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안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 어릴 적 읽었던 책부터 시대를 주름잡았던 베스트셀러까지 가득 꾸며진 책장을 바라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겠단 생각으로 하나하나 꼽아뒀지만 생각만큼 손이 가게 되질 않는다. 더 이상 모아둘 공간도 없는데 막상 버리자니 아깝다.

이럴 때 책장 안 잠자는 책들에게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건 어떨까. 그야말로 책에게 주는 광복절 특사다. 책에도 자유를 주자는 목소리들이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날로 높아져 가고 있 다. 근데 어떻게 자유를 주라는 걸까.

직장인 김은경씨(32세). 우연히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공원벤치에서 주인 없는 책 한 권을 주웠다. 겉표지엔 이름은 적혀 있질 않고 알 수 없는 번호가 적혀 있다. 바코드도 아니고 이게 뭘까.

마침 갖고 싶었던 책이고 궁금하기도 해서 일단 가져와 책에 적혀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북크로싱…’이란 말이 뜬다. 이게 무슨 말일까. 어떤 사이트인지 더욱 궁금 해 회원가입까지 하는 김씨. 30여분쯤 둘러보고 난 후 김씨는 자신의 책꽂이에 서 잠자고 있던 책을 꺼내든다. 그리고 주인 없는 책에서 봤던 그 표식(스티커 )을 해당 사이트에서 내려받기 한 후 김씨의 책에 정성스럽게 붙인다. 마치 날 개를 달아주듯. 사람들이 잘 다니는 곳을 곰곰 생각하다 인근 지하철역 부스에 내려놓고 돌아선다. 책은 그렇게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이게 바로 ‘북크로싱(Book Crossing) 운동’이다. 예전 ‘아나바다’ 운동을 기억하면 이해하기 더 쉽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절약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책도 마찬가지로 서로 바꿔 읽자는 운동이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욱 광범위한 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온라인 모임을 활용하는 것.

북크로싱 운동은 2001년 미국인 론 혼베이커(Ron Hornbaker, 37)가 만든 사이 트 www.bookcrossing.com으로부터 시작됐다. 소프트웨어 운영자였던 론 혼베이 커는 읽기(Read)·쓰기(Register)·양도(Release)라는 ‘3R’ 슬로건을 갖고 창안해 낸 것이다. 이 사이트는 전세계에서 매일 500여명, 매년 20만명 이상이 회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우리 나라 역시 바통을 이어받았다.

온라인시대를 맞아 출판시장이 심각한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예상 외로 인터넷 구입 말고도 블로그, 카페, 미니홈피 등 책을 위한 소그룹 모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책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지난해 3월 ‘당신의 책에 자유를 주라’는 목소리를 내며 ‘프리유어북(www.f reeyourbook.com)’이 태어났다.

북크로싱의 원조격인 론 혼베이커 사이트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직접 도움도 받 아 북크로싱 운동 전문 사이트를 만들었다. 현재 등록된 도서는 2830권이며 회 원수는 4000여명으로 게시판을 통해 회원간 의견 나눔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프리유어북 대표 김정호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즐거운 지적 여행이며 동시에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만남의 기회를 갖게 하는 여 행입니다”라며 북크로싱 운동을 설명한다.

책에 돛을 달아 항해를 시킨다는 의미의 ‘돛단책(www.sailing book.com, 대표 안종권)’도 있다. 지난 9월부터 돛단책 항해가 시작됐다. 북크로싱을 순수 우 리말로 바꿔단 셈이다.

돛단책 사이트는 여러 가지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북크로싱이 잘 되고 있는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검색이 되는 것은 물론, 독후감이나 20자 서평대 회, 디카로 만나는 책, 연재방 등 다양한 코너가 있어 회원들 참여를 유도한다 . 연재방은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와 연계해 인터넷소설가가 직접 연재하는 재 밌는 이야기를 제공한다.

 

■인터넷 통해 서로 바꿔보는 재미■

네이버 블로그 카페에서도 유명한 북크로싱 카페가 있다.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cafe.naver.com/crossingbookcafe)’이다. 닉네임 ‘나른고냥’으로 통 하는 차우진씨(31)가 책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들의 총책임을 맡고 있다. 200 4년 2월에 시작돼 가장 먼저 북크로싱을 움직인 주인공이다. 블로그답게 아기 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오프라인 모임 장소도 신촌과 대학로 카페를 지정해 둬 회원들이 더 편리하게 북크로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한민국 사이버 도서관을 자처하는 ‘북모임(www.bookmoim.co.kr, 대표 성기 범)’ 역시 지난 9월 문을 열었다. 회원수는 4000여명을 넘어가고 있으며 등록 된 자료도 4만1036건에 이른다. 이중 등록 도서는 3만8093권이며 나머지는 DVD 와 CD등을 포함한다. 크로싱을 책에만 제한하지 않은 까닭이다. 또 북모임 사 이트를 통해 책을 살 경우에는 인터넷서점 예스24·알라딘·모닝365와 연계돼 있어 자동적으로 개인적립금 외의 2~3%가 북모임 앞으로 적립된다. 이것은 차 후 회원들에게 이벤트를 제공하거나 책이 필요한 곳에 사용될 목적이라고. 여 기엔 ‘마이서재’ 기능도 달려 있는데 요즘 인기 있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닮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책 목록을 올려놓으면 다른 회원들이 찾아와 빌려달 라고 리플을 달고 갈 수도 있으며 대여리스트까지 제공된다. 때문에 북크로싱 이 익숙지 않아 염려하는 회원들은 이 기능을 적극 이용하기도 한다.

성기범 대표는 “북크로싱 운동은 직장인들의 독서문화 정착에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며 “독서경영의 진정한 의미를 북모임의 북크로싱 서비스를 통해 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현재 KBS ‘책을 말하다’에서는 ‘북크로싱(Book Crossing)’에 대한 우리말 명칭을 공모하고 있다. 기간은 채택될 때 까지다. 그야말로 북크로싱의 취지를 십분 살릴 수 있는 이름이 나오길 학수고대 하고 있다. 채택된 네티즌 에겐 ‘TV 책을 말하다’가 선정한 테마북을 증정해 북크로싱 운동이 되게끔 한다.

일반인들 중 아직까지 북크로싱 운동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득 길 을 가다 새주인 만나기를 갈망하는 책을 만난다면 얼른 집어들어 보자.

갖고 싶었던 책이라고 슬쩍 집안 책꽂이에 꽂아놓을 수도 있을테지만 해방되고 방생된 책을 그냥 가둬두진 못할 것이다. 책 돌려보기를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 과 함께 사장된 책을 다시 살려내는 소중함을 함께 맛보길 기대한다.

 

▷잠깐 용어

·북크로싱(Book Crossing)운동 : 책을 읽은 후, 책과 함께 북크로싱 메시지를 적어 공공장소에 놔두면 다음에 습득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음 사람에게 책을 넘기는 방식. 예측 불가능한 책 릴레이라고 보면 된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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