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과 성의 윤리적 배치란 과연 어떤 것일까? 탈주와 전복이라는 코뮌의 비전과 그것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최초의 응답이다.  6

프롤로그
복수혈전이 펼쳐진다는 건, 나는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유혹에 의해 엮인 것이라고 하는. 그리고 역시 상대한테 속아서 억지로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했다고 하는. 요컨대, 원인이 모조리 상대에게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14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15
사랑은 무상하다.  16
실연은 행운이다!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미리미리 길을 '비켜 준' 존재들한테 축복 있기를!!  17
'사랑도 공부를 해야 하나?'가 아니라, 사랑이야말로 공부가 필요하다.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앎의 열정이 없는 존재가 운명적 사랑을 한다는 건 우주적 이치상 불가능하다.
주류적 척도로부터 멋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정, 자본과 권력의 외부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공, 공부는 무엇보다 이 열정과 내공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18
"오직 배우는 마음만이 열정이 넘칩니다."  19


1부 오만과 편견, 사랑과 성(性,sex)에 대한
홀로 갈 수 없다면, 정대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 혼자 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가벼워야 한다. 망상은 무겁다. 갖가지 오만과 편견으로 존재를 한없이 무겁게 얽어 맨다.  23
사랑이 다양한 관계를 망라하는 보편적인 명칭이라면, 연애는 1920년대에 수입된 신조어다. 'Love'의 일본식 번역어다. 
사랑이 수많은 의미의 생산이 가능한 용어라면 연애는 남녀 사이의 이성적 관계라는 의미로 압축된다. 
그럼 작업은? IMF 이후 등장한 신조어이다. 연애보다 더 의미가 축소되어 아주 특정한 방식의 연애행태를 지칭한다.  27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하는 일, 그리고 또 다시 그와 같은 순간이 오기를 몽상하는 일. 추억하거나 몽상하거나. 이들 순정파들은 한마디로 이런 유의 낭만적 궤도 안에 갇힌 '고매한 족속들'이다. 그들의 연애 또한 늘 실패한다.  31
야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식(특히 폭식)은 외로움의 신체적 표상이다. 정신적 공허를 채우기 위한 몸적 반응이 바로 허기이기 때문이다.  35
우리의 마음은 사랑과 연애, 섹스에 대한 무수한 망상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고유의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 이상을, 그 외부를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  37
'사시사철 두리번 두리번 살금살금하면서,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대인이 안고 있는 마음의 병이야. 문명의 저주인 거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541-542쪽  42
이 자의식은 문명의 저주다.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 막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42
머리를 굴려 대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자의식을 침범당하는 게 두려워서다.  43
충동과 열정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충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래서 늘 중독적 상태로 치닫는 힘이다. 나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지만, 그 원인은 늘 외부에 있다. 그러므로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노예적으로 끄달리게 된다.
열정은 아무리 뜨겁게 솟구친다 해도 삶의 의지와 연동되어 있다. 그러므로 절대 중독되지 않는다. 열정은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한다.  45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성욕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47
여성들은 여전히 다수의 남성들로부터 프러포즈를 받는 걸 '인생의 큰 의미'라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이러니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결국 찼는가 차였는가로 귀결될 밖에. 허나, 따지고 보면 이런 논법만큼 무지한 것도 드물다.  52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점쟁이들이 무려 45만이라고 한다.
청춘남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은 운명적 파트너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딱 맞는 반쪽이 있다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맹목적 믿음에 근거한다. 
결론 부터 말하면, 반쪽이는 없다!  59
중요한건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는 일이다.  60
정말로 사랑에 목숨을 거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솔직히 현실적으론 사랑을 위해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망상 속에서 그렇게 동경할 따름이다.  64
참고 견딘다는 건 속에다 꾹꾹 눌러 담는 것이지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67
희생이라는 포장 속에 어설픈 평화를 누리기보다 솔직하게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화끈하게 전투를 벌이느 것이 사랑의 본래 면목에 더 가깝지 않을까. 고로, 희생과 헌신이라는 미덕만큼 사랑과 거리가 먼 항목도 없다.  68
감정적 간극이 벌어지게 되면 자주 투닥거리게 되고, 어느새 결별의 상황에 이르고, 그러면 또 다시 새로운 짝을 찾아 헤맨다.  69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말은, 곰곰이 따져 보면, 사랑은 늘 처음의 그 격정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변한 것, 아니 변절에 해당한다.  70
이런 망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사랑이란 추억 아니면 몽상으로만 존재한다.
추억은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고, 몽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다.
말로는 아름답다, 순수하다, 아직도 그리워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뿐이다. 막상 만날 기회가 오면 거의 대부분 달아나 버린다. 왜? 아름다운 추억이 망가질까봐.  71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한다. 단 한순간도 '지금, 여기'의 사랑을 누리지 못한다.  72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랑의기술>13쪽  73
남자들은 오직 권력과 돈, 여성들은 성적 매력과 몸치장에 몰두한다. 마치 그것만 갖춰지면 사랑은 절로 굴러온다는 듯이 말이다.  73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은 절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공부는 근본적으로 몸과 우주에 대한 탐구이다.  73
우리 주변엔 실전연애 노하우에 대한 숱한 책들이 널려 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이런 식으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걸까?기교라고 쳐도 참으로 유치한 수준 아닌가. 그만큼 연애가 힘들다는 뜻일터. 
순정파건 냉소파건 다들 나름대로 테크닉에 골몰하는 건 틀림없다.  75
요즘 커플들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터.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 간다.  77
사람은 평생 단 하나의 병만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 신체적으로 볼때, 하나의 약한 고리를 중시으로 다양한 병들이 변주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사람은 평생 단 한 종류의 연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위안이나 동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 진정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헌데, 문제는 다들 상담을 받거나 점쟁이를 찾아가려 하지 스스로 깨우치려고 하질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이니, 사랑에 관한 한 성숙해진다는 관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79
솔직히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유치하기 짝이 없다면 그건 일종의 발달장애에 해당한다. 헌데, 그것이 졸지에 순수함으로, 그리고 다시 사랑의 미덕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80
 

2부 청춘의 '덫'. 국가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
20세기 초 서구문명이 이 땅에 도래할 즈음, 당대를 주름잡던 계몽가들은 가종 신문매체를 통해 엄숙하게 경고했다. 조선이 망한 건 열대여섯 살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을 억지로 혼인시켰기 때문이라고.  93
그럼 지금은? 만약 스물두 살쯤 된 청년이 결혼이나 동거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택도 없는 소리다!
지금의 경제조건에선 최소한 서른은 되어야 사회적으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견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94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선진문명을 이룰수록 청춘들의 원초적 욕망은 계속 지체되어야 하다니 말이다.  96
지난 100년간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건 '성에너지의 국가적 몰수'라는 대가를 치렀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98
세상에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도 없고, 사랑이 필요없을 만큼 강한 존재 또한 없다!  103
'엄마의 늪' 우리으 청춘들은 아직 엄마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105
온실과 정글. 엄마의 관리와 보호가 미치는 곳은 온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맨몸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곳은 정글.  105
요즘 청년들에게서 열정이나 패기를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외모나 체격은 눈부시게 개량(?)되었지만, 청춘이 내뿜는 특유의 포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아주 일찌감치 '삭아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정글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두 발로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전방위적 마크하에서 그런 신체적 능력을 터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11
"젊음이란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연령에 걸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것이다." - 들뢰즈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쟁을 치르고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자시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마음이 연구와 학문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노년보다 더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126
어떤 종류의 관계든, 어떤 활동영역이든 존재의 자유와 충만감이 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에로스다!  142


3부 청춘이여, 욕망하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146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한 가장 일차적인 행동지침은 자신의 몸과 능동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147
질의 차이가 없다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150
니체는 말했다.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 있는가?" 나를 멸망시킨다는 건 바로 지금까지의 나, 자아 혹은 자의식의 성채를 무너뜨리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  152
이것은 미쳐 날뛰는 광기나 변덕스런 충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광기나 충동은 절대 폭풍을 일으키지 못한다.  153
상상하는 연애에서 관찰하는 연애로!
"연애를 하는데 남자친구 때문에 너무 괴로워해요. 근데, 왜 해어지지 않느냐구 했더니 대답이 아주 재밌어요. 몇 년이나 사귀었지만, 이 남자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 이해를 한 다음에 헤어질 작정이다. 그래야 인생에 대해 뭔가 알게 되지 않겠냐 이거죠."
 이 정도의 뚝심은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관찰하는 연애다.  157
나를 관찰하고 상대를 관찰하고 몸과 마음의 간극을 줄이는 것!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나와 같은 시공간 속에 있는 '친구'이다. 그 친구를 공부하는 것이 곧 그를 향한 최고의 '사랑법'이 아닐까?  158
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그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욕망의 구조가 있을 뿐이다.  162
중요한 건 자유다. 쾌락을 즐기건 금욕을 하건 누구든 자기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몸과 우주가 소통하는 그만큼 자유의 곤강이 열릴 것이다.  170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가? 그거야말로 내 몸이 특별한 리듬과 강도를 갖게 된 것인데, 그게 왜 창피한 일인가? 그렇게 느끼는 건 전적으로 사랑과 성을 권력관계로 보게끔하는 망상구조 탓이다.  182
우리시대의 연애가 썰렁해진 건 무엇보다 '차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준은 물론 학벌, 가족관계, 거기다 외모까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어떻게 열정이 폭발하겠는가.  194
사랑이 탈주선이 되려면, 무엇보다 이 쇼 망상의 그물을 가차없이 해체해야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기념일 챙기는 것부터 걷어 치워라. 세상에 그런 멍청한 짓거리가 어디 있는가. 대체 사랑의 시작점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시작점을 헤아리는 건 끝날 때를 미리 대비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뭣 때문에 카운트다운을 하는가 말이다.  195
진짜 소중한 선물에는 '삶의 서사'가 묻어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일상의 리듬과 무관한 선물이란 그야말로 쇼에 지나지 않는다.  197
쇼! 하지마라! 쇼! 
그럼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래서 창의성이 필요하다. 나의 사랑이 지닌바 특이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는 사랑법을 창안하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법을.  198
걷고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고 삶의 서사 혹은 일상의 활발한 기운을 서로 선물하고, 이것이 기본기라면, 그 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코스가 있다. 책읽기 혹은 공부하기.  203
지성과 에로스는 절대 따로 놀지 않는다.  204
대장금  205
연애 중독증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209
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전령사다.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매트릭스, 아주 이질적인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그것이 곧 책이다.  211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존재의 크기다.  212
가장 좋은 건 늘 누군가와 세미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본래적으로 네트워킹이다. 홀로 서재에서 끙끙거리며 남을 지배하기 위해 하는 건 경쟁을 위한 도구지, 절대 공부가 아니다. 즉, 공부를 한다는 건 무조건 친구들과 함께 세미나를 한다는 뜻이다.  213
연인 사이가 끝난다고 그와의 모든 인연이 종결된다면, 더구나 함게 공유했던 배경까지 몽땅 잃어버려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215


4부 에로스와 '운명애'
에로스와 지적 능력의 함수관계 - 지성에서 비롯된 매력은 위이 사라지지 않는다. 장금이가 그랫고, 루쉰이 그랬고, 사르트르가 그러했다. 우리는 흔히 '매력'을 멋지고 세련된 외모와 일치시키지만, 사실 네루다와 조르바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게 그들이 '잘생겼'기 때문이던가? 이 '사랑의 달인'들이 가진 공통점은, 지성과 서사가 흘러넘쳤다는 사실이다. 고로, 공부하라, 그러면 사랑은 절로 따라올 테니!  222
사랑을 원한다면 혹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서사의 능력을 키우도록 하라. 서사는 화술이 아니라, 나의 삶과 외부가 맺는 관계성의 문제다. 따라서 서사능력을 키우려면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생생한 힘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  225
건강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과, 사건들과 맞닥뜨리고 관계하는 방식입니다. 관계의 건강성, 바로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이렇다. 사랑은 나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라의 원인이 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234
사랑의 창조, 그 궁극적 지점은 다름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235
유머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과도 접속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떠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유머러스한 신체'가 되어야 한다.  240
그 사랑은 미련도, 회한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한편으론 자나간 것, 곧 추억에 매달리고, 다른 한편으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몽상 속에서 정작 '지금, 여기'에 온전히 기투하지를 못한다. 대개는 자신으 ㅣ과거 또는 상대방의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249


에필로그
"모든 인간은 자신으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사랑도 똑같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사항이 하나 있다. 이 능력의 차이를 위계화하지 말것. 각기 다른 방식의 사랑법이 있을 뿐이다.  260
중독된다는 건 삶과 분리되어 오직 쾌감의 증대를 향해 치닫는 것이다.  261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386쪽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262-263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느 에로스,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원동력이다.  263
혁명이 광장에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표현되는 것이라면, 코뮌은 그 혁명의 일상적 형식이다. 일상 속에서 자본과 권력의 코드를 벗어난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 가는 . 그럼. 코뮌과 에로스는 어떻게 연동되는가?  264
사랑의 독점적 지배하에선 우정도 절대 싹을 틔우지 못한다. 
사랑과 우정이 왜 적대적인가? 사랑하는 연인이란 가장 좋은 친구라는 의미도 들어 있지 않은가. 이탁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변주하면.. "연인이면서 우정을 나눌 수 없다면, 연인이 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사랑보다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사랑이 원숙해지면 누구나 친구 같다고 하고, 사랑에 멍든 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친구 같은 연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평소 우정의 지혜를 많이 터득해 두어야 한다.  266
우저에도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아주 다른 삶, 낯설고 창발적인 사유와 생활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고 ㅏ우정 사이의 매끄러운 흐름, 그것이 바로 코뮌주의자의 사랑법이다.  267
흔히 도(道)와 에로스느 적대적이라고 간주한다. 에로스적 충동을 억눌러야만, 다시 말해 가능한 한 탈성화되어야만 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원초적 본능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지 않고서 어찌 생사를 넘는 해탈이 가능할 것인가? 사랑이 생명의 원초적인 뿌리이자 원동력이라면, 마땅히 인간의 우주적 경지인 도와 이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름하여, 사랑의 절대적 탈영토화!!!  269
행복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자유와 해방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에 관한 오만과 편견, 자의식을 둘어쌍 망상의 그물망을 벗어나 한걸음, 단 한결음만 내디딜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백척간두진일보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271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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