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108건

  1. 2012.11.18 여행 .. 미소 2
  2. 2012.11.17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II - 박민우 플럼북스 2011 04810
  3. 2012.11.16 욕망이 멈추는곳, 라오스 - 오소희 에이지21 2007 03810
  4. 2012.11.14 여행 ... 기록 6
  5. 2012.11.13 여행 탐구 일기 - 이세미 이슈 2012 03810 2
  6. 2012.11.11 황홀한 자유 - 이지상 팝콘북스 2006 13040
  7. 2012.11.09 생활여행자 - 유성용 갤리온 2008 03810
  8. 2012.11.07 여행 .. 비우다
  9. 2012.11.02 여행... 읽다 2
  10. 2012.10.29 다르게 시작하고픈 욕망 서른 여행 - 한지은 청어람 2010 03810 4
  11. 2012.10.26 이어지는 여행...
  12. 2012.10.26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 배성아 브리즈 2008 03810
  13. 2012.10.25 여행... 2
  14. 2012.10.24 사바이 인도차이나 - 정숙영 부키 2011 03810
  15. 2012.10.23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 최갑수 예담 2009 03810 2
  16. 2012.10.17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상상출판 2012 13980
  17. 2012.10.16 잘 지내나요, 내인생 - 최갑수 나무[수:] 2010 13810
  18. 2012.10.15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 최갑수 상상공방 2008 03810
  19. 2012.10.10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 최갑수 예담 2007 03810
  20. 2012.10.09 인도에 관한 열일곱가지 루머 - 이상문 도서출판사람들 2011 03810
  21. 2012.10.08 한권으로 만나는 인도 - 이병욱 너울북 2011 03910
  22. 2012.09.16 우주날개 인도에서 행복을 꿈꾸다 - 정미자 BM북스 2008 93810
  23. 2012.09.14 진리에의 진리로의 여행 ...영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24. 2012.08.23 로맨틱 인디아 - 채유희 문학동네 2008 03980
  25. 2012.08.18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 줌 - 문윤정 바움 2006 03810
  26. 2012.08.14 러브 앤 프리(Love & Free) - 다카하시 아유무 동아시아 2002 03830
  27. 2012.08.09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 이옥순 책세상 2002 03800 1
  28. 2012.08.04 인도오지기행 - 조현 한겨레출판사 2008
  29. 2012.08.04 영혼의 순례자 - 조연현 한겨레신문사 2004 03810
  30. 2012.07.31 내가 만난 인도인 - 김도영 산지니 2006 03300 2

여행 .. 미소

여행밑줄 2012. 11. 18. 11:18

여행에서 누구나 사진을 남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느 대륙을 막론하고,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여행에서 사진을 남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까지 확실할 수 있을까?

아... 그건 아닌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는 사람을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그에게 때론 이유를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오는 조르바였다. 

얽메이지 않으면서 본성에 충실하고 세사을 떠돌며 그것에서 배워가는 조르바같은 모습 말이다.

아무튼 그러한 극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사진을 남긴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사진에는 사람을 많이 찍는다. 장소를 배경으로 찍고, 동행들과도 찍고, 다른 여행자들과도 찍고, 현지인들과도  찍고, 아이들을 찍기도 한다. 때론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몰래 찍기도 한다. 몰카아니냐고 몰카 맞다. 그런데 대체로 이내 눈치를 채고 카메라를 든 나를 쳐다본다. 

보통은 크게 두가지 반응이 나온다. 부끄러워 모습을 감추거나, 모델이 되어주거나 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흥미로운 점은 웃는다는 점이다. 쑥스러워하며 웃거나, 포즈를 취하며 웃거나, 웃으면서 슬쩍 자리를 피하거나, 활짝 웃어주거나, ...

이것 역시 남녀노소 불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격하게 싫어하거나 화를 내며 찡그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냉전 상태의 지역이거나 내분에 의해 경직된 나라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한 나라여도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웃어준다. 아무튼 초상권 운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이 우리 모습을 찍으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말없이 한국 사람을 찍으면 변태로 몰린다. 일상적인 모습이라 할지라도 넷상에 무단으로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무서워서 찍기 힘들다. 정중히 부탁하고 찍어야 한다. 


그런데 왜 타국인들에게는 관대한가?

그리고 왜 미소를 지어주는걸까?


우리가 여행을 가면 마음이 넓어지고 소통하려하는 이유와 동일하지 않을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관대해지는것 같기도 하다. 


그럼 '미소'는? 이것 역시 타국인이기에 그럴 수도 있을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미소는 만국 공통어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미소는 뭘까?

미소는 희망, 미소는 여유, 미소는 사랑(애정), 미소는 즐거움, 미소는 만족, 미소는 표현, 미소는 소통, 미소는 이유없음, 미소는 이웃, 미소는 마음, 미소는 초대, 미소를 허락, 미소는 따뜻함, 미소는..

언뜻 떠올려보는 것을 적어보니... 그렇구나!

미소는 어쩌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소가 답이라면 우리의 여행은 삶이 되어야 하는건 아닐까. 삶이 여행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각박해지니 나역시 각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건, 핑계일뿐. 따라가기만 하기보다 새롭게 바라보는 태도가 삶을 여행처럼, 여행을 삶처럼 만들어 주는건 아닐까...!!!


별것 아닌 미소가 정답이란 생각... 여행을 통해서 해보게 된다.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첫번째 터닝포인트  (0) 2012.11.28
여행 .. 만남  (1) 2012.11.22
여행 ... 기록  (6) 2012.11.14
여행 .. 비우다  (0) 2012.11.07
여행... 읽다  (2) 2012.11.02
Posted by WN1
,

 

 

명상같이 어려운 거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톡 까놓고 물어보는 거야.
뭐가 불만이야?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만 고생해?
묻는다고, 답이 들리기야 하겠어?
그래도 몽글몽글, 울컥울컥
꿈틀거리는 게 느껴질 거야.
물어봐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큰 거 바란 적 없다고
착한 마음이 작게 울기 시작할 거야.
나는 그런 착한 나를 위해 짐을 싸고, 길을 떠났지.
착한 마음이
고맙다고, 많이 고맙다고
그만 좀 하랄 때까지 입에 달고 살더군.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감정을 나누는 즐거움은 표현이 안 될 만큼 크고, 깊다. 독자는 각각의 창의력으로 장면을 상상하고, 상황을 이해한다.
여행 이상으로 놀라운 인연이다. 게으르고, 변덕 심한 나에게 이런 즐거움이 글을 쓰게 한다.  9


나는 5천 원을 냈고, 현지인들은 1천 원을 냈다. 그깟 몇천 원으로 이성을 잃는다면 그건 내공이 얕은 여행자다. 바가지로 점철된 삶이 여행자의 몫이다.  28

비가 추적인다. 나는 오토바이를 반납하러 갔다. 더 이상은 오토바이를 탈 수도 없을뿐더러 오토바이를 타기도 무서웠다. 직접 숙소까지 와서 오토바이를 수거해 가면 몇만 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착한 숙소 주인장의 소개로 1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오토바이를 실을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망가진 오토바이를 타고, 오토바이를 배달해 준다는 집을 찾아나섰다. 아주 캄캄한 밤이었고, 붕대 사이로 또 상처가 번지는 것이 보였다. 몇만 원 아껴 보겠다고 그 몸으로, 골목골목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혼자 피식 웃었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참 구차한데, 그래도 그 구차함을 열심히 뒤쫓는 내가 싫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더랬다. 열정도 없이 여기저기를 떠 다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었다. 하지마 ㄴ열정은 그렇게 쉬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다. 열정은 사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가는 것이다. 단지 그 모양이 달라 보일 뿐이다. 달라질 때마다 우린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비 않는다.
초심은 씨앗이다. 그 씨앗이 자라는 동안, 수많은 굴곡을 겪는다. 그때마다 갈등하고, 의심한다. 하지만 초심은 열심히 발화하고, 물을 빨아들인다. 그 씨앗은 꽃을 피울 수도 있다. 그러면 새로운 초심을 찾으면된다. 새로운 초심, 새로운 씨앗이 우리의 열정과 함께 싹을 틔울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102-104


Posted by WN1
,




프롤로그

어느 날 펼쳐즌 <론리 플래닛>의 라오스 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남방 불교를 받는 라오스인들은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일하지 않는다. 고된 노동보다 카르카가 생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까닭이다.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인들은 쌀을 심는다. 캄보디아인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본다. 라오스인들은 쌀이 자라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라오스인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당신의 머리에 좋지 않다고 믿는다. 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들을 흔히 가엾게 여기곤 한다.'


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외계의 무엇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만 번 우리의 마음곁을 쓸고 지나갔던, 그러나 또 쉽게 잊고 지냈던, 세상 모든 존재들의 파장과 울림을 다시금 알현하는 일임을 소중하게 깨닫는다.  12


비록 여행 중이라 해도, 혹은 지루한 일상 중이라 해도, 아무리 바쁘다 해도, 혹은 가진 것이 넉넉지 않다 해도, <언제나>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숙이 선의를 가지고 관여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21


 

우리가 내리는 잠깐의 선택, 손끝을 지나쳐갈 뿐인 동전 하나의 용고, 잠시 마음을 사로잡은 범박한 생각... 

이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의 한 순간, 소중하다. 그 사소한 순간의 마디 마디가 하나의 결정(結晶)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너의 삶. 아껴라.



에어컨이 있는 버스에서 차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본다면 풍경은 그저 사진일 뿐이다. 길은 그저 평면일 뿐이다. 나는 직육면체의 공간 속에 보호받는 간접체험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곳 땅에서 나고 자라. 이 땅의 푸성귀 냄새를 풍기는 이들과 꼼지락대는 발가락을 맞대고 들키지 않게 탐색하는 수줍은 눈빛을 마주하며 달리는 이 길은 나를 사랑에 빠진 여인이게 한다.

바람은 여과 없이 다가와 신선함의 직격탄을 날리고 머리카락은 훨훨 날아 하늘에 닿을 듯하다. 나는 뒤따라오는 오토바이의 낯선 남자에게도 미소를 짓고 길가의 아이들에게도 일일이 손을 흔든다.  33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에 대해 웃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질문과 웃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속에 흔하게 숨어 있다.  84


우리는 언제나 winner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차분한 기다림이란 나태함을 의미한다.

라오스인들은 언제나 loser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순서의 문제일 뿐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진정한 winner도 loser도 없는 것이다. 

혹은 모두 다가 winner이며 모두 다가 loser인 것이다.

서두르거나 불편한다고 해서 인간의 힘으로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오직 변하는 것은 마음의 균형이 깨어지는 일뿐이라는 것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오랜 명상과 고도의 훈련을 통해 도달하는 정신의 경지에 이미 생태적으로 도달해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93-94


주어진 것이 적다 쉽게 지치지 말라. 삶의 고단함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것. 그대에게 적게 주어진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크게 주어진 것일지니, 두말없이 가진 것을 보듬은 것만이 그대를 나아가게 하리라.  105



이곳에서 밤길을 떠도는 여행자는 묻게 된다. 우리의 생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없으면 안 되는 것의 목록은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어두운 길가를 향해 열려 있는 문, 낡은 기타와 달빛에 젖은 그림자, 보았으나 보지 않은 척 하는 타인의 온유한 시선, 손 안에 쥐어진 다른 손의 온기, 어둠의 끝에서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는 아침. 

어쩌면 그런 것들, 그 단 몇 가지 것들.  



라오스 인들은 묘비명을 쓰지 않아요. 그들은 믿지요. 

사람이란 글로써 흔적을 남길 수 없는 존재라고.



여행이란,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이들의 불우함으로부터 당신의 자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친다면 여행의 힘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당신보다 양적으로 더 우월한 자들은 세사으이 저편에 얼마든지 있느이까요. 이들의 존재가 쉽게 당신을 일으켜 세웠듯 그들의 존재는 또 쉽게 당신을 넘어뜨리겠지요. 당신의 질문은 그 너머에 있어야 해요. 내 삶은 어찌하여 훨씬 더 나은 조건 속에서도 초조해하는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가, 쉽게 지치고 자신과 불화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에요. 진정한 여행의 힘, 그것은 주는 깨달음이란, 떠나 있을 동안만 당신을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133


나라면 말할 것이다. 흔들리는 짐 꾸러미 위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므로 낳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라면 말할 것이다. 아직 나무집 한채 변변히 없으므로 결혼하지 않겠어요.

흔들리는 짐 꾸러미나 나무집 한 채는 당신과 내가 <폼>으로 생각하는 제약조건들이다.

우리는 항상 <어디에서>에 집중한다.

물질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 물질의 우아한 배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라오스의 그녀라면 말할 것이다. 흔들리는 짐 꾸러미 위에서도 아이는 자란답니다. 

라오스의 그라면 말할 것이다. 뒷간 곁이라도 좋아요. 함께 있을 수 있으면 되는 거죠.

결코 넘치지 않으며, 나아가 종종 모자라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무엇을>에 집중한다.  

오직 <무엇을>에 집중하는 자들만이 다 끌어안고 갈 수 있다. 솎아내지 않고, 어리광부리지 않고.

삶이란 불가해한 것이다. 

통째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순순히 살아갈 수 없는 그 무조건성의 원칙이 라오스에서는 착실히 준수된다.  137-138


음식이란, 그 지역의 기후, 그 기후가 주관하는 농작물, 종교 혹은 터부나 미신, 뜨겁거나 차가운 민족적 기질, 색감이나 모양에 대한 고유한 미적 감각 등 그곳 문화의 총화이다.

그러하니 당신이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의 낯선 신념을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들 앞에서 펼쳐 보이지 말라.

당신이 채식주의자든, 동물애호가든, 유난히 민감한 후각을 지녔든, 귀족적인 미각을 지녔든, 한 그릇의 음식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지 말라.  178


라오스인들의 특징이에요.

예부터 라오스인들은 하루에 세 가지만 걱정했어요.

아침으로 먹을 게 있을까?

점심으로 먹을 게 있을까?

저녁으로 먹을 게 있을까?

그렇게 세끼를 먹고 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죠.

나머지 걱정들은 모두 다음 날로 넘어가는 거예요.  183


물질화는 어쩔 수 없이 전통과 자연을 파괴해요. 그동안 자신들이 수호해온 전통과 자연이 자신들을 가난하게 했다고 믿게 되니까요. 그러나 물질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이들은 더 이상 자여노가 전통이 파괴된다면 더 이상의 물질화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그리고 다시 라오스다운 것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해 골몰하게 되겠지요. 그것이 물질에 목마른 후진국들이 역사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수순이었으니까요.

그럴까요? 먼 미래에 이들이 자신의 본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요? 나는 방비엥이 저렇게 추한 외국인 거리가 되기 전에 여기 왔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는 더 나빠지기 전에 이곳에 온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이다음에 아이를 낳아서 함께 이곳에 왔을 때에도 지금처럼 이곳의 자연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TGV를 타고 나는 KTX를 탄다. 

라오스인들만이 계속해서 원시의 불편함과 순수함을 간진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가져 편안한 자의 이기심일 것이다.

비록 물고기가 그녀의 남자친구를 행복하게 하듯이 TGV와 KTX가 소피와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하느냐고 그들이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지라도...  184-185


'how'는 늘 나눌 것이 있는 자들의 고민이다. 가진 자들은 책상에 앉아 how에 대해 'talk'하지만, 정작 이들이 원하는 것은 'just do it' 이다.  208


소통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 몸과 마음 사이의 절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타인의 몸을 충분히 탐색하지 않은 유년은 반드시 뒤틀린 인간관으로 이어진다. 

판에 박힌 이미지로서의 성, 획인화된 미의 기준, 그것의 그릇되고 위험한 적용.

아이들은 '스스로' 몸을 터득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그들 누구라도 가르침 없이 비밀을 깨칠 수 있으므로.  230


남자들은 사랑을 <한다>. 면도를 <하고> 사업을 <하고> 산책을 <하>듯. 

그러나 여자들은 사랑에 생을 건다. <하는>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의 전부가 <된다>.

호흡을 하고 걸음을 내딛는 순간순간이 사랑과 결부된다.

사랑이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는 같은 여자여도 다른 여자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도록. 오직 사랑하는 대상만이 존재하도록.  243


여행에는 연습이 없다. 가장 격한 체험을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한다. 

이거될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거 된다! 싶어도 이미 늦었다. 가보는 거다. 본전 생각 없이. 예행연습은 일상으로 족하다.  



Posted by WN1
,

여행 ... 기록

여행밑줄 2012. 11. 14. 14:21

여행을 다니다보면 기록을 남기게 된다. 어떤 여행을 하든 자신이 지나치게되는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처음보는 문화니까.

내가 지나온 거리니까.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니까.

멋진 사진이 될 만한 장소니까.

신선한 충격으로 새로운 개념을 전달하는 곳이니까.

...


각자의 환경적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것이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남게된다.

개인적으로 그림은 심할 정도로 못 그리기에 메모와 사진 기록을 남기는 편이다.


메모는 당시의 생각, 느낌, 감정, 상태 등을 남긴다. 다르게 표현하면 오감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림은 메모의 오감을 풍부하지만, 간략하게 남길 수 있고, 상상력으 더해 묘사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기록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메모를 남겨본 적이 없다. 그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각의 철창을 드리운듯..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행과 관련 없으나 그림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를 잡아두고 있어서 몇자 남겨본다.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을때, 엄마의 손에 끌려 갔는지 원해서 갔는지 그 이유는 모르겟으나 미술학원을 다닌 기억이 짧게 남아있다. 그 짧은 기억은 학원에서 시키는대로 그림에 색을 칠하는 수업인데,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다. '왜 자꾸 밑바탕 선을 넘어가서 색을 칠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으론 미술학원을 등록한지 일주일쯤 후에 학원장님의 권유로 학원을 중단한 기억이다. 쉽게말해 쫓겨났다. 기억은 이 뿐이다. 

하지만 이 만큼의 기억은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ㅜ.ㅜ

어린 시절의 뼈아픈 실패담일까?..ㅎㅎ


다시 글로 돌아와서...

또 하나의 기록인 사진이다. 사진은 오감을 남기기 보다는 현상을, 사실을, 순간을, 상태를 남긴다. 물론 사진을 잘 찍으면 살아있는 사진으로 그사진이 오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겠지만, 그건 피로들의 세계이고, 아마추어들은 쉽게 건지기 힘들이게  그런 부분은 넘어가기로하고...

찰나의 순간을 남길 수 있는 사진 기록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가장 보편적인 기록이다.


어떤 이유든, 어떤 스타일이든 우리는 기록을 남긴다.

'여행은 기록으로 남는다'는 표현이 어쩌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반 정도는 동의하기에 '어쩌면'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여행이 기록으로만 남진 않기에.. 그 이유는 차후에 적어보기로 한다...


질문이 생긴다. 나는 어떤 기록을 남기고 있는가?

               나는 어떤 기록을 남기고 싶은가?

여행의 경험이 많이 않았던 시절에 나의 기록은 여정의 기록이었다. 어딜가고, 어떤걸 먹고, 무엇을 보고, 어디서 자고, 무엇을 타보았는지... 이런 기록들도 시간이 흐른뒤에 다시 보게 되면 당시의 기억들을,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흔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궂이 흔한 기록이어도 좋다. 하지만 때론 흔하지 않은 나만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질 때가 온다.


이후의 기록은 측정한 기록들을 더했다.. 독특한 기록이라 할까. 

아니 독특한 곳으로 다니기를 선택하였다. 


그 이후에 기록은 내 느낌의 순간이다. 

여정에 대한 기록도 잇고 독특한 경험의 기록도 있고 나에게 특정한 깨달음이나 고민을 하게 하는 느낌의 순간을 남기는 기록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기록들을 남기니다. 글과 사진 기록으로..

그런데 어떠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답이 없다.

여행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떤 기록을 남기고 싶은가?

글쎄 처음처럼 쓰고 싶기도 하고, 지금처럼 쓰고 싶기도 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기록하고 싶기도 하다.


다른 이들은 잘도 답하는 것 같은데... 나는 답하기 힘들다. 머리가 나쁘면 어쩔 수 없나보다...ㅎ

꼭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다니면서 변해가는 것 같다. 목표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면 더 잘할테지만 여행을 그렇게 하지 않으니 어쩌면 머리가 나빠서고 어쩌면 내맘대로 여행이어서 이고..


늘 그렇듯 그냥 하면서 변해간다. 삶도, 사람도, 여행도... 그러니 내 기록은 경험의 축적과 내 지적 상태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나갈 것이리라... 늘 아이엔쥐(ing)로 진행되어 나갈 것이라 변명해 본다.^^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만남  (1) 2012.11.22
여행 .. 미소  (2) 2012.11.18
여행 .. 비우다  (0) 2012.11.07
여행... 읽다  (2) 2012.11.02
이어지는 여행...  (0) 2012.10.26
Posted by WN1
,



오랜 시간 꾸준한 여행 동안 깨달은 것은, 멋있는 풍경을 봤다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거나, 넓은 세상을 봤다고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좋은 식당은 고급스럽고 비싼 곳이 아니라(비싸면 오히려 더 경직될 수도 있음) 여행자들이 그 안에서 만큼은 자신의 식사를 편히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다.  



두둥실 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내 주위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여행자들끼리의 은밀한 눈짓.

나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까요...



지나고 보면 시간과 망각이 모든 걸 치유해 주진 않은 것 같다. 단지 익숙해질뿐.



기억을 위한 기록을 하다보면 정작 즐겨야 할 순간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록과 기억에 대한 강박이 여행을 장식하지 않게 균형을 잡는게 가능할까?



기록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그것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아닐까. 여행의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사진 혹은 일기 속의 '박제된 나'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한 '지금의 나' 자신일 테니.

여행의 기록은, 당시의 자신을, 그리고 후에 그 여행을 돌아볼 미래의 자신을 감응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한 줄, 부지런하면 부지런한 대로 여러 장,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된다면 굳이 기록의 의미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애정도가 상승하는 건 아니다.


Posted by WN1
,



익숙한 세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불확실하기에 자유로운 우리들은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의 만남을 미련 없이 뒤로 하고 뿔뿔이 헤어졌다. 



욕망, 그것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 혼자 사는 것도 힘들고 같이 사는 것도 힘들다. 욕망을 끊는 것도 어렵고 욕망을 추구하는 것도 어려우며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40대 중반까지 혼자 살며 그는 얼마나 많은 욕망에 시달렸고, 또 얼마나 노력했을까?

'욕심을 내지 말고,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

그 말은 어쩌면 그가 현재의 자신에게 다짐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나 역시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말은 쉽지만 실천이란 힘들다. 어쩌면 욕망으로 인해 태어나고,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완벽하게 욕망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 같다.



폴 라파르그(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사회주의자)가 쓴 <게으를 수 있는 권리> '게을리 하세, 모든 일을. 사랑하고 한잔하는 일만 빼고, 그리고 정말 게을리 해야 하는 일만 빼고.'



앞으로 나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답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일기를 쓰기도 했고 새벽이나 저녁에 인적 없는 바닷가에 앉아 명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붉게 가라앉는 해는 무거워 보였고 한밤에 백사장에 누워 바라본 별들은 바람에 날려 떨어질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해변에서 생택쥐베리의 <성채(Citdel)>를 읽다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이 왔다.

'나는 평화를 빙자하여 자신을 단순함 속에 몰아넣고 마음의 갈망을 억제하는 인간들을 경멸한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이 성장하려거든 논쟁과 맞서 자신을 소진시켜라. 그것이 세상을 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통이란 거름과 같은 것이다.'

또 이런 글도 있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먼 명상에 빠진 인간들은 유토피아의 공상 때문에 힘을 잃고 만다.'

아. 나는 생택쥐베리가 보기에 이런 인간이었구나. '평화를 빙자하여 자신을 단순함속에 몰아놓고 마음의 갈망을 억제하는 인간들을 경멸한다'라는 말에서, 평화라는 말 대신, '자유로운 삶을 빙자하여' 혹은 '깨달음을 빙자하여'라는 말로 바꾸면 딱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한때 자신을 발살랐었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졌을 때 나는 나 자신을 그 '구체적인 삶'에 소진시켰다. 거기에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샌가 익숙해진 그런 삶을 힘없는 '관념'으로 다룬 것은 아닐까? 과거의 혹은 미래의 유토피아적인 공상에 빠져 힘을 잃었던 것은 아닐까?

허허. '결국 내가 살아온 10년의 세월이 그 정도였구나'라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가슴 속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쳤다.

그래. 자신에게 솔직하자. 그것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벗어나고픈 울타리가 있는 법. 비록 그 울타리가 편안한 삶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내삶이 아닌 것 같은 울타리라면 울타리를 넘을 용기는 있어야 하겠지.



'모든 인도인들은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미화할 수는 없지만 '모든 가난한 인도인들은 불행하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욕망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골목길에서는 욕망이 추하지 않았다.



가끔 삶이 힘들고 허무하거나 권태스러워질 때 바라나시에 가보라. 꼭 초월과 명상을 노래하지 않아도 좋다. 바라나시는 한 번 가서 쉽게 그런 것을 느끼는 곳은 아니다. 화장터의 연기가 역겹고, 힌두교 순례자들의 찬송소리가 낯설고, 가트에 앉아 있을 때 찾아오는 거지가 귀찮게 느껴지면 이번에는 성벽 뒤의 골목기로 가라.

더럽고 비좁은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소 엉덩이에 받치고, 새똥을 맞으며, 원숭이와 싸우고, 상인들과 흥정하며 그들의 땀방울과 미소를 기억하고, 열살 남짓의 아이들의 치열한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삶의 열기를 느껴 보라. 그 순간 문득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겸허해진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는 순간, 정신의 기름기가 쏘옥 빠지며 가슴 속에서 삶의 열기가 팍팍 솟구쳐 오른다.

그때 알게 된다.

행복이란 저들처럼 열심히, 아기자기하게,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서 온다는 것을, 또한 진정한 명상이란 한곳에 앉아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정적이 아니라, 고뇌를 껴안고 눈을 부릅뜬 채 걸어가는 행위란 것을.

Posted by WN1
,



- 젠장! 이놈의 피리가 또 막혔어요. 여름밤은 너무 짧은데 말이에요.

- 넌 집에 안 가니?

- 아저씨는 여기서 뭐 해요?

- 기다려.

- 누굴요?

- 나도 몰라. 오지 않을 사람 같아.

- 한가한 사람이군요.

- 아니, 나는 바빠, 열심히 기다리고 있거든.

- 열심히 기다리는 건 좋은 기다림이 아니에요.

- 왜?

- 기다림은 의지와 결심으로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기다릴 것들은 당신의 바깥에 있어요. 당신에게 누군가 필요하다면 부디 아무도 기다리지 말아요.

- 저런, 네 말대로라면 공연히 무덤가의 꽃들만 시들었구나.

- 저 시든 꽃들요? 그건 다만 이 여름의 마지막 장미일 뿐이에요. 누굴 위해 피어난건 아니죠. 여기 있는 것들은 더 이상 자신을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홀로라는 말을 모른답니다. 이제 그만 이야기 할래요. 난 다시 피리를 불 거예요.  59-60



그래도 떠난 애인에게서 배운 말을 그대가 내게 하고, 나도 나의 떠난 애인에게서 배운 말을 그대에게 하지. 내가 그대를 떠나면 그대가 나에게 배운 사랑의 말을 나의 새 애인에게 건네고, 지구의 사랑은 아무래도 그렇게 현명해지고 있는 거지. 오랜 세월 세상의 광물과 다 접톡해서 현명해진 지하수처럼.

그래서 말이지, 나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보다는 그대에게 배울, 내 새 사랑의 말을 생각해 보는 밤이고 싶어.

사랑이 밀려오면 평온의 휴식은 끝나고, 나는 이내 가난해져 다시 또 길을 잃고.  102



순정이란 것은 자고로 연약한 마음이 아니라, 들끓는 닫힌 욕망의 체계이다. 순정은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극진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제 속의 이유로 그 사람을 독점하려는 욕망이다. 심지어는 그 욕망이 저지당하고 명백하게 그 끝을 보았을 때조차, 남자는 저 홀로 상처를 끌어안고 사랑의 끝을 모른 척하며, 여전히 제 속에 갇혀 사랑을 고수한다. 상대도 없고, 자신의 무너짐도 없이 오직 거울 속에 갇혀 홀로 사랑하는 일.

남자들아, 함부로 제 속에서 순정을 길어올리지 마라. 순정은, 이토록 사랑과 상처 사이에 기생하며 꿈틀대는 그대의 증상에 다름 아니니, 증상으로나마 제 욕망을 누리려는 마음은 더없이 쓸쓸한 것이다.  106

Posted by WN1
,

여행 .. 비우다

여행밑줄 2012. 11. 7. 21:39

여행은 여행지를 읽고, 현지사람들을 읽고, 여행자들을 읽고, 그들의 문화를 읽어나갈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알아가는것, 새로운 것을 얻어가는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득(得)이다. 득이란 글자는 '습득(習得)'이란 단어로 많이 사용된다. 익혀서 얻는것. 그렇게 읽어나가는 과정이 여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의 반대는 실(失)이다. 여행은 실이 아니라 득이다.

물론 실(失)이 없지는 않다. 금전의 실도 있고, 시간을 사용해야 하기도 하고, 여행하는 만큼 국내에서 할 수 있는것들을 잃는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기회비용'이란 용어를 알고 있다. 미시경제학이란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였으나, 오늘날은 보다 많은 곳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의 선택으로 잃게 되는 것들 중에 가장 큰 가치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실'보다는 '득'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여행에서 득은 무슨 의미들일까?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에 돈의 가치를 뛰어넘을건 없어 보이는데, 돈을 사용하여 돈을 얻지 않는 여행이 얼마나 득이 될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돈의 가치를 논하면, 여행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간을 쫓아가며 바쁘게 돈을 벌어 휴가를 통해 휴양지를 가는것 외에 여행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 난 왜 이런 의문을 품어서 골치아픈 소리를 하고 있는걸까.. 너무 생각나는대로 하는것도 좋지 않다..ㅡ.ㅡ)

여행의 득은 알아가고, 익혀가고, 스며들어 자신의 시선 폭을 넓히고, 깊이를 깊어지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그들의 시선으로, 때로는 지금까지의 나의 기준으로, 때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기준으로 바라보고, 경험하는것. 


그러면 이것의 돈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가?

감히 나는 '그렇다'고 말한다. 

30대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결코 적은 나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들을 살아오면서, 생각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경험의 보물이다.

지금의 나의 생각은 절대 '의미없는 일이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여행의 가치는 돈의 가치를 충분히 넘어선다고 본다. 


이런 득을 가진 여행을 동시'비움'이라고 생각한다.

비움이란 채워지는것의 반대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왜 여행은 비움이라 보아야 하는가?

여행을 다녀보면 분명 채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비워지는 것도 느껴진다. 채워지는 것은 새로운 앎, 경험들을 통해 분명하다. 

그에 더해 나의 편견, 아집, 집착, 착각, 진정 필요한 것들에 대한 선입견들이 비워져 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어느 여행에서 느꼈던 생각을 떠올린다. 이 기억은 종종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그들이 3시에 일을 마치며, 늦어도 4시에는 모두 마치고 각자의 가정에 돌아가서 가족과 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었던 적이 있다. 또한 그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바로 다음날은 동일한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러니 당연히 잘 살지 못하는 거 아니냐. 느긋한게 아니라 게으르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유럽의 한 도시에서 정반대의 관념으로 경험하였던 적도 있다.


당연히 이틀 동안의 서로 다른 생각은, 생각의 기준을 달리 했기에 그러했다. 그들은 동일했으나, 내 마음의 기준이 달랐기에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며 부러움과 멸시를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늘 살아가는데 나 혼자서 잣대를 대는 것부터 잘못이다. 

사람이 일관되게 사는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다시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중성이 당시의 컨디션으로 반대의 행동을 하게 되는것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며, 불완전한 동물로서 당연하다고 치부하지는 않더라도 이해가 되는 부면이긴하다. 


위의 경험은 내 자신이 가진 비합리성에 대해 비워야 하는 것을 깨달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물론 여행에서만 느끼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좀더 열어주는 능력이 있기에 비워나가는 과정을 더 쉽게 경험시켜 준다.


애둘러 표현한 것 같은데 정리해 보면, 여행은 얻는것 만큼 비워내는것또한 크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의 타파는 누구나 알고 있는 표현이지만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있지 않으면 힘든것이다. 여행은 그러한 비움에 깨어있는 자세를 더 잘 준다. 그렇게 여행은 비움인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미소  (2) 2012.11.18
여행 ... 기록  (6) 2012.11.14
여행... 읽다  (2) 2012.11.02
이어지는 여행...  (0) 2012.10.26
여행...  (2) 2012.10.25
Posted by WN1
,

여행... 읽다

여행밑줄 2012. 11. 2. 11:30

'읽다'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책'이다. 

어느 작가는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 하였다. 

잘하는것이 별 없는 나에게는 책을 읽는것이 그나마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깊이 읽는 수준은 안되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은 활자를 눈으로 읽어내어,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글쓴이의 뜻을 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책을 읽는 목적과도 관련이 있는데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의 이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목적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고 싶다.

공부와 중복되는 의미는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중1 수학 1단원의 집합이란 단원에서 '교집합'을 배운다. 교집합은 서로 다른 집합(집단)속에서 동일한 것도 있고, 동일하지 않은 것도 있을 때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공부와 읽기에는 알아가는 것이라는 동일함도 있지만, 그 깊이의 차이가 있다.

이것으로 순서를 따진다면 공부는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정도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읽기라고 하면, 책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그림과 사진이 아닐까.

이것은 전시장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엄마가 아이에게 '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며, 무엇무엇을 의미하는 거란다'하며 주입하는 의미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느낌을 떠올려보는 작업. 관찰해보기도 하고, 초점을 흐려보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붙여보는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그림을 또는 사진을 읽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의미들에서 여행 역시도 읽기의 작업을 하는 것이라 하고 싶다.

책을 읽고, 그림을 읽고(사실 그림을 읽는것이라기 보다는 느끼는 것이라 표현해야 하겠지만) 하듯이 여행도 읽어나가는(느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정답이 있는것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관찰하고 해석하고 느껴보고 알아가며 경험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답도 생각해 보고 다른이들과의 차이도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시간.




이런 여행은 접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알아가는 목적을 포함하듯, 여행도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란 생각.

접하는 방법도 여러가지 이겠지만 단순하게 알아가기 보다는 좀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고 싶다. 그럼 이것은 공부에 더 가깝지 않냐고?

여행자는 오래 머물러도,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기에 공부보다는 읽기에 가까울거란 생각이다.

여행은 그런것이 아닐까.


어떻게 알아가는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보는 것을 추구한다.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위험하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고향이 아닌 타지이니까 위험함을 더 느끼는 것일 뿐이라란 생각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해 보고, 함께 해보는 것. 그들의 문화에 가까이 스며들어 보려는 노력. 그들을 공부하기 보다는 그들을 읽어보려는 노력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는것. 웃기게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꼭 떠나서야 그렇게 하는 모습이 우스운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생각으로 돌아와서도 자동으로 닫히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려는 노력까지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표현처럼 사람을 알아봐야 내가 얼마나 알겠는가?

그렇기에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나는 여행을 읽어간다.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미소  (2) 2012.11.18
여행 ... 기록  (6) 2012.11.14
여행 .. 비우다  (0) 2012.11.07
이어지는 여행...  (0) 2012.10.26
여행...  (2) 2012.10.25
Posted by WN1
,



프롤로그 

길은 내게 잃은 만큼 얻고 버린 만큼 채워진다는 것을, 늘 선택을 강요받고 올바른 선택인지 아닌지 조바심 냈던 삶에 '정답'이란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 


작은 배낭 하나로 충분했던 그나르이 여행은 내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제일 먼저 일깨워주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앟았던 생각은 '너무 많이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집과 방을 채우고 있는 대다수의 물건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내 몸의 일부마냥 끌어안고 다녔던 배낭도,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수많은 물건들도 사실은 전혀 쓸모없는, 지금 당장 버려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물건이었음을 깨달으며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없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던 전기, 물 같은 것들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졌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니 자연적으로 행복의 기준도 바뀌었다. 여행 전에는지는 대개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행복했었다. 행복의 유효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사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넘쳐났으므로 돈만 있으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 행복은 자연스럽게 돈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은 돈이 많았으면 좋게싿는 얘기였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난 후의 나는 더 이상 돈과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찾는 법, 무언가를 굳이 소유하지 앟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돌아오니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엿는지 수도 없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31-32


여행은 내게..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없다는 것, 나는 비우고 버리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법,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여행할 수 있는 법, 삶에 대한 의지, 좋은 친구들, 가족의 소중함, 사랑, 삶의 가치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직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시간이 흘러 어떤 형태로 내게 가르침을 줄는지도 기대된다. 

여행 중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얻는다. 잃는 것 중에 절반 이상이 살면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얻는 것 중에 거의 대부분은 살면서 힘이 될 만한 것들이다.  33


Q. 하던 일을 접고 훌쩍 떠났을 때 두려움은 없었나요? 돌아온 뒤의 불안함 같은 거?

A. 있었죠. 그러나 그때는 떠나고 싶다는 목마름이 더 커서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그리 크게 느껴지진 않앗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긍정의 자기합리화였을 수도 있겠지요.

Q.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 떠나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A. 그다지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로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왔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은 결정을 할 것 같아요.

Q. 스물아홉은 긴 여행을 떠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닐까요?

A. 하고 싶은 때가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요. 떠나지 못하는 건 아마 떠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는 건 순전히 자기가 만든 룰이잖아요.  39


이제 여행을 시작한 지 겨우 3일이 지났다.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니 정작 내가 왜 이곳으로 떠나왔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떠남의 갈증이 해소되고 나니 또 다른 허무함이 찾아왔다. 그저 '떠나라'는 마음속의 외침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여행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이곳 인도는 자꾸만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어싿. 맘 편하자고 여행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답답한 생활을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63


바쉬쉿(vashisht)은 마날리에서 4km정도 떨어진 유황 온천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인도 여인들은 탕 안에서 머리를 감고 때를 밀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탕속의 물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탕 속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몸을 꿈쩍할 수가 없었다.

'겨우 며칠 안 씻는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위로하며...

탕속의 풍경은 며친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달라져 잇는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다.

옷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갔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낯선 풍경이 몸에 찬기가 덜어질수록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이제는 물에 뭐가 섞여 있는지, 깨끗한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저 따뜻한 물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68-73


'아, 드디어 서른이다.'

뭔가 달라진 공기를 느껴보려 폐 깊숙이 숨을 들이켜 봤지만 별다를 게 없었다. 어제도 그제도 똑같앗던 공기였고 일상적인 아침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다자고짜 서른이 주는 의미에만 매달려 있던 내가 아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렇게 그 나이에 집착했던 걸까. 무작정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특별한 서른을 맞이하겠다며 떠나온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서른이 되면 무언가가, 정말 막연히 그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 거란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스스로가 변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85


평범한 일상들이 길 위에선 조금 더 특별해지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지티고 힘들기만 했던 일상을 떠나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였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 그것 또한 여행의 몫이리라.  90


푸쉬카르에서 머문 3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걷고, 카트에 앉아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일몰을 본 게 전부다. 무언가에 쫓기듯 이동했던 인도에서 처음 맛보는 휴식다운 휴식이었다. 급할 게 뭐가 있다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떠돌았던 걸까. 인도가 싫고 인도사람이 싫다며 투덜거리기만 했던 내게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한 여행이 아니어서 싫고, 좋은 것만 기대했던 네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나?' 되물었다.  97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의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남의 일상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과 함께 했던 또 다른 일상을 추억하며 행복에 젖는 것, 여행자의 몫은 여기까지가 아닐까.  125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매한가지다. 단지 생김새가 다르고 풍습과 문화가 다르다며 신기하게만 생각하고,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했던 내 바보 같은 생각이 문제였다.  186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고 있던 그때, 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곧이어 발끝을 간질이는 바다 소리가 들리고 자갈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멀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들에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소음에 익숙했던 내 귀가 처음으로 자연의 소리를 감지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여전히 작은 해변에 누워 있는 내가 전부였다. 이렇게 큰 소리를 지금껏 왜 듣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다시 누워 눈을 감앗다. 그리고 자연이 내는 경이로운 소리들을 마음으로 끌어당겼다. 파도를 생각하면 그 소리만 크게 들렸고, 바람을 생각하면 파도 소리가 페이드아웃 되고 바람 소리만 다가왔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듣고자 하면 들렸고 듣길 원하지 않으면 또 들리지 않게 됐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텅 빈 상태가 됐다. 무중력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 이런 게 자유가 아닐까 싶은 편안함을 느꼈다.  200-203


자연이 주는 넉넉한 풍요로움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도 이 축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여행자로서 제일 먼저 깨닫고 실천해야 할 일일는지 모른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자는 물론,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걸으며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212


인도에서도 네팔에서도 태국에서도 보았고 우리의 시골에서도 본 풍경들이지만 캄보디아의 풍경은 유독 슬퍼 보였다. 유난히 붉은 길, 그 길 위에 맥없이 떨어지던 붉은 태양. 마른 먼저를 피워내며 달리는 차에서 바라 본 불투명한 풍경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아주 슬프고 가슴 아픈 영화의 한 장면. 가끔씩 울컥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 내느라 여러 번 거친 호흡을 걸러 냈지만 주책없게 한두 방울이 흘러 나왔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부쩍 눈물이 잦아졌다. 절대로 남들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인도사람들과 싸웠다고, 파도소리가 너무 아름답다고, 붉은 흙길이 슬프다고 사람들이 보거나 멀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나도 내가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다. 약해 보이면 안된다고 그래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옭아매던 동아줄이 여행을 하는 동안 어느샌가 느슨하게 풀어져버린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참고 견디고 다지며 살아왔던가. 힘들고 냉정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씩 쌓아올린 벽,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보호가 아니라 고립, 스스로를 가둬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222-22


세상 어디에도 슬픔만 존재하는 곳은 없다. 행복만 존재하는 곳도, 눈물만 존재하는 곳도 없다. 이렇게 적당히 고통과 상처가 눈물과 환희로 얼기설기 어우러지며 둥글게 굴러가는 것이다. 사람 사는 건 어디건 닮아 있다.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여진다.  241-242


집에 도착해 내 방에 들어섰을 때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와 깨끗한 이불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매일 같이 잠자리를 구하느라 힘들게 걸었던 시간들과 더러운 시트에 우비를 깔고 자던 기억, 벼룩이 옮아 고생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고생스럽게 잠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번엔 단정하게 접힌 깨끗한 수건들과 커다란 통으로 가득 채워 잇는 샴푸와 린스를 보고 또 가슴이 먹먹해져 버렸다. 매일 빨아 써야 하고 가끔 물이 안 나와 그냥 냄새나는 채로 말려서 써야했던 한 개의 수건, 불량식품처럼 줄줄이 매달려 있어 하나씩 잘라 썼던 일회용 샴푸, 돈 아끼느라 8개월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린스, 이 모든 것이 너무 감격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사치인 듯 느껴져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물론 편리하기는 했다. 전기는 항상 연결되어 잇었고 언제든지 수도꼭지를 틀면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수건은 넉넉했고 샴푸와 린스도 항상 가득차 있었다. 그런 일차원적인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냥 고맙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리고 가족들,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가졌어.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건 이렇게 많지가 않다고!" "동생아, 양치할 땐 물을 잠가라. 지구 반대편에선 물이 부족해 죽어가는 어린이들도 있다." "친구야, 또 뭘 산거야? 너 죽을 때 그거 다 짊어지고 갈래?"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을 틀어놓고 양치를 하고 린스를 듬뿍 짜서 머리를 헹궜다. 다 먹지도 않은 찌개를 지겹다며 다른 것을 끊여 달라 잔소리를 하고 옷을 사야 된다고, 상한 머리칼을 다듬어야 된다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편리한 생활은 그렇지 않은 생활보다 적응하기가 더 쉽고 빨랐다.  301-302


물질과의 여행이 아니었다. 마음과의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나는 여행을 떠나고서야 그것들을 느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꽤 많은 곳을 여행했고 가볍게 짐 꾸리는 데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장기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있었다.  305

Posted by WN1
,

이어지는 여행...

여행밑줄 2012. 10. 26. 23:57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들의 삶을 바라보려 한 것일까..


우선은 여행지에서 여행자들과 있는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한 나라에 방문했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교류하면 훨씬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방문한 나라에는 신경이 덜 쓰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방문한 나라의 이모저모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물론 솔직히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정도까지가 아니었던 상황이었고, 그들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움이 거리감을 두는데 한몫한것도 사실이다.

지금이야 말을 좀 덜 알아먹어도 눈치로 알고 그들과 소통하는데 두려움따윈 개나줘버리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영어가 일취월장하여 막힘없이 술~ 술~ 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은 떨쳐 버린 정도다.


남들과는 다른 여행을 경험하는게 좋았다.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는, 가이드북에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그런 곳에 들어가 보는것이 필요해 보였다. 어디서 튀어 나온 자신감으로 그랬을까? 무식한게 용감한 것이었다. 



조심해야 하는것은 알고 있으나 조심성보다는 막연한 호기심이 더 강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그렇게 그들의 삶에 한 발 더 들여 보고 싶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가 다 알 수는 없기에, 그들을 인정하는 면에서는 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일대일로 만나면 다 좋다고 했던가. 그렇게 조용히 찾아가는 곳에서는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용당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언뜻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것을 보면 미미한 사건이었으리라.

그들도 자주 볼 수 없는 외국인의 방문에 놀라워하고 수줍어 하였다. 그래서 더 관대했던 기억들만 남아있다. (옆의 사진처럼.. 낯선 이방인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집엣 키우는 것을 마시게 하려고 따려는 모습이다.)


이런곳은 당연히 알려진 경관이나 화려한 문화를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람사는 곳은 다 같다는 말처럼 (이럴때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곳들에도 있을건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하지만 기대를 하지 않으면 없는게 없었다. 

소도시, 아니 소도시라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렇다고 시골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곳이고 알려진 곳도 아니었으나 거기에도 클럽이 있고, 마트가 있고, 카라오케도 있다. 물론 그곳에서 우호적인 몇몇과 친구아닌 친구가 되어 분위기가 만들어져 클럽에 들어가 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만 있는 독특한 클럽문화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세 시간 넘게 똑같은 비트로만(트랜스음악) 틀어 놓은 그런 클럽이지만 있을건 다 있었다. (클럽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곳의 클럽은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컸다.) 



낯선사람을 경계하거나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보다는 그들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꽤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우리는 국내에서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경험에 의해서나 교육에 의해서 이겠지만 '않는다'기 보다는 '못한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렇지만 외국인에게는 왠지 마음이 쉽게 열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영어로 물어보면 긴장부터 되긴한다.. 하지만 가능한한 도와주려는 마음을 더 쉽게 가진다.


그들도 그랬다. 긴장을 되고 낯설기도 하지만, 마음을 쉽게 열어 주었다. 일단 그들의 홈그라운드니까.

그렇기에 이들에게 더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끌린다. 서로 이방인이기에 마음의 문을 조금은 더 열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생활에 흡수되어 보고 싶었다. 기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들과 마음을 주고 받고 싶었다. 

적어도 내 마음만은 남겨두고 돌아오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들의 삶으로 다가서는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미소  (2) 2012.11.18
여행 ... 기록  (6) 2012.11.14
여행 .. 비우다  (0) 2012.11.07
여행... 읽다  (2) 2012.11.02
여행...  (2) 2012.10.25
Posted by WN1
,



딱 한 숟갈 더 먹으면 체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번을 먹고 어김없이 체한다. 내리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 무게를  더하는 데 익숙한 삶은 늘 어지럽다. 침대에 누워 천천히 가라앉힌 뒤 차가운 냉수를 한 잔 마신다. 어쩌면 사랑이란, 가라앉힐 수 없음을 미리 알고, 쓸쓸하게 삭히는 것인지도 모를 일, 체를 내린 후 카메라를 들고 길 위로 나선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셔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산다. 마실거라고 우긴다. 숙소에서 깡통을 딴다. 딸 때의 그 느낌은 참 경쾌하다. 마셔본다. 역시나 쓰다. 난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 결국 버린다. 버릴 걸 알면서 사는 맥주. 내 손에 선택되었다가 버려지는 맥주들은 늘 애틋하다. 그대에게 얻은 경쾌한 울림들이 애틋하게 내 목을 넘어가는 동안.

사랑은 종종 기적처럼 사라진다. 채글 내리는 동안, 쓸쓸함을 삭히는 동안, 그리운 멀미를 다스리는 동안, 맥주 한 모금을 목넘김 하는 동안.

텅...텅... 빈 마음을 일으켜 그대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가라앉히는 것도, 사랑이다.


한 달쯤 지나면 여행은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지도를 펼쳐놓고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맞이하는 대신, 익숙한 고민을 시작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 것인가?'


사랑의 추억엔 좋고 나쁨이 따로 없다. 다만 추억과 소통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 화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경이로운 힘, 그것은 오직 사랑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먼 곳을 순례하다 보면 어떤 날은 유유하고 여유로운 기억이 종일을 채운다. 치열하게 걸을 자유가 있는 것만큼 아무것도 안 할 자유도 있는 게 여행자의 특권이리라. 또 어떤 날은 하루 내내 세탁방을 찾아야 하며, 또 겨우 찾아서는 두 시간가량 멍하니 세탁과 건조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날도 있다. 내게 파리의 첫날이 그랬다. 꼭 10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 그 황홀한 재회에 숨 막힌 것도 잠시, 숙소를 찾는 일이며 산더미 같은 빨래를 맡겨야 하는 일이며 부서질 같은 피곤이 몰려든다. 그래도 다시 만난 파리는 사랑스럽다. 고 쓴다. 사랑에 바쳐지는 피곤은 아름답다. 고 고백한다.


아비뇽의 좁다란 골목의 별 하나짜리 '미뇽'호텔.

아침마다 미뇽의 사장님이 직접 따라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배고픈 여행자들을 위해 크라상을 아끼지 않는 곳.

체크아웃조차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하세요."라며 웃어주는 곳.

그래서일까,

아비뇽의 거리조차 내내 친절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

그곳이 아니었다면 별 하나짜리 호텔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충분히 아늑했고, 충분히 편안했던 곳.

힘든 여정속의 따뜻한 숨구멍이 되어준.

결국 중요한 건 '별의 개수'가 아니었다.

..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건 너의 웃음보다 뜨거운 가슴미었는데..그만 외면하고 말았구나,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던 시절이 아쉽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지 못한 대가로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많은 것을 잃은 자의 가방은 늘 무겁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대를 갖고 나면 그대의 곁을 갖고 싶었다.

그대의 곁을 갖고 나면 그대의 세계를 갖고 싶었다.

그대의 세계를 갖고 나자 그대를, 잃었다.

잃고 난 빈 자리에서 짐을 싸는 여행자여,

짐 속에서 짐을 싸는 사랑이 있음을...


산 속에 서면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딱히 큰 고민은 아니었지만, 작은 고민들이 모여서 내 마음이 그토록 무거웠던 것이었나.

여행에서 짐을 하나씩 하나씩 줄여 나가듯, 내 고민도 하나씩 정리해서, 무게도 줄어들었으면.

짐 줄이듯, 고민도 줄일 수 있었으면.

버릴 건 버렸으면. 

그랬으면.


때론 내가 주인공인데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는...


언젠가 내게 물었지. 너처럼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여행을 자주가냐고. 왜 그런지 나도 생각해 봤어. 게으른 내가 남들보다 더 자주 떠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정말 단순한 결혼이 나오더라, 그건 바로 게을러서야. 혹시 지금 웃고 있니? 이건 정말이거든. 생각해 보렴. 게으르기 때문에 난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어. 일단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떠나는 거지. 남들처럼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아.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야. 나도 알거든. 내가 여행을 가서 언제나 먹던 김치를 그리워하고, 언제나 쉽게 긇여 먹는 라면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막상 피곤하면 카푸치노, 카페라떼, 아메리카노 보다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를 더 찾게 될 거란 사실을, 만약 아프거나 할 때, 약국에 가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막막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여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무섭도록 잘 맞는 법칙 하나. 그 여행이 길든 짧든, 

꼭 마지막 날에 좋은 걸 발견하게 되는 것.

오래된 애인과 헤어짐을 감지할 무렵, 그 사람이 징글징글하지만, 진짜 매력을 알게 되는 것처럼

길거나 짧거나 상관없이 여행지에서의 그 마지막 날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결국 또 오게 되는것.


Posted by WN1
,

여행...

여행밑줄 2012. 10. 25. 18:27

'떠나고 싶다' 


나에게도 '여행'이란 단어는 '떠나고 싶다'이다.

결코 도피적인 의미가 아님을 밝힌다.



도피행각이 아니라면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은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3년 전에도 들었던 의문이다. 그때마다 당시의 상황에서 대답을 해 왔다. 

당시의 답을 지금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도피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여행의 의미가 정리되지 않았는지 모른다.

물론 솔직히 지금도 나는 여행의 의미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 

고민하다 보면 그럴듯한 문장이나 단어가 나올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


왜 여행은 안정감일까? 

어떻게 보면 여행은 변화이다. 일상의 모습들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 문화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일상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고, 어찌보면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일지 모른다.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휴양지에서 여유롭게 식사도 하고 해변이나 수영장에서 비치베드에서 여유로운 모습에서, 깔끔하게 차려입고 선글라스에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들고 여유롭게 아름다운 곳들을 구경하는 모습이 어찌 치열함인가?

그렇다. 그것은 치열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런 모습은 여유와 즐거움, 휴식이다. 

이런 의문이 생기기 전에 먼저 밝혔어야 하는것이, 여행의 스타일이다.


나의 여행은 십년 전에도, 오년 전에도, 삼년 전에도 치열한 여행들의 주를 이루었다. 

배낭여행!

그 중에도 치열한 여행이다. 오지는 아니어도 여행자들이 잘 들어가보지 않는 곳을 즐겨 방문하는 여행이었다.

그러니 긴장의 연속이고, 때때로 치열한 모습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여행도 치열함일 거라 확신한다.

그 치열함속에서 여행자들이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경험들을 할 수 있고, 현지인들과의 만남이라는, 현지 문화의 깊은 체험이라는 거창한 변명아래 그렇게 여행하였다. 

물론 알려진 관광지를 전혀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곳들도 방문해 왔었지만, 가능하면 관광지에서는 좀 떨어진 곳으로 가려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미소  (2) 2012.11.18
여행 ... 기록  (6) 2012.11.14
여행 .. 비우다  (0) 2012.11.07
여행... 읽다  (2) 2012.11.02
이어지는 여행...  (0) 2012.10.26
Posted by WN1
,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아."  9


여행할 때,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섰을 때, 낯선 것들과 조우할 때, 그 설렘. 아무래도 그것이 내게는 '살아 있는 실감'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었다.  10


'생활인'인 나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내 방식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이 온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현실에 대한 내 책임이 더 늘어날수록 그 순간은 더 자주 찾아올 터였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방법을, 핏줄에 부는 바람을 안고 생활인으로 사는 방법을, 먹고사니즘과 '내 방식의 행복'이 함께 손잡고 이인삼각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방법을.  14


여행과 일상의 중간.  21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흔이 되고 싶다.  37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데? 먹을 것, 잠잘 곳, 놀 곳, 섹스 상대. 이거 말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뭐가 더 필요한데?"  111


"한국 사람들 늘 그러잖아. 뭐하지? 뭐해야 되지? 안절부절."

왜 시비냐고 버럭 하려다가 참았다. 저날 밤 톰과의 대화에서도 느꼈듯, '인생'이라는 마라톤 경기에 대한 한국 사람들과 빠이 사람들의 태도 차이가 너무도 극명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구간 내내 전력 질주를 한다. 빠이 사람들은 경주에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트랙 근처 나무에 해먹 매달아놓고 낮잠 자는 모습이다.

과연 삶이라는 마라톤은 어떻게 달려야 할까. 가장 좋은 건 적당히 속도안배를 하면서 달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반드시 사회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구간마다 물컵이 달리는 사람 수만큼 놓여 있어야 할 거고, 어떤 출발점이나 환경에서 시작하더라도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규칙과 트랙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예 중간에 트랙에서 내리는 방법도 있을 거다. 조기 은퇴나 조기 퇴직 같은 것. 그러나 그러려면, 달리는 동안은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것일까.  113-114


"속 터져요, 한국 같으면 벌써 다 지었어. 진짜 태국 애들 일 못하는 거 상상 초월이야."

"학비는 받나요?"

"아니, 기숙사까지 전액무료."

"학교 다 지으시면 교장선생님 되시는 거예요?"

"아니, 애들이랑 선생님한테 줄 거야. 나는 다시 딴 거 해야지. 여행 가든가. 내가 건물만 올려 주ㄴ면 그담엔 자기들이 지지고 볶고 만들어 나가야지. 밥도 해먹고, 농사도 지으면서."

"그럼 이 건물을 짓는 특별한 이유라도..."

"놀이."  128


난 그냥 내 고산족 친구들한테 해줄 게 없을까 하다 한번 만들어 보는 거예요. 아, 재미있잖아. 일 잘 안 풀리면 홧술도 한잔씩 마셔가며."

"살아 있다는 실감은 제대로 느끼고 사시겠네요."

도인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129


차가 읍내로 들어서자 기분이 복잡해졌다. 온천이나 폭포 같은 곳은 갈 생각 없다. 그것은 내게 그저 빠이라는 동네의 장식에 불과 했다. 나는 그냥 좁은 타운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했고, 만족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몸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좁은 타운 안에서 한 발짝 나각자, 내가 몸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왼쪽 겨드랑이나 허릿살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보였다. 빠이에 좀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좀 더 머무르며, 속속들이 이곳을 느끼고 싶어졌다.

"저 며칠 있다가 방비엥 가는 표 끊었거든요. 이거 찢을까요?"

아저씨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빠이, 블랙홀이야. 한번 빠지면 나가기 힘들어. 그래서 바람 불었을 때 얼른 떠야 돼요. 여기가 바람이 잘 부는 데가 아니거든."  130


나이가 먹을수록 설레는 일이 줄어간다. '그런 거 예전에도 봤어.' , '다 아는 거야.' 같은 허세와 교만은 조금씩 느는 것 같은데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설렘은 나날이 줄어간다. 나는 돈 뎃의 노을 앞에서 너무도 설레었다. 노을 겉은 거 보고 설렐 줄은 나도 몰랐다. 다시 한 번 그 처음 본 붉은 빛을 보고 싶었다. 한 번쯤 더 설레 보고 싶었다.  216


라오스에서 필요한 것은 '비움'이다.  231


누군가 '라오스에서 뭘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기다렸어요.' 내가 기억하는 라오스 여행의 절반 이상은 기다림이다. 그것도 확실치 않은 기다림.  237


지금까지 나 자신을, 특히 여행할 때의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고 얻은 결론인데, 나는 고생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 몸과 내 예금계좌와 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어ㅔ서의 고생이나 소동은 오히려 좋아한다. 무탈하고, 평온하고, 고요한 나날이 계속되면, 재미없다. 나이를 먹고 많은 상황에 익숙해져 갈수록 실수할 일도 잘못될 일도 줄지만, 그만큼 흥분하고 떨리고 가슴 졸일 일도 줄어든다. 그러고 보니 마흔은 '불혹'이했지, 흔들리지 않는 나이. 그 나이에 대해, 하나만 소박하게 바란다. 나는 흔들리지 말고, 내 주위의 공기를 조금씩 흔들려주기를,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을 때는 나 스스로 흔들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기를.  264


지금까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실 그것들이 알고 보니 내게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던 거다. 적어도 '행복'을 위해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나다운 행복을 느끼기 위한 최소공약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세상을 삼십 년도 넘게 살아왔건만,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두들 주변에서 '잘살아야 한다'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잘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과 풍요, 그리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외적 조건을 갖추는 것. 잘 사는 거, 좋지. 그렇게 살면 참 편할 거다. 거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을 거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건 잘살았던 것보다는 행복했던 것들 쪽인 거 같다.  275


호수를 빙 둘러싸고 울창한 열대 밀림이 우거져 있었다. 날이 흐린데도 물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지독하게 맑은 공기 위로 축축한 밀림의 향기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보고 쑥스럽게 웃음을 지어 주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어차피 호수에서 굳이 뭘 하겠다고 온 것은 아니니까. 그저 남아도는 한나절과 매너리즘을 쓰임새 있게 버릴 곳이 호수였을 뿐이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시간은 자주 버리잖아. 만화책으로, 게임으로, 트위터로, 메신저 수다로. 다만 이번 땡땡이에는 동그란 물, 붉은 진창, 울창한 밀림과 낯선 풀 냄새, 그리고 애물단지 같은 자전거가 하나 있는 거다. 라따나끼리에서 땡땡이는 이런 식으로 치는 거다.  287-288


내가 사는 나라, 얼마 전까지 변두리였다가 신도시가 된 우리 동네에서는 로스(스위스인)의 동네가 꽤나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그 부티와 안정감,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오늘도 그토록 치열하고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그런 '행복'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는 동네 주민은 정작 자기들이 행복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 인도차이나의 사람들은 정작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정말 그렇게 마냥 행복할까? 저 부유한 나라에서 온 친구의 말뜻은 결국 이건데, 행복과 소유는 그다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행복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 적어도 인도차이나 사람들은 그 '행복'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것 같다. 낙천적이고, 여유롭다. 정확성이니 효율성 따위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대로 살아간다. 불교라는 사상적 배경 때문에 현세의 괴로움에 너그럽다. 게다가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쉽다. 밖에서 자도 얼어 죽을 일 없고, 바나나며 망고스틴 같은 과일이 지천이니 굶어 죽을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땅의 곳곳에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생존과 생리에 대한 기본적인 욕망이 아닌, '소유'를 향한 자본주의적 욕망 말이다. 이런 욕망은 아주 쉽게 부도덕 및 몰양심과 결합한다. 나는 그것을 내 나라에서 징그럽게 많이도 보아왔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이 땅에서 그런 '징후'를 몇 차례나 보고 말았다.  297-298


욕망을 가진 자에게는 그 욕망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좀더 노동과 대가의 의미를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착취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저 얻는 것도 아닌 제대로 된 대가.  298


솔직히, 도시는 편하다. 나는 도시의 그 컵라면 같은 편리함이 그리웠던 거다. 오지에서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꼈으면서도 말이다.  318


미인이란 상대적 희소성에 대한 동경의 산물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거 참 허무한 건데.  364


만일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물이 넘칠 기미가 보이는즉시 동네 사람들과 애꿏은 군인들이 총동원되어 물을 퍼내고 둑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달랐다. 세계적인 유산 앙코르와트 해자의 물이 불자, 씨엠립 주민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곳에서 뜰채와 어망과 낚싯대를 들고 고기를 잡고 계셨다. 

같은 지구, 같은 아시아인데도 이드로가 우리는 삶의 속도와 리듬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우리는 내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둑을 쌓는데, 이들은 오늘의 만복과 행복을 위해 고기를 잡는다. 왜냐고?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대비하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수 있다. 이들은 그냥 살아가도 먹을 것, 잘 자리는 생긴다. 우리는 죽어라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 겨우 1년에 한 번 추수하는 쌀, 이들은 두 번도 거두고 세 번도 거둔다. 당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것 아닐까. '저러고 사니까 이렇게 못살지'도, '아, 왜 우리는 이렇게 찌들고 각박하게 살아야 하나'도 아닌 거다. 그녕, 다른 거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 게다가 이들은 윤회를 믿는다. 이들에게 진짜 미래란 10년 뒤, 20년 뒤 따위가 아니라 다음 세상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이들에게 진자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일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이 '다름'에 조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정말 그것으로 족하냐고, 그래도 되는 거냐고. 아이들을 보았을 때였다. 현실의 언저리만을 맴돌며 '썸말로이'를 외치는 씨엠립의 아이들을 말이다.  403-405


이 영악하기 짝이 없는 꼬마 사업가들은 과연 어떤 배경으로 탄생하게 되었을까?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킬링필드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 당시에 가장 먼저 숙청당한 사람들이 바로 지식인이랑 자산가였거든요. 캄보디아 사람들 아직 은행 잘 안 믿어요. 은행에 저축하는 대신 금을 사서 집에다가 묻어두죠. 그러니까 아이들 학교 보낼 필요성도 못 느끼는 거죠. 가르쳐 봐야 잡혀가서 죽기나 할 테니까요. 그냥 돈이나 버는 게 훨씬 낫다는 거예요. 게다가 애들이 좀 잘 버나요. 그래서 애들 내보내서 돈 벌어오라고 시킨 다음에 부모들이 도박이나 술로 탕진하는 경우도 많아요."  411


장기 여행자들을 보면 두 종류다.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나온 사람들, 아예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 같은 게 없는 사람들, 카오산에서도 두 종류로 보인다.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 같은 게 없는 사람, 또는 카오산에서만큼은 안정이고 나발이고 버리고 싶어 보이는 사람.  425


시간은 유한한데 지구는 너무 넓다. 그리고 갈 데가 너무 많다.  429


서른다섯,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한 나이의 한여름, 그해의 여름, 나는 행복해지겠다며 조금은 억지를 섞어 이렇게 뛰쳐나왔고, 그렇게 긴 여름을 보내며 많이 행복했으며, 몰랐던 것 한 가지를 배웠다. 자잘한 불편과 결핍은 사실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세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최소 공약수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최소 공약수들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시시해지고, 무언가에 구속당하고 싶고, 낯익고 좁은 것들 사이에 있고 싶어질 때가, 언젠가는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올 때를 나는 꿈꾸려 한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성숙한 내가, 세상의 한 구석에 정착하여 그곳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모습을. 씨엠립에서 꿈꾸었던 모습일 수도 있고, 다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아줌마가 되어 가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 앞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내 인생의 가을은 그런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는 열심히 행복하려 한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은 여행을 다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욕망을 '성취'라는 이름으로 풀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내 인생의 남은 여름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442


Posted by WN1
,

 

 

행복 같은 건 애초부터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는 사랑받지 못했고 별자리는 내가 손 닿을 수 없는 곳에서만 아름다웠으니까.
우리는 생활 앞에서 언제나 난처했고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뜨겁던 청춘은 지나가버렸고 버스는 손을 흔들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더 슬픈 건 청춘에 대해 미련이 없다는 것.
떠나간 버스를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하지만 어떡해? 다시 길을 나서는 수밖에.
마치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듯 배낭을 꾸리고 신발끈을 동여맸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당신은 언젠가 나를 살랑하게 될 것이고 별빛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생할은 언젠가 나를 안아줄 것이고
청춘.....
그래, 청춘은 지나갔기 때문에 식어버려 재만 남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잖아?
행복이 오지 않을 땐 우리가 그것을 만나러 가야지.  14-15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수천만 원이 든 통장도 자동차도 그다지 쓸모가 없구나.
우리를 위로해 줄 음악과 책, 우리 몸을 감싸줄 티셔츠 몇 장.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구나.  23

 

짙은 라오 커피 한 잔과 바삭하게 구운 바게뜨가 당신의 식탁 위에 차려져 있다....
책장을 펼쳐 어젯밤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는다.
메모를 하며 '내 삶의 제목을 정한다면 무엇일까?'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책을 내려놓고 당신은 나이프를 들고 바게뜨에 치즈를 바른다.
바게뜨는 이제 알맞게 식었다...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들이 커다른 배낭을 짊어지고 지나간다.
그들은 당신을 향해 미소를 건네고 당신 역시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당신은 이런 아침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28-29

 

루앙프라방에 석 달째 머물고 있는 중년의 캐나다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아쉬워할까요?"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의 실페와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 시간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주저했고, 불안했고, 고독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루앙프라방에 와서 비로소 시간이 어떻게 느리게 흘러가는 지를 알게 된 거야. 시간을 소비하는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거지."
시간을 소비하는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나는 그 멋진 말을 곧 실감할 수 있었다.  33

 

아무도 'see you again'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스쳐가는 사이였으니까...
우리의 우연은 거기까지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41

 

우리에겐 생을 감상하고, 즐길 권리가 있어요.
내가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온 건 그 권리를 찾기 위해서랍니다.  43

 

"제 이름은 틱 웃입니다. 열아홉 살입니다. 내년이면 정식 승려가 됩니다"
틱 웃이 빈 그릇을 치우고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당신에겐 길을 잃을 권리가 있어요. 당신은 여행자니까요."
"많이 두려웠죠? 누구나 낯선 장소에 홀로 있으면 외롭고 두려워지게 마련이죠."
"길을 잃었을 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당황해서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지게 되죠. 여유를 가지고 내가 왔던 길을 천천히 더듬다 보면 분명 가야 할 길이 보일 거예요."
"또 한 가지.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 갈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마세요. 느긋하게 길을 가면 되요.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것도 행운일 수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당신은 여행을 많이 했나요? 먼 곳으로 순례를 떠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행도 삶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죠."
틱 웃은 내게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조용히 일어섰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일생은 길을 잃고 다시 찾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아니, 길을 잃고 싶어, 그리고 길을 잃으리란 걸 알면서도 길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잃은 길 위에서 어딘가에 있을 차가운 불빛 하나를 기대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런지. 그러기이ㅔ 모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아둔하기만 한 것이 아닌지.
다음 날 아침, 떠나는 나를 향해 틱 웃이 말했다.
"모든 건 명확하지 않아요. 지도 역시. 자동차도, 컴퓨터도, 모든 것은 오류를 가지고 있죠. 우리는 언제나 길을 잘못 들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낯선 길을 헤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랍니다. 용기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죠." ...
내가 심호흡을 하며 힘껏 페달을 밟앗던 그 지점에 도착했다. 커다란 트라웃 나무가 무성한 잎사귀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때, 여행은 즐거웠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트라웃 나무에 등을 기대고 지도를 살폈다. 우습게도 내가 틱 웃을 만났던 사원은 그곳에서 고작 6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걷는다고 해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리였다.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틱 웃의 말을 떠올렸다."낯선 길 위에서 오히려 행운을 만날 확률이 높죠. 우리가 길 위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47-49

 

우리는 골목을 걸으며 골목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골목에 깃든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누구는 이 골목에서 태어나 도시로 떠났고, 어떤 이는 이 골목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또 다른 이는 이 골목을 평생 동안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골목은 여행자들이 자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세상 여기저기에 퍼뜨려줄 것을 알고 있다. 노인이 그가 목격한 생의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들려주며 세월을 견디듯, 골목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견뎌가는 것이다.
감동 어린 여행기를 쓰고 싶은 여행자들이 골목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자들은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을 겪은 듯 글을 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가 골목에서 만났던 운전수와 아이들, 빵장수, 호객꾼, 여인, 걸인, 승려, 소매치기가 전해준 것들이다. 여행자는 골목에 얽힌 위트 넘치는 추억담, 골목이 들려주는 생생한 증언들을 인용하고 전달할 뿐이다.
골목에 관한 뛰어난 명상가인 어느 여행자는 세상이 어쩔 수 없이 신비로운 이유는 뜨거운 화산 때문도 아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때문도 아니며 바로 수많은 골목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많은 골목이 있는 이유는 하나의 골목마능로는 이 세상의 신비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지금 세상의 모든 골목이 그려진 지도를 만들고 잇다. 그건 어쩌면 우리 생의 비밀이 담긴 가장 은밀한 지도일지도 모른다.
가끔 생각한다. 아름다운 골목과 만났을 때 하염없이 걸어서 모퉁이를 돌아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72-73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돌아가기 싫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면, 당신은 여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84

 

싸이(Ssay)는 스물 여덟 살. 툭툭을 운전한다....
싸이와 차를 마시다가 그에게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때땔로 들기는 하지만 특별히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뭐가 부족하지?"
싸이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학교, 세탁기.... 뭐, 이런 것들 아닐까? 그런데 초이, 부족한 것과 가난한 것은 뭐가 다르지?"
"부족한 건 단지 단지 불편한 것이고 가난한 건 그것보다 좀 더 슬픈 일이겠지."
싸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난 조금 부족할 뿐이야. 슬프지는 않으니까. 내가 세탁기를 가지고 싶은 건 아내가 빨래를 좀더 편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뿐이니까. 세탁기가 없다는 건 약간 불편할 뿐이지 슬픈 일이 아니잖아?"  98-99

 

세상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별이 뜨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별을 나침반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요.
그래요. 우리 인생의 복선과 암시는 어딘가에 분명 숨어 있어요.
해피엔딩이든, 쓸쓸한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자기 인생의 정면을 관토할 사랑과 의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걸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거죠.
난 삶 자체가 바뀌기를 원하고 있었고 그건 아주 절실했죠.
새롭게 시작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131

 

"이봐, 초이. 여기 벽이 있어. 어떤 사람은 벽을 넘어. 어떤 사람은 그냥 뒤돌아서 가지. 어떤 사람은 벽을 부수고. 어떤 사람은 벽에 낙서를 해. 그리고 어떤 사람은 벽을 더 높이 쌓지. 넌 어떡할래?"
"글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먼저 벽이라는 걸 인식하는 거야. 벽을 외면해서는 안 돼. 그건 가장 못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런 다음 일단 부딪혀 보자구. 벽을 넘건, 뒤돌아서 가건, 낙서를 하건, 부셔버리건, 그건 그 다음 일이니까. 언더스탠드?"  154

 

내겐 저축도 거의 없어. 보험도 없고 연금도 나오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종족이 아닌 거야.
누군가 내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더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하지만 살다 보면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시기가 찾아오지. 그때 힘껏 내질러야 해. 발등에 축구공이 정확하게 맞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앞 뒤 잴 필요도, 골대 따위를 가늠할 필요도 없어. 그냥 힘껏 내지르는 거야.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되겠지. 어제 서른여덟 살이 됐어. 남자에게 서른여덟은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늦은 아니는 아니야. 어쩌면 이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을 할 수도 있는 나이지.
운명은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그것을 경험하고 나면 누구도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어.  167

 

우세요. 실컷 우세요.
우는 게 부질없으면 인생도 부질없어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인간답게 사는 순간은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이거든요.
울다 보면 당신 안의 짐승이 달아날 거예요.  169

 

"여기서 행복해?"
"행복해."
"어떤 점에서?"
"걱저이 없어. 그러니까 행복하지. 여기 와서 깨달은 건 행복이란 걱정이 없는 상태라는 거야."
더 좋은 것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까, 더 많은 돈이 필요없다고.  183

 

"네가 알고 있는 루앙프라방 사람들에 대해 말해 줘."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음, 그들은 계획이 없어. 아니, 계획을 세우는 것데 대해 무관심해. 내가 그들에게 '자, 우리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이렇게 이렇게 해봅시다'하고 말하면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지."
"왜일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들은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지 않아. 그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 버리지."
"그런 걸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분명한 건 이젠 내가 그들에게 익숙해져 버렸다는 거야. 나 역시 가끔 이런 걸 왜 해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으니까."
마이커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네가 이곳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지금은 한 사람의 노력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 그게 가능했던 때가 있었지만 그건 노스탤지어일 뿐이야. 그리고 난 그냥 하찮은 사람이야. 부조리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지.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곳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난 지금 나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그걸 봉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라지 뭐."  184-185

 

겨울 시린 꽃봉오리에서 뜨거운 꽃이 열리듯 살아내는 것 자체가 가장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고 사랑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
세상의 모든 길은 끝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일이 이토록 소중한 일일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삶일 줄이야.  193

 

손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손이 진정으로 필요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그건 바로 누군가를 쓰다듬고 어루만질 때랍니다.
당신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질 때 나는 진정되곤 합답니다.
공포와 슬픔과 불안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답니다.  226-227

 

"여행을 하면서 고양이만 찍었어."
"대단하군, 그런데 왜 하필 고양이지?"
"그놈들은 여행자를 닮았어. 그들의 구부러진 등을 봐.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적당한 긴장감으로 휘어져 있지. 눈빛도 여행자와 비슷해. 저멀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망연하다가도 곧 낯선 자를 경계하는 듯 날카롭게 바뀌지. 친해지는걸 두려워한다는 것 역시 여행자와 닮았어. 누군가와 지나치게 친해지면 떠나기가 힘드니까."  230

 

당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오해에 불과해. 저 비행기를 봐. 당신은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이륙의 유쾌한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착륙의 우울한 자세일 뿐이야.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언제나 오해하고 있지. 별이 영원히 밝을 것이라는 생각은, 별에 대한 우리의 영원한 오해일 뿐이야. 그렇지만 우리에겐 오해가 필요해. 진심을 말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완벽한 균형 따윈 없어. 솔직히 말하자구 .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건 생활이잖아.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까.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완벽하게'오해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나의 오해를 오늘 밤만이라도, 제발, 이해해 줘. 부탁이야.  237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
당신은 여행자니까요.
내일이면 떠나버릴 테니까요.
나만 혼자 남을 테니까요.  253

 

우리가 우너하는 것은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멀리 있어서 반짝인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떠나온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최소한의 절망으로부터의 도피이기를.
내 삶에 대한 방황의 성실한 흔적이기를.
당신은 언젠가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별빛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생활은 언젠가 나를 안아줄 것이기 때문에...  263

 

당신이 처음 발을 디딘 이곳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언젠가 이 강바람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고 느낀다면
마음에 드는 창문 아래에서 하루 종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면
하루쯤 늦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진다면
옥상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달빛이 비치는 산을 올려다보는 그 시간이 좋아진다면
상대방을 향해 먼저 웃음 짓는 순간이 많아졌다면
지금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사람이 3년 전 기차 칸에서 당신에게 어깨를 빌려주었던 그 사람일 것 같다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구름의 무게가 몇 그램이나 되는지 궁금해진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고마워진다면
막혀버린 길보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더 난감해진다면
정들었던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며 마음이 물끄럼 해진다면
버스 안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골똘히 생각헤 잠긴 중년 남자가 멋있게 느껴진다면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면
망고를 사고 동전 하나를 더 거슬러 받았는데 이 세상을 얻은 것보다 더 기뻤다면
나중에 동전 하나를 덜 거슬러 받은 걸 알게 됐는데 이 세상을 잃은 것보다 더 슬펐다면
우리 모두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갑자기 내 삶이 대책 없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서서히 여행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267

 

노비스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초이, 여기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세요."
나는 그가 건네준 종이 위에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집, 차, 컴퓨터, 카메라, 책상, 청바지, 텔레비전, 티셔츠, 음반, 책, 냄비, 신발, 화분, 어항, 탁자, 의자, 옷장, 자전거, 오디오....
적다 보니 종이 한 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적기에 이 종이는 너무 작아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더니 종이 한 장을 다시 내밀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종이였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그 종이에는 옷 두 벌과 책 네 권, 신발 한 켤레, 수저 한 벌이 달랑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종이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때문에 당신은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
노비스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적은 없었다. 그것들을 사는 순간 잠깐 행복했을 뿐이었다. 물건을 사는 순간을 즐긴 것이지 물건 자체가 즐겼던 건 아니었다. 곧 싫증을 냈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갖고 싶었다. 
노비스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더 내밀었다.
"이제부터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의 목록으로 이 종이를 가득채워보세요. 나무 그늘의 위로, 당신에게 쉴 자리를 내어주는 배려, 아직 여행할 곳이 남았다는 기대감, 내일에 대한 희망, 작고 가난한 것들에 대한 존중, 갈증을 적셔주는 물, 나무의 씨앗을 키우는 햇빛, 당신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새소리.... 그것들을 하나씩 적어가다 보면 이 종이 한 장으로는 모자를 거예요. 그때 제게 다시 오세요. 종이는 얼마든지 더 드릴 수 있으니까요."  283-286

 

"우린 허들 선수야. 결승점에 닿기 위해서는 허들을 넘어야 해. 하지만 친구, 허들을 방해물이라 생각해서는 안돼. 허들은 너를 결승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도 하지. 허들을 열심히 넘다 보면 어느새 결슬점이 네 앞에 있을 거야. 삶도 마찬가지야. 힘내라고!"  289

 

푸 타이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혹시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거 있어?
푸 타이가 말했다.
초이, 신이 내일을 만든 건 걱정하라고 만든 게 아니야.
준비하라고 만든 거지.
오늘은 내일을 준비하는 날이야.
내일 봐, 안녕.  297

 

노련한 여행자들은 삶에 대한 해답이 세상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멈추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막을 건너는 일도 첫걸음부터 시작한다.
수천만 번의 걸으을 반복해 마침 내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다. 단숨에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모험보다는 경험이다. 진리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관광객이 되지 마라. 여행자가 되어라. 관광객은 장소에 머무는 자다. 하지만 여행자는 장소에 묻힌 시간의 비밀을 발굴한다.
실패를 즐겨라. 신은 삶을 설계할 때 실패를 예정해 놓았다. 우리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멀리 있어서 반짝인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온 것이다.  303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반지금의 길이만으로 원의 둘레를 구하는 방법을 배웠고,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도 배웠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도 배웠다. 시치미를 떼는 법, 모른 척하는 법도 배웠다. 난처해지지 않는 법도 배웠고 고마워하는 법도 배웠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그냥 웃으면 된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진리는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존재이며,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325

 

 

Posted by WN1
,



왜 당신은 당신을..

당신의 생을 사랑하지 않는거지? 

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거지?


여행은...

내가 나를...

꼬옥...

껴안는 일이라고 해두자...


여행을 가는건 

당신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의 기분 좋은 온도를 느끼는 일.


여행은 새로운 공간과 장소를 만나는 일이지만

새로운 시간과 조우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간의 새로움이 아닌 시간의 새로움을 느끼는 일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가늠한다.

그래서 여행은 당신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당신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떤 풍경 앞에서

어떤 사람앞에서

가슴이 떠리거나 

닭살이 돋을 때가 있다.

아직 다행인건 

내가 양복이나 가방 앞에서 그런 가슴 떨림이나 닭살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

나는 아직도 이과수 폭포의 굉음 앞에서

카파도키아의 석양아래서

인도 거리에서 만난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 앞에서 

가슴이 떨리고 닭살이 돋는다.

난 가끔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여행할 기회가 찾아온다더군


삶이란 실수하고 만회하고

실수하고 만회하는 과정의 연속

그러니까 실수를 두려워하지마!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우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건 어쩌면

약간의 과묵과 더 약간의 냉담인지도 모른다.


신문을 보고

잡지를 보고

TV를 보면

시위, 폭동, 기아, 전쟁...

세상은 점점 망해가는데

나는 이십분마다 한번씩 여행을 궁리하고 있다.


두근거림이 사라지기전 얼른 떠나세요. 설렘은 모든 불편을 감내하게 한답니다.


여행이란, 내 속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끄집어 내는 일

바로 그걸 가능하게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여행은 자신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이기도 하죠.


제게 청춘은 이십대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그때가 내겐 청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때 서른다섯이었습니다.


내가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칙은 단 하나다.

하기 싫어도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잘 할 수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자.

지금까지 이렇게 해 왔다.

글쓰기도, 여행도, 사진찍기도

모두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물론 하기 싫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하기 싫은 '때'였을 뿐이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내가 남들보다 조금 다르게 할 수 있는 일. 그런일.

좋아서 하다보니 열심히 하게 됐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그럭저럭 잘하게 까지 됐던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고

그래서 즐겁다.

나는 지금의 일을 좋아하지 않을 때까지 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행복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현재의 상태!!


'옆자리 대화' -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 사람이란 왜 헤어졌어?"

                     "뻔하잖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과거는 좋았지만 그 사람과의 현재는 불편했고,

                     그 사람과 함께해야 할 미래는 막막했어."

                     "그랬구나. 잘했어."


난 떠나겠어요.

당신을 잊기 위해 여행을 계속하겠어요.

당신을 그리워하기 위해 길을 가겠어요.


'오해 하나 더' - 난 널 싫어하는게 아니야.

                 단지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야.


나는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 가운데 하나는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전 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것.

마음껏 웃고 여행하라! Smaile & Traverl!


여행은 늘 새로운 아침을 보여주고

인생은 늘 새로운 외로움을 보여준다.


새로운 풍경을 본다는 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 좋은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애정을 갖고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이고

조금만... 조금만 더... 자세히 보고

조금만... 조금만 더... 웃어주고

조금만...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조금만... 조금만 더... 감탄하고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게 많구나!

조금만... 조금만 더... 겸손해지고

에잇, 그까짓거 뭐 일단 가보는 거지

조금만... 조금만 더... 대담해지고

난 이런거 없어도 돼. 조금만... 조금만 더... 심플해지고

내일로 미룰 수 있는건 내일로 미루자

조금만... 조금만 더... 게을러지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많지 않다.

여행은 이 소박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아, 정말로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그리워하는 것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난 이제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를 위해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런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고 있어?'

우린 서로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사랑과 여행에 공통점이 뭔지알아?

세상은 설명해주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야.


'인생의 황금비율' - 인생의 90%는 리얼리스트로 살자.

                    나머지 8%는 모더니스트로

                              2%는 미치광이로

                              8%가 우리 인생을 즐겁게 해주고 2%가 우리 인생을 가능하게 해주지.


돈이 차고 넘쳐서 여행했던 적은 없었던것 같다.

항공료를 아끼기위해 5시간 거리를 14시간만에 가야했고,

숙박비를 아끼기위해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에 몸을 뉘어야 했지.

1달러를 아끼기위해 1km를 걸어야 했지.

언제나 돈에 쪼들렸지만 언제나 떠났어.

그런데 말이야 신기한건

일단 길을 나서면 모든 것은 '어떻게 어떻게' 해결된다는 거야.

돈이 없어 여행을 멈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10년 넘게 여행을 해 오면서.

여행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떻게 어떻게' 정신.

그러니 너도 일단 시작해봐

어떻게 어떻게 되겠지.


여행중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뭘까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

사실 일 역시 마찬가지.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낄 때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땐

뭔해야 할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가만히 서서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것.


빵이 필요한자

사랑에 빠진자

그리고 여행이 필요한 자의 눈빛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지

모든걸 걸어도 생이 아깝지 않다는 그런 눈빛.

간절한..

간절한...

간절한....


얼마나 많은 방법이 있는데... 

왜 

무슨일을 해결하는 데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의 본질은 피곤한 것이에요.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비행기는 연착이죠. 

기차역은 언제나 표를 구하려는 이들로 북적이죠. 

예약한 숙소 문을 열 때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건 커다란 바퀴벌레며, 

샤워장 바닥은 왜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인지...

여권은 어디에 뒀더라? 카메라는 오늘따라 고장이고 역시나 택시기사에게 바가지를 쓰고 말았군요. 

우리가 기대했던 여행지는 사실 별거 아니구요.

젠장 오늘 투어는 정말이지 엉망이었죠. 가아드는 대놓고 팁을 요구했구요.

소나기까지 내려 비에 흠뻑 젖고 말았죠.


네, 맞아요. 이런 게 여행입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하루. 

여행은 그런 하루가 일주일 또는 보름, 혹은 일 년 동안 이어지는 일이죠. 

우리가 책에서 보아온 여행에 대한 빝나는 수사들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처음 가보는 낯선 땅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술술 잘 풀린다면 그게 오히려 잘못된 거죠.


참 이상한 일이죠. 이 모든 걸 감수하면서 우리는 다시 여행을 떠나니까요.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신을 사랑하려면...

좀 뜬금없지만

책읽기와 하루에 원고지 3매씩 글쓰기, 여행을 해볼 것을 권장합니다.

(물론 제 방식입니다.)


책읽기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10분이든 1시간이든 하루종일이든 책을 읽어보세요. 장소는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요. 혼자 고요히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3매의 글쓰기, 글쓰기는 스스로를 상상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주제는 상관없습니다. 일기도 좋고 영화평도 좋고 독서평이나 음악평도 좋습니다. 그냥 에세이 혹은 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종류라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써보세요. 자신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자주 여행을 다니세요. 견문을 넓힐 수 있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등등등...

여행은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죠. 이 모든 장점에 하나를 더하라면, 여행은 자신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행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 자신-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취향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의 현재 몸 상태는 어떤지 등등=에 대해 확실히 알려줍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관찰해보세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가지는 우리를 좀 더 느리게 만들어준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에 생기는 건지도 모르거든요.

Posted by WN1
,



'파이팅' 같은 건 하지 말자.

그런 거 안 했어도 우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잖아.

최선을 다하지도 말자.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매일매일 죽을힘을 다해 달리려니까 다리에 쥐난다.

지치려고 그런다.

조금은 적당히

조금은 대충대충

좀 걸어 보는 건 어떨까.

걸으며 주위도 돌아보고 그러자.  36


솔직하게 인정하자.

현실은 언제나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엉망이고, 당신이 아무리 극진하게 살아도 당신의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게다가 나아질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떠나간 사랑이 돌아올 확률은 아파트 당첨 확률보다 낮다는 사실. 당신은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이 지난한 생을 견뎌 내고, 살아 내는 까닭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 하나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가장 흔하면서 손쉬운 방법이 아마도 여행일 테고, 그래서 당신은 여행을 작심하고 그 순간, 가장 먼저 바다를 떠올릴 테지. 눈부신 햇살, 광폭한 파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득한 수평선,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짠 바람, 포구에 배어 이쓴 비릿한 생선 냄새, 그곳에서 뒹구는 사람들의 악다구니... 당신의 생이 잊고 있었던, 그래서 갈망했던, 촉각과 후각과 미각, 시각, 청각에 대한 몸서리치는 형용사들이 생생하게 우글거리는 바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당신이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함을 어렴춧하게나마 깨닫고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지금 당신은 겨울 바다에 가려 한다. 바다에서 꽁치 한 봉지를 사서 내일 아침은 따뜻한 쌀밥과 노릇하게 구운 꽁치를 식탁에 올리자. 당신은 먼 길을 달려 바다까지 왔으니까. 지금까지 그렇저럭 살아 냈으니까. 적어도 당신에게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꽁치 살을 바르며 이렇게 생각하자.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꽁치를 구워 먹을 수도 있는 것, 그게 우리 삶의 리얼리티라고.

맹목적이고 본능적이고 속물적인 것. 그게 살이라고...

당신은 지금 피식, 웃음이 나오려 한다.  62, 65


우리가 여행을 감행하기 위해 거창하고 명확한 명분을 만들 이유는 없다. 여행이란 하루키가 말했듯,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가방을 들고 표를 사서 어디로든 가는 것이고, 타인을 납득시켜야 할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어쩌면 여행을 닮았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명확한 목적과 이유를 모른다. 단지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104


나를 포함해서 제발 서른 넘은 인간들이여, 벤츠도 좋고 아이팟도 좋고 아르마니도 좋고 루이뷔통도 좋다. 그런거에 열광한다고 아무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차피 속물이니까. 그래도 이 세계를 조금 더 평화롭고 유쾌하게 만들 이데올로기 하나쯤은 가지고 살자.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하루에 1분 정도는 고민하자. 지금 이 순간, 며칠 전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본 어느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무너져 내리는 빙하를 바라보던 북극곰의 절망적인 눈빛 말이다.  145


여행에 대한 몇 가지 서툰 잠언

 - 우리가 경험하는 여행은 논픽션이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여행은 픽션이다.

 - 우리의 여행이 서사를 장착할 필요는 없다. 교훈적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건 각설탕 같은 것이다.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우리의 여행은 단지 생의 체온을 조금 높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 '즐기고 탐닉하라.' 이것이 여행자의 첫 번째 행동 강령이다.

 - 누구나 자기만의 환살을 좇아 여행을 떠난다. 어떤 이는 환상을 깨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환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 여행을 즐겁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 여행은 언제나 실패다. 성공적인 여행은 없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당신이 긍정을 배웠으면 좋겠다.  206-207


여행의 정석 : 가장 빠른 달팽이처럼.  208


여행작가의 책무 -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대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키는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지평선 너머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두 발로 뚜벅뚜적 걸어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16


모든 사물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사진을 찍지 말고 대화를 하려고 해라.

겁먹지 마라.

상대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법이 아니라 방식이 문제다.

당신의 찍는 방법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당신의 보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222


훌륭한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런게 있을까요?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그냥 여행이지 '훌륭한' 여행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여행보다는 좀 더 사려 깊은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247


사랑에 관해 우리는 필사적이어야 한다고 썼다가

이내 생활에 관해 우리는 좀 더 필사적이어야 한다고 고친다.  280


일을 하면 할수록

철학과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철학과 나만의 스타일을 지닐 것.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

이제 그럴 때가 됐다.  288


서른과 마흔사이 -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나이.

새로운 직장을 위해 이력서를 쓰기가 쑥스러운 나이.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

혼자서 영화관 가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나이.

따뜻한 공기가 빠져 가는 벌룬처럼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나이.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없어지는 나이.

차라리 판타지가 재미있어지는 나이.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나이.

기율과 위계 의식과 연대 의식, 이런 것들에 대해 서서히 신경을 쓰게 되는 나이.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편견이 서서히 쌓여 가는 나이.

하지만 상대방의 편견을 존중하기는 어려운 나이.

일상을 뒤엎는 전폭적인 모험을 감행하기에도,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도 이른 어정쩡한 나이.

파격이 아니라 품격이, 파행이 아니라 고행이 필요한 나이.

음악, 미술, 사진, 문학, 패션, 음식의 취향이 자신을 말해 주는 나이.

죽음이란 게 그저 육체의 한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

자신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

그래서 약간 우울해지는 나이.

뭔가 필요한 자질구레한 것이 많아지는 나이.

그리고 그것들의 가격이 점점 비싸지기 시작하는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혼자 남겨지는 건 아직도 두려운 나이.  292-293


나이가 든다는 건 .... 자주 아픈 게 아니라, 아픈게 회복되는 시간이 더디다.  296


Posted by WN1
,




'여행은 포옹과 같아요' 라고 말하는 그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한 동안은 풍경의 잔상이 망막 속에 남잖아요.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그때의 풍경들, 눈을 뜨고 있을 때조차 떠오르는 기분들...

  가끔은 여행자의 망망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져요.

  그가 어떤 풍경 속을 걸어왔는지 어떤 심정으로 그 풍경 속에 있었는지 궁금해요.

  언젠가는 나도 그 풍경 속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서로가 꿈꾸는 포옹 같은 여행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길을 잃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이다.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부단한 의지의 실현이다.  31


서른? 글쎄... 서른 살을 특별히 의식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어요. 스물 여덟 살까지 난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스물아홉 살부터 여행자가 됐죠. 서른 살에도 여행중이었고 지금은 서른한 살, 난 여전히 여행 중이에요. 음,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여행을 하며 3년이 지나갔네요. 23일 후면 서른 두 살이 되는군요.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됐어요. 스물아홉이든 서른둘이든 마흔이든 그건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 여행을하며 내 삶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직장생활을 하며 삶의 지도를 그려 나가는 것이나 여행을 하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나 뭐가 다르죠? 예전에 난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여행자에요. - 베이징에서 온 나나  134


행복에 겨운 그들의 얼굴을 보면 나도 저절로 행복해져요. 도쿄에서는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거든요. - 도쿄에서 온 사사키  138


당신은 혹시 사무치게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신지.  142


여행자들 : 차들이 엉켜 있는 복잡한 사거리에서 신호에 관계없이 횡단보도를 느릿느릿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자들.  172


비현실적인 현실도 실재한다. 여행은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다.  243


여행을 떠나오면 알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걸.  284


세상은 엉망이다. 

살 만하다고 악을 쓰지만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정신없이 취하기는 싫고 약간은 몽롱하고 싶고

그리고 어쨌든 견뎌야 하니까.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여행을 떠나지.  305


지금까지 허송세월한 것이 아니라면 굵직한 기회 한두 번 놓쳐버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어.

기회는 언젠가 다시 오고 다시 움켜잡으면 돼. 어쨌든 죽기 전에 주지런히 움직여봐. 

기회는 내곁으로 다시 찾아온다구.

모든 것은 날 수 있어.  308


왜 어떤 장소는 사소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일까.  312

Posted by WN1
,



서울이라는 곳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당혹스럽고 주저거린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을 때가 간혹 있다.

매일 다닌 거리에서 길을 몰라 허둥대는 꼴이라니!

여행길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니, 길을 잃은 적은 많았지만 적어도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여행은 어차피 길을 잃는 의도적인 행위이고, 또 잘못들어선 길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34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아보자.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삶을 낭비해 보자.  37


함께 맥주를 마시던 소설가 S가 내게 말했다. 선배는 지금까지 젊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그런 것 같았다. S의 말처럼,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청춘은 단 일 분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못 견디게 힘들었던 때는 있었지만 못 견디게 아팠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청춘이란 손톱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아픈 것일진대, 나는 단지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살며 세월을 보냈던 것뿐이다. 그러면서 청춘을 지나쳐 길의 어두운 저편으로 걸어왔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늙어버린 나는, 클라이맥스 없이 지나온 나는, 갑자기 삶이 두려워졌다. 이미 늙어버린 얼굴로 찬란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43


잔소리 같지만, 인생은 끝까지 가려는 의지이다.

좋든 나쁘든, 살아남든 죽어가든.  55


너는 알고 있어.

이번 여행이 네가 기대했던 것보다 낭만적이지 않으리란 사실을.

여행은 스릴 넘치지도 않고 예상 외로 지루할지도 몰라.

어쩌면 네가 길에 발을 내딛느 그 순간,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몸을 누인 

채 드라마를 보던지 로맨스 소설이 읽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오랫동안 떠나기를 갈망해 왔잖아.

여정을 계획하고 설레어 했잖아.

여행을 떠날 거라고 네가 전화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반 옥타브가 높더군.

네 몸은 마치 지상에서 10센티미터 정도 떠 있는 것만 같았어.

넌 새 신발과 필기감이 좋은 노트와 손에 꼭 맞는 펜을 샀다고 자랑했지.

그리고 이 지긋지긋하고 남루한 일상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며 안도 했어.

그래, 네 말이 맞아.

인생에서 여행보다 더 큰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어.

어쩌면 외롭고, 지루하고, 슬프고, 무기력할 때 우리가 달려가야 할 곳은 

차가운 바다이거나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 곁인지도 모르지.

우리를 정말로 위로해 주는 것은 덜컹거리는 기차 칸의 시큼한 시트 냄새이거나,

'빈 방 있음. TV 욕실 완비. 깨끗함'이라고 적힌 모텔의 허름한 방일지도 몰라.

오늘 아침 베란다에 내놓은 선인장 화분이 말라 있는 걸 보았어. 

선인장 속에 들어 있는 물방울들이 모두 빠져나와 버린거야. 영혼이 증발한 거지.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을 했어.

화분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너무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았어.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연명해 왔던 것 같아.

언젠가 네가 말했지.

"매일 똑같은 증명사진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같다. 웃는 법을 잊어버렸어.

  머릿속은 텅 비었어. 고개를 흔들면 빈 깡통 소리가 나. 무언가 채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드디어 결심했군. 잘한 일이야. 네가 부러워.

하루가 됐건 일주일이 됐건, 아니면 한 달이 됐건 어쨌든 떠난다니 축하할 일이야. 

중요한 건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는 사실이거든.

부디 멋진 여행이 되기를 바랄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여행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지루할지도 몰라.

위험할 수도 있겠지. 어두운 밤, 낯선 곳을 헤매게 될 수도 있어. 

누군가 네 가방을 들고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우리는 마른 수건처럼 따분한 일상을 어떻게 견뎌야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내일부터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그건 정말 다행이야."

여행, 우리가 우리를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  60-61


새벽 세 시나 됐을까. 창밖 비 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을 열었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어두운 하늘에는 별들이 한 움큼 돋아 있다.

창에 기대 우두커니 담배 한 대를 피우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와 눕지만 한번 달아난 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삼 년 전 소식이 끊긴 네가 사랑니처럼 궁금하다.

몸을 뒤척이다 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창가로 간다.

왜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왔던 것일까? 내가 너를 기다리며 앉았다. 일어섰던 자리와 구름을 담았던 벽과 길을 가다 막막해져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던 밤하늘. 이 밤, 너는 그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빗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일까? 꿈속에서 나는 어느 곳의 비오는 하늘 아래를 걷고 있었던 것일까? 너는 아마도 외로운 식물처럼 이 밤의 한 귀퉁이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131


사랑은 버티는 거다.

너를 가지겠다는,

기어이 너를 내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는 거다.

소금창고는 제 몸이 썩는 줄도 모른 채 소금을 안고 서 있다.

그 자세는 집요하고 간곡하다.

그래서 외롭다.

나는 너의 얼굴을 안고 오늘 하루를 견딘다.

나의 연애는 언젠 애원조이지만

너는 언젠가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실낱같은 가능성.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지만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망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네가 문을 열고 내 앞에 나타나는 그때까지

나는 내 사랑의 의지로 인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소금창고는 속으로 울고 있다.

소금이 짠 이유다.  144-145


여행은 홀연했다. 

바람이 불어오면 떠났고

비가 그치면 길을 나섰다.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당연했으며 

그렇기에 맹목적이었다.

돌아오겠다는 기약 따위는 없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위험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너에게로 홀연히 건너갔으며 

나는 두렵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너를 여행중일 뿐이다.

잠시 깃들다 가겠다.  163


여행은 때론 이런 식으로도 이루어지지.

오랫동안 계획을 하고 지도를 보며 여정을 짜고 트렁크를 수십 번씩 닫았다.

열며 짐을 꾸려야 하는 것만은 아니지.

누군가 내게 보낸 엽서 한 장, 혹은 짧은 전화 한 통화로도 우리는 아득한 거리를 달려가곤 하지.

그곳에서 우린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207


알고 있나요?

인생의 한 순간이 때론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신은 공평하다는 주장에 대해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결코 신은 공평하지 않다. 어떨 때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준다"고 말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말이 때로는 진실이라는 사실.

알고 있나요? 

언제나 시작은 사랑이고 끝도 사랑이라는 사실.

알고 있나요?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우리를 잃어버린다는 사실.  241


누군가는 사랑을 버리기 위해

누군가는 남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누군가는 밥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누군가는 지구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그러니까, 이 세상의 여행자가 모두 100명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데는 100가지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여행을 왜 떠나느냐는

그런 질문은 참아주길 부탁해.  265


우리의 기쁜 자세는 어떤 포즈일까?  276

Posted by WN1
,



미르자 기야스 벡은 페르시아의 귀족이었다. 왕의 명을 어긴 죄로 불같은 미움을 사게 된 그는, 어느날 가족들을 대동한 채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목적지는 인도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메흐루니샤라는 어린 딸이 있었다. 길고 험한 여정속에 딸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라자스탄의 사막에 다다랐을 때 닥쳐온 기갈과 추위는 그에게 독한 맘을 품게 했다. 새벽녘, 잠이 든 어린 딸에게 모래를 이불삼아 덮어준 채 식솔을 다그쳐 길을 떠났다. 수시로 늑대와 전갈이 출몰하는 모래언덕 위로 집채만한 태양이 솟아오를 때 그는 가족들 몰래 아침 노을보다도 더 붉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메흐루니샤의 생명은 질겼다. 아이는 미르자 기야스 벡의 뒤를 따르던 상인들에 의해 모래더미 속에서 발견됐다. 상인들은 자신이 섬기던 귀족의 딸을 비단에 감싸서 아그라로 데려왔다. 이 장면은 그들 부녀의 인생은 물론 무굴제국의 흥망까지 엇갈리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미르자 기야스 벡은 무굴제국의 아크바르 황제의 마음에 들어 새로운 영화를 누리게 되고, 그의 딸은 아름답게 자라 페르시아 소속의 장군에게 출가를 한다. 하지만 사막의 굶주린 늑대에게 먹이가 될 뻔했다가 살아난 그녀의 인생이 그렇게 한갓지게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서른의 청상이 된 기구한 팔자의 그녀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인도의 아그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아크바르 황제의 후궁 중 한 살마의 시녀가 되어 아그라 성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그녀는 극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아크바르의 뒤를 이은 제항기르 황제의 넋을 빼앗고 만 것이다. 풍류남아였던 제항기르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과거를 지닌 페르시아 출신의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단숨에 제국의 왕비가 된 그녀는 누르자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천성적으로 호방한 성격이고 놀기를 좋아했던 제항기르는 인도 대륙의 북서부에 있는 카시미르 지역을 좋아해 재임 중에 그 지역의 대표 도시인 스리나가르를 자주 방문했다. 스리나가르에 '살리마르 박'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누르자한에게 바칠 정도였으니까 제항기르의 인생에 있어 카시미르와 누르자한은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실제로 제항기르는 카시미르에 빠져 영리하고 아름다운 아내 누르자한에게 정치를 맡겨버렸다. 미르자 기야스 벡을 비롯한 페르시아 출신의 와척들이 득세하자 제국의 문화는 급속하게 페르시아 풍으로 변모한다. 힌두문화에 비해 비교적 앞서 있고 세련됐던 이슬람 문명은 누르자한에 의해 대폭 수용되고 심지어는 궁중에서 페르시아어가 통용되기도 했다. 미술과 건툭, 문학과 의상,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대륙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생겨난 문화는 인도 역사상 가장 독특한 문화로 평가받는다.

누르자한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야무나강 북쪽에 이슬람 양식의 무덤을 축조한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라는 이 무덤은 훗날 타지마할 죽조의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무덤을 '리틀 타지마할'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완벽한 사각대칭의 건축 양식은 물론이며, 대리석 바탕에 밑그림을 그리고 선을 따라 구멍을 뚫어 각기 다른 색깔의 돌을 끼워 넣어 그림을 완성하는 일종의 상감기법인 '피에트라 두라'는 원래 페르시아의 장식기법인데 이 무덤을 축조할 때 인도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나중에 타지마할을 건설할 때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이 기법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무굴제국에 누르자한의 그림자는 계속 이어진다. 제항기르를 이은 샤자한 황제의 왕비인 뭄타지마할이 바로 누르자한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샤자한은 왕비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17년의 결혼생활 중 열네 명의 아이를 낳앗다고 한다. 물론 자녀의 숫자가 금슬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엔나 소시지처럼 주렁주렁 아이를 낳을 정도였으니 그들의 사랑이 가볍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고 심지어 전장에도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으니 샤자한이 왕비에게 쏟은 열정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왕비가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애통함을 참지 못한 샤자한의 머리카락은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105-108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사원으로 다가간 나는, 맙소사,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원의 외벽에 새겨진 조각들이 나를 까무러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신들을 모신 사원의 외벽에는 온갖 난해한 체위를 한 성애상이 난무했다. 서양화가 임영재 형이 먼저 이곳을 다녀와서 내게 일러준 적이 있어 선지식은 있었지만, 차마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나는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한국에서 온 젊은 대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없는가 하고, 그들과 함께 이 조각들을 본다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아서 헛기침을 하면서 주위를 살폈지만,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동양인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상투만 틀지 않앗을 분이지 마지막 유생임을 자처하셨던 아버지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내 피에도 흘렀는가 보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사실은, 세상에 이렇게 노골적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각종 체위가 등장하는 이들 성애상들이 천박하거나 상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슴과 둔부가 지나치게 발달해서 상대적으로 허리가 가늘어 보이는 여인이 한쪽 다리로 사내의 허리를 감고 두 팔로 목을 휘감은 채 눈을 허공에 매달고 있었다. 사내 또한 한 쪽 다리를 들어 여인의 가녀린 허리를 감은 채 이 농염한 여인의 도발을 어떻게 감당할까 난감해 하는 표정이고, 마치 기계체조 선수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난도의 체위를 돕기라도 하려는 듯 좌우에 하녀들이 이들의 교합을 거들고 있었다. 하지만 한 하녀는 고개를 외면한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한 여인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바로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쟈타베슈티타카'라는 체위다.

그 뿐인가, 오랜 병영생활에 지친 병사가 자신의 말을 상대로 수간을 벌이고 있었고, 그 뒤에서 다른 병사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그 병사는 기다림에 지친 듯했다. 그 앞을 지나는 여인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그 광경을 외면하고 있었다.

외벽은 그렇다 치저라도 사원 안의 제단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시바의 거대한 성기인 링가를 모신 제단이 있고 그 주위로 36가지의 성애 기교를 묘사한 조각상이 있었다. 링가상 앞에는 작은 제단이 또 하나 놓여있는데 그 제단은 젊은 여사제가 올라와 완전 나체로 춤을 추던 곳이라고 한다.

천 년 전 이 제단에서는 성(聖)스러운 성(性)의식이 행해졌다. 승려들은 북을 치고 신자들은 횃불을 밝혔다. 북장단에 춤을 추던 여사제의 춤사위가 절정에 이르면 승려들은 북채를 던지고 차례로 제단으로 올라와 여사제와 정사를 벌였다. 오랜 수도 생활로 다져온 요가 자세로 고난도의 체위를 구사하며 이루어지는 교합에서 승려들은 번번이 패하고 말았다. 여사제의 관능을 극복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이다. 이 교합에서 사정을 해버린 승려는 다시 수도의 길을 걸어야 하고, 여사제의 온갖 기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텨 그녀를 녹초로 만들어 놓고도 사정을 하지 않은 승려는 드디어 득도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찬츠라 수행의 한 방법이다. 힌두에서 생각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정액은 머리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뇌하수체의 자극에 의해 정액이 생성되기 때문에 이 말이 영판 거짓은 아니다. 머리에서 생겨난 정액은 밑으로 내려와 배꼽 아래에 모여 있다가 남녀의 교합에 의해 성기를 통해 바깥으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힌두에서는 이 정액을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에너지로 본다. 이 에너지가 고갈되면 결국 인간은 죽고 마는 것이다. 일종의 엔트로피 개념이다. 그런데 이 에너지를 사정하여 허비하지 않고 다시 머릿속으로 되돌려 보내면 그 때 비로소 해탈의 순간을 맞는다는 것이다. 자아를 극복하는 것이 깨달음의 첫 번째 문이라면, 탄트라 수행은 득도를 위한 가장 극단적 수행법임이 확실하다. 

나는 카주라호의 사우너에서 카마수트라가 종교 속에서 어떻게 승화되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이처럼 사원에서도 성(性)을 가르친다. 성은 인간이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성(聖)과 속(俗)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힌두 세계에서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144-147


테레사 수녀님은 콜카타 빈민촌에 있는 '사랑의 집'에 살면서 가난과 질병, 그리고 기아 속에서 죽어가는 인도인과 평생을 함께 보냈다.

하루는 영국의 한 여기자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그녀에게 물었다.

"사랑이란 콜카타의 한 소년이 들고 온 사흘 분의 설탕입니다."라고 테레사 수녀님이 선문답처럼 대답했다. 어느날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었고, 콜카타의 모든 시민들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날 저녁 한 소년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부터 사흔 동안 저는 사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먹지 않은 그 사흘 분의 사탕을 제게 주십시오." 사흘 후 이 소년은 자신이 아낀 사흘 분의 사탕을 들고 사랑의 집에 찾아왔다. 콜카타의 모든 시민이 사랑의 집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남에게 걸식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고통의 행려병자들에게 자기 몫의 설탕을 가지고 간 사람은 오직 어린 소년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님이 강조한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랑, 작은 일에도 비분강개하여 정의를 세우고자 하고, 옆집 개가 고뿔에 걸려도 호들갑스럽게 침소봉대하여 박애를 강조하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실천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해 작은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244


인도에서는 항상 갈증을 느낀다. 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모든 것들에서 욕구불만을 느끼기 때문에 그 갈증은 끝도 없이 반복한다. 마셔도 마셔도 풀리지 않는 갈증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하나 수월한 것이 있다면 인도 여행의 매력은 반으로 뚝 떨어진다. 고통과의 정면승부, 그것은 인도 여행만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325


만사가 여유롭고 유머러스하며 넉넉하고 망상적이다. 다중적 특성을 가진 것이 인도인의 캐릭터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 닥쳐도 서두르지 않고 아무리 난처한 입장이어도 익살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관계에 맞닥뜨리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다가도 상대가 곤경에 처하면 발 벗고 나서 도와준다. 참으로 묘한 민족이다.  334


내가 아는 인도와 인도인들은 세간이 평가하는 만큼 그렇게 지리멸렬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일부 호사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는 것처럼 신비와 명상으로 치장된 나라도 아니다.  336





Posted by WN1
,


인도의 독립 이후에 언어 분포를 조사하였는데, 인도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가 179개이고, 방언도 544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현재 인도 정부가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산스크리트어(Sanskrit, 범어梵語)를 포함해서 18개에 이른다.

이 많은 언어를 크게 구분하면, 북부의 인도아리아 어군(語群)과 남부의 드라비다 어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인도아리아어'는 인도 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산스크리트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도 아리아어도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힌디(Hindi)는 인도의 북부 지방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체 인구의 40.22%가 사용하는 언어다. 수도 뉴델리(주민의 81.6%)를 비롯해서 하리아나(91%), 우타르프라데시(90.1%), 라자스탄(89.6%), 히마찰프라데시(88.9%), 비하르(80.9%), 마디아프라데시(85.6%), 찬디가르(61.1%) 등에서 주(州)의 제1공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 네팔에서도 800만 명이 힌디를 사용한다.

2. 벵갈리(Bengali, 벵골어)는 캘커타(현재의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벵골 지방과 방글라데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8.3%가 사용한다. 웨스트벵골 주의 공식어로서 이 주의 주민 86%가 벵갈리를 사용한다. 

3. 우르두(Urdu)는 펀자브 지방과 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모슬렘) 언어로, 이 언어의 문자와 말은 아라비아어와 비슷하다. 인도 전체 인구의 5.18%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4. 구자라티(Gujarati, 구자라트어)는 서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구자라트 주민 91.5%가 사용한다. 그래서 구자라티는 '인도의 비즈니스맨의 언어'라고도 불린다. 구자라티는 인도 전체 인구의 4.85%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6,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5. 마라티(Marathi, 마라티어)는 인도의 경제 수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언어로, 이 주의 주민 73.3%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인도 중부의 데칸 지역에서도 이 언어가 많이 쓰인다. 인도 전체 인구의 7.45%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6. 오리야(Oriya)는 동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오리사 주민 82.8%가 사용하며, 많은 방언과 지방 사투리가 있는 것이 이 언어의 특징이다. 

인도이ㅡ 남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드라비다어는 인도 인구의 30% 정도가 사용하는 언어다. 드라비다어도 몇 가지로 구분된다. 

7. 텔루구(Telugu)는 동부 지방의 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84.8%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또한 인도 제2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하이데라바드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다.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7.89%가 사용한다.

8. 타밀(Tamil)은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언어다. 또한 타밀나두 주민의 86.7%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인도 전체 인구의 6.32%가 사용하는 언어다. 

9. 칸나다(kannada)s는 남서부의 마이소르(카르나타카 주)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시리콘밸리 방갈로르에서 사용되며, 인도 전체 인구의 3.91%가 사용한다. 

10. 말라야람(Malayaram)은 인도의 가장 남쪽 케랄라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3.62%가 사용한다.

그 밖에도 11. 펀자비(Punjabi)는 펀자브 주민의 92.2%가 사용하고, 인도 전체 인구의 2.79%가 사용하는 언어다.

12. 아싸미스(Assamese)는 아삼 주민의 57.8%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1.56%가 사용한다.

13. 신디(Sindhi)는 구자라트 주 등,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 사는 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한다.

14. 네팔리(Nepali)는 네팔의 국어다. 이는 네팔 인구의 90%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하는 언어다.

15. 콘카니는 고아 주민의 51.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21%가 사용한다. 

16. 마니푸리는 보석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마니푸르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이 지역 주민의 60.4%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15%가 사용한다. 

17. 사큐미리(Kashmiri)는 잠무카슈미르 주에서 주민의 5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01%가 사용하는 언어이다.  32-35


2001년 발표된 인구 조사를 보면 인도의 주택 수는 모두 1억 7,900만 개이다. 평군 잡아 한 집에 6명이 사는 셈이다.  35


4만 루피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한국의 화폐로 약 1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5~10배의 소득 효과가 잇다.

최근 인도인은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경제에 눈을 뜬 것이고, 그래야 자식 교육과 자신의 노후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9


1999년 현재, 350만의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감염자가 있다고 하고, 일부 비정부 기구에서는 800만의 감염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42


웬만한 중산층 가정의 경우 제대로 된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려면 신랑에게 '산트로(현대자동차)'정도는 지참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낼 수도 없다. 인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것을 큰 수치로 받아들이고 있고, 독신 여성을 사회적으로 천시하고 있다.  48


사트푸라 마을에서는 차란 부인의 '사티'를 포함해서 지난 50여 년동안 4건의 '사티'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사티 기록을 대단한 자랑과 명예로 여기고 있다.  50


미망인이 끝까지 자결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천한 사람으로 낙인찍혀서 집안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다. 버림받은 미망인은 죽을 때까지 힌두교 사원에 가서 가장 천한 막일을 하거나 심지어 창녀로 일해야 하며, 이렇게 해서 번 돈은 힌두교 사원에 바쳐야 했다.  51


인도에는 "과부가 먹다 남긴 음식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과부가 다시 시집가는 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과부는 시집에서만 아니라 친정에서도 배척을 받는다.

과부들이 브린다반의 사원에 모여들게 된 것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실제로는 남편이 죽자 집안에서 버림을 받고 브린다반으로 쫓겨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52


인구 비례로 따지자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4!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70%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76



인도 역사를 크게 4시기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힌두시대, 이슬람시대, 영국식민지시대, 오느르이 독립국가시대이다.

인도의 한 소설가가 4가지 시대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소설가는 인도 민중을 참새 부부에 비유한다. 각 시대를 연대순으로 힌두 시대를 '금으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고, 이슬람 시대를 '은으로 만든 새장',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새장', 오늘날의 독립국가 시대를 '삼색기(三色旗)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였다.

필자는 '힌두시대'를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1시기는 아리아인이 인도에 정착한 시기인 '베다시대'이고, 2시기는 '도시국가'와 '영역국가'가 서로 경합을 벌이던 시대이며, 3시기는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서 통일을 이룬 때이고, 4시기는 '굽타 왕조'에 의해서 고전적 힌두 문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대이다.  81-82


힌두교의 성격으로는 대체로 다음의 6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베다 종교를 계승한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多神敎)이다. 둘째, 힌두교는 다신교이지만,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最高神)을 설정한다. 이것이 브라흐마 비슈누 쉬바의 삼신일체(三神一體)로 나타난다고 한다. 셋째, 힌두교에서 아바타라(avatare, 化身)의 관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비슈누가 여러 신 인간 동물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서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통일할 수 있었다. 넷째,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특징이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 비해서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적다. 이는 '아바타라'의 관념에서 파생한 것이다. 다섯째, 힌두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단(異端)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통과 이단의 대립을 거의 볼 수 없다. 여섯째, 힌두교에 이단이 없다는 점은 힌두교가 다른 종교, 사상과 접촉하는 점에서 관용을 발휘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대립하는 모든 종교, 사상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자기영역에 있으면서 대항하지 않거나,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흡수하였다. 예컨대 사회적 신분제도에 저항했던 '불교'도 힌두교의 한 파(派)로 간주되어, 불타(佛陀)는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지만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시타 토착적 요소가 어울려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힌두교도로서 그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카마(kama)는 적당한 감각적 쾌락과 성적 향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정의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한 것이 <카마수트라>이다. 둘째, 아르타(artha)는 재물과 재산의 향유와 이득을 뜻한다. 이는 인생에서 부(富)의 추구가 인간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셋째, 다르마(dharma)는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마누 법전>과 여러 법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해탈(moksa)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열반에 들어가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와 상응해서 인새으이 4주기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범행기는 스승의 지도 아래 <베다>등의 학문을 배우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시기다. 둘째, 가주기는 결혼해서 가정을 돌보는 시기다. 이때 자식을 낳고 부를 추구하는 생활을 하면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마누법전>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에게 주어진 의무는 신, 브라만, 조상 등에게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다. 셋째, 임주기는 재가자의 삶을 마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 명상과 금욕생활을 하는 시기다. 이는 세속을 떠나 청정한 종교생활을 하는 시기다. 넷째, 유행기는 숲속에서 수행이 끝난 뒤에 탁발(걸식)하며 돌아다니는 시기다. 이때에는 모든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고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140-142


힌두교(브라만교)의 흐름은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에서 6파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1. 우파니샤드(Upanisad)는 '가까이 앉는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는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대화로 비밀스런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개괄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brahman)'과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atman)'이 같다는 것(梵我一如)이 <우파니샤드> 사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에서는 5단계의 아트만을 주장한다. 첫째, 물질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음식을 가리킨다. 둘째, 동물과 식물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식물과 동물에 공통된 생명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셋째, 동물에만 공통된 지각 활동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넷째,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인식활동으로 된 자아이다. 다섯째, 희열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인간의 깊은 곳에있는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희열이야말로 자신의 참 자아이며 우주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같다는 주장이 의미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2. <바가바드기타>은 힌두교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중요한 문헌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바수데바(Vasudeva)를 신봉하는 종파에서 작성한 시편(詩篇)인데 나중에 <마하바라타>에 편입되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숭배할 만한 자'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의미이고, '기타'는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체계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저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성격이 강한 종교적 작품이고, 또한 요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3가지 요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지(知)의 요가(jnana-yoga)이다. 이는 뒤에 소개할 상키야학파처럼 영원한 정신으로서 '참 자아'와 '물질적 현상적 자아'를 구분하는 것이고, 또는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한 것처럼 범아일여(梵我一如)와 신을 아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신애(信愛)의 요가(bhakti-yoga)이다. 이는 신에게, 특히 비슈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셋째, 행(行)의 요가(karma-yoga)이다. 이는 윤리와 해탈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참다운 체념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라 '행위 하는 가운데 체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행위를 하지만 욕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행위하는 한, 업보(業報)를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 상키야(Samkhya)학파에서는 2원론을 주장하낟. 이 학파에서는 진정한 자아 푸루샤(purusa)와 현상적인 자아 물직적 근원인 프라크리티(prakrti)를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프라크리티를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잇다. 이것은 잘못이고 진정한 자아는 푸루샤라는 것이 이 학파의 주장이다. 이 학파에서는 프라크리티에서 육체와 세계가 전개되는 것을 설명한다.

4. 요가(Yoga)학파에서는 상키야학파와 형이상학을 같이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마음의 잠재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무지(無知)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구체적 수행 방법으로 요가를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5. 바이셰쉬카(Vaisesika)학파는 다원론의 입장에 선다. 이 학파에서는 6범주 또는 7범주를 말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항목인 실체이다. 이 학파에서는 실체에 9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 수, 화, 풍, 공, 시간, 공간, 의근, 자아이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허공'은 소릴는 성질이 어딘가에 있어야 하므로 이 점에 근거해서 추론되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와 젊음과 늙음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추리되는 것이며, '공간'은 여기, 저기, 가깝다, 멀다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추론되는 것이다. 의근(意根)은 내적 감각기관이다. 눈과 코 등의 외적 감각기관이 바깥 대상을 인식하듯이, 의근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다. 지각은 의근이 작동해야 이루어진다. 자아(영혼)는 인식현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실체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 영혼인데, 이는 의지 욕망 기쁨 아픔 등의 여러 가지 정신적 상태에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안다"와 "나는 아프다"라는 말을 통해서 자아가 의식에 속하는 실체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최고 영혼으로서 신이다. 이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영혼으로서 모든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난 존재이고 세계의 창조자라고 추리되는 존재이다.

6. 니야야(Nyaya)학파에서는 바이셰쉬카학파와 형이상학의 내용은 거의 같이한다. 이 학파에서는 괴로움의 근원이 그릇된 지식에 있다고 보고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한 인식 방법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논리학이 발달하였다.

7. 미맘사(Mimamsa) 학파에서는 <베다>에서 명령하는 행위를 왜 실천해야 하는지 그 의무에 대해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무전력(無前力, apurva)을 주장한다. 베다에서 말하는 제사의 행위는 잠깐 동안 이루어지고 이내 끝나기 때문에 제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이 학파에서는 가설로서 '무전력'을 인정하면 제사의 행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제사 지내는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무전력'을 생기게하고, 이 힘이 제사 드리는 주체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업에 해당하는 과보를 반드시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베다 성전을 '제사부'와 '지식부'로 구분하고 있다. '제사부'는 브라만교의 제사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중시한 학파가 미맘사학파이다. 뒤에 소개할 베단타 학파는 베다 성전의 '지식부', 곧 <우파니샤드>를 중시하는 학파이다.

8. 베단타(Vedanta) 학파는 힌두교(브라만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이 학파는 과거 1,000년 동안 다른 학파의 활동을 누르고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의 '끝' 혹은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엇는데, 이는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베단타'라는 말이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베단타학파는  샹카라, 비슈누파, 쉬바파로 구분된다.

이 학파의 근본경전은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이 경전에서 말하는 내용은 브라흐만과 합일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을 얻는 방법으로, 명상을 통해서 브라흐만을 알게 되는 지(知)를 얻고, 이 '지'를 얻은 사람은 죽은 뒤에 신의 길을 따라 최후에 브라흐만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한다는 것이다.

이 <브라흐마 수트라>는 문구가 대단히 간결해서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러 주석서가 나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샹카라, 라마누자, 마드바이다. 샹카라는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했는데, 이는 영혼과 물질세계는 브라흐만이 나타난 것이어서 영혼과 물질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현설'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일원론에 속한다. 라마누자는 전변설(轉變說)을 통해서 영혼과 물질세계가 신에 의존해 있는 것이지만, 영혼과 물질세계에는 독자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라마누자는 영혼과 미세한 물질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라마누자의 주장은 2원론에 속한다. 마드바(Madhva)는 '가현설'과 '전변설'을 부정하고 현실의 차별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마드바는 다원론을 주장하였다. 라마누자와 마드바는 비슈누파에 속한다.  143-148


자이나교의 사상

초기 자이나교의 가르침은 7체(諦)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혼(jiva)은 모든 만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이 영혼은 청정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정한 영혼이 업(業)에 의해서 속박당해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영혼에 반대되는 비영혼(非靈魂, ajiva)을 설명한다. '비영혼'에는 5가지가 있다. 그것은 물질, 법, 비법, 허공, 시간이다.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법(法)은 원자가 움직이게 하는 원리이며, 비법(非法)은 원자가 정지하게 하는 원리이고, '허공'은 우너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다. '시간'은 초기 자이나교에서 조금 뒤에 추가된 것인데, 원자가 시간 속에서 작용한다는 의미다. 셋째, 유입(流入, asrava)은 몸, 이브 마음의 업으로 미세한 물질인 비영혼이 영혼을 둘러싸는 것이다. 넷째, 계박(繫縛, bandha)은 영혼을 둘러싼 미세한 물질이 미세한 신체를 이루어서 영혼을 속박하는 것이다. 다섯째, 제어(制御, samvara)는 영혼이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업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미 들어온 업은 없애는 것이다. 과거의 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고행이 필요하다. 새로운 업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 위해서는 '5대서(五大誓)'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살생하지 않는 것, 진실한 말을 하는 것, 도둑질하지 않는 것. 음행하지 않는 것, 무소유이다.

여섯째, 지멸(止滅, nirjara)은 수행이 완성되어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곱째, 해탈(解脫, moksa)은 업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156-157


자이나교단은 뒤에 백의파와 공의파로 나뉘어졌다. 백의파(白衣派)는 흰옷을 걸치는 종파이고, 공의파(空衣派)는 옷을 걸치지 않는 종파이다.  157


불교는 한국인에게 친밀한 종교이지만, 인도의 불교에 대해서 한국인이 잘 알지는 못한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불교는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이다. 물론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인도불교를 근간으로 한 것이므로 크게 보아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분명히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인도 불교에서 논리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또한 카스트제도를 비판하는 진보적 성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161


불교사상의 전개 과정

1. 초기불교의 사상은 3가지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사성제(四聖諦)이다. 이는 4가지 성스러운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고(苦)'는 인생의 현실은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집(集)'은 인생이 고통스러운 원인은 잘못된 욕망에 있다는 것이며, '멸(滅)'은 인생의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고, '도(道)'는 인생의 고통을 없애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도'는 팔정도(八正道)로 구성된다.

둘째는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이다. '법인'은 불교의 징표, 불교의 증거라는 의미다. 이는 제행무상 등의 3가지 또는 4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가르침을 올바른 불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라는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이므로 그만큼 이 명제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모든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무아(無我)라는 것이고, 열반(涅槃)의 경지는 고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연결해서 보면, 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집착하면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에는 진정한 자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것이 변하고 고통스럽고 무아임을 자각할 때, 진정한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이다.

셋째는 연기설(緣起說)이다. 이는 사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상호 의존성'을 말하는 것인데, 경전에서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멸(滅)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滅)한다"라고 한다. 이는 이 세상 어떤 사물도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삶이 가능한 것은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물건들은 내가 돈을 주고 사용하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철저히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상호의존성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이 연기설을 더욱 발전시켜 12항목의 연기설을 주장한다. 그 요점은 중생이 고통을 겪고 윤회하는 원인은 지혜가 없는 무명(無明)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경전은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역본과 팔리어본이 있다. 팔리어본은 '니카야(Nikaya)'라고 한다.

2. 불교 고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어진다. 이는 계율문제를 두고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누어진 것이다. 상좌부(上座部)는 보수파인데 불타가 정한 율(律)을 그대로 지키자는 쪽이고, 대중부(大衆部)는 진보파로서 불타가 정한 율이라고 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10가지 문제를 놓고 대립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핵심적 사항은 금은을 보시(기증) 받을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상좌부는 금은을 보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쪽이고, 대중부는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금은을 보시 받아도 된다는 쪽이다. 이렇게 2개의 부파로 나누어진 다음에 18개 부파로 나누어져 모두 20개 부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로 전파되었다. 

3. 대승(大乘)불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 활발한 힌두교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출현한 불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普薩)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범부(凡夫)보살인데 대승불교경전에 나오는 미륵, 관세음, 문수, 보현보살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대보살은 이미 수행을 완성한 존재이고 한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 대보살은 힌두교에서 토착신앙을 포섭하고 대중성을 확보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제시한 것이다. 미륵(彌勒)은 미래에 태어난다는 부처님인데, 다음 생(生)에 부처가 되는 것이 결정되어 있고, 현재는 보살로서 도솔천(兜率天)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慈悲)를 상징하는 존재이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실천행(實踐行)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에도 변화가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불타의 개념이 일반화하였고, 구제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불타가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중에서도 아촉불(阿?佛),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는 많은 사람이 귀의하는 대상이었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경전을 제작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전>, 반야경전 계열, <유마경>, <승만경>, <해심밀경>, <열반경>이다. <화엄경(華嚴經)>은 불타가 되는 수행단계를 50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화엄종(華嚴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법화경(法華經)>은 소승(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조화를 말하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은 중생을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한다는 내용의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정토종(淨土宗)의 근본경전의 하나가 되었다.

반야(般若)경전 계열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공(空)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경전이다. <유마경(維摩經)>은 출가하지 않는 재가 거사 유마힐(維摩詰)이 등장해서 불교이 가르침을 말하는 경전이다. 이는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유마경>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승만경(勝?經)>은 출가하지 않은 재가의 여인 승만(勝?) 부인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가르침을 말한 경전이다. 이것도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고,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성향이 강한 인도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경(涅槃經)>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경전이다. <열반경>은 경전이지만 논서의 치밀함을 보이는 경전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인도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으로 심층무의식으로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하고 있다. <능가경(楞伽經)>은 모든 중생이 여래(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사상과 유식학파의 사상을 결합한 경전이다. 이 <능가경>은 중국에 전해져 초기 선종(禪宗)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이 되었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2대 학파가 있다. 그것은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이다. 중관(中觀)학파에서는 공(空)사상을 강조하고 범부의 집착을 논리적으로 깨뜨리려고 하였다. 그 대표적 저술이 용수의 <중론(中論)>이다. 유식(唯識)학파에서는 범부의 마음에 주목해서 8식설을 주장하였다. 세친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 유식학파를 대표하는 저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승불교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전파되었다.

4. 기원후 7세기와 8세기에 접어들어 힌두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주류 문화가 되자 이에 대응하고자 나타난 불교의 흐름이 밀교(密敎)이다. 대승불교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이다. 밀교를 대표하는 경전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이다. <대일경(大日經)>은 중관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고, <금강정경(金剛頂經)>은 유식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다. 그 뒤를 이어서 무상유가(無上瑜伽) 탄트라가 등장했는데, 이는 인도의 탄트라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밀교 계열의 가르침이 티베트에 전래되었다.  161-166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점

불교는 인도의 문화 토양에서 자라났지만, 힌두교(브라만교)와는 4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첫째, 불교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와 남녀차별을 부정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인도의 문화와 토양에 국한되는 '인도의 종교'로 머물렀지만, 불교는 인도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는 세계 종교로서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국제적인 포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힌두교에서는 통일된 교리가 없고 믿음의 체계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면, 불교는 가르침이 명료하고(철학적 내용은 복잡하지만) 교리체계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넷째, 힌두교는 통일된 조직이 없는 느슨한 종교이지만, 불교는 교단을 구성하고 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종교활동과 포교활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166


시크교

시크교는 힌두교에 기초를 두고 이슬람교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이 두 가지 사상을 결합시킨 개혁종교이다. 이 종교를 처음 일으켜 세운 사람은 나나크(Nanak, 1469~1539)이다. 그는 카비르(Kabir, 1440~1518)의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이슬람교 신비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나크는 진정한 종교는 내면성에 있고 또한 진정한 종교는 신을 만나기 위한 심성의 준비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형식적인 의례를 부정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고행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나크는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카스트와 성적 차별도 부정하였다. 그래서 시크교에서는 어떠한 카스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동일한 음식물을 먹고 음식물에 관한 금지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또한 나나크는 내면적 청정의 중요성, 곧 종교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그래서 술, 마약, 담배를 금지하였고, 보통의 직업에 종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자아에 결사적으로 집착하여 탐욕과 분노와 집착과 자만에 지배당하고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러한 자기중심성을 극복할때 평호를 얻어 자기 자신의 본래적 원만함에 돌아오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신(神)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다.


Posted by WN1
,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인식하는 그 정도만 기억되는 부분일 것이다.  108


네 시간만 달리면 땅 끝에 다다를 수 잇는 우리나라의 땅 덩어리와는 달리 언제까지나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대지 위에 있는 지평선, 창문을 힘껏 열어젖혀 사막의 모래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모래 알갱이들이 미친 듯이 몰아쳐 와서 내 얼굴과 머리는 물론 목구멍까지 타고 들어왔다. 나는 호들갑스럽게 창문을 닫아 내렸다. 기차 안은 이미 뿌연 모래연기로 가득했다. 창문을 연 내가 사고를 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의자며 배낭, 옷가지 위로 모래가 한 가득이다. 손바닥으로 쓰윽 문지르니 모래 덩어리가 묻어나왔다. 벌써부터 문 닫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 육두문자를 날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지 싶었다. 창문을 여는 동안 인도인 누구도 창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이런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만 있었다. 기다려주는 여유, 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잡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모습. 내가 바라던 여유가 아니겠는가.  110


길 가운데서 길을 잃게 된다는 바라나시에서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

'길을 잃었을 때는 무조건 강가로 나아가라!'

인생도 그러하다. 길은 그렇듯 여러 갈래지만 종극엔 하나의 물줄기로 만나 흐르게 되는 것. 나 역시, 그 강가로 흘라들어 가고 있는 중이리라.  186

Posted by WN1
,
 

"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그게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외면의 것이든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마주치는 모든이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2.05.55)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진리는 이전 문맥을 통해 해석해 보아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용기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우선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하려는 용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다. 익숙한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안주하는 것만큼 편한 생활은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익숙한 것은 그것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주게 되어 인간의 정신을 고정시킨다. 그러니 그만큼 안락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움에 대한 극한의 반대 입장으로 진실한 눈으로 보는것을 방해하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이란것은, 새로운 아니 이미 존재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것들을 통해서 옳은 것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또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다는 다양성의 받아들임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경험의 접목은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된다. 첫번째 내용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과정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전제로 하기에 새로움의 자극은 깨달음 즉, 조금더 진리에 다가가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갖혀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바라보더라도 비뚤어진 사고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강박적인 해석을 뒤따르게 할 수 있기에 자신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벽을치고 타인을 모두 틀리다고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 인정한다는 것은 잘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양성의 공존에 의해 모두 옳을 수도 모두 그를수도 없다는 점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 즉 심적 상태의 넓고 깊은 평온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다양한 것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알고 깨닫게 되는 것들에 의한 평온함의 깊이있어짐과 넓어짐이라 표현하게 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표현한 '진리'를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행은 새로움에 대한 놀라움과 그것들과의 소통으로 인한 인정과 올바른 비판적 수용 그리고 그러한 것들로 인한 새로운 해석과 앎.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부드러워짐과 인간적 불완전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견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유일하며, 이슬람, 힌두 관점에서도 비슷하고, 불교, 유교적 관점에서 깨달음에 의한 성장이기도하다. 이러한 것들로 볼때 이러한 종교적 진리 또한 어느정도 이상의 해석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말해 유일신에 의한 진리적 유일성이 아니라면, 깨달음의 과정이 중요하다. 더해서 유일한 진리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우리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현재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 인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서양의 산업발달에 의한 정상적 상태로 바라보면 기독교는 분석하고 판단하여 꿰둟어보는 통찰력을 길러서 그것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는 것. 종교에 대한 해석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절이 지나가며 이제는 그에대한 부작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중용이 필요하고, 마음 정신적 수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이 동양적 사상에 심취하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서양 사상을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면서 조금보태는 것이다. 즉 보완시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여행은 종교적으로 해석한 진리에 대한 의미도 포함할 수 있는 '진리'의 영역을 설명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개풀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라, 여행은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전통과 사상을 접하고 체험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러한 경험은 통찰력에 가까운 해석력과 수용능력을 배양하여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고대의 여행도, 지금의 여행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라면 이정도 되는 것이 아닐까.. 관광이 아닌 여행 말이다.


Posted by WN1
,



언젠가 인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 나쁘냐고 묻자 한 인도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사람의 열 손가락은 모두 같은 손가락이지만 다 다르게 생겼어. 인도 사람들도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다 다르기 마련이야. 인도에는 사람을 속이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

나중에 인도를 떠나게 될 즈음에는 나도 알게 되었다. 인도에는 곪고 거친 손가락도 있지만 예쁘고 곧은 손가락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39


죽음을 접하는 순간이 죽기만큼이나 싫었다.  57


언제부턴가 나는 더이상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현실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정해진 길이 아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지금 나는 인도에 있다.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에게 어떤 길을 가야한다고 말하는 이도 없이 완전 백지상태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내 가슴이 원하는 대로 가슴 뛰는 삶을 살아 볼 수 있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 내 가슴에 활활 바람을 지필 수 있는 시간.  291-292


내 삶이 길을 잃은 것 같으면 길을 떠나봐.

내 삶이 꿈을 잃은 것 같으면 길을 떠나봐.

길 위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나게 될 테니.


휴지를 하찮은 것쯤으로 생각하는 살마도 있겠지만 휴지 없이 단 하루를 편히 살 수 있겠는가.

내가 인도를 휴지 쪽에 가깝다고 한 이유는 인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웃고, 울며,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깨끗하기도 하지만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 버려지기도 하는 우리의 삶처럼.

휴지는 우리가 우러러보고 아껴주는 나무이기를 포기하고, 항상 우리 곁에 있고 싶어서 휴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휴지처럼 항상 우리 옆에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들이 참 많다. 깨끗한 물 한 잔부터 친구의 농담 한 조각, 그리고 식탁에 떨어지지 않는 엄마표 김치 한 접시까지.

여행을 하다보면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 하나만 깨닫더라도 그 여행은 이미 헛된 것이 아니다.  296


인도의 길 위에는 이 찝찝함을 무릅쓰고도 길을 걷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301


길 위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곳.

인도인이라고 인도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도가 어떤 나라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인도의 길 위에는 오물만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꽃도 떨어져 있다.  302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분명 사람을 감상에 젖게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밤이 특별할 건 없었어.  305

Posted by WN1
,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어느 시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이 하나하나의 점이 되어

생에 대한 흔적이 한 장의 점묘화(點描畵)로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 또한 한 장의 점묘화가 아닐까.



델리 


양개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을 때 개구리를 구해줘야 합니까, 가만히 내버려둬야 합니까?"

"구해준다면 도를 보지 못하게 되고, 구해주지 않는다면 생명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15


여행자 숙소가 몰려 있다는 파르간지의 메인 바자르(시장)을 찾았다.  16

시크교도들은 힌두교 전통을 따르면서도 카스트의 차별과 모든 의식을 무시하고,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을 강조해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다. 그들은 경전인 <그란트(Granth)>를 구루로 삼아 날마다 암송한다.  21


인도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코넛 플레이스는 내가 생각한 인도와는 달랐다.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대형 백화점도 있었다. 쇼핑몰답게 밖에서 봐도 조명의 화려함이 극에 달했다.  26


가네샤는 고난과 재난을 없애는 신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가게나 버스의 앞유리에는 락슈미 여신의 사진과 함께 가네샤의 사진이 부착되어 있다.

인도의 신들을 알면 인도의 문화를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이해하게 된다.  30-31


<바가바드기타>는 인도 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하바라타>의 한 부분이다.  44



아그라


<우파니샤드>에 '우유는 그 안에 소리를 갖고 있어 마시는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내게 한다'고 쓰여 있다.


타지마할의 입장료로 가난한 인도를 먹여살린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은 950루피, 인도 사람은 15루피.  53

안으로 들어가면 곽을 둘러싼 대리석 판으로 외어 있는 흰 격자창살이 보인다. 격자창살 위는 영원히 지지 않는 튤립이나 작은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여러가지 보석으로 상감한 이 꽅들은 화병에 꽂혀 있으니 샤 자한은 날마다 부인에게 꽃을 바치고 싶었던 것이다. 

영묘 건물은 세 겹의 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은 영혼 마저 자기 곁을 떠날 수 없게 세 겹의 벽 속에 가두어버린 한 남자의 소유욕을 보았다. 다음 생에 또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왕의 애끓는 사랑이 느껴진다.


달밤에 왕이 여인과 산책하는 그림을 보면, 그 주변의 사물들까지 자세히 화푝에 옮겨놓았기에 두 사람이 나누는 농밀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질 정도다. 한 가지 재미있느 사실은 이집트의 그림들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대부분 측면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람을 측면으로 그린 이유가 정면 모습을 그리기 어려워서였다고..  54-55


아그라 성의 왕의 알현장은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그 앞에는 깊은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은 식수 공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처형을 위한 곳이다.  56


아버지를 유폐시키고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된 아우랑제브는 왕좌에 오르면서 엄격한 고행에 전념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먹지 않았고 야채와 과일 졸임만 먹었다. 또한 자주 단식을 행했고 아그라에서 큰 혜성이 나타났을 때는 소량의 물과 기장으로 만든 빵만 먹었는데, 자칫 죽을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우랑제브는 호랑이 가죽 하나만 덮고 땅 위에서 잠잤다고 전할 만큼 금욕적인 생활을 햇다. 그런 금욕적인 생활로 자신의 죄가 씻어지리라 생각했을까?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57-58



파테푸르시크리


무굴 제국의 악바르는 8백여 명의 여인들로 채워진 아방궁을 지녔음에도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아들이 없던 악바르 대왕은 이슬람 수피성자 셰이크 살림 치스티를 찾아가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부탁했다. 래서 그는 성자로부터 아들을 갖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는다. 성자의 예언대로 1569년 시크리 근방에서 아들 자한기르가 태어나자 크게 기뻐한 악바르 대왕은 황량하게 버려진 억덕이었던 이곳에 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파테푸르 시크리로, 14년간 무굴 제국의 수도였다. 악바르 대왕은 인도의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통치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파테푸르 시크리는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악바르는 자신의 무덤을 살아 있을 때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들어가는 네 개의 문마다 힌두, 기독교, 이슬람 등의 양식을 상징해 세웠다고 하니, 그가 각 민족과 여러 종교의 화합을 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색깔을 죽인다는 것, 그것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67-68


악바르 왕이 아홉 개 보석 중 하나로 꼽는 비르발 재상을 위해 지은 건물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악바르 왕은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비르발 재상을 항상 옆에 두고 모든 일을 의논했는지도 모른다. 악바르 왕과 비르발 재상 사이에는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71

 

파테푸르 시크리의 왕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72



오르차


오르차는 인도의 비경 중 하나다. 이곳은 폐허가 된 낡은 성을 보러 오기보다는 작은 마을의 고즈넉함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75


자한기르 성은 비밀통로가 많아 자칫하면 길을 잃을 정도로 미로다.  77



카주라호

남녀의 교합상을 미투나 상어라고 하는데, 카주라호 사원 외벽에는 온통 미투나상이 조각되어 있다.  85


신은 왜 이런 미투나 상이 필요했을까? 

우리의 거친 에너지를 명상과 기도를 통해 맑은 기운으로 승화시키듯, 탄트라에서는 우리의 에너지를 성행위를 통해 깨달음의 에너지로 변형하려는 것이다. 두 개의 육체를 통한 만남은 깊은 영적 결합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궁극에는 빛으로 변형되어 신비의 절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86  


자이나교에서는 무소유를 철저히 지키기 위해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앟고 나체로 수행하기도 한다.  91



바라나시


인도에는 여러 들급의 기차가 있다. 가장 빠르고 시설이 좋은 초특급열차와 특급열차가 있다. 특급열차에도 여섯 등급이 잇어 일등칸부터 삼등칸에는 에어컨이 설치 되어 있다.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특급열차 SL(Sleeper Class) 객실에는 에어컨은 없지만 가격이 저렴한데다 각 칸마다 양쪽으로 세 개의 침대가 있어 장거리 여행을 하는 데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99


사두들은 죽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 오렌지색 천으로 감아 수장시킨다고 한다.  106


아씨 가트에서 가까운 힌두 대학에 갔다. 규모가 워낙 커 걸어서는 다 둘러보지도 못할 정도다  110


저녁 6시가 되면 날마나 갠지스 강변에서 신을 위한 푸자가 행해진다.  112


두르가 사원은 시바의 부인인 두르가 여신을 모신 곳으로, '원숭이 사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116


바랏트 마타 사원은 영국 식민지 통치 아래서 독립 그리고 종교적인 갈등과 빈부의 격차를 넘어 한 민족으로서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네루가 세웠다.  116


아소카 왕은 최초로 인도의 통일을 완성시킨 왕이며, 인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삼국유사>에는 아육왕이라고 기록.


사르나트 박물관은 작지만 볼 만한 것들이 많았다.  120



라즈기르


인도에서도 몇 개밖에 없다는 온천장.  137


Posted by WN1
,



몇 해전 간단소개로 책을 알게 되고 읽은 소감을 올려달라고 하여 간단히 작성하여 올린글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을 보게되어 블로그 이전글을 검색해 보니 올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지금 올려놓는다.

가벼운 마음에 빨리 글을 올린것이라 더 가볍게 다가온다....


.

.


사랑과 자유..
그의 삶이 존경스럽다. 동경의 대상이기에 그럴까?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허나...
페이지가 없었다.
일단 글이 작았다.
사진이 있었다.
여행기 였다.(지금 읽은것을 후회하고 있다..이유는 우리조는 알걸..쩝)
표지의 아이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자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결론을 말한다면 나는 아직도 그의 자유를 해석해 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무슨소리냐..책에 뭍어나는데..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어가며 .. 시적인 표현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는것을 느꼈다.
(나는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실용주의, 현실주의를 주장하는 부류에 가깝다.)
그러기에 이 책은 꽤나 흥미로웠다.
짧지만 강렬하게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기에...
지금까지 길게 살아온것은 아니지만 그간 좋아하는 책도 있었고, 매우 좋아하는 책도 있었고, 싫어 하는 책도 있었고, 별것없는 주제에 감히 판단하여 증오하는 책도 있었고, 사랑하는 책도 있었으며, 매우 사랑하는 책도 있었다...
이 책은 .... 매우 좋아하는 책과 사랑하는 책의 사이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부류를 나누지 못한 책이 없었던것 같다.

'여행은 걸어다니며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그럼 .. 여행기를 다룬 책은 무엇이라 표현해야 하나.... 

엄마야.... 그래서 이렇게... 분류가 안되나?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사랑하고 싶다.. 사랑의 책은 아니라 평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
아직 깨닫지 못한 그의 자유와 그 현재의 사랑.. 그리고 감성... 그리고 또 다른..

.
.
.


나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라는 생명이 갈 수 있는 그 끝까지 끝없는 성장을 향해 달리고 싶다.
응 그래 나도 나도

'한 사람'에 대한 깊고 강렬한 사랑이 가져다 주는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싶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어쩌면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랑을 아끼고 고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을 넣어 만든 작품에는 하찮은 와인 한 병에도 '혼'이 있다.
혼...마음... 진정성이라 할까...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작품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도 작품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지금 바로 현재에.. (에이 정말?? ... 그러면서 골방에서 미드나 보고 있냐..쩝..ㅡ.ㅡ)

사랑의 표현방법에 규칙은 없다.
(근데 내 방법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ㅡ.ㅜ)

자, 이제 슬슬 길 위를 달려보는 게 어때?
느려도 좋아. 지쳐 걸어도 좋아. 꼴찌면 또 어때?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거야. 
제 자리 걸음도 구두 바닥이 닳긴 마찬가진 걸.
'어차피 시간은 가고 있어.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고 있어.
무언가를 쳐다 보다도 시간은 가고 있어.
어딘가를 다녀도 시간은 가고 있어.
시간은 가고 있어. 
내가 무엇을 해도...'
비교가 낳은 최대의 파괴는 사람이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목적? .........  그저 지구에 태어났으니까 조금이라도 지구가 더 보고 싶어서..

'LifeWork'

직접 와서 보고 만지고 나서야,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슬프다.. 나 자신도 이렇게 하고 있다는 현실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건 자기이기에...
나는 나와 관련 없으면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나 역시 직접 보고 만지고서야... 그 아픔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 하다..
이런 것들이 슬프다..시리다.. 내가 불쌍하다..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착색된 안경을 벗어야 한다.
사실..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안경보다 그것을 보는 안목이 필요한것 아닐까..
그런 표현이 더 좋지 않냐는 뜻이다.. 
사실 이면의 진실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나는 오늘도...

내가 기다리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시간.'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그리고 좋아하는 이유는.. 갈망하는 이유는..
그들을 보면서 알아가고 경험하고 달리 생각해 나가기 위해서이고... '인정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마음을 나누는 시간...즉... 소통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랑하고 싶은건지도...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하지 마라.
어라..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지만 여행은 할것이다..왜냐고?
나는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를 알아가기 위해서...

마음이 없는 독지가보다 마음이 있는 바텐더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없는 정치가보다 마음이 있는 청소부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떠돌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마음'이 뭘까...???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너의 대답'이 아닌 것 같다. 사실은'내게 필요한 도움'을 받고 싶었을 뿐.....  너의 눈동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눈에는 그의 마음이 있는것일까...
나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듣고 싶다..
나는 그가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럼 나는 해결을 하려 하고 있다.. 
나는 듣고만 있고 싶다.. 
나는 들어주고만 있고 싶다.. 
나는 눈을 바라만 봐 주고 싶다..
평온한 표정으로.. 

지브롤터 해협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여객선의 갑판,
선원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20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항해했지. 매일 반족되는 일상이 싫어서.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부터 나는 변했어. 지금은 사랑하는 그녀와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 지브롤터 해협을 하루 두 번 왕복하는,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하지만 하늘에 맹세해도 좋아. 난 지금 제일 행복하다구. 그녀라는 보석을 만난 순간, 내 모험은 끝난 거야.'
아니꼽게 멋있는 이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자넨, 사랑스런 여자라는 보석을 이미 찾았잖나. 그런데 또 무슨 보석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는 건가?'
난 보석을 찾지 못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보석을 찾으면 여행을 다니지 않을 것인가..
모험이 모두 여행이라 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생각에서 의미를 두었기에 멈추는 것이고..
나는 나의 의미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표현은 너무 멋지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보석과 함께 그녀보다 못하지만 또다른 보석을 함께 보며 느끼며 즐기고 싶다...책과 여행.. 

핵(核)
많이 먹을 필요는 없어.
생성 한 마리라도 뼈까지 맛보렴.
그 편이 진짜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많이 읽을 필요는 없어.
한 권의 책이라도 책장이 뚫어질 때까지 읽어보렴. 
그 편이 진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많이 살아할 필요는 없어.
한 사람이라도 마음 구석구석 사랑해보렴.
그 편이 진자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까.
가난한 나라의 넉넉한 사람들이
나에게 살며시 미소짓는다.
아... 우리 엄마...의 말쌈이 뒤통수를 때린다..'사람은 깊어져야 한다.'
아... 우리 아부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무언가를 하시면서도 엄마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시던 모습이..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은 크든 작든 누구나 시련은 있다. 고독도 있고, 느끼든 못느끼든 아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며 노력하는 사람은 '성취'라는 기쁨을 알게 된다고..
ㅎㅎ...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람이 아니네... 그래서 모르는것일까...ㅜ.ㅜ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왜 여행을 하냐고.. 여행을 하면 뭐가 좋으냐고.. 무얼 얻냐고.. 일은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하면 여행을 잘 할 수 있냐고.. 여행의 기쁨은 뭐냐고.. 정보는 어디서 얻냐고.. 외국인과 어떻게 소통을 하냐고.. 무섭지 않냐고.. 위험하지 않냐고.. 어떻게 잘 놀고 오냐고.. 무엇을 봐야 되냐고.. 가서 뭘해야 하냐고.. 돈은 얼마나 드냐고.. 이동은 어떻게 하냐고.. 잠은 어디서 자냐고.. 아~~~~~~~~~~~이~~~~~~~고~~~~~~~~~
,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견디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서로의 몸 안에 있는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정말로 필요한 것을 발견할 때까지, 영혼은 여행을 계속합니다. 막연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또, 불필요한 것을 버릴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변화할때는 언제나 힘이 들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의 영혼은 결코 충족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채우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버리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 합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채우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버리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 합니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책을 왜 읽느냐고 물으면... 저는 읽을 수록 나의 부족함을 더욱 느끼게 되어 읽는다고 답합니다....ㅋㅋㅋㅋ 
과연 그럴까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
그것은 반드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자기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모든 대답은 반드시 네 안에 있으므로.
맞아맞아...ㅎㅎㅎ
코칭을 받아야해..ㅎㅎㅎ
이 두 페이지의 사진만 다르다..왜...

선택...

내 마음의 소리가 이끄는 그대로..

Posted by WN1
,



인도를 일컬어 흔히 '천의 얼굴'이라고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인도는 그토록 두텁고, 그토록 복잡한 인도의 한 조각일 뿐이다. 

인도의 특성, 다원성이 적용 되지 않는 단 하나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느림'이다.  10


'느리다', '빠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도인에 대한 '느림'과 '게으름'은 누구의 기준인가?  11


자기의 안경으로만 인도를 본 영국은 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12


인도인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반복되고 다시 돌아오며,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고리이다.  13


어쩌면 시간은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내게로 날아오는 부메랑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발전은 환경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14


알고 보면 위생이니 뭐니 하는것도 목적은 향상시키지 않고 수단만을 강조하는 서양의 산물이 아닌가?  15


볼일이 끝나고 나서는 가까운 강이나 개울로 간다. 진흙으로 몸의 더러워진 부분을 문질러 닦고 물로 헹군다. 두세 차례 반복. 그런 다음 왼손부터 시작하여 손과 발을 진흙으로 여러번 씻는다 다시 다른 흙으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에서는 진흙이 아닌 비누를 쓴다. 자, 이래도 비위생적인가?  19


인도인은 '음식은 먼저 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다음에 입과 혀로 맛을 느낀다.'  20


인도인은 발을 천시한다. 가장 천한 발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대거나 신발로 머리를 때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최대의 모욕이다.  23


발에는 절대 금 장신구를 하지 않는다. 허리 아래에는 은으로 된 장신구만 착용한다.  24


반대로 머리는 신체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남자들은 쇠똥이나 재, 또는 빨간 가루를 이마에 찍어 카스트를 표시하기도 하고, 시바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수평선을, 비슈누 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직선을 그어 소속된 종파를 광고한다.  24


머리와 발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만큼 브라만과 수드라의 차이도 엄청난 것이다.  25


강가의 상류 하리드와르와 리시케시, 중류인 바라나시, 그 끝인 벵골만까지 나는 강가를 열번도 더 보았다. 

강가는 눈 덮인 히말라야를 출발하여 하리드와르와 칸푸르를 지나 알라하바드로 흘러든다. 그곳에서 진흙탕물인 강가는 델리와 아그라를 지나온 그보다 맑은 야무나 강과 합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 사라진 사라스와티 강과도 손을 잡는다. 세 강이 만나는 알라하바드는 힌두들의 순례지이다.  39-40


시바 신은 무려 8천 4백만 가지의 다양한 체위를 고안했는데, 숭배자들에게 알려진 건 겨우 8만 4천 가지! 이러니 시바는 다산의 신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56


'카주라호'와 '시바 링감' 그리고 '카마수트라'의 인도. 위성방송이 안방에다 공개적으로 섹스를 팔고, 콘돔이(가장 유명한 콘돔 제품은 당연하게도 '카마수트라'라는 상표를 달고 있다) 무차별 광고를 해대는 곳. 매춘부가 수백만 명이고 에이즈 환자가 3,000,000명이 넘는 나라. 이렇듯 성이 넘치는 에로스의 천국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상과 금욕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58


브라만 성자와 요가수행자의 공동 목표는 자웅동체이다.  59


옛날 인도에 비폭력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 바로 유명한 정복자 아쇼카 황제.  63

'보이지 않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은 끔찍하다.  66


인도인의 계산을 보자. 먹은 음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와 골수가 되었다가 30일이 지나면 정액으로 바뀐다. 40방울의 피가 한 방울의 정액이 되는데, 한 번의 사정으로 14그램 정도의 정액이 소요된다. 이는 27킬로그램의 음식이 만든 에너지와 같다. 한 번의 성관계는 24시간의 정신노동이나 72시간의 육체노동과 동일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69


해방 후, 인도에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지방은 벵골, 케랄라. 트리푸라 3개 주이다.

테레사 수녀가 '수고하고 짐진 자'를 보살피는 곳이 바로 벵골 지방이다.  79


영국의 통치가 온건하지도 않고 결코 '은혜'와 '축복'이 아니었다는 점은 얼마든지 예증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근이다. 영국이 인도에 오기 전에는 대기근에 관한 기록이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이 발을 디딘 이후 기근은 종종 찾아왔고, 1943년 벵골 지방에서는 2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인도의 부가 해외로 유출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1930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의 4분의 1은 인도에 투입되었다. 물론 인도에서 근무한 영국 관리들의 봉급과 연금 지급은 처움부터 식민지 인도의 몫이었다. 영국은 참깨를 쥐어짜듯 인도를 쥐어짜 이득을 챙겼던 것이다.

영국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이해 세운 계획도시 뉴델리에 있는 '인도의 문'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8만여 명 인도 청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뿐인가.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인도군은 지배국 영국을 돕기 위해 '치와 땀'을 흘렸다. 인도군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20여만 명이었으나 전쟁이 끝난 1945년에는 그 열 배인 22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전쟁기간 동안 소요된 영국의 국방비 역시 절반은 인도가 떠맡았다.

이 열불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영국을 '미워 미워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영국 통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구를 익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인도는 영국에 모종의 빚을 졌다고 간주하고 있다. 영국이 도입시킨 의회제도, 철도제도, 교육제도를 인도는 고맙게 생각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산업발전의 기반을 다진 것에도 좋은 점수를 준다. 각종 제도와 정책을 도입한 식민 정부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결과적으로 인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어와 반영운동이 인도를 통합시켰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83-84


인도인은 대개가 종교에 깊이 중독된 중증 환자들이지만, 그 대다수는 브라만의 베다나 우파니샤드를 모르거니와 고상한 힌두 철학에도 깜깜이다.

대신 인도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상을 경애하고 숭배한다.  103


구루 나낙(1469~1539)이 세운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장점을 따서 만든 종교로서 유일신을 믿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 힌두처럼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지만 카스트를 거부하고 갠지스를 순례하지도 않는다. 모두 같은 성을 갖는 것도 카스트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1500만명이 넘는 그들의 성씨는 모두 '싱', 결혼한 여자는 미세스 싱이 아니라 모두 '카우르'가 된다) 시크는 근면하기 때문에 거지가 없다.

펀자브 지방은 시크의 분리주의 운동이 있었다. 

인도에 갔다가 마약에 돈 떨어지고 담배꽁초까지 떨어지면 시크사원(구루드하라)을 찾아가라.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시크 사원에서는 거저 먹여주고 재워주니.  113


시크 못지 않게 돈 버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도)의 후예들이다.  114


고아지방은 포루투갈인과 인도 여인 사이에서 난 혼혈이 많아 이국적이다. 이곳 여인들은 사리보다 스커트를 많이 입고 생활 방식도 다른 지방과 달리 자유롭다.  115


힌두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무슬림이엇다. 인도를 통치한 무슬림 지배자들은 자기드로가 구분하여 인도(옛 이름은 힌드)에 사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몽땅 힌두라고 불렀다. 전체 인구 - 무슬림 = 힌두였다. 그 뒤를 이어 인도를 지배한 영국도 무슬림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이외의 인구를 힌두로 뭉뚱그렸다. 

힌두교는 종교의 창시자나 예언자가 없음은 물론 자신을 힌두라고 생각하는 살마에게 '하라. 하지 말라'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도 않는다. 힌두교에서 성서로 여기는 베다나 푸라나를 읽는 힌두는, 아니 그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은 5%밖에 안된다. 일정한 예배의 형식도 없는 자유 그 자체이다.  120


이질적이고 잡다한 생활방식을 모두 인정하는 힌두교는 기원전 1500~500년경에 성ㄹ힙되었다. 중심 사상은 베다의 전통을 따르는 브라만 중심의 브라만교이지만, 여기에 북부 인도에 존재하던 다양한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대중을 이끄는 독자적인 종교 이념으로 발전했고, 세월이 가면서 전 인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즉 힌두교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브라만교의 독선에 반기를 든 인도의 프로테스탄트, 불교와 자이나교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한 지방에서 동거를 해온 이방의 종교인 이슬람교까지도 포용한다. 

수천 년 동안 무엇이든 받아들여온 힌두교에는 헤브라이즘에서 볼 수 있는 '정통'이나 '이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살마의 수만큼 신이 존재하고 그 수만큼 다양한 믿음을 인정하는 융통성이 바로 힌두교의 생명이요 진리이다.  121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달리 힌두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다.

힌두는 구원이나 해탈도 나 스스로 이룬다고 생각한다.  122


카르마(業) - 카르마는 힌두 사회의 수많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125


윤회사상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다르마)를 다하면 카르마가 좋아진다고 유혹한다. 의무를 다하는 불가촉민은 브라만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불가촉민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126


알 수 없음과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최선을 부추긴다. 더 열심히 살아서 아예 이 아리송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며 구원이다. 그리하여 힌두에게 해탈은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127


예전보다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카스트는 아직 살아 있다. 집에서,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힌두 사원에서 여전히 그 힘을 행사한다. 카스트는 포루투갈어로 혈통을 의미하지만 인도인들은 색깔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모든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132


'자티'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카스트가 서로 갈리고 나뉘어 3~5천 개의 작은 집단으로 분류된 것으로 한층 세분화된 개념이다.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자티에 따라 다른 위상을 갖고 다른 규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것은 동일한 자티 안에서 이루어진다.

쉽게 설명하면, 북부지방의 브라만과 남부의 브라만은 동일한 계급이 아니다. 두 브라만 가의 갑순이와 갑돌이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의 수드라 사이에는 같은 계층이라도 연대의식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한 마을에 사는 수드라 내부에도 상하 귀천의 구별이 있다. 대장장이, 옹기장아, 세탁부, 이발사는 자신과 브라만이 다르듯이 서로가 서로를 다르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같은 청소부라도 거리를 청소하 자티와 '변소 쳐!'를 외치는 자티는 다르다.  133~134

소를 먹이는 집안의 경우는 소 먹이는 자티가 규정한 세밀한 규칙의 속박을 받고, 또 옷감을 짜는 집안의 직녀는 그 자티의 규정을 따르면서 신분에 맞는 제약과 대접을 받는다. 

계층이 낮을수록 부정하게 여겨지며, 금기사항도 적다. 똑같은 수드라 내부에서도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위상이 낮다.  134


'언터처블(Untouchable)' 불가촉민(不可觸民), 접촉을 하면 부정을 타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부지방의 남부드리 브라만은 천민을 보기만 해도 부정 탄다고 생각한다.  137

따라서 그들은 몸에 방울을 달아 순수 브라만이 그 소리를 듣고 사전에 피하거나 눈을 감을 수 있게 한다.

우파니샤드를 보면 개나 돼지처럼 취급되는 '찬달라'라는 천민이 있다. 

2세기 불교도 자나카도 마을 밖에 격리되어 사는 천민집단을 언급했다.

마누 법전에도 동구 밖에서 따로 거주하며 햇빛이 있는 낮에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11세기의 알비루니도 마을밖에 살며 더루운 일에 종사하는 집단을 기록했다.

1990년대로 와도 인도의 불가촉민의 삶은 별 차이가 없다.  138

불가촉민은 마을 사람들과 우물이나 강물을 함께 쓰지 못한다. 가까운 마을의 우물을 두고 몇십 리씩 물을 길러 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9

1991년의 인구 센서스를 보면 불가촉민은 1억 5천만 명으로 인도 총 인구의 약 17%이다.  141


마하트마 간디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하리잔(신의 자식)'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독립 세력을 이루고 떠나가는 이들을 힌두 세계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건재하는 높디높은 벽 앞에서 일부 불가촉민은 간디가 지어준 '하리잔'이라는 이름대신 자신을 '달리트(학대받는 자들)'라고 부른다.  142



마누 법전에는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의 연령 차이가 16~18세라는 기록이 보인다.  169


힌두의 악습으로 오랫동안 지탄을 받아온 사티 제도, 즉 죽은 남편과 함께 살아 있는 아내를 불에 태우는 것도 실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두려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170


사티는 본래 수많은 아내를 가진 시바 신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사티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173



1993년에 마무리된, 장장 8년에 걸친 인도 사회 조사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집단의 88%가 육식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9


인도인들은 대개 모든 것을 인정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음식에 관한 한 타협이 없다. 그중 채식을 고집하는 힌두와 쇠고기를 먹는 무슬림의 심한 갈등이 단적인 예이다. 

힌두는 음식을 감염체로 간주한다.  211


인도에는 2천 개의 기차역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222


영화를 보러 가면 인도가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반대가 바로 인도의 현실이다.  235

인도의 영화는 사회적 가치를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권선징악의 도덕이 그렇고 전통적인 여성상이 그렇다.  236


자와하르랄 네루

공화국과 세습제는 정치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두 얼굴의 공존이 가능했다. 1947년의 독립 후 50년 도안 네루 집안이 인도를 통치한 기간은 38년. 자와하르랄 네루는 1964년까지 무려 16년 9개월이나 장기집권했다. 

그의 딸 인디라 간디는 1966~77년과 1980~84년 두 차례 정권을 잡았고 인디라의 아들 라지브 간디는 어머니가 암살된 1884년에 사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 5년간 총리를 지냈다.  241


비하르와 우타르 프라데시 같은 지방은 인구의 반이 빈공층이며 천만 뭄바이 시민의 절반이 슬럼에서 산다.  259

인도의 도시화는 아직 낮아서 인구의 25%가 인구 5천 명 이사으이 도시에 살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그 도시 인구의 4분의 1이 슬럼에 거주하고 대도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수도 델리의 인구 중 3분의 1은 오늘도 슬럼가에서 하루를 쓸어담는다.  269


인도인은 흰색을 선호한다.  262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검은 까마귀보다 백로를 아꼈던 우리처럼 사람은 보편적으로 검은색보다 흰색을 선호한다. 유럽에서도 흰색은 즐겁고 매력적인 성질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그 반대로 대개 불길함과 죽음을 상징한다. 인도 신화에는 시바 신이 아내 파르바티의 검은 피부를 놀리자 그녀가 황금색 피부를 얻기 위해 금욕적인 수행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여성의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인도에서도 흰색은 순수와 정결을 뜻한다. 사라스와티 여신은 늘 흰 옷을 입고 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단정한 모습이다.  264


이기의 삶에서 이타의 삶으로....  296

인도를 구경하는 것은 동시에 여러 시대와 여러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312



후기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 권 쓰고 일곱 달을 머문 사람은 글을 한 편 쓰지만 인도에 7년 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다원적인 인도의 특성 때문이다.  314-315


천의 얼굴 인도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명하게 결론을 내리려 드는 20세기의 합리주의를 향해서 비웃음을 던진다. 사실 이 세상에 분명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한낱 내 기분도 아침과 저녁에 다르거늘.

한 길 사람 속도 알기 어려운데 수천 년의 역사와 10억의 인구가 빚어내는 다양한 사회의 집합체인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만용을 넘어 무모함에 가깝다.  315


Posted by WN1
,



내용 보기 클릭


위와 아래의 표지와 제목은 다르나 내용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Posted by WN1
,



삶은 예고편이 없다. 그날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우리는 다시는 맛보지 못할 순간들을 맛보고 있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14


지금은 자극의 시대다. 진한 조미료로 미각을 자극하지 않은 음식은 찾는 이가 없고, 테크노나 뽕짝의 고음으로 가막을 자극해야 음악을 들었다고 할 뿐 물이 흐르고 산들바람이 불고 곤충이 우는 것을 천지의 교향악으로 여기지 않는다. 음료수도 톡 쏘는 콜라는 '바로 이 맛'이라고 하면서, 톡 쏘지 않는 물 맛이 제 맛인줄 모른다. 어둠 속에 빝나는 폭죽에 환호하고, 일출과 석양빛엔 감격하면서도 변함없이 밝게 빛나는 낮 동안 햇빛의 고마움은 잊는다. 

단맛을 탐닉하면 달지 않은 것을 대할 때마다 불쾌해지고, 자극에 맛을 들이면 자극적이지 않을 때 늘 지루해져. 괴로움에 휩싸이는 과보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61-62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若見諸相)이 비상(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

'모든 형상들은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그 형상이 아님을 알면 바로 여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금강경 게송(偈頌)  101


신이 나를 안내한 토굴은 밀교의 고행승이 비밀 수행을 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따사움을 나누는 바로 이곳이었다.  113


눈이 게으르지 발은 게으르지 않았다.  121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과 마시는 차 한 잔의 맛. 그것은 맛을 넘어서는 멋이다.  136


2008년판 부터 책의 제목이 <인도오지기행>으로 변경되었다. 

저자의 이름도 조연현에서 조현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목차는 변경이 없다. 

 




Posted by WN1
,



인도인의 종교성은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생활의 단순성, Simple Living이다.  18


인도인들은 자신에게 불쾌하게 대해도 좀처럼 그들과 관계를 끊고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인도 사람들은 싫은 사람들과도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남을 돕는 데 마음을 쓰지만 절대로 돈을 써서는 돕지 않는다. 돈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하다.  20-21


흥미로운 것은 이 '돈' 문제가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의례를 따라 살려니까 돈이 드는 것이다.  21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알주나와 인간의 모습을 한 신 크리슈나가 전쟁을 앞두고 벌이는 논쟁이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가바드 기타이다.  30


논쟁에는 어느 한쪽의 절대적인 승리라는 것이 없다. 내용에 관한 것이든지 절차에 관한 것이든지 논쟁에서 이겨도, 긴 쪽의 의견은 남게 된다. 그래서 논쟁을 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가져온 것이다.  

인도인에게 침묵은 금이 아니다. 말하는 게 금이다.  31


수많은 인도 신화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 방대한 베다는 경이롭게도 글귀에 큰 모순이 없이 스승들에게서 제자들에게 구전되어 온 것이다.

마하바라타 한 작품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친 것의 7배가 넘는다.  32-33


아시아 교육은 암기를 중시하는데, 인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은 머리로 외워서 손으로 쓰지만, 인도인은 머리로 외워서 입으로 말한다. 

그 많은 것들을 정확하게 구전하기 위해서 인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암기력을 중요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암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천연약재까지 개발해냈다.  33


인도의 언어 종류는 가히 기록적이다. 공용어 18개, 외국어 103개를 포함하여 상용하는 언어만 1,652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 백만 명 이상 사용하는 언어는 33개 이상이다.  36


인도의 전통적인 말하기 문화는 서구 민주주의를 적응하기에 더 궁합이 잘 맞았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국민이 자신들의 의사를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38


맣 많이 하는 것이 약점은 아니다. 말만 많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약점이다.  39


인도인들은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미루어 놓고 명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명상을 통해서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하고, 분석하고 논박해 낸다. 

명상에 들어갈때는 먼저 사념을 버린다. 자연히 감정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한다. 이 명상은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 주고, 자신들의 문제를 차분히 정리 접근하게 돕는다. 명상을 하면 자기주장의 논거가 분명해진다.  39


현재 인도인의 말 잘하기 교육은 Debate Competition(토론대회) 이다.  40


인도인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 인도인은 세계에서 자신들보다 앞선 문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도의 풍부한 신화도 자료 및 사고 공급에 한 몫을 한다.  41


인도인들의 말하는 방법들.

  - 주도적이다.

  - 책임을 지는 언급은 피한다.

  - 상대의 약점을 노출한다.

  - 감정적인 표현을 피한다. 인도인은 일을 단계적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정을 담지 않고 말한다.  42-43


바가바드 기타. 인도인이 가장 중시하는 경전이다. 여기서 마야(Maya), 모(Moh), 크로드(Krodt) 이 세 가지를 주의하도록 가르친다.

마야는 돈을 의미한다. 돈을 주의하라는 말은, 돈은 필요하지만 돈을 쫓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이다.

모는 세상 것들에, 예를들면 세상 명리나 색에 유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크로드는 분노로서, 내면을 가라앉혀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다.

물질을 쫓거나 주색을 추구하는 삶, 화를 내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유혹에 대한 반응이지만 세 번째 것은 자기 통제를 잃은 경우에 대한 반응이다.

인도인들은 첫째로 화내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인도인들은 화내는 사람을 어떻게 취급할까? 먼저, 인격 훈련이 덜된 사람으로 판단한다.

둘째는 화내는 사람에 대해 그 상황에서는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

셋째는 화내는 사람이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화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52-53


감사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이 사람들이 특별히 외국인인 우리를 대하여만은 아니다. 인도인 사이에도 감사 표현이 별로 없다. 

이유는?

첫째는 종교적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오늘의 선행은 내세를 위한 준비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신이 죽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둘째로 사회 관습상 인도인은 감사의 관계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감사를 서둘러 말로 할 필요가 없다. 인도인들은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사를 마음에 새긴다. 인도인들은 도와주고 나서 금방 선물을 받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물 대신 지속적이고 끈끈한 관계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인도인을 도우면 어떤가? 감사하단 말도 하지 않고 선물도 안 준다. 그런데 후에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도움을 준다. 그 당시에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 일은 일단락된 것이 아닏. 그 일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5-60


거짓말을 옳다고 하는 인도인도 없지만 그르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68


델리대 정문에서 마주보이는 야산 공원에는 원숭이들이 수천 마리가 산다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은 최소한 200~300루피 어치의 바나나를 사서, 산속을 누비며 원숭이들에게 던져 준다. 그러면 주변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이 원숭이와 싸워가며 몇 개씩 집어간다. 바나나를 던져준 사람들은 큰소리로 아이들을 야단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새들을 위해 콩을 가져다가 모이로 던져 준다. 르거면 또 아이들이 쫓차가 흙투성이의 콩을 줍는다. 사람들은 심한 욕설을 하며 아이들을 쫓아낸다.

동물은 먹이는데 사람은 먹이지 않는 인도인의 윤리와 도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동물에게는 측은지심을 보이는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다니!

이와 같이 윤리관의 문제를 제가히는 건거의 하나는 카스트다.  70


바가바드 기타에 이러한 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 두 가지가 보인다. 

바로 카르마(Karma)와 박티(Bhakti)다. 카르마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업보에 따른 수행이고, 박티는 헌신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행위의 실천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결과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즉,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냉철하게 그리고 욕망과 목적을 버리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74-75


일을 잘해 내는 데 신경을 쓰면서 결과를 중시하지 않는 태도는 현대 인도의 경제, 정치, 안보에 중요한 기준이다. 우리는 요구하는 결과를 고정시켜 놓고 이에 맞추어 나가려면 원치 않는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많다. 이에 비해 인도인은 힌두신앙의 영향으로 결과를 덜 중시한다. 결과를 중시하지 않으며 카르마에 맞는 행동을 중시한다. 공사를 구분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자세로는 좋은데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하면서 힌두의 이익, 인도의 이이그 자기 가족의 이익,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따라서 행동하면, 상대방이 피해를 입고, 피해를 입힌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별로 받지 않는다. 이같이 인도인은 상황에 따라 자신을 합리화,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다.  78


인도 여성은 자기 방어에 철저하다. 자기 몫 또는 안전을 챙겨야 하는데, 하다못해 오토릭샤를 타도 여성은 항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 것을 철저히 챙기는데 강하다. 자신이 희생해서 남을 위해 해 주는 일이 드물다. 즉, 남을 이용하는 데 강하다는 말이다.

인도 여성의 성격은 부정적인 듯하지만, 개인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기 위해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통 성품이다.  98


실제로 인도인들을 사귀어 보면 필요한 도움을 주고 섬세히 배려를 해 주는 편이다.  129


인도인이 남을 도와주는 것은 언젠가는, 누구를 통해서인가는 혜택이 돌아온다고 믿는 적선(積善) 개념이 깔려 있다.  131


부분적으로 인도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힘이 없는 사람의 짓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권력을 쥐고 눈에 드러나게 과시하면 촌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인도인은 조그만 권력이라도 쥐면 반드시 과시한다.  153


인도인의 미신적 성격은 어디서 왔는가? 몬순이다.  168

자연적 여건이 좋은 반면 자연재해도 크게 일어날 수 있다. 인도응 홍수나 가뭄 때문에 엄청난 재해를 입는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사람의 노력이 별로 무슨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재해가 거대하고 혹독하기도 하다.  169

이러한 자연현상에 대해 미리 알고 싶어 발전한 것이 점성술이다. 

점성술에 대한 인도인의 신뢰는 대단하다.  170


모든 사람이 꺼리는 동물은 고양이와 까마귀다. 특히 까만 고양이.  176



인도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질문

아는 사람을 밖에서 만났을 때 "어디 가느냐?" , "왜 가느냐?"라고 묻는 것은 힌두 미신으로 볼 때 큰 실례다. 

나가는 인도인들에게 어디(Where), 왜(Why)라고 물으면 안 된다. 그 대신에 구체적으로 "학교에 가느냐?" , "회사에 가느냐?"라고 물어야 한다.  177



인도인과 요일

월요일은 파괴의 신 시바를 섬기는 날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귀는 사람이 시바 숭배자인 경우 월요일은 금식을 하므로 초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화요일은 원숭이 신 하누만의 날이다. 하누만은 물리적인 힘을 상징하는데, 여성들은 힘의 권원으로 샥티(Shakti)를 섬기는 날이다. 화요일은 거의 모든 힌두인들이 오후에 사원에 가서 원숭이 신을 섬긴다. 이날은 머리도 깎지 않고 손톱도 깎지 않으며 면도도 하지 않는다.

목요일에는 스스의 날(Guru day)인데 신들의 스승을 존경하는 의미로 옷을 빨지 않는 날이다. 정 빨아야 하면 비누 없이 빨 수는 있다. 목요일은 보전의 신 비슈누의 날이기도 하다.

수요일은 코끼리상의 신 가네샤의 날로 새로운 것을 사거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날이다. 

금요일은 산토시 신의 날로서 시대가 바뀌면서 근대에 영입된 신이다. 이날은 락슈미를 섬기기도 한다. 이날 힌두들은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는다. 무슬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날이란 점도 있다. 

토요일은 인도인들이 전반적으로 불길하게 생각하는 날이다. 이날은 샤니 데이(Shani day)라고 해서 토성(土星)의 신 샤니의 날이다. 이 신은 아주 위험하고 화를 잘 내는 시능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신이 질투하지 않도록 토요일에는 모든 새것을 피한다. 이날은 머릿기름도 바르지 않는다. 육식도 금하고, 와인도 마시지 않는다. 계란조차 먹지 않는다. 

일요일은 태양신 수리야를 섬기는 날로서, 브라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일요일 중에도 우타르프라데시나 비하르주에는 차트라고 하여 4월과 11월에 한 번씩 24~36시간 동안 물도 한 모금 안 마시는 금식을 하면서 첫날의 일몰, 둘째 날의 일출을 숭배하는 날들이 있다.  179-181


인도인들은 다양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의 실수를 받아준다.  187

인도인은 외국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무시하지는 않는다.  188


인도인의 관대함의 사회적 근거는 대가족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193


인도인에게 음식은 재료가 고기인가 채소인가가 문제지 냄새는 문제가 아니다. 채식 재료에서 나는 냄새는 무엇이든 괜찮다.  199


혼란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인도인은 카스트 안팎의 두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다.  208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