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과학



역사철학 3장 - 우금치의 하늘 같은 님들

다행스럽게도 1940년 간행된 오지영(1868~1950)의 <동학사(東學史)>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
<동학사>는 열두 개 조로 구성된 개혁 강령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자는 목을 벤다.
둘째, 탐관오리는 제거한다
셋째, 포악스런 지주들은 엄징한다.
넷째, 유림과 양반들의 소굴을 공격해서 파괴한다.
다섯째, 가난한 백성들의 병역 문서를 불태운다.
여섯째, 종 문서를 불태운다.
일곱째, 백정의 머리에서 패랭이를 벗기고 갓을 쓰게 한다.
여덟째, 규정되지 않는 세금은 일절 걷지 않는다.
아홉째, 공사체는 물론하고 과거의 모든 부채는 무효로 한다.
열째, 외적과 연락하는 자는 목을 벤다.
열한째, 토지는 균등하게 나누어 경작한다.
열두째, 농민군의 두레법을 장려한다.  - <동학사> (초고본)  389-391

이 열두 개 강령이 중요한 이유는 집강소가 과거 억압적인 정부처럼 권위적인 정치기구가 아니라 오직 이 강령을 집행하려는 기구기 때문입니다. ‘집강소(執綱所)’란 글자를 보세요. ‘강령(綱)을 집행하는(執) 곳(所)’이라는 뜻입니다.  392

<프랑스내전>에서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을 분석하면서 말했던 “자유롭고 연합적인 노동”이 바로 집강소를 통해서 구체화된 겁니다.  393


정치철학 3장 - 유물론과 관념론을 넘어서

첫 번째 테제의 모든 문장은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처럼 하나의 개념을 바라보고 있다. “대상적 활동(Genebstandliche Tatigkeit)!”  424

활동(Tatigkeit)이란 말은 사물이 아니라 생명체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활동하는 고양이라는 말은 써도 활동하는 바위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활동은 모든 생명체가 가진 능동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하겠다. 결국 핵심은 ‘대상적’이라는 형용사에 들어 있는 ‘대상(Genebstand)’이라는 말이다. 이 독일어는 ‘거스르다’, ‘반대하다’, ‘저항하다’는 뜻의 ‘게겐(Gegen)’이란 어근과 ‘서 있다’라는 뜻의 ‘슈탄트(stand)’라는 어근이 결합된 말이다. 게겐슈탄트는 “우리에게 맞서서 서 있는 타자”나 “우리의 뜻에 거스르는 외부의 무언가”를 의미하는 말이다.  424

우리의 뜻을 좌절시키고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의 힘을 시험하는 그 무엇! 삶에서 만나는 회피할 수 없는 어떤 저항과도 같은 그 무엇! 삶에서 만나는 회피할 수 없는 어떤 저항과도 같은 그 무엇! “우리에게 맞서서 우리뜻에 거스르며 당당히 서 있는 것”, 바로 그것이 게겐슈탄트다. 결국 마르크스가 ‘대상적 활동’ 개념으로 포착하고자 했던 것은 이런 게겐슈탄트에 맞서 우리는 활동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425

우리는 우리에게 “나처럼 하라(fais comme mou)”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우리의 유일한 스승들은 우리에게 “나와 같이하자(fais avec moi)”라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재생해야 할 몸짓들을 제시하는 대신 다질성안에 펼쳐질 기호들을 발산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차이와 반복>(1968)  430-431

들뢰즈는 수영 교사에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은 “나처럼 하라”고 말하는 수영 교사이고, 다른 유형은 “나와 같이하자”고 말하는 수영 교사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가 “동일성의 반복”을 강조하는 수영 교사라면, 후자는 “차이의 반복”을 강조하는 수영 교사라고 하겠다. 동일성의 교사와 차이의 교사! 두 종류의 수영 교사는 모두 자기 “신체가 자신의 특이점들을 물결의 특이점들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동일성의 교사는 자기 신체와 학생들의 신체가 ‘차이’가 난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헤엄쳤던 물결과 학생들이 헤엄칠 물결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이 교사는 “나처럼 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교사는 수영 교본을 출판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 교본은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에게 수영을 잘하리라는 헛된 희망만을 줄 뿐 실제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차이의 교사는 자기 신체와 학생들의 신체 사이에, 그리고 자신의 물결과 착생들의 물결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 차이의 교사는 “나와 같이하자”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신체와 자기 신체의 차이를 알려면, 혹은 그 차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차이의 교사는 수용 교본을 집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433-434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중 첫 번째 테제 첫 문잘을 보라. 마르크스는 “대상을 ...... 객관이란 형식으로만 생각하는” 사유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상(Gegenstand)과 객관(Objekts)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객관이란 관조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435

“비대상적 존재(ungegenstandliches Wesen)는 비존재(Unwesen)다!” 대상적 존재만이 존재한다는 마르크스의 선언이다. 여기서 핵심은 ‘비대상적’이나 ‘대상적’이라는 수식어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대상’ 개념이다. ... 우리 앞에 우리의 의지에 저항하는 무언가가 버티고 서 있다. 바로 이것이 게겐슈탄트, 즉 대상이다. 그 대상이 내 앞을 가로막는 급류일 수도 있고, 비바람일 수도 있고, 산길에거 만난 뱀일 수도 있고, 권위적인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달려오는 자동차일 수도 있고, 건물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대상과 마주칠 때, 우리는 ‘대상적 존재’가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마르크스에게 대상과 객관은 완전히 다르다. 삶의 차원에서 마주치는 타자가 대상이고, 의식 차원에서 관조되는 대상이 바로 객관이니까. 달리 말해 대상은 우리 삶에 무언가 저항의 힘을 발휘한다면, 객관은 그저 관조하는 풍경일 뿐 우리에게 저항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440

마르크스의 입장은 분명하다. 대상과의 마주침이 먼저이고 주관과 객관은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상과 마주치는 대상적 존재는 당연히 감성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보통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을 다섯 가지 감각이라고 한다. 대상적 존재의 감성에는 이 오감이 마치 교향곡의 악기들처럼 함께 어울린다.  442

“감성적 존재는 겪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443


마르크스의 대상적 활동 개념이 출현한다. “인간은 자기외화를 통해 자신의 현실적이고 대상적인 존재의 힘들을 낮선 대상들로 정립한다.”
‘자기외화’란 육지에 익숙해진 자신을 포기하고 낯선 물에 들어가는 행위를 가리킨다. 물결의 신체와 인간의 신체가 결합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그는 수영 달인이 되어간다. 그에게 “대상적 존재의 힘”, 즉 대상적 활동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449

수영 동영상을 아무리 반복해서 본다고 해도 수영하는 신체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영 교본을 달달 외우고 교본 안의 사진을 숙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혹은 강가에 앉아 물의 유속과 깊이, 그리고 부력을 과학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 수영의 경우처럼 나뭄와 마주쳐 근사한 나무 인형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대상적인 존재의 힘을 가진 주체”, 즉 생각과 육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간 주체일 뿐이다.  450

마르크스는 자기 철학을 “자연주의(Naturalismus)”나 “인간주의(Humanismus)”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대상적 활동을 긍정하는 이념을 자연주의나 인간주의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 자연주의의 반대에는 초자연적인 신이나 세계를 초월하는 원리를 긍정하는 초월주의(Transzendentalismus)가 놓여 있다.  ... 인간주의의 반대편에는 인간의 육체성을 부정하는 정신주의(Spiritismus) 전통이 놓여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자연주의나 인간주의는 “관념론 및 유물론과 구별되며 동시에 이 양자를 통합하는 진리”라고 말이다.  453

인간의 육체성, 수동성, 조건성, 비 자발성을 부저할 때 출현하는 것이 관념론이고, 반대로 인간의 정신성, 능동성, 자유, 혹은 자발성을 무시할 때 출현하는 것이 유물론이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섬세한 사유를 요구한다.  454

마르크스는 인간의 자발성과 자유만을 강조하는 관념론자도 아니었고, 인간이 외적 환경이나 경제적 조건, 혹은 물질적 상황에 규정된다는 유물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철학사의 해묵은 대립, 즉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의 갈등을 ‘대상적 활동’ 개념으로 해소하는 데 성공하니까.  455

“지금까지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을 객관이란 형식이나 직관이란 형식으로만 생각했을 뿐 감성적인 인간 활동이나 실천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의 측면은 유물론과 대비되어 관념론에 의해 발전되었지만, 관념론은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활동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발전은 단지 추상적일 뿐이었다.”
... 마르크스의 입장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유물론은 ‘대상적 활동’에서 ‘대상’만 보았을 뿐 ‘활동’을 부정했고 관념론은 ‘대상적 활동’에서 ‘활동’만 보았을 뿐 ‘대상’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456

마트료시카(Matryoshka)라고 불리는 러시아 전통 인형이 있다. 똑같은 모양이지만 크기가 작은 인형들이 인형 안에 중첩해 들어 있다. 제일 겉 인형이 포이어바흐였고, 이 인형을 열어 만나는 두 번째 인형이 헤겔이었다. 헤겔 인형을 열면 그 안에는 유물론 인형이, 유물론 인형을 열면 그 안에는 관념론 인형이, 관념론 인형을 열면 서양철학 인형이 놓여 있었다. 모두 세계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세계를 관조하고 해석하는 사유 전통이다. 마르크스는 차곡차곡 작은 인형들을 포이어바흐 인형에 넣어 하나로 만든 다음, 이 인형을 발로 차버린 것이다. 그 빈자리에는 ‘대상적 활동’ 개념이 마르크스의 강건한 발과 함께 남아 있다.  458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중 여섯 번째 테제의 핵심이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가 변하면 인간의 본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관계주의다. 한마디로 불변하는 본질 같은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459

본질 혹은 본성의 계보학은 단순하다. 먼저 첫 번째, 자발적이든 타율적이든 관계가 지속된다. 두 번째, 그 관계는 관계에 들어간 개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바로 이 사후적 흔적,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이 흔적을 우리는 본성이라고 혹은 본질이라고 부른다.  460

자신에게 어찌할 수 없는 본질이 있다고 믿는 순간 개개인은 주어진 사회적 관계를 극복할 수 없다. 나는 약한 여자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노예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노동자니까 어쩔 수 없어 등등. 본질은 없고 관계만이 있다는 관계주의 입장이 해방적 효과가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여자의 본성이 있어서 공손한 여자가 된 것이 아니다. 억압구조가 나를 옴짝달싹 못ㅎ하게 규방에 감금하고 내가 순종적인 여자의 본성을 믿도록 훈육했을 뿐이다. 내가 노예의 본성이 있어서 노예가 된 것이 아니다. 억압구조가 나를 노예로 포획하고 내가 순종적인 노예의 본성을 믿도록 훈육했을 뿐이다. 내가 노동자의 본성이 있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구조가 나를 임금노동자로 만들었고 내가 노동을 파는 노동자의 본성을 믿도록 훈육했을 뿐이다. 본질이나 본성이 존재한다는 일체의 입장에 속지 말자! 본질이나 본성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것을 강요했던 억압구조, 즉 특정한 사회적 관계가 우리 눈에 들어올 리 없으니 말이다.  460-461

고대사회든 중세사회든 아니면 부르주아사회든 다수 민중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소수 지배계급은 항상 자기 체제가 불변하기를 원했다. 노예가 있어야 귀족도 존재하고 농노가 있어야 영주도 존재하고 노동자가 있어야 자본가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니 귀족은 노예를 계속 소유하려고 하고, 영주는 자기 영지를 지키려고 하고, 자본가는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독점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지배계급은 자신을 지배계급으로 만드는 ‘생산력’,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등 물질적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억압되고 수탈당하는 다수 민중들의 저항이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억압적 관계를 문제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배계급이 본질주의를 유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노예는 노예의 본질이 있어서 노예이고 귀족은 귀족의 본질이 있어 귀족이라는 식의 본질주의는 이렇게 탄생한다.  463

지금까지 모든 혁명은 ‘활동양식’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단지 그 활동의 새로운 분배만을, 즉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을 새롭게 분배하는 것만을 문제 삼았다. 이에 반해 ‘코뮌주의혁명’은 지금까지 존재하는 ‘활동양식’에 반대하며 ‘노동’을 없애버리고, 온갖 계급의 지배와 더불어 그 계급들 자체를 없애버린다. -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은 일어난 적이 없다. 노예가 농노가 된 것, 혹은 농노가 노동자가 된 것이 무슨 혁명이란 말인가? 주인집에 감금된 노예가 사라지고 출퇴근하는 노동자가 등장했다고 해서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 혁명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지배양식과 수탈양식의 세련화에 지나지 않는다.  465-466

고대사회의 노예도, 중세사회의 농노도, 그 리고 부르주아사회의 노동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원하는 걸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을 분배하는”, 혹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는 본질적으로 노예제사회일 뿐이다.  466

“지금까지 존재하는 활동양식에. 반대하고 ‘노동’을 없애”버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정신노동을 담당하는 소수가 지배계급이 되고,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다수가 피지배계급이 되는 활동양식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노동’, 즉 육체노동이 피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저주가 되기를 그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긍정하는 대상적 활동이라는 자기 자리를 찾게 된다.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고뮌주의혁명이다.  467

어떤 자가 폭력으로 지배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만 그 주먹에 굴복하여 한탄하면서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야생인들(des homme sauvages) 사잉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복종(servitude)과 지배(domination)가 무엇인지 이해시키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남이 따온 과일이나 잡아온 먹이 또는 은신처인 동굴을 빼앗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나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의존적 사슬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 나무에서 쫓겨났다면 그때는 다른 나무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또 만일 어떤 장소에서 고초를 당할 경우 내가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을 그 누가 방해한다는 말인가? ...... 복종관계란 사람들의 상호의존과 그들을 결합시키는 상호욕구가 있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것은, 미리 그를 다른 사람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상황(situation)에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거기에서는 누구나 구속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며 강자의 법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1754  469-470

동물농장의 동물 가축들을 고삐로 통제했다면, 인간농장의 인간 가축들을 통제하는 데에는 고삐 외에 언어가 필요하다. 바로 이것을 간파했던 것이 루소의 후배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2009)였다. 선배 루소가 다양한 책들을 접하면서 ‘자연상태’와 ‘인간농장’을 구분했지만, 후배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라는 인간농장을 떠나 몸소 자연상태를 해매고 다녔다. 그 결과 그는 선배가 주목하지 않았던 놀라운 사실, 인간농장을 유지하는 비밀을 발견한다. 그것은 문자와 관련된 교육의 문제였다. 그가 최초의 인간농장을 상징하는 기념물 피라미드에서 보았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문자의 출현과 문명의 어떤 다른 특징들을 관련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 관련성을 찾아야만 한다. 여기서 항상 수반되는 한 가지 현상은 도시와 제국의 형성이다. 이것은 상당수 개인들을 하나의 정치체제 속으로 병합하는 것이자 이 개인들을 카스트와 계급으로 위계화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현상이 문자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순간에 이집트에서 중국에까지 발견되는 발달이다. 이 현상은 인간의 계몽(illumination)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수탈(exploitation)을 조장하는 듯하다. 이 수탈은 노동자를 수천 명씩이나 모아서 그들의 체력이 닿는 데까지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이 점과 관련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의 탄생은 이런 수탈에 의존해 있었음을 알아야만 한다. 만약 나의 가설이 옳다면 의사소통의 한 수단으로서 문자의 일차적 기능은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한) 노예화를 촉진하는 데 있다. 공정한 목적을 위한 문자의 사용, 그리고 지적이거나 미적인 만족을 위한 문자의 사용은 문자 발명의 이차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으며, 심지어 문자의 일차적 기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거나(justifier) 혹은 은폐하는(dissimuler) 방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 문자는 인간의 인식(connaissances)을 공고하게 만들지는 않았고, 지배(les dominations)를 영속화하기 위해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왔던 것 같다. 우리와 더 가까운 상황을 고려해보자. 19세기 의무교육을 지향했던 유럽 국가들의 체계적 조치는 군복무의 확장과 (민중들의) 프롤레타리아와와 그 맥을 같이한다. 문맹과의 투쟁은 때때로 권력에 의한 시민 통제 강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을 때에만, “누구도 법을 모른다고 여길 수 없다”고 선포할 수 있으니까. - <슬픈 열대> (1955)
BC 8000년의 농업혁명은 막대한 잉여 생산물을 남기게 되는데, 이것이 무위도식하는 지배자와 지배계급을 탄생시킬 물질적 조건이 된다. 마침내 BC 3000년쯤 ㅇ이집트에 파라오(Pharaoh)라는 최고 지배자가 군림했던 최초의 제국이 세워진다. 정확히는 BC 3150년경 이집트 제1왕조가 탄생한 것이다. 90%의 피지배계급이 육체노동으로 10%의 지배계급을 먹여 살렸던 억압사회다. BC 2613년에서 BC 2494년까지 지속되었던 이집트 제4왕조는 매우 상징적이다. 제4왕조는 피라미드(pyramid)의 왕조였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는 왕조의 최고 지배자 파라오의 무덤이지만, 동시에 이집트왕조의 복잡한 위계질서를 그대로 구현한 상징이기도 했다. 피라미드의 제일 하단은 이집트왕조의 피지배계급을 상징한다면 피라미드 상단은 파라오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계급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피라미드가 위계구조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4왕조는 어느 전투에서 1만 1000명의 포로와 13만 100마리의 양을 전리품으로 얻었다고 하니, 당시 이집트 제4왕조의 인구는 못해도 500만 명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수탈하려면 문자와 숫자 체계가 완비되어야 하며, 동시에 피지배계급도 이런 문자와 숫자 체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포고문만으로 혹은 통지서만으로 지배와 복종 관계가 원활해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노예 등 최하 지배계급은 문자와 숫자를 배울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노예는 반드시 주인의 음성언어는 이해할 수 있도록 훈육되어야 한다. 그래야 주인이 노예를 부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자체계의 발달이 억압체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면, 제4왕조 시절 기자(giza)에 건설된 피라미드를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하다. 이 피라미드는 높이 146.5미터와 밑변 230.4미터의 규모로 전체 5900만 톤에 달하는 약 230만 개의 석회암과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피라미드는 약 10만 명의 인력이 매일 일해 20년 정도 걸려서 완공되었다고 추정된다. 10만 명이다. 일사불란한 언어체계가 없으면 공사장은 그저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한 두 명의 노예를 부리는 것이라면 말로도 충분하겠지만, 10만 명의 인력을 부리려면 문자와 숫자에 대한 명료한 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가장 하급 관리자는 상부에서 받은 명령문을 이해할 수 있어야하고, 직접 돌을 운반하는 노예들도 최소한 하급 관리자의 구두 명령 정도는 알아들어야 한다. <구약>의 첫 장인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오만하게도 인간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하자 신은 인간의 그 공사를 좌절시키려고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통일되어 있던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 그들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통일되고 체계적인 문자가 없다면, 거대한 피라미드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왕조도 유지될 수 없었다. 그러니 문자와 숫자, 나아가 음성언어에 대한 교육은 억압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 레비스트로스가 “문자”, “수탈”, “위계화”, “건축”, “노예화”를 인간논ㅇ장의 최초 징후라고 독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간을 가축으로 부릴 때 언어는 가장 효과적이고 결정적인 고삐가 된다. ..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 때, 가장 먼저 한 조치가 일본어 교육이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457-478

인간을 가축화할 때 재갈과 고삐보다 말과 문자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지배계급은 알았던 것이다.  478

레비스트로스는 노예화와 관련된 일차적 기능 이외에 언어에 다른 기능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 문자가 노예화와 무관하게 사용된 사례로 그는 세 가지를 든다. 하나는 “공정한 목적”을 위한 문자 사용, 두 번째는 “지적인 만족”을 위한 문자 사용, 그리고 세 번째는 “미적인 만족”을 위한 문자 사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란 근본적 위계구조가 전제된 이상, 언어 사용의 이차적 기능은 언어의 노예화 기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거나 아니면 은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레비스트로스의 냉정한 판단이다. 479-480


고대문명은 인간 가축화의 서막에 지나지 않고, 그 가축화에는 문자가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이다. 거대 건축물이 인류 문명의 보고라는 편견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 BC 3000년 전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세계 4대 문명은 문명이라기보다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시작을, 혹은 인간이 동료 인간을 가축화하는 비극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482

피라미드의 인부들 중 그 누구도 피라미드에 묻힐 수 없었던 것처럼, 안전띠를 매고 아찔한 철골 구조에 몸을 맡긴 노동자들 중 그 누구도 피라미드에 묻힐 수 없었던 것처럼, 안전띠를 매고 아찔한 철골 구조에 몸을 맡긴 노동자들 중 그 누구도 이 거대한 건물에 입주할 수 없다. 폭력수단을 독점해 노예와 민중을 지배했던 파라오나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독점해 노동자들을 지배했던 자본가들은 여전히 정신노동이란 미명하에 육체노동자들을 착취했던 것이다.  483

파라오 시대와 자본계급 시대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서도 찾을 수 있다.  483

이제는 정말 음성만으로 노동계급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 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의무교육의 필요성이 대두한다. 물론 의무교육의 핵심은 문자 해독 능력, 다시 말해 문자로 쓰인 주인의 명령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19세기 의무교육을 지향했던 유럽 국가들의 체계적 조치는 군복무의 확장과 (민중들의) 프롤레타리아화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19세기 이후 본격화한 유럽의 국민국가들을 상징하는 것은 식민지 쟁탈 경쟁이었다. 패권주의로 무장한 국가들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월한 군사력과 압도적인 생산력을 먼저 확보해야 했다. 군사력과 생산력의 기원은 결국 국민들, 혹은 민중들의 노동력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전체 국민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하고 운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당시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시행했던 의무교육이었다. 이제 피지배계급은 구두 명령이든 문서 명령이든 지배계급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기르도록 강제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노예화가 제도화된 셈이다. 당연히 의무교육에서 복종의식을 함양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아무리 명려을 이해하는 문자 해독 능력을 갖추어도 이해된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자유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굴욕이지만 의무교육이란 미명으로 이 복종 교육은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된다. 의무교육의 대상은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 때도 일제 시절에도 체제에 대한 충성 맹세가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1892년 국기 페티시즘을 처음으로 드러냈던 미국은 1953년 생전체제 때 국기에 대해 맹세를 읊도록 했고, 그 맹세는 21세기 지금도 다양한 피부색의 미국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1917~1979)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하던 1972년부터 아이들은 조회 때마다 국기를 보며 충성을 맹세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외위고 있는 충성 맹세문은 2007년 참여정부를 자처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노무현(1946~2009) 정권 때 개정된 것이다. 1972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일본제국이 우리 아이들을 훈육했던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의 정신과 미국의 국기 페티시즘이 결합된 형태였다면, 2007년부터 우리 아이들이 동요라도 되는 듯 외우고 있는 버전은 그냥 노골적으로 1953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아이들이 외우는 <충성의 맹세(Pledge of Allegiance)>의 짝퉁 버전이다.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을 노예화하려는 부르주아국가들의 속내를, 그들이 만들어 강요했던 낯부끄러운 충성 맹세문의 파노라마를 통해 확인해보자.
나는 성스러운 맹세를 신에게 바칩니다.
나는 독일제국과 민중의 지도자이자 군대 최고사령관 아돌프 히틀러에게 무조건 충성을 바칠 겁니다.
나는 용감한 병사로서 항상 이 맹세에 나의 생명을 바칠 준비를 할 겁니다. - <아돌프 히틀러에게 바치는 충성 서약> (1934)
1.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우리는 인고 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황국신민서사>(1937)
나는 미합중국의 국기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표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고 (기독교의) 신 아래에서 갈라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 <충성의 맹세> (1953)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자유롭게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국기에 대한 맹세> (1972)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구그이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국기에 대한 맹세> (2007)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미사여구인지 분명해진다. 국기도, 국가도, 관료도 국민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닐 때에만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 의미를 가진다. 국가가 내용에나 형식에서 국민들, 즉 사회의 하부에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니까, 그렇지만 나치 때도, 일본제국주의 시절에도, 독재 시절에도 심지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당연히 이것은 국가의 최고 실권자에 대한 충성일 수밖에 없다. 2007년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읽어보라. 부르주아체제에서 자유는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는 자유와 그것을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부르주아체제에서 정의는 토지를 가진 사람, 돈을 가진 사람, 그리고 노동력만을 가진 사람 사이에 생산물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정의를 의미한다. 결국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우리 국가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 부르주아극가라는 것을 명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484-487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 퍼지는 국가에서 의무교육의 일차적 목적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지배계급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자 교육과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제2의 천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체제의 유지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실무교육도 아울러 병행된다. .. 물론 부르주아체제는 기회 균등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속내를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다시 말해 교육은 민중들 자신을 위한 것이지 국가나 지배계급을 위해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라. 정말로 민중들을 위하는 것이라면 교육을 ‘의무’의 형태로 강요하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487

1987년 10월 29일 마지막으로 개정된 우리 헌법을 보라.
제31조 (교육을 받을 권리 의무, 평생교육 진흥)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2항.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
제32조 (근로의 권리 의무, 최저임금제, 여자 연소자 보호, 국가유공자에 대한 기회 우선)
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지닌다.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지닌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 대한민국 헌법
권리는 힘이다. 개인에게 어떤 것에 대해 권리가 있다는 것은 그걸 할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이 권리라면, 그것은 교육을 받지 않을 권리도 함축해야 한다. .. 그렇지만 우리 헌법은 얼마나 모순되는가? 교육이든 노동이든 권리라고 말하자마자,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바로 교육과 노동을 의무로 규정하니까. 구조도 똑같다. 31조나 32조 모두 1항은 권리를 이야기하고, 2항은 의무를 이야기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1항은 2항에 의해 강제된다는 사실, 나아가 1항은 2항을 은폐하는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일이다. 결국 교육은 강제되고 노동도 강제된다. 물론 그 주체는 국가이고 그 객체는 민중들이다.  488-489

바로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교육이 민중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드는 과정과 같이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지적이다. 프롤레타리아화! 이것은 민중들에게서 노동력을 제외하고 모든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박탈하는 과정이다.  4899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들에게 교육은 타율적 강요가 아니라 점점 자발적 복종의 중요한 매커니즘으로 변질된다.
일본제국주의 시절을 생각해보라. 일본어를 하는 우리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동료를 지도하는 십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더 많이 배울수록 직접적이고 힘든 육체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식민지 시대 불행한 우리 선조들은 일본제국주의가 원하는 걸 더 많이 습득하려고 애썼다. 489–490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자본이 원하는 것을 배운다! 국가나 자본의 간택을 받아야 생계를 도모할 수 있고 나아가 풍요로운 삶도 누릴 수 있다!  490-491

중요한 것은 의무교육이 타율적 훈육이 아니라 자발적 학습, 즉 타율적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으로 타들어가는 도화선의 불꽃이었다는 사실이다.  491

“자발적인 학습은 교육이란 제도 발명의 이차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으며, 심지어 교육의 일차적 기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거나 은폐한다.” 레비스트로스  492

만약 모든 사람이 문자를 모른다면, 강자는 몸소 벽을 감시하거나 꿀병을 지키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문맹을 없애는 순간, 이제 강자 대신 경고문이 사람들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492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관계, 즉 억압구조의 핵심은 생산수단 독점의 문제로 귀결된다. 생산수단을 탈취한 자는 생산수단을 빼앗긴 자를 지배하는 법이다. .. 지주와 농민 사이의 사회적 관계, 혹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이렇게 출현한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엣 마르크스는 이것을 “다른 인간과의 관계”나 “사회적 교류형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간단히 “환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 마르크스가 말한 환경은 자연환경이 아니라 억압적 사회구조, 즉 인위적 환경을 의미했던 것이다. 바로 이 환경을, 사회의 억압적 교류양식을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 19세기부터 발달했던 교육제도다. 표면적으로 체제는 교육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기에 민중들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역설한다. 기회 균등의 논리는 단순하다.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니, 성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만약 증명에 성공한다면 노동자에게는 부르주아에 가까운 삶이 제공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고단한 육체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부와 가난, 혹은 성공과 실패는 주어진 교육의 기회를 잡지 못한 개개인들의 탓이지 사회구조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19세기 이후 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강조되었던 교육은 부르주아사회의 새로운 노예, 즉 노동자들을 상호 경쟁으로 내모는 미끼였을 뿐이다. 치려한 경쟁은 억압적 환경 전체를 구조적으로 성찰할 여유를 노동자들에게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 계급이 아니라 동료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잘못된 감성을 노동자들의 내면에 각인한다. “입사 경쟁률이 왜 이리 높아. 저들이 원서만 내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 이제 우리에게 심각한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다. 노예화를 강요하는 억압적 구조에 맞서 싸우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 그나마 안정된 삶을 확보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495-496

마르크스에게는 .. 주인과 노예라는 억압적 환경, 그리고 이 환경을 강요하는 노예화 교육! 그에게 이것은 적응과 순응의 대상이 아니라 파괴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497

노예제를 극복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햇던 스파르타쿠스 자유군단, 농노제에 도전에 농노 신분을 털어내려고 했던 뭔스터코뮌, 노동자제를 무너뜨리고 임금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파리코뮌을 생각해보라. 길들여진 개는 주인을 물지 않고, 길들여진 소는 뿔로 주인을 들이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은 완전히 가축화할 수 없는 존재다. .. 인간은 대상적 활동의 힘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 지배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지만 동시에 그걸 넘어서려는 주체적 의지를 가진 능동적 존재이기도 하다. 수동적인 능동자!  498-499

20세기 내내 억압받는 자들은 자신들을 억압이 없는 미래로 이끌어나갈 정당이나 정권의 인도나 지도를 받는다. 사이비 사회주의나 사이비 코뮌주의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소수 지배계급이 다수 인간들에게서 대상적 활동을 박탈할 때, 억압사회는 등장하는 법이다. 그래서 억압사회에서는 소수 지배계급만이 대상적 활동의 힘을 향유한다. 당연히 억압받는 다수는 지배자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대상, 혹은 사물과도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된다. 아무리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다고 해도 정치적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사이비 사회주의나 사이비 코뮌주의가 새로운 억압체제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억압받는 자들에게 대상적 활동이 허락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501

“환경이 인간에 의해 변화되고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 환경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바로 이 인간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근본 입장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그가 “인간이 환경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환경도 인간을 만든다”고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도. 억압을 받는 것도 인간이지만 억압을 극복하는 것도 바로 그 동일한 인간이니까. 여기에는 포이어바흐도, 엥겔스도,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김일성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에게 사회는 두 부분으로 나뉠 필요가 없다. 아니 나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속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 혹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분할 자체가 바로 억압의 가장 분명한 힘을 절단하는 데서 찾아온다. 대상의 측면만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피지배계급이라면, 활동의 측면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지배계급이니 말이다. 502-503

경제적 조건들은 우선 그 나라의 민중들을 노동자들로 변형시킨다. 자본의 지배는 이 민중들에게 공통된 상황, 공통된 이해를 만들어 준다. 따라서 이 대중은 이미 자본에 반하는 하나의 계급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미 몇몇 구절로 지적했던 투쟁속에서 이 민중은 결합하고 스스로를 대자적 계급으로 구성한다. 이에 따라 민중들이 옹호하는 이해는 계급이해가 된다. 계급에 대한 계급의 투쟁이 바로 정치투쟁이다. - <철학의 빈곤> (1847)
.. 헤겔<정신현상학>의 핵심 개념 ‘즉자(卽自)’와 ‘대자(對自)’를 사용하면서 마르크스는 억압받는 자들이 대상적 활동의 주체로 변하는 과정, 다시 말해 억압에 순응했던 자들이 억압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주체로 변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글자 그대로 즉자는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대자는 자신을 반성하거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자신을 반성하거나 타인을 의식할 수 없는 상태가 즉자이고, 자신을 반성하고 타인을 의식하는 상태가 대자라고 정리해두면 좋다. 문제는 사람도 사물처럼 즉자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503-503

완벽한 노예는 사물화된 노예, 다시 말해 즉자적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물처럼 박제가 되었다고 해도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수치심과 모욕감이 찾아올 때, 완벽한 모예는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고 한숨을 쉬거나 분노하고 자신의 삶을 굴욕적으로 생각하는 노예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자적 노예의 탄생이다. ..
대자적 노예는 노예라는 신분을 넘어서려고 할 것이다. 이제 귀족과의 목숨을 건 투쟁, 혹은 노예제사회에 대한 전면적 투쟁만이 남는다. ..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려는 대상적 활동의 주체는 바로 이렇게 탄생한다. 모세가 나타나 노예를 귀족의 수중에서, 농노를 영주의 수중에서, 노동자를 자본가의 수중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노예가, 농노가,  노동자가 새로운 주인으로 모세를 섬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스스로 모세가, 혹은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 대상적 활동의 힘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말했던 것이다. “환경의 변화 그리고 인간의 활동 혹은 자기변화 사이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505

인간이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라는 말은, 즉 인간이 즉자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은 자신의 삶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으하게 된다. 대자적 삶이 찾아온 것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것을 ‘자기변화’라고 개념화한다. .. 불행히도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것처럼 대자적 줓체로 변형된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압적 환경 자체를 바꾸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인간의 활동”, 즉 “자기 변화”가 “환경의 변화”를 낳는 데 역부족이었던 탓이다. 즉자적 인간이 대자적 주체가 되었지만, 다시 말해 억압받는 자들이 대상적 활동의 주체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저항은 환경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506

교육은 선생이 원하는 것을 학생들도 원하도록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하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선생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만큼이나 학생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선생은 학생들의 잠재적 차이를 아직 모르고, 동시에 학생들도 자기의 차이를 모르기에,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학생들에게 제공한 다양한 경험의 기회들은 선생 입장에서 아이들이 꽃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선생은 자신의 확신을 항상 접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선생이 학생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의 의미다.  509

아이들의 차이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선생은 체제의 명령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동일성의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  510


‘대상적 활동’이란 개념이 마르크스 철학의 심장이라면, ‘인간 사회’라는 이념은 마르크스 철학의 머리라고 할 수 있다.  513


1852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말했던 적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자신이 바라는 꼭 그대로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하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거”이라고.
마르크스는 억압체제 전체 차원에서 꿋꿋하게 진행되는 인간의 대상적 활동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사소한 개인들의 일상에서도 그래도 관찰될 수 있다. 직장생활에 투여되는 에어지를 줄여 가족과 애인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직장인, 오른손에 가짜 붕대를 감고 원치 않은 모임에 참여하는 여성, 돈이 떨어져도 히치하이킨을 해서 여정을 계속하는 젊은이,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화책을 가져와 들키지 않고 보는 젊은이, 지도교수가 건넨 술잔을 교묘히 딴 그릇에 버리는 대학원생, 혹은 추울 때 따뜻한 물을 담은 물병을 껴안고 잠을 청하는 사람, 이런 모든 사람이 대상적 활동의 작은 촛불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작은 불꽃들이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전체 억압사회를 불태울 수 있는 거대한 산불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
어떤 경우든 인간은 주어진 대상적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 그것에 능동적으로 개입해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이다. .. 유물론적 사유 전통이 인간의 삶에 강하게 영향을 끼치는 대상적 조건만을 강조한다면, 반대로 관념론적 사유 전통은 인간의 자발성과 능동성만을 중시해왔다. 이런 해묵은 철학사적 대립은 마르크스의 ‘대상적 활동’ 개념으로 해소되고 만다. 대상적 활동 개념은 인간의 삶이 비자발적 자발성, 수동적인 능동성, 혹은 조건적인 자유라는 걸 해명했기 때문이다.  516-517

개체의 삶이 대상적 활동이라면,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도 대상적 활동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수동성과 능동성이 동시에 있고, 육체적인 차원에서도 수동성과 능동성이 동시에 있다는 것이다.  519

정신적인 것이 전면에 부각되었다고 해도 육체적인 것이 자기 기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신적인 것이 나가도록 버팀목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 어느 정도 나가야 할지 그 한계도 정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이 전면에 부각될 때도 마찬가지다. 변증법, 그것 벌거 아니다. 정신과 육체,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식과 경험을 각각 두 다리로 생각하고 대범하게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 변증법이니까.
마르크스가 “의식을 살아 있는 개인으로 간주하는 접근 방식”, 즉 헤겔식 사유를 비판했던 이유는 이제 분명해진다. 이것은 마치 육체라는 오른발을 간과한 채 의식이란 왼발만을 움직이겠다는 생각과 같기 때문이다. 헤겔은 절름발이의 인간만을 봤을 뿐, 살아가는 개인 혹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개인을 보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잘해야 헤겔식 인간은 세상을 관조하는 인간일 뿐이다.  521-522

마르크스의 인간은 의식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의식도 이어서 움직이는 인간이다.  522

마르크스는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생성 과정에 있는 인간”을 강조한다. 특정한 대상과 마주치고 관계해야 하나의 특정한 조건이 만들어진다. 결국 ‘특정한 조건’이란 대상과 관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처한 조건이나 상황을 가리킨다. 대상적 조건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인간은 여기에 전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존재다. 그 결과는 과거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생성이다.  522-523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중 두 번째 테제에서 마르크스는 말한다. “대상의 진리가 인간 사유로 귀속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이론의 묹2ㅔ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대상의 진리가 .. 인간이 마주친 대상에 대한 진리, 혹은 인간과 관계하는 대상에 대한 진리다. 결국 대상의 진리에는 대상과 마주친 인간의 모든 역사와 경험, 그리고 힘을 전제한다. 그러니 정확히 말해 마르크스가 말한 대상의 진리는 대상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525

명심해야 한다. 대상적 활동을 영위하는 모든 주체는 자기 사유의 진리를 증명해야만 한다. 마르크스에게 육체적인 것도 대상에 대한 육체적인 것이고, 정신적인 것도 대상에 대한 정신적인 것이다. 당연히 사유도 대상에 대한 사유이고, 실천도 대상에 대한 실천일 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말한다.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사유가 현실적인 가 비현실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순전히 스콜라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사유는 관저적인 사유일 수밖에 없으니까.  ..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당신은 대상적 활동의 주체인가?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다시 말해 당신의 생각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당신의 생각이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생각이 공회전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천을 통해 증명하라!  527

어떤 시대에서도 지배적 사상(herrschenden Gedanken)은 곧 지배계급의 사상(Die Gedanken der herrschenden Klasse)이다. 즉 사회의 물질적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정신적인 힘도 지배한다. …… 따라서 그들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지배하고 한 역사 시대의 범위와 한계를 결정하는 한, 당연히 그들은 모든 영역에 걸쳐 그 지배를 행할 것이며, 따라서 무엇보다도 사고하는 자로서, 사상의 생산자로서 지배하고, 그래서 그 시대의 사상의 생산과 분배를 규제할 것이다. …… 만약 우리가 역사 과정을 파악할 때 지배계급의 사상을 지배계급 그 자체에서 분리시켜 독자적인 존재라고 간주한다면, 혹은 그 어떤 시대에는 이러저러한 사상이 지배했다고 말하기만 하고 그 사상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조건 및 그 생산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 사상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각 개인들과 세계상태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예를 들어 귀족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명예’, ‘충성’ 등의 개념이 찌배적이었고, 부르주아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자유’, ‘평등’ 등의 개념이 지배적이었다고만 말해도 될 것이다. - <독일 이데올로기>
… 정확히 말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거나 같은 말이지만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피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만든 것이 바로 특정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라는 것이다.  529-530

여성을 모성의 화신으로 찬양하는 인문학자들, 신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종교인들, 인간 사유의 고유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들, 배려와 공존 등 공동체적 윤리를 역설하는 설교자들, 모두 좋은 사회를 꿈꾸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억압사회를 지속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란 구분법이 통용되는 억압적 구조를 정면으로 응시해서 돌파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534

어떻게 하면 이데올로기적 거울상이나 메아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인간이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사회,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중 열 번째 테제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사회’다. .. 귀족이나 영주나 자본가를 위한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가 아니다. 노동하는 사람들 자신의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다. 주인들의 생산이자 주인들의 교류다.  538-539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포이어하브에 관한 테제들> 11  539

포이어바흐의 생각은 기독교가 지배적이었던 독일사회에 단순한 지적 센세이션을 넘어 충격을 안겨준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성 일반, 혹은 인간 본질을 투사해서 만든 것이 신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퐆이어바흐가 말한 인간 일반이란 지배계급으로부터 추상된 것이라는 데 있다. .. 결국 신은 최상의 지배자나 초치선의 지배자로 상상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왜 가난한 민중들이 신의 궁전에 찾아가 그에게 무릎을 꿇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현실의 군주에게 억압받고 수탈당하자, 그들은 천상의 군주에게 사랑받는 노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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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2장 - 포이어바흐를 넘어서 도달한 곳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게 내재된 추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본질이란 말뜻처럼 불변하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내는 앙상블과도 같다는 것이다.  ... 개별 연주자들이 최상급 연주 실력을 뽐내도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에 녹아들지 못하면, 연주는 불협화으믕로 끝나고 만다. 앙상블 연주로는 완전히 실패한 셈이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인간을 솔로 연주자로 보지 말고 앙상블에 참여한 개별 연주자로 보자는 것이다. ... 마르크스는 ‘본질주의(Essentialism)’, 즉 개인이나 사물 안에는 본질이 내재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해체하고자 한다. 겉보기에 아ㅜ리 달라 보여도 서양철학 전통 일반은 모두 이 본질주의에 발을 걸치고 있다.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질주의 대신 마르크스는 ‘관계주의(Relationalism)’라고 부를 만한 입장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관계주의는 개인이나 사물 등 우리 눈에 식별되는 대상들이 아니라 직접 눈에 띄지 않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223-224

식사를 하던 아이가 귀가 가려웠는지 젓가락으로 귓속을 긁는다. 식탁에 있던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아이를 나무란다. “젓가락은 음식을 집어먹는 거야. 귀를 파고 싶으면 귀이개를 써야지.” 익숙한 밥상 풍경이지만, 여기에도 보질주의와 관계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젓가락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음식을 집어먹는 것’리다.  ... 본질주의가 삶에서나 정치엣 항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주의는 본질이란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224-225

자유란 별게 아니다. 어떤 사물과 하나의 관계만 가능한 사람보다 서너 가지의 관계가 가능한 사람이 더 자유로운 법이다. 아이는 의자가 없어도 근사한 바위에 앉아서 쉴 수 있고, 사용하지 않는 냄비에 흙을 담아 꽃씨를 묻을 수도 있다. 물론 급하게 소변을 보고 싶으면, 아이는 신속하게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시원하게 소변을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어머니나 선생임의 훈육으로 사회적 규범에 동화되고 만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사회구조가 지정한 관계로만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말한 초자아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초자아라는 내적 검열지구가 작동하자마자, 모든 사물은 하나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이제 사물은 본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225-226

남편이 있는 아내나 아이의 엄마만을 강조하는 순간, 이 사람의 본질은 여성이 되고 만다. 혹은 이 삶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만 강조되는 순간, 이 사람의 본질은 프롤레타리아,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최악의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227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일조으이 본질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방적기, 목화솜, 공장, 그리고 노동자등 개별적인 대상들만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과 노동이란 관계, 원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본가는 돈으로 공장을, 방적기를, 목화솜을, 그리고 노동자를 산다. 면직물을 만들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반면 노동자는 일체의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박탈당해 노동력만 가지고 잇다.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한 노동자는 면직공장에 취업해야만 한다.  228

억압과 수탈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보자.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누군가 독점하는 순간, ‘3P의 삼각형(the triangle of 3P)’으로 작동하는 지배관계는 탄생한다. 먼저 소수가 부유해지면서 다수는 가난해진다. 첫 번째 P는 재산(property)이고 두 번째 P는 가난(poverty)이다 부유한 소수는 가난한 다수를 지배하게 된다. 세 번째 P는 권력(power)이다. 권력은 재산과 가난 사이의 관계를 영속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이자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이 원초적 관계를 지키려는 힘이다. ‘재산-가난-권력’으로 이루어지는 ‘3P의 삼각형’은 대부분의 인간을 자기 안에 감금해 피지배계급으로 포획한다. 3P의 삼각형이 만들어지면, 지배관계는 공고화된다. 그러니 권력을 해명하고 싶다면, 우리는 재산과 가난의 문제를 우회해서는 안 된다. 재산을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권력과 가난의 문제를 숙고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난을 해결하고 싶다면, 우리는 권력과 재산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재산과 가난이 분열되면서 권력을 낳고, 재산과 권력이 결합하면서 가난을 지속시키고, 마지막으로 권력이 가난을 적대시하면서 재산은 안정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사유해야 한다! 이것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배계급 이데올로그들은 소수의 재산과 다수의 가난이 서로 무관하다고, 소수의 재산과 소수의 권력이 서로 무관하다고, 나아가 소수의 권력과 다수의 가난이 서로 무관하다고 역설한다. 이 궤변을 다수의 가난한 자들이 받아들이는 순간, 억압과 착취의 체제는 승리를 구가하게 된다.  245-246

억압과 착취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소작농이 지주가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새로운 소작농을 양산하는 길일 뿐, 불평등한 관계 자체를 소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자본가가 생산과 생계의 절대적 수단, 즉 돈을 독점했기에, 노동자들에게는 팔 수 있는 노동력만 남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가-노동자’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의 처지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꿈은 단순하다 많은 임금을 받기를 꿈꾸거나 아니면 언젠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자본가가 되는 걸 꿈꾸게 된다. 자본가가 있기에 자기 삶이 비참해졌다는 것을 알았다면 노동자가 이런 헛된 꿈에 매진할 리 없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노동자’ 관계가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압받는 자들은 폐부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한다.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사유하라! 불평등한 관계가 다수를 “눈물의 골짜기”에 던져 넣었다면, 그 억압적 관계를 우리는 돌파해야만 한다. 넘어진 곳이 바로 우리가 일어나야 할 곳이다.  247
마르크스는 ‘인간의 감성’ 이외에 ‘실천적 활동’이란 의미를 강조했던 것이다. “실천적인 인간적-감성적 활동”으로서 감성은 우리의 몸적 인식이자 실천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언가 했더니 사람이로구나”라는 인식이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바위구나”라는 인식도 이미 이런 몸적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니 지성의 판단이나 개념의 자발성도 결코 몸과 무관한 정신만의 고유한 기능이 아니라, 엄격히 말하면 몸적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피지렌’이란 독일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비가 얼굴에 떨어지면 우리는 그걸 느낀다. 비가 우리를 촉발한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면 우리는 그걸 느낀다. 태양이 우리를 촉발한 것이다. 매혹저긴 향내가 나면 우리는 그걸 느낀다. 향기가 우리를 촉발한 것이다. “직관이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우리가 대상에 의해서 촉발되는 방식만을 포함한다는 것은 우리 본서으이 필연적 결과다.” 여기까지 칸트의 말은 옳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다. 그렇지만 우리 몸이 비오는 날 집 밖에 있었다는 사실, 우리 몸이 여름날 바닷가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몸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만큼 중요하다. 온몸으로 물을 느끼려면 대홍수가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저 계곡물이나 바닷물, 아니면 욕조물에 몸만 담그면 된다. ‘아피지렌!’ 그것은 무엉ㅅ보다도 특정 시공간을 점유하는 몸들 사이의 마주침이 전제된 것이다. 일단 마주쳐야 타자든 나든 상대방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53

산길을 걷다가 “무언가 했더니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이 인식을 바꾸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 “마음의 수용성을 감성”이라고 정의하면서 감성의 의미를 축소했던 칸트의 입장을 밀어붙이면 된다. 다시 말해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해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있으면 된다. 칸트가 감성의 능력을 ‘직관’이나 ‘관조’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직관’이나 ‘관조’를 뜻하는 독일어 ‘안샤우웅(Anschauung)’은 원래 동사 ‘안샤우엔(Anschauen)’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거나 바라본다’는 의미이기에 보통 ‘관조한다’는 말로도 번역된다. 결국 대상을 직관하거나 관조하는 칸트식 감성이 작동하려면, 우리 몸은 결코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X를 관조하면 “무언가 했더니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은 수정될 여지가 없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감성을 ‘직관’이나 ‘관조’의 기능에 국한하지 않고 “실천적인 인간적-감성적 활동”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칸트의 감성이 수동적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의 감성은 수동성과 능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몸적 인식, 혹은 실천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감성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지 않으면, ‘바위구나’라는 새로운 인식이 만들어질 여지가 없다.  254-255

역사적 인식은 무언가 사라지고 무언가 새롭게 생기는 과정에 대한 앎이다. 무엇이 사라졌을까? 무엇이 새롭게 생겼을까? 왜 사라졌을까? 이런 의문은, 오직 무언가 없어지고 무언가 새로 생기는 일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260

잊지 말자. 피지배계급의 무기력을 조장하거나 증폭시키는 주범은 항상 지배계급이라는 사실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배계급은 항상 원한다. 자기 의지가 관철된 모든 것을 피지배계급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관조하고 순응하기를, 이런 식으로 소수의 지배계급은 다수를 배제한 채 역사의 주체로 등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이어바흐적 관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수 피지배계급이 소수 지배계급에 필적할 만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다.  266

역사의식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토대로 우리가 실천의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의 공식처럼 기억해두자. 역사의식이 사라지면 우리는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  266-267

“우리는 단지 유일한 과학, 역사의 과학만을 알 뿐이다.” 마르크스가 남긴 유명한 명언 중 하나다. 이 문장이 담긴 전체 단락이 없어질 뻔했다니 섬뜩한 일 아닌가? 역사의 과학이다! 이것을 흔히 역사학이라고 불리는 과목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의 과학이란 정확히 말해 관조의 과학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역사의 과학이란 말은 인간의 모든 학문과 인식이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반면 역사학은 과거의 역사를 불변하는 팩트로 고정시킨다. 결국 역사의 과학이 가변성과 실천성을 강조한다면, 역사학은 불변성과 관조성에 기반을 둔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학마저 시대에 따라 부팀을 거듭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의 역사학과 지금 시대의 역사학이 동일한 과거를 다뤄도 그 함의가 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68-269

지금 배운 진리가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자각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적인 과학도들인 셈이다. 이들은 자연의 법칙을 새롭게 해명해 언젠가 교재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법칙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제 물리학은 ‘물리에 대한 역사 과학’, 화학은 ‘물질 변화에 관한 역사 과학’, 그리고 생물학은 ‘생물에 관한 역사 과학’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하자. 진정한 물리학자는 물리를 관조하지 않고 실천적으로 개입하고, 진정한 화학자는 변화를 관조하지 않고 변화에 참여하며, 진정한 생물학자는 생물을 관조하지 않고 생명체의 거동에 관여한다. 과학자들의 이런 실천적 참여로 해당 과학의 내용은 급변한다. 그래서 자연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과학사라고 할 수 있다.  269-270

‘인류가 지구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시대’라는 뜻의 인류세는 1990년대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크뤼천(Paul Jozef Crutzen, 1933~)이 사용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 1900년에 16억 명이었던 인구는 2000년에 돌입하면서 60억 명을 돌파한 뒤 지금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다른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걷거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인간은 엄청난 규모의 숲도 없애고 거대한 댐도 만들고 대도시도 확장하고, 심지어는 기차와 자동차로 대지를, 비행기로는 대기를, 대현 선박으로는 대양을 가로지르고 있다. 환경오염 외에도 다른 종들이 살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협소해진 것이다. 현재 기린은 약 8만 마리, 늑대는 20만 마리, 침팬지는 25만 마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한정된 땅덩어리에 인류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생태 환경이 파괴됨에 따라 다른 생물들은 멸종으로 떠밀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나무늘보를 포함한 동물원의 동물 대부분은 멸종 위기 상태에 있다. 바로 이것이 인류세의 풍경이다. 인류가 멸종한 뒤, 다른 지적인 생명체가 지구의 역사, 혹은 자연의 역사를 탐구한다고 해보자. 아마 그들은 인류세를 방사능 물질, 이상화탄소, 그리고 플라스틱의 시대였다고 말할 것이다. 혹은 그들은 인류세를 보여주는 지층에서 엄청난 닭 뼈를 발견하고 경악할지도 모른다. 인류는 한 해 평균 600억 마리의 닭을 먹어치우니, 수백 년 동안 지층에 쌓인 닭뼈의 양은 무시무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274-275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류세라는 용어가 낳을 수 있는 오해와 관련된 것이다. 마치 인류가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나올 수 있으니까. 사실 중요한 것은 소수의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억압사회다. 대다수 인류를 생태 파괴의 현장으로 몰아넣고 동시에 그들을 자연 재앙에 제일 먼저 노출시킨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소수의 지배계급이다. BC3000년 전후 인간이 문자로 자기 역사를 기록한 이후 인류의 힘은 비약적으로 커졌고 문명은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억압체제는 외양만 바뀌었을 뿐 구조적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농업혁며으이 시대냐 산업혁명의 시대냐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농업경제 기반의 억압사회가 산업경제 기반의 억압사회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토지가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이란 절대적인 지위를 돈에 양보하고, 지주는 지배계급의 권좌를 자본가에게 물려주고, 그와 동시에 농민, 천민, 혹은 여성 등은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박탈된 새로운 인간형, 즉 노동자라는 새로운 피지배계급이 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지배계급은 두 종류의 착취를 지속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하나는 동료 인간을 착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지배계급을 매개로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세라는 표현은 수정이 필요하다. ‘지주-농민’이란 사회적 관계를 대신해 등장한 ‘자본가-노동자’란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토양과 하천, 나아가 바다까지 오염시키는 방사능 물질. 대기를 치명적으로 교란하는 이산화탄소. 깊은 바닷속 어패류의 소회기관에까지 침투한 플라스틱 조각들. 농업경제 시절 짐작도 못할 정도로 인류는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진정한 원인은 인류 전체가 자본주의체제에 포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자본세(capitolocene)’로 바꾸자는 논의가 나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 용어는 스웨덴의 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마름(Andreas Samuel Magnus Malm, 1977~)이2009년 처음 사용했지만, 그와 무관하게 해러웨이(Donna J. Haraway, 1944~)가 2012년 대중강연에서 독립적으로 사용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환경 파괴의 원인을 막연히 인간 전체로 돌릴 위험이 있다. 이 용어는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이 사라져야 생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인류세라는 용어보다 자본세가 더 좋다는 것이다. 생태계 교란과 파괴의 책임은 자본주의체제를 주도하면서 잉여가치에 대한 맹목적 충동에 사로잡힌 자본계급에게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자본계급이 다수의 인간과 지구 환경을 수탈하고 착취하고 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 아닌가? 이에 비해 자본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노동 계급, 나아가 자본주의체제와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환경 파괴의 피해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어떻게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할 것인가?” 2015년 해러웨이가 자본세라는 용어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스루센(Chthulucene)’이란 용어를 다시 만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간이 부분으로 속해 있는 힘들(forxe)과 역능들(powers),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지구와 함께하는 이런 힘과 역능들에는 하나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나는 주장했다. 물론 지금 이 지속성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아마도, 정말 아마도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들이 풍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시대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과거든, 현재든, 그리고 미래든 이런 시대를 커스루센이라고 부르고 있다. 커스루센은...... 지구 도처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촉수적인(tentacular) 역능들과 힘들, 그리고 서로 모여 사는 사물들(collected things)을 본떠 만든 말이다. ...... 커스루센은 적어도 하나의 (물론 하나 이상의 함의를 갖는) 슬로건을 요구한다. ...... “아이를 만들지 말고 친족을 만들어라(Make kin not Babies)!” ...... 지구를 함께 공유하면서 (sym-chthonically),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면서(sym-poetically) 우리는 친족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를 지구에 속한 것들과 함께 만들고 생성하고 구성해야만 한다. 나는 친족의 확장과 재구성이 모든 지상의 것들이 가장 깊은 의미에서 친족이라는 사실로 긍정된다고 생각한다. ...... 모든 생명체는 수평적으로, 기호학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공통된 ‘살(flesh)’을 공유하고 있다. 조상들은 매우 흥미로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친족은 (우리가 가족이나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바깥에 있기에) 익숙하지 않고, 기묘하고, 매력적이고, 능동적인 것이다. 작은 슬로건에 너무 많은 것을 부여했다는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노력해야만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지나면 아마도 이 혹성의 인간종은 다시 20억이나 30억으로 줄어들고, 동시에 지금까지 목적만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다양한 인간 존재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니라, 친족을 만들자!’ - <인류세, 자본세, 플렌테이션세, 대지세 : 친족 만들기(Anthropocene, Capitalocene, Plantationocene, Chthulucene : Making Kin)>
<환경 인문학(Environmental Humanities)>(2015, 6번째 권)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자연의 역사, 즉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산업 자본주의체제와 거기에 포획된 인류의 힘을 우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시대를 규정하려는 다양한 용어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류세란 용어가 막연히 인류의 힘을 강조했다면, 자본세는 자본주의체제의 무한한 탐욕을 강조한다. 나아가 2014년 덴마크 오르후스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에는 플래ㅐㄴ테이션세라는 용어가 제안된 적이 있다. 이 용어는 제3세계 국가에 다국적 자본들이 만든 수많은 플랜테이션들이 생태 파괴의 주범이라는 걸 강조한다. 플랜테이션이라고 불리는 기업화된 농장들은 생태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거의 노예제에 가까운 노동조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했으니까. 플랜테이션세라는 용어는 전체 인간 세계가 하나의 자본주의체제로 묶이면서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 사이의 관계에도 ‘자본가-노동자’라는 관계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자신들의 공장을 제3세계 국가들로 이식하면서, 유럽에만 국환된 생태 문제를 전 지구적 문제로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인류세든 자본세든, 아니면 플래네이션세든 모두 지구 환경 파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하는 용어다. 인류세가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고, 자본세가 자본주의체제의 폐단을 강조하고, 플랜테이션세가 자본의 세계화가 낳은 재앙을 경고한다. 이런 용어들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해 생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커스루센’이란 근사한 용어를 고안한 것이다.
2016년 저서 <곤경과 함께하기(Staying with the Trouble)>에서 그녀는 커스루센이란 용어가 ‘지상의’, 혹은 ‘대지의’라는 뜻의 희랍어 ‘크토니오스(khthonios)’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굳이 번역하자면 ‘대지세’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지세는 하나뿐인 지구에 모든 생명체가 서로 공존하며 사는 시대,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들이 풍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시대”를 가리킨다. 여기서 대지세라는 용어가 인류세나 자본세, 혹은 플랜테이션세와는 다른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산업자본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걸 극복한 싣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인류세, 자본세, 그리고 플랜테이션세가 ‘구성적인(konstitutiv)’ 용어였다면 대지세는 ‘규제적인(regulativ)’ 용어였던 셈이다. 대지세는 산업자본주의시대를 해명하려는 용어가 아니라 산업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 이루어야 하는 시대를 뜻하니까 말이다. 해러웨이가 대지세를 위한 실천적 강령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를 만들지 말고 친족을 만들어라!” 해러웨이의 요구를 친족이 아닌데 친족을 억지로 만들라는 이야기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에 따르면 “모든 지상의 것들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친족이고, ...... 모든 생명체를 수평적으로, 기호학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공통된 ‘살’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공통된 살! 그건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지구를 가리킨다. 죽은 몸이나 혹은 무생물에게는 살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과 무관하게 지구가 살아 있다는 의미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생명체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있기에 지구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친족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라고 요구한다. 인간은 이미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확인되는 인간중심적인 사유, 인간은 자연 바깥에 존재하며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존재라는 사유에서 벗어나라는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다른 종의 생명체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며체는 수평적으로, 기호학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공통된 ‘살’을 공유하는” 대등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녀가 왜 아이를 만들기보다는 친족을 만들라고 요구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내 아이’, 혹은 ‘우리 아이’라는 소유의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농업경제 시절 생겼단 오래된 인간중심주의다. 아이들, 특히 남자 아이를 선호한 이유는 그만큼 농사일을 감당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맥에서 부모와 자식은 양유고가 부양이란 교환관계에 묶이고, 이로부터 가족이란 배타적인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런 배타성이 어떻게 “공통된 살”을 공유하는 삶과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와 ‘친족’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 낳은 아이든, 남이 낳은 아이든, 아니면 나무늘보든 가시연꽃이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공통된 살을 공유하는 친족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렇게 친족이 많아지면 인간이 구태여 많은 아이를 낳을 이유가 있을까? 자기편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 해러웨이가 꿈꾸는 대지세에서 인간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친족관계를 이루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은 충만함에 둘러싸일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대지세에 돌입한 지구의 미래를 조심스레 다음처럼 묘사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지나면 아마도 이 혹성의 인간종은 다시 20억이나 30억으로 줄어들고, 동시에 지금까지 목적만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다양한 인간 존재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275-281

친족이 된다는 것! 해러웨이의 칸트식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을 “단지 목적만이 아니라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말 그것들과 친족이 되면, 어떻게 우리가 자본주의체제에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잉여가치 확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다수의 인간뿐 아니라 자연 전체를 수단으로 치부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체제니까.  282-283


거리를 두고 사람을 관조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삶에 뛰어드는 것!
후자는 전자가 줄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그중 중요한 것 두 가지만 언급해보자. 첫째, 타인들의 삶에 뛰어들면 누구나 자신의 과거 관계를 자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그 누구도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에 돌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자신처럼 타인들도 자신만의 고유한 관계와 역사를 전제한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첫인상이나 직업 등 그에 관한 표면적인 정보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그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과거에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 역사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가야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걸, 나아가 자신이 특정 삶의 형식에 따라 살았다는 걸 자각하는 법이다. 결국 타인들의 삶이 낯설어 보였던 이유는 우리 자신이 특정 사회관계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낯선 도시를 관광하는 것보다 그곳에 사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낯선 사람들이 내면화한 관계와 우리 자신이 내면화한 관계가 우리 자신이 내면화한 관계가 모두 드러나니 말이다.  290-291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영위되는지에 관한 진실 말이다. 이렇게 되물어보자. 지금 우리의 일상적 삶은 관광객이 아니면서도 관광객처럼 영위되고나 있지 않은지.  292-293

이제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우리는 관광객이지 않은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생산하는지, 그리고 그 상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지 않으니까. 심지어 우리는 직장 동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잇는지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업무상 관계로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달러나 신용카드처럼 월급은 직장관계의 유일한 혈액이 된다. 가족들과 함께할 때도 우리는 관광객이지 않은가? 시부모가 친정부모도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들을 고립된 개인들로 식별하고 관조하고 있으니까. 돈과 선물이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가느다란 끈이 되고 만다. 편의점이나 카페, 극장 등에 들를 때도 우리는 관광객이지 않은가? 계산을 해주는 젊은 이들이나 안내를 해주는 젊은이들의 내면과 그들의 역사를 읽으려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돈을 받은 만큼 그에 어울리는 서비스를 행해야만 하는 사람들로 보일 뿐이니까. 여기서는 돈과 신용카드가 유일한 연결 줄이 된다.
여기에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 우리의 관광객 모드는 그야말로 정점을 찍게 된다. 파리의 시위 현장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것처럼, 이제 액정화면은 마치 영화를 보듯 세상을 관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댓글을 달면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 공감하고 악당을 욕하는 행위와 어떻게 다른가? ‘사변적 관조’가 아니라 ‘감성적 활동’이다. 관광객적 인식이 아니라 주체적 인식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모두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규정되어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다. 소망스럽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모색하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이 어떤 관계에 포획되어 있는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293-294

관계의 변화가 바로 역사의 동력이다. 아니 더 단호하게 말한다면 관계의 변화 자체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94

그렇다고 관계와 역사를 파악하는 일이 만만하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고립된 두 개체만 보일 것이다. 한 사람은 안경을 착용한 30대의 젊은 여성으로 청바지를 입고 있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타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편안한 차림의 캐주얼 복장을 한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여기까지가 포이어바흐의 직관적 유물론이 적용되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나아가 두 사람이 각각 과거에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아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주 천천히 두 사람을 관찰해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남성이 손을 들어 여성의 어깨를 감싼다면, 우리는 쉽게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둘은 언제 어디서 만났을까? 둘은 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연인일까, 아니면 부부일까? 그것도 아니면 불륜관계일까? 벤치의 관찰마으로 해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관찰해야 하고, 나아가 그들이 남긴 과거 흔적들을 찾아 헤매야만 한다.  294-295

‘3P의 삼각형’을 기억해보라. 권력(power)은 재산(property)과 가난(poverty)을 통해서 형성되고 재산과 가난 사이, 즉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 사이의 위계를 지키는 기능을 한다.  297

1863년 1월 1일 당시 미국 북구 비역의 지지를 받던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노예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발표한다. 1861년 4월 12일 시작된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이 북부 지역이 승리로 끝나리라는 확신을 링컨이 피력한 셈이다. 흔히 남북 전쟁은 인권과 자유의 전쟁이고, 링컨은 민주 투사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남북전쟁의 이면은 인궈느 자유, 혹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북전쟁은 산업자본주의체제에 맞게 값싼 노동자가 필요했던 미국 북부 지역과 목화농장을 위해 400만의 흑인 노예가 필요했던 미국 남부 지역 사이의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고대사회와 부르주아사회가 기이하게 병존했던 신대륙 국가 미국은 1965년 4월 9일 북부 지역의 최종 승리로 400만 흑인 노예를 흑인 노동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해방된 흑인 노예뜰은 이미 노예로 태어난 노예 1세대의 까마득한 후예들에 지나지 않는다. 1619년 처음으로 흑인 노예 19명이 영국 식민지였던 북미대륙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들어온 이후로 수많은 노예선이 엄청난 흑인 노예를 실어 날랐다. 조상들의 땅 아프리카는 상사도 할 수 없는 그저 까마득한 전설의 땅에 지나지 않았기에, 해방된 흑인들 대부분은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가진 것이 몸뚱어리밖에 없었던 그들로서는 노동계급으로, 그것도 쵷ㅎ하의 노동계급으로 편입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것이다.
관계의 변화가 역사의 핵심이다! 문제는 그 관계가 억압적 관계라는 데 있다. BC 3000년부터 지금까지 지배계급은 억압의 양상을 변화시키면서 억압적 관계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해왔다. 역사의 발전을 외치는 모든 지식인이 기본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그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과거보다 지금이 낫고, 지금보다 미래가 낫다는 진보의 이념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극복하고 농노제가 들어온 것도 진보이고, 농노제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체제가 들어온 것도 진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수 지배계급과 다수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된 근본적 억압구조는 조금도 변한 적이 없지 않은가. 단지 지배계급이 노예주에서 영주로, 그리고 자본계급으로 그 스타일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노예는 목줄에서 벗어났지만 땅에 묶인 농노가 될 수밖에 없었고, 땅에 묶인 농노는 돈에 목을 매는 노동자가 되었을 뿐이다.  300-301

3P의 삼각형이 노예 재의 얼굴로 나타나자, 그 자유정신은 노예제와 맞서 싸웠다. 로마제국의 노예제에 도전했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Spartacus, BC 111?~71)와 6만의 해방된 노예들이 바로 그들이다. 3P의 삼각형이 농노제로 변형되자, 이번에 그 자유정신은 농노제와 맞서 싸웠다. 1534년 에서 1535년까지 제빵사 얀 마티스(Jan Matthys, 1500?~1534)와 재단사 얀 반 레이덴(Jan van Leiden, 1509~1536) 등이 이끄는 재세례파가 독이 ㄹ뮌스터에 억압이 없는 공동체, 즉 코뮌을 구성해 봉건체제와 맞서 싸웠던 것이다. 3P의 삼각형이 이번에는 자본주의체제로 변신하자, 다시 자유정신은 이 자본주의체제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 1871년 3월 18일에서 5월 28일까지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 1805~1881)의 정신으로 무장한 파리 시민들이 파리 코뮌으로 부르주아 정권과 맞섰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조금의 오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스파르타쿠스 군단은 노예제 대신 농노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얀 마티스와 얀 반 레이덴이 농노제 대신 자본주의체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파리코뮌 전사들 역시 자본주의체제 대신 스탈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원했던 것은 코뮌, 즉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였을 뿐이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스파르타쿠스가 1871년 파리에 있었다면 자본주의체제와 맞서 싸웠을 것이고, 얀 마티스와 얀 반 레이덴이 BC 72년 로마에 있었다면 자유군단에 속했을 것이고, 블랑키가 1535년 독일 뮌스터에 있었다면 봉건체제의 포위를 뚫으려고 분투했을 것이다.  301-303

노예제는 노예가 스스로 자유인이 되었을 때 소멸되는 것이지, 누군가가 자유를 부여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니까. 남이 허락한 자유는 언제든 바로 그 사람에 의해 취소될 수 있다. ... 자유인은 스스로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그래야 누군가 자유를 뺏으려 할 때 그에 맞서 싸울 수 있으니까.  308

포이어바흐! 그는 관계도, 그리고 역사도 인식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저 자신 앞에 있는 것을 관조했던 순진한 철학자였다. 그가 로마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노예는 노예로, 귀족은 귀족으로 보았을 것이다. 노예는 귀족의 발을 씻겨주고, 귀족은 역사와 삶을 논하는 풍경을 그저 당연한 이치로 여겼을 것이다. 주인뿐만 아니라 로마제국과 맞섰던 스파르타쿠스를 보았다면, 그는 이걸 일회적 사건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사실 노예가 주인에게 반기를 드는 사건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권력이 귀족들의 노예 소유권을 공권력으로 확실히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노예와 자애로운 귀족 사이의 조화와 평화, 그리고 질서는 이렇게 억압적으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는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로마 제국의 피 묻은 뼈대, 즉 고대사회의 사회적 관계와 그 역사를 백일하에 폭로한 사건이다. 포이어바흐는 스파르타쿠스를 통해 고대사회 전체를 지탱했던 억압구조를 간파했어야 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것을 일시적 일탈로만 보았으리라.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유물론자인 한 포이어바흐는 역사를 다룰 수가 없고, 역사를 고찰하는 한 그는 결코 유물론자가 아니다.  ... 마르크스의 이야기처럼 포이어바흐의 직관적 유물론은 “역사와는 완전히 결별되어”있는 절름발이 유물론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309-310

불행한 것은 봉건사회에 태어났어도 직관적 유물론자로서 포이어바흐의 길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귀족의 거대한 농장에서 농노들이 올리브를 수확하는 장면이나 아니면 귀족의 저택에서 주인의 발을 씻겨주는 농노의 부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조화롭고 평화로운 풍경화처럼 보였을 것이고, 여우 사냥을 즐기러 나온 영주를 보고 잠시 농사일을 멈추고, 경의를 표하는 농노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화로 들어왔을 테니 말이다. 물론 간혹 소작료에 저항하는 농노도 나오겠지만, 포이어바흐는 이것도 일시적 일탈로 치부했을 것이다. 영주와 농노를 관조하는 그에게 땅을 미리 독점해 무위도식할 수 있는 영주의 계급성이 보일리 없으니까. 직관적 유물론의 맹점은 부르주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미 부르주아사회로 돌입한 19세기 부르주아국가 독일에서 태어났기에 포이어바흐의 눈에는 도자기공장, 자기 장인과 아내와 같은 자본계급, 그리고 노동자들이 평화로운 풍경화처럼 들어온다. 아내와 자신은 가까운 냇가에서 돗자리를 깔고 일몰을 응시하고 도자기공장에서 노동자들은 휴식시간에 해맑게 대화를 나눈다. 혹은 그가 공장에 들르기라도 하면 그곳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밝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인사는 건넨다. 물론 그 자신도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걸 잊지 않는다. 자본가는 자본가이고 노동자는 노동자일 뿐이고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수탈관계를 볼 수 없기에 그의 마음은 편하기만 하다. 파업이라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져도, 포이어바흐에게 있것은 노동자들의 일시적 일탈로 보일 뿐이다. 그는 노동자의 파업이 부르주아사회의 억압적 구조가 드러나는 징후라는 걸 알 수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세계를 관조했던 대가는 이렇게 치명적이다. 자신도 모르게 포이어바흐는 부르주아사회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310-311

실천이 아니라면 삶에서 남는 것은 과조일 뿐이다.  312

‘낡은 유물론의 입장(Standpunkt)은 ‘부르주아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장은 ‘인간사회(menschliche Gesellschft)’ 또는 ‘사회적 인간(gesellschaftliche Menschheit)’이다. -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10
...
마르크스의 “사회적 인간”이란 개념. .. 인간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사회에 참여하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고,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인간사회”는 “사회적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생각이다.  312-313

스파르타쿠스 군단이, 뮌스터코뮌이, 파리코뮌이 원했던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혹은 마르크스의 새로운 유물론이 서고자 했던 인간사회는 단호하게 분업체계와 배타적 활동을 거부하는 공동체다.  318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가 지향하는 두 가지 원칙만 확인하면 되니까. 첫째,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 한 사람이 생산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전체가 생산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는 그 일을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자유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생산의 사회성과 노동의 자유! 인간사회, 혹은 사회적 인간의 두 다리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참된 현실적 공동체(der wirklichen Gemeinschaft) 속에서, 각 사람들은 그들의 연합(Assoziation) 속에서, 그 연합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자유(Freiheit)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19


BRIDGE - 다시 불러보는 인터내셔널의 노래

<인터내셔널 찬가>
일어서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여!
일어서라! 기근의 죄수들이여!
이성은 화산처럼 요동친다.
이것은 종말의 분출이다.
과거를 백지로 만들자.
노예가 된 대중들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세계의 토대가 바뀌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다.

<코러스 ; 마지막 싸움이다.
함께 모이자, 그리고 내일
인터내셔널은
인류가 되리라.>

최상의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도 아니고, 케사르도 아니고, 호민관도 아니다.
생산자들이여! 스스로를 구하라.
공동의 구원을 포고하라!
도둑이 자기가 먹은 것을 토해내고
정신이 자기 감옥에서 풀려나올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풀무질을 하고,
뜨거울 때 쇠를 두드려라.

<코러스>

국가는 억압하고, 법은 기만하고
세금은 피 흘리게 한다, 불운한 자들을.
어떤 의무도 부유한 자에게 부과되지 않고
가난한 자의 권리는 공허한 말일 뿐.
감시는 충분히 힘들 만큼 견뎠다.
평등은 다른 법을 원한다.
의무 없이는 권리도 없다고 새로운 법은 말한다.
평등하게 권리 없이는 의무도 없다고.

<코러스>

찬양에 몸을 숨긴
광산의 왕들과 철도의 왕들!
그들은 지금까지 노동을 훔치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했었나!
도둑들의 견고한 금고 안에는
노동이 창조했던 것들이 들어가 있다.
그 도둑들에게 그걸 되돌려주라고 명형하자.
민중들은 단지 자기 몫만 원할 뿐.

<코러스>

왕들은 우리를 연기에 취하게 했다.
우리 안의 평화, 폭군에 대한 전쟁!
군대들이 파업해,
진압을 포기하고 서열을 해체하도록 만들자!
만일 그들이 완강히 버틴다면, 이 카니발들은
우리를 영웅으로 만들 것이고,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총탄이
우리 장군들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코러스>

일꾼들이여! 농민들이여! 우리는
노동자들의 가장 큰 부분이다.
대지가 인간들에 속할 때만.
게으른 자는 다른 곳에 머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살을 그들은 소진시켰는가?
그러나 성직자들, 고리대금업자들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태양은 언제나 항상 빛나리라.

<코러스>

- <인터내셔널 찬가> (1871)  323-325



역사철학 2강 - 파리코뮌을 보아버렸던 시인 랭보

70여 일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된 파리코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찬란했던 순간에 랭보는 코뮌의 핑크빛 후광을 받은 파리와 파리 시민들을 가장 자연적으로 그리고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겁니다. 그러나 70여 일이 지나 파리코뮌이 괴멸되고 과거의 위계 질서가 복원된 뒤 돌아보면, 1881년 3월 18일에서부터 5월 28일까지 존속했던 그 찬란했던 시간은 마치 꿈인 것처럼, 마치 상징인 것처럼, 마치 초현실적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냥 간단히 이렇게 정리해보죠. 파리코뮌 시기에 랭보의 시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자연적인 것이었다고, 그렇지만 그 찬란했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이제 그의 시는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이런 착시효과는 현재 우리의 의식에도 그대로 적용되죠. 파리코뮌의 인문주의나 민주주의에 온몸으로 공명하는 독자라면 랭보의 시는 심장을 바로 뛰게 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감동을 바로 전달할 겁니다. 반대로 권위적인 정치질서나 신자유주의로 노골화된 자본주의체제에 적응한 독자라면 래보의 시는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으로, 그만큼 난해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간신히 머리로만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343

지배계급의 눈치를 보면서 피지배계급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는 순간, 문학은 그리고 시는 억압체제에 대한 찬가가 됨.  352

‘주관적 시’는 객관에 대한 투철한 인식 없이, 그냥 주관이 백일몽을 꾸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강철 덩어리가 물에 둥둥 뜨는 몽상에 빠지고 희희낙락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죠. 반면 ‘객관적 시’는 실현 불가능한 백일몽이 아니라, 세상을 변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객관적 시’는 강철의 속성들을 정확히 알고, 그 속성을 어기기는커녕 그걸 이용해 물에 뜰 수 있는 강철 배를 설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객관적 시’가 가능하려면, ‘객관(=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인식이 없다면 아무리 ‘객관적 시’를 썼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 ‘주관적 시’로 전락할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객관(=대상)’을 정확히 인식한 사람이 없다면, ‘객관적 시’는 불가능한 법입니다. 바로 이것이 랭보가 “저는 시인이 되고 싶고, 스스로 견자(見者, voyant)가 되려고 분투하고 있다”(<1871년 5월 13일 이장바르에게>)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견자는 글자 그대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 의지나 바람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나 바람을 좌절시키면서 내 앞에 주어진 것을 봐야 합니다. 만일 내 의지나 바람, 혹은 감정에 따라 본다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관적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대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지 않더라도 대상이 보라고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견자입니다. 결국 견자가 되려면, 우리는 이미 훈육되어 익숙한 사유나 감정들, 혹은 우리 내면에 이미 각인되어 작동하는 견해나 감정, 그리고 의지를 해체해야만 합니다. 랭보가 견자가 되는 방법으로 “모든 감각들의 착란”을 이야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354

이것만 보고 저것은 보지 말라고 하는 체계는 우리를 훈육하고, 그 결과 우리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것마저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보지 말라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에게는 불안감과 불쾌감이 엄습할 겁니다. 보이는 대로 보려면, 아니 정확히 말해 이렇게 보라고 강요하는 대상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감각의 질서를 규정하는 지배적인 사유체계와 가치체계를 전복해야만 합니다. 결국 견자가 된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로 태어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노예로 자처했던 노동자들이 당당히 주인이라고 선언했던 것이 파리코뮌이라면, 체제가 강요하는 감각들의 질서를 뒤죽박죽 만드는 것이 바로 랭보의 견자였던 셈입니다. 감각들의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되었을 때, 그가 보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가 보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이것이 랭보가 말한 ‘미지(l’inconnu)’입니다 한국어로 ‘미지의 것’으로 번역된 프랑스어 ‘랭코뉘(l’inconnu)’는 이외에도 ‘보잘것없는 것’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무언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미지’라는 뜻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란 의미가 훨씬 더 랭보가 말한 ‘랭코뉘’의 뜻에 가까울 듯합니다.  355

랭보가 제안했던 ‘견자의 미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자유로운 주체, 즉 견자가 되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을 보게 된다고 말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을 보게 된 견자가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랭보가 말한 ‘객관적 시’는 바로 이렇게 탄생하게 되지요.  356

그(랭보)에게 “시인은 진실로 불의 도둑”. 제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프로메테우스! 시인은 바로 프로메테우스 같아야 한다는 겁니다. 권력자나 지배계급의 불이 힘이 있는 이유는 다수 피지배계급에게 불이 없어서 입니다. 어둠 속에서 공포와 탄식의 삶을 피지배계급이 영위하는 것도 지배계급이 불을 독점했기 때문이죠. 프로메테우스처럼 그 불을 훔쳐 피지배계급에게 가져와 암흑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이 갈 길을 명료히 보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소임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죠. “인류, 심지어는 동물까지도 모두 짊어지는 것!”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그리고 1871년 랭보가 감당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357-358

랭보는 관료들과 글쟁이들을 작가, 창작자, 시인과 구별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규칙, 기존의 이성, 혹은 기존의 사유에 따라글을 쓰는 사람들이 바로 관료들이나 글쟁이들입니다. 그러나 감각들을 착란시켜 기존의 규칙, 이성, 사유를 전복시켜서 감각들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글들이 출현할 수 없는 법이지요. 바로 이래야 진정한 시인, 혹은 진짜 시인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요. 반대로 가짜 시인도 존재하죠. 그것은 관료처럼 글을 쓰는 시인들, 과거 위대한 시들에서 규칙과 테크닉을 축출해 그에 따라 시처러 ㅁ보이는 시들을 쓰는 시인일 겁니다. 진정한 시인은 이런 식으로 탄생할 수 없습니다.  358-359

기존 사유에서 해방된 감각, 혹은 착란된 감각으로 세계를 느끼는 사람이 견자라면, 이렇게 느낀 세계에 새로운 언어를 부여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작가이자 창작자, 그리고 랭보의 경우에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들의 착란으로 기존 사유가 붕괴됩니다. 자유와 해방은 바로 여기서 가능해지는 셈이지요. 바로 이 해방된 감각들의 힘으로 견자는 세계를 보게 됩니다.  359

관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주관적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견자의 삶이나 시는 무언가’비규범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고, 당연히 저주받고 모욕당하기 쉽지요.  359-360

파리코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나 지금 새로운 코뮌을 꿈꾼느 사람들의 눈에는 랭보의 작품은 너무나 규버적이고 쉬워 보일 겁니다. 반대로 파리코뮌을 부정하거나 애써 회피하면서 자본, 국가, 종교에 포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랭보의 시는 비규범적이고 난해해 보일 테죠.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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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종교적인 것과 관조적인 것을 넘어서


역사철학 1장 - 붉은 피로 지켜낸 파리코뮌

블랑키.
1885년 출간된 <사회적 비판 (Critique Sociale)> 두 번째 권에 “자본가의 기생이 대중들의 빈곤을 낳는 원인이다.” ... 항상 생산수단 독점은 폭력수단 독점과 함께하는 법입니다. 결국 피억압자가 억압자의 힘을 압도할 수 있는 ‘힘(force)’을 가지지 않는다면, 정의와 평등은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생산수단 독점에 맞서 싸우면서 폭력수단 독점과는 싸우지 않겠다는 투쟁, 즉 간디식 비폭력 투쟁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승리야 가능하겠지만, 이런 투쟁이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테니 말입니다. 47

파리코뮌 시기 혁명가 트리동(Gustave Tridon, 1841~1871)의 책 <에베르주의자: 역사의 재난에 맞서는 탄식(Les Hebertister: plainte contre une calomnie de I’Histoire)>에 블랑키가 쓴 서문입니다.
‘승리는 옳은 자(le droit)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승리가 없다면 옳은 자는 더 이상 옳을 수 없게 되고, 대천사의 발톱 아래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탄처럼 될 테니 말이다.’ - <서문> (1864) 49

19세기의 파리는 단순히 프랑스의 수도만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였죠. 이 도시를 ‘악의 꽃(Les Fleurs)’이라고 느꼈던 시인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보들레르(Charles Pierre HBaudelaire, 1821~1867)입니다. ‘악의 꽃’은 매춘부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돈이 있어야 품을 수 있는 존재가 매춘부인 것처럼, 자본주의의 수도 파리도 돈이 없다면 향유할 수 없는 ‘악의 꽃’이었던 겁니다. 51

어떤 것을 정의하려면 그것에 대립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법입니다. 73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지배한다는 정치경제학적 진리를 말입니다. 81

생산수단, 특히 토지나 자본을 공동 소유하는 것이 원칙인 사회, 바로 그것이 코뮌입니다. 83

자유를 되찾은 사람에게 항복은 죽음보다 끔찍한 일이죠. 85



정치철학 1장 - 종교적인 것에 맞서는 인문정신

자기소외((Selbstentfremdung), 혹은 소외(entfremdung)라는 개념. 이는 자신이 만든 것이 자신에게 낯선 것으로 다가오는 현상을 가리킨다. 103

무언가를 긍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걸로 바꿀 수 없다는 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긍정이 항상 단독성의 긍정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니체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체, 그리고 세상을 “존재하는 유일한” 것, 즉 단독적인 것으로 긍정하려고 한다. 119

모든 지배와 억압의 논리 이면에는 단독성을 특수성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수행된다는 걸 잊지 말자. 120

불멸하는 영혼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몸을 경멸하게 된다. 돈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상품으로 팔리는 굴욕을 겪는 것처럼, 혹은 인간, 노동자, 학생, 여자, 남자, 유대인, 한국인, 일본인 등등 일반 개념이 등장하면서 단독적인 개체들은 특수한 개체들로 분류되어 지배되는 것처럼. 121

신으로부터 창조행위를 빼앗은 인간, 억압된 창조력을 폭발시키는 인간을 니체는 위버멘쉬라고 부른다. ... 위버멘쉬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을 뜻하는 ‘멘쉬(mensch)’가 아니라 ‘넘어선다’는 의미의 ‘위버(Uber)’다. 124


고고학에 따르면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에게는 전쟁도 없었고, 종교도 없었다. ... 종교나 정신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수렵채집 시기에는 ‘우월(superiority)과 열등(inferiority)’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들소 사냥에 성공했다고 해도 인간은 자신이 들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반대로 사냥 중에 들소의 뿔에 받혀 죽어가면서도 인간은 들소보다 자신이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야생 사과를 딸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자신이 우월하고 그 사과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한마디로 말해 자연에 대해 인간은 우월이나 열등에 대한 의식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니미즘으로 상징되는 이런 자연관은 그대로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약할 수는 있지만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반대로 다른 인간보다 강할 수는 있지만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26-127

BC 8000년 즈음 농업혁명이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 분명 농업혁명이 수렵채집 시기보다 더 큰 풍요와 안정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 잉여 생산물의 증가는 인구 증가와 인구 밀집을 낳았고, 이것이 인간을 기아와 질병에 노출시켰다. 127

농업시대에 들어서면서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자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억압과 착취 형식이 발생한 것이다. 129

농경생활에 들어오면서 인간에게는 ‘우월’과 ‘열등’이란 의식이 발생한다. 129

농경생활이 진행되면서 전체 우주는 우월과 열등의 질서로 재편되고 만다. 마침내 ‘신-인간-자연’, 조금 구체화하면 ‘신-지배자-피지배자-자연’이란 위계질서가 탄생한 것이다. 130-131

마르크스는 국가나 사회가 ‘전도된 세계’라고 단언. 전도된 세계라는 것은 제대로 서 있는 세계가 아니라 뒤집혀 있는 세계라는 의미다. 생부지의 사람 10명이 식사를 하려고 한다. 9명이 짜장면을, 나머지 1명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다. 9명은 중국집에 가고 나머지 1명은 한식집에 가면 된다. 이것이 정상적인 세계, 혹은 제대로 서 있는 세계다. 그런데 이들 10명은 모두 한식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9명은 1명의 압도적 힘에 굴복하고, 그 결과 원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된 세계다. 154-155

‘약하다’는 의식과 ‘열등하다’는 의식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자신이 약하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차근차근 강해질 준비를 하거나 혹은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이 약해질 때를 호시탐탐 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열등하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저 우월한 사람이 자신을 더 아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열등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최고로 근사한 지배자를 상상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난을 속속들이 아는 지배자, 자신의 고난을 덜어주려는 의지를 가진 지배자, 그래서 하염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지배자를 꿈꾸게 된다. 바로 이때 신은 탄생한다. 마르크스가 “이 국가, 이 사회는 전도된 세계이므로 종교, 즉 전도된 세계의식을 생산한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계보학적으로 생각해보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 그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 혹은 약한 자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내면에 열등의식을 각인시킨다. 155-156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정신적 향료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저 세계, 즉 피안(jene Welt)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고통은 현실적 고통의 표현인 동시에 현실적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된 자들의 한숨이자, 심장 없는 세계에서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상황에서의 영혼이다. 한마디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민중에게 환각적 행복을 낳는 종교를 폐기하라는 이유는 민중으로 하여금 현실적 행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민중에게 자기 삶의 조건에 대한 환각을 포기하라고 요청 한다는 것은 환각을 필요로 하는 조건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비판은 태생적으로 종교가 후광이 되는 눈무르이 골짜기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다.’ - <서문> <헤겔 법철학 비판> (1843). 158

마음껏 사유하고 마음껏 의지하고 마음껏 사랑하는 격조 높은 삶, 인간 일반의 본질을 실현하는 근사한 삶을 살지 못해서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그것을 믿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안에서 사는 삶이 너무나 불행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가 파는 아편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해 피안에서의 작은 행복이나마 꿈꾸었던 것이다. ... 마르크스가 “민중에게 환각적 행복을 낳는 종교를 폐기하라는 이유는 민중으로 하여금 현실적 행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이유다. 환각적 행복에 취해 있다면, 민중은 현실적 행복을 얻으려는 투쟁에 나설 수 없으니까. 1559

‘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종교는 단지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환상적인 태양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피안(Jenseits der Wahrheit)이 사라진 뒤에, 차안의 진리(Wahrheit des Siesseits)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임무다.’ -<서문> <헤겔 법철학 비판> 162


‘열등’과 ‘우월’과 관련된 감정이 종교적 감정이라면, 가장 최고의 종교적 감정은 바로 자본주의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168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세게 종교는 하늘, 고독, 여행, 그리고 무역과 함께하는 종교일 수밖애 없다. 결국 숙명적으로 세계 종교는 자본주의와 같은 혈족이었던 셈이다. 즉 화폐경제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수많은 지역 종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고사와 괴멸의 길을 걸어갔다. 185

18세기와 19세기 영국 도처에서 일어났던 ‘인클로저(enclosure)’, 즉 ‘울타리 치기’와 ‘고지대 청소’라고 번역할 수 있는 ‘하이랜드 클리어런시스(highland Clearances)’에 주목해야 한다. ‘울타리 치기’는 소수의 자산가들이 과거 공유지엿던 곳에 울타리를 쳐서 그곳을 사유지로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엄청난 양의 공유지가 사라지자, 수많은 빈농들은 이제 더 이상 땔감을 얻거나 사냥을 하거나 소나 양을 키울 수 없게 된다. 당시 ‘울타리 치기’를 시행했던 소수의 기득권층들은 국가로부터 법률적 보호를 받았지만, 생계의 위험에 노출된 다수의 농민들은 공장이 있는 대도시로 몰려가 저임금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인클로저 법인이 영국 국회를 처음으로 통과했던 때는 1773년이었다. 농민을 임금노동자로 만들 필요가 더 많아지자, 1845년부터 1882년까지 국회를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층들은 인클로저 법안을 자그마치 15번이나 개정하게 된다. 그만큼 당시 지배계급들은 농민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고지대 청소’는 영국 북부 고지대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농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과정을 말한다. <자본론>에 등장하는 서덜랜드 공작부인(the Duchess of Sutherland, 1765~1839)이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녀는 영국군을 고용해 1만 5000명의 소작농을 내몰고 80만 에이크의 땅에 양 13만 1000마리를 방목한다. 1마 ㄴ5000명의 고지대 농민들도 ‘울타리 치기’로 대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아울러 고지대에서 키운 양털들은 맨체스터나 글래스고 등에서 번성했던 직물산업의 원료로 공급된다. 191

체제의 대변인들은 18세기에도, 19세기에도, 20세기에도, 그리고 지금 21세기에도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자본주의 이후 인간의 삶은 생각하지 못할 만큼 좋아졌다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데 이로운 자료들을 알아볼 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기에,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이런 자료들을 토대로 자본주의를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첫째, 노예제도나 농노제도가 사라지면서 인격을 긍정하는 사회가 열렸다. 둘째,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폐쇄적인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개방성이 확산되었다. 셋째, 장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도제 생활을 강요했던 장인공동체가 소멸되고 평등하고 보편적인 교육제도가 정착되었다. 넷째, 여성들의 삶을 옥죄던 가부정적 가족 질서도 힘을 잃게 되면서 여성이 해방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자기 찬양도 이 정도면 거의 정신분열 수준이다. 이 안에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피로 얼룩지고 불길에 타오르는 문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강압과 수탈의 역사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 농민에게 지대를 받는 것보다 그들을 노동자로 만들어 착취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걸 지배계급이 자각했을 뿐이다. 192-193

산업자본주의체제가 정착될 때마다 ‘울타리 치기’나 ‘고지대 청소’와 같은 정책이 항상 수반되었다는 사실이다. ... ‘울타리 치기’와 ‘고지대 청소’ 정책은 스탈린체제의 경우 ‘집단농장’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으로, 그리고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의 경우 지역공동체 해체 정책으로 반복되었던 것이다. 195

‘자유로운 노동자(Freie Arbeiter),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자, 그러므로 노동을 파는 자가 있다.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즉 노예와 농노처럼 그들 자신이 직접 생산수단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이고, 또 자영농민의 경우처럼 그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즉 생산수단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다.’ - <자본론> 1권 (1867) 197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에게 자유란 아주 제약된 것임을 폭로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어느 자본가에게 팔 것인지를 결정할 자유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이것은 전혀 자유가 아니다. 자기 노동력을 판매할 수도 있고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는 노동자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을 자유는 노동자들에게 단지 자살할 자유만을 의미할 뿐이다. 200

자본주의가 단순한 억압체제를 넘어서는 지점은 그것이 종교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를 양산한 주범이면서도, 자본주의체제는 노동계급마저 자본을 숭배하도록 유혹할 수 있다. 돈은 피안의 막연한 행복보다 차안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201

농업경제가 지배하던 시절 제정신을 가진 농민들은 땅을 독점하는 억압체제에 저항했고, 산업경제가 지배하던 시절 정상적인 노동자들은 돈을 독점한 체제와 맞서 싸웠던 것이다. 이와 달리 자본교도로 거듭난 노동자의 안중에는 억압이 없는 사회, 즉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의 속내에는 지배자가 되려는 욕망만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교도는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본가가 되려는 뒤틀린 욕망을 가지고 있다. 맞는 사람이 되기보다 때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초적 생각이니, 이것보다 왜곡된 욕망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본교가 교세를 확장할수록, 자본주의의 억압구조는 그만큼 어떤 저항이나 도전도 받지 않는다. ...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가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라고 말했던 이유다. 202

마르크스나 짐멜이 기독교와의 유사성을 통해서 자본교를 해명하려고 했다면, ... 벤야민은 기독교와 자본교 사이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그 차이점도 분명히. 203

벤야민에 따르면 자본교의 첫 번째 특징은 “숭배의 구체화”다. 자본교도는 감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대상, 즉 구체적인 상품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감각을 초월한 신성에 몰두하는 기독교의 숭배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두 번째 특징으로 벤야민은 “숭배의 영속화”를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휴일도 없이 자본교도는 강박증적으로 상품숭배에 몰두한다는 의미다. 반면 기독교도는 보통 주일을 기다려 예수와 신을 숭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자본교가 기독교와 달라지는 지점은 자본교의 세번째 특징에서 분명해진다. 벤야민은 자본교의 “숭배는 ‘죄를 만드는(verschuldend)’ 것”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숭배가 속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본교는 그야말로 기독교와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종교였던 것이다. 벤야민의 주장은 명확하다. 상품에 대한 숭배, 즉 “구체적인” 상품을 “영속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신적인 돈을 상품의 성전에 제물로 바치니, 이것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벤야민은 부연한다. “자본주의는 아마도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만드는 숭배의 첫 번째 사례일” 것이라고, 여기서 벤야민이 사용하는 단어 ‘슐트(schuld)’에 주목하자. 독일어 ‘슐트’는 ‘죄’만이 아니라 동시에 ‘부채’를 의미한다. 그러니 자본교의 숭배는 죄를 만드는 숭배이자 동시에 부채감을 만드는 숭배였던 셈이다. 208-209

자본주의가 종교로 기능하는 이유는 이 체제가 인간에게 우월과 열등에 대한 신앙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 신분사회만이 인간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만큼 집요하게 열등의식을 우리 뇌리에 각인하는 체제도 없으니까. 억압체제가 항상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지배계급의 주문에 걸려 자신이 열등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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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 이택광

낡은 것이 사라졌는데, 새것이 출현하지 않는 상황이야말로 위기 자체이다.  7


인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해왔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문제의 발견’이야말로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정확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대답인 것이다.  7


자본주의가 끝난 뒤에 올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 여기에서 노력할 수 있는 것은 공산주의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주장은 너무 이상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본주의를 고쳐서 쓰면 인간적인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니까 밀이다.  8



1부 임박한 파국, 어떻게 맞설 것인가 - 하얏트 호텔 2012. 6. 25.


일부 좌파들처럼 은행가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부패했는지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탐욕스럽고 부패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왜 금융자본이 오늘날의 이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하는 겁니다.  20


중국이나 싱가포르를 민주적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는 극도로 역동적이고 생산적이며 동시에 파괴적이지만, 더 이상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비록 우리가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에 있다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경제 등등은 기술관료들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는데, 이 상황은 위험천만하죠. ..

저는 서유럽과 미국 등을 포함하여 전 지구적으로 실업의 양상이 마르크스가 ‘노동예비군’(reserve army of labour)이라고 지칭한 그룹(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며, 잉여 노동인구는 이른바 노동 예지군으로 전락해 생산과정에서 추방당한다고 마르크스는 설명한다_편집자)의 형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급진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고 봅니다.

첫째, 산업의 광대한 현대화와 디지털화는 전형적으로 비 고용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영구적으로 비고용의 상태에 있게 만들었습니다.  21-22


또 다른 면으로, 하나의 국가 전체를 서계공동체(world community)에서 배제하는 일도 있습니다. 미국이 콩고를 불량 국가(rogue country)로 지목하여 무역을 규제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 이런 국가들은 내란으로 엄청난 혼란 속에 있으며,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 단지 허술하게만 묶여져 있을 뿐입니다. 하나의 국가 전체가 실직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교육받은 학생들은 동시에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죠. ... 유럽공동체에서도 흥미롭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으로서, 자본주의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  23


노동문제에서도 이것은 매우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슬로베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을 봅시다. 그들에게는 단체행동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감히 파업을 하지 못합니다. 일자리를 잃어서는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용감하게 파업을 단행하는 유일한 그룹은 변호사나 의사처럼 특권을 가진 샐러리 부르주아들입니다. 그들은 파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잇습니다. 하지만 다른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파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자신들의 특권을 위해 파업을 하죠. 글자 그대로 부르주아인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파업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이기엔 너무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24-25


좌파의 위기...  오늘날 자본주의는 우리가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인도주의자가 되어 소말리아의 굶주린 아이들을 도와주라는 식으로 호소합니다. 소비를 잘하면 인도주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원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잘 작동되고 있습니다.  27


신자유주의란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말은 무슨 말인가? 오늘날의 미국을 보면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대통령 - 레이건과 부시 -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이들은 정확히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는 정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레이건은 가장 원시적인 케인지언(keynesian) 방식으로 수출 지향의 방어적 무역을 내세웠습니다. 미국은 더욱더 강력한 나라가 되었죠. 알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실천 가능한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경제 영역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에 반대하면서 국가를 강화했습니다. 교육이나 기타 공공 영역은 민영화하면서 경제 영역은 국가 주도로 바꾸었습니다. 일보노가 중국 또한 마찬가지로 모든 경제 영역이 국가에 의해 신중하게 기획되었습니다. 미국은 강대국이 되면 될수록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의 영향력이 감소되고 기업화되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전혀 반대였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가장 성공적인 공식은 국가에 의해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다는 것이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고 싱가포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싱가포르 국가만큼 치밀한 계획에 의해 집행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8-29


좌파는 자본주의를 비판해왔지만, 위기가 닥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좌파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가 없었지요. 최근 대안으로 떠오른 최저소득제(기본소득제) 도입 문제도 자본주의를 지속시킨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진다면 근본적인 대안일 수 없습니다. 

좌파의 위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좌파도 주도해온 모든 비판적 운동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 그들이 요구한 것은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29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인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인가? 서로 다른 논의의 장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인가? 의회민주주의 국가를 고수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을 할 수가 없습니다.  30-31


오늘날 좌파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좌파가 된다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비판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2


파국을 인정하면서, 과거의 사안에서 해결책을 가져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문제에 공동체주의를 다시 도입해서 대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코뮌정신 같은 것에 희망을 거는 것 말입니다. 과거에 대한 어떤 노스탤지어도 거부해야 합니다. 

오늘날 좌파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좌파는 훨씬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사물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자각해야 합니다. .. 반동이 아니라 보수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반동은 멍청할 뿐입니다. .. 보수는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해도 난국을 정확하게 인지합니다.  33


홍세화 : <The Idea of Communism>에 실은 글 ‘How to begin from the beginning’(2009. 6. 2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대의 프롤레타리아는 세 집단으로 분열돼 있다. 하나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지닌 지식 노동자들이고, 또 하나는 지식 노동자들과 배제된 자들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증오를 보이는 노동자들이며, 마지막은 이러한 사회 전체에 적대적인 배제된 자들이다.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외침은 이제 유례없이 어려운 과제가 되어 있다.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의 조건 아래서는 노동계급의 이 세 부분이 단결하기만 하면 이것으로 곧 승리다.” 말하자면 이들 세 그룹의 노동자들이 서로 단결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인데, 과연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을까요?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좌파의 전망을 재구성한다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요?  36


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공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연대하자고 도덕적 호소를 한다? 결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정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

여기서 저는 염세적인 측면을 고수하고자 합니다. 저는 더 이상 단순한 마르크스주의적 논리를 믿지 않습니다. 위기가 고조되어 사람들이 가난한 상태로 전락ㅎ하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공감하게 된다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훈을 언어야 합니다. 지난 위기가 우리에게 준 슬픈 교훈이 이것입니다. 연대감보다는 상대적 부를 통한 분리가 더 강했다는 것이죠. 사회적 약자나 외국인이 손쉬운 배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주민들이 손쉬운 희생양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층계급들이 이런 외국인에 대한 폭력에 훨씬 잘 동원됩니다, 오히려 부르주아가 관용의 자세를 갖고 있기 일쑤입니다.  38-39


직접 민주주의나 자기 조식화 같은 새로운 정치모델들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할 거라 보기 어렵습니다. ..

거리의 민주주의가 문제라기보다, 어떻게 부ㅐ를 없애고 강력한 금융자본을 규제할 것인지 따위의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

많은 좌파들은 오만한 경향이 있습니다, 멍청한 대중이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번한 대중은 훨씬 개방적이고, 대안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40-41


모든 운동은 다수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10%만 운동에 참여합니다. 언제나 소수가 중심입니다. 소수에 대해 다수가 공감하는 거죠. .. 이러게 소수이긴 하지만 사회적인 조직화가 필요합니다. ...

수백만이 광장에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그것이 핵심이죠. 이 지점에서 좌파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조직해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견해나 일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43


오늘날 정치의 기술이라는 것은 비록 우리가 체제 자체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현재의 체제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체제란 것은 획일적으로 똑같을 수 없습니다.  44-45


유럽은 유럽의 전통에서 나오고, 남미는 남미의 모색 속에서 나오고, 한국은 한국의 토양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분히 우리는 실용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야할 것입니다. 그리스가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겠죠. 위기의 순간에는 아무리 작은 당일라고 할지라도 갑자기 폭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실용주의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배우는 것이 실용주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진정으로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46




2부 지금, 여기,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 경희대 평화의 전당 2012. 6. 27.


1930년대 말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나온 유머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지요. 주인공이 카페에 가서 크림 없는 커피를 주문합니다. 웨이터는 “죄송합니다만 크림이 다 떨어지고 우유만 있습니다. 크림 없는 커피는 없고 우유 없는 커피만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웃음)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없는 것, 즉 부정이 바로 그 정체성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변증법의 기본적 메시지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는 것, 물리적으로 봤을 때 우유 없는 커피는 크림 없는 커피와 같이 그냥 커피일 뿐인데, 그러나 둘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 없는 커피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56


오늘날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직설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사실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축적으로 거짓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함축적인 의미를 주면서 정반대의 의미를 전달하는 식이죠. 커피의 예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유가 없는 커피를 말하지만 결국은 크림 없는 커피를 준다는 것이빈다. 따라서 함축적 의미에 주목해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그 메시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57


이렇게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

헤겔의 담론에서는 이것을 총체성(Totality)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실재하는 것의 총체성,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것의 총체성 등등이 포함됩니다. 실제 변증법적 분석을 해보면 핵심은 특정 사건을 조화로운 총체성에 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말고 총체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정 개념 속에 다양한 부정과 실패를 포함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의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자본주의 총체성으로 바라보려면 '이것이 이상적으로 좋은 시스템이다'라고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만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다른 측면까지 포함하여 총체적으로 보아야 하고 또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지점도 살펴봐야 합니다. 나아가 국내외적으로도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하지요.  58


이쯤에서 변증법적인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관한 읿ㄴ적으로 보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각 체제들의 실패 사례들, 또는 의도치 않았던 개념의 부산물드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변증법에서는 이런 실패들이 단지 운이 없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하나의 개념 안에 포함된느 것들입니다. 이러한 실수들, 대립의 과정과 끔찍한 파생물들 역시도 그러한 보편적인 개념에 포함된느 것들이란 거지요.  60


우리는 왜 이와같은 협상을 명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지배하는 헤게모니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61


자본주의에서 탐욕이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이야기할 때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탓하고 탐욕과 부패로 원인을 돌리는 것은 중요한 분석을 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분석은 시스템 자체에 관한 분석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논의는 시스템 자체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분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62


유럽에는 산타클로스가 있습니다. 빨간 옷을 입고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갖다 주는 존재, 완벽한 구조 아닙니까? 어른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믿으세요?"라고 물어보면 "내가 바보냐?"라며 비웃겠죠. 그럼에도 오른들은 선물을 삽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믿니?"라고 물으면 "저도 바보가 아녜요.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믿는 척하는 거예요."라고 답합니다. 이러한 신념이 하나의 사회적인 연결고리로 작동하지만 실제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이 대상이 상상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68


19세기 중반에 독일인 인류학자와 탐험대가 기니에 있는 한 부족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춤'을 추는 부족으로 아려져 있습니다. 인류학자는 춤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고, 하룻밤을 보내고 난 그 다음날 부족은 그 춤을 보여줬습니다. 인류학자는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며 원시 부족의 춤에 대한 보고서를 썼습니다. '이 춤은 죽음에 대한 춤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몇 년 후 또 다른 탐험대가 그 부족을 방문해서 예전에 만났던 인류학자와의 만남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두 번째 탐험대는 그 부족의 언어를 미리 배우고 갔기 때문에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부족은 첫 번째 탐험대가 자신들에게 무너가를 요구했고 자신들도 그들이 무엇을 원한느지 간파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족에게서 죽음의 춤을 보기를 원한 것으로 이해하고는 그들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기 위해 죽음을 형상화하는 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원시적인 고유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70


'전통의 약', '고유의 약'과 같은 것들을 파는 상점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아마 한국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뉴질랜드에는 토착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뉴욕에서 가서 패션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돌아와서는 토착민들의 의상을 그에 맞게 바꾼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역설이 무엇이냐면, 우리들이 고유성 또는 진품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함으로서 오히려 그 고유성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71


여러분이 탄산음료 캔과 신문지 재활용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이런 행동의 80% 정도는 미신적인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근본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거죠. 쓰레기 분리수거가 지구 환경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에서부터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어쨌든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여러분, 깨닫고 있습니까?  74


스타벅스의 출발점은 소비자들에게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의식 있는 회사라는 광고를 합니다. '여러분이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실 때마다 2%씩 소말리아 아동에게 전달되고 열대우립 보존에 사용됩니다'라는 식의 자본주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광고를 합니다. 소비 뒤의 가격을 상품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죠. '너무 소비해서 죄책감을 느끼는가? 괜찮다. 조금만 더 소비하면 죄책감을 해소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신념과 그것이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그리고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예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4-75


이데올로기가 반드시 커다란 신념이나 교육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우리의 지적공간의 구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가능케 하는가', 또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가'라고 생각하는 구조적인 틀이 이데올로기입니다.  79


기성세대는 여러분이 사고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전문가와 지식은은 다릅니다.

전문가는 남들이 규정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 지식인이란 것은 전문가를 넘어선 것입니다. 단순히 남이 규정한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한 하나의 법칙을 규명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는 사람들입니다.  88


시스템에 많은 도전을 가함으로서 자유로운 사고를 창출해야 합니다. '이론 공부만 하는데 어떻게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아이들은 굶어 죽고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조작입니다. 사고의 흐름을 막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현 상황은 절박하겠지만 바로 그런 상황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사고를 해야 합니다.  89




3 청중과의 대화 - 경희대 평화의 전당 2012. 6. 27.


라캉적인 입장.. 원하는 것(want)과 욕망하는 것(desire)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여러분도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을 견지한다면 이해할 것입니다. 저는 '사랆들이 공산주의를 욕망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욕망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열망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의 가장 기초인데요. 우리는 때로 무엇인가를 욕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에 가까워 졌을 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가장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차라리 그것을 얻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욕망하지만 원하지는 않는 것이죠.  95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라는 단어는 20세기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바보 같은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텐데요. 여기에 대한 이유를 네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공산주의는 '공동(common)'의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우리가 계속 공산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잘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지요. 주 번째로는, 공산주의라는 명칭은 쉽게 회복할 수 없는 명칭입니다. 예를 들어 자유라든가 사회주의 등과 같은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 결국에는 지금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잠식돼버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공산주의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있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농노의 반란이나 평등주의 등은 고대에서부터 있어 왔는데 이러한 전토엥 입각해서 우리가 계속 공산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냉소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정치적인 프로젝트, 즉 기획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잇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0월 혁명을 예로 들어볼까요? 모든 위대한 것을 꿈꾸며 시작되었지만, 악몽으로 끝이 났지요. 또 스탈린주의, 북녘에 있는 여러분의 동포들, 이러한 모든 것이 어쩌면 파시즘보다도 더 끔찍한 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급진적 운동을 원한다면 항상 그 위험을 알리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불과 장난을 치는 것이라면 굉장히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지나치게 희망적이거나 믿음이 가지 않는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좋습니다. 이 용어는 언제나 저에게 '이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의도치 않은 새로운 대재앙을 낳게 되지 않을까?'하고 되물을 것입니다.  96-97





4부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선을 위한 소명(Possibility of Common Good) -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관 2012. 6. 28.


진실은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싸워야 합니다.  120


'물신적 분열(Fetishist Split)' '저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정말 그걸 믿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우리가 보고 아는 바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실체적 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태도도 있습니다. '나는 이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설사 효과가 없을지라도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여하튼 뭔가를 함으로써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미신인 것입니다. '나는 신문지나 콜라 캔을 잘 재활용하고 있을까?' 이런것들은 그저 쉬운 탈출구일 뿐입니다. 이 방법으로는 마음은 편해지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않게 되지요.  121


인도의 인류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tty)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그는 '우리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인간은 그 압도적 숫자와 화석연료의 연소와 다른 관련 활동 덕택에 지구상의 지질학적 매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부르는데, 이는 인류 자체가 지질학적 요소가 되는 시대지요. 인류가 단지 당장의 환겨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 생명 활동과 생명 순환의 양시겡 직접 영햐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였는데, 정부가 싼샤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을 때 많은 지질학자들이 경고했었다고 하더군요. 댐으로 형성된 거대한 인공호수가 지진을 일으킨 지하 단층 바로 위에 있게 도니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요. 이 거대한 인공호수는 강력한 지진의 가능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시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것이 수년 전의 쓰촨대지진을 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좋은 징조겠지만, 중국 정부조차도 수십만 명이 사망한 거대한 쓰촨대지진이 우리 인간의 활동에 의해 부분적으로라도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인류가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지질학적 요소가 되었다는 주장인 '인류세'의 또 다른 측면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상상하기 두려운 일이지만 현재 정부, 위원회 등 권력자들에 의해 '지오 엔지니어링'(지구공학, Geo Engineering)이라는 것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가설은 지구온난화를 막기에는 화석연료 규제 등 원칙적 방법으로는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훨씬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이미 거대한 계획을 논의 중입니다. 예를 들어 수백만 톤의 물이나 바닷물 등으로 된 미세입자를 방사해 이것으로 태양광선을 막는다는 것 등입니다. 이렇게 대기의 조성에 직접 간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상상해보십시오. 지구공학을 통해 인공적으로 바꿨을 때 따라올 부수적인 피해,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해 그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124-125


생태학의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아는 것이나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데에 있습니다.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고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131


인류에게는 다시 일종의 공산주의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어째서 공산주의(코뮤니즘) 재실현이 오늘날 그렇게 상상하기 힘든 것입니까? 지난 세기에 공산주의의 꿈은 비참하게 실패하여 경제적, 미놎ㄱ-정치적,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생태적으로도 재앙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을 꾸게 만들었던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시장과 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집단 활동이 재창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불가능과 가능한 것은 이상한 방식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등위 관계를 넘어서고, 전능한 불멸이 불간으함을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급격한  사회 변화를 위한 공간을 열어,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적인 운명론을 어떻게든 피해야 한느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환에는 고매한 윤리가 필요치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 자크 루소가 말한 '자기애(amour-de-soi)',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진정한 이기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치 않다. 다른 이들이 져야 한다.' 미국의 작가인 고어 비달(Gore Vidal)의 이 말은 진정한 자기애와 목표 성취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에 대한 장애물을 파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형태의 왜곡된 형태의 타인 대비 자아선호인 자기 편에(amour-propre)를 구분한 루소의 논지와 잘 들어맞습니다. 악마적인 인간은 따라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닙니다.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스스로의 선을 챙기느라 너무 바빠 다른 이들에게 불행을 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악인의 가장 주된 악덕은 바로 그가 자신보다 다른 이들의 생각에 더 정신이 팔려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향락적 이기주의 사회에서는 진정한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말하는 비평가들은 완전히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 자기애의 진정한 반대는 이타주의나 공동선에 관한 관심이나 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질투와 원한입니다. 니체와 프로이트가 공유했던 것은 평등으로서의 정의가 질투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그걸 누리는 '타자'에 대한 질투입니다. 정의의 요구에 숨겨진 것은 따라서 '타자'의 과도한 향유를 줄여 모두가 주이상스(jouissance, 언어화된 쾌락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된 쾌락 등 우리가 경험하는 불충분한 쾌락의 너머에 있는, 우리를 만족시키고 채우는 그 이상의 어떤 것_편집자)에 대한 접근이 동등해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의 결과는 물론 금욕주의입니다. 동등한 주이상스를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대신 금지(prohibition)를 동등하게 누리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금욕주의는 그 반대의 형태를 띱니다. 일반화된 초자아의 강제명령(injunction), 혹은 "즐겨라!"라는 명령의 형태를 띠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스트적 '자아실현'과 조깅, 건강식 등의 온전한 금욕과 극기를 조합하는 여피족을 보십시오. 어쩌면 이것이 니체가 '최후의 인가(Last Man)'의 개념을 말할 때 마음에 두고 잇어썬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여피의 쾌락적 금욕주의라는 외양에 숨은 그(최후의 인간)의 윤곽을 진정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오늘에 와서이지만 말입니다.  139-141


지금 우리는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합니다.  145




5부 청중과의 대화 -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2012.06.028.


저는 순진한 마르크스주의나 휴머니즘에 대한 낙관주의를 펴지 않습니다. .. 제 유일한 역설은,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만 하는, 정말로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추구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149


저는 상당한 비관론자입니다. 다만 저는 위험한 상황이 어쩌면 늘 희망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상황인 것이죠. 어쩌면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조금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열려있습니다. 제말은, 진정한 유토피아는 우리가 이것저것 조금씩 고통 받으며 지금처럼 항구적으로 나아간다면 맞이하게 될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150


저는 공산주의를 찬양하지 않습니다.  152


혁명의 폭력은 당신이 의미하는 혁명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

내가 지지하는 폭력은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대화와 사회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인민들이 한 것은 수도의 중심 광장을 점거하고 나라 전체를 마비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 이제는 협상할 때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인 무바라크가 말했지요. "당신들의 요구를 들었으니 이제 대화를 하자." 거기에 인민들은 "아니, 토론은 없다. 당신이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게는 이것이 벤야민이 말한 신성한(신적)폭력입니다. 진짜 폭력은 무바라크의 사람들이 행했고, 인민으 그것은 명확하게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는 폭력이었습니다. '혼란은 이제 충분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죠. 이것이 제 관점이빈다.

사람들은 제가 "간디가 히틀러보다 더 폭력적이었다"고 하니까 미쳤다고 여겼죠. 히틀러가 수백만 명을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작 두려워했던 것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자본주의의 도입을 막기 위해 수백만을 죽였지요. 지나치게 단순화된 마르크스주의식 표현이긴 하지만요. 간디가 인도에서 원했던 것을 히틀러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디는 영국 정부가 그곳에서 기능하는 것을 중단시키려 했습니다. 히틀러가 원했던 것은 독일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수백만 명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요. 이것이 저의 폭력관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폭력이 있는지, 어떤 형태의 폭력인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요지는, 사람들이 폭력을 이야기할 때 어디서 폭력을 보느냐는 점입니다.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는 오직 일상생활이 방해받는 지점에서만 폭력을 봅니다. 혼란이 생기고 혁명이 일어나면 "맙소사, 폭력이다!"라고 하지만, 단지 우리가 익숙해졌거나 무시하는데 익숙해진 상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폭력들은 어떤가요? 예컨대 콩고공화국에서 리비아나 이집트 등을 모두 포함한 것보다 매주 더 많은 폭력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은 알고 있지요. 확인해 보세요. 1990년대 중반 <타임>지는 지난 10년 동안 콩고에서 400만 명 이상이 자연적이지 않은 이유로 사망한 사건을 커버스토리로 다뤘습니다. 당시 저는 뉴욕에서 열린 어떤 토론회에서 <타임>지의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방향이 클 거라고 예상했는데 겨우 독자 한두 명이 편지를 보낸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척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의 관시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폭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어떤 반항적인 자들이 사람 한두 명을 죽이며 "끔찍하다, 야만적이다!"하면서, 지금 현재 많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에 무관심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이런! 우리가 단지 모든 것을 일상적으로 움직여가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양의 폭력이 필요한지 인지하고 있습니까? 내게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명확하게 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저는 아랍이나 기타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를 끔찍하다고 여깁니다.저는 아랍이나 팔레스타인이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테러를 좀 해도 된다거나 반유대주의적인 생각들을 용인해도 된다는 멍청한 좌파가 아닙니다. 안 됩니다. 저는 절대로 이런 것을 요인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이 폭력을 보라는 것입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폭력들을 말입니다.

짐바브웨를 예로 들까요. 짐바브웨가 공포에 휩싸이게 된게 언제부터입니까? 저는 무가베(1970년대 소수 백인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쳐 독립을 일궈낸 투사로, 1987년부터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현재까지 계속 집권해온 아프리카의 최장수 집권자이다. 2000년 토지 재분배 계획을 강제하면서 백인 농장주가 소유한 토지를 몰수, 백인 주미노가 서방 국가와 마찰을 빚어왔다. 경제난과 국제 사회와의 불화가 계속되면서 무가베는 서방 언론들로부터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지도자라는 평판보다는 장기 독재자란 칭호가 따라붙었으며 국내 반정 세력의 불만도 증폭되기 시작했다)를 전적으로 반대합니다만, 그의 집권당이 백인 농부들을 몰아내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하지만 짐바브웨에는 이미 그전부터 흑인 그룹들 간에 극심한 테러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말 무가베가 정권을 잡은 직후, 그는 도시 전체에 해당하는 인구인 반대파 1만 명을 죽였습니다. 서구 사회는 여기에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100~200명 정도의 백인 농장주들을 - 심지어 죽인 것도 아니고 - 몰아내기 시작하자 큰 반향이 있었지요. 그런 행위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153-156


더욱 의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이건 심각하고, 이건 이렇게 가야 하고...' 운운하는 사람만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루하고 과학적인 책들이 허풍을 더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안착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161


당신이 가진 유일한 것은 당신 자신의 정신입니다. 여기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162


지름길은 없습니다. 이것이 철학의 좋은 점입니다. 무엇이 좋고 아닌지를 말해줄 사람을 구할 방법은 없습니다. 당시은 길을 모릅니다. 당신은 혼자입니다.  162




7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대한문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 2012. 6. 29.


사람들은 보통 "우리는 너무 이기주의자이다"라고 비판하곤 합니다.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너무 많이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틀렸습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면, 그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사 운영자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결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이들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건강한 이기주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엄청난 관념들을 빌려올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정말 우리 자신을 위해, 또는 아이들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결코 이기주의적인 체계가 아닙니다.  178-179


제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계발은 오늘날 우리 문화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서 더 나은 개인으로 발전하라는 것인데, 이런 자기계발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명의 특징적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 훨씬 복잡한 부장이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자기를 돌보는 것, 예를 들어 내가 어떻게 나메엑 보일지 신경 쓴느 것이라드가, 매일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한다든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강제된 모델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자기계발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멋있게 보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가 너 자신을 버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일정하게 동의합니다. 너 자신에 대해 잊어버리라는 것은 사회에서 만들어진 자기 자신을 버리라는 것이니까.  179-180


연대와 관련해서는, 당신을 위해 너무 많이 희생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진정한 연대라는 것은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연대라는 것은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그 하나가 되는 연결된 감정에서 가능한 것이죠. 오늘날 미디어가 말하는 연대라는 것은 돈을 기부하라거나, 아프리카에 있는 굶주리는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식의 사이비 연대입니다. 이런 사이비 연대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다만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우안을 줄 뿐이죠. 이것이 바로 스타벅스 커피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커피 한 잔을 사면 그 이윤의 1%가 소말리아에 있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간다는 식으로 광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80


먼저, 자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종류의 자살이 있을 수 있겠죠. 하나의 자살이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절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런 경우는 자신의 환경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기에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깨우는 메시지를 포함한 자살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분신한느 자살이 여기에 해당하죠. 또한 남에게 죄책감을 주기 위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자살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 자신의 즐거움을 취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입니다.  181-182


어떤 이가 나무를 깎아서 무엇인가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누가 그것으 ㄹ과소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꿈을 추구하고 그것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이기주의이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좋은 사회 입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없어 고통받는 사회라면 정말 끔찍 할 것입니다. 

좋은 이기주의는 나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하는 것이지 남이 하라고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182-183


예술가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그 예술작품은 직접적인 행복감을 부여하죠.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적 퍼포먼스는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당신의 작품은 '오 세상에, 이런 것이 있었다니!'라는 자각을 환기시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술은 '깨어남'을 선사하죠.  184


고전주의적인 관점에서 어떤 작품이 훨씬 낫다거나, 더 나은 작품을 소유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물론 내가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을 독점하고 있는 갤러리들을 불태우버리는 것입니다.  185


사람들이 선택의 동기를 가지 못할 때 자살하는 것이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마치 엄청난 선택의 기회가 있는 사회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 우리는 코카콜라나 펩시콜라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선택만이 허락된느 사회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선택의 기회는 널려 있지만, 근본적인 선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삶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 같은 것을 할 수가 없어요. 무수한 선택의 기회는 사실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고 있는 허위입니다.  188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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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과의 대비를 통해 당시 영국의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을 고발하고자 했다. ..

우리는 지금 여기,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16


농민들의 처지에서도 좋은 점이 있었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민들이 마음대로 영지를 이탈할 수 없는 것처럼 지주, 즉 영주계급도 마음대로 농민들을 자기 땅에서 내쫓을 수 없었다. 심지어 토지가 매매되거나 상속되더라도 그 땅에서 경작하는 농민은 그대로였다. 토지의 소유자가 바뀐다는 것은 단지 지대를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농민에게는 누가 영주가 되든 상관없이 그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가 관습적으로 보장되었다. 농민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 아들과 손자에까지 이 권리는 이어졌다. 18


양모 가격의 폭등은 이 모든 안정적이던 기존 질서를 뒤흔들어놓았다.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그 대가로 지대를 받는 것보다 그 땅에 양을 키워 양모를 판매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주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농민들을 강제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농민들이 수 세대 동안 관습적으로 보장받던 권리를 모두 부정했다. 19


인클로저란 토지의 경계에 울타리를 친다는 뜻으로,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울타리치기 운동’이라고 하겠다. 인클로저 운동은 여러 번에 걸쳐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양을 키우기 위해 일어난 16세기의 목양 인클로저와 대규모 농업 경영을 위한 18세기의 농업 인클로저였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비판한 것은 바로 양을 키우기 위한 울타리치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당시의 영국 사회이다. 20


르네상스 운동은 크게 아트 르네상스(Art Renaissance)와 휴머니즘 르네상스로 구분하는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 아트 르네상스이다. 문학에서는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가, 미술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등이 아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다. ..

아트 르네상스가 인간의 감정과 육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휴머니즘 르네상스를 주도한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자 했다. ‘인문학’이라는 용어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휴머니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사상가가 바로 모어와 에라스뮈스이다. 접근하는 방식과 수단이 서로 달랐을 뿐 아트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르네상스의 공통된 관심은 바로 ‘인간’이었다. 42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좀바르트는 자본주의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농업이 아니라 상업에서, 건전하고 성실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사치와 향락에 빠진 소비 생활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47


우리가 아는 중세는 절제와 검약을 미덕으로 하는 경건한 신앙심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 좀바르트는 이러한 변화가 바로 십자군 전쟁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십자군전쟁이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남녀 관계의 변화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출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설명햇다.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윤리적인 태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이었다. 48

십자군전쟁을 계기로 유럽인들은 사랑을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로, 거결함이 아니라 쾌락의 추구로 ‘세속화’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인간의 벌거벗은 육체를 그렸다. 인간 본연의 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는 다른 한편 인간 본연의 육체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다. 50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사치와 전쟁에서 찾았다. 52


십자군 전쟁은 유럽 사회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당시 유럽은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면 외부 세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폐쇄적인 사회엿따. 십자군 전쟁은 그런 유럽인들이 처음 경험하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슬람 세계(동방 세계)는 유럽(서방 세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화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53


또 하나는 상업의 발달이었다. ..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인들은 동방 사회에 있던 금은 등의 귀금속과 값비싼 재화들을 약탈함으로써 부를 축적했다.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약탈한 전리품을 유럽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여러 곳에 상업상의 거점을 건설하고 교통망을 정비해야 했다. 또 원정 비용을 지불하고 군수물자와 전리품들을 거래하기 위해 화폐의 사용이 늘어났다. 이 모든 요인이 유럽의 상업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54-55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푹스는 르네상스를 인간의 육체 특히 벌거벗은 여체에 대한 탐닉의 시대로 보았다.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실은 자본주의 문화, 부르주아 문화란 처음부터 퇴폐와 욕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56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지중해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도시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였다. ..

유럽 상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십자군 전쟁 이후에도 그들이 장악한 상권이 여전히 지중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중해 너머의 여러 왕국들은 이슬람 상인들의 상권이었다. 63


유럽 상인들은 직접 동양의 여러 왕국과 무역할 수 있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 64


애점 스미스의 <국부론>은 너무나 유명한 핀 공장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무리 솜씨 좋은 장인이라도 혼자서 하루에 10개의 핀을 겨우 만들었는데, 철사를 늘이고 자르고 갈고 핀 대가리를 붙이고 두드리는 공정들을 나누어 일했더니 전혀 숙련되지 않은 10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들더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그 이전에 있었던 다른 경제체제들과 구분하는 주요한 차이 가눙ㄴ데 하나는 바로 엄청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생산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많은 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상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상품들을 도대체 어떻게 유통하고 누가 소비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물론 140녀 년 전 이제 겨우 산업혁명에 접어들던 시대의 영국과 현대 사회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기준에서 보자면 대량샌상의 시대와 처음 마주친 영국인들의 충격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엄청났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이 엄청난 생산력이 어디서 오는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물론 매일 4800개의 핀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스미스 혼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직접 핀을 만들었고 사업가들은 그 핀들이 자신에게 줄 이익을 계산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목격하고 직접 참여한 그 장면의 의미를 애덤 스미스만큼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98-99


<에밀>은 흔히 교육에 관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루소는 여러 쪽에 걸쳐 분업과 교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업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접근은 당연히 경제학적이다. 반면에 루소의 접근법은 사회학적이고 교육학적이다. 106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을 동정심, 즉 ‘공감(sympathy)’의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116


<인구론>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두 가지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식량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다. 둘때, 이성 사이의 정욕은 필연적이고앞으로 현재의 상태가 대체로 지속될 것이다. 맬서스는 이러한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인구는 자연의 제한 법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1, 2, 4, 8, 16, ... 과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의 생산능력은 1, 2, 3, 4, 5, ...와 같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년이 지나면 이 차이는 256대 9가 되며, 300년이 지나면 4096대 13이 된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인구의 증가르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치명적인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맬서스는 두 가지 대책을 제시했는데, ‘예방적 억제(preventive checks)’와 ‘적극적 억제(positive checks)’가 바로 그것이다. 예방적 억제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 따르는 곤란을 걱정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간통으로 욕정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낙태와 영아 살해 등을 말한다. 적극적 억제는 사후적으로 어린이의 영양실조, 극도의 빈곤,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 등의 방법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126-129


다윈은 다양한 종들이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다는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를 <인구론>에서 착안했다. 왜 어떤 종은 살아남고 어떤 종은 도태해 멸종하는가? 자연에 적응하는 종은 생존하며, 그렇지 못한 종은 도태한다는 것이다. 138


위대한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인구론>은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의 화두를 던져준다. 인구와 식량의 관계를 성장과 자원 또는 성장과 환경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맬서스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

성장은 자원을 사용하고 환경을 파괴한다. 물론 자연은 스스로 자원을 재생산하고 환경을 복구하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자원과 환경의 회복은 산술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성장을 위한 남용과 파괴는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57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 기술은 오직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원 낭비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 기술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지만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기술체계는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되어야 하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158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한 위대한 발견으로 역사적 유물론과 잉여가치론 두 가지를 꼽았다.

역사적 유물론은 인류의 역사와 사회 발전의 원리를 규명한 마르크스 사상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 기초이다. 그러나 정작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없다. 하기야 마르크스는 그의 철학적 기초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책을 쓴 적도 없다. 다만 자신의 모든 저술에서 변증법적 유문론의 방밥을 일관되게 사용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모든 저작에서 역사적 유물론을 적용했다. 가령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 인류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그렇다면 역사적 유물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교과서는 무엇일까? 바로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다. 172-174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계급이 없던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원시 공동체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산수단과 노동 생산물을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했다는 사실이다. 즉 생사눌을 공동으로 생산할 뿐만 아니라 공동으로 소비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 소유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화된 현상이 아니라 생산력이 지극히 낮아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인간 생존의 조건이었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는 생산력이 아주 낮아서 잉여 생산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동체 내의 일부 성원이 생산물을 독점한다는 것은 다른 성원의 생존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생산물을 독점하는 것도, 그것에 기초한 계급의 분화도, 사적 소유도 아직 출현할 수 없었다. 계급 사회가 출현하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사건이었다. 이 시기를 원시 공산주의 사회라고 부르는 것도 이때문이다.

사유재산과 국가는 물론 가족까지도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엥겔스의 설명은, 역사적 유물론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계급 사회이전의 공동체에서는 내 것이라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내 가족이라는 관념도 없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도 실은 사적 소유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176


사적 소유가 처음 출현했을 때 이는 탐욕, 축적, 지배가 아니라 권리였다는 사실이다. 177


분노한 노동자들은 기계에 모래를 붓거나 부속품을 망가뜨려 작업을 방해했다. ..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일으킨 최초의 집단 저항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러다이트 운동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자본가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계의 자본가적인 사용이다 기계가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노동시간이 줄고 노동의 강도는 낮춰질 것이다. 179


영국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합법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824년에 ‘단결금지법’(799년 제정)이 철폐되면서부터이다. 전국적인 노동조합 조직은 1830년대 들어 나타나게 되는데, 1834년 로버트 오언의 지도 아래 결성된 ‘전국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은 조합원 수가 50만 명을 넘었다. 그 당시 전국노조의 요구사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0시간 노동제’였다. 181


잉여가치론은 바로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비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론이다. 183-184


애넘 스미스는 재화의 가치가 노동에서 나온다고 말했지만, 또한 재화의 가치가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를 합산한 것이라는 말도 했다. 스미스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답게 리카도는 임금과 지대와 이윤이 각각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매우 치밀하게 분석했다. 노동자가 임금을 가져가듯 자본가가 이윤을 가져가는 것도 정당하다는 뜻이다. 재화의 가치가 오직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된다면, 도대체 자본가의 이윤이나 지주의 지대는 어디에서 나올까?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자본가가 이윤으로 가져간다면 그것이 어떻게 정당한 분배일까? 184-187

스미스와 리카도라는 두 위대한 경제학자가 자기 이론의 근본적인 모순을 전혀 또는 거의 자각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계급의 이익, 즉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의 이익에도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사회체제라는 신념을 너무 깊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7


마르크스는 리카도와 마찬가지로 모든 재화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는 노동자 자신이 임금의 형태로 가져가는 필요가치와 자본가가 가져가는 잉여가치로 나뉜다. 이 잉여가치는 다시 자본의 여러 분파와 지주들에게 산업이윤과 상업이윤 및 기대로 분배된다. 말하자면 이윤은 하나의 허상이며, 그 본질은 잉여가치인 것이다. 잉여가치 역시 노동자가 생산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것이 마치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수인 것처럼 기만하기 위해 잉여가치가 아니라 이윤의 형태로 취득하는 것이다.

피룡가치와 잉여가치가 각각 어떻게 분배되는가는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필요가치는 노동자가 사용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상품의 양이 결정한다. 그러나 현실의 착취율, 즉 필요 노동에 대한 잉여노동의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계급추쟁이다. 계급투쟁이라는 말을 대단히 과격하고 무시무시한 무엇인 양 들을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인류의 역산느 모두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때의 그 계급투쟁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의 10월 혁명처럼 노동자계급이 총을 들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과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언제나 더 많은 몫을 가져가기 위해 대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얼마로 결정할 것인가, 통상 임금에 무엇을 포함시킬 것인가가 바로 현실의 계급투쟁이라는 뜻이다.  187-191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1930)이라는 글에서 100년 뒤에는 자본축적의 증진과 기술의 진보로 주 15시간만 일하면 누구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6


노동은 인류에게 내린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고 말았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는 더 발전하는데 노동자들은 왜 더 많이 일하면서도 왜 더 빈곤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과 축적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노동자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 되고, 그 생산물이 노동자들 자신의 풍요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저주일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육체를 쇠진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의 정서도 타락시킨다. 시민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찰할 여유를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몇몇 기업가들조차도 인정했다. 물론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양심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단지 생산성을 올려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한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설령 후자일지라도 자본가가 더 많은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이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자들에 비하면 그들은 충분히 양심적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물질적으로 적당히 풍족하면서 시민으로서 자신을 성찰할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과연 몇 시간의 노동이 적당할까? 라파르그는 하루에 3시간의 노동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197-198


소외(Entfremdung)라는 개념은 얼핏 매우 현학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경제학 -철학수고>에서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마르크스가 본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하고도 본질적인 현상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이러한 인간소외는 정치적 자기소외, 경제적 자기소외, 종교적 자기소외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특히 경제적 자기소외가 사유재산과 자유경쟁이라는 근대 자본주의의 두 가지 제약 조건 때문에 나타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라는 이 체제하에 살며넛 노동자들은 먼저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이 노동한 결과물임에도 그 생산물의 소유로부터도 소외된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유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질로부터도 소외되고 만다는 것이다. 

경제적 계급적 소외의 첫째 유형은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이다. 간단히 말해 노동자가 생산한 물건이 그것을 창조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타인, 즉 자본가의 소유물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노동자 궁핍화론'이 등장하는데,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노동자가 부를 더 많이 생산할수록 노동자는 그만큼 더 가난해진다는 말이다.

계급적 소외의 두 번째 유형은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이다. 노동자는 예전의 독립 생산자처럼 생산 활동에 자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그의 지배와 통제 아래에서 노동하므로 본질적으로는 강제 노동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노동은 인간 본래의 생명 활동이 아니라 다만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마르크스는 보았던 것이다.

셋째는 유적 본질로부터의 소외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유(類 무리류)적 존재라고 불렀느넫, 여기서 유적이란 인간이 홀로 존재하고 홀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유적 존재로서 생활할 때에만 인간은 자신의 참모습, 즉 유적 본질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계급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 대상과 노동 생산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자신의 유적 본질을 박탈당한다. 

마지막으로 소외의 최후 형태인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이다. 인간이 자신이 유적 본질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본래 인간답게 공동생활을 해야 할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사회에서는 유산자와 무산자 모두가 인간적 본질에서 소외당하고 있지만, 노동자는 이러한 소외에 괴로워하며 상실한 인간적 본질을 회복하려 한다. 반면 자본가는 이 인간소외 위에 안주해 퇴폐의 길을 걷는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네 유형의 소외는 결코 개별적으로 열거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급적 인간소외에 대한 인식이 의미하는 것은 자본과 노동의 분리, 즉 계급적 대립이 자본주의적 인간소외의 근본 원인이며, 동시에 이러한 인간 소외에 의해 계급 대립 그 자체가 유지되고 재생산된다는 사실이다. 본질을 상실한 소외된 인간은 불구화되고 파편화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202-205


현대 경영학은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rick Winslow Taylor, 1856~1915)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한 과학적 노동 관리는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분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공장의 작업반장이었던 그는 초시계로 노동자들의 손동작, 발걸음, 그리고 심지어는 호흡까지 일일이 측정하고 계산해 가장 효율적인 작업 동작을 고안해내었다. 

테일러는 오늘날 테일러주의라고 불리는 자신의 과학적 노동 관리가 노동자드르이 생산성을 높이고 더 많은 임금을 받게 해줄 것이므로 당연히 노동자들이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모든 작업장에서 테일러주의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맞닥뜨렸다. 노동자들이 저항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고용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심오한 면에서 나동자들이 테일러주의를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들의 인격과 자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206-208


테일러의 과학적 노동 관리에 대해 노동자들은 감독자들이 정한 작업 방식대로 획일적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숙련과 경험에 의존한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테일러주의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할 방법을 고안햇다. 바로 컨베이어 벨트이다. 컨베이어 벨트는 노동자들에게 정해진 작업 방식과 주어진 작업량을 강요했다. 영화 <모던 타임스(1936)>에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것처럼, 컨베이어 벨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정해진 작업 방식과 속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노동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이다.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사람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저항하지 못한다. 공장의 문 밖에는 해고와 실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주의와 컨베이어 벨트의 결합은 흔히 '포드주의(Fordism)'이라고 불린다. 포드자동차의 생산 공장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성년 남자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일당 2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자동차왕으로 불린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는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과 함께 5달러의 임금을 주었다. 이 때문에 포드는 다른 자본가들로부터 심지어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높은 임금을 받는 대신 노동자들은 단지 작업장에서 더 고된 노동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 술과 도박을 끊고 저녁식사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은 물론 일요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가야 했다. 포드는 노동 과정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활과 그들의 인격조차도 통제하고자 했다. 히틀러가 포드에게 철십자훈장을 수여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11-213


포드는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포드는 히틀러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기부했고, 히틀러는 "미국의 파시즘 지도자"에게 가장 영예로운 철십자훈장을 수여했다.  214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면 할수록 노동자계급은 더 빈곤해진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바로 자본가들이 생산수단 즉, 자본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진보와 빈곤:부의 증진에 따른 산업 불황과 빈곤 증가의원인에 대한 조사>(1879)라는 책에서 같은 질문에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조지는 사회가 진보할수록 대중이 더욱 빈곤해지는 이유는 바로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지대가 더 큰 비율로 상승하므로 임금은 더 낮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18-220


헨리 조지가 내놓은 것은 토지의 몰수가 아니라 토지단일세이다. 굳이 토지를 몰수하지 않더라도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를 정부가 세금으로 전부 환수한다면 똑같은 효과를 얻을 있기 때문이다.  222


미국의 북부와 남부는 독립 당시부터 구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북부에서는 비교적 공업이 발달하고 있었으나, 남부는 영국에 면화를 수출하고 값싼 공산품을 수입했다. 따라서 남부의 농업자본가들에게는 자유무역이 유리했다. 반면에 북부의 산업자본은 영국과의 경재을 피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이유에는 이러한 무역체제의 차이도 크게 작용했다. 어찌 보면 남북전쟁이야말로 북부의 산업자본이 마음껏 성장하도록 해준 가장 주용한 계기이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빠르게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변화했다. 원래 미국은 영국의 요매넹 비유되는 독립자영 농민들을 토대로해서 건설된 사회이다. 산업화는 이러한 자영 농민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버렸다. 특히 남북전쟁 뒤 서부 개척이 진행되고 철도 붐이 일어나면서, 돈과 건력을 앞세운 철도회사들은 농민들의 토지를 폭력적으로 매수했다. 정부도 철도회사에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서 철도회사에 싼값에 불하했다. 밴더빌트나 카네기 같은 강도귀족(robber baron)들이 그토록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남북전쟁과 철도 붐 덕분이었다. 이른바 강도귀족들의 '황금시대'가 열린것이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볼 때 그것은 번쩍거리기만 할 뿐 허위에 가득 찬 '도금시대'에 불과했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친구이자 작가인 찰스워너와 함께 쓴 <도금시대:우리 시대의 이야기(1873)> 는 토지의 수용과 그를 둘러싼 협잡, 부정부패 등 미국 사회의 추악하고 부끄러운 이면을 고발한 작품이다.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존 왕(King John, 1595)>에 나오는 "금에 도금칠을 하거나 백합에 색칠을 하는 것은 낭비이고 어리석은 짓일뿐이다"라는 대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226-228



조금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 봉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100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봉건제도가 안정되고 변화가 거의 없는 사회구조였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는 그와 정반대이다. 자본주의는 흔히 달리는 자전거로 비유되는데, 페달을 밟지 않으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쓰러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자본주의에서 변화는 거의 본질적이고 숙명적인 것이다.  233


고전이 위대한 이유,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그 책들과 저자들이 당시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도 주기 때문이다.  234


독점자본주의의 구조와 특징을 처음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은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 1877~1941)의 <금융자본론(1910)>이다. <금융자본론>이 '<자본> 이후의 <자본>'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마르크스의 이론과 분석 방법을 따르면서 마르크스 이후의 자본주의를 분석했기 때문이다.  236


독점자본주의 이전에도 자본주의는 경제적 권력이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집중된 사회였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출현은 이제 자본가들 가운데서도 더욱 극소수의 독점자본가들이 그러한 경제적 권력을 배타적으로 장악하고,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 계급은 물론 다른 자본가들까지도 지배하고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과 산업과 정부의 권력자들은 금융과두제(金融寡頭制:금융과두제는 소수의 서대한 금융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제도를 말한다. 레닌은 이것을 제국주의 단계에서 나타나는자본주의의 징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를 형성해 오직 자신들 안에서만 권력을 공유하고 배분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사회에서도 권력이 이처럼 소수의 집단에게 독점된 적은 없었다.  238


<금융자본론>이 '<자본>이후의 <자본>'이라면 <제국주의>는 '<금융자본론>이후의 <금융자본론>'인 셈이다. 

이 책에서 레닌은 금융자본이 결국 제국주의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이지만, 부패하고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리므로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이기도 하다고 보앗다.  240


레닌은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지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산업과 은해에서 독점체 출현. 둘째, 산업 독점과 은행 독점의 결합과 금융과두제의 출현. 셋째, 자본수출. 넷째, 국제적 독점체에 의한 세계의 경제적 분할. 다섯째,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세계의 정치적 분할. 첫째와 둘째 지표가 바로 힐퍼딩이 <금융자본론>에서 분석한 내용이라면, 이어지는 세 가지 지표는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왜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해준다. 마지막 두 가지는 바로 제국주의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준다.  240-242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아래엣부터 자본가로 성장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독점자본의 시대에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 결합이 일반화되고 기업 경영에 대한 금융자본의 배타적 지배가 확산되면서 평범한 중산층이 기업가나 경영자로 상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중소 자영업자들, 비교적 높은 소득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들, 은퇴한 관리자 등과 같이 약간의 저축이 있지만 직접 자본가가 될 만큼의 자금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직접 기업을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대신 자신의 저축을 안정적으로 투자해 이자를  받는 거이었다. 루돌프 힐퍼딩은 이들을 '금리생활자(rentier)'라고 불렀다.  248


마르크스는 자본의 축적이 진행될수록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한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자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자율은 안정적이거나 도리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금리생활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더 많이 착취해야 한다. 이 때문에 힐퍼딩과 동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금리생활자를 자본주의의 가장 퇴폐적이고 기생적인 현상이라고 비난했다.  249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th, 1908~2006)는 흔히 베블런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베블런 이후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제도의 진화를 분석하고자 했다. 그의 주요 저작 가운데 하나인 <풍요한 사회(1958)>가 <유한계급론>의 속편이라면, 다른 저작 <새로운 산업사회(1967)>는 <영리기업의 이론>의 속편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면 갤브레이스 자신은 그것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속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72


아무튼 <풍요한 사회>에서 갤브레이스는 인간의 욕구를 생활에 꼭 필요한 절대적인 욕구와 그 이외의 상대적 욕구로 구분했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본래의 목적은 절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을 더 얻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욕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마치 내가 그 상품을 원해서 소비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나의 욕구가 기업들의 광고에 의존하고 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이를 '의존 효과(dependency effect)'라고 불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계급들도 마치 유한계급들처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새로 나온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소비한다. 얼핏 보면 이런 대중 소비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 더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제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만 자본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생활에서조차 그들의 이윤을 늘려주기 위해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274


카를 멩거의 제자이자 신자유주의의 사성적 원조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에들러 폰 미제스(1881~1973)는 언젠가 케인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매우 훌륭한 경제학자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고. 그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란 바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용인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근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이다. 물론 시장이 언제나 균형 상태이지는 않다. 일시적으로 시장이 불균형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은 모든 경제학자가 인정한다. 다만 주류 경제학은 시장은 언제든 그러한 불균형을 스스로 조정해 균형 상태로 돌아갈 능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이러한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신뢰와 신념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경제학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거이다. 

케인스가 주류 경제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든 것은 그의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경제학의 근본적인 신념에 대한 비판이었다.  290




자본주의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올까? 마르크스와 그 지지자들은 자본주의가 내부의 모순 때문에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01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와 논리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한 경제학자가 잇다. 바로 조지프 슘페터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슘페터는 평생 단 한 순간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런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으니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서 참으로 심오한 측면은, 자본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주의로 발전하리라는 것이다.  302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소유의 문제로 파악했지만 슘페터는 관리의 문제로 파악했다. 가령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기업의 형태가 주식회사로 바뀌더라도 생산수단을 여전히 소수가 독점하고 잇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이다. 반면에 슘페터는 누가 주식을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누가 기업을 경영하고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기업이 사회적으로 관리되며, 결국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슘페터는 또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도 지지하기에, 더욱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가와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농민, 상인, 자영업자 같은 중간계급도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해 기업이 거대해지고 기업의 활동 영역이 확대될수록, 중간계급의 지위는 하락해가고 그들의 역할도 축소된다. 따라서 이런 중간계급들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무산계급의 혁명에 의해 타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요구에 따라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동의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눈부신 성공 때문에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주장이다.  305


슘페터의 저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은 역시 <경제발전의 이론(1912)>일 것이다. 슘페터는 경제체제의 운동 양식을 순환과 발전의 두 가지로 분류했다. 슘페터는 순환을 일정한 정태 체계 내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된느 경제 행위의 총체로, 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결코 일정한 체계를 벗어나지 않는 연속적인 변화로 파악했다. 이에 비해 발전이란 순환을 제약하는 여건을 다소 바꿈으로써 나타나는 변화로, 이는 연속적인 경제변동이라기보다는 경제체제 자체의 비약적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슘페터는 경제의 내적 요인에서 나타나는 비연속적인 기술 혁신이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즉 기업가가 창조적이고 영웅적인 기술 혁신을 수행함으로써 경제는 정태 균형에서 순환의 과정을 벗어나 동테적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308-309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innovation)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혁신이란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과정이다.  309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을 슘페터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새로운 상품의 발명. 둘째, 새로운 생산 방식의 발명. 셋째, 새로운 원료의 개발. 넷째, 새로운 시장의 개발. 다섯째, 새로운 시장 구조로의 전환이다.

슘페터의 혁신 개념은 다분히 지나치게 광범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가령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것은 새로운 생산 방식을 발명한 혁신의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 포드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가 자본주의의 생산 방식에 중요한 혁신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식민지 시장을 발견한 것은 과연 네 번째 유형의 혁신인가? 그렇다면 독점자본이 경쟁 기업들을 도태시키고 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다섯 번째 유형의 혁신인가? 아무래도 슘페터의 사회주의는 지나치게 관용적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도록 기업에 유인을 더 많이 제공하고 기업에 유리한 경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기업가 정신이 없는 사업가들은 결코 혁신할 수 없다. 그저 기업가들을 모방할 뿐이다. 모방하고자 해도 모방할 기업가 정신이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막다른 길은 아닐까?  3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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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한국 사회 역시 성과사회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와 정신 질환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적어도 그 점에서는 서구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6-7




신경성 폭력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연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11-12


지난 세기는 면역학적 시대였다..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를 장악한 이러한 면역학적 장치의 본질 속에는 어떤 맹목성이 있다.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면역 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12


어떤 패러다임 자체가 반성의 대상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그 패러다임이 몰락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냉전의 종식 역시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13


오늘날 이질성은 아무런 명역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대체되었다. 면역학 이후 시대의 차이, 후기근대적 차이는 더이상 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명역학적 차원에서 차이란같은것이나 마찬가지다. 차이에는 말하자면 격렬한 면역 반응을 촉발하는 가시가 빠져 있다. 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한다. 낯선 것은 이국적인것으로 변질되며, 여행하는 관광객의 향유 대상이 된다. 관광객, 또는 소비자는 더 이상 면역학적 주체가 아니다.  13-14


보드리야르 "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17


긍정성의 과잉에 대한 반발은 면역 저항이 아니라 소화 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 반응으로 나타난다.  18-19


보드리야르 "네트워크와 가상세계의 폭력은 바이러스성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전염, 연쇄 반응, 모든 면역성의 제거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적이다. 또한 전통적인 부정적 폭력과 반대로 긍정성의 과잉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끝없는 증식과 비대화, 변이를 통해 몸을 잠식해 들어오는 암세포처럼, 가상성과 바이러스성 사이에는 은밀한 친족성이 있다."

보드리야르가 구성한 적(敵 원수적)의 계보학에 따르면 최초 단계의 적은 늑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늑대는 외부의 적으로서 사람들은 이러한 적을 막기 위해 요새를 짓고 성벽을 쌓는다." 다음 단계에서 적은 쥐의 형태를 취한다. 이 적은 지하에서 활동하며 위생학적 수단으로 퇴치할 수 있다. 그다음 단계인 해충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바이러스적 형태의 적이 출현한다. "네번째 단계는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사실상 사차원에서 활동한다. 바이러스는 시스템의 심장부에 들어와 있는 까닭에,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는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제가 된다." "전 지구에 퍼져 있는 적, 하나의 바이러스처럼 도처에 스며들고 권력의 모든 틈새로 파고드는 유령 같은 적"이 출현한다. 바이러스성 폭력은 시스템 속에 테러리즘의 비밀 세포로 자리를 잡고 시스템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려 하는 개별자들에게서 나온다.  19-20


신경성 폭력은 어떤 면역학적 시각에도 포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부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다.  21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No'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24


알랭 에랭베르(Alain Ehrenberg)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우울한 자는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 ...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우울증의 이러한 측면은 에랭베르의 논의에서 빠져 있다. 그는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을 간과하고 이러한 폭력이 심리적 경색을 야기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26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28




깊은 심심함


멀티태스킹이라는 시간 및 주의 관리 기법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 멀티태스킹인 것이다.

먹이를 먹는 동물은 이와 동시에 다른 과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먹는 중에 도리어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새끼들도 감시하고, 또 짝짓기 상대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수렵자유구역에 사는 동물은 주의를 다양한 활동에 분배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까닭에 깊은 사색에 잠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먹이를 먹을 때도, 짝짓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에 사색적으로 몰입할 수 없다. 언제나 그 배경의 사태도 계속 정신적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뿐만 아니라 컴퓨터게임과 같은 활동 역시 야생동물의 경계 태세와도 크게 다르지 않는 주의구조, 넓지만 평면적인 주의구조를 생산한다.  30-31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hyperattention)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 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우리는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서 안식한다." 이완의 소멸과 더불어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이 공동체의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 우리의 활동 공동체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걸으면서 심심해하고 그런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정을 잃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거나 이런저런 다른 활동을 해볼 것이다. 하지만 심심한 것을 좀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걷는 것 자체가 심심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그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달리기, 또는 뜁박질은 새로운 움직임의 방식이라기보다 그저 걷기의 속도를 높인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춤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움직임이다. 오직 인간만이 춤을 출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은 걷다가 깊은 심심함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이런 심심함의 발작 때문에 걷기에서 춤추기로 넘어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걷기가 그저 하나의 선을 따라가는 직선적 운동이라면 장식적 동작들도 이루어진 춤은 성과의 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치이다.  32-34


떠다니는 것,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이야말로 오직 깊은 사색적 주의 앞에서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긴 것, 느린 것에 대한 접근 역시 오랫동안 머무를 줄 아는 사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속의 형식 또는 지속의 상태는 과잉활동성 속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34





보는 법의 교육


사색적 삶은 보는 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전제한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과업을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배움의 목표는 니체에 따르면 "고상한 문화"이다.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눈을 평온과 인내, '자기에게 다가오게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눈으로 하여금 깊고 사색적인 주의의 능력,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정신성을 갖추기 위한 최초의 예비 교육"이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의 부재 상태, 천박성은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 자극에 대해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다. 여기서 니체가 표명하는 것은 바로 사색적 삶의 부활이다. 이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저 긍정하는 수동적인 자기 개방이 아니다. 사색적 삶은 오히려 몰려오는, 또는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며, 시선을 외부의 자극에 내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 조종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 행위를 통해 사색적 삶은 어떤 활동과잉보다도 더 활동적으로 된다. 실상 활동과잉은 다름 아닌 정신적 탈진의 증상일 뿐이다.  47-48


활동성이 첨예화되어 활동과잉으로 치달으면 이는 도리어 아무 저항 없이 모든 자극과 충동에 순종하는 과잉수동성으로 전도되고 만다는 것이 바로 활동성의 변증법이다. 그것은 자유 대신 새로운 구속을 낳는다. 더 활동적일수록 더 자유로워질 거라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48


니체가 말한 "중단하는 본능"이 없다면 행동은 안절부절못하는 과잉활동적 반응과 해소 작용으로 흩어져버릴 것이다. 순수한 활동성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연장할 뿐이다. 진정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중단의 부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머뭇거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단, 막간, 막간의 시간이 아주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 [활동적 인간의 주된 결함]이라는 아포리즘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보통 고차적 활동을 하는 법이 없다. [..] 이런 점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 돌이 구르듯이 활동적인 사람들도 기계적인 어리석게 계속되는 활동은 중단되는 일이 거의 없다. 기계는 잠시 멈출 줄을 모른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가속화와 활동과잉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분노하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 분노는 특별한 시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반적인 가속화 및 활동과잉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가속화와 활동과잉은 넓은 시간적 지평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때 미래는 현재의 연장시킨 것 정도로 축소되고, 다른 것에 시선을 던질 수 있는 부정적 태도가 싹틀 여지는 전혀 없다. 반면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제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부논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분노는 짜증과 구별된다. 오늘의 사회를 특징짓는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간다. 사람들은 불가피한 일에 대해서도 짜증을 내곤 한다. 짜증과 분노의 관계는 공포와 불안의 관계와 유사하다. 공포가 특정한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불안은 존재 자체의 문제이다. 불안은 현존재 전체를 붙들고 흔들어댄다. 분노 역시 하나하나의 사태에 관한 것이 아니다. 분노는 전체를 부정한다. 분노가 보여주는 부정성의 에너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노는 예외적 상태이다. 세계가 점점 더 긍정적으로 되어가면서 예외적 상태도 더 줄어든다. 아감벤은 이처럼 긍정성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다. 예외 상태가 한계를 이탈하여 정상 상태가 되어간다는 그의 진단과는 반대로, 오늘날 사회의 전반적인 긍정화는 모든 예외 상태를 흡수해버린다. 그리하여 정상 상태가 전체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증대되는 세계의 긍정성이야말로 "예외 상태"나 "면역성"과 같은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 이유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목받는다고 해서 이런 개념들이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이들이 소멸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49-51


사회의 긍정성이 증가하면서 불안이나 슬픔처럼 부정성에 바탕을 둔 감정, 즉 부정적 감정도 약화된다. 사유 자체가 "항체와 자연적 면역성으로 이루어진 그물"이라면, 부정성의 부재는 사유를 계산으로 변질시킬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뇌보다 더 빨리 계산할 수 있고 엄청난 데이터를 조금도 토해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컴퓨터에 어떤 종류의 이질성도 들어설 여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긍정기계이다. 천재 백치가 보통은 계산기 밖에 해낼 수 없는 과제를 척척 해내는 것은 바로 부정성의 부재와 자폐적 자기 관련성 덕택이다. 세계가 전반적으로 긍정화되는 추세 속에서 개인도 사회도 자폐적 성과기계로 변신한다. 또는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과도한 노력이 가속화 과정에 방해가 되는 부정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인간이 부정의 존재라고 한다면, 세계의 전면적 긍정화는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헤겔에 따르면 부정성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생동하는 상태로 지탱해주는 것이다.  51-52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무력함은 단순히 긍정적인 힘의 대립항일 뿐이다. 무력함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그 무언가에 대한 종속이며 그 점에서 긍정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는 이런 긍정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 힘 없이 오직 무언가를 지각할 수 있는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떤 "정신성"도 생겨날 수 없을 거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무언가 생각할 힘밖에 없다면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대상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기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52-53


무위의 부정성은 사색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예컨대 참선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들이닥쳐 오는 것에서 스스로 해방함으로써 무위의 순수한 부정성, 즉 공(空 빌공)에 도달하려 한다. 그것은 극도로 능동적인 과정이며 수동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참선은 자기 안에서 어떤 주권적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연습, 중심이 되고자 하는 연습이다. 이에 반해 긍정적 힘만을 지닌 사람은 대상에 완전히 내맡겨진 신세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활동과잉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형태의 행위로서 어떤 자유로운 행동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그것은 긍정적 힘의 일방적 절대화가 낳은 결과이다.  53-54





피로 사회 

피로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모리스 블랑쇼


활동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도핑은 말하자면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최근에는 어엿한 과학자들조차 그런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외과의사가 신경향상제의 도움으로 좀더 정신을 집중하면서 수술할 수 있다면 실수도 줄어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신경향상제를 복용하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다.  65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을 전제하는 면역학적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66


탈진의 피로는 긍정적 힘의 피로다. 그것은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 원래 그만둔다는 것을 뜻하는 안식일도 모든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날,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는 날이다. 그것은 막간의 시간이다. 신은 창조를 마친 뒤 일곱째 날을 신성한 날로 선포했다. 그러니까 신성한 것은 목적 지향적 행위의 날이 아니라 무위의 날,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날인 것이다. 그날은 피로의 날이다... 한트케는 이러한 막간의 시간을 평화의 시간으로 묘사한다.  72






역자후기


한병철은 긍정성의 과잉이 자아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치 늘어나는 자기 자신의 지방질에 병들어가는 사람처럼,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마모시켜간다. 그 결과 스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성과를 위해 약물을 불사하는 도핑주체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금지, 강제, 억압의 철폐, 타자에 대한 관용의 확대가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유토피아로 이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늘의 주체는 오히려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피로는 성과주체의 만성질환이다.  120-121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학교 교육과 관련하여 체벌이나 학생 인권 조례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은 우리 역시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일 것이다. 의무 과목의 축소 및 철폐, 자기 주도 학습의 강조,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별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입시 전형 방식의 도입(예컨대 입학사정관제)은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주체로 길러내기보다는 더욱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경쟁, 한병철이 말하는 "절대적인 경쟁"(남과의 상대적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의 무대로 몰아가고 있다. 입시 지옥에서의 해방을 약속한 최초의 교육부 장관이 내세운 구호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20개에 가까운 교과목의 무게에 신음하던 학생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을 이 구호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며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122-123


한병철은 성과사회와 성과주체의 이상이 오늘의 세계에서 전일적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요구라면,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한병철은 그것을 착취의 진화로 파악한다.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126-127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한 병철은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우울증을 이 시대의 핵심적 질병으로 지목하고, 그 배후에 성과사회의 압력이 놓여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병의 진단은 나왔지만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타자의 강제가 인간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런 타자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통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모델이다. 그러나 우울증의 배후에 놓인 성과사회의 압력은 단순한 외적 강제가 아니라 유혹의 형태를 취하며, 오직 인간 자신의 욕망을 매개로 해서만 관철된다. 따라서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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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판 서문 

1930년 이후 나는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어떤 권력층보다도 더 확고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 사회로 변모하는 분명한 조짐을 보았다.  12




(메이저) 나는 오래 살았고, 우리에 혼자 있을 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어떤 동물 못지않게 삶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말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20


자, 동지 여러분, 우리 생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21


인간을 정복할 때에도 그들의 악습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25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가장 탁월했다. 나폴레옹은 덩치가 크고 꽤 사납게 생긴, 이 농장에서 유일한 버크셔종 수퇘지로 말수는 적지만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스노볼은 나폴레옹보다 활발하고 언변도 더 뛰어나고 더 창의적이지만 속은 덜 깊다는 평을 들었다. 

스퀼러라는 덩치가 작고 살이 찐 돼지. 그의 볼은 둥글둥글하고 눈은 번쩍거리고 움직임은 민첩하고 목소리는 날카ㅇ로웠다. 그리고 언변이 뛰어나고 어려운 문제를 토론할 때면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버릇이 있었는데, 아무튼 그것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다른 동물은든 스퀼러가 검은색을 흰색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도 가졌다고 이야기했다.  30-31



커다란 창고의 한쪽 벽.. [7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누구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40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생충 같은 인간이 없어지자 각자가 먹을 음식은 더 많아졌다.  43


다른 동물들은 투표할 줄은 알았지만 스스로 결의안을 내놓을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46


나폴레옹은 스노볼이 조직한 위원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어린 동물들의 교육이 이미 다 자란 동물들의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49


나폴레옹에 따르면 동물드이 총기를 구입해 사용법을 익혀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기를 구입해 사용법을 익혀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스노볼의 주장은 보다 많은 비둘기들을 보내 다른 농장의 동물들에게 반란을 선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66


사실 그들(다른 동물들)은 나폴레옹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스노볼의 말을 들을 때면 또 그것이 옳은 것 같았다.  66


나폴레옹은 개들을 데리고 메이저가 일전에 연설했던 높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일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회의를 이제부터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런 회의는 시간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농장의 운영에 관한 모든 문제는 자기가 의장직을 맡고 있는, 돼지들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69


스퀼러는 농장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는 동물들에게 인간들과 거래해서는 안 된다느니,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그런 결의안은 통과된 적이 전혀 없고, 심지어 제안조차 한 적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순전히 공상이며 어쩌면 맨 처음 스노볼의 입에서 나온 거짓말이 퍼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80


돼지들은 갑자기 농장 본채로 이사해 거기서 거주하게 되었다.  82


(스퀼러) 동지들, 여러분은 우리 돼지들이 요즘 본채의 침대에서 잔다는 말을 들었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침대는 그저 잠을 자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83


클로버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했다. 만약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수년 전에 인간을 전복시키기 위해 일을 벌였을 때 목표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 공포와 학살의 장면은 메이저 영감이 처음 그들에게 반란을 선동했던 그날 밤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미래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동물들이 배고픔과 매질로부터 해방되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메이저가 연설하던 그날 밤 자신의 앞발로 새끼 오리들을 감싸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동물들의 사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이 농장에 충성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나폴레옹의 지도를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나 그녀와 다른 동물들은 그 때문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풍차를 건설하고 존스의 총탄에 과감히 맞선 것은 결코 그런 것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말솜씨는 부족했지만 아무튼 그녀의 생각은 그러했다. 

마침내 그녀는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노래가 대신할 수 있다는 듯 '영국의 짐승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101-102


세 번째 노래를 막 끝냈을 때 스퀼러가 두 마리의 개를 대동하고 무언가 중대 발표라도 할 것처럼 동물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폴레옹 동지의 특별 지시에 따라 '영국의 짐승들'이 금지되었다고 발표했다. 지금부터 이 노래는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동물들은 깜짝 놀랐다.

[왜 금지되었죠?] 뮤리엘이 소리쳐 물었다.

[동지, 이 노래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소.] 스퀼러가 딱딱하게 말했다. ['영국의 짐슬들'은 반란의 노래였소. 그러나 반란은 이제 끝났소. 오늘 오후의 반역자 처형이 마지막 행동이었소. 우리는 농장 안팎의 적들을 모두 패배시켰소. '영국의 짐승들'에서 우리는 미래의 좋은 사회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소. 그러나 그 사회는 이미 성취되었소. 분명이 이 노래는 이제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소.]

비록 겁에 질려 있었지만 몇몇 동물들은 항의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그 순간 양들이 여느 때처럼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고 외쳐 댔다. 이 외침 소리는 몇 분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토론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  102-103


며칠 후 처형 사건이 몰고 온 공포가 누그러져 갈 때, 일부 동물들은 7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인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를 기억하거나 혹은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클로버는 뮤리엘을 데려갔다. 뮤리엘은 그녀에게 그 계명을 읽어 주었다. 거기에는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씌어 있었다.  105


그해 내내 동물들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했다. 농장의 일상적인 일을 다 하면서 전보다 두 배나 더 두껍게 풍차의 벽을 쌓고 예정된 날짜에 풍차 건설을 끝낸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었다. 존스 시대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고 먹는 것도 더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스퀼러가 기다란 종이 두 마리를 앞발로 들고 각 식량 생산량이 200퍼센트, 300퍼센트, 혹은 경우에 따라 500퍼센트 증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동물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란 전의 생활상이 어땠는지 뚜렷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6


스퀼러는 연설할 때면 나폴레옹의 지혜, 특히 다른 농장에서 무지와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불행한 동물들에 대한 그의 사랑 등을 생각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107


나폴레옹 동지가 이 세상에서 취하는 마지막 조치로서 엄한 포고령을 내렸다고 했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121-122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두 개의 단어가 들어 있었다. 실제로 벽에 적힌 계명은 이랬다. '어떤 동물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123


돼지들과 개들의 배급량은 그대로 둔 채 다른 동물들의 배급량은 다시 한 번 줄어들었다. 스퀼러는 식량 배급을 지나치게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동물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쨋든 그는 겉으로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실제로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다른 동물들에게 어렵지 않게 증명해 보였다. 물론 당분간은 배급량을 재조정할 필요(스퀼러는 한 번도 '감소'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재조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가 있지만 존스 시대와 비교하면 사정이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25


고달픈 일들을 수없이 감내해야 했지만, 그래도 현재의 삶이 과거보다 훨씬 더 품위 있다는 사실이 그 고달픔을 덜어 주었다.  128


양들은 자진 시위에 가장 열성적이었는데, 간혹 누군가가 이 행사는 시간 낭비이고 추위에 떨며 오래 서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몇몇 동물들은 돼지와 개가 주위에 없을 때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양들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입을 확실히 다물게 했다. 그러나 대체로 동물들은 이 축하 행사를 즐겼다. 어쨌거나 그들은 자기들이 농장의 진정한 주인이고 따라서 하는 일도 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하여 노래와 행진, 스퀼러의 통계 수치, 우렁찬 총포 소리, 젊은 수탉의 울음소리, 펄럭이는 깃발 등으로 동물들은 배고픔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었다.  129


까마귀 모세..[동지들, 저기 위쪽에.] 그는 커다란 부리로 하늘을 가리키며 엄숙하게 말하곤 햇다. [저기 위쪽, 검은 구름 저 너머에 '얼음사탕 산'이 있어. 우리 같은 불쌍한 동물들이 일하지 않고 영원히 편히 쉴 수 있는 행복한 나라가 있단 말이야!]...

그들이 생각하기에 현재 자신들의 삶은 배고프고 고달팠다. 그런데 여기 아닌 다른 어딘가에 현재보다 더 나은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해서 과연 잘못되고 옳지 못한 것일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세에 대한 돼지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얼음사탕 산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라고 경멸조로 말하면서도 그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고 매일 맥주 한 홉씩 제공하면서 농자에 살도록 허용했다.  130-131


여러 해가 흘렀다. 계절들이 여러 번 왔다 가고, 짧은 동물들의 생애는 어느덧 빠르게 흘러갔다. 클로버, 벤저민, 까마귀 모세, 그리고 상당수의 돼지들을 제외하고는 반란 전의 옛 시절을 기억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140


이제 농장에는 초창기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식구가 많이 늘어나 있었다. 많은 동물들이 새로 태어났으며 그들에게 반란은 단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희미한 전통에 불과했다.  141


벤저민 영감만이 긴 자기 생애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농장의 사정은 옛날보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며, 배고픔과 고난과 실망은 삶의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물들은 희망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이 동물 농장의 일원이라는 영예와 특권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 농장은 영국 땅 전체에서 동물들이 경영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143-144


비록 그들의 삶은 고달프고 또 그들의 희망이 모두 성취된 것은 아니지만, 동물들은 자신들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들이 굶주린다면 그것은 독재자 인간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을 했다면 그것은 적어도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 했다. 그들 중 누구도 두 다리로 걷지 않았다. 어떤 동물도 커다란 동물을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했다.  144-145


클로버가 입을 열었다. [난 시력이 나빠. 하긴 젊었을 때도 저기 씌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저 벽은 달라 보여. 7계명이 그대로 있어, 벤저민?]

벤저민은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이번만은 깨뜨리기로 하고 벽에 쓰인 것을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거기엔 7계명은 온데간데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147


나폴레옹이 파이프를 물고 농장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랬다. 이상하지 않았다. 돼지들이 존스 씨의 옷자엥서 옷을 꺼내 입어도, 나폴레옹이 검은색 코트에 반바지 사냥복을 입고 가죽 각반을 차고 나타나도, 또 그의 총애를 받는 암퇘지가 존스 부인이 일요일이면 업던 물결무늬 비단 옷을 입고 나타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148


폭스우드 농장의 필킹턴 씨가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일동에게 건배를 청할 생각인데 그에 앞서 꼭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동물 농장의 하층 동물들이 이 나라의 어떤 동물들보다 일은 더 많이 하면서도 식량은 더 적게 배급받는 이런 정책은 당연하다.  149-150


[만약 여러분에게 다루어야 할 하층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다루어야 할 하층 계급이 있습니다!] 이 재치 있는 말을 듣고 좌중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필킹턴 씨는 그가 동물 농장에서 관찰한 대로 돼지들이 동물들에게 식량 배급은 적게 하면서도 일은 오랫동안 시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동물들이 대체로 없다는 사실에 대해 돼지들에게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냈다.  151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154




에세이 - 작가와 리바이어던(1948년 3월에 써서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문학잡지 <정치와 문학> 여름호에 실림)


우리는 자신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참된 문학 기준들이 적용된다고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157


내가 알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부르주아]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이며, 반파시스트이며, 반제국주의자이며, 인종 차별을 경멸하고, 인종 편견에 분노를 터뜨린다.  159


실제로 노동자들은 자기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사회주의 쪽으로 많이 넘어갔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들 또한 찾취자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제는 어느 모로 보나 노동자 계급의 생활수준이 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 현상 유지도 어려운 지겨엥 이르렀다. 부자들을 몰아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일반 대중은 소비를 더 적게 하든가 생산을 더 많이 해야 한다.  162-163


정통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상 풀리지 않는 모순을 물려받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신중한 사람들은 모두 산업주의와 그 생산품에 불쾌감을 갖지만, 빈곤의 극복과 노동 계급의 해방을 위해서는 산업화의 축소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떤 일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일종의 강제 없이는 결코 행해지지 않는다. 또 강력한 군사력 없이는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외에도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가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에 개인적으로 충성하지 않아야만 이끌어 낼 수 있는 명백한 결론이 있다. 일반적인 반응은 그 질문을 우리 마음의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답을 유보한 채 모순적인 슬로건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163-164


내키진 않지만 할 일을 한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그 일에 동반되는 신념까지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한 작가가 정치에 참여할 때, 그는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참여해야지 작가로서 참여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이 속한 정당을 위해서는 절대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  165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므로 기꺼이 참전할 수 있지만, 당연히 전쟁 선전문 쓰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작가가 정직하다면, 자신의 글과 정치 활동이 상호 모숨될 때도 있다. 분명 이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면 자신의 충돌을 왜곡시키지 말고 침묵을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166


정치란 것이 얼마나 더럽고 비열한 사업인지를 알고 있지만..  166-167


우리는 정치에서 두 개의 약 가운데 어떤 것이 덜 악한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뿐이며 그 이상의 것은 결코 할 수 없다.  167




작품해설 - 정치적 글쓰기와 동물 소설

1917년 러시아에서 차르 체제를 무너뜨린 노동자들의 혁명이 스탈린 등장 이후 애초의 혁명 정신은 사라지고 전체주의적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줄곧 주시해 왔다.


<동물 농장>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동물들은 모두 알레고리 수사법의 특성상 고도의 비유적 수법으로 암시되어 있다.  176


이 소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부터 1943년 테헤란 회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러시아 역사에 걸친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76-177




돼지들 - 거대한 러시아의 관료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지식인들을 가리킨다.


나폴레옹 - 러시아 혁명기의 스탈린을 가리킨다. 그는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지향했던 메이저 영감의 혁명적 이상주의를 저버리고 1인 독재자로 군림한다.


스노볼 - 트로츠키(1905년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 공산주의 혁명가. 스탈린과 극도로 대립하다 결국 1927년 당에서 축출되고 1929년에 소련에서 추방당했다)를 가리킨다. 트로츠키처럼 스노볼은 뛰어난 연설가이며 혁명에 대한 지적 열망을 가진 인물이다. 혁명적 이상주의를 실천하고자 자신을 희생시키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나폴레옹에게 쫓겨나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한다. 진정한 혁명가의 표본이다.


메이저 영감 - 혁명의 기본적 이론과 이상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를 가리킨다.


스퀼러 - 그는 새로운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하면서 그 사회 안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하는 인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 선전 기구의 거대한 선전 활동을 반영한다.


복서 - 러시아 혁명기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 복서는 모든 사회 체제의 성공에 꼭 필요한 정직하고 열성적인 무지한 일반 노동자를 대변한다. 그 같은 노동자는 독재나 전체주의 정권하에서 필연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이다.


벤저민 -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성실함이나 능력을 의심하는 냉소주의자이자 또 많은 사실적 이론의 진실을 의심하는 회의론자를 대변한다. 다른 동물들처럼 그 역시 읽는 법을 배우지만 그 기술을 유용한 목적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작가는 힘 있는 지식인도 신념이나 이상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그를 통해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클로버 - 동물 농장의 모성적 동물이다. 복서의 단순한 선과 힘의 특질을 보완한다. 어떤 다른 동물보다도 동정과 친절함을 많이 보여 주는 동물로, 끝까지 살아남으며 억압받는 동물들을 위한 안락하모가 힘의 원천이 된다.


몰리 - 몰리는 성격이 변덕스러운 보조적 역할을 하는 동물로 엘리트 계급을 대변한다. 그녀는 이 소설의 중간쯤에서 사라진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다른 동물들을 착취한다. 클로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개들 - 다른 동물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러시아의 비밀경찰을 가리킨다. 


양들 - 개들과 더불어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선전대이다. 양들은 대중을 대변하며 대중들이 어떻게 조종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모세 - 까마귀 모세는 어떤 면에서 피지배자보다는 지배자와 손을 잡는 동물로 교회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오웰의 견해를 보여 준다.


뮤리엘 - 염소 뮤리엘은 메이저 영감의 회합에 참가한 똑똑한 동물들 중 하나이다. 그녀는 읽는 법을 배우지만, 읽은 것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내리지 못한다. 그녀는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사실이라고 믿으며 7계명이 돼지들에 의해 바뀌었을 때도 결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존스 -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를 가리킨다. 


필킹턴 - 폭스우드 농장을 경영하는 인간. 영국의 처칠을 가리킨다.


프레더릭 - 핀치필드 농장을 경영하는 인간. 독일의 히틀러를 가리킨다.


매너 농장 - 니콜라이 2세 치하의 러시아를 가리킨다.


동물들의 반란 -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10월 혁명'을 가리킨다.


외양간 전투 - 10월 혁명 이후 일어난 내란. 이 전투에서 존스와 함께한 일당은 볼셰비키를 몰아내려고 했던 외국 세력들이다. 


풍차 전투 -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을 가리킨다.


암탉들의 반란 - 1921년 1만 5,000여 명의 수병과 시민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핀란드 만에 위치한 크론슈타트의 해군 기지에서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궐기한 사건을 나타낸다.


풍차 건설 - 1928년 급속한 산업화와 농장의 집단화를 요구하며 시작된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나타낸다.


동물들의 거짓 자백과 처형 - 1936년부터 1938년 사이에 있었던 '스탈린 대숙청'을 가리킨다.


돼지들과 인간들의 파티 장면 - 제2차 대전 기간인 1943년 11월 28일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이란의 테헤란에 모여 회의를 한 [테헤란 회담]을 가리킨다.  177-183


오웰 <동물 농장>에서 혁명의 이상적 사상은 과연 실천 가능한 철학인가를 인간의 권력 욕구와 결부시켜 그 물으모가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183


혁명 초기부터 이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평한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고 돼지들을 중심으로 한 특정 엘리트 사회로 변질되기 시작.

작가는 권력 쟁취를 위해 비밀리에 개들을 키우는 나폴레옹의 경우를 포함해 엘리트 집단으로 성장하기 위한 돼지들의 의도적 행위를 혁명적 이상에 대한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돼지들의 권력 욕구와 그에 따른 필연적인 타락.  184


동물들은 스퀼러의 조직적인 거짓말, 양들의 대중 선동 등과 같은 언어의 왜곡으로 인해 과거에 대한 진실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에겐 과거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이다.  185


동물 농장에서 전개되는 반란 이후의 상황은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에 대해 생각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혁명이 되고 만다. 혁명의 기본 문제는 과거의 독재자들이 행사했던 억압적 권력이 아닌 공정한 권력을 이상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 하는 것이지만, 동물 농자의 경우에는 나폴레옹을 위시한 돼지들의 권력 욕구로 인해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185-186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돼지들이 인간화되는 서글픈 장면은 '실천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스적 이상'에서 출발한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이라는 한 개인의 전제 정치로 전락해 버린 러시아의 정치 상황을 포함한 당대의 정치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환멸감을 극명히 보여 준다...

오웰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독재자 스탈린의 등극으로 애초의 이상과는 다르게 전체주의적 상황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주의적 전망이 점점 절망적으로 흐럴간 것이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자체를 반대한 것은 결코 아니다.  186-187


<동물 농장>에서 오웰은 '이상'이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자연적 본능인 '권력에 대한 욕망'때문에 계급 없는 사회는 불가능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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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았을 때 종교, 그러니까 관념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던사람들이 지배층, 곧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유물론적 관점을 기반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36


유물론자들은 항상 물질세계 및 현실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유행을 선도할 것이고, 관념론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관념이라는 틀에다가 현실을 끼워 맞춰서 세상을 바라볼 테니 유행에 뒤처지고 낡은 것을 고수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겠군요.  38


개인의 읫기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보는 견해를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합니다. 반면 플라톤의 이데아나 기독교의 신처럼 초개인적이고 초감각적인 정신적 실재를 가정하여 모든 것의 근원으로 삼는 견해를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하고요.  40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세상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어떤 변하지 않는 틀을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49


변증법적 세계관은 세상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50


헤겔이 변증법을 연구하면서 쓴 '모순'


'모순'이 변화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

어떤 현상에서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파악해내는 것이 중요.

그래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화와 발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을 테니까.  55



양적 변화가 특정 정도를 넘어서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양질 전화의 법칙'은 모순에 따른 변화와 발전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법칙입니다. 모순에 따른 변화 발전은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양적 변화가 계속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입니다.  73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고 느리게 보이며,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반면에 질적 변화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급격하고 불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77


부정변증법. '변증법적 부정'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발전 과정에서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의 의해서 '부정'되는 것.  80

새로운 것이라는 게, 기존의 낡은 것과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생판 다른 것은 아닙니다.  81


사물이나 현상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83


연속된 부정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변화 발전, 곧 진보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부정이라는 단어를 되풀이 쓴 것이지요.  84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진리란 인간이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피안(彼岸 저 피, 언덕 안)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적 진리란 절대적 진리의 일부 측면이락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것이지요.  123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132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게 되는 의식을 '사회적 의식'이라고 합니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사회적 의식'을 공유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놓인 환경이 같기 때문입니다.  135


'존재'가 원인이고 '의식'이 결과인 이상, 역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면 '의식'의 배후에 작용하는 '존재' 양식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됩니다.  144


설명을 듣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인간은 다양한 존재 양식에서 살고 있고요. 고온 건조한 기후와 물이 부족한 토양에 산다는 것이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존재'양식입니다. 이러한 존재 양식이 그들에게 조장이라는 풍습, 그러니까 새에게 인간의 시신을 내어주자는 '의식'을 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멕시코의 마야인들이 옥수수 신을 최고신으로 섬긴 이유는 그들의 주식이 옥수수이기 때문입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마야인들의 '존재'양식은, 옥수수 신이 최고신이라는 '의식'을 낳았습니다.  145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든지, 바람이 많이 분다든지, 주변에 강이 흘러서 토지가 비옥하다든지, 비가 많이 온다든지, 주변에 철광석이 많다든지, 아무튼 우리 의식에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 양식의 요소들은 참으로 많고도 다양합니다.  146


역사 유물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변수들 가운데 역사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인을 찾아내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역사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입니다.  148-149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생산 활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설명하는 개념들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형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생산력'이라고 합니다.  150


생산력 = 노동력 + 생산수단


노동하는 능력이 바로 '노동력'입니다.

필요한 원료와 시설이 '생산수단'입니다.


생산수단 = 노동대상 + 노동수당


기계는 노동수단이고 원료는 노동대상.  151-152


생산관계란, 인간 사회에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질 때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말합니다.  152


생산관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54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통틀어서 그 사회의 '생산양식'이라고 합니다. 


생산양식 = 생산력 + 생산관계  157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은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이었고요.  160


생산력이 발전하면 낡은 생산관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161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함께 통일되어 존재하면서 생산양식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한 사회에 생산양식의 구성요소로서 함께 존재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 사이에서 모순이 생겨납니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162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바뀌는 시기를 우리는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부르지요.  163


지금 전 세계에 물자는 넘치고 있어요.

'공황'이 일어나는 순간 그 넘쳐나는 상품들이 팔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171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私的 사사로울 사, 과녁 적) 성격 사이의 모순'에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생산력과 관련이 있고 '소유의 사적 성격'은 생산과계와 관련이 있는데요. 

생산이 사회적 성격을 띈다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 활동이 이미 개인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죠. 곧 생산의 사회적 성격이 강해진 것입니다.

소유 형태는 거의 완전히 개인적인 형태, 곧 사적 소유가 주를 이룹니다.  172-173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변화 발전을 거쳐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생산력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관계의 사회적 성격과 맞아떨어져서 공황이라는 파괴적 현상이 없어지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182



'토대(base)'와 '상부구조(superstructure)'


어떤 사회의 '토대'란 그 사회의 생간관계 총체를 말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나 봉건적 생산 관계등을 떠올리면 됩니다.  189


상부구조란 것은, 앞서 얘기한 그 사회의 '토대'위에 서 있는 정치적, 도덕적, 예술적, 종교적, 철학적 견해 및 그에 상응하는 기관이나 조직 등을 말합니다.  190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토대'가 수많은 '상부구조'들을 낳고 있어요. 농노처럼 토지와 신분제에 얽매이지 앟은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은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자본가 개인의 소유로 단단히 보장하기 위해서 사유재산 보호를 보장하는 법률이 생겼고요. 이런 법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토대'에 기반을 둔 상부구조인 것이죠.  191


제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재미있는 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던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을 찾아가서 지능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부족 사람들 각각에게 검사 용지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각자 개별적을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문제지를 놓고 다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하지 뭡니까. 서양 사람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 각자가 따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랬더니 권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의논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자꾸 각자가 따로 해결하라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이 원주민들에게는 문제를 각자가 따로 해결한다는 상황 자체가 전혀 생소할 뿐더러 이해도 되지 않앗습니다. 이 원주민 부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부족의 구성원들이 함께 도와가면서 생활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생존'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수렵이나 채집 활동을 통해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맹수나 다른 부족과 싸워가며 '생존'하려면 함께 똘똘 뭉쳐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공동체 생활을 잘해야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의 법칙이 있는 곳이 원시공동체 사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함께 도와가면서 사는' 삶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런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같은 '이기심'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얻은 지시고가 정보를 빨리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자신이 구한 먹을거리도 함게 나눠 먹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기심'은 그 사회에서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195-196


자본주의 '게임의 법칙'. 더럽고 아니꼽더라도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장이나 토지, 원료, 기계 등 이른바 '생산수단'이 자본가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지요. 노동자는 노동력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도안 필요한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이기심'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197


자본주의 사회 -> 모든 것이 상품으로 된 사회.  200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알아야 우리의 혀재를 판단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죠.  204


새로운 토대가 낡은 상부 구조를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낡은 상부구조가 적극적으로 새로운 토대를 거부할 수도 있다.  207



계급이란 것을 들여다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피지배계급 간에는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착취가 존재하는 사회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싱이 있습니다. 바로 빈부 격차지요.  

구조적으로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빼앗는 사람은 늘 빼앗고, 빼앗기는 사람은 늘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214


전 세계에서 수많은 농민이 봉건 지주에 맞서 봉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동학농민운동도 그렇고, <삼국지>에 나오는 황건적의 난도 같은 맥락입니다.  221


계급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회를 변혁하는 근본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계급투쟁이라고 하면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는 것으로만 새악하지요. 하지만 착취계급에 대한 피착취계급의 투쟁은 항상 새로운 사회를 여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수많은 농민이 봉건적 질서를 해체하는 데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223


지배계급은 불안정한 상황을 억누르고 지배 체제를 계속 유지해야만 자신들의 부를 지킬 수 있겠지요. 화가 난 노예들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노예주들은 권력을 잃고 말 테니 말이에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가'입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기구, 지배계급의 권력기구로 보았습니다.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합니다. 그러한 경제적인 권력으 가지고 잇기 때문에 피지배계급을 예속시킬 수 있죠. 하지만 그 사이에는 계급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억누르고 계속 복종시키기 위해 조직된 힘이 필요합니다. 군대나 경찰, 법원, 감옥같이 조직된 폭력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이러한 국가의 폭력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군대와 경찰은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지만, 사회의 나머지 성원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불법 행위가 됩니다. 이런 폭력기구들의 조직을 통해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정치적을 지배합니다.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국가기구를 통해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면서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발생은 계급 사회의 발생과 맞물려 있습니다. 국가라는 것이 계급 억압 기구이기 때문에 계급의 존재 자체가 국가라는 기구가 존재하기 이한 전제 조건인 셈이죠.  225-226


우리는 국가가 사회의 전체 세력을 중립적으로 대변한다고 생각하도록 배워왔습니다.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법률이 제정되고, 그 법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227


혁명은 지배계급의 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뒤따릅니다.  237


진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민중이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틀어쥐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그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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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이 쓰인 1848년, 당시의 세계 자본주의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해면하고 있다.  9


박종철출판사에서 1998년에 출간된 <공산주의 선언>을 바탕으로.(출판사와 번역자는 다르지만 전문을 참고하길 원하면 클릭)


어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의 전체적인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의 생애만 알아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이 어떤 시대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회적 객곽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19


철학자들은 작가 한 짓을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짓을 자주 한다.  21


마르크스는 <공산단 선언>을 쓰면서 결코 시간을 초월한 성스러운 문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첫 구절은... 이것이 사라질 수 있는 상품이라는 것, 후손을 염두에 두지 않고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구체적 순간에 쓴 것임을 강조한다.

<공산당 선언>은 역사를 전사(前史)와 미래사로 나누엇다는 점에서 역사철학적인 의의가 있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작동 원리와 그것에 연관된 정치적 사태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현대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맹아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치경제학적 의미가 두드러진다. 더 나아가 <공산당선언>은 근대의 모더니티가 가진 파편적, 허무적 측면들을 관조함으로써 현대 문화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기초를 제공한다는 문화이론적 의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39-40


혁명의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보여준 태도는 선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혁명을 위해 노동자를 준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40


나는 그를 '진정한 근대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근대인은 어떤 사람을 지칭할까.

'계몽', 독일어로는 Aufklarung('아우프클래롱'이라 읽는다), 영어로는 Enlightement다. 또 하나는 '주관성' 또는 '주체성(Subjectivity)'이다. 이 둘은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계몽은 말 그대로 'Enlightement' 즉 '빛을 비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Aufklarung'은 '명확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근대를 이런 시대로 규정한 것이다. 빛을 비추거나 명확하게 했다는 것은 뭔가 어두운 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게 뭘까? 그건 바로 중세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암흑의 중세, 밝은 근대라는 식의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과 주관성에 대립되는 것은 이처럼 중세시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인 단테가 쓴 <신곡>을 예로 들어보자. 르네상스하면 세계사 시간에 '인간의 재발견' 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인간을 재발견하면 신은 완전히 부정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된다. <신곡>은 로마 최고의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다가 베아트리체(단테의 애인었다고 한다)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이르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이 쓰인 시기가 1300년대라고는 하나 이 서사시 안에는 신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서양 사람에게 신을 빼놓고 뭔가를 하라는 말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통의 유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제는 제사지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어떻겠는가. 싸대기 맞는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신을 부인하고 계몽을 내세운 것은 엄청난 단절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이성의 힘으로만 세계를 파악하겟다는 태도다. 어른이 된다는 소리다. 그래서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칸트는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답한 것이다. 더 이상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은혜를 입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자신의 의지, 이성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고 개조해나가겠다고 자신의 의지, 이성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고 개조해나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 근대사상의 혁명적 면모다.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라는 바로 이 전통 위에 칼 마르크스가 서 있다.

서양 근대인들은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구축하자는 사람들이엇다. 이들은 왕의 권력을 신이 준 것이라고 하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프랑스혁명과 같은 정치적 혁명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회를 으룩하려 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힘에 의해 파악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른바 근대의 교양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부르주아로 불리는 근대의 시민인데 고전적 의미에서의 우파, 즉 오늘날의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다. 즉, 근대의 지식인이라 하면 일단 누구나 다 우파 수준의 교양을 갖춘 셈이다. 그들은 낡아빠진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 그 사람들은 지연이니 혈연이니 하는 것들에는 신경 안 쓴다. 그렇게 오랫동안 믿어오던 신도 끊어버린 사람인데 뭘 못 끊겠나. 그냥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 능력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고쳐나가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48-50


마르크스 사상의 배경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계몽주의와 교양이고 마르크스 자체를 볼때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키워드는 이성, 역사, 노동이다.  52


나는 내가 감성적인 상태에 빠져 있엉도 내가 감성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정신 안에서는 이성이 감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다 이런 상태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53


인간의 주체적 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되, 사태의 기원과 전개를 꼼꼼하게 바라보는 것이 마르크스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였다. 

우리들도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가령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해보자.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지금 이 순간의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왔고, 그런 과거를 통해서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력서를 통해서 사람을 판단한다. 이것도 일종의 역사적 방법이다. 물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나랑 같은 고향이네, 같은 학교 나왔제, 심지어는 성씨가 같네 하면서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런 편견만 벗어던진다면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적 방법을 날마다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54


이성과 역사, 이 둘을 묶으면 역사적 이성주의다. 마르크스는 이성과 역사적 방법론, 이 두 가지 도구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본다... 

마르크스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기반에 놓인 것을 인간의 활동(human activity)으로 파악했다...

역사를 인간 활동의 기록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신이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인간의 활동이 인류의 역사를 만든 핵심적인 요소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이다.  55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뭘까? 그건 바로 노동(Arbeit)이다. 이것 독일어다. '아르바이트'라고 읽는다.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요인이라 생각했다.

'이성' '역사적 방법' '물질적 활동 중심'이라고 하는 마르크스 사사으이 주요한 세 요소를 묶어 한마디로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56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아주 철저하게 유물론을 실천하고 있다. 뭐든지 물질의 관점에서, 간단히 말해서 돈 중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돈 벌고 성공하는 거 아닌가. 돈 못 모으는 사람들은 어떤가. 마음약해서 여기저기 좋은 일만 하다가 거덜 나지 않는가. 역사적 유물론이 골수까지 파고든 사람들, 사실 알고 보면 자본가들이다. <공산당선언>을 읽다보면 중세를 깨뜨리고 근대를 열어젖힌 부르주아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자본가들이다. 마르크스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58-59


마르크스의 사상 전개과정을 크게 둘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철학(특히 역사와 노동으로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에 관한 연구 시기 : 대표적 저서로는 파리시대의 <경제학-철학 초고>가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순수한 의미의 철학적 연구를 정치경제학과 결합시킨 것이다.

2) 1852년부터의 정치경제학 시기 :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뒤엎을 것인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자본의 해부학(Anatomy)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서다.  62


데이비드 하비가 쓴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는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을 쓴 1848년을 전후한 시기의 파리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67


<선언>이 나왔을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사회주의 선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1847년에는 사회주의 는 부르주아 운동을 의미했고, 공산주의는 노동자 운동을 의미했다.  75


'전 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하여'

1848년이라고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공산주의자임을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은 비밀결사의 형태로 활동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공공연하게 활동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77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제1장의 이 첫 문장인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다.  79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서 그는 유물사관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담대히 거짓을 일부러 들고 나온 것"이며 "거기서는 역사의 근본을 아무 목적 없는 우연한 물질에 돌린다. 그러고는 모든 정신적인 가치 관념을 유치한 시대의 공상, 명상에서 나온 곳으노 돌리려 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유물사관을 무척이나 심하게 오해한 것이다....

유물사관에서 말하는 물질이 뭐겠는가. 그건 바로 경제적인 의미의 물질이다. '황금만능주의', '물질 중심주의' 할때의 물질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돈 가지고 매사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물질 중심 사고방식이다. 그러니까 유물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돈 가지고 매사를 판단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크게 오해한 것은 아니다.  84-85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어느 정도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 해도 사회적으로는 역시 관계들의 산물"이라고 썼다. 유물사관이란 것은 바로 이런 물질적 관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불온한 것이 아니다....

'계급'은 그러한 물질적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파악할 때, 비슷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을 묶어서 부르는 것이라 해두자.

첫 번재 문장 아래에 보면 엥겔스가 붙인 각주가 있다. 1888년에 영어판을 내면서 붙인 것이다.

'부르주아지란 현대 자본가 계급, 즉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자이자 임금 노동의 고용자들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트란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 계급을 의미한다.'  86-87


'계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물질적 관계를 기준으로 나눈 다음, 각 부류의 사람들을 묶어서 가리킬 때 쓰는 말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물질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인가 말이다. 그러니 계급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다.  87


첫 번째 문장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물질적 관계를 기준으로 나뉜 집단끼리 서로 대립하고 싸워온 역사다.  88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말이 생겨나서 쓰이게 된 과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본래 부르주아란 말은 변호사, 법률가, 의사 등 농노도 귀족도 아닌 제3신분의 전문직 종사자들을 뜻했다.

이 용어들이 처음 쓰일 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의 특정한 계급, 즉 현대 자본가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91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전에 등장했던 지배 계급과 그것의 몰락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자유민과 노예, 파트레스와 플래비스, 남작과 농노, 쭌프트 회원과 직인, 요컨대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맞섰으며... 그러한 투쟁은 빈번히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나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통의 몰락으로 끝났다.'

과거에는 지배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위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설명처럼 이것저것 많았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를 물질적 관계라는 기준에서 보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눌 수가 있다. 부르주아지는 처음부터 현대 사회의 지배 계급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노력하였다.  93


'봉건사회가 몰락하면서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지하지 않앗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모습들로 낡은 것들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부르주아가 중세에 있던 것을 바꾸어놓은 것은 세 가지다. 낡은 것들을 새로운 계급, 억압의 새로운 조건, 투쟁의 새로운 모습들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를 설명하자면 봉건사회에도 계급 대립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르주아는 그것을 바꾸었다. 지배하는 방식과 조건 등을 바꾸었다는 말이다.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물질적 생산관계만을 가지고 계급을 분류하는 것이 부르주아의 방식이다.

그런 분류 기준에 반대하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돈 이외의 것을 진정한 인간의 가치라고 추구하며 사는 살마들의 인생은 얼마나 피곤한가.  94


마르크스는 "중세의 농노로부터 최초 도시의 성외(城外) 시민이 생겨났고, 이 성외 시민 층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최초의 요소들이 발전하였다"고 써두었다. 다시 말해서 중세의 농노 중에서 경제적 이윤에 눈뜬 사람들이 성외 시민이 되었고, 이들이 오랫동안 고생해서 부르주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95


아메리카의 발견, 콜럼버스에 의한 아메리카의 발견이 1492년의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백 년 전이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시기가 1488년이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회항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은 흔히 세계사에서 '지리상의 대 발견'이라 불린다.  96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전 세계적인 시장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초반부터 글로벌 경제였던 것이다.  97


돈이 유럽에 흘러 들어가면서 유럽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봉건 사회의 잔재가 무너진다. 그 잔재들이 뭔가.

<선언>에서는 그것을 "봉건적 쭌프트적 공업 경영방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이 생겨남에 따라 이 방식이 증대하는 수요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자 매뉴팩처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쭌프트 다음이 매뉴팩터다. 그러면 그 다음은 뭘까. <선언>의 구절을 보자.

'시장은 줄곧 성장했고 수요는 줄곧 증가했다. 매뉴팩처로도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앗다. 그때 증기와 기계 장치가 공업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매뉴팩처의 자리에 현대 대공업이 들어섰고, 공업 중간 신분의 자리에 공업 백만장자들, 공업 군대 전체의 우두머리들, 현대 부르주아들이 들어섰다.'  98-99


이제 부르주아지는 현대 세계의 당당한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대공업이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의미의 세계 시장이 열린다. <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시장은 상업, 해운, 육운에서 헤아릴 수 없는 발전을 이룩했다. 이러한 발전이 다시 공업의 신장에 영향을 미쳤으며, 부르주아지는 공업, 상업, 해운, 철도 등이 신장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발전햇고, 자신들의 자본을 증식시켰으며,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몇 페이지 더 읽으면 나오지만 주르주아는 중세의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계급들을 자신의 발 아래 부리게 된다.  99-100


공업 경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본(Money),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 노동력(LP:Labor Power)이다.  104


마르크스는 이윤의 원천을 '노동력'이라 말한 것이다. 자본의 순환 고리에 뭔가가 외부에서 들어가는데, 그것이 인간의 본질인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노동력이고, 바로 이 노동력이 이윤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취직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어야 공장이 돌아간다고 했다. 이걸 달리 만하면 공장에 투여할 노동력이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 16세기와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인클로저 운동이다. 지주가 땅을 12개 부분으로 나눈 다음 소작인 12명을 부려서 일을 한다고 치고, 소작인은 각자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반은 지주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다고 하자. 자기 땅은 아니지만 소작인과 생산수단인 땅은 긴밀하게 붙어 있다. 게다가 농사 짓기는 굉장한 숙련을 요구하는 일이므로 섣불리 소작인을 잘라낼 수도 없다. 그런데 만약 이 땅에서 지주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양을 키우겟다고 하면 소작인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울타리만 쳐서 양을 키우면 된다. 이렇게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치기'라는 뜻이다)를 통해 소작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떨어져 자유롭게 되었다. 무지하게 자유로워진 거다. '자유로운'이라는 첫 번째 뜻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들은 자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다. 말이 자유지 가진 게 몸뚱어리밖에 없다는 뜻이다. 영러 free from이 '~이 없는'이라는 뜻 아닌가.  105-107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라는 말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잇지 않다는 점, 즉 '~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아니다. 자기의 잠재적 능력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는 아닌 것이다. 

현대의 공업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생겨났다. ..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는 반드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은 다 여기에 속한다. 

화이트칼라니 블루칼라니 하는 구별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히 알아두자.  108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각각의 발전 단계들에는 그에 걸맞는 정치적 진보가 수반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동시에 맞물려 돈다는 것을 발견한 점이다.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는데, 이게 이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는 맞물려 돌아간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111


'부르주아지는 봉건 영주들의 지배 아래서는 피억압자 신분이었고, 꼬뮌에서는 무장한 자치연합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인 도시 공화국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군주국의 납세 의무를 지닌 제3신분이었으며, 그 다음에 매뉴팩처 시기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평행추였으며, 대군주국 일반의 주요한 토대였다가 마침내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갖추어진 이래로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최종적인 결과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한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일을 처리해주는 위원회인 것이다.

꼬뮌(commune)은 본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도시 시민들이 자신들의 봉건영주로부터 자치권을 사들이거나 강찰한 뒤에 자신들이 이룩한 도시 공동체를 부르던 명칭이다. 꼬뮌과 관련해서는 1870년대 파리 꼬뮌(노동자들이 봉기한 혁명 정부)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1871년 3월, 독일군이 파리를 포위한 가운데 일어난 19세기 최대의 노종자 계급 혁명이다.  112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코뮌을 평하여 "그것은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부였다. 그것은 착취 계급에 저항한 생산 계급의 투쟁의 결과이며,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정치 형태였다"고 말했다. 엥겔스 또한 "꼬뮌은 전 유럽의 노동자들에게 사회 혁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열쇠를 준 것"이라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113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파괴'라고 한 단어의 독일어 의미는 '절멸시키다'라는 뜻이다. 완전히 파괴하고 땅에 묻어서 흔적조차 없애버리는 것이다. 완전히 거덜 내는 것이다. 이게 첫 번째 업적이다.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것을 없앴으니 당연히 혁명적인 업적인 거다. 그런 것을 없앤 다음, 그 자리에 세워놓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이다. 이것 역시 부르주아 계급의 업적이다.  115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인간애가 어떤니, 인간관계가 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삭막하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의 혁명적 업적인데 그걸 불만이라고 하면 부르주아의 업적이 불만이라는 말이고, 그러면 다연히 빨갱이로 몰리지 않겠는가.  117


'부르주아지는 이제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이 경외하며 바라보앗던 모든 직업에서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 등을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놓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 자신의 진본성이 없어진다. 생명도 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복제하여 돈을 벌려고 든다. 

부르주아 계급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뭐든 돈 되는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오래갈 만한 것이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부수고 새로 지어야 그것으로부터 이윤이 생겨난다.  117-118


모든 것이 돈으로써 측정되므로 존귀한 것이 남아나질 않는다. 

현대 사회의 문화를 논하 ㄹ때 문화만 따로 떼어내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반드시 경제적 구조부터 이야기해 들어가야 한다.  119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그 경향이 더 강해졌을 뿐이다. 

또 하나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혁신'이라는 말이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계속해서 자본의 순환 고리를 돌려야 하니까. 그것도 빨리 돌려야 이윤이 빨리 나오니까 혁신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123


'부르주아지는 생산도구들에, 따라서 생산관계뜰에, 따라서 사회관계들 전체에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혁명은 때려 엎는다는 의미강 아니다. 계속되는 혁신과 변화를 가리킨다. 그 혁신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어난다. 먼저 생산도구들을 바꾼다. 공장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면 이건 생산도구가 바뀐 것이다. 그에 따라 그 도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바뀐다.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조직도 변한다. 이건 생산관계가 바뀌는 것이다. 생산관계가 바뀌면 사회관계 전반이 바뀌게 된다.  124


혁신을 하는 궁극적인 이뉴는 '이윤창출'에 있다. 회사에서 아무리 사원들 건강이 최고다.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 만든다. 직원 재교육과 복지를 강화한다고 떠들어대도 그건 궁극적으로 회사의 이윤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당장 교육과 복지 부문부터 줄인다. 이걸 보면 그런 시책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금방 알수 있다.

성장을 하려면 혁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혁신을 자주 하다 보면 결국에는 사람을 잘라내는 일이 생겨난다.  125


노동의 생산성이 올라가야만 이윤이 증가하니까.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술 혁신을 햇는데 어느 시점에 오면 살아 있는 노동자를 쫓아내게 된다.  127


'물질적 생산에서 그렇듯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별 국민들의 정신적 창작물은 공동 재산이 된다. 국민적 일면성과 제한성은 더욱더 불가능하게 되고, 많은 국민적, 지방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가 이제 문화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지배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세계 문학은 획일화된 문화를 뜻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물질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자본주의 세계에서 정신적인 면도 가지고 잇는 문화가 형성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가 무역협정과 연골되어 협상된다. 4년마다 한 번씩 사람들이 열광하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과 마찬가지 방식을 통해서 그러한 열광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 중반부터다. 이게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 현실인 것이다.  128-129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다. 콘텐츠 산업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산업은 바로 이러한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생겨날 수 있었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년은 보통 30대 중반이다. 빠른 속도로 빨아먹다가 더 빨아먹을 게 없으니까 내다버리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을 통해 모든 국민들을, 가장 미개한 국민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잡아당긴다.'

이걸 읽고서 마르크스가 오늘날의 상황을 예언하듯이 봤다고 생각하면 과잉해석이다. 그딴 식으로 생각하는 건 마르크스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무슨 '빠'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마르크스 당시에 교통이 발전했으면 얼마나 했겠는가. 다만 그 사람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움직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보고 이런 판단을 했구나 하는 정도로 보면 된다.  130-131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거대한 도시들을 창조했고, 도시 인구의 수를 농촌 인구에 비해 크게 증가시켰으며, 그리하여 인구 중 현저히 많은 부분을 우매한 농촌 생활에서 떼 내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도시문명이다.

도시에서는 뭐든 자기 혼자 힘으로 자급자족할 수가 없다. 음식을 먹으려 해도 슈퍼에 가서 공산품을 사다 먹어야 한다.  131


자기 관리를 하려면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136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안 되는 자신들의 계급지배 기간 동안,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하였다. 자연력들의 정복, 기계 장치, 공업과 농경에 대한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의 개간, 하천의 운화화, 땅 및에서 솟아난 듯한 인구 전체, 이와 같은 생산력들이 사회적 노동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의 어느 세기가 알아챘을까.'

현대의 대공업이라는, 노동 분업과 효율성을 갖춘 체계 속에서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각자 알아서 노동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럿이 모여서 일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노동이 잉여 가치의 원천이 된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거대한 생산력들은 사회적 노동을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137


'우리는 이리하여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르주아지가 양성된 기초였던 생산수단드로가 교류수단들은 봉건사회 안에서 태어났다... 한마디로 봉건적 소유관계들은 이미 발전한 생산력들에 더 이상 걸맞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의 자리에 자유 경쟁이 들어섰으니, 그에 걸맞는 사회적, 정치적 기구와 함께,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와 함께 들어섰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를 극복하기 위해 느닷없이 새로운 것을 외부로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봉건사회 안에 봉건사회를 극복해 낸 자본주의의 씨앗이 들어 있었고 그것이 싹터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능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안에 자본주의를 극복할 씨앗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씨앗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 씨앗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본주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자본>이라는 책을 썼다. <자본>은 자본주의를 뒤엎자는 주장을 담은 책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밝힌 책이다. 뒤집어는 건 밝힌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138-139


'우리 눈앞에 이와 비슷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시작된 어떤 운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운동은, 부르주아가 봉건사회를 무너뜨렸듯이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사회를 무너뜨리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마법사와 마찬가지였다. 글ㄴ데 이제 그 마법사는 "지하 세계의 힘에 더 이상 군림할 수 없게 된 마법사"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해놓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첫 번째 힘은 "생산력들의 반란"이다. 생산력의 반란으로 봉건제가 폭발하고 그것으로부터 부르주아 사회가 나왔다면, 부르주아 사회 역시 생산력의 반란 때문에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생산력이 반란을 일으키면 부르주아 사회의 소유관계는 물론이고, 그 소유관계를 규율하는 여러 가지 법적 장치와 같은 사회관계가 폭발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산력까지도 태반이 벌멸되고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기아와 전면적인 섬멸전은 사회에 대한 모든 생활수단들의 보급을 차단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공업과 상업은 절멸된 듯이 보인다. 왜 그런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어무 많은 생활수단, 너무 많은 공업, 너무 많은 상업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 좀 이상하다.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 

문제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무나 나눠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막 내다팔 수가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창고에 재로고 쌓여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동화를 도입한다. 그러면 노동력이 남게 된다. 그걸 해결하려고 구조조정이란 걸 한다. 말이 그럴싸해 구조조정이지 사실은 사람 자르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그냥 남는다. 노동려깅 너무 많이 남아돌게 된다. '과잉'이 자본주의 위기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141-142


'부르주아지는 무엇을 통해 이 공황들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대량의 생산력들을 부득이 절멸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들을 획득하고 옛 시장을 더욱 철저히 착취함으로써.'

마르크스는 두 가지 방안을 발견했다. 첫째가 대량의 생산력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냥 마구 내다버리는 것이다. 사람도 없애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이다. 전쟁 무기를 한번 생각해보라. 평소에 그게 어디 쓸모가 있는가. 미국에 전쟁 무기가 엄청나게 생산되어 쌓여 있다. 그거 만드느라 돈 엄청 들어갔다. 소비를 해야 또 만들 것 아닌가. 아예 안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공장의 대규모 장치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고용되어 일하는 수많은 인력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아예 전쟁을 일으켜서 '미개한' 이라크 사람들 죽이는 게 더 쉬운 것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 더 그럴싸할 테고, 이게 자본주의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벅인 이유 중의 하나다. 바로 "절멸"시키는 것이다. 깡그리 없애버리는 것이다.  143


시장 확대는 전쟁을 일으킬 만한 형편이 안 되면 나오는 방안이라 생각해도 좋다. 애초부터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성장해왔다. 더 이상 개발할 만한 시장이 없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온 세상을 '문명' 국가로 편입시켜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기왕에 개발한 시장을 더 철저히 뜯어먹는다. 별로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까지 만들어 그게 '생활필수품'이라고 광고하면서 팔아치우는 것이다. 이러다 안 되면 자기들끼리 싸운다. 식민지 쟁찰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렇게 전 세계를 상대로 물건 팔아먹을 시장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제국주의다.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시장 쟁탈전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거대 전쟁까지 이른 것이 제1, 2차 세계대전이다.  144


자본주의의 위기극복전략 예를 다른 사례를 통해 더 살펴보자. 이거 중요하다. 잘 알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시장 진출이니, 국제 자유무역이니 하는 말들이 가진 달콤한 유혹의 뒷면에 놓인 쓰라린 경제논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야 강대국의 정치적 발언이 사실은 경제적 이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야 강대국의 경제관련 발언이 사실은 군사력 행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대장 아래서 굴러 간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가장 커다란 환상 중의 하나가 그 체제는 자유경쟁이며, 그에 따라 공정한 기호를 보장하는 효율적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현실에서는 정말 그대로 작동할까. 예를 들어보자. A, B, C. 이렇게 세 명의 부르주아가 잇다고 하자. 세 명 모두 두루마리 휴지를 생산한다. 생산한 휴지의 품질이 똑같다 치자. 누가 만든 물건을 살 것인가? 일단 싼 거 살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넣ㄹ리 알려진 물건을 살 수도 있다. 그러면 이들 세 사람이 언제나 공정하게 경쟁하며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줄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결국 시장 독점으로 간다.  144-145


시장의 공급을 지배한다는 것은 가격을 지배한다는 것이요. 이윤을 자기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본가든 독점 공급을 목표로 한다. 그래야 이윤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6


실업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아주 많은 수의 대중이 가난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은 넘쳐나는데 가난한 대중은 물건 살 돈이 없다. 

현대의 국가 안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공존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는 부르주아와 깊은 관계 속에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반항하는 기미가 보이고 국가를 원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 얼른 나서서 적당한 선에서 당근을 국가를 원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 얼른 나서서 적당한 선에서 당근을 주어 무마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국가 권력이 부르주아 계급의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하로 했던 것이다.  149


'부르주아지, 다시 말해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 노동자 계급은 발전하는데, 그들은 일자리를 찾는 한에서만 살 수 있고, 자신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에서만 일자리를 찾게 된다.'

노동자 계급이 발전한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자. 그냥 생겨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대학마다 취직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에서 요구할 만한 인재를 키운다고 난리법석 떠는 거 아닌가. 대학이 학문탐구의 공간이 아니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152


'자신을 조각내어 판매해야만 하는 이 노동자들은 다른 모든 판매품들처럼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똑같이 경쟁의 모든 부침(浮沈)들, 시장의 모든 변동들에 내맡겨져 있다.'  

노동자의 특정한 능력을 판다는 뜻이다. 이것을 '노동력'이라 한다. 판매되고 있으니 노동력은 상품(commodity)이 된다.

이것뿐이 아니다. "기계 장치의 확산과 분업" 때문에 노동자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단조롭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손동작만 요구받는 단순한 기계 부속품이 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자본가를 위해서이며 게다가 그것은 개별 노동자의 불구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을 지배하는 자본을 위해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일은 결국 자본가를 위한 것이다. 기술적 역동성에 의해 새로운 생산 설비가 도입되면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이 자본의 입장에서는 진보로 보일지 언정 노동의 입장에서는 "문명화되고 세련된 착취 수단"인 것이다. 농업을 보면 이것이 더욱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금의 농촌은 기계화된 농업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얼핏보면 기계화가 농업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그러나 기계화된 농업이 도입되면서 더 이상 많은 농업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많은 농업 노동자가 도시로 갔다.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화학비료가 살포된다. 그로 인해 농업 노동은 "토지의 비옥함의 지속 가능한 원천을 파괴"하는 공업적 노동이 된다. 자연의 대 순환의 톱니바퀴를 빼는 공업은 지속 불가능한 산업이다.  154-155


'이 전제 정치는 영리가 그 목적이라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면 할수록, 더욱 더 좀스럽고 증오스럽고 잔인한 것으로 된다.'

노동자 계급의 성별 차이, 연령 차이는 무의미하다. 노동자는 "기껏해야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비용이 드는 노동 도구"일 뿐이다. 인간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그냥 도구다. 숙련된 노동자들도 별 볼일 없다. "새로운 생산방식들에 의해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웬만하면 아무나 충원할 수 있다. 

지식기반 경제라고 해서 극소수의 엘리트만 신경 써서 뽑고 나머지는 죄다 계약직으로 충원한다. 쉽게 충원하고 쉽게 자를 수가 있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의 주민들로부터 충원된다.'  156


'이제까지의 소중간 신분들, 즉 소공업가들, 소상인들과 소금리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 등의 이 모든 계급들이 프롤레타리아트로 추락하는데...'

마르크스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계급의 양극화 현상이다.  157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기를 쓰고 조직화하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들의 계급으로의, 또 따라서 정당으로의 이 조직화는 노동자 자신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매번 다시 파괴된다."

마르크스가 <선언>을 쓸 당시의 정당은 오늘날의 정당과 다르다. 구체적인 당 조직을 말하는 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자신을 프롤레타리아트임을 자각하고, 그에 따라 일정한 정도로 정치적 조직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즉, 조직화는 일정한 현태를 띤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화도 매번 다시 파괴된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계급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음이 주된 이유다.

자신을 프롤레타리아인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회사에서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군가. 사장도 아니면서 사장 마인드 가진 팀장, 사장보다 더 사장스러운 사람. 회사에는 사장과 사장 아닌 사람밖에 없는데 사장도 아니면서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객관적 위치를 알지 못할 뿐더러 남이 그 위치를 알려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답이 없다.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르주아는 이런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162-163


'부르주아지는 처음에는 귀족과 대항하는 투쟁 속에 있다가. 이후에는 부르주아지 자체 가운데 공업의 진보와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들과 대항하는 투쟁 속에 있으며, 항상적으로는 모든 해외의 부르주아지와 대항하는 투쟁 속에 있다.'

처음에는 중세의 귀족들과 투쟁하여 그들의 속박을 벗어던졌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되려 할 때 그것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분쇄하였다. 이렇게 하여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사회가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해외의 부르주아지와 대립관계에 놓인다. 이럴 때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그들의 도움을 청하며,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 운동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정치 운동"이라는 람은 정치적 공간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움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될까. 바로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가 본질적으로는 계급관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숨기고 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164-165


<선언>에 따르면 "중간신분들, 즉 소공업자,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 이들 모두는 중간신분으로서의 자기의 존재가 몰락하지 ㅇ낳도록 부르주아지와 싸운다." 마르크스가 <선언>을 쓸 당시에는 예상하기 힘들었겠지만, 이 중간신분들이 나중에는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 파시즘에 적극 가담한다. 자기 입지가 위태로워짐에 따라 배타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파시스트들의 핵심적 서포터들이 된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서 생겨난다. 그러면서 경제적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약속한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체제를 보존하면서도 배타적 민족주의에 호소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계급을 잊고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평등하게 살 날을 기대한다.

파시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이들이 또 있다. 바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단어다. 이 말을 엥겔스는 <선언> 영어판에서 "위험한 계급", "사회적 찌꺼기"로 번역했다. 그리고 1852년 이후 마르크스 저작에서 룸펨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이 나오면 완전 쓰레기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언>에서도 이미 경멸당하고 있다. "낡은 사회의 최하층의 이 수동적 부패물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때때로 운동에 끌려드는 일도 있는데, 생활상의 처지 전체로 볼 때 반동적 음모에 매수되는 것에 더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다.

반동적 음모는 부르주아가 꾸미는 것이다. 자기네 편드는 지식인들이 이 음모에 동원된다. 이를테면 이건희가 대학에 명예철학박사 학위 받으러 왔다가 봉변당한 일로 자기 학교 애들 삼성에 취업 안 되면 어쩌나 걱정해서 사과하는 족속들, 말만 지식인인 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166-167


자본주의의 발전이 절정에 이르면 계급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프롤레타리아는 알거지 상태로 전락하기 직전이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무소유이다.' 

무소유라는 말에서 법정 스님의 책을 떠올리지 마라. 그런 고상한 뜻이 아니고 진짜로 '가진게 없다'는 뜻이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그의 관계는 부르주아적 가족관계와의 공통점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 맞벌이 부부와 부르주아 맞벌이 부부가 같은 상황일 리 없다. 프롤레타리아 맞벌이 부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뭐 있겠나. 육아 문제가 그 중 하나다. 돈이 있어야 해결된다. 애들 방에 두고 밖에서 문잠갔다가 사고 나는 일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식을 방에 가둬놓고 집을 비우고 싶은 부모가 세사에 어디 있겠는가. 생존을 위해 맞벅이를 해야 하고 놀이방에 자식을 맡길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결국 사회적 소유관계, 평드의 문제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이 기본적으로 갖출 건 갖춘 상태에서 윤리 도덕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윤리학적 명령이 호소력을 잃은 까닭이 이 때문이다.  167-168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마르크스는 국적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은 무국적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이미 국적이 없다.  169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할때.. <선언>을 읽는 동안에는 왜 맞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지만 알아보기로 하자.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지배는 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과 같은 의미다.  171


'공산주의를 남김없이 설명하는 것은 소유 일반의 철폐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철폐이다.'

공산주의는 소유라는 것 자체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진 물건을 죄다 내놓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계를 차고 다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소유방식,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 획득방식을 철폐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서 생산수단을 사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생산력을 획득"한다고 하는 게 이 말이다.  173


얻어지는 이윤을 몇몇 사람이 독식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그러니 거기서 얻어지는 이윤이 가능하면 사회적 노동에 가담한 사람 전체에게 나누어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로운 것이고 공정한 것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운동들은 소수의 운동들이었거나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운동들이었다.'

"이해관계"는 손해와 이익이라는 뜻이 아니라 '관점'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이제까지의 모든 운동"이 엥겔스의 영어판에는 "이전의 모든 역사적 운동들"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운동들'로 이해하면 된다. 그에 이어지는 구절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 운동이다" <선언>에 나오는 이 구절을 프롤레타리아의 수가 많다. 적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유심히 보면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운동이다. 이 점이 중요다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관점을 따라간다는 것, 즉 다수의 이익, 다수의 관점을 대변하는 운동이라는 뜻이다.  174


'지금 사회의 최하증인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계층들의 상부 구조물 전체를 공중으로 날려버리지 않고서는 몸을 일으킬 수도 없고, 똑바로 설 수도 없다.'

"공적 사회"는 정치적 사회, 법적 장치와 제도적 장치를 형성하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공중에 날려버린다'는 흔적도 없이 찢어없앤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적 생산물 위에 제도적 법적 장치까지 없애야 프롤레타리아트가 똑바로 설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은 한 나라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연대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175


부르주아지를 전복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바꾼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해야 지배의 기초를 세울 수 있고 그런 다음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그 지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지도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이미 부르주아의 지배는 물론이고 지도까지 확립된 상태에 있다. 이걸 바꾸는 일이 수월하겠는가. 애써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177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2페이지 첫 문장은 유물론적 역사 이해를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역사를 물질적 생산활동, 물질화된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활동으로 파악하고 이를 다시 물질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계급 대립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인류의 역사를 보려면 계급투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페이지부터 부르주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야기한다. 부르주아 성립의 물질적 토대는 세계 시장이었다. 즉, 자본주의는 출발점부터 글로벌했다는 것이다.

4페이지는 봉건사회 안의 혁명적 요소를 언급하고 자본의 원초적 축적을 말한다. 그리고 시장이 성정하고 대공업이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부르주아지는 중세로부터 내려온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몰아내고 사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5페이지에서 6페이지까지는 부르주아의 발전 단계에 걸맞는 정치적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부르주아의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로서의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르주아지는 사회의 모든 관계를 냉혹한 이해관계로 바꾸어 놓았다. 그럼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세워진 것이다.

7페이지는 부르주아 사회가 세워진 후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말한다. 부르주아는 끊임없는 해외 원정에 나서고,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킨다.

8페이지에서는 끊임없는 혁명과 해외 원정을 통해 부르주아지가 전세계에 걸쳐 세계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 등 모든 것이 획일적, 자본주의적 문화로 바뀐다. 좋은 점도 있다. 외국 가서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맥도날드 가면 되니까. 이 와중에 농촌 생활도 다 없어지고 만다.

9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는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세부적으로 언급한다.

11페이지에서는 부르주아 사회가 이런 업적을 거우었음에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 문제점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공황이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는 항상 위태롭고 불안하다.

마지막으로 12페이지부터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들이 제시된다. 부르주아지는 공간상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려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이미 확보된 시장에서 더 많은 착취를 행하게 된다. 또한 현대의 대공업 시대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들의 삶의 실상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무엇인지가 여기서부터 길게 이야기된다. 부르주아를 때려잡아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총제적인 불합리한 점을 걷어내고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는 계급투쟁과 정치투쟁을 거치면서 다수의 이해관계에 의거해서 지배권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의 전 영역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관철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7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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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에 사람들이 매혹당한 가장 큰 동기는 '가난한 사람들, 배를 곯는 사람들, 수탈당하는 사람들, 사회적인 불의를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양심'입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버젓이 곁에 있는데 자기는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불공평함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거기에서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사명감이 자라나지요.  10


아마도 마지막으로 일본인에게 '양심의 고통'을 느끼게 한 것은 베트남 전쟁 때 불에 타 죽은 베트남 농민이었을 겁니다. 일본이 베트남 전쟁의 후방 지원 기지로서 그들의 학살에 간접적으로 가담했고, 그 덕분에 일본인은 전쟁 특수로 인한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지요.

하지만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일본인은 '양심의 고통'을 느낄 만한 상대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어요. 그 후 처음에는 다소 미안한 듯 조심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여봐란듯이,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렇게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자랑스럽게 떠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마르크스를 읽겠어요?  11


단적으로 말해 돈을 갖는 것,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호화로운 집에 사는 것, 비싼 옷을 입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능력 있는 인간이 우아하게 살고, 무능하고 힘없는 인간이 길거리에서 굶어 죽는 것을 자기 책임이라고 합니다. 능력 있는 인간이 높은 품격을 인정받고, 무능한 인간이 경멸당하거나 모욕을 받는 것을 매우 적절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회적인 정의(fairness)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오피니언 리더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고방식은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공동체는, 가장 연약하고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전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각각의 입장에서 책무를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혈연이나 지연으로 엮인 소규모의 공동체든, 국민 국가나 국제 사회 같은 거대한 공동체든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운용해나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성숙한 어른'이 꼭 필요하지요. 충분한 능력도 있고, 지혜도 갖추고 있고, 주위에서 모두들 존경과 신뢰를 보내는 사람,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자기만의 이익이 아니라 주변의 힘엇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말입니다.  12


마르크스를 읽고,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애가 어른이 되는' 방법으로서 가장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마르크스를 읽지 않게 되고 나서부터 눈에 띄게 '성숙한 어른'이 줄었습니다. 나는 이 두가 현상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13




마르크스 수사학의 결정체 <공산당 선언>

                                                                  (공산당 선언 전문 참고 하기 클릭)


초판 책자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저자의 이름도 실려 있지 않았고, 저자를 밝힌 것은 1850년이었다고 합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7년 모스라는 인물의 추천을 받아 이동맹에 가입했습니다. 동맹에서는 그해 6월에 열림 제 1회 대회(엥겔스참석)와 11월에 열린 제2회 대회(마르크스와 엥겔스 참석)-둘다 런던에서 개최-에서 강령 내용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그리하여 제 2회 대회에서는 논의의 결과를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문서로 작성할 임무를 맡기기로 결정하죠. 다만, 당시 마르크스는 브뤼셀에, 엥겔스는 파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대표로 집필하기로 했어요. 마르크스는 그 전에 엥겔스가 집필한 <공산주의의 제 원리>(1847)등을 참조하면서 독일어로 이 글을 써냈습니다.  25-26


이 책은 네 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I. 부르주오와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는 자본가,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양자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중심으로 '근대 부르주아 사회'(당시 마르크스는 아직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어요)의 체제나 역사, 또 프롤레타리아 혁면(공산주의 혁명)의 필연성 등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II.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 여기에서는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일반에 대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서 시작하여 공산주의 운동의 목적이나 공산주의 사회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II. 사회주의 문헌 및 공산주의 문헌 - 이 부분에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불리는 다양한 조류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본격적으로 논단이나 운동의 세계에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은 너무나 많은 얼굴을 한 정체불명의 '유령'으로 취급받았습니다. 

IV. 각종 반정부당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 여기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반정부당이나 혁명당에 대해 공산주의자의 당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논합니다.  27


마르크스는 현대 경제나 정치, 여성의 지위나 가족, 저출산 문제 같은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주지요...

마르크스의 유물론 철학에서는 이론을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것으로 파악하는 사고를 신랄하게 비판하고있으니까요.  28


실은 만년의 엥겔스는(<1883년 독일어판 서문>) "<공산당 선언>을 관통하는 기본 사상, 즉 역사의 어느 시대라도 경제적 생산 및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편성이 그 시대의 정치적 및 정신적 역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 따라서 (태곳적 토지 공유가 붕괴한 이후)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즉 사회 발전의 여러 단계에서 착취당하는 계급과 착취하는 계급, 지배당하는 계급과 지배하는 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는 것, 그러나 이 투쟁은 지금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착취와 억압 및 계급투쟁으로부터 사회 전체를 영국적으로 해방하지 않고서는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 이 기본 사상은 단 한 사람, 오로지 마르크스에게서 나왔다."  29-30


공산주의 혁명론을 몇 가지 소개하면.

1. 노동자의 정치권력 획득 -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우선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가 정치권력을 쥐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공산당 선언>의 사상은 매우 독창적이었죠.

2.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 - 혁명의 '첫걸음'으로서 정치권력을 획득한 공산주의자는 그 다음 사회의 개혁으로 나아가야 해요.

3. 공산주의 사회란 무엇인가. - 사회를 계급으로 분열시키는 경제적인 기반이 사라진다는 뜻이에요.."계급 및 계급 대립이 있는 낡은 부르주아 사회를 대신하여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나타난다."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면, 소수의 엘리트(계급) 혹은 공산당이 국가를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국민 전체를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사회라는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겟어요.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그러한 사회와 전혀 달랐어요.

4. 혁명의 방법에 대해 - 당시 유렵의 역사적 사정을 생각해볼 때. 겨우 스위스 정도만 국민 다수의 선거를 통해 권한을 가진 의회를 선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해요. 실제로 <공산당 선언>을 발행한 직후 각지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아닌 왕정 타도나 민족 독립을 요구하는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모두 '강제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6년 노동자 계급의 선거원을 요구한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에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 후에도 마르크스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의회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을 쉬지 않고 탐구했어요.

5. 민주적 개혁과 공산주의 혁명 - 마르크스는 역사를 향해 언제 어디서든 공산주의 혁명을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요. 우선은 "눈앞에 닥친 목적이나 이익의 달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부르주아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부르주아와 '공동으로' 싸워나간다고 하지요. 각각의 사회에 대해 각각의 역사적 단계가 필요로 하는 '현재의 운동'을 통해 야무지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운동의 미래', 즉 공산주의 혁명에 접근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냉철한 자세를 유지했어요.  31-36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이나 정치 이론은 현실 정치에서 이미 '유효 기간이 지났다'고 여겨지고 있어요

만일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가져와서 적용하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기준으로 마르크스를 평가한다면, 마르크스의 '유효 기간은 지났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르크스를 읽음으로써 지적인 활기를 얻고, 자신의 지성을 가두고 있는 '우리'의 구조를 깨달으며, 거기에서 빠져 나오려는 노력에 시동을 거는 사람드에게 마르크스의 유효기간 따위는 없을 거예요.  44




청년 마르크스를 만나다 <유대인 문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두 사람이 실제로 처음 맞대면한 것은 1842년 2월, 그러니까 엥겔스가 맨체스터로 가는 도중에 <라인신문> 편집부에 들렸던 때 라고 하는군요. 그러나 이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거기서 나는 마르크스를 만났지요. 당시 우리는 지극히 냉랭한 분위기에서 인사를 했어요. 마르크스는 그때 바우어 형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거든요.... 나는 바우어 형제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인지라 그들의 동맹자로 여겨졌고, 한편 마르크스는 그들에게 수상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엥겔스가 프란츠 메링에게 보낸 편지> 1895년 4월말)

이 시기 <라인신문>의 주필이던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과 투쟁하는 등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벌이는 논전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탁상공론으로 보이는 추상적인 논의만 되풀이하는 청년헤겔학파와 심하게 대립하고 있었어요. 브루노와 에드가 바우어 형제가 대표적인 논자였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 형제와 친하게 보이는 엥겔스에게 경계심을 가졌던 모양이에요.  66


두 사람 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독불연감>에 게재한 엥겔스의 논문 <국민경제학 비판 대강>에 마르크스가 강렬한 충격을 받고 나서부터입니다. 두 사람이 평생 변치 않는 교류를 나누며 공동의 역사를 이룩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봐야겠죠.  67


<유대인 문제>

바우어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어요. '유대교도의 해방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지만, 독일에서 억압받는 이들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인민이다. 따라서 유대인 문제는 모든 독일인의 해방을 둘러싼 문제로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독일인의 해방을 달성하려면 독일 국가가 기독교의 굴레를 버리고 근대 국가가 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독일의 인민 스스로 기독교나 유대교 같은 특정한 종교로부터 빠져나와 자유로운 자기 의식을 획득해야만 한다. 

이러한 논지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정치적 해방'과 '인간적 해방'이라는 두 가지를 구분하는 시각과 관련된 시각을 제기해요.

1 "독일의 유대인은 해방을 열망하고 있다. 어떤 해방을 열망하는가? 공민(公民)으로서의 해방, 정치적인 해방이다."(<전집>, 제1권, 384쪽)

2 하지만 "정치적 해방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비로소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비판이 가능하며, 유대인 문제를 '시대의 일반적 문제'의 하나로 진정 해소시킬 수 있다."(앞의 책. 388쪽)

3 그런데 바우어는 "다만 '기독교 국가'만을 비판할 뿐 '국가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정치적 해방이 인간적 해방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연구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정치적 해방과 일반적인 해방을 무비판적으로 혼동"하고 있다.(앞의 책 388쪽)  68-69


마르크스는 헤겔을 본받아 '시민사회'를 "욕망과 노동과 사리(私利)와 사적 권리의 세계"(앞의 책 406쪽)라고 불렀는데요. 그는 나중에 이것을 '자본주의 경제'라는 문제 영역으로 정리하고 이해해갔어요. 마르크스는 이 단계에서 근대 사회가 초래한 법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구별하고, 이 사회의 중심이 경제 활동의 새로운 주체가 된 부르주아로 옮겨 간 점이 일찍부터 착목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독일인의 '인간적 해방'을 위해서는 '이기적인 정신'으로 가득 찬 시민사회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70-71


기독교가 유대교의 '분파'로서 등장.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유대교에서 파생한 종교이기 때문에 애초의 시발점부터 반유대교적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필연인 것입니다.  81


마르크스가 역점을 둔 것은 유대인 해방 '그 자체'가 아니에요. '해방'의 전 단계에 포함되며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은 것. 다시 말해 누구의 해방이며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에요...

상상해보면.. 인종 차별이 있는 어떤 나라에서 자유우의 성향의 정치가와 사회 활동가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쳘폐법'을 제정했다고요. 의회는 법안을 가결하고 정부는 그 법을 엄숙하게 실행했어요. 자, 이런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차별이 없어진 것 아니야?'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예, 차별이 철폐되었어요. 그뿐입니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시에 또 하나의 국민적 합의가 성립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어요. 그것은 "우리 나라의 통치 시스쳄은 참 잘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합의예요.

바꾸어 말하면, '그게 뭐 잘못인가? 합법적인 수순을 밟아서 차별을 철혜햇드면, 꽤 괜찮은 사호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런 정치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건전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 같은데...'하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그러한 무언의 동의가 성립되어버리는 것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86


바우어는 '정치적 해방이 인간적 해방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연구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정치적 해방과 일반적인 해방을 무비판적으로 혼동'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쓴 것은 곧, "이봐, '정치적 해방'과 '인간적 해방'은 다르단 말이야"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죠.

'정치적 해방', 즉 법률에 의해 '인종 차별을 하면 안 됩니다'라고 정하는 것은 물론 '일보 진보'겠지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렇게 마랳요. "그건 하나의 '진보'일 뿐 종점은 아니야. 이야기를 거기에서 끝내버리면 안 된다고, 유대인은 정치적으로는 해방되었어도 인간적으로는 아직 해방이 안 되어 있거든."  87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인간 해방이 실현된 이상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시민 사회에서 시민들이 누리고 있는 것은 '고립의 자유'예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대신 누구도 폐를 끼치지 못하게 할 권리. '고립되어 자기 안에 콕 틀어밖혀 잇는 모나드(단자)로서 누리는 인간의 자유'(앞의 책 43쪽)라고나 할까요. 인간과 인간이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거리를 두는 것에서 더욱 커다란 가치를 찾는 것이 근대 시민이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어요. 시민사회의 기초는 "'자신의 재산, 자신의 소득, 자신의 노동 및 노무의 성과를 임의대로 향수하고 처분할' 권리"(앞의 책 44쪽)에 있다고 말이죠.  90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정부에 자신의 권리 일부를 맡기고 법률을 제장하거나 법을 준수하며,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내고, 징병령이 떨어지면 무기를 들고 조국을 위해 싸우기도 해요. 이런 시민의 모습을 마르크스는 '공민'이라고 부르지요. 이는 공적인 기능이란 측면에서 규정한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시민을 '속마음에 충실한 시민'이라고 한다면, 공민은 규칙에 따라 의무를 다하는 '원칙에 충실한 시민'이라고 하겠지요. 요컨대 시민은 '사인(私人)'과 '공민'이라는 두 얼굴을 갖게 되지요. 사인으로서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민으로서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식으로...  91


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유적 존재'란 "현실의 개체적 인간이 추상적인 공민을 자기 안에서 되찾은" 상태를 가리켜요. 시민사회에서는 '공사의 혼동'이 어디까지나 '공보다 사는 우선한다'는 것임에 비해, 유적 존재는 공과 사를 문자 그대로 일치시킨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93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 쓰는 만큼의 열의로 이웃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을 쓰는 '유적 존재'가 되는 것을 '인간 해방의 완수'라고 봤어요.  94


마르크스는 사회 전체를 '특별한 의미에서 해방하는 입장'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이 텍스트를 통해 끄집어내려고 해요. 프롤레타리아론은 마르크스의 사회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간과 관련있는 테제인데요...

마르크스는 스스로를 '족쇄밖에 잃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라고는 여기지 않았으니까요.(마르크스에게는 족쇄 이외에도 가족이나 친구, 동지 같은 '좋은 것'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권리를!' 같은 테제를 증여의 구문으로 썼어요. 이 테제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자신의 소유물'을 선물로 내주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윤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프롤레타리아'라고 자칭하는 인간이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권리를!'하고 주장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요.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윤리적으로는 옳지 않거든요. 인간은 자기가 손에 넣고 싶다고 바라는 것을 우선 다른 사람에게 증여함으로써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이것도 내가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확신하게 된 교훈의 하나예요.  102-103




인간에 대한 연민, 그 위대한 시작 <경제학-철학 수고>


'소외된 노동'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대상에 쏟아부은 생명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라 대상의 것이다... 그의 노동이 들어간 생산물은 그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생산물이 커지면 커질수록 노동자 자신은 그만큼 가난해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을 외화한다는 것은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에, 하나의 외적인 현실 존재가 된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에게서 독립한 소원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에 대해서 자립적인 힘이 되는바, 그가 대상에 부여한 생명이 그에 대해 적대적이고 소원하게 대립한다는 의미이다.  147


마르크스 자신은 부르주아였으니 그가 인용한 가혹한 노동의 경험 같은 것은 안 해봤을 테지요. 하지만 강렬한 공감려고가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148


소외론의 출발점이 '자신의 비참함'이 아니라 '타인의 비참함'을 목도한 경험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우리를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들을 소외된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우리의 임무"라고 주장한 것이지요.  149


'유적존재'

'나만 좋으면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본심만 내세우며 살아간다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하고 수탈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인간을 바꿀 것인가, '유적 존재'를 지향하면 바뀐다." 이것은 제3초고의 제2장 [사적 재산과 코뮌주의]의 중심논점이에요.

지금 내가 인용하고 있는 책에서는 보통 '공산주의'라고 번역하는 Kommunismus를 '코뮌주의'라고 옮겨놓았어요. '코뮌(Kommune)'이란 공동체를 가리키는데요. 나라나 지방 정부 같은 상명하달 시스템과 달리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범위, 목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서 합의를 통해 제도를 만들고 규정을 정리하며 자치를 행하는 단위예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중앙 집권적이지 않은 통치 기구를 말하지요. 이러한 조건을 정치 제도의 기본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코뮌주의'인데요. 이것을 '공산주의'라고 해버리면 역사적으로 현존했던 '공산당'이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 같은 것과 어쩔 수 없이 연관시켜 이해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러한 구체적인 역사적 존재가 등장하기 이전에 아직 막연한 관점에 지나지 않았던 시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굳이 '코뮌주의'라는 번역어를 갖다 쓴 것 같아요.(혼자만의 추측에 부로가하지만)  150-151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고 훨씬 문명적인 코뮌주의입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본질의 현실적 획득으로서의 코뮌주의(앞의 책 349쪽)"  152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독일 이데올로기>


<독일 이데올로기>의 구선은 제1권 <최근의 독일 철학 비판>, 제2권 <독일 사회주의 비판>으로 되어 있어요.

제1권에서는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를 검토하고 있지요. 이 세 사람은 모두 청년헤겔학파의 멤버로 한동안 마르크스와 헤겔이 높이 평가했었지요. '헤겔 좌익'이라고도 부르는 청년헤겔학파는 헤겔의 철학을 계승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자 ㅇ혁신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헤겔의 철학에는 '변증법'이라 부르는 변혁의 정신이 내재해 있는데, 현실 세계에 대해 헤겔은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현재 세계의 모습을 훌륭하다고 옹호하는 보수적-현상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어요. 청년헤겔학파는 이른바 헤겔의 언행 불일치에 불만을 품고, 특히 종교 분야에서 낡은 체제에 도전했어요.

그러나 그들도 대부분 자유나 민주주의 문제 같은 것을 당시 독일의 구체적인 정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관념의 세계에서 벌이는 투쟁(공중전)으로 현실의 개혁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 약점을 갖고 있었어요.

이런 대목이 의견의 차이를 낳게 되어 마르크스는 <라인신문>의 편집을 둘러싸고 바우어 형제와 심하게 맞붙었고, 엥겔스와 함께 쓴 <신성 가족>에서 브루노 바우어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게 되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우선 문제를 관념의 세계에서 인간이 매일 생활하는 현실 세계로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2권에서는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진정한 사회주의라는 사상적 조류를 비판하고 있어요. 프랑스나 영국에서 이러한 조류는 자기 나름대로 현실 세계를 직시한 결과 생겨난 사회주의 사상이었지만, 독일로 수입되면서 독일의 독특한 관념 세계와 결부되어 버린 것이지요.  172-173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에는 처음부터 비판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어요. 

"이데올로기는 분명 이른바 사상가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과정이지만, 그 의식은 잘못된 의식입니다. 사상가를 움직이는 본래의 추진력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이데올로기적 과정이 아닐 것입니다."(<엥겔스가 메링에게 보맨 편지> 1893년 7월 14일)  174


"그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그들의 생산, 즉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또 어떻게 생산하는가 하는 것과 일치한다."(<신판 독일 이데올로기> 31쪽)

사적유물론을 '한마디'로 설명하라고 하면(무리한 주문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만큼 유명한 구절이죠.  211


예를들어 '근본부터 사악한 인간'이 있다고 쳐봐요. 그런데 이놈이 어쩌다가 '선행'을 했어요(전철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든가, 뭐... 이런 일은 엄밀히 말해서 '생산'은 아니지만요). 사적유물론의 견지에서 말하면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마르크스는 이 사람이 '사실은 어떤 놈인가' 같은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무리 근본이 돼먹지 않았다고 해도 선행을 하면 선인이고 아무리 근본이 선량하다해도 나쁜 짓을 하면 악인이라는 것이죠.  212


마르크스는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인간'이야말로 인간의 본바탕이어야 한다고 말해요. '현실적이고 역사적으로' 변변치 못한 일을 한 인간은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고 말이에요.

나는 이치의 옳고 그름보다도 윤리적으로 마르크스가 우월하다고 생각했어요.  213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것, 상상하는 것, 표상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또한 이야기하고 사유하고 상상하고 표상하는 대상이 되는 인간들로부터 출발하여, 거기에서 생겨난 진정한 인간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또 그들의 현실적인 생활 과정으로부터 이 생활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반영과 반향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도 해명할 수 있는 것이다."(앞의 책 42쪽)  216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요약하면,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것, 상상하는 것, 표상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는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들'에 따라 '그들의 현실적인 생활 과정으로부터' 검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217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앞의 책 42쪽)

멋진 말 아닌가요? 'A는 B가 아니라 B가 A다'라는 수사법은 마르크스의 십팔번이었어요. 논리학적으로는 무리를 범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수사를 애용했어요. 마치 입버릇인 것처럼 말이죠. 아마도 이런 표현이 '자연물처럼 보이는 조작물'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마르크스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218


"공산주의 사회에서 각자는 그런 까닭에 고정된 어떤 활동 범위에 갇히지 앟고, 어디라도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하고 잇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하고 낮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며, 저녁 밥을 먹은 뒤에는 비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반드시 사냥꾼, 어부,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신판 독일 이데올로기> 67-68쪽)

분업에 의해 인간이 '어떤 특정한 범위에만 머무르는 것'을 강요받고, 특정한 직업에 속박당할 때, 그 노동은 '그에게 소원하고 적대하는 힘'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런 표현을 동원하여 분업을 비판했어요. 동시에 사냥꾼이자 어부이자 목동이자 비평가(이것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사람, 즉 내가 앞에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액자를 대는 사람'= 지식은을 가리킵니다)이기도 한 인간을 이상으로 삼은 대목은 아마도 내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감동 받은 부분이 아닐까해요.

마오쩌둥은 힘들고 고된 연안 장정 시기에 홍군 병사들을 향해 동시에 군인이자 농부이자 기술자이자 정치사상가이자 교사가 되라고 요구했겠지요. 그는 '공(工)농(農)상(商)학(學)병(兵)'이 한 사람 안에 통합되어 있는 모습을 인간의 이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219-220




'지성을 단련하는' 일은 물론 마르크스를 달달 외우거나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에요. 마르크스는 도대체 현실 세계-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잇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였어요-의 어디를 보고 무엇을 찾아내려고 했을까?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마르크스이 언어를 따라가면서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결과 마르크스가 도달한 지점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이었는가를 자신의 머리로 판단해가는 일, 그런 훈련을 해나가기 위해서 마르크스를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성의 단련'이겠죠.

어찌 된 일인지 마르크스한테는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아요.

상대가 마르크스든 아니든, 글을 읽을 때는 거기에 쓰여 있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두뇌를 단련시킬 수 없어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한 마르크스 자신이야말로 항상 그런 자세로 비판적인 정신을 가지고 선배 사상가들의 지적 성과와 씨름하고자 한 사람이었어요.

한편, 이 책을 훑어봤다면 느꼈을 테지만, 마르크스는 글을 쓰면 쓸수록 그 내용이 확확 변해가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이 변화하고 탐구의 깊이가 심화되어 갈수록 더욱 사안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이전의 사고 방식을 과감하게 전환시키기도 하고, 과거에 도달한 지점을 가차없이 내던져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어요.  222-223



마르크스의 저작 나이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유대인 문제> 25세

<경제학-철학 수고> 26세

<독일 이데올로기> 28세

<공산당 선언> 29세

<프랑스의 계급투쟁> 32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33세

<임금, 가격, 이윤> 47세

<자본론> 제1권 48세

<프랑스 내전> 53세     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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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문(마르크스-엥겔스) -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선언 (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

 

- K. marx, F. Engels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A spectre is haunting Europe)--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첩보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열강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집권당으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아보지 않은 반대당이 있는가? 또한 그 공산주의라는 비난의 낙인을 오히려 자기의 반동적 적들에게, 뿐만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다른 반대당에게 되돌려지지 않는 반대당이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점이 도출된다.

1. 모든 유럽의 열강은 이미 공산주의를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했다.

2.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이 당 자체의 선언을 통하여 전세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 목적, 경향성을 발표하고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그 옛날이야기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알맞는 시기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여러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런던에 모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초안하고 이를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덴마크어로 출판하게 된 것이다.

 

 

I.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대대적인 사회의 혁명적 재편 또는 경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났다.

이전의 역사적 시대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가 다양한 질서, 잡다한 사회적 서열의 등급으로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영주, 가신(家臣), 길드장인, 직인, 도제, 농노가 있었다. 이들 계급의 거의 대부분은 또 부수적인 등급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봉건사회의 폐허로부터 싹튼 현대 부르주아사회는 계급적대를 없애지 못했다. 단지 낡은 것들 대신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의 조건, 새로운 투쟁형태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계급적대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전체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양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면하고 있는 양대 계급으로 점점 더 분열되어 가고 있다.

중세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시민이 생겨났으며, 이 시민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최초 분자들이 발전해 나왔다.

아메리카의 발견, 케이프 항로의 발견은 떠오르는 부르주아지를 위한 신선한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동인도와 중국의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와의 무역, 교환수단의 상품의 전반적인 증가는 상업과 해운업 및 공업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충격을 가하였으며, 또 그럼으로써 비틀거리는 봉건사회내의 혁명적 요소에게는 급속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폐쇄적 길드가 산업생산을 독점하고 있던 봉건적 산업체계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시장이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를 대신한 것이 곧 매뉴팩처 체계였다. 길드장인은 매뉴팩처 중간계급에 의해 밀려났으며, 서로 다른 자치적 길드들 간의 분업은 사라지고 각 공장 내에서의 분업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으며, 수요 또한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뉴팩처조차도 이제 불충분한 것이 되었다. 또한 증기와 기계가 산업생산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켰다. 매뉴팩처의 위치는 거대한 현대산업으로 대체되고 산업 중간계급의 위치는 산업 백만장자, 전체 산업부대의 지휘관, 현대 부르주아지가 차지하게 되었다.

현대산업은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길이 트인 세계시장을 확립했다. 세계시장은 상업, 해운업, 육상교통의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발전은 거꾸로 산업의 확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공업, 상업, 해운업, 철도가 확장되는 것과 똑같은 비율로 부르주아지는 발전했으며 자신의 자본을 증가시켰고, 중세시대로부터 이어 내려온 모든 계급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현대 부르주아지 자체가 긴 발전과정의 산물이며,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에서의 일련의 혁명이 낳은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각 발전단계에는 그에 상응하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진보가 뒤따랐다. 봉건귀족의 지배하에서는 피억압계급으로, 중세 코뮨에서는 무장자치단체--어느 곳에서는 자립적 도시공화국(이탈리아와 독일), 또 어느 곳에서는 군주의 과세대상인 것제3신분겄(프랑스)--로 있던 부르주아지는 이후 메뉴팩처 시기에는 귀족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사실상 일반적으로는 대군주들의 초석으로서 반(半)봉건군주 또는 절대군주에 봉사했으며, 현대산업과 세계시장이 확립되면서부터는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현대의 대의제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대국가의 집행기구는 단지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사를 관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는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지배를 확립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전원적 관계를 종식시켜 왔다. 부르주아지는 인간을 것타고난 상하관계겄에 묶어 놓는 잡다한 봉건적 끈을 가차없이 끊어버렸으며, 그 외의 모든 인간의 관계를 적나라한 이기심, 냉혹한 것현금지불관계겄로만 만들어 놓았다. 또한, 가장 신성한 종교적 정열의 환희, 기사도적 열정의 환희, 세속적 감상주의의 환희를 자기중심적 타산이라는 얼음같이 차디찬 물 속에 빠뜨려버렸다. 또,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용해시켜 버렸으며, 결코 무효화될 수 없이 공인된 무수한 자유 대신 저 자유무역이라는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를 세워 놓았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적나라하고 후안무치하고 노골적이고 야수 같은 착취로 대체한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과 경건한 경외심으로 받들어졌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후광을 걷어냈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과학자를 자신이 보수를 주는 임금노동자로 전환시켜 버린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가족으로부터 그 감정의 장막을 찢어내고 가족관계를 단순한 돈의 관계로 만들었다.

부르주아지는 복고주의자들이 그토록 경애해마지 않는 중세시대의 야수같은 힘의 과시가 어떻게 하여 가장 게으른 나태로써 훌륭히 보완되는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과연 무엇을 낳을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보여준 예였다. 부르주아지는 이집트 피라밋이나 로마의 수도(水道), 고딕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기적을 이룩했다. 이전의 모든 민족대이동이나 십자군 따위의 견주지도 못할 원정들을 감행한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생산도구를 혁명적으로 개조하고, 그럼으로써 생산관계를 개조하며, 또 그와 더불어 사회관계 전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 반면, 이전의 모든 산업 계급들에게는 낡은 생산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1차 존재조건이었다. 끊임없는 생산의 혁명적 발전, 모든 사회적 조건들의 부단한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의 이전의 모든 시대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되고 꽁꽁 얼어붙은 관계들,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딱딱한 것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거룩한 것은 모두 더럽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생산물을 팔 수 있는 시장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으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구석구석을 누벼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가는 곳마다 둥지 틀고 자리잡고 연고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착취를 통하여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적인 성격을 부여해왔다. 복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이겠으나 부르주아지는 산업의 발 밑으로부터 산업이 딛고 서 있는 일국적 기반을 빼앗아냈다. 기존에 확립된 모든 일국적 산업들은 이미 파괴되었거나 나날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모든 문명민족들이 생사를 걸고 도입하려 하는 새로운 산업, 이제 더 이상 토착 원료자원을 가공하지 않고 가장 먼데서 온 원료자원을 가공하면서도 그 생산물은 국내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구석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산업이 그 낡은 산업들을 몰아내고 있다. 그 나라의 생산물로 충족되던 낡은 욕구 대신에, 먼 나라 먼 토양의 생산물로 충족될 수 있는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다. 낡은 지역적, 민족적, 단절과 자급자족 대신 모든 방면에서의 상호교류 민족들간의 보편적 상호의존이 나타난다. 이는 물질적 생산뿐 아니라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민족의 지적 창조물은 공동의 재산이 된다. 민족적 편향성과 편협성은 점차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민족적, 지역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가 급속히 향상되고 교통수단이 엄청나게 개선됨으로써, 가장 미개한 민족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을 문명화시킨다. 상품의 저렴한 가격은 모든 만리장성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미개인의 매우 고집스런 증오를 굴복시키는 대포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에게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채택할 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가지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입할 것 즉, 부르주아 자체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기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시골을 도시의 지배에 복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거대도시들을 만들었고, 농촌에 비해 도시인구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며, 이를 통해 상당 부분의 인구를 농촌생활의 백치상태로부터 구출해냈다 .또한 시골이 도시에 종속되도록 만든 것과 똑같이 미개국과 반미개국들이 문명국들에게, 농민의 나라가 부르주아의 나라에게, 동양이 서양에게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부르주아지는 인구, 생산수단, 재산의 분산된 상태를 점차 제거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인구를 한데뭉치고, 생산수단을 집중시켰으며, 재산을 소수의 손에 집적시켰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정치적 집중이 이루어졌다. 개별적 이해관계와 법률, 정부, 조세제도를 갖고 있던 독립적 지역 또는 그것들과 대충 관련된 지역들은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조문, 하나의 일국적 계급이해, 하나의 국경, 하나의 관세를 지닌 하나의 나라로 뭉치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백년 남짓한 자신의 지배기간 동안 이전의 모든 세대들이 이루어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창출했다.

인간에 대한 자연력의 복속, 기계, 공업과 농업에서의 화학의 응용, 기선, 철도, 전기통신, 경작을 위한 전 토지의 개간, 운하 건설, 땅에서 솟아난 듯한 거대한 인구--이전세기에 그러한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품속에 잠자고 있으리라고 예감이나마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할 수 있다. 부르주아지가 딛고 서 있는 토대인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은 봉건사회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이 특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조건,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말해, 봉건적 소유관계는 이미 발전되어 있는 생산력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만큼의 질곡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은 산산이 부서져야 했으며, 실제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자유경쟁이 대신 들어섰으며, 또 자유 경쟁에 맞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뒤따랐고, 부르주아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가 뒤따랐다.

지금 우리 눈앞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생산관계, 교환관계, 소유관계를 가지고 있는 현대 부르주아사회, 엄청난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출현시킨 이 사회는 자기가 주술로 불러낸 명부(冥府)세계의 힘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도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상업의 역사는 오직 현대적 생산조건에 대한, 또 부르주아지와 그 지배의 존재조건인 소유관계에 대한 현대적 생산력의 반란의 역사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면서 갈수록 더 한층 위협적으로 전체 부르주아사회의 존망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상업공황만을 언급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공황에서는 기존 생산물뿐 아니라 이전에 창조된 생산력의 거의 대부분이 주기적으로 파괴된다. 또한 이전의 모든 시대에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전염병, 즉 과잉 생산의 전염병이 번지게 된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마치 기근이나 전면전의 황폐로 인해 모든 생존수단의 공급이 차단된 것처럼 된다. 산업과 상업은 파괴된 듯이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도한 문명화, 과도한 생존수단, 과도한 산업, 과도한 상업 때문이다. 사회의 수중에 있는 생산력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조건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데로 향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생산력은 소유조건에 비해 너무 강력해져서 오히려 그것에 의해 질곡당하며, 질곡을 극복하자마자 생산력은 부르조아사회 전체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부르주아적 소유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든다. 부르주아사회의 여러 조건은 생산력이 만들어낸 부를 포괄하기에는 너무 협소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지는 어떻게 이러한 공황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대향 파괴를 강화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정복하고 기존의 시장을 더욱 철저하게 착취함으로써 극복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보다 범위가 넓고 보다 파괴적인 공황을 위한 길을 닦으며, 공황을 예방하는 수단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봉건제를 무너뜨렸던 무기가 이제 부르주아지 자신을 겨냥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자신을 죽이는 무기를 주조했을 뿐 아니라 이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인 현대 노동계급, 곧 프롤레타리아들도 탄생시켰다.

부르주아지, 즉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 노동계급도 발전한다. 이들은 일거리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대시키는 한에서만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이들 노동자는 다른 보통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을 조금씩 팔아야 하는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경쟁의 성패 여하에, 시장의 동요 여하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기계의 광범위한 활용과 분업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모든 개인적 성격을 잃었으며, 그 결과 노동자에 대한 매력도 사라졌다. 노동자는 이제 기계의 부속물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쉽게 획득한 기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산비용은 거의 전적으로 그가 자신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데 필요한 생존수단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상품의 가격, 곧 노동의 가격은 그 생산비용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에 대해 느끼는 반발심이 강할수록 임금은 감소한다. 그뿐 아니라 기계의 사용과 분업이 증가할수록, 노동시간이 연장되거나 주어진 시간 내에 강제된 노동량이 증대하거나 기계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는 등으로 인해 고통스런 짐 또한 증가한다.

현대산업은 가부장적 장인의 작은 작업장을 산업자본가의 거대한 공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공장으로 결집된 노동자대중은 군대식으로 편성된다. 그들은 산업군대의 사병(私兵)으로써 장교, 하사관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위계의 지휘하에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계급, 부르주아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시간이 갈수록 기계에 의해, 관리자에 의해, 무엇보다도 개별 부르주아적 공장주 자신에 의해 노예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횡은 영리가 그 목표이자 목적임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면 할수록 더 한층 인색해지고 증오스러워지고 쓰라린 것이 된다.

육체 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발휘되는 힘이 줄어들수록, 바꿔 말해서 현대산업이 발전할수록 더 한층 남성의 노동은 여성의 노동으로 대체된다. 연령과 성별의 차이는 더 이상 노동계급에게 사회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연령의 성별에 따라 사용하는 값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노동의 도구인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자에 대해 공장주의 착취가 끝나고 노동자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게 되자마자 부르주아적의 기타 부분, 즉 집 주인, 상점 주인, 전당포 주인등이 노동자에게 달려든다.

도매상, 상업주, 일반적으로 은퇴한 상인들, 수공업자와 농민 등 중간계급의 하층은 점차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들의 영세자본으로는 현대산업이 움직이는 규모를 감당할 수 없고, 대자본가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인해 그들의 전문화된 기술이 쓸모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의 인구로부터 충원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다양한 발전단계를 거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생겨나자마자 부르주아지와의 투쟁도 시작된다. 처음에는 개별 노동자들이 싸움을 시작했으나 다음에는 한 공장의 근로자들이, 그 다음에는 한 직종, 한 지역의 직공들이 자신들을 직접 착취하는 개별 부르주아를 상대로 싸우게 된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생산조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생산도구 자체에 대해서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과 경쟁하는 수입품을 쳐부수며, 기계를 산산조각내고, 공장을 불지르며, 사라져버린 중세시대 근로자의 지위를 무력으로 회복하고자 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는 아직 전국에 흩어져 있고 자기들 간의 상호경쟁으로 분열되어 있는 지리멸렬한 대중에 머물러 있다. 설사 그들이 모여 보다 긴밀한 결합체를 이룬다 해도 그것은 아직 그들 자신이 연합한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연합한 결과이다. 부르주아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게다가 아직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적, 즉 절대군주제의 잔재인 지주, 비산업부르주아, 쁘띠부르주아지와 싸우는 것이다. 이리하여 전체 역사적 운동은 부르주아적 수중에 집중된다. 그렇게 얻어진 승리는 모두 부르주아지를 위한 승리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숫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보다 큰 무리로 집중되어 힘이 더욱 성장하며, 그 힘을 더욱 자각하게 된다. 기계가 노동의 모든 차이들을 소멸시키고 거의 모든 곳에서 임금을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감축시키는 것과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대열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생활조건은 더욱 더 평준화된다. 부르주아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그 결과 상업공황이 일어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갈수록 동요하게 된다. 기계가 급속히 발전하고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노동자의 생활은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개별 근로자와 개별 부르주아 간의 충돌은 갈수록 두 계급간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결사체(노동조합)를 결성하기 시작하며, 임금율을 높이기 위해 한데 뭉치고, 때때로 일어날 충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단체를 창건한다. 여기저기에서 싸움은 폭동으로 터지게 된다.

때때로 노동자는 승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싸움의 실제적 결실은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하는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다 .현대산업이 만들어낸 전달 수단으로 인해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단결은 한층 확대된다. 바로 이 접촉이야말로 같은 성격을 지니는 수많은 지역적 투쟁을 계급들간의 하나의 전국적 투쟁으로 집중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중세 시대의 시민이 옹색한 도로를 가지고 수백 년의 기간을 거쳐 달성한 그 단결을 한 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에 힘입어 수 년간 이룩한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나아가 하나의 정당으로 조직하는 일은 노동자 자신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계속 저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수록 항상 다시 솟아오르며, 강해지며, 굳어지며, 거세지고 있다. 그 조직은 부르조아지 자체의 분열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특정한 이해에 대한 입법적 승인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10시간 노동법안이 통과되었다.

기존 사회의 계급들 간에 일어나는 모든 충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과정을 촉진시킨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항상적인 싸움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부르주아지는 처음에는 귀족과, 이후에는 부르주아지 가운데 산업의 진보에 대해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일부분과, 그리고 외국의 부르주아지와는 항상, 싸움을 벌여왔다. 이 모든 싸움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무대로 끌어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부르주아지는 스스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기자신의 정치교육과 일반교육의 요소들을 공급하게 된다. 달리 말해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과 맞서 싸울 무기를 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본 대로 지배계급의 모든 분파들은 산업의 진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존재조건을 위협당하게 된다.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계몽과 진보의 새로운 요소를 공급한다.

마지막으로, 계급투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르게될 때 지배계급 내부에서, 아니 사실상 기존 사회 전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붕괴과정은 매우 격렬하고 강렬한 성격을 띠게 되므로 지배계급의 일부가 떨어져나와 미래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혁명적 계급의 편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찍이 귀족의 일부가 부르주아지 편으로 넘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부르주아적 한 부분, 특히 역사적 운동 전반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올린 부르주아적 사상가들의 부분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으로 넘어온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현대산업이 전진함에 따라 몰락하며 결국 사라져가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현대 산업의 특수하고도 본질적인 산물이다.

중간계급 하층, 소규모 공장주, 상점주, 기능공, 농민 등 이들 모두는 중간계급의 각 부분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르주아지에 맞서 싸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혁명적이 아니고 보수적이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후진시키려 하기 때문에 반동적이기도 하다. 간혹 그들이 혁명적인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로의 전락이 임박했음을 예감했을 경우에만 그러하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현재 이익이 아닌 미래 이익을 수호하며,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낡은 사회의 최하층에서도 내팽개쳐진, 수동적으로 썩어가는 대중인 것위험한 계급겄, 사회적 쓰레기는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인해 곳곳에서 운동 속에 휩쓸릴 수 있으나, 그 생활조건 때문에 그들은 거의가 반동적 음모에 의해 매수되는 도구의 일부가 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조건들 가운데 낡은 사회의 조건들은 대부분 이미 사실상 곤궁에 처해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재산도 없고, 처자와의 관계도 이제 더 이상 부르주아적 가족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으며, 영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미국에서나 독일에서나 현대적 산업노동, 자본에 대한 현대적 종속으로 인해 그는 일체의 민족적 성격을 잃어버렸다. 그에게 법, 도덕, 종교 따위는 바로 그만큼의 부르조아적 편견과 똑같으며, 그 뒤에는 그만큼의 부르조아적 이익이 매복해 있을 뿐이다.

선행했던 모든 지배계급들은 사회의 대부분을 자신의 전유(專有)조건하에 종속시킴으로써 기존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기자신의 이전의 전유양식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또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전유양식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또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전유양식까지 폐지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생산력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획득하고 강화시킬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사명은 지금까지 개인재산을 보호하고 보장해 온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전의 역사적 운동은 모두 소수의 운동이며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거대한 다수의 자의식적이고 자주적인 운동이며, 거대한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우리 현 사회의 최하층인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 사회의 모든 상위층들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도 일어설 수도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조아지의 투쟁은 처음에, 내용에서는 아니더라도 형식에서는 일국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당연히 무엇보다 먼저 자국 부르조아지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일반적인 발전국면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어느 정도 은폐된 내전을 추적하여, 그 내전이 공개적인 혁명으로 터져나오고 부르조아지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를 위한 토대를 놓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미 보았듯이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형태는 억압계급과 피억압계급간의 적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한 계급을 억압하려면 그 계급이 적어도 자신의 노예적 존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정한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농노제시대의 농노가 코뮨의 구성원으로 발전해 나갔듯이, 봉건적 절대주의의 멍에 속에 있던 쁘띠부르조아는 부르조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노동자는 산업의 진보에 따라 떠오르기는커녕 자기 계급이 존재조건 아래로 더욱 가라앉는다. 노동자는 빈민이 되며, 빈곤은 인구나 부의 증가보다 더 빨리 발전한다. 여기서, 부르조아지가 사회의 지배계급이 되거나 자신의 존재조건을 고압적인 법률로 사회에 강제하는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즉, 부르조아지는 자신의 노예제 내에서 노예의 생존을 보장해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즉 노예가 자기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예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노예를 빠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지배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이제 이 부르조아지 아래에서 살 수 없다. 달리 말해 부르조아지의 존재는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조아계급의 존재와 지배를 위한 본질적 조건은 자본의 형성과 증대이며, 자본의 조건은 임금노동이다. 임금노동은 오직 노동자들 간의 경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타의적이기는 하지만 부르조아지가 촉진시키는 산업의 진보는 경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 결사로 인한 혁명적 결합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현대산업의 발전은 부르조아지가 생산물을 생산하고 전유하는 바로 그 토대를 그 발 밑에서 무너뜨리는 셈이다. 결국 부르조아지가 생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일뿐이다. 부르조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양자 모두 불가피한 것이다.

 



II.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의 당들과 대립하는 별도의 당을 결성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이해와 별도로 분리된 이해를 가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자신만의 분파적 원칙을 세워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이 원칙에 뜯어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오직 다음과 같은 점에서만 다른 노동계급의 당들과 구별된다. (1) 각국 프롤레타리아의 일국적 투쟁에서, 일체의 국적으로부터 독립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2) 부르조아지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거치는 다양한 발전단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는 한편으로 실천적인 면에서는 모든 나라 노동계급 당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결의에 찬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당들을 밀고 나아가며, 다른 한편으로 이론적인 면에서는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행노선, 조건,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 당들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조아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데 있다.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이해와 별도로 분리된 이해를 가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자신만의 분파적 원칙을 세워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이 원칙에 뜯어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오직 다음과 같은 점에서만 다른 노동계급의 당들과 구별된다. (1) 각국 프롤레타리아의 일국적 투쟁에서, 일체의 국적으로부터 독립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2) 부르조아지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거치는 다양한 발전단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는 한편으로 실천적인 면에서는 모든 나라 노동계급 당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결의에 찬 부분으로서 이론적인 면에서는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행노선, 조건,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 당들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조아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데 있다.

공산주의자의 이론적 명제들은 결코 이러저러한 자칭 보편적 개혁가가 발명 또는 발견한 사상이나 원칙들에 기초하지 않는다.

그 명제들은 단지 일반적인 견지에서 현존하는 계급투쟁으로부터, 바로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운동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실제적 관계들을 표현할 뿐이다. 현존하는 소유관계의 폐지는 결코 공산주의의 명백한 특질이 아니다.

과거의 모든 소유관계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역사적 변화에 항상 종속되어 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은 부르조아적 소유의 편에서 봉건적 소유를 폐지했다.

공산주의의 명백한 특질은 소유 일반의 폐기가 아니라 부르조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런데 현대 부르조아적 사유재산은 게급적대에 기초한,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에 기초한 생산물의 생산, 전유 체제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의 이론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공산주의자는 한 사람이 자기 노동의 결실로서 사적으로 얻은 재산, 이른바 모든 사적 자유, 행동, 자주성의 기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받아 왔다.

자기가, 자신의 힘으로, 애써 벌어들인 재산이라니!

그것은 부르조아 재산형태에 선행하는 소기능공이나 소농민의 재산을 뜻하는가? 그것이라면 폐지할 필요도 없다. 산업의 발전이 이미 상당히 파괴해 왔고 지금도 나날이 파괴하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현대 부르조아적 사유재산을 뜻하는가?

그러나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재산, 새로운 착취를 위한 임금노동이 새로운 공급을 창출하는 조건이 없이는 증가될 수 없는 재산이다. 현재의 소유형태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적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제 이러한 적대의 양 측면을 검토해 보자.

자본가가 된다는 것은 생산에서 순수히 사적인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도 갖는다는 것이다. 자본은 집단적 산물이며, 오직 많은 구성원들의 공동 행동에 의해서만, 아니 궁극적으로는 전사회 구성원들의 공동행동에 의해서만 운동할 수 있다.

요컨대 자본은 사적인 힘이 아니라 사회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공동재산, 전 사회 구성원의 소유로 바뀐다고 해서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변화되는 것은 단지 소유의 사회적 성격뿐이다. 소유는 그 계급적 성격을 잃는다.

이제 임금노동을 보자.

임금노동의 평균가격은 최저임금, 즉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겨우 생존하게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수단의 양이다. 그러므로 임금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전유하는 것으로는 단지 그 생존의 연장과 재생산만을 충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노동생산물의 사적 전유를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생활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것일 뿐,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잉여를 남기지 낳는다. 우리는 오로지 그러한 전유의 비참한 성격을 제거하고자 할뿐이다. 그러한 전유하에서 노동자는 단지 자본을 증대시키기 위해 살아가며, 지배 계급의 이익이 요구하는 한에서만 살아갈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부르조아사회에서 산 노동은 축적된 노동을 증가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반면 공산주의사회에서 축적된 노동은 노동자의 생존을 넓히고 풍요롭게 하며 촉진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르조아사회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만, 공산주의사회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부르조아사회에서 자본은 독립적이고 개성을 갖는 반면, 살아 있는 사람은 종속적이고 개성을 갖지 못한다.

부르조아는 이러한 상태의 폐지를 개성과 자유의 폐지라고 말한다! 그것은 옳다. 그것은 바로 부르조아적 개성, 부르조아적 독립성, 부르조아적 자유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부르조아적 생산조건하에서 자유라 할 때 그것은 자유거래, 자유매매를 뜻할 뿐이다.

그러나 매매가 사라진다면 자유매매 역시 사라진다. 자유매매에 관한 이야기, 그 밖의 자유 일반에 관한 우리 부르조아지의 것호언장담겄 따위는 모두,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단지 중세시대 속박된 상인들의 제한된 매매와 대비에서만 그러할 뿐, 매매, 부르조아적 생산 조건, 그리고 부르조아지 자체에 대한 공산주의적 폐지와 대비될 때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당신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폐지하려 하는데 대해 경악한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9./10의 인구에게 사유재산은 이미 제거되었다. 소수에게 사유재산이 있는 이유는 순전히 그 9/10의 수중에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사회의 광범한 대다수에게 일체의 재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그 존재의 필요조건으로 하는 재산형태를 제거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재산을 제거하려한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하려 한다.

노동이 더 이상 자본이나, 화폐, 지대로, 독점 가능한 사회적 힘으로 전화될 수 없게 되는 순간부터, 다시 말해 개인소유가 더 이상 부르조아적 소유로, 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개성은 사라진다고 당신은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것개인겄이라고 할 때 그것은 바로 부르조아적 소유자, 중간계급 소유자를 뜻하는 것임을 고백해야 한다. 사실 그런 개인은 깨끗이 일소되어야 한다.

공산주의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회의 생산물을 전유할 힘을 박탈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전유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힘을 박탈할 뿐이다.

공산주의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회의 생산물을 전유할 힘을 박탈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전유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힘을 박탈할 뿐이다.

사유재산이 폐지되면 모든 노동이 중단되고 곳곳에서 나태가 우리를 덮칠 것이라는 반대가 있어왔다.

그러나 그에 따른다면 이미 오래 전에 부르조아사회는 순전히 게으름으로 인해 파멸해 버려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하는 사회 구성원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하며,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반대는 모두 자본이 없다면 임금노도도 있을 수 없다는 동어반복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적 생산물의 공산주의적 생산, 전유양식에 대해서 제기된 모든 반대는 똑같은 방식으로 정신적 생산물의 공산주의적 생산, 전유양식에 대해서도 제기되어 왔다. 부르조아지에게는, 계급적 소유의 소멸이 곧 생산 자체의 소명이듯이, 계급문화의 소명은 모든 문화의 소멸과 같다.

부르조아지가 잃고서 애통해하는 바로 그 문화란 실상 엄청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가계로서 행동하기 위한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부르조아적 소유의 폐지를 주장하는 데 대해 당신이 자유, 문화, 법 따위 당신의 부르조아적 개념 기준을 적용하려 하는 한 당신은 우리와 말다툼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법이란 것이 실상은 당신의 계급의지, 즉 당신 계급의 경제적 존재 조건에 의해 그 본질적 성격과 방향이 규정되는 의지가 법제화된 것에 지나지 않듯이, 당신의 바로 그 사상 역시 당신의 부르조아적 생산조건과 부르조아적 소유조건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현재 생산양식과 소유형태--생산의 진보 속에서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역사적 관계--로부터 나오는 사회적인 형태들이 자연과 이성의 영원한 법칙인 것처럼 여기는 이기적이고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당신에 선행했던 모든 지배계급들도 가지고 있었다. 고대적 소유에서 당신이 똑똑히 본 것, 봉건적 소유에서 당신이 인정한 것을 물론 당신은 당신 자신의 부르조아적 소유형태의 경우에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의 폐지라니! 공산주의자의 이 파렴치한 주장에는 가장 급진적인 사람들까지도 분노하고 있다.

지금의 가족, 부르조아적 가족이 서 있는 토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이며 사적 이익이다. 따라서 이 가족이 완전히 발전한 형태는 단지 부르조아지에게만 존재할 뿐이다. 반면 이러한 상태가 진행되면 결국 프롤레타리아에게는 가족이 실제로 사라질 것이며, 공창(公娼)만이 남을 것이다.

당신은 우리가 부모에 의한 자식의 착취를 중지시키려 한다고 해서 비난하는가? 그것도 죄라면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가 가정교육을 사회교육으로 바꾸려는 것을 모든 관계 중에 가장 성스러운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교육이란 뭔가! 당신의 교육 역시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에 의해, 학교 등을 통한 사회의 직, 간접적 개입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인 것이 아닌가? 공산주의자는 교육에 대한 성격을 바꾸고, 지배계급의 영향으로부터 교육을 구출하려 할뿐이다.

가족과 교육에 관한, 부모와 자식의 성스런 관계에 관한 부르조아적 말장난은 현대산업의 활동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인 것이 아닌가? 공산주의자는 교육에 대한 사회의 개입을 발명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개입의 성격을 바꾸고, 지배계급의 영향으로부터 교육을 구출하려 할뿐이다.

가족과 교육에 관한, 부모와 자식의 성스런 관계 관한 부르조아적 말장난은 현대산업의 활동에 의해 프롤레타리아들 간의 모든 가족적 유대가 끊어질수록, 그리고 그들이 자식들이 단순한 상품이나 노동도구로 바뀌어갈수록 더욱 혐오스러워진다.

그렇지만 너희 공산주의자들은 여성공유제를 도입하려는 게 아니냐고 전체 부르조아지는 소리 맞춰 악을 쓴다.

부르조아는 자기아내를 단지 생산도구로만 본다. 그는 생산도구는 공동으로 이용되어야 한다고 들었으므로 자연히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운명이 여성에게도 닥치리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목적하는 바는 단순한 생산도구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없애버리려는 데 있다는 것을 그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공산주의자들이 이른바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건설하려 한다는 여성공유제에 대해 우리의 부르조아가 실제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거의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의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것이므로.

우리의 부르조아는 공창은 물론 자기 휘하에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아내와 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부르조아의 아내를 유혹하는데 커다란 쾌락을 느낀다.

부르조아의 결혼은 사실상 부인공유제이다. 그러므로 설령 공산주의자가 비난받는다 하더라도 그 비난은 위선적으로 은폐된 여성공유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합법화된 여성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현 생산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이 제도에서 생겨난 여성공유제, 즉 공창과 사창이 모두 폐지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나아가, 공산주의자는 나라와 국적을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받는다.

노동자에게는 나라가 없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지배권을 획득해야 하므로, 해당 민족의 영도적 계급으로 떠올라야 하므로, 자신이 스스로 그 민족을 구성해야 하므로, 비록 부르조아적 의미는 아니지만 그 자체가 민족인 것이다.

민족들 간의 민족적 차이와 적대는 부르조아지의 발전, 상업의 자유, 세계시장, 생사양식과 그에 따른 생활조건에서의 제일성 등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그것들을 한층 더 빨리 사라지게 할 것이다. 선진문명국의 통일행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행방을 위한 1차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개인에 의한 개인의 착취가 종식되는 것과 비례하여 민족에 의한 민족의 착취도 종식될 것이다. 민족 내에서 계급간의 적대가 사라질수록 민족간의 증오 또한 사질 것이다.

종교, 철학의 견지에서 또는 일반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견지에서 나오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난은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도 없다.

인간의 관념, 견해, 생각, 한 마디로 인간의 의식이 그의 물질적 존재조건, 사회관계, 사회생활이 변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그리 깊은 직관을 필요하는가?

사상의 역사는 바로 물질적 생산이 변화하는 정도에 따라 정신적 생산이 그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항상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를 변혁하는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낡은사회 내에서 새로운 사회의 요소들이 창조된다는 사실, 낡은 사상의 해체는 항상 낡은 존재조건의 해체와 보조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고대세계가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을 때 고대종교는 기독교에 의해 정복되었다. 또 기독교 사상이 18세기에 이르러 합리주의 사상에 굴복했을 때 봉건사회는 당시의 혁명적 부르조아지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종교적 자유와 양심의 자유라는 사상은 단지 지식의 영역에서도 자유경쟁이 지배한다는 것을 표현할 뿐이었다.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겁의심할 바 없이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법적 사상은 역사발전과정에서 변형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 도덕, 철학, 정치학, 법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항상 살아남았다.겂

겁그밖에도 자유, 정의 등 어떠한 상회에도 공통적인 영원한 진리들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영원한 진리, 모든 종교나 도덕을 새로운 토대 위에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과거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모순적으로 움직인다.겂

이러한 비난은 어디로 귀결되는가? 모든 과거 사회의 역사는 계급적대,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형태를 취했던 적대의 발전사였다.

그러나 그 형태야 어떠하든 과거 모든 시대에 공통적인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곧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착취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다종다양하다 하더라도 과거 시대의 사회적 의식은, 계급적대가 모두 없어지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일정한 공동형태 또는 일반관념의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은 극히 당연한 것이다.

공산주의혁명은 전통적 소유관계와의 가장 근본적인 결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혁명의 발전은 전통적 사상과의 가장 근본적인 결별을 포함한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부르조아적 반론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자.

우리는 앞에서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 민주주의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보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조아지에게서 점차로 일체의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총생산력을 가능한 한 빨리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조아적 생산조건에 대한 전제적(專制的) 침해를 통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으로는 불충분하고 무리한 듯이 보이지만 발전해 가는 가운데 스스로를 뛰어넘어 낡은 사회질서에 대한 더 이상의 침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조치, 생산양식을 전면적으로 혁명화하는 수단으로서 불가피한 조치가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물론 나라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진적인 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매우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 토지소유를 폐지하고 모든 지대를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한다.

2. 소득에 대해 높은 누진과세를 적용한다.

3. 모든 상속권을 폐지한다.

4. 모든 망명자와 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한다.

5. 국가자본과 배타적 독점을 가진 국립은행을 통하여 신용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한다.

6. 전달, 운송수단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한다.

7. 국가소유의 공장과 생산도구를 증대한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공동의 계획에 따라 토질을 개선한다.

8. 모두가 똑같이 노동의 의무를 진다. 특히 농업을 위한 산업군을 편성한다.

9. 농업과 제조업을 결합한다. 인구를 전국적으로보다 균등하게 분배함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을 점차 폐지한다.

10. 공립학교에서 모든 어린이를 위한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현존하는 어린이의 공장노동을 폐지한다. 교육과 산업적 생산을 결합한다, 등등.

발전과정에서 계급적 파별이 없어지고 모든 생산이 광범위한 전국적 단체의 손에 집적되면, 공권력은 정치적 성격을 읽게 된다. 이른바 정치권력이란 본래 단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조직된 힘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조아지와의 싸움에서 상황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직하게 되면, 또 혁명을 통해 지배계급으로 자라나고, 그 자체로 낡은 생산조건을 무력으로 없애버리게되면, 그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들 생산조건과 더불어 계급적대와 계급 일반의 존재조건을 없애버리게 되면, 그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들 생산조건과 더불어 계급적대와 계급 일반의 존재조건을 없애버리게 될 것이며, 또 그럼으로써 한 계급으로서 가지는 자신의 지배권도 폐지하게 될 것이다.

계급과 계급적대의 낡은 부르조아사회 대신 우리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단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

 


III.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

 

1. 반동적 사회주의

 

A. 봉건적 사회주의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은 그들이 가진 역사적 지위로 인해 현대 부르조아사회를 반대하는 소책자를 쓰는 것을 소명으로 하게 되었다. 1830년 프랑스 7월혁명과 영국의 개혁운동에서 이들 귀족은 다시 한 번 혐오스런 벼락부자에게 굴복했다. 그로부터, 중대한 정치투쟁은 매우 명약관화한 일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문헌투쟁만이 가능했지만 문헌의 영역에서조차 복고시기의 낡은 외침은 불가능해져 버렸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귀족들은 겉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피착취 노동계급의 이익만을 쫓아 부르조아지를 고발해야 했다. 이와 같이 귀족은 그들의 새로운 주인을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고 주인의 귀에 다가올 재난의 대한 불길한 예언을 속삭임으로써 보복을 꾀했다.

이렇게 하여 봉건적 사회주의는 생겨났다. 반쯤은 비탄으로 반쯤은 풍자로, 또 반쯤은 과거의 메아리로 반쯤은 미래의 위협으로, 때로는 신랄하고 재치 있는 가시 돋친 비판을 통해 부르조아지에게 철두철미 충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현대 역사의 행진을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결과는 항상 우스꽝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귀족은 사람들을 자기 주위로 결집시키기 위하여 기치를 들고 프롤레타리아 자선함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과 어울릴 때마다 그들의 엉덩이에 봉건 문장(紋章)이 찍힌 것을 보고는 불경스럽게 큰 웃음을 터뜨리며 돌아섰다.

프랑스 정통주의자와 것영국청년단겄의 일파도 이러한 희극을 연출했다.

봉건주의자는 그들의 착취양식이 부르조아지의 착취양식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들 역시 이제는 낡아빠졌지만 전혀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착취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하에서는 현대 프롤레타리아트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도, 현대 부르조아지가 그들 자신의 사회형태에서 나온 필연적 후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비판이 가진 반동적 성격을 거의 감추지 않기 때문에, 부르조아지에 대한 그들의 주된 비난은 부르조아 체제하에서 낡은 사회질서를 철저히 분쇄해 버릴 운명을 진 한 계급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까지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부르조아지를 호되게 비판하는 이유는 부르조아지가 단지 프롤레타리아트를 만들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 실천에서 그들은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모든 강압조치에 동참하며, 일상생활에서는 온갖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나무에서 떨어진 황금사과를 줍기 위해, 그리고 진리, 사랑, 명예를 양모, 사탕무우, 주정(酒精)과 맞바꾸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다.

목사가 영주와 손잡고 나아갔듯이 성직자 사회주의는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잡았다.

기독교적 금욕주의에 사회주의 색채를 가미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기독교는 원래 사유재산, 결혼, 국가를 비난해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대신 박애와 빈곤, 독신과 신체적 금욕, 수도원 생활과 교회를 설교해 오지 않았던가? 기독교적 사회주의는 단지 성직자가 귀족의 불만에 대해 봉헌하는 성수(聖水)에 지나지 않는다.

 

B. 쁘띠부르조아 사회주의

 

부르조아지가 파멸시킨 계급, 현대 부르조아사회의 대기 속에서 그 존재조건이 취약해지고 사멸한 계급은 봉건귀족만이 아니다. 중세의 시민이나 소농경영자는 현대 부르조아지의 선구자였다. 산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거의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에서 이들 두계급은 떠오르는 부르조아지와 더불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현대 문명이 충분히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조아지 사이에서 동요하며 부르조아사회의 보완물로서 자신을 계속 쇄신하는 쁘띠부르조아의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 계급의 개별 구성원들은 자유경쟁으로 인해 끊임없이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다. 현대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현대 사회의 독립적 부분으로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제조업, 농업, 상업에서의 관리자, 토지관리인, 상점주로 거의 바뀌는 순간까지 눈 앞에 두게된다.

농민이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서는, 부르조아지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 서는 저술가들은 당연히 부르조아체제를 비판하는 데서 농민과 쁘띠부르조아의 기준을 사용해야 했으며, 이들 매개적 계급의 입장에서 노동계급을 위해 곤봉을 들어야 했다. 이리하여 쁘띠부르조아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 학파의 지도자는 시스몽디였다.

이 사회주의 학파는 현대 생산조건의 모순을 매우 날카롭게 분석했으며, 경제학자들의 위선에 찬 변명을 낱낱이 폭로했다. 그리고 기계와 분업의 파멸적 결과, 소수에게로의 자본과 토지 집적, 과잉생산과 공황을 논쟁의 여지없이 입증했다. 또한 그들은 쁘띠부르조아와 농민의 불가피한 몰락, 프롤레타리아트의 고통, 생산의 무정부성, 방치할 수 없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 국가들간의 파멸적 산업전쟁, 낡은 도덕적 유대의 해체, 낡은 가족관계, 낡은 국적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설사 그 긍정적인 목적에서 보더라도 이 사회주의 형태는 낡은 생산수단과 교환수단 및 이와 더불어 낡은 소유관계와 낡은 사회로 되돌아가고자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대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에 의해 파괴되어 왔고 또 파괴될 수밖에 없는 낡은 소유관계의 틀 내에 현대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가두고자 한다. 양자 어느 경우이거나 반동적이며 공상적이다.

그 최후의 주장은 제조업에서의 법인길드, 농업에서의 가부장적 관계이다.

결국 완강한 역사적 사실이 자기기만의 도취상태를 흩어버렸을 때 이러한 형태의 사회주의는 우울증의 비참한 발작으로 끝나버렸다.

 

C. 독일 사회주의 또는 것진정한겄사회주의

 

* 여기서 진정한의 뜻은 말뿐임을 말함.

 

프랑스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은 권력을 갖고있는 부르조아지의 억압하에서 생겨났으며 그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의 표현이었다. 이 문헌들은 독일에서 부르조아지가 봉건 절대주의와의 경쟁을 막 시작했을 무렵 독일로 유입되었다.

독일 철학자, 자칭 철학자, 그리고 재담꾼들은 이 문헌들을 열심히 읽어댔지만 이 저작들이 프랑스에서 독일로 옮겨올 때 프랑스의 사회적 조건이 같이 옮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잊고 말았다. 독일의 사회적 조건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들 프랑스 문헌은 직접적인 실천적 의의를 모두 일었으며 순수히 문헌적인 의미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18세기 독일 철학자에게 제 1차 프랑스 혁명에서 나온 요구들은 것실천이성겄 일반의 요구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혁명적인 프랑스 부르조아지의 의지의 발현 또한 그들의 눈에는 순수의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의지, 일반적으로는 진정한 인간의지의 법칙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독일 저술가의 저작은 오로지 그들의 고대철학적 양심에 새로운 프랑스 사상을 조화시키는 것, 아니 그보다는 그들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버리지 않으면서 프랑스 사상을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목은 외국어가 사용되는, 즉 번역되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수도사들이 어떻게 고대 이단(異端)의 저작들이 쓰여 있는 원고 위에 가톨릭 성자들의 따분한 생애를 덧썼던가는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독일 저술가들은 세 속의 프랑스 문헌을 가지고 이러한 과정을 거꾸로 밟았다. 그들은 프랑스 원본 아래 자신들의 철학적 헛소리를 써넣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그들은 화폐의 경제적 기능에 대한 프랑스 비판서 아래에는 것인간의 소외겄를 써넣었고, 부르조아 국가에 대한 프랑스 비판서 아래에는 것추상적 보편자의 예위겄를 써넣는 식이었다.

프랑스의 역사비판서에 이러한 철학적 문구들을 삽입하는 것에 대해 그들은 것행동의 철학겄, 것진정한 사회주의겄, 것 독일의 사회주의 과학겄, 것사회주의의 철학적 토대겄 따위의 작위를 수여했다.

이리하여 프랑스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은 완전히 알맹이가 빠져버렸다. 또한 독일인의 손에서 이미 그 문헌은 한 계급과 다른 계급의 투쟁을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독일인은 것프랑스의 편향겄을 극복했다고 보았으며, 진정한 요구가 아니라 진리의 요구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이 아니라 인간본질의 이익을, 즉 아무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실체도 없으며 단지 철학적 환상의 모호한 영역에만 존재하는 인간 일반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이 독일 사회주의는 국민학교 숙제를 상당히 심각하고 근엄하게 받아들이며 그 빈약한 재고품을 협잡에 가득한 양태로 격찬하는 가운데 점차 그 현학적인 무지를 잃어갔다.

봉건귀족과 절대군주에 대항하는 독일인의 투쟁, 특히 프러시아 부르조아지의 투쟁, 달리 말하면 자유주의 운동은 더욱 격화되었다. 그로써 것진정한겄사회주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기회, 즉 정치적 운동을 사회주의적 요구와 대결시키며, 자유주의에 대해, 대의정부에 대해, 부르조아적 경쟁, 부르조아적 언론의 자유, 부르조아적 입법, 부르조아적 자유와 평등에 대해 전통적인 파문(破門)을 명하고, 대중에게 부르조아 운동으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읽은 것은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설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독일 사회주의는 프랑스 비판의 단조로운 모방이면서도 프랑스 비판이, 바로 독일에서의 임박한 투쟁이 이루려는 목적인 부르조아사회의 경제적 존재조건과 이에 적합한 정치구조를 가진 현대 부르조아사회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은 때마침 잊어버렸다.

절대주의 정부 및 이에 딸린 목사, 교수, 지방 유지와 관리들에게 것진정한겄사회주의는 부르조아지의 협박에 대항하는 안성맞춤의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 정부가 바로 그 당시에 독일 노동계급의 봉기에 대해 투약했던 채찍과 총탄이라는 쓰디쓴 약을 달래주는 달콤한 마무리였다.

이와 같이 것진정한겄사회주의는 정부를 위해 독일 부르조아지와 싸우는 무기로서 역할 하는 동시에, 반동적인 이익, 독일 속물들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16세기 의 유물이자 그때부터 계속 다양한 형태로 다시 나타나곤 했던 쁘띠부르조아계급은 현 상황의 현실적인 사회적 토대이다. 독일에서 이 계급의 존속은 곧 기존 상황의 존속을 뜻한다 .부르조아지의 산업적, 정치적 지배는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적으로 인해,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으로 인해 쁘띠부르조아지에게 일정한 파멸의 위협을 가한다. 이들에게 것진정한겄 사회주의는 이 두 마리 새를 하나의 돌로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화려한 수사(修辭)의 꽃으로 수놓아지고 창백한 감상의 이슬에 함빡젖은 사색의 거미줄 같은 의상, 독일 사회주의자들이 것영원한 진리겄라는 말라빠진 그들의 육신을 감추기 위한 이 선험의 의상은 대중 속에서 그들의 상품 판매량을 놀랄 만큼 증대시키는데 기여했다.

또한 한편으로 독일 사회주의는 점점 더 쁘띠부르조아 속물의 허풍스런 대변인으로서의 자기 소명을 인식해 갔다. 독일 사회주의는 독일 민족을 모범 민족으로, 그리고 독일 속물들을 전형적인 인간으로 주장했다. 이 모범 인간이 가진 약간의 야비한 구석이라도 보이면 독일 사회주의는 그것을 실제 성격과는 정 반대로, 은폐되고 고상한 사회주의적 해석을 가했다. 또한 장황하리만치 공산주의의 것야수같은 파괴적겄 경향을 정면으로 반대했으며, 모든 계급투쟁에 대해 고상하고 공평한 경멸을 표했다. 몇 가지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한다면 지금(1847) 독일에서 돌아다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출판물들은 모두 이러한 비열하고 무기력한 문헌의 범주에 속한다.

 

2. 보수적 사회주의 또는 부르조아 사회주의

 

부르조아지의 일부는 부르조아사회의 지속적 생존을 도모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만요인을 개선하고자 한다.

이 부분에 속하는 이들로는 경제학자, 자선가, 인도주의자, 노동계급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자, 자선의 조직자, 기타 온갖 종류의 하찮은 개혁가들이 있다. 나아가, 이러한 형태의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로 발전되어 왔다.

프루동의 겁빈곤의 철학겂을 이러한 형태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타자맨 主: 맑스는 프루동의 겁빈곤의 철학겂을 혹독하게 비판한 겁철학의 빈곤겂이라는 저작을 남긴바 있다.)

사회주의적 부르조아는 현대 사회적 조건의 모든 장점을 원하지만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투쟁과 위험은 배제하고자 한다. 그들은 사회의 현 상태에서 그 혁명적이고 붕괴적인 요소를 뺀 것을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없는 부르조아지를 원한다. 부르조아지는 당연히 자신이 패권을 쥐고 있는 세계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부르조아지 사회주의는 이 안락한 생각을 어느 정도 완전한 여러 체계들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부르조아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러한 체계에 따를 것, 그리하여 사회적 신(新)예루살렘으로 곧장 행진할 것을 요구하지만, 사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기존 사회의 테두리 내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부르조아지에 대한 그들의 모든 증오에 찬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보다 실천적이지만 보다 덜 체계적인 이 사회주의의 또 다른 형태는 정치적 개혁이 아니라 물질적 존재조건, 경제 관계의 변화만이 노동계급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노동계급의 눈앞에서 일체의 혁명운동을 평가절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존재조건의 변화라고 할 때, 이러한 사회주의 형태는 그것을 오직 혁명에 의해서만 있을 수 있는 부르조아 생산관계의 폐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산관계의 지속적 유지에 기초한 행정개혁으로만, 따라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기껏해야 부르조아 정부의 비용을 줄이고 행정업무를 단순화하는 정도의 개혁으로만 이해할 뿐이다.

부르조아 사회주의는 단지 하나의 비유가 될 때, 오직 그때에만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있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자유무역,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보호관세,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감옥 개량, 이것이 부르조아 사회주의의 마지막 말이자 유일하게 진지한 말이다.

그것은 다시 다음의 한 문구로 요약된다. 부르조아는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부르조아이다.

 

3.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여기서 우리는 현대의 모든 대혁명마다 항상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를 소리높여 외쳐왔던 바뵈프 등의 저작과 같은 문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처음으로 직접 시도한 것은 봉건사회가 불과하고 있던 전반적 격동기였다. 하지만 당시 프롤레타리아트는 미발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행방을 위한 경제적 조건--당시 아직 생성되지 않았으며, 임박한 부르조아 시대에 의해서만 생성될 수 있는 조건-도 없었기 때문에 그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프롤레타리아트의 초기 운동들을 추종했던 혁명적 문헌들도 반동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은 극히 조잡한 형태로 보편적 금욕주의와 사회평준화를 가르쳤다.

본래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계인 생시몽, 푸리에, 오웬 등의 체계는 앞서 말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조아지 간의 투쟁이 발전되지 않은 초기 시기에 생겨난다(I절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를 보라).

이들 체계의 설립자들도 사실 지배적인 사회형태속에서 와해요소의 활동뿐 아니라 계급적대까지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직 유아기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떠한 역사적 창의성도, 어떠한 독자적 정치운동도 갖지 못한 계급의 모습으로 보인다.

계급적대의 발전은 항상 산업의 발전과 보조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경제상황은 아직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조건을 창출할 새로운 사회과학, 새로운 사회법칙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 행동은 그들의 사적인 창의적 행동으로 대체되고,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해방의 조건은 환상적 조건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점진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계급조직은 그 발명가들에 의해 특수하게 고안된 사회조직으로 바뀐다. 그들이 보기에 미래 역사는 결국 그들의 사회적 계획의 실천이자 그 실천적 실행일 뿐이다.

계획을 구성하는 데서 그들은 의식적으로 가장 고통 당하는 계급인 노동계급의 이익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란 오직 가장 고통 당하는 계급이라는 관점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계급투쟁과 그들 자신의 환경의 미발전된 상태로 인해 그러한 종류의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계급적대를 초월해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들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 심지어 가장 형편이 좋은 사람들의 조건조차 개선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습관적으로 계급구분 없이 사회전체에게, 아니 우선적으로는 지배계급에게 호소한다. 하기야 일단 그들의 체계를 이해하고 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가장 가능한 사회상태의 가장 가능한 계획임을 알지 못하겠는가?(타이핑맨 主 : 이 문장은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풍자적 독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정치적 행동, 특히 혁명적 행동을 거부한다. 그들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며,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잘한 실험들이나 사례의 힘을 통해 새로운 사회의 복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으려고 애쓴다.

그렇듯 프롤레타리아트가 아직 매우 미발전된 상태에서 오직 자신의 입장에 대한 환상적인 생각마을 가지고 있을 무렵에 그려진 미래 사회의 상상화는 산회의 전반적 재건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번째 본능적 기지개에 상당한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출판물들은 또한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다. 그것들은 기존 사회의 모든 원칙을 공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노동계급의 계몽을 위한 극히 중요한 자료들로 가득차 있다. 도시와 농촌간의 구별 폐지, 가족의 폐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산업경영의 폐지, 임금제도의 폐지, 사회적 조화의 주창, 국가기능의 단순한 생산감독 기능으로의 전화등 거기서 제기되는 실천적 조치들은, 당시에 겨우 나타나고 있었으므로 이들 출판물에서는 초기적이고 불명확한 형태로만 인식되었던 계급적대의 소명을 지적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제안들은 순수히 공상적인 성격을 띤다.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중요성은 역사발전과 역관계를 취한다. 현대 계급투쟁이 발전되고 특정한 형태를 취해갈수록, 투쟁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이 환상적인 입장, 투쟁에 대한 이 환상적인 공격은 모든 실천적 가치와 모든 이론적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비록 이들 체계의 창시자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혁명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진보적 역사발전에 반대하여 스승들의 원래 견해를 굳게 고수한다. 따라서 그들은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적대를 해소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이상향을 실험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꿈꾸며, 고립된 것팔랑스떼르겄,것공동부락겄,것작은 이카리아겄--신예루살렘의 축소판--를 건설할 것을 꿈꾼다. 그들은 공중누각을 실현하기 위하여 부르조아의 자비와 지갑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점차로 그들은 앞서 서술한 반동적인 보수적 사회주의자들과는 단지 보다 체계적인 현학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기들 사회과학의 기적적인 효과에 대한 미신적인 광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 그들과 같은 범주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노동계급의 편에 선 모든 정치적 행동을 격렬히 반대한다. 그들이 보기에 그러한 행동은 새로운 복음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영국의 오웬주의자, 프랑스의 푸리에주의자들은 각각 차티스트와 개혁파를 반대한다.

 


IV. 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관한 공산주의자에 입장

 

II절에서 이미 영국의 차티스트나 미국의 농업개혁가들과 같은 기존의 노동계급 당들에 관한 공산주의자의 관계는 명확히 밝혀졌다.

공산주의자는 당면 목표의 달성을 위해, 노동계급의 당면한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싸우는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이 운동의 미래를 보여주고 이에 관심을 기울인다. 프랑스에서 공산주의자는 보수적 부르조아지와 급진적 부르조아지에 대항하여 사회민주주의자와 동맹을 맺었지만, 대혁명으로부터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문구나 환상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권리는 남겨두고 있다.

스위스에서 공산주의자는 급진주의자를 지지하지만, 이 당의 일부는 프랑스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로, 일부는 급진적 부르조아라는 적대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놓치지 않는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자는 농업혁명을 민족해방의 첫째 선결조건으로 주장하며, 1846년 크라쿠프 봉기를 주도했던 당을 지지한다.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는 부르조아지가 절대군주, 봉건지주, 쁘띠뿌르조아지에 반대하여 혁명적으로 행동할 경우 이들과 함께 싸운다.

그러나, 부르조아지가 자신의 지배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도입하게 되는 사회, 정치적 조건을 독일 노동자들이 오히려 부르조아지에 대항하는 무기로써 곧바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독일 반동계급의 몰락 이후 부르조아지에 대항하는 무기로써 곧바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독일 반동계급의 몰락 이후 부르조아지에 반대하는 투쟁 자체가 즉시 시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는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적대관계에 가장 명확한 인식을 노동계급에 주입시키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는 독일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은 부르조아혁명의 전야에 있으며, 17세기 영국이나 18세기 프랑스에 비해 유럽문명의 보다 선진적인 조건과 보다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고 부르조아혁명은 곧이어 뒤따를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서곡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산주의자는 모든 곳에서 기존의 사회, 정치적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을 지지한다.

그 모든 혁명에서 공산주의자는 각국의 발전정도와 관계없이 소유문제를 핵심적인 문제로서 전면에 내세운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모든 나라 민주적 정당들의 통일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혁명 앞에 떨게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세상이다.(Let the ruling classes tremble at a Communistic revolution. The proletarians have nothing to lose but their chains. They have a world to win.)

 


전 세 계 노 동 자 여, 단 결 하 라 !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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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독일어: Karl Heinrich Marx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라인란트 출신의공산주의 혁명가역사학자경제학자철학자사회학자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이다.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을 창설했다. 1847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집필해 이듬해 2월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과 1867년 초판이 출간된 《자본론》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마르크스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맑스, 막스, 칼 마르크스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나, 외래어 표기법에 준하는 표기는 “카를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라인란트의 유서 깊은 로마 가톨릭 도시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수대에 걸친 유대교 랍비의 후예였다. 그 가문의 성은 원래는 모르데카이(Mordechai)였으나 마르쿠스(Markus)로 고쳤고 다시 마르크스(Marx)로 바꾸었다. 아버지 하인리히(Heinrich)는 유대인이 관직을 갖는 것을 금하는 차별 법령을 피하기 위해 1817년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기독교인이었다.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한 또다른 이유는 그 자신이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부친의 영향으로 마르크스는 개방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 중 집필의 궤적을 알 수 있는 최초의 글은 고등학교 시절 쓴 세 편의 소논문이다. 그 중 세 번째 것인 《어느 젊은이의 직업 선택에 관한 고찰》은 그의 인생이 어떤 방향을 취하게 될 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마르크스는 직업 선택을 앞둔 젊은이라면 의무, 자기희생, 인류의 안녕, 완성에 대한 숙고에 입각해야 하며, 이런 종류의 관심이 서로 상반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일련의 불안들과 연결시켰다. 마르크스는 열 일곱 살 때부터 이상적인 결정과 인간 생활의 실제적인 결정들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1]

트리어의 고등학교를 나온 뒤 1835년 10월 본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다. 아들이 자신처럼 변호사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문학과 철학에 심취했고, 점점 법학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아들의 변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아들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그에 맞는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했으며, 결국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본 대학교에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전학했다.[2] 그러나 베를린에서도 그는 역사와 철학에 몰두하였다.

베를린에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게서 미학적, 철학적 혁명의 방안을 찾고자 하는 브루노 바우어 등의 헤겔좌파, 혹은 청년헤겔학파와 교제하였는데 당시 그의 동료들은 박학다식함과 논리로 토론을 주도하는 청년 마르크스의 똑똑함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독일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철학은 단연 헤겔의 것이었다. 헤겔은 역사와 사회의 발전은 절대정신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며 그 과정은 변증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절대정신의 대변자이자, 실현도구라고 보았으며, 그 보편국가가 프로이센이라고 얘기함으로써 프로이센에 철학적 존재 이유를 제공했다.

이러한 헤겔에 대해 청년헤겔학파로부터 비판이 가해졌다. 그들은 헤겔 사상의 기본적인 틀을 수용하면서도 절대정신을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라고 파악했다. 아울러 프로이센을 보편국가라고 주장한 헤겔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의 사상을 좌파적으로 해석했다. 이것이 반체제적 혁명의 씨앗이 된다고 여긴 프로이센 정부에 인해 청년헤겔주의자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가해진다. 마르크스의 활동도 이에 영향을 받아 계속 제약되었다.

결국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1841년에 청년 마르크스는 예나 대학에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점〉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청년헤겔학파,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1836년 《기독교의 본질》을 비롯한 기독교 비판은 마르크스가 헤겔의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후에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전도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정리, 헤겔철학에 과학적 요소를 부여하고자 했다.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크스는 청년좌파들과 반체제적 언론인 라인신문을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아 언론활동에 투신했다. 이 시기에 사고의 전환점, 특히 철학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당시 독일 철학은 대단히 관념적이며 추상적이었는데, 철학적 이슈에서 사회경제적, 좀 더 나아가자면 '정치경제적인' 이슈로 방향을 전환한다. 라인 지방 농부들을 취재하던 도중 경제와 관련된 주제의 기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1843년에 《라인신문》은 폐간되었는데, 당시 마르크스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프로이센에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편집장직을 사임합니다.'라는 광고문구와 프로메테우스(마르크스)가 독수리(프로이센)에게 괴롭힘당하는 그림으로 저항했다.

1843년에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을 발표하는데 청년헤겔학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나, 거기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생존에서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유물론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에서 급진좌파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마르크스는 프랑스 파리 시로 이주한다. 본격적으로 프랑스 사회주의자의 혁명적 집단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었는데,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의인동맹(義人同盟, 독일어: Bund der Gerechten)이라는 비밀결사단체에 가입하는데, 행동주의적, 급진적, 혁명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던 비밀결사체였다. 이 단체를 공산주의자 연맹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쓴 것이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이다. 마르크스 사상의 특징적 일부가 이 당시 저술에 나타난다. 독일의 관념철학에서 벗어나 역사유물론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844년에 쓴 《유태인 문제에 관해서》에서 그는 유태인들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사적으로 해방된 것이지 인간으로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사적 소유와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 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해서》는 독일의 신흥 부르주아들의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만이 역사적 과업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파리수고(유고)'로 알려진 《경제학과 철학에 관한 수고》에서는 역사유물론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역할과 생산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소외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소외론은 인간 해방을 갈구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마르크스를 강조하는 학자들의 주장 근거가 되고 있다. 실제 마르크스는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에서 소외된다고 《소외론》초판에서 주장했다. 이 해에 그는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난다. 파리 시절의 마르크스는 정열적으로 활동했으나, 급진적 인물이 체류하는 것을 기피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추방되었고,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지내게 된다.


1846년에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발표한다. 600여 페이지의 방대한 저작인 이 책은 엥겔스와 공저로 되어 있으나, 사실상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가득 차있다. 이 저작에서 마르크스는 청년헤겔주의자와 결별을 선언하고 있으며 그들과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저작은 마르크스의 사상 발전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유물론에 대하여 최초로 체계적으로 서술했으며,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자본주의 자체가 잉태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1848년 2월,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인동맹의 선언문으로서 발표된 것이다. 당시 이 조직은 블랑키와의 차별을 선언하면서 비밀결사에서 공개조직으로 탈바꿈하려하고 있었다. 혁명적 이들에 의한 소수의 급진적 음모와 비밀결사를 선호하던 블랑키파와 그 주도권 장악을 놓고 치열한 논쟁과 암투가 있었고, 결국 마르크스파가 다수가 되어 공산주의자동맹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들이 이런 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848년 2월 혁명 덕분이었다. 혁명적 낙관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공개적인 단체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공산당 선언 속에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과거 마르크스가 그의 저작물에서 이야기한 자본주의의 필연적 몰락과 프롤레타리아 승리의 확언을 선언문에 맞게 단순명료하게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에서 보이는 휴머니즘적 철학적 고뇌는 상당히 감소하고 정치경제학적 내용의 비중이 커지게 된다. 이에 대해 알튀세르는 인식론적 단절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1850년에는 《프랑스에서 계급투쟁》, 1852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를 차례로 발표하는데, 계급 투쟁이 정치적 차원에서 어떻게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는가에 대해 서술한 것이었다. 이 저작들은 경제적 시각이 아닌 정치적 시각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850년대는 혁명을 즉,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시련의 시기였다. 1848년 2월 혁명 이후 시대의 흐름이 거꾸로 흐르는 수구반동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1840년대 경제 공황을 겪고 있던 유럽 경제는 1850년대에 들어와 호황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여기에서 채굴된 이 유럽으로 들어왔고, 교통수단의 속도가 사람이나 의 힘을 이용할 때보다 빠른 증기 엔진이 운송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속에서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급진파들의 분열이 생겨나게 되었다. 즉각적 혁명을 주장하는 이들과 혁명의 절정기는 이미 지나갔다는 분파로 분열된 것이다. 후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대영박물관에서 영국의 정치경제학을 완전히 습득하여 마르크스 자신의 정치경제학이 성숙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자본론》 집필을 구상해나가는 속에서 초고(Grundrisse)가 발견되었다.

이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지적 발전과정과 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원칙을 정리해 놓고 있다. 마르크스의 초기사상에서는 비판적인 철학적(critical philosophy)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변증법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며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1846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운동과 메커니즘,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에 나온 《자본론》에 그러한 연구가 결집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역사까지 확대되어 형성된 사상이 역사유물론이다. 역사유물론은 마르크스 사상의 독특한 핵심이다.


마르크스는 명석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이 있으나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고 한다. 과 사교생활을 좋아해 모든 친구들과 불화를 일으켜가며 논쟁을 벌이기 일쑤였고, 술집이 운집된 골목에서 술집을 모두 돌아다니다가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3] 그랬기에 마르크스를 존경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친우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엥겔스가 “그의 반대자는 많았어도 개인적인 적은 없었다”고 했듯이 그렇게 냉정하지는 않았고, 맑스가 논쟁에서 고집이 센 모습을 보였던 것도 모난 성격을 가져서가 아니라, 당시 유럽 지식인들사이에서 난립하던 이상적 사회주의들을 비판함으로써 과학적 사회주의로 귀결하기 위함이었다는 평가가 있다.[4] 그 근거로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그가 살던 시대에 난립하던 사회주의 조류들인 보수적 사회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 추상적인 사회주의등을 풍자와 논박으로 비판한다.

맑스는 성격이 따뜻해서 자신도 어렵게 살았지만 손님을 박대하는 법이 없었고, 어린이들을 좋아해서 딸 엘레노어에게 부자들이 목수의 아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해 주면서도, “예수가 어린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5]

외적으로는 부르주아지를 비난하면서도 사적으로는 부인과 아이들이 부르주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썼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세상에 알려진 ‘그의 가난’은 절대적 가난이 아니라,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상대적 가난’이라는 얘기다. [3]

그가 호색한으로 애인이 많았을 뿐 아니라, 아내 예니 베스트팔렌이 데리고 온 하녀 헬렌 다무스와의 관계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은 유명하다. 이에 대해 평생의 동지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보호하기 위해 “마르크스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다.”라고까지 선언하지만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프레데릭’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이는 후에 외과의가 되지만 프레데릭이 ‘위대한 예언자’의 아들이라는 별칭은 떨어지지 않았다. [6]

또한 마르크스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산책을 하고 부인의 임종을 지킬만큼 처자식에게는 자상한 가장이었지만 부모와 형제자매에게는 경원시했다 한다. 실제로 가난에 시달릴 때 유산을 염두에 두고 아픈 어머니와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그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어차피 병도 들고 살만큼 산 우리 어머니가 죽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맑스는 아버지 하인리히의 사진을 관에 묻히는 순간까지 소지하고 있었고, 맑스가 부모와 형제자매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다기보다는 맑스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맑스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평가가 있다. 그 근거로 맑스의 모친은 자본론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본이나 만들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릴 때 죽은 아이들이 많고, 오직 일리노어와 로라, 제니 막스 세 딸만 성년으로 자랐다. 하지만, 일리노어는 1898년에 43살의 나이로자살하고 로라는 1911년에 66세의 나이로 자살한다. 제니는 1883년 심장병으로 39세에 목숨을 잃었다.

그 외에도 프레데릭의 증손녀인 힐다 마르크스와 인터뷰한 러시아 기사에 따르면 사생아인 프레데릭의 손자는 나치 게슈타포로 활동하다가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흔히 맑스하면 유대교와 기독교사이에서의 방황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 때문에 보수적인 종교인들로부터 반(反)종교적 인물로 잘못 인식되고 있지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가 현실의 사회경제적 모순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현실도피적 경향을 나타내도록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종교는 민중들이 내세에만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본의 억압과 착취를 사회비판과 계급투쟁으로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인민의 아편'이었던 것이다. 또한 맑스는 종교를 가리켜 민중의 환상적 행복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종교를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종교의 현실도피적 경향을 비판한 말이다. 실제로 민중들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계급투쟁으로 극복할 방법이 없을때는 하늘나라극락메시아미륵 같은 종교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의 현실도피적 경향을 비판한 것이지 종교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인본주의 존중

실제로 맑스는 딸 엘리노어가 교회에서 두려움의 감정을 갖자 "부자들이 목수의 아들을 죽인 것"을 말해주면서도 "목수의 아들이 어린이들을 사랑하였으므로 기독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야."라고 말했다.기독교가 가진 자들, 권력있는 자들과 결탁하여 예수를 죽이는 것에 대해 비판했지만, 기독교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현대 맑스주의도 기독교를 인본주의라는 공동가치를 화두로 대화해오고 있다. [5]


사회혁명

마르크스주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을 통과했다.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비로소 마르크스주의는 정통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스탈린 집권 후 마르크스주의는 왜곡되고 이에 반발해 본래의 마르크스로 회귀하려는 새로운 세력이 유럽에서 부상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아도르노 등이 주도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는 68혁명의 사상적 좌표가 되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시련은 사상의 종주국 소련에서 발생했다.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여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면서 자본주의 진영과 대결이 아닌 타협을 모색하던 중,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추락한 것이다. 끝내 소련은 해체되고 마르크스주의도 매우 극적인 종언을 고하는 듯했다. 어느날 갑자기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정치이념이 형체도 없이 현실 정치에서 사라졌다.

마르크스주의의 재평가

그러나 애초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극단의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탄생한 이상, 자본주의와 운명을 달리 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영향력은 특히 학문적으로,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치밀한 분석력과 통찰력은 현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는 필수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과 자본주의 세계화와 계층화에 대한 정확한 비판은 탁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로 확장되면서 부자와 빈자,부국과 빈국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인간소외, 물신숭배, 생산과 소비의 과잉, 공황의 문제 등도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싫든 좋든 마르크스를 탐구하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사회과학자라면 마르크스에 신세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듯, 마르크스에게는 독보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5년BBC방송은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사상가를 뽑았다. 단연 1위는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주의가 비록 현실에서 다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했고 여러 대안을 세울 수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일부 결론상의 오류가 있었지만 마르크스 사상이 갖는 중요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면서 "그의 사상은 역사,사회를 바라볼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인간의 인식을 높여주며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주의(Marxism)

마르크스주의(Marxism)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완성되어진 학문이다. 이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이론 및 정치이론이다. 당시 만연했던 사회주의 이론인 '프랑스 사회주의'와 프루동의 사회주의 이론같은 이상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처음으로 시작하고 탄생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저술한 '자본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에서도 사회주의 체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자신감을 여러 사회주의자들에게 주므로써 '현실 사회주의' 즉, 현대의 공산주의인 의미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적인 학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기초적인 철학개념은 변증법, 유물론, 잉여가치론, 노동가치설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으로 인해 나타나는 모순, 불의를 자본을 부정하므로써 없애겠다는 철학적 의미가 담긴 현실적인 사회주의이며 여태껏 있어왔던 이상적 사회주의이자 무정부주의적인 사회주의와 반대로 노동자로 이루어진 정부를 두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기독교-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체계중 하나인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동작업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완벽한 사회주의적 유물론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렇게 유물론을 기본 철학개념으로 가지고 있던 마르크스주의는 본래 유물론의 모든 물질은 '생각'을 가지고있고 그러한 물질들은 다른 물질들에 의한 정신으로 인해 또 다르게 탄생되었다는 철학개념에 의해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뜻을 부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는 이러한 창조신에 대한 것을 부정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되어져 왔고 만약에 양립되어져 나온 학문이 있어도 그것은 사회주의에 속하지않은 종파사상에 불과하다고 판단되어졌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성의 완전한 해방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의 겉뿌리였던 사회주의와 그 사회주의안에 포함되었던 공산주의에서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계급해방은 당시 고위직에 속한 종교인에 대한 반감이었으므로 역시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와 연계해서 볼 때 종교는 이 학문적 사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사라져야할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를 필두로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현재 보수적인 종교인들에 의해 배제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 즉, 모순이 드러나게 되자 진보적인 종교인들은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의 양립을 주장하기도하며 마르크스주의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에 의한 사회구조적 모순과 불의를 없앤다는 의미는 성서의 구원과 같은 개념으로 보아 한층 발전된 진보적인 개신교를 만들겠다는 목사들도 이러한 양립을 주장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부족한 면이있다.

 

 - 경제개념 -

 사실 마르크스주의를 절대적인 정치사상으로 내건 국가들은 경제체제에 관해서 혼합경제체제도 아니고 시장경제체제도 아닌 계획경제체제만을 선호하게 되어있으며 그것은 곧 사회주의체제를 말하며 쉽게말해 공산주의의 경제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 여러 학문들이 오고가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개념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개념의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마르크스주의는 절대적인 정치사상으로는 쓰지않는다. 오로지 이 마르크스주의는 보조적인 위치에 놓여져있다.

 

 하지만 역시 자본주의식 경제체제로만 가게되면 역시 모순이 생기고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문제점이 나타나므로 선진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좌파계열 쉽게 말해 사회적 진보계열들의 아이콘과 같은 학문으로 여기고있다.

 

 - 정치, 사회개념 -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가 없으면 국가가 있을 수도 없으며 자본가도 없으며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고 그들을 사용하고 있으므로써 모든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노동자가 없으면 역시 돌아갈 수 없는 물레방아와 같다고 주장하며 자본가들을 취약한 인간체의 개념으로 여기고있다. 이러한 개념이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후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이 만든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를 주장하며 그 정치적인 방법을 뒷받침해준 학문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정치, 사회계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자본가들에 의해 미움을 받아도 충분한 사상이기는 하다.

 

 -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

 위에 설명했듯이 마르크스주의를 절대적 정치사상으로 내걸고 국가를 이끌게 된다면 경제체제는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의 경제체제가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공산주의식 경제체제를 지향한다. 하지만 이러한 틀을 없앤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등소평은 사회주의 체제이면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식인 시장경제체제를 최초로 구현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은 결국 주된 사상이었던 마르크스주의 즉 사회주의 체제를 하므로써 생기는 장점의 주된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상태가 되버렸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다시말해 주된 정치사상보다는 일부를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어져야 하거나 보조적인 정치사상이 되어야 적당할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 -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목표와는 다르게 '절대적인 사회주의체제의 공산주의 정권'을 목표로 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실현시키는 수단까지 서술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하면 계급해방, 사회주의 실현은 모두 '폭력적 혁명'으로 실현해야하며 이것을 부정하는 자칭 사회주의의 사상들은 사회주의계열이 아닌 종파사상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주장하고있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표현보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중요시하며 어떠한 사상이든 그에 관한 폭력을 부정하는 민주주의에서와는 상반되게 사상을 위해서라면 폭력의 허용을 주장하고있다. 따라서 학술적인 면만 서술한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러한 사회주의 정권을 구축하는 모든 수단방법을 일러주고있다.

 

 - 대한민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 -

 대한민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는 공산주의와 같은 뜻으로 여긴다. 사실 틀린말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의 정치, 사회, 철학, 경제를 모두 모아놓은 학문이자 사상이고 공산주의는 그중에 경제와 정치의 혼합을 빼온 사상이다. 그렇지만 현재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경제체제인 '계획경제체제'를 주된 경제체제로 사용하게 된다면 역시 국가의 경제상태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실패성이 짙은 공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뜻으로 여기기 보다는 사회주의적 정치, 사회, 철학, 경제를 모두 혼합한 마르크스주의와 별개로 두는게 좋다. 또한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계획경제체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증시거품이 많아지고 시장의 자유가 심하여 규제가 필요할 때에는 계획경제체제에 속하는 경제이념을 실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경제체제를 100%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체제이자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었던 북한 즉,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OK)에 의해 침략을 받았던 나라이고 그들과 벌인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고 수차례 그들의 도발이 이어졌으므로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공산주의 즉 포괄적인 개념으로 말해 '마르크스주의'는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필자는 이글을 쓰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 북한은 정치, 사회적 또 철학적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라고 보기 어려우며 계급해방을 주장하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가 집필된 서적들은 향후 북한에서 반정부 단체를 낳게 할 우려가 있어 분서(焚書)된지 오래이다. 또한 북한의 헌법에 존재하는 공식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주체사상의 행동강령으로 지목한다."는 '김일성주의'가 되며 곧 북한의 체제는 '김일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공생해야한다. 자본주의는 현재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주된 정치, 경제적 체제로 채택되었지만 그로인해 생기는 자본으로 인한 사회모순, 불의는 마르크스주의로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자본주의 계열 사상들의 공통점은 자본가가 없으면 국고는 빈다는 것이고 모든 사회주의 계열 사상들의 공통점은 노동자가 없으면 자본가들도 없다는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공생할 수 있다면 그 때 비로소 건전한 정치,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복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일단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탐욕스러운 부르주아들에게 핍박받는 프롤레타리아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며, 프롤레타리아들을 위한 나라, 프롤레타리아들을 위한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본주의에서처럼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윤이 불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함께 일하고 공평하게 나누자!" 하는 사상이 담겨 있다는 얘깁니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에서 8:2로 나눈다면, 5:5로 나누어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얘기죠.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 누군가가 복지의 혜택을 받는다면?
얘기는 달라지는 것이죠. 누군가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하는데, 누군가는 복지의 혜택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공산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마르크스는 복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는 복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민주적 의회 정치로 정착시키려는 사상입니다.

 즉... 사회주의 계열 내에서 보수적인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진보적인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폭력과 혁명으로서 진정한 사회주의를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의원 제도를 통하여 사회주의를 온건적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단어인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합니다.
즉, 공산주의가 결과의 평등을 중요시한다면 사회민주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자본주의와 비슷한 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에서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 마르크스 주의


마르크스주의는 경제관계(생산자-노동자)인 하부구조에 권력관계(지배자-피지배자)인 상부구조가 
귀속되어 있어서 하부구조에 따라 상부구조가 바뀐다는 경제(하부구조)결정론의 입장이구요. 
이에 반해 신마르크스주의는 경제결정론이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대응하는, 
즉 경제에만 관련되어 결정된다는 점을 비판하는 겁니다. 경제관계에 100%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에 상부구조가 종속되는 것을 모순된 사회구조로 보고 상부구조에 상대적인 자율성이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상부구조들(국가, 교육, 언론, 군대, 경찰 등)이 자율성을 지니고 
이데올로기 주입으로 기존 질서를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는 이탈리아의 그람시헝가리의 루카치 등이 1920년대에 주장한 마르크스주의의 분파 사상이다. 1960년대의 신좌익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막스 호르크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아도르노·마르쿠제에 의해 1930년대에 계승된 신좌익 사상이다.

초기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20세기 초반까지 최초의 논리적 사회주의 사상이란 이유로 그 명성을 얻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사회의 하부 구조인 경제 부분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확실한 사회·정치 이론이 없다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상부 구조인 사회·정치 이론을 정립화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문화와 인간 소외를 중점으로 문제를 다뤄 신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 신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 소외에 대해 주된 문제 제기를 하고, 휴머니즘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교육학용어사전

신마르크스주의

[ 新 — 主義 , neo-Marxism ]

모든 사회적 현상을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로 설명하려는 경제결정론적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사고에 한정하지 않고인간의 주체적 인식과 해방적 의식을 강조하는 경향의 마르크스주의적 노선.

흔히 정통 마르크스주의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소련 공산주의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운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계급투쟁이론을 특징적으로 부각시키고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워 독재체제를 이끌어 온 소련 공산주의의 왜곡된 이론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적 자본주의의 체제에서 경험하는 인간소외를 극복하고 해방적 의식을 실현하려는 데 주된 관심을 바쳐 왔다.

그러나 「신마르크스주의」는 하나의 독특한 사상적 노선이라기보다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다원적 노선의 공통된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신마르크스주의자들로는 루카치(G. Lucacs), 샤프(A. Shaff) 등과 같이 동구권의 학자들도 다소 있지만 대개가 공산국가가 아닌 지역의 학자들이다. 알뛰세(L. Althusser), 보울즈(S. Bowles), 진티스(H. Gintis) 등의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블로흐(E. Bloch) 등의 신비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번스타인(E. Bernstein) 등의 경험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싸르뜨르(J. Sartre) 등의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메를로-뽕띠(M. Merleau-Ponty), 프레이리(P. Freire) 등의 현상학적 마르크스주의,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 아도르노(T. W. Adorno), 마르쿠제(H. Marcuse), 프롬(E. Fromm), 하버마스(J. Habermas) 등의 비판이론적 마르크스주의, 그 외에인본주의로 일컬어지는 여러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주로 인본주의, 소외이론, 관료주의 비판,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비판, 혁명에 있어서의 지식인의 역할 등에 이론적 관심을 두고 있다. 교육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로 자본주의적 사회체제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기능, 억압적 문화의 구조, 소외의 개념, 실증주의의 도구적 합리성 등의 분석, 그리고 해방적 이성의 실현을 위한 문제 등에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마르크스주의 [新 — 主義, neo-Marxism] (교육학용어사전, 1995.6.29, 하우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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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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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심리학 책이나 계발서로 오인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부제를 보면 더 이해가 잘 되는 것 같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문학자 네 사람과 철학자 네 사람의 직관과 이성, 혹은 문학과 철학으로 서로를 비추어가면서 이해를 시킨다. 
그러면서 저자의 철학적 견지와 그들의 견지의 조합과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시대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유혹, 그로인해 생기는 욕망 책의 표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시, 돈, 유행, 망상, 불안, 허영 도박, 매춘.. 이러한 욕망에 대한 보고서이다. 우리는 왜 그러한 욕망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유지하면서도 빠져 나오기 힘든것인지, 과연 우리가 가진 욕망에 자신의 욕망인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인지... 드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가져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고 있다. 
라캉의 말처럼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우리는 냉정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전 여러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다시금 마음 아픈 표현을 들었다.
"삶이 바빠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것이 맞는건지 아닌지에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그것은 삶이 바빠서가 아니라 세상의 달콤한 유혹과 바빠야 한다는 세뇌에 의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책에서 그러한 부면에 대해 문학과 철학을 결합하여 설명해 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 하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짐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이 필요함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생활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로써 무엇이 있는지에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시대의 젊은 철학자인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생각의 빌미를 가지고 그것을 확장해 나가는 시간이 된다면 정말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머리말 -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친숙하다는 거스 그것은 무엇인가에 길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친숙한 삶을 낯설게 성찰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집어등(集魚燈)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물고기(魚)를 모으는(集) 등불(燈)이란 뜻입니다.  5
자본주의의 집어등은 어선의 집어등보다 더 큰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를 끊임없는 노동의 현장으로 다시 내몰기 때문입니다.  6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익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7

프롤로그
우리 스스로 일상의 모습을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14
자본주의는 각자의 노동을 통해서 살아가고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노동으로 계속 내몰기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쓰도록 유혹하는 장치를 함께 고안했습니다. 끊임없이 화폐를 소비하게 하려면 유혹의 장치는 그만큼 강력할 수밖에 없겠지요.  19
자본주의의 진정한 목적은 또 다른 소비를 위해 다시 노동하게 하는 데 있지요.  21
자본주의적 삶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범해서 우리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어 있고, 그로부터 상처 받는지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22

I.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 이상 vs 짐멜
1. 돈, 내 것이 아닌 욕망의 분열
화페경제가 바꾼 우리 정신세계 

마르트스 이후 가장 철저하게 돈의 논리를 성찰햇던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  35
그의 작품은 대부분 돈 유행 감각 장신구 등 대도시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에세이 풀의 글입니다.  37
짐멜이 "화폐경제는 개인과 소유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매개된 관계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이 둘 사이에 거리가 생기도록 만든다."라고 지적.  29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짐멜은 개인주의의 진정한 기원을 엿봅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단절된 이러한 물질적 조건에서만 개인주의의발로가 가능했다고 판단했지요.  43
화폐경제가 낳은 개인주의가 얼마만큼 우리 삶을 지배하는지 다음 사례.
나는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릅니다. 편의점 점원은 아르바이트로 임시 취업한 나이든 아저씨였지요. 그런데 이 점원이 점잖은 말투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면 해롭다고 충고합니다. 이때 나는 매우 불쾌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이 든 점원의 충고는 나를 하나의 인격으로, 혹은 자기보다 미성숙한 인격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가 삼촌이라면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이므로 충고를 받아도 그리 불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이 든 점원과 나는 상품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관계, 즉 비인격적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경우 우월한 것은 점원이 아니라 구매자인 나입니다. 나는 돈이라는 화폐를 가졌고 반면 그는 상품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달리 말해 나는 이곳에서 담배 사기를 그만두고 다른 편의점으로 갈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불리한 입장은 내가 아니라 나이 든 점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개인주의로 무장한 젊은 손님의 내면을, 마치 잔소리 많은 어머니처럼 간섭해 상처를 주었지요. 만일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이 상점에 젊은 손님들은 발길을 끊겠지요. 그리고 그 나이 든 점원 역시 해고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불쌍한 점원은 왜 해고되었는지 끝내 모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다시 말해 돈이 가진 힘과 그것을 가능케 한 개인주의의 위력을 이해했다면, 그는 젊은 손님에게 어른스런 충고를 하지 않았겠지요. 화폐경제에서 중요한 사실은 누가 돈을 가지고, 누가 상품을 가지는자라는 문제일 뿐입니다.  45
내가 종교적 안식을 주리라!
과거의 초월 종교는 신이라는 초월자가 인간에게 닥친 무든 난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라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초월 종교는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관념적 해법만을 신도들에게 제안했을 뿐입니다. 대부분 초월 종교는 마음의평정을 되찾으라고 하지요.  47
현실적으로 돈을 사용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해버립니다.  50
돈이라는 신의 지배에 빠진 현대인들을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짐멜은 과연 어떤 방법을 제안했을까요? 아쉽게도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일종의 세속종교로 규정했던 마르크스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실마리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서의 그대의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일 뿐이다.' 51-52
마르크스가 꿈꾼 인간의 삶은 "사랑을 사랑으로서만, 신뢰를 신뢰로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52
타자의 타자의 타자의 ..... 욕망
화폐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적응된 우리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만 원짜리 식사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54
구두쇠는 축적한 화폐를 통해 실질적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관념적 행복에 빠지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구두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만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유년 시절의 경제적 트라우마로부터 구두쇠는 돈이야말로 절대적 힘이 있음을 체득합니다. 돈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떠나는 순간, 그에게는 유년 시절에 각인된 경제적 트라우마, 즉 경제적 공포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행한 구두쇠와는 완전히 다른 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 또한 구두쇠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 오사와 마사치는 '사랆들의 일상적 관념 속에서 화폐는 사회적 산물의 일정 부분에 대한 청구권을 표시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완전히 편의상의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 그럼에도 상품의 물신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55
마르크스는 '화폐퇴장자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 반면에, 자본가는 합리적인 화폐퇴장자이다.'  56
구두쇠는 신념이나 행동에서 일관되게 화폐를 물신숭배합니다 반면 평범한 우리는 신념으로는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를 부정하지만, 행동으로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를 수행하지요. 이 점에서 보면 평범한 우리가 오히려 구두쇠보다 더 무지한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자신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59
모든 타자가 내가 가진 화폐를 욕망한다고 맹목적으로 믿기 때문에 나는 화폐를 욕망합니다. 오사와 마사치는 이것이 바로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 혹은 화폐의 물신성의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60

2. 도시, 즐거운 지옥의 현기증
공간과 일상의 관계
공간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배경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에는 인간을 길들여서 그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공간의 지배력은 거대한 자연적 공간과 공간을 분할하여 만든 건축물과 같은 인공적 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공간이 지닌 지배력을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상의 '권태'가 지닌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77
짐멜은 "인간은 차이를 본질로 하는 존재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때그때의 인상이 선행하는 인상과 구분되는 차이에 의해 촉발된다." 만약 새로운 인상이 이전의 인상보다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상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행하는 인상과 뒤따르는 인상의 차이가 클때 발생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새로운 인상을 강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이 새로운 인상은 우리 삶에 '부담'으로 인식됩니다.  80
해외여행, 시골과 도시..
우리가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에 대해 일일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시골이나 소도시 사람은 정서적인 반면 대도시 사람은 지적일 수박에 없다는 짐멜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나 정서적 관계에 더 의존하는 소도시적 삶에 비해 대도시의 정신적 삶이 어떻게 해서 지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띠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소도시의 정서적 관계들이 정신의 더 무의식적인 층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단절되지 앟은 지속적인 습관화 과정을 통해서 가장 잘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의 지성(intellect)은 우리 정신에서도 가장 투명하고 의식적인 상층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성은 우리의 내적인 힘들 중 가장 적응력이 탁원한 것이다. 자신 앞에 펼쳐진 다양한 현상들의 현저한 차이점들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지성은 어떤 충격이나 내적인 동요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리듬에 적응하기 위해서 훨씬 더 보수적인 사람들만이 외적 충격이나 내적인 동요를 겪게 된다. 물론 수펀 가지의 개별적 경우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형적인 대도시인은 자신의 삶을 뿌리째 위협하는 외부 환경의 흐름이나 그 모순들을 방어할 수 있는 기관(=지성)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대도시인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해 심장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머리로 반응하게 된다.'  81-82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삶의 환경과는 현격히 구별되는 이런 자극적이고 복잡한 도시의 사건들에 일일이 반응하면, 우리는 대도시에서 하루도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과 무관한 모든 일은 그저 냉담히 남의 일로 간주해야 합니다.  85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지적으로 파악하여 그 사건으로부터 받게 될 정서적 충격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만 합니다. 대도시에 적응한 도시인들이 짐멜의 표현처럼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해 심장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머리로 반응하게 된"셈입니다. 도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전략이지요.  86
자유로움의 빛과 그림자
짐멜 '... 오늘날에도 대도시인은 소도시에 가면 적어도 비슷한 종류의 답답함(restriction)에도 대도시인은 소도시에 가면 적어도 비슷한 종류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소속되어 살고 있는 집단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래서 타인들과의 관계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잡단은 더욱더 쉽게 개인의 업적들, 생활양식 및 사고들을 감시하게 되며, 어떤 양적 질적 변종도 전체의 틀을 깨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87
도시인이 시골이란 공간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의 감정 이면에는 도시라는 공간이 만들어준 '자유'의 감정이 전제되어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88
짐멜 '... 대도시의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장 잘 느끼게 마련이다. 이것은 자유의 이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대도시만큼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달 드러내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89
비록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더라도, 그것은 영화 속의 풍경처럼 나의 배후에 소리 없니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신경과민을 피하기 위한 이런 거리두기라는 도시인 특유의 삶의 태도가 바로 '자유'라는 감정의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이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로 도시의 암묵적 윤리라고 봅니다.
자유로움의 감정은 사람들을 원치 않는 고독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가끔 도시인들은 가족을 통해서 자신드르이 고독을 치유하려고 합니다.  90
도시인들에게 가족이란, 도시의 삶 속에 관념으로 존재하는 시골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골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자시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는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도시생활과 가정 생활은 미묘한 긴장관계와 보완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짐멜, 질적 개인주의를 말하다
소극적 자유를 특징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칸트를 대표로 하는 '양적 개인주의'의 입장이라면, 적그적 자유를 표방하는 개인주의는 니체를 대표로 하는 '질적 개인주의'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 개인주의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비록 수적으로는 구분되지만 동일한 인간성을 보편적으로 공유한 존재가 됩니다.
칸트의 정언명령(Kategorische Imperativ), 무조건적인 도덕명령이 가능했습니다.  94
니체에게 모든 개인은 타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단독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니체가 말한 '본성'이나 '본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진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 가진 고유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니체가 볼 때 이런 개인의 고유한 본성과 욕망르 부정한다는 것은, 개인의 삶 자체를 범죄적으로 매도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짐멜은 칸트나 니체의 사례를 언급하며 대도시가 인간에게 두 종류의 자유, 즉 두 종류의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합니다.  96
짐멜의 논의를 역사적 순서로 정리하면, 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 그러나까 대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에 인간은 '공동체주의'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업 자본주의와 대도시가 점차 발달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양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호 불간섭으로 규정되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소극적 의미의 자유라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고, 이에 따라 서서히 자신만이 가진 단독성(singularity)을 깨닫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망이 이전시대보다 더욱 강해집니다. 짐멜은 이것이 바로 '질적 개인주의'의 기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가 명확하게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특이성 혹은 질적 고유성을 표현하려는 욕망은 사실 도시적 삶이 가져다주는 고독을 극복하려는 데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97



II.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 보들레르 vs 벤야민
3. 유행,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강박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보들레르는 19세기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 시인입니다.
보들레르를 통해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내면에 남긴 원형적 트라우마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14
보들레르에게 파리가 매춘부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춘부는 돈을 가지고 오는 손님이라면 그가 누구든 관계없이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고혹적인 여인처럼 사랑스러운 곳입니다. 둘째, 파리라는 곳을 향유하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지면서 결국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매춘부와 같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116
산업자본은 필요이상으로 상품들을 사들일 만큼 소비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해야만 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로운 상품'을 계속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입니다. '새로운 상품'이 아케이드에 들어오면, 기존 상품들은 '낡은 상품'이 되어버리고 결국 아케이드에서 추방되고 말지요. 바로 여기서 '유행(fashion)'이 가능해졌습니다.  119
벤야민, 미완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을 인정한 철학자입니다.  124
저급한 수준의 마르므스주의는 문화와 같은 상부구조가 경제라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문화를 별도로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셈입니다. 경제 운동이나 경제 관계를 알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벤야민은 문화와 같은 상부구조가 나름대로 독자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비록 경제가 문화를 결정할 수도 있지만, 경제가 표현되는 문법과 문화가 표현되는 문법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지요.  125
19세가 자본주의의 수도 파리를 연구함으로써, 벤야민은 진정한 자본주의의 기워노가 역사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126
벤야민에 따르면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역사는 전혀 진보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억압하는 자들만이 진보를 주장해왔습니다. 이것은 당시 독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벤야민의 경험과 성찰로부터 유래했습니다. 파시즘이 강하게 등장했을 때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파시즘의 경향에 대해 강ㄺ하게 저항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도리어 무기력해지고 말았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무기력함은 그들이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진보라는 이념을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결국 해결된다고 보는 진보에 대한 맹신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억압적 상태, 즉 '비상 상태'를 도리어 은폐시켜버립니다.  129
백화점 혹은 욕망과 허영의 각축장
벤야민은 아케이드를 통해서 백화점이란 제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패션에 대한 욕망을 우리에게 각인시켰는지 보여줍니다.  130
팔레 우아얄(Palais-Royal)은 19세기 파리에 있던 아케이드들 가운데 한곳입니다. 초창기 아케이드에는 창녀들과 노숙자들이 더 많았지만, 부르주아 사회가 발달하자 경제적 부를 소비하는 실제 걔층으로서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창녀들과 노숙자들은 아케이드로부터 점점 추방당하지요. 
처음에는 민중적 요소도 지녔던 아케이드가 이제 부르주아 여성들의 과시욕의 전시장이 되면서, 서서히 백화점의 형태로 탈바꿈했습니다.  131
당시 파리 상점들은 눈부실 만큼 화려한 장식들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이려는 미적 전략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자 종업원들이 대거 채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 파리에서의 소비 행위가 주로 부르주아 여성들이 주도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찰제 판매와 정가 판매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은 아케이드가 스스로 고급 이미지로 포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32
자신이 남보다 두드러진다는 의식은 명품 매장에 들어서는 여성을 보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결국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백화점은 고가의 상품을 사는 사람과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휸련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겟다는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134
벤야민이 백화점을 종교적 도취에 바쳐딘 사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유함과 허영을 과시하기 위해서 고가의 상품들을 구입합니다.  135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은 <법의 목적>에서 '오늘날의 의미에서 패션은 개인적인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갖고 있으며, 이를 올바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패션의 본질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패션에는 어떤 사람이 상류사회에 속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외적인 기준이 포함되어 잇다. 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설령 ...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패션이 아무리 싫더라도 그런 유행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136-137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오히려 탐욕스럽고 잔인할 뿐만 아니라 질투심으로 가득 찬 허영의 존재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가 인간이 평화스럽고 인자하며 합리적이기를 꿈꾸었습니다.  137
예링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변화욕, 미적 감각, 겉치레를 좋아하는 것, 모방본능"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입니다.  138
패션의 소멸은 중간계급이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존엄에 눈을 뜨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겟지요. 그러나 예링은 상황이 그렇게 되도록 산업자본이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139
패션의 에로티시즘
벤야민은 에두라르트 푹스(Eduard Fuchs 1870~?) 인용 '예링의 패션론에 대한 푹스의 견해. "반복해서 말하는 부분이지만 패션이 빈번하게 변화하는 것은 계급적인 구별을 두고자 하는 관심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두 번째 이유로서는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매출을 향상시켜야 하는 사유재산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을 들 수 있는데 이것도 ...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이 두 번째 이유를 예링은 완전히 무시했다. 세 번째 이유도 그는 간과했다. 즉 패션이 에로틱한 자극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신 유행하는옷을 입은 남자 혹은 여자의 에로틱한 자극이 그때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떠오를 때 그런 목적은 보다 효과적을 달성될 수 있다.'
푹스에 딸면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햇다. 상류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걔급적인 구별을 두려는 욕망이 있기에 가능했다. 다음으로 패션은 계속 매출을 올려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패션은 인간에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140-141
옷은 분명 성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성적욕구의 충족에는 도리어 방해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옷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옷은 아예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패션과 관련된 산업자본이 우리에게 개입하는 결정적 대목입니다.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든다면, 그것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겠지요.  145
무기적 존재인 옷에서 사람들이 성적 어필을 느끼는 일종의 물신숭배 현상이야말로 벤야민이 보기에 패션이 유지되는 근본 조건이었습니다.  146
보들레르의 충족되지 않는 갈망
우리는 매혹적인 상품 앞에서 강력한 구매 욕구를 느낍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구매해서 소유하게 되면 예전의 그 강렬했던 욕망은 곧 사라져버립니다. 구매욕은 구매가 실제로 이루어지면 동시에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나를 흥분하게 하는 구매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구매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매혹적인 상품을 관음증적으로 주시하기만 하면 됩니다.  151
벤야민의 연구물을 보관했던 조르주 바타유, 그의 생각은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욕망을 부여한다"는 통찰을 전제로 해서 전개됩니다. 
경제 사정으로 지금 당장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 더욱 강렬한 구매욕을 느끼게 하듯이 가질 수 없는 존재는 인간에게 도리어 강렬한 소유 열망을 심어주게 마련입니다. 이런 금지와 금기의 대상이 성적 대상에 적용될 때 우리가 품는 열망을 에로티시즘이라고 부릅니다.  154-155
이런 우리의 욕망 구조를 가장 잘 포착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산업자본주의의 시선이었습니다.  155

4. 도박과 매춘, 명멸하는 망상
보편적 도박장으로서의 사회
대부분 자신이 가진 가치, 예를 들어 학점 토익점수 대화술 미모 지식등을 팔아서 취업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고 지적하기도 했지요.  167
신의 주사위, 우연성의 경이로움
이제 종교의 자유를 얻은 대신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된 모든 인간은 돈이라는 새로운 신을 믿고 그것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은 기독교의 신과는 다르게 매우 세속적입니다.  173
기독교의 신이 '초월적(transcendent)'이라고 정의된다면 자본주의의 신은 '내재적(immanent)이며 동시에 초월적'입니다.
기독교의 신은 내세에서 그 존재 여부를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반면 돈은 현세에서 가장 확실하게 그 전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돈은 더 강하게 우리를 지배합니다.  174
매춘에서 사랑을 꿈꾸다!
매춘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매춘부의 탄생이라는 문제 역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있습니다. 매춘부는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 존재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매춘부나 노동자는 자신의 육체, 혹은 자신의 능력을 팔아야 합니다.  184
벤야민은 '파리의 많은 젊은 여성의 미덕에 위기가 닥치는 시기가, 연중 특정한 시기가 있다.... 새해 공현제(1월 6일), 성모와 관련된 축일이 다가오면 소녀들은 선물을 주거나 받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내고 싶어 한다. 또 새로운 드레스나 유행하는 모자를 갖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금전적인 수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 며칠간 매춘에 종사해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특정한 시기나 특정한 축제일에 즈음하여 방탕한 행동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184-185
주목할 점은 파리의 젊은 여성들이 몸을 팔아 번 그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선물, 옷이나 모자 등을 만들어 파는 산업자본입니다.  186
과거 아케이드나 백화점이 여성들의 허영심을 증폭시키고 과소비를 부추겼듯이 당시의 산업자본은 기념일 드을 이용하여 파리의 젊은 소녀들이 몸을 팔도록 부축겼습니다.  187
매춘이란 결국 사랑이 자본주의에 지배될 때 파생되는 현상입니다. 우리 자시의 인격이 아니라 내가 가진 돈으로 사랑을 사는 행위이니까요. 매춘부는 그녀를 안고 잇는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가 가진 돈을 사라합니다. 
매춘부가 사랑을 통해서 매춘부로서 수명을 다한다는 사실. 벤야민은 왜 이 사실에 주목했을까요? 그것은 자본주의가 사랑을 아무리 자본의 논리로 포섭하려고 할지라도, 사랑은 자본의 한계를 돌파할 어떤 힘이 있음을 알아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해피엔딩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자본을 영속적으로 압도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191
지금은 배우자의 조건 중 경제 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입니다. 나에게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사람을 남편으로 사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매춘의 논리에 가장 가깝습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허락하는 첫 번째 조건이 돈 문제라면 누구도 이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사랑이 찾아들면 더는 매춘 행위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벤야민이 사랑과 매춘 사이의 비극, 그리고 이 사이에 개입되는 자본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두었던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벤야민은 사랑이 자본주의와 결합되면 결국 매춘으로 변질된다는 점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192-193



III.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 - 투르니에 vs 부르디외
5. 불안, 가난한 이웃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
로빈스 크루소와 타자의 발견
현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차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사유했다는 데 있습니다. 들뢰즈 이전까지 서양철학에서 '차이'는 '동일성(identity)'이라는 개념과 짝으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일성'의 지배를 받는 개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 알던 모습과 '차이'가 나 보입니다. 외모도 이전과 다르게 몹시 호리호리해졌고, 생각도 무척 냉소적으로 변한 듯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 친구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그 친구에게 변하지 않은 측면, 즉 동일성의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이 먼저 전제되어 있지 않는 한, 지금 변한 친구의 모습을 간파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동일성을 우위에 두는 사고의 한 가지 전형입니다. 만약 그 친구가 예전에 내가 알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면, 우리는 그 친구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겠지요.
그런데 들뢰즈는 이와 다르게 생각합니다. 동일성보다 차이가 먼저 라고 주장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그 친구의 모습은 수많은 타자 그리고 수많은 사건과 마주치고 그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아 형성된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겟지요. 그런데 만약 그 친구가 당시에 자신이 마주쳤던 것과는 다른 타자 및 사건들을 조우했다면, 아마도 그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지 ㅇ낳았을까요. 그렇다면 오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구가 왜 이전과 모습이 달라 보일까요? 그것은 서로 보지 못한 사이에 그 친구가 수많은 차이를 겪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동일성이란 다양한 타자 그리고 사건들과의 우발적 마주침으로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동일성이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효과일 뿐입니다.  206
들뢰즈가 중시했던 차이라는 개념은 타자와의 마주침으로만 경험되는 것입니다.  207
무엇인가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수중에 있는 돈을 무도 사용해버린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필요한 무엇인가를 구매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상품으로든 교환 가능한 잠재적 돈을 모두 소비한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비축해둔 돈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13
구조화된 구조이자 구조화하는 구조
부르디외는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서 '미래에 대해 행위자가 가지는 행위의 성향은 특정한 물질적 존재 조건 하에서 만들어지며, 특정한 객관적 기회의 구조 -하나의 객관적인 미래- 라는 형태로 파악된다. 구조화된 구조(structures structurees)라고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성향은 구조화하는 구조(structures structurantes)처럼 작동한다.'
'습관(Habit)'의 어원인 라틴어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부르디외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서, 그는 아비투스를 '구조화된 구조이자 동시에 구조화하는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행위자의 내면에 만들어진 습관적 구조로서의 아비투스가 '구조화된 구조'인 이유는 그의 말대로 그것이 '특정한 물질적 존재 조건'에서 형성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217
아비투스가 '구조화된 구조'일 뿐만 아니라 '구조화하는 구조'이기도 한 이유는 이것이 세계에 대한 행위자의 실천을 낳는 능동적 힘으로서도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두 종류의 아비투스가 있다. 
하나는 '미래가 있는 사람'의 아비투스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가 없는 사람'의 아비투스입니다. '미래가 잇는 사람'의 아비투스란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이 가지는 아비투스입니다. 반대로 '미래가 없는 사람'의 아비투스는 전자본주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비투스를 의미합니다.  219
부르디외에 따르면 전자본주의적 인간과 자본주의적 인간 사이의 결정적 차이점은 '미래'와 관련된 시간의식에 있습니다.  220
미래란 자본주의적 인간의 내면에서는 '가능성의 장'으로서 이해됩니다. 이에 반해 미래는 전자본주의적 인간의 경우에는 '잠재적으로 올 것'으로서 표상됩니다.
'가능성의 장'으로서 미래란 다양한 경우의 수들 가운데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잠재적으로 올 것'으로서의 미래는 이전에도 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올 것입니다.  221
전자본조의적 인간 vs 자본주의적 인간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와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가 서로 유사해 보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슐라르(Gaxton Bachelard 1884~1962)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 사이에는 건널 수없는 인식론적 단절(rupture epistemologique)이 있는 샘입니다.  226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의 특성을 파악하다 보면, 그와는 구별되는 우리 내면의 자본주의적 아비투스 또한 명료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227
농민들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증여의 논리로 사유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는 결국 인간과 자연을 한 가족이나 혈족 혹은 공동체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증여란 기본적으로 가족이나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230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자연이 표상되기 때문에, 농민들의 노동은 강박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농부들은 만약 자신들이 끊임없이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신이 어김없이 분노를 드러내리라고 믿습니다.
전자본주의 촌락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쉬지 않고 일합니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이란 구별이나 '수익성이 있는 노동'과 '수익성이 없는 노동'이란 구별도 부차적 차원으로 물러나게 된다.'  232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혹은 수익성 있는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도으이 구별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중요한 것입니다. 
전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에게 노동은 그 자체로서 수단이며 목적이기도 합니다. 단지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그드르이 노동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어떤 해에 수확량이 증가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부지런한 노동에 대한 자연의 선물, 혹은 자연이 내린 보답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자신의 재주와 능력으로 수익을 올린 것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지요.  233
이런 이유로 과거 전통 공동체에서 가장 비난받았던 행위는 다름 아닌 무위도식이었습니다.  234
지금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한 가지 대안으로, 동양의 전통 사유가 각광을 받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산업자본이 일으킨 환경 파괴의 대안으로 생태철학이 강조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동양철학이나 생태철학이 기본적으로 전자본주의적 삶과 사유 형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37
혁명의 최소조건
<세계의 비참>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이 사회를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물론 부르디외는 성급하게 자신의 전마을 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부분 사람드르이 환상, 즉 진보와 번영을 약속한다는 장밋빛 전망을 산산이 부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습니다.  238
부르디외는 "미래를 가능성으로서 가지지 않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239
그가 보기에 알제리 사람들이 혁명을 꿈꿀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가능성으로 가지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미래를 잠재성으로만 간주한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셈이지요.  241
전자본주의 시대의 알제리 농민들은 노동을 통해 자연을 겁탈하지만,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복수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자연에 대한 능동적 조작이 아니라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수동적 태도로 간주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은 자연이라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 의미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자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응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자연이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농민들의 태도와 매우 유사하게, 자본주의 사회에 속하는 실업자들 또한 실업과 실업의 문제가 항상 내재하는 자본주의 체계를 직시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혁명의 주체나 능동적 주체가 되기보다는 몽상으로 도피하거나 운명론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이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자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여력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럴 경우 그들은 자신의 노동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직시하겠지요. 마찬가지로 도시 실업자들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체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이때 비로소 그들은 자신의 실업 문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를 직시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243
"미래의 현실주의적인 전망은 실제로 현재에 직면할 수단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것이다." 라는 부르디외의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영속적으로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이 '현재에 직면할 수단'을 프롤레타리아로부터 박탈하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244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직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들을 보십시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부모님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들은 병원에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병이 있음을 짐작하지만 치료할 여윳돈이 없어서 걱정만 할 뿐입니다. 의사의 냉정한 진단은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겠지요. 가족이 짊어질 부담이 그들에게는 더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웃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며 자신의 병을 키우지요. 마침내 말기 암과 같은 치명적 병으로 판명되고서야, 그들은 부르디외가 말했듯이 '자기포기'나 아니면 종교에서 치유를 구하는 '마술적 조급함'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이웃들 가운데는 마치 말기 암을 선고받은 가난한 자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생계의 어려움이나 실직의 고통이라는 문제를 자본주의 체계와 관련해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취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245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에서 '우리는 계급의식 속에서, 경제적 필연성의 압력이나 사회체계의 모든 객관적 결정에 반하여,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춘 주체의 성찰적 행위를 볼 수 있어야만 한다. 현재 상황에 대한 반란은 다으모가 같은 경우에만 합리적이고 명시적인 목적으로 지향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런 목적에 대한 합리적 의식의 구성을 위한 경제적 조건이 주어질 경우, 다시 말해 현재의 질서가 그 자체의 소멸 가능성을 포함하며 동시에 이 사실로 인해 그 질서의 소멸을 기도할 수 있는 행위자를 생산하는 경우에만 반란은 혁명으로 전환도리 수 있을 것이다.'  246
아비투스의 대결
어느 곳에 갔을 때 자신의 아비투스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비투스가 그곳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아비투스를 의식했다면, 이것은 새로운 환경이 자신의 아비투스와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환원할 수 없는 외부, 혹은 타자를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254

6. 허영, 내면 깊숙한 소외의 논리
판단력 비판 vs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
칸트는 매우 규칙적으로 자기 삶의 규율을 준수했던 인물로 이미 당시에도 유명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령, 즉 무조건적 도덕명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266
내가 타인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타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유를 가진 존재로 대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것이 자본주의하에서 가능할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최종 목적이고 인간은 언제든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간주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붕괴되겠지요.  267
연구자들은 칸트의 철학적 위대함을 그가 진(眞), 선(善), 미(美) 세 영역을 구별했다는 데서 찾았습니다. 칸트로부터 우리는 동일한 대상이라도 최소한 세 가지 영역으로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가서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을 내려다보면, 두터운 스모그 층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해가 질 무렵 서울은 휘황한 보라색 아우라를 띤 도시가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론적 관심'을 두고 바라본다면, 스모그가 보라색을 띠는 이유를 대기에 섞인 오염물질 그리고 석양의 태양광선의 파장이 가진 특징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바로 진리(眞)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보라색의 스모그를 진리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관심' 혹은 '윤리적 관심'을 통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경우 우리는 사리사욕을 위해서 매연을 배출하는 인간의 비윤리성을 탓하지요. 이것이 바로 윤리(善)의 영역입니다. 한편 '이론적 관심'이나 '실천적 관심'을 포함한 일체의 관심을 배제하고, 다시 말해 시종일관 '무관심'으로 보라색 스모그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보라색으로 뒤덮인 서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것이 아름다움(美)의 영역입니다.  269
분별력이 있는 사람, 혹은 배운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칸트에 따르면 동일한 대상이나 사건을 필요에 따라 이론적 관심으로, 실천적 관심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270
취향, 분별하기와 구별짓기
칸트의 미학, 혹은 상류계급의 미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관심하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겠지요.  276
가라타니 고진은 영화나 소설을 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문화적 학습 덕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무관심'하게 보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되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78
<이솝우화>에는 포도를 먹고 싶었던 여우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도가 손에 닿지 않자, 여우는 그 자리르 떠나며 말합니다. "흥!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어떤 것을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을 때 인간은 그것의 가치를 폄하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신포도 이야기는 이런 인간의 특징을 잘 보여주지요.  282
허영의 뿌리
<구별짓기>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자본 이외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자본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가 문화자본(capital culturel)입니다. 이것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미적 감각 그리고 사람들이 소장한 작품들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학력자본(capital scolaire)입니다. 이것은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따거나 국가고시와 같은 시험제도를 통과해 얻는 자격 혹은 지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관계자본(capital de relation social)입니다. 이것은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을 얻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인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르디외가 주목하는 세 가지 자본들은 모두 경제적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세 가지 자본들은 지속적인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세 가지 자본들은 하류계층에서 상류계층으로 직접 진입하려는 벼락부자들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84-285
경제적 자본은 상류사회와 비교해볼 때 결코 뒤지지 않았지만, 신흥 부자들은 상류사회가 가지는 아비투스, 특히 미적 취향을 함께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게 되고, 자식들을 명문 대학에 보낼 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재력을 투입합니다. 
그렇다면 하류계급의 사람들이나 벼락부자들이 왜 상류사회에 편입되려고 할까요? 그것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허영(vanity)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인간은 본성이 선하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조차 인간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86
독재자도 훌륭한 통치자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하고,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지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도둑도 정직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을 느끼겠지요. 이것이 바로 사람의 허영입니다. 허영(虛榮)이란 한자는 '비어 있다'라는 의미의 '허(虛)'라는 글자와 '꽃이 화려하게 핀다'는 의미의 '영(榮)'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실은 비어 있지만 겉은 매우 화려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찬양하고 칭찬해주는 특성을 자신들의 본성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영혼의 특성이라고 믿어버립니다.  287
인간은 자신이나 남들이 부정하고 싫어하는 특성들을 단지 우연적인 것 혹은 외적인 것으로 애써 폄하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288
허영심이란 모든 인간이 가진 것입니다. 따라서 '성적=칭찬'의 도식만을 강요한 사회 구조에 여학생 개인보다 더 큰 책임이 있음을 우리는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289
산업자본주의는 상류계급의 구별짓기의 욕망 혹은 허영의 논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전자본주의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시대가 신분사회엿다는 점입니다. 신분에 따라 옷도 다르게 입고 집도 다르게 지었습니다. 물론 미적 감상을 포함한 여가 생활도 확연히 구분되었겠지요. 이미 사회 곳곳에서 신분에 따른 확연한 구별이 이루어졌기에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낼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본 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이전과 달라집니다. 이제는 주어진 선천적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자본을 확보해야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자본이 있다는것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별도로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틈을 파고들면서 산업자본주의는 화려한 소비사회를 만듭니다. 경제적 자본을 확보한 부르주아 계급은 소비라는 과시 행위로 자신들이 남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있음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상류계급이 미적으로 선호하는 모든 아이콘은 사실 19세기 산업자본을 상품화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92
타자의 힘, 혹은 인간의 진정한 빛
노동의 세계, 즉 자본주의 세계에서 미래란 가장 중요한 시간이자 동시에 가장 불명확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면 여러분은 무한한 교환 가능성으로서의 화폐를 얻겠지요. 동시에 회사가 부도나서 월급을 받을 수 없는 가능성도 병존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걱정에 시달리며 여러분의 의식은 항상 불안한 미래를 향해 있고, 현재는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괴로운 순간쯤으로 억누릅니다.  300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미래의 좋은 삶, 장밋빛 삶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고된 노동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각자의 삶을 경건하게 검열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본주의나 기독교가 제공하는 달콤한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우리의 현재와 삶은 깊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재의 순간이란 있을 수 없게 되지요.
자신의 삶이 초월적 목적이 아니라 내재적 목적이 있다는 것, 삶은 놀이의 주체이지 결코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 나아가 오직 현재만이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삶의 철학자 니체라면 놀이의 아비투스를 획득한 로빈슨을 초인, 즉 위버멘쉬라고 불렀을 테지요.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이 대지의 뜻이다. 너희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맹세코 이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런 자들은 스스로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독을 타 사람들에게 화를 입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생명을 경멸하는 자들이요, 소멸해가는 자들이며, 이미 독에 중독된 자들인바, 이 대지는 그런 자들에게 지쳐 있다.'
니체는 현재라는 시간 그리고 내재적 삶을 부정하는 모든 초월주의를 허무주의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한 초인은 바로 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인간입니다.  303-304
그것은 자기 삶 자체를 수단이자 나아가 목적 그 자체로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초월적 가치나 목적에 현혹되지 않는 삶, 그 자체로 긍정적인 삶을 되찾습니다.  304



IV.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 유하 vs 보드리야르
7. 쇼퍼홀릭과 워커홀릭, 금단의 무기력 너머 
바람부는 압구정동의 불빛
1980년대는 산업자봅눚의가 우리에게 발전과 번영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서서히 깨닫게 된 시대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그것이 곧바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지성계의 화두가 되었으니까요. 당시의 지성계가 극복해야 할 화두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 였습니다. 그 한 가지는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의 철권통치였다면, 다른 한 가지는 노동자와 도시 빈민 그리고 농민들의 척박한 삶을 초래한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대학생들은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러한 고민은 시위의 형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311-312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청각의 시대는 지나고 화려한 영상을 자랑하는 시각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것은 매혹적인 소비문화에 물들게 하여 비판적 감각을 무디게 하려는 정부의 정책과도 맞물렸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낮에는 정치와 경제 문제로 격렬한 시위에 참여했고, 밤에는 화려한 시각 문화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지성계는 사회참여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부르디외가 이야기 했듯이 취업 걱정이 전혀 없었던 당시의 대학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312
당시의 대학생들은 상당히 사변적이고 이념 지향적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몽환적인 유흥문화, 네온사인, 백화점 그리고 칼라 텔레비전의 시각적 화려함과 현란함 등이 자신의 주머니를 열도록 고안된 못된 장치들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모리로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각적 말초신경은 냉철한 머리와는 반대로 그 화려한 욕망의 집어등을 은밀히 더듬고 있었지요.
바로 이때 소비문화에 대해 매우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본 한 명의 시인이 바로 유하입니다.  313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오징어]
오징어들은 화려한 불빝, 즉 어선의 집어등이 뿜어내는 '찬란한 빛'에 포획되어 죽어갑니다. 유하는 우리의 신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314
유하는 소비문화의 폐단을 모조리 산업자본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산업자본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가장 잘 파악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이용했을 뿐입니다.  320
낡은 것은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라
자본주의 역사에 대해..
서양에서는 절대왕조와 함께 발전햇던 상업자본의 황금기가 있었지요. 17세기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이끌었던 대항해의 시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18세기말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산업자본주의의 힘이 상업자본주의 시대에 막을 고하게 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이 이윤을 획득하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상업자본은 공간의 차이, 다시 말해서 가격의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이윤을 획득합니다. 가령 동해에 위치한 강릉에서는 오징어 가격이 서울보다 쌉니다. 만약 강릉에서 오징어 가격이 1000원이라면, 서울에서는 오징어가 가격 2000원에 팔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인은 강릉에서 오징어를 1000원에 사서, 서울에서는 2000원에 팝니다. 결국 그에게는 1000원의 이윤이 남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상업자본이 항상 각양 각종의 신기한 특산물이 나는곳, 다시말해 가격 차이가 나는 곳을 찾아서 멀리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17세기와 18세기 초까지 영국과 네덜란드가 경쟁적으로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에는 유럽에 없는 진귀한 특산물들, 다시 말해서 엄청난 가격 차이를 보이는 상품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다르게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깁니다. 예를 들어 MP3를 만드는 산업자본은 계속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여 기존 제품들이 유행에 뒤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소비자들에게 기존 제품을 버리고 계속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에 구입한 제품과 새로운 제품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공간의 차이처럼 시간의 차이가 원래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행위, 다시 말해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산업자본의 행위 자체가 시간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327-328
유행은 소비자들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우선적으로 창출되는 것입니다.
산업자본이 창출하는 유행은 대중매체의 발달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대중매체는 대가로 제공되는 산업자본의 광고료를 통해서 유지됩니다.  328
구독률, 시청류르 그리고 조회 수가 높을수록 대중매체는 산업자본으로 부터 광고비를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다.
보드리야르는 "객관적 기능의 영역 안에서 사물들은 교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런 명시적 의미의 영역 밖에서 어떤 사물이라도 무제약적인 방식으로 대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객관적 기능의 영역이란 구체적 사용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사람들의 이동을 편하게 하는 객관적 기능이 있으며, 아파트는 사람들의 주거를 편하게 해주는 객관적 기능이 있습니다. 객관적 기능의 영역에서 자동차는 아파트를 대신할 수 없겠지요. 
반면 객관적 기능의 영역을 넘어서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329
현재 산업자본은 광고를 통해서 우리가 가진 '낡은'것을 폐기하고 '새로운'것을 구매하도록 유혹합니다.
광고에서 소개되는 새로운 세탁기에는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한 에로틱함, 새로움, 행복함이란 '기호가치'가 강하게 부여된 것입니다.  331
여러분 집 안이 사용하지 않는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면, 이것은 이미 산업자본주의가 열어놓은 소비사회의 유혹에 포획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허영 같은 감정이 있기에 산업자본의 기호가치가 작동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비사회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통찰이 중요한 이유도 그가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 혹은 허영이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333
금욕은 어떻게 사치가 되었나
근대사회란 산업자본 주의에 입각해 새롭게 구성된 사회, 그러니까 18세기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되어 19세기에 거의 완전한 모습을 갖춘 사회를 말합니다.  334
좀바르트는 '어떤 시대라도 사치가 일단 존재하면, 사치를 더욱 증대시키는 그 밖의 동기들 역시 활기를 띠게 된다. 즉 명예욕, 화려함을 좋아하는 것, 뽐내기, 권력욕, 한마디로 말해서 남보다 뛰어나려고 하는 충동이 중요한 동기로서 등장한다.... 그렇지만 사치가 개인적이며 물질주의적인 사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향락이 확기를 띠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에로티시즘이 생활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우리가 논의하는 시대에 적용해보자. 거대한 사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즉 부(富)도 있고, 사랑의 생활도 자유로운 상태였고, 다른 집단을 압도하려고 하는 몇몇 집단의 시도도 있었으며, 또한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19세기 이전에는 전적으로 향락의 중심지였던 대도시에서의 생활도 있었다.'  340-341
좀바르트에게 사치란 특정 시대만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가까운 것으로 사유되었습니다.
좀바르트는 사치가 인간이 가진 허영이라는 욕망, 즉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으려는 욕망에서 기원한다고 보았습니다. 스스로를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별하려는 욕망에서 사치가 발생했다고 본 것입니다.
좀바르트는 <사치과 자본주의>에서 '부(富)가 축적되고 성생활이 자연스럽게 또 자유스럽게 혹은 대담하게 표현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사치도 함께 유행한다.'  341
소비, 자본주의 생산성의 비밀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자유롭게 분출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각을 갖습니다. 그렇지만 보드리야르는 냉정하게 지적합니다. 우리가 가진 '욕구와 그 (욕구의) 충족은 오늘날에는 다른 생산력(노동력 등)과 마찬가지로 강요되고 합리화된 생산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349
산업자본주의에서 자유란 분명 소비의 자유입니다. 돈이 부족하거나 아예 돈이 없을 경우 우리가 부자유의 느낌, 심지어는 심각한 우울증을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자신을 타인과 구별해줄 수 있다고 믿는 상품들을 구매하지 못할 때 우리는 우울증을 겪습니다.
돈이 없으면 우울하고, 돈이 있으면 명랑해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산업자본이 우리의 욕망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분명한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자유와 부자유의 느낌을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자신이 산업자본에 길들어 그런 자유 혹은 부자유의 느낌을 가진다는 사실을 또한 망각하기 쉽습니다.  350
수족관에 갇힌 낙지의 삶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의 임금 가치보다 훨씬 더 비싸게 소비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핵심 비밀이자 신비입니다.  362
자본가로부터 주어지는 임금은 더 큰 자본의 형태로 다시 회수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윤택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노동자가 다시금 소비자가 되어서 자본가의 상품을 구매해주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잉여가치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는 반드시 이러한 메커니즘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63

8. 교환, 대가 없는 나눔의 마법
문명의 빛 반대편에 서려는 시인의 의지
만약 돈이 없다면, 우리가 소망하는 자유로운 욕망의 실현은 불가능해질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사회에 사는 셈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삶은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품과의 관계에서는 주인으로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그 이면의 돈과의 관계에서는 무기력한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가니까요.  367
사랑이란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감정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은 자본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소망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본주의는 늘 인간의 무한한 진보와 변영을 약속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곧바로 정면에서 거부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의 노쇠함과 그에 이어지는 필연적 죽음입니다.  375
'공산당 선언'에서 '생산의 거울'까지
베버 역시 생산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사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바르트나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의 잉여가치가 오직 유통과정에서만, 다시 말해 한때 노동자였던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에만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베버와 달리 이들 후자의 견해는 소비중심주의라고 부릅니다. 보드리야르가 생산중심주의를 비판했던 이유도,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자본조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377
보드리야르는 아직까지도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생산중심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오래된 사유의 관행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378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그 누구도 마르크스의 사유를 피해갈 수 없지요. 그렇지만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를 배신하려고 합니다. 그는 마르크스 역시 생산중심주의라는 거울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379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어떠한 억압이라도 감당해야 했지만, 유통과정에서 노동자는 곧 소비자로 바뀝니다. 소비자라느 ㄴ위치에 있을 때에만, 노동자는 산업자본에 대해 나름대로 자율성을 얻지요.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유통과정, 혹은 소비의 영역을 중시했던 것입니다.
소비 영역은 소비자가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산업자본의 음모, 나아가 소비자의 허영을 부추겨 소비를 촉진하려는 산업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소비 영역에서 전개되는 이 같은 산업자본의 음모와 전략을 폭로하는 것, 바로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평생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그는 사물이 가진 서로 다른 네 가지 차원의 논리를 해명합니다.  381
'기호와 차이의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소비의 논리를, 그 논리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논리로부터 구별해낼 필요가 있다. 네 가지 논리가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①사용가치(use value)라는 기능적 논리, ②교환가치(exchange value)라는 경제적 논리, ③상징적 교환(symbolic exchange)의 논리, ④가치(value)/기호(sign)의 논리. 첫 번째는 실제적인 작용의 논리이다. 두 번째는 등가(equivalence)의 논리이다. 세 번째는 애매성(ambivalence)의 논리이다. 네 번째는 차이의 논리이다. 또한 유용성의 논리, 거래의 논리, 증여의 논리, 신분의 논리. 물건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 '상품' , '상징' 또는 '기호'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것만이 소비라는 측수한 영역을 규정짓는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다이아몬드는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도구'일 수도 있고, '상품'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잇고, 아니면 '기호'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도구'의 측면에서 바라본 다이아몬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가장 견도한 광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도구로서의 다이아몬드는 '사용하기'라는 기능적 논리를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름답기만 할 뿐 무엇인가르 자를 때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면 이것은 결국 사용가치가 별로 없는 다이아몬드에 불과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드리야르는 '사용가치의 기능적 논리'를 '실제적 작용의 논리' 혹은 '유용성의 논리'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는 '상품'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1억 원으로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됩니다. 이때 상품으로서의 다이아몬드는 '교환가치'라는 경제적 논리를 따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한 개는 자동차 5ㄷ개가 컴퓨터 100대와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이아몬드 한개의 교환가치는 자동차의 5배, 혹은 컴퓨터의 100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화폐는 바로 이런 다이아몬드의 교환가치를 가장 편리하게 수량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한 개의 교환가치는 현재 1억 원으로 매겨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너무 많이 채굴되거나 혹은 소비자의 구매가 별로 없다면, 다이아몬드의 교환가치는 1억 원 아래로 다시 떨어지겠지요. 이 때문에 보드리야르는 '교환가치라는 경제적 논리'를 '등가의 논리'나 '거래의 논리'에 딸느 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이아몬드는 '상징'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사랑하는 딸의 결혼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상품으로서의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1억 원으로 다른 것을 살 수도 있겠지요. 혹은 1억 원 상당의 다른 상품과 다이아몬드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물로서의 교환은 앞서 말한 등가 교환과는 다릅니다. 내가 다이아몬드 하나를 선물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느 ㄴ상대방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교환'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선물로서의 다이아몬드는 '양면성의 논리'나 '증여의 논리'를 따른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애매성으로 번역된 'ambivalence'라는 단어는 가치가 애매하다는 뜻입니다. 기존 등가교환에서 본다면, 다이아몬드 한 개와 장미꽃 한 송이 사이의 교환이란 매우 애매하겠지요.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는 '기호'의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도 바로 이 네 번째 측면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상류계층에 속하므로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호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이아몬드는 보드리야르가 말했듯이 '신분의 논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기호'의 측면이 앞서 말한 '상품'의 측면과 그 의미가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교환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다시 말해 구입한 상품이 고가일수록 그것은 구매자의 더 높은 사회적 위상과 신분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류계급은 고가의 제품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고가의 제품을 아무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과시하려는 허영심으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382-384
   도구 상품  상징 기호 
 가치 사용가치 교환가치 상징가치 기호가치 
 작동 논리 작용성  등가성  애매성  차이성 
 적용 영역 유용성의 차원  거래의 차원  증여의 차원  신분의 차원 

생산중심주의에서 살펴본다면,, 인간의 노동력을 중여주거나 아니면 확장 시켜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 '도구'로서의 사물이란 개념은 샌상중심주의에 잘 부합됩니다. 또 '상품'으로서의 사물도 당연히 생산에 도움이 됩니다. 높은 교환가치에 상품이 팔리면, 그만큼 산업자본은 생산력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기호'로서의 사물도 생산중심주의에 잘 부합됩니다. 인간이 가진 허영심과 욕망을 증폭시켜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이라ㅗ 고가에 사들이게 한다면, 산업자본은 막대한 잉여 가치를 남길 수 있겠지요.
보드리야르는 생산의 거울을 깨고자 했던 철학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도구', '상품', '기호'라는 세 가지 사물의 측면을 부정ㅎ적으로 생각했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측면들은 모두 생산 중심주의와 직접 관련 있기 때문ㅇ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가지 관점만 남은 셈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물이 가진 '상징'으로서의 측면입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어떤 교환도 기대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증여의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385
보드리야르는 '상징'으로서 사물이 가진 측면이 사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산업자본주의의 마수로부터 구원해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보았습니다.  386
불가능한 교환을 꿈꾸며!
모스(Marcel Mauss 1872~1950)가 1925년 발표한 <증여론(Essai sur le don)>.
모스의 연구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가 부의 축적을 제일의 목적으로 간주하는 사회인데 반해, 증여의 사회에서는 부의 축적이 아니라 오히려 부의 지출이나 베풀기를 가장 중요한 덕목 혹은 가치로 믿는 사회였습니다. 모스는 증여의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증여하는 사람이 지출이나 베풀기를 통해 얻는 것, 즉 증여가 대가로 얻는 것은 위신이나 명예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증여는 결국 이 사회에서 위신이나 명예와 대등하게 교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타유가 강조한 것은 증여의 핵심이 교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증여 자체가 함축하는 과잉 및 그로부터 이어지는 손실이란 논리엿습니다.  396
보드리야르는 뇌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사용가치나 교환가치, 혹은 기호가치로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선물에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그리고 기호가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사랑이나 애정의 표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가치, 즉 '상징적(교환)가치'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398
<암호>에서 말년의 보드리야르는 자신이 바타유의 충실한 제자였음을 시인합니다. 바타유는 생산중심주의가 종국에는 파국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지요. 하지만 그는 유리가 '불유쾌한 파멸'보다는 '유쾌한 파멸' 즉 선물의 놀리를 선택할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산업자본주의의 집어등에 걸려 있는 우리에게는 바타유와 보드리야르의 이야기가 언뜻 보아서는 이해되기 어려운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단적으로 말해 하나의 고유한 선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생산력의 증가, 다시 말해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일종의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면에서는 산업자본이 설치해놓은 집어등에 사로잡혀 스스로 교환 가능한 존재라고 받아들이며 체념합니다.  403
자전거로 달리는 영원회귀의 길
교환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은 장미와 와인에 교환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교환을 하면, 장미가 가진 고유성과 와인이 가진 고유성을 부정해야만 합니다. 만약 부정하지 않는다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무엇이든 서로 교환되려면 그것이 가진 생생한 질들을 추상해야 합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부여준 것이 바로 '돈' 입니다. 장미는 1만 5000원의 가치가 있고, 와인도 1만 5000원의 가치가 있으므로 서로 바꿔도 된다는 논리를 가능케 한 것이 돈입니다.
그런데 만약 교환만을 염두에 둔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향유할 수가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오직 교환 가치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404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실천적 명령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에 따르면 니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니체는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기독교를 허무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니체는 이 순간의 삶과 현재의 절대적인 것으로 긍정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 대목에서 영원회귀라는 니체의 주장이 출현했습니다. 바로 지금 그리고 이곳의 삶, 그리고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선택은 영원히 반복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논리에 따라 만약 현재 사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 행복하지 않은 삶이 어떤 주기를 가지고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현재의 삶 속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위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심사숙고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411
니체가 제안한 영원회귀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세속적 형태의 염세주의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자본주의 논리를 신봉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현재의 고된 노동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그 대가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리지요.  412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뢰즈, 그러니까 니체 자신이 말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413
유하와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에 의해 포획된 우리 삶이 얼마나 우울하고 초라해졌는지 잘 보여줍니다.
부르디외는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와는 분명 다르지만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어떠한 힘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414
우리는 후손들이 자본주의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후손들을 위한 앞 세대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그런 사회가 가능해진다면, 미래에 도래할 인간들은 매 순간 펼쳐지는 자신들의 삶을 단순한 수단으로 생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그 자체로 향유되는 영원한 현재가 되겠지요.  415

에필로그
자본주의 사회는 피상적으로 보면 이전 사회보다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의 자유를 위새서 돈의 노예가 된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세요. 수중에 돈이 없을 때 얼마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고 느끼는지 말입니다. 가령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가 돈이 있을 때만 가능한 그런 성격의 것이라면, 그것은 돈의 자유이지 우리 삶의 자유일 수는 없습니다.  423
자본주의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회복하려면 여기에서 다룬 인문학자 여덟 명의 사유 또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날개옷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그들의 사유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어왔으며, 또한 진정한 자유를 얼마나 오랫동안 잃고 살아왔는지 자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424
"선생님,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 말씀대로 취업은 자본주의에 포획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느 ㄴ취업을 해서는 안 되는 건가요? 취업을 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이것은 무척 심각하고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 좋은 성적, 좋은 영어 점수. 지금까지 그들의 삶은 모두 자본주의가 내세운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에 입각한 이 같은 삶의 원칙을 직접 심어준 것은 바로 그들의 부모입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보다 인간은 훨씬 더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고 합니다.
독립하기 전까지 인간은 주위의 절대적 보살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유아 시절에 필요한 사랑과 관심은 단순한 허영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생존과 결부된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아 시절부터 인간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 이 가운데 특히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 어머니가 기뻐한다면, 아이들은 가능한 한 성적을 올리려고 애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우리의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인 셈입니다.  425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욕망이란 단지 부모의 욕망이 내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젊은 학생들이 자본주의 논리에 의구심과 회의를 품을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회의는 그들이 이제 부모의 절대적 영향으로부터 구성된 욕망이 아닌 자신만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업을 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라는 그들의 질문 이면에는 생황의 절박함과 불안감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426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품은 상처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자각하면, 우리 실천도 그만큼 치열하고 집요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 책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상적인 대안이나 구체적인 해법들을 제안하기보다, 우선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은 삶을 묘사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상처를 감지한 문학가들 그리고 누구보다 치밀하게 상처를 해부한 사상가들의 시건을 빌린 것도 이 때문이지요.
상처를 상처로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간정히 소망해 봅니다. 더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4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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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나온 결론으로 제시된 '공동체'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공동체는 결국 공동체의 규범과 규율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양산의 계기가 될 수 있기에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 시도는 좋으나 이것이 '동물농장'이 되지 않는다고 보장 할 수 없다.
미시적으로 볼 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큰 문제 양산이 될 것이다.
어쩌면 유지하기 위해 '멋진신세계'로 변형되어야 할지도 모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손쉬운 대답은 종교에 의지하는것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것 처럼 이것 역시 대안이 되기에는 힘들다.
인간은 절대적 불변이 있다. 바로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 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답이 존재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어렵다. 어렵고도 답이 없다. 그렇기에 변화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끝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기력하게 하긴 하지만, 지금 보다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변화를 하고, 그것이 병이 될 때 아니 병이되려할 때 또 다른 대안의 변화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만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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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도서이다.
간결하고 입문서로서 출간된것같다.
그렇지만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한 핵심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에게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것은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철학은 대답이기 전에 물음이다.(9)' 바로 물음즉 질문이다. 스스로 질문들을 해 나갈 때 의문점과 미심쩍은 것들이 해소되면서 하나의 깊은 생각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은 청소년에게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생각하고 고민해 볼 점을 시사하고 있다.
책은 서양 철학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철학자 5명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핵심적인 사유거리를 지적해주고 있다.
매우 짧은 내용의 책이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을 말한다.








1. 플라톤 할아버지의 이데아
플라톤 
진정한 존재는 이 세상 너머에 있다는 이데아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이데아는 서양 철학에
서 생각의 기본이 되었습니다.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2,400년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어험, 안녕한가. 내가 플라톤이라네.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여기에 도형을 몇 개 그려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게.
자, 어느 것이 삼각형인가?
물론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네.
그렇지만 사실 이것은 삼각현이 아니라네.
삼각현은 내각의 합이 180도여야 하거든.
그런데 이것은 그렇지 않지. 살짝 일그러져 있으니까 말이네.
그래도 우리는 삼각형을 원이나 사각형과 구별할 수 있다네. 

전부 지워 버렸네.
좀 전까지 있었던 삼각형, 원, 사각형은 인간의 역사에서 아니, 
우주의 역사에서 사라졌다네.
두 번 다시 똑같은 것은 그릴 수 없지.
다시 한 번 삼각형을 그리겠네.
아까의 삼각형과는 상당히 다르지.
게다가 이것도 정확히는 삼각형이 아니라네.
그래도 역시 이것은 원이 아니라 삼각형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왜 아까 전의 그림도 이 그림도 삼각형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알겠나?

그 이유는 우리가 삼각형이란 무엇인지, 원이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정한 삼각형의 모습, 그것이 이데아라네.
아까 그렸던 삼각형이나 원이 이제는 어디에도 없듯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는 없어진다네. 
그래도 이데아는 없어지지 않지.
그래서 이데아야말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라네.  










































2. 데카르트 아저씨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아저씨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무엇이든 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벗어나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원리를 찾았습니다.

안녕? 침대에서 인사해서 미안. 나는 데카르트란다.
잠꾸러기로 보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
그래!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의심하고 의심스러운 것들을 자꾸자꾸 없애 나가면 돼.
그럼 의심스럽지 않은 것, 확실한 것만 남을 테니까.

먼저 인간의 감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오해나 착각을 잘하지. 
물이 든 컵에 넣은 빨대는 꺽어져 보이지만 사실은 꺾어진 것이 아니야. 먼 곳에 있는 것은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지 않아.
인간의 감각이란 참으로 신기하네!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어떨까?
이 세상이 만약 꿈이라고 친다면 역시 신기하지.
왜냐하면 꿈이란 것은 깨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
나는 지금 침대 위에서 이것저것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쟁터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몰라.

그럼 수학은 어떨까?
나는 수학이야말로 학문의 기본이라고 생각해ㅐ.
왜냐하면 정말 확실한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
1 더하기 1은 2.  정확히 맞잖아.
그런데 어쩌면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속여서 
1 더하기 1이 사실은 3인데 2라고 생각하게끔 한 것은 아닐까?
아니, 물론 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그래도 의심해 볼 수는 없겠지.
아,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하군. 완벽하게 확실한 것은 없을까?
그런데....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한 이유는 내가 의심하기 때문이지.
여기서 내가 의심한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어. 
그렇다면 의심하는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거야.
나는 의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3. 칸트 선생님의 자유
칸트 선생님은 200년쯤 전에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비판 철학을 내놓았습니다. 
나아가 인간이 도덕적 행동을 할 때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했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제가 칸트입니다.
아! 5시입니다. 일을 마쳐야겠습니다. 
저의 좌우명은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랍니다.
제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은 제가 딱딱 시간 맞춰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몇 시인지 알았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버스 안에 사람이 참 많습니다. 
경우 앉았습니다. 휴우.
아! 할머니 한 분이 오십니다. 자리를 양보해야겠습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승객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제발 발을 밟지 말아 주.... 아야야야!
휴, 겨우 도착했습니다. 완전히 녹초가 되었습니다. 만약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앉아서 올 수 있었을 텐데...
그래요,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양보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양보한 까닭은 '자리를 양보하시오.'라는 소리가 드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 하다면 ... 하시오.'처럼 조건이 붙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자리를 양보하시오.'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리를 양보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꾸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명령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욕망과 감정에 지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참아야만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입니다.
















4. 마르크스 선배의 노동의 소외
마르크스 선배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이제까지 다른 철학자들은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해석만 했는데 마르크스 선배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노동은 사람의 본질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과정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도 자신이 생산한 것을 갖지 못합니다. 즉,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선배는 노동자가 노동의 소외를 겪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녕. 내가 바로 마르크스야. 
오늘 나는 일하러 왔어.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네. 슬슬 일을 시작해야 겠다. 상품을 진열하자. 부지런히 부지런히.
"어서 오십시오." 돈도 받아야 해.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
일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
시간당 4,000원이고 여덟 시간 일했으니 32,000원이야. 
자, 이제야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응? 뭔가 이상하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던가?
그래도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잖아. 
알았다!
내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나의 본질을 조금 잘라서 파는 거야.
그래서 일을 하면 싫증이 나고, 일을 마치면 나 자신을 되찾는 이런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지.
이런 사회는 반드시 바꿔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더 공부해야겠다. 자, 힘내자!






5. 사르트르 형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 형은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은 현대에 사르트르 형은 지금까지의 철학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질이 똑같다고 보는 시각을 버렸습니다.
사르트르 형은 인간의 본질보다도 실존, 즉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생각했습니다.

이야, 반가워요. 제가 사르트르예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드리지요.
여기 연필 한 자루 있어요. 연필은 무엇을 쓰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지요. 이것이 연필의 본질이에요.
쓰기 위한 도구로 길이와 굵기와 무게와 재질이 정해졌어요.
그리고 그와 같은 종류의 연필이 많이 만들어져서 그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만약 이 연필이 초콜릿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떨까요?
먹으면 맛있기야 하겠지만 쓰기 위한 도구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음, 역시 맛있네요. 
연필의 크기가 이렇게나 거대하다면 쓰기 위한 도구로는 역시 도움이 되지 않지요. 
만약 신이 있어서 이러저러한 존재라고 본질을 미리 정해 놓았다면 인간도 연필과 다를 바 없겠지요.
하지만 신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태어난 의미는 없는 것일까요?
그래요. 우리는 아무 의미도 없이 태어나 버렸어요. 
태어난 의미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면 돼요.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먼저 나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있지요.
그 다음에 우리는 날마다 여러 가지를 결정하고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신존 자체가 의미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제 이해가 되나요? 그렇다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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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격의 대표적인 특징

2. 남자들에게 기대할수 있는 가장 좋은 점(남자의 미덕)

3. 여자들에게 기대할수 있는 가장 좋은 점(여자의 미덕)

4. 결정적인 단점

5. 좋아하는 일

6. 나의 행복한 꿈?(당신이 꿈꾸는 행복은 무엇?)

7. 가장 큰 불행은 무엇?

8. 뭐가 되고 싶은가?

9. 내가 살고 싶은 나라는?

10.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

11.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여자 주인공?

12. 현실속에서 나의 영웅(존경하는 모델)

13. 역사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주인공?

14. 가장 싫어하는것?

15. 역사상 가장 경멸하는 인물상?

16. 가장 소유하고 싶은 천부적인 재능?

17.  어떻게 죽고 싶은가?

18. 가장 용서하고 싶은 나의 과오는?

19. 나의 신조?

20.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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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질문"에 답한 세 사람 (프루스트, 마르크스, 마르케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문답놀이 중에 "프루스트의 질문 Le Questionnaire de Proust"이란 게 있다.
19세기 파리 살롱가에서 여흥거리로 유행했던 놀이였다는데, 
후일『익스프레시옹』지에서 유명 인사들의 사고와 감정을 알아보는 질문지로 적극 활용하면서 인터뷰를 대신해 널리 쓰이고 있는 설문이다.
프루스트가 13살 때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이 문답놀이를 한 후, 
그 질문들을 정리하여 "Birthday Book"에 남겼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질문"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한 TV 방송국에서는 저 질문을 제목으로 하는 명사 인터뷰 프로그램을 20 년째 방송하고 있다. 
(책으로도 발간되었다.)

인터넷에서 프루스트 자신이 그 질문에 남긴 답들을 발견하였기에 이곳에 갈무리 해둔다. (스무살 때 답한 것.)
더불어 마르크스, 마르케스 - 의 답변도 같이 묶어본다.



#. 당신 성격의 가장 큰 특징은? 
프루스트 : 사랑받고자 하는 갈망, 좀 더 정확히는 날 칭찬하기 보다는 어루만쳐주거나 응석을 받아주길 바라는 욕구.
마르크스 : 목적의 단일함
마르케스 : 충성심. 심지어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도.

#. 당신의 최대 미덕은? 
마르크스 : 단순함
마르케스 : 죽을 때까지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능력

#. 당신의 결점은? 
프루스트 : 이해력의 결여와 약한 의지력
마르케스 : 비이성적 낙관주의.

#. 당신의 좌우명은?
프루스트 : 그 대답이 불운을 불러올까봐 두렵다, 대답하지 않겠다.
마르크스 : 모든 것은 의심해 봐야 한다. (De omnibus dubitandum.)

#. 당신이 꿈꾸는 행복은? 
프루스트 : 그리 높은 단계의 행복이 아닐까봐 걱정된다. 난 그게 뭔지 말할 용기도 없고, 만약 말한다면, 난 아마 그 행복을 몇마디 단어들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한 진술로 그 행복을 망쳐버리게 될 것이다.
마르케스 :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

#. 당신이 관대히 용서할 수 있는 실수는? 
프루스트 : 내가 이해하는 것들이라면. 
마르크스 : 속기 쉬움.
마르케스 : 허리 밑에서 저지르는 실수.

#. 당신이 꿈꾸는 이상은? 
마르크스 : 싸우는 것.
마르케스 :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

#. 당신의 최대 불행은? 
프루스트 : 내가 어머니와 할머니를 전혀 알지 못했더라면....
마르크스 : 굴복하는 것. 
마르케스 : 내가 영원하지 않다고 속으로 의심하는 것.

#. 당신 친구들의 가장 좋은 점은?
프루스트 : 상냥함. (그들이 상냥함을 지닐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마르케스 : 아무 용무 없이 내게 전화 하는 것.

#. 제일 좋아하는 작가들은? 
프루스트 : 삐에르 로티. 요즘엔 아나톨 프랑스.
마르크스 : 디드로
마르케스 : 보름마다 바뀌지만, 끊이지 않는 사람은 소포클레스와 콘래드. 이번 주에는 멋진 자서전을 쓴 무하마드 알리.

#.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프루스트 : 보들레르와 알프레드 드 비니
마르크스 : 셰익스피어, 아이스킬로스, 괴테
마르케스 : 지금 현재는 카바피스. 페소아와 네루다.

#.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프루스트 : 다를뤼, 부트루 , 두 선생님.
마르크스 ; 스파르타쿠스, 케플러
마르케스 : 불길한 예언에 포위당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 가장 좋아하는 격언은? 
마르크스 : nihil humane a me alienum puto(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마르케스 : 너무 고전적이라 출판할 수 없음!

#. 남자의 최대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프루스트 : 남성들만의 꾸밈없는 교우관계
마르크스 : 강함
마르케스 : 부드러움.

#. 여성 최대의 자질은? 
프루스트 : 여성적인 아름다움
마르크스 : 약함
마르케스 : 용서.

#.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프루스트 : 베토벤, 바그너, 슈만
마르케스 : 벨라 바르톡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프루스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마르케스 : 고야. 하지만 12시 이전에는 결코 좋아하지 않음.

#. 가장 좋아하는 꽃은? 
프루스트 : 그녀의 것.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모든 꽟을 좋아한다.
마르크스 : 월계수
마르케스 :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메르세데스가 매일 아침 책상에 꽂아 놓는 빨간 장미.

#. 좋아하는 색은? 
프루스트 : 아름다움은 색이 아니라 색의 조화 속에 있다.
마르크스 : 빨강
마르케스 : 자마이카에서 보이는 오후 세시의 카리브 해의 노란색.

#. 가장 좋아하는 새는? 
프루스트 : 제비
마르케스 : 오렌지색 오리

#. 가장 싫어하는 것은? 
프루스트 : 내가 지닌 최악의 단점들
마르크스 : 노예근성
마르케스 : 일요일.

#. 가장 혐오하는 역사적 인물은? 
프루스트 :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 
마르크스 : 마틴 터퍼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대중작가)
마르케스 : 콜럼버스와 산탄데르 장군.

#.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프루스트 : 베레니케 berenice (보통 베레니스라고 부르는 연극(라신느)에 나오는 여주인공으로 머리 털자리의 전설을 낳은 고대 이집트 왕비.
마르크스 : 그레트헨(괴테의 '파우스트' 1부의 주인공)
마르케스 : 가르강튀아, 단테와 드라큘라 백작.

# .가장 좋아하는 군사행위는? 
프루스트 : 나 자신이 지원병으로 응모했던 일
마르케스 : 열다섯 명의 생존자를 구해낸 작업.

#. 당신이 갖고 싶은 천부적 재질은?
프루스트 : 의지력과 저항할 수 없는 매력
마르케스 : 점칠 수 있는 능력

# .어떻게 죽고 싶은가? 
프루스트 : 지금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무척 사랑받으면서...
마르케스 : 친구들에 둘러싸여 침대에서 죽고 싶음.

#.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프루스트 : 내가 바라는 일들만이 실현되는 곳 그리고 늘 사람들이 부드러운 감정들을 주고받는 곳
마르케스 : 지오콘다 깊숙이 있는 슬픈 개울 옆에서.

#. 가장 되고 싶었던 사람은? 
프루스트 :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
마르케스 : 장터의 마술사.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맑스 : 라우라, 예니 (딸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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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맑스의 답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덕은 : 단순함 
당신이 남자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미덕은 : 강함
당신이 여자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미덕은 : 약함
당신의 주요한 특징은 : 목적의 단일함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 싸우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 굴복하는 것
당신이 가장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악덕은 : 속기 쉬움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악덕은 : 노예근성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 마틴 터퍼 (빅토리아여왕시대의 대중작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 책에 파묻히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 셰익스피어,아이스킬로스, 괴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산문작가는 : 디드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은 : 스파르타쿠스, 케플러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주인공은 : 그레트헨 (괴테의 파우스트 1부의 주인공)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 월계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 빨강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 라우라, 예니 (딸들의 이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 생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 : nihil humane a me alienum puto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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