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이 쓰인 1848년, 당시의 세계 자본주의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해면하고 있다.  9


박종철출판사에서 1998년에 출간된 <공산주의 선언>을 바탕으로.(출판사와 번역자는 다르지만 전문을 참고하길 원하면 클릭)


어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의 전체적인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의 생애만 알아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이 어떤 시대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회적 객곽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19


철학자들은 작가 한 짓을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짓을 자주 한다.  21


마르크스는 <공산단 선언>을 쓰면서 결코 시간을 초월한 성스러운 문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첫 구절은... 이것이 사라질 수 있는 상품이라는 것, 후손을 염두에 두지 않고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구체적 순간에 쓴 것임을 강조한다.

<공산당 선언>은 역사를 전사(前史)와 미래사로 나누엇다는 점에서 역사철학적인 의의가 있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작동 원리와 그것에 연관된 정치적 사태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현대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맹아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치경제학적 의미가 두드러진다. 더 나아가 <공산당선언>은 근대의 모더니티가 가진 파편적, 허무적 측면들을 관조함으로써 현대 문화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기초를 제공한다는 문화이론적 의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39-40


혁명의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보여준 태도는 선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혁명을 위해 노동자를 준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40


나는 그를 '진정한 근대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근대인은 어떤 사람을 지칭할까.

'계몽', 독일어로는 Aufklarung('아우프클래롱'이라 읽는다), 영어로는 Enlightement다. 또 하나는 '주관성' 또는 '주체성(Subjectivity)'이다. 이 둘은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계몽은 말 그대로 'Enlightement' 즉 '빛을 비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Aufklarung'은 '명확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근대를 이런 시대로 규정한 것이다. 빛을 비추거나 명확하게 했다는 것은 뭔가 어두운 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게 뭘까? 그건 바로 중세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암흑의 중세, 밝은 근대라는 식의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과 주관성에 대립되는 것은 이처럼 중세시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인 단테가 쓴 <신곡>을 예로 들어보자. 르네상스하면 세계사 시간에 '인간의 재발견' 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인간을 재발견하면 신은 완전히 부정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된다. <신곡>은 로마 최고의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다가 베아트리체(단테의 애인었다고 한다)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이르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이 쓰인 시기가 1300년대라고는 하나 이 서사시 안에는 신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서양 사람에게 신을 빼놓고 뭔가를 하라는 말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통의 유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제는 제사지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어떻겠는가. 싸대기 맞는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신을 부인하고 계몽을 내세운 것은 엄청난 단절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이성의 힘으로만 세계를 파악하겟다는 태도다. 어른이 된다는 소리다. 그래서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칸트는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답한 것이다. 더 이상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은혜를 입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자신의 의지, 이성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고 개조해나가겠다고 자신의 의지, 이성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고 개조해나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 근대사상의 혁명적 면모다.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라는 바로 이 전통 위에 칼 마르크스가 서 있다.

서양 근대인들은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구축하자는 사람들이엇다. 이들은 왕의 권력을 신이 준 것이라고 하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프랑스혁명과 같은 정치적 혁명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회를 으룩하려 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힘에 의해 파악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른바 근대의 교양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부르주아로 불리는 근대의 시민인데 고전적 의미에서의 우파, 즉 오늘날의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다. 즉, 근대의 지식인이라 하면 일단 누구나 다 우파 수준의 교양을 갖춘 셈이다. 그들은 낡아빠진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 그 사람들은 지연이니 혈연이니 하는 것들에는 신경 안 쓴다. 그렇게 오랫동안 믿어오던 신도 끊어버린 사람인데 뭘 못 끊겠나. 그냥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 능력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고쳐나가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48-50


마르크스 사상의 배경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계몽주의와 교양이고 마르크스 자체를 볼때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키워드는 이성, 역사, 노동이다.  52


나는 내가 감성적인 상태에 빠져 있엉도 내가 감성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정신 안에서는 이성이 감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다 이런 상태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53


인간의 주체적 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되, 사태의 기원과 전개를 꼼꼼하게 바라보는 것이 마르크스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였다. 

우리들도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가령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해보자.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지금 이 순간의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왔고, 그런 과거를 통해서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력서를 통해서 사람을 판단한다. 이것도 일종의 역사적 방법이다. 물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나랑 같은 고향이네, 같은 학교 나왔제, 심지어는 성씨가 같네 하면서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런 편견만 벗어던진다면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적 방법을 날마다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54


이성과 역사, 이 둘을 묶으면 역사적 이성주의다. 마르크스는 이성과 역사적 방법론, 이 두 가지 도구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본다... 

마르크스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기반에 놓인 것을 인간의 활동(human activity)으로 파악했다...

역사를 인간 활동의 기록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신이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인간의 활동이 인류의 역사를 만든 핵심적인 요소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이다.  55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뭘까? 그건 바로 노동(Arbeit)이다. 이것 독일어다. '아르바이트'라고 읽는다.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요인이라 생각했다.

'이성' '역사적 방법' '물질적 활동 중심'이라고 하는 마르크스 사사으이 주요한 세 요소를 묶어 한마디로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56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아주 철저하게 유물론을 실천하고 있다. 뭐든지 물질의 관점에서, 간단히 말해서 돈 중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돈 벌고 성공하는 거 아닌가. 돈 못 모으는 사람들은 어떤가. 마음약해서 여기저기 좋은 일만 하다가 거덜 나지 않는가. 역사적 유물론이 골수까지 파고든 사람들, 사실 알고 보면 자본가들이다. <공산당선언>을 읽다보면 중세를 깨뜨리고 근대를 열어젖힌 부르주아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자본가들이다. 마르크스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58-59


마르크스의 사상 전개과정을 크게 둘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철학(특히 역사와 노동으로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에 관한 연구 시기 : 대표적 저서로는 파리시대의 <경제학-철학 초고>가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순수한 의미의 철학적 연구를 정치경제학과 결합시킨 것이다.

2) 1852년부터의 정치경제학 시기 :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뒤엎을 것인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자본의 해부학(Anatomy)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서다.  62


데이비드 하비가 쓴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는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을 쓴 1848년을 전후한 시기의 파리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67


<선언>이 나왔을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사회주의 선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1847년에는 사회주의 는 부르주아 운동을 의미했고, 공산주의는 노동자 운동을 의미했다.  75


'전 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하여'

1848년이라고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공산주의자임을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은 비밀결사의 형태로 활동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공공연하게 활동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77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제1장의 이 첫 문장인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다.  79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서 그는 유물사관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담대히 거짓을 일부러 들고 나온 것"이며 "거기서는 역사의 근본을 아무 목적 없는 우연한 물질에 돌린다. 그러고는 모든 정신적인 가치 관념을 유치한 시대의 공상, 명상에서 나온 곳으노 돌리려 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유물사관을 무척이나 심하게 오해한 것이다....

유물사관에서 말하는 물질이 뭐겠는가. 그건 바로 경제적인 의미의 물질이다. '황금만능주의', '물질 중심주의' 할때의 물질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돈 가지고 매사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물질 중심 사고방식이다. 그러니까 유물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돈 가지고 매사를 판단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크게 오해한 것은 아니다.  84-85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어느 정도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 해도 사회적으로는 역시 관계들의 산물"이라고 썼다. 유물사관이란 것은 바로 이런 물질적 관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불온한 것이 아니다....

'계급'은 그러한 물질적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파악할 때, 비슷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을 묶어서 부르는 것이라 해두자.

첫 번재 문장 아래에 보면 엥겔스가 붙인 각주가 있다. 1888년에 영어판을 내면서 붙인 것이다.

'부르주아지란 현대 자본가 계급, 즉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자이자 임금 노동의 고용자들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트란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 계급을 의미한다.'  86-87


'계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물질적 관계를 기준으로 나눈 다음, 각 부류의 사람들을 묶어서 가리킬 때 쓰는 말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물질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인가 말이다. 그러니 계급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다.  87


첫 번째 문장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물질적 관계를 기준으로 나뉜 집단끼리 서로 대립하고 싸워온 역사다.  88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말이 생겨나서 쓰이게 된 과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본래 부르주아란 말은 변호사, 법률가, 의사 등 농노도 귀족도 아닌 제3신분의 전문직 종사자들을 뜻했다.

이 용어들이 처음 쓰일 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의 특정한 계급, 즉 현대 자본가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91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전에 등장했던 지배 계급과 그것의 몰락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자유민과 노예, 파트레스와 플래비스, 남작과 농노, 쭌프트 회원과 직인, 요컨대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맞섰으며... 그러한 투쟁은 빈번히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나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통의 몰락으로 끝났다.'

과거에는 지배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위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설명처럼 이것저것 많았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를 물질적 관계라는 기준에서 보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눌 수가 있다. 부르주아지는 처음부터 현대 사회의 지배 계급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노력하였다.  93


'봉건사회가 몰락하면서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지하지 않앗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모습들로 낡은 것들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부르주아가 중세에 있던 것을 바꾸어놓은 것은 세 가지다. 낡은 것들을 새로운 계급, 억압의 새로운 조건, 투쟁의 새로운 모습들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를 설명하자면 봉건사회에도 계급 대립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르주아는 그것을 바꾸었다. 지배하는 방식과 조건 등을 바꾸었다는 말이다.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물질적 생산관계만을 가지고 계급을 분류하는 것이 부르주아의 방식이다.

그런 분류 기준에 반대하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돈 이외의 것을 진정한 인간의 가치라고 추구하며 사는 살마들의 인생은 얼마나 피곤한가.  94


마르크스는 "중세의 농노로부터 최초 도시의 성외(城外) 시민이 생겨났고, 이 성외 시민 층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최초의 요소들이 발전하였다"고 써두었다. 다시 말해서 중세의 농노 중에서 경제적 이윤에 눈뜬 사람들이 성외 시민이 되었고, 이들이 오랫동안 고생해서 부르주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95


아메리카의 발견, 콜럼버스에 의한 아메리카의 발견이 1492년의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백 년 전이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시기가 1488년이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회항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은 흔히 세계사에서 '지리상의 대 발견'이라 불린다.  96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전 세계적인 시장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초반부터 글로벌 경제였던 것이다.  97


돈이 유럽에 흘러 들어가면서 유럽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봉건 사회의 잔재가 무너진다. 그 잔재들이 뭔가.

<선언>에서는 그것을 "봉건적 쭌프트적 공업 경영방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이 생겨남에 따라 이 방식이 증대하는 수요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자 매뉴팩처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쭌프트 다음이 매뉴팩터다. 그러면 그 다음은 뭘까. <선언>의 구절을 보자.

'시장은 줄곧 성장했고 수요는 줄곧 증가했다. 매뉴팩처로도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앗다. 그때 증기와 기계 장치가 공업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매뉴팩처의 자리에 현대 대공업이 들어섰고, 공업 중간 신분의 자리에 공업 백만장자들, 공업 군대 전체의 우두머리들, 현대 부르주아들이 들어섰다.'  98-99


이제 부르주아지는 현대 세계의 당당한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대공업이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의미의 세계 시장이 열린다. <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시장은 상업, 해운, 육운에서 헤아릴 수 없는 발전을 이룩했다. 이러한 발전이 다시 공업의 신장에 영향을 미쳤으며, 부르주아지는 공업, 상업, 해운, 철도 등이 신장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발전햇고, 자신들의 자본을 증식시켰으며,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몇 페이지 더 읽으면 나오지만 주르주아는 중세의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계급들을 자신의 발 아래 부리게 된다.  99-100


공업 경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본(Money),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 노동력(LP:Labor Power)이다.  104


마르크스는 이윤의 원천을 '노동력'이라 말한 것이다. 자본의 순환 고리에 뭔가가 외부에서 들어가는데, 그것이 인간의 본질인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노동력이고, 바로 이 노동력이 이윤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취직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어야 공장이 돌아간다고 했다. 이걸 달리 만하면 공장에 투여할 노동력이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 16세기와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인클로저 운동이다. 지주가 땅을 12개 부분으로 나눈 다음 소작인 12명을 부려서 일을 한다고 치고, 소작인은 각자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반은 지주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갖는다고 하자. 자기 땅은 아니지만 소작인과 생산수단인 땅은 긴밀하게 붙어 있다. 게다가 농사 짓기는 굉장한 숙련을 요구하는 일이므로 섣불리 소작인을 잘라낼 수도 없다. 그런데 만약 이 땅에서 지주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양을 키우겟다고 하면 소작인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울타리만 쳐서 양을 키우면 된다. 이렇게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치기'라는 뜻이다)를 통해 소작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떨어져 자유롭게 되었다. 무지하게 자유로워진 거다. '자유로운'이라는 첫 번째 뜻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들은 자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다. 말이 자유지 가진 게 몸뚱어리밖에 없다는 뜻이다. 영러 free from이 '~이 없는'이라는 뜻 아닌가.  105-107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라는 말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잇지 않다는 점, 즉 '~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아니다. 자기의 잠재적 능력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는 아닌 것이다. 

현대의 공업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생겨났다. ..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는 반드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은 다 여기에 속한다. 

화이트칼라니 블루칼라니 하는 구별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히 알아두자.  108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각각의 발전 단계들에는 그에 걸맞는 정치적 진보가 수반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동시에 맞물려 돈다는 것을 발견한 점이다.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는데, 이게 이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는 맞물려 돌아간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111


'부르주아지는 봉건 영주들의 지배 아래서는 피억압자 신분이었고, 꼬뮌에서는 무장한 자치연합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인 도시 공화국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군주국의 납세 의무를 지닌 제3신분이었으며, 그 다음에 매뉴팩처 시기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평행추였으며, 대군주국 일반의 주요한 토대였다가 마침내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갖추어진 이래로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최종적인 결과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한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일을 처리해주는 위원회인 것이다.

꼬뮌(commune)은 본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도시 시민들이 자신들의 봉건영주로부터 자치권을 사들이거나 강찰한 뒤에 자신들이 이룩한 도시 공동체를 부르던 명칭이다. 꼬뮌과 관련해서는 1870년대 파리 꼬뮌(노동자들이 봉기한 혁명 정부)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1871년 3월, 독일군이 파리를 포위한 가운데 일어난 19세기 최대의 노종자 계급 혁명이다.  112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코뮌을 평하여 "그것은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부였다. 그것은 착취 계급에 저항한 생산 계급의 투쟁의 결과이며,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정치 형태였다"고 말했다. 엥겔스 또한 "꼬뮌은 전 유럽의 노동자들에게 사회 혁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열쇠를 준 것"이라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113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파괴'라고 한 단어의 독일어 의미는 '절멸시키다'라는 뜻이다. 완전히 파괴하고 땅에 묻어서 흔적조차 없애버리는 것이다. 완전히 거덜 내는 것이다. 이게 첫 번째 업적이다.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것을 없앴으니 당연히 혁명적인 업적인 거다. 그런 것을 없앤 다음, 그 자리에 세워놓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이다. 이것 역시 부르주아 계급의 업적이다.  115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인간애가 어떤니, 인간관계가 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삭막하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의 혁명적 업적인데 그걸 불만이라고 하면 부르주아의 업적이 불만이라는 말이고, 그러면 다연히 빨갱이로 몰리지 않겠는가.  117


'부르주아지는 이제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이 경외하며 바라보앗던 모든 직업에서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 등을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놓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 자신의 진본성이 없어진다. 생명도 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복제하여 돈을 벌려고 든다. 

부르주아 계급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뭐든 돈 되는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오래갈 만한 것이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부수고 새로 지어야 그것으로부터 이윤이 생겨난다.  117-118


모든 것이 돈으로써 측정되므로 존귀한 것이 남아나질 않는다. 

현대 사회의 문화를 논하 ㄹ때 문화만 따로 떼어내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반드시 경제적 구조부터 이야기해 들어가야 한다.  119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그 경향이 더 강해졌을 뿐이다. 

또 하나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혁신'이라는 말이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계속해서 자본의 순환 고리를 돌려야 하니까. 그것도 빨리 돌려야 이윤이 빨리 나오니까 혁신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123


'부르주아지는 생산도구들에, 따라서 생산관계뜰에, 따라서 사회관계들 전체에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혁명은 때려 엎는다는 의미강 아니다. 계속되는 혁신과 변화를 가리킨다. 그 혁신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어난다. 먼저 생산도구들을 바꾼다. 공장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면 이건 생산도구가 바뀐 것이다. 그에 따라 그 도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바뀐다.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조직도 변한다. 이건 생산관계가 바뀌는 것이다. 생산관계가 바뀌면 사회관계 전반이 바뀌게 된다.  124


혁신을 하는 궁극적인 이뉴는 '이윤창출'에 있다. 회사에서 아무리 사원들 건강이 최고다.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 만든다. 직원 재교육과 복지를 강화한다고 떠들어대도 그건 궁극적으로 회사의 이윤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당장 교육과 복지 부문부터 줄인다. 이걸 보면 그런 시책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금방 알수 있다.

성장을 하려면 혁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혁신을 자주 하다 보면 결국에는 사람을 잘라내는 일이 생겨난다.  125


노동의 생산성이 올라가야만 이윤이 증가하니까.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술 혁신을 햇는데 어느 시점에 오면 살아 있는 노동자를 쫓아내게 된다.  127


'물질적 생산에서 그렇듯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별 국민들의 정신적 창작물은 공동 재산이 된다. 국민적 일면성과 제한성은 더욱더 불가능하게 되고, 많은 국민적, 지방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가 이제 문화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지배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세계 문학은 획일화된 문화를 뜻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물질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자본주의 세계에서 정신적인 면도 가지고 잇는 문화가 형성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가 무역협정과 연골되어 협상된다. 4년마다 한 번씩 사람들이 열광하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과 마찬가지 방식을 통해서 그러한 열광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 중반부터다. 이게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 현실인 것이다.  128-129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다. 콘텐츠 산업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산업은 바로 이러한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생겨날 수 있었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년은 보통 30대 중반이다. 빠른 속도로 빨아먹다가 더 빨아먹을 게 없으니까 내다버리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을 통해 모든 국민들을, 가장 미개한 국민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잡아당긴다.'

이걸 읽고서 마르크스가 오늘날의 상황을 예언하듯이 봤다고 생각하면 과잉해석이다. 그딴 식으로 생각하는 건 마르크스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무슨 '빠'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마르크스 당시에 교통이 발전했으면 얼마나 했겠는가. 다만 그 사람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움직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보고 이런 판단을 했구나 하는 정도로 보면 된다.  130-131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거대한 도시들을 창조했고, 도시 인구의 수를 농촌 인구에 비해 크게 증가시켰으며, 그리하여 인구 중 현저히 많은 부분을 우매한 농촌 생활에서 떼 내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도시문명이다.

도시에서는 뭐든 자기 혼자 힘으로 자급자족할 수가 없다. 음식을 먹으려 해도 슈퍼에 가서 공산품을 사다 먹어야 한다.  131


자기 관리를 하려면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136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안 되는 자신들의 계급지배 기간 동안,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하였다. 자연력들의 정복, 기계 장치, 공업과 농경에 대한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의 개간, 하천의 운화화, 땅 및에서 솟아난 듯한 인구 전체, 이와 같은 생산력들이 사회적 노동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의 어느 세기가 알아챘을까.'

현대의 대공업이라는, 노동 분업과 효율성을 갖춘 체계 속에서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각자 알아서 노동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럿이 모여서 일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노동이 잉여 가치의 원천이 된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거대한 생산력들은 사회적 노동을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137


'우리는 이리하여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르주아지가 양성된 기초였던 생산수단드로가 교류수단들은 봉건사회 안에서 태어났다... 한마디로 봉건적 소유관계들은 이미 발전한 생산력들에 더 이상 걸맞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의 자리에 자유 경쟁이 들어섰으니, 그에 걸맞는 사회적, 정치적 기구와 함께,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와 함께 들어섰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를 극복하기 위해 느닷없이 새로운 것을 외부로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봉건사회 안에 봉건사회를 극복해 낸 자본주의의 씨앗이 들어 있었고 그것이 싹터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능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안에 자본주의를 극복할 씨앗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씨앗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 씨앗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본주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자본>이라는 책을 썼다. <자본>은 자본주의를 뒤엎자는 주장을 담은 책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밝힌 책이다. 뒤집어는 건 밝힌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138-139


'우리 눈앞에 이와 비슷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시작된 어떤 운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운동은, 부르주아가 봉건사회를 무너뜨렸듯이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사회를 무너뜨리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마법사와 마찬가지였다. 글ㄴ데 이제 그 마법사는 "지하 세계의 힘에 더 이상 군림할 수 없게 된 마법사"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해놓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첫 번째 힘은 "생산력들의 반란"이다. 생산력의 반란으로 봉건제가 폭발하고 그것으로부터 부르주아 사회가 나왔다면, 부르주아 사회 역시 생산력의 반란 때문에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생산력이 반란을 일으키면 부르주아 사회의 소유관계는 물론이고, 그 소유관계를 규율하는 여러 가지 법적 장치와 같은 사회관계가 폭발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산력까지도 태반이 벌멸되고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기아와 전면적인 섬멸전은 사회에 대한 모든 생활수단들의 보급을 차단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공업과 상업은 절멸된 듯이 보인다. 왜 그런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어무 많은 생활수단, 너무 많은 공업, 너무 많은 상업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 좀 이상하다.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 

문제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무나 나눠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막 내다팔 수가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창고에 재로고 쌓여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동화를 도입한다. 그러면 노동력이 남게 된다. 그걸 해결하려고 구조조정이란 걸 한다. 말이 그럴싸해 구조조정이지 사실은 사람 자르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그냥 남는다. 노동려깅 너무 많이 남아돌게 된다. '과잉'이 자본주의 위기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141-142


'부르주아지는 무엇을 통해 이 공황들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대량의 생산력들을 부득이 절멸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들을 획득하고 옛 시장을 더욱 철저히 착취함으로써.'

마르크스는 두 가지 방안을 발견했다. 첫째가 대량의 생산력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냥 마구 내다버리는 것이다. 사람도 없애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이다. 전쟁 무기를 한번 생각해보라. 평소에 그게 어디 쓸모가 있는가. 미국에 전쟁 무기가 엄청나게 생산되어 쌓여 있다. 그거 만드느라 돈 엄청 들어갔다. 소비를 해야 또 만들 것 아닌가. 아예 안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공장의 대규모 장치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고용되어 일하는 수많은 인력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아예 전쟁을 일으켜서 '미개한' 이라크 사람들 죽이는 게 더 쉬운 것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 더 그럴싸할 테고, 이게 자본주의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벅인 이유 중의 하나다. 바로 "절멸"시키는 것이다. 깡그리 없애버리는 것이다.  143


시장 확대는 전쟁을 일으킬 만한 형편이 안 되면 나오는 방안이라 생각해도 좋다. 애초부터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성장해왔다. 더 이상 개발할 만한 시장이 없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온 세상을 '문명' 국가로 편입시켜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기왕에 개발한 시장을 더 철저히 뜯어먹는다. 별로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까지 만들어 그게 '생활필수품'이라고 광고하면서 팔아치우는 것이다. 이러다 안 되면 자기들끼리 싸운다. 식민지 쟁찰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렇게 전 세계를 상대로 물건 팔아먹을 시장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제국주의다.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시장 쟁탈전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거대 전쟁까지 이른 것이 제1, 2차 세계대전이다.  144


자본주의의 위기극복전략 예를 다른 사례를 통해 더 살펴보자. 이거 중요하다. 잘 알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시장 진출이니, 국제 자유무역이니 하는 말들이 가진 달콤한 유혹의 뒷면에 놓인 쓰라린 경제논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야 강대국의 정치적 발언이 사실은 경제적 이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야 강대국의 경제관련 발언이 사실은 군사력 행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대장 아래서 굴러 간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가장 커다란 환상 중의 하나가 그 체제는 자유경쟁이며, 그에 따라 공정한 기호를 보장하는 효율적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현실에서는 정말 그대로 작동할까. 예를 들어보자. A, B, C. 이렇게 세 명의 부르주아가 잇다고 하자. 세 명 모두 두루마리 휴지를 생산한다. 생산한 휴지의 품질이 똑같다 치자. 누가 만든 물건을 살 것인가? 일단 싼 거 살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넣ㄹ리 알려진 물건을 살 수도 있다. 그러면 이들 세 사람이 언제나 공정하게 경쟁하며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줄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결국 시장 독점으로 간다.  144-145


시장의 공급을 지배한다는 것은 가격을 지배한다는 것이요. 이윤을 자기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본가든 독점 공급을 목표로 한다. 그래야 이윤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6


실업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아주 많은 수의 대중이 가난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은 넘쳐나는데 가난한 대중은 물건 살 돈이 없다. 

현대의 국가 안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공존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는 부르주아와 깊은 관계 속에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반항하는 기미가 보이고 국가를 원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 얼른 나서서 적당한 선에서 당근을 국가를 원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 얼른 나서서 적당한 선에서 당근을 주어 무마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국가 권력이 부르주아 계급의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하로 했던 것이다.  149


'부르주아지, 다시 말해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 노동자 계급은 발전하는데, 그들은 일자리를 찾는 한에서만 살 수 있고, 자신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에서만 일자리를 찾게 된다.'

노동자 계급이 발전한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자. 그냥 생겨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대학마다 취직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에서 요구할 만한 인재를 키운다고 난리법석 떠는 거 아닌가. 대학이 학문탐구의 공간이 아니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152


'자신을 조각내어 판매해야만 하는 이 노동자들은 다른 모든 판매품들처럼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똑같이 경쟁의 모든 부침(浮沈)들, 시장의 모든 변동들에 내맡겨져 있다.'  

노동자의 특정한 능력을 판다는 뜻이다. 이것을 '노동력'이라 한다. 판매되고 있으니 노동력은 상품(commodity)이 된다.

이것뿐이 아니다. "기계 장치의 확산과 분업" 때문에 노동자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단조롭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손동작만 요구받는 단순한 기계 부속품이 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자본가를 위해서이며 게다가 그것은 개별 노동자의 불구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을 지배하는 자본을 위해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일은 결국 자본가를 위한 것이다. 기술적 역동성에 의해 새로운 생산 설비가 도입되면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이 자본의 입장에서는 진보로 보일지 언정 노동의 입장에서는 "문명화되고 세련된 착취 수단"인 것이다. 농업을 보면 이것이 더욱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금의 농촌은 기계화된 농업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얼핏보면 기계화가 농업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그러나 기계화된 농업이 도입되면서 더 이상 많은 농업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많은 농업 노동자가 도시로 갔다.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화학비료가 살포된다. 그로 인해 농업 노동은 "토지의 비옥함의 지속 가능한 원천을 파괴"하는 공업적 노동이 된다. 자연의 대 순환의 톱니바퀴를 빼는 공업은 지속 불가능한 산업이다.  154-155


'이 전제 정치는 영리가 그 목적이라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면 할수록, 더욱 더 좀스럽고 증오스럽고 잔인한 것으로 된다.'

노동자 계급의 성별 차이, 연령 차이는 무의미하다. 노동자는 "기껏해야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비용이 드는 노동 도구"일 뿐이다. 인간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그냥 도구다. 숙련된 노동자들도 별 볼일 없다. "새로운 생산방식들에 의해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웬만하면 아무나 충원할 수 있다. 

지식기반 경제라고 해서 극소수의 엘리트만 신경 써서 뽑고 나머지는 죄다 계약직으로 충원한다. 쉽게 충원하고 쉽게 자를 수가 있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의 주민들로부터 충원된다.'  156


'이제까지의 소중간 신분들, 즉 소공업가들, 소상인들과 소금리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 등의 이 모든 계급들이 프롤레타리아트로 추락하는데...'

마르크스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계급의 양극화 현상이다.  157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기를 쓰고 조직화하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들의 계급으로의, 또 따라서 정당으로의 이 조직화는 노동자 자신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매번 다시 파괴된다."

마르크스가 <선언>을 쓸 당시의 정당은 오늘날의 정당과 다르다. 구체적인 당 조직을 말하는 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자신을 프롤레타리아트임을 자각하고, 그에 따라 일정한 정도로 정치적 조직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즉, 조직화는 일정한 현태를 띤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화도 매번 다시 파괴된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계급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음이 주된 이유다.

자신을 프롤레타리아인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회사에서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군가. 사장도 아니면서 사장 마인드 가진 팀장, 사장보다 더 사장스러운 사람. 회사에는 사장과 사장 아닌 사람밖에 없는데 사장도 아니면서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객관적 위치를 알지 못할 뿐더러 남이 그 위치를 알려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답이 없다.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르주아는 이런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162-163


'부르주아지는 처음에는 귀족과 대항하는 투쟁 속에 있다가. 이후에는 부르주아지 자체 가운데 공업의 진보와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들과 대항하는 투쟁 속에 있으며, 항상적으로는 모든 해외의 부르주아지와 대항하는 투쟁 속에 있다.'

처음에는 중세의 귀족들과 투쟁하여 그들의 속박을 벗어던졌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되려 할 때 그것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분쇄하였다. 이렇게 하여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사회가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해외의 부르주아지와 대립관계에 놓인다. 이럴 때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그들의 도움을 청하며,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 운동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정치 운동"이라는 람은 정치적 공간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움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될까. 바로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가 본질적으로는 계급관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숨기고 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164-165


<선언>에 따르면 "중간신분들, 즉 소공업자,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 이들 모두는 중간신분으로서의 자기의 존재가 몰락하지 ㅇ낳도록 부르주아지와 싸운다." 마르크스가 <선언>을 쓸 당시에는 예상하기 힘들었겠지만, 이 중간신분들이 나중에는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 파시즘에 적극 가담한다. 자기 입지가 위태로워짐에 따라 배타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파시스트들의 핵심적 서포터들이 된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서 생겨난다. 그러면서 경제적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약속한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체제를 보존하면서도 배타적 민족주의에 호소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계급을 잊고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평등하게 살 날을 기대한다.

파시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이들이 또 있다. 바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단어다. 이 말을 엥겔스는 <선언> 영어판에서 "위험한 계급", "사회적 찌꺼기"로 번역했다. 그리고 1852년 이후 마르크스 저작에서 룸펨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이 나오면 완전 쓰레기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언>에서도 이미 경멸당하고 있다. "낡은 사회의 최하층의 이 수동적 부패물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때때로 운동에 끌려드는 일도 있는데, 생활상의 처지 전체로 볼 때 반동적 음모에 매수되는 것에 더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다.

반동적 음모는 부르주아가 꾸미는 것이다. 자기네 편드는 지식인들이 이 음모에 동원된다. 이를테면 이건희가 대학에 명예철학박사 학위 받으러 왔다가 봉변당한 일로 자기 학교 애들 삼성에 취업 안 되면 어쩌나 걱정해서 사과하는 족속들, 말만 지식인인 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166-167


자본주의의 발전이 절정에 이르면 계급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프롤레타리아는 알거지 상태로 전락하기 직전이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무소유이다.' 

무소유라는 말에서 법정 스님의 책을 떠올리지 마라. 그런 고상한 뜻이 아니고 진짜로 '가진게 없다'는 뜻이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그의 관계는 부르주아적 가족관계와의 공통점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 맞벌이 부부와 부르주아 맞벌이 부부가 같은 상황일 리 없다. 프롤레타리아 맞벌이 부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뭐 있겠나. 육아 문제가 그 중 하나다. 돈이 있어야 해결된다. 애들 방에 두고 밖에서 문잠갔다가 사고 나는 일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식을 방에 가둬놓고 집을 비우고 싶은 부모가 세사에 어디 있겠는가. 생존을 위해 맞벅이를 해야 하고 놀이방에 자식을 맡길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결국 사회적 소유관계, 평드의 문제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이 기본적으로 갖출 건 갖춘 상태에서 윤리 도덕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윤리학적 명령이 호소력을 잃은 까닭이 이 때문이다.  167-168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마르크스는 국적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은 무국적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이미 국적이 없다.  169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할때.. <선언>을 읽는 동안에는 왜 맞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지만 알아보기로 하자.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지배는 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과 같은 의미다.  171


'공산주의를 남김없이 설명하는 것은 소유 일반의 철폐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철폐이다.'

공산주의는 소유라는 것 자체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진 물건을 죄다 내놓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계를 차고 다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소유방식,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 획득방식을 철폐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서 생산수단을 사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생산력을 획득"한다고 하는 게 이 말이다.  173


얻어지는 이윤을 몇몇 사람이 독식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그러니 거기서 얻어지는 이윤이 가능하면 사회적 노동에 가담한 사람 전체에게 나누어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로운 것이고 공정한 것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운동들은 소수의 운동들이었거나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운동들이었다.'

"이해관계"는 손해와 이익이라는 뜻이 아니라 '관점'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이제까지의 모든 운동"이 엥겔스의 영어판에는 "이전의 모든 역사적 운동들"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운동들'로 이해하면 된다. 그에 이어지는 구절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 운동이다" <선언>에 나오는 이 구절을 프롤레타리아의 수가 많다. 적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유심히 보면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운동이다. 이 점이 중요다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관점을 따라간다는 것, 즉 다수의 이익, 다수의 관점을 대변하는 운동이라는 뜻이다.  174


'지금 사회의 최하증인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계층들의 상부 구조물 전체를 공중으로 날려버리지 않고서는 몸을 일으킬 수도 없고, 똑바로 설 수도 없다.'

"공적 사회"는 정치적 사회, 법적 장치와 제도적 장치를 형성하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공중에 날려버린다'는 흔적도 없이 찢어없앤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적 생산물 위에 제도적 법적 장치까지 없애야 프롤레타리아트가 똑바로 설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은 한 나라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연대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175


부르주아지를 전복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바꾼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해야 지배의 기초를 세울 수 있고 그런 다음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그 지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지도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이미 부르주아의 지배는 물론이고 지도까지 확립된 상태에 있다. 이걸 바꾸는 일이 수월하겠는가. 애써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177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2페이지 첫 문장은 유물론적 역사 이해를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역사를 물질적 생산활동, 물질화된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활동으로 파악하고 이를 다시 물질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계급 대립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인류의 역사를 보려면 계급투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페이지부터 부르주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야기한다. 부르주아 성립의 물질적 토대는 세계 시장이었다. 즉, 자본주의는 출발점부터 글로벌했다는 것이다.

4페이지는 봉건사회 안의 혁명적 요소를 언급하고 자본의 원초적 축적을 말한다. 그리고 시장이 성정하고 대공업이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부르주아지는 중세로부터 내려온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몰아내고 사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5페이지에서 6페이지까지는 부르주아의 발전 단계에 걸맞는 정치적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부르주아의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로서의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르주아지는 사회의 모든 관계를 냉혹한 이해관계로 바꾸어 놓았다. 그럼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세워진 것이다.

7페이지는 부르주아 사회가 세워진 후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말한다. 부르주아는 끊임없는 해외 원정에 나서고,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킨다.

8페이지에서는 끊임없는 혁명과 해외 원정을 통해 부르주아지가 전세계에 걸쳐 세계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 등 모든 것이 획일적, 자본주의적 문화로 바뀐다. 좋은 점도 있다. 외국 가서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맥도날드 가면 되니까. 이 와중에 농촌 생활도 다 없어지고 만다.

9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는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세부적으로 언급한다.

11페이지에서는 부르주아 사회가 이런 업적을 거우었음에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 문제점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공황이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는 항상 위태롭고 불안하다.

마지막으로 12페이지부터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들이 제시된다. 부르주아지는 공간상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려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이미 확보된 시장에서 더 많은 착취를 행하게 된다. 또한 현대의 대공업 시대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들의 삶의 실상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무엇인지가 여기서부터 길게 이야기된다. 부르주아를 때려잡아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총제적인 불합리한 점을 걷어내고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는 계급투쟁과 정치투쟁을 거치면서 다수의 이해관계에 의거해서 지배권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의 전 영역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관철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79-181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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