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독서는 나만의 해석이다


- <문장론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다독(多讀 많을다 읽을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自害 스스로자 해칠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 ..

쇼펜하우어는 무분별한 지식으로 생각할 여력이 없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용수철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읽기만 하지 말고 읽은 걸 느껴야 합니다.  17-18


'진정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그 소재를 현실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독서는 어디까지나 작가에 의해 가공된, 인공적인 현실이다.'

즉, 내가 경험한 것으로부터 나만의 지혜를 찾아야 하는데, 남 얘기나 내가 직접 보지 않은 것에서 내 것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 독서가 내 주변의 제대로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까닭에서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반대합니다.  18-19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빌려 지금 내가 있는 곳으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겠다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읽기가 내 생활에 들어와야 합니다. 쇼펜하우어도 아마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책을 읽지 말라고 반문한 게 아닐까요?  19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

'호학심사 심지기의(好學深思 心知基意 좋을호 배울학 깊을심 생각할사 마음심 알지 터기 뜻의),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는 심사, 깊이 생각함이 빠져 있는 듯합니다.  20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내가 안 것을 깨닫기 위해서 '학(學 배울학)'도 필요하고 '호학(好學 좋을호 배울학)'도 필요합니다... 우리 내부에서는 바깥에서 들어온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읗 해야 합니다.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21


최근에 자주하는 생각인데 지혜란 것은 크고 넓은 것,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움큼인 것 같아요.  22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중략)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책에 쓰여 있는 것은 객관적인 앎입니다.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인거죠. 이게 지식과 지혜의 차이 같아요. 독서는 주관적인 깨달음을 지향해야 합니다.  22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으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색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단순히 산 정사엥 도달했다는 물리적 결과만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겪었던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23


'그대의 조상이 남긴 유물을 그대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하라.'  24


언제까지 읽기를 끝내야지 하고 목표를 정하지 마시고, 얼마만큼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에 방점을 찍으셨으면 합니다.  24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게 없이 원고지 12매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25


'학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학식이 부족할수록 더욱 어렵게 말한다.'  26


'"...(상략) 보는 법을 배우라!" 바로 그 순간 작가는 모습을 감춘다. 바로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한계이다. 시작임에 불과한 것을 마치 규범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독서에 지나치게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삶의 도입부에 있다. 독서는 그러한 삶에 안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나와 다른 영혼이 개입하도록 허용하되, 그때 들어온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28


책을 통해 알았으면 그것을 내 삶을 변화시키는 연료로 써야 하는 것이고, 삶에서 앎을 행하면서 바꿔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

알랭 드 보통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책의 저자다."  29


책이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시선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33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말재주와 옷뿐인, 예술가인 체하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만 조화로운 비율을 한 대상을 찾는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작은 근육 하나조차 의미를 가진다.'

주변의 것을 아름답게 보는 시선, 예술의 역할이기도 해요.  38


처음 보는 사람한텐 정말 엄청난 물건인 거죠. 그러나 익숙한 우리에겐 그것이 전혀 새롭지 않아요. 흥미도 없고요. 관습 안에 갇혀 아름다움이 약해진겁니다. 그걸 일깨워주는 것이 예술이고 독서라는 게 프루스트의 이야기죠.  40





2강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 <곽재구의 포구 기행> <길귀신의 노래>  곽재구

  <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별 볼일 없는 풍경, 그것을 주목하는 힘. 그게 삶의 지혜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자, 시인의 재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에요.  53-54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서 여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많이 보려고 하지 말고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자고 자주 말하는데요. 자랑하려고 많이 읽는 게 핵심이 아니죠. 얼마나 체화했느냐, 얼마나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57


우리의 삶은 모호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명료한 답을 원해요..."어떠한 일반론도 각자 삶의 특수성 앞에서는 무력하다"  61

'한국의 나폴리 ..(중략).. 이런 비유 당신도 좋아하나요. 소박하고 따뜻하고 성실한 자신의 무엇인가를 바보스럽게 위축시키는..'

우리가 무심히 쓰는 말들이죠. 들을 때마다 어딘가 좀 불편한,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누구누구, 이런 표현 속에는 언급하고 있는 그 개인의 존재감에 대한 배려가 없는것 같아요.  63


'살아 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드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입니다.'

이 글을 보고 저는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66


거듭 말하지만 많이 읽는 것보다 제대로 읽는 게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1


'시를 쓰고 읽기 위해서는 개념의 운용 능력보다는 실물적 상상력의 운용 능력이, 공감과 일치의 능력이 더 긴요하게 연습되어야 한다.'

개념을 운용하는 능력은 법전 해석이나 논리적인 이야기에서는 중요하겠죠. 철학에서는 아주 엄밀하게 중요하겠죠. 철학에서는 이런 실물적 상상력은 배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학은요, 실물적 상상을 해야 하고, 정서적 공감을 하며, 거기에 내 마음을 일치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73


문학에 임하는 상상력은 이러한 표피적 사실 진술에 잘 만족하지 못한다. 그날 새벽 이순신의 조반상 위에는 어떤 음식이 올랐는지,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 것인지, 그날 바다 빛깔은 어땠는지, 세수는 제대로 했을 것인지, 옷차림은 어땠을 것인지, 방문을 나서는 그의 수염발이 동짓달의 바닷바람에 어떻게 쓸렸을 것인지, 휘하 병사들 하나 하나는 그 심경과 얼굴 표정이 어땠을 것인지 등등 까지를 궁금해한다.

쉽게 말해 4D 영화입니다. 시를 4D로 읽으라는 거예요. 2D로 읽지 말고 문장을 일으켜 세워서 바람도 느끼고, 물방울 튀는 것도 느끼면서 읽으라는 거죠.  74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우러나온다고요.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 않으면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들을 못 건져냅니다.  84


'목표가 곧 인생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

'수행은 늘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일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늘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을 높이며 끊임없이 성숙시키는 것이다. 성찰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피는 것이다. 사색은 사물과 일에서 참되고 깊은 의미를 찾는 일이다.'  86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조지아 오키프의 말처럼, 노력해야 해요.  89






3강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미성의 시간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세상사에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시인이다.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97


토스토이는 작품마다 자신이 살던 시대의 흐름,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투영해놨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스토리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문장을 구석구석 살피며 작가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며 읽습니다.  102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저는 '사람은 물이다'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사람은 고여 있지 않죠.  103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일상적 노도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알랭드 보통은 "우리는 아이를 위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이부자리를 펴는 것이 경이로운 일임을 잊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거기 있는 건데 말이죠.  104


'육체노동이 정신적인 삶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육체노동을 할 때만이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하다.'

그래서 몸을 번잡하게 만들어야 해요. 잘 살려면 몸을 번잡하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109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진리는 그저 몸에 살짝 붙어 있는 데 그치지만 스스로 발견한 진리는 몸의 진정한 일부가 된다.'  117





4강 시대를 바꾼 질문, 시대를 품은 미술


- <1417년, 근대의 탄생> 스티븐 그린블랫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토론을 요청하며 질문을 던졌어요.  144


오직 하나만의 목적을 위해 질문을 내려놓은 시대, 중세와 닮아 있지 않나요?  146


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황새잉 아니라 멸(滅 멸망할멸)이랍니다. 다시는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죠. 더 좋은 무엇으로 태어나도 연(緣 인연연)은 필시 생길 따름이고 그러면 삶은 또 다시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게 목적이랍니다.  149


'모두들 기성 제도와 관습, 관행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새로워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것에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친부살해의 욕망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를 죽여야 비로소 새로운 가치가 태어나는 거니까요.  173


시대가 너무 물질적인 가치만 따르며 가다 보니까 나는 다른 길을 찾겠어 한 거죠. 또 다시 친부살해이지요.

'미래를 얻기 위해서 현실과는 단절이 필수적이다. 추상은 구상의 억압과 배제 위에서 탄생한다.'

추상은 두 가지예요. 구상이 비구상화 되는 추상이 있고 시작부터 완전한 추사으로 출발하는 추상이 있어요.  174





5강 희망을 극복한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


- <스페인 기행> <영국 기행>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일본 중국 기행>개정판)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재보다는 그 소재를 해석해내는 카잔차키스의 역량을 높이 봤스빈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그 부분입니다. 여행지 자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여행지를 소재로 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죠. ..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대상에 대한 저자의 사색'이 주제가 됩니다. ..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는 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순간순간 예민하고 싶어 했죠. 

'나는 그런 영혼이오. 세계를 만지는 촉수가 다섯 개 달린 덧없는 동물.'  182-183


왜 온몸이 촉수인 삶을 살아야 할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어디에도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그 순간을 온전하게 사는 것뿐이죠.  184


'행복은 하늘이나 땅의 딸이 아니라 인간의 딸이다.'

행복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므로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장자 얘기를 하나 인용해요.

'하늘 아래에는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

이것은 소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185


'보고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두르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한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영혼이 훈련이 된 사람들은 그 한 장면을 보고도 그 장면 속에서 많으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르 다녔다 할지라도 아무것도보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성급함과 초조함과 서두름을 극복했다.'

'예술품의 완전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술품이 태어난 나무와 물과 언덕 사이에서 그것을 보아야 한다.'  188


아무런 감정도 없고 깊은 접촉도 없이 세상을 냉담한 시선으로 보는 영혼에게는 '객관적인' 진리 - 그것은 얼마나 하찬ㅎ은 것인가! - 만이 존재할 뿐이다. 고통스럽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신비로운 교접을 통해 자신이 보는 풍경과, 마주치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건과 소통한다. 따라서 모든 완벽한 여행자는 항상 자신이 여행하는 나라를 창조하는 것이다.'

풍경들을 객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온전히 느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여행을 할 수 있어요. ..내가 읽고 내 속에서 해석되어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면 비로소 그때에 좋은 책이 되겠지요. 

모두 똑같은 여행은 없습니다.  189


'다른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서 있게나.

자신 앞에서는 엄격한 얼굴로 서 있게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용감하게 서 있게나.

일상 생활에서는 기분 좋은 얼굴을 하게나.

사람들이 자네를 칭찬할 때면 무심하게나.

사람들이 자네는 야유할 때면 꼼짝도 하지 말게나.'  189-191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예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인생이니까 그런 겁니다. 세상의 모든 잘난 것들도 내 안의 입법자와 협의해서 동의가 되면 그때 받아들이는 거예요.  197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읽는 대목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폭발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술이란 인간의 정수를 알파벳 문자들에 압축해 넣는 마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독자의 기술은 그 마술적 장치들을 열고 그 속에 갇혀 있는 뜨거운 불이나 부드러운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김사인 선생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작가는 인간의 정수라 할 만한 무언가를 몇 개의 알파벳 속에 집어넣었어요. 그걸 우리가 제대로 읽으려면 그 문자를 풀어야 해요. 봉인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장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죠.  202-203


'나는 이 세상에 왔던 것에 만족합니다. 내가 무수한 고난을 겪었음에, 중대한 실수들을 저질렀음에, 만족합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실수를 했다고 해도 결과를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가죠. 아모르 파티(Amor fati)입니다.  203


'순간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이 완벽해야 한다.

부족함 없어야 하고 바라는 게 없어야 한다.

모든 희망의 극복이 필요하다.'

언젠가 노트에 적어놓은 메모입니다.  210






6강 장막을 걷고 소설을 만나는 길


- <커튼>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는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예로 드는데요. 그 그림은 철저한 해석입니다. 들라크루아가 생각한 자유의 여신의 이데아를 그려놓은 작품이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유명한 그림은 들라크루아가 선해석의 커튼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한 젊은 여자가 심각한 얼굴로 가슴을 드러내놓고 겁을 주고 있다. 그 여자 옆에는 권총 한 자루를 손에 쥔 코흘리개가 있다.'

쿤데라가 보기에 이 그림은 키치의 전형입니다. 자유의 여신이 깃발을 들고 있는 바로 옆을 보세요. 옆에서 죽어가는 살마들의 비명소리나 피비린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유의 여신의 가슴은 전쟁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깨끗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전부 키치인 거예요. 쿤데라는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내가 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 그림이 명화의 대열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226-228











''말 그대로의' 역사, 즉 인류의 역사는 이제는 없는 것들,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참여하지 않는 것들의 역사다. 예술의 역사는 가치의 역사이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항상 현존하는 것,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의 역사다. ..'

마차를 생각해보세요. 요즘 누가 마차를 타요. 없어졌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아직도 몬테베르디라는 16세기의 작곡가도 만나고 스트라빈스키라는 20세기의 작곡가도 만나고 있어요. 이들은 각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진보의 역사를 잣대로 두고 판단한다면 몬케베르디의 음악은 없어졌어야죠. 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better)'의 세계라면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different)'의 세계입니다. 남들과 어떻게 다를 것이냐.  234-235


키치는 앞에서도 언급했는데요, 다시 말하자면 편집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겆. 로맨티스트는 모두 키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맨티스트는 어떤 상황이든 낭만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거든요. 지극히 주관적이죠. 로맨틱한 상황에 방귀 냄새가 나서 되겠어요? 로맨틱한 사람은 그 순간 농담을 던지면 뺨을 때리겠죠. 정신 못 차린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때문에 재치라는 것이 매 순간 좋기만 한건 아니에요.  241


'그러나 몽상은 그만! 우리 모두는 출생의 날짜와 장소에 절망적으로 못박혀 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유일한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조건을 벗어나서 우리의 자아를 생각할 수 없어요. 상황이 중요한 거죠. 내가 어느 나라에서, 어느 시대에 태어나, 어떤 상황 속에 살고 있느냐에 못 박혀 있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주목한 사람이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카프카는 이 사람이 귀족이든 아니든, 성격이 좋든 그렇지 ㅇ낳든,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고 당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소설을 씁니다. <성>과 같은 소설이 그렇습니다.  252-253



니체가 이런 말을 했죠.

'16세기에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은 독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곳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교회가 더 많이 타락했지만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거죠. 타락이 몸에 배면 익숙해지고 무뎌지게 되거든요.  

'카프카 시대의 관료주의는 오늘날과 비교할 때 순진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프파는 관료주의의 끔찍함을 간파했고 그 후로 관료주의는 일상적이 되어 이제는 아무도 과심을 갖지 않는다.'

카프카가 그 시대의 관료주의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초기 관료주의의 끔찍한 모습을 예민하게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실이 전혀 부끄러움 없이 되풀이된다면, 그 반복되는 현실에 직면한 사상은 결국 언제나 입을 다물게 되는 법이다.'

이게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조심해야 할 거고요. 예를 들어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들이 이 사회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문제들에 무덤덤해지는 거죠. 우리는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이지만, 제3자의 시선에서 잡히는 문제들도 분명히 있죠. 시스템의 사회, 관료주의적 사회는 익명성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들이 휴가를 떠날 때면 기차가 출발하기 십 분 전에 역에서 표를 샀다. 그들은 시골 호텔에 묵었고 마지막 낳 주인에게 현금으로 숙박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아직 슈티프터의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휴가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다.'

오늘날 그런 시대는 끝났죠. 나의 휴가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먹는 고기를 생각해보세요. 옛날에는 내가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온 건지 다 알고 먹었는데 지금은 모르죠. 익명성의 시대니까요.

'에어프랑스의 관리들과 노조 관리들 사이에 일어났던 분쟁이 파업으로 이어진다. 전화를 수없이 돌리고 난 후에야 에어프랑스에서 한마디 사과도 없이(K에게 사과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정은 예의범절 저 너머에 있다.)환불을 받고, 기차표를 산다.'

이게 상황입니다. 누구를 욕하겠어요.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없는 거잖아요. 내가 에어프랑스 티켓을 샀으니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건 내 권리예요. 그런데 내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노조 문제가 생겼대요. 이때 나의 민원을 접수한 창구의 사람들은 나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요. 그저 환불해주겠다고 간단히 말할 뿐이죠. 이런 얘기들이 이미 카프카의 소설에서 K를 둘러싼 상황을 통해 묘사되면서 예측됐던 것이죠.  254-256


익명성뿐만이 아닙니다. 자유의 개념도 예외 없이 바뀌었죠.

'자유의 개념. 측량사 K에게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기관은 없다. 그러나 정말로 완전히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모든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 해도, 가장 가까운 자기의 환경, 자기 집 밑에 지어진 주차장과 창문 바로 맞은편에서 웅웅거리는 확성기를 과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의 자유는 무한하지만 그만큼 무력하다.'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행동을 금지하는 기관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정말 자유로워졌나요? 사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법으로 사생활을 보장받고 있어요. 그러나 SNS를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지 않나요? 진짜 사생활이 있는 건가요? 무력할 수밖에 없죠. 이런 시대로 들어섰어요. 시간의 개념도 변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개념.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대립할 때는 동등한 시간 두 개가 대립한다. 덧없는 인생의 제한된 시간 두 개.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사람 대 사람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맞닥뜨린다. 젊음도, 노화도, 피곤도, 죽음도 모르는 존재. 인간의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 인간과 행정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지난겨울 폭설로 무더기 결항이 된 제주공항 사태 때처럼 책임지는 사람 없이 개인이 바로 행정이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맞닥뜨리는 거예요.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측량 기사 K를 짓누르는 것은 잔인성이 아니라 성의 비인간적 시간이다. 인간은 면담을 요청하고 성은 그것을 뒤로 미룬다. 소송은 길어지고 삶은 끝이 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겪는 일들이에요. 모험도 개념이 바뀌었답니다. 그 옛날의 모험은 내가 모험을 떠나겠어 하고 결심하면서 시작이 되었는데요.

'모험의 개념. 예전에 이 단어는 자유와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찬미를 나타냈다. 개인의 용감한 결정으로 자유롭고 확고한, 놀라운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은 지금 모험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민이 됐어요. 그 사람드의 성격이나 성향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상황입니다. 모험에 들어선 것은 그 사람의 의지인가요? 상황 때문이잖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돈키호테의 모험과는 전혀 다르죠. 그렇다면 그 모험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찾아오는 일입니까? 아니죠.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지만 나에게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도 생긱고 나면 우리의 삶 역시 완전히 바뀔 겁니다. 이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커튼>에 들어 있어요.

'싸움의 개념 역시 모험과 비슷하다. (중략) 몸 대 몸의 싸움은 없다. 보험, 사회보장, 상업조합, 법원, 국세청, 경찰, 도청, 시청, 우리의 적에게는 몸이 없다.'

어느 순간 다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는 것들이죠.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적이 될 수 있죠.

'그 모든 소동 후에 K는 지쳐서 죽는다.'

K에 우리 이름을 대입하면 딱 들어맞을 것 같지 않으십니까? 대단한 통찰이에요. 이게 바로 카프카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지금 우리들이 사는 시대와 꼭 들어맞습니다. 시대를 앞서 읽은 소설이네요.  256-258






7강 소설이 말하는 우리들의 마술 같은 삶


-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슈디







8강 나만을 위한 괴테의 선물, 파우스트


-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방황하지 않는다는 건 노력하지 않는 거죠. 삶을 향한 어떤 노력들과 그로 인한 방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가야 하는지, 이 한 문장에 잘 나와 있어요.  329


'그러면 고서(古書 옛고 글서)들이 신성한 샘물과 같아서,

 그걸 한 모금 마시면 갈증을 영원히 진정시켜준단 말인가?

 그것이 자네 자신의 영혼에서 솟아나지 않는다면,

 결코 상쾌한 마음을 얻지는 못할 것일세.'

체화되지 않는 지식들은 무용합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볼까요? 고서에 적힌 훌륭한 말들이 신성한 샘물처럼 여겨지겠지만 그것들이 갈증을 영원히 진정시켜줄 순 없습니다. 그 말이 내 내면 속에서 영혼속에서 계속해서 솟아나야만 갈증이 가랑앉겠죠. 책을 읽었으면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겁니다.  333


'그러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결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할걸세.'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노자가 말했죠. 진실한 말에는 꾸밈이 없고, 꾸미는 말에는 진실이 없다고요. 이걸 <파우스트> 버전으로 볼까요?

'이성이 있고 올바른 생각만 있으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연설은 저절로 나오는 법일세.

 자네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지하다면, 

 말마디를 꾸미려고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336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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