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60'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8.09.26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두레 2006 03860
  2. 2016.09.01 내 방 여행하는 법 -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유유 2016 03860
  3. 2016.04.21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새움 2015 03860
  4. 2016.03.21 칼 같은 글쓰기 -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05 03860
  5. 2016.01.18 학교의 슬픔 - 다니엘 페낙 문학동네 2014 03860
  6. 2016.01.14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 아니 에르노 열림원 1998 03860
  7. 2016.01.11 부끄러움 - 아니 에르노 열림원 2000 03860
  8. 2016.01.07 탐닉 -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04 03860
  9. 2016.01.04 집착 -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05 03860
  10. 2015.11.23 포옹 - 필립 빌랭 문학동네 2001 03860
  11. 2015.11.05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열린책들 2012 03860 2
  12. 2015.11.02 한 여자 - 아니 에르노 열린책들 2012 03860 1
  13. 2014.12.12 자기 앞의 생(生) -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003 03860
  14. 2014.02.12 7년후(7ans apres..) - 기욤 뮈소 밝은세상 2012 03860 1
  15. 2014.02.10 구해줘(Sauve-moi) - 기욤뮈소 밝은세상 2010 03860
  16. 2014.02.08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기욤 뮈소 밝은세상 2008 03860
  17. 2014.02.06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기욤 뮈소 밝은세상 2007 03860
  18. 2014.02.04 사랑하기 때문에 - 기욤 뮈소 밝은세상 2007 03860
  19. 2012.11.08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3 03860
  20. 2011.04.17 종이 여자(La fille de papier) - 기욤 뮈소 밝은세상 2010 03860 2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ㅇ낳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9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 나갈 뿐이었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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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관찰을 통해 나는 인간이 영혼과 동물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일지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에 완전히 포섭되거나 딱 겹쳐지기도 한다. 따라서 둘을 확연히 구분 지으려면 영혼이 동물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예전에 한 선생이 플라톤은 물질을 타자(他者 다를타 사람자)로 지칭했었다는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참으로 어울리는 명칭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명칭을 영혼과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는 동물성에 갖다 쓰기로 한다. 동물성이라는 실체야말로 타자이며, 아주 요상하게 우리 인간을 희롱하기 때문이다.  30


동물성이 영혼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영혼이 동물성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입각해 보면 한쪽은 입법권을, 다른 한쪽은 집행권을 지닌 셈인데, 이 두 권력은 곧잘 충돌한다. 뛰어난 이들은 자신의 동물성을 조련하는 데 가장 신경 쓴다. ..

이 점에 대해서는 예가 필요할 것 같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흥미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 그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기계적으로 글자와 문장을 따라갈 뿐, 이미 책은 안중에도 없을 때가 있다. 무엇을 읽었는지도 모르고 방금 읽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한 채 책장만 넘긴다. 당신의 영혼은 자신의 짝인 동물성에게 책을 읽으라고 명령은 해 놓은 채, 정작 자신은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면 타자는 영혼이 더는 귀 기울이지 않는 책 읽기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31-32


물질에서 벗어나 영혼이 언제든 홀로 여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하고도 유용한 일이다.  37


아, 왜 우리는 근심 걱정과 고통스러운 야망을 타자에게 넘기지 않는 걸까? 가엾은 그대여, 이리 오라. 그대가 지은 감옥의 문을 부숴 버리고 내가 그대를 인도할 천상과 낙원의 저 하늘 위에서 홀로 부와 명예를 좇는, 세상에 던져진 그대의 동물성을 내려다보라. 세상 사람들 속에서 그대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지 보라. 세상 사람들은 예의상 서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각자 홀로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안을 배회하여도 사람들은 그대에게 영혼이 깃들어 있기나 한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42


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친 뒤 벽난로 선반 위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참으로 아늑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긴 여행길에서 어쩔 수 없이 한곳에 머물러야 할 때 이보다 더 유용하고 편한 자세가 있을까.  66


독자 여러분은 시시콜콜하다고 나에게 뭐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행자들이 좀 그렇지 않은가. 몽블랑을 오르거나 쫙 벌어진 엠페도클레스의 무덤으 오를 때면 소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 일행은 몇 명이며, 노새는 몇 마리인지, 챙겨 간 음식의 맛은 어떠한지 그리고 일행들은 얼마나 잘 먹었는지부터 노새가 발을 헛디뎌 비틀거린 얘기에 이르기까지 노트에 꼼꼼히 다 기록할 것이다.  69


진솔한 자세로 이론을 개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쓸 때는 어조가 단정적이 되곤 하는데, 이는 글쓴이가 제가 회하를 옹호할 때 그랬던 것처럼 겉으론 공정한 척하면서 미리 어떤 암묵적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쓴 길은 반박을 낳을 수밖에 없고, 결론은 미심쩍을 수밖에 없지요.  103


나의 하인과 나의 개에게 철학과 인도주의를 배우고 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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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마리가 나를 보러 와서는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듯이,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왜 나랑 결혼을 하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제안한 사람은 그녀였고 나는 그러자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거라고, 그러자 그녀는 결혼은 진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녀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그녀가 말했다. 자기는 단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와 얽힌 또 다른 여자가 프러포즈를 해온다 해도 받아들일 것인지를 알고 싶다고. 나는 "물론"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혼잣말로 자신이 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점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또다시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그녀는 내가 특이하다고, 아마 그 때문에 내가 싫어질 거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덧붙일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팔을 잡고 웃으며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65-66


늙어 간다는 것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69


나 자신이 완전히 텅 빈 느낌이 들었고...  71


나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은 많이든 적게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소원한다.  93


사람이 죽는 이상, 어떻게와 언제냐는 중요하지 않다.  155


때때로 우리는 자기가 확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157


".. 당신도 한번쯤은 다른 삶을 원했었다는 걸" 나는 물론 그랬다고 답했으나, 그것은 부자가 된다든가 헤엄을 매우 빨리 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좀 더 잘생긴 입을 가지게 되기를 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162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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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척점, 더 정확히 말해 정반대의 극(極 다할극)은 자주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과 우리네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때, 우리와 유사한 것보다는 다른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체념한 채 타인의 모습에 비친 자기 자신의 반영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않고,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면서만 살고 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이해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벼랑 끝에서 포기 직전까지 어렵사리 자신의 연구를 밀고 갈 때보다 남들이 벌인 탐구를 관찰할 때가 아니던가. 독서가 우리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이다. 독서는 고통을 주는 굴곡 많은 글쓰기 과정에서 우리를 구해주고, 계속 나아갈 힘을 실어준다.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FYJ)  5-6


AE : 내겐 두 가지 형태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리 계획된 텍스트들이 있고, 여기에는 [밖에서 쓰는 일기]와 [외적인 삶]도 포함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병행하여 오래전부터 행해온 잡다한 형태의 일기 쓰기가 있는데, 1982년 이래로 나는 내면일기와는 별도로 '글쓰기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와 의혹을 담는 일기로, 난 이것을 생략된 문장과 약자로, 이를테면 흘려쓰고 있습니다. 내 머릿속엣 이 두 형태의 글쓰기 방식은 조금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문학과 삶, 총체와 미완 사이의 대립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용과 수동성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31


AE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와 <탐닉>, 이렇게 단 두 권의 내면일기만을 출판했어요. 이 일기들은 모두 십 년 전에 씌어졌고, 실제로 그 기간에 살았던 삶은 이미 각각 <어떤 여자>와 <단순한 열정>이라는 자전적 이야기의 대상이 되었지요. 이 두 가지 상황- 십년이라는 유예기간과 그 기간에 상응하는 책의 존재 -가운데, 후자가 일기를 출판하도록 부추긴 좀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유예기간도 중요하겠죠. 그 세월이 내가 나의 일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50


AE : 내 작업방식은 주로 기억에 근거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기억은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할 요소들을 환기시킵니다.... 나는 '보고' '듣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어요. 그런데 내게 그것은 '다시 보기'이며 '다시 듣기'를 의미합니다.  53


FYJ : 당신은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추구함으로써 상당히 멀리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젠 당신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20세기에 소설 형식이 극한까지 가버린 이 시점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소설이라는 형태의 퇴락을 인정하는지요? 

AE : '소설'과 관련지어, 항상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이상 나의 지평 위에 있지 않습니다. ...

문학 교과서에서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나 중등교사 자격 시험의 문학 시험문제에서는 마치 '소설'이 하나의 본질인양, '예를 들면서' 소설에 관해 논술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 빈번하게 벌어지는 대담에서 '소설'이라는 단어는 점점 더 확장된 의미를 지니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거의 히스테릭한 태도로 '허구'를 옹호하는 자들도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품질인증표라고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지 않습니다.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어요. 강렬한 감동을 주고, 생각이나 꿈 혹은 욕망을 열어주고, 때로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있을 뿐입니다. 루소의 <고백록>,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브르통의 <나자>, 카프카의 <소송>,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 애초에 인증표를 달고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설사 그랬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상실해버린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72-74

AE : 내가 나라는 개인의 암흑지대에 마침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정신분석은 나와는 언제나 무관했습니다. 점처럼 고립된 몇몇 발견들이 내게 뭘 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글쓰기에서 그것들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말이죠. 독자들 가운데, 글을 쓰는 것 특히 자전적 글쓰기를 행하는 것이 정신 분석을 실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는 믿음을 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어떤 허망한 욕심이나 오해인 것 같아요. 자신의 문제로부터 전적으로 혼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열망, 즉 어떤 심리적-상징적 복권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뭐 그런 것 말이죠. 그건 오해예요. 글쓰기가 깊숙이 감춰진 무엇을 다시 찾으러 나서는 것이며 정신분석의 치료과정과 유사한 것이라고 믿는 거니까요.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는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냐 하는 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작업'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내가 어떤 것에서 치유되어야 한다면, 내게 그 치유는 오직 언어에 대한 작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정신분석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데 기여한 내용-그것은 정말 엄청나지요-에 관해서나, 문학에 접근할 때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로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때때로 경찰처럼 구는 구석이 좀 있지요. 무슨 일이 있엉도 자가의 심리적 구성 요소들을 낱낱이 적발해내고야 말리라는 의지를 품고, 텍스트의 고백을 마치 피고인의 진술인 양 몰아가잖아요. 그러고는 이 모든 게 바로 이것 때문이고, 난 이걸 다 알고 있지! 하는 식이에요. 이땐 실망스러워요. ...

이따금 나는 아도르노처럼 생각한답니다. 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정신분석이 개인 실존의 고통스러운 비밀들을 의례적인 진부함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말한 바 있지요.  78-80


AE : 대게 글쓰기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느 순간, 어떤 충동이 일어나 몇 페이지를 쓰도록 나 자신을 부추깁니다. 하지만 난 그 글에 아무런 목적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페이지들이 어떤 특정 텍스트의 도입부로 예정되어 있지는 않죠. 그 다음엔 멈춰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그 조각을 한동안 보류시켜 둡니다. 그러는 사이 계획은 좀 더 선명해지면서, 말하자면 그 조각에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조각은 그 계획 속에서 결정적 요소로 부각되기에 이릅니다. 이런식의 설명이 좀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내 책들이 각각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각 텍스트에 대한 구상(난 이것을 욕망이라고 말하겠어요)속에는 그러니까 각 텍스트에 대한 욕망 속에는 어쨌든 매번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183


FYJ : 글쓰기 작업의 구체적인 정황을 요약해보지요. 당신은 문단과 문장의 삭제와 덧쓰기, 첨가와 제거를 통해 일을 진행합니다. 어쨌든 덧쓰고 지우는 작업이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당신의 모든 텍스트에 적용되는 항구적 필요성에 부응한다면, 그 작업의 성격에 어떤 유형의 관념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첨가합니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작업을 합니까? 당신은 버전마다 '원고지 철'을 바꾸는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작업을 하는것 같은데요...

AE : 내 원고들은 마치 패치워크 같아요. 갈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원고가 씌어진 종이 위에는 단어들 위나 행간 혹은 여백에 각기 다른 색의 사인펜이나 검은 연필로 덧쓴 자국들로 온통 뒤범벅된 몇 개의 문단이 씌어 있어요. 그 문단들의 자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아서, 그것드로가 연관지어 참조해야 할 페이지 번확 표기되어 있지요. 예를 들어 10번 종이에는 10-2, 10-3 혹은 10-4 같은 식으로 종이들이 와서 붙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그 이상의 것을 시도해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포스트잇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잘 떨어지기 때문에 크게 신뢰하는 편은 아닙니다. 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싶거든요. 어느 날은 마음에 들지 않던 것이 그 이튿날에는 다시 좋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은 계획, 즉 계획을 구성하는 데 내가 몰입했을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죠. 한편으로는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언제든 일상적 삶에서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끊임없이 첨가하고 끌어들이는 식이죠. 삭제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단계에서 컴퓨터로 텍스트를 정리할 때는 많은 부분을 삭제합니다. 칠 년 전가지는 타자기를 사용했는데, 그때는 아무래도 정정하거나 수정하는 빈도에 한계가 있었죠. 텍스트가 인쇄되었을 때, 내 원고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종종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왜 지웠는지 스스로 물어본답니다. 그런데 그걸 설명할 수가 없어요. 수사본 연구가들이라면 과연 설명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의심스럽습니다. 텍스트를 매만지는 최종 단계에서, 나는 일종의 필연성에 따라 작업합니다. 하지만 일단 책이 완성되고 출판되면 그 필연성은 상실되고 말지요. 텍스트는 그 총체 속에서 하나의 자율적 생명체처럼 고려되어야 합니다. 텍스트는 내가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나와 한몸이지만, 결국 내 밖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거된 어떤 부분들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것입니다.  190-192


FYJ :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신에게, 프루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체험된 유일한 삶"이 되는 것입니까?

AE : 프루스트는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해명된' 삶. 따라서 실제로 체험된 유일하게 진정한 삶. 그것은 문학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난 "발견되고 해명된 삶"이라는 이 말을 강조하고 싶어요. 내 느낌에 이 말이 핵심인 것 같아요. 혹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어요.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또한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글쓰기가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도래하게 하는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글쓰기에는 공포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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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부티의 쓰레기통


나의 미래는 아주 일찍부터 너무 위태로웠던지라 엄마는 나의 현재에 대해 결코 마음을 놓지 못했다.  13


그러니까 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날마나 학교에서 들볶이다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내 공책에는 선생님들의 꾸지람이 적혀 있었다. 반에서 꼴찌가 아닐 때는 꼴찌 바로 앞이었다.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었다!) 처음엔 계산, 그다음엔 수학에서 꽉 막혔고, 심각한 철자 습득 장애에다, 역사의 연대 암기와 지리의 장소 파악에도 먹통이었고, 외국어 습득 불능에다 (수업은 듣지 않고 숙제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라는 명성이 자자했으며, 음악이나 체육 혹은 그 외의 어떤 과목으로도 벌충하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16


"그러니까 학교에 관한 책이 또하나 나오는 거네? 그런 책은 꽤 많지 않아?"

"학교에 관한 책이 아냐! 모두들 하굑를 다루고 있고, 신구 논쟁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 학교의 프로그램, 학교의 사회적인 역할, 그 궁극적인 목표, 과거의 학교와 오늘의 학교... 그런데 열등생에 관한 책은 없거든!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그리고 그로부터 겪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을 다루는 책..."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  22-23


"요컨대 넌 핑계를 만들어냈던 거야,"

그렇다. 그게 바로 열등생의 속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열등함에 대해 굽이굽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난 한심해, 난 정대 할 수 없어, 그러니 노력해볼 필요도 없어. 이미 다 망했어. 내가 그랬잖아요, 학교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열등생에게 학교는 출입이 금지된 몹시 폐쇄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25


두려움은 분명 학창 시절 내내 나의 가장 큰 문제였고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뒤, 나의 급선무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두려움을 치료하고 방해물을 치워버려 앎이 스며들 기회를 갖게 해주는 일이었다.  30





2. 되다


어머니들 모두가 조금은 창피해하고, 모두가 자기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대체 이애가 뭐가 될까요?" 대부분의 어머니는 미래라는 강박적인 화폭에 현재를 투영해 그려놓은 것을 아이의 미래로 생각한다. 희망 없는 현재의 이미지가 터무니없이 비대하게 투영된 벽을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여기에 모든 어머니의 거대한 공포가 있다.  61


나는 우스운 이야기를 시도해본다.

"신을 웃기는 유일한 방법을 아세요?"

전화 저편의 머뭇거림.

"신에게 당신의 계획을 맗는 겁니다."

다시 말해 놀랄 것 없다는 것, 그 어떤 일도 예상대로 이렁나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미래가 과거가 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유일한 사실이다.

물론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쉽게 아물지 않을 상처에 반창고나 붙여주는 격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전화로는 그렇게 하고 있다.  62-63


어떤 미래도 없다. 

뭔가 되지 못할 아이들.

절망적인 아이들.

초등학생, 다음에는 중학생, 그다음에는 고등학생이 된 나 역시 그렇게 앞날이 없는 삶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것은 바로 공부 못하는 학생이 스스로를 설득하는 최초의 사실이다. 

"이런 성적으로 뭘 기대해?"

"중1이나 마칠 수 있을 것 같니?(중2, 중3, 중4, 고1, 고2는...?)"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 거 같아? 퍼센트로 따져 얼마나 될지 계산 좀 해볼래?"

혹은 정말로 즐거운 비명까지 질러가며 호언장담하던 중학교때 교장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다.

"페나키오니, 네가 중학교를 졸업하겠다고?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다. 알겠니? 절대로!"

그 여자는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69-70


나는 학교생활을 따라가지 못했고 언제나 그런 모습뿐이었다. 물론 시간은 지나갈 것이었고, 물론 성장할 것이었고, 물론 사건들도 일어날 것이었고, 물론 삶도 계속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결과에도 결코 이르지 못할 그런 실존을 횡단할 것이었다. 그것은 확신보다 더한 것이었고, 그게 나였다.

어떤 아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재빨리 설득당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각성시켜줄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실패에 열정을 쏟게 된다. 열정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72


겨울 저녁. 나탈리가 흐느껴 울며 학교 계단을 급히 내려간다.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슬픔...

선생은 생각한다. 이런, 학교의 슬픔이로군.. 

"선생님 ... 흑흑... 흑흑... 선생님... 저는 ... 저는 이해를... 이해를 못하겠어요."

"뭘 이해해? 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양... 양보..."

그리고 갑자기 병마개가 쑥 뽑히듯 단번에 답이 나온다.

"양보와 대립의 종속 접속절요."

침묵.

웃어선 안 된다.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양보와 대립의 종속 접속절? 그것 때문에 그렇게 울고 있는거야?"

안도감. 선생은 재빨리. 아주 진지하게 문제의 그 접속절을 생각한다. 이 아이에게 그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잘 몰라도 그 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한다...

".. 이건 아주 쉬운 거야. 자, 봐. 됐지, 알겠니? 그래, 예문을 하나 만들어봐. 아이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해한 것이다. 자, 이제 좀 괜찮니? 어! 그런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다시금 눈물을 흘리고 크게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제 나이 열두 살하고도 반년이 지났는데, 암것도 한 일이 없어요." ...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탈리의 아버지는 어느 회사 간부였는데 십 년간의 성실한 직장생활 끝에 얼마 전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부직 해고 사태의 첫 사례였다. 때는 8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직이란 말하자면 노동직 문화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의 자기 역학을 의심하지 않았던 모범적이고 세심한(작년에 나는 나탈리의 아버지를 자주 보았다. 그는 소심하고 자신감이 너무 부족한 딸 때문에 근심이 많았다) 젊은 간부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는 결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고는 가족들이 모인 식탁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73-76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살하는 일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이것이, 적어도 모든 면에서 나타나는 우리 교육의 균열이다.  86


들통난 거짓말, 선생님들의 분노, 부모의 슬픔, 비난, 처벌, 아마도 퇴학, 자아로의 복귀, 무기력한 죄의식, 모욕, 우울한 희열, 그들 말이 옳아, 나는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

난 한신한 놈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자신이 한심하다는 확신에 빠져 잇는 청소년은-이게 바로 체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최소한의 사실인데-하나의 멋잇감이다.  94-95


아이의 거짓말에 동조한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은 내 친구 B의 동생에게 일어난 일이다. 당시 B의 동생은 열두세 살쯤이었을 것이다. 그애는 수학 시험이 겁나서 단짝 친구에게 맹장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끔찍한 발작이 일어난 시늉을 하며 쓰러졌다. 학교 지도부는 그애의 말을 믿는 척하며 집으로 돌려보냈는지데. 어쩌면 그애를 치워버리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부모는-그애는 부모에게 다른 거짓말도 했다-별생각 없이 아이를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병원에서는 깜짝 놀라며 당장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핏빛의 기다란 뭔가가 담긴 병을 들고 나타난 외과의사는 순진하고 환한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수술하기를 잘했습니다. 하마터면 복막염이 될 뻔했어요!"

사회란 공유하는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100


가장 좋은 기숙학교는 선생님들도 함께 기숙하는 학교다.  102


열등생이 선생님으로 변신한 것은 무엇에서 기인한 걸까?

덧붙여, 알파벳도 깨치지 못하던 애가 소설가로 변신한 것은?

나는 어떻게 해서 뭔가가 되었을까?  108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를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와 '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111


최고 권력자들이 이미 파산선고를 내렸는데 죽어라 공부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보다시피 나는 궤변론자의 태도 같은 걸 키워가고 있었다. 이것은 선생이 된 내가 열등생 제자들에게서 한눈에 구별해내는 기질이다.

그 뒤에 나의 첫번째 구원자가 나타났다.

국어 선생님. 

중4 때.

당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보았던 분. 즉 명랑하게 자멸해가는 진지한 망상가로 말이다.

틀림없이 그 선생님은 가르쳐준 것은 배우지 않고, 숙제 못한 핑계를 어떻게 둘러댈까 늘 잔머리를 굴리는 나의 적성에 대경 실색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소설 한 편을 쓰라고 명령하고 대신 논술을 면제해주기로 작정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 장(章 글장)씩 써서, 한 학기에 소설 한 편을 끝내야 했다. 주제는 자유지만, 틀린 글자 하나 없는 소설을 내야 했다. 선생님은 "비평의 수준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소설 자체는 까맣게 잊어버렸는데도 그 표현만큼은 기억난다.) 그분은 교직 말년을 우리에게 바친 노교사였다. 더이상 궁핍할 수 없는 파리 북쪽 변두리 중학교에서 당신의 은퇴를 연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 낡아빠진 기품을 지닌 노선생이 내 안의 이야기꾼 기질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내게 철자 습득 장애가 있든 말든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열정적으로 소설을 썼다. 사전(그날 이후 사전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의 도움을 받아가며 조심스레 단어 하나하나를 고치고, 신문에 연재하는 전업 작가처럼 날짜를 지켜가며 매주의 분량을 갖다 냈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주 슬픈 이야기였고, 당시 내가 큰 영향을 받았던 토머스 하디풍의 글이었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들은 오해에서 재난으로, 재난에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운명에 대한 나의 취향을 매혹 했다. 출발선부터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 내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그해 내가 뭔가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학창 시절 처음으로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하나의 지위를 부여했고, 나는 계속 따라가야 할 노선이 있는 개인으로, 지속적으로 견뎌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눈에 학생으로 존재했다. 물론 나의 후원자인 노선생님이 미치도록 고마워쏘, 그가 꽤 거리를 두고 있었음에도 내 비밀스러운 독서를 털어놓을 만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래, 페나키오니, 요즘은 뭘 읽고 있니?"

나에겐 독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게 나를 구원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때의 독서는 요즘처럼 터무니없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시간 낭비이자 학업을 망치는 일로 평판이 난 소설 읽기는 수업 시간에 금지되었다. 책을 몰래 숨어서 읽는 내 취향은 거기서 비롯했다. 소설책을 교과서로 씌워 읽고, 되도록 모든 곳에 책을 숨겨두고 읽고, 야밤에 손전등을 켜고 읽고, 체육 시간을 면제받아 읽고, 혼자서 책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좋았다. 이런 취미를 길러준 곳이 바로 기숙사다. 나만의 세계가 필요했는데, 그게 책들의 세계였다. 집에 있을 때는 무엇보다 식구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관찰했다. 아버지는 파이프를 물고 안락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둥근 램프 아래, 나무랄 데 없는 가르마를 약지로 무심히 쓰다듬으며 읽었다. 베르나르 형은 방에서 다리를 구부린 채 옆으로 길게 누워 오른손으로 머리를 괴고 읽었다... 이런 태도들에는 행복 같은 게 있었다. 따져보면 나를 독서로 밀어붙였던 것은 책 읽는 사람의 이런 자태였다. 처음에는 오로지 그런 자세들을 따라해보려고, 그리고 다른 자세를 개발해보려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나 지속되는 행복 속에 신체적으로 정착했다. 무엇을 읽었나? <미운 오리 새끼>를 나로 여겨 안데르센의 동화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검과 말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동경으로 알렉상드르 뒤마도 읽었다. 그리고 셀마 라겔뢰프의 멋진 <예스타 베를링>, 주교에게 추방당한 그 훌륭한 술주정뱅이 사제는 에세뷔의 다른 기사들과 더불어 내 모험의 지치지 않는 동반자였다. 중3으로 올라갈 때 베르나르 형이 준 <전쟁과 평화>는 맨처음 나타냐와 안드레이 공작의 사랑 이야기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소설은 100페이지쯤으로 줄어든다. 중4 때 두번째로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나폴레옹식의 서시시로 읽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보로디노 전투, 모스크바의 화재, 러시아군의 퇴각(나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거대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수업 시간에 몰래 그렸던 그 작은 인간들을 학살당하게 했다). 이것은 기껏해야 200~300페이지로 압축된다. 고1 때 다시 읽었을 때는 피에르 베주호프의 우정이 눈에 들어왔다(이자는 또다른 미운 오리 새끼이긴 해도 생각보단 많은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3 때 소설의 전체가, 그러니까 러시아와 쿠투조프, 클라우제비츠 같은 인물이, 토지개혁이 그리고 톨스토이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디킨스-올리버 트위스트는 나를 필요로 했다-도 읽고 에밀리 브론테도 읽었다. 브론테의 모럴은 내게 구조를 요청했다. 또한 스티븐슨, 잭 런던,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읽었다. 당연히 <노름꾼>이 있었다(왜 그런지는 알아봐야 하는데, 도스토옙스키는 항상 이 <노름꾼>으로 시작된다). 나의 독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집 서재에서 찾아낸 책들로 이루어졌고, 물론 <탱탱> <스피루> 그리고 당시를 휩쓸었던 <흔적의 표시들> 혹은 <봅 모란> 같은 만화도 읽었다. 내가 학교로 가져가는 책들이 첫째 조건은 학교 독서 프로그램에 없는 것이어야 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누구도 내 어깨 너머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책의 저자와 나는 우리끼리 오롯이 머물렀다.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교양을 쌓아가고 있었다는 것, 그 책들이 내 안에 어떤 욕구를 일깨웠소 그 욕구는 책들이 잊히더라도 살아남을 거라는 걸 나는 몰랐다. 청소년기이 이러한 독서는 세상의 기호들을 향해 사방의 문을 열어놓으며 완수되었고, 그중에서도 네 권의 책이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이유로 내 안에서 밀접한 친족관계를 직조해냈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위스망스의 <거꾸로>, 롤랑 바르트의 <신화지> 그리고 페렉의 <사물들>이 바로 그 책들이다.

난 고급 독자는 아니었다. 플로베르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열다섯 살에 에마 보바리처럼 오로지 감각의 만족을 위해 책을 읽었고, 다행히 그 감각은 지칠 줄 모르고 나타났다. 나는 이러한 독서로부터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어떤 이득도 끌어내지 못했다. 모든 선입관과는 반대로 이처럼 삼키듯 읽은-그리고 아주 빨리 잊힌-수천 페이지의 글은 나의 철자법을 개선해주지 않았고, 철자법은 요즘도 내게 불분명한 채로 남아 언제 어디서든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아니다. 내 철자법의 실수들이 일시적으로나마(하지만 이 일시적인 것이 결정적으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극복되었던 것은 노선생님이 주문한 소설에서였다. 철자법에 신경쓰느라 독서 수준을 낮추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의 요구에 나는 틀린 글자 없는 원고를 갖다드려야만 했다. 요컨대 대단히 천재적인 교수법이었다. 아마도 오로지 나에게만 통했을, 그리고 오로지 그런 상황에서만 통했을 방법이지만, 어쨌든 천재적이다!

나는 이렇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생님을 중4와 고3 사이에 세 분 더 만났다.

한 분은 수학 자체였던 수학 선생님이고, 또 한 분은 역사 구현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놀라운 재능의 역사 선생님,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철학 선생님이다...

네 분의 선생님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구원했다.  112-118


요컨대 우리는 뭔가가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는다. 생긴 대로 된다.  123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뭔가가 된다.

예상대로 되는 일은 드물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뭔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때로 계획이 이루어지고 적성이 실현되고 밀래가 약속을 지키기도 한다.  130


우리는 뭔가가 되어간다. 살아가는 한 모두 뭔가가 되고, 때로는 뭔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이 되어 서로 마주친다.  131





3. 거기 혹은 '구현의 현재'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친다.  158


수업에 완전하게 몰두하는 선생님의 현존은 단번에 감지된다. 아이들은 학기 첫 순간부터 그것을 느끼며, 우리 모두가 그것을 경험했다. 선생님이 막 들어선다. 그는 절대적으로 여기 있다. 그것은 그가 바라보는 방식,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방식, 자리에 앉아 자기 책상을 차지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그는 아이들의 반응을 걱정하며 두리번거리지 않으며,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바로 자기 일에 빨려들어가 그 자리에 현존하고, 아이들 각자의 얼굴을 구별해내며, 학급은 즉시 그의 눈앞에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현존감을 얼마 전 블랑메닐의 어느 학교 교실에서 새롭게 체험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토록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에어니를 제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하는지 물었다.

"절대 아이들보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요. 그게 요령이죠." ...

"아이들과 함께 있거나 숙제를 검토할 때 나는 딴 데 가 있지 않아요."

"내가 다른 곳에 있으면 절대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죠." ...

"아이들 각자는 자기 악기로 소리를 내고 있는 건데, 그걸 거스를 필요가 없어요. 까다로운 일은 우리의 음악가들을 잘 꿰뚫어 보고 조화를 찾아내는 거죠. 좋은 학급이란 발맞춰 행진하는 군대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예요. 만일 그들이 땡땡거리기만 하는 작은 트라이앵글이나 브롱브롱 소리만 나는 갱바르드(말굽자석처럼 생긴 조그만 악기로, 하모니카처럼 입으로 물고 손가락을 튕겨서 소리를 낸다)를 물려받았다면, 적절한 순간에 최선을 다해 내는 그 모든 소리, 그들이 훌륭한 트라이앵글과 나무랄 데 없는 갱바르드가 되는 일, 그래서 각자의 기여가 전체에 부여한 음악의 질에 자랑스러워하는 일이죠. 조화에 대한 감각은 그들 모두를 발전시키고, 조그만 트라이앵글은 마침내 음악을 알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제1바이올린만큼 화려하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똑같은 음악을 체험하는 거지요." ...

문제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제1바이올린 주자만 중시하는 세상을 믿게 한다는 거예요." ...

"어떤 동료들은 자신이 카라얀인 줄 알고 시골의 마을 합창단 지휘를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베를린 필을 꿈꾸죠. 이해가 가는 일이에요..."  159-162


받아쓰기 - 우리의 받아쓰기가 맞춤법에 치중하여 초등 저학년에 한정된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철자와 문법 그리고 구문의 이해력까지 포함하며 성인들의 여가에까지 널리 활용되는 문학적 훈련을 의미한다.  170


나는 언제나 받아쓰기를 언어와의 완전한 만남으로 생각해왔다. 소리나는 대로의 언어, 이야기하는 대로의 언어, 사유하는 대로의 언어, 글로 쓰고 만드는 대로의 언어, 세심한 교정 훈련을 통해 분명해지는 의미. 왜냐하면 받아쓰기의 교정에는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에, 문법 정신에, 말들의 풍부함에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 말고 다른 것은 없기 때문이다.  172


아이들이 스스로를 형편없다고 고백한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향으로, 즉석에서 생각해낸 돌발 받아쓰기였다.

니콜라는 철자법에서 항상 빵점일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 유일한 이유는 한 번도 다른 점수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ㅍ레데리크, 사미, 베로니크도 같은 생각입니다. 맨 처음 받아쓰기 때부터 그들은 쫓아다니던 빵점이 그들을 뒤따라와 삼켜버린 것입니다. 그애들 말로는 저마다 빵점 속에 살고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자기들 주머니에 열쇠가 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도안, 아이들의 호기심을 흥겹게 일깨우려는 생각으로 각자에게 역할을 나눠주면서 문법적으로 설명할 것들을 고려했다. 동사 변화와 목적어의 위치, 보어의 위치, 보어 인칭댐ㅇ사의 위치, 주격 관계대명사 등등을.

받아쓰기가 끝나자 우리는 즉각 교정을 시작했다.

"좋아, 니콜라. 맨 첫 문장을 읽어봐라."

"'니콜라는 철자법에서 항상 빵점일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게 첫 문장이야? 거기서 끝나? 확실해?"

"....."

"주의해서 읽어봐."

"아! 아니에요. '그 유일한 이유는 한 번도 다른 점수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맨 처음 나오는 활용 동사는 뭐지?"

"'주장하는데'?"

"그래. 원형은?"

"'주장하다'요."

"몇 군 동사지?"

"어..."

"3군 동사지. 그건 좀 있다가 설명해주마. 시제는 뭐지?"

"형재형이요."

"주어는?"

"저요. 그러니까 '니콜라'요."

"인칭은?"

"3인칭 단수요."

"그래. '주장하다' 동사의 현재형 3인칭 단수지. 동사의 어미를 주의해라. 자, 이제 베로니크 차례다. 이 문장의 두번째 동사는 뭐지?"

"'못하다'요!"

"'못하다'? 확실해? 다시 읽어봐!"

"..."

"..."

"아, 아니에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받아보지'예요. 그러니까 '받다' 동사요."

"어떤 시제지?"

교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174-176


체계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암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는 작품의 진수를 이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187


"저는 앵무새가 아니에요!"

그들은 마지막까지 항의했고, 그건 정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그런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모들, 아! 그들은 어찌나 변했는지 부모들 스스로 때로 이렇게 말한다. "페나키오니 선생님, 아이들에게 텍스트를 외우게 한다면서요? 세사에, 제 아들은 이제 어린애가 아니랍니다!" 어머님, 언어에 잇어서 만큼은 아드님은 영원히 어린애일 것이고, 어머님 자신도 아주 어린 아기이며, 저는 우스꽝스러운 어린애입니다. 우리 모두가 문학의 구어적이 ㄴ원천이 넘쳐흐르는 거대한 강에 실려가는 잔챙이 물고 기인 한은 말입니다. 아드님은 언어 안에서 헤엄치는 걸 좋아하게 될 테고, 언어에 실려 목을 축이고 젖을 취하며,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말입니다. 아이를 믿으세요. 아이는 자기 입속의 말맛, 머릿속 생각의 빛나는 불꽃을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대단한 기억력, 그 무한한 유연성, 그 울림통,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노래하게 하고 가장 분명한 생각을 울려퍼지게 하는 놀라운 음량을 발견하게 도리 것입니다. 언젠가 기억 속의 그 끝없는 동굴을 발견할 때는 언어 속에 잠겨 헤엄치며 깊숙이 잠수해 텍스트들을 건져올리는 일을 좋아할 것입니다. 평생 그것들이 그곳에서 자기 존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즉흥적으로 그것들을 외울 수도 있고, 말들의 묘미를 위해 입 밖으로 소리내볼 수도 있다는 걸 좋아하게 될 겁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다시 입말이 된 문학의 전통을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공유하기 위해서든 유혹의 유희를 위해서든 잘난 척하기 위해서든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는문자 이전의 시간, 생각의 존속이 오직 우리의 목소리에만 의존하던 그 시간과 다시 연결될 겁니다. 어머님은 그것을 퇴행이라고 말씀하기지만, 저는 재회라고 말하겟습니다! 앎이란 무엇보다 육체적인 것입니다. 앎을 포착하는 것은 우리의 귀와 눈이고, 그것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입입니다. 물론 앎은 책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지만, 책은 우리를 벗어납니다. 생각이란 소란스러우며, 읽고자 하는 의욕은 말하려는 욕구의 유산입니다.  189-190


나는 아이들을 텍스트 속에 방치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그 속에 빠져든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의 텍스트 분석을 따라가면서, 가장 어려운 글을 함께 배우기도 했다... 아이들은 읽은 내용을 이해하게 되자 기억의 능력을 찾아냈고, ...아이들은 나열된 단어를 암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단지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언어의 지성, 즉 타자의 언어, 타자의 사유 안에서 소리를 낸 것이다. 단순히 <에밀>을 암기한 것이 아니라 루소의 추론을 복원한 것이다.  196


지식을 가지고 유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희란 노력의 숨고르기이고, 심장의 또다른 박동이며, 학습에 심각한 해를 끼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교과를 가지고 노는 일은 그것을 제어하는 훈련이 됩니다.  200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엄선해서 정원을 뽑은 한 학교에서 보낸 이 년을 제외하면, 내가 맡은 학생들 대둡분이 옛날의 나처럼 학교생활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었다. 가장 심한 상태에 이른 아이들은 그맘때의 나와 거의 같은 증상을 보였다. 자신감 상실, 모든 노력의 포기, 집중 불가, 산만, 과대망상, 불량배 패거리 조직. 가끔은 술도 마시고 마약도 했는데, 자기들 말로는 약한 거라고 했지만 아침에 보면 눈에 축축이 젖어 있곤 했다.  205


노력이라는 말의 개념을 다시 가르쳐주고, 결과적으로 고독과 침묵의 맛을 되찾아주고, 무엇보다 시간을, 즉 권태를 제어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때로는 아이들을 지속되는 시간 속에 앉혀 놓기 위해 권태를 연습하라고 충고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놀리도 말고, 먹지도 말고, 대화도 하지 말고, 공부도 하지 말고, 요컨대 진짜로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 이십 분간 권태 연습을 하는 거다. 공부 시작 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음악 듣는 것도 안 돼요."

"그거야말로 안 돼."

"이십 분이요?"

"그래, 이십 분. 시계를 손에 쥐고. 오후 5시 20분부터 5시 40분까지. 곧장 집으로 돌아가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말고, 도중에 딴 데로 새지도 말고, 게임기도 무시하고, 친구들도 못 본 체하고, 너희들 방으로 곧장 들어가 침대 옆 구석에 앉아 책가방도 열지 말고, 워크맨도 끼지 말고 게임기도 들여다보지 말고, 허공에 눈을 박고 이십 분을 기다려봐."

"뭐하러 그래요?"

"어떻게 되나 보게. 흘러가는 시간에 집중하고, 일 분도 놓치지 말고 어땠는지 내일 얘기하는 거야."

"우리가 했는지 어떻게 검사하실 거죠?"

"나야 할 수 없지."

"그리고 이십 분이 지난 다음에는요?"

"허기진 사람처럼 각자의 일에 달려드는 거야."  206-207


세상 누구도 무능함의 사과를 영원히 깨물고 있진 않는다!

가르친다는 일은 아마도 그런 것일 게다.  208


가르치든 교사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학생들이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세 가지다. 정답과 오답과 터무니없는 답.  213


터무니없는 대답이 오답과 다른 점은 어떤 추론의 시도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터무니없는 대답은 반사적인 행위일 뿐이다.

던져진 질문에 대답한 게 아니라 자기한테 질문이 던져졌다는 사실에 대답한 것이다.  215


선생님이 던진 질문을 겨우 이해만 할 뿐이다. 그걸 고백할 수 있나? 침묵을 선택할까? 아니다. 차라리 아무 대답이나 하는 게 낫다. 가능하면 천진난만하게. 제가 엉뚱하게 빗나갔나요, 선생님?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저 운을 한번 걸어봤고, 그게 실패한 것뿐이다. 저한테 빵점을 주시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터무니없는 대답은 무지에 대한 외교적인 고백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어떤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전형적인 반항 행위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선생님이 나를 귀찮게 굴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해. 선생님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까?

이 모든 경우 이런 대답에 점수를 주는 것-일테면 답안지를 교정하면서-은 아무 대답에나 점수를 주기로 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자체가 터무니없는 교육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된다.  215-216





4.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사실 가족과 선생님들이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가장 흔히 하는 비난 중 하나가 바로 그 불가피한 지적인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다. 직접적인 비난이든("핑계 대지 마.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수많은 설명에 뒤이은 분노든("세상에, 이럴 수는 없어.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제삼자에게 건네진 정보, 즉 혐의자가 부모의 방문 앞에서 듣고 놀라게 될 말이든("분명 그 녀석이 일부러 그러는 거야!") 간에 말이다.  233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어쨌거나 이 문장의 주인공은 일부러라는 부사다. 문법을 무시하고 그 부사를 대명사 너에 직접 연결하면, '너 일부러!'가 된다. 거야는 부차적이고 그러는은 완전히 무색무취다. 중요한 것, 즉 비난받는 사람의 귀에 울려대는 말은 누가 뭐래도 너 일부러라는 말이고, 이것은 꼿꼿이 세워진 검지를 떠오르게 한다.

죄인은 바로 너야.

유일한 죄인,

그것은 고의로 그런 죄인이지!

이것이 메시지다. 

어른들의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아이의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라는 말과 쌍을 이룬다.

격렬하지만 별 기대 없이 맞받아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는 거의 자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대꾸를 끌어들인다.

"그러길 바란다!"

"그나마 다행이네!"

"설상가상이군!"

이 반사적인 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세상의 모든 어른은 적어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반격이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에서 일부러는 그 위력을 조금 잃고, 그런은 어떤 힘도 얻어내지 못한 채 일종의 보조 역할로 남고, 그거는 여전히 벼로 중요하지 않다. 죄지은 자가 여기서 우리 귀에 울려주려고 애쓰는 말은 아니에요라는 부정어에 연결된 대명사 나다.

너 일부러라는 어른의 말에 아이의 나 아니에요가 대응하는 것이다. 

부사도, 목적어도 없이 나만 있고, 그 안에서 아니다에 들러붙은 이 나는, 이 경우, 나는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니, 분명코 넌 일부러 그랬어!"

"아니, 난 일부러 그러지 않았어요!"

"너 일부러!"

"나 아니에요!"

귀머거리들의 대화, 문제를 회피하고 파국을 연장할 필요. 우리는 해결책도 환상도 없이, 한쪽은 복종하지 않는다고, 다른 쪽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확신하고는 헤어져버린다.

여기서는 문법이 여전히 유용해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이 불화의 영역에 버려진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말, 즉 우리 대화의 모든 끈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던 그거라는 말에 관심을 갖기로 동의한다면 말이다.

자, 예전의 문법 연습을 조금 해보자. 내가 '개량'반 아이들과 했던 것처럼, 그냥 한번 보자는 거다.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원어는 Tu le fais expres)'라는 표현에서 그거(le)가 어떤 품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저요, 저요! 관사예요. 선생님!"

"관사? 어째서 관사지?"

"그거를 표현하는 le, la, les가 관사잖아요! 정관사요!"

의기양양한 어조. 뭔가 안다는 것을 선생에게 보여주었다는 표정... un, une, des는 부정관사이고, le, la, les는 정관사, 자, 봐요, 맞잖아요!

"그래? 정관사라고? 그러면 그 관사가 한정하는 명사는 도대체 어디 있지?"

"......"

찾아보지만, 명사는 없다. 난처함.

관사가 아니다. 

그럼 이 그거(le)는 뭔가?

"......"

"......"

"그건 대명사예요, 선생님!"

"브라보! 어떤 종류의 대명사지?"

"인칭대명사요!"

"그래?"

"보어대명사요!"

"그래. 아주 잘했다! 바로 그거다."

이제 교실을 떠나 우리 얘기로 다시 돌아와 어른들 사이에서 이 보어대명사를 분석해보자. 신중하게, 이 보어대명사들은 위험한 말이고, 분명한 의미 아래 깊이 숨어 있는 반(反 되돌릴반)인칭적인 폭약이라 뇌관을 잘 제거하지 않으면 여러분 얼굴로 폭발해버린다. 예를 들어 이 그거(le)..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라는 비난의 말을 하면서 그때의 그거라는 말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표현하는지 우리는 몇 번이나 자문해보았던가? 일부러 뭘 그런다는 것일까? 가장 최근의 바보짓? 아니다. 이 비난을 던졌을 때의 우리 어조(어조 또한 있기 때문이다!)는 그 죄인이 언제나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과, 매번 일부러 그러는데 최근의 바보짓은 그런 고집의 확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암시한다. 그렇다면 일부러 뭘 그런다는 것일까?

복종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않는다?

반항한다?

몹시 화가 나게 한다?

선생들을 화나게 한다?

부모들을 절망시킨다?

최악의 결점에 굴복한다?

현재를 망쳐 미래를 침몰시킨다?

세상을 조롱한다?

어, 그런 거야? 세상을 조롱하는 거야? 우리를 선동하는 거야?

그래, 말하자면 이 모든 거라고 하자.

그러면 부사의 문제가 떠오른다. 왜 일부러인가? 무슨 목적으로? 무슨 이유로? 그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뭐하러 일부러 그러는가?

순간을 즐기려고? 단지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하지만 불가피한 다음 순간, 즉 그가 나와 함께 보내는 다음의 십오 분은 내가 야단을 치기 때문에 아주 고약한 시간이다! 그는 야단맞는 일에 무심한 채로 게으름의 상태를 평온히 살고 싶은 걸까? 쾌락주의 같은 것? 하지만 그는 무위도식의 행복이 경멸적인 시선의 대가, 자기혐오를 낳는 결정적인 지탄의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러는가?

다른 열등생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열중하는 게 배신이라서? 젊은이가 노인에게 반항하듯, 일부러 선한 것에 대항하며 악을 즐기는 걸까? 자기 나름의 사회화 방식일까?

아무려나. 어쨌든 그것은 모더니티에 관한 가장 인기 있는 명제다. 무능한 이들의 소집단화 현상.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너나없이 불량배가 우글거리는 거대한 저지대로 도피하는 것. 이런 설명은 사회학적인 진실에 어느 정도 근거한다는 편리한 점이 있으며, 그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어떤 의구심도 없다. 하지만 이 설명은 무리의 현상이건 아니건 간에 언제나 독자적인 그 아이라는 개인을 몰아낸다. 아이는 이러저러한 순간 혼자 있게 되며, 자신의 실패를 홀로 마주하고, 자신의 미래를 홀로 마주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도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한다. 이제 아이를 살펴보자. 잘 바라보자. 그 아이가 행복할 거라는 데 단돈 한푼이라도 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이러한 설명 중 어느 것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모든 설명이 다시간 그럴듯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문법 규칙 같은 것은 접어두고, 그 대명사가 문장 외부의 어떤 대상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예컨대 우리 자신으... 우리 자신의 눈에 비친 우리 이미지의 하강. 우리의 이미지 또한 바람직한 거울을 많이 필요로 한다.

무능하고 초조한 어른, 이해할 수 없는 거절의 희생자인 어른의 이미지를 타인-여기서는 한심한 학생-이 나에게 되돌려 준다고 비난하는 듯한 그것. 그렇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주입시키려는 원칙들이 건전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흩뿌려준 앎이 정당하다는 것도! 

그 아이의 고독에 어른인 나 자신의 고독이 대답한다.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리고 그것이 반 전체의 문제가 될 때, 서른 명의 학생이 일부러 그러기 시작할 때, 교사인 나는 문화적 린치의 대사이 되고 있음을 확실히 체감한다. 그리고 그 대명사가 한 세대 전체-"우리 때는 그런 건 상상할 수도 없었어!"-에 영향을 미친다면, 연이은 세대들이 일부러 그런다면, 그때 우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의 마지막 대표들로, 젊은이들(그 시절의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전(前 앞전) 시대의 생존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노년의 삶에서 외로움을 절감한다. 물론 여전히 명석하고, 아주 세심하고, 얼마나 유능한데! 요컨대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젊었을 때는 문명화된 세대의 얼마 안 되는 증인이었던 우리가 생각은 여전히 제대로 하고 있는데도 현실로부터 어쩔 수 없이 소외된 것처럼.

소외된...

소외감은 단지 순환하는 수많은 원 밖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들, 즉 힘 있는 다수인 우리 역시 위협한다. 우리를 둘러싼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엉뚱한 분위기가 시류를 타는 순간, 소외감은 우리 역시 위협한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들을 지목하도록 밀어붙인다.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고작 대명사 하나가 그토록 엄청난 고독을 말하다니!  234-241





6. 사랑한다는 말이 뜻하는 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잊게 하는 데는 한 분-단 한반!-의 선생님이면 충분하다. 

어쨌든 그것이 내가발 선생님네 대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다. 

그분은 내가 고2였을 때의 수학 선생님이다. 몸짓의 관점에서 보자면 키팅 선생과 정반대였다. 영화적인 구석이라곤 거의 없는 선생님이었으니까. 타원형 얼굴에 날카로운 목소리, 그리고 시선을 잡아끄는 특징이 전혀 없었다. 당신 책상에 앉아 우리를 기다렸고 다정하게 인사하고는 첫마디부터 우리를 수학에 들어서게 했다. 그렇게 우리를 잡아둔 시간을 무엇으로 메웠느냐고? 무엇보다 발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이자 그분이 자로잡혀 있는 듯 보였던 수학으로 메워졌다. 수학은 묘하게도 그분을 활기차고 차분하고 선량하게 만들었다. 지식 자체에서 탄생한 그 이상한 선량함, 자신의 정신을 매혹했던 '과목'을 우리와 고유하고 싶다는 그 자연스러운 욕망. 그분은 그 과목이 우리에게 혐오스러울 수 있다거나 단지 낯설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발 선생님은 자신의 과목과 제자들로 빚어진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수학의 요람에 사로잡힌 듯한 무언가가, 믿을 수 없는 순수함 같은 게 있었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스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또한 그분을 놀려대고 싶은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만큼 가르침에 대한 그의 행복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순한 청중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이 지부티의 쓰레기통 출신이었던 우리는 전혀 흥미로운 학생들이 아니었다. 나만 해도 야밤의 싸움질, 애정과는 거리가 먼 내면의 원한 청산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발 선생님의 문턱을 넘어서면 우리는 마치 수학에 몰입하여 성스러워진 듯했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테마티코스('수학'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어느 날, 우리 중 가장 형편없는 아이드이 자기들 낙제 점수를 자랑삼아 떠벌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미소 띤 얼굴로 자신은 '공(空)집합'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집합에 대해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우리의 단순한 대답을 아주 귀한 원석처럼 여겼는데, 이런 일이 우리를 아주 즐겁게 했다. 그러더니 칠판에 12라는 숫자를 쓰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영악한 아이들이 대답을 시도했다.

"손가락 열두 개요!"

"모세의 12계요!"

하지만 순진무구한 그의 미소는 정말이지 우리의 기를 꺾었다. 

"너희가 바칼로레아에서 받아야 하는 최소 점수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너희가 겁을 먹지 않는다면."

그러고는

"이런 얘기는 다시 하지 않으마. 우리가 여기서 몰두해야 할것은 바칼로레아가 아니라 수학이니까.

정말로 그분은 다시는 바칼로레아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한 해동안 우리를 무지의 심연에서 조금씩 끌어올리는 일에 주력했고, 그런 우리를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즐거워했다. 우리 자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그분은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늘 경이로워했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거든! 봐라, 페나키오니, 너는 네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니?"

물론 이러한 산파술만으로 우리 모두가 수학의 귀재가 되지는 못했지만, 발 선생님은 우리를 너무도 깊던 우물에서 그 우룸의 가장자리까지, 즉 바칼로레아의 평균 점수까지 끌어올려주었다. 

다른 많은 선생님들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다는 우리의 그 비참한 앞날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암시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318-321


그분은 위대한 수학자였을까? 그리고 이듬해에 만난 지(Gi) 선생님은 대단한 역사가였을까? 재수 때 나를 가르친 S선생님은 유례없는 철학자였나? 그러리라 추측하지만 솔직히 나는 모른다. 단지 이 세 선생님이 자기 과목을 전해주려는 열정에 빠져 있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선생님들은 그런 열정으로 무장하고서 낙담의 구렁텅이에 있는 나를 찾아왔고, 일단 내 두 발을 자신들의 수업에 굳건히 딛게 하고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그들의 수업은 내 인생의 전(前)단계가 되었다. 그분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나에게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분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못하는 아이들이나 공평하게 대했고, 단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해하려는 욕망을 되살려줄줄 알았던 것뿐이다. 그분들은 내 노력을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해주었고, 우리의 진전을 기뻐했으며, 우리의 느림에 조바심내지 않았고, 우리의 실패를 결코 개인적인 모욕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며, 가르치는 일의 특성과 일관성과 관대함에 근거한 더없이 엄격한 까다로움을 우리와 함께하는 가운데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하면 달라도 너무 다른 선생님들이었다. 발 선생님은 굉장히 차분하고 잘 웃는 상이라 수학 부처님 같았고, 지 선생님은 반대로 회오리바람처럼, 태풍처럼 게으름의 외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 자신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어갔다. 회의적이고 날카로운(뾰족 코, 뾰족 모자, 뽈롭 배) 철학자인 S 선생님은 잔잔한 얼굴의 통찰력으로 저녁마다 나를소란스러운 질문 속에 남겨두었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 안달했다. 나는 장황한 논술문을 제출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선생님은 교정자의 편의를 위해 좀더 간결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넌지시 덧붙였다.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수학을 해보면 어떨까, 페나키오니? 자,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그들의 과목 안에서-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또하나, 그분들에게는 하나의 스타일이 있었던 듯하다. 자신의 과목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예술가였다. 수업은 물론 소통 행위였지만, 그것은 거의 자발적인 창조로 통할 만큼 숙달된 지식의 소통이었다. 어찌나 편안하게 수업을 했던지 우리는 매시간의 수업 자체를 하나의 사건처럼 기억할 수 있었다. 지 선생님은 역사를 부활시켰고, 발 선생님은 수학을 재발견했으며, 소크라테스는 S선생님의 입을 통해 표현되었다! 수학공식, 평화조약, 철학개념 같은 것들이 마치 바로 그날 만들어진 것처럼 기념비적인 수업을 해주었다. 그분들은 가르치면서 사건을 창조했던 것이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력은 거기서 멈추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영향력은 그랬다. 교과목을 벗어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주려 하지 않았다. 부성(父性) 이미지의 부재로 고심하는 청소년에게 유효한 영향력을 끼치는 걸 영광으로 삼는 그런 선생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구조하는 스승이라는 의식만 가졌던 걸까? 우리는 그저 수학과 역사와 철학 과목에서 그들의 제자였고, 그게 다였다. 물론 우리는 폐쇄적인 클럽의 회원들처럼 그들의 제자라는 사실에서 약간은 속물적인 자만심을 끌어내긴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사십오 년 뒤, 그들 덕에 선생이 된 제자 하나가 동상을 세워줄 정도로 후계자를 자처하려 든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보다 먼저 놀라워할 것이다! 그분들은 블랑메닐의 첼로 연주자처럼,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답안지를 교정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는 것 말고는 우리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는 확실히 다른 관심사, 열린 호기심 같은 게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힘을 키워냈을 것이고, 이것은 무엇보다 교실 안에서의 그분들의 밀도 있는 존재감을 설명해주었다.(특히 지 선생님은 내가 보기에 세상사와 도서관들을 탐식한 것 같았다.) 이 선생님들이 우리와 공유했던 것은 단지 앎만이 아니라, 앎에 대한 욕망 자체였다! 그리고 나에게 나누어준 것은 그 앎을 전달하고픈 의욕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뱃속의 허기를 느끼며 그들의 수업에 들어가곤 했다. 우리가 그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 관심(요즘 젊은이들 말로 하자면 존중)을 받았고, 그 관심은 우리의 숙제에 써놓은 교정 문구들, 우리들 각자에게 일일이 건네주었던 그 코멘트에도 나타나 있었다. 그 분야의 본보기는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서 역사를 담당하던 봄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은 우리가 제출하는 논술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백지로 내게 해 각자의 글에 대한 자세한 교정 내용을-붉은색으로 빽빽하게-타이핑해 돌려주었다.

학창 시절 막바지에 만났던 이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일관성없는 공공의 군집으로 축소시키고 '그런 학급'을 극히 열등하다고 말하던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내 생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322-326


오늘날 지구상에는 다섯 종류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제 나라안에서 고객이 된 아이, 다른 하늘 아래서 생산자가 된 아이, 다른 곳에서 군인이 된 아이, 매춘부가 된 아이, 그리고 지하철 관고판의 죽어가는 아이. 굶주리고 체념한 그 아이의 모습이 정기적으로 우리의 권태로운 시선에 걸려든다.

다섯 모두 아이들이다.

다섯 모두 도구화된 아이들.  348

고객이 된 아이들 중에는 부모의 수단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돈을 받아 물건을 사거나 어떻게든 돈을 마련햇 사거나. 이 두 경우에 쓰이는 돈이 개인적인 노동의 산물인 경우는 드물 테니 어린 구매자는 대가 없이 소유권을 얻는 것이다. 아이 고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수많은 소비에서 부모나 선생과 동일한 영역(의복, 음식, 통신기. 음악, 전자기기, 교통수단, 여가...)을 가진 아이는 아무 어려움 없이 사적인 소유권을 얻는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자신의 교양과 교육을 담당한 어른들과 똑같은 경제적 역할을 하게 된다. 어른들처럼 시장의 거대한 한 부분을 구성하고, 어른들처럼 외화를 유통시킨다(그 외화가 아이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의 욕망은 부모의 욕망처럼 기계를 계속 돌리기 위해 늘 자극받고 새러워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이는 완전한 권리를 가진 중요한 인물이다. 어른들처럼. 

자율적인 소비자.

아이의 최초 욕망에서부터.

그 만족감은 아이가 받는 사랑의 측정치로 간주된다. 

어른들이 막아보려 한들 별수없다. 시장경제사회라는 게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너무도 바라던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의 탄생은 부모에게 끝없는 사랑의 빚 구덩이를 파게 한다)은 아이의 욕망을 사랑하는 일이며, 그 욕망은 대단히 중대한 욕구로 재빨리 표현된다. 사랑의 욕구와 물건에 대한 욕망이 거의 마찬가지인 까닭은 사랑의 징표가 물건의 구매로 통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욕망이란...  349-350


각각의 시대는 가족간의 사랑에 자신의 언어를 강요한다. 우리 시대의 언어는 사물들의 언어를 규정한다.  352


"너희 선생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너희에게 결핍된 건 무지한 상태에 대한 강의야! 모든 시험을 통화하고 온갖 지식의 경연대회를 통과했을 때, 그때 너희가 갖춰야 할 최초의 자질은 너희는 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내는 능력이어야 해!.."  361


요컨대 가르치겠다고 나선 자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가져야만 해. 우리를 무지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최소한의 기회라도 얻으려면 무지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느껴야 하거든!"  362-363


"감정이입 하지 마! 당신들의 감정이입 따위 관심 없거든! 당신들의 그 감정이입이 우리를 침몰시켜! 누구도 당신들에게 우리 입장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 않거든.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는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것뿐이야, 이해할 수 있겠어? 당신들의 모든 지식에다 무지에 대한 직관을 보태달라고, 그리고 열등생을 건져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게 당신들 일이야!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가르쳐주면 공부 못하는 학생도 스스로 헤쳐나갈거라고! 당신들한테 요구하는 건 그게 다야!"  364


"감정이입을 치워버리면, '그것'은 어떻게 치유하지?"

여기서 그는 엄청 주저한다.

다그쳐야 한다.

"말해봐,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어도 모든 걸 다 안다며? '그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고서도 가르치는 수간이 뭐야? 방법이 잇기는 한 거야?"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건 방법들뿐이지! 당신들은 언제나 방법들 속으로 숨느라 시간을 보내잖아. 그 방법들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마음속 깊이 잘 알면서 말이야. 뭔가가 빠져 있어."

"뭐가 빠져 있지?"

"말 못해."

"왜?"

"엄청난 말이거든."

"'감정 이입'보다 더해?"

"비교도 안 되지. 네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아니 대학이나 그 비슷한 곳에서는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야."

"뭔데? 해봐."

"아니, 정말이지 못하겠어..."

"자, 어서!"

"난 못한다니까! 교육을 말하면서 이 말을 내뱉었다간 넌 린치당할 거야."

"......"

"......"

"......"

"사랑."  366-367


Posted by WN1
,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작가의 말


나는 세르지에 있는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가기로 결심했다.  9


나는 어머니가 아직 우리 집에 머물렀던 바로 그 기간 동안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머니의 여러 가지 행동들과 어머니가 한 말들을, 날짜도 쓰지 않은 채 종이 조각들 위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처럼 피폐되어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제발 미친 짓 좀 그만 하세요!"라며 고함지르는 꿈을 꾸었다. 그후로 나는 퐁투아즈 병원에서 어머니를 문병하고 돌아올 때면 점점 더 절박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말들과 모습을 어김없이 적어야만 했다.  10-11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그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12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13



1984년


1월


어머니는 더러워진 팬티를 베개 밑에 감추어둔다. 오늘밤 나는 예전에 어머니가 감추어두곤 했던 피투성이의 팬티들을 생각해보았다. 어머니는 세탁하는 날까지 창고 속에 넣어두는 더러운 속옷 더미 속에 그 팬티들을 깊숙이 파묻어두곤 했다. 그때 내 나이는 대력 일곱 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황홀에 겨워 피 묻은 팬티들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의 팬티는 똥투성이인 것이다.  18-19


나는 어머니가 전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19


토요일이다. 어머니는 커피를 토해내고는 기진맥진하여 꼼짝 않고 누워 있다. 한층 더 작아진 눈 주위가 붉게 가라 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려고 어머니의 옷을 벗겨보니 아직까지도 살결이 희고 부드러웠다. 옷을 갈아입힌 후 나는 울었다. 예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다름아닌 내 몸을 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20-21


2월 25일 월요일

우리가 응급실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들것에 실려 누워 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오줌을 누었다...우리가 진찰실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진찰대 위에 몸을 길게 쭉 펴고 누워 계셨다. 인턴이 복부까지 어머니의 잠옷을 걷어올리자 넓적다니, 음모가 없는 맨송맨송한 음부, 그리고 몇 군데 파열된 피부의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대번에 내가 그처럼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죽음 암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고양이는 죽기 전에 내 베개 위에다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20년전 낵가 유산했을 때 쏟았던 피와 분비물들도 생각났다.  21


3월 28일 화요일

쭈글쭈글 흉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두 손. 관절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집게 손가락은 새의 발톱과 흡사하다. 어머니는 손가락을 깍지낀 채 비비적거렸다. 난 어머니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4


4월 14일 토요일

어머니는 내가 가져온 딸기 파이를 먹고 있다. 크림 한가운데 들어 있는 과일을 파먹으면서 "여기서는 나를 소홀히 대접해. 검둥이처럼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잘 주질 않아" 하고 불평했다. 가난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어머니의 강박관념을 나는 잊고 있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독일 포로 수용소 부헨발트의 유령처럼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떤 여자가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릅뜬 채 아주 똑바른 자세로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잠옷을 들추자 기저귀 찬 팬티가 보였는데 음부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다면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한 이곳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인 것이다.  26


4월 부활절 일요일

어머니의 옆사람은 한 손을 팬티 속에 집어넣은 채 자고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모습이었다.  27


4월 29일 일요일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제장신이 들자, "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라고 말한 후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28


5월 13일 일요일

이곳 우스(발두아즈 내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에 사설 양로원이 있다)는 퐁투아즈보다 환경 조건이 여러모로 열악하다. 간병인이 내게 "당신 어머니가 오줌을 누었어요. 방안 여기 저기에 오줌을 누고 다니니 어쩜 좋아요, 그래"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오늘 내 안에서 비집고 올라왔던 사디즘적인 욕구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 다른 소녀들에게 느꼈던 가학적 욕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꾸 나를 공포에 떨게 하므로 보상심리에서 내가 가학적 욕구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30


6월 15일 금요일

내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찌푸린 표정으로 승강이 옆에 앉아 있었는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어머니는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당신의 병실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는 마카롱 과자를 주자 먹지는 않고 부스러뜨리기만 했다. 내게 이런 식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울고만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 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35


6월 23일 토요일

1층 로비에는 파자마를 입은 한 노인이 항상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전화를 걸려고 무척 애를 썼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종이 위에 적힌 전화번호를 내게 보여주길래 그대로 다이얼을 돌려주었지만 틀린 번호였다. 하루 종이 ㄹ이 노인은 아마도 어떤 단체 혹은 자식들 중의 하나인 듯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다. 거의 타인과 격리된 상태이다. 어머니는 이젠 개인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리고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모두 포기해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있을 때 화장품 도구 세트를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사물들에 집착함으로써 세상에 매달려 있고자 고군분투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손목시계도 화장수마저도 없어지고 지금 갖고 있는 것이라곤 먹을 것 밖에 없다.  36-37


8월 24일 금요일

난 지금, 나도 모르게 치솟아 오르는 감정에 편승한 채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42


9월 29일 토요일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여 있던 어머니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드실 비스킷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머리맡 탁자의 서랍을 열었다. 나는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당연히 과자라고 생각하고는 집어들었다. 그것은 똥덩어리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당황한 나머지 얼른 서랍을 도로 닫아버렸다. 곧이어 떠오른 생각은, 만약 내가 서랍 속에 똥덩어리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이를 발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얼마나 쇠퇴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은근히 바랬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종이로 싸서 화장실로 가져갔다.  48


12월 크리스마스

어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아프지 않도록 온갖 정성을 들여 조심스럽게 깎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지레 겁을 먹고 끙끙 신음소리를 낸다.  58




1985년 


1월 19일 토요일

어머니는 모든 기력을 총동원해서 게걸스럽고 억척스럽게 먹는 행동에 몰두한다.  61


6월 9일 일요일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은 자기의 벽장 속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반시간 동안이나 정돈한 다음 다시 전부 제자리에 갖다 넣는다. 도대체 이런 행동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집에서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실 무렵 어머니 또한 왜 이 노인처럼 행동하셨던 것일까? 그들의 정신 속에 부재하는 질서를 외부에서라도 바로 잡으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일까?...

어머니는 내 친구가 날 만나러 올 때면 "아니! 누가 찾아 왔다"고 하시며 기뻐하곤 했다. 어머니는 방문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것은 사랑의 증거이며 타인이 마음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77


9월 19일 목요일

어머니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인기를 누리고 싶어서 그림책과 사탕들을 나누어주길 좋아했었다. 그후론 준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 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는 방법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보앗던 광경이 떠오른다. 침대에서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누워 계신 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며 "예쁘지도 않네"라고 했다. 어머니의 음부, 즉 세계의 근원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90-91


10월 18일 금요일

어머니가 그랬듯이 시자에서 구걸하는 장님에게 적선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적선을 하는 어머니의 행위는 그 동냥자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단념시키는 일을 한 결과가 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 말은 청춘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터라 그때마다 얼마나 거부감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어머니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과 평상시에 입던 새하얀 블라우스 자락이 내 뒤에서 끊임없이 나부낀다.  94


10월 21일 월요일

어머니는 항상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던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곤 했다. "누구한테든지 말을 적게 해라"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사고방식과 사랑했던 방식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관점에 따르면 섹스란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인 악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95


11월 3일 일요일

어머니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양손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아 한참 헤맨 후에야 두 손을 맞잡을 수가 있었다. 오른손이 마치 낯선 물체를 잡고 있는 양 왼손을 꽉 쥐고 있다. 과자를 먹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입에 정확히 갖다 대지 못하고 빗나간다. 어머니의 손에 쥐어준 과자도 다시 떨어뜨리기 때문에 입 안에 넣어드려야만 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쇠약해졌고 그럴수록 동물적인 본능이 강하게 드러난다. 난 모든 것이 두렵다. 희미한 어머니의 눈빛, 어머니는 갓난 아이처럼 혀와 입술을 쪽쪽 빨아들였다 내밀었다 하다. 난 어머니의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고 머리를 묶을 고무줄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 손질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는 "난 네가 머리를 빗겨줄 때가 참 좋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말과 동시에 어머니의 모든 동물적 본능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말끔히 머리를 빗고 씻은 어머니는 다시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고 단장시켜주는 이 기쁨이여! 내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한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이 어머니의 목과 다리를 쓰다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살아 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는다는 것, 즉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96-97




1986년


4월 7일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괴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예측조차도 못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랬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14-115


4월 8일 화요일

일거수 일투족을 옮길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되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난 이렇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끌어내어 고갈시켜버리고, 지쳐버린 고통이 더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16


4월 10일 목요일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동전 지갑이 들어 있는 어머니의 여행용 가방과 흰색 여름용 핸드백, 머플러 몇 장이 있었다. 나는 여행용 가방을 벌려놓은 채 이러한 몇 가지 물건들을 앞에 두고서 멍하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몰랐다.

내가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들도 거기에 있었지만 난 그것을 펼쳐보고 싶지 않았다. 차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단지 두세 번 정도 이런 상태를 경험했다. 실연의 슬픔을 겪었을 때와 유산을 한 후에 나는 지금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118-119


4월 12일 토요일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10개월 된 어린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124


4월 20일 일요일

50세 때 찍은 어머니의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생기가 넘쳐 흐르는 얼굴과 적갈색의 금발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어머니는 꼭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서 마치 컬러 사진을 보고 있는 것같았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2주일 전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그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128


4월 28일 월요일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혀진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128-129




옮긴이의 말


이 작품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소재를 깊이 있게 응축하는 데 단문과 극도의 생략법을 사용하고 있다...명사 혹은 부사로 압축되어 끝나는 단호한 문장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인식해가는 작가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 작가의 침묵적 고백, 이것은 인간의 삶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실존적 고독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1-132


글쓰기를 통해 현실적 삶의 고통에 밀착되어 떠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는 독자로 하여금 소중하고 경건한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삶에 대해 끝없는 희망을 가질 의무를 부여해 준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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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어머니는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아버지와 한바탕 벌인 말다툼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주엥도 쉽게 멈춰지지 않았고, 식탁을 치우고 밀납을 입힌 식탁보를 훔쳐낸 뒤에도 그칠 줄을 몰라싿. 어머니는 연신 아버지를 비난하며 매번 화가 날 때마다 그랬듯이 쥐구멍만한 부엌-식당과 식품점을 겸하는 가게와 2층으로 연결된 계단 사이에 끼여있는-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는 묵묵부답 창가 쪽으로 고개를 발작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설고 탁한 목소리로 악을 쓰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주넉으로 때리며 식당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나는 2층으로 도망쳐 침대로 몸을 던지고는 베개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이내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살려!" 하는 목소리가 식당 쪽 지하로부터 들려왔다.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온 힘을 다해 악을 썼다. "사람 살려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개인지 목덜미인지를 틀어쥐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평상시 나무 둥치에 박혀 있는 낫이 들려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울음소리와 비명뿐이다. 잠시 후 우리 세 식구는 다시 부엌에 모였다.  7-8


아버지는 "넌 왜 울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자, 이젠 끝났다."라는 말을 했다.

1952년 6월 15일의 일이었다.

훗날 몇몇 사람에게 나는 "내가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털어놓고 싶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9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나는 자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기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실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란 그저 그때의 분위기나 부엌에서의 각자의 위치, 몇 마디 말뿐이었다.  10


나는 정신분석이나 가족 심리학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위압적인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죽음으로 위협해서 그녀에 대한 복종심을 파괴한 아버지 등등. 이러한 초보적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면 이미 옛날에 어렵지 않게 얻어냈을 것이다. '그건 가족에 대한 정신적 외상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라거나 '유년기의 신의 이미지가 그날부터 몰락한 겁니다.'와 같은 말은 그 장면에 대한 어떤 해석도 하지 못하며, 그 순간 내게 떠오른 '재수 옴 붙었네.'라는 표현만이 그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추상적 단어들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21


당연히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 이야기는 꾸며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한마디로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27


인생의 시간은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 나이'로 구분된다. 영세를 받을 나이, 손목시계를 선물 받을 나이, 여자 아이는 처음으로 파마 머리를 할 나이, 남자 아이들은 첫 양복을 입는 나이, 첫 월경을 하고 스타킹을 신는 나이.

식사주엥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 담배 필 권리가 있는 나이, 음담패설을 할 때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 

직장에서 일하고 댄스 파티에 가고 '데이트'할 수 있는 나이, 군대 갈 나이, 오락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 결혼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 검은 옷을 입는 나이, 더 이상 일하지 않는 나이, 죽는 나이.

이쯤 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완성 된다.  42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 '발전'되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는데, '발전'이란 거역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불가항력의 힘이라고 여겨졌다. 그 증거도 무수히 늘어나서 플라스틱, 나일론 스타킹, 볼펜, 소형 오토바이, 레토르트 수프, 그리고 의무 교육 같은 것이었다.

나의 열두 살은 이런 세상의 법칙과 관례 속에서 보내졌다. 다른 것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43


남들처럼 살자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이자 성취해야 할 이상이었다. 개성은 일탈, 심지어 조금 미친 것 같다는 증세로 간주되었다.  48


당시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실망했을 때는 '멍청했었지'. 불만이 있을때는 '나빴었지'같은 표현이 고작이었다.  51


(카톨릭 사립학교 시절) 사진이 있는 연애소설을 읽거나 일요일 오후 포토 회관의 댄스 파티에 가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번도 억압된 삶을 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63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그들의 궁핍한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6월 일요일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 이상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모멩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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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화처럼 살고 싶다(voglio vivere una favola) -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 계단에서 본 익명의 낙서에서



서문


1989년 11월 16일.. 나는 한 해 전에 모스크바, 트빌리시, 레닌그라드를 여행하는 작가들의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우리 여행의 수행역을 맡고 있었다. 우리는 레닌그라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우리는 관계를 지속했다. 우리의 행위는 의식처럼 일정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후나 저녁, 드물게는 그 다음날이나 이틀 후에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와서 단 몇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우리는 그 시간에 섹스를 했다. 그가 떠난 후, 나의 일과는 다음번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9-10


(그는)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지자라고는 했지만 술에 취하면 브레주네프(구소련의 정치가, 스탈린 이후 최장기인 18년 동안 소련을 통치함) 시대에 대한 향수와 스탈린에 대한 흠모를 감추지 않았다.  10


이 기간 동안, 나는 잡지사에서 청탁해오 ㄴ원고 외에는 아무 글도 쓰지 않았다. 사춘기 때부터 불규칙적으로 적어오던 일기가 나의 유일한 글쓰기의 장이 되었다. 그것은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견디는 방법이었고 동시에 에로틱한 몸짓과 말들을 기록함으로써 쾌락을 배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 

그가 프랑스를 떠난 후, 나는 내 온 존재를 기배했고 그때까지도 계속 내 안에 살아 있던 그 열정에 관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집필되었고 1991년에 쓰기를 마쳐 1992년 '단순한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1


2000년 1월인가 2월, 나는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S에 대한 나의 열정의 시간에 해당되는 일기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

나는 컴퓨터에 텍스트를 입력하면서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았다. 생각이나 느낌들을 포착하기 위해 순간순간 종이 위에 나열해놓은 단어들은 나에게 시간만큼이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그 단어들은 시간 그 자체다.  12




1988년


9월 


27일 화요일

S ... 이 모든 아름다움. 지난 1958년, 1963년, 그리고 P때와 똑같은 욕망, 똑같은 행위, 몽롱함과 무력감마저 똑같다.  17


나는 옛날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단지 아름다움, 열정, 욕망일 뿐.  19



10월 


3일 월요일

그는 나의 가장 '유치한' 부분, 그리고 가장 사춘기적인 부분을 대변한다. 별로 지적이지 않고, 큰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내 젊은 시절의 남자'이며, 금발이 약간 촌스럽다(손과 네모난 손톱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사랑은 나의 머리와 육체 속에서 한 가지일 뿐이다.  24


4일 화요일

그가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예쁘게' 치장하고, 준비하고,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25


5일 수요일

아직도 내 안에 그가 남아 있다. 나의 모든 비극이 바로 거기 있다. 그를 잊을 수도, 홀로 설 수도 없다. 나는 그의 말, 몸짓을 빨아들인다. 나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흡수한다. 이런 밤을 보낸 후에는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26


6일 목요일

그는 여자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성 정치가들에 대해 비웃음을 금치 못한다. 그 여자들은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등등. 그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재미있어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 그는 점점 <빈 장롱>에서 내가 묘사했던 이상형, '내 젊은 날의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로제르 골목에 세워놓은 자동차 안에서 그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입으로 그를 애무했다. 그런 후, 우리는 끝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며 나느 ㄴ어제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27


8일 토요일

"다음주에 전화할게." 이것은 '이번 주말에 당신을 만날 수 없어'라는 뜻이다. 나는 미소지었다. "알았어." 만남의 간격을 좀 두는 게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로 고통스럽다. 육체의 향연 후에 나는 다시 혼란 속에 빠진다. 내가 너무 달라붙는 것처럼 보일까봐, 너무 늙어 보일까봐(늙었기 때문에 다라붙는 것이다) 겁난다.  29


12일 수요일

나는 단순한 생물로서 이것이 언제나 마지막인 것처럼-게다가 그렇지 않다는 법이 또 어디 있나- 사랑을 나눈다.  30


18일 화요일, 19일 수요일

그(아니 우리)는 점점 더 강렬하고 격렬한 욕망으로 사랑을 한다. 말하고 보드카를 마시고 또 사랑을 하고... 네 시간 동안 세 번. ..

간간이 사랑의 순간들을 다시 생각한다(그는 나에게 돌아누우라고 요구한다. 누워서 오럴 섹스로 절정에 오른 순간, 그는 신음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당신 정말 기가 막히게 해." 그는 부드럽게 나를 자기 배 쪽으로 끌어당겨 사랑의 행위를 시작한다). 기억, 마비 상태,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그가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다. 다시 기다리기 시작한다.  33-34


25일 화요일

요즘처럼 내가 아름다웠던 적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어제 오샹(대형 슈퍼마켓 상호)에서도 그랬듯이 나를 유혹하려는 남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스무 살, 서른 살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37


27일 목요일

한밤에 불리는 내 이름, 쾌락의 신음 소리, 그의 성기에 대한 숭배. 그를 열렬히 애무하는 나를 보려고 그가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우리가 처음 관계 맺기 시작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십자가에서 떼어낸 나신의 예수 그림을 생각했다. 너무나 나른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에 관해서 쓰는 것, 너무나 신비롭고 짜릿한 '그것'에 관해 쓰는 것 말고는.

이제 나는 사랑 속에서 진실을 찾지 않는다. 관계의 완벽성, 아름다움, 쾌락을 찾을 뿐이다. 상처주는 것을 피할 것, 즉 그에게 기분좋은 말만 할 것.  40



11월


15일 화요일 

눈을 뜨면서 기다림이 시작된다. '그후에'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가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순간에 정지한다는 말이다. 그가 오직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끊이없이 나를 괴롭힌다. 끝없는 불안감 때문에 이 이야기는 아름답다.  52


25일 금요일

호우헤 프랭탕 백화점의 '섹스 코너'에 가서 책들을 들춰보았다... 나는 를뢰 박사의 <애무에 관하여>, 그리고 75개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80만 권이 팔렸다는 <부부와 사랑> <육체적 사랑의 테크닉>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내 뒤에 여자들이 서 있다. 나는 태연하다. 점원이 책을 포장했다. 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지 못하도록 은행 카드로 지불하지 않는다. 전철 안에서는 이 책들을 읽지 말아야지. 나는 완벽한 육욕과 승화를 위해 이 책들을 구입했다.  60



12월


6일 화요일

내게 세상에서 견딜 수 있는 두 가지는 오로지 사랑과 글쓰기다. 나머지는 암흑이다. 오늘 저녁에는 둘 중 아무것도 없다.  66


9일 금요일

내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봐, 특히 그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주지 못할가봐 두렵다. 하지만 이런 모든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내가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67


15일 목요일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지금과 비슷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어쩔 수 없이 1958년과 1963년이 떠오른다. 삶에 대한 흥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전화벨 하나면 충분하다. 언젠가 이 일기장을 읽게 된다면, "아니 에르노 작품에 나타난 상실감"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a) 초기에는 무관심, 더 나아가 혐오감까지도.

b) 주로 외모에 대한 '놀라운 발견'.

c) 잘 절제된 즐거운 관계. 가끔 싫증을 느끼는 시기도 있지만.

d) 고통, 중독으로 인한 끝없는 결핍감. 그러고는 극심한 고통(나의 현재 상태). 행복한 순간들은 미래의 고통일 뿐. 고통을 가중시키기만 함. 

e) 끝으로 이별. 가장 완벽한 단계인 무관심에 도달.  71-72


그를 생각하면, 내 방에 있었던 그의 나신이 보인다. 나는 그의 옷을 벗긴다. 그의 발기한 성기와 욕정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73


20일 화요일

혼외관계라는 틀 속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형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성적 집착도 있고, 약간 미친 듯도 하다. 그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P와 사귀었을 때보다 어렵다-은 매우 도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75


24일 토요일

나는 어머니가 노인병원에 있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이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77


27일 화요일 

물론(나는 기다렸지만...) 예상대로 그는 '내일이나 모레'에 전화히자 않았다. 울고 싶고 구토가 난다. .. 오늘밤, 그의 부재와 혐오감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누른다. 잠을 자야지, 자야지.  79


28일 수요일

한숨도 못 잤다. 끔찍한 상태다...

나는 굶주린 여인이다. 이것이 나에 관해 거의 유일하게 정확한 표현이다.  79-81


30일 금요일

이런 생각들로 꽉 찬 "나는 안나 카레니나다". 브론스키에게 미친 안나. 두려움.  82-83




1989년


1월 


1일 일요일

가끔 그랬듯이, S에게 편지를 쓸지도 모르겠다. 그가 오면 그 편지를 줄 것이다. 전화와 마찬가지로 편지도 보낼 수 없다! 좋은 소설감이다.  88


4일 수요일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사랑을 바라는가?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약속한 적이 없고 나 자신도 아름다움밖에 바라는 것이 없는데, 그러나 더이상 아름다움은 없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90


6일 금요일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 공세를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프루스트 <갇힌 여인>).  92


8일 일요일

S에 대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 중에서 확실히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지적으로 더 우월하고 약간의 질투심을 가진 여자와 함께 있는, 젊고 잘생긴 바람둥이(내 남편과 나의 경우). 둘째, 약간 내성적이고, 자기 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별로 바람을 피우지 않는 남자. 섹스할 때의 그의 태도나 경험 부족으로 봐서는 둘재 경우가 맞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 전에 나 혼자서는 결코 정확히 알 수 없으리라.  


9일 월요일

간절한 기다림. 내가 이런 세세한 것까지 기록하는 이유는 기억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93


12일 목요일 

서로 못 본 지 벌써 1주일이 넘었다. 나에겐 다음 약속 날짜말고는 다른 미래가 업삳. 그리고 다음 약속이 정해지지 않는 한, 미래도 없다.  97


28일 토요일

독일에서 돌아옴.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파리가 가까워올수록, 기다림과 욕망이 되살아난다.  104


31일 화요일

그가 결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징조들을 모두 모으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5시에 온단다...

21시. 그가 막 떠났다. 기진맥진한 육체. 이보다 피곤할 수 없다. 다른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웃음. 어린애 같은 웃음.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나 소파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그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을 안다. 그는 반쯤 옷을 벗고 눕는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의 머리서부터 성기까지 천천히 애무하고 나서 입을 맞춘다.  107



2월


1일 수요일

상대방의 몸을 배우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09


5일 일요일 

나는 전화로 그에게 "당신을 원해"라고 말했다. 그는 거북한 어투로 "아!"라고만 대답했다. 말해선 안 되는 것을 그가 드덱 하는 이상한 대화. "당신에게 말하는 게 나아, 안 그래?" "그래." 그가 대답한다. "말하는 게 나아,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게 나아?" "말하는 거." 하지만 그가 전화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처음인 게 확실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에로틱한 대화를 주도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110


10일 금요일

글은 욕망을 유지하게 한다.  112


24일 금요일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는다.  120


27일 월요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S와의 오늘 저녁은 너무나 열정적이어서, 마치 내가 용서받은 것 같았다. 다섯 달이 지난 후 또 새로운 쾌락을 발견했다(발견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부드러운 애무와 육체에 취한 나머지 아무 생각이 없다.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서 함께 얕은 잠이 들었다. 그는 남성다움과 나르시시즘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아한다.(나는 그의 뒤에서 손으로 그의 성기를 잡고 자위행위를 대신해준다. 그는 내 손만 볼 뿐, 나는 보지 못한다.) 에로티시즘과 많은 가능성을 발견해가면서...  122


28일 화요일

오후 내내 그를 용두질시키는 내 손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던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나는 그의 뒤에 있었다). 그는 사춘기였을 때의 행동을 되새기거나, 어쩌면 좀더 어렸을 때의 환상을 반추하는 듯하다. 그의 추억을 되살리고 그와 함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음에 행복감을 느낀다.  123



3월


10일 금요일

지나가는 푀조 405 또는 505 자동차를 볼 때면, S가 이런 유의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대형 승용차를 선호하고 출세에 몰두하는 나르시시스트, 그리고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섹스 생각이 날 때마다 만날 수 있는, 그의 물건을 불끈 달아오르게 해서 사정하게 해주는 예쁘장한 여자라고만 생각하는 남자.  127


18일 토요일

오직 나만의 내적 결핍,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내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시작된 필립과의 결혼생활... S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결코 사랑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의 젊음이며,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사람이며, 현 세계의 가장 큰 수수께끼인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점이다.  132


21일 화요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3주 동안 그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냉정하고 무관심하게 한다.  133


27일 월요일

노트 한 권에 다섯 달분의 일기밖에 적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분석을 많이 할수록 글을 더 많이 쓰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집착의 괴력, 그 자체에 관해서는 어떤 분석도 할 수 없다.  135-136


28일 화요일

내가 이 노트에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욕망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순서를 따라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아직도 이 열정으로부터 빠져나올 힘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매달리고 있는 것보다 좀더 확실하고 명확한 신호들이 있어야 한다. 모험을 하듯 결별의 편지를 써야 한나? 현재 상태는 필립 때와 비슷한 S의 무관심, 우유부단한 태도인 것 같다. 나를 버리려고? 그래.

편지를 쓰면 끝날 것이다. 그래서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137


30일 목요일

이 일기 속에서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S에 대해 '계속' 쓰고 싶다. 가능할까? 나의 꿈은 휴가를 모스크바에서 보내는 것. 그곳은 S와 휴가를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138



4월


4일 화요일

그가 방에서 옷을 다시 챙겨입는 끔찍한 침묵의 순간. 옷가지들 하나하나-내가 네 시간 전에 벗겼던 옷들-를 천천히 다시 입는다. 처음에 팬티, 메리야스, 그 다음은 바지, 혁대, 셔츠, 넥타이, 구두(양말은 절대 벗지 않는다). 이 의식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진다. 이별, 무한히 느릿한 슬로 모션...

그의 기둥서방 성향. 시바스리갈 위스키 반 병을 마시고, 뜯은 말보로 담배를 보루째 가져간다. 나는 어머니와 창녀를 겸한다. 나는 언제나 모든 역할을 다 맡는 걸 좋아했다.  141


13일 목요이

코펜하겐 넵튠 호텔의 방(1985년과 같은 호텔),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신약성서가 있고 텔레비전 위에는 포르노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놓여 있다. 호기심에서 '언제' 볼까 망성인다(계산서에 포함되어 드러날 테니까!).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배우기 위해서.  143-144


28일 금요일

그는 어제 11시쯤 왔다. 욕정. 그는 무릎을 꿇고 내 성기에 입맞추었다.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이다. 다정한 사랑의 표현.  151



5월


3일 수요일

결심 : 내가 저지(Jersey)로 떠나기 전에 그가 세르지에 오지 않는다면, 한 번만 더 만나고 결별을 한다. 아니면 전화로 끝낸다.  153


6일 토요일

오직 S만이 나의 관심사다. 나를 그에게 밀착시키는 이 힘은 아마도 그의 비밀스런 성격, 예측 불가능함, '기이함' 속에 있는 것 같다.

그가 침묵하는 원인에 대한 검토 :

1) 대사관 영화 시사회-나는 참석했고 그녀는 불참했던-와 관련해서 자기 부인과 다툼. 만약 내가 온 사실을 그가 감췄다면.

2) 내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의한 알렝N에 대한 질투심.

3) 권태(내 꿈에서처럼), 그리고 만나는 간격을 늘여가면서 나를 버린다.

4) 업무,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KGB가 아닐까?).  155


8일 월요일

저녁. 전화가 왔다. 아주 '평상시처럼'. 내 상상의 날개가 한꺼번에 꺾인다. 잠이 온다. 그와 결별하고 싶지 않다. 다음번까지..  157


12일 금요일

11시 445분. 그가 와서 다섯 시간쯤 머물렀다. 오래 전부터 이렇게 완벽한 시간, 이처럼 조화로운 시간이 없었다. 매번 다른 바업ㅂ으로 네 번의 정사를 나누다. (침실, 애널 섹스, 아주 부드럽고 오랜 애무 후에 아래층 소파에서 다정하게 남성 상위 체위로, 침실에서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내 정액을 당신 배 위에 쏟을 거야." 소파에서, 완벽한 일체를 이루었던 애널 섹스.) 우리 둘의 육체, 존재에 대한 끝없는 갈망.  158-159


13일 토요일

그가 8월에 떠나는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오늘 아침 시내에서 운전하는 동안 끝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처럼. 그리고 낙태 후 루앙 거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삶에서 비밀스런 의미를 지닌 굵직한 선들. 아직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동일한 상실, 오직 글을 통해서만 그것을 진정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159-160


16일 화요일

지금에야 나는 사랑을 사랑하고, 섹스를 사랑한다. 더이상 슬프고 고독한 것이 아닌 사랑을 사랑한다.  161


20일 토요일

나는 결코 사랑이라는 감정의 힘을 믿은 적이 없다. 보통 사회적인 여러 요인들이 다분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163


21일 일요일

도서박람회. 그를 보지 못했다. 저녁에도 무소식. 그가 목요일대사관 영화 시사회에도 가지 않는다면? 혹 다른 여자라도 생겼다면? 이 고통스런 기다림은 그가 또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수많은 여자들과.  164


27일 토요일

2년 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남자와 글 사이를 오가는 지옥 같은 순환.  170



6월


3일 토요일

지금 내 가슴을 뭉크랗게 만드는, 정액을 연상시키는 어떤 것-그전에는 혐오하던 냄새-들이 있다. 5월 12일에 그가 내게 한 말. "당신 배 위에 사정해도 돼?" 그후로 엄청난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이런 추억들은 매번 생각할 때마다 나를 전율케 한다. 그는 이제 오지도 않고, 이런 말들을 다시 하지도 않을 것이다. 러시아 식으로 짤막하게 발음하는 말들. 정액에 대한 혐오감이 그리움으로 변한 것으로 그에 대한 내 애착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밤에 르 루아레에서 온 S의 전화로 행복이 절정에 이른다.  173


11일 일요일

불면의 밤. 또 한 번 레닌그라드를 떠올린다. 그때의 기쁨, 그때의 감각들을 되살려본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내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 그저 하룻밤 상대였을 뿐. 내가 레닌그라드의 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그후 섹스를 한 수십번의 밤과 오후 때문이다... 요즘 나는 반쯤 마취 상태에 있다. 글을 쓸 의욕도 책을 읽을 의욕도 없고, 이제는 습관 같은 그의 무소식에도 걱정조차 되지 않는다.


15일 목요일

반쯤 의식이 들면서 깨어나는 순간에 끼어드는 진실들. S에게 나는 그저 섹스를 잘해서 가끔씩 만나볼 만한 여자일 뿐이다.  178 


17일 토요일

육체는 숨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무성(無性 없을무 성품성)의 생명이자 욕망이다.  180


19일 월요일

전화가 없는 날들에 점점 더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날짜를 꼽는다. 하지만 그는 아마도 시간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81


29일 목요일

두 가지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약속 없는 고통의 시간, 다른 하나는 오늘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곧 실현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실현될, 망연자실한 욕망의 시간이다.  188



7월


15일 토요일

그는 15시 25분, 30분경에 왔다가 20시 15분에 떠났다. 다섯 시간. 지난 겨울(11월)보다 약간 덜해진 그에 대한 욕정. 하지만 언제나 거듭되는 우리의 애무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어제 그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럴 땐 대화가 더 많아진다. 비극은 가눌 수 없는 피로감이었다. 어젯밤, 나는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돌같이 누워 있었다. 그가 스며든 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특히 글쓰기 작업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보름 만에 만났다. 이제 이게 평균적인 간격이다. 1주일 정도면 좋겠다. 부인이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나... 아니면 다른 여자인가? "여자들은 힘들어"라는 그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애썼다는 말인가, 아니면 힘들게 다른 여자와 성공했다는 말인가? 일반적으로 그가 여자를 쉽게 유혹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199-200


27일 목요일

나는 그에게 말한다. "Ta tebya lioubliou.(러시아어로 '당신을 사랑해'라는 뜻.)" 그가 내게 러시아 마로 대답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서 그에게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한다. "단지 마샤만 사랑해?" "응". 내가 대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떠날 거야. 하지만 당신은 슬퍼하지 않겠지. 강한 남자니까." 그가 대답한다. "그래 맞아." 그가 떠날 시간이었다. 어떤 말로도 덮을 수 없는 그 말이 내 가슴을 찢어놓았다. "다음주에 당신에게 전화할게. 집에 있을 거야?" 라는 말뿐. 일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를 거칠고(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즐기기만 하는(나쁠 것도 없지) 플레이보이 또를 고르비보이로 봐야 한다. 떠나며 탁자 위에 있는 말보로 담배 보루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묻는 그 남자를위해 내가 1년이란 시간과 돈을 잃었음을 확인했다. 스무 살에나 마흔여덟 살에나,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남자 없이, 삶 없이 무엇을 하겠는가?  205-206



8월 


3일 목요일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3일인 오늘 오후 16시 15분에 왔다(그리고 밤 10시에 떠났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지쳐 있다. 광적인 섹스로 얼이 빠져 있다. 예외적으로 그가 만난 지 1주일 만에 왔다.(과거보다는 미래, 즉 내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것과 비교해보기 위해 이런 것들을 기록한다.) 처음으로 내 베개 밑에 그의 것으로 젖은 팬티를 하나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예전과 달리 내 젖가슴을 삼킬 듯이 온 입으로 애무하고, 부끄러움 없이 벗은 채로 돌아다녔고, 지난번 내가 준 편지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직도 불투명하고, 사랑을 증명하지 못한다. 물론 사랑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209


11일 금요일

우리는 사랑하고, 먹고, 애무했다. 땀이 범벅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는 입술. 그래,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긴가. 나는 어제 쾌락에 꽌한 나의 한계들을 또 한 번 넘었다. 그에게는 아마 퍼포먼스 같기도 했으리라.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오직 욕망만이 중요할 뿐...

흐린 날씨다. 머릿속도, 가슴도 나는 언제나 스물두 살이다.  212-213


18일 금요일

카날 플뤼스(유료 텔레비전 채널. 시청하기 위해서는 디코더가 필요한데, 이 장치 없이 보면 화면이 흐릿하고 음향이 없다)에서 디코더 없이 포르노 영화를 봤다. 처음엔 클로즈업된 성기들을 보고 놀랐다(특히 카메라를 가까이 접근시켰을 때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너무 기계적이라 별로 흥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음향이 없어서 책보다 덜 에로틱했다. 끝까지 다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 영상들은 나를 쫓아다닌다. 그것들은 명백한 '사용법'을 보여준다. 행위를 보는 것은 언어를 통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행적(遂行的 드디어수 다닐행 과녁적)이다. 가장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장면은 남자가 여자 배 위에 사정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녀 위에 평화와 정액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성경)  216-217



9월


1일 금요일

생일이 온다. 마흔아홉 살. 곧 끔찍한 '50대'가 된다.  223


5일 화요일

그에게 그가 태어난 날에 발행된 신문을 선물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것이 그를 얼마나 행복하고 다정하게 만드는지. 이제 순조롭게 되어가는 건가?... "당신은 멋져"라고 그가 말했다. 그때처럼 우리는 서로 입술로 애무했다. 우리는 깊은 합일을 이뤘다. 나는 그가 나를 완전히 정복하여 내가 순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나를 등쪽에서 보고,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오럴 섹스. 아직도 그의 얼굴에 대한 기억들을 모으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금방 잊어버린다...

곧 1년이 된다. 새로운 키스 방법과 욕망을 해소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끝없이 고안해야겠다.  224-225


7일 목요일

피렌체. .. 열정의 추억들을 남겨놓고 이제 곧 프랑스를 떠나려는 한 남자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늘밤에도 나는 기차 안에서 끊임없이 지난 월요일의 장면들을, 그리고 내가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장면들을 떠올렸다.  226


16일 토요일

돌아온 후로 계속되는 이틀간의 침묵. 그가 목요일에 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죽음이고 암흑이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떠났다는 확신이 미친 듯이 나를 휘감으며, 그를 다시 볼 거라고 생각했던 피렌체에서 품었던 나의 기대가 혐오스러워진다.  240-241


28일 목요일

그를 보기 위해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소유이고 재산이며, 그 나머지 시간들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게 너무 어렵지만. 지금 나는 평소에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들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까? 등등.  247


29일 금요일

어제, 그와 함께 TF 1(프랑스 최대의 민영 방송국)의 멍청한 오락 프로그램들, 예를 들면 <정확한 가격 알아맞히기> 따위를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그가 얼마나 지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지를 발견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본 영화는 끝까지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찌나 지루해하는지, 끊임없이 몸을 뒤틀며 보기 드물게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249



10월


1일 일요일

이달이 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침묵. 다시는 러시아 악센트의 '아-니'도, 자동차 소리를 기다리는 것도, 오후의 발소리도 들을 수 없겠지.  250


10일 화요일

"현재란 무엇인가?" 현재는 이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버거운 미래와 두려움이다. 그를 볼 것이라는 행복감과 서너 시간의 만남이 흐른 후에 그를 더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감. 멍청한 노래 한 곡이 머릿속을 맴돈다.  253


12일 목요일

약간의 시간이 더 나아 있다... 그는 러시아 혁명 기념식 후에 떠난다. 사도마조히즘적 체험을 했다. 하지만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다(애널 섹스와 '정상 체위'의 혼합으로. 완전히 녹초가 됨. 한순간, 그 부분이 찡어지는 줄 알았다). 그가 말했다. "아니(Annie), 사랑해."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자히 않는다. 섹스를 할 때 한 말이니까. 그러나 어쩌면 유일한 진실은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254


19일 목요일

아직 샴페인 병은 가득 차 있고 위스키도 지난번보다 덜 마셨다. 사랑의 몸짓과 체위에 대한 끝없는 발명. 그의 성기 위에 샴페인을 부었다. 그런 것은 그가 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면서. 애널 섹스. "언제 어디서건, 당신이 무엇을 요구하건, 나는 당신을 위해 그걸 할 거야. 당신을 위해서 그걸 할 거야" 라는 나의 말에 당환항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 듯했다. 그가 먹고 있던 음식 조각을 내 입 안에 넣었을 때 그는 감동했다.

어쩌면 한 번 더, 단 한 번이라도 더... 모든 것, 애무, 희ㅣ한 말들, 또는 애정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각각의 신호를 다 기억할 수가 없다. 가죽 의자 위에서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하는, 놀라운 서커스 같은 체위. 나에게는 완벽주의적이고 창의적인 면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골몰하는 대상은 사랑이다.  258



11월


1일 수요일

5년 전부터 즐거움과 자신감(섹스, 질투심, 사회적 출신 성분 역시)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더는 수치심을 갖고 살지 않기로 했다. 수치심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내게 글 쓰는 작업은 도덕적 기능을 지닌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예전에는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의 모험을 원치 않았다. 오랫동안-아직도 그렇지만-글을 써왔기 때문에 쾌락적인 삶은 내게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내 남편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그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용서했다. 글을 쓰지 않는 인생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걸 빼고는.  266-267


3일 금요일

내가 한 남자를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268


7일 화요일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늙어빠졌을 거야." "내게 당신은 결코 늙지 않는 사람이야." "늙지 않도록 노력할게."

나는 왜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더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나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글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일 뿐.)  273


9일 목요일

"언제부터 언제까지 나는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로 시작하는 책을 쓰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할 경우 S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그에게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분히 한계가 있는 저술 계획뿐.  274


14일 화요일

아직 하루가 남았다. 나는 그의 좁은 미간과, 약간은 잔인해 보이는 치아로 거의 확실히 예견할 수 있었던 사실을 부정해보려고 애쓴다. 내가 그저 쾌락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 그렇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잊으려고 애썼다. 남편과 보낸 18년보다 1년을 지우는 것이 더 힘들까? 증오는 그 세월을 지우는 걸 쉽게 하지만 사랑은 그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277-278


15일 수요일

확실히 최악이다. 예전에 "아냐, 더이상 만나지 않을래, 더는 만나지 말자"라고 말하지 못했던 나의 나약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준 모든 것을 따져본다. 아주 치사하게. 뒤퐁 라이터, 파리에 관한 책, 고판화, 그가 태어난 날 발행된 신문, 말보로 담배 보루들, 수많은 위스키... 아마도 스무 병쯤, 최근에는 훈제 연어와 샴페인. 그는 세르지에 서른네 번, 스튜디오에 다섯 번 왔다. 아무 소용 없는 계산이다. 마흔 번이고 백 번이고 지금에 와서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끝났다는 것,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맑은 의식이 주는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다.  279-280


16일 목요일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거기 있는 것, 그리고 섹스하고, 꿈을 꾸고, 그가 또 오고, 섹스하고, 모든 것이 기다림일 뿐이다...

오샹 슈퍼마켓 정면 모퉁이에 있는 속옥 가게에서 보라색 브래지어와 가터벨트를 본다. 은행. 여자들이 내 앞에서 기다린다. 이 여자들은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 광적인 사랑을 잃는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을까. "아니(Annie), 당신을 사랑해." "당신 정말 멋져." "아니(Annie), 나 사정할 거야." 그녀들은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한다. 나도 그냥 습관적으로 시계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떻게도 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내겐 미래가 없다...

니콜에게 전화를 했다. 나 : "그놈은 나쁜 자식이야!" 그녀 : "아냐, 그는 불행한 거야. 그래서 일부러 전화 안 한 거야." 내가 화조차 낼 수 없게 하고 가당치 않은 미미한 희망을 갖도록 해석하는 그녀가 원망스럽다. 이건 더욱더 가당치 않은 해석이다.  281-283


18일 토요일

살아남는다는 것은 참혹하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잘못 걸려온 전화다. 이상한 말투를 쓰는 여자였다. 사는 동안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황당한 순간에라도. 니콜과 한 소녀에 관한 꿈을 꾸다. 아버지도 꿈에 보인다. 우리가 읽는 에로틱하고 노골적인 책들에 반발하는 아직 젊은 아버지의 모습. 아마도 오이디푸스 콜플렉스일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이다.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리라. 나를 구한 것은 그녀에 대한 책이었다. 지금 나는 그에 관해 쓸 '권리'가 없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1982년 10~11월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쓰게 될 책과 상실의 결합...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만큼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를 위해 나는 멋진 책을 쓰고 싶다.  285-286


24일 금요일

마지막으로 그를 본 지 18일이 지났다. 4월과 9월 가운데 24일간을 보지 않은 최고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기다리는 대상이 없다. 날짜를 꼽는 것이 이젠 아무 의미가 없다. 언젠가는 그를 본지 두 달, 석 달, 여섯 달이 되겠지. 우리가 마지막 만난 날 서재의 이중 커튼을 직접 치고 싶어한 그의 모습을 요즘 매일 저녁 커튼을 칠 때마다 생각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나 : "커튼 치는 게 어려워..." 그 : "내가 할 수 있어!"  290


28일 화요일 

오늘도 아무 희망 없이 보낸 하루. 옛날 에는 내게 아무 감흥도 주지 않았던 노래를 듣는다. "그래, 나야 제롬이야. 아냐, 난 변하지 않았어/나는 너를 사랑했던 그때 그 사람이야..."(누가 불렀지? 클로드 프랑수아?) 아침식사를 하다가 운다. 그 노래가 돌아온 사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나는 언제나 S의 모습을 생각한다. 키가 크고, 부드럽고, 발가벗은, 말하자면 우리가 만나는 동안 내게 고정된 그 이미지 그대로, 그가 모든 것을, 눈부시게 에로틱했던 날들을 모두 잊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부재, 추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긍정적인 점은, 내가S가 떠날 때처럼 차리고 있으면-내가 그를 언제나 입으려고 했던 이 검은 정장-아직도 남자들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때다.  292-293



12월


1일 금요일

잊기 위해서 재미있는 관계를 갖고 살고 싶은 욕망, 그냥 재미있는 관계(콘돔을 사는 것이 그 증상).  293


14일 목요일

문득문득, 끊임없이 떠오르는 S 생각, 솟구치는 눈물.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너무 힘들다. 물론 아무 희망도 없다. 그러나 이것을 쓴다는 것은 내가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이성적 판단과 마지막 몇 달을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가 떠난 시점이 우리 관계의 확실한 종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98


15일 금요일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나'라는 의문을 점점 더 냉정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 근본적으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 이야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1년 동안 내 관심을 끌었던 짧은 장면들이 생각난다. 로시아 호텔에서의 첫날 그의 얼굴과 미소, 그가 나를 포옹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까진 나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것... 1988년 11월, '프랑스-소련 친선의 밤'에서 그가 대사관 여직원 일행과 떠나면서 의도적으로 짓던 표정.  299





1990년


1월


19일 금요일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은 한꺼번에 몇 해를 늙는다는것, 그가 있었을 때는 흐르지 않았던 그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늙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상상속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늙는 것이다. 이 욕망은 내가 어쩌면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동화 같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315


31일 수요일

내일이면 2월이다. 월 초마다, 매달 15일마다-은행에서 잊를 챙기듯-S가 서유럽으로 다시 와서 내게 전화하길 막연히 기다린다. 이제 곧 석 달이 된다. 어쩌면 이렇게 회복이 더딜까, 모든 것이 느리고 무가치하다.  317



2월


2일 금요일

글 쓰기 행위는 나에게 언제나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 S에게 품은 것과 같은 그 열정과 글쓰기가 절대적 가치라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다. 그것들이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결부되어 있다는 생각과 함께.  319


29일 목요일

예전에는 '안정된 생활'을 위해, 그리고 '형제애'를 위해 남자를 찾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은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남자를 원한다. 즉, 글쓰기와 가장 가까운, 나 자신의 상실을 위해, 빈 곳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남자를 찾는다.  341





옮긴이의 말 - 고통과 열정의 외침

당시 35세, 아니 에르노는 48세였다.  346


자신의 애인이 작가라는 사실이 제일 중요한, 속물 같은 남자와의 육체의 향연에 에르노는 혼신의 정열을 기울인다.  346-347


그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거리의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기도 하고, 애인과의 완벽한 육체적 합일을 위해 포르노 영화나 사랑의 기교에 관한 책을 보고 연구하여 창조적이고 서커스 같은 체위를 직접 연출하기도 한다. 매번의 만남이 '쾌락의 한계를 넓혀가는' 시간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욕망과 에로티시즘에 '굶주린 여인'이다.  347


그런에도 점점 식어갈 수밖에 없는 열정에 대한 안타까움, 결별에 대한 두려움, 젊은 애인이 하눈팔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그의 아내에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질투심... 그녀의 일기에는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고통과 열정의 외마디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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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9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열여덟 해 동안의 결혼생활 뒤 다시 얻게 된 자유를 그가 처음부터 애타게 원했던 동거생활과 맞바꿀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싫증이 나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후로도 계속 전화 연락을 주고 받았고, 가끔씩 만나기도 했다. 어느 저녁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서 한 여자와 함께 살 거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감각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솟아올랐음을 깨달았다. 그순간부터 이 다른 여자의 존재가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녀를 통해서가 아니면 더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11-12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의 성과 이름, 나이, 직업을 알아내야만 했다. 개인을 정의하기 위하여 사회가 파악하는 이런 요소들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자 할 경우 별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라고 흔히들 경솔하게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13


내가 만나는 여성들의 육체가 그 여자의 육체로 탈바꿈하는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내 눈에는 '가는 곳마다 그 여자가 보였다.'  16


질투를 할 때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한 도시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쳤을 일이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17


나는 그와의 헤어짐으로 인해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게 사로잡힌 상태가 아닐 때면,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의미를 띠게 된, 우리가 함께 보낸 과거를 악착같이 상기시키는 외부세계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19


난 무엇보다도 우리 관꼐가 막 시작되던 무렵을, 내 일기에 적혀 있듯이 그의 페니스가 벌이는 '굉장한' 기교를 추억하곤 했다. 결국 내가 내 자기에 세워놓는 사람은 다른 여자가 아니라,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을 나, 사랑에 빠져서 그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 사이의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나였다.

나는 그를 다시 소유하고 싶었다.  22


시나리오가 어떻든 간에 여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여배우의 육체를 빌려서 끔찍스럽게 배가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고통이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영화가 끝나면 안심이 될 정도였다. 어느날 저녁에는 일본 흑백 영화를 보다가, 내 고뇌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느꼈다. 전후를 배경으로 한 그 영화에서는 끝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통이 펼쳐지는 것을 봐도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육 개월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싿. 사실, 열정의 폐해를 겪어보지 못한 살마들만이 카타르시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3-24


우리는 변함없이 카페나 내 집에서 만나곤 했다.  25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권총으로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31


다시 자유로워지는 것, 내 안에 자리잡으 ㄴ이 무게를 바깥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문제였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 목적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W가 나를 사귀게 되면서 버렸던 여자가, "바늘을 꽂아서 방자(남에게 재앙이 내리도록 귀신에게 비는 행위) 하겠어"라고 분노에 떨며 말했다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빵의 말랑말랑한 부분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핀을 꽂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이상 천치 같은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동시에, 두 손으로 빵을 주무르고 머리나 심장 자리에 정성들여 핀을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가엾고 순진한 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에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수그려 저 깊숙한 곳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바라볼 때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어쩌면 바늘을 꽂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32-33


그 여자와 W가 살고 있는 건무의 모든 입주장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미니텔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아 명단을 만들어두었다-은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또한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36 51(발신자 제한번호)을 누른 다음 꼼꼼하게 모든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35


전화를 걸어본 이름들 중에 자동응답기에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남겨놓은 도미니크 L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36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알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던 내게, 제쳐놓았던 단서들이 갑작스럽게 다시 의미심장한 것이 될 때가 있었다. 잡다하기 짝이 없는 사실들을 끼워맞춰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나의 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우리의 약속을 미루자고 한 날 저녁에 일기예보를 듣다가, 진행자가 "내일은 성 도미니크 축일입니다"라는 말로 일기예보를 마치는 순간, 그 여자의 이름이 도미니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 집으로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은 그녀의 축일이니 함께 레스토랑에 갈 것이고, 촛불을 밝히고 저녁 식사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을 해야 할 테니까. 이 추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도미니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은 나의 추론이 옳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러한 탐색과 광적으로 여러 단서들을 짜맞추는 행위를 보며 지능의 탈선적 사용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차라리 지능의 시적 기능, 문학과 종교 및 편집증엣 작동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그 기능이라고 하고 싶다.  38


나는 일기에다가 "다시는 그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라고 적었다. 이 말을 적는 순간에는 더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쓰기로 인해 고통이 가벼워진 것을 상실감과 질투가 끝난 것으로 혼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기장을 덮자마자,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으며, 그 여자에 관한 정보들을, 여전히 고통을 낳게 될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욕구에 다시금 시달렸다.  41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강박증과 고통을 여기에 노출하고 있는 행위와, 랍 대로에 가면 그들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출을 두려워하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글스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엣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나의 얼굴, 나의 육체, 나의 목소리, 나라는 인간의 특징을 형성하는 이 모든 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는 내팽개쳐버릴 누군가의 눈앞에 드러내는 것은 더없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이나, 지금은 내 강박증을 드러내고 헤집어보는 일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반항심도 전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43-44


유일하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그가 아직도 나를 만나고 있으며, 가령 얼마 전에 내 생일선물로 브래지어와 T팬티를 선물했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알게 되는 상상을 할 때였다. 그러면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고, 진실이 드러났다는 지극한 행복감 속에 잠겨들었다. 마침내 고통이 육체를 바꿔 탄 것이다. 난 그녀가 느낄 고통을 상상하면서 내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덜 수 있었다.  49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앴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사랑하거나, 음악이나 정치참여, 정원이 있는 집과 같은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하거나, 혹은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둠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육체적 사회적 고통에 비하면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물의를 일으킬 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치일지라도, 나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도 그 고통을 더 사랑할 것이다.  50


욕망이란 필요한 모든 것을 논거로 끌어다 사용하는 놀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잡지 속에나 굴러다니는 상투적이며 진부한 생각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의 딸이 엄마보다도 훨씬 어린 엄마의 연인을 참아내지 못해서, 혹은 딸아이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서 그들이 더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52


유일하게 진실한 것, 결코 말하지 않을 진실은 "난 당신과 섹스하고 싶고, 그 여자를 잊게 만들고 싶어"라는 말이었다. 그밖의 것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허구였다.  53


어느 일요일 오후, 프랑스에 잠깐 들른 L과 극장에 갔다. 그를 다시 보는 것은 친 년 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저절로 이끌려 그의 부모 집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 위에서 섹스를 했다. 그는 내가 아름다우며, 기가 막히게 잘 빨더라고 말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종종 성행위를 통해 얻고자 했던 '정념의 정화'-"아! 네 물건을 어서 넣어줘/ 그리고 끝장내버려/ 아!/ 그 이야기는 이젠 그만"과 같은 외설적 유행가가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성적 쾌락엣 모든 것을, 쾌락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 사랑, 융합, 무한, 글쓰기의 욕망, 이제껏 내가 그에게서 얻어냈다고 여기는 최상의 것, 그것은 냉철함으로, 감상주의에서 탈피해 갑자기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56-57


이제 나는 "당신, 페니스 좋아하지, 그렇지? 아무 페니스나 말고, 당신 거" 따위의, 예전엔 거리낌없이 서로 속삭이던 대화를 전화로 나누고 싶어져도 참게 되었다. 그런 말들이 지금의 그의 페니스를 부풀게 하기는 커녕 흥분을 싹 가시게 하는 외설스러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62


(학교에서 문학 텍스트의 구절들에 제목을 붙이듯이, 자기 삶의 순간들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씩, 순전히 의례적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것 역시 끝났다.

그의 페니스가 생각날 때면, 첫날 밤에 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눈앞에, 거대하고 강력하며 끝이 버섯 갓 모양으로 부푼 채 불끈 솟아 있던 그의 페니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낯선 사람의 페니스를 보는 것 같다.  67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고해하러가던 것과 유사한 습관으로, 일종의 정화의식이 되었다.

이젠 그 여자에 관해서 이름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알아내고 싶은 욕망이 조금도 없다(혹시라도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정중히 거절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이 그 여자처럼 보이는 일도 없어졌다. 파리의 거리를 걸을 때도 이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해피 웨딩]이 흘러 나와도 라디오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가끔씩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지만, 더이상 담배나 약물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사람과 흡사한 정도다.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을 간직하는 방식, 그러나 이제는 '사로잡힘'이자,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으로 변해버린 그것을 간직하는 방식이었다.  67-69





옮긴이의 말 - 질투의 심연에서 만난 치열한 글쓰기


'그'가 떠나갔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홀몸의 자유를 포기할 정도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미적지근한 연인관계를 유지해오던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한들, 그것이 '나'의 삶에 무에 그리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지만 '그'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라면? 갑자기 '그'에 대한 '나'의 빛바래가던 감정은 애초의 생생한 색깔을 되찾는다. '나'와 '그'의 관계를 규정짓던 타성과 습관은 어느새 그 힘을 상실하고, '그'를 되찾고자 하는 '나'의 무시무시한 눈먼 욕망만이 길길이 날뛴다.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이렇듯 '나-작가'가 겪은 질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73-74


에르노의 <집착>은 '자전적 허구'를 작가들의 노출 욕구나 배출 통로쯤으로 치부하던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예외로 다가온다. 우선, 에르노의 글은 치열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가장 내밀한 부분가지 올올이 드러낸다...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라고 못박는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난 시공간엣 행해야 할 작업이다.  75


에르노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계산할 줄 아는 작가이다. 끊임없이 군더더기를 떨어내고, 치밀하게 자르고 다듬어 완벽하게 아귀를 맞추어놓은 문장들 사이에는 세워놓은 바늘을 바라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균형이 자리잡는다.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주어와 동사를 품지 않은 문장들은 이 벼리기 작업의 가시적 결과이다. 에르노의 글은 푸근하지 않고, 정련된 문장들이 안져주는 정신의 긴장을 즐기는 독자들로부터 그래서 더욱 인정을 받는다.  77


작가는 '주요 관심사'나 '점령'을 의미하는 'L'occupation'이란 제목을 고름으로써, '질투'의 두 가지 양상을 겨눈다. 하나는 질투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뒤로 어떤 다른 일에도 정신을 쏟지 못하고 '그 여자'를 찾아내는 일이 '나'의 '주요 활동'이 되어버린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마치 무엇엔가 들리기라도 한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여자'의 존재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나'의 상태이다.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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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이야기를 글로 옮겨야만 할 것 같다.  8


아버지는 일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가끔 씻고 조금 먹고 하루 종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현관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이별의 장면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는데 아버지는 도무지 제목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깊은 상처를 다시 들쑤실까 두려워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묵계였다. 아버지는 그 책을 구입한 뒤 외출할 때에는 윗도리 주머니에 넣고 나가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책을 깔고 앉았다. 그 책은 아버지의 슬픔을 자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숨을 붙이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아버지가 책을 부엌 탁자에 놓고 나가서(일부러 내게 보여주려고 그랬을지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순한 열정>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동구권 국가의 외교관이자 자기보다 연하인 A라는 유뷰남을 사랑한 여자가 자신의 열정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자서전 형식을 빌려 하루하루 남자를 기다리는 심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10-11


우리는 곧바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외딴 장소를 찾았다. 한번은 소르본 대학 맨 꼭대기 층의 코쉬 대형 강의실 앞에서 누군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선 채로, 또 한번은 생 쉴피스 성당 안의 들라크루아의 그림 <천사와 야곱의 싸움> 아래에서, 그런 후에는 서로 앞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영화관이나 극장에 가면 그녀는 내 쪽은 보지 않은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내 코트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바지 단추를 끌렀다...

그런 날 저녁에 우리가 자주 가던 극장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나에 대한 특별한 욕망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 욕망이었다고 짐작된다.  34


나는 '성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그녀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시작했다. 

<단순한 열정>에 관련된 인터뷰 내용을 찾기 위해 그녀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나온 홍보자료를 검토했다. 

또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진실을 그녀의 말 속에서 찾아내길 기대하며 <단순한 열정>을 수사관의 독법으로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너무 여러 번 읽다 보니 결국 전체 문장을 외우게 되었다. 나는 대화를 하다가 그녀의 반응을 실험해 보려고 그중 몇 문장을 인용해보았다. 그녀는 마치 내가 자기 기억의 한 부분에 폭행을 가했다는 듯 돌연 입을 다물더니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라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혹시 내가 쓴 거 아니야? 그 책이 지독한 강박관념이 되었구나 그 책에 대해선 나보다 네가 더 잘아니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쓴 것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의식적으로 내가 그녀의 문체와 표현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에 물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소유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모든 글쓰기가 내 안에서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글쓰기가 이렇듯 얽혀서 서로 만나길 원했다.  87


우리 이야기는 책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그녀의 단어가 내 몸을 떠나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될 때 끝날 것이다.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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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과 취향,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 나도 함께한 바 있는 그 삶의 모든 객관적 표징을 모아 볼 것이다.

추억을 시적으로 꾸미는 일도, 내 행복에 들떠 그의 삶을 비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글이다.  21


그는 내가 온종일 책에 파묻혀 있다가, 그들에겐 딱딱한 얼굴로 신경질만 내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답답해했다. 저녁마다 내 침실 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내가 건강을 망쳐 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쥐어짜는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꽃다운 나이에 인생을 즐기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 그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89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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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머니는 이야깃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18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견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  51


(어머니는)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리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102


그들은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고, 그들에게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살고 싶어 했다. 끊임없이 성한 한쪽 다리에 의지해 일어서려고 애를 썼고, 자신을 붙잡아 맨 띠를 떼어 내버리려고 했다. 자신의 손이 미치는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늘 배고픔을 느꼈고, 갖고 있는 에너지는 온통 입에 집중되었다. 키스를 받기 좋아했고, 자신도 그러려고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는 어린 계집아이였고, 결코 자라지 않을 터였다.  104


이 글을 써내려간 10개월 동안 나는 거의 밤마다 어머니 꿈을 꾸었다. 한번은 내가 강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고, 내 양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배에서부터, 그리고 계집아이의 성기처럼 다시 매끈해진 내 성기에서부터 식물들이 구불구불 자라나 흐느적흐느적 떠다녔다. 그것은 단지 나의 성기만이 아니었고, 내 어머니의 성기이기도 했다.  108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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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느라고 그러지, 모모야."  11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  28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법이다.  37


"하밀 할아버지, 나는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훌륭한 뚜쟁이여서 엄마를 잘 돌봐주면 좋을 텐데 말예요."  47


그녀(로자아줌마)는 사람이 가진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점점 더 믿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54


"엘리 하브 알라라 이브리 기루 수반 아드 다임 라 이아줄."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58


(지하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피난처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엔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69


로자 아줌마는 동물세계의 법이 인간세상의 법보다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인간 세상에서는 아이를 입양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입양된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친엄마가 아이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나서면 아이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땐 위조서류가 최고다. 만약 자기 아이가 남의 집에서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이 년쯤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나타나서 아이를 찾아가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파렴치한 엄마가 있다면, 위조서류를 내보이며 쫓아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친엄마는 절대로 아이를 되찾지 못하고 오히려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로마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73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거지."  93


어떤 때는, 파리 중앙 시장의 꽃수레에서 미모사를 한 포기씩 훔치기도 했다. 그 꽃들에서는 행복의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98


나는 마약에 대햇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년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 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99


언젠가 르 마우트와 함께 경찰을 아버지로 두는 것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르 마우트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그런 상상은 아무 쓸모 없는 짓이라고 말하더니 가버렸다. 약물중독자와는 토론할 수가 없다. 그들은 세상 일에 대해 호기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121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173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4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203


네 살을 더 먹지만 않았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 것이다.  238


나는 누군가를 인질로 붙잡아 죽이는 것말고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바강스 장소를 산과 바다 중에서 선택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듯이,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 전쟁같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증에 사는, 과거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유태인 노파 같은 건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몇백만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돈이 적게 드는 일 일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245-246


나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네 살이나 더 먹었기 때문에 참았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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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나가는 여자들을 쳐다보는 법이 없다. 맨해튼에는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지만 내 눈은 그녀들의 얼굴에 가닿지 않는다. 난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좀 이상하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체험하는 기이한 순간이다. 마침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 그 낯설면서도 분명한 인식...

나에게 기회를 잡을 시간은 단 3초만이 주어진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난 무턱대로 입을 연다.  129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순간은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들이다. - 장 르누아르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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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된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그런 상황에 저절로 면역이 되는 건 아니었다.  57


그들을 만나게 한 우연..

샘은 평상시 퇴근할 때 절대로 타임스퀘어 쪽으로 가지 않았다. 줄리에트 역시 갑자기 외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황이 맞물리며 결국 그들은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타임스퀘어 쪽으로 가게 만든 순간적인 변덕에 감사하면서 인생이란 정말로 신비롭고 오묘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우연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런 상황을 감쪽같이 연출해낼 수 있단 말인가?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존재를 뒤흔드는 건 바로 작은 모래 알갱이일지도 모른다.  98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삶에 집착할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행운을 바라는 걸까? 수없이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삶의 게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226


사람들은 왜 겉모습이 아름다우면 마음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왜 모두가 젊고 날씬해지고 싶어 안달하는 시대에 살고 있을까? 어느 시기가 지나면 모두 부질없이 사라지고 말 가치인데도.  227


인생에서 내가 배운것, 

그걸 몇 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네.

누군가가 날 사랑해주는 날, 그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아!

나는 미보다 더 멋진 표현을 모른다네. 날씨가 정말 좋아! - 장 가뱅이 부른 노래 <난 이제 알아> 중에서  239



우리의 역사는 바로 그 1초에서 비롯되었죠.  243


내가 이 삶을 축복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있기 때문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282



마약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다. 처음에는 허세를 부리며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결코 금단 증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서서히 약에 중독되고 나면 하나같이 자존심과 수치심을 내팽개쳐버리고 요구하는 대로 따를 준비를 갖춘 채 그의 아파트 문을 두드리게 되어 있었다.  302


과연 인간의 삶은 하나의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삶이란 단지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단지 또 다른 삶, 우리 모두가 가게 될 저 세계를 향한 통로를 열어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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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한다. 그 대상을 가졌든, 못 가졌든 간에 영원히! - 앙드레 브르통 <미친 사랑>  65


"어째서 나를 떠났지?"

에단은 즉답을 회피했지만 사실은 그 자신도 그녀와 헤어지게 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셀린을 가까이할수록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출처불명의 불안감이 그를 지배했다.  101


바이러스성 소통의 시대(제시의 자살사건이 뉴스 채널마다 방영..)  103


당연히 나는 당신을 아프게 하겠지.

당연히 당신도 나를 아프게할 테고 - 생텍쥐페리 <나탈리 펠레에게 보낸 편지>  200



사랑은 불법 침입자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200


사랑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바보들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202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산다는 건 곧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란다."

"위험을 무릅쓴다고요?"

...

"실패와 고통, 손실을 무릅쓰는 위험 말이다."

...

"행복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을 경험해봐야 하는 거란다. 인간은 불행에 저항하는 노력을 통해 행복을 쟁취할 수 있으니까."  218


'사는 법을 배운다는 건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바로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34


'인간의 유일한 존엄성은 조건에 맞서 부단하게 반항하는 데 있다'고 한 알베르 카뮈의 말을 떠올렸다.  293


사람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이 가진 확고한 힘을 찾아낼 수 있어요.  312


알다시피 네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건 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거야.  358


우리가 처음이라고 부르는 것. 사실은 그것이 종종 끝인 경우가 많다. 끝이란 사실 출발하는 지점인 것이다. - T.S. 엘리엇  371



네 일부가 내 안으로 영원히 들어와 독처럼 나를 감염시켰다.  374



둘이 함께 걸으며 속도는 늦을지 몰라도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니까.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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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리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을 어떻게 발꿀 것인지에 대해.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질까?

우리 인생에서 어떤 고통을, 어떤 회한을, 어떤 후회를 지워버리고 싶을까?

진정 무엇으로 우리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되기 위함인가?

어디로 가기 위함인가?

그리고 누구와 동행하기 위함인가?



"자네는 알고 싶지 않은거야, 그렇지 않은가?"

"뭘 알고 싶지 않다는 거죠?"

"진실"  66


"매력적인 여자라면 적어도 대화상대로 모자람이 없는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지."

매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화가 필요하면 자네한테 전화를 걸면 되잖아. 골치 아프게 노벨상 수상자하고 데이트할 이유는 없어."  88-89


"내 사랑은 그렇게 날아가 버릴 만큼 가볍지 않아."

"그래도 너무 믿지는 마. 사랑은 절대로 거저 얻어지지 않는 거니까."  150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부족한 짐을 채워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사람을 찾고 있다.

우리가 그를 찾지 못하면 그가 우리를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 위기의 주부들  171



우리는 두 눈에 붕대를 감고 현재를 통과한다. 시간이 흘러, 붕대가 벗겨지고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 밀란 쿤데라  185


"자네는 인생이 한탐이나 남은 것처럼 일리나를 대했지. 하지만 사랑은 그런 식으로 하는게 아니라네."  188


당신이 아무리 피하려고 애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당신이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라마나 미하르쉬  194



어떤 경험으로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고 생각하기 일쑤지만 사실 최악은 미래형일 뿐이다.  198


사방이 막힌 수족관에 갇힌 채 화학약품을 처리한 물속에서 철퍼덕거리며 비타미노가 항생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고래의 삶은 관광객들이 무심코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이상적이지 않았다.  203


수족관 생활이 결국 고래의 머리를 돌게 만든 게 분명했다.  205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알아가는 데 쓸 시간이 엇다. 그들은 가게에서 완성품을 산다.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가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제 친구가 없다. - 생텍쥐페리  218



마음이 차분할 때는 항상 그것을 무력화시켰다고 믿는다.

끝내 그것들을 없애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을 완전히 떼어버렸다고. 아주, 영원히.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우리의 악마들은 어둠 속 어딘가에서 항상 웅크리고 있다. 

우리가 경계를 늦추는 순간을 끈덕지게 엿보며, 

그러다 사랑이 떠나는 순간이 오면...  220-221


우리는 책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시련을 통해서만 배운다. - 스와미 프라난파드  226



당신의 은신처는 당신 자신이다.

다른 곳은 없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당신 자신만 구원할 수 있을 뿐이다. - 싯다르타  235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운명은 오히려 그를 혹독하게 짓밟았다. 자유롭게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운명에 영향을 미칠 힘이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이엇는지 명백히 인정해야만 했다. 실제로 인간의 운명은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아무리 싸워도 불가항력인 일들이 있는 것이다. 죽음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미래란 점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미 나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과거, 현재, 미래는 숙명이라는 끔찍한 이름앞에 처절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미 운명이 다 쓰여 있다면 그 펜은 대체 누가 쥐고 있을까? 어떤 절대적인 힘이, 신이? 그렇다면 절대자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가?'  254-255


스무 살에,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춤춘다.

서른 살에, 우리는 원 안을 떠돈다.

쉰 살에, 우리는 안쪽으로든 바깥쪽으로든 쳐다보지 않고

원 주위를 걸어 다닌다. 이후에는, 중요하지도 않다.

아이들과 노인들의 특권, 우리는 투명 인간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269



우리에게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기 때문이다. - 세네카  298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로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히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 수잔나 타미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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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딱 한 가지만 설명해줘. 그렇게 산다고 달라지는 게 뭐야?"  29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하고, 외양의 뒷면을 보는 것..

그의 직업에서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34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건 상처가 남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야.  91


그린우드에 사는 사람치고 부모나 친구, 배우자 중에 마약 딜러나 마약중독자가 없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약 거래를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은 폭력과 공포ㅡ 질병과 죽음이엇다. 심지어 경찰도 압수한 마약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되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린우드에서 잘 나가는 마약 딜러라면 일주일에 대략 수천 달러를 벌어들였다. 마크과 커너의 동급생 중에도 갱단에 들어가거나 마약 거래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사람 역시 남드로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라고 못할 건 없잖아."

마크가 말을 꺼냈다.

"뭘?"

커너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몰라서 물어? 우린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빨라. 그린우드의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야. 자고가 자기 밑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묻더라. 그놈이 일주일에 얼마를 버는지 알아?"

커너가 벌컥 화를 냈다.

"난 마약에 손대고 싶지 않아."

"마약중독자가 되자는 게 아니라 딜러를 해보자는 거야. 잘만 하면 이 년 안에 학비 정도는 벌 수 있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야."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가 금주법 시대에 뭘 했는지 알아? 술을 불법적으로 수입하고 몰래 팔아 넘겨 엄청난 돈을 벌었어. 그 덕분에 아이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거야. 그 덕분에 우리에게도 시민권이 생긴 거고."

"특수한 경우이고 옳지 않은 일이었어. 일반화시키는 건 문제가 있어."

이번에는 마크가 성을 냈다.

"그럼 여길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말해봐. 우리가 무슨 재주로 돈을 벌어 대학게 진학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니까. 한시바찌 이 동네를 빠져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 십 년 뒤쯤 무덤 안에 누워있거나 감옥에 가있게 될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지."

"물론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 하지만 손쉬운 해결책을 바라서는 안 돼. 만약 우리가..."

커너의 목소리가 쑥스러운지 가볍게 떨려나왔다.

"만약, 뭐?"

커너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친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맺었다. 

"만약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 딜러를 한다면 우린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아무리 절박해도 우리가 가진 이상과 가치만큼은 절대로 포기해선 안 돼."

마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서 철책을 힘껏 때렸다. 잠시나마 마약을 팔아서라도 학비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커너가 자책하는 마크의 어깨에 손을 얹어놓았다.

"걱정할 것 없어. 마크. 두고 봐.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올 테니까. 우린 틀림없이 여기서 벗어나게 될 거야. 내가 약속하지."

커너의 말에는 강한 확신이 실려 있었다.  171-173


우리는 마치 호두 같아서, 깨뜨려야 속을 볼 수 있다. - 칼릴 지브란  195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다 보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다 지나간다 -구스타프 클로베르  215



"만약 우리 엄마 대신 죽은 사람이 아저씨 딸이라면 용서할 수 있겠어요?"

"솔직히 나도 자신하지는 못해."

마크가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만 용서를 위해 노력하리라는 점은 자신할 수 있어."

마크가 아이스크림에 장식용으로 얹혀 있던 작은 종이우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 라일라를 쳐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용서이고, 가장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걸 알아."

마크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용서하라는 건 너 자신을 위해서야, 에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에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이미 끝났어요. 저한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가족도, 돈도, 미래도..."

"아니야, 앞으로 네 앞에는 창창한 삶이 남아있어. 결코 미래를 포기해서는 안 돼. 미래를 회피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지는 마."

"그놈은 살인자예요! 반드시 응징해야 해요."

에비가 목 메인 듯한 소리를 질렀다.

그때서야 마크는 처음부터 에비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내 말 잘 들어봐, 에비. 나 네가 그레이그 데이비스라는 사람 말고 정말로 벌주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에비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네가 정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일거야. 그렇지 않니?"

"아니에요!"

에비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펑펑 쏟을 것 같은 눈으로 소리쳣다. 그녀가 미처 충격을 흡수할 틈도 주지 않고 마크의 공세가 이어졌다.

"넌 엄마의 말을 믿지 못했던 네 자신이 미웠어. 엄마가 숨진 것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너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거지. 넌 무엇보다 그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아니에요. 아저씨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시죠?"

입으로는 강하게 부정했지만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이미 진실에 대한 고백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진 마. 처음부터 네 잘못은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마크는 에비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려고 애썼다.

에비의 목소리는 이제 흐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왜 엄마를 믿지 못했을까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테니까."

마크가 소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엄마는 늘 저한테 거짓말만 햇어요. 하지만 그때는 거짓말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다 잘 될 테니까 이젠 잊어버려."

에비는 감정이 북받쳐 마크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껴 울었다. 마크가 가슴 깊이 감추어둔 응어리를 터뜨려버린 것이다.  244-246


"대단히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어요. 평소와 다른 점은 제가 바로 그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겁니다. 막상 저에게 비극이 닥쳤을 때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해준 조언이 정작 제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는 그리 유용하지 않더군요."  249


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거든 어디서 오는지를 기억하라 - 아프리카 속담



"아마 살아오는 동안 아무도 너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도움을 준 적이 없었을 거야. 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해질 필요가 있었고, 불신이라는 방어벽을 높게 쌓아올려야 했겠지."

"그래, 네가 옳았어. 이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한데 나를 가둔 채 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어."  281


눈을 감고 살면 정말 쉽다 - 존 레논



두려움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 믿음, 증오, 심지어 회의까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하지만 삶에 집착하는 한 결코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다 - 조셉 콘래드  284



행복해지려면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든 불행을 피하기 위해 애써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어떻게, 누구로 인해 불행을 극복할 수 있을지 찾아봐야 한다 - 보리스 시룰리크  295



때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대단치 않은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결정, 한 번의 기회, 한 가닥의 가느다란 선...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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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어느 섬을 방문한 한 스페인 선교사가 세 명의 아스텍 사제들과 마주쳤다. 

"당신들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선교사가 물었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기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린 이렇게 기도하지요. 신이시여, 당신은 셋이고 우리도 셋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스텍 사제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선교사는 말했다.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그러나 신께서 귀 기울이시는 바로 그 기도는 아닙니다. 제가 당신들께 훨씬 더 좋은 기도를 가르쳐 드리지요."

선교사는 그들에게 가톨릭의 기도문을 가르쳐주고, 복음 전도를 위한 항해를 계속했다. 수년 후, 그가 탄 배가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섬에 들렀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선교사는 해변에서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세 명의 아스텍 사제들을 보았다. 그들 세 사람은 물 위를 걸어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신부님, 신부님!"

배를 향해 가까이 걸어오던 세 사람 중 하나가 소리쳤다.

"신께서 귀 기울이신다는 그 기도를 다시 가르쳐주십시오. 그게 어떻게 시작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기적적인 장면을 목도한 선교사가 대답했다. "그게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신은 모든 언어를 두루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잘못에 대해.


이 일화는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정한 경이에 둘러싸여 산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기적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신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신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천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신에게 이르고자 한다면 일정한 형식과 규칙들을 따라야만 한다고 가르침 받아온 탓이다. 우리는 신이 도처에 편재한다는 사실을, 신은 우리가 그/그녀를 허락하는 곳이면 어디든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전통적인 종교의식들은 중요하다. 그 의식들을 통해, 우리는 경배와 기도의 체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체험이 구체적인 사랑의 체험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사랑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는 것을, 대인관계를 다룬 책을 읽거나,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위한 전략들을 개발하려 애쓸 수도 있지만, 그런 행동들은 부질없을 뿐이다. 결정은 우리 마음이 하는 것이며,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이 마음의 결정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말한다.

"난 지금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랑 때문에 너무도 괴로워하고 있어."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운 건 아닌가. 우리가 만든 규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괴로운 건 아닌가.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로워하고 있는게 아닌가.

사랑에는 성장의 씨앗이 깃들여 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우리는 영적 체험에 보다 가까워진다. 참으로 깨달은 자, 사랑으로 뜨겁게 데워진 영혼은 모든 편견을 넘어설 수 있다.  11-14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행위이다.

이 책은 자신을 내주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중인물인 필라와 그녀의 친구는, 우리가 우리의 반쪽을 찾아나설 때 만나게 되는 수많은 갈등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우리 내부의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14


수도사 토머스 머튼은 말했다. "사람들은 타인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거나 선행을 베풀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한다면, 그건 그를 단순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기 자신을 대단히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14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21


길은 걸으면서 만드는 것이었다.  22


우리는 우리 내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53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린아이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아이를 성가셔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고 그 아이의 말을 거의 듣지 않음으로써, 그 아이가 겁을 집어 먹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가 사랑받고 있음을 다시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 아이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타인의 눈에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54


현실에서의 사랑은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설사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해 당장 대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언젠가는 원하는 사람을 가질 수 잇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랑을 위하여!"

"때론 사랑이 유치한 짓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는 현명한 사람들을 위하여!"

"현명한 사람은 오직 그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현명한 것!"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  61


사랑은 덫으로 가득하다. 사랑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랑은 오직 밝은 면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그 빛이 만든 그림자는 볼 수 없게 한다.  69


"삶에는, 얻기 이해 끝까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어."


새 신발을 신으면 발이 좀 아픈 법이다.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원치 않을 때, 그리고 필요치 않을 때도, 삶은 우리를 의외의 무언가로 사로잡아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도록 한다.  83


"좌절도 있지요. 누구도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한 싸움에서 뭔가를 잃는 편이, 자신이 뭘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좌절하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요."  93


"너,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연습을 했구나?"

"응, 어떻게 알았니?"

"너도 변했으니까. 사람들은 항상 가장 적잘한 시기에 그 연습을 하게 되거든."  129


'사랑은 결코 조금씩 오지 않아.'  133


"삶의 신비가 나를 사로잡았어. 난 그걸 더 잘 이해하고 싶었어. 누군가. 대답을 알고 있다고 말해줄 그곳을 찾아 헤맸지. 인도도 가보고 이집트도 가봤어. 마법과 명상의 달인들도 만나봤어. 연금술사와 사제들의 곁에서도 머물렀지.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어. 그것은 믿음이 있는 곳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134


"너 추워서 떨고 있구나. 억지로 의식에 참가할 필요는 없어."

"넌 여기 계속 있을 거지?"

"그래. 이게 내 생활인걸."

"그렇다면 나도 같이 있을 거야."

하지만 내심 그곳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게 너의 세계라면 나도 그 일부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어."  159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었다.  171


"<주역>에서 말하길, 도시는 바꿀 수 있어도 샘이 있던 자리는 바꿀 수 없대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곳은 바로 샘 근처죠. 사람들은 그곳에서 갈증을 씻어내고 집을 짓고 아이들을 기르지요. 하지만 그들 중 한 사람이 떠나길 원한다 해도, 샘을 옮겨갈 수는 없어요. 그러니 사랑은 그 자리에 남게 되죠. 버려진 채로 말이죠. 샘에는 여전히 맑은 물이 가득 차 있겠지만요."  182


"하느님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거요. 물론 수천 갈래의 길을 걸을 수 있고, 다양한 종교와 종파를 만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코 하느님과 만날 수 없어요. 하느님은 여기 있소. 바로 이 자리에, 우리 곁에. 우리는 이 안개 속에서도 그를 볼 수 있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에서도 볼 수 있소. 심지어 내 신발에서도 볼 수 있지요. 하느님의 천사들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밤새워 우릴 지켜주고, 우리가 일 할 때면 곁에서 도와줍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이 만남은 쉽지 않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신비에 동참하도록 더 많이 요구하실 수록 우리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지니까요. 신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꿈과 마음을 따르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이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사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걸 따르는 일이 쉽지가 않소. 그러나 결국 우리는 신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놀라움과 함께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니까요."  191-192


"잔이 떨어질 것 같아." 그가 말했다.

"그래, 난 네가 이걸 테이블 아래로 밀어버렸으면 해."

"잔을 깨라고?"

그래. 잔을 깨는 거야. 겉보기엔 간단한 동작이지만, 컵을 깬다는 것은 그 정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가지게 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값싼 유리잔 하나를 깨버리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일상 다반사인 것을. 

"잔을 깬다구? 왜?" 그가 다시 물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냥 깨기 위해서 깨는 거지."  232-233


난 잔을 깼다고 영수증에 깨진 잔 값이 청구됐다는 사람의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 깨진 잔은 삶의 일부일 뿐, 우리에게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아. 식당 주인에게든, 우리 이웃에게든.'  233


'잔을 깨, 제발... 어리석은 편견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다른 모든 살마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달란 말야.' 

"잔을 깨."  234


"사실 전 가진 게 없어요."

"아가씨에겐 아가씨의 삶이 있어요. 기나긴 삶이. 그걸 좀더 잘 간직하도록 해요."  272


"사랑은 그 자리에 있어요. 변하는 것은 사람들이죠!"  276





옮기고나서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길이 끝나는 곳에 답은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말한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288


길을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지 말아야겠다. 그건 그의 노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대신 그와 더불어 떠날 용기를 내야겠다. 머물러 바라보지 말고, 함께 걸어주어야 겠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하기.  29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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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너무 재미있다.
혼자서 한 착각중에 하나가 소설은 재미있기에 소설에 빠지면 다른 책은 읽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소설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한거지 읽어서 남는 것이 별로 없을거라는 착각이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파고 들어가다보니, 분야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후 한참후에나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나의 십진분류에 의해 생각해 보면 문학은 참 뒤쪽에서나 있는 게 문학이었다.

그리고 문학을 읽으면서 정말 사람의 감정과 공감을 일으킨다는 생각과 함께 '이래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 구나'를 알게되었다.
문학은 절대 즐거움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다양함을 배울수 있는 진정한 책이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삶은 한 편의 소설'이라는 말을 알게되고,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서야 느끼는 감정은 '역시 나는 참 에둘러가는 사람이구나!!'이다.
에둘러 가는 사람이기에 다른이들보다는 더 많이 움직여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간극이 벌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련없는 소리는 그만 하기로 하고...

기욤 뮈소는 몇 번쯤 들어봤던 이름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라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여러번 듣기도 하고, 서점에서 저자의 책들이 인기 있다는 것쯤은 알고는 있었지만, 소설가라는 사실로 인해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종이여자는 당연히 이름은 알고 있었다.
표지를 보면서그냥 순정소설이거나 공주풍의 소설이라 여자들이 좋아하는 소설이겠거니.. 그정도였다.
다니다보면 이 책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여러번 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관심을 전혀 갖지 않던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그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인지를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읽은 부분은 맨 뒤에 있는 '옮긴이의 말'과 '감사의 말'이다. 
특히 옮긴이의 말 중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판타지적' 결말을 보여준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꽤나 흥미롭게 마무리가 되나보다 생각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소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 판타지 소설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다만 판타지 영화는 재미있으니 그리고 영화보다 책이 더 재밌다고 하니.. 꽤나 흥미롭게 진행되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릴 삶으로 이끌지 못하는 책이, 
삶에 갈급증이 나게 하지 못하는 책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 헨리 밀러
책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있는 자그마한 삶의 불씨를 찾아내게 되었습니다.(23)' 였다.
정말 그랬다. 여러권의 소설을 읽어 보았으나 참 많이도 감정이 전달되는 책 중의 하나였다.
내 환경에서 나의 현재 가치관에서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 아닐까 한다.
책을 지하철에서 거의 읽었는데, 혼자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읽었다.
지하철을 타면 제일 앞이나 제일 뒤에 타고, 구석에 서서 책을 읽는데, 분명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참 실없게도 보았을 것이다.

톰 보이드
빌리 도넬리(릴리 오스틴)
밀로 롬바르도
캐롤
오로르 발랑꾸르

톰과 밀로 캐롤은 어릴때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톰의 나이는 36세이다. 나머지 둘도 그렇거나 비슷한 또래 일것이다.
올해 나의 나이가 36세이다. 그렇기에 더 재밌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극을 이끌어 가는 4명은 분명 톰과 빌리 밀로 캐롤 이다. 그렇기에 읽는 사람이라면 이 넷 중에 빠져드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였는데, 톰은 같은 나이이기도 하였지만 그의 심리적인 상태와 비슷한 상태를 겪어 보았기에 그러했고, 심리적 불안이 자신의 내면아이가 불안에 떨고 있은것이며 그것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서 공감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 정말 맛는것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책에서도 그런 과정을 겪게되는데, 그러면서 톰은 오로르에게서 받은 상실감과 상처를 빌리를 통해서 치유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참 와 닿았다.
또한 빌리는 사실 연극을 하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책을 읽는 내내 빌리 같은 사람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여성들이 왜 소설같은 사랑을 꿈꾸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혹 이글을 여성분이 보신다면 오해 없으시길...비난하는것은 아님..^^)
빌리 참 매혹적인 사람인듯하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하는 캐릭터 일것이다.
그래서 더 많나보고 싶은 인물이다...
밀로과 캐롤.. 둘은 결국엔 결혼을 하게 된다. 톰과 함께 하는 이 둘은 진정한 우정과 친구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친구는 우리한테 달린 날개가 나는 방법을 잊었을 때 우리를 들어 올려주는 천사 같은 존재다. -무명' (106)
'정말로 진정한 친구는 새벽 4시에도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이다. -마를레네 디트리히' (454)
이 표현들처럼 그들 3명의 우정은 참 깊었다. 그들의 연결고리들이 더 끈끈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긴 하였지만, 그들은 그러한 연결고리가 없었더라도 끈끈함을 유지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깥 세상에 희망이 사라졌기에 내면의 세계가 내게 두 배로 소중해진다. - 에밀리 브론테  47

밀로 : 넌 내게 누누이 말해왔어. 글을 쓰기 때문에 삶의 균형을 잡고 정신 건강을 유지해 갈 수 있다고.
톰 : 그땐 내가 잘못 생각한 거야. 지금 내 마음이 미칠 것 같은 건 글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야.  
밀로 : 지금 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랑 때문에 파멸을 자초하고 있어. 그걸 알기나 해?
톰 : 넌 정말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밀로 : 사랑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야. 다만 네가 소울메이트라는 황당 무계한 사라이이론에 매달려 있는 게 잘못됐다는 거야. 마치 이 세상에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도록 운명 지워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듯이."  56

마르크 샤갈... <푸른 배경의 연인들> 샤갈의 1914년 작품...
이 그림은 내게 출격 자체였다. 상처 받은 두 영혼, 서로 단단히 꿰매져 상처 마저도 하나가 된 연인들,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69

빌리 : 그냥 떨어졌어요..
횡설수설 지껄이는 말들을 단 한 마디도 이해 못한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76

세상이 당신에게 선물로 주진 않는다, 내가 장담한다. 삶을 원한다면, 도둑질하라. - 루 안드레아 살로메  83

주인공들에 대한 정보는... 내 '영웅들'과 완벽한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나는 등장인물마다 약 20페이지에 이르는 상세한 인물정보 파일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생년월일부터 좋아하는 노래, 유치원 시절 선생님 이름까지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파일에 저장해두고자 했다. 막상 출간된 소설에는 내가 준비한 인물정보에서 사분의 일 정도만 나올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물밑 작업이 있기에 글쓰기라는 연금술이 가능한 것이리라.  100



자기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는 것만큼 쉬운 게 없긴 하지.  156

톰 :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만족스런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소설을 읽거든요.
빌리 : 당신은 스토리를 만들고, 감정과 고통의 느낌을 묘사하는 것에는 뛰어난 사람일지 몰라요. 하지만 삶의 소금이 되는 '깊은 맛'을 그릴 줄은 몰라요.  199

달팽이처럼 느리긴 해도 차는 차곡차곡 주행거리를 쌓아갔다. 산이그나치오를 지나 왔는데도 우리가 탄 요구르트 병은 끄덕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좋았다.  202

: 그래요, 오로르는 교양미와 지성미를 풍기는 여자죠.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하품 나오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난 시장 바닥 같은 데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위협하고, 총질하고,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동네에서 자랐어요. 내 주변에 TV가이드 말고는 책이라곤 없었죠. 쇼팽이니 베토벤이니 하는 이름은 전혀 다른 세상 얘기였어요.  섹스, 마약, 랩, 문신, 인조 손톱 따위의 허접한 소리만 듣고 자란 놈이 쇼펜아우어나 모차르트 이야기를 밥 먹듯이 꺼내는 파리지엔을 사귀니까 황홀할 수밖에요.  204

빌리 : 진지하게 얘기하지만 가끔씩 고삐 좀 늦추고 살아요. 걱정도 조금씩만 해요.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삶이 당신에게 주는 선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208

중요한 건 우리가 날리는 펀치가 아니라 우리를 향해 날아드는 펀치, 우리가 이겨내고 앞으로 나가는데 밑거름이 되는 펀치이다.  랜디포시  216

톰 : 사생활은 소중한 거예요. 당신이 살아오는 동안 책 한 권 펼쳐본 적 없는 여자란 건 잘 알지만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솔제니친이 쓴 책을 한 번 읽어봐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225

빌리 : 더러 시작하긴 쉬워도 끝을 잘 맺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는 일들이 있는 법이에요.  234

친구들과의 재회에 마음이 훈훈해진 나는 막연하게나마 상황이 호전되리라는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238

열정은 마약 가은 것이다. 파멸을 부른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그 감정의 굴레에 한번 빠져들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  255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256

톰 :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서로의 차이점을 자양분 삼아 두 사람이 함께 삶을 일구어 가는 것.  260

오로르 : 사랑을 얻으려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는 걸, 모두 다 잃을 수도 잇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걸 나도 알아. 그런데 나는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았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261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탕에 고독이 있다.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고 동류를 찾는 유일한 생명체다. -옥타비오 파스  262

밀로 : 산책할 거라면 나한테 함께 가자고 하지 그랬어?
캐롤 : 혼자 있고 싶었어. 넌 그런 눈치도 없니?
밀로 : 다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마당이야. 혼자인 것만큼 괴로운 게 세상에 어디 있다고.
캐롤 : 신경 꺼....  264

사랑은 손에 든 수은 같다. 손을 펴면 손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손을 오므리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도로시 파커  268



톰 : ... 작가는 일의 절반만 할 뿐이야.
밀로 : 그럼 나머지 절반은 누가 하는데?
톰 : 독자들이 하지. 볼테르가 1764년에 쓴 글인데 한 번 읽어봐.
밀로 : '독자들이 절반을 만든 책이 가장 쓸모 있는 책이다.'
톰 : ... 책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거야. 머릿속에 이미지들을 그리면서 주인공들이 살아갈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게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가 바로 독자들이야.
... 독자가 자기 방식으로 책을 해석해 내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하지만 그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어.  

나는 그런 생각을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책이란 건 독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 왔다. 나 역시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그 책에 흠뻑 빠져 혼자만의 상상의 세계를 수만 가지 가정을 하고,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를 앞질러가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쓰곤 했다. 독자들의 상상력이야말로 인쇄된 활자들을 뛰어넘어, 텍스트를 초월해 이야기에 온전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나는 밑줄을 그어놓은 페이지를 펼쳐 밀로에게 보여주었다.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맺는 일종의 이타적 협정이다. 상대방을 믿고, 상대방에게 의지하겠다는.'  314-316

밤에 나는 추위를 느껴 잠에서 깼다. 그리고 그에게 담요를 한 장 더 덮어주었다. -로맹 가리  319

진정한 용기는 상처투성이로 출발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거란다. -하퍼 리  387

빌리가 곁에 없을 앞일은 생각하지 말자. 현재에 충실하자.... 나는 그녀와의 추억거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며 가슴이 저릿해졌다.  388-389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도둑맞는 시간이다. 지하철 안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도서관인 것은 분명 그 때문이다. -프랑수아즈 사강  419

그는 머릿속에 셰익스피어의 문구를 떠올리려 애썼다.
돈은 추한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 늙은 사람을 젊게 만들고, 부당한 것을 정당하게 만들고, 추악한 것을 고결하게 만든다 했지 아마....
돈으로 살수 없는게 어디 있던가요?
인간이란 유혹에 약하고 부패하기 쉬운 존재지..  428
(결국 케루악서점 주인인 케네스 앤드류스는 캐롤에게 6000달러에 팔기로 확실하게 구두약속을 한 후에 억만장자 올레크 모르도로프에게 인쇄불량 양장본 을 넘겨버리고 가게문을 닫아버린다. 결국은 그로인해 캐롤과 밀로는 돈을 아끼고 책을 1달러에 구한다.)

빌리는 왔던 때와 다름없이 내 인생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간 총알처럼...  453

겉으로 보기에는 순탄하게 사는 듯 보였지만 빌리가 떠난 후 내 속은 하루하루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가슴 깊숙이 남기고 떠난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속수무책으로 끌어안고 살았다... 무력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투어' 사인회 일정을 잡고 몇 달에 걸쳐 전국 방방곳곳을 누볐다. 다시 세상과 만나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톡톡한 치료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호자 남겨지기 무섭게 빌리와의 추억이 고통스럽게 되살아나 견딜 수 없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의 마법 같은 순간, 불꽃 튀듯이 오간 설전들, 우리 둘 만의 내밀한 사랑의 의식이 잉태되던 순간....  455

밀로 : ... 우리 셋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약해지면 나머지 둘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야. 우리가 지금 이렇게 건재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야...  466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아직 사랑을 가꾸어가는 행운아들 그리고 언젠가 그런 사랑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리라.  474


감사의 말
<종이 여자>는 제 소설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물론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문학 창작, 독서에 대한 생각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삶은 한 편의 소설이죠..

옮긴이의 말
'사랑스럽다'
지금까지 나온 기욤 뮈소의 소설들이 굵직한 '테마' 중심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그의 글쓰기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 쪽으로 살짝 무게 중심이 옮겨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인 40년대 미국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느낌을 강하게 살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한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판타지적' 결말을 보여준다.
글쓰기와 문학 창작, 독서에 대한 평소의 철학을 이번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밝히면서 그는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독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종이 여자>를 통해 '삶은 한 편의 소설' 이라는 진리를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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