이 살해되었다. 

특정한 인간 집단에 대한 이 특이하고 철저한 절멸정책은 오늘날 주로 '홀로코스트'라 불린다. 그 어원은 구약성서에 기술된 "구워서 신전(神殿 귀신신 대궐전)에 바치는 희생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대파괴, 파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쇼아'가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107


레비의 팔에 새겨진 번호는 174517 이었다.

"수인번호에는 유럽 유대인의 말살 과정이 요약되어 있다." 10000부터 80000까지의 수인은 폴란드의 게토에서 몇 안되는 생존자였고, 119000부터 117000은 그리스의 쌀로니까(Salonica) 출신자였던 것이다. 이딸리아 유대인은 174000번대의 번호를 받았다.  117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같은 잔혹함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137


'아우슈비츠'가 비교 불가능한 '유일무비(唯一無比 오직유 한일 없을무 견줄비)'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우슈비츠'는 '비교 가능'한 사건이다. 비교 후에 도출된 대답은 그것이 과거 인간 또는 인간사회의 제도가 보여줄 수 있었던 냉혹함과 잔인함의 극한적 실례라는 것이다.  138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따라서 내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얼굴을 씻고 이를 닦는다. 자기 자신에게 규율과 질서를 부과하고 자기 생활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때문에 노예보다 못한 신분으로 추락하더라도 '덕과 지'를 구하는 것이다. 단떼를 상기하고, 오디쎄우스처럼 끝없는 고난의 항해를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금 지옥에서 인간세상으로 생환하여 증언하기 위해서.  155


장 아메리(Jean Amery)의 본명은 한스 마이어(Hans Mayer)라고 한다.  157


벨기에에서 추방된 유대인 2만 5437명 가운데 약 2만 3천 명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아메리는 불과 615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후에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회복했지만, 브뤼쎌에 계속 거주하며 저술가가 되었다. 본명인 마이어(Mayer)의 철자를 바꿔서 아메리(Amery)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다. 1976년에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 자살에 대해서>를 간행하고 그 2년 뒤인 1978년 10월 16일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

쁘리모 레비에게 아메리의 자살은 틀림없이 대단히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159


아메리는 말한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수용소에 없다. 오히려 어떻게 죽을까 생각한다. 가스실에서 독가스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 논쟁하거나, 페놀 주사에 의한 죽음의 고통을 추측하여 서로 대화하거나 하는 등.  161


1944년 크리스마스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쁘리모 레비가 있던 모노비츠 수용소의 수인들은 점호를 받기 위해 광장에 정렬했다. 

투광기의 빛과 나무틀 교수대, 그런 도구들과 잔인한 의식은 그들에게 이미 낯설지 않았다. 쁘리모 레비는 그때까지 열세 차례나 교수형 장면을 목격했다. 예전에는 교수형이 보통 사소한 범죄나 주방에서의 절도, 태업, 탈주 등에 대한 징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공개 처형의 희생자는 비르케나우의 소각로를 파괴한 반란 집단의 일원이었다. 이 반란은 가스실에서 사체 처리를 강요받았던 유대인 특별작업반 340명이 감행한 것이었다. 머지않아 자신들도 처분될 거라 확신한 그들은 몇 개월 동안 준비해 경기관총 한 정, 권총 몇 정, 수제 폭탄, 톱, 도끼, 쇠지렛대, 호미 등을 가지고 1944년 10월 7일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제4소각로에 방화하고, 제2소각로의 설비를 파괴한 후 철조망을 절단하여 도주를 기도했다. 그러나 반란은 나찌 친위대의 공격을 받고 250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결국 실패했다. 그날 밤, 또다시 2백 명의 유대인이 사살되었다. 친위대 쪽 희새자는 세 명이었다. 이 사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역사에서 유일한 무장 저항이었다.(<절멸>)  175-176


우리 생존자들은 진정한 증인이 아니다. .. 우리는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소수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속임이나 요령 혹은 행운에 의해서 심연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178


츠베땅 토도로프는 쁘리모 레비가 시달리던 수치의 감각을 '기억으로서의 수치' '살아남은 자의 수치' '인간이라는 수치'등 3단계에 걸쳐 분석한다. ...

저항의 의지조차도 전면적으로 파괴된 굴욕의 기억, 자신은 '카인'이라는 자기 고발. 증인으로 자신이 적격한지를 둘러싼 의혹(하지만 궁극적으로 '진정한 증인'은 죽은 자이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자신도 인간이라는, 수치심을 느껴야 할 종족의 일원이라는 생각... 이렇게 몇 겹으로 쌓인 수치의 감각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어가자 쁘리모 레비는 자신의 몸을 '심연의 바닥'에 내던진 것일까?  178-179


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려야 했을까?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가해자의 수치까지도 피해자가 고스란히 받아서 시달려야 하는, 이 부조리한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번 파괴된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려고 하는 한, '인간'이 저지른 죄는 어김없이 그들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181-182


싸르트르의 이런 말이 떠올랐다. 알제리 해방전쟁중에 프랑스군이 알제리에서 자행한 고문이나 잔학 행위를 고발한 글의 한 부분인데,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적을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라도 그리고 어떤 안전책을 두더라도 모든 국민이, 인류 전체가 비인간적인 것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실제 우리가 왜 인간이 되기 위해서 혹은 계속해서 인간의 위치에 있기 위해서 크게 괴로워하는 걸까? 비인간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진실이 되는 것이다. (...)

음침하며 허위에 가득 찬 그런 생각들은 모두 '인간은 비인간'이라는 동일한 원리에서 나온다([하나의 승리] <상황들>)  184


바르똘로뮤 라스 까싸스가 쓴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서>.

그들은 누가 단칼에 몸을 정확히 두 동강 낼 수 있는지, 누가 일격에 머리를 잘라낼 수 있는지, 내장을 파열시킬 수 있는지 등의 내기를 했다. 그들은 어머니에게서 젖먹이 아이를 빼앗아 그 아이의 다리를 잡고서 바위에 머리를 내려치기도 했다. (...)

그리고 그들은 겨우 발이 땅에 닿을 정도의 커다란 교수대를 만들고, 다른 방법도 있으련만 자신들이 구세주와 12명의 사도를 받들기 위해서라며 항상 13명씩 교수대에 걸고 그 밑에 장작불을 지폈다. 이렇게 그들은 인디오들을 산 채로 구웠다. (...)

보통 그들은 인디오들의 영주나 귀족을 다음과 같은 수법으로 살해했다. 땅속에 박아둔 4개의 봉 위에 가느다랗고 긴 봉으로 만든 석쇠 같은 것을 얹어놓고, 거기에 그들을 매달아 그 밑에서 약한 불을 지폈다. 그러면 영주들은 그 잔학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절망하다가 서서히 죽어갔다. (...)

기독교도들은 마치 미친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인류를 파멸로 내모는 사람들이었으며 인류 최대의 적이었다. 비인도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살아남ㅇㄴ 인디오들은 모두 산속으로 숨거나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자 기독교도들은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사냥개를 사납게 훈련했다. 사냥개는 인디오를 한 명이라도 발견하면 순간적으로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들'이란 말할 것도 없이 에스빠냐 정복자를 가리킨다.

신대륙으로 건너간 에스빠냐 사람들은 원주민에게 공조(貢租 바칠공 구실조)를 요구하고, 그것이 부족하면 강제노동을 부과했다.  185-186


에스빠냐인은 기독교화라는 미명 아래 아스께까왕국이나 잉까제국을 정복한 후 원주민을 혹사하고 학살했다. ..

라스 까싸스는 1541년 국왕을 알현하고 자신의 견문에 기초한 보고서를 제출하여 정복 중지를 호소했다. 그 보고서를 훗날 가필하여 발간한 것이 바로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서>다. 

라스 까싸스는 이 <보고서>에서 신대륙 도착 이후 40년 동안 1200만 명 내지 1500만 명의 원주민이 희생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그 희생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미증유의 제노싸이드(대학살)였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또한 기독교화되지 않은 원주민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86-187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으로 '이송'된 아프리카인의 수는 1200만 내지는 2천만 명이라고 하지만, 이 숫자도 지금은 확정 불가능하다. 더구나 거기에는 노예사냥 도중에 죽은 사람이나 항해주엥 죽어서 바다에 버려진 사람들의 수는 포함되지 않았다(<신서 아프리카사>)  189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는 '일부 인간은 인간 이해'라고 하는 사상, '인간은 비인간이다'라는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한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2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그는 이딸리아인 수인이나 포로 들과 함께 전쟁 말기의 오랜 혼란기 내내 폴란드와 소련의 영토 내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리고 거의 8개월 후에야 비로소 특별열차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 영토를 거쳐 이딸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환까지의 혼돈과 권태의 시간, 그 부조리하며 축제 갇기도한 나날을 그린 작품이 쁘리모 레비의 두번재 작품 <휴전>이다.  198


<주기율>의 [바나듐]이라는 단편에 ..

레비가 부나에서 실험실에 배치되었을 때, 거기에 출입하던 민간인 주에 뮐러 박사라는 인물이 있었다. ..

뮐러는 착하고 소심하며 정직하면서도 무기력했다. 대다수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당시 자신의 무관심이나 무기력을 무의식 속에서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찌의 범죄에 가담하거나 그것의 수혜를 받은 인물이 희생자에게 무거운 말투로 '원수에 대한 사랑'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의 천박함, 아니 불쾌감 ..게다가 그가 완고한 나찌였다면 이야기는 간단했을 테지만, 그는 당혹스럽게도 '과거의 극복'을 바란다고 말한다.

'일단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준비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개전의 태도를 확실히 보일 때, 즉 원수임을 포기할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대의 경우, 계속 원수로 존재하며 고통을 만들어내겠다고 고집할 경우에는 물론 용서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을 옳은 방향으로 고치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과 토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그래야 한다!),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 현실에서는 무장 집단이 존재했고, 아우슈비츠를 만들었으며, 정직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은 그것을 위한 정지(整地 가지런할정 땅지)작업을 했다. 그 때문에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바로 모든 독일인에 그리고 인류 전체에 책임이 있으며, 아우슈비츠 이후 무기력한 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레비가 뮐러의 만나자는 요청에 답하기 위해서 쓴 편지의 초안이다....

결국 이 편지를 우체통에 넣지는 못한다. 뮐러에게서 뜻하지 않게 전화가 걸려 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러자마자 그가 병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여전히 단절된 그대로였다. 그뿐만 아니라 단절은 점차 절망적인 것이 되었다. 저편과 이편은 '사랑'이나 '인간'이라는 말의 의미조차 서로 통하지 않은 것이다.  200-206


나도 뮐러와 같은 일본인을 자주 만난 적 있다.

일본에는 예전부터 그때는 '시대'가 좋지 않았고 '전쟁'은 그런 것이며, 일부의 '광신적 군인'이 폭주한 것이지 국민도 천황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관해서는 일본이 아니었으면 러시아가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결과는 불행했지만 일본은 뒤처진 조선인을 일본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했고, 그 '선의'는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편다. 하지만 나의 '뮐러'는 이 타입이 아니다.

나의 '뮐러'도 또한 내게 "왜 그렇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라며 일견 성실한 듯 보이는 둔감함으로 묻곤 한다. 혹은 "왜 그러헥 화난 겁니까?"라든가 "왜 슬퍼하는 겁니까?"라든가... 그들은 자기 자신도 그 불안과 분노 그리고 슬픔의 원인과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대개 자신을 휴머니스트이며 평화 애호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한국에 여행한 적이 있다는 둥 친한 친구 중 '재일(조선인)'이 있다는 둥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둥 자신은 '재일일본인'이라는 둥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도 좀 있으면 '도대체 언제까지 사회하면 되는 걸까요?'라는 흔한 질문을 슬쩍 던져본다. 그리고 이쪽이 무언가 말하려 하기 전에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에 서로 '미래지향적'으로 '공생'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공소(空疎 빌공 트일소)한 키워드를 늘어놓는다. 

'뮐러와 같은 일본인'이라고 했지만 재일조선인 중에소 '뮐러'는 있다. 이 '뮐러'들은 한목소리로 '공생'을 위해서는 서로 '원한(ressentiment)'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혼화한 어조로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들은 미리 자신들을 '원한'등과 같은 비생산적인 감정을 초월한 이성의 높은 위치에 두고, 어느새 이쪽의 위치에 저급한, 보복 감정을 지닌,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레테르를 붙인다. 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원한'을 품는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그와 반대의 경우는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라는 말이 어쩐지 수상쩍기만 하다. 이와 같이 그들은 실제 '증오'의 원인이 된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기는 커녕 가해자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어조로 과거를 잊어버리라고 강요한다.  206-208


'죄'는 법적 개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과 관련된다." 그와 다르게 정치 공동체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할, 정치적 의미에서의 '집단적 책임'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독일인'이라는 집단 중에서 '죄'를 지은 개인은 있지만 '독일인' 전체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인 전체의 죄'라는 생각은 오히려 죄를 지은 개인을 은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행위에 '집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212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의 권말에 젊은 독자와의 문답이 실려 있다. 거기에서 "독일인은 몰랐나요?"라는 물음에 레비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대다수 독일인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았고 무지의 상태로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행사하는 테러리즘은 분명 저항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 국민이 전혀 저항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 귀, 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진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220-221


그는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지 20년 이상이 지나 유령처럼 나타난 뮐러, 정직하고 무기력한 평균적인 독일인인 그는 '과거의 극복'을 말하는 한편, I.G. 파르벤을 변호하고 유대인이 학살된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부나에 있으 ㄹ때조차 유대인인 레비에게 "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느냐?"고 물은 인물이었다. 말살의 위협에 노출된 강제수용소의 수인이 매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측의 사람에게 자신이 왜 불안한지 설명하기를 요구받은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런 부조리를 전혀 "모른다"고 한다. 그런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227


쁘리모 레비는 생존자들이 두 부류로 나눠진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잊고자 애쓰면서도 강제수용소의 "악몽에 시달리며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제대로 잊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무(無)에서부터 다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편 두번재 부류의 생존자들은 "기억해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잊으려고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다." 물론 레비는 자신을 두번째 부류로 규정했다. 그는 "판사보다 증인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고 견뎌 이겨낸 것을 증거로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 자신의 '의무'였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242


수용소에서 쁘리모 레비를 매일 밤 고통스럽게 한 악몽은 현실이 되었다. '이편'으로 살아 돌아와보니 사람들은 오디쎄우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옥은 이미 종교적인 신념이나 몽상이 아니라, 집과 돌 그리고 나무처럼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그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파리아로서의 유대인>)  244-245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인간'이라는 이념이 보편적으로 공유된 단순 명쾌한 세계가 아니다. 단절되고 금이간 세계다.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말은 단절을 숨기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단절 속에서 온몸으로 떨쳐 일어난 증인들이 '인간'의 재건을 위해서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편'의 사람들은 보신이나 자기애 때문에, 천박함과 나약함 때문에, 상상력의 빈곤함과 공감대의 결여 때문에 증인들의 모습을 바로 보지 않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249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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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사회의 정의를 파괴한다고 믿었고, 모든 유형의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누었는데요. 뜻은 그대로 전하되 표현은 제 취향에 맞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입니다. 

둘째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입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하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글에 담아 타인과 나누려고 한다는 것이죠. 

셋째는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입니다. 자기가 발견한 사실과 진실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려고 하는 욕구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과 관계가 있습니다. 

넷째는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여기서 정치적인 목적이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입니다.  17-18


사람은 무엇을 글로 쓸까요? 

우리는 내면에 지닌 생각과 감정을 글로 씁니다.  39


글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42


글 쓰는 사람은 관념에 속박당하기 쉽습니다.  44


글 쓰는 사람이 미학적 열정을 자유롭게 발현하려면 어떤 도그마에도 예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저는 어떤 '주의'가 아니라 '옳은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직관의 힘에 의지합니다.  50-52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  60


저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65


'완벽하고 치열한 무플'로 대응하는 것이 저의 '민간요법'입니다. 악플러와 싸우지 마십시오. 달래려 하지도 마십시오. 눈길을 주지 마십시오. 극복하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싸울 가치가 없고, 달랠 수 없으며, 눈길을 줄 이유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으니까요. 'X무시'가 최선의 대처법입니다.

악플은 그 대상이 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악플을 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남루하며 황폐한지 보여 주는 증거일 뿐이에요.  74


악플 다는 사람을 미워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나쁜 사람만 악플을 다는 게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태도가 없으면 악하지 않은 사람도 악플을 답니다. 해결해야 할 갈등이 있는데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감정이 격해질 때도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악플은 소통을 가로막는 원인인 동시에 소통이 막혀서 생긴 결과이기도 합니다.  82


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83


비정상적인 악플과 정상적인 비판 글을 구별하는 기준은 근거가 있는지 여부 하나뿐입니다.

표현이 거칠고 어조가 아무리 격렬하다고 해도 일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어떤 주장을 한다면 악플이 아닙니다.  88


틀린 주장이라고 해서 악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절대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알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89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제 대답은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

사람은 스스로 바꾸고 싶을 때만 생각을 바꿉니다.  95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대화하는 것뿐입니다. 강요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그 사람의 견해는 그것대로 존중하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96


말로든 글로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는 맙시다.  97


상대방이 토론하다 말고 화를 내면 한발 물러서는 게 좋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흔들린다는 증거입니다.  98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101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꾸려면 우리 자신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져야 합니다.  102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대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다운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나는 누구인가? 이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나'라는 철학적 자아의 특성이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인간 일반의 본성 위에 그 어떤 '자기만의 것'을 세웠는지 말하라는 것이죠.  106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정체성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잇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것 아닌 게 많거든요.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 세계관과 인생관은 모두 내가 오감을 동원해서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인가? 자문(自問 스스로자 물을문)해 보면 아니란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우리들 각자의 정신세계에는 문명이 생긴 후 수천 년 동안 철학자와 과학자, 지식인들이 창조한 지식과 정보와 이론의 조각들이 무수히 박혀 있습니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것을 '문화유전자(밈, memo)'라고 했습니다.  106-107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중심을 꿰뚫는 질문입니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물어야 하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어떤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108


쓰고 싶고 또 의미도 있다 싶은 주제를 찾으면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글을 구상합니다. 초고는 빠른 속도로 씁니다. 문장의 멋보다는 내용을 채우는 데 초점을 두고 쓰기 때문에 초고의 상태가 좋을 리 없죠. 초고가 다 되면 그때부터는 횟집 주방장이 칼을 벼리는 것처럼 내용과 문장을 다음어 나갑니다.  130


베스트셀러 글을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좋은 문장으로 표현한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합니다. 두 번째 조건입니다. ...

세 번째 요소는 감정 이입입니다.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죠.  131-132


글로 타인의 공감을 일으키려면 쓰는 사람이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타인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읽는 이가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죠.  135


독자가 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글을 쓰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그렇게 쓰려는 의지, 둘째는 그렇게 쓸 수 있는 능력입니다.  137


감정 이입을 하기 좋게 글을 쓰는 능력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일반적 원리는 저도 모릅니다. 제가 쓰는 방법을 말씀드릴 테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씁니다.

둘째,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필요한 콘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심어 둡니다.  140-141


길든 짧든, 텍스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합니다.

콘텍스트는 텍스트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환경, 배경, 조건, 사실, 관계, 맥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콘텍스트를 '문맥'이라 옮기는 분들도 있는데 문맥은 의미가 너무 좁습니다. 텍스트와 쌍을 이루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여기서는 콘텍스트라는 말을 그대로 쓰기로 하겠습니다.

글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자 텍스트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내가 쓴 텍스트를 나와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글에 담은 생각과 감정을 독자도 똑같이 읽어 가도록 하려면 그에 필요한 콘텍스트를 함께 담아야 합니다. 글쓴이가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는 문학 글쓰기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겠지만, 정보 교환과 소통, 공감을 목표로 하는 생활 글쓰기와 논리 글쓰기라면 그렇게 써야만 제대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2-143


마크 트웨인의 말로는 딱 맞는 표현과 대충 어울리는 표현은 반딧불과 번개만큼 차이가 크다니까, 퇴고는 정말 중요한 작업이에요.  151


책을 많이 읽는 데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책 속으로 젖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할 책, 읽어도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 책을 굳이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161-162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할 수 없는 책은 올라갈 길이 없는 산과 같습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아름다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길이 있다고 해도 너무 크고 높은 산은 오르기 어렵습니다. 히말라야 봉우리를 아무나 오를 수는 없어요.  162


'배우는 책 읽기'를 넘어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169


중요한 문장을 남의 글에서 통째로 가져온 경우에 인용 표시를 하는 정도면 충분해요. 각주나 후주로 출처를 밝히는 것이죠. 원문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자료를 요약해서 한 문장이나 한 단락을 썼을 때는 참고한 자료가 무엇인지 밝혀 두는 게 좋습니다.  182


<국가란 무엇인가>는 제 자신이 국가의 본질과 진화 과정을 알고 싶어서 공부하면서 썼죠. 국회도서관에서 국가론 관련 책을 검색해서 100권 넘게 빌렸습니다. 하나씩 읽으면서 흥미로운 대목마다 색종이를 붙여 표시했어요. 하나라도 색종이가 붙은 책은 따로 추려서 표시한 대목들을 발췌했습니다. 발췌한 인용문을 큰 주제로 나누어 관련성이 있는 것끼리 묶은 다음 작은 주제로 또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책의 목차를 만들었고, 엮어 놓은 인용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제 생각을 보태 본문을 썼지요.  192-193


사람 따라 책 따라 자료를 찾고 활용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써야 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자료를 찾기 전에 먼저 질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문을 잘 만들면 글은 이미 절반은 완성한 거나 다름없어요.  194


비평다운 비평은 아래 네 가지 조건을 갖추면 된다고 저는 생각.

1) 무엇에 관한 글인지 주제가 분명하다.

2)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논리적 맥락으로 말이 되게 엮었다. 

3) 주제와 무관한 것을 끌어들이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했다.

4) 꼭 맞는 단어와 표현, 자연스럽고 쉬운 문장으로 주장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205-206


저는 서평이라면 두 가지를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비평하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입니다.

서평은 책 자체를 정확하게 소개해야 합니다. 누가 무엇에 관해 쓴 책이며 그 특성은 어떠한지, 책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216


일단 어떤 책인지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소개해야 읽는 이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서평은 또한 책을 읽은 소감, 해석, 평가를 담아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책 소개일 뿐 서평은 아닙니다.  218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글쓰는 기술은 외모입니다. 롱다니, 브이라인, 에스라인, 빨래판 복근 같은 것이죠. 내용은 사람이 가진 것이에요. 체력, 돈, 재능, 지식입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흔히 외모를 부러워하고 돈과 지식을 선망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마음씨와 인생관입니다.  231


일상적으로 쓰는 글은 무엇보다 '유머코드'를 살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면 자신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232


거듭 말씀드리지만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자기표현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표현하고 싶어야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250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


어릴 때부터 저는 놀이를 통해 상상훈련을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말이죠.  279


상상은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는 거 다들 동의하실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통념으로 자기검열을 하면서 스스로 그 자유를 억압합니다.

자랄 때 늘 듣던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해라.'처럼 현실적인 생각이 상상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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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은 1993년 6월 10일 ~ 1994년 6월 11일까지 <라 폴라 지 상파울루>에 연재한 글들 중에서 선별한 것이다.  12-13




실패들로 이루어진 비디오테이프만 본다면, 우리는 계속 무력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성공한 경험들로 이루어진 비디오테이프만 본다면, 자신이 실제보다 더 지혜롭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성공과 실패에 대한 두 가지 비디오테이프가 다 필요하다.  19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열심히 한 뒤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가 어떨지 미리 알 수 없다.  24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바라고, 세우지 말아야 할 계획들을 세우며 보냅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집 뒤의 숲을 산책하자고 제안했다. 스승은 도중에 풀 한 포기를 제자에게 가리키며 그 풀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제자가 대답했다.

"벨라돈나입니다. 그 잎사귀를 먹으면 목숨을 잃게 되지요."

"그렇다. 하지만 그냥 보기만 하면 목숨을 잃지 않지. 마찬가지로 네가 나쁜 욕망에 유혹받지 않는다면, 그 욕망은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단다."  33


스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네가 탐색의 길을 떠나면 길 초입에 어떤 글이 쓰인 문 하나가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 그 문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말해다오."

제자는 길을 떠났고, 마침내 그 문을 발견했다. 그는 길을 되짚어 스승에게 와서 말했다.

"길 초입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그 글이 어디에 쓰여 있었느냐? 벽에 쓰여 있었는냐, 문에 쓰여 있었느냐?"

"문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면 손잡이를 잡고 그 문을 열어라."

제자는 스승님 말대로 했다. 문이 돌아가자, 문에 적힌 글도 함께 돌아갔다. 문이 완전히 열린 뒤에는 그 글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41


늙은 은자가 당대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의 궁정에 초대받았다. 왕이 은자에게 말했다. 

"나는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당신이 부럽소."

"저는 저보다도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사시는 전하가 부럽습니다."

왕이 기분이 상해서 외쳤다.

"이 나라가 다 내 것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늙은 은자가 대답했다. 

"저는 세상의 음악을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강과 산을 갖고 있습니다. 달과 해를 갖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신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전하께서 가지신 것은 이 왕국뿐입니다."  55


일관되게 행동하려고 애쓰지 말라. 성 바울도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일관되게 행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양말과 잘 어울리는 넥타이를 매는 것,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의견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너희는 때때로 의견을 바꿀 수 있고, 부끄러움 없이 모순되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너희는 그럴 권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져라. 세상이 너희 주변에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고,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느끼는 기쁨을 누려라.  6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살다 보면 여유를 가져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가끔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상황과 대면해야 한다. 그럴 때 행동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78


여행자가 포트로더데일에서 변호사인 여자 친구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술에 취해 무척 흥분해서 똑같은 말을 시끄럽게 되뇌었다. 여자 친구가 그 남자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 고집을 부리며 이렇게 말했다. "왜 그러시죠? 나는 술 마시지 않은 남자라면 결코 하지 않을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내 기쁨을 보여주었고, 낯선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시도했어요. 그게 뭐 잘못됐습니까?"

"때가 적절하지 않잖아요."

여자 친구가 대답했다.

"그럼 자신의 행복을 표현해도 좋은 때가 따로 있단 말입니까?"

이 말을 듣고 우리는 그 남자에게 우리 테이블에 합석하라고 청했다.  87


툴롱 포위 공격 때 청년 나폴레옹은 맹렬한 포격을 보고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어느 병사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 친구 좀 봐. 무서워서 죽으려고 해!"

그 말을 듣고 나폴레옹이 말했다.

"맞아. 하지만 나는 계속 싸울 거야. 만약 너희들이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절반이라도 느꼈다면 벌써 오래전에 도망쳐버렸을걸."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곧 비겁하다는 뜻은 아니다. 두려움은 어떤 상황에서 용감하고 위엄 있는 행동을 하게 해준다. 두려움을 느끼지만 주눅 들지 않고 전진하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다. 반대로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 맞서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101


"삶에 투신하세요! 살아 있는 사람은 팔을 휘두르고, 펄쩍펄쩍 뛰고, 시끄럽게 소리 내고, 웃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삶은 죽음의 반대니까요. 죽는 것은 한곳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조용하다면 그건 살아 있는 게 아니죠."  102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단어들이 있다. '염려(preoccupation)'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이 단어는 'pre'와 'occupation'으로 나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어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는 것을 뜻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서 무엇 하겠느냐? 절대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 시간에 너의 운명과 네가 갈 길에 주의를 기울여라. 너에게 맡겨진 빛의 검을 잘 다루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워라. 친구들, 스승들, 적들이 어떻게 분투하는지 잘 살펴보아라. 충분히 훈련해라. 그러나 적이 너에게 어떤 타격을 가할지 다 안다고 믿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130


흔히들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은 매우 쉽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절대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고, 실망하고, 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해야 할 전화 통화,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 베풀어야 할 선행들에 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쉽게 살고 싶다면, 상아탑 안에 있는 척하고 결코 눈물 흘리지 않는 척하면 된다. 남은 생 동안 정해진 역할만 하면서 살면 된다. 

삶이 선사하는 좋은 것들을 전부 거부하면 된다. 그러면 사는 것이 무척 쉬워진다.  140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쉬울 때가 많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과 지지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독립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 받은 애정과 지지를 돌려주려 하면 늙은 부모들은 한사코 거절한다. 가혹한 운명이 닥쳐왔을 때 많은 남편(또는 아내)들이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 결과 사랑의 강물이 흘러넘치지 못한다. 

우리는 이웃이 보내는 사랑의 몸짓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를 돕도록, 우리를 지지하도록, 계속 살아갈 힘을 우리에게 부여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사랑이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닌 동참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143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민첩하게 대처해서 벗어난다."  161


여행자의 친구가 네팔의 어느 수도원에서 몇 주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많은 사원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갔고, 웬 수도사가 제단 위에 앉아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친구가 수도사에게 물었다.

"왜 웃고 계십니까?"

"바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수도사는 자루를 열어 썩어버린 바나나 한 개를 꺼내보이며 설명했다.

"이것은 적절한 순간에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낸 삶입니다. 붙잡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지요."

이윽고 수도사는 자루에서 아직 푸른빝을 띠고 있는 바나나 한 개를 꺼내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다시 자루에 집어넣은 뒤 덧붙여 말했다. 

"이것은 아직 오지 않은 삶입니다.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하지요."

마지막으로 수도사는 잘 익은 바나나 한 개를 꺼내 껍질을 벗겨 여행자의 친구와 나눠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두려워 말고 이 순간을 사세요."  162-163


어떤 전통에서는 제자들이 일 년에 하루 또는 필요한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다. 물건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나에게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라고 큰 소리로 묻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들고 "언젠가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까?"라고 묻는다.

간직해둔 기념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 물건에 읽힌 기억이 내게 여전히 중요한가?"라고 묻는다. 옷장을 열고, "내가 이 옷을 입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나? 이 옷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물건에는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고인 물이 되어버리고, 그때부터 집은 곰팡이와 모기가 살기 좋은 곳이 된다.

물건들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발산되도록 해야 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새로움이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다."  166-167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행복은 빼앗을 수 없다.  171


아프리카의 마법사가 견습생을 숲으로 데려갓다. 마법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민첩하게 걸었지만, 견습생은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견습생은 저주 섞인 욕설을 내뱉은 뒤 일어나, 자신을 넘어지게 한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래도 스승을 계속 따라갔다. 오랫동안 걸은 뒤, 그들은 신성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왔던 길을 곧바로 되짚어 갔다. 

또 한 번 넘어진 뒤, 견습생이 투덜대며 말했다. 

"오늘 스승님께서는 저에게 아무런 가르침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마법사가 대꾸했다.

"나는 너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네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거겠지. 나는 인생을 살면서 저지르는 실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싶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데요?"

"네가 오늘 길을 걷다가 넘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햇는지 떠올려보아라. 너는 넘어진 곳을 저주하는 대신, 네가 무엇 때문에 미끄러졌는지 찾아보아야 했다."  184-185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티포스는 시라쿠사의 압제자 디오니시오스의 궁정에서 권력자들에게 아첨을 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디오게네스는 소박한 렌즈콩 요리를 만드는 중이었다. 아리스티포스가 말했다. "당신이 디오니시오스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면 렌즈콩 같은 것을 먹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나 디오게네스가 대꾸했다.

"당신이 렌즈콩을 먹는 것에 만족한다면 디오니시오스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될 텐데."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대적이다. 꿈을 좇을 때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의 기쁨이다."  187


덕이 넘쳐 보이는 사람은 허영심, 자만심, 아집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222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때때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해놓고 부끄러워한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의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한다거나 신을 '현혹'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비웃음과 무관심 밑에 우리의 선한 행동들을 감춘다. 마치 사랑이 연약함과 동의어인 것처럼."  252-253


꽤나 효율적인 인성 훈련법이 있다. 평소 우리가 기계적으로 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숨 쉬고, 눈을 깜박이고, 주변의 사물들을 보는 행동 말이다.  256


안토니오 마차도(에스파냐의 시인, 극작가)가 말했다.

"그때그때 한 걸음씩 가라,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결코 다시 밟지 않을 오솔길이 보인다. 

여행자여, 그것은 길이 아니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264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써라! 편지를, 일기를, 아니면 전화 통화하면서 종이에 메모라고 해라. 어쨌든 써라! 쓰는 행위는 우리를 신 그리고 이웃과 가까워지게 한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글을 써라.

아무도 그 글을 읽지 않는다 해도, 또는 너희가 비밀로 간직하려 한 글을 결국 누군가가 읽는다 해도, 글을 통해 너희의 영혼을 작동시키도록 애써라. 글을 쓰는 단순한 행위가 생각을 정리하고 주위의 일들을 명확히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가 기적을 일으킨다. 그것은 고통을 치유해주고, 꿈을 실현해주고, 잃어버렸던 희망을 일깨워준다. 글에는 힘이 있다."  265


머릿속에 주입된 진지하고 합리적인 행동 방식을 조금은 포기해라. 겉으로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시도가 인간적이고 영적인 엄청난 모험의 문을 너희에게 열어줄 수 있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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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함께 읽고 함께 쓰다


조정래 작가는 "영혼의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말했다.  5


저녁이 있는 삶  7






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 따르면, 체험은 너무 개별적이고 특이해 설명이 불가능한 반면, 경험은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누군가를 깨닫게 할 수 있다. 경험은 오직 관계를 맺을 때 일어난다. 즉 남는 게 없는 읽기란 책과의 관계 맺음에 실패한 체험에 불과하다.  13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저고가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마치 책의 모든 내용인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을로 만드렁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 <니체의 말>  19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18세기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근대적 인간'과 '중세적 인간'으로 나눈 것인데, 이를 다시 내 식대로 적용해 보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를 물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라고 물을 때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남기 때문이다.' - 홍세화 <생각의 좌표>  41-42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은 모두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이제 경험하고 있으며,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회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 데카르트 <성찰>  44


공감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간접경험의 확률 또한 높아진다. 문제는 공감력이 부족한 독자, 어떤 책을 보든 자기 문제가 아니면 몰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45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거나, 규율을 꼭 지켜야 하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표현력이 금세 좋아지지 않는다.  67


요즘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튄다고 생각되면 냉소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특별해보이길 원하면서 친구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 아이들은 놀리거나 냉소하며 상대의 개성을 묵살한다.  71


독서토론의 가장 큰 목적은 책을 잘 읽는 것이다. 여가서 잘 읽는다는 의미는 '넓고 깊게'로 해석할 수 있다.  71


독서토론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가장 큰 가치 또한 자기관찰이다.  72


배움의 공동체 숭례문학당은 '100권 읽고 토론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80


수다로 끝나는 도서모임은 만족시키지 못했고 성장시키지도 못했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고급 독서토론 모임.  81


학습공동체 '숭례문학당'은 2008년에 문을 연 rws인스티튜트로부터 시작됐다. 독서가 '책(reading)'으로 끝나지 않고, '글(writing)'과 '말(speech)'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서점 아니면 출판사, 그 외에는 직업으로 할 만한 게 없어서 취미인지 사업인지 경꼐도 불분명한 '일'을 시작했다.  121


너무 진지한 것만도 아니고, 너무 소비적이지도 않은 모임.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하는 학습공동체!

독서는 힐링이나 자기계발 차원에서 머물던 수동적인 독서에서 자기 성찰과 토론을 통해 주관을 확보하는 능동적인 독서로 발전해야 한다.  124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너무 '각론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세어 인문학의 위기가 오고 기술을 우선시하는 현상도 그 자장안에 있다. 총론의 방향성은 차치하고 각론의 성급함한 요구한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얻고자 한다.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만 기대하는 꼴이다.  134


양이 쌓여야 질이 올라간다  146


존 로크가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의 힘"이라고 말한 이유도 바로 독후활동, 독서를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147


소비적인 독서를 하곤 한다. 이른바 독서쇼핑이나 강연소핑처럼.  147


숭례문학당이 설계한 독서토론은 '미투지투(味2智2 맛미 지혜지)'를 지향한다. 재미와 의미, 메시지와 에너지를 모두 담을 수 있도록 모델화했다.  176


독서토론을 하는 이유는 .. 사고를 확장하고 자신이 보지 못한 새로운 이면을 보기 위해서다.  193


독서토론은 시끄러워야 재미가 있다.

다양한 의견과 논리적인 근거들로 시끄러워야 한다.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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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글을 잘 쓸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11



<추락>(존 맥스웰 쿠체 저)의 서평에는 이런 게 나온다 

"아니 근데 이 책 띠지에 '김혜수가 읽고 있는 책'이란 건 대체 무슨 의미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유경의 글을 읽으면서 난 감상문이 꼭 책의 핵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줄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목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경험과 느낌을 담아 넣으면 그게 바로 멋진 감상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5-26



에밀 졸라

1894년, 프랑스 군이 발칵 뒤집힌다. 간첩이 쓴 문건이 발견된 것, 문건에서 간첩은 자신의 암호명을 'D'라고 표기했다. 명색이 간첩인데 설마 진짜 이니셜을 썼겠냐만, 프랑스 군은 포병 대위였던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꼭 이니셜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반유대주의 광풍도 유대인인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몰린 이유였다. 결국 그는 반역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외딴 섬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더 어이없는 일은 그 후 벌어진다. 프랑스 중령이 또 다른 간첩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레퓌스가 무죄이며 진짜 범인은 에스테라지 중령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프랑스 군은 계속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그냥 그렇게 끝날 뻔했던 이 사건에 반전이 생긴 건,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가 신문에 쓴 글 한 편 때문이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드레퓌스 사건이 부당하게 처리됐음을 대통령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글 한 편이 세상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 글을 자세히 분석해보자.


협박 - 뭔가를 요구할 때 어느 정도 협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협박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경찰과 군대 같은 물리적 수단을 장악한 대통령이 그런 말에 꿈쩍이나 하겠는가. 좀 뜬금없지만 태종의 예를 들어보자. 태종은 사냥 중 말에서 떨어지자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태종실록>에는 태종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는 말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나라의 통치자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마도 자신이 역사에 부끌럽게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려움을 간파한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의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는 이 같은 사회적 죄악이 저질러진 것이 귀하의 통치 기간 중이었음을 기록할 것입니다."


회유 - 졸라가 요구하는 것은 어찌됐든 드레퓌스가 재심을 받는 것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바꾸게 하려면 무작정 협박하거나 초통만 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회유가 필요하다. 이럴 때 이런 말이 흔히 씅니다.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 "이건 너답지 않아." 졸라는 대통령을 이렇게 회유한다. 

"저는 각하가 이 죄악을 모르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각하 이외에 그 누가 이 전범의 악의적인 죄상을 파헤칠 수 있겠습니까?"


호통 - 뭔가를 얻어내려는 글은 마냥 부드럽기만 해서도 안 된다. 내지를 때 내지르는 것이야말로 좋은 글이 가져야 할 필수요건이다. 그 호통이 특정인을 향할 때, 그들의 간담은 서늘해진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한 명 한 명 거론하며 그들의 죄상을 언급한다. "변호사, 너는 성의 없는 판결로 한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 의사, 너는 오진으로 더 살 수 있던 환자를 죽였다... 훈남, 넌 여자를 이용하다 버림으로써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와 마찬가지로, 드레퓌스 사건에서 졸라는 정의가 유린된 대목을 자세하게 지적한 뒤 다음과 같이 호통친다. 

"나는 뒤파티 중령을 고발합니다... 자신의 사악한 행위를 계속해서 은폐햇음을 고발합니다. 

나는 메르시에 장군을 고발합니다.. 사상 최대의 죄악에 그가 공모자로 끼어들었음을 고발합니다.

나는 비오 장군을 고발합니다.. 파렴치한 죄와 정의 모독죄를 자진해서 저질렀음을 고발합니다.

나는... 3인의 필적 전문가를 고발합니다.. 거짓이며 가짜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국방부를 고발합니다. 여론을 오도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첫 번째 군사법정을 고발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고발한다'는 신문에 실린 글이고, 신문에서 아무리 고발한다고 외쳐봤자 법적 구속력은 전혀 없다. 만일 졸라의 글쓰기 방식 대신 '뒤파티 중령은 사악한 행위를 계속 은폐했습니다. 메르시에 장군은 공모했습니다.' 하는 평범한 방식이었다면 글의 위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마무리 - 좋은 글은 멋진 마무리로 완성된다.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요구한 이 글은 어떻게 맺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대통령님,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점을 헤아려서 꼭 진실을 규명해주십시오."라고 쓰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문호 졸라는 달랐다. 그는 마지막까지 폼을 잡는다.

"그처럼 많은 것을 지탱해왔고 행복에의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인류의 이름에 대한 지극한 정열만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입니다. 나의 불타는 항의는 내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이 외침으로 인해 내가 법정으로 끌려간다 해도 나는 그것을 감수하겠습니다. 다만 청천 백일하에서 나를 심문하도록 하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류의 이름에 대한 지극한 정열', '영혼의 외침' 같은 표현은 속된 말로 오글거리지만, 글 앞부분이 워낙 힘이 있으니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글을 쓴 이후 졸라는 반유대 정서에 찌든 세력들 때문에 도망치는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드레퓌스는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복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밀 졸라는 이 글로 지식인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29-33



우리가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분야라면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필요하다.  88



가수 신승훈이 라디오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장소가 어디든 메모하고 녹음한다고 한다. 한번은 약속이 있어 버스에 탔는데 갑자기 리듬이 떠올라 그대로 버스에서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 자신의 무선호출기에 녹음했다고 한다. 시상이란 게 잠깐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이니, 예술가라면 그런 식으로 호출기에 녹음하는 작업이 필요할 법했다.

시상이란 금방 나타났다 사라지면, 한번 사라지고 난 뒤에는 다시 떠올리기 어렵다. 시상이 떠오른다면 재빨리 노트와 연필을 꺼내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바쁠 때는 간단한 얼개만 써놔도 되지만, 시간이 충분하다면 글 한 편을 모두 써버리는 게 좋다. 의욕이 있을 때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훤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자투리 시간은 의외로 많다.  125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가 화려한가'가 아니라, 글에 '자기 생각을 담고 있는가'다.  139



글이란 독자와 대화하며 독자를 설득하는 수단인데, 자기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겟는가? 원칙상 자기 생각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경험을 두루 해보는 것이다...

경험이 많으면 자기 생각이 만들어지고, 자기 생각이 있으면 글쓰기도 잘한다. 하지만 삶이란 유한한 법이고, 온갖 경험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글을 잘 쓸 정도로 여러 경험을 하려면 최소한 일흔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그때쯤엔 펜을 들 힘이 달린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주인공의 경험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통로다.  40



글을 써본 이들은 알겠지만, 글을 쓰는 건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144



내가 보기에 글 쓴느 데 필요한 인내심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책을 읽는 데는 어느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 집중력을 300쪽이 넘게 밀고 나가야 한 구너을 다 읽게 되니까 인내심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개인적으로 고전을 권하고 싶다.  145



글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독특한 관점, 남이 다 하는 얘기를 굳이 또 할 필요는 없다.  161



내가 생각한 쉬운 글쓰기의 요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해 못하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 말자. 자기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면 글이 어려워진다...

모르는 얘기는 쓰지 말자. 그 대목이 글에 꼭 필요하다 해도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든지, 자기가 이해한 부분만 써야 한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쓰면 글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둘째,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

셋째, 적절한 비유를 활용하자.

넷째, 대화체를 이용하자. 문어체보다는 구어체가 훨씬 더 잘 읽힌 다는 점을 감안하면, 핵심적인 내용을 대화체로 하는 것이 글을 쉽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다섯째,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를 쓰자.  169-174



원래 허구인 소설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솔직한 글을 쓰자. 체면 때문이든 뭐든, 불리한 대목을 어설프게 포장한 글은 아무런 동정이나 감동도 주지 못한다.  183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료 모으기'다. 

남들이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글을 쓰면 재미가 떨어지므로, 자료조사를 통해 생소한 하지만 흥미를 가질 만한 일들을 집어넣어 글을 풍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184



글을 쓸 때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재료와 관저이다. 재료는 많이 모을수록 좋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재료를 모으기 귀찮다면 기존 재료를 가지고 관점을 바꿔서 쓰는 방법도 있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려면 한 사건을 가지고 여러 관점으로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하라.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191-192



결론 부분에서 신경 써야 할 점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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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내세운 의식적 꿈과 실질적으로 욕망하는 자신의 무의식적 꿈은 전혀 딴판일 수도 있다.  20


우리는 수시로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표방하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기만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  21


성철은 동정일여, 몽중일려, 숙면일여가 되어야 실제 견성이란다.

'불교에서 수행하여 공부하는 단계를 보면, 첫째 동정일여(動靜一如 움직일동 고요할정 한일 같을여) 즉 일상생활에서 가고 오고 할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말을 하거나 안 하거나, 변함 없이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여여불변(如如不變 같을여 아닐불 변할변)하여야 합니다.

동정일여가 되어도 잠이 들어 꿈을 꾸면 공부는 없어지고 꿈속에서 딴짓하며 놀고 있는데, 꿈에서도 일여한 것을 몽중일여(夢中一如 꿈몽 가운데중 한일 같은여)라 합니다.

몽중일여가 되어도 앞에서 말했듯이 잠이 깊이 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잠이 푹 들었을 때도 여여한 것을 숙면일여(熟眠一如 익을숙 쉴면 한일 같을여)라 합니다.

숙면이여가 되어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백 자척 장대간 머리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된다 말입니다. 그리하여 깨쳐야만 그것이 실제 견성입니다.' (성철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 127쪽)  23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드에게 나쁜 의도로 거짓말하거나사기를 치지 않으면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일반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릇 필부필녀가 아닌 예술가 혹은 자유인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의도로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치고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 점이야말로 타인들과 적당히 얽혀 만수산 드렁칡처럼 살아가려는 '일반인'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살아가려는 '예술인/자유인'의 중요한 변별점이 아닐까 싶다(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은 창의적 탐색을 시작한 예술가이자 자유인이어야 한다). 일반 필부필녀에겐 타자와의 무난한 관계가 매우 중요핟다. 그래서 그들에게 정직과 부정을 가르는 잣대는 '타자에게 피해를 주었느냐, 아니냐'이다. 그들은 타자의 이해로써 나의 행동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소위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면서 살기.

그렇다 보니 매우 도덕적인 규율들 가령,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사기치지 마라, 강간하지 마라 등과 같은 규율을 우선 중시한다. 그런데 이들 도덕적 규율이란, 말이 좋아서 윤리적 도덕적 규율일 뿐, 알고보면 죄수들 혹은 범법자들이나 주입받을 만한 규율들 아닌가? 도둑질하고 싶은 인간, 거짓말하고 싶은 인간, 사기치거나 강간하고 싶은 인간, 다시 말해 죄수의 감수성이 몸 안에 들끓는 인간들에게나 강요할 만한 규율이 아닌가?

이렇듯 우리 일반 시민들의 도덕적 기준이란, 가령 푸코의 '팬옵티콘'이 적절하게 보여 주듯, 죄인의 감수성을 기초로 세워진 규율이다. 반대로 자유를 꿈꾸는 예술가는, 앞서 김수영의 시세계에서 보았듯, 자기 내면의 정직을 우선시한다. '일반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시선을 중시하며 살아가지만, '예술가'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시선과 생각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것이 내가 <구름의 파수병>에서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화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구절을 접하며 받은 충격이었다. 

자기 내면의 정직을 우선시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선택에 앞서 자신의 욕망에 먼저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타자적 욕망을 내면화하면서 살기' 보다는 자기 안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를 중시하기도 하지만, 그조차 자신의 욕망일 경우게 중시한다.  31-32


'도덕적 정직'은 행동 결과와 타자의 평가를 중시한다. 하지만 '실질적 정직'은 행동 과정의 실질적 내용을 중시한다. 자기 마음결에 교차하는 여러 다양한 이질적 느낌들 모두를 중시한다. 이러한 실질적 정직을 견지해야만, 도덕적 도그마에 갇히지 앟고 비로소 풍요로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34


살아 있는 글쓰기 또한 실질적 정직을 통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산문이란, 말그대로, 풀어헤치는 방식의 글이다.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유지하면, 특별히 공부나 지식이 대단치 않더라도 그리고 경험이나 재능이 유별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실질적 느낌과 기분, 감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개성을 확보할 수 있다.  35


나는 과연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하루의 계획표를 짜고 있는가.  41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전념.  43


대부분이 여러 가지 형태의 의식과 무의식의 꿈으로 소망이 분산 되어 있고, 분산되어 있는 비율에 맞게 각각의 꿈들이 그 나름대로 성취되고 있는 식이다. 커피 마시고 싶은 꿈+데이트 하고 싶은 꿈+취업하고 싶은 꿈+친구 만나고 싶은 꿈... 그렇다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실질적 꿈은 이미 모두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잇는, 참으로 놀랍고도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져야 할 세상이 아니라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이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47




그냥 자기 자신의 느낌을 일단은 느낀 그대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옮겨야 한다.  51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려면 일단 섬세하고 민감한 감각, 낌새, 눈치만으로 문제를 간파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관련 담론은 다만 참조만 해야 한다.  60


살아오는 동안 나의 느낌은 언제나 옳았다. 다만 그 느낌을 다루는 나의 방법이 적절치 못하거나 서툴렀을 뿐이다.  61


우리의 말실수가 종종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듯, 글쓰기로 나타난 문제점은 글 쓰던 순간의 자기 모습을 속절없을 만큼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들 문제점은 모두 감추고 해결해야 할 자신의 결점으로 느껴지지만,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결점 속에 자신의 장점과 잠재성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드러내 놓고 살펴야 한다.  67



최근에 자신이 읽은 책들 중에 감동을 받고 밑줄을 그어 둔 문장이 있으면 그 문장을 재삼 음미해 보자. 그 문장의 어떤 부분이 내 마음과 공명을 일으켜 나로 하여금 밑줄을 긋게 만들었을 것이므로, 내가 우선 읽어야 할 줄탁의 인연이 되어 줄 '씨앗 도서'를 찾는 그 문장 속에 들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씨앗 도서 지도를 만드는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최근 자신이 가장 즐겁고 유익하게 경험한 '씨앗 도서'를 가운데 놓자. 그리고 그 '씨앗 도서'의 이웃 책들을 찾아가 보자. 일단 해당 저자의 다른 책들이 그 책의 가까운 이웃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같은 분야의 책들이 그 책과 가까운 또 다른 이웃일 것이다. 또한 그 책이 참고하거나 언급한 다른 책이나 작가가 있다면 그 책들 또한 이웃 책이다.  87


'씨앗 도서' 혹은 '씨앗 문장'을 몸과 마음에 심어 두는 첫번째 방법은 씨앗 표시를 해두는 일이다. 즉 공명이 우리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일일 것이다. 

일독하고 나면 이렇게 표시해 둔 부분만을 , 재독한다. 이때 따라 써 두면 더욱 좋을 것이다. 따라 쓰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일 경우엔 다만 눈을 감고 소리 내어 문장을 읽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재독과 따라 쓰기 외에 밑줄 부분을 묵상하는 방법도 있다. 문장을 읽은 다음 침묵의 상태로 연상되는 이미지나 이야기, 변형 문장, 궁극적 의미 등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96


책을 읽을 때는 언제나 책을 그만 접고 많은 생각에 잠기는 상황과 맞닥뜨리기를 원해야 한다. 

알고 보면 우리가 작가가 되려고 하는 이유 역시 마음의 순간적 공명에서 비롯되었다...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묵상을 통해 비슷한 새로운 문장으로 변주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씨앗 문장을 인용하지 않은 채로, 씨앗 문장과 같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구절을 만들어 보거나, 이미지나 사건을 만들어 보는 것도 글쓰기 훈련의 한 방법이다.  97


재독, 따라 쓰기, 묵상, 변주 외에 아예 '씨앗 문장'을 암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98


독서는 양적 문제가 아니다.

질이 아니라 양에 치우치는 독서라면 그만 멈추는 것이 더 낫다.  100


독서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에게 적합한 책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최대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한 뒤, 숙고와 발품과 비용을 아끼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줄탁 인연의 '씨앗 도서'를 찾되, 이 모든 과정으 ㄹ스스로 이끌어 가야 한다.  100-101


미리 정해 놓은 진리란 있을 수 없다.  104


모든 이론이란, 다만 보다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가설일 뿐이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이론일지라도 그것을 권위로 삼아서 글쓰기 방법을 탐색하는 것은 신발에 발을 맞추려는 것만큼 어리석다. 더구나창조적 행위인 글쓰기에 있어서 일반적이고 표준적인 잣대란 있을 수 없다.  109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간다. 유리창을 덮고 있는 하늘색 버티칼을 벗기고 그리고, 아주 잠깐 유리문을 열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데 이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①은 앞서 말한 대로 생략가능하고, ②와 ⑥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부분으로, 각각 '먼저'와 '잠깐' 정도로만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제일 먼저'라고 말하면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 들고, '아주 잠깐' 역시 순간적으로 매우 빠르게 벌어지는 사건처럼 연상되기 때문이다. ③은 '가리고 있는'이라고 해야 알맞고, ④는 불필요하다. ⑤는 떼어 낸다는 뜻에 가까우므로 '젖히고'가 적절하다. ⑦은 앞서 지적한 대로 '창을 열고' 정도가 알맞고, ⑧은 '살펴보는데' 정도의 표현이 보다 타당하다.  126


언어적 감수성이란,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서오가 상상력을 뜻한다.  129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다른 지름길은 없다. 우선은 언어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 또한 언어를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얻게 되듯이, 우리가 언어를 가까이 대하고 사랑하면, 그 과정을 통해 언어에 대한 남다른 풍요로운 감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139



일상언어는 언제나 화자와 청자 간의 직접적인 접촉성, 지시성, 상호관계성 속에서 사용된다. 화자와 청자가 상황을 함께 공유하며 얼굴을 맞대로 있는 것이다. 

언어 외에 독특한 음색이나 억양과 같은 자기만의 만투를 사용하는가 하면 의당 눈빛, 제스터, 손짓 발짓의 바디랭귀지 등을 함께 동원한다. 

덕분에 '그것', '사랑' 등과 같은 추상적인 언어를 구사해도 청자는 눈치껏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글재주가 필요한 출판언어에서는 직접적인 접촉성이나 지시성, 화자와 청자 간 상호관계성이 모두 박탈당한다. 저자와 독자는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시성은 모호해져서 텍스트 위를 미끄러지며 떠돈다. 관계성은 사라지고, 독자의 적극적인 상상력만이 긴요해진다. 출판언어에서는 오로지 언어 그 자체가 전부다.  145


일상언어와 출판언어는 모양은 같지만 울림은 판이하다. 20%의 일상 언어와달라, 출판에서 쓰는 언어는 100% 언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일상언어를 글쓰기에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상언어는 일상을 매끄럽게 영위하기 위해 언어를 관용적, 관습적,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출판언어에서 그대로 쓰면 독자는 지루해하거나 고루해하거나 아예 공감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일상어를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152


글을 쓸 때는 보다 명료하게 표현되는 순간까지 문장을 풀어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쓸 때는 일상에서처럼 애매한 어휘나 문장으로 대충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뿐만 아니라 보다 명확하게 서술하려는 노력을 통해 화자나 인물의 특성이 보다 명징하게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언어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사용하려고 하면 할수록, 언어는 우리에게 보다 섬세하고 정확한 인물과 상황과 인식을 답례로서 선물한다. 마치 화가와 붓이 함께 그림을 그리듯, 연주가와 악기가 함께 연주를 하듯, 글쓰기란 작가와 언어가 공동으로 함께 도모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160-161


문장을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고, 보다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진술하려고 애를 쓰게 되면 그러한 긴장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보다 명료해지고 생생해진다.  162


고급 식당에서의 식사가 마냥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가난이 마냥 괴로운 것만도 아니듯, 경험한 사실보다는 그것을 겪는 화자나 인물의 정서 및 느낌 같은 실질적 내용이 중요하다. 우리가 다루려는 것은 단순한 표면적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겪는 심층적 진실이다. 따라서 모든 경험 사실은 실질적 내용에 의해 재편집할 필요가 있다.  

가량 '그가 그녀에게 장갑을 빌려 주었다'는 똑같은 경험사실을 글로 쓸때조차 주체에 맞게 전혀 다른 정서 느낌 기분 분위기 등의 실질적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보기 33>

① 호감을 갖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운을 표현하고 싶을 때

 → 나는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주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그러나 구태여 장갑을 껴야 할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렇게 했고, 그녀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② 불편한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운을 표현하고 싶을 때

 → 준석은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주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그러나 구태여 장갑을 껴야 할 만큼 주운 날시는 아니었다. 그녀가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그러나 준석은 굳이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준석의 그러한 친절이 불편했다. 막상 껴 보니 따뜻하긴 했지만 돌려주기 위해 다시 만나야 할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한 그녀 심사를 눈치 챘는지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라고 준석이 말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처지에 함부로 베푸는 남자의 친절은, 무뚝뚝한 남자들의 침묵 못지않게 그녀로서는 불편했다.


①과②가 모두 준석이 그녀에게 장갑을 빌려 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읽어 보면 두 사람의 정서와 관계가 판이하다. 줄거리나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물, 장갑, 빌려 주는 행위 모두가 경험하지 않은 일이어도 무방하다. 

이러한 설정이 주제에 알맞으면 얼마든지 거기에 맞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상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위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기보다 허구이지만, 그러나 주제에 걸맞은 허구여서 한결 리얼하게 읽힌다.  166-168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교정 작업은 크게 세 가지뿐이다.

① 빼기     ② 보태기     ③ 다듬기

① 주제에 걸맞지 않거나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불필요한 군더더기 부분을 제거하고, ② 너무 생략되었거나 보충해야 할 내용을 더해 준 다음, ③ 표현이나 내용이 애매하거나 부적절할 경우 명료하고 정확하게 다듬는다. 이러한 교정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가 바로 '일상언어를 출판언어로 옮겨 놓기'(구어체를 문어채로 옮겨 놓기)라는 사실.


이제까지 지적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상 수다 수준의 문장을 구사하면 애매하거나 과장되게 느껴지고 독자들은 화자에 대한 신뢰감을 잃는다.

둘째,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즐겨 사용하는 간투사, 관용구, 관습어, 상투적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의미의 명료성과 진실성이 떨어지면서 효율적 의미 전달도 불가능해지며 독자들은 긴장감을 잃는다.

셋째, 아무렇게나 대충 넘어가 버리면 그만큼 의미가 불충분해지고 독다들 역시 초점 흐린 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듯이 읽게 된다.

넷째,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문장은 그만큼 거칠어지거나 꼬이거나 불필요하게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다.

다섯째,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언어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면, 언어 문장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답례로서 보다 명확하고 풍요로운 형상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여섯째,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경험과 기억을 재편집하고 허구화해야만 리얼리티가 더 강렬해진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상상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을 오로지 언어를 통해 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애써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 쓰고자 한 경허모가 상상을, 언어가 보다 명료하고 정확한 내용으로 허구화하여 떠올리도록 도와준다. 글쓰기는 이처럼 인간과 언어의 상호협력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글을 쓰기 전에 떠올린 내용보다 글을 쓰고 난 뒤의 내용이 한결 명징하고 풍요로워진다. 심지어는 이러한 글쓰기 과정을 통해 처음 떠올린 것과는 전혀 판이하게 다른, 그렇지만 한결 더 나은 사유나 상상이 가능해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내가 언어라는 도구를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라기보다, 언어를 최대한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와 내가 함께 서로를 돕는 평등한 협력의 과정이다. 땅에 삽질할 때조차 삽의 생김새와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힘만 들고 아무런 효과도 발생하지 않듯, 글쓴이는 언어의 생김새와 특성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수소와 산소의 결합이 물이라고 하는 독특한 물질을 만들어 내듯이, 단지 문장과 문장의 연쇄가 아니라 결합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감동과 의미가 담겨 있는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168-169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작가가 표현한 문장, 즉 독자가 읽은 문장, 그리고 독자가 해석한 내용 사이에느 ㄴ언제나 틈이 있다. 따라서 겉멋을 부리기보다는 먼저 정확하고 세밀한 서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생각과 문장이 합치되어야 한다. 자신이 의도한 내용과 독자가 읽게 될 내용이 일치하도록 글을 써야 한다. 적어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자신이 언어로 표현한 내용'은 같아야 한다.  173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원고지에 표현된 내용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 입장에서, 표현된 문장의 의미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 사건, 인물 등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동화되어야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의에 충실할 수 있다.  177


작가는 결코 어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글을 쓸 수가 없다. 미리 객괒적 거리를 두게 되면 가리감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 판단으로 읽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언제나 일정한 각도와 방향을 갖고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이나 논설, 과학 논문조차 마찬가지다.

모든 글은 일정한 초점과 논의 방향을 전제해야 비로소 전개가 가능해진다. 문학작품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178-179



<보기 40>

ⓐ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쭉쭉 빵빵해. 세다가 돈도 꽤 잘 벌어.

ⓑ 그녀는 어디를 가든 주변의 이목을 끌 만큼 아름다운 편이다. 동네 슈퍼에 잠깐 나온 듯한 허름하고 편한 평상복 차림을 즐겨 입지만 그러한 차림보차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추지는 못했다. 게다가 취향 때문이라면 모를까, 가격 때문에 쇼핑을 주저하지는 않을 만큼 부유했다. 

ⓒ 아름다운 외모와 넉넉한 경제적 현편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겁부터 내고 두려워하는 그녀의 성격은, 그녀의 행동을 매우 편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처신의 폭이 언제나 제한되면서 업무에 치여 신경질적인 박봉의 샐러리맨보다 더 옹졸한 생각 속에 갇히게 했다.


ⓐ, ⓑ, ⓒ 모두 동일한 인물 '그녀'를 묘사한 문장이다. 전달하는 기본 메시지(예쁜 얼굴, 좋은 몸매, 부유한 경제 사정)는 동일하다. 이렇듯 주인공은 동일한데, 주인공을 서술하는 방식, 주인공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즉 화자는 서로 다르다. 특히 ⓒ에서는 아예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 외모보다도 성격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는 단순하게 즉물적으로 외모만 중시하는 화자, ⓑ는 외모를 중시하되 정확한 관찰력을 갖춘 화자, ⓒ는 외모보다도 외모와 성격 간의 간극을 문제 삼는 화자이다. 결국 ⓐ, ⓑ, ⓒ 모두 주인공 모습과 동시에 화자의 정체성 역시도 드러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자(話者)는 이렇듯 말하는 방식으로서 존재한다. 마치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더라도, 아니 그런 사람에 대해 말할 때일수록 사려 깊게 말을 하면, 도리어 말하는 그 사람의 품위가 달라 보이듯, 이야기 주인공과 이야기 화자는 명백하게 구분된다. 

이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일테면 ①"나는 막내여서 장난기가 많아"라고 말한 경우와 ②"나는 막내로 자란 때문인지 장난기가 많은 편이야"라고 말하는 경우, ③"평소 막내는 장난기가 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 단지 막내여서 저럴까 싶을 만큼 나의 장난기는 유다른 편이지"라고 말한 경우, 화자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①의 화자보다는 ②의 화자가 더 신중하게 사고하는 듯이 읽히고, ③의 화자는 같은 사건을 회고해도 한결 익살스럽게 서술할 듯한 기대감을 준다.

'주인공-되기'는 말 그대로 작가가 주인공 인물에 감정이입 혹은 동일화하여 주인공 특유의 표정, 성격, 행동, 대사 등을 나타내는 경우를 일컫는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같이 주인공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에조차 '주인공-되기'만으로는 글쓰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주인공의 모습, 심리, 행동, 결과 등을 서술하는 화자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주인공 외에 주인공의 모습을 설명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언제나 필요하기 때문에, '주인공-되기'는 언제나 '화자-되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인공-되기'는 '화자-되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떻게 말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경험은 그 경험 내용이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입밖에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83-185



<보기 41>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을 거야!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웃음보다 한숨이 나왔다.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하지만 이내 단단히 결심해야 할 만큼 이미 마음을 빼앗긴 사실 또한 인정해야 했다.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한순간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조소 또한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핸드폰을 내팽개치기는 했지만 행여 손상이 갈까 봐 이불 위에 던지곤 이내 다시 신호를 제대로 받는지 확인부터 해보았다.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한순간도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않았을뿐더러, 혹시나 핸드폰이 꺼져 있는 것은 아닐까 수시로 폴더를 열어 확인해 보앗다. 그러곤 그때마다 어디 한번 연락해 봐라, 내가 받나! 하고 투덜거렸지만, 다만 어째 한번 연락도 오지 않나, 하고 속상해서 내보는 신경질일 뿐이었다.


ⓐ의 문장은 단호한 결심이 주인공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므로, '주인공-되기'라 할 만하다. 그에 비해 ⓑ는 주인공의 결심 및 결심과는 상이한 심리상태가 함께 제시되고 있는 '주인공-되기'이고 ⓒ는 주인공의 결심 및 심리, 자기 성찰까지 진행하고 있어서 더욱 강렬한 '주인공-되기'이지만, 어쨌든 ⓑ와ⓒ 모두 특정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화자-되기'가 함께 수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 및 화자 되기'로 볼 수 있다.

ⓓ는 주인공의 결심 및 심리, 행동 등을 자세히 제시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모순된 처신을 관찰하는 화자의 시점이 한결 강하게 제시된다는 점에서 ⓑ나 ⓒ보다 한결 강하게 '주인공 및 화자 되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시 한결 강한 '주인공 및 화자 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일정한 문구를 반복하는 화자 특유의 어투와 리듬감이 한결 강하게 인물의 행동을 희화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화자-되기'가 앞서의 경우들보다 한결 더 강화된 문장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인공-되기'와 '화자-되기'가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 글쓰기는 가능해진다. 글쓰기는 언제나 '주인공 및 화자 되기'인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으로 보자면 '주인공-되기', '주인공 및 화자 되기'로 나뉠 수 있다. 적어도 글쓰는 창작자의 내면적 경험 층위에서는 세 가지의 구분이 가능하다. '주인공-되기'는 하나의 인물이 되는 것이고, '화자-되기'는 그 주인공에 대해 서술하는 관점과 태도이다. 그리고 '주인공 및 화자 되기'는 하나의 인물이자 동시에 그에 대한 나름의 인식과 관점을 갖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글쓰기란 마치 삶에서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사는 동시에, 그러한 자신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바람직하고 자유로운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185-186



<보기 42>

ⓐ 배고파 죽겠어.

ⓑ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돌이라도 삼킬 것 같았어.

ⓒ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돌멩이라도 입에 넣고 빨아서 생기는 침이라도 삼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 저 돌멩이 꼭 송편처럼 생겼네.


ⓐ, ⓑ, ⓒ, ⓓ 모두 공복 상태를 전달하고 있다. 네 경우 모두 허기진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의 경우 사실 전달만 행해지고 있으며, 그에비해 ⓑ는 돌이라도 삼킬 것만 같은 과장된 심정을 통해 보다 강렬하게 공복감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라도 삼킬 것 같다'는 비유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다소 상투적인 비유에 속한다. 따라서 강도가 다소 상쇄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표현보다는 ⓒ처럼 보다 참신하게 서술하는 것이 한결 효과적이다.

반면 ⓓ는 단순한 비유에 불과하지만 돌멩이조차 먹을 것으로만 보이는 심경의 전달을 통해 공복감을 한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현재 시제로만 보면, 의당 ⓓ의 인물이 가장 강렬한 공복감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 이는 ⓐ나 ⓑ와 달리 ⓓ의 문장이 공복감이 심한 사람이나 느끼는 환각 상태의 말투나 감성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다는 ⓑ가. ⓑ보다는 ⓒ와 ⓓ가 더욱 강도 높은 '주인공-되기'를 성취하고 있다. ⓒ는 '주인공 및 화자 되기'에 성공하고 있고, ⓓ는 강렬하게 '주인공-되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191


'주인공 및 화자 되기'를 성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문제나 사건에 대해 남다르게 깊이 고민하는 자기만의 시점(視點)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고민하고 있고, 절실히 겪은 소재나 이야기, 자신에게 가장 절박하고 절급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 방법밖에 없다. 스스로의 싸움에 정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205


대중들에 의해 자주 사용되는 관습어와 상투구일수록 본연의 뜻에서 한참이나 멀어지고 오염된 언어인 것이다. 언어 의미의 오염은 관습어나 관용어, 상투구뿐 아니라 과다하게 사용되는 언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어휘일수록 도리어 가장 모호해지고 식상해지면서 오염된 언어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언어가 자신 본래의 순연한 뜻을 잃고 너무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모호해지고 무디어지고 애매해지는 것, 그리하여 본연의 의미망이 너무 광범위해지는 현상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언어의 타락'이라 일컬을 만하다.  209


관습어, 관용어, 상투구, 유행어, 사용빈도수가 높은 어휘 등은 모두 오염과 타락이 심한 어휘들이어서, 바람직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것들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사람들을 일상에서 언어를 쉽고 간소하고 편리하게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의당 이러한 시대적 통념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자기만의 개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먼저 위에서 언급한 일상인들의 언어습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10


글쓰기란, '기성질서, 기성언어, 인상언어'와는 또 다르게 감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언어작업이어서, 내적 치유의 작업이자 사회운동의 전위가 된다. 또한 다르게 언어행위를 한다는 것은, 우선 기성 문법을 충분히 익히면서, 동시에 더듬거리듯 비틀고 분절하고 절합하여 새로운 변형문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므로, 단순한 분리와 대립을 너머 포월과 탈주까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기성질서에 익숙한 대다수 사람들 혹은 기성질서를 답습해 온 자신의 대다수 시간들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글쓰기는 적극적으로 소수자가 되는 길이고, 창작언어로서 소수언어를 구사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234-235


우리는 온전히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성질서 혹은 주류문법이 일정 방향으로 의미화하고 계열화한 코드들을 따라 살아간다. 우리의 평소 직업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뿐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 모두가, 대개 이들 기성코드에 속수무책으로 포획되기 일쑤다. 그러면서 우리의 언어 역시 일상적, 상투적, 감상적, 통념적, 관습적, 기성적 언어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질적 정직과 명철한 성찰과 지금 여기의 주시를 통해 창출해낸, 낯설지만 새로운, 보다 정확하고 풍요로운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통해, 새로운 언어문법을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창조적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동일한 언어권 안에서, 심지어 동일한 자신의 언어 안에서, 마치 이방인의 외국어같이 더듬거려 가며 즐거이 새로운 감각, 새로운 사유, 새로운 상상의 언어문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창조가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소수자가 되고 우리의 문장은 소수언어가 된다. 이때 소수 / 다수의 구분은, 양적 가늠이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 의한 구분이다.

양적 소수자(여성, 장애인, 소수인종, 빈민층) 중에도 다수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또한 양적으로 소수만 사용하는 언어(사투리, 은어, 특정집단이나 소수민족 언어)라고 해서 소수언어인 것은 아니다. 소수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기성언어와 주류문법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가로지르거나 비틀거나 전복하면서 새롭게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낯설고도 새로운 감각, 사유, 상상의 문장 즉 창작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영역에 있어서는, 스스로 창작언어를 구사할 때만이 진정으로 소수자이다.

이렇게 창작언어를 구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력한 내적 실질적 정직을 통한 끝없는 자기 감각과 인식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약자들의 모양새가 아니라, 도리어 강자의 특징이다. 니체의 구분처럼, 고귀하고 자유로운 자로서, 무엇보다 스스로 가치를 결정하는 자이며, 가치를 창조하는 자로서의 강자다.

'고귀한 부류의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그에게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다"라고 판단한다. 그는 대체로 자신을 사물에 처음으로 영예를 부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276쪽)  236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상적, 도식적, 윤리적, 일상적, 상투적,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비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 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 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이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 어지러울난, 마당장)의 언어다.  238


플롯에 대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설명은 포스터가 밝힌 스토리와 플롯의 비교구절이다. 그의 <소설의 이해>를 보면

''스토리'는 '시간의 연속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

 '플롯'은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서술''

이 구절 때문에 흔히들 플롯을 '인과관계를 짜는 것'이라 오해하며, 매우 거친 인과관계를 설정해 놓곤 한다. 가령, 어렸을 때 술꾼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의 성격이 난폭하다고 설명을 한다거나, 고생하며 자라서 성격이 어둡다거나 하는 설명들을 단다. 하지만 이 같은 설정은 지나치게 기계론적이어서 언제나 역설적이며 역동적 존재인 인간을 설명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술꾼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 역시 술꾼일수도 있지만, 도리어 술을 삼갈 수도 있다. 고생하며 자라서 성격이 어두울 수도 있지만 적극적일 수도 있다. 플롯에서 인과란 기계적 인과론과는 무관하며, 차라리 내용 및 주제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플롯을 설명한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인용해 보자.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스토리이다.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시간의 연속이 보존되고 있지만 인과감이 거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왕비가 죽었다.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신비를 안고 있는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이다.'

작가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보다, '신비를 안고 있는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 부분이다. 시간 순서의 '스토리'를 인과관계로 연결시켜 놓으면 '플롯'이 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발전이 가능한 형식의 플롯'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발전 가능한 형식으로서의 플롯이다.  


ⓐ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이야기)

ⓑ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플롯)

ⓒ 왕비가 죽었다.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발전 가능한 형식의 플롯)

ⓐ는 다만 사건이 일어난 것을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다. 그레 비해 ⓑ는 두 사건에 인과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에 이르면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발혀졌다' 식의 복문구조를 첨가함으로써 의문과 미스터리를 암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비를 안은 보다 발전한 형식의 플롯'이 되었다. 이처럼 '스토리'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는 방법이라면, '발달된 형식으로서의 플롯'은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주제에 부합하는 사건 내용 중심으로 짜임새 있게 서술하는 방식이다.

포스터의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시의 <시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학>에서 플롯에 대해 언급한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61>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6장)... 전체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 있다. 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반대로 종말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것 다음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체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기 때문이다. (7장) ... 플롯의 통일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한 사람을 취급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건이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데 그중에는 통일을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행동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통일된 행동을 이룰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 그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를 쓸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디세우스가 파르나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狂症 미칠광 병증세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이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디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8장) ... 단순한 플롯과 행동 중에서 최악의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삽화들이 상호간에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관계도 없이 잇달아 일어날 때, 이를 삽화적 플롯이라고 부른다. (9장) ... 행동이 앞서 규정한 바와 같이, 연속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전이나 발견 없이 이루어질 때 나는 이를 단순한 행동이라 부르고,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전이나 발견, 또는 이 양자를 다 수반하여 이루어질 때 복잡한 행동이라 부른다. 그런데 급전이나 발견은 플롯의 구성 그 자체로부터 발생해야만 하므로, 선행 사건의 필연적 또는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과,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11장)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강조한 부분에서 보듯, 플롯은 단순히 사건들 간 인과성으로 인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 개연성, 통일성 등을 통해 구성하는 것이다. 스토리가 플롯이 되려면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기보다는 인과적으로 구성하되, 단순히 '원인+결과'의 논리적 인과보다는 하나의 인관된 통일성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즉 유기적 짜임새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44-247



실제로 일어난 일인 듯이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을 수는 없다. 재현은 불가능하다. 다만 구현(具顯 갖출구 나타날현)을 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주제에 맞게끔 그려 내는 구현적 글쓰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247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글감이 되겠지만. 그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이 없다면 글은 기껏해야 기록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만 있다면 그는 그에 걸맞은 경험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 경험 중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실제 경험만이 글감으로 사용되지만, 주제 중심으로 글을 쓴느 사람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 외에 주변 사람들의 경험이나 책이나 텔레빚너에서 접한 경험까지도, 그리고 상상해 본 경험까지도 주제에 걸맞기만 하면 변용해서 사용할 수가 있기에 무한한 글감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254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이야기 연쇄를 '환유'라 하고, 의미 혹은 주제가 중첩되어 있는 경우를 '은유'라고 일컫는다. 기호학적 관점으로 볼 때 문학작품이란 환유의 연쇄축과 은유의 중첩축이 각각 씨줄과 날줄로 엮여져 있는 모양에 불과하다.  254-255



작품 속에서 은유의 축은 동일한 의미군에 속하는 내용들이 반복, 변주 되면서 중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렇듯 반복되어 나타나는 동일한 또는 유사한 낱말, 문구, 내용으로서 작품에 쓰인 최소 의미 단위를 일컬어 모티프(motif)라 한다. 주제와 관련되어 작품 속에 처음 나타나는 사건의 시발 부분을 '발단 모티프'라 정의할 수 있다.  259-260


플롯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이며, 문장은 플롯으 ㄹ통해 사건의 줄거리를 쫓아가는 환유와 사건의 의미가 반복, 변주되는 은유을 날줄과 씨줄로 삼아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분석 과정이 창작 방법일 수는 없다. 작품을 환유와 은유로 나누어 분석하는 방법은 작가의 창작 방법이 아니라, 독자 혹은 비평가의 감상 및 분석 방법이다.  261


친구들 세 명이 동해로 여행간 이야기를 글로 쓴다고 치자.

'우리 셋은 동해로 갔다'라고 쓸 수 있다. '희영과 준석, 그리고 나는 동해로 갔다'라고 쓸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준석 그리고 희영과 함께, 나는 동해로 갔다'라고 쓸 수도 있다. 또 얼마든지 다른 서서루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실로 무수한 서술 방식 주에서 단 하나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데, 이 하나의 방식이란 결국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주제에 걸맞은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문제의식, 강렬한 주제의식 없이는 첫 문장조차 쓸 수 없는 것이다.  262


창작 과정과 관련해서는 차라리 '구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문제의식'과 '정밀한 언어기술 능력', 이 두가지 요소가 필수적이고, 두 가지 요소만 갖추면 충분하다...

머리로 대충의 얼개를 짤 수는 있어도 어휘, 어순, 길이 등등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선택할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전 감각을 동원하여 온몸으로, 온몸으로, 온몸으로, 자신의 중심 혹은 바깥까지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263



창작을 하려면 마땅히 새로운 미지를 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창작은 이제까지는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므로 마땅히 자기만의 개성, 실험, 모험을 추구하는 자세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유롭다.  266


글쓰기의 발원지는 침묵이다. 다만 삶을 살아가는 중에, 고요히 침묵하는주엥, 그렇다고 해서 다만 말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차차 수많은 말이 마음속에서 웅성거리며 쌓여 들끓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언어는 태어난다. 문득 무엇인가 쓰고 싶어지는 욕망이 생겨난다. 이렇게 생겨나는 글쓰기의 가장 우선적인 형태는 낙서나 메모다. 

낙서나 메모는 한 개 이상의 단어로 가능하다.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의당 낙서와 메모로부터 출발한다. 아무렇게나 적어도 되는 낙서는, 아무렇게나 적어도 되기 때문에 대개 화장실 낙서처럼 비속하고 조잡하지만, 그만큼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이고, 솔직해지면서 자기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이질적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단초이기도 하다.

거기에 비해 메모는 우리 의식에서 끝없이 피어오르는 수많은 망상 중에서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나 아이디어들을 적어 두는 글쓰기이다. 인간의 의식은 끝없이 망상을 펼친다. 그리고 거기에 집착한다. 망상 주엥는 근거 없는 연상이어서 참으로 망상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멋진 사유나 영감으로 치닫는 아이디어도 있다. "쉴 새 없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망상의 새를 막을 수 는 없지만 그 새가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메모와 글쓰기를 통해 때로 멋진 새를 잡을 수도 있다!

낙서와 메모, 더 나아가 낙서 같은 메모, 메모 같은 낙서를 평소 꾸준히 활용해야 한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려면, 그 어떤 금기도 깨고 낙서로 마구 배설을 해보거나, 메모로써 목표를 분명하게 해두거나, 아이디어나 친구의 재치 있는 농담, 문화 정보 등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두는 것에서부터 먼저 부지런해야 한다.  269


우리가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넘어가는 문제들, 대충 뭉뚱그려 생각하는 문제들, 혹은 순간적인 불편, 짜증, 고통 정도로만 여기며 스쳐 지나가는 문제들, 혹은 너무 두렵거나 난해하거나 복잡해서 마주하지 않던 문제들을 언어로 촘촘히 풀어헤침으로써, 그 문제들이나 감정들 속에 숨어 있던 실질적 진실을 발견하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이 '산문'이고, 이러한 행위 정신을 '산문정신'이라 부를 수 있다.  277


① 산문정신은 이런저런 일상의 느낌을 보다 정직하게, 보다 또렷하게, 보다 깊이있게, 보다 다양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통념이나 관습과는 또 다른 여러 이질적인 느낌들을 감지하는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무엇이든 매력적인 글감이 될 수 있다...

평소 일반인들이 통념적, 관습적 차원에서 일상을 뭉뚱그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모든 것을 마치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실질적 차원에서 정직하게 들여다보려 애쓰는 사람이며, 이러한 실질적 직시를 통해 통념적으로 여겨 왔던 일상이나 관점과는 다른 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278-279


② 실질적 정직으로서의 산문정신은, 근대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시하는 글쓰기 자세다.

근대란 신(神)이나 도리[道]와 같은 중세의 보편원리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주체적 관점에서 세상을 직시하려는 노력이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내가 명증적으로 참되다고 안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조심하여 피할 것,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명석하게 또 아주 판명(判明 판단할판 밝을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 판단 속에 넣지 않을 것.

둘째는 내가 검토할 난제의 하나하나를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소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는 내 생각들을 순서를 따라 이끌어 나아가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꼐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위로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들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자연대로는 피차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 간에도 순서가 있는 듯이 단정하고 나아갈 것.

그리고 끝으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 낱매 들거)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 통할통 볼관)을 어디서나 행할 것.

기하학자들이 그들의 가장 어려운 증명에 도달하기 위하여 늘 사용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저 추리의 긴 연쇄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상상하는 기회를 주엇다. 즉,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이와 똑같은 모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릭 참이 아닌 어느 것도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에서 연역할 때에 언제나 올바른 순서를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멀다 해도 마침내 도달하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리 숨겨 있다 해도 찾아낼 수 없는 것이 없다는것. 그리고 나는 어느 것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찾는 데 있어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방법서설> 1983 20쪽)  279-280


산문정신은 정직하게, 혹은 정확하게, 혹은 면밀하게, 혹은 또렷하게, 혹은 진지하게, 혹은 통렬하게 바라보는 글쓰기 방식이다. 이러한 '바라봄'은 의당 관습적, 일상적, 통념적 질서 등과 마찰을 겪기 때문에 갈등을 만들어 내고 문제의식을 만들어 내고 비로소 새로운 주제의식을 만들어 낸다.  283



사생글은 사람이나 사건, 사물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림 그리듯이 쓰는 글을 뜻한다. 주로 처음 글쓰기를 배우는 초등학생들에게 장려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매우 초보적인 습작 훈련 방법이다. 하지만 대상을 눈앞에서 꼼꼼히 바라보며 그림 그리듯이 글을 쓰는 방식은 앞서 언급한 '실질적 정직', '방법적 성찰', '위파사나의 주시'등의 태도와도 맥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사생글은 일반인들도 글감이 막혀 있을 때 연습 삼아 써 볼만하다. 억지로라도, 사생을 하다 보면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장면이나 문장을 발견하기도 하고, 막혀 버렸던 글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매일 일정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싶은 학생이나 글감이 떨어져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284


사생글은 대상을 면밀하게 주시하는 습관을 키우는 동시에, 새롭게 인식하는 문장 혹은 글감을 찾게 해준다.  287



산문이란, 일상 너머 진실을 주시, 성찰하여 풀어쓰는 글이다. 단지 운문에 반하는 개념이어서, 따로 익혀야 할 장르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통념적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을 담은 문장이 펼쳐지는 순간, 산문쓰기는 가능해진다.  292



산문은 면밀하게 풀었는 작업이므로 우선은 무엇보다 문장이 정확해야 하고 전하고자 하는 정보나 의미를 명료하게 담고 있어야 한다...

산문 문장은 기존 인식과는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기존 인식을 해체, 분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낯설게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으로 비유와 서술을 들 수 있다. 비유는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을 낯설고 이질적인 비교를 통해 명징하게 서술하는 방식이다.  321


비유는 실질적 느낌을 명징한 이미지로 전달할 때 효과적이다. 압축적이어서 시적 묘사에 즐겨 사용된다. 반면에 대상을 그대로 풀어쓸 때는 말 그대로, '그대로 풀어서 서술'해야 하는데, 무작정 서술하기만 할 경우, 자칫 문장이 늘어지면서 산만해질 우려가 있다. 이때는 대구 및 대구의 변조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보기 82> 대구의 일례들

ⓐ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희다.

ⓑ 하늘은 대숲 위로 더욱 높고 푸른데, 강물은 하늘 속 구름을 받아 더욱 깊고 푸르다.

ⓒ 이마에 닿는 볕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따뜻한데, 어개로 파고드는 바람은 팔짱을 끼며 움츠리고 싶을 만큼 쌀쌀했다.

ⓓ 그 도서관엔 비록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없었지만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길 편안함이 있었다.

ⓔ 선한 행위란 승화된 나쁜 행위이며, 나쁜 행위란 다듬어지지 않고 어리석은 선한 행위이다.


인식 대상을 둘 이상으로 나누고 그들의 공통저모가 차이점을 비교하듯이 서술하는 문장 방식은, 풀어헤치면서도 일관되게 엮어 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 방식일 것이다. 이러한 대구 문장 혹은 분석 인식은 사물을 보다 촘촘히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게끔 해주며, 대상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고 복수적으로 바라보게끔 해준다.  324



단락 = 주제문장 + 구체적 뒷받침문장

단락의 단위는 주제다. 하나의 단락엔 하나의 주제가 담겨야 효율적이며, 특히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문장들이 반드시 보태져야 한다.  327


뒷받침문장은 구체적인 관찰, 일례 제시, 에피소드와 사건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질적으로 주시하지 않는 한, 만들어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꾸로 실질적 정직이 자세로 주시하는 한 자연스럽게 덧보태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329


마치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만 선물만으로 자기 진심을 전달해야 할 경우와 같다. 상대방은 선물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선물 고르기와 포자에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글 역시도 그 자체로 완결되어야 한다. 내용 자체로서 유기적 완결미를 이루면 좋은데, 이것이 용이하지 않을 때 글을 완결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장르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글쓰기는 각 장르에 맞춰 일정한 규칙이 암암리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장르규칙은 매듭을 깨끗이 할 수 있는 포장기술과 같아서, 글쓰기를 한결 쉽게 해준다. 

르포나 기사 같은 기록문일 경우 기본적인 장르규칙은 육하원칙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하지만 단지 기록 이상의 의미를 담은 생활글을 쓰고자 할때는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 양식을 차용하는 것이 알맞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살펴보면 수많은 인연과 관점에 따라, 문제의식에 따라, 아주 사소한 물건이나 사건일지라도 언제나 n개의 의미를 띤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한일 곧즉 많을다)이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어떤한 각도에서 얘기해야 할지 언제나 헷갈리고 어지럽기 마련이다.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은 이러한 복잡다단한 일상 상황을 효과적으로 일정하게 분절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먼저 일기문은 시간을 분절한다. 시간을 하루 단위로 분절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기행문은 공간을 분절한다. 공간을 인물의 장소 이동에 맞춰 분절하여 글을 쓴다. 서간문은 인간에 의해 분절된다. 수신자, 발신자의 성격과 관계에 따라 다룰 내용을 가늠한다.


<보기 90>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의 장르규칙

ⓐ 일기문(시간의 흐름에 따라)

  ① 시작 : 오늘에 대한 정보들(날씨, 분위기, 특징, 전날과 비교등)

  ② 중간 : 오늘의 핵심 사건(오늘 있었던 가장 핵심 사건들의 계열화)

  ③ 끝 : 오늘의 의미(오늘 사건의 의미 및 내일에 대한 결심등)


ⓑ 기행문(공간의 이동에 따라)

  ① 시작 : 공간 이동의 동기, 사연, 기대

  ② 중간 : 장소 이동에 따른 정보, 관찰, 사건, 느낌, 회상

  ③ 끝 : 공간 이동이 끝나고 남는 느낌, 반성, 또 다른 계획


ⓒ 서간문(인간 - 수신자와 발신자 - 에 따라)

  ① 시작 : 수신자에 대한 인사, 회고, 안부, 발신자의 근황

  ② 중간 : 수신자와 발신자의 관계, 정보, 갈등, 용건 등

  ③ 끝 : 수신자에 대한 인사, 기대, 혹은 첨언 등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 양식은 우리의 생활을 분절하여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내적 장르라 할 수 있다. 평소 일기나 편지는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지만, 생활 수단으로서의 글쓰기와 무관하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사건 내용을 적절히 부각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응용해도 좋을 글쓰기 양식이다.  333-334



서사적 글쓰기는 생활글과 달리 단지 생활 내용에 한정을 두지 않고, 자아와 세계 간의 대립, 갈등을 다루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341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이 각각 '하루치의 시간', '한 번의 여행', '한 명의 수신자'에게 한정하여 서술하는 반면, 서사적 글쓰기의 구성 단위는 대립, 갈등이어서, 대립, 갈등의 길이에 따라 얼마든지 더 많은 시간, 공간, 인물을 다룰 수 있다. 다루고자 하는 하나의 대립, 갈등이 아직 끝나지 않는 한, 시공간과 인물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342


표면 사건보다 실질적으로 겪은 내적 갈등이 더 강할 때, 경험 내용보다 실질적 갈등의 깊이와 폭이 더 강하게 들끓을 때, 경험한 사실보다 내적 주제의식이 더 강렬해질 때, 우리는 경험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허구적 장치를 본능적으로 동원하여 보다 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이 지점부터 사실이나 경험의 기록을 넘어서는, 문제, 갈등, 주제에 걸맞은 허구적 글쓰기, 서사적 창작이 가능해진다.  343



에필로그 - 본질적 감수성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만 적극적인 좌충우돌의 방황과 온몸으로으 탐색을 멈추지 말아야 하며, 또한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좋은 글이 쉽게 나와 주지는 않지만, 또 다시 열심히 읽고, 계속해서 써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한편으로 두루 학인들을 만나 배우고, 격정적 열애나 혼자만의 칩거를 해보기도 하고, 혹은 힘겹고 고된 경험을 해보거나 현실참여를 하는 등과 같은, 글쓰기 훈련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정석에 가까운 방법들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강도 높은 애정을 꾸준히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363


문제는 천천히 운전하는 것과 여유있게 운전하는 것, 신속하게 운전하는 것과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 열심히 읽는 것과 초조하게 읽는 것, 깐깐하게 공부하는 것과 소심하게 공부하는 것. 치열하게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 쓰는 것,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고지식하게 고민하는 것,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과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 게으르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과 여유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을 나누어 분별하기가 좀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부를호 숨들이쉴흡 갈지 사이간)에 생사가 갈린다고 했다. 숨 한 번 돌리자 사랑이 욕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욕심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숨 한번 돌리는 사이에 무욕이 게으름으로 변하느낙 하면 순정이 맹목으로 변하기도 한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참으로 자주, '열심히'와 '조급히'를 혼동하고, '최선을 다해'와 '욕심을 다해'를 혼동한다. '자기만의 생각'과 '자기만의 고집'을 혼동하고 '독창적인 글쓰기'와 '독선적인 글쓰기'를 혼동한다. '고독한 창작생활'과 '고립된 창작생활'을 혼동한다.  365


좋은 글은 좋은 글대로 기쁘지만, 그렇지 못한 글은 그렇지 못한 대로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거울이다. 글쓴이의 느낌만 좋으면 그만인 상태에서 읽는 이의 공감 상태로 옮겨 가는 과정이 글쓰기지만, 읽는 이가 공감하든 않든 정직하고 치열한 글쓰기는 글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 좋은 글일 수밖에 없다.

자기 글에 대해 일희일비할 것도 없다. 아니 얼마든지 일희일비해도 좋다. 적극적으로 일희일비할수록 좋고, 스스로 더욱 강렬하게 일희일비하고 싶어진다.  367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소유에 갇히지 않고, 누구나 공감하고 공명하게 만드는, 무한히 열린 힘이 들어 있다. 

이러한 힘이 내재하지 않는 글쓰기는 죽은 글쓰기다. 단지 사적인 이야기여서도 곤란하고, 일반진리를 떠벌이는 글 또한 곤란하다. 사사로운 욕심이 있어야 하지만, 마침내는 누구나 공감하는 열린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또한 사사로운 개인으로 출발하여 누구나 공감하고 공명하는 열린 개인으로 접속하는 과정이 틀림없다.  369


다소 심하게 억압되거나 투사되거나 고착된 사람에게는 다독, 다작, 다상량의 글쓰기 공부가 소용없다. 아무리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해도, 그러한 공부 과정이 자기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의식이나 욕심만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유, 고착되어 버린다. 안타깝게도(아니, 다행스럽게도) 이런 폐쇄적 욕심에 갇힌 글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이러한 왜곡과 고착은, 자의식이나 욕심이 유달리 심한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가 잇지만, 나름의 왜곡과 고착으로 인해 책을 읽어도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고, 글을 써도 쓰고 싶은 그대로 쓰지를 못하고, 생각을 해도 겪은 그대로 생각하지를 못한다.  370


이제라도 시작하는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행동이기에, 행동은 또한 언제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미래이기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혼자 외로이 여행을 떠나고, 어제와는 달리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고, 미칠 듯이 자신을 볶아 대고, 술에 만취해서 자기안의 또 다른 자신을 끄집어내 보는, 일체의 행동들이 즐거울 수밖에 없고 짜릿할 수밖에 없다. 마치 최선의 지름길을 알고 시작하는 탐험가처럼, 자기 행동이 가장 빠른 길임을 확신하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혹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 지금, 여기 현실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현실의 무언가가 결핍된 듯이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런 점엣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힘이 잉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후회와 아쉽움은, 욕망과 희망의 첫 느낌일 뿐 절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383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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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서평, 책을 가장 잘 기억하는 방법

생각이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상태입니다. 글이나 말로 구체화하기 전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5


서평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읽은 책을 기억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책을 좀 더 깊이 읽게 되고, 나의 생각과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개인적인 독후감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를 생각하는 서평으로 나아갈 때, 또 하나의 이유가 덧붙여집니다. 바로 소통입니다.  6-7




①어떤 책을 ②어떻게 읽었고, ③왜 처천하는지, 이 세 곡짓점을 정리했다면 서평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14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듯 책을 읽는 겁니다. 일종의 훑어보기랄까요. 당연히 읽고 나면 남는 게 적겠지요.  20


한나 아렌트가 말한 '무사유의 죄'  21


주입식 교육, 인터넷에서의 편의적 읽기에 길들여진 성인에게 주체적 공부와 글쓰기는 거쳐야 할 숙제입니다.  22


메이지 대학교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1분 감각>에서

'세상에는 무리해서 끝가지 책을 읽고도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출력을 전제로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아무리 입력해도 좀처럼 몸에 익지 않을 것이다. 출력을 하려면 입력과 동시에 가공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들을 때도 그것을 제삼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듣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키워드와 핵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입력할 때 어떻게 출력할지도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5


과식하듯 이것저것 들춰보고 다 읽은 듯한 착각에 빠져봤자 3일을 못 갑니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화하기 위해서도 토존과 서평은 필수 입니다. 생각을 진지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7


<기다림>의 작가 하진은 명문장가로 유명합니다. 중국인임에도 완벽한 영문소설을 쓰는 작가죠.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문장은 담백하며 유려합니다. 어느날, 우연히 하진의 작품을 담당했던 편집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팬이라는 제게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문장을 100번쯤 고친다고 합니다." 순간, 아찔했습니다. 하진의 치열한 태도에 반하고 만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꾸준한 퇴고로 완성한 문장이니까요. 마치 수행자처럼 자기 문장을 고치는 작가의 얼굴을 떠올리니 뭉클했습니다.  43






책은 최소 두 번은 정성 들여 읽어야 합니다. 1차 독서 후엔 밑줄과 표시를 따로 빼서 정리합니다. 필사나 발췌 연습이 되겠지요. 

1차 독서 후에는 '조사'단계로 들어갑니다. 무엇을 조사할까요? 그렇죠. 이 작품의 배경, 작가 연구, 작품 해석, 언론이나 일반 독자의 서평을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물론, 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해석해보려 했는데 관련 자료와 리뷰에 휘둘린다면 조사 결과를 생략해도 됩니다. 하지만, 다른 리뷰를 보고 오히려 보는 관점이 넓어졌다면 조사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다른 글을 읽으면서도 나의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내 생각을 단단히 곧추세우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책을 펼 차례입니다. 다시 편 책의 상태는 어떨까요? 1차 독서할 때 밑줄 긋거나 표시하거나 메모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요. 자칫 그 부분만 대충 읽게 될 수 있어요. 이땐, 표시한 부분을 다시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인지 집필 의도가 잘 반영된 부분인지, 아니면 내 생각을 잘 표현한 구절인지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또한 표시하지 않은 부분을 더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는 공감을 하지 못했거나 어려워서 넘어가게 되니까요. 내가 알지 못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꼼꼼히 2차 독서를 하면서, 빠른 독자는 서평의 얼개를 짜기도 합니다. 그게 어려운 분들은 2차 독서에서 발견한 이 책의 주요 키워드 혹은 내 서평에 담고자 하는 주제 키워드를 찾으시면 됩니다.  46-47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며 그곳의 교육 현장을 몸소 경험한 박성숙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을 만합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보면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작문 수업이 이루어지고, 단순한 이야기 짓기에서 시작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작품 분석과 비평까지 수업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교사들은 꼼꼼하게 과제를 첨삭하고 평을 달아주며 채점을 하고, 아이들은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연습하고 훈련한 후 대학 시험에 임한다고 합니다.  56


독해 능력은 모든 지적 활동의 출발점입니다.  59


일본의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서평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인터넷 서평꾼 로쟈 이현우도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객관적인 서평 쓰기를 지향합니다. 이밖에도 신문 매체에 실리는 저널리즘적 서평도 대체로 객관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북섹션에서 볼 수 있는 서평은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한 문단 내용 요약 소개부터 필자의 생각이나 관점이 드러나는 칼럼형 서평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62


서평의 3분의 2는 객관적 정보, 나머지 3분의 1은 주관적 평가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우선 서평에서는 책에 대한 정보를 스토리텔링하듯 요약 정리하면 되고, 그 다음에 책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면 됩니다.  

쉽고 명쾌하게 쓰면 됩니다.  63


글쓰기에도 경험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아침마다 일어나 손이 움직이는 대로 글을 써보라고 권합니다. '모닝 페이지'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자신 속에 잠재된 창의력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글 자체를 더 나아지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77


독후 활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읽은 책은 자신의 사고와 성찰의 영양분이 되지 못할 채 지식의 창고에 무질서하게 쌓여가기만 한 것입니다.  83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합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정보를 취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책을 읽는 목적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사고를 확장시키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같은 목적은 결국 책을 읽고 사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유의 순간을 붙잡는 것이 바로 독후 활동입니다.  87


책이나 작가, 독자, 주인공을 데려와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건네는 것이 바로 서평입니다.  93




서평을 쓰는 이유는 자기 관점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서평과 관점의 관계는 세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첫째, 뚜렷한 관점으로 서평을 쓰는 경우. 둘째, 서평을 쓰면서 관점이 정리되는 경우. 셋째, 모호한 관점으로 마무리하는 경우 등입니다. 셋 다 나름의 소득이 있습니다.  99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저자 최진석 교수는 '인문적 통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가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102



'나의 서평은 신변잡기적인 내용은 거의 없으며, 책의 내용에 관한 정보만을 채워 넣는다. 쓸데없는 것은 생략하고, 유효한 정보만을 압축하여 넣는다. 그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읽을 가치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요약과 인용을 통해 책 자체로 말한다. 나는 서평을 쓸 때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의 몇 배나 되는 노력을, 소개하려는 책을 고르고 요약하고 인용하는 과정에 쏟아붓는다. 목표는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여, 펼쳐보도록 하는 데 있다. 사야겠다는 기분까지는 들게 하지 목하더라도 어떤 책인가를 알려주어, 생각지도 못한 지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지적 우주를 확대해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호라' 하며 마음속에서 놀라움의 탄성을 지를 수 있게 하는 한 구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136-137



서평 쓰기의 팁


① 책 내용을 '전부'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②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정하라. 할 이야기가 명쾌하지 않은 서평은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장황한 서평'은 고역이다.

③ 서평 쓰기 전에 밑그림 그리는 작업 즉, 구조 짜는 과정을 거쳐라.

④ 구조를 짜면서 '주제'가 살아 있는지 점검하라. 여기서 말하는 주제는 책의 주제가 아니라 서평의 '주제'다. 왜 이 서평을 쓰는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⑤ 서평의 '제목'에는 하고 싶은 말, 즉 주제가 드러나면 좋다.

⑥ 좋은 글은 고속도로처럼 빠르다. 중간에 '턱턱' 걸리거나, 장황하면 좋은 글이 아니다.  144-145



서평 구조 짜는 법

① 책을 읽은 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② 생각의 시간을 통해, 서평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정리한다.

③ 서평에 담고 싶은 키워드를 백지에 정리해본다.

④ 이 중 가장 하고 싶은 말 '한 가지'를 고른다. 나머지 키워드는 과감하게 '축소'한다.

⑤ 몇 단락으로 쓸 것인지, 단락 구성은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계획한다.

⑥ 단락 순서가'유기적으로' '매끄럽게' '단숨에'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⑦ 만들어 놓은 '구조'가 서평을 통해 하고 싶은 말, 즉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145-146



퇴고란 글을 더 좋게 만드는 일입니다. 한 번에 좋은 글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글쟁이들도, 작가들도 초고는 '쓰레기'라고 말할 정도로 퇴고는 필수 불가결합니다.  179


퇴고를 잘하기 위해 중요한 또 한 가지 조건은 글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일입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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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했었다. 

실패했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더 잘 실패하라. -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은 이렇게 단언한다. " 책을 별로 안 읽는 (더러는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겠다면서 남들이 자기 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그리고 연장도) 없는 사람이다."  15


책 읽기는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글쓰기의 동기는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극하고 촉발하는 것은 다양한 책 읽기이다.  16


읽기와 쓰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둘은 하나이다. 혹은 왕성한 책읽기는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다.  17


일관된 '맥락'에 따라 책을 골라 읽는 습관을 체득.

맥락의 독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책읽기 방법으로, 두서없이 아무 책이나 읽는 게 아니라 이 책과 저 책의 연관성 아래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18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따져 묻고, 자의식에 대한 투명한 인식에 이른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19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들은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렇게 우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온 이야기의 힘에 의해 망각되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여기서 기억이란 바로 삶의 다른 이름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겹쳐질수록 우리 경험의 시공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24-25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는 이렇게 말한다. "그 선택은 오히려 틈새와 주름들 안에, 즉 고독, 망각들, 시간의 경계, 열정적인 생활 태도, 응달 지역, 사슴의 뿔, 상아 페이퍼 나이프들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그 선택은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다." (<은밀한 생> 217쪽)

그렇다. 책읽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고독 속에 칩거하며 저마다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 자들이다.  25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의 <꿈꿀 권리> 는 그의 미술론을 모은 책으로 예술 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29


바슐라르에 따르면, 예술가란 빈둥거리다가 벼락같이 영감이 올 때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란 하루도 쉬지 않고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을 빈틈없이 직조해내는 사람이다.  33


닥치는 대로, 손에 걸리는 대로,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순서와 체계도 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독서 체험을 해보지 않은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작가들은 작품을 쓰기 이전에 남보다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들이었다." (정수복의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190쪽)  34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도 예술가들에게 있어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라는 말을 남겼다. "굶주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않도록 스스로를 더욱 통제할 필요가 있다.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그들보다 앞서 있다. 그래 맞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앞서 있기 때문에 제때 끼니도 떼우지 못할 형편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가 좀 좁혀져도 나쁠 것 같진 않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96쪽)  46


작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굶주림을 견뎌라!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만 비로소 작가의 길이 열린다.  49


미국의 농부이자 작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가 쓴 <시인이 되는 법>이라는 시의 첫 행은 "앉을 자리를 만들어라."이고, 두 번째 행은 "앉아라. 침묵하라."이다. 

글을 쓸 때 오롯한 고립과 고독은 필수 조건이다.  50


<글 잘 쓰는 기술>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작가와 고양이의 닮은 점들이다.

1. 계속 집중한다.

2.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3. 조용히 사냥한다(즉 기록한다).

4. 독립적이다.

5. 가만히 말없이 오랜 시간을 버틴다.  51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가혹한 풍랑이 자신만을 피해 가는 행운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보다는 웬만한 풍랑에도 끄떡도 하지 않을 단단한 체력과 강인한 심잘을 갖기를 바랄 일이다.  53


인생이란 길을 걷다보면 우회하거나 옆길로 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황은 성숙에 이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59


당신의 목적지가 저 멀리 있고, 더러는 거기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해도, 멈추지 말라.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오는 법이다. 다만 계속 걸어가는 법을 잊지 말길 바란다.  60


영국의 실존주의 비평가 겸 작가인 콜린 윌슨(Colin Wilson, 1931~2013)은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자,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살마을 가리켜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다른 시각에서, 너무 많이, 너무 깊이 세상을 보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의이와 진실한 삶을 찾는 탐구의 시작점이라고 말이다.  62


먼저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도 많이. 키플링의 재능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훈련이다. 플로베르가 했던 것처럼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파리에서 사용하는 미터 기준처럼 변하지 않는 절대 양심과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작가는 지적이고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평무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 한 사람의 작가 안에 있는 이 모든 자질을 끌어내어 그를 압박하는 모든 세력을 통과하게 하라. 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살아남아 자신의 글을 끝내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16-17쪽)  65


작가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작가로 키워진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66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쓸 수 없는 100가지 이유를 대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변명하지 않는다. 오직 묵묵히 쓸 뿐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모든 것은 글을 통해 말하라. 그리고 학습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  67


독일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의 주장처럼 천재의 독창성은 본질적으로 '보는 방식'에 나타난다. 사물이건 경험이건 새롭게 보아야 새롭게 인지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낯선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라!

쓰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만 한 편의 글이 나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편향이나 왜곡 없이 더 많이 사랑하라!  

'작가들의 미덕은 그들(선배 작가들)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비굴하게 저지르는 짓을 절대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누넹 비친 세상을 글로 옮겨놓는다. 그들의 작품이 솔직하고 활기가 넘치는 이유는 그 어떤 편향이나 왜곡 없이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 141쪽)  70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또 다른 덕목은 창의성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익숙한 현실을 낯설고 신기한 곳으로 생생하게 그려내라.

가장 나쁜 것은 관습적 사고에 기대는 것이다. 관습적 사고에 빠진 사람은 구태의연한 발상과 상투적 언어들을 쏟아낸다.

다르게 보기, 엉뚱하게 보기, 낯설게 보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려면 먼저 다양한 책읽기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폭넓은 정보의 감각 입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71


정보의 양과 창의성의 질은 대치으로 맞물려 있다. 학습을 통해 더 많은 인지적 정보를 습득하고, 이것이 쌓여 임계치를 넘어설 때 비로소 정보는 질적 전환을 이루고 여기서 양지르이 창의성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72


글쓰기의 1차 재료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다. 특히 실패와 시련과 같은 경험이야말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삶의 경험들이 들려주는 내밀한 목소리와 뜻밖의 직관, 찰나의 번쩍임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74


글쓰기에서 경험이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에 관여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7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경험이 삶이고, 삶이 곧 문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해명된' 삶, 따라서 실제로 체험된 유일하게 진정한 삶, 그것은 문학이다." 아니 에르노 역시 이말에 동의하며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또한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200쪽)  75-76


글쓰기는 한마디로 '웃으면서 하는 전쟁'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치르는 피와 종이와의 전쟁. 그 전쟁이란 곧 작가로서 관습적인 상상력과 사유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창성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후의 일전을 치르러 가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추상 개념들과 관념들을 무작정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구체적 경험에 귀를 기울여라.  77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보면 "당신의 무의식이 하루 1,000자(사실 분량이야 어느 정도이든 큰 상관은 없다) 쓰기에 익숙해지면 백지의 공포는 크게 수그러들 것이다. 규칙적인 글쓰기는 무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첫날이 지난 후에는 말이다."  79-80


글이 형편없고 엉망이라고 느껴질 때조차 계속 해서 써나가라. 멈추지 않고 꺠속 써나가기, 이게 백지의 공포를 넘어서는 방법이다.  81


나탈리 골드버그(Natalic Goldberg, 1948~)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모를 기록하고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골드버그가 제안하는 글쓰기 연습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손을 계속 움직여라. 

2. 마음 닿는 대로 써라.

3. 보다 구체적으로 써라.

4.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5. 구두점과 문법은 나중에 걱정하라.

6. 당신은 최악의 쓰레기라도 쓸 자유가 있다.

7. 급소를 찔러라.  81-82


문장을 어렵게 써서는 안 된다. 꼬아서도 안 된다. 어렴풋하게 써서도 안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실들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에두르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풀어놓아야 한다.  95


문장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피하라! 접속사도 빼버려라! 그것들은 마음에 쓸데없는 근심과 허위의식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생략해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것들은 굳이 없어도 그만인 잉여이다. 97


글쓰기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듯이 문자을 만들어 쌓는 것이다. 문장을 만드는 벽돌이란 곧 생각의 조각들이다. 이 생각의 구조적 배열을 통해 하나의 문장이 탄생한다. 매혹적인 문장은 구조화가 잘된 생각이 매끄러운 언어로 표현될 때 나온다. 즉 문장을 이루는 언어의 선택과 배열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 완벽한 질서는 바로 영감과 명확한 사고에서 나온다.  99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이다. 졸작은 누구나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써라,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101


문장은 간결할수록 좋아진다. 거기에 '힘'을 불어넣으면 문장에 생기가 돈다. 그런 문장을 만드는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  102


작가의 삶은 흔히 '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쓰는 것에 앞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독서와 발견의 시간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한 알의 씨앗이 발아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듯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은 착란의 시간이 필요하다. 불행과 농담이 뒤섞이고, 처억과 망각이 삼투하면서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그 어지럽고 어수선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111


글쓰기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노동이다.

글쓰기는 몸을 써서 하는 육체노동이다!  115


여행을 떠나라!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 떠나보면 알게 된다. 여행이 곧 글쓰기임을.

여행과 글쓰기는 어디서 출발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지만, 어디에 도착할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125


여행의 첫 번째 소득은 습관화된 삶의 양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낯섦 때문에 영감이라는 불꽃이 켜질 것이다. 더불어 익숙한 관습적 이해와 사유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사고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길을 잃었다면, 오히려 그것을 세계의 또 다른 측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라. 현명한 여행자는 모든 사물을 마치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127


여행은 세계라는 책을 펼쳐서 읽는 것이다. 즉 책읽기란, '떠나지 않고 하는 여행'이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의 <여행 정신> 112쪽)  128


쓰다 보면 안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부족한 것을 알면 그걸 채우면 된다.  133


모든 글에는 필적(筆跡 붓 필,발자국 적)이 남듯이 당신이 쓴 글에도 문체라는 내면의 필적이 남는다. 똑같은 필적이 없듯이 똑같은 문체란 없다. 물론 필적을 위조하듯이 남의 문체를 흉내 낼 수는 있다. 그것은 위조에 지나지 않는다.  135


문체란 자기만의 어조,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문장의 특색이다.  136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137


좋은 글을 찾아보라. 좋은 글은 글쓴이의 의도가 명쾌하게 드러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글들을 찾아 읽고 정확한 낱말과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라. 그 한 가지 방법은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138


좋은 문체는 사유와 감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확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141


쓴다는 것은 제 삶의 공백을 글쓰기라는 노동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왜 사람들은 쓰질 못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저를 대단한 사람, 유식한 사람, 좋은 사람, 혹은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44


뭐가 있는 체 해도 아는 체 해도 안 된다. 감정을 조작하지 말고, 보고 듣고 느낀 바대로 담백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솔직하게 쓰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  145


무의식으로 하여금 쓰게 하고, 의식으로 하여금 고치게 하는 것.

'쓰다'라는 동사는 작가들이 따라야 할 궁극의 도(道)이다. 결국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진실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 쓰고야 말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글을 쓴다. 저를 드러내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는 자는 영원히 글을 쓸 수가 없다.  149


작가들은 자기 작업의 결과물에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앞에 쓴 것들을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은 형벌과도 같다. 작가들은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다시 시도한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실패를 하기 위해서.  152


"나는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나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186 쪽)  153


글쓰기는 더도 덜도 아닌 육체적 행위이다. 몸안에 있는 것들을 몸을 통해 펼쳐내는 것, 이것이 글쓰기이다. 이말인즉슨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글쓰기에 잘 맞게 '포맷'해야 한다는 뜻이다.  

몸으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말 그대로 몸을 사용 한다는 것이다.  

둘째,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몸으로 겪은 것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것들, 즉 몸에 입력된 감각들로 글을 쓰는 것이다.  156-157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은 감동을 통해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새로운 사유로 읶느다. 즉 무엇이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83


문학은 지식을 주입하지 않고 향유로 독자를 이끈다. 문학은 세상의 대의들과 강령들을 외치지 않고 다만 있는 그것, 즉 삶과 세계를, 혹은 있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보여준다. 현실을 깐깐하게 따지고, 양심에 따라 고발하고, 모두가 대의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의심하고 물음을 던진다.  186


미국의 지성이자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문학은 (여기서 저는 단순히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자의식이고, 회의고, 양심의 거릮미이고, 깐깐함입니다. 또한 (이번에도 역시 그럴 뿐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래고, 자발성이고, 찬미고, 환희입니다."  187


김연수는 소설을 쓸 때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소설가의 일> 217쪽)  190


헤밍웨이는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가장 근본적인 재능은 '빌어먹을 상황들을 발견하는 장치'라고 꼽았던 그는 "글쓰기가 항상 힘들고 종종 불가능했었다."라고 고백했다. 세계적인 작가에게조차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209


소설은 간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험적 검증이다. 이미 지나온 길을 시시콜콜하게 적는 것은 역사이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여백을 탐색하는 자리이다. 역사가 소설이 되려면 상상과 허구가 섞여야 한다. 지나온 길이 지나갈 길이 되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나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것을 다시 보기한 것이다.  227


고양이들은 계파나 조직 따위를 만들 줄도 모르고 항상 독립적으로 생활하는데, 이것이 작가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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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라고 어느 현자를 말했다. 

남들이 백 번도 더 지나간 길에서, 틀에 박힌 생각에서, 그림엽서처럼 뻔한 풍경과 집단 수용 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연'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하고 본래의 권위를 돌려줘야 할 때가 왔다.  9




딴 데 가서 알아봐 - 프랑스인들은 '딴 데 가서 알아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성가신 사람을 멀리 쫓아낼 때 쓰는 이 표현은, 누구라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라면, 이 '딴 데 가서 알아봐'는 여행자의 지상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정작 당신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여행은 망쳤다는 뜻이다.  16-17


은인 - 한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만 한 방법이 없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친절과 배려는 가이드가 늘어놓는 청산유수 같은 설명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경계심을 품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분별이 관건이다.  21


출항 - 프랑스 소설가 폴 니장(Paul Nizan)은 "여행은 돌이킬 없는 상실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26


오지 - 낯선 지역, 어쩌면 덜 알려진 지역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 이런 지방은 관광지 바깥에 위치한다. 이처럼 가게 뒷방에 깊이 숨겨진 보석 같은 고장에 찾아가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뒤른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26



"여행은 젊은이를 가르치고 노년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



짐 - 비행기에 탈 때 짐이란 짐은 다 덜어내도 마음의 짐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니 불행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짐의 무게는 어느 항공사에서도 재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나 할까?  38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들 마음은 풍성처럼 가볍게 숙명은 결코 떨치지 못한 채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늘 '가자!라고만 말하네." - 샤를 보들레르(Baudelaire Charles, 1821~1867)



베르베르족 속담 - 여행은 자기 삶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41


지도 -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자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쉬아레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63


기분 전환 -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이폴리트 텐(프랑스의 비평가, 역사가)  71


사냥꾼 - 홀로 나와 바람 냄새를 맡으며 우연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은 '즉흥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길을 가다 자신이 원하는 것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만남도 얻는다.  71


길 위에서 - 여행은 삶과 같다.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서둘러 갈 권리도 있겠지만, 길가에서 경험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72


중국 속담 - 진정한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75


세상 끝에 사는 친구 -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세상 끝까지 가서 말 한마디라도 나눠보려고 훌쩍 떠나는 이가 아닌가!" 쥘 바르베 도르비이(프랑스의 소설가)  82


호기심 - 두뇌와 오감을 사용하는 여행이야말로 호기심 많은 사람이 맛보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경이에 대한 욕구가 없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길가에 널린 놀라움을 거둬들일 줄 모른다면, 자기 방에서 멀리 떠나 모험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87


현지에서 작업 걸기 - 어떤 나라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현지인과 살을 맞대보거나 적어도 감정이 오가는 관계를 만드는 게 최고다. 현지 풍속과 언어를 속속들이 알기 위한 이런 여행 방식이 기혼 여행자의 정조 관념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면, "항구마다 기다리는 애인 한 명씩은 만들어라"라는 유명한 말은 진정한 탐험가들이 응당 마음에 품을 법한 것이며 앎에 대한 목마름에 훌륭히 부합한다고 하겠다.  106


여행작가 - 여행작가와 글도 쓰는 여행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행 작가의 시선은 깐깐하다 못해 열정과 비판으로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글도 쓰는 여행자는 보통 타협적이고, 자신이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최상급 형용사들을 줄줄이 늘어 놓는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사로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111-112


깨어남 - "자신이 꿈꾸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다운 여행이 아니다. 이때 말하는 꿈은 정신을 잠재우는 꿈이 아니라, 땀에 흠뻑 젖고 목이 메면서, 수염이 자라 덥수룩해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며 깨어나게 되는, 이야기할 수 없는 꿈,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이를 먹는 것조차 멈춰버리는 그런 꿈이다." 다니엘 메르메(프랑스의 언론인, 작가)  120


청년 교육 - "여행은 젊은이들을 가르친다"라고 몽테뉴는 말했다.

현재를 눈부시게 만들고 자기 앞의 생을 환히 밝히기 위해 여행을 하다 보면 내면이 풍요로워진다.  125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 - 빅토르 위고(Hugo Victor, 1802~1885)



"또다시 우리의 울퉁불퉁한 여행 가방이 보도 위에 쌓였다. 우리 앞에는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길이야말로 삶인 것을." - 잭 케루악(Kerouac Jack, 1922~1969)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집에만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 러디어드 키플링(Kipling Rudyard, 1865~1936)



세계를 읽다 -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쪽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외젠 다비(프랑스 소설가)  170


거꾸로 여행 - "진정한 여행은 어딘가에 가는 행위 그 자체다. 일단 도착하면 여행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위고 베를롬(프랑스 작가)  171


책 - "모든 책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세상에 한 권뿐이며, 세계 모든 나라의 국경을 열어주는 8절판의 작은 책, 바로 내 여권이다." 알랭 보레(프랑스 비평가, 여행 작가)  177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 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 - 알퐁스 드 라마르틴(Lamartine Alphonse, 1790~1869)



"여행은 문과 같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현시렝서 나와 꿈처럼 보이는 다른 현실,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 기 드 모파상(Maupassant Guy de, 1850~1893)



무어인 속담 - 여행하지 않는 살마은 인간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196


앙리 드 몽프레 - "삶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며, 우연과 행운과 운명을 신뢰하라. 길을 떠나 다른 공간과 다른 희망을 정복하라. 그러면 나머비는 덤으로 주어지리라."  203


테오도르 모노 -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는 잘 알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길로 그곳에 이르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미리부터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203


미셸 에켐 드 몽테뉴 - "왜 여행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하는지는 잘 알지만, 내가 무엇을 찾는지는 잘 모른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두뇌에 문질러 다듬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해야 한다."  203


베트남의 해변 도시, 나짱 - '삶의 운치'를 즐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다른 모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당신을 떠밀어대는 안내책자의 프로그램은 그럴 계획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음 기회에... 이런 식의 여행은 '바보 같은 여행'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딱할 뿐이다.  206-207


프랑스 최대 여행사, 누벨 프롱티에르 - 오늘날 고객은 한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특별히 피하는 곳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이 특정 브랜드를 고수하지도 않고, 그저 일종의 소비요겡 이끌려 '기획 상품'만 찾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210


길을 잃을 자유 -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 랍비 나흐만 드 브라트슬라브가 남긴 이 경구는 진정한 여행자, 곧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에게 마음의 지주가 된다.  232


페르시아 속담 - 우리가 여행에서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기념품은 건강하고 무사한 자기 자신이다.  234


긴 여정, 짧은 산책 - 한가로이 거닐면서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우연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 그 자체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노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 덕분에 완전히 거꾸로 여행할 수 있게 된 만큼, 그러니까 한 걸음에 천리 길을 갈 수 있게 된 만큼, 수천 킬로미터 거리를 훌쩍 날아간 뒤에 한 발짝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여행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235-236


해변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임을 내세우는 곳은 수십군데지만,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42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Proust Marcel, 1871~1922)



추구 - "여행은 동기가 없어도 된다. 여행 그 자체만으로 족하다는 것이 이내 입증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이 당신을 만들거나 당신을 해체하는 것이다." 니콜라 부비에  252


만남 - "우리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  268


추억 - 여행은 추억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가장 빛나는 추억은 현재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때때로 망각할 정도다. 기억은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는 만큼 지금 이 순가에 머물기를 잊고 추억을 모으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껍데기만 남는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먼 곳까지 가서 찾고 느끼려했던 것들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야 한다. 받아들일 줄만 안다면 덧없는 한순간보다 더 지속적인 것도 없다.  2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나는 어딘가에 가려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여행한다. 그러니까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삶의 필요서오가 난처함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이다."  284


여행자의 인사, "스토 칼로" -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그리스의 인삿말이다. '스토 칼로 나파스(Sto kalo nappas)'의 준말인 이 표현은 선(善)과 아름다움을 향해 가라'라는 뜻이다. 여행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줄 만한 좋은 말이다.  285


티베트 속담 - 여행은 본질로의 회귀다.  296


투아레그족 속담 - 첫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발견을 하고, 두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299


관광객 - '관광객'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산책 수첩에 "어느 관광객의 회상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스탕달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후 그의 뒤를 이어 떠나는 방문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때로는 이들이 낯선 곳의 '점령자'가 되는 지겨엥 이르렀다. 이 점령자들이 자신이 방문하는 장소를 변화시킬 때 여행자는 새로운 발견의 여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여행자는 풍경에 어우러지기보다는 풍경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돼버린다.

여행의 민주화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진보의 정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온전한 풍경을 더 이상 일그러뜨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302-303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폴 발레리(Valery Paul, 1871~1945)



여행필수품 -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으로 이끄는 길은 없다. 행복이 바로 길이다.", "여행자여, 길은 바로 그대의 발자취다."  321


잔스카르 속담 - 여행은 그대의 아버지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찾았을 때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그 땅은 그대의 어머니다.  339


에밀 졸라의 겉치레 말 - "여행만큼 지성을 함양하는 것은 없다"라고 이 작가는 말했다. 관광산업의 유혹에 넘어가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 다니기를 낙으로 삼는 이들이 흡족해할 만한 말이다.  하지만 그저 움직였다고 여행을 한 것일까? 예전에는 어떤 사람의 지성이 그가 주파한 거리와 비례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불행히도 이런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341-342




옮긴이의 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떠나며 꿈꾸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여행과 정반대의 여행이 있다. 마음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이곳이 아닌 다른 하늘 아래로 몸을 피해야 숨이라도 겨우 쉴 듯한,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여행.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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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내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아들의 태도 역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고의 강자는 어머니라고 믿고 있었기에.

보통 남편들의 실상은 한심하다는 한다미면 족하다. 겉모습은 남자이나 속은 남자가 아니다.  46



회사의 부도와 해고 바람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난 자들은 시야가 좁고 자신감도 없는 탓에 또다시 고용인 신세로 돌아가는 것밖에 염두에 없다.  59


무언가를 추구하는 인생에는 미래가 있고, 도망치는 인생에는 과거밖에 없다.  60


국가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직장이 있어 당신이, 가정이 있어 당신이, 친구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이 있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사는 기본은 거기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인생의 기반과 원점이 확고하게 거기 있어야 친구도 있고,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국가도 있는 것이다.  76



자유와 변화에는 위험이 따른다.

진정한 젊음, 자립한 젊음은 농후하고 위험한 자유에만 존재한다. 그런 자유를 쟁취하려면 잠재능력을 다 끌어내고 온 힘을 다해 부딪치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90


정신적인 만족감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행복을 뒷받침하는 최소 조건에는 의식주 문제가 있다. 그리고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98


수입은 줄고 있는데, 크고 작은 영행이 이렇게나 유행하는 것도 집이 좁은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집에서 쉴 수 없는 것이 참기 어려워져 정기적으로 발작하듯 뛰쳐나가는 것이라면 여행은 풍요로움의 상징이 아니라 비참함의 증거라 해야 할 것이다.  99


매스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으로 정확하고 공정한 의견이 유지되는 요즘 세상에서는 절대 오보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는 것은 너무도 낙관적이다. 여전히 자립한 젊음을 박탈당한 국민.  104


그때그때의 풍조에 떠밀리며 영향을 받을 뿐이다. 

보도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통찰력을 발휘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들도 고용인 신세에 불과하다.  105


세상은 늘 경박하고 단순하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을 외면하고 논리를 생리적으로 꺼리며 통찰을 멀리하고, 직감과 정서와 같은 상대 못할 척도에 의지해서 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만큼 아주 중요하고 큰 문제를 결정하려 한다.  109



당신이 진심으로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야생동물로서의 진정한 젊음을 되찾아 늘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생애를 마치기를 진정 바란다면, 설령 객지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더라도 미소를 머금고 떠날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지금까지의 의존적인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게으른 자신과 철저하게 싸울 각오를 굳혀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또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좀 더 손쉽게, 빨리 변신할 수는 없을까 하는 조급함은 성공의 길을 스스로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자립한 젊음을 좌우하는 것은 의지의 힘이다.  121-122


육체를 방치한 채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은 해이한데 육체만 단단히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육체는 정신을 여실히 반영하는 거울이며, 정신은 육체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133


국가가 습관성이 있는 마약류를 단속하는 것은 그런 약물들이 단시간에 폐인을 양산하고, 그 의존성 환자들이 약물 값을 구하기 위해 범죄로 치닫는 비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밀매업자들에게 모이는 자금이 자본가들의 자금을 훨씬 넘어서 입장이 역전되기 때문이다. 또 충실하고 순종적이며 우수한 노예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그들의 헌신과 노동력으로 필요 이상의 풍족함을 누리고 있는 특정 소수 계층에 해가 미칠 것을 극도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단속만 하면 언젠가는 노동자 계급이 부당한 처우에 정의로운 분노르 폭발시켜 봉기로 몰고 갈 것이다. 노예들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적정선의 마약, 그것이 바로 술이다. 술 정도는 너그럽게 봐 줘야 자신들의 위치가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들 자신도 술에 지배당해 있는 것이다.  137


인생은 시련의 장이며 싸움의 연속이다.  142



당신이 추구하고 찾는 것은 현실의 거친 파도를 피하기 위한 매뉴얼과, 현실 속의 감동과 동전의 양면인 공포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가상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164


현실은 별거 아니다. 아무 재미없는 현실은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그렇게 골치 아픈 세상일에 일일이 관여하고 신경 쓰면서 나이를 먹어 가다니, 딱 질색이다.  171


당신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이 있는 자는 당신 자신뿐이다. 그러니 당신 고뇌의 일부분이라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나누자고 해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타인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문제로 벅차기 때문이다.  179


영웅을 응원하기 전에, 당신은 자신을 응원해야 마땅할 것이다.  180



진정한 명예는 있는가. 물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다.  191


청년기에 혼자서 하는 여행만큼 정신에 강렬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서재에 틀어박혀 수춘 권의 책을 독파했다 한들 절대 얻을 수 없는 발견이 있고,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중대한 무엇과의 만남도 있다.  193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럴싸한 것을 하고서 그것을 했다고 생각지 말라고. 표면적인 자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립을 지향하라고. 타인에게 보이거나 폼을 잡기 위한 겉모양뿐인 자립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타인의 말을 우려먹기만 할 뿐 실천이 따르지 않는 자는 배우도 아니면서 화장을 하고 싶어 하는 남자처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얼간이라고.  195


끝까지 노력하지 못하고 도주에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범인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엉터리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자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립의 진가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아주 흔한 좌절이지, 범인의 정의 운운하는 것은 어린애 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198


무의식중의 끊임없고 쉴 새 없는 사고와 상념은 산 자의 대표적인 특질이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이다.  203


위인도 없거니와 범인도 없다. 있는 것은 자신을 버린 자와 자신을 주워 든 자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자는 진정 살아 있는 자이고, 타인에 기대 살아가려는 자는 가짜 산 자이다. 전자는 '살아 있는 자'이며 후자는 '살아 있지 않은 자'이다. 

요는 살아 있을 것이냐, 살아 있지 않을 것이냐이다.  207


자립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첫째 조건. 그것은 절대 속지 않는 것이다. 속지 않으려면 모든 권력과 권위를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수 조건이다.  208


타인에게서 강요된 위치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은 스트레스에 지나지 않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 얻은 지위에서 오는 긴장감은 생기의 분출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9



국가의 법률이 있기 전에 나 자신의 법률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자를 우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즉, 누군가가 멋대로 정한 일을 일일이 얌전하게 따를 마음은 없다는 뜻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세상에 맞추는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이라서, 예로부터 내려온 관습이니까, 일본의 문화니까, 그런 추상적인 이유로는 절대 따르고 싶지 않다.  222


존재하는 자로서의 자아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가지고 자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본능인가. 아니면 본능에 반기를 드는 이성인가. 또는 정신까지 포함한 육체 전부인가. 사실은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지나치게 기본적인 이 질문에 대해 철학도 의학고 물리학도 지금까지 절대적인 해답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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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 <성역><음향과 분노><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포크너는 모든 이야기꾼들에게 도움이 될 세 가지 황금률을 제시한다.

첫째, 등장인물 창조를 하나의 장사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야기 전개에 따라 인문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등장인물에 대한 윤곽이 머릿속에 대충 잡힌 다음에는 그들 스스로 나아가도록 내버려둘 필요도 있다. 포크터는 "일단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들은... 순식간에 튀어나간다. 작가는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제때 받아 적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해 그들을 뒤쫓는다... 이야기의 주도권은 그들이 쥐고 잇다... 작가는 그저 그들을 따라 다니며 받아 적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둘째,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훌륭한 등장인물은 입체적이고 진짜 살아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영향력을 발휘한 수 있다."라고 포크너는 말했다. 그런 인물을 만들려면 사람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포크너가 말했듯이 "대화를 쓰는 법을 배우는 길은 딱 한 가지뿐이다.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귀를 기울여라."

마지막으로, 상상력과 함께 자신의 영감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상력에 관한 포크너의 조언은 뇌의 시각적 본질과 이미지가 무의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현대의 우뇌식 사고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내 경우, 이야기는 하나의 아이디어나 기억 혹은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그림에서 출발한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사실 별것 아니다. 그런 아이디어나 기억, 그림이 떠오르는 순간까지 나아갈 수 잇는지,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그로 인해 어떤 사건이 뒤따라올지 설명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219


포크너는 등장인물과 더불어 주제도 작가의 또 다른 '장사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포크너는 버지니아 대학에서 두 학기 동안 교내 상주 작가로 머물렀다. 수업 시간 도중 포크너는 주제와 관련하여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메시지는 결국 장인이 사용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사여구나 구두점, 그런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종종 자신을 목수에, 그리고 작가라는 직업은 닭장을 만드는 일에 비유하며 자신을 낮췄다. 목수처럼 기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일정 기간 동안 도제 생활을 거쳐야 하며, 장사 수단을 터득하려면 수많은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220




어니스트 헤밍웨이 - <노인과 바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헤밍웽이가 미국 산문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

대부분의 비평가가 동의하는 헤밍웨이 문체의 특징은 네 가지다. 짧은 문장, 종속절을 거의 보기 힘든 문장, 형용사나 부사 대신 명사와 동사에 의존하는 문장, (일부에서는 남용이라고 부를 만큼) '그리고(and)'라는 단어의 지나친 사용.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빠진게 있다. 헤밍웨이는 전통적인 구조적 요소들과 등장인물 개발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226


헤밍웨이는 문장을 짧게 썼다.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이다.  228

문장을 짧게 썼던 또 다른 이유는 극적 효과를 위해서였다.  229


헤밍웨이 문체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빠른 문장의 속도다. 문장의 속도란 소리를 내어 읽든 속으로 읽든 문장이 읽히는 속도를 말한다. 

헤밍웨이가 문장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더 쉽게 읽히기 위해 더 짧은 단어를 사용했다. 둘째, 쉼표를 생략했다.  230


헤밍웨이는 단순한 앵글로 색슨 계열의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 용어나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지만 대개는 구어(口語)중에서 가장 쉬운 단어를 선택한다.  233


단순한 어휘를 사용하면 가독성이 크게 높아진다.  234


세부묘사나 색깔을 사용할 때는 사람의 머리가 동시에 여러 가지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한 장면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 때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한 장면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 때 세부묘사는 서너 가지로 제한하는 게 좋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라.가끔은 주저하지 말고 특정 분야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라.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라도 상관없다. 끝으로 색깔을 자유롭게 사용해보라. 한 가지 색깔을 반복하거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색깔을 대비시키면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236


글을 쓰다 말고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이 써놓은 글을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자주 그래봤는가? 실제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자신이 써놓은 글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묻고 있다.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왜 그래야 하죠? 그렇게 떨어져서 보면 글씨가 너무 작아서 제대로 읽을 수도 없지 않나요?"

페이지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헤밍웨이의 작업 비밀 중 하나였다. 그는 빼곡하게 글이 들어찬 문단을 싫어했다. 그래서 문단이 옆으로 퍼지면서 뚱뚱해진다. 싶으면 슬쩍 대화를 끼워 넣어 여백을 만들었다. 그가 특히 즐겨 쓴 방법은 두 인물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게 한 것이다.  240


의식적으로 페이지 모습을 다듬어라. 비교적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이다.  242


우선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에 어울릴 만한 인물을 몇 명 떠올린다. 그 다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의 특징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보라. 목소리의 특징이라든가 눈썹의 모양이라든가 친구와 대화를 나눌 대 의자에 파묻혀 이쓴 독특한 자세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그 인물이 이야기와 어떻게 섞일지, 이야기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묘사해보라. 인물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장면이라면 당신의 모델이 실제 생활에서는 그런 일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라. 이런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을 생생함과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오로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는 절대로 그런 생명력을 내뿜을 수 없다. 

오로지 상상으로만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쓰기 마라. 현실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토대로 인물을 만들어라. 그렇게하면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곳을 흐르고 있던 당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살아 솟구쳐 오를 것이다. 

때로는 하나의 등장인물을 만드릭 위해 두 사람 이상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헤밍웨이가 즐겨 사용하 방법이기도 하다.  245-246


헤밍웨이의 소설은 도입부보다 결말이 훨씬 인상적이다.  

소설의 성공 여부는 무엇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말이다. 대개의 경우 결말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한다. 헤밍웨이 소설의 결말은 거의 항상 중요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  247


마지막 장면을 상징적 의미로 채우고 최후의 사건에 대한 전조를 미리 깔아놓는다면 당신도 헤밍웨이와 같은 결말을 얻을 수 있다. 독자에게 미묘한 암시를 흘려 결말을 예고하라. 최후의 사건에 대해 주변 인물의 반응을 보여주고 중심 인물에게 깨달음을 주어 결말을 강조하라. 보편적이거나 영적인 표현을 통해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어 결론을 강화하라. 상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상징을 사용할 때는 처음부터 심어두거나 <킬리만자로의 눈>의 하이애나처럼 결말에 이르기 전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이 좋다. 이런 장치를 통해 결말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고 독자에게는 더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될 것이다.  248-249




마거릿 미첼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줄거리는 비틀기와 반전의 연속이다. 비틀기와 반전은 독자가 이야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만든다.

줄거리가 비틀린 첫 번째 이유는 미첼이 만든 등장인물들이 예측 불허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줄거리 비틀기는 제법 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극적 긴장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56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었을까?

첫째, 심리적 거리를 조절하낟. 미첼은 심리적 거리를 좁히며 여주인공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강렬한 느낌이 실린 언어를 사용한다. 이 언어가 독자의 가슴에 울려 퍼진다. 둘째, 자신의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생각하면서 장면을 구성한다. 이는 심리적으로 독자의 감성에 호소한다.  259


천천히, 단계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느낌표와 함께 등장인물에 다가감으로써 치밀한 계산 아래 심리적 거리를 조절한다. 서두르거나 갑작스럽지 않다.  262


독자를 매혹시키는 미첼의 또 다른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263


미첼은 설득력 있는 소설의 배경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발을 다쳐 꼼짝 못하는 동안 미첼은 남북전쟁과 관련되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덕분에 미첼은 마치 직접 그곳에서 전쟁의 황폐함을 겪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조지아 주를 묘사할 수 있었다. 미첼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화폭 위에 인간 드라마와 사랑, 결혼과 아이 양육 같은 문제를 펼쳐 보인다. 이는 전쟁 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우선 전쟁 장면을 묘사한 뒤 등장인물을 그 그림 속에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화가처럼 인물을 풍경의 전경(全景)에 놓고 묘사한다.  266


소설 작업의 많은 부분은 언어가 아니라 시각적인 특성에 의존한다. 글쓰기는 그림 그리는 작업과 비슷하다.  268




이언 플레밍 - <카지노로얄><죽느냐 사느냐>등 제임스본드 시리즈 12권

플레밍의 소설이 성공을 거둔 비결 가운데 서스펜스와 흥미진진한 소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흔히 무시되고 넘어가지만 그의 천재성이 발휘된 또 다른 분야가 있다. 바로 호화로운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능력이다. 플레밍은 정확한 세부묘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세부묘사를 통해 감각적 쾌락만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과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한마디로 그는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작가였다.  292


기교를 적절히 활용하면 당신도 플레밍처럼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작가가 될 수 있다. 

 - 음식을 자세하게 묘사하라. 단, '고급' 음식이어야 한다.

 - 등장인물에게 많은 술을 마시게 하라. 단, '고급' 술이어야 한다.

 - 멋있는 옷에 대해 감각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라.

 - 등장인물이 편안하게 쉬면서 마음것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줘라.

 - 간간이 성적인 것을 빗대어 묘사하거나 언급하라.

 - 특정 브랜드나 고급 차량, 이국적 장소를 언급하라.  295




J.D. 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프래니와 주이>

샐린저는 글을 쓰는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318


샐린저의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샐린저처럼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샐린저의 등장인물들처럼 유별난 구석을 가진 인물이어야 하고 검증을 거친 인물이어야 한다. 둘째, 그들이 누구이고 소설 속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기 위해 등장인물의 정체성과 성격,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321-322


호젓함과 고립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해준다.  327


놀라움은 신중하게 계획되고 전체 이야기와 적절하게 통합되었을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놀라움을 통해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있느냐 없느냐는 '씨뿌리기(planting)'에 달려 있다. '씨뿌리기'는 나중에 벌어질 행동이나 사건으로 인한 결과를 이야기의 초반부에 의도적으로 흘려놓는 것을 가리킨다.  330


의미 있는 충격이야말로 좋은 문학작품을 읽는 기쁨 중 하나이다.  331




레이 브래드버리 -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화씨451>

브래드버리는 시를 읽고 직접 써보는 것이 더 나은 문장가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 믿는다.  334


"매일 시를 읽어라. 시는 속이 꽉 찬 은유이며 직유다. 은유는 일본의 종이꽃처럼 활짝 피어오르며 거대한 형태를 드러낸다."고 브래드 버리는 조언한다.  335


브래드버리도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초고를 쓸 때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걸러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겹쳐 쓰기를 한다. 나중에 수정할 때 자랄내고 편집할 요량으로 문장이나 대화마다 다양한 대안을 적어놓는 것이다.  337


소설 한 권 분량의 원고를 1년 동안 묵혀 두고 쳐다보지 않는 것이다. 1년 후 다시 꺼내서 읽어보면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이런 과정은 작품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이 방법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특히 여러 개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작가에겐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한 작품이 완성되면 다른 작품으로 바꾸고, 그 작품이 완성되면 책상에 넣어두었던 첫 번째 작품으로 돌아가 작업을 하라.

그는 수정을 할 때 한 페이지에서 적어도 한 단어는 바꾸겠다는 의도로 원고를 훑어본다. "내 최종 원고는 항상 수정 작업에서 트집 잡을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본 결과물이다. 나는 한 페이지에서 적어도 한 단어는 바꾸려고 한다. 그렇게 원고를 훑어본 다음 모든 단어가 완벽하다고 생각되면 비로소 출판사에 보낸다."  339-340


단짝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첫 번째 이유는 두 인물을 비교하여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 소년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심보 깊은 인물 묘사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정반대다. 매우 미세한 두 인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등장인물의 미세한 심리적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343




스티븐 킹 - <샤이닝><미저리><쿠조>

아주 간단히 말하면 서스펜스란 독자가 미래에 벌어질 어떤 사건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불안감을 갖게 하려고 애쓴다. 때로는 단순히 독자가 간절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게끔 만드는 것을 서스펜스라 부르기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그렇겠지만, 스티븐 킹의 서스펜스는 약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데서 형성된다. 말하자면 킹의 서스펜스는 누넹 잘 띄는 송곳 같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단순한 호기심도 아니고 제인 오스틴의 기대감과도 다르다. 키의 서스펜스에 빠져든 독자는 손톱을 물어뜯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심한 근심에 휩싸인다.

이야기에서 서스펜스의 중요성은 백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의 모든 독자들이 서스펜스를 '즐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410


서스펜스는 잠재적으로 위험에 처한 등장인물에게 독자의 고나심을 유도하는 기능도 한다.  413


스티븐 킹의 작푸을 분석해보면 서스펜스를 만들 때 항상 세 단계로 구성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킹은 독자가 궁금해 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언급이나 단서를 흘린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일'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킹은 이야기의 전개상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는 지점에서 서스펜스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킹의 소설에서 서스펜스는 주로 독자들을 걱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기억해두기 바란다. 쉽게 말해 킹은 등장인물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 때문에 독자가 불안해하길 원한다  414




글을 마치며

모방은 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법이었다. 실제로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거의 모든 작가들은 글을 쓸 때 공공연히 이전의 작품을 모방했다. 로마의 가장 대표적인 수사학자였던 퀸틸리아누스는 진심으로 모방을 장려했다. 현대의 어느 역사가는 모방에 대한 퀸틸리아누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의 작가들이 뒤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모방이란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다. 훌륭한 모방은 원작의 정신적 밑바탕에서부터 단어, 편집, 태도, 주제 선택에 이르기까지 앞선 세대의 작가들이 지닌 훌륭한 점을 통틀어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단 하나의 작품을 모델로 삼아 글자 하나, 표현 하나까지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은 창조적 모방이 아니라 표절이며 맹종이다. 작가는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 더 나은 것을 보여주거나 더 낫진 않더라도 나름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해, 모델로 삼고 있는 작품의 정신을 내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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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도 모방이다.  13

이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비결을 배우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독창적인 문체와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15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써라 - <고리오 영감><외제니 그랑데>

글이 어떤 리듬을 타고 흘러갈 수 있도록 작가가 할 수 잇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의 글이 독자의 귀에 음악처럼 들릴 수 있을 때까지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19


때로는 서툰 문체도 시간이 지나며넛 나아진다. 많이 쓸수록 잘 쓰게 되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뭐든지 블로그에 올려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글쓰기 실력은 분명히 향상된다.

우리가 발자크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가능한 한 많이 써라.  22


글에 힘을 싣고 싶다면 발자크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를 집어넣어라.  23


발자크의 첫 번째 조언은 수식어구는 반드시 감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의 격해질수록 수식어구의 효과도 더욱 강력해진다.  26


등장인물이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 수식어구는 생기를 불어넣고 잔잔하던 이야기에 확실한 재미를 준다. 

이야기에 속도가 붙고 등장인물이 분노, 교만, 자만, 갈망, 사랑, 시기, 증오와 그 밖의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잠잠하던 이야기의 돛을 뒤집을 바람과 독자를 위한 수식어구를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독창적인 수식어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27


발자크는 자신을 외부세계와 격리시키고 창작에만 전념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블라인드를 친 방에서 살았던 것이고, 또 하나는 모두 잠든 한밤중에 작업을 한 것이다.  28


요컨대 작가로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바로 사람들로부터의 격리와 집중이다.  29


오늘날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작가들에게 자세한 설명보다는 날카로운 직관과 통찰을 기대한다.  37




찰스 디킨스처럼 써라 - <황폐한 집><돔비와 아들><데이비드 코퍼필드><위대한 유산>

셰익스피어 이래 디킨스만큼 많은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는 없다. 

셰익스피어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음악을 연상시키는 리드미컬한 언어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40


디킨스는 인물을 다채롭게 묘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햇다.  41


식상한 것에 안주하지 마라.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특히 유머를 잃지 말고 터무니없는 상상과 풍자를 활용하라. 자신이 만든 인물을 조롱하고 익살맞으며 아이러니한 별칭을 붙여라. 그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묘사하라. 그러면 독자도 당신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며 즐길 것이다.  42


갈등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디킨스의 비결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풍자와 외양 묘사, 그 밖의 다른 점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인물을 그려낸다. 

인물 묘사는 짧을수록 좋다.  44


머릿속에 떠오르는 엉뚱한 단상들을 끝까지 발전시켜 보는 방법이있다. 등장인물을 과장해보고 풍자적인 말투를 사용해보라.  46


등장인물의 감정을 만들려면 작가 자신이 먼저 그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저 말고 자신의 추억을 이용하라.  48


주류 소설에서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려면 작가는 이야기의 일부를 독자가 모르게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정보를 찔끔찔끔 흘려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50




허먼 멜빌처럼 써라 - <모비딕><타이피족><마디>

시처럼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 싶다면 멜빌의 소설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  53


멜빌과 같은 시적 문체를 쓰려면 우선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물론 아니다. 소리와 감각에 반응하는 어느 정도의 예술적 감성만 있으면 충분하다.  58


멜빌은 상징을 사용하는 법을 공부하기에 좋은 작가다.  61


작가라면 독창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기초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6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백치><죄와벌><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지하로부터의수기>

구체적으로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장면을 설정하고 A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한 다음 B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72


전환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라면 누구나 터득해야 하는 필수적 기교다.  76


'나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리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도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는 파티가 열리는 방을 찾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장면 전환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어느새 앞 장의 마지막 장면과는 다른 장소에 와 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화자의 의식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장소로 데려왔음에 주목하자. 이로써 독자는 물리적 묘사와 사실상 최소한으로 사용되고 그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세련된 테크닉)  77


명심할 것. 장면 전환은 빨라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정서적 요소를 보태가. 기왕이면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의 정서적 요소를 보태라. 기왕이면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의 정서적 요소가 좋다.  79


그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할 때 종종 화자 스스로 자신의 병약함이나 노쇠함, 나약함 등을 인정하게 한다. 

'나는 병자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간장이 나쁘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는 나 자신의 병에 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내 몸의 어디가 나쁜지 그것조차 확실히는 모르고 있다. 나는 의학이나 의사를 존경하고는 있지만 치료라는 걸 받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여태까지 받아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나는 극단적인 미신가이다. 여태까지 받아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나는 극단적인 미신가이다. 이를테면 의학 따위를 존경할 만큼 미신가란 말이다.(나는 미신가가 되지 않아도 될 만큼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지만 그래도 역시 미신가이다.) 좋다. 오기로라도 의사의 치료 같은 건 받지 않을 작정이다.'

스스로 문제가 많은 인간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이 인물에 대해 거부감보다 호기심이 더 커진다.  80-81


깔끔하게 정돈도니 산문이 아니라 실제로 말을 하는 듯한 글을 통해 독자와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한 평론가는 '화자의 태도는 독자와 직접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까지 주고, 화자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법에서는 문어(文語)보다는 즉흥적인 구어(口語)가 더 쉽게 연상된다. 문장과 단락은 제대로 된 문법을 비켜가기 일쑤며 균형 감각도 찾아보기 힘들다.'  82


도스토예프스키는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인물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보통 키에 호감이 가는 용모를 지닌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지만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83


도스토예프스키는 좀 더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인물 묘사를 위해 묘사에 감정을 집어넣었다. 

외모와 인물의 의미도 연결시킨다. "외모상의 자세한 특징 하나하나가 단지 그 인물의 외형 묘사를 위해서만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모는 은연중에 드러나는 내적, 정신적 세계를 상징한다."  86


외모를 묘사할 때 감정과 상징적 의미를 첨가하는 그의 방법을 모방하라.  88




이디스 워튼 - <이선 프롬><순수의 시대><아이들>

크리스토퍼 릭스도 지적했지만 밥 딜런 콘서트에 갈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은 밥 딜런뿐이다. 그가 객석에 앉아 있다면 콘서트는 열릴 수 없을 테니까. 마찬가지로(그리고 슬프게도) 작가는 순수하게 독서를 즐길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한 말을 바꿔 말하자면, 모든 위대한 작가는 오직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읽을 때 항상 작가로서 읽는다는 이야기다. 분석하고 조사하고 당신의 배를 아프게 만든 다른 작가의 비밀을 파헤치느라 순수한 독서의 기쁨을 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작가가 짊어진 이러한 저주는 반대로 작가의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124




서머싯 몸 - <인간의 굴레><달과 6펜스><면도날>

등장인물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을 균형 있게 등장시키는 것이다.  132


가장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기교 중의 하나가 빠르고 느린 장의 교차 편집이다.

극적인 행동이 중심이 되는 장과 설명이 중심이 되는 장을 번갈아 배치할 때 독자의 즐거움은 두세 배 늘어난다.  134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으로 등장인물을 밀어 넣는 방법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한 방법이라면,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광고'하여 독자의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138


몸의 두 가지 기법은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두면서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첫 번째 기법, 등장인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 넣고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면서 등장인물에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한다. 그 결정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만큼 까다롭고 힘든 결정이어야 한다.  139


등장인물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어깨 위에 선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을 요구하라.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서 비롯된 새로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독자는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  140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이용할 때 그 경험과 관련된 실존 인물이 글 속에 묘사된 인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눈을 속이려면 두 명의 실제 인물을 한 사람의 가상의 인물 속에 섞어놓거나 직업이나 장소를 바꿔줄 수도 있다.  145


언젠가 몸은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을 겪어 봐야 한다. 우여곡절은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서 찾아라. 때로 정강이가 까질 수도 있지만, 밖으로 나가서 찾아라. 때로 정강이가 까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경험을 언젠가는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서른 편의 편의 희곡을 포함하여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쏟아낼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수 많은 인생 경험과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글쓰기가 있었다.  146


자각로서 몸의 생활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은 두 가지다. 첫째,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글과 더 성공적인 작품을 쓸 수 있는 지름길이다. 둘째, 개인의 경험을 작품 속에 녹여야 한다. 그러려면 피상적인 인생을 뛰어넘어 다양한 인간관계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한 경험을 해본 것만으로도 당신의 작품에 그 경험들이 반영될 수 있다.  147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 <유인원 타잔><화성의 공주><금성의 해적>

버로스는 최대한의 재미를 주기 위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급 조절을 하려 버로스의 방법을 귀담아 둘 만하다.

첫째, 서머싯 몸을 이야기할 때 이미 살펴봤듯이 버로스도 빠르게 전개되는 장면이 끝난 후 잠시 한숨을 돌리며 극적인 휴식을 취했다. '극적인 휴식 혹은 극적 대비'는 효과적인 완급 조절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과의 차이점이라면 버로스는 속도를 줄이는 대신 지금까지 진행하던 줄거리에서 그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새로운 줄거리로 이동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방법이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점은 장과 장이 바뀔 때다  155


두 번째 방법은 문학작품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으로 어떤 특정 부분에서 행동의 속도를 올렸다가 그 다음에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르는 방법이다.  156


갈등은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엔진이다.  160




프란츠 카프카 - <심판><성><변신>

애초에 카프카가 <변신>을 쓴 의도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66


다른 작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방을 통해 다른 작가로부터 '한 가지 좋은 점'을 배울 수 있고, 나머지는 자신에게 맞게 변형시키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수사학자들이 항상 최고를 모방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방은 위대한 작가보다 나아지고 마침내 그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183




D.H. 로렌스 - <채털리 부인의 연인><사랑에 빠진 여인들><아들과 연인>

로렌스는 '올바른 형식이란 게 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사람에 대해 직관적으로 파악한 것을 글로 옮길 줄 아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조건, 즉 정확한 형식과 날카로운 직관은 좋은 대화를 쓰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로렌스의 방법을 이해하면 초보 작가들조차도 생생하고 지적인 대화를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물론 정확한 형식이다.  187


'그는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눈동자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벌거벗은 눈동자 속에 그 남자가 담겨 있었다. 그 눈동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무지개 같았다. 마치 찢어진 필름처럼, 그러나 왠지 침울해 보이기도 했다. 물에 뜬 기름처럼.'

로렌스는 눈종자와 얼굴과 감정을 묘사하는 적절한 단어를 기가 막히게 찾아낼 줄 안다.  189


작가는 자신의 상징을 찾아내야 한다.  199


상징이란 사람이나 장소, 사건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상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상징은 더 큰 개념과 가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작품에 무게를 더하고 더 풍부하고 진지한 느낌을 준다. 독자는 종종 상징이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주제를 구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상징이 주제와 잘 섞인 작품은 독자를 더 만족시키며 더 문학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자연의 삶을 상징하는 사냥터 관리인의 숲과 무기력한 삶을 상징하는 대저택이 없었어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설이 되었을지 의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산업화하는 세계도 훌륭한 상징이다. 상징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로렌스는 독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입한다.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추악하로 산업적인' 탄광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다고 비난한다. "사람들한테서 자연의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간 게 누군데요? 사람들에게 이 산업사회의 공포를 가져다준 게 누구죠?"

주저 말고 가끔은 독자의 옆구리를 쿡 찔러라. 그렇게 해서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장인물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놓게 하라. 작품에 등장하는 상징을 그 열변 속에 포함시켜라.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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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는 것쯤 아무 문제가 아니다

빌터너: 고장난 나침반을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항해를 한단 말이야?

깁  스: 그래. 이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키지 않아. 그런데 우리가 북쪽을 찾는 것도 아니잖아?   -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중  9



사람들은 '길 잃기'를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여행을 떠나기 전 '길 잃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이를 피할 수 있는지 정보를 교환한다. 사람들은 '길을 잃는 것'에 대해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길을 잃었다는 상황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길을 잃은 상황을 스스로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10


- 길을 잃는 것은 시간을 절약해준다


- 길을 잃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현대인에게 모험을 즐긴다는 것은 값비싼 취미다. 그리고 세계화로 인해 이제 세계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든 ... 자기 나라와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낯선 여행지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미리 찾아보고 정리할 수 있다. 모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피해 모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지로 떠나는 것이다.  12

다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모험을 하고 싶은 순가, 지도나 여행 안내 책자, 그 밖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돈을 절약하면서도 제대로 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13


- 길을 잃는 것은 휴가다

사람들이 휴가 주에도 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분분하다. 1년 중 비록 며칠일지라도 시간이라는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것은 힘들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겁을 먹게 되는 걸까? 여행사의 문제일까?  14


- 길을 잃어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지도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도를 보는 데 쏟는다. 하지만 지도 없이 여행을 떠난 사람은 주변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진귀한 동물도 더 자주 만날 것이고, 오래된 성곽의 흔적도, 수정처럼 맑은 못하는 주변 지역을 확대경으로 살피듯, 세밀화를 보듯 관찰하게 된다.  15


- 내비게이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길을 잃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않을까'이다.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해결책을 알고 있다

격투기를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낙법, 바로 넘어지기 기술이다. 카약을 타는 사람은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거나 피하는 방법 대신, 카약이 뒤집어졌을 때 몸의 균형을 바로 잡는 기술을 제일 먼저 연습한다. 같은 이유로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방향 감각을 찾는 법을 연습하면 된다.  17-18


길을 잃어서 죽는 일은 없다.  18


본능을 믿고 몸을 맡기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각적이어서, 위기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숨겨두었던 구체적이고 세세한 방향 찾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겸손해지고 현실적이며 독단적이지 않는 세계상을 열게 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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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글쓰기 강의 (上) 보러가기


3부 독자 생각하기

  11장 재료 개발을 위한 도구 .. 210

  12장 독자와의 관계 .. 232

  13장 이야기 들려주기 .. 259

  14장 목소리 .. 281

  15장 말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293

4부 의무적 글쓰기

  16장 그것을 써야 하나요? .. 302

  17장 글로 옮기기 .. 312

5부 궤도 유지

  18장 작가의 길을 따라가기 .. 360



정보 조각이나 관찰한 것, 상상한 것, 아이디어 등등 내가 노트에 모은 재료라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즐긴다. 마치 땅에 뿌린 씨를 생각하는 농부의 심정과 같다. 하지만 모든 씨가 싹이 트는 것은 아니므로 많은 씨를 뿌릴 필요가 있다. 싹이 튼다고 모두가 완전한 열매로 잘 자라는 것 또한 아니다. 아주 작은 식물도 자라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을 필요로 하듯이. 이 훈련 역시 가볍게 출발할 때라도 능력 개발을 위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법이다.  211


글쓰기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치우는 작업이 아니라 단계저긍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 직업 작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글을 얻기 전에 많은 초고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212


자료를 모은 다음 해야 할 단계는 수집한 자료 전체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며-사용하고 싶은 특정 자료를 결정하는 것- 그밖에 생각나는 것이 또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바로 이때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기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단계에서 계속 내용을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나 정보, 이미지 같은 자료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213


다음 훈련은 여러분이 모은 재료와 구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전체를 연습해보고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 것이 있으면 계속 활용하라.

1. 선택

수집한 자료를 판단을 배제하고 읽을 때는 다음 두 가지를 한다. 첫째, 단어나 구절, 아이디어, 이미지, 정보 조각 등 어떤 것이든 눈에 띄는 것에 표시를 한다. 뭔가 힘이 담긴 것으로 보이거나 자신을 향해 "나야 나! 나를 써먹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찾아라. 둘째, 자신이 쓴것을 읽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주목하고 그것을 적는다.(원한다면 노트의 여백이나 다음 페이지에 적어도 좋다.) 이어 2~3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연습을 하면서 무엇을 주목했는가? 이 재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가?

2. 질문 

수집한 재료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주제에 관해 모은 것은 모두 읽어본다. 선택 연습을 했다면 추가한 새 자료도 읽어본다. 이번에는 재료를 호기심과 연관시켜본다. 이때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질문의 목록을 작성한다. 이 질문은 재료 자체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눈은 무슨 색깔이었지?' '왜 앨버트 삼ㅌ촌은 고양이를 호수에 던졌을까?'하는 것들이다. 또 이런 질문은 재료를 발전시키고 싶은 방법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호수를 더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라든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까?' 하는 것들이다. 어쨌든 계속 펜을 놀린다. 질문을 제기하기 위해 자신의 호기심과 작가로서의 직관을 믿어라.

질문 목록을 작성했다면 잠시 긴장을 풀고 휴식한 다음 다시 목록으로 눈을 돌려 재미잇어 보이거나 도움이 될 것 같은 질문에 표시를 한다. 그런 다음 그중 한두 개를 골라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요해 대답을 시도한다.

3. 초점찾기

이 훈련을 하다 보면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쓰고 있는지 깨닫기도 한다. 작가들이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초점을 발견한다는 말이다. 때로 초점을 깨닫는 순간은 한 가지 주제를 너무 광범위하게 다룰 때 찾아오기도 한다. 이때 여러분은 그 주제의 특정 부분을 중점적으로 탐험하고 싶어질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쓴 글이 원하는 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초점을 깨닫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어린 시절의 승마 경험에 대해 쓰고 있는데 실제로 쓰고자 했던 것은 승마를 가르쳐준 여자에 관한 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자신의 재료에 대해 '틀'을 짜는 것도 초점을 발견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를테면 어떤 그림에 대한 틀이 떠올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틀 속에 들어갈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 틀에 어울리지 않는 재료는 버려야 한다. 초점을 발견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향해 초점을 말하는 것이 있다. 가령 '내가 여기서 실제로 쓰고자 하는 것은...'이라는 말을 마친 다음. '이 글은 내가 실제로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내용인가? 이 주제는 내 준비 상태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폭이 넓거나 좁은 것은 아닌가?'하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떤 주제라도 다양한 재료가 수없이 나올 수 있고 각각의 초점도 다를 수 있다.

4. 그림 그리기 

수집한 재료에 상상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작업할 일정한 재료를 선택한 다음 자신이 모아둔 서로 다른 재료에 대해 마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마음속에서 그것들을 가공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그 재료가 사람이든 장소든 어떤 사건이든 아마 상상력은 그것에 대해 좀더 자세한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실험 삼아 순서를 바꿔가며 주변의 이미지들을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씨앗'이 되는 이미지나 정보 조각을 하나 골라, 마음속에서 거기에 더 많은 그림을 입히고 때로는 완전한 이야기로 꾸미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전체적인 글을 그려보기 위해 마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능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어쩌면 작가로서의 직관이 현재 글쓰기의 시작이나 끝에 와 있다고 말해주는 핵심 이미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또 자신의 글이 취하고 싶은 일정한 현태를 마음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시각적인 상상이 뛰어나다면 글이 완성되었을 때 취하고 싶은 형태를 미리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림 훈련을 마친 뒤에는 발견한 것을 기록한다.

5. 장르에 관한 고려

재료를 골라 이것을 장르라고 하는 다양한 현태의 글에 활용할 수 있다. 장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픽션과 논픽션으로 대별된다. 모든 장르에는 하위 장르가 있다. 예를 들면 애정물과 추리물은 픽션의 하위 장르다. 재료를 어떤 장르에 사용할지 아는 것은 자신의 글에 초점을 맞추고 그 글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물어보라. '내가 모은 이 재료로 무엇을 쓰고 싶은가? 시(詩)인가, 기사(記事)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필요하다면 재료에 대고 직접 물어볼 수도 있다. 노트에 프리라이팅을 활용해 이 물음에 대답해보라. '이 재료는 어떤 글이 되고 싶어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따로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닌 작가로서의 직관을 믿어야 한다. 아니면 재료 스스로 '나는 ...이 되고 싶다'는 식으로 물음에 답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재료가 여러분에게 낯선 장르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해당 장르에 대해 더 학습할 필요가 있다. 장르에 대한 책을 읽어보라. 특정 장르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찾거나 좋은 교사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언제나 여러분은 작가로서 수업 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재료가 단편소설이 되고 싶어하는데 단편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면 망설이지 말고 단편소설을 써보라. 이것이 배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좋은 소설을 쓰려고 고생하는 대신, 소설 장르에 대해 또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쁜 소설을 쓰는 기회를 스스로 허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6. 학습

아마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또는 재료에 대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다른 질문으로는 '이 글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가?' 하는 물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다음 다시 몇 분간 시간을 들여 프리라이팅으로 답변을 해본다. 그러면 아마 외부 모으기의 형태로 정보를 추가로 모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이 쓴 것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해 더 많은 그림을 그리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대화를 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앉아서 초고를 쓸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7. 계획

꼐획을 짜느냐 안 짜느냐가 문제다. 일부 작가는 글쓰기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싫어한다. 이들은 인물이나 배경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 앉아서 쓰기 시작한다.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이 쓰는 모든 글마다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글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정확히 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전체적인 계획을 세운 다음 각각의 장은 나름대로의 방향을 향하도록 하거나, 글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일단 형태가 눈에 들어오면 틀을 짜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글에 어떤 방법이 더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해 계획 있는 글쓰기 종류에 따라서는 글의 '지도 그리기' 기술이 유용할 때가 많다. 또 '단계2 :과제의 계획을 짜라'를 참고할 수도 있다.

8. 시간의 투자

글쓰기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매우 쉽지만-작가의 능력을 활용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이 모든 아이디어를 글로 쓸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일정한 재료를 발전시키는 데 평생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재료를 모으고 상호작용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수없이 반복할 수 있고 또 이따금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재료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야말로 글쓰기 과정의 중심을 차지하며, 사실상 글쓰기 작업의 핵심에 대해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감이란 그것을 위한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준비를 위한 방법의 하나가 자신의 재료를 철저히 아는 것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생각날 때 적어야 한다. 항상 조그만 수첩을 휴대하고 방마다 펜과 메모지를 비치해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9. 재료의 체계화

체계화를 위한 이 일이 글쓰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말을 종이로 옮기는 것이 아니므로-사실 이 작업은 작가가 하는 일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10. 연결 

한 편의 글을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세 가지 주된 행동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모은 자료를 한곳으로 취합하는 과정(이후에도 계속 모으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자료를 선택하는 과정, 성택한 자료를 서로 연결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서로 조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점에서 글쓰기는 조각 깁기(sewing patchwork)와 같다. 다양한 곳에서 재료 조각을 모으고 이것들을 전체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11. 제로 드래프트 써보기

모으기를 중지하고 초안을 쓸 준비가 되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지닌 작가의 직관을 믿어라.

제로 드래프트 쓰기는 수집한 재료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선택한 모든 것을 단일한 글로 옮기는 과정이다. 

제로 드래프트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수집한 모든 재료를 인쇄한 다음 가위로 간직하고 싶은 부분을 오려내어 종이 여백에 테이프로 붙인다.(노트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부분을 찢어내고 싶지 않다면 복사를 하면 된다.) 오리고 붙이는 과정을 컴퓨터의 새문서에서 할 수도 있으며 가위질과 컴퓨터를 함께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선택한 모든 재료를 검토화하면서 제로 드래프트 재료를 모아 자리에 앉아 프리라이팅으로 초안을 쓴다. 이때 글의 구성이나 어휘 선택에 고심할 필요는 없다. 오려내고 붙인 다음 원한다면 나머지 부분을 프리라이팅 해도 된다.

제로 드래프트를 시작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목표는 단 한 가지, 한 공간에서 사용하고 싶은 모든 재료를 모아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214-224



연습 : 자기 자신의 제로 드래프트를 만들어라

위에서 대강 윤곽이 잡힌 초안(밑그림) 기술을 활용해서(또는 여러분 자신이 선택해서) 모으기와 발전 훈련으로 수집한 모든 자료를 자세히 읽어본 다음 제로 드래프트로 사용한다. 어휘가 아니라 내용에 집중하라.

이것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눈에 띄는가? 잘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적어본다. 이 기술을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25



연습 : 초안을 시도하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초안에서 잠시 물러나 있다가 다시 보면 신성한 시각으로 초안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볼 때 그 글이 최종적인 초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제로 드래프트는 자신이 어떤 자료를 모았고 그 자료에 무엇이 빠졌는지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는 단순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어휘를 선택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어휘를 통해서 어휘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정보, 아이디어를 살표본다. 나처럼 자료 조각을 블록쌓기로 생각하고 선택과 정리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초안을 읽을 때(이것을 한 번 이상 할 수 있다) 거기 그대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주목한다. 이 말은 '그래, 호수에 대한 이 묘사가 필요해'라든가 '맞아! 이것이 요점이야'하는 식으로 작가의 직과닝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무엇이 빠져쓴지, 어떤 정보를 더 모아야 할지 주목하라. 또는 상상하거나 생각을 모아보라. 제로 드래프트처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훈련을 한두 번 시도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을 마치면 잠시 시간을 들여 이 재료로 다음에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지 적어본다. 그런 다음 휴식을 취하거나 산택을 나가 잠재의식이 이 초안에 대한 활동을 할 시간을 준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잠재의식에서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을 알면 여러분은 놀랄 것이다. 잊지 않고 그것을 적는다.  226


진정한 선택은 글의 통일성을 유지하게 하는 핵심 부분이다. 

글쓰기의 실질적인 핵심은 글을 쓰는 과정의 단계마다 선택을 하는 일이다.  228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답해보라. 

'이 글은 실제로 무엇에 관한 것인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장르의 글이든(아마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글은 제외도리지도 모른다)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재료는 여러분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  229


'한 편의 글을 창작하는 데 좌절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은 배운다고 볼 수 없다.' 글쓰기의 상당 부분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해결 방법을 익히는 유일한 길은 훈련뿐이다. 무넺 해결을 시도해보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보라. 자주 휴식을 취함으로써 잠재 읫기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부여하라.  231


'언제쯤이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읽을 것으로 예상하는가?' '그때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우리가 독자에 대해 갖는 느낌은 복합적일 수 있다. 독자는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위협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독자의 경멸이나 판단, 비평을 두려워하맂 모른다. 우리의 글에 대한 것뿐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인갅거인 평가까지도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233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공적인 글쓰기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하는 글쓰기이며, 우리 자신의 눈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읽히게 될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235


독자가 작가로서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글을 쓸 때 독자(청중)가 우리에게 주는 효과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독자에게 글로 주고 싶어하는 효과가 있다.  236


독자에 대한 권리 되찾기

다음에 예시한 재료가 이 훈련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글을 발전시키는 데 다른 사람을 활용하는 법도 보여줄 것이다.

1. 시간을 들여라

작가-독자의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를 것이 없으며 여기서 자신이 힘이 없다고 느끼면 제대로 소통할 수가 없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소유권 의식이 필요하다. 훌륭한 작가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권리를 느낀다. 훌륭한 작가는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말을 전달해서 독자의 마음에 그 말이 살아 움직이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 자신감을 얻으려면 많은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시간을 투자해서 필요로 하는 자신감을 확보해야 한다.

2. 작가의 능력을 개발하라

상상력, 호기심, 관찰력이 강화될수록 쓸 거리도 더 많아지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할 말도 더 많아질 것이다. 

3. 자신의 글을 공유하라

4. 독자와 자연스러운 관꼐를 확립하라

독자를 위하는 것보다 독자를 향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때로 자기 자신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독자는 당신의 머릿속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독자는 세상 밖 어딘가에 있는 별개의 사람이다. 작가-독자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되살리기 위해 여러분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독자가 자기 자신과 분리된 존재라는 느낌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독자로 생각할 필요도 있다. 여러분은 채을 읽을 때 작가가 여러분에게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많다. 작가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서도 쉽게 전달되기를 바랄 것이다. 바로 이런 태도가 정확하게 독자가 여러분의 글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독자는 평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들이지 않고도 여러분의 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할 말을 소통시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명쾌하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은 분명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도 독자는 혼란을 느끼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다. 독자를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작가가되는 또는 훌륭한 작가가 되는 중요한 비결이며 글쓰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5.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향해 써라

실제로 독자를 향해 말을 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사적인 글쓰기와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이 '종이에 대고 생각하기'와 같은 것이라면 이 새로운 훈련은 '종이에 대고 말하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이라고 상상하라. 자신이 쓴 것을 들고 마치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천천히 읽어본다.

자신의 글을 읽을 때 나올 수 있는 생각은 '이 글은 잘 쓴 거야? 못 쓴 거야?'가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까? 내 생각을 분명히 밝혔나?'하는 것이다.

6.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데 실제 독자를 활용하라

독자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질문의 예를 들어보면

 - 이 글에게 당신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가?(단어나 이미지 느낌, 아이디어가 이에 해당될 수 있다.)

 - 내가 하는 말에서 무엇을 들었는가?(여러분이 전달하려고 하는 것에서 독자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말하게 한다.)

 - 아직 질문할 것이 남았는가?

 - 더 필요한 것(또는 필요 없는 것)이 있는가?

 - 혼란스러운 곳이 있는가?

 - 이 글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독자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들을 때 자신이 의도한 것을 설명하거나 자신이 쓴 말을 옹호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설명이나 옹호를 하면 독자는 입을 다물 것이다.

독자는 단순하게 '이것이 내가 받은 느낌이다. 이 대목이 나는 혼란스럽다;고 말할 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그저 들어보는 것이다.

7.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라

좋은 글은 독자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인다.

종이를 보면서 다으므이 질문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갖는다. 여러분은 이 글로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 이 글을 읽은 독자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독자를 웃기고 싶은가? 울리고 싶은가? 아니면 공포를 떨게 하고 싶은가?) 이런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 자신의 글에 어떤 것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쓸 때 목표를 염두에 둔다.  241-258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법

1. 다른 살마과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을 때 이 글을 선물로 생각하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것이 있다고 할 때 정확하게 그것은 무엇인가?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 인가? 일정한 주제에 대한 통찰인가? 특정 시간과 공간을 환기시키는 것인가? 자신의 소설이나 시, 수필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2. 이 선물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생일선물을 줄 때 받는 사람의 기호를 생각하듯이-93세가 된 메리 할머니가 정말 비디오게임을 좋아할까?-이 특별한 글을 좋아할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3. 이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면 아마 동네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면 추리소설 애독자 중에서 기꺼이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쓴다면 해당 주제에 대한 온라인 동호회를 찾아 회원 중에 자신의 글을 기꺼이 읽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이들 독자가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없다면 단순하게 한 가지만 물어보라. "이 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가?"  256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해소하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게 된다.  259


종이 위에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자신의 독자와 더불어 편안한 상태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독자를 위해서보다는 독자를 향해서 글쓰기 연습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훈련은 자신의 재료를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줌으로써 독자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고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독자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260


제시하는 여섯 가지 접근 방법으로 이야기를 찾아내 들려주는 실험을 해보라. 

1. 구전되는 이야기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고 샅샅이 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다. 이제 마음속으로 이야기의 내용을 상상하면서 일어난 사건을 그려보라. 준비가 되었으면 열심히 귀 기울여 듣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한다고 상상하면서 자리에 앉아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종이에 옮긴다. 어휘가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에 집중하라.(어디까지나 이것은 훈련이다.)

2. 구술역사 자료

구술역사는 실제로 역사 현장에 있었거나 그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다시 자세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구술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여러분 자신의 말로 다시 들려줘보라.

이야기 중에 몇 가지 재료를 선택해 그것을 새로이 조합해 독립된 이야기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3.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

작가 중에는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나 재료를 뉴스보도에서 얻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눈길을 끄는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찾아보라.

4. 잡담과 흘려들은 이야기

모은 재료를 점검하고 마음에 끌리는 것이 있으면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내용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이야기로 꾸미고 가상의 청취자를 향해 노트에 옮기는 것이다.

5. 장소와 사물

사람만 이야기를 지닌 것은 아니다. 자연현상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6. 내면의 이야기

'나는 ~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로 시작되는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써본다.

원한다면 내부의 이야기 재료를 모으기 위해 다음의 훈련을 활용할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에 대한 답을 적어보라.

 -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누가 머리에 떠오르는가? 실제 사람인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미워하는 사람인가? 상상 속의 사람인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 어떤 장소가 생각나는가? 실제의 장소인가? 상상 속의 장소인가? 시골인가? 풍경인가? 집인가? 거리인가? 밤인가?

 - 어떤 물건이 떠오르는가? 좋아하는 장난감인가? 오랫동안 함께 지낸 물건인가? 자연 속의 사물인가? 가상의 대상인가?

 - 어떤 장면, 어떤 순간이 머리에 떠오르는가?

 -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가?

 - 들어본 이야기 중에 애착이 가는 것이 있는가?  261-266


 

연습 :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계속 귀기울이기

직업적인 작가는 일종의 이야기 본능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가 바닥나는 법이 없다. 이들은 자신에 관한 것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 사실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직업적인 작가는 주변 세상에 긑없이 관심을 돌린다. 이들은 마주치는 사물에 주목하고 누군가가 하는 말에 늘 귀를 기울인다. 이드르이 이야기 본능은 '흠, 여기 이야깃거리가 있군' 하고 중얼거린다.

구전된 이야기든 마주치는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든 이야깃거리를 들으려고 바깥세상을 향해 귀를 활짝 열수록 여러분의 이야기 본능은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노트에 이야깃거리나 아이디어를 적는 습관을 들인다면 여러분도 머지않아 쓰고 싶은 이야기에 활용할 수 있는 다채로운 재료창고를 갖게 될 것이다.  267



연습 : 다듬는 과정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 몇 가지를 브레인스토밍한다. 또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노트를 훑어본다.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이야기를 위한 재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내부 모으기로 시작하라. 여기에는 자신이 기억하거나 만들어낸 모든 세부 내용이 포함된다. 그런 다음(원한다면 나중에) 이 목록을 두 차례 정밀하게 점검한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사용하고 싶은 항목에 표시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는다. 두 번째는 목록을 쭉 훑어보면서 호기심이 이는 항목이 있는지 확인하고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적는다. 그런 다음 생각해보라. 여러분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의 의문에 대한 답을 원하는가?(선택한 이야기가 아주 단순하다면 의문은 없을 수도 있다.) 외부 모으기를 할 필요가 있다면 - 관찰이나 조사 - 그렇게 하라.

재료 검토를 위해 상상력과 잠재의식을 활용하라. 이야기를 쓰기 전에 잠시 재료를 맛있게 끓이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음의 물음들을 생각해본다.

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자신일 수도 잇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창작한 인물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 들려주는가? 실제 인물(친구 또는 자녀 중에서)을 고를 수도 있고 안전한 가상의 독자를 상상하면서 인물을 창작해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 인물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다.

왜 들려주는가? 특정 인물을 상대로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꾼의 목표는 무엇인가? 청취자의 마음속에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싶은가?

이제 상상으로 이야기꾼이 되어본다. 자신이 선택한 잴로 돌아가 들려줄 이야기로 유용해 보이는 것을 무엇이든 선택하라.(이 훈련을 하면서 '사실'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사실을 바꿔가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꾸며도 상관없다)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새 재료로 추가한다. 이 재료를 활용할 때 원하는 순서를 작은 목록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그런 다음 자신이 선택한 청취자와 함께 있다고 상상하며 계속 이야기꾼의 역할을 유지한다. 될 수 있는 대로 계속 펜을 놀리면서 종이에 대고 청취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사람을 이야기꾼으로 등장시킬 수도 있고 청취자를 바꿀 수도 있다. 또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하라. 다양한 관점을 시도하면서 이야기를 즐기고 싶다면 제임스 모쳇의 탁월한 평론집 <관점(Point of View:An Anthology of Short Stories)>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책은 이미 출판된 단편소설을 조명하며 관점에 여러 변화를 주는 기법을 분석하고 있다.  269-270


작가 제인 욜런은 "무엇보다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잡아끄는 것은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야기 자체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행의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271



연습 : 이야기의 이동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빌려오든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낼 인물이든 한 인물을 골라서 이 사람을 위해 간단한 이야기 상활을 써보낟. 상황을 묘사하는 데 두게 개의 문장만 사용하라. 이제 이 인물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이 인물이 일으키는 사건을 적어보라. 이때도 두 세 개의 문장만을 사용한다. 이어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본다. 필요하다면 이야기가 멈출 때까지 이 문답을 계속한다.  273



연습 : 계획을 짜고 싶다면

이야기를 정의하자면 일련의 사건이 연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을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싶다면 여기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이야기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 중 하나를 고른다. 될 수 있는 대로 계속 펜을 놀리면서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건의 목록을 작성한다. 각각의 사건을 현재시제를 사용해 짤막한 문장으로 써본다. 아직 순서를 정할 필요는 없다. 단어 선택에 고심할 필요도 없다. 사건 하나하나를 새 줄에 쓰되 사건 사이는 한 줄씩 건너뛴다. 이야기에 들어가야 할 사건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고쳐 쓴다. 

2. 이제 사건의 목록을 쭉 읽어보고 포함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사건이 너무 많은가? 아니면 너무 적은가?

3. 이제 이 사건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순서를 정리해서 이야기를 쓰기 위한 계획을 짠다.  275



연습 : 이야기의 전개

다음으로 이야기 계획에 대한 대안을 하나 소개한다. 

1. 한 명 이상의 인물을 선택해서 상황 속에 투입시킨다.

2. 다음에 일어날 일은 무엇인가? 인물이 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하든가 아니면 외부의 사건이나 강제적인 방해 세력이 등장한다.

3. 그 결과 인물은 새로운 상황을 맞는다. 그 인물은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4.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5. 이런 움직임이 상황에서 사건으로 또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으응로 계속 유지된다. 줄거리가 궤도를 찾았는가? 줄거리가 끝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쓸 때 무엇이 눈에 띄는가?  276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이앻하려면 독자에게 먼저 무엇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두 번째는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세번째는?  278


독자에게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재료의 순서를 정하는 일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연구해보라.  279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말은 실제로 글 쓰기에서 음과 양의 양면성을 지닌다. 글쓰기란 내용과 말 사이에서 추는 춤과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이끌때도 있고 말이 이끌 때도 있다. 진정한 글쓰기의 기교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울 때는 두 가지 분리해서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295


사실 창조적 기능은 적용 번위가 굉장히 넓다. 창조적 기능은 여러분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든 그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꺼이 제공할 것이다.  306



글로 옮기기 - 글쓰기 과정에 관한 단계적 안내

새로 소개하는 7단계의 접근 방법은 습관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이 접근 방법을 시도할 때는 하나하나 노트에 적거나 메모하며 천천히 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확인하라. 

그리고 어떤 부분은 당장 잘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부분은 습관을 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도구이지 규칙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314


단계1 :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라

의무적 글쓰기는 다른 누군가가 요구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주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주제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는 논스톱 쓰기를 활용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주제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 목록을 작성하라. 검열하지 마라. 적어도 10분간은 펜을 계속 놀린다. 그런 다음 다시 목록을 읽어보고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에 표시를 한다.(생각난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이 연습을 반복한다.)

가능한 주제를 결정할 때 자신이 고른 것이 쓸 수 있는 것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첫째, 자신이 흥미를 느낄 수 잇는 주제라야 한다. 흥미가 없다면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어려워진다. 

  둘째, 주제의 범위가 넓지 않아야 적당한 지면에 지적 능력을 집중할 수가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주제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을 때가 있다. 때로는 15쪽도 채우려면 너무 많아 보일 때가 있지만 글쓰기 과정이 수월해진다면 이 정도 지면에 할 말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셋째, 주어진 기간에 주제에 대한 재료를 충분히 찾아야 한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러분의 주제가 과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316-318


단계2 : 과제의 계획을 짜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모든 것을 목록으로 작성한다. 모든 행위나 단계는 이 과제에 부합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특수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항목별 순수는 걱정할 것이 없다. 생각이 막히면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과제의 원활한 진행을 상상해본다. 또는 목록에 적힌 각 항목을 보면서 자신에게 '이 부분을 좀더 세분화할 수 있을까?'하고 물어본다.


글쓰기 과제의 시작을 미루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필요호 하는 모든 자료를 읽고 조사를 마칠 때까지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글쓰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다. 말하자면 글쓰기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게 해주고,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매우 고귀한 도구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318-321


단계3 : 내용을 발전시켜라

내부모으기 -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활용해서(주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동안 계속 펜을 놀리면서) 주제와 관련 있는 것은 머릿속에서 모두 끄집어내어 적어본다. 이 주제와 관련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가? 조사를 하면서 찾아낸 것에 어떤 기대를 하는가? 주제에 관해 어떤 의문이 드는가? 이 주제를 쓰고 싶게 하는 경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목록작성 - 단어 한 마디든 완전한 생각이든 각 항목은 계속 새 줄에 써야 한다.

지도 그리기 - 한가운데 작은 원을 그리고 원 안에 주제를 적어본다. 그리고 중심 원에서 한 줄 씩 가지를 쳐서 모으기를 할 때마다 각 줄에 새 항목을 기입한다. 

이미 적은 것과 관련돼 보이는 것이 새로 생각나면 기존의 줄에 새로 가지를 쳐서 거기에 새로운 생각을 적는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직관에 따라 가지를 친다.

지도 그리기가 특별히 도움이 되는 까닭은 이 방법으로 전체 과제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주제를 너무 넓게 잡아서 초점을 좀더 좁힐 필요는 없는지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 서로 다른 부분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호작용 - 잠시 다음 질문에 잡을 적어본다. '이 과제의 다음 단계를 위해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가?'

외부모으기 - 외부모으기를 할 때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집한 자료가 자신의 일부가 되도록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의무적 글쓰기으 제1규칙이 '자신의 과제를 안다'는 것이라면 이어 제2규칙은 '자신의 재료를 안다'는 것이 될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사람들이 흔히 학술논문을 작성하거나 직장에서 복잡한 글쓰기 과제가 주어질 때 걱정하는 것은 글을 조합할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재료 관리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료의 소화 - 재료를 소화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면 기사나 책 한 장(章)을 읽고난 다음 이에 대해 프리라이팅을 하라. 프리라이팅은 별개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 첫째 부분에서는 그 부분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 또는 작가가 하는 말을 적는다. 명확하게 이해한 것을 적고 이해하지 못한 것도 적는다. 질문도 적는다. 둘째 부분에서는 작가가 한 말에 대한 자신의 지적 반응을 적는다. 이를테면 여러분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말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가?(자신의 감정적인 반응도 같이 적을 수 있다. 이런 반응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찾는 데 도우밍 된다.) 읽을 필요가 있는 장이나 부분에서 이 연습을 반복한다.

이 프리라이팅 연습의 두 부분을 따로따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돌아보기 - 돌아볼 때는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라. 

잠재의식을 활용하라 - 시간을 들여 잠재의식이 자신의 재료에 대한 활동을 하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작용 - 지금까지 자신이 쓴 것을 전부 읽어보고 다음 두 가지를 하라.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든 표시를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아이디어나 질문이 새로 떠오르면 무엇이든 적는다. 이것을 할 때 자신의 글을 고치거나 편집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쭉 읽어보고 자신이 쓴 것과 교감을 하면서 상호작용을 한 뒤 '여기서 내가 실제로 하려고 하는 말은..'이라는 글을 쓰고 이 문장을 완성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면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21-335


단계4 : 제로 드래프트를 써라

제로 드래프트는 초고를 작성하기 전에 쓰는 초안이다.

제로 드래프트의 주목적은 이미 확보한 자료는 무엇이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제로 드래프트의 구성을 마치면 프린트를 해서 읽어본다. 이 글이 이해가 되는가? 포함할 것과 뺄 것을 결정한 선택이 마음에 드는가? 그리고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라.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무엇인가?' 과제의 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 물음에 대해 잠재의식이 활동하게 하려면 잠시 쉴 필요가 있다. 산책을 나가거나 휴식을 취하라.  336-339


단계5 : 청중과 목표를 고려하라

 - 여러분은 누구를 상대로 글을 쓰는가? 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자신의 독자에 대해 진술해보라.

 - 독자는 여러분의 주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 독자는 여러분의 주제에 대해 무엇을 알기 원하는가? 또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가?

 - 독자의 의문은 무엇일 것 같은가?

 -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글에 포함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독자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340-343


단계6 : 전달하라

단계7 : 명확하게 하라

글쓰기 과정 자체와 마찬가지로 교정은 한꺼번에 하는 것보다 단계적으로 할 때 훨씬 더 능률이 오르는 법이다. 

교정할 때 큰 도움이 되는 방법 한 가지는 자신의 글과 얼마 동안 거리를 둔 다음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신의 글로 돌아올 때는 새로운 눈으로 검토할 수 있는 상상의 안경을 써라.

자신을 향해 '이 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가? 혹시 빠트린 것은 없는가?'라고 물어보라.  350-351



글쓰기 과정에 대한 이 유형이 복잡해서 약간 겁이 날 수도 있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 방법을 택하기 바란다. 

특정 글쓰기에 모든 단계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접근 방법을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 모음으로 보기 바란다.  356



작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이 책에서 내가 분명히 밝혔기를 바라지만, 배우는 사림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 글을 쓰려는 욕구와 기꺼이 자신의 기술을 익히고 개발하는 과정에 시간과 정력을 쏟으려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362


현실적인 문제는 간단하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하고 싶은가에 달린 것이다. 자신이 글쓰기 연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대로 시행하라.  364


훈련을 하다 보면 뒤에 가서 달라질 수도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물음은 '글쓰기가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기 바라는가?' 일 것이다.

시작은 소박하게 하라. 일주일에 한 두 번, 한 번에 10분 정도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글쓰기를 소화하는 데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367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다.  368


완전한 글을 쓰는 데 집착하지 마라. 자신이 쓴 글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때는 자신에게 '여기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여기서 배운 것을 다른 글쓰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라. '지금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주기적으로 던지면서 작가로서의 직관을 연마해야 한다. 글쓰기는 복합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배울 것이 너무도 많다.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라.  369


습작에 매진한다는 것은 훈련과 학습에 자아를 아낌없이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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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일컬어 흔히 '천의 얼굴'이라고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인도는 그토록 두텁고, 그토록 복잡한 인도의 한 조각일 뿐이다. 

인도의 특성, 다원성이 적용 되지 않는 단 하나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느림'이다.  10


'느리다', '빠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도인에 대한 '느림'과 '게으름'은 누구의 기준인가?  11


자기의 안경으로만 인도를 본 영국은 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12


인도인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반복되고 다시 돌아오며,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고리이다.  13


어쩌면 시간은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내게로 날아오는 부메랑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발전은 환경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14


알고 보면 위생이니 뭐니 하는것도 목적은 향상시키지 않고 수단만을 강조하는 서양의 산물이 아닌가?  15


볼일이 끝나고 나서는 가까운 강이나 개울로 간다. 진흙으로 몸의 더러워진 부분을 문질러 닦고 물로 헹군다. 두세 차례 반복. 그런 다음 왼손부터 시작하여 손과 발을 진흙으로 여러번 씻는다 다시 다른 흙으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에서는 진흙이 아닌 비누를 쓴다. 자, 이래도 비위생적인가?  19


인도인은 '음식은 먼저 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다음에 입과 혀로 맛을 느낀다.'  20


인도인은 발을 천시한다. 가장 천한 발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대거나 신발로 머리를 때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최대의 모욕이다.  23


발에는 절대 금 장신구를 하지 않는다. 허리 아래에는 은으로 된 장신구만 착용한다.  24


반대로 머리는 신체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남자들은 쇠똥이나 재, 또는 빨간 가루를 이마에 찍어 카스트를 표시하기도 하고, 시바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수평선을, 비슈누 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직선을 그어 소속된 종파를 광고한다.  24


머리와 발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만큼 브라만과 수드라의 차이도 엄청난 것이다.  25


강가의 상류 하리드와르와 리시케시, 중류인 바라나시, 그 끝인 벵골만까지 나는 강가를 열번도 더 보았다. 

강가는 눈 덮인 히말라야를 출발하여 하리드와르와 칸푸르를 지나 알라하바드로 흘러든다. 그곳에서 진흙탕물인 강가는 델리와 아그라를 지나온 그보다 맑은 야무나 강과 합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 사라진 사라스와티 강과도 손을 잡는다. 세 강이 만나는 알라하바드는 힌두들의 순례지이다.  39-40


시바 신은 무려 8천 4백만 가지의 다양한 체위를 고안했는데, 숭배자들에게 알려진 건 겨우 8만 4천 가지! 이러니 시바는 다산의 신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56


'카주라호'와 '시바 링감' 그리고 '카마수트라'의 인도. 위성방송이 안방에다 공개적으로 섹스를 팔고, 콘돔이(가장 유명한 콘돔 제품은 당연하게도 '카마수트라'라는 상표를 달고 있다) 무차별 광고를 해대는 곳. 매춘부가 수백만 명이고 에이즈 환자가 3,000,000명이 넘는 나라. 이렇듯 성이 넘치는 에로스의 천국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상과 금욕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58


브라만 성자와 요가수행자의 공동 목표는 자웅동체이다.  59


옛날 인도에 비폭력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 바로 유명한 정복자 아쇼카 황제.  63

'보이지 않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은 끔찍하다.  66


인도인의 계산을 보자. 먹은 음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와 골수가 되었다가 30일이 지나면 정액으로 바뀐다. 40방울의 피가 한 방울의 정액이 되는데, 한 번의 사정으로 14그램 정도의 정액이 소요된다. 이는 27킬로그램의 음식이 만든 에너지와 같다. 한 번의 성관계는 24시간의 정신노동이나 72시간의 육체노동과 동일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69


해방 후, 인도에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지방은 벵골, 케랄라. 트리푸라 3개 주이다.

테레사 수녀가 '수고하고 짐진 자'를 보살피는 곳이 바로 벵골 지방이다.  79


영국의 통치가 온건하지도 않고 결코 '은혜'와 '축복'이 아니었다는 점은 얼마든지 예증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근이다. 영국이 인도에 오기 전에는 대기근에 관한 기록이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이 발을 디딘 이후 기근은 종종 찾아왔고, 1943년 벵골 지방에서는 2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인도의 부가 해외로 유출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1930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의 4분의 1은 인도에 투입되었다. 물론 인도에서 근무한 영국 관리들의 봉급과 연금 지급은 처움부터 식민지 인도의 몫이었다. 영국은 참깨를 쥐어짜듯 인도를 쥐어짜 이득을 챙겼던 것이다.

영국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이해 세운 계획도시 뉴델리에 있는 '인도의 문'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8만여 명 인도 청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뿐인가.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인도군은 지배국 영국을 돕기 위해 '치와 땀'을 흘렸다. 인도군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20여만 명이었으나 전쟁이 끝난 1945년에는 그 열 배인 22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전쟁기간 동안 소요된 영국의 국방비 역시 절반은 인도가 떠맡았다.

이 열불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영국을 '미워 미워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영국 통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구를 익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인도는 영국에 모종의 빚을 졌다고 간주하고 있다. 영국이 도입시킨 의회제도, 철도제도, 교육제도를 인도는 고맙게 생각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산업발전의 기반을 다진 것에도 좋은 점수를 준다. 각종 제도와 정책을 도입한 식민 정부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결과적으로 인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어와 반영운동이 인도를 통합시켰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83-84


인도인은 대개가 종교에 깊이 중독된 중증 환자들이지만, 그 대다수는 브라만의 베다나 우파니샤드를 모르거니와 고상한 힌두 철학에도 깜깜이다.

대신 인도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상을 경애하고 숭배한다.  103


구루 나낙(1469~1539)이 세운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장점을 따서 만든 종교로서 유일신을 믿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 힌두처럼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지만 카스트를 거부하고 갠지스를 순례하지도 않는다. 모두 같은 성을 갖는 것도 카스트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1500만명이 넘는 그들의 성씨는 모두 '싱', 결혼한 여자는 미세스 싱이 아니라 모두 '카우르'가 된다) 시크는 근면하기 때문에 거지가 없다.

펀자브 지방은 시크의 분리주의 운동이 있었다. 

인도에 갔다가 마약에 돈 떨어지고 담배꽁초까지 떨어지면 시크사원(구루드하라)을 찾아가라.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시크 사원에서는 거저 먹여주고 재워주니.  113


시크 못지 않게 돈 버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도)의 후예들이다.  114


고아지방은 포루투갈인과 인도 여인 사이에서 난 혼혈이 많아 이국적이다. 이곳 여인들은 사리보다 스커트를 많이 입고 생활 방식도 다른 지방과 달리 자유롭다.  115


힌두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무슬림이엇다. 인도를 통치한 무슬림 지배자들은 자기드로가 구분하여 인도(옛 이름은 힌드)에 사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몽땅 힌두라고 불렀다. 전체 인구 - 무슬림 = 힌두였다. 그 뒤를 이어 인도를 지배한 영국도 무슬림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이외의 인구를 힌두로 뭉뚱그렸다. 

힌두교는 종교의 창시자나 예언자가 없음은 물론 자신을 힌두라고 생각하는 살마에게 '하라. 하지 말라'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도 않는다. 힌두교에서 성서로 여기는 베다나 푸라나를 읽는 힌두는, 아니 그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은 5%밖에 안된다. 일정한 예배의 형식도 없는 자유 그 자체이다.  120


이질적이고 잡다한 생활방식을 모두 인정하는 힌두교는 기원전 1500~500년경에 성ㄹ힙되었다. 중심 사상은 베다의 전통을 따르는 브라만 중심의 브라만교이지만, 여기에 북부 인도에 존재하던 다양한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대중을 이끄는 독자적인 종교 이념으로 발전했고, 세월이 가면서 전 인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즉 힌두교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브라만교의 독선에 반기를 든 인도의 프로테스탄트, 불교와 자이나교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한 지방에서 동거를 해온 이방의 종교인 이슬람교까지도 포용한다. 

수천 년 동안 무엇이든 받아들여온 힌두교에는 헤브라이즘에서 볼 수 있는 '정통'이나 '이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살마의 수만큼 신이 존재하고 그 수만큼 다양한 믿음을 인정하는 융통성이 바로 힌두교의 생명이요 진리이다.  121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달리 힌두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다.

힌두는 구원이나 해탈도 나 스스로 이룬다고 생각한다.  122


카르마(業) - 카르마는 힌두 사회의 수많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125


윤회사상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다르마)를 다하면 카르마가 좋아진다고 유혹한다. 의무를 다하는 불가촉민은 브라만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불가촉민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126


알 수 없음과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최선을 부추긴다. 더 열심히 살아서 아예 이 아리송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며 구원이다. 그리하여 힌두에게 해탈은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127


예전보다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카스트는 아직 살아 있다. 집에서,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힌두 사원에서 여전히 그 힘을 행사한다. 카스트는 포루투갈어로 혈통을 의미하지만 인도인들은 색깔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모든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132


'자티'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카스트가 서로 갈리고 나뉘어 3~5천 개의 작은 집단으로 분류된 것으로 한층 세분화된 개념이다.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자티에 따라 다른 위상을 갖고 다른 규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것은 동일한 자티 안에서 이루어진다.

쉽게 설명하면, 북부지방의 브라만과 남부의 브라만은 동일한 계급이 아니다. 두 브라만 가의 갑순이와 갑돌이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의 수드라 사이에는 같은 계층이라도 연대의식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한 마을에 사는 수드라 내부에도 상하 귀천의 구별이 있다. 대장장이, 옹기장아, 세탁부, 이발사는 자신과 브라만이 다르듯이 서로가 서로를 다르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같은 청소부라도 거리를 청소하 자티와 '변소 쳐!'를 외치는 자티는 다르다.  133~134

소를 먹이는 집안의 경우는 소 먹이는 자티가 규정한 세밀한 규칙의 속박을 받고, 또 옷감을 짜는 집안의 직녀는 그 자티의 규정을 따르면서 신분에 맞는 제약과 대접을 받는다. 

계층이 낮을수록 부정하게 여겨지며, 금기사항도 적다. 똑같은 수드라 내부에서도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위상이 낮다.  134


'언터처블(Untouchable)' 불가촉민(不可觸民), 접촉을 하면 부정을 타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부지방의 남부드리 브라만은 천민을 보기만 해도 부정 탄다고 생각한다.  137

따라서 그들은 몸에 방울을 달아 순수 브라만이 그 소리를 듣고 사전에 피하거나 눈을 감을 수 있게 한다.

우파니샤드를 보면 개나 돼지처럼 취급되는 '찬달라'라는 천민이 있다. 

2세기 불교도 자나카도 마을 밖에 격리되어 사는 천민집단을 언급했다.

마누 법전에도 동구 밖에서 따로 거주하며 햇빛이 있는 낮에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11세기의 알비루니도 마을밖에 살며 더루운 일에 종사하는 집단을 기록했다.

1990년대로 와도 인도의 불가촉민의 삶은 별 차이가 없다.  138

불가촉민은 마을 사람들과 우물이나 강물을 함께 쓰지 못한다. 가까운 마을의 우물을 두고 몇십 리씩 물을 길러 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9

1991년의 인구 센서스를 보면 불가촉민은 1억 5천만 명으로 인도 총 인구의 약 17%이다.  141


마하트마 간디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하리잔(신의 자식)'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독립 세력을 이루고 떠나가는 이들을 힌두 세계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건재하는 높디높은 벽 앞에서 일부 불가촉민은 간디가 지어준 '하리잔'이라는 이름대신 자신을 '달리트(학대받는 자들)'라고 부른다.  142



마누 법전에는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의 연령 차이가 16~18세라는 기록이 보인다.  169


힌두의 악습으로 오랫동안 지탄을 받아온 사티 제도, 즉 죽은 남편과 함께 살아 있는 아내를 불에 태우는 것도 실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두려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170


사티는 본래 수많은 아내를 가진 시바 신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사티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173



1993년에 마무리된, 장장 8년에 걸친 인도 사회 조사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집단의 88%가 육식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9


인도인들은 대개 모든 것을 인정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음식에 관한 한 타협이 없다. 그중 채식을 고집하는 힌두와 쇠고기를 먹는 무슬림의 심한 갈등이 단적인 예이다. 

힌두는 음식을 감염체로 간주한다.  211


인도에는 2천 개의 기차역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222


영화를 보러 가면 인도가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반대가 바로 인도의 현실이다.  235

인도의 영화는 사회적 가치를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권선징악의 도덕이 그렇고 전통적인 여성상이 그렇다.  236


자와하르랄 네루

공화국과 세습제는 정치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두 얼굴의 공존이 가능했다. 1947년의 독립 후 50년 도안 네루 집안이 인도를 통치한 기간은 38년. 자와하르랄 네루는 1964년까지 무려 16년 9개월이나 장기집권했다. 

그의 딸 인디라 간디는 1966~77년과 1980~84년 두 차례 정권을 잡았고 인디라의 아들 라지브 간디는 어머니가 암살된 1884년에 사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 5년간 총리를 지냈다.  241


비하르와 우타르 프라데시 같은 지방은 인구의 반이 빈공층이며 천만 뭄바이 시민의 절반이 슬럼에서 산다.  259

인도의 도시화는 아직 낮아서 인구의 25%가 인구 5천 명 이사으이 도시에 살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그 도시 인구의 4분의 1이 슬럼에 거주하고 대도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수도 델리의 인구 중 3분의 1은 오늘도 슬럼가에서 하루를 쓸어담는다.  269


인도인은 흰색을 선호한다.  262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검은 까마귀보다 백로를 아꼈던 우리처럼 사람은 보편적으로 검은색보다 흰색을 선호한다. 유럽에서도 흰색은 즐겁고 매력적인 성질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그 반대로 대개 불길함과 죽음을 상징한다. 인도 신화에는 시바 신이 아내 파르바티의 검은 피부를 놀리자 그녀가 황금색 피부를 얻기 위해 금욕적인 수행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여성의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인도에서도 흰색은 순수와 정결을 뜻한다. 사라스와티 여신은 늘 흰 옷을 입고 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단정한 모습이다.  264


이기의 삶에서 이타의 삶으로....  296

인도를 구경하는 것은 동시에 여러 시대와 여러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312



후기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 권 쓰고 일곱 달을 머문 사람은 글을 한 편 쓰지만 인도에 7년 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다원적인 인도의 특성 때문이다.  314-315


천의 얼굴 인도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명하게 결론을 내리려 드는 20세기의 합리주의를 향해서 비웃음을 던진다. 사실 이 세상에 분명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한낱 내 기분도 아침과 저녁에 다르거늘.

한 길 사람 속도 알기 어려운데 수천 년의 역사와 10억의 인구가 빚어내는 다양한 사회의 집합체인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만용을 넘어 무모함에 가깝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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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나의 지적 호기심

저는 공부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왠지 창피하기도 해서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아무렇지도 앟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대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러 가거나 파칭코를 하러 가거나 친구들과 만나 잡담을 하며 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놀고 싶은 욕구보다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강한 것이지요.  18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가운데 <형이상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철학 분야에서 가장 기초적이 ㄴ문헌 가운데 하나인 이 책의 첫 줄에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20

인간의 지적 욕구를 살펴볼 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용적인 지적 욕구와 순수한 지적 욕구로 나누어 보는 방법으로, 이 둘 사이에는 명백한 질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실용적인 지적 욕구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위해 알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이것을 알면 이렇게 할 수 있고, 저것은 알면 저렇게 할 수 있다. 이것을 앎으로써 이런 편리함 혹은 이익, 실용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욕구입니다. 한편 이에 반해 순수한 지적 욕구란 그저 알고 싶어하는 욕구로, 이러한 욕구들이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22

"왜 글토록 알고 싶어하죠?"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저 알고 싶어서요."라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23

주위의 세계를 알게 됨으로써 생물은 보다 능숙하게 그 세계에서 생존해 갈 수 있습니다. 보다 능숙하게 생존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보다 잘 적응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순수한 지적 욕구라고 하면, 왠지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하면서 매우 고차원적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모든 생물의 본능에 바탕을 둔 근원적이며 강렬한 욕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8

'오토마톤(automaton)'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내용이 입력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특정한 출력이 이루어지는 구조인데, 단계가 낮은 수준의 오토마톤의 예로 자동판매기의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34

지적 욕구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오토마톤 현상에 만족하여 곧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합니다. 새로운 것은 이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오직 여러 가지 육체적 쾌락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면서 실없이 웃으며 살아가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에 따라 크게 차이는 나지만, 30대 정도가 되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집니다. 반면, 지적 욕구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떤 것이 오토마톤화되고 나면 자신의 의식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다음메는 이것을, 그 다음에는 저것을 학습하려고 찾아 나섭니다.  35-36



II. 나의 독서론

'인류의 지의 총체'를 향한 도전

독서라는 것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보면

하나는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인 독서, 또 하나는 독서를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목적으로서의 독서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자 즐거움인 책 읽기인데, 대표적인 예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단으로서의 독서란 특볋ㄴ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말해, 독서를 통해 책 속에 담겨 있는 지식이라든가 정보 혹은 원하는것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41

고전이라는 용어만큼 사람에 따라 제각기 사용되고 해석되는 말도 없기 때문에, 과연 무엇을 고전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를 여기서 조금은 분명하게 정의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본래 고전이라고 하면, 유렵에서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동양에서는 사서오경등의 한서(漢書)를 가리킵니다.  50

좀더 확대이나 된 의미에서의 고정이라면 중세까지, 유럽의 경우에는 <아더왕 전설>이나 종교 서적을 예로 들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즉 르네상스 이전 시기에 나온 서적을 고전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51

어떤 작품이라도 점차 시대의 검증을 받으며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 중에는 10년 정도의 검증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50년 정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는 작품도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100년 정도는 살아 남지만 그 이상의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몇 백 년이 지나도 살아 남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19세기 문학이라든가 20세기 문학은 아직 검증의 과정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 중에 지금까지 자신이 진정한 고정이라고 여겨왔던 서적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고전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꾸어 생각하면 이분들이 실제로 50년 정도의 검증을 거칠 경우 사라져 버릴 작품에 대해. 100년 정도의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2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작품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읽고 싶거나 젊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진짜 고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진짜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에 실려 있는 내용에 특별히 뛰어난 점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용을 보면 어쩐지 시시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책을 골라 읽는 과정을 서로 공유하여 그 내용을 서로 이야기해 보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그 저서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 자체가 토론의 댓항이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한 책만이 결국 진정한 의미의 고전으로서 살아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55

결국 커다란 흐름을 살펴보면(그 시대 정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합니다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다수의 집단이 보여 주는 지적 작용이 집적해 가는 방향, 그 방향으로 인간의 지식의 총체는 끊임없이 확대와 집적을 반복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지식의 집적, 축적이야말로 과거의 지의 총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지적 신진대사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지적 신진대사가 반드시 고전 등에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과거의 지의 총체는 최신 보고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56-57

               (<주간 독서인> 1986. 6. 2)


체험적인 독학방법

나는 스페셜리스트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너럴리스트의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나름대로 제너럴리스트다운 스페셜리스트가 되자는 결심.  63

독학으로 공부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마음 먹은 의지를 지속시키는 일이다.  64

1. 먼저 돈을 쓴다. 서전 순례를

2. 책을 선택하여 구입 - 입문서로 시작

   그 다음으로 결코 떼놓을 수 없는 것은 그 학문의 역사, 학설사, 사상사이다. 그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밑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머리 속에 그리는 일이다.

그 학문 분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 방법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학문으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가?  75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각론을 설명한 책을 찾는 일이다. 이것은 그 학문의 깊이를 알기 위하여 필요하다. 

모든 각론을 읽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은 가장 흥미를 끄는 테마를 다룬 책을 편쳐 내용을 살표본 뒤, 자신이 소화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 책을 한 권 찾아 놓는다.  76

정독할 필요는 없다. 메모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너무 의욕이 앞서게 되면 분면 도중에 좌절하고 만다. 입문서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는 입문서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치우는 편이 낫다. 

메모를 하는 대신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해두는 방법이 더 좋다.  78

관련 분야의 책을 읽는 일에만 몰두하여 한 달 정도 지나면 그 학문 분야의 대체적인 개요를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독학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점은 질의, 응답 과정이 없기 때문에 독선적인 해석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습득하게 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79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다독을 하거나 조금은 당돌하게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관심 분야의 전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편중된 방향으로 점점 깊이 파고들어 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지식 체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80

                                          (<경제세미나> 1975. 6.)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

일과 일반 교양을 위한 독서와 관련하여 쓴 것이므로, 취미를 위한 독서와는 무관함을 밝혀둔다.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 말라. 수업료로 생각하라.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든 너무 높든 그것은 시간 낭비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꼭 하고 싶으면 다 읽고 하라.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라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을  발견하면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 많다. 머리가 나쁘다 자책말고 우선 오역 의심을 해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아사히 저널> 1982. 5. 7.)  81-83



III. 나의 서재, 작업실론


IV.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대문학'을 읽은 것이 나중에 다치바나 씨가 하시는 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째,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 가는 직업을 선택한 것 자체가 이미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글을 읽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으니 말입니다. 우선 제대로 된 소비자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생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을 통해 정신 세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래도 사물을 보는 눈이 사려 깊지 못합니다. 사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식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세계는 처음 겉으로 나타난 것을 한 번 뒤집어 보면 다르게 보이고, 다시 그것을 뒤집어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표면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문학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향이라면 독서, 특히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얻어지고 길러지는 상상력이 아닐까 합니다. 취재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결국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먼저 말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과거 경험을 듣고 싶어도, 말하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132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일류 전문가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자신을 끌어 올릴 수 있는지, 그 점이 정말 궁금합니다.

-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159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데 지름길이란 없습니다. 요령 있는 공부는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보통 큰 테마를 하나 맞게 되면 몇 년씩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 성실하게 공부를 계속한다면 대학원을 몇 번 졸업할 정도의 공부를 한 셈이 됩니다.  160


퇴사의 변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봄으로써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잃어버린 채,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만 보려고 한다면, 보았다고 여기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결과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예춘추> 사원회보, 1966. 10. 12.)  186



V. 우주 인류 책

책이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 서평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그 책을 한번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글을 쓰려고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적절하면서 매력적인 인용을 활용하는 것이므로, 적절히 인용할 곳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213

나의 서평은... 신변잡기적인 내용은 거의 없으며, 오로지 내가 권하는 책의 내용에 관한 정보만을 채워 넣는다.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쓸데 없는 것은 생략하고, 유효한 정보만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채워 넣는다.  216

읽기 어려운 책을 어떻게 해서든지 읽을 수 있는 지적 기술은 과연 없는 것일까? 기본적인 지적 기술의 첫걸음은 그 책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책은 단락 단위로 기술되어 있고, 단락이 모여 절이나 장을 이루고 있다. 저자가 구분하지 않았더라도 구조적으로는 절과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책은 단락 하나하나를 벽돌로 삼아 쌓아 올린 건축물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벽돌(단락) 몇 장이 모여 블록(절)을 만들고, 블록 몇 개가 모여 부분적인 구조물(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체 구조물을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223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양을 살펴보면, 어떤 대규모 미술관이나 미술전보다도 작품에 신뢰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많아서, 처음부터 순차적인 책 읽기 방법을 취한다면 한 평생이 아니라 수백 년이 걸려도 다 읽지 못할 만큼 엄청난 양이다. 더구나 그 안에는 쓰레기만도 못한 것이 산더미민큼 섞여 있기 때문에, '전부, 처음부터 차분히 읽는' 방식은 절대로 시도할 필요가 없는 무모한 짓이다. 그런 무모한 방식으로 책을 읽으면, 꼭 읽어야 할 책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책을 만날 때까지 회화적 책 읽기 방식의 속독을 통해 선별을 거듭해가야 한다. '차분히 읽을' 가치가 없는 책까지 시간을 들여 읽는다는 것은 시간과 뇌의 수용 능력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일 뿐이다.  231 

요컨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236

결국 책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책이 지금 나에게 어떤 책 읽기 방법을 요구하고 있는지 재빠르게 판단하여,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237


나는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건 사람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인간은 결국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을 나왔건 나오지 않았건, 일생 동안 책이라는 대학을 계속 다니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대학에 지속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고 있다. 때로는 책이라는 대학의 한가운데를 하염없이 거닐거나, 노는 기분으로 긴장을 늦추는 행동을 다양하게 취해 보면서 공부를 계속해 왔다. 그런 선배가 쓴 가이드 북인 이 책이 책의 숲이라는 대학 안에서 때로 길을 잃고 헤내는 사람들에게 안내자로서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겟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읽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충고 한마디!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무엇이건 다 믿지는 말아라. 자신이 직접 손에 들고 확인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말아라. 이 책도 포함하여.  28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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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세계 인식은 여행에서 시작된다

여행을 계기로 펼쳤던 다양한 생각을 기록한 글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혹은 여해을 하고 한참 지나서 여행 체험이나 여행에서 얻은 인식, 지식을 소재로 쓴 글이라고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색 기행'인 것이다.  10


여행은(인생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겠지만) 결국 만남이다. 만남은 본질적으로 계산이라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 만남을 기대한다면 일정일랑 짜지 말고 되어 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26


나는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이 모든 일상사의 속박에서 풀려난 정신의 자유로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좋은 여행을 하고 있으면 "아, 이 얼마나 자유롭단 말인가." 하고 나오 모르게 중얼거리게 될 만큼 자유로움이 주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28


모든 사람의 현재는 결국 그 사람의 과거의 집대성이다. 그 사람이 일찍이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 누군가와 나눈 인상적인 대화의 전부, 마음속에서 자문자답한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현존재를 구성한다. 숙고한 끝에 했던, 혹은 깊은 생각 없이 했던 모든 행동, 그리고 그 행동들에서 얻은 결말에 반성과 성찰을 보탠 모든 것, 혹은 획득된 다양한 반사반응이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만들어 간다.

인간 존재를 이렇게 파악한다면, 한 사람을 전반적으로 형성하는 요인으로서 여행이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상성에 지배되는 패턴화된 행동(루틴 routine)의 반복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지성도 감성도 그저 잠들어 있을뿐이고, 의욕적인 행동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지 정 의 (知情意) 모든 면에서, 일상화된 것은 의식 위로 올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처리된 것은 기억도 되지 않게끔 되어 있다. 의식 위로 올라가 기억에 남는 것은 '색다름(novelty)'의 요소가 있는 것뿐이다.

여행은 일상성의 탈피 그 자체이므로 그 과정에서 얻은 모든 자극이 '색다름'의 요소를 가지며, 따라서 기억이 되는 동시에 그 사람의 개성과 지 정 의 시스템에 독창적인 각인을 새겨 나간다. 그러므로 여행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그 사람을 바꾸어 나간다. 그 사람을 고쳐서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여행 전과 여행 후의 그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여행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조차 무수한 작은 여행의 집적으로 파악한다면, 사람은 무수한 작은 여행 혹은 '커다란 여행의 무수한 작은 구성요소'가 가져다주는 작은 변화의 집적체로서 부단히 변화하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좋다.  31-32


이 세계를 정말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육체의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3


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데 있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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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제든 최적의 일반론이란 존재치 않는다.  10

기본적으로는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쓸데없는 시행착오는 가능한 한 피하는 편이 좋다. 그 때문에 타인의 경험을 배우는게 자주 도움이 되는 것이다.  12

속독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정신의 집중뿐이다. 그 이외에 어떤 훈련도 필요치 않다.  15


입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출력의 목적이 분명하여 그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한 입력이라는 점이 확실한 경우, 둘째는 입력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등은 전혀 생각지 않고 그저 즐겁게 입력하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다. 

'출력선행형'과 '입력선행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지적생산형'과 '지적생활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자의 경우 입력은 수단이고, 후자의 경우는 입력 그 자체가 목적이다.  18

어디가 필요하고 어디가 불필요한가를 어떻게 분간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인식해두는 일이다. 목차, 작은 표제, 색인만을 활용해도 대체적인 감을 얻을 수 있다.  20


목적 없는 스크랩은 그만둬라

나중에 자신이 다시 한 번 입력할 가능성이 없는 정보는 보존해 두어봤자 의미가 없다. 미래의 출력(넓은 의미의 출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수준의 출력도 포함된다)에 도움이 될 성싶지 않은 정보 같은 것도 보존해둘 의미가 없다.  36

목적이 확실한 경우에도, 그 목적에 비추어볼 때 기사를 스크랩해두는 것이 가장 유효한 방법인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37


분류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독자적인 분류법을 고안하는 게 제일 좋다.  42

새로운 분류항목을 생각해 내려고 할 때는 기존의 분류항목과 동일한 평면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분류라는 것은 대체로 하나의 평면에 주목하여 그 평면을 분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새로운 분류를 생각한다는 것은 눈앞의 대상을 기존의 분류평면과는 다른 평면 위에서 새로이 포착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47

사고의 유연선을 기르는 데 좋은 훈련으로는 인간을 둘로 분할하는 기준을 잇달아 생각해보는 방법이 있다.  48

 

개인으로서 해야 할 정보정리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따위의 일은 하면 할수록 어리석은 짓이다.  87


입문서의 선택법

서점에서 원하는 분야의 서가 앞에 서면 책을 한 권 한 권 꺼내보는 것이 좋다. 목차를 슬쩍 보고 서문을 휘리릭 훑고 본문을 훌훌 넘겨가면서 군데군데 발췌해서 읽는다. 권말의 참고문헌, 색인, 후기 등을 훑어본다. 발행연월일과 지금까지 몇 판을 찍어왔는지, 그리고 저자약력 등도 봐둔다. 이만한 절차만으로도 자꾸 하다벼면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97

좋은 입문서는 다음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읽기 쉽고 알기 쉬울 것.

둘째, 그 세계의 전체상을 적확히 전해줄 것.

셋째, 기초개념 기초적 방법론 등이 깔끔하게 정리 및 세지되어 있을 것.

넷째, 장차 중급, 상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해가면 되는지, 무엇을 읽으면 되는 지가 제시되어 있을 것 등이다.

입문서는 한 권만이 아니라 몇 권은 사는 편이 좋다.  98


선을 그을 때 자기 나름대로 몇 종류의 선을 긋는 방법과 선을 그은 페이지의 여백 부분에 붙이는 부호 등을 고안하여, 중요도를 구별하고 의미부여 등도 해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두면 두 번째 읽게 될때나 나중에 필요한 대목을 참조할 때 편리하다. 좀 더 확실한 기억을 남겨두고 싶을 때는 표지(겉표지든 속표지든)의 속지에 페이지와 사항을 간단히 메모해두는 것도 좋다.  103



인터뷰 취재란 한마디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문제가 정확히 설정되면 반은 답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흔히들 말한다. 인터뷰에서도 뭘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이싿면 반은 알아낸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다.  122

"어떻습니까?"

"느끼신 바를 좀....."

이라고 질문을 하기만 하면 상대가 뭔가 정리된 의견을 당연히 지껄여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어수룩한 저널리스트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123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질문할 때는 반드시 그 문제에 대해 자신도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125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알려고 하는 것이 어떤 사실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사실 이외의 것, 예컨대 상대의 의견이나 판단 같은 것인가를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을 알려고 할 경우,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가, 아니면 주관적이고 내적인 사실인가를 구별한다. 심경이나 심정 같은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객관적 사실은 나아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역사적, 경험적 사실이든가 아니면 보편적, 추상적 사실이다. 기억과 지식이라고 분류해도 좋다.

범주를 구별해둘 필요가 있다.  126


질문 메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상대방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언제라도 잽싸게 참조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예컨대 별지로 갖고 있든가, 노트나 메모장의 첫 페이지 등 언제나 넘겨볼 수 있는 곳에 개재해 둔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 질문요강은 최대한 머릿속에 주입해 넣어둔다. 그리고 임기응변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준비한 질문항목을 순차적으로 소화해나간다.  127


첫째는 준비, 둘째는 상상력

반복하지만 좋은 질문을 하룻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터뷰의 성패가 50% 이상 결정된다.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첫째는 준비, 둘째는 상상력이다.

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 준비란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에 관한 예비지식을 얻는 것, 그리고 자신이 듣고 싶은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메모를 해두는 것이다. 특별한 예비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메모도 작성해두는 게 좋다. 특히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해 인터부할 때는 관련 사실의 시간적 선후 관계가 확실히 정리된 연표 같은 것을 작성해두는 게 필수다. 연표를 만들어보면 기존의 지식에서는 어디가 누락되어 있는지가 드러난다. 

상상력은 '사실적 상상력'과 '논리적 상상력'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흔히 말하는 상상력이고 후자는 내가 만든 용어다. 사실적 상상력은 역사적, 경험적 사실을 물을 때 특히 중요하다. 처음에 질문 요강을 만들 때가 아니라 그 요강에 입각하여 구체적 질문을 거듭해가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중요하다.

역사적 사실(넓은 의미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 모두)을 물을 때 필요한 기초적 사실 관계는 누구라도 알 수 있게 5W1H(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형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누구라도 형시적으로는 그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5W1H의 하나하나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사실을 끌어내어 깊이 파고들 수 있느냐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디서 차이가 생기는가 하면 바로 질문자의 상상력에 의해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피상적인 답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요구하며 질무넹 질문을 거듭한다. 하지만 상상력이 결핍된 사람은 상대의 피상적인 답변에 만족하여 그 이상의 물음이 나오지 않는다.  131-132


체험적 사실인가, 전달이나 추측인가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해 인터뷰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직접 체험한 사실과 단순한 전달 내지는 추측을 구별하는 것이다.  132


논리적 상상력

논리적 상상력이라는 것은 사실들을 연결하는 논리를 찾아내는 능력, 혹은 다른 사람의 추론을 듣고 거기에서 논리적 결함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생각을 조리 있게 하는 능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이야기할 때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둟린 이야기밖에는 할 수 없듯이, 논리적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은 허점투성이의 논리밖에는 전개하지 못한다. 그리고 논리적 상상력이 결핍된 질문자는 그 결핍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논리적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 전혀 논리가 서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는 서로 만족하며 끝난다. 그것이 개인적 대화에 그친다면 제3자가 크게 불평을 늘어놓을 이유도 없지만 전문적인 인터뷰라면 완전히 낙제점이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인터뷰어라면 상대에게 논리적 상상력이 결여된 경우에도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져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조리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만 그 경우 과잉유도에 의해 상대의 본의가 아닌 것을 내뱉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상대방의 논리에 허점이 없나,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이치만을 앞세워 따져 묻는 것도 좋지 않다. 일상언어의 세계에서 논리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이야기의 논리를 추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조리 있는 이야기라면 논리 전개의 절차 같은 것은 다소 뛰어넘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되며 보통 그렇게들 뛰어넘는다. 그런 것은 논리의 결여가 아니다. 논리의 결여라는 것으 ㄴ본질적으로 이야기의 조리가 서 있지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어떤 전제로부터 유도될 수 없는 결론을 억지로 유도해버리는 식의 논법이다.

논리 전개를 다소간 뛰어넘은 것인지 아니면 논리의 결여인지는 논리적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에게는 좀처럼 분간이 잘 안되는 문제다. 전자라면 생략화법이지만, 후자는 만약 악의적인 것이라면 궤변이요,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면 오류다. 양자는 엄밀하게 구별되어야만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 구변이 좋은 사람이 수비게 남을 구워삶을 수 있는 것은 교묘하게 전자와 후자를 슬쩍 바꿔치기 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특히 이런 데 능한 사람들이다.  136-137

(거짓 논리를 간파하기 위해 논리학을 조금 공부해보면 도움이 된다)


실례를 범하는 게 아닐까 너무 걱정한 나머지, 묻고 싶은 것도 묻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묻기 어려운 것이라도 묻고 싶은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한다. 에두른 표현은 삼가는게 좋다. 에둘러 표현했을 경우, 쌍방이 서로 질문을 다른 뜻으로 해석한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중함을 잃어선 안 된다.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될 때까지 묻는다.  140

부끄럽더라도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묻는 편이 좋다. 게다가 그런 부분을 따져 물었을 때, 의외로 이야기가 재미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알은 체를 하면 그런 발전 가능성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

또한 보충취재는 귀찮아하지 말고 몇 번이고 해야 한다.

누두든 한 번의 인터뷰로 완벽한 취재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좋은 이야기를 듣기 위한 조건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녀석은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놈이군, 하는 생각을 상대방이 갖게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놈"이란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라는 말이다. 지적으로 이야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이쪽이 충분한 예비지식과 이해력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상대방이 갖게 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이야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내 기분을 잘 알아주는군' 하는 느낌을 상대방이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녀석이군'하는 마음을 먹게 해야 한다.  141-142


출력 중에서도 주로 글쓰기에 관해서다.

'입력과 출력 사이'라는 제목으로 오로지 '사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까 구상하기도 했다.  

   입력        - 사이 -     출력

원재료 공급 - 공정 - 상품출하  144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머릿속의 발효 과정,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론도 없다.  146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무의식의 능력을 고양시킬 수 있을까?

가능한 한 양질의 입력을 가능한 한 다량으로 해주어야 한다. 그 이외의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으면 가능한 한 좋은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읽어야 한다. 그 이외에 왕도는 없다. 문장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153-154

좋은 문장을 즐기면서 읽는 게 최고다. 

어떤 게 좋은 문장인지 스스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좋은 문장에 대한 고정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많이 읽어가는 중에 판단 기준이 저절로 높아져 갈 것이다.  154


실용적인 주의를 한 가지 상기시켜 두자면, 문장을 쓰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집요할 정도로자기 머릿속에서 반복하여 새로 읽어보는 것이다. 실용적인 주의는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면 매끄러워질 때까지 손을 본다. 손을 보는 가운데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무엇이 좋을지 자신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일이 간혹 생긴다. 그럴 때는 과감히 쳐내는 방향으로 손을 댄다.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반드시 긴 문장이다. 그러니 우선 수식어(수식어구)를 덜어내고 연문(連文), 복문은 단문화 하여, 가능한 한 단순하고 짧은 문장으로 만들어본다. 그래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으면 문장구조를 바꿔본다. 구체적으로 주어를 바꿔본다. 주어를 바꾸면 문장 전체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주어를 바꾸자마자 지금까지의 신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문장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일이 흔히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동사적 표현의 문장은 명사적 표현으로, 명사적 표현의 문장은 도앗적 표현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어절이든, 구절이든, 문장 전체든 아무거나 좋다. 어떤 문장의 어떤 부분이라도 이렇게 바꿔쓰기가 가능하다.  155


예컨대 요 앞에 쓴 문장 말미의 '바꿔쓰기가 가능하다'라는 명사적 표현 부분은 '바꿔쓸 수 있다'라는 동사적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이 바꿔쓰기는 조금 훈련을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문장이라도 괜찮으니 그 문장의 명사적 표현 부분을 동사적 표현으로, 동사적 표현 부분을 명사적 표현으로 전부 바꿔 써보는 연습을 해보시라. 

혹은 주어를 전부 변경해보는 연습도 해본다. 그러한 연습을 해보면 어떤 문장이라도 다양한 바꿔쓰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을 바꿔써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으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과감히 전문 삭제해 버린다. 그러면 그대로 뒷문장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전체가 산뜻해지는 일이 자주 있다.  156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재료를 정리하여 콘티를 짜서 그 콘티대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편이 틀림없이 좋을 것이다. 다만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콘티를 제대로 못 짜서 아무리 여러번 애를 써도 잘 안 된다든가, 콘티를 짜봤자 아무리해도 펜이 그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습성을 가진 사람은 나 말고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는 굳이 콘티에 구애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161

헌데 콘티가 없는 경우에는 과연 무엇을 의지처로 삼아 쓰는 걸까. 내 경우는 흐름이다. 흐름을 따라가며 쓴다.  162

콘티를 짠다는 것은 말하자면 집필 전에 미리 흐름을 짜는 것이다. 콘티를 짜지 않고 흐름에 맡겨 써간다는 것은 쓰면서 시행착오를 의지처 삼아 단락마다 콘티를 모색해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63


내 경우에도 전혀 아무것도 없이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은 간단한 메모를 사전에 한다. 메모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재료를 잊지 않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반짝 아이디어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169


콘티 없이 글을 쓸 경우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 바로 '재료 메모'다. 쓰기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모은 재료들을 훑어본다. 그때 미리 준비해둔 메모를 본다. 이것이 '재료 메모'다.

재료를 메모하기 위해서는 메모 내용을 최대한 잘라내야 한다. 문장을 써서는 안 된다. 단어를 쓰든가 기껏 길어야 어절까지가 고작이다. 한 단어 한 단어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담는다.  174

메모의 메모를 작성한다. 

메모의 메모를 작성해도 여전히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으면, 이번에는 메모의 메모를 다시 읽고 메모의 메모의 메모를 작성해보면 어떨까.  175

서두를 어떻게 쓸지는 아무리 고뇌해도 부족하지 않다.  176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재료를 새로 모아보는 것도 좋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근본적으로 발상을 바꿔보는 것이 좋다.  177

좋은 차트를 그리는 게 그리 간단치는 않다. 첫째, 모은 재료를 개념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한다는 게 좀체 쉽지가 않다. 다음으로 컨셉트와 컨셉트 사이의 착종된 연관 관계를 발견하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또 어렵다. 이것 또한 일단 그려보는 게 좋다. 그러보면 자기 생각의 결함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보다 좋은 차트를 작성해갈 수밖에 없다.  190




문체는 개성이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스타일의 문장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은 개성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든가, 개성을 상실해버였든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ㅏ. 자연스레 현성되는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때는 의식적으로 다양한 스타일로 써본 일이 있다. 다양한 저술가의 스타일을 흉내 내 써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당 최 내 몸에 붙질 않았다. 결국 어떤 문체로 쓸지를 완전히 망각해버리고자연체로 썼을 때 그 사람의 문체가 태어나는 것이다.  192

문체는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문학작품이 아니라면 문체에 너무 마음을 쓰는 것은그다지 권장할 일이 못된다. 문체는 옷이다. 문체에 의해 표면을 장식할 수는 있어도 실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자신의 문체에 대해 방황하는 동안은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면 사라은 좀체 납득하지 않는 법이다.  193

문체에서 또 하나 말해두어야 할 것은 독자에게 아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독자에게 아첨하는 것은 문장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흔히 사로잡히기 쉬운 유혹이다. 왜 그렇게 되느냐하면 필요 이상으로 독자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독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텔레비전 시스템 저편에 있는 시청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하여 만인을 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바로 그와 같은 심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95


설명 미숙의 근본원인을 살펴보면 대체로 설명 순서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설명 순서를 바꾸기만 해도 명료해지는 예가 많다. 그러면 올바른 설명 순서는 어떠해야 할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설명이란 어떠한 프로세스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2

논리학에서 말하는 '충족이유율'이 만족되었는가를 확인하라는 말이다.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제시되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그걸 확인하는 좋은 방법은, 자신이 누군가와 한 창 논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내 쪽의 어떤 약한 부분이라도 상대방이 물고 늘어질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정하고 나서 자신이 쓴 것을 새로 읽어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저쪽 논쟁 상대라는 생각으로 다시 읽어보라는 말이다.  203


회의정신이 필요하다. 저널리스트 등과 같이 정보를 취급하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직업적 회의정신이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된다.  208

확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것이 미확인 정보임을 잊지 말고 그에 걸맞은 처리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은 쉽사기 믿어버린다. 믿고 싶은 거라면 마확인 정보라도 그만 진실이라고 믿고 만다. 역으로 믿고 싶지 않은 것은 어떻게든 그 정보가 진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려 한다. 누구라도 그러한 편견으로부터 100% 자유롭긴 어렵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딱 들어맞는 미확인 정보를 얻었을 때야말로 안전한 확증을 잊지 말자, 라고 평소부터 자신에게 타일러두는 것 말고 다른 예방법은 없다.  209

어쨌거나 어떤 정보든 수용하기 전에 반드시 음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과를 사기 전에 혹시나 상한 사과가 아닐까, 누구나 조금은 살펴보듯이, 정보도 받아들이기 전에 상한 것이 아닌지 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 음미의 기본은 그 정보의 출처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 정보를 그 정보 제공자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오리지널 정보원으로부터 그 정보 제공자에게 정보가 흘러들기까지의 프로세스 전체를 상상한다든가, 따져 묻는다든가 해서 그 프로세스에 뭔가 의심쩍은 부분은 없는지, 정보전달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숙고해본다.  218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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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동문학 연구센터' 주최 제 10회 문화 세미나 '읽기, 듣기'(2005년 11월 20일)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를 검색하여 알게 되었다.
그의 여러 책들 중에 읽은 책도 몇 권 있지만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기에 다시금 정리하면서 여러권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본 후에 제목에 끌려 잡았다.

읽는것과 듣는것, 우리는 무의식중에서도 이 두가지를 계속하면서 생활한다.
그처럼 무의식중에 입력된 것들이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아 나를 만들기도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의식중에 입력되는 것들일 수 있는데, 우리는 단편적으로 읽는 것과 듣는것으로 그치는 것의 무의미함을 지적해 주고 있기도 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자주 언급하는 표현가운데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인가?'가 있다.
어딘가에서 들어서 또는 보아서 아는것은 진정 자신이 아는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두 번 얼굴을 봐온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사람을 안다. 
하지만 무엇을 아는가?
진정 알고 있다고 표현할 수 는 없다.
우리가 '안다'고 표현할 때는 진정 자신이 경험하여 체득한 것이 포함되어야 진정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에서도 그 점을 언급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지 세 명의 대화와 강의 가운데서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쉽게 읽혀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결코 쉽게만 읽고 넘어가서는 안 될 내용들이 그들의 70년이 넘는 삶과 경험의 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으면서 여러 정보를 듣는 셈입니다. 무언가를 읽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저렇게 한느 것이 낫지 않을까? 하며 '행간 읽어내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간 읽기' 속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이 점을 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다가 아니라, 이 사람과 만난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또는 나의 무의식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  35-36
단지 책 자체만 읽고서 "이 책은 별로야"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몰입해 읽어야 합니다.  37
책도 스스로를 몰입해 읽다 보면 몸이 반응을 보입니다.  38
진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며, '읽어내기'위해서는 언어의 감춰진 부분, 즉 배후를 읽어내야 합니다.  45

글을 쓰려면 그에 앞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해 놓아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며, 또다른 하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49
글을 쓴다는 작업은 먼저 자료 확보가 있은 다음에 그 자료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를 생성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나 자신에게 '정보를 투입하는 과정(Input)'과 '밖으로 꺼내는 과정(Output)'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을 일반적으로 'IO비'라고 합니다.
IO비가 높을수록, 다시 말해 자료를 최대한 많이 투입하여 적게 배출하면 그 압박비가 높은 만큼 많은 정보가 쌓여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50

굶주림과 책
몇 만 명이나 되는 인간이 무리를 지으려 하고 
책 한 권 없는 곳이 있다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고
몇 만 권이나 되는 책이 있는 곳이 있다 
다 읽으면 먹을 수 있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존은 말하지만
굶주려 있으면 읽기도 전에 먹어치울 것이다
내가 있고 싶은 곳은 깎아지른 절벽 위
그곳에 책 한 권만 가져가
소리내어 읽는다
바다와 하늘에게 인간이 쓴 책이라는 녀석을 
읽어준다
  - <시를 보낸다는 것은> 중에서  74

숲에게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할 말을 잃고
읽는 사람의 손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80

바람
잡목 숲
낙엽 위
외발 등나무 의자
당신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날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책 한 권을 펼치고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당신은 책을 읽고 있었다
부드러운 가을 햇빛을 받으며

그리고....
문득 얼굴을 들어 나는 향한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늘 색 바랜 사진 속에서

당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
나이든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는 읽는다
그날 당신이 보고 있던 세계를 
나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가져보면서  82

사랑에 빠진 남자
연인의 짓궂은, 미소 띤 얼굴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그는 연애론을 읽는다
펼쳐든 페이지 위에 있는 사랑은 
향도 감촉도 없지만
의미들로 넘쳐난다

그는 책을 덮고 한숨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유도 연습시간에 맞춰 나간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
코치의 질타가 날아든다

그날 밤 연인에게 키스를 거절당하고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은 읽어야 하는 것투성이야
사람의 마음 읽기에 비해
책 읽기는 누워서 떡먹기군

그러나 언어가 아닌 것을 읽어내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은 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다시 연애론을 펼쳐든다
한숨을 쉬면서
콘돔을 서표(書標) 대신 삼아  86

독서라는 것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선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찾아 파고드는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144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147
뇌의 본능을 고려해 볼 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생각하면 대개 실패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반사신경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면 정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2


후기
'읽기'와 '듣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다양하며 우리 인생에 풍요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174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란 실제로 삶을 살아온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에 의한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다치바나 다카시)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의 배후에는 '산다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176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는 언제나 만남의 연속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  177

옮기고 나서
세 사람은 인간의 지적 도구인 언어를 구성하는 문자가 그 편리성만큼 인간의 심적 움직임을 제한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감성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문자가 가진 우수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무언가를 읽거나 듣는 행동에서 벗어나 감성을 되살려, 언어 이상의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181
우리 인생이 만남의 연속이듯, 정보 또한 삶 속에서 갖게 되는 하나의 만남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선택 기준을 마련해 인간이 쌓아온 지혜를 믿고 활용한다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지식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8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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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이다.
표지에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
'드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삶을 낭비하지 않고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는 실천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보고, 프루스트를 일상에서 실행할 수 있는 '문학적 참고서'로 새롭게 조명한다. 전기와 평론이라는 형식을 빌려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



하나.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계획, 여행, 연애, 연구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미래에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끝없이 미루는 우리의 게으름은 이것들을 숨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루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하는 위협이 생기면, 삶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 대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것도 하지 않을 테지요... 거기서는 무관심이 소망을 죽입니다.'  13

둘. 자신을 위한 독서법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36
'만약 천재의 새로운 걸작을 읽게 된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경멸했던 우리 자신의 성찰들, 우리가 억압햇던 기쁨과 슬픔, 우리가 깔보았지만 그 책이 문득 우리에게 그 가치를 주는 감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42

셋. 여유 있게 사는 법
예술 작품의 위대함은 겉으로 보이는 소재의 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전적으로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프루스트는 주장한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모든 것이 예술의 풍부한 소재이며,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만큼이나 비누 광고에서도 귀중한 발견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57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는 아마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63
천천히 생각할 때 더 큰 연민이 생길 수 잇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쳤군'이라고 한 마디 하고 신문을 넘길 때보다는, 정신이상자 반 블라렌베르그 씨의 범죄에 대해 기다란 성찰의 글을 쓸 때 우리는 그를 더 많이 동정하게 된다.  64
교훈은? 공연에 몰두할 것, 신문기사를 마치 하나의 비극적 또는 희극적 소설의 일부인 것처럼 읽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는 잠드는 것을 묘사하는 데 30페이지를 쓸 것. 그리고 만약 시간이 없다면, 적어도 올레도르프 사의 알프레드 윔블로나 파스켈 사의 자크 마들렌이 취했던 태도에 저항할 것. 프루스트는 이러한 태도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할 시간이 없다'라는 건 '바쁜' 사람들이-아무리 그들의 일이 어리석을 지라도-느끼는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66

넷.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어떤 사람이 가진 생각이 지혜로운 것인지 평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의 정신과 건강상태를 주의 깊게 검토해 조는 것이리라.  67
'내가 진정 슬플 때 위안이 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75
프루스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문제가 있기 전까지는, 즉 우리가 고통에 빠지고 우리가 희망했던 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병 하나만으로도 우리느 ㄴ주목하고 배우게 되며,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을 과정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매일 밤 침대 위에 눕자마자 즉시 잠에 들어서 깨어 일어나는 순간까지 죽은 듯이 자는 사람은, 반드시 위대한 발견일 것까지는 없지만, 분명히 수면에 관한 작은 관찰조차도 꿈꿔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고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한다. 약간의 불면증은 우리가 잠에 대해 감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없지 않다. 기억을 잘하는 것은, 기억이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 그다지 큰 이점이 아니다.'
프루스트가 제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때에만 천저한 탐구심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 그리고 고통을 더 큰 맥락 속에 위치시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땜누에 우리는 생각한다. 생각은 고통의 기원을 이해하고, 그것의 여러 특성ㅇ들을 포착하고, 그 존재를 체념하고 인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92
그는 개인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선생을 통해서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럽게 얻는 지혜가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93
'지혜란 가르칠 수 있는게 아니다. 누구도 우리 대신 가줄 수 없는 여정을 통해서, 누구도 우리 대신 해줄 수 없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행복은 몸에 좋다. 그러나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라고 프루스트는 말했다.  94
만족보다는 불행이, 그리고 플라톤이나 스피노자를 읽는 것보다는 고통스러운 연애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천재보다는, 우리가 욕구하고 우리를 앓게 하는 여성이 훨씬 더 심오하고 생생하게 우리에게서 온갖 종류의 감정을 끌어낸다.'
행복할 때 무지한 것은 아마도 그저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95
고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이란 그것이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탐구의 가능성-아주쉽게, 그리고 가장 자주 간과되고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는 것일 뿐이다.  99
'삶의 기술 전부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개별자들을 이용하는데 있다.'  100
언제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101

다섯. 감정을 표현하는 법
"당신의 소설에는 몇 가지 훌륭하고 장엄한 장면들이 그려집니다"라고 프루스트는 섬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좀더 독창적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해질녘에 하늘이 불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너무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고, 어슴푸레한 달빛은 시시하고 둔감한 표현입니다."(가브리엘의 <연인과 의사>라는 소설의 원고를 읽은 평)
상투어의 문제는 잘못된 관념을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훌륭한 관념들을 피상적으로 조합해 낸다는 데 있다. 해는 해질녘에 불타고 달은 어스레한 빛을 내지만, 우리가 해나 달과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이 주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첫 번째 말이라기보다는 최종적인 말이라고 결국 믿게 되고 말 것이다. 상투어들은, 한편으로는 단지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어떤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처음에 어떻네 경험하는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123-124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마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신만의 '음색'을 창조해야 하듯이...형편없이 쓰는 독창적 작가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 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아마 이게 약점일 수는 있지만-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창적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했다는 전제하에서만 그들은 잘 쓸 수 있습니다. 정확함과 완벽한 문제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든 착오를 겪은 후에야 독창성의 이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독창성과 같은 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창성의 면에는 정확성-'어슴푸레한 달' , '미소짓는 착한 마음' , '모든 연도 중에서도 가장 불쾌했던 해"-이라는것은 조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스트로스 부인!'  130-131

여섯. 좋은 친구가 되는 법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내용과 타인의 관심사가 쉽게 일치하는 것이 친교라고 가정한다.  165
프루스트는 한번은 친교를 독서에 비유하였다. 왜냐하면 두 가지 활동 모두 타자와의 교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독서에 결정적인 우위가 있다고 덧붙였다.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서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173

일곱. 일상에 눈을 뜨는 법
모든 것에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라고 권했을 터이다. 이는 좋은 삶이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고 헛되이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했다.  190
왜 우리는 사물들을 더 풍부하게 음미하지 않는가? 이것은 부주의나 게으름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이미지들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은 데서 유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우리 자신의 세계에 충분히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안내하고 우리에게 착상을 불어 넣을 수 있다.  199

여덟.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무언가를 박탈당했을 때 우리는 그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박탈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것을 결핍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우리가 그것을 결핍하고 있지 않을 때도 그 교훈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 연인과의 오랜 교제로부터 권태감이 생기고, 그 사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제는 우리가 그를 충분히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다. 처음 사귈 때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무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후로 연인의 곁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 우리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감각해질 정도로 진정 친숙해진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같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가짜 친숙감에 불과할 것이다.  224

아홉. 책을 치워버리는 법
우리는 책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까?
프루스트는 책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생기는 위험들, 아니 책을 물신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취할 때 생기는 위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책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예창작의 정신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237
그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244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정하지는 않는다.'  246
'우리 속 깊은 곳에 있지만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알지 못했던 집의 문을 마법의 열쇠로 열어주는 한, 우리의 삶에서 독서의 역할은 유익한 것이다. 반며에 독서가 정신에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지 않고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면, 그것은 위험해진다.'  247
'(독서를) 학문 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책들조차도 결국에는 내팽개쳐야만 하게 마련이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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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서 헤밍웨이까지 작품으로 읽는 문학독법'이란 부제를 달고 문학 독서의 방법에 대해 자신의 읽기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서평이라 표현하거나 리뷰라 표현할 수도 있는 방식을 통해 고전문학 독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 책 읽는 사람들이 늘 생각하는 질문인 '왜 읽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 부분만을 생각해 본다.





서문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나 위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독서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를 내적 수련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문학 비편은 이론적이기 보다는 경험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16

프롤로그 - 왜 읽는가?
자신의 판단과 견해를 형성할 능력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읽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의 목적 중 하나는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며 가장 마지막 변화는 안타깝지만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맞이하는 것(죽음)이다.
나는 독서를 홀로 행하는 실천으로서 수행한다.  19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이러한 확장을 즐거움으로 경험하게 된다.
독서의 즐거움은 사실 사회적이기 보다는 이기적이다. 개인의 상상력을 성장시킴으로써 타인에 대한 배려가 증가 되리라는 전통적인 사회적 희망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며 홀로 행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공익과 연관 짓는 모든 주장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다.  21

지금 책을 읽는 방식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은
첫째, 머릿속에서 은어(隱語, cant)를 제거하라. 
경건하지만 상투적인 표현으로 넘쳐나는 말을 의미한다.
둘째, 독서를 통해 자신의 이웃이나 주위 사람을 개선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자기 계발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계획이다. 정신은 자신의 원초적인 무지가 제거될 때까지 자신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 섣불리 외출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며 독서에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셋째, 학자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욕망으로 타오르는 촛불이다.
당신이 진정한 독자가 된 후 당신의 노력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당신이 타인에게 계몽적 역할은 하고 있음이 확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잘 읽기 위해서는 발명가가 되어야 한다.
'창조적 독서'를 나는 '오독(誤讀)'이라고 이름 붙인 적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거듭나는 것으로서 다년간의 깊이 있는 독서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러니의 회복을 제안한다.
아이러니는 일정 기간의 집중력과 상호 모순된 관념들을 그 충돌에도 불구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독서에서 아이러니를 제거해 보라. 그러면 엄격함과 놀라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그러면 그것은 아이러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2-27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인간의 정서를 읽으려면 인간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여러분은 각자의 신념이 무엇이건 간에 이데올로기 이상의 존재이다.  28
 
우리가 깊이 있는 독서를 하는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익숙한 이유들이다.
즉, 우리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거나,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필요가 있다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알기 원한다는 등등의 이유다.
그러나 현재 너무나 많이 오용되고 있는 전통적인 정전(正典)을 깊이 읽으려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진실한 동기는 쉽지 않은 즐거움에 대한 갈망이다.
내가 보기에 즐거움을 주는 난제는 숭고함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의(定義)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차원적인 즐거움은 독자의 모험의 영역에 남아 있다.
독자가 경험하는 숭고함이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세속에서 경험하는 유일한 초월의 경험인 듯하다. 
진정으로 당신에세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진심으로 권유한다.
깊이 읽으라. 그것은 믿기 위해서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반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쓰고 읽는 본성을 공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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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를 매우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금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퇴계공부법을 읽을 당시 이 책을 알게되고 매우 빨리 읽었었다.
당시 이 책도 매우 재밌게 읽었었다. 상황상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지금까지 생각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배회하다가 갑자기 이 책이 생각이 났고, 마침 도서관에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반갑게 책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번 보다 더 재미있게 글을 읽었다.

근래 논어 해설서를 다시금 보아서 인지 내용들이 매치되면서 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밑줄그은 내용들은 그러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듯하다.
줄을 그으면서 좀 많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글을 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도일 것이다.
정도의 개념을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책을 통해 오늘날에 필요한 글쓰기의 개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오늘날은 누구나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해 졌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면서도 보고싶은 글이 될 수 있게, 그에 더불어 울림이 있는 글이 될 수 있게 한다는 것에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교가 우선이 아니다. 미사여구가 우선이 아니다. 글쓰는 이의 자세로 시작하여 내용이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
 




"... 이인로(李仁老)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 모든 사물 가운데 귀천과 빈부를 기준으로 높낮이를 정하지 않은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문장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한 말이지."(김향서가 아들 지문에게 자신이 과거를 보지 않은 이유는 어머니때문이라고 말을 하는 중에 했던 말)
"믿기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다. 네가 멸시하는 소설이나 소품 같은 살아 있는 글들을 사람들이 앞다퉈 찾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거든. 저마다의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들을 너무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단 말이지. 지금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곧 그리될 것이다. 이것만큼은 내가 장담한다."  46

지문의 글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저와 같이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저잣거리에서 오가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을 생각만 하거나, 억지로 경서의 뜻을 무시하고 일부러 경박한 척하여 글자마다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비유하자면 화공(畵工)을 불러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시선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옷은 주름이 가득 져서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 하더라도 참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됐다. 그만하면 됐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
연암은 중현에게 "책장에서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를 가져오너라."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저와 같이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거나, 억지로 경서의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정중하게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화공(畵工)을 불러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시선은 움직이지 않고, 옷은 주름 하나 없이 펴져서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 하더라도 참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
연암은 글에서 무조건 옛것을 따르는 추세를 비판했지만, 지문은 몇 구절을 바꾸어 무조건 새것을 추구하는 추세를 비판했던 것이다.  58-59

"자네는 몇 자나 아는고?"
"네?"
"몇 자나 아느냐고 물었느니라."
...
"아는 글자가 없습니다."
"허허, 십 년 넘게 글을 읽었다면서 아는 글자가 없다니 말이 되느냐?"
"부끄럽습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아는 글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읽고 외웠을 뿐 글자의 참 의미를 깨닫진느 못했습니다."  63-64

"과거를 보는 데는 경전을 외우고 과문을 익히기만 하면 되네. 하지만 경전은 음미하는 것이지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야..."  65

"많이 읽고 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하나를 알더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자세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네. 알아듣겠는가?"
"네."
"우선 <논어(論語)>를 천천히 읽게.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읽어야 하네. 그저 읽고 외우려 들지 말고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게. 잘 아는 글자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네. 반드시 한 음 한 음을 바르게 읽게."  67

지문은 <논어>의 주요 구절들을 이미 다 외우고 있었던지라 다시 소리 내어 천천히 읽으려니 답답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읽다가는 평생토록 읽어도 몇 권 못 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연암이 그렇게 읽으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지문은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가며 느릿느릿 읽어 나갔다...
차츰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읽다 보니 예전에는 별 의심 없이 지나쳤던 구절들이 하나하나 걸렸다.  68
한 달여 시간이 지났다.
지문은 질문을 빼곡히 적은 찌들이 가득한 <논어>를 들고 연암을 찾아갔다.  69

"이유당(怡愉堂) 이덕수(李德壽)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70

문자는 다 같이 쓰는 것이지만 문장에는 쓰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법이야.  96

'다섯 자 글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생의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시구(詩句)가 있다. 글쓰기는 그렇듯 전심전력을 해야 하는 법.  107

'약(約)'과 '오(悟)'의 이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네가 이리저리 걸으며 까마귀를 본 것이 그 방법이었다. 그럴 때 비로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을 일컬어 약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언젠가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 통잘의 순간이 오는 법. 네가 갑자기 깨달았다고 한 그 순간이니라.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컬어 오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110

연암은 박제가의 마음을 묘사하면서 우우량량(踽踽凉凉)이라고 썼다. 우우량량은 원래 홀로 터벅터벅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147

"변할 '변(變)'자 정도를 겨우 알게 된 듯 싶습니다."
"그렇네. 의고주의자(擬古主義者, 고대의 것을 표본으로 삼아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폐단이 임시변통으로 전통을 답습하는데 있으니, '변'이라 함은 지금 현실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일세.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 바로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의 이치인 것이야."
"또 하나, 더불어 잊어서는 안 되네. 변통하되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 바로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의 이치야."
"연암이 늘 내게 당부한 것이 하나 있었네. 옛 글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좋으나 너무 새것만 추구한 나머지 가끔 황당한 길로 가는 경향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이야. '전(典)'이라 함은 현실에 대응하여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지만 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박제가와의 대화)  148

글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것과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제 귀가 갑자기 울리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기뻐하며 가만히 이웃집 아이더러 말하기를, "너 이 소리 좀 들어봐라. 내 귀에서 앵앵 하며 피리 불고 생황부는 소리가 나는데 별같이 동글동글하다!" 하였다. 이웃집 아이가 귀를 맞대어 들어보려 애썼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자 아이는 안타깝게 소리치며 남이 몰라주는 것을 한스러워했다.
일찍이 한 촌사람과 동숙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어찌나 우람하게 코를 고는지 그 소리가 마치 토하는 듯도 하고, 휘파람을 부는 듯도 하고, 한탄하는 듯도 하고, 숨을 크게 내쉬는 듯도 하고, 후후 불을 부는 듯도 하고, 솔에서 물이 끓는 듯도 하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며 구르는 듯도 했으며, 들이쉴 땐 톱질하는 듯하고 내뿜을 땐 씩씩대는 것이 마치 돼지 같았다. 그러다가 남이 일개워주자 그는 "난 그런 일 없고"하며 발끈 성을 내었다.
아, 자기만 홀로 아는 사람은 남이 몰라줄 것을 항상 근심하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먼저 깨닫는 것을 싫어 하나니, 어찌 코와 귀에만 이런 병이 있겠는가. 문장에도 병이 있으니, 덕욱 심하다. 귀가 울리는 것은 병인데도 남이 몰라 줄까 봐 걱정하는데, 하물며 병이 아닌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코 고는 것은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주면 성을 내는데, 하물며 병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슨 의미인지 알겠느냐?"
"글쎄요..."
"그럼 잘 듣거라. 귀가 울리는 이명(耳鳴)은 당사자만 알수 있다. 하지만 코골이는 어떠한가?"
"당사자는 모르고 다른 사람만 압니다."
"이명을 가진 이나 코를 고는 이나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문장도 마찬가지지.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면 그것은 바로 귀가 울리는 자가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썼기 때문이고, 자기 글을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비평하는 데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슨 소리일 줄도 모르고 글을 썼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병폐를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자신의 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옳거니, 글을 아무리 잘 썼다 해도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글을 쓸 때는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네, 법고 창신의 정신이 중요한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야."  149-151

"자네가 꼭 내 제자 같아 잔소리 삼아 한마디만 더 하겟네. 기왕 시작햇으니 붓 끝을 도끼 삼아 거짓된 것들을 찍어버릴 각오로 글을 쓰게나. 알겠나?"  155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말고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163

화의 정승이 조정에서 돌아오자 딸이 물었다. 
"아버지, 이가 어디에서 생기나요? 옷에서 생기지요?"
"그럼"
딸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겼다!"
이번에는 며느리가 물었다.
"아버님,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그럼."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제 말이 옳다고 하시네요!"
그러자 부인이 정스을 나무라며 말했다.
"누가 대감더러 지혜롭다 하는지 모르겠군요. 옳고 그름을 다투는데 양쪽 모두 옳다니요!"
황희 정승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이리 와보렴. 무릇 이는 살이 없으면 생길 수 없고, 옷이 없으면 붙어 있지 못하는 법이니, 이를 통해 보면 두 사람 말이 모두 옳은 게야. 그렇기는 하나 농 안의 옷에도 이는 있으며, 너희들이 옷을 벗고 있다 할지라도 가려움은 여전할 테니, 이로 보면 이란 놈은 땀내가 푹푹 찌는 살과 풀기가 물씬한 옷, 이 둘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이 둘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거늘, 바로 살과 옷의 사이에서 생긴다고 해야겠지."
사이의 묘..
"그저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라는 식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정도로 들어서는 안 되느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입장을 고려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로써 한 자를 더 익혔구나."
"네, 사이 간(間) 자를 비로소 알았습니다."  182-184

"진정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바로 네가 스스로를 잊는 것이다."(아버지가 아들 지문에게 한 말)  196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이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아! 청운에 높이 오른 선비가 가난한 선비의 집을 수레 타고 찾은 일도 잇고, 포의(抱義)의 선비가 고관대작의 집을 소맷자락 끌며 드나든 일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듯 절실하게 벗을 찾아다니지만 마음 맞는 친구를 얻기는 어려우니,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벗이란 술잔을 건네며 도타운 정을 나누는 사람이나 손을 부여잡고 모릎을 가까이하여 앉은 자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벗이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나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벗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벗에서 우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박제가의 문생 연수의 글)  202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벼슬을 얻어 내 재주를 좋은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거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말이다. 그때 나는 나를 잊었던 거야. 내가 잔재주만 가진 위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던 게지. 지문아, 나 하나로 족하지 않겠니.."(형암 이덕무의 제자였던 아버지는 과거시험에 스승을 글로 응시했었음)  216

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을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隊伍)를 이루어진을 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요, 비유란 유격(遊擊)이요, 억양 반복(抑揚反覆)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含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餘韻)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지문이 과거 시험장에서 쓴 글, 제출하지 않고 버렸으나 연암의 지인이 시험관이라 주워서 연암에게 줌)  228

"하나만 물어보자. 어떻게 글을 병법에 비유할 생각을 하였느냐?"
"과장에 들어가기 전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구령에 맞추어 대오를 만들고 흩어지고, 그러기를 반복하더군요. 처음에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어설프다 싶었는데, 연습이 거듭될수록 일사불란해졌습니다. 그걸보고 있노라니 문득 글도 병볍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법을 잘 하는 자는 버릴 만한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는 가릴 만한 글자가 없다. 말이 간단하더라도 요령만 잡으면 되고, 토막말이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 험한 성이라도 정복할 수 있는 법이지. 그러므로 글쓰기는 곧 병법이니라."
잠시 지문을 노려보뎐 연암이 말을 덧붙였다.

"네가 허투루 배우지는 않은 듯하구나. 가르친 것들을 제법 나름대로 체득한 듯 여겨진다 그래,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라 했는데, 그건 무슨 의미더냐?"
"군대는 지휘하느 ㄴ장수가 있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군사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지휘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운용되지 않습니다. 글도 마찬가지라 생각 했습니다. 글자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글이 되지는 않습니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전개해야 제대로 된 글이 완성됩니다."

"제목을 왜 적국(敵國)이라 했느냐?"
"전쟁을 하는 목적이 적국에게 승리하기 위해서이듯 글을 쓰는 것 역시 결국 제목, 즉 문제와의 대결이라 생각했습니다. 문제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공략할 방략을 연구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고사의 인용을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한 뜻은?"
"진지를 구축하는 목적은 보루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싸우기 위함입니다. 고사란 이미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들입니다. 그런 만큼 고사를 사용하면 사람들의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사마천이 즐겨 썼던 방법이기도 하다. 좋다. 그럼, 글자를 묶어서 구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로를 이루어 진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질서 정연한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 법입니다. 논리 정연한 글, 글자 한 자 핝 자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대 그 글로써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운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징과 북, 그리고 깃발은 군사들을 독려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운율과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짐짓 무시하기 쉬운 요소들이지만 제대로 사용하면 글에 빛을 더해줍니다."

"앞뒤의 조응이란 봉화라,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인고?"
"봉화는 봉우리와 봉우리를 불빛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조응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의 앞에서 슬쩍 제시한 것을 뒤에서 다시 잘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읽는 사람은 궁금증을 가지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가 다 읽을 무렵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유를 유격이라 한 것은?"
"유격은 적이 알아채지 못하게 공격하는 전술입니다. 준비를 못 했으니 상대방은 당하게 마련이지요.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된 비유를 접했을 때 글을 읽는 사람은 감탄하게 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비유를 읽었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억양 반복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이냐?"
"전장에서 상대방과 맞닥뜨리게 되면 어느 한 쪽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완전히 죽여야 하지요. 억양이란 처음에 눌렀다가 나중에는 놔주는 기법입니다. 즉, 반복하되 효과를 달리하여 반복해 읽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지요. 읽는 사람은 그 반전의 묘미에 끌려 완전히 글에 제압되는 것입니다."

"파제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으 사로잡는 것, 이것의 의미는?"
"전쟁을 시작햇으면 반드시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파제는 글의 서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끄는 문구로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을 잡는 것, 즉 글의 마무리도 중요하지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 이것은 무슨 뜻이냐?"
"전쟁터에서 노인을 잡는 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 오히려 노인을 놓아줌으로써 상대반을 교란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함축이란 그런 것입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나 실상은 대단한 의미가 숨어 있지요. 그냥 읽으면 모르되 자세히 읽으면 의미를 파악하고 '이것이로구나!' 무릎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운을 남기느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냐?"
"군대의 개선은 사실 의미없는 절차입니다. 전쟁은 이미 끝이 났으니까요. 하지만 개선을 통해 승리를 되새김질하게 되는 장점이 있지요. 여운도 그렇습니다. 글이 끝난 뒤에도 읽은 사람이 아쉬워하며 다시 보게 되는 것, 두 번 세 번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여운입니다."

"훌륭하구나. 그런데 네가 지금 말한 것들은 다시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이를테면, 이치(理致)와 혜경(蹊逕)과 요령(要領)밑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지문은 연암의 말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이치는 전체 틀을 말하는 것이리라. 또한 혜경은 지름길이니 구성 장식을, 요령은 세부 표현을 일컫는 것이리라.  229-233



여기서부터는 연암의 아들 종채가 단락의 끝에서 늘 정리하던 부분을 모았다.


정밀(精密)하게 독서하라.  73
관찰(觀察)하고 통찰(通察)하라.
어항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려면 어항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물고기에게 어항밖으로 나오는 일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래도 나와야지."  115
어항은 곧 책이다.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면 다음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책이 말하는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세상이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약의 원리다. 약을 알고 난 뒤 넓고 깊게 반복하다 보면 불현듯 통찰의 순간이 온다. 개인의 좁은 안목과 시야가 확장되면서 보편적인 사물의 이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오의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그 사물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 관찰과 통찰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 없이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116
원칙을 따르되 적절(適切)하게 변통(變通)하라.  의중(意中)을 정확히 전달(傳達)하라.
독서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증자의 제자인 공명선은 책을 읽는 대신 스스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길을 택했다. 결국 스승이란 책을 읽은 공명선은 넓은 의미의 독서를 한 셈이었다. 공명선이 택한 길이야말로 독서를 창조적으로 변통한 것이었다. 
한신도 마찬가지였다. 배수진은 병볍에서 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신은 무턱대고 병볍을 따르는 대신 병볍의 참의미를 읽어냈다. 이것 또한 창조적인 변통의 좋은 사례다. 
글도 마찬가지리라. 남의 읜견을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해서는 좋은 글을 남길 수 없다.  158
종채는 아버지의 말 하나를 어렵사리 기억해 냈다.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결코 그들을 배우지 않으리라."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되, 지금 여기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아버지의 다짐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종채는 이제야 깨달았다.
쓰는 사람이 자신의 의중을 읽는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정밀한 글을 써야 한다.  159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統合的) 관점(觀點)을 만들라.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에도 제각기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쓸때는 그런 측면들을 빠짐없이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글을 읽는 사람이 편견에 빠지지 않고 의미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잇다.
여러 측면들을 늘어 놓았으면 이제 그것들 사이를 꿰뚫는 새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 
대립되느 시각과 관점을 아우르면서도 둘 사이를 꿰뚫는 새로운 제3의 시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통합의 논리다.  188
종체는 붓을 들어 여태까지 썼던 내용을 모두 지웠다. 한참을 생각한 뒤 표를 하나 그리고 깨달은 바를 써넣었다.

첫 번째 원리는 '법고의 묘'다. 그것은 처음 글을 쓰고자 할 때 명심해야 하는 원리일 것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이 법고의 묘를 익히지 않으면 진전된 글쓰기를 할 수 없다. 책을 정밀하게 읽고 대상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것은 법고의 묘를 익히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두 번째 원리는 '법고창신의 묘'다. 법고의 묘를 익혔으면 다음으로 법고창신의 묘를 익혀야 한다. 법고창신은 법고, 즉 옛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과 창신, 즉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의 조화를 의미한다. 옛것을 따르되 변화를 수용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되 옛것의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고루하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글을 쓸 수 있다.
세 번째 원리는 '사이의 묘'다. 글쓰기 원리 중 가장 중요한 원리라 할 수 있다. 법고와 창신의 대립 및 조화는 다른 이들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립을 극복하는 방책으로 사이에 대해 주목한 이는 흔치 않다. 이가 옷과 살 사이에서 생기듯, 두 사람으 ㅣ시선이 사이의 지점에서 교차하듯 글도 법고와 창신 사이에 자리해야 한다. 물론 어설픈 타협으로 만들어지는 중간 자리는 옳지 않다. 구별과 대립을 포섭하는 동시에 그 단계를 넘어서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양분(兩分)의 논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는 법고와 창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논리가 될 수 있다.  190-191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 수칙 11가지  238-239
 이치 : 전체 틀   1.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져라.
  2. 제목의 의도를 파악하라. 
 혜경 : 구성 방식    3. 단락 간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라.
  4. 인과관계에 유의하라.
  5. 시작과 마무리를 잘하라. 
 요령 : 세부 표현   6. 사례를 적절히 인용하라.
  7. 운율과 표현을 활용하여 흥미를 더하라.
  8.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라.
  9. 반전의 묘미를 살려라.
 10. 함축의 묘미를 살려라.
 11. 여운을 남겨라.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
"아버지께서 만년에 가장 사랑하시던 글귀일세."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 좇으며 임시로 변통하려 하는구나."  262
사마천의 마음에 대한 연암의 제시문에 대해 지문이 쓴글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낼 수 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나비는 그만 날아가버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고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이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일세. 참으로 훌륭한 글이네. 글을 쓰는 사마천의 미묘한 마음, 그 분발심(奮發心)을 이보다 잘 표현할 글이 또 있을까 싶으이."
"과찬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정말 기뻐하시겠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글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모든 기쁨과 분노와 슬픔을 글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없이 쓴 글은 모두 헛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한순간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지요."  270


연암은 글 쓰는 사람의 자세를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세속의 명예나 이익이 아닌 순정한 마음으로 쓴 글, 거짓된 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쓰는 글, 거짓된 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쓰는 글만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 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연암이 과거를 포기하고 평생토록 글을 쓰고 살면서 얻고자 바랐던 가치일 터였다.  279
 
사마천의 분발심(奮發心)을 잊지 말라.
여러 글쓰기 법칙 중에서도 이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글에 힘을 쏟지 않고 다른 것에 기대는 순간 글은 그 즉시 가치를 일고 만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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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홍보전문가 서경덕씨는 가수 김장훈과 독도 광고를 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고, 무한도전에서 비빔밥 광고를 제작할때 나왔었다.
내가 아는 서경덕의 내용이었다.
물론 무릎팍에서 자신의 행적들을 이야기하면서 작으나마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한국 홍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책을 통해 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책이기에 조금은 미화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무한 도전 ...아니 무모한 도전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을 것이다.
이 책을 본 사람들중에 꽤 많은 수가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많지 않아야 하지만 소수는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들으면서 속으로는 매우 놀랬다.
그리고 함께 든 생각은 '대체로 평범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대하는 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다른이가 했을때 그것을 인정하는 마음을 수치로 나타내면 얼마나 될까...
100?? 80?? 70?? 50?? 30?? ... 정확한 수치를 나타낼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위의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30도 인정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그가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하기위해 안간힘을 썼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위해서 였는지에 대해서도 썼다.
'미쳤다'는 표현은 분명 좋지 않은 어감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어느 상황에 쓰느냐에 따라 그것은 매우 좋은 표현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엔가 미쳐야만 하고 계속 미쳐 있어야만 한다'는 표현처럼...
책 제목 중에도 미쳐야 미친다, 1년만 미쳐라...등 좋은 의미의 미쳤다가 있다.

이처럼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것에 미쳐 있기에 자신의 길이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즐거워 즐거운게 아니라 그것이 힘들어도 좋기에 즐거울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 자신은 어떠한 경험들을 통해 무언가를 찾았는지 보여주며 그렇기에 너도 경험하고 생각하고 부딪혀 보라는 메시지를 주는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돈에 미쳐 있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는 그렇기에 돈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본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그 외에도 그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보니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의 과도한 대응이 더 이상하다는 분위기였다. '일본에 정정당당하게 대응하지 않고 왜 저렇게 감정적으로 대하느냐.'면서 한국 사람을 더 의아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146

'모든 일에 있어서 역시 진정성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하면 누구든 언젠가는 이해를 해 주는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155

"세계를 다니면서 개인이 어떻게 한국 홍보를 한다는 것인가?"
"돈은 어디서 생기며 어떻게 먹고 사나?"
나는 지난 15년간 한 길만을 걸어왔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듯 나에게는 스스로 개척해온 인생이 있고, 또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 할 인생이 있다. 누가 봐도 내 인생이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무척 좋아하고 새로운 일을 스스로 잘 벌이는 성격이다. 사주에 역마살을 타고 났는지 무슨 일만 생기면 외국을 이웃집 나들이하듯 들락거렸다. 마치 돌아다니기 위해 일을 만드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일이란 것도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펼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나는 늘 머리를 싸매고 다녔다. 기획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 시간이 내겐 성취감과 자아실현의 순간들이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일을 만들기 좋아하는 성격은 내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에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204

사회 공헌이란 것이 돈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방법으로 쓰여지도록 창의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기획자가 필요하다.  241
세상에는 수많은 개인과 조직이 있다.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을 연결할 때는 몇 개의 다리를 거쳐야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누군가가 나서서 연결 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제3의 기획자가 나서서 창의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242

인생을 너무 조금하게 바라보지 말라. 젊은 시절 어느 한순간 자기가 좋아하는 일, 보람 있는 일에 열정을 바치는 것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256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분야에 도전을 해보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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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없인 못 살아!' 
책 제목부터 완전히 끌렸다. 제목한 보고도 책중독자의 조건이나 구분법등이 나올거라 생각하였고, 책이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을 기대하였다.
읽으면서 때론 황당하기도 하고, 때론 끄덕거리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하고, 때론 감탄하기도 하였다.

우선 나는 책중독자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애서가(bibliophilia)에 가까웠다.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책을 모으는 것에는 그다지 심열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유는 우선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쌓을 곳의 부재도 있으며, 한동안 모아봤으나 책내용에서 실망스러운 책들은 ... 돈이 아까울 정도였으나 그렇다고 과감히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삼천권쯤 모으니 둘 곳도 없어지고 결국은 박스에 넣어 여러곳에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내 주변엔 천여권의 책 밖에 있지 않다..
그러니 장서광(bibliomania)이 되지는 못한다.... 어쩌면 애서가가 되고 싶어하는 것일 수 도....

책에서는 정말 황당하리만치 독특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정말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적은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의 방법들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원서에서 삽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이 책에는 삽화가 있다. 재밌게 시도하여 책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삽화만 봐도 거의 이해될 정도였다.


책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욕구를 채울 수가 있었다. 서가 사이의 통로를 어슬렁거리면서 책 제목을 읽어보고 책을 뽑아 페이지를 훌훌 넘겨보고는 책 표지에 감탄하면서 책 거죽을 구경했다.  13
이상해 보인다는 걸 알지만(병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홀린 듯 걷잡을 수 없는 한결같은 열망이 책중독자의 영혼을 괴롭힌다. 한입에 두말하기로는 책을 사들이는 책중독자를 못 따라간다. 책 사들이는 걸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책귀신들한테는 온갖 지적인 곡예와 도덕적인 요술이 '봉'이다. 나는 안다. 이 모든 걸 다 해봤으니까.  18
이런 일은 때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자기가 뭘 샀는지 기억 못하고, 헌책방에서 양팔 가득 책을 껴안고 나오고, 충분한 검토 없이 책을 사들이고, 사들인 책을 나르려면 외바퀴 손수레가 필요하면서, 정작 자기가 사는 책들을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맹세컨대 무분별한 중독자다. 이들은 책중독자, 다시말해 책을 사들이는 데 극성인 문제 있는 사람들이다.  29

삶의 온갖 경험들 가운데서 독서와 책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고 교육적이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있는가? 책은 학식과 지성, 그리고 사회나 인생에서 좋고 적절한 모든 것을 대표하지 않는가? .... 이 끔찍한 병의 위험성을 합리화했다  32
이 병이 초기 단계일 때는 많은 장점이 있다. 아무튼 우리는 더 똑똑해질 테니까.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 시야를 확장해서 지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 이 될 수 있으리라. 책과 함께한다면 지독히 취할 수 있으면서도 아침에 숙취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더 좋으리라.  42
우리 책중독자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데이트란 이런 것이다. 두 사람이 무릎을 비추는 전등이 딸린 소파 두 개를 약간 떨어뜨려놓은 채로 앉아서 각자 다른 책을 읽는 것.  44
책중독자들은 칠색 팔색 하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46
책과도 이야기를 나눌지 모른다. 실베스트르 드 사시(Silvestre de Sacy, 19세기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동양학자)는 "아, 내 사랑하는 책들! ..... 너의 모두를 사랑한다!"라고 부르짖곤 했다. 유진필드(Eugene Field, 19세기 미국 작가)는 "아침에 깨면 내 눈은 사랑스런 보물들이 잘 있는지 보려고 방을 더듬는다. 기분좋게 큰 소리로 '안녕, 귀여운 친구들!'이라고 하면 책들은 얼마나 사랑스럽게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는지."  47-48

애서가는 책 고르는 법을 알아서, 다양하게 검토한 후 책을 늘려간다네. 장서광은 그저 첩첩이 책을 쌓아올리지, 때로는 그것을 들여다보지도 않고서, 애서가는 책을 음미하지만 장서관은 책 무게를 달거나 평가한다네.  87
장서광이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사거나 진귀한 책을 탐욕스럽게 찾아다닌다면, 애서가는 감수성 넘치는 자질로써 책을 고른다. 그들은 작가, 주제 또는 그 책의 어떤 다른 측면을 좋아하는경우라야 책을 산다.  90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책을 읽는데 이런 사람은 드물고, 쓰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흔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 위해 책을 읽는데 이런 이들이 대다수다.  137
모든 점을 고려해볼 때 "책은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헛되이 가득 찬 서재를 자랑하면서 텅 빈 머리를 가지고 사는 데 만족한다"고 말한 윌리엄 월러(William Waller, 청교도혁명 당시의 군인)경의 말에 공감한다.  151

책을 사는 온갖 이유 가운데 자기계발주의자들의 그것보다 더 솔직한 건 없다. 이들이 책방을 찾는 데는 기만도, 이중성도 없다. 합리화나 정당화도 없다. 모든 지출에 대해 도덕적으로 적절한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심리 작전이나 내면에서 들끓는 목소리들의 미묘한 상호 작용도 없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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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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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은 누구나 천원짜리 지폐를 알고있다. 
그 앞면에는 퇴계 이황과 명륜당 그리고 매화, 뒷면에는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다.
한국인의 특징 중에 하나는 액수가 큰 지폐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특성에 의해 오천원권의 율곡 이이에 대해 더 생각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또한 우리는 학교에서 퇴계와 이이의 이론에 대해 배우면서 이이의 이론에 더 비중을 싫는 외우기 공부를 해왔기에 더더욱 퇴계의 삶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 듯 하다.
액수에 따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세종대왕보다 신사임당을 더 중요한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논리가 서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그리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듯 하다.
액수야 어떻든 이런 지폐에 오른 인물이라면 마땅히 우리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다. 퇴계 이황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책을 가끔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라 이 책이 눈에 잘 띄었나 보다.
퇴계에 관해서 최근에 읽은 책은 '함양과 체찰'이었다. 물론 지금의 블로그를 만들기 전에 읽었던 책 중에 몇 권이 더 있었다.
그의 생각의 깊이와 마음의 씀씀이가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다. 
그는 3명의 왕에게 인정을 받았고, 벼슬을 하사 받았지만, 자신의 공부와 덕과 인을 위해 조용히 물러나기를 여러번 이었다.

사람이 권력의 힘을 맛보면 그 맛에 중독되어 절대 버릴 수 없다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바라보았다.
그는 늘 자신을 낮추고, 그렇기에 정진해야 함을 스스로에게 강조하였다.

이 책은 퇴계 선생이 말하는 공부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하였는데, 재밌게도 소설 형식을 빌려와 전개해 나갔다. 
읽기도 쉽고, 내용의 핵심을 정리해 주고 있어 이해도 쉬웠으며, 철학적인 사유를 해보기에도 어렵지 않게 해 주었다.

퇴계 이황은 유학자 이다. 그렇기에 공자말씀에 근거한 생활을 하는데, 그를 높이 사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의 깊은 사유로 재해석하여 적용하고 실생활에서 나타냈기에 그러하다. 
그가 말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첫째날, 배움의 싹이 돋아나다.
나이가 많은 것은 공부를 시작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배움은 마치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해야 하느니'라는 구절이 <논어>에 나옵니다. 스스로 안달복달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공부를
잘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말로 표현하려 이쓰지 않으면 퉁겨 주지 않는다. 그러니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조급해하고 안달복달하는 그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공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34
미욱하다는 말을 방패삼아 대충대충 할 뿐 열심히 하지도 않는 사람이 정말 문제인 것입니다.  36
공부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일입니다.
무작정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하는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왜 책을 들고 오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가, 왜 나는 농사나 고기 잡는 일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가의 이유를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히 깨닫고 정리한 뒤에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41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되겠지요. 공부는 단순히 남에게 자랑하고 풍족히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삶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대로 평생을 살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사실
선생은 꾸준히 공부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45
독서가 산놀이와 비슷하다 하지마는 
이제 보니 산놀이가 독서와 꼭 같아라.
공력을 다할 때는 아래로부터이고
얕고 깊음 아는 것도 모두 자기에게 달린 게지.
일어나는 그름 바라보며 오묘한 이치를 알아채고
물줄기의 근원에 이르러시초를 깨닫는다네.
공부는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하는 게 중요하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임을 가르쳐주는 게 이시의 골자였다.  56
공부에는 비법은 없습니다. 당연한 것들을 꾸준히 하는 방법만이 있을 뿐입니다.
첫번째로 공부는 질문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학문(學問)이란 문학(問學). 그러니까 궁금한 것을 묻는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으면 공부는 결코 시작되지 않습니다.
<중용>에 보면 '순은 크게 지혜로운 자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소의 일상적인 말들을 곰곰이 살피길 좋아한다.' 순은 성인이지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58
두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자 염유가 능력부족 이라 말할때, 공자는 "힘에 부친다는 것은 힘껏 달리다가 쓰러질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니라. 그런데 자네는 제대로 달려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선을 긋고 있구나."
못난 것을 막는 데에 부지런함보다 나은 것은 없는 법입니다.  59
세번째로 스승을 찾아 헤매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부에 생각이 없는 이들이 흔히 스승 탓을 하고 책 탓을 하는데, 공부에 뜻만 있다면 스승은 우리 주위 어디에든 있습니다.  60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성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며 살지 못합니다. 
마음이 더러운 찌꺼기로 덮여 깨끗한 본성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본래의 길을 따라 막힘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경지, 그것이 바로 퇴계의 공부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62
공부란 우리가 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꼭 익혀야 할 삶의 기술입니다.  64

첫째 날의 가르침
도대체 공부는 왜 하는가
삶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다. - 과거에 급제해 입신양명하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통해 어떻게 살아갸 할지를 깨닫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
삶을 위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 재물을 모으고 도구를 만드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듯 삶을 살아가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공부란 우리가 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꼭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다. 그러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는 동안은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의 기술로서의 공부다.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
항상 안달복달하라. - 배움은 마치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해야 한다. 결국은 졸라대는 놈에게 떡이라도 하나 더 주게 되는 것이다.
모르면 물어라. - 학문(學問)은 문학(問學)이다. 잘 묻는 사람, 모르는 게 많아 질문이 많은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순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소의 일상적인 말들을 곰곰이 살피길 좋아했다. 순의 예를 따라야 한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 힘에 부친다는 것은 힘껏 달리다가 쓰러질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제대로 달려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미리 마음속으로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요순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난들 요순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당찬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스승 탓, 책 탓을 하지마라. -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스승 탓, 책 탓을 하는 법이다. 현명한 이를 보면 어깨를 겨루려 힘쓰고, 현명하지 못한 이를 보면 안을 돌아보아 스스로를 살핀다. 그런 마음이라면 하루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순간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 


둘째 날, 공부의 잎이 무성해지다.
어느 정도 공부에 눈뜬 이들, 그러나 벽에 부딪혀 난감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한 지침을 알려드린다 했었지요?  101
닭이 알을 부화시키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부화될 때까지 쉼 없이 품고 있는 것입니다.  102
아무리 해도 나아지는 게 느껴지지 않아 속이 터질 지경이지요. 포기의 유혹도 따릅니다. 바로 그때가 중요합니다. 힘들더라도 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면 그 뒤로는 고통스럽기는 커녕 날로 거울이 밝아지는 듯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105
예란 본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니라.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형식이라 할 수 없지.  115
고비를 넘겼다면 이제 공부를 즐길 차례입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합니다.  123
공부의 최종 단계는 즐기는 단계입니다.  124
<중용>에 '천하국가는 고르게 할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서슬 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중용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너의 마음이란 뜻이다. 너의 마음을 제대로 갖추면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수기(修己,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음)와 치인(治人,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중 중요한 것은 수기이다. 그렇다고 치인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128
아침저녁으로 책읽기에 몰두하고, 경전을 제대로 해석해낸다 해서 과연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네. 공부를 하고도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의 마음, 사랑의 마음, 공부한 자의 마음일세.
자네는 지금 인의 마음을 자기고 있는가? 자네 주변에서 능히 취할 수 있는가?  142

둘째 날의 가르침
공부하다 벽에 부딪힌 이들을 위한 지침
닭이 알을 품는 것을 기억하라. - 공부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힘들다고 잠시라도 쉬거나 서두른답시고 뜨거운 물에 담가버리면 알은 부화하지 않는다. 결국 공부하다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거울은 닦을수록 깨끗해진다. - 거울은 처음 닦을 때가 가장 힘든 법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닦을 때에는 처음보다 덜 힘들뿐만 아니라 조금의 노력으로도 거울을 더 밝게 만들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낑낑거리며 한계를 넘고 나면 그 뒤로는 훨씬 쉬워진다.
공부의 단계를 알아라. - 아는 것은 좋아하는것만 못하고, 좋아하는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공부에는 아는 단계와 좋아하는 단계와 즐거워하는 단꼐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현재 단계뿐만 아니라 앞으로 갈 길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라. -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이 그것이다. 전자는 자신을 위한 공부이며, 후자는 세상에서 활용하기 위한 공부이다. 위기지학을 해야 한다는 것은 공부해서 무엇이 되어야겠다, 하고 고민 하는 게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과 성정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위기지학이 되어야 세상에 나가도 중심을 잃거나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다.

공부한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한는가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은 잘못을 지적받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 사람은 오직 배우지 않았기에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 받으면 화를 내는 것이다. 공부한 사람은 스스로 부족한 것을 금방 깨우치므로 잘못을 지적받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지적을 들으면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을 바로 잡는 거울로 삼는다.
공부를 한 사람은 남을 배려한다. -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의 마음이다. 공부를 한 사람은 바로 그 인의 마음을 갖추게 된다. 공부한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다.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어도 잘 배운 사람이 될 수 있다. - 지혜로운 이를 지혜롭게 여기고, 부모를 섬김에는 온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김에는 온몸을 바치고, 벗을 사귐에는 말에 미쁨이 있다면 그사람은 비록 베우지 못했더라도 실제로는 잘 배운 사람이다. 결국 공부가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그 공부는 말짱 헛것이라는 뜻이다.


 셋째 날, 열매로 주위를 이롭게 하라.
다른 이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고서는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말 할 수 없다.  178
퇴계의 공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생명의 의미를 아는 참된 공부였다.  182
<성학십도(聖學十圖)>
제9도인 '경재잠(敬齋箴)'은 주자께서 자신의 방인 경재에 붙여두고 스스로 경계한 글로써, 지두(地頭)공부, 곧 처한 상황에 따라 해야 할 공부를 나열한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공부란 경 공부입니다. 마음이 몸의 주재라면, 경은 마음의 주재입니다. 그러니 경 공부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다잡는 집중의 공부를 말하는 것이지요.
경 공부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첫 번째로 '주일무적(主一無敵)'이 있습니다. 단 하나를 붙들 뿐, 딴 데로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대충하는 경우 눈은 글자를 읽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한 번에 하나씩, 온전히 다 끝낸 후에야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주일무적입니다.  185
두 번째로 말한 것은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을 엄숙하게 가지라는 의미였다. 
세 번째로 '상성성법(常惺惺法)'은 말 그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
'잠시라도 틈이 나면 만 가지 사욕이 일어나, 불길 없어도 뜨거워지고 얼음 없어도 차가워진다'는 구절이 이에 대한 근거가 될 듯싶다.  186
마지막 방법은 마음을 수렴하여 한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 것,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었다.  187
이번에는 제10도인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경재잠이 상황에 따른 공부라면 숙흥야매잠은 시분(時分)공부, 곧 일상에서 시간에 따른 공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중용>에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간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숙흥야매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홀로 있을 때 삼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른바 '신독(愼獨)'이란 것이다. 도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남이 볼 때와 남이 보지 않을 때의 행동이 다를 수는 없는 법이다.  188
무턱대고 행하는 데만 치우칠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 그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  191
공부는 근본적으로 나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충서(
忠恕)가 무엇인가?  충은 바로 마음의 중심이고, 서는 나의 마음과 같다는 뜻일세. 그러므로 충서는 내가 깨달은 마음의 중심을 그대로 남들에게 행하는 것일세.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이일분수를 실천하는 것이고.  192 
누구나 집안 식구에게는 바라는 게 많은 법이네. 집 밖에서는 대범한 군자로 지내다가도 집 안에서는 조그만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일세. 이 모두가 공부가 덜된 탓이네. 감정에만 치우쳐 인이 무엇인지는 생각도 못하게 되는 것이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정성을 다해 대해야 하는 법일세.  197
선생(퇴계)은 주위 사람들의 작은 일 하나하나를 모두 머리에 담아두는 것은 물론,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까지도 쉼 없이 고민했다. 선생이야말로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인생의 스승이었다.  200

셋째 날의 가르침
일상에서 간단없이 이루어지는 공부
매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집중하도록 하라. - 마음을 다잡는 공부, 곧 경 공부에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주일무적(主一無敵)'이다. 단 하나를 붙들 뿐, 딴 데로 가지 말라는 뜻이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거나 그 뒤의 내용을 예단하느라 바빠 주일무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하났기,나가 다 마무리된 후에야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주일무적이다.
둘째는 
'정제엄숙(整齊嚴肅)'이다. 정제엄숙은 자셀ㄹ 가다듬고 마음을 엄숙하게 가지라는 의미로, 의관을 정제하라의 '정제'와 엄숙하게 하라의 '엄숙'이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외부를 가다듬는 형식적인 면 또한 중요하다. 옷 입는 것이나 자세를 바로잡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들이 결국은 다 마음을 다잡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셋째는 
'상성성법(常惺惺法)'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순간에 깨어 있어야 미묘한 변화까지 눈치 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넷째는 마음을 수렴하여 한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공부는 따로 시간을 정해두고 하느 것이 아니다. - 매일 매순간, 모든 상황에서 공부 아닌 것이 없다. 경재잠은 상황별 공부법이며, 숙흥야매잠은 시간별 공부법이다. 
공부는 일상에서 '
충서(忠恕)'의 마음으로 드러난다. - 충은 내 마음의 중심을, 서는 나의 마음과 다른 이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충서는 내가 깨달은 내 마음의 중심을 그대로 남들에게 행하는 것이다. 물아일체, 이일분수가 바로 충서에서 비롯된다. 


넷째 날, 씨앗이 되어 돌아가다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문장의 의미를 아는 걸 넘어서 내 일상 자체가 배운 대로 행해질 때 가능한 것이야.  219
돌석아, 공부하는 데 있어, 아니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마음을 한결같이 지니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220 
("돌석아, 거울을 바꿔 닦자고 한 것은 바로 너겠지?"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런데 왜 그랬느냐?"
 "아가씨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저야 뭐 늘 하는 일이니까요."
 "지금의 그 마음, 영원히 잊지 말거라."  106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돌석아 네가 천연대에서 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세상이 너를 알아주지 않으니 정말 섭섭하고 힘들었겠지. 하지만 너의 존재는 너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란다.  227

넷째 날의 가르침
공부의 핵심은 무엇인가
미련함으로 장애를 돌파하라. -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미련한 사람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는 법이다. 선생은 고루병폐인임에도 공부에 몰두함으로써 오늘날의 선생이 되었다. 재능이 아닌 미련함과 끈기로 공부를 해라.
공부는 일상에서 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연비어약은 실은 공부를 하되 미리 기대하지도 말고, 잊지도 말며, 억지로 하지도 말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솔개와 물고긱가 공부의 본보기다. 그들은 욕심도 부리지 않고 쉬지 않ㅎ고 날고 뜀으로써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평생에 걸쳐 자연스럽게 해낸다. 공부는 그렇듯 일상에서 잠시도 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 -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충실하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 화를 낼 동안 서안 앞에 앉아 한 자라도 더 공부를 하는 것이 옳다.

퇴계가 이함형을 집으로 보내면서 집 대문앞에서 열어보라고 한 편지.
[들으니 그대 부부가 화합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로 그리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잘 알지는 못하네. 선생으로서 한 마디 하자면 그데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네. 여자의 성품이 좋지 못해 스스로 소박을 자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편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네. 남편이 항상 자신을 반성하고 잘 보살펴주면 부부의 도리를 잃고 가정이 파괴되는 끔찍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는 법이란 말일세. 여자는 한 번 시집가면 오직 남편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네. 그런데 어찌 정과 의리가 맞지 않는다고 길 가는 사람처럼 대할 수 있겠는가. <대학>에서 이르기를 '자기에게 잘못이 엇는 연후에 남의 잘못을 나무란다'고 하였네.
내가 겪은 결혼 생활을 예로 들어보겠네. 부끄럽지만 나는 결혼 생활을 그리 잘 꾸리지 못했다네. 장가를 두 번 갔으나 아내와 마음이 맞지 않은 탓에 한결같이 불행했네. 그래도 그러 애써 잘 지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것이 십 수 년, 그 사이 더러 마음이 흔들리고 번민과 고뇌로 견디기 어려운 때도 없지는 않았네. 그러나 그렇다고 어찌 인정을 돌릴 수 있겠는가. 어찌 내 마음대로 인간의 도리를 소홀히하여 홀로 계시는 어머니로 하여금 근심하도록 하겠는가.
후한의 질운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부부의 도리를 어겨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는 실로 진리를 어지럽히는 사특한 자이다'라고 말하였네. 자네는 마땅히 거듭 깊이 생각하여 고치도록 하게. 그럼에도 끝내 고치는 바가 없다면 공부를 해서 무엇하며, 실천하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디 이 늙은 이의고언에 귀를 기울여주게나.]  240-241

공부를 한다는 것은 존재으 의미를 찾으려 바동거리다가 마침내 그 의미를 깨닫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다. 나중에는 스스로 그 존재 자체에서 멀어져 영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물아일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공부의 귀결점은 인생에 질문을 던지고, 인생의 의미를 배웠다가, 나중에는 다 놓는 것을 배우는 데 있느 것은 아닐까.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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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배우는가 ?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을느 정도는 잊어버리게끔 되어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산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억해 내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 하는가?

책의 첫 페이지의 내용이다.
이 책은 꽤나 유명한 책이다. 수학에서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필드상을 수상하였고, 하버드 교수로  생활하기도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자서전이다.
자서전의 제목이 학문의 즐거움이라 붙인 이유는 그가 쓴 내용이 천재적인 사람의 일생도 아니고 뛰어난 특징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노력을 담고 있고, 그 노력들을 통해 자신이 얻게 된것들과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서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적고 있다.

책을 읽으며 참 많은 곳에 줄을 그었다.
그만큼 그도 평범한 사람이며, 노력을 하면서 얻게 된것들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았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그는 일본인과 미국인들과의 의식과 문화 사고방식 가치관의 차이를 설명하며 모두 일장일단이 있지만 현재에 부족한 것들에 대해서는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기술하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정말 젊은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이상은 읽어봐야 할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이 아니라 한 번 이상 읽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부가 즐거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에 적용하면 공부도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들과 과정들을 통해 즐거울 수 없는 공부를 어떻게 즐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분명 평범한 사람으로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열정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머리말
사람은 왜 배우는가? 
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9


1장 배움의 길 
꿈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실현하기에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꿈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힘이 생기거나, 또 그런 꿈을 가지고 잇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가치있어 보이기도 한다.  16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젊은 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22
창조하려면 먼저 배워야 한다. 이것은 비단 학문의 세계에만 한정된 말은 아닐 것이다.  23

책을 통해 위인의 삶을 접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생활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부모나 친구 가운데서도 소중한 인생의 스승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6

성장기에 있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친근하고 구체적인 어른의 모델은 부모님이다.  27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28
좋든 나쁘든 간에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어떤 교과서에도 씌어져 있지 않은 살아 있는 본보기이며, 자식들은 무의식중에 부모의 인생관에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부모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무언가를 의식적·적극적으로 배우려고만 한다면훗날 인생을 뒷받침해 줄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2

<스폭(Spock) 박사의 육아서>에서는 '아이들의 성장에는 절대적으로 자기 편에 서 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35
무엇을 생각하든지 생각하는 그 자체가 뜻있고 가치가 있다.  38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항상 가까운 곳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았고,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 왔다.  40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무분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긴 인생에서 깊이 생각하애 하는 때가 몇 번 있게 마련이다.  43
어려움이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이때야말로 깊이 생각하는 힘이 요구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혹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깊은 사고력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지금이다' 하는 바로 그때에 더욱 깊이 생가할 수 있는 힘, 그러한 소양을 키우는 것은 부모님 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길러야 하는 일이다.  44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배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많이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46
인간의 두뇌는 기억한 것의 극히 일부분밖에 끄집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뇌에 수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사람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뇌에 축적한 후에 끄집어 내지 못할 뿐' 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47
'지혜의 깊이'는 공부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두뇌는  인간 특유의 폭넓은 사고의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 즉 '지혜의 깊이'가 키워지지 않는다.  50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학생들이 하는 공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하는 것, 관심잇는 것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과정이 공부일 것이다. 이것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아니면 실제 자신이 몸소 체험하는것 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누면,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리는 형과 오랫동안 시간을 갖는 형.
현재의 중·고등학교 교육 환경은 후자에 해당되는 '오랜 시간 숙고하는 사고 방식'을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교육이다. 장시간 동안 생각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깊이 생각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혜의 깊이'도 키워지지 않는다.  52-53
수학은 원래 '추상성', '보편성', '일반성'이 상당히 많이 요구되는 학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정한 룰만 지키면 자기의 세계를 자유롭게 구축할 수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집합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 칸토어(G. Cantor)는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성에 있다.'라고 했다. 정해진 룰만키면 명예나 지위, 경제성, 정치성과 같은 것에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학문이라는 것이다.  54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우는 것을 두 시간이 걸리거나, 또 다른 사람이 1년에 하는 일을 2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야 만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배어서인지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 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57

보통 사람의 인생은 직선적이라기보다 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시행착오는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69
불교에서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인'이라는 것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이 내적인 '인'에 대해서 외적인 것이 '연'이다. 내적인 조건인 '인'과 외적인 조건인 '연'이 결합해서 모드것이 생겨나고, 이 결합이 해소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한 인간의 삶은 인연에 지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것, 가까운 친구에게서 배운 것, 또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체험적 지식 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로 자기 자신 속에 축적되어 '인'을 만든다. 그 '인'이 '연'을 얻어서 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단이 되고  길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만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 배우고 노력한 것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  69-70


2부 창조의 여행
배움에는 고통과 함께 기쁨이 있다. 배움이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배움의 기쁨을 가끔씩은 맛볼 것이다. 단지 배우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기쁨이나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울 뿐이다.  73

경쟁의식을 가짐으로써 노력해야 할 목표의 초점이 보다 선명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상대방의 우수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존경심까지 갖는다면 단적으로 말해서 상대가 성장하면 할수록 자기도 또한 클 수 있게 된다.  97-98

사람이 계속 배워 나가기 위해서는 작은 것이라도 '성공 경험'을 많이 쌓아 올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창조의 단계에 들어가서도 적용된다. 작은 것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기분이 좋아지고, 그 쾌감이 다음의 보다 큰 창조를 불러오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우수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성공 경험만을 쌓아서는 안 된다. 때로는 성공에 필요한 만큼 노력을 했는데도 실패하는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창조의 본질도, 창조의 구체적인 방법도, 또 그 바탕이 되는 핵심도 천재가 아닌 우리로서는 실패를 통하여 몸소 터득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하여 터득한 노하우를 가지고, 보다 좋은 창조에 도전하는 방법밖에 없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8

수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확한 '기술'이 요구된다. 정확하게 풀지않으면 수학이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사상'으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본이다. 
셋째, 수학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상성'이 강하다. 여러 가지 현상 그 자체가 아닌 그 속에  존재하는 공통된 개념이나 관점을 상당히 추상화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수학의 특징이다.
넷째, '국제성'이다. 수학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이해관계나 국력 등에 관계없는, 완전히 자유롭고 개방된 세계이다.  109-110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목표가 없으면 앞으로 밀고 나갈 정신 에너지가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목표가 그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 일을 하게 하고 발전·진보시키기 때문이다.  115
목표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를 향하여 밀고 나가는 에너지가 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117
미국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먼저 가설을 세워서 그것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연역해 보고, 안 되면 가설을 바꾸면 된다는 식이다. 반면 일본 학생들은 무언가를 먼저 공부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시해지면 방향을 바꾸거나 지금까지의 방법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다.  118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통합되어 창조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단지 무엇을 배운다고 해서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125


3부 도전하는 정신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배우고 창조하는 기쁨은 곧 생각하는 기쁨이다. 
단순한 지식의 주고받음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평가할 가치도 없다. 여러 가지 지식은 생각하기 위한 자료이며,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143
창조에는 먼저 송이 버섯처럼 땅밑에서 뿌리를 뻗어가는 축적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145

이 세상에는 주어진 조건이 모두 가지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주어진 조건을 모두 가지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147
마쓰시타 코노스케가 한 말, '호황도 좋고 불황도 좋다.'
이 말은 '행운도 좋고 역경도 좋다.'라는 뜻이다.  148
사람은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는 설사 고생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53

'성적이 이 정도니까 저 대학의 이러한 학과에 진한하자.'라든지, '이러한 직종이 유망하니까 이 기업에 취직하자.'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 정보로부터 필요를 도출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장래를 결정한 사람은 결정한 것이 욕망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디에서인가 좌절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학문을 하고 싶다.', '나는 이 일에 종사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156

느긋하게 기다리고,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 나머지는 끈기이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187


4부 자기발견
미국 사람들은 질문하는 기술이 좋다는것이다. 사실은 기술이 좋다라기보다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질문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컬럼비아 대학에 있었을 때 만난 한 제자 생각이 난다. 멀리서 그의 모습이 보이면 교수들이 피해 갈 정도로 만날 때마다 질문을 해대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밤 늦은 시간에도 교수 집에 전화를해서 한 시간씩이나 질문을 하기도 했다. 외모는 뛰어났지만 컬럼비아 대학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 못 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경력이 특이하고, 면접시 추진력을 인정받아서 입학시킨 학생이었다.) 그의 질문은 대부분 전혀 조리가 안 맞고 초점이 없었다. 나도 대학이나 집으로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하여 그의 왕성하긴 하나 시시한 질문에 몇 번이나 손을 들었다.
그런데 입학해서 2년 정도 지나니까 그는 더 이상 시시한 질문만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가끔 질문다운 질문을 할 때도 있었고 4학년이 되어서는 마침내 우수한 논문을 써내어 학계 일류의 논문지에 발표할 정도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는 그 후 내가 하버드 대학으로 옮길때 강사로 따라왔다가, 스탠퍼드 대학의 조교수를 거쳐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205-206
일봉 학생은 'why'라든가 'how'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말할 것도 없이 'why'라는 것은 '왜'라는 것인데, 이것은 '진리(眞理)'를 물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 학생은 'what'이라는 형태의 질문을 많이 한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식으로 물어 본다. 이것은 '사실(事實)'을 묻는 것이다.  207

학자는 자기 학문만을 연구하면 안 된다. 자기 학문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학문이나 경제 정세나 사회 현상 등과 관련시키는 다양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현대 사회는 바로 그 다양한 길로 나가려 하고 있다. 하나의 명제가 있어서 그것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거나, 오직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면 된다는 논리가 통하던 과거의 단순한 시대와는 다르다.  214-215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 값진 삶을 보다 멋지게 사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 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어떤 뜻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28
우리에게 앞으로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판단력(다양한 인생을 살아가는 선택의 지혜)과 생각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변동과 다양성에 대처하기 위한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이 소심(素心)으로 돌아가고, 깊이 생각하고, 그 결과 제일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변동하고 다양화되는 시대야말로 개인이 자기의 가능성을 발휘하기 좋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이 다양성을 보지 않으려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안주하고 싶고, 고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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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책이었다. 내용을 알기전부터 책 제목만으로도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표지는 많은 명사들의 사진으로 더욱 흥미를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이미 기다리던 책들을 읽고서 바로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적은 이들이 오늘의 20대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명사들이 20대 아니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추천하고 싶은 책을 담고 있었다.
첫 내용부터 마지막 내용까지 글을 읽는 나는 30대 중반을 달리고 있지만, 내용하나하나가 마음에  꽂히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지금의 나에게도 얼마나 필요하며 되새겨야만 한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명사들이 추천한 책은 모두 읽어보기로 생각을 하였다. 물론 이미 읽은책들도 있고 알고는 있으나 읽지 못했던 책도 있으며, 처음 알게된 책도 있다. 
읽어보고 싶은 책도 있으며, 느낌이 닿지 않는 책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어보려한다. 이유는 책청춘이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말은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제목을 통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이미 나와 있다고 치고, 누구나 하는 말인 하고싶은것을 즐겁게 하라는 말도 이미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이 지금의  나에게 이토록 크게 와 닿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여느 명상들의 강의나 책들을 읽어서 세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럴까?
없잖아 있을 수 있겠지만 꼭 그것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80세를 일생으로 보면 이제 절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까지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 동해서 일까?
정확히 표현할 수 는 없을지라도 진실과 진리는 어려운곳에, 모르는 곳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의 파장은 너무나 크기에 더 많이 살아오고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본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고통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진정 우리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생각없이 가치관도 없이 시류에 흘러 묻어져 가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표현으로 젊은이를 분류하면 10대부터 30대까지 어쩌면 4,50대에까지도 미치지 않을까..!!
특히나 한국은 강점기와 남북전쟁을 통해 피폐해진 땅에서 발전만을 고집해 오다보니 그리고 강점기를 통해 생각을 묵살시키는 교육이 아직까지도 이루어 지고 있다보니 생각을 할 만한 여유나 필요정 조차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1부 도전할 용기를 주는 책 (정선미)
삶은 재미있어야 한다 - 경제학자 우석훈
'승자독식'만 교육받아온 20대는 늘 성공에만 목말라 있다.
단함하기보다는 친구에게조차 진실을 터놓지 못한다.  19
정말 재미있는 일을 찾으라. 스펙이나 성공에 집착하다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20
20대가 뭉치기 위해서는 그들을 뭉치게 할 참모, 즉 기획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기획력은 폭넓은 독서에서 나온다.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기 위해, 그리고 행동할 순간을 깨닫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근본적이면서 깊이 있는 지식을 채우고 싶다면 인터넷보다 책이 더 유용하지요. 멍하니 죽이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읽으세요. 변화는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획력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1
추천도서 : 행복을 찾아 떠나도록 돕는 책 <파운데이션>
아시모프가 평생을 바쳐 쓴 책. 22세인 1951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1992년(63세)에 완성.  22
우석훈은 <파운데이션>을 통해 커다란 관점을 정립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라고 했다.  23
우석훈은 현대가 이미지 중심의 세계라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회가 너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24
"지금도 끝없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분명 힘들다. 여행은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을 발견한느 시도이다.  25
우석훈은 인터뷰 내내 재미를 강조했다. 즐겁지 않은 것은 하지도 말라고 거듭 강조한다.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진정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하며 결국에는 자신을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26

희망 바이러스는 세상에 뿌려라 -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저자 서진규
서진규는 대한민국 20대가 지나치게 나약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사회문제는 부모 때문이라고  했다. 비정상적인 자식 사랑이 미래를 망쳐버린다는 것이다.  31
추천도서 : 꿈을 향해 달리는 당신을 위한 책 <노인과 바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이는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37
그녀는 노력을 통해 꿈을 이루어 냈다.  39

인권 감수성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여라 - 이화여대 석좌교수 박경서
"남들과 똑같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45
추천도서 :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책 <지구촌 시대의 평화와 인권>
서구 사회는 지난 100여년 동안 칸트, 헤겔, 루소, 볼테르 등 수많은 세기적 지성들을 거치면서 국민 계몽 운동에 힘썼기 때문에 인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49
사회는 유기체와 같다. '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생각을 '내가 행복하려면 옆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로 바꾸어 기억하라고 조언하는 박경서.
내가 처한 현재 상태에 만족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은가?  50


2부 책, 자유의 또 다른 이름 (김수정)
인간은 존엄하다. 잊지 말기를! - 국회의원 최문순
추천도서 : 진정한 나를 찾게 하는 책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
그저 알고 있는 데 그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는 것을 실천하겠다는 신념이 갖추어질 때 의미가 있다. 최문순은 그 일을 바로 자기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7
최문순이 20대에게 들려주고픈 메시지..
칸트 사상은 '주체'로 시작한다. 스스로가 삶을 선택하는 주체가 되어야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가 생기면 자기 선택권이 생기고 자기 선책권은 곧 도덕을 발생시킨다. 종착점은 결국 인간의 존엄이라 할 수 있다.  68

창의적인 역발상을 시도하라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20대에게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시대의 변두리에 사는 아주 비극적인 세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꽃피우는 세대'.
후자의 삶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미래도 특별해 진다고 그는 강조한다.  73
추천도서 :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책 <내 인생이 첫 수업>
'정부와 기업의 오만하도고 독선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해야 하는 시민단체가 그들이 주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면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냐?'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우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  77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80

독특함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라 - 영화감독 민규동
추천도서 :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게 하는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학교와 학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삶의 기반을 어떻게 닦았느냐에 따랄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90
"과시하기 위한 책 읽기는 알맹이가 없어요. 정말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내공은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입니다.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는 허위의식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92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사랑에 빠져보다는 민규동의 조언은 특별했다.  93


3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 (박종현)
청춘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 드라마 작가 노희경
노희경 표 등장인물에게는 삶의 이유가 있다. 절대적으로 악한 인물도 절대적으로 선한 인물도 없다. 저마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102
"재미있는 일을 하려면 대가가 따르지요? 그러면 그 대가를 감수하려고 하면 돼요. 두려워할 것 없어요."  104
추천도서 :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책 <소크라테스의 변명>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왜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게 바로 철학이에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의문을 품고 자꾸 파고드는 거지요."  106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육체에 유혹 당하기 쉬우며 무지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107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어느 날 말로만 글로만 입으로만,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나를 아프게 발견한다. 이제는 좀 행동해보지 타일러본다.'  109
노희경이 소크라테스. 예수, 부처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행동햇지 때문이라고 했다.
행도을 통해 실생활에 녹여내지 않는 책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노희경의 주장이다.  110

거울속의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라 -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문제를 제대로 깨달으면 해결할 힘이 생긴다'라고 하는 그녀는 20대에게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자신의 문제를 깨달으려면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데 이는 곧 자신을 치유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과 속직하게 마주하는 과정이 분명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고통의 바닥까지 내려가서 경험하고 나니 분명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긴다고 이야기했다.  115
추천도서 : 상대성과 다양성을 말하는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개인 중심적인 문화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며 타인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118

'진짜 삶'을 그리는 데 에너지를 써라 - 영화감독 송일곤
추천도서 : 고독이 무엇인지를 묻는 책 <백년 동안의 고독>
책을 읽어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고정화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20대는 넓은 시각을 가질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다. 사람들과 정을 나누지 않고 모니터와 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133
송일곤의 영화인 [시간의 춤]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시간이 죽지 않는 삶은 멋진 것이지요.'  135


4부 유연한 시각을 길러주는 책 (이소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 영화배우 박철민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무슨 일을 할지 고민에 빠져 있기보다는 낯선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야 성장할 수 있다.  147
추천도서 : 유연한 사고를 갖게 해주는 책 <태백산맥>

나는 무엇에 탁월하지? - 프리랜서 방송인 유정아
유정아는 자신만의 아레떼(arete)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덕' 혹은 '탈월함'으로도 번역되는 '아레떼'는 '모든 존재가 나름대로 가지고 태어난 자신만의 탁월함'을 의미한다.  159
유정아는 후회없는 삶을 이야기하면서 독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우울함에서 탈출하게 하는경로', '헌책방에서 건진 기쁨'이라 이야기할 정도로 독서는 그녀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삶이 힘들 때마다 책을 펼친다는 유정아.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지금 처한 상황에 딱 들어맞는 구절을 발견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160
추천도서 : 나다운 나를 찾도록 돕는 책 <마음의 사회학>
'지금 가직 있는 소유물들이 없어도 나 자체로 즐겁고 당당할 수 있는 사람'  163

실수를 두려워하면 계속 실수하게 된다 - 영철버거 CEO 이영철
실수를 두려워하고 소심하면 능력에 상관없이 계속 힘들게 사는 것 같아요.  169
추천도서 : 인내와 진실함을 깨닫게 한 책 <설득의 사회학>
"인내와 진실함으로 자신의 진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173
어느 심리학자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중 하나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타인과 경쟁하고, 과정보다 결과로 평가받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택하기란 쉽지 않다.  175
그는 20대가 '모든 인간은 발가벗은 채 태어나서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함 진리를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176


5부 책, 창조의 에너지 (양지은)
많이 고민하고, 많이 실패하고, 많이 슬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많이 절망하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괴로워해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 포기는 하지 않겠다.  183
진정한 자유를 찾는 젊은이로 살아라 - 언론인 홍세화
유렵의 대학생과 한국이 대학생의 차이점.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자기 생각의 유무'입니다. 한국의 20대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가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항상 정답을 찾으려고만 하는 함정에 빠져 있어요... 한 번도 자기 생각을 갖도록 요구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내 생각'에 관해 꼭 되물어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은 제도권 교육과 미디어가 주입한 것일까? 혹은 독서와 토론, 경험과 사유를 통해 스스로 길러온 것일까?  188
20대는 내 삶이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전인적 인간으로서 해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189
추천도서 : 자유를 찾아 떠나는 당신을 위한 책 <자발적 복종>
"인간은 자유를 지향합니다. 억압에 의한 복종은 자신이 노예임을 인식하여 저항하기도 하고 벗어나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발적 복종은 자신이 노예임을 모른 채 편안하게 죽어간다는 의미죠."  191
노예 상태이면서도 노예임을 인식하지 못할 때 가장 두렵지 않겠는가?  192

행복은 '과정'에서 찾아진다 - 축구해설가 박문성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천편일률적인 공통분모를 갖는데, 바로 행복을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서 찾는다는 사실이다.  198
미국 최대 아이스크림 회사인 벤앤제리스의 창업자인 제리 그린필드는 'If it's not fun, why do it?(재미없는데 왜 해?)'라고 했다.
박문성은 '꿈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자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꿈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오늘날의 20대를 걱정했다.  200
추천도서 :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살아있는 모든 것을 너무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합리라는 것이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이성으로만 해석하면 세상은 너무 각박하게 변할 거예요."  204

재능을 갖춘 승자는 행복하다 -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 
청춘은 아름답다. 그러나 청춘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취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지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211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변화, 도전, 실패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창의력은 용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력을 지니고 있는데 남들 눈에 웃겨 보일까봐 주저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할 때 두려워하면 안 돼요."  213
추천도서 : 고전의 매력을 한껏 담은 책 <서유기>
교양은 곧 인격이다. 오직 꾸준한 독서를 통해서만 교양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지나.  219


6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책 (선우의성)
네 멋대로 해라. 진짜로! - 드라마 PD 박성수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일 거라는 보르헤스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229
"거인의 어깨가 있는데 왜 올라타지 않는거죠? 왜 듣고 나면 외로워지는 MP3만 끼고 살아요?  230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은 우주적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로 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멋대로 한 번 해보는 겁니다."  232
추천도서 : 역사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책 <불의 기억>

힘을 길러라, 소신대로 살고 싶다면 - 야구 해설가 마해영
"할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보다 자신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가 말하는 자기계발은 요즘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에서 하는 말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힘을 기르라'고 했다. 힘이 없다면 소신대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준비를 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해영의 말이 더욱 와 닿았던 이유는 자기의 소신을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다.  243
그는 스스로를 조금 특이한 사람이락 표현했다. 이는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해야만 하는 자신의 성격을 두고 한 말이었다.  244
추천도서 : 진심을 담아 읽게 만드는 책 <그건 정말 트라이었어!> 

인간에 대한 연민이 바로 희망이다 - 영화제작자 차승재
"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스펙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엇으면 후회와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20대는 '안정'에만 열광한다. 
그런데 그 동안 난 껍데기만을 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주보다 더 중요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말이다.  253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독서'라는 간결한 답변을 제시했다.  254
추천도서 :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는 책 <적절한 균형>
"<적절한 균형>은 지속적으로 현실의 참담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참담함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작가가 말하려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259
"행복하게만 살려는 생각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삶이 모두 행복으로만 점철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인생의 쓴맛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60


7부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는 책 (윤은지)
풍성한 삶을 원한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라 - 영화음악감독 조영욱
스킬과 테크닉이 넘쳐나는 인스턴트와 같은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인문학적 지식을 쌓고자 한다는 발언은 사실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중심을 잡으려면 사고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조영욱은 강조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 되죠. 무엇보다 인문학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273
추천도서 : 균형잡힌 시각을 길러주는 책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그는 형식도 중요하고 형식을 파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기존 틀에서만 대중과 소통하기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서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도 강조했다.  277

여행을 통해 놀라운 메시지를 경험하라 - 부부여행가 최미선 신석교
아는 대로 보고, 보던 습관대로 본다
공감하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보는 의식의 틀을 가장 빨리 바꾸어 주는 것이 여행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의식의 틀을 바꾸는 것이 목적이지요."
늘 보고 듣던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개성을 찾는것, 나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283
여행은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해야 하는데 블로그, 미니홈피가 등장하면서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여행해야 진짜 여행하는 맛이 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고 했다.  284
추천도서 : 도전을 격려하는 책 <여행의 기술>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나만의 것이다. 이것 또한 나를 성정시키는 계기가 되리라. 앞으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당찬 발걸음을 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20대의 모습이 아닐까?  290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전진하라 - 대중문화 평론가 김봉석 
뚜렷한 인생 계획을 세우지도,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 목표가 분명하게 있지도 않았던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낭비'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이 있기 위해 그 낭비의 시기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94
인생은 가치에 따라 정해진다.  296
추천도서 : 재미있지만 사유가 담긴 책 <남쪽으로 튀어>
사람들은 항상 글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먼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꾸미면서 더 멋있어 보일지, 아니면 더욱 그럴듯해 보일지에만 집착한다. 거품을 쫙 빼고 진심을 전달해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야 소통도 가능해지는데 살마들은 본질을 늘 잊고서 글을 쓰려고 한다.  300
김봉석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자립의 문제라고 딱 잘라 말했다. 경제적인 자립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립을 이루어야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을 수긍학 인정해서 새롭게 바꾸어야 어른이 될 수 있다고 김봉석은 정의 했다.  301
"시대가 안정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20대는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언했다.  
"인간은 다른 것을 보는 노력을 해야 배우는 게 있습니다."  30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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