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미래의 정부를 말하다

저자
노암 촘스키 지음
출판사
모색 | 2006-02-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사적 권력과 사적 제국들이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 진정한 국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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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좀 난해한 면이 있다는것이 첫 느낌이었다. 


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로 언어학자인 저자는 분야 뿐 아니라 철학 인지학 심리학등의 학문적연구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전반적인 통찰력을 보여 주는 석학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국가론에 대한 고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국가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다.

선진 산업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려 하면서 4가지 입장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그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구상은 기본적으로 올바르며 고전적 자유주의를 선진 산업사회라는 현 시대에 맞게 적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확장한 개념이다.
그에 반해서 국가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는 퇴행적이고 매우 부적절한 사회이론이라 주장한다.

이 4가지 입장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그는 책에서 여러 철학자들과 좌파 우파들 그리고 학자들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서술하는데 '결론 자체보다는 추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거기에 더해 
부록에서는 '부시행정부의 제국주의 거대전략' 2003년 10/11월호 [보스턴리뷰(Boston Review)]의 기고글과
'선진교수, 노암촘스키에게 묻다' 2003년 2월 11일 [뉴욕타임즈 매거진] 인터뷰글
'세계 최고의 대중적 지식인, 촘스키와 우리의 선택' [Profit ower People(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출간당시의 로버트 맥체스니가 작성한 서문을 싣고 있다. 
이 내용에서 그는 반복되는 내용들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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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자유주의는 최소한의 국가 개입을 제외한 모든 개입에 반대하는 것을 주된 사상으로 주장한다....결론 자체보다 추론이 훨씬 더 중요하다. 
훔볼트의 [국가행위의 한계]에서 국가는 '인간을 국가의 자의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으면서 인간 개인의 목적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은 그 본질상 자유롭고 탐색적이며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조재이기 때문에 결국 국가는 대단히 반인간적인 제도라는 결론이 나온다.  10
만약 어떤 사람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즉 자기의 관심과 에너지와 힘으로 일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요구나 지시에 반응할 뿐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존경할지 모르나 그 사람의 인격은 경멸한다.'  13
훔볼트는 만약 자유가 자유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까지도 생각할 수 없도록 사회의 토대를 파괴한다면 사회생활에 대한 국가 개입은 정당하다는 데 동의한다.  19
고립된 인간은 속박 당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20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무능력은 도덕적·지적 힘의 결핍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  42


신자유주의는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를 정의해 주는 패러다임이다. 정확하게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이익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분야에서 사회르 ㄹ지배하도록 허용한 정책과 조치를 가리킨다.  97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힘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경격적인 시대를 대표하는 이념이다.  99
신자유주의는 시장 경제를 반대하는 세력을 억누르면서, 단순한 경제시스템을 넘어 정치와 문화까지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하고, 정치적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정부다.  100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들어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즁요하면서도 필연적인 부산물 즉, 탈정치화된 국민들의 무관심과 냉소를 낳게 된다.  101
신자유주의 선거의 선택과 토론의 질은 여러 면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일당독재이던 공산주의 국가에 더욱 비슷하다.  102
신자유주의는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를 만들어내며, 공동체가 아니라 쇼핑센터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 결과로, 기가 꺾이고 사회적인 무력감을 호소하며 뿔뿔이 흩어진 개인만이 존재하는 원자사회가 남게 된다.  103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절대적인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104
촘스키는 자유시장이라는 신화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시장은 결코 공정한 경쟁터가 아니다.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지닌 거대기업이 대부분의 경제를 지배한다.  105
신자유주의 이념에 도취된 기업도 정부만큼이나 위선적이다.  106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야말로 촘스키 정치사상의 뿌리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낙관주의에서 출발해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 다양성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정치형태를 모색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이다.  114

촘스키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정치사상가이며, 주류 정치권과 대기업 집단, 매스미디와 교육을 장악한 인텔리 전문가들의 선전공세를 벗어나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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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허만과 나는『여론의 조작 Manufacturing Consent』이라는 언론 관계 책자를 공저했는데, 이 책에서 "프로파간다 모델Propaganda Model"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설명했습니다. 이 모델을 적용해보면, 언론 기관은 그들의 이익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으로서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할 거니까. 그래서 프로파간다 모델이 언론의 형태를 분석하는 유익한 도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뭐 그리 심오한 도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론의 조작』에서 우리는 두 개의 모델(① 언론이 마땅히 기능해야 하는 방식, ② 언론이 실제로 기능하는 방식)을 대비시켰습니다. ①의 모델은 전통적인 것입니다. 이것은『뉴욕 타임스』가 최근에 자사 발행의 『북 리뷰』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제퍼슨식 언론의 역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정치 과정에서 일반 대중이 의미 있는 통제를 가하도록 돕기 위하여, 까다롭고, 고집 세고, 어디에서나 출현하는 언론, 그리하여 당국의 권력자들을 괴롭히는 그런 언론이 바로 ①의 모델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 내의 표준적인 언론 모델이고 언론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②의 모델은 언론이 실제 행동하는 방식으로서, 국내의 경제를 장악하고 나아가 정부까지 상당 부분 통제하고 있는 특혜 그룹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보호하고 확충하는 세계관을 대변하는 언론입니다. ②의 모델에 따르면, 언론은 기사를 선정하는 방식, 관심사를 분배하는 방식, 문제의 틀을 정하는 방식, 정보를 여과하는 방식, 분석기사를 집중하는 방식, 그 밖의 다양한 테크닉을 통하여 그들의 사회적 목적에 봉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어느 때든 국가 정책에 일방적으로 동의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 권력의 장악은 우리 사회 내의 다양한 엘리트 그룹들 내에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계의 어떤 부분이 어떤 특정 기간에 정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 스펙트럼의 한 부분이 그런 힘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엘리트들끼리도 전략적 의견 불일치가 때때로 생겨날 수 있습니다. "프로파간다 모델"은 이렇게 예측합니다. 언론에는 정치 스펙트럼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반영된다. 따라서 언론에 의해서 포섭되지 않는 정치 스펙트럼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고요? 물론 이것은 거대하면서도 복잡한 주제입니다. 우선 네 개의 기본적 관찰 사항을 얘기하고 그 다음에 좀더 자세히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첫 번째 사항은 프로파간다 모델이 엘리트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서방의 엘리트 민주 사상가들 사이에는 그런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이 사상가들은 언론과 지식인 계급이 프로파간다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대중의 정신the public mind"을 통제함으로써 일반 대중을 주변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겁니다. 이 사상은 300년 동안 영미 민주사상의 핵심 주제였고 현재까지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사상의 근원을 소급해 보면 서구의 최초 민중민주 혁명이었던 1640년대의 영국 내전(1642~1648년 동안 영국의 정권 장악을 놓고 왕당파와 의회파가 벌인 무력 충돌)까지 올라갑니다.

 

당시의 영국 내전에는 두 파의 엘리트가 참여했습니다. 한 파는 의회의 편을 든 지주 계층과 신흥 상인 계층이었고, 다른 한 파는 전통적인 엘리트 그룹인 왕당파였습니다. 이 두 파는 엘리트 갈등의 맥락에서 발달한 대중들의 움직임을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모든 권위-주종 관계, 국가 당국자의 권위 등-에 도전하는 민중운동이 생겨났던 겁니다. 그 당시 인쇄기가 막 발명되었기 때문에 과격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영국 내전의 양쪽 엘리트들은 일반 대중이 갑자기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굉장히 우려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반 대중은 너무 호기심이 많고 너무 거만하여 민간 통치에 승복하려는 겸손한 마음이 조금도 없다." 이처럼 왕당파와 의회파는 일반 민중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능력을 상실해갔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힘으로 찍어누르는 능력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당분간 철권통치하는 절대국가가 들어섰습니다. 그런 다음에 왕정이 다시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정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지는 못했고 정권을 완전 장악하지도 못했습니다. 민중 운동이 치열하게 투쟁했던 목표들이 상당수 영국의 정치적 민주주의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후 민중운동은 기존의 권력을 어느 정도 해체하는 데 성공해 왔습니다. 그러자 서방의 엘리트들 사이에는 이런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무력으로 국민을 통제할 힘이 점점 사라져간다면, 대안으로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하겠다. 이러한 인식은 미국으로 건너와서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와 미국 사상에는 이런 주요한 흐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치학자, 언론인, 홍보 전문가 등 권력가 밀착된 사람들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사상은 국가가 힘으로 국민을 강제할 능력이 없으니까, 엘리트가 앞장서서 공공의 마음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를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 언론계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의 생각입니다. 그는 일반 대중을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무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리프먼은 이 대중들 사이에 "합의의 조성manufacture of consent"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더 쉽게 말하자면 여론조작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무력으로 안 되니까 계산된 "합의의 조성"으로 통제를 계속해나가자는 것이었지요.

 

1920년대 당시 홍보산업의 주요 교범은 아예 제목이『프로파간다』였습니다(그 당시 사람들은 좀더 정직했었지요). 이 교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대중의 습관과 의견을 의식적이고도 조직적으로 조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 체제의 핵심 특징이다. 그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어 교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소수 지식인들intelligent minorities"의 임무는 대중의 습관과 의견을 이런 식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으뜸 원칙인 겁니다. 다시 말해 힘으로 사람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면 세뇌indoctrination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프로파간다 모델의 첫 번째 사항입니다. 이것은 엘리트들의 지적 전통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아온 사상입니다.

 

두 번째 사항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프로파간다 모델은 일종의 사전 개연성prior plausibility을 갖고 있습니다. 언론의 구조를 살펴보면 대기업 언론사들은 미국 사회처럼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의 프로파간다 기능에 복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사항은 일반 대중이 프로파간다 모델의 기본 특징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것과는 다르게,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은 언론이 권력에 너무 순종적이고 복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론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아무튼 일반 대중은 언론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중략)

 

자, 다시 세 가지 초기 관찰 사항으로 돌아갑시다. 네 번째 관찰 사항은 프로파간다 모델의 경험적 타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사태의 핵심이지요. 프로파간다 모델이 기술하는 사항은 정확한가? 다시 말해 언론은 "전통적 제퍼슨 식 역할(민중의 등불)"을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프로파간다 모델"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흡족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조사를 많이 해야 하고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섭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방법의 윤곽만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여론의 조작』에서 프로파간다 모델을 검사한 첫 번째 방식은 그 모델을 가장 엄격한 테스트에 회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반대파들에게 그들이 검사받을 대상을 직접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비판가들이 언제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자기 주장에 유리한 사례만을 뽑았군." 그래서 반대파들에게 검사 대상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의 반정부적 자세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례들, 그들이 그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뽑아낸 사례들-가령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기타 등등-을 검사 대상으로 삼아서 그들이 프로파간다 모델을 따르는지 아닌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맨 먼저 이런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우리는 반대파에게 검사 대상을 선택하도록 시켰고 그래서 우리가 엉뚱한 사례를 집어들어 우리의 주장을 증명하려 한다는 시비를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검사한 결과, 여전히 프로파간다 모델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행한 또 다른 조사 방식은 언론에 실린 의견들의 범위를 문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 표현 가능한 생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살펴보려는 거였지요.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면밀히 살폈습니다. 우리는 서로 유사하여 짝을 이루는 듯한 사례를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 조사했습니다. 물론 역사는 조사연구자들 좋으라고 통제 가능한 실험 사항들을 일부러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비슷해 보이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습니다. 언론이 그 두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적성국가들이 저지르는 잔학행위와 비슷한 규모로 미국이 저지른 잔학행위를 언론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적성국과 우방국의 선거 결과나 자유의 문제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조사한 토픽들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해낼 수 있는 여러 방법론적 관점들로부터 많은 사례들을 연구했습니다. 우리의 연구는 프로파간다 모델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장을 확인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책자나 논문들도 수천 건에 달합니다. 그래서 나는 프로파간다 모델이 사회과학에서 가장 잘 입증된 명제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이 명제에 반대하는 의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류 문화는 이런 사실("언론은 프로파간다 모델을 따른다")에 대하여 오불관언("나하고는 관계없음")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가 사회과학 분야에서 아주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류 문화는 그들과 무관한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연과학 수준에서 증명해도 주류 기관들은 여전히 배척할 겁니다. 왜 이렇게 배척하는가 하면 프로파간다 모델이 옳은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아무리 잘 증명되어도 엘리트 문화 내에서는 이해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지요, 이 모델이 밝혀내는 바가 아주 효율적이고 유익한 이데올로기적 제도를 뒤흔들기 때문이지요. 그런 제도에 역기능을 하니까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데 답하다 1」中 프로파간다 모델의 시험 50-57p, -

*1989년 4월 15-16일, 메사추세츠 주 로우에서 열린 주말 공개 토론회를 바탕으로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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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의 힘에 대해서 

행인과 일월산(이하 존칭 생략), 두분의 대화를 오늘 비로소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는 대화입니다. 특히 일월산에게 구체적 해법에 대해서 추궁하는 것은 '일월산이 제대로 임자 만났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두분이서 서로 내용을 채워가는 좋은 대화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행인의 마지막 글 [프로파간다가 세상을 변혁하나?]를 읽고 문득 드리고 싶은 말이 두가지 정도가 있어서 글을 씁니다. 그 두가지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식권력, 2) 구체성의 정체...이런 두가지입니다. 

1) 지식권력 없이는 변혁은 불가능하다
먼저 행인의 질문 [프로파간다가 세상을 변혁하나?]에 대해서 저는 아주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와 그렇지 못한 프로파간다가 있다"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이것은 모든 정치투쟁의 필수요소입니다. 저는 이것을 군사력과 맞먹는 또는 더한층 질기고 지속적인 권력으로 규정합니다. 저는 이것을 <지식권력>이라고 부릅니다. 토마스쿤의 패러다임이나 맑시즘 계열의 이데올로기 또는 주체화 양식 또는 담론권력 등등, 뭐라고 불러도 저에겐 동일한 하나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입니다(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은 원래 물질과학에 대한 것이지만 저는 그것을 계급담론의 인식투쟁에도 적용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입니다. 그것은 기본의 지배이데올로기가 훈육시키고 세뇌시킨 <주체화의 양식>을 거부하게 하고, 새로운 또다른 대안적인 주체화로 시민들을 이끌어 들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패러다임이다'라는 프로파간다>가 등장했따는 사실 자체가 어딘가 기존 주체화양식이 자기모순에 봉착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존 지식권력의 주체화양식의 모순을 헤집고 들어간다는 게 맞겠습니다. 예를 들면, 상식-원칙-합리를 표방한 '진보개혁 신주류'가 <국익, 국가이성, 민족평화,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전쟁반대 파병찬성>같은 자가당착을 저지른다거나, 평화와 휴머니즘 교육으로 철저하게 강조해 왔던 그간의 미국교육계가 이번 자국 정부의 전쟁광기와 학살로 곤욕스러워 하는 것이라든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평등을 떠들던 구 사회주의 사회가 실제로는 퇴화된 국가노예제가 되어버리는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이처럼 한 사회의 기본적인 생활관계가 질곡을 드러내면, 지배적인 지식권력의 주체화양식의 자기모순과 균열을 치고 들어가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세우는 가지각색의 지식권력'들'이 출현합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정치세력들의 군웅할거처럼 지식권력들 역시 자신들의 부족적 진리와 진영 멘탈리티를 '선험화하고 보편화하려는' 투쟁에 돌입합니다. 지식권력이 되고자 하는 이런 다양한 시도들 가운데 오직 극소수만이 유능하고 실력있으며 세력있는 부족원들을 규합해 냅니다.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그러한 대안적인 지식권력들이었습니다. 지식권력으로의 정립을 위한 여러가지 선전선동 및 의식화과정 자체가 새로운 주체화양식의 작동이지만, 그 실내용은 그리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지배적 지식권력에 세뇌되고 훈육된 대부분의 노예들-쁘띠들의 지적 수준은 대단히 빈약합니다. 왜냐면 부르조아는 결코 이들이 피착취 대상물질에 적당히 머물 정도로만 교육시키지, 진짜 부르조아 지식권력의 핵심인 반동적 유물론-이기적 실용주의를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르조아들은 이들 쁘띠들을 <바른생활>하는 도덕적 관념론자들로 사육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권력투쟁들은 태반이 이미지-상징조작의 심리전에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쁘띠들은 정확하게 리얼리티를 보지 못하며, 이미지-상징으로 조작된 <사연들의 세계> 속에서 흥청망청대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행인이 잘 이해했으면 합니다. 프로파간다의 대상층의 특징 말입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인식심리 상의 특징을 지닙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이미 쓴 글들 '불공정'이란 키워드로 내용검색바랍니다)

1) 인식할당을 불공정하게 합니다
2) 좌파상식에 대한 전이해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3) 잇슈들의 신분차별에 젖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가 되려면 지배적 지식권력의 주체화 양식 하에서 철저하게 쁘띠들의 골수에 새겨진 이 3가지 인식심리를 돌파해야 합니다. 어떻게?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 구체성의 정체
행인이 일월산에게 집요하게 요구하는 '구체적 해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구체적 해법의 난점이 나타납니다. 말 그대로 구체적 해법이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합니다. 여기서의 전문성은 교수나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라, <해당 문제의 해결을 마련키 위해 철두철미하게 전념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모든 분야에 전문적일 수 없다>는 난점과 충돌합니다. 왜 이게 <프로파간다>에 큰 장애가 되느냐하면 이렇습니다.

<구체적 해법을 제시못하면 주디질 고마해라>가 행인의 주장이라면 그것은 <전문적이지 않다면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가 됩니다. 구체적 해법이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당 문제의 전문성을 갖춘 자들만이 주디질할 수 있고, 나머지는 걍~ 관련 사연들이나 읊조려라고 한다면, 이것 속에는 <거대서사는 무용하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프로파간다는 무용하다>라는 이론적 허무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는 이미 아나키와 오늘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론적 허무주의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나무에 대한 집중과 함께 숲을 보는 통찰력 또한 필요합니다. 길을 가는 자들이 지도나 나침반없이 어떻게 여행을 하겠습니까? <전문성에 대한 강조>가 <거대서사에 대한 일방적 부정>으로 이어진다면 이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적대관계가 빚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그간 상대적으로 빈약한 구체적 해법의 절대부족이라는 작금의 문제를 무시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구체적 해법>이 할 수 없는 역할, 즉 전략적 지도map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 추상적 거대서사> 역시 지식권력 형성에 중요합니다. 특히 지식권력은 쁘띠들 가운데서 선진적인 의식층들의 이탈로부터 형성됩니다. 이들 선진적인 의식층들의 특징은 <새로운 통찰과 안목의 요청>입니다. 이것이 이미지-상징조작에 세뇌된 대부분의 하수 쁘띠들과 다른 선진적인 의식층들의 특징입니다.

게다가 띠리한 이들 하수 쁘띠들은 <구체적 해법> 그자체에도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식할당의 불공정, 좌파상식 전이해 결여, 잇슈의 신분차별>에 푹 젖어서 살기 때문에 백날 설득해 보았자 이해를 못합니다. 헛수고 입니다. 오히려 이들 쁘띠 하수들에게 유효한 지식권력 프로파간다 방식은 행인이 말한 <구체적 해법의 실천 사업-제도화>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이해됩니까? <구체적 해법의 프로파간다>는 무용지물이며, 오로지 <구체적 해법의 사업-제도화>만이 하수 쁘띠들에게 먹힌다는 점입니다.

즉, 인터넷 상에서의 담론교환행위 자체가 일정 이상의 쁘띠 선진층들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구체적 해법>의 토론과 축적이 사실상 넷 좌파의 지식권력에 별반 관심도 관련도 없는 하수 쁘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묘한 어긋남이 있습니다. 지들을 위해 애를 쓰는 자들에게 정작 일반 쁘띠 하수들은 무관심하게 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배적 지식권력의 주체화에 세뇌된 쁘띠들의 오늘 현실입니다. 이렇습니다. <구체적 해법의 축적>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저는 그렇기에 <불온이스크라>가 일상에 숨겨진 정치의 발견이자, 초국적 금융자본 단계의 노동계급형성을 위한 새로운 거대서사의 제조창이자 그것이 다성적이고 다양한 미시적 구체적인 해법들의 집적소이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관계의 정치>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좌파적 모든 대안의 철학은 <관계가 건강해지면 (그 관계의 총체인) 개인도 건강해진다>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자칫 <구체적 해법과 전문성 강조>가 근시안적인 축소로 인해서 누락시키기 쉬운 <관계의 정치>를 <일반적 추상적 거대서사>가 튼실하게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이해 되시지요? 자본주의는 고립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립조차도) 관계의 그물망입니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 그러므로 자칫 <구체적 해법>은 자기가 다루는 분야의 사안에만 집중한 나머지, 해당 사안이 전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관계의 걉과 폭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좌파의 정치가 <관계의 정치>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구체적 해법>과 <관계의 전략적 통찰>, 이 양자가 둘 다 소중합니다. 특히나 변모된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세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전략들 그리고 해법들의 조속한 성장과 축적이 절실합니다. 두분 사이의 좋은 대화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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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전 될 때 민주주의(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노학자의 열정이 그의 모든 글에서 느껴진다.  4
촘스키는 미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미국은 범죄국가'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촘스키적 분석 방법을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어야 한다.  6

프롤로그
그는 도사(導師)도 아니고 철인(哲人)도 아니며 정치 투사도 아니다. 우리에게 생각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지식인이다. 
그가 전하는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11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 하라는 것이다.
"누구라도 내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정치계와 사회집단이 우리에게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만의 생각만이 필요합니다."
노암 촘스키의 책들은 미국의 정치 상황을 명쾌하고 정밀하게 분석하기도 하지만, 서구 민주주의에서의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2
누군가에게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그것이 곧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16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 년전부터 그랬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22
사회가 자유로워 질수록 무력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25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합니다.  28
선생님은 '지식인'을 어떤 사람이라 정의 하십니까?  마음가짐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지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 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저명한 지식인이 곧 진정한 지식인이라 말할 수 는 없습니다. '테크노크라트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에 분란의 씨앗을 뿌리는 무책임한 지식인도 있기 때문.  31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37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46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신자유주의 라는 이름 아래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입니다.  59
정교하게 꾸며진 전략의 결실이 바로 여론 조작입니다.  67
개똥철학 즉 사람드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지배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으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68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71

자본주의는 없다.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87
사람은 현지 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없지만, 유기적 존재인 기업은 그런 권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89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90
우리는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기적 결과가 무시되어 정책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습니다.  96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회계상의 이동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자나라들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기업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 입니다.  111
미국을 대표하는 제약기업 중 두 회사, 릴리와 스미스클라인이 주의사항을 제대로 기재하지 안은 약품들을 유통시켜 8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기소당했습니다. 이때 두 회사는 80명을 죽인 대가로 겨우 8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길거리에서 80명을 죽였다면 곧바로 사형실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113
법이 존재하고 사법권이 운영되지만, 권력자에게는 커다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115
여론의 압력이 더해질 때는 어떤 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117
여론이 잠에서 깨어나 압력을 가하면 모든 것이 별할수 있습니다.  119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121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연방최고법원이 기업에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 기업이 법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125
그후로 기업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식 그 권리를 확대시켜 나갔다.  126
각 정부는 모든 협상을 비밀리에 진행합니다. 국민이 반대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27
기업계는 이제 국가 정책까지도 당당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에게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지배하고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130
문제는 세계화 입니다.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점을 지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입니다.  133
시장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계화는 미국식 모델을 전 지구에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화의 목표이고 결론입니다.  135
세계화 자체는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계화는 민간 기업과 국가가 쌍둥이처럼 밀착해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135
경제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직접 소유한 부의 크기입니다.  136
1991년 부터 1998년까지 상위 0.5%는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상위 10%에 속한 국민도 요령껏 재미를 보았지만, 다음 10%에 속한 국민 중 80~90%는 수입과 자산이 1998년까지 실질가치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몰론 그 아래 단계의 국민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137
국민이 지배계급의 독선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화된 힘으로 그 문제를 주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143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미국에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거의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입니다.  149
군부가 이처럼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는?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155
정부는 야만적인 무력의 사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도 국민의 정신 통제까지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더욱 교묘한 방법이 사용됩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과 영국에서 홍보산업이 월등히 발전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겁니다.  157
기업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세계는
첫째, 텔레지전입니다. 이것은 각 가정마다 잇어서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과도 단절시키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둘째, 엘리트 계급이 우려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158
정치계를 주름잡는 엘리트 집단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59
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문제의 학설에 접근하는 순간부터 대단한 내용이 있을 것이란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한 개인을 신격화하면, 그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입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63
기존 생각에 변화가 있을 때 혁명이 일어납니다.  164
모든 형태의 지배구조를 찾아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는 지배구조는 부당한 것입니다.  165
내란의 성격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정치체제와 내란의 관계를 일반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167
때때로 국민은 세상사를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지만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언론은 민간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일 뿐입니다.  168
대중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69
적잖은 고통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171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인터넷은 거대한 시장입니다. 대기업은 인터넷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홀용하려 합니다. 인간의 소외를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말입니다. 결국 대중이 이런 음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터넷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181 
미국의 공영 텔레비전은 지나칠 정도로 편협한 시각을 보입니다.  185
권력층은 비난하지 않는다. 이거이 그들의 원칙입니다. 가난한 흑인은 암살해도 상관없지만 권력을 움켜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191
정보(Information)는 적잘한 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정보라 표현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198
비판정신이 실종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 경쟁 때문이 아닙니다. 깊이가 없는 커뮤니케이션 탓입니다.  199
내 생각에, 현재으 인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기억을 지워 없애려고 고안된 것입니다.  201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라면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자유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비밀로 감추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문서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220

에필로그 
양식(良識)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다고 믿을 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 친위대원이 될 수도 있고 성인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230


촘스키는 모든 '주의(-ism)'와 이중 잣대를 거부한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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