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다비의 서문 

"작가에 관해 글을 쓰는 작가는 화가를 그리는 화가만큼이나 흥미롭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마에스트로에게  7



헤밍웨이와 절친한 친구들의 말과 아버지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을 종합해보면, 이 두 사나이는 정녕 두려움을 몰랐고 끝없이 관대했으며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들은 뭐든 기막히게 빨리 터득했고, 결코 사춘기의 열정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 둘은 똑같이 모순적인 행동을 했고, 여자에 관해선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고, 친구관계가 변덕스러웠다. 언어를 무기로 사용할 경우에는 무자비하고 심술궂기도 했다. 모든 이에게 그러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에게 그랬다.

둘 중 누구도 멍청이, 사기꾼, 지식인, 정치가 혹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읊어대는 쓸데없는 장황한 얘기를 쉽사리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발견한 가장 명백한 그들의 공통적인 기질은 어떤 비평가가 헤밍웨이의 "중대한 결함"이라고 지적한 그 "가학적인 농담"이었다. 이 가혹함의 정도는 대상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달린 듯했다.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에 묘사된 아버지만큼 그 지점에 근접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5년 10월 헤밍웨이가 막상 다음과 같이 썼을 때 아버지는 헤밍웨이가 자기를 알아봐주었다고 기뻐했다.

'그 친구는 뛰어난 파수꾼인데다 선상에서 일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열성적이었지만 바다에서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민첩해야 할 때 굼떴고, 이따금 두 발과 두 팔 대신 발만 네 개인 듯했다. 흥분하면 긴장했고, 뱃멀미는 구제불능이었고, 일을 시키면 촌놈 같은 반감을 품었다. 그래도 시간만 넉넉하게 주면 늘 기꺼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서 우리는 그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는데, 그 별명은 결국 마이스로 길이가 줄었다. 바람이 한바탕 몰아치기만 해도 그는 사지의 균형을 잃고 버둥거렸기 때문에 한번은 동승한 당신네 통신원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이스, 자네는 확실히 무지하게 대단한 작가가 될 걸세. 다른 일엔 눈곱만큼도 쓸모가 없으니까."

반면 그 친구의 글쓰기는 착실하게 향상했다. 언젠가는 작가가 될 만한 그릇이었다. 그렇다 해도 고약한 성미가 불끈불끈 삐져나오는 당신네 통신원이 작가 지망생을 일손으로 배에 태우거나, 쿠바고 다른 어떤 해안에서고 글쓰기에 관해 질의응답하면서 또다른 여름을 보내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필라호에 승선하고 싶다는 작가 지망생이 있거든 여자로 해주시길. 아주 예쁘면 좋겠고, 샴페인 챙겨오는걸 잊지 않도록 해주시길.'  13-15


그의 <횡단여행>(<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첫 부분)을 읽은 상태였다. 이 단편소설은 내게 그 작가를 만나기 위해 3200여 킬로미터를 여행해야겠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혹 일이 잘 풀리면 그가 몇 분만이라도 틈을 내어 글쓰기에 대해 얘기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것이다.  19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헤밍웨이를 만나는 일이 점점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만나면 뭐라고 하지? "저기, 안녕하세요?" 그러면 그가 뭐라고 할까? "썩 꺼져!"? 그는 나 같은 부랑자들을 피해 키웨스트처럼 외딴 곳을 택했을 것이다. 운이 트여 그를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연기가 펄펄 나는 화차 지붕에 앉아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21-22


"대학은 다녔나?" E.H. 가 물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긴 했는데 영문학 점수는 늘 형편없었습니다."

"좋은 징조군. 대학에서 학점을 잘 따는 친구들은 대개 흉내쟁이들이지. 자기만의 것을 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그럴 가망도 없고"  28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쓸 말이 바닥날 때까지 버티지 않도록 하게. 글이 술술 풀려 얘기가 재미있는 지점에 이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면 바로 그때 멈춰야 하네. 그러고는 원고를 그냥 놔두고 생각을 끄게나. 나머지는 자네의 잠재의식한테 맡겨둬. 다음날 아침 잠을 푹 자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든 그 전날 쓰던 것을 다시 쓰도록 하게. 그럼 그 재미있는 지점에 다다를 거고 또 다음 장면이 예측되겠지. 그 지점에서 계속 전진해. 그러다가 또다른 재미의 정점에서 멈추는 거야. 그런 식으로 써나가면 탈고했을 때 자네의 글은 재미있는 부분들로 가득할 것이고, 장편을 쓸 때도 절대 막히는 일 없이 얘기를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다네. 매일같이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전부 다시 쓰게. 얘기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싶으면 쓰기 전에 바로 앞 두세 장 정도를 되짚어 읽어본 후에 시작하게. 그리고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거라네. 검토할 때 잘라버릴 만한 건 모조리 잘라버리게. 무얼 내팽개쳐야 할 지 아는 게 핵심이야. 잘하고 있는지 여부는 뭘 버리느냐에 달려 있다네. 다른 작가가 쓰더라도 정말 재미있겠구나 싶은 걸 내버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는 걸세."

헤밍웨이는 이미 내 작업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고 힘껏 돕고 싶다는 듯 힘주어 말했다.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을 적어도 쉰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하게 손을 보아야 해.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자네는 온통 흥분되겠지만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하지만 작업 요령을 터득하고 난 후에는 독자에게 모든 걸 전달해서 예전에 읽어본 얘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실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게 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해. 이게 글쓰기를 평가하는 진정한 시금석이라네. 그리되면 독자는 흥분해도 자넨 아무렇지도 않아. 그저 힘든 일의 연속이야. 잘 쓸수록 힘들어져. 오늘 쓴 이야기는 어제 쓴 것보다 나아야 하니까. 세상에서 가장 고달픈 짓이지. 쓰는 일 말고도 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 게 수두룩하지만, 펜을 놓고 있을 때는 기분이 더러워져. 내가 가진 재능을 썩힌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말일세." 그가 말을 이었다. "모르는 건 쓸 수 없어. 순전히 상상에 의존하는 건 시(詩 시시)야. 공간과 인물들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얘기가 진공 속에서 벌어지게 되지. 창작은 써가면서 하는 걸세. 그날의 글쓰기를 끝낼 즈음에는 그다음 이야기가 어찌 펼쳐질지 알겠지만 그 이야기 다음에 벌어질 일까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네."

"애초에 아무런 플롯도 없이 이야기를 쓴다는 말인가요?"

"최고의 이야기는 그렇게 쓰이는 걸세. 좋은 얘깃거리가 있다면 서슴지 말고 써. 그런 건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해치우는 거야. 하지만 최고의 이야기는 하루하루를 겪으면서 만들어지는 거라네. 그런 걸 쓰는 건 뼈빠지는 일이지만 그게 쓰는 사람한테나 읽는 사람한테나 훨씬 흥미진진하지.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 쓰는 사람이 모르는데 독자가 어찌 알수 있겠나?"

"또하나."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망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즐겨 읽는 작가라도 있나?"  31-33


"말히긴 좀 그러네만, 자넨 진지한 것 같아." 마침내 E.H.가 입을 열었다." 진지함은 작가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이지. 일류로 쓴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일이고, 상상력을 발휘해 쓴다는 건 예술의 최고봉이라네. 또하나 갖춰야 할 게 있는데 그건 재능일세. 죽었다 깨도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있지. 소설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하겠나?"

"모르겠습니다. 자기한테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아나요?"

"알 수 없지. 몇 해를 써본 후에야 나타나기도 하니까. 여하튼 소질만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야.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딱 한가지 충고는 꾸준히 쓰라는 걸세. 물론 지독하게 고된 짓이지.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건 펜을 들고 해적질을 일삼기 때문이야. 내 경우 단편 열 개를 써봤자 그중 하나 정도만 쓸 만할 뿐 나머지 아홉은 버린다네. 그런데 편집자들이 내 작품을 원하면 나는 그네들을 그걸 놓고 경매를 벌여야 하는 처지에 몰아넣고는 그 열 개를 모두 살 만한 가격으로 그 하나의 값을 치르겠다고 나올 때까지 양쪽을 부추긴다네. 그럼 그자들은 질투심에 불타 내가 와서 해결해주기만을 바라게 되지. 자네가 글을 쓴다고 하면 너도나도 행운을 빌어주겠지만, 자네가 잘나간다 싶으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걸세. 정상에 무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작품을 쓰는 거야."

"상상력은요?" 내가 물었다. "창작할 수 없을 땐 어떡하죠?"

"창작이란 꾸준히 써나가며 터득하는 거야."

"애초부터 깜깜해도 말입니까?"

"이따금씩은."

"여쭙고 싶은 것이 또 있습니다. 저는 혼자 지내는 걸 무척 좋아해요. 주변에 사람들이 늘 북적대는 걸 못 견딥니다. 그게 작가에게 나쁜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아. 그래야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지지. 나도 지난가을 아프리카로 떠날 무렵엔 인간이라는 족속에 진절머리가나 누구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네. 기억해두게, 자네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거야. 자네 어머니께선 다르겠지만 자네가 죽든 살든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 개인으로서 자네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자네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아무도 관심 없어. 자네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 해."

"작년에 몇 달을 서부지역에서 차를 얻어 타고 화물열차를 무임승차하며 보냈습니다. 부랑아처럼 쏘다니는 게 작가에게 유익한 경험이 될까요?" 

"그렇고말고. 나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내와 가족에 매인 몸이라서, 하지만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사시사철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네. 한곳에 진득하게 머물면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해. 불결한 임시 천막촌에서도 괜찮은 걸 건질 수 있어야 하네. <허클베리 핀>은 읽어봤나?"

"옛날에요."

"다시 한번 꼭 읽어보게. 미국인이 이제껏 쓴 책 중 최고야. 허크가 도둑맞은 검둥이를 되찾는 부분까지는, 미국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지. 스티븐 크레인의 <블루 호텔>은 읽어봤나?"

"아니요."

"모름지기 작가라면 교육의 일부로서 꼭 읽어둬야 할 책들을 적었다네." 그가 아래의 목록을 건네며 말했다.



스티븐 크레인 - 블루 호텔, 오픈 보트


보바리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적과 흑 - 스탕달

(인간의 굴레 - 서머싯 몸)

안나 카레리나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 토마스 만

환호와 작별 - 조지 무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옥스퍼드 영시집

거대한 방 - E.E. 커밍스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저 멀리 그 옛날에 - W.H. 허드슨

아메리칸 - 헨리 제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서로 다른 글쓰기의 전형을 대표하는 것들이네. 어떠 ㄴ것은 따분하고, 어떤 것은 영감을 주고, 또 어떤 것은 무척 아름답게 쓰여 글을 쓴다는 게 절망적인 일처럼 여겨질 걸세.  34-37


"바닷물 색깔이 왜 가지각색이죠?"

"바닥 때문이지. 짙은 보랏빛이 도는 부분은 해초가 있어서 그렇다네. 산호초가 자라는 곳은 초록빛이야. 모래가 깔린 드라이록스 근처에서는 누런 빛을 볼 수 있을 걸세. 바다에 나와 있으면 눈 훈련에 좋아."  59


".. 글쓰는 법을 터득해야 해. 처음 써본 이야기가 팔린다는 건 작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라네. 똥 같은 걸 팔게 되면 똥 같은 걸 계속 쓰게 돼. 행여 글이 나아진다 해도 독자들은 언제나 첫인상으로 그 작가를 기억하지."  71


".. 보낸 원고가 퇴짜를 맞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려니 하는 거야. 남들과 다르게 쓰면 잡지사 사무실에 있는 친구들은 자네가 훌륭한지 알아보지 못해. 다른 이가 진가를 발견해야 그때서야 비로소 눈을 뜨지. 형편없는 건 아무리 써서 보내봤자 어김없이 되돌아오지만, 제대로 쓴 걸 꾸준히 우편으로 보내다보면 언젠가는 사겠다는 작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 처음 쓴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야. 그래서 배워야 한다는 걸세..."  72


".. 독자들은 좋은 이야기를 알아보지만 편집자들은 아이냐. 색다른 이야기를 보내면 편집자들은 그 가치를 못 알아봐. 이야기만 훌륭하다면 반송되어 오더라도 거들떠보지 마. 그냥 계속 보내. 좋은 이야기라면 알아보는 편집자가 있을 거야. 한 명이 알아보면 나머지도 알아보기 마련이지.. "  85


"..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러고는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  87


"하루에 몇 단어나 쓰세요?" 바다로 나간 어느 날 오후 내가 E.H.에게 물었다. 

"대중없다네." 그가 말했다. "많이 쓸 때도 있고 한 자도 못 쓰는 날도 있지."

"버나드 쇼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적어도 하루에 1000단어는 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너무 많아. 무지하게 잘 써지는 날에야 1000단어도 쓸 수는 있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자네를 펌프질 해대면 밑천이 바짝 말라 똥 같은 거나 쓰게 돼. 하루에 500단어를 쓴다고 해도 그걸 전부 실어줄 출판없자는 없어. 1년이면 18만 단어, 소설 두 권 분량이거든. 그리해보려고 시도해본 적 있나?"

"없습니다. 해보곤 싶은데 해보려고 할 때마다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 말일세, 글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든다네. 글을 쓰는 건 힘든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 세상에 못해먹을 짓이야. 쉽다면 개나 소나 다 하겠지. 그냥 앉아서 한편 써 보내면 돈이 굴러들어오는 게 아닐세. 그네들이 거액을 지불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그런 고된 짓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죠?"

"신나는 얘깃거리를 갖고 재미있게 만드는 거야 누군들 못하겠나. 비결은 수수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재미있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신나는 얘깃거리를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최고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나요?"

"아니야, 최고의 이야기는 꾸며내는 거라네. 액션을 꾸며낼 수 있어야 해. 소설이 될 만한 일을 실제 삶에서 벌일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열에 하나 정도야. 자네가 자네를 소재로 쓰면 그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는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쓰면 천 번을 죽고도 계속 쓸 수 있지. 자네가 아는 사람을 하나 골라 그의 나이와 전력을 바꾸고 그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로 그를 옮겨놓게. 그래도 그는 실존 인물인 거야. 그를 재미있는 상황에 던져놓고 액션을 만들어내, 꾸며내는 요령만 터득하면 소설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네.

좋은 얘깃거리다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써. 가슴속에 있는 걸 전부 털어놔. 그게 한 번 자리잡고 앉았을 때 쓸 수 있는 분량이야. 그러고 보니 생각나네. 언젠가 하루에 단편 두 개를 쓴 적이 있지. 한 편을 쓰기 시작해 탈고하고 났는데도 여전히 기분이 좋아서 한 편을 더 썼어. 

그렇게 한 편을 쓴 다음에는 원고를 두 주 정도 치워둬. 그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보는 눈이 생긴다네. 싹수가 보이지 않는 건 포기해야 해. 쓴 걸 치워두었다가 다시 돌아가 독자의 관점에서 읽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  114-116


"지금 자네한테 필요한 건 눈을 이용해서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래야 쓸 때 그것들을 고스란히 나타낼 수 있어. 어떤 하나를 다른 것과 비교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네.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지. 모든 것이 고유하다네...

절대적인 글쓰기라는 게 있지. 그걸 가르쳐주면 나주엥 자네 나름의 스타일을 계발할 수 있을 거야."  116-117


짧은 문장을 써야 할 때가 있지만 때를 가려 쓸 줄 알아야 해. 짧은 문장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건 단조로운 기계망치질 같아서 독자를 피곤하게 해...

모름지기 작가는 상이한 두 성격이 있어야 해. 인간으로서 자네는 천하의 개망나니일 수도 있고 사람을 증오하고 비난하고 다음번 만났을 때 놈의 대갈통을 총알로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 자네는 누구에 대해 쓰기 전에 그 사람을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의 관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네의 사사로운 반응을 섞지 않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요령을 터득해야 해.  120


나는 난생처음 도보로 외국 도시를 여행할 때 느끼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혔다.  137


정오쯤 되자 우리는 초록빛 해안을 따라 수킬로미터 내려와 있었고, 모로캐슬의 탑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아바나의 풍경이 되었다. 코히마르라는 작은 어촌을 지나 아담한 바쿠라나오 만 맞은편에 다다르자 E.H.가 카를로스에게 해변 쪽으로 배를 돌리라고 했다. 

"저기가 되놈들을 내려놓은 만이라네." E.H.가 <횡단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 단편을 읽은 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살던 때였다.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저녁에 녹초가 될 때까지 써댔는데 이야기에서 열기가 빠진 다음 읽어보면 악취가 풍겼다. 우울증이 발작처럼 엄습할 때면 주섬주섬 책을 읽었다. 대부분 성에 차지 않았다. 현대 작가들에게서 뭘 배울 게 있으려나 하고 잡지를 뒤적여 보았지만 그들은 더 형편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 단편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것과 다른 것들의 차이는 낮과 밤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나는 우아한 문구들과 억지로 짜맞춘 플롯에 신물이 나 있었는데, 마침내 억센 고기잡이의 말투로 쓰인, 내가 그때까지 읽어본 것들 중 가장 수긍이 가는 이야기를 발견한 것이다. 뭘 어떻게 했기에 이야기가 그토록 멋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바로 내가 쓰고 싶은 방식이었다! 나 말고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이 수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말이다. 나는 그가 현존 작가라는 걸 알았고, 그가 내게 이야기를 쓸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귀띔이라도 해주었으면 했다. 만일 그 단편 밑에깔린 예술적인 그 무엇을 그에게서 배워 깨우칠 수만 있다면 내게도 아직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 그의 요트에서 그와 낚시를 하면서 그가 쓴 단편소설 속의 어부가 되놈의 목을 으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졸랐다는 그 작은 만을 향하고 있었다.

"이 해안을 꽤 잘 아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무얼 쓰려거든 사전에 그것에 대해 알아둬야 해." E.H.가 말했다. "이야기를 쓰려면 배경과 등장인물이 있어야 하지. 그것들은 완전히 꿰고 그것들이 벌일 만한 일을 생각해둬야 해. 우선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하고 그런 다음 액션을 만들어내. 그러면 이야기는 저절로 써지게 돼 있어."

"쓰기 시작할 때 플롯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배경과 인물만 있으면 돼."

"아무 플롯이 없는데 쓰는 게 소설이 될지 어떻게 알죠?"

"알다마다. 아는 소재만 있으면 이야기는 나오는 걸세. 하지만 바다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가장 힘든 곳이지. 10년을 나와 있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게 바다야. 육지에서 전쟁이 터지면 달라. 전쟁터에 석 달만 나가 있으면 장편소설을 하나 건질 수 있지."  155-157


E.H.는 낚시질 중에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거대한 놈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빈틈없는 준비 태세를 갖추고자 했다.  160


"자네나 나나 또같은 걸 보지. 무엇을 본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쓴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네. 누군들 못 보겠나.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고 벌어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모름지기 작가라고 할 수 있지..."  174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무엇이죠?"

"전쟁. 전쟁은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탄생시켰지. 혹은 불행한 유년 시절. 실연. 남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이 작가에겐 거반 다 좋은 일이야. 그리고 마흔이면 사람들은 실수하기 시작하지만 작가의 정신은 명료해진다네."  176



"죽도록 하고 싶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312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최선인가요?"

"어떤 자옷에 관해 그곳에서 멀어지기 전에 쓰는 건 금물이야. 떨어져 있어야 균형 잡힌 시각이 생기거든. 무엇을 본 직후에는 그걸 사진처럼 묘사해서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어. 좋은 훈련이지. 그러나 그건 창작이 아니야."

"써가면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게 소설이라면 벌어질 일의 내용은 어떻게 결정하죠?"

"열댓 개의 흥미로운 가능성 중에 필연적인 하나를 골라야지."

"그게 형편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알죠?"

"마음속의 어떤 소리가 일러준다네. 판단이 경계선에 걸리면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구분할 수 있어."  313-314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314


"쓰고 싶은 마음은 정말 굴뚝같아요. 노력도 하고요. 그런데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정말 고된 짓이지. 자네는 그걸 이제 막 발견하기 시작한 거야. 글이 나아질수록 더 힘겨워져. 자네에게 필요한 건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거야. 하루에 적어도 250단어는 쓸 수 있어야 해. 그 정도면 충분해. 그렇게만 써도 1년이면 소설 두 권 분량이야.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눈과 귀를 사용 하는 거야. 부두 위에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 관찰하게나. 요트들이 들어온거든 그 소유주들과 승무원들도 관찰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게.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각 단어를 어떻게 말하는지 기억해두게. 자네는 자아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해. 그건 꼭 피요한 자질 중 하나지.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예민해야 하네.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 수 있어야 해. 계속 노력하면 계발되는 능력이라네. 누구도 자네가 겪는 고난 따위엔 관심 없어. 자신이 겪은 고생담을 늘어놓는다면 지독하게 따분한 놈으로 전락하고 말아. 자네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고, 자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아. 자네 자신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피게."

"쿠바를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없다면 제가 쓸 만한 것은 뭐죠?"

"내 장사 구역이니 넘보지 말라는 게 아닐세. 그저 자네가 소설을 쓸 만큼 쿠바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소설에서는 뭘 쓰지 않고 내버려두느냐가 중요하다네. 10분의 9는 수면 밑에 있어야 해. 그게 이야기에 품격을 주는 거야.."  314-315



"자네가 꼭 극복해야 하는 건 낙심하는 일이야." 그가 말했다. "자네에겐 육체적인 담력이 있어. 하지만 그건 겁먹기 전까지 누구나 있는 거지. 자네한테 필요한 건 정신적인 담력을 키우는 일이야. 훨씬 어려워.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게! 산문을 쓰는 건 세사에서 가장 힘든 일이야...

한 번에 몇 주 동안 써지지 않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낙심하지 말게. 세상 그 어떤 작가라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려니 하게. 기력이 빠지거든 자네가 본 것들을 빈틈없이 써보게나. 그것들이 종이 위에서 꿈틀거려 독자들이 그것들을 볼 수 있도록.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표정, 두드러진 이목구비 등에 주목하게. 그런 것들이 글을 생동감 있게 하는 거라네. 그러니 독자가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쓰는 연습을 하게. 그러고는 독자가 공감하길 바라는 감정이 무언지 파악하려고 힘쓰는 거야. 난 그런 식으로 글 쓰는 법을 터득했다네.

자네가 쓴 기사류 글들은 눈에 좋은 훈련이었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게 글쓰기에 대한 참된 시각을 자네한테 선사한 거라네. 이제 이 여행길로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어떤 실마리가 떠오를 수도 있을 걸세. 전에 떠돌이 생활 때 본걸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걸 보게 될 거야. 지벵 도착하고 나서 소설이 써지지 않거든 밖으로 나가 뭐든 보고 그걸 종이 위에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사람들한테 말을 걸어서 그들이 말하는 걸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써. 그러면 자네의 마음도 자동으로 대화를 들으려고 집중할 걸세. 귀를 잘 발달시키면 마음이 체를 치듯 움직여 써먹지 못할 것은 잊어버리게 되어 있어. 좋은 글을 읽어서 좋은 감식력을 키우게.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라네...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져. 운동을 많이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게. 그게 제일 중요해."  318-319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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