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 내세운 의식적 꿈과 실질적으로 욕망하는 자신의 무의식적 꿈은 전혀 딴판일 수도 있다.  20


우리는 수시로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표방하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기만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  21


성철은 동정일여, 몽중일려, 숙면일여가 되어야 실제 견성이란다.

'불교에서 수행하여 공부하는 단계를 보면, 첫째 동정일여(動靜一如 움직일동 고요할정 한일 같을여) 즉 일상생활에서 가고 오고 할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말을 하거나 안 하거나, 변함 없이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여여불변(如如不變 같을여 아닐불 변할변)하여야 합니다.

동정일여가 되어도 잠이 들어 꿈을 꾸면 공부는 없어지고 꿈속에서 딴짓하며 놀고 있는데, 꿈에서도 일여한 것을 몽중일여(夢中一如 꿈몽 가운데중 한일 같은여)라 합니다.

몽중일여가 되어도 앞에서 말했듯이 잠이 깊이 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잠이 푹 들었을 때도 여여한 것을 숙면일여(熟眠一如 익을숙 쉴면 한일 같을여)라 합니다.

숙면이여가 되어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백 자척 장대간 머리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된다 말입니다. 그리하여 깨쳐야만 그것이 실제 견성입니다.' (성철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 127쪽)  23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드에게 나쁜 의도로 거짓말하거나사기를 치지 않으면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일반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릇 필부필녀가 아닌 예술가 혹은 자유인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의도로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치고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 점이야말로 타인들과 적당히 얽혀 만수산 드렁칡처럼 살아가려는 '일반인'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살아가려는 '예술인/자유인'의 중요한 변별점이 아닐까 싶다(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은 창의적 탐색을 시작한 예술가이자 자유인이어야 한다). 일반 필부필녀에겐 타자와의 무난한 관계가 매우 중요핟다. 그래서 그들에게 정직과 부정을 가르는 잣대는 '타자에게 피해를 주었느냐, 아니냐'이다. 그들은 타자의 이해로써 나의 행동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소위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면서 살기.

그렇다 보니 매우 도덕적인 규율들 가령,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사기치지 마라, 강간하지 마라 등과 같은 규율을 우선 중시한다. 그런데 이들 도덕적 규율이란, 말이 좋아서 윤리적 도덕적 규율일 뿐, 알고보면 죄수들 혹은 범법자들이나 주입받을 만한 규율들 아닌가? 도둑질하고 싶은 인간, 거짓말하고 싶은 인간, 사기치거나 강간하고 싶은 인간, 다시 말해 죄수의 감수성이 몸 안에 들끓는 인간들에게나 강요할 만한 규율이 아닌가?

이렇듯 우리 일반 시민들의 도덕적 기준이란, 가령 푸코의 '팬옵티콘'이 적절하게 보여 주듯, 죄인의 감수성을 기초로 세워진 규율이다. 반대로 자유를 꿈꾸는 예술가는, 앞서 김수영의 시세계에서 보았듯, 자기 내면의 정직을 우선시한다. '일반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시선을 중시하며 살아가지만, '예술가'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시선과 생각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것이 내가 <구름의 파수병>에서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화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구절을 접하며 받은 충격이었다. 

자기 내면의 정직을 우선시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선택에 앞서 자신의 욕망에 먼저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타자적 욕망을 내면화하면서 살기' 보다는 자기 안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를 중시하기도 하지만, 그조차 자신의 욕망일 경우게 중시한다.  31-32


'도덕적 정직'은 행동 결과와 타자의 평가를 중시한다. 하지만 '실질적 정직'은 행동 과정의 실질적 내용을 중시한다. 자기 마음결에 교차하는 여러 다양한 이질적 느낌들 모두를 중시한다. 이러한 실질적 정직을 견지해야만, 도덕적 도그마에 갇히지 앟고 비로소 풍요로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34


살아 있는 글쓰기 또한 실질적 정직을 통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산문이란, 말그대로, 풀어헤치는 방식의 글이다.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유지하면, 특별히 공부나 지식이 대단치 않더라도 그리고 경험이나 재능이 유별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실질적 느낌과 기분, 감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개성을 확보할 수 있다.  35


나는 과연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하루의 계획표를 짜고 있는가.  41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전념.  43


대부분이 여러 가지 형태의 의식과 무의식의 꿈으로 소망이 분산 되어 있고, 분산되어 있는 비율에 맞게 각각의 꿈들이 그 나름대로 성취되고 있는 식이다. 커피 마시고 싶은 꿈+데이트 하고 싶은 꿈+취업하고 싶은 꿈+친구 만나고 싶은 꿈... 그렇다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실질적 꿈은 이미 모두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잇는, 참으로 놀랍고도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져야 할 세상이 아니라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이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47




그냥 자기 자신의 느낌을 일단은 느낀 그대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옮겨야 한다.  51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려면 일단 섬세하고 민감한 감각, 낌새, 눈치만으로 문제를 간파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관련 담론은 다만 참조만 해야 한다.  60


살아오는 동안 나의 느낌은 언제나 옳았다. 다만 그 느낌을 다루는 나의 방법이 적절치 못하거나 서툴렀을 뿐이다.  61


우리의 말실수가 종종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듯, 글쓰기로 나타난 문제점은 글 쓰던 순간의 자기 모습을 속절없을 만큼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들 문제점은 모두 감추고 해결해야 할 자신의 결점으로 느껴지지만,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결점 속에 자신의 장점과 잠재성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드러내 놓고 살펴야 한다.  67



최근에 자신이 읽은 책들 중에 감동을 받고 밑줄을 그어 둔 문장이 있으면 그 문장을 재삼 음미해 보자. 그 문장의 어떤 부분이 내 마음과 공명을 일으켜 나로 하여금 밑줄을 긋게 만들었을 것이므로, 내가 우선 읽어야 할 줄탁의 인연이 되어 줄 '씨앗 도서'를 찾는 그 문장 속에 들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씨앗 도서 지도를 만드는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최근 자신이 가장 즐겁고 유익하게 경험한 '씨앗 도서'를 가운데 놓자. 그리고 그 '씨앗 도서'의 이웃 책들을 찾아가 보자. 일단 해당 저자의 다른 책들이 그 책의 가까운 이웃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같은 분야의 책들이 그 책과 가까운 또 다른 이웃일 것이다. 또한 그 책이 참고하거나 언급한 다른 책이나 작가가 있다면 그 책들 또한 이웃 책이다.  87


'씨앗 도서' 혹은 '씨앗 문장'을 몸과 마음에 심어 두는 첫번째 방법은 씨앗 표시를 해두는 일이다. 즉 공명이 우리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일일 것이다. 

일독하고 나면 이렇게 표시해 둔 부분만을 , 재독한다. 이때 따라 써 두면 더욱 좋을 것이다. 따라 쓰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일 경우엔 다만 눈을 감고 소리 내어 문장을 읽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재독과 따라 쓰기 외에 밑줄 부분을 묵상하는 방법도 있다. 문장을 읽은 다음 침묵의 상태로 연상되는 이미지나 이야기, 변형 문장, 궁극적 의미 등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96


책을 읽을 때는 언제나 책을 그만 접고 많은 생각에 잠기는 상황과 맞닥뜨리기를 원해야 한다. 

알고 보면 우리가 작가가 되려고 하는 이유 역시 마음의 순간적 공명에서 비롯되었다...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묵상을 통해 비슷한 새로운 문장으로 변주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씨앗 문장을 인용하지 않은 채로, 씨앗 문장과 같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구절을 만들어 보거나, 이미지나 사건을 만들어 보는 것도 글쓰기 훈련의 한 방법이다.  97


재독, 따라 쓰기, 묵상, 변주 외에 아예 '씨앗 문장'을 암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98


독서는 양적 문제가 아니다.

질이 아니라 양에 치우치는 독서라면 그만 멈추는 것이 더 낫다.  100


독서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에게 적합한 책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최대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한 뒤, 숙고와 발품과 비용을 아끼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줄탁 인연의 '씨앗 도서'를 찾되, 이 모든 과정으 ㄹ스스로 이끌어 가야 한다.  100-101


미리 정해 놓은 진리란 있을 수 없다.  104


모든 이론이란, 다만 보다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가설일 뿐이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이론일지라도 그것을 권위로 삼아서 글쓰기 방법을 탐색하는 것은 신발에 발을 맞추려는 것만큼 어리석다. 더구나창조적 행위인 글쓰기에 있어서 일반적이고 표준적인 잣대란 있을 수 없다.  109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간다. 유리창을 덮고 있는 하늘색 버티칼을 벗기고 그리고, 아주 잠깐 유리문을 열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데 이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①은 앞서 말한 대로 생략가능하고, ②와 ⑥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부분으로, 각각 '먼저'와 '잠깐' 정도로만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제일 먼저'라고 말하면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 들고, '아주 잠깐' 역시 순간적으로 매우 빠르게 벌어지는 사건처럼 연상되기 때문이다. ③은 '가리고 있는'이라고 해야 알맞고, ④는 불필요하다. ⑤는 떼어 낸다는 뜻에 가까우므로 '젖히고'가 적절하다. ⑦은 앞서 지적한 대로 '창을 열고' 정도가 알맞고, ⑧은 '살펴보는데' 정도의 표현이 보다 타당하다.  126


언어적 감수성이란,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서오가 상상력을 뜻한다.  129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다른 지름길은 없다. 우선은 언어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 또한 언어를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얻게 되듯이, 우리가 언어를 가까이 대하고 사랑하면, 그 과정을 통해 언어에 대한 남다른 풍요로운 감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139



일상언어는 언제나 화자와 청자 간의 직접적인 접촉성, 지시성, 상호관계성 속에서 사용된다. 화자와 청자가 상황을 함께 공유하며 얼굴을 맞대로 있는 것이다. 

언어 외에 독특한 음색이나 억양과 같은 자기만의 만투를 사용하는가 하면 의당 눈빛, 제스터, 손짓 발짓의 바디랭귀지 등을 함께 동원한다. 

덕분에 '그것', '사랑' 등과 같은 추상적인 언어를 구사해도 청자는 눈치껏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글재주가 필요한 출판언어에서는 직접적인 접촉성이나 지시성, 화자와 청자 간 상호관계성이 모두 박탈당한다. 저자와 독자는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시성은 모호해져서 텍스트 위를 미끄러지며 떠돈다. 관계성은 사라지고, 독자의 적극적인 상상력만이 긴요해진다. 출판언어에서는 오로지 언어 그 자체가 전부다.  145


일상언어와 출판언어는 모양은 같지만 울림은 판이하다. 20%의 일상 언어와달라, 출판에서 쓰는 언어는 100% 언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일상언어를 글쓰기에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상언어는 일상을 매끄럽게 영위하기 위해 언어를 관용적, 관습적,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출판언어에서 그대로 쓰면 독자는 지루해하거나 고루해하거나 아예 공감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일상어를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152


글을 쓸 때는 보다 명료하게 표현되는 순간까지 문장을 풀어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쓸 때는 일상에서처럼 애매한 어휘나 문장으로 대충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뿐만 아니라 보다 명확하게 서술하려는 노력을 통해 화자나 인물의 특성이 보다 명징하게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언어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사용하려고 하면 할수록, 언어는 우리에게 보다 섬세하고 정확한 인물과 상황과 인식을 답례로서 선물한다. 마치 화가와 붓이 함께 그림을 그리듯, 연주가와 악기가 함께 연주를 하듯, 글쓰기란 작가와 언어가 공동으로 함께 도모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160-161


문장을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고, 보다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진술하려고 애를 쓰게 되면 그러한 긴장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보다 명료해지고 생생해진다.  162


고급 식당에서의 식사가 마냥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가난이 마냥 괴로운 것만도 아니듯, 경험한 사실보다는 그것을 겪는 화자나 인물의 정서 및 느낌 같은 실질적 내용이 중요하다. 우리가 다루려는 것은 단순한 표면적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겪는 심층적 진실이다. 따라서 모든 경험 사실은 실질적 내용에 의해 재편집할 필요가 있다.  

가량 '그가 그녀에게 장갑을 빌려 주었다'는 똑같은 경험사실을 글로 쓸때조차 주체에 맞게 전혀 다른 정서 느낌 기분 분위기 등의 실질적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보기 33>

① 호감을 갖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운을 표현하고 싶을 때

 → 나는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주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그러나 구태여 장갑을 껴야 할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렇게 했고, 그녀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② 불편한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운을 표현하고 싶을 때

 → 준석은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주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그러나 구태여 장갑을 껴야 할 만큼 주운 날시는 아니었다. 그녀가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그러나 준석은 굳이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준석의 그러한 친절이 불편했다. 막상 껴 보니 따뜻하긴 했지만 돌려주기 위해 다시 만나야 할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한 그녀 심사를 눈치 챘는지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라고 준석이 말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처지에 함부로 베푸는 남자의 친절은, 무뚝뚝한 남자들의 침묵 못지않게 그녀로서는 불편했다.


①과②가 모두 준석이 그녀에게 장갑을 빌려 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읽어 보면 두 사람의 정서와 관계가 판이하다. 줄거리나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물, 장갑, 빌려 주는 행위 모두가 경험하지 않은 일이어도 무방하다. 

이러한 설정이 주제에 알맞으면 얼마든지 거기에 맞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상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위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기보다 허구이지만, 그러나 주제에 걸맞은 허구여서 한결 리얼하게 읽힌다.  166-168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교정 작업은 크게 세 가지뿐이다.

① 빼기     ② 보태기     ③ 다듬기

① 주제에 걸맞지 않거나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불필요한 군더더기 부분을 제거하고, ② 너무 생략되었거나 보충해야 할 내용을 더해 준 다음, ③ 표현이나 내용이 애매하거나 부적절할 경우 명료하고 정확하게 다듬는다. 이러한 교정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가 바로 '일상언어를 출판언어로 옮겨 놓기'(구어체를 문어채로 옮겨 놓기)라는 사실.


이제까지 지적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상 수다 수준의 문장을 구사하면 애매하거나 과장되게 느껴지고 독자들은 화자에 대한 신뢰감을 잃는다.

둘째,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즐겨 사용하는 간투사, 관용구, 관습어, 상투적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의미의 명료성과 진실성이 떨어지면서 효율적 의미 전달도 불가능해지며 독자들은 긴장감을 잃는다.

셋째, 아무렇게나 대충 넘어가 버리면 그만큼 의미가 불충분해지고 독다들 역시 초점 흐린 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듯이 읽게 된다.

넷째,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문장은 그만큼 거칠어지거나 꼬이거나 불필요하게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다.

다섯째,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언어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면, 언어 문장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답례로서 보다 명확하고 풍요로운 형상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여섯째,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경험과 기억을 재편집하고 허구화해야만 리얼리티가 더 강렬해진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상상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을 오로지 언어를 통해 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애써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 쓰고자 한 경허모가 상상을, 언어가 보다 명료하고 정확한 내용으로 허구화하여 떠올리도록 도와준다. 글쓰기는 이처럼 인간과 언어의 상호협력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글을 쓰기 전에 떠올린 내용보다 글을 쓰고 난 뒤의 내용이 한결 명징하고 풍요로워진다. 심지어는 이러한 글쓰기 과정을 통해 처음 떠올린 것과는 전혀 판이하게 다른, 그렇지만 한결 더 나은 사유나 상상이 가능해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내가 언어라는 도구를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라기보다, 언어를 최대한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와 내가 함께 서로를 돕는 평등한 협력의 과정이다. 땅에 삽질할 때조차 삽의 생김새와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힘만 들고 아무런 효과도 발생하지 않듯, 글쓴이는 언어의 생김새와 특성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수소와 산소의 결합이 물이라고 하는 독특한 물질을 만들어 내듯이, 단지 문장과 문장의 연쇄가 아니라 결합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감동과 의미가 담겨 있는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168-169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작가가 표현한 문장, 즉 독자가 읽은 문장, 그리고 독자가 해석한 내용 사이에느 ㄴ언제나 틈이 있다. 따라서 겉멋을 부리기보다는 먼저 정확하고 세밀한 서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생각과 문장이 합치되어야 한다. 자신이 의도한 내용과 독자가 읽게 될 내용이 일치하도록 글을 써야 한다. 적어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자신이 언어로 표현한 내용'은 같아야 한다.  173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원고지에 표현된 내용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 입장에서, 표현된 문장의 의미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 사건, 인물 등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동화되어야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의에 충실할 수 있다.  177


작가는 결코 어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글을 쓸 수가 없다. 미리 객괒적 거리를 두게 되면 가리감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 판단으로 읽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언제나 일정한 각도와 방향을 갖고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이나 논설, 과학 논문조차 마찬가지다.

모든 글은 일정한 초점과 논의 방향을 전제해야 비로소 전개가 가능해진다. 문학작품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178-179



<보기 40>

ⓐ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쭉쭉 빵빵해. 세다가 돈도 꽤 잘 벌어.

ⓑ 그녀는 어디를 가든 주변의 이목을 끌 만큼 아름다운 편이다. 동네 슈퍼에 잠깐 나온 듯한 허름하고 편한 평상복 차림을 즐겨 입지만 그러한 차림보차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추지는 못했다. 게다가 취향 때문이라면 모를까, 가격 때문에 쇼핑을 주저하지는 않을 만큼 부유했다. 

ⓒ 아름다운 외모와 넉넉한 경제적 현편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겁부터 내고 두려워하는 그녀의 성격은, 그녀의 행동을 매우 편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처신의 폭이 언제나 제한되면서 업무에 치여 신경질적인 박봉의 샐러리맨보다 더 옹졸한 생각 속에 갇히게 했다.


ⓐ, ⓑ, ⓒ 모두 동일한 인물 '그녀'를 묘사한 문장이다. 전달하는 기본 메시지(예쁜 얼굴, 좋은 몸매, 부유한 경제 사정)는 동일하다. 이렇듯 주인공은 동일한데, 주인공을 서술하는 방식, 주인공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즉 화자는 서로 다르다. 특히 ⓒ에서는 아예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 외모보다도 성격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는 단순하게 즉물적으로 외모만 중시하는 화자, ⓑ는 외모를 중시하되 정확한 관찰력을 갖춘 화자, ⓒ는 외모보다도 외모와 성격 간의 간극을 문제 삼는 화자이다. 결국 ⓐ, ⓑ, ⓒ 모두 주인공 모습과 동시에 화자의 정체성 역시도 드러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자(話者)는 이렇듯 말하는 방식으로서 존재한다. 마치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더라도, 아니 그런 사람에 대해 말할 때일수록 사려 깊게 말을 하면, 도리어 말하는 그 사람의 품위가 달라 보이듯, 이야기 주인공과 이야기 화자는 명백하게 구분된다. 

이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일테면 ①"나는 막내여서 장난기가 많아"라고 말한 경우와 ②"나는 막내로 자란 때문인지 장난기가 많은 편이야"라고 말하는 경우, ③"평소 막내는 장난기가 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 단지 막내여서 저럴까 싶을 만큼 나의 장난기는 유다른 편이지"라고 말한 경우, 화자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①의 화자보다는 ②의 화자가 더 신중하게 사고하는 듯이 읽히고, ③의 화자는 같은 사건을 회고해도 한결 익살스럽게 서술할 듯한 기대감을 준다.

'주인공-되기'는 말 그대로 작가가 주인공 인물에 감정이입 혹은 동일화하여 주인공 특유의 표정, 성격, 행동, 대사 등을 나타내는 경우를 일컫는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같이 주인공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에조차 '주인공-되기'만으로는 글쓰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주인공의 모습, 심리, 행동, 결과 등을 서술하는 화자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주인공 외에 주인공의 모습을 설명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언제나 필요하기 때문에, '주인공-되기'는 언제나 '화자-되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인공-되기'는 '화자-되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떻게 말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경험은 그 경험 내용이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입밖에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83-185



<보기 41>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을 거야!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웃음보다 한숨이 나왔다.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하지만 이내 단단히 결심해야 할 만큼 이미 마음을 빼앗긴 사실 또한 인정해야 했다.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한순간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조소 또한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핸드폰을 내팽개치기는 했지만 행여 손상이 갈까 봐 이불 위에 던지곤 이내 다시 신호를 제대로 받는지 확인부터 해보았다.

ⓔ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한순간도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않았을뿐더러, 혹시나 핸드폰이 꺼져 있는 것은 아닐까 수시로 폴더를 열어 확인해 보앗다. 그러곤 그때마다 어디 한번 연락해 봐라, 내가 받나! 하고 투덜거렸지만, 다만 어째 한번 연락도 오지 않나, 하고 속상해서 내보는 신경질일 뿐이었다.


ⓐ의 문장은 단호한 결심이 주인공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므로, '주인공-되기'라 할 만하다. 그에 비해 ⓑ는 주인공의 결심 및 결심과는 상이한 심리상태가 함께 제시되고 있는 '주인공-되기'이고 ⓒ는 주인공의 결심 및 심리, 자기 성찰까지 진행하고 있어서 더욱 강렬한 '주인공-되기'이지만, 어쨌든 ⓑ와ⓒ 모두 특정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화자-되기'가 함께 수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 및 화자 되기'로 볼 수 있다.

ⓓ는 주인공의 결심 및 심리, 행동 등을 자세히 제시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모순된 처신을 관찰하는 화자의 시점이 한결 강하게 제시된다는 점에서 ⓑ나 ⓒ보다 한결 강하게 '주인공 및 화자 되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시 한결 강한 '주인공 및 화자 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일정한 문구를 반복하는 화자 특유의 어투와 리듬감이 한결 강하게 인물의 행동을 희화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화자-되기'가 앞서의 경우들보다 한결 더 강화된 문장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인공-되기'와 '화자-되기'가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 글쓰기는 가능해진다. 글쓰기는 언제나 '주인공 및 화자 되기'인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으로 보자면 '주인공-되기', '주인공 및 화자 되기'로 나뉠 수 있다. 적어도 글쓰는 창작자의 내면적 경험 층위에서는 세 가지의 구분이 가능하다. '주인공-되기'는 하나의 인물이 되는 것이고, '화자-되기'는 그 주인공에 대해 서술하는 관점과 태도이다. 그리고 '주인공 및 화자 되기'는 하나의 인물이자 동시에 그에 대한 나름의 인식과 관점을 갖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글쓰기란 마치 삶에서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사는 동시에, 그러한 자신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바람직하고 자유로운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185-186



<보기 42>

ⓐ 배고파 죽겠어.

ⓑ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돌이라도 삼킬 것 같았어.

ⓒ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돌멩이라도 입에 넣고 빨아서 생기는 침이라도 삼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 저 돌멩이 꼭 송편처럼 생겼네.


ⓐ, ⓑ, ⓒ, ⓓ 모두 공복 상태를 전달하고 있다. 네 경우 모두 허기진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의 경우 사실 전달만 행해지고 있으며, 그에비해 ⓑ는 돌이라도 삼킬 것만 같은 과장된 심정을 통해 보다 강렬하게 공복감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라도 삼킬 것 같다'는 비유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다소 상투적인 비유에 속한다. 따라서 강도가 다소 상쇄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표현보다는 ⓒ처럼 보다 참신하게 서술하는 것이 한결 효과적이다.

반면 ⓓ는 단순한 비유에 불과하지만 돌멩이조차 먹을 것으로만 보이는 심경의 전달을 통해 공복감을 한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현재 시제로만 보면, 의당 ⓓ의 인물이 가장 강렬한 공복감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 이는 ⓐ나 ⓑ와 달리 ⓓ의 문장이 공복감이 심한 사람이나 느끼는 환각 상태의 말투나 감성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다는 ⓑ가. ⓑ보다는 ⓒ와 ⓓ가 더욱 강도 높은 '주인공-되기'를 성취하고 있다. ⓒ는 '주인공 및 화자 되기'에 성공하고 있고, ⓓ는 강렬하게 '주인공-되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191


'주인공 및 화자 되기'를 성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문제나 사건에 대해 남다르게 깊이 고민하는 자기만의 시점(視點)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고민하고 있고, 절실히 겪은 소재나 이야기, 자신에게 가장 절박하고 절급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 방법밖에 없다. 스스로의 싸움에 정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205


대중들에 의해 자주 사용되는 관습어와 상투구일수록 본연의 뜻에서 한참이나 멀어지고 오염된 언어인 것이다. 언어 의미의 오염은 관습어나 관용어, 상투구뿐 아니라 과다하게 사용되는 언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어휘일수록 도리어 가장 모호해지고 식상해지면서 오염된 언어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언어가 자신 본래의 순연한 뜻을 잃고 너무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모호해지고 무디어지고 애매해지는 것, 그리하여 본연의 의미망이 너무 광범위해지는 현상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언어의 타락'이라 일컬을 만하다.  209


관습어, 관용어, 상투구, 유행어, 사용빈도수가 높은 어휘 등은 모두 오염과 타락이 심한 어휘들이어서, 바람직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것들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사람들을 일상에서 언어를 쉽고 간소하고 편리하게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의당 이러한 시대적 통념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자기만의 개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먼저 위에서 언급한 일상인들의 언어습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10


글쓰기란, '기성질서, 기성언어, 인상언어'와는 또 다르게 감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언어작업이어서, 내적 치유의 작업이자 사회운동의 전위가 된다. 또한 다르게 언어행위를 한다는 것은, 우선 기성 문법을 충분히 익히면서, 동시에 더듬거리듯 비틀고 분절하고 절합하여 새로운 변형문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므로, 단순한 분리와 대립을 너머 포월과 탈주까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기성질서에 익숙한 대다수 사람들 혹은 기성질서를 답습해 온 자신의 대다수 시간들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글쓰기는 적극적으로 소수자가 되는 길이고, 창작언어로서 소수언어를 구사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234-235


우리는 온전히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성질서 혹은 주류문법이 일정 방향으로 의미화하고 계열화한 코드들을 따라 살아간다. 우리의 평소 직업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뿐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 모두가, 대개 이들 기성코드에 속수무책으로 포획되기 일쑤다. 그러면서 우리의 언어 역시 일상적, 상투적, 감상적, 통념적, 관습적, 기성적 언어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질적 정직과 명철한 성찰과 지금 여기의 주시를 통해 창출해낸, 낯설지만 새로운, 보다 정확하고 풍요로운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통해, 새로운 언어문법을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창조적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동일한 언어권 안에서, 심지어 동일한 자신의 언어 안에서, 마치 이방인의 외국어같이 더듬거려 가며 즐거이 새로운 감각, 새로운 사유, 새로운 상상의 언어문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창조가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소수자가 되고 우리의 문장은 소수언어가 된다. 이때 소수 / 다수의 구분은, 양적 가늠이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 의한 구분이다.

양적 소수자(여성, 장애인, 소수인종, 빈민층) 중에도 다수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또한 양적으로 소수만 사용하는 언어(사투리, 은어, 특정집단이나 소수민족 언어)라고 해서 소수언어인 것은 아니다. 소수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기성언어와 주류문법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가로지르거나 비틀거나 전복하면서 새롭게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낯설고도 새로운 감각, 사유, 상상의 문장 즉 창작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영역에 있어서는, 스스로 창작언어를 구사할 때만이 진정으로 소수자이다.

이렇게 창작언어를 구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력한 내적 실질적 정직을 통한 끝없는 자기 감각과 인식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약자들의 모양새가 아니라, 도리어 강자의 특징이다. 니체의 구분처럼, 고귀하고 자유로운 자로서, 무엇보다 스스로 가치를 결정하는 자이며, 가치를 창조하는 자로서의 강자다.

'고귀한 부류의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그에게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다"라고 판단한다. 그는 대체로 자신을 사물에 처음으로 영예를 부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276쪽)  236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상적, 도식적, 윤리적, 일상적, 상투적,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비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 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 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이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 어지러울난, 마당장)의 언어다.  238


플롯에 대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설명은 포스터가 밝힌 스토리와 플롯의 비교구절이다. 그의 <소설의 이해>를 보면

''스토리'는 '시간의 연속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

 '플롯'은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서술''

이 구절 때문에 흔히들 플롯을 '인과관계를 짜는 것'이라 오해하며, 매우 거친 인과관계를 설정해 놓곤 한다. 가령, 어렸을 때 술꾼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의 성격이 난폭하다고 설명을 한다거나, 고생하며 자라서 성격이 어둡다거나 하는 설명들을 단다. 하지만 이 같은 설정은 지나치게 기계론적이어서 언제나 역설적이며 역동적 존재인 인간을 설명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술꾼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 역시 술꾼일수도 있지만, 도리어 술을 삼갈 수도 있다. 고생하며 자라서 성격이 어두울 수도 있지만 적극적일 수도 있다. 플롯에서 인과란 기계적 인과론과는 무관하며, 차라리 내용 및 주제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플롯을 설명한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인용해 보자.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스토리이다.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시간의 연속이 보존되고 있지만 인과감이 거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왕비가 죽었다.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신비를 안고 있는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이다.'

작가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보다, '신비를 안고 있는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 부분이다. 시간 순서의 '스토리'를 인과관계로 연결시켜 놓으면 '플롯'이 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발전이 가능한 형식의 플롯'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발전 가능한 형식으로서의 플롯이다.  


ⓐ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이야기)

ⓑ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플롯)

ⓒ 왕비가 죽었다.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발전 가능한 형식의 플롯)

ⓐ는 다만 사건이 일어난 것을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다. 그레 비해 ⓑ는 두 사건에 인과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에 이르면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발혀졌다' 식의 복문구조를 첨가함으로써 의문과 미스터리를 암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비를 안은 보다 발전한 형식의 플롯'이 되었다. 이처럼 '스토리'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는 방법이라면, '발달된 형식으로서의 플롯'은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주제에 부합하는 사건 내용 중심으로 짜임새 있게 서술하는 방식이다.

포스터의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시의 <시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학>에서 플롯에 대해 언급한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61>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6장)... 전체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 있다. 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반대로 종말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것 다음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체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기 때문이다. (7장) ... 플롯의 통일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한 사람을 취급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건이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데 그중에는 통일을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행동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통일된 행동을 이룰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 그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를 쓸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디세우스가 파르나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狂症 미칠광 병증세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이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디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8장) ... 단순한 플롯과 행동 중에서 최악의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삽화들이 상호간에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관계도 없이 잇달아 일어날 때, 이를 삽화적 플롯이라고 부른다. (9장) ... 행동이 앞서 규정한 바와 같이, 연속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전이나 발견 없이 이루어질 때 나는 이를 단순한 행동이라 부르고,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전이나 발견, 또는 이 양자를 다 수반하여 이루어질 때 복잡한 행동이라 부른다. 그런데 급전이나 발견은 플롯의 구성 그 자체로부터 발생해야만 하므로, 선행 사건의 필연적 또는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과,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11장)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강조한 부분에서 보듯, 플롯은 단순히 사건들 간 인과성으로 인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 개연성, 통일성 등을 통해 구성하는 것이다. 스토리가 플롯이 되려면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기보다는 인과적으로 구성하되, 단순히 '원인+결과'의 논리적 인과보다는 하나의 인관된 통일성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즉 유기적 짜임새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44-247



실제로 일어난 일인 듯이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을 수는 없다. 재현은 불가능하다. 다만 구현(具顯 갖출구 나타날현)을 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주제에 맞게끔 그려 내는 구현적 글쓰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247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글감이 되겠지만. 그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이 없다면 글은 기껏해야 기록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만 있다면 그는 그에 걸맞은 경험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 경험 중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실제 경험만이 글감으로 사용되지만, 주제 중심으로 글을 쓴느 사람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 외에 주변 사람들의 경험이나 책이나 텔레빚너에서 접한 경험까지도, 그리고 상상해 본 경험까지도 주제에 걸맞기만 하면 변용해서 사용할 수가 있기에 무한한 글감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254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이야기 연쇄를 '환유'라 하고, 의미 혹은 주제가 중첩되어 있는 경우를 '은유'라고 일컫는다. 기호학적 관점으로 볼 때 문학작품이란 환유의 연쇄축과 은유의 중첩축이 각각 씨줄과 날줄로 엮여져 있는 모양에 불과하다.  254-255



작품 속에서 은유의 축은 동일한 의미군에 속하는 내용들이 반복, 변주 되면서 중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렇듯 반복되어 나타나는 동일한 또는 유사한 낱말, 문구, 내용으로서 작품에 쓰인 최소 의미 단위를 일컬어 모티프(motif)라 한다. 주제와 관련되어 작품 속에 처음 나타나는 사건의 시발 부분을 '발단 모티프'라 정의할 수 있다.  259-260


플롯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이며, 문장은 플롯으 ㄹ통해 사건의 줄거리를 쫓아가는 환유와 사건의 의미가 반복, 변주되는 은유을 날줄과 씨줄로 삼아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의 분석 과정이 창작 방법일 수는 없다. 작품을 환유와 은유로 나누어 분석하는 방법은 작가의 창작 방법이 아니라, 독자 혹은 비평가의 감상 및 분석 방법이다.  261


친구들 세 명이 동해로 여행간 이야기를 글로 쓴다고 치자.

'우리 셋은 동해로 갔다'라고 쓸 수 있다. '희영과 준석, 그리고 나는 동해로 갔다'라고 쓸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준석 그리고 희영과 함께, 나는 동해로 갔다'라고 쓸 수도 있다. 또 얼마든지 다른 서서루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실로 무수한 서술 방식 주에서 단 하나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데, 이 하나의 방식이란 결국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주제에 걸맞은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문제의식, 강렬한 주제의식 없이는 첫 문장조차 쓸 수 없는 것이다.  262


창작 과정과 관련해서는 차라리 '구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문제의식'과 '정밀한 언어기술 능력', 이 두가지 요소가 필수적이고, 두 가지 요소만 갖추면 충분하다...

머리로 대충의 얼개를 짤 수는 있어도 어휘, 어순, 길이 등등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선택할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전 감각을 동원하여 온몸으로, 온몸으로, 온몸으로, 자신의 중심 혹은 바깥까지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263



창작을 하려면 마땅히 새로운 미지를 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창작은 이제까지는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므로 마땅히 자기만의 개성, 실험, 모험을 추구하는 자세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유롭다.  266


글쓰기의 발원지는 침묵이다. 다만 삶을 살아가는 중에, 고요히 침묵하는주엥, 그렇다고 해서 다만 말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차차 수많은 말이 마음속에서 웅성거리며 쌓여 들끓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언어는 태어난다. 문득 무엇인가 쓰고 싶어지는 욕망이 생겨난다. 이렇게 생겨나는 글쓰기의 가장 우선적인 형태는 낙서나 메모다. 

낙서나 메모는 한 개 이상의 단어로 가능하다.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의당 낙서와 메모로부터 출발한다. 아무렇게나 적어도 되는 낙서는, 아무렇게나 적어도 되기 때문에 대개 화장실 낙서처럼 비속하고 조잡하지만, 그만큼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이고, 솔직해지면서 자기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이질적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단초이기도 하다.

거기에 비해 메모는 우리 의식에서 끝없이 피어오르는 수많은 망상 중에서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나 아이디어들을 적어 두는 글쓰기이다. 인간의 의식은 끝없이 망상을 펼친다. 그리고 거기에 집착한다. 망상 주엥는 근거 없는 연상이어서 참으로 망상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멋진 사유나 영감으로 치닫는 아이디어도 있다. "쉴 새 없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망상의 새를 막을 수 는 없지만 그 새가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메모와 글쓰기를 통해 때로 멋진 새를 잡을 수도 있다!

낙서와 메모, 더 나아가 낙서 같은 메모, 메모 같은 낙서를 평소 꾸준히 활용해야 한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려면, 그 어떤 금기도 깨고 낙서로 마구 배설을 해보거나, 메모로써 목표를 분명하게 해두거나, 아이디어나 친구의 재치 있는 농담, 문화 정보 등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두는 것에서부터 먼저 부지런해야 한다.  269


우리가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넘어가는 문제들, 대충 뭉뚱그려 생각하는 문제들, 혹은 순간적인 불편, 짜증, 고통 정도로만 여기며 스쳐 지나가는 문제들, 혹은 너무 두렵거나 난해하거나 복잡해서 마주하지 않던 문제들을 언어로 촘촘히 풀어헤침으로써, 그 문제들이나 감정들 속에 숨어 있던 실질적 진실을 발견하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이 '산문'이고, 이러한 행위 정신을 '산문정신'이라 부를 수 있다.  277


① 산문정신은 이런저런 일상의 느낌을 보다 정직하게, 보다 또렷하게, 보다 깊이있게, 보다 다양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통념이나 관습과는 또 다른 여러 이질적인 느낌들을 감지하는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무엇이든 매력적인 글감이 될 수 있다...

평소 일반인들이 통념적, 관습적 차원에서 일상을 뭉뚱그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모든 것을 마치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실질적 차원에서 정직하게 들여다보려 애쓰는 사람이며, 이러한 실질적 직시를 통해 통념적으로 여겨 왔던 일상이나 관점과는 다른 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278-279


② 실질적 정직으로서의 산문정신은, 근대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시하는 글쓰기 자세다.

근대란 신(神)이나 도리[道]와 같은 중세의 보편원리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주체적 관점에서 세상을 직시하려는 노력이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내가 명증적으로 참되다고 안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조심하여 피할 것,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명석하게 또 아주 판명(判明 판단할판 밝을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 판단 속에 넣지 않을 것.

둘째는 내가 검토할 난제의 하나하나를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소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는 내 생각들을 순서를 따라 이끌어 나아가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꼐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위로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들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자연대로는 피차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 간에도 순서가 있는 듯이 단정하고 나아갈 것.

그리고 끝으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 낱매 들거)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 통할통 볼관)을 어디서나 행할 것.

기하학자들이 그들의 가장 어려운 증명에 도달하기 위하여 늘 사용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저 추리의 긴 연쇄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상상하는 기회를 주엇다. 즉,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이와 똑같은 모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릭 참이 아닌 어느 것도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에서 연역할 때에 언제나 올바른 순서를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멀다 해도 마침내 도달하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리 숨겨 있다 해도 찾아낼 수 없는 것이 없다는것. 그리고 나는 어느 것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찾는 데 있어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방법서설> 1983 20쪽)  279-280


산문정신은 정직하게, 혹은 정확하게, 혹은 면밀하게, 혹은 또렷하게, 혹은 진지하게, 혹은 통렬하게 바라보는 글쓰기 방식이다. 이러한 '바라봄'은 의당 관습적, 일상적, 통념적 질서 등과 마찰을 겪기 때문에 갈등을 만들어 내고 문제의식을 만들어 내고 비로소 새로운 주제의식을 만들어 낸다.  283



사생글은 사람이나 사건, 사물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림 그리듯이 쓰는 글을 뜻한다. 주로 처음 글쓰기를 배우는 초등학생들에게 장려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매우 초보적인 습작 훈련 방법이다. 하지만 대상을 눈앞에서 꼼꼼히 바라보며 그림 그리듯이 글을 쓰는 방식은 앞서 언급한 '실질적 정직', '방법적 성찰', '위파사나의 주시'등의 태도와도 맥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사생글은 일반인들도 글감이 막혀 있을 때 연습 삼아 써 볼만하다. 억지로라도, 사생을 하다 보면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장면이나 문장을 발견하기도 하고, 막혀 버렸던 글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매일 일정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싶은 학생이나 글감이 떨어져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284


사생글은 대상을 면밀하게 주시하는 습관을 키우는 동시에, 새롭게 인식하는 문장 혹은 글감을 찾게 해준다.  287



산문이란, 일상 너머 진실을 주시, 성찰하여 풀어쓰는 글이다. 단지 운문에 반하는 개념이어서, 따로 익혀야 할 장르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통념적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을 담은 문장이 펼쳐지는 순간, 산문쓰기는 가능해진다.  292



산문은 면밀하게 풀었는 작업이므로 우선은 무엇보다 문장이 정확해야 하고 전하고자 하는 정보나 의미를 명료하게 담고 있어야 한다...

산문 문장은 기존 인식과는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기존 인식을 해체, 분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낯설게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으로 비유와 서술을 들 수 있다. 비유는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을 낯설고 이질적인 비교를 통해 명징하게 서술하는 방식이다.  321


비유는 실질적 느낌을 명징한 이미지로 전달할 때 효과적이다. 압축적이어서 시적 묘사에 즐겨 사용된다. 반면에 대상을 그대로 풀어쓸 때는 말 그대로, '그대로 풀어서 서술'해야 하는데, 무작정 서술하기만 할 경우, 자칫 문장이 늘어지면서 산만해질 우려가 있다. 이때는 대구 및 대구의 변조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보기 82> 대구의 일례들

ⓐ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희다.

ⓑ 하늘은 대숲 위로 더욱 높고 푸른데, 강물은 하늘 속 구름을 받아 더욱 깊고 푸르다.

ⓒ 이마에 닿는 볕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따뜻한데, 어개로 파고드는 바람은 팔짱을 끼며 움츠리고 싶을 만큼 쌀쌀했다.

ⓓ 그 도서관엔 비록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없었지만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길 편안함이 있었다.

ⓔ 선한 행위란 승화된 나쁜 행위이며, 나쁜 행위란 다듬어지지 않고 어리석은 선한 행위이다.


인식 대상을 둘 이상으로 나누고 그들의 공통저모가 차이점을 비교하듯이 서술하는 문장 방식은, 풀어헤치면서도 일관되게 엮어 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 방식일 것이다. 이러한 대구 문장 혹은 분석 인식은 사물을 보다 촘촘히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게끔 해주며, 대상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고 복수적으로 바라보게끔 해준다.  324



단락 = 주제문장 + 구체적 뒷받침문장

단락의 단위는 주제다. 하나의 단락엔 하나의 주제가 담겨야 효율적이며, 특히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문장들이 반드시 보태져야 한다.  327


뒷받침문장은 구체적인 관찰, 일례 제시, 에피소드와 사건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질적으로 주시하지 않는 한, 만들어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꾸로 실질적 정직이 자세로 주시하는 한 자연스럽게 덧보태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329


마치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만 선물만으로 자기 진심을 전달해야 할 경우와 같다. 상대방은 선물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선물 고르기와 포자에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글 역시도 그 자체로 완결되어야 한다. 내용 자체로서 유기적 완결미를 이루면 좋은데, 이것이 용이하지 않을 때 글을 완결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장르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글쓰기는 각 장르에 맞춰 일정한 규칙이 암암리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장르규칙은 매듭을 깨끗이 할 수 있는 포장기술과 같아서, 글쓰기를 한결 쉽게 해준다. 

르포나 기사 같은 기록문일 경우 기본적인 장르규칙은 육하원칙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하지만 단지 기록 이상의 의미를 담은 생활글을 쓰고자 할때는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 양식을 차용하는 것이 알맞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살펴보면 수많은 인연과 관점에 따라, 문제의식에 따라, 아주 사소한 물건이나 사건일지라도 언제나 n개의 의미를 띤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한일 곧즉 많을다)이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어떤한 각도에서 얘기해야 할지 언제나 헷갈리고 어지럽기 마련이다.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은 이러한 복잡다단한 일상 상황을 효과적으로 일정하게 분절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먼저 일기문은 시간을 분절한다. 시간을 하루 단위로 분절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기행문은 공간을 분절한다. 공간을 인물의 장소 이동에 맞춰 분절하여 글을 쓴다. 서간문은 인간에 의해 분절된다. 수신자, 발신자의 성격과 관계에 따라 다룰 내용을 가늠한다.


<보기 90>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의 장르규칙

ⓐ 일기문(시간의 흐름에 따라)

  ① 시작 : 오늘에 대한 정보들(날씨, 분위기, 특징, 전날과 비교등)

  ② 중간 : 오늘의 핵심 사건(오늘 있었던 가장 핵심 사건들의 계열화)

  ③ 끝 : 오늘의 의미(오늘 사건의 의미 및 내일에 대한 결심등)


ⓑ 기행문(공간의 이동에 따라)

  ① 시작 : 공간 이동의 동기, 사연, 기대

  ② 중간 : 장소 이동에 따른 정보, 관찰, 사건, 느낌, 회상

  ③ 끝 : 공간 이동이 끝나고 남는 느낌, 반성, 또 다른 계획


ⓒ 서간문(인간 - 수신자와 발신자 - 에 따라)

  ① 시작 : 수신자에 대한 인사, 회고, 안부, 발신자의 근황

  ② 중간 : 수신자와 발신자의 관계, 정보, 갈등, 용건 등

  ③ 끝 : 수신자에 대한 인사, 기대, 혹은 첨언 등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 양식은 우리의 생활을 분절하여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내적 장르라 할 수 있다. 평소 일기나 편지는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지만, 생활 수단으로서의 글쓰기와 무관하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사건 내용을 적절히 부각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응용해도 좋을 글쓰기 양식이다.  333-334



서사적 글쓰기는 생활글과 달리 단지 생활 내용에 한정을 두지 않고, 자아와 세계 간의 대립, 갈등을 다루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341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이 각각 '하루치의 시간', '한 번의 여행', '한 명의 수신자'에게 한정하여 서술하는 반면, 서사적 글쓰기의 구성 단위는 대립, 갈등이어서, 대립, 갈등의 길이에 따라 얼마든지 더 많은 시간, 공간, 인물을 다룰 수 있다. 다루고자 하는 하나의 대립, 갈등이 아직 끝나지 않는 한, 시공간과 인물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342


표면 사건보다 실질적으로 겪은 내적 갈등이 더 강할 때, 경험 내용보다 실질적 갈등의 깊이와 폭이 더 강하게 들끓을 때, 경험한 사실보다 내적 주제의식이 더 강렬해질 때, 우리는 경험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허구적 장치를 본능적으로 동원하여 보다 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이 지점부터 사실이나 경험의 기록을 넘어서는, 문제, 갈등, 주제에 걸맞은 허구적 글쓰기, 서사적 창작이 가능해진다.  343



에필로그 - 본질적 감수성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만 적극적인 좌충우돌의 방황과 온몸으로으 탐색을 멈추지 말아야 하며, 또한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좋은 글이 쉽게 나와 주지는 않지만, 또 다시 열심히 읽고, 계속해서 써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한편으로 두루 학인들을 만나 배우고, 격정적 열애나 혼자만의 칩거를 해보기도 하고, 혹은 힘겹고 고된 경험을 해보거나 현실참여를 하는 등과 같은, 글쓰기 훈련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정석에 가까운 방법들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강도 높은 애정을 꾸준히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363


문제는 천천히 운전하는 것과 여유있게 운전하는 것, 신속하게 운전하는 것과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 열심히 읽는 것과 초조하게 읽는 것, 깐깐하게 공부하는 것과 소심하게 공부하는 것. 치열하게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 쓰는 것,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고지식하게 고민하는 것,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과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 게으르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과 여유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을 나누어 분별하기가 좀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부를호 숨들이쉴흡 갈지 사이간)에 생사가 갈린다고 했다. 숨 한 번 돌리자 사랑이 욕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욕심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숨 한번 돌리는 사이에 무욕이 게으름으로 변하느낙 하면 순정이 맹목으로 변하기도 한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참으로 자주, '열심히'와 '조급히'를 혼동하고, '최선을 다해'와 '욕심을 다해'를 혼동한다. '자기만의 생각'과 '자기만의 고집'을 혼동하고 '독창적인 글쓰기'와 '독선적인 글쓰기'를 혼동한다. '고독한 창작생활'과 '고립된 창작생활'을 혼동한다.  365


좋은 글은 좋은 글대로 기쁘지만, 그렇지 못한 글은 그렇지 못한 대로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거울이다. 글쓴이의 느낌만 좋으면 그만인 상태에서 읽는 이의 공감 상태로 옮겨 가는 과정이 글쓰기지만, 읽는 이가 공감하든 않든 정직하고 치열한 글쓰기는 글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 좋은 글일 수밖에 없다.

자기 글에 대해 일희일비할 것도 없다. 아니 얼마든지 일희일비해도 좋다. 적극적으로 일희일비할수록 좋고, 스스로 더욱 강렬하게 일희일비하고 싶어진다.  367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소유에 갇히지 않고, 누구나 공감하고 공명하게 만드는, 무한히 열린 힘이 들어 있다. 

이러한 힘이 내재하지 않는 글쓰기는 죽은 글쓰기다. 단지 사적인 이야기여서도 곤란하고, 일반진리를 떠벌이는 글 또한 곤란하다. 사사로운 욕심이 있어야 하지만, 마침내는 누구나 공감하는 열린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또한 사사로운 개인으로 출발하여 누구나 공감하고 공명하는 열린 개인으로 접속하는 과정이 틀림없다.  369


다소 심하게 억압되거나 투사되거나 고착된 사람에게는 다독, 다작, 다상량의 글쓰기 공부가 소용없다. 아무리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해도, 그러한 공부 과정이 자기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의식이나 욕심만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유, 고착되어 버린다. 안타깝게도(아니, 다행스럽게도) 이런 폐쇄적 욕심에 갇힌 글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이러한 왜곡과 고착은, 자의식이나 욕심이 유달리 심한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가 잇지만, 나름의 왜곡과 고착으로 인해 책을 읽어도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고, 글을 써도 쓰고 싶은 그대로 쓰지를 못하고, 생각을 해도 겪은 그대로 생각하지를 못한다.  370


이제라도 시작하는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행동이기에, 행동은 또한 언제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미래이기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혼자 외로이 여행을 떠나고, 어제와는 달리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고, 미칠 듯이 자신을 볶아 대고, 술에 만취해서 자기안의 또 다른 자신을 끄집어내 보는, 일체의 행동들이 즐거울 수밖에 없고 짜릿할 수밖에 없다. 마치 최선의 지름길을 알고 시작하는 탐험가처럼, 자기 행동이 가장 빠른 길임을 확신하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혹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 지금, 여기 현실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현실의 무언가가 결핍된 듯이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런 점엣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힘이 잉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후회와 아쉽움은, 욕망과 희망의 첫 느낌일 뿐 절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383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384



Posted by WN1
,



돈 버는 것을 최고로 치는 세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건만, 기죽지 않고 책 읽으며 당당하게 살아온 삶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5

책을 읽어 오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개종하여 채그이 세계에 입문할 터입니다. 이토록 지극하고 그윽한, 책에 대한 찬양을 듣고 오찌 책을 읽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 남에게 내세울 만큼 읽지 못했다 자책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훌륭한 내비게애션이 될 터입니다. 책을 정복하는 흥미롭고 다양한 길을 친절하게 일러주니 말입니다.  6

우리 사회가 책 읽는 공동체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진짜 책읽기의 달인입니다.  7



책머리에

포드주의 체제에서는 표준화된 공부가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탈 포드주의 시대에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가 시켜 주는 표준화된 공부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독서인 셈이다.  13

<88만원 세대>가 변화된 경제체제의 실체를 드러내고 나서 독서의 중요성을 말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서둘러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에서 탈출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서 그러하다.  15

'사오정' 신세.. 유쾌한 말은 아니지만, 이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읽는 책이 그저 재미잇고 감동적이고 도움 되고 실용적이면 소용없다. 은밀히, 그러나 거대하게 변화하는 세계를 꿰뚫어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귀띔해 주는 책을 읽어야 한다. 바른 길이 결국 지름길이다. 

에둘러 가는 듯싶지만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17-18


누가 감히 책을 속(俗 풍속 속)된 것이라 말하는가. 책은 우리를 성(聖 성스러울 성)의 세계로 이끄는 전령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행위는 기도하는 것과 같을지니, 보라, 한 명민한 화가는 책 읽는 소녀의 모습을 이토록 경건하게 그려내지 않았던가. 묵상하며 책 읽는 자, 어린아이처럼 책 읽는 자. 

순결한 마음으로 책 읽는 자. 홀연히 나타난 참되고 거룩한 세계를 볼지니!





'15분 토막 독서', 직장인 호모 부커스의 책읽기 - 안광복

나에게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생활이 허락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일은 더 하고 싶은 법, 책보고싶은 욕망은 이내 틈새를 찾아냈다. 지하철에서 


책읽기는 말라가는 영혼을 위해 내가 찾았던 최초의 해법이다.

자기관리 잘하는 이들에게는 억지가 없다. 그들은 자기 마음의 결을 따라갈 줄 알기 때문이다. 밀어붙이지 말고 가슴이 원하는 대로하라.  23



책 읽는 자유에 빠져 - 이종환

나는 '나만의 철학을 갖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36

철학 없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책에는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타인의 생각들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에 융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철학이 이루어진다. 나의 주체성이 확고해진다면 더 이상 외부조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37


책, 가장 강력한 호주머니 - 권혜린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절망 때문에 마음이 않아누운 상태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인심이나 사회가 변하는 동안에도 책은 자기의 생각을 담은 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은 믿음을 주었다. 책을 읽으며 그렇게 책을 닮은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48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은 홀로 아름답다. 그리고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호주머니에 서로의 손을 넣어 주는 것처럼 참으로 따뜻해 보인다.  50

우리는 물론 계속해서 무언가를 읽고, 말하고, 쓰고 있다. 시험을 통한 평가 방식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이와 같은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성찰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 잡고 있는 실용서와 처세술 책, 논술 교재들은 비슷한 내용을 다른 말로 포장하여 읽는 이에게 떠먹여준다.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않은 채 이 것을 허겁지걱ㅂ 받아먹으면서 무언가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 책을 읽고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법만 달라질 뿐 인격이나 사고 등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나를 성장시키는 책들은 확실하고 단순한 기술로 처세하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복잡하게 고민하면서 어떻게 처세할지 모르도록 만들어 준다. 세부적인 방법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삶을 읽는 것이기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스스로 사고하면서 온전한 내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삶과 책은 결코 동떨어질 수 없다.  51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인데 주머니 속에 넣은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이다. 이는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마천의 <사기> 중 [평원군전]에는 "평원권이 말하기를 모름지기 현사(賢士)가 세상에 처함에는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거소가 같아 곧 그 인격이 알려지게 도니다"라고 나와 있다. 우리 시대의 현사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뚫고 나올 호주머니가 없다면 송곳의 뾰족함도 보지 못할 것이니, 책은 곧 나의 능력과 재주를 발견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책이라는 호주머니를 갖고 있다면 인격과 사고라는 송곳이 뾰족해져 결국 주머니를 뚫고 나의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고 뭉툭한 송곳을 갈면서 힘을 기르면 된다. 아니,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그 힘은 길러질 것이다.  53



책을 펴는 곳에...

스승이 없다 말하지 말라. 책에서 찾으면 많은 스승이 있을 것이다. 벗이 없다 말하지 말라. 조용히 책을 펼치면 그곳에 벗이 있을 것이다. - 이선 <지호집>



책읽기, 세상으로 나가는 길 - 박은희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독서는 그 자체로 이미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공유하면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경험하는 것만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불행한 삶도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이것들을 아우르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즐거움이다.  84-85

교육만큼 훌륭한 훈련도 없다. 습관은 교육에서 비롯된다.

독서가 수단이 되어도 좋은 유일한 경우는 소통을 위한 독서였을 때이다.  87


우물 안 개구리가 드넓은 바다를 꿈꾸다 - 곽동운

독서의 대가들은 독서를 할 때 편견 없이 읽는 듯싶었다. 그들은 책을 읽으며 작자의 의중까지도 읽어 내는 듯싶었다. 책벌레들의 독서습성.  92

모든 것을 담고 있으려면 당연히 아래에 있어야 한다. 

세한고절(歲寒孤節)이나 아취고절(雅趣孤節)이란 말으 되뇌며 위로만 향했던 책읽기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바다에 도달하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하니깐.  94


책은 영향소 - 임진옥

사람에게 필요한 6대 영양소

탄수화물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주로 사람이 필요한 에너지를 내를 데에 쓰이고 간혹 에너지를 내고 남은 것은 몸에 축적된다. 어린 시절부터 접하는 동화책과 위인전, 자서전은 탄수화물과 같다.  96

지방은 탄수화무로가 단백질보다 약 두 배의 열량을 내고 영양을 저장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양소이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은 책에서의 지방이라고 할 수 있다.  97

단백질은 생체를 구성하고 신진대사에 관여한다. 책의 종류 중에서 단백질의 기능을 하는 것은 전공도서이다.  98

물은 우리 몸의 약 70%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다른 영양송에 비해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물을 쉽게 여기듯 신문도 대부분 날짜가 지나면 버려질 종잇조각쯤으로 여긴다. 이런 면에서 신문은 물과 같다.  99

비타민은 지용성 비타민과 수용성 비타민으로 분류되는데, 소량으로 몸의 여러 기능을 조절한다. 쓰이고 남은 비타민은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체외로 배출되기 때문에 한번에 많이 섭취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대신 일정한 양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사전은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

무기질은 종류가 매우 많다. 미량으로도 몸의 생리적 기능에 도움을 주지만, 부족할 때 결핍증이 생긴다. 나는 무기질이 '다양한 독서'의 기능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101

책은 영양소와 같이 각각 꼭 필요한 기능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생계형 책읽기 - 강양구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 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스티븐 킹)  117

생계형 책읽기의 첫번째 원칙은 '다독'이다.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특정 분야의 서지에 일가견이 있는 '고수'를 파악해 두라!

<자유시장의 정치> 이 책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네 나라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형성 과정을 추적, 비교하면서 답을 찾아나간다.

신문, 잡지에 실린 좋은 서평을 활용하라.  118-120

생계형 책읽기의 두번째 원칙은 '잡식'이다. 

미리 책 읽는 순서를 정해 놓고, 가능한 한 그것을 자신에게 강제하라!

어휘력, 문장력을 가르는 데 잘 쓴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한국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다룬 책 중에서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을 만한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은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일촌 관계이다.

알베르트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에서 아르헨티나으 ㅣ작가 에스트라다의 말을 인용해 "책을 읽으며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121-125

생계형 책읽기의 마지막 원칙은 '수다'이다.

책읽기는 책을 덮는 순간이 아니라, 읽었던 것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끝난다.  125



책 읽기는 열매다.

책읽기는 열매다. 한 시인의 말대로 대추 한 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그 안에 태풍, 천둥, 벼락 몇 개 있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하려면 무수한 책읽기를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삶이 어찌 영글 수 있겠는가. 상처받을 적마다 읽어야 한다. 외로워질 때마다 읽어야 한다. 우쭐해지면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책읽기는 빛이다. 영글어지되 홀로 뽐내지 아니하고,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비추려 하기 때문이다. 익어 저절로 빛나는 탐스러운 열매, 그것이 바로 책읽기가 지향하는 바이다. 나를 성숙케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124



생각하고 기록하기

"학자가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생각을 하면 얻어지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게 된다. 또 생각이 있으면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기록을 하면 남게 되고 기록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여 기록하고 또 생각하여 연구를 거듭하면 식견과 사려가 자라나서 언행이 통달하게 되는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식견과 사려가 없어져서 언행이 막히게 되는 것이지, 비록 얻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잃게 되는 것이다." - 윤휴 <백호전서>  131



넘나들기, 혹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감자줄기를 뽑아들다 - 최은희

'어떻게 살아야 하죠?' '어떻게 하면 요리를 잘할 수 있나요?' 역시 모든 '어떻게'에는 고통과 노동이 수반된다. 솔직히 '어떻게 책을 읽으라'는 사용설명서가 존재할 수는 없다. 물론 이미 그 한계를 넘어 본 사람으로서의 생생한 경험담이 있을 뿐이다. 책읽기의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진정으로 책읽기를 즐기기 위해 어떠한 고통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허나 너무 겁먹지는 마시기를, 그 고통을 넘어 책읽기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누릴 벗이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다.  159


호락하지 않은 예비승무원의 호락호락한 책읽기 - 하은혜

UN교육과정 스텝을 지원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때 면접관이셨던 교수님은 "나는 하루에 책을 적어도 한 권 그리고 세 권까지 꼭 읽어요. 그렇다면, 한 달에는 거의 백 권의 책을 읽죠."  192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책 레시피 - 이선영

책읽기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책을 읽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제대로 읽었냐는 것이다  199

독서는 감기약처럼 바로바로 효과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한권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효과적인 독서법을 실천하며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내 눈에서 그 효과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책이 전해 주는 많은 지식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기다려 보자.  207

Posted by WN1
,



언어의 달인 호모 로?스

저자
윤세진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07-05-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삶을 만난 언어, 호모 로퀜스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는 '...
가격비교



인문학 인생 역전 프로젝트 시리즈로.. 앞서 읽었던 호모 코뮤니타스, 호모 에로스호모 쿵푸스호모 루덴스에 이어 읽었다.

고미숙씨의 책에 맛을 느껴 전체를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 아~!! 하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또한 고미숙씨의 글에 늘 나오는 수유너머에 대한 설명도 없이 글을 우직하게 전개해 나간다...
물론 당연한 말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은 고미숙씨의 책보다 더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읽어보면 안다..!!

언어가 춤을 춘다..언어의 달인...이러한 표현보다는 독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대해 설명하는데.. 그의 글에 매료되었다..

'왜?' 와 '어떻게?' 의 해답을 적절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설파해 놓은 내용이 나는 좋았다..
이 시리즈 중 읽은 책중에는 가장 많은 줄을 친것 같다.. 
저자의 글이 좋아.. 저자가 펴낸 또다른 책 예술의 달인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Posted by WN1
,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10-09-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돈과 삶이 함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까?'앎과 삶의...
가격비교


책 내용 기록 보기


일단 저자의 책은 그린비 인문학 프로젝트에서 이미 2권(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을 통해 만나보았다. 
2권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고민하지 않고 읽었다.
개인적인결론을 먼저 말하면 앞의 2권을 통한 기대치가 있어서 였는지는 몰라도 좀 미흡하였다고 생각한다.

호모 코뮤니타스는 경제학 서적이 아니다 그렇기에 방법론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런면에서 좋았다.
하지만 카오스 경제학의 표현을 사용하며 증여에 대해서 강조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한 설명이 있었으면 했다.
돈의 시대에서 돈의 달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는것이 참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명확하게 다양한 측면에서의 제시가 있었으면 했다.(물론 내생각..^^)

저자는 분명 돈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빠지지 않아야 할 함정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 준다.
도한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한다.
개인적으론 위에서 말한것처럼 앞선 2권에비해서는 미흡한 감이 있긴하지만 또다른 생각들을 자극하는 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젊은이 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것, 그리고 돈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에대해서 적절한 지적을 해주는 면에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한방주의, 많을 수록 좋다는 신 자유주의에 대한 정확한 지적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을 자극한다.

Posted by WN1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08-1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연애불능시대,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가격비교


책 내용 보기 클릭


사랑 그리고 연애.. 우리는 늘 이것을 바라고 기다리고 어쩔땐 직접 찾아나서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이것을 상상하기도 한다.

과연 사랑은 무엇이고 연애는 어떻게 하는것일까?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대체로 비슷한 코스에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일까?
사랑은 언제나 변하는 것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을 알게 되었을때 ...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유는 사랑과 연애의 비법을 그리고 기술들을 나열한 책이려니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뒤 우연히도 이 책의 표지를 다시금 보게 되었을때.. '인문학'이란 표현을 보게 되고 이것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놓았다면 어떠한 내용들을 싫었을까 궁금했다. 

목차에서 '에로스는 쿵푸다'란 표현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의 표현이다. 
쿵푸스는 실제로 스스로가 경험하고 겪으면서 체득하는 부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에로스도 그러한 맥락이란건지 궁금했다. 
결국 이 책을 보았다. 위의 호모 쿵푸스의 저자가 이 책을 썼다.

Posted by WN1
,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저자
한경애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07-05-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삶을 만난 놀이, 호모 루덴스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는 '...
가격비교


책 내용 보기 클릭


노는것에 대해서..
우리는 노는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는 것을 싫어 하지 않는다.
일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해야할 것 하지 않고.. 놀라고 하면 너무 좋다.
싫어하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여김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노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떻게 노는 것이 진짜 노는것인지 어떻게 놀아야 하는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마냥 노는것이 좋다.
현재에 사는 우리는 노는 것이 별다른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노래방 pc방 놀이공원 영화 때론 스포츠.. 운동경기 관람.. 
그런데 이러한 것을 노는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어떻게 노는 것이 진정 노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것 말고 다른 것은 없는 것일까?
노는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해 나가다보면 ...우리는 노는 것에 대한 정의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저자는 노는 것에 대해 다시금 고려해 볼 것을 강조한다.
진정 노는것은 무엇인지, 노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Posted by WN1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07-05-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삶을 만난 공부, 호모 쿵푸스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는 '공부...
가격비교


책 내용 보기 클릭


그린비 출판사의 인문학 프로젝트 초창기에 나온 책이다.
일전에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를 재밌고 의미있게 읽었었다.
당시 꼭 인문학 프로젝트 시리즈를 모두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속으로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다른책들에 밀려 있었다.
모처럼 마음먹고 시리즈 몇 권을 들고와서 읽었다.
그중에 한 권인 호모 쿵푸스
저자는 공부에 관한 인문학적인 개념과 자신의 사유에 의한 글들을 적어 놓았는데..
길지 않는 내용이지만 좋은 내용들로 만족스러운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존 공교육의 문제와 사교육의 문제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공부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혀있다.
그 내용들에 꽤나 동조하기도 하고 있다.
저자는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고 표현한다. 
과연 그 의미는 무엇일까...??

Posted by WN1
,
책읽기의달인호모부커스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이권우 (그린비, 2008년)
상세보기


이 책은 꽤나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자 생각을 하였으나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읽고싶은 이유는 책 표지에 '인문학'이라는 표현을 보았기에 그러하였다.
허나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쉽게 손이 가지가 않았다. 인문학이라해서 왠지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 이었는지, 아니면 두껍지 않아서 그리 많은 내용이 없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손이 가지 않았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아무튼 읽어보려는 마음은 있으나 손이 잘 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이권우교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되어 강의 듣기전에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에 읽게 되었다.

표지 날개의 설명부터 인문학적이다.
'책에 눈멀어 책만 읽으며 살아가려는 한심한 영혼.'으로 시작하여 저자의 설명을 간략히 다루는데, 이것도 여느 책과는 좀더 다른 표현과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되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차례가 마음에 든다.
지극히 개인적이긴한데, 내 생각과 비슷하게 주제들이 정해져 있기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내가 인문학을 파고 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왜' 읽어야 하는가? 이고 
                                        2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다.
개인적으로 늘 염두에 두는 것 중의 하나인데, 무엇을 하든지 '왜'해야 하는지를 먼저 알면 동기부여가 되고, 그 다음에 '어떻게'는 방법들을 제시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은 그에 맞게 차례가 구성되어 있다.

첫장부터 인문학적으로 시작한다.. 책읽기와 공자되기..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로 분류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문학과 고전을 섭렵한 사람의 책과, 왠지 아닌것 같은 사람의 책이다.
확실히 인문학 책을 섭렵하고 있는 저자들의 책은 내용의 무게와 생각의 자극이 다름을 느낀다.
물론 예전부터 그래왔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나마 최근들어 인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려 하다보니 그렇게 보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Posted by WN1
,


책 머리에
중요한 건, 자신의 언어를 갖는 것,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7

프롤로그
언어가 사회적이라는 말은, 물질적인 조건과 계층, 그리고 당대 문화의 속도로부터 유리된 채 객관적(과학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언어는 우리의 활동에서 나오고, 우리의 활동에 작용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활동이다.  13
법칙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칙에 어긋나는 모든 것이 예외이고 그른 것이지만, 작동하고 변화하는 실재 언어의 차원에서 보자면 '올바른 언어'와 '순수한 언어'라는 개념이야말로 예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모국어'나 '표준어'는 언어의 절대적인 표준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말하는 주체의 지표가 될 수도 없다. 중요한 거느 어떤 언어냐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공명하느냐이다.  14
책은 책의 속도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책은 다른 매체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매체와 접속하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15
책보다 더 다양한 속도를 품은 세계는 경험한 적이 없다.
매체가 뭐든, 우리를 때리고 찌그로 움직이게 만드는 글들은 우리 안의 언어를 꿈틀거리게 만든다.  16

다른 사람들의 언어활동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나의 언어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질문이다.
마우스를 눌러 오리고 복사하고 붙인 누더기 글 말고, 여러분 안에서 꿈틀거리는 언어, 목구멍 밖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생생한 언어로 구성된, 여러분 자신의 '진심'이 담긴 글을 보고 싶은 맘 간절하다.  16


1부 언어의 삶, 삶의 언어
내가 하는 말, 내가 쓰는 글,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말과 글, 그 모든 것들이 겹치고, 가로지르고,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언어의 여러 지층들. 그 공간을 여행하고 나서 전혀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하고, 새롭고 된 손으로 글을 쓰는 것. 한마디로,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게 이 여행의 목표이다.  21
우리의 언어생활은 다양한 규칙들을 알고 각각의 상황 속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에만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언어활동은 일종의 게임이다. 경우마다 공유하는 언어 규칙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23
똑같은 얘기를 해도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얘기를 하는지에 따라 다른 음색과 어조로 얘기한다.  27

언어는 단지 언어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화되는 상황에서 언제나 우리의 행위를 문제 삼는다.  언어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6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37
따라서 내게 명령하고 나의 행위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강제하는 언어에 얽매여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명령들을 가벼운 것으로 만들고, 명령 자체를 변형시키며,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노래할 수 있는 수 많은 언어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다.  39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따져보면, 어떤 것은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공부해!'를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닮았고, 또 어떤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살 길이다!'라고 외치는 자본주의의 목소리를 닮았다.  47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통해 명령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다양한 규칙들이 작동하는 언어게임의 공간들을 활주할 것인가?"  48
언어를 새롭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수많은 '나들'의 동일성을 보증하는 단 하나의 '나'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51
내 말은 내 것이 아니다. 그 안엔 이미 우리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우리가 경험한 세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여려 개의 목소리를 배우고 담게 된다.  54
실제 언어생황에서 의미와 정의가 일치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의'는 단어에 경계를 부여하는 것이지만, 의미는 경계 밖에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불쑥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64
불교에서의 '선문답(禪問答)'이라는 언어게임은 말 자체에 집착해서는 의미에 닿을 수 없다. 
의미는 말로 완전히 포착될 수 없는, 말을 매개로 하지만 말을 멋어나 있는 것이다.  67
의미는 항상 이쪽과 저쪽의 경계 위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나 갈 수 있다.  73
의미가 생성되는 것은 다양한 우연과 해석이 침입하는 사건들 속에서다. 즉, 언어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다른 요소들과 마주치고 접속될 때 비로소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된다.  77
누군가의 행동을 어떤 식으로도 의미화 할 수 없는 경우, 우리는 대개 그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79
어딘가 깊숙이 숨어 있을 '하나의' 의미를 찾는 언어게임, 모든  행위를 명쾌하게 분류하고 의미화하며, 그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가차 없이 제거해버리는 언어게임은 우리의 사고와 행위를 고착 시킨다.
우리의 언어게임은 이 게이모가 저 게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지배적 의미들을 교란시키고 우리만의 새로운 의미, 짓궂고 가볍지만 진지한, 우리만의 '멋진' 의미들을 생성해낼 수 있는 그런 게임이어야 하지 않을까? 즐겁고 떠들썩한 언어게임!  82
언어 활동은 언어만으로 국한되지 않는 하나의 행위이며, 의미는 이 모든 요소들의 화학반응 속에서 매번 다르게 생산된다. 다시 말해서 의미는 결코 언어기호에 고유한, 숨겨진 '비밀'이 아니다. 의미는 언어 아닌 것들이 언어를 감싸고 그 언어에 침입할 때, 그때 비로소 발생한다.  91
언어를 버려야 한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언어, 하나의 규칙, 하나의 목소리를 버리자는 얘기다.  91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의미를 찾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를 여러 방향으로 튀게 만들 것인가'이다.  92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향해 귀를 열고, 변신을 즐겨라! 고정된 의미를 의심하고, 언어의 명령을 의심하기, 말하지 않는 자들의 언어,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언어를 듣고,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말하기. 내 목소리 안에 세계를 담기! '언어의 탈주'란 그런 의미다. 언어를 버리라는 게 아니라, 언어를 통해 다르게 되라는 것!  95
언어는 단순히 사고의 표현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행위다.  95


2부 국어의 빗장을 열어라!
다수어란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 '보편적'이라고 가정되는, 권력의 언어다.  99
필요하다면 그 얻너 것도 우리말과 섞어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다른 말들로부터 우리말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말들을 우리말 속에 포용하는 것이 아닐까?  122


3부 행복한 책읽기
난 여러분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무섭게 강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책을 읽는 행복함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161
우리는 모니터에 '뜬' 글을 '읽는다'기 보다는 '본다'. 책을 읽을 때는 한 단락을 건너뛴다든지 쓱 '훑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에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뜻을 음미하게 된다.그래서 속도는 더디지만 내용은 눈과 머리에 새겨진다.
모니터 상에서는 '생각하면서 읽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163
속도는 빠름만의 문제가 아니라 느림의 문제 이기도 한 것이다.
한번 그 빠름에 중독되고 나면 다른 속도에 반응할 수도, 다른 속도를 즐길 수도 없게 된다. 
책은 인터넷만큼 신속, 친절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에 결여된 기다림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책은 알려줄 뿐 아니라 질문하고, 우리를 잡아 이끌 뿐 아니라 멈춰 세우며, 수다스럽기만 한게 아니라 침묵하기도 한다. 책은 책을 향해 걸어오는 모든 생각의 속도를 긍정한다.  164
인터넷의 빠름 만큼이나 책읽기의 느림이 주는 기쁨을 알 수 있다면 우리의 사고와 감각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165
책읽기는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의 놀이여야 한다.
놀이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것이다.  171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 미식가들의 공통점
첫째, 그들은 먹는 걸 즐기고 그 순간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둘재, 그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 먹어보는 낯선 맛을 즐긴다. 각각의 음식들에서 고유한 맛을 뽑아낼 줄 알고, 각 재료들이 어떤 음식 속에서 어떤 맛을 발산하는지 그 미세한 차이를 긍정한다. 
책 읽는 가장 좋은 태도는 이런 미식가가 되는 것이다.  183
어떻게 읽어야 하나? -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부지런히 책들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뒤통수를 내리치거나 가슴에 팍 꽂히는 책들을 만나게 될 테고, 그때 책은 즐거움이 되고 책읽기는 놀이가 될 것이다.
기다려라. 그러나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우연 역시 스스로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니까. 책의 주제나 의도는 숨겨진 보물 같은 게 아니라 독자 스스로 완성해야 하는 여백 같은 것이다.  185
이제 책의 정확한 내용과 정해진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책의 의미는 그 책이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는가, 측 어떤 기계와 접속되는가에 따라서 매번 달라지는 것이다.  196
이건 무거워 라고 탓하며 책을 던지기 전에, 먼저 배울 점을 찾아보자.  197
책은 물론이고 우리가 어떤 그림이나 영화를 보면서 지루함과 부담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텍스트를 읽는 우리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기호 해독자'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그건 결국 텍스트를 가지고 놀 수 없다는것, 즐길 수 없다는 것,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
'고전'이나 '걸작'은 모든 시대에, 모든 독자들에게 '열린'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열린 텍스트'란 그 안에 여러 가지 해석의 방향을 함축하고 있는, 즉 텍스트의 의미를 한 가지로 고정할 수 없는 텍스트를 의미한다.  204
책을 사랑하는 것은 연애편지를 읽듯이 책을 읽는 것이다. 내가 가진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서 책의 공간을 여행하는 것. 글자와 그 의미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읽고 그 여백을 나의 언어로 채우는 것. 
텍스트에 빛깔과 향기와 무게를 담는 것.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독서, 행복하도고 강렬한 독서는 '연애편지 읽기'다!  225
독서는 자유다. 그것은 맞아들이고, 승낙하고, 나와 다른 것을 긍정하는 자유다.  231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 - 시험이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거기 담긴 '오래된 지혜' 때문이다.  234
고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는게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고전 텍스트 한 권을 펼쳐 들어라.  237
카프카는 말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책을 읽겠는가? ....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238
읽어야 하는 책과 읽어선 안 되는 책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유혹하는 책과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는 책, 순종하는 책과 위험한 책, 딱 한 번 작동하고 전사하는 책과 끊임엇이 작동하는 책, 우리로부터 '할 수 있는 힘'을 뺏으면서 한자리에 머무르도록 하는 책과 우리의 에너지를 배가시키면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책이 있을 뿐이다.  241
우리가 책 읽기를 통해 진정으로 어떤 기쁨을 느끼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을 불편하게 만들고 혼란시키며 그럼으로써 모든 감각들을 한꺼번에 열어젖히는 새로운 일탈을 찾아나서야 한다.  242
책을 사랑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번째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 책에 대해 비평하는 것이며, 
마지막은 책을 쓰는 것이다.  243


4부 펜을 들고 세상 속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한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들을 밖으로 표현하는 여러 활동 중 하나다. 말을 쏟고, 땀을 쏟고, 배설물을 쏟는 것처럼, 글 역시 내 안에서 넘쳐나는 그 무엇인 것, 즉 글쓰기는 나 자신을 드러내고, 내 존재를 확인하는 자연스러운 인간 행위 중 하나이다.  248
글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떠날 수 있을 때 시작 된다.  251
글을 잘 쓴다는 건 완벽하게 쓰는 걸 의미하는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매번 달라지는 자신을 긍정한다는 걸 의미한다. 
글을 잘쓰는 첫번째 방법 - 글에서 자신을 보고, 자신을 떠나라! 253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으며, 그의 입에 또한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254
글을 잘쓰는 두번째 방법 - 생각이 고여 넘쳐나기를 기다려라. 단, 사방을 향해 촉수를 곤두세우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연암 박지원에게 글쓰기(<소단적치인>에서)란 제목이라는 적국과 벌이는 한판 전투다. 예컨대 '행복론'이라는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행복'이라는 적국을 쓰러뜨리려면 먼저 그 적국의 지형도를 파악하고 난 다음(다른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뭐라고 말했나, 우리는 행복을 뭐라고 생각하나 등등), 적국을 가장 효과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병사를 뽑아 배치하고, 진지를 구축하고, 북을 울리며 출정한다.(어떤 글자를 쓸 것인가, 무슨 글을 인용할 것인가, 문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그리고 싸운다. 최선을 다해(써내려간다. 진심으로). 물론 싸움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아무도 죽지 않는 싸움인 걸, 또 다시 병사를 모아 진지를 구축하고 적국을 향해 돌진하면 그만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위험한 전투!  256-257
글쓰기에서 형식이나 규칙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257
글을 잘쓰는 세번째 방법 - 자신만의 병법을 짜라. 그리고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알고 있는 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렇게 말해야 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길어올린 말들로 세상을 표현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길어올린 말들로 세상을 표현하는 어린아이가 진부한 글의 권위를 강요하는 작가들보다 더 좋은 글쓰기 스승이다.  263
자기만 아는 비유와 맥락없는 인용들, 현학적인 어휘들로 가득찬 글을 보여주면서 이해 못화는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남들이 지적하는 단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글만을 고집하는 건, 글쓰기에 있어서 치명적인 병통이다.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만물과 접속하려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267
같은 말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처럼, 같은 내용이라도 그걸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어떤 색깔로 표현할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다. 생기 있는 글, 살아 있는 글이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글이다.  274
어떤 문자을, 어떤 길이로,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글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자신만의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고심하는 화가처럼, 여러분 자신만의 리듬과 색을 갖는 문체를 창조해보시길!  280

하나. 참고서나 교과서에 실린 현대어 해석을 보라. 그러면 이 '외국말' 같은 글이 무슨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둘. 그런 다음에 다시 원문으로 돌아와서, 이번 기회에 한자 공부나 한 번 해보는 셈치고 한자어에 독음을 달도록 하라.
셋. 목소리를 가다듬고, 처음부터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하라. 읽을 때는 자신이 마치 무슨 독립운동가라도 되는 양 감정을 잡고 읽을 수록 효과가 크다.
넷. 다시 한 번 읽어라. 이번에는 한 번 읽은 경험을 살려 문장의 강약과 단어의 길이까지도 고려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281
자신만의 언어 리듬을 살려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접속하기!  글 쓰는 데 그 이상의 왕도는 없다.  285
글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먼저 자신의 신체를 바꾸시라! 자신의 신체가 바뀌고 리듬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글은 꼭 그만큼 바뀐다.  글은 삶이.!!  293
글쓰기에서 '글의 종류' 즉 '미리 정해진 형식'이라는 건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백지 앞에서 느껴왔던 공포는 글의 경계 안에 머물러야 했던 데서 오는 일종의 '폐소공포증'이다.  300
하나의 현실, 하나의 진실이란 없다. 표현된 다양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현실은 그렇게 '포착된' 어떤 것이지 '객관적인' 어떤 것으로 존재하면서 누군가가 참모습을 찾아주기를 기다릭 있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어떤 눈으로 어떻게 이 세계를 나만의 스타일로 그려낼 것인가, 어떤 형식에 그 세계를 담아낼 것인가'다. 내가 본 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무기가, 노래가, 시가, 그리고 그림이 되는 글쓰기.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우리들의 눈과 귀가 좀더 크게 열려야 하고, 손은 좀더 날렵해야 하며, 사고는 좀더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다.  305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고,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자라야 비로소 자신을 떠날 수 있다.
글쓰기는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은 하나의 욕망이지만 더 나아가서 나를 바꾸는 힘이기도 하다.  306


에필로그 - 언어를 통해 세상 속으로
언어활돌에서 중요한 건 언어 자체의 체계나 규칙이 아니라 언어를 작동시키는 실제적인 맥락, 그리고 의미를 생성시키는 비언어적 요소들이다.  308
중요한 건, 자신의 언어(혹은 언어를 대체할 자신만의 표현무기)를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자신의 언어를 길어내는 것이다.  309


Posted by WN1
,

돈에 대한 참을 수 엇는 욕망으로 삶을 불태워버리거나 아니면 '무소유'라는 초월적 장으로 도피해 버린다. 이 책은 이 양변을 떠나 제3의 길을 찾고자 하는 갈증의 소산이다.

프롤로그 - 돈에 대한 '아주 원초적' 질문 셋
하나 - 청춘의 꿈, 10억?
그냥 고액의 연봉, 다시 말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뜻일 뿐이다.
대체 그 돈으로 뭘 할 건데?  그러면 갑자기 표정들이 멍해진다.  12
둘 - 미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돈에 대한 적대 혹은 무관심.
돈의 새로운 용법을 배우거나 그것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생각은 도통 하질 않는다는 뜻이다.  13
셋 - 낙타와 포대화상.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불교 - 북한산의 도선사에 가면 불상이 하나있는데, 이름이 포대화상!
몸매가 통통한데 2.5등신 정도이며 얼굴표정은 천진난만 그 자체.
커다란 포대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탁발하여 포대가 꽉 차면 사람드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탁발하였다.   16
'진정한 경제학은 최상의 윤리적 기준과 갈등하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


1부 문제는 돈이다? - 돈타령 '천태만상'
고등학생들이 대학과 학과를 고르는 기준은 절대적으로 돈이다.  24
전 계층의 돈에 대한 태도는 거의 동질화되어 간다. - 한방에 다다익선!  이것은 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유포한 정서적 기제다.  32
대중들은 부에 대한 판타지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왜? 성공의 이미지가 늘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는 언제나 벼락부자 혹은 미다스의 손들이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무대를 채우는 배우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대중들은 그걸 감지하지 못한다. 달빛만 보고 그 이면을 보지 못하듯이. 
다시말해서, 부의 정점,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65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신분적 차별이 사라진 대신, 소유가 곧 인격이자 정체성이 되어 버린 시대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란 '사적 소유와 자아'가 그대로 '혼연일체'를 이루는 체제라 할 수 있다.  65

2부 돈 - 잘! 벌고 잘 쓰는! 실전 '노하우'
'잘' 번다는 건 돈을 버는 것과 나의 자존심이 오버랩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벌면 벌수록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높아지는 것, 그것이 제대로 잘 버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돈은 쓰기 위해 버는 것이다. 쓰면 쓸수록 더더욱 삶이 풍요러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71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에서는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돈부터 벌지 말고 해병대나 명상센터에 가서 마음수련을 먼저 하라는 대목이 있다.  75
'경쟁, 경쟁'하지만 그 속내를 따져 보면 그 이면엔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걸 기준점으로 삼으면 거의 대부분이 헐떡일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라이프스타일에선 왜 그토록 몰개성한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게 자신의 인생이라면 그에 걸맞은 개성을 연출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할 것 없이 그냥 자기가 선 자리에서 시작하면 된다.  81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이치가 딱 이렇다. 걸음을 떼기 위해선 일단 넘어져야 한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은 세상에 없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넘어져야 일어선다. -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82
우주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한 사람이 평생 감당해야 하는 고생의 양과 질도 대강 정해져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젊었을 때 겪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젊었을 때 요리조리 피해 가거나 부모의 덕으로 대충 넘어가면 결국 중년이나 노년에 그 고난의 문턱을 다시 마주치게 된다.  82
고생의 핵심은 몸이다  83
돈을 벌어서 외로움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그냥 어렸을 적부터 우정과 친밀감을 터득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98
돈을 버느라 친구를 다 잃어버리고 나서 그 외로움을 달래기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친구와 돈 - 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라는 뜻이다.  99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뿐이다.  100
사람과 배움에 대한 열정, 문제는 그것이다.
친구들 사이의 일상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돈은 저절로 이 루트를 따라 흐르게 되어 있다.  106
무지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동요를 낳는 법. 이런 '몽메한'상황을 타파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돈에 대한 공부 역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113
터놓고 말하기! - 자기 안에서 분열이나 간극이 없어야 타인과도 소통이 가능한 법. 안팎이 서로 '통'한다는 건 이런 의미일 터이다. 평소에 툭 터놓고 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필요한 건 오직 일상에서의 끈기 있는 훈련뿐이다.  115
최소한의 화폐로 다양한 삶을 연출해 낸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가치와 효용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돈놀이'의 진수다.  121
돈의 달인이 되려면 돈 대신 몸을 잘 쓰면 된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비행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125
젊은이가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설명에 한마디로 역겨움을 느낀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고귀한 것이어서 취업시장에 나가기 위해, 또는 인생을 고용주를 위해 바치느라 커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325쪽  138
인간은 원초적으로 프리랜서다. 평생 동안 한 직장에서 쳇바퀴처럼 살기를 원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 아닌가.  138
미국의 유명한 대체의학자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창의적이고 풍요러워진다는 것은 돈과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다... 돈은 우리가 생명에너지와 바꾸고 있는 물질이다. 따라서... 당신의 일을 생명 에너지로 환산할 때 어느 정도의 대가르 치러야 하는지를 계산해 본다. 고된 노동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값비싼 휴가와 빈번한 병치레를 요구한다면 결국 당신은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422-423쪽  140
현대인들은 운명을 극복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잘 따져 보면 출세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귀의 내용은 대부분 쾌락 아니면 방탕이고, 여기에 본선의 문제는 빠져 있다. 이런 경우 그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귀를 위해 내 몸과 삶을 바친 것일 뿐! 성공이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본성과 경제가 얼마나 일치되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경제학이다.  143

3부 돈에대한 우주적 상상력 - 카오스 경제학을 향하여!

























아래는 저자의 인터뷰 내용들과 동영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제대로 쓰는 것은 충분히 벌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늘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쓸 겨를없이 계속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동안 행복하게 쓰면서 살 수는 없을까요? 돈을 '잘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왜 없을까요?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의 저자 고미숙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에 대한 일반적인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돈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도 나왔지만, 강연요청을 받을 때 미리 금액을 물어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까운 사이여도 돈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은데, 왜 돈 이야기는 특히 투명하게 말하기 어려울까?

돈에 대해 투명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는 정서는 근대 이전, 자본주의 이전에는 돈 외의 다른 가치가 있었고, 이러한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 지금 돈에 대해 투명하지 않은 것은 자기 소유에 대한 욕망을 남에게 숨기고자 하는 은밀함이라서 인성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연요청을 할 때 강연료를 숨기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느낌이 들고, 그런 경우는 늘 강연료가 적다. 스스로 적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돈을 떠나서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하고 돈과 상관없이 해주기를 바라거나 자기들 입장만 이해해달라고 시작하면 안 되는 거다. 돈의 액수를 떠나서 돈의 용법을 모르는 것이다. 

돈을 쓰는 용법에 대해 아직 막막하다. 기억에 남은 ‘돈 쓴’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달라.
미국에서 생활할 때 센트까지 나눠서 더치페이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로 부담을 안 주겠다는 호의가 담겨 있는 건 알겠는데, 그 자체로 너무 각박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관계가 계약적인 것 이상을 넘어갈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 관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만날 외롭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고, 소외당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 모순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그 중 하나가 더치페이 습관을 깨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후배들뿐 아니라, 거기에 있던 지식인들과도 다양한 교류를 하게 되었고, 돌아올 때는 미국에서 번 돈을 다 털고 왔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의 뒷부분에 부록에 있는 44만 원 세대 청소년, 88만 원 세대 직장인, 청년백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싣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는 내가 할당을 해서 글을 쓰라고 했다. 해완이에게는 44만 원 세대는 어떻게 돈을 쓰는지 인터뷰를 해봐라, 88만 원 세대인 임군과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된 청년 백수는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느냐 이 이야기를 물어본 건데, 본인들도 그 테마가 궁금해진 거다. 그래서 해완이도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시성(졸업한 지 한참 된 청년 백수)이도 어떻게 ‘수유+너머 구로’에서 활동하게 됐는지 정리하게 됐다. 임군이 쓴 이야기는 정말 내게 소나기 같았는데, 나는 그런 88만 원 세대를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들을 보고 ‘아 이제 글을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책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가 돈을 쓰고 실험했던 건 있는데, 구체적인 현장이 너무 없어서 그게 항상 목말랐다. 그 글들을 보고 현장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삶과 괴리되지 않고,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돈 쓰는 ‘용법’을 어떻게 발명해야 할까?
돈에 대해 생각하면서 참 놀랐던 것이 다른 분야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강조하면서, 돈의 용법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많이 버는 것,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화폐와 교환한다 그런 거 말고는 없다. 자본주의에 찬성하는 사람이건, 자본주의와 평생을 걸고 싸우겠다고 하는 사람이건, 젊은이건, 노인이건 다 똑같다는 점인데 이게 너무 신기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 돈을 좋아하고, 백만 원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그걸 어떻게 쓸지 궁리하느라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그래서 수유+너머 연구실을 시작하기 전에 돈을 모으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돈을 잘 모으지도 않지만 모아서 거침없이 쓴다고 하면 명품매장에 가서 그냥 덜커덕 구매하는 게 기본모드가 됐다고 들었다. 이렇게 쓰는 방식이라면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빈부의 격차가 줄어든다고 한들 결국 제도의 코스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돈의 액수가 얼마로 바뀌느냐지, 돈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길은 있을 수가 없다. 백만 원을 가지고 천만 원, 일억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다양하게 쓰는 법. 돈의 달인! 정말! 그래서 이제 ‘쓰는 것이 버는 것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어떻게 쓸지에 대해 상상력을 작동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달인 시리즈’ 세 권을 냈다. 공부, 사랑, 돈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공부와 사랑, 돈. 모두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기술로 써야 된다. 존재의 명령은 하나다. “행복해라.” 근데 행복은 그냥 들으면 닭살 돋는 감상적인 가치처럼 보이는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를 얻어야 한다. 자유는 뭐냐 하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공부가 나를 가로막는다면 공부법이 잘못된 것이고, 연애 때문에 허덕인다면 당연히 벗어나야 된다. 돈이 나를 억압한다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런 과정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행복해라.” 이것은 “스스로 자유를 터득하라”고 하는 존재의 명령이다. 


Posted by WN1
,




머리말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과 성의 윤리적 배치란 과연 어떤 것일까? 탈주와 전복이라는 코뮌의 비전과 그것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최초의 응답이다.  6

프롤로그
복수혈전이 펼쳐진다는 건, 나는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유혹에 의해 엮인 것이라고 하는. 그리고 역시 상대한테 속아서 억지로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했다고 하는. 요컨대, 원인이 모조리 상대에게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14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15
사랑은 무상하다.  16
실연은 행운이다!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미리미리 길을 '비켜 준' 존재들한테 축복 있기를!!  17
'사랑도 공부를 해야 하나?'가 아니라, 사랑이야말로 공부가 필요하다.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앎의 열정이 없는 존재가 운명적 사랑을 한다는 건 우주적 이치상 불가능하다.
주류적 척도로부터 멋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정, 자본과 권력의 외부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공, 공부는 무엇보다 이 열정과 내공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18
"오직 배우는 마음만이 열정이 넘칩니다."  19


1부 오만과 편견, 사랑과 성(性,sex)에 대한
홀로 갈 수 없다면, 정대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 혼자 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가벼워야 한다. 망상은 무겁다. 갖가지 오만과 편견으로 존재를 한없이 무겁게 얽어 맨다.  23
사랑이 다양한 관계를 망라하는 보편적인 명칭이라면, 연애는 1920년대에 수입된 신조어다. 'Love'의 일본식 번역어다. 
사랑이 수많은 의미의 생산이 가능한 용어라면 연애는 남녀 사이의 이성적 관계라는 의미로 압축된다. 
그럼 작업은? IMF 이후 등장한 신조어이다. 연애보다 더 의미가 축소되어 아주 특정한 방식의 연애행태를 지칭한다.  27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하는 일, 그리고 또 다시 그와 같은 순간이 오기를 몽상하는 일. 추억하거나 몽상하거나. 이들 순정파들은 한마디로 이런 유의 낭만적 궤도 안에 갇힌 '고매한 족속들'이다. 그들의 연애 또한 늘 실패한다.  31
야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식(특히 폭식)은 외로움의 신체적 표상이다. 정신적 공허를 채우기 위한 몸적 반응이 바로 허기이기 때문이다.  35
우리의 마음은 사랑과 연애, 섹스에 대한 무수한 망상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고유의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 이상을, 그 외부를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  37
'사시사철 두리번 두리번 살금살금하면서,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대인이 안고 있는 마음의 병이야. 문명의 저주인 거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541-542쪽  42
이 자의식은 문명의 저주다.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 막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42
머리를 굴려 대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자의식을 침범당하는 게 두려워서다.  43
충동과 열정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충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래서 늘 중독적 상태로 치닫는 힘이다. 나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지만, 그 원인은 늘 외부에 있다. 그러므로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노예적으로 끄달리게 된다.
열정은 아무리 뜨겁게 솟구친다 해도 삶의 의지와 연동되어 있다. 그러므로 절대 중독되지 않는다. 열정은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한다.  45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성욕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47
여성들은 여전히 다수의 남성들로부터 프러포즈를 받는 걸 '인생의 큰 의미'라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이러니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결국 찼는가 차였는가로 귀결될 밖에. 허나, 따지고 보면 이런 논법만큼 무지한 것도 드물다.  52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점쟁이들이 무려 45만이라고 한다.
청춘남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은 운명적 파트너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딱 맞는 반쪽이 있다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맹목적 믿음에 근거한다. 
결론 부터 말하면, 반쪽이는 없다!  59
중요한건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는 일이다.  60
정말로 사랑에 목숨을 거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솔직히 현실적으론 사랑을 위해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망상 속에서 그렇게 동경할 따름이다.  64
참고 견딘다는 건 속에다 꾹꾹 눌러 담는 것이지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67
희생이라는 포장 속에 어설픈 평화를 누리기보다 솔직하게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화끈하게 전투를 벌이느 것이 사랑의 본래 면목에 더 가깝지 않을까. 고로, 희생과 헌신이라는 미덕만큼 사랑과 거리가 먼 항목도 없다.  68
감정적 간극이 벌어지게 되면 자주 투닥거리게 되고, 어느새 결별의 상황에 이르고, 그러면 또 다시 새로운 짝을 찾아 헤맨다.  69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말은, 곰곰이 따져 보면, 사랑은 늘 처음의 그 격정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변한 것, 아니 변절에 해당한다.  70
이런 망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사랑이란 추억 아니면 몽상으로만 존재한다.
추억은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고, 몽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다.
말로는 아름답다, 순수하다, 아직도 그리워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뿐이다. 막상 만날 기회가 오면 거의 대부분 달아나 버린다. 왜? 아름다운 추억이 망가질까봐.  71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한다. 단 한순간도 '지금, 여기'의 사랑을 누리지 못한다.  72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랑의기술>13쪽  73
남자들은 오직 권력과 돈, 여성들은 성적 매력과 몸치장에 몰두한다. 마치 그것만 갖춰지면 사랑은 절로 굴러온다는 듯이 말이다.  73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은 절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공부는 근본적으로 몸과 우주에 대한 탐구이다.  73
우리 주변엔 실전연애 노하우에 대한 숱한 책들이 널려 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이런 식으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걸까?기교라고 쳐도 참으로 유치한 수준 아닌가. 그만큼 연애가 힘들다는 뜻일터. 
순정파건 냉소파건 다들 나름대로 테크닉에 골몰하는 건 틀림없다.  75
요즘 커플들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터.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 간다.  77
사람은 평생 단 하나의 병만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 신체적으로 볼때, 하나의 약한 고리를 중시으로 다양한 병들이 변주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사람은 평생 단 한 종류의 연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위안이나 동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 진정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헌데, 문제는 다들 상담을 받거나 점쟁이를 찾아가려 하지 스스로 깨우치려고 하질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이니, 사랑에 관한 한 성숙해진다는 관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79
솔직히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유치하기 짝이 없다면 그건 일종의 발달장애에 해당한다. 헌데, 그것이 졸지에 순수함으로, 그리고 다시 사랑의 미덕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80
 

2부 청춘의 '덫'. 국가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
20세기 초 서구문명이 이 땅에 도래할 즈음, 당대를 주름잡던 계몽가들은 가종 신문매체를 통해 엄숙하게 경고했다. 조선이 망한 건 열대여섯 살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을 억지로 혼인시켰기 때문이라고.  93
그럼 지금은? 만약 스물두 살쯤 된 청년이 결혼이나 동거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택도 없는 소리다!
지금의 경제조건에선 최소한 서른은 되어야 사회적으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견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94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선진문명을 이룰수록 청춘들의 원초적 욕망은 계속 지체되어야 하다니 말이다.  96
지난 100년간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건 '성에너지의 국가적 몰수'라는 대가를 치렀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98
세상에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도 없고, 사랑이 필요없을 만큼 강한 존재 또한 없다!  103
'엄마의 늪' 우리으 청춘들은 아직 엄마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105
온실과 정글. 엄마의 관리와 보호가 미치는 곳은 온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맨몸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곳은 정글.  105
요즘 청년들에게서 열정이나 패기를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외모나 체격은 눈부시게 개량(?)되었지만, 청춘이 내뿜는 특유의 포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아주 일찌감치 '삭아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정글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두 발로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전방위적 마크하에서 그런 신체적 능력을 터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11
"젊음이란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연령에 걸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것이다." - 들뢰즈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쟁을 치르고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자시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마음이 연구와 학문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노년보다 더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126
어떤 종류의 관계든, 어떤 활동영역이든 존재의 자유와 충만감이 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에로스다!  142


3부 청춘이여, 욕망하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146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한 가장 일차적인 행동지침은 자신의 몸과 능동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147
질의 차이가 없다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150
니체는 말했다.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 있는가?" 나를 멸망시킨다는 건 바로 지금까지의 나, 자아 혹은 자의식의 성채를 무너뜨리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  152
이것은 미쳐 날뛰는 광기나 변덕스런 충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광기나 충동은 절대 폭풍을 일으키지 못한다.  153
상상하는 연애에서 관찰하는 연애로!
"연애를 하는데 남자친구 때문에 너무 괴로워해요. 근데, 왜 해어지지 않느냐구 했더니 대답이 아주 재밌어요. 몇 년이나 사귀었지만, 이 남자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 이해를 한 다음에 헤어질 작정이다. 그래야 인생에 대해 뭔가 알게 되지 않겠냐 이거죠."
 이 정도의 뚝심은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관찰하는 연애다.  157
나를 관찰하고 상대를 관찰하고 몸과 마음의 간극을 줄이는 것!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나와 같은 시공간 속에 있는 '친구'이다. 그 친구를 공부하는 것이 곧 그를 향한 최고의 '사랑법'이 아닐까?  158
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그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욕망의 구조가 있을 뿐이다.  162
중요한 건 자유다. 쾌락을 즐기건 금욕을 하건 누구든 자기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몸과 우주가 소통하는 그만큼 자유의 곤강이 열릴 것이다.  170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가? 그거야말로 내 몸이 특별한 리듬과 강도를 갖게 된 것인데, 그게 왜 창피한 일인가? 그렇게 느끼는 건 전적으로 사랑과 성을 권력관계로 보게끔하는 망상구조 탓이다.  182
우리시대의 연애가 썰렁해진 건 무엇보다 '차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준은 물론 학벌, 가족관계, 거기다 외모까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어떻게 열정이 폭발하겠는가.  194
사랑이 탈주선이 되려면, 무엇보다 이 쇼 망상의 그물을 가차없이 해체해야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기념일 챙기는 것부터 걷어 치워라. 세상에 그런 멍청한 짓거리가 어디 있는가. 대체 사랑의 시작점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시작점을 헤아리는 건 끝날 때를 미리 대비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뭣 때문에 카운트다운을 하는가 말이다.  195
진짜 소중한 선물에는 '삶의 서사'가 묻어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일상의 리듬과 무관한 선물이란 그야말로 쇼에 지나지 않는다.  197
쇼! 하지마라! 쇼! 
그럼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래서 창의성이 필요하다. 나의 사랑이 지닌바 특이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는 사랑법을 창안하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법을.  198
걷고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고 삶의 서사 혹은 일상의 활발한 기운을 서로 선물하고, 이것이 기본기라면, 그 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코스가 있다. 책읽기 혹은 공부하기.  203
지성과 에로스는 절대 따로 놀지 않는다.  204
대장금  205
연애 중독증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209
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전령사다.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매트릭스, 아주 이질적인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그것이 곧 책이다.  211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존재의 크기다.  212
가장 좋은 건 늘 누군가와 세미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본래적으로 네트워킹이다. 홀로 서재에서 끙끙거리며 남을 지배하기 위해 하는 건 경쟁을 위한 도구지, 절대 공부가 아니다. 즉, 공부를 한다는 건 무조건 친구들과 함께 세미나를 한다는 뜻이다.  213
연인 사이가 끝난다고 그와의 모든 인연이 종결된다면, 더구나 함게 공유했던 배경까지 몽땅 잃어버려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215


4부 에로스와 '운명애'
에로스와 지적 능력의 함수관계 - 지성에서 비롯된 매력은 위이 사라지지 않는다. 장금이가 그랫고, 루쉰이 그랬고, 사르트르가 그러했다. 우리는 흔히 '매력'을 멋지고 세련된 외모와 일치시키지만, 사실 네루다와 조르바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게 그들이 '잘생겼'기 때문이던가? 이 '사랑의 달인'들이 가진 공통점은, 지성과 서사가 흘러넘쳤다는 사실이다. 고로, 공부하라, 그러면 사랑은 절로 따라올 테니!  222
사랑을 원한다면 혹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서사의 능력을 키우도록 하라. 서사는 화술이 아니라, 나의 삶과 외부가 맺는 관계성의 문제다. 따라서 서사능력을 키우려면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생생한 힘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  225
건강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과, 사건들과 맞닥뜨리고 관계하는 방식입니다. 관계의 건강성, 바로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이렇다. 사랑은 나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라의 원인이 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234
사랑의 창조, 그 궁극적 지점은 다름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235
유머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과도 접속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떠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유머러스한 신체'가 되어야 한다.  240
그 사랑은 미련도, 회한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한편으론 자나간 것, 곧 추억에 매달리고, 다른 한편으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몽상 속에서 정작 '지금, 여기'에 온전히 기투하지를 못한다. 대개는 자신으 ㅣ과거 또는 상대방의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249


에필로그
"모든 인간은 자신으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사랑도 똑같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사항이 하나 있다. 이 능력의 차이를 위계화하지 말것. 각기 다른 방식의 사랑법이 있을 뿐이다.  260
중독된다는 건 삶과 분리되어 오직 쾌감의 증대를 향해 치닫는 것이다.  261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386쪽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262-263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느 에로스,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원동력이다.  263
혁명이 광장에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표현되는 것이라면, 코뮌은 그 혁명의 일상적 형식이다. 일상 속에서 자본과 권력의 코드를 벗어난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 가는 . 그럼. 코뮌과 에로스는 어떻게 연동되는가?  264
사랑의 독점적 지배하에선 우정도 절대 싹을 틔우지 못한다. 
사랑과 우정이 왜 적대적인가? 사랑하는 연인이란 가장 좋은 친구라는 의미도 들어 있지 않은가. 이탁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변주하면.. "연인이면서 우정을 나눌 수 없다면, 연인이 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사랑보다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사랑이 원숙해지면 누구나 친구 같다고 하고, 사랑에 멍든 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친구 같은 연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평소 우정의 지혜를 많이 터득해 두어야 한다.  266
우저에도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아주 다른 삶, 낯설고 창발적인 사유와 생활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고 ㅏ우정 사이의 매끄러운 흐름, 그것이 바로 코뮌주의자의 사랑법이다.  267
흔히 도(道)와 에로스느 적대적이라고 간주한다. 에로스적 충동을 억눌러야만, 다시 말해 가능한 한 탈성화되어야만 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원초적 본능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지 않고서 어찌 생사를 넘는 해탈이 가능할 것인가? 사랑이 생명의 원초적인 뿌리이자 원동력이라면, 마땅히 인간의 우주적 경지인 도와 이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름하여, 사랑의 절대적 탈영토화!!!  269
행복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자유와 해방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에 관한 오만과 편견, 자의식을 둘어쌍 망상의 그물망을 벗어나 한걸음, 단 한결음만 내디딜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백척간두진일보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271


Posted by WN1
,



책머리에 
우리가 즐겁게 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7
놀이는 하나으 가치관으로 우리를 줄 세우는 지루한 세계를 바꾸는 것,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른 시간을 만드는 것, 그렇게 나와 친구와 세계를 변신시키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8
정말로 잘 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9

프롤로그
'논다'는 말은 종종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 우울한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가리킨다.  15
우리가 무엇엔가 가장 열중하는 순간은 그것이 정말로 즐거울 때이다. 게대가 아무리 재밌는 일이라도 좀더 잘 하기 위해선 고통의 순간이 필요하다.  17


1부 '노동하는 인간'의 세계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33
'끝없는 이윤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정신이 우리 모두를 확실하게 사로잡는 과정.  43
1분 1초까지 아껴 쓰기 위한 이 대대적인 모모가 마음 바꾸기 프로젝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신경생리학자 스탠리 코렌은 '첨단 기술인 시계가 지배하는 생활방식 덕분에' 우리는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연간 500시간이나 적게 잔다고 한다.
우리는 어느새 시간은 금이라는 명령을 몸과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모든 활동을 노동으로 바꾸기 위해 필샂거으로 노력하고 잇다. 
시간은 금이 아니다. 시간은 내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이며 삶 그 자체이다.  45
wn1 -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맹복적으로 많이 사용하거나 '알차다'는 표현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즐길 수 있기 위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20년 동안 1인당 소비는 45% 증가했지만, 사회건강지수에 나타난 삶의 질은 51% 나 감소했다고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태껏 해오던 대로 하고 있다.  53
플레이어 라이센스-신용카드 : 어느샌가 노는 것이 소비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축제에서부터 여행까지 모든 것이 상품인 이 세계에서 우리는 돈 없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소비 자본주의의 당당함.)  58
노동은 어차피 해야만 하는 것이니 불만 따위는 접어두고, 대신 자유 시간을 잘 활용하라.  60
돈 없이는 놀지도 못하는 이 비참한 현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얼까? '골라 먹는 재미'에 익숙해지면서, 정말로 노는 능력, 재미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능력, 자신으 ㅣ삶을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66


2부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의 세계
고대인들에게 지식이란 언제나 우주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그들은 지혜를 놀이하고, 철학을 놀이했다. 서로의 지혜를 겨루는 수수께끼 놀이, 존재의 기원을 묻는 수많은 노래, 운(韻)을 던지고 받는 시 짓기 놀이에 관한 동서양의 무수한 기록들, 공놀이가 고문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지식으로 놀 수도 있다!  73
무엇이든 그 자체로 즐기는 태도는 인간의 가장 탁월한 능력이며, 인간은 이를 통해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울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언가를 진심으로 질글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사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그 자체로 학습일 수밖에 없다.  75
순수한 즐거움으로 하는 활동, 무엇이건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놀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놀이는 가장 지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다. 
'만약 필요한 물건을 얻기위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베장이의 놀이, 삶, 유토피아>를 쓴 버나드 슈츠는 만약 우리가 노동이 없는 유토피아에 산다면 노동과 유사한 놀이를 발명했을 거라고 말한다.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손수 집을 짓고, 향기롭고 신선한 야채를 키우며, 직접 빵을 구워 먹을 것이라고. 그것은 결코 힘든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가즉 찬 창조적인 활동일 것이라고. 
그러나 어떤 목적을 위해 억지로 노동할 때 창조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76
놀이에 대해 니체는 놀이야말로 '어떤 세계에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했다.  79
즐거움만이 우리를 놀게 한다. 그러므로 즐거움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며 욕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81
입맛을 자극하는 패스트푸드와 콜라,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은 컴퓨터게임처럼, 외부의 자극이 고스란히 몸에 새겨진 욕망과 그 욕망이 원하는 '즐거움'들이 잇다. 
우리들은 그러한 즐거움에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 즐거움들은 금세 소진되기 마련이지만, 체마파크는 부지런히 새로운 자극들을 제공해준다.  82
중독된 상태를 즐거움이라고 착각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즐거움은 소비되고 소진되는 게 아니라 더 큰 즐거움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놀이는 언제나 더 큰즐거움으로 향하고. 노는 동안 나는 더 건강해지며 더 잘 놀 수 있게 된다.  83
주사위를 공중으로 던지고, 떨어지는 수를 기다리는 주사위 놀이를 생각해보라. 어떤 수가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주사위를 던진 아이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무엇으로 되돌아올지 예측할 수 없는 주사위으 우연에 흥미진진하게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매혹시키는 건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와 그 안에 숨은 우연뿐. 그러니 세계의 무한한 변신 가능성을 마음껏 즐기며 놀아라!  
순수한 즐거움, 자발성, 자유만이 놀이를 계속하게 한다.  85
즐거움 만이 우리를 놀게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놀기 위해선 아주 중요한 능력이 필요하다. 기차에서 무작정 내리기 위해서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는 걸 발견해야 하듯이, 세상과 놀기 위해서 우리는 견고해 보이는 이 세계에서 무수한 차이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87
삶을 노는 것은 삶의 규칙을 바꿔내는 것, 규칙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고정된 규칙이 있다고 믿는 순간 놀이는 불가능해진다. 
놀이는 무엇보다도 규칙을 넘나들고 변신시키는 '규칙의 놀이'다.
다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고정되는 순간 다른 틈새를 만들어 돌파하라. 삶의 규칙들을 놀이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그 어떤 명령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97
놀이는 리듬을 뒤섞어 파괴하는 게 아니라, 리듬을 변주하고 호흡을 불어넣는 경쾌한 스텝이다.  103
'함께' 논다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는 언제나 '관계 만들기'이기 때문이다.  107
원주민 마을 - 노동의 필요를 몰랐던 원주민들이 공장에 취직하지 않자. 유럽으 제국주의 자들은 원주민들의 식략인 빵나무를 전부 불태워 버렸다. 공통적인 삶의 기반을 파괴함으로써, 사람들을 노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가 전하는 무시무시한 일화.  116
혁며이란 일상적이 아닌 것을 일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 쿠바의 한 건물의 낙서  117
노동의 사회는 베짱이(개미와 베짱이의 그 베짱이)를 추방했다. 베짱이가 게을렀기 때문이라지만, 사실 추방된 것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함께 살던 삶이 아닐까?
미래를 위해서라면 현재를 저당 잡히고, 모두가 똑같은 것을 욕망한다.  117


3부 움츠린 놀이의 날개를 펴라!
wn1 - 리처드 스톨만, 그래피티, 힙합, 랩, 브레이크 댄스, 우드스탁 페스티벌, 광대반란군.. 등이 언급되면서 그들의 새로운 놀리 문화에 대해 말한다.
 
2002년 월드컵이 관정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축제였다면, 2006년 월드컵 땐 대기업들이 미리 광정을 점유한 채 축제를 상품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노동으로, 혹은 돈 되는 상품으로 바꿔버리는 소비자본주의의 엄청난 힘.  164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 노동한다.  169
빛나느 긴장으로 가득했던 놀이가 일종의 유행, 하나의 상품이 되어 버릴 때, 강렬했던 새로움은 소멸됙 놀이의 재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173
우리가 사용하는 종잇조각에 신용을 불어넣는 것은 그 조잇조각을 사용하는 우리 자신이다. 모두가 그 종잇조각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훨씬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규칙의 화폐를 사용해보자.  178
학문들 사이에 서열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추려져서 목록이 작성된다. 이정의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고 형제들과 다투면서 몸으로 익히던 사회적인 감각이 '도덕'이나 '국민윤리'라는 이름의 교과서로 만들어지고, 부엌과 일터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웠을 다채로운 삶으 기술들은 '가정'이나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일괄정리되었다. 
달달 외워야만 하는 것들의 목록은 점점 길게 추가된다. 몸 전체로 호흡하며 익혀야 할 인생의 지혜들이 책상에 앉은 채 멍하니 들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게다가 공부는 시험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향한다. 이러니 공부가 지겨운 건 지극히 당연한 일.  공부는 노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188
내가 아무것에도 관심 없고 모든 게 귀찮을 뿐이라면 어디로 간들 뭐가 그리 다를까. 대안은 나의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나는 순간, 친구들의 수많은 개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순간, 언제 제 어디서든 규칙을 바꾸고 놀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열린다.  194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는 '문화 생산자' - 단지 보고, 따라하고, 소비하는 대신 직접 만들어내고 뛰어들고 참여하는 거다.  197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놀이이다.  198
제작 메뉴얼대로 반복되는 노동이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을 창조해내는 놀이. 지루하게 참고 견디는 현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즐거움으로 가장 충만한 현재만이 나를, 세상을, 친구를 바꿀 수 있다. 우리의 매일매일은 어느 하루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말라구. 우리는 단지 놀고 있을 뿐인걸.  208


Posted by WN1
,





머리에
참, 희안하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 어째서 학교는 여전히 전쟁터인가.  6
진정 놀라운 건 그 누구도, 어떤 청소년도 이런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그게 더 끔찍한 일이다.  6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7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7
일단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책을 애인보다 더 가까이 끼고 살아야 돼... 책 중에서도, 인류 최고의 고수들이 쓴 고전들을 읽어야 해.  9

대중 지성을 움직이는 힘은 오직 앎에 대한 열정이다. 생명과 존재, 삶과 세계에 대한 끊임업슨 물음들, 그것만이 그들을 지배한다.  26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는 것.  33
근대적 학교제도의 산물 - 동일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같은 장소에 몰아넣고 같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세대간 균질을 만드는건 학교의 일률적인 쪼개기때문..)  35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 즉,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40
세대간 장벽을 허물어 뜨리는 운동이 공부가 되어야 한다.  47
한 사회가 공동체적 리듬을 가지려면, 노인은 청녀노가 함께 섞여야 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노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49
제갈량, 허생, 정약용, 박지원... 그들은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었다.  51-52
논술을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55
다양한 활동이 신체와 '통'하려면 무엇보다 근기(根器)가 튼실해야 한다. 근기란 쉽게 말하면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의 분포도'같은 것이다. 그릇이라고도 하고,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바로 이 근기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길은 단언컨대 독서밖에 없다!!  57
요즘 대학생들의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58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학교가 유포한 환상 중에 가장 나쁜 것이 사람들을 제도적 서비스에 길들이는 것이라 한다.
좋은 집에 산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삐까번쩍한 외양이 아니라, 환경과 주체 사이의 능동적 교감이다.  63
진정한 창의성은 폼나는 공간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습 주체와 공간이 어우러져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아주 강도 높은 학습의 장을 연출하는 것.  65
콩도르세는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66
자율성과 창의성은 나란히 간다. 자율적이지 못하면서 창의적 사고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까닭이다.  67
토론이건 체험학습이건 그것이 강도 높은 학습의 과정이 되려면 고도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바꾸겠다는 치열한 의지도 뒤따라야 한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69
우월감과 열등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70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학벌, 위계, 돈과 명예 따위는 말끔히 잊어버려라! 필요한 건 다만 두려움 없는 용기와 지칠 줄 모르는 끈기뿐. '노하우'는 책과 우정!  75
고전이란 시대의 통념과 억압을 뚫고 삶과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탐색한 전위적 텍스트를 말한다. 고전이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망을 구성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전위적 열정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전이야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77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81
학교는 태생부터 제도로 출현했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더더욱 그런 속성이 강화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누구도 학교가 배움터 혹은 앎의 코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82
무엇보다 고전의 지혜를 적극 응용해야 한다. 즉, 자기가 선 자리를 제도적 울타리가 아니라, 스승을 만나고 벗을 부르는 매움터로 전환해야 한다.
고전의 시대에 좋은 부모란 자식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주는 존재였다.  83
앎의 코뮌에 접속하고, 암송과 구술을 익히고, 그걸 통해서 리더십을 터득하는,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독서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105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고 싶지 않은 꼬마들, 성적의 위계와 입시의 중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청소년들, 기성세대의 고루한 관습에 저항하고 싶은 청년들, 시각의 지배에 예속되기를 원치 않는 직장인들, 매너리즘에 찌든 일상의 회로를 벗어나고 싶은 아줌마들, 삶의 비전과 지혜를 통찰하고 싶은 노인들 - 이 모든 '대중지성'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독서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106
얼굴도 멋있어지고, 몸도 건강해지면서 동시에 삶의 비전이 확 열리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독서이다. 
유비는 그냥 한눈에 제갈량의 그릇을 알아봤다. 그의 얼굴과 몸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허생은 다짜고짜 장안 최고의 갑부 변부자를 찾아가 만 냥을 빌려달라고 하자, 변부자는 이름도 묻지 않고 즉석에서 만 냥을 내준다. 허생의 내공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들은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신체가 된 것이다.  108
선비가 하루만 글을 읽지 아니하면 얼굴이 단아하지 못하고, 말씨가 단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장기 두고 바둑 두고 술 마시고 하는 것이 애초에 어찌 즐거워서 했겠는가? - <연암집>  111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116
일단 나보다 훨씬 폭넓게, 강렬하게 살았던 분들이 쓴 책이어야 할테지? 또 저자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책, 생가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이어야겠지?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책 등등.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117
독서의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고 싶다면, 먼저 고전을 문학, 그것도 서양 문학 중심으로 사유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119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옥루몽> 등과 같은 장편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프루스트나 보르헤스 등 사상적 깊이를 갖춘 서양 소설과 함께 읽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노자오 ㅏ장자, 사서삼경 등 동서양의 사상사를 넘나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119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서 몽땅 이해되는 책은 당장 덮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그건 저자의 수준이 나랑 똑같다는 뜻인데, 그런 책으로부터 대체 뭘 배울 수 있단 말인가?
10대들이 열광하는 일본의 하이틴 소설, 직장 여성을 겨냥한 삼류 연애담이나 감상적 에세이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탐정소설류, 재테크나 성공의 신화를 적당히 가공한 책들. 이런 건 독서의 범위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그건 그야말로 취미 활동에 불과하다. 특히 여기에 몰입해서 다른 장르를 멀리하게 되면 그건 게임 중독이나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 그런 조짐이 느껴질 경우 당장 멈추어야 한다.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지면 다른 음식을 먹을 능력이 없어지는 것처럼 그런 야들야들한 책에 맛들이다 보면 신체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120-121
'너 자신의 눈으로 자료를 보라.'
'너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설정하라.'  131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35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139
집단 속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약속과 시간을 지킨다. 눈과 귀를 몽땅 열어둔다. 즐겁게 공부한다. 배운 만큼 실천한다.  140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문자와 몸과 세계가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앎은 행위에서 시작되고, 행위는 앎의 완성"(왕양명)이 되는 '지행합일'의 경지, 이것이 바로 고전의 학인들이 지향했던 공부의 진경이다.  145
먹고 살고 번식하고 하는 일이야, 뭐 박테리아도 하지 않는가. 적어도 공부라고 하면 존재 자체가 특별한 단계에 도달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145
책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존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책으로 변환 - 책을 읽으면 삶이 보이고, 일상을 잘 관찰하노라면 책의 지혜가 확연해진다.  146
자기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만 있다면, 삼라만상이 다 신비로운 기호로 가득 찬 문장이라는 것을 절로 터득하게 된다.  147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행복조차도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154
요즘 신데대 커플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156
가장 문제적인 건 서로에 대한 집차고가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향이다.  160
'사이에서 존재하기'랑 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배움과 가르침의 흐름 속을 유영하는 것이 아닐까.  193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195
무엇을 공부하건 공부는 그 자체로 혁명이다.  196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했듯이, 시간을 견뎌내고, 일상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단언컨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란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의 시작은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공부. 이 공부를 통해 삶의 통찰하는 힘이 생길대 비로소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199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201
섹스가 아무리 짜릿하다 해도 그 쾌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 날마다 해도, 평생 해도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누구나 평생 공부해야 한다.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 
고로, 공부에 외부는 없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203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