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40'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22.07.04 긴호흡 - 메리 올리버 마음산책 2019 03840
  2. 2022.06.27 완벽한 날들 - 메리 올리버 마음산책 2013 03840
  3. 2018.06.27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6 03840
  4. 2016.03.07 여행자의 책 - 폴 서루 책읽는수요일 2015 03840 1
  5. 2016.02.11 전락 - 필립 로스 문학동네 2014 03840
  6. 2016.02.04 에브리맨 - 필립 로스 문학동네 2009 03840
  7. 2016.02.01 뉴욕 3부작 -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9 03840
  8. 2015.12.28 소설 (하) - 제임스 미치너 열린책들 2009 03840
  9. 2015.12.24 소설 (상) - 제임스 미치너 열린책들 2009 03840
  10. 2015.12.21 프래니와 주이 - J.D.샐린저 문학동네 2015 03840 1
  11. 2015.10.22 동물농장 - 조지오웰 열린책들 2014 03840
  12. 2015.10.08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아널드 새뮤얼슨 문학동네 2015 03840
  13. 2015.09.01 작가수업 - 도러시아 브랜디 공존 2010 03840
  14. 2015.08.21 투명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열린책들 2014 03840
  15. 2015.08.14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 - 찰스 디킨스 윌키 콜린스 북스피어 2013 03840
  16. 2015.08.10 빵굽는 타자기 -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0 03840
  17. 2015.08.07 빅 퀘스천(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질문들) - 더글라스 케네디 2015 03840
  18. 2015.08.01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 더글라스 케네디 밝은세상 2014 03840
  19. 2015.07.24 원 플러스 원: 가족이라는 기적(one plus one) - 조조 모예스 살림 2014 03840 1
  20. 2015.07.21 미 비포 유(me Before you) - 조조 모예스 살림 2013 03840 1
  21. 2015.07.18 작가의 공간 - 에릭 메이젤 심플라이프 2014 03840
  22. 2015.03.0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2012 03840
  23. 2012.11.03 혼자 책 읽는 시간 - 니나 상코비치 웅진씽크빅 2012 03840 2
  24. 2012.10.30 철학의 위안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03840
  25. 2012.10.03 슬픔이 주는 기쁨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03840
  26. 2012.09.27 적절한 균형 - 로힌턴 미스트리 아시아 2009 03840 1
  27. 2012.08.28 화이트 타이거 - 아라빈드 아디가 베가북스 2009 03840
  28. 2012.08.07 슬럼독 밀리어네어 - 비카스 스와루프 문학동네 2007 03840
  29. 2012.04.11 스콧 니어링 자서전 - 스콧 니어링 실천문학사 2000 03840
  30. 2012.03.26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1




창작은 고통을 요한다. 방해 없는 집중을. 그것이 열망하는 확실성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즉각 얻어지는 것은 아닌 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지켜보는 눈 없이 홀로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따로 떨어진 장소 - 서성이고, 연필을 질겅질겅 씹고, 휘갈교 쓰고 지우고 다시 휘갈겨 쓸 장소를.
방해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인 경우도, 더 많진 않더라도 그 못지않게 많다. 자기 안의 다른 자아가 휘파람을 불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사색의 연못으로 풍덩 뛰어든다. 그 다른 자아가 하는 말이란? 치과 의사에게 전화해야지. 겨자가 떨어졌어. 스탠리 삼촌 생일이 이 주 남았어. 물론 당신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 다음 작업을다시 시작하지만, 아이디어의 요정은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 뒤다.  13

자기가 자신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보다 어둡고 신기한 문제다.  14


속기나 문구는 모두 기록한 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 내가 공책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건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다.  22

노새의 기분을 아는 것처럼 굴지 말자.  35

시를 덮을 때는 펼칠 때와 달라야 한다.  123

고양잇과 동물들이 속도와 우아함으로 명성 높고, 검은 개미는 독재와 근면으로 유명하며, 야크와 황소들은 야수적인 힘과 온순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듯, 인간은 독창성으로 그 이름을 떨친다. 독창성이야말로 우리 종의 트레이드 마크다. 모든 인간은 열심히 활동하기를 갈망하며, 하루의 일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다. 거기에 부아 명성, 행복에의 약속이 잇다. 그 누구라도 주위의 낡은 재료들을 모아 그것들을 분해하고 잘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붙여 변형된 물질, 전에는 본 적 없는 바람개비, 새로운 색깔의 꽃, 네모난 달걀, 혹은 시 - 낡은 재료가 새로운 통찰로, 낡은 예가 신선한 은유로, 낡은 감정이 변화된 어법으로 다루어져서 낡은 것과 새것이 결합된 시 - 를 세상에 선사한다면 권태로울 이유가 없소 신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 창조물을 갖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여기서 인간이라 함은 물론 남자와 소년, 여자와 소녀를 모두 아우르는 종의 개념이다. 특히 어린이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시인의 목소리는 어린 시절에 인간적 사례, 시간과 체험의 역사 속에서 시작되지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목소리는 첫 사례로 만난 시들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행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로잡혀야 한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 한 편을, 그 다음엔 몇 편을 사랑해야만 한다. 우리가 결국 올리브라는 지중해 열매를 즐겨 먹게 된 건 올리브의 관념 때문이 아니라 한 입, 또 한 입 맛보며 더없는 행복에의 확신이 그 범주에, 그 열매 자체의 개념에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여를 통해, 체험을 통해 배우기 시작한다. 올리브를 입에 넣음으로써 배운다. 실제 시를 입 - 이 경우엔 마음 - 에 넣음으로써 배운다. 우리는 호기심과 관심, 직면 그리고 모방에 의해 배운다. 그런 체험과 노력을 통해 지성과 정신은 힘을 얻고 개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이러한 어릴 적 체험들 - 첫 시들 - 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124-125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서 가르치나, 그 누가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대가 누구든 나는 지금 이 시각부터 그대를 따라간다.
그대가 알아들을 때까지 내 말들은 그대의 귀를 간질인다.
- <나 자신의 노래> 중에서, 휘트먼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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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 다름, 그리고 머무는 빛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한 일보다는 사소한 일에 습관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 습관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우리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28

다름과 기발함은 달콤하지만, 규칙성과 반복 또한 우리의 스승이다. 29

우리 삶의 양식은 우리를 보여준다. 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평가한다. 29

- 개 이야기
어떤 것들은 불변의 야생성을 지니고, 어떤 것들은 온순하게 길들여진다. 호랑이는 야생적이다. 코요테, 올빼미도 그렇다. 나는 길들여졌고 여러분도 그렇다. 야생적인 것들이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겉보기에만 길들여진 것이지 진짜 달라진 건 아니다. 54-55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개들이 나무라면, 평생 목줄에 묶여 얌전히 걸어 다니는 개들은 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개들은 인간의 소유물 인생의 장식품밖에 안 된다. 그런 개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광대하고 고귀하고 신비한 세계를 상기시켜주지 못한다. 우리를 더 상냥하거나 다정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목줄에 묶이지 않은 개들만 그걸 해줄 수 있다. 그런 개들은 우리에게만 헌신하는 게 아니라 젖은 밤이나 달, 수풀의 토끼 냄새, 질주하는 제 몸에도 몰두할 때 하나의 시가 된다. 58

- 완벽한 날들
몇 해 전, 이른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쏟아지는 포근한 햇살 속으로 들어선 아주 평범한 순간, 나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그건 행복의 바다에 익사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행복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 62

- 에머슨 : 서문
문학의 최고 효용은 제한적인 절대성이 아니라 아낌없는 가능성을 지향한다. 문학은 답을 주기보다는 의견, 열띤 설득, 논리, 독자가 자신과의 싸움이나 자신의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것은 에머슨의 핵심이다. 그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제의 모든 면에서 어슬렁거린다. 친절한 몸짓으로 제안을 하고,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며 우리 눈으로 직집 보라고 말한다. 그가 완강히 주장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우리 스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삶의 진수니까. 삶의 문제들에 대해 숙고하는 것, 정원에서 잡초를 뽑거나 소젖을 짜면서도 생각에 집중하는 것. 78

품위를 잃은 글은 중요성을 잃는다. 더욱이 영감을 주면서도 절도를 지키는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에머슨의 요령(비하의 의도를 담은 표현은 아니다)은 글의 소재는 ‘사물들’이면서도, 주제는 개념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희미한 빛에 지나지 않지만 예리한 직관의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평범한 말에 놀라운 관념을 결합했다.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당신의 마차를 별에 매라.” “물방울은 하나의 작은 바다다.” “어리석은 일관성은 편협한 정신의 헛된 망상이다.” “우리는 표면들 위에서 살며 삶의 진정한 예술은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잘 타는 것이다.” “잠은 평생 우리 눈가에 머문다. 밤이 종일 전나무 가지에 머무는 것처럼 .” “영혼이 육체를 만든다.” “기도는 가장 높은 견지에서 인생의 사실들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다.” 이런 조언들을 들으면 그의 비범한 직관적 실천이 더 분명하게 이해되고 우리에게도 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82

<일곱 박공의 집>
위대한 옛 소설들은 해가 갈수록 고풍스러워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탁월함이 빛을 잃어가는 건 아니다. 101

세상엔 몇 가지 이야기들밖에 없다. 사악함에 대한 이야기, 선에 대한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시간에 대한 이야기, 마법은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 우리가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바로 표현력이니까. 그리고 그건 분명 모든 훌륭한 책들의 특별한 능력이다. 101

현 세기가 반짝거리는 새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무례한 호기심으로 옛 책들을 대해선 안 된다. 그 책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록 우리와 표면적인 차이점은 있지만 기이하거나 우리와 다르지 않고 바로 우리라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옛 희망과 명확성, 열정과 일탈, 자비와 심판을 나타내기에(문학은 숨김이 아니라 나타냄이니까) 공동서술의 일부이기도 하다. 102

가자미, 일곱
(가자미는 작고, 가시가 많고,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조화로운 물고기다)
세상에 시작하고 전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연필은 없어. 우선 많이 쓰는게 최선이야.
어조가 틀리면 아무것도 맞는 게 없어.
마음의 무기력함은 글의 무기력함이 되지.
태양도 작업 스케줄이 있어. 눈도, 새들도, 초록 잎사귀도. 너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문장이 아무리 교묘해도 화를 숨길 수는 없어.
어떤 글은 한옆으로 제쳐놓고 잊어야 해. 어떠면 거기 소금과 후추를 더 쳐야 할 수도 있어. 아니면, 소금과 후추를 빼야 할 수도 있지.
말이 너무 많으면, 바른 말이라도, 시를 죽일 수 있어.
가끔 너는, 다른 무엇과도 다른, 달콤하고 전기가 통하는 듯한 창작의 나른함을 느낄 거야.
하지만 가끔은 예상했던 결과에 이르지 못한 실패를 견뎌야 해.
시는 바늘처럼 단순하든, 물레고둥 껍데기처럼 화려하든, 백합 얼굴 같든, 상관없어. 시는 말들의 의식(儀式), 하나의 이야기, 기도 초대, 아무런 현실감 없이 독자에게 흘러가서 마음을 흔드는, 진짜 반응을 일으키는 말들의 흐름.
무엇보다도, 일단 써봐. 노래해. 혈관을 흐르는 것처럼. 125-127


소위 문명시대로 불리는 이 시대의 위험성 중 하나는 이 영혼과 풍경, 우리 자신의 최고 가능성들과 우리의 창으로 보이는 경치의 관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소중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에게도 세상이 필요하다. 은밀히, 친밀하게, 확실히. 우리에겐 종달새가 날아오르는 들판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새는 단순한 새 이상의 존재, 우주의 목소리다. 신성한 기쁨으로 충만한 힘찬 목소리. 물질 세계가 없다면 그런 희망은 산산조각 난다. 고갈된다. 야생의 세계가 없다면 그 어떤 물고기도 눈부신 빛을 발하며 물 위로 뛰어오를 수 없고, 그 어떤 사슴도 영원한 물처럼 부드러이 들판을 달릴 수 없다. 그 어떤 새도 날개를 펴고 자연의 계획까지도 넘어서는 자신감과 모험심과 용기를 품을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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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낭만주의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 때다. 12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27


그(라비 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28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한다. 30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35-36


성욕은 처음에는 단지 생리적 현상, 호르몬을 깨우고 신경 말단 을 자극한 결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감각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생각,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끝날 거라는 기대와 관련이 있다. 41


성 해방에 관한 온갖 담론에도 불구하고, 성을 둘러싼 비밀과 어정도의 부끄러움은 사실 늘 그래왔듯이 지금도 존재한다. 우리는 여전히 누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부끄러움과 충동 억제는 단지 우리의 조상들과 절제의 종교들이 ㅇ매하고 불필요한 이유로 붙들고 있었던 것들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상수로 존재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낯선이가 우리의 방어를 풀고, 한때 몰래 죄를 짓는 마음으로 갈망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것을 바랄 수 있게끔 허하는 (일생에 몇 번뿐일지 모를)그 진기한 순간들이 그렇게 큰 힘을 갖게 된다. 44


우리는 흥분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연인이 나의 본모습에 드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족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45


역사가 시작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논리적 이유로결혼을 했다. .. 합리적 결혼은 어떤 진실한 관점엣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으며, 자주 편의주의적이고, 편협하고, 속물적이고, 착취적이고, 모욕적이었다. 이를 대체한 것 - 감정에 의거한 결혼 - 이 그 존재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면제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57


결혼이 실용적인 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58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에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년의 관계 안에서 재현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맛본 사랑이란 보다 파괴적인 다른 역학들과도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통제 불능의 어른을 도와주고 싶은 느낌, 아빠나 엄마가 다정하지 않다거나 그들의 분노가 두렵다는 느낌 또는 철없는 소원을 자유롭게 표현할 만큼 집안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느낌과도 뒤얽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우리가 어떤 후보군을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 - 왠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성숙하고 분별 있고 믿음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 거부하게 되는 것도 얼마나 필연적인가. 심정적으로 이러한 올바름은 이질적이고 누군가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자극적인 사람을 쫓는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더 조화로울 것이라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그 삶에서 겪을 좌절의 양식이 안심하리만치 친밀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63-64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65




2부 그 후로 오래오래


낭만주의는 직관의 합의를 중시하는 철학이다. 진실한 사랑에서는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쓰느라 수고할 필요가 없으며,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마침내) 둘 다 세계를 완전히 같은 눈으로 보는 경이로운 상호 감정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72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국제무역, 이민, 종양학 등)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나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76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그가 자신이 몰두하고 실망하는 바를 더 예리하게 파악하는 살마이었다면, 이불 밑에서 (실내 온도와 관련하여)이렇게 설명했을지 모른다. "당신이 한겨울에 창문을 열어놓고 싶다고 말할 때면 난 두렵고 속이 상해. 신체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인 이유에서 말이야. 앞으로 소중한 것들이 짓밟힐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그럴 때면 당신에겐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가학적인 금욕주의와 너무 왕성한 용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잠재의식의 차원에서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건 상쾌한 공기가 아니라, 당신 특유의 매력적이지만 무뚝뚝하고 합리적이고 사람을 위축시키는 방법으로 나를 창밖으로 밀어내는 것일까 두려워."

이와 마찬가지로 커스틴도 시간을 엄수하려는 자신의 태도를 면밀히 들여다봤다면,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라비에게(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운전기사에게) 가슴 뭉클한 연설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건 결국 공포 증상이야. 그게 내가 무질서하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세계에서 불안과 정체불명의 지독한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개발해낸 기술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권력을 갈망하는 거나 내가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거나 매한가지야. 안전의 욕구와 다르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고려하면, 비록 조금이지만 그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아? 온전한 정신을 지키려고 하는 나만의 미친 방법인 거야."

이렇게 각자 욕구의 맥락을 살피고 서로가 상대방의 믿음에 깔린 원인을 이해했다면 새로운 융통성이 뒤따랐을지 모른다. 78-79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없으면 비통해진다. 원인도 잊은 채 화가 나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는 쪽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려고만 하고, 잔소리를 듣는 쪽은 자신의 반발이 합리적 반론이나 그도 아니면 가엾고 용서받을 만한 성격상의 결함에서 나온 것임을 더는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양 당사자는 그들에게 똑가팅 지루하기만 한 이 문제가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79


우리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 우리 커플이 훨씬 나쁜 일들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불행할 뿐 아니라 우리의 불행이 대단히 드물고 기형적인 것이라 착각한다. 더 나아가 종국에는 우리의 싸움들이 기본적으로 전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결혼 생활의 증거라기보다는, 우리가 뭔가 드물고 근본적인 실수를 범한 징표라고 믿게 된다. 81-82


이 둘은 두 개의 믿을 만한 치유책 덕에 지속적인 비통함에서 벗어난다. 첫째는 나쁜 기억력이다. 목요일 오후 4시쯤 되니 전날 저녁에 택시에서 무엇 때문에 격노했는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별 이유 없이 일찍 퇴근해야겠느냐는 그의 말에 커스틴이 경솔하고 달갑지 않게 반응한 것과 그녀의 설핏 경멸하는 듯한 말투와 관련이 있다는 건 알지만 불쾌함의 정확한 윤곽은 이미 초점이 흐려졌다. 이는 아침 6시에 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살, 라디오에서 재잘거리는 스키 리조트에 관한 정보, 가득 찬 이메일 수신함, 점심을 먹으며 주고받은 농담, 회의 준비와 웹사이트 디자인에 관한 두 시간짜리 미팅 덕분이다. 이것들이 합쳐져 성숙하고 솔직한 대화를 한 것 못지않게 둘 사이를 거의 바로잡는 효과를 낸다.

두번째 치유책은 보다 추상적이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하면 너무 오랫동안 분노를 안고 가기가 어렵다. 이케아 사거 ㄴ이후 몇 시간이 흐른 오후 나절에 라비와 커스틴은 에든버러 남동쪽에 있는 레머뮤어 구릉으로 오래전에 계획한 산책을 나선다. 출발할 때는 둘 다 말이 없고 시큰둥하지만, 자연이 동정심이 아니라 숭고한 무관심을 통해 그들을 서로에 대한 적개심에서 서서히 해방시킨다. 82-83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6-87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토라진 사람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표적이 되었을 때에도 온화하게 웃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진짜 메시지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느 ㄴ아직 젖을 먹는 아기이니, 지금 당장 나의 부모가 되어줘야 해. 당신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를 정확히 헤아려주어야 해. 내가 아기였을 때, 사랑에 대한 관념들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말이야."

토라진 연인게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이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어리게 취급하면 거만하게 윗사람 행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 탓에 우리는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 그리고 용서해주는 - 것이 가끔은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89-90


사랑이 있을 때에만 섹스가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견해는 기독교가 서양 세계에 남긴 가르침이다. 이 종교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몸을, 눈길을 아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낯선 사람을 성적으로 생각하면 사랑의 참된 정신을 저버리고 신과 자신의 인간성을 배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한 그런 가르침들은 한때 그 토대를 이웠던 믿음이 쇠한 지금에도 완전히 증발하지 ㅇ낳았다. 확고했던 유신론적 근거는 사라졌지만 낭만주의 이데올로기가 그 가르침들을 흡수해, 사랑에는 정절이 내포되어 있다는 개념에 여전히 고귀한 지위를 부여했다. 세속의 세계 역시 일부일처제를 헌신적인 감정과 고결함을 표하는 필요하도고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선언해왔다. 우리 시대는 지나간 종교의 중요한 경향, 즉 참된 사랑에는 완전한 정절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고스란히 유지해온 것이다. 93-94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자유분방하지만, '기이함'과 '정상'의 차이가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그 차이는 언제너처럼 확고하며, 사랑과 섹스의 규범적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을러서 경계선 안으로 밀어 넣는다. 요즘은 짧은 반바지를 입거나 배꼼을 노출하거나 동성과 결혼하거나 재미로 포르노를 좀 보는 것도 '정상'으로 간주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단혼제에 있고 욕망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믿는것 역시 여전히 확고부동한 '정상'이다. 이 근본 원칙에 반기를 들려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혹독하고 수치스러운 낙인이찍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변태라고 말이다. 99


의사 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의사 전달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나 성적 취향 또는 일반적이지 ㅇ낳고 거북할 수 있는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감을 잃거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숙고할 줄 안다. 그들이 명료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대체로 원만한 사람이라는 대단히 가치있는 인식을 길러낸 덕분이다. 그들은 적정한 수준의 인내심과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단만 갖추고 있다면 다른 살마의 호의를 받을 만하고 또한 받을 수 있다고 능히 믿을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의사 전달을 잘하는 이런 사람은 어릴 적, 모든 면에서 적절하고 완벽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도 아이를 사랑할 줄 아는 보호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축복을 누렸음이 ㅣ분명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이 - 적어도 한동안은 - 가끔 이상하거나, 난폭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심술궂거나, 기이하거나,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수용할 줄 알고 그래도 가족의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줄 안다. 그렇게 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솔직히 고백하고 대화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을 심어준다. 100-101


잘 들어주는 사람은 잘 말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의 비결이다. 이는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을 말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3


우리는 의식에서 거의 지워져버린 위기들이 오래전에 만들어놓은 대본에 따라 행동할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져 폐물이 된 논리에 따르고,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밝히지 못할 ㅢ미를 좇는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고, 정확히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으며, 앞에 있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곁에 두기에 약간 고달픈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12-113


마음이 전이에 말려들면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믿어주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불안에 빠져 즉시 과거가 지정해놓은 최악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과거의 혼란에 의거하여 지금 벌어지는 일을 해석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초라하고 꽤 굴욕적인 일이 느껴진다. 우리의 파트너와 실망스러운 부모, 남편이 잠시 지체하는 것과 아버지의 영원한 유기, 더러운 빨랫감 몇 개와 내전의 차이를 설마 모르겠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을 그 출발점으로 송환하는 일은 사랑의 가장 섬세하고도 필요한 과제다. 전이의 위험성을 인정하면 짜즈오가 비난보다 공감과 이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두 사람은 갑자기 폭발하는 불안이아 적대감이 항상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그러니 그런 폭발에 매번 분노나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격분과 비난이 동정심에게 자리를 내준다. 114-115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116


사랑의 모든 가정들 중 아주 얄팍하리만치 불합리하고 미숙하고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장 흔히 볼 수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서약한 사람이 우리의 감정적 실존의 중심일 뿐 아니라 - 그 로가로서, 또한 대단히 이상하고 객관적으로 비상식적이고 아주 부당한 방식으로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그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에는 기이하고 병적인 특권이 있다. 122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들은 딱히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세상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부당한 말들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꾸러진 징표다. 분별 있고 예의 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뿐이다. 123-124


혹독한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교사가 단지 미쳤거나 성질이 나쁜 것이고 그래서 그 자신들은 논리상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기댈 여지를 준다.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판정을 들으면, 우리는 파트너가 악랄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이나마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위안을 얻는다.

감정에 치우쳐 우리는 배우자의 부정적인 평가와-조금이라도 비교할 만한 요구가 지워져 있지 않은-친구 및 가족들의 격려하는 어조를 대비시킨다. 사랑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사랑과 가르침의 관계를 바라보는 유용하고도 시류와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그들이 보기에 사랑은 무엇보다 먼저 타인의 훌륭한 점을 찬탄하는 감정, 고결한 특질과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흥분이었다.

그 결과 사랑의 깊어짐은 항상 보다 고결해지는 방법-화를 잘 참거나 관대해지는 법, 탐구심을 키우거나 더 용감해지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욕구를 수반하게 됐다. 성실한 연인이라면 상대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 수용은 관계의 목적을 나태하고 비겁하게 통째로 배신하는 행위였다. 그런고로 우리 자신을 향상하고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줄 것들은 항상 존재할 터였다.

이 고대 그리스의 렌즈를 통해 본다면 연인이 상대방의 성격으로 인해 불행하서나 불편한 점을 지적해도 그가 사랑의 정신을 포기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파트너의 자아를 더 발전시키려는, 사랑의 본질에 아주 충실한 일을 하려 했다고 축하받아야 한다. 현재보다 더 진보한 세계, 그리스식 사랑의 이상에 조금 더 깨어 있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알려주고자 할 때에 어색함과 두려움과 공격성이 약간 줄어들고 피드백을 받을 때에도 다소 덜 호전적이고 덜 예민해질 것이다. 관계 안에서 교육이란 개념이 불필요하게 섬뜩하고 부정적이었던 함의를 벗게 될 것이다. 신뢰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에서는 두 프로젝트-가르치기와 배우기, 상대방의 결점을 환기하고 상대방의 비판을 허용하기-가 결국 사랑의 참된 목적에 충실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137-138




3부 아이들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그들의 철저한 의존서으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146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사랑이란 말은 갈수록 부정적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와 자기충족에 빠진 문화는 만족과 타인의 부름에 응하는 행동을 쉽게 등치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없다. 더 자란 아이들이 가끔 큰 불안을 느끼며 판단을 내리듯이,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기 때문에-어떤 보받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장점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약점에 대한 동정, 즉 인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고 한때 나 자신의 것이었고 결국 나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취약성을 동정하는 사랑으로 인도되낟. 자율과 독립성을 늘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어 하는 와중에 이 무기력한 피조물은 아무도 결국은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문자 그대로-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남의 종이 되는 것이 굴욕이 아니라 정반대라는 것을 배운다. 나 자신의 왜곡되고 만족을 모르는 본성에 끊임없이 응해야 하는 피곤한 의무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부여받았다는 위안과 특권을 알게 된다.  147-148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어려운 관례다.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느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155


사랑을 위한 노력이 그들을 녹초로 만든다.  156


라비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이렇게 까탈을 부린 적이 없었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서 진심으로 사랑을 받는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166


좋은 부모의 역할에는 중요하면서도 무척 까다로운 요건이 딸려 있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소식을 끊임없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는 필히 아이의 장기적 이익을 폭넓게 지켜줘야 하는데, 아이들로서는 부모의 생각이 유익하다고 흔쾌히 동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양치질, 숙제, 방 정돈, 취침 시간, 마음 넓게 쓰기, 컴퓨터 사용 제한에 대해 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재미가 정말 시작되려는데 삶의 달갑지 않은 면들을 들이미는 싫고 짜증 나고 따분한 배역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듯 사랑을 드러나지 않게 실행한 결과로, 좋은 부모는 그 실행이 잘된 경우에 강렬한 분노와 적개심의 표적이 되고 만다.  167-168


성적 흥분은 결국 옷을 벗은 상태와 거의 무관한 듯하다. 그 동력은 열렬히 열망하고, 전에는 금지되었으나 이제는 기적적으로 접근 가능해진 상대를 소유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가능성에서 나온다. 성적 흥분은 고립과 단절이 만연한 세계에서 그 손목, 허벅지, 귓불과 목덜미가 마침내 우리 눈앞에 당도했다는 데 대한 거의 불신에 가까운 경탄의 표현이다. 다시 한 번 기쁨에 차 만지고, 채우고, 드러내고, 벗기며 우리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우리의 연인은 얼마나 멀고 독립적으로 느껴졌는지 계속 몇 시간마다 확인하고 싶다는 특수한 개념이다. 성적 욕구는 확고히 친밀해지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오며, 그렇기에 사전의 거리감을 전제로 하고, 그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매우 독특한 기쁨과 안도감을 선사한다.  184


자위의 판타지에서 무작위로 만난 낯선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낳은 순위의 모티프가 된다는 사실은 낭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논리를 획득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바로잡고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랑과 섹스의 냉정한 분리, 바로 그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이용하면 분노, 감정적 취약성, 상대방의 욕구를 신경 써야 할 의무를 우회할 수 있다. 우리는 비난이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선까지 특이하고 이기적으로 굴 수 있다. 모든 감정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이해되기를 바라는 일말의 소망도 없고 따라서 잘못 이해될 위험도 없으며 그 결과 괴로워하거나 실망하게 될 위험도 전혀 없다. 마침내 삶의 소모적이고 거치적거리는 나머지 부분을 침대로 가져갈 필요 없이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87-188


어떤 관점에서는, 공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대신에 판타지를 지어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대개 다수의 모순된 소망으로부터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다. 판타지가 존재하는 덕분에 하나의 현실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현실에 거주할 수 있다. 판타지는 완전히 무책임하고 무섭도록 기이한 우리의 충동으로부터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켜준다. 판타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성취이자 문명의 결실이며, 친절한 행동이다.  189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정확히 똑같게 계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거나 속죄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언제라도 진지한 경쟁에 돌입할 수 있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194


오늘날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위신을 분배하는 방식 탓에 발생한다. 부부는 매시간 실용적인 요구에 시달릴 뿐 아니라, 그런 일이 굴욕적이고 시시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단지 요구를 견뎌냈다는 이유마능로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칭찬해주는걸 꺼린다. '위신'이란 말은 등하교시키기와 세탁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들린다. 그런 특성은 수준이 높은 정치나 과학 연구, 영화나 패션 같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고 가르친 해로운 훈련 때문이다. 그러나 거품을 제거하고 핵심을 보면 위신은 단지 인생에서 가장 고결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우리는 인류의 영광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회사를 설립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얇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에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수십억 인구 사이에 널리 분포된 능력이라 하더라도) 생후 몇 달 된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떠먹이고, 사라진 양말을 찾고, 변기를 청소하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 식탁에 굳어 있는 기름때를 닦아내는 능력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195


라비와 커스틴이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접한 예술이 그런 싸움을 공감하며 반영하는 걸 좀처럼 보지 못하는 데에도 있다. 예술은 오히려 이들이 마주하 ㄴ문제를 얕잡아 보고 유치하게 놀리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참을성 없이 짜증을 부리며 몸을 꿈틀거리는 아이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려고 애쓰는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는다. 코트의 단추를 늘 잘 채우고 모자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집 안을 정갈하게 유지할 때, 그리고 매일매일 가장 작지만 까다로운 이 사업을 협력해 이끌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바깥에서 저명해지거나 큰돈을 벌지 못할 테고, 무명 인사로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월계관을 써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럼에도 문명의 질서정연함과 연속성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곳에서 말없이 수행하는 노동에 작지만 필수적으로 의존한다.  196




4부 외도


중년의 유혹자가 솔직한 것은 자신감이나 오만함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처량한 인식에서 나오는 일종의 조급한 절망감 때문이다.  204


배우자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불륜에 뛰어드는 경우는 드물다. 파트너를 배신하는 수고를 감내하려면 대개 파트너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207


다른 종류의 행동들은 거의 다 쉽게 묵인하는 사람들에게도 간통은 하늘이 노할 위반이자, 사랑의 가장 신성한 전제들을 깨뜨리는 섬뜩한 행위다. 

첫 번째 전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든 함께하는 삶이 소중하다고 주장하면서-길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사랑은 없었다.  212-213


두 번째 전제 : 간통은 우리가 익히 아는 불성실과는 종류가 다르다. 세상은 벌거벗음을 수반한 계율 위반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지각변동에 버금가는 엄청난 종류의 배신이라고 말한다. 바람피우는 짓은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공언하는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극악 행위다.  214


세 번째 전제 : 일부일처제에 충실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깊이 배려하고 그의 번영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다. 이를 고수하는 것은 상대방의 최선의 이익을 진심으로 염려한다는 확실한 징표다.  215


네 번째 전제 : 일부일처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모습이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항상 한 사람과 사랑하기를 원한다. 일부일처는 정신 건강의 기준점이다.  216


다른 사람에게 가끔 욕망을 느끼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그래서 어떤 절박한 호기심으로 단 한 명의 동시대인보다 더 많은 독특한 관능적 개성을 탐험해야 할지 깨닫지 못하고 유혹을 느끼는 데 실패한 것, 사실은 '잘못된 것' 아닐까? ... 간통의 발생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은 곧 인생의 풍요로움을 부정하는 셈 아닌가? 반대로, 어떤 특정 상황엣 부정한 행위에 정말로 일말의 호기심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신뢰하는 게 합리적인 것일까?  217


성숙해지면 소유욕을 초월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질투는 아기들에게나 어울린다. 성숙한 사람은 어떠 ㄴ사람도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현명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온 교훈이다. 잭이 네 소방차를 갖고 놀게 해주렴, 그 아이가 한 번 갖고 논다고 해서 남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화가 난다고 바닥을 뒹굴면서 네 작은 주먹으로 카펫을 내리치지 마라, 네 여동생이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이듯 너도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사랑은 케이크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줄어들진 않는다. 사랑은 집안에 아기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계속 커진다. 

나중에 이 주장은 섹스를 둘러싸고 훨씬 더 합당해진다. 파트너가 한 시간 동안 당신을 떠나 신체의 특정 부위를 낯선 사람의 제한된 부위에 비볐다고 왜 파트너를 나쁘게 생각하겠는가? 어쨌든 그들이 모르는 사람과 체스를 두거나 명상 그룹에서 촛불을 켜놓고 친밀한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229-230


질투는 그 우둔함 때문에 우리가 설교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군침 도는 표적이 된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게 좋다. 대단히 볼썽사납고 어리석긴 해도 순간의 질투는 우리를 빗겨 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술을 만지거나 손이라도 스쳤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누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우리가 과거에 어쩌다 바람을 피웠을 때 가졌을 매우 진지하고 충실한 생각과는 상반되고 논리에 어긋난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다. 현명하다는 것은 도저히 현명해질 수 없는 순간을 아는 것이다.  230-231


상대방의 충실함이 무의식을 가득 채워주는 한 외도라는 문제에도 태연자약 할 수 있다. 한 번도 배신당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신의를 계속 유지하기에 좋으 전제조건이 못 된다. 보다 진실하고 충실한 사람이 되려면 적절한 예방 접종을 겪어봐야 한다. 한동안 극한의 공황과 모욕을 겪고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가봐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배우자를 배신하지 말라는 명령이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영구히 뚜렷하게 빛을 발하는 도덕적 의무로 변모한다.  232


사랑의 열병은 망상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목을 가누는 방식은 실제로 그 사람이 자신 있고, 심술궂고, 예민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누군가는 그의 눈이 암시하는 유머와 지성, 그의 입이 넌지시 말하는 상냥함을 실제로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열병의 오류는 좀 더 교묘한 문제다. 우리가 다양한 단점을 꿰뚫고 있는 현재의 파트너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우리가 더 많은 시간으 함게 보낼 때 드러날 상당히 심각한 결점, 황홀했던 처음의 감정을 비웃음거리로 만들 만한 결점도 있다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진리를 잊게 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236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237


아무것도 희생되지 않는 깔끔한 해결 방안은 어디에도 없다. 모험과 안전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알았다. 사랑이 넘치는 결혼 생활과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성욕을 죽이고, 외도는 결혼 생활을 죽인다. 두 패러다임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자유사상가인 동시에 결혼한 낭만주의자가 될 순 없다.  238


우울감은 치료를 요하는 병이 아니다. 우울은 처음부터 이 각본에는 실망이 적혀 있었다는 확신과 마주할 때 밀려오는 일종의 지적 슬픔이다.  239


어떤 관계도 온 마음을 다해 친밀하고자 하는 헌신 없이는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여전히 수많은 생각들을 혼자 간직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정직성에 너무 감명하는 탓에 정중함의 미덕들을 망각한다. 아끼는 사람이 우리의 본성에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면과 항상 전명적으로 마주치지는 않게 하려는 욕구 말이다.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자기 편집에 조금 열성을 보이는 억제 능력은 솔직한 고백 능력 못지않게 당연히 사랑에 포함된다. 스스로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또한 파트너가(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간밤에 어디에 있었는지 등등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어도(우리의 관계가 훌륭하다면 주기적으로 그럴것이다), 날카롭고 무자비한 심문자처럼 굴지 않는 편이 좋다. 그저 눈치채지못한 척하는 편이 더 친절하고 더 현명하고 사랑의 참된 정신에 더 가까울 수 있다.  241-242


역사의 거의 전 기간 동안 사람들이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약간의 재산을 지키고, 가문의 통합이 유지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 아주 다른 기준이 서서히 세상을 장악했다. 그에 따르면 부부는 둘 사이에 진실한 열정, 욕망, 충족감 같은 몇몇 감정들이 통용되는 한에서만 함께 있어야 했다. 이 새로운 낭만주의의규칙에서 배우자들은 부부의 일상이 지루해졌거나, 아이들이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섹스가 더 이상 마음을 끌지 못하거나, 어느 쪽이든 최근 들어 약간 불행하다고 느껴왔다면 당연히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243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


1950년대에 영국의 존 볼비와 그의 동료들이 전개한 애착 이론은 우리가 맨 처음 경험하는 부모의 보살핌에서부터 관계의 긴장과 갈등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서유럽과 북미 인구 3분의 1이 생애 초기에 부모에 대한 실망을 경험하고(C. B. 바실리, 2013), 그 결과- 견딜 수 없는 불안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원초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신뢰와 친밀함의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위대한 저직인 <분리 불안>(1959)에서 볼비는 최초의 가정환경에서 실망을 겪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 관계의 어려움이나 모호함에 직면 할 때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볼비가 '불안정 애착'이라 명명한, 두려워하고 집착하고 지배하는 행동 양식이고, 둘째는 '회피 애착'이라 명명한, 방어 및 후퇴 작전이다. 불안정한 사람은 파트너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질투심을 분출하고,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깝지' 않은 것을 슬퍼하며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쉽다. 한편 회피적인 사람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때때로 성적 친밀함에 대한 요구를 힘겹게 느낄 수 있다. - 조애나 페어베언 박사, <부부 관계에서의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 :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  251-252


불안정 애착의 징후는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즉시 모욕이나 악의적인 공격과 같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 경솔한 말, 부주의를 파탄의 전조라도 되는 양 불길하고 강력한 위협으로 느낀다. 좀 더 객관적인 설명은 와 닿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그들이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은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약함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심술궂다거나 성마르다거나 잔인하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253-254


회피 애착 유형은 정서적 피룡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회피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쉽게 가정한다. 자리를 피해 도개교를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유감스럽게도 회피적인 사람은 두려움에 찬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파트너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의 소원하고 무덤덤한 행동들 뒤에 숨어 있는 이유들은 안개 속에 싸인 채 진실과는 정반대로 무정하고 무심하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킨다. 회피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뿐,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깊이 염려한다. 257-258


하잔과 셰이버가 최초로 고안한 이 설문 조사(1987)는 애착 유형을 평가하는 데에 널리 이용된다.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응답자는 아래의 세 진술 중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게 된다

'나는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상대방이 종종 뚜렷한 이유도없이 실망스럽거나 이기적으로 나온다. 나는 스스로 타인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용인하면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나는 혼자 지내도 괜찮다.'(회피 애착)

'나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지기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소중히 여길까 하고 걱정한다. 그 때문에 아주 속이 상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불안정 애착)

'나는 비교적 쉽게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진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데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안정 애착) 260


한 사람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번의 실수로 갑자기 그렇게 된다. 상황이 몇 번만 꼬이거나 외부 압박을 어느 정도 받으면 그 역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가 자신을 제정신이라 여길 수 있게 하는 화학적 행운이란 부서지기 쉬우며, 인생이 제대로 시험해보기로 한다면 그 자신이 비극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267-268


옛날에는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이정표에 도달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집, 리넨으로 가득 채운 혼수, 벽난로 위에 진열된 자격증, 또는 소 몇 마리와 얼마만큼의 땅을 소유하는 것이 그런 이정표였다.

그런 뒤 낭만주의 사사의 영향으로 이런 실질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금전을 따지고 계산을 하는 행위가 되었고, 초점이 감정적 특질로 이동했다. 올바른 감정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 상대방이 나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느낌, 다시는 상대 말고는 다른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278


이제 라비는 낭만주의 개념들이 재난을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의 준비된 마음을 완전히 다른 기준들에 기초한 결과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278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근본에 있어서는 불완전할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 옛 동창생, 인터넷에서 사귄 새로운 친구 등도 우리를 실망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삶의 현실은 우리의 모든 본성을 변형시킨다. 상처 없이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이상에 못 미치는 양육을 받았다. 우리는 설명하기보다 싸우고, 알려주기보다 들볶고, 고민거리를 분석하기보다 초조해하고, 거짓말을 하고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린다.

이렇게 우험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는 와중에 완벽한 인간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낯선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기 전에 그들을 깊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를 내는지 즉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몇 해가 걸릴 수도 잇다). 이론상 그 존재는 처음부터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재앙일 이유는 없다. 진보한 낭만적 비관주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일 수는 없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또 다른 타락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현실에 나 자신을 적응시킬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

정착을 하기 전에 몇 명의 애인을 사귀어보는 것도 이 깨달음을 깊이 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 '제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조금씩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접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견할 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278-280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잇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280


만일 수시로 자신이란 사람이 당황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자기 이해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281


결혼이라는 새장 안에서 집안 살림, 친인척, 청소 분담, 파티, 식료품 같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당연히 '까다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허물이 아니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일 뿐이다. 애개 난감한 것은 결혼이란 제도이지, 관련된 개인들이 아니다. 281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처음에는 '사랑받기'에 대해서만 알고 인생을 시작하낟. 아주 그릇되게도 사랑받는 일이 표준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마치 부모가 항상 온정 어린 마음으로 흔쾌히 그들을 위로해주고 인도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먹여주고 씻겨주는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개념을 성년기까지 갖고 간다.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고 다 받아들여지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마음속 은밀한 구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예측하고, 우리의 심정을 읽어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모든 면엣 더 나아지게 해줄 연인을 그린다. 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281-282


중요한 여러 분야에서 파트너가 우리보다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고 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기를 바라야 하고, 그들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 또한 다른 순간에는 최고의 교사로서 모범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방도 알리라 지레짐작하지 않고 우리의 제안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완벽한 사람만이, 서로 가르친다는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고 일축할 수 있다. 283


낭만주의 결혼관은 '제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짝'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는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283-284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싸움과 갈등은 금세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291-292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293




옮긴이의 말 - 진짜 러브스토리


결혼이 사랑의 결실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결혼 생활의 진정한 동력은 무엇일까? 295


일상의 비끗거림은 맹독으로 작용하기 쉽지만 성찰에 담그면 묘약으로 연금된다.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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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말했다. "고독이 두려우면 결혼하지 마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독이 두려우면 여행하지 마라."  9


이야기꾼의 의도는 언제나 듣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에 사로 잡히도록 하는 것이며, 그의 눈을 반짝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햄릿>의 서두에서, 햄릿의 아버지 유령이 한 말은 여행 작가의 이런 의도를 이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볍디가벼운 한마디로 네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젊은 피를 얼게 하며, 

네 두 눈을 궤도 이탈한 별처럼 만들고,

땋아서 묶어놓은 머리채를 풀어놓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세울 수 있으리라.'  10-11


여행의 기쁨,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글들이 이 모음집의 주제이다. 무론 여행의 고통도 일부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기억 속의 고통은 서정적인 향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12


일단 움직여야하고 또 어디로 갈지를 알아야 한다. - D. H. 로렌스 <바다와 사르디니아>  16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 길이 아주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아주 단호하게 방향을 틀거나 급경사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 제임스 볼드윈 <산 위에 가서 말하라>


오랫동안 떠난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온다. 당신은 결코 갔던 길을 되돌아오지 않는다. - <아프리카 방랑>  17


여행은 마음의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 있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여행은 거의 전적으로 내적인 경험이다. - <신선한 공기의 마니아>  18


여행이 무엇이든 그것은 꿈꾸고 기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낯선 풍경 속에 앉아 있으면, 그동안 무시무시하게 여겨졌던 온갖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때로는 낯선 침대에서 악몽을 꾸기도 하고, 수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사건들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혹은 재스민의 강렬한 향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다시 잊는 것인지도 모른다. - <신선한 공기의 마니아>


인생의 다른 경험들도 그렇듯이, 여행에서도 한 번으로 족할 때가 많다. - 헤라클레스의 원주>


여행을 하다 보면 나를 붙잡으려 하고 부모처럼 굴면서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 <바다에 면한 왕국>  19


모든 여행은 순환적이다.. 장대한 여행이란 영감을 얻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뿐이다.- <유라시아 횡단 기행>


내가 방금 도착한 장소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 바로 이 감정 때문에 나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내가 어디론가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 <헤라클레스의 원주>  20


여행에는 삶을 바꿔놓는 마술적 가능성이 있다. 어떤 장소에 홀딱 빠져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행복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여행자에겐 진부한 주제일 뿐이다. - <아프리카 방랑>  21


여행 중에 발명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기쁨]이라는 시에서 아름답게 표현한 견해와도 같다. 우리가 세상과 마주할 때 "모든 것은 처음으로 생겨난다." "여성을 끌어안는 남자는 모두가 아담이며" "어둠 속에서 성냠을 켜는 사람은 모두가 불을 발명하고 있다"라고 한 것처럼, 스핑크스를 처음으로 보는 사람은 모두가 그것을 새롭게 보고 있다. "사막에서 나는 방금 조각된 젊은 스핑크스를 보았다... 모든 것은 처음으로, 그러나 영원히 생겨난다." - <아프리카 방랑>


여행은 살면서 경험하느 가장 슬픈 기쁨 중 하나이다. - 슈타엘 부인 <코린느 혹은 이탈리아>  22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크든 작든 두 힘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하나는 은밀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장소로 나아가려는 충동이다. 하나는 내향성, 다시 말해 왕성한 사고와 환상의 내면세계로 향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향성, 다시 말해 사람들과 구체적인 가치들이 존재하는 바깥 세계로 향한 관심이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러시아 문학 강의>  23


최상의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다. 보고 조사하고 평가하기 위해 여행자는 홀로여야 하고 또 홀가분해야 한다. 여행자에게 타인은 방해가 될 수 있다. 타인은 자신의 두서없는 인상들을 여행자에게 밀어 넣기 때문이다. 말동무가 될 만한 사람들은 여행자의 견해에 방해가 될 것이다. 반면에 지루한 사람들은 "이것 봐, 비가 내리네" 또는 "여기 나무가 굉장히 많은데" 같은 허튼소리로 침묵을 망치고 주의를 흩뜨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사물을 분명히 보고 똑바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소 진부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비추어 특별하고 흥미로운 비전을 포착하기 위한 고독의 투명함이다. - <낡은 파타고니아 특급>  23-24


최고의 여해을 위해서는 단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있는 곳에 집중하라.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지 마라. 어떤 일거리도 떠맡지 마라. 연락 두절의 상태로 있어라. 떨어져 있어라.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당신과 어떻게 접촉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만을 생각하라. 이것이 여행의 이론이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24


여행에서 주용한 것은 홀로 도착하는 것, 유령처럼, 해 질 녘 낯선 지방에, 불이 훤한 중심지 대신에 뒷문으로, 대도시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나무가 울창한 시골에, 주민들이 이방인을 본 적이 별로 없지만 친절히 맞이해주는 곳에, 그러나 주민들이 방문객을 다리 달린 돈으로 보지 않는 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25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은 날에는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은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틀 연속 말을 하지 않은 날에는 내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다. 침묵은 나를 투명인간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익명으로 남는 것은, 그런 상태로 흥미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것은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다. 그것은 중독된다. - <바다에 면한 왕국>  26


여행자의 또 다른 자만은 자신이 본 것을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나간 길로 풍경을 대체하고 자신이 겪은 사건만을 중요하다 여긴다. 이 점에서 여행자는 착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착각이 전혀 없다면 여행자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 <바다에 면한 왕국>  28


여행이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 <동바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29


큰 도시들은 내게 도착지처럼 보인다. 여행자를 벽으로 둘러싸며 멈추게 하는 곳, 거대한 건물들이 여행자에게 "이제 도착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종점의 의미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곳처럼 보인다. - <헤라클레스의 원주>  30


내게 최고의 여행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침범을 포함하고 있다. 위험은 여행자에게 도전이자 초대이다. 모험을 파는 것은 여행 산업의 한 주제가 되었으며, 여행은 전리품이 되었다. - <신선한 공기의 마니아>  31


모든 장소는, 그곳이 어디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방문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방문객이 뜸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장소가 내게는 가장 가치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이런 곳은 가장 응집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해독 가능했고, 거의 언제나 나를 고양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 <헤라클레스의 원주>  32


소설을 쓰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은 낯선 풍경 속을 여행하는 것이다. - <바다 괴물들을 지닌 일출>  35


보통 여행자들은 대담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의 죄스러운 비밀은 여행이 지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장 게으른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여행은 뼛속까지 게으른 일이며, 교묘하고 빈둥거리는 회피이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범하면서 우리의 뚜렷한 부재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방랑하는 식객으로서 아주 불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36-37


여행자는 낭만적인 관음증 환자 주에서도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여행자의 인격 속 꼭꼭 숨겨진 부분에는 허영과 건방짐, 거의 병적이라고 할 수 있는 허언증이 있다. 여행자의 최악의 악몽이 비밀경찰이나 주술사, 말라리아가 아니라, 다른 여행자와 만나는 일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호기심도 있다. 심지어 가장 소심한 환상가들도 때때로 그들의 환상을 수행하는 만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때때로 신속히 떠나야만 한다. 무단침입은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움이다. 게으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목적 없는 기쁨이야말로 순수한 기쁨이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37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누그러운 견해를 일생 동안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여행기>  38


여행자는 사람들의 누넹 그 본연의 모습으로 비쳐야만 한다. 하느님의 천국에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종교 없이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닳아빠진 셔츠를 입었지만 순수한 인간의 심장을 가졌으며 오래 고통받는 사람이다. 비록 길이 해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세계의 끝까지 여행할지도 모른다. - C. M. 다우티 <아라비아 사막에서의 여행>  39


여행기와 소설의 차이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것과 상상으로 아는 것을 발견하는 것의 차이이다. - <유라시아 횡단 기행>


인간적인 어떤 것이 기록될 때, 훌륭한 여행기가 탄생한다. - <지구의 끝으로>  41


나는 개가 걷는 속도로 여행했을 때 내가 최고의 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가드너 맥케이 <지도 없는 여정>  43


모든 진정한 연애가 그 나라 말을 거의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매혹적인 어둠으로 더 깊이 끄는 외국으로의 여행처럼 느껴진다면, 모든 외국 여행도 연애가 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를 골똘히 생각한다.. 모든 훌륭한 여행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옮겨져 공포와 경이의 한가운데에 놓이는 것이다. - 피코 아이어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46


그는 자신을 관광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여행자였다. 그는 그 차이가 부분적으로는 시간의 차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관광객이 일반적으로 몇 주 후나 몇 달 후에 집으로 서둘러서 되돌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한 장소나 그다음 장소에 똑같이 속해 있다. 여행자는 몇 년에 걸쳐 지구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 폴 볼스 <셸터링 스카이>


관광객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모르고,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를 모른다. - <오세아니아의 행복한 섬들>


관광은 진짜 게으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관광은 고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엿듣는 학문과 매우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 <유라시아 횡단 기행>  47


여행은 휴가가 아니며, 대개는 휴식의 정반대이다. - <낡은 파타고니아 특급>  48


사치는 관찰의 적이며, 당신이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좋은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비용이 많이 드는 탐닉이다. 사치는 우리를 망치고 어린애 취급하며 우리가 세계를 아는 것을 막는다. 이것이 사치의 목적이다. 또한 이것은 호화 유람선들이나 값비싼 호텔들이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이유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부자들은 결코 경청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비싼 생활비에 대해 끊임없이 투덜댄다. 실제로 부자들은 대개 자신이 가난하다고 불평했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48-49


관광은 정적인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추구되며, 대개 기동력 있는 부자들이 기동력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분별없고 서툰 방문이다. - 낡은 파타고니아 특급>


사람이 큰돈을 벌고 나면 좋지 않은 청취자가 되고, 참을성 없는 관광객이 된다. - <헤라클레스의 원주>  49


도보로 아프리카의 국경을 넘은 일이 없는 사람은 그 나라에 들어간 적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도의 공항은 단지 신뢰를 얻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가장자리에 있는 먼 국경은 이 나라의 중심을 이루는 현실이다. - <아프리카 방랑>  52


기차를 타고 가는 여정은 여행이다. 그 밖의 탈것들, 특히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과정은 그저 이동일 뿐이다. 여행은 비행기가 착륙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 <유라시아 횡단 기행>  54


기차만큼 자세한 관찰을 유발하는 운송 수단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여해에 대한 문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버스 여행에 대한 문학도 그리 많지 않다.

기차는 누구든 그 안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자고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을 쓸 수도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지나치는 풍경과 기차 자체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행기 여행은 늘 똑같지만 기차 여행은 언제나 새롭다.  66


여행에서 해 질녘 기차에 올라 춥고 떠들썩한 도시에서 침대칸 문을 닫고는, 아침에 새로운 위도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예감하는 것보다 멋진 일은 없는 것 같다. - <낡은 파타고니아 특급>


재즈의 반은 철도 음악이며, 기차의 운동과 소음은 재즈의 리듬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재즈의 시대는 또한 철도의 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음악가들은 기차로 여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여행을 하지 않았고, 약동하는 템포, 덜컹거리는 소시, 쓸쓸한 휘파람 소리가 노래들 속으로 들어왔다. 노선이 지나가는 철도 주변의 소도시들도 노래들 속으로 들어왔다. - <낡은 파타고니아 특급>  67-68


기차는 운송 수단이 아니라 그 지방의 일부이며 일종의 장소이다. - <중국 기행>


기차는 최소한의 위험으로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한다. - <유라시아 횡단 기행>  70


즐거움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글 중에서 아마도 여행기나 항해기보다 즐겁거나 유익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그 글이 즐거움과 인류에 대한 정보라는 양 측면을 목적으로 쓰였다면 말이다. 거기에다가 여행자들의 대화가 열렬히 추구된다면, 전반적으로 더 교훈적이고 재미있어질 것이므로, 그들의 책은 훨씬 더 유쾌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 헨리 필딩 <리스본 항해기> 


인간의 관습과 풍속이 모든 곳에서 똑같다면, 언덕과 계곡과 강이 다르다고 해도, 여행만큼 따분한 일은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지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점들은 여행자에게 그의 노동에 걸맞은 만족을 거의 주지 못할 것이다. - 헨리 필딩 <리스본 항해기> 85


내가 여행 생활을 하면서 내내 존경해온 여행가는 작가 더블라 머피이다. ..

그녀는 결혼한 적이 없었지만 레이첼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딸을 홀로 키우면서 인도, 발티스탄, 남미, 마다가스카르 등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은 당신이 공동체의 선의를 신뢰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88-89


'여행할 나라를 선택하라

여행 안내서를 활용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들을 확인하라

그런 뒤 그 반대 방향으로 가라'

이 조언은 정치적 정당성에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여행자와 관광객을 뚜렷하게 구분 짓는 것이 '속물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또한 현실적이기도 하다. 현실 도피적인 여행자는 공간, 고독, 침묵을 필요로 한다. 비극적이게도 나는 길이 나면서 자연 서식자가 사라져가는 것을 수차례 목격해왔다.  90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라'

어떤 종교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채 여행한다면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당신의 여행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 주리라고 믿는다 해도, 전문적인 사회학적 혹은 정치적인 연구는 불필요하다. 그러지 않아도 여행을 하다 보면 현 정치 상황이 충분히 드러날 것이다... 여행하기 전에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금기 사항들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워라. 그런 뒤 이 금기들을 성실하게 존중하라. 선물로 돈을 주는 것이 부적절한 곳에서 어떤 대체물이 그 역할을 행하는지를 알아내라.  91-92


'혼자 여행하거나 사춘기 이전의 아이와 함게 여행하라'

어린이의 존재는 공동체의 선의에 대한 당신의 신뢰를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종이나 문화적인 차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92


'주의하되 소심해지지 마라'

단지 용감하거나 무모한 사람들만이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곳을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아무 근거가 없다. 사실 현실도피주의자들은 극도로 주의 깊다. 이것이 그들의 특징이며 생존 메커니즘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다. 그들은 출발 전에 가능한 위험들을 검토하고, 일어날 법한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한다. 

여기에 기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병이 반쯤 비었는가 혹은 반쯤 찼는가? 왜 집에 편안히 있지 않고 외국에서 당신의 뼈를 부러뜨리려고 하는가? 낙천주의자들은 재앙이 발생할 때까지 믿지 않고, 그래서 두려워하지도 않는데, 이는 용감함의 반대라고 할 수 있다.  96


존 스타인벡 : 여행에 대한 글쓰기는 개미탑을 쌓는 행위이다. 

그것은 형태도, 모양도, 목적도 없고, 심지어 요점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것은 가장 예리한 사실주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 주위에서 보이는 것은 개미가 파낸 흙이 땅 위에 쌓인 개미탑처럼 목적과 요좀이 없기 때문이다. - 1961년 7월의 편지 <스타인벡:편지 속의 삶>  103


여행할 때, 지식을 집으로 가져오고 싶다면 몸에 지니고 와야 한다. - 새뮤얼 존슨의 말, 제임스 보즈웰의 <존슨의 생애>중에서  149


여행가의 조건 - 당신이 건강하고, 모험심이 강하며, 재산이 적당히 있고, 마음을 특정 대상에 집중할 수 있다면 여행하라. - 프랜시스 골턴  201


강력한 사람이 반드시 가장 뛰어난 여행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일을 최상으로 이루는 데 관심을 갖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여행가가 된다. - 프랜시스 골턴


따분한 여행은 일행을 서로 화나게 하기 쉽다. 그러나 여행가는 힘든 상황에서도 그의 의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두 배로 친절하게 대하고, 모욕적인 말을 점잖게 받아들이며, 응수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을 의무라고 여긴다. 이러한 때에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너무 딱딱하게 구는 것은 과잉일 뿐이다. 왜냐하면 정작 어려운 것은 말다춤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프랜시스 골턴  202


한두 가지 시련은 대부분의 위대한 여행기들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행자는 유쾌하고 수월한 여행으로부터 벗어나 운 나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뒤 시련은 책에 진지함과 깊이를 더해준다. 그 결과 우리는 여행자를, 자신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한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205


일반적으로 영국인의 여행의 역사는 햇빛을 찾아 떠난 역사이기도 하다.  220


여행자는 이방인이다.  228


이방인이 되는 것은 어렵다. 여행자는 아무 권력도 영향도 알려진 정체성도 없다. 이것은 여행자에게 낙천주의와 가슴이 필요한 이유이다. 왜냐하면 확신 없는 여행은 비참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행자는 익명이고 무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속기 쉽다. 여행자는 '미국인' 혹은 '외국인'으로 알려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떠한 권력도 없다.  230


나는 어떤 곳에 가기 위해 여행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여행할 뿐이다. 나는 여행을 위해 여행한다. 중요한 일은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과 장애물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문명의 이 깃털 침대로부터 내려오기 위해, 그리고 잘린 부싯돌들이 뿌려진 지구를 이 발밑에서 느끼기 위해.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당나귀와 함게한 세벤느 여행>


여행은 기껏해야 자서전의 단편일 뿐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세벤느 일기:프랑스 고산 지대 여행에 대한 노트>  239


나는 기차 여행의 주된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차는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간다. 기차는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거의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그 지방의 차분함과 정적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날듯이 달리는 차량들 안에 우리가 머물러 있는 동안, 사념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인적이 드문 정거장에서 내린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질서 잡힌 남쪽>  240


모든 진지한 순례자는 순례의 장소를 발로 여행한다. 걷는다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이다. 홀로 걷기는 우리를 명상으로 이끈다. 순례를 가리키는 한자는 '산에게 경의를 표함'이라는 뜻이다.  244


보행자는 사물을 명료하게 본다. 보행자의 머리 위의 태양, 보행자의 얼굴을 스치는 바람, 보행자의 발밑에 있는 땅 등.  253


신성화된 걷기는 육체적인 운동과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걷기는 요가나 정신적인 행위에 더 가깝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말하는 걷기는 병자가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아령이나 의자를 드는 운동과 전혀 다르다. 걷기는 하루 일과이며 모험이다." 걷기는 사고의 과정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걸을 때 반추하는 유일한 동물인 낙타처럼 걸어야 한다. 어떤 여행자가 워즈워스가 하인에게 그의 주인의 서재를 보여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가 그의 도서관이에요. 그러나 그의 서재는 야외랍니다.'"  261-262


모트 로젠블룸.. 나는 그가 40년 이상 먼 곳들을 여행할 때 도움이 되었던 몇 가지 여로의 규칙들을 제공해달라고 부탁했다..

셋 - 많은 메모를 하고, 해독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메모들을 재독하라. 아니면 그건 단지 나에게만 해당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녹음기가 신뢰할 만하다. 하나 가지고 다녀라. 당신이 놓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놀랄 것이다. 

열 - 어떤 먼 곳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빠져나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아내는 것이다. 즉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 시간표를 체크하라. 어떻게 떠나는지를 미리 알아야 한다.  355-358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여행기인 <슬픈 열대>

그는 철학자로 훈련받았지만, 인류학과 언어학의 탁월한 이론가였다. 그는 또한 신화학의 해설자였고 구조주의의 서술자였다. ..

여행은 보통 공간의 이동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부적절한 개념이다. 여행은 공간, 시간, 사회 계층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각각의 인상은 이 세 개의 축에 공동으로 연관될 때에만 규정될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은 본질적으로 3차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여행에 대해 적절한 묘사를 하려면 다섯 개의 축이 필요하다. - <슬픈 열대>


여행자가 여행을 통해 자신의 문며오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문명과 접촉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러한 예는 점점 줄어들었다. 현대의 여행자는 인도를 방문하든 미국을 방문하든, 생각보다 덜 놀란다. - <슬픈 열대>


아마도 그때의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막보단느 내 마음의 사막에 대한 탐험이었다. - <슬픈 열대>  359-360



하나 - 집을 떠나라.

둘 - 혼자 가라.

셋 - 가볍게 여행하라.

넷 - 지도를 가져가라. 

다섯 - 육로로 가라.

여섯 - 국경을 걸어서 넘어라.

일곱 - 일기를 써라.

여덟 - 지금 있는 곳과 아무 관계가 없는 소설을 읽어라.

아홉 - 굳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야 한다면 되도록 사용하지 마라.

열 - 친구를 사귀어라.  48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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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교사로 자기 차고에서 목을 맸던 나이 지긋한 남자가 "아웃사이더"가 자살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살을 두고 누구나 하게 되는 한 가지 행동은 자살에 대해 설명하는 겁니다. 설명하고, 판단을 내리죠. 남겨진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매우 무시무시한 일이에요. 자살에 대해 견해가 필요할 정도로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죠. 어떤 사람들은 범죄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영웅적이고 용기 있는 행위로 여기는 관점도 있죠. 그다음으로 결벽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 삼는 건 이겁니다. 정당한 자살인가,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가?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좀더 임상적인데, 징계하려 하거나 이상화하혀 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살자의 정신 상태를, 자살할 때 그가 어떤 정신 상태에 있었는지를 설명해 보려 하죠."  23-24


페긴이 그의 집에 드렀다. 버몬트 주 서쪽에 있는 규모는 작지만 진보적인 여자대학인 프레스콧에 최근 강사 자리를 얻은 페긴은 학교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빌린 조그만 집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액슬러가 사는 곳은 거기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로, 주 경계선 건너편의 뉴욕 주 외곽에 있었다. 방학 동안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던 발랄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를 본 게 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이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몸이 유연하고 가슴이 풍만한 마흔 살의 여자가 있었다...

그 첫날 오후, 액슬러는 페긴을 집 안으로 들이다 발을 헛디뎌 널찍한 돌계단 위로 세게 넘어졌는데,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구급약은 어디 있어요?" 페긴이 물었다. 그가 말해주자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찾아들고 나와 과산화수소를 묻힌 솜으로 상처를 씻어내고 반창고 두어 개를 붙였다. 그리고 물도 한 컵 가져다주었다. 누가 그에게 물을 가져다준 것도 몹시 오랜만이었다.

그는 저녁을 먹고 가라며 그녀를 붙들었다. 결국 그녀가 저녁을 준비했다. 누가 그에게 저녁을 차려준 것도 몹시 오랜만이었다. 그가 주방 식탁에 앉아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맥주 한 병을 비웠다. 냉장고에는 파르메산 치즈 한 덩이와 계란, 베이컨, 크림 반 통이 있었는데, 그것들과 파스타 1파운드로 그녀를 둘이 먹을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의 주방에서 그녀가 자신의 주방인 것처럼 편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그녀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기였을 때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몸이 탄탄하고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생기 가득한 존재였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재능을 잃은 채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더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행복했다. 뜻밖의 기분이었다. 보통 그는 저녁식사 때 하루 중 가장 우울했다. 그녀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그는 거실로 가서 브랜들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음반을 얹었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들으려 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시절에는 늘 음악을 틀어놓았었다.

"아주머닌 어떻게 된 거예요?" 스파게티를 먹고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신 뒤 그녀가 물었다.

"아무렴 어떤가. 너무 지루한 사연이네."

"아무도 없이 여기서 혼자 지낸 지 얼마나 된 거예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여기 앉아서 내가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흐르리라는 생각을 하면 때로 놀랍기도 해. 내가 죽었을 때도 그럴 테지."

"배우 일은요?" 그녀가 물었다.

"난 이제 배우가 아니야."

"그럴 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것도 자세히 이야기하기엔 지루한 사연이지."

"은퇴한 거예요,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돌아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가 일어서자 키스했다.

그녀는 놀라 미소를 짓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난 성적으로 평범하지 않아요. 여자랑 자요."

"그건 알아채기 어렵지 않더군."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두번째로 키스했다.

"그런데 뭘 하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안다고 말하진 못하겠는걸. 남자하곤 한 번도 없었나?" 그가 물었다.

"대학 때요."

"지금도 여자와 지내나?"

"대체로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저씬요?"

"난 아니야."

그는 근육이 발달된 그녀의 팔에서 힘을 느꼈고, 그녀의 묵직한 가슴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다시 한번 키스했다. 그런 다음 그녀를 거실 소파로 이끌어싿.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청바지를 벗었고,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남자와 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레즈비언과 했고.

몇 개월 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 오후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왔지?" "당신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사나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보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라고 안 될 게 있나?" "늘 그런 식으로 계산하며 사나?" "계산이 아니에요. 원하는 걸 추구하는 거죠." 그녀는 덧붙였다. "더는 원치 않는 걸 추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58-65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그들 사이를 알게 되길 원치 않았다. 그들은 매우 속상해할 게 분명했다.  69


그럼에도 어느 날 아침식사 때 액슬러는 이렇게 말했고, 그 말에 그녀만큼이나 그 자신도 놀라고 말았다. "이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건가, 페긴? 그동안 서로 즐겁게 지냈고, 색다른 기분도 강렬했고, 감정도 격렬했고, 쾌락도 만끽하긴 했지만, 난 지금 당신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궁금하네."

"그럼요, 알아요. 난 이 생활이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끝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내 말뜻을 알겠지?"

"그럼요. 나이 문제, 성적 이력의 문제, 당신과 우리 부모님의 오래된 관계. 이것 말고도 스무 가지는 더 있을걸요. 하지만 그 가운데 날 괴롭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당신을 괴롭히는 게 있어요?"

"여러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기 전에 우리가 물러서는 게 좋지 않을까?" 그가 대꾸했다.

"행복하지 않아요?" 그녀가 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은 정말 위태로웠네. 이젠 희망이 산산 조각나는 걸 견뎌낼 힘이 없어. 결혼생활은 불행할 만큼 불행했고, 그전에도 여러 여자와 이별을 경험했네. 그건 늘 고통스럽고, 늘 가혹하지. 그래서 이쯤 살고 보면 그런 걸 자초하고 싶지 않아."

"사이먼, 우린 둘 다 버림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나락에 떨어진 상태였는데, 부인은 당신 혼자 감당하라고 내버려둔 채 짐을 꾸려 떠나버렸죠. 난 프리실라한테 배신당했고요. 나를 떠났을 뿐 아니라, 잭이라는 이름의 수염 난 남자가 되기 위해 내가 사랑했던 몸도 버렸어요. 혹시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들 때문도 아니고 당신이나 내 과거 때문도 아니고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당신에게 모험을 하라고 권하고싶진 않아요. 당신에겐 이 상황이 모험인 걸 알아요. 어쨌거나 우리 둘 다에게 모험이에요. 나도 모험이라고 느끼니까. 물론 당신하곤 종류가 다르지만요.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당신이 날 떠나는 거예요. 이제 당신을 잃으면 난 견디지 못 할 거예요. 그래야만 한다면 견뎌보겠지마, 모험인 게 문제라면, 우린 이미 모험이 기렝 들어섰어요. 이미 저질러버렸다고요. 물러서서 피해가기엔 너무 늦었어요."

"그러니까, 잘 지내는 동안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인가?"

"바로 그거예요. 난 당신을 원해요. 알잖아요. 당신이 내 사람이라고 믿게 됐어요. 나한테서 억지로 떠나려 하지 마요. 난 지금 이대로가 좋고, 이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아요. 그것 말고는 할말이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이 노력한다면 나도 노력하겠다는 것뿐이에요. 이젠 잠깐의 외도 같은 게 아니에요."

"우린 모험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우린 모험의 길에 들어섰어요." 그녀가 대꾸했다.

이 네 마디 말은 그에게 버림받는다면 그녀가 최악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필요하다면 연속극에 나올 법한 말이라도 하겠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프리실라가 준 충격과 수차례에 걸친 루이즈의 최후통첩으로 아직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으니, 저러는 걸 기만이라고 할 순 없지. 우리가 본능적으로 택하는 전략이니까. 하지만 결국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액슬러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관계를 끝내버릴 수 있는 더 강한 위치에 올라서고 나는 너무 우유부단해서 이 관계를 지금 끊어버리지 못한 탓에 힘업슨 위치로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녀가 강해지고 내가 약해졌을 때 가해질 타격을 나는 견뎌내지 못하겠지. 

그는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이 명료하게 적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예상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래를 바꾸기에 지금 그는 무척 행복했다.  71-73


척추 통증 때문에 그는 그녀와 섹스할 때 그녀 위로 올라갈 수 없었고 심지어 옆에서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반듯이 눕고, 그녀는 체중이 그의 골반에 실리지 않도록 무릎과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그녀는 남자 위에서 하는 법을 다 잊어버려 그가 두 손을 사용해 그녀에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줘야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페긴이 수줍게 말했다. "당신은 말 등에 앉아 있는 거야." 액슬러가 설명했다. "말을 타봐." 그가 그녀의 항문에 엄지손가락을 밀어넣자 그녀는 쾌감으로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누가 거기에 뭔가를 집어넣은 건 처음이에요."  "그럴 리가."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그곳에 성기를 삽입하자 그녀는 더 밀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받아들였다. "아픈가?" 그가 물었다. "아파요. 하지만 당신이잖아요." 끝나고 나면 그녀는 자주 손바닥에 그의 성기를 올려놓고 발기가 풀리는 것을 응시하곤 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물었다. "이건 꽉 채워줘요." 그녀가 말했다. "딜도나 손가락으론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이건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존재예요." 그녀는 곧 말 타는 법에 숙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날 때려요." 그가 그녀를 때리면 그녀는 조롱하듯 말했다. "지금 그게 때린 거예요?" "얼굴이 이미 빨개졌잖나." "더 세게." 그녀가 말했다. "좋아, 그런데 왜?'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아프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어린 여자애 같은 느낌이 들고, 내가 창녀 같은 느낌이 드니까. 어서 해요. 더 세게."

어느 주말 그녀는 섹스 기구들이 담긴 작은 비닐주머니를 가져와서는 침대에 들려 할 때 시트 위에 쏟아놓았다. 딜도 같은 것이라면 그도 볼 만큼 봤지만, 가죽 벨트로 몸에 딜도를 단단히 고정해서 한 여자가 다른 여자 위로 올라가 삽입할 수 있게 만든, 그 마구처럼 생긴 걸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그 장난감들을 갖고 오라고 부탁한 것은 그였다. 그는 그 기구를 양 허벅지에 꿰어 엉덩이 위로 끌어올린 다음 벨트처럼 단단하게 몸에 채우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옷을 입고 있는 총잡이 같았다. 거드럭거리며 걷는 총잡이 같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신의 음핵 위치에 홈이 있는 벨트에 초록색 고무 딜도를 끼워 넣었다. 알몸에 그것만 입은 채 그녀는 침대 옆에 섰다. "당신 것도 보여줘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팬티를 벗어 침대 가장자리 너머로 던져버렸고, 그녀는 베이비오일을 미리 발라놓은 초록색 음경을 움켜쥐고 남자처럼 자위하는 흉내를 냈다. 그가 감찬조로 말했다. "그럴듯한데." "내가 이걸로 한번 해주면 좋겠죠." "고맙지만 됐어." 그가 말했다. "안 아프게 할게요." 그녀가 어르듯, 교태를 부리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약속해요. 아주 부드럽게 해줄게요." "재밌겠군. 하지만 부드럽게 해줄 것 같진 않은데." "겉모습에 속으면 못써요. 아이, 하게 해줘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게 될걸요. 이건 신천지예요." "당신이 좋아하겠지. 됐어, 난 당신이 내 걸 빨아주면 더 좋겠는데." 그가 말했다. "내 음경을 단 채로." 그녀가 말했다. "좋지." "커다랗고 두꺼운 초록색 음경을 단 채로."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난 커다란 초록7nh 7nh 7nh 7nh 7nh 7nh 7nh 7nh색 음경을 달고 있고, 당신은 내 젖꼭지를 가지고 노는 거예요." "그거 괜찮은데." "그리고 내가 당신 걸 빨아준 다음에는,"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내 걸 빨아주는 거예요. 내 커다란 초록색 음경을 입안에 넣는 거예요."

"그건 할 수 있지."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단 말이죠. 희한하게 선을 긋네요. 여하튼 나 같은 여잘 보고 성적으로 흥분하는 걸 보면 당신도 아직 엄청 꼬여 있는 남자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내가 꼬인 남자일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은 더는 당신 같은 여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이제 아닌가요?" "이백 달러짜리 머리를 한 채로는 아니지, 그런 옷들을 입고서도 아니지.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따라 구두를 사게 된 이상 아니지." 그녀의 한 손이 계속 딜도를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당신 정말로 지난 열 달 동안 내 안에서 레즈비언을 몰아냈다고 생각해요?" "요즘도 여자하고 잔다는 건가?" 그가 물었다. 그녀는 그저 딜도만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거야, 페긴?" 자유로운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가 물었다. "두 번요." "루이즈하고?" "미쳤어요?" "그럼 누구하고?"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차를 몰고 학교로 가는데 야구장에서 여자 소프트볼부가 경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차를 세우고 내려 그쪽으로 가서 벤치 옆에 서 있었죠."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털어놓았다. "경기가 끝난 뒤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투수랑 같이 집으로 갔어요." "그럼 두번째는?" "그 투수의 상대팀 투수요." "그런 식이었다면 꽤 많은 선수들이 언제 자기 차례가 오나 기다렸겠는데." 그가 말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여전히 초록색 음경을 애무하며 그녀가 말했다. "아무래도 페긴 마이크." [서부의 플레이보이]에서 연기한 이후 사용한 적 없었던 아일랜드 억양으로 그는 말했다. "다시 그럴 계획이라면 나한테 말해주는 게 좋겠는데. 당신이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녀를 붙잡아두고 독차지하기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열정이 우스꽝스러워졌다는 걸 알면서도, 아일랜드 사투리 뒤에 애써 감정을 숨기면서 그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그러고는 정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입을 다물길 바랐기 때문인지 그녀는 천천히 그의 성기를 끝까지 입에 밀어넣었다. 그의 시선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녀의 음경에 붙들려 있었고, 그러는 동안 둘의 연애가 헛되고 어리석다는 생각, 페긴이 살아온 내력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생각, 페긴이 그의 손에 닿지 않는데 있다는 생각, 새로운 불행을 자초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 들이, 그리고 그의 내면의 무력감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사람은 이런 이상한 결합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이함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공포도 있었다. 또다시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제2의 루이즈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비난하고 발광하고 복수하는 전 애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  101-105


액슬러는 트레이시를 페긴과 함께 뒷좌석에 태우고 텅 빈 캄캄한 시골길을 따라 집으로 차를 몰았다. 꼭 트레이시를 유괴하는 것 같았다. 페긴이 신속하게 행동에 들어간 것에 그는 놀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침실에 들어가자 페긴은 비닐주머니에 든 기구들을 침대에 쏟아놓았다. 그중에는 아주 부드럽고 가느다란 검정 가죽끈 다발이 달린 채찍 같은 기구도 있었다.  121-122


페긴은 그 기구를 입고 가죽 벨트를 조정해 단단히 고정하고는 딜도가 똑바로 앞을 향하도록 끼웠다. 그런 다음 트레이시 위로 몸을 숙이고 그녀의 가슴을 주무른 다음 아래쪽으로 미끄러져내려가 딜도를 부드럽게 트레이시에게 삽입했다. 페긴은 트레이시가 몸을 열도록 힘쓸 필요가 없었다. 

초록색 음경이 그 아래 널브러진 풍만한 나신 속으로 처음에는 느리게, 이윽고 보다 빠르고 세게, 그다음에는 한층 더 세게 찌르고 들어갔다 나왔다 했고, 트레이시 몸의 모든 굴곡이 그 움직임과 일체가 되어 움직였다.  123


그의 심장이 흥분으로 쿵쾅거렸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음탕한 눈길로 몰래 엿보는 판(그리스 신화에서 호색한으로 묘사되는 반인반수의 목신(牧神 칠목 귀신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페긴은 트레이시 옆에 등을 대고 누워 쉬며 조그만 검정 가죽 채찍으로 트레이시의 긴 머리칼을 빗질하듯 쓸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앞니 두 개를 보이며 예의 그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액슬러를 건너다보며.. "당신 차례예요. 이애를 더럽혀줘요." 그러곤 트레이시의 한쪽 어깨를 잡고 "조련사가 바뀔 시간이야"라고 속삭이고는 낯선 여인의 커다랗고 따스한 몸을 액슬러 쪽으로 부드럽게 굴렸다.  124


자정 무렵 그들은 트레이시를 그녀의 차가 세워져 있는 호텔 옆 주차장으로 다시 데려다줬다. 

"두 분은 이런 거 자주 하세요?" 트레이시가 뒷좌석이ㅔ서 페긴의 품에 안긴 채 물었다.

"아니." 페긴이 말했다. "넌?"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래서 어땠어?" 페긴이 물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요. 머릿속에 생각해야 할 온갖 것이 꽉 차 있어요. 회로가 끊겨버린 기분이에요. 약을 한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이런 짓을 할 객기는 어떻게 낸 거야?" 페긴이 트레이시에게 물었다. "술 기운에서?"

"당신이 입은 옷 때문에요. 당신 외모가 주는 인상 때문에요. 두려워할 필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잖아요. 남자분, 그 배우 맞죠?" 투래아사눈 액슬러가 그 차 안에 없기라도 한 것처럼 페긴에게 물었다.

"맞아." 페긴이 대답했다.

"바텐더가 말해줬어요. 당신도 배우예요?" 그녀가 페긴에게 물었다. 

"이따금은." 페긴이 말했다.

"미친 짓이었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맞아." 페긴이 대답했다. 단순히 서투른 애호가가 아니었던, 상황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채찍을 휘두르는 딜도 전문가 페긴이.

작별 인사를 나눌 때 트레이시는 페긴에게 열정적으로 키수했다. 페긴도 열정적으로 화답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이 만났던 호텔 옆 주차장에서 두 사람은 잠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런 다음 트레이시가 자기 차에 올랐고, 액슬러는 그녀가 차를 몰고 떠나기 저넹 페긴이 그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조만간 보자."  125-126


스스로 자신에게 가하던 고통은 끝났다. 그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비통함을 밀어냈고, 지긋지긋한 두려움을 몰아냈다. 그에게서 달아났던 모든 것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인생 재건이 어디선가 시작되어야 했는데, 그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 일을 위해 고용된 여자인 듯한 페긴 스테이플퍼드에게 그가 빠져든 순간 시작되었다.  130


그는 자그마한 몸집의 시블 밴 뷰련을, 교외 주택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부로 체중이 100파운드(45킬로그램)도 안 나가지만 자신이 작정한 일을 해치운, 무시무시한 살인자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그녀를 떠올려보라고 자신을 다그쳤다. 그래,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악귀 같은 존재였던 남편에게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할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면, 나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무자비한 최후를 계획해 실행한 그녀의 강인함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하며 별거중인 남편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아가서,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초인종을 누르고, 사냥총을 들어올리고, 그리고 남편이 문을 열었을 때 주저 없이 코앞에서 두 발을 발사하기 위해 그녀가 동원한 무정한 광기를.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시블 밴 뷰련이 용기의 기준이 되었다. 마치 간단한 한두 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일을 실행할 수 있게 해주기라도 한다는 듯 그는 그 격려의 말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마침내 연극에서 자살을 하는 것인 척하면 되겟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체호프의 희곡을 연기하는 것처럼. 이보다 더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이것으로 다시 연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레즈비언의 십삼 개월간의 실수이자, 터무니없고 치욕스럽고 허약하고 하찮은 존재이므로 이일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걸 걸어야 할 것이다.  149-150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주 후반에 청소를 하러 온 여자가 다락방 바닥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의 옆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콘스탄틴 가브릴로비치가 총으로 스스로를 쏘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갈매기>의 마지막 대사였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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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 '보통 사람'이라는 뜻.  63


흙은 관의 나무 뚜껑 위에 떨어지면서 사람의 존재 안으로 빨려드는 소리를 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64


아버지를 묻는 이 일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65


예순다섯 살이었으며, 막 퇴직을 했고, 이제 세번째로 이혼한 상태였다. 그는 메디케어(의료보험의 한 종류)를 받았으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고, 변호사와 함께 앉아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것-그것은 나이가 드는 것, 심지어는 아마도 죽어가는 것에서 가장 좋은 부분일 것이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시간이 흐르면 갱신하고 수정하고,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것.  68


이 사악한 새끼들!(그의 아들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102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역효과를 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108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는 깯라았다. 더군다나 기적적으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112


(피비, 둘째 부인)"이 여자는 당신한테서 세실리아를 없애주고, 훌륭한 딸을 낳아주고, 당신 인생을 완전히 바꿔줬어. 그런데 당신은 그 여자를 위해 뭘 해야 좋을지 몰랐어. 덴마크 년하고 그 짓을 하는 것 말고는 말이야... 모든 일의 기초는 신뢰야. 안 그래? 안 그래?"  126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한느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도잉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이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빌어먹을 거짓말이란 말이야. 야, 이런 짓을 계속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런 일은 다 너무 잘 알려진 거잖아.  127


"뜨거움은 사라졌어. 아내도 나이가 들어 예전의 그 여자가 아니거든. 하지만 아내는 육체적 애정이 있는 걸로 충분해. 그냥 침대에 남편과 함께 있는 거. 아내는 남편을 안고, 남편은 아내를 안고, 육체적 애정, 부드러운 태도, 동지애, 친밀함... 하지만 남편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남자는 없으면 살 수가 없거든. 그래, 하지만 이봐요, 당신은 이제 진짜로 없이 살게 될 거예요. 많은 것 없이 살게 될 거야. 없이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제대로 알게 될 거야!"  128


어떤 의미에서는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이게 각오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집에 와보니 이미 쓰러져서 죽은 상태더라고요. 끔찍한 충격이었어요.  148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자신의 에스프리를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앗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자책에 박자를 맞추어 쳤다. 신장제세동기를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빗나갔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랜디나 로니보다 훨씬 잘 알 수 있었다. 보통 냉정하던 이 사람은 마치 기도하는 광신자처럼 사납게 자기 가슴을 쳤다. 이 실수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실수, 모든 뿌리 깊고, 멍청하고, 피할 수 없는 실수들로 인한 가책에 시달리다-자신의 비참한 한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면서도, 마치 삶의 모든 파악할 수 없는 우연을 스스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하위도 없어! 이렇게, 심지어 하위도 없이 끝이 나다니!"  164-165


그는 세 번 이혼했다. 한때 헌신보다는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했던 연쇄 남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계속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할 터였다. 이제부터는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166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밀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





옮긴이의 말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작가인 필립 로스 자신이 충분히 공감하는 말, 나아가서 그 자신이 소설을 쓰는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느낌도 든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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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도시


대합실.. 퀸은 혹시 오른편 젊은 여자 쪽에는 읽을 만한 것이 있을까 해서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 안팎으로 보였고 왼쪽 뺨에는 분홍색 화장분으로 덮어 감추기는 했지만 여드름이 몇 개 나 있었다. 그녀는 쩍쩍 소리를내며 껌을 씹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검붉은 색의 표지로 된 문고판 책을 읽고 있어서 퀸은 제목을 보려고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참으로 뜻밖에도, 그것은 바로 그가 쓴 책이었다. 맥스 워크가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인 윌리엄 윌슨의 <강요된 자살>. 퀸은 종종 그런 상황,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자기의 독자와 만나는 즐거운 상황을 상상해 보았었다. 아니, 심지어는 그다음에 이어질 대화를 생각해 보기까지 했다. 낯선 사람이 자기 책을 칭찬하면 상냥하게 삼가는 태도를 보이다가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어 겸손하게 [굳이 원하신다니] 하면서 속표지에 서명을 해주기로 동의하는, 그런데 이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그는 몹시 실망스러웠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자기가 그처럼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던 그 페이지들을 건성으로 훑어 내리는 태도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퀸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 그녀가 책을 읽느라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면서 글줄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그녀의 눈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마도 그가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에 그녀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이렇게 물은 것을 보면.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아무 일 아닙니다." 퀸이 애매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단지 그 책이 마음에 드는지 알고 싶어서요."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퀸은 그쯤에서 이야기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그대로 물러서려고 들지를 않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나지도 전에 먼저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 책 재미 있습니까?"

여자가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 요란스럽게 껌을 씹었다. "그저 그래요. 탐정이 돌아 버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좀 무섭고요."

"똑똑한 탐정인가요?"

"네. 똑똑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많아요."

"아가씨는 행동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그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째서 계속 읽고 있는 거죠?"

"몰라요." 그 여자가 어깨를 다시 한 번 으쓱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겠죠. 어쨌든 별것 아닌 일이잖아요. 이건 그저 책일 뿐이에요."  63-65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눈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론적으로는 사진에 나와 있는 소년의 눈을 보고 노인이 된 뒤의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퀸은 정말로 그럴지 의심스러웠지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진뿐이었고, 그것이 현재와 연결된 유일한 다리였다.  65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은 이 세상과 부합하지 못하고 있소. 사물들이 온전했을 때 사람들은 인간의 언어가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그 사물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부서져서 혼돈 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만 거요. 그런데도 우리의 언어는 예전 그대로요. 말하자면, 언어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뭔가 본 것을 말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가 표현하려고 하는 바로 그 사물을 왜곡시켜 잘못 말하게 되는거고. 그 때문에 모든것이 다 엉망이 되고 말았소. 하지만 댁도 알다시키, 언어는 변할 수가 있는 거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느냐 하는 거지. 바로 그래서 나는 지금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 아주 단순해서 어린애라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 작업하고 있소. 어떤 사물을 가리키는, 이를테면 [우산]이라는 말을 한번 봅시다. 내가 [우산]이라는 말을 하면 댁은 마음속으로 그 물건을 떠올릴 거요. 꼭 대기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금속 살들이 붙어 있어서 펼치면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방수 천의 뼈대가 되는 막대기처럼 생긴 물건 말이오. 이 마지막 부분이 중요한 거요. 우산은 사물일 뿐만 아니라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는 물건이오. 잠시 생각해 보면 오든 물건이 어떤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우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연필은 글을 쓰기 위한 것이고, 구두는 신고 다니는 것이고, 자동차는 타고 다니는 것이고. 그런데 이제 내 의문은 이런 것이오. 어떤 물건이 더 이상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여전히 똑같은 물건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이 되었는가? 우산에서 방수 천을 찢어 낸다면 그 우산을 여전히 우산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우산살을 펼쳐서 머리 위에 쓰고 빗속으로 걸어 나간다면 흠뻑 젖을 터인데도? 그래도 이 물건을 우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그걸 우산이라고 부르지요. 이껏해야 그 우산이 망가졌다고나 할 테고, 내가 보기엔 이것이 아주 심각한 오류,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그 우산은 이제 우산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우산과 닮은 것, 한때 우산이었던 것일 수는 있지만, 지금은 뭐낙 달느 것으로 바뀌었소. 그런데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고. 따라서 그 이름으로는 더 이상 그 물건을 표현할 수 없소. 그건 부정확하고 거짓되고, 그 물건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감추는 말이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흔한 물건들의 이름조차 짓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대한 얘기를 과연 무슨 수로 할 수 있겠소?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서 변화의 개념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길을 잃게 될 거요.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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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




"글을 쓸 때 혈관을 통해 뜨거운 피가 흐른다는 강렬한 의식이 없으면, 그 글에 어떤 중요한 의미가 담길 수 없다는 것이지요. 글쓰기란 곧 신체의 모든 부분을 다 동원해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겁니다. 스트라이버트 교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죠.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그 속에 모든 재료를 다 집어 넣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287


"만일 여려분이 각 인물들이 어떠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 상상도 못하고 또 그런 감정들과 자신의 감정을 일치시켜 어떤 공감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대단히 가증스럽건, 고귀하건, 자기 희생적이건 혹은 대단히 속되건 간에, 여러분은 스스로를 고무하여 그 인물들의 상황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야 하며, 또 그 인물들의 가슴속에 파고들어야 하는 겁니다."

이 말이 끝나고 내 계보도를 소개하면서 나는 예의 그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즉, 사전에 아무런 설명이나 주의도 주지 않고 장차 작가가 되겠다고 모여든 학생들 가우넫 아무나 지목하여 자신을 무시무시한 곤경에 처한 계보도의 인물이라 가정하고 그럴 때 그 인물이 무슨 말을 했겠으며, 혹은 무슨 생각을 했겠는지 낭송해 보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마치 고대 그리스 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대사를 쓰듯 학생들은 그 인물들이 했을 법한 말이나 머릿속에 품었을 생각을 모두 말로 나타내야 했다.  288-289


"여러분이 의미 있는 서사의 비밀을 캐내기 원하신다면 단 네 명의 영국 소설가만 살펴보면 됩니다. 연대순, 그러니까 태어난 시간순으로 말하면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그리고 조지프 콘래드입니다."  306


삶의 겉면망을 다룬 작가들이며, 그래서 훌륭한 작가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새커리,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존 골즈워드 이렇게 넷입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독자의 마음도 끌고, 또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어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제공해 주지는 못하는 소설가들입니다.  306-307


말하지 마라. 대신 글로 표현하라.  309


도시의 머리 위로 아침이 열릴 때쯤 나는 장차 교수로서의 나의 삶에 활기를 줄 진리들을 찾아 내었다. '예술가는 보통의 삶을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 창조적인 인간이다. 그는 자기 자신처럼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서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야 한다. 예술가의 임무란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신랄한 그 사회의 초상을 그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최고의 선, 즉 한 인간의 척도가 되는 행위란 친구에 대한 충직성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친구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신뢰감이 바로 선이다.' ...

내가 찾아낸 금싸라기와도 같은 진리를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둘 심산이었다. 그러나 종이에 적은 글을 다시 읽어 보았을 때 나는 뭔가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몇 자를 더 적어 놓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여성일 수도 있다'  323


데블런 교수님 "소설에서 역시 그 편지들을 차지하려 했던, 다소 역겨운 인물로 나오는 존 쿰너라는 영국인 말일세, 어쩌면 그자가 나일 수도 있겠고 젊은 미국인은 자네일 수도 있네." 곧 이어, 제임스의 소설에서 묘사된 것과 똑같은 집을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베네치아에 있는 실제 저택이 아니라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허구적인 삶이면서도 좁은 보도에서 우리 곁을 지나쳤던 살아 있는 이탈리아 인들의 실제 삶보다도 더 여실하게 보이는 소설적인 삶의 탐구로 바뀌었다. "그게 바로 소설이 해야 할 일일세." 데블런 교수님은 힘있게 말씀하셨다. "종이 위에 단어들을 연속해서 풀어헤쳐 놓는 것과 누구나 보통의 사전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그런 단어들을 풀어놓는 것은 바로 실제 환경 속에 있는 실제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세. 자, 우리가 이 쾨쾨한 냄새나는 운하와 마주하고 있는 저 낡은 집을 소설 속에서 묘사한다고 치세. 그렇다면, 가령 잠비아로 휴가를 떠나 그 소설을 읽는 어느 독자로 하여금 그 배경을 실제 육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하고, 또 그 심리학적 중요성까지 음미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는 과연 50만 내가 되는 영어 단어들 중에서 어떤 단어들을 골라 써야 할까? 이용 가능한 단어들을 다 쓰면 되네. 마구 뒤섞여 있는 단어들 중에서 그냥 고르기만 하면 되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그 단어들을 올바른 질서로 배열해야 한다는 점일세. 그래야 우리가 노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네.

그다음 우리는 만의 소설로 넘어갔다. 콜레라가 만연된 베네치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콜레라가 없지 않습니까?"

"아닐세, 있네. 무서운 콜레라가 모든 서구 사회에 창궐해 있지. 신문과 전파를 통해 토하듯 쏟아지는 대중문화라는 콜레라 말이네. 그것이 모든 것을 죽이고, 또 모든 것을 싸구려로 만들고 있다네. 언젠가는 우리 목까지 그 오물 같은 콜레라가 차 오라 우릴 질식시키고 말걸세."

데블런 교수님은 떨쳐 버릴 수 없는 문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조심스럽게 설명하시더니 그 불행한 통속성으로의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창조적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다. "가장 큰 적은 대중들의 수용에 있네. 왜냐하면 대중들이 인정해야 어떤 예술가가 대중 욕구의 최소 공통분모 정도는 만족시켰다는 점이 입증되기 때문일세. 하지만 예술가의 임무는 그런 것이 아니에. 예술가는 연구와 통찰을 통해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으로 올라서야 하는 것이고, 그다음 동료들과 소통하고, 또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사상을 교환해야 하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사상을 교환해야 하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이 관심을 쏟고 잇는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 내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것일세. 진정한 예술이란 고양된 수준에서 동등한 사람들끼리 의사 소통하는 것이지. 그밖의 다른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야."

나는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알 수는 있었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하지만 저는 교수님이 컬럼비아 대학에서 저희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통해 모든 글쓰기의 최종점은 출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별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대체 어떤 의미인지.."

"자네 아직도 그 폭풍과도 같았던 강의를 기억하나? 그래, 조지 에리엇은 보물이고, 찰스 디킨스는 엉터리 약장수야. 그리고 조지프 콘래드는 고수하되 존 골즈워디는 버리게."

"하지만 그 작가들이 책으로 남겨 둔 것은 어떻게 하고요? 교수님이 폄하한 작가들이 무엇인가를 책을 통해 전파 시켰다면 그것 나름대로 어떤 건설적인 목적을 이룬 것을 아닐까요?"

"아닐세. 내가 무시하라고 한 작가들은 마취제와도 같은 존재들이지. 해도 없지만 아무런 득도 주지 못하는 작가들일세."

"그렇다면 출판의 존재 이유는요?"

"진정한 출판의 목적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네. 책상에 앉아 자네의 청중이 누구인지, 자네의 독자가 누구인지 한번 상상해 보게. 자넨 분명 훌륭한 학자가 될 테지만, 지식인으로서 자네의 임무란 바로 자네 세대의 최고의 정신들, 즉 베를린, 레닌그라드, 소르본 혹은 버클리에 있는 생각 깊은 남녀들과 교류하는 것일세."

"그렇지만 출판업이란 교수님이 경멸하는 책들을 팔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냐, 그렇지 않아! 자네가 틀렸네. 칼, 출판사는 위대한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쓰레기 같은 글들을 파는 것일세. 자,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 마드리드. 모스크바, 더블린, 그리고 두 곳의 케임브리지, 이런 지성의 중심지를 차지하고 있는 뛰어난 정신들의 그물망을 한번 상상해 보게. 그런 곳은 이 세계를 한데 결집시키려는 보기 드문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네. 그들과 얘기하고 그들을 격려하게. 그리고 자네의 명석함으로 자네가 끌어 모은 광명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게. 그 밖의 나머지 것들은 다 필요 없어."  326-328


우린느 역사적인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를 통해 그리스로 들어섰다. 꿈을 꾸듯 반도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고대의 이름들이 현실의 것으로 불쑥불쑥 떠오르자 하늘까지도 달리 보였다. 데블런 교수님은 그 옛 이름들을 어찌나 많이 아시는지 나는 내 무지에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다 고전을 공부한 결과라네. 고전을 배워야 해. 자네도 그렇게 배웠을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처럼 가볍게 지나치는 정도로는 안 되지." 아테네에 도착하기 전 데블런 교수님은 "여기가 스파르타로 가는 분기점이네"라고 하시면서 코린토스의고대 운하를 가리키셔따. 높은 도로에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제2의 반도로 들어서기 위해 그 유명한 수로를 가로지를 때는 노예들이 힘차게 노를 젓는 고대 그리스의 전함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앞다퉈 수면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스파르타는 기대했었던 것보다는 실망스러웠다. 전투가 벌어졌던 평원 위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쓸쓸한 잔해에 불과했다. 데블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자, 보게. 한 사회가 군사 독재에 굴복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잘 보여 주는 곳일세. 스파르타의 어린아이들은 일곱 살 때부터 군사 훈련을 받았다네. 모든 결정을 군사 평의회에서 내렸지. 모든 것을 정복한 세계 최고의 군대. 그러나 결국엔 독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꼴이 되고 말았지. 왜 그런지 아나? 자유인들은 항상 전제를 이겨내기 때문일세. 그렇지, 전제를 패퇴시키지는 못하지만 그것보다는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지."

그 지역은 그리스의 웅장함이나 스파르타 군대의 승리를 보여 줄 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초라한 건물 몇 개가 애처로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다시 데블런 교수님이 입을 여셨다. "미국에 있을 때 나는 슬픈 느낌이었다네. 만일 스파르타 독재 같은 것이 자네 나라의 학교를 개선해주고, 소수 인종을 통제해 주고, 여성들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보내고, 종교적 지상권을 회복시켜 주고, 또 권리선언의 어리석음을 다 끝장내 준다면 자네 국민의 80%가 그런 독재를 환영하리라는 것을 읽었기 때문일세. 내 눈엔 많은 현대 미국인들이 그런 제의라면 쌍수를 들고 기뼈 날뛸 것으로 보였지. 그래서 자넬 이곳 스파르타로 데려와 구경시키고 싶었던 것일세. 자, 보게. 지금 자네 눈에 보이는 것이 그런 선택의 결과라네."  329-330


우리는 마치 소설을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인 양 논의하면서 이미 알려진 어떠 ㄴ이야기를 어떻게 서술해야 최선인가, 즉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해야 최선의 효과를 가져올까 하는 문제를 두고 하루 온종일 씨름하였다. 그 주제에 대해서 데블런 교수님은 아주 확고한 생각을 지니고 계셨다. "가장 나쁜 것은 작가가 이따금씩 자신의 은밀한 논평을 끼워 넣는 형식이지. 작가의 그런 개입이 이야기의 흐름을 깰 땐 얼마나 불쾌한지 모른다네. 게다가 이야기의 끝이 엉성하게 건초 더미를 실은 짐마차처럼 삐걱거리면 정말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자넨 그러지 말게. 자네가 가르칠 어떤 학생이라도 그렇게 하도록 해서는 안 되네. 만일 그런 책을 평할 기회가 있으면 가차 없이 혹평하게.  331


우리는 소설의 주제로 어떤 것이 가장 좋은가에 대해 긴 토론을 하였으며, 데블련 교수님은 두 가지 점을 지적하셨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든 다 소설의 질료라네." 

"어떤 것이든 다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셈이지."

"근친상간도요?"

"그리스 비극을 뒤져보면 근친상간을 둘러싼 위대한 드라마가 무궁무진하다네. 불과 분노와 복수로 일관된 것들이 많지."

"전 그리스 비극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렇담 이번 여름이 자네가 못 보고 그냥 넘어간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자네가 문학의 내적 의미를 파악하려 할 때 분명 장애가 될걸세."

그런 다음 소설 주제에 관한 두 번째 주의 사항을 그분은 아주 단호한 어조로 피력하셨다. "추상적 개념에 관한 소설은 단연코 좋은 소설이 못되네. 차라리 논문을 쓰는 게 나을 걸세. 소설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야지 어떤 원형이나 전형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그러나 만일 어떤 추상적인 워칙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그리고 것이라면 그것은 강한 인상을 주는 소설이 될 수 있다네."  333-334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지혜를 터득한다. 하나는 이용 가능한 모든 증거를 끈기 있게 축적하고 분석함으로써 지혜를 얻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한 순간에 모든 대륙과 전 역사에 빛을 밝혀 주는 에피파니(epiphany, 일상의 경험 속에서 어느 한 순간 맞이하는 직관적 통찰이나 깨달음을 일컫는다. 흔히 현현(顯現 나타날현 나타날현)이라고 말한다.)를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다.  335


"우리가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문학이라는 커다란 관목을 흔들어 뭐 떨어지는 것이 없나 땅바닥을 뒤지는 꼴이라네. 문학의 근간인 실제의 삶은 모두 우리 주위에 드러나 잇는데 말일세."  341


나는 엄숙한 어조로 서두를 꺼냈다. " ... 아무튼 제 생각엔 무엇이 서사인가를 이해하고 또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네 명의 미국 작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대순으로 이름을 들면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입니다."  343


" ... 어쨌건 그들에 반대되는,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미학적인 관저에서는 거의 형편없는 작품을 내놓은 네 작가를 언급할 차례입니다. 다시 연대순으로 말해 보면, 싱클레어 루이스, 펄 벅,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입니다..."  344


(편집자 마멜과의 대화, 문학 비평집 출간에 대한 내용) " .. 자기 현시적인 일화는 최소로 하시고 중요한 예는 많이 집어넣으세요."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요점을 기술하시고, 그다음엔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본보기를 짧게 두 가지 정도 인용하시면 될 거예요."  355





독자 제인 갈런드


근본적인 것들을 고집하는 그들의 자세  550


루카스 요더가 아랫입술을 떨며 창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요더 씨!" 내가 불렀다. "어디 아프세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지금 펜스터마허 사람들은 잔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고는 참던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의 비탄에 잠긴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그가 펜스터마허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살인자의 부모가 있는 그 놎아에 가 있었다. 그들의 감정이 그의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작품을 쓰는 비결인 모양이다. 그가 어떤 사람에 대해 글을 쓸 때면 그는 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등장인물의 입장 소에서 살고, 그들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며 그들의 정신적 혼란을 똑같이 겪었다. 이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펜스터마허를 잊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그를 소설가이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99







사람들이 사는 세상 - 소설의 세계


1. 왜 읽는가?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인 헤럴드 블룸은 <어떻게 읽고 왜 읽을 것인가>의 프롤로그인 <왜 읽는가?>라는 글에서 '왜 글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그 이유는 깊이 있는 지속적인 독서만이 '자율적인 자아'. 즉 주체적 자아를 온전하게 확립해 주고, 또 그 자아의 주체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율적인 자아' 형성을 위해 어떤 글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블룸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독서에는 논쟁적인 글보다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글이 더 적합하다는 전제 아래, 정치, 철학, 종교 등 이데올로기를 담은 글보다는 소설, 극, 단편, 시 등의 문학 작품이 그가 말하는 독서에 어울리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블룸은 정치 경제학에 관한 글이나 철학에 관한 글이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생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율성>을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해방되는 것,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삶과 운명에 관해 우리가 인습적으로 생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던 블룸은, 어느 특정의 개인에 관한 우리의 판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문학이 우리를 우리 자신의 과거에서 해방시키는 가장 중요한 실천의 도구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브룸은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 박사의 말을 빌려 독서의 주요 목적이 [우리 정신에서 상투적인 것을 씻어 내는것]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 [상투적인 것]으로 옮긴 [cant]는 실상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던지는 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의미를 확대하면 사람들이 으레 당연히 여기는 것, 인습적으로 그렇게 여겨 왔던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신 속에서 그런 상투적인 것을 지워 낸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다시 새롭게 다시 보는 힘을 키우고, 기성(旣成 이미기 이룰성)의 것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그 사상이나 생각의 노예에 불과하며, 기존의 사고의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 상상의 노력이 그 신선함을 상실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의심의 능력을 상실할 때 우리느 ㄴ이미 [상투적인 것]의 그무렝 갖힌 꼴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런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거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해방은 우리 각자가 처해 있는 정치, 경제, 종교, 혹은 철학적 현상에 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현재의 제도를 정당화시키는 기성의 사상이나 생각과 단절을 도모하는 노력의 출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노력의 바탕에 개인의 변화가 없으면 해방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로 개인적인 차우너을 넘어선 공적인, 사회적인 차원의 변화는 그 구성원 각자의 질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며, 아무리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다 해도 개인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굳이 그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가 익히 경험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질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우리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혹은 상상의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시간적인 제약과 공간적인 제약으로 인해, 우리가 몸으로 체득하는 직접적인 경험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 삶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상상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상상의 경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우리의 [과거]로 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그 해방을 통해 더 많은 감수성을 지니고 더 많은 통찰과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은 바로 [반성(反省 되돌릴반 살필성)]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이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더욱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곧 [자기 확대]로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독서는 사회적인 차원의 행위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는 개인적인 차원의 행위에 속하는 것으로, 블룸은 이런 독서의 행위를 [고독한 실천(solitary praxis)]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독서는 자기반성과 자기 확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본연(本然 근본본 그러할연)의 [나]에 가까이 다가가는 질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블룸이 말하는 [자율성]의 획득이며, 이는 비록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의 과정이지만 실은 그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변화으 단초가 되는 과정인 셈이다.  619-622



2. 세상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땅의 이야기


앞에서 <왜 읽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독서어ㅔ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자율성이고 진정한 자기 자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마 존재의 진정성과 관련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자율성과 진정성을 달성하는 길은 [진리는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형이상학적 물음이기보다 오히려 더없이 세속적일 수 있는, 더없이 평범한 것일 수 있는,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진부한 물음일 수도 있는 이 후자의 물음을 통해 우리는 아집과 편견과 과거에서 해방되어, 세상살이가 혼자가 아닌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관계를 실천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지평의 삶 속에 진입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622-623


제임스 미치너는 바로 [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땅]에 가장 정직하게 다가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세상은 나의 집>이라는 그의 자서전 제목이 보여주듯, 미치너는 실제로 세계의 많은 곳을 여행하며 곳곳의 색다른 지리적 공간과 그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관찰한 작가다.  623


미치너가 세상의 낯선 지형과 낯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서로 다른 기후와 민족성과 종교와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이라도 모두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며, 마치 우리의 이웃처럼 우리와 어울려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지경(地境 땅지 지경경)과는 다른 곳의 먼 역사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했던 미치너가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혼혈인]이라고 부른 것도 그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거꾸로, 자신이 유대인일 수도 있고 러시아인일 수도 있고 흑인일 수도 있다는 정신의 개방성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믿음과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솔직한 이해로 나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땅(land)이 존재의 근본적인 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미치너는 그 땅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차별 없는 존재의 평등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삶의 질의 차이, 혹은 문명의 차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사는 지형(地形 땅지 형상형)의 다름에 따라 혹은 좋든 나쁘든 문명의 개입에 따라 불가피하게 형성된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런 차이는 어느 지형 밖에서 관찰한 상대적인 차이일 뿐이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 좋고 나쁜의 차이는 아니다. 다만 그런 차이에 따라 생겨난 부산물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명일 테고, 그 문명의 높고 낮음의 구분은 역사적 시간의 지연(遲延 더딜지 끌연)에 따른 차이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땅과 사람들의 삶의 차이 혹은 다름에 대한 관찰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로 나아가는 미치너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624-625


[다른 사람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없다]고 한 미치너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눈을 뜨고 어떻게 귀를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가 한 사람의 지리학자, 한 사람의 나그네가 되어 자신이 지나온 길의 경허모가 그 속에서 터득한 지식을 재구성하여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작가인 미치너는 어떤 면에서는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와 관심이 아주 단순하면서 소박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뛰어난 유머가도 아니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읶르어 내고 환상적인 구도 속에 이야기를 전재시키는 뛰어난 문장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물의 심리 분석에 뛰어난 작가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다단한 삶의 구도는 취급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룰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인정하는 그는 다만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에 지나치지도 모라자지도 않은 소박한 관심을 지닌 작가다. 그런 관심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며. 한 인물을 솔직하게 그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킬까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가 그 스스로 풀려나가기를 원하는 작가다. 그는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나 설교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누구를 계몽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러면서 자신의 삶의 경계를 넓히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었다.  625-626



3. 왜 이야기가 필요한가?


굳이 그는 자신의 작풉에 대한 평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반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는 정직한 작가로 기억되길 원했을 뿐이다 그런에도 미치너오 같은 작가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이해의 광장으로 나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가야 비로소 본연의 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또한 그래야 나의 이야기가 의미 있는 울림으로 상대방에게 퍼져 나가는 것이다.  627


이 소설에서 미치너는 자신을 모델로 한 루카스 요더의 입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재미보다는 이야기의 호소력이라고 하며, 자신의 토지와 물리적 환겨엥 초점을 맞춘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구성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인물과 플롯의 전개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편집자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미치너는 전통적인 이야기꾼인 자각와는 다른 예술관을 지닌 비평가의 시선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문학이란 대중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독자를 통해서는 비평가와는 다른 시각을 지닌 대중들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이처럼 생각의 차이, 판단의 차이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층위의 생각의 단계로 올라서게 해주는 것이다.  628


움베르토 에코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오늘날처럼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근원적인 진정성을 회복하려면 [우리 삶의 의미를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한것이 아닐까 싶다.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보다 근본적인 자기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리처드 로티가 말했던 [궁극의 어휘]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그들의 행동과 믿음과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름의 언어들을 지니고 다닌다.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친구를 찬양하고 적을 경멸하기도 하며, 우리의 원대한 구상을 말하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가슴 아픈 자기회의를 드러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가슴 아픈 자기회의를 드러내기도 하고 드높은 희망을 펼치기도 한다. 그 언어들이 바로 우리가 때로는 앞을 내다보며, 때로는 뒤를 돌아다보며 우리 삶의 이야기를 말하는 바로 그 언어인 것이다.  62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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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루카스 요더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와준 아내, 그러면서도 전혀 짜증이나 불만의 기색을 안 비치던 아내였다.  19


책이 세상에 나왔다가는 곧 날개 찢긴 새처럼 퍼덕거리다가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더욱이 네 번씩이나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다니! 정말 불운한 세월이었다.  60


요즈음 책은 출판되기도 전에 성공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북 클럽, 영화, 텔레비전 연속극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책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들이다.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만큼 공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역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좋-지-않-다-.  61


사실 글을 쓸 때나 쓴 글을 수정할 때면 온 신경과 힘을 다써야..  126


6월의 한 주가 몽땅 아무 한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리자 나는 <돌담>을 수정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데 과연 교정쇄나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나는 이용 가능한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열심히 작업은 계속했으며, 이따금씩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내 손놀림을 보고는 내 스스로 감탄까지 하곤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권태롭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이번이 내 소설을 완벽에 가깝도록 고칠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때는 글쓰는 일이 마치 무슨 지고한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 웃기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정말 글쓰기란 고된 노동인 것이다.  153


나는 엠마에게 원고가 인쇄기로 들어가 책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작가는 다 처음 글을 쓸 때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고 일러주었다.  168






편집자 이본 마멜


문학 박사인 파인슈라이버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떠나던 그 슬픈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자네의 가슴과 정신에 이 거대 도시가 무료로 제공하는 풍성함을 받아들이게. 그러면 결국에 가선 자네가 우리 모두들보다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셈이 될걸세."  180


나는 인파 한가운데 멈춰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식의 삶에 묻혀 버릴 순 없어. 책의 세계, 사상의 세계가 있잖아.."  181


"영화와 책 둘다 중요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위대한 창작의 비밀을 파헤치려면 음악과 그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겁니다."

"인생이 길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 많은 걸..."

"인간 노력의 최고 진수를 탐구하는 것. 그것 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창조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라고 설파한 것은 참다우면서도 온당한 인물의 창조였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창조란 온갖 역경 속에서 그 인물이 겪게 되는 정신적 변호를 여실하게 그림으로써 당성된다고 그는 믿었다. "소설은 곧 성장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는 몇 번이고 이 말을 강조하였다.  203


"전 소설이 진정 무엇인지 어렵게 어렵게 배웠어요. 조김스럽게 선택된 약6만 개 정도의 단어들. 그것들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종이 위에 옮겨 놓지 못한다면 소설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요."  262


나의 두 남자, 래트너와 요더 씨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때면 요더 씨는 칼럼니스트들이 말하듯 [출판계에 부를 모아다 주는 작가]이며 가장 확실하게 성공을 보장해 주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가 쓰는 소설들에서 지적인 만족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의 그렌즐러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유제품 제조 판매소>에 대한 그의 구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따분만 것이었다. 똑같은 공식에 똑같은 인물들, 펜실베이니아 독일인들에 관한 매력적이긴 하나 똑같은 내용들, 그리고 거의 변함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방언들의 흩뿌림. 그런 소설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해서 그 소설이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그것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에반 케이터 교수와 베노래트너가 설파한 소설에 대한 이념들이었다. 그들은 소설을 어떤 폭발적인 것, 즉 경이로움과 장엄한 계시적 광경으로 가득 차 있고, 평범한 행위에 대한 시적인 해석과 기묘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산문적 설명이 꽉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베노가 꿈꾸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소설이 지닌 무한한 지평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생경한 이념들로 불꽅이 일 듯 활기에 넘치고, 수많은 도전으로 폭풍이 일 듯 힘이 넘치는 소설. 내가 이제 소설에서 구하는 것은 그렌즐러 지역에 관한 또 하나의 산문시가 아니라, 나 같은 지각 있는 사람이 어떻게 베노 래트너와 같이 자기 파괴적인 사람과 살면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할 수 있는지, 아무에게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묘한 삶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같은 내 의식의 놀라운 전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릴르 지키세요. 루카스. 경이로운 친구여. 날카로운 칼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신뢰할 만한 그대.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사람. 선한 일만 할 당신. 그러나 래트너, 당신이 옳았어요. 채겡 관한 모든 토론에서 당신은 항상 옳았어요. 당신은 우리들이 꿈도 꿔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은 거예요. 당신은 꿈은 꿨지만 그 꿈을 6만 개의 잘 꾸며진 단어들로 전환 시키지 못했어요.  27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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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란 자고로 여장을 가볍게 하고 길을 떠나야 하는 법이다.  81


 

"난 네가 결혼을 했으면 좋겠구나." 글래스 부인이 불쑥 아쉬운 듯 말했다...

"글쎄, 난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안 할 이유라도 있니?"

주이가.. "난 기차 타는 걸 너무 좋아해서요. 결혼하면 기차에서 절대 창가 자리에 못 앉거든요."

"그건 이유가 못 돼!"

"완벽한 이유예요."  136-137



거의 칠 년 만에 처음이었다. 주이가 시모어와 버디의 예전 방에, 흔한 드라마적 표현을 쓰자면, '발을 디딘' 것은...

한때는 눈처럼 희었던 메모 보드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상당히 커서 거의 문짝만큼이나 길고 넓었다. 순잭의 매끈하고 넓은 표면은 한때 애처로이 먹물과 블록체 글씨를 갈구했을 것 같았다.. 보드에는 세계의 다양한 문학작품을 인용한 문구들이 우아해 보이는 데 개의 세로 단을 이루며 빈틈없이 구석구석 장식하고 있었다.  221


인용 문구나 작가를 어떤 카테고리나 그룹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이는 가까이 다가서서, 왼쪽 세로 단 제일 윗부분에서 시작해 아래로 읽어내려갔다...


당신에게는 일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 일의 가치를 위해서다. 그 일의 열매에 대해 당신은 어떤 권리도 없다. 일의 열매에 대한 욕망이 일을 하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태함에 져서도 안 된다.

하나하나의 행동을 할 때마다 지고하신 신께 마음을 쏟으라. 그 열매에 대한 집착을 끊으라.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글씨를 쓴 사람 중 하나가 밑줄을 그어놓았다.) 이러한 평정이 바로 요가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과물에 대한 초조함으로 행하는 일은 그런 초조함 없이 스스로를 포기함으로써 오는 평온 속에 행하는 일보다 훨씬 열등하다. 브라만의 지식에서 피난처를 구하라. 결과물을 위해 이기적으로 일하는 자들은 불행하다. - <바가바드 기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오 달팽이

올라라 후지 산.

느릿느릿 - 고바야시 잇사


신을 이야기할 때, 신격(神格 귀신신 격식격)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존재는 하지만 발분하지도 관여하지도 않으며, 무엇에 대해서도 사전 숙고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세번째 부류는 신격이 존재하고 사전 숙고도 하지만 위대한 것, 천국에 관한 문제에만 그러하며 지상의 일에는 그러하지 못한다고 본다. 네번째 사람들은 천국의 일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의 일들에도 그러하지만 일반적일 뿐 각 개인의 일들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못한다고 본다. 다섯번째 사람들은, 그들 중엔 오디세우스와 소크라테스도 있는데, 이렇게 외친다. "내 움직임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 에픽테토스


모르는 사이였던 남자와 여자가 동쪽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사랑의 대상이 될 사람과 절정은 찾아온다.

"어서요." 크루트 부인이 말했다. 그녀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랜드캐니언은 어땠어요?"

"그냥 동굴이더군요." 동반한 남자가 대답했다.

"아주 재미있게 표현하는군요!" 크루트 부인이 말했다. "이제 내게 뭔가 연주해줘요." - 링 라드너, <단편소설 쓰는 법>


신은 사상이 아닌 고통과 모순으로 마음을 가르친다. - 장피에르 드 코사드


"아버지!" 하고 외치며 키티는 두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알았다, 이야기하지 않으마!" 그는 말했다. "나는 정말, 정말...기쁘...아아! 나는 어쩌면 이렇게 바보처럼..."

그는 키티를 끌어안고 그녀의 얼굴과 손에, 또다시 얼굴에 입맞춤하고 그녀에게 성호를 그어주었다.

그리고 키티가 오랫동안 부드럽게 아버지의 투실투실한 손에 입맞춤하는 것을 보자, 지금까지는 남이었던 이 노공작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별안간 레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안나 카레니나>


"선생님,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원에서 우상과 그림을 숭배하는 것이 잘못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라마크리슈나 : "너희 캘커타 사람들은 그런 식이다. 가르치고 설교하고 싶어하지. 자신이 거지면서도 많은 돈을 주고 싶어하고.. 신이 자신이 우상과 그림으로 숭배받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숭배하는 이들이 혹여 실수를 할때 그들의 마음속을 꿰뚫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 <스리 라마크리슈타의 복음>


"우리와 함께하고 싶지 않나?" 최근에 자정이 지나 살마들이 거의 떠나고 없는 어느 커피집에서 혼자 있는 나를 우연히 본 한 지인이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네." - 카프카


사람들과 함께 있는 행복. - 카프카


성 프란체스코 살레시오의 기도 : "네, 아버지시여! 네, 또한 언제나, 네!"


서암이 매일 자신을 불렀다. "주인아."

그러고 자신이 대답하였다. "네."

그러고 그가 덧붙였다. "늘 냉철하거라."

다시 그가 대답했다. "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들에게 속지 마라." 그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 <무문관(無門關)>


메모 보드의 글씨가 아주 작았기에 여기까지 읽어도 위에서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었다.  222-227


지금부터 최후의 심판일까지 계속 예수기도문을 외울 순 있겠지만, 종교적인 삶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거리 두기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네가 평생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있을까? 거리 두기, 친구, 오직 거리 두기. 욕망에서 자유롭기. '모든 갈망을 멈추기.'  248


예술가의 유일한 관심은 어떤 완벽함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의 완벽함이야.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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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판 서문 

1930년 이후 나는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어떤 권력층보다도 더 확고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 사회로 변모하는 분명한 조짐을 보았다.  12




(메이저) 나는 오래 살았고, 우리에 혼자 있을 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어떤 동물 못지않게 삶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말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20


자, 동지 여러분, 우리 생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21


인간을 정복할 때에도 그들의 악습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25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가장 탁월했다. 나폴레옹은 덩치가 크고 꽤 사납게 생긴, 이 농장에서 유일한 버크셔종 수퇘지로 말수는 적지만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스노볼은 나폴레옹보다 활발하고 언변도 더 뛰어나고 더 창의적이지만 속은 덜 깊다는 평을 들었다. 

스퀼러라는 덩치가 작고 살이 찐 돼지. 그의 볼은 둥글둥글하고 눈은 번쩍거리고 움직임은 민첩하고 목소리는 날카ㅇ로웠다. 그리고 언변이 뛰어나고 어려운 문제를 토론할 때면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버릇이 있었는데, 아무튼 그것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다른 동물은든 스퀼러가 검은색을 흰색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도 가졌다고 이야기했다.  30-31



커다란 창고의 한쪽 벽.. [7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누구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40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생충 같은 인간이 없어지자 각자가 먹을 음식은 더 많아졌다.  43


다른 동물들은 투표할 줄은 알았지만 스스로 결의안을 내놓을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46


나폴레옹은 스노볼이 조직한 위원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어린 동물들의 교육이 이미 다 자란 동물들의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49


나폴레옹에 따르면 동물드이 총기를 구입해 사용법을 익혀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기를 구입해 사용법을 익혀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스노볼의 주장은 보다 많은 비둘기들을 보내 다른 농장의 동물들에게 반란을 선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66


사실 그들(다른 동물들)은 나폴레옹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스노볼의 말을 들을 때면 또 그것이 옳은 것 같았다.  66


나폴레옹은 개들을 데리고 메이저가 일전에 연설했던 높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일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회의를 이제부터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런 회의는 시간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농장의 운영에 관한 모든 문제는 자기가 의장직을 맡고 있는, 돼지들로 구성된 특별 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69


스퀼러는 농장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는 동물들에게 인간들과 거래해서는 안 된다느니,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그런 결의안은 통과된 적이 전혀 없고, 심지어 제안조차 한 적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순전히 공상이며 어쩌면 맨 처음 스노볼의 입에서 나온 거짓말이 퍼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80


돼지들은 갑자기 농장 본채로 이사해 거기서 거주하게 되었다.  82


(스퀼러) 동지들, 여러분은 우리 돼지들이 요즘 본채의 침대에서 잔다는 말을 들었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침대는 그저 잠을 자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83


클로버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했다. 만약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수년 전에 인간을 전복시키기 위해 일을 벌였을 때 목표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 공포와 학살의 장면은 메이저 영감이 처음 그들에게 반란을 선동했던 그날 밤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미래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동물들이 배고픔과 매질로부터 해방되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메이저가 연설하던 그날 밤 자신의 앞발로 새끼 오리들을 감싸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동물들의 사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이 농장에 충성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나폴레옹의 지도를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나 그녀와 다른 동물들은 그 때문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풍차를 건설하고 존스의 총탄에 과감히 맞선 것은 결코 그런 것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말솜씨는 부족했지만 아무튼 그녀의 생각은 그러했다. 

마침내 그녀는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노래가 대신할 수 있다는 듯 '영국의 짐승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101-102


세 번째 노래를 막 끝냈을 때 스퀼러가 두 마리의 개를 대동하고 무언가 중대 발표라도 할 것처럼 동물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폴레옹 동지의 특별 지시에 따라 '영국의 짐승들'이 금지되었다고 발표했다. 지금부터 이 노래는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동물들은 깜짝 놀랐다.

[왜 금지되었죠?] 뮤리엘이 소리쳐 물었다.

[동지, 이 노래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소.] 스퀼러가 딱딱하게 말했다. ['영국의 짐슬들'은 반란의 노래였소. 그러나 반란은 이제 끝났소. 오늘 오후의 반역자 처형이 마지막 행동이었소. 우리는 농장 안팎의 적들을 모두 패배시켰소. '영국의 짐승들'에서 우리는 미래의 좋은 사회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소. 그러나 그 사회는 이미 성취되었소. 분명이 이 노래는 이제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소.]

비록 겁에 질려 있었지만 몇몇 동물들은 항의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그 순간 양들이 여느 때처럼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고 외쳐 댔다. 이 외침 소리는 몇 분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토론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  102-103


며칠 후 처형 사건이 몰고 온 공포가 누그러져 갈 때, 일부 동물들은 7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인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를 기억하거나 혹은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클로버는 뮤리엘을 데려갔다. 뮤리엘은 그녀에게 그 계명을 읽어 주었다. 거기에는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씌어 있었다.  105


그해 내내 동물들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했다. 농장의 일상적인 일을 다 하면서 전보다 두 배나 더 두껍게 풍차의 벽을 쌓고 예정된 날짜에 풍차 건설을 끝낸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었다. 존스 시대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고 먹는 것도 더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스퀼러가 기다란 종이 두 마리를 앞발로 들고 각 식량 생산량이 200퍼센트, 300퍼센트, 혹은 경우에 따라 500퍼센트 증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동물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란 전의 생활상이 어땠는지 뚜렷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6


스퀼러는 연설할 때면 나폴레옹의 지혜, 특히 다른 농장에서 무지와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불행한 동물들에 대한 그의 사랑 등을 생각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107


나폴레옹 동지가 이 세상에서 취하는 마지막 조치로서 엄한 포고령을 내렸다고 했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121-122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두 개의 단어가 들어 있었다. 실제로 벽에 적힌 계명은 이랬다. '어떤 동물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123


돼지들과 개들의 배급량은 그대로 둔 채 다른 동물들의 배급량은 다시 한 번 줄어들었다. 스퀼러는 식량 배급을 지나치게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동물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쨋든 그는 겉으로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실제로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다른 동물들에게 어렵지 않게 증명해 보였다. 물론 당분간은 배급량을 재조정할 필요(스퀼러는 한 번도 '감소'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재조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가 있지만 존스 시대와 비교하면 사정이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25


고달픈 일들을 수없이 감내해야 했지만, 그래도 현재의 삶이 과거보다 훨씬 더 품위 있다는 사실이 그 고달픔을 덜어 주었다.  128


양들은 자진 시위에 가장 열성적이었는데, 간혹 누군가가 이 행사는 시간 낭비이고 추위에 떨며 오래 서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몇몇 동물들은 돼지와 개가 주위에 없을 때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양들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입을 확실히 다물게 했다. 그러나 대체로 동물들은 이 축하 행사를 즐겼다. 어쨌거나 그들은 자기들이 농장의 진정한 주인이고 따라서 하는 일도 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하여 노래와 행진, 스퀼러의 통계 수치, 우렁찬 총포 소리, 젊은 수탉의 울음소리, 펄럭이는 깃발 등으로 동물들은 배고픔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었다.  129


까마귀 모세..[동지들, 저기 위쪽에.] 그는 커다란 부리로 하늘을 가리키며 엄숙하게 말하곤 햇다. [저기 위쪽, 검은 구름 저 너머에 '얼음사탕 산'이 있어. 우리 같은 불쌍한 동물들이 일하지 않고 영원히 편히 쉴 수 있는 행복한 나라가 있단 말이야!]...

그들이 생각하기에 현재 자신들의 삶은 배고프고 고달팠다. 그런데 여기 아닌 다른 어딘가에 현재보다 더 나은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해서 과연 잘못되고 옳지 못한 것일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세에 대한 돼지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얼음사탕 산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라고 경멸조로 말하면서도 그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고 매일 맥주 한 홉씩 제공하면서 농자에 살도록 허용했다.  130-131


여러 해가 흘렀다. 계절들이 여러 번 왔다 가고, 짧은 동물들의 생애는 어느덧 빠르게 흘러갔다. 클로버, 벤저민, 까마귀 모세, 그리고 상당수의 돼지들을 제외하고는 반란 전의 옛 시절을 기억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140


이제 농장에는 초창기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식구가 많이 늘어나 있었다. 많은 동물들이 새로 태어났으며 그들에게 반란은 단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희미한 전통에 불과했다.  141


벤저민 영감만이 긴 자기 생애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농장의 사정은 옛날보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며, 배고픔과 고난과 실망은 삶의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물들은 희망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이 동물 농장의 일원이라는 영예와 특권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 농장은 영국 땅 전체에서 동물들이 경영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143-144


비록 그들의 삶은 고달프고 또 그들의 희망이 모두 성취된 것은 아니지만, 동물들은 자신들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들이 굶주린다면 그것은 독재자 인간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을 했다면 그것은 적어도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 했다. 그들 중 누구도 두 다리로 걷지 않았다. 어떤 동물도 커다란 동물을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했다.  144-145


클로버가 입을 열었다. [난 시력이 나빠. 하긴 젊었을 때도 저기 씌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저 벽은 달라 보여. 7계명이 그대로 있어, 벤저민?]

벤저민은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이번만은 깨뜨리기로 하고 벽에 쓰인 것을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거기엔 7계명은 온데간데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147


나폴레옹이 파이프를 물고 농장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랬다. 이상하지 않았다. 돼지들이 존스 씨의 옷자엥서 옷을 꺼내 입어도, 나폴레옹이 검은색 코트에 반바지 사냥복을 입고 가죽 각반을 차고 나타나도, 또 그의 총애를 받는 암퇘지가 존스 부인이 일요일이면 업던 물결무늬 비단 옷을 입고 나타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148


폭스우드 농장의 필킹턴 씨가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일동에게 건배를 청할 생각인데 그에 앞서 꼭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동물 농장의 하층 동물들이 이 나라의 어떤 동물들보다 일은 더 많이 하면서도 식량은 더 적게 배급받는 이런 정책은 당연하다.  149-150


[만약 여러분에게 다루어야 할 하층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다루어야 할 하층 계급이 있습니다!] 이 재치 있는 말을 듣고 좌중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필킹턴 씨는 그가 동물 농장에서 관찰한 대로 돼지들이 동물들에게 식량 배급은 적게 하면서도 일은 오랫동안 시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동물들이 대체로 없다는 사실에 대해 돼지들에게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냈다.  151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154




에세이 - 작가와 리바이어던(1948년 3월에 써서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문학잡지 <정치와 문학> 여름호에 실림)


우리는 자신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참된 문학 기준들이 적용된다고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157


내가 알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부르주아]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이며, 반파시스트이며, 반제국주의자이며, 인종 차별을 경멸하고, 인종 편견에 분노를 터뜨린다.  159


실제로 노동자들은 자기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사회주의 쪽으로 많이 넘어갔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들 또한 찾취자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제는 어느 모로 보나 노동자 계급의 생활수준이 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 현상 유지도 어려운 지겨엥 이르렀다. 부자들을 몰아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일반 대중은 소비를 더 적게 하든가 생산을 더 많이 해야 한다.  162-163


정통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상 풀리지 않는 모순을 물려받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신중한 사람들은 모두 산업주의와 그 생산품에 불쾌감을 갖지만, 빈곤의 극복과 노동 계급의 해방을 위해서는 산업화의 축소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떤 일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일종의 강제 없이는 결코 행해지지 않는다. 또 강력한 군사력 없이는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외에도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가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에 개인적으로 충성하지 않아야만 이끌어 낼 수 있는 명백한 결론이 있다. 일반적인 반응은 그 질문을 우리 마음의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답을 유보한 채 모순적인 슬로건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163-164


내키진 않지만 할 일을 한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그 일에 동반되는 신념까지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한 작가가 정치에 참여할 때, 그는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참여해야지 작가로서 참여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이 속한 정당을 위해서는 절대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  165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므로 기꺼이 참전할 수 있지만, 당연히 전쟁 선전문 쓰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작가가 정직하다면, 자신의 글과 정치 활동이 상호 모숨될 때도 있다. 분명 이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면 자신의 충돌을 왜곡시키지 말고 침묵을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166


정치란 것이 얼마나 더럽고 비열한 사업인지를 알고 있지만..  166-167


우리는 정치에서 두 개의 약 가운데 어떤 것이 덜 악한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뿐이며 그 이상의 것은 결코 할 수 없다.  167




작품해설 - 정치적 글쓰기와 동물 소설

1917년 러시아에서 차르 체제를 무너뜨린 노동자들의 혁명이 스탈린 등장 이후 애초의 혁명 정신은 사라지고 전체주의적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줄곧 주시해 왔다.


<동물 농장>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동물들은 모두 알레고리 수사법의 특성상 고도의 비유적 수법으로 암시되어 있다.  176


이 소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부터 1943년 테헤란 회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러시아 역사에 걸친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76-177




돼지들 - 거대한 러시아의 관료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지식인들을 가리킨다.


나폴레옹 - 러시아 혁명기의 스탈린을 가리킨다. 그는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지향했던 메이저 영감의 혁명적 이상주의를 저버리고 1인 독재자로 군림한다.


스노볼 - 트로츠키(1905년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 공산주의 혁명가. 스탈린과 극도로 대립하다 결국 1927년 당에서 축출되고 1929년에 소련에서 추방당했다)를 가리킨다. 트로츠키처럼 스노볼은 뛰어난 연설가이며 혁명에 대한 지적 열망을 가진 인물이다. 혁명적 이상주의를 실천하고자 자신을 희생시키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나폴레옹에게 쫓겨나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한다. 진정한 혁명가의 표본이다.


메이저 영감 - 혁명의 기본적 이론과 이상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를 가리킨다.


스퀼러 - 그는 새로운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하면서 그 사회 안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하는 인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 선전 기구의 거대한 선전 활동을 반영한다.


복서 - 러시아 혁명기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 복서는 모든 사회 체제의 성공에 꼭 필요한 정직하고 열성적인 무지한 일반 노동자를 대변한다. 그 같은 노동자는 독재나 전체주의 정권하에서 필연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이다.


벤저민 -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성실함이나 능력을 의심하는 냉소주의자이자 또 많은 사실적 이론의 진실을 의심하는 회의론자를 대변한다. 다른 동물들처럼 그 역시 읽는 법을 배우지만 그 기술을 유용한 목적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작가는 힘 있는 지식인도 신념이나 이상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그를 통해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클로버 - 동물 농장의 모성적 동물이다. 복서의 단순한 선과 힘의 특질을 보완한다. 어떤 다른 동물보다도 동정과 친절함을 많이 보여 주는 동물로, 끝까지 살아남으며 억압받는 동물들을 위한 안락하모가 힘의 원천이 된다.


몰리 - 몰리는 성격이 변덕스러운 보조적 역할을 하는 동물로 엘리트 계급을 대변한다. 그녀는 이 소설의 중간쯤에서 사라진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다른 동물들을 착취한다. 클로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개들 - 다른 동물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러시아의 비밀경찰을 가리킨다. 


양들 - 개들과 더불어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선전대이다. 양들은 대중을 대변하며 대중들이 어떻게 조종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모세 - 까마귀 모세는 어떤 면에서 피지배자보다는 지배자와 손을 잡는 동물로 교회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오웰의 견해를 보여 준다.


뮤리엘 - 염소 뮤리엘은 메이저 영감의 회합에 참가한 똑똑한 동물들 중 하나이다. 그녀는 읽는 법을 배우지만, 읽은 것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내리지 못한다. 그녀는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사실이라고 믿으며 7계명이 돼지들에 의해 바뀌었을 때도 결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존스 -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를 가리킨다. 


필킹턴 - 폭스우드 농장을 경영하는 인간. 영국의 처칠을 가리킨다.


프레더릭 - 핀치필드 농장을 경영하는 인간. 독일의 히틀러를 가리킨다.


매너 농장 - 니콜라이 2세 치하의 러시아를 가리킨다.


동물들의 반란 -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발생한 '10월 혁명'을 가리킨다.


외양간 전투 - 10월 혁명 이후 일어난 내란. 이 전투에서 존스와 함께한 일당은 볼셰비키를 몰아내려고 했던 외국 세력들이다. 


풍차 전투 -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을 가리킨다.


암탉들의 반란 - 1921년 1만 5,000여 명의 수병과 시민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핀란드 만에 위치한 크론슈타트의 해군 기지에서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궐기한 사건을 나타낸다.


풍차 건설 - 1928년 급속한 산업화와 농장의 집단화를 요구하며 시작된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나타낸다.


동물들의 거짓 자백과 처형 - 1936년부터 1938년 사이에 있었던 '스탈린 대숙청'을 가리킨다.


돼지들과 인간들의 파티 장면 - 제2차 대전 기간인 1943년 11월 28일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이란의 테헤란에 모여 회의를 한 [테헤란 회담]을 가리킨다.  177-183


오웰 <동물 농장>에서 혁명의 이상적 사상은 과연 실천 가능한 철학인가를 인간의 권력 욕구와 결부시켜 그 물으모가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183


혁명 초기부터 이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평한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고 돼지들을 중심으로 한 특정 엘리트 사회로 변질되기 시작.

작가는 권력 쟁취를 위해 비밀리에 개들을 키우는 나폴레옹의 경우를 포함해 엘리트 집단으로 성장하기 위한 돼지들의 의도적 행위를 혁명적 이상에 대한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돼지들의 권력 욕구와 그에 따른 필연적인 타락.  184


동물들은 스퀼러의 조직적인 거짓말, 양들의 대중 선동 등과 같은 언어의 왜곡으로 인해 과거에 대한 진실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에겐 과거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이다.  185


동물 농장에서 전개되는 반란 이후의 상황은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에 대해 생각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혁명이 되고 만다. 혁명의 기본 문제는 과거의 독재자들이 행사했던 억압적 권력이 아닌 공정한 권력을 이상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 하는 것이지만, 동물 농자의 경우에는 나폴레옹을 위시한 돼지들의 권력 욕구로 인해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185-186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돼지들이 인간화되는 서글픈 장면은 '실천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스적 이상'에서 출발한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이라는 한 개인의 전제 정치로 전락해 버린 러시아의 정치 상황을 포함한 당대의 정치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환멸감을 극명히 보여 준다...

오웰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독재자 스탈린의 등극으로 애초의 이상과는 다르게 전체주의적 상황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주의적 전망이 점점 절망적으로 흐럴간 것이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자체를 반대한 것은 결코 아니다.  186-187


<동물 농장>에서 오웰은 '이상'이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자연적 본능인 '권력에 대한 욕망'때문에 계급 없는 사회는 불가능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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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다비의 서문 

"작가에 관해 글을 쓰는 작가는 화가를 그리는 화가만큼이나 흥미롭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마에스트로에게  7



헤밍웨이와 절친한 친구들의 말과 아버지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을 종합해보면, 이 두 사나이는 정녕 두려움을 몰랐고 끝없이 관대했으며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들은 뭐든 기막히게 빨리 터득했고, 결코 사춘기의 열정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 둘은 똑같이 모순적인 행동을 했고, 여자에 관해선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고, 친구관계가 변덕스러웠다. 언어를 무기로 사용할 경우에는 무자비하고 심술궂기도 했다. 모든 이에게 그러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에게 그랬다.

둘 중 누구도 멍청이, 사기꾼, 지식인, 정치가 혹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읊어대는 쓸데없는 장황한 얘기를 쉽사리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발견한 가장 명백한 그들의 공통적인 기질은 어떤 비평가가 헤밍웨이의 "중대한 결함"이라고 지적한 그 "가학적인 농담"이었다. 이 가혹함의 정도는 대상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달린 듯했다.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에 묘사된 아버지만큼 그 지점에 근접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5년 10월 헤밍웨이가 막상 다음과 같이 썼을 때 아버지는 헤밍웨이가 자기를 알아봐주었다고 기뻐했다.

'그 친구는 뛰어난 파수꾼인데다 선상에서 일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열성적이었지만 바다에서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민첩해야 할 때 굼떴고, 이따금 두 발과 두 팔 대신 발만 네 개인 듯했다. 흥분하면 긴장했고, 뱃멀미는 구제불능이었고, 일을 시키면 촌놈 같은 반감을 품었다. 그래도 시간만 넉넉하게 주면 늘 기꺼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서 우리는 그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는데, 그 별명은 결국 마이스로 길이가 줄었다. 바람이 한바탕 몰아치기만 해도 그는 사지의 균형을 잃고 버둥거렸기 때문에 한번은 동승한 당신네 통신원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이스, 자네는 확실히 무지하게 대단한 작가가 될 걸세. 다른 일엔 눈곱만큼도 쓸모가 없으니까."

반면 그 친구의 글쓰기는 착실하게 향상했다. 언젠가는 작가가 될 만한 그릇이었다. 그렇다 해도 고약한 성미가 불끈불끈 삐져나오는 당신네 통신원이 작가 지망생을 일손으로 배에 태우거나, 쿠바고 다른 어떤 해안에서고 글쓰기에 관해 질의응답하면서 또다른 여름을 보내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필라호에 승선하고 싶다는 작가 지망생이 있거든 여자로 해주시길. 아주 예쁘면 좋겠고, 샴페인 챙겨오는걸 잊지 않도록 해주시길.'  13-15


그의 <횡단여행>(<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첫 부분)을 읽은 상태였다. 이 단편소설은 내게 그 작가를 만나기 위해 3200여 킬로미터를 여행해야겠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혹 일이 잘 풀리면 그가 몇 분만이라도 틈을 내어 글쓰기에 대해 얘기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것이다.  19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헤밍웨이를 만나는 일이 점점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만나면 뭐라고 하지? "저기, 안녕하세요?" 그러면 그가 뭐라고 할까? "썩 꺼져!"? 그는 나 같은 부랑자들을 피해 키웨스트처럼 외딴 곳을 택했을 것이다. 운이 트여 그를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연기가 펄펄 나는 화차 지붕에 앉아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21-22


"대학은 다녔나?" E.H. 가 물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긴 했는데 영문학 점수는 늘 형편없었습니다."

"좋은 징조군. 대학에서 학점을 잘 따는 친구들은 대개 흉내쟁이들이지. 자기만의 것을 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그럴 가망도 없고"  28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쓸 말이 바닥날 때까지 버티지 않도록 하게. 글이 술술 풀려 얘기가 재미있는 지점에 이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면 바로 그때 멈춰야 하네. 그러고는 원고를 그냥 놔두고 생각을 끄게나. 나머지는 자네의 잠재의식한테 맡겨둬. 다음날 아침 잠을 푹 자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든 그 전날 쓰던 것을 다시 쓰도록 하게. 그럼 그 재미있는 지점에 다다를 거고 또 다음 장면이 예측되겠지. 그 지점에서 계속 전진해. 그러다가 또다른 재미의 정점에서 멈추는 거야. 그런 식으로 써나가면 탈고했을 때 자네의 글은 재미있는 부분들로 가득할 것이고, 장편을 쓸 때도 절대 막히는 일 없이 얘기를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다네. 매일같이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전부 다시 쓰게. 얘기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싶으면 쓰기 전에 바로 앞 두세 장 정도를 되짚어 읽어본 후에 시작하게. 그리고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거라네. 검토할 때 잘라버릴 만한 건 모조리 잘라버리게. 무얼 내팽개쳐야 할 지 아는 게 핵심이야. 잘하고 있는지 여부는 뭘 버리느냐에 달려 있다네. 다른 작가가 쓰더라도 정말 재미있겠구나 싶은 걸 내버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는 걸세."

헤밍웨이는 이미 내 작업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고 힘껏 돕고 싶다는 듯 힘주어 말했다.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을 적어도 쉰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하게 손을 보아야 해.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자네는 온통 흥분되겠지만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하지만 작업 요령을 터득하고 난 후에는 독자에게 모든 걸 전달해서 예전에 읽어본 얘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실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게 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해. 이게 글쓰기를 평가하는 진정한 시금석이라네. 그리되면 독자는 흥분해도 자넨 아무렇지도 않아. 그저 힘든 일의 연속이야. 잘 쓸수록 힘들어져. 오늘 쓴 이야기는 어제 쓴 것보다 나아야 하니까. 세상에서 가장 고달픈 짓이지. 쓰는 일 말고도 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 게 수두룩하지만, 펜을 놓고 있을 때는 기분이 더러워져. 내가 가진 재능을 썩힌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말일세." 그가 말을 이었다. "모르는 건 쓸 수 없어. 순전히 상상에 의존하는 건 시(詩 시시)야. 공간과 인물들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얘기가 진공 속에서 벌어지게 되지. 창작은 써가면서 하는 걸세. 그날의 글쓰기를 끝낼 즈음에는 그다음 이야기가 어찌 펼쳐질지 알겠지만 그 이야기 다음에 벌어질 일까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네."

"애초에 아무런 플롯도 없이 이야기를 쓴다는 말인가요?"

"최고의 이야기는 그렇게 쓰이는 걸세. 좋은 얘깃거리가 있다면 서슴지 말고 써. 그런 건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해치우는 거야. 하지만 최고의 이야기는 하루하루를 겪으면서 만들어지는 거라네. 그런 걸 쓰는 건 뼈빠지는 일이지만 그게 쓰는 사람한테나 읽는 사람한테나 훨씬 흥미진진하지.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 쓰는 사람이 모르는데 독자가 어찌 알수 있겠나?"

"또하나."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망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즐겨 읽는 작가라도 있나?"  31-33


"말히긴 좀 그러네만, 자넨 진지한 것 같아." 마침내 E.H.가 입을 열었다." 진지함은 작가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이지. 일류로 쓴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일이고, 상상력을 발휘해 쓴다는 건 예술의 최고봉이라네. 또하나 갖춰야 할 게 있는데 그건 재능일세. 죽었다 깨도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있지. 소설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하겠나?"

"모르겠습니다. 자기한테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아나요?"

"알 수 없지. 몇 해를 써본 후에야 나타나기도 하니까. 여하튼 소질만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야.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딱 한가지 충고는 꾸준히 쓰라는 걸세. 물론 지독하게 고된 짓이지.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건 펜을 들고 해적질을 일삼기 때문이야. 내 경우 단편 열 개를 써봤자 그중 하나 정도만 쓸 만할 뿐 나머지 아홉은 버린다네. 그런데 편집자들이 내 작품을 원하면 나는 그네들을 그걸 놓고 경매를 벌여야 하는 처지에 몰아넣고는 그 열 개를 모두 살 만한 가격으로 그 하나의 값을 치르겠다고 나올 때까지 양쪽을 부추긴다네. 그럼 그자들은 질투심에 불타 내가 와서 해결해주기만을 바라게 되지. 자네가 글을 쓴다고 하면 너도나도 행운을 빌어주겠지만, 자네가 잘나간다 싶으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걸세. 정상에 무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작품을 쓰는 거야."

"상상력은요?" 내가 물었다. "창작할 수 없을 땐 어떡하죠?"

"창작이란 꾸준히 써나가며 터득하는 거야."

"애초부터 깜깜해도 말입니까?"

"이따금씩은."

"여쭙고 싶은 것이 또 있습니다. 저는 혼자 지내는 걸 무척 좋아해요. 주변에 사람들이 늘 북적대는 걸 못 견딥니다. 그게 작가에게 나쁜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아. 그래야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지지. 나도 지난가을 아프리카로 떠날 무렵엔 인간이라는 족속에 진절머리가나 누구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네. 기억해두게, 자네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거야. 자네 어머니께선 다르겠지만 자네가 죽든 살든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 개인으로서 자네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자네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아무도 관심 없어. 자네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 해."

"작년에 몇 달을 서부지역에서 차를 얻어 타고 화물열차를 무임승차하며 보냈습니다. 부랑아처럼 쏘다니는 게 작가에게 유익한 경험이 될까요?" 

"그렇고말고. 나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내와 가족에 매인 몸이라서, 하지만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사시사철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네. 한곳에 진득하게 머물면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해. 불결한 임시 천막촌에서도 괜찮은 걸 건질 수 있어야 하네. <허클베리 핀>은 읽어봤나?"

"옛날에요."

"다시 한번 꼭 읽어보게. 미국인이 이제껏 쓴 책 중 최고야. 허크가 도둑맞은 검둥이를 되찾는 부분까지는, 미국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지. 스티븐 크레인의 <블루 호텔>은 읽어봤나?"

"아니요."

"모름지기 작가라면 교육의 일부로서 꼭 읽어둬야 할 책들을 적었다네." 그가 아래의 목록을 건네며 말했다.



스티븐 크레인 - 블루 호텔, 오픈 보트


보바리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적과 흑 - 스탕달

(인간의 굴레 - 서머싯 몸)

안나 카레리나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 토마스 만

환호와 작별 - 조지 무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옥스퍼드 영시집

거대한 방 - E.E. 커밍스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저 멀리 그 옛날에 - W.H. 허드슨

아메리칸 - 헨리 제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서로 다른 글쓰기의 전형을 대표하는 것들이네. 어떠 ㄴ것은 따분하고, 어떤 것은 영감을 주고, 또 어떤 것은 무척 아름답게 쓰여 글을 쓴다는 게 절망적인 일처럼 여겨질 걸세.  34-37


"바닷물 색깔이 왜 가지각색이죠?"

"바닥 때문이지. 짙은 보랏빛이 도는 부분은 해초가 있어서 그렇다네. 산호초가 자라는 곳은 초록빛이야. 모래가 깔린 드라이록스 근처에서는 누런 빛을 볼 수 있을 걸세. 바다에 나와 있으면 눈 훈련에 좋아."  59


".. 글쓰는 법을 터득해야 해. 처음 써본 이야기가 팔린다는 건 작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라네. 똥 같은 걸 팔게 되면 똥 같은 걸 계속 쓰게 돼. 행여 글이 나아진다 해도 독자들은 언제나 첫인상으로 그 작가를 기억하지."  71


".. 보낸 원고가 퇴짜를 맞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려니 하는 거야. 남들과 다르게 쓰면 잡지사 사무실에 있는 친구들은 자네가 훌륭한지 알아보지 못해. 다른 이가 진가를 발견해야 그때서야 비로소 눈을 뜨지. 형편없는 건 아무리 써서 보내봤자 어김없이 되돌아오지만, 제대로 쓴 걸 꾸준히 우편으로 보내다보면 언젠가는 사겠다는 작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 처음 쓴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야. 그래서 배워야 한다는 걸세..."  72


".. 독자들은 좋은 이야기를 알아보지만 편집자들은 아이냐. 색다른 이야기를 보내면 편집자들은 그 가치를 못 알아봐. 이야기만 훌륭하다면 반송되어 오더라도 거들떠보지 마. 그냥 계속 보내. 좋은 이야기라면 알아보는 편집자가 있을 거야. 한 명이 알아보면 나머지도 알아보기 마련이지.. "  85


"..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러고는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  87


"하루에 몇 단어나 쓰세요?" 바다로 나간 어느 날 오후 내가 E.H.에게 물었다. 

"대중없다네." 그가 말했다. "많이 쓸 때도 있고 한 자도 못 쓰는 날도 있지."

"버나드 쇼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적어도 하루에 1000단어는 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너무 많아. 무지하게 잘 써지는 날에야 1000단어도 쓸 수는 있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자네를 펌프질 해대면 밑천이 바짝 말라 똥 같은 거나 쓰게 돼. 하루에 500단어를 쓴다고 해도 그걸 전부 실어줄 출판없자는 없어. 1년이면 18만 단어, 소설 두 권 분량이거든. 그리해보려고 시도해본 적 있나?"

"없습니다. 해보곤 싶은데 해보려고 할 때마다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 말일세, 글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든다네. 글을 쓰는 건 힘든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 세상에 못해먹을 짓이야. 쉽다면 개나 소나 다 하겠지. 그냥 앉아서 한편 써 보내면 돈이 굴러들어오는 게 아닐세. 그네들이 거액을 지불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그런 고된 짓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죠?"

"신나는 얘깃거리를 갖고 재미있게 만드는 거야 누군들 못하겠나. 비결은 수수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재미있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신나는 얘깃거리를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최고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나요?"

"아니야, 최고의 이야기는 꾸며내는 거라네. 액션을 꾸며낼 수 있어야 해. 소설이 될 만한 일을 실제 삶에서 벌일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열에 하나 정도야. 자네가 자네를 소재로 쓰면 그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는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쓰면 천 번을 죽고도 계속 쓸 수 있지. 자네가 아는 사람을 하나 골라 그의 나이와 전력을 바꾸고 그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로 그를 옮겨놓게. 그래도 그는 실존 인물인 거야. 그를 재미있는 상황에 던져놓고 액션을 만들어내, 꾸며내는 요령만 터득하면 소설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네.

좋은 얘깃거리다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써. 가슴속에 있는 걸 전부 털어놔. 그게 한 번 자리잡고 앉았을 때 쓸 수 있는 분량이야. 그러고 보니 생각나네. 언젠가 하루에 단편 두 개를 쓴 적이 있지. 한 편을 쓰기 시작해 탈고하고 났는데도 여전히 기분이 좋아서 한 편을 더 썼어. 

그렇게 한 편을 쓴 다음에는 원고를 두 주 정도 치워둬. 그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보는 눈이 생긴다네. 싹수가 보이지 않는 건 포기해야 해. 쓴 걸 치워두었다가 다시 돌아가 독자의 관점에서 읽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  114-116


"지금 자네한테 필요한 건 눈을 이용해서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래야 쓸 때 그것들을 고스란히 나타낼 수 있어. 어떤 하나를 다른 것과 비교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네.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지. 모든 것이 고유하다네...

절대적인 글쓰기라는 게 있지. 그걸 가르쳐주면 나주엥 자네 나름의 스타일을 계발할 수 있을 거야."  116-117


짧은 문장을 써야 할 때가 있지만 때를 가려 쓸 줄 알아야 해. 짧은 문장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건 단조로운 기계망치질 같아서 독자를 피곤하게 해...

모름지기 작가는 상이한 두 성격이 있어야 해. 인간으로서 자네는 천하의 개망나니일 수도 있고 사람을 증오하고 비난하고 다음번 만났을 때 놈의 대갈통을 총알로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 자네는 누구에 대해 쓰기 전에 그 사람을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의 관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네의 사사로운 반응을 섞지 않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요령을 터득해야 해.  120


나는 난생처음 도보로 외국 도시를 여행할 때 느끼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혔다.  137


정오쯤 되자 우리는 초록빛 해안을 따라 수킬로미터 내려와 있었고, 모로캐슬의 탑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아바나의 풍경이 되었다. 코히마르라는 작은 어촌을 지나 아담한 바쿠라나오 만 맞은편에 다다르자 E.H.가 카를로스에게 해변 쪽으로 배를 돌리라고 했다. 

"저기가 되놈들을 내려놓은 만이라네." E.H.가 <횡단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 단편을 읽은 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살던 때였다.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저녁에 녹초가 될 때까지 써댔는데 이야기에서 열기가 빠진 다음 읽어보면 악취가 풍겼다. 우울증이 발작처럼 엄습할 때면 주섬주섬 책을 읽었다. 대부분 성에 차지 않았다. 현대 작가들에게서 뭘 배울 게 있으려나 하고 잡지를 뒤적여 보았지만 그들은 더 형편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 단편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것과 다른 것들의 차이는 낮과 밤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나는 우아한 문구들과 억지로 짜맞춘 플롯에 신물이 나 있었는데, 마침내 억센 고기잡이의 말투로 쓰인, 내가 그때까지 읽어본 것들 중 가장 수긍이 가는 이야기를 발견한 것이다. 뭘 어떻게 했기에 이야기가 그토록 멋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바로 내가 쓰고 싶은 방식이었다! 나 말고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이 수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말이다. 나는 그가 현존 작가라는 걸 알았고, 그가 내게 이야기를 쓸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귀띔이라도 해주었으면 했다. 만일 그 단편 밑에깔린 예술적인 그 무엇을 그에게서 배워 깨우칠 수만 있다면 내게도 아직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 그의 요트에서 그와 낚시를 하면서 그가 쓴 단편소설 속의 어부가 되놈의 목을 으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졸랐다는 그 작은 만을 향하고 있었다.

"이 해안을 꽤 잘 아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무얼 쓰려거든 사전에 그것에 대해 알아둬야 해." E.H.가 말했다. "이야기를 쓰려면 배경과 등장인물이 있어야 하지. 그것들은 완전히 꿰고 그것들이 벌일 만한 일을 생각해둬야 해. 우선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하고 그런 다음 액션을 만들어내. 그러면 이야기는 저절로 써지게 돼 있어."

"쓰기 시작할 때 플롯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배경과 인물만 있으면 돼."

"아무 플롯이 없는데 쓰는 게 소설이 될지 어떻게 알죠?"

"알다마다. 아는 소재만 있으면 이야기는 나오는 걸세. 하지만 바다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가장 힘든 곳이지. 10년을 나와 있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게 바다야. 육지에서 전쟁이 터지면 달라. 전쟁터에 석 달만 나가 있으면 장편소설을 하나 건질 수 있지."  155-157


E.H.는 낚시질 중에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거대한 놈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빈틈없는 준비 태세를 갖추고자 했다.  160


"자네나 나나 또같은 걸 보지. 무엇을 본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쓴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네. 누군들 못 보겠나.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고 벌어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모름지기 작가라고 할 수 있지..."  174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무엇이죠?"

"전쟁. 전쟁은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탄생시켰지. 혹은 불행한 유년 시절. 실연. 남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이 작가에겐 거반 다 좋은 일이야. 그리고 마흔이면 사람들은 실수하기 시작하지만 작가의 정신은 명료해진다네."  176



"죽도록 하고 싶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312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최선인가요?"

"어떤 자옷에 관해 그곳에서 멀어지기 전에 쓰는 건 금물이야. 떨어져 있어야 균형 잡힌 시각이 생기거든. 무엇을 본 직후에는 그걸 사진처럼 묘사해서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어. 좋은 훈련이지. 그러나 그건 창작이 아니야."

"써가면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게 소설이라면 벌어질 일의 내용은 어떻게 결정하죠?"

"열댓 개의 흥미로운 가능성 중에 필연적인 하나를 골라야지."

"그게 형편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알죠?"

"마음속의 어떤 소리가 일러준다네. 판단이 경계선에 걸리면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구분할 수 있어."  313-314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314


"쓰고 싶은 마음은 정말 굴뚝같아요. 노력도 하고요. 그런데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정말 고된 짓이지. 자네는 그걸 이제 막 발견하기 시작한 거야. 글이 나아질수록 더 힘겨워져. 자네에게 필요한 건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거야. 하루에 적어도 250단어는 쓸 수 있어야 해. 그 정도면 충분해. 그렇게만 써도 1년이면 소설 두 권 분량이야.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눈과 귀를 사용 하는 거야. 부두 위에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 관찰하게나. 요트들이 들어온거든 그 소유주들과 승무원들도 관찰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게.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각 단어를 어떻게 말하는지 기억해두게. 자네는 자아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해. 그건 꼭 피요한 자질 중 하나지.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예민해야 하네.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 수 있어야 해. 계속 노력하면 계발되는 능력이라네. 누구도 자네가 겪는 고난 따위엔 관심 없어. 자신이 겪은 고생담을 늘어놓는다면 지독하게 따분한 놈으로 전락하고 말아. 자네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고, 자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아. 자네 자신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피게."

"쿠바를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없다면 제가 쓸 만한 것은 뭐죠?"

"내 장사 구역이니 넘보지 말라는 게 아닐세. 그저 자네가 소설을 쓸 만큼 쿠바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소설에서는 뭘 쓰지 않고 내버려두느냐가 중요하다네. 10분의 9는 수면 밑에 있어야 해. 그게 이야기에 품격을 주는 거야.."  314-315



"자네가 꼭 극복해야 하는 건 낙심하는 일이야." 그가 말했다. "자네에겐 육체적인 담력이 있어. 하지만 그건 겁먹기 전까지 누구나 있는 거지. 자네한테 필요한 건 정신적인 담력을 키우는 일이야. 훨씬 어려워.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게! 산문을 쓰는 건 세사에서 가장 힘든 일이야...

한 번에 몇 주 동안 써지지 않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낙심하지 말게. 세상 그 어떤 작가라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려니 하게. 기력이 빠지거든 자네가 본 것들을 빈틈없이 써보게나. 그것들이 종이 위에서 꿈틀거려 독자들이 그것들을 볼 수 있도록.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표정, 두드러진 이목구비 등에 주목하게. 그런 것들이 글을 생동감 있게 하는 거라네. 그러니 독자가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쓰는 연습을 하게. 그러고는 독자가 공감하길 바라는 감정이 무언지 파악하려고 힘쓰는 거야. 난 그런 식으로 글 쓰는 법을 터득했다네.

자네가 쓴 기사류 글들은 눈에 좋은 훈련이었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게 글쓰기에 대한 참된 시각을 자네한테 선사한 거라네. 이제 이 여행길로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어떤 실마리가 떠오를 수도 있을 걸세. 전에 떠돌이 생활 때 본걸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걸 보게 될 거야. 지벵 도착하고 나서 소설이 써지지 않거든 밖으로 나가 뭐든 보고 그걸 종이 위에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사람들한테 말을 걸어서 그들이 말하는 걸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써. 그러면 자네의 마음도 자동으로 대화를 들으려고 집중할 걸세. 귀를 잘 발달시키면 마음이 체를 치듯 움직여 써먹지 못할 것은 잊어버리게 되어 있어. 좋은 글을 읽어서 좋은 감식력을 키우게.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라네...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져. 운동을 많이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게. 그게 제일 중요해."  3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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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나온다. - 이디스 워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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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10월 25일 존 가드너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자신의 양식과 지성을 믿는 사람들이 문장과 단락의 구조를 익히도록 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써야 하는 의무를 독자에게 진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고, (영어)산문의 거장들을 공부할 기회를 갖도록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부단히 매진해 나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준을 스스로 세우도록 하는 데 있다.  28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39


작가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발성과 아이처럼 예민한 감수성과 화가 못지않게 '순수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참신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환경도 마치 처음 대하는 환경처럼 대한다...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2천년 전에 말한 '사물의 연관관계'에 늘 주목한다. 이런 신선한 시각이야말로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재능이다.  41


작가가 성공을 거두려면 위에서 말한 특징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또 있다. 다름 아니라 어른스러움과 분별력과 절제와 공평함이다.  42


침묵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7


오래된 습관일수록 끈질기고 질투가 심하다. 미리 선전포고를 할 경우 오래된 습관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교묘한 설득력을 앞세워 맞서려 든다. 그런가 하면 너무 철저하게 공격할 경우에는 복수를 해온다. 하루나 이틀쯤 노력이 기가 막히게 먹히고 나서 우리는 새로운 방법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온갖 이유나, 이런저런 오래된 습관과 보조를 맞추면서 변화를 꾀해야 하거나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온갖 이유를 들이댄다. 그러다 결국에는 새로운 충고가 아무 소용이 엇어지게 도니다. 대신 시도는 좋았지만 실패했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그 이유는 계획이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기력이고 목적 의식이고 모두 써버리기 때문이다.  70


글을 쓰려면 길들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고독과 칩거를 감수해야 한다.  78


무의식의 비옥한 자양분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무의식이 기선을 잡았을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려면 평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일어나자마자 말을 하거나, 조간 신문을 읽거나, 전날 밤 치워두었던 책을 집어들지 말고 글을 쓰기 시작하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내용이나 쓰라. 기억할 수 있다면 간밤에 꾼 꿈도 좋고, 전날 했던 활동도 좋고, (실제든 상상의 산물이든) 대화도 좋고, 양심의 성찰도 좋다. 어떤 종류든 상관없으니 이른 아침의 공상을 비판의 시각을 들이대지 않고 빨리 쓰는 것이 관건이다. 글의 우수성이나 궁극적인 가치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는 이러한 내용 속에서 기대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일차 목적은 불후의 명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헛소리만 아니면 되는 글을 쓰는 데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수면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의 중간 지대에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문단이 일정한 틀 없이 중구난방으로 흐르든, 생각이 모호하거나 터무니없든 훈련의 성패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평 능력일랑 모두 잊어버리라.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이상 무엇을 쓰든 그 글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에 주목하라. 각자의 편리에 따라 침대에 앉아 공책에 글을 써도 상관없다. 이 기간에 타자기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비는 시간만큼, 또는 충분히 썼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가능한 한 오래 쓰는 것이 좋다.  

다음날 아침 전날 써놓은 글을 다시 읽지 말고 시작하라. 글을 다 쓸 때까지는 읽기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훈련의 효과는 나중에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은 그저 훈련에만 충실하라.  79-81


마음을 정했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든 상관없이 그 시간은 반드시 비워두어야 한다.  85


4시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4시에 꼭 글을 써야 한다! 변명은 있을 수 없다. 4시에 대화에 깊이 빠져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자신에게 한 약속도 물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침에 글을 쓸 때처럼 소재는 아무것이든 상관없다. 말이 되든 되지 않든 오행시든 무운시든 무조건 쓰라.  86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훈련과 아무 때고 글을 쓰는 훈련은 글을 자유자재로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88


모방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취향과 장점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것이다. 습관을 들이는 이 기간에 써놓은 글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실험 재료가 들어 있다. 자리에 앉아 맨 처음 떠오르는 것들을 쓸 때 대체로 무엇을 쓰는가? 이제 자신이 쓴 글을 마치 낯선 사람의 작품을 읽듯 읽어나가면서 이 낯선 작가의 취향과 장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선입견은 모두 한쪽으로 치워두라.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야망이나 희망이나 두려움이 있다면 모두 잊고 이 낯선 작가가 조언을 청해온다면 그에게 가장 잘 맞는 분야는 무엇이라고 말해줄지 생각해보라.

그 동안 써둔 그렝서 발견되는 반복, 거듭 나타나는 생각, 자주 나오는 산문 형식이 실마리를 제시해줄 것이다. 그런 요소들은 그대의 타고난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그대의 장점을 더욱 갈고 닦는 것은 좋지만 자신은 오로지 한 가지 유형의 글만 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글은 그만큼 잘 쓰지 못랄 것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하지만 이 검토를 통해, 가장 풍성하고 가장 쉽게 흘러나오는 그대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93-94


의심스러운 점은 뭐든 하나도 빼놓지 말고 따져보아야 한다. 짧은 평서문을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감탄 부호를 남발하지는 않는가? 표현이 미사여구로 흐르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지나치게 간결하지는 않은가? 말을 너무 아껴서 감동적인 장면을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그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가 놓칠 위험은 없는가? 신빙성이 떨어질 정도로 과장에 치우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말 수가 적은 작가는 앨저넌 찰스 스윈번(1837~1909, 영국의 시인겸 평론가)이나 토머스 칼라일(1975~1881, 영국의 사상가 겸 작가)처럼 근엄하기보다 화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작가에게는 그 반대의 충고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18세기 영국의 작가들이나 윌리엄 딘 하월스(1837~1920, 미국의 소설가 겸 평론가), 윌라 캐더(1873~1947, 미국 소설가), 아그네스 레플리어(1855~1950, 미국 수필가) 같은 작가를 읽어보라. 단조로운 문체 때문에 고민이라면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1874~1936, 영국의 소설가 겸 평론가)의 소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제안에는 거의 끝이 없지만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약을 처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처방전을 찾았다면 겸허하게 읽으면서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작가들의 장점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체를 단련하는 동안에는 스스로에게 사정을 봐주어선 안 된다. 관심이 끌리는 책은 철저히 멀리해야 한다.  105-106


다음으로 전날 저녁의 상황이 아침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봐야 한다. 활동을 많이 한 날 다음에 좋은 글이 나오는가, 아니면 조용하게 지낸 날 다음에 좋은 글이 나오는가? 글이 쉽게 써졌다면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난 다음인가, 아니면 짧게 자고 난 다음인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 다음날 아침의 글쓰기가 활기를 띠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지는 않은가? 극장이나 미술 전시회, 무용 발표회에 갔다오고 나서 그 이튿날 아침의 글쓰기는 어땠는가?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라  106


다음으로 일상의 규칙에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는 기분 전환을 위해 가끔 쉬면서 단순하고도 건강한 일상을 꾸려나갈 때 크게 발전한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어떤 음식이 자신에게 맞고 어떤 음식을 멀리해야 할지와 같은 사안들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 글을 쓰며 살 생각이라면 자극제에 계속 기대지 않고도 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적절하게 사용해도 되는 자극제가 있는 반면, 완전히 끊어야 하는 자극제도 있다. 일을 몰아서 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꾸준하고 착실하게 흐름을 타면서 생산성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그럴 경우 가끔 평균 수준을 훨씬 웃도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생산성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두세 달에 한 번, 아니면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풍작을 거두려면 이러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을 평가할 때는 기질적인 면이 일상의 행동에 너무 많이 관여하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처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정에 치우쳐 제멋대로 굴지는 않는가? 욱하는 기질이나 질투심, 쉽게 낙담하는 성격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지는 않은가? 차분히 생각해보면 문제점이 뚜렷이 보이기 마련이다. 질투, 낙심, 분노는 글이 흘러나오는 샘을 오염시킬 뿐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한시라도 빨리 오염 요인을 찾아 흔적조차 남지 않게 완전히 없애야 한다.

자신을 평가할 때는 철저해야 한다. 자신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은 그저 '잘'의 수준이 아니라 '아주 잘' 이루어져야 한다. 스스로 엄격하면서 공정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비난은 근거 없는 자화자찬만큼이나 나쁘다. 자신이 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을 인정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잘하는 일을 기준 삼아 다른 데서도 그와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07-108


작가가 되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단순히 오락거리가 아니라 본보기로 바라보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효과를 얻으려면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야 한다.  112


작가 입장에서 책을 읽는 법을 터득하려면 처음에는 뭐든 두 번 읽는 길밖에 없다...

다 읽었으면 당분간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연필과 메모장을 꺼내라.  

우선 방금 읽은 책의 개요를 짤막하게 작성하라.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믿음이 갔는지 아닌지, 마음에 들었던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은 무엇인지에 비추어 대강의 판단을 내리라. (나중에는 도덕적 판단도 내릴 수 있겠지만 지금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진술 내용을 계속 늘려나가라.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처음에는 모호하더라도 기죽지 말라. 책을 다시 읽어보면 그러한 반응의 원인을 찾게 될 것이다. 책 내용 가운데 더러는 훌륭해 보였던 반면 나머지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면 작가가 언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되짚어보라.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은 솜씨로 그려졌는가, 형편없이 그려졌는가, 아니면 어쩌다 가끔만 일관성 있게 그려졌는가? 이렇게 느낀 이유를 알겠는가?

특별히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이유가 장면 처리가 뛰어났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이없게도 좋은 기회를 놓쳤기 때문인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관심을 끌었던 구절이 있는가? 대화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틀에 박혀 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그런 딱딱한 형식이 작가의 의도 때문인가, 아니면 작가의 능력 부족 때문인가?  113-114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나가면서 분명해 보이는 대답을 찾는 대로 메모장에 기록하라. 특별히 잘 처리된 구절을 발견하거나, 작가는 솜씨 있게 다루고 있지만 자신이 다루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소재가 눈에 띄면 표시해두라.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그 부분을 좀더 심도 있게 분석해 본보기로 활용할 수 있다.  115


비판 어린 시선으로 책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자극과 유익함은 끝이 없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읽어야 한다.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대목에서 책의 호흡이 빨라지는지 느려지는지에 주목하라. 작가가 버릇처럼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훈련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너무나 명백히 그 작가만의 것이라 구조를 배워 봐야 헛수고에 그칠지 결정해야 한다. 장면이 바뀔 경우 등장인물이나 시간의 흐름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관심의 중심이 어느 한 인물에 이어 다른 인물에게 옮겨 갈 때마다 어휘와 강조점도 달라지는가? 작가가 모든 일에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특정 등장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는 가운데 그 인물이 보기에 분명한 것만 말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가? 아니면 처음에는 이 사람, 다음에는 저 사람,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가? 대비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가?  116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다 보면 배울만한 점들이 눈에 띌 것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활용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두 번은 읽어야 한다.  117


기술적 장점은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으며, 돌아오는 이득도 아주 크다. 단락이 길든 짧든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그 어떤 기술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이는 기술이 눈에 띈다면 자리에 앉아 그 기술을 배우라. 

기술을 공부할 때는 본보기로 삼은 책이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공부할 때보다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아 한다. 단어를 하나하나 찢어발기듯 그 단락을 철저히 분석하라.  121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는다면 약국 진열창도, 우리를 일터로 데려다주는 버스도, 북적이는 지하철도 도원경처럼 신기해 보일 수 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거리를 지날 때 15분만 시간을 내서 눈에 띄는 사물 하나하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 자신에게 말해보라. 버스는 겉이 무슨 색깔인가?(단지 녹색이나 빨간색이 아니라 샐비어 색이나 올리브 그린, 자주색이나 주홍색처럼 구체적으로.) 입구는 어디인가? 차장과 운전사가 따로 있는가, 아니면 한 사람이 차장 겸 운전사 역할을 모두 하고 있는가? 버스 내부, 예를 들어 벽, 바닥, 좌석, 광고 포스터는 무슨 색깔인가? 좌석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 맞은편에 누가 앉아 있는가? 옆사람들은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서 있는가, 앉아 있는가, 독서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졸고 있는가?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어떤 냄새가 나는가, 손잡이 가죽이나 스쳐 지나가는 외투 자락의 느낌은 어떤가? 잠시후 집중력이 떨어지겠지만 장면이 바뀔 때마다 집중력을 다시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관찰하라. 어디서 탔으며, 행선지는 어디일 것 같은가? 얼굴, 태도, 옷차림에서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짐작할 수 있는가? 고향은 어디일 것 같은가?(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집 <월요일 또는 화요일(Monday or Tuesday)>에 수록된 단편 [쓰지 않은 소설(Unwritten Novel)] 을 참조하라.)  132-133


정말로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간단하고 사소한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된다...

물론 알맞은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새로운 느낌에 딱 어울리는 단어를 찾는 작업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올바른 표현을 찾으려 끈질기게 노력하다 보면 정말 필요할 때 바로 이거다 싶은 문구가 저절로 생각날 것이다.  134-135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곧 아침에 쓰는 글이 전보다 더 원숙하고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매일 새로운 소재를 쉽게 발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숨어 있는 기억을 불러낼 수 있다. 새로운 사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의 본성 깊숙이 내려가 감각과 경험, 지나간 기쁨과 슬픔, 자신의 기억 깊은 곳에 자리하는 옛 시절과 완전히 잊고 지냈던 일화를 남김없이 끄집어 낸다.  135


그 동안의 경험을 들어 오늘의 신념이 내일의 신념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확신하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길 망설이는 초보 작가가 너무나 흔하다. 이런 초보 작가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궁극적인 지혜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주길 기다리다가 그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자신은 글을 쓰긴 글렀나 보다고 지레 판단해버린다. 이러한 기다림이 (가끔 그렇듯이) 단지 글쓰기를 막연히 미루는 신경과민성 핑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어려움으로 작용할 경우 그는 전력투구하지 않고 건성으로 반쯤 이야기를 쓰다가 거기서 그치고 만다.

이런 작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혼자만 그런 일을 겪는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143



- 신을 믿는가? 믿는다면 어떤 측면에서?(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1840~1928)의 '불멸의 수호신'(<테스>중에서)이라는 측면에서, 아니면 H. G. 웰스의 '현현하는 신'이라는 측면에서?)

- 자유 의지를 믿는가, 아니면 결정론자인가?(예술가가 결정론자라는 생각은 너무도 모순이라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 남자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여자? 아니면 어린아이?

-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낭만적인 사랑은 미망이자 올가미라고 생각하는가?

- "백 년이 지나도 모두 똑같을 것이다."라는 말을 심오한 진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얄팍한 속임수라고 생각하는가?

-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인가? 또 가장 큰 불행은? 


이런 굵직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목한다면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소설을 쓸 준비가 아직 안 된 상태다.  150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여가 활동을 찾으려면 직접 실험해보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끝내야 할 작품이 있을 때는 책이나 연극이나 영화는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책이나 연극의 내용이 좋을수록 정신이 흐트러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분이 변해 생각이 바뀐 상태에서 다시 글을 쓰게 된다.  155


열정이 넘치는 작가만이 '기분 전환'이라는 매혹적인 이름으로 부를 자격이 있다. 그리고 성공한 작가일수록 작가로서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 좋은 책을 들고 구석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성공한 작가들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사실 모든 작가는 먹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말 없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  156-157


다른 사람의 문체에 얼마나 쉽게 빠질 수 있는지 예를 통해 알아보자. 어조와 문체에서 강한 개성을 자랑하는 작가를 한 명 고르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라면 누구든 상관없다. 피로가 약간 느껴지면서 처음의 관심이 시들해질 때까지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라. 이제 책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아무 주제든 글을 몇 쪽 쓰라. 그런 다음 그 글과 아침에 쓴 글을 비교해보라. 필시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마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고른 작가의 방향대로 강조저모가 어조를 바꾸었을 것이다. 패러디의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심지어는 되도록 독자적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도 너무나 비슷해서 어처구니가 없을 때도 더러 있다.  161-162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문제, 자신만의 주제, 자신만의 어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162


천재(여기서 '천재'는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의미-옮긴이)의 뿌리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안에 있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천재를 갈고 닦는다고 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재능은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의식의 영역 바깥에 기원을 두고 있다.  174


무의식을 흐릿학 우중충하고 형체도 없는 개념들이 어지럽게 떠다니는 지옥의 변방쯤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의식은 형식에 민감하다. 뮤의식은 우리의 이성보다 유형, 양상, 목적을 훨씬 더 빨리 포착해낸다. 하지만 무의식의 활동이 너무 왕성할 경우에는 경로에서 이탈할 수도 있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무의식이 제시하는 자료가 감당 못할 정도로 넘쳐나지 않도록 늘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고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글을 잘 쓰려면 당면한 지식의 문지방 뒤에 자리하는 우리 본성의 거대하고 강력한 이 부분과 타협해야 한다.  176


계획하고 있는 작품의 형식과 주제를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이며, 무의식에 의지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훌륭하고 확실한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무의식의 활동에 시도 때도 없이 간섭해선 안 된다.  177


진정한 천재는 자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채로 평생을 살아간다.  177


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181-182


어떤 면에서 작가는 요행을 통해서든 오랜 모색을 통해서든 가벼운 상태의 최면에 스스로 빠져든다. 최면 상태에서도 관심은 여전히 유지되지만 그저 유지될 뿐이다. 굳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이때 작가는 마음의 수면 저 뒤편에 너무 깊이 가라앉아 있어(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마침내 자신을 일깨우지 않는 한) 뭔가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통합된 작업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185


집중해서 생각하려면 몸을 움직여선 안 된다. 사람들은 생각을 집중할 때 기껏해야 가볍고 기계적인 일만 한다. 행동에 들어가게 하려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주기성을 띠면서 단조롭고 말 없는 활동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  188-189


이런 방법을 사용해보라. 즉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회색 고무공처럼 단순한 물체를 선택하라.(밝은 색깔의 물체나 눈에 확 띄는 물체는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공을 잡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공에 관심을 집중하고 마음이 어지럽게 돌아다닐 때마다 마음을 다독여 차분히 지정시키라. 한동안 그 물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 눈을 감고 계속 공만 생각하라. 그러고 나서는 그 단순한 생각마저 마음에서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저 지켜보면서 거침없이 질주하도록 내러려두라. 머잖아 마음이 점차 차분해질 것이다. 서두르지 말라. 완전히 차분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마 충분히 고요한 상태에 이를 것이다.  191




옮긴이의 말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이 처음 출간된 연도는 1934년이다. 그 후 한때 절판됐다가 1981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206


브랜디는 그 비결을 터득하려면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글쓰기 기교를 둘러싼 잡다한 방법론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물론 스스로를 판단하려는 경향도 한동안 멀찍이 치워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안팎을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정보를 실어나르는 의식에 연연하지 말고 가공하기전의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자신의 참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무의식과 친해져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무의식과 친해지면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했을 때 비로소 생산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브랜디도 이 점을 인정한다.  207-208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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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할수록, 춥고 더러운 날씨와 북적거리는 문명사회의 도시에서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부자유스럽고 어리석은 짓인지를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네. 이 미친 실험을 하기 전에는 수많은 이점을 꿈꾸었지.

나는 사람이 원하는 것들을 꼽아 보았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확실히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손에 넣은 것을 즐길 수는 없어. 높은 자리에 올라도, 거기에 나타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여자의 이름이 들릴라일 수밖에 없다면, 그 여자의 사랑을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는 정치에는 전혀 취미가 없고, 유명한 망나니짓이나 자선 활동이나 스포츠에도 전혀 취미가 없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그 때문에 나는 몸을 완전히 감싼 수수께끼, 몸을 감싸고 붕대로 감은 인간 캐리커처가 되어 버렸어!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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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의 배경은 1857년 9월, 가을이다. 길고 더운 여름에 지치고 여름이 가져온 길고 뜨거운 일에도 지친 게으른 두 작가가 주인에게서 도망쳤다. 그들은 ('문학'이라는 이름의) 아주 고매하신 부인에게 매인 몸이었다. 부인은 꽤 괜찮은 신용과 평판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서 그만큼 존경받지 못했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지역에는 그 훌륭한 부인에게 적대적인 것도 없었고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부인의 가문은 런던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훌륭하게 도와 왔다.  9



그녀는 이 철없는 두 젊은이에게도 은혜를 많이 베풀었지만, 그들은 여주인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한 채 어디론가 완벽히 유유자적한 여행을 떠나려는 약팍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특별히 어딘가로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보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빈둥거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들은 호가스의 그림에서 '토머스 아이들(Tomas Idle)'과 '프랜스스 굿차일드(Francis Goodchild)'라는 이름을 가져와 자신들의 이름으로 삼았다.  10-11



프랜시스 굿차일드는 노력형 게으름뱅이였다. 자신이 빈둥댄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통과 노동을 감수했다. 요컨대 프랜시스에게 게으름이란 쓸모없는 근면이었다. 반면 토머스 아이들은 순수 아일랜드이이나 나폴리인 타입의 게으름뱅이였다. 수동적인 게으름뱅이, 타고난 게으름뱅이, 한결같은 게으름뱅이로.. 그는 게으름계의 완전하고 완벽한 감람석(예전 사람들은 감람석을 다이아몬드만큼이나 귀한 보석으로 여겼다.)이었다.  11



모든 급행열차가 그렇고 또 그래야 하듯이 기차는 여느 급행 열차와 다르지 않았다. 기차는 엄청난 양의 세탁물을 처리할 때 나는 냄새와 거대한 놋쇠 차 탕관(湯灌 끓일탕 물댈관)에서 나오는 것 같은 선명한 증기를 뿜어내면서 추수철의 시골을 헤치며 달렸다. 기차는 자연과 인공이 결합된 위대한 힘으로, 밭이나 도로에서 올려다보느 ㄴ사람들에게는 아찔한 높이에서 가벼운 미티어처 장난감처럼 부드럽고 비현실적으로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엔진이 아주 강렬하게 히스테릭한 고성을 내지를 때는, 담당자들이 그녀의 발을 붙든 뒤 팔을 찰싹 때려서 정신을 되찾도록 해 주는 편이 나아 보였다. 이제 기차는 다루기 힘들고 속을 알 수 없는 에너지로 터널을 파고들었고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어둠 속을 거슬러 달려가는 것 같았다. 급행열차는 정차하지 않는 기차역을 하나둘씩 삼켰다. 정차하는 역에서는, 일제히 쏟아지는 포탄처럼 달려 들어가 꽅다발을 든 시골 사람 넷과 큰 여행 가방을 든 사업가 셋을 후딱 태운 뒤 다시 발사되듯 역을 떠났다. 탕!탕!탕! 간혹 들르게 되는 불편한 식당들은 야수르 경멸하는 미녀로 인해 더 불편해졌으며(미녀는 이야기 속의 다른 야수에게 한 것처럼 사람들을 절대 측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화불량을 야기하는, 경멸하는 듯한 신랄함으로 예민한 위를 채우는 곳이었다. 또다시 기차는, 아무 일도 없이 종만 울리고 커다란 말뚝 위에 높이 세운 멋진 까치발 신호기의 가로대가 공기를 가르며 신호를 보내는 역들을 지나갔다. 들판의 말과 양, 소 들은 천둥소리는 내며 달리는 유성이 아주 익숙한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축들은 들판에서 함께 껑충껑충 뛰어다녔고 돼지 한 무리가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어두워지며 석탄처럼 까매졌다가 흐릿해졌다가 지옥 같아졌다가 나아졌다가 안 좋아지고 다시 좋아졌다가 점점 험해지고 낭만적으로 변했다. 숲, 시내, 그릉 지대, 계곡, 황야, 성당이 있는 도시, 요새, 황무지를 지났다. 비참하게 시커먼 집드로가 검은 수로, 병든 검은 굴뚝들, 빛나는 예쁜 꽃이 있는 손질된 정원, 다 타버린 흉물스러운 제단들이 있는 황무지, 요정의 고리들이 있는 비옥한 목초지, 지난주에 섴스가 열렸던 자리에 커다랗고 둥근 자국이 남은, 침체된 도시 외곽의 임대되지 않은 지저분한 건축 부지도 지나쳤다. 기온도 변하고, 사투리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더 날카로워졌고 매너는 더 퉁명스러워졌고 눈은 더 예리하고, 냉정해졌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해서 은색 레이스가 달린 런던 유니폼을 입은 말쑥한 승무원은 아직 셔츠 깃을 풀어 헤치지도 못했고, 반질반질한 작은 주머니에 든 전보를 반 이상 돌리지도, 신문을 읽지도 못했다.  15-16



시장이 서는 날 아침, 칼라일은 놀라울 정도로 활기를 띠었고, (두 게으른 작가가) 용납하지 못하고 비난할 정도로 분후해 졌다. 강을 따라 소 시장, 양 시장, 돼지 시장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빼빼 마르고 머리가 덥수룩한 롭 로이들이 스코틀랜드 식 격자무의 망토 아래 로우랜드의 전통 의상을 입고 가축들 사이를 들락거리며 위스키 냄새를 풍겼다. 시내 중심가 아래쪽에서는 옥수수 시장이 열렸고, 입구가 열린 옥수수 부대 위로 흥정하는 소리가 왁자지껄 오갔다. 거리에는 일반 시장도 열렸다. 헤더로 만든 빗자루에는 아직 보라색 꽃이 그대로 피어 있었고, 헤더 바구니는 소박하고 신선해 보였다. 여자들이 나막신을 신어 보거나 모자를 써 보기도 하는 노점들 옆에는 '성경 가판대'도 있었다. 그리고 '맨틀 박사의 진료소: 모든 인간 질병 치교, 상담은 무료'와 맨틀 박사의 '의학, 화학, 식물학 실험실'이 있었는데, 받침대 한 쌍과 판자 하나, 차양 하나로 세운 곳에 이 두 치료 기관이 모두 자리했다. 런던에서 온 저명한 골상학자인 맨틀 박사는 사람들의 머리를 검사해서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 알 수 있도록"해 주겠다며, 한 무리 남녀 고개의 환심을 (각각 6펜스에) 사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을 주의 깊게 밀어 헤치며 이 모든 흥정과 인사가 오가는 사이를 지나가는 모병계 중사는 평화로운 실타래 속에 있는 전쟁이라는 실 한 가닥 같았다. 또한 벽에는 옥스퍼드 청색대가 훌륭하고 적극적인 소수 청년들의 관심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쇄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위엄 있는 근위대가 될 수 있는 기준은 키 180센티미터 이상이지만 "180센티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자라고 있는 소년들"도 받아줄 수 있으니 절대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토머스와 프랜시스는 땅에 묻힌 덴마트 왕보다 더 즐겁게 아핌 공기를 마시며 오전 여덟시에 칼라일을 떠나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헤스켓 뉴마켓을 향했다.  18-20



비바람을 막아 주고 따뜻하고 쾌적한, 석회를 잘 바른 멋진 집들이 길을 따라 점점이 드문드문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이 자신들과 몸집이 비슷한 또 다른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을 안고 나와 둘을 구경했다. 밖에서는 수확물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비에 한껏 노출되었다. 추수가 끝나지 않은 곳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잘 가꾼 시골집 정원에는 노력의 많은 결실들이 단단한 땅을 뚫고 자라나 있었다. 야생에 둘러싸인 외진 곳이었지만, 이런 곳에서도 사람들이 태어나고 결혼하고 땅에 묻히며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신께 감사할 일이지! (프랜시스가 말했다.) 이윽고 마을이 나왔다. 거친 돌을 쌓아올려 지은, 허술한 창문이 달린 검은 집들이 있었다. 어떤 집들은 스위스의 집처럼 외부에 계단이 있었다. 돌로 만든 배수로가 도로를 거쳐 언덕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며 꺾였다. 모든 아이가 곧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여자들은 빨래하던 손을 멈추고 출입문이나 아주 작은 창으로 내다보았다. 이러한 모습들이 마차가 제화공 마을에 도착했을 때 토머스와 프랜시스가 관찰한 것들이다.  21



모든 산에는 짜증이 나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아래에서 산을 볼 때는(산은 항상 아래에서 봐야 한다) 정상이 하나뿐이지만, 여행객이 산을 오르려는 경솔한 짓을 할 때면 완벽하게 솟은 가짜 정상들이 나타난다.  30



토머스는 신파스럽게 여관 이층으로 옮겨져 의자 세 개 위에 눕혀졌다(소파가 있었다면 소파에 뉘었을 것이다). 프랜시스는 창으로 다가가서 위그턴을 관찰하며 자신이 본 것을 부상당한 친구에게 알려 주었다...  45


  

"..오, 그래!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 둘이 보이는구먼." 프랜시스가 말했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그 망루를 통해 본,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등을 돌리고 있는 두 남자의 표정에서 뭔가 알아낸것이 있는가?" 토머스가 외쳤다.

"수수께끼 같은 사내들이군. 뒷모습으로는 헤아려 보기 힘들어. 내게 쭉 뒷모습만 보이고 있어. 한 명이 어느 쪽으로든 몸을 살짝 틀면 다른 사람도 같은 방향으로 살짝 틀 뿐이야. 시장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그들은 뻣뻣이 방향을 아주 살짝 바꾸곤 해. 겉모습을 보면 얼마간 광부같기도 하고, 농부나 마구간지기 같은 면도 조금씩 있어. 두 남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아-아주 열심히. 아주 오랫동안 서 있어서 등은 구부정하고 다리는 휘었네. 주머니는 늘어지고 귀퉁이가 접혔어. 언제나 손을 넣고 있어서겟지. 초조해하거나 불만스러워하는 몸짓 없이 비를 맞고 서 있네. 서로 너무 가까워서 각자의 팔꿈치로 다른 이의 팔꿈치를 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가끔 침을 뱉긴 하지만 말은 안 해.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아직 보이네. 비를 흠뻑 맞으며 내 쪽으로 등을 보인 채 서서, 아주 열심히 아무것도 보지 않는 거들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사람들일세." 프랜시스가 말했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망루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여기 와서 뜨거운 가스 난로에 머리를 말리기 전에, 할 수 있다면 그 놀라운 두 사람의 표정에 대해 뭔가 알려 주겠나?" 토머스가 외쳤다. 

"컴컴한 어둠이 빠르게 몰려오고 있네. 저녁의 날개, 칠흑같이 어두운 날개가 위그턴을 둘러싸고 있어. 두 남자는 아직도 내게 등을 보인 채 아주 열심히 아무것도 보지 않아. 아! 지금 저들이 돌아보네. 그리고..."프랜시스가 말했다.

"프랜시스, 내 형제여! 위그턴의 두 남자에 대해 본 것을 얼른 말해 주게!" 토머스가 외쳤다.

"그들에겐 아무 표정도 없어. 그리고 이제 마을은 잠드네. 시장에 있는 불 꺼진 커다란 가스등이 마을을 밝히지도 않을 테고, 아무도 마을을 깨우지 못할 걸세." 프랜시스가 말했다.  48-49



프랜시스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람과 사물을 끊임없이 관찰한 내용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줄곧 자신이 현존하는 생명체 중 가장 빈둥거리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동안, 부상당한 토머스가 집 안에 갇혀서 하루 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하다.

토머스는 시간을 보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소파에 엎드린 채 가만히 시간이 흘러가도록 두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책을 읽으며 정신수양을 했을 때에 토머스는 잠을 자고 휴식을 취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하게 걱정했을 때 토머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꿈을 늘어지게 꾸었다.  107



토머스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 게으름이라는 잔잔한 시내를 따라 천천히 흘러왔고, 때로 근면이라는 잔물결이 잔잔한 수면에 일시적으로 파란을 일으켰음을 기억했다. 토머스는 자기 혁신에 대해 생각하면서-독자들이 상상하듯이 진취적이고 노력하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계획을 세우 ㄴ것이 아니라-오히려 앞으로 일을 할 때 언제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다시는 적극적이거나 부지런해지지 말자고 결심했다.  108



프랜시스는 상기되고 발그레한 얼굴로 정찬 시간에 돌아와 토머스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해 주었다. 토머스는 누워서 책을 읽으며 아주 태연자약하게 프랜시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프랜시스가 정말로 구릉에 올라갔는지, 구태여 그 풍경들을 애써 보았는지, 그 긴 거리를 걸었는지 물었다.

"알고 싶어서 그러네. 만약에 억지로 그런 일을 해야 했다면 자네는 그걸 뭐라고 했을 것 같나?" 토머스가 덧붙였다.

"그럼 얘기가 다르지. 그건 노동이 됐을 걸세. 지금 이건 놀이지만." 프랜시스가 말했다.

"놀이라니!"

토머스가 프랜시스의 대답을 완강히 부인하며 되받아쳤다.

"놀이라니! 계획적으로 자기 몸을 너덜너덜하게 하고 쉴 새 없는 단련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사람이 여기 있네! 챔피언 벨트를 놓고 벌이는 경기에 출전하려고 항상 훈련받는 사람같이 말이야. 그러면서 그걸 놀이라고 하다니!" 토머스가 공중으로 들어올린 자신의 부츠 한 짝을 경멸하듯 응시하며 소리쳤다. "자네는 놀 수가 없어. 노는 게 뭔지도 모르잖아. 자네는 뭐든지 일을 하려들지."

밝은 모습의 프랜시스는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그래. 진심일세. 자네는 내게 최악의 친구라네. 자네는 다른 사람들처럼 굴지 않아. 다른 친구가 행동이나 감정에 있어서 대야에 빠지는 정도라면 자네는 갱에 빠지는 것 같아. 다른 친구가 화려한 나비라면 자네는 불을 뿜는 용일세. 다른 사람이 내기에 6펜스를 걸면 자네는 자기 목숨을 걸지. 열기구를 탄다면 천국까지 가려고 할 거고, 땅 속 깊이 뛰어든다면 지옥까지가야 만족할 걸세. 자넨 참 대단한 친구야, 프랜시스!" 토머스가 말했다.

쾌활한 프랜시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웃는 건 다 좋아. 하지만 자네가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니 놀랍구먼. 나는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하는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토머스가 말했다.

"토머스, 토머스." 프랜시스가 대답했다. "내가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런 사람이라면, 자네는 나를 모든 면에서 이해하고 가능한 한 이용해 먹는 것이 분명해."

이렇게 철학적인 대답을 던진 다음, 명랑한 프랜시스는 마지막으로 토머스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그들은 정찬 식탁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밖에 나갔을 때 정신 병원도 둘러봤어." 프랜시스가 말했다.

"정신 병원을 둘러봤다니! 걷는 것으로 캡틴 바클레이(로버트 바클레이 앨러디스의 별칭. 스코틀랜드의 지주였던 그는 수많은 걷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기록은 약 1600킬로미터를 1000시간 동안 걸어서 1000기니의 돈을 딴 것이다. 도보 스포츠의 아버지이자 경보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처럼 대단한 멍청이가 되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미치광이 짓 협회의 회장이 되다니-헛되이!" 토머스가 눈을 들며 소리쳤다. 

"엄청난 곳이었네. 병실도 훌륭하고 시설도 잘되어 있고 간병인들도 아주 친절하더군. 온통 대단한 곳이었다." 프랜시스가 말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나?" 토머스는 관심이 없었지만 햄릿의 충고를 따라 관심의 미덕을 가장하고 물었다.

"일반적인 것들이지. 말라죽은 나무들이 모인 커다란 숲 같은 남자와 여자들, 절망적인 얼굴들이 늘어선 끝없는 거리, 어떤 목적이라도 가지고 실제로 뭉칠 수 있는 힘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 서로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힘을 모두 잃었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인간들의 사회 말일세." 프랜시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와 와인을 한잔 하지. 우리는 교류를 하자고." 토머스가 말했다.

"한 복도에서 말이지, 토머스. 그 복도는 윈저 성에 이르는 긴 진입로만큼 길어 보였는데." 프랜시스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마 그보다는 짧았을 게야." 토머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환자들이 다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을 그 복도에 한 남자가 있었네. 불쌍하고 작고 거무스름한 턱을 가진 야윈 남자였어. 이마엔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고,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지. 바닥 매트 위에 바싹 엎드려서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매트의 섬유 가닥을 골라내고 있더군. 복도 끝에 난 커다란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고, 양쪽으로 늘어선 잠자는 작은 방들의 열린 무노가 시야에 보이지 않는 창문들이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의 조각들이 그 광경 위에 교차되었지. 그 한가운데쯤 아치 아래에서 그 불쌍하고 작고 거무스름한 턱을 가진 야윈 남자가 기분 좋은 날씨나 고독, 다가오는 발소리 등은 개의치 않은 채 매트를 열심히 보고 있었네.

우리가 다가갔을 때 나를 안내해 준 사람이 말했어.

'거기서 뭐하나?'

남자가 우리를 올려다보며 매트를 가리켰지.

'나 같으면 그러지 않겠네.'

나를 안내해 준 사람이 말했어.

'내가 자네라면 가서 책을 읽거나, 피곤하다면 누워 있겠네. 하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멍하게 대답했어.

'네,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전 ... 전 가서 책을 읽을게요.'

그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작은 방들 중 하나로 사라졌어. 우리가 몇 걸음 채 가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을 때, 남자는 이미 다시 나와 매트를 관찰하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섬유 가닥을 짚어가고 있더군. 나는 멈춰 서서 그를 보았어. 위아래, 안팎으로 꼬인 저 섬유 가닥이 넓은 세상에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를 안내하는 작은 틈새의 빛만 남은 채 모든 지적 능력은 어두워진 거라고 말이야. 

'이 가닥은 이쪽 방향으로 꼬여 있네. 여기로 가서 밑으로 지나가고 저기로 나오는군. 여기서부터, 지금 내가 손가락으로 짚고 있는 오른쪽까지 이어져 있어. 섬유 가닥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얽혀서 이 매트가 되었고, 여기 있는 거구나.'

그러자 나는, 남자가 매트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그가 거기오게 된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려 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렇게 이상하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지 궁금했네. 신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나는 우리가 어떻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매트 조각을 맹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매트의 패턴에서 어떤 혼란과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생각했지. 그러고 나니 그 거무스름한 턱을 가진 야윈 남자에게 슬픈 동질감이 느껴졌어. 나는 그곳을 떠났네."  129-134



또다시 밤이 찾아왔고 둘은 두세 시간 동안 글을 썼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이 나태한 글이 기반을 둔 몇 가지 나태한 메모를 쓰고 있었다.  136



지금 이 유유자적한 여행이 느긋한 바람에 실려 어디로 향할까? 언젠가 이 여행의 마지막이 사라지고 잊히는 곳은 어디일까? 쓸데없는 질문과 게으른 생각을 하며 토머스와 프랜시스는 적절한 인사를 건네고, 이것으로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를 마친다.  202





옮긴이의 말


프랜시스 굿차일드가 찰스 디킨스, 토머스 아이들이 윌키 콜린스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206


개인적으로는 사실 멀게만 느껴졌던 고전 작가들인데 자신들의 게으름을 이렇게까지나 포장하는 솜씨를 보면서 이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당시의 추리소설이 본격 장르로 발달하기 전이고 이후에 나온 콜린스의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추리 소설의 시초 격으로 여겨지니 일종의 초창기 미스터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현실에서 이들이 돈캐스터에 간 이유는 글에서처럼 우발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디킨스가 당시 좋아하던 여배우 엘렌 터넌이 그때 거기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7




편집부 후기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는 1851년에 서로 처음 만났다.이둘은 둘 다 아는 친구였던 오거스터스를 통해 사귀게 되었고, 둘의 나이 차이도 불구하고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디킨스는 콜린스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고 콜린스는 디킨스의 잡지 <늘 쓰는 말들>과 <일 년 내내>에 많은 글을 실었다.

이 문제작은 절친한 두 작가가 북쪽 지방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유머스럽게 표현해, <늘 쓰는 말들>에 발표한 작품이다.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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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걱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열예닐곱 살때 이미 그것을 알았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허황한 생각에 빠진 적도 없었다.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마 ㄴ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다.내가 원한 것은 재능-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5-6



내가 원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엇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탐색하고 싶었다.

나는 원기 왕성했고, 머리는 착상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았고, 발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생각하면, 안전한 곳에 편안히 들어앉아 있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8



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풍족한 편이어서, 이 세상의 대다수 사람을 괴롭히는 빈곤과 박탈감은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배를 곯아 본 적도, 추위에 떨어 본 적도 없다. 가진 것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느껴보지 못했다. 안전은 처음부터 보장된 것이었지만, 그렇게 안락하고 풍족한 가정인데도 돈으 ㄴ끊이없는 화제 거리였고 걱정 거리였다. 부모님은 대공황을 겪은 분들이어서, 그 어려운 시절을 결코 잊지 못했다.  9



이 세상은 돈이 말한다. 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돈의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13



미국 생활의 건전한 외양과 지루할 정도의 엄격함은 허울좋은 속임수, 선전용 허세에 불과했다. 사실을 조사하기 시작하자마자 온갖 모순이 거품처럼 표면으로 떠오르고, 만연해 있는 위선이 드러나고,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금전 추구는 공정함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그것을 추동하는 엔진은 <나만을 위해서>라는 사회적 원칙이다...

돈은 세상을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었다. 이런 구분이 승자에게는 더없이 좋지만, 패자는 어떻게 될까? 내가 입수한 증거에 따르면, 패자들은 버림받고 잊혀질 운명이었다. 딱히지만, 그들은 진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었다.  16



그곳에는 들어가기도 전에 나와 버렸다. 실업계에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나는 열 살 때 이미 결심했다.  17


나는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등 학교 졸업이 나한테 별 의미가 없었다는 증거다. 급우들이 사각모에 가운을 입고 졸업장을 받고 있을때, 나는 이미 대서양 너머에 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일찍 졸업하는 것을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나는 6월 초에 뉴욕을 떠나는 배표를 샀다. 그동안 저축해 둔 돈은 몽땅 그 여행 경비로 쓰였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일 선물로 받은 돈, 졸업 기념으로 받은 돈, 성년식 때 받은 돈, 여름 방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모두 합치면 1천 5백 달러쯤 되었다. 당시는 <하루 5달러로 유럽을 관광할 수 있는> 시대엿다. 아껴 쓰면 실제로 그게 가능했다. 나는 파리에서 하룻밤 숙박비가 7프랑(1달러 40센트)인 호텔에 한 달 넘게 투숙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아일랜드를 여행했다. 두 달 반 사이에 체중이 10킬로그램 가까이 줄었다.  25-26



파리에서는 별난 사람들을 몇 명 만나기도 햇지만, 여행 중에는 대개 나 혼자 지냈다. 때로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릴 만큼 외롭게 지냈다. 그 열여덟 살의 소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다. 마음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중량이 없는, 핏발선 눈을 가진 생물이다. 내면에서는 절망적인 격동이 파도처럼 굽이치고, 견해나 태도가 갑자기 정반대로 바뀌고, 걸핏하면 기절하고, 상상력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경향을 가진 좀 실성한 생물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올바로 접근하면, 나는 솔직하고 매력적이고 사교적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내 존재를 믿었지만, 나 자신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범하면서도 소심하고, 재빠르면서도 굼뜨고, 순진하면서도 충동적이었다. 말하자면 모순이라는 정령에게 바쳐진 걸어다니는 기념비, 살아 숨쉬는 기념비였다. 내인 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나는 벌써 두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갑절은 노력해야 할 터였다.  26-27



책 속에 파묻혀 지낸 2년 동안 오나전히 새로운 세계가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인생을 바꾸어 놓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 혈애그이 성분까지 달라졌다...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이 꺼지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40



저한테는 강의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프랑스 어는 벌써 다 알고 있다고요. 그런데 왜 거꾸로 돌아가야 합니까? 그는 딱 잘라 말했다. 그게 규정이고 방침이니까....

그게 방침이라면 그만두겠습니다. 연수도 그만두겠어요. 대학도 그만두고, 전부 다 그만두겠습니다.  41



미친 짓이었다. 학위를 따고 못 따고는 걱정하지 않았지만, 대학을 등지면 자동적으로 징집 유예 자격을 잃게 될 터였다....

그런데도 나는 고집스럽게 대학을 그만두었다.  42



아들놈이 태어났다. 다니엘이 세사엥 나오는 것을 본 순간은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굉장한 사건이었다. 그 작은 몸뚱이를 보고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작은 몸뚱이를 품에 안았을 때에도, 나는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 내가 하나로 존재하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그 과도(過渡 지날과 건널도)의 경계선이었다. 청년기와 성인기 사이에 서 있는 거대한 벽이었다. 나는 이제 영원히 벽 너머에 있었다.

벽 너머에 있는 것이 나는 기뻤다.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지어는 육체적으로도 다른 곳에는 있고 싶지 않았다. 이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은 무엇인든 기꺼이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144



다른 일을 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과거에는 그래도 날마다 두어 시간 정도는 나 자신을 위해 남겨둘 수 있었다. 낮에는 돈벌이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 일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다음에는 이틀, 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일을 빼먹었다. 얼마 후에는 작가로서의 리듬을 잃어버렸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겨우 찾아냈다 해도, 너무 긴장해ㅐ서 글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건만, 내가 펜으로 건드린 종이는 되다 파지(破紙 깨뜨릴파 종이지)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145



1980년 말이나 1981년 초에, 나는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친구였는데, 그를 만난 것이 8년이나 9년 전이어서,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가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출판사를 차릴 계획이라면서, 혹시 쓸 만한 원고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로는, 흔해빠진 소규모 출판사가 아니라 진자 사업, 다시 말해서 <영리 기업>이 되리라는 거였다. 그래요? 나는 침실 벽장에 처박아둔 비닐 봉지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마침 갖고 있는 원고가 당신한테 맞을지도 모르겠구뇽. 내가 탐정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원고를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원고를 복사해서 그 주가 지나기 전에 우송했다. 뜻밖에도 원고는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보다 더 뜻밖이었던 것은, 그가 내친 김에 원고를 출판하고 싶다고 나선 것이었다.

물론 나는 기뻤다. 기쁘고 즐거웠지만,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았다.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서, 이게 정말인가 하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책을 출판하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그래서 어딘가에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가 어퍼 웻스트 사이드에 있는 아파트를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우편으로 받은 계약서는 진짜 계약서였다. 대충 훑어보고 조건이 그런 대로 괜찮다는 판단이서자,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선수금은 한푼도 없었지만, 책이 한 권이라도 팔리면 인세가 들어올 터였다. 갓 출범한 신생 출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상례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투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처지도 아니기 때문에, 없는 돈을 내줄 수는 없을 터였다. 그의 출판사는 물론 <영리 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그런 기업이 될 거라고 그는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뭔데 그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겠는가?

그는 아홉 달 뒤에 간신히 책 한 권-그것도 페이버백 복각본-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내 소설을 출판하는 일은 2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했다. 마침내 책이 나왔을 때는 배급업자를 잃은 뒤였고, 자금도 한푼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면에서 보든 출판업자로서 그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집적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서점 두어군데에 책 몇 부를 배본했지만, 나머지는 골판지 상자 속에 남은 채 브루클린 어딘가에 있는 창고 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책들은 아직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노력해서,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이미 <출판>되었기 때문에 하드커버로 다시 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관심을 가져 줄 만한 페이퍼백 출판사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 출판사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은채 내 소설을 버리고 떠날 마음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에이전트를 찾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냈다. 그녀는 내 소설을 <에어번 북스>의 편집자에게 보냈고, 사흘 뒤에 채택되었다. 만사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들은 선수금으로 2천 달러를 제시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실랑이도 없었고, 흥정도 없었고, 속셈을 감춘 협상도 없었다. 나는 자존심을 되찾은 기분이어서, 시시콜콜한 것은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원래의 출판업자와 (계약대로) 선수금을 나누자 내게는 1천 달러가 남았다. 여기서 에이전트 수수료 10%를 빼고 나니, 결국 내 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9백 달러였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 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16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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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생각과 의견들

여행은 움직이는 고해소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다시 볼 사이가 아니기에 삶에 깃든 어두운 비밀이나 상처, 슬픔 등을 주저하지 않고 털어 놓을 때가 많이 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도 우리는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때가 많이 있다. 삶의 복잡한 문제를 드러내고 구체화하려면 그 문제를 말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다른 사람의 삶'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나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내가 인생에서 직면했던 어려운 문제들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 더글라스 케네디




1 행복은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일까?


키르케고르는 '인생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지나간 뒤에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했다.  

철학자 니체 '시련으로 죽지 않는 한, 사람은 그 시련으로부터 더욱 단단해진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13


당시 내 나이 45세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교훈들 중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만, 낙심,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절망, 낙심, 비극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게 트인다. 사람은 상실, 재난, 아픔, 슬픔 따위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3-14


인간 조건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읽기 쉬운 이야기와 문장으로 결합하는 능력, 마치 슬픈 코미디처럼 인간관계가 변모해가는 모습,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불공평에 대해 차가운 일침을 가하는 절규 등이 나의 소설 세계와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15


조르주 심농이 1946년에 쓴 소설 <뉴욕의 매그레>를 읽으며 내 상황을 소설에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은 특히 내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통 형태 그대로 눌려 있는 배게, 잠 못 들고 몸을 심하게 뒤척이다 구겨진 시트, 파자마, 슬리퍼, 의자에 널브러진 옷가지, 탁자 위에 펼쳐진 책 옆에는 먹고 남은 저녁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외로운 남자의 끔찍한 음식... 불현듯 그는 자신이 도망쳐 온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그는 입구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기 두려워 얼어 붙어 있었다.'

사람은 왜 책을 읽을까? 혹시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혼돈의 세상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추락하는 감정, 내가 처해 있는 불행과 산적한 문제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다.  16-17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빼고 나면 내 삶은 점점 더 지리멸렬해지고 있었고, 생에 대한 의구심만 커져갔다.  22


어른이 되어 '즐거워할 수는 있지만 행복할 수는 없어.' 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행복과 마주친다는 생각만으로도 당황하게 된다. 행복, 그 심오하고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내어 말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어 한 것일까?  23


행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딜레마가 포함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물에서 행복은 왜 큰 초석으로 여겨지는가? 

행복은 사랑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어가며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행복해지길 원할까? 우리는 혹시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근원적인 결핍을 끌어안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우리에게 불편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자초하며 사는 건 아닐까? 우리는 삶에 만족을 주는 조건들을 스스로 밀어내는 행위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23-24


내가 소설가로서 여러 가지 곤경에 현명하게 대처해 왔다고 해도, 아들의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해 지혜롭게 대처해 왔다고 해도,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의무들을 훌륭하게 잘 수행해 왔다고 해도, 여전히 삶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는 언제나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누구나 가슴속에 '언젠가 내 모든 게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인생에 깃든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한심하고 비겁한지 잘 알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실망스럽고 부족한 모습을 들키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심에 빠질 확률이 높다. 자기혐오에 빠질 확률도 높다. 아니, 자기 자신의 모습을 불편하게 여길 확률도 높다.

나는 그런 증상드렝 대해 잘 알고 있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 했다.

'행복은 동화 속에나 있다. 행복이란 손에 넣은 사람이 극히 드문 꿈이며, 나의 감정이나 심리로는 도저히 취할 수 없는 개념이다.'  25-26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한 인정이나 타협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이란 정답 없는 심오한 의문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다. 삶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는 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인생은 왜 끊임없이 불공평한가? 인생을 이루는 근원적이며넛도 영원한 요소인 괴로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인류가 지구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인간과 함께해 왔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질문이 한 가지 더 있다.

'생명의 불이 꺼지고 내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ㅇ낳게 될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달래기 위해 갖가지 조직과 구조를 만들어 왔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종교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도 죽음과 함께 인생의 경이가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물론 용기 있게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침착하게 수용할 수는 있다. 삶에 지친 나머지 죽음의 안식을 워할 수도 있다.  29


행복이란 특정한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잠 못들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경이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31


사람이 과연 줄곧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가사처럼 '편하고 쉽게'만 나아가기에는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신비롭다...

괴롭고 불안한 일이 아무리 많더라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유지한다면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란 바로 '흥미로운 삶'을 이루는 것이다.

'흥미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끝없는 질문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과연 그 '흥미로운 삶'의 뿌리를 잃지 않고 지켜갈 수 있을까?  32




2 인생의 덫은 모두 우리 스스로 놓은 것일까?


나는 <컬리지트>에 다녔다는 것을 대단한 행운이라 여기고 있다. 그 학교를 다니는 동안 비판적 사고 능력, 독서의 필요성, 명확하고 창의적인 글쓰기 등을 배웠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소양이 사람의 지성과 감성을 고양시키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컬리지트>의 단점이라면 성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 엘리트주의, 실패는 죄악이라는 생각 등이었다.  42


사람들은 누구나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 갈등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도 한 겹 벗기고 바라보면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생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삶이란 결코 원하거나 꿈꾸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후회를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생을 끌어안을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암울한 현실을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절망감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56


'사람은 누구나 내적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기본적으로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내 정신과 의사가 들려준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적 갈등과 끊임없이 싸워야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이란 바로 '어느 누구도 타인의 행복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58


자녀의 삶을 부모의 뜻대로 이끌어갈 수는 없다. 결국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개척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풀 책임은 당사자들에게 있다.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대신 만들어줄 수 있을까? 

사람은 각자 지문이 다르듯 행복을 느끼는 의미와 조건 역시 다르다. 우리는 배우자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  58-59


독서광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내가 읽어낼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책을 충동적으로 구입한다. 책을 사는 것도 중독이다. 책을 사는 게 코카인이나 포르셰를 사는 것보다 돈이 덜 들고, 책을 집필하느라 노고가 많았던 작가를 돕는 일이긴 하지만 중독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서 아직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64


스스로 덫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욱 두려운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가두고 있는 불행한 삶 너머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불행한 삶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버텨내야 할까?

그런 질문들에는 골치 아픈 개념이 숨어 있다. 바로 '변화'라는 개념이다. '변화'는 미국의 낙관주의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68


'변화'는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상륙할 당시부터 미국의 기본 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청교도정신의 중심에는 '죄악'의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섹스에 있어서는 특히 심하다. 그런 점들은 미국과 프랑스를 비교해 보면 훨씬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프랑스에서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해 가정과 분리해 사회적으로 묵인한다. 미국에서도 장기간 결혼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권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부가 서로 합의 아래 외도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다만 미국사회에서의 외도는 어디까지나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된다. 프랑스에서의 외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과 명백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69


간통 행위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보상받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몰래 간직한 기분, 은밀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에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반면 자기혐오에 빠질 수도 있고, 차분하게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70


우리는 수많은 의무들에 갇혀 있다. 모기지론,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나가야 할 의무와 함께 자녀양육의 기나긴 의무가 있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부모라는 꼬리표를 무시할 수 없고,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미국사회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권태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72


우리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세상에서 살다간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렸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해지고 나서야 자기 자신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서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에 빠뜨리고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76


우리는 누구나 떠나는 꿈을 꾼다.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을 덤으로 얻게 될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가정이나 직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는 건 어른이 되어 내릴 수 있는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들다. 그런 까닭에 나는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키케로는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일리 있는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세상의 도처에서 너무 쉽게 일어난다.'  77




3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절망에 몰린 사람은 비이성적인 시나리오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하잖아.  88


'실증적 사실'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이견이 없는 진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복잡한 상황들을 설명할 때 단 하나의 실증적 사실만 적용할 수는 없다.  89


왜 상대의 '진실'은 나의 진실과 다른가? 더욱 간단히 말해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하나의 사건을 재구성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인간의 행동 유형에서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93


내 경험상 어떤 진실을 부정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94


마음은 그 자체로 장소이며,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말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어떨게든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해 현실을 재구성한다.'

거리의 철학자로 통하는 에릭 호퍼는 말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할 때 가장 크게 거짓말한다.'  95


우리는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관점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든지 관점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  112


(고모할머니) 벨은 "그동안 인생을 비극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어. 아무리 힘들어도 인새을 비극이라 여기면 안 돼. 난 늘 우울한 생각에 빠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 내가 그 아이를 잃고도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결심 덕분이었지. 비극적 인생 이야기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이제 부터 나는 더 이상 절망에 허덕이지 않는 길을 선택하겠어.' 라고..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그 일이 당장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아.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어. 물론 한순간도 그 아이의 모습이 머릿소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유쾌해지려고 애썼지."  114-115


비극을 갈무리하고 지나갈 길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사의 수많은 비극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은 없다. 인생사의 비극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그늘까지 완벽하게 해소할 수는 없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  116




4 비극은 우리가 살아 있는 대가인가?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하겠다. 누구나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엄청난 비방이 쏟아진다는 점을 명심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설령 냉소적인 비방들을 무사히 극복하게 되더라도 작가가 되려는 사람의 앞길에는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의 거절을 충격 없이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혹독한 평을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것이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끈기와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창작에 필요한 기교를 연마하고, 작품에 대해 애정 없는 비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  122-123


1970년대에만 해도 우울증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치료할 약도 변변히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우울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자살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심각한 벌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절망과 공허로 뒤덮인 어둠의 질곡을 헤매게된다. 누구나 암담한 순간에 처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영원히 세사오가 작별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단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거짓말쟁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시나리오를 머릿속 한편에 감춰두고 '아주 몹쓸 생각'이라고 표시한 다음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을 뿐이다.  127


죽음은 앞으로 전개되는 '삶'의 이야기를 앗아간다.  130


"표절행위가 발각되기를 바랐나요?"

내 질문에 하워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나요? 아버지가 말하곤 했죠.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이 남들에게 발각되기를 바란다고요. 내 경우에는 일이 모두 엉망으로 끝난 다음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어요."

"대개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결과를 봐야만 그 의미를 알게 되죠."

"의미를 깨닫게 되더라도 너무 늦은 경우가 많기도 하죠."  155


하워드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예기치 못한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비극은 어떻게든 우리를 덮치죠. 그렇지 않나요?"

"사실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 손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있긴 하죠."

하워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자기 파괴적인 일탈 행위로 비극을 자초한 게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 짓이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아요. 내 자신이 자초한 비극이었죠.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비극을 피하려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만 하죠.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아가죠.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비극입니다."  156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작가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나도 어떤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여러 가지 가정에 대입해 생각해보곤 한다.  167


나는 '만물을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개념을 깊이 숙고해 본 적이 있는데 결국 그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전지전능한 신보다 세상일에 덜 끼어드는 초월적 존재도 내 머리로는 수긍이 되지 않는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세상은 신의 간섭 없이 돌아간다고 주장하는 이신론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신론을 주장하는 사상가는 많지만 볼테르가 대표적이다. 내가 보기에 이신론은 불가지론의 지류로 생각된다. 이신론으 우주의 기원은 있지만 생명체들은 각각의 상황을 따르지 신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세계관이다.  169


종교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베들레힘으로 몸을 숨기는 게 아니면 무엇일까?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기대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는 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 끝없이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한 탐구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173


몇 년 전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70대 노인이 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대교는 모계로는 분명하게 이어지지만 부계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유대인일 경우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친다. 아버지가 유대인인 경우에는 자식을 유대인으로 치지 않는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74




6 왜 '용서'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대로부터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한다. 갖가지 난제가 콘크리트 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게 뻔히 보이는데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간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기 때문이다.  216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남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사랑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바라는 사람을 기꺼이 묶어두려 한다.  236


용서는 인간 조건의 중요한 요소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모두 용서를 가르친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완고하면 안 된다. 마음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면 안 된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쉽게, 화를 내는 건 어렵게 살아야 한다. 상대가 진심으로 잘못을 빌 경우 기꺼운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

신약에도 용서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와 비유가 많이 나온다. 

그 유명한 산상수훈도 사실은 용서에 대한 글로 볼 수 있다. 자주 인용되는 다음 문장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불교에서도 미움과 증오를 마음의 독이 되는 병으로 간주한다. 불교에서는 용서하지 않으면 업이 쌓이고,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오히려 더욱 불행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사람이 나를 이용했어, 그 사람이 나를 괴롭혔어, 그 사람이 나를 짓눌렀어, 그 사람이 내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았어.'라는 생각을 품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

용서에 대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말을 남긴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일 것이다. 몇 세기 뒤에 살았던 몽테뉴와 함께 아우구스티누스는 현대적인 실존주의의 토대다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용서는 죄를 사하는 것이다. 용서함으로 한 번 길을 잃었던 마음이 다시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현대 의학과 정신분석학에서는 '용서 모델'로 불리는 연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용서하고 미움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받은 피해의 부스러기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훨씬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

큰 상처를 준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건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 남아 있는 분노를 줄여나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분노를 줄이는 건 정신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용서는 정신건강에 좋다. 다만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용서하기란 정말이지 몹시 힘든 일이다.  239-240


분노의 대상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후회할 일을 한 가지 더 만들게 될 뿐이죠.  250


분노가 당신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우리는 분노를 너무 많이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큰 피해를 당할 경우 특히 극심한 분노의 감정이 일게 되죠.  251


용서는 자기 안에 있는 온갖 나쁜 기운을 밖으로 점차 내보내는 일이다. 

내가 '점차 내보내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257


용쇼는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미움과 원망을 버리는 일이다. 용서를 상대에 대한 수동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된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했으니 자기 자신의 도덕적 우위가 증명된 셈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용서는 존재론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에 홀로 서서 모든 행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자신의 책임이다. 사는 동안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해야 할 책임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을 때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도 자기 자신의 몫이다. 

용서는 '잊기'와 다르다. 요즘 '잊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잊기'는 살아가면서 힘겨운 일을 겪에 돼 괴로움에 처했을 때 그 상처를 상자에 담아 마음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두고 다시는 열어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258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용서는 우리가 모든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과도 같다...

용서의 과정은 전적으로 혼자 이루어가야 하기에 더욱 두렵고 힘든 일이다.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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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으로 번영하는 사람도 있고, 선행으로 몰락하는 사람도 있다.' - 셰익스피어 <법에는 법으로> 2막 1장



"당신이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좋아. 그렇지만 좌절감을 느끼면서까지 내 옆에 있어줄 필요는 없어."

"좌절감을 느끼다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말한 적 없지만 느낄 수 있어."

"내 진실을 알아주니 눈물 나게 고맙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능력에 A학점 줄게. 그 대단한 이기심에 A+를 주지."

"이기심?"

"그래, 착한 척하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당신의 이기심..."

그 말을 하고 나서 곧 후회했지만 화가 나 다툴 때 이성적인 사람은 없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과 싸울 때는 더욱 그랬다. 화가 치솟을 때는 온갖 끔찍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생각해볼 여지없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오게 마련이었다.  62-63



"우리의 인생 자체가 덫인지도 모르지."

우리는 스스로 덫을 놓는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상황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67



미국은 무릎 꿇고 순순히 자기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가 나서서 박살내는 나라죠.  159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도 천국이 될 수 있고, 천국도 지옥이 될 수 있어."  167



"... 개인이든 집단이든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강력한 자극을 가해 흔들어줘야 하지."  175



왜 사람들은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이처럼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을까?  223



25년 동안 교직에 몸담으며 깨달은 바가 있다면 아이들의 성격은 타고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모는 단 한순간도 자식에 대한 걱정을 놓을 수 없게 마련이었다.  238



NPR에서 브람스의 <저먼 레퀴엠>이 흘러나왔다. 진행자가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짧다는 깨달음을 주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브람스가 내 마음을 알고 위로하는 듯했다. 좋은 싫든 우리는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63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붙잡는다.  272



"네 엄마와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게 뭔지 아니? 우린 수없이 '이제 그만 헤어져.'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왔어. 상대에게 가장 강력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일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끝내 헤어지지 않고 지금껏 살아왔어."

"왜 헤어지지 못했는데요?"

"안정을 추구해서도 아니었고, 변화가 두려워서도 아니었어.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네 엄마가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었어. 네 엄마도 내가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었을 거야. 단순한 것 같기도 하고, 대단히 복잡하기도 한 결론이지.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끝없이 괴롭히며 살아가지. 82년이란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배운 게 있다면 용서하고 용서받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278



부모란 자식이 잘못을 저리르면 혼자 남몰래 자책하는 존재이다. 가끔 부모가 된 걸 크게 후회한다. 자식이 없었다면 지지고 볶고 부대끼며 함께 어우러지는 삶은 없었겠지만 훨씬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13



"어떤 일도 가능하고, 어떤 일도 불확실하다."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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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과 함게 있으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게, 모든 것이 제대로 된 듯 느끼면서 당신이 없는 것보다 좋아요."  546


".. 난 시도해보고 싶어요. 당신과 나요. 엄청난 실수였다고 생각하면서 끝맺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할 거예요."  547



대수의 법칙과 결합한 확률 법칙에 따르면, 불리함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떤 일을 점점 더 많이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더 많이 할수록 성공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엄마에게 설명한것처럼, 때로는 그냥 계속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노먼을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서 이번 주에만 86번째로 공을 던졌다. 노먼은 여전히 그 공을 물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해낼 거라고, 나는 믿는다.  55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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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의 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없다. 사실 일자리를 잃을 때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27


사랑한다면 끝까지 곁에 있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뭐 그런 거?  77



"그쪽은 그쪽이 더 잘 안다고 생각했겠죠. 다들 나한테 뭐가 필요한지 자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해..."  81



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짜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84



세상에는 훨체어를 탄 사람과 같이 다니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잇다. 하나는 포장도로 상태가 얼마나 거지 같은가 하는 실감이다. 여기저기 푹푹 파인 데를 엉망진창으로 땜질해 놓았거나 아예 울퉁불퉁하다..

또 하나는 사려 깊은 운전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보도 진출입로를 아예 막고 주차를 하거나 너무 빽빽하게 차를 붙여 놓아서 실제로 훨체어가 도로를 건널 길이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98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14



"당신은 지나치게 똑똑해. 지나치게 흥미 진진하고." 그는 나를 보던 눈길을 돌렸다.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사는 거요.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  277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찾아서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를 알아내고, 그 두 가지 일이 가능한 직업의 훈련을 받은 겁니다."

"당신 말만 들으면 참 간단해 보이네요."

"간단해요. 문제는, 굉장히 힘이 든다는 겁니다. 글너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291



"사람들은 대체로 나처럼 사는 게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혼자 숨을 쉴 수도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고, 말도 못 하게 될지도 몰라요. 순환계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죠. 무한정 입원하게 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사실 산다고 하기엔 형편없는 삶이지만, 클라크.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어떤 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진짜로 숨이 안 쉬어지기도 해요."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런 거 알아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거. 아무도 두렵다든가, 아프다든가, 무슨 멍청하고 뜬금없는 감염으로 죽게 될까봐 무섭다는 얘기는 원치 않아요. 다시는 섹스를 할 수 없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요리를 다시는 먹을 수 없고 절대 자기 자식을 안아볼 수 없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휠체어에 이렇게 앉아 있다보면 가끔 죽도록 답답해져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싶어진다는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 살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 내가 용서가 안 돼요. 동생은 이번에도 또 나 때문에 자기가 뒷전이 됐다는 사실 때문에 날 원망하고 있지만... 내가 불구가 됐다는 얘기는, 어렸을 때부터 죽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제대로 미워할 수도 없다는 뜻이죠. 우리 아버지는 그냥 싹 다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들은 다 밝은 면만 보고 싶어 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야 하는 거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재앙에도 밝은 면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꼭 필요한 거죠."  358-359



".. 그 친구가 행복하기를 세상 그 무엇보다 바라지만 나는... 나는 도저히 그가 하려는 일을 감히 내 잣대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그건 그 친구가 선택할 일이에요. 그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444


"아니요. 그 친구가 살면 좋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 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445-446



"어떻게든 되겠죠."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예요."

내가뭘 원하는지 깨달은 흐로, 그 말이 내 캐치프레이즈였다.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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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의 목표는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다.  17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책은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다. 약간의 고요함과 약간의 체계, 그리고 약간의 경외심이 필요할 뿐이다.  18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언제 어디서건, 아끼는 펜이 있건 없건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기본적인 조건만큼은 인정하고 넘어가자. 

'의자, 테이블, 닫힌 문, 컴퓨터 혹은 노트, 약간의 경외심, 창문을 가릴 커튼, 가볍게 흥분한 두뇌'  21


적당한 모든 공간에서, 그리고 적당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서도 글을 써보라.  29



일부 시간은 형편없는 글일지언정 반드시 글을 써라.  43


글쓰기는 생각하기, 느끼기, 그리고 갈겨쓰기에 관한 것이며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서도 충분히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53


당신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꽤나 위험할 수 있다.  62


작가에게 기다림이란 위험하고 치명적인 게임이다. 그러나 기다리지 말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라보면 어떨까?

네 시간에 한 번씩, 말하자면 약 먹을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듯이, 오전 8시와 정오와 오후 4시와 저녁 8시에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지금 내가 처한 바로 이 상황에서, 15분 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

만약 대답이 "아니오"라면 왜 안된다는 대답을 했는지 자신에게 설명해보라. 만약 대답이 "그렇다"이긴 한데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지 않다면 왜 글을 쓸 수 있는데도 쓰고 있지 않은지 물어야 한다. 대답이 "그렇다"이고 글을 쓰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만약 이런 식의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정말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있었을까?"

이 실험을 시도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다음처럼 말한다.

"그렇다고 네 시간에 한 번씩 꼭 글을 쓰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너무 인위적이고 강압적이잖아요. 제 하루 일과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이루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글쓰기를 더 많이 의식하긴 했어요. 그래서 이 시간제 글쓰기 활동을 하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 전보다는 더 많이 쓰게 되는것 같아요."  62-63


지금 비록 다리미판을 꺼내고 인터넷 뱅킹으로 고지서들을 처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항상 글쓰기를 내 마음의 가장 앞이나 중심으로 꺼내놓고 있으면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63


짧지만 규칙적인 글쓰기 시간을 정해놓으면 어찌 되었건 그 시간에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찾아오고 내면과 대화를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해서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몇 배나 낫다.

소설가인 조안은 말한다. 

"글을 쓰겠다는 목적의식을 계속 품고 있으면 글쓰기가 생활 전면에 더 자주 등장하게 되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음 문단을 고민하고 틈틈이 머릿속으로 글을 다듬고 내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생각합니다. 이런 규칙적인 '목적의식 인식하기'는 자유로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실제로 글을 쓰고, 또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65


우리는 삶이 아무 의미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피드가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삶의 질이다. 

글쓰기 공간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꿈을 꼭 붙잡고 글쓰기에 전념하면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74


스승과 제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걸어가다 수심이 깊고 빠른 냇가 앞에 다다랐을 때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치마를 적시기 싫어서였는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그녀는 스승에게 자신을 안고 냇가를 건너달라고 부탁했다. 제자는 그들의 그욕주의적인 신조에 따라 스승이 당연히 안 된다고 말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승은 그녀를 안아서 건네주었다. 스승과 제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갔고 제자는 스승이 여자를 안았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부러움마저 잃었다. 사원에 돌아오고 나서 제자는 스스엥게 따져 물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지요? 우리는 여자를 만져서도 안 되잖습니까!"

스승은 순진하게 웃어 보였다.

"너는 아직까지 그 여자 생각을 하고 있느냐? 나는 아까 강둑에서 그 여자를 내려주고 왔다. 너는 지금가지 그 여자를 계속 안고 다니고 있구나?"  105


쓸데 없는 잡념에 지배되지 않은 자유로운 뉴런은 차분히 다른 일에 할애할 수 있는 뉴런이다. 모든 뉴런을 다시 돌아오게 하자. 그렇게 하면 우리에겐 침묵의 시간, 실존하는 시간, 상상력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너무 많은 뉴런을 도둑질 당한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실재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106


창조적 마음챙김.

당신이 케이크를 먹고 있다고 치자. 이때 마음챙김의 목표는 오로지 케이크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창조적 마음챙김의 목표는 케이크 먹는 일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소설을 계속 쓰는 것이다. 케이크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120-121


자아는 지속적으로 성숙시키지 않는다면 퇴행하게 되어 있다. 우울증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중독이 승리하기 시작하며 상상력은 시들시들해지고 결과물은 줄어들고 소외감은 커지고 절망이 깊어진다.  157



그곳이 당신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고, 앉아 있고, 바라보고, 걷고, 글을 쓰는 상상이 당신 마음을 휘젓는다면 그곳이 바로 글을 쓰기 위해서 꼭 가야 하는 장소이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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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11


에이드리언..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88


에이드리언..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95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ㅂ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106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106-107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게 된다.  120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165


'축적의 문제'라고 에이드리언은 썼었다. 축적의 문제. 어떤 말에 돈을 걸고, 그 말이 이기면, 그 상금을 다음번 경기의 다음번 말에게 건다. 이런 식으로 승리는 축적된다. 그렇다면 패배도 축적되는 걸까? 경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저 첫 번째 노름 밑천을 잃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는? 다른 법칙을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관계에 승부를 걸었으나 실패로 끝난다. 계속해서 다음번 관계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이때 잃는 건 단순히 두 번 뺄셈을 하고 난 값이 아니라, 우리가 내걸었던 것의 배수이다. 아무튼 그런 기분일 것이다. 인생은 단순히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다. 상실의, 혹은 실패의 축적과 곱셈이다.  180-181



옮긴이의 말 - 예감하지 못하는 모든 평범한 이들을 위한 서글픈 면죄부


왜곡이 본질인 기억과 우연과 무상성이 본질인 시간의 담합이 만들어낸 파국이 아닐 수 없다.  264


젊은 시절,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 했지만, 노년에 이르러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고 번복한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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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재앙처럼 충격을 주는 책, 깊이 슬프게 만드는 책,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숲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언제나처럼, 즐거움과 도피를 위해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잊기 위해서도 읽는다. 반 시간만이라도 언니가 겪고 있는 현실을 잊기 위해 읽었다. 언니는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무자비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고통과 함께 무력감, 공포감이 뒤따랐다.  17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조용하지 않은 무덤>



내 경우는 갈수록 더 커지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을 가졌는가? 언니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삶의 카드는 왜 내게 주어졌으며, 난 이걸로 뭘 해야 하는가?

달아나기를 멈추어야 했다.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작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둘로 나뉜 나를 다시 합쳐야 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20세기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는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활용하고 싶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으로 되돌아가는 도피 말이다. 나는 책에 풍덩 빠졌다가 다시 온전해져 나타나고 싶었다.  35


나는 공책을 갖고 다니면서 내 생각들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난 교외의 이웃들을 염탐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공책에 쓰는 편에 더 흥미가 있었으니까.  37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고 한다. 독서에는 즐거움도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어떤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 가버릴 수 있다. 읽고 싶은 만큼 읽지 못할 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도피는 불가능하다. 청소해야할 먼지라든가 개켜야 할 옷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우유도 사야 하고 저역 식사도 마련해야 하며 설거지도 해야 한다. 하지만 1년 동안은 그런 일이 절대로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1년 동안 달리지도 않고 계획도 세우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1년 동안 '.... 하지 않기'를 하려 한다. 걱정하지 않기, 규제하지 않기, 돈을 벌지 않기. 물로 ㄴ우리 가족은 다른 수입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한 사람의 수입으로만 살아왔으니 한 해 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외의 지출은 뒤로 미루고 지금 가진 것으로 지낼 것이다.  43


내 계획에 따르면 매일 책 한 권씩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마흔 여섯 살 생일에 시작된다. 그날 첫째 권을 읽고 다음 날 첫 서평을 쓴다. 한 해 동아느이 계획은 단순했다.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일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전쟁과 평화>는 안 되겠지만 톨스토이의 최후작인 <위조 쿠폰>은 읽을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언니와 내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면 좋겠다.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동의했을 법한 책이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히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알 것이다. 그런 열성이야 당연히 좋지만, 어른들에게는 왜 매일 읽으라고 닦달하지 않는가? 왜 어른들에게는 매일 책 읽기를 권장하지 않는가?  44


사람들은 여기서 지금 살아간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들이 과거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주저 앉지 않고 즐거운 순간을 누리는 것을 부러워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을 회상하고 다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경험, 이미 살아본 삶이다.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종으로서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이 능력에 달려 있다(어떤 나무 열매는 먹지 말 것, 이빨 가진 큰 동물에게는 접근하지 말 것, 불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하되 건드리지 는 말 것등등). 하지만 우리 내면의 자아의 생존 역시 기억데 달려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예리한 후각을 가졌겠는가?  55


병이 위중하면서도, 자신도 조만간 죽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언니는 자신은 자살 충동을, 스스로 생명을 끊게 만드는 우울함에 대한 완전한 굴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끝내는 걸까?"

그녀가 옳았다. 절망에게 해줄 대답은 항상 있다. 장래에있을 아름다움에 대한 약속이 그것이다. 과거에 아름다움을 보았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안다.  62-63


뒤를 돌아보면 내 현재 삶의 전체가 보인다. 지금 있는 곳에 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아직 내 앞에 남은 삶에서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큰 그림, 넓은 전망.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알기 위해 뒤를 돌아봄으로써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64


'뒤돌아 보기'는 지혜를 얻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나도 나의 한 해를 계속할 것이다. 현재의 독서, 과거의 기억, 미래의 지혜이다.  65


나는 내가 찾은 모든 행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75


슬픔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향유는 기억이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진통제는 죽기 전에 존재했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그들이 되돌아오지 않고, 또 너무 일찍 죽은 사람에게 그들이 잃은 삶의 가능성을 모두 보상해주기에는 불충분하다. 하지만 기억은 회복력의 몸뚱이 주위에 구축되는 뼈대이다....

삶의 진실은 죽음의 불가피성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살았다는 경이에 의해 입증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로부터 삶의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그 진실을 승인한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복을 찾지 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온 삶의 가치, 산다는 것의 순전한 가치가 그것이다.  100



누군가의 어깨에 일단 올라앉은 죄책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 마틴 코릭 <우연히>



<우연히>의 첫머리에는 다음의 물음을 던진다.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면 소설의 주제는 뭔가? 그저 시간 때우기 용인가?" 하지만 그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위대한 문학의 목적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 있는 것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118


우리가 좋아하여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131



한 권을 끝내기 싫어 가슴이 찢어진 적이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고 한참 뒤까지도 계속 당신의 귀에서 속삭이고 있는 그런 작가가 있었는가?  - 엘리자베스 매과이어 <열린문>



아버지가 하신 말씀. "삶에서 행복을 찾지 말아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거든."  146


감옥을 방문한 동안 그랜트는 제퍼슨이 대모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상관없다고요." 

대모는 대답한다. "내게는 상관있어, 제퍼슨...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해지는 것. 다른 모든 존재 중에서 내게 중요한 하나의 존재. 뭔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어떤 것을 한 인물이 설명해줄 수 있다. 우리는 변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한 사람에 대한 욕망은 그 고유한 평가와 그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것과는 다르며, 애정과도 다르다. 욕망은 커졌다가 시들고, 애정은 오랜 헌신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넌 내게 중요해"라는 것은 긴 기다림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부터 쭉 너를 데려가고, 안아주고, 갈채를 보낼 것이다. 너는 내게 의지할 수 있다. 너를 보살피기 위해 내가 여기 있을 것이다. 네가 가고 난 뒤에도 난 여기서 너를 기억할 것이다.  163-164


잊힌다는 것은 용서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172


온갖 종류의 인간의 경험을 목격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하는 것, 누가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규정하는 데 그것은 필요하다.  177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나쁜 일이 오더라도 그것이 부담은 될 수 있겠지만 올가미는 아닐 것이다. 책은 삶을, 내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제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인간의 회복 능력의 대가이자 증거하는 사실을 이해한다. 

상상한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경험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않을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상이한 개릭터들과 그들의 선택이 낳는 결과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삶의 슬픔과 기쁨을 영위하는 새롭고도 분명한 방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178


욕구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읽고 있던 책에 따르면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자극의 여러 지점에서 온다. 말은 가슴을 쓰다듬는 손길만큼이나 확실하게 열정을 휘저어놓는다. 하지만 욕구를 붙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욕구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 오며, 두 사람 사이의 연대를 복구시키기도 한다.  201


언니를 기억함으로써 나는 가장 지독한 죽음에도 저항하는 보증서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재미있는 행동을 기억하면서 웃고, 친절함을 생각하면서 미소짓고, 내일과 앞으로의 나날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기억이 있는 곳에 진공은 없다.  210


인간은 희망과 사랑이 있는 곳에서 성장한다.  217


최악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라는 것이다. 실망에 맞서는 회복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221


언제든 좋다. 무엇이든 좋다. 모든 게 다 좋다. 

내 반응은 내게 달려 있다. 적절한 종결이란 삶이 그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삶이 주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삶이 빼앗아가는 것에 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언니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반응 역시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  246


우리는 질서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한다. 책에서든 친구에게서든 가족에게서든 아니면 믿음에서든 말이다. 질서는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는 삶이 제시하는 것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의해 창조된다. 질서는 모든 물음에 답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발견 된다.  247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을 서로 나누는 분열에 다리를 놓아주는 친절함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비슷하다.  256



무슨 책이든 읽으라. 그것을 다시 집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렇게 하라.  - 닉 혼비 <집안일과 더러움의 대결>



매일의 책을 읽는 것은 항상 기쁨이었다. 독서의 한 해 내내 하루도 아픈 적이 없었다. 즐거움에 흠뻑 젖은 덕분에 면역성이 생겼다.  259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삶의 유일한 의미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삶의 한 가지 사실이라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남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는 것들이다.  278


책을 통해 나는 내 삶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있는 방법을 배웠다. 

나 자신과 주위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힘든 짐'이 그저 지나가기를 애쓰도록 말이다.  279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슬픔은 질병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며, 우리가 삶 그 자체를, 그 모든 경이와 전율과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긍정이다. 슬픔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살아가는 것이다.  280


"우리는 경이감 속에서 살고, 열정과 염려의 순환 속에서 타오른다." 나는 시인 캐럴린 키저의 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안다.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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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근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관습들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는다.  21


몇 세기 동안 절대다수에게 지켜져 내려오는 신념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들이더라도 어떤 일에 틀릴 수 있다는 가르침. 사람들이 틀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동성의 특성을 꼬집기 위해서 소클테스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사는 것을, 도자기를 굽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에 비유햇다. 직관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도자기나 구두는 상상조차 할 수없다. 하물며 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더욱 복잡한 일을 어떻게 근거나 목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31


소크라테스는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검증하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플라톤의 초기와 중기의 대화편에서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투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투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 부유하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 있다.

4. 최초의 진술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 용기 있는 행동은 전투에서의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또다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리는,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잇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존재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그 주장에 담긴 오류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무엇을 빗대어 말햇든지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더 우월하다.  35-37


소크라테스에게 직관에서 나온 진실은 버팀대도 없이 옥외 대좌(臺座)에 놓인 조각상과 같았다. 그 조각상은 강한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론에 대한 자각과 이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진실은 쇠줄로 땅에 고정된 조각상과 같았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방법 한 가지를 약속했는데, 그런 여론이라면 우리는 비록 폭풍우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끄떡없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38-39





소크라테스는인간 존재란 살다보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도 있기 때문에 간혹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진실과 인기가 없는 것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 더 덧붙였다. 곧,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오류라고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기가 없는 현상 그 자체에 관심의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인기를 잃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44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혹평을 할까?

우리는 비평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45


진정한 체면은 다수의 의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논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48


비록 그 문제가 수사학 선생이나 막강한 장군, 혹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테살리아 출신 귀족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49


소크라테스 :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비난, 그리고 의견에 마구잡이로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아니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의견에만 관심을 가지겠는가?

크리톤 :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존중한 필요 없이 단지 몇 명의 의견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훌륭한 의견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이야말로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으 ㄹ갖춘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민중이 우리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의의 문제에 대해서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겠지.' <크리톤>  50-51


특정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힘.  53


'만약 그대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면, 그대들은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오.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자면, 사실 나라는 존재는 신에 의해서 글자 그대로 이 도시에 달라붙어 있소. 아테네로 말할 것 같으면, 커다란 순종 말(馬)처럼 거대한 몸집때문에 게을러지기 쉬운데 그래서 쇠파리의 자극이 필요한 곳인 것 같소... 만약 그대들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대들은 나의 생명을 구해주겠지요. 그러나 나는 곧 그대들이 졸음에서 깨어나서 성가셔하면 아니토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격에 나를 해치우고는 계속 잠을 청하리라 생각하오.' <변명>  55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자신의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중하게 처신하다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수줍음은 간혹 교만으로, 남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은 아첨으로 오해받는다. 누구나 그런 오해를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은 바짝 타들어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의도했던 것들이 아니기가 십상이다. 가혹한 적들은 힘있는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무고한 철학자에게 불공평하게 쏟아지는 혐오에서 우리는, 정의를 실천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달리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을 확인할 수 있다.  60


우리는 편견이 사라지고 질투가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옳지 못한 명분을 품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못되었다고 비난받을 때 무조건 자신이 옳다는 식으로 어린 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거부의 정당한 명분보다는 단순히 거부하는 자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61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두 가지 강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두 가지 환상이란 바로 대중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과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2




II.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사모스라는 초록빛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300권의 책을 집필햇다. 비록 잇따른 재난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져버렸지만.

그의 철학이 단번에 두드러지게 되었던 것은 감각적 쾌락을 강조한 점 때문이었다.  71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가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그때까지 유쾌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이처럼 진솔하게 털어놓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와닿았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철학 학교를 열었다. 학교는 모두에게 입학을 허락했으며 함께 어울려 살면서 쾌락을 연구하도록 장려했다.  72


'쾌락(pleasure)'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면 쾌락을 얻는 어떤 삶의 방식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75


쾌락주의(Epicureanism)의 핵심에는, "무엇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까?"라는 질문 못지않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대답하는 데에 우리 모두가 서툴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76


'의학의 경우, 육체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면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듯이, 철학 역시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단상>

에피쿠로스의 시각에서 보면, 철학의 임무는 우리 각자가 원인 모를 우울증과 욕망의 충동을 해석하도록 도와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때에 그릇된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돌보아주는 것이었다.  78


그곳에는 으리으리한 집도 없었다. 음식도 소박했다. 에피쿠로스는 포도주보다는 물을 마셨으며, 빵과 채소와 한줌의 올리브로 꾸며진 만찬으로도 행복해했다. "마음 내킬 때마다 잔치를 베풀 수 있도록 내게 치즈 한 단지를 보내주게"라고 그는 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그렸던 한 남자의 진솔한 취향은 이러했다.  79


행복, 에피쿠로스의 구매 리스트

1. 우정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주요 교설>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세네카의<서한집>에서 인용  80

진정한 친구들은 절대로 우리를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이 ㄴ자아이다.  81


2. 자유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에피쿠로스가 친구 메노이케우스에게 설명했듯이,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82


3.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집적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83


"실제로 일어날 시점에 아무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어떤 일(죽음/역주)을 두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했다. 인간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어떤 상태를 두고 미리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살마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냉정한 분석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은 에피쿠로스의 친구들에게 "정원"밖의 무분별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그들을 괴롭혔을지도 모를 많은 내밀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83-84


부유하다는 것이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펼쳤던 주장은,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3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욕망이 있다.' <주요 교설>  84


세가지 분류는 행복이란 몇몇 복합적인 심리적 재상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지, 물질적인 결과물과는 상대적으로 관계가 적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85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86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또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값비싼 물건을 갈망하는 순간에 그것을 사는 것이 옳은지를 자신에게 엄숙히 물어야 한다. 

'모든 욕망에는 다음과 같은 조사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갈망해마지않는 것들이 성취될 경우, 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그 욕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티칸 어록>  88


조사방법은 적어도 다섯 단계를.

1.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한 가지 세워라.

 - 휴일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별장에 살아야 한다.

2. 그 설계가 잘못일 수도 잇다고 상상해보자. 욕망의 대상과 행복을 연결하는 것에서 예외적인 것들을 찾아보라. 욕망의 대상을 소유해도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 별장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쓰고도 여전히 불행할 수 수도 있지 않을까?

 - 별장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휴일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3. 한 가지 예외라도 발견된다면, 그 욕망의 대상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 예컨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별장에서도 비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예컨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나는 텐트에 묵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4. 행복을 엮어내는 데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설계는 지금까지 나타난 예외까지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 호화 별장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다만, 그 행복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한에서, 나는 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5. 이제 진짜 필요한 혼란스러웠던 애초의 욕망과는 매우 다른 것인 것 같다.

 - 행복은 훌륭하게 장식한 별장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  89-90


값비싼 물건들이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지 못하는데도, 우리가 그런 것들에 그렇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두개골 옆면에 구멍을 뚫게 만든 편두통 환자가 저지른 것과 비슷한 오류 때문이다. 말하자면 값비싼 물건들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91


우리 인간이 그토록 쉽게 암시에 걸려드는 존재가 아니라면, 아마 광고가 그처럼 널리 유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5


'기분을 모든 선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면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쾌락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사회적 부의 축적이 행복의 증대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값비싼 재화들이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욕구들은 우리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 그런 욕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98


행복은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는 대부분 금전적인 것이 아니다.  100




III.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 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12


세네카에 따르면 분노는 열정의 통제 불가능한 촉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추론의 오류에서 나온다. 이성이 언제나 루이의 행동을 관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그도 인정했다. 만약 차가운 물 세례를 받으면 우리에게는 몸을 부르르 떠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두 눈 앞으로 손가락을 홱 움직이면 우리는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노는 육체적 반사(反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이성적인 사고를 거쳐 고수하게 된 어떤 관념들에 근거하여 터져나올 수 있다. 그렇지 깨문에 그 관념들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화를 쉽게 내는 성격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좌절에 봉착할 때, 우리가 얼마나 서투르게 반응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것을 정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단적으로 결정된다. 

가장 격한 분노는 존재의 기본 원칙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일어날 때 터져나온다.  114


우리는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불완전성과 화해해야만 한다. '심술궂은 존재들이 심술궂은 짓을 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아니면 당신의 적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에게 성가시게 굴고, 또 당신의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당신의 하인이 못된 짓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말인가?' <분노에 관하여>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117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예상치 못햇던 것에 가장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또 따라서 모든 것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운명의 여신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없으므로"), 우리는 늘 마음속에 재앙을 당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제안했다.  119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두려운 것이기는 해도 - 세네카가 과감하게 말했듯이 -  결코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악(惡)들이 실제로 자신에게 닿기 전에는 절대로 악을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장례행렬이 문 밖을 지나가도 우리는 절대로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때 이른 죽음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장례를 설계한다. 아이가 어떤 옷을 입을까, 군에서는 어떻게 처신할까,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어떻게 물려받을까 등등.'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23


우리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124


세네카의 사전 숙고

'[현명한 사람들은] 하루를 생각으로 연다...' <분노에 관하여>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운명도 도시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있다.' <도덕에 관한 서한>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고, 우리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아이를 낳게 되오.'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모든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으로 어떤 일이든 다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야 한다.' <분노에 관하여>  125


금심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경우 당사자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최선의 결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과, 최악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게 된다. 짐작컨대 근심에 빠진 사람은 당연히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문화적, 성적, 사회적 행위에서도 즐거움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130


'철학자들은 돈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누구도 지혜로운 자에게 가난의 운명을 지우지 않았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그리고 그의 실용주의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이르러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운명의 여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경멸할걸세.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보다 좋은 반쪽을 선택할걸세.' <행복한 삶에 관하여>  133


'현명한 사람은 아무것도 잃을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불변성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자족할 것이다... 만약 질병이나 전쟁으로 한쪽 손을 잃게 되거나, 사고로 한쪽 다리 혹은 두 다리를 모두 잃는다고 해도 현명한 사람은 남은 것에 자족할 것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세네카가 "자족한다"라는 표현으로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세네카의 말은 모순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한쪽 눈을 잃은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쪽 눈을 잃는다고 해도 삶은 가능할 것이다. 눈이나 손의 정상적인 숫자는 단지 만들어진 관념일 뿐이다. 그런 입장을 말해주는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난쟁이이더라도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더 크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친구 없이 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친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족적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34


무생물의 조롱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지거나 서랍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경우 우리는 종종 짜증을 내곤 한다. 연필이나 서랍과 같은 무생물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좌절로 이어지고 이러한 좌절감은 한갓 무생물이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이 추가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은 마치 주인이 애착을 가진 어떤 지식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주인에게 부여한 지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암시를 전하는 듯하다. 


생물체의 조롱

다른 사람들이 말없이 자신의 성격을 비웃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에도 앞의 경우처럼 예리한 아픔을 느낀다. 

스웨덴의 한 호텔에 도착한 직후, 나는 짐을 들어주겟다는 호텔 종업원과 함께 방으로 갔다. 그 종업원은 "당신 같은 남자에게는 짐이 버거울 것 같군요"라고 짓궂게 "남자"를 강조하며 (단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암시하면서) 싱긋 웃는다. 그 사람은 북유럽 특유의 금발이고(아마 스키 타는 사람, 아니면 엘크 사냥꾼일까. 먼 옛날이엇다면 전사였을 것 같다), 말씨는 단호하다. "무슈는 이 방을 좋아하게 될 거요"라고 그가 말한다. 또 "될 거요"라는 표현에는 명령의 냄새까지 풍긴다. 나중에 그 방이 차량의 소음으로 늘 시끄럽고 샤워 시설이 신통치 않으며 텔레비전이 고장난 것으로 확인될 때, 그 종업원의 암시들은 음모의 증거로 돌변한다.

달리 숫기가 없고 과묵한 사람이었다면, 야비하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기분에 부글부글 끓다가 급기야 소리를 지르거나 난폭한 행동은 물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것이 당연히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and)"로 연결되는 절(節)이 들어 있는 문장을 버리고 "... 하기 위하여(in order to)"로 연결되는 절이 든 문장을 취하고 싶어진다.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졌고 그리고 지금 나는 약이 올라 있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and now I am annoyed)"는 생각에서부터 "나를 골려주려고 연필이 책상에서 떨졌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in order to annoy me)"라는 의견으로 도약시키려는 유혹을 느낀다.  135-137


세네카는 그런 판단착오레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정신의 나약함"과 관계가 있다.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는 그들의 성향 뒤에는 자신이 조롱당할 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해코지의 표적이 되고 잇다고 의심할 때에는 누구든 혹은 무슨 일이든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게 된다.

'"그렇고 그래서 오늘 나를 만나주지 않았군.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면서 말이야." "그 자는 거만하게 퇴짜를 놓은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비웃었어."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기는 커녕 테이블 아래쪽 자리를 주었어." <불변성에 관하여>  139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140


자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과자 장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자를 팔기 위해서라고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사진에서 처럼) 로마의 한 호텔 1층에 있는 건축업자는 벽을 수리하는 척하고 있을지 모른다(1). 그러나 그의 진짜 의도는 위층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남자를 괴롭히는 것이다(2).

비열한 해석 : 건축업자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다. 

우호적인 해석 : 건축업자가 망치를 두드리고 있고 내가 그 소리에 괴로워하고 있다.  141



외부의 소음과,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속의 생각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을 엉뚱한 대본에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바깥의 모든 것들이 미친 짓거리라도 좋다. 내 마음에 불안의 요소만 없다면.' <도덕에 관한 서한>  142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여행가방이 운송 도중에 분실되엇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몇 조가 지나면 체념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자의 창시자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잃엇을 때 어떻게 처신햇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보고했다. 

'제논은 배가 조난되어 그의 모든 짐이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물질에 조금 더 초연한 철학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로군."' <영혼의 평정에 관하여>  147


'겨울은 차가운 기후를 몰고온다. 그러면 우리는 몸을 떨어야 한다. 열기를 몰고 여름이 돌아오면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기후는 건강을 훼손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병에 걸려야 한다. 어쩌다가 야생 짐승을, 아니면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파괴적인 인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법이다. 이 법을 우리는 따라야 하고, 준수해야 한다... 당신이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51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Quid opus est partes deflere?  Tota flebilis vita est.'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52




IV.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통증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의지하기만 해도 된다.' <수상록>III

'가장 행복한 삶은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다.' - 소포클레스  158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된 결과,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정과 안식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상록>I  163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크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이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상록>III  164


'만약 [남녀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첫번의 실패로 그만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보다는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더 낫다....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사람은 다양하고 부담 없는 감정 분출을 통해서 전주곡처럼 몇 차례 가볍게 시험을 거쳐야 한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는 영원히 성교에 적절치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완고하게 매달려서는 결코 안 된다.' <수상록>I  169-170


몽테뉴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배제하려는 전통적인 인간의 초상을 흠잡았다. 그 자신이 직접 책을 쓰기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수정하려는 뜻에서였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은퇴햇을 때 그는 책을 쓰고 싶었지만, 어떤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점차로 그의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자리잡아갔는데, 그 책은 너무나 엉뚱하여 그의 서재의 반원형 서가에 꽂혀 있던 천 권 가량의 책과는 달랐다. 

몽테뉴는 자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저자로서 엄청난 수치심을 감수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 활동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묘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수상록> 서문에 그 뜻을 밝혔다.

'아직도 자연의 중요한 법칙들의 달콤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묘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그대들이게 분명히 밝힐 수 있소.' <서론>의 주  173-174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두 개의 진영으로, 말하자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눌 때 드러나는 그 오만함과 신속함이다. 우리의 경험과 믿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곧잘 무시당하곤 한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말 그래? 참이상하군!" 하고 말하면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종의 경고를 하는데, 그런 말에는 우리의 정당성과 인간성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약간 담겨 있다.  178


여행하면서 몽테뉴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관념들이 지방에 따라서 얼마나 뚜렷하게 달라지는 지를 관찰했다.


바젤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타지 않았으며 저녁식사때는 예닐곱 가지의 코스 요리를 즐겼다. 바덴에서는 매주 수요일은 생선으로만 식탁을 꾸몄다. 스위스의 가장 작은 마을이었던 바덴은 고작 2명의 경찰에 의해서 치안이 유지되었다. 독일인들은 15분마다 종을 울렸고, 심지어 1분 단위로 종을 울리는 마을도 있었다. 린다우에서는 모과로 만든 수프를 내놓았으며, 고기 접시는 수프에 앞서 나왔고, 빵은 회향(茴香)으로 만든 것이었다.  178-179


몽테뉴를 괴롭혔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나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사가 검증을 거치지 않고도 꿋꿋이 고집하는, 자신들의 난방장치가 상대의 난방장치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그 맹신이었다.

'어느 나라 할것없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야만스럽거나 충격적으로 비치는 관습이나 관행이 있게 마련이다.' <수상록>III  182-183


학살의 이면에는 추잡한 추론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분리하는 작업은 전형적으로 귀납법의 형태로 진행된다. 그 방법에 따르면 특별한 예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추론한다(논리학자들의 설명처럼, 관찰을 통해서 A1이 0이고, A2도 0이고, A3도 0이라는 결론을 얻으면, 우리는 모든 A는 0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지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만났던 지적인 사람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을 찾는다. 그래서 만약 <그림1>처럼 보엿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림2>처럼 보였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리고 <그림3>처럼 보였던 또 다른 지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우리는 지적인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검정 옷을 즐겨 입고, 엄숙하게 보이는 존재들이라고 결정짓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4>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리석은 존재라고 얕보고 훗날 그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  19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무엇이든 야만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자기 나라의 관습이나 사고방식 외에는 달리 진실이나 올바른 이성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 자기 나라에서 완벽한 종교와 완벽한 정치 형태,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가장 발전되고 완벽한 방법을 찾게 된다.' <수상록>I

가치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관습들이 결점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국적과 친숙함을 선(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


프랑스에서는 코가 막히면 손수건에다 코를 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런데 몽테뉴의 한 친구는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코가 막히면 바로 손에다가 푸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면서... 그는 나에게 지저분한 콧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콧물을 받기 위해서 미리 깨끗한 리넨 손수건을 곱게 접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도 그의 말이 전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관습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관습을 보았더라면 흉측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낯설음을 깨닫지 못했다.' <수상록>I  193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수상록>II  194

우주의 진실을 논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의문스럽다고 느껴지면, 몽테뉴는 비슷한 방식으로 고대의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우주 이론들을 몽땅 모아놓고 비교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그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모든 질신을 꿰뚫고 있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에서 어이없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비교 연구햇으나, 몽테뉴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고 빈정거리듯이 고백했다.  195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 담긴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룬 중요한 인물드에게서조차 엄청난 오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I  196


'흔한 친구나 우정이라고 브르는 것들은 우연 혹은 유사함으로 연결되는 친밀한 관계나 면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들은 서로를 격려한다. 그러나 직ㅁ 내가 이야기하는 우정에서는 영혼들이 서로 한데 우울리며 녹아들기 때문에 두 영혼을 결합한 솔기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상록>I

만약 만흥ㄴ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몬테뉴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많은 것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면, 우정이 그토록 소중하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199


그의 책은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발걸기였다 그는 서점을 찾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의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개인에게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나는 대중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의 가장 은밀한 사고들을 꿰뚫고 있는 서점의 진열대를 나의 가장 충직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수상록>III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역설에 감사해야 한다. 저자들이 말을 걸 사람들을 찾지 못한 까닭에 씌어진 책들의 수를 감안하면, 서점이야말로 그런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목적지가 아닐까?  201


만약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것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할 때,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유익하고 적절한지를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수상록>II

우리로 하여금 더 낫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만이 배우고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205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어의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켰다...' <수상록>II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 <수상록>I  207


나는 어떤 일로도, 심지어 그렇게나 소중하다는 학문을 얻는 일로도 머리를 싸맬 생각은 없다. 책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만약 책을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부분을 곰곰 생각하느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결코 없다. 한두 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어떤 책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 <수상록>II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서가에 책을 1,000권이나 꽂아두고,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통달한 사람의 입장에서 장난스레 젠체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 몽테뉴 자신이 철학적 해설을 풀어놓으면서 독자들을 졸리게 만드는 그런 애매모호한 신사로 비치기를 즐겼다며느, 그것은 엉큼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게으름과 느림을 되풀이하여 선언했던 것은 지식과 훌륭한 글쓰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허물기 위한 전략적 방법이었다.

몽테뉴가 암시했듯이, 인문학 분야의 책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지루한 내용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213


어려운 책들은 예외 없이 우리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명쾌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자를 무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든지, 아니면 책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을 우둔하다고 결론 내리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몽테뉴는 우리에게 차라리 저자를 책망하는 쪽을 택하도록 부추겼다.  214


평이하게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쉽게 읽히지 않는 산문이야말로 지식의 표상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어리석은 존재로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5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서 아이디러를 얻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을, 우리 자신들마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심리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저자들을 만나면 누구나 그드르이 글을 인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우리르 더 잘 아는 것 같다.  218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안다. "이건 키케로가 말한 거야" "이건 플라톤의 도덕률이야"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것들이야"라고,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면, 앵무새도 우리만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  224


몽테뉴의 암시에 따르면,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서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은 학식만 높고 현명함에서는 크게 처지는 산더미만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책들에 대해서 쓴 책이 많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들을 서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모든 책들은 해설로 가득채워져 있다. 진정한 저술가가 없는 실정이다.' <수상록>III

몽테뉴는 흥미로운 지혜란 어느 인생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제아무리 소박하다 하더라도, 옛날의 그 많은 책에서보다 우리 자신에게서 더 위대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25-226


'당신은 보다 풍성한 요소를 갖춘 삶만이 아니라 당신의 평범한 개인적 삶도 도덕철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수상록>III  227




V.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염세주의자로 성장하는 쇼펜하우어.

자살이 분명한 아버지의 죽음이후, 열일곱 살 소년 쇼펜하우어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큰 재산을 물려받는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내 나이 열일곱이던 때, 학교 교육은 한번도 받지 않은 채 나는 석가모니가 젊었을 적에 병든 사람이나 노인,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랬던 것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지냈다. 진실은...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만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악마의 작품인 것 같은데, 그 악마는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생명체들을 존재하도록 했다. 나의 경험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그렇다는 믿음이 늘 나를 지배했다."  234-235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철학교수 자리를 얻으려고 시도한다. 그는 "철학개론", 즉 "이 세상과 인간 정신의 정수에 관한 이론"이라는 강의를 맡는다. 학생 다섯 명이 수업을 듣는다. 가까운 건물에서는 그의 라이벌인 헤겔리 300명의 청중에게 강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239


이 철학자는 하루를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매우 엄격하게 지낸다. 그는 아침에 세 시간 글을 쓰고, 한 시간 동안 플루트(로시니)를 연주하고, 그리고 말을 파는 시장인 로스마르크트에 있는 영국식 식당 엥리셔 호프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흰색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다. 그는 식사를 할 때면 다른 소님들이 알아보는 것을 꺼려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면 경우에 따라서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클럽인 인근의 카지노 소사이어티의 도서관을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그는 이 세상의 비참함을 가장 잘 알려준다고 느끼고 있던 신문 <더 타임스>를 읽는다. 저녁 무렵이 되면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개와 함께 마인 강변을 따라 두 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밤에는 오페라 공연장이나 극장을 방문한다.  242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할 경우에 대비한 위안이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버림받을 때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위안이 그것이다. 우리는 단 며칠 간 희망을 품은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좌절의 깊이에 낭패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262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본래부터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성격도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고, 얼굴도 못생기지 않았다.

당신은 언젠가는 (당신의 턱과 그의 턱이 생에 대한 의지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조합을 이룬다는 이유로) 당신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연스러움을 느낌으로써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살마들을 용서하는 법을 일찍이 배워야 한다.  263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인류사에 종의 번식을 위해서 애 쓰느라 다른 인간을 사랑했던 수많은 인간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273




VI.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나움부르트에 있던 홀어머니와 열아홉 살의 여동생에게 편지를 쓸 때, 니체는 자신의 식사와 학업 진도에 대한 보고 대신에 자제와 체념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요약하여 보냈다.

'삶이란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또 삶을 즐길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삶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것을 얻기를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해야 합니다.'  280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비법... 밑그림.. 매일매일 일상의 일화들을 적어두어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92


모든 삶은 다 힙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을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뇌는 정신적 공활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니체가 존경했던 몽테뉴가 <수상록> 마지막 장에서 설명했듯이, 삶의 기술은 역경에 처할 때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조화처럼, 달콤하고 거칠고, 예리하고 단조롭고, 부드럽고 떠들썩한, 다양한 음색뿐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구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수상록>III

그리고 약 300년 뒤, 니체는 그런 사상으로 회귀했다.

'우리가 만약 비옥한 들판이라면, 어떤 것이든 다 흡수하지 않고 그저 흙바닥을 통과하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어떤 사건이나 사물, 사람에서도 유익한 비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1-302


'재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그다지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서도 훌륭한 업적은 남긴 사람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그들은 부족한 자질을 일궈가면서 스스로 위대함을 획득하여 (우리가 표현하는 것처럼) "천재"가 되었다. 그들 모두 장인(匠人)의 근면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어서 감히 훌륭한 완성품을 내놓기 전에 각 부분들을 정확하게 구축하려고 애쓴다. 그들이 그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황홀한 완성품이 주는 효과보다, 보잘것없고 신통치 않은 것들을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작업 그 자체에 보다 많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5


'미움과 시기, 탐욕, 그리고 지배욕이라는 감정들은 삶의 지배적인 감정인데....이런 것들은 삶이라는 총체적인 경제에서는 기본이며 필수이다.' <선악을 넘어서>

부정적인 뿌리들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것은, 동시에 한참 뒤 그 뿌리에서 자라날 식물 줄기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질식시켜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부터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일구지 못하는 사실에 당혹해야 한다.  307


그리스인들은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피하려 하지 않고 세련되게 활용했다.

'모든 열정에는 단지 재앙으로 작용하는 단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열정은 당사자를 어리석음의 무게로 짓누른다. 그리고 조금, 아니 한참 지나면 열정들이 영혼과 결합하여 스스로를 "영성화"하는 단계가 찾아온다. 아주 옛날에는 열정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람들은 열정 그 자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열정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열정과 욕망이 지닌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에서 연유하는 불쾌한 결과를 피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인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모조건 뽑아버리는 치과 의사에게 우리는 더 이상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우상의 황혼>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라고 요구했다.  310


니체 또한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행복이란 고통을 치르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314


높은 곳을 오르는 등정의 고통을 감내하기를 요구했다.  315


모든 괴로운 상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재앙이다... 나쁜 기후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비슷하게 우둔한 짓이다.

'인간의 병 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시르는 방식에서 비롯되엇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이른바 위안들이 어리석게도 실질적인 치유책으로 생각되었다. 알려지지 앟은 사실은... 고통을 곧장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일반적으로 더욱 깊이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서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328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철학


소크라테스(470-399 기원전)는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올바른 지적 인식을 통하여 진리를 실천함(지행합일知行合一)으로써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참으로 그에게 부당하게 언도된 사형을 그가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용기"라는 미덕 때문이었는데, 그 용기마저 지식, 득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에피쿠로스(342?-270 기원전)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로 오해하고 있는 쾌락을, 쾌락의 첫째 항목으로 그가 들었던 위(胃)의 쾌락마저, 양이나 희귀성에서 찾지 않고 그 자신에게 가장 맛있는 것에서 찾았다. 그의 쾌락은 욕망을 절제하고 친구들과 안온하고 겸허한 생활 속에서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지는것, 즉 "올바른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쾌락이었다.

자신이 가정교사를 했던 네로의 명령에 의해서 자진(自盡)해야 했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 기원후 65)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세네카의 이성은 세네카에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는 준엄한 도덕성과 의무의 준수를 모토로 한 스토아 학파의 대성자였으나, 그의 사생활은 안락과 부(富)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에 따른 아파테이아(apatheia : 당당하고 유연한 심경)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스토아 학파의 실천자였으며, 순명(順命)의 현자였다.

몽테뉴(1533-1592)는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한 에세이스트로서, 파스칼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랄리스트(moraliste)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의 힘이 주도하던 철학 세계에서 인간의 벌거벗은 자연의 모습, 곧 육체와 본능의 힘을 해방시켰다. 섹스의 언급을 금기시한 당대의 위선을 뛰어넘은 몽테뉴의 용기는 "국경"이라는 국민적 편견의 장벽까지 서슴없이 돌파하고 있다. 이런 사상적 궤적을 보여주는 몽테뉴 역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염세주의 철학자로서 알려진 쇼펜하우어(1788-1860)는 끝없는 욕망의 연쇄로서의 생(生)은 고통이며 그 고토으로부터의 해방은 죽음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가 인간 종(種)의 존속을 위해서 작용한다고 파악함으로써 사랑이 생을 지배하는 이유를 발견한 철학자가 되었다. 사랑의 감동에 냉담하기만 했던 철학의 역사에서 사랑으로 인한 슬픔을 치유해주는 유례없는 철학자가 되엇던 것이다.

강자의 도덕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초인"을 "힘에의 의지"의 상징으로서 구체화한 니체(1844-1900)는 행복은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을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절한 고독과 무명(無名), 나쁜 건강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니체는 우정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명성과 부와 행복을 공격하지 않았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무조건 뽑아버리는 의사가 결코 아니었다.  330-331


행복은 올바른 인식에 의해서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삶을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길에서 동반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이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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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책장에 책들이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책장은 시위를 벌인다. 근래에 나오는 책장은 속은 비었을지 몰라도 일단은 보기에 두껍다. 몸통도 뼈대도 모두 두꺼워서 책을 꽂아도 든든하게 버틸것 같이 보인다. 

근데 집에 있는 책장은 다들 오래된 것들이라 몸통은 작지 않지만 뼈대가 다들 얇다. 그래도 책을 가지런히 꽂아두면 보기 좋다. 하지만 책을 가지런히만 꽂아둘 수가 없다. 윗칸과 아랫칸 사이 비는 공간에 책을 쌓아서 넣는다. 보기 좋게 색상도 좀 맞추고 꽂아 두었던 책들은 이미 무너졌다. 높이가 비슷한 것들끼리 짝을 지어서 꽂고 쌓아야 더 많이 들어간다. 

빈곳없이 쌓아넣었다. 모두 채우고 나서 보니 책장이 그리 크지 않게 여겨진다.('너 책 많다는걸 은근히 말하고 싶은거냐?'는 말이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면 그리 많지 않다. 혹 책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똑똑하거나 지혜로워진다면 빚을 내서라고 책을 쌓아 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건 누구나 알고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게다. 그러니 지금 나는 책이 많고 적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이러고 나니 시간이 갈 수록 책장이 수평이 아니라 아래로 볼록해져 가는것 같다. 책장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럼 책장을 사면 되지 않냐고? 그렇지 그러면 되는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장 사는데 드는 돈을 너무 아까워 한다. 그렇다고 돌아다니며 버린 물건 줍는 스타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책장은 누가 버린게 있으면 주워오고 싶다. 아니 실제로 주워 온것도 있다. 

물론 나름대로 기준을 두고, 기준에 맞는 책장일때만 들고 온다. 오래되든 아니든 일단 외관상에 깨끗해 보이는것으로 주워온다. 쉽게말해 중고 가구점에서 팔만해 보이는 책장일때 들고오는 거다. 그럼 누가 버리겠느냐.. 희안하게 나는 그런 책장을 주워와서 깨끗이 닦아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길을 다닐때 종종 쳐다 본다. 

부디 돈 많은 분들이 자주 버려주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현재 책장이 모자란다. 그래서 읽어야 하는 책들은 그냥 한켠에 쌓아두고 있다.

그런데 하필 그녀석들이 책상 옆쪽으로 벽에 붙어 쌓여있다. 거기에 놓을 수 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책상에 앉으면 그녀석들이 자꾸 쳐다 보면서 있다. 그리고 책상 위 책들의 반대편에는 컴퓨터가 있기도 하다. 책상에 앉으면 양쪽에서 유혹의 신호를 마구 보내는데 나는 매번 컴퓨터의 유혹에 더 잘 넘어가버린다. 컴퓨터를 끄고 책상에서 일어나면 책들이 나를 쳐다 보고있다는 사실에 뜨끔한다. 그래서 최근에 카페나 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책들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한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좀이 쑤실때쯤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책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저자의 책들을 꽤나 읽어본것 같은데 이 책은 눈에 익은 이름이긴 한데 읽은 기억이 나질 않는것도 같아서 펼쳤다. 

옮긴이의 표현에 의하면 '펭귄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의 책'이란다.

이 표현은 분명 본 기억이 있다. 시리즈로 또 내는것인가 싶어서 목차를 본다. 흠... 분명 이 내용들은 읽은 것 같다. 

저자의 책이 오래전에 나왔다 해도 나는 그리 오래전에 저자의 책을 읽지 않았기에 도서관내의 컴퓨터로 블로그에 접속해서 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나오질 않지만 다른 이름의 책이 나온다. <동물원에 가기>이다. 

클릭을 해보니 목차가 같다. 근데 출판사와 출판연도가 다르다. 아... 그랬구나! 나는 이 책을 이미 읽어보았다. 내용은 같으나 제목이 다른 당연히 출판사가 다르고 아마도 옮긴이도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저자의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기에 이렇게도 여러번 출판을 하는걸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책 중에 이 책이 아닌 다른 책도 한 권 더 본 적이 있다. 

일전에 한번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키스하기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란 제목과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정도 이다. 또 다른 책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출판사와 옮긴이 그리고 출판 연도가 다르기에 한글판의 표현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치만 나는 그 정도까지 내용을 보는 실력이 있지 않기에 똑같게만 보인다..표현 하나하나의 차이와 감정과 느낌을 알 수 있는 해안을 가져야지 알 수 있을 텐데....ㅎ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위의 동일한 저자의 다른 제목의 번역서라는 이야기인데, 왜 관련 없는 서론을 길게 뺐을까하는 의문이 나도 든다.

근데 이 책을 보게되면서 글을 올리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로 표현해 보았다. 

책을 검색해서 내용이나 감상을 보고자 하셨다면 죄송하다. 


사실 많지 않은 책장에 빼곡히 쌓아둔 책 중에 이런 책들이 몇 권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무슨 제목이든 책을 읽었다는게 중요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 번역자의 책을 읽었는냐가 중요할 수도 있고, 언제 읽었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 읽었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다빼고 그냥 없는 살림에 책장이 책들을 모두 품을 수 없는 상태의 나에게 동일한 내용의 책이 여러권있는게 어찌보면 부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슬픔이 주는 기쁨>과 <동물원에 가기>는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내용의 옮긴이와 출판사와 출판연도가 다른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밑줄이 보고 싶으신 분은 <동물원에 가기> 제목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다.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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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내 인생 최고의 책 (피코 아이어)

로힌턴 미스트리의 이전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뉴욕의 한 영화 제작자는 찰스 디킨스를 새로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적절한 균형>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 단언한다. 

소설이 폭로하는 내용은 봄베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런던이나 뉴욕에 사는 누구에게라도 충격적이다. 

비평가이자 동료 작가며 펜이기도 한 내가 섣불리 꺼내기 힘든 말이 바로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거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면서 당신은 혼잣말로 이 책이 재미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행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식사를 잘 할 것이고 본인의 무감동에 대해서 작가를 탓하고 그의 지나친 과장과 상상의 비약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비극은 허구가 아니라 모두 진실입니다."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중에서



나라얀이 고향 마을로 돌아온 지가 6개월쯤 되던 어느날 아침, 벙기 카스트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오두막집으로 오고 있었다. 밖에서 불 위에다가 물을 끓이던 루파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았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그를 막아서며 그녀가 소리쳤다.

"재봉사 나라얀을 찾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남자가 누더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라고?" 그의 뻔뻔함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봉사고 나발이고 그 입 다물어! 끓는 물로 네 놈의 더러운 몸을 지져 줄 테다! 내 아들은 너 같은 놈들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나라얀이 모두막집에서 나오며 소리쳤을 때 남자는 달아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남자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보복이 따를까 봐서 무서웠던 벙기는 더 빨리 달렸다.

"이봐요. 돌아와요! 괜찬하요!"

"다음에 오겠습니다. 내일쯤요." 겁에 질린 남자가 말했다. 

"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오세요." 오두막집으로 돌아간 나라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무섭게 노려보는 어머니를 무시해 버렸다.

"나한테 고개 젓지 마!" 화가난 그녀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내일 다시 오라고 왜 부른거야? 우린 그런 낮은 카스트 사람들을 상대하면 안 돼! 사람들 집이ㅔ서 똥이나 실어 나르는 작자의 몸 치수를 어떻게 재겠다는 거야?"

"전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전 브라만이든 벙기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게 네 생각이냐? 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자! 브라만은 돼도 벙기는 안 돼!"

그날 저녁 루파는 둑히에게 아들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네 엄마 말이 맞다." 그가 나라얀에게 말했다.

"왜 저에게 재봉을 배우라고 보내셨던 거죠?"

"무슨 그런 멍청한 질문이 있냐. 네 인생이 잘되라고 그런 거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니?"

"그럼요. 카스트가 높은 사람들이 우리를 함부로 다루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그들처럼 행동하고 계세요. 그런 걸 원하신다면 전 읍내로 돌아가겠습니다. 전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루파는 그의 최후통첩에 깜짝 놀랐으며, 둑히가 그녀를 보면서 "쟤 말이 맞아"라고 하자 공포에 질렸다.  196-197


둑히는 나방이 등불 유리를 뚫고 들어가려고 연약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을 지켜봤다.  211


"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214


"쇠로 만든 선로가 아주 유용하죠."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발판 구실을 해요. 땅보다 높아서 똥이 쌓여도 궁둥이에 닿칠 않거든요."

"요령을 다 아는 모양이죠?" 그들이 바지를 내리고 철로에서 자세를 취할 때 옴이 이웃집 남자에게 물었다. 

"아, 이거야 금방 배우지." 그는 덤불에 있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저기 앉으면 위험해. 독이 있는 지네들이 저기서 기어 다니거든. 나라면 저기서 볼일을 안 볼거야. 그리고 덤불에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궁둥이에 가시가 잔뜩 묻는다고."  245


옴은 문간에 앉아서 어제 디나의 방에 떨어져 있던 헝겊들 가운데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던 시폰 조각을 만져 보았다. 매우 부드러운 천은 그의 손가락들 사이에서 매우 편한 느낌이 들었다. 왜 삶은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울 수 없는 걸까?


아이들은 썩은 음식 덩어리를 살피던 까마귀 한 마리를 쫓았다. 고집 샌 새가 날아가지 않고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주위를 돌아가 썩은 음식으로 되돌아오자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했다. 더럽고 발가벗고 굶주려 얼굴에는 부스럼이 나고 피부에는 뾰루지가 난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옴은 궁금했다. 이런 비참한 곳에서 웃을 일리 뭐가 있을까?  271


"불행, 카스트의 폭력, 정부의 냄담, 관리의 거만함, 경찰의 야만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울고 싶어질 때가 있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W. B. 예이츠)이 말했듯이 너무 오랫동안 희생하다 보면 마음이 돌덩어리가 되죠."  334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그것들을 새로 만드는 일은 즐겁다.'

"예이츠 인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선을 긋고 구획을 정해서 그것들으 넘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요. 때로는 실패를 성공의 징검다리로 삼아야지. 희망과 절망의 적절한 균현을 유지해야 하죠. 그렇지, 결국은 모든게 균형의 문제지."  336


"부잣집 자식아, 언제쯤 현실에 적응할래?"

"부자가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지벵 있는 화장실도 여기처럼 평범해요. 그래도 물통에 물은 있어요. 악취도 나지 않고요."

"문제는 넌 너무 많은 걸 보고 너무 많은 냄새를 맡는다는 거요. 여긴 대도시야. 눈 덮인 아름다운 산들은 없다고. 넌 계집애 같은 눈과 코를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해."  349


"우리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모두는 완벽한 세계를 즐기기 위해서 맞춰져 있지. 그러나 세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감각들에다가 가리개를 씌워야 하는 거야."  350


언젠가 아비나시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체스라고 말했었다. 지금 그는 심각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졸 세개와 차하나를 가지고 제때에 왕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디나 아주머니는 거실과 안쪽 방을 오가면서 재봉사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안흔 청량음료 경쟁자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녀깅 되자 방의 그림자가 짙어졌지만 마넥은 불을 켤 생각을 하지 않앗다. 체스에 대한 그의 변덕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어스름 속에서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었다.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었고 매우 복잡했다. 게임은 냉혹했다. 인생이라는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살육으로 인해서 인간들은 상처를 입는다. 아비나시의 아버지는 결핵에 걸렸고 글의 세 여동생들은 혼인 지참금을 기다리고 있다. 디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불행을 이겨내려고 발버등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상심했고 희망이 꺾였지만 어머니는 그가 다시 강해져서 웃을 것이라고 가장했고, 아들이 1년 후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지하실에서 콜라 가문의 콜라를 만들게 되면 그드르이 삶이 기숙학교로 마넥을 보내기 전처럼 다시 한 번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거라고 가장해싿. 그러나 그렇게 가장하는 일은 동심의 세계에서나 통용될 뿐, 결코 예전 같은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할 뿐이고 너무 절망적인 듯했다.

그거 접는 체스판을 세게 닫자 바람이 훅하고 불어와 얼굴에  닿았다. 눈물로 젖은 뺨에 부딪친 바람은 차가웠다. 그는 눈물을 닦고 체스판을 마치 풀무처럼 열었다가 다시 세게 접었다. 그런 다음 체스판으로 부채질을 했다.

디나 아주머니가 마침내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부르자 마치 감옥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396-397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은 없죠. 걱정 마십시오."  407


"소음도 사람과 마찬가지네요." 이시바가 말했다. "한 번 알고 나면 친구가 되죠."  465


"신은 죽었어요. 독일 철학자가 책에 그렇게 썼어요."

그 말에 그녀가 충격을 받았다. "독일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너도 그 말을 믿니?"

"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신이 거대한 이불을 만드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없이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이불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이불이 너무 크고 호란스러워서 디자인을 볼 수가 없고, 사각형과 다이아몬드형 그리고 삼각형이 ㄱ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아서 모든 게 무의미해진 거죠. 그래서 신이 그걸 버린 거죠."  495


"넌 그 사람들(이시바와 옴)하고 정말 친구가 된 거지? 그래서 고향 마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너한테 말해 준 거고."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재봉사들이 매일 여기 앉아서 일했는데 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 했어. 왜 그럴까?"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자꾸 어깨로 말할 거니? 너의 이불 만드는 신이 입 안에다가 혀를 꿰매기라도 했니? 재봉사들이 너한테는 말을 하고 나한테는 왜 말을 안 했냐니까?"

"아마도 아주머니가 무서웠겠죠."

"날 무서워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은 내가 그 사람들이 무서웠어. 수출 회사를 찾아서 나를 제쳐놓을까 봐서 말이야. 안 그러면 더 나은 일을 찾을까 봐서. 때로는 실수를 지적하는 일조차 두려웠어. 재봉사들이 가고 나서 나 혼자 밤에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았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날 두려워했다는 거지?"

"아주머니가 더 나은 재봉사들을 찾아서 자기들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려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미리 나한테 말해 주지 그랬니. 그랬으면 안심시켜 줄 수도 있었는데."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496-497



너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부숴야 해.(누스완의 말, 디나의 오빠)  541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수붜야 한다는 조금 전의 금언을 고민하며, 그는 머릿속에서 민주주의, 독재, 프라이팬, 불, 암탉, 계란 완숙, 식용유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뭔가 다른 말을 찾아보려고 했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은 민주주의라는 상표만 붙은 포악한 암탉이 낳은 달걀들로는 만들 수 없다는 말이었다.  543


살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원고 교정자 바산트라오 발믹은 이것이 삶의 일부라면서 희망과 정말의 균형을 찾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과 파괴도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 충분히 큰 냉장고만 있다면,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냉장이 불가능했다. 결국 모든 것은 상하고 만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633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시바가 말했다.

"이불이야 아무나 만드는 건데요 뭐, 당신들이 쓰고 남은 헝겊 조각들이에요." 그녀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조각들을 모으는 게 대단한 기술이죠."

"저거 봐요." 옴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맨 처음 작업했던 포플린 옷감이에요."

"기억나니?" 디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 옷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 생각나? 난 정말 재봉 천재 두 명이 나타난 줄 알았단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손가락들이 빨리 움직였습니다." 이시바가 웃었다.

"그 다음에 저기 오렌지색 줄무늬가 있는 노란색 칼리코 천을 작업했죠. 옴이 그때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요. 사사건건 싸우고 말다춤을 했잖아요."

"제가 언제요? 싸워요? 절대 그런 적 없는데."

"이 파란색, 흰색 꽃들 생각나요/ 제가 여기로 이사 왔을때 아주머니께서 만들던 치마에서 나온 거죠." 마넥이 말했다.

"정말?"

"그럼요. 그날 아시바 아저씨와 옴이 일하러 안 왔잖아요. 총리의 강제 모임에 납치됐던 날이요."

"아, 그래. 맞다. 옴, 이 예쁜 보일 옷감 기억나니?"

얼굴이 빨개진 옴은 생각나지 않는 척했다.

"아니, 생각 안 나? 어떻게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니? 네가 엄지손가락을 가위에 베어서 피를 흘린 천이잖아."

"전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마넥이 말했다. 

"네가 오기 한 달 전에 그랬지. 그리고 시폰도 재밌었었는데, 디자인을 맞추기도 힘들고 미끄럽다고 옴이 화를 냈었지."

이시바가 몸을 숙이더니 정사각형의 흰 삼베를 가리켰다. "이거 아시죠? 이 천을 가지고 작업한 첫날에 정부가 우리 집을 부쉈죠. 이걸 볼 때마다 슬퍼집니다."

"가위 가져와요. 잘라 버릴 테니까." 그녀가 농담을 던졌다.

"아닙니다. 그냥 두십시오.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는 삼베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과거를 떠올렸다."천 한 조각을 두고 슬프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보십쇼. 이 슬픈 조각이 저희가 베란다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 작업하던 행복한 조각과 연결돼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조각은 차파티를 만들 때 작업하던 거교요. 그리고 이 보라색 비단은 저희가 매운 양념 화다 과자를 만들고 다 함께 요리를 하던 때 작업하던 거죠. 또 이 조젯 헝겊 조각은 거지 왕초가 저희를 집주인의 깡패들로부터 구해 줬을 때 작업하던 겁니다."

그는 복잡한 법칙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라도 한 듯이 기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기억해야 할 법칙은, 천 한 조각보다 전체 이불이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와, 정말 멋지다!" 옴과 마넥이 박수를 치며 외쳤다. 

"정말 현명한 말이로군요." 디나가 말했다.  700-703


시간은 길이도 없고 넓이도 없어.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란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바로 우리들의 삶이 합쳐졌다는 거야."

"이불의 헝겊 조각들처럼 말이죠." 옴이 말했다.  703


인간들은 왜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걸까? 그것이 분노든 사랑이든 슬픔이든, 사람들은 항상 숨기려고 한다. 또한 어떤 인간들은 그들의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위대한 척한다. 그래서 작은 골칫거리에도 크게 분노하고, 미소와 웃음으로 충분한데도 히스테리를 부리며 웃는다. 모두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721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자, 다들 어서 모여!" 다섯 시가 되자 누스완이 즉시 그들을 불렀다. "카드놀이 시간이야."

그는 그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카드놀이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는 세 명 뿐이어서 누스완은 러미 게임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행복을 끈질기게 찾고자 했다.

"카드놀이가 인도에서 처음 시작된 거 알고 있어?" 그가 물었다.

"정말요?" 루비가 놀랐다. 누스완이 그런 얙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매우 감동했다.

"그럼, 그렇고 말고. 체스도 인도에서 유해된 걱야. 사실, 카드가 체스에서 시작됐다는 이론이 있지. 13세기에 중동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됐어."

"세상에!" 루비가 감탄했다.

그가 패를 다시 배열하더니 카드 한 장을 엎어서 버리고 외쳤다. "러미!"

같은 종류의 카드를 다 모은 걸 보여 주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분석해 주었다. "거기서 하트의 잭을 내면 어떡하니, 그래서 네가 진 거야." 그가 디나에게 말했다.

"모험을 해 봤어요."

그가 카드를 모아서 섞었다. "자, 그럼 누가 패를 돌릴 차례지?"

"나예요." 디나가 카드를 받았다.  820-821


"재미없는 인생이란 없는 법이오."(마넥이 돌아와 바산트라오(변호사)를 만났을때 변호사의 표현)  859




옮긴이의 말 - 인도의 판타지, 로힌턴 미스트리의 리얼리즘

<적절한 균형>은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쿄 등 다양한 종교는 물론이고, 계층과 종족 그리고 성정 배경이 확연히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인도 현대사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파해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 소설은 여러 개인들이 역사의 자장에 휩쓸려 맞게 되는 비극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이러한 인도인들의 비극이 어느 한 시절에 국한된 게 아니라 독립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비극임을 보여준다.  877


소설은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인 1975년에서 1977년을 주요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 항거해 재봉사가 되는 불가촉천민들, 새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큰 사업을 잃고 마는 파르시 기업가, 국가비상사태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가난한 학생 운동가, 신부 지참금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녀들, 구걸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 아이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거지 왕초, 빈민굴 판잣집조차도 빼앗기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가난한 사람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생식력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폭압적인 관리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독립을 전후한 파란만장한 인도 현대사를 증언한다. 디나, 마넥, 이시바, 옴프라카시는 이런 엄혹한 역사 앞에서, 특히 국가의 폭력 앞에서 개인은 도무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야만적인 국가 권력과 불화하는 개인들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로힌턴 미스트리만큼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인도의 현대 작가는 드물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독자들은 역사와 국가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진정한 인도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878


궁극적으로 <적절한 균형>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 적잘한 균형 감각은 무엇일까?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그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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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숨을 고른 다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평생으 ㄹ두고 노새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어. 내 아들놈 하나-딱 하나만이라도- 인간답게 사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49


"어린 친구가 아주 똑똑하고 정직하고, 활발하구먼, 도둑과 등신들이 우글거리는 이 무리에서 말이야. 어떤 정글엘 가더락도 가장 희귀한 짐승이 뭔지 아니? 한 세대에 딱 한 번만 나타나는 동물 말이다."

저는 잠시 생각했다가 대답했습니다.

"화이트 타이거요."

"그래, 바로 네가 화이트 타이거다. 이 험한 정글의 화이트 타이거."  54


옛날 옛적의 인도에는 천 개의 카스트와 천 개의 숙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딱 두개의 카스트만 남았어요. : 배때기가 커다란 남자들 그리고 배때기라곤 없는 남자들.

그리고 숙명 또한 딱 두 가지뿐이랍니다. 먹거나, 먹히거나.  85


자유로운 사람들도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것, 문제는 바로 그겁니다.  142


짐승들은 짐승답게 살도록 내버려두고, 인간들은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 한 마디로 그것이 저의 철학이랍니다.  314


인도 혁명이라굽쇼?

아니요, 각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자기네 자유를 위한 전쟁이 다른 어디에선가부터 - 정글이나, 산이나, 중국이나, 파키스탄으로부터 올 거라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런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거룩한 도시 베나라스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인도의 젊은이들이여, 그대 혁명의 책은 바로 그대드르이 뱃속에 들어있도다. 그것을 배출해내서 읽으라!

하지만 대신에 그들은 전부 칼러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크리킷 게임이나 샴푸 광고 따위를 보고 있지요.  344


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361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아니, 단 일 분이라도, 하인으로 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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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타가 내게 물었다. 

"나도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십시오."

"내가 당신을 집으로 데려왔던 날 저녁, 당신은 내게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동전을 던졌어요. 왜 그랬죠?"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뭔가를 결정할 때마다 그 동전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앞면이 나오면 당신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뒷면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앞면이 나왔지요."

"그럼 뒷면이 나왔다면 내게 당신 얘기를 하지 않았겠군요?"

"어차피 뒷면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그 정도로 운을 믿나요?"
"동전이 운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 동전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일 루피짜리 동전을 꺼내 스미타에게 건네줬다.

스미타는 동전을 받아들고 살짝 위로 튕겻다가 다시 한번 튕겼다. 

"아니.... 양쪽 모두 앞면이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내 행운의 동전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운은 그 동전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스미타에게 동전을 받아 하늘 높이 던졌다. 동전이 위로, 위로 올라가 푸른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져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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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살아온 1백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메시지는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 더욱 강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38


맨 처음 사인을 한 유명한 목사는 자기 이름 뒤에 'D.D.(신학박사)'라고 적었다. 두번째 사람은 'ph.D.(철학박사)'라고 썼다. 샘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름 뒤에 'LLL'이라고 적어넣었다.

"잠깐, 샘. 잘못 쓴 것 같은데, 자넨 대학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잖나?"

그러자 시장이 대답했다.

"천만에 말씀! 난 이래 봬도 인생의 역경이라는 대학을 다닌 몸이오. 우리 대학 교기의 색깔은 시퍼렇게 멍든 색이고, 구호는 '아얏!'이지."

"그럼 'LLL'은 뭔가?"

샘이 말했다.

"그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운다(Learning, Learning, Learning)는 뜻이라네."  45-46

가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자녀들을 내 소유물이 아니라 개별적인 인격제로 여겼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이 대목을 들려주고 싶구나.

당신의 자녀들은 답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하여 왔지만 

당신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드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마음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미래의 집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으로서는 꿈속에서조차도 방문할 수 없는 그런 곳에 말입니다.

당신은 그들처럼 되고자 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인생은 과걸로 가는 것이 아니며 어제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56


어머니는 우리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우리에게 규칙적으로 책-자연에 관한 책에서부터 여행과 모험에 관한 이야기, 역사, 전기, 소설, 시에 이르기까지-을 읽어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어머니는 늦은 오후부터 초저녁까지 우리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57

어머니는 우리 가족을 '민주적인 가족 사회'라 일컫곤 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런 제안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 민주적인 가족 사회에서 엄마가 규칙을 만든다고 가정해..." 그 순간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저항의 소리에 파묻혀, 어머니의 다음 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를 '니어링 토론회'라고 했는데, 당신은 '니어링 토론회'의 명예 회원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의 토론에 거의 끼지 않았지만, 늘 곁에서 관심있게 토론을 지켜보았다.  59


당시 우리가 살던 군을 통틀어 할아버지는 가장 많은 장서 보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 육 남매는 집 밖으로 책을 가지고 나가는 것만 제외하고는 할아버지 서재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책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62

독학으로 엔지니어가 된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은 곧 훌륭한 스승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74

훌륭한 기술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늘 자신의 일에 대해 앞질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곤란한 문제들을 미리 예견하여, 실제로 그런 문제가 터질 즈음에는 이미 해결책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스스로 터득한 뚜렷한 철학이 있고,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이이쓴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어떤 분야에서든 독창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불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절하고 끈기있으며, 기다림이 필요할 때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75


펜실베니아 대학 워튼 스쿨의 경제학부 학과장인 사이먼 낼슨 패튼 교수

좋은 성적을 얻는 지름길은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무조건 따라하는 데 있었다. 

완벽한 학생이란 곧 완벽한 앵무새였다.  76

일단 정신적 순응이 습관화되면 그 습관을 뿌리뽑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77

패튼 교수는 늘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내다보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그의 상상력은 미래상을 제시하였고, 그의 날카로운 이성은 미래의 세세한 대목까지 꿰뚫어 보았다. 그는 늘 학생들ㅇ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한계와 제약을 넘어서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영원한 청년정신이 있었다.  80

어릴 땐 우연히 <울타리와 구급차>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떨어져서 죽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곤 하는 위험한 절벽에 대해 묘사한 시였다. 마음 착한 시민들은 구급차를 구입해 절벽 밑에 두고 희생자들을 돌보기 위해 조금씩 돈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다시는 절벽에서 사람들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절벽 둘레에 울타리를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일어난 뒤에 구급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사회사업가요, 울타리를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급진주의자였다. 오랜 세우러 동안 나는 구급차 기금을 기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차츰 울타리를 치는 쪽으로 생각과 행동이 옮겨갔다.

패튼은 생애의 상당 기간을 구급차 운전사로 보냈으나, 경우에 따라서 급진주의자 대열로 선회하기도 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두 가지 얘기가 내 뇌리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교사의 자리는 진보의 제일선에 있다"는 말과 "러시아혁명 만세!"  83

사회사업가로서의 패튼은 희생자들을 염려했고, 급진주의자로서의 패튼은 합법주의와 점진주의가 시급한 사회개혁을 단행하는 데 실패하자 과감한 변화를 환영했다. 사이먼 패튼은 나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그 길을 따르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여러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84


네 번째 스스은 톨스토이였다.  86

톨스토이는 탐색하고 묻고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일에 반세기(1860~1910)를 보냈다. 부족한 것 없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가정생활과 문필가로서의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덜졌다. 진리란 무엇인가? 내 돌료들의 반대편에 있는 진리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그 진리를 실천할 수 있나?

톨스토이는 다양한 관점에서 자기 문제에 접근했다. 그가 가장 우선 순위를 둔 것은 고생을 덜고 고통을 예방하는 일이었다. 두번째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었다. 세번째는 그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도덕률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네번째는 과단성있게 행동하고 지금 당장 불을 끄도록 권유하는 것이었다. 다섯번째는 비폴력 저항이라는 방법론이었다.  90

나는 그의 작품을 읽고, 힘 닿는 데까지 그의 생각을 전파했다. 또한 내 삶을 단순화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나도 그처럼 채식주의자,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91


경제문제에 중압감을 느껴, 나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것.

둘째, 학교 밖의 수입원을 늘일 것.

셋째, 수입의 일부를 노후생활을 위해 적립할 것.

이 세 가지 원칙 중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은 사치와 낭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사회에서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일이었다. 첫번째 단계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 필수품 외의 옷가지와 가재도구, 가구 같은 사유재산은 출세주의자에게나 가치가 있을까 대부분 아무런 본질적 가치도 없는 신분의 상징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116


어느새 나는 입센이 말하는 '사회의 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117

오랜 시간을 두고 당당하게 내 자신의 힘으로 노후에 대비할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해 냈다.  118


1920년대 나는 부의 유혹에 빠질 뻔한 경험이 있다. 뉴욕의 재력가인 해리어트 G. 플래그라는 이가 나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것이다. 약 십만 달러 가량 되었다.

또 한 차례, 독일의 한 독일에서 발행한 공채를 약간 사두었다. 8백 달러를 주고 구입한 이 공채가 약 6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결국 공채 증서를 난로 속에 던져 버렸다. 

버몬트 주 원홀 마을에 약간 넓은 임야와 농장을 구입하였다. 전쟁특수로 땅값이 치솟아 마을에 공유지로 양도했다. 

버몬트 주의 집터에는 그동안 살면서 하나둘씩 지은 돌집이 무려 아홉 채나 들어섰다.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려 했으나 아내의 반대로 어떤 젊은 부부에게 시가의 절반 가격으로 집을 팔았다. 14년 뒤 그 부부는 건물과 농장의 일부를 9만 달러에 팔았다.  121-122

나의 이런 태도에 대해 주변에서 친구들이 수도 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지 않겠나?"

"자네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세상에 어디 하나둘이겠는가?"  123

만일 누군가 배고픔에 시달린다면, 푸짐한 식사 한 끼로 그를 만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행위ㅏ는 일시적인 미봉책이지, 가난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과는 거리가 멀다. 또 수혜자는 기생적 생활습관을 얻어 재차, 삼차 구걸의 손을 벌리게 되어 있다. 구걸이 제도화되고, 빈곤에 익숙해지는 악습을 낳는 것이다.

개인 차원의 자선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경제적 불공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무조건적인 재정 보조는 수혜자를 그것에 길들게 만들어 결국은 자생 의지를 꺾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124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도 <권력의 오만>에서 구 국가간의 원조는 "받는 측과 주는 측 모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종의 자선행위"라고 그는 말한다.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나는 부가 타락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125

금광업자는 육로로 여행을 하면 강도를 만날까 두려워, 바다를 통해 동부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배가 해안에서 떨어졌을 때 폭풍이 인다. 배가 가라앉는다. 금광업자는 묵직한 허리띠를 찬 채 배에서 뛰어내린다. 러스킨은 묻는다. "금덩이의 무게에 눌려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으니,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인가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인가?"  126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삶의 수단이나 목쵸가 비열하고 저급하다면, 그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며 자존심을 유지할 수도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하는 데에도 올바른 동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지식을 말과 행도에 적용하고 생계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128


좋은 교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관계되는 사실들을 끌어들여 논리적인 결론을 낼 줄 알아야 한다. 교실 안에서건 밖에서건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사실에 입각해 철저하고도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활동을 보장하는 것을 "학문의 자유"라 한다. 양심있는 ㄱ교사라면 이 같은 의무를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을 것이다.  132

1908년부터 오늘날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강연을 해왔다. 1915년에서 35년까지 20년 동안은 한 주에 평군 8!10회 가량하기도 햇는데, 이것을 전부 합하면 일 년에 4백여 회가 훨씬 넘었다. 1935년 이후에는 강연 기회가 줄었다. (1908년에) 딱 한번도 없고, 늘 간단한 메모를 기초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또 동일한 주제를 다룬 적이 종종 있었지만, 한 번도 같은 강연을 되풀이한 적은 없고, 가능하면 늘 새로운 화제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155

나는 수첨에다 '강연'이라는 제목 아래 발췌문 세 개를 적어 가지고 다니며, 강연 전에 그것을 읽으며 내 자신을 겸허하게 되돌아본다. 

하나는 슈리 라마크리슈나의 글을 옮겨 적은 것이다. '인간은 지식이 일천한 동안은 가르치고 설교하러 돌아다니지만, 완벽한 지식을 습득했을 때는 자신의 지식을 쓸데없이 과시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로망 롤랑의 <파리의 장 크리스토프>에서 뽑은 글이다. '연단에 서서 말을 하다 보면 십중팔구는 생각을 왜곡하게 되어 있다. 연사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을 경우, 표정과 말투, 태도,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 등을 꾸미기 시작해 차츰 정신적 사기행위로 옮아갈 위험이 있다. 강연이란 따분한 희극과 점잖은 현학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일이다... 그것은 몇백 명의 침묵하는 군중-시리제로는 아무에게도 맞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치수가 맞는다고 하는 기성복-앞에서 외치는 독백이다.

세번째 발췌문을 제공한 사람은 소로이다. '설교자들과 강연자들은 허수아비들을 상대한다.. 그들 자신이 허수아비인 탓이다... 청중은 예언자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걳은 어떤 자극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재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과 독립성, 인격을 제외한 인간의 모든 것이다.'  157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우드로우 윌슨은 <새로운 자유>를 집필하던 1912년에 이미 모든 상황을 마음속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미국 민주주의라는 틀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 건설 되었다. 최근에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일반대중이 아니다.'  167

미국적 방식이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에 기반을 둔게 아니라 임금을 삭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가의 결단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적 방식이란 가난한 자는 현재대로 놓아두고 부자는 더 부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상류층 인사'들이다. 쇼의 흥행권을 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은 운영하는 자들이다. 1910년경 링컨 스테펀스가 필라델피아에서 한 강연이 생각난다. 유럽 봉건제 아래에서 '상류층'이란 지주와 성직자, 그리고 가신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의 미국에서 은행가, 기업가, 상인, 그리고 그들의 가신들이 바로 '상류층 인사'에 속한다.  171-172

나는 언짢은 마음으로 벤의 사무실을 나왔다.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레오 톨스토이는 경고와 위협을 무시하고, 계속 러시아 짜르와 그 형제들-막강한 러시아 군대의 지도자들과 그리스 정교회의 중심 인물들-의 권위에 도전했다. 나는 아직 젊고 경험도 일천하지만 진실을 보지 않았던가? 어디가 됐든 진실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178-179


교직에서 해임된 뒤, 미국의 대학과 학교들은 점점 더 거대한 공장이 되어갔다. 학생과 교수들 모두 개성을 상실하고,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 지냈다. 이런 현상은 2차대전 이후로 더욱 가속돠되었다. 대규모 종합대학들은 연구기관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호전적 국가를 위한 총알받이들만 배출해냈다. 군국주의적 대세에 휩쓸려 대학이 국가의 시녀가 된 것이다. 요즘 쳥년들이 강하게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202


1902년 위튼 스쿨에 입학한 지 열다섯 해 만에 나는 학교와 직장에서 쫓겨나 결국 혼자 몸이 되었다.  241


나는 생명을 존중하기에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242

나는 생명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만큼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중요하다고 믿기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243

나는 인간에게 최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 차원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협동적 사회유형을 계획하고 건설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244

만약 서구 문명이 살아남는다면, 서구 문명은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하는 협동의 기반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업들을 반드시 공동체가 소유하고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물자와 서비스는 그것이 부족할 때는 공정하게 배급되어야 하고, 풍족할 때는 사회질서의 기본원칙에 따라 각 개인에게 필요한 만큼 아낌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247

이런 중요한 결정들은 나로 하여금 깊은 물속에서 혼자 힘으로 맹목적인 신보오가 편협과 두려움과 증오와 조직적 폭력의 조수-반세기가 넘도록 때로는 상류로, 때로는 하류로 나를 실어날랐던 조수-를 거슬러 헤엄치게 만들었다. 내 인생의 삼분의 이를 예기하자면, 바로 이런 조수의 이야기이다. 나는 조수를 거슬러 헤엄치자다 선앙 물결에 내동댕이쳐질지언정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다.  248


나는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가르치는 사림이었지만 어떤 정다에도 가입하지 앟았다. 그 이유는 연구자로서 또 교사로서 진리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275


내가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일단 사실들을 모아서 정리한 다음 너희들의 머리를 써라. 스스로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기회가 올 때마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따라 행동하라."  276


내가 서구 문명에 작별을 고한 첫번째 이유는, 서구 문명의 위선적 태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서구 문명이 경쟁을 으뜸 원리로 삼아 세워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적으로 경쟁은 분열을 일으키는 사회적 힘이며 따라서 결국은 파괴를 가져오는 사회적 힘이다. 한 사회가 지탱해 나가려면 경쟁이 함축하고 있는 대립과 적대보다는 일체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세번째 이뉴는, 세계대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문명의 중심자들이 '남아도는 잉여금을 파괴자들에게 넘겨주고 있으며 군대의 모험가들이 도박을 하는 사이에 가망없는 파산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362

서구 문명에 대한 정서적 습관적 구속으로부터 나를 결정적으로 떼어낸 사건은 히로시마를 날렵리기로 한 해루 트루먼의 결정. 내 예순 두번째 생일인 1945년 8월 6일에 발생했다.  363

나는 한 사라의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무지와 타성과 현실도피에소 불구하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연하고 글을 쓴다. 나는 위기의식이 점차 고조되어 가고 있으며 심상치 않은 위험이 인류 윙 드리워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미 잔인한 결정이 내려졌으며 서구 문명을 증발시키는 절차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인식도 고조되고 있다. 

내 활동은 갈수록 해외원조의 형태를 띠어간다. 내가 잘 모르는 타국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다에 떠있는 배를 둘러싸는 안개처럼 자신들을 포위하는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364-365


나는 근시앉거이고 기회주의적인 문명의 혜택을 거부한다.  366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엇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ㅓ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375

자급농은 경제적 자립이라는 절박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뿐 아니라. 나에게 상당한 자유시간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376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년 1년을 그럭저럭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이 얼마지?" 우리는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하여 필요한 현금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를 벌어들일 수 있을 만큼만 환금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일단 목표액이 채워지면 다음해 예산을 세울 때까지 생산을 중단했다.  378-379

우리 수입의 약 4분의 3은 우리가 직접 생산에 공을 들여 얻은 결과물이엇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4달러 어치의 물품을 소비할 경우,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것은 단 1달러 어치뿐이라는 뜻이다.  380

소박하고 알뜰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드에게 조언해 주기 위해 우리의 경험을 얘기해 보겠다. 

1. 짐은 자기 혼자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챙겨라.

2. 1등석에서 편하게 여행하지 말고 3등석에서 고되게 여행하라. 화려한 미국식 생활을 피하고 현지 숙박시설과 시장을 이용하라.

3. 식당에 출입하지 말라. 요리할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신 과일과 견과와 그 밖의 신선한 자연식품을 먹어라.

4. 술, 담배, 청량음료, 커피 같은 습관성 기호식품을 끊어라.

5. 택시를 피하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라.

6. 여가시간에는 될수록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운동을 하고 많이 걸어라. 그러면 의료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381

우리가 비교적 적은 돈을 들이고고 많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6개 조항 덕분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50%는 과일과 과일주스이고 35%는 채소(주로 잎이 많은 것), 10%는 지방(식물성 기름과 견과류), 5%는 단백질(곡류와 말린 콩, 씨앗류, 견과류 등을 통해 섭취하는 단백질)이었다.  382

우리는 약간의 종자와 유기비료를 사기는 했지만 우리가 밭에 쏟아부은 주요 성분은 고되 노동이었다.  383


이렇게 풍요로운 사회, 이런 산업화 시대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급농을 시도하는가? 어째서 이 좋은 사회가 도시생활과 기계화와 자동화라는 방식으로 제공해 주는 편익을 이용하지 않는가? 그 동안의 발명과 발견 들로 인해 자연과 자연력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에게. 그리고 창조와 변화와 경험을 바라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충동에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의식주의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필수품들을 더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몸과 마음에 훨씬 이로운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을 땅에 대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을 만큼 느릿느릿 움직이는 데 좋다.

즐기며.  393


나는 내 목표와 계획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 에서 최소한의 필요한 노동을 기꺼이 해낼 자세를 가지고 잇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데에 의미가 잇는 것이지, 기계의 버튼을 누르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394


보통의 미국인은 건강이 무엇인지, 혹은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건강이 나빠진 것 같다 싶으면 의사를 찾아가는데, 이 의사라는 살마들은 병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엄청 많지만 건강에 관해서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만큼이나 아는 게 거의 없다. 의사는 '특효약'을 처방하여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부실한 건강에 따르기 마련인 질병을 예방하지는 못한다.  395


우리의 기준이 대다수 사람들의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꼭 다수의 기준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  397


오늘날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식품에는 반드시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보기에 좋다. 둘째, 소비자들이 그 식품에 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대대적인 광고와 선전이 행해진다. 셋째, 물건이 팔릴 때까지 슈퍼마켓 진열대에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충분한 가공과정을 거친다. 건강이라는 관점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401


의도적 공동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존 사회질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이상에 가까운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406

의도적 공동체의 존재는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자 기존 사회보다 많은 사람드에게 좀더 가치있는 삶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의도적 공동체들은 실체로 기존 사화ㅣ질서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자 사회를 개선하려는 창조적인 시도이다.  407


경제가 자급자족에 가까워질수록 의존적 생활로 퇴보할 위험은 적어지고, 기쁨과 발견과 충족감을 맛보게 될 개연성은 커진다.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가깝게 살면 살수록 안정감과 평온, 삶과의 일체감은 커진다. 자연의 리듬을 따를 때 인간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의 리듬은 발육과 성장을 자극하고, 개개인을 어머니 대지에 든든하게 결합시킨다.


'사람에 대한 합리적 접근법'

- 절제와 질서에 바탕을 둔 개인생활, 동물과 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가 '서로 돕고 사는' 태도를 갖는 것, 즉 생명을 존중하고 따라서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지 말 것.

- 절약을 위한 계획경제, 전쟁 없는 세상, 그리고 파괴적인 도구를 대량생산하지 않는 세상, 우리의 몸이나 땅을 독으로 물들이지 않는 유기농법,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제도적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인식할 것.

- 계획가 목표와 방향의 보편성을 획득할 것.  409

이런 개념들 가운데 한두 가지씩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지만, 전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의식이 있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많은 영역에서 양심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우리에게는 공리와도 같다.  410


치열한 싸움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열정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일부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을 피할 수 없다. 한 개인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좀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 또는 하나의 이념과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을 다른 사람, (가족 또는 공동체와 같은) 집단, 또는 특정한 목적 주의 이념과 일치시킴으로써 한 개인의 삶은 폭넓어지고 심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 아니면 저것"식으로 양자택일을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선택하고 진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너머에 있는 그 무엇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각자는 전체의 일부분이다. 이러한 보편적 진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게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다.  5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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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영혼이따뜻했던날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포리스터 카터 (아름드리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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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서점상 연합회가 설정하는 제1회 에비상을 거머쥔 이 책은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이라고 한다.
1976년 처음 출판되었지만 10년 후인 1986년에 복간되면서 부터 판매가 늘어 1991년 17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2위로 기록된 책이다.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된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던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모두 유치원때 배운다'라는 표현이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체로키 인디언이었던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에게서 올바른 교육을 배우고, 살아가야할 지혜를 배워나갔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올바른 도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체로키들은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음으로 자연이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 그들과 동일한 산속의 동식물들의 모습.
꿀벌이나 칠면조등을 통해 자기것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지를 자연학습을 통해 배워나가는 주인공.
기르던 강아지들과의 교류 그리고 그들을 떠나보내며 서로의 영혼을 이해하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알아가는 모습.
필요이상의 표현과 말들이 우리를 얼마나 비열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할아버지의 교훈.

할머니는 주인공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잡아가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할 때도 이 마음을 써야 한다.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줄어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평생 욕심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한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밤톨만한 영혼만을 갖고 태어나게 되어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알만하게 즐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 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또한 와인씨를 통해 배우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와인 씨는 셈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는 교육이란 것은 두 개의 줄기를 가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하셨다. 한 줄기는 기술적인 것으로, 자기 직업에서 앞으로 발전해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런 목적이라면 교육이 최신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자신도 찬성이라고 와인 씨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줄기는 굳건히 붙들고 바꾸지 않을수록 좋다. 와인 씨는 그것을 가치라고 불렀다.
와인 씨는, 정직하고, 절약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만일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기술면에서 아무리 최신의 것들을 익혔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 쓸모도 없다. 사실 이런 가치들을 무시한채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들을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쓴다고 하셨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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