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해당되는 글 474건

  1. 2012.11.08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3 03860
  2. 2012.11.06 오 자히르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5 03980
  3. 2012.11.05 사랑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소담출판사 2005 04830 2
  4. 2012.11.04 사랑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소담출판사 2005 04810
  5. 2012.11.03 혼자 책 읽는 시간 - 니나 상코비치 웅진씽크빅 2012 03840 2
  6. 2012.11.02 여행... 읽다 2
  7. 2012.10.30 철학의 위안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03840
  8. 2012.10.29 다르게 시작하고픈 욕망 서른 여행 - 한지은 청어람 2010 03810 4
  9. 2012.10.26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 배성아 브리즈 2008 03810
  10. 2012.10.24 사바이 인도차이나 - 정숙영 부키 2011 03810
  11. 2012.10.23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 최갑수 예담 2009 03810 2
  12. 2012.10.19 사랑의 기초_연인들 - 정이현 문학동네 2012 04810 2
  13. 2012.10.18 사랑의 기초 _ 한 남자 - 알랭 드 보통 문학동네 2012 04840 2
  14. 2012.10.17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상상출판 2012 13980
  15. 2012.10.16 잘 지내나요, 내인생 - 최갑수 나무[수:] 2010 13810
  16. 2012.10.15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 최갑수 상상공방 2008 03810
  17. 2012.10.10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 최갑수 예담 2007 03810
  18. 2012.10.09 인도에 관한 열일곱가지 루머 - 이상문 도서출판사람들 2011 03810
  19. 2012.10.08 한권으로 만나는 인도 - 이병욱 너울북 2011 03910
  20. 2012.10.05 인도 바로보기 - 고홍근 최종찬 네모북스 2006 03320 2
  21. 2012.10.03 슬픔이 주는 기쁨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03840
  22. 2012.09.27 적절한 균형 - 로힌턴 미스트리 아시아 2009 03840 1
  23. 2012.09.22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이옥순 푸른역사 2002 03900
  24. 2012.09.18 사리 속치마를 벗기다 - 오화석 매경출판 2010 03320
  25. 2012.09.17 아름다운 파괴 - 이거룡 한길사 2010(2000) 03100
  26. 2012.09.12 불온한 신화읽기 - 박효엽 글항아리 2011 03100
  27. 2012.09.09 맛살라 인디아 - 김승호 모시는사람들 2008 03910
  28. 2012.09.07 인도방랑 - 후지와라 신야 작가정신 2009 03830
  29. 2012.09.03 떠나라, 외로움도 그리움도 어쩔 수 없다면 - 이하람 중앙books 2011 13910
  30. 2012.09.02 악마와 미스프랭(The devil and Miss Prym)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3 03890



작가노트

어느 섬을 방문한 한 스페인 선교사가 세 명의 아스텍 사제들과 마주쳤다. 

"당신들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선교사가 물었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기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린 이렇게 기도하지요. 신이시여, 당신은 셋이고 우리도 셋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스텍 사제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선교사는 말했다.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그러나 신께서 귀 기울이시는 바로 그 기도는 아닙니다. 제가 당신들께 훨씬 더 좋은 기도를 가르쳐 드리지요."

선교사는 그들에게 가톨릭의 기도문을 가르쳐주고, 복음 전도를 위한 항해를 계속했다. 수년 후, 그가 탄 배가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섬에 들렀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선교사는 해변에서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세 명의 아스텍 사제들을 보았다. 그들 세 사람은 물 위를 걸어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신부님, 신부님!"

배를 향해 가까이 걸어오던 세 사람 중 하나가 소리쳤다.

"신께서 귀 기울이신다는 그 기도를 다시 가르쳐주십시오. 그게 어떻게 시작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기적적인 장면을 목도한 선교사가 대답했다. "그게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신은 모든 언어를 두루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잘못에 대해.


이 일화는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정한 경이에 둘러싸여 산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기적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신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신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천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신에게 이르고자 한다면 일정한 형식과 규칙들을 따라야만 한다고 가르침 받아온 탓이다. 우리는 신이 도처에 편재한다는 사실을, 신은 우리가 그/그녀를 허락하는 곳이면 어디든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전통적인 종교의식들은 중요하다. 그 의식들을 통해, 우리는 경배와 기도의 체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체험이 구체적인 사랑의 체험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사랑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는 것을, 대인관계를 다룬 책을 읽거나,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위한 전략들을 개발하려 애쓸 수도 있지만, 그런 행동들은 부질없을 뿐이다. 결정은 우리 마음이 하는 것이며,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이 마음의 결정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말한다.

"난 지금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랑 때문에 너무도 괴로워하고 있어."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운 건 아닌가. 우리가 만든 규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괴로운 건 아닌가.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로워하고 있는게 아닌가.

사랑에는 성장의 씨앗이 깃들여 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우리는 영적 체험에 보다 가까워진다. 참으로 깨달은 자, 사랑으로 뜨겁게 데워진 영혼은 모든 편견을 넘어설 수 있다.  11-14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행위이다.

이 책은 자신을 내주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중인물인 필라와 그녀의 친구는, 우리가 우리의 반쪽을 찾아나설 때 만나게 되는 수많은 갈등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우리 내부의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14


수도사 토머스 머튼은 말했다. "사람들은 타인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거나 선행을 베풀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한다면, 그건 그를 단순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기 자신을 대단히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14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21


길은 걸으면서 만드는 것이었다.  22


우리는 우리 내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53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린아이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아이를 성가셔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고 그 아이의 말을 거의 듣지 않음으로써, 그 아이가 겁을 집어 먹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가 사랑받고 있음을 다시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 아이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타인의 눈에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54


현실에서의 사랑은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설사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해 당장 대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언젠가는 원하는 사람을 가질 수 잇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랑을 위하여!"

"때론 사랑이 유치한 짓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는 현명한 사람들을 위하여!"

"현명한 사람은 오직 그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현명한 것!"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  61


사랑은 덫으로 가득하다. 사랑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랑은 오직 밝은 면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그 빛이 만든 그림자는 볼 수 없게 한다.  69


"삶에는, 얻기 이해 끝까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어."


새 신발을 신으면 발이 좀 아픈 법이다.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원치 않을 때, 그리고 필요치 않을 때도, 삶은 우리를 의외의 무언가로 사로잡아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도록 한다.  83


"좌절도 있지요. 누구도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한 싸움에서 뭔가를 잃는 편이, 자신이 뭘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좌절하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요."  93


"너,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연습을 했구나?"

"응, 어떻게 알았니?"

"너도 변했으니까. 사람들은 항상 가장 적잘한 시기에 그 연습을 하게 되거든."  129


'사랑은 결코 조금씩 오지 않아.'  133


"삶의 신비가 나를 사로잡았어. 난 그걸 더 잘 이해하고 싶었어. 누군가. 대답을 알고 있다고 말해줄 그곳을 찾아 헤맸지. 인도도 가보고 이집트도 가봤어. 마법과 명상의 달인들도 만나봤어. 연금술사와 사제들의 곁에서도 머물렀지.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어. 그것은 믿음이 있는 곳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134


"너 추워서 떨고 있구나. 억지로 의식에 참가할 필요는 없어."

"넌 여기 계속 있을 거지?"

"그래. 이게 내 생활인걸."

"그렇다면 나도 같이 있을 거야."

하지만 내심 그곳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게 너의 세계라면 나도 그 일부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어."  159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었다.  171


"<주역>에서 말하길, 도시는 바꿀 수 있어도 샘이 있던 자리는 바꿀 수 없대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곳은 바로 샘 근처죠. 사람들은 그곳에서 갈증을 씻어내고 집을 짓고 아이들을 기르지요. 하지만 그들 중 한 사람이 떠나길 원한다 해도, 샘을 옮겨갈 수는 없어요. 그러니 사랑은 그 자리에 남게 되죠. 버려진 채로 말이죠. 샘에는 여전히 맑은 물이 가득 차 있겠지만요."  182


"하느님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거요. 물론 수천 갈래의 길을 걸을 수 있고, 다양한 종교와 종파를 만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코 하느님과 만날 수 없어요. 하느님은 여기 있소. 바로 이 자리에, 우리 곁에. 우리는 이 안개 속에서도 그를 볼 수 있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에서도 볼 수 있소. 심지어 내 신발에서도 볼 수 있지요. 하느님의 천사들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밤새워 우릴 지켜주고, 우리가 일 할 때면 곁에서 도와줍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이 만남은 쉽지 않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신비에 동참하도록 더 많이 요구하실 수록 우리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지니까요. 신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꿈과 마음을 따르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이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사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걸 따르는 일이 쉽지가 않소. 그러나 결국 우리는 신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놀라움과 함께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니까요."  191-192


"잔이 떨어질 것 같아." 그가 말했다.

"그래, 난 네가 이걸 테이블 아래로 밀어버렸으면 해."

"잔을 깨라고?"

그래. 잔을 깨는 거야. 겉보기엔 간단한 동작이지만, 컵을 깬다는 것은 그 정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가지게 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값싼 유리잔 하나를 깨버리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일상 다반사인 것을. 

"잔을 깬다구? 왜?" 그가 다시 물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냥 깨기 위해서 깨는 거지."  232-233


난 잔을 깼다고 영수증에 깨진 잔 값이 청구됐다는 사람의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 깨진 잔은 삶의 일부일 뿐, 우리에게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아. 식당 주인에게든, 우리 이웃에게든.'  233


'잔을 깨, 제발... 어리석은 편견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다른 모든 살마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달란 말야.' 

"잔을 깨."  234


"사실 전 가진 게 없어요."

"아가씨에겐 아가씨의 삶이 있어요. 기나긴 삶이. 그걸 좀더 잘 간직하도록 해요."  272


"사랑은 그 자리에 있어요. 변하는 것은 사람들이죠!"  276





옮기고나서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길이 끝나는 곳에 답은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말한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288


길을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지 말아야겠다. 그건 그의 노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대신 그와 더불어 떠날 용기를 내야겠다. 머물러 바라보지 말고, 함께 걸어주어야 겠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하기.  292-293

Posted by WN1
,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신곡>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날, 짜여 있던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지고 확고한 진실로 여겨졌던 것들은 모두 뒤흔들릴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법에 눈뜰 때, 비로소 참된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겠지만, 사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용기는 갖지 못할 겁니다.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사랑이라는 힘은 우리에게 기쁜을 주기 위해, 우리를 신께, 우리의 이웃에게 다가서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평화로운 일 분을 위해 한 시간씩이나 고뇌하면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129-130

Posted by WN1
,


그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다.  6


어째서 홍이의 외로움을 좀 더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어째서 그녀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없었을까.  8


첫눈에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이라고 느꼈다.  12


언제나 첫인상만큼 믿지 못할 것도 없다.  13


마음의 문을 닫고 고집스럽게 칸나를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홍이의 존재는 정말이지 내게 성모 그 자체였다.  30


한마디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러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탓에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자라고 말았다.  36


시집을 발견한 나는 엎드려 별 생각 없이 책장을 펼쳤다.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거기서 홍이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47


둘 사이에는 한 장의 천도, 둘 사이의 가르는 문도, 세상을 차단하는 높은 벽도, 끝없는 국경선도 없었다.  67


바다가 보고 싶다고 떼를 쓰는 저녁이면 대개 혼자서 몰래 울었다. 

"같이 있는데 뭐가 쓸쓸해?"

나는 그녀가 몰래 울 때마다 그렇게 물었다. 홍이는 눈물을 감추며 쓸쓸해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말했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77


"글쎄, 엄마가 일본 사람하고는 결혼 못한다잖아."

그래도 그때가 우리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132


사소한 한마디, 별 뜻 없이 한 말이 그 틈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버리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아무도 그것이 심각한 줄을 모른다. 병을 앓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161


"일본도 마찬가지야! 나도 케이크만 시킬 때가 있다고!"

"누가 준고 생각을 물었어? 난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과 일본은 문화가 다르다고 한 것뿐이야."

"그렇지만 네가 문제를 비약시키잖아. 케이크와 음료가..."

우리는 녹초가 될 때까지 그런 바보스런 논쟁을 되풀이하다 결국엔 등을 돌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홍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준고, 부탁이야. 내게 다정하게 대해 줘. 부탁이니 무조건 날 지켜 줘. 준고, 부탁이야. 무슨 일이든 내 편만 들어 줘'

그런데도 나는 홍이의 고독한 마음을 받아 주기는 커녕 내치려 했다. 왜 홍이가 조바심을 내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다면, 홍이가 마리코와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빵집 마리코 탓이 아니었다. 그건 전부 내 탓이었다.  173


"잘못했다고 하면 되잖아. 사과하면 누가 벌이라도 줘? 너희 일본 사람들은 어째서 그런 말 한마디를 못하는 거야?"  178


"엄마가 왜 일본 사람하고 결혼 못하게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아.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가 말했었지. 기억 나? 나는 외국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어째서 무책임하게 결혼하자는 말을 했어? 나를 외톨이로 내버려 둘 거면서. 제대로 사과도 안할 거면서."  179


나는 칸나 덕분에 확실히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203


만약 내가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하고 레코드 가게를 나오며 생각한다. 나는 일본을 미워했을까, 아니면 일본인과 사이좋게 지내려 했을까.  224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 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상대방의 마음을 제멋대로 거짓으로 꾸미는 게 보통이에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240


"난 그때 너와 함께 달렸어야 했다. 난 너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던 거야. 내가 생각이 모자랐어."  249

Posted by WN1
,



"내가 언니였다면 나는 지난 일 같은 건 그냥 아름답게 간직해 버리고 말 거야. 노래방 같은 데서 노래 부를 때만 조금 생각하고 나머지는 다 잊어버릴 거라고."

"잊는다고?"

내가 물었을 때 록이는 맥주잔을 들다 말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잊는 거, 잊어버리는 거 말이야."

잊는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내가 잊으려고 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내 자신이었다.  26


그때 나는 그의 곁에 있느 모든 여자를 질투했었다. 칸나라는 여자는 물론이고,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있던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공원을 걷다가 그가 일으켜 세워 주었던, 넘어진 열 살짜리 꼬마 아이까지. 그게 누구든 그가 나 이외의 모든 여자에게는 찡그린 표정만 보여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게 터무니 있든 없든 그랬다. 나는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가끔 그의 손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잠들고 싶었다. 어릴 때 피아노 뚜껑을 덮어 버려서 흉터가 남은 그의 손가락에 내 얼굴을 대고 싶었다. 

"그건 사라잉 아니라 스토킹이야. 집착일 뿐이라고."

나중에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친구 지희가 말했었다.  29


그는 부지런했다. 그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엇다. 나주엥 생각한 일이지만 그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슬픔이라는 점령군에게 마음의 영토를 다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고 있던 것도 같았다.  33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어. 언젠가 너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어."

준고는 무슨 말이든지 하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눈가로 몰려왔다. 피가 얼굴 앞ㅉ고이로 몰려드는 것처럼 아주 무거운 기분이었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햇는데 나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지난 칠 년을,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내려 앉았던 빨간 심장을 다 토해 버릴 것만 같았다. 

기다렸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 휴대전화를 장만하고 나서 그가 당연히 내 전화번호가 바뀌고, 한국의 전화번호는 세 자리 국번에서 네 자리 국번으로 바뀌어 버렸는데도 심장은 내 머리를 비웃으며 그렇게 덜컥거렸다.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전화를 받아 들고 그 소리의 주인공이 여보세요. 하기까지 전화벨은 고통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그렇게 혹시라도 기적처럼 그가 전화를 걸어 와 베니, 넌 잘 있니? 하고 물으면, 그러면 나는 대답하고 싶었다. 

'응, 잘 있어. 나는 최홍이고, 나는 씩씩한 여자고, 나는 잘 있어. 준고. 어쩔 수 없이. 안간힘을 다해서, 필사적으로 그렇게 잘 있단다.'

그리고 나는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울고 있는 나를 내버려 두었니? 왜 붙잡지 않았니? 잡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그리고 왜 이제야 여기에 온 거니?'  45


아침에 좀 더 신경을 쓰고 나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도 머리도 좀 더 예쁘게 하고 옷도 좀 더 화사하게 입고 올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아무런 반짝거림도 없이 그저 시들어 가는 노처녀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내 자신이 싫어졌다. 더도 덜도 아니고 그가 가슴 아플 만큼만, 그가 후회할 만큼만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이건 민준을 만나면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다.  51-52


준고는 늘 바빴다. 아르바이트를 다섯 개나 한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까 어떤 때는 임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학비를 번다니. 

"너희 아버지는 뭐 하셔? 너 혹시 고아 아니니?" 나는 물었다.

"아버지는 첼리스트야, 가난한..." 그가 말했다. 

"혹시 가짜 부모님?"

내가 묻자 그가 하하. 하고 웃었다.  66


"베니, 네 얼굴은 늘 이상한 생기로 가득 차 있어. 일이 힘들어지면 나는 늘 네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을 기억해." 

그건 준고가 한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이가 든 필자 선생님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었다. 

"최홍 씨는 가끔 참 어두워. 세상을 다 살아 버린 사람 같아." 그때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선생님에게는 독한 추억이 있나요?"

나는 조금 술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시비 걸듯이 대꾸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몸을 씻어도 아무리 딴 생각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취기 같은, 그런 독한 기억이 있느냐고요?"  76


"엄마는 아빠를 아직도 사랑해?" 내가 물었다. 내가 뺨을 대고 있는 엄머의 등이 잠시 굳어졌다.

"... 사랑은, 하지. 그런데 좋아하지는 않아."  77


"사람이 사는데, 꼭 나쁘다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더구나 누구를 사랑하는데. 그건 말이야,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야. 되돌릴 수도 없는 거, 그냥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고 그러는 게 좋지 않겠니?"(민준의 말)  87


엄마는 말이 없어진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그건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지. 결혼은 좋은 사람하고 하는 거야."  91


혼자서 그의 집을 나오던 그날 밤, 공원 길을 걸어 기치조지역을 향해가면서 나는 중얼거렸었다. 

"대체 왜 그러느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진한 눈으로 그렇게 묻지는 마... 내가 너보다 많이 슬펐고, 내가 너보다 많이 기다렸고, 내가 너 보다 많은 걸 걸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나를 잊어. 칸나를 잊듯이. 벚꽃이 일제히 지듯이 그렇게... 더 많이 사랑햇던 사람하고, 더 아팠던 사람하고, 정말 처음이었던 사람들이 이미 불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걸 너는 모르겠지. 영영 그렇게 모르겠지. 그러니 잊어. 하나도 남김없이 잊어."

그러면서 나는 아마도 뒤돌아보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실은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인 줄도 모르고 이제 그를 떠나야 한다는 결심과 제발 그가 다가와 날 붙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팽팽히 맞서는 것을 느끼며 그곳을 떠나왔던 것이다.  101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없다는 것.  109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111


"그런데 지희야, 혹시 사람에겐 일생 동안 쏟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난 그걸 그 사람한테 다 쏟아 버린 거 같아... 그리고 내 표정이 아무리 이상해져도 앞으로도 늘 이렇게 말해 줘.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해 줘. 부탁이야!"  119


이 호숫가는 적어도 그가 없었던 공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에는 추억이 없으니까. 여기에는 처음부터 나 혼자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가 여기 들어섬으로써 나는 기억을 갖게 되어 버렸다. 그러자 그를 용서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칠 년 동안 나를 기다리게 해 놓고. 뭐 딱히 그가 나보고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놓고 겨우 내가 한 바퀴를 도응 동안도 더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가 버린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125-126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 하며 몸부림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괴로워 마.(지희의 메일 내용중에서)  130


"..모범 답안으로만 살명 진짜 무엇인 옳은지 모르는 거야."  132


언제나 어린 동생처럼 보였는데 록이가 훌쩍 큰 듯 느껴졌던 것은 아마 내 마음이 누구에게든 기대고 싶을 만큼 지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34


그가 나를 위해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다섯 개씩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비싼 음식들을 먹으로 가자고 졸랐던 것은 그의 짐작대로 내가 돈 걱정 없이 자라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멋진 남자와 사랑할 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니까 좀 더 쾌적하고 로맨틱한 장소에 그와 나의 사랑이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부도 직전의 출판사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자장면만 먹으며 일할 때 나는 준고를 생각했었다.

차비 한 푼도 힘겹던 시간이었다. 지희가 남자 친구를 데려와 소개했을 때 이차로 마신 생맥주 값을 나보고 내라고할까 봐 잊어버린 일이 있는 듯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준고를 생각했었다. 내가 로맨틱한 카페에 가서 프랑스스기 음식을 먹자고 조를 때 그의 눈에 비치던 그 곤혹스러움..., 그가 캔 커피를 사서 공원에서 마시자고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는 것도 떠올랐다.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철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버린 뒤였다.  137


'최홍. 너,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거니?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암전되어 버린 것처럼 아찔해졌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거역할 수 없는 물음이 들려왔다. 

'윤동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겟다던 너는,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고?'

마취에서 깨어난 것처럼 온몸이 아파 왔다. 가슴 한구석이 갈라지는 듯했다. 나는 긴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검은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어렴풋이 사물들의 윤곽이 보였다. 이곳은 좁은 욕실, 준고의 아파트였다. 도쿄였고 일본이었다. 나는 여기서 오전에는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준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196-197


이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결심을 해야 했다. 나는 준고에게 한국으로 가자고 할 셈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인사를 드리자고 하고 싶었다. 내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인사했듯이 그를 한국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내가 할아버지 이 사람은 좋은 일본인이에요. 하면 할아버지도 빙그레 웃어 주실 것 같았다.


그날 역시 늦게 돌아온 준고는 피곤하다는 듯이 물을 한 잔 마시더니, 자자. 하고 자리에 누웠다.

"할 이야기가 있어."

내가 말을 꺼내자 그는 돌아누우며 제니 내일. 하더니 이불을 뒤집어썼다.

"대체 너에게 나는 누구니?"

등을 돌리고 누운 준고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체 너에게 나는 무슨 의미인 거냐고!"

그가 가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바다 위에 내리치는 번개처럼 밤새 내 망막에 푸른빛으로 번쩍번쩍했다.

"오늘은 안 되고 내일은 시간이 나니까, 홍. 우리 맛있는 거 먹으로 가자."

아침이 되자 미안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그래, 그럴게. 했다.  198-199


내 생애의 첫 사람인 그..

'하느님 준고를 살려주세요.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에요.' 격정적인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두 손을 모은 채 얼마가 지났을까. 마음이 싸늘히 식어 내리면서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다시 한 번 다짐했었다. 준고는 약속을 그렇게 허투루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뒤에 순간이었지만 만일 그런 사람이 약속을 어긴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02


"끝내자, 준고." 내가 말했다.

준고는 마치 낯선 외국어라도 들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실은 나는 그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우리 지금은 힘든 시간이니까 조금만 이 고비를 넘겨 보자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서투른 동거와 이국 생활의 외로움에 나는 지쳐 가고 있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흥, 이야기를 해봐, 하고 말한다 해도 나는 떼를 쓰듯 우겼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갈래, 한국으로 갈래, 하고. 그때 나는 생이 우리에게 얼마만큼 냉정하게 모든 행위에 대해 해명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물둘이었다.

'준고, 함께 한국에 가자. 가서 할아버지께, 일본 여자랑 결혼하려던 아빠를 반대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처럼 좋은 일본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자. 우리 세대는 다르다고 말하자. 응?'

나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피곤함과 짜증이 섞인 그의 눈빛이 침묵 속에서 비수처럼 나를 찌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슬픈 얼굴이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204-205


"그래 그럴게. 행복해라..."

그가 말했다. 응, 너도. 라고 말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내 마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착한 여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자신이 싫을 것 같았다.  219


"그래, 정말로 달렸어. 그것밖엔 할 수가 없었거든. 말로 분명하게 설명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계속 달렸기 때문에 그때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넌 혼자서 달렸다는 걸... 난 그때 너와 함게 달렸어야 했다. 난 너에 대해 뭐든 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던 거야. 내가 생각이 모자랐어. 미안해. 내가 나빴다... 내가 나빴어. 널 외롭게 해서."  235



지은이 후기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사람이라는 이야기고 살아 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38

Posted by WN1
,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재앙처럼 충격을 주는 책, 깊이 슬프게 만드는 책,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숲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언제나처럼, 즐거움과 도피를 위해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잊기 위해서도 읽는다. 반 시간만이라도 언니가 겪고 있는 현실을 잊기 위해 읽었다. 언니는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무자비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고통과 함께 무력감, 공포감이 뒤따랐다.  17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조용하지 않은 무덤>



내 경우는 갈수록 더 커지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을 가졌는가? 언니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삶의 카드는 왜 내게 주어졌으며, 난 이걸로 뭘 해야 하는가?

달아나기를 멈추어야 했다.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작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둘로 나뉜 나를 다시 합쳐야 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20세기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는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활용하고 싶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으로 되돌아가는 도피 말이다. 나는 책에 풍덩 빠졌다가 다시 온전해져 나타나고 싶었다.  35


나는 공책을 갖고 다니면서 내 생각들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난 교외의 이웃들을 염탐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공책에 쓰는 편에 더 흥미가 있었으니까.  37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고 한다. 독서에는 즐거움도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어떤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 가버릴 수 있다. 읽고 싶은 만큼 읽지 못할 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도피는 불가능하다. 청소해야할 먼지라든가 개켜야 할 옷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우유도 사야 하고 저역 식사도 마련해야 하며 설거지도 해야 한다. 하지만 1년 동안은 그런 일이 절대로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1년 동안 달리지도 않고 계획도 세우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1년 동안 '.... 하지 않기'를 하려 한다. 걱정하지 않기, 규제하지 않기, 돈을 벌지 않기. 물로 ㄴ우리 가족은 다른 수입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한 사람의 수입으로만 살아왔으니 한 해 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외의 지출은 뒤로 미루고 지금 가진 것으로 지낼 것이다.  43


내 계획에 따르면 매일 책 한 권씩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마흔 여섯 살 생일에 시작된다. 그날 첫째 권을 읽고 다음 날 첫 서평을 쓴다. 한 해 동아느이 계획은 단순했다.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일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전쟁과 평화>는 안 되겠지만 톨스토이의 최후작인 <위조 쿠폰>은 읽을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언니와 내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면 좋겠다.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동의했을 법한 책이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히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알 것이다. 그런 열성이야 당연히 좋지만, 어른들에게는 왜 매일 읽으라고 닦달하지 않는가? 왜 어른들에게는 매일 책 읽기를 권장하지 않는가?  44


사람들은 여기서 지금 살아간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들이 과거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주저 앉지 않고 즐거운 순간을 누리는 것을 부러워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을 회상하고 다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경험, 이미 살아본 삶이다.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종으로서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이 능력에 달려 있다(어떤 나무 열매는 먹지 말 것, 이빨 가진 큰 동물에게는 접근하지 말 것, 불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하되 건드리지 는 말 것등등). 하지만 우리 내면의 자아의 생존 역시 기억데 달려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예리한 후각을 가졌겠는가?  55


병이 위중하면서도, 자신도 조만간 죽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언니는 자신은 자살 충동을, 스스로 생명을 끊게 만드는 우울함에 대한 완전한 굴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끝내는 걸까?"

그녀가 옳았다. 절망에게 해줄 대답은 항상 있다. 장래에있을 아름다움에 대한 약속이 그것이다. 과거에 아름다움을 보았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안다.  62-63


뒤를 돌아보면 내 현재 삶의 전체가 보인다. 지금 있는 곳에 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아직 내 앞에 남은 삶에서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큰 그림, 넓은 전망.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알기 위해 뒤를 돌아봄으로써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64


'뒤돌아 보기'는 지혜를 얻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나도 나의 한 해를 계속할 것이다. 현재의 독서, 과거의 기억, 미래의 지혜이다.  65


나는 내가 찾은 모든 행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75


슬픔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향유는 기억이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진통제는 죽기 전에 존재했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그들이 되돌아오지 않고, 또 너무 일찍 죽은 사람에게 그들이 잃은 삶의 가능성을 모두 보상해주기에는 불충분하다. 하지만 기억은 회복력의 몸뚱이 주위에 구축되는 뼈대이다....

삶의 진실은 죽음의 불가피성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살았다는 경이에 의해 입증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로부터 삶의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그 진실을 승인한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복을 찾지 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온 삶의 가치, 산다는 것의 순전한 가치가 그것이다.  100



누군가의 어깨에 일단 올라앉은 죄책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 마틴 코릭 <우연히>



<우연히>의 첫머리에는 다음의 물음을 던진다.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면 소설의 주제는 뭔가? 그저 시간 때우기 용인가?" 하지만 그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위대한 문학의 목적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 있는 것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118


우리가 좋아하여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131



한 권을 끝내기 싫어 가슴이 찢어진 적이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고 한참 뒤까지도 계속 당신의 귀에서 속삭이고 있는 그런 작가가 있었는가?  - 엘리자베스 매과이어 <열린문>



아버지가 하신 말씀. "삶에서 행복을 찾지 말아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거든."  146


감옥을 방문한 동안 그랜트는 제퍼슨이 대모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상관없다고요." 

대모는 대답한다. "내게는 상관있어, 제퍼슨...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해지는 것. 다른 모든 존재 중에서 내게 중요한 하나의 존재. 뭔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어떤 것을 한 인물이 설명해줄 수 있다. 우리는 변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한 사람에 대한 욕망은 그 고유한 평가와 그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것과는 다르며, 애정과도 다르다. 욕망은 커졌다가 시들고, 애정은 오랜 헌신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넌 내게 중요해"라는 것은 긴 기다림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부터 쭉 너를 데려가고, 안아주고, 갈채를 보낼 것이다. 너는 내게 의지할 수 있다. 너를 보살피기 위해 내가 여기 있을 것이다. 네가 가고 난 뒤에도 난 여기서 너를 기억할 것이다.  163-164


잊힌다는 것은 용서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172


온갖 종류의 인간의 경험을 목격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하는 것, 누가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규정하는 데 그것은 필요하다.  177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나쁜 일이 오더라도 그것이 부담은 될 수 있겠지만 올가미는 아닐 것이다. 책은 삶을, 내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제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인간의 회복 능력의 대가이자 증거하는 사실을 이해한다. 

상상한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경험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않을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상이한 개릭터들과 그들의 선택이 낳는 결과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삶의 슬픔과 기쁨을 영위하는 새롭고도 분명한 방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178


욕구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읽고 있던 책에 따르면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자극의 여러 지점에서 온다. 말은 가슴을 쓰다듬는 손길만큼이나 확실하게 열정을 휘저어놓는다. 하지만 욕구를 붙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욕구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 오며, 두 사람 사이의 연대를 복구시키기도 한다.  201


언니를 기억함으로써 나는 가장 지독한 죽음에도 저항하는 보증서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재미있는 행동을 기억하면서 웃고, 친절함을 생각하면서 미소짓고, 내일과 앞으로의 나날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기억이 있는 곳에 진공은 없다.  210


인간은 희망과 사랑이 있는 곳에서 성장한다.  217


최악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라는 것이다. 실망에 맞서는 회복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221


언제든 좋다. 무엇이든 좋다. 모든 게 다 좋다. 

내 반응은 내게 달려 있다. 적절한 종결이란 삶이 그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삶이 주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삶이 빼앗아가는 것에 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언니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반응 역시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  246


우리는 질서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한다. 책에서든 친구에게서든 가족에게서든 아니면 믿음에서든 말이다. 질서는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는 삶이 제시하는 것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의해 창조된다. 질서는 모든 물음에 답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발견 된다.  247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을 서로 나누는 분열에 다리를 놓아주는 친절함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비슷하다.  256



무슨 책이든 읽으라. 그것을 다시 집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렇게 하라.  - 닉 혼비 <집안일과 더러움의 대결>



매일의 책을 읽는 것은 항상 기쁨이었다. 독서의 한 해 내내 하루도 아픈 적이 없었다. 즐거움에 흠뻑 젖은 덕분에 면역성이 생겼다.  259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삶의 유일한 의미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삶의 한 가지 사실이라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남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는 것들이다.  278


책을 통해 나는 내 삶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있는 방법을 배웠다. 

나 자신과 주위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힘든 짐'이 그저 지나가기를 애쓰도록 말이다.  279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슬픔은 질병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며, 우리가 삶 그 자체를, 그 모든 경이와 전율과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긍정이다. 슬픔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살아가는 것이다.  280


"우리는 경이감 속에서 살고, 열정과 염려의 순환 속에서 타오른다." 나는 시인 캐럴린 키저의 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안다.  281

Posted by WN1
,

여행... 읽다

여행밑줄 2012. 11. 2. 11:30

'읽다'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책'이다. 

어느 작가는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 하였다. 

잘하는것이 별 없는 나에게는 책을 읽는것이 그나마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깊이 읽는 수준은 안되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은 활자를 눈으로 읽어내어,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글쓴이의 뜻을 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책을 읽는 목적과도 관련이 있는데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의 이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목적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고 싶다.

공부와 중복되는 의미는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중1 수학 1단원의 집합이란 단원에서 '교집합'을 배운다. 교집합은 서로 다른 집합(집단)속에서 동일한 것도 있고, 동일하지 않은 것도 있을 때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공부와 읽기에는 알아가는 것이라는 동일함도 있지만, 그 깊이의 차이가 있다.

이것으로 순서를 따진다면 공부는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정도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읽기라고 하면, 책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그림과 사진이 아닐까.

이것은 전시장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엄마가 아이에게 '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며, 무엇무엇을 의미하는 거란다'하며 주입하는 의미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느낌을 떠올려보는 작업. 관찰해보기도 하고, 초점을 흐려보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붙여보는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그림을 또는 사진을 읽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의미들에서 여행 역시도 읽기의 작업을 하는 것이라 하고 싶다.

책을 읽고, 그림을 읽고(사실 그림을 읽는것이라기 보다는 느끼는 것이라 표현해야 하겠지만) 하듯이 여행도 읽어나가는(느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정답이 있는것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관찰하고 해석하고 느껴보고 알아가며 경험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답도 생각해 보고 다른이들과의 차이도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시간.




이런 여행은 접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알아가는 목적을 포함하듯, 여행도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란 생각.

접하는 방법도 여러가지 이겠지만 단순하게 알아가기 보다는 좀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고 싶다. 그럼 이것은 공부에 더 가깝지 않냐고?

여행자는 오래 머물러도,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기에 공부보다는 읽기에 가까울거란 생각이다.

여행은 그런것이 아닐까.


어떻게 알아가는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보는 것을 추구한다.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위험하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고향이 아닌 타지이니까 위험함을 더 느끼는 것일 뿐이라란 생각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해 보고, 함께 해보는 것. 그들의 문화에 가까이 스며들어 보려는 노력. 그들을 공부하기 보다는 그들을 읽어보려는 노력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 보는것. 웃기게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꼭 떠나서야 그렇게 하는 모습이 우스운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생각으로 돌아와서도 자동으로 닫히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려는 노력까지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표현처럼 사람을 알아봐야 내가 얼마나 알겠는가?

그렇기에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나는 여행을 읽어간다.



'여행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미소  (2) 2012.11.18
여행 ... 기록  (6) 2012.11.14
여행 .. 비우다  (0) 2012.11.07
이어지는 여행...  (0) 2012.10.26
여행...  (2) 2012.10.25
Posted by WN1
,



I.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근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관습들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는다.  21


몇 세기 동안 절대다수에게 지켜져 내려오는 신념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들이더라도 어떤 일에 틀릴 수 있다는 가르침. 사람들이 틀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동성의 특성을 꼬집기 위해서 소클테스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사는 것을, 도자기를 굽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에 비유햇다. 직관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도자기나 구두는 상상조차 할 수없다. 하물며 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더욱 복잡한 일을 어떻게 근거나 목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31


소크라테스는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검증하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플라톤의 초기와 중기의 대화편에서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투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투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 부유하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 있다.

4. 최초의 진술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 용기 있는 행동은 전투에서의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또다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리는,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잇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존재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그 주장에 담긴 오류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무엇을 빗대어 말햇든지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더 우월하다.  35-37


소크라테스에게 직관에서 나온 진실은 버팀대도 없이 옥외 대좌(臺座)에 놓인 조각상과 같았다. 그 조각상은 강한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론에 대한 자각과 이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진실은 쇠줄로 땅에 고정된 조각상과 같았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방법 한 가지를 약속했는데, 그런 여론이라면 우리는 비록 폭풍우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끄떡없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38-39





소크라테스는인간 존재란 살다보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도 있기 때문에 간혹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진실과 인기가 없는 것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 더 덧붙였다. 곧,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오류라고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기가 없는 현상 그 자체에 관심의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인기를 잃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44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혹평을 할까?

우리는 비평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45


진정한 체면은 다수의 의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논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48


비록 그 문제가 수사학 선생이나 막강한 장군, 혹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테살리아 출신 귀족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49


소크라테스 :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비난, 그리고 의견에 마구잡이로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아니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의견에만 관심을 가지겠는가?

크리톤 :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존중한 필요 없이 단지 몇 명의 의견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훌륭한 의견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이야말로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으 ㄹ갖춘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민중이 우리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의의 문제에 대해서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겠지.' <크리톤>  50-51


특정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힘.  53


'만약 그대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면, 그대들은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오.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자면, 사실 나라는 존재는 신에 의해서 글자 그대로 이 도시에 달라붙어 있소. 아테네로 말할 것 같으면, 커다란 순종 말(馬)처럼 거대한 몸집때문에 게을러지기 쉬운데 그래서 쇠파리의 자극이 필요한 곳인 것 같소... 만약 그대들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대들은 나의 생명을 구해주겠지요. 그러나 나는 곧 그대들이 졸음에서 깨어나서 성가셔하면 아니토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격에 나를 해치우고는 계속 잠을 청하리라 생각하오.' <변명>  55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자신의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중하게 처신하다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수줍음은 간혹 교만으로, 남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은 아첨으로 오해받는다. 누구나 그런 오해를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은 바짝 타들어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의도했던 것들이 아니기가 십상이다. 가혹한 적들은 힘있는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무고한 철학자에게 불공평하게 쏟아지는 혐오에서 우리는, 정의를 실천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달리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을 확인할 수 있다.  60


우리는 편견이 사라지고 질투가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옳지 못한 명분을 품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못되었다고 비난받을 때 무조건 자신이 옳다는 식으로 어린 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거부의 정당한 명분보다는 단순히 거부하는 자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61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두 가지 강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두 가지 환상이란 바로 대중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과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2




II.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사모스라는 초록빛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300권의 책을 집필햇다. 비록 잇따른 재난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져버렸지만.

그의 철학이 단번에 두드러지게 되었던 것은 감각적 쾌락을 강조한 점 때문이었다.  71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가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그때까지 유쾌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이처럼 진솔하게 털어놓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와닿았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철학 학교를 열었다. 학교는 모두에게 입학을 허락했으며 함께 어울려 살면서 쾌락을 연구하도록 장려했다.  72


'쾌락(pleasure)'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면 쾌락을 얻는 어떤 삶의 방식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75


쾌락주의(Epicureanism)의 핵심에는, "무엇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까?"라는 질문 못지않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대답하는 데에 우리 모두가 서툴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76


'의학의 경우, 육체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면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듯이, 철학 역시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단상>

에피쿠로스의 시각에서 보면, 철학의 임무는 우리 각자가 원인 모를 우울증과 욕망의 충동을 해석하도록 도와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때에 그릇된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돌보아주는 것이었다.  78


그곳에는 으리으리한 집도 없었다. 음식도 소박했다. 에피쿠로스는 포도주보다는 물을 마셨으며, 빵과 채소와 한줌의 올리브로 꾸며진 만찬으로도 행복해했다. "마음 내킬 때마다 잔치를 베풀 수 있도록 내게 치즈 한 단지를 보내주게"라고 그는 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그렸던 한 남자의 진솔한 취향은 이러했다.  79


행복, 에피쿠로스의 구매 리스트

1. 우정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주요 교설>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세네카의<서한집>에서 인용  80

진정한 친구들은 절대로 우리를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이 ㄴ자아이다.  81


2. 자유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에피쿠로스가 친구 메노이케우스에게 설명했듯이,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82


3.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집적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83


"실제로 일어날 시점에 아무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어떤 일(죽음/역주)을 두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했다. 인간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어떤 상태를 두고 미리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살마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냉정한 분석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은 에피쿠로스의 친구들에게 "정원"밖의 무분별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그들을 괴롭혔을지도 모를 많은 내밀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83-84


부유하다는 것이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펼쳤던 주장은,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3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욕망이 있다.' <주요 교설>  84


세가지 분류는 행복이란 몇몇 복합적인 심리적 재상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지, 물질적인 결과물과는 상대적으로 관계가 적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85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86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또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값비싼 물건을 갈망하는 순간에 그것을 사는 것이 옳은지를 자신에게 엄숙히 물어야 한다. 

'모든 욕망에는 다음과 같은 조사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갈망해마지않는 것들이 성취될 경우, 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그 욕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티칸 어록>  88


조사방법은 적어도 다섯 단계를.

1.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한 가지 세워라.

 - 휴일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별장에 살아야 한다.

2. 그 설계가 잘못일 수도 잇다고 상상해보자. 욕망의 대상과 행복을 연결하는 것에서 예외적인 것들을 찾아보라. 욕망의 대상을 소유해도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 별장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쓰고도 여전히 불행할 수 수도 있지 않을까?

 - 별장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휴일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3. 한 가지 예외라도 발견된다면, 그 욕망의 대상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 예컨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별장에서도 비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예컨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나는 텐트에 묵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4. 행복을 엮어내는 데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설계는 지금까지 나타난 예외까지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 호화 별장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다만, 그 행복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한에서, 나는 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5. 이제 진짜 필요한 혼란스러웠던 애초의 욕망과는 매우 다른 것인 것 같다.

 - 행복은 훌륭하게 장식한 별장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  89-90


값비싼 물건들이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지 못하는데도, 우리가 그런 것들에 그렇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두개골 옆면에 구멍을 뚫게 만든 편두통 환자가 저지른 것과 비슷한 오류 때문이다. 말하자면 값비싼 물건들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91


우리 인간이 그토록 쉽게 암시에 걸려드는 존재가 아니라면, 아마 광고가 그처럼 널리 유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5


'기분을 모든 선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면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쾌락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사회적 부의 축적이 행복의 증대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값비싼 재화들이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욕구들은 우리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 그런 욕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98


행복은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는 대부분 금전적인 것이 아니다.  100




III.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 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12


세네카에 따르면 분노는 열정의 통제 불가능한 촉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추론의 오류에서 나온다. 이성이 언제나 루이의 행동을 관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그도 인정했다. 만약 차가운 물 세례를 받으면 우리에게는 몸을 부르르 떠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두 눈 앞으로 손가락을 홱 움직이면 우리는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노는 육체적 반사(反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이성적인 사고를 거쳐 고수하게 된 어떤 관념들에 근거하여 터져나올 수 있다. 그렇지 깨문에 그 관념들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화를 쉽게 내는 성격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좌절에 봉착할 때, 우리가 얼마나 서투르게 반응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것을 정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단적으로 결정된다. 

가장 격한 분노는 존재의 기본 원칙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일어날 때 터져나온다.  114


우리는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불완전성과 화해해야만 한다. '심술궂은 존재들이 심술궂은 짓을 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아니면 당신의 적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에게 성가시게 굴고, 또 당신의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당신의 하인이 못된 짓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말인가?' <분노에 관하여>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117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예상치 못햇던 것에 가장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또 따라서 모든 것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운명의 여신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없으므로"), 우리는 늘 마음속에 재앙을 당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제안했다.  119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두려운 것이기는 해도 - 세네카가 과감하게 말했듯이 -  결코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악(惡)들이 실제로 자신에게 닿기 전에는 절대로 악을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장례행렬이 문 밖을 지나가도 우리는 절대로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때 이른 죽음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장례를 설계한다. 아이가 어떤 옷을 입을까, 군에서는 어떻게 처신할까,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어떻게 물려받을까 등등.'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23


우리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124


세네카의 사전 숙고

'[현명한 사람들은] 하루를 생각으로 연다...' <분노에 관하여>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운명도 도시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있다.' <도덕에 관한 서한>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고, 우리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아이를 낳게 되오.'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모든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으로 어떤 일이든 다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야 한다.' <분노에 관하여>  125


금심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경우 당사자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최선의 결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과, 최악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게 된다. 짐작컨대 근심에 빠진 사람은 당연히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문화적, 성적, 사회적 행위에서도 즐거움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130


'철학자들은 돈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누구도 지혜로운 자에게 가난의 운명을 지우지 않았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그리고 그의 실용주의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이르러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운명의 여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경멸할걸세.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보다 좋은 반쪽을 선택할걸세.' <행복한 삶에 관하여>  133


'현명한 사람은 아무것도 잃을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불변성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자족할 것이다... 만약 질병이나 전쟁으로 한쪽 손을 잃게 되거나, 사고로 한쪽 다리 혹은 두 다리를 모두 잃는다고 해도 현명한 사람은 남은 것에 자족할 것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세네카가 "자족한다"라는 표현으로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세네카의 말은 모순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한쪽 눈을 잃은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쪽 눈을 잃는다고 해도 삶은 가능할 것이다. 눈이나 손의 정상적인 숫자는 단지 만들어진 관념일 뿐이다. 그런 입장을 말해주는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난쟁이이더라도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더 크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친구 없이 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친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족적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34


무생물의 조롱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지거나 서랍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경우 우리는 종종 짜증을 내곤 한다. 연필이나 서랍과 같은 무생물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좌절로 이어지고 이러한 좌절감은 한갓 무생물이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이 추가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은 마치 주인이 애착을 가진 어떤 지식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주인에게 부여한 지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암시를 전하는 듯하다. 


생물체의 조롱

다른 사람들이 말없이 자신의 성격을 비웃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에도 앞의 경우처럼 예리한 아픔을 느낀다. 

스웨덴의 한 호텔에 도착한 직후, 나는 짐을 들어주겟다는 호텔 종업원과 함께 방으로 갔다. 그 종업원은 "당신 같은 남자에게는 짐이 버거울 것 같군요"라고 짓궂게 "남자"를 강조하며 (단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암시하면서) 싱긋 웃는다. 그 사람은 북유럽 특유의 금발이고(아마 스키 타는 사람, 아니면 엘크 사냥꾼일까. 먼 옛날이엇다면 전사였을 것 같다), 말씨는 단호하다. "무슈는 이 방을 좋아하게 될 거요"라고 그가 말한다. 또 "될 거요"라는 표현에는 명령의 냄새까지 풍긴다. 나중에 그 방이 차량의 소음으로 늘 시끄럽고 샤워 시설이 신통치 않으며 텔레비전이 고장난 것으로 확인될 때, 그 종업원의 암시들은 음모의 증거로 돌변한다.

달리 숫기가 없고 과묵한 사람이었다면, 야비하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기분에 부글부글 끓다가 급기야 소리를 지르거나 난폭한 행동은 물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것이 당연히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and)"로 연결되는 절(節)이 들어 있는 문장을 버리고 "... 하기 위하여(in order to)"로 연결되는 절이 든 문장을 취하고 싶어진다.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졌고 그리고 지금 나는 약이 올라 있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and now I am annoyed)"는 생각에서부터 "나를 골려주려고 연필이 책상에서 떨졌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in order to annoy me)"라는 의견으로 도약시키려는 유혹을 느낀다.  135-137


세네카는 그런 판단착오레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정신의 나약함"과 관계가 있다.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는 그들의 성향 뒤에는 자신이 조롱당할 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해코지의 표적이 되고 잇다고 의심할 때에는 누구든 혹은 무슨 일이든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게 된다.

'"그렇고 그래서 오늘 나를 만나주지 않았군.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면서 말이야." "그 자는 거만하게 퇴짜를 놓은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비웃었어."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기는 커녕 테이블 아래쪽 자리를 주었어." <불변성에 관하여>  139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140


자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과자 장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자를 팔기 위해서라고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사진에서 처럼) 로마의 한 호텔 1층에 있는 건축업자는 벽을 수리하는 척하고 있을지 모른다(1). 그러나 그의 진짜 의도는 위층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남자를 괴롭히는 것이다(2).

비열한 해석 : 건축업자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다. 

우호적인 해석 : 건축업자가 망치를 두드리고 있고 내가 그 소리에 괴로워하고 있다.  141



외부의 소음과,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속의 생각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을 엉뚱한 대본에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바깥의 모든 것들이 미친 짓거리라도 좋다. 내 마음에 불안의 요소만 없다면.' <도덕에 관한 서한>  142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여행가방이 운송 도중에 분실되엇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몇 조가 지나면 체념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자의 창시자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잃엇을 때 어떻게 처신햇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보고했다. 

'제논은 배가 조난되어 그의 모든 짐이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물질에 조금 더 초연한 철학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로군."' <영혼의 평정에 관하여>  147


'겨울은 차가운 기후를 몰고온다. 그러면 우리는 몸을 떨어야 한다. 열기를 몰고 여름이 돌아오면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기후는 건강을 훼손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병에 걸려야 한다. 어쩌다가 야생 짐승을, 아니면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파괴적인 인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법이다. 이 법을 우리는 따라야 하고, 준수해야 한다... 당신이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51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Quid opus est partes deflere?  Tota flebilis vita est.'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52




IV.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통증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의지하기만 해도 된다.' <수상록>III

'가장 행복한 삶은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다.' - 소포클레스  158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된 결과,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정과 안식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상록>I  163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크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이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상록>III  164


'만약 [남녀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첫번의 실패로 그만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보다는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더 낫다....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사람은 다양하고 부담 없는 감정 분출을 통해서 전주곡처럼 몇 차례 가볍게 시험을 거쳐야 한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는 영원히 성교에 적절치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완고하게 매달려서는 결코 안 된다.' <수상록>I  169-170


몽테뉴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배제하려는 전통적인 인간의 초상을 흠잡았다. 그 자신이 직접 책을 쓰기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수정하려는 뜻에서였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은퇴햇을 때 그는 책을 쓰고 싶었지만, 어떤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점차로 그의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자리잡아갔는데, 그 책은 너무나 엉뚱하여 그의 서재의 반원형 서가에 꽂혀 있던 천 권 가량의 책과는 달랐다. 

몽테뉴는 자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저자로서 엄청난 수치심을 감수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 활동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묘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수상록> 서문에 그 뜻을 밝혔다.

'아직도 자연의 중요한 법칙들의 달콤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묘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그대들이게 분명히 밝힐 수 있소.' <서론>의 주  173-174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두 개의 진영으로, 말하자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눌 때 드러나는 그 오만함과 신속함이다. 우리의 경험과 믿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곧잘 무시당하곤 한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말 그래? 참이상하군!" 하고 말하면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종의 경고를 하는데, 그런 말에는 우리의 정당성과 인간성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약간 담겨 있다.  178


여행하면서 몽테뉴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관념들이 지방에 따라서 얼마나 뚜렷하게 달라지는 지를 관찰했다.


바젤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타지 않았으며 저녁식사때는 예닐곱 가지의 코스 요리를 즐겼다. 바덴에서는 매주 수요일은 생선으로만 식탁을 꾸몄다. 스위스의 가장 작은 마을이었던 바덴은 고작 2명의 경찰에 의해서 치안이 유지되었다. 독일인들은 15분마다 종을 울렸고, 심지어 1분 단위로 종을 울리는 마을도 있었다. 린다우에서는 모과로 만든 수프를 내놓았으며, 고기 접시는 수프에 앞서 나왔고, 빵은 회향(茴香)으로 만든 것이었다.  178-179


몽테뉴를 괴롭혔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나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사가 검증을 거치지 않고도 꿋꿋이 고집하는, 자신들의 난방장치가 상대의 난방장치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그 맹신이었다.

'어느 나라 할것없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야만스럽거나 충격적으로 비치는 관습이나 관행이 있게 마련이다.' <수상록>III  182-183


학살의 이면에는 추잡한 추론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분리하는 작업은 전형적으로 귀납법의 형태로 진행된다. 그 방법에 따르면 특별한 예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추론한다(논리학자들의 설명처럼, 관찰을 통해서 A1이 0이고, A2도 0이고, A3도 0이라는 결론을 얻으면, 우리는 모든 A는 0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지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만났던 지적인 사람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을 찾는다. 그래서 만약 <그림1>처럼 보엿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림2>처럼 보였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리고 <그림3>처럼 보였던 또 다른 지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우리는 지적인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검정 옷을 즐겨 입고, 엄숙하게 보이는 존재들이라고 결정짓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4>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리석은 존재라고 얕보고 훗날 그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  19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무엇이든 야만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자기 나라의 관습이나 사고방식 외에는 달리 진실이나 올바른 이성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 자기 나라에서 완벽한 종교와 완벽한 정치 형태,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가장 발전되고 완벽한 방법을 찾게 된다.' <수상록>I

가치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관습들이 결점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국적과 친숙함을 선(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


프랑스에서는 코가 막히면 손수건에다 코를 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런데 몽테뉴의 한 친구는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코가 막히면 바로 손에다가 푸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면서... 그는 나에게 지저분한 콧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콧물을 받기 위해서 미리 깨끗한 리넨 손수건을 곱게 접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도 그의 말이 전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관습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관습을 보았더라면 흉측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낯설음을 깨닫지 못했다.' <수상록>I  193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수상록>II  194

우주의 진실을 논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의문스럽다고 느껴지면, 몽테뉴는 비슷한 방식으로 고대의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우주 이론들을 몽땅 모아놓고 비교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그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모든 질신을 꿰뚫고 있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에서 어이없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비교 연구햇으나, 몽테뉴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고 빈정거리듯이 고백했다.  195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 담긴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룬 중요한 인물드에게서조차 엄청난 오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I  196


'흔한 친구나 우정이라고 브르는 것들은 우연 혹은 유사함으로 연결되는 친밀한 관계나 면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들은 서로를 격려한다. 그러나 직ㅁ 내가 이야기하는 우정에서는 영혼들이 서로 한데 우울리며 녹아들기 때문에 두 영혼을 결합한 솔기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상록>I

만약 만흥ㄴ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몬테뉴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많은 것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면, 우정이 그토록 소중하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199


그의 책은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발걸기였다 그는 서점을 찾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의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개인에게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나는 대중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의 가장 은밀한 사고들을 꿰뚫고 있는 서점의 진열대를 나의 가장 충직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수상록>III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역설에 감사해야 한다. 저자들이 말을 걸 사람들을 찾지 못한 까닭에 씌어진 책들의 수를 감안하면, 서점이야말로 그런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목적지가 아닐까?  201


만약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것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할 때,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유익하고 적절한지를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수상록>II

우리로 하여금 더 낫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만이 배우고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205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어의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켰다...' <수상록>II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 <수상록>I  207


나는 어떤 일로도, 심지어 그렇게나 소중하다는 학문을 얻는 일로도 머리를 싸맬 생각은 없다. 책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만약 책을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부분을 곰곰 생각하느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결코 없다. 한두 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어떤 책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 <수상록>II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서가에 책을 1,000권이나 꽂아두고,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통달한 사람의 입장에서 장난스레 젠체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 몽테뉴 자신이 철학적 해설을 풀어놓으면서 독자들을 졸리게 만드는 그런 애매모호한 신사로 비치기를 즐겼다며느, 그것은 엉큼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게으름과 느림을 되풀이하여 선언했던 것은 지식과 훌륭한 글쓰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허물기 위한 전략적 방법이었다.

몽테뉴가 암시했듯이, 인문학 분야의 책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지루한 내용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213


어려운 책들은 예외 없이 우리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명쾌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자를 무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든지, 아니면 책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을 우둔하다고 결론 내리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몽테뉴는 우리에게 차라리 저자를 책망하는 쪽을 택하도록 부추겼다.  214


평이하게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쉽게 읽히지 않는 산문이야말로 지식의 표상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어리석은 존재로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5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서 아이디러를 얻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을, 우리 자신들마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심리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저자들을 만나면 누구나 그드르이 글을 인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우리르 더 잘 아는 것 같다.  218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안다. "이건 키케로가 말한 거야" "이건 플라톤의 도덕률이야"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것들이야"라고,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면, 앵무새도 우리만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  224


몽테뉴의 암시에 따르면,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서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은 학식만 높고 현명함에서는 크게 처지는 산더미만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책들에 대해서 쓴 책이 많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들을 서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모든 책들은 해설로 가득채워져 있다. 진정한 저술가가 없는 실정이다.' <수상록>III

몽테뉴는 흥미로운 지혜란 어느 인생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제아무리 소박하다 하더라도, 옛날의 그 많은 책에서보다 우리 자신에게서 더 위대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25-226


'당신은 보다 풍성한 요소를 갖춘 삶만이 아니라 당신의 평범한 개인적 삶도 도덕철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수상록>III  227




V.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염세주의자로 성장하는 쇼펜하우어.

자살이 분명한 아버지의 죽음이후, 열일곱 살 소년 쇼펜하우어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큰 재산을 물려받는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내 나이 열일곱이던 때, 학교 교육은 한번도 받지 않은 채 나는 석가모니가 젊었을 적에 병든 사람이나 노인,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랬던 것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지냈다. 진실은...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만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악마의 작품인 것 같은데, 그 악마는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생명체들을 존재하도록 했다. 나의 경험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그렇다는 믿음이 늘 나를 지배했다."  234-235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철학교수 자리를 얻으려고 시도한다. 그는 "철학개론", 즉 "이 세상과 인간 정신의 정수에 관한 이론"이라는 강의를 맡는다. 학생 다섯 명이 수업을 듣는다. 가까운 건물에서는 그의 라이벌인 헤겔리 300명의 청중에게 강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239


이 철학자는 하루를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매우 엄격하게 지낸다. 그는 아침에 세 시간 글을 쓰고, 한 시간 동안 플루트(로시니)를 연주하고, 그리고 말을 파는 시장인 로스마르크트에 있는 영국식 식당 엥리셔 호프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흰색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다. 그는 식사를 할 때면 다른 소님들이 알아보는 것을 꺼려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면 경우에 따라서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클럽인 인근의 카지노 소사이어티의 도서관을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그는 이 세상의 비참함을 가장 잘 알려준다고 느끼고 있던 신문 <더 타임스>를 읽는다. 저녁 무렵이 되면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개와 함께 마인 강변을 따라 두 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밤에는 오페라 공연장이나 극장을 방문한다.  242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할 경우에 대비한 위안이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버림받을 때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위안이 그것이다. 우리는 단 며칠 간 희망을 품은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좌절의 깊이에 낭패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262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본래부터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성격도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고, 얼굴도 못생기지 않았다.

당신은 언젠가는 (당신의 턱과 그의 턱이 생에 대한 의지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조합을 이룬다는 이유로) 당신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연스러움을 느낌으로써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살마들을 용서하는 법을 일찍이 배워야 한다.  263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인류사에 종의 번식을 위해서 애 쓰느라 다른 인간을 사랑했던 수많은 인간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273




VI.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나움부르트에 있던 홀어머니와 열아홉 살의 여동생에게 편지를 쓸 때, 니체는 자신의 식사와 학업 진도에 대한 보고 대신에 자제와 체념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요약하여 보냈다.

'삶이란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또 삶을 즐길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삶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것을 얻기를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해야 합니다.'  280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비법... 밑그림.. 매일매일 일상의 일화들을 적어두어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92


모든 삶은 다 힙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을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뇌는 정신적 공활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니체가 존경했던 몽테뉴가 <수상록> 마지막 장에서 설명했듯이, 삶의 기술은 역경에 처할 때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조화처럼, 달콤하고 거칠고, 예리하고 단조롭고, 부드럽고 떠들썩한, 다양한 음색뿐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구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수상록>III

그리고 약 300년 뒤, 니체는 그런 사상으로 회귀했다.

'우리가 만약 비옥한 들판이라면, 어떤 것이든 다 흡수하지 않고 그저 흙바닥을 통과하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어떤 사건이나 사물, 사람에서도 유익한 비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1-302


'재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그다지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서도 훌륭한 업적은 남긴 사람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그들은 부족한 자질을 일궈가면서 스스로 위대함을 획득하여 (우리가 표현하는 것처럼) "천재"가 되었다. 그들 모두 장인(匠人)의 근면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어서 감히 훌륭한 완성품을 내놓기 전에 각 부분들을 정확하게 구축하려고 애쓴다. 그들이 그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황홀한 완성품이 주는 효과보다, 보잘것없고 신통치 않은 것들을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작업 그 자체에 보다 많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5


'미움과 시기, 탐욕, 그리고 지배욕이라는 감정들은 삶의 지배적인 감정인데....이런 것들은 삶이라는 총체적인 경제에서는 기본이며 필수이다.' <선악을 넘어서>

부정적인 뿌리들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것은, 동시에 한참 뒤 그 뿌리에서 자라날 식물 줄기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질식시켜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부터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일구지 못하는 사실에 당혹해야 한다.  307


그리스인들은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피하려 하지 않고 세련되게 활용했다.

'모든 열정에는 단지 재앙으로 작용하는 단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열정은 당사자를 어리석음의 무게로 짓누른다. 그리고 조금, 아니 한참 지나면 열정들이 영혼과 결합하여 스스로를 "영성화"하는 단계가 찾아온다. 아주 옛날에는 열정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람들은 열정 그 자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열정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열정과 욕망이 지닌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에서 연유하는 불쾌한 결과를 피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인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모조건 뽑아버리는 치과 의사에게 우리는 더 이상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우상의 황혼>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라고 요구했다.  310


니체 또한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행복이란 고통을 치르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314


높은 곳을 오르는 등정의 고통을 감내하기를 요구했다.  315


모든 괴로운 상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재앙이다... 나쁜 기후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비슷하게 우둔한 짓이다.

'인간의 병 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시르는 방식에서 비롯되엇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이른바 위안들이 어리석게도 실질적인 치유책으로 생각되었다. 알려지지 앟은 사실은... 고통을 곧장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일반적으로 더욱 깊이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서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328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철학


소크라테스(470-399 기원전)는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올바른 지적 인식을 통하여 진리를 실천함(지행합일知行合一)으로써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참으로 그에게 부당하게 언도된 사형을 그가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용기"라는 미덕 때문이었는데, 그 용기마저 지식, 득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에피쿠로스(342?-270 기원전)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로 오해하고 있는 쾌락을, 쾌락의 첫째 항목으로 그가 들었던 위(胃)의 쾌락마저, 양이나 희귀성에서 찾지 않고 그 자신에게 가장 맛있는 것에서 찾았다. 그의 쾌락은 욕망을 절제하고 친구들과 안온하고 겸허한 생활 속에서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지는것, 즉 "올바른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쾌락이었다.

자신이 가정교사를 했던 네로의 명령에 의해서 자진(自盡)해야 했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 기원후 65)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세네카의 이성은 세네카에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는 준엄한 도덕성과 의무의 준수를 모토로 한 스토아 학파의 대성자였으나, 그의 사생활은 안락과 부(富)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에 따른 아파테이아(apatheia : 당당하고 유연한 심경)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스토아 학파의 실천자였으며, 순명(順命)의 현자였다.

몽테뉴(1533-1592)는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한 에세이스트로서, 파스칼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랄리스트(moraliste)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의 힘이 주도하던 철학 세계에서 인간의 벌거벗은 자연의 모습, 곧 육체와 본능의 힘을 해방시켰다. 섹스의 언급을 금기시한 당대의 위선을 뛰어넘은 몽테뉴의 용기는 "국경"이라는 국민적 편견의 장벽까지 서슴없이 돌파하고 있다. 이런 사상적 궤적을 보여주는 몽테뉴 역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염세주의 철학자로서 알려진 쇼펜하우어(1788-1860)는 끝없는 욕망의 연쇄로서의 생(生)은 고통이며 그 고토으로부터의 해방은 죽음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가 인간 종(種)의 존속을 위해서 작용한다고 파악함으로써 사랑이 생을 지배하는 이유를 발견한 철학자가 되었다. 사랑의 감동에 냉담하기만 했던 철학의 역사에서 사랑으로 인한 슬픔을 치유해주는 유례없는 철학자가 되엇던 것이다.

강자의 도덕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초인"을 "힘에의 의지"의 상징으로서 구체화한 니체(1844-1900)는 행복은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을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절한 고독과 무명(無名), 나쁜 건강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니체는 우정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명성과 부와 행복을 공격하지 않았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무조건 뽑아버리는 의사가 결코 아니었다.  330-331


행복은 올바른 인식에 의해서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삶을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길에서 동반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이다.  332


Posted by WN1
,



프롤로그 

길은 내게 잃은 만큼 얻고 버린 만큼 채워진다는 것을, 늘 선택을 강요받고 올바른 선택인지 아닌지 조바심 냈던 삶에 '정답'이란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 


작은 배낭 하나로 충분했던 그나르이 여행은 내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제일 먼저 일깨워주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앟았던 생각은 '너무 많이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집과 방을 채우고 있는 대다수의 물건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내 몸의 일부마냥 끌어안고 다녔던 배낭도,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수많은 물건들도 사실은 전혀 쓸모없는, 지금 당장 버려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물건이었음을 깨달으며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없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던 전기, 물 같은 것들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졌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니 자연적으로 행복의 기준도 바뀌었다. 여행 전에는지는 대개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행복했었다. 행복의 유효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사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넘쳐났으므로 돈만 있으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 행복은 자연스럽게 돈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은 돈이 많았으면 좋게싿는 얘기였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난 후의 나는 더 이상 돈과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찾는 법, 무언가를 굳이 소유하지 앟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돌아오니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엿는지 수도 없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31-32


여행은 내게..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없다는 것, 나는 비우고 버리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법,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여행할 수 있는 법, 삶에 대한 의지, 좋은 친구들, 가족의 소중함, 사랑, 삶의 가치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직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시간이 흘러 어떤 형태로 내게 가르침을 줄는지도 기대된다. 

여행 중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얻는다. 잃는 것 중에 절반 이상이 살면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얻는 것 중에 거의 대부분은 살면서 힘이 될 만한 것들이다.  33


Q. 하던 일을 접고 훌쩍 떠났을 때 두려움은 없었나요? 돌아온 뒤의 불안함 같은 거?

A. 있었죠. 그러나 그때는 떠나고 싶다는 목마름이 더 커서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그리 크게 느껴지진 않앗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긍정의 자기합리화였을 수도 있겠지요.

Q.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 떠나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A. 그다지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로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왔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은 결정을 할 것 같아요.

Q. 스물아홉은 긴 여행을 떠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닐까요?

A. 하고 싶은 때가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요. 떠나지 못하는 건 아마 떠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는 건 순전히 자기가 만든 룰이잖아요.  39


이제 여행을 시작한 지 겨우 3일이 지났다.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니 정작 내가 왜 이곳으로 떠나왔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떠남의 갈증이 해소되고 나니 또 다른 허무함이 찾아왔다. 그저 '떠나라'는 마음속의 외침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여행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이곳 인도는 자꾸만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어싿. 맘 편하자고 여행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답답한 생활을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63


바쉬쉿(vashisht)은 마날리에서 4km정도 떨어진 유황 온천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인도 여인들은 탕 안에서 머리를 감고 때를 밀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탕속의 물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탕 속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몸을 꿈쩍할 수가 없었다.

'겨우 며칠 안 씻는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위로하며...

탕속의 풍경은 며친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달라져 잇는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다.

옷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갔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낯선 풍경이 몸에 찬기가 덜어질수록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이제는 물에 뭐가 섞여 있는지, 깨끗한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저 따뜻한 물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68-73


'아, 드디어 서른이다.'

뭔가 달라진 공기를 느껴보려 폐 깊숙이 숨을 들이켜 봤지만 별다를 게 없었다. 어제도 그제도 똑같앗던 공기였고 일상적인 아침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다자고짜 서른이 주는 의미에만 매달려 있던 내가 아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렇게 그 나이에 집착했던 걸까. 무작정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특별한 서른을 맞이하겠다며 떠나온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서른이 되면 무언가가, 정말 막연히 그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 거란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스스로가 변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85


평범한 일상들이 길 위에선 조금 더 특별해지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지티고 힘들기만 했던 일상을 떠나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였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 그것 또한 여행의 몫이리라.  90


푸쉬카르에서 머문 3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걷고, 카트에 앉아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일몰을 본 게 전부다. 무언가에 쫓기듯 이동했던 인도에서 처음 맛보는 휴식다운 휴식이었다. 급할 게 뭐가 있다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떠돌았던 걸까. 인도가 싫고 인도사람이 싫다며 투덜거리기만 했던 내게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한 여행이 아니어서 싫고, 좋은 것만 기대했던 네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나?' 되물었다.  97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의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남의 일상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과 함께 했던 또 다른 일상을 추억하며 행복에 젖는 것, 여행자의 몫은 여기까지가 아닐까.  125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매한가지다. 단지 생김새가 다르고 풍습과 문화가 다르다며 신기하게만 생각하고,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했던 내 바보 같은 생각이 문제였다.  186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고 있던 그때, 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곧이어 발끝을 간질이는 바다 소리가 들리고 자갈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멀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들에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소음에 익숙했던 내 귀가 처음으로 자연의 소리를 감지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여전히 작은 해변에 누워 있는 내가 전부였다. 이렇게 큰 소리를 지금껏 왜 듣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다시 누워 눈을 감앗다. 그리고 자연이 내는 경이로운 소리들을 마음으로 끌어당겼다. 파도를 생각하면 그 소리만 크게 들렸고, 바람을 생각하면 파도 소리가 페이드아웃 되고 바람 소리만 다가왔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듣고자 하면 들렸고 듣길 원하지 않으면 또 들리지 않게 됐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텅 빈 상태가 됐다. 무중력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 이런 게 자유가 아닐까 싶은 편안함을 느꼈다.  200-203


자연이 주는 넉넉한 풍요로움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도 이 축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여행자로서 제일 먼저 깨닫고 실천해야 할 일일는지 모른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자는 물론,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걸으며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212


인도에서도 네팔에서도 태국에서도 보았고 우리의 시골에서도 본 풍경들이지만 캄보디아의 풍경은 유독 슬퍼 보였다. 유난히 붉은 길, 그 길 위에 맥없이 떨어지던 붉은 태양. 마른 먼저를 피워내며 달리는 차에서 바라 본 불투명한 풍경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아주 슬프고 가슴 아픈 영화의 한 장면. 가끔씩 울컥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 내느라 여러 번 거친 호흡을 걸러 냈지만 주책없게 한두 방울이 흘러 나왔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부쩍 눈물이 잦아졌다. 절대로 남들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인도사람들과 싸웠다고, 파도소리가 너무 아름답다고, 붉은 흙길이 슬프다고 사람들이 보거나 멀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나도 내가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다. 약해 보이면 안된다고 그래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옭아매던 동아줄이 여행을 하는 동안 어느샌가 느슨하게 풀어져버린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참고 견디고 다지며 살아왔던가. 힘들고 냉정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씩 쌓아올린 벽,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보호가 아니라 고립, 스스로를 가둬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222-22


세상 어디에도 슬픔만 존재하는 곳은 없다. 행복만 존재하는 곳도, 눈물만 존재하는 곳도 없다. 이렇게 적당히 고통과 상처가 눈물과 환희로 얼기설기 어우러지며 둥글게 굴러가는 것이다. 사람 사는 건 어디건 닮아 있다.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여진다.  241-242


집에 도착해 내 방에 들어섰을 때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와 깨끗한 이불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매일 같이 잠자리를 구하느라 힘들게 걸었던 시간들과 더러운 시트에 우비를 깔고 자던 기억, 벼룩이 옮아 고생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고생스럽게 잠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번엔 단정하게 접힌 깨끗한 수건들과 커다란 통으로 가득 채워 잇는 샴푸와 린스를 보고 또 가슴이 먹먹해져 버렸다. 매일 빨아 써야 하고 가끔 물이 안 나와 그냥 냄새나는 채로 말려서 써야했던 한 개의 수건, 불량식품처럼 줄줄이 매달려 있어 하나씩 잘라 썼던 일회용 샴푸, 돈 아끼느라 8개월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린스, 이 모든 것이 너무 감격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사치인 듯 느껴져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물론 편리하기는 했다. 전기는 항상 연결되어 잇었고 언제든지 수도꼭지를 틀면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수건은 넉넉했고 샴푸와 린스도 항상 가득차 있었다. 그런 일차원적인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냥 고맙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리고 가족들,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가졌어.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건 이렇게 많지가 않다고!" "동생아, 양치할 땐 물을 잠가라. 지구 반대편에선 물이 부족해 죽어가는 어린이들도 있다." "친구야, 또 뭘 산거야? 너 죽을 때 그거 다 짊어지고 갈래?"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을 틀어놓고 양치를 하고 린스를 듬뿍 짜서 머리를 헹궜다. 다 먹지도 않은 찌개를 지겹다며 다른 것을 끊여 달라 잔소리를 하고 옷을 사야 된다고, 상한 머리칼을 다듬어야 된다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편리한 생활은 그렇지 않은 생활보다 적응하기가 더 쉽고 빨랐다.  301-302


물질과의 여행이 아니었다. 마음과의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나는 여행을 떠나고서야 그것들을 느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꽤 많은 곳을 여행했고 가볍게 짐 꾸리는 데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장기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있었다.  305

Posted by WN1
,



딱 한 숟갈 더 먹으면 체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번을 먹고 어김없이 체한다. 내리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 무게를  더하는 데 익숙한 삶은 늘 어지럽다. 침대에 누워 천천히 가라앉힌 뒤 차가운 냉수를 한 잔 마신다. 어쩌면 사랑이란, 가라앉힐 수 없음을 미리 알고, 쓸쓸하게 삭히는 것인지도 모를 일, 체를 내린 후 카메라를 들고 길 위로 나선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셔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산다. 마실거라고 우긴다. 숙소에서 깡통을 딴다. 딸 때의 그 느낌은 참 경쾌하다. 마셔본다. 역시나 쓰다. 난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 결국 버린다. 버릴 걸 알면서 사는 맥주. 내 손에 선택되었다가 버려지는 맥주들은 늘 애틋하다. 그대에게 얻은 경쾌한 울림들이 애틋하게 내 목을 넘어가는 동안.

사랑은 종종 기적처럼 사라진다. 채글 내리는 동안, 쓸쓸함을 삭히는 동안, 그리운 멀미를 다스리는 동안, 맥주 한 모금을 목넘김 하는 동안.

텅...텅... 빈 마음을 일으켜 그대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가라앉히는 것도, 사랑이다.


한 달쯤 지나면 여행은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지도를 펼쳐놓고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맞이하는 대신, 익숙한 고민을 시작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 것인가?'


사랑의 추억엔 좋고 나쁨이 따로 없다. 다만 추억과 소통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 화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경이로운 힘, 그것은 오직 사랑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먼 곳을 순례하다 보면 어떤 날은 유유하고 여유로운 기억이 종일을 채운다. 치열하게 걸을 자유가 있는 것만큼 아무것도 안 할 자유도 있는 게 여행자의 특권이리라. 또 어떤 날은 하루 내내 세탁방을 찾아야 하며, 또 겨우 찾아서는 두 시간가량 멍하니 세탁과 건조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날도 있다. 내게 파리의 첫날이 그랬다. 꼭 10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 그 황홀한 재회에 숨 막힌 것도 잠시, 숙소를 찾는 일이며 산더미 같은 빨래를 맡겨야 하는 일이며 부서질 같은 피곤이 몰려든다. 그래도 다시 만난 파리는 사랑스럽다. 고 쓴다. 사랑에 바쳐지는 피곤은 아름답다. 고 고백한다.


아비뇽의 좁다란 골목의 별 하나짜리 '미뇽'호텔.

아침마다 미뇽의 사장님이 직접 따라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배고픈 여행자들을 위해 크라상을 아끼지 않는 곳.

체크아웃조차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하세요."라며 웃어주는 곳.

그래서일까,

아비뇽의 거리조차 내내 친절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

그곳이 아니었다면 별 하나짜리 호텔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충분히 아늑했고, 충분히 편안했던 곳.

힘든 여정속의 따뜻한 숨구멍이 되어준.

결국 중요한 건 '별의 개수'가 아니었다.

..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건 너의 웃음보다 뜨거운 가슴미었는데..그만 외면하고 말았구나,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던 시절이 아쉽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지 못한 대가로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많은 것을 잃은 자의 가방은 늘 무겁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대를 갖고 나면 그대의 곁을 갖고 싶었다.

그대의 곁을 갖고 나면 그대의 세계를 갖고 싶었다.

그대의 세계를 갖고 나자 그대를, 잃었다.

잃고 난 빈 자리에서 짐을 싸는 여행자여,

짐 속에서 짐을 싸는 사랑이 있음을...


산 속에 서면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딱히 큰 고민은 아니었지만, 작은 고민들이 모여서 내 마음이 그토록 무거웠던 것이었나.

여행에서 짐을 하나씩 하나씩 줄여 나가듯, 내 고민도 하나씩 정리해서, 무게도 줄어들었으면.

짐 줄이듯, 고민도 줄일 수 있었으면.

버릴 건 버렸으면. 

그랬으면.


때론 내가 주인공인데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는...


언젠가 내게 물었지. 너처럼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여행을 자주가냐고. 왜 그런지 나도 생각해 봤어. 게으른 내가 남들보다 더 자주 떠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정말 단순한 결혼이 나오더라, 그건 바로 게을러서야. 혹시 지금 웃고 있니? 이건 정말이거든. 생각해 보렴. 게으르기 때문에 난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어. 일단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떠나는 거지. 남들처럼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아.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야. 나도 알거든. 내가 여행을 가서 언제나 먹던 김치를 그리워하고, 언제나 쉽게 긇여 먹는 라면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막상 피곤하면 카푸치노, 카페라떼, 아메리카노 보다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를 더 찾게 될 거란 사실을, 만약 아프거나 할 때, 약국에 가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막막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여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무섭도록 잘 맞는 법칙 하나. 그 여행이 길든 짧든, 

꼭 마지막 날에 좋은 걸 발견하게 되는 것.

오래된 애인과 헤어짐을 감지할 무렵, 그 사람이 징글징글하지만, 진짜 매력을 알게 되는 것처럼

길거나 짧거나 상관없이 여행지에서의 그 마지막 날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결국 또 오게 되는것.


Posted by WN1
,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아."  9


여행할 때,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섰을 때, 낯선 것들과 조우할 때, 그 설렘. 아무래도 그것이 내게는 '살아 있는 실감'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었다.  10


'생활인'인 나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내 방식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이 온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현실에 대한 내 책임이 더 늘어날수록 그 순간은 더 자주 찾아올 터였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방법을, 핏줄에 부는 바람을 안고 생활인으로 사는 방법을, 먹고사니즘과 '내 방식의 행복'이 함께 손잡고 이인삼각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방법을.  14


여행과 일상의 중간.  21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흔이 되고 싶다.  37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데? 먹을 것, 잠잘 곳, 놀 곳, 섹스 상대. 이거 말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뭐가 더 필요한데?"  111


"한국 사람들 늘 그러잖아. 뭐하지? 뭐해야 되지? 안절부절."

왜 시비냐고 버럭 하려다가 참았다. 저날 밤 톰과의 대화에서도 느꼈듯, '인생'이라는 마라톤 경기에 대한 한국 사람들과 빠이 사람들의 태도 차이가 너무도 극명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구간 내내 전력 질주를 한다. 빠이 사람들은 경주에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트랙 근처 나무에 해먹 매달아놓고 낮잠 자는 모습이다.

과연 삶이라는 마라톤은 어떻게 달려야 할까. 가장 좋은 건 적당히 속도안배를 하면서 달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반드시 사회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구간마다 물컵이 달리는 사람 수만큼 놓여 있어야 할 거고, 어떤 출발점이나 환경에서 시작하더라도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규칙과 트랙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예 중간에 트랙에서 내리는 방법도 있을 거다. 조기 은퇴나 조기 퇴직 같은 것. 그러나 그러려면, 달리는 동안은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것일까.  113-114


"속 터져요, 한국 같으면 벌써 다 지었어. 진짜 태국 애들 일 못하는 거 상상 초월이야."

"학비는 받나요?"

"아니, 기숙사까지 전액무료."

"학교 다 지으시면 교장선생님 되시는 거예요?"

"아니, 애들이랑 선생님한테 줄 거야. 나는 다시 딴 거 해야지. 여행 가든가. 내가 건물만 올려 주ㄴ면 그담엔 자기들이 지지고 볶고 만들어 나가야지. 밥도 해먹고, 농사도 지으면서."

"그럼 이 건물을 짓는 특별한 이유라도..."

"놀이."  128


난 그냥 내 고산족 친구들한테 해줄 게 없을까 하다 한번 만들어 보는 거예요. 아, 재미있잖아. 일 잘 안 풀리면 홧술도 한잔씩 마셔가며."

"살아 있다는 실감은 제대로 느끼고 사시겠네요."

도인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129


차가 읍내로 들어서자 기분이 복잡해졌다. 온천이나 폭포 같은 곳은 갈 생각 없다. 그것은 내게 그저 빠이라는 동네의 장식에 불과 했다. 나는 그냥 좁은 타운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했고, 만족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몸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좁은 타운 안에서 한 발짝 나각자, 내가 몸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왼쪽 겨드랑이나 허릿살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보였다. 빠이에 좀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좀 더 머무르며, 속속들이 이곳을 느끼고 싶어졌다.

"저 며칠 있다가 방비엥 가는 표 끊었거든요. 이거 찢을까요?"

아저씨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빠이, 블랙홀이야. 한번 빠지면 나가기 힘들어. 그래서 바람 불었을 때 얼른 떠야 돼요. 여기가 바람이 잘 부는 데가 아니거든."  130


나이가 먹을수록 설레는 일이 줄어간다. '그런 거 예전에도 봤어.' , '다 아는 거야.' 같은 허세와 교만은 조금씩 느는 것 같은데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설렘은 나날이 줄어간다. 나는 돈 뎃의 노을 앞에서 너무도 설레었다. 노을 겉은 거 보고 설렐 줄은 나도 몰랐다. 다시 한 번 그 처음 본 붉은 빛을 보고 싶었다. 한 번쯤 더 설레 보고 싶었다.  216


라오스에서 필요한 것은 '비움'이다.  231


누군가 '라오스에서 뭘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기다렸어요.' 내가 기억하는 라오스 여행의 절반 이상은 기다림이다. 그것도 확실치 않은 기다림.  237


지금까지 나 자신을, 특히 여행할 때의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고 얻은 결론인데, 나는 고생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 몸과 내 예금계좌와 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어ㅔ서의 고생이나 소동은 오히려 좋아한다. 무탈하고, 평온하고, 고요한 나날이 계속되면, 재미없다. 나이를 먹고 많은 상황에 익숙해져 갈수록 실수할 일도 잘못될 일도 줄지만, 그만큼 흥분하고 떨리고 가슴 졸일 일도 줄어든다. 그러고 보니 마흔은 '불혹'이했지, 흔들리지 않는 나이. 그 나이에 대해, 하나만 소박하게 바란다. 나는 흔들리지 말고, 내 주위의 공기를 조금씩 흔들려주기를,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을 때는 나 스스로 흔들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기를.  264


지금까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실 그것들이 알고 보니 내게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던 거다. 적어도 '행복'을 위해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나다운 행복을 느끼기 위한 최소공약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세상을 삼십 년도 넘게 살아왔건만,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두들 주변에서 '잘살아야 한다'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잘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과 풍요, 그리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외적 조건을 갖추는 것. 잘 사는 거, 좋지. 그렇게 살면 참 편할 거다. 거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을 거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건 잘살았던 것보다는 행복했던 것들 쪽인 거 같다.  275


호수를 빙 둘러싸고 울창한 열대 밀림이 우거져 있었다. 날이 흐린데도 물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지독하게 맑은 공기 위로 축축한 밀림의 향기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보고 쑥스럽게 웃음을 지어 주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어차피 호수에서 굳이 뭘 하겠다고 온 것은 아니니까. 그저 남아도는 한나절과 매너리즘을 쓰임새 있게 버릴 곳이 호수였을 뿐이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시간은 자주 버리잖아. 만화책으로, 게임으로, 트위터로, 메신저 수다로. 다만 이번 땡땡이에는 동그란 물, 붉은 진창, 울창한 밀림과 낯선 풀 냄새, 그리고 애물단지 같은 자전거가 하나 있는 거다. 라따나끼리에서 땡땡이는 이런 식으로 치는 거다.  287-288


내가 사는 나라, 얼마 전까지 변두리였다가 신도시가 된 우리 동네에서는 로스(스위스인)의 동네가 꽤나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그 부티와 안정감,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오늘도 그토록 치열하고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그런 '행복'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는 동네 주민은 정작 자기들이 행복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 인도차이나의 사람들은 정작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정말 그렇게 마냥 행복할까? 저 부유한 나라에서 온 친구의 말뜻은 결국 이건데, 행복과 소유는 그다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행복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 적어도 인도차이나 사람들은 그 '행복'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것 같다. 낙천적이고, 여유롭다. 정확성이니 효율성 따위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대로 살아간다. 불교라는 사상적 배경 때문에 현세의 괴로움에 너그럽다. 게다가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쉽다. 밖에서 자도 얼어 죽을 일 없고, 바나나며 망고스틴 같은 과일이 지천이니 굶어 죽을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땅의 곳곳에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생존과 생리에 대한 기본적인 욕망이 아닌, '소유'를 향한 자본주의적 욕망 말이다. 이런 욕망은 아주 쉽게 부도덕 및 몰양심과 결합한다. 나는 그것을 내 나라에서 징그럽게 많이도 보아왔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이 땅에서 그런 '징후'를 몇 차례나 보고 말았다.  297-298


욕망을 가진 자에게는 그 욕망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좀더 노동과 대가의 의미를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착취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저 얻는 것도 아닌 제대로 된 대가.  298


솔직히, 도시는 편하다. 나는 도시의 그 컵라면 같은 편리함이 그리웠던 거다. 오지에서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꼈으면서도 말이다.  318


미인이란 상대적 희소성에 대한 동경의 산물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거 참 허무한 건데.  364


만일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물이 넘칠 기미가 보이는즉시 동네 사람들과 애꿏은 군인들이 총동원되어 물을 퍼내고 둑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달랐다. 세계적인 유산 앙코르와트 해자의 물이 불자, 씨엠립 주민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곳에서 뜰채와 어망과 낚싯대를 들고 고기를 잡고 계셨다. 

같은 지구, 같은 아시아인데도 이드로가 우리는 삶의 속도와 리듬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우리는 내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둑을 쌓는데, 이들은 오늘의 만복과 행복을 위해 고기를 잡는다. 왜냐고?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대비하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수 있다. 이들은 그냥 살아가도 먹을 것, 잘 자리는 생긴다. 우리는 죽어라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 겨우 1년에 한 번 추수하는 쌀, 이들은 두 번도 거두고 세 번도 거둔다. 당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것 아닐까. '저러고 사니까 이렇게 못살지'도, '아, 왜 우리는 이렇게 찌들고 각박하게 살아야 하나'도 아닌 거다. 그녕, 다른 거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 게다가 이들은 윤회를 믿는다. 이들에게 진짜 미래란 10년 뒤, 20년 뒤 따위가 아니라 다음 세상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이들에게 진자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일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이 '다름'에 조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정말 그것으로 족하냐고, 그래도 되는 거냐고. 아이들을 보았을 때였다. 현실의 언저리만을 맴돌며 '썸말로이'를 외치는 씨엠립의 아이들을 말이다.  403-405


이 영악하기 짝이 없는 꼬마 사업가들은 과연 어떤 배경으로 탄생하게 되었을까?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킬링필드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 당시에 가장 먼저 숙청당한 사람들이 바로 지식인이랑 자산가였거든요. 캄보디아 사람들 아직 은행 잘 안 믿어요. 은행에 저축하는 대신 금을 사서 집에다가 묻어두죠. 그러니까 아이들 학교 보낼 필요성도 못 느끼는 거죠. 가르쳐 봐야 잡혀가서 죽기나 할 테니까요. 그냥 돈이나 버는 게 훨씬 낫다는 거예요. 게다가 애들이 좀 잘 버나요. 그래서 애들 내보내서 돈 벌어오라고 시킨 다음에 부모들이 도박이나 술로 탕진하는 경우도 많아요."  411


장기 여행자들을 보면 두 종류다.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나온 사람들, 아예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 같은 게 없는 사람들, 카오산에서도 두 종류로 보인다.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 같은 게 없는 사람, 또는 카오산에서만큼은 안정이고 나발이고 버리고 싶어 보이는 사람.  425


시간은 유한한데 지구는 너무 넓다. 그리고 갈 데가 너무 많다.  429


서른다섯,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한 나이의 한여름, 그해의 여름, 나는 행복해지겠다며 조금은 억지를 섞어 이렇게 뛰쳐나왔고, 그렇게 긴 여름을 보내며 많이 행복했으며, 몰랐던 것 한 가지를 배웠다. 자잘한 불편과 결핍은 사실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세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최소 공약수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최소 공약수들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시시해지고, 무언가에 구속당하고 싶고, 낯익고 좁은 것들 사이에 있고 싶어질 때가, 언젠가는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올 때를 나는 꿈꾸려 한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성숙한 내가, 세상의 한 구석에 정착하여 그곳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모습을. 씨엠립에서 꿈꾸었던 모습일 수도 있고, 다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아줌마가 되어 가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 앞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내 인생의 가을은 그런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는 열심히 행복하려 한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은 여행을 다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욕망을 '성취'라는 이름으로 풀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내 인생의 남은 여름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442


Posted by WN1
,

 

 

행복 같은 건 애초부터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는 사랑받지 못했고 별자리는 내가 손 닿을 수 없는 곳에서만 아름다웠으니까.
우리는 생활 앞에서 언제나 난처했고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뜨겁던 청춘은 지나가버렸고 버스는 손을 흔들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더 슬픈 건 청춘에 대해 미련이 없다는 것.
떠나간 버스를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하지만 어떡해? 다시 길을 나서는 수밖에.
마치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듯 배낭을 꾸리고 신발끈을 동여맸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당신은 언젠가 나를 살랑하게 될 것이고 별빛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생할은 언젠가 나를 안아줄 것이고
청춘.....
그래, 청춘은 지나갔기 때문에 식어버려 재만 남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잖아?
행복이 오지 않을 땐 우리가 그것을 만나러 가야지.  14-15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수천만 원이 든 통장도 자동차도 그다지 쓸모가 없구나.
우리를 위로해 줄 음악과 책, 우리 몸을 감싸줄 티셔츠 몇 장.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구나.  23

 

짙은 라오 커피 한 잔과 바삭하게 구운 바게뜨가 당신의 식탁 위에 차려져 있다....
책장을 펼쳐 어젯밤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는다.
메모를 하며 '내 삶의 제목을 정한다면 무엇일까?'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책을 내려놓고 당신은 나이프를 들고 바게뜨에 치즈를 바른다.
바게뜨는 이제 알맞게 식었다...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들이 커다른 배낭을 짊어지고 지나간다.
그들은 당신을 향해 미소를 건네고 당신 역시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당신은 이런 아침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28-29

 

루앙프라방에 석 달째 머물고 있는 중년의 캐나다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아쉬워할까요?"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의 실페와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 시간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주저했고, 불안했고, 고독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루앙프라방에 와서 비로소 시간이 어떻게 느리게 흘러가는 지를 알게 된 거야. 시간을 소비하는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거지."
시간을 소비하는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나는 그 멋진 말을 곧 실감할 수 있었다.  33

 

아무도 'see you again'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스쳐가는 사이였으니까...
우리의 우연은 거기까지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41

 

우리에겐 생을 감상하고, 즐길 권리가 있어요.
내가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온 건 그 권리를 찾기 위해서랍니다.  43

 

"제 이름은 틱 웃입니다. 열아홉 살입니다. 내년이면 정식 승려가 됩니다"
틱 웃이 빈 그릇을 치우고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당신에겐 길을 잃을 권리가 있어요. 당신은 여행자니까요."
"많이 두려웠죠? 누구나 낯선 장소에 홀로 있으면 외롭고 두려워지게 마련이죠."
"길을 잃었을 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당황해서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지게 되죠. 여유를 가지고 내가 왔던 길을 천천히 더듬다 보면 분명 가야 할 길이 보일 거예요."
"또 한 가지.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 갈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마세요. 느긋하게 길을 가면 되요.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것도 행운일 수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당신은 여행을 많이 했나요? 먼 곳으로 순례를 떠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행도 삶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죠."
틱 웃은 내게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조용히 일어섰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일생은 길을 잃고 다시 찾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아니, 길을 잃고 싶어, 그리고 길을 잃으리란 걸 알면서도 길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잃은 길 위에서 어딘가에 있을 차가운 불빛 하나를 기대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런지. 그러기이ㅔ 모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아둔하기만 한 것이 아닌지.
다음 날 아침, 떠나는 나를 향해 틱 웃이 말했다.
"모든 건 명확하지 않아요. 지도 역시. 자동차도, 컴퓨터도, 모든 것은 오류를 가지고 있죠. 우리는 언제나 길을 잘못 들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낯선 길을 헤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랍니다. 용기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죠." ...
내가 심호흡을 하며 힘껏 페달을 밟앗던 그 지점에 도착했다. 커다란 트라웃 나무가 무성한 잎사귀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때, 여행은 즐거웠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트라웃 나무에 등을 기대고 지도를 살폈다. 우습게도 내가 틱 웃을 만났던 사원은 그곳에서 고작 6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걷는다고 해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리였다.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틱 웃의 말을 떠올렸다."낯선 길 위에서 오히려 행운을 만날 확률이 높죠. 우리가 길 위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47-49

 

우리는 골목을 걸으며 골목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골목에 깃든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누구는 이 골목에서 태어나 도시로 떠났고, 어떤 이는 이 골목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또 다른 이는 이 골목을 평생 동안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골목은 여행자들이 자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세상 여기저기에 퍼뜨려줄 것을 알고 있다. 노인이 그가 목격한 생의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들려주며 세월을 견디듯, 골목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견뎌가는 것이다.
감동 어린 여행기를 쓰고 싶은 여행자들이 골목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자들은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을 겪은 듯 글을 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가 골목에서 만났던 운전수와 아이들, 빵장수, 호객꾼, 여인, 걸인, 승려, 소매치기가 전해준 것들이다. 여행자는 골목에 얽힌 위트 넘치는 추억담, 골목이 들려주는 생생한 증언들을 인용하고 전달할 뿐이다.
골목에 관한 뛰어난 명상가인 어느 여행자는 세상이 어쩔 수 없이 신비로운 이유는 뜨거운 화산 때문도 아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때문도 아니며 바로 수많은 골목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많은 골목이 있는 이유는 하나의 골목마능로는 이 세상의 신비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지금 세상의 모든 골목이 그려진 지도를 만들고 잇다. 그건 어쩌면 우리 생의 비밀이 담긴 가장 은밀한 지도일지도 모른다.
가끔 생각한다. 아름다운 골목과 만났을 때 하염없이 걸어서 모퉁이를 돌아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72-73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돌아가기 싫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면, 당신은 여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84

 

싸이(Ssay)는 스물 여덟 살. 툭툭을 운전한다....
싸이와 차를 마시다가 그에게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때땔로 들기는 하지만 특별히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뭐가 부족하지?"
싸이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학교, 세탁기.... 뭐, 이런 것들 아닐까? 그런데 초이, 부족한 것과 가난한 것은 뭐가 다르지?"
"부족한 건 단지 단지 불편한 것이고 가난한 건 그것보다 좀 더 슬픈 일이겠지."
싸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난 조금 부족할 뿐이야. 슬프지는 않으니까. 내가 세탁기를 가지고 싶은 건 아내가 빨래를 좀더 편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뿐이니까. 세탁기가 없다는 건 약간 불편할 뿐이지 슬픈 일이 아니잖아?"  98-99

 

세상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별이 뜨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별을 나침반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요.
그래요. 우리 인생의 복선과 암시는 어딘가에 분명 숨어 있어요.
해피엔딩이든, 쓸쓸한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자기 인생의 정면을 관토할 사랑과 의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걸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거죠.
난 삶 자체가 바뀌기를 원하고 있었고 그건 아주 절실했죠.
새롭게 시작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131

 

"이봐, 초이. 여기 벽이 있어. 어떤 사람은 벽을 넘어. 어떤 사람은 그냥 뒤돌아서 가지. 어떤 사람은 벽을 부수고. 어떤 사람은 벽에 낙서를 해. 그리고 어떤 사람은 벽을 더 높이 쌓지. 넌 어떡할래?"
"글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먼저 벽이라는 걸 인식하는 거야. 벽을 외면해서는 안 돼. 그건 가장 못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런 다음 일단 부딪혀 보자구. 벽을 넘건, 뒤돌아서 가건, 낙서를 하건, 부셔버리건, 그건 그 다음 일이니까. 언더스탠드?"  154

 

내겐 저축도 거의 없어. 보험도 없고 연금도 나오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종족이 아닌 거야.
누군가 내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더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하지만 살다 보면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시기가 찾아오지. 그때 힘껏 내질러야 해. 발등에 축구공이 정확하게 맞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앞 뒤 잴 필요도, 골대 따위를 가늠할 필요도 없어. 그냥 힘껏 내지르는 거야.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되겠지. 어제 서른여덟 살이 됐어. 남자에게 서른여덟은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늦은 아니는 아니야. 어쩌면 이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을 할 수도 있는 나이지.
운명은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그것을 경험하고 나면 누구도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어.  167

 

우세요. 실컷 우세요.
우는 게 부질없으면 인생도 부질없어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인간답게 사는 순간은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이거든요.
울다 보면 당신 안의 짐승이 달아날 거예요.  169

 

"여기서 행복해?"
"행복해."
"어떤 점에서?"
"걱저이 없어. 그러니까 행복하지. 여기 와서 깨달은 건 행복이란 걱정이 없는 상태라는 거야."
더 좋은 것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까, 더 많은 돈이 필요없다고.  183

 

"네가 알고 있는 루앙프라방 사람들에 대해 말해 줘."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음, 그들은 계획이 없어. 아니, 계획을 세우는 것데 대해 무관심해. 내가 그들에게 '자, 우리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이렇게 이렇게 해봅시다'하고 말하면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지."
"왜일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들은 자신보다 많이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지 않아. 그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 버리지."
"그런 걸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분명한 건 이젠 내가 그들에게 익숙해져 버렸다는 거야. 나 역시 가끔 이런 걸 왜 해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으니까."
마이커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네가 이곳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지금은 한 사람의 노력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 그게 가능했던 때가 있었지만 그건 노스탤지어일 뿐이야. 그리고 난 그냥 하찮은 사람이야. 부조리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지.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곳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난 지금 나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그걸 봉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라지 뭐."  184-185

 

겨울 시린 꽃봉오리에서 뜨거운 꽃이 열리듯 살아내는 것 자체가 가장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고 사랑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
세상의 모든 길은 끝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일이 이토록 소중한 일일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삶일 줄이야.  193

 

손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손이 진정으로 필요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그건 바로 누군가를 쓰다듬고 어루만질 때랍니다.
당신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질 때 나는 진정되곤 합답니다.
공포와 슬픔과 불안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답니다.  226-227

 

"여행을 하면서 고양이만 찍었어."
"대단하군, 그런데 왜 하필 고양이지?"
"그놈들은 여행자를 닮았어. 그들의 구부러진 등을 봐.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적당한 긴장감으로 휘어져 있지. 눈빛도 여행자와 비슷해. 저멀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망연하다가도 곧 낯선 자를 경계하는 듯 날카롭게 바뀌지. 친해지는걸 두려워한다는 것 역시 여행자와 닮았어. 누군가와 지나치게 친해지면 떠나기가 힘드니까."  230

 

당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오해에 불과해. 저 비행기를 봐. 당신은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이륙의 유쾌한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착륙의 우울한 자세일 뿐이야.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언제나 오해하고 있지. 별이 영원히 밝을 것이라는 생각은, 별에 대한 우리의 영원한 오해일 뿐이야. 그렇지만 우리에겐 오해가 필요해. 진심을 말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완벽한 균형 따윈 없어. 솔직히 말하자구 .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건 생활이잖아.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까.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완벽하게'오해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나의 오해를 오늘 밤만이라도, 제발, 이해해 줘. 부탁이야.  237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
당신은 여행자니까요.
내일이면 떠나버릴 테니까요.
나만 혼자 남을 테니까요.  253

 

우리가 우너하는 것은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멀리 있어서 반짝인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떠나온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최소한의 절망으로부터의 도피이기를.
내 삶에 대한 방황의 성실한 흔적이기를.
당신은 언젠가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별빛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생활은 언젠가 나를 안아줄 것이기 때문에...  263

 

당신이 처음 발을 디딘 이곳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언젠가 이 강바람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고 느낀다면
마음에 드는 창문 아래에서 하루 종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면
하루쯤 늦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진다면
옥상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달빛이 비치는 산을 올려다보는 그 시간이 좋아진다면
상대방을 향해 먼저 웃음 짓는 순간이 많아졌다면
지금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사람이 3년 전 기차 칸에서 당신에게 어깨를 빌려주었던 그 사람일 것 같다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구름의 무게가 몇 그램이나 되는지 궁금해진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고마워진다면
막혀버린 길보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더 난감해진다면
정들었던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며 마음이 물끄럼 해진다면
버스 안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골똘히 생각헤 잠긴 중년 남자가 멋있게 느껴진다면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면
망고를 사고 동전 하나를 더 거슬러 받았는데 이 세상을 얻은 것보다 더 기뻤다면
나중에 동전 하나를 덜 거슬러 받은 걸 알게 됐는데 이 세상을 잃은 것보다 더 슬펐다면
우리 모두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갑자기 내 삶이 대책 없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서서히 여행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267

 

노비스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초이, 여기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세요."
나는 그가 건네준 종이 위에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집, 차, 컴퓨터, 카메라, 책상, 청바지, 텔레비전, 티셔츠, 음반, 책, 냄비, 신발, 화분, 어항, 탁자, 의자, 옷장, 자전거, 오디오....
적다 보니 종이 한 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적기에 이 종이는 너무 작아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더니 종이 한 장을 다시 내밀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종이였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그 종이에는 옷 두 벌과 책 네 권, 신발 한 켤레, 수저 한 벌이 달랑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종이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때문에 당신은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
노비스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적은 없었다. 그것들을 사는 순간 잠깐 행복했을 뿐이었다. 물건을 사는 순간을 즐긴 것이지 물건 자체가 즐겼던 건 아니었다. 곧 싫증을 냈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갖고 싶었다. 
노비스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더 내밀었다.
"이제부터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의 목록으로 이 종이를 가득채워보세요. 나무 그늘의 위로, 당신에게 쉴 자리를 내어주는 배려, 아직 여행할 곳이 남았다는 기대감, 내일에 대한 희망, 작고 가난한 것들에 대한 존중, 갈증을 적셔주는 물, 나무의 씨앗을 키우는 햇빛, 당신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새소리.... 그것들을 하나씩 적어가다 보면 이 종이 한 장으로는 모자를 거예요. 그때 제게 다시 오세요. 종이는 얼마든지 더 드릴 수 있으니까요."  283-286

 

"우린 허들 선수야. 결승점에 닿기 위해서는 허들을 넘어야 해. 하지만 친구, 허들을 방해물이라 생각해서는 안돼. 허들은 너를 결승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도 하지. 허들을 열심히 넘다 보면 어느새 결슬점이 네 앞에 있을 거야. 삶도 마찬가지야. 힘내라고!"  289

 

푸 타이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혹시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거 있어?
푸 타이가 말했다.
초이, 신이 내일을 만든 건 걱정하라고 만든 게 아니야.
준비하라고 만든 거지.
오늘은 내일을 준비하는 날이야.
내일 봐, 안녕.  297

 

노련한 여행자들은 삶에 대한 해답이 세상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멈추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막을 건너는 일도 첫걸음부터 시작한다.
수천만 번의 걸으을 반복해 마침 내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다. 단숨에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모험보다는 경험이다. 진리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관광객이 되지 마라. 여행자가 되어라. 관광객은 장소에 머무는 자다. 하지만 여행자는 장소에 묻힌 시간의 비밀을 발굴한다.
실패를 즐겨라. 신은 삶을 설계할 때 실패를 예정해 놓았다. 우리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멀리 있어서 반짝인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온 것이다.  303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반지금의 길이만으로 원의 둘레를 구하는 방법을 배웠고,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도 배웠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도 배웠다. 시치미를 떼는 법, 모른 척하는 법도 배웠다. 난처해지지 않는 법도 배웠고 고마워하는 법도 배웠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그냥 웃으면 된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진리는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존재이며,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325

 

 

Posted by WN1
,



작가의 말 

사랑이 뭐야?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느낌표라고 대답했다. 꼿꼿하게 허리를 곧추세운! 두 해 전 일이다.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게 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2년 봄, 사랑을 위한 문장부호로 나는 느낌표 대신 말줄임표를 고르겠다. 지난 이 년 동안 내 마음은 어디론가 천천히 이동했다. 그 길 위에서 이 소설을 썼다.  6

내가 사랑에 대해 조금쯤 더 알게 되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오로지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깊이 사랑할 것이다.  7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애인을 사귀려는 목적으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괴상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차라리 지하철 같은 칸에 탄 아가씨와 사귀게 되는 일이 쉬울 것 같았다.  15

"아휴, 좋을 때다. 근데 젊은 아가씨들은 잘 모르겠지만 착한 남자가 최고예요. 언뜻 봐서는 별 매력 없더라도 알수록 진국인 남자, 딱 한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 요즘 아가씨들 겉으론 똑똑한 거 같아도 그 당연한 걸 잘 놓치더라고요."(미장원 아주머니의 말)  19


연예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찬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  78


메뉴판이 왔다. 그들은 개성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조심스럽게 저녁식사 음식을 골랐다. 그들은 준호의 제안으로 샐러드를 주문해 나누어 먹었다. 민아는 이 남자가 관대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고, 준호는 이 여자가 소탈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함께한 첫번째 끼니였다.  98


사랑의 초기에 그들은 함께 들어선 이 성스러운 오솔길의 입구를 즐거이 복기하곤 했다. 입구에서 이미 한참이나 지나왔다는, 다시 입구까지 쭉 미끄러지는 퇴행은 없을 거라는 무언의 합의가 둘 사이를 팽팽히 조이고 있어야만 가능한 유희였다. 출구까지의 남은 거리에 관해서는. 아니,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 끝에 필연적으로 놓여 있을 출구의 존재에 관해서는 아예 떠올리지 않았다.  109  


준호가 가만히 민아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잡은 채 밤길을 걸었다. 누가 왼손이고 누가 오른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111


왜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고 언젠가 그녀가 물은 적이 있다. 준호는 그 말을 듣고야 제가 그랬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하고는 좋은 것만 나누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터였다. 

"말했잖아. 육군 보병이었다고, 병장 만기제대."

"그런 거 말고."

"그럼?"

"혼자 울었던 밤 같은 것."

"음.... 손톱?"

"손톱이라고?"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데, 나 어릴 때부터 손톱을 아주 바짝 깎아. 그러지 않으면 물어뜯으니까. 긴장하거나 불편하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씹는 버릇이 있었거든."

"미안해, 난 몰랐어."

"바보, 자기가 왜 미안해? 막 일병 달았을 때쯤 행군을 나갔어. 장마철이었는데 길에 앉아 점심을 먹었지. 식판에 막 빗물이 들이쳤어. 그때 무심코 내 손을 보게 됐는데 손톱이 어느 틈엔가 이만큼 길어버렸더라. 그 밑에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어. 물어 뜯을 정신도 없이 살고 있었던 거야. 조금 눈물이 났어. 입대하고 처음으로... 그게 내 군대 얘기야."

다음번 만났을 때 민아는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손톱깎이가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제품 중에선 제일 좋은 거래. 인터넷 다 뒤져서 찾아낸 거야."

민아가 어깨를 으쓱대는 시늉을 했다. 준호가 그녀의 코를 손가락 끝으로 꼬집었다. 그는 여자친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보았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구불구불한 웨이브 대신 언제나 간편하게 포니테일로 묶고 다녔다. 소박했지만 그의 눈에는 처음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준호의 가슴속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이 한 톨 피어 올랐다. 이 사람에게라면, 곧 더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있을지 몰랐다.  117


할머니에 대해서 준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직장 다니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날 다 키워준 거나 마찬가지야, 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민아가 그렇게 따뜻하구나"라고 했으나 "살아계셔?"라고 묻지는 않았다. "건강하시지?" 라고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순간을 넘겼지만 사실은 서운했다. 준호의 관심이 그저 '박민아'의 내부에 머물로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건 바꿔 말하면 박민아의 바깥, 박민아라는 섬을 둘러싼 주변에는 별 관심 없다는 의미였다.  134


출국카드의 직업란에 회사원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쉼표 하나를 그려넣으면서도, 종아리를 쭉 펴기도 힘든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열두 시간 동안 항공기 꼬리 날개를 내다보면서도, 히스로 공항의 외국인 전용 입국심사대 맨 뒷줄에 서서도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게 원래 내 방식이야. 먼저 떠나는 것, 혼자 남겨지지 않는 것. 차라리 먼저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 그럼에도, 그녀를 붙잡겠다는 어떤 거짓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은 준호에 대한 섭섭함이 마음 한구석에 딱딱하게 응어리져 있었다.  

왜 런던이야? 준호가 물었을 때 민아가 명확한 이유를 대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때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심지어 모든 것은 그녀가 그에게 '떠난다'는 표현을 입 밖에 내면서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  185


보름은 전혀 모르던 두 남녀가 몸부림치는 사랑의 환희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운명임을 확인하고도 남을 시간이고, 한때 열렬히 사랑한 적 있던 두 남녀가 처음부터 타인이었던 것처럼 냉담 해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192


"내가 겪어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자는 역시 자상하고 다정한 남자가 최고예요. 지 혼자 속으로 진국이면 뭐해, 표현안 하면 그걸 누가 아나."(미장원 아주머니의 말)

미용사가 언젠가 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앗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였다.  204

Posted by WN1
,



첫 독자의 말 - 정이현

낭만적 사랑의 영속성을 굳게 믿는다면,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면,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된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다 드디어 서로를 알아 본 한 남자와 한 여자. 소설은 그 '끝'에서 시작된다. 결혼으로 완성된 그들의 사랑은 일상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 즉 아름다운 해피엔딩 뒤에 펼쳐지는 리얼리티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일부일처의 결혼제도 안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밴과 엘로이즈에게는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도,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줄 반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그저 천천히 녹슬고 천천히 닳아갈 뿐이다.  4-5


작가의 말

혼자가 아니라는 발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 남자의 관심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탐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내는지를.

이 소설은 '오래된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낭만적 사랑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6-7



딱히 누군가와 사귀고 있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로맨티스트일지 모른다.  16


벤은 현재 결혼해서... 여섯살, 네살배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내 엘로이즈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지만, 자신의 감정 패턴을 분석해봤을 때 그녀를 향한 욕망이 늘 어떤 특정 맥락에서만 생겨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십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의 사랑의 진앙(震央)은 엘로이즈가 생면부지의 남이었던 때, 노팅힐의 어느 술집에서 처음 만난 직후의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17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때도 많았다. 

사랑은 뜻밖의 순간에 되돌아와 다시금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패딩턴의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엘로이즈는 급성패혈증 진단을 받았고, 담당 의사가 나중에야 알려준 사실이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밤새워 기도하며 지켜보는 동안, 벤은 사랑의 존재를 추호도의심하지 않았다. 엘로이즈가 곁에 없다면 결코 다시는 삶의 의미나 기쁨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특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해질수록 기이하게도 그 감정은 점점 더 불확실해졌다.  18-19


에로티시즘이란 결국 벌거벗은 몸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 심리적 기대감에서 비롯되는데, 어쩌면 스키복과 모자로 꽁꽁 싸매고 나란히 리프트에 앉아 산기슭을 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텔레비전 화면 속 리포터가 피스타치오 코르네토 아이스크림을 격찬하는 동안, 방 안의 부부 침대에는 발트해의 누드비치 같은 무덤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22


방금 술집에서 만난 상대와 잠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퇴짜에는 나름의 대처방법이 있다. 반면, 평생을 함께하기로 서약한 사람과 섹스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훨씬 더 기이하고 창피스러운 사태다. 벤과 엘로이즈가 마지막으로 섹스한 게 꼬박 팔 주 전이었다.  23


이제 벤은 그 날짜라면 귀신같이 기억했다. 지난번엔 육 주 만이었고, 지지난번엔 십 주 만이었다. 작년 한 해를 통틀어 벤과 엘로이즈는 여섯 번 했다.

욕망을 해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근래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믿음을 심어주는 데 초첨을 맞추어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볼품없는 의상으로 신체를 가릴 필요가 없으며,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섹스를 즐겁게 자주 맛보아야 할 감정적으로 풍요롭고 순수한 오락 이상의 다른 무엇으로 여길 필요는 전혀 없다.  24


로맨스와 에로스, 그리고 가족이라는 세 가지 황금요소를 완벽하게 융화시킨 궁극의 결혼도 당연히 있다. 종종 냉소주의자들은 행복한 결혼은 신화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섣불리 치부하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해도, 궁극의 결혼은 분명 존재한다. 결혼이 우리의 소망에 부응하지 말아햐 할 형이상학적 이유 같은 건 없다. 다만 상황이 우리에게 몹시 불리할 뿐이다.  35



벤과 엘로이즈의 경우 대략 일주일에 한 번은 자잘하게 싸웠고 보름에 한 번은 대판 싸웠다. 심각한 부부싸움은 그 자체로 너무나 불쾌한 일이라 일단 싸움이 끝나면 자신들이 어떤 지경까지 갔었는지 되돌아보는 일조차 끔찍했다.

다음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여름휴가는 핵가족답게 노포크의 시골집에서 보낼지(벤의 입장) 아니면 가족 동반으로 스페인에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초대에 응할지(엘로이즈의 입장), 아이들에게 휴일처럼 특별한 날에만 아이스크림을 줄지(벤의 입장) 아니면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주는 게 좋을지(엘로이즈의 입장), 현관 벽에 자전거 체인의 기름때가 묻었으니 수일 내로 페인트칠을 해야 할지(벤의 입장) 아니면 집 안의 다른 뭔가가 망가져서 전체적으로 새단장이 필요해질 때까지 몇 달이고 내버려둬도 괜찮은지(엘로이즈의 입장) 등이었다. 물론 가장 최근에 다뤄진 심각한 사안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되는지(벤의 입장) 아니면 그것은 단지 의지박약의 문제인지(엘로이즈의 해석)였다.  40-41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상대가 내 눈에 어떤 사람으로 비쳐야 하고 그와 함께하는 삶이 어떻게 펼쳐져야 마땅하다는 이상을 바탕으로 서로의 행복을 염원하는 것이다. 이는... 최고의 완벽을 구현하려는 시도다.  41


결혼생활하는 부부들은 화장실 타일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남에게 사과할 때 구사해야 할 억양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자에게 줄기차게 의견을 제시한다. 

평균적인 부부들은 커뮤니케이션, 요리, 미학, 교육, 정치, 패션, 섹스, 재정에 이르는 온갖 영역에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든다.  42


우리는 자신의 학생을 구슬려 달래지도 못하고, 뭔가 배우고 싶도록 마음을 사로잡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상대를 이해해주거나 산만한 태도에 인내심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설명은 극도로 아끼면서, 시작부터 다짜고짜 화난 눈빛으로 목청을 한껏 높여 상대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꾸짖을 뿐이다. 그리고 뛰어난 간파력을 발휘해 상대를 괴롭히고 자존심을 건드린다. 자신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성공인지 실패인지 여부에 그다지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훌륭한 교사의 전제조건 중 하나라고 할 때, 연인 사이란 이를 깨닫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45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행기 착륙법이나 외과수술법을 직관으로 터득하길 기대해선 안 되듯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더불어 살기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비결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47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할 때 우리는 대개 그럴듯하고 평범한 답변을 대려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착하고 똑똑하고 예쁘고 건강하기 때문에 끌렸다고 말이다. 사랑은 후손을 낳고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 즉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하나가 되도록 이끄는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내는 생각할 때마다 벤은 이런 통설에 의문이 들었다. 엘로이즈는 건강하고 매력적이며, 무럭무럭 잘 자라는 아이들도 낳아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뭔가 좀더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힘이 자신에게 작용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정신분석은 이에 대해 가혹하지만 타장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우리가 사랑에서 기대하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단 친밀함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그 자체로 좋은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상적인 방식으로 양육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도덕적 강박과 히스테리, 깐깐함과 속물근성, 단호함과 신중함 등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로 뒤범벅된 형태의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보다 덜 이상적인 상황들을 참아내는 능력이, 더 나아가 그런 상황에 대한 '욕구'가 발달한다. 우리는 결혼한 상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만, 실은 감정적으로 훨씬 덜 힘들었던 다른 후보자들이 무수히 많았음에도 어떻게든 그들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어떤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결점이 충분히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완벽함에는 익숙하지 않은 편안함이 깃들어 우리를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56-57


벤의 입장에서 아내가 특별히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런 두려움을 느낄 때였다.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또래의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을 그가 해내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당장 그를 무시하고 낙오자라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고 겁에 질리는 순간, 아내에 대한 그의 감정은 더욱 애틋해졌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성공했더라면 덜 헌신적인 남편이 됐을 거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사랑은 가난과 치욕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가 자본주의로 알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가 발명했거나 적어도 그들의 강력한 옹호와 지지 덕분에 발전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낭만적 사랑도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관습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많이 투자하고 생산하는가를 기준으로 존재를 가차없이 심판하는 시스템 솏에서, 더구나 이처럼 종교를 저버린 시대에 우리의 정신이 버텨낼 수 있으려면 비물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춘 다른 평가방식이 절실해진다. 그 보루마저 없다면 심판의 위력이 어무나 막강해서 우리의 내면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유감스럽게도 사랑에 대한 우리의 낭만적 이상주의에는 사악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낭만적 이상주의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방어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가치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준엄하게 평가되는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될 가능성 또한 차단해버린다. 낭만적 이상주의는 부와 사랑이 보다 골고루 아낌없이 분배되는 대안적 방식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만일 경제 시스템을 바꾼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필사적으로 짝을 찾아 헤매고 두려움에 떨며 서로에게 매달릴 필요를 훨씬 적게 느낄 것이다.  65-66


지하철 안에서 그는 남은 저녁시간을 근사하게 보내는 공상에 잠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아이, 조금 지친 아내, 그리고 모종의 위기.  68-69


그는 자기가 속한 시대의 보편적 견해를 충실히 따르게 되었다. 

아이가 누누 단계에서 정서적으로 충분히 보살핌 받지 못하면 그것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치료하는 데 큰돈이 들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73


'부모 되기'란 겉보기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들, 가령 학교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가 만든 레고 공항을 칭찬해주고 있는 순간에도 마천루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만큼이나 까다롭고 고된 작업을 매일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벤과 엘로이즈가 아이들을 키우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이 세상에 한 인간을 부려놓은 존재들은 한 발짝 물러서서 편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피조물에 감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인간은 누군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햇을 때 상대의 말을 믿는 능력이 결여되어, 자기 자신에게도 없는 믿음을 다른 사람이 가졌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상대를 단죄하려 들 것이아. 그게 아니라면, 잠시잠깐 이라도 박수갈채가 멎으면 못 견뎌하고, 남들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한 선택 같은 건 절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더라도 스스로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 못화며, 삼십 년 또는 사십년 전에 자신이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는 뼈아픈 생각에 괴로워하며 매일 밤 배갯잇을 적시다 잠들 것이다.  74


노아가 거실 바닥에 쿠션을 쌓아놓고 난파당한 선원 흉내를 내며 상어가 나타났다. 전갈에 물렸어, 살려주세요하고 소리지를 때 아이는 그저 밉살맞은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장차 실연(失戀)을 이겨내고 좋은 직장을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무력감'과 '회복능력'이라는 상반된 감각을 탐구중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나가 주황과 파랑 색종이로 눈은 넷이고 얼굴은 새처럼 생긴 키 큰 여자의 콜라주를 만든 것은 엄마의 과도한 간섭에 시달리는 아이의 스트레스가 표출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모는 자식이라면 쩔쩔매고 한없이 응석을 맏아주게 된다.  75


경제체제가 요구하는 자질은 자신감과 창조력 그리고 독창성이다. 이것들은 고대 스파르타의 우람한 근육이나 프리드리히 대체 시절 프러시아의 절제와 금욕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다.  76


아이들을 얻기 전까지 벤은 항상 감정을 속이며 살아왔다. 그래야 점잖고 분별 있어 보이는 줄 알았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가 느끼는 기분은 적절치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 감정이 없었다. 생일파티에선 슬펐고, 휴일엔 우울하고 초조했으며, 장례식에선 쑥스러웠다. 섹스가 끝나면 멍해졌고, 어쩌다 소위 걸작이라는 문화예술품을 접해도 하나같이 지루햇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에 관한 한, 그가 반드시 느껴야 할 감정은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강렬하게 느꼈다.  81


엘로이즈와 사귀던 초창기에는 그녀에게 이런 비밀을 속속들이 보여줄 수 있었다. 장시간에 걸친 음란한 폴섹스도 해봤고, 외설적인 상상을 함께 즐겼고, 야한 옷도 입어보았다. 이런 것을 터놓고 할 수 있다는 기쁨에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성적 판타지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더해지자 고통스럽게 혼자서만 느끼고 역겨워했던 감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섹스는 그가 엘로이즈에 대해 갖게 된 폭넓은 책임감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평생의 동반자가 될, 자신의 첫아이를 임신한 지 석달 된 여인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강제섹스 장면이 포함된 야설(冶說)을 보여주는 건 가당치 않았다. 그는 엘로이즈가 그런 행동은 그만두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녀가 원하리라고 믿는 자신의 모습(에서 거의 빗나가지 않도록), 올곧은 인간의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해야 할 것만 같았다.

벤의 성생활은 일찍이 그의 엄마나 할머니 같은 인생 초기의 여성상으로부터 그를 분리했고, 이제는 그를 그의 아내로부터 갈라놓았다. 그는 인생에서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자신이 성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감출 필요 없이 살았고, 그것은 광활한 거짓의 사막에 자리한 솔직함이라는 오아시스였다.  102-103


억압은 빅토리아시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하러 가야 하고 우리를 둘러싼 관계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우리는 성을 자유롭게 표현해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그것의 본성 자체가 해방을 거부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103-140


우리가 섹스를 회피하는 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섹스의 쾌감이 가정생활에 수반되는 다른 많은 일들을 감내하는 우리의 수용능력을 위태롭게 할 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107


섹스는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동료 관리자와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균형을 무너뜨린다. 일단 섹스를 시작하려면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자신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꽤 이상하게 비칠 것들을 스스로 폭로함으로써 약점을 드러내고 잠재적으로 굴욕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108


성적 욕구는 객관적으로 보면 터무니없고 경멸스럽게 여겨질 법한 많은 것들을 애걸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일반적이고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의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이런 원초적인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108


사랑하는 살마과 섹스할 수 있는 상대, 이렇게 둘로 구분하려는 욕망은 특히 남자들의 습성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리아-창녀' 콤플렉스는(서로 다른 젠더간의 상호이해를 위해서라면 다행이겠지만) 결코 남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성들에게선 흔히 '착한남자-나쁜남자' 콤플렉스가 발견된다. 여성들은 다정다감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주며 대화가 잘 통하는 남성에게 끌린다는 데 이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섹스가 끝나자마자 곧 다른 대륙을 찾아 떠나는 잔인한 악당이 성적으로 훨씬 매력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109-110


섹스에 적극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가로막는 근심거리가 또 있다. 나의 파트너가 실제로 나와 얼마나 자고 싶어하는가에 관한 문제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욕구에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립 로스의 신작 소설이나 루이스 부뉴엘의 새 영화를 보고 있는 상대방을 본의 아니게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저어하게 된다. 사랑은 우리가 평소 섹스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게 폐를 끼칠까봐 매우 신중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고 만다.  110


다방면에서 결혼생활에 매우 이롭게 작용했다. 온화한태도, 비위맞추기, 평등의정신, 가정생활의 각종 허드렛일을 독단적으로 분배하는 것에 대한 거부등의 수확을 이끌어낸 것이다. 부엌에서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장려한 덕분에 이제 침실에서의 섹스는 더 어려워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12


한 명의 파트너와 장기간 성생활을 하는 데사 오는 현대의 위기는 대개 누가 먼저 시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쪽이 원하지 않을까봐 양쪽 모두 감히 시작할 엄두를 못 댄다. 섹스할 기회를 잡는 일 자체가 너무나 소모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섹스를 원할 때조차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일깨워줄 다른 누군가가 필요해진다. 우리의 정신은 이성적인 문제들만으로도 너무나 바빠서 보다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내면의 충동들로부터 차단된 채 살아가고 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본능에 가까운 진정한 자아에 더 가까워지도록 우리를 되돌려줄 사람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113


벤은 베키를 다시 보기 않길 바랐다. 그녀에게 못마땅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결혼한 사람이 기회 될 때마다 바람피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를 정확히 아는 데서 오는 겸손함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그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통찰이다.  126


그는 점심에 뭘 먹었는지 거짓말할 수 있을 것이다. 꾀병을 불리 수도 있고, 있지도 않은 고객 얘기를 지어낼 수도 잇고, 출장 간다고 속일 수도 있다. 예금계좌를 숨길 수도 있고, 딴 살림을 차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유독 이 일탈을 고백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이유는 바로 자신의 감쪽같은 거짓말이 드러낸 진실, 즉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현기증을 덜고 싶어서였다. 그렇긴 해도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129


배신당한 사람의 분노는 기본적이고 불가피한 진실과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시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진실 말이다.  132


의도의 근본적 '오류'는 결혼의 경우와 동일하게 그 속에 담긴 이상주의에서 비롯된다. 비뚤어지고 가만 없어 보이는 일에 말려드는 것 같지만, 사실 외도는 마음속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외도가 결혼의 불충분한 요소들을 마술적으로 정리해주고, 잘 지어낸 알리바이로 복잡미묘한 기대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하지만 밖에서 누군가와 자면서 결혼생활 안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망가뜨리지 않을 순 없다.  138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이상 흥분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육체와 정신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139


침대 시트가 말끔히 정된되지 않듯이, 결혼생활 역시 어느 한 가지를 완벽하게 만들거나 개선하려 들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한 귀퉁이의 구김살을 펴려 하면 다른 귀퉁이들이 헝클어지게 되어 있다.  140


아이들은 대개 세 가지 이유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그래서 화를 내고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이었다. 첫째,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표현할 수도 없다. 둘째, 그들에게 충분히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셋째, 부모가 아이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제대로 선을 긋지 않았다. 이때 요구란, 하고 오플린 부인은 다 안다는 듯 웃으며 재빨리 덧붙였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세상을 알아가고 싶어하지요."  151-152


이상화된 어린 시절의 모델레 맞춰 사랑을 감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맛본 안온한 느낌을 되살려줄 성인은 어디에도 없으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고 연약함과 불안을 막아줄 사람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게 된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157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165




작가 대담 - 정이현 & 알랭 드 보통 : 사랑을 말하다

<연인들>이야말로 연애의 초라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인물드르이 사랑에 감정이입을 할수록 낭패감을 느끼게 되죠.  169


보통 씨가 결혼한 지 오래된 기혼 남녀의 사랑을, 저는 결혼을 꿈꾸는 미혼 남녀의 연애를 다룬다는 출발선이 그어져 있었던 거죠.  171


벤은 '낭만적 사랑'이 얼마나 미화되고 왜곡된 신화인지를 역설하고, 사랑과 정욕과 결혼이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한 일이라고 말하지요. 그럼에도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지키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해요. 민아와 준호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소소한 것임에 비하면, 벤은 일부일처의 결혼제도가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거듭 말하면서도 엘로이즈와 아이들에 대한 사라으이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죠. 심지어 그의 인터넷 포르노 중독이나 외도의 경험조차 그러한 의지적 노력의 일부로 볼 수 있어요.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을 채우기 위해 지치지 않고 거듭 시도하는 정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벤은 역설적으로 굉장한 로맨티스트가 되지요.  173


제가 생각한 벤은 다중적인 성격의 인물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일관되진 않은 취향, 원칙, 가치관 들로 뒤범벅인 유동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179


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알아요. 사랑하는 법은 그냥 자연스럽게 아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벤도 제 생각에 동의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직관만으로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외과수술하는 법을 알 수 없듯이, 함께 사는 방법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순수한 감정이 다칠까 무서워서 사랑이라는 영역에선 너무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더욱 유감스러운 일이고요. 현대의 연인들은 아직도 자기들의 삶에 의식적인 절차를 도입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는 걸 주저해요. 너무 많이 생각하면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잇다는 만츠라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죠. 하지만 끊임없이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고 말 겁니다.  185


결혼의 곤란한 점은,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도 느낄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것들투성이라는 겁니다. 결혼한 살마들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도 가끔은 있지만, 많은 시간 그것은 짐작보다 훨씬 더 씁쓸하고 고달프고 무미건조하고 짐스럽습니다. 결혼은 노동과 마찬가지로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기쁨을 찾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죠. 저는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들을 위한 책, 동지적 연대감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189

Posted by WN1
,



왜 당신은 당신을..

당신의 생을 사랑하지 않는거지? 

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거지?


여행은...

내가 나를...

꼬옥...

껴안는 일이라고 해두자...


여행을 가는건 

당신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의 기분 좋은 온도를 느끼는 일.


여행은 새로운 공간과 장소를 만나는 일이지만

새로운 시간과 조우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간의 새로움이 아닌 시간의 새로움을 느끼는 일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가늠한다.

그래서 여행은 당신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당신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떤 풍경 앞에서

어떤 사람앞에서

가슴이 떠리거나 

닭살이 돋을 때가 있다.

아직 다행인건 

내가 양복이나 가방 앞에서 그런 가슴 떨림이나 닭살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

나는 아직도 이과수 폭포의 굉음 앞에서

카파도키아의 석양아래서

인도 거리에서 만난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 앞에서 

가슴이 떨리고 닭살이 돋는다.

난 가끔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여행할 기회가 찾아온다더군


삶이란 실수하고 만회하고

실수하고 만회하는 과정의 연속

그러니까 실수를 두려워하지마!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우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건 어쩌면

약간의 과묵과 더 약간의 냉담인지도 모른다.


신문을 보고

잡지를 보고

TV를 보면

시위, 폭동, 기아, 전쟁...

세상은 점점 망해가는데

나는 이십분마다 한번씩 여행을 궁리하고 있다.


두근거림이 사라지기전 얼른 떠나세요. 설렘은 모든 불편을 감내하게 한답니다.


여행이란, 내 속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끄집어 내는 일

바로 그걸 가능하게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여행은 자신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이기도 하죠.


제게 청춘은 이십대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그때가 내겐 청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때 서른다섯이었습니다.


내가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칙은 단 하나다.

하기 싫어도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잘 할 수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자.

지금까지 이렇게 해 왔다.

글쓰기도, 여행도, 사진찍기도

모두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물론 하기 싫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하기 싫은 '때'였을 뿐이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내가 남들보다 조금 다르게 할 수 있는 일. 그런일.

좋아서 하다보니 열심히 하게 됐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그럭저럭 잘하게 까지 됐던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고

그래서 즐겁다.

나는 지금의 일을 좋아하지 않을 때까지 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행복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현재의 상태!!


'옆자리 대화' -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 사람이란 왜 헤어졌어?"

                     "뻔하잖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과거는 좋았지만 그 사람과의 현재는 불편했고,

                     그 사람과 함께해야 할 미래는 막막했어."

                     "그랬구나. 잘했어."


난 떠나겠어요.

당신을 잊기 위해 여행을 계속하겠어요.

당신을 그리워하기 위해 길을 가겠어요.


'오해 하나 더' - 난 널 싫어하는게 아니야.

                 단지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야.


나는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 가운데 하나는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전 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것.

마음껏 웃고 여행하라! Smaile & Traverl!


여행은 늘 새로운 아침을 보여주고

인생은 늘 새로운 외로움을 보여준다.


새로운 풍경을 본다는 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 좋은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애정을 갖고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이고

조금만... 조금만 더... 자세히 보고

조금만... 조금만 더... 웃어주고

조금만...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조금만... 조금만 더... 감탄하고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게 많구나!

조금만... 조금만 더... 겸손해지고

에잇, 그까짓거 뭐 일단 가보는 거지

조금만... 조금만 더... 대담해지고

난 이런거 없어도 돼. 조금만... 조금만 더... 심플해지고

내일로 미룰 수 있는건 내일로 미루자

조금만... 조금만 더... 게을러지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많지 않다.

여행은 이 소박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아, 정말로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그리워하는 것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난 이제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를 위해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런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고 있어?'

우린 서로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사랑과 여행에 공통점이 뭔지알아?

세상은 설명해주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야.


'인생의 황금비율' - 인생의 90%는 리얼리스트로 살자.

                    나머지 8%는 모더니스트로

                              2%는 미치광이로

                              8%가 우리 인생을 즐겁게 해주고 2%가 우리 인생을 가능하게 해주지.


돈이 차고 넘쳐서 여행했던 적은 없었던것 같다.

항공료를 아끼기위해 5시간 거리를 14시간만에 가야했고,

숙박비를 아끼기위해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에 몸을 뉘어야 했지.

1달러를 아끼기위해 1km를 걸어야 했지.

언제나 돈에 쪼들렸지만 언제나 떠났어.

그런데 말이야 신기한건

일단 길을 나서면 모든 것은 '어떻게 어떻게' 해결된다는 거야.

돈이 없어 여행을 멈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10년 넘게 여행을 해 오면서.

여행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떻게 어떻게' 정신.

그러니 너도 일단 시작해봐

어떻게 어떻게 되겠지.


여행중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뭘까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

사실 일 역시 마찬가지.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낄 때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땐

뭔해야 할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가만히 서서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것.


빵이 필요한자

사랑에 빠진자

그리고 여행이 필요한 자의 눈빛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지

모든걸 걸어도 생이 아깝지 않다는 그런 눈빛.

간절한..

간절한...

간절한....


얼마나 많은 방법이 있는데... 

왜 

무슨일을 해결하는 데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의 본질은 피곤한 것이에요.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비행기는 연착이죠. 

기차역은 언제나 표를 구하려는 이들로 북적이죠. 

예약한 숙소 문을 열 때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건 커다란 바퀴벌레며, 

샤워장 바닥은 왜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인지...

여권은 어디에 뒀더라? 카메라는 오늘따라 고장이고 역시나 택시기사에게 바가지를 쓰고 말았군요. 

우리가 기대했던 여행지는 사실 별거 아니구요.

젠장 오늘 투어는 정말이지 엉망이었죠. 가아드는 대놓고 팁을 요구했구요.

소나기까지 내려 비에 흠뻑 젖고 말았죠.


네, 맞아요. 이런 게 여행입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하루. 

여행은 그런 하루가 일주일 또는 보름, 혹은 일 년 동안 이어지는 일이죠. 

우리가 책에서 보아온 여행에 대한 빝나는 수사들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처음 가보는 낯선 땅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술술 잘 풀린다면 그게 오히려 잘못된 거죠.


참 이상한 일이죠. 이 모든 걸 감수하면서 우리는 다시 여행을 떠나니까요.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신을 사랑하려면...

좀 뜬금없지만

책읽기와 하루에 원고지 3매씩 글쓰기, 여행을 해볼 것을 권장합니다.

(물론 제 방식입니다.)


책읽기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10분이든 1시간이든 하루종일이든 책을 읽어보세요. 장소는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요. 혼자 고요히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3매의 글쓰기, 글쓰기는 스스로를 상상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주제는 상관없습니다. 일기도 좋고 영화평도 좋고 독서평이나 음악평도 좋습니다. 그냥 에세이 혹은 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종류라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써보세요. 자신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자주 여행을 다니세요. 견문을 넓힐 수 있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등등등...

여행은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죠. 이 모든 장점에 하나를 더하라면, 여행은 자신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행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 자신-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취향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의 현재 몸 상태는 어떤지 등등=에 대해 확실히 알려줍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관찰해보세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가지는 우리를 좀 더 느리게 만들어준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에 생기는 건지도 모르거든요.

Posted by WN1
,



'파이팅' 같은 건 하지 말자.

그런 거 안 했어도 우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잖아.

최선을 다하지도 말자.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매일매일 죽을힘을 다해 달리려니까 다리에 쥐난다.

지치려고 그런다.

조금은 적당히

조금은 대충대충

좀 걸어 보는 건 어떨까.

걸으며 주위도 돌아보고 그러자.  36


솔직하게 인정하자.

현실은 언제나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엉망이고, 당신이 아무리 극진하게 살아도 당신의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게다가 나아질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떠나간 사랑이 돌아올 확률은 아파트 당첨 확률보다 낮다는 사실. 당신은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이 지난한 생을 견뎌 내고, 살아 내는 까닭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 하나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가장 흔하면서 손쉬운 방법이 아마도 여행일 테고, 그래서 당신은 여행을 작심하고 그 순간, 가장 먼저 바다를 떠올릴 테지. 눈부신 햇살, 광폭한 파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득한 수평선,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짠 바람, 포구에 배어 이쓴 비릿한 생선 냄새, 그곳에서 뒹구는 사람들의 악다구니... 당신의 생이 잊고 있었던, 그래서 갈망했던, 촉각과 후각과 미각, 시각, 청각에 대한 몸서리치는 형용사들이 생생하게 우글거리는 바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당신이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함을 어렴춧하게나마 깨닫고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지금 당신은 겨울 바다에 가려 한다. 바다에서 꽁치 한 봉지를 사서 내일 아침은 따뜻한 쌀밥과 노릇하게 구운 꽁치를 식탁에 올리자. 당신은 먼 길을 달려 바다까지 왔으니까. 지금까지 그렇저럭 살아 냈으니까. 적어도 당신에게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꽁치 살을 바르며 이렇게 생각하자.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꽁치를 구워 먹을 수도 있는 것, 그게 우리 삶의 리얼리티라고.

맹목적이고 본능적이고 속물적인 것. 그게 살이라고...

당신은 지금 피식, 웃음이 나오려 한다.  62, 65


우리가 여행을 감행하기 위해 거창하고 명확한 명분을 만들 이유는 없다. 여행이란 하루키가 말했듯,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가방을 들고 표를 사서 어디로든 가는 것이고, 타인을 납득시켜야 할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어쩌면 여행을 닮았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명확한 목적과 이유를 모른다. 단지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104


나를 포함해서 제발 서른 넘은 인간들이여, 벤츠도 좋고 아이팟도 좋고 아르마니도 좋고 루이뷔통도 좋다. 그런거에 열광한다고 아무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차피 속물이니까. 그래도 이 세계를 조금 더 평화롭고 유쾌하게 만들 이데올로기 하나쯤은 가지고 살자.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하루에 1분 정도는 고민하자. 지금 이 순간, 며칠 전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본 어느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무너져 내리는 빙하를 바라보던 북극곰의 절망적인 눈빛 말이다.  145


여행에 대한 몇 가지 서툰 잠언

 - 우리가 경험하는 여행은 논픽션이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여행은 픽션이다.

 - 우리의 여행이 서사를 장착할 필요는 없다. 교훈적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건 각설탕 같은 것이다.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우리의 여행은 단지 생의 체온을 조금 높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 '즐기고 탐닉하라.' 이것이 여행자의 첫 번째 행동 강령이다.

 - 누구나 자기만의 환살을 좇아 여행을 떠난다. 어떤 이는 환상을 깨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환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 여행을 즐겁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 여행은 언제나 실패다. 성공적인 여행은 없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당신이 긍정을 배웠으면 좋겠다.  206-207


여행의 정석 : 가장 빠른 달팽이처럼.  208


여행작가의 책무 -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대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키는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지평선 너머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두 발로 뚜벅뚜적 걸어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16


모든 사물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사진을 찍지 말고 대화를 하려고 해라.

겁먹지 마라.

상대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법이 아니라 방식이 문제다.

당신의 찍는 방법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당신의 보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222


훌륭한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런게 있을까요?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그냥 여행이지 '훌륭한' 여행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여행보다는 좀 더 사려 깊은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247


사랑에 관해 우리는 필사적이어야 한다고 썼다가

이내 생활에 관해 우리는 좀 더 필사적이어야 한다고 고친다.  280


일을 하면 할수록

철학과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철학과 나만의 스타일을 지닐 것.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

이제 그럴 때가 됐다.  288


서른과 마흔사이 -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나이.

새로운 직장을 위해 이력서를 쓰기가 쑥스러운 나이.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

혼자서 영화관 가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나이.

따뜻한 공기가 빠져 가는 벌룬처럼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나이.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없어지는 나이.

차라리 판타지가 재미있어지는 나이.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나이.

기율과 위계 의식과 연대 의식, 이런 것들에 대해 서서히 신경을 쓰게 되는 나이.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편견이 서서히 쌓여 가는 나이.

하지만 상대방의 편견을 존중하기는 어려운 나이.

일상을 뒤엎는 전폭적인 모험을 감행하기에도,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도 이른 어정쩡한 나이.

파격이 아니라 품격이, 파행이 아니라 고행이 필요한 나이.

음악, 미술, 사진, 문학, 패션, 음식의 취향이 자신을 말해 주는 나이.

죽음이란 게 그저 육체의 한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

자신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

그래서 약간 우울해지는 나이.

뭔가 필요한 자질구레한 것이 많아지는 나이.

그리고 그것들의 가격이 점점 비싸지기 시작하는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혼자 남겨지는 건 아직도 두려운 나이.  292-293


나이가 든다는 건 .... 자주 아픈 게 아니라, 아픈게 회복되는 시간이 더디다.  296


Posted by WN1
,




'여행은 포옹과 같아요' 라고 말하는 그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한 동안은 풍경의 잔상이 망막 속에 남잖아요.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그때의 풍경들, 눈을 뜨고 있을 때조차 떠오르는 기분들...

  가끔은 여행자의 망망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져요.

  그가 어떤 풍경 속을 걸어왔는지 어떤 심정으로 그 풍경 속에 있었는지 궁금해요.

  언젠가는 나도 그 풍경 속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서로가 꿈꾸는 포옹 같은 여행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길을 잃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이다.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부단한 의지의 실현이다.  31


서른? 글쎄... 서른 살을 특별히 의식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어요. 스물 여덟 살까지 난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스물아홉 살부터 여행자가 됐죠. 서른 살에도 여행중이었고 지금은 서른한 살, 난 여전히 여행 중이에요. 음,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여행을 하며 3년이 지나갔네요. 23일 후면 서른 두 살이 되는군요.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됐어요. 스물아홉이든 서른둘이든 마흔이든 그건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 여행을하며 내 삶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직장생활을 하며 삶의 지도를 그려 나가는 것이나 여행을 하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나 뭐가 다르죠? 예전에 난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여행자에요. - 베이징에서 온 나나  134


행복에 겨운 그들의 얼굴을 보면 나도 저절로 행복해져요. 도쿄에서는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거든요. - 도쿄에서 온 사사키  138


당신은 혹시 사무치게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신지.  142


여행자들 : 차들이 엉켜 있는 복잡한 사거리에서 신호에 관계없이 횡단보도를 느릿느릿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자들.  172


비현실적인 현실도 실재한다. 여행은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다.  243


여행을 떠나오면 알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걸.  284


세상은 엉망이다. 

살 만하다고 악을 쓰지만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정신없이 취하기는 싫고 약간은 몽롱하고 싶고

그리고 어쨌든 견뎌야 하니까.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여행을 떠나지.  305


지금까지 허송세월한 것이 아니라면 굵직한 기회 한두 번 놓쳐버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어.

기회는 언젠가 다시 오고 다시 움켜잡으면 돼. 어쨌든 죽기 전에 주지런히 움직여봐. 

기회는 내곁으로 다시 찾아온다구.

모든 것은 날 수 있어.  308


왜 어떤 장소는 사소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일까.  312

Posted by WN1
,



서울이라는 곳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당혹스럽고 주저거린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을 때가 간혹 있다.

매일 다닌 거리에서 길을 몰라 허둥대는 꼴이라니!

여행길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니, 길을 잃은 적은 많았지만 적어도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여행은 어차피 길을 잃는 의도적인 행위이고, 또 잘못들어선 길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34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아보자.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삶을 낭비해 보자.  37


함께 맥주를 마시던 소설가 S가 내게 말했다. 선배는 지금까지 젊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그런 것 같았다. S의 말처럼,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청춘은 단 일 분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못 견디게 힘들었던 때는 있었지만 못 견디게 아팠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청춘이란 손톱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아픈 것일진대, 나는 단지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살며 세월을 보냈던 것뿐이다. 그러면서 청춘을 지나쳐 길의 어두운 저편으로 걸어왔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늙어버린 나는, 클라이맥스 없이 지나온 나는, 갑자기 삶이 두려워졌다. 이미 늙어버린 얼굴로 찬란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냐.  43


잔소리 같지만, 인생은 끝까지 가려는 의지이다.

좋든 나쁘든, 살아남든 죽어가든.  55


너는 알고 있어.

이번 여행이 네가 기대했던 것보다 낭만적이지 않으리란 사실을.

여행은 스릴 넘치지도 않고 예상 외로 지루할지도 몰라.

어쩌면 네가 길에 발을 내딛느 그 순간,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몸을 누인 

채 드라마를 보던지 로맨스 소설이 읽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오랫동안 떠나기를 갈망해 왔잖아.

여정을 계획하고 설레어 했잖아.

여행을 떠날 거라고 네가 전화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반 옥타브가 높더군.

네 몸은 마치 지상에서 10센티미터 정도 떠 있는 것만 같았어.

넌 새 신발과 필기감이 좋은 노트와 손에 꼭 맞는 펜을 샀다고 자랑했지.

그리고 이 지긋지긋하고 남루한 일상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며 안도 했어.

그래, 네 말이 맞아.

인생에서 여행보다 더 큰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어.

어쩌면 외롭고, 지루하고, 슬프고, 무기력할 때 우리가 달려가야 할 곳은 

차가운 바다이거나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 곁인지도 모르지.

우리를 정말로 위로해 주는 것은 덜컹거리는 기차 칸의 시큼한 시트 냄새이거나,

'빈 방 있음. TV 욕실 완비. 깨끗함'이라고 적힌 모텔의 허름한 방일지도 몰라.

오늘 아침 베란다에 내놓은 선인장 화분이 말라 있는 걸 보았어. 

선인장 속에 들어 있는 물방울들이 모두 빠져나와 버린거야. 영혼이 증발한 거지.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을 했어.

화분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너무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았어.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연명해 왔던 것 같아.

언젠가 네가 말했지.

"매일 똑같은 증명사진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같다. 웃는 법을 잊어버렸어.

  머릿속은 텅 비었어. 고개를 흔들면 빈 깡통 소리가 나. 무언가 채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드디어 결심했군. 잘한 일이야. 네가 부러워.

하루가 됐건 일주일이 됐건, 아니면 한 달이 됐건 어쨌든 떠난다니 축하할 일이야. 

중요한 건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는 사실이거든.

부디 멋진 여행이 되기를 바랄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여행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지루할지도 몰라.

위험할 수도 있겠지. 어두운 밤, 낯선 곳을 헤매게 될 수도 있어. 

누군가 네 가방을 들고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우리는 마른 수건처럼 따분한 일상을 어떻게 견뎌야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내일부터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그건 정말 다행이야."

여행, 우리가 우리를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  60-61


새벽 세 시나 됐을까. 창밖 비 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을 열었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어두운 하늘에는 별들이 한 움큼 돋아 있다.

창에 기대 우두커니 담배 한 대를 피우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와 눕지만 한번 달아난 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삼 년 전 소식이 끊긴 네가 사랑니처럼 궁금하다.

몸을 뒤척이다 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창가로 간다.

왜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왔던 것일까? 내가 너를 기다리며 앉았다. 일어섰던 자리와 구름을 담았던 벽과 길을 가다 막막해져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던 밤하늘. 이 밤, 너는 그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빗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일까? 꿈속에서 나는 어느 곳의 비오는 하늘 아래를 걷고 있었던 것일까? 너는 아마도 외로운 식물처럼 이 밤의 한 귀퉁이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131


사랑은 버티는 거다.

너를 가지겠다는,

기어이 너를 내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는 거다.

소금창고는 제 몸이 썩는 줄도 모른 채 소금을 안고 서 있다.

그 자세는 집요하고 간곡하다.

그래서 외롭다.

나는 너의 얼굴을 안고 오늘 하루를 견딘다.

나의 연애는 언젠 애원조이지만

너는 언젠가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실낱같은 가능성.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지만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망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네가 문을 열고 내 앞에 나타나는 그때까지

나는 내 사랑의 의지로 인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소금창고는 속으로 울고 있다.

소금이 짠 이유다.  144-145


여행은 홀연했다. 

바람이 불어오면 떠났고

비가 그치면 길을 나섰다.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당연했으며 

그렇기에 맹목적이었다.

돌아오겠다는 기약 따위는 없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위험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너에게로 홀연히 건너갔으며 

나는 두렵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너를 여행중일 뿐이다.

잠시 깃들다 가겠다.  163


여행은 때론 이런 식으로도 이루어지지.

오랫동안 계획을 하고 지도를 보며 여정을 짜고 트렁크를 수십 번씩 닫았다.

열며 짐을 꾸려야 하는 것만은 아니지.

누군가 내게 보낸 엽서 한 장, 혹은 짧은 전화 한 통화로도 우리는 아득한 거리를 달려가곤 하지.

그곳에서 우린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207


알고 있나요?

인생의 한 순간이 때론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신은 공평하다는 주장에 대해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결코 신은 공평하지 않다. 어떨 때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준다"고 말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말이 때로는 진실이라는 사실.

알고 있나요? 

언제나 시작은 사랑이고 끝도 사랑이라는 사실.

알고 있나요?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우리를 잃어버린다는 사실.  241


누군가는 사랑을 버리기 위해

누군가는 남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누군가는 밥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누군가는 지구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그러니까, 이 세상의 여행자가 모두 100명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데는 100가지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여행을 왜 떠나느냐는

그런 질문은 참아주길 부탁해.  265


우리의 기쁜 자세는 어떤 포즈일까?  276

Posted by WN1
,



미르자 기야스 벡은 페르시아의 귀족이었다. 왕의 명을 어긴 죄로 불같은 미움을 사게 된 그는, 어느날 가족들을 대동한 채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목적지는 인도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메흐루니샤라는 어린 딸이 있었다. 길고 험한 여정속에 딸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라자스탄의 사막에 다다랐을 때 닥쳐온 기갈과 추위는 그에게 독한 맘을 품게 했다. 새벽녘, 잠이 든 어린 딸에게 모래를 이불삼아 덮어준 채 식솔을 다그쳐 길을 떠났다. 수시로 늑대와 전갈이 출몰하는 모래언덕 위로 집채만한 태양이 솟아오를 때 그는 가족들 몰래 아침 노을보다도 더 붉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메흐루니샤의 생명은 질겼다. 아이는 미르자 기야스 벡의 뒤를 따르던 상인들에 의해 모래더미 속에서 발견됐다. 상인들은 자신이 섬기던 귀족의 딸을 비단에 감싸서 아그라로 데려왔다. 이 장면은 그들 부녀의 인생은 물론 무굴제국의 흥망까지 엇갈리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미르자 기야스 벡은 무굴제국의 아크바르 황제의 마음에 들어 새로운 영화를 누리게 되고, 그의 딸은 아름답게 자라 페르시아 소속의 장군에게 출가를 한다. 하지만 사막의 굶주린 늑대에게 먹이가 될 뻔했다가 살아난 그녀의 인생이 그렇게 한갓지게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서른의 청상이 된 기구한 팔자의 그녀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인도의 아그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아크바르 황제의 후궁 중 한 살마의 시녀가 되어 아그라 성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그녀는 극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아크바르의 뒤를 이은 제항기르 황제의 넋을 빼앗고 만 것이다. 풍류남아였던 제항기르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과거를 지닌 페르시아 출신의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단숨에 제국의 왕비가 된 그녀는 누르자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천성적으로 호방한 성격이고 놀기를 좋아했던 제항기르는 인도 대륙의 북서부에 있는 카시미르 지역을 좋아해 재임 중에 그 지역의 대표 도시인 스리나가르를 자주 방문했다. 스리나가르에 '살리마르 박'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누르자한에게 바칠 정도였으니까 제항기르의 인생에 있어 카시미르와 누르자한은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실제로 제항기르는 카시미르에 빠져 영리하고 아름다운 아내 누르자한에게 정치를 맡겨버렸다. 미르자 기야스 벡을 비롯한 페르시아 출신의 와척들이 득세하자 제국의 문화는 급속하게 페르시아 풍으로 변모한다. 힌두문화에 비해 비교적 앞서 있고 세련됐던 이슬람 문명은 누르자한에 의해 대폭 수용되고 심지어는 궁중에서 페르시아어가 통용되기도 했다. 미술과 건툭, 문학과 의상,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대륙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생겨난 문화는 인도 역사상 가장 독특한 문화로 평가받는다.

누르자한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야무나강 북쪽에 이슬람 양식의 무덤을 축조한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라는 이 무덤은 훗날 타지마할 죽조의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무덤을 '리틀 타지마할'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완벽한 사각대칭의 건축 양식은 물론이며, 대리석 바탕에 밑그림을 그리고 선을 따라 구멍을 뚫어 각기 다른 색깔의 돌을 끼워 넣어 그림을 완성하는 일종의 상감기법인 '피에트라 두라'는 원래 페르시아의 장식기법인데 이 무덤을 축조할 때 인도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나중에 타지마할을 건설할 때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이 기법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무굴제국에 누르자한의 그림자는 계속 이어진다. 제항기르를 이은 샤자한 황제의 왕비인 뭄타지마할이 바로 누르자한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샤자한은 왕비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17년의 결혼생활 중 열네 명의 아이를 낳앗다고 한다. 물론 자녀의 숫자가 금슬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엔나 소시지처럼 주렁주렁 아이를 낳을 정도였으니 그들의 사랑이 가볍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고 심지어 전장에도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으니 샤자한이 왕비에게 쏟은 열정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왕비가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애통함을 참지 못한 샤자한의 머리카락은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105-108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사원으로 다가간 나는, 맙소사,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원의 외벽에 새겨진 조각들이 나를 까무러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신들을 모신 사원의 외벽에는 온갖 난해한 체위를 한 성애상이 난무했다. 서양화가 임영재 형이 먼저 이곳을 다녀와서 내게 일러준 적이 있어 선지식은 있었지만, 차마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나는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한국에서 온 젊은 대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없는가 하고, 그들과 함께 이 조각들을 본다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아서 헛기침을 하면서 주위를 살폈지만,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동양인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상투만 틀지 않앗을 분이지 마지막 유생임을 자처하셨던 아버지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내 피에도 흘렀는가 보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사실은, 세상에 이렇게 노골적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각종 체위가 등장하는 이들 성애상들이 천박하거나 상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슴과 둔부가 지나치게 발달해서 상대적으로 허리가 가늘어 보이는 여인이 한쪽 다리로 사내의 허리를 감고 두 팔로 목을 휘감은 채 눈을 허공에 매달고 있었다. 사내 또한 한 쪽 다리를 들어 여인의 가녀린 허리를 감은 채 이 농염한 여인의 도발을 어떻게 감당할까 난감해 하는 표정이고, 마치 기계체조 선수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난도의 체위를 돕기라도 하려는 듯 좌우에 하녀들이 이들의 교합을 거들고 있었다. 하지만 한 하녀는 고개를 외면한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한 여인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바로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쟈타베슈티타카'라는 체위다.

그 뿐인가, 오랜 병영생활에 지친 병사가 자신의 말을 상대로 수간을 벌이고 있었고, 그 뒤에서 다른 병사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그 병사는 기다림에 지친 듯했다. 그 앞을 지나는 여인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그 광경을 외면하고 있었다.

외벽은 그렇다 치저라도 사원 안의 제단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시바의 거대한 성기인 링가를 모신 제단이 있고 그 주위로 36가지의 성애 기교를 묘사한 조각상이 있었다. 링가상 앞에는 작은 제단이 또 하나 놓여있는데 그 제단은 젊은 여사제가 올라와 완전 나체로 춤을 추던 곳이라고 한다.

천 년 전 이 제단에서는 성(聖)스러운 성(性)의식이 행해졌다. 승려들은 북을 치고 신자들은 횃불을 밝혔다. 북장단에 춤을 추던 여사제의 춤사위가 절정에 이르면 승려들은 북채를 던지고 차례로 제단으로 올라와 여사제와 정사를 벌였다. 오랜 수도 생활로 다져온 요가 자세로 고난도의 체위를 구사하며 이루어지는 교합에서 승려들은 번번이 패하고 말았다. 여사제의 관능을 극복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이다. 이 교합에서 사정을 해버린 승려는 다시 수도의 길을 걸어야 하고, 여사제의 온갖 기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텨 그녀를 녹초로 만들어 놓고도 사정을 하지 않은 승려는 드디어 득도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찬츠라 수행의 한 방법이다. 힌두에서 생각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정액은 머리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뇌하수체의 자극에 의해 정액이 생성되기 때문에 이 말이 영판 거짓은 아니다. 머리에서 생겨난 정액은 밑으로 내려와 배꼽 아래에 모여 있다가 남녀의 교합에 의해 성기를 통해 바깥으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힌두에서는 이 정액을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에너지로 본다. 이 에너지가 고갈되면 결국 인간은 죽고 마는 것이다. 일종의 엔트로피 개념이다. 그런데 이 에너지를 사정하여 허비하지 않고 다시 머릿속으로 되돌려 보내면 그 때 비로소 해탈의 순간을 맞는다는 것이다. 자아를 극복하는 것이 깨달음의 첫 번째 문이라면, 탄트라 수행은 득도를 위한 가장 극단적 수행법임이 확실하다. 

나는 카주라호의 사우너에서 카마수트라가 종교 속에서 어떻게 승화되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이처럼 사원에서도 성(性)을 가르친다. 성은 인간이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성(聖)과 속(俗)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힌두 세계에서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144-147


테레사 수녀님은 콜카타 빈민촌에 있는 '사랑의 집'에 살면서 가난과 질병, 그리고 기아 속에서 죽어가는 인도인과 평생을 함께 보냈다.

하루는 영국의 한 여기자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그녀에게 물었다.

"사랑이란 콜카타의 한 소년이 들고 온 사흘 분의 설탕입니다."라고 테레사 수녀님이 선문답처럼 대답했다. 어느날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었고, 콜카타의 모든 시민들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날 저녁 한 소년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부터 사흔 동안 저는 사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먹지 않은 그 사흘 분의 사탕을 제게 주십시오." 사흘 후 이 소년은 자신이 아낀 사흘 분의 사탕을 들고 사랑의 집에 찾아왔다. 콜카타의 모든 시민이 사랑의 집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남에게 걸식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고통의 행려병자들에게 자기 몫의 설탕을 가지고 간 사람은 오직 어린 소년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님이 강조한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랑, 작은 일에도 비분강개하여 정의를 세우고자 하고, 옆집 개가 고뿔에 걸려도 호들갑스럽게 침소봉대하여 박애를 강조하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실천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해 작은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244


인도에서는 항상 갈증을 느낀다. 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모든 것들에서 욕구불만을 느끼기 때문에 그 갈증은 끝도 없이 반복한다. 마셔도 마셔도 풀리지 않는 갈증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하나 수월한 것이 있다면 인도 여행의 매력은 반으로 뚝 떨어진다. 고통과의 정면승부, 그것은 인도 여행만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325


만사가 여유롭고 유머러스하며 넉넉하고 망상적이다. 다중적 특성을 가진 것이 인도인의 캐릭터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 닥쳐도 서두르지 않고 아무리 난처한 입장이어도 익살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관계에 맞닥뜨리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다가도 상대가 곤경에 처하면 발 벗고 나서 도와준다. 참으로 묘한 민족이다.  334


내가 아는 인도와 인도인들은 세간이 평가하는 만큼 그렇게 지리멸렬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일부 호사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내는 것처럼 신비와 명상으로 치장된 나라도 아니다.  336





Posted by WN1
,


인도의 독립 이후에 언어 분포를 조사하였는데, 인도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가 179개이고, 방언도 544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현재 인도 정부가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산스크리트어(Sanskrit, 범어梵語)를 포함해서 18개에 이른다.

이 많은 언어를 크게 구분하면, 북부의 인도아리아 어군(語群)과 남부의 드라비다 어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인도아리아어'는 인도 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산스크리트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도 아리아어도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힌디(Hindi)는 인도의 북부 지방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체 인구의 40.22%가 사용하는 언어다. 수도 뉴델리(주민의 81.6%)를 비롯해서 하리아나(91%), 우타르프라데시(90.1%), 라자스탄(89.6%), 히마찰프라데시(88.9%), 비하르(80.9%), 마디아프라데시(85.6%), 찬디가르(61.1%) 등에서 주(州)의 제1공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 네팔에서도 800만 명이 힌디를 사용한다.

2. 벵갈리(Bengali, 벵골어)는 캘커타(현재의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벵골 지방과 방글라데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8.3%가 사용한다. 웨스트벵골 주의 공식어로서 이 주의 주민 86%가 벵갈리를 사용한다. 

3. 우르두(Urdu)는 펀자브 지방과 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모슬렘) 언어로, 이 언어의 문자와 말은 아라비아어와 비슷하다. 인도 전체 인구의 5.18%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4. 구자라티(Gujarati, 구자라트어)는 서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구자라트 주민 91.5%가 사용한다. 그래서 구자라티는 '인도의 비즈니스맨의 언어'라고도 불린다. 구자라티는 인도 전체 인구의 4.85%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6,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5. 마라티(Marathi, 마라티어)는 인도의 경제 수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언어로, 이 주의 주민 73.3%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인도 중부의 데칸 지역에서도 이 언어가 많이 쓰인다. 인도 전체 인구의 7.45%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6. 오리야(Oriya)는 동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오리사 주민 82.8%가 사용하며, 많은 방언과 지방 사투리가 있는 것이 이 언어의 특징이다. 

인도이ㅡ 남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드라비다어는 인도 인구의 30% 정도가 사용하는 언어다. 드라비다어도 몇 가지로 구분된다. 

7. 텔루구(Telugu)는 동부 지방의 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84.8%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또한 인도 제2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하이데라바드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다.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7.89%가 사용한다.

8. 타밀(Tamil)은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언어다. 또한 타밀나두 주민의 86.7%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인도 전체 인구의 6.32%가 사용하는 언어다. 

9. 칸나다(kannada)s는 남서부의 마이소르(카르나타카 주)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시리콘밸리 방갈로르에서 사용되며, 인도 전체 인구의 3.91%가 사용한다. 

10. 말라야람(Malayaram)은 인도의 가장 남쪽 케랄라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3.62%가 사용한다.

그 밖에도 11. 펀자비(Punjabi)는 펀자브 주민의 92.2%가 사용하고, 인도 전체 인구의 2.79%가 사용하는 언어다.

12. 아싸미스(Assamese)는 아삼 주민의 57.8%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1.56%가 사용한다.

13. 신디(Sindhi)는 구자라트 주 등,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 사는 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한다.

14. 네팔리(Nepali)는 네팔의 국어다. 이는 네팔 인구의 90%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하는 언어다.

15. 콘카니는 고아 주민의 51.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21%가 사용한다. 

16. 마니푸리는 보석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마니푸르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이 지역 주민의 60.4%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15%가 사용한다. 

17. 사큐미리(Kashmiri)는 잠무카슈미르 주에서 주민의 5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01%가 사용하는 언어이다.  32-35


2001년 발표된 인구 조사를 보면 인도의 주택 수는 모두 1억 7,900만 개이다. 평군 잡아 한 집에 6명이 사는 셈이다.  35


4만 루피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한국의 화폐로 약 1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5~10배의 소득 효과가 잇다.

최근 인도인은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경제에 눈을 뜬 것이고, 그래야 자식 교육과 자신의 노후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9


1999년 현재, 350만의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감염자가 있다고 하고, 일부 비정부 기구에서는 800만의 감염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42


웬만한 중산층 가정의 경우 제대로 된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려면 신랑에게 '산트로(현대자동차)'정도는 지참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낼 수도 없다. 인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것을 큰 수치로 받아들이고 있고, 독신 여성을 사회적으로 천시하고 있다.  48


사트푸라 마을에서는 차란 부인의 '사티'를 포함해서 지난 50여 년동안 4건의 '사티'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사티 기록을 대단한 자랑과 명예로 여기고 있다.  50


미망인이 끝까지 자결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천한 사람으로 낙인찍혀서 집안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다. 버림받은 미망인은 죽을 때까지 힌두교 사원에 가서 가장 천한 막일을 하거나 심지어 창녀로 일해야 하며, 이렇게 해서 번 돈은 힌두교 사원에 바쳐야 했다.  51


인도에는 "과부가 먹다 남긴 음식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과부가 다시 시집가는 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과부는 시집에서만 아니라 친정에서도 배척을 받는다.

과부들이 브린다반의 사원에 모여들게 된 것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실제로는 남편이 죽자 집안에서 버림을 받고 브린다반으로 쫓겨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52


인구 비례로 따지자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4!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70%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76



인도 역사를 크게 4시기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힌두시대, 이슬람시대, 영국식민지시대, 오느르이 독립국가시대이다.

인도의 한 소설가가 4가지 시대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소설가는 인도 민중을 참새 부부에 비유한다. 각 시대를 연대순으로 힌두 시대를 '금으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고, 이슬람 시대를 '은으로 만든 새장',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새장', 오늘날의 독립국가 시대를 '삼색기(三色旗)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였다.

필자는 '힌두시대'를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1시기는 아리아인이 인도에 정착한 시기인 '베다시대'이고, 2시기는 '도시국가'와 '영역국가'가 서로 경합을 벌이던 시대이며, 3시기는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서 통일을 이룬 때이고, 4시기는 '굽타 왕조'에 의해서 고전적 힌두 문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대이다.  81-82


힌두교의 성격으로는 대체로 다음의 6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베다 종교를 계승한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多神敎)이다. 둘째, 힌두교는 다신교이지만,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最高神)을 설정한다. 이것이 브라흐마 비슈누 쉬바의 삼신일체(三神一體)로 나타난다고 한다. 셋째, 힌두교에서 아바타라(avatare, 化身)의 관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비슈누가 여러 신 인간 동물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서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통일할 수 있었다. 넷째,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특징이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 비해서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적다. 이는 '아바타라'의 관념에서 파생한 것이다. 다섯째, 힌두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단(異端)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통과 이단의 대립을 거의 볼 수 없다. 여섯째, 힌두교에 이단이 없다는 점은 힌두교가 다른 종교, 사상과 접촉하는 점에서 관용을 발휘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대립하는 모든 종교, 사상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자기영역에 있으면서 대항하지 않거나,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흡수하였다. 예컨대 사회적 신분제도에 저항했던 '불교'도 힌두교의 한 파(派)로 간주되어, 불타(佛陀)는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지만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시타 토착적 요소가 어울려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힌두교도로서 그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카마(kama)는 적당한 감각적 쾌락과 성적 향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정의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한 것이 <카마수트라>이다. 둘째, 아르타(artha)는 재물과 재산의 향유와 이득을 뜻한다. 이는 인생에서 부(富)의 추구가 인간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셋째, 다르마(dharma)는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마누 법전>과 여러 법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해탈(moksa)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열반에 들어가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와 상응해서 인새으이 4주기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범행기는 스승의 지도 아래 <베다>등의 학문을 배우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시기다. 둘째, 가주기는 결혼해서 가정을 돌보는 시기다. 이때 자식을 낳고 부를 추구하는 생활을 하면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마누법전>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에게 주어진 의무는 신, 브라만, 조상 등에게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다. 셋째, 임주기는 재가자의 삶을 마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 명상과 금욕생활을 하는 시기다. 이는 세속을 떠나 청정한 종교생활을 하는 시기다. 넷째, 유행기는 숲속에서 수행이 끝난 뒤에 탁발(걸식)하며 돌아다니는 시기다. 이때에는 모든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고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140-142


힌두교(브라만교)의 흐름은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에서 6파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1. 우파니샤드(Upanisad)는 '가까이 앉는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는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대화로 비밀스런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개괄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brahman)'과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atman)'이 같다는 것(梵我一如)이 <우파니샤드> 사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에서는 5단계의 아트만을 주장한다. 첫째, 물질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음식을 가리킨다. 둘째, 동물과 식물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식물과 동물에 공통된 생명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셋째, 동물에만 공통된 지각 활동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넷째,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인식활동으로 된 자아이다. 다섯째, 희열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인간의 깊은 곳에있는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희열이야말로 자신의 참 자아이며 우주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같다는 주장이 의미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2. <바가바드기타>은 힌두교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중요한 문헌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바수데바(Vasudeva)를 신봉하는 종파에서 작성한 시편(詩篇)인데 나중에 <마하바라타>에 편입되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숭배할 만한 자'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의미이고, '기타'는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체계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저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성격이 강한 종교적 작품이고, 또한 요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3가지 요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지(知)의 요가(jnana-yoga)이다. 이는 뒤에 소개할 상키야학파처럼 영원한 정신으로서 '참 자아'와 '물질적 현상적 자아'를 구분하는 것이고, 또는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한 것처럼 범아일여(梵我一如)와 신을 아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신애(信愛)의 요가(bhakti-yoga)이다. 이는 신에게, 특히 비슈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셋째, 행(行)의 요가(karma-yoga)이다. 이는 윤리와 해탈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참다운 체념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라 '행위 하는 가운데 체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행위를 하지만 욕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행위하는 한, 업보(業報)를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 상키야(Samkhya)학파에서는 2원론을 주장하낟. 이 학파에서는 진정한 자아 푸루샤(purusa)와 현상적인 자아 물직적 근원인 프라크리티(prakrti)를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프라크리티를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잇다. 이것은 잘못이고 진정한 자아는 푸루샤라는 것이 이 학파의 주장이다. 이 학파에서는 프라크리티에서 육체와 세계가 전개되는 것을 설명한다.

4. 요가(Yoga)학파에서는 상키야학파와 형이상학을 같이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마음의 잠재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무지(無知)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구체적 수행 방법으로 요가를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5. 바이셰쉬카(Vaisesika)학파는 다원론의 입장에 선다. 이 학파에서는 6범주 또는 7범주를 말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항목인 실체이다. 이 학파에서는 실체에 9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 수, 화, 풍, 공, 시간, 공간, 의근, 자아이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허공'은 소릴는 성질이 어딘가에 있어야 하므로 이 점에 근거해서 추론되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와 젊음과 늙음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추리되는 것이며, '공간'은 여기, 저기, 가깝다, 멀다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추론되는 것이다. 의근(意根)은 내적 감각기관이다. 눈과 코 등의 외적 감각기관이 바깥 대상을 인식하듯이, 의근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다. 지각은 의근이 작동해야 이루어진다. 자아(영혼)는 인식현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실체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 영혼인데, 이는 의지 욕망 기쁨 아픔 등의 여러 가지 정신적 상태에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안다"와 "나는 아프다"라는 말을 통해서 자아가 의식에 속하는 실체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최고 영혼으로서 신이다. 이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영혼으로서 모든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난 존재이고 세계의 창조자라고 추리되는 존재이다.

6. 니야야(Nyaya)학파에서는 바이셰쉬카학파와 형이상학의 내용은 거의 같이한다. 이 학파에서는 괴로움의 근원이 그릇된 지식에 있다고 보고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한 인식 방법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논리학이 발달하였다.

7. 미맘사(Mimamsa) 학파에서는 <베다>에서 명령하는 행위를 왜 실천해야 하는지 그 의무에 대해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무전력(無前力, apurva)을 주장한다. 베다에서 말하는 제사의 행위는 잠깐 동안 이루어지고 이내 끝나기 때문에 제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이 학파에서는 가설로서 '무전력'을 인정하면 제사의 행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제사 지내는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무전력'을 생기게하고, 이 힘이 제사 드리는 주체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업에 해당하는 과보를 반드시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베다 성전을 '제사부'와 '지식부'로 구분하고 있다. '제사부'는 브라만교의 제사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중시한 학파가 미맘사학파이다. 뒤에 소개할 베단타 학파는 베다 성전의 '지식부', 곧 <우파니샤드>를 중시하는 학파이다.

8. 베단타(Vedanta) 학파는 힌두교(브라만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이 학파는 과거 1,000년 동안 다른 학파의 활동을 누르고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의 '끝' 혹은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엇는데, 이는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베단타'라는 말이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베단타학파는  샹카라, 비슈누파, 쉬바파로 구분된다.

이 학파의 근본경전은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이 경전에서 말하는 내용은 브라흐만과 합일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을 얻는 방법으로, 명상을 통해서 브라흐만을 알게 되는 지(知)를 얻고, 이 '지'를 얻은 사람은 죽은 뒤에 신의 길을 따라 최후에 브라흐만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한다는 것이다.

이 <브라흐마 수트라>는 문구가 대단히 간결해서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러 주석서가 나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샹카라, 라마누자, 마드바이다. 샹카라는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했는데, 이는 영혼과 물질세계는 브라흐만이 나타난 것이어서 영혼과 물질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현설'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일원론에 속한다. 라마누자는 전변설(轉變說)을 통해서 영혼과 물질세계가 신에 의존해 있는 것이지만, 영혼과 물질세계에는 독자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라마누자는 영혼과 미세한 물질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라마누자의 주장은 2원론에 속한다. 마드바(Madhva)는 '가현설'과 '전변설'을 부정하고 현실의 차별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마드바는 다원론을 주장하였다. 라마누자와 마드바는 비슈누파에 속한다.  143-148


자이나교의 사상

초기 자이나교의 가르침은 7체(諦)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혼(jiva)은 모든 만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이 영혼은 청정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정한 영혼이 업(業)에 의해서 속박당해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영혼에 반대되는 비영혼(非靈魂, ajiva)을 설명한다. '비영혼'에는 5가지가 있다. 그것은 물질, 법, 비법, 허공, 시간이다.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법(法)은 원자가 움직이게 하는 원리이며, 비법(非法)은 원자가 정지하게 하는 원리이고, '허공'은 우너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다. '시간'은 초기 자이나교에서 조금 뒤에 추가된 것인데, 원자가 시간 속에서 작용한다는 의미다. 셋째, 유입(流入, asrava)은 몸, 이브 마음의 업으로 미세한 물질인 비영혼이 영혼을 둘러싸는 것이다. 넷째, 계박(繫縛, bandha)은 영혼을 둘러싼 미세한 물질이 미세한 신체를 이루어서 영혼을 속박하는 것이다. 다섯째, 제어(制御, samvara)는 영혼이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업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미 들어온 업은 없애는 것이다. 과거의 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고행이 필요하다. 새로운 업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 위해서는 '5대서(五大誓)'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살생하지 않는 것, 진실한 말을 하는 것, 도둑질하지 않는 것. 음행하지 않는 것, 무소유이다.

여섯째, 지멸(止滅, nirjara)은 수행이 완성되어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곱째, 해탈(解脫, moksa)은 업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156-157


자이나교단은 뒤에 백의파와 공의파로 나뉘어졌다. 백의파(白衣派)는 흰옷을 걸치는 종파이고, 공의파(空衣派)는 옷을 걸치지 않는 종파이다.  157


불교는 한국인에게 친밀한 종교이지만, 인도의 불교에 대해서 한국인이 잘 알지는 못한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불교는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이다. 물론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인도불교를 근간으로 한 것이므로 크게 보아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분명히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인도 불교에서 논리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또한 카스트제도를 비판하는 진보적 성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161


불교사상의 전개 과정

1. 초기불교의 사상은 3가지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사성제(四聖諦)이다. 이는 4가지 성스러운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고(苦)'는 인생의 현실은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집(集)'은 인생이 고통스러운 원인은 잘못된 욕망에 있다는 것이며, '멸(滅)'은 인생의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고, '도(道)'는 인생의 고통을 없애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도'는 팔정도(八正道)로 구성된다.

둘째는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이다. '법인'은 불교의 징표, 불교의 증거라는 의미다. 이는 제행무상 등의 3가지 또는 4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가르침을 올바른 불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라는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이므로 그만큼 이 명제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모든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무아(無我)라는 것이고, 열반(涅槃)의 경지는 고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연결해서 보면, 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집착하면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에는 진정한 자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것이 변하고 고통스럽고 무아임을 자각할 때, 진정한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이다.

셋째는 연기설(緣起說)이다. 이는 사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상호 의존성'을 말하는 것인데, 경전에서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멸(滅)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滅)한다"라고 한다. 이는 이 세상 어떤 사물도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삶이 가능한 것은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물건들은 내가 돈을 주고 사용하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철저히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상호의존성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이 연기설을 더욱 발전시켜 12항목의 연기설을 주장한다. 그 요점은 중생이 고통을 겪고 윤회하는 원인은 지혜가 없는 무명(無明)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경전은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역본과 팔리어본이 있다. 팔리어본은 '니카야(Nikaya)'라고 한다.

2. 불교 고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어진다. 이는 계율문제를 두고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누어진 것이다. 상좌부(上座部)는 보수파인데 불타가 정한 율(律)을 그대로 지키자는 쪽이고, 대중부(大衆部)는 진보파로서 불타가 정한 율이라고 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10가지 문제를 놓고 대립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핵심적 사항은 금은을 보시(기증) 받을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상좌부는 금은을 보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쪽이고, 대중부는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금은을 보시 받아도 된다는 쪽이다. 이렇게 2개의 부파로 나누어진 다음에 18개 부파로 나누어져 모두 20개 부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로 전파되었다. 

3. 대승(大乘)불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 활발한 힌두교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출현한 불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普薩)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범부(凡夫)보살인데 대승불교경전에 나오는 미륵, 관세음, 문수, 보현보살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대보살은 이미 수행을 완성한 존재이고 한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 대보살은 힌두교에서 토착신앙을 포섭하고 대중성을 확보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제시한 것이다. 미륵(彌勒)은 미래에 태어난다는 부처님인데, 다음 생(生)에 부처가 되는 것이 결정되어 있고, 현재는 보살로서 도솔천(兜率天)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慈悲)를 상징하는 존재이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실천행(實踐行)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에도 변화가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불타의 개념이 일반화하였고, 구제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불타가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중에서도 아촉불(阿?佛),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는 많은 사람이 귀의하는 대상이었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경전을 제작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전>, 반야경전 계열, <유마경>, <승만경>, <해심밀경>, <열반경>이다. <화엄경(華嚴經)>은 불타가 되는 수행단계를 50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화엄종(華嚴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법화경(法華經)>은 소승(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조화를 말하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은 중생을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한다는 내용의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정토종(淨土宗)의 근본경전의 하나가 되었다.

반야(般若)경전 계열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공(空)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경전이다. <유마경(維摩經)>은 출가하지 않는 재가 거사 유마힐(維摩詰)이 등장해서 불교이 가르침을 말하는 경전이다. 이는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유마경>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승만경(勝?經)>은 출가하지 않은 재가의 여인 승만(勝?) 부인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가르침을 말한 경전이다. 이것도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고,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성향이 강한 인도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경(涅槃經)>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경전이다. <열반경>은 경전이지만 논서의 치밀함을 보이는 경전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인도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으로 심층무의식으로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하고 있다. <능가경(楞伽經)>은 모든 중생이 여래(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사상과 유식학파의 사상을 결합한 경전이다. 이 <능가경>은 중국에 전해져 초기 선종(禪宗)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이 되었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2대 학파가 있다. 그것은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이다. 중관(中觀)학파에서는 공(空)사상을 강조하고 범부의 집착을 논리적으로 깨뜨리려고 하였다. 그 대표적 저술이 용수의 <중론(中論)>이다. 유식(唯識)학파에서는 범부의 마음에 주목해서 8식설을 주장하였다. 세친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 유식학파를 대표하는 저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승불교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전파되었다.

4. 기원후 7세기와 8세기에 접어들어 힌두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주류 문화가 되자 이에 대응하고자 나타난 불교의 흐름이 밀교(密敎)이다. 대승불교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이다. 밀교를 대표하는 경전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이다. <대일경(大日經)>은 중관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고, <금강정경(金剛頂經)>은 유식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다. 그 뒤를 이어서 무상유가(無上瑜伽) 탄트라가 등장했는데, 이는 인도의 탄트라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밀교 계열의 가르침이 티베트에 전래되었다.  161-166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점

불교는 인도의 문화 토양에서 자라났지만, 힌두교(브라만교)와는 4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첫째, 불교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와 남녀차별을 부정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인도의 문화와 토양에 국한되는 '인도의 종교'로 머물렀지만, 불교는 인도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는 세계 종교로서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국제적인 포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힌두교에서는 통일된 교리가 없고 믿음의 체계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면, 불교는 가르침이 명료하고(철학적 내용은 복잡하지만) 교리체계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넷째, 힌두교는 통일된 조직이 없는 느슨한 종교이지만, 불교는 교단을 구성하고 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종교활동과 포교활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166


시크교

시크교는 힌두교에 기초를 두고 이슬람교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이 두 가지 사상을 결합시킨 개혁종교이다. 이 종교를 처음 일으켜 세운 사람은 나나크(Nanak, 1469~1539)이다. 그는 카비르(Kabir, 1440~1518)의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이슬람교 신비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나크는 진정한 종교는 내면성에 있고 또한 진정한 종교는 신을 만나기 위한 심성의 준비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형식적인 의례를 부정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고행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나크는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카스트와 성적 차별도 부정하였다. 그래서 시크교에서는 어떠한 카스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동일한 음식물을 먹고 음식물에 관한 금지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또한 나나크는 내면적 청정의 중요성, 곧 종교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그래서 술, 마약, 담배를 금지하였고, 보통의 직업에 종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자아에 결사적으로 집착하여 탐욕과 분노와 집착과 자만에 지배당하고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러한 자기중심성을 극복할때 평호를 얻어 자기 자신의 본래적 원만함에 돌아오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신(神)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다.


Posted by WN1
,



머리글 

'인도'라는 국가의 명칭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명칭의 친숙함만큼 인도의 실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용어가 친숙하면 그것에 포함된 의미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가 인도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은 아닐까.

인도는 국토의 크기가 남한의 33배이고 인구는 22배에 달한다. 국경선의 길이가 14,103km, 해안선이 7,000km인 무척 큰 나라이다. 4개 주요인종이 살고 있으며 사용되고 있는 언어만 해도 300개가 넘고 있다. 우리가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인도야'라고 지리적 한계는 말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습과 문화를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렵다. 바꿔 말한다면, 인도와 인도인을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것보다는 '이것은 아니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쉬울 정도로 복합적이고 다양한 나라이다.

따라서 인도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체적인 윤곽만을 파악하는 것도 한국인의 입장에서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정말 엄청나게, 예측 불가능하게 다르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인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방법'보다는 '인도를 바로 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인도를 바로 볼 수 있는 자세'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이 아니라 폭넓고 포용성 있는 문화적 상대 주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인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1년 동안의 강우량이 6월에서 9월 사이에 집중된다. 따라서 이 3개월 동안의 강우량에 의해서 농작물을 비롯한 기타 산업의 성태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우량이 너무 적을 경우에는 기근이 엄습하게 되고 너무 많은 경우에는 수백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하게 되는 홍수의 피해를 입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상 몬순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도인들의 삶과 생활을 지배해 왔다. 비가 적당히 내리면  한 해 동안의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인들이 숙명론적인 인생관을 가지게 된 데는 이 몬순의 영향이 매우 크다.  23


돼지의 경우 인도에서는 우리에 가두지 않고 방복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돼지들의 자유를 위해 방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방목할 뿐이다. 새의 경우에도 먹을 수 있거나 판매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이쓴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인도인들은 동물을 사랑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관심할 뿐이다.

자연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을 보고 싶다면 인도 여행의 테마를 동물보호구역으로 잡아보는 것도 무척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100개 이상의 국립공원 등에는 숙박시설 등이 그런대로 갖추어져 있고, 최근에는 각 주정부가 관광수입 확대를 위해 각종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있으므로 생생한 동물의 세계를 직접 볼 수 있다.  27


인도의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뻔잡(Punjab)사람은 신체 건장하고 용감하며 실질적이고 기계에 잘 적응한다. 또 북동부의 벵갈(Bengal)사람은 지적으로 우수하고 흥분하기 쉬우며 예술적 감정이 풍부하다. 남동부의 첸나이(Chennai)사람들은 보수적이고 종교적이지만 간혹 과학적 재질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역 주민 간의 기질상의 차이는 무척 뚜렷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31


현재(2006년) 인도의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324명으로 남한의 인구밀도 419.3명에 비하면 훨씬 낮은 편이다.  32


언어가 많은 인도에 정작 국어가 없다. 다만 공용어가 있을 따름이다. 

공용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중앙정부의 공용어로 힌디어이며 부공용어로 영어가 쓰인다. 

다른 하나는 주(州)의 공용어이다. 주의 공용어는 각 주에서 결정한다.  36


일반적으로 종교는 교권체계의 유무에 따라 조직 종교와 비조직 종교로 분류된다. 조직 종교의 대표적인 예는 카톨릭교회로서 교황을 정점으로 교회의 운영과 교리의 해석 등 종교적 업무가 처리된다. 하지만 조직 종교는 신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신자들의 신앙이 일상생활과는 분리된다는 단점도 있다.

비조직 종교의 예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들 수 있다. 이들 종교에서는 교회라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고 각지에 산재해 있는 사제들이 독립적인 현태로 신자들을 관리한다. 비조직 종교는 무척 산만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신자들의 신앙이 일상생활에 곧장 연결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조직 종교인 힌두교는 인도 사회의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인도의 사회제도와 문화, 그리고 예술의 대부분은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 형성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도 힌두교이다. 따라서 힌두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도와 인도인을 전혀 이애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5


힌두교는 궁극적으로 '범아일여(梵我一如)', 즉 내 자신이 신과 하나 되는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52


신과 인간의 관계라는 궁극적인 문제가... 끝없는 사유와 자기개발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힌두교는 보고 있다.

힌두교의 철학적 사유는 이 '고통'에 대한 진상의 해명으로 일관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아 왔다.  53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 집단들이 있지만 종파주의의 중심이 되는 것은 힌두와 무슬림이다.  66


1954년 이래 인도에서는 37시간에 1번꼴로 종파폭동이 발생하였고, 30,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폭동에 참여하여 살상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67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카스트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오온 것은 바르나(varna)와 자띠(jati)이다.

바르나는 카스트를 광범위하게 구분하는 인종적, 문화적인 분류이고, 자띠는 카스트를 기능적, 지역적, 혈연적으로 분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브라흐만, 끄샤뜨리야, 바이샤, 슈드라의 네가지 바르나와 약 3,000개의 자띠가 있다.  70


인도인들은 긍정의 뜻을 나타낼 때 고개를 우리처럼 앞뒤로 끄덕이지 않는다. 고개를 좌우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갸우뚱하는 것이 긍정의 표시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인도인들이 자주 입에 담는 것은 'No problem!'이다  202


'너희들이 사용하는 No problem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냐?'

한 인도인 친구는 '확실하게 답변을 할 수 없을 때 No problem을 사용한다'라고 답했고 다른 친구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꼭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해보자'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203


인도 중앙정부는 도시를 인구의 크기로는 여섯 등급으로 분류하고, 인구 10만 명 이상인 1급은 'city'라고 부르고, 그 이하는 'Town'이라고 부른다.  221


2001년 기준으로 1급 도시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은 뭄바이로서 1,636만 명, 그 다음인 꼴까따는 1,321만 명이고, 수도인 델리에는 약1279만 명이 거주한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는 1971년의 9개에서 1991년에는 23개로, 그리고 2001년에는 35개로 증가하고 있다.  221-222


인도 도시 중 상당수는 영국 식민지 시절 착취의 거점으로 형성되었고, 이 부류에 속하는 도시들을 '식민지형 도시'라고 부른다. 즉, 식민지를 유지하는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던 델리, 유럽과 연결되는 식민지 최대의 상공업도시 뭄바이, 황마와 차의 수출항이었던 꼴까따, 면화의 수출항이었던 첸나이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 식민지형 도시외에도 전통적으로 종교의 중심지였던 바라나시 등의 종교도시, 자이뿌르와 같은 성채도시 또 빠뜨나처럼 고대왕궁의 수도였던 도시들도 있다. 하지만 정치 사회 산업의 중심지 역할은 식민지형 도시들이 맡고 있다.

독립 이후에도 새로운 도시들이 태어났다. 산업발전에 의해 형성된 이 도시들은 현재 IT산업의 중심지인 방갈로르, 공업도시 란치, 독립 후 오리사주의 주도로 등장한 부바네슈와르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벵갈로르는 최근 5년간 연 평균 40만 명씩 인구가 증가하는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222


힌두교의 생각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속에서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고 있다. 이 우주의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브라흐마의 하루는 낮과 밤 두 개의 깔빠(Kalpa:불교의 검에 해당함)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깔빠는 인간의 기준으로 43억 2천만 년에 해당된다.  240


인도인과 약속을 하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늦게 나타나는 것은 보통이고, 하루 뒤에 나타나는 일도 잇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으면 공통적으로 "시간은 무한한 것 아니냐. 기다린다는 것은 만남을 위한 기대감이다. 그 기쁨을 네게 하루 더 준 것이다. 시계라는 것을 신처럼 받들지 말아라.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등의 설교를 들을 수도 있다.

기차도 버스도 한 두 시간 늦게 출발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249


인도 음식은 기본적으로 남부에서는 쌀밥, 북부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인도식 빵 로띠(roti)가 주식이고, 그 외에 콩으로 만든 달(daal), 야채 요리인 사브지(sabzi), 그리고 걸쭉한 과일야채 소스인 짜뜨니(catni) 등이 반찬으로 첨가된다.


음식에 사용되는 향신료는 3,000여 가지에 달한다.  252


3,000여 가지에 달하는 인도의 향신료 중 절대다수가 우리들로서는 구경은 커녕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특히 어떤 향신료는 화장품 냄새가 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휘발유 맛이 나는 것도 있다.  253


35도가 넘는 더위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환경에 사는 인도인들로서는 가능한 한 자극적인 맛을 개발하여 체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도인들의 향신료에 대한 집착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254


인도에서 고기(meat)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염소, 양, 닭의 고기를 뜻한다

신선한 해산물을 질길 수 있는 곳은 해안선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서해안의 뭄바이에서 께랄라주에 이르는 해안지역으로, 아라비아 해에서 나오는 풍부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이 지역에 가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것은 새우커리이다. 

생선으로서는 스내퍼라는 우리의 옥돔과 비슷한 것이 있는데, 튀긴 것을 주문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257


고기나 생선류는 가능한 한 크고 좋은 식당에서 먹는 것이 안전하고, 의심스러운 곳에서는 채식으로 만족하는 것이 안전하다.  258


커리라는 말 자체는 인도음식에 들어가는 다양한 향신료들을 표현하기 위해 영국인들이 만든 단어에 불과하다.

인도식 요리법에는 가장 중요한 향신료, 즉 기본적인 향신료가 25가지 있는데 그것들이 합쳐져 우리가 아는 커리의 맛을 내는 것이다.  265


중소 도시에서도 중국음식점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69

버스를 식당차로 개조하여 하는 중국집도 있으니 그곳을 이용해도 된다. 뜨뜻한 국물로 속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곳도 중국집이다. '핫 앤 싸워 숲(Hot and Sour soup)' 또는 '완탕숲(Wantang soup)'이 좋다.  270


도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의 커피숍으로 가면 수프나 샐러드를 시키면 빵과 버터, 잼이 더불어 나온다. 빵도 한 두 조각 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바구니 채로 나온다. 가격도 절대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272


인도에서는 아프더라도 함부로 주사를 맞아서는 안 된다. 현대적이고 치료비가 비쌍 병원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주사기를 중기 소독하여 사용하거나, 한 번 사용한 주사기를 그저 깨끗한 물에 씻어 재사용하는 병원이 많다.

참고로 인도에는 570만여 명의 AIDS 보균자가 있으며, 그 중에서 75%가 남인도에 거주한다.  277


적리(이질의 한 종류임, 국내에서는 법정 전염병이고 발열, 복통, 혈액이 섞인 설사를 일으킨다. 세균이 입을 통해 전염된다.)의 위험성을 적게 하는 방법은 첫째, 생야채를 먹지 않는 것. 둘째, 체면 불구하고 야채를 생수로 씻어 먹는 것이다.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적리에 걸렸을 경우 즉시 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주사기를 가져갔을 경우에는 주사도 맞고, 안 가져갔을 경우에는 약만 처방해 달라고 하면 된다.

적리는 인도의 풍토병이기 때문에 치료약도 발전해 있으므로 치로만 받으면 금방 낫는다. 정로환으로 버텨보려 하다가 생명에 위협이 올 수도 있다.  278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가 볼결하다고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나도 같이 더러워지지'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다. 왜냐하면 인도에 가서 마시는 공기, 밟는 땅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오물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혼자 깨끗한 척 하더라도 진흙탕에서 헤엄치면서 진흙을 몸에 안 묻힐는 격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286


인도에 가면 여러 가지 황당한 일들을 당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일어나는 일은 택시 등의 교통수단 운존기사들의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씌우기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건 마찬가지겟지만 다른 사람에게 속는다는 것은 무척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바가지 요금 대문에 택시기사를 상대로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뿐이다. 다른 나라의 여행객들, 예를 들어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요구하는 대로 돈을 줘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인도에 대해서 사전지식이 없어서 바보처럼 속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인도여행 붐이 일어난 것은 불과 10년이 약간 넘었지만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수십 년 전부터 인도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만큼 정보나 여행안내서도 풍부하다. 인도인들의 행태에 대해 우리보다 많은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음엗 그렇게 무심한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행에 대한 인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다. 그들은 여행에서 즐기는 것에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불쾌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므로 모르는 척 속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단순히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놀기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거주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구경거리나 놀거리만 생기면 산점주인은 상점 문을 닫고 대장장이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 장소로 달려갔다고 한다. 어떤 면으로 보면 여유 있는 자세를 가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는 데도 여행하는 데도 목적이 있어야 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학생에게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나?'고 물어야만 훌륭한 교수이지, '잘 놀다 왔어?'하고 물으면 학생에겐 관심이 없는 교수가 된다. 또 학생 입장에서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고, 이것을 내 장래를 위해 이렇게 사용하겠다'고 대답해야만 성숙하고 미래가 밝은 학생으로 주위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저 '재미있었어요'하고 대답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간으로 취급당한다.  305-306


'투입=산출'이라는 기계적 사고는 '즐기기 위한 여행'을 '투쟁을 위한 여행'으로 변형시킨다.


인도 전체 사회가 보다 세련되어지고 합리화되어야만 해결되는 일이지 우리가 목청을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307


인도에 가면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고 분통이 터지는 일을 많이 당하게 된다. 또 인도인들의 뻔뻔스러움과 교활함, 그리고 말 바꾸기 등은 가증스러움을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도인들의 이런 행태가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잘 알다시피 인도는 오래전에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문명이란 인간의 삶을 제도화시킨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그 제도를 파괴하려는 시도도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이것은 법률이 세분화되고 구체화되면 그 법망을 피하려는 시도도 교묘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다시 말해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의 순박함을 상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염증을 느끼는 인도인드르이 행태를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가치판단을 내리기전에 이것도 인도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308


사실상 인도는 우리가 상실했거나 상실해 가고 있는 많은 것을 지금도 보존하고 있다. 이것을 흔히 '췬성'이라는 말로도 표현하지만 우리에게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6.25때 배곯았던 이야기를 눈물을 흘리면서도 즐겁게 이야기하는 심리와 유사한 것이다. 단, 그 사람들에게 그 당시와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낭만주의는 이런 면에서 현실을 호도하고 잘못된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인도도 우리처럼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우는, 보통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317


인도에 오는 우리 여행객들 중 시내버스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왜 아직 차장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는 우리처럼 승객이 요금함에 돈을 넣게 하면 될 텐데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운영하다니 인도가 한심하다는 오만함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더불어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다는 합리적 측면을 우리 여행객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318


'우리 눈 속의 들조'인 졸부적 오만함에서 비롯되는 즉흥적 속단을 버리고 '왜?'라고 묻는 겸손함과 탐구심을 갖는다면 인도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319




부록

'Water Purification Tablet' 을 약국에서 구입하여 한 알을 1리터의 물에 넣고 30분 뒤에 먹으면 안전하지만 물맛은 수영장 물맛이다.  332


인도에의는 님부(Nimbu)라고 부르는 탁구공보다 약간 작은 노란색의 레몬이 있다. 큰 레몬에 비해 비타민 C의 함량이 100배, 강력한 살균력, 그리고 해열작용을 한다. 따라서 아침 식사 후와 저녁식사 후, 님부 반 개를 물 한 컵에 짜서 먹으면 피로회복에 큰 효과가 있고, 약간 불결하게 조리된 음식에도 뿌려 먹으면 살균작용도 한다. 또 갑자기 열이 나지만 병원에 곧 갈 형편이 되지 못할 때에는 님부를 몸에 바르면 열이 내려가기도 한다.  335


인도를 여행하면 흔히 두 가지 점을 느끼게 된다.

첫 번째는 '인도가 너무 좋다'라는 것이다. 이때 자기가 인도를 좋다고 느끼는 이유를 아주 정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아. 인도가 아니라 다른 나라로 여행을 했다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외국여행이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일단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뜨면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오늘은 뭐하고 놀지?'가 되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도가 좋다'라고 느낀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인도는 우리나라와 많은 면에서 다르고 또 많은 면에서 불편하다. 느려 터진 인도인들의 일 처리 솜씨, 불결한 환경,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상인, 끝없이 달려드는 거지와 사기꾼들 등으로 짜증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화를 낸다거나 싸움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싸움의 경우에는 세계 어느 나라 경찰이든 자국인의 편을 들게 되어 있으므로 이쪽에서 아주 심각하고 명백한 피해를 받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우리에게 불리하다.  344

Posted by WN1
,



집 책장에 책들이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책장은 시위를 벌인다. 근래에 나오는 책장은 속은 비었을지 몰라도 일단은 보기에 두껍다. 몸통도 뼈대도 모두 두꺼워서 책을 꽂아도 든든하게 버틸것 같이 보인다. 

근데 집에 있는 책장은 다들 오래된 것들이라 몸통은 작지 않지만 뼈대가 다들 얇다. 그래도 책을 가지런히 꽂아두면 보기 좋다. 하지만 책을 가지런히만 꽂아둘 수가 없다. 윗칸과 아랫칸 사이 비는 공간에 책을 쌓아서 넣는다. 보기 좋게 색상도 좀 맞추고 꽂아 두었던 책들은 이미 무너졌다. 높이가 비슷한 것들끼리 짝을 지어서 꽂고 쌓아야 더 많이 들어간다. 

빈곳없이 쌓아넣었다. 모두 채우고 나서 보니 책장이 그리 크지 않게 여겨진다.('너 책 많다는걸 은근히 말하고 싶은거냐?'는 말이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면 그리 많지 않다. 혹 책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똑똑하거나 지혜로워진다면 빚을 내서라고 책을 쌓아 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건 누구나 알고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게다. 그러니 지금 나는 책이 많고 적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이러고 나니 시간이 갈 수록 책장이 수평이 아니라 아래로 볼록해져 가는것 같다. 책장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럼 책장을 사면 되지 않냐고? 그렇지 그러면 되는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장 사는데 드는 돈을 너무 아까워 한다. 그렇다고 돌아다니며 버린 물건 줍는 스타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책장은 누가 버린게 있으면 주워오고 싶다. 아니 실제로 주워 온것도 있다. 

물론 나름대로 기준을 두고, 기준에 맞는 책장일때만 들고 온다. 오래되든 아니든 일단 외관상에 깨끗해 보이는것으로 주워온다. 쉽게말해 중고 가구점에서 팔만해 보이는 책장일때 들고오는 거다. 그럼 누가 버리겠느냐.. 희안하게 나는 그런 책장을 주워와서 깨끗이 닦아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길을 다닐때 종종 쳐다 본다. 

부디 돈 많은 분들이 자주 버려주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현재 책장이 모자란다. 그래서 읽어야 하는 책들은 그냥 한켠에 쌓아두고 있다.

그런데 하필 그녀석들이 책상 옆쪽으로 벽에 붙어 쌓여있다. 거기에 놓을 수 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책상에 앉으면 그녀석들이 자꾸 쳐다 보면서 있다. 그리고 책상 위 책들의 반대편에는 컴퓨터가 있기도 하다. 책상에 앉으면 양쪽에서 유혹의 신호를 마구 보내는데 나는 매번 컴퓨터의 유혹에 더 잘 넘어가버린다. 컴퓨터를 끄고 책상에서 일어나면 책들이 나를 쳐다 보고있다는 사실에 뜨끔한다. 그래서 최근에 카페나 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책들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한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좀이 쑤실때쯤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책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저자의 책들을 꽤나 읽어본것 같은데 이 책은 눈에 익은 이름이긴 한데 읽은 기억이 나질 않는것도 같아서 펼쳤다. 

옮긴이의 표현에 의하면 '펭귄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의 책'이란다.

이 표현은 분명 본 기억이 있다. 시리즈로 또 내는것인가 싶어서 목차를 본다. 흠... 분명 이 내용들은 읽은 것 같다. 

저자의 책이 오래전에 나왔다 해도 나는 그리 오래전에 저자의 책을 읽지 않았기에 도서관내의 컴퓨터로 블로그에 접속해서 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나오질 않지만 다른 이름의 책이 나온다. <동물원에 가기>이다. 

클릭을 해보니 목차가 같다. 근데 출판사와 출판연도가 다르다. 아... 그랬구나! 나는 이 책을 이미 읽어보았다. 내용은 같으나 제목이 다른 당연히 출판사가 다르고 아마도 옮긴이도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저자의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기에 이렇게도 여러번 출판을 하는걸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책 중에 이 책이 아닌 다른 책도 한 권 더 본 적이 있다. 

일전에 한번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키스하기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란 제목과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정도 이다. 또 다른 책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출판사와 옮긴이 그리고 출판 연도가 다르기에 한글판의 표현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치만 나는 그 정도까지 내용을 보는 실력이 있지 않기에 똑같게만 보인다..표현 하나하나의 차이와 감정과 느낌을 알 수 있는 해안을 가져야지 알 수 있을 텐데....ㅎ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위의 동일한 저자의 다른 제목의 번역서라는 이야기인데, 왜 관련 없는 서론을 길게 뺐을까하는 의문이 나도 든다.

근데 이 책을 보게되면서 글을 올리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로 표현해 보았다. 

책을 검색해서 내용이나 감상을 보고자 하셨다면 죄송하다. 


사실 많지 않은 책장에 빼곡히 쌓아둔 책 중에 이런 책들이 몇 권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무슨 제목이든 책을 읽었다는게 중요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 번역자의 책을 읽었는냐가 중요할 수도 있고, 언제 읽었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 읽었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다빼고 그냥 없는 살림에 책장이 책들을 모두 품을 수 없는 상태의 나에게 동일한 내용의 책이 여러권있는게 어찌보면 부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슬픔이 주는 기쁨>과 <동물원에 가기>는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내용의 옮긴이와 출판사와 출판연도가 다른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밑줄이 보고 싶으신 분은 <동물원에 가기> 제목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다.

좋은 하루 되시길~~

Posted by WN1
,



추천의 말 - 내 인생 최고의 책 (피코 아이어)

로힌턴 미스트리의 이전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뉴욕의 한 영화 제작자는 찰스 디킨스를 새로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적절한 균형>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 단언한다. 

소설이 폭로하는 내용은 봄베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런던이나 뉴욕에 사는 누구에게라도 충격적이다. 

비평가이자 동료 작가며 펜이기도 한 내가 섣불리 꺼내기 힘든 말이 바로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거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면서 당신은 혼잣말로 이 책이 재미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행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식사를 잘 할 것이고 본인의 무감동에 대해서 작가를 탓하고 그의 지나친 과장과 상상의 비약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비극은 허구가 아니라 모두 진실입니다."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중에서



나라얀이 고향 마을로 돌아온 지가 6개월쯤 되던 어느날 아침, 벙기 카스트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오두막집으로 오고 있었다. 밖에서 불 위에다가 물을 끓이던 루파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았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그를 막아서며 그녀가 소리쳤다.

"재봉사 나라얀을 찾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남자가 누더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라고?" 그의 뻔뻔함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봉사고 나발이고 그 입 다물어! 끓는 물로 네 놈의 더러운 몸을 지져 줄 테다! 내 아들은 너 같은 놈들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나라얀이 모두막집에서 나오며 소리쳤을 때 남자는 달아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남자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보복이 따를까 봐서 무서웠던 벙기는 더 빨리 달렸다.

"이봐요. 돌아와요! 괜찬하요!"

"다음에 오겠습니다. 내일쯤요." 겁에 질린 남자가 말했다. 

"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오세요." 오두막집으로 돌아간 나라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무섭게 노려보는 어머니를 무시해 버렸다.

"나한테 고개 젓지 마!" 화가난 그녀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내일 다시 오라고 왜 부른거야? 우린 그런 낮은 카스트 사람들을 상대하면 안 돼! 사람들 집이ㅔ서 똥이나 실어 나르는 작자의 몸 치수를 어떻게 재겠다는 거야?"

"전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전 브라만이든 벙기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게 네 생각이냐? 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자! 브라만은 돼도 벙기는 안 돼!"

그날 저녁 루파는 둑히에게 아들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네 엄마 말이 맞다." 그가 나라얀에게 말했다.

"왜 저에게 재봉을 배우라고 보내셨던 거죠?"

"무슨 그런 멍청한 질문이 있냐. 네 인생이 잘되라고 그런 거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니?"

"그럼요. 카스트가 높은 사람들이 우리를 함부로 다루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그들처럼 행동하고 계세요. 그런 걸 원하신다면 전 읍내로 돌아가겠습니다. 전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루파는 그의 최후통첩에 깜짝 놀랐으며, 둑히가 그녀를 보면서 "쟤 말이 맞아"라고 하자 공포에 질렸다.  196-197


둑히는 나방이 등불 유리를 뚫고 들어가려고 연약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을 지켜봤다.  211


"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214


"쇠로 만든 선로가 아주 유용하죠."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발판 구실을 해요. 땅보다 높아서 똥이 쌓여도 궁둥이에 닿칠 않거든요."

"요령을 다 아는 모양이죠?" 그들이 바지를 내리고 철로에서 자세를 취할 때 옴이 이웃집 남자에게 물었다. 

"아, 이거야 금방 배우지." 그는 덤불에 있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저기 앉으면 위험해. 독이 있는 지네들이 저기서 기어 다니거든. 나라면 저기서 볼일을 안 볼거야. 그리고 덤불에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궁둥이에 가시가 잔뜩 묻는다고."  245


옴은 문간에 앉아서 어제 디나의 방에 떨어져 있던 헝겊들 가운데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던 시폰 조각을 만져 보았다. 매우 부드러운 천은 그의 손가락들 사이에서 매우 편한 느낌이 들었다. 왜 삶은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울 수 없는 걸까?


아이들은 썩은 음식 덩어리를 살피던 까마귀 한 마리를 쫓았다. 고집 샌 새가 날아가지 않고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주위를 돌아가 썩은 음식으로 되돌아오자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했다. 더럽고 발가벗고 굶주려 얼굴에는 부스럼이 나고 피부에는 뾰루지가 난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옴은 궁금했다. 이런 비참한 곳에서 웃을 일리 뭐가 있을까?  271


"불행, 카스트의 폭력, 정부의 냄담, 관리의 거만함, 경찰의 야만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울고 싶어질 때가 있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W. B. 예이츠)이 말했듯이 너무 오랫동안 희생하다 보면 마음이 돌덩어리가 되죠."  334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그것들을 새로 만드는 일은 즐겁다.'

"예이츠 인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선을 긋고 구획을 정해서 그것들으 넘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요. 때로는 실패를 성공의 징검다리로 삼아야지. 희망과 절망의 적절한 균현을 유지해야 하죠. 그렇지, 결국은 모든게 균형의 문제지."  336


"부잣집 자식아, 언제쯤 현실에 적응할래?"

"부자가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지벵 있는 화장실도 여기처럼 평범해요. 그래도 물통에 물은 있어요. 악취도 나지 않고요."

"문제는 넌 너무 많은 걸 보고 너무 많은 냄새를 맡는다는 거요. 여긴 대도시야. 눈 덮인 아름다운 산들은 없다고. 넌 계집애 같은 눈과 코를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해."  349


"우리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모두는 완벽한 세계를 즐기기 위해서 맞춰져 있지. 그러나 세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감각들에다가 가리개를 씌워야 하는 거야."  350


언젠가 아비나시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체스라고 말했었다. 지금 그는 심각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졸 세개와 차하나를 가지고 제때에 왕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디나 아주머니는 거실과 안쪽 방을 오가면서 재봉사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안흔 청량음료 경쟁자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녀깅 되자 방의 그림자가 짙어졌지만 마넥은 불을 켤 생각을 하지 않앗다. 체스에 대한 그의 변덕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어스름 속에서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었다.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었고 매우 복잡했다. 게임은 냉혹했다. 인생이라는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살육으로 인해서 인간들은 상처를 입는다. 아비나시의 아버지는 결핵에 걸렸고 글의 세 여동생들은 혼인 지참금을 기다리고 있다. 디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불행을 이겨내려고 발버등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상심했고 희망이 꺾였지만 어머니는 그가 다시 강해져서 웃을 것이라고 가장했고, 아들이 1년 후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지하실에서 콜라 가문의 콜라를 만들게 되면 그드르이 삶이 기숙학교로 마넥을 보내기 전처럼 다시 한 번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거라고 가장해싿. 그러나 그렇게 가장하는 일은 동심의 세계에서나 통용될 뿐, 결코 예전 같은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할 뿐이고 너무 절망적인 듯했다.

그거 접는 체스판을 세게 닫자 바람이 훅하고 불어와 얼굴에  닿았다. 눈물로 젖은 뺨에 부딪친 바람은 차가웠다. 그는 눈물을 닦고 체스판을 마치 풀무처럼 열었다가 다시 세게 접었다. 그런 다음 체스판으로 부채질을 했다.

디나 아주머니가 마침내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부르자 마치 감옥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396-397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은 없죠. 걱정 마십시오."  407


"소음도 사람과 마찬가지네요." 이시바가 말했다. "한 번 알고 나면 친구가 되죠."  465


"신은 죽었어요. 독일 철학자가 책에 그렇게 썼어요."

그 말에 그녀가 충격을 받았다. "독일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너도 그 말을 믿니?"

"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신이 거대한 이불을 만드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없이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이불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이불이 너무 크고 호란스러워서 디자인을 볼 수가 없고, 사각형과 다이아몬드형 그리고 삼각형이 ㄱ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아서 모든 게 무의미해진 거죠. 그래서 신이 그걸 버린 거죠."  495


"넌 그 사람들(이시바와 옴)하고 정말 친구가 된 거지? 그래서 고향 마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너한테 말해 준 거고."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재봉사들이 매일 여기 앉아서 일했는데 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 했어. 왜 그럴까?"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자꾸 어깨로 말할 거니? 너의 이불 만드는 신이 입 안에다가 혀를 꿰매기라도 했니? 재봉사들이 너한테는 말을 하고 나한테는 왜 말을 안 했냐니까?"

"아마도 아주머니가 무서웠겠죠."

"날 무서워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은 내가 그 사람들이 무서웠어. 수출 회사를 찾아서 나를 제쳐놓을까 봐서 말이야. 안 그러면 더 나은 일을 찾을까 봐서. 때로는 실수를 지적하는 일조차 두려웠어. 재봉사들이 가고 나서 나 혼자 밤에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았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날 두려워했다는 거지?"

"아주머니가 더 나은 재봉사들을 찾아서 자기들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려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미리 나한테 말해 주지 그랬니. 그랬으면 안심시켜 줄 수도 있었는데."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496-497



너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부숴야 해.(누스완의 말, 디나의 오빠)  541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수붜야 한다는 조금 전의 금언을 고민하며, 그는 머릿속에서 민주주의, 독재, 프라이팬, 불, 암탉, 계란 완숙, 식용유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뭔가 다른 말을 찾아보려고 했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은 민주주의라는 상표만 붙은 포악한 암탉이 낳은 달걀들로는 만들 수 없다는 말이었다.  543


살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원고 교정자 바산트라오 발믹은 이것이 삶의 일부라면서 희망과 정말의 균형을 찾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과 파괴도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 충분히 큰 냉장고만 있다면,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냉장이 불가능했다. 결국 모든 것은 상하고 만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633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시바가 말했다.

"이불이야 아무나 만드는 건데요 뭐, 당신들이 쓰고 남은 헝겊 조각들이에요." 그녀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조각들을 모으는 게 대단한 기술이죠."

"저거 봐요." 옴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맨 처음 작업했던 포플린 옷감이에요."

"기억나니?" 디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 옷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 생각나? 난 정말 재봉 천재 두 명이 나타난 줄 알았단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손가락들이 빨리 움직였습니다." 이시바가 웃었다.

"그 다음에 저기 오렌지색 줄무늬가 있는 노란색 칼리코 천을 작업했죠. 옴이 그때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요. 사사건건 싸우고 말다춤을 했잖아요."

"제가 언제요? 싸워요? 절대 그런 적 없는데."

"이 파란색, 흰색 꽃들 생각나요/ 제가 여기로 이사 왔을때 아주머니께서 만들던 치마에서 나온 거죠." 마넥이 말했다.

"정말?"

"그럼요. 그날 아시바 아저씨와 옴이 일하러 안 왔잖아요. 총리의 강제 모임에 납치됐던 날이요."

"아, 그래. 맞다. 옴, 이 예쁜 보일 옷감 기억나니?"

얼굴이 빨개진 옴은 생각나지 않는 척했다.

"아니, 생각 안 나? 어떻게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니? 네가 엄지손가락을 가위에 베어서 피를 흘린 천이잖아."

"전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마넥이 말했다. 

"네가 오기 한 달 전에 그랬지. 그리고 시폰도 재밌었었는데, 디자인을 맞추기도 힘들고 미끄럽다고 옴이 화를 냈었지."

이시바가 몸을 숙이더니 정사각형의 흰 삼베를 가리켰다. "이거 아시죠? 이 천을 가지고 작업한 첫날에 정부가 우리 집을 부쉈죠. 이걸 볼 때마다 슬퍼집니다."

"가위 가져와요. 잘라 버릴 테니까." 그녀가 농담을 던졌다.

"아닙니다. 그냥 두십시오.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는 삼베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과거를 떠올렸다."천 한 조각을 두고 슬프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보십쇼. 이 슬픈 조각이 저희가 베란다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 작업하던 행복한 조각과 연결돼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조각은 차파티를 만들 때 작업하던 거교요. 그리고 이 보라색 비단은 저희가 매운 양념 화다 과자를 만들고 다 함께 요리를 하던 때 작업하던 거죠. 또 이 조젯 헝겊 조각은 거지 왕초가 저희를 집주인의 깡패들로부터 구해 줬을 때 작업하던 겁니다."

그는 복잡한 법칙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라도 한 듯이 기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기억해야 할 법칙은, 천 한 조각보다 전체 이불이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와, 정말 멋지다!" 옴과 마넥이 박수를 치며 외쳤다. 

"정말 현명한 말이로군요." 디나가 말했다.  700-703


시간은 길이도 없고 넓이도 없어.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란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바로 우리들의 삶이 합쳐졌다는 거야."

"이불의 헝겊 조각들처럼 말이죠." 옴이 말했다.  703


인간들은 왜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걸까? 그것이 분노든 사랑이든 슬픔이든, 사람들은 항상 숨기려고 한다. 또한 어떤 인간들은 그들의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위대한 척한다. 그래서 작은 골칫거리에도 크게 분노하고, 미소와 웃음으로 충분한데도 히스테리를 부리며 웃는다. 모두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721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자, 다들 어서 모여!" 다섯 시가 되자 누스완이 즉시 그들을 불렀다. "카드놀이 시간이야."

그는 그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카드놀이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는 세 명 뿐이어서 누스완은 러미 게임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행복을 끈질기게 찾고자 했다.

"카드놀이가 인도에서 처음 시작된 거 알고 있어?" 그가 물었다.

"정말요?" 루비가 놀랐다. 누스완이 그런 얙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매우 감동했다.

"그럼, 그렇고 말고. 체스도 인도에서 유해된 걱야. 사실, 카드가 체스에서 시작됐다는 이론이 있지. 13세기에 중동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됐어."

"세상에!" 루비가 감탄했다.

그가 패를 다시 배열하더니 카드 한 장을 엎어서 버리고 외쳤다. "러미!"

같은 종류의 카드를 다 모은 걸 보여 주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분석해 주었다. "거기서 하트의 잭을 내면 어떡하니, 그래서 네가 진 거야." 그가 디나에게 말했다.

"모험을 해 봤어요."

그가 카드를 모아서 섞었다. "자, 그럼 누가 패를 돌릴 차례지?"

"나예요." 디나가 카드를 받았다.  820-821


"재미없는 인생이란 없는 법이오."(마넥이 돌아와 바산트라오(변호사)를 만났을때 변호사의 표현)  859




옮긴이의 말 - 인도의 판타지, 로힌턴 미스트리의 리얼리즘

<적절한 균형>은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쿄 등 다양한 종교는 물론이고, 계층과 종족 그리고 성정 배경이 확연히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인도 현대사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파해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 소설은 여러 개인들이 역사의 자장에 휩쓸려 맞게 되는 비극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이러한 인도인들의 비극이 어느 한 시절에 국한된 게 아니라 독립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비극임을 보여준다.  877


소설은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인 1975년에서 1977년을 주요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 항거해 재봉사가 되는 불가촉천민들, 새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큰 사업을 잃고 마는 파르시 기업가, 국가비상사태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가난한 학생 운동가, 신부 지참금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녀들, 구걸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 아이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거지 왕초, 빈민굴 판잣집조차도 빼앗기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가난한 사람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생식력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폭압적인 관리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독립을 전후한 파란만장한 인도 현대사를 증언한다. 디나, 마넥, 이시바, 옴프라카시는 이런 엄혹한 역사 앞에서, 특히 국가의 폭력 앞에서 개인은 도무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야만적인 국가 권력과 불화하는 개인들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로힌턴 미스트리만큼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인도의 현대 작가는 드물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독자들은 역사와 국가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진정한 인도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878


궁극적으로 <적절한 균형>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 적잘한 균형 감각은 무엇일까?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그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879

Posted by WN1
,



깨달음이란 동전을 넣고 자동판매기에서 꺼내는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다.  10


나는 우선 이 이미지의 '간파'와 '유포'의 혐의를 에드워드 사이드릐 오리엔탈리즘에 둔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식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인하는 데 기여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연구와 서양에 의해 재현되고 지지된 어떤 이념적 관점"을 말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진 본질적인 이미지, 서양이 상상하고 날조하는 동양을 말한다.  12


"먹고 먹히느냐가 동물의 왕국의 규칙이듯이 인간 세계의 규칙은 규정되느냐, 규정하느냐이다"라는 말을 기억한다면, 오리엔탈리즘은 힘센 서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힘없는 동양을 정의하고 구성한 담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보고 정의하는 자와 그에게 보여지고 정의되는 자는 대등하지 않다. 이 관계 자체가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함을 전제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지식이 권력이듯이 보고 말하고 판단하는 것도 권력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13


수동적인 동양은 역동적인 서양의 부정적인 '새김장식'으로 정의된다. 곧 서양이 우수하면 동양은 열등하며, 동양이 후진적/비합리적이면 서양은 진보적/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서양에게 동양이라는 타자는 서양의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른다. 따라서 열등한 동양은 서양의 우월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완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15-16


어쩌면 우리에게 인도는 부정해야 할 '동양'이거나 지우고픈 아픈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이 구성한 인도,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담론을 비판 없이 차용하고 복제하여 우리보다 발전한지 못한 인도를 우리의 '동양'과 타자로 바라보면서 한때 막강한 힘을 가졌던 대영제국의 공범이 되어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이다.  26


영국이 인도를 버정적을 인식하여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강화했듯이, 우리도 인도를 열등한 '동양'으로 타자화하면서 우리 자신을 발전한 서양과 동일시한다.  29


복제 오리엔탈리즘 - 박제 오리엔탈리즘..  


이 글에서 나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시대에 영국이 창조한 인도의 부정적 이미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복게되고 재생산되는지 살펴본다.  30


오리엔탈리즘은 말없이 누운 채 서양의 시선에 몸을 맡기는 수동적 동양을 가정한다.  31


나는 우선 이 책에서 영국과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과 여행기,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 등 문자화된 재현 수단인 텍스트를 분석하여 상상력의 렌즈와 보는 자의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박제(형성)되고,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복제되고 무의식적으로 수용(재생산)되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발전했는지 추적한다. 이는 우리가 인도를 보고 규정하는 방식을 따라가는, 우리 자아에 대한 일종의 탐구 여행이 될 것이다.  33


1898년에 길크리스트(John Gil-christ)는 인도의 정치조직과 저항의 잠재력을 감지하고 "우리가 이방에서 온 정복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과 "인도인은 언제나 우리를 이 나라의 이방인으로 여길 것"이며 "때가 오면 이 무해한 인도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추방할 것"이라면서 인도인을 믿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 불안과 두려움이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에 대한 '거리 두기'를 장려하게 했다. 마음소의 불안을 눅이는 방법은 문명화의 사명을 수행하는 영국을 이상적인 지배이념으로 만들고 인도를 부정적인 존재로 이분화하는 것이었다.  42


1885년, 듀퍼린 인도 총독이 런던의 인도부 장관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 "뱅골인 바부(babu; 지식인)들이 우리 영국인을 가장 짜증나게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저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보여주어서는 안된다는 장관의 말씀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들에게는 켈트족이 지닌 심술궂음과 교활함, 그리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44


인도와 인도인 역시 영국과 영국인이 아닌, 부정적이고 열등한 이미지로박제되기 시작했다.  46




비교적 인도에 동정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평을 받는 포스터조차도 서구 교육을 받은 인도인은 '인도인답지 않다'고 여겼다. 그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 곧 "철도와 우체국 그리고 학교 없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문명의 사각 지대에 있는 인도인들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동시에 영국이 가진 문명화의 사명을 정당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도시에 거주하며 영어로 말하고 서구 교육을 받은 인도 지식인에 대한 찬사는 어느 책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65


인도 여성과 영국 남성의 결합 ... 앵글로-인도인(Anglo-Indian)

영국인은 앵글로-인도인을 '검은 백인'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79


문명의 기준은 늘 영국이었다.

스틸은 20년이나 인도에 거주하며 인도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자부하였고, 수많은 글을 써서 인도의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펀잡 주의 한 여학교에서 장학사를 지냈고 여학교를 후원하기도 했지만, 그의 소설이나 글에는 영국과 인도를 분리해서 보는 인종 차별적 시선이 짙게 배어 있다.  100


저자는 제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한 뒤 간단히 '전근대'와 야만의 딱지를 붙였다.


인도를 사랑한 것으로 알려진 포스터도 인도인의 미학적 취향을 낮추어 보았다. 인도의 어떤 마하 라자(왕)가 "멋진 풍경과 건축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은 인도인에게 아주 드문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이런 미감은 영국인만 가지고 있다는 듯한 인종 차별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포스터는 인도-아리아 양식의 사원 건축의 좋은 예로, 천 년 전 인도인의 일상생활을 정교하게 묘사한 외벽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카주라호의 사원을 '악몽'이라고 표현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10세기경에 만들어진 카주라호 사원군은 건축과 조각,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인도의 훌륭한 문화유산이지만, 19세기의 영국인은 사원의 일부 외벽에 새겨진 외설적인 부조 때문에 그 가치를 낮게 매겼다.

이처럼 인도를 원시 수준으로 끌어내려 보려는 일은 번번했고, 다양했다.  101-102


박제된 이미지는 점차 인도의 본질로 여겨졌다.  106


인도의 캘커타를 무대로 제작된 역설적인 제목과 내용의 영화 <시티 오브 조이>를 보는 우리도 결국 가난한 인도인에게 가부장적 시혜를 베푸는 백인 주인공의 눈을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를 떠나서 직접 인도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백인 못지 않게 냉정하고 오만하다. 우리에게 인도인은 백인의 아프리카 흑(토)인처럼 '새까만 얼굴의 토착민'이고, 우리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113-114


존재의 분열 없이 그저 인도의 이방인으로 인도를 보고 경험하고 전처럼 이방인으로 귀국할 뿐이다. 인도를 찾은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교육을 받은 '문명인'이다. 그들은 가난한 원시인을 만나고 후진 사회를 누비면서 그들보다 우리가 낫다는 비교우위의 행복론을 확인하고 위안을 얻는다. 인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익숙한곳은 이쪽. 낯선 곳은 저쪽 식으로 구분하며 눅이는지도 모른다.  124


인도는 때로 깨달음을 준다

산과 강이 많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왜 인도의 강가나 히말라야에서 깨달음을 얻는가? 인도라는 공간의 영적 우수성 때문으로 볼 수도 있고, 어쩜 이질적인 인도가 주는 문화적 충격의 여파인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깨달음은 순수한 시인의 꾸미지 않은 자연에 동화되는 작용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와 일화가 너무 익숙하게 인도 전체와 연계되고, 그러면서 인도를 반(反)문명, 반(反)현대의 이미지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  131


인도에 가지만 인도인과 소통하지 않는 작가들에게 인도는 깨달을 것 없는 불모의 땅이다. 

환상의 인도는 있지만 실제의 인도는 없다.  133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인도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다. 그들의 삶은 행복할 것 같다. 비록 먹을 것이 부족하고 집이나 돈이 없다고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누가 불행하겠는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주인공들은 다른 소설과 달리 인도인들이다. 그러나 류시화가 "다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다"고 한 인도의 하층민들은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다. 정말 가난해도 행복한 걸까?  139


영국의 관점으로 인도와 영국의 차이와 유사성을 재고 판단한 영국인의 여행기처럼 우리 나라의 작가들도 우리의 기준으로 인도를 재고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와 닮은 것들은 진정한 인도의 모습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우리와 다르거나 우리보다 열등하고 혹은 이국적이고 토착적인 것들을 진정한 인도로 선택한다. 이렇게 선정한 진기하며 전설에 가까운 내용을 가지고 기존의 신비한 이미지에 덧붙여 인도를 더욱 신비하고 알 수 없는 나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구성된 타자로서의 인도는 점차 본질이 되어 '인도는 늘 그랬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로 규정된다. 결국,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타문화를 직접 탐사하고 기록해야할 여행기가 상상의 영역인 소설(fiction)과 유사하고 그 기능도 비슷해지는 것이다.  156


우리 여행기들은 한결같이 시간속에 정지된 인도의 이미지만 짝사랑한다. 어느 여행기에도 각 지방의 다양한 계층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거나 능동적으로 변화의 바람을 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60


인도 여행기들은 그 설명과 묘사는 달라도 인도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를 정의한다는 점에선 모두 비슷하다. 매혹이나 불쾌감을 통해 인도를 우리의 대상과 타자로서 확인하고, 타자에 대한 응시를 통해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163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에선 신문과 잡지와 같은 미디어는 앞에서 살펴본 두 장르, 소설과 여행기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165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긍정적인 것은 서양에서, 부정적인 것은 동양에서 기원한다고 여긴다.  206


이 책은 모든 서양을 제국주의자로, 동양을 그 무해한 희생자로 간주하는 본질주의의 시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211


조지 오웰 등의 일부 작가는 영국 제국주의를 야유하고 조소하는 작품을 썼고, 우리 나라에도 균형 잡힌 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인도가 우수하다는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영국이 창출한 인도의 이미지가 본질적인 것이 되어 우리의 자기 표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오늘날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수세기에 걸친 근시안을 넘어서 비뚤어진 심상의 지도를 바로잡고 거기에 새로운 이름을 써넣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우리'의 시선이 필요하다.  212


'신비한 인도'라는 정형화한 이미지를 부정하고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철한 시각으로 인도의 '신비하지 않은' 요소를 좀더 면밀하고 다양하게 분석하여 내보이는 것이이라. 

비록 이러한 움직임은 서양을 변방으로 내몰지는 못한다 해도 "'서양이라는 보편성'에 구멍을 내는 수단"은 되지 않을까.  213

Posted by WN1
,



서울의 교통질서는 인도 도시들에 비하면 양반 중의 양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교통질서와 관련해 인도 도시는 카오스 그 자체다.  21


인도인들은 끼어들기의 명수다.

경적도 어디서나 시끄럽게 빵빵 울려댄다. 트럭 등 인도 자동차 뒤에는 '앞지르려면 경적을 울려달라(Please blow horn)'는 문구가 적혀 있다.  22

근본적인 이유는 남보다 빨리 가고자 하는 기본 욕구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보다 앞서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몸에 배어 있다.

새치기를 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시한다. 새치기를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만, 지적당했다고 해서 줄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알았다"며 그냥 그대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심한 것도 생존본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24

인도인들의 '소탐대실' 상관습도 마찬가지다. 인도인들은 '한 달 뒤의 닭 한 마리보다 당장의 달걀 1개'를 선호하는 편이다. 

인도인들의 말 잘 하고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속성도 생존본능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인도인들은 말을 잘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듯 하지만 남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의 잘못을 말로써 지적하고 남 앞에 나서 무수한 다중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25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도인들은 갈등이 있어도 좀처럼 큰소리를 내거나 멱살 잡고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도 운전사들은 서로 먼저 가려고 아무 때나 들이밀고 새치기도 잘 하지만 남이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앞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상대에게 스스럼없이 양보한다.  27


뭄바이(옛 봄베이)의 다라비(Dharavi) 슬럼가는 아시아 최대로 알려져 있다.  31


인도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 법인장은 필자와의 만남에서 인도 경제의 급등세를 보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인도 국민의 평균 소득도 낮고 대도시 길거리에 사람드르이 행색은 누추해 한심해 보이지요. 그러나 인도는 지금 금융, 산업 등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요. 이런 추세로 가면 우리가 조만간 인도를 상전으로 모시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87


인도에 가면 출신에 관계없이 서로 잘 어울려 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도시에선 서로 다른 카스트 간 결혼도 점증하는 추세고, 부모들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하위 카스트가 상위 카스트와 식사를 하거나 함께 앉는 것이 철저히 금지됐으나 요즘은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고, 버스나 기차도 함께 탄다. 대중 사회가 되다 보니 타인의 카스트를 알 수도 없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145


하위 카스트가 상층 카스트가 되려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상층 카스트가 하층 카스트화하려는 움직임도 강하다. 정부가 하층 카스트에 부여하는 혜택 때문이다.

대도시에선 카스트 대신 교육과 실력, 경제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파워로 등장했다. 그래서 요즘 인도 사람들은 "돈이 카스트다", "교육이 카스트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높은 카스트로 태어났다고 해도 교육을 못 받고 돈이 없으면 하위 계층으로 전락한다.  146


브라만 중에 기도를 해주고 일어서는 노인이 있었다. 기도를 바치는데 매우 힘들어했다. 8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 노인에게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이 돌아왔다.

"내 나이 올해 81세인데, 늙어서 나도 이 일을 더 이상 안 했으면 하지요. 그런데 아들이 2명이나 있는데도 애들이 나 하나 부양을 못해요. 살아가기 위해선 이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지요."

다른 힌두교 사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원의 후문에는 브라만들이 늘어서 사람들에게 잔돈이 있으면 달라고 구걸했다. 어떤 브라만은 일자리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요리사, 심지어 시체를 화장할 때 쓰는 장작 나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간청했다. 이런 일은 불가촉천민 등 최하층 카스트가 하는 일인 데도 말이다.  162


인도 시골에서는 여전히 카스트가 힘을 발휘하는 곳이 많다.  165


인도에서 20년 가까이 생활한 프랑스 언론인 프랑수와 고티에(Francois Gautier)는 오늘날 브라만의 추락한 위상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그는 2006년 '브라만은 현대의 달리트인가'란 글에서 "오늘날 브라만들의 지위는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못지않게 추락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통적인 달리트 직업인 화장실 청소부나 인력거꾼 일을 하는 브라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델리 공중화장실 청소부의 50%가 브라만이고, 델리 파텔 나가르 지역 인력거꾼의 거의 절반이 브라만이었다. 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성지로 유명한 바라나시의 인력거 꾼 대부분도 브라만이다.

또 한ㄸ 카슈미르 판디트라고 존경을 받던 카슈미르 꼐곡의 4만여 브라만들은 지금 슬럼가에서 근근이 살고 있고, 인도 남부 안드라 프라데시주 가정 청소부와 식모의 75%가 브라만이다. 상당수의 브라만들이 오늘날 불가촉천민 못지않은 하층 계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브라만의 나라' 인도에서 특권 계급 브라만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67-168


평소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것 같은 인도인들이 어떤 계기가 있으면 폭발해 군중 폭력을 자주 야기한다. 군중의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를 '정의를 위한 군중폭력(Mob Justice)'이라고 부른다.   185


인도에서 군중 폭력이 만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이 경찰이나 주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해도 경찰 등 당국이 신속히 대응하지 않는 탓이 크다. 그래서 자신의 안전이나 재산은 자신들이 지킨다는 자위 의식이 지나치게 강화됐다. 인도인들이 군중 폭력에 휩쓸리는 또 다른 주요 이유는 그들의 욕구가 평소 크게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한 유명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인도의 많은 대중들은 신분이나 재력, 권력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억눌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계기에 의해 불만을 표출할 기회가 생기면 순간적으로 군중심리에 의해 폭력에 쉽게 가담합니다. 이 때 군중들은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누구든 평소 억눌린 자신들의 욕구를 분출시킬 대상이 필요한 것이죠."

셋째, 군중 폭력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점도 군중 폭력을 조장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군중들이 폭력을 행사해도 경찰이나 정부는 이들 군중을 엄벌하지 않았다. 그저 '사소한' 경범죄로 처리한다. 기소해도 하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폭력에 가담한 군중들은 죄의식 없이 다시금 폭력에 휩싸인다.  186-187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야 센(Amartya Sen) 하버드대 교수는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현재의 인도 법률체계와 경찰 조직은 일반 국민들에게 많은 좌절감을 줍니다. 이런 좌절감을 줄이기 위해선 공정성과 정의에 바탕을 둔 법률적, 사회적 개혁을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 국민들의 특징이었던 비폭력과 온건함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 여부는 인도 정부의 개혁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191


술 마시는 인도인들이 실제로 그렇게 많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정말 많은 인도인들이 음주를 즐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인도인 수는 2억 명이 넘는다. 이 숫자는 해마다 약 20%씩 늘고 있다. 음주를 즐기는 2억명 가운데 여성은 20% 정도인 4,000만 명에 이른다. 

마시는 술 종류는 주로 맥주나 위스키, 럼주 등이다. 2008년 인도에서 판매된 맥주는 자그마치 3억 박스가 넘는다. 위스키는 9,000만 박스가 팔렸다. 한 박스당 12병이 들었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다.  194-195


인도는 세계에서 선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매춘 시설이나 매춘 인력은 거의 전무한 편이다. 아주 없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나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 비하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213


카마수트라는 4세기경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성애(性愛)에 대한 경전이자 교과서다. 성애의 기교, 소녀와의 교접(交接), 나애의 의무, 남의 아내와의 통정(通精), 유녀(遊女), 미약(媚藥)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일반시민을 성지식(性知識)의 경여에서 오는 위험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책이다. 카마수트라는 섹스가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강력한 욕망으로 이를 통해 깨달음에 도달 할 수 있다고까지 설파했다. 카마수트라는 불교문화와 함께 중국에 전해졌고, 이는 유명한 소녀경(素女經)의 원조가 되었다. 또 카마수트라는 유럽에도 흘러 들어가 서구 사회에 성의 혁명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인류의 성 지식을 고양시킨 성에 대한 바이블이라 불릴 만하다.  217


과거 힌두교에선 섹스의 자유분방함을 강조했다.  219


인도에서 언제부터 섹스에 대한 이런 자유스런 분위기가 바뀌었을까. 그것은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부터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게 되는 17세기 영국의 통치 왕조는 빅토리아 왕이었다. 이때 유럽은 프로테스탄트가 기세를 떨칠때였다. 

성을 자유분방한 것으로 여기는 힌두교는 사회 도덕을 훼손하는 하위 종교라고 비난 받았다. 

영국의 끊임없는 힌두교 비난에 힌두교 지도자들의 성에 대한 생각도 빠르게 보수화됐다.  220


인도인 개인들의 섹스 생활은 어떨까? 

개인들의 성생활은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최대 콘좀회사인 듀렉스(Durex)가 전 세계 26개국 2만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섹스생활 만족도에 대한 글로벌 서베이'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인도 도시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섹스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인들은 파트너와의 섹스 대화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한다고 조사됐다. 

예를 들어 인도 도시인들의 4명 중 3명(74%)은 침실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섹스 방법 등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에 비해 세계 평군은 58%, 영국은 49%에 그쳤다. 특히 인도인들의 3분의 2(68%)는 자신들의 섹스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답변했다. 반면 영국인이나 프랑스인들의 섹스 만족도는 각각 38%, 36%에 불과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인도인들이 다양한 기교와 형태의 섹스를 즐긴다는 점이다. 인도인드르이 63%는 체위나 성생활 만족을 위해 섹스 기구나 섹스 인형 등 다양한 형태의 섹스를 즐긴다고 답변했다. 인도인처럼 다양한 섹스를 즐긴다고 답변한 영국인은 47%, 일본인들은 단지 9%에 그쳤다. 게다가 인도인들은 앞으로 만족한 성생활을 위해 인터넷 정보를 활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인도인들의 부부 간 정절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인도인드르이 평생 섹스 파트너 수는 3명에 그친데 반해 영국인들은 16명이었고, 전 세계 평균은 13명이었다. 부부간 섹스 횟수도 세계적이었다. 하루에 1회 이상 성관계를 갖는 '변강쇠&옹녀'족들이 10%나 됐고, 80%가 1주일에 2~3회 이상 섹스를 갖는다고 답변했다. 이 통계만보면 인도는 부부 섹스의 세계챔피언 감이라 할만하다.

부부 정절도와 관련해 인도 중산층은 매우 높지만 상류층은 그렇지 않다는 소문도 많다. 필자가 만난 많은 인도인들이 이를 지적했다. 예를 들어 상류층들이 주로 드나드는 고급호텔 등에서 상류층 간의 혼회 정사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정확한 실태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인도 언론에서도 상류층 간의 불륜 사례가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인도인들은 비록 혼회정사나 매춘 등에선 매우 보수적이지만, 자신의 침실에서만큼은 세계 최첨단이다. 부부간 섹스에서 카마수트라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221-223


인도의 교육 특징은 소수만을 선택해 키우는 엘리트 교육 방식이다.  226


인도 엘리트 교육은 교육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보다 두뇌에 혜택을 주는 정책이었다. 고등교육의 기회는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소수 학생들에게만 주어졌다. 선택 받은 이들 소수에게는 거의 무료로 교육했다. 장학금을 주어 돈 걱정 없이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정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도 엘리트 교육은 어릴 적부터 이루어진다. 인도 학교는 공립학교(Goverment or State Schools), 사립학교(Private Schools), 준(準) 사립학교(Deemed Private Schools) 등 3개로 나뉜다. 공립학교는 약 70% 정도로 다수를 차지하나 교육의 질은 상당히 낮다. 교사 숫자가 많이 부족하고, 설사 교사가 있더라도 수업을 빼먹은 교사가 많다고 한다. 시설도 열악하지 짝이 없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서비스 질이 형편없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인도 엘리트들의 산실인 사립학교는 등록금이 공립학교에 비해 매우 비싸다. 우리 돈으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 만 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입학 경쟁률도 아주 치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안달한다. 사립학교에 다녀야 부모 위신도 서고, 자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도 사립학교는 초등학교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보통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함께 붙어 있다. 단지 몇 학년인가로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준 사립학교는 민간에서 설립했으나 재정이 어려워 연방정부 혹은 주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를 말한다. 준 사립학교는 정부의 지원과 그에 따른 간섭을 받긴 하지만 정부 간섭은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사립학교와 준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 정도다.  228-230


인도 사립학교는 수업을 대개 영어로 한다. 영어는 인도에서 성공을 위한 필수 언어처럼 여겨진다. 영어를 확실히 배울 수 있고, 교육의 질도 뛰어나 인도 사립학교 졸업자들은 인도 국내 유명대학은 물론 미국 유럽 등 구미 저명대학에도 많이 입학한다. 

인도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사립학교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 하류 계층에서 신흥 중산층으로 편입된 부모들도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존 사립학교보다 학비가 저렴한 신흥 사립학교도 급증하는 추세다. 신흥 사립학교 중에는 시설이 공립학교보다도 못한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비록 시설은 떨어진다고 해도 교사의 숫자가 많고 교사들의 열의가 강해 교육의 품질은 공립학교보다 우수하다.  

사립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은 국내 혹은 해외 명문대학에 진학한다. 인도 내에 대학은 2007년 현재 371개가 있다. 

인도 명문대학은 대개 국립이다. 인도공과대학교(IIT), 인도경영대학원(IIM), 인도의과대학교(AIMS), 국립면역학대학교(NII) 등 인도 정부가 최고 전문 인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대학은 물론 델리대학교와 뭄바이대학교,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콜카타대학교, 푸네대학교 등 많은 대학이 국립니다.  230-231


열악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인도 대학이 명성을 가진 이유는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 덕분이다.  233


인도 엘리트 교육의 어두운 이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엘리트 교육에만 치중한 결과 국민 전반의 교육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인도느 대학입학 비율이 10%에 불과하고, 문맹률도 30%선으로 여전히 매우 높다.

요즘도 인도에는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하는 어린이가 많다.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6~14세 어린이의 70% 만이 학교에 다니는 걸로 추산된다.  234 


인도인들은 어떻게 해서 영어를 잘하게 됐을까?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대답은 아니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비율은 5%가 채 안 됐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영어 인구가 10%(약 1억 2,000만명)가까이 급증했다고 할다.  238

인도의 주요 영어교육 기관은 외국인 학교(설립자가 외국인인 학교)와 사립학교다. 이들 학교는 대부분 유치원 때부터 모든 과목을 영어로만 가르친다.  239


인도 지식인 사회에서 혹시라도 영어를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  241


간디는 독립운동 기간 동안 산업화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했다. 산업화를 반대했다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산업화는 인간에게 저주가 될 것이다."(<젊은 인도> 1931년)

"산업화는 농촌 사회에 치열한 경쟁을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농촌 사람들에 대한 착취로 귀결될 것이다.")<하리잔> 1936년)

간디가 산업화에 반대한 이유는 인간의 이상적 삶의 형태가 목가적 시골생활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영구구 식민 정부는 인도를 산업화시키겠다고 선전했지만, 산업화의 이익은 대부분 영국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직접 목격한 간디로선 산업화를 저지하고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245-246


간디의 산업화, 도시화, 서구문물에 대한 반대가 종합적으로 나타난 산물이 유명한 스와데시(Swadeshi)운동이다.

영국 상품을 배척하는 국산품 애용운동.

영국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값싸고 대량생산된 직물들이 인도에 홍수처럼 들이닥치자 농촌 지역 직물장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경제는 수렁에 빠졌다. 간디는 농촌의 가내 직물업이 다시 소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간디의 반(反) 산업화, 반 테크놀로지, 반 도시화, 반 외국상품 운동은 인도인들을 자각시키고, 독립을 달성하는 큰 힘이 되었다.  247


네루 총리는 경제 발전 측면에서 인도 사회에 간디보다 더한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248

임기 4년인 총리직을 그는 장장 17년간이나 수행했다. 물론 국민의 신임을 바탕으로 한 합법적인 재직이었다.

네루는 인도를 종교적으로 세속주의(世俗主義),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이끌었다. 세속주의란 기구나 관습들이 종교나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인간 활동이나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종교에 의해 간섭 받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택한 것은 그가 어릴 적부터 영국에 유학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당연하게 생각된다. 영국에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이다.

네루는 인도의 전통적 자영업자와 고리대금업자인 바니아들의 탐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회주의가 이들의 탐욕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인도에서 돈과 돈 버는 것에 대해 경시하는 풍조가 존재하는 현상은 상당 부분 네루 책임이다.

네루의 이상적 국가 경제상(像)은 자립경제였다. 그는 인도가 충분히 자립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간디가 매달렸던 자립경제, 즉 스와데시를 네루는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다.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해 네루 정부는 또 국영 제철소와 알루미늄 제련소, 대형 수력발전 댐 건설 등 중공업 육성에 몰두했다. 그는 심지어 핵무기 개발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 같은 중공업 육성이 인도의 국력과 산업 발전상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대부분 큰 적자를 내고 소중한 국가 재정을 축냈다. 당시 인도는 극심한 빈곤, 높은 문맹률, 만연한 질병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네루 정부는 이들 시급한 문제는 제쳐둔 채 너무 큰 사업에만 매달렸다.

사회주의 경제를 신봉한 네루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기업과 산업에 대한 정부 통제란 형태로 나타났다.

간디의 후계자였던 네루의 인도 농촌에 대한 해법은 간디와 비슷했다. 네루는 간디의 "농촌이 인도 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정책을 통해 충실히 수행했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와 네루의 긍정적 업적은 지대하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듯이 이들이 남긴 부정적 유산 역시 적지 않다.  249-253


1966년 인도는 제1차 외환위기를 겪는다.  254

1991년 제2차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자립경제란 자존심은 만신창이가 됐다. 제2차 외환위기를 계기로 인도는 자립경제정책을 벗어 던지고 개방적 시장경제로 대전환을 시도한다. 네루 이후 40년간 이어져온 스와데시와의 결별이었다.

아직도 인도 엘리트 사이에선 간디와 네루의 유산이 깊게 남아 있다. 이들은 시장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뛰어나와 간디-네루 철학의 부활을 시도할 세력들이다.  255


한국인들의 인도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접촉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층민이기 때문인 이유도 크다.  285


인도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인도에 산 기간이 짧은 사람일수록 더 강하다. 이헌 부정적 관념은 한국에서부터 싹 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도에 가기 전 읽은 인도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쓰인 책이나 얘기를 듣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후 인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그렇군. 인도인들은 소문대로 역시 문제군'이라고 단정하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288



Posted by WN1
,




흔히 마음으로 못 갈 곳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갈 수 있는 곳만 갑니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게 그래요.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합니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거의 전적으로 마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이란 이렇듯 한정되고 갇혀 있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관념은 자동적으로 자기방어 메커니즘으로 작용합니다. 되짚어 보는 걸 싫어합니다. 기분 나빠해요. 따지고 보면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지만, 우리는 흔히 스스로가 만든 관념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 안주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9


지금까지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관념들을 한번쯤 되짚어보자는 것이 나의 의도였습니다.  10



나는 여러분이 틀레 박힌 교양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에너지가 충만한 원시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양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맹점을 안고 있습니다. 문명은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법이거든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일탈을 꿈꾸는 괴짜가 되기를 원합니다.

일상은 일탈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6


나는 가장 '나'다울 때 세계적인 인물이 됩니다.  17


우연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연은 묻고 또 묻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우연히 일어납니다. 준비한 사람에게만 의미있는 우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대해 묻고 또 묻다보면, 문득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18


힌두교는 인도인의 삶 자체라 할 수 있어요.  27

여러 세대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되어 온 종교입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라 할 수 있지요.  27

공통 경전이 없습니다.  29

힌두교인들은 포교나 개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들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지만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도인드르이 뿌리 깊은 생각입니다. 진리가 유일하다고 해서 여기에 이르는 길조차도 유일한 건 아닙니다.  30


고대 인도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좀 괴짜였던 것 같아요. 하루는 왕이 신하에게 명해서 성안에 살고 있는 모든 소경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데려다 놓고 소경들이 만져보게 했지요. 각기 다른 부위를 만져본 소경들은 당연히 다른 말을 햇습니다. 머리를 만져본 소경은 뭐라 했겠어요? "코끼리가 마치 항아리 같다"고 했어요. 그러자 귀를 만져본 소경은 "무슨 소리냐, 코끼리는 부채 같다"고 했지요. 배를 만져본 소경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코끼리는 벽 같다"고 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요? 서로 의견이 다르니까 다투게 되었지요? 코끼리라는 하나의 실체를 놓고 자기가 만져본 부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코끼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소경들의 잘못은 코끼리 그 자체를 잘못 안 게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분적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못이지요? 자기가 안 지식은 전체 코끼리에 대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것을 몰랐기 때문에 서로 다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분을 부분으로 알때, 그것은 전체를 바르게 알 수 있는 바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게 되면, 소경의 지식처럼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지식이 되고 말아요. 코낄리는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코끼리의 일부인 다리는 마치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코끼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됩니다.  31-32


무엇을 종교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 종교는 우선 무엇보다도 깊이를 추구하는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일상적인 삶의 표면을 따라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가는, 깊이에로의 추구가 곧 종교 아닌가 합니다. 폭보다는 깊이가 훨씬 중요하지요.  32


종교는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종교를 잊어버리고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종교는 이성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체험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4



한 주간 별일 없었어요? 별일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사실 늘 별일이고 별일이어야 합니다. 

'별일 없는 삶'은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일이라는 게 뭡니까? 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누구도 같은 강물을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우리가 건너는 삶이라는 상물은 순간순간 처음이고 별일입니다. 삶은 늘 처음일 때 최고일 수 있어요. 알다시피 최초는 최고와 통하거든요.  45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변화에 대한 감정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심지어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한 모습이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면, 그는 생명 없는 아파트나 다름없어요. 끝장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건 변한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늘 새로울 때 사람이든 삶이든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48-49


인도 사회는 전반적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유연해요.  51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될 때, 자유가 있습니다.  5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혹 각자의 개성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사회적인 차원이든 종교적인 차원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일은 절대 무차별의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건 죽음입니다. 의미 있는 통일은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화라는 표현이 오하려 적합할 수 있지요. 조화라는 게 뭡니까? 붉은색 일색이라면, 노란색 일색이라면 무슨 조화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겠어요? 파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하다못해 흰색이라도 섞여야 조화라는 것이 의미를 지니고 아름다움도 생겨나는 법입니다. 모두가 똑같다면 조화도 없고 다름다움도 없습니다. 변화가 없다면 생명 있는 유기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차이가 없다면 조화도 아름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도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자기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6-57


어떤 문화든 그 구성요소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미 생명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아도 괜찮습니다.

너와 나의 하나 됨을 추구하기 이전에, 우선 너와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너와 나의 하나 됨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어요.  57


유행(fashion)이라는 말의 일차적인 뉘앙스는 틀을 깨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 유행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일종의 구속이며 병입니다. 주체는 없고 추종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수요자만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옷을 입고 얼른 대중 속으로 숨어버려요. 그러고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지요. 그러나 유행이란 으레 문득 왔다가 문득 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익명성에 의지한 편안함이라는 것도 당연히 잠깐일 수밖에 없어요. 대중 속에 숨는가 싶으면, 이미 그들은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저만큼 가고 있어요. 나의 익명성은 금방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면 다시 허겁지겁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따라 가기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보는 유행이라는 것은 일종의 병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따라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편집증입니다. 그것은 남과 다른 것이 두려운 공포증이지요. 우리 사회가 유행이라는 중병을 앓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행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있어요. 판에 박힌 저울대의 눈목으로 모든 사람을 저울질하고, 이 저울대에 맞지 않으면 낙오자로 소외되는 우리 사회의 통념이 문제지요.  59-60


여러분 중에 한 번쯤 체념 안 해본 사람은 없겠지요? 의식하든 않든 여러분 아니 정도면 누구나 체념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물론 체념의 순간을 지켜본 사람은 드물 겁니다. 사실 중요한 건 그건데, 내 마음에 어떤 감정 혹은 상태가 일어났을 때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게 명상입니다. 명상은 거창한게 아니지요. 내 마음의 변화를, 일렁거림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게 명상이지요.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놀라운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감정은 잡아두는 순간, 에너지로 변합니다.

체념의 순간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체념할 때, 나의 마음을 지켜본 적이 있어요? 체념의 순간에 언뜻 편안함이 있습니다. 체념이란 분명히 내가 바라는 게 아닌데, 그런데도 체념하고 나면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66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어요. 차라리 포기하고 체념해버리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67


모든 체념이 다 의미 있는 초월로 통할 리는 없습니다.

체념이 의미 있으려면 우선 가능한 것에 대한 체념이어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자발적인 체념만이 의미를 지닙니다. 그걸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포기하는 것, 그게 체념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여자 태권도 올림픽 출전자를 뽑는 시합이 있었지요. 이때 재미동포 출신 여자 선수가 결승전에서 부상당한 자기 동료와의 시합을 기권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의 실력으로 볼 때 자신보다는 부상당한 동료가 올림픽에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포기지요. 의미 있는 체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녀(石女)가 "나는 아이 낳는 것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석녀가 아이 낳는 것은 아예 가능성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 없으면 욕망이 일어날 리가 없고, 일어나지 않은 욕망에 대한 체념 혹은 포기라는 것은 한 마디로 웃기는 일입니다.

우선 가능성이 있어야, 그래야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게 욕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않습니다. 욕망이라는 건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가능성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아예 가능성이 없으면 기대하는 마음도 전혀 일어나지 않아요. 가능성이 없으면 아무런 욕망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정말 외로운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아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함께 해 줄 사람이 있는데 지금 그렇지 않을 때, 누군가가 와 줄 사람이 있는데 오지 않을 때, 그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참으로 '올이도 갈 이도 없는'(날 찾아올 사람도 내가 찾아갈 사람도 없는) 사람은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부재(不在)'를 통하여 '존재(存在)'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랑이란 것도 바로 이런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별을 통하여 느끼잖아요?  68-69

가능한 것을 포기할 때,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69


일어난 욕망의 결과는 결국 기쁨이냐 또는 열 받는 거냐,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길게 보면 기쁨이나 노여움은 욕망의 결과라기 보다는 연속입니다. 문제는 기쁨이나 노여움이 일어났을 때, 그때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겁니다. 이때 포기가 필요합니다. 체념이 필요해요. 여기서 체념이라는 것, 혹은 포기하는 것은 일어난 감정을 잡아둔다는 것입니다. 일어난 감정을 잡아둘 때, 증폭도니 에너지가 일어나요. 예를 들면 생각해 봅시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남모르는 선행을 했을 때, 그 일을 두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닌다면 어떻겠어요? 일시적으로는 우쭐해질 수 있겠지만 뒤끝은 허전할 겁니다. 허전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가슴속에 묻어둘 때, 더합니다. 기쁨은 내 안에 가두어둘 때, 오히려 새끼를 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래 잡아둘수록 기쁨은 배가합니다. 씨앗을 땅에 묻어 둔다고 그게 어디 갑니까?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감정을 잡아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71-72


일어난 감정을 잡아 두었을 때, 그 뒤끝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것대 대한 체념이 모두 의미 있는 체념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잡아둔 데 대한 애프터 서비스라고나 할까요. 그래요 자신이 그 감정에 솔직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발적인 체념이었는가를 알 수 있어요. 그 뒤끝에 후회가 따르는 체념은 초월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도피라 할 수 있습니다. 도피는 도피일 뿐이지요. 문제의 해결은 아닙니다.  72-73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 자신을 과거에 가두는 것처럼,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은 미래에 자신을 가둡니다.  84


업과 윤회는 하나의 믿음이 지니는 두 측면이라 할 수 있지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닙니다. 업은 윤회로 설명될 수 있고, 윤회는 업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업의 다른 말이 윤회라면, 윤회의 다른 말은 업입니다.  86


<우파니샤드>는 인도의 여러 경전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경전으로 꼽힙니다.  89


업설이나 윤회설은 숙명론이 아닙니다. 업의 자기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 이면에는 항상 업의 초월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힌두교는 '구제(救濟)의 도(道)라 할 수 없어요. 모든 행위는 업을 남긴다고 가르치지만, 또한 어떤 행위는 이미 쌓은 업을 삭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오히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96


참으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건강하지 못할 때,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비뚫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치 눈에 벼이 났을 때 눈을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잘못되고 몸이 병들었기 때문에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이나 건강에 대한 욕구가 부쩍 늘어났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건강합니까?  107-110


요가는 넓은 의미에서 길(道)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해탈 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요가라고 합니다. 

요가라는 말의 어원을 따지자면, 이 말은 원래 '결합하다' '멍에를 매다'라는 의미의 범어 동사 '유즈(yuj)'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가라는 것은 '결합' 또는 '멍에를 매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셈입니다. 그러면 뭘 결합하느냐? 우선 몸과 마음을 결합하여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개체가 궁극적 실재와 하나 되는 것, 그게 요가입니다. 그렇다면 결합이란 무엇이냐, 그건 자유를 의미합니다. 

합일은 완성이며 자유입니다. 유기적인 관계에 있어야 할 두 부분이 따로 노는 것, 그것은 갈등이며 구속이지요. 이에 비하여 합일은 자유라 할 수 있어요. 몸 따로 마음따로 논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마디로 괴롭습니다.

하나로 결합되어 합일될 때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는 기쁨입니다. 해탈은 다른 말로 자유라 할 수 있지요.

자유라는 건 늘 피 냄새를 풍기는 인내를 요구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 끝에는 기쁨이 있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건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란 하나 됨에 있지요. 둘이 하나로 합일될 때,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 사이에서의 자유란 조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섹스에 몰두하게 되는지 알아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녹아 합일하는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일상 속에서는 쉽게 체험되지 않는 자유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조화란 쉽지가 않아요.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조화한 언제나 '투쟁'이 요구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서양 철학자 중에 여러분이 잘 아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사람은 '투쟁은 조화'라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만나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투쟁을 통하여 가능할 수 있습니다.  110-112


투쟁의 과저을 거친 평화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약속합니다 숱하게 싸우고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둘 사이에 자유가 있습니다. 의리라는 것도 생기고 어지간한 일로는 서로 갈라서지 않는 법입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설사 쌍욕을 듣는다 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저 그런 사이에서는 당장 안색이 변할 것입니다. 거기에 자유는 없습니다.  113


인도에서 요가의 역사는 무지 무지 길어요. 심지어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 문명 유적에서 출토되는 인장에서도 요가 자세를 취한 수행자를 볼 수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힌두교의 각 종파는 각기 제 나름대로 다양한 요가 전통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빠딴잘리(Patanjali)라는 성자가 요가를 일목요연한 체계로 정리하고 <요가 스뜨라>라는 문헌을 남겼습니다.  115


<요가 수뜨라>에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요가 수행의 8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요가는 다리를 꼬고 앉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로 윤리적인 준비단계(禁戒,Yama)가 요구됩니다. 윤리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요가를 닦을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금해야 할 다섯 가지, 즉 살생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남의 것을 춤치지 말 것, 음란에 빠지지 말 것, 불필요한 소유를 탐하지 말 것 등이 강조됩니다. 이 첫 단계의 다섯 가지 계율은 요가 수행체계가 불교나 자이나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교의 경우오ㅓ 마찬가지로 요가에서도 오계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불살생입니다. 불살생은 모든 계율 중의 으뜸이라 할 것입니다. 


요가의 두 번째 단계는 내외의 청정, 시니에게의 헌신 등이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단계(勸戒, niyama)입니다. 이 단계 역시 윤리적인 준비단계라 할 수 있지만, 첫 번째 단계가 주로 금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두 번째 단꼐는 일종의 권장사항이라 할 수 있지요.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덕목들입니다. 알다시피 윤리라는 것은 주변 환경고 나의 조화를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윤리 규볌이라는 것은 나와 주변 사람들이 서로 이해의 지평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룰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차 괴롭습니다. 설사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윤리 규범은 은연중에 우리를 강제하는 힘을 지닙니다. 물론 요가는 윤리적인 차원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너머로 깨고 나아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초윤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초윤리는 결코 윤리를 무시하라는게 아닙니다. 윤리적인 단계를 딛고 넘어서야 합니다.


세 번째 단꼐는 어떤 요가 자세를 취할 것인가를 익히는 좌법(坐法, asana)의 단계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요가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요가하면 흔히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비쩍 마른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요가의 여러 단계 중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단계가 바로 이 좌법의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익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요가 수뜨라>에는 수많은 좌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전에서는 원래 8만 4천 가지의 좌법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84가지 정도가 전해질 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빠딴잘리는 이상적인 요가의 자세로 적합할 수 있는 기준을 두 가지 들고 있습니다. 우선 요가 자세는 편안해야 하고,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기준에 부합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가 바로 결가부좌입니다. 결가부좌 알지요? 어른들은 양반다리라고 하고 아이들은 아빠 다리라고 부르는 그 자세가 바로 가장 대표적인 요가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기 특수한 목적에 따라 여거 가지 자세들이 응용될 수 잇습니다. 경전에서는 이상적인 자세로 권장되지만, 체형에 따라 불가능한 자세도 있을 수 있지요.


네 번째 단계는 호흡조절(調息, Pranayama)입니다. 이 단꼐는 앞의 좌법과 함께 하타요가(hatha-yoga)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요가 수행자가 윤리적인 준비를 하고 좌법을 익히는 것을 결국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호흡조절이야말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흡은 마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이 급해질 때 저절로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급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려 할 때는 요가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심호흡을 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아랫배까지 밀어 넣었다가 천천히 밷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진정됩니다. 

이와 같이 호흡은 마음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호흡을 연구하고 제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게 당연하지요. 호흡법을 익히는 것도 무척 긴 시간을 요하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우리는 대개 요가에서 가르치는 호흡법과 정반대의 호흡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배가 들어가고 숨을 내쉴 때는 오히려 배가 나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만 있을 뿐 멎는 숨이 거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 예입니다.

호흡은 마음작용과 관련해서 중요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됩니다. 한두 주일쯤 밥 안 먹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잖아요? 며칠 동안 잠 안 잔다고 죽나요? 그러나 단 몇 분만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만큼 호흡은 우리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육체적인 건강을 위하여 단전호흡을 하고 복식호흡이 권장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건강하려면 밥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숨을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할 수 있어요. 중국에서 양생법(養生法)의 하나로 널리 행해지는 기공법도 요가만큼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요가의 다섯 번째 단계는 수행자가 자신의 감관을 제어하는 단계(制感, pratyahara)입니다. 방금 마차의 비유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인간의 감관 또는 욕망은 말과 같습니다. 길이든 아니든 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내달리는 것이 말입니다. 오죽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겠어요? 우리의 감관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요. 대상이 있으면 곧장 쫓아갑니다. 늘 바깥으로 향해 있는 것이 감관이지요. 제감은 이와 같이 바깥으로만 내닫는 감관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마치 거북이 사지를 두꺼운 갑 속으로 끌어들이듯이 바깥을 지향하느 감관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욕망은 제어될 때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어요. 사실 모든 감정이 그래요. 사람의 깊고 얕음은 결국 일어난 감정을 어떻게 잡아 두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기쁘다고 떠벌려 버리면 남는 건 허전함이지요? 그러나 기쁨을 꾹 눌러 뱃속 깊이 넣어 두면 두 배 세 배로 새끼를 칩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씨앗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씨앗을 땅 위 환한 곳에 보기 좋게 전시해 두면 싹이 트나요? 싹은커녕 말라 버리잖아요? 씨앗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묻어 두어야 싹을 틔우고 몇 갑절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나면, 일단 어두운 곳에 묻어둘 필요가 있어요. 묻어 둔다고 그게 어디 가나요? 기쁨을 가슴속에 간직해 둔다고, 보이는 곳에 떠벌리지 않는다고 없어지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마치 묻어 둔 씨앗이 저절로 싹을 틔우듯이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잘 묻어 두면 저절로 싹을 틔우고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어요. 마치 한 톨의 씨앗이 싹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과정에서 그 본래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묻어 두면, 잡아 두면 새로운 차우너의 에너지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노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난 감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일단 잡아 두면 우리에게 득이 되는 에너지로 변합니다.

감정이란 일단 일어나면,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누를수록 오히려 맹렬하게 덤비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잖아요?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걸 조용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어난 감정을 일단 잡아 두고 지켜볼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애게 일어난 감정을 내가 가만히 지켜본다는 것, 물론 그건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해져야 비로소 우리가 내면의 깊이로 침잠할 수 있는 준비운동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지 과정이 끝나면, 다음 단꼐부터는 수행의 중점이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겨갑니다.

여섯 번째 단계인 집지(執持, dharana)는 한정된 심적 영역에 마음을 한정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은 오관의 배후에 있는 내적 감관입니다. 마음이 감관에서 떨어져 있으면, 설사 눈이 보고 있다 해도 보는 것이 아니며, 귀가 듣고 있다 해도 듣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앟으면 설사 감관이 대상을 향해 있다 해도 인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바로 앞 단계에서 감관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감관과 분리될 때 완전해진다고 볼 수 있지요.

피상적인 표면을 따라 부유하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치 나비가 이 꽃 저 꽅을 분주히 옮겨 다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이런저런 대상들을 끊임없이 옮겨 다닙니다. 집지의 목적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한 대상에 집중하도록 하며,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때는 재빨리 원래의 대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이동과 방해의 빈도가 낮을수록 집지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요.


일곱 번째 단계는 정려(靜慮, dhyana)입니다. 범어로는 이 단계를 디야나(dhyana)라고 하는데, 흔히 불교에서 사용되는 선(禪)이라는 말은 바로 디야나에 대한 한자어입니다. 정려는 우리의 마음이 선택된 한 대상을 향하여 아무런 장애 없이 흐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을 더욱 내면으로 거두어들여 한 대상에 대해서만 유지시킴으로써 집지의 단계에서 정려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살펴볼까요?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한 대상에 대하여 단 몇 초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눈을 감고 스스로의 마음을 한번 지켜봐 보세요. 어때요? 숱한 대상들이 왔다 갔다 하지요? 친구 얼굴도 떠오르고, 지난번에 갔던 호프집 맥주잔도 떠오르고, 있다가 점심시간에 만나야 할 사람도 떠오르고, 아무튼 온갖 대상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집지의 단꼐에서는 그 이동의 빈도가 낮아집니다. 잠잠해진다 이겁니다. 잠잠해지는 정도가 점점 깊어져서 정려의 단계에서는 마음이 더 이상 대상을 옮겨 다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한 대상만 그 내용으로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가변적이며, 대상의 범위 내에서 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가의 마지막 단계는 삼매(三昧, Samadhi)입니다. 이 말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요? 독서삼매니 삼매경에 빠졌다느니 하잖아요? 원래 범어로는 사마디(samadhi)라는 말인데, 한문으로 음역되는 과정에서 삼매가 된 것입니다. <요가 수뜨라>에서는 이 단계를 "선정이 한결같은 상태에 있어서, 그 대상만이 빛나고 자기 자신은 없어진 것같이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요? 아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정려의 단계도 그렇거니와 삼매는 사실 말로 설명되는 세계, 혹은 우리의 이성이 논리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삼매는 이해의 대상이 되는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 알아야 하는, 증득(證得)해야 하는 언표불가능의 세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삼매의 단계에서는 수행자의 자아의식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정려의 단계에서는 비록 마음이 오직 하나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아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수행자 자신과 대상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할 수 있지만 삼매의 단계로 진전되면 이러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요가 수뜨라>에 따르면, 삼매의 상태에서 수행자는 고차적인 직과을 얻습니다. 이러한 직관은 우리가 두뇌에 한정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완전히 새로운 경지라 할 수 있지요. 이때 수행자는 명상의 대상이 지니는 깊고 오묘한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이름과 모양을 갖추고 나타난 세계의 본질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ㅣ있게 되는 것입니다.  116-125


요가는 반드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125


생각해 보면, 요즘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분주합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나 가능할까? 왜 웃어요? 사실 똥을 눌 때 우리의 의식이 맑아져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화장실이야말로 깊은 생각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합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하려하면 뭐합니까? 내면의 뜰이 황폐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돌아서면 허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바깥일에 분주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대게 사람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 여유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잇습니다. 삼식대가 되고 사십대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누구나 바깥일에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125-126


후기 힌두교(7~8세기경)의 딴뜨라 전통에 이르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단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ㅅ기이 뚜렷해집니다. 높이 평가할만한 통찰입니다. 딴뜨라(tantra)는 힌두교의 꽃이라 할 수 있지요. 특히 인산의 성(性)에 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딴뜨라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차원이 전혀 달라요. 인도사회에서 여자의 지위가 급상승하는 것도 이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지요. 남녀의 구분은 마치 칼로 두부 자르듯 그렇게 나눌 수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137-138


칼 융에 따르면 인간의 에고(ego)는 아니무스(animus 男)와 아니마(anima, 女) 모두를 지닙니다.  138

지금까지 우리는 이 점을 무시해왔지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고 가르쳤습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능항 한 남자 속에 있는 여자는 무시되고 억눌려왔습니다. 

여자 속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상적인 인간상은 우리와 달라요. 남녀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아내가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한 개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남녀 양성을 동시에 구유(具有)한 인간이야말로 조화롭고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140


딴뜨라 전통에서 섹스는 합일을 의미합니다. 합일은 완성이지요. 섹스는 몸을 매개로 남녀의 벽을 허무는 작업입니다. 마침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무(無)로 떨어지는 순간, 그게 일어납니다. '나'의 상실을 통하여 무한을 체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합일은 적어도 누적된 상호 교감의 끝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도 전통에서 남녀의 합일은 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한 개체로서의 남자와 한 개체로서의 여자의 합일이 아니라, 한 개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합일입니다. 각 개인은 우주를 축소한 소우주이기 때문에 갈등과 부조화의 궁극적인 해소는 오직 각 개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게 딴뜨라의 가르침입니다. 성교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다른 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지요.  143-144


아무튼 정신적인 기쁨이든 육체적인 쾌락이든 우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여 '너'에게서 혹은 어떤 대상 속에서 '나'혹은 나의 생각과 동질적인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기쁨이나 쾌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쁨이나 쾌락의 대상은 지극히 주관적인 측면을 지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에 끌립니다.  144


우선 서로 끌리는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끌린다는 것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끌리는 둘의 자연스런 만남을 통하여 합일이 있을 수 있어요. 합일은 절대로 강제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145


우빠니샤드에서는 이른바 브라흐만과 아뜨만의 합일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원래 그 둘은 하나였는데, 시작 모를 무지 때문에 마치 분리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윤회 속의 인간이지요. 또한 수행을 통하여 그 본래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해탈이며 완성됩니다.  146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는 딴뜨라에서 남녀의 성교로 나타나는 셈이지요.  147


한 사람 속에 여자와 남자가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인간이 되는 것처럼, 한 사람 속에 이성과 감성은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요. 사실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만이 지극히 감성적일 수 있습니다. 한 개인 속에서 그 둘은 변증법적인 발전을 한다고 볼 수 있지요.  148


전통적으로 인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연속체로 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닙니다. 외적인 마음이 몸이고 내적인 몸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빠니샤드에서는 인간을 다섯 겹(kosa)의 동심원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일 바깥에는 '음식으로 된 나'(annamayakosa)가 있어요. 이것은 물질적인 몸이라 할 수 있는데, 외부 세계의 물질적인 대상들을 경험하고 향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안쪽에 '생기로 된 나'(pranamayakosa)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호흡과 신경계통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요. 다시 그 안쪽에 '의근(意根)으로 된 나'(manomayakosa)가 있고 이보다 내밀한 곳에 '식(識)으로 된 나'(vijnanamayakosa)가 있습니다. 이 두 겹은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층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환희로 된 나'(anandamayakosa)가 있어요. 환희로 된 나의 본질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소 엇갈립니다. 인간의 참된 자아 그 자체라고 보는 견해와, 단지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불과하는 견해로 양분됩니다. 

아무튼 이 다섯 겹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우빠니샤드의 인간 이해는 서양의 심신 이원론과 완전히 달라요. 다시 말하여 가장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몸은 의식 또는 더 나아가서 자아 그 자체와 연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몸에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몸에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얼굴에 나타나잖아요? 몸에는 그 사람의 내적인 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몸은 그 사람의 내적인 성향과 수준에 대한 외적인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지요. 인도 사람들의 사고로 보면 음식으로 된 나로부터 적어도 식으로 된 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심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해요. 모두가 물질적입니다. 이 문제는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물질적인 몸이든 마음이든 모두 쁘라끄리띠라느 근본물질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물질적인 몸과 마음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얼마다 더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합니다.

몸이 마음과 별개가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될 때, 몸은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몸은 부정되고 배척되어야 할 '똥통'이 아니라, 그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요. 요가가 의미를 지니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연속적이기 때문입니다.  168-170


몸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봐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없어요.  172


대개 사람들은 힌두교 하면 요가와 명상 또는 초월과 신비주의를 생각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힌두교만큼 현실을 중요시하는 종교도 없어요. 궁극적으로 해탈을 추구하지만, 해탈이란 반드시 죽어서 이루는 게 아닙니다. 몸을 가진 산 사람도 얼마든지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봐요. 또한 해탈의 추구는 철저하게 세속의 삶을 터전으로 합니다. 청빈을 권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어느 기간까지는 돈을 벌고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그것은 궁극적으로 버리기 위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을 모른 체 하지도 않아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과정을 통하여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감정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라 합니다. 그 속에서 욕망의 실체를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욕망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서 욕망을 초월하는 방법을 가르쳐요.

이와 같이 힌두교가 세속의 삶ㅇ르 부정하지 않ㅇ르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해탈에 이르는 사다리로 이해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과 관련을 지닙니다.

체화된 삶  172


힌두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몸은 윤회의 결과인 동시에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윤회의 원인은 업 때문인데, 업은 체화된 인간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어요. 

요즘 우리 주변에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잇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것의 반발이라는 측면도 있고, 알량한 장삿속이 이를 부추기는 점도 있겠어요. 그러나 어떤 점에서 보면, 몸이 뜨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우리의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라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동안에는 의식되지 않습니다.  173


사람의 이름은 평새을 함께 하는 것이지만, 정작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됩니다.  176


이름은 단지 부르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를 책임지자고 있는 것입니다.  180


몸이 마음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몸을 따라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둘 중에서 마음이 먼저라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마치 닭과 꼐란의 관계처럼 아주 모호한 구석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요.

가장 바깥에 있는 마음이 몸이고 가장 안에 있는 몸이 마음이라 할 수 있거든요.  186


어둠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처럼, 맹목이라는 말도 이유없이 푸대접을 받는 게 아닌가 합니다.

순수한 행위는 맹목적입니다. 맹목적인 행위만이 순순할 수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목적이 들면 이미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즈니스가 있을 뿐이지요. 사고파는 거래가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랑은 맹목적이어야 해요.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그래요. 남녀 간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뿌리지요. 눈멀고 귀먹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만 맹목적일 때 이해를 따지지 않는 불가사의를 만들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고귀하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그것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199-200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터부시해 온 맹목은 느낌 또는 감정에 대한 맹목이ㅏㄹ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여 흔히 우리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감정이나 느낌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맹목적이지 말라는 말은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의미했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을 맹목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200


만일 느낌에 대한 맹목이 위험을 내포한다면, 극서은 순수와 통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것은 이미 더럽혀진 것보다 오염되기 쉬워요. 사람이 순수하면 이용당하기 쉽고 물건이 순수하면 사용하기 쉽지요. 이렇게 보면, 느낌에 대한 맹목은 위험하긴 하지만 맹목적인 것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느낌이나 감정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을 무조건 비난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교묘히 이용되고 악용되는 사회가 오히려 문제지요.  201


가능한 것데 대한 체념이 가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맹목은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가치 있는 맹목일 수 있어요. 목적을 잊어야 맹목적일 수 있는 반면에 목적일 잃어버린다면 이미 그것은 가치 있는 맹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잃어버린 맹목, 나를 잃어버린 맹목의 가장 분명한 징후는, 내가 그것을 그만두고자 했을 때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맹목은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지요. 빠져든다는 징후는 후회가 일어나는 것, 후회가 점점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주객이 뒤바뀐 것이지요.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이지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맹목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본질로 향하는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맹목은 깊이에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종교가 중요하고 사랑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사랑이 혹은 맹목적인 종교가 우리를 내면의 깊이로 침잠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종교보다 강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종교나 사랑은 일상사의 표면에 부유하는 이런저런 사실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로 침잠하는 것이지요. 폭보다는 깊이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203


우리 사회에 맹목적인 것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얕고 허전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203-204


자신의 삶 속에 적어도 한 가지는 맹목적인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종교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삶 속에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맹목적인 한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맹목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그래도 사람은 순수하다는, 순수할 수 있다는 최후의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맹목의 불씨가 꺼지고 없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참으로 희구하는 목적지에 이를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4


콩나물은 부드러운 만큼 아주 민감해요.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금방 잔 뿌리가 많아져서 못쓰게 됩니다. 통상 검은 보자기로 시루를 덮어 두는데, 깜박 잊고 그냥 두면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서 콩나물 머리가 금방 푸르게 변해요. 보기 흉해지지요. 

미미한 빛이라도 받으면 콩나물은 금방 변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도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내면의 개안(開眼)은 그래요. 시루에 놓인 콩나물이 하루에 몇 번씩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한 것처럼, 여러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얻는 지식이 꼭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콩나물은 절대로 물을 껴안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물이 콩나물 사이로 설렁설렁 지나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콩나물이 물을 안고 있다면, 금방 썩어버립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지식을 안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이 썩어버려요. 

적어도 인간의 내적인 성장을 염두에 둔 지식은 그렇습니다. 콩나물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아까워도 그냥 설렁설렁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콩나물 사이로 물이 설렁설렁 지나기지만 때가 되면 자라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마치 콩나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물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충실하듯, 여러분도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변화는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207-209


인도 사람들은 세계의 역사를 순환론적인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 순환의 주기라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어요.

흔히 우리가 무지무지 긴 시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겁(劫)'이라는 말 알지요? 이 말은 원래 '깔파(kalpa)'라는 범어의 한역(漢譯)입니다.

인도 사람들의 시간관에 따르면, 1겁은 우주의 생성, 유지, 파괴가 일어나는 한 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은 86억 4천만 년입니다. 그야말로 겁나게 긴 시간이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겁나게 긴 이 1겁은 브라흐마(Brahma)라는 창조신의 입장에서는 단지 하루에 불과합니다. 브라흐마는 하루를 1겁으로 하는 백 년을 삽니다.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는 실로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인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와 같은 우주적인 시간이 흐르고 있어요.  216-217


내가 보기에 인도의 가장 큰 매력은 느리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233


네 단계의 삶을 통하여 부와 욕망 그리고 자기 본래의 의무를 실현함으로써 결국 해탈을 이루자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첫 단계(學生期, 1~25세)는 금욕과 학습의 기간이라 할 수 있느넫, 이 기간 동안에는 경전(베다)를 공부하고 카스트의 구성원으로서 각자가 해야 할 의무를 익히는 데 전념합니다. 남녀의 성적인 접촉을 금하는 금욕이 강조되는 기간이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단계(家住期, 26~50세)로 접어듭니다. 결혼은 남녀가 정신적 육체적인 사랑을 하고, 이를 통하여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들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물론 자식을 낳고 대를 잇는 것도 중요해요.

세 번째 단계(林捿期, 51~75세)는 앞의 두 단계를 통하여 이룬 경제적인 기반과 가업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숲으로 들어가 명상에 임하는 단계입니다. 손자가 생기거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 대개 이 단계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마지막 단계(遊行期, 75~100세)는 숲에서 나와 운수(雲水)의 길을 떠나는 시기가 됩니다. 이때는 탁발이 주요 생계수단이 되지요.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주유하며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명상한 내용들을 현실 속에서 다시 몸으로 확인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있눈 유행자(遊行者)를 흔히 산야신(Sannyasin)이라 부릅니다. 산야신은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포기한 자라 할 수 있지요.

힌두교인이라면 누구나 산야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겱구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삶은 그 너머의 무엇을 가리키는, 그 너머의 어디엔가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들에게 종교가 곧 삶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닙니다. 삶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자기초월적 상징체계'라 할 수 있어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에 불과한 것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삶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산야신이 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은 부(富)와 몸의 욕망을 삶 속에서 이루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인생의 네 단계 중에서 두 번째 단계는 실상 여기이ㅔ 전념하는 단계라 할 수 있어요.  237-238


욕망은 피하고 억제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바르게 시현될 때 비로소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 힌두교의 입장이라면, 불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3


옥상에 있는 물탱크는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스위치가 올라가서 더 이상 물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욕망은 달라요. 어느 정도 차면 '그만'하고 자동스위치가 켜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망은 양적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더 채워라'하는 것이 욕망이거든요.  244


정신적인 추구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성취를 필요로 합니다.

힌두교의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가 시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입니다. 해탈이라는 고도의 정신적인 욕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인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46


인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포기의 철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삶을 통하여 애써 샇아 올리지만, 그것은 결국 버리기 위하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만이 벌리 수 있지만, 버리지 앟는 한 가진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각자의 고통이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것은 결국 버리지 못하는 자들의 고통이며,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사회의 병통이라 할 것입니다. 일찍이 니체가 경고한 것처럼, 물질의 풍요가 지니는 의미를 곡해하는 한 우리는 '가축 무리의 푸른 목장의 행목'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249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자기 본래의 의무를 지니는데, 각자의 의무는 그가 전생에 쌓은 업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봅니다.

자억자득(自業自得)이라는 업의 논리에서 보면, 카스트에 따른 의무의 차별은 전혀 불평등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여 전생에 아주 못된 짓을 많이한 사람이나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이나 이생에서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산다면 오히려 그것은 불평등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250-251


법 앞에 평등 또는 신 앞에 평등은 '업 앞에 평등'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셈이지요.  251


인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본래의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의무의 실천은 아주 중요시합니다.

의무의 실천이 강조되는 것은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과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인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는 의무의 실천, 부, 욕망의 실현, 해탈 이 네 가지 입니다.

따라서 의무의 실천은 자기의 해탈을 위하여 필수적인 권리이며, 나아가서는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인도 사람들에게 의무는 기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의 해방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253-254


알다시피 인도는 편안하게 아름다운 곳을 관광하는 데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가까운 방콕이나 홍콩이 훨씬 낫지요. 싼 맛에 인도를 여행하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동네 커피숍이 싸고 편할지도 모릅니다. 인도 여행은 적어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도 여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행이지요. 고정관념은 깨부수는 고행이라 할 만합니다. 인도 여행은 계획이 엉망으로 헐클어질수록 오히려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계획된 시간에 계획된 루트를 따라 비행기로 혹은 기차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면, 단체 관광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은 이미 인도 여행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대로 차편이 허락하는 대로 기차가 가능하면 기차를 타고 버스가 가능하면 버스를 타야 합니다. 이것저것 따져서는 여행이 불가능하지요. 무작정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떠나는 사람은 철학자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맹목적 충동에 따라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도 여행은 목적을 생각하며 떠나는 철학자보다는 차라리 맹목적인 충동에 충실한 방랑자에 어울리는 여행입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그런 여행이 어울리는 곳이 인도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예약 없이 삼등칸 기차를 타고, 발 들일 틈 없이 빼곡히 들어앉은 맨발의 사람들 틈에 끼여 함께 짜이를 마시며 그들의 체념과 기다림과 담배연기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밤기차에 시달리며, 때로는 화장실 입구 통로까지 밀려나와 쭈그려 앉은 채 밤을 새더라도, 그러는 가운데 한 가닥이나마 허망 분별과 이별할 수 있다면, 고정관념에 찌든 나의 현존을 직시할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길을 떠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 여행이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오히려 충격과 당혹감입니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느낌이 있으면 그것으로 여행은 성공입니다. 충격이 있다면 대성공이지요. 느낌이 일어날 때, 충격으로 몸을 떨 때, 이에 반응하는 나를 내가 지켜보는 것, 그것입니다. 느낌에 충실한 것, 그것으로 여행은 이미 명상일 수 있습니다. 

외부 세계와 나의 내면이 직선으로 대면했을 때 문득 일어나는 충격, 이에 대한 싱싱한 의문에 충실한 것,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 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도 여해에서 잊어버리되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262-264

Posted by WN1
,



책머리에

기본적으로 <바가바드기타>의 해설서이다. 해설서이긴하되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설을 되짚어보고 또 뒤집어보려 한다.

재해설서이기도 하다.  17


<기타>가 인도와 힌두교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힌두교의 전형적인 신학자가 알려주는 다음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다(Veda)>는 히말라야 설산의 정상과 같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백(純白)의 정상은 마치 신의 계시가 이루어지는 장소와 같습니다. '앎'을 뜻하는 베다란 곧 계시입니다. 여러 <우파니샤드>는 그 정상의 백설이 녹아 흐르는 실개천들과 같스비낟. 눈의 결정(結晶)과 같은 계시의 말씀을 인간이 이해하고 체험하면 그 눈이 녹아 인간의 마음에 흐르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라는 말의 뜻처럼 '가까이 내려 앉아' 겸손하게 그 말씀의 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타>는 그 여러 실개천이 모여서 이루어진 산정호수와 같습니다. 인간이 경험한 가지각색의 지혜는 흐르고 흘러 결국 하나의 진리로 수렴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여러 실개천이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모습과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기타(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진리의 기타는 하나뿐이랍니다. 진리는 하나인데 시인들이 여러 방식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베다>에서도 말하지 않습니까.'

<베다>라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 가운데 하나이고, <우파니샤드>라는 것은 <베다>의 끝부분을 형성하는 문헌이다.

<기타>는 이 두 문헌의 위대한 지혜를 모아 보다 대중적인 목소리로 재현한 작품이다.  27-28


호수로 강물이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듯이 <기타>는 그 이전에 나타난 사고체계의 종착역이요, 그 이후에 등장하는 사고체계의 출발점이다.  29


<기타>를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면(실제로 매우 많을 것이다.),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기타>는 본래 누구든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타>가 불가해(不可解)하거나 난해(難解)하다는 점이다.

둘째, <기타>는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기타>를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탓하라는 것이다.

셋째, <기타>는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이해의 폭이 천차만별이다.

자기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기타>를 이해할 수 잇다는 현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32-33


<기타>를 향한 맹목적인 숭배는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이분법적 견해와도 관련이 있다.

동도서기는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동양을 정신문명으로, 서양을 물질문명으로 나누면서 동양의 정신문명이 더 우월하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진정 동양은 정신문명이고 성양은 물질문명인지 묻지 않은 채 동양의 어떤 정신문명이 구체적으로 더 우월한지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진정 동양의 정신문명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지와 구호만 있는 곳에는 내용이 빈약하다.  35


무작정 <기타>의 위대함조차 식민지 시대의 통치 전략으로 조작된 것일 수 있으니 그 위대함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찾아보자는 것이 포함된다.  39


<기타>를 읽을 때는 무엇보다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마하바라타>와 이 서사시의 0.7%를 차지하는 <기타>.  40


<기타>의 특징을 말하면

첫째, <마하바라타>의 주인공은 왕족이지만 이 서사시가 '민중의 베다'(민중을 위해 민중의 삶을 녹여서 만든 마치 계시와도 같은 앎)라고 불리듯이 대부분의 가르침은 민중을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타>의 주인공도 왕족이지만 신의 노래(가르침)는 민중을 위한 것이다. <베다>는 인도에 본래 살고 있던 토착민의 사상, 종교, 신화, 전설, 제도, 풍습 등이 반영되고 종합된 문헌이다.

둘째, <마하바라타>에는 고대 인도를 좌지우지하던 여러 사유체계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기타>도 여러 상반된 사상과 사고 방식이 잘 반죽된 채 다양성의 통일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반죽이 너무 성급해서인지 서로 다른 사유 체계 간의 관계를 그려내는 것이 고르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기타>를 읽기가 쉽지 않다.

셋째, <마하바라타>는 근본적으로 인도 또는 힌두의 영웅 이야기이고 이 영웅을 중심으로 인도의 민족 정체성과 힌두의 종교 정체성을 은연중에 강화한다. <기타>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넷째,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에 힌두교 식의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힌두교 방식의 도덕을 곳곳에 담고 있다. <기타>는 드러내놓고 그러한 도덕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마하바라타>가 성립한 시기는 불교가 융성한 시기와 겹친다. 당시 불교의 확산에 두려움을 느낀 힌두교의 지배층은 민중을 힌두교에 단단히 붗들어놓기 위해 민중의 삶을 <마하바라타>로 끌어들였다.  41-42


<기타>를 신비화하는 나쁜 사례들이다.  

첫째, <기타>를 깨달은 사람의 전유물로 간주한다.

둘째, <기타>의 모든 가르침을 영적인 것으로 만든다.

셋째, <기타>의 문제를 독자의 문제로 돌린다.

넷째, <기타>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깔본다.  45-46


역사적 배경을 짚어가면서 <기타>에 접근하는 것도 왕도는 아니다. 그래도 이 접근이 중요한 이유는 균형감가 때문이다. <기타>를 신비화하는 쪽으로 지나치게 평행저울이 기울어 있어서 그 반대쪽에 무게를 더해주기 위해서다.  47


이 책의 중요한 목적은 <기타>에 대해 새로운 읽기가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48


마하트마 간디의 해석.. 기본적으로 그는 <마하바라타>의 전쟁 자체를 육신의 싸움이 아닌 정신의 싸움으로 보며, 정신의 싸움 중에서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사이의 싸움으로 본다.  58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는 명상에 비유되기도 한다.

결론은? <기타>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최고의 영적인 스승이 인도하는 가운데 삶의 길을 잃은 듯한 어두운 영혼의 제자가 내면의 명상을 통해 기쁨의 빛이 충만한 경지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발생하고 또 마음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기타>의 숨은 가르침이다.  60


흑백 논리를 거부한다면 그 대척점에 회색 논리가 있다.  61

높은 품격의 회색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극단적이고 극성스런 흑백 논리를 물리치는 회색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선과 악으로 확실히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회색의 임무이다 회색은 흑백을 나누는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63


<마하바라타>는 10만여 편의 시가 얽히고 설키면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이야기의 종착역은 그저 삶의 덧없음이다.  65


아르주나가 누구인가? 

그는 판다바의 다섯 형제 가운데 셋째로서 왕자의 신분이었고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한 장수였다. 특히 활에 관하여 그 어떤 적수도 없는 신궁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무사의 의무인 싸움을 철저하게 수행했으며 모든 왕자 가운데 가장 정의롭다고 알려졌다. 고귀한 신분인 데다 자신의 의무에 늘 충설하며 균형 잡힌 정의감을 가진, 한마디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아르주나 "우리가 이기든 저들이 우리를 이기든 어느 쪽이 우리에게 더 좋은지 우리는 그점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저들을 죽이고서는 우리가 살고 싶지 않은데 저 드리타라슈트라(백부님)의 아들들이 반대편에 정렬해 있습니다. 연민이라는 해악으로 말미암아 제 본성이 뒤흔들리고 정의(의무)에 대한 제 생각이 혼란스러우니 당신께 여쭙니다...."(2.6~2.8)

여태껏 자신이 굳건하게 올바르다고 믿던 것들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않은 것을 나름대로 확실히 구분하면서 잘 살아왔는데 전쟁을 앞두고 머릿속이 새까맣게 변하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 고백은 그가 철처하게 회색의 인간으로 서 있음을 암시한다.  71-73

"크리슈나여 양 군대 사이에 저의 마차를 세워주십시오. 싸우기를 원하여 정렬된 저들을 제가 관찰하는 데까지, 시작되려는 전쟁에서 누가 저와 더불어 싸워야만 하는가를 제가 관찰하는 데까지..."(1.20~1.23)  75


아르주나가 그 사이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굳건한 기준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양 군대 사이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적군으로 진열해 있는 친족들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친족들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는 동요되지 않았을 것이다.)  76


요점은 이거예요. 언제든지 우리 삶은 회색의 현실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예요. 음, 물론 출발점이 그렇다는 거고 도착점이 그래서는 안 되겠죠. 회색의 현실감을 인정하되 항상 그 회색에서 빠져 나오도록 애써야 한다는 거예요. 회색에서는 도통 의지할 게 없으니 보통 사람이 계속 회색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어요. 빠져나와야 하죠.  80


하나, 크리슈나는 고통에 빠져 있는 아르주나의 마음에 커다란 충격을 던지는 말을 한다. 매우 당혹스러운 조언의 요점은 이러하다. '전쟁터에서 육신을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을 죽일 수는 없다. 육신과 달리 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둘, 아르주나는 최후에 크리슈나의 가르침을 다 듣고서 자신의 모든 미혹이 사라졌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이 사라졌고 올바른 생각들로 채워졋다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서 난제가 다 해결되엇다면 그것이 마음의 ㅣ문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애초에 아르주나는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혼란을 고백한다. 크리슈나 역시 첫 가르침에서 아르주나더러 지혜로운 척하지 말라고 하낟. 이처럼 모든 것은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기타>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셋, 아르주나가 고통을 겪는 큰 이유는 너무 많은 생각 때문이므로 키리슈나는 내내 그것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생각을 넘어선 상상이고 상상을 넘어선 망상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는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 행동의 결과를 미리 생각하면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89-90


<기타>에서 아르주나는 정의롭지 못한 적군에 대비하여 자신의 정의로움에 자부심을 가져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본성에 맞게 전쟁터에서 진실하게 행동해야 함에도 자신을 속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크리슈나가 '싸우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너 자신과 싸우라'고 하는 뜻이다. 자신 안에 놓여 있는 유약함과 거짓됨을 물리치기 위해 그렇게 만든 원인을 찾아 당당하게 대면하고 싸우라는 뜻이다. 따라서 싸우라는 가르침은 폭력의 가르침이 아니다. 도리어 자신과 싸워 이김으로써 진리에 도달하게 만드는 가혹하고 냉철한 비폭력의 가르침이다.  116


라즈니쉬의 <기타> 해석은 간디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제가 주목한 부분은 이 구절입니다.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가치한 자신의 의무가 잘 실행된 타인의 의무보다 낫다오. 자신의 의무 속에서 죽는 것이 낫다오. 타이느이 의무는 두려움을 초래한다오"(3.35) 여기서 자신의 의무와 타인의 의무가 나옵니다. 타인의 의무가 아무리 좋다 한들 초라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아르주나는 무사이기 때문에 무사로서의 자기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지요. 아르주나가 누굽니까? 천하에 둘도 없는 장수입니다. 장수면 장수답게 전쟁에서 싸워야지 자기가 마치 승려인 양 이상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17


아르주나에게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라고 조언한 것은 자기 본성에 충실하라고 조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왜곡해서 보지 말고 제대로 보라는 것이지요.  118


<기타>에서 비폭력주의를 이끌어낸 것은 언제부터일까?  '비폭력'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아힘사'에서 기원한다. 이 단어는 불살생 즉 살생하지 않음을 뜻한다. 

<기타>에서 요가란 정신을 수련하여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삶의 길을 가리킨다.

인도인이 따르는 가장 전형적인 세 가지 좋은 삶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잘 살기 위한 세 가지 길을 뜻하는 그 세 가지 요가는 주로 지혜(지식)의 요가, 행위의 요가, 사랑(신애, 헌신)의 요가로 불린다.

이런 큰 츨 아래 이 세상에서 세 유형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앎을 좋아하고 둘째 유형은 행동을 좋아하고 셋째 유형은 감정을 좋아한다. 첫째는 머리로 살고 둘째는 팔과 다리로 살며 셋째는 심장으로 산다. 이 세 유형이 각각 차례대로 지혜, 행위, 사랑의 요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왜 <기타>의 크리슈나는 세 가지 요가를 가르칠까? 이유는 꽤 분명하다. 전쟁에서 싸우지 않으려는 아르주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다.  144

 

지혜의 요가 - 지혜의 요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는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보지요. 이 무지를 없애기 위해서 지혜의 길을 내세우는 거예요.

지혜란 뭘까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구별해서 아는 힘을 가리키지요.

불변하는 것을 그 누구도 소멸시킬 수는 없다오. 이 유한한 육신들이란 영원하고 불멸하며 불가사의한 영혼의 것이라고 말해진다오. 육신은 영원하지 않은 반면 영혼은 영원한 것이라는 가르침이죠.

행위의 요가 - 크리슈나는 행위를 탁월하게 잘하는 것이 행위의 요가라고 말해요. 크리슈나는 '행위에 대해서도 깨달아야만 하고 그릇된 행위에 대해서도 깨달아야만 하며 행위를 하지 않음에 대해서도 깨달아야만 하기 때문이오. 행위의 길은 심오하다오'(4.17)

행위의 요가란 행위를 하되 행위의 결과에 신경쓰지 말고 행위 자체에 몰두하라는 거예요. 

사랑의 요가 - '나에게 모든 행위를 바치고서 나를 지고한 자로 여기며 오로지 전념하는 요가로써 나를 명상하면서 숭배하는 자들에게, 나에게 마음이 몰입된 자들에게, 머지않아 나는 죽음과 윤회의 바다로부터 구해주는 구세주가 된다오. 아르주나여, 바로 나에게 마음을 고정하시오. 나에게 생각을 고정하시오. 그 결과로부터 그대는 의심 없이 바로 나에게 머물 것이오.'(12.6~12.8)

어떤 행위를 하든지 마치 신의 행위인 양 항상 조심스럽게 하라는 거니까요.  177-180


<기타>에서 크리슈나의 모든 설교는 어김없이 이 세가지 요가로 분류된다.  181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이 어떤 모습으로 얽히고설켜 있는지 <기타>는 광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상상의 최고 정점에서의 대답은 이것이다. '얽히고 설켜 있는 모양새가 어떠하든지 모든 요가가 하나고 모든 길이 하나다.'  183


행위의 방법, 행위의 본성, 행위의 근거를 죄다 탐구해야만 보다 성공적인 행위가 나온다는 거지요. 그리고 행위의 방법은 행위의 요가이고 행위의 본성은 지혜의 요가이고 행위의 근거는 사랑의 요가.  197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욕망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망이 없으면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면 욕망이 없다.' 이것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과도 흡사하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자유이다.  201


작은 것과 큰 것, 작은 결과와 큰 결과, 작은 행복과 큰 행복, 이것은 인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이층의 사유이다. 일틍은 작운 것의 공간이고 이층은 큰 것의 공간이다. 일층은 시간이 흐르는 무상한 공간이고 이층은 시간이 멈춘 영원한 공간이다. 보통 사람들은 일층에서 살지만 가끔 이층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218


'왜냐하면 태어난 것은 명백하게 죽고 죽은 것은 명백하게 태어나기 때문이라오. 그러므로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대는 슬퍼하지 않아야 하오.'(2.27)


제어할 수 없는 것은 제어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제어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둘을 뒤 섞는다. 제어할 수 없는 것을 제어하려고 하고, 제어할 수 있는것을 제어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운명을 제어하려고 하고 욕망을 제어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운명을 제어하려고 하고 욕망을 제어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타>의 결론은 이 둘을 뒤섞지 말라는 것이다. 제어할 수 없는것과 제어할 수 있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면서 사는 지혜를 가지라는 말이다.  245


힌두교 연구자를 만난다면 그는 업 이론의 기원과 내용을 다름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해 주리라.

"업 이론이라는 건 쉽게 생각해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내용이죠. 사실 굉장히 합리적인 이론이에요. 이 이론은 세 가지 이유에서 만들어졌어요. 첫째는 이 세계가 우연적이지 않고 뭔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제시하기 위해서예요. 콩 심은 대는 콩이 나야지 팥이 나면 안 되잖아요. 둘째는 이 세상의불공평함을 설명하기 위해서예요.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뱅이로 태어나는 그러한 차별을 설명하고 싶은 거죠. 셋째는 숙명이 아닌 자유의지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예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죠. 연재의 삶이 과거에 뿌린 것 때문에 결정된다면 그건 숙명론이에요. 하지만 현재에 무엇을 뿌리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면 이건 자유의지잖아요. 그래요. 업 이론은 확정된 운명을 조금은 받아들이되 자유의지로써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가기 위해 처음 창안된 건데 어쩌다 보니 운명에 순종하는 이론으로만 잘못 알려지고 말았어요."


애당초 업 이론은 숙명론적인 사고방식보다 운명을 개척하는 사고방식에 더 가까웠다. 새로운 씨앗을 잘 뿌리기만 하면 언젠가 훨씬 나은 열매를 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점차 두 가지 특면에서 숙명론이 되었다. 하나는 현재의 고통을 참으면 그 결과로 더 좋은 세상이 오므로 현재의 고통을 숙명인 양 여기면서 인내하라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의 모든 삶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으므로 현재의 위치를 숙명인 듯 수용한 채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운명에 도전하던 인생관은 사라지고 그 운명에 대해 체념하는 인생관이 나타난다. 업은 반드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된다. 업은 굴레가 되고 속박이 된다. 자우의 반대말이 되는 것이다. 급기야 업 자체가 고통이다.  246-248


어쩌면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구속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더 높아지요. 더 강하게 구속하기 위해서는 자유의 달콤함을 담은 희망의 찬가를 계속 틀어주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기타>는 자유의 창문을 열어놓고 잇는 듯하지만 좁은 창문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열심히 다시 불러들이죠. 그를 운명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순응적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예요.'  248-249


"법전의 명령(가르침)을 내버린 채 욕망에 따라 행하는 자는 완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행복이나 지고한 목적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오."(16.23)

크리슈나의 이 말은 다음의 두 가지를 암시한다. 하나,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행위 이외에 다른 행위들을 결코 행해서는 안 된다. 둘,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행복이나 지고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250


<기타>는 힌두교의 최고신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노래이다. <기타>는 많은 사람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가르침을 담은 지혜서이다.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로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생명력 있는 내용을 구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첫째,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하지 않도록 한다. <기타>를 신비주의나 영성주의의 시각에서 접근할 때 주로 과대평가에 빠진다. 또 <기타>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담고 있다거나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고 여기는 것도 엉성한 과대평가이다.

인도인이 <기타>를 과대평가하는 간접적인 예가 있다. 조금만 가방끈이 긴 사람이라면 <기타>의 어느 한 구절을 암송하면서 삶에서 대면하는 이런 저런 문제에 관해 그 구절로써 평가하거나 적용하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는 <기타>를 인용하기 위한 인용일 뿐 거의 설득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것처럼 우스꽝스럽다. <기타> 만능주의에 빠진 듯한 사람은 <기타>를 경외하기만 할 뿐 이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

과소평가는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에 어찌 미개한 인도의 고대 문헌을 가져와서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바탕 난잡한 말들을 풀어놓느냐, 하는 그런태도다. 눈이 있어도 읽으려 하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나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서구적인 생각의 틀에 인도의 <기타>가 끼어드는 것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타>에 익숙한 사람조차도 종종 과소평가에 가담하곤 한다. 하지만 과대평가에 적절한 근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것처럼 과소평가에도 그런 경우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이 신념과 정서와 감정을 앞세운 채 <기타>를 거부하거나 폄하한다.

둘째, 전후좌우로 종횡무진하며 읽어보도록 한다. 전후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가리키고 좌우라는 것은 저곳과 이곳을 가리킨다. 그러니 전후좌우란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종횡무진이란 거침없이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기타>를 과거의 유산으로만 여기지 않고 <기타>를 인도만의 문화적 틀에 한정시키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횡성수설하며 함께 더들도록 한다.

넷째, 해석과 체험을 끝없이 순환시키도록 한다.  316-319

Posted by WN1
,




인도에서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교직과정을 이수해야 하는데 학부교직(B-ed)을 이수하면 보통 초중등 과정 교사가 되고 석사교직(M-ed)을 이수하면 고등과정 교사가 된다. 공립학교 교사로 임용되면 정년이 보장되지만 사립학교의 경우는 철저한 실력 위주의 선발로 항시 능력을 검증받고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우수한 교사들은 사립학교를 선호한다.

사립학교에서는 단순히 교직 이수 자격증뿐만 아니라 각 과목에 필요한 여러 분야의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연히 경쟁이 심한 사립학교의 교사들은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인도 수도 델리의 유명한 사립학교 중 하나인 바산트 밸리스쿨에서 5학년 영어수업을 맡고 있는 수렌드란 교사의 말에 따르면 사립학교에는 교사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우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들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속한 학교에서도 일 년에 한번씩 교사들의 해외 연구 워크숍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 분야의 최신 정보를 접하고 수준높은 영어로 유지하도록 한다고 한다.  93-94

Posted by WN1
,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인도방랑>은 내가 스물넷의 나이에 대학을 뛰쳐나와 세계 방랑길에 오른 최초의 여행 기록이다. 일본에서는 1972년, 그러니까 꽤 오래전에 출간되었다.  15


저 인도의 자연을 접한다는 건 평온을 얻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엄청나게 아나키적 정신이 되어가는 겁니다. 인도의 자연을 모방하면 인간 사회의 관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리지요.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36


유유상종이란 말을 하는데 여행이 바로 그런 겁니다. 시시한 여행을 할 때는 시시한 사람을 사귀지요. 얽매인 데 없이 좋은 여행을 할 때는 열에 여덟아홉 정도로 격이 높은 사람을 사귀게 됩니다. 나는 최고의 인간을 만나진 못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높은 인격의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곧 좋은 여행은 아닙니다. 더없이 시시한 녀석부터 차원 높은 사람까지, 오히려 여행 중에 얼마나 다양하게 만났느냐가 중요하지요. 그것이 여행의 풍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37


명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48


화장하는 광경을 이십 일쯤 내리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불타고 있는 시신 근처에 가면 불길 때문에 엄청나게 뜨거워요. 나중에 보면 눈썹이 고불고불 그슬려 있기도 해요. 광각 카메라를 들고 머리 같은 게 불타오르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연기 속으로 들어가지요. 그렇게 이십 일쯤 기나면 시신 냄새가 몸에 배어버립니다.... 사진을 찍는 것과는 관계없이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냄새가 들러붙어버립니다. 그런 것도 하나의 명상이지요. 모르는 사이에 한다는 게 좋아요.  49


오랜 여행은 여자와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실감을 근거로 추측해보면 그토록 오랜 세월 여행을 한 마르코 폴로는 분명 호색한이었을 거라고,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마르코 폴로에 관한 역사 기록을 살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실이었어요. 베네치아에서 창부와 싸움을 벌여 재판에 부쳐지자 마지못해 국외로 도망쳤다는 겁니다. 호색한이었던 까닭에 그런 위대한 여행이 가능햇다고 할 수 있어요. 역시 마르코 폴로의 여행은 정통이었던 거지요.(웃음)  62

  

질문 : 후지와라 씨의 사진에는 분명 사물이 찍혀 있지만, 그게 자신의 눈 속 스크린과 바깥 세계의 피사체가 이중으로 찍혀 있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진이 찍히는 건가요?

--> 보통은 오른쪽 눈으로 찍는 게 표준입니다. 카메라 역시 그렇게 설계되어 있어서 왼쪽 눈으로 찍으면 와인딩 레버가 얼굴에 부딪히게 되지요. 그런데 나는 철저히 왼쪽 눈입니다. 처음부터..  74



비르바탈은 여름굴만 한 크기에 껍질이 플라스틱처럼 단단하고 매끈하다. 속에는 형태가 분명치 않은 끈적끈적한 주황색 과육이 들어차 있는데, 이것이 설사나 그 밖의 위장병에 직방이다.  125


인도에 온 히피는 처음부터 생각하고 화내고 고민하기를 포기한 채 바람에 나불거리는 꽃잎처럼 인도 곳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것은 흡사 울음을 그친 아이가 바람에 눈물이 마르는 것이 기분 좋아 까불며 뛰어다니는 모습 같다.  161


화장터를 이르는 말 .. 일본어는 가소바, 영어는 크리머토리, 힌디어는 스마산.

힌디어는 그 말소리에서 오는 느낌이 실로 상스럽다. 

앗차(좋아)

나힝(아니오)

다히(요구르트)

짤로 짤로(가자 가자, 비켜 비켜)

싸합(선생님, 어르신).  188


<인도방랑>은 열에 들떴던 내 젊은 날의 부끄러운 첫 기록이다.  357










Posted by WN1
,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한 적이 있는가.

실패에 좌졸하고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어본 적 있는가.

사랑에 절만하고, 사랑에 절실해 본 적이 있는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청춘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비명이다.

더 아파하고 더 슬퍼하기. 

우리는 그만큼 단단해지고 평온해질 것이다.  37


가난은 발버둥 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이고, 그 굴레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도라는 나라의 법칙.  61

인도 여행을 하면서 내가 외면했던 그들의 가난. 엄마의 품에 안겨 3등석에 탄 아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3등석을 타야 하는 정해진 인생.  66


우리는 둘 다 모서리였다. 누구 하나는 사포가 되어 상대방의 날선 모서리를 문질러줘야 했지만 나만큼 그도 예민한 직업이었고, 오히려 나보다 더 날이 선 하루하루를, 절벽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살아가고있었다. 둘 다 모서리라 서로 부딪히며 흠집만 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번 부딪혀 보지도 않고 우리는 너무도 일찍 서로를 포기해 버렸다.  94-95


인도 대륙을 돌며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도, 공기의 감촉과 냄새도 기차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낯설다. 새로운 지역데 도착할 때마다 나는 수없이 인도에 대한 정의를 다시 써내려갔다. 도무지 이 나라는 각 도시들 사이의 닮은꼴이 없다. 그것이 나를 계속 긴장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첫인상이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듯이,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돈을 들여 애써 떠나왔다는 이유 때문에 여행자들은 웬만하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거리의 소음에도 '이거 익사이팅할걸?' 맛없는 음식에도 '참 흥미로운 맛인걸?' 사기를 당해도 '참 좋은 경험하는구먼'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정도로 온화한 여행자의 마음이건만, 첫 느낌부터 잘못 왔다 느끼게 만드는 장소라면, 그곳은 마른 하늘에 쌍무지개가 뜨고 우중충한 밤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해도 여행자의 마음을 되돌리기 힘들다.  121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소비하는 국가는 언제나 인도이고, 명품보다 보석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인도이다. 세계 명품시장이 유독 인도를 뚫지 못하는 이유는 인도인들이 자국의 역사가 담긴 보석과 자수, 수공예품에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나는 인도의 뭄바이나 방갈로르의 소위 잘나가는 부자 거리에서도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베르사체 같은 명품 간판을 본 적이 없다.  138-139


인도에서 일주일만 보내도, 굳이 극장에 가서 인도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당신은 인도 영화에 흠뻑 빠지고 이들의 팬이 될 것이다. 호텔이나 식당의 TV에서는 언제나 지나간 옛 인도 영화가 나오고 있고, 영화의 하이라니트는 잘 편집된 뮤직비디오로 상영된다. 인도의 인기 배우들은 길거리 광고 전광판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고 TV광고에서도 철철 넘치는 매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도 영화가 흡수되고 말아 어린 시절 유덕화와 주윤발에 빠졌던 것처럼 인도 배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152


인도는 여행하기 쉽지 않은 나라이다.

하지만 인도 여행의 매력은 예상할 수 없는 행복이 찾아왔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법정 스님은 저서 <인도기행>을 통해 인도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건이 넘쳐나지만, 어느 한순간 다시 눌러앉게 만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나라라고 말씀하신다.  162


상상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

3일 고생하면 하루는 반드시 보상이 뒤따른다. 이를테면 온통 채식뿐인 도시에서 고기냄새가 절실해질 때쯤, 내일은 먹음직스러운 양고기와 치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족고 불편한 숙소에서 디스크에 걸릴 정도로 불편한 잠자리에 뒤척였다면, 다음날은 흰 모래사장에 놓인 방갈로와 바람 솔솔 맞으며 몸을 뉘일 수 있는 해먹이 짠하고 등장한다. 숙소를 못 찾아 무거운 배낭을 이고 한 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고 헤매면, 그곳엔 기다렸다는 듯 얼음통에 한가득 시원한 맥주를 팔고 있다. 

인도 특유의 향신료 마살라가 지긋지긋해질 때쯤, 어느새 나는 바닷가 마을에 도착해 그릴에 구운 생선요리를 먹고 있었다. 인도는 이렇듯,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때마다 놀라운 반전을 선물하는 것이다.  162-163


이별을 해도 더 이상 심장을 쿵쿵 찧는 고통이 없어요. 이별을 할수록 머리만 지끈거려요. 머리만 쥐어뜯을 뿐 더 이상 아프려하지 않아요. 자존심인가봐요.  196


많은 인연을 거치고 이별을 할수록 깨달음은 많아지는데 그렇다고 안목이 높아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당신도 그런가요? 더 형편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나도 당신처럼 내 나이에 맞는 고민을 해요.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럼에도 펄펄 끓는 사랑을 해야 해요. 그러니 더 이상 사랑에 고개 돌리지 말아요. 지난 사랑에 얽매이지도 말고요.  197


난 내가 그토록 끔찍이 여겼던 맨 바닥에 철퍼덕 앉아버렸다.

그 순간 내게 평온이 찾아왔다. 나도 그들처럼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풀썩 앉아버리니 그보다 편하고 행복할 수 없었다. 어깨를 누르던 걱정도,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슬픔도 아물어가고 있었다.  203


당신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온 마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철퍼덕 앉길 바란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풀리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기다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면 기다린 후의 행복도 오지 않는 것이다.

불편하고 괴롭고 힘들기만 했던 인도가 그렇게 내 품에 들어와 살포시 앉았다.  205


여행과 음악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잠깐 외출할 때도 음악을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독 여행을 할때만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다.  209


여행은 단순해지려고 떠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그대들이 몇 달을 기다리고, 몇 주일을 계획해서 떠나는 것이 진짜 여행이다. 

그런데 나는 글만 쓰는 단조로운 일상을 피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날 때만 마음 구석구석이 복잡해지고 심란해진다. 잡다한 생각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소재가 되어 낱장의 글이 되고 책이 된다.  213


인도에서 친절은 돈에 비례하지 않는다.

인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화두를 던진다. 모든 게 뒤엉킨 실타래 같지만, 실 하나만 잘 잡으면 모든 게 스르륵 풀리는 나라.  225


평상시에 수다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혼자 잘 논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혼자 여행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혼자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참 잘도 간다.  244


여행을 하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

세상을 넓게 보고 성숙해진다는 말.

그게 사실이라면 난 지금쯤 세상만사에 도가 터 있겠죠.

그런더ㅔ 나는 돌아오면 똑같은 이유로 고민을 하고, 똑같은 일들에 부딪혀요.

유치한 문제로 친구와 다투고, 엄마의 잔소리에 까칠하게 맞서고, 친구들의 고민에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죠.

인도에서 간 감기약은 인도에서만 낫는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기에 맞는 처방전은 따로 있나 봐요.

그래도 확실한 건 떠나기 전과 후가 조금은 달라져 있다는 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라 나만 알고 있긴 하지만요.  285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할 수 있어요. 

아는 후배는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대요. 그곳 제주도의 풍경을, 처음으로 혼자 길을 찾아 나섰던 그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내 친구는 여름휴가를 아껴뒀다 추석연휴까지 합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어요.

이미 20개국은 여행해 본 그녀에게 이제 진짜 여행은 자신의 체력과 한계에 도전해 보는 일이 된 거예요.

열 여덟 살 소녀에게는 공항에 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어요. 

소녀에게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을 테니까요.

내게는 인도가 가장 먼 나라였어요.

서른에 떠나는 여행은 유럽도 일본도 아닌 꼭 인도여야만 했거든요. 가장 멀리 왔다고 생각하면 그게 여행이에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도 내 주변도 그대로라고 느껴져도 실망하지 말아요.

말했잖아요. 누구나 아주 조금은 달라져 있어요.  286

Posted by WN1
,



"약속을 함부로 믿지 말아요. 재물, 영원한 구원, 끝없는 사랑, 세상은 약속으로 가득하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고, 또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약속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이지.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무능하다고 느끼기도, 그건 약속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요."  18-19


"인간 본선에 관한 진실. 난 우리가 유혹을 받게 되면 결국 그 유혹에 지고 만다는 것을 발견했소. 정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인간은 심성적으로 악을 저지르게 되어 있소."  23


"선과 악의 얼굴이 똑같다는 거죠. 모든 것은 오로지 선과 악이 각 인간 존재의 길과 마주치는 순간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50


다른 사람들에 맞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선의를 믿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니까. 용기를 내어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대결을 벌이는 것보다는 모욕을 당하고도 그냥 물러서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니까. 우리는 늘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던진 돌에 맞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밤이 되어 혼자일때 아내나 남편, 혹은 친구가 잠들었을 때에야 우리는 말없이 자신의 비겁함을 한탄한다.  58


"죽는 데 걸리는 일 초라는 시간이 짧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렇게 측정되는 게 아니오."  88


"우리의 베스코스가 쇠락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야말로 비도덕적인 행위예요."

읍장 부인이 말했다.

" 우리가 이곳에 살 마지막 사람들이고. 우리 할아버지들과 우리 조상들. 그리고 아합과 켈트족의 꿈이 몇 년 후면 끝장날 거라고 속절없이 되뇌는 것이야말로 비도덕적이라구요. 우리도 요양원에 가기 위해서든, 자식들을 찾아가 대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갈 곳 없는 병든 늙은이들을 보살펴달라고 사정하기 위해서든, 이곳을 곧 떠나게 될 거예요. 우리가 우리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귀중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으려는 자식들 곁에서 그들이 버린 것들을 아쉬워하며 살아가게 되겠죠."

"부인 말씀이 옳아요.

대장장이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비도덕적인 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베스코스가 폐허로 변하면, 이 땅들은 버려지거나 헐값으로 팔려나갈 겁니다. 불도저들이 몰려와서 큰길을 내겠지요. 마지막 남은 집들도 철거될 것이고, 우리 조상들이 땀흘려 세워 놓은 것들을 허문 자리에는 강철로 지어진 창고들이 들어설 겁니다. 농사는 기계화될 것이고, 경영자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살면서 이따금 이곳에 들러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만족할 겁니다. 우리 세대로선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자식들이 떠나도록 내버려뒀습니다. 그애들을 이곳에 붙들어둘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마을을 살려야 합니다."

지주가 말을 이었다. 많은 땅을 사들여 대기업에 되팔아 큰 이문을 남길 수 있는 그는 베스코스의 쇠락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으맂도 모르는 땅을 남에게 넘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136-137


"당신은 베스코스의 다른 주민들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소. 우린 모두 다른 살마들과 같아지기를 원하니까. 하지만 운명이 당신을 다른 길로 이끈 거요."

샹탈은 고개를 가로저어 부인했다. 

'힘 좀 써봐'

샹탈의 악마가 동료에게 말했다.

'아니라고 고개는 젓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어.'  154-155


자기는 이곳 주민들과 다르다고, 그 시골뜨기드르이 머릿속에는 한 번도 떠오르지 않은 계획들을 넘치도록 가지고 잇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결국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녀는 부당한 운명 때문이 아니라 그럴 만했기 때문에, 주민들 속에 섞이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베스코스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167



신부는 생각했다.

'인간을 지배하려면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해.'  191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선과 악의 대결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벌어지고 잇는지도 몰랐다. 인간의 마음이란 모든 천사와 악마들이 수천 수만 년 동안 처절한 전투를 벌인 전장(戰場)인지도 몰랐다.  203


악은 결코 선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가서야 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221


한두 번 속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정치인의 헛된 약속을 믿고 살인을 저지르겠는가?  240


'만약 여기에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녀가 갑자기 들어온다면, 그녀가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소?'

선인은 대답했어요.

'아니오. 하지만 나 자신을 통제할 수는 있을 거요.'

'내가 엄청난 양의 금화를 주며 산을 떠나 우리와 함께 지내자고 제의한다 해도 그 금화들을 자갈 보듯 바라볼 수 있겠소?'

'아니오. 하지만 난 나 자신을 통해젤 수 있을 거요.'

'두 사람이 당신을 만나러 왔는데, 한 살마은 당신을 경멸하고, 또 한 사람은 당신을 성인으로 우러러 받든다면,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겠소?'

'힘들긴 하겠지만, 나 자신을 통제해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 거요.'  244


모든 것이 통제의 문제, 그리고 선택의 문제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었다.  245


"베스코스가 곧 사라지는 건 악마의 방문 때문인가요?"

"악마가 이곳을 다녀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이 그렇잖니."


"삶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 모든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달려 있어."  248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