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걱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열예닐곱 살때 이미 그것을 알았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허황한 생각에 빠진 적도 없었다.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마 ㄴ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다.내가 원한 것은 재능-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5-6



내가 원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엇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탐색하고 싶었다.

나는 원기 왕성했고, 머리는 착상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았고, 발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생각하면, 안전한 곳에 편안히 들어앉아 있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8



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풍족한 편이어서, 이 세상의 대다수 사람을 괴롭히는 빈곤과 박탈감은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배를 곯아 본 적도, 추위에 떨어 본 적도 없다. 가진 것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느껴보지 못했다. 안전은 처음부터 보장된 것이었지만, 그렇게 안락하고 풍족한 가정인데도 돈으 ㄴ끊이없는 화제 거리였고 걱정 거리였다. 부모님은 대공황을 겪은 분들이어서, 그 어려운 시절을 결코 잊지 못했다.  9



이 세상은 돈이 말한다. 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돈의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13



미국 생활의 건전한 외양과 지루할 정도의 엄격함은 허울좋은 속임수, 선전용 허세에 불과했다. 사실을 조사하기 시작하자마자 온갖 모순이 거품처럼 표면으로 떠오르고, 만연해 있는 위선이 드러나고,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금전 추구는 공정함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그것을 추동하는 엔진은 <나만을 위해서>라는 사회적 원칙이다...

돈은 세상을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었다. 이런 구분이 승자에게는 더없이 좋지만, 패자는 어떻게 될까? 내가 입수한 증거에 따르면, 패자들은 버림받고 잊혀질 운명이었다. 딱히지만, 그들은 진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었다.  16



그곳에는 들어가기도 전에 나와 버렸다. 실업계에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나는 열 살 때 이미 결심했다.  17


나는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등 학교 졸업이 나한테 별 의미가 없었다는 증거다. 급우들이 사각모에 가운을 입고 졸업장을 받고 있을때, 나는 이미 대서양 너머에 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일찍 졸업하는 것을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나는 6월 초에 뉴욕을 떠나는 배표를 샀다. 그동안 저축해 둔 돈은 몽땅 그 여행 경비로 쓰였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일 선물로 받은 돈, 졸업 기념으로 받은 돈, 성년식 때 받은 돈, 여름 방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모두 합치면 1천 5백 달러쯤 되었다. 당시는 <하루 5달러로 유럽을 관광할 수 있는> 시대엿다. 아껴 쓰면 실제로 그게 가능했다. 나는 파리에서 하룻밤 숙박비가 7프랑(1달러 40센트)인 호텔에 한 달 넘게 투숙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아일랜드를 여행했다. 두 달 반 사이에 체중이 10킬로그램 가까이 줄었다.  25-26



파리에서는 별난 사람들을 몇 명 만나기도 햇지만, 여행 중에는 대개 나 혼자 지냈다. 때로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릴 만큼 외롭게 지냈다. 그 열여덟 살의 소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다. 마음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중량이 없는, 핏발선 눈을 가진 생물이다. 내면에서는 절망적인 격동이 파도처럼 굽이치고, 견해나 태도가 갑자기 정반대로 바뀌고, 걸핏하면 기절하고, 상상력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경향을 가진 좀 실성한 생물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올바로 접근하면, 나는 솔직하고 매력적이고 사교적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내 존재를 믿었지만, 나 자신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범하면서도 소심하고, 재빠르면서도 굼뜨고, 순진하면서도 충동적이었다. 말하자면 모순이라는 정령에게 바쳐진 걸어다니는 기념비, 살아 숨쉬는 기념비였다. 내인 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나는 벌써 두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갑절은 노력해야 할 터였다.  26-27



책 속에 파묻혀 지낸 2년 동안 오나전히 새로운 세계가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인생을 바꾸어 놓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 혈애그이 성분까지 달라졌다...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이 꺼지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40



저한테는 강의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프랑스 어는 벌써 다 알고 있다고요. 그런데 왜 거꾸로 돌아가야 합니까? 그는 딱 잘라 말했다. 그게 규정이고 방침이니까....

그게 방침이라면 그만두겠습니다. 연수도 그만두겠어요. 대학도 그만두고, 전부 다 그만두겠습니다.  41



미친 짓이었다. 학위를 따고 못 따고는 걱정하지 않았지만, 대학을 등지면 자동적으로 징집 유예 자격을 잃게 될 터였다....

그런데도 나는 고집스럽게 대학을 그만두었다.  42



아들놈이 태어났다. 다니엘이 세사엥 나오는 것을 본 순간은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굉장한 사건이었다. 그 작은 몸뚱이를 보고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작은 몸뚱이를 품에 안았을 때에도, 나는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 내가 하나로 존재하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그 과도(過渡 지날과 건널도)의 경계선이었다. 청년기와 성인기 사이에 서 있는 거대한 벽이었다. 나는 이제 영원히 벽 너머에 있었다.

벽 너머에 있는 것이 나는 기뻤다.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지어는 육체적으로도 다른 곳에는 있고 싶지 않았다. 이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은 무엇인든 기꺼이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144



다른 일을 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과거에는 그래도 날마다 두어 시간 정도는 나 자신을 위해 남겨둘 수 있었다. 낮에는 돈벌이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 일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다음에는 이틀, 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일을 빼먹었다. 얼마 후에는 작가로서의 리듬을 잃어버렸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겨우 찾아냈다 해도, 너무 긴장해ㅐ서 글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건만, 내가 펜으로 건드린 종이는 되다 파지(破紙 깨뜨릴파 종이지)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145



1980년 말이나 1981년 초에, 나는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친구였는데, 그를 만난 것이 8년이나 9년 전이어서,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가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출판사를 차릴 계획이라면서, 혹시 쓸 만한 원고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로는, 흔해빠진 소규모 출판사가 아니라 진자 사업, 다시 말해서 <영리 기업>이 되리라는 거였다. 그래요? 나는 침실 벽장에 처박아둔 비닐 봉지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마침 갖고 있는 원고가 당신한테 맞을지도 모르겠구뇽. 내가 탐정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원고를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원고를 복사해서 그 주가 지나기 전에 우송했다. 뜻밖에도 원고는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보다 더 뜻밖이었던 것은, 그가 내친 김에 원고를 출판하고 싶다고 나선 것이었다.

물론 나는 기뻤다. 기쁘고 즐거웠지만,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았다.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서, 이게 정말인가 하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책을 출판하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그래서 어딘가에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가 어퍼 웻스트 사이드에 있는 아파트를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우편으로 받은 계약서는 진짜 계약서였다. 대충 훑어보고 조건이 그런 대로 괜찮다는 판단이서자,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선수금은 한푼도 없었지만, 책이 한 권이라도 팔리면 인세가 들어올 터였다. 갓 출범한 신생 출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상례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투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처지도 아니기 때문에, 없는 돈을 내줄 수는 없을 터였다. 그의 출판사는 물론 <영리 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그런 기업이 될 거라고 그는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뭔데 그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겠는가?

그는 아홉 달 뒤에 간신히 책 한 권-그것도 페이버백 복각본-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내 소설을 출판하는 일은 2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했다. 마침내 책이 나왔을 때는 배급업자를 잃은 뒤였고, 자금도 한푼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면에서 보든 출판업자로서 그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집적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서점 두어군데에 책 몇 부를 배본했지만, 나머지는 골판지 상자 속에 남은 채 브루클린 어딘가에 있는 창고 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책들은 아직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노력해서,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이미 <출판>되었기 때문에 하드커버로 다시 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관심을 가져 줄 만한 페이퍼백 출판사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 출판사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은채 내 소설을 버리고 떠날 마음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에이전트를 찾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냈다. 그녀는 내 소설을 <에어번 북스>의 편집자에게 보냈고, 사흘 뒤에 채택되었다. 만사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들은 선수금으로 2천 달러를 제시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실랑이도 없었고, 흥정도 없었고, 속셈을 감춘 협상도 없었다. 나는 자존심을 되찾은 기분이어서, 시시콜콜한 것은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원래의 출판업자와 (계약대로) 선수금을 나누자 내게는 1천 달러가 남았다. 여기서 에이전트 수수료 10%를 빼고 나니, 결국 내 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9백 달러였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 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169-17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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