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루카스 요더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와준 아내, 그러면서도 전혀 짜증이나 불만의 기색을 안 비치던 아내였다.  19


책이 세상에 나왔다가는 곧 날개 찢긴 새처럼 퍼덕거리다가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더욱이 네 번씩이나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다니! 정말 불운한 세월이었다.  60


요즈음 책은 출판되기도 전에 성공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북 클럽, 영화, 텔레비전 연속극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책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들이다.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만큼 공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역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좋-지-않-다-.  61


사실 글을 쓸 때나 쓴 글을 수정할 때면 온 신경과 힘을 다써야..  126


6월의 한 주가 몽땅 아무 한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리자 나는 <돌담>을 수정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데 과연 교정쇄나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나는 이용 가능한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열심히 작업은 계속했으며, 이따금씩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내 손놀림을 보고는 내 스스로 감탄까지 하곤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권태롭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이번이 내 소설을 완벽에 가깝도록 고칠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때는 글쓰는 일이 마치 무슨 지고한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 웃기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정말 글쓰기란 고된 노동인 것이다.  153


나는 엠마에게 원고가 인쇄기로 들어가 책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작가는 다 처음 글을 쓸 때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고 일러주었다.  168






편집자 이본 마멜


문학 박사인 파인슈라이버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떠나던 그 슬픈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자네의 가슴과 정신에 이 거대 도시가 무료로 제공하는 풍성함을 받아들이게. 그러면 결국에 가선 자네가 우리 모두들보다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셈이 될걸세."  180


나는 인파 한가운데 멈춰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식의 삶에 묻혀 버릴 순 없어. 책의 세계, 사상의 세계가 있잖아.."  181


"영화와 책 둘다 중요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위대한 창작의 비밀을 파헤치려면 음악과 그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겁니다."

"인생이 길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 많은 걸..."

"인간 노력의 최고 진수를 탐구하는 것. 그것 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창조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라고 설파한 것은 참다우면서도 온당한 인물의 창조였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창조란 온갖 역경 속에서 그 인물이 겪게 되는 정신적 변호를 여실하게 그림으로써 당성된다고 그는 믿었다. "소설은 곧 성장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는 몇 번이고 이 말을 강조하였다.  203


"전 소설이 진정 무엇인지 어렵게 어렵게 배웠어요. 조김스럽게 선택된 약6만 개 정도의 단어들. 그것들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종이 위에 옮겨 놓지 못한다면 소설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요."  262


나의 두 남자, 래트너와 요더 씨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때면 요더 씨는 칼럼니스트들이 말하듯 [출판계에 부를 모아다 주는 작가]이며 가장 확실하게 성공을 보장해 주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가 쓰는 소설들에서 지적인 만족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의 그렌즐러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유제품 제조 판매소>에 대한 그의 구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따분만 것이었다. 똑같은 공식에 똑같은 인물들, 펜실베이니아 독일인들에 관한 매력적이긴 하나 똑같은 내용들, 그리고 거의 변함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방언들의 흩뿌림. 그런 소설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해서 그 소설이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그것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에반 케이터 교수와 베노래트너가 설파한 소설에 대한 이념들이었다. 그들은 소설을 어떤 폭발적인 것, 즉 경이로움과 장엄한 계시적 광경으로 가득 차 있고, 평범한 행위에 대한 시적인 해석과 기묘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산문적 설명이 꽉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베노가 꿈꾸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소설이 지닌 무한한 지평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생경한 이념들로 불꽅이 일 듯 활기에 넘치고, 수많은 도전으로 폭풍이 일 듯 힘이 넘치는 소설. 내가 이제 소설에서 구하는 것은 그렌즐러 지역에 관한 또 하나의 산문시가 아니라, 나 같은 지각 있는 사람이 어떻게 베노 래트너와 같이 자기 파괴적인 사람과 살면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할 수 있는지, 아무에게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묘한 삶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같은 내 의식의 놀라운 전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릴르 지키세요. 루카스. 경이로운 친구여. 날카로운 칼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신뢰할 만한 그대.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사람. 선한 일만 할 당신. 그러나 래트너, 당신이 옳았어요. 채겡 관한 모든 토론에서 당신은 항상 옳았어요. 당신은 우리들이 꿈도 꿔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은 거예요. 당신은 꿈은 꿨지만 그 꿈을 6만 개의 잘 꾸며진 단어들로 전환 시키지 못했어요.  274-276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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