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그게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외면의 것이든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마주치는 모든이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2.05.55)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진리는 이전 문맥을 통해 해석해 보아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용기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우선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하려는 용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다. 익숙한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안주하는 것만큼 편한 생활은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익숙한 것은 그것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주게 되어 인간의 정신을 고정시킨다. 그러니 그만큼 안락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움에 대한 극한의 반대 입장으로 진실한 눈으로 보는것을 방해하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이란것은, 새로운 아니 이미 존재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것들을 통해서 옳은 것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또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다는 다양성의 받아들임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경험의 접목은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된다. 첫번째 내용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과정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전제로 하기에 새로움의 자극은 깨달음 즉, 조금더 진리에 다가가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갖혀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바라보더라도 비뚤어진 사고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강박적인 해석을 뒤따르게 할 수 있기에 자신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벽을치고 타인을 모두 틀리다고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 인정한다는 것은 잘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양성의 공존에 의해 모두 옳을 수도 모두 그를수도 없다는 점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 즉 심적 상태의 넓고 깊은 평온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다양한 것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알고 깨닫게 되는 것들에 의한 평온함의 깊이있어짐과 넓어짐이라 표현하게 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표현한 '진리'를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행은 새로움에 대한 놀라움과 그것들과의 소통으로 인한 인정과 올바른 비판적 수용 그리고 그러한 것들로 인한 새로운 해석과 앎.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부드러워짐과 인간적 불완전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견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유일하며, 이슬람, 힌두 관점에서도 비슷하고, 불교, 유교적 관점에서 깨달음에 의한 성장이기도하다. 이러한 것들로 볼때 이러한 종교적 진리 또한 어느정도 이상의 해석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말해 유일신에 의한 진리적 유일성이 아니라면, 깨달음의 과정이 중요하다. 더해서 유일한 진리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우리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현재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 인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서양의 산업발달에 의한 정상적 상태로 바라보면 기독교는 분석하고 판단하여 꿰둟어보는 통찰력을 길러서 그것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는 것. 종교에 대한 해석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절이 지나가며 이제는 그에대한 부작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중용이 필요하고, 마음 정신적 수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이 동양적 사상에 심취하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서양 사상을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면서 조금보태는 것이다. 즉 보완시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여행은 종교적으로 해석한 진리에 대한 의미도 포함할 수 있는 '진리'의 영역을 설명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개풀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라, 여행은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전통과 사상을 접하고 체험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러한 경험은 통찰력에 가까운 해석력과 수용능력을 배양하여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고대의 여행도, 지금의 여행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라면 이정도 되는 것이 아닐까.. 관광이 아닌 여행 말이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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