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22.01.24 여행의 이유 - 김영하 문학동네 e-book
  2. 2022.01.03 잘 지내나요 내 인생 - 최갑수 보다북스 2020 03810
  3. 2019.03.06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e-book) - 사사키 후미오 비즈니스북스 2015 05190
  4. 2018.12.19 여행육아의 힘 - 서효봉 카시오페아 2016 03590
  5. 2016.07.04 상처 떠나보내기 - 이승욱 예담 2011 03180
  6. 2016.01.14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 아니 에르노 열림원 1998 03860
  7. 2016.01.04 집착 -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05 03860
  8. 2015.12.17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문학동네 2015 03300
  9. 2015.12.10 모든 요일의 기록 - 김민철 북라이프 2015 03810
  10. 2015.12.03 에로스의 종말 -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5 03100
  11. 2015.11.23 포옹 - 필립 빌랭 문학동네 2001 03860
  12. 2015.11.05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열린책들 2012 03860 2
  13. 2015.11.02 한 여자 - 아니 에르노 열린책들 2012 03860 1
  14. 2015.09.04 여행자(旅人) - 후칭팡 북노마드 2014 03820
  15. 2015.02.27 여행 정신(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삐딱한 안내서 -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 책세상 2013 03800
  16. 2015.02.07 슬로우 육아 - 헤르베르트 렌츠 폴스터 부키 2013 13590
  17. 2014.12.08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임승수 한빛비즈 2014 13800
  18. 2014.01.07 인생 - 최인호 여백 2013 03810
  19. 2012.12.04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하기 - 김은지 김종현 이야기나무 2012 03810
  20. 2012.11.28 여행 .. 첫번째 터닝포인트
  21. 2012.11.10 배움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가 ... <아름다운파괴> <수상록>
  22. 2012.11.02 여행... 읽다 2
  23. 2012.09.14 진리에의 진리로의 여행 ...영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24. 2012.08.14 러브 앤 프리(Love & Free) - 다카하시 아유무 동아시아 2002 03830
  25. 2012.05.01 11분(Eleven Minutes)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4 03890
  26. 2012.04.23 연금술사(Alchemist)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1(1988) 03890
  27. 2012.03.29 청춘표류(靑春漂流) - 다치바나 다카시 예문 2005 03830
  28. 2012.03.04 읽기의 힘, 듣기의 힘 - 다치바나 다카시외 열대림 2007 03800
  29. 2010.11.17 '포기'는 배추새면서 쓰는 단어입니다.
  30. 2010.08.22 좋은 나무는 쉽게 크지 않는다


영어 ‘travel’이 ‘여행’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14세기 무렵으로,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파생한 것으로 춛정하고 있다. 이 단어에는 현대의 우리가 ‘여행’ 하면 떠올리는 즐거움과 해방감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노동과 수고, 고통 같은 의미들이 담겨 있을 뿐이다. 현대 영어에서는 아직도 ‘travail’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고생, 고역 등이며 ‘in travail’이라고 하면 ‘산고로 몸부림치다’같은 의미가 된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 머물지 못하고 타향을 헤매는 것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행한 운명으로 여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을 쳐서 ‘객사’라든가 ‘역마살’이 나오면 불길하게 생각했다. 서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20세기 이전까지는 재미로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멀리 떠나는 자는 삶의 터전을 빼앗겼거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교적 열정으로 떠나는 순례도 있었지만 험난하고 고생스러웠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성격 차조 워크숍’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창조해보는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만들어온 인물들은 대체로 모호하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대학생, 공무원 등등)이에요.’ 그럴 때 이렇게 맗하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나의 역할이었다.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셋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스프레드시트로 표를 하나 만들어 소설을 쓸 때마다 사용한다. 비중이 있는 인물이면 그의 외모부터 습관, 취향까지 다양한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해본다. 마치 앙케트 조사와 비슷하다.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물의 내면이다. 윤리적 태도, 성(性)에 대한 관념, 정치적 성향 등, 십여 개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다보면 인물에 대해 좀더 또렷한 윤곽이 그려진다. 그런데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 같은 고정관념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백인은 어쩌다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룬 흑인을 만다면 ‘흑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대사를 칭찬이랍시고 치게된다. 작가가 미리 생각해둔 프로그램이 인물의 대사가 되어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관객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더 넓게 보자면 ‘프로그램’이란, 인물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모두 자기 탓으로 귀인한다(‘내가 손대면 되던 일도 안 돼’). 반대로 어떤 이는 언제나 남 탓으로 돌린다(‘내가 뭐랬어? 도대체 일을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다니까!’). 어떤 인물은 뭐든지 신중ㅎ하게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거의 벌이지 않고, 반면 이떤 사람은 무슨 일이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낫다고 확신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이런 것도 프로그램이다.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해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 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관 속에 노잣돈이나 길동무 인형을 넣어준다. 철저한 무신론자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면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댇적으로 필요로 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 는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맏아들이고, 그들에게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떠나보내오기도 했다. 거의 모든 문명에, 특히 이동이 잦은 유목민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계율들이 남아 있다.

환대의 관점에서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면,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와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주었다.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는 여행에서 우리가 낯선 이에게 품는 신뢰, 그것의 기묘함에 해대 썼다.
‘고향과 공동체를 떠나 한동안 먼 곳에서 지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는 매일 낯선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핏줄로 이어져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신념이나 공동체를 공유하지도 않고 계약으로 묶여 있지도 않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가 어떤 가족이나 부족의 일원인지도 모르며 그가 사는 마을의 위치도, 그가 사회와 자연과 우주속에서 어떤 부문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를 신뢰한다. 그의 말이나 몸짓도 이해 못하고, 목적이나 동기도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발생하는 신뢰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잘 정의돼 있는 행동으로 이루어놓은 공간을 건너뛰어 그 자리에 당신과 함께 있는 진짜 개인과 곧바로 접촉하는 것이다.
일단 누군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으면 우리의 정신속으로 평안함뿐 아니라 자극과 흥분이 파고들어 온다.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신뢰 안에는 용기뿐 아니라 기쁨과 유쾌함도 들어 있다. 신뢰는 위기가 닥쳤을 때 웃게 해준다. 그리고 성적인 매혹도 신뢰와 아주 흡사하다.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푹 빠지면 한없이 끌려가게 되듯 무조건적인 신뢰로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신뢰에도 성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며 신뢰는 타인의 알 수 없는 핵심에 집착하는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는 차인의 감정 및 영향력과 연결된다. 스카이다이버가 낙하산을 건네기 위해서 자신의 뒤를 따라 낙하하는 동료에게 보이는 신뢰감에는 어딘가 성적인 면이 있다. 정글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원주민 젊은이에게 보이는 그 신뢰감도 마찬가지다.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알폰소 링기스 <기 ㄹ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오늘의책, 2014, 10~14쪽).

어떤 도시에서 여행자들은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어하기도 한다. 여행자의 표지들, 예컨대 커다란 배낭, 편안한 신발, 손에 든 지도, 카메라 등을 숨긴다. 마치 모처럼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온 현지인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장’은 여행자들이 선망하는 나라와 도시에서만 수행된다. 뉴욕이나 파리, 바르셀로나와 같은 선진국의 매력젖ㄱ인 도시에서는 ‘습격을 감행하는 여행자’가 되어 스테레오타입으로 분류되기보다는 노바디가 되어 가급적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반면 ‘여기 사시나봐요?’ 같은 말이 별로 달갑지 않은 나라와 도시도 있다. 그때는 여행자로서 현지인과 적극적으로 구별 짓고자 한다. 마치 식민지 인도에 부임했던 대영제국의 관리들이 찌는 듯한 폭염에도 셔치의 단추를 풀지 않고 긴 소매의 재킷을 고집했던 것처럼 여행자의 표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듯 여행자는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그 나라와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또한 그 도시의 정주민들이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맞춘다.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실뱅 테송의 표현대로 여행이 정말 일종이 습격이라면, 여행자들의 이런 선책은 원주민의 힘과 위계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여행자를 반기지 않고 심지어 공격할 수도 있는 오많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 도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라면, 여행자는 자신을 최대한 감추며 드러내지 않고자 할 것이다.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교토 같은 도시에서 최근 대두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시민들의 적개심을 여행자들도 분명히 알고 있고 때로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기도 한다. 그들은 관광객들이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공유 서비스를 통해 집세를 폭등시키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며, 교통 혼잡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습격을 당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면 현지인 상당수가 관광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여행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친절한 도시에서 우리는 굳이 자신을 현지인으로 가장하거나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 도시의 원주민들이 우리가 떠나온 나라에 대해 강력한 호감까지 갖고 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럴 때면 개별적인 자아 대신 더 매력적인 집단적 페르소나 뒤에 숨고자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뒤에 그 말은 사람이나 인격, 성격을 가리키는 단어들의 어원이 되었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고향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지에서 쓰는 가면이 조금 낯설 뿐이다.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젆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 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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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여행, 이토록 무의미한 아름다움이여.
여행은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새벽 안개 가득한 거리, 홀로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던 비엔나의 11월. 내겐 마음이 아직 남아있구나. 나를 글썽이게 만드는 이토록 무의미한 아름다움이여.
여행을 하며 나는 세상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폭포는 끝없이 낙하하고 폐허는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린 모두 처음 살고 있으니까요.  5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건
‘잘해 보자’, ‘열심히 해 보자’ 이런 게 아니라
조금만 너그러워 지자.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15

파이팅!!! 같은 건 하지 말자.
그런 거 안 했지만 우린 지금까지 열심히 잘 달려왔잖아.
최선을 다하려고도 하지 말자.
그것도 하루 이틀이잖아.
매일매일 죽을 힘을 다해 달리려니까 다리에 쥐 난다.
지친 것 같다.
조금은 적당히.
조금은 대충대충.
좀 걸어 보는 건 어떨까.
걸으며 손도 잡고 주위도 돌아보고 그러자.
오늘부터는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면서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가져가면서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25

나는 좀 더 외로워져야겠다.
안개 뒤에서
길 위에서
불꺼진 창문 너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1000번 광역 버스 안에서
더블린, 카이로, 루앙프라방, 도쿄 혹은 사파에서.  75

허물어진 사랑은 허물어진 대로
그대로 두겠다.
어쩌면 그것 또한 보기 좋을 것이니.  76

우리가 경험하는 여행은 논픽션이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여행은 픽션이다.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멋지게 이륙하는 비행기의 가벼운 각도다.
아쉬운 건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수백년 전의 여행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매혹적인 일이다.
여행자는 생의 비밀을 엿보고 싶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이즘(ism)을 설득하고 성취하기 보다는 그것을 살아버린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행과 음식, 숙소, 길,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편견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들은 그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 왔다. 해안선을 넓히고 고도를 높였다. 시간을 확장하고 공간의 깊은 곳을 탐색했다. 지도를 만든 것을 그들이다.

여행, 그것은 삶과의 달콤한 밀월을 즐기는 일이다.
우리의 여행이 서사를 장착할 필요는 없다. 교훈적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건 각설탕 같은 것이다.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된다. 우리의 여행은 단지 생의 체온을 조금 높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즐기고 탐닉하라’ 이것이 여행자의 첫 번째 행동강령이다.
여행은 고백의 한 양식, 익명적 중얼거림, 세상에 대한 깊이 없는, 그래서 가벼운 그렇기에 유쾌한 찰나적인 긍정.
여행이 자신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그러나 여행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라.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처음 보는 생의 풍경을 문득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겁먹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마라. 그 풍경은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니까. 우리는 단지 설레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환상을 좇아 여행을 떠난다. 어떤 이는 환상을 깨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환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 시간 속에 슬며시 심장을 올려놓는 일이다.

길과 가장 잘 사귀는 방법은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거야.
나이가 든 여행자들을 존경하라. 그들 대부분은 인생의 교훈을 체득한 이들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혹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여행을 시작한 이들이다. 이들은 낯선 풍물을 보며 신기해하지도 않고,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따위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여행이란 생에 골몰하는 가장 유익하고 헌신적인 방법, 생과의 가장 완벽한 열애.
여행은 언제나 실패다. 성공적인 여행은 없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여행을 떠나고 그 실패는 즐겁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당신이 긍정을 배웠으면 좋겠다.  139-141

여행의 정석
가장 빠른 달팽이처럼.  143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대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그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기는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지평선 너머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물음 : 여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답 : 아, 이건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놓치기 싫어 그토록 손에 꽉 쥐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별것 아니었다는 것. 아마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176

물음 : 훌륭한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요?
답 : 그런게 있을까요?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험을 하든, 쇼핑을 하든, 미술관을 가든, 하루 종이 ㄹ호텔 수영장에 드러누워 햇빛을 쬐든, 타인의 여행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좀 그렇군요. 여행은 그냥 여행이지 ‘훌륭한’ 여행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다는 것, 과연 ‘누구’에게 훌륭한 것일까요? 훌륭한 여행보다는 좀 더 사려 깊은 여해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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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우리에게 더 이상 물건은 필요 없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래서 매일 공부하고 일하며 육아와 스포츠, 취미 활동에 힘쓴다. 남의 눈에는 이런 삶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고독하며 불행을 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두가 행복을 추구한 결과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 물건을 줄이는 일은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일이다.






나 자신의 가치는 갖고 있는 물건의 합계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이런 사람이다.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하기 위해 소중하지 않은 물건을 줄인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그 외의 것을 줄인다.' 이런 미니멀리즘의 정의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그렇게 많이 소유하려는 걸까? 그렇게까지해서 물건을 갖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는 목적'을 위해서다. 우리는 물건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애쓰고 있다. 


내면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가 어렵고 알리는 데 시간도 걸린다.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물건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전달하는 편이 쉽고 빠르다. 하지만 물건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넘쳐나는 물건에 얽매이게 된다. 


버릴 때는 버리는 물건만 생각하지 말고 그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눈을 돌리자.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전부 손꼽을 수 있어야 한다. 소유한 물건 중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적은 물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소중하게 의식하라. 그렇게 물건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물건을 소유하는 만족감을 두 배, 세 배로 높여준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커피 잔을 두 개, 세 개 갖기보다는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완벽한 잔 하나를 정성스럽게 닦으며 소중하게 다루는 편이 훨씬 만족도가 높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습은 반복해서 행동한 일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위업은 행위가 아닌 습관에 의해 완수할 수 있다.'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강박관념이다.


미니멀리즘은 절약하는 데 무척 효과적이지만 단순히 절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물건에 들이던 돈을 경험이나 사람을 위해 쓰고, 새로운 작업을 위해 투자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돈 쓰는 법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면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면 왠지 미래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식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다양한 삶의 방식이 허용되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행복의 본보기 같은 것이 존재한다. 정규직으로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둘이나 셋 정도 낳는다. 늙어서는 재롱부리는 손주의 얼굴을 본다. 이렇게 살아야만 행복해진다는, 이것만 달성하면 행복해질 것 같은 목표다.


행복해지는 일은 없다. 행복은 그때마다 '느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뿐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가의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찾아오는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언제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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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인생을 뒤바꾼 '여행', 교육의 터닝 포인트 '여행'


이 책은 여행으로 교육하기를 원하는 부모를 위한 책입니다. 6


모든 걸 만족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는 포기해야지요. 바로 우리 머릿속의 생각입니다. ..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은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합시다.  9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활동은 아마 '교육'일 겁니다. 내 아이를 교육하고 싶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입으로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건 모순입니다.  9-10




Chapter1. 아이교육, 여행이 답이다


경험의 축적은 새로운 인식을 빚어냅니다. 이것이 곧 여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4


여행 중에 경험하는 관계는 ..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니라,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가며 만나는 관계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지요. 상점 주인과의 흥정, 기차에서 만난 누군가와의 대화, 길을 가르쳐준 이름 모를고마운 사람과의 만남, 숙소에서 함께한 어떤 여행자와의 노닥거림,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과의 인사 등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배웁니다. 여기에 보너스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이루어낸 자신의 모습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 자신감을 얻는 거지요.  29


시냇물과 강물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듯 세상을 여행함 낯선 것과 부딪힐 때 비로소 더 큰 생각에 닿을 수 잇습니다. .. 낯선 것을 많이 접해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용기를 냅니다.  32


당연히 낯선 것들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용기내어 낯선 것과 마주하는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여행은 낯설음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주변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서면 필연적으로 낯선 것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33


여행으로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한 번에 오랜 기간 여행하거나 짧더라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여행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아이와의 여행은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한 번에 오랜 기간 여행하는 게 좋고, 체력이 약한 아이는 정기적으로 꾸준히 여행하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아이가 스스로 나설 만큼 여행을 즐겁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리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여행하더라도 본인이 즐겁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지요.

셋째, 여행을 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교육 철학이 명확해야 합니다. 여행으로 아이를 교육하고 싶다면 어른부터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어른이 갈팡질팡하면 아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행의 결과를 너무 강조하면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소중히 여기면 충실한 여행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건 뻔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그 뻔한 사실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따야 하는 운동선수가 아닙니다. 과정이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여행해야 할지 당장 답이 나옵니다.  42-43




Chapter2.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의 여섯 가지 원칙


법정 스님이 쓴 <버리고 떠나기>에는 '미련 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르게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53


'몸으로 하는 여행'입니다. 우리가 흔히 '관광'이라고 부르는 것과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전적으로 비슷한 뜻입니다. 관광은 '다른 지방이나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한다'는 뜻이고,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두 단어가 지닌 이미지는 조금 다릅니다. 대체로 관광은 '나이 드신 분들이 버스 타고 다녀오는 단체 여행'같은 이미지라면, 여행은 '젊은이들이 배낭 메고 떠나는 개별 여행'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관광의 ... 가장 큰 장점은 준비하는 데 드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겁니다. .. 가장 큰 단점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두고 '주마간산'식 여행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요. 주마간산이란 '말을 타고 달리며 산천을 구경한다'는 뜻인데 자세히 살피지 않고 대충대충 보고 간다는 겁니다.  76


장피에르 나디르와 도미니크 외드가 쓴 책 <여행 정신>에는 '여행은 삶과 같다.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목표를 향해 서둘러 갈 권리도 있겠지만, 길가에서 경험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중략) 이는 즉흥적으로 살고, 예상치 못한 일에 황홀해 하며, 깜짝 놀라기도 할 줄 안다는 의미다. 효율성과 안전, 시장 경제라는 씁쓸한 핑계 아래 여행자들은 점점 더 무리 지어 다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에 제약을 받는다. 차라리 이런 시스템에 고장이라도 나서 여행자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77


걷기 여행은 계절이나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체력적인 부분까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여행지를 날 것 그대로 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가장 오래된 여행 방식입니다. '여행의 원조'라 할 만하지요. ..걷기 여행은 느리게 한발씩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다가가는 여행입니다.  78-79


아이를 무시하는 부모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대체로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이 때문에 아이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가 되지요. 아이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느니 내가 직접 빠르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이 일은 내 아이가 해낼 수 없는 일이야'라고 여기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를 무시하는 태도는 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85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해결하되 여행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분명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89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흉내만 내는 여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귀찮으니까 남들 가는 것처럼 갔다 오면 되겠지 생각하면 아이는 '여행이란 이렇게 지겨운 거구나'하면서 여행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99


문제를 해결하고 적응해나가는 능력은 경험하지 못했던 일에 도전해 성공하거나 실패하면서 생깁니다. 성공을 통해 성취감과 재미를 얻습니다. 실패를 통해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합니다.  110


다케우치 히토시는 "여행을 하는 것이나 병에 걸리는 것, 이 둘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점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병에 걸려 아플 때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듯, 여행을 하면서 겪는 고생스러움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125


약 300년 전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잘산다고 자부하는 상류 계층에서 유행하는 여행이 있었습니다.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던 이 여행은 영국 상류 계층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여행이었지요.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곳을 돌아보며 상류 사회의 각종 예법과 언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상류층 자녀를 위한 엘리트 교육인 셈이었지요. .. 짧게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여행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가정교사 2명과 하인 2명 이상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가정교사 1명은 주로 학문을 가르쳤고, 다른 1명은 승마, 펜싱, 춤 같은 활동을 가르쳤습니다. ..

여행 코스는 대체로 프랑스에서 시작해 스위스를 겇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일정이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한 분위기에서 영국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키느니 차라리 뛰어난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보내 교육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여행이 교육의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른 순간이었지요.  128-129




Chapter3.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약속


아이와의 대화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마음가짐은 '진정성'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아이가 오롯이 느낄 수 있게 진정성 담긴 이야기를 시작해보세요. .. 그냥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린아이들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금방 빠져듭니다. 동화나 옛날이야기도 좋지만 부모의 삶이 담겨 잇는 이야기는 더 좋습니다.  151


실컷 이야기하고 훈계로 끝맺으면 다음엔 부모 이야기를 듣기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 끝내는 게 좋습니다. 대신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살짝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지요.

아이에게 부모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이해할 수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152


중요한 것은 대화할 때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를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 그럼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1. 나의 태도, 언어, 모습 : 지금 나는 어떤 태도(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로, 어떤 언어(긍정적 언어를 사용하는가)를 사용해서, 어떤 모습(표정, 목소리, 행동)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아이의 태도, 언어, 모습보다 나의 것에 집중해야 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2. 질문의 방향 : 질문은 아이와 나의 관계를 진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질문과 대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관계 회복이 먼저입니다. 적절한 질문은 아이를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도록 이끕니다. 내가 던진 질문, 아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의 방향에 집중하고 대화해야 핵심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재미 : 대화가 재미없나요? 재미없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유머감각이 없어서? 아이가 무감각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다 아닙니다. 재미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재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이야기하면서 손톱만큼이라도 재미있을 만한 소재가 있다면 그걸 붙잡고 재미를 느껴보세요. 내가 재미를 느껴야 아이도 재미를 느낍니다. 웃긴 이야기, 센스 있는 입담까진 없어도 됩니다. 아이의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재미를 발굴해보세요. 재미에 집중하면 대화가 쉬워집니다.

4. 아이의 감정 : 어린아이일수록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감정에 집중하고 그 감정을 존중해주세요. 대화할 때 감정은 생각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 코팅을 잘해주면 아이의 삶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5. 아이의 생각과 의도 : 어른이라면 아이의 생각과 의도를 잘 읽어내야 합니다. 아이와 똑같은 수준에서 이야기하면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지금 어떤 생각과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넓은 시야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155-156


우리는 대부분 '꿈=직업'이라는 착각을 하며 삽니다. 직업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꿈이 될 수 있는데 말이지요. .. 어른들은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는 아이가 대답이 없으면 "꿈 없어? 의사, 변호사, 선생님 이런거 말이야"라고 이야기합니다. ...

꿈이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꿈을 무엇으로 정할지는 아이가 할 일입니다.  168-169


요즘 아이들이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도 제대로 꿈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생각하는 시간'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체험학습은 그저 체험으로 끝납니다. 그리고는 생각할 여유도 그 어떤 계기도 허용하지 않는 바쁜 생활로 돌아가지요. 체험은 추억으로만 남습니다...

아나톨 프랑스는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172


공자는 "시를 읽음으로써 바른 마음이 일어나고, 예의를 지킴으로써 몸을 세우며, 음악을 들음으로써 인격을 완성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여행도 음악을 통해 완성될 수 있으니,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 멋진 배경 음악을 한번 깔아보세요.  176


일하는 것의 반대는 노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일하는 것'의 반대는 '일하지 않고 쉬는 것'입니다. '노는 것'의 반대도 '놀지 않고 쉬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은 쉬지 않고 행하는 여러 가지 활동입니다.  180-181


7살 정도 된 아이가 집에서 연필을 잃어버렸습니다. 엄마에게 연필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겠지요? 엄마는 묻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어?"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언제 연필 썼는지 기억 안 나?"

"네."

"혹시 거실에 둔 거 아니야? 어제 거실에서 숙제했잖아."

"아, 맞다. 그렇지! 찾았어요."

잃어버린 연필을 찾은 건 아이일까요 엄마일까요? 아이는 혼자 연필을 찾을 수 없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연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찾은 거죠. 아이는 다음에 연필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할까요? 아마 거실이든 자기 방이든 마지막으로 숙제했던 곳에서 찾아볼 겁니다. 이렇게 아이는 엄마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연필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고츠키는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에서 "오늘의 근접발달영역이 내일의 실제적 발달 수준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오늘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할 수 있었던 일이 내일은 혼자서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뭘까요? 바로 엄마의 도움입니다. 교육 심리학에선 이런 도움을 비계(scaffolding)라고 표현합니다. 비계는 원래 건축 공사할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설치한 임시시설을 말하는데, 아이가 과제를 잘 수행하도록 어른이나 또래가 도움을 주는 걸 이르는 말이지요.

비계 설정의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1 아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

2 아이의 능력에 따라 '도움의 양'을 조절하는 것

3 아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

4 질문을 유도하고 아이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 등이 있습니다. 교육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이런 방안은 아이가 스스로 여행할 수 있게 이끈느 구체적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193-194


놀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놀이의 요소로는 자발성, 재미,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196


김정운 교수는 강의에서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이 대화와 의사소통의 근본이 되는 능력"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208


'Cook's Tour'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마간산 식 단체 관광 여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단어만 보면 언뜻 '쿡은 요리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단어의 유래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41년 토머스 국이라는 영국인이 런던에 세계 최초의 여행사를 차렸습니다. 그의 아들 존 메이슨 쿡이 사업을 함께하면 서 여행사 이름을 토머스 쿡 앤드 썬(THomas Cook and Son)으로 바꿉니다. 사람들은 이 여행사에서 개발한 여행 상품을 Cook's Tour라고 불렀습니다. 

이 여행 상품은 여행사에서 모든 일정을 짜고 여행자는 그 일저에 따라 단체로 이동하는 패키지여행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여행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에 여러 장소를 들릴 수 있어서 편하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정이 늘면 늘수록 이동하는 차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잠깐 내려서 둘러보는 식으로 여행했는데, 이 때문에 Cook's Tour는 주마간산 식 여행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패키지여행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요.  212-213


어른들은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더라도 삶 자체를 확연히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을 고정된 삶의 패턴 속에서 살아왔거든요. 이 패턴을 통째로 바꾸려면 대단한 결심과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갓 올라온 새싹처럼 쑥쑥 자라고 있기 때문에 배움이라는 물을 꾸준히 주면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계속 성장하는 과정이어서 배우면 배울수록 삶이 달라질 가능성도 커지지요.  225


아이와 여행하는 부모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막연히 여행을 다녀오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생각하는 것과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다릅니다. 이것을 알아야 여행 중 무엇에 힘써야 할지 알게 되고, 아이의 성장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배움이 곧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워야 성정할 수 있습니다. 배움은 성장의 기회지요. 여행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성장의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225-226


삶의 실체, 태도, 목적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이것을 배우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여행지에서 뭐든지 자세히 보고, 따라 해보고, 생각해보게 하는 겁니다. 자세히 보면서 삶의 실체를 이해하고 따라하면서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은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지요.  227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은 '여행을 통해 삶과 친해진다'는 의미입니다.  228


아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라는 말이지요. ... 마주 본다는 것은 대화의 기본자세입니다.  232


부모는 아이보다 시간을 짧게 느끼고 항상 시간이 없어 쫓겨 다닙니다. 반면 아이는 부모보다 시간을 길게 느끼고 무한한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할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느려터진 행동을 보이면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로서는 빨리 끝내고 놀면 될 것을 왜 저러나 싶고, 아이 입장에서는 하고 있는데 왜 저러나 싶지요. 이렇게 입장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실제로 같은 시간도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234


아무리 많은 교육 서적을 읽고 좋은 강좌를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내 아이를 마주 볼 수 있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235


지혜는 요령이 아닙니다. 상황을 꿰뚫어보는 눈이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가 빛나는 생각입니다.  248


오늘날 필요한 교육이란, 아이들을 어딘가에 가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길 위를 뛰어다닐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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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자기와 마주하는 시간 


상담을 잘 견뎌낸 사람들은 삶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고, 자신을 더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덜 보게 되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헛된 노력을 멈춘다.

어찌 보면 정신분석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여기 다섯 사람의 그러한 과정이 있다. 남편으로 인해 우울한 채영씨, 느닷없는 사고로 절망에 빠진 은철씨,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언제나 목마른 제니스. 주변사람들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미영씨,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낙담한 어느 성직자.  7


깊은 우울, 극심한 좌절, 사랑에 대한 집착, 타인을 향한 분노,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인한 주눅 듦.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8




레슬러의 사랑


 - 관계란 손안에 든 물과 같다. 놓치지 않으려 주먹을 꼭 쥘수록 물은 더 빨리 손에서 빠져 나간다. 그렇게 관계를 잃고 나면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던 힘보다 더한 분노가 찾아온다. 그러나 사실 그 분노는 관계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못한 자신을 향한 책망이다. 


관꼐의 경계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해야 할 분석가들도 종종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명명에 한 인간의 모든 삶을 밀어 넣음으로써 또 다른 경계를 지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16


처음의 조용하고도 서로에게 예의 바른 그 시기를 우리는 '신혼(Honeymoon period)'이라고 불렀다.  24


나는 내가 '정상'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34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 전부를 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제 의도를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요."(제니스)  39


내가 완전히 받아들여져 본 적이 있던가, 누군가 내게 100%를 주는 경험은 고사하고 아무런 사심 없이, 편견 없이, 의도 없이 온전하게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이 있던가, 결국 나는 누군가의 목적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졌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러니 제겐 100%를 줄 기회도 없었던 거예요."(제니스)  39-40


정신분석적 이론에서는 초기 애착관계에서 형성된 불안정 애착, 양가감정형 애착을 경계선 성격장애의 주원인으로 설명한다.  4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공간이 아닐까요? 경계는 오직 하나의 선이어서 바로 눈앞에 두고도 넘어갈 수 없게 하는 장벽, (투명한) 차단막입니다. 따라서 경계는 관계의 균열입니다. 하지만 관계 사이의 공간은 공명을 가능하게 하죠. 공간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때로는 물리적인) 영역이고, 그것은 사생활의 존중이라는 방식으로, 또는 정서적 여유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또는 특수한 환경으로서 공간의 제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46


우리는 어떻게 관계의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47


단정적인 말투는 갈등을 불러온다. 단정적인 태도 역시 갈등을 일으킨다.

자녀나 배우자나 친구들을 대하는 자신의 말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47


그가 내게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그의 감정이 자유롭게 전해질 수 있도록 채근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내 기분대로 해주지 앟아도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상대가 내 뜻대로 해주지 않을 때, 사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실망감 때문에 좌절한다. 그래서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 그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 기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 알지 못한다.  48


사실 증상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인 것이다.  49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완전한 사랑르 받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해 생겨난다고 말이다.  54





스스로를 없앤 청년


- 걸려 넘어진 돌을 딛고 일어서 오히려 디딤돌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넘어지던 바로 그 순간에 어떤 실수를 했는가, 다시 잘 돌이켜본다. 실수에 대한 수치심을 무릅쓰고서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 중 잃어버린 그 하나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할 때가 너무나 많다.  60


'난 장애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사실은 '난 장애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어'.'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86


그는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세요?"

"한 번도 달려본 적이 없어서 달린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알지 못해요.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죠."

달리는 감각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과 달리는 감각을 또렷이 기억하는 사람이 달리지 못할 때, 그 고통은 어느 쪽이 더 클까?  90

'내담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심지어 라캉은 "내담자들은 변화하기 위해 분석을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분석가에게 온다."고까지 말한다.  103





구원받기를 원하는 여자


- 분노가 자신을 향할 때 우울이 된다. 우울한 사람은 사실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왜, 누구에게 분노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납득하지 못한다면 우울은 해결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자신들이 만든 과거의 고통에 매몰되어 있었다.  113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사실은 애정 없이 사는지, 놀라울 일도 아니다.  117


처음에는 공감능력이 없는 남편들을 원망하다가 남편에게 없는 것을(공감능력) 달라고 징징대는 아내들에게 더 공감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120


"교활한 거죠. 채영  씨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교활하다고 느껴질 만큼 교묘하고 복잡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어놓아야 자기 치부가 쉽게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131


화를 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화나게 한 이유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에 대해 잘못된 생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화를 내면 자신이 화난 이유가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화의 뜨거움만큼 화난 이유가 강력하게 전달될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 뜨거움만큼 상대의 방어벽도 강력해진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날것의 감정 그대로를 드러내기보다는 그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합시다.."  141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농담', 그런 건 없다. 농담이야말로 가식 없는 진심이다. 정신분석은 농담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그것만이 진심이라고 확정한다.  147





누락된 자의 슬픔 


-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로부터도 말 걸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남자 분석가들조차도 자신의 아내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맺지 못해 발생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다.  19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경험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 붙박여 있던 자기 자신을 만나고 미뤄왔던 삶의 과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205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심심한 것이다. 그 심심함이 반복되면 불만이 쌓인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놀아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좀 더 멀리 있는 관계를 찾는다. 친구나 이웃, 동호회 사람들과 만나 심심함을 달랜다. 그 순간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깊은 외로움은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그들과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오히려 헛헛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외로움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이란, 내가 말할 대상이 없는 데서 비롯된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도 말 걸어지는 대상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도니 것이고 했다. 말 걸어지는 대상이라는 것은, 존재감의 확인이다. 우리에게는 말 걸어주기를 진정 원하는 사람, 오직 한 사람, 또는 소수의 몇 명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부모들이다. 그들의 말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수용적이어야 한다. 어루만지는 말이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217-218





마음이 가난한 자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가난이다. 가난을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신은 주저함 없이 그를 참된 아들로 삼을 것이다.



부모는 우리를 살리기도 하지만, 그들만큼 우리를 금지하고 명령하고 체벌하는 사람도 없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을 생각해보라. "하지마!", "만지지 마!", "울지마!", "가만히 있어!", "뚝!", "혼난다!", "맞는다!", 납득할 수 없는 체벌을 누구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는지 생각해보라.  222-223


사랑하지만 무엇을 주어야 할지 모르거나 자식에 대해 아예 고민을 하지 않기도 한다.  223


후회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실패로부터 구원한다. 그런 후회의 경험은 성찰로 승화된다. 하지만 상습적인 후회는 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229


무의식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사는지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252


우리는 대체로 가능하면 고통을 빨리 잘라내고 싶어 한다. 어떤 고통들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삶의 핵심과 관련된 고통일수록 단박에 잘라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의 삶이 불행하다는 반증이다. 고통을 없애려는 노력보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장악하고, 고통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마음의 품격이 고매한 사람일수록,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안다. 그들은 삶과 고통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인 이들이다.  264





맺음말 - 자신을 안다는 것


성찰이란, 어떤 상황이나 원칙에 자신의 삶과 경험을 대입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하기 위해, 어떤 배움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사유 활동을 할 때 가능하다.  269


더 이상 교활해지지 말고,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해져야 한다.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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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작가의 말


나는 세르지에 있는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가기로 결심했다.  9


나는 어머니가 아직 우리 집에 머물렀던 바로 그 기간 동안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머니의 여러 가지 행동들과 어머니가 한 말들을, 날짜도 쓰지 않은 채 종이 조각들 위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처럼 피폐되어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제발 미친 짓 좀 그만 하세요!"라며 고함지르는 꿈을 꾸었다. 그후로 나는 퐁투아즈 병원에서 어머니를 문병하고 돌아올 때면 점점 더 절박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말들과 모습을 어김없이 적어야만 했다.  10-11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그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12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13



1984년


1월


어머니는 더러워진 팬티를 베개 밑에 감추어둔다. 오늘밤 나는 예전에 어머니가 감추어두곤 했던 피투성이의 팬티들을 생각해보았다. 어머니는 세탁하는 날까지 창고 속에 넣어두는 더러운 속옷 더미 속에 그 팬티들을 깊숙이 파묻어두곤 했다. 그때 내 나이는 대력 일곱 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황홀에 겨워 피 묻은 팬티들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의 팬티는 똥투성이인 것이다.  18-19


나는 어머니가 전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19


토요일이다. 어머니는 커피를 토해내고는 기진맥진하여 꼼짝 않고 누워 있다. 한층 더 작아진 눈 주위가 붉게 가라 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려고 어머니의 옷을 벗겨보니 아직까지도 살결이 희고 부드러웠다. 옷을 갈아입힌 후 나는 울었다. 예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다름아닌 내 몸을 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20-21


2월 25일 월요일

우리가 응급실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들것에 실려 누워 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오줌을 누었다...우리가 진찰실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진찰대 위에 몸을 길게 쭉 펴고 누워 계셨다. 인턴이 복부까지 어머니의 잠옷을 걷어올리자 넓적다니, 음모가 없는 맨송맨송한 음부, 그리고 몇 군데 파열된 피부의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대번에 내가 그처럼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죽음 암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고양이는 죽기 전에 내 베개 위에다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20년전 낵가 유산했을 때 쏟았던 피와 분비물들도 생각났다.  21


3월 28일 화요일

쭈글쭈글 흉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두 손. 관절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집게 손가락은 새의 발톱과 흡사하다. 어머니는 손가락을 깍지낀 채 비비적거렸다. 난 어머니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4


4월 14일 토요일

어머니는 내가 가져온 딸기 파이를 먹고 있다. 크림 한가운데 들어 있는 과일을 파먹으면서 "여기서는 나를 소홀히 대접해. 검둥이처럼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잘 주질 않아" 하고 불평했다. 가난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어머니의 강박관념을 나는 잊고 있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독일 포로 수용소 부헨발트의 유령처럼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떤 여자가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릅뜬 채 아주 똑바른 자세로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잠옷을 들추자 기저귀 찬 팬티가 보였는데 음부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다면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한 이곳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인 것이다.  26


4월 부활절 일요일

어머니의 옆사람은 한 손을 팬티 속에 집어넣은 채 자고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모습이었다.  27


4월 29일 일요일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제장신이 들자, "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라고 말한 후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28


5월 13일 일요일

이곳 우스(발두아즈 내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에 사설 양로원이 있다)는 퐁투아즈보다 환경 조건이 여러모로 열악하다. 간병인이 내게 "당신 어머니가 오줌을 누었어요. 방안 여기 저기에 오줌을 누고 다니니 어쩜 좋아요, 그래"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오늘 내 안에서 비집고 올라왔던 사디즘적인 욕구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 다른 소녀들에게 느꼈던 가학적 욕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꾸 나를 공포에 떨게 하므로 보상심리에서 내가 가학적 욕구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30


6월 15일 금요일

내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찌푸린 표정으로 승강이 옆에 앉아 있었는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어머니는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당신의 병실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는 마카롱 과자를 주자 먹지는 않고 부스러뜨리기만 했다. 내게 이런 식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울고만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 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35


6월 23일 토요일

1층 로비에는 파자마를 입은 한 노인이 항상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전화를 걸려고 무척 애를 썼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종이 위에 적힌 전화번호를 내게 보여주길래 그대로 다이얼을 돌려주었지만 틀린 번호였다. 하루 종이 ㄹ이 노인은 아마도 어떤 단체 혹은 자식들 중의 하나인 듯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다. 거의 타인과 격리된 상태이다. 어머니는 이젠 개인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리고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모두 포기해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있을 때 화장품 도구 세트를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사물들에 집착함으로써 세상에 매달려 있고자 고군분투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손목시계도 화장수마저도 없어지고 지금 갖고 있는 것이라곤 먹을 것 밖에 없다.  36-37


8월 24일 금요일

난 지금, 나도 모르게 치솟아 오르는 감정에 편승한 채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42


9월 29일 토요일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여 있던 어머니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드실 비스킷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머리맡 탁자의 서랍을 열었다. 나는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당연히 과자라고 생각하고는 집어들었다. 그것은 똥덩어리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당황한 나머지 얼른 서랍을 도로 닫아버렸다. 곧이어 떠오른 생각은, 만약 내가 서랍 속에 똥덩어리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이를 발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얼마나 쇠퇴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은근히 바랬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종이로 싸서 화장실로 가져갔다.  48


12월 크리스마스

어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아프지 않도록 온갖 정성을 들여 조심스럽게 깎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지레 겁을 먹고 끙끙 신음소리를 낸다.  58




1985년 


1월 19일 토요일

어머니는 모든 기력을 총동원해서 게걸스럽고 억척스럽게 먹는 행동에 몰두한다.  61


6월 9일 일요일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은 자기의 벽장 속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반시간 동안이나 정돈한 다음 다시 전부 제자리에 갖다 넣는다. 도대체 이런 행동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집에서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실 무렵 어머니 또한 왜 이 노인처럼 행동하셨던 것일까? 그들의 정신 속에 부재하는 질서를 외부에서라도 바로 잡으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일까?...

어머니는 내 친구가 날 만나러 올 때면 "아니! 누가 찾아 왔다"고 하시며 기뻐하곤 했다. 어머니는 방문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것은 사랑의 증거이며 타인이 마음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77


9월 19일 목요일

어머니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인기를 누리고 싶어서 그림책과 사탕들을 나누어주길 좋아했었다. 그후론 준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 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는 방법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보앗던 광경이 떠오른다. 침대에서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누워 계신 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며 "예쁘지도 않네"라고 했다. 어머니의 음부, 즉 세계의 근원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90-91


10월 18일 금요일

어머니가 그랬듯이 시자에서 구걸하는 장님에게 적선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적선을 하는 어머니의 행위는 그 동냥자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단념시키는 일을 한 결과가 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 말은 청춘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터라 그때마다 얼마나 거부감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어머니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과 평상시에 입던 새하얀 블라우스 자락이 내 뒤에서 끊임없이 나부낀다.  94


10월 21일 월요일

어머니는 항상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던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곤 했다. "누구한테든지 말을 적게 해라"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사고방식과 사랑했던 방식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관점에 따르면 섹스란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인 악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95


11월 3일 일요일

어머니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양손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아 한참 헤맨 후에야 두 손을 맞잡을 수가 있었다. 오른손이 마치 낯선 물체를 잡고 있는 양 왼손을 꽉 쥐고 있다. 과자를 먹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입에 정확히 갖다 대지 못하고 빗나간다. 어머니의 손에 쥐어준 과자도 다시 떨어뜨리기 때문에 입 안에 넣어드려야만 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쇠약해졌고 그럴수록 동물적인 본능이 강하게 드러난다. 난 모든 것이 두렵다. 희미한 어머니의 눈빛, 어머니는 갓난 아이처럼 혀와 입술을 쪽쪽 빨아들였다 내밀었다 하다. 난 어머니의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고 머리를 묶을 고무줄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 손질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는 "난 네가 머리를 빗겨줄 때가 참 좋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말과 동시에 어머니의 모든 동물적 본능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말끔히 머리를 빗고 씻은 어머니는 다시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고 단장시켜주는 이 기쁨이여! 내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한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이 어머니의 목과 다리를 쓰다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살아 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는다는 것, 즉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96-97




1986년


4월 7일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괴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예측조차도 못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랬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14-115


4월 8일 화요일

일거수 일투족을 옮길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되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난 이렇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끌어내어 고갈시켜버리고, 지쳐버린 고통이 더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16


4월 10일 목요일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동전 지갑이 들어 있는 어머니의 여행용 가방과 흰색 여름용 핸드백, 머플러 몇 장이 있었다. 나는 여행용 가방을 벌려놓은 채 이러한 몇 가지 물건들을 앞에 두고서 멍하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몰랐다.

내가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들도 거기에 있었지만 난 그것을 펼쳐보고 싶지 않았다. 차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단지 두세 번 정도 이런 상태를 경험했다. 실연의 슬픔을 겪었을 때와 유산을 한 후에 나는 지금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118-119


4월 12일 토요일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10개월 된 어린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124


4월 20일 일요일

50세 때 찍은 어머니의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생기가 넘쳐 흐르는 얼굴과 적갈색의 금발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어머니는 꼭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서 마치 컬러 사진을 보고 있는 것같았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2주일 전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그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128


4월 28일 월요일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혀진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128-129




옮긴이의 말


이 작품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소재를 깊이 있게 응축하는 데 단문과 극도의 생략법을 사용하고 있다...명사 혹은 부사로 압축되어 끝나는 단호한 문장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인식해가는 작가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 작가의 침묵적 고백, 이것은 인간의 삶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실존적 고독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1-132


글쓰기를 통해 현실적 삶의 고통에 밀착되어 떠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는 독자로 하여금 소중하고 경건한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삶에 대해 끝없는 희망을 가질 의무를 부여해 준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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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9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열여덟 해 동안의 결혼생활 뒤 다시 얻게 된 자유를 그가 처음부터 애타게 원했던 동거생활과 맞바꿀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싫증이 나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후로도 계속 전화 연락을 주고 받았고, 가끔씩 만나기도 했다. 어느 저녁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서 한 여자와 함께 살 거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감각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솟아올랐음을 깨달았다. 그순간부터 이 다른 여자의 존재가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녀를 통해서가 아니면 더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11-12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의 성과 이름, 나이, 직업을 알아내야만 했다. 개인을 정의하기 위하여 사회가 파악하는 이런 요소들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자 할 경우 별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라고 흔히들 경솔하게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13


내가 만나는 여성들의 육체가 그 여자의 육체로 탈바꿈하는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내 눈에는 '가는 곳마다 그 여자가 보였다.'  16


질투를 할 때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한 도시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쳤을 일이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17


나는 그와의 헤어짐으로 인해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게 사로잡힌 상태가 아닐 때면,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의미를 띠게 된, 우리가 함께 보낸 과거를 악착같이 상기시키는 외부세계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19


난 무엇보다도 우리 관꼐가 막 시작되던 무렵을, 내 일기에 적혀 있듯이 그의 페니스가 벌이는 '굉장한' 기교를 추억하곤 했다. 결국 내가 내 자기에 세워놓는 사람은 다른 여자가 아니라,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을 나, 사랑에 빠져서 그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 사이의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나였다.

나는 그를 다시 소유하고 싶었다.  22


시나리오가 어떻든 간에 여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여배우의 육체를 빌려서 끔찍스럽게 배가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고통이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영화가 끝나면 안심이 될 정도였다. 어느날 저녁에는 일본 흑백 영화를 보다가, 내 고뇌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느꼈다. 전후를 배경으로 한 그 영화에서는 끝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통이 펼쳐지는 것을 봐도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육 개월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싿. 사실, 열정의 폐해를 겪어보지 못한 살마들만이 카타르시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3-24


우리는 변함없이 카페나 내 집에서 만나곤 했다.  25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권총으로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31


다시 자유로워지는 것, 내 안에 자리잡으 ㄴ이 무게를 바깥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문제였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 목적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W가 나를 사귀게 되면서 버렸던 여자가, "바늘을 꽂아서 방자(남에게 재앙이 내리도록 귀신에게 비는 행위) 하겠어"라고 분노에 떨며 말했다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빵의 말랑말랑한 부분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핀을 꽂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이상 천치 같은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동시에, 두 손으로 빵을 주무르고 머리나 심장 자리에 정성들여 핀을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가엾고 순진한 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에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수그려 저 깊숙한 곳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바라볼 때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어쩌면 바늘을 꽂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32-33


그 여자와 W가 살고 있는 건무의 모든 입주장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미니텔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아 명단을 만들어두었다-은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또한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36 51(발신자 제한번호)을 누른 다음 꼼꼼하게 모든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35


전화를 걸어본 이름들 중에 자동응답기에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남겨놓은 도미니크 L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36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알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던 내게, 제쳐놓았던 단서들이 갑작스럽게 다시 의미심장한 것이 될 때가 있었다. 잡다하기 짝이 없는 사실들을 끼워맞춰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나의 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우리의 약속을 미루자고 한 날 저녁에 일기예보를 듣다가, 진행자가 "내일은 성 도미니크 축일입니다"라는 말로 일기예보를 마치는 순간, 그 여자의 이름이 도미니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 집으로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은 그녀의 축일이니 함께 레스토랑에 갈 것이고, 촛불을 밝히고 저녁 식사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을 해야 할 테니까. 이 추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도미니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은 나의 추론이 옳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러한 탐색과 광적으로 여러 단서들을 짜맞추는 행위를 보며 지능의 탈선적 사용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차라리 지능의 시적 기능, 문학과 종교 및 편집증엣 작동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그 기능이라고 하고 싶다.  38


나는 일기에다가 "다시는 그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라고 적었다. 이 말을 적는 순간에는 더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쓰기로 인해 고통이 가벼워진 것을 상실감과 질투가 끝난 것으로 혼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기장을 덮자마자,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으며, 그 여자에 관한 정보들을, 여전히 고통을 낳게 될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욕구에 다시금 시달렸다.  41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강박증과 고통을 여기에 노출하고 있는 행위와, 랍 대로에 가면 그들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출을 두려워하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글스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엣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나의 얼굴, 나의 육체, 나의 목소리, 나라는 인간의 특징을 형성하는 이 모든 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는 내팽개쳐버릴 누군가의 눈앞에 드러내는 것은 더없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이나, 지금은 내 강박증을 드러내고 헤집어보는 일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반항심도 전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43-44


유일하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그가 아직도 나를 만나고 있으며, 가령 얼마 전에 내 생일선물로 브래지어와 T팬티를 선물했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알게 되는 상상을 할 때였다. 그러면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고, 진실이 드러났다는 지극한 행복감 속에 잠겨들었다. 마침내 고통이 육체를 바꿔 탄 것이다. 난 그녀가 느낄 고통을 상상하면서 내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덜 수 있었다.  49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앴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사랑하거나, 음악이나 정치참여, 정원이 있는 집과 같은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하거나, 혹은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둠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육체적 사회적 고통에 비하면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물의를 일으킬 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치일지라도, 나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도 그 고통을 더 사랑할 것이다.  50


욕망이란 필요한 모든 것을 논거로 끌어다 사용하는 놀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잡지 속에나 굴러다니는 상투적이며 진부한 생각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의 딸이 엄마보다도 훨씬 어린 엄마의 연인을 참아내지 못해서, 혹은 딸아이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서 그들이 더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52


유일하게 진실한 것, 결코 말하지 않을 진실은 "난 당신과 섹스하고 싶고, 그 여자를 잊게 만들고 싶어"라는 말이었다. 그밖의 것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허구였다.  53


어느 일요일 오후, 프랑스에 잠깐 들른 L과 극장에 갔다. 그를 다시 보는 것은 친 년 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저절로 이끌려 그의 부모 집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 위에서 섹스를 했다. 그는 내가 아름다우며, 기가 막히게 잘 빨더라고 말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종종 성행위를 통해 얻고자 했던 '정념의 정화'-"아! 네 물건을 어서 넣어줘/ 그리고 끝장내버려/ 아!/ 그 이야기는 이젠 그만"과 같은 외설적 유행가가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성적 쾌락엣 모든 것을, 쾌락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 사랑, 융합, 무한, 글쓰기의 욕망, 이제껏 내가 그에게서 얻어냈다고 여기는 최상의 것, 그것은 냉철함으로, 감상주의에서 탈피해 갑자기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56-57


이제 나는 "당신, 페니스 좋아하지, 그렇지? 아무 페니스나 말고, 당신 거" 따위의, 예전엔 거리낌없이 서로 속삭이던 대화를 전화로 나누고 싶어져도 참게 되었다. 그런 말들이 지금의 그의 페니스를 부풀게 하기는 커녕 흥분을 싹 가시게 하는 외설스러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62


(학교에서 문학 텍스트의 구절들에 제목을 붙이듯이, 자기 삶의 순간들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씩, 순전히 의례적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것 역시 끝났다.

그의 페니스가 생각날 때면, 첫날 밤에 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눈앞에, 거대하고 강력하며 끝이 버섯 갓 모양으로 부푼 채 불끈 솟아 있던 그의 페니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낯선 사람의 페니스를 보는 것 같다.  67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고해하러가던 것과 유사한 습관으로, 일종의 정화의식이 되었다.

이젠 그 여자에 관해서 이름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알아내고 싶은 욕망이 조금도 없다(혹시라도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정중히 거절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이 그 여자처럼 보이는 일도 없어졌다. 파리의 거리를 걸을 때도 이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해피 웨딩]이 흘러 나와도 라디오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가끔씩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지만, 더이상 담배나 약물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사람과 흡사한 정도다.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을 간직하는 방식, 그러나 이제는 '사로잡힘'이자,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으로 변해버린 그것을 간직하는 방식이었다.  67-69





옮긴이의 말 - 질투의 심연에서 만난 치열한 글쓰기


'그'가 떠나갔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홀몸의 자유를 포기할 정도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미적지근한 연인관계를 유지해오던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한들, 그것이 '나'의 삶에 무에 그리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지만 '그'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라면? 갑자기 '그'에 대한 '나'의 빛바래가던 감정은 애초의 생생한 색깔을 되찾는다. '나'와 '그'의 관계를 규정짓던 타성과 습관은 어느새 그 힘을 상실하고, '그'를 되찾고자 하는 '나'의 무시무시한 눈먼 욕망만이 길길이 날뛴다.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이렇듯 '나-작가'가 겪은 질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73-74


에르노의 <집착>은 '자전적 허구'를 작가들의 노출 욕구나 배출 통로쯤으로 치부하던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예외로 다가온다. 우선, 에르노의 글은 치열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가장 내밀한 부분가지 올올이 드러낸다...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라고 못박는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난 시공간엣 행해야 할 작업이다.  75


에르노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계산할 줄 아는 작가이다. 끊임없이 군더더기를 떨어내고, 치밀하게 자르고 다듬어 완벽하게 아귀를 맞추어놓은 문장들 사이에는 세워놓은 바늘을 바라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균형이 자리잡는다.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주어와 동사를 품지 않은 문장들은 이 벼리기 작업의 가시적 결과이다. 에르노의 글은 푸근하지 않고, 정련된 문장들이 안져주는 정신의 긴장을 즐기는 독자들로부터 그래서 더욱 인정을 받는다.  77


작가는 '주요 관심사'나 '점령'을 의미하는 'L'occupation'이란 제목을 고름으로써, '질투'의 두 가지 양상을 겨눈다. 하나는 질투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뒤로 어떤 다른 일에도 정신을 쏟지 못하고 '그 여자'를 찾아내는 일이 '나'의 '주요 활동'이 되어버린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마치 무엇엔가 들리기라도 한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여자'의 존재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나'의 상태이다.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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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인간 혐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양옆에 사람이 앉는 게 싫어서 구석자리를 찾아 맨 앞칸까지 가곤 한다. 제주도 송악산에 처은 간 날, 둘레길 입구에서 쏟아져나오는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에 흥겨워 목소리 높아진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무리를 보는 순간 바로 절경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사람 없는 중산간 마을만 한탐 걷다 온 일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다. 어렸을 때는 친척들 모이는 명절이 제일 싫었다. 114교환원이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길래 반사적으로 질색을 하며 "왜요?" 한 적이 있다. <사람이 꽅보다 아름다워>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무슨 근거로?'가 떠오른다. 그런 나지만 무인도에서 혼자 살수는 없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낳는다.  7


사랑받지 못하는 건 별 상관없지만(대체로 사랑받으면 기대에도 보답해야 하므로 귀찮은 일도 생긴다), 그렇다고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매사에 일일이 투쟁할 열의까지는 없기에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한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도 되어야 하는 거다.  8


'다름'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톨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10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11


지금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드리고 싶은 한상궁 마마님의 말씀이 있다.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 꽃씨야.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13-14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다.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본능이고 솔직한 욕망이다.  19


개인주의자로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 가. 아니, 최소한 그들을 참아주기라도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끔은 내가 양보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 자유를 때로는 자제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들과 타협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목적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다.  21


집단,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하는 숭고한 유기체고 개인은 이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고 희생해야 할 나사못인 것이 아니다.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신의 나라로든, 집단에 대한 헌신을 찬양하며 사람들을 몰고 가는 피리 소리는 불길하고 미심쩍다. 인간 세상에 정답은 없고 현실에서 유토피아는 대체로 디스토피아로 실현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22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23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24-25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하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이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혐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26


어차피 정답을 가진 인느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서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27


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28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 사는 사회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29


'갑질

의 심리 역시 수직적 가치관의 사회에서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그걸 이용해 상대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수컷 동물 사이의 우세경쟁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32-33


신해철은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되었다.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토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은 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반면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동성동본 금혼으로 고통받는 연인들을 노래하고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간통죄 폐지, 학생 체벌 금지를 주장한 그의 행보는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로서의 면모다.  36-37


재미있어서 쓰는 것 같다...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소재)에 대해 내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글을 써봐야 생생하게 할 수 있다. 돌어서며 잊어버리기 때문에 적어둔 글을 나중에 읽는 재미가 있다.  41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45


행복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거다.  50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57-58


이미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는 형식적인 기회 균등만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역사가 증명하듯 근본적 기반이 흔들린다. 모든 곳에 희망이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91-92


뉴욕타임스 도쿄 지국장이 후루이치 노리토시(<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저자)에게 "일본 젊은이들은 이처럼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왜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라고 묻자, 노리토시는 "왜냐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일본 젊은이의 행복은 이렇다. "유니클로나 자라에서 기본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고 맥도날드 런치 세트로 식사하며 친구들과 수다 떨고, 집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스카이프 채팅을 하고 가구는 이케아에서 구매, 밤에는 친구 집에서 식사하며 한잔한다. 그리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나름 즐겁다.'Wii나 PSP를 구입할 정도 수입은 있고, 이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연인이나 친구가 있다면 대개의 셩우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116-117


한 학자의 해석은 이렇다.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117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119


생생하게 느껴보는 것과 단지 머리로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121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참말이기는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사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두번째 문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잘못은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더 나아가 진심으로 친구의 비만을 걱정해 충고하고 싶다면 말을 잘 골라서 '친절하게' 해야 한다. 옳은 충고도 '싸가지 없이'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진심이 담긴 필요한 말이라고 해도 배려심 없이 내뱉으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더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136


재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150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자신을 주어로 하여 털어놓기는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낸다.  154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잔혹한 논리이고 절대로 사회적으로 찬양되어서는 안 될 위험한 이데올로기다.  164


분쟁을 해결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얻기는 아주 어렵고, 잃기는 아주 쉽다. 오직 진심만이 그 신뢰를 얻는 열쇠일 것이다.  174


자연 그대로의 것은 무조건 옳다고 보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실은 그 반대가 맞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식재료도 자연 상태 그대로는 독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인위적인 종자 개량을 통해 먹을 수 있게 만든 것들이다. 인류는 자연 상태의 폭력성을 문명화 과정을 통해 극복하여 현대적인 평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은 지금의 발전한 문명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에 따라 옳은 것은 더욱 북돋우고 그릇된 것은 제어해야 한다.

불편한 진실 자체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왜곡하지 말고 그 진실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200


어느 집단도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남의 판단으로 자기 판단을 대체하지 말고 각 개인이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실사구시 정신이 필요하다.  203


세상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신념과 분노에만 의지하다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최악의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의심하고, 근거를 찾고, 다시 생각하고, 아니다 싶으면 주저 없이 결론을 바꾸는 노력 없이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깨어 있어야 한다.  204


구체적으로 무슨 이념과 무슨 이념이 대립한다는 것일까? 정말 우리나라에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스페인내전 때처럼 대립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양대 정당이 이념정당인가? 두 정당의 공약집을 표지 가리고 읽어서 구분하기란 펩시 챌린지 이상의 도전이다. 한쪽의 인기 공약을 곧바로 다른 쪽이 따라하는 일도 흔하다. 이념정당은 고사하고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정도의 차이도 찾기 어렵다.  205-206


보수, 진보란 보통 정부의 역할, 복지정책, 조세정책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구별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열렬히 대립하는 사항은 실은 이념, 정책이 아니라 어느 대통령을 '사모'하느냐와 애향심 아닐까. 여기에 세대 문제가 결합된다. 조용필 세대와 서태지 세대가 서로 '울 오빠'의 업적이 더 뛰어나다고 싸우는 꼴이다. 자기 세대의 우상이란 결국 자신의 청춘 시절에대한 자기애다. 객관적이기 어렵다. '울 오빠'를 모욕하는 안티들에 대한 분노,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영우에 대한 연민. 이런 정서의 무넺가 결부되기 때문에 갈등은 더 불타오른다.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 과거에 대한 평가에 더 집착한다. 하지만 정작 현재 청춘들은 과거 우상에 대한 '리스펙트' 따위엔 관심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진학, 취업, 결혼,.. 당장 자기 앞가림하는 것만도 전쟁인 미생의 청춘들에게 기성세대의 이념 논쟁, 역사 논쟁은 한가한 소리로 들리 수밖에 없다.  206-207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의 충격>에서 실시간 SNS로 연결되어 모든 것이 생중계되는 지금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의 현재에만 집중하는 현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면서, 과거의 불의를 극복하고 미래의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식의 20세기적 서사 구조가 붕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거대 담론인 이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시대다.  207


이념이란 신념의 체계이기에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 결과 이념 간 갈등은 혁명운동과 전쟁을 일으키며 수천만 단위 희생을 낳았다. 그러나 정책은 토론과 타협이 가능하다. 탈이념의 시대에는 보수 진보 자체보다 양자가 교대하는 동태적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념이든 정책이든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208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광속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三人成虎 석삼 사람인 이룰성 범호).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 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 보면 마치 이 사회에 진짜 심각한 이념 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긴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인류는 속을 만큼 속았다.  208-209


종교, 문화 따위가 야만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지금 그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이락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246  


북유럽사회에서 배울 것은 정치나 제도 이전에 먼저 그들의 문화적 전통이 아닐까 한다. 스웨덴의 문화적 전통 중 중요한 것으로 '라곰(Lagom)'이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히'라는 뜻이다. 바이킹 시대 술통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마셔버리면 다음 사람이 마시지 못하니 적당히 나눠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다.

북유럽 전역에서 관습법처럼 통용되는 '얀테의 법'이라는 것도 있다. 1933년 산데모제라는 노르웨이 작가가 이를 정리하여 소설 속 가상의 덴마크 마을 얀테의 관습법으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마라, 남보다 더 낫다고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다.  260


노력이라도 해보려는 남을 냉소함으로써 그것도 하지 않는 비루한 자신을 위안한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다 쇼일 뿐이라며.

팔짱을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어떤 통속적인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아래 대사를 듣고 그 통찰력의 깊이에 놀란 일이 있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Dare to be an optimist).'  268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 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269





에필로그 - 우리가 잃은 것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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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 인생의 기록 


독서 환경에 관해서라면 나는 삼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사시사철 넉넉한 읽을거리들이 쏟아지는 천혜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 단언컨대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다.

집은 거실 한 면이 모두 책장이고, 방 한 칸은 도서관처럼 방을 가로지르며 책장들이 있다. 침대는 옆에 책을 둘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15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기억난다.  18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건 읽은 것일까?  32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40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51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태도일 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58-59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쨌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72


나는 다른 일상을 꿈꾼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노천 카페가 일상이 되고, 밤새워 쓰는 글이, 퐁피두 센터가, 세비야의 햇살이, 라인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렘브란트의 그림이, 고흐의 그림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모든 하루가 내 손에 고스란히 달려 있으며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생활이 일상이 되길 꿈꾼다. 파리가 일상이 되길 꿈꾼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지금, 이곳에, 있다.  73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게트가 지겨울 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75


때론 책이 우리를 구원한다. 책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책으로 구원받는다. 드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귀하게도. 고맙게도.  75


시지프(카뮈의 <시지프신화>)도 자신의 일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살았다..  87


산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를 선택할 수박에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선택에는 '만약'이 남는다. ..하지만 '만약'은 어디까지나 '만약'이다. 가보지 않았기에 알지 못하고, 선택하지 않았기에 미련만 가득한 단어이다. 그 모든 '만약'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다.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라는 답.  91





듣다 : 감정의 기록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130





배우다 : 몸의 기록


결국은 머리의 말을 몸이 알아들은 거니까. 계속하는 거다. 묵묵히. 계속 가보는 거다.  220





쓰다 : 언어의 기록


나는 읽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  259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시오. 내가 그 사람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가 그 편지를 본다면 연애편지로 읽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친구에게 보내는 일상적인 편지처럼 읽히도록 쓰시오.'  269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을 가꿔야지, 라는 핑계로 수없이 읽고, 듣고, 돌아다녔다. 11년을 그랬다. 그 핑계 덕분에 삶은 더없이 풍성해졌다.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지금 그 책을 읽는 게 진짜 카피라이팅에 도움이 되냐고, 어떻게 도움이 되냐고, 나는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나는 그 모든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책과 음악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래서 더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책이 지금 내가 맡은 슈퍼마켓 광고에 도대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작년에 다녀온 그 여행이, 그 여행에서 또 작뜩 찍어온 벽 사진들이, 그때 마신 술들이, 석유회사 광고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리가 없다. 도움이 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닥 말한다면 그 역시 거짓말이다. 토양이 비옥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막연하게, 듬성듬성, 이런저런 방법으로 토양을 가꾸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어떤 필요의 씨앗이 뿌려지면 그 토양에서 건강한 새싹이 자라길 빌 뿐이다.  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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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사랑의 재발명(알랭 바디우)


진정한 사랑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는 적은 대체 누구인가? 물론,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모든 것을 시장 가격으로 환산하려는 태도, 오늘날 개인의 행동을 조종하는 이해관계의 차원 등등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사실상 현대 세계, 세속화된 자본주의 세계의 이 모든 규범에 반항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결코 그저 두 개인 사이의 기분 좋은 동거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 아니라, 타자의 실존에 관한 근원적인 경험이며, 아마도 현 시점에서 사랑 외에는 그런 경험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5-6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 즉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철두철미한 논증인 동시에, 전적으로 안락하모가 나르시시즘적 만족 외에는 관심이 없는 오늘의 세계에서 에로스의 싹을 짓누르고 있는 온갖 함정과 위협 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6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사랑의 경험은 불능에 의해 만들어지며, 불능은 타자의 완전한 현형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인 것이다.  8





멜랑콜리아


타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 극적인 변화이지만, 치명적이게도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에로스는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이다. 따라서 점점 더 동일자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  18


우리는 끊임없이 모든 것을 모든 것과 비교하며 이로써 모든 것을 동일자로 평준화한다. 타자의 부정성은 소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비사회는 아토포스(atopos : 장소가 없는 무소(無所 없을무 바소)적인)적인 타자성을 제거하고 이를 소비 가능한, 헤테로토피아적 차이로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아니다. 자기애를 지닌 주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는 부정적 경계선을 긋는다. 반면 나르시시즘적 주체는 명확한 자신의 경계를 확정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르시시즘적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그에게 세계는 그저 자기 자신의 그림자로 나타날 뿐이다. 그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줄 모른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우울증은 나르시시즘적 질병이다.  19-20





할 수 있을 수 없음


성과사회는 금지 명령을 발하고 당위('해야 한다')를 동원하는 규율사회와 반대로 전적으로 '할 수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착취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 자발성, 자기 주도적 프로젝트를 부르짖는 것이 채찍이나 명령보다 더 효과적이다.  29


푸코(Michel Foucault)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규율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며 자기 자신이 경영자로서 더 이상 복종적 주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정말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 자기 자신을 찾취하면서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구호를 자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로 해석한다. "나는 당신에게 자유의 가능성을 마련해주겠다. 나는 당신이 자유로울 자유가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구호는 실제로는 "자유로워져라"라는 역설적 명령문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명령은 성과주체를 우울증과 소진 상태속에 빠뜨린다. 푸코가 말하는 "자아의 윤리"는 억압적 정치 권력, 즉 타자 착취에 대항하기는 하지만 가지 착취의 바탕에 놓여 있는 자유의 폭력에 대해서는 맹목적이다.  30-31


'넌 할 수 있어'는 심지어 '넌 해야 해'보다 더 큰 강제력을 행사 한다. 자기 강제는 타자 강제보다 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좌절하는 자는 결국 자기 잘못이며 장차 이러한 죄를 계속 짊어지고 다니게 된다.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을 만한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  31


자본주의에는 속죄의 가능성, 채무자를 채무에서 해방시켜줄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채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속죄할 수 없다는 것은 성과주체를 우울증에 빠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소진증후군과 더불어 할 수 있음이 초래하는 구제할 수 없는 좌절이며, 다시 말해 심리적 파산 상태를 드러내는 질병이다. 

에로스는 성과와 할 수 있음의 피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와의 관계다.  32


할 수 있음의 절대화는 바로 타자를 파괴한다. 타자와의 성공적인 관계는 일종의 실패로 여겨진다.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고 붙잡고 알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닐 것이다.  41


부버에 따르면 근원거리는 "인간의 원리"로 기능하며 타자성이 성립할 수 있는 초월적 전제를 이룬다. "근원거리 두기"는 타자가 하나의 대상, '그것'으로 전락하고 사물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성적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 그러한 타자와는 어떤 관계도 맺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성적 대상을 부를수는 있겠지만 그것에게 말을 건넬 수는 없다. 성적 대상에는 "얼굴"도 없다. 42


'가까움'은 그 속에 '멂'이 기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까움은 부정성이기에 속에 긴장을 품고 있다. 반면 거리의 부재는 긍정성이다. 부정적인 것은 그 대립자에 의해 활력을 얻는다. 바로 여기에 부정성의 힘이 있다. 오직 긍정적이기만 한 것에는 이처럼 생동하게 하는 힘이 없다.

오늘날 사랑은 긍정화되어 향락의 공식으로 여겨진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안락한 감정을 생성해야 한다. 사랑은 더 이상 행위도, 이야기도, 드라마도 아니며, 흔적을 남기지 ㅇ낳는 기분이요 흥분이다. 이제 사랑은 상처와 급습과 추락의 부정성을 알지 못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너무 부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정성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이룬다. "사랑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의 주도권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밑도 끝도 없이, 우리를 급습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룻 있음이 지배하는 성과사회,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 주도권과 프로젝트가 전부인 사회는 상처와 고뇌로서의 사랑에 접근하지 못한다.  43-44


에로스가 깨어나는 것은 "타자를 주면서 동시에 빼앗는" "얼굴들"에 직면할 때이다. "얼굴"은 비밀이 업슨 페이스의 대척점에 있다.  48





벌거벗은 삶


에바 일루즈는 연구서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에서 오늘날 사랑이 "여성화"되고 있다고 확언한다. "상냥한" "친밀한" "조용한" "편안한" "달콤한" "부드러운"처럼 낭만적 사랑 장면의 묘사에서 사용되는 형용사들은 전부 다 "여성적"이다. 남자든 여자든 여성적 감정의 영역으로 몰아놓는 낭만주의의 이미지가 세상에 가득하다. 그러나 그녀의 진단과 달리 오늘날 사랑이 단순히 "여성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삶의 여역이 긍정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랑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과잉이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채 즐길 수 있는 소비의 공식에 따라 길들여진다. 모든 부정성, 모든 부정의 감정은 회피된다. 고통과 열정은 안락한 감정과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흥분에 자리를 내준다. 속성 섹스의 시대, 즉흥적 섹스, 긴장 해소를 위한 섹스가 가능한 시대에는 성애 역시 모든 부정성을 상실한다. 부정성의 완전한 부재로 인해 오늘날 사랑은 소비와 쾌락주의적 전략의 대상으로 쪼그라든다. 타자를 향한 갈망은 동일자의 안락함으로 대체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동일자의 편안한 내재성, 편하게 늘어져 있는 내재성이다. 오늘날의 사랑에는 어떤 초월성도, 어떤 위반도 없다.  51-52


죽음을 햔한 자유를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삶을 걸지 못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데리고 죽음에까지 가는" 대신에 "죽음의 내부에서 자기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노예가 되고 일을 한다.

노동과 벌거벗은 삶은 죽음의 부정성에 댛산 반응이라는 점에서 서로 긴밀하게 열결되어 있다.  52-53


벌거벗은 삶에 매달려 노동하는 노예는 에로틱한 경험을 하지도 못하고, 에로틱한 갈망을 품을 줄도 모른다. 오늘날의 성과주체는 헤겔의 노예와 유사하다. 다만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착취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53-54


자본주의는 벌거벗은 삶을 절대화한다. 좋은 삶은 자본주의의 목표가 아니다. 축적과 성장을 향한 자본주의의강박은 바로 죽음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에서 죽음은 절대적 손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54-55


부지런히 삶을 돌보려는 노력이지만, 그것은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은 아니다. 자본과 생산의 운동은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이념을 떨쳐버림으로써 무한한 가속화 과정에 빠진다. 방향을 상실한 운동은 극단적으로 가속화된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노골적이고 파렴치해진다.  55


우울한 나르시시즘적인 주체는 어떤 결론도 맺지 못한다. 하지만 결론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흘러가고 떠내려가버릴 것이다. 우울증의 주체가 안정된 자아상을 갖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유부단함, 결단력의 결핍이 우울증의 전형적 증상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은 과도한 개방과 탈경계이 와중에서 끝맺음을 하고 완결지을 수 있는 능력이 실종되어버린 이 시대의 특징적 현상이다. 사람들은 삶을 완결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죽는 법도 잊어버렸다.  58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도 사랑이란 타자 속에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면서, 나는 당신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한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에. 그리고 당신 속에서 나를 버린 뒤에 나는 나를 되찾는다. 당신이 나를 살아 있게 하므로." 피치노는 사랑하는 자가 다른 자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지만 이러한 소멸과 망각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되찾고" 심지어 "소유"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유는 곧 타자의 선물일 것이다... 에로스의 힘은 무력함을 함축한다. 무력해진 나는 스스로를 내세우고 관철하는 대신, 타자 속에서 혹은 타자를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자는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지배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 타자를 장악하지만, 사랑하는 자는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각각 자기 자신에게서 걸어나와 상대방에게로 건너간다. 그들은 각자 자기 안에서 사멸하지만 타자 속에서 다시 소생한다."  59-60


모두가 자기 자신의 경영자인 사회에서는 생존의 경제가 지배한다. 그것은 에로스, 혹은 죽음의 비경제와 정반대된다. 자아의 충동과 성과의 충동이 전혀 억제되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사회 질서 속에서 에로스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죽음의 부정성을 밀어내버린 긍정사회는 오직 "불연속성 속에서 생존을 확보"해야 한다는 일념만이 지배하는 벌거벗은 삶의 사회다. 그러한 삶이란 노예의 삶일 뿐이다. 벌거벗은 삶에 대한 염려, 생존에 대한 염려는 삶에서 모든 생동성을 빼앗아간다. 오직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생동성이 없다. 부정적인 것은 생동성의 본질적 계기를 이룬다. "그러니까 오직 모순을 자기안에 내포하고 있는 것, 모순을 자기 안에 품고 견질 수 있는 힘을 지닌 것만이 살아 있을 수 있다.  61-62





포르노 


포느로가 음란한 것은 과다한 섹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가 없다는 사실이 포르노를 음란하게 만든다. 오늘날 성애를 위협하는 것은 쾌락을 적대시하면서 섹스를 뭔가 "더러운 것"처럼 피하는 "깨끗한 이성"이 아니다. 성애는 바로 프로노그래피에 의해 위기에 빠진다. 가상공간에서의 섹스만이 포르노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는 실제 섹스 역시 포르노로 변질된다.  65-66





에로스의 정치


우리는 에로스를 결코 충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에로스는 충동뿐만 아니라 용기까지도 관장한다.  83


신자유주의의 토대는 충동이다.  84


사랑은 "둘의 무대"다. 사랑은 개별자의 시점을 벗어나게 하고, 타자의 관점에서 또는 차이의 관점에서 세계를 새롭게 생성시킨다. 이로 인해 일어나는 근원적 전복의 부정성은 경험과 만남으로서의 사랑이 지니는 특징에 속한다.  85


포르노그래피는 이질성을 완벽하게 소거함으로써 습관화의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포르노그래피의 소비자에게는 성애의 상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개별자의 무대 위에 거주한다. 포르노적 이미지에서는 어떤 타자의 저항도, 어떤 실재의 저항도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떤 예의도, 어떤 거리도 없다. 포르노적이라는 것은 바로 타자와의 접촉, 타자와의 만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를 낯선 것의 접촉과 감정적 격동에서 지켜주는 자기성애적인 자기 접촉, 자기 애착은 포르노적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자아의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강화한다. 반면 사건으로서의 사랑, "둘의 무대"로서의 사랑은 탈습관화, 탈나르시시즘화의 방향으로 작용한다. 사랑은 습관적인 것과 동일한 것의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고 구멍을 뚫는다.  86-87





이론의 종말


얼마 전 <와이어드(Wired)>지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이론의 종말"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이제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양의 데어커가 활용 가능해짐에 따라 이론적 모델은 완전히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구글처럼 엄청난 데이터 풍요의 시대에 성장한 회사들은 틀린 모델에 의지할 이유가 없다. 아니 도대체 모델이라는 것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귀속 및 종속 관계를 바탕으로 거기에서 패턴을 찾아낸다. 가설적인 이론적 모델은 데이터의 직접 비교에 자리를 내준다. 인과 관계는 상관관계로 대체된다. "언어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든 이론을 버려라. 분류법도, 존재론도, 심리학도 모두 잊어라.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누가 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이고, 우리는 사상 유례없는 정확하게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추적하고 측정할 수 있다. 데이터가 충분하기만 하다면,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앤서슨의 테제의 근저에는 허약하고 단순화된 이론 개념이 깔려 있다. 이론은 실험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가설이나 모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같이 강한 이론들은 데이터의 분석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이러한 이론들은 강한 의미의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90-91


오늘날 학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데이터와 정보의 더미에 휩쓸려, 이론과 사유에서 아주 멀리 떠나가고 잇다. 정보는 그 자체 긍정적이다. 데이터에 바탕을 둔 실증과학, 데이터를 비교하고 평균을 내는 게 전부인 실증과학은 강한 의미에서의 이론에 종언을 고한다. ..

정보와 데이터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오늘날 오히려 이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다.  92


사유는 고요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고요함 속으로의 탐험이다.  93


정신이란 본래 불안을 의미한다. 정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정성이다.

정보는 그저 알아두기의 대상일 뿐이다...

정보는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한다. 반면 인식은 부정성이다. 인식의 본질은 배제하고, 엄선하고, 결단하는 데 있다. 인식은 기존의 것 전체를 뒤흔들고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한다. 과다한 알아두기에서는 아무런 인식도 산출되지 않는다.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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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이야기를 글로 옮겨야만 할 것 같다.  8


아버지는 일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가끔 씻고 조금 먹고 하루 종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현관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이별의 장면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는데 아버지는 도무지 제목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깊은 상처를 다시 들쑤실까 두려워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묵계였다. 아버지는 그 책을 구입한 뒤 외출할 때에는 윗도리 주머니에 넣고 나가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책을 깔고 앉았다. 그 책은 아버지의 슬픔을 자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숨을 붙이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아버지가 책을 부엌 탁자에 놓고 나가서(일부러 내게 보여주려고 그랬을지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순한 열정>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동구권 국가의 외교관이자 자기보다 연하인 A라는 유뷰남을 사랑한 여자가 자신의 열정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자서전 형식을 빌려 하루하루 남자를 기다리는 심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10-11


우리는 곧바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외딴 장소를 찾았다. 한번은 소르본 대학 맨 꼭대기 층의 코쉬 대형 강의실 앞에서 누군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선 채로, 또 한번은 생 쉴피스 성당 안의 들라크루아의 그림 <천사와 야곱의 싸움> 아래에서, 그런 후에는 서로 앞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영화관이나 극장에 가면 그녀는 내 쪽은 보지 않은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내 코트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바지 단추를 끌렀다...

그런 날 저녁에 우리가 자주 가던 극장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나에 대한 특별한 욕망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 욕망이었다고 짐작된다.  34


나는 '성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그녀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시작했다. 

<단순한 열정>에 관련된 인터뷰 내용을 찾기 위해 그녀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나온 홍보자료를 검토했다. 

또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진실을 그녀의 말 속에서 찾아내길 기대하며 <단순한 열정>을 수사관의 독법으로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너무 여러 번 읽다 보니 결국 전체 문장을 외우게 되었다. 나는 대화를 하다가 그녀의 반응을 실험해 보려고 그중 몇 문장을 인용해보았다. 그녀는 마치 내가 자기 기억의 한 부분에 폭행을 가했다는 듯 돌연 입을 다물더니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라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혹시 내가 쓴 거 아니야? 그 책이 지독한 강박관념이 되었구나 그 책에 대해선 나보다 네가 더 잘아니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쓴 것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의식적으로 내가 그녀의 문체와 표현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에 물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소유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모든 글쓰기가 내 안에서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글쓰기가 이렇듯 얽혀서 서로 만나길 원했다.  87


우리 이야기는 책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그녀의 단어가 내 몸을 떠나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될 때 끝날 것이다.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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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과 취향,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 나도 함께한 바 있는 그 삶의 모든 객관적 표징을 모아 볼 것이다.

추억을 시적으로 꾸미는 일도, 내 행복에 들떠 그의 삶을 비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글이다.  21


그는 내가 온종일 책에 파묻혀 있다가, 그들에겐 딱딱한 얼굴로 신경질만 내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답답해했다. 저녁마다 내 침실 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내가 건강을 망쳐 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쥐어짜는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꽃다운 나이에 인생을 즐기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 그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89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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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머니는 이야깃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18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견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  51


(어머니는)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리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102


그들은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고, 그들에게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살고 싶어 했다. 끊임없이 성한 한쪽 다리에 의지해 일어서려고 애를 썼고, 자신을 붙잡아 맨 띠를 떼어 내버리려고 했다. 자신의 손이 미치는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늘 배고픔을 느꼈고, 갖고 있는 에너지는 온통 입에 집중되었다. 키스를 받기 좋아했고, 자신도 그러려고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는 어린 계집아이였고, 결코 자라지 않을 터였다.  104


이 글을 써내려간 10개월 동안 나는 거의 밤마다 어머니 꿈을 꾸었다. 한번은 내가 강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고, 내 양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배에서부터, 그리고 계집아이의 성기처럼 다시 매끈해진 내 성기에서부터 식물들이 구불구불 자라나 흐느적흐느적 떠다녔다. 그것은 단지 나의 성기만이 아니었고, 내 어머니의 성기이기도 했다.  108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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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여행자의 생각(짠홍즐)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신이 원래 속해 있던 세계이다. 당신이 여행 가방을 메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 당신은 '고향을 등에 메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된다...

내가 길을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나는 한 트렁크의 '편견'과 '오랜 습관'을 가지고 간다. 나를 속박하는 시선까지도.  7


사물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이하고 이국적인 환경과 낯선 풍습은 관찰자 '스스로의 대조'를 통해서 나온다. 

우리는 등 뒤에 고향의 '감옥'을 메고 다닌다.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만 리 길을 걷는 것이 낫다'  8


당신은 여행을 하면서 변했다. 당신은 '타향을 등에 메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9


돌아온 당신은 원래의 당신을 '부정'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당신은 원래의 당신을 '포함'하고 있다.  10


'행동하기'의 의미  12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다. 

여행 가방을 메고, 늘 같은 옷을 입고 있다.  16


이곳에서 나는 제법 괜찮게 생활했지만, 빠르고 투박하게 도시 사람들을 흉내낸 모조품에 불과한 것이다.  18


여행은 우리의 몸을 먼 곳으로 떠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감각기관에 자극을 주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28


2세기 여행엔, 미처 발견되지 않은 대륙도 없고, 신비롭고 구하기 어려운 향신료도 없다. 특별히 정복해야 할 밀림도 없고, 문명 밖에서 생활하는 인종도 없다. 

그저 당신의 몸으로 직접적이고, 강한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만 하면 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당신은 따뜻한 물, 비누, 각종 건강관리 물품, 심지어 수면용 치아 교정기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8


태양 아래에 더이상 새로운 세계는 없다. 오늘날 콜럼버스는 반드시 천진한 영혼과 빈곤한 식견을 갖고 있어야만 계속해서 그만의 여행을 할 수 있다.  39


어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꼭 그 도시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57


나는 지금 발리 쿠다 거리에 서 있다. 이곳은 발리 섬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히피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들은 연신 땀을 닦으며, 관광산업 때문에 발리 섬의 순수한 풍토와 인정이 망가진 것에 대해 성토한다.

"이 모든 게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팽창 때문이야! 자본주의가 여행의 진정한 묘미까지 파괴하고 있어."

한 프랑스 사람이 분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내가 보고 싶어했던 발리 섬이 아니야!"

"그럼 어떤 발리 섬이 보고 싶었는데?"

"여기 오기 전에 나는 쪽빛 하늘과 백옥 같은 모래사장, 친절한 사람들, 오래된 사원,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공예품을 보고 싶었어. 그리고 그림자극에 나오는 인형을 사서 돌아가고 싶었다는..."  75-76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여행자의 눈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도시를 감상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여행자의 시선은 하루나 이틀 혹은 이십여 일이 지나면 막을 내리지만 현지 사람의 생활은 평생 동안 이어진다는 것을 오랜 여행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의 호기심과 욕심을 위해서 생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땅히 자신과 자손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낟.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지, 여행자의 눈을 의식해서 일상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을 만들거나 보여주기식의 공연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76-77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여행을 아름답게 만든다.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현지 사람들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뿐이다. 침묵은 적의가 아니며, 가장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85


같은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친구 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아도 왕왕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여행자와 현지 사람들 간의 차이는 문화성과 비사회성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현지 사람들은 여행자가 자신들의 관념과 부합하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세상의 불합리한 모든 것에 분개하고 증오하는 것을 용인해주고, 특이하다고 받아들여준다. 게다가 여행자가 현지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거나 어울리지 못해도, 여행자가 우둔해서 아무론 감동을 주지 못해도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겨 조용하고 너그럽고 포용한다. 언어를 벗겨낸다. 언어를 벗겨내면, 언어를 위해 건립된 모든 사유 체계 또한 벗겨진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본성을 드러내며 상대를 순수하게 마주하게 된다. 어떠한 사회의 통념도 개입되지 않는다. 진실하고 평등한 대접만이 남는다.  87-88


언어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유일하게 개인의 영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해.  90


여행이란 편견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106


인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지만, 동시에 점점 더 판단력을 잃어간다. 예전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던 많은 문제들도 지금은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132


현대인들은 큰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들은 농업시대 조상들이 토지에 대해 가졌던 중요한 관념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 생활 방식을 따르고, 물과 풀을 따라다니며 살고, 자유롭게 이동하고, 일하고 쉬는 데 제약이 없으며, 토지에 얽매이지 않고 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도시의 유목민' '보보스족' '현대 보헤미아인' '신(新) 집시족'이라 일컫는다.  133-134


"우리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 여행에서 막 돌아온 다보스맨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역시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원주민을 봤어요. 가난하게 생활하지만 위엄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우리는 그동안 바쁘게 돈을 버느라고 진짜 생활을 잊지 않았던가요?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건 그들의 삶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169


경계(境界 지경경 경계할계)가 여행자의 길을 가로막았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완전한 파랑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사이가 무형의 눈금과 경계선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모든 선(線 줄선) 뒤에는 '자연의 힘'과 '정치 권력'이 동시에 작용한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국경을 긋는다. 마치 하느님이 손수 그린 선 같다.  172


현대인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한다. 정치 체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지시를 기다린다. 비자를 신청할 때면 '국가'라는 구조 아래에서 개인은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173


사실 '군중'이라는 존재는 쉽게 매수당하는 존재다. 집권자는 작은 당근을 던져주면서 군중이 사소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실제로 영구에서는 지금까지 프랑스처럼 피비린내 나는 대혁명이 발생한 적이 없다. 영국 정부가 중대한 법률에 있어서는 민중의 권익을 위해 신속하게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183



여행자는 여행길에서 종종 고독을 느낀다. 또다른 시공간이 사방에서 떠다니고, 중가넹 가로막혀 볼 수 없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런 고독은 건강한 고독이다. 세상 사람들은 엄숙하게 가라앉은 특정 시공간을 살아가면서 필사적으로 세상의 보폭을 뒤쫓는다. 여행자는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나태할 수 있는 존재이다.  239


여행자는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여행자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자유 역시 가상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40



어디를 가든지 간에 여행자는 여전히 자기 자신이다...

여행을 하는 시간은 공백의 시기이다.  241



여행자는 여행길에서 화려함이 뒤섞인 낯선 환경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이국 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자가 떠나가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떠남에 '버린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242


당신은 어떤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그 사건이 발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행자의 가장 큰 슬픔은 무언가가 막 좋아지기 시작했거나 익숙해졌을 무렵 그 풍경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예전에 둘러본 곳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눈앞에서 보았던 풍경, 들이마셨던 냄새, 몸을 스쳐갔던 바람, 사랑하는 연인과 그 나이의 당신..

그 모든 것이 아마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변할 것이다. 당시의 정황, 기분, 감정 그리고 그런것들을 남겨두고 싶은 당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객관적인 환경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다.  244-245


여행은 아름다운 경험이다. 아름다운 경험들은 대부분 생명의 가장 깊고 신비로운 감동과 연관되어 있다.  245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도 본인이 직접 경험햇던 견고한 사랑만 못하듯 여행도 그렇다. 여행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속하기 때문이다.  246


여행 경험은 병에 포장된 와인 같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어 표면적으로 같은 병에 담기고, 같은 공장 상표가 붙어 있다. 그렇지만 생산 연도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몇 달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맛의 차이도 아주 크다.

그러나 코르크 마개를 개봉하기 전까지 당신은 그런 세세한 차이점을 알지 못할 것이다. 쌍둥이보다 더 쌍둥이같이 닮은 와인 병은 손으로 만져봐도 프랑스에서 대량생산된 와인처럼 생각된다.

코르크 마개를 개봉한 와인 병에서는 알라딘에서 요정 지니가 램프 속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온 것처럼 향이 흘러나온다. 술은 담갔던 해의 기억은 빠르게 공기중으로 퍼져가고, 코를 통해 들어가 머릿속에까지 생동감 있게 회복된다. 당신은 이내 그날의 날씨와 공기중의 습도가 포도 생산과 와인의 품질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녹색 넝쿨들이 만들어낸 물줄기가 태양 아래 반짝이고 자홍색 포도가 요트처럼 드문드문 나타나는 모습이, 허리가 굽은 나이 많은 프랑스 농부가 거치고 큰 손으로 포도의 겉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당신의 눈에 선하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와인 병에 붙어 있는 라벨은 갑자기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249-250


여행은 연속된 기다림이다. 휴가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저금통장 속 숫자가 이상적 수치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적절한 계절을 기다리고, 함께 여행할 사람을 기다리고, 길 위에서 기다리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리고, 착륙하기를 기다리고, 수하물 컨베이너 벨트가 운행되기를 기다리고, 택시가 호텔까지 데려다주기를 기다리고, 예약한 호텔 객실이 정리되어 체크인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미술관 개장을 기다리고, 여행 관련 잡지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일출을 기다리고, 버스가 자신을 다른 장소로 데려다주기를 기다리고... 여정 동안 여행자는 늘 기다린다.  260


여행자는 점점 '잘 기다릴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여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잠들 수 있다. 미소를 지으며 낯선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여행자는 하릴없어 보이거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여행자는 당당하다.  261


기다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움이다. 허무는 모든 여행자가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짐이다. 기다림이 습관이 된 그날, 나는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62-263


현대 여행 시스템에서 문화 경험은 하나의 '상품'이다.  280


기계의 시대에서 문화 경험은 수차례 복제될 수 있다.  281


문화 복제는 여행자의 사진첩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284


여행은 한 편의 영화와 같아서 여행자는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감상하는 대상은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이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타국의 풍경은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카메라와 비디오는 갈수록 가벼워져 휴대하기 좋아졌고, 가격도 저렴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길을 거닐면서 만나는 풍경을 기록하고, 관찰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교감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그 화면을 편집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상한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여행은 더 '사유화(私有化 사사로울사 있을유 될화)'된다. 뉴욕은 더이상 뉴욕이 아니고, 파리도 더이상 파리가 아니다. 도쿄 또한 더이상 도쿄가 아니다. '나의' 뉴욕, '나의' 파리, '나의' 도쿄다. 이는 이 시대의 여행서가 대량으로 쓰이고 복제되면서도 전에 없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모든 사람들은 여행을 할 수 있고, 사적이고 은밀한 감상을 할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모든 여행자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여행 사진은 점점 결혼식 사진과 신생아 사진처럼 귀중한 특징을 지니게 되어싿. 삶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계화 시대에 대량생산된 물건같이 무엇인가가 일단 많아지면, 더이상 귀하지 않게 된다. 결혼식 사진, 신생아 사진, 여행 사진을 전시할 때 당사자는 흥미진진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방문객은 예의 있게 참으면서, 틈틈이 시계를 보며 자리를 떠날 기회를 찾는다.  285-286


대중은 우매하고 세속적이기 때무넹 상업 시스템 안에 빠지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대중은 매일 매체와 광고의 최면세 걸려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들이 창의적이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의 행위는 상인이 제공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288



후기 - 자유, 독립, 여행 그리고 여행자

만일 갈릴레이가 당시 로마 교황청에 도전하지 않았고, 당시 사람드이 귀족 권력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고, 여자들이 스스로 '제2의 성'이라는 말에 만족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봉전사회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구가 사각형이라고 믿고, 끝없는 여해을 하면서 세상의 가장 자리와 마주하고, 연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나는 아마 전족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여행을 떠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A부터 B까지, B부터 다시 C까지, 다시 C에서 D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명의 과정은 '나'라는 한 주체가 호기심을 갖고, 공부하고자 갈망하고, 탐색하고 싶어하는 대상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여행자의 정신인 것이다. 세계느 ㄴ이렇게나 넓고, 여행자는 한 도시에 머무는 것을 만족하지 않는다. 여행자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도시에 가고자 한다. 높은 산을 오르고 나면 더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한다. 지도에 표시되었거나 표시되지 않은 장소에서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찾는다. 여행자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고, 무지하지만 용감하고, 미지의 것에 매료된 사람이다. 이 세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자에게 제공한 모든 경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어떠한 것이라도.  302-303


여행은 여행가로 하여금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밀란 쿤데라가 묘사했던 것처럼 세상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아서 갑자기 가운데 균열이 생겨나고, 그 틈을 통해서 당신은 또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세상의 뒷면을 보게 된다. 당신이 평소에 볼 수 없고,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던 또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표면은 평온하고 안정적이며, 결점이 없고 아름다워서 당신의 시야를 가득채웠다. 하지만 추악하고 무서운 틈은 표면적인 세상의 완전함을 파괴한다. 당신이 그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정보들을 누설한다. 틈은 당신이 과거에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조차 못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틈은 당신이 존재하는 세계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신의 관점은 유일한 관점이 아니다. 당신이 독단적으로 정한 표준은 전 세계의 표준이 아니다. 당신이 안심하고 기대온 지식은 사실 아주 혀뵤소한 일부분에 불과하다.  30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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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라고 어느 현자를 말했다. 

남들이 백 번도 더 지나간 길에서, 틀에 박힌 생각에서, 그림엽서처럼 뻔한 풍경과 집단 수용 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연'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하고 본래의 권위를 돌려줘야 할 때가 왔다.  9




딴 데 가서 알아봐 - 프랑스인들은 '딴 데 가서 알아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성가신 사람을 멀리 쫓아낼 때 쓰는 이 표현은, 누구라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라면, 이 '딴 데 가서 알아봐'는 여행자의 지상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정작 당신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여행은 망쳤다는 뜻이다.  16-17


은인 - 한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만 한 방법이 없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친절과 배려는 가이드가 늘어놓는 청산유수 같은 설명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경계심을 품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분별이 관건이다.  21


출항 - 프랑스 소설가 폴 니장(Paul Nizan)은 "여행은 돌이킬 없는 상실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26


오지 - 낯선 지역, 어쩌면 덜 알려진 지역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 이런 지방은 관광지 바깥에 위치한다. 이처럼 가게 뒷방에 깊이 숨겨진 보석 같은 고장에 찾아가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뒤른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26



"여행은 젊은이를 가르치고 노년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



짐 - 비행기에 탈 때 짐이란 짐은 다 덜어내도 마음의 짐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니 불행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짐의 무게는 어느 항공사에서도 재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나 할까?  38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들 마음은 풍성처럼 가볍게 숙명은 결코 떨치지 못한 채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늘 '가자!라고만 말하네." - 샤를 보들레르(Baudelaire Charles, 1821~1867)



베르베르족 속담 - 여행은 자기 삶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41


지도 -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자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쉬아레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63


기분 전환 -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이폴리트 텐(프랑스의 비평가, 역사가)  71


사냥꾼 - 홀로 나와 바람 냄새를 맡으며 우연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은 '즉흥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길을 가다 자신이 원하는 것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만남도 얻는다.  71


길 위에서 - 여행은 삶과 같다.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서둘러 갈 권리도 있겠지만, 길가에서 경험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72


중국 속담 - 진정한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75


세상 끝에 사는 친구 -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세상 끝까지 가서 말 한마디라도 나눠보려고 훌쩍 떠나는 이가 아닌가!" 쥘 바르베 도르비이(프랑스의 소설가)  82


호기심 - 두뇌와 오감을 사용하는 여행이야말로 호기심 많은 사람이 맛보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경이에 대한 욕구가 없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길가에 널린 놀라움을 거둬들일 줄 모른다면, 자기 방에서 멀리 떠나 모험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87


현지에서 작업 걸기 - 어떤 나라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현지인과 살을 맞대보거나 적어도 감정이 오가는 관계를 만드는 게 최고다. 현지 풍속과 언어를 속속들이 알기 위한 이런 여행 방식이 기혼 여행자의 정조 관념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면, "항구마다 기다리는 애인 한 명씩은 만들어라"라는 유명한 말은 진정한 탐험가들이 응당 마음에 품을 법한 것이며 앎에 대한 목마름에 훌륭히 부합한다고 하겠다.  106


여행작가 - 여행작가와 글도 쓰는 여행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행 작가의 시선은 깐깐하다 못해 열정과 비판으로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글도 쓰는 여행자는 보통 타협적이고, 자신이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최상급 형용사들을 줄줄이 늘어 놓는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사로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111-112


깨어남 - "자신이 꿈꾸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다운 여행이 아니다. 이때 말하는 꿈은 정신을 잠재우는 꿈이 아니라, 땀에 흠뻑 젖고 목이 메면서, 수염이 자라 덥수룩해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며 깨어나게 되는, 이야기할 수 없는 꿈,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이를 먹는 것조차 멈춰버리는 그런 꿈이다." 다니엘 메르메(프랑스의 언론인, 작가)  120


청년 교육 - "여행은 젊은이들을 가르친다"라고 몽테뉴는 말했다.

현재를 눈부시게 만들고 자기 앞의 생을 환히 밝히기 위해 여행을 하다 보면 내면이 풍요로워진다.  125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 - 빅토르 위고(Hugo Victor, 1802~1885)



"또다시 우리의 울퉁불퉁한 여행 가방이 보도 위에 쌓였다. 우리 앞에는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길이야말로 삶인 것을." - 잭 케루악(Kerouac Jack, 1922~1969)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집에만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 러디어드 키플링(Kipling Rudyard, 1865~1936)



세계를 읽다 -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쪽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외젠 다비(프랑스 소설가)  170


거꾸로 여행 - "진정한 여행은 어딘가에 가는 행위 그 자체다. 일단 도착하면 여행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위고 베를롬(프랑스 작가)  171


책 - "모든 책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세상에 한 권뿐이며, 세계 모든 나라의 국경을 열어주는 8절판의 작은 책, 바로 내 여권이다." 알랭 보레(프랑스 비평가, 여행 작가)  177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 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 - 알퐁스 드 라마르틴(Lamartine Alphonse, 1790~1869)



"여행은 문과 같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현시렝서 나와 꿈처럼 보이는 다른 현실,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 기 드 모파상(Maupassant Guy de, 1850~1893)



무어인 속담 - 여행하지 않는 살마은 인간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196


앙리 드 몽프레 - "삶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며, 우연과 행운과 운명을 신뢰하라. 길을 떠나 다른 공간과 다른 희망을 정복하라. 그러면 나머비는 덤으로 주어지리라."  203


테오도르 모노 -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는 잘 알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길로 그곳에 이르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미리부터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203


미셸 에켐 드 몽테뉴 - "왜 여행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하는지는 잘 알지만, 내가 무엇을 찾는지는 잘 모른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두뇌에 문질러 다듬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해야 한다."  203


베트남의 해변 도시, 나짱 - '삶의 운치'를 즐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다른 모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당신을 떠밀어대는 안내책자의 프로그램은 그럴 계획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음 기회에... 이런 식의 여행은 '바보 같은 여행'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딱할 뿐이다.  206-207


프랑스 최대 여행사, 누벨 프롱티에르 - 오늘날 고객은 한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특별히 피하는 곳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이 특정 브랜드를 고수하지도 않고, 그저 일종의 소비요겡 이끌려 '기획 상품'만 찾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210


길을 잃을 자유 -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 랍비 나흐만 드 브라트슬라브가 남긴 이 경구는 진정한 여행자, 곧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에게 마음의 지주가 된다.  232


페르시아 속담 - 우리가 여행에서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기념품은 건강하고 무사한 자기 자신이다.  234


긴 여정, 짧은 산책 - 한가로이 거닐면서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우연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 그 자체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노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 덕분에 완전히 거꾸로 여행할 수 있게 된 만큼, 그러니까 한 걸음에 천리 길을 갈 수 있게 된 만큼, 수천 킬로미터 거리를 훌쩍 날아간 뒤에 한 발짝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여행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235-236


해변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임을 내세우는 곳은 수십군데지만,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42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Proust Marcel, 1871~1922)



추구 - "여행은 동기가 없어도 된다. 여행 그 자체만으로 족하다는 것이 이내 입증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이 당신을 만들거나 당신을 해체하는 것이다." 니콜라 부비에  252


만남 - "우리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  268


추억 - 여행은 추억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가장 빛나는 추억은 현재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때때로 망각할 정도다. 기억은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는 만큼 지금 이 순가에 머물기를 잊고 추억을 모으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껍데기만 남는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먼 곳까지 가서 찾고 느끼려했던 것들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야 한다. 받아들일 줄만 안다면 덧없는 한순간보다 더 지속적인 것도 없다.  2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나는 어딘가에 가려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여행한다. 그러니까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삶의 필요서오가 난처함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이다."  284


여행자의 인사, "스토 칼로" -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그리스의 인삿말이다. '스토 칼로 나파스(Sto kalo nappas)'의 준말인 이 표현은 선(善)과 아름다움을 향해 가라'라는 뜻이다. 여행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줄 만한 좋은 말이다.  285


티베트 속담 - 여행은 본질로의 회귀다.  296


투아레그족 속담 - 첫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발견을 하고, 두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299


관광객 - '관광객'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산책 수첩에 "어느 관광객의 회상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스탕달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후 그의 뒤를 이어 떠나는 방문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때로는 이들이 낯선 곳의 '점령자'가 되는 지겨엥 이르렀다. 이 점령자들이 자신이 방문하는 장소를 변화시킬 때 여행자는 새로운 발견의 여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여행자는 풍경에 어우러지기보다는 풍경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돼버린다.

여행의 민주화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진보의 정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온전한 풍경을 더 이상 일그러뜨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302-303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폴 발레리(Valery Paul, 1871~1945)



여행필수품 -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으로 이끄는 길은 없다. 행복이 바로 길이다.", "여행자여, 길은 바로 그대의 발자취다."  321


잔스카르 속담 - 여행은 그대의 아버지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찾았을 때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그 땅은 그대의 어머니다.  339


에밀 졸라의 겉치레 말 - "여행만큼 지성을 함양하는 것은 없다"라고 이 작가는 말했다. 관광산업의 유혹에 넘어가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 다니기를 낙으로 삼는 이들이 흡족해할 만한 말이다.  하지만 그저 움직였다고 여행을 한 것일까? 예전에는 어떤 사람의 지성이 그가 주파한 거리와 비례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불행히도 이런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341-342




옮긴이의 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떠나며 꿈꾸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여행과 정반대의 여행이 있다. 마음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이곳이 아닌 다른 하늘 아래로 몸을 피해야 숨이라도 겨우 쉴 듯한,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여행.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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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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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이란건 결국 제도권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이 이 사회에서 말하는 사회성일 뿐. 
실제 삶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한 것이다. 성취라는 개념을 보더라도 성취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학업은 성취해야 하는게 아니라 익숙해져야 하는게 아닌가. 그 익숙함속에서 발전과 넘어섬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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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답을 찾기가 어렵지만 확실한 건 교육이 투기꾼들에게 잔디깔린 훌륭한 놀이터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정(假定 거짓가 정할정)들은 한눈에 들어오고 많은 이론을 끌어들여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오류라는 사실이다.  13

교육에 대해 토론할 때는 아이들이 수천 년, 아니 수십만 년에 걸쳐서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15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잠에서 깨어 나라느 외침과도 같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면 발달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새롭고 세련된 이론에따라 아이들을 그때그때 다르게 키우고 최신 유행 이론으로 시험해 왔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실험용 토끼로 만든 셈이다.  16-17

부모들의 대표적인 걱정거리
사실 그 무엇도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가운데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또 우리 부모는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리고 부모의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그 밖의 걱정들은 개롭게 우리에게 날아온 것이다. 부모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다음의 4대 걱정거리가 그것이다.
1. 버릇이 잘못 들지 모른다는 걱정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나중에 아이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특히 아이들을 너무 자주 안아 주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자고 큰소리로 울 때마다 안아 주고 오랫동안 젖을 물리면 "버릇이 잘못 들 수 있다."
2. 말 안 듣는 아이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 
아이들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려고 하는가?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한계를 정해 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들은 기싸움에 승리하여 무서운 '독재자'가 될 것이다.
3.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걱정
아이들의 발달은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부모가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면 아이의 발달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실수를 저지르면 어떻게 될까? 발달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아이는 평생 피해를 입을 것이다.
4. 자녀를 제대로 후원하지 못한다는 걱정
아이들이 훌륭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극과 후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
이 모든 걱정거리가 새로운 교육 이론의 원료가 된다. 부모들의 이런 걱정거리가 교육 시장의 투기꾼들에게 신선한 양식을 제공한다. 모든 걱정거리가 화려한 공중누각 같은 공허한 이론의 건툭 자재로 사용된다.
이 걱정거리들은 하나같이 아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긴 것들이다. 이 걱정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의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을 넘어 존재의 명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을 넘어 존재의 명맥을 이어 왔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에게 닥친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장점들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문제투성이와 약점덩어리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랬다면 어떻게 지난날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앞으로는 이 걱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아이에 대한 걱정들이 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으면 한다.  22-23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버릇 문제가 이야기되면서 부모들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한다. 바로 프로이트가 엄마의 과도한 애정이 아이의 성격 성숙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이후부터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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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반응해주면 습관이 된다는 것도, 반응해 줘야 된다는 것도, 모두다 심리학적 접근으로 설명한다. 어떤것이 옳은것인지를 떠나서 아이가 울음을 우는것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아이는 울음으로 밖에 자기 의사를 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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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울음에 반응이 없어 상처받은 아이가 무조건 잘못되는것도 아니고 반응이 있어 상처 받지 않은 아이가 무조건 잘 되는것도 아니다. 어린시절 뿐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처는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상처가 문제가 아니라, 늘 상세하고 자세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을 인정받고 나아가 해소의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잘되고 못되고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태교때는 태교만, 육아때는 육아만, 초등때는 초등만 중요한것처럼 떠드는 것은 의미없다. 다시마랳 부분최적화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전체를 조망해서 나아가는 전체최적화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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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생후 두 번째 되는 해, 부모와 좋은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에 고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1~2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고집을 부린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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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고집시기는 어쩌면 당연히 받아주어야 하는 과정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만 그런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런다는 것을 자연적인 흐름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애착관계가 강한 아이는 이 고집과정이 없거나 있더라도 대화로 풀어가면서 쉽게 지나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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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거부는 자신의 이해관계 다시 말하면 발달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혁명이다.  36

왜 우리는 고집스럽게 아이들의 행동 방식을 '권력의 문제'로만 해석하려는 걸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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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성장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훨씬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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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은' 정도로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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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표현이 부모에게 더 근심을 안겨준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도, 표현도 없다. 그러니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차피 기준도, 답도 없는것인데 전문가라는 집단은 자기 공부 자랑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발표해서 더 어렵게 끌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연구 조사가 때론 유익하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도움이 안되기도 하기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
판단은 부모가. 결국 부모의 판단력의 기준이 중요할 뿐 이들의 연구 발표는 나중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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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매일매일 내리는 결정은 가느다란 비단실과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과 고통은 그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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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시간에 잠자고, 일어나고, 특정한 시간에 먹어야 하고, ...
인간이 시간속에 살아가진 하짐나 시간이란 개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기에 우리가 자연적인 현상을 시간에 끼워 맞추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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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뒷머리는 원래 남작하지 않은 곡선 모양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기들을 항상 눕히지 않고 안거나 업고 다녔기 때문이다.  49

왜 우리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는 것을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아기를 안거나 업고 다닐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면서 새로 나온 유모차의 플라스틱 부풉에서 배출되는 수백 종의 화학 성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왜 우리는 다이옥신에 오염된 달걀에는 민감하면서 아기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플라스틱 물건에 대해서는 무감할까?  50

독립이 인간의 발달에서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인간에게 독립은 "고속도로에서 멋대로 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능숙하게 교류하는 능력에 근거를 둔다. 독립의 본질은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61

나이가 다양하게 섞인 집단의 아이들이 오히려 서로를 격려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다양하게 섞인 집단의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인내력과 창의력을 더욱 발휘한다.  79

손위 형제 자매와 친구들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쉬워진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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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에서 어떤 관계든 상처를 받게 된다.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또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받은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즉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상처가 어떤것이든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정도의 성숙함이 있다면 또는 그것을 기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래내용(p98)에서 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 즉 회복력이다. 그 힘을 기르려면 가족의 애착과 형제관계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친밀함을 유히자는 주위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후에 또래 아이들과의 조직이 필요하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래 집단에 앞서 형성해야할 회복능력이, 이후의 더큰 회복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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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회복력'이라고 정의한다. 회복력은 위기를 견디는 능력이나 내면의 힘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발달의 면역 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회복력을 강화하는 외부의 영향력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형제자매, 풍부한 사회적 관계의 그물, 가족 바깥에 있지만 친밀한 애착 관계에 있는 사람, 예를 들어 할머니, 이모나 고모, 또는 어른들이 바로 그런 영향력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아이 집단에서 사회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더 큰 회복력을 갖는다.  98

아이들을 사회적으로는 허약한 최고 점수 득점자로 망가뜨리지 않고, 그럼에도 아이들이 화면 앞에 앉아서 또는 장시간 이완 상태에 빠져 타락하지 않도록 해 주는 교육 방법은 없는 걸까? 부모가 헬리콥터처럼 아이의 주변을 뱅뱅 돌면서 일일이 간섭하고 조종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라"는 주장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그들을 후원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을 찾으려면 우리는 다시 아이들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124

아이들이 성장하는 환경은 매우 다양하지만 적절한 발달을 위한 토대는 항상 동일하다.
첫째는 확실한 애착이다.
둘째는 다른 아이들이다.
셋째는 공동체의 지원이다.  
넷째는 자유다.
다섯째는 균형 잡힌 세계다.  127-128

꽃잎을 자꾸만지면 아름다운 꽃이 피지 않는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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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교육이 좋기만 한 걸까?
적기 교육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분명 어린 나이에 많은것을 교육시키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3세에는 이것, 5세에는 이것을 가르친다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특정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의 장점을 설명하듯이 특정 전문가들이 적기 교육을 강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정한 연령대에 특정한 교육이라는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을까?
위의 전문가 집단들의 서로 다른 가설에 의한 실험 결과일 뿐이다.
이 책은 진화의 관점을 강조하며 설명한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이든, 창조의 관점이든,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교육이라는 개념이 시스템화 되지 않았어도 잘 자랐고, 성인이 되고, 자기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술 담배를 교육시키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다. 몸의 체계 형성도 되기 전에 파괴만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라면 당연히 그럴것이란 점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교육이라는건 그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아이를 아이가 아닌 하나의 개체로 인정한다면 시킬것도, 시키지 않을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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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완벽하고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후원도 이와 같은 뿌리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141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도대체 학교의 사명은 무엇일까?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의 발달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주의하기 바란다. 모든 아이들의 발달을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학교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대답을 하자니 망설여진다. 그렇다고도 또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지원하면서도 포기한다. 훌륭한 학교도 있고 낙제점인 학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교사들의 열과 성이 부족하거나 제안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학교의 교육 계획과 교과 과정의 변화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 딜레마가 있다.  146

병원은 어린 생명을 다루는 지식은 의학을 전공해야만 얻을 수 있고 전문가를 통해서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모들이 아기에 대한 책임을 병원에 떠넘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171

성인들도 '결합 속의 자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188

실제로 세계화 이후 독일에서 자녀가 있는 성인들의 실질 소득은 계속 하락했다. 적어도 중하층 가정에서 자녀는 빈곤의 위험을 의미한다. 실제로 성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자녀를 가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190

"정치가 꼭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다. 육아가 기쁘면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는 유럽 발달소아과학계의 원로 레모 라르고(Remo Largo)의 말이다.  191

좀 더 솔직해지자.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밑바닥 사람들의' 사회적 문제만은 아니다. 기득권층에게 통합 정신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한 계층 전체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문제다.  193

결정하는 사람은 엄마다.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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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늘날 아이 양육에서 결정자가 엄마일까? 부모일까?
아니다. 양육의 돌보미가 부모이고, 결정자는 기업과 사회이다. 기업은 전문가 집단 또는 전문가 개인을 이용해 아니 앞세워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이것을 해야 아이의 정서가 발달하고 창의성이 생기고, 사회성이 생기고, 리더십이 생기고, 독립적일 수 있고, 재밌어 하고, 행복해 한다고...
행복마저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세뇌를 시켜 결정자의 역할을 한다.
부모는 다만 내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마냥 전문가의 말이 신실한듯 따라간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전문가를 통해 조종하고 있는 결정자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 잘 알지 못하고 미래도 모르니 좀더 많이 아는 사람의 말을 진리라 생각하면서.. 
부모의 기준은, 전문가를 등에 업은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고 있는 사회의 기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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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교육은 기존의 지식, 다른 사람들에게 물려받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이 돼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만을 배웠다면 인류는 아마도 불을 다루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터넷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213

호모 사피엔스에게 교육이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행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것도 교육이다. 자기 학습, 자기 교육이 그런 것이다...
인생의 지식은 밑에서 위로 오르기도 한다.  214

아이들은 학습을 위해서 단순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은 관찰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겐 롤 모델이 필요하다. 
그들은 무턱대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치를 두고' 관찰한다.  215

사람이 처방전에 따라 살거나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듯이 교육도 처방전을 따라할 수 없다.  218

아이들에게는 집단의 경험이 필요하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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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가족제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집단의 경험이 이루어졌다. 또래들의 집단 어른들과의 집단, 모계집단, 부계집단등 대가족 아래서 다양한 집단 경험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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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저자와 독자의 두뇌를 이어주는 끈이다. 책을 통해 저자의 두뇌 속 경험이 독자의 두뇌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잘 쓴 책은 독자의 두뇌를 크게 뒤흔든다.  40


사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먼저 말씀드리자면 너무 많은 책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 쓰는 것 자체가 업인 작가분들은 경우가 다르겠지만, 그냥 자기의 경험을 남기고 싶은 살마이 내 얘기를 반드시 책이라는 형태로 써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자기의 추억을 남기고 싶으면 블로그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책이 될 만한 내용이 명확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과시욕이나, 이런 것도 해봤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으로는 책이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굳이 말씀드리자면 저희 아버지께서 저에게 해주신 조언을 그대로 전해 드리고 싶어요.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쓰는 것.(<3650일, 하드코어 세계일주>저자 고은초 인터뷰)  45


아르바이트로 보습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같은 학원의 나이 지긋한 문학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제가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막상 글을 쓰면 분량이 너무 적습니다. 솔직히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멋진 아이디어가 넘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솟아오르는 거 같은데 왜 글은 다섯 줄을 못 넘을까요?"

"승수 씨, 머릿속에 쓸 거리가 많은데 글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승수 씨가 글로 쓸 수 있는 딱 그만큼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겁니다."  47


글의 재료는 '경험'이다. 고로 글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경험의 부재에 있다.  49


'당신은 책이 나올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글은 '살아지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53


상상 가능한, 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거의 모든 소재가 책이 된다.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들.

첫째,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인문사회 편집자로서 최고의 실력자로 꼽히는 한 편집자와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유행에 상관없이 누가 뭐라 하든 자기 관심사를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은 결국 주위에 사람이 모입니다."

둘째, 자기만의 관점과 시각이 있어야 한다.  55-58


독자가 왜 돈을 내고 내 책을 사야 하는가?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당신이 쓰는 원고가 책이 될 수 있다. 책의 콘셉트가 좋다는 말은 독자가 그 책을 살 이유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62-63



인터뷰 - 은수연 <눈물도 짗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69

"저는 책을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글을 쓰라고 하고 싶어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삶을 정리하고 그냥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그 글이 묶여 책이 되더라고요.  73



글을 쓴다는 것을 그저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글을 쓰면서 똥을 싼다. 글을 써야지 왜 배설을 하는가.  78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존중과 겸손'이다. 독자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바로 그래야 한다.  92


책 작업할 때마다 출판사는 대체적으로 20자 원고지 1,000매 분량의 원고를 요구한다.  118


보통 A4 용지 1장에 원고지 8장 분량이 들어가니 원고지 1,000장은 A4 용지로 치자면 125장 내외가 된다.  119


원고지 1,000장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목차다.  120


대부분의 경우 책을 쓰기 전에 목차부터 짜는 것이 좋다. 목차를 제대로 짜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글을 쓰다 보면 책의 균형이 개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특히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121


A4 용지 4장 쓰는 비법.

첫째, 글의 재료를 늘어놓아라.

주제와 관련해 당신이 쓸 수있는 가능한 모든 재료를 늘어놓으시라. 

둘째, 글을 꼭 도입부부터 써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라.

카레라이스를 하는데 꼭 당근 먼저 깍아놓을 필요가 있는가?  122-124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해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 쓰지 말고 사랑할 때 연인과 함게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뿐이에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봄에 시간을 내 특정한 꽅을 보러 다니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이 어땠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를 기억하려 애쓰세요. 강의끝.'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중에서  158


슬픔을 표현하려면 슬펐던 경험을 '디테일'을 살려 자세히 써야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오감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그렇다면 내 글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글로 내가 본 것을 생생하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냄새 맡은 것을 냄새 맡게 해줘야 한다. 내가 느낀 촉감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글쓰기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159


올바른 사회질서란 뭐고, 알맞은 사회적 성장은 뭐냐? 1906년에, 훗날 스탠퍼드에서 교육대 학장이 도니 엘우드 커벌리가 대답을 내놓았다. 학교는 공장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 공장에서는 원료인 학생들을 주무르고 틀에 부어 최종 생산물로 빚어내게 될 것이다.(중략) (학생들) 백 명 가운데 아흔아홉 명은 자동인형이고, 정해준 길로 주의를 기울여 걸어들어 가고, 정해준 관행을 주의해서 따른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효과적인 교육의 결과이다 그 교육이란, 전문용어로 정의하면, 개체의 포섭이다."  172


과연 '개성'이란 무엇인가? 그저 남과 다른 것 정도를 개성이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개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점의 전환'에서 나온다.  174


개성이란 '사회화'와 '교육'을 통해 사건과 사물 및 현상을 한쪽 방향에서만 보도록 길들여진 상태, 바로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175



인터뷰 - 김상태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저자

인생에서 자신의 책을 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선 완성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완성해보면 다릅니다. 달라요. 그리고 냉정하게 출판사 열 군데 백 군데에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출판사한테 모욕받는 겁니다. 기꺼이요. 그리고 또 쓰는 거죠. 하하하.

이게 자신감이죠. 솔직히 모욕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욕받는 것은 대중들이 일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이에요.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 대중은 눕는 거죠. 성숙한 대중은 모욕받는 것에 능란합니다. 회사 가면 모욕당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일 잘하거든요. 스트레스는 좀 받겠지만요. 자신감이란 건 뭐냐면 '모욕할 테면 해보라'는 자세예요. 이런 태도가 생기는 것을 지배자들은 제일 무서워해요. 모욕하는데 기가 안 죽거든요. 황석영 같은 대가가 원고를 쓰면 다들 빌면서 원고를 달라고 하겠죠. 대중이 원고를 쓰면 누가 예뻐하겠어요?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자신의 역량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완성시키고, 그 다음에 책으로 안 나오면 그냥 원고를 베개로 베고 자는 겁니다. 기꺼이 모욕당하고 모욕당하는 것을 즐겨야죠. 출판사에 보낼 때 이메일로 보내는데 돈도 안 들잖아요? 막 보내요. 그래도 끝까지 연락이 안 오면, 뭐 딴 거 쓰는 거죠. 하하하. 자신감이 있어야 돼요. 깡다구 말이에요. 뭐 안 되면 그만이잖아요."  200-201

"제트가기 하늘을 지나가면 뒤에 연기가 남잖아요? 활동가는 지나가면 알 수 없는 흔적이 남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에리히 프롬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감정적 지식이 아닌 것은 지식이 아니라고요. 단순히 알기만 했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잖아요...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아요. 지나갔을 때 흔적이 남는 사람, 그런 사람이 변화를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데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모든 살마들이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은 지나가면 흔적이 있어요. 영향을 주겠다. 어쩌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끊임없이 사는 거예요. 계속해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것을 흥미롭게 열심히 생산하는 겁니다. 책을 쓰는 일 역시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그리고 책이라는 흔적은 동시대에만 남는 것도 아닙니다." 203-204


글솜씨를 키우는 8가지 요령

글 솜씨는 단시일에 비약적으로 늘지 않는다. 꾸준히 쓰는 것 외에 다른 왕도는 없다. 

- 짧은 문장이 바람직하다.

- 주어와 서술어는 호응해야 한다.

'내 목표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리려고 한다.'

'내 목표'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나'를 제치고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리려 한단 말인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내 목표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주어-서술어뿐만 아니라 목적어-서술어도 맞춰야 한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겨울철에는 가습기나 빨래를 널어 실내 습도를 조절해야 한다.' 

빨래만 널면 됐지, 가습기까지 너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은가. 이렇게 수정해야 한다.

'겨울철에는 가습기를 틀거나 빨래를 널어 실내 습도를 조절해야 한다.'

- 수동태보다 능동태가 좋다. 

'맥주는 보리로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이 이 문장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문장은 '맥주는 보리로 만든다'로 바꾸는 것이 훨씬 더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대학 전공을 결정할 때는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

번잡스럽게 '신중한 선택이 요구될'것까지도 없다. 다음과 같이 바꾸자. '대학 전공을 결정할 때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복지정택이 수립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수동태로 쓸 것인가? 이렇게 바꾸자.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복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 지시어를 남용하지 마라.

'그는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했다.'

동생은 형이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형수에게 알렸다는 뜻인가? 이런 '막장' 문장은 의외로 흔하다. 지시어 남용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놔두고 일부러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바꿔야 한다.

'이몽룡은 변학도가 춘향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월매에게 말했다.'

- 단락은 글의 호흡이다.

- 접속사는 글의 윤활유

- 궁극의 비법, 소리 내서 읽기

인간의 문명 진화 과정을 보면 문자 언어보다 음성 언어가 먼저 등장했다. 

문자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음성 언어를 시각화한 것이다. 때문에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자연스러운 글이 좋은 글이다.   205-225



인터뷰 - 권미경 편집자 

"비슷비슷한 원고를 주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 있어요. 별로 자기 점검을 안 한다는 거예요."  243

수많은 투고자들이 다들 자기 이야기 하는 데만 바쁠 뿐, 정작 책을 내줄 출판사가 어떤 원고를 요구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244



인터뷰 - 이원석 <거대한 사기극> 저자

"대중은 일반적으로 현재 주어진 사회 속, 그러니까 현실 속에서만 살아갑니다. 마르쿠제가 얘기했던 1차원적 사회인 거죠. 그 속에서 남들을 기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남들이 좋아하는 대학, 남들이 좋아하는 직정을 추구하게 되죠. 우리 집이 강남에 있으면 자랑스럽고 평수가 50평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의 '욕망'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입맛이 달라져서 맵지 않고 짜지 않고 달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욕망이 달라져서 큰 평수, 많은 배기량, 좋은 학벌 같은 것에 휘둘리지 ㅇ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시간이라는 테스트를 거쳐 살아남은 고전은 현 사회를 넘어서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졸 수 있게 만듭니다.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우리의 입맛과 욕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사회를 바꾸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다음은 사람들끼리 연대를 해야 합니다. 혼자만 인문고전 읽고만다면 의미가 없어요."  28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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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다. 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덕분이다. 우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22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쓴 <완덕의 길> '정말 필요한 것이면 보아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30


어때서 일어나지도 않은 현상을 미리 가불해서 앞당여 근심하고 있단 말인가.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매 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5


선승 황벽(黃檗)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

주님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36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렵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38


일찍이 당나라의 선승 동산(洞山)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그러자 동산이 소리쳤다.

"이놈아! 추울 때는 그대를 더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더 덥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추우면 본능적으로 더운 곳으로 피하려 한다. 더운 곳으로 피하면 추위는 일시 가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근심이 있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다른 방법으로통해 고통을 피하려 한다. 피하고 잊는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추위를 피하려면 애써 더 추운 곳으로 찾아가라는 동산 스님의 말은 고통이 오면 더욱 그 고통을 직시하라는 뜻이다. 


중국의 도가서(道家書)인 <열자(列子)>에는 전설적인 신궁 비위(飛衛)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 기창(紀昌)이 찾아와 활쏘기를 배우려 하자 비위가 말한다. 

"활쏘기보다, 먼저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끝까지 보는 공부부터 하게."  58


이순신 장군도 말씀하셨다.

"살려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곧 살 것이다."


주님도 이렇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59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없다는 것은 못 느낀다. 두려움을 느기지만 평화는 못 느끼며, 갈증이나 욕망은 느끼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면 금세 잊어버린다. 마치 심한 갈증으로 허겁지겁 물을 마신 후에는 남은 물을 버리는 것처럼."  77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소화 데레사 성녀는 널리 알려진 대로 15세에 가르맬수도회에 들어가 24세에 선종함으로써 10년도 못 되는 짧은 수도원 생활을 한 새내기 성녀다... 봉쇄수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마룻바닥을 닦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에 전념했던 수도자였다.  97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아주 소소하고, 그러니까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늘 하나를 주울 때에도 주님에 대한 사라응로 주우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영혼 하나를 구원한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아주 작은 것도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성인의 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녀 소화 데레사가 발견한 '겨자씨'의 비밀이었다.  98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은 우리들의 수도우너인 가정 속에서부터 타올라야 한다.  100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때도 데레사처럼 사랑으로 하고, 자식들을 아기 예수처럼 대하고, 아내를 성모님처럼 공경하고, 남편을 주님을 대하듯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우리의 가정은 성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1


[두메꽃]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미나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 숨어서 피고 싶어라.  117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는 반드시 이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우선 유혹에 넘어가 그 죄를 응시하는 첫 발견 단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먹음직스럽다. 화려하다. 향기롭다. 감미롭다. 죄는 본능적인 감각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후에는 맹렬한 상상이 일어나고 쾌락에 대한 기대감이 용솟음친다. 이 과정을 <준주성범>은 '처음에는 마음에 단순한 생각만 하고, 그 다음에는 상상이 일어나고, 쾌락이 생기고, 잇따라 악한 중동이 발하고, 마침내는 승낙을 하게 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와가 느낀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은 악의 논리다. 결정적인 악의 정당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나마 유혹과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있지만, '딱 이번 한 번뿐인데', '이생은 원래 즐기는 거야', '사랑은 불나비야'라는 식의 악의 논리는 여지없이 충동적인 만용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따 줌으로써 악은 습관화(중독)되고 전염되어 온 세상에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127


미국의 CIA는 거짓말을 백색, 회색 그리고 흑색으로 분류하고 있다. 남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행하는 흑색 거짓말과 완전한 거짓은 아닌, 상대방을 위한 선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백색 거짓말, 그리고 그 경계가 애매한 회색 거짓말.  139


남전이 주석하고 있는 선당은 동서에 선방을 두어 동쪽의 선방에 사는 수자를 동당(東堂), 서쪽의 수자를 서당(西堂)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모든 납자들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서로 자기네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동당 고양이, 서당 고양이 하고 싸움이 벌어졌다.

다툼이 시끄러워지자 스승 남전은 무슨 일인가 나와 지켜보다가 싸움의 원인이 고양이 한 마리 때문임을 알고는 고양이의 목을 한손으로 쥐어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칼을 들어 모가지에 들이대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뭔가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이 고양이를 죽이지 않겠지만 말할 수 없다면 목을 베어 죽일 것이다."

서슬이 퍼런 스승의 선기에 압도되어버린 대중들은 입조차 달싹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의 목을 베어 죽였다.

그날 밤 외출에서 돌아온 제자 조주(趙州)가 스승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남전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네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겠느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말없이 자신이 신던 짚신 한 짝을 머리 위에 얹고 걸어 나갔다. 이에 스승 남전이 혀를 차며 말하였다.

"네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는 살 수 있었을 터인데."

그 이후부터 '불살생'의 계율을 파계하여 고양이의 목을 벤 남전의 칼은 애욕을 끊기 위한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그것이 분쟁의 원인인 고양이라 할지라도 하찮은 짚신조차 머리 위에 떠받으는 것처럼 섬기겟다는 조즈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로 불리게 되었다.  148-149


근세의 선승 혜월(彗月)은 1937년 죽기 전 선암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천하의 명검'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헌병대장이 명검을 보고 싶은 욕망에 절을 찾아왔다. "그 칼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간청에 "물론입니다."하고 앞장서 걷던 혜월은 느닷없이 뺨을 후려쳐 헌병대장을 섬돌 아래로 떨어뜨렸다. 졸지에 수모를 당한 헌병대장이 허리에 찬 칼을 빼려 하자 혜월이 먼저 다가가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천하의 명검이오. 내가 때려 섬돌 아래로 떨어뜨린 손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손은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150


혀와 손과 생각은 모두 양면의 날을 가진 불칼임을.  155


불교에는 '불재가중(佛在家中)'이란 말이 전해져온다. 당나라 때 양보(楊補)라는 사람이 사천에 유명한 무제(無際)보살이 있다 해서 먼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던 양보는 "어디를 가오?"하고 묻는 노인에게 "무제보살을 스승 삼고자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보살을 찾아가느니 부처를 찾으러 가지 그래."하고 말했다. "부처가 어디에 있는데요?" 하고 양보가 묻자 노인은 대답했다.

"집에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나와서 맞아주는 분을 만나게 될 텐데, 그분이 바로 부처시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바 이불을 두른 채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뛰어 나오는 어머니 모습에서 비로소 양보는 '집 안에 있는 부처'를 견성(見性)할 수 있었던 것이다.  162


예수께서 저를 붙드신 목적은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 있는 하느님으로서의 '말씀'능력과 예수로서의 '행동'능력과 성령으로서의 '생각'능력, 즉 '지언행(知言行)'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170



스님, 정말로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까? _최인호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_법정



내가 좋아하는 선가(仙家)의 말 중에 '살아도 온몸으로 살고 죽어도 온몸으로 죽어라' 라는 말이 있다.  180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A. 모루아는 "병은 정신적 행복의 한 형식이다. 병은 우리들의 욕망, 우리들의 불안에 확실한 한꼐를 설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위대한 사상가였던 C. 힐티는 <행복론>에서 "강의 범람이 흙을 파서 밭을 갈듯이 병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파서 갈아준다. 병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견디는 사람은 보다 깊게 보다 강하게 보다 크게 된다."

강이 범람하여 홍수가 나지 않으면 대지는 황폐해진다.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 되기 위해서는 홍수로 땅이 뒤집혀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바닷물을 엎어버리지 앟으면 플랑크톤은 사라지고 물고기들의 먹이사슬은 끊어진다. 바다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태풍이 몰아쳐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병의 홍수와 태풍을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82-183


당나라 때 향엄(香嚴)이란 선사가 있었다. 등주(鄧) 사람으로 법명은 지한(智閑)이었다. 키는 7척이나 되고, 학문에 조예가 깊어 아는 것이 많고, 말재주가 능하여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스승 위산영우(僞山靈祐)를 찾아가 불법에 대해 묻자 위산은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전부 남에게서 보고 들었거나 부처께서 말씀하신 삼장십이부경(三藏十二部經)의 뜻을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묻지 않겠다. 나는 그대에게 묻겠다. 아직 어머니의 배 안에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아라. 그것으로 그대의 공부를 가늠하겠노라."

향엄은 여러 가지로 대답했으나 위산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위산에게 가르침을 간청하자 스승은 "나의 말은 나의 견해일 뿐 그대 스스로의 안목으로 일러야 그대의 안목이 아니겠느냐." 하고 거절한다. 이에 향엄은 자기가 읽던 모든 책을 불살라버린 후 "이번 생에는 불법을 깨닫지 못했다. 오늘까지 나를 당할 사람이 없다고 느꼈는데, 스승에게 한 방망이 맞고 보니 그 생각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제부터 나는 그저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중이 되겠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스승과 작별하고 암자에 들어가 수행을 하였다. 

하루는 마당의 풀을 베면서 무심코 던진 기왓장 한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며 난 '딱'소리를 듣고 순간 크게 깨달았다. 이 장면을 선가에서는 향엄격죽(香嚴擊竹)리라고 부른다. 향엄은 스승에게 돌아가 깨달음을 인정받고 오도송을 읊었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去年貧 未是貧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로다. 今年貧 始是貧

작년에는 송곳꽂을 땅이 없더니 去年 無卓錐之地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더라. 今年 錐也無

이 선화에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화두, 즉 '그대가 아직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 얼굴'이란 공안인 것이다.  200-201


향엄 스님은 "이번 생애는 불버븡ㄹ 깨닫지 못하겠다."고 절망 했지만 용맹정진 끝에 무심코 던진 기왓장 한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딱' 소리에 크게 때닫고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참나, 즉 '본래면목'을 견성하엿다.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첫 일성으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언하셨다면 하늘나라는 이미 와 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면 어느 날 문득 어린이가 되어 하느님이 '빚어 만드신 최초의 참사람'으로 돌아가 원죄 없는 원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의 눈에서 바라보십시오."

심학규는 공양미 삽백 석이 있어야만 눈을 뜨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신을 위해 죽었던 심청이를 보고 싶다는 참사랑의 열망 때문이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시작도 끝도 없는 '이제와 항상 영원한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치마를 뒤집어쓰고 임당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심청이의 본래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나의 참모습을 견성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눈을 뜨는 데는 공양미 삼백 석과 같은 수천 년 세월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는 것은 <심청가>에 나오듯 '휘번쩍'눈을 뜨는 한 순간이다.  209-210


운동처방학을 전공하는 윤기운 교수는 운동선수들에게 세 가지 종류의 혼잣말 훈련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지켜본 후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혼잣말의 종류에는 '지도적 혼잣말'과 '동기적 혼잣말', '긍정적 혼잣말'등이 있는데 지도적 혼잣말은 '천천히' 혹은 '침착하게' 같은 교훈적인 것이며, 동기적 혼잣말은 '이번이야말로 최고의 기회야', '드디어 때가 왔어'같은 심리적인 동기부여를 가리키며, 긍정적 혼잣말은 '좋아, 할 수 있어', '난 내 자신을 믿어'와 같은 말인데 마음속으로 외우기보다는 실제로 입 밖으로 드러내어 혼잣말을 하는 실험대상이 그렇지 않은 상대보다 월등히 실제 행동과 학습효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215-216


중국의 당나라 때 절강성의 서암사라는 절에는 사언이라는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화두로 유명한 암두의 제자였다. 사언은 스승으로부터도 인정 받지 못했던 치둔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불린 데는 어느 날 공양 초대를 받아 신도 집에 갔을 때 주인이 유리와 구슬로 된 염주알을 바구니에 잠아 각자 골라 가지라고 햇던 데서 비롯되었다. 사언은 다른 스님들이 다 고른 후 마지막에 남은 가장 볼품없는 것을 집어 들고 "이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라고 흡족해하여 '바보선사'라 불리게 된 것이다. 

사언은 아침에 일어나면 판도방(큰방) 앞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아."

그러고 나서 사언은 대답했다

"네."

"정신차려라."

"네."

"앞으로도 속지 말아라."

"네."

사언의 자문자답은 자기 속의 자기야말로 만유의 근원적인 한 물건이자 본질 이전의 진아(眞我)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경책하는 벽력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216-217


웰만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은 나 자신이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벗도 나 자신이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나 자신 속에 있으며 나를 해치는 무서운 칼날도 나 자신 속에 있다. 이 두 개의 나 자신 중의 어느 나를 좇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217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였던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귀중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면서 신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추기경님은 그날 대담(2003년이엇던가. 새해를 맏아 동아일보에서 기획한 새해 특집으로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담)에서 내개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이 뭔지 안세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추기경님은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 도착하기엔 멀었소이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246-247


성경의 한 구절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거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러가.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사람의 정을 물리치지 말아라."  255


세속과 청산을 따져 무엇 하겠는가. 길상사건 대원각이건 굳이 어느 쪽이 옳은가 따져 무엇하겠는가. 봄볕이 비추면 꽃피지 않는 곳이 없지 않는가. 꽃피는 곳마다 부처 역시 살아나고 있는 것. 봄볕이 비추는 곳을 찾아갈 일이지 굳이 세속과 청산을 구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258


신문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성철 스님이 내린 법어가 실려 있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며 하늘과 땅이 무너진다 해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유형무형 할 것 없이 모든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들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함으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종말을 걱정하여 두여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원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러 온 것입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268


내가 "스님, 어느 책에선가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법정 스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진 모르지만 지금 새악으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77


법정 스님은 근대 불교계의 큰 어르신이셨던 효봉(1888~1966)의 애제자였다.

효봉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졌던 법기로, 우리나라 최초로 법관이 되었다. 36세가 되던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조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삶에 대해 큰 회의와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와 엿장수를 하며 3년간 방랑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인 38세에 불문에 귀의하셨던 늦깍이셨다. 법정 스님이 출가를 결정하고 여부를 묻자 효봉 스님은 생년월일을 묻고 간지를 짚어본 후에야 이를 허락하였으며, 훗날 새로 출가한 법정 사미만을 데리고 지리산 쌍계사 탑전(塔殿)에 가서 수행에 몰입할 만큼 법정을 각별히 아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의 일화 중에 한 토막.

어느 날 아침 공양 후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자 효봉 스님이 법정 사미를 부르며 빈 그릇하고 젓가락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법정 사미가 그릇과 젓가락을 가지고 우물가로 가자 효봉 스님은 설거지를 하며 버린 밥알과 시래기 줄기를 주워 담은 후 법정 사미가 보는 앞에서 밥알과 시래기를 물로 씻은 후 훌쩍 한 입에 들이마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출가해서 수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 아끼고 절약해서 시주한 사람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부자 살림이고 되도록 몸에 지니지 않는 무소유야말로 참으로 전부를 갖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법정 스님의 철저한 무소유는 바로 스승이셨던 효봉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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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 사이트 이용 방법 2-1


카우치 서핑 사이트 이용 방법 2-2



평범한 사람들도 여행자라는 이름의 페르소나를 만나면 조금 더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

여행자는 삶의 순간순간을 완전 연소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여행자가 되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7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은 오픈 마인드로 시작한 범세꼐적인 여행 공동체이자, 새로운 형식의 사회 운동이다. 카우치서핑이란 영어의 소파(Couch)와 서핑하기(Surfing)의 합성어로, 소파에서 소파로 이동하며 지속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1999년, 한 미국인 청년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새로운 개념의 여행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25여 개국 450만 명 이상의 회원을 갖춘 비영리 커뮤니티로 성장했다.(2012년 6월 기준)  41


카우치서핑은 여행자들이 현지인과 여행지를 제대로 체험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모두를 친구로 연결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카우치서핑의 비전이다.  43



카우치서핑의 첫 단추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다. 카우치서핑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우리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카우치서퍼들과 친구가 된다.  44



Ezabel Siek 이자벨(싱가폴) - 카우치서퍼ID : xezabelx , SNS : www.facebook.com/xezabelx

'세상이 한 권의 책이라면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그 책의 단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  68



몇 해 전 혼자 인도 배낭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이 와서 말을 걸었다. "너 한국인이지? 근데 왜 혼자 왔어?"

이유인즉 오랫동안 한국 여행객을 봐 왔는데 항상 여럿이 몰려와서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가더란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여럿이 모여서만 여행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지금은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흔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행을 준비할 때 강박적일 만큼 동행을 찾는다. 같이 갈 친구를 찾아 가이드북을 함께 뒤적이거나, 호텔 패키지라는 명목으로 기어이 단체 여행을 예약하고야 만다. 그도 아니면 여행자 카페 게시판에 '함께 여행하실 분'을 찾는 글을 올린다. 그것도 모자라 한국인이 하는 현지 민박을 찾아 픽업 서비스까지 부탁하며 한민족의 뜨거운 피를 느끼고 싶어한다. 어찌 보면 국외로 떠나는 여행이 '한국인 찾아 삼만리'같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낯선 외지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피부색이 같은 사람을 만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73-74



Michelle Inge 미셸(독일) - inge , BLOG : from-seoul-to-tokyo.tumblr.com

"카우치서핑은 어딘가 불확실한 면이 있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들이고, 열쇠를 주고, 나를 호스팅하는 사람들 역시 내가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확실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 주고 현관 비밀번호를 기꺼이 알려주는 거잖아. 이건 일종의 인류애에 대한 테스트인 것 같아. 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신회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믿을 수 잇다는 것에 놀라곤 해."  80



카우치서핑으로 온 게스트에게 친절하게 해 주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게스트와 호스트 모두 불편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게스트를 위해 특별한 식사, 거창한 선물, 관광 가이드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요.  89


여행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다. 무조건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여행은 어떻게든 시작되기 마련이다.  95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도와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움을 받을 가능성조차 없어져. 즉,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매일매일 누군가로부터 도움받을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도움 요청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

"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어요. 길을 물어보는 것도, 잠을 재워 달라는 것도,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죠.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일단 부딪혀 보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었어요.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100-101



"여행을 왜 좋아하느냐고? 순간을 즐길 수 있거든.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거야. 여행하고 새로운 도시에 가게 되면 순간에 충실하게 돼.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갈지, 뭘 먹을지, 어디서 잠을 잘지 같이 일상적인 일들이 여행할 때에는 특별해져. 모든 상황은 늘 변하고 그런 변화들을 받아들이는게 재미있어."(브루노, 아르헨티나)  119



덤스터 다이빙(Dumpster diving) : 유럽에서는 식료품점이 문을 닫기 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린다. 물론 유통기한이 막 지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유럽에서는 소비에 대한 신념으로 덤스터 다이빙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유프리건족'도 있다.  124


"살아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카우치서핑으로 통해 만난 친구들을 통해 배웠어. 사람들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쓰고, 다시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벌잖아. 그럴 바에는 그냥 돈을 벌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브루노, 아르헨티나)  126



카우치서핑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사람에 대해 일단 믿어 보자.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자신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자. 어쩌면 이것이 카우치서핑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138



"마케팅 1.0, 2.0, 3.0이라는 개념들이 있잖아요. 여행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여행 1.0은 패키지 투어라고 생각해요. 여행사가 준비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여행사가 계약한 숙소에 묵으며, 계획된 인원수의 사람들과 여행하는 거죠. 편리하지만 일방적이고, 개개인의 성향에 안 맞는 여행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다 점차 여행 2.0이라고 할 수 있는 배낭여행이 유행하게 되었죠. 배낭여행은 개인이 여행 서적, 웹사이트 정보 등을 참고해 가고 싶은 곳과 숙소, 음식점을 자유롭게 정하면서 원하는 여행을 직접 설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행2.0은 배낭여행의 대표 서적인 <론리플래닛>이란 이름처럼 외로울 수 있고, '여행객'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카우치서핑을 통해서 현지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여행을 여행 3.0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카우치서핑 여행법의 가장 상위에는 '공유'와 '나눔'이라는 큰 공통의 가치가 있어요. 이것이 3.0 정시노가 닮았죠. 물론 또 다른 여행 방식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분명 여행 3.0은 가치 있는 여행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이동익)  170



누군가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겪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에서 다른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카우치서핑이에요. 사실 싸움이나 분쟁은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이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끔 생각해요. 세상 사람 모두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게 된다면 전 세계에 평화가 깃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이동익)  174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면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유럽에는 카우치서핑 히피가 있어요. 인생 대부분을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사는 친구들이죠. 스페인에서 카우치서핑을 할 때 만난 이스라엘 친구가 있었는데 안 가 본 나라가 없었어요. 오직 카우치서핑으로만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친구였어요. 맛있는 것이 먹고 싶고, 좋은 곳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면 오히려 아주 적은 돈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어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껍데기가 아닌 본질에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돼요. 물론 왜 두렵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카우치서핑을 하며 만났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힘이 돼요.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좀 더 강렬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죠."(박인)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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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의 어려움은 어느정도일까?

사람마다 다르겟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것같다. 아니 굉장히 쉬운 것이다. 

떠남을 '변화'라 표현할 수 있을까?

떠난다는 것은 우선 자신이 현재의 위치나 공간에서 부터의 벗어남이다. 즉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주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변화를 원하는 시대이다. 그만큼 자신의 생활을, 넓게 확장하여 현재의 삶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란 표현에 비추면, 불만에 의한 변화의 갈망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변화 욕망의 크기만큼 두려움도 큰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은 여행을 원하지만, 이것역시 떠남이고 변화이며 현재 상태의 불만이 있기에 두려움도 크다. 늘 염원하지만 온갖것들에 갖혀 떠나기 힘들어진다.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반복된 내 일상을 지켜보며 '대단하다'고 말한다.

'부끄럽다. 대단할것도 없는데 뭐가 대단할까?' 여행자들과의 대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답을 아는 의문이다.

대단한 것이 아님에도 '대단하다'하니 어색하고 부끄럽기까지 하다.(그렇다고 식은죽 먹기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생각했을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고 쉽지만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처음이 문제다. 첫걸음을 떼면 여행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모든것에는 '처음'이 참 어려운 것이다.

기대에 대한 설레임과 막연함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처음이다.

누구나 경험해 보았고, 경험하고 있으며, 경험해 나갈 것이다.

기대의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 이 둘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균형하면 대체로 수평을 떠올리게 된다. 

두려움에 무게가 더해지면 기운다. 그렇게 되면 처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반면 설레임에 무게가 더해지면 기운다. 그러면 처음을 경험한다. 

남은 하나는 완전 수평일 때 이다. 이때는 떠남의 경험을 하게 될까?

나는 떠나게 된다고 본다. 인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때 저지를 경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우리가 배운 수학에서 사용한 기호를 사용하면 떠남이란 녀석은 '설레임≥두려움'이다. 


그러한 첫 여행의 순간 여행이라는 것에 첫번째 터닝포인트가 생긴다. 

여러번 언급했듯이 내가 말하는 여행은 스스로 계획하는 또는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말하는 것이다. 워킹홀리데이나 카우치서핑등을 포함한 배낭여행같은 것들말이다. 패키지 여행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여행을 시작으로 욕심을 내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떠나느냐고? 

묻지마라. 당신의 마음에 물어라. 두려움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아니면 설레임을 어떻게 늘일 수 있는지를..

떠남은 자신 속에 자리잡고 있다. 

다만 떠나지 못하게 하는 변명거리만 늘어놓을 뿐이다. 


나는 그냥 떠났다. 학창시절 방학때 떠나도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휴가를 몰아서 떠났다. 

프리랜서로 일을 몰아서 하고 떠났다.

떠날때 마다 언제나 발목잡을 만한 일들은 일어났다. 그래서 떠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떠났다. 그래보니 그 문제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무작정 떠나면 되냐고?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난건 아니다. 하지만 무작정 떠날 결정을 하면 떠나진다. 여행 다녀보면 그닥 계획이 큰 도움 안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첫 여행은, 첫 떠남은, 첫 변화는 나에겐 터닝포인트로 자리잡고 있다.

첫 여행은 변화에 대한 나의 시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늘 떠날 수 있는 삶을 꿈꾸게도 하였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대아닌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계발만 쌓아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사회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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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고 하면 보통 '모르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등 이런 유사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먼저 알게 된 이들에 대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에 의해 좀 덜 어려운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그렇다고 노력이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시말해 배움은 노력을 통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이전 경험들과 어우러짐으로 지혜로 이르는 과정을 총괄하게 된다.

이상의 표현들은 누구나 들어왔었고 수차례 이상 접했을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배움에 대한 이 정도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 보다는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수상록I)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것 뿐이었다.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만 각인시켰을 뿐이다.'(수상록II) 라고 지적하였다.


1500년대 사람, 1580년에 완성한 <수상록>은 500년이 넘게 지나온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배움에 대한 생각없음과 비뚤어진 목표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어느 시대에나 오류는 있어 왔고, 잘못된 적용이나 무지는 있어 왔다.

그 당시에도 무지에 의한 비뚤어진 교육에 대한 생각들은 있어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세태에 대해 몽테뉴는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발명과 발견들을 통해 그리고 시행착오들을 통해 인류는 진보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볼때 배움에 대해서는 진보되어가지 못한 것이 중요하다.


현 시대에는 이전보다 더 심한 비뚤어진 교육이 자행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중의 하나이다.

배움에 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곳은 첫번째는 가정이고 두번째는 학교이다. 두번째의 경우는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첫번째인 가정 내에서의 교육도 매우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두번째를 고려해 보고자 한다. 물론 가정에서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고 교육의 문제가 학교에서의 교육교육을 더욱 비뚤어지게 하는데 조장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배움은 개인적인 부면이지만 이 시대는 단체의 문제를 먼저 생각한다는 점을 보았을때 학교의 배움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인다. 몽테뉴의 표현 '오직 기억을 채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실과 얻고자 하는 의지를 뿌리채 뽑아버리는 현실은 우리에게 경각심 보다는 성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판단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배움에 대해서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비뚤어짐을 가진 것은 배움 자체를 매우 수동적으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지식을 들어왔다. 청소년 시절에 단 한번도 주어지는 지식에대해 의문을 품어본적이 없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의문이 들어도 순간일뿐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불교, 유교적인 스승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상은 우리를 더욱 조아리게 만들었지 우리가 하나의 개체로서 고민을 하고 생각을 통해 질문하게끔 만들지 못했다.

그렇기에 앉아서 받아쓰면서, 1은 1이고, 2는 2이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바빴고, 그것들에 대해 기억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중히 여기게 된 것이다.

물론 하나의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이유는 우리의 사고를 정지시킨 세뇌로써 가장 큰 작용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움의 질병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파괴>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콩나물은 부드러운 만큼 아주 민감해요.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금방 잔 뿌리가 많아져서 못쓰게 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도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내면의 개안(開眼)은 그래요. 시루에 놓인 콩나물이 하루에 몇 번씩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한 것처럼, 여러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얻는 지식이 꼭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콩나물은 절대로 물을 껴안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물이 콩나물 사이로 설렁설렁 지나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콩나물이 물을 안고 있다면, 금방 썩어버립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지식을 안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이 썩어버려요. 

적어도 인간의 내적인 성장을 염두에 둔 지식은 그렇습니다. 콩나물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아까워도 그냥 설렁설렁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콩나물 사이로 물이 설렁설렁 지나기지만 때가 되면 자라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마치 콩나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물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충실하듯, 여러분도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변화는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207-209)

저자의 콩나물에 대한 예는 우리에게 배움에서 기억이 지대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님을 적절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 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물을 잡고 있으면 썩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배움에 지식에 대한 내용이 필요하지만 그 지식만이 모든 것인양 잡고 있으려하면 기억일 뿐이지 배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움이란 것은 콩나물이 물을 지나가게 하면서도 잘 자라나가듯이 지식들을 통해 기억이아니라 그러한 지점과 자신의 체험적 사고와 경험들을 통해 그리고 이전의 지식들과의 어울림들을 통해 자신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마지막 줄에서처럼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배움은 듣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자신이 체험하여 자기의 것으로 체득, 체화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큰 역할을 차지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콩나물이 자라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기술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 즉, 스스로 경험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우리의 배움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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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읽다

여행밑줄 2012. 11. 2. 11:30

'읽다'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책'이다. 

어느 작가는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 하였다. 

잘하는것이 별 없는 나에게는 책을 읽는것이 그나마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깊이 읽는 수준은 안되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은 활자를 눈으로 읽어내어,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글쓴이의 뜻을 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책을 읽는 목적과도 관련이 있는데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의 이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목적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고 싶다.

공부와 중복되는 의미는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중1 수학 1단원의 집합이란 단원에서 '교집합'을 배운다. 교집합은 서로 다른 집합(집단)속에서 동일한 것도 있고, 동일하지 않은 것도 있을 때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공부와 읽기에는 알아가는 것이라는 동일함도 있지만, 그 깊이의 차이가 있다.

이것으로 순서를 따진다면 공부는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정도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읽기라고 하면, 책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그림과 사진이 아닐까.

이것은 전시장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엄마가 아이에게 '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며, 무엇무엇을 의미하는 거란다'하며 주입하는 의미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느낌을 떠올려보는 작업. 관찰해보기도 하고, 초점을 흐려보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붙여보는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그림을 또는 사진을 읽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의미들에서 여행 역시도 읽기의 작업을 하는 것이라 하고 싶다.

책을 읽고, 그림을 읽고(사실 그림을 읽는것이라기 보다는 느끼는 것이라 표현해야 하겠지만) 하듯이 여행도 읽어나가는(느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정답이 있는것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관찰하고 해석하고 느껴보고 알아가며 경험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답도 생각해 보고 다른이들과의 차이도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시간.




이런 여행은 접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알아가는 목적을 포함하듯, 여행도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란 생각.

접하는 방법도 여러가지 이겠지만 단순하게 알아가기 보다는 좀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고 싶다. 그럼 이것은 공부에 더 가깝지 않냐고?

여행자는 오래 머물러도,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기에 공부보다는 읽기에 가까울거란 생각이다.

여행은 그런것이 아닐까.


어떻게 알아가는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보는 것을 추구한다.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위험하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고향이 아닌 타지이니까 위험함을 더 느끼는 것일 뿐이라란 생각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해 보고, 함께 해보는 것. 그들의 문화에 가까이 스며들어 보려는 노력. 그들을 공부하기 보다는 그들을 읽어보려는 노력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는것. 웃기게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꼭 떠나서야 그렇게 하는 모습이 우스운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생각으로 돌아와서도 자동으로 닫히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려는 노력까지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표현처럼 사람을 알아봐야 내가 얼마나 알겠는가?

그렇기에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나는 여행을 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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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그게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외면의 것이든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마주치는 모든이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2.05.55)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진리는 이전 문맥을 통해 해석해 보아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용기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우선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하려는 용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다. 익숙한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안주하는 것만큼 편한 생활은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익숙한 것은 그것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주게 되어 인간의 정신을 고정시킨다. 그러니 그만큼 안락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움에 대한 극한의 반대 입장으로 진실한 눈으로 보는것을 방해하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이란것은, 새로운 아니 이미 존재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것들을 통해서 옳은 것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또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다는 다양성의 받아들임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경험의 접목은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된다. 첫번째 내용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과정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전제로 하기에 새로움의 자극은 깨달음 즉, 조금더 진리에 다가가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갖혀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바라보더라도 비뚤어진 사고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강박적인 해석을 뒤따르게 할 수 있기에 자신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벽을치고 타인을 모두 틀리다고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 인정한다는 것은 잘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양성의 공존에 의해 모두 옳을 수도 모두 그를수도 없다는 점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 즉 심적 상태의 넓고 깊은 평온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다양한 것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알고 깨닫게 되는 것들에 의한 평온함의 깊이있어짐과 넓어짐이라 표현하게 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표현한 '진리'를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행은 새로움에 대한 놀라움과 그것들과의 소통으로 인한 인정과 올바른 비판적 수용 그리고 그러한 것들로 인한 새로운 해석과 앎.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부드러워짐과 인간적 불완전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견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유일하며, 이슬람, 힌두 관점에서도 비슷하고, 불교, 유교적 관점에서 깨달음에 의한 성장이기도하다. 이러한 것들로 볼때 이러한 종교적 진리 또한 어느정도 이상의 해석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말해 유일신에 의한 진리적 유일성이 아니라면, 깨달음의 과정이 중요하다. 더해서 유일한 진리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우리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현재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 인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서양의 산업발달에 의한 정상적 상태로 바라보면 기독교는 분석하고 판단하여 꿰둟어보는 통찰력을 길러서 그것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는 것. 종교에 대한 해석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절이 지나가며 이제는 그에대한 부작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중용이 필요하고, 마음 정신적 수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이 동양적 사상에 심취하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서양 사상을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면서 조금보태는 것이다. 즉 보완시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여행은 종교적으로 해석한 진리에 대한 의미도 포함할 수 있는 '진리'의 영역을 설명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개풀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라, 여행은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전통과 사상을 접하고 체험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러한 경험은 통찰력에 가까운 해석력과 수용능력을 배양하여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고대의 여행도, 지금의 여행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라면 이정도 되는 것이 아닐까.. 관광이 아닌 여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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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간단소개로 책을 알게 되고 읽은 소감을 올려달라고 하여 간단히 작성하여 올린글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을 보게되어 블로그 이전글을 검색해 보니 올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지금 올려놓는다.

가벼운 마음에 빨리 글을 올린것이라 더 가볍게 다가온다....


.

.


사랑과 자유..
그의 삶이 존경스럽다. 동경의 대상이기에 그럴까?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허나...
페이지가 없었다.
일단 글이 작았다.
사진이 있었다.
여행기 였다.(지금 읽은것을 후회하고 있다..이유는 우리조는 알걸..쩝)
표지의 아이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자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결론을 말한다면 나는 아직도 그의 자유를 해석해 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무슨소리냐..책에 뭍어나는데..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어가며 .. 시적인 표현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는것을 느꼈다.
(나는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실용주의, 현실주의를 주장하는 부류에 가깝다.)
그러기에 이 책은 꽤나 흥미로웠다.
짧지만 강렬하게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기에...
지금까지 길게 살아온것은 아니지만 그간 좋아하는 책도 있었고, 매우 좋아하는 책도 있었고, 싫어 하는 책도 있었고, 별것없는 주제에 감히 판단하여 증오하는 책도 있었고, 사랑하는 책도 있었으며, 매우 사랑하는 책도 있었다...
이 책은 .... 매우 좋아하는 책과 사랑하는 책의 사이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부류를 나누지 못한 책이 없었던것 같다.

'여행은 걸어다니며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그럼 .. 여행기를 다룬 책은 무엇이라 표현해야 하나.... 

엄마야.... 그래서 이렇게... 분류가 안되나?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사랑하고 싶다.. 사랑의 책은 아니라 평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
아직 깨닫지 못한 그의 자유와 그 현재의 사랑.. 그리고 감성... 그리고 또 다른..

.
.
.


나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라는 생명이 갈 수 있는 그 끝까지 끝없는 성장을 향해 달리고 싶다.
응 그래 나도 나도

'한 사람'에 대한 깊고 강렬한 사랑이 가져다 주는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싶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어쩌면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랑을 아끼고 고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을 넣어 만든 작품에는 하찮은 와인 한 병에도 '혼'이 있다.
혼...마음... 진정성이라 할까...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작품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도 작품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지금 바로 현재에.. (에이 정말?? ... 그러면서 골방에서 미드나 보고 있냐..쩝..ㅡ.ㅡ)

사랑의 표현방법에 규칙은 없다.
(근데 내 방법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ㅡ.ㅜ)

자, 이제 슬슬 길 위를 달려보는 게 어때?
느려도 좋아. 지쳐 걸어도 좋아. 꼴찌면 또 어때?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거야. 
제 자리 걸음도 구두 바닥이 닳긴 마찬가진 걸.
'어차피 시간은 가고 있어.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고 있어.
무언가를 쳐다 보다도 시간은 가고 있어.
어딘가를 다녀도 시간은 가고 있어.
시간은 가고 있어. 
내가 무엇을 해도...'
비교가 낳은 최대의 파괴는 사람이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목적? .........  그저 지구에 태어났으니까 조금이라도 지구가 더 보고 싶어서..

'LifeWork'

직접 와서 보고 만지고 나서야,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슬프다.. 나 자신도 이렇게 하고 있다는 현실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건 자기이기에...
나는 나와 관련 없으면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나 역시 직접 보고 만지고서야... 그 아픔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 하다..
이런 것들이 슬프다..시리다.. 내가 불쌍하다..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착색된 안경을 벗어야 한다.
사실..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안경보다 그것을 보는 안목이 필요한것 아닐까..
그런 표현이 더 좋지 않냐는 뜻이다.. 
사실 이면의 진실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나는 오늘도...

내가 기다리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시간.'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그리고 좋아하는 이유는.. 갈망하는 이유는..
그들을 보면서 알아가고 경험하고 달리 생각해 나가기 위해서이고... '인정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마음을 나누는 시간...즉... 소통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랑하고 싶은건지도...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하지 마라.
어라..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지만 여행은 할것이다..왜냐고?
나는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를 알아가기 위해서...

마음이 없는 독지가보다 마음이 있는 바텐더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없는 정치가보다 마음이 있는 청소부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떠돌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마음'이 뭘까...???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너의 대답'이 아닌 것 같다. 사실은'내게 필요한 도움'을 받고 싶었을 뿐.....  너의 눈동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눈에는 그의 마음이 있는것일까...
나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듣고 싶다..
나는 그가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럼 나는 해결을 하려 하고 있다.. 
나는 듣고만 있고 싶다.. 
나는 들어주고만 있고 싶다.. 
나는 눈을 바라만 봐 주고 싶다..
평온한 표정으로.. 

지브롤터 해협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여객선의 갑판,
선원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20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항해했지. 매일 반족되는 일상이 싫어서.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부터 나는 변했어. 지금은 사랑하는 그녀와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 지브롤터 해협을 하루 두 번 왕복하는,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하지만 하늘에 맹세해도 좋아. 난 지금 제일 행복하다구. 그녀라는 보석을 만난 순간, 내 모험은 끝난 거야.'
아니꼽게 멋있는 이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자넨, 사랑스런 여자라는 보석을 이미 찾았잖나. 그런데 또 무슨 보석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는 건가?'
난 보석을 찾지 못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보석을 찾으면 여행을 다니지 않을 것인가..
모험이 모두 여행이라 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생각에서 의미를 두었기에 멈추는 것이고..
나는 나의 의미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표현은 너무 멋지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보석과 함께 그녀보다 못하지만 또다른 보석을 함께 보며 느끼며 즐기고 싶다...책과 여행.. 

핵(核)
많이 먹을 필요는 없어.
생성 한 마리라도 뼈까지 맛보렴.
그 편이 진짜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많이 읽을 필요는 없어.
한 권의 책이라도 책장이 뚫어질 때까지 읽어보렴. 
그 편이 진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많이 살아할 필요는 없어.
한 사람이라도 마음 구석구석 사랑해보렴.
그 편이 진자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까.
가난한 나라의 넉넉한 사람들이
나에게 살며시 미소짓는다.
아... 우리 엄마...의 말쌈이 뒤통수를 때린다..'사람은 깊어져야 한다.'
아... 우리 아부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무언가를 하시면서도 엄마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시던 모습이..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은 크든 작든 누구나 시련은 있다. 고독도 있고, 느끼든 못느끼든 아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며 노력하는 사람은 '성취'라는 기쁨을 알게 된다고..
ㅎㅎ...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람이 아니네... 그래서 모르는것일까...ㅜ.ㅜ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왜 여행을 하냐고.. 여행을 하면 뭐가 좋으냐고.. 무얼 얻냐고.. 일은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하면 여행을 잘 할 수 있냐고.. 여행의 기쁨은 뭐냐고.. 정보는 어디서 얻냐고.. 외국인과 어떻게 소통을 하냐고.. 무섭지 않냐고.. 위험하지 않냐고.. 어떻게 잘 놀고 오냐고.. 무엇을 봐야 되냐고.. 가서 뭘해야 하냐고.. 돈은 얼마나 드냐고.. 이동은 어떻게 하냐고.. 잠은 어디서 자냐고..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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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견디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서로의 몸 안에 있는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정말로 필요한 것을 발견할 때까지, 영혼은 여행을 계속합니다. 막연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또, 불필요한 것을 버릴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변화할때는 언제나 힘이 들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의 영혼은 결코 충족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채우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버리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 합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채우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버리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 합니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책을 왜 읽느냐고 물으면... 저는 읽을 수록 나의 부족함을 더욱 느끼게 되어 읽는다고 답합니다....ㅋㅋㅋㅋ 
과연 그럴까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
그것은 반드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자기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모든 대답은 반드시 네 안에 있으므로.
맞아맞아...ㅎㅎㅎ
코칭을 받아야해..ㅎㅎㅎ
이 두 페이지의 사진만 다르다..왜...

선택...

내 마음의 소리가 이끄는 그대로..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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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삶의 매 순간 한 발은 동화 속에, 또 한 발은 나락 속에 담근 채 살아가고 있으니..  15


삶은 아주 빠르다. 삶은 우리를 천국에서 지옥으로 데려다 놓는다. 단 몇 초 사이에.  24


하룻밤 동안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350스위스프랑쯤 낭비하는 것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룻밤? 마리아,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건 사십오 분 정도에 불과해. 아니, 옷 벗고, 예의상 애정 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옷 입는 시간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십일 분밖에 안 되잖아."

11분.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117


그 모든 걸, 하루에 단 11분을 위해! 세상에서! 코파카바나에서 경험을 쌓은 마리아는 이제 자신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갈증은 일 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그 남자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지내고자 했던 다른 모든 남자들도 그녀처럼 파괴적인 감정, 자신이 이 땅 위에 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119-120


자유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존재하니까. 자신을 전부 내주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무한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낀다.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122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지? 사는 것? 아니면, 사는 척하는 것? 지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누군가가 비판도 토도 달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오늘 오후가 내가 여기서 보낸 오후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 아니면 빛을 발하는, 의지로 충만한 여자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가버리는 것?' 

그와 함께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동안,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마리아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큰 선물이었다.  148-149


정열은 예기치 못한 것이 가져다주는 흥분, 열렬히 행휘하고픈 욕망,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도 있다. 정열은 삶을 인도하는 신호들을 보낸다. 그 신호들을 해독하느냐 마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151-152


삶은 때때로 아주 인색하다. 새로운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며칠, 몇 주, 몇 달, 몇 년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다 한 번 문이 열리면, 랄프 하르트를 만난 마리아처럼, 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봇물 터지듯 많은 것들이 쏟아져들어온다. 한순간 텅 비어 있다가, 다음 순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185


사드 후작은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은 그를 극한으로 이끌어가는 경험이라고 말했죠. 우리는 바로 그런 극한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게 되죠.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용기를 요구하니까요. 직원을 모욕하는 사장이나 아내를 모욕하는 남편은 단지 심성이 비겁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삶에 복수를 하는 겁니다. 용기가 없어서 감히 자기 영혼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하는거죠. 그들은 야만적인 짐승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섹스, 고통, 사랑이 인간에게 극한경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죠. 경계를 아는 자만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승에서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늙고 죽을 뿐이죠.  196-197


사드의 작품을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지만, 사디즘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 존재는 앎만을 추구하기 위햇 태어난 것이 아니다. 땅을 경작하고, 비를 기다리고, 밀을 심고, 곡식을 거둬들이고,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만들기 위해서도 태어난다.  198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천지창조 초기에는 남녀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고 해요. 하나의 몸, 하나의 목, 그리고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이 있는 남녀 양성의 존재들만 있었죠. 마치 두 피조물의 등이 붙어 있는 것처럼 성기가 둘이고 팔 다리는 네 개씩이었다오.

그런데 질투심 많은 신들이 그 피조물은 팔이 네 개라 일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얼굴이 두 개라 번갈아 잠을 잘 수 있는 바람에 몰래 공격할 수 없고, 다리가 넷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오래 서 있거나 먼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그 피조물이 양성(兩性)이어서,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소. 올림포스 신전의 최고 주인 제우스는 '나에게 저들의 힘을 빼앗을 방도가 있다'고 말하고는 벼락을 던져 그 피조물을 둘로 쪼개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버렸소. 이렇게 해서 지상의 인구는 훨씬 늘어난 반면, 그들은 힘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소. 이제 그들은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아 다시 결합해야만 예전의 힘, 습격을 피하는 능숙함, 피곤과 일을 견뎌내는 지구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어요. 두 개의 육체가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는 결합, 그걸 섹스라고 부르오."  206


사랑의 자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데에 있으니까.  214

"늘 꿈꾸었던 사람을 찾아 자세히 관찰해본 사람은 섹스 에너지가 성관계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가장 큰 쾌락은 섹스가 아니라 섹스에 담겨 있는 정열이죠. 정열이 월등할 때, 섹스를 통해 그 춤을 완수하게 되죠. 하지만 섹스는 결코 본질적인 게 아니에요."  214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산다. 욕망이 그의 보물이다. 그것이 상대방을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가오게 만든다. 욕망은 내 영혼이 선택한, 너무나 강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 마음의 동요이다.

나는 매일 내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진실을 택한다. 나는 실용적인고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려 애쓴다. 하지만 늘 욕망을 동무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의무감 때문도, 내 생활의 외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 욕망은 아주 좋다.  216


어쨌거나 험담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222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교제하다보니 그들이 섹스를 다른 마약들과 똑같은 용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잊고,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마약들과 마찬가지로 섹스 역시 유해하고 파괴적이다. 

누군가가 섹스든 마약이든 뭔가에 취하고 싶어한다면, 그 행위의 결과는 그의 선택에 따라 더 행복할 수도 덜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문제일 경우에는 '제법 좋은'과 '최고'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 손님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섹스는 아무 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적인 시계가 있어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곗바늘이 동시에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잇는 두 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곗바늘을 맞추어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 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는 매 순간 희열을 느낀다. 그에게는 섹스가 전혀 아쉽지 않다. 그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뭔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의 잔이 다 채워져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삶의 부름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오로지 그 순간에만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5-226


"스승이 제자로 하여금 뭔가를 발견하게 할 경우, 스승 역시 뭔가를 발견하게 되는 법이죠."  228


그는 서로 다가가기를 원하지만 서로 고통을 줌으로써만 그것이 가능한 두 존재 사이의 신비로운 관계를 자신이 처음 경험했을 때를 떠올렸다. 

저 바깥에는 수백만의 부부들이 매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도마조히즘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일터로 갔고, 돌아와서는 모든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아내를 괴롭히거나 아내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꼈지만 그들 자신의 불행에 깊이 얽매여 있었고, 하나의 몸짓, 한 번의 '더는 못 참겠어' 로도 충분히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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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은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전혀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걸 테고.'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물과 먹이뿐이었다.  25


'만일 어느 순간 내가 괴물로 변해서 자기들을 차례로 죽여버린다 해도, 양들은 자기 친구들이 거의 다 죽고 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릴 거야. 그건 다 내게만 의지해 본능에 따라 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자기들을 먹여주니까.'  26


'인생을 살맛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31


지극히 단순한 것이 실은 가장 비범한 것이야. 현자들만이 그런것을 알아볼 수 있지.  37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50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모든 일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 건 좋은 일일세."  51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네. 그 젊은이는 사십 일 동안 사막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지. 그곳 저책에는 젊은이가 찾는 현자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현자의 저택, 큼직한 거실에서는 아주 정신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 장사꾼들이 들락거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그득 차려져 있더란 말일세.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까지 있었지. 현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마침내 젊은이의 차례가 되었어. 

현자는 젊은이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지. 그리고는 덧붙였어.

'그런데 그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넸다네.

'이곳에서 걸어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두 시간 후에 그는 다시 현자 앞으로 돌아왔지.

'자, 어디....'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었다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네. 당연한 일이었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오.'

이제 젊은이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지.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 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네. 다시 현자를 찾은 젊은이는 자기가 본 것들을 자세히 설명했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세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네. 그제서야 숟가락으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현자 중의 현자는 말했지.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60-62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야.'

혼곤한 잠 속에 빠져들면서 그는 생각했다.  76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95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언제나 알고 있어야 해. 잊지 말게."  97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107


"삶의 모든 것이 다 표지야."  119


한 가지 일이 다른 일에 연결되는 신비로운 사슬... 바로 그 사슬이 산티아고로 하여금 양치기가 되게 하고, 똑같은 꿈을 계속해서 꾸게 하고, 아프리카에 가까운 도시로 가게 하고, 광장에서 늙은 왕을 만나게 하고, 가진 것을 모두 털리게 하고, 크리스털 상인을 만나게 하고, 그리고...  124


'난 양들에게 배웠고 크리스털에기도 배웠지. 사막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을 거야.'  126


몇 번을 다른 길로 돌아갔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단 장애물을 극복한 후엔 다시 오아시스의 위치를 가리키는 별자리를 향해 나아갔다. 이른 아침에 하늘에서 그 별자기가 빛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알았다. 이제 여자들과 물과 야자수들과 종려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리라는 것을, 거의 책만 들여다보고 있던 영국인만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128


누구나 자기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미지의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130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142


"난 음식을 먹는 동안엔 먹는 일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소. 걸어야 할 땐 걷는 것, 그게 다지. 만일 내가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게 언제가 됐든 남들처럼 싸우다 미련없이 죽을 거요.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144


사막의 모래언덕은 바람에 따라 변하지만, 사막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랍니다. 우리의 사랑도 사막과 같을 거예요.  164


실수학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말로 이제껏 '위대한 업'을 시도해 보려던 내 의지를 꺾었던 주범이지.  166


왜 그토록 미래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지... "일이 닥쳤을 때 무언가를 할 수 있기 위해서죠."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미래가 될 수 없겠구먼."  170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183


사막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람이 세차게 불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모래언덕뿐이었다.  186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악이 아니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악일세."  190


"명심하게. 사랑은 어떤 겨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느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197


"배움에는 행동을 통해 배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네. 그대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여행을 통해 다 배우지 않았나."  20


신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당신 영혼의 가르침과 당신의 경이로운 지햬를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네. 그것이 바로 내가 '행동'이라고 부를는 것일세."  207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하다가도 동요하고, 이제는 사막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잘 못 들게 합니다."

"좋아.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네. 마음이 그대에게 말하려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210


"무엇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새없이 되풀어해서 들려줄 것이네."  211


"어째서 마음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거죠?"

"그럴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지. 마음은 고통받는 걸 좋아하지 않네."  214


누군가 꿈을 이루기에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215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216


눈앞에 아주 엄청난 보물이 놓여 있어도,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인 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이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218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ㅗ,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241


만물의 정기를 키우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야.  242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253



작가의 말

1981년, 나는 내 운명의 길을 다시 찾게 해준 스승 람을 만났다..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마지막으로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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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청춘, 그 설익음과 진지함에 대하여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을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4

시간을 따져 물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춘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간이 청춘의 시간인 것이다. 그 기간의 길고 짧음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이런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육체는 젊지만 정신은 노화된 청년들. 그들은 세상의 상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다. 또 그에 맞는 처세술이나 삶의 방식만을 추구하려 한다. 마치 그들은 무덤까지 일직선 코스를 향해 달리는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보통 30대까지를 청춘기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공자는 '40에 들어서니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40세까지는 계속 방황을 한다는 뜻이다. 

망설임과 방황은 청춘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그만큼 창피한 기억도 많고 실패도 많다.  5

인생에서 가장 큰 회한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  7

진정한 인생론은 말보다는 실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생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대로 하나의 인생론이 되어버리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9


길이 아니면 미련 없이 돌아섰다. - 이나모토 유타가(히슈 고잔의 벽촌에서 형, 친구들과 어울려 수공예 가구 단지를 만들어 자연과 조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입으로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대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란 게 결국 어느 대학이든 들어가서 대학졸업장을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결국 이제까지 비판했던 대학의 권위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행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공허해졌어요. 그래서 대학은 포기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나서 뭘 할지 생각해보니 결국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익혀야겠더라고요.  23

당시에는 정치문제로 사회가 많이 시끄러었고, 사람들은 누구나 정치를 비판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는데, 입으로만 사회를 비판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잖아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우리 손으로 원하는 것을 만드려는 생각을 하고, 이런 생각을 우리 손으로 실현해가고, 이런 시런이 쌓여서 사회를 바꿔가는 거라고 느꼈지요. 사회까지 변화시키지 못하더라도 우리 자신만큼은 확실히 바꿀 수 있으니까요.  28

스스로에게 무얼 바라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지 반문해보면,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고 인간답게 사는 삶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잖아요.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 몸을 움직여서 일하고 무언가 구체적인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죠.  29

(결국 스스로의 경험들을 통해 체득한 것과 자신의 고민으로 만들어나간 삶을 살게 되는 것. 이나모토는 애니메이션 학교 레스토랑 견습생 등 여러가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위한 고민을 하여 얻어낸 것이다.


피아노 보다 칼이 좋았다 - 후루카와 시로(서른셋의 후루카와 시로는 남성다운 수제 나이프인 커스텀 나이프를 만드는 나이프 장인으로서 미국에까지 그 이름을 알렸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부탁을 하면, 칼을 갈아보라 시키고 "스스로 몇 년 노력해서 칼을 곧게 갈 수 있으면 그때 다시 찾아오라고 하죠. 그러면 모두 싫은 내색을 하더군요. 요새는 다 기계로 갈면 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요. 그게 그렇지 않아요. 금속공예엣는 칼을 가는 것이 모든 테크닉의 기초예요. 정말로 칼을 잘 갈 수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보시면 돼요. 진정한 평면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그만큼의 기술이 생기고 동시에 진정한 평면을 알아보는 눈도 가질 수 있거든요.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솜씨가 좋아지면 보는 눈도 좋아진다는 것. 솜씨가 미숙할 때는 더 이상의 평면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솜씨가 점점 좋아지면서 더 완전한 평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솜씨가 좋아질수록 스스로의 솜씨를 엄격하게 바랍로 수가 있고 미크론(길이의 단위, 미크론은 1미터의 1/1,000,000) 단위로 사물이 보여요. 그 점이 중요해요..."  44

후루카와는 인생을 선책해야 할 순간에 이르면 항상 쉬운 길이 아닌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글쎄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걸어왔네요. 나이프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는데, 쉽게 하는 건 싫었어요. 쉬운 건 항상 타협을 불러오거든요. 타협이 싫어요." 타협하지 않는 인생이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즐거움은 많은 것 같다.  59


미치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 무라사키 타로(이제는 사라진 원숭이 기예. 스물두 살의 타로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대학진학의 꿈을 버리고 원숭이 기예 부활에 인생을 걸었다. 그때부터 원숭이와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었다.)

"너는 지금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는 거야. 아무도 언제 이 어둠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내일일지도 모르고 일 년 뒤일지도 몰라.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거야. 그때 네 인생이 도약하는 거야. 그만두면 안 돼. 되돌아와선 안 돼." 이런 아버지의 질타와 격려가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77-78

"옛날에 원숭이 조련을 하다가 미친 사람이 세 사람이나 있었어요. 직접 해보니 저도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더군요. 엄격한 정신력이 필요했죠."  78


고기의 신이 되다 - 모리야스 츠네요시(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베 정육점에서 근무했다. 이후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는 떠돌이 기술자가 된다. 스무 개 남짓한 정육점을 전전하던 끝에 미침매 그의 인생을 바꿀 사람을 만난다.)

"결국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거든요. 수없이 고기를 발라내면서 비로소 익히는 거죠. 제 경우에는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1만 마리는 발라냈을 거예요. 어디에 어떤 뼈가 있고, 어디에 어떤 근육이 붙어 있고 어디를 어떻게 자르면 되는지 소 전체의 구석구석까지 아는 것이 그 첫걸음이지요. 그 다음에는 칼을 쓰는 방법에 있어요. 정말 칼을 잘 쓸 정도가 되면 칼을 사용하는 감각이 없어져요. 칼과 손 끝이 하나가 되어야 하거든요. 칼과 손가락이 하나가 되어 칼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손끝으로 자른다는 느낌이라 해도 좋고, 칼날 끝에 손끝과 같은 감촉이 있다고 해도 좋아요. 그렇게 하면 칼로 자르는 게 아니라 잘라야 할 부분에 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죠. 칼이 혼자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손은 뒤에서 쫓아가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요."  91


카메라를 본 순간 빠져들다 - 미야자키 마나부('야생을 야생 그대로 사랑하는' 동물 사진작가. 일본 남알프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오로지 새와 동물만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렸을 때부터 야산을 뛰어다니며 노는 걸 좋아해서 공부는 정말 못했어요. 그래도 동물이나 새에 관해서만은 자신 있었죠. 이 계곡에 있는 동물이나 새에 관한 건 다 알아요. 초등학교 때는 소리만 듣고도 어떤 새인지 알아맞췄거든요."  112

미야지카의 사진집을 보면, 사진이 중심이지만 다양한 에피소드도 소개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서 배운 건가요? "전부 제가 관찰한 거예요. 실제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몇십 배 이상을 관찰하니까요."

동물생태학에 관한 책을 봤나요? "그런 책은 본 적이 없어요. 어떤 학자보다 제가 더 잘 안다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관찰할 때 기록을 하나요? "아니요. 전혀 안 써요.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해요. 기록을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계속 지켜보기만 해요. 결국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 가운데 동물 사진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모두 찍으려고만 하지 찍기 전에 보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건 안 돼요. 찍기 전에 철저하게 지켜봐야 해요."  114-115

"정말로 한심한 학생이었죠. 성적은 꼴찌에 가깝고 얼치기 대장에다 캐도도 좋지 않아 매일 선생님께 혼나거나 맞거나 복도에서 벌을 섰어요. 벌을 받다가는 지루해서 밖으로 뛰쳐나가 새둥지를 찾아다니고, 그러다가 또 혼났죠."

"선생님께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학교에서는 쓸모없는 놈이라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기분 나쁘니까 저도 점점 더 반항하고 팽팽하게 맞섰죠...."  118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산에서 잡아온 다람쥐도 길렀다. "고로스케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식구들 모두가 귀여워했죠. 낮에는 풀어놓으면 집안을 온통 돌아다녔고, 밤에는 조그만 우리에 넣어 길렀어요. 아침에 '고로스케'하고 부르면 모이를 주는 줄 알고 난리를 부리지요. 그런데 어느 날 불렀는데도 조용하더라고요. 이상해서 둥지를 들여다 보았는데 없었어요.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1미터가 넘는 큰 구렁이의 배가 불룩해서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 놈한테 당했구나 생각하는 순간 삼킨 지 얼마 안 된 것 같으니 배를 가르면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구렁이를 붙잡아서는 칼로 배를 갈랐지요. 그런데 고로스케는 이미 반 이상 소화가 되어 있었어요. 풍성했던 그 꼬리의 형체는 그대로 남아있더군요. 고로스케의 모습을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어요. 동물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공포라고 할까요? 그때 야생 다람쥐를 잡아와서 기르려고 했던 제 자신도 후회가 되더군요. 산에 있었더라면 안 죽었을 거라는 생각에 역시 들판에 있는 건 그대로 들판에 놔둬야 한다며, 기르던 들새도 전부 풀어줬어요." 

이것이 미야자키 마나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사육해서는 안 되며 꾸미지 않고 야생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자세는 그때부터 흐트러짐이 없었다.  121

동화작가가 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네가 하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금세 인정 받지는 못할 걸세. 하지만 자네를 주목하고, 인정하고, 기대를 거는 사람이 일본에 한두 명은 있을 걸세. 자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인정해주는 한 두 사람을 위해 열심히 하게나.'  129


인생의 자전거를 갈아타다 - 나가사와 요시아키(프로 자전거 선수의 경주용 자전거는 모두 수제 작업으로 만든다.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도로 선수들의 몸에 꼭 맞춰 제작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자전거 선수를 포기한 서른여섯의 나가사와 요시야키는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결국 일류 자전거가 만들어 져가는 과정을 날마다 제눈으로 보고 직접 그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제 기술이 된 것 같아요. 세세한 기술도 여러 가지 있지만, 결국 가장 본질적인 건 자전거의 모습이랄까. 형태를 잡아주는 거라 생각해요.  152


사랑에 취하고 와인에 취하고 - 다사키 신야(소믈리에는 와인을 서비스하는 전문직이다. 스물다섯 살의 다사키 신야는 없는 돈을 털어서 열아홉이 되던 가을에, 와인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낯선 땅에서 말조차 모르는 채 불안한 여행을 떠났다.)

와인처럼 그 깊이가 있는 것은 체계적으로 학습을 하지 않으면 진정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요.  199


요리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웠다 - 사이스 마사오(프랑스 식도락가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유명 레스토랑 '랑브르와지'의 셰프. 서른네 살의 사이스 마사오는 처음 3년간은 접시닦이와 냄비닦이 일만 했다. 요리는 예술이다. 그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사이스 마사오에게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호텔 조리장처럼 큰 곳에 있던 사람들은 세분화된 일의 단편밖에 못 맡아봐서 부분적인 경험밖에 없거든요. 저처럼 오드블에서 디저트까지 모든 부분의 일을 한꺼번에 해보고, 더구나 밑바닥인 아폴란티에서 그 높은 소스 담당까지 했다는 건 정물 드문 경우거든요. ...경험의 차이가 난 것 같아요.  210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요리를 배운다고 하면 전통적인 레퍼토리 하나하나 만드는 방식을 익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정한 요리는 그런 방정식을 외우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마지막에는 그 사람의 감정이 좌우하죠. 감성에 따른 창작이 중요해요.  221


처음부터 색에 끌린 것은 아니다 - 도미타 준(남들과 똑같은 인생을 사는 건 싫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직조의 길을 선택한 도미타는 울에 대해 공부할 목적으로 울의 본고장인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갔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국으로 넘어가 일하며 배우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직조법을 계속 찾아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그 해 여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로 둘이 함께 민예공예품점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오타니 지난이라는 염직가를 알게 된다. 오타니는 일본에서 얼마 안 되는 창작을 전문으로 하는 수제 직물가이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번 해보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타니 씨 제자로 들어갔어요. 첫째 날 가느다란 견사를 한 뭉치 받았는데 그걸 잘 감아내라고 하더군요. 털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감아본 적이 있을 거예요. 실 감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가끔 엉키기는 하지만 잘하면 쉽게 풀리죠. 그렇지만 견사는 다르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조금만 잘못하면 금세 엉켜서 끊어져버려요. 끊어지면 끝이 어디로 가 있는지 전혀 알길이 없었어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죠. 처음부터 너무 쉽게 생각한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오타니 씨 쪽을 쳐다봤지만 묵묵히 저를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도와주지도 않고요. 매달려 봤지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끊어진 실 끝을 찾아 이었어요. 그러면 조금 있다가 또 끊어져서 한참을 찾아 헤매는 그런 일을 반복했죠. 실 뭉치 하나를 감는데 일주일이 걸렸어요. 요령을 익히면 2시간 정도면 감을 수 있는데 일주일이 걸렸던 거예요. 그동안 저도 오타니 씨도 서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둘다 모두 약간 독특한 성격이라 그런지 날마자 한 마디도 안하고 일만 했어요. 그곳에 한 1년 정도 있었는데 한 번도 옆에서 친절하게 무언가를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실 감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자 고생하면서 요령을 터득하던가, 아니면 오타니 씨나 다른 제자들이 하는 걸 옆에서 훔쳐보고 배울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직조기를 사용해본 건 1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단 한번뿐이었죠. 지조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제자로 들어갔는데 그건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고,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실감기, 염색, 실 헹굼(염색 마무리 작업)처럼 밑작업만 계속 했죠.  235-236


소리를 만드는 아티스트로 거듭나다 - 요시노 긴지(일본에서 처음으로 레코딩 엔지니어로서 프리랜서가 된 서른여섯 살의 요시노 긴지. 믹싱으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시대에 요시노 긴지는 '아티스트로서 레코딩 엔지니어'를 목표로 잡았다. 결국 윗사람과의 충돌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미국에 가서 얻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미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대자연을 접한 거예요. 미국의 자연은 하늘도 바다도 땅도 일본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웅장했어요. 그 속에 있노라면 일본에서 그렇게 힘들고 신경을 썼던 사람들과의 얽힘이 정말로 아주 보잘것없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죠.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대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대자연은 모든 것을 포용해준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리라는 생각에 이르렀죠. 또 한 가지는 미국의 스튜디오를 견학하는 가운데 부부 두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스튜디오를 본 거예요. 녹음기만은 24채널로 훌륭한 것인데, 다른 설비는 너무 낡고 방음도 잘 안 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단란한 분위기에 정말 좋더라고요. 아, 이거구나.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의 스튜디오는 모두 돈을 쏟아부어서 만들어내고, 지나치게 멋있고 훌륭한 설비들로만 채워져 있거든요. 일본에서는 그런 훌륭한 설비만으로도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이 있는데, 이런 작은 스튜디오에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만 한다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270-271


에필로그 - 청춘, 수수께끼 같은 공백시대

속마음을 말하자면 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볍게 떠도는 대세순응주의자가 너무나 많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평하게 떠도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암담한 기분이 든다. 인간도 사회도 너무 가벼워져서 적당주의에 물들어가는 것 같다. 이런 무리들이 어떻게 일본의 장래를 책임질 것인지 일본의 번영도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75

그렇지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그 걱정은 기우였다.

1년에 걸쳐 11명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모두 매력적이고 믿음직스러운 젊은이들이었다.  276

내가 만난 이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열등생들이었다. 빠르게는 중학교 때부터 낙인이 찍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일탈한 사람도 있었다.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 어느 시점에선가 보통 사람들의 인생 궤도에서 벗어나버린 사람들이었다. 

그 원인은 모두 달랐다. 그렇지만 한 마디로 뭉뚱그려 말한다면 '재미가 없어서'라는 단어로 압축될 것 같다. 일반적인 코스를 따라갈 능력이 없어서 뒤처진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벗어난 것이다. 

궤도를 벗어나면서 그들은 자신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일단 발견만 하면 그 순간 그들은 열등생이 아닌 엄청난 노력가로 변신한다.

이제까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만큼 노력을 거듭해서 하나의 길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단지 자신과 자신의 의지와 열정만을 믿을 뿐이다. 그렇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간다.  277

과거의 출범을 무모한 모험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과감한 모험으로 만드는가는 '수수께끼 공백시대'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청춘이란 언젠가는 찾아올 출범을 준비할 수 있는 수수께끼의 공백시대인 것이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이다. 그것이 없다면 '수수께끼의 공백시대'를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보내게 되고, 결국은 당연한 귀결로서 출범을 맞이할 수 없다. 그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황에 휩쓸려가는 인생뿐이다.  283-284


번역을 마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이 아무리 겸손한 표정을 보이고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그들에게는 알 수 없는 빛이 난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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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동문학 연구센터' 주최 제 10회 문화 세미나 '읽기, 듣기'(2005년 11월 20일)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를 검색하여 알게 되었다.
그의 여러 책들 중에 읽은 책도 몇 권 있지만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기에 다시금 정리하면서 여러권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본 후에 제목에 끌려 잡았다.

읽는것과 듣는것, 우리는 무의식중에서도 이 두가지를 계속하면서 생활한다.
그처럼 무의식중에 입력된 것들이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아 나를 만들기도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의식중에 입력되는 것들일 수 있는데, 우리는 단편적으로 읽는 것과 듣는것으로 그치는 것의 무의미함을 지적해 주고 있기도 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자주 언급하는 표현가운데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인가?'가 있다.
어딘가에서 들어서 또는 보아서 아는것은 진정 자신이 아는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두 번 얼굴을 봐온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사람을 안다. 
하지만 무엇을 아는가?
진정 알고 있다고 표현할 수 는 없다.
우리가 '안다'고 표현할 때는 진정 자신이 경험하여 체득한 것이 포함되어야 진정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에서도 그 점을 언급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지 세 명의 대화와 강의 가운데서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쉽게 읽혀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결코 쉽게만 읽고 넘어가서는 안 될 내용들이 그들의 70년이 넘는 삶과 경험의 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으면서 여러 정보를 듣는 셈입니다. 무언가를 읽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저렇게 한느 것이 낫지 않을까? 하며 '행간 읽어내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간 읽기' 속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이 점을 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다가 아니라, 이 사람과 만난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또는 나의 무의식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  35-36
단지 책 자체만 읽고서 "이 책은 별로야"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몰입해 읽어야 합니다.  37
책도 스스로를 몰입해 읽다 보면 몸이 반응을 보입니다.  38
진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며, '읽어내기'위해서는 언어의 감춰진 부분, 즉 배후를 읽어내야 합니다.  45

글을 쓰려면 그에 앞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해 놓아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며, 또다른 하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49
글을 쓴다는 작업은 먼저 자료 확보가 있은 다음에 그 자료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를 생성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나 자신에게 '정보를 투입하는 과정(Input)'과 '밖으로 꺼내는 과정(Output)'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을 일반적으로 'IO비'라고 합니다.
IO비가 높을수록, 다시 말해 자료를 최대한 많이 투입하여 적게 배출하면 그 압박비가 높은 만큼 많은 정보가 쌓여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50

굶주림과 책
몇 만 명이나 되는 인간이 무리를 지으려 하고 
책 한 권 없는 곳이 있다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고
몇 만 권이나 되는 책이 있는 곳이 있다 
다 읽으면 먹을 수 있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존은 말하지만
굶주려 있으면 읽기도 전에 먹어치울 것이다
내가 있고 싶은 곳은 깎아지른 절벽 위
그곳에 책 한 권만 가져가
소리내어 읽는다
바다와 하늘에게 인간이 쓴 책이라는 녀석을 
읽어준다
  - <시를 보낸다는 것은> 중에서  74

숲에게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할 말을 잃고
읽는 사람의 손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80

바람
잡목 숲
낙엽 위
외발 등나무 의자
당신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날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책 한 권을 펼치고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당신은 책을 읽고 있었다
부드러운 가을 햇빛을 받으며

그리고....
문득 얼굴을 들어 나는 향한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늘 색 바랜 사진 속에서

당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
나이든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는 읽는다
그날 당신이 보고 있던 세계를 
나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가져보면서  82

사랑에 빠진 남자
연인의 짓궂은, 미소 띤 얼굴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그는 연애론을 읽는다
펼쳐든 페이지 위에 있는 사랑은 
향도 감촉도 없지만
의미들로 넘쳐난다

그는 책을 덮고 한숨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유도 연습시간에 맞춰 나간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
코치의 질타가 날아든다

그날 밤 연인에게 키스를 거절당하고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은 읽어야 하는 것투성이야
사람의 마음 읽기에 비해
책 읽기는 누워서 떡먹기군

그러나 언어가 아닌 것을 읽어내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은 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다시 연애론을 펼쳐든다
한숨을 쉬면서
콘돔을 서표(書標) 대신 삼아  86

독서라는 것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선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찾아 파고드는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144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147
뇌의 본능을 고려해 볼 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생각하면 대개 실패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반사신경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면 정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2


후기
'읽기'와 '듣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다양하며 우리 인생에 풍요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174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란 실제로 삶을 살아온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에 의한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다치바나 다카시)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의 배후에는 '산다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176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는 언제나 만남의 연속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  177

옮기고 나서
세 사람은 인간의 지적 도구인 언어를 구성하는 문자가 그 편리성만큼 인간의 심적 움직임을 제한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감성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문자가 가진 우수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무언가를 읽거나 듣는 행동에서 벗어나 감성을 되살려, 언어 이상의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181
우리 인생이 만남의 연속이듯, 정보 또한 삶 속에서 갖게 되는 하나의 만남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선택 기준을 마련해 인간이 쌓아온 지혜를 믿고 활용한다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지식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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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되어야 합니다.

0도의 물이건 99도의 물이건 끓지 않는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차이가 자그마치 99도나 되면서도 말입니다.


수증기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갈 수 있으려면

물이 100도를 넘어서 부터입니다.

그러나 99도에서 100도 까지의 차이는 불과 1도라는 사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99도까지 올라가고도

1을 더 하지 못해 포기한 일은 없으신지요?

1보다 더한 99를 노력하고도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끈기와 용기,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최선을 다한다면 못 다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노력 끝에 기쁨이 오고 그 열매는 자신을 밝혀주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밝은 빛이 되어 줍니다.

언젠가 다시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친다면

지난 노력의 열매들은 당신의 자신감이 되어주고 

어려움을 풀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의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항상 노력하십시요.

wn1 - 그래요 우리 한발짝만 더 나가 봅시다.

저는 그런 경험있습니다.. 이글을 읽는 당신도 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해야하긴 하는데 너무 많거나 너무 높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하나 한발한발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그것만 생각하다보니 크게 보였던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혹.....

아니면요... 어릴때를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가 너무 커 보였습니다.. 그런데 ....

내가 크고 나니 아버지가 커보이지 않았습니다.

위의 글과 상관이 없어 보입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크게 보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위치에서 커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 발짝만 더 디뎌 봅시다...그리고 또 한 발짝 더.. 

그것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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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을 지으려 하기보다 
좋은 가정을 지으십시오.
호화주택을 짓고도 다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막살이 안에 웃음과 노래가 가득한 집이 있으니
크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작게 시작해야 할 때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좋은 나무는 쉽게 크지 않습니다
바람이 강하면 나무도 강해지고
숲이 어두우면 나무는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갑니다.
햇빛과 추위와 비와 눈은 모두 
나무를 좋은 재목으로 만들어 주는 
최고급 영양소입니다.


인생의 시계는 단 한번 멈추지만 
언제 어느 시간에 멈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이 내 시간이라하고 살며
사랑하고 수고하고 미워하지만 내일은 믿지 마십시오
그때는 시계가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데 있는 것입니다.


꿈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실현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떤 꿈을 가지고 있다면
기회를 사용하도록 철저히 준비하십시오.


wn1 - 우린 때때로 마음만 앞서서 답답해 하거나 지름길만을 찾으로 노력할 때가 있습니다...생각해보면 나에게 그러한 면이 그렇지 않은 면보다 더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름길만을 찾고 답답해 하기만 할때 놓치고 있는 것이 경험치이고 더 소중한 관계들일지도 모릅니다.
정작 우리가 다다르려면... 여러가지 경험들과 지적사고들... 그리고 직관력과 통찰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경험들에 의해 생기는 것들인데...지름길만을 찾으면 그러한 역량들은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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