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삶의 투쟁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굳이 내 영혼 깊숙이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밝히자면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다.
호메로스는 내게는 아주 밝게 빛나는 평화로운 눈동자였다. 그는 마치 태양처럼 모든 것을 구원의 빛으로 비춰주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 괴롭고 어려웠던 철학적 문제들에서부터 나를 구원해준 사람이다. 니체는 나를 새로운 고뇌로 풍요롭게 해주었고 내 불행과 아픔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르바는 내게 삶을 사랑하는 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만일 내게 인도인들이 “구루”라고 하고, 성산(聖山) 아기온오로스(그리스 북부 할키디키 지방에 있는 반도로, 수도승들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곳이어서 여자나 동물 암컷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의 수도사들이 “예론다스(‘영감님’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영적(靈的) 스승을 이 세상에서 꼭 한 사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조르바를 선택할 것이다.
조르바는 먹물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데서 먹잇감을 발견하여 낚아채는 원시인의 시력과, 매일 새벽마다 새로이 떠오르는 창조성, 그리고 매순간 끊임없이 바람, 바다, 불꽃, 여자, 빵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영원한 처녀성을 부여하는 순진무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확신에 찬 손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마음, 마치 내면에 자신의 영혼보다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 자신의 영혼을 놀려대는 사나이다운 멋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창자보다 더 깊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아니 조르바의 나이 먹은 가슴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오는, 구원인 듯한, 거칠고 호쾌하게 껄껄대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불쌍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편하게 살기 위해 주변에 세워놓은 윤리, 종교, 조국과 같은 모든 장애물을 한꺼번에 깨뜨려서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무너뜨리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7-8

나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는 한밤중에 욕정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춤을 추면서, 나에게 도덕과 관습이라는 탈을 벗어던지고 먼 여행을 함께하자고 울부짖는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벌벌 떨면서 움쩍달싹도 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고 소리치는 내 영혼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조르바 앞에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1




인간의 영혼은 진흙덩어리다. 모호하고 촌스러운 욕망들로 가득하고, 길들여지지도, 다듬어지지도 않고, 아무것도 분명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으며,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들의 이 헤어짐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24-25

“내가 스무 살 때였어요. 올림포스산 아래의 어떤 마을 축제에 갔다가 생전 처음으로 산투리 소리를 듣게 됐지요. ‘왜 그러는 거냐?’ 아버지께서 - 하느님께서 그의 영혼을 용서해주시길! - 내게 물었죠. ‘저는 산투리가 배우고 싶어요.’ ‘뭐라고?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가 집시냐? 악기를 연주하게?’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어요……’ 그때 내겐 기회가 되면 결혼하려고 모아둔 비자금이 있었어요. 유치하고 미친 짓이었죠. 혈기 왕성했던 나는 엉큼하세도 결혼을 하려고 했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다 주고 산투리 하나를 샀지요. 그게 바로 이거예요. 나는 이걸 가지고 테살로니카로 가서 ‘레쳅-에펜디’라는 터키인인 산투리 명인을 만났죠. 나는 그의 발아래 엎드렸죠. ‘뭔 원하는 거냐? 그리스 놈아.’ 그가 물었죠.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음,  그런데 왜 내 발 앞에 엎드린 거냐?’ ‘저는 수업료를 낼 돈이 없습니다.’ ‘너는 산투리에 대한 열정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도 수업료 따위는 받지 않겠다.’ 나는 일 년 동안 그의 곁에서 산투리를 배웠죠.  32

“나도 사람이오. .. 결혼했었죠. 악수를 둔 거죠. 가장이 되고 가정을 꾸렸죠. 애도 낳고요. 고문이었죠. 하지만 산투리가 있으면 됐죠, 뭐.”  33

“빌어먹을 정치!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 그가 경멸조로 중얼거렸다.
“조르바, 빌어먹을 정치라니 무슨 뜻이오?”
“보쇼, 왕이니 민주주의니, 국회의원이니, 이 모든 얄팍한 속임수들을!”
조르바의 머릿속에서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이 이미 낡고 철 지난 고물들이었다. 그에게는 전보나 증기선과 철도, 도덕과 조국, 종교가 모두 때 지난 고루한 체제였다. 그의 영혼은 이 시대보다 훨씬 빨리 앞질러 가고 있었다. 39-40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진 뒤에나 찾아오는 평정심을 갖게 된 다음에야 올바르고 온전한 생각들을 하게 마련이죠.  47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아흔 살은 먹은 할아버지가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라고요.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세요?’ 내가 물었죠. 그러자 그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나를 보면서 말했죠. ‘얘야,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단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죠. ‘저는요, 매 순간 죽음을 생ㅇ각하면서 행동하죠.’ 우리 둘 가운데 누가 맞는거 같소, 대장?’
..
죽음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과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미처 몰랐다.  70

“..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생각하자고요. 밥이 앞에 있으면 밥에 정신을 쏟고, 내일 우리 앞에 우리들의 갈탄이 있을 땐 갈탄에 정신을 쏟읍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지 맙시다. 알겠죠?”  70

“대장, 어제 우리가 못된 짓을 저질렀어요. 못된 짓을 했다고요! 대장도 웃고 나도 웃고, 그리고 불쌍한 여자는 우리를 바라봤죠! 또 대장이 그렇게 그 여자를 천 살 먹은 호호할멈 대하듯 눈길도 안 주고 떠난 건 창피한 일이에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대장, 인간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죠. 이런 말 하는 걸 이해해주쇼. 그녀도 약해빠진, 불평꾼 여자란 말이오. 나라도 남아 그녀를 위로했기에 망정이죠.”
“조르바,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모든 여자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없다고 믿는 거요?”
“대장, 다른 생각은 절대 없죠! 본 것도 많고 겪은 일도 많고 해본 것도 많고, 그래서 말하자면 배운 것도 많은 이 사람 말 좀 들어보슈. 여자들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란 없다고요. 분명히 말씀드리죠. 여자들은 병약한 존재고 불평꾼이란 말이오. 만일 사랑한다고,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당장 울음보를 터뜨려요. 전혀 원하지 않거나 심지어 질색인 남자라도 말이오. 여자가 ‘싫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여자들이란 항상 자기를 봐주고 탐내는 남자를 바란단 말이오. 그 불쌍한 것들은 그걸 원해요. 그러니 그것들에게 자비를 베푸쇼!”  89-90

조르바는 인부들을 다룰 줄 알고 책임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95

내 외할아버지는 크레타 시골에 살았는데 매일 저녁이면 등잔불을 들고 마을을 돌며 혹시 낯선 외지인이 있나 살폈다. 그런 사람을 찾으면 집으로 데려와서 신나게 먹고 마시게 대접하고는, 길고 납작한 의자에 앉아 긴 곰방대를 피워 물었다. 그러고는 손님에게 “자, 이제는 밥값을 치를 때가 됐소.” 하고 말하고는 명령조로 덧붙였다. “뭐든 말해봐요!” “무스토요르기스 할아버지, 대체 무슨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당신이 누구고, 어디서 왔고, 어떤 나라를 돌아다니며 당신 눈으로 어떤 것들을 봤는지 모두 다 얘기하슈. 자, 말해보슈.”
그러면 손님은 사실과 꾸며낸 이야기를 뒤섞어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외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 의자에 편안하게 앉은 채로 곰방대를 빨며 그 손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손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으니 가지 마시고, 내일 하루 더 머무슈!”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고향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라클리온(크레타의 주도)에도 레팀노(크레타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고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그런 곳엘 가야 해? 레팀노 사람이나 이라클리온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우리 집에 와서 머물면 돼지. 내가 외지로 나갈 필요가 어딨어?”  96-97

외할아버지가 등잔불을 밝히고 지나가는 객을 찾아 모셨듯이 나 역시 한 손님을 모셔 떠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한 끼의 식사 값보다는 훨씬 비싸게 들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매일 저녁 나는 조르바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오면 내 맞은편에 앉혀놓고 함께 식사를 하고는 돈을 치를 시간이 되면 그에게 말한다. “말해봐요!” 그러고는 파이프를 피워 물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손님은 지구 곳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탐구했기에 나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모르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르바, 계속하세요, 계속 얘기해요!”
그러면 마케도니아 전체가 내 앞에서 열리면서 조르바와 나 사이의 좁은 공간에 산과 숲과 강 들, 게릴라들과 부지런한 남성같은 여장부들과 강인하고도 무뚝뚝한 남자들을, 또 때로는 성산아기온오로스의 스물한 개의 수도원과 조선소들과 튼실한 엉덩어를 가진 게으름뱅이 수도사들을 펼쳐 놓았다. 성산 아기온오로스의 수도사 이야기를 끝낼 때면 조르바는 옷깃을 세워 몸을 세차게 흔들고 큰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대장을 당나귀 엉덩이와 수도사의 앞에 달린 물건으로부터 보살펴 주시기를……”
매일 밤 조르바가 나를 그리스로, 불가리아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의 그리스 이름)로 데리고 가면, 나는 그 장소들을 눈을 감은 채 보았다. 그는 수많은 수난을 겪은 혼란스러운 발칸 반도 지역을 돌아다녔고, 그의 조그만 눈은 마치 매처럼 재빠르게 모든 것을 이 잡듯 다 보았다. 그는 자주 논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러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주의하지 않고 보아 넘기는 것들이 그의 앞에서 엄청난 수수께끼로 되살아났다. 가령 그는 지나치는 여자를 보고 몸서리를 치며 멈춰 서서는 물었다. “이건 무슨 조화죠? 여자란 무얼까요? 어떻게 내 머리 꼭지를 돌게 만드는 거죠? 이건 또 뭡니까? 말 좀 해봐요.” 그는 어떤 때는 사람을, 어떤 때는 꽃이 핀 나무를, 또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르바는 매일같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봤다.
한번은 그가 오두막집 밖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다가 몸을 돌려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대장, 이 붉은 액체는 또 뭡니까 말해봐요. 늙은 포도나무 줄기에서 새싹이 나면 시고 시시껄렁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탵양이 이것들을 익히면 꿀처럼 달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그걸 포도라고 부르죠. 그러 밟고 즙을 짜서 통에다 부으면 저 혼자 부글부글 끓어요. 10월이 되어 술 취한 성자 요르고스(11월 2일이 축일인 크레타의 성인. 다음 날인 11월 3일에는 새 포도주 통을 열어 모두에게 맛보게 한다)축일에 통을 열면 포도주가 나오죠! 이건 또 무슨 기적입니까? 그걸 마시면, 그 붉은 액체를 마시면 영혼이 대범해져서 천박한 것들이 더 이상 그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하느님한테 도전장을 내죠. 대장, 이게 뭡니까? 대답해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 온 세상이 처녀성을 회복한다. 모든 일상의 것들, 빛바랬던 것들이 하느님의 손을 처음으로 벗어나던 때처럼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강과 바다도, 여자도, 별도, 빵도, 태초의 신비스러운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수레바퀴가 원초적 힘을 되찾곤 했다.  97-100

어느 일요일, 풍성한 식탁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조르바를 믿고 나의 비밀 계획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조르바는 내 이야기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화가 나서 머리를 거세게 흔들기는 했지만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는 내 말 첫마디에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내가 말을 끝내자 그가 신경질적으로 콧수염 두가닥을 뽑아 던지며 말했다.
“날 이해하쇼, 대장. 내가 보기에 대장 머리는 밀반죽인 듯해요. 나이가 몇이오?”
“서른 다섯잉요.”
“아, 그럼 영글긴 영 그른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화가 나서 고집스럽게 말했다.
“당신은 인간을 믿지 않나요?”
“대장,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내가 인간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러면 아주 귀찮아지죠. 세상이 엉망이 되고 나는 궂은 일에 휘말려들 거예요, 대장.”
그러고는 입을 다물더니 모자를 벗고 머리를 미친 듯이 긁고는 콧수염을 뽑아버릴 듯 세차게 잡아당겼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참고 있는 듯했다. 곁눈질로 나를 몇 번 보던 조르바가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이렇게 소리치면서 화를 내며 지팡이로 돌을 내려쳤다. “사나운 짐승이죠! 당신은 귀하게 자라서 그걸 몰라요. 하지만 내게 묻는다면 대답하죠. 짐승이에요! 인간들을 혹독하게 다루면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지만, 친절하게 대하면 당신의 눈알을 빼가죠.
거리를 두셔야 해요. 대장! 사람들 기를 살려주지 마세요. 그들한테 우리는 모두 하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들은 당장 대장의 권리를 짓밝고, 밥그릇을 빼앗고, 대장이 굶어 죽도록 만든단 말예요. 거리를 두시라고요. 대장! 난 대장이 잘되기만 바랄 뿐이에요.”
“그러면 당신은 아무것도 안 믿는단 말이오?” 내가 화가 나서 항의했다.
“네, 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며 번이나 말해줘야 해요?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조르바가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절대요, 정말 절대로 더 낫지 않죠! 그놈도 짐승이에요.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까닭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직 그놈만을 잘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두 헛것들이에요. 조르바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조르바의 귀로 듣고, 조르바의 위장으로 소화하죠. 다른 모든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헛것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들도 죽죠. 조르바의 세계 전체가 바닥으로 사라지죠!”
“참으로 이기적이네요!” 내가 냉소적으로 비꼬았다.
“그럼 어떡합니까, 대장? 세상이 그런데요. 먹은 대로 싸는 거죠. 나는 조르바고, 조르바답게 말할 뿐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들이 채찍처럼 내몸을 때렸다. 나는 이토록 강인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지겨워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인생을 살아갈 기분을 계속 잃지 않는 그가 자랑스럽다.  103-105

진정한 인간은 이처럼 몇 가지 안 되는 물건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108

“엊그제 우리가 한 말을 기억하쇼? 민중을 계몽해서 눈뜨게 한다고요? ..
대장, 사람들을 좀 조용히 내버려두쇼. 그들이 그런 일에 눈뜨게 하지 말아요. 그들이 눈을 뜨면 보게 될게 뭐겠어요? 자신들의 불행과 처참함뿐이죠! 사람들이 눈이 먼 채 꿈을 꾸도록 내버려둬요!”
그가 잠깐 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겨 머리를 긁다가 말을 이었다.
“만약에 ….. 만약에 말이에요…..”
“뭐예요? 한번 들어봅시다.”
“만약에 그들이 눈을 떴을 때 대장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럴 자신이 있나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어떤 것들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폐허 위에 어떤 것이 세워질지는 알지 못했다. ..
조르바는 나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물론, 보여줄 수 있죠.” 내가 고집을 피우며 대답했다.
“보여줄 수 있다고요? 그럼 한번 말해보슈.”
“당신한테는 얘기할 수 없어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참, 그렇다면 보여줄 수 없는 거예요!” 조르바가 머리를 저으며 대꾸했다. “대장, 내가 뭘 잘못 먹어 바보가 된 줄 아쇼? 대장은 속은 거예요. 나 역시 아나그노스티스 영감과 마찬가지로 배운게 없는 무식쟁이지만 난 결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녜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그 순진한 인간과 그의 평생 반려자인 순한 마누라가 이해하겠소? 이 세상의 모든 아나그노스티스 영감들과 그 마누라들이 어떻게 그걸 이해한단 말이오? 그네들이 새로운 세상을 볼 것 같소? 그냥 그들에게 이미 익숙하고 길들여진 세상을 그대로 놔두슈. 보다시피 지금까지 잘들 살아왔지 않소. 그냥 살 뿐 아니라 아주 잘살고 있고 자식에 손자들까지 잘 낳고 살아들 가지 않소. 하느님이 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해도, 그들은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진저!’ 하며 아우성을 쳐대죠. 이 가엾은 자들은 거기에 만족해 안주하는 거예요. 그들을 내버려두고 입을 다무세요.”  116-118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그의 고향 선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우리가 풀지 못하는 모든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한칼에 풀어버리는 구나. 이 사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땅에 뿌리박고 있으니 절대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뱀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뱀은 온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기에 대지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뱀은 배로, 꼬리로, 남근으로, 머리로 그 비밀들을 캐낸다. 조르바도 그렇다. 우리 지식인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바보 같은 새들일 뿐이다.’  118

6
“대장이 먹은 게 무언지 말해보슈.” 한번은 조르바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주리다. 어떤 작자들은 먹고 똥과 잡동사니만 만들고, 다른 작자들은 일과 의욕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듣기로는, 하느님을 만든답디다. 인간이란 이 세 불 가운데 하나죠. 나는 말이오, 대장, 최악도 아니고 최고도 아니에요. 나는 중간 부류에 속하거든요. 내가 먹는 음식은 일과 의욕으로 바뀌어요. 그나마 다행이죠!”
이렇게 말하고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 당신은 말이오, 아마도 먹은 음식으로 하느님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아 보깨고 있는 거 같소. 대장은 수탉이 당했던 일을 당하고 있는 거요.”
“수탉이 무슨 일을 당했는데요, 조르바?”
“수탉이 말요, 처음에는 수탉ㅊ처럼 제대로 의젓하게 걸었죠. 하니만 어느 날 하루, 겉멋이 잔뜩 들어서는 두루미처럼 위풍당당하게 걷겠다고 선언했죠. 그때부터 이 불쌍한 수탉은 자기 고유의 걸음걸이를 잃고는 균형 감각이 엉망이 돼서 깡충깡충 두 발로 뛰게 됐죠.”  125-126

“대장, 당신은 여자들한테서 뭘 기대하슈? 여자들은 어떤 놈이든 만나는 놈의 아이를 낳아주죠. 그리고 남자들에게선 뭘 기대하슈? 남자들은 쥐덫에 걸려들죠.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일이에요, 대장!”  128

일을 마치고 그 망할 통통한 물개와 수작할 때면 - 그녀에게 행운이 있기를! - 갈탄과 대장에 관한 일 모두를 그녀의 목에 두른 리본에 매달아놓았죠. 나 자신도 그 리본에 매달아버리고 모든 걸 잊죠.  133

나는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삶은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펀지 하나를 들고서 그동안 읽은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 조르바의 학교에 다시 들어가 위대하고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갔을 것이다! 내 오관과 피부 전체를 완벽하게 갈고닦아 즐기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뛰기, 싸움, 헤엄, 승마, 노 젓기, 자동차 운전, 사격을 배웠을 것이다. 내 영혼을 살로 채우고, 살을 영혼으로 채워, 드디어 나의 내면의 영원한 숙적인 이 둘을 하나로 화해시켰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잃어버린 내 삶을 기억해냈다. 열린 문 사이로 희미한 별빛 아래서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마치 한 마리 밤새처럼 바다를 응시하는 조르바가 보였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진리를 발견했다. 저 사람이 바로 길이다!’
먼 옛날 창세기 시절 조르바는 앞장서서 도끼로 길을 열던 부족장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영주들의 성을 돌아다니며 영주와 하인, 귀부인 들까지 모두 자신의 두꺼운 입술에 목매게 하는 유명한 음유시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은망덕한 이 시대에 조르바는 굶주린 늑대처럼 우리 주위를 배회하거나 삼류작가로 전락하여 광대 노릇을 한다.  138-139

“대장, 나는 벌써 흰머리가 났어요. 이빨은 흔들리기 시작했고요. 이제 난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대장은 아직 젊으니 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난 아뇨. 맙소사, 늙어갈수록 난 더 거칠어진다고요! 어떤 작자들이 주저앉아서 나이가 들면 불같은 성질이 죽고 저승스자를 만나도 목을 길게 쭉뻗고 ‘자, 이제 목을 치쇼!내가 성인이 되리다!’하고 말하게 된다고 지껄이죠. 하지만 나 이 조르바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사나워지고 있어요. 나는 절대 포기 안해요. 이 세상을 모두 먹어치우고 싶어요.”  142


7
“몇 번 결혼했어요, 조르바?” ..
“난 사람이 아니오? 나도 그 엄청난 바보짓을 했수다. 모든 기혼 남자들이 내가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에 동의할 거요. 그렇죠, 나도 그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던 말이오. 결혼했었죠.”
..
“대장, 이런 말이 있소. 정식 결혼은 알맹이가 없다! 양념 없는 음식이죠. .. 우리 고향 마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훔친 고기만이 맛있다.’ 마누라는 훔친 고기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 148-149


8
“비가 오면 마음이 우울해지죠.” 조르바가 말했다. “그러니 비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해요.”
그는 담장 아래쪽으로 몸을 굽혀 갓 피어난 야생 수선화를 꺾어서는 마치 수선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탐욕스럽게 살펴봤다. 그러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냄새를 맡다가 한숨을 쉬더니, 내게 그 수선화를 건넸다.
“대장, 우리가 돌과 꽃, 그리고 비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마도 우리에게 소리를 치는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이것들이 못 알아듣고요. 대장, 언제나 이 세상의 귀들이 뚫릴까요? 언제나 우리들 눈이 열려 사물들을 보게 될까요? 언제 우리가 팔을 벌려 돌과 꼬과 사람이 서로 껴안게 될까요? 대장,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소?”
“빌어먹을!” 나는 사랑하는 조르바가 잘 쓰는 말을 골라 대답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쓰여 있죠. 다른 말은 없고요.”
조르바가 내 팔을 잡았다.
“대장, 좋은 생각이 났어요. 듣고 화내면 안 돼요. 대장이 가지고 있는 모든 책을 한곳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립시다. 그러면, 혹시 알아요? 대장은 바보가 아니고, 또 좋은 사람이니까…… 그러면 대장도 뭔가를 좀 알게 되지 않을까요?”
‘맞아! 바로 그거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조르바가 망설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죠. 뭔가를 좀 알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말해봐요, 조르바.”
“난들 알겠어요? 그냥 그렇게 생각될 뿐이죠. 뭔가 알 것 같아요…… 내가 그걸 이야기하려 들면, 엉마이 될 거예요. 언젠가 기분이 내키면 대장한테 춤을 춰서 보여줄게요.”  171-173

마침 그 순간에 한 여인이 젖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내려뜨리고, 까만 치마가 바람에 날려 무릎까지 훤히 드러난 상태로 카페 앞을 정신없이 뛰어 지나갔다. 그 여자는 옷이 착 들러붙어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뇌쇄적인 싱싱한 몸매를 드러낸 채 도발적으로 몸을 흔들며 지나갔다.  176


“대장, 이쯤에서 대장에게 남자 망신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신과 같은 악마가 이 맛있는 간식을 보낸 거예요. 이빨도 튼튼하니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마세요. 손을 뻗어 가지라고요! 창조주가 왜 우리 손을 만들었겠어요? 잡으라고 만든 거예요. 잡아채세요! ..”
“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내가 화를 내며 대꾸했다.
..
“문제를 일으킥 싶지 않다고요?” 조르바가 놀란 듯 소리쳤다. “대장, 그렇다면 대체 뭘 원하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산다는 게 원래 문제투성인 거요.” 조르바가 계속 말을 이었다. “죽음은 문제가 전혀 아니고요. 사람이 산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아세요? 허리띠는 느슨하게 풀고, 남들하고 옳다 그르다 시비하는 거예요.”
나는 조르바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은 나만의 혼잣말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
“너무 계산에 매달리지 마쇼, 대장!” 조르바가 집요하게 추궁했다. “숫자에서 좀 벗어나고, 그 발어먹을 저울을 던져버리쇼. 구멍가게를 때려치우란 말요. 지금이야말로 대장의 영혼을 구할것인지 아니면 파괴할 건지를 결정할 때요. 대장, 들어봐요. 손수건 한 장에다가 지폐가 아니라 눈이 부시게 만드는 금화 2, 3리라를 넣고, 매듭을 묶어서 미미토스 편으로 과부에게 보내쇼. 그리고 미미토스 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주쇼. ‘갈탄광 사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요. 이건 그분이 보내는 손수건이에요. 별것 아니지만 마음을 담아서ㅓ 보내는 거래요. ..
그렇게 하고는 바로 그다음 날 저녁에 그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쇠뿔도 단 김에 빼야죠.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길을 잃었는데 어두워졌으니 등잔불 하나만 빌려달라고요. 음, 아니면 갑자기 어지러워서 그런데 물 한 잔만 얻어먹을 수 없느냐고 하든지요. 더 좋은 건 다른 암양 한 마리를 사서 찾아가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부인, 여기 부인께서 잃어버린 암양이 있어요. 제가 찾아냈죠!’ 대장, 들어봐요. 그러면 과부가 보상을 해주기 위해 대장을 집 안으로 들일 거예요. .. 장담하건대, 대장은 말을 탄 채 천국에 들어갈 겁니다. 다른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신부들을 믿지 마세요. 다른 천국은 없으니까요!”  184-186

“.. ‘이런 바보 같은 놈, 어떤 놈이든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는데도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그건 큰 죄를 짓는 거니까. 여자가 ㅊ침대에서 너를 부르는데 안 가면, 넌 영혼을 잃게 되는 거야! 그 여자가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 날에 한숨을 쉬면, 네가 누구든,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요, 그 한숨 소리가 너를 지옥에 빠뜨릴 테니까!’”
조르바가 한숨을 쉬었다.  188-189


9
“.. 예전에 내 별명 가운데 하나가 ‘흰곰팡이’였다고 말한 적 있죠? 왜냐하면 내가 어딜 가든 일을 엉망진창을 만들어버리곤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대장 사업도 망할 거예요. 그러니 내가 다시 말하지만 나를 당장 자르란 말예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좋아요, 조르바. 그러니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하지만 대장, 나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넘칠 때도 있고, 모자랄 때도 있죠. 언제 그럴지 정확히 알면 얼마나 좋겠소? 어쨌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건 분명해요. 자, 대장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지요. 요즘 며칠 동안 밤이나 낮이나 그 과부 때문에 마음이 편할 새가 없어요. 하늘에 맹세코 나 때문은 절대 아니고요. 그 과부와 어울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난 내가 그녀를 만질 일이 절대 없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알아요. 그 과부는 나하고 맞질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냥 버려지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녀가 독수공방하는 걸 참을 수 없다고요. 대장,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니에요. 내 가슴이 저려온다니까요. 그래서 밤마다 그녀의 집 주위를 서성거렸죠. 그 때문에 내가 밤마다 사라졌던 거고, 대장은 어딜 갔었느냐고 내게 묻는 거고요. 이제 알겠어요? 난 밤이면 그녀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어떤 놈이 그녀와 함께 뒹구는지 살펴보러 갔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야 편하게 잘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웃었다.
“대장, 웃지 마슈! 한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자 모두의 책임이에요. .. 하느님은 스펀지로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하지만 그 죄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대장, 한 여자랑 잘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놈은 저주를 받아요. 그리고 한 남자랑 잘 수 있었는데도 자지 않은 년도 마찬가지고요. ..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난 환생을 믿지 않아요, 조르바.”
“나도 안 믿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자신이 봉사해야 할 일을 거절한 사람들이 - 그냥 도망자들이라고 합시다 - 그들이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는지 아슈? 노새요, 노새(노새는 새끼를 낳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고 조르바는 입을 다물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고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모든 노새들이 그런 얼간이들일 수 있겠네요. 평생 남자로 살면서도 남자 구실 못 했고, 여자로 살면서도 여자 구실 못한 인간들 말예요. 그래서 노새가 된 거고요. 노새들은 그래서 고집이 세고 밤낮으로 발길질해대는 거고요. 대장, 어떨게 생각하슈?”  193-195

“내가 일할 때에는 언제 빵 터질지 모르니 말을 걸지 마슈!” 어느날 저녁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빵 터진다고요? 조르바, 왜요?”
“또 왜냐고 따지슈? .. 나는 일을 할 때 내 전부를 쏟아요. 그러면 나는 바위 위나 지금 내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석탄에 나 있는 금이나 산투리의 줄들처럼 손톰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팽팽하게 바짝 긴장해요. 그때 누가 나를 살짝 건들거나 말을 걸어 돌아보게 하면 빵하고 터질 수가 있단 말이오. 알아듣겠소?”  200


10
“대장,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외양간에서 태어났다는 걸 믿으슈? 믿는 거요 아니면 세상 사람들한테 사기 치는 거요?”
“조르바, 그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믿지도 않고 안 믿지도 않아요. 조르바, 당신은 믿어요?”
“나도 도대체 뭘 믿는지 모르겠어요. 뭐라 말할까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난 하나도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은 감동을 느껴 마치 그 이야기들을 믿는 것처럼 울고 웃고 했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서, 옛날이야기들을 전혀 믿지 않게 됐고 오히려 비웃었죠. 하지만 나이가 지긋하게 든 지금 나는 노망이 들어서 그 이야기들을 다시 믿기 시작해요. …… 사람이란 알 수 없는 존재라니까요.”  210

“.. 바보같이 굴지 마세요. 언젠가 어떤 과학도가 내게 말해줬는데, 우리가 마시는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조그만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걸 볼 거래요. 그 벌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고, 물을 못 마시면 목이 말라 갈증으로 죽어갈 거래요. 대장, 현미경을 깨버리세요. 그 괴물 같은 물건을 던져버리라고요. 그러면 벌레들이 당장 사라져서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요.”  212-213

“.. 나의 여선장님이시여, 잘 먹고 마신 이 밤에 이 바닷가에서 제가 당신을 바라보니, 내 눈에 트여서 당신은 커다란 배의 인어이신 듯하군요. 그리고 나의 부불리나여, 나는 당신의 마짐막 항구요. 선장들이 와서 술을 마시는 카페입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요정이시여, 나는 이제 당신의 건강을 빌면서 이 가득 찬 술잔을 비우렵니다!”
마담 오르탕스는 뼛속까지 감동하여 눈물을 펑펑 흘리며 조르바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213


11
음식과 술, 여자, 춤, 이 네가지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필수 요소인데, 조르바는 강단 있는 그 몸뚱어리에 이 모두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지니고 있었다.  223

“대장, 이건 또 무슨 조환가요?” 조르바가 몸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은 온통 뒤죽박죽이에요.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늙은이 같다고 했어요. 그때 나는 신중하고, 말수도 적고, 나이 들어 보이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거든요.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들 했죠.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가벼워졌어요. 스무 살 이 되자 나는 철없는 짓거리들을 시작햇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보통 정도의 및친 짓거리 정도였죠. 마흔이 되자 나는 젊음이 넘치는 걸 느끼면서 진짜 미친 짓을 많이 했죠. 그리고 지금 육심 줄에 들어서자, - 대장, 이건 비밀인데 내 나이가 지금 예순다섯이오, - 하여간 육십이 되자, 정말 날 믿으슈, 대장, 이걸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세계가 좁아서 나를 받아들이질 못한다우.”
그는 잔을 높게 들더니 자신의 숙녀를 향해 돌아서서는 모든 존경을 다 표하며 정중한 말투로 소리쳤다.
“나의 숙녀시여, 이 잔을 당신의 건강을 위해 바칩니다. 하느님께서 새해에는 다시 이가 돋아나게 하시고, 칼처럼 날카로운 눈썹이 다시 생기고, 피부가 다시 대리석처럼 매끄럽게 되게 하시며 당신 목을 감은 이 안 어울리는 띠를 던져버리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크레타에 혁명이 일어나서, 오 나의 부불리나여, 각기 다른 향수를 부린 곱슬곱슬한 수염이 난 ‘쩨독’들이 지휘하는 세계5대 강대국의 함대가 다시 오기를, 그러면 나의 요정이시여, 당신은 다시 파도 위를 날아다니며 모래를 부르겠죠 - 아, 끝내주네! - 그러면 모든 함대가 이 무시무시한 둥근 바위 사이에서 난파할 거요.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큰 손을 내밀어 마담의 축처지고 말라비틀어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229-230

이 사람은 사나이다움과 단순함으로 세상과 조화를 이루었고,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와 빵, 정신, 잠, 이 모든 것이 기꺼이 살이 되어 조르바가 되었다.  238


12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조르바는 이미 없었다. 날씨는 추웠고 나는 별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조그만 선반으로 손을 뻗어 내가 좋아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말라르메의 시집을 꺼냈다. 여기저기를 건너뛰며 천천히 시를 읽었다. 시집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하지만 이내 멀리 집어던졌다. 오늘 처음으로 이 모든 시들이 핏기도, 향기도ㅡ 인간의 본질도 없는, 색바랜 하늘빛을 띤 허공처럼 텅 빈 낱말들로 느껴졌다. 그 시들은 미생물 한마리도 없고, 영양분도 없고, 생명이 결여된 순수한 증류수 같았다.
종교가 힘을 잃으면 그 종교의 신들이 시의 모티프가 되듯이, 아니면 인간의 고독이나 담벽의 장식이 되듯, 이 시들도 그랬다. 흙더미와 씨앗의 범벅이 되어버린 마음속 막연한 욕망은 진부한 지적 장난으로, 공중누각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다시 시집을 펼쳐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어떻게 이 노래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이 노래들은 너무도 순수했다. 이 노래들 속에서 인생은 피 한 방울조차 지탱하지 못하는 투명하고도 가볍기 이를 데 없는 장난으로 변했고, 성적 사랑과 육체의 살, 외침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은 야비하고 마무리되지 못한 오염된 존재로서, 정신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비물질화되어 흩어지고, 연금술에 연금술을 거듭하여 지극히 비현실적인 추상적 개념들로 바뀌었다.
어째서 이 아치에 한때 나를 유혹하고 타락시켰던 이 시들이 모두 하나같이 사기꾼의 현란한 줄타기 속임수처럼 보이는 걸까? 문명의 종말은 한결같이 엇비슷하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고뇌가 - 순수 시나 순수 음악, 순수 지각 등이 - 모두 대마법사의 능수능란한 속임수로 끝난다. 모든 믿음과 망상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마지막 인간, 그가 속한 모든 땅은 숨결이 되고, 그 숨결은 더 이상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줄 수도, 취할 수도 없게 된 마지막인간, 그 인간은 씨앗도, 똥도, 피도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낱말로, 장난기 어린 율동의 낱말들로 변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간은 황무지의 끝자락에 앉아 음악을 침묵의 수학적 비율로 해체하고 있다.  239-240

떠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 해변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나를 잘 품어주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죽기 전에 더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만지고픈 욕망이 나를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249


13
나는 인간은 자기만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냄새들이 서로 섞이는 바람에 어느 냄새가 내 것이고, 또 어느 냄새가 네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죠.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자라는 뻔뻔한 것들은 강아지처럼 촉촉한 코를 가지고 있어 누가 자기들을 애타게 원하고 누가 싫어하는지 냄새로 곧바로 잡아낸다는 것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느 도시를 가든, 내가 늙은이에다가 못생기고 옷을 초라하게 입고 있어도 계집 두세 명이 내 뒤를 졸졸 쫓아오죠. 아시겠어요? 냄새를 잘 맡는 암캐들이 - 하느님께서 그 계집들을 보살펴주시기를! - 내 뒤를 따라오는 거죠.  263

대장, 내가 대장한테 한번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죠? 각자가 자기만의 천국을 가지고 있다고요. 대장의 천국에는 수많은 책과 아주 커다란 꿀단지가 있을 거고,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포도주와 우조, 코냑 통들이 있을 테고, 또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영국 금화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겠죠. 내 천국은, 색색깔의 치마와 향수 비누, 스프링 박힌 더블 침대, 그리고 내 옆에 암컷 하나가 있는 이 향수 냄새가 물씬 나는 조그만 방, 바로 여기죠.  267

“.. 어제 우리는 카스트로에서 벌어진 축제에 갔었죠. 그런데 악마 놈이 이게 어느 성인을 기리는 축제인지 안 가르쳐줬단 말입니다. 롤라가 - 아 참, 나와 함께 있는 계집을 소개하지 않았군요. 이름은 롤라예요 - 내게 말했죠.
‘할아버지(이 계집이 아직도 나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하지만 애칭으로 부르는 거예요.), 할아버지, 나 축제에 놀라 가고 싶어.’
‘그럼 가봐, 할멈. 가보라고!’ 내가 대답했죠.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랑 같이 가고 싶어.’
‘난 안 가, 지겹거든. 그러니 너 혼자 가봐.’
‘치, 그러면 나도 안 가.’
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말했죠.
‘안 간다고? 왜? 왜 안 가?’
‘할아버지도 간다면 나도 갈 거야. 하지만 할아버지가 안 가면 나도 가기 싫어.’
‘왜? 너는 자유인이잖아?’
‘아냐, 난 자유인 아냐.’
‘자유인이고 싶지 않아?’
‘아니, 싫어.’
대장, 내가 무슨 말을 하겠수? 나는 놀라 까무러칠 것 같았죠.
‘자유를 바라지 않는다고!’ 내가 소리 질렀죠.
‘나는 자유 싫어, 절대 싫어. 난 자유가 싫다고!’
대장, 나는 이 편지를 지금 롤라의 바에서 롤라의 편지지로 쓰고 있어요. 부탁이니 대장도 잘 생각해보슈. 나는 인간이란 자유를 바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자유를 바라지 않아요. 그렇다면 여자도 인간 맞나요?
부탁하건대 즉시 답장해줘요. 대장께 사랑의 입맞춤을 듬뿍 보냅니다.
알렉시스 조르바백.”  269-270

조르바의 편지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아니면 인생의 표피층을 다 초월해서 삶의 본질에 다다른 이 원시인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논리니, 예의니, 명예니하는 인생을 편리하게 해주는 소소한 미덕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심연의 절벽 끝으로 대책 없이 자신을 밀어 넣어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편하고 아무도 바라지 않는 미덕만 남아 있었다.
글을 쓸때 참을 수 없는 충동 때문에 펜을 망가뜨리는, 이 무식한 노동자는 유인원에서 갓 벗어난 태초의 원시 인간처럼, 또는 위대한 철학자처럼,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압도당해 그 문제들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또한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이 신기해하며 묻는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기적 같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무와 바다, 돌, 새를 보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기적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소리 지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 나무는, 이 바다는, 이 돌은, 이 새는 무슨 의미를 갖는 거냐고 묻는다.  270-271


14
(아나그노스티스 영감) 그가 말라비틀어진 손을 내 어깨에 얹었다.
“당신은 아직 젊어요. 늙은이 말을 듣지 마시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늙은이 말을 듣는다면 얼마 못 가 망할 거요. 만약 어떤 과부 하나가 당신 앞에 나타나면 그냥 올라타시게!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주절랑 하질 마시게. 고통이란 진정한 사나이들을 위한거니까.”  290-291


16
“가난하면 즐겁게라도 살아야죠.” 조르바가 말했다.  315


17

“내가 말입니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어떤 짓을 하는지 아슈?” 그가 말했다. “그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는 그 생각을 안 할 때까지 질리도록 먹고 또 먹고, 포식하고, 과식합니다. 생각만 해도 역겨울 때까지요. 한번은 어렸을 때, 체리가 먹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 된 적이 있어요. 돈이 없으니 조금씩 감질나게 사 먹는데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온통 체리 생각만 나지 뭐예요. 그때마다 침이 질질 흐르고, 정말 고문이었어요. 그러는 내가 창피한 건지, 아니면 내게 화가 난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체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가지고 놀면서 바보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 어떻게 해야 하지? 밤에 일어나 살금살금 다가가서 아버지 주머니를 뒤졌죠. 은화가 만져지더라고요. 그걸 훔쳤죠. 아침 일찍 일어나 과수원으로 가서 체리 한 광주리를 샀어요. 그리고 구석에 숨어서 먹기 시작했죠. 먹고 또 먹고, 배가 터지도록 처먹었죠. 그랬더니 배가 거북해지면서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모조리 다 토했죠. 대장, 다 토했다고요. 그러고 나서는 체리에서 완전히 해방됐죠. 다시는 눈길조차 주지도 않아요. 난 자유로운 인간이 됐단 말입니다. 그 후로는 체리를 보면 ‘너하고는 더 이상 별 볼일이 없다’라고 말해주죠. 술도 담배도 마찬가지죠. 아직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지만 내가 바라기만 하면 당장 끊을 수 있어요. 고향이나 조국도 마찬가지고요. 간절히 바라고, 지겨울 때까지 맘껏 즐기고, 토해버렸죠. 그렇게 해서 그것들에게서 벗어난 겁니다.”
“여자는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것도 때가 되면 관두겠죠. 빌어먹을 계집들! 그럴 때가 오겠죠. 일흔쯤 되면 그렇게 될 거요!”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 듯 말을 바꾸었다.
“여든으로 합시다! 대장, 비웃응시는구려! 하지만 그리 오래 비웃진 못할 거요. 인간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것뿐입니다. 수도사들처럼 금욕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물 나도록 실컷 즐겨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라고요. 우리가 스스로 악마가 돼보지 않고 어떻게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요!”  342-343

“어떤 여자도 이 세상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도록 모든 여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던 고대의 난봉꾼 신을 뭐라고 부르지요? 내가 들은 말이 있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신은 수염을 염색하고 팔뚝에는 하트와 인어를 문신하고, 깊은 동정심을 갖고, 때로는 황소로, 때로는 백조로, 숫양으로, 당나귀로 둔갑해서 모든 깨끗한 여자들의 정욕을 만족시켰다고 합디다. 그 신 이름이 뭔지 기분 내키면 한번 말해봐요.”
“틀림없이 제우스를 말하고 있는것 같은데 ..”
..
“그 신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했고 힘들어했죠. 그는 정말 위대한 순교자죠. ..”
..
“나는 오직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만 알아요. 그는 정말로 여자들을 사랑했죠. 하지만 엉터리 글쟁이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사랑한 건 절대 아녜요. 절대로 아니죠! 제우스는 여자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느꼈죠. 그는 모든 여자들의 욕망을 다 알고 그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어요. 어떤 시골구석에 노처녀가 근심에 빠져 말라 죽어가는 꼴을 보거나, 육감적인 탐스러운 유부녀가 - 아니, 육감적이고 탐스러운 게 아니라 괴물 같더라도! - 남편이 자리를 비워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동정심 많은 작자가 성호를 긋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그 여자가 생각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서는 그녀 방으로 기어들어가죠.
대장, 내가 단언컨대 절대로 그가 성욕에 사로잡혀서 그러는게 아니었다고요.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진이 다 빠져도 정의감 하나로 버텼죠. 하지만 불쌍한 제우스가 어떻게 혼자서 온 세상을 다 구할 수 있겠습니까? .. 새벽녘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중얼거리곤 했죠. ‘아이구, 언제나 나는 침대에 누워 잘 수 있단 말이오? 난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단 말이오!’ 그렇게 말하고는 침을 닦지요.
그런데 갑자기 저 아래 지구 한구석에서 웬 여자 하나가 침대 시트를 박차고 지붕 위로 나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러자 그의 심장은 녹아버리는 것 같았죠. ‘아이고, 아이고, 다시 지구로 내려가자! 다시 내려가야지. 한 여자가 한숨을 쉬니 내려가서 위로해줘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내려가죠.
하지만 여자들이 그를 너무 혹사해서 급기야 그의 허리가 끊어지고 말았죠. 구토를 하고 온몸이 마비가 되고, 그리고 끝내 숨이 끊어졌어요. 그때 그의 후계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옛신의 형편없는 몰골을 보고 말하죠. ‘여자들을 조심하라.’  380-382


20
내 할아버지는 나처럼 속물에 혼자 제일 잘난 대장이었어요. 이 불경스러운 양반이 ‘거룩한 무덤’(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을 뜻함)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하지스(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다녀온 그리스도교인이나 메카 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슬람교인을 가리킴)가 되었단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할아버지의 속내를 알고 계셨ㄷ죠. 할아버지가 고향 마을로 돌아오자 염소 도둑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친구 한 명이 말했죠. ‘아이구, 이 친구야, 거룩한 무덤까지 가서 나를 위해 성스러운 십자가의 아주 조그만 조각도ㅗ 안 가져오다니!’ ‘무슨 말이야?’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할아버지가 응수했죠. ‘어떻게 내가 자네를 잊겠는가?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게나, 그리고 올 때 축성식을 하게 신부님도 모시고 오게나. 그때 내가 그걸 자네에게 주겠네. 그리고 새끼돼지구이와 포도주도 가져오게나. 행운을 위한 거니까!’
할아버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벌레가 갉아먹은 문짝에서 성냥 머리만 한 크기의 나무 한 조각을 떼어내서는 솜에 싸서 그 위에 기름을 떨어뜨리고 기다렸죠. 조금 있다가 그 친구분이 새깨돼지구이를 짊어지고 신부님과 함게 도착했고요. 신부님이 영대(정교회 신부들이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목에서부터 다리까지 두르는 긴 천)를 두르고 축성식을 한 뒤에 신성하 ㄴ성 십자가 조각의 전달이 이루어졌고, 그러고는 모두들 새끼돼지고기에 달려들었죠. 그런데 대장, 믿을 수 있겠어요? 그 할아버지 친구는 성 십자가 조각에 경배를 드리고 목에 걸고 다니면서부터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대요. 완전히 변했죠. 산으로 들어가서 무장한 클레프테스의 일원이 되어 터키 마을을 기습해 태워버리고, 겁도 없이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곳으로 뛰어들었다네요. 그가 두려울게 뭐가 있었겠어요? 자기 몸에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을 지니고 있으니 납덩어리 총알도 뚫지 못할 테니 말예요.”
조르바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가 말했다. “믿음이 있다면 다 망가진 문짝의 나뭇조각이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이 되죠. 믿음이 없으면 성스러운 십자가 전체라도 망가진 문짝이 되고요.”  386-387

“고지식한 몸뚱어리에, 고지싟한 생각 …… 내가 무슨 얘길 하든 못 알아 들을 거요. 대장, 용서하슈!”
“무슨 말이에요?” 내가 항의했다. “조르바, 나도 알아들어요. 맹세코 다 알아듣난단 말이에요.”
“그럼요, 머리로는 다 알아듣겠죠. 그리고 ‘옳다, 그르다, 그렇지! 안 그렇지! 그건 당신이 옳고, 저건 당신이 틀리고!’ 이렇게 말하겠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나옵니까? 난 말이오, 대장이 말 할 때 대장의 팔과 다리, 가슴을 본다우, 그런데 그것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우. 마치 피가 없는 놈들처럼 말요. 도대체 대장이 그걸 어떻게 이해한단 말요? 머리로 이해한다고요? 풋!”  388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고, 신부들로붙도 벗어나고,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고, 탈탈 먼지를 털었죠. 세월이 흐를수록 난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벼워집니다. 뭔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난 자유로워지고, 사람이 돼갑니다.”
..
“한때는 이놈은 터키 놈, 저놈은 불가리아 놈, 또 이놈은 그리스 놈 하고 구분햇었죠. 대장, 난 조국을 위해서라면 대장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못된 짓을 저질렀다우. 멱을 따고, 약탈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온 가족을 몰살하고 …… 왜냐고요? 그건 그들이 불가리아 놈들이고 터미 놈들이었으니까죠. 난 자주 ‘이 악당 놈아, 나가 뒈져버려라! 이 바보 얼간아, 나가 뒈져버리라고!’ 하고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 저주를 퍼부었죠. 하지만 대장, 이제는 나도 생각을 좀 하고 사람을 보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쁜 놈이다. 불가리아인인가 그리스인인가 하는 게 문젭니까? 이제 내게는 다 똑같아요. 이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아닌가만 묻죠. 그리고 정말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밥을 더 많이 먹을수록, 난 점점 더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됩니다. 보세요, 좋은 놈, 나쁜 놈이란 구분도 잘 맞질 않아요. 난 모든 사람이 불쌍할 뿐이에요. 사람을 보면, 비록 내가 잘 자고 마음에 아무런 시름이 없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누구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자신만의 하느님과 악마를 모시다가 뒈지면 땅에 쭉 뻗고 누울 거고, 그러면 구더기들이 그 살들을 파먹을 거고 …… 아, 불쌍한 인생!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에요. …… 구더기 밥인 고깃덩어리 들이라고요!
여자들은, 음, 그것들을 생각하면, 어이구 하느님! 난 울음이 나올 것 같아요. 대장은 가끔 내가 여자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곤 하는데, 하지만 여보쇼, 내가 어떻게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수? 여자들이란 약한 존재들이라 자기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데다, 일단 한번 그년들 젖꼭지를 움켜쥐면, 바로 그 순간에 모든 문이 열리고 그냥 모든 걸 내준다고요.  393-394

“.. 내 얘기도 들어보세요. 조국이란 게 있는 한, 사람들은 야수로 남아 있게 마련이죠.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로요. 하지만 난,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난 벗어났어요. 벗어났다고요, 끝났다고요! 하지만 대장은요?”  396


21
나는 생각했다. ‘남자들이란 얼마나 저항력이 없는 덧없고 어리석고 약한 바보 같은 존재들인가! ..’  412


24
“대장, 말해봐요. .. 이 모든 것들이 무얼 이야기하려는건지 말해봐요. 눈가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뭐죠?(이 말을 할 때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에 차 있었다) 왜 우리는 죽는 거죠?”
“모르겠어요, 조르바.”
..
“모른다고요!” 조르바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어느 날 밤엔가 춤을 출 줄 아느냐는 그의 물음에 내가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도 그는 저렇게 눈알을 굴렸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갑작스레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대장이 읽는 그 빌어먹을 종이짝들은 다 뭐요? 왜 그런 걸 읽는 거요?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에 대해 얘기하는 거요?”
“조르바, 당신이 지금 묻고 있는 것들에 대답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내가 대답했다.
“그런 고뇌는 내가 다 삶아 먹어버릴 거요.” 조르바가 화를 내며 발로 돌을 차면서 말했다.
..
“나는 대장한테서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듣고 싶소. 대장은 그렇게 오랫동안 마법에 대해 연구하느라 야위었잖소. 그러느라 그동안 적어도 3, 4톤의 종이를 쥐어짰을 텐데 결국 어떤 즙을 짜낸 거요?”
..
나는 나의 도반에게 신성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이해시켜보려고 시도했다.
“조르바, 우리는 아주 거인처럼 커다란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 위에 있는 아주 미세한 벌레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대답했다. “지구는 바로 그 나뭇잎이고요. 우리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잎사귀 위를 기어 다니며 절실하게 뭔가를 찾아다니죠. 우리는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죠. 냄새가 나요, 악취가 납니다. 맛을 봅니다. 먹을 만해요. 그걸 두들겨봅니다. 그러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질러요.
겁이 없는 몇몇 사라람들은 잎사귀의 가장자리까지 가죠. 그 가장자리 끝에서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귀를 크게 열고, 밑을 내려다보죠. 그 밑은 카오스예요. 무서워서 소름이 끼치죠. 저 아래에는 무시무시한 절벽이 있다고 우리는 지레 짐작합니다. 우리들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거인처럼 큰 나무의 다른 잎사귀들이 내는 속삭임 소리를 듣죠. 그리고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수액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들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렇게 심연을 향해 몸을 숙이고 오놈으로, 완전히 공포에 빠졌음을 실감하죠. 바로 그 순간에 ……”
나는 말을 멈췄다.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시가 시작되죠”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르바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을 멈췄다.
“뭐가 시작됩니까?’ 조르바가 조바심하며 물었다. “왜 이야기하다 마는 거요?”
“…… 아주 커다란 위험이 시작되죠, 조르바.” 내가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헛소리를 하고ㅡ 또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그들의 마음이 의지할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그 해답을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잎사귀의 가장자리에서 심연을 조용히 내려다보면서 용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맘에 드는군!’”
조르바는 한도앙ㄴ 생각에 잠겼다. 내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난 말이죠.” 드디어 그가 말했다. “매 순간 죽음으 ㄹ응시합니다. 죽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죠. 하지만 한 번도, 절대로 한 번도 ‘죽어도 좋아’라고 말하지는 않죠. 아뇨, 죽는 게 조금도 좋지 않아요! 나는 자유로운 존재 아닙니까? 그렇다면 난 절대로 내가 죽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소리쳤다.
“아니죠, 절대로 내 목을 양처럼 순하게 죽음의 신 카론에게 내놓고 ‘주여, 내가 축복을 받고 성자가 되도록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468-470

“.. 난 지나간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일도 신경 쓰지 않지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그것만 신경 씁니다. 난 스스로 이렇게 묻죠. ‘조르바, 넌 지금 뭘하고 있는 게냐? 잔다. 그럼 잘 자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일한다. 그럼 열심히 일해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여자를 껴안고 있다. 그럼 그 여자를 꼭 껴안아라! 그리고 모든 걸 다 잊어버려라, 이 세상에는 그녀와 너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나게 즐겨라!’”  473

“.. 진정한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받는 기쁨보다는 자신들이 주는 기쁨을 더 행복하게 느낀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473

“나도 내 안에 대여섯 놈의 악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르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어요. 너무 놀랄 거 없어요. 그리고 많은 악마를 가지고 있을수록 더 좋고요. 단지 모두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지만 하면 돼요.”
나의 이 말이 조르바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생각에 잠겼다.
“어떤 목표요?”
“조르바, 난들 알겠어요? 알기 어려운 걸 묻네요.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좀 쉽게 말해보슈. 난 지금까지 내 안의 악마 놈들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하고, 가고 싶은 덴 어디든지 가게 내버려뒀수다. 그래서 어떠 ㄴ자들은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좋은 놈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바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현명한 솔로몬이라고들 하죠. 그리고 난 그들이 말하는 그런 놈인 동시에 그보다 더한 놈이기도 한, 러시아 샐러드 같은 놈이죠. 그러니 가능하다면 말이죠, 무슨 목표인지 내가 알 수 있게 말 좀 해보슈. 어떤 목표죠?”
“조르바, 내 생각에는 말이죠. 물론 잘못된 새악일 수도 잇지만, 세 부류의 인간이 잇는 거 같아요. 우선은 소위 말하는 자신들만의 삶을 살기 위한 목표를 세우는 부류죠. 그들은 자신들만을 위해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부를 쌓고, 영광을 추구하죠……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부류가 있죠.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라고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추리려고 노력하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남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베푸는 살마들이죠. 그리고 끝으로 우주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부류가 있죠. 이 부류는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별 들도 모두 끔찍한 투쟁, 즉 물질을 승화시켜 정신으로 만들려는 투쟁을 하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하죠.”
조르바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난 멍청이라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이봐요 대장,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방금 한 말을 좀더 쉽게 소화해서 말해주슈!”
나는 절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이 절망적인 생각들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80-482


25
조르바와의 생활은 내 가슴을 넓혀주었고, 그의 말 몇 마디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내 고민에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줌으로서 내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직감과 매의 눈 같은 원초적인 눈으로 힘들이지 않고 지름길을 달려 노력의 정상에 우뚝 서는 ‘무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507


26
“대장, 대장은 어디로 갈 거요?”
“외국으로 갈 거예요. 내겐 아직도 내 안의 산양이 먹어치워야 할 종잇조각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대장,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수?”
“조르바, 정신 차렸죠. 당신 덕분이에요. 나도 당신의 길을 따를 거예요. 당신이 체리를 상대로 한 짓을 나는 책을 상대로 할 거예요. 토할 때까지 종잇조각을 잔뜩 먹어볼 작정이에요. 그리고 토하고 나서 종잇조각에서 자유로워질 거예요.”  517

바람이 몰고 다니는 겨울철 나뭇잎들처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몸, 손짓, 몸짓까지도 다 기억하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 사람의 눈빛이 파랬는지 까맸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가 하고 생각했다.  519

“대장!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쁜이오. 대장,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만약 그 끈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느 날엔가는 그 끈을 잘라 낼 거예요.”
..
“대장, 그건 어렵수다.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 당신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먹고 있죠. 정신이란 식품점 주인 같은 거요. 장부를 팔에 끼고서는 얼마 들어왔고 얼마 나갔고, 이건 이득이고 저건 손해고, 일일이 기입하죠. 정신은 알뜰한 주부 같아서 모든 걸 포기하지 못해요. 뭔가 하나는 꼭 숨겨놓죠. 정신이라는 놈은 결코 끈을 놓지 않아요. 절대로! 그 악당은 손아귀에 그 끈을 꽉 쥐고 있답니다. 그 끈을 놏히면 그놈은 망하는 거니까요. 불쌍하게도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그 끈을 자르지 않으면, 대장, 인생에 뭐가 있겠수? 캐모마일 차, 맛있는 캐모마일 차 정도? 세상을 뒤집어엎을 럼주는 절대 아니죠.”
그가 말을 멈추고는 다시 술을 따랐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내장, 날 용서하슈. 난 시골 촌뜨기요. 진흙이 발에 들어붙어 있듯 말들이 이빨에 붙어 있수다. 난 말을 멋있게 하지도 예의 바르게 하자도 못하우. 그렇게 할 수 없수다. 그러니 대장이 이해하슈.”
그는 잔을 비우고 나를 바라보앗다.
“아시겠소?” 마치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온 것처럼 그가 소리쳤다. “아시겠냐고요? 이게 바로 대장을 잡아먹고 있수다. 그걸 모르면 대장은 행복하 ㄹ거요. 뭐 부족한 게 있수? 젊겠다, 돈도 있겠다, 머리도 좋겠다, 몸도 튼튼하고, 사람 좋고, 대장에겐 부족한게 하나도 없수다. 아무것도 아쉬운 게 없지. 빌어먹을 악마 놈! 딱 한 개만 빼고 말이우. 미친 짓을 벌이는 광기 말요. 광기가 없으면, 대장……”
그는 다시 머리를 젓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520-522

“저는 시골 교사입니다. 지금 저는 이곳에서 마그네슘 광산을 운영하고 있던 알렉시스 조르바 씨의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알렉시스 조르바 씨는 지난 일요일 저녁 6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가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저를 불러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에 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죽거들랑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또 그를 기억했다고 편지를 보내주슈. 그리고 난 내가 평생 한 짓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말해주슈. 그리고 잘 지내시고 이제는 정신 좀 차릴 때가 됐다고 쓰슈…… 그리고 만약 신부가 내 고해성사를 듣고 종부성사를 해주러 온다고 하면, 제발 내쫓고 내가 저주한다고 전하슈! 난 평생 하고, 또 하고, 또 했지만 결국 한 일은 별거 없수다. 나 같은 인간은 천 년을 살아야 마땅한데 …… 잘 있으슈!”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베개에 기대 일어나서는 침대 시트를 벗어던지고 위로 펄쩍 뛰었습니다. 그의 부인 리우바와 나, 그리고 힘센 이웃들 몇 명이 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창틀을 쥐고 서서는 먼 곳 산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리더니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말 같은 신음 소리를 내다가 창틀에 손톱을 꼿꼿이 박아 넣고는 똑바로 서서 죽었습니다.
그의 미망인 리우바는 당신께 인사를 전하라고 하면서, 고인이 계속 당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자기가 죽으면 당신께서 고인을 기억하게 자신의 산투리를 당신께 드리라고 유언했다고 전하랍니다.  537-538




작가 소개 - 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
1915년에도 그는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고, 다시 아기온오로스에 가서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조르바의 본명)를 만난다. 조르바스는 카잔자키스에게 인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1917년에 카잔자키스와 조르바스는 마니(펠로폰네소스 남쪽 지방) 지방의 프로스토바에서 갈탄광 개발을 시도했지만 경제성이 없어 실패한다.  544-545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엘 그레코에게 바치는 보고서(영혼의 자서전)>에서 그는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 않고 승리를 향한 투쟁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평생에 걸친 여정은 오르막길이었으며, 하느님과 구원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오르막길이었다고 고백한다.  548




조르바와 카잔자키스, 니체

대부분의 살마들이 선택하는 삶은 기존 관습에 따라 기존 사회가 제공한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낙타처럼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다. 니체는 그런 사람을 밑바닥 인간(Letzter Mensch)’이라고 불렀다. 이와 반대로 관습이나 전통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사자처럼 적극적으로 모든 삶을 자신의 찬단 아래 ‘치열하게’ 꾸려 나가는 사람을 니체는 ‘빼어난 인간((ubermensch)’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빼어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이루기 위해서는 홀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있는 ‘힘에 대한 의지(Wille zur Macht)’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힘에 대한 의지는 우연을 의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물을 고정된 죽은 것으로 보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 빼어난 인간은 힘에 대한 의지로 모든 사물을 음미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새로운 갗치를 창조한다. 그래서 빼어난 인간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되풀이(ewigen Wieederkunft)’로 이루어져 있다. 삶 속에서 위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모두 끊임없이(ad inifitum) 역겨울 정도로(ad nauseam) 되풀이된다. 빼어난 인간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아니,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으로 매 순간의 삶을 기쁘게 바라보고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도록 새로운 면을 찾아내고는 감탄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인 현재뿐이다.
니체가 말하는 삶을 산 사람이 바로 조르바다.  569-570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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