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해당되는 글 474건

  1. 2012.12.26 거장처럼 써라 (上) - 윌리엄 케인 이론과실천 2011 03800
  2. 2012.12.25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달 2012 03810
  3. 2012.12.24 끌림 - 이병률 달 2010 03810
  4. 2012.12.21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여행의 기술 -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 김영사 2011 03800
  5. 2012.12.20 인스턴트 같은 사랑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랑후에 남겨진것들(kirschbluten)> <두근 두근 내인생>
  6. 2012.12.19 호모부커스2.0 - 이권우외24 그린비 2009 44800
  7. 2012.12.18 선택, 바른선택인가 편한선택인가? .. <더 스토리(The words) : 세상에 숨겨진 사랑>
  8. 2012.12.16 연쇄 살인범의 고백 - 마르크 베네케 알마 2009 03300
  9. 2012.12.14 히피의 여행 바이러스 - 박혜영 넥서스books 2007 03810
  10. 2012.12.13 여행이 답해줄거야 - 박혜영 21세기북스 2010 03400 3
  11. 2012.12.12 책읽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변신> <책은 도끼다>
  12. 2012.12.11 (세계사를 바꾼) 철학의 구라들 (下) - 폴커 슈티어링 이룸 2007 03100
  13. 2012.12.10 (세계사를 바꾼) 철학의 구라들 (上) - 폴커 슈티어링 이룸 2007 03100
  14. 2012.12.07 글쓰기 만보 - 안정효 모멘토 2006 03810 1
  15. 2012.12.06 청춘의 고전(삐딱한 철학자들의 위험한 영화 보기) - 김성우외9 알렙 2012 03100 1
  16. 2012.12.04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하기 - 김은지 김종현 이야기나무 2012 03810
  17. 2012.12.02 여행, 혹은 여행처럼 - 정혜윤 난다 2011 03810
  18. 2012.11.30 2012년 11월에 읽은 책
  19. 2012.11.29 하버드 글쓰기 강의(下) - 바버라 베이그 에쎄 2011 03800
  20. 2012.11.27 슈퍼라이터 - 이지상외4 시공사 2009 14980
  21. 2012.11.25 저가 항공 세계일주 - 강지준 중앙books 2012 13980 1
  22. 2012.11.24 하버드 글쓰기 강의(上) - 바버라 베이그 에쎄 2011 03800
  23. 2012.11.23 굿빠이 여행자 마을(GoodPAI Traveler's Village) - 이민우 북노마드 2011 03810
  24. 2012.11.20 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 오영욱 달 2011 03810 1
  25. 2012.11.19 동화독법 - 김민웅 이봄 2012 03810
  26. 2012.11.17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II - 박민우 플럼북스 2011 04810
  27. 2012.11.16 욕망이 멈추는곳, 라오스 - 오소희 에이지21 2007 03810
  28. 2012.11.13 여행 탐구 일기 - 이세미 이슈 2012 03810 2
  29. 2012.11.11 황홀한 자유 - 이지상 팝콘북스 2006 13040
  30. 2012.11.09 생활여행자 - 유성용 갤리온 2008 03810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도 모방이다.  13

이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비결을 배우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독창적인 문체와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15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써라 - <고리오 영감><외제니 그랑데>

글이 어떤 리듬을 타고 흘러갈 수 있도록 작가가 할 수 잇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의 글이 독자의 귀에 음악처럼 들릴 수 있을 때까지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19


때로는 서툰 문체도 시간이 지나며넛 나아진다. 많이 쓸수록 잘 쓰게 되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뭐든지 블로그에 올려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글쓰기 실력은 분명히 향상된다.

우리가 발자크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가능한 한 많이 써라.  22


글에 힘을 싣고 싶다면 발자크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를 집어넣어라.  23


발자크의 첫 번째 조언은 수식어구는 반드시 감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의 격해질수록 수식어구의 효과도 더욱 강력해진다.  26


등장인물이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 수식어구는 생기를 불어넣고 잔잔하던 이야기에 확실한 재미를 준다. 

이야기에 속도가 붙고 등장인물이 분노, 교만, 자만, 갈망, 사랑, 시기, 증오와 그 밖의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잠잠하던 이야기의 돛을 뒤집을 바람과 독자를 위한 수식어구를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독창적인 수식어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27


발자크는 자신을 외부세계와 격리시키고 창작에만 전념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블라인드를 친 방에서 살았던 것이고, 또 하나는 모두 잠든 한밤중에 작업을 한 것이다.  28


요컨대 작가로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바로 사람들로부터의 격리와 집중이다.  29


오늘날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작가들에게 자세한 설명보다는 날카로운 직관과 통찰을 기대한다.  37




찰스 디킨스처럼 써라 - <황폐한 집><돔비와 아들><데이비드 코퍼필드><위대한 유산>

셰익스피어 이래 디킨스만큼 많은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는 없다. 

셰익스피어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음악을 연상시키는 리드미컬한 언어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40


디킨스는 인물을 다채롭게 묘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햇다.  41


식상한 것에 안주하지 마라.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특히 유머를 잃지 말고 터무니없는 상상과 풍자를 활용하라. 자신이 만든 인물을 조롱하고 익살맞으며 아이러니한 별칭을 붙여라. 그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묘사하라. 그러면 독자도 당신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며 즐길 것이다.  42


갈등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디킨스의 비결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풍자와 외양 묘사, 그 밖의 다른 점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인물을 그려낸다. 

인물 묘사는 짧을수록 좋다.  44


머릿속에 떠오르는 엉뚱한 단상들을 끝까지 발전시켜 보는 방법이있다. 등장인물을 과장해보고 풍자적인 말투를 사용해보라.  46


등장인물의 감정을 만들려면 작가 자신이 먼저 그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저 말고 자신의 추억을 이용하라.  48


주류 소설에서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려면 작가는 이야기의 일부를 독자가 모르게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정보를 찔끔찔끔 흘려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50




허먼 멜빌처럼 써라 - <모비딕><타이피족><마디>

시처럼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 싶다면 멜빌의 소설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  53


멜빌과 같은 시적 문체를 쓰려면 우선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물론 아니다. 소리와 감각에 반응하는 어느 정도의 예술적 감성만 있으면 충분하다.  58


멜빌은 상징을 사용하는 법을 공부하기에 좋은 작가다.  61


작가라면 독창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기초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6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백치><죄와벌><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지하로부터의수기>

구체적으로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장면을 설정하고 A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한 다음 B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72


전환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라면 누구나 터득해야 하는 필수적 기교다.  76


'나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리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도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는 파티가 열리는 방을 찾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장면 전환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어느새 앞 장의 마지막 장면과는 다른 장소에 와 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화자의 의식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장소로 데려왔음에 주목하자. 이로써 독자는 물리적 묘사와 사실상 최소한으로 사용되고 그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세련된 테크닉)  77


명심할 것. 장면 전환은 빨라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정서적 요소를 보태가. 기왕이면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의 정서적 요소를 보태라. 기왕이면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의 정서적 요소가 좋다.  79


그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할 때 종종 화자 스스로 자신의 병약함이나 노쇠함, 나약함 등을 인정하게 한다. 

'나는 병자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간장이 나쁘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는 나 자신의 병에 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내 몸의 어디가 나쁜지 그것조차 확실히는 모르고 있다. 나는 의학이나 의사를 존경하고는 있지만 치료라는 걸 받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여태까지 받아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나는 극단적인 미신가이다. 여태까지 받아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나는 극단적인 미신가이다. 이를테면 의학 따위를 존경할 만큼 미신가란 말이다.(나는 미신가가 되지 않아도 될 만큼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지만 그래도 역시 미신가이다.) 좋다. 오기로라도 의사의 치료 같은 건 받지 않을 작정이다.'

스스로 문제가 많은 인간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이 인물에 대해 거부감보다 호기심이 더 커진다.  80-81


깔끔하게 정돈도니 산문이 아니라 실제로 말을 하는 듯한 글을 통해 독자와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한 평론가는 '화자의 태도는 독자와 직접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까지 주고, 화자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법에서는 문어(文語)보다는 즉흥적인 구어(口語)가 더 쉽게 연상된다. 문장과 단락은 제대로 된 문법을 비켜가기 일쑤며 균형 감각도 찾아보기 힘들다.'  82


도스토예프스키는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인물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보통 키에 호감이 가는 용모를 지닌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지만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83


도스토예프스키는 좀 더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인물 묘사를 위해 묘사에 감정을 집어넣었다. 

외모와 인물의 의미도 연결시킨다. "외모상의 자세한 특징 하나하나가 단지 그 인물의 외형 묘사를 위해서만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모는 은연중에 드러나는 내적, 정신적 세계를 상징한다."  86


외모를 묘사할 때 감정과 상징적 의미를 첨가하는 그의 방법을 모방하라.  88




이디스 워튼 - <이선 프롬><순수의 시대><아이들>

크리스토퍼 릭스도 지적했지만 밥 딜런 콘서트에 갈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은 밥 딜런뿐이다. 그가 객석에 앉아 있다면 콘서트는 열릴 수 없을 테니까. 마찬가지로(그리고 슬프게도) 작가는 순수하게 독서를 즐길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한 말을 바꿔 말하자면, 모든 위대한 작가는 오직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읽을 때 항상 작가로서 읽는다는 이야기다. 분석하고 조사하고 당신의 배를 아프게 만든 다른 작가의 비밀을 파헤치느라 순수한 독서의 기쁨을 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작가가 짊어진 이러한 저주는 반대로 작가의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124




서머싯 몸 - <인간의 굴레><달과 6펜스><면도날>

등장인물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을 균형 있게 등장시키는 것이다.  132


가장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기교 중의 하나가 빠르고 느린 장의 교차 편집이다.

극적인 행동이 중심이 되는 장과 설명이 중심이 되는 장을 번갈아 배치할 때 독자의 즐거움은 두세 배 늘어난다.  134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으로 등장인물을 밀어 넣는 방법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한 방법이라면,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광고'하여 독자의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138


몸의 두 가지 기법은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두면서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첫 번째 기법, 등장인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 넣고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면서 등장인물에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한다. 그 결정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만큼 까다롭고 힘든 결정이어야 한다.  139


등장인물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어깨 위에 선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을 요구하라.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서 비롯된 새로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독자는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  140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이용할 때 그 경험과 관련된 실존 인물이 글 속에 묘사된 인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눈을 속이려면 두 명의 실제 인물을 한 사람의 가상의 인물 속에 섞어놓거나 직업이나 장소를 바꿔줄 수도 있다.  145


언젠가 몸은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을 겪어 봐야 한다. 우여곡절은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서 찾아라. 때로 정강이가 까질 수도 있지만, 밖으로 나가서 찾아라. 때로 정강이가 까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경험을 언젠가는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서른 편의 편의 희곡을 포함하여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쏟아낼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수 많은 인생 경험과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글쓰기가 있었다.  146


자각로서 몸의 생활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은 두 가지다. 첫째,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글과 더 성공적인 작품을 쓸 수 있는 지름길이다. 둘째, 개인의 경험을 작품 속에 녹여야 한다. 그러려면 피상적인 인생을 뛰어넘어 다양한 인간관계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한 경험을 해본 것만으로도 당신의 작품에 그 경험들이 반영될 수 있다.  147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 <유인원 타잔><화성의 공주><금성의 해적>

버로스는 최대한의 재미를 주기 위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급 조절을 하려 버로스의 방법을 귀담아 둘 만하다.

첫째, 서머싯 몸을 이야기할 때 이미 살펴봤듯이 버로스도 빠르게 전개되는 장면이 끝난 후 잠시 한숨을 돌리며 극적인 휴식을 취했다. '극적인 휴식 혹은 극적 대비'는 효과적인 완급 조절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과의 차이점이라면 버로스는 속도를 줄이는 대신 지금까지 진행하던 줄거리에서 그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새로운 줄거리로 이동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방법이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점은 장과 장이 바뀔 때다  155


두 번째 방법은 문학작품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으로 어떤 특정 부분에서 행동의 속도를 올렸다가 그 다음에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르는 방법이다.  156


갈등은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엔진이다.  160




프란츠 카프카 - <심판><성><변신>

애초에 카프카가 <변신>을 쓴 의도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66


다른 작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방을 통해 다른 작가로부터 '한 가지 좋은 점'을 배울 수 있고, 나머지는 자신에게 맞게 변형시키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수사학자들이 항상 최고를 모방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방은 위대한 작가보다 나아지고 마침내 그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183




D.H. 로렌스 - <채털리 부인의 연인><사랑에 빠진 여인들><아들과 연인>

로렌스는 '올바른 형식이란 게 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사람에 대해 직관적으로 파악한 것을 글로 옮길 줄 아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조건, 즉 정확한 형식과 날카로운 직관은 좋은 대화를 쓰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로렌스의 방법을 이해하면 초보 작가들조차도 생생하고 지적인 대화를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물론 정확한 형식이다.  187


'그는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눈동자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벌거벗은 눈동자 속에 그 남자가 담겨 있었다. 그 눈동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무지개 같았다. 마치 찢어진 필름처럼, 그러나 왠지 침울해 보이기도 했다. 물에 뜬 기름처럼.'

로렌스는 눈종자와 얼굴과 감정을 묘사하는 적절한 단어를 기가 막히게 찾아낼 줄 안다.  189


작가는 자신의 상징을 찾아내야 한다.  199


상징이란 사람이나 장소, 사건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상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상징은 더 큰 개념과 가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작품에 무게를 더하고 더 풍부하고 진지한 느낌을 준다. 독자는 종종 상징이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주제를 구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상징이 주제와 잘 섞인 작품은 독자를 더 만족시키며 더 문학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자연의 삶을 상징하는 사냥터 관리인의 숲과 무기력한 삶을 상징하는 대저택이 없었어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설이 되었을지 의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산업화하는 세계도 훌륭한 상징이다. 상징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로렌스는 독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입한다.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추악하로 산업적인' 탄광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다고 비난한다. "사람들한테서 자연의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간 게 누군데요? 사람들에게 이 산업사회의 공포를 가져다준 게 누구죠?"

주저 말고 가끔은 독자의 옆구리를 쿡 찔러라. 그렇게 해서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장인물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놓게 하라. 작품에 등장하는 상징을 그 열변 속에 포함시켜라.  201-20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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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빈 새장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안에 뭔가를 담게 된다.



내 심장이 끄덕끄덕했다.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생각하기만 하여도 저절로 눈이 감겨지는 이 장면들을 나는 어쩌면 끝까지 가지고 가리라. 

그렇게 나는 열일곱과 열덟, 필름 같은 소년의 껍질을 벗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사랑이 어디론가 숨어버려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걸 만지고 싶어서일 텐데. 그걸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만지고 싶은 걸 텐데. 갖자는 것도, 삼켜버리는 것도 아닌, 그냥 만지고 싶은것.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넘쳐 보이지만, 지금 당장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금이 가 보인다. 넘치는 것은 사랑 때문이며 금이 간 것도 사랑 때문일 텐데 그 차이는 적도와 북극 만큼의 거리다.  



할아버지가 사시미를 준비할 때, 할아버지의 손놀림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소 걱정하는 듯이 또 행복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다소곳하면서도 정중한 모습. 아, 어떻게 저렇게 고요하고도 벅차게 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나이가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듯..



난로에 보리차가 끓고 있는 냄새나 나무 타는 냄새, 아이의 몸에 풍기는 이런저런 냄새나 갑작스런 방문을 의식해 오분 동안 급히 치운 듯한 친구 집엣 나는 생활의 냄개, 게를 찌는 찜통 연기의 냄새나 어느 냉장고에 붙여놓은 오래된 글씨의 냄새,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집 안에 가득한 빈집의 냄새와 트렁크를 열었을 대 어렴풋이 풍기는 그곳의 마루 냄새. 아, 지금과는 다르게 화학적인 것에 얌전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언젠가는 그 길에서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싶을 때가 있지.

누가 봐도 그 길은 영 아닌데

다시 가보고 싶은 길.

그 길에서 나는 나를 조금 잃었고

그 길에서 헤맸고 추웠는데, 

긴 한숨 뒤, 얼마 뒤에 결국

그 길을 다시 가고 있는 거지.

아예 길이 아닌 길을 다시 가야 할 때도 있어.

지름길 같아 보이긴 하지만 가시덤불로 빽빽한 길이었고

오히려 돌고 돌아 가야 하는 정반대의 길이었는데

그 길밖엔, 다른 길은 길이 아닌 길.



앞을 볼 수 있다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어요?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일 것만 같은 나는 그에게 서슴없이 묻는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요, 그 기분을 알고 싶어요."

아, 남모르게는 절대 할 수 없는 일. 앞을 볼 수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훔치는 일이겠구나.



아, 이 순간, 나는 이 순간을 가만히 붙들고만 있고 싶다.



나와 상관없는 일은 보이지 않고, 내가 필요로 하는 색만 보인다. 우리가 분홍색을 알아볼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걸 원하고 있을 때만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누구나 살고 있지만 누구나 살아 있다고 느끼기 어려운 것처럼.



문득, 아니 오래전부터 난 참 사랑을 못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리 목숨을 걸어도 걸어지지 않는, 일종의 그런 운명 같다. 이래서 사람이 안 되는 것도 같고 아무도 나를 사랑할 것 같지 않으며 사랑이 와도 바람만큼만 느끼는 것. 그래서 내 사랑은 혼자 하는 사라이다. 사랑은 순례의 길과도 같아서 그 길을 통해 자기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속성이 있다. 아니 그 속성만 있다. 그 속성으로 구원받고자 함이 사랑이라면, 사랑한다는 말은 대단한 말이 아니라 구원받겠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함께 앉아 김밥을 먹다가 당신이 골라놓은 당근을 먹는 일, 잡채를 먹다가도 당신이 골라놓은 당근을 먹는 일, 그 일은 당신을 구해주는 일 같지만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일과도 통한다. 타인을 돕는 것으로도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인류는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은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잇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자주 방향과 색깔이 혼동되는 건 사실이다.)

어떤 카페가 좋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카페 기둥이 흰색 페인트를, 화장실 문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은 게 마음에 들었던 거다. 사실 그 색이 좋아 카페의 분위기가 좋고 심지어 커피맛도, 주인장의 얼굴까지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부분들을 쌓아가는 것이다.

고로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이 무슨 색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며 그 색깔을 나에게 조금이나마 나눠달라는 말이다. 그 색에 섞이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당신 목에 두른 스카프 색깔이 그게 뭐냐고 말하지 않는다.

한 여자를 알았다. 나는 그녀가 빨간색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녀는 파란색이었다. 정반대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한순간 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럴 경우, 내가 그쪽으로 옮겨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를 더 만났더니 그녀는 차라리 흰색이었다.

나는 그녀를 흰색으로 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줄 흰 꽃을 준비했다. 흰 이 꽃이 당신을 닮은 거 같아서 샀다고 했다. 초여름날, 보리수꽃을 내밀면서 내가 뱉은 말은 내 감정의 전부이면서 진실이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대상은 색이 없어지고 오히려 지워져 창백해진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으로 대상은 참을 수 없이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불행의 기준은 같지만 행복의 기준은 변질되어 있다. 그저그런 불행에 우린 죽지 않지만 그저그런 행복에조차 도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하다. 우리는 죽는다.

높은 것, 아름다운 것, 벅찬 것, 기쁜 것, 영원한 것, 그것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그 방향으로 조금식 조금식 움직이는 사람에게 바퀴는 굴려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놀래키 수는 없다.

아무도 나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삶, 세상이 나를 등졌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충분히 망친 삶.

내가 하지 않았던 일들의 길고 긴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뭔가를 저지르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향해 돌아설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토록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 것은 돌아보면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듣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그 어떤 말도 들린다. 겨우 아는 몇 개 안 되는 단어를 동원하거나, 소통이 어려울까 마음을 다해 섬세한 몸짓으로 말을 걸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마치 불꽃이 튀는 것 같다. 절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마침내 뜻밖의 말들이 섞인다. 우리가 누군가 한 사람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도 결국은 이 작은 불꽃에 의해서일 것이다. 그 작은 불꽃을 오래 꺼뜨리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제 몸짓 언어의 벽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다른 나라 말을 잘하고 싶다. 사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려면 통역 따위의 번거로움은 없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자신이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공항에 가보면 된다. 공항에 앉아 미소 지을 일들이 떠오르거나 괜히 힘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없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가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은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가져다줄 게 없다.



짐만 가지고 떠남은 떠남이 아니다. 최소한의 감정의 재료를 함께 가져 간다면 그 어느 곳에도 새로운 인생의 조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휑한 빈자리에 사랑한 존재를 이식해 넣은 것이다.



"진주는 외롭다는데..."

"선생님, 그러면 진주 말고 다른 거 하세요."

당신은 진주를 택했고 나는 가만히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선생님, 그 반지 끼고 외로우면 어쩌시려구요?"

"외로운 게 뭐가 대수라고. 외로우면 좀 어때. 외로워봤자지."

그래, 외로워봤자다. 외로움은 다가 아니더라.

언젠가 당신에게 불쑥 물었다. 그런저런 말들이 지나간 후였다.

"선생님. 어떻게 사셨어요?"

많은 사람들, 당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묻고자 했을 그 고통의 날들과 관련하는 당신 남편과 당신의 아들... 당신의 인생 젙체에 대한 안부였다. 

"견뎠지. 뭘 어떻게 살았겠어..."

부러 냉정하게 자신을 누르는 음성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모른다. 쉬운 것은 겨우 알 수 있을지라도 어려운 것은 모른다. 어쩌면 쉬운 것도 어려운 것도 자기 소관이 아니므로, 모르고 있는 것조차 모른다.



마을은 백 년이 지나도 자신들만의 속도와 온도를 유지하면서 살 것만 같은데.



사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지만 그것을 알기에 사랑은 얼마나 보이지 않으며 얼마나 만질 수 없으며 또 얼마나 지나치는가.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지나치는 한 사랑은 없다. 당장 오지 않는 것은 영원히 오지 않는 이치다. 당장 없는 것은 영원히 없을 수도 있으므로.

그렇더라도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믿으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걸 못 견뎌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했다, 고 믿는 건 익숙함조차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있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며 나도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이며 결국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질 않은가.

그렇다고 사랑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사랑은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사랑할 때의 행복을 밖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사람을 키운다. 애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치는 상태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하여금 인간을 어려운 일에 빠지게 하는 일, 그것은 산이 하는 일이다. 그 어려움으로 하여 인간을 자라게 하는 것이 신이 존재하는 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만 행복으로 건너갈 자격을 얻는다. 

신이 어떤한 장난을 친대도 사랑을 피할 길은 없다. 그냥도 오고 닥치기도 하는 것이고 누구 말대로 교통사고처럼도 오는 것이다. 사랑은, 신이 보내는 신호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게 한다. 그것도 신이 하는 일이다. 죽도록 죽을 것 같아도 사랑은 남아 사람을 살게 한다.

그래,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하더라도 옆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자. 옆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는 일, 그것은 사랑의 끝이다. 완성이다. 

인간적으로 우리 사랑을 하자. 인간의 모든 여행은 사랑을 여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여행하게 되어 있다. 사랑을 떠났다가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사랑은 삶도 전부도 아니다. 사랑은 여행이다. 사랑은 여행일 때만 삶에서 유효하다.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것처럼 어두워져라. 곯아버린 연필심처럼 하루 한 번쯤 가벼워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누구도 이기지 마라, 누구도 넘어뜨리지 마라. 하루 한 번 문신을 지워낼 드싱 힘을 들여 안 좋은 일을 지워라. 양팔이 넘칠 것처럼 하루 한 번 다 가져라, 세상 모두 내 것인 양 행동하라.

하루 한 번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으라, 내가 못하는 것들을 펼쳐놓아라. 먼지가 되어 바닥에 있어보라. 하루에 한 번 겨울 텐트에서 두 손으로 감싼 국물처럼 따뜻하라.

어머니가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큼 애틋하라. 하루 한 번 내 자신이 귀하다고 느껴라. 좋은 것을 바라지 말고 원하는 것을 바라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 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순간일 수도 있지만 영원일 수도 있는 것이고, 영원도 어느 한순간 토막이 나기도 하려니 그렇게 지금 당장 마음가는 대로만 마음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이 안 통하는 거야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과도 마찬가지. 사랑이 삐그덕대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사랑하는 연인들이 낼 수 있는 불의 밝기를 사랑이라는 집에 잘 사용하는 것, 그것만이 사랑이다.



세상 끝 어딘가에 사랑이 있어 전속력으로 갔다가 사랑을 거두고 다시 세상의 끝으로 돌아오느라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 : 우리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나에 모든 힘을 다 소진했을 때 그것을 또한 사랑이라 부른다.  



사실 나이 든다는 게 괜찮을 때도 있더라구요. 묵직해져서 덜 흔들리고 덜 뒤돌아보고.

아주 오래전 어디선가 읽은 글 같은데 누구의 글인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나이들어 각자 혼자가 되어 만난 어느 연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디선가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조금식 조금씩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남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잔 여자는 아침에 도착한 신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깬 뒤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살며시 일어나 거실에서 신문을 가져다 신문을 보기 시작하는데 신문 넘기는 소리에 남자가 깰까봐 여자가 화분 옆에 놓인 분무기를 가져다가 신문 위에 뿌립니다. 곤히 자고 있는 사람에게 신문 넘기는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리겠죠. 얼마 후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신문에 물을 뿌리며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고는 그렇게 묻습니다. 

"당신, 그런 걸 어디에서 배웠소?"

"나이 먹다보니 그냥 알게 되었어요."

알게 되는 것도, 알아가는 것도 나이가 하는 일, 맞습니다.



나이만 잇고, 나이 없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나이 든다는 것은 넓이를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넓이를 어떻게 채우는 일이냐의 문제일 텐데 나이로 인해 약자가 되거나 나이로 인해 쓸쓸로 몰리기는 싫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어도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문장처럼 늘 이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가까이서 보는 환한 달은 참으로 사람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누가 내 감정을 터뜨리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같은, 무언가 나를 일으키기 위해 네어지를 보낼 때의 기운 같은 것들.



후배 부부는 파리 근교에 위치한 집에 살면서 맹인안내견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산책을 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침이 되면 촬영을 나가기 전에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숲길에 나가 산책을 시켰다. 종일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돌아온 저녁에는 원고를 손보았다. 저녁 싟를 마친 후나 잠들기 전에 개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했다. 이 주일 동안은 거의 이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어느덧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가 되었다. 개와 마지막으로 따뜻한 인사를 나눴다. 주인이 돌아오면 내가 해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보살펴줄 것이었다. 내가 떠난 다음 날인가, 후배 부부는 돌아왔고 며칠 후,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개의 안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개가 말 잘 들었지요?"

"그럼, 너무 착해서 아무 문제 없었어."

"근데 선배 가고 돌아와 보니 마루에다 먹은 걸 토해놨더라구요. 챙겨준 사료는 건드리지도 않았구요."

"아니, 왜? 나 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디 아픈 거야?"

"아뇨, 선배 여기 올 때 큰 여행가방 가지고 왔을 꺼 아니에요? 떠날 때는 큰 여행가방 들고 나가셨을 거구요. 개가 여행가방에 민감해요. 정들었는데 떠나는 걸 알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나봐요."

아, 이별이었구나.

나는 돌아와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느라 한 번도 뒷일을 생각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별이 아팠구나. 미안하다. 나, 이토록 텁텁하게 살아서, 정말 미안하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음식에다 감정을 담는 것인데 하물며 나라는 사람, 이렇게 모른 척 뻣뻣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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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번 힘이 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게 다이넫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도니 무엇처럼 그 한 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싹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청춘에 있어서 만큼 사용법이란 없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생각의 벽 안쪽에 갇혀 지내는 것도 청춘이 아니다. 괜히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을 탓하는 것도 청춘의 임무가 아니다. 청춘은 운동장이다. 눈길 줄 데가 많은 번화가이며 마음 들떠 어쩔 줄 모르는 소풍날이다. 

하지만 청춘은 방해받는 것 투성이다. '하지 말라

'는 말들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함으로 느낄 수도,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야 하는 것, 만나야 하는 것, 사력을 다해 가져야 하는 것, 그래서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인연으로 스치지 못했던 것도 그 한 뼘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춘의 모두는 한 뼘과 연관되어 있으며 겨우, 그 한 뼘 때문에 대부분의 결과는 좋지 않다.

청춘은 예민하되 청춘은 복잡하지 않다. 그렇다고 대단하지도 않다.



나는 여행하면서 이런 것들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여전히 신기하다.

 - 트렁크 가득한 책(게다가 그걸 다 읽고 버리고 가는 사람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 평소 즐겨 먹는 원두커피

 - 두춤한 일기장

 - 잠옷

 - 애인.



네 손을 잡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게 괜찮아진다.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것.

만약 당신이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자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밝은 하늘이 쨍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살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해라,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유일한 한 사람이다.



"다음 사람을 위하여"

계속해서 감사는 박자를 맞춰 감사를 부를 것이다.



춤을 추어도 혼자는 추지 말고 아픔과 함께 추어라. 대신 얼마나 힘이 됐는지 아픔은 모르게 하라.



거대한 어항 같은 도시 안에서 물기 없는 호흡을 하고 있을 때,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와 떠들고 있을 때, 문득 나를 에워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놓고 싶을 때, 깊은 밤 잠에서 깨어 통장 잔액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죽집에 들어가 죽 한 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다 주인이 가져다준 신문 첫 장을 외면하고 싶을 때,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아플 적에 친구 고래가 아픈 고래를 수면까지 밀어올려서 숨을 쉬게 해준다는 얘길 들었을 때, 웅크린 채로 먼 길 가는 달팽이의 축축한 행로를 지켜보고 있을 때, 아무도 없는 밤바다에 알몸을 담그고 누워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을 때, 어쩌면 이 세상은 남자오 ㅏ여자뿐일지도 모른다는 억지스러운 논리와 세상 모든 이야기가 남자와 여자에 관해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해야 할 때, 기다리는 것이 희망인 줄 정확히 알면서도 희망이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버리는 군중들 속에서도, 한낮인데도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왔을 때, 그렇게 한낮이 무거웠을 때, 달큼한 바람이 불고 몸이 뜨거워지고 그래서 눈을 감고 싶을 때, 뭔가 가득 채워놓은 것이 쓰러져 엎어졌을 때, 이사 후, 아무렇게나 기대 놓은 그림을 누군가가 말을 해줘서야 바로잡고 있을 때, 정이 들어버려서 마음이 통해버려서 달빛 아래 각자 다른 길로 헤어지고 싶지 않을 때, 문득 뚜렷한 이유도 대상도 없이 무작정 고마울 때, 보름달 주기를 따라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던 마당의 꽃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할 때, 다시 또 누군가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을 때.



교감일거라 생각한다.

낯선 곳으로 여해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된다.



좋은 풍경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 가는 새가 있어. 그 새는 좋은 풍경을 가슴에 넣어두고 살다가 살다가 짝을 만나면 그 좋은 풍경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일생을 살다 살다 죽어가지.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얘기.



말하세요. 누구든 붙잡고 그걸 이야기하세요. 누가 없으면 혼자서 이야기 하세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들을, 현상들을요. 말하지 않아서 병이 됩니다. 말하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겁니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주소.



기약없이 떠나왔으니 조금 막막한 것도, 하루하루의 시간이 피 마르듯 아깝게 느껴지는 것도, 돈이 다 떨어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혼자 이국의 바닷가에서 울적해하기보다는 웃을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하자고 씁쓸히 마음을 먹는 일도, 떠나는 일은 점퍼의 지퍼 같은 것이어서 지퍼를 채우기만 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아해. 그리고 눈이 내리고 내리고 쌓이고 또 쌓이는 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당신하고 같이 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술이나 사러 나갈까 하며 벗어놓은 양말을 신는 걸 좋아해. 



'돈 없어도 대차게 살자' 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돈이 없는데 어떻게 대차게 살겠어. 난 왜 그랬는지 모르게 그렇게 한 거야.

내가 갖고 싶은 CD에 붙은 바코드를 떼어버리고 옆에 놓인 싸구려 CD에 붙은 바코드를 붙여서 계산대로 간 거지 그러니까 86프랑짜리를 68프랑에 사기 위해 귀찮게 깎거나 하지 않았어도 됐던 거야. 계산까지 다 했어. 내가 특별 할인시켜놓은 가격으로.....



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잖아요.



상대를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건 분명 사랑인 거다.  



시시한 게 싫다고 시시하지 않은 걸 찾아 떠나는 사람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시시해요?

처음에 시시하지 않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보면 시시해요. 사랑은, 너무 많은 불안을 주고받았고, 너무 많이 충분하려 했고 너무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그래서 하중을 견디기 못해요. 그래서 시시해요, 사랑은.



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한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을 게 있다는 확신에 기대는 바람에 나는 자주 사람에 의해 당하고 패한다...

그렇다고 항상 당하는 쪽인 나 같은 이에게 쓸쓸함만 남는 건 아니다. 고맙게도 쓸쓸하면 할수록 다시 사람을 떠올리며 사람의 풍경 안으로 걸어갈 힘이 생긴다.



한번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여행은 끝이다. 그만큼 자유롭지도 못할 뿐더러 기회도 적기 마련,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한 친구를 믿은 적 있으나 그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고, 한 사람을 믿은 적 있으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 듯하였다. 그 울림은 더 장황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옮겨가면 그뿐이었다. 내가 사람에게 함부로 대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기에 당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라 자위하면 되는 것.  



간혹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다녀야만 하냐고, 피의 문제라고 대답도 했다가 결핍의 문제라고도 했다가 나도 잘 모른다, 라고 대답을 해왔다. 상상력을 위해서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폼 잡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더 가난한 시대에, 사람들은 함부로 남을 이야기할 때만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 뻔한 상상력만으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살고 있는 눈치다.

진정으로 남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서, 낯선 공간으로 끌려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먹먹해지고 막막해져서 조금 나은 상상력의 밑천을 짊어지고 돌아오기 위해 나는 먼 길에 머무르기를 좋아한다.



양과 맛을 넘어서지 않는 행복.



대상을 향해 직진하는 편인가. 목적을 향해 내 모든 살아있는 감각들을 작동시키는 편인가. 나는 이런 질문들 앞에서 비교적 '그런 편'이라고 말할 것 같다. '비교적'이라는 꼬리를 단 것은 대상과 목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심'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고, 무엇을 이해하는지의 핵심은 항상 '중심'에 있다.



눈을 감더라도 마음을 감아선 안 되리라.



사람의 인연이란 건 대단하다.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며, 알려 해도 알 길이 없는 것이며 그래서 묘한 것이다.



언제나 한 가지 대답이면 된다. 닥치는대로.. / 될 대로 되라 / 난 겁내지 않는다 / 이것도 운명이다. 이 모든 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한다. 라틴어 '케 세라 세라(Que Sers Sers).'

내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을 듯. 세세하게 일일이 신경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사는 사람. 그냥 뭉툭하게, 되는대로 터벅터벅 살아가는 사람. 자잘한 신경을 많이 쓰고, 꼼꼼이 계획을 세워서 사는 사람이라도 모두 잘 살고, 모든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반대, 조금 심드렁하게 , 또는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잘 살지 못하리란 법도 없는 듯.

멋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멋있다. 안 씻는 사람 안 씽어도 멋있다. 일생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은 그게 멋이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너 같은 사람은 그것도 그대로 멋이다.

솔직히, 가끔은 못하는 것이기에 꿈꾼다. 씩씩하게, 몫하는 거지만 대범하게, 자신 없지만 통 크게. 말 그대로 케 세라 세라(Que Sers Sers), 그렇게.

'너처럼 대충대충 사는 놈이 왜 많은 사람들을 잃는 거냐?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하루하루의 가치가 형편없다고 생각된는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곳을 다니면서 그냥 다닌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쉬임 없이 써야만 했던 것이 살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을 때우기 위안 것이었는지 또는 존재의 한 방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분명하지 않음이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열정이 아니고는 그럴 수도 없었을 터, 분명 나에겐 열정이 있었고 아직도 열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제 그 열정을 쓰게 된다면 끼적이고 쓰고 하는 일이 아닌, 또 사진을 찍는 일도 아닌, 더 다니는 일에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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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는 것쯤 아무 문제가 아니다

빌터너: 고장난 나침반을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항해를 한단 말이야?

깁  스: 그래. 이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키지 않아. 그런데 우리가 북쪽을 찾는 것도 아니잖아?   -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중  9



사람들은 '길 잃기'를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여행을 떠나기 전 '길 잃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이를 피할 수 있는지 정보를 교환한다. 사람들은 '길을 잃는 것'에 대해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길을 잃었다는 상황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길을 잃은 상황을 스스로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10


- 길을 잃는 것은 시간을 절약해준다


- 길을 잃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현대인에게 모험을 즐긴다는 것은 값비싼 취미다. 그리고 세계화로 인해 이제 세계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든 ... 자기 나라와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낯선 여행지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미리 찾아보고 정리할 수 있다. 모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피해 모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지로 떠나는 것이다.  12

다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모험을 하고 싶은 순가, 지도나 여행 안내 책자, 그 밖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돈을 절약하면서도 제대로 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13


- 길을 잃는 것은 휴가다

사람들이 휴가 주에도 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분분하다. 1년 중 비록 며칠일지라도 시간이라는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것은 힘들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겁을 먹게 되는 걸까? 여행사의 문제일까?  14


- 길을 잃어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지도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도를 보는 데 쏟는다. 하지만 지도 없이 여행을 떠난 사람은 주변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진귀한 동물도 더 자주 만날 것이고, 오래된 성곽의 흔적도, 수정처럼 맑은 못하는 주변 지역을 확대경으로 살피듯, 세밀화를 보듯 관찰하게 된다.  15


- 내비게이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길을 잃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않을까'이다.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해결책을 알고 있다

격투기를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낙법, 바로 넘어지기 기술이다. 카약을 타는 사람은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거나 피하는 방법 대신, 카약이 뒤집어졌을 때 몸의 균형을 바로 잡는 기술을 제일 먼저 연습한다. 같은 이유로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방향 감각을 찾는 법을 연습하면 된다.  17-18


길을 잃어서 죽는 일은 없다.  18


본능을 믿고 몸을 맡기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각적이어서, 위기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숨겨두었던 구체적이고 세세한 방향 찾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겸손해지고 현실적이며 독단적이지 않는 세계상을 열게 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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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디 같은 사람과 살아간다면 너무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주연이지만 영화의 절반도 되기전에 죽는다.

'루디도 참 행복하게 죽는구나' 영화를 다보고나서 들었던 생각이다.

이 영화는 위의 두 가지 외에도 현대인들이 꼭 생각해야할 꺼리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애절함을, 뭉클함을, 행복감을 들게도 하였고, 비통함을, 안타까움을 들게도 하였다.

앞의 감정들은 루디와 부인 트루디를 보면서 들게되고, 뒤의 감정은 자녀들을 보면서 들었다.


세 자녀들은 살아가는데 바쁘다. 시간의 여유가 아니라 부모에게 시간을 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에 그리고 편한 것에 더 익숙한 나머지 부모에게 시간을 투자하기위해 자신의 시간을 비워내지 못한다. 돌아가신 후에도..

그들의 대화는 부끄러워지게하여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마음은 가지고 있으나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모습이 나를 비추는건 아닌가해서..

자녀들은 부모의 방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첫째아들은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회사생활을 하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렵다. 부모에게 자신의 시간을 쓰는 것이 투자라고 하는게 맞을까.. 부모는 그리 오래 자식들과 함께할 수 없다. 그렇기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이라면 투자라 할 수 있을것이고 투자해야만 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딸은 동성애자로 나오는데 그 역시 부모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애인이 부모에게 더 잘하는모습이다. 뭔지 모를 부모에게 불만을 가진것처럼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반나절쯔음 부모님과 함께 있다가 언성을 높이게 된다.

지극히 일반적이라 할 수도 있을만한 일이긴 한데, 그 모습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막내 아들 칼은 일본에서 생활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일본, 동경하는 일본 하지만 일본을 보기전에 엄마는 세상에 없다. 아버지만 그것도 엄마의 흔적을 함께하여 대신온 아버지만 일본을 방문한다. 루디는 아내의 원을 대신 이루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그녀와 함께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하지만 아들의 눈에는 그것이 아니라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뿐이다.

아버지가 아침식사로 엄마표 롤을 만들어 주었을때, 엄마의 생각으로 자리에서 울기도 하지만 아버지와의 거리감은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함께 술을 마시고는 결국은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말을 뱉는다. 직장때문에 가족을 버린 아버지로 생각한다.

퇴근해서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줄 알고 집에서 누나와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가 이상하다. 엄마 옷을 들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혼자 종일 다닌다.'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에 모였을때와 엄마의 장례식에서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전혀 연결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김애란의 <두근 두근 내인생>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데인 것처럼...' 맞아.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다고 했어요.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뭐가?"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134-135

책의 내용은 노교수와 젊은 제자의 사이에서 잠시 스친 촉감때문에 일어난 사건의 표현이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그런마음을 가진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행동은 책의 내용에서의 행동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 경우에서 말이다


소통이란건 마음이 서로에게 닿아야 한다. 소통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자녀들이 아버지와의 소통자체가 없다. 생각부터 없어보인다. 부모에게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것처럼 소통을 위한 시간을 먼저 만들어 가야 하는것이 아닐까.

대체로 우리는 있을때는 잘 모르다가 없어야 소중함을 느끼게 되듯이, 부모의 존재유무는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한다. 

부모에대해 자신의 마음은 그리고 자신의 행동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이다.


트루디는 정년을 1년쯤 남겨둔 남편의 암선고를 받게되고, 사실을 숨긴채 남편 루디와 여행을 떠난다. 저녀들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보고 싶은 바다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트루디는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는 원하던 일본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베를린에서 부토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림자의 춤 부토. 그녀는 마지막에 부토를 떠올리며 자신이 분장하였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잠결에 숨을 거둔다.

트루디가 남편 루디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을 각인하였다. 그 온화하며 잔잔하지만 깊은 사랑을 간직한 표정. 손주의 방에서 침대와 바닥에서 따로 잠을 청하지만 서로 손을 잡으며 짓는 표정은 삶에서 사랑에 의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평온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생각이 든 지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였지만 그런 마음보다 더 큰 애정을 간진한 사람의 사랑.

남편을 떠나보내야하는 무너지는 가슴에도 애정은 더 커짐이 표정에 담겨있다.

인스턴트 식품에 묻혀 인스턴트 사랑의 시대에 더욱 염원하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트루디를 급작스럽게 떠나보낸 루디는 상실감을 그러면서 그제서야 떠난 부인의 모든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부인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그녀를 위한 여행을 한다. 막내가 살고 있는 일본으로. 

서먹한 아들의 비수를 찌르는 행동과 말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만큼 오직 아내 트루디만 생각한다. 

그녀의 옷가지들을 들고 여행하고 낮시간 다닐때는 코트 속에 부인의 옷을 입고 함께 여행한다. 

한적한 공원에서 부토춤은 추는 유(아야 이리즈키)를 알게되고 그제서야 부토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녀를 통해 아내와 더 교감할 수 있게 되고, 유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조금씩 찾아가게 된다. 결국 함께 후지산으로 향한다. 아내가 보고싶어하는 후지산으로.

그는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 새벽 조용히 부토 화장을 하고 후지산 근처 후지산을 띄운 호수앞에서 부토 춤을 춘다. 영화는 부토 춤을 추는 루디에게 어느새 트루디와 함께 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루디는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루디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잊지못하는 상실감을 부인의 마음을 알게되면서 그녀와 공감하며 죽게되는 루디. 나는 행복한 죽음이라 생각하게 된다.






아래는 영화에서 트루디역을 맡은 하넬로레 엘스너의 인터뷰이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찾다가 보았는데 그녀의 설명이 다시금 영화를 생각나게 하여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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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것을 최고로 치는 세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건만, 기죽지 않고 책 읽으며 당당하게 살아온 삶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5

책을 읽어 오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개종하여 채그이 세계에 입문할 터입니다. 이토록 지극하고 그윽한, 책에 대한 찬양을 듣고 오찌 책을 읽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 남에게 내세울 만큼 읽지 못했다 자책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훌륭한 내비게애션이 될 터입니다. 책을 정복하는 흥미롭고 다양한 길을 친절하게 일러주니 말입니다.  6

우리 사회가 책 읽는 공동체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진짜 책읽기의 달인입니다.  7



책머리에

포드주의 체제에서는 표준화된 공부가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탈 포드주의 시대에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가 시켜 주는 표준화된 공부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독서인 셈이다.  13

<88만원 세대>가 변화된 경제체제의 실체를 드러내고 나서 독서의 중요성을 말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서둘러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에서 탈출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서 그러하다.  15

'사오정' 신세.. 유쾌한 말은 아니지만, 이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읽는 책이 그저 재미잇고 감동적이고 도움 되고 실용적이면 소용없다. 은밀히, 그러나 거대하게 변화하는 세계를 꿰뚫어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귀띔해 주는 책을 읽어야 한다. 바른 길이 결국 지름길이다. 

에둘러 가는 듯싶지만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17-18


누가 감히 책을 속(俗 풍속 속)된 것이라 말하는가. 책은 우리를 성(聖 성스러울 성)의 세계로 이끄는 전령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행위는 기도하는 것과 같을지니, 보라, 한 명민한 화가는 책 읽는 소녀의 모습을 이토록 경건하게 그려내지 않았던가. 묵상하며 책 읽는 자, 어린아이처럼 책 읽는 자. 

순결한 마음으로 책 읽는 자. 홀연히 나타난 참되고 거룩한 세계를 볼지니!





'15분 토막 독서', 직장인 호모 부커스의 책읽기 - 안광복

나에게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생활이 허락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일은 더 하고 싶은 법, 책보고싶은 욕망은 이내 틈새를 찾아냈다. 지하철에서 


책읽기는 말라가는 영혼을 위해 내가 찾았던 최초의 해법이다.

자기관리 잘하는 이들에게는 억지가 없다. 그들은 자기 마음의 결을 따라갈 줄 알기 때문이다. 밀어붙이지 말고 가슴이 원하는 대로하라.  23



책 읽는 자유에 빠져 - 이종환

나는 '나만의 철학을 갖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36

철학 없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책에는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타인의 생각들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에 융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철학이 이루어진다. 나의 주체성이 확고해진다면 더 이상 외부조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37


책, 가장 강력한 호주머니 - 권혜린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절망 때문에 마음이 않아누운 상태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인심이나 사회가 변하는 동안에도 책은 자기의 생각을 담은 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은 믿음을 주었다. 책을 읽으며 그렇게 책을 닮은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48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은 홀로 아름답다. 그리고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호주머니에 서로의 손을 넣어 주는 것처럼 참으로 따뜻해 보인다.  50

우리는 물론 계속해서 무언가를 읽고, 말하고, 쓰고 있다. 시험을 통한 평가 방식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이와 같은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성찰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 잡고 있는 실용서와 처세술 책, 논술 교재들은 비슷한 내용을 다른 말로 포장하여 읽는 이에게 떠먹여준다.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않은 채 이 것을 허겁지걱ㅂ 받아먹으면서 무언가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 책을 읽고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법만 달라질 뿐 인격이나 사고 등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나를 성장시키는 책들은 확실하고 단순한 기술로 처세하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복잡하게 고민하면서 어떻게 처세할지 모르도록 만들어 준다. 세부적인 방법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삶을 읽는 것이기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스스로 사고하면서 온전한 내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삶과 책은 결코 동떨어질 수 없다.  51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인데 주머니 속에 넣은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이다. 이는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마천의 <사기> 중 [평원군전]에는 "평원권이 말하기를 모름지기 현사(賢士)가 세상에 처함에는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거소가 같아 곧 그 인격이 알려지게 도니다"라고 나와 있다. 우리 시대의 현사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뚫고 나올 호주머니가 없다면 송곳의 뾰족함도 보지 못할 것이니, 책은 곧 나의 능력과 재주를 발견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책이라는 호주머니를 갖고 있다면 인격과 사고라는 송곳이 뾰족해져 결국 주머니를 뚫고 나의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고 뭉툭한 송곳을 갈면서 힘을 기르면 된다. 아니,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그 힘은 길러질 것이다.  53



책을 펴는 곳에...

스승이 없다 말하지 말라. 책에서 찾으면 많은 스승이 있을 것이다. 벗이 없다 말하지 말라. 조용히 책을 펼치면 그곳에 벗이 있을 것이다. - 이선 <지호집>



책읽기, 세상으로 나가는 길 - 박은희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독서는 그 자체로 이미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공유하면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경험하는 것만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불행한 삶도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이것들을 아우르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즐거움이다.  84-85

교육만큼 훌륭한 훈련도 없다. 습관은 교육에서 비롯된다.

독서가 수단이 되어도 좋은 유일한 경우는 소통을 위한 독서였을 때이다.  87


우물 안 개구리가 드넓은 바다를 꿈꾸다 - 곽동운

독서의 대가들은 독서를 할 때 편견 없이 읽는 듯싶었다. 그들은 책을 읽으며 작자의 의중까지도 읽어 내는 듯싶었다. 책벌레들의 독서습성.  92

모든 것을 담고 있으려면 당연히 아래에 있어야 한다. 

세한고절(歲寒孤節)이나 아취고절(雅趣孤節)이란 말으 되뇌며 위로만 향했던 책읽기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바다에 도달하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하니깐.  94


책은 영향소 - 임진옥

사람에게 필요한 6대 영양소

탄수화물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주로 사람이 필요한 에너지를 내를 데에 쓰이고 간혹 에너지를 내고 남은 것은 몸에 축적된다. 어린 시절부터 접하는 동화책과 위인전, 자서전은 탄수화물과 같다.  96

지방은 탄수화무로가 단백질보다 약 두 배의 열량을 내고 영양을 저장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양소이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은 책에서의 지방이라고 할 수 있다.  97

단백질은 생체를 구성하고 신진대사에 관여한다. 책의 종류 중에서 단백질의 기능을 하는 것은 전공도서이다.  98

물은 우리 몸의 약 70%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다른 영양송에 비해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물을 쉽게 여기듯 신문도 대부분 날짜가 지나면 버려질 종잇조각쯤으로 여긴다. 이런 면에서 신문은 물과 같다.  99

비타민은 지용성 비타민과 수용성 비타민으로 분류되는데, 소량으로 몸의 여러 기능을 조절한다. 쓰이고 남은 비타민은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체외로 배출되기 때문에 한번에 많이 섭취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대신 일정한 양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사전은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

무기질은 종류가 매우 많다. 미량으로도 몸의 생리적 기능에 도움을 주지만, 부족할 때 결핍증이 생긴다. 나는 무기질이 '다양한 독서'의 기능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101

책은 영양소와 같이 각각 꼭 필요한 기능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생계형 책읽기 - 강양구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 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스티븐 킹)  117

생계형 책읽기의 첫번째 원칙은 '다독'이다.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특정 분야의 서지에 일가견이 있는 '고수'를 파악해 두라!

<자유시장의 정치> 이 책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네 나라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형성 과정을 추적, 비교하면서 답을 찾아나간다.

신문, 잡지에 실린 좋은 서평을 활용하라.  118-120

생계형 책읽기의 두번째 원칙은 '잡식'이다. 

미리 책 읽는 순서를 정해 놓고, 가능한 한 그것을 자신에게 강제하라!

어휘력, 문장력을 가르는 데 잘 쓴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한국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다룬 책 중에서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을 만한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은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일촌 관계이다.

알베르트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에서 아르헨티나으 ㅣ작가 에스트라다의 말을 인용해 "책을 읽으며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121-125

생계형 책읽기의 마지막 원칙은 '수다'이다.

책읽기는 책을 덮는 순간이 아니라, 읽었던 것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끝난다.  125



책 읽기는 열매다.

책읽기는 열매다. 한 시인의 말대로 대추 한 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그 안에 태풍, 천둥, 벼락 몇 개 있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하려면 무수한 책읽기를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삶이 어찌 영글 수 있겠는가. 상처받을 적마다 읽어야 한다. 외로워질 때마다 읽어야 한다. 우쭐해지면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책읽기는 빛이다. 영글어지되 홀로 뽐내지 아니하고,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비추려 하기 때문이다. 익어 저절로 빛나는 탐스러운 열매, 그것이 바로 책읽기가 지향하는 바이다. 나를 성숙케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124



생각하고 기록하기

"학자가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생각을 하면 얻어지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게 된다. 또 생각이 있으면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기록을 하면 남게 되고 기록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여 기록하고 또 생각하여 연구를 거듭하면 식견과 사려가 자라나서 언행이 통달하게 되는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식견과 사려가 없어져서 언행이 막히게 되는 것이지, 비록 얻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잃게 되는 것이다." - 윤휴 <백호전서>  131



넘나들기, 혹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감자줄기를 뽑아들다 - 최은희

'어떻게 살아야 하죠?' '어떻게 하면 요리를 잘할 수 있나요?' 역시 모든 '어떻게'에는 고통과 노동이 수반된다. 솔직히 '어떻게 책을 읽으라'는 사용설명서가 존재할 수는 없다. 물론 이미 그 한계를 넘어 본 사람으로서의 생생한 경험담이 있을 뿐이다. 책읽기의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진정으로 책읽기를 즐기기 위해 어떠한 고통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허나 너무 겁먹지는 마시기를, 그 고통을 넘어 책읽기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누릴 벗이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다.  159


호락하지 않은 예비승무원의 호락호락한 책읽기 - 하은혜

UN교육과정 스텝을 지원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때 면접관이셨던 교수님은 "나는 하루에 책을 적어도 한 권 그리고 세 권까지 꼭 읽어요. 그렇다면, 한 달에는 거의 백 권의 책을 읽죠."  192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책 레시피 - 이선영

책읽기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책을 읽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제대로 읽었냐는 것이다  199

독서는 감기약처럼 바로바로 효과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한권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효과적인 독서법을 실천하며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내 눈에서 그 효과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책이 전해 주는 많은 지식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기다려 보자.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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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속에 이야기, 그 속에 다시 이야기가 있는 영화이다.(액자식구성이라고도 하더라.)

1944년 전쟁의 끝에 첫눈에 반한 젊은 군인과 여인은 사랑을 하게 되고 전쟁후 귀국했던 군인은 여인에게로 다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생활한다.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죽게 되면서 부부는 상처를 서로 안아주지 못해 별거하게 된다. 그 사이 남자는 무언가에 끌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이후 부인을 찾아가 자신의 글을 건네고 돌아오라하고, 부인은 글을 읽고 감동하여 돌아오지만, 돌아오는 기차에 원고를 두고 내린다. 뒤늦게 원고를 잃어버린걸 알게 된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현대로와서 작가를 꿈꾸는 로리(브래들리 쿠퍼)는 도라(조 샐다나)와의 프랑스로의 신혼 여행에서 골동품점에 들러 가죽가방을 구입한후 돌아온다. 로리 역시 작가가 꿈이며 책을써 출판사들에 돌려도 계속 퇴짜를 맞는 중에 생계를 위해 출판사에서 일을 한다. 출근준비를 하던중 가방에서 우연히 원고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읽고 종일 그 글을 생각한다. 결국 새벽에도 잠이 깨 원고를 철자 하나 틀리지 않게 타이핑 한다. 우연히 도라는 그 들을 읽고 감동하여 출판을 권유하게 되고 결국 로리는 출간하게 되고, 올해의 문학상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원고의 원래 저자인 올드맨(제레미 아이언스, 1940년대 젊은 군인)이 방문하여 이야기는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내용을 쓰면 왠지 안될것 같아서..ㅎ)





결국 이 내용 전체는 클레이(데니스 퀘이드)의 책 내용이다.

이러한 이야기속에 이야기 또 그속에 이야기를 가진 영화이다. 참고로 영화의 진행순서와는 상관없이 내용을 적은 것이다.


로리는 올드맨을 만난후 자책감에 부인 도라에게 말하고 편집장에게도 밝힌다. 올드맨은 밝히지 말라고 한다. 도라도, 편집장도 밝히지 말것을 종용한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답이야 달라질 질문이지만,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까?


영화의 내용중에 몇 개의 대사로 생각해 보려한다.

우선 로리가 결혼전 도라와의 동거중에 온전히 글 쓰는데 집중하느라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버지를 찾아가 도와줄것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잔소리를 늘어놓은 후 결국은 도와준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남자란 건 아무리 버틸 수 없는 고통이 있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그것의 한계까지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로리가 올드맨에게 찾아가 자신의 생각은 사실을 밝히는 것이라 했을 때 올드맨은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선택을 해야 하지. 그리고 그걸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곳을 벗어난 로리는 벤치에 앉아서 독백으로 "우리 모두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어려운 부분이다."


영화의 후반에 클레이는 다니엘(올리비아 와일드)에게 "어떤 면에서는 당신은 삶과 픽션에서 선택을 해야해."라 한다.


로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클레이는 어떤 결말을 선택해야 할까?


세 작가의 이야기, 사랑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면서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충분히 우리 삶에서 일어날 수 있을 부류이기에 인생은 하나의 연극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신의 배역과 성격을 선택하여 연기하는 것이란다.

그만큼 선택이란 것의 연속이기에 선택에서 올바른것보다는 편한 선택이 더 유혹적이기에.. 

영화에서 라면 로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맞을까

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너무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으면 우린 편한 선택을 해버리기 쉽기에, 편한 선택이 무조건 틀린건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에 늘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는 결정을 할 수 있기에, 때론 맹목적을 따라만 가기에.. 


나는 아직 답이 없다. 나였어도 출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올드맨을 만나고 그가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밝히지 않을지 모르겠다. 올드맨이 밝히라고 한다면, 어떨게든 막으려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지점에서 어떤 악행이 추가될지 모른다. 

그래서 고민해봐야 했다. 

나는 답이 언능 떠올리기 힘들어 시간을 두면서 계속 고민할 것같다.

고민하는 중에 그러한 일이 발생되더라도 좀더 바른 결정을 하기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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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 사건들은 우리의 감정과 사리분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지점, 즉 '경계의 경계'에 감히 발을 들여놓은 무자비한 자들이 벌인 짓이다.


헤르만 헤세의 글귀 "밝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어둠을 알아야 한다."  10



누구든 일상적이지 않은 대상에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어린 시선을 유지하는 사람, 그리고 때로는 서문에서 말한 '경계의 경계 지점'에 과감히 발을 내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음과 같은 훌륭한 인식에 이른다. 

현실이야말로 어떤 소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분명하게 보여주는 점이 있다. 우리가 비록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여전히 사람이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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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을 한 뒤 그리운 것은 거대하고 웅장한 유적지가 아니라 뒷골목 어딘가에서 무심코 마주친 소소한 일상들이었다.



자유는 거찰한 게 아니었다. 발길 닿는 대로 어디론가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한껏 누린 대가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뚱뚱한 여자도 쫄티를 입을수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 잡고 연애를 할 수 있는 것, 자유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책임을 질 필요는 더 더욱 없었다.  15


혼자 여해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많은 욕심들을 접어야 했는지를.  18


'안정'만이 최고가 아니라 '모험' 또한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일깨워 주었다. 이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은 혼자일수록 좋았다.

외롭지 않느냐고? 혼자라고 해서 외로울 이유는 없다. 여행을 할수록 느끼는 건 외로움이란 혼자 일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다. 외로움은 늘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 틈에 파묻혀 있을 때 찾아오곤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때로 쓸쓸할 뿐이다.  20


길은 낯설수록 좋았고 혼자일수록 가슴은 미치도록 뛰었다.  23


여행자 입장에서는 적당히 퇴폐적이고 적당히 자유스런 분위기들이 때론 달가웠지만 그럼에도 관광객들 위주로 재편성되어버린 마을들은 늘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관광지의 옆 마을로 들섰다. 역시나 그곳엔 현지인들의 단단한 삶이 있었다. 예정 없이 들렀던 태국의 북부도시 람방도 마찬가지. 관광객이 별로 없다 보니 도시의 주인은 자연히 태국 사람들이었고, 상가가 아닌 주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시에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처마마다 제 나름대로 치장한 목조 주책들이 살가웠고, 그 골목 사이로 들어앉은 구멍가게와 밥직들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담장 너머론 꽃과 과일로 단장한 여유가 주렁주렁 내걸리고, 골목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온기와 함게 작은 공력들이 여실히 묻어나왔다. 그렇게 중심에서 살짝만 비껴나면 늘 뜻박의 풍경들과 에피소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길은 잃어버렸지만 실상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내 삶의 터전을 떠나면 세상 어느 곳이든 낯설긴 다 마찬가지. 그래서 때론 길으 ㄹ잃어버려도 좋은 것이다.  47


삶의 속도는 무서운 기세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밀어낸다. 아쉽다. 많은 것들이 너무나 쉽게 빨리 잊혀지기에 늘 그렇게 아쉽고 그립다. 삶의 속도를 딸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사람들은 때때로 시계 반대 방향을 따라 걸어보고 싶어한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건 비단 연어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가슴 속 한 켠에 돌아갈 곳을 그리는 연어를 키우고 있다. 사람들은 그 진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삶의 속도를 딸잡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그렇게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던데, 다행히 길 위에도 그리운 것들은 있었다.  111


여행자는 늘 이렇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여행의 함정이기도 하고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자의 눈으로 판단을 할 때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져야 함을 느끼곤 하지만 결국 여행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스쳐 지나는 것이기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축약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153


영화는 늘 현실을 아름다운 색으로만 채색한다. 그런에도 떠나고 싶고 확인하고 싶다. 설혹 현실이 내 판타지를 탈색시킬지라도 허상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생이 늘 그렇게 드라마틱할 필요도 없고, 다큐멘터리처럼 마냥 무거울 필요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환상과 현실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는 묘미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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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자의든 타의든 꺾이는 법부터 배우는 청춘들에게, 얼마든지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88만 원 세대로 원한다면 충분히 글로벌 세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단, 자유와 불안은 한 세트라는 것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내가 나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던 건 여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하나 밖에 없었다.  14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라고, 돈이 있으면 언제든지 여행은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럴싸하게 들렸다.  19


정말로 중요한 건, 누구든 원한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여행에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다는 것, 누가 뭐래도 여행은 모험이라는 것!  40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가이드북을 손에 쥐어야 길을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  41


젊게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몸이든 마음이든, 그래야 젊게 늙을 수 있는 거야.  58


멋지게 늙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얼굴의 표정이 다르다.  60


다른 누군가가 나의 꿈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세상을 사니까.  81


누구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게 관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넘길 떼가되면 과감하게 넘긴 사람에게선 일종의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a place close to your heart!'

"무슨 뜻이야?"

"누가 뭐래도 너의 심장이 닿는 곳이 최고야. 장소든 사람이든!"

나의 심장이 닿는 곳이라? 따지고 보면 모든 건 내 안에 다 있다. 모른 척하거나 헷갈리는 척하거나, 그렇게 애써 부정하려 해서 그렇지 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  92


좋은 추억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얼굴에 표정을 심어주는 것.  99


자신만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들 조바심을 냈다. 처음이란 늘 애틋한 법, 순례자들은 처음 함께 걷던 동료들을 잃어버릴까봐 부지런히 재촉한다. 사람들은 실상 지는 것보다 홀로 남겨지는 걸 더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미노를 찾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카미노는 끊임없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속도라고,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처음에는 좀 생뚱하다. 우리는 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듣고 자랐으니까, 거기다 우리는 뭉쳐야 산다. 라고 배운 단일민족의 자손들이 아니던가.  125


"우리 여행자들은 인도에서 5루피 10루피 사기 당했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실생활에서는 더 큰 사기를 당하고 있어. 인도 사람들 사기 치는 건 순진해서 금방 눈에 잡히는데 사회가 우리를 조종하는 건 너무 교묘해서 우리가 알아채기 힘들 뿐이야."


시작은 거기부터다. 코카콜라와 펩시를 선택의 자유,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빋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자본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척 하지만 실상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의식을 소비에 집중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대 사회에서는 광고가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노출되는 광고는 우리에게 타인의 욕구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인간의 욕구는 소비 하나로 통일되고, '소중한 나'를 위해 우리는 우아한 백화점에서 지갑을 연다. 그 대가로 장시간의 노동을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187-189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박인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89


일상의 억숙한 것들은 마치 정답인 척 굴러온다.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하지만 실상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실일 뿐, 진실도 아니고 정답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건 그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202


실상 프랑스 사람들은 프렌치 키스를 모르고 비엔나에는 비엔나 소시지도, 비엔나 커피도 없다. 꿈꾸는 건 자유지만 거기에 그게 없다고 화내면 곤란하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누구도 나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

어쩌면 장소는 우리의 영원한 짝사랑인지도 모른다.  223


아무것도 깨달은 게 없어도, 무언가 커다란 교훈을 얻지 않아도, 다행히 여행의 순간은 늘 기억으로 남아준다.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추억은 언제든지 내몫으로 돌아온다. 설혹 불쾌했던 감정일지라도 인간은 지나간 시간에는 관대한 법, 인간은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초조해 말라. 그저 기억에 시간을 달라.  254


사진보다 오래 남는 건 몸에 새겨진 여행의 기억이다.  257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 세상에는 애시 당초 '보통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 모두 저마다 대단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도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보는 삶이란, 동그란 지구를 네모난 종이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 부정한다고, 몰라준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밀려날 뿐 엄연히 그곳에 존재한다.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272-273


여행에 매료되었던 건 새로움 때문이었다. 일상의 많은 것들은 원래 그랬다는 이유로 나의 의식을 제한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를 아는 척하고 내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해주길 기대한다. 여행은 그런 익숙한 관계로부터의 일탈이었다. 똑같은 모습에서 벗어난 해방감, 일탈감이 주는 짜릿함. 그런데 여행도 하다 보니 또다시 의식은 우르르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내가 체화하지 못하면 관념에 불과할 뿐이다. 갇혀 있던 한 세상을 깨고 나왔는데 또다시 갖힌 기분이랄까.  287


여행에서 배운 게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속도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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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종종하는 말이 있다. '어차피 먹는거 맛있게 먹는게 좋은것처럼, 어차피 앉아서 하는거 제대로 한 번 하는게 낫다.'

공부는 자신이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역시 어린시절 선생님이나 어른들께 들어보았던것 같다. 흐린 기억을 되새김질 해보면, 당시엔 '그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당연한 말이니까. 그런 내가 지금 되읊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공부는 그런 것이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들에 자신이 보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어떤의미인지 알아내고,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쉽게 나온책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책은 심혈을 기울여 출간된다. 그런 책을 읽는것. 독서는 그 목적이 공부에서 시작되었으며, 알아감의 추구인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책읽는 이들은 꽤 많다. '직장인 1년 평균 독서량이 14.8권.' 2012년 한 조사의 결과 발표이다. 

연령대별 선택도서의 차이는 있지만, 예전보다는 꽤 늘었다. 발표에서도 젊은 층일수록 읽는 수가 많다고 한다. 

스펙을 강요받아서 그럴 수도 있고, 매체를 통해 종종 발표되는 '한국인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는 말에 자극을 받았을 수도 있고, 책을 좋아서 읽을 수도 있고,... 이유야 어떻든 책읽는 양과 비중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반가운 것이긴 하다. 


그런데 대체로 공부를 위한 읽기를 제외하면 편하게 읽고 있는 편은 아닐까.

잔혹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시간때우기로 읽는다면 그건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간 때우기라도 안읽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지적할 필요가 없는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말하고 싶은것이 읽더라도 좀더 깊이, 확장되이 읽어보자는 스스로의 독서에 대한 반성이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생각해보고, 정리하여 좀더 깊이 읽기위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도. 말은 거창하긴 하지만 글을 적어보는 짧은 시간동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에서는 글쓰기에 필요한 덕목을 말한다.

먼저 읽어야 함에 있어서, 이유당 이덕수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독서는 푹젓는 것을 기하게 여긴다. 푹젖어야 채고가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p70)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읽어야 함을 강조하는데 그냥 읽는 것이 아닌 책 속에 빠져드는 것, 한발 떨어져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그 속에서 읽어나가는 것을 독서라 했다. 무언가에 덤벼드는 느낌이랄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때 자신도 모르게 상채가 앞으로 기울어져 가는 느낌이든다. 

관심있고 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을때, 그것이 닥치면 우리는 좋아서 덤벼든다. 그것처럼 읽기도 그런 열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책의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쓰기에 필요한 덕목이 나오는데 아무리 보아도 읽기의 덕목으로 보인다.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관찰(觀察)하고 통찰(通察)하라.
어항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려면 어항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물고기에게 어항밖으로 나오는 일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래도 나와야지."  115
어항은 곧 책이다.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면 다음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책이 말하는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세상이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약의 원리다. 약을 알고 난 뒤 넓고 깊게 반복하다 보면 불현듯 통찰의 순간이 온다. 개인의 좁은 안목과 시야가 확장되면서 보편적인 사물의 이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오의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그 사물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 관찰과 통찰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 없이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116
  원칙을 따르되 적절(適切)하게 변통(變通)하라.  의중(意中)을 정확히 전달(傳達)하라.
독서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증자의 제자인 공명선은 책을 읽는 대신 스스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길을 택했다. 결국 스승이란 책을 읽은 공명선은 넓은 의미의 독서를 한 셈이었다. 공명선이 택한 길이야말로 독서를 창조적으로 변통한 것이었다. 
한신도 마찬가지였다. 배수진은 병볍에서 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신은 무턱대고 병볍을 따르는 대신 병볍의 참의미를 읽어냈다. 이것 또한 창조적인 변통의 좋은 사례다. 
글도 마찬가지리라. 남의 의견을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해서는 좋은 글을 남길 수 없다.  158
종채는 아버지의 말 하나를 어렵사리 기억해 냈다.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결코 그들을 배우지 않으리라."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되, 지금 여기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아버지의 다짐이 담겨 있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종채는 이제야 깨달았다.
쓰는 사람이 자신의 의중을 읽는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정밀한 글을 써야 한다.  159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統合的) 관점(觀點)을 만들라.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에도 제각기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쓸때는 그런 측면들을 빠짐없이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글을 읽는 사람이 편견에 빠지지 않고 의미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여러 측면들을 늘어 놓았으면 이제 그것들 사이를 꿰뚫는 새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 
대립되는 시각과 관점을 아우르면서도 둘 사이를 꿰뚫는 새로운 제3의 시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통합의 논리다.  188

글을 쓴이가 이렇게 써서 책을 만들어 냈다면 읽는이도 이렇게 읽어가야 하는것 아니겠는가. 

물론 글쓴이의 의도대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표현처럼 의중을 정확히 이해하고, 변통하고, 통찰하여 읽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책에서 말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쳐, 우리를 참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그 표현이 마음에 들은 박웅현씨는 자신의 책 제목을 <책은 도끼다>라고 정하였다. 

물론 그가 그렇게 지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의 첫 페이지에 그도 카프카의 표현을 옮기고 있음을 보고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책 내용역시 자신이 깊이 읽는 유형의 독자이며, 그 책들에 영행을 받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연암에게 글쓰기는 배우다>는 그 도끼같은 책을 만들기 위해 깊이 읽을 수 잇는 지침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쓰든 독자는 창의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그에 더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저자의 의도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독자의 해석방식으로 변통하고, 그러한 내용들로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는 것. 

책읽는 이의 자세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책을 그냥 읽어도 된다. 앞서 말했듯이, 책읽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짐으로 얕은 책읽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조금더 발전하는 읽기를 하게 하기 위함이다.


因循姑息, 苟且彌縫(인순고식 구차미봉) :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 좇으며 임시로 변통하려 한다.

책을 읽는 것은 당장의 답을 구하기 위함이기보다는 자신의 긴 인생 전반을 위해 읽어가는 것이기에 더 필요한 생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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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대(Modern times) 철학

- 정신적 변혁

근대 철학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확한 날짜와 그 시작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세와 근대의 뚜렷한 구분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1596~1650)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초는 스콜라철학을 비판한 이탈리아 인문주의와 유럽의 르네상스 철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근대적 사유의 출현은 17세기 초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15, 16세기의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사건이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의 발명(1450년경), 터키의 콘스탄티노플 정복(1453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1492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1517년), 마젤란으 최초의 세계 일주(1519~1522년: 이 사건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했다), 중세의 초국가적인 정치 통일체에서 벗어나 유럽이 국민 국가를 형성한 것 등이다.

요켠대 근대으 근본 사상, 즉 근대 정신의 특징은 진보 사상이다. 무엇을 향한 진보인가? 근대가 진행되는 동안 두 개의 동인(動因)이 점차 인식이 가능하게 드러나고, 이 두 요소는 다양하게 서로 섞이거나 분리되기도 하며, 또 서로를 비판하기도 한다. 인간성의 완성으로서의 도덕적 진보와 자연에 대한 지배로서의 과학, 기술적인 진보가 바로 이 두 요소이다. 근대의 인간은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활동성에 힘입어 자신의 책임하에 새로운 정신적 집을 구축하고자 도전한다. 근대의 인간은 새롭게 발견되 무한한 현세에서 새로운 방향 설정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정신적인 표식(질서 있고 유한하며 조망 가능한 우주와의 조화)과 중세의 정신적인 표식(초월적인 구원)은 새롭게 해석되며, 창조적인 방식으로 다시 수용된다.

중세에는 지식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인간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책-성경과 그에 상응하는 책들-이었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자연이 탐구된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텍스트들이 탐구의 대상이 되어 해석되었다. 주석들과 주석에 대한 주석들이 씌어졌다. 스콜라철학에서 지식은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던 그런 텍스트 독해가 바탕이 되었다. 논란이 되는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인된 다른 텍스트들보다 훌륭한 해석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의 권위에 대한 맹신과 단절하고 새롭게 실험적인 방식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갈릴레오 갈리레이였다. 그는 1632년에 종교 재판을 초래한 위대한 저서인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어느 날 베네치아에 있는 아주 유명한 의사의 집에 들렀다. 매우 박식하고 숙련된 그 해부학자의 손에서 어떻게 시체가 해부되는지를 보기 위해 연구자 혹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들락거렸다. 이날은 신경의 근원과 그 철발점을 탐구하고 있었다. 사실 이 문제는 갈레노스(고대 그리스의 명의)를 따르는 의사들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사이에서 펼쳐진 유명한 논쟁거리였다. 그 의사는 신경의 주줄기가 뇌에서 출발하여 목을 거쳐 척추로 뻗어 있고, 몸 전체로 가지를 치고 있으며, 또 아주 가느다란 줄기만이 심장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자리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 알려진 한 신사가 있었다. 그 해부학자는 이 신사 때문에 이례적으로 그 모든 해부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신경의 근원이 심장이 아니라 뇌라는 사실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 신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신경의 근원지가 심장이라고 분명하게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가 없었다면, 당신이 옳다는 것을 일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무시했다. 순수하게 근대의 자연과학을 양적이며, 측정 가능한 운동 관계로 규정한 그는 "자연과학에서는 추론이 참되고 필연적이어야 하며 1,000명의 데모스테네스와 1,000명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과는 다르게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갈릴레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가능한 자연 경험 전체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중세적인 확신에 따라 행동했다면, 이전 것보다 성능이 좋은 망원경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망원경으로 어떤 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목성은 행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행성들은 목성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553년에 르네상스의 철학자 마리우스 니촐리우스는 스콜라철학의 경직된 자연과학 개념들에 대항하여 '스승의 말에 서약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온갖 종류의 '교조적 제사장들'과 '남의 의견만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노예근성의 천민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는 그런 참된 철학을 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니촐리우스는 진리의 보편 원리들 중 하나는, 해당 대상의 진리와 그 본성이 요청하듯이 "모든 사물에 대해 사유하고 판단함에 있어서 자유롭고 선입관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는 참다운 철학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든 철학적 분파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누구나 어떤 사태의 진리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판단 결과가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현상하건 부정적으로 현상하건 간에 그것을 최종적으로 자유롭게, 제약 없이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그가 어떤 명성에, 그것도 아주 유명한 사람의 가르침에 근거한 명성에 얽매이거나 제약될 경우, 그런 자유로운 판단이 방해받을 것이다. 중요한 사태에 대해 판단하고 입장 정리를 할 때, 권위나 이미 주어진 견해에 의지하기보다 합리적인 논증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진리 추구에 있어서나 숨겨진 연관성을 추적해 가는 데 있어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과거나 현대의 다른 어떤 저자들보다 자신의 오감, 지성, 사유, 기억, 사물 들과의 직접적인 교류와 경험 등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그가 죽은 해에 출간된 저서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중세의 세계상을 무너뜨렸다.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지구는 다른 행성들과 같이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 지구는 구형이며,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물리학과 프톨레마이오스적인 체계의 권위로 거의 2,0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지구 중심적인 세계상은 태양 중심적인 세계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코페르티쿠스적인 전황은 '세계의 무한성과 무한한 태양계들의 존재'라는 지오르다노 부르노의 세계상에 의해 다시 한번 첨예화된다. 이 무한한 세계에서는 지구나 태양이 중심일 수 없다. 이 세계는 도처에 세계의 중심이 잇으면서 동시에 그 중심이 어디에도 없다 이제 세계는 지금까지 신에게만 부여되었던 '무한성'이라는 속성을 갖게 된다. 열린 우주라는 관념은 고대와 중세의 폐쇄된 세계상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부르노는 이런 엄청난 도발 행위로 인해 1600년 로마에서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결국 산 채로 화형당해 정신의 자유를 위해 순교했다.


- 르네상스 철학에서 계몽으로

이탈리아 인문주의는 1350~1460년 사이에 중세 스콜라철학에 맞서기 시작했다. 영원한 진리를 주장하는 형이상학, 즉 존재의 보편적 구조에 대한 학성을 거부하며, 구전되거나 문자로 전승된 인간의 생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관심사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문주의자들은 언어의 기능과 변화에 대해 통찰함으로써 인간이 역사적 존재임을 보이기 위해 고대의 텍스트에 다시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의 방법은 대상 혹은 존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서부터 출발했다(로렌초 발라). 박식하기보다는 더 훌륜하게 되는 것이 인문주의의 목표이다(페트라르카).

이탈리아 인문주의에 의해 처음 시작된 르네상스 철학은 통일적인 모습을 띠지 않았다. 이 철학은 전 유럽으로 전파되어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형이상학에 다시 문호를 개방한 르네상스('고대의 부활'이라는 의미) 철학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전체 유산과 로마의 철학을 되살린다. 거의 1,000년이 지난 후 플라톤의 아카데미가 다시 부활하였다(1440년 플로렌츠에 생겨나 플라톤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함). 인간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우주의 위계질서에서 인간은 동물과 신 사이의 어떤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인간 존엄의 핵심은 자유이다. 인간에게 이러한 자유가 보장될 때, 예술적인 창조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규정하며, 확고한 입지를 세워 나갈 수 있다. 행위가 존재를 규정한다(피코 델라 미란돌라).

16세기의 르네상스 철학은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자연철학 : 주술, 연금술, 점성술과 같은 상징적 지식은 자연의 완성을 돕는다(파르셀수스 폰 호헨하임). 자연신비 : 자연은 질적인 특서들로 가득 차 있다. 즉 자연은 신의 징표로서, 수학적으로 측정되고 양화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이해의 방식으로만 판독 될 수 있는 '근원적인 정령들'로 가득 차 있다(야콥 뵈메). 회의주의 : 고대의 회의주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자유로운 비판 정신이 나타난다(몽테뉴). 법철학 : 근대적인 자연법(인간의 본성에서 따르는 법)과 국제법의 토대가 마련되었다.(유고 그로티우스).

이와 병행하여 스콜라철학의 중세적 전통도 스페인에서 계승되었다(프란시스코 수아레즈).

세계 전체는 점차 인식하는 주체가 조종할 수 있는 객체로 되며,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대상으로 파악된다. 진보적인 세계 인식과 세계 개발의 올바른 방법이 모색되었다. 갈릴레이는 자연을 측정할 수 있는 수학적인 프로그램을 이용함으로써 영향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혁명을 이뤄 낸다.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측정하고, 측정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게 하라" 갈릴레이는 이미 바로크 시대에 17, 18세기의 역학적인 사유와 철학을 위한 기초를 세웠다. 

두 개의 인식 방식, 합리론과 경험론은 17세기와 18세가 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합리론은 이성에, 경험론은 경험에 바탕을 둔다. 진리의 모델을 수학에서 취하는 합리론자들은 감각적 지각과는 무관하게, 이성이 독자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순수하게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는 경험주의자들은 이 사실들이 감각적 지각을 통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현실성이 없거나 인식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합리론자인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神) 관념과 같은 본유 관념들이 존재한다. 본유 관념에 기초한 순수한 합리적 인식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경험론자인 로크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에게 있어서 영혼은 우연적인 경험에 의해서 비로소 채워지는 백지(tabula reas)이며, 본유 관념이란 잘못도니 가정에 불과하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 등은 이성의 보편적 지배라는 사상을 대변하는 합리주의의 위대한 형이상학적 체계의 대표자이다. 데카르트는 인식의 수학적 확실성을 원한다. 엄격한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그에 따르면, 순수하게 정신적인 사유의 세계와 순수하게 물질적인 외부 세계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영혼이 없는 물질세계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거대한 기계 장치이다. 따라서 이 물질 세계는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고 지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물은 영혼이 없는 유용한 기계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범신론(자연 전체를 신의 형태로 간주하는 이론)을 합리주의적으로 기술할 때 유클리드의 기하학에 따른다. 그는 정의와 공리에서 출발하여 증명 방식에 따라 모든 명제들을 연역한다. 라이프니츠의 목표는 철학에 있어서 일종의 대수학을, 즉 모든 질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에도 타당한 보편 수학을 찾는 것이었다. 독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프는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형이상학을 체계화한다. 이성과 덕 그리고 행복은 인간 세상에서 확대되어야 한다.

경험론의 대표자이자 부분적으로 반형이상학적인 입장을 취하는 철학자로는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 등을 들 수 있다. 베이컨은 모든 학문들을 방법론적으로, 포괄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로크는 경험 개념을 탐구한다. 그의 으뜸가는 경험주의적인 명제는 다음과 같다.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성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버클리에게는 경험만 존재한다. 그는 경험 외부에 있는 물질세계의 존재나, 경험과 무관한 물질세계의 존재를 무의미한 중복으로 거부한다. 회의주의자 은 일상 경험의 기본 구조, 즉 인과율의 근본 구조가 불확실한 믿음이나 사변적 해석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사건들의 시간적 전후 관계만 지각할 수 있을 뿐, 그 원인을 지각할 수 없다. 우리는 관찰된 시간적 전후 관계를 따져 곧바로 그 이유를 추론하는 잘못을 범한다. 인과율을 경험에 의해서 더 이상 검증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사태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17세기, 특히 18세기는 계몽주의시기이다. 계몽주의는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는 기간이며, 또 바로크시대에서 로코코시대로의 발전기이다. 18세기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합리주의적 사유 양식과 경험주의 적인 사유 양식으로 특징지어지는 계몽주의에 어느 정도 동참하고 있다. 물론 비판적인 거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대에 세상의 표정은 밝다. 이성은 세상을 밝혀 준다. 태양은 밤을 정복한다(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칸트는 다음과 같은 모토를 들고 나온다. "네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몽이란 인간이 자신의 과오로 인한 미성숙 상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의 권위와 제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커지고, 권력 분립과 소수자의 권리가 요청된다(로크, 몽테스키외). 볼테르는 "파렴치를 없애라!"는 구호와 함께 교회의 폐지를 외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성 종교(이신론)는 정중하게 신을 세계 밖으로 내몰아 홀로 머물러 있게 한다. 이 시기에는 보편적인 국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계몽주의 시대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지배를 통한 인류의 진보라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과학을 통한 해방!'은 프랑스 백과사전파(디드로)의 모토이다. 스스로를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로 삼는 낙관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진보 사상은 도덕적 진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레싱은 자신의 저서<인류의 교육>에서 계몽이 주도하는 시대가 왔으며, 계시 진리(신약과 구약) 대신에 생동적인 이성 진리가 자리 잡는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런 시대에 인간은 "선한 것을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의적인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부르주아 계급에서는 유용성(보상)의 관점이 팽배해졌으며, 돈이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기 시작한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대중 철학이 관심을 끌게 되었다.

계몽의 최고봉에 위치한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의 존엄을 강조한다. 윤리적 행위에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법 이외에는 어떤 다른 법에도 복종하지 않는 이성적 존재의 존엄이라는 이념이 바탕이 된다" 유용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인간의 존엄이 도외시된다. 인간의 존엄은 어떤 것에도 유용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엄은 도구화될 수 없으며,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히려 목적 그 자체이다. 즉, 인간의 존엄은 다른 어떤 높은 목적에 의해 상대화되거나, 배제될 수 없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서 존엄을 지킬 의무가 있다. 이는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잇기 때문이라기보다 인간에게 존엄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단순히 수단이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되고, 언제나 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칸트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방향을 맞춘 자신의 인식 이론에서 영혼, 전체로서의 세계, 신(예를 들어 신의 존재 증명) 등에 관한 초경험적인 지식을 다루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의 종언을 고한다. 이제 이러한 형이상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형이상학의 대상들은 인식의 한계를 초월한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제나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경험 과학적인 탐구이고, 자신의 무지에 대한 겸손한 인식이며, 철학적인 세분화이다.


- 독일 관념론의 시기

19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독일철학은 전성기를 구가한다. 문학과 철학은 상호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양자 사이에 엄격한 구분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는 개인의 운명을 통해 철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중요한 철학서로 읽힐 수 있다. 마찬가지로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이다. 신인문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독일 관념론은 대개의 경우 문학과 철학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발전 단계를 거쳤다.

신인문주의는 세 번째 인문주의로서 고대 연구에 몰두한다(인문주의의역사는 고대의 인문주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신인문주의로 구분될 수 있다). 신인문주의의 목표는 이상적인 인간성을 장려하는 것이다. 신인문주의의 개척자인 빙켈만은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주의적 계몽의 비판가로서 그리스의 조형 예술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영원한 이상을 이끌어 낸다. 모든 열정은 억제되고,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조화가 현실에서 실현된다("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성"). 헤르더는 역사를 인간성이 진보해 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문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성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다. 훔볼트 역시 인간의 세계 연관성을 본다. 그는 전문화된 교육 대신 인문주의적인 교양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계산적인 오성적 인간 대신 윤리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을 강조한다.

독일 고전주의에서 괴테와 실러는 장차 실현될 자유롭고 아름다운 인간성에 관한 진보적 이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고귀하다 인간이여, 

 자비심 많고 선하게 도리지니!

 이것만이 

 인간을 구별한다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과." (괴테)

실현 가능한 인간성의 이상에는 자연성과 정신성도 포함된다. 실러는 경향성과 의무가 통일되어 있는 도덕성의 이상을 대변한다(칸트는 경향성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실러와 다르다). 감성적인 것이란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힘들을 조화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감각적인 인간을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해 우선 감각적인 인간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감성적이라는 말은 '이상적인(관념적인)' '고전적인'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내 자신을 내가 현존하고 있듯이 형성함" 이라는 괴테의 교양 이념은 인간의 완서을 추구하는 창조적 행위를 강조한다.

"인간은 주변 여건을 가능한 한 많이 규정하고, 주변 여건에 의해 가능한 한 적게 규정될 때 최대의 공적을 쌓을 수 있다. 전체 세계는 건툭 기사 앞에 놓인 거대한 석재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건축 기사는 우연으로 주어진 이 자연물을 가지고 아주 경제적이고 합목적적으로, 의연하게 자신의 정신에서 나오는 원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 밖에 있는 모든 것은 구성 요소일 뿐이며,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만들어져야 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창조적인 힘은 우리 내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힘은 우리의 외부, 혹은 내부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을 만들어 낼 때까지 우리를 쉬게 하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게 한다."

낭만주의에서 나타나는 철학적, 종교적인 감정 세계와 영혼의 심연에 대한 낭만주의의 탐구는 실플라톤주의와 뵈메의 신비주의 그리고 경건주의와 유사하다. 예술은 고전주의가 추구했던 완성과 조화를 목표로 하지 않고, 오히려 전체 세계를 낭만화하는 과제, 즉 전체 세계를 무한자의 표현이자 의미로 파악하고, 알려진 것에 알려지지 않은 것의 위엄을 부여하는 끝없는 과제를 떠맡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무한자에 대한 의미와 기호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는 무한한 세계의 가슴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이 순간에는 세계의 영혼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계의 모든 힘들과 그 무한한 삶을 마치 나의 삶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이 순간에는 나의 육체입니다."

우주는 생동적인 전체이며, 영원한 생성이고, 무한한 영혼이다. 노발리스는 시적인 상상력을 통해 보다 고차원적인 현실을 펼친다. 동경 어린 사랑을 하는 시인에게서는 자연의 가장 내적인 정신이 축제를 펼치며 춤을 춘다. 이에 반해 합리주의적인 자연 탐구자의 손에서 "다정다감한 자연은 생명력을 잃고, 경령만 일으키는 찌꺼기만 남긴다." "내가 바위에 말을 걸면 그 바위는 독특한 너(Du)가 되지 않겠는가?

독일 관념론은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의 거부를 극복하고자 하며, 전체 철학사와 자기 시대의 과학적 지식을 모두 다루며 신인문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이 함께 만들어 놓은 지평안에서 근대의 가장 위대한 최후의 체계를 만든다. 가장 위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철학적 개념성과 개념화된 대상성의 완벽한 체계로 완성되어야 한다.  칸트로부터 시작된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는 피히테, 셸링, 헤겔이다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결심한다. "나는 자연이 아니라 내 자신의 작품이고자 한다." 노예적 본성(자연)을 지닌 사람은 사물들과 기존의 질서로 이루어진 세계, 즉 유물론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창조적 정신을 세계의 토대로 간주하는 관념론(이상주의)을 선택하며 비합리적으로 휘둘리는 현상을 자신의 행위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활동적이고 자유로우며 자기 자신과 동일한 자아로부터 철학은 출발해야 한다. 자유를 향한 사유 안에서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

셸링은 조기 저서에서 정신과 물질적 자연은 근원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술을 탐구한다. 예술은 철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정신과 자연의 동일성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예술은 철학을 돕는다. 예술을 통해 자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가능해진다. "자연은 볼 수 있는 정신이고, 정신은 볼 수 없는 자연이다."

셸링은 후기에 이르러 피히테처럼 순수하게 이성을 수단으로하여 철학적인 자기 정당화와 철학적인 세계 연관성을 추구하려 함으로써 점차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근대적 이성의 전능성 요청이 힘을 잃는 데 기여한다.

헤겔은 '우주의 이성적인 상'을 제시한다. 세계에는 아직 의식되지는 않지만 활동하고 있는 이성이 있다. 이성은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 온 힘을 다하며 절대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하늘과 땅 위에서 영원히 발생하는 모든 것, 즉 신의 삶과 시간적으로 행해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은 정신이 스스로를 인식해 자신을 대상화하고, 자신을 발견해 독자성을 띠며 자신과 통합하는 것이다."

1830년대에 이르러 독일 관념론은 붕괴된다. 베토벤(1827), 헤겔(1831), 괴테(1932) 등이 사망한 해는 독일 관념론이 종말을 고한 해이기도 하다. 괴테는 1825년에 새로운 것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슬픈 기분으로 과거를 회고한다.

"누구도 스스로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누구도 자신의 활동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누구도 자신이 가공한 질료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순수한 단순성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다. 천박한 언행이 범람한다. 젊은이들은 너무 수비게 흥분하며,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든다.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며 추구하는 것은 부와 빠름이다. 철도, 빠른 우편 제도, 증기선, 그리고 의사소통의 모든 가능한 수단들이 바로 교양인드이 원하는 것이며, 이것들은 서로 경쟁함으로써 결국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 우리들은, 아마도 우리들 중의 소수는 그렇게 빨리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대의 마지막 사람들이 될 것이다."




4. 현대(Century) 철학

- 전통과의 단절

19세기와 20세기에는 철학의 세속화 과정이 일어난다. 산업 혁명과 더불어 독일에서는 약 1830년부터 헤겔의 죽음(1831)과 시기적으로 동일하게 사유의 급진적인 현세화가 시작되었다. 세계에 대한 분명하고 총체적인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요구는 점차 의문시되고, 결국 완전히 포기된다. 과학은 철학의 권위로부터 해방되었고, 기술의 성공으로 승리를 더 견고히 했다. 거대한 철학 체계의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과학적인 이론들이 세계상과 인간상에 신기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진화론과 정신 분석학은 사유를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프로이트(1856~1939)이후 인간의 자기도취적 자기애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과학적인 연구에 의해 세 가지 거대한 모욕을 당해야했다. "나르시스적 자기애가 경험한 첫 번째 모욕은 우리의 지구가 만물의 중심이 아니라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과학이 이미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 이러한 사실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두 번째 모욕은 생물학적인 연구에 의해 인간의 창조적 특권이 무화되고, 인간의 동물적 기원과 본성이 제거 불가능하다고 선언되었을 때이다. 이러한 가치 전도는 우리 시대에 다윈(1823~1913), 월리스와 같은 선구자들의 영향으로 동시대인들의 격렬한 반발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인간의 위대함의 추구는 오늘날의 심리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세 번째, 가장 견디기 힘든 모욕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아는 결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인 삶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나간 정보들에 의존해 있음을 오늘날의 심리학적인 연구를 통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 관청에서 계획되어 공장 일처럼 수행된 대량 학살, 원자폭탄 투하 등은 20세기 진보에 대한 낙관을 중단시켰다. 게다가 20세기 후반부터 환경 위기에 대한 불안이 점점 고조되었다. 20세기의 거대 범죄를 통해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방향설정인 인간의 불가침적 존엄성이 상대화되거나 구속력을 상실하게 되면, 과학과 기술이 야만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모든 기술적인 개선은 그 도덕적 결과가 어떠하든 진보로 간주된다. 윤리적으로 맹목적인 진보 사상의 관점에서 아우슈비츠의 한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한다. "트레블린카 수용소보다 더 개선된 수용소가 구축되엇다. 트레블린카 수용소의 10개의 가스실이 200명만을 수용할 수 잇는데 우리는 한 번에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스실을 지었다."

20, 21세기의 철학은 조망이 불가능할 정도로 입장이 다원화되었다. 고대, 중세, 근대의 사유에는 어떤 연결점들이 있었으며, 그때그때 선호되는 수학, 물리학, 사회학, 생물학, 등이 철학의 모범으로 선호되었다. 넓은 철학적 스펙트럼은 새로운 방법들과 높은 수준의 비판적 반성들, 그리고 세련되고 분화된 이론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적인 대화이든 가상적인 대화이든 간에 대화 속에서 논증적인 상호 이해를 불가치하게 수용하는 '철학'이라는 개념은 또 다른 의미도 추가하고 있다. '철학' 개념은 온갖 형태의 정치적인 세계관으로부터 광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한 극단적인 예로, 1980년대에 어떤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의 액세서리를 파는 광고를 '철학은 팝니다'로 내보낸 바 있다.


- 19세기 철학

쇼펜하우어(1788~1860)는 정신적인 전복, 곧 형이상학적인 가치 전도를 수행한 철학자이다. 그는 의지를 인식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세계가 '의지의 전능한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하며 '철학의 토대 변화'를 시도한다. 인간과 세계의 가장 내밀한 존재는 비이성적인 무엇, 곧 어두운 충동, 맹목적인 의지이다. 경험적으로 고찰해 볼 때,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 쇼펜하우어가 추정하는 것처럼 침팬지로부터 유래한다. 세계의 근본 특성은 고통, 부정성, 무의미이다. 보편적으로 의지에 지배받는 것은-특히 성(性)이 그렇다-예술, 연민, 체념 등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

실증주의는 모든 사변이 극복되었다고 생각하며 자연과학적인 사실들을 종합하는 데만 자신의임무를 국한하였다. 출발점은 '실증적인 것'인데, 이것은 실제로 주어진 것, 경험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인간의 정신적인 발전은 세 단계, 즉 신학-형이상학-실증주의적인 단계로 진행한다.(콩트, 1798~1857)

영국의 공리주의는 어떤 유용한 것이 최대 다수의 행복을 촉진시키는 한, 이 유용한 것 속에서 인륜적 삶의 계산 가능한 토대를 본다. 행위의 목적은 '더 큰 행복'이다. 낙관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모든 중요한 인간 고통의 원인들은 인간의 노력과 수고에 의해 현저히, 심지어 거의 전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밀, 1806~1873)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 즉 정신과 마주하고 있는 자연이 보다 더 근원적이라고 주장한다. 유물론은 '종교 대신에 과학'을, '신에 대한 봉사 대신에 인간에 대한 봉사'를, '인간의 행복을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L. 뷔히너, 1824~1899)

사적 유물론은 프롤레타리아 역시 자본가와 동등한 정도로(물론 그 쓰임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자본의 산물, 즉 자본의 '부속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이유는 이들 둘 다 불변하는 자연법칙처럼 진행하고 있는 경제적인 법칙성에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의 해석 대신 현실의 변혁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마르크스. 1818~1883)

미국의 실용주의는 사물에 고유한 존재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다. 현사오가 실재의 구별은 '세계와 인간에 유익을 가져오는 서술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서술인가'의 구별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론은 도구가 도니다."(제임스, 1842~1910) 영원성에서 미래로 관심이 옮겨 져야 하고, 안정적인 확실성에서 대한 추구는 환상과 개방적인 대안에 대한 요구로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소유로서가 아니라 과제로서 이해된다.(듀이, 1859~1952)

정신과학의 토대는 생(生)철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신과학의 과제는 생을 형이상학적인 설정 없이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일방적이고 냉정한 이성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 자신의 정신적인 '대상화'도 포함하는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생'이다. 그 목표는 인간의 정신적이고 역사적이며 개별적인 세계에 걸맞는 이해의 기술, 즉 과학적 해석학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과학은 의미 연관을 이해한다. "인간이 활동하는 가운데 자신을 각인시킨 모든 것이 정신과학의 대상이 된다."(딜타이, 1833~1911)

19세기의 후반, 철학사에 이미 등장한 입장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철학 운동들이 나타난다. 그 한 예가 1870년과 1920년 사이에 유물론과 싸우면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인식론적인 해명을 시도하는 신칸트학파이다. 그들의 표어는 다음과 같다. "따라서 칸트로 되돌아가야 한다."(립만, 1840~1912), "칸트로의 복귀는 진실로 진보를 존중하는 것이다. 과학과 철학을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연결하는 실타래가 다시 연결되었다."(릴, 1844~1924), "칸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를 넘어서는 것이다."(빈델반트, 1848~1915) 두 번째 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세 철학을 혁신한 신토마스주의(신스콜라학파)이다. 교황 레오 13세의 교서 "아에테르니 파트리스(Aeterni Patris)"는 1879년 성토마스의 철학을 카톨릭 교회의 기준으로 발표한다.

니체(1844~1900)의 저서는 서양 형이상학 비판과 도덕 비판의 한 정점을 보여 준다. 그는 형이상학을 있는 그대로의 생을 완성하지 못한 이들의 무능력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본다. "모든 지하 세계(Hinterwelten, 생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들, 예컨대 도덕, 종교와 같은 것들을 니체는 '지하세계' '배후의 세계'등으로 말한다-역자 주)를 창조한 것은 고통과 무능력이었다." 니체는 자신의 현재를 형이상학이 붕괴하는 시기로 진단한다.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 평가 절하되었고, 목표는 없으며 신은 죽었다. 무(無)가 신의 자리에 들어선다. '허무주의의 도래'가 앞으로 200년 동안의 역사이다.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인간은 왜곡된 길로 들어서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점점 더 빠르게 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어디로? 무로?" 모든 것은 생명력 넘치는 '미래 인간' '초인' '신과 무를 이겨 낸 사람'에게 달려 있다.


- 20, 21세기의 철학

현상학은 20세기 초반 '세계관 철학'에 대항해서 철학을 엄격한 '순수 현사들에 관한 학문'으로 근거 삼으려 했다. 현상학은 '사태 그 차제로'라는 준칙에 따라 의식 내용의 객관적 본질을 절대적이고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직관하고, 편견 없이 정확하고 완전하게 기술하기 위해 방법론을 발전시킨다.(후설, 1859~1938) 현상학은 현상(Phaenomen)과 본질(Noumenon)간의 전통적인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현상들 배후에는 형이상학적으로 초감각적인 것들, 즉 초월적인 제2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현상학의 현상들 배후에는 이 현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숨어 있다. 그리고 현상은 처음에 대부분이 이미 주어져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상학을 필요로 한다. 감춰져 있음이 '현상'의 대립 개념이다."(하이데거, 1889~1976)

존재 사유. 딜타이와 후설을 이어 받고 있는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는 '존재하고 있음'이라는 말로 우리가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존재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의식, 자아, 주체 등으로 말하지 않고 '현존재'로 말한다. 인간적인 현존재는 자기의 고유한 존재와 관계를 맺는 특징이 있으며, 이를 통해 자기 존재는 '실존'으로 규정된다. 초기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1927)에서 존재에 관한 질문을 현존재로부터 제기한다. 이 때문에 현존재와 그 구조 분석이 전면에 등장한다. 현존재는 '세계 안의 존재'이고,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이며, 세계와 관계 맺는 '이해하는 현존재'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 안에서 이 존재에 대해 이해하면서 관계를 맺는 존재자이다." 현존재는 시간 관련성 때문에 '염려'로 특징 지워진다. 후기 하이데거는 우리 시대를 진단하면서 원자 시대라는 말을 한다. 인간은 지배하고 계산하고 싶어 하는 사유 속에 모든 것을 예속시킨다. 현대 기술은 세계 지배를 이루려는 이러한 권력 의지의 승리이다. 기술은 존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존재가 모든 역사를 가느하게 하는 근거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존재 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그는 존재를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존중하게 되고 스스로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존재 물음은 사유라는 '세계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답하는 가운데 땅에서 나오는 것과 이 땅의 인간 현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결정된다." 이 질문에는 우리를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만드는 계산적 사유의 광기와는 다른 사유가 자리한다. 그 대안적 사유는 '의식하는 사유'이다. 이 대안은 더 이상 자의적으로 도출될 수 없다. "여전히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실존철학은 키르케고르(1813~1855)뿐만 아니라 후설과 아이데거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는데, 더 이상 단순히 사유된 철학에 만족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실에 낯선 체계 대신 인격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유를, 철학의 현존재 대신 철학적 현존재를 요구한다. 문제는 야스퍼스(1883~1969)의 말처럼, 인간이 자신의 '한계 상황(죽음, 불운, 범죄)' 속에서 타자와의 의사소통을 통해 자기 자신이 되며, 초월적 존재에 이르는 자신만의 고유한 실존적인 도정을 위해 결단한다는 것이다. "실존으로서 우리는 신(초월자)과 관계하며, 이러한 사실은 사물을 암호와 상징으로 만드는 언어를 통해 가능하다." 이와 달라 사르트르는 인간의 완전한 자유에서 출발한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개별자는 자신을 구상하는 대로 그렇게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이 특정한 목적으로 스스로를 만든 것,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 <악마와 사랑스러운 신>에서 신을 부정하는 실존주의자로 바뀐 괴츠는 신을 찾아다니며 "신은 존재하지 ... 않는다"고 말한다. "이 땅 바깥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인간을 벗어나 있을 가능성은 없다. 거대하고 성스러운 것은 끝났다. 자만심도 끝이다. 인간만이 현존할 뿐이다."

철학적 인간학. 셸러(1874~1928)는 개별 과학의 연구 결과를 활용해 우주에서의 인간의 '특별한 지위'에 대해 여러 분야를 망라하여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무한히 세계 개방적으로 처신할 수 있는 미지수 X 이다." 예를 들면, 겔렌(1904~1976)에게 인간은 동물과 비교해 볼 때 본능이 완전히 발전하지 않은 '결핍의 존재'이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인위적인 자연, 즉 문화를 건설한다. 지속적인 사회 제도들이 부족한 본능의 필수적인 보완으로 역할을 한다. 겔렌은 "민족의 제도가 파괴되면 인간에게는 아주 근본적인 불안정, 변종 그리고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고 했다.

20세기는 언어철학의 세기이다. 언어를 사유의 중심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정신과학만이 아니다. 언어 분석철학 역시 '언어적 전환'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언어) 분석철학은 19세기의 실증주의 논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연과학뿐 아니라 논리학, 수학에 경도되어 있다. 다수의 옹호자들을 가지고 있는 이 철학 운동은 형대철학의 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 운동은 일종의 언어 비판으로 시작했다.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개념들 간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주자 오류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운동은 "이 오류들을 발견함으로써 인간 정신에 대한 언어의 지배를 깨뜨리고자 한다."(프레게, 1848~1925) 철학의 모든 영역에서 나오는 문제들은 언어 분석이라는 방식으로 해결된다고 한다. 어떤 조건하에서 진술들이 학문적으로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가 제기된다. 초기 카르납(1891~1970)에게 있어서 어떤 명제 안에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무의미한 단어들(절대자, 존재자의 존재, 무)이 들어 있지 않을 때, 또한 그 명제가 문법이나 구문적으로 올바르게 만들어져 있을 때 그 명제는 의미가 있다.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분석철학의 대표자로 간주된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리철학 논고>(192!)에서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질문이 "우리 언어의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그는 의미 있는 언어가 가능하기 위해 만족되어야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묻는다. "철학의 올바른 방법은 원래 말해질 수 있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즉 자연과학적인 명제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따라서 철학과 관계가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형이상학적인 것을 말하고자 할 때 그의 명제들 속에 있는 특정한 기호에는 그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유고로 출판된 그의 저서<철학적 탐구>(1953)에서 이상적으로 구성된 세계를 모사하는 단위 언어라는 사상을 포기하고, 일상 언어(ordinary language)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단어의 의미는 이 단어의 일상적이고 다양한 사용과 분리될 수 없다. 언어 사용은 언어 공동체 삶의 형식 중 하나이고, 항상 구체적인 행위와의 연관 속에 서 있다. 일상 언어는 단일성, 곧 통일된 세계 기투(企投)로서가 아니라 서로 교차하는 무수히 많은 '언어 놀이'의 다수성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언어 놀이'라는 핵심 개념은 언어를 언어이면서 활동으로 파악한다. 예를 들면 명령하는 것,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 연극 놀이하는 것, 부탁하는 것, 감사하는 것 등이 언어 놀이다. 한 단어의 의미는 더 이상 <논리철학 논고>에서 처럼 대상의 모사로 이해되지 않고, 놀이의 경우처럼 실용적으로 특정한 행위 맥락에서 그때그때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특정한 언어적 행위 맥락에서 이해된다. "언어에서 한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의 사용이다." 언어는 일상적인 '삶의 형식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단지 그것들과의 연관, 즉 문맥 속에서만 명시적인 의미를 가진다. 형이상학적으로 보편적인, 맥락을 초월한 이론은 배제된다. "삶의 강물 속에서만 언어는 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단어들을 그 형이상학적인 사용으로부터 다시금 일상적인 사용으로 되돌린다." 또한 언어 비판은 치료적인 과제를 가진다. "철삭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오성을 마법에 빠뜨리는 것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철학의 결과는 오성이 언어의 한계로 돌진하는 경우 가지게 되는, 어떤 단순한 무의미함과 종양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분석철학의 가장 활발한 옹호자는 콰인(1908~2000)이다. "감각 자료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멀리 떨아지려 하지 말라."

비판적 합리주의. 포퍼(1902~1994)는 모든 종류의 교조주의를 배제하고자 하는 과학 이론을 주장한다.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은 잠정적인 이론이며, 비판을 통해서만 개선된다. 이론은 결코 증명될 수 없지만 사실을 통해 반박될 수 있다. 궁극적인 이론, 예를 들면 역사 법칙 이론은 상상에 의해 산출된 지식이다. 역사는 예측할 수 없는 개방된 과정이다. '거짓도니 예언자', 즉 역사철학의 역사주의자들은 미시에 빠져 있다. "역사주의자는 역사의 사실들을 고르고 정렬하는 자가 바로 우리임을 보지 못한다. 그는 반대로 '역사 그 자체' 혹은 '인류의 역사'가 그 내재적인 법칙을 통해 우리, 우리의 문제, 우리의 미래,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관점까지도 규정한다고 믿는다." 잘못된 근본주의적인 역사 이론과 사회 이론에 근거해 있는 혁명적인 세계 개선이 거부되며, 개별 문제들에 대한 겸손한 개혁, 즉 항상 수정 가능한 '불완전함의 기술'이 권유된다. 따라서 서구 민주주의는 이미 실현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이지만 여전히 단계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

현재 영향력이 막강한 비판 이론(프랑크푸르트학파)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운동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두 사상가 호르크하이머(1895~1973)와 아도르노(1903~1969)는 '합리적인 사회' '노예적인 관계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라는 그들의 근원적인 목표에 점차 회의적이고 체념적인 태도를 보인다. 유럽의 문명 과정은 그들에게 깊은 양면성과 자기 파괴성을 보여 준다. 그들의 공동 저서이기도 한 이러한 '계몽의 변증법'의 뿌리는 인간의 이성과 이에 근거하는 실천에 있다. 동일화, 계측화, 유용성으로 환원되는 특정한 형태의 이성은 역사적으로 형성되었고,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본성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인간은 자신이 힘을 행사하는 대상으로 소외됨으로써 자신의 힘을 증가시킨다." 과학, 기술, 후기 자본주의, 문화 산업 등을 통해 강화도니 이러한 이성의 파괴성은 20세기에 야만으로 변화한다. "완전히 계몽도니 지구는 의기양양한 파멸의 조짐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계몽은 자기 자신을 의식해야만 한다." 철학은 "이성의 자기비판"이 되어야 한다. 

구조주의(신구조주의)는 많은 과학적, 철학적인 분파를 가지고 있다. 구조화된 질서로서의 언어는 구조주의(신구조주의)의 중심 연구 대상이다. 구조적인 분석은 근원적으로 언어학(소쉬르, 1857~1913)에서 뿐만 아니라 민속하겡서도 시도된다. "다양한 현실을 드러내 주는 질서의 형성과 기능 방식이 어떤 구조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었는지 정확히 알 때에만 우리는 바로 그 질서의 형성과 기능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나는 출발한다."(레비스트로스, 1908) 구조주의자들에 따르면 비가시적이고 비의식적인,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구조들, 즉 객관적인 법칙성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프랑스의 몇몇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1960년대 후반에 프로이트의 '무의식' 또는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동기로 삼아, 자율적인 주체인 인간을 내쫓는 권력의 선구조들을 탐구한다. "모든 인간적 인식, 모든 인간적 실존, 모든 인간적 삶, 그리고 아마도 인간의 생물학적인 유전 역시 구조들 속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 즉 서술 가능한 관계들에 예속되어 있는 요수들의 형식적인 전체 속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느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주체가 아니며, 또한 주체이면서 객체가 아니다.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구조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구조들에 대해 인간은 사유하고 기술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그것의 주체, 그것의 지배적인 의식은 아니다."(푸코, 1926~1984) 인간은 익명적인 규칙들의 산물이다. 그는 더 이상 중심에 서 있지 않다. 주체는 '탈중심화'된다. '인간과의 결별'(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에 비유한) '인간의 죽음'은 신구조주의에서 전통적인 형이상학, 역사, 주체, 의미의 표상 등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낳았다. "인간은 해변의 모래에 그린 얼굴처럼 사라졌다.

" (푸코) 데리다의 언어 비판(1930~2005) 역시 새로운 시도를 옹호한다. 글자에 대한 구어, 즉 로고스의 전통적인우위가 역전된다.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Dekonstruktion)'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언어, 문자, 진리가 새롭게 사유된다. 또한 철학적, 문헌학적 실험의 '놀이'에서 텍스트들은 병렬적으로 놓이며(철학, 과학, 문학 작품 등 모든 텍스트가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 없이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뜻- 역자 주),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어떤 확고한 의미도 부여받지 못했던 그런 다른 방식의 '글 일기'를 실험한다. "우리가 듣게 될 죽음의 종소리는 의미와 뜻과 지시체의 종말을 알린다(데리다, Derrida)." 텍스트들은 난공불락이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대략적으로 만들고, 내가 만든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데리다, Derrida)

포스트모던의 철학적인 특성은 니체와 하이데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신구조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모던은 정치적인 압제와 테러에 연결되는 형이상학, 즉 역사적인 총체적 해석과 비전으로부터 결별한다. 포스트모던은 이성의 거대한 통일적인 진보의 프로그램, 인간성의 추상적인 해방과 행복, 진보에 낙관적인 계몽의 유혹, 혹은 구원을 약속하는 마르크스 주의의 유혹 등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포스트모던'이란 메타 차원의 설명에 더 이상 어떤 믿음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리요타르, 1924~1998) 포스트모던의 근본 태도는 다원주의인데, 이 다원주의에서 이질성, 논쟁, 차이, 심미적 경험 등의 의미가 산출된다고 한다. "우리는 전체와 일자에 대한 열망, 개념과 감성의 화해에 대한 열망, 투명하고 소통 가능한 경험에 대한 열망을 위해 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 이에 대한 대답은 전체(총체성)에 대한 전쟁이다. 우리는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증언하고, 논쟁을 활성화시킨다."(리요타르) 이성은 퇴각하고, 무장 해제되어 '허약한 사유'(바티모, 1935~)로, 폭력 없이 숙고하는 사유로 바뀐다. 놀이적이고 비구속적인 것은 '작은 이야기들'로의 입구를 발견한다. 누락, 이탈, 역설뿐만 아니라 작은 무의미와 큰 기지, 그리고 조롱도 이 범주에 속한다.

새로운 해석학. 가다머(1900~2002)는 딜타이와 하이데거에 의지하여 이해 이론을 발전시킨다. "이해는 인간적인 삶 자체의 근원적인 존재 특성이다." 언어성은 인간의 세계 경험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세계의 현존은 언어적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언어 속에서 세계가 묘사된다." 그런데 언어의본성은 가장 어두운 것에 속한다. "철학적 해석학의 최고 원칙은 내 생각에 따르면, (그리고 그 때문에 그것이 해석학적 철학인데), 우리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가다머)

새로운 비판 이론. 하버마스(1929~)는 이전의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보여 준 비판 이론의 부정적이고 탈출구 없는 역사철학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탈형이상학적 사유에 기대어 '근대의 기획'을 동시대의 공격과 상대주의로부터 변호한다. "내 말은 근대와 그 기획 자체가 상실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근대의 기획이 가져왔던 혼란, 과장된 지양의 프로그램의 오류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계몽의 이념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이성의 척도, 확신을 주는 보편적인 담론은 새로운 문맥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인권은 그 올바른 해석을 위한 문화들 사이의 지속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견을 가진 이들이 자신이 겪은 것과 그들이 억압적인 정부에 대해 요구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뿐 아니라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과 열악한 삶의 상황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은 아직 그 힘을 상실하지 않았다."(하버마스).

신실용주의. 로티(1931~)는 미국의 실용주의적이고 분석적인 전통을 유럽의 해석학적인 전통과 연결시킨다. 그는 듀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과 관련이 있지만, 또한 세계 문학의 위대한 소설들과도 관계한다. 이러한 소설에서 그는 다른 인간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는 세련된 감정을 기대하낟. 실용주의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은 덜 무자비하고, 연대가 더 많은 개선 가능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실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감수성 있는 태도를 추구한다. 인식과 지식이 아니라 교육과 대화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탈형이상학적인 사유가 여기서 성찰된다. "형성되고 있는 철학은 객관적인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가동시키고자 한다."(로티)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이 시대의 사상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에 속한다. 그녀의 삶에는 20세기의 가장 어두웠던 현실이 짓누르고 있다. 그녀는 전체주의 시대에 독일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극단적 악의 문제를 다루면서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참여 사상가로 활동한다. 1951년 3월 4일, 그녀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용기를 보여 준 자신의 친구 야스퍼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극단적인 악이 실제로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잉여적으로 만드는 현상과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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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입문서로 출간된 책이어서 시대별 분류를 하여 대표적인 철학자들 50여명을 소개한다. 

개관과 철학자들의 핵심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나, 개관들만 옮긴다.

내용에서 발췌하려 하다가 그것보다는 개관들 전체 내용을 통해 정리해 보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옮긴다.


철학의 구라들 (下) 보러가기 


1. 고대(Ancient times) 철학

-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철학보다 먼저 세계를 근본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것은 신화(이 말은 어원적으로 '말' '이야기' '알림'등의 뜻을 가진다)였다. 예를들어, 호머 시대의 창조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태초에 만무르이 여신인 에우리노메가 있었다. 이 여신은 벗은 채로 카오스에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이 여신은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여신은 바다를 하늘로부터 분리시키고 파도 위에서 홀로 춤을 췄다." 에우리노메는 큰 뱀인 오피온과 짝을 이뤘다. "그런 다음 에우리노메는 비둘기의 형상을 취하고서 파도 위에 내려앉아 자신의 시대를 위해 '세계를 품은 알'을 낳았다. 오피온은 여신의 분부에 따라 이 알이 부화하도록 알 주변을 일곱 번 돌았다. 이 알로부터 현존하는 모든 것이 생겨났다. 태양, 달, 행성, 별 들이 생겼고 산, 강, 나무, 풀, 동물 들이 있는 지구가 생겨났다."

기원전 6세기 초, 소아시아의 해변에 있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에서는 세계를 신비적이고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몇몇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사유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150년 전에 개념적으로 분석하는 철학의 길을 걸었으며, 신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참다운 세계와 가살의 세계를 구분할 줄 알았다. 세계와 그 해석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통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철학과 신화는 서로 섞이면서 독자성을 띠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자연의 통일성을 확신한 그들은 근원을 추구햇으며, 다양한 현상의 원인이 되는 하나(一者)를 추구했다. 그들은 세계를 가장 근본적으로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와 같은 최초의 사상가들은 근원 질료에 대해, 남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근원 형식에 대해, 에베소 출신의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보편 법칙에 대해, 그리고 아테네의 아낙사고라스 같은 사상가들은 질료적인 원소와 질서를 만들어 내는 근원적 힘에 대해 질문했다. 압데라 툴신의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 고전철학

'지혜의 교사들'인 소피스트들은 기원전 5시기에 그리스 고전철학으로 접어드는 과도기에 주로 활동했다. 그들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그들은 고대 도시 국가에서의 공동생활을 둘러싼 문제를 생각했으며, 인간적인 인식 행위의 타당성을 검토햇다. 그들의 수업은 다면적인 교양과 뛰어난 대화술,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간이라는 계몽된 새로운 이상에 맞춰져 있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반대 입장도 수용할 수 있는 대화술을 통해 모든 인식을 상대화했다(아테네의 프로타고라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대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시기에 철학의 중심지가 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철학적 사유는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절정에 달한다. 그들은 선(善)의 문제를 다양하게 사유했고, 선은 결국 진(眞)과 미(美)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선한(좋은) 삶이라는 이상을 위해 살고 죽었다. 선을 아는 자가 선하게 행동한다고 확신한 소크라테스는 동시대 시민들을 대화로 끌어들여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펼치며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자극했다. 개인은 자신 안에 있는 보편적인 선을 인식해 행위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나눈 대화의 목적은 덕의 보편적인 본질을 해명하고 규정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인 보편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고심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플라톤 철학의 기본 방향을 보여 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 개념 속에서 무시간적인 근원 형상들을 본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들은 이 근원형상들의 불완전한 모사에 불과하다. 이 근원 형상이 곧 이데아(idea)이다.현재의 언어 용법과는 달리, 이데아란 결코 주관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고 지속적이고 영원한 존재를 의미한다.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물질적인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 저편에 제2의 비물질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이는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이데아의 세계이다. 이데아들 중의 최고의 이데아, 즉 선의 이데아를 순수하게 정신적으로 살펴본 철학자만이 국가의 질서를 절대적인 이데아의 질서와 조화시킬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범위를 넓히고 체계화했다. 그는 논리학의 아버지, 범주론의 창시자, 그리고 방법적으로 엄격한 경험 과학 연구의 개척자로 불린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의 이데아는 개별적 사물들 저편에 분리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별 사물들에 내재한다. 모든 사물은 완전한 자기 운동을 하며, 자신의 이데아(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형상(form)'이라 부른다)에 이미 존재한 자신의 소질을 현실화시키고자 한다. 모든 것은 자기 안에서 자신의 목적과 본분과 발전의 계기를 갖는다. 나중에 괴테는 이데아를 "생동적으로 발전해 가는 각인된 형상"이라고 말한다. 세계에는 완전성을 향한, 중용을 햔한, 선을 향한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만물을 움직이는' 신을 향한 점진적인 운동이 있다. 


- 헬레니즘 철학과 로마 철학

그리스의 도시 국가는 인도까지 뻗어 간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제국에 편입됨으로써 기원전 4세기에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고전기 이후의 그리스 문화인 헬레니즘 시대에 동양과 서양은 서로 긴밀하게 만난다. 문화 중심지가 바뀌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매우 전문적인 경험적 연구가 행해졌다. 철학에서는 주로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이 논의되었다. 행복하기 위해 개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피쿠로스주의자, 스토아주의자, 회의주의자 들은 새로운 역사적인 도전과 개인의 방향 및 힘의 상실에 대해 상이한 방식으로 대답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사회에서 벗어나 철학을 하며, 현실을 아주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덕스럽고 평정을 잃지 않은 삶과 운명의 장난에 흔들리지 않는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다(키티온의 제논), 회의주의자들은 대립적인 철학적 입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행복을 이끌어 낸다(피론), 세 학파의 창립자인 에피쿠로스와 제논 그리고 피론은 모두 아테네에서 활동했다.

로마는 기원전 2세기부터 그리스를 정치적으로 지배했다. 키케로는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철학을 소개하며, 자신의 글을 통해 라틴어로 된 철학 언어를 심어 놓았다. '휴마니타스(Humanitas)'(인간성)라는 용어는 철학의 지혜를 정치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이상적인 조어의 예라 할 수 있다. 수사학과 철학은 하나로 합쳐졌다. 말을 잘하고 덕이 있으며 다면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이러한 언어와 이성의 통일을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삶에서도 실현했다(로마의 퀸틸리안).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시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철학적 입장들이 혼재했다. 인도로부터 동양 철학이 흘러들어 왔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도 있었다. 근원에 대한 물음이 다시 되살아났다. 세계 종말론이 생겨나고, 죄악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염원이 절실해졌다. 이로부터 교조적인 진리곤을 가진 철학(종교)적, 신비적 구원론이 등장했다(바빌론의 마니교).

3세기에 신플라톤주의가 이집트의 플로티노스를 필두로 생겨난다. 그는 마지막 주자로 그리스어로 된 위대한 철학 체계를 세웠고, 고대 후기의 구원에 대한 욕구를 비기독교적인 내용으로 표현했다. 세계의 모든 사물은 빛으로 가득 찬, 신적인 일자가 빛을 발해 생겨난 것이다. 세계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절대자의 완전성이 넘쳐 흐른 것이다. 이 철학의 목표는 악의 원리로 파악된 물질, 즉 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질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일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고대 기독료 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계시라는 역사적 사건이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앙이 '이교도적인' 철학자들에 대항하여 철학적인 수단으로 방어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방어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4세기말에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된다. 

476년에 게르만 족 출신의 용병 대장 오도아커는 서로마 제구그이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켰다. 서로마 제국은 몰락했다. 하지만 비잔틴의 동로마 제국은 천 년 이상 더 존속해 고대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보존했다.  




2. 중세(medieval times) 철학 

- 기독교적인 토대

중세 철학은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중세 철학은 대략 5세기경에 시작하여 15세기까지 이어지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476년부터 아메리카가 발견된 1492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대략 천 년에 걸친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시대에 이어 천 년 동안의 중세 시대가 이어진다. '중세(Mittelalter)'(두 시기의 중간 시대, 과도기)라는 개념은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개념일 뿐이다. 역사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한 시대를 특징짓는 관련 요소들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간'에 있는 것 역시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펼친 고대의 초기 기독교 사상이 중세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따라서 주제의 관점에서 볼 때 중세 철학은 이미 2세기경에 시작된 셈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앙이 철학의 바탕을 이룬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확신들이 바탕이 되고 있다. (1)세상은 무에서 창조되었다. (2)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장 8절), (3)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전능한 신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포괄하는 세계를 무에서 창조해 이 세계를 존재하게 했다. 이는 초자연적인 진리이며, 신이 인간에게 직접 전달(계시)했다. '무에서 창조하였다'는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세계는 시초가 없다'는 고대 철학적 세계관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이제는 신이 의지 작용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은 건축가처럼 이미 주어져 있는 혼돈스런 원질료를 질서 정연한 우주로 만드는 것(플라톤의 학설)이 아니라, 창조자이자 생산자로서 물질을 존재하게 하는 자이다. 만물이 존재하는 것은 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이 전제될 때 가능하며, 신은 피조물인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한다. 

(2)신약 성경은 특히 '신의 사랑'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그리스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자족적인 신이 불완전한 피조물에게 다가오고 심지어 자비심에서 세상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치욕스러운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자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자신 이외의 것들을 움직이는 신적인 존재를 전제했고,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일방적으로 사랑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독교적인 사유와 다르다. 인간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면서 인간과 신,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에는 사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3)세계는 시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약속된 신의 왕국이 도래하는 종말도 있다. 그리스철학은 세계의 진행 과정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언제나 반복하는 원환 운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은 천지창조에서부터 출발해서 중심인 그리스도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단선적으로 진행된다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철학이 표방하는 '허황된 원환 운동'을 무신론적인 '코미디'로 분명하게 거부한다. 서양의 연대인 기원전(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오기전)과 기원후(A.D.=Anno Domini, 주님의 해)는 신이 시간 속으로 들어 왔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관찰 가능한 모든 사건은 신과의 관련 속에서만 해석되어야 하고, 모든 경험적 지식은 형이상학에 종속되어야 한다. 역사는 의미 충만한 구원사이지, 그리스도와 무관한 사건들이 무작위로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다. 인간은 시작과 끝이 계시되었기 때문에 세계사를 신의 눈으로 조망할 수 있으며, 세계사의 흐름은 의미 있고 목적 지향적으로 전개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고대의 정신적인 이상은 조화(Einklang)이다. 이러한 조화는 우주 질서와 일치되는 현세의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중세의 정신적인 이상은 구원이다. 구원은 신만을 바라보는 가운데 사후에 얻어지는 내세의 지고한 복을 의미한다. 


- 교부 신학

교부 신학(Patristik)은 2~7세기에 이르는 교부들의 가르침이다. 라틴 계열의 서방에서뿐 아니라 그리스 계열의 동방에서도 교부들의 중심적인 문제는 계시의 내용을 해명하고 그것을 지키며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저서는 아주 미약하지만 철학적인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그들에게 참다운 철학이자 계시로 받아들여졌다.

교부들은 고대 철학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등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박해와 문학적인 공격을 받게 되자 기독교 신앙을 합리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기술(변증론)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철학적인 개념과 사유 방식이 접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전기 이후의 그리스 문화인 헬레니즘이 기독교화 되었으며, 동시에 기독교도 헬레니즘화 되었다.

예를 들어,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철학에 개방적이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그리스도의 예언자이자 순교자로 보았으며,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렀다. 이에 반해 터틀리아누스는 아테네와 예루살렘을 전혀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안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철학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철학적 논증을 도입하기도 한 것은 스토아 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철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3세기에 기독교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교리서를 저술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적인 계시는 인간을 현혹시키는 철학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와 사도들의 전통적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만이 진리이다."

교부 신학은 고대 말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활동에 힘입어 4세기와 5세기에 절정에 도달했다. 그는 (신)플라톤적인 색채를 띤 기독교 사상의 개척자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순수한 이성 그 자체는 너무 유약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은 성경과 교회의 권위를 필요로 한다. 신앙이 우선이고 통찰은 그 다음이다. 인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은 지성이 아니라 의지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능동적인 사랑 속에서 드러나는 의지는 신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신국론>은 "유약한 기독교 신은 410년에 서고트인들이 로마를 정복할 때 속수무책이었다"는 이교도들의 비난에 대항해서 수행된 기독교에 대한 가장 위대한 최후의 변론이다. 

계시냐, 철학이냐의 다툼은 부분적으로는 수백 년에 걸친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4세기에 펼쳐진 그러한 논재으이 예는 신인(神人)론이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가장 완전한 신이면서 동시에 가장 완전한 인간일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에 따르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일한 속성이 동일한 관계에서 자신에 속하면서 동시에 속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기독론(그리스도의 인격성에 대한 교리)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 스콜라철학

켄터베리의 안셀무스는 11세기에 "신앙은 이성적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스콜라철학은 신앙과 지식,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 스콜라철학의 목표는 포괄적이고 빈틈없는 체계, 즉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 모두를 통일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철학은 계시된 진리를 더 이성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진리의 연관성을 더 명료하게 드러내야 하며, 이성의 관점에서 제기된 발론을 해소해야 한다. 

교부 철학자들은 개인별로 활동하면서 각자의 저서를 통해 영향력을 얻었다. 반면 스콜라철학자들은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 부설 학교, 나중에는 대학을 통해 활동했다. 스콜라철학 시기는 학교의 시대(Schola는 school을 의미한다)이며, 뛰어난 교사들의 시대이다.

초기 스콜라철학의 시기(800~1200년경)에는 안셀무스처럼 신의 존재를 성서의 도움 없이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 증명하고자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시의 논리학이 차용되었다. 11~12세기경에 살았던 아벨라르두스 같은 사람들에 의해 진술과 반론의 형태를 띤 스콜라적인 논쟁 방식이 발전되었다. 11세기에 세상에 대한 멸시가 나타났으며(페트루스 다미아누스, "육체는 구린내 나는 덩어리이다"), 12세기에는 자연철학적인 이론들, 언어철학 및 역사철학적 사변들(샤르트르 사원 학교), 종교적 진리의 신비적 체험(끌레르보의 베르나르) 등이 나타났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가 여전히 아주 폭 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약 1300년까지에 이어졌던 스콜라철학의 절정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비롯한 여러 저서들이 아랍인들의 해석이 가미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의 대명사로 통했고, 고대 사상이 점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아랍철학과 유대철학이 충돌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도 확대되었다. 최초의 대학들인 볼로냐대학(1158), 파리대학(1170), 옥스퍼드대학(1200년경)등이 설입되었다. 옥스퍼드대학은 자연과학 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로저 베이컨), 프란체스코파와 도미니크파와 같이 새로운 수도회가 생기면서 서로 경재의 양상을 보였으며, 신비주의자들은 신과의 직접적인 합치를 추구했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13세기에 기독교의 전통(아우구스티누스)과 고대 사상(플라톤,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종합이 이뤄졌는데 보다벤투라, 알버트 경,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그 주역을 담당했다. 이러한 종합은 '통합(summa)'(전체, 총합)이라고 불린다.

스콜라철학의 체계를 세운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는 신앙과 지식 그리고 계시의 진리와 자연적 이성의 진리,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참다운 철학은 언제나 올바르게 이해된 신앙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신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이성이 인간에게서 차지하는 위치와 같다."

스콜라철학에서는 수백 년동안 계속 반복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인간, 선과 같은 보편 개념은 어떤 가치를 찾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른바 보편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보편 개념은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관념에만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보편 논쟁에는 극단적인 두 입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개념)실재(realism, 이 용어는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문제 삼는 근대의 인식론적인 '실재론'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이고, 다른 하나는 (개념)유명론(nominalism)이다. 실재론의 중세적인 입장은 인간의 사유와는 무관하게 보편 개념의 실재성을 주장한다. 즉, 개별적인 사물들이 창조되기 전에 그 사물의 원형에 대한 신의 생각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명론은 보편 개념에 어떠한 독자적인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 개념들은 단지 이름(nomina)일 뿐이며 정신적으로 부풀려 생각한 결과일 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편 논쟁에서 중계자의 위치에 선다. 그는 보편자의 존재를 3단계로 구분한다. (1)보편 개념은 신의 정신 속에 내재하는 창조적인 사상으로서 사물들에 앞서 존재한다(ante res). (2)보편 개념은 형태를 만들고 현실화시키는 형상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케이아) 창조된 사물들 속에 존재한다(in rebus). (3)보편 개념은 추상으로서, 다시 말해 인간의 사유속에서 존재하며 사물들 이후에 존재한다(post res).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 계열의 대표자인 하인리히 겐트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성의 지배를 너무 많이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그에게서는 의지가 주인이고 지성은 시종이었다. "주인이 길을 잃지 않도록 시종이 밤에 등불을 주인 앞에 들고서 주인을 인도해 가듯이" 지성은 의지를 인도한다.

대략 1500년까지의 후기 스콜라철학 시기에 이서에 대한 스콜라철학의 신뢰는 점차 사라졌다 신앙과 지식의 통일 불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점차 퍼져 갔다. 이성은 교회의 가르침을 증명할 수 없으며, 믿음은 이 가르침을 순종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신에 대한 사변적인 인식 대신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나타난다. 완고하고 복고적인 입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비주의가 영향력을 얻기 시작했다(토마스 캠펜),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후기 스콜라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판적인 역할을 한 대표자는 14세기에 보편 논쟁을 첨예화시킨 위리엄 오컴이다. 그에 의하면 개별적인 사물들만이 존재하며, 보편 개념은 사유할 때 사용되는 기호일 뿐이며, 일종의 언어적 허구일 뿐이다. 근대의 문턱에서, 심지어 이미 근대의 문턱을 넘어선 시기인 15세기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을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각색하여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신은 인식될 수 없다. 신은 은폐되어 있다. "나는 신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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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  19


능력 대신 요령을 익히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 손해를 보는 듯싶지만 남의 일까지 대신 다 하는 사람은 능력 또한 남의 몫까지 얻는다. 그러니까 손해를 봐야 손해를 안 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미련하게 힘든 글쓰기가 요령 좋은 글쓰기를 이긴다.  21


번역을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이 써놓은 글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 세 단어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믿어지지 않으면 지금까지 써놓은 일기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에 모두 빨간 줄을 쳐보기 바란다. 자신이 쓴 글뿐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쓴 비소설류의 모든 글이 비슷한 지경이다.  24-25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혀 있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      ===>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혔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촬영한다.'

모든 표현의 공통분모인 '있다'를 없애버리면 '본다'와 '간다'와 '한다'와' 온다'가 되어, 모든 단어가 갑자기 다양한 모습을 저마다 뽐낸다. '있다'는 여드름처럼 모조리 짜버려도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장을 다듬을 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어서, 긴 문장이 유식하다는 착각에 빠져, '간다'를 '가고있다'라고만 해서도 안심하지 못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까지 한다.  26


'것' 또한 '있다'나 마찬가지로 자신감의 부족 때문에 남용되는 단어이다.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표현을 놓고 생각해보자.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있다'는 맹장을 잘라내거나 썩은 이를 뽑듯이 그냥 없애버리면 된다. 그러면 "집으로 왔던 것이다."가 된다. 그리고 '것'도 가차없이 자르고는 "집으로 왔다."라고만 하더라도 작품 전체의 흐름에는 별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진행의 과정이 훼손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있다'를 없애면서 '진행'상태를 살려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예 문장을 새로 써라.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라고 말이다.  29-30


"몸에 좋은 것이 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는 '것'을 다른 단어로 바꿔 넣는 차원에서 머무르지 말고, "몸에 좋다 하면 무엇이나 다 잘 팔린다."라고 문장 전체를 아예 새로 쓰라는 뜻이다.  30


'있다'와 '것'과 더불어 단어 '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쓰기에서 '3적(三敵)'으로 꼽힌다.

"누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라거나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라거나, "유대가 깨져 파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영어에 중독된 귀에 자칫 'can(be)'으로 들리는 이런 표현은 "누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라거나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또는 "파탕을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다양화하면, 우리말 같지 않은 어색함이 사라지고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31


나는 글쓰기를 하면,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읽어보고는, 중복된 어미와 토씨를 일일이 걸러내어 고쳐놓는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동료에게서"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직장에서'와 '동료에게서'의 중복된 어미가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동료로부터"라고 고쳐놓았다.

"나는 가는 길에"를 "나는 가던 길에"로, "좋은 사람은"을 "훌륭한 사람은"으로,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많은 사람이 모인다"로, "그렇게 말하고 싶고"는 "그렇게 말하고 싶으며"로, "그러는 너희는 누구냐?"는 "너희들 왜 그러느냐?"로, "그러니까 어떨까"는 "그러니까 어떨지"로, "그래서 가서 보니"는 "그래서 가봤더니"라는 식으로 표현을 바꿔가며 변화를 준다.

그러고는 한 쪽(page)이나 한 장(章)의 글이 끝나면 한눈에 들어오는 지면에서 반복된 같은 단어들을 찾아내어 고치는 기계적인 작업을 다시 거친다. 물론 운을 맞추거나 두운(頭韻)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문장의 율동과 강조를 도모하기 위해 일부러 같은 단어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우발적인 반복은 가능하면 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체 문장을 아예 새로 쓰기도 한다.  36-37


특히 여성의 경우, '바라다'와 '바람'을 '바래다'와 '바램'이라고 잘못쓰는 습성과 더불어, '같아요'라는 막연한 표현이 말하기와 쓰기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흠집 가운데 하나이다. 심지어는 "나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라는 표현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이 느끼는 기분조차도 잘 모르겟다는 듯한 말투이다. 이렇게 무엇인가 비슷하다 마는 '같아요' 어족(語族)은 참으로 정신이 나가고 없는 것 같아서, 맥이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운이 빠직는 것 같은 것 같기도 하다.  38


45년 전 대학생이던 시절 처음 영어로 창작 공부를 시작한 무렵에 나는 루돌프 플레시의 <잘 읽히는 글쓰기(The Art of Readable Writing)>에서 정말로 놀랍고도 기막힌 교훈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신이 써놓은 글에서 '그리고(and)'라는 접속사를 모조리 제거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고는 '그래서(so)'와 '하지만(but)' 역시 없애라고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전혀 글의 흐름이 막히지 않으리라고 했다. 막히기는 커녕 오히려 청소를 끝낸 하수구처럼 모든 문장이 맑은 물소리를 내며 잘 흐르리라는 얘기였다.

'그러부터(henceforth)'나 '그러므로(therefore)' 따위의 단어로 앞 문장과 뒷 문장을 연결 지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충고도 했다. 두 개의 문장을 이어주는 그런 지저분한 단어들은 없애야 하는데, 정 없애기가 어려우면 '그렇기 때문에(because)' 를 '그래서(foe)' 로 바꾸는 등 글자 수를 하나라도 적은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  42


'그래서 나는 학교로 갔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고는 우리들은 같이 어울려 영화 얘기를 했다. 그런 얘기가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영화 얘기를 했고, 그러다 보니 한두 명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자리를 떴다. 그래서 나머지 우리들만 빵집으로 가서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         '나는 학교로 갔다.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들은 같이 어울려 영화 얘기를 햇다. 너무나 재미있어 우리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영화 얘기를 했고, 한두 명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리를 떴다. 나머지 몇 사람만 빵집으로 가서 얘기를 계속했다.'  43-44


명사와 동사를 누에 잘 띄게 전진 배치한다. 동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임은 정력의 증거이다. 

무리가 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부사는 형용사로 바꾸고, 형용사는 가능하면 동사로 바꿔본다. "그는 태만하게 근무한다"보다 "그는 일솜씨가 게으르다"가 조금쯤은 힘이 있어 보이고, "휘청거리며 걷는다"보다는 "휘청거린다"가 강하다. "빠르게 말한다"보다는 "말이 빠르다"가 의미의 전달 속도가 빠르고, "많은 눈이 내렸다"보다는 "눈이 쏟아졌다" 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는 표현이 훨씬 생동한다.  52-53


2003년 국립국어연구원이 148만 4,463개의 단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조사(助詞) 가운데 '의'가 가장 높은 빈도수(7만 2,437)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의'를 가운데 걸고 양쪽에 두 글자씩 균형을 잡으면 사람들은 퍽 안도감을 느끼는 모양이어서 '거리의 악사' , '사막의 기적' , '고성의 검호' , '살인의 추억' 그리고 '제목의 선택'같은 안전한 제목을 즐겨 붙인다. 이것이 어느 한 작품의 제목으로서 홀로 나타나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책에서처럼 수많은 소제목이 나타나는 경우라면,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는 자칫 천편일률적인 인상을 주기가 십상이어서, '무엇의 무엇'은 '있을 수 있는 것' 못지 않게 경계의 대상이 된다.  70-71


독후감 쓰기

남의 글을 먼저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소재로 삼아 나의 글을 쓰는 행위, 이것을 사람들은 '독후감 쓰기'라고 한다. 그것은 눈으로 읽어서 지식과 정보를 입력시킨 다음, 머리를 써서 스스로 지혜를 창조하는 훈련이다.  107


1. 우선 글을 읽은 다음 내용에 알맞는 제목을 스스로 붙인다. 제목 붙이기에 대한 보충 설명은 작품에 뒤이어서 분석과 검토를 거친 다음에 수록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낱단어들 가운데 좋아 보이는 단어와 문장의 목록을 만든다. '있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를 찾아보고, 그 세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어떻게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바란다.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는 것도 때로는 좋은 훈련이 된다. 좋은 작품에 등장하는 멋지거나 아름다운 단어는 일부러 머릿속에 담어두었다가 나중에 자신이 쓰는 글에 실제로 사용하는 연습도 창조적인 글쓰기에 크게 도움이 된다.

다만, 같은 단어를 너무 자주 반복해서 사용하면 안 된다. 몇 개의 단어만 머리에 담아두고 자꾸 거내 쓰면 단연히 진부한 글이 되니까. 수많은 단어를 계속해서 머리에 담어 널고, 샘물을 퍼내서 마시듯 계속 퍼내야 한다. 샘물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고, 오히려 자꾸 퍼내야 물이 썩지 않고 맑아진다.

3. 작가가 구성해 놓은 단락들이 저마다 완전하고 독립된 단위를 구성하는지 검토해보고, 꼭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름대로 고쳐본다. 단락은 길이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승전결의 단위로 글뭉치를 묶어내는 훈련을 쌓는다. 

4. 하나의 단락 안에서 또는 앞 단락이 다음 단락과 이어지면서 어떤 인과법칙이 작용하는지, 인과의 흐름이 유연한지 어떤지 살펴본다. 두 주인공의 심리가 서로 어떻게 작용하고 반작용을 일으키는지도 비평가의 안목에서 살펴본다.

5. 작품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두 주인공의 성격을 참조하여 스스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제를 풀어야 하니까, 두 사람의 꼼꼼히 분석하여 대비하기 바란다.  108-109



작가는 언제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 잘 모른다. 일단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나면 언제 어디서 어떤 자료를 필요로 할지 모르고, 그래서 아무리 평화 시라고 해도 나는 모든 글쓰기 전쟁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놓는다. 전쟁, 그렇다. 좀 험악하게 비유하자면, 작가의 삶은 다른 모든 경쟁적인 직업인의 삶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쟁이고, 하나하나의 작품은 저마다 한 차례 전투여서, 여러 전투에 대비한 갖가지 전략과 전술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전쟁 계획이 필요하다.  300


여러 개의 서류철에 따로따로 나눠서 관리하는 그 줄거리들은 관련된 상황과 해석 방법, 주제, 인물 설정, 절묘한 표현, 상큼한 단어 따위가 생각날 때마다 쪽지가 하나 둘 늘어가고, 저마다 여러 명의 아들딸처럼 동시에 성장을 계속한다. 참고가 될 만한 영화나 책, 잡지나 신문에 실린 기사와 논문도 닥치는 대로 모아들인다. 

처음에는 무계획적으로 진행되던 자료 수집은 작품이 인물소설이냐 아니면 상황소설이냐, 또는 기둥줄거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에 필요한 본격적인 형태로 수집 방법이 바뀐다.  301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준비가 이루어지면, 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모든 곤련 자료를 꺼내 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시 정리하여 제1장에 들어갈 쪽지들만 따로 뽑아낸다. 그러고는 쪽지들을 가지고 그림 맞추기를 하듯, 제1장에서 벌이질 상황의 기승전결을 연결시킨다. 이렇게 순서대로 모든 쪽지를 작은 책처럼 배열한 다음, 나는 낚시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낚시를 가는 까닭은, 물가에 나가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자리를 잡지 않는다. 입질이 없더라도 혼자 조용히 앉아, 서울로 돌아가서 써야 할 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싶어서이다. 앞으로 한 주일 동안 써야 할 부분의 상황과 인물 설정, 대화 따위를 생각하다가, 좋은 표현이나 단어, 새로 첨가할 내용 따위가 생각나면 다시 쪽지에 적어 호주머니에 자꾸자꾸 쑤셔 넣는다.  

돌아와 월요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날의 작업을 오전에 대부분 끝내고 틈이 날 때마다 동네 뒷산으로 올라간다. 다시 낚시를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글쓰기에 구상할 시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책상에 앉은 다음부터 상상을 하려고 한다.

과제가 주어지면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구상을 위한 산책부터 나가보라. 줄거리가 안 풀려 답답해지는 글 막힘 상황(writer;s block)이 닥치면, 조바심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모든 일이나 마찬가지로,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309-310


글쓰기에는 손이 쉬는 동안 머리가 열심히 일한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동안 가장 많은 정신적인 생산이 이루어진다.  312


글쓰기는 서둘러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  313


새로운 경험의 폭을 얿히기 위해서 작가는 눈과 귀를 발달시켜 남이 못보는 사물의 측면을 관찰하고, 타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내용뿐 아니라 화법도 분석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관찰은 의도적인 경험이다. 작가는 똑같은 경험을 관찰하더라도 타인들과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삶 자체가 밑천이다. 삶은 경험이요 교육이며, 훈련이고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317


쪽지는 좋거나 멋진 어떤 생각이 날 때마다, 길을 가다 걸음을 멈추고라도, 즉시 적어두는 습관이 좋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하면 자칫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일단 입 안에 들어간 밥을 삼켜야 다시 한 숟가락 더 퍼 넣을 자리가 생겨나듯, 머릿속에 담아둔 내용이 자꾸 뱅뱅 돌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면, 한두 가지 먼저 떠오른 생각들이 자꾸만 발에 걸려 더 이상 새로운 구상이 전진하거나 발전하지 못한다.  318


정답에 집착하는 습성이 무개성을 낳는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대로이다.  319


진부함은 중독의 한 가지 증상이다.  321


정말로 어휘가 풍부한 사람은 갖가지 쉬운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문장을 만들 줄 안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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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임, 무협지, 만화, 드라마, 페이스북에 빠지거나 심지어 마약을 찾기도 하는 것 같다. '철학'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유수현)  6


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처음에는 이단이 된다.  9


고전을 읽는 것은 늘 어렵다. 기존의 시각을 도그마처럼 따르면, 오히려 쉬워진다. 고전은 어렵게 읽어야 한다. 또 인문 고전 독법에는 따로 왕도가 없다. 늘 새로운 해석을 찾아 읽는 게 최선이다.  10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갚되 은혜로 하라.

<노자> 63장 입니다. 거기보면 "위무위(爲無爲)" 즉 무위를 행하고, "사무사(事無事)", 즉 일삼음이 없음을 일삼아라. 그리고 "보원이덕(報怨以德)", 원한을 갚되 은혜로 하라. 이렇게 나옵니다.  24


공자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은혜를 갚겠는가?" 먼저 당신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어떻게 갚겠는가? 당연히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은혜를 갚는 것이 맞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갚느냐는 거죠. 공자의 답은 이렇습니다. "곧음"으로 원한을 갚고 은혜로 은혜를 갚아야 한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제가 충분히 따라서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5


<한시외전(韓詩外傳)>이란 책에는 공자의 제자 수제자 세 사람이 등장. "당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있고 당신에게 잘 대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들은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하겠느냐?" 하니까.

자로(子路, 기원전 543~480년경-말보다주먹, 반란에 연루되 갓끈을 다시묶고 앉은채로 죽어감)는 "남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 주지 않으면 나도 잘 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26


자공(子貢, 기원전 520~456년경-현실수완이 뛰어나 공자학단의 재정 문제 실질해결자)은 "남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 주지 앟으면 나는 그와 함께 상황에 따라서 잘해 줄 만하면 잘해 주고 잘해 줄 만하지 못하면 나도 잘해 주지 못한다."

안회(顔回, 기원전 521년경~?)는 "남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 주지 않아도 나는 잘 대해 줄 것이다."

이 말은 일단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말은,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겠느냐를 묻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논어> 의 어떤 구절이 나온다로 할 때에, 그 말의 객관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의미를 당신은 어떤 삶의 원리로 받아들여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를 포함한 물음들입니다.  27


공자는 이 세 사람의 대답을 듣고서 어떻게 말했을까요?

"자로의 주장은 야만인들의 주장이다. 자공의 말은 친구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말이고, 안회의 말은 가족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말이다."

이 가운데 객관적인 해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동일한 두 눈이 분명이 힜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의 깊이가 다를 뿐이죠. 


보원이덕, 원한을 갚되 은혜로 하라. 공자의 말씀은, 측별히 그렇게 하는 거는 불가능하다. 쉽지 않으니, 직(直곧을직), 다시말해 내 마음이 원하는 바대로 가라. 그런 뜻입니다. 즉 정직하다는 말은 '자기의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행하라는 뜻입니다.  29


'보원이덕' 이말에 대해서 하상공은 이렇게 처방을 제시합니다. "재앙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싹수부터 끊어 놓는다." 이 말은 조금 더 쉽게 풀면 이런 뜻입니다. "평소, 천하에 두루 행할 만한 도를 닦고 백성들을 위해서 선을 행하라. 그러나 너에게 반역하는자, 황제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을 행하였거나 행하려는 자. 그런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천하의 안녕을 위해서 재앙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끊어버려라."  34-35


유학자 왕필은 보원이덕에 관해 "작은 원한의 경우에는 보복하고 말 것이 없다. 그러나 큰 원한의 경우에는 천하 모든 사람들이 죽이고 싶어하므로 모두 똑같이 생각하는바, 그것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덕이다."

작은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사적'인 원한이라고 할 수 있어요.  36


작은 원한(小怨)의 경우 사적인 것이므로,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개입시킬 여지가 없는 거다.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겁니다.  37


왕필의 해석은... 철저하게 유가의 정신이지 '노자'의 사상에서 나올 수 있는 논리가 아닙니다.  38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고전 속에 원하는 진리가 있어서 그것을 우리가 해석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 그 가치를 고전에 새겨 넣는 작업, 그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46



루소의 자유개념이 칸트의 자유 개념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자유 개념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52


니체는 "우리의 살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태도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죠. 이게 바로 푸코가 말한 실존의 미학이고, 이게 루소가 몸소 보여준 자유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첫 출발점입니다.  63


'자유'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유와 반대가 되는 단어, 즉 '지배'와의 대조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델1은 '지배를 간섭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관해서입니다. 이때, 자유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지상)주의 모델입니다. 모델2는 '지배를 강제로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이때, 자유는 '자율'이 되죠. 자유는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을 하게 되어 자율적인 인간드링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모델입니다. 모델3은 '지배를 예속으로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이때, 자유는 '해방'이 될 것입니다. 이 모델은 자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통해 실현될 가치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65


자유주의라는 단어. '리버테어리언(libertarian)'같은 단어들은 '진보적'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였어요. 지금은 자유지상주의자로 알고 있는데요. 원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최초로 썼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단어의 원초적이 ㄴ의미는 바로 무정부주의죠. 모든 지배를 거부하는 것이비니다. 지배 없는 삶, 이게 무정부주의자들의 꿈입니다. 자유주의의 두 가지 의미도 이로부터 출발합니다.

첫 번째,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과 MB를 대표로 하는 주유주의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 주제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애덤스므스류 혹은 신자유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을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는 심지어 유전자까지도 이기적(selfish gene)이라고 했지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들은 협력이나 이타심마저도 어떻게 이기심으로 환원해서 설명할지를 많이 고민합니다. 또, 게임이론을 가지고 정교하게 수리적으로 분석해서 겉보기에는 이타적이고 협조적인 행위들이 어떻게 이기심으로부터 출발하는지를 보여주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 등장한 겁니다. 이게 극단적인 보수적 자유주의죠. 

그런데, 자유주의를 도덕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루소를 이어받은 칸트와 롤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개인을 이기적 존재나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 선의지가 있는 '도덕적 개인'으로 봅니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한데, 도덕적 개인이라고 해서 남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나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그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런 태도입니다. 이게 자유주의의 도덕화이고, 이것이 오늘날 복지자유주의 곧 복지국가의 모델이 됩니다.

자. '이기적 개인'을 근대 용어로 말하면, 바로 부르주아지입니다. 부르주아지는 오늘날 (사적인) 시민계급이라고 얘기하는데 현대의 자본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잘 구분하셔야 할 것은, 부르주아지를 의미하는 '사적인 시민'과 루소가 말하는 '공적인 시민' 입니다.  65-67



'인륜'은 독일어에서는 원래 'Sitte'에서 유래하는데, 관습이나 습관을 뜻합니다.

법을 안 지키면 처벌을 받지만, 관습을 안 지킨다고 해서 감옥에 가거나 하진 않아요. 그냥 비난을 받을 뿐이죠. 어쨌든 공동체는 각기 그 나름대로 관습이 있고, 그 속에서 사는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관습이 몸에 배어서 따라가게 되지요.  122


상호의존... 내가 상대방의 인질이 되면, 자기중심적, 이기적 태도를 바꾸는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도 남한의 인질이 되어야 하지요. '상호 인질'이 되는 것이지요.  133


우리말로 '성(性)'이라고 번역되는 말은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 이렇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섹스와 젠더, 많이 들어보셨죠? 섹스는 생물학적인 성입니다. 젠더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길러진 성이죠. 그래서, '여성답다' , '여성스럽다' , '여자가 재수 없게...' 할 때의 성이 젠더이고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저 여자(sex)는 남자(gender)같애"나 "저 남자는 여자 같애."라고 말할 때, 앞의 여자(혹은 남자)는 섹스, 즉 생물학적 성이죠. 젠더는, '여자 같아' , '여성성' , 

여자로 길러짐' , '여자로 길러짐', 이런 얘기고요. 역시 "저 여자는 남자 같애"라고 할 때에, 뒤에 나오는 남자의 의미는 젠더로 사용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섹스나 젠더 이외에 섹슈얼리티(성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 대두. 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의 필요성. 성적 욕망이나 정서, 판타지, 성적 매력, 성 정체성 등을 의미하고, 신체적 영역을 넘어서 정서, 심리, 무의식 차우너의 심층적 의미구조들로 성의 범위를 확대시킨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국어로 성(性), 성성(性性)이라고 번역하는 이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굉장히 커요. 우리가 성관계라고 하는 것을 섹스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르기로 한 이유가 있어요. 해부학적인 성, 생물학적인 성을 일컫는 개념인 섹스를 성관계의 의미로 사용하게 되면 성기 삽입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두어서 이야기하게 되죠. 그래서 성행위, 성관계 등을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적인 문제로만 남겨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창출하게 된 데에는 성적 욕망이나, 성적인 정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환상, 성적 매력, 성 정체성, 의미 등등, 이런 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굉장히 큰 의미로 사용해야 된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성기 삽입 차원의 성관계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어떤 친밀한 행위들, 어떤 친밀한 정서까지도 우리는 포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차원이죠.  143-144


차별이 '다르기 때문에...'라면, 차이는 '다르지만...'을 전제한다.  150


평등, 공평함이란 단지 동일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특수성, 차이, 경험, 맥락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이 ㄸ고같이 세 개여서, 차별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개별적인 특성, 경험, 다양성 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차이가 아닌 차별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151


음양의 특성... 음양에 대한 초기의 생각은 주나라 때 생겨났는데요. 이 때에는 햇볕의 있고 없음에 따른 단순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춘추 시대의 음양 개념의 특징은 음양이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춘추 시대에는 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 등의 여섯 가지 기 개념으로 셜명되었습니다. 풍은 바람이고요, 우는 비, 회는 어두움, 명은 밝음입니다. 하지만 이 여섯개의 기운 중에 풍, 우, 회, 명은 음양의 개념으로 포섭이 되었습니다. 풍은 바람이니까 건조함이죠? 건조함은 어디에 배속될까요? 양이겠지요. 비는 음에, 어두움은 음에, 밝음은 양에 배속이 되겠지요?

이렇게 되니 음양 두 기만으로도 다른 네 개의 기를 설명할 수 있으므로 음양을 제외한 네 개의 기는 점차 사라지고 음양 두 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154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과연 명쾌하게 설명 가능할까요? 오히려 애매함, 모호함을 통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요?  165


<계몽의 변증법>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왜 인간은 진정 인간적 상태로 진입하지 못하고 새로운 야만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177

이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계몽의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걔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얘기하겠지만, 동일성 사유에 기초한 계몽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기 유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자기의 체계에 꿰맞추는 자기 유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지요. 타자를 부정하는 자기 유지는 역설적으로 자기 유지에 실패할 운명에 처한다는 거죠. 체계의 틀을 맞추느라 놓쳐버린 자신의 본능, 감성, 개성, 인간성 등을 잃게 된다는 거예요.  179



시푸 : 사부님, 아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대사부 : 시푸, 그냥 소식이 있을 뿐일세, 좋고 나쁜 것이란 없어.

....

대사부 : 이 나무를 보게, 내가 원하지 않아도 복숭아씨는 복숭아 나무가 돼.

시푸 : 하지만 복숭아로는 타이렁을 물리칠 수는 없어요.

대사부 : 가능할지도 몰라, 자네가 포를 이끌어주고 믿어만 준다면.

시푸 : 도와주세요, 사부님.

대사부 : 아니야, 그냥 믿는 수밖에. 약속해줘, 시푸. 그 아이를 믿겠다고...     <쿵푸팬더> 중에서  249


(시푸가 용의 전사로 포를 받아들이고 훈련시키기 시작하면서)

시푸 : 쿵푸는 수련할 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너는 꽝이야. 그런데 그건 내 잘못이었어. 너를 5인방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려고 했으니까.                        <쿵푸팬더>중에서  258


적어도 자신의 옳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옳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했죠.  259


수영을 시작할 때 물에 뜨기 어려운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관계를 맺기 어려운 것은 그 이전의 익숙함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것이죠. 여기서 필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이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266


(용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포에게)

대사부 : 국수냐 쿵푸냐? 너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너무 집착하고 있구나. 이런 말이 있어.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아무도 모르지, 그러나 오늘은 선물이지. 그 선물을 소중하게 다루렴.    <쿵푸팬더> 중에서  267


나의 경험과 생각의 한계를 인식하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하나씩 비워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 속의 내가 아닌 진정한 나에 이르게 되고, 이를 통해 나는 세상의 길, 세상의 결을 따라 '노닐 듯'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도 타인에게, 타인도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며,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逍遙遊 거닐소 멀요 놀유)' 입니다.  270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의 생각과 가치를 비판하고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자유롭고자 하는 장자의 철학.  271


Kritik'(비판)과 'Krisis'(위기)의 어원이 똑같더군요. 'Krise'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철학과 철학함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상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이며 그 사상의 힘을 현실의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고하는 것은 철학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77


마키아벨리즘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듯이 기만과 위선을 의미한다면,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주의자기 아니었습니다.

"책의 운명은 그 독자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웃지 않고, 슬퍼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오직 이해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오직 그를 '이해하기'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81


그는 '현실 정치학'을 만들어낸 최초의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데요.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주장하지요. 즉 <군주론>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기술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저작은 사실판단이지 도적, 윤리가 개입하는 가치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286


당시 이탈리아는 다섯 개 국가로 분열돼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고민했던 것, 그가 꿈꾸었던 것은 국가의 통일이었죠. 그래서 책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이 군대예요. 마키아벨리가 제일 싫어하는 군대는 외국 군대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군대를 주장합니다.  287


마키아벨리는 소위 중세적 위계질서를 깨려고 합니다.  288



'던바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 수는 150여명이며, 강도 높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친구 관계는 12명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죠.  319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자신의 생명이 말하는 욕망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밖의 것들에 눈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내 삶은 공허하지' , '왜 나는 열심히 사는데 안 되지'라고 자꾸만 자신을 닦달합니다.  322


'네가 트루먼을 아느냐?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하나? 나는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normal life)을 살 기회를 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겨운(sick) 곳이야. 시헤이븐(seahaven)은 천국이지. 트루먼은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 시도하지도 않았지. 자네가 괴로운 건 트루먼이 그런 세상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트루먼 쇼> 중에서  363


진실을 향해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366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는 세금이 높다고 하지요. 수입의 50%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고 하잖아요. '네가 번 돈은 다 네 것이 아니다. 반 이상 내놔'하면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치는데 쓰겠죠. 개인의 수입을 사회로 완원시키는 것인데, 이런 것도 사회주의입니다. 사실 내 것이 온전히 내 것인 것은 아닙니다. 내가 수입을 많이 올려 부자가 되었다고 했을 때, 그건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지 때문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금을 많이 내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습니다. 그리고 걷은 세금이 투명하고도 적절하게 잘 쓰이고 있다고 믿으면 세금 저항이 크지 않겠죠. 믿지 못하겠으면 어떻게든 세금을 안 내려고 할 거고요.  386


저는 얼마 전에 한 학술 발표회에서 우리나라를 아류제국주의 국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대외 정책에 합류하면서 또 그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피지배 계급을 양산하는 거죠.  388


강자는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약자는 현실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따라서 미래는 약자에게 있습니다. 위로가 되나요?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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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 사이트 이용 방법 2-1


카우치 서핑 사이트 이용 방법 2-2



평범한 사람들도 여행자라는 이름의 페르소나를 만나면 조금 더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

여행자는 삶의 순간순간을 완전 연소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여행자가 되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7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은 오픈 마인드로 시작한 범세꼐적인 여행 공동체이자, 새로운 형식의 사회 운동이다. 카우치서핑이란 영어의 소파(Couch)와 서핑하기(Surfing)의 합성어로, 소파에서 소파로 이동하며 지속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1999년, 한 미국인 청년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새로운 개념의 여행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25여 개국 450만 명 이상의 회원을 갖춘 비영리 커뮤니티로 성장했다.(2012년 6월 기준)  41


카우치서핑은 여행자들이 현지인과 여행지를 제대로 체험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모두를 친구로 연결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카우치서핑의 비전이다.  43



카우치서핑의 첫 단추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다. 카우치서핑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우리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카우치서퍼들과 친구가 된다.  44



Ezabel Siek 이자벨(싱가폴) - 카우치서퍼ID : xezabelx , SNS : www.facebook.com/xezabelx

'세상이 한 권의 책이라면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그 책의 단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  68



몇 해 전 혼자 인도 배낭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이 와서 말을 걸었다. "너 한국인이지? 근데 왜 혼자 왔어?"

이유인즉 오랫동안 한국 여행객을 봐 왔는데 항상 여럿이 몰려와서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가더란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여럿이 모여서만 여행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지금은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흔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행을 준비할 때 강박적일 만큼 동행을 찾는다. 같이 갈 친구를 찾아 가이드북을 함께 뒤적이거나, 호텔 패키지라는 명목으로 기어이 단체 여행을 예약하고야 만다. 그도 아니면 여행자 카페 게시판에 '함께 여행하실 분'을 찾는 글을 올린다. 그것도 모자라 한국인이 하는 현지 민박을 찾아 픽업 서비스까지 부탁하며 한민족의 뜨거운 피를 느끼고 싶어한다. 어찌 보면 국외로 떠나는 여행이 '한국인 찾아 삼만리'같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낯선 외지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피부색이 같은 사람을 만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73-74



Michelle Inge 미셸(독일) - inge , BLOG : from-seoul-to-tokyo.tumblr.com

"카우치서핑은 어딘가 불확실한 면이 있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들이고, 열쇠를 주고, 나를 호스팅하는 사람들 역시 내가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확실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 주고 현관 비밀번호를 기꺼이 알려주는 거잖아. 이건 일종의 인류애에 대한 테스트인 것 같아. 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신회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믿을 수 잇다는 것에 놀라곤 해."  80



카우치서핑으로 온 게스트에게 친절하게 해 주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게스트와 호스트 모두 불편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게스트를 위해 특별한 식사, 거창한 선물, 관광 가이드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요.  89


여행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다. 무조건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여행은 어떻게든 시작되기 마련이다.  95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도와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움을 받을 가능성조차 없어져. 즉,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매일매일 누군가로부터 도움받을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도움 요청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

"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어요. 길을 물어보는 것도, 잠을 재워 달라는 것도,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죠.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일단 부딪혀 보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었어요.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100-101



"여행을 왜 좋아하느냐고? 순간을 즐길 수 있거든.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거야. 여행하고 새로운 도시에 가게 되면 순간에 충실하게 돼.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갈지, 뭘 먹을지, 어디서 잠을 잘지 같이 일상적인 일들이 여행할 때에는 특별해져. 모든 상황은 늘 변하고 그런 변화들을 받아들이는게 재미있어."(브루노, 아르헨티나)  119



덤스터 다이빙(Dumpster diving) : 유럽에서는 식료품점이 문을 닫기 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린다. 물론 유통기한이 막 지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유럽에서는 소비에 대한 신념으로 덤스터 다이빙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유프리건족'도 있다.  124


"살아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카우치서핑으로 통해 만난 친구들을 통해 배웠어. 사람들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쓰고, 다시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벌잖아. 그럴 바에는 그냥 돈을 벌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브루노, 아르헨티나)  126



카우치서핑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사람에 대해 일단 믿어 보자.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자신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자. 어쩌면 이것이 카우치서핑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138



"마케팅 1.0, 2.0, 3.0이라는 개념들이 있잖아요. 여행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여행 1.0은 패키지 투어라고 생각해요. 여행사가 준비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여행사가 계약한 숙소에 묵으며, 계획된 인원수의 사람들과 여행하는 거죠. 편리하지만 일방적이고, 개개인의 성향에 안 맞는 여행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다 점차 여행 2.0이라고 할 수 있는 배낭여행이 유행하게 되었죠. 배낭여행은 개인이 여행 서적, 웹사이트 정보 등을 참고해 가고 싶은 곳과 숙소, 음식점을 자유롭게 정하면서 원하는 여행을 직접 설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행2.0은 배낭여행의 대표 서적인 <론리플래닛>이란 이름처럼 외로울 수 있고, '여행객'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카우치서핑을 통해서 현지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여행을 여행 3.0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카우치서핑 여행법의 가장 상위에는 '공유'와 '나눔'이라는 큰 공통의 가치가 있어요. 이것이 3.0 정시노가 닮았죠. 물론 또 다른 여행 방식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분명 여행 3.0은 가치 있는 여행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이동익)  170



누군가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겪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에서 다른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카우치서핑이에요. 사실 싸움이나 분쟁은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이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끔 생각해요. 세상 사람 모두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게 된다면 전 세계에 평화가 깃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이동익)  174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면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유럽에는 카우치서핑 히피가 있어요. 인생 대부분을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사는 친구들이죠. 스페인에서 카우치서핑을 할 때 만난 이스라엘 친구가 있었는데 안 가 본 나라가 없었어요. 오직 카우치서핑으로만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친구였어요. 맛있는 것이 먹고 싶고, 좋은 곳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면 오히려 아주 적은 돈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어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껍데기가 아닌 본질에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돼요. 물론 왜 두렵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카우치서핑을 하며 만났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힘이 돼요.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좀 더 강렬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죠."(박인)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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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소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모든 목소리와 기억과 영혼들은 그 자신이 머무를 육체를 동경하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는 그 자신이 머무를 장소를 동경한다고, 우리가 사로잡힌 어떤 여행지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그 시절 우리의 정신 상태와 우리가 빠져 있던 고미노가 관심사에 대해 말해주는 우회로일 거라고, 그래서 세상천지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은 장소가 아니라 그 자신이 세상에 유일한 여행지인 순간이 우리에겐 있을 거라고.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갈 여행지가 내겐 있는가? 나의 여행은 내 인생의 어떤 점을 닮았는가?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왜 모두 여행자라 불리는가? 인생은 왜 여행이라 불리는가? 인생은 왜 '관광'이라고 불리지 않고 '여행'이라 불리는가?

나의 여행과 나의 인생은, 나의 삶은 어떤 관계일까? 나는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보단 차라리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지에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3


'나는 군가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여행지에서 나는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드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들어주길 원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세상 만물을, 차창 밖을 지나가는 여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곧 다시 만나요, 손을 흔들고 헤어질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선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내가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 않았나를 생각한다.

여행지에선 내가 누구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삶 속에선 제발 나 좀 알아봐달라고 부질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나는 그 고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낼 줄 안다. 그런데 삶 속에선 내 고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몰라본다.

여행지에서 나는 나 자신이 이방인임을 당연시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행여라도 이방인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낯선 사람에게 포기하지 않고 친절을 베푼다. 여행지에서 나는 거리의 악사들과 가장 자유로운 이들과 가장 슬퍼보이는 이들과 이제 막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들과 같은 소망을 갖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친절함을 기대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타인과 소망을 나누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오래전 누군가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앉았던 식당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의 존재와 남의 존재가 연결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연결이 아니라 나와 남의 분리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확실함이 많은 데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확실한 것만 찾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가장 용기 있는 자들과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자들과 가장 정이 많은 자들과 가장 고통 받는 자들과 친구가 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가장 득이 되는 자들과 친구가 된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외로울 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쁜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

여행지에서 나는 해의 뜨고 짐 같은 가장 단순한 풍경에서도 위대한 지구의 운동 법칙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눈앞의  일에 급급하느라 어떤 법칙에도 진리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14-16


그러니 나는 이제 여행에서 삶을 배우고 싶다. 여행자의 태도로 살아보고 싶다.  17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두려움을 갖지 않고 이미 일어난 일을 절망이나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근본적인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조건'정도로만 받아들인다. 그들은 영감으로 가득 찬 신묘한 말을 하는 현인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발과 눈과 머리를,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18


여행이 끝이 있듯이 인생도 끝이 있다. 끝이 있기 때문에 한 번뿐인 이 인생 여행은 너무나 소중하다.  20


"쓸데 없는 짓이란 없다."  72


"자유인은 결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연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스피노자  73


질문하는 자리. 새로 알게 된 것들의 자리에서 나는 그만큼 예전의 나에게서 멀어지고 새러워진다. 나는 새로운 나로 대체된다.  74


어떤 일이 내게 기쁨이 될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밖에,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말이야.  76



임종진(전 한겨레신문 사진기자였다. 이후 국내외 곳곳을 오가며 사람을 만났고 그들을 찍었다. 2008년 한 구호기관의 자원활동가로 캄보디아에서 1년 반 정도를 머물렀다 돌아와 개인전 <캄보디아-흙, 물, 바람>(2010)을 열기도 했다. 책으로<천만 개의 사람꽅>,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등이 있다.) - 사진을 찍거든 이미지를 찍지 마십시오. 이야기를 찍으십시오. 그 사람이 되어 봅시다.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어보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기 전에 그 사람이 되어봅시다.  112-113


우리가 만약 '무엇'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앙코르와트를 신기한 돌무더기로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앙코르와트에 와서 소원을 비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궁금해하며 본다며 앙코르와트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인생이 여행에게 만약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를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덜 과시적이고 덜 속물적이고 덜 불행할 것이다.  114



소모뚜(버마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1995년 여행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지내다가 지난 2004년 난민 신청을 했고, 패소와 항소를 거즙한 끝에 2010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 인권은 나도 당신보다 못나지 않다. 그렇다고 잘 나지도 않았다. 다만 나도 당신과 같은 인간이다.  135

그는 말했다. 가장 곤궁한 자들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또다른 의미로 친구 만들기에 열정을 쏟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혹 배신할까봐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더 넓은 친구와 동지관계의 네트워크 형성에 급급해한다. 저마다 휴대폰의 주소록에 갈수록 더 많은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려 하기에, 새 휴대폰 모델이 나올 때마다 전보다 커진 주소록 공간을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저마다 배신에 대비해 '양다리를 걸치는 수법'으로 리스크를 줄이려 하는데, 그것은 결국 리스크를 더욱 키우며 배신을 평범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  139


우리가 접속하려고 애를 쓰면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와 왜 친구가 되려고 하는가? 우리는 엄밀히 말하면 불안 때문에 더 많은 친구를 가지려 한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 현대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통제 불가능의 불안과 무력감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은 친구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140


우리가 출발점으로 절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경우, 안주할 경우.

우리도 여행지에서 수많은 선택과 포기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해볼 수도 없고 다 가질 수도 없다. 여행지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포기 '뒤'에, 선택과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그의 고유한 여행에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누구나 선택과 포기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지나온 길이다.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한다고 슬퍼하면 안 된다.  141


인도의 용감한 여성들은 대규모 벌목에 반대해 나무 위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는 칩코운동.  150



강판권(계명대 사학과 교수다. 오랫동안 나무 공부에 몰두해왔으며 나무로 역사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건축, 조경, 미술, 사진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세상을 바꾼 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은행나무>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청대 강남의 농업경제>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차 한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 <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가 있다.) - 10년 동안 도시락 두 개 싸가지고 하루 열두 시간씩 공부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요.  157

<대학>에는 격물치지란 말이 나옵니다. 삼라만상이 다 공부의 대상이란 말입니다.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의 뜻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위기(爲己) 학문은 자기를 찾고 자기를 이루어가는 공부로 자기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반면에, 위인(爲人) 공부는 남ㅇ게 보이기 위한 공부로 공부를 출세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느티나무 뿌리가 땅 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셨어요? 그건 그 느티나무가 비탈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노출된 뿌리가 뽑혀나가지 않게 보호하려고 느티나무가 그 위에 잔뿌리를 얹어서 동여매고 있는 것도 보셨는지요? 곧 봄이 와서 나무에 새순이 올러오려고 하면 그때 모과나무 한번 만져보세요. 몸통부터 촉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나무는 치열합니다. 나는 나무처럼 나 자신부터 온전해지고 치열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59-160

또 하나 나무에게 배운것은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에게 이기와 이타는 아예 분리가 안 됩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을 완성해야 남에게 어떤 역할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우리보고 와서 쉬라고 그늘을 만들었을까요? 우리보고 와서 감탄하라고 단풍이 들까요? 자기를 위해서 충분히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나무의 이기주의입니다. 그렇게 치열할 때만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내가 널 위해서 그랬다. 이렇게 말할 것도 없고 치열하게 살지도 않으면서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품어선 안 됩니다.  162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무지무지 끝까지 애써보지도 않고 대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164



김효중(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한국의 진딧물을 분류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우리가 도전이란 걸 할 때 뭘 이미 많이 알아서 도전하는 게 아니고 에러를 경험하며 에러를 줄여가면서 도전한다는 거죠.'  179

우리는 여행지에서 가끔 이런 절박함을 갖는다. 내가 언제 또 이 도시를 찾을 것인가? 그 여행은 단 한번 주어진 기회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내가 언제 또 이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볼 것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  192

여행중에 우린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당신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요?"  193



송경동(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에 답함>이 있다.) - 나는 내가 감정이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내가 감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닌지, 내 감정의 결과에 대한 성찰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의 감정 이입에는 뭔가 기형적인 요소가 있다. 우리는 너무나 속속들이 알아서 오히려 감정을 배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감정 이입은 '...척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상처 입는 게 싫어서,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서, 다춤과 분쟁이 싫어서, 어떤 정체성을 원해서, 안주하고 싶어서, 행동보다는 말을 선호해서,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감정 이입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내용 없는 감정 이입이고 감정 없는 감정 이입이고 감정이 있다고 해도 오히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이입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감정 이입은 동정심과 달라야 하고 둘 사이의 평등한 감정이어야 한다.  203

'감정 이입에 대해서 물었죠. 기억들, 기억들이 다 남아 있어요.'  213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내 가슴을 치는 것, 나를 울게 하는 것, 내 가슴에 너무나 깊숙이 남아 있는 것, 낭게 시와 삶은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215

돌아가면 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버려야 할 것들과 이루고 싶은 것을 나누고 일치시키는 기준점은 사랑이었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이룰 수 없어도 버리지 않고, 버리라 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219



송규봉(미국 펜실베니아대 환경학 석사과정에서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전공했다. 필라델피아 소재 GIS 연구소에서 CML 연구원으로, 하버드대에서 GIS 컨설턴트로, 와튼경영대학 부설 Wharton GIS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연세대에서 GIS 분석에 기초한 건축기획과 디자인정보분석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GIS 유나이티드의 대표를 맡아 GIS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비즈니스 GIS> <미국 인터넷산업의 지도>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등이 있다.) - '지도는 혼자 힘으로 결과를 낼 수 없는 것을 위해 주변의 도움을 얻어 만들어서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저에게 대동여지도는 그 정확도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 때문에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235

'세상이 어떤 보통 명사도 사람과 결부되면 고유명사가 됩니다.'  236

우리는 여행지에거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고 그것을 소중한 자랑거리로 여기지만 정작 삶에선 내가 그리는 지도란 없다는 듯이 군다

저마다의 지도가 인간성의 지도, 내면의 지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지도는 내가 살아온 날에 살아갈 날을 덧붙이면서, 살아갈 날이 지나온 날의 의미를 끝없이 수정하면서 완성되어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선의 끝부분은 아직 미지의 고장에 있다.  241



안재원(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고전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 괴팅겐대로 유학, 서양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수사학>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인문학 연구소 HK연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라틴어의 '카르페 디엠', 그날 그날 즐겁게 살라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르페 디엠의 철학적 의미는 매 순간 매 순간이 축적되어 역사가 된단 것입니다. 그 순간들이 모여 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크게 보면 하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걸 수도 있더는 말입니다.  263


Amor vincet omnia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리라.  264



여행을 기억함이란 무엇일까? 그건 사진을 들여다보기, 지나간 일정을 회고하기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건 그 여행이 이미 내 영혼의 일부가 되었단 뜻이다.  271


여행자가 마주하는 필연성은 무엇인가?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녀도, 그곳이 어디라도,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미소를 짓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 아닐까? 그 와중에 나는 세상이 아무리 참혹하고 불친절해도 눈물 흘리는 자가 있고 올바른 행동을 하려는 자가 있음에 번번이 놀란ㄷ. 아무리 어려운 곳에서도 이렇게 외치는 자들이 있음에 놀란다. "우리는 이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이쯤에 머물며 포기하려고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친구여!"

인간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을 본 자들은 지혜로워진다. 그렇지만 반대로 여행자에서 돌아와서는 인간 영혼을 까맣게 잊고 있음에 또 번번이 놀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행자의 태도로 사는 동안 우리는 마치 여행지에서와 같은 필연성을 마주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사는 동안 우리 또한 다른 여행자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풍경, 하나의 낯선 여행자가 아닐까?  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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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난다 2011 03810

2. 세계사를 바꾼 철학의 구라들 폴커 슈피어링 이룸 2007 03100

3. 필사의 탐독 정성일 바다출판사 2010 03680

4. 저가 항공 세계일주 강지준 중앙books 2012 13980

5.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하기 김은지 김종현 이야기나무 2012 03810

6. 글쓰기 만보 안정효 모멘트 2006 03810

7.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살림 2004 03810

8. 특별한 해외여행백서 정상구 나무자전거 2010 13980

9. 여행이 답해줄거야 박혜영 21세기북스 2010 03400

10. 히피의 여행 바이러스 박혜영 넥서스books 2007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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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글쓰기 강의 (上) 보러가기


3부 독자 생각하기

  11장 재료 개발을 위한 도구 .. 210

  12장 독자와의 관계 .. 232

  13장 이야기 들려주기 .. 259

  14장 목소리 .. 281

  15장 말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293

4부 의무적 글쓰기

  16장 그것을 써야 하나요? .. 302

  17장 글로 옮기기 .. 312

5부 궤도 유지

  18장 작가의 길을 따라가기 .. 360



정보 조각이나 관찰한 것, 상상한 것, 아이디어 등등 내가 노트에 모은 재료라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즐긴다. 마치 땅에 뿌린 씨를 생각하는 농부의 심정과 같다. 하지만 모든 씨가 싹이 트는 것은 아니므로 많은 씨를 뿌릴 필요가 있다. 싹이 튼다고 모두가 완전한 열매로 잘 자라는 것 또한 아니다. 아주 작은 식물도 자라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을 필요로 하듯이. 이 훈련 역시 가볍게 출발할 때라도 능력 개발을 위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법이다.  211


글쓰기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치우는 작업이 아니라 단계저긍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 직업 작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글을 얻기 전에 많은 초고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212


자료를 모은 다음 해야 할 단계는 수집한 자료 전체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며-사용하고 싶은 특정 자료를 결정하는 것- 그밖에 생각나는 것이 또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바로 이때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기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단계에서 계속 내용을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나 정보, 이미지 같은 자료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213


다음 훈련은 여러분이 모은 재료와 구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전체를 연습해보고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 것이 있으면 계속 활용하라.

1. 선택

수집한 자료를 판단을 배제하고 읽을 때는 다음 두 가지를 한다. 첫째, 단어나 구절, 아이디어, 이미지, 정보 조각 등 어떤 것이든 눈에 띄는 것에 표시를 한다. 뭔가 힘이 담긴 것으로 보이거나 자신을 향해 "나야 나! 나를 써먹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찾아라. 둘째, 자신이 쓴것을 읽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주목하고 그것을 적는다.(원한다면 노트의 여백이나 다음 페이지에 적어도 좋다.) 이어 2~3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연습을 하면서 무엇을 주목했는가? 이 재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가?

2. 질문 

수집한 재료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주제에 관해 모은 것은 모두 읽어본다. 선택 연습을 했다면 추가한 새 자료도 읽어본다. 이번에는 재료를 호기심과 연관시켜본다. 이때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질문의 목록을 작성한다. 이 질문은 재료 자체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눈은 무슨 색깔이었지?' '왜 앨버트 삼ㅌ촌은 고양이를 호수에 던졌을까?'하는 것들이다. 또 이런 질문은 재료를 발전시키고 싶은 방법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호수를 더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라든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까?' 하는 것들이다. 어쨌든 계속 펜을 놀린다. 질문을 제기하기 위해 자신의 호기심과 작가로서의 직관을 믿어라.

질문 목록을 작성했다면 잠시 긴장을 풀고 휴식한 다음 다시 목록으로 눈을 돌려 재미잇어 보이거나 도움이 될 것 같은 질문에 표시를 한다. 그런 다음 그중 한두 개를 골라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요해 대답을 시도한다.

3. 초점찾기

이 훈련을 하다 보면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쓰고 있는지 깨닫기도 한다. 작가들이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초점을 발견한다는 말이다. 때로 초점을 깨닫는 순간은 한 가지 주제를 너무 광범위하게 다룰 때 찾아오기도 한다. 이때 여러분은 그 주제의 특정 부분을 중점적으로 탐험하고 싶어질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쓴 글이 원하는 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초점을 깨닫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어린 시절의 승마 경험에 대해 쓰고 있는데 실제로 쓰고자 했던 것은 승마를 가르쳐준 여자에 관한 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자신의 재료에 대해 '틀'을 짜는 것도 초점을 발견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를테면 어떤 그림에 대한 틀이 떠올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틀 속에 들어갈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 틀에 어울리지 않는 재료는 버려야 한다. 초점을 발견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향해 초점을 말하는 것이 있다. 가령 '내가 여기서 실제로 쓰고자 하는 것은...'이라는 말을 마친 다음. '이 글은 내가 실제로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내용인가? 이 주제는 내 준비 상태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폭이 넓거나 좁은 것은 아닌가?'하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떤 주제라도 다양한 재료가 수없이 나올 수 있고 각각의 초점도 다를 수 있다.

4. 그림 그리기 

수집한 재료에 상상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작업할 일정한 재료를 선택한 다음 자신이 모아둔 서로 다른 재료에 대해 마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마음속에서 그것들을 가공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그 재료가 사람이든 장소든 어떤 사건이든 아마 상상력은 그것에 대해 좀더 자세한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실험 삼아 순서를 바꿔가며 주변의 이미지들을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씨앗'이 되는 이미지나 정보 조각을 하나 골라, 마음속에서 거기에 더 많은 그림을 입히고 때로는 완전한 이야기로 꾸미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전체적인 글을 그려보기 위해 마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능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어쩌면 작가로서의 직관이 현재 글쓰기의 시작이나 끝에 와 있다고 말해주는 핵심 이미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또 자신의 글이 취하고 싶은 일정한 현태를 마음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시각적인 상상이 뛰어나다면 글이 완성되었을 때 취하고 싶은 형태를 미리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림 훈련을 마친 뒤에는 발견한 것을 기록한다.

5. 장르에 관한 고려

재료를 골라 이것을 장르라고 하는 다양한 현태의 글에 활용할 수 있다. 장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픽션과 논픽션으로 대별된다. 모든 장르에는 하위 장르가 있다. 예를 들면 애정물과 추리물은 픽션의 하위 장르다. 재료를 어떤 장르에 사용할지 아는 것은 자신의 글에 초점을 맞추고 그 글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물어보라. '내가 모은 이 재료로 무엇을 쓰고 싶은가? 시(詩)인가, 기사(記事)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필요하다면 재료에 대고 직접 물어볼 수도 있다. 노트에 프리라이팅을 활용해 이 물음에 대답해보라. '이 재료는 어떤 글이 되고 싶어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따로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닌 작가로서의 직관을 믿어야 한다. 아니면 재료 스스로 '나는 ...이 되고 싶다'는 식으로 물음에 답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재료가 여러분에게 낯선 장르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해당 장르에 대해 더 학습할 필요가 있다. 장르에 대한 책을 읽어보라. 특정 장르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찾거나 좋은 교사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언제나 여러분은 작가로서 수업 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재료가 단편소설이 되고 싶어하는데 단편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면 망설이지 말고 단편소설을 써보라. 이것이 배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좋은 소설을 쓰려고 고생하는 대신, 소설 장르에 대해 또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쁜 소설을 쓰는 기회를 스스로 허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6. 학습

아마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또는 재료에 대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다른 질문으로는 '이 글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가?' 하는 물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다음 다시 몇 분간 시간을 들여 프리라이팅으로 답변을 해본다. 그러면 아마 외부 모으기의 형태로 정보를 추가로 모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이 쓴 것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해 더 많은 그림을 그리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대화를 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앉아서 초고를 쓸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7. 계획

꼐획을 짜느냐 안 짜느냐가 문제다. 일부 작가는 글쓰기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싫어한다. 이들은 인물이나 배경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 앉아서 쓰기 시작한다.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이 쓰는 모든 글마다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글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정확히 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전체적인 계획을 세운 다음 각각의 장은 나름대로의 방향을 향하도록 하거나, 글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일단 형태가 눈에 들어오면 틀을 짜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글에 어떤 방법이 더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해 계획 있는 글쓰기 종류에 따라서는 글의 '지도 그리기' 기술이 유용할 때가 많다. 또 '단계2 :과제의 계획을 짜라'를 참고할 수도 있다.

8. 시간의 투자

글쓰기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매우 쉽지만-작가의 능력을 활용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이 모든 아이디어를 글로 쓸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일정한 재료를 발전시키는 데 평생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재료를 모으고 상호작용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수없이 반복할 수 있고 또 이따금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재료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야말로 글쓰기 과정의 중심을 차지하며, 사실상 글쓰기 작업의 핵심에 대해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감이란 그것을 위한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준비를 위한 방법의 하나가 자신의 재료를 철저히 아는 것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생각날 때 적어야 한다. 항상 조그만 수첩을 휴대하고 방마다 펜과 메모지를 비치해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9. 재료의 체계화

체계화를 위한 이 일이 글쓰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말을 종이로 옮기는 것이 아니므로-사실 이 작업은 작가가 하는 일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10. 연결 

한 편의 글을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세 가지 주된 행동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모은 자료를 한곳으로 취합하는 과정(이후에도 계속 모으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자료를 선택하는 과정, 성택한 자료를 서로 연결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서로 조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점에서 글쓰기는 조각 깁기(sewing patchwork)와 같다. 다양한 곳에서 재료 조각을 모으고 이것들을 전체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11. 제로 드래프트 써보기

모으기를 중지하고 초안을 쓸 준비가 되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지닌 작가의 직관을 믿어라.

제로 드래프트 쓰기는 수집한 재료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선택한 모든 것을 단일한 글로 옮기는 과정이다. 

제로 드래프트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수집한 모든 재료를 인쇄한 다음 가위로 간직하고 싶은 부분을 오려내어 종이 여백에 테이프로 붙인다.(노트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부분을 찢어내고 싶지 않다면 복사를 하면 된다.) 오리고 붙이는 과정을 컴퓨터의 새문서에서 할 수도 있으며 가위질과 컴퓨터를 함께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선택한 모든 재료를 검토화하면서 제로 드래프트 재료를 모아 자리에 앉아 프리라이팅으로 초안을 쓴다. 이때 글의 구성이나 어휘 선택에 고심할 필요는 없다. 오려내고 붙인 다음 원한다면 나머지 부분을 프리라이팅 해도 된다.

제로 드래프트를 시작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목표는 단 한 가지, 한 공간에서 사용하고 싶은 모든 재료를 모아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214-224



연습 : 자기 자신의 제로 드래프트를 만들어라

위에서 대강 윤곽이 잡힌 초안(밑그림) 기술을 활용해서(또는 여러분 자신이 선택해서) 모으기와 발전 훈련으로 수집한 모든 자료를 자세히 읽어본 다음 제로 드래프트로 사용한다. 어휘가 아니라 내용에 집중하라.

이것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눈에 띄는가? 잘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적어본다. 이 기술을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25



연습 : 초안을 시도하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초안에서 잠시 물러나 있다가 다시 보면 신성한 시각으로 초안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볼 때 그 글이 최종적인 초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제로 드래프트는 자신이 어떤 자료를 모았고 그 자료에 무엇이 빠졌는지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는 단순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어휘를 선택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어휘를 통해서 어휘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정보, 아이디어를 살표본다. 나처럼 자료 조각을 블록쌓기로 생각하고 선택과 정리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초안을 읽을 때(이것을 한 번 이상 할 수 있다) 거기 그대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주목한다. 이 말은 '그래, 호수에 대한 이 묘사가 필요해'라든가 '맞아! 이것이 요점이야'하는 식으로 작가의 직과닝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무엇이 빠져쓴지, 어떤 정보를 더 모아야 할지 주목하라. 또는 상상하거나 생각을 모아보라. 제로 드래프트처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훈련을 한두 번 시도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을 마치면 잠시 시간을 들여 이 재료로 다음에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지 적어본다. 그런 다음 휴식을 취하거나 산택을 나가 잠재의식이 이 초안에 대한 활동을 할 시간을 준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잠재의식에서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을 알면 여러분은 놀랄 것이다. 잊지 않고 그것을 적는다.  226


진정한 선택은 글의 통일성을 유지하게 하는 핵심 부분이다. 

글쓰기의 실질적인 핵심은 글을 쓰는 과정의 단계마다 선택을 하는 일이다.  228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답해보라. 

'이 글은 실제로 무엇에 관한 것인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장르의 글이든(아마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글은 제외도리지도 모른다)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재료는 여러분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  229


'한 편의 글을 창작하는 데 좌절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은 배운다고 볼 수 없다.' 글쓰기의 상당 부분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해결 방법을 익히는 유일한 길은 훈련뿐이다. 무넺 해결을 시도해보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보라. 자주 휴식을 취함으로써 잠재 읫기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부여하라.  231


'언제쯤이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읽을 것으로 예상하는가?' '그때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우리가 독자에 대해 갖는 느낌은 복합적일 수 있다. 독자는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위협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독자의 경멸이나 판단, 비평을 두려워하맂 모른다. 우리의 글에 대한 것뿐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인갅거인 평가까지도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233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공적인 글쓰기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하는 글쓰기이며, 우리 자신의 눈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읽히게 될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235


독자가 작가로서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글을 쓸 때 독자(청중)가 우리에게 주는 효과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독자에게 글로 주고 싶어하는 효과가 있다.  236


독자에 대한 권리 되찾기

다음에 예시한 재료가 이 훈련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글을 발전시키는 데 다른 사람을 활용하는 법도 보여줄 것이다.

1. 시간을 들여라

작가-독자의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를 것이 없으며 여기서 자신이 힘이 없다고 느끼면 제대로 소통할 수가 없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소유권 의식이 필요하다. 훌륭한 작가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권리를 느낀다. 훌륭한 작가는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말을 전달해서 독자의 마음에 그 말이 살아 움직이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 자신감을 얻으려면 많은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시간을 투자해서 필요로 하는 자신감을 확보해야 한다.

2. 작가의 능력을 개발하라

상상력, 호기심, 관찰력이 강화될수록 쓸 거리도 더 많아지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할 말도 더 많아질 것이다. 

3. 자신의 글을 공유하라

4. 독자와 자연스러운 관꼐를 확립하라

독자를 위하는 것보다 독자를 향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때로 자기 자신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독자는 당신의 머릿속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독자는 세상 밖 어딘가에 있는 별개의 사람이다. 작가-독자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되살리기 위해 여러분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독자가 자기 자신과 분리된 존재라는 느낌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독자로 생각할 필요도 있다. 여러분은 채을 읽을 때 작가가 여러분에게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많다. 작가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서도 쉽게 전달되기를 바랄 것이다. 바로 이런 태도가 정확하게 독자가 여러분의 글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독자는 평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들이지 않고도 여러분의 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할 말을 소통시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명쾌하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은 분명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도 독자는 혼란을 느끼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다. 독자를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작가가되는 또는 훌륭한 작가가 되는 중요한 비결이며 글쓰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5.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향해 써라

실제로 독자를 향해 말을 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사적인 글쓰기와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이 '종이에 대고 생각하기'와 같은 것이라면 이 새로운 훈련은 '종이에 대고 말하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이라고 상상하라. 자신이 쓴 것을 들고 마치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천천히 읽어본다.

자신의 글을 읽을 때 나올 수 있는 생각은 '이 글은 잘 쓴 거야? 못 쓴 거야?'가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까? 내 생각을 분명히 밝혔나?'하는 것이다.

6.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데 실제 독자를 활용하라

독자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질문의 예를 들어보면

 - 이 글에게 당신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가?(단어나 이미지 느낌, 아이디어가 이에 해당될 수 있다.)

 - 내가 하는 말에서 무엇을 들었는가?(여러분이 전달하려고 하는 것에서 독자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말하게 한다.)

 - 아직 질문할 것이 남았는가?

 - 더 필요한 것(또는 필요 없는 것)이 있는가?

 - 혼란스러운 곳이 있는가?

 - 이 글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독자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들을 때 자신이 의도한 것을 설명하거나 자신이 쓴 말을 옹호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설명이나 옹호를 하면 독자는 입을 다물 것이다.

독자는 단순하게 '이것이 내가 받은 느낌이다. 이 대목이 나는 혼란스럽다;고 말할 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그저 들어보는 것이다.

7.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라

좋은 글은 독자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인다.

종이를 보면서 다으므이 질문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갖는다. 여러분은 이 글로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 이 글을 읽은 독자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독자를 웃기고 싶은가? 울리고 싶은가? 아니면 공포를 떨게 하고 싶은가?) 이런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 자신의 글에 어떤 것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쓸 때 목표를 염두에 둔다.  241-258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법

1. 다른 살마과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을 때 이 글을 선물로 생각하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것이 있다고 할 때 정확하게 그것은 무엇인가?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 인가? 일정한 주제에 대한 통찰인가? 특정 시간과 공간을 환기시키는 것인가? 자신의 소설이나 시, 수필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2. 이 선물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생일선물을 줄 때 받는 사람의 기호를 생각하듯이-93세가 된 메리 할머니가 정말 비디오게임을 좋아할까?-이 특별한 글을 좋아할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3. 이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면 아마 동네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면 추리소설 애독자 중에서 기꺼이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쓴다면 해당 주제에 대한 온라인 동호회를 찾아 회원 중에 자신의 글을 기꺼이 읽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이들 독자가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없다면 단순하게 한 가지만 물어보라. "이 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가?"  256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해소하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게 된다.  259


종이 위에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자신의 독자와 더불어 편안한 상태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독자를 위해서보다는 독자를 향해서 글쓰기 연습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훈련은 자신의 재료를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줌으로써 독자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고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독자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260


제시하는 여섯 가지 접근 방법으로 이야기를 찾아내 들려주는 실험을 해보라. 

1. 구전되는 이야기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고 샅샅이 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다. 이제 마음속으로 이야기의 내용을 상상하면서 일어난 사건을 그려보라. 준비가 되었으면 열심히 귀 기울여 듣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한다고 상상하면서 자리에 앉아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종이에 옮긴다. 어휘가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에 집중하라.(어디까지나 이것은 훈련이다.)

2. 구술역사 자료

구술역사는 실제로 역사 현장에 있었거나 그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다시 자세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구술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여러분 자신의 말로 다시 들려줘보라.

이야기 중에 몇 가지 재료를 선택해 그것을 새로이 조합해 독립된 이야기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3.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

작가 중에는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나 재료를 뉴스보도에서 얻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눈길을 끄는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찾아보라.

4. 잡담과 흘려들은 이야기

모은 재료를 점검하고 마음에 끌리는 것이 있으면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내용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이야기로 꾸미고 가상의 청취자를 향해 노트에 옮기는 것이다.

5. 장소와 사물

사람만 이야기를 지닌 것은 아니다. 자연현상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6. 내면의 이야기

'나는 ~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로 시작되는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써본다.

원한다면 내부의 이야기 재료를 모으기 위해 다음의 훈련을 활용할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에 대한 답을 적어보라.

 -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누가 머리에 떠오르는가? 실제 사람인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미워하는 사람인가? 상상 속의 사람인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 어떤 장소가 생각나는가? 실제의 장소인가? 상상 속의 장소인가? 시골인가? 풍경인가? 집인가? 거리인가? 밤인가?

 - 어떤 물건이 떠오르는가? 좋아하는 장난감인가? 오랫동안 함께 지낸 물건인가? 자연 속의 사물인가? 가상의 대상인가?

 - 어떤 장면, 어떤 순간이 머리에 떠오르는가?

 -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가?

 - 들어본 이야기 중에 애착이 가는 것이 있는가?  261-266


 

연습 :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계속 귀기울이기

직업적인 작가는 일종의 이야기 본능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가 바닥나는 법이 없다. 이들은 자신에 관한 것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 사실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직업적인 작가는 주변 세상에 긑없이 관심을 돌린다. 이들은 마주치는 사물에 주목하고 누군가가 하는 말에 늘 귀를 기울인다. 이드르이 이야기 본능은 '흠, 여기 이야깃거리가 있군' 하고 중얼거린다.

구전된 이야기든 마주치는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든 이야깃거리를 들으려고 바깥세상을 향해 귀를 활짝 열수록 여러분의 이야기 본능은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노트에 이야깃거리나 아이디어를 적는 습관을 들인다면 여러분도 머지않아 쓰고 싶은 이야기에 활용할 수 있는 다채로운 재료창고를 갖게 될 것이다.  267



연습 : 다듬는 과정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 몇 가지를 브레인스토밍한다. 또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노트를 훑어본다.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이야기를 위한 재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내부 모으기로 시작하라. 여기에는 자신이 기억하거나 만들어낸 모든 세부 내용이 포함된다. 그런 다음(원한다면 나중에) 이 목록을 두 차례 정밀하게 점검한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사용하고 싶은 항목에 표시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는다. 두 번째는 목록을 쭉 훑어보면서 호기심이 이는 항목이 있는지 확인하고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적는다. 그런 다음 생각해보라. 여러분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의 의문에 대한 답을 원하는가?(선택한 이야기가 아주 단순하다면 의문은 없을 수도 있다.) 외부 모으기를 할 필요가 있다면 - 관찰이나 조사 - 그렇게 하라.

재료 검토를 위해 상상력과 잠재의식을 활용하라. 이야기를 쓰기 전에 잠시 재료를 맛있게 끓이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음의 물음들을 생각해본다.

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자신일 수도 잇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창작한 인물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 들려주는가? 실제 인물(친구 또는 자녀 중에서)을 고를 수도 있고 안전한 가상의 독자를 상상하면서 인물을 창작해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 인물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다.

왜 들려주는가? 특정 인물을 상대로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꾼의 목표는 무엇인가? 청취자의 마음속에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싶은가?

이제 상상으로 이야기꾼이 되어본다. 자신이 선택한 잴로 돌아가 들려줄 이야기로 유용해 보이는 것을 무엇이든 선택하라.(이 훈련을 하면서 '사실'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사실을 바꿔가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꾸며도 상관없다)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새 재료로 추가한다. 이 재료를 활용할 때 원하는 순서를 작은 목록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그런 다음 자신이 선택한 청취자와 함께 있다고 상상하며 계속 이야기꾼의 역할을 유지한다. 될 수 있는 대로 계속 펜을 놀리면서 종이에 대고 청취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사람을 이야기꾼으로 등장시킬 수도 있고 청취자를 바꿀 수도 있다. 또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하라. 다양한 관점을 시도하면서 이야기를 즐기고 싶다면 제임스 모쳇의 탁월한 평론집 <관점(Point of View:An Anthology of Short Stories)>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책은 이미 출판된 단편소설을 조명하며 관점에 여러 변화를 주는 기법을 분석하고 있다.  269-270


작가 제인 욜런은 "무엇보다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잡아끄는 것은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야기 자체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행의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271



연습 : 이야기의 이동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빌려오든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낼 인물이든 한 인물을 골라서 이 사람을 위해 간단한 이야기 상활을 써보낟. 상황을 묘사하는 데 두게 개의 문장만 사용하라. 이제 이 인물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이 인물이 일으키는 사건을 적어보라. 이때도 두 세 개의 문장만을 사용한다. 이어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본다. 필요하다면 이야기가 멈출 때까지 이 문답을 계속한다.  273



연습 : 계획을 짜고 싶다면

이야기를 정의하자면 일련의 사건이 연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을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싶다면 여기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이야기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 중 하나를 고른다. 될 수 있는 대로 계속 펜을 놀리면서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건의 목록을 작성한다. 각각의 사건을 현재시제를 사용해 짤막한 문장으로 써본다. 아직 순서를 정할 필요는 없다. 단어 선택에 고심할 필요도 없다. 사건 하나하나를 새 줄에 쓰되 사건 사이는 한 줄씩 건너뛴다. 이야기에 들어가야 할 사건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고쳐 쓴다. 

2. 이제 사건의 목록을 쭉 읽어보고 포함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사건이 너무 많은가? 아니면 너무 적은가?

3. 이제 이 사건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순서를 정리해서 이야기를 쓰기 위한 계획을 짠다.  275



연습 : 이야기의 전개

다음으로 이야기 계획에 대한 대안을 하나 소개한다. 

1. 한 명 이상의 인물을 선택해서 상황 속에 투입시킨다.

2. 다음에 일어날 일은 무엇인가? 인물이 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하든가 아니면 외부의 사건이나 강제적인 방해 세력이 등장한다.

3. 그 결과 인물은 새로운 상황을 맞는다. 그 인물은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4.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5. 이런 움직임이 상황에서 사건으로 또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으응로 계속 유지된다. 줄거리가 궤도를 찾았는가? 줄거리가 끝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쓸 때 무엇이 눈에 띄는가?  276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이앻하려면 독자에게 먼저 무엇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두 번째는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세번째는?  278


독자에게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재료의 순서를 정하는 일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연구해보라.  279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말은 실제로 글 쓰기에서 음과 양의 양면성을 지닌다. 글쓰기란 내용과 말 사이에서 추는 춤과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이끌때도 있고 말이 이끌 때도 있다. 진정한 글쓰기의 기교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울 때는 두 가지 분리해서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295


사실 창조적 기능은 적용 번위가 굉장히 넓다. 창조적 기능은 여러분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든 그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꺼이 제공할 것이다.  306



글로 옮기기 - 글쓰기 과정에 관한 단계적 안내

새로 소개하는 7단계의 접근 방법은 습관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이 접근 방법을 시도할 때는 하나하나 노트에 적거나 메모하며 천천히 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확인하라. 

그리고 어떤 부분은 당장 잘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부분은 습관을 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도구이지 규칙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314


단계1 :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라

의무적 글쓰기는 다른 누군가가 요구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주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주제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는 논스톱 쓰기를 활용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주제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 목록을 작성하라. 검열하지 마라. 적어도 10분간은 펜을 계속 놀린다. 그런 다음 다시 목록을 읽어보고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에 표시를 한다.(생각난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이 연습을 반복한다.)

가능한 주제를 결정할 때 자신이 고른 것이 쓸 수 있는 것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첫째, 자신이 흥미를 느낄 수 잇는 주제라야 한다. 흥미가 없다면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어려워진다. 

  둘째, 주제의 범위가 넓지 않아야 적당한 지면에 지적 능력을 집중할 수가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주제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을 때가 있다. 때로는 15쪽도 채우려면 너무 많아 보일 때가 있지만 글쓰기 과정이 수월해진다면 이 정도 지면에 할 말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셋째, 주어진 기간에 주제에 대한 재료를 충분히 찾아야 한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러분의 주제가 과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316-318


단계2 : 과제의 계획을 짜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모든 것을 목록으로 작성한다. 모든 행위나 단계는 이 과제에 부합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특수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항목별 순수는 걱정할 것이 없다. 생각이 막히면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과제의 원활한 진행을 상상해본다. 또는 목록에 적힌 각 항목을 보면서 자신에게 '이 부분을 좀더 세분화할 수 있을까?'하고 물어본다.


글쓰기 과제의 시작을 미루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필요호 하는 모든 자료를 읽고 조사를 마칠 때까지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글쓰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다. 말하자면 글쓰기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게 해주고,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매우 고귀한 도구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318-321


단계3 : 내용을 발전시켜라

내부모으기 -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활용해서(주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동안 계속 펜을 놀리면서) 주제와 관련 있는 것은 머릿속에서 모두 끄집어내어 적어본다. 이 주제와 관련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가? 조사를 하면서 찾아낸 것에 어떤 기대를 하는가? 주제에 관해 어떤 의문이 드는가? 이 주제를 쓰고 싶게 하는 경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목록작성 - 단어 한 마디든 완전한 생각이든 각 항목은 계속 새 줄에 써야 한다.

지도 그리기 - 한가운데 작은 원을 그리고 원 안에 주제를 적어본다. 그리고 중심 원에서 한 줄 씩 가지를 쳐서 모으기를 할 때마다 각 줄에 새 항목을 기입한다. 

이미 적은 것과 관련돼 보이는 것이 새로 생각나면 기존의 줄에 새로 가지를 쳐서 거기에 새로운 생각을 적는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직관에 따라 가지를 친다.

지도 그리기가 특별히 도움이 되는 까닭은 이 방법으로 전체 과제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주제를 너무 넓게 잡아서 초점을 좀더 좁힐 필요는 없는지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 서로 다른 부분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호작용 - 잠시 다음 질문에 잡을 적어본다. '이 과제의 다음 단계를 위해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가?'

외부모으기 - 외부모으기를 할 때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집한 자료가 자신의 일부가 되도록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의무적 글쓰기으 제1규칙이 '자신의 과제를 안다'는 것이라면 이어 제2규칙은 '자신의 재료를 안다'는 것이 될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사람들이 흔히 학술논문을 작성하거나 직장에서 복잡한 글쓰기 과제가 주어질 때 걱정하는 것은 글을 조합할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재료 관리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료의 소화 - 재료를 소화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면 기사나 책 한 장(章)을 읽고난 다음 이에 대해 프리라이팅을 하라. 프리라이팅은 별개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 첫째 부분에서는 그 부분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 또는 작가가 하는 말을 적는다. 명확하게 이해한 것을 적고 이해하지 못한 것도 적는다. 질문도 적는다. 둘째 부분에서는 작가가 한 말에 대한 자신의 지적 반응을 적는다. 이를테면 여러분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말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가?(자신의 감정적인 반응도 같이 적을 수 있다. 이런 반응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찾는 데 도우밍 된다.) 읽을 필요가 있는 장이나 부분에서 이 연습을 반복한다.

이 프리라이팅 연습의 두 부분을 따로따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돌아보기 - 돌아볼 때는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라. 

잠재의식을 활용하라 - 시간을 들여 잠재의식이 자신의 재료에 대한 활동을 하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작용 - 지금까지 자신이 쓴 것을 전부 읽어보고 다음 두 가지를 하라.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든 표시를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아이디어나 질문이 새로 떠오르면 무엇이든 적는다. 이것을 할 때 자신의 글을 고치거나 편집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쭉 읽어보고 자신이 쓴 것과 교감을 하면서 상호작용을 한 뒤 '여기서 내가 실제로 하려고 하는 말은..'이라는 글을 쓰고 이 문장을 완성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면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21-335


단계4 : 제로 드래프트를 써라

제로 드래프트는 초고를 작성하기 전에 쓰는 초안이다.

제로 드래프트의 주목적은 이미 확보한 자료는 무엇이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제로 드래프트의 구성을 마치면 프린트를 해서 읽어본다. 이 글이 이해가 되는가? 포함할 것과 뺄 것을 결정한 선택이 마음에 드는가? 그리고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라.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무엇인가?' 과제의 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 물음에 대해 잠재의식이 활동하게 하려면 잠시 쉴 필요가 있다. 산책을 나가거나 휴식을 취하라.  336-339


단계5 : 청중과 목표를 고려하라

 - 여러분은 누구를 상대로 글을 쓰는가? 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자신의 독자에 대해 진술해보라.

 - 독자는 여러분의 주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 독자는 여러분의 주제에 대해 무엇을 알기 원하는가? 또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가?

 - 독자의 의문은 무엇일 것 같은가?

 -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글에 포함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독자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340-343


단계6 : 전달하라

단계7 : 명확하게 하라

글쓰기 과정 자체와 마찬가지로 교정은 한꺼번에 하는 것보다 단계적으로 할 때 훨씬 더 능률이 오르는 법이다. 

교정할 때 큰 도움이 되는 방법 한 가지는 자신의 글과 얼마 동안 거리를 둔 다음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신의 글로 돌아올 때는 새로운 눈으로 검토할 수 있는 상상의 안경을 써라.

자신을 향해 '이 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가? 혹시 빠트린 것은 없는가?'라고 물어보라.  350-351



글쓰기 과정에 대한 이 유형이 복잡해서 약간 겁이 날 수도 있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 방법을 택하기 바란다. 

특정 글쓰기에 모든 단계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접근 방법을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 모음으로 보기 바란다.  356



작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이 책에서 내가 분명히 밝혔기를 바라지만, 배우는 사림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 글을 쓰려는 욕구와 기꺼이 자신의 기술을 익히고 개발하는 과정에 시간과 정력을 쏟으려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362


현실적인 문제는 간단하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하고 싶은가에 달린 것이다. 자신이 글쓰기 연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대로 시행하라.  364


훈련을 하다 보면 뒤에 가서 달라질 수도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물음은 '글쓰기가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기 바라는가?' 일 것이다.

시작은 소박하게 하라. 일주일에 한 두 번, 한 번에 10분 정도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글쓰기를 소화하는 데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367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다.  368


완전한 글을 쓰는 데 집착하지 마라. 자신이 쓴 글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때는 자신에게 '여기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여기서 배운 것을 다른 글쓰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라. '지금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주기적으로 던지면서 작가로서의 직관을 연마해야 한다. 글쓰기는 복합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배울 것이 너무도 많다.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라.  369


습작에 매진한다는 것은 훈련과 학습에 자아를 아낌없이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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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석 - 용기가 없다면 가슴 시린 만남도 없다


비단 사진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치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어떤 일을 하든지 먼저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세상이 되겠는가.  18


작가의 진실이 반영되지 못한 사진은 설령 시선을 사로잡는 특정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19


'시선을 끄는 힘이 있는가'. 사진이란 보여주는 행위의 일종이므로, 시선을 끌지 못하는 사진은 솔직히 재미가 없다.  30


막상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렇게 감동적인 장면들이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을 담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나는 내 안의 존재를 통해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존재, 그것을 위해서 바로 당신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31


내게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 물어오는 많은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노세요!"

영화, 뮤지컬, 오페라, 회화, 조각, 무용, 음악 할 것 없이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그러한 것들이 바로 당신 안에서 하나의 존재를 이루게 된다. 세상을 보다 더 독특하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 이는 시각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32


남들이 쉽게 지나쳐 버리는 곳에서 당신만의 시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길 바란다. 작은 것의 몸짓에 시선을 주고 바람의 흐름에 온몸의 감각을 맡겨라. 사람들의 변하하는 표정을 애정 있게 바라보고 당신 자신의 감각을 신뢰한다면 당신의 여행 사진은 분명 근사할 것이다.  35


되지도 않는 영어보다는 당당한 표정과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입보다는 몸으로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41


현지의 음식을 먹는 것으로부터 여행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현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방법.  49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 이들 대부분은 사람이나 사물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것이다. 객관적인 풍경, 객관적인 사람들과의 밋밋한 관계 속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리 없다.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그들 삶 속의 일부가 되어 여행을 할 수 있다. 여행이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삶이 되고 생활이 되어야, 애틋하고 정겨우며 감동어린 이야기들을 배낭에 가득 담아 올 수 있다. 풍경 밖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구태의연한 미사야구들을 버리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이다.  

당신만의 에피소드가 없는 여행이란 얼마나 지루할지 생각해 보라.  60


그들의 삶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가슴 뜨거운 여행자가 되어보자.  61


여행의 카테고리는 국가별로 너무 세분화 하는 것보다는 당신만의 느낌으로 묶어서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카테고리는 일목여연하면서도 심플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당신 스스로 집중하기에도 좋을 것이고 보는 이들에게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70


업로드를 꾸준하게 하라.

매일 고정적으로 피딩타임을 정하고 먹이를 던져 주듯 포스팅을 던져라.  71


문답 

생업이나 학업을 중단하고 1년 정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돌아온 후가 걱정이다.

- 결심했다면 실행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  82

라스트 코멘트

- 용기 있게떠나지 않는 자에겐 가슴 시린 만남도 없다. 그리고 망설이는 삶은 언제나 그 자리일 뿐이다. 머무름과 떠남이, 만남과 헤어짐이 그리고 들숨과 날숨이 공존하며 새로운 감동으로 펼쳐질 여행과 어여쁜 사람들 속에서 거침없이 방랑하길 바란다.  83




조현숙 - 찍지도, 그리지도, 쓰지도 말아라


모든 도시에는 고유한 소리가 있다. 혼잡한 시장 사진을 보면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생각나고, 기차 사진을 보면 단잠을 깨우던 행상인의 소리가 그립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내가 머물렀던 도시, 그 공간의 소리들을 녹음한다.


스캔하라, 온몸으로

기억이란, 본인이 경험하고 목격한 것이 어떠한 형태로 잘 간직되엇다가 나타난다. 이때 주관적인 의식과 객관적인 상황이 어우러져 본인이 기억하고싶은 것만 기억할 수도 잇고,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부각되기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되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그 부분적인 기억마저도 흐릿해진다. 그나마 며칠이 지나서라도 기록을 해두어 사진 한 장 없는 5년이 지난 지금, 저 글을 보며 그날을 기억하게 된다. 기록은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그 기록은 다시금 기억을 새롭게 한다. 그렇다면, 기억과 기록은 무엇이 먼저라고, 무엇이 무엇을 지배한다고 말할 수 없게,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얽혀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없으면 기록도 없고, 기록이 없으면 훗날의 기억도 없으니 말이다.  108


요즘은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이다. 쓸 만큼의 돈, 머물 만큼의 시간, 떠날 만큼의 용기만 있다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니까.  144


여행과 책 작업을 병행하면서 나는 노하우란 대단하고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길들여지면 좋은 , 작고 사소한 습관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각자 도움이 될 만한 여행습관이 몸에 잘 배어있으면 일과 여행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습관도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서 우리나는 것이지만.  145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단 두 줄의 글귀가 나를 감전시켰다.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신호등이 초록불로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뭘 몰랐던 스무살 때 정한 전공 하나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부터 시작해서 내 인생에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멋있는 어른이 아닐까. 이런 의혹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현듯 미끄러져 들어오곤 했다.  161


인생의 방향을 찾느라 고민하는 삶은 얼마나 위태로울지 생각하니 심히 걱정스러웠다. 아, 20대의 고민은 30대가 되어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여행이 깊어질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아파트 평수나 연봉이 아니라 매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에 가치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선명해졌다. 사람들이 정한 시간표에 꼭 맞춰 살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할 때 이미 내 발은 그 길로 접어들공 있었다.  163


문답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 무언가를 보고 느꼈을 때 메모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문장을 쓰긴 어렵지만 몇 가지 기억하고 싶은  키워드라도 꼭 메모를 해서, 시간이 지난 뒤 그 메모를 보고 그때의 느낌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67


생업이나 학업을 중단하고 1년 정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돌아온 후가 걱정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까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사표를 내기 전에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떠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단순한 일상에 대한 일탈인지, 아니면 여행작가로 본격적으로 나서볼 생각인지, 또는 그 어떠한 이유인지, 떠나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면 그만큼 걱정도 줄어들지 않을까. 아무튼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본인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후회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것.  168




박동식 - 초점이 흐린 백 장의 사진은 스타일이다 


여행기에 생명감이 있어야 한다. 여행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장치 중에 하나는 현장성이다. 여행기는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나 취재를 바탕으로 쓰는 원고이기 때문이다. 그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충실한 메모가 중요하다. 하루 일과 후에 쓰는 일기도 중요하지만 어떤 단상이 떠올랐을 때 곧바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놓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178


가장 중요한 것은 '더듬이'일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도 누구는 아무런 동요 없이 지나치기도 하지만 더듬이가 발달된 사람이라면 많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180


삶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다. 현재 처해 있는 역경이 아무리 힘든 것이라고 해도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잇다면 오늘을 사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에 대한 확신이 클수록 오늘의 버거움쯤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안락함을 영위하면서도 다가올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에 괴로워하고 좌절한다.  222


문답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가 중요하며 그것ㅇㄹ 전달하려 애쓴다.  241


생업이나 학업을 중단하고 1년 정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돌아온 후가 걱정이다.

- 안정적인 월급이 필요하다면 휴가 때 며칠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당신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행 없이는 살 수 없는 간절함이 숨어 있다면 안정적인 월급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1년간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여행에서 돌아와 굶어죽엇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어찌해서둔 길은 있다. 오히려 떠나고 싶어도 경비가 없어 떠나지 못하는 것이 더 원통한 일이다.  242


넘치는 열정으로 여행작가의 길에 접어들었으나.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면

- 재능은 노력하면 키워진다. 게으르지만 않다면 당신은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243




정기범 - 가이드북에도 블록버스터가 있다


가이드북은 한 도시에 적어도 3개월 이상 머물거나 아예 오랜 세월동안 거주하는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264


좋은 사진을 찍는 데 정해진 규칙 따위는 없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면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해보길 바란다. 하지만 마구 셔터를 눌러대기보다는 좀 더 공을 들여 찍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난사한다면 일 년, 아니 십 년이 지나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우연히 스쳐가는 피사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찍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낼 수 있다.

여행사진은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강하다. 자연이 풍경이나 인물의 일상을 바탕으로 나 자신의 시간을 기념하는 '사실적인 기록'이다. 처음부터 너무 멋진 사진을 기대하기 보다는 일상의 소소함을 기록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셔터를 누르다 보면 의외로 좋은 결과물을 얻을 때가 많다.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 기다려서 찍은 사진,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순간을 맹수처럼 따라가듯 찍은 사진, 맛있는 음식을 열 배쯤 더 맛있게 보이도록 찍은 사진... 이런 사진을 ㅉ기기 원하는 마음 자체가 당신을 멋진 작가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288-289


문답

생업이나 학업을 중단하고 1년 정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돌아온 후가 걱정이다.

-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다음이 걱정이라면 장기간의 여행을 평생 떠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먹고 살 방법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것도 문제지만 다음 일이 걱정돼서 여행을 못 떠나는 것도 재미없는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앞에 기회는 늘 있다. 그 기회가 나를 끌어당기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기회를 끌어가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일만 하는 사람은 삶의 노예가 아닐까. 쉴 줄 아는 능력을 여행을 통해 실현하면 분명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도저노가 에너지가 충만해질 것이다.  306




이지상 - 절실함이 가슴에 닿을 때까지


'어떻게 해야 여행작가가 되는가'라는 질문 이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정말 미치도록 여행이 좋은가, 정말 글을 쓰지 않으면 '환장'하게쓴ㄴ가, 정말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인생의 한 부분을 뚝 떼어 바칠 수 있겠는가? 그런 열정, 그런 끼가 있다면 방법은 저절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 누구도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 안정과 자유로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전략' 혹은 '테크닉' 마인드로 접근하면 이런 길은 쉽게 답니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치도록 좋아서, 대책 없이 열정 하나만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훨훨 불사르는 사람의 눈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길이 보인다. 그게 오묘한 인생의 이치인 것 같다. 

결국 전략보다 뜻이요, 테크닉보다 열정이다.  329-330


여행기를 내는 방법 몇 가지를 귀띔한다.

첫 번째, 자기 스스로 '기획'을 해서 쓰는 것(여기서 말하는 기획이란 '여행'이 아니라 '글쓰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는 대개 이 방법을 썼다.).

어떤 지역의 여행기든 '압축'해야만 한다. 먼저 특정한 주제와 목적, 그리고 대상 독자층을 분명하게 인식한 후, 거기에 맞게 기억을 살리고 자료를 보충해가며 원고를 써야한다. 원고를 다 쓰면 자기 원고와 색깔이 맞는 출판사 목록을 써야 한다. 원고를 다 쓰면 자기 원고와 색깔이 맞는 출판사 목록을 작성한 후, 3~$개씩 그룹을 지어 메일로 보낸다.

A4 용지 1~2장 정도의 분량으로 기획 의도, 내용, 목차, 대상 독차층, 자신에 대한 소개등을 정리한다. 이렇게 작성한 '기획서'와 본문의 일부분을 메일로 보낸다.

두 번째 방법은 원고를 쓰기 전에 먼저 기획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알리는 것.

세 번째는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 홈페이지 혹은 여행 카페등에 먼저 올리는 것.

네 번째는 먼저 출판사와 기획한 후 여행을 떠나는 것.

어느 정도 검증된 여행작가일 때 해당되는 케이스로, 출판 기획자와 주제, 여정 등을 어느 정도 미리 정한 후 취재를 한다.  333-336


경험을 편집하라 - 자기 경험을 무작정 모두 옮겨서는 안 되고 먹적에 맞춰 편집해야 된다는 것이다.  336


메모는 또다른 여행의 길 - 여행을 조항한다고 여행에 대한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은 아니다. 여행과 글쓰기는 다른 영역의 행위다. 여행작가가 되려면 여행은 물론 글쓰기 또한 지독하게 좋아해야 한다. 나의 일기장에는 현장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주관적인 감정, 사유, 현실 정보들이 다양하게 담겨져 있다.  342


거짓과 과장은 피하되, 글 쓰는 과정에서 피어오르는 약간의 감성과 자유로운 창의성은 양념처럼 허용하기로 했다.  345


"우선 써라.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것이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손가락이다."  351


그렇게 쓰고 난 후에 읽어보면 버릴 게 상당히 많아지거나, 아예 싹 다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352


나는 여전히 어떤 그링 좋은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모른다. 그러나 고민하다보면, 그 고민 자체가 익은 열매 떨어지듯이 툭 떨어질 때가 있다. 그 순간 바쁜 머리가 고개를 숙이고 뜨거운 가슴의 열기가 솟구친다. 그 기운으로 글을 쓴다.

그런데 그게 한 번에 되지는 않는다.

'버려짐'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그 '버려지는 것'들이야말로 불쏘시개가 되어 가슴의 열기를 서서히 지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355

한 길에서 프로로서 생존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길이다. 세상에 진입하기 위해서 수많은 문턱과 장벽들을 넘고, 재투자와 자기 성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362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 외에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없다. 또한 행복으로 가는 길도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다. 길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길, 거기에 짜릿한 기쁨이 있다.  364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혹은 과거가 후회될 때 나는 자꾸자꾸 의미를 생산한다. 그 의미를 토앻 후회스럽던 과거가 보람 있는 과거로 변하고 막막하던 미래가 밝고 희망찬 미래로 변한다. 또한 흔들리는 현재가 기쁘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를 알 수도 없지만 의미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인간은 보잘 것 없지만 위대하기도 하다. 선한 생각, 선한 의미를 계속해서 생산해내면 자신의 삶이 그렇게 변해간다고 나는 믿는다.  369


솔직히 한 길을 오래 가는 데 있어 재미는 일시적이다.  370


문답

초보자가가 여행기를 쓸 때 피해야 할 것

- 자기의 경험을 다 쓰려고 하지 말라. 여행기는 자신의 일기장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기장이라는 재료를 바탕으로 하나의 집을 짓는 것이다.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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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저가 항공사에 대한 소개에 관한 도서이다.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행복한 여행의 가장 큰 준비물은 가벼운 마음이다. - 생텍쥐베리

여행의 목적은 도달하는데 있지 않고 떠나는 것에 있다. - 괴테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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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을 시작하며 .. 8

1부 시작하기

  1장 습작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가? ..22

  2장 여행 떠나기 .. 48

  3장 내용에 관한 생각 일깨우기:기초훈련 .. 55

2부 작가의 역량

  4장 창조력 .. 92

  5장 기억과 전문 지식 .. 108

  6장 관찰력 .. 121

  7장 상상력 .. 142

  8장 잠재의식 .. 168

  9장 호기심 .. 177

  10장 셜록 홈스의 글쓰기 학교 .. 203


하버드 글쓰기 강의 (下) 보러가기 


책을 시작하며

이 책은 그 흔한 출판 전략 하나 일러주지 않고 독자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기술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글 쓰는 데 필요한 문법도 가르쳐주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불티나게 잘 팔리는 베스트 셀러 소설을 쓸 수 있는지 그 방법 역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책은 글을 쓰는 모든 작가에게 꼭 필요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기술을 어덯게 하면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작가라는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아무 거리낌 없이 그저 쓰기부터 시작하는지 아니면 글을 쓰는 내내 보통 사람처럼 답답함을 느끼거나 혼란을 겪는지 그런저런 것들을 함께 보여줄 것이다.  8-9


글을 쓰는 데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첫째, 글을 쓰려면 한 편의 글에 담길 내용을 찾아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주제를 찾아내고, 주제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지 때문이다.

둘째,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독자를 헤아리는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글을 쓰려면 자신이 소통을 위해 다루고자 하는 장르나 형식에 관해 알 필요가 있다. 

넷째, 글을 쓰려면 내 마음속 생각을 독자의 마음속에 집어넣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10-11


그런 지식을 타고나는 작가는 없다. 종이 위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학습된 기술이다.  11



습작은 타격 연습이나 악보 연습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반복적인 행동이다.

습작이 단지 맹목적인 반복이란 뜻은 아니다. 훌륭한 야구선수라면 타격 훈련을 할 때 무작정 방망이를 반복해서 휘두르기만 하지는 않는다. 타격을 할 땐 한 순간에 온 정신을 한데 모은다. 한 예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방망이를 잡은 손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또 공을 치는 순간, 공을 바라보는 눈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도 있다. 종이에 글을 쓰는 것 역시 한 순간, 한 가지 대상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행위다. 바로 이것이 글쓰기으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7


습작을 시작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학창 시절의 사고방식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올바로' 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28

'이 글은 지난번 것처럼 좋지는 않아. 더 이상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것 같아'하고 생각하게 된다.

습작할 때 마음속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30


훈련은 학습을 위한 도구다.

평가하는 태도를 버려라. 그 대신 '이렇게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군' 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33


습작은 놀이 같은 것이다.

훈련을 할 때 놀이처럼 하기 위해서는 발견을 통해 배우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다음번에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34


무엇이든 상관없이 계속 펜으로 끼적거리는 것이다. 이 말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며, 앞으로 돌아가 단어에 밑줄을 긋거나 단어를 고치거나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35


프리라이팅(freewriting) - 10분 동안 작가가 되는 훈련을 한다는 것.

이제 몇 분의 시간을 더 들여-자신이 원하는 만큼-종이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과연 이 훈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스스로 골라 쓴 어휘를 볼 때 무엇이 눈에 띄는가? 어떻게 그 단어가 생각났는가? 글을 쓸 때 마음속의 어떤 생각에 주목했는가?  36


훈련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글을 쓸 때 마음을 편히 먹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동안 생각해두었던 것에 깊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사람도 있다.  37


창조적인 기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39

훈련의 요점은 연습 자체에 있지 즉각적인 결과에 있지 않다.  40



프리라이팅을 위한 지침

- 무슨 일이 있어도 적어도 10분 동안은 계속 펜을 놀려라. 시계를 보지 말고 대신 자명종이나 스톱워치를 활용하라.

-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이 욕구에 따르면 안 된다. 말하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까지 똑같은 것을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멈추지 말고 펜을 놀려라. 쓰는 도중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도 먼저 쓴 것에 줄을 긋거나 편집하지 마라.

-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라. 무엇을 쓰고 싶든지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 원한다면 한 가지 주제로 시작할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주제로 시작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주제로 바꿀 수 있다. 다만 계속 펜을 놀려라. 순서나 단어 선책, 문법의 정확성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이것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원하지 않는 부분에서 생각이 뱅뱅 맴돌 때는 방향을 바꿔라. 이 훈련의 주제는 여러분 자신이다.

- 이 글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마라.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상관도 없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떠오를지 궁금하다'는 태도만 유지하라.

-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과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종이에 옮겨라. 마음속에 '이건 끔찍해! 무슨 생각이 나든 그걸 쓸 수 있을 것 같아?'라든가 '와우, 대단한데! 곧 스티븐 킹 같은 자가가 될거야'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무조건 무시하라. 계속 펜만 움직여라.

- 처음에는 자신이 쓴 것을 읽어보지 않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읽고 싶어도 잠시 기다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행여 읽더라도 너그러운 자세로 읽어라. 편집하거나 비평하지 마라. 단지 종이 위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주목하라.  43-44



기초 훈련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단순하다.  46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즉 "재능이란 다른 사람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가정, 그런 생각이야말로 자신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글쓰기 능력이 있다.  50


습작을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기 바란다. 먼저 다음 질문에 답해보라. 여러분은 어느 시간대에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가? 여러분은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싶은가 아니면 원할때면 아무 때나 쓰고 싶은가? 혹시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되는가?

이제 여러분의 이상적인 글쓰기 장소를 상상해보라. 그곳은 어디인가?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그곳을 이용하는가? 그곳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곳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당신이 거기서 보거나 냄새 맡거나 만지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혼자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가? 무릎에서 고양이가 자고 있는가? 발치에 개가 누워 있는가? 그곳은 조용한가 아니면 음악이 들리는가? 음악이 있다면 어떤 음악인가? 당신 주위에 있는 이 모든 것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가 아니면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고 그것을 그림으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52-53


어떻게 하면 가장 편안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조명이나 다른 의자, 다른 배치로 실험하고 싶을 수도 있다. 꼭 이런 형태는 아니겠지만 사실 글쓰기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육체적인 활동이다. 육체적으로 편안할 때 글쓰기에 더 많은 힘과 정력을 쏟을 수 있다.

단지 펜과 종이만 준비하고... 시작해 보는 것이다.  54



작가의 정신 : 내용에 관한 생각과 기교에 관한 생각

내용에 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글로 쓸 생각과 활용할 재료를 찾아내는 작가의 정신과 관련한 부분이다. 내용에 관한 생각을 잘 단련한, 노련한 작가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정보, 장면, 이야기, 인물, 세부적인 묘사 같은 내용을 잘 포착해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낼 줄 안다.

기교에 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말해야 할 내용을 전달하는 작가의 정신과 관련한 부분이다. 기교적인 생각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큰 기교, 예를 들어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 또는 기명 칼럼은 어떠해야 하는가 따위이고, 또 하나는 작은 기교, 이를테면 어휘를 선택해서 그것을 문장과 문단에 조합하는 기교다.

각각의 부분을 잘 익히기 위해서는 둘을 분리해서 훈련하는 것이 좋다.  58


프리라이팅의 진정한 목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 목적은 내용에 관한 생각과 친숙해지고 그 생각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두번째 목적은 규칙적인 훈련으로 내용에 관한 생각을 강화해서-특정한 정신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재료 제공을 원활하게 하자는 것이다. 

어휘보다 재료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할수록 말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것도 그만큼 더 쉬워질 것이다. 

이 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자신이 불러낸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라도 결국에는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64



자료 없이 글을 쓸 수없는 사람은 없다.

풍부한 재료.. 재료가 풍부하다면 그 많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66


자료 모으기에는 내부 모으기와 외부 모으기 두 가지가 있다.

내부 모으기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재료를 모으는 것이다. 여러분의 경험과 생각, 꿈, 읽은 책, 시청한 영화를 불러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머릿속에 저장된 것을 떠올린다고 보면 된다.

외부 모으기는 자기 주변에서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읽기로 마음먹은 책이나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조사, 우연히 듣게 된 대화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는 일임을 명심하라.  67


사실상 자료를 모으는 순간에 그 자료가 훗날 소용이 될지. 안 될지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자신의 직관을 믿고 뭔가 매혹적이거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적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필경 그 느낌을 잊고  말 것이다.   69



연습 : 프리라이팅에서 모으기

온힘을 내용에 집중해서 프리라이팅을 많이 하다 보면 싫증이 날 수도 있다. 이때는 원한다면 자신이 쓴 것을 훑어보고 눈에 띄는 대목에 표시를 할 수도 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전체 구절 등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표시를 한다. 컴퓨터로 프리라이팅 연습을 했다면 새 문서를 열고 표시한 모든글을 붗이기 하면 된다. 펜과 종이를 사용했을 경우에는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요절에 동그라미를 친다든가 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표시를 하면 된다. 원한다면 또한 표시한 자료를 새로 작성해 컴퓨터에 자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작가의 또 다른 필수적 훈련인 새로운 차우너의 모으기를 경험해볼 기회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것이다.  72



나는 학생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많은 독서를 하지 않고서는 작가가, 또는 유능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여러분은 작가로서 독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 말의 뜻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으로서 즐거움을 위해 독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74


어떤 것으든 좋으면 읽는 것이다.

기쁨을 위한 독서를 한다면 무의식중에 작가의 문체자 기술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 자기 자신을 사로잡는 것에 주목하라.  75


책읽기는 그 어떤 행위보다도 내용에 관한 생각을 키워줄 것이다.  78


연습 : 내용에 관한 생각과 더불어 하는 책읽기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나 시, 수필을 읽어라(어떤 종류의 글을 좋아하든). 이제 그 글의 내용을 생각해 보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적어보라.

이 작가는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가?(예를 들면 어떤 인물이나 사건, 어떤 상세한 묘사,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했는가?) 이 재료의 무엇이 마음에 드는가? 작가는 이 재료를 어떻게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작가가 이 특정한 재료를 사용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79



습작을 할 때 일어나는 멋진 일 중 하나는 이 훈련이 작가로서의 자신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쓰는 글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글을 쓸 때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종이에 단어를 나열하는 훈련으로 자신이 매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훈련을 할 때 머릿속에서 어떤 커다란 목소리가 '훈련을 방해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바로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라거나 '어쨌든 프리라이팅이라는 이 한심한 훈련을 왜 하는 거야?' 같은 목소리들 말이다. 또는 글쓰기를 할 때 아침 일찍 쓰거나 라디오를 켜고 쓰거나 조용한 데서 쓰는 것이 더 좋다는 여러 가지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또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거라든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 역시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노트보다는 컴퓨터로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거라든가 자신의 내용에 관한 생각이 더 이상 써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주제들로 꽉 차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무엇보다 실습 작가가 되려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81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또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에게 시간을 제공하여 배울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82


자신의 습작을 돌아볼 때 평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것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초점을 맞추기 보다, 또 그 이상 성취하지 못한 자신을 비판하기보다 훈련 중에 자신이 성취한 것을 주목하고 그 진가를 아는 것이다. 자기가 해낸것, 자기가 배운 것에 주목하고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은 우리의 일부가 된다. 바로 이것이 피상적이 아닌, 깊은 의미에서의 진정한 배움이다.  83-84



연습 : 자신의 글쓰기 돌아보기

이 연습은 프리라이팅 훈련처럼 한다. 10분간 또는 그 이상 계속 펜을 놀리는 것이다. 글을 쓰며 지난 몇 주간 글쓰기를 하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성해본다. 

자신의 글쓰기 내용이나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에게 무엇을 주목했는가?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훈련 중에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 또는 무엇이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라.

자신을 돌아볼 때에는 평가의 생각은 멀리한 채 습작을 하고 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주목하고 어떤 칭찬이나 비난을 배재한 상채에서 단순하게 그 일을 적는다. 아마 여러분은 스스로 이런 물음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이 훈련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 또는 작가로서의 나 자신이ㅔ 대해서 무엇을 배우는가? 다음 단계의 글쓰기로 나가고 싶거나 나갈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디인가? 오늘 작가로서의 나의 직관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렇게 하면 자신이 배운 것을 의식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 여행의 어느 지점까지 왔는지 또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훈련을 돌아본다면 '작가의 직관'으로 자신의 생각을 듣는 데 도움이 된다. 작가의 직관이란 보통 의식적인 생각보다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필요한 거을 더 잘 아는 내면의 목소리다.  85-86


나는 작가가 되는 데 재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끝없이 초보자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기꺼이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세라고 굳게 믿는다. 

배움을 돌아보는 훈련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마치 어린애처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어린아이가 자라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비판이나 지나친 칭찬이 아니라 격려와 지원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은 특정 주체에 대한 글쓰기를 계획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때로 어떻게 자신을 돌아볼지 성찰하고, 특정 문제에 관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놀라운 통찰과 해결방법을 찾기도 한다.  87



연습 목록을 관리하는 법

연습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한다면 훈련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지금 하고 싶은 연습은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훈련 돌아보기를 연습한다.

2. 연습하고 싶은 것 서너 가지를 골라서 목록으로 작성한다.

3. 이 목록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다. 컴퓨터에 자장하거나 노트 맨 앞쪽 계획표에 붙일 수 있다.

4. 글쓰기를 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잇다면 -단 10분이라도- 이 목록에 적힌 훈련 한 가지를 골라서 한다. 

5. 새 훈련을 시작하면서 친숙한 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에는 목록을 다시 작성한다.  89



창조적이란 말은 ... 나 자신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거나 상상하지 목한 것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93


글쓰기에서의 창조력이란 (또는 다른 행위에서도) 이보다는 재료를 모으고 모은 재료의 '조각'을 선택하고 각 조각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내용에 관한 생각을 많은 재료로 채우지 않는 한 우리는 창조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료를 모으는 훈련에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94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의 주제는 어떻게 찾아내는가?

1. 질문을 제기하라. - 창조적인 기능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들리는 대답을 적음으로써 주제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시작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을 예시해보겠다. 이 연습이 마음에 든다면 자신만의 주제를 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이 들릴 때에는 계속 펜을 놀린다. 첫 질문으로 시작하되 싫증이 날 때까지 이 물음에 매달리고 나서 다음번 물음으로 넘어간다. 쓰려고 할 때 뭔가 들리는 소리가 있으면 10분 정도 지날 때까지 편한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정답이 없다. 어쩌면 조잉 위로 옮겨지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랄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영역을 참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간단히 방향만 바꾸면 된다. 원한다면 그때그때 다른 질문을 선태갛고 대답하면서 이 훈련을 한 번 이상 하도록 한다. 

 -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 최근에 어떤 생각을 했는가?

 - 계속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은 무엇인가?

 - 고민거리가 있는가?

 -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 무엇을 아는가?

 - 확고한 의견을 지닌 주제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의견은 무엇인가?

 - 마음속에 담아둔 장소나 사람이 있는가? 그 장소는 어디고 그 사람은 누구인가?

 -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과정이 끝나면 자신이 쓴 것을 읽어보고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로 보이는 것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을 긋는다.

2. 노트를 활용하라. - 작가노트를 활용한다면 노트가 쓸 거리에 관해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것이다. 가끔씩 거기에 기록된 내용을 훑어보고 '이것에 대해 더 쓰고 싶어'하고 생각나는 항목이나 구절이 있으며 옆에 체크를 해둔다. 간혹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어떤 특정 주제에 관해 반복해서 써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도 있다. "나는 정말 산에 관심이 많군"이라거나 "할머니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있다. 계속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하는 식으로 두드러진 주제가 나오면 이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주제로 쓰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을 적어본다.  95-97


글쓰기란 하나의 과정이다. 이것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번에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97


초첨화된 프리라이팅  99



연습 : 내부 모으기를 하기 위한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앞서 연습한 '자신의 주제를 찾아라'에서 찾아낸 주제 하나를 고른다. 이것을 새 페이지의 맨 위에 기록한다. 프리라이팅 기초훈련처럼 초점화된 프리라이팅도 아주 간단하다. 적어도 10분간 계속 쓰고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아무도 이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또 훈련을 하면서 지금 쓰는 것이 완성된 글도 아니요 초고도 아니라는 시실을 염두에 둔다. 그러므로 서론, 본론, 결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글의 구성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이 글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지금 자신의 주제가 될 것을 모으는 일이다. 정보 조각이라든가 이야깃거리, 사람, 이미지, 아이디어, 어휘, 구절, 질문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내부 모으기는 수년간 창고 깊숙이 처박아놓고 열어보지 않은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사용하고 싶은 주제를 당장 성택하지는 않는다. 단지 거기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는 거이다. 마음속에 떠오른 것을 검열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이 자신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면-아무리 낯설고 연결고리가 미약해 보이더라도-노트에 적는다. 생각이 또렷하지 않을 때에는 뭔가 말할 생각이 날 때까지 단어 하나나 구절 하나를 계속 반복한다. 

'어디든지 제한 없이 가는' 기초적인 프리라이팅과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창조적 기능에 제공할 방이 몇 개나 되는가와 관꼐가 있다. '제한 없이 가는' 프리라이팅으로는 자신의 창조적 기능이 어디든 향할 수 있다.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할 때에는 활도을 펼칠 특정 공간을 제공하고-자신이 선택한 주제 영역-그곳에 머무르도록 한다. 여러분이 지금쯤은 알고 있을 창조적 기능은 이곳저곳 거침없이 뛰어다니면서 제 맘대로 놀고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길들이지 않은 강아지와 같다.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의 창조적 기능이 마치 강아지처럼 지정해준 '뜰'을 벗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때로 창조적 기능이 이렇게 할 때에는 여러분이 지정해준 것과는 다른 주제에 대해 놀라운 아이디어를 줄 때도 있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노트 여백에 아이디어를 적거나 한 줄 띄고서 아이디어를 적기도 하고, 아니면 몇 줄 건너뛰고 적도록 한다. 그런 다음에는 곧장 선택 주제에 대한 프리라이팅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때로는 창조적 기능이 갈팡질팡하며 주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방향으로 이끌 때도 있다. 그렇다고 다른 주제에 대해 신통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나 잡다한 공상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창조적 기능을 달래며 살며시 주제로 돌려 놓으면 된다. 마음이 주제를 벗어날 때에는 "그래, 잘했어"라고 일단 쓴다. "저녁식사는 생선요리가 좋겠어.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했잖아. 할머니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이 또 뭐가 있지?..."하는 식으로 주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성급하게 주제를 벗어났다는 판단을 내리면 안 된다. 때로 창조적 기능은 가치 잇는 통찰이나 정보 조각으로 안내하기까지 구불구불한 긴 경로를 거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녁 식사로 생선요리'라는 생각이 생선을 잡아 요리하는 할머니의 모습 같은, 평소 같으면 찾아낼 수도 없는 놀라운 기억을 되살려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적어도 10분간은 계속 펜을 놀려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런 다음 이 연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 돌아보는 것이다. 이 연습을 했을 때 무엇이 눈에 띄는가? '제한 없이 가는' 프리라치팅 기초훈련보다 '초점을 맞춘' 프리라이팅이 더 어려웠는가? 아니면 더 쉬웠는가?

이 연습이 마음에 든다면 잘 보이는 노트 한쪽에 쓰기 목록을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기회에 글쓰기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이 목록에서 하나를 골라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00-102


어떤 성과보다는 훈련 자체에 몰두할 때 재료를 탐사하는 데 있어 완벽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그 재료를 가지고 즐기면 된다.  106


완성된 글을 시도하기 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재료를 모을 것을 권한다.  107



연습 : 질문하기

재미있게 재료를 기억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아주 유용한 재료로 들어가는 문이 열릴 수도 있다. 아래의 질문을 자신에게 제기하면서 답을 적어보거나 자신만의 질문을 해보라. 첫 번째 질문에 답을 적으면서 쓰기를 시작한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 가지 질문이 여러분의 마음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 때에는 반드시 원하는 만큼 그 방향을 유지하라.

 - 어떤 재로를 기억에 담아두는가? 기억이 일종의 배낭이라면 거기서 어떤 재료를 꺼내고 싶은가?

마음에 어떤 장소가 들어 있는가? 좋아하는 곳인가? 아니면 차라리 잊고 싶은 곳인가? 도시나 집, 방 같은 곳인가? 아니면 산이나 숲, 은밀한 상상속의 장소인가?

 - 기억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 있는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인가? 당신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인가? 책이나 영화에서 본 인물인가? 만나고 싶은 유명 인사인가?

 - 마음속에 특별한 장면이나 기념품이 들어 있는가? (내가 ~~ 할 때)

 - 기억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가?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을 아는가?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했는가?

 - 즐겨 떠올리는 기억이 있는가? 아니면 별로 없는가?

 -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충분한 문답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 때나 편하게 중단하라.  110-111



연습 : '나는 ~~을 기억한다'

'나는 ~~을 기억한다'는 말로 프리라이팅 훈련을 시작한다. 한 가지 기억에 대해 싫증이 날 때까지 쓴다. 그러다 생각이 막히면 '나는 ~~을 기억한다'는 말을 다시 쓴다. 훈련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것을 반복한다. 

단순히 '나는 ~~을 기억한다'는 말로 문장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구체적인 기억으로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것만 쓸 수도 있다.  111



연습 : 사진 활용하기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또는 기념품을 꺼내서 훈련하는 동안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사진이나 기념품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적어본다. 원한다면 각 대상에 목소리를 주어 대상이 여러분을 향해 말하게 할 수도 있다.


연습 : 기억을 활용해 모으기

앞의 연습에서 쓴 것을 모두 읽어본다. 눈에 띄는 것은 모두 표시한다. 이제 여러분이 표시한 항목 중에서 탐사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라. 그 주제를 새 페이지의 맨 위에 써본다.

이제 지난 장에서 설명한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활용하여 선택한 주제에 대해 10분간 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기억하는 사람이나 장소, 경허에 대해 세부적인 내요을 모으려고 노력하라. 그때는 하루 중 어느 때였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나? 그들은 무엇을 했거나 또는 말했는가?

이 기억훈련을 할 때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기억이 '올바른' 것인지 걱정한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이렇게 물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 똑같다고 확신해야 합니까?" 그러자 다른 학생은 또 이렇게 물었다. "저도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도 저와 똑같이 기억할까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아치 '삭제 버튼'처럼 쓴 것을 지우게 되거든요."

지금 하는 것은 노트에 기억을 모으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것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 알다시피 기억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일어난 사실을 있느 그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잡아갈 '기억의 경찰'은 없다. 토론 수업 중 한 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기억은 꿈과 같은 특성이 있어요. 팬웨이 파크 경기장에서 본 할렘 글로브트로터(Haelem Glibtrotter, 농구경기와 연극, 코미디를 섞어 관중에게 보여주는 농구단)의 농구경기를 쓰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잘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머릿속에는 야구의 3루 베이스라인에서 휘날리는 분필가루만 또렷하게 보였거든요." 여러분이 언젠가 회고록을 발간하기로 결심했다면 여러분의 소재가 기억에 의존한 경험일 뿐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밝힐 수 있을 것이다.  112-113


"마음속에 모든 재료가 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성인이 된 후 20~3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말할 거리를 엄청나게 모으지 않고서는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기억은 글쓰기 재료를 위한 거대한 원천이다.  114


작가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아는 것을 쓰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아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억은 자기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또 다른 재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내가 한층 더 재미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이 재료는 바로 우리의 전문적인 지식이다.  115



연습 : 무엇을 아는가?

"여러분이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때로 학생들에게 묻는다. "혹시 증권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나요? 또는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 화가에 관해서는 알고 있나요? 백파이프 연주법을 아나요? 악기의 역사에 담겨 있는 많은 이야기라든가 야구 팬으로서 여러분이 응원하는 팀의 수많은 기록을 아나요?"

1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목록으로 작성해보라.(이런 전문 지식 영역은 꼭 학술적인 주제이거나 '중요한' 주제일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10대를 양육하는 문제에 관해 아는 것이 있는가? 또는 바(bar) 관리 방법을 아는가? 이런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해보라.) 프리라이팅 훈련을 할 때처럼 마음을 편히 먹고 생각나는 것을 검열하려고 하지 마라. 생각이 막히면 그냥 '나는 ~~을 안다' 또는 '나는 ~~하는 법을 안다' 하는 식으로 쓰면서 문장을 완성한다. 생각이 나지 않ㅇ르 때 물결 표시를 채울 필요는 없다. 계속 펜을 놀려라.  116



연습 : 전문 지식을 활용해 모으기

목록을 모두 읽어보면서 눈에 띄는 항목에 표시를 한다. 그중 한 가지 주제를 골라서 노트의 새로운 페이지의 맨 위에 쓴다. 이제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 선택한 주제에 관해 생각나는 것은 모두 페이지에 모은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도 뭔가 새로운 것이 생각날 때까지 쉬지 않고 펜을 놀린다. 주제에 대한 지식 사이사이에 빈틈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제2부 '작가의 역량'의 제9장 '오기심'에서는 더 많은 재료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주제에 관해 더 잘 알려면 어떤게 필요한지 알아볼 것이다.  117


아는 것을 진지하게 살펴보라. 그것이 엄청난 재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119



내부 모으기를 활용하여 재료 모으는 법

 - 자신의 노트를 쭉 훑어본다. 또는 작가의 역량을 발휘해서 주제가 될 만한 목록을 나열해 본다.

 - 목록을 읽어보고 눈에 띄는 항목에 표시를 한다.

 - 표시된 항ㅁ고에서 하나를 골라 그 주제를 새 페이지의 맨 위에 적는다.

 -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 이 주제에 관해 생각나는 것을 모두 적는다.

 - 이것은 완성된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여러분은 단순히 재료를 제공하느 ㄴ내용에 관한 새악에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어떤 조각을 사용할 것인지는 이후에 결정할 수 있다. 

 - 모으기 훈련을 많이 할수록 내용에 관한 생각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120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주목하는 관찰력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인간 본래의 능력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관찰력을 별로 사용하지 않아 이 기능이 퇴화된 사람들이 많다. 그렇더라도 관찰력은 훈련으로 언제든지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기능이다.  122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주목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 본 구름의 모습은 무엇을 닮았나?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기차의 소음은 얼마나 시끄러운가? 샌드위치는 맛이 어떤가?

관찰은 판단이 아니다.

관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첫 단계는 속도를 낮추는 것이다.  123


외부 모으기는 작가가 해야 할 또 다른 필수 훈련이다. 외부 모으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사람들의 관찰력을 단련시켜주고 써야 할 것에 관한 아이디어와 단편적인 대화, 이미지, 세부 묘사 등 글쓰기에 사용할 재료 또한 제공해준다.  125


특수한 관찰력을 발달시키려면, 할 수 있는 한, 완전히 현재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지능이나 기억력 대신 감각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감각만을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126



연습 : 감각을 사용하라

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20분 정도 앉아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라. 원한다면 집안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카페라든가 공원 벤치, 즐겨 찻는 강변의 어느 한 곳 등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국적인 나비나 식물을 채집하기 위해 야생의 자연을 찾아나서는 과학 탐험가처럼 자신이 탐험여행을 한다고 상상할 수도 잇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이 탐험은 단순히 노트에 탐험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 감각으로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므로 집으로 표본을 가지고 올 수는 없다.

장소가 정해지면 그곳을 앉아 관찰하라. 사람에게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게 둔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감각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나무를 본다면 가까이 다가간 다음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기 위해 손가락으로 나무 껍질을 만져 볼 수 있다. 또 나무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 나무에 코를 대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지를 꺾어 맛을 보면 안 될 것이다. 또 이와는 달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커피의 맛은 확실히 모을 수 있는 세부적인 감각이 될 것이다. 

'완벽하게' 관찰하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때의 관찰이 흔히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것은 단순한 훈련이라는 것을 염두에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관찰 기능을 단련하면 된다. 훈련을 하면서 발생하는 일의 하나는 세부적인 감각이 제공하는 것을 여러분이 배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세부적인 색깔과 빛, 모양, 틀, 크기, 거리, 동작과 시각적 구조에 대해 눈이 제공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또 귀는 소리의 강약과 거칠고 부드러움, 속도, 지속 기간, 리듬, 음의 고저처럼 소리의 질을 주목한다. 손가락과 피부는 무엇보다 대상의 따뜻함과 차가움 같은 구조를 알아낸다. 코와 입은 단막과 쓴맛, 열기와 냉기 같은 질적 특성을 알기 위해 흔히 협동작용을 할 때가 많다.

훈련을 하는 동안 통일성 있는 문장과 문단을 구성하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하게 재료를 모을 뿐이다. 그것도 오직 자신의 외부에서 모으는 것이다.

정확한 어휘를 찾는 일로 고심하지 마라. 어떤 단어가 생각나든 관찰한 것을 적으면 된다. 문장을 쓰려 하지 말고 그저 세부적인 것을 수집하라. 지금 무엇을 관찰하는가? 될 수 있는 한 특별하고 세부적인 관찰을 시도하라. 또 지금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관찰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못생긴 게'라든가 '짜증스러운 소리'같은 말을 썼다면 '못샌긴'과 '짜증스러운'이라는 단어가 판단이 개입된 표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속에 그런 판단을 내리게 한 개와 소리의 특성을 찾아보라. 그 개가 긴 몸에 다리와 머리는 작고 침을 입 밖으로 흘리고 있는가? 소리는 끊임없이 날카로운 기계음향을 내고 있는가?

이 훈련을 적어도 20분 가량 했다면(원한다면 그 이상) 그만 멈추고 휴식한다. 

이 외부 모으기 훈련을 하면서 수집한 것은 모두 잠재적으로 언젠가 여러분이 한 편의 글을 쓸 때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르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모으기 참험을 하면서 수집한 세부 묘사가 언제쯤 한 편의 시나 소설, 수필에 꼭 필요한 재료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27-129



연습 : 기억 속의 관찰

기억 목록에서 하나를 고른다. 정신을 내부로 집중해서 장소나 사람,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 다음 앞선 훈련에서 한 것처럼 세부적인 감각을 모으기 위해 관찰력을 활용한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감각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세부적인 감각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을 때까지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과 노트 사이를 계속 왕래한다.  131


'블랑시는 추한 옷을 입었다.' .. 옷에 관해 말한 것이지 옷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블랑시는 오렌지색 바탕에 빨강과 노랑 점이 박힌 옷을 입고 있었다.' 또는 '블랑시는 오렌지색 바탕에 빨강과 노랑 점이 박힌 아주 추한 옷을 입고 있었다.'

세부 묘사를 활용해 독자의 마음에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몇몇 이미지나 시 한 줄)을 한두 개 만들어보라.  132


다양한 세부 묘사로 실험해보라. 시각적인 묘사뿐 아니라 촉각이나 청각, 후각의 묘사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133


한 편의 연설이나 글에서 소통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정보, 특수한 사례, 특후한 세부 묘사처럼 특수성이 필요하다. 

특수성을 얻기 위해서는 관찰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 특수성은 기억에서 나올 수도 잇고 상상력 또는 책읽기, 자신이 수집한 장소에서 나올 수도 있다.  134



연습 : 특수성의 시선

'그것은 아주 좋은 영화였다' 또는 '파티는 즐거웠다'하는 식으로 될 수 있으면 보편적인 서술을 많이 써본다. 적어도 열 개 정도는 써보라. 그리고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고 상상하면서 이것을 큰 소리로 읽어본다. 무엇이 눈에 띄는가? 상상 속의 청취자처럼 거의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것이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야?' 보편적인 진술은 흔히 공허한 진술이다. 글을 읽어보다도 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편적인 진술을 하나씩 골라서 무엇이든 적절해 보이는 세부 묘사를 동원해 특수한 진술로 다듬어보라. '그것은 아주 좋은 영화엿다. 두 번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세 차례의 살인사건이 들어갔다.'(이러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 보편적인 진술을 좀더 특수하게 다듬을 때 작가가 말하려는 것을 독자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보편적인 진술은 독자에게 의미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큰 소리로 먼저 보편적인 진술을 읽어보고 이어 특수한 진술을 읽어보라.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창조적인 글, 업무적인 글, 학술적인 글을 막론하고 어떤 종류의 글이라 하더라도 특수성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무심결에 하는 대화에서도, 특히 아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보편적인 진술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의미는 목소리의 음조나 몸짓으로 강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우리가 전달하는 것은 마르이 내용이 전부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논쟁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할 때에는 보편적인 진술만 할 수는 없다. 보편적인 말은 독자의 마음에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버릴 것이다. 예를 들든가 통계를 제시하든가 일화를 들러줌으로써 자신이 의미하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엇이든 특수한 것을 시도하라.  135-136



연습 : 세부적인 감각으로 피르라이팅하기

자신의 주변세계 또는 기억에서 세부적인 감각을 모은다. 아니면 이미 모아 놓은 것을 적은 노트를 훑어본다.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표시를 하고 현재 시점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추가한다. 이어 프리라이팅을 하면서-초점을 맞춘것이든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이든 원하는 대로- 이 세부 묘사를 가지고 창조적 기능을 발휘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기억이든 상상의 세계든 아니면 내면의 성찰이든 원하는 것이 어떤 방향이든 한 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이 세부 묘사를 스프링보드처럼 활용하라.  139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관찰훈련에 몰두한다면 그 길은 관찰이 가능한 곳으로 여러분을 잘 이끌어줄 것이며, 글쓰기와 일상생활 두 가지에서 모두 풍요로워지게 해줄 것이다.  140



관찰하는 법 : 기초훈련

 - 생활의 속도를 줄여라. 마음을 편하게 먹고 심호흡을 한다. 숨을 쉴 때마다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는 정신적인 잡담을 잊어버려라.

 - 이제 머릿속의 생각을 벗어나 관심을 외부세계로 돌린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주변세계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 한 번에 한 가지 감각을 사용하면서 관찰을 위해 선택한 것에 대하여 어던 세부 내용을 모을 수 있는지 확인한다.

 - 관찰을 할 때 판단을 내리지 말고 색깔이나 소리 같은 세부적인 감각을 주목한다.

 - 세부적인 감각에 어울리는 정확한 어휘를 고르려고 애쓰지 마라. 관찰 행위에만 정신을 집중하라. 어휘를 찾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라. 

 - 원한다면 이런 세부적인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노트에 모은다.  141


사람들은 상상력이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환상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니다. 상상력은 감각세계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주는 정신적인 기능이다.  143


많은 사람들은 상상력을 활용하고 단련하는 데 시간을 별로 들이지 않는다. 

외부 대상에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우리의 두뇌에는 감각적인 이미지가 새겨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는 일상의 여러 가지 활동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을 하면서 상상력을 단련하거나 발전시킬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145-146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자신의 명저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ation)>에서 1960년대 미국 정부의 행정 계획을 언급하면서 가축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벌레를 효과적으로 퇴치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그랜딘은 오늘날에는 이런 행정이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요즘 정부 당국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이 대개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육류를 포장하는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혼자 전체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리들은 자신의 감각으로 동물을 아는 것이 아니라 동물에 관한 추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랜딘은 말한다. 그랜딘은 한 술 더 떠서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에 빠져 '추상화'되었다는 진단까지 내린다. 여기서 그랜딘이 말하는 의미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실세계를 직접 알기보다 주변세계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에 매몰되었다는 말이다.  147


상상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대부분 교묘하게 짜인 가공된 이미지로 끊임없이 우리를 폭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광고판이나 잡지에 쏟아붓는 각종 광고와 빠르게 움직이는 텔레비전과 영화의 이미지를 보면 그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149


상상력을 단련시키려면 먼저 상상력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능하면 대중매체 이미지의 무차별적인 습격에서 여러분 자신을 보호하라고 권하고 싶다. 텔레지번을 보는 습관을 버려라. 영화감상도 제한해야 한다. 사교계 동정을 다루는 잡지도 구독을 아예 끊거나 줄여라. 인터넷 브라우저의 이미지도 차단하라. 

대중매체 이미지로부터 여러분의 정신을 해방시키면 자신의 상상력을 갈고닦을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151



연습 : 시각적인 상상력 활용하기

눈을 감는다. 머릿속에 백지 한 장을 떠올린다. 이제 검은 줄로 그 종이에 네모 칸을 그려보라. 정확하게 네모를 그리려고 애쓸 것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네모 안을 빨강으로 채운다. 잘되는가? 이제 색깔을 초록으로 바꿔보라. 이어 노랑으로 바꾼다. 

노랑을 유지한 상태로 네모를 원으로 바꾼다. 원의 색깔을 파랑으로 바꿔보라. 이어 어떤 형태든 색깔을 파랑과 노랑으로 채운다. 

다음에는 그 상태에서 다시 네모로 형태를 바꿔보라. 그런 다음 다시 네모 칸을 비우고 백지으 이미지를 지운다. 그리고 눈을 떠보라.

어떻게 되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상상력을 활용한 것이며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특정 색깔을 칠하는 것이 더 수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상관없다. 이 연습을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이 연습이 어려워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연습을 규칙적으로 자주 하다보면 여러분의 상상력은 어렵지 않게 되살아날 것이다.  154



연습 : 다른 감각 사용하기

우리가 이미지를 시각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사실 어떤 감각이든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훌륭한 요리사는 음식 성분의 맛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음악가는 소리를 상상하기도 한다. 여러분도 훈련을 거쳐 이런 특면의 상상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 소리

고요한 상태를 상상해본다. 이 상태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이 소리를 개가 짖는 소리로 바꿔본다. 다시 이 소리를 지우고 흐르는 물소리로 바꾼다. 물소리를 누군가 노래 부르는 소리로 바꿔보라. 그리고 다시 고요한 상태로 돌아온다. 눈을 떠보라. 이 연습은 어떤가?

- 촉감

이제 꽃잎을 만진다고 상상해보라. 손가락 끝으로 꽃잎을 느껴본다. 그 느낌을 주목하라. 이제 그 이미지를 지우고 두꺼운 털실로 만든 뭔가를 만지는 이미지로 바꾼다.그리고 그 늒미을 지우고 이번에는 얼음조각처럼 차가운 것을 만지는 이미지로 들어가보라. 얼음이 녹으면 녹은 물을 덥혀보라. 그리고 상상으로 그 물이 피부에 닿는 감각을 느껴본다. 이 느낌이 어떤지 주목해본다. 그 이미지를 지우고 나무로 만든 물건을 만진다고 상상해보라. 다시 이미지를 지우고 눈을 뜬다. 어떻게 되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냄새 

눈을 감는다. 비누 향기를 상상해본다. 이 이미지를 나무가 타는 냄새로 바꾸고 이어 다시 자동차 배기가스로 바꿔본다. 이제 여러분이 좋아하는 꽃 향기로 냄새를 바꾸고 다시 좋아하는 음식 냄새로 바꿔본다. 이 연습을 하면서 무엇을 주목했는가?

- 맛

스크램블드에그의 맛(구조를 포함해서)을 상상해보라. 아몬드나 초콜릿, 커피와 차, 무엇이든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식을 상상해보라. 어떠면 특정 감각에서 상상력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약한 감각을 강화할 수도 있다. 관찰하는 동안-또는 실생활에서-여러분의 감각이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사물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보는 연습을 하라. 좀더 가까이 보라.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상상 속에서 재창조할 수 있는 것을 주목하라. 마음속 아미지에 만족할 때까지 관찰과 상상을 계속 왕복한다. 다른 감각도 이렇게 연습할 수 있다.  155-156



연습 : 말 없이 상상하라

상상력으 활용하는 연습을 하면서 말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실 상상력을 훈련할 때에는 이미지에 관한 말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를 만드는데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연습을 하다보면 나중에 가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말로 바꾸는 데 시간을 들이고 싶을 수도 잇다. 하지만 지금은 상상력을 활요하고 강화하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라.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상상력을 활용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그저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된다. 그림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향에서도 찾아올 수 있다. 개읹거인 경험이라든가 곤찰에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잇고 책읽기에서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훈련 중임을 명심하라. 마음속에 원하지 않는 이미지가 그려지면 단순하게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이웃집 고양이처럼 간단한 이미지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감각으로 그 그림을 참험해보라. 그림에 관한 말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단지 상상력으로 점점 더 이미질르 자세하게 그리려고 해보라. 햇빛이 고양이의 털 하나하나를 비추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가? 털의 빛깔은 제각기 다른가? 고양이를 쓰다듬는다고 상상해보라. 느낌이 어떤가?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원한다면 간단한 그림으로 잠시 연습을 해본 다음 하나를 골라서 상상력으로 좀더 자세한 그림을 그려보든가 아니면 다른 대상으로 바꾸든가 아니면 배경그림으로 그려보라. 그리고 단 한 번에 상사으로 얼마나 자세하게 그릴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일단 정적인 이미지로 마음이 편안했다면 이제 마음속의 그림이 어떻게든 움직이는 상상을 해본다.(고양이가 개에게 쫓기는 상상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상상력 훈련을 많이 할수록 상상력은 더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할 때마다 언제라도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미지에 관한 말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을 때 상상력 훈련이 주는 이점이 또 있다. 이 훈련은 정신적인 안정과 긴장 해소 상태를 읶르어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157-158



연습 : 모으기와 그림 그리기

상상력의 활용으로 일단 마음이 안정되었다면 상상력이 제공하는 것을 노트에 적으면서 모으기 훈련을 추가할 수 있다. 자신이 관찰할 것 또는 기억에서 모은 재료를 되돌아보면서 상상력 훈련에 사용하고 싶은 것을 고른다. 지금은 간단한 것이 좋다. 경험 전체가 아니라 간단한 장소나 사람, 짦은 순간이면 된다. 

이제 상상력을 활용해서 자신을 그 장소나 사람, 순간에 투입한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상상 속에서 그 사람이나 장소, 순간을 재창조한다. 그리고 밖에서 외부 모으기를 할 때처럼 특수한 세부 내용의 중요성을 기억하면서 세부적인 감각을 가능한 한 만힝 적어본다. 그리고 상사에서 본 것과 기록한 것을 계속 왕복한다. 어희 사용에 집중하기보다는 좀더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홛대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라.

지금 여기서 모은 것은 관찰훈련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세부적인 감각이다. 하지만 주변 세계에서 모으는 대신 상상력으로 모은 것이다(기억력이나 관찰력과 협동으로)

이제 모은 것을 훑어보고 상상 속의 그림을 노트에 말로 표현하려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것들을 몇 개 골라본다. 필요한 언어를 찾아낼 수 없을것 같으면 정확한 말을 골르려고 애쓰기보다 마음속 그림을 좀더 명확하게 그릴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어떤가? 여러분이 연습한 과정을 주목해보라. 처음에는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어 가능한 많은 세붖거인 내용을 모은 다음, 그것들 중에서 자신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를 선택했다. 아마 이 훈련을 반복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움직이는 사람(동물이나 사물)을 그려본다. 세부적인 감각을 모은 다음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 그림을 말로 표현해본다.  158-159



연습 : 그림을 위한 독서

사람들은 학교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배웠고, 또 읽은 것을 분석하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러시아 출신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코넬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할 때 학자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기말고사를 치를 때면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기차의 좌석은 무슨 색깔이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했다. 나보코프가 원한 것은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상상력으로 작가의 글에 참여하는 것이엇다. 현역 작가로서 나보코프는 학생들이 단순한 분석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책을 읽을 때 제대로 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 이렇게 감성적인 방식으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여러분 스스로 이런 방식으로 문학을 이해하는 것이 쉽다는 점이다. 아마 여러분은 벌써 대부분 이렇게 책읽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훈련이 여기에 이삳. 독서를 할 때에는 책에서 나온 말이 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라. 그리고 그 글이 마음속에서 감각적인 그림을 그리는지 확인하라. 생생한 그림을 그리는 구절을 찾으면 어떻게 작가가 그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파악해본다. 작가는 어떤 종류의 세부적인 감각을 사용했는가? 어떤 순서로 사용했는가? 아마 여러분은 그 구절을 모방하는 글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원한다면 소설이나 시, 연극을 테이프나 CD로 들으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단련할 수 있다.)  161-162



상상하는 법 : 기초훈련 

1. 몸의 긴장을 푼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심호흡을 하라. 숨을 쉬면서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풀고 다른 생각을 떨쳐버린다. 

2. 작가의 능력을 발휘해서 노트에 적은 재료를 읽어본다. 상상하고 싶은 것을 목록으로 작성하라. 한 사람이나 한 장소, 한 가지 사물처럼 간단하게 시작하라. 훗날 전체적인 장면을 상상하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목록을 검토하면서 눈에 띄는 항목에 표시를 하라. 하나를 골라서 새로운 페이지의 맨 위에 써본다.

4. 이제 눈을 감고 선택한 주제를 상상하라. 필요한 감각을 모두 동원해서 그 주제가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한다. 가능하면 그 이미지를 자세하게 만들어본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 그림을 다듬거나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다른 재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5. 정적인 이미지로 시작하라. - 예를들어 한 사람의 모습이 어떤지와 같은 - 이어 원한다면 그 이미지에 동작을 입혀본다. 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6. 원한다면 자신에게 떠오른 상상르 자세하게 적어본다. 생각이 막히면 적당한 말을 찾아내려고 고심하지 마라. 대신 눈을 감고 그 그림을 다시 떠올리면 된다.  163



연습 : 만들어내기

1. 가고 싶은 장소를 상상해본다. 실제로 가본 곳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꾸며낸 장소여야 한다. 그곳의 감각적인 세부 내용을 상상하기 위해 협동가능을 활용한다. 상상한 것을 적어보라. 상상의 내용과 토느 사이를 계속 왕복하면서 마음에 드는 세부 내용을 골라 노트에 그 장소를 묘사한다. 이것은 상상력과 창조적 기능이 협동작용을 하는 하나의 예다. 저장된 이미지를 불러 모은 다음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들을 조합한다. 어쩌면 나뭇잎이 자줏빛으로 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상상력이 나무와 나뭇잎, 자주색에 익숙해 있지 않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개를 상상해보라. 뼈다귀를 먹는 개를 상상한다. 그리고 거리를 건너가는 상상을 한다. 거리의 모습은 어떤가?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이제 개가 달리는 상상을 한다. 개가 거리를 따라 내려가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가더니 차를 뛰어넘는다고 상상해보라. 이제는 버스도 뛰어넘는다. 집도 뛰어넘고 10층짜리 건물도 뛰어넘는다. 

이렇게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가? 대부분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아마 수월하게 협동하여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과 창조력이 결합한 힘은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발휘도리 수 있고, 자신이 원한다면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던 것을 노트로 옮길 수도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나 동물, 사물과 함께 이 연습을 다시 해보고 이어서 거기에 원하는 동작을 입혀보라. 마음속에 한 사람의 입술이 미소로 움직이는 동작을 볼 수 있는가? 강도 사건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차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3. 현실 속에 잇는 것이든 만들어낸 것이든 사람이나 장소, 사물 주에서 하나를 고른다. 상상력을 활용해서 그 대상을 그려보고 세부적인 내용을 모은다. 이어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을 그 사람(또는 장소나 사물)의 내부로 집어넣고 말하게 한다. 그 대상은 주변세계에서 무엇을 주목하는가? 그 대상은 무엇을 보고 들으며 무엇을 만지는가? 그 대상은 이밖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4. 대화 중인 두 사람을 상상한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는 상상을 하면서 청중의 이미지를 만드는 연습을 하라. 원한다면 그들의 말을 적어볼 수도 있다.

상상력과 창조력이 협동하는 이 훈련이 재미있다면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보라.  165-166


시인 A. E. 하우스만은 시를 위한 재료를 마음에 채운 뒤 나무 밑으로 가서 낮잠을 자곤 했다. 그리고 나무 밑에서 잠을 깬 뒤에 보면 마음속에 시가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존 업다이크는 글을 쓰던 서재를 자주 비운 채 정원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 그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이 집안일을 부탁하자. 업다이크는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 안 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소설가 루이스 브롬필드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중에 잠재의식을 단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앗따. 브롬필드는 "아침에 잠을 깨보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기법이나 구성, 등장인물의 문제가 잠을 자는 동안에 완벽하게 해결된 경우가 아주 많았다."라고 말햇다. 이런 작가들은 창조적 기능의 활동적 리듬과 수동적 리듬을 활용하는 법을 알았으며, 의식과 무의식 두 가지를 활용하는 법도 알았다고 볼 수 있다. 

잠재의식이 여러분에게 선물을 안겨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잠재의식으로 뭔가를 불어넣어야 한다. 잠재의식은 원활한 활동을 위해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유력한 방법의 하나는 작가 능력의 일부나 전부를 활용해서 재료를 모으는 일이다.  171-172


연습 : 관찰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기

밖으로 나가 관찰훈련을 한 다음 관찰한 것에 대해 여러분의 잠재의식이 숙고해볼 시간을 준다. 또는 기억훈련이나 상상룬련을 한 다음 잠시 쉬었다가 무엇이 떠오르는지 살펴보라. 잠재의식이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것을 적는다.



연습 : 수용 상태로 들어가기

주제를 하나 고른다. 주제에 대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초점을 맞춘 프리라이팅을 활용해 적어도 10분간 쓴다. (어느 것이든 여러분이 선택한 작가의 능력을 활용한다) 이렇게 하면 여러분의 잠재의식은 여러분이 이 주제에 대한 재료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음 자리에 눕거나 산책을 나가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정신이 수용 상태에 들도록 한다. 잠재 읫기이 뭔가 새로운 재료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그것을 적는다.



연습 : 꾸물대는 습관을 활용하라

여러분이 글쓰기에 대해 꾸물대는 성향이라면 이렇게 하라. 재료 모으기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고른 주제에 대해 프리라이팅을 조금 해본다. 그 주제를 고르게 한 자신의 경험에 관해 쓰고, 그 주제에 관해 의문 나는 것을 쓰고, 어떻게 그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써본다. 펜을 계속 놀리기만 한다면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 이렇게 '너절한' 글쓰기로 잠재의식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홍차를 만들거나 집 앞 공원에 다녀와도 좋다. 꾸물대면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것을 알고는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174



궁금한 일이 있을 때, 답을 알 수 없어 질문을 할 때, 여러분은 작가의 또 다른 능력인 호기심을 훈련하는 거나 마찬가디다. 

호기심은 욕구에서 나온다.  178



연습 : 호기심을 깨워라 

몇 분간 시간을 들여 여러분이 관심을 갖거나 호기심을 느끼는 모든 것을 목록으로 작성해본다. 계속 펜을 놀리다. 여러분은 무엇을 알고 싶은가? 또는 무엇을 더 알고 싶은가? 작성을 마치면 목록을 쭉 훑어보고 당장 눈에 띄는 항목들을 고른다. 이 가운데 어떤 항목이라도 쓰고 싶은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나는 것이나 관찰한 것에 호기심을 품으면 잠재적인 주제를 찾을 수 있고, 이미 쓰기 시작한 주제에 대해서도 더 많은 재료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관찰 참험' 주엥 거리예술가가 횃불로 곡예를 부리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장면을 보며넛 여러분의 호기심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저렇게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 '어떻게 저런 묘기를 부리지?' , '무엇 때문에 저런 위험한 곡예를 하고 싶어할까?' 

그러면 그것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아마 이런 의문이 여러분을 소설이나 시, 기사 거리로 이끌어줄지도 모른다.  180


자신의 호기심을 믿는 법을 배워라. 

사물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궁금증을 써보라.  181



연습 : 내부 모으기로 자신의 주제를 탐험하라

더 알고 싶은 주제가 생각날 때 첫 번째 할 일은 무엇일까? 아마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재료를 찾아 탐험을 싲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첫걸음의 방향을 바꿔, 그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밝히는 일이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연습하려면 자신의 관심 사항을 적은 목록에서 하나를 고른다. 그런 다음 적어도 10분간 이 주제에 대해 내부 모으기를 하라(초점화된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용). 예를 들면 그 주제에 대해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주제에 대해 어떤 경험이 있는가? 그 주제에 관한 생각이나 의견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문은 무엇인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등등.

기억이나 관찰력, 상상력을 활용해 자신이 수집한 재료에 대해 호기심을 발동하게 할 수 있다. 기억으로 이 훈련을 하려면, 기억을 활용해 초점화된 프리라이틴을 한 것 중 하나를 읽는다. 오직 자신이 쓴 것에 대해서만 호기심을 돌린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모두 적어보라. 자신이 관찰한 것 또는 상상력에서 나온 재료에 호기심을 돌리고 싶을 때에도 똑같이 한다.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 처음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한 뒤에는 이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의 주제는 어떻게든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때는 호기심을 활용하는 것이 발전을 위한 유력한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재료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다 보면 그 다음에느 ㄴ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 지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단 재료에 대한 의문이 생긴 다움에는 그 의문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답을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가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재료를 모으고 '왜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면, 이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나 회상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작가는 그 재료를 활용해서 소설의 인물을 창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인물 설정에 도움이 되는 대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외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182-183


연구 조사는 개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학술적 훈련 과정이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알고 싶은 것을 조사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85


연구조사는 외부 모으기의 다른 이름으로서 관찰력보다는 호기심에 이끌릴 때가 많다. 그리고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이 조사는 짜릿한 모험이 될 것이다.  186



연습 : 외부 모으기로 자신으 주제를 탐험하라

좀더 알고 싶은 주제를 골라서 의문 나는 것을 모은다. 이어서 의문 사항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어떻게 답을 구할지 생각해 본다. 여러분의 의문은 백과 사전이나 온라인 검색에서 해당 주제를 찾으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탐험이 필요한 좀더 폭넓은 의문인가? 가능한 탐사 자원을 생각해보라. 필요한 답을 어디서 찾고 싶은가? 아마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답을 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할머니에 관한 정보나 생각이 어머니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머니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의문 나는 것을 미리 적은 다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때는 미리 인터뷰 연습을 하고 싶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생활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정보를 공유하거나 전문적인 의견을 나누는 것이든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즐긴다. 대다수의 논픽션 책은 적어도 얼마간은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도 인터뷰를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떠 ㄴ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작품의 주인공을 수의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소설가는 수의사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인물 설정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어떤 수의사를 찾아가 그와 인터뷰를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그리샴은 재료 모으는 일은 질색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역시 변호사와 인터뷰를 해서 작품을 위한 재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187



연습 : 지식을 넓히기 위해 인터뷰를 활용하라

이 훈련을 하려면 파트너가 필요하다. 인터뷰에서 여러분은 질문자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답변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차례 연습을 하고 나면 역할을 바꿔서 한다. 답변하게 될 사람은 자신이 아는 몇몇 주제를 골라서 파트너에게 이 주제 목록을 보여준다. 답변자는 원하는 목록에서 어떤 주제를 배울지 결정하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싶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 다음, 잠시 인터뷰의 질문 내용을 적는다. 이 질문을 길잡이 삼아, 파트너에게 다시 인터뷰를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파트너의 대답을 적고 또 관심 분야에 관해 파트너가 말하는 것도 적는다.

인터뷰는 단순히 정중한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호기심을 활용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능숙하게 진행하는 살마은 분명한 '예' '아니오'라는 대답을 포함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답변자가 자세히 대답하도록 유도하려고 애쓴다. 또 인터뷰 진행자는 가능한 한 많은 재료를 모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터뷰 진행자라면 답변자의 대답을 들으면서 계속 호기심이 발동할 것이다. 답변자가 새롭게 의문을 주는 말을 할 때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물로 ㄴ상대가 명확하게 밝히길 꺼리는 화제로 답변자를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계속 관심을 유지하면서 인터뷰 도중이나 다른 시간에 더 많은 질문을 해서 관심을 보여주면 된다.

이 훈련을 더 하고 싶다면 여러분이 모은 재료를 쭉 읽어보고 새로 의문이 드는 것을 적는다.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더 많은 질문을 하고 더 많은 대답을 구하라. 이 훈련이 마음에 든다면 또 다른 인터뷰 상대를 찾고 싶을 것이다.  188-189


학습여행의 첫 단계는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하지?' 또는 '자료가 너무 많아!'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면(결국 이것이 진정한 학습의 전부다) 처음의 혼란을 견디고 학습여행을 계속할 것을 권한다. 

학습여행 중에는 도보여행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에 한 발짝씩만 뗄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자신만의 독립된 학습여행을 한다면 여러분은 다음에 무엇을 배울 필요가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학습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처음에 여러분은 선택 방향이 너무도 다양한 탓에 움츠러들 수도 있다. 이때 글쓰기가 여러 갈래 중에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자신만의 길을 밟도록 해줄 것이다.  192-193


지금은 노트를 컴퓨터 파일로 보관한다. 따라서 노트에 스크랩할 때마다 타자를 치는 시간을 들인다.

인용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구절을 한 자 한 자 그대로 따올 때는 옮겨온 구절에 인용 부호를 찍어야 한다. 자신의 글에 해당 정보를 집어 넣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그 구절이 들어간 해당 저서나 기사의 페이지를 밝혀야 한다.  194



연습 : 글쓰기로 배우기

글쓰기는 학습에 훨씬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해보라. 자신으 주제에 대해 일정한 정보를 모았다면 방금 배운 것을 프리라이팅 한다. 프리라이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이미 주목한 정보는 어떤 것이든 반복하고 요약하면서 학습한 모든 것을 적는다. 그런 다음 배운 것을 음미한다. 방금 배운것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적어라.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학습한 다른 재료와 더불어 이 정보는 자신으 주제에 꼭 들어맞는가? 학습한 다른 재료와 더불어 이 정보는 자신의 주제에 꼭 들어맞는가? 여러분이 품은 새로운 의문은 무엇인가? 이런 식의 성찰은 그 원자료에서 진정 무엇을 얻엇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단순하게 인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재료를 하나로 묶는 데도 도움을 준다. 또 단순하게 인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재료를 하나로 묶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어디로 향할 필요가 있는지, 자신은 어느 방향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95



연습 : 잠재의식으로 불러 모으기

일단 일정한 외부 모으기를 하고 이에 대해 (원할 경우) 일정한 성찰을 했다면 이 재료에 대해 작업을 하도록 잠재의식에 시간을 부여하라. 사실 여러분은 자신이 수집한 것에 대한 탐사를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쉬면서 잠재의식이 수집한 것에 대해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주제에 대해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한다. 아마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알고 깜짝 놀랄 것이다.  196



연습 : 상상력으로 불러 모으기

여러분은 또 이 학습과정에 상상력을 불러들이고 싶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학습 도구로서의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이 어쩌면 낯선 느낌을 줄 것이다. 상상력은 지적 능력을 선호하는 교육 풍토에서 추방되어 왔다. 지적 능력은 인간의 유용한 일종의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제에 관해 일정한 조사를 마친 뒤에는 자신이 학습한 것에 대해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하라. 예를 들어 남극 대륙에 관해 읽은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여러분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남극이 어떤 곳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또 섀클턴이나 아문센처럼 초기의 남극 탐험가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아니면 과학 탐사를 위해 펭귄에게 표식을 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그 느낌을 적을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위를 느끼게 해줄 묘사를 해보라. 아니면 탐험가에 관한 이야기를 쓰든가 펭귄의 표식을 바착하는 느낌이 어떤지 써보라.

이런 식으로 상상력과 호기심을 결합하면 자신의 주제를 학습하는 데 학술적인 접근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다채로운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197



연습 : 자신이 배운 것을 공유하라

자신만의 주제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다른 사람들-친구나 친구의 자녀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뭔가를 설명해야 할 때는 자기 혼자 힘으로 그것을 명확하게 들려줘야 한다.(아인슈타인은 '당신이 아는 것을 다섯 살배기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아마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칠 기회도 생길 것이다. 한 가지 주제를 배울 때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배우는 것이 모험적일 때는 배우는 내용에 흥이 나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자신으 배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진다. 이런 기회를 모색하라. 어쩌면 초등학교나 교회, 노숙자 합숙소에서 자신으 주제에 대해 자발적으로 말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또한 글쓰기를 활용해 자신이 모은 자료뿐 아니라 자신의 학습과정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다. 여러분의 학습여행은 얼마나 진행되었는가? 다음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읽고 싶은 책이나 탐험하고 싶은 주제의 특정 부분에 대해 간단한 목록을 만들고 싶은가? 이렇게 성찰할 시간을 가질 때 진정으로 자신만의 배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학습 계획을 짤 수 있고 원할 때는 이 과정을 아무 때나 바꿀 수 있다.  198



연구조사를 위한 조언

- 연구조사는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출발할 때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생각이다. 자신의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밝혀내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하려면 내부 모으기를 활용하라.

- 여행 계획을 미리 자세하게 짜는 사람이라면 이 조사여행을 위해서도 같은 계획을 짜고 싶을 것이다. 이 여행이 아니라 자신만의 여해을 떠나고 싶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길을 찾아도 좋다.

- 이 여행에서 어디로 향할 것인지, 도움이 되는 책이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이미 조사한 자료를 다시 찾는 시간 낭비를 막아준다.

- 이 탐사여행이 일정한 장소를 방문하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기록된 원자료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때 그 정보가 믿을 만한 것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저자의 자격증이나 전문적인 식견을 확인하라. 그 책에서 저자가 이용한 자료의 출초를 확인하라. 연구조사를 많이 할수록 해당 저자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 더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 

- 자료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동네 도서관의 유능한 사서와 친해지는 것이다.  199


학습여행은 본질상 언제나 능동적인 학습이다.

능동적인 학습자가 되면 자신의 글쓰기에 변화를 줄 수 있고 개인적인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다.  201


열정적인 학습에 참여할 때는 - 사랑할 때의 정열과 마찬가지로 - 자신이 진정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진한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자신과 타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을 스스로를 느낌으로써 흥분을 맛볼 수 있다. 사랑의 감정은 지속적이지 않다. 반면 작가로서의 여러분은 평생 열정적인 학습자가 될 수 있다.  202


홈스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으 임무에 도움이 될 만한 분야를 스스로 공부했다. 화학실험을 하는 가 하면 발자국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파이프와 시가, 파이프용 담배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 그결과 홈스는 사건 현장에 남겨진 재의 의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홈스는 사람과 사물에 관한 정보를 냉혹할 정도로 수집했으며 그의 거실에는 개인의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자료의 보고(寶庫 보배 보. 창고 고)가 있었다.  204



연습 : 셜록 홈스가 되라-자신의 모든 능력을 활용하라

일정한 장소에서 관찰하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한다.(관찰 내용을 노트에 적는다) 이어 노트를 보며 생각하라. 여러분의 관찰은 관찰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예를 들어 거리를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햇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몹시 급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관찰했든 이에 대해 말해줄 정보를 기억이나 전문 지식에서 찾아보라. 또 계속 호기심을 발동하게 한다. 관찰한 것에 대해 마음에 어떤 의문들이 드는가?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할 것인가?(아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앗다면 아직도 금연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질 수도 있다.) 또 관찰한 것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여러분의 상상력은 수집한 세부 재료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일단 이런 식으로 여러 기능을 결합해 본 뒤에 잠시 잠재의식이 활동하게 하라. 편한 마음으로 쉬면서 여러분이 제공한 모든 재료를 수용할 기회를 잠재의식에 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 노트로 눈을 돌려 뭔가를 적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라. 글쓰기는 어떤 방향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탐험하고 싶은 특별한 방향에 관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계속 그 방향의 글쓰기를 한다. 여기서의 목표는 완성된 글쓰기 재료를 찾는 것이 아니라-이런 생각이 들어도-여러분이 지닌 여러 개의 작가 능력을 결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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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마을. 여행이라는 말은 어딘가로 이동하며 산다는 의미이다. 반면 마을은 한곳에 정착해서 산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영어의 Leave(떠나다) 와 Live(살다)가 같은 소리로 들리곤 했다. 그건 마치 '떠나야 산다!'는 말처럼 들렸다.  14


안도현의 <몽유도원도>

두꺼비가 바위틈에 숨어 혼자 책읽는 소리

복사꽃들이 가지에 입술 대고 젖을 빠는 소리

버드나무 잎사귀는 물을 밟을까 잠방잠방 떠가고

골짜기는 물에 연둣빛 묻을까봐 허리를 좁히네

눈썹 언저리가 돌처럼 무거운 사람들아

이 세상 밖에서 아프다, 아프다 하지 마라

신은 높아지려 하지 않아도 위로 솟아오르고

물은 깊어지려 하지 않아도 아래로 흘러내리네.  18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마법을 갖고 있다. 여행하는 이라면 누구나 낯선 이에게도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이다.  21


구상의 <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고은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26-27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그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30


마음의 꽃술까지 와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언어가 같아도, 서로 들으려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기 마련이다. 서로가 가진 생각의 잣대, 문법의 틀 때문이리라. 그것만 잊어버리면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서 듣게 된다.  38


지구촌 어디를 가나 지명의 유례를 알면, 여러 겹으로 덧발라진 현재의 풍경 밑바탕에 있는 맨 얼굴을 어렴풋이 더듬어 볼 수 있다. 


빠이. 이고의 이름의 유래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에서도 세 가지가 사람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고 있다. 하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이 지방에 번성했던 '야생 수컷 코끼리'를 뜻하는 '창 쁠라이(Chang Plai)'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점점 사투리와 섞이고 사람드르이 입을 거치면서 '빠이'로 굳어졌다. 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 정착해 이 지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샨 족이 이곳을 '빠이'라 이름 붙엿다. 샨 족은 버마의 동부 고원 지대인 샨주 지역과 타이를 북부 산간 일대를 거주지로 삼고 있는 버마 족과 더불어 버마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셋, 샨 족이 이 지역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을 '빠이'라 불렀다. 이 말의 뜻은 '똑바로 앞만 보며 곧장 가지 않는 곳.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여기저기로 가는 곳'이다. 마을 이름이 강 이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물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그럴 듯하다.  50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전부 모아서 무게를 달면 얼마나 될까?

가끔 배낭을 꾸리며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우리 중에서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에 켕기지 않을 이가 있을까? 집안의 살림살이를 둘러보면 그동안 온통 더하기와 곱하기만 한 듯해 부끄러워진다 아둔한 인생, 때론 빼기와 나누기가 행복에 다다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 수도 있는데...  102


그 일을 그만두면 알게 되지. 아, 그 일이 내게 도움이 되었구나.  146


'어떻게 할까'가 아니야, '무엇을 할까'지.

나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여행 에세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소중하니까. 한때 세인들의 입에 즐겨 오르내리던 카피다. 카피라이터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 나는 세상 모든 광고가, 아니 세상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사랑하는 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가 지금처럼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사랑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우리는 온통 '자기애(自己愛)'에 빠져 있다. 일찍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외쳤던 어느 사상가의 선언처럼 이념과 철학 같은 거대담론이 소멸된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나(我)'에게로 향하고 잇고, 그 속도 또한 나날이 빨라지고 잇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오늘날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메가 히트 상품들 역시 결국 '개인주의'를 완벽하게 이루어 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기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와 디지털 시대의 궁합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 보인다.  150


이상한 노릇이다. 모두들 '나'를 중시하고, '나의 행복'을 부르짖건만 정작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으니 말이다.  151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는 한 독일 여행자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난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세상이 아름답다고, 그런데 세상이 아름답게 다가올수록 사는게 겁이 난다는 그의 고백이 머리를 스친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짐이 되지는 않는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덟히는 게 바로 나라는 존재가 아닐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 가슴을 청렁이게 한 그의 말은 따로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일상이라는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고 고백한 그의 마지막 말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지,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해 다시 만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서운지. 가족, 친구, 동료... 지금까지 잘 아는 사람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두려운 거야. 오로지 자기만 아는 사람들, 자기가 최고라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 인새으이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데 정작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그들이 무섭게 다가오는 거지. 난 여행을 할 때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외로움'이 보여. 그래서 너무 힘들어.'  152-153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볼수 있었다.  153


'난 이제 삶이 두렵지 않아. 지난 10년간 많은 걸 배웠거든. 광고 일을 계속 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몰랐을 거야. 알았더라도 그저 머리로만 알고 가슴 깊이 느끼진 못했을 거야.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러면서 난 인생을 배워나갔어. 언제든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게 내 재산 목록 1호야.'

'왜, 라는 질문만 하니까 그러는 거야. 질문만 하지 말고 뭐든지 시도하면 되는데. 인생은 '어떻게 할까?' 가 아니라 '무엇을 할까?'에 달려 있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 돼. 광고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콘셉트를 잡는 것도 어렵고 완성된 광고를 만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결리지. 그런데 돌아보면 그 콘셉트가 광고의 전부나 다름없어. How가 아니라 What이 크리에이티브의 모든 것이지.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156


'터닝 포인트라. 걷다가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 그곳이 터닝 포인트가 아닐까. 그런 곳이 나타나면 멈춰야 해. 그리고 생각해봐. 무엇이 너를 멈추게 했는지. 물론 그곳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동시에 있을 거야.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더 많은 곳에 머무르면 돼. 그게 네 삶을 행복하게 만들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면 돼. 걷다 보면 네 삶에 영감을 주는 멈춤이 있을 거야.'  157


'우리가 처음 빠이에 올 때 스스로에게 다짐한 게 있어. 빠이에서 너무 많은 비즈니스를 벌이지 말자. 너무 많은 일들을 하다 보면 삶이 피곤해진다. 인생이 심각해진다!'  183



빠이의 예술가들은 서로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하지 않고 어울려 사는 법을 알고 있다.  195


천지를 창조했다는 신(神)도 하루쯤 쉬었는데, 사람이 뭐 그리 위대한 일을 한다고!  232


'사실 진정한 개발이란 개발하지 않는 건데.'  239


'삶의 가장 큰 적이 뭔줄 알아? 두려움이야. 모두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알면서도 자신감이 없어.'  244


'지구의 시민'


상처는 아물고 나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그러나 흉터는 들끓는 운명에 데인 흔적처럼 오래도록 남는다.  258


행복이라는 녀석과 만나려면 우선 머릿속에서 요란스레 굴러다니는 많은 생각들을 정지시켜야 한다. 우리는 항상 그 생각들 때문에 제풀에 먼저 지쳐서 넘어진다. 마법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 생각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318


'미치지 않으면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不狂不及)'  349


여행은, 계속된다.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던 걸까?

내가 정말 그들을 만났던 걸까?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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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라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세상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점령한 채 방향 없이 걸었다.

나이든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공허한 조언들을 허공에 대고 읊었다.

도시에는 간혹 우울함이 몰려왔다.

마치 표지판들이 모둥 증발해버린 고속도로처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만큼 왔는지 전혀 모르는 채

모두들 그저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옥죄는 고통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유토피아의 정반대에 위치한 세상 같았다.

주말에 티브이를 시청할 때만 제외하곤 모두들 웃지 않았다.




욕망(欲望) -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그녀가 말했었다. "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어."

잠자코 있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원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았지만 그동안 내가 욕망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그 욕망은 나의 역량을 어느 정도 넘어선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기대치를 줄이고 실력을 늘리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기대는 쉽사리 접을 수 없고, 실력은 늘리기가 더더욱 힘들다.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그런 나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위로를 던져줄 것 같았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드링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환상은 대개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욕망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에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의지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밖에 없었다. 



일탈(逸脫) -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사회적인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일탈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일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목표를 향해가는 길을 잃고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일탈의 감행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기애가 결핍된 돌출행동은 단지 현재의 부정일 뿐이다. 일탈은 나름대로 미래지향적 자의식 발현이다.  



사고도 기왕이면 제대로 쳐야 한다.



짧은 여행이 해결해주는 건 많지 않다. 추억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일상의 힘이 너무 강하기에 곧 묻혀버린다. 여행 중의 단상들은 마치 지난밤 꾸었던 두 번째 꿈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흩뿌려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았던 일탈이 좋았던 것은 여전히 나를 떨리게 만드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점이다.



위안(慰安) -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벌어지는 사건의 종유만 다를 뿐 나를 비롯한 또래들의 삶은 비슷한 편이었다. 

기쁜 순간이 잠시 있고, 슬픔 순간은 가끔 있고, 우울한 순간은 자주 있고, 힘든 순간은.. 순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다른 단어가 필요할 것 같은, 가령 '날'이나 '시기'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위로라는 게 그리 필요가 없었는데 위로를 받는다고 상황이 괜찮아질 리가 전혀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였고, 사실 위로를 한답시고 말을 꺼내는 사람이 실은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던 경우가 많았던 게 또 다른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애석하게도 인생의 진부한 교훈들은 대개 맞아떨어졌다.



나는 '도시'라는 단어가 좋았다...

내게 모든 도시는 마치 여자 같았다. 귀여운 여자, 얼굴만 예쁜 여자,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 존경스러운 여자, 세심한 여자, 섹시한 여자, 터프한 여자, 여자를 좋아할 것 같은 여자, 남자 하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 등등.

그렇기 때문에 도시로의 여행은 종종 짝사랑이 되기 일쑤였다. 머리가 큰 이방인 남자를 단번에 좋아할 수 있는 여자는 세상에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마음을 뺏기 위해선 난 보다 오랫동안 그녀 주위에 머물러야 했다. 이십 대의 나였다면 분명 그녀들을 소유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의 나이가 되자 세상과 공존하는 법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음흉한 눈길의 아저씨처럼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신사동 거리의 아름다운 여인들도, 유라시아 대륙의 아름다운 도시들도 굳디 내가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같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보통 여자들은 어른스럽다. 내가 조금 보채고 어리광을 피어도 묵묵히 바라볼 줄 알았다. 도시들 역시 내 치기 어린 행동들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그리고선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너 같은 녀석들을 예전부터 많이 봐왔지."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상을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적잖이 쓰라렸고, 오히려 난 과거에 비해 작은 상처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실 이를 극복할 교훈들은 충분히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교훈들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과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많은 이들을 그들의 남루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줄곧 새로운 교훈들을 찾았다. 물론 잠시 감동하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교훈을 머리에만 새긴 채 재워지지 않는 마음과 함께 나는 잠시 내가 좋아하는 도시들로 여행을 떠났다. 잊지 못할 스승처럼, 영원히 기억에 남는 은인처럼, 내겐 고마운 도시들이 존재했다. 도시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뛰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도시적 이야기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지난 일년 사이에 찾아갔던 라스베이거스와 찬디가르는 십여 년 이상을 줄곧 그리면서 좋아해왔던 곳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새로인 알게 된 도시였다.

그곳들로 찾아가 도시가 나긋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나는 복잡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 나 같은 녀석은 이미 세상에 많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도시들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었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상처들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사랑하게 된 사람의 오랜 습관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나름대로의 모습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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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아침이 서서히 깨어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꽃들이 노래하는 계절의 아름다움도 자칫 놓치고, 속도의 원리에만 몸을 맡기며 주마간산(走馬看山)의 경험에 만족하고 마는 현실이 되었어요. 보다 정밀해진 액정화면에 고정시킨 시선으로 세상의 정보를 모두 알았다고 착각하는 기술사회의 우화가 우리의 머리를 녹슬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9



<미운 오리 새끼> - 미운 오리 새끼의 자존감 회복을 위하여


"아, 이런 저기 가장 큰 알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구나. 도대체 얼마나 걸려야 되는 거지? 다시 알을 품는 건 너무 지쳐."

마침 그곳에 들른 어느 읅은 오리가 "잘 되가나?"하고 물었습니다.

"한 녀석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도대체가 알에서 깨어 나오질 않네요...."

오리보다 큰 존재는 오리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야 알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세상에 대한 풍자죠.  20


"이거 아무래도 칠면조 알 같지 않아? 나도 예전에 한번 속은적 있지. 알에서 깨어 나온 뒤, 물속에 들어가질 못하더라고. 이거, 이거 칠면조 알 확실히 맞아. 이 알은 그냥 내버려 두고 다른 오리 새끼들 헤엄이나 가르치는 게 낫지. 쯧쯧."

출생 이전부터 미운 오리 새끼는 세상의 편견과 몰이해의 시선에 놓여 있는 겁니다. 살기도 더 오래 살고 경험도 많은 늙은 오리가 아직 깨지 않은 알을 칠면조 알이라고 단정한 것은 잘못이지만 오리 알이 아니라고 본 것은 결국 맞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이 늙은 오리가 알고 있는 큰 알은 칠면조 알 외에는 없군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경험만이 답입니다. 오리들의 세계에서 제 아무리 노련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넘지 못하고 있는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1-22


"야, 이게 뭐야? 형편없이 못생긴 녀석이잖아. 이거 참을 수가 없군."

"그만 둬! 이 애를 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어? 남들에게 어떤 짓도 하지 않았잖아?"

"무슨 소리야? 이 녀석은 오리치고는 너무 크잖아? 게다가 괴상하게 생겼고 말이야. 그러니까 혼 좀 나봐야 해."

"다른 오리 새끼들은 참 예쁘더군, 그런데 저 녀석은 영 틀렸어. 아예 다시 좀 제대로 만들어 낳아 보지 그래."

마침내 미운 오리 새끼에 대한 집단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이 시작된 것이지요. 생긴 모습이 다르다는 거시 하나로 내몰릴 지경이 된 것인데, 오리 공동체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늙은 오리마저도 미운 오리 새끼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오리 세계에서 오리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된 데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핍박의 대상이 된 거예요.  26


"다른 오리 새끼들이 더 예뻐. 그냥 집에나 잘 가시게. 그리고 가다가 혹시 뱀장어 머리라도 보거든 내게로 가져와."

이 늙은 오리가 권위를 독점하고 있는 오리 세계는 앍은 생각에 사로잡힌 노욕에 빠진 자들이 지배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거죠. 낡고 욕심 많은 자들이 기존질서를 움켜쥐고 있는 겁니다. 이런 곳이 스스로 변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27


애초에 백조로 태어난 것을 몰랐고, 세상 또한 알아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시골 농장에서만 지냈다면 미운 오리 새끼는 계속 그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농장을 감연힌 탈출햇씁니다.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통과하면서 미운 오리 새끼는 어느새 훌륭한 백조로 성장해 있었던 겁니다. 

안데르센은 우리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내면의 백조를 떠올리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뭐라던 자신이 백조임을 발견하라고 응원합니다.  49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는 몇 가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오리와 백조에게 신분차이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와 다르게 생긴 오리를 못살게 구는 오리드의 고정관념이 가한 폭력과 배타의식을 분명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백조의 특권적 위상을 설정해놓은 거예요.

이는 백조로 태어나지 못한 존재에게 본질적 절망과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백조의 세계에서 환영받는 것 외에는 행복한 길이 없다는 식의 결론은 승자 위주의 논리이자, 자칫 오리들에게는 제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한 패배가 있을 뿐이라는 판결을 내리는 셈이됩니다.  

둘째, 엄마 오리에 대해서. 미운 오리 새끼를 알에서 깨어나게 해주고 세상에 대한 첫 가르침을 주었으며, 나중에야 결국 손을 놓아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남들의 비난과 공격 앞에서 자신을 강력하게 엄호해준 엄마 오리 아니었나요?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어야 할 존재는 이 엄마 오리가 아니었을까요?

셋째, 자신이 백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저 행복합니다. 그간의 고생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가 백조가 되었다 해도 뱀장어 머리를 놓고 싸움 박질하는 닭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고루한 사고방식에 매여 자기와 조금 다르다 싶으면 배타적으로 대하는 집단들이 아직도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으며, 사냥꾼의 총과 사냥개는 늘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다른 누구에게도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열망되면 좋았을 텐데, 자기가 백조인 것을 확인한 것으로 이런 문제들은 모두 다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넷째, 성장과정에는 의식의 발전이 어느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관심 갖는 것은 오직 하나, 자기가 못생긴 오리라는 낙인에서 벗어나는 일뿐입니다. 도망나올때 그는 깊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상태였습니다.

이 피해의식은 나중에도 지속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가운데 극복되기보다는 사실상 더욱 예민해 지고 말앗습니다.  50-54



<솔로몬의 지혜> - 솔로몬의 지혜가 생명의 정치로이어지기 위해


솔로몬은 "이 아이는 저 여자의 아이다."라고 하지 않았스니다. 누구의 아아인가가 초점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속하는 소유권인가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 여자의 아이다."라는 말 속에는 여자가 중심이 되고 아이는 그 소유물이 되는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했던 걸 떠올리면 솔로몬은 이러한 논리를 깨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대신 솔로몬은 "저 여자가 그 아이의 어머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과연 누구인가각 초점입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엄마에 대한 아이의 소유권을 확정짓는 어법이 아니지요. '그 아이의 어머니'라는 말은, 그 아이에게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의미입니다.

여자들은 애초에 아이에 대한 소유권의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솔로몬은 생명의 문제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겁니다. 이는 소유와 생명이 댈힙하는 상황에서, 생명을 선택하는 이에게 소유가 저절로 따라붙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사건의 진상을 놓고 추리로 현장을 재구성해서 진상을 밝힘으로써 최종 판결을 내릴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설사 아이가 친엄마가 아닌 여인에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생명의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여인이 엄마가 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당연히 낫다는 것은 달리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솔로몬이 그의 법정에 등장시킨 칼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려내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칼은 사용하기에 따라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칼의 주인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 이 사건의 결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솔로몬 체제의 전격적인 변화가 이 사건을 통해 예고된 것이었고, 이제 사람들은 창녀처럼 신분이 미천한 존재의 문제조차도 생명의 원리에 의해 해결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재판은 신분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최고 권력자에게 하소연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해결의 기준도 '생명'임을 말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지금까지 칼로 피를 흘리며 권력을 잡앗던 솔로몬의 과거와 결별하는 이정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솔로몬 체제가 무엇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고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인 겁니다.  107-109


거울은 단지 유리로 만든 거울만 있지 않습니다. 진짜 거울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있답니다. 자기만이 볼 수 있는 거울이죠. 그래서 그건 깨지지 않는 거울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바로 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생명의 가치를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지혜 말이지요.  117



<인어공주> - 인어공주여, 공기의 딸로 태어나라


인어공주가 두 다리를 억기 위해 마녀를 찾아갔다고 할 때 이 '다리'는 남자의 다리와는 달리 여성의 '바기나(vagina, 질)'에 대한 대체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를 여성이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고 불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여자로서 언급하기 부끄러운 단어이고 음탕한 것으로 오인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인어공주>의 작가 안데르센은 그 단어를 마녀가 먼저 꺼내도록 합니다. 인어공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않도록 해준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두 다리가 합쳐 만들어지는 중심에 존재하는 '바기나'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자칫 '마녀'로 지탄받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뛰어드는 것이며 물뱀으로 상징되는 악과 두꺼비로 상징되는 저주를 온몸으로 받아 살아야 하는 고통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건 지옥인 거지요.

실제 역사에서 무수한 여성들이 그런 마녀사냥의 지옥 같은 화염에 희생당했습니다. 뛰어난 미모의 여성들은 그 미 자체가 악마의 유혹이라고 지목받아 불태우지기도 했어요. 남자들이 집중하는 욕망의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잔혹한 일이었지요.  158-159


인어공주의 내면을 더듬어 내려가보면 당대의 종교관, 성에 대한 인식, 여성의 주체성 등 여러 가지 주제와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성적 생명력에 충실한 여성이 되려면 마치 마녀의 문을 통과하는 것 같은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는 용기가 요구되었던 것이지요.  160


이웃나라 공주에게...

'아, 당신이군요! 내가 해안가에서 죽은 시체처럼 누워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이!'

바닷가에 왕자가 쓰러져 있었을 때 한 무리의 소녀들이 나왔던 장소를 '교회인지 수도원인지 확실하지 않은 건물'이라고 표현했던 까닭을 이제 여기서 알게 됩니다. 교회인지 수도원인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고 성전까지 추가해서 작가는 인어공주의 사랑을 빼앗아가는 여인과 그 여인을 길러낸 질서를 언급햇던 것이죠. 그것이 <인어공주> 이야기에 교회나 성전, 수도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에로스적 생명력에 대한 교회 또는 종교의 억압 또는 엄격한 기준으로 말미암아 그걸 내놓고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잃은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공감과 동정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지요.  171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날 밤을 생각했습니다. 지상의 인간 세계에 와 살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하나씩 둘 씩 마음을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성숙한 여인으로서 사랑하는 남자와 하나가 되어 기쁨을 느끼려 했던 그녀는 자신의 사랑에 목숨까지 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시도는 당대의 종교와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사랑과 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목소리는 여자로서 내면 안 되는 것이었어요. 그건 침묵해야 할 것이었지요. 아니 침묵 당했습니다. 더군다가 나살ㅇ하는 상대는 눈동자로 말하는 진실의 목소리는 들을 줄 몰랐습니다. 이런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인어공주의 사랑은 좌절당합니다. 

왕자는 결국 이웃나라의 권력과 동맹을 맺었고 동일한 계급과 결혼했으며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랑의 진실보다는 잘못된 자기 기준을 고집하고 말았습니다.  174


이야기는 결혼에 대한 당시 기득권 질서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하고 있기도 합니다. 말로는 사랑한다면서 정작 결혼은 다른 기준을 세워 선택해버리는 현실에 대한 분노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175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여겼을 때, 그래서 울며 슬퍼하는 일에 몰두해버릴 때 우리가 바라는 변화의 시간은 더 연장된답니다. 그런 때일지라도 미소로 기쁨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기울이면 '그날'은 속히 온다는군요. 300년에서 1년씩 빠지면서 말이지요.

진정한 사랑, 지고한 사랑,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결코 물거품이 되지 않습니다. 소리 없는 소리를 알아듣는 우리의 귀가 열리는 날, 사랑의 눈빛을 알아보는 우리 눈이 뜨이는 날, 대지에 차오른 공기 방울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환히 보게 될 것입니다. 늘 행복한 기운과 선한 미소로 마음을 채워 가노라면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된다고...  187



<토끼전> - 간을 놓고 다녀야 하는 토끼들을 위하여


여기서 동해 용왕은 누굴 빗대고 있는 걸까요? 동쪽 나라는 조선이라는 걸 알기 어렵지 않고, 그에 더해 왕이 불치의 병석에 있는 것은 조선이 깊은 병에 걸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토끼전>은 용을 상징으로 삼는 당대 최고 권력자를 처음부터 조롱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다른 나라드에 비해 혼자 뒤쳐져 있는 것입니다.  193-194


'나 같은 미력한 자를 좋은 곳에 천거하니 감격이 이루 말할 데가 없으나 수궁에 들어가서 벼슬이 그리 쉽겠소이까?'

토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산간의 힘없는 민초가 아니라,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 출세하지 못한 초라한 서생(書生)입니다.   208-209


''요놈 인제야 속았구나,' 하고 흔쾌히 대답하기를... 밝은 임금이 신하를 가리고 어진 신하가 임금을 가리나니 우리 대왕께서는 마음이 성실하시고 문무를 겸비하셨는데 한 가지 능력과 한 가지 재주가 있는 선비라도 벼슬직책을 맡기시고 닭처럼 울고 개처럼 도적질 하는 자라도 버리지 않으시니 나처럼 재주 없는 인물도 벼슬이 주부 일품 자링 외람되게 있거늘, 하물며 그대같이 고명한 자격이야 들어가면 수군절도사는 떼놓은 당상(堂上)이지 어디 가겠나? 토끼 가문에 중시조 되기는 염려가 조금도 없을 터라.'  209


토끼는 용궁의 안락과 권세에 취해 제 간을 내주는 줄도 모르고 사는 자드로가 구별되는 존재입니다. 의식의 각성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는 이 모든 욕망과 허세와 권력에 줄을 대고 있는 대열에서 과감히 이탈해 버립니다. 그렇게 되자 용궁은 자기 간이라도 내놓을 자를 모아들이는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토끼처럼 이탈하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래서 용궁의 실패가 쌓이면 쌓일수록 세상은 좋아집니다. 병든 권력이 스스로 그렇게 병들다가 무너지면 민초들의 삶은 희망을 얻게 될 테니까요. 토끼전은 그런 사대부 지식인들의 용궁 이탈을 촉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토끼를 살린 것에는 바로 그 탈출의 길을 여는 시나리오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215


용궁으로부터 토끼가 생환(生還)해온 것만으로 이 <토끼전>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지 않는 점에 <토끼전>의 의미가 주목됩니다. 생환은 새로운 시작의 조건일 뿐이지요. 그가 돌아온 현실에서 다시 마주할 새로운 도전 역시 이겨내야, 살아 돌아온 것이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될 겁니다. 

험난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바위 틈 하나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요. 아무것도 아닌 듯해도 '조금씩' 밀고 나가면 그 바위틈은 어느새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견고한 요새가 될 수 있습니다.  225



<이솝우화>

'우화'는 듣는 사람이 그 뜻을 바로 다 알게 하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은 걸 슬쩍 돌려 표현하지요.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 거야? 하는 궁금증을 품게 해서 추리와 상상력을 자극하니 재미도 있고, 그러는 가운데 교묘하게 풍자하고 비판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화는 다양한 해석의 문을 열어놓지요.  229-230


우선 이솝에 대해 잠시 살펴보지요. 그는 기원전 620년경에 그리스의 어느 도시 국가, 또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30


우리는 이솝이 노예로 팔려 다니느라 본의 아니게 많은 여행을 했고 그런 경험으로 인해 여러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접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솝에 대해서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25년경에 저술한 <역사>라는 책을 통해 거론할 정도였으니, 그는 이미 고대 문명 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친 존재였다고 하겠습니다.  231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 개인적인 성실과 게으름의 대조하는 주제 이전에 일하는 자들의 권리를 엄호하는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235


'일에 몰두하고 있던 개미들은 '원칙적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는 베짱이에게 물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합니다. '중단 없는 노동'이지요. 이 중단 할 수 없는 노동이 강제화된 것이어도, 자발적인 의지가 작용한 것이어도 문제입니다. 휴식의 가치나 타인의 호소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인 거지요.  236


이곳은 누군가의 빈궁한 사정에 대해 눈을 돌릴 겨를이 없는 사회입니다. 원칙이 이렇게 정해진 곳에서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인정이라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일에만 미쳐서 사랑, 관심, 동정 같은 영혼의 힘을 잃어버리고 만 사회인 거예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걸 멈춘 곳입니다. 이런 데서 살면 기쁠 것 같은가요?

오늘날 자본주의가 치닫고 있는 현실을 이 우화와 대조해서 읽어나가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어느새 우리 모두 일개미로 변해 있지는 않은지요.  237


[양치기 소년과 늑대]

만일 이 이야기의 적용 범위를 넓혀 본다면 어떨까요? 양들을 돌보는 책임, 즉 그 국가나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책임진 권력자들이 하는 거짓말의 경우말이지요. 

그러면 이 이야기는 권력자가, 있지도 않은 늑대의 출몰과 같이 적의 공격이 임박했다면서 공포를 조장해 사람들의 충성심을 시험한다든지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상체제를 가동시키려 들면 결국 실패한다는 경고로 읽힐 수 있습니다. 처음 몇 차례는 거짓말에 속을 수 있지만, 정작 위기가 왔을 때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기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  246


이 우화는 권력의 거짓말이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결속을 붕괴시키고 권력 자체에 대한 민심의 이반과 함께, 결과적으로 늑대에 의한 양들의 희생을 마을이 황폐해지는 것을 무섭게 보여줍니다.

공포를 꾸며 기존의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조롱과 경고입니다.  247


양치기 소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네, 양을 잘 지키고 돌보는 것입니다. 

사태가 다급해서 어쩔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 어른도 상대하기 힘든 늑대를 소년 혼자서 물리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48


늑대와 관련해서 이 소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렇지요. 양치기 소년은 일종의 경보장치입니다. 경보가 울리면 그 다음 행동은 마을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소년이 두 번째 거짓말을 했을 때, 마을사람들은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요? 소년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 양들은 여전히 안전하다는 것, 자기들이 속았다는 것 등등이겠지요. 그런데 아까 소년의 역할은 경보장치라고 했으니, 이 점을 주목한다면 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알아차렸어야 했을까요? 당연히 경보장치가 고장났다는 사실이겠지요. 

말하자면 들판의 양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그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건 매우 심각한 사태입니다. 늑대가 정말 나타났을 때, 경보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양들의 희생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요? '뭐야, 저 녀석'하고 소년의 거짓말만 문제 삼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뭐가 해결되지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났잖아? 에잇. 저 녀석, 나쁜 놈이로구나, 어디 두 번 다시 우리가 속나봐라.' 이러면서 욕하고 끝낼 일이냐는 겁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경보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입니다. 소년의 거짓말이 두 번째 확인됐을 때, 무슨 일이 이루어져야 했나요? 마을의 공동 대책이 숙외되고, 구체적인 방법이 준비되어야 하는 거지요. 그래야만 양들을 지켜낼 수 있는 겁니다. '경보 장치 작동+마을의 대응=양들의 안전'. 이런 공식이 성립해야 하는 것이예요. 그러니 경보장치 작동에 문제가 생긴 걸 알았다면 그 다음엔 마응ㄹ 사람들의 판단과 대응이 보다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늑대가 나타났을 때 이를 퇴치하는 것은 소년이 아니라 결국 마을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화 속의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보장치 작동 이상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전혀 없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양들의 생명에 최우선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관심이 있었다면, 모두 모여 '이거 어떻게 해야하지?' 하고 회의를 하고 결론을 내렸을 겁니다. 따라서 양들의 비극에는 양치기 소년의 책임이 분명하게 있지만, 마을 사람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했던 겁니까?

적어도 마을사람들은 망가진 경보장치를 고치든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바꾸든지 또는 갈아치운다고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니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제3의 대안을 마련해야지요. 이른바 '플랜B'라는 것 말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해석에는 마을 공동체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 빠져 있습니다. 그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만 비난하고 나면 '상황종료!'되는 식입니다. 늑대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던 양들은 피를 흘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양치기 소년만 문제냐? 그럼 마을사람들아, 당신들은 뭐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뭔가 조처를 미리 취해놓았더라면, 양치기 소년의 입 하나에 양들의 운명이 좌우되진 않았을 거예요.

양치기 소년 한 명에게 늑대의 출현에 대한 정보가 독점되는 것도 매우 취약한 구조입니다. 한 사람 또는 소수에 의존하느 체제는 위기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공동체 전체의 감시, 견제, 또는 대안 마련이 없으면, 소수가 쥐고 있는 정보에 마을 전체가 휘둘릴 수 있는 겁니다. 소년이 늑대야 하고 외치니까 온 마을이 소동에 휩싸였잖아요. 정보의 정확도를 점검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거예요. 따라서 마을 전체의 자발적이고도 주체적인 논의와 대응책 강구가 양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근본입니다. 

소년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양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된 바로 그 시점은 정치사회적으로 보자면, 이 마을의 참여 민주주의가 바로 서고, 마을 주민 각자가 모두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늑대에 의한 양들의 희생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의지가 있는 마을과 없는 마을에서의 양들의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 차이를 제대로만 파악하면, 반복되는 기만에 맞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마을 공동체가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가 바로 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우화로 읽힌다면, 마을사람들이 책임 있는 주인으로 나서는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권력은 이 우화를 금서 목록에 집어넣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고장 난 경보장치를 고치는 것을 개혁이라 하고, 교체하거나 제3의 대안을 실현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마을 주민들의 주체적인 각성이 그런 변화르 가져오지요. 늑대로부터 힘없는 양들을 지켜내는 근본은 그로써 이루어집니다. 

'목동의 거짓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때 이 우화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을까요?  249-254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

'그렇게 하고 돌아다니니 사람들이나 동물들 모두가 다 사자인 줄로 알고 벌벌 떨었어요. 멀리서 나타나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기에 바빴습니다.'  262


예상대로, 속은 당나귀인데도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다 사자의 겉가죽만 보고 공포에 질려 죽자 살자 도망했습니다. 살아있을 때 사자가 준 그 정신적 충격과 상처가 이리도 큰 것입니다. 살았느닞 죽었는지 분간을 못하는 거지요. 그 움직임이 사자인지 당나귀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잖아요. 사자 가죽을 뒤집어 썼다고 당나귀가 사자 걸음을 하기란 쉽지 않았겠지요? 

그런데도 모두가 이 허위를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사자가 통치했던 시대의 공포와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이리도 간단치 않습니다. 껍데기와 진실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사자가 죽어 그 가죽이 길에 떨어진 상황은 사자의 폭력이 모든 것을 결정했던 시대가 이제 사라졌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도 동물들과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대의 그림자 안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폭력의 트라우마입니다. 걸핏하면 사자 밥이었던 자가 사자 행세를 해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이 이 우화에서 가감 없이 드러나는 거지요.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를 사자로 여기는 시대는 진실에 눈멀어 있습니다. 역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는데오, 여전히 과거의 잔상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빈다. 당나귀의 정체를 대뜸 알아보고, '아니 요놈이!'하고 통찰해내는 시대야말로 제대로 된 시대입니다. 그렇지 않았기이ㅔ 당나귀는 위장술의 위력을 알게 됩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263-264


'"이런 이런, 이거 나제 아닌가? 당나귀 친구, 방금 그 소리를 못들었다면 나도 깜빡 속아 자네를 무서워했겠는걸?" 

당나귀가 여우의 말에 흠칫 놀라서 아차!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당나귀는 여우를 보고 히죽 웃었습니다. 민망하고 겸연쩍었던 거지요. 눈치빠른 여우가 당나귀는 잽싸게 한눈을 찡긋 감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손을 내밀어 여우와 당나귀는 손뼉을 짝! 소리나게 마주쳤습니다. 하이 파이브!

그러자 둘이는 이내 허리를 부여잡고 함께 껄껄 거렸습니다. 그 바람에 뒤집어쓰고 있던 사자가죽이 훌렁 뒤로 벗겨지면서 당나귀 머리가 불쑥, 하고 튀어나오지 않았겠어요.

지나가던 다람쥐가 깜짝 놀란 눈으로 이 광경을 쳐다보다가 하도 우스워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다음날 아침,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 등에는 여우와 다람쥐가 올라타고 숲 속으로 행차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여우와 다람쥐에게도 머리를 조아리며 벌벌 떨었답니다.'  265-266



<헨젤과 그레텔> - 인생의 숲에서 실종당한 헬젤과 그레텔을 위해


그림 형제는 나무꾼의 아내를 아이들의 친엄마라고 했다가 판본을 바꾸면서 새엄마로 수정합니다.  275


이는 중세 유럽의 민중들이 겪었던 절박한 현실이었습니다. 친부모가 먹고 살 길이 없어 자기 아이들을 내다버리는 것은 그다지 예외적인 일은 아니었던 거지요.  276


'일어나, 이 뼛속까지 게으른 것들아, 이제 우리는 나무하러 숲에 갈 거다.'(꼭두새벽에..)

그 시간에 깨우면서 게으르다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을 쏟아내는군요. 강자들의 논리입니다.  280


'오리야, 오리야, 작고 귀여운 오리야.

여기 그레텔과 헨젤이 있단다.

강을 건너갈 쪽배도 없고 다리도 없어.

여기 와서 우리를 태워주지 않을래?'

그러자 놀랍게도 오리가 반응을 보입니다. 그레텔은 '너 이리 와!;가 아니라, 오리의 주체적 판단과 선택방식을 존중합니다. 그레텔은 정신적 교감을 우선시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리를 타고 강을 건너는 과정엣 두남매가 사뭇 차이를 보입니다.

'헨젤은 오리 등에 올라타고는 그레텔에게 자기 뒤에 타라고 손짓 합니다.'  

말하자면, '야, 타!' 한 거죠. 이에 그레텔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아냐, 오빠. 그렇게 하면 오리에게는 너무 힘겨워, 오리가 우리를 한 번에 한 사람씩 태워 강을 건너게 해.'

그토록 위급하고 험한 상황을 겪었는데도 그레텔의 마음은 거칠어지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상대를 도구화하거나 이용하는 데 익숙한 이에게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려 깊음입니다.

그레텔은 위기를 이겨낸 지혜와 용기만이 아니라, 공감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공감'이란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마음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정신적 광채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 이 공감 능력은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 잘난 척하고 똑똑한 척 하는 세상에서 다른 존재의 마음과 만날 수 있는 사람만이 세사으이 희망이 되기 때문이지요. 만사에 남을 이용하려 들기만 하는 시대에 이런 공감 능력은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시켜주는 바탕입니다.  299-300




<바보 이반> - 땀 흘려 일한 자, 손에 물집 잡힌 자의 우선적 권리


원래는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인 무사 세묜, 배불뚝이 타라스 그리고 벙어리 누이 말라니야, 그리고 늙은 악마와 세 새끼 마귀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 대목은 이반의 집안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옛날 어느 왕국에 부유한 농부가 살 고 있었는데 세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무사 세묜은 황제에 충성하러 전쟁에 나갔고 배불뚝이 타라스는 장사하러 도시로 상인을 찾아갔습니다. 바보 이반은 누이와 함께 집에 남아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었지요.'  310


세묜과 타라스는 각기 푸념합니다.

'"난 왕국을 얻어 잘 살고 있다. 다만 문제는 병사들을 먹일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돈은 산더미처럼 벌어요. 걱정거리 하나는 돈을 지킥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사실 이들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쳐나서 문제였던 것이지요. 그 넘쳐나는 것을 감당하려면 더 많은 군사와 더 많은 자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국가는 이런 과정을 거쳐 군사력과 재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킵니다. 약한 나라를 짓밟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논리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323


세묜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이렇게 하자. 넌 내게 병사들을 먹일 돈을 줘. 그러면 네게 왕국의 반과 네 돈을 지킬 병사들을 줄게."'

타라스가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둘은 왕국과 돈, 병사를 나눠 갖고 둘 다 부유한 황제가 되었답니다. 

한낱 무사였던 세묜과 배불뚝이 장사꾼이엇던 타라스는 모두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권력과 재력이 동맹을 맺고 거대한 제국이 된 거죠. 인류의 역사에서는 바로 이러한 제국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약한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제국의 폭력과 탐욕에 평생 반대했던 것입니다.  325-326


이반은 병에 걸려 아픈 사람을 신분이나 계급으로 분류하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이반은 아픈 현실 그 자체에 마음을 쏟았던 것.  328


'"폐하는 황제이십니다!" 라고 했더니 이반은 "그래서? 황제도 먹고 살아야 해."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더랍니다.'

이반의 나라는 자신이 먹을 것을 자신이 일해서 만들어내는 노동의 가치가 존귀하게 여겨지는 사회입니다.  331


노동하는 이의 권리가 우선으로 보장되는 나라인 거지요. 이 작품을 쓴 톨스토이는 성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고백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린도 전서 1:27-28)  341




<심청전> -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를 돌려보내노라


심청의 아버지, 봉사 심학규는 '본래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집안 '잠영거족(簪纓巨族)' 출신으로...'

'잠영거족'이란 여자는 머리에 단정하게 비녀를 꽂고(비녀 잠 簪) 남자는 갓을 쓴(갓끈 영 纓) 그럴 듯한 양반집을 말합니다.  408


심청이가 한 말을 다시 주목해봅시다.

'"내 과연 물에 빠진 청이오. 청이 살았으니 어서 눈을 뜨시고 딸의 얼굴을 보옵소서."'

심청이는 자기가 다름 아닌 심봉사의 딸이라는 것만 알린 것이 아닙니다. 물에 빠졌던 자기가 살아 있으니 어서 눈을 뜨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그 얼굴을 보라 합니다. 오랜 세월 감겨 있던, 또는 감고 있던 눈을 똑ㄸ고히 뜨고 마주하라는 것입니다.

뭘 마주하라는 거지요? 자기 이득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얽혀 희생당했던 목숨, 그 목숨이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났음을 똑똑히 보라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세상은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는 지금 아버지 앞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희생의 악순환이 멈춘 놀라운 현실에 눈뜨라는 겁니다.  439




에필로그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겨 있을지 모를 고정관념을 교정해보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고정관념은 때로 폭력이 되어, 세상을 공평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나라가 산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언제나 옳다고 여겨집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지 못하면 그런 사회와 나라는 편견과 선입견 또는 세뇌된 지식으로 가득차, 자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길을 모색하고 선택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새로운 생각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사유의 촛대"에 불을 켜는 일입니다.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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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같이 어려운 거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톡 까놓고 물어보는 거야.
뭐가 불만이야?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만 고생해?
묻는다고, 답이 들리기야 하겠어?
그래도 몽글몽글, 울컥울컥
꿈틀거리는 게 느껴질 거야.
물어봐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큰 거 바란 적 없다고
착한 마음이 작게 울기 시작할 거야.
나는 그런 착한 나를 위해 짐을 싸고, 길을 떠났지.
착한 마음이
고맙다고, 많이 고맙다고
그만 좀 하랄 때까지 입에 달고 살더군.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감정을 나누는 즐거움은 표현이 안 될 만큼 크고, 깊다. 독자는 각각의 창의력으로 장면을 상상하고, 상황을 이해한다.
여행 이상으로 놀라운 인연이다. 게으르고, 변덕 심한 나에게 이런 즐거움이 글을 쓰게 한다.  9


나는 5천 원을 냈고, 현지인들은 1천 원을 냈다. 그깟 몇천 원으로 이성을 잃는다면 그건 내공이 얕은 여행자다. 바가지로 점철된 삶이 여행자의 몫이다.  28

비가 추적인다. 나는 오토바이를 반납하러 갔다. 더 이상은 오토바이를 탈 수도 없을뿐더러 오토바이를 타기도 무서웠다. 직접 숙소까지 와서 오토바이를 수거해 가면 몇만 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착한 숙소 주인장의 소개로 1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오토바이를 실을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망가진 오토바이를 타고, 오토바이를 배달해 준다는 집을 찾아나섰다. 아주 캄캄한 밤이었고, 붕대 사이로 또 상처가 번지는 것이 보였다. 몇만 원 아껴 보겠다고 그 몸으로, 골목골목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혼자 피식 웃었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참 구차한데, 그래도 그 구차함을 열심히 뒤쫓는 내가 싫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더랬다. 열정도 없이 여기저기를 떠 다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었다. 하지마 ㄴ열정은 그렇게 쉬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다. 열정은 사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가는 것이다. 단지 그 모양이 달라 보일 뿐이다. 달라질 때마다 우린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비 않는다.
초심은 씨앗이다. 그 씨앗이 자라는 동안, 수많은 굴곡을 겪는다. 그때마다 갈등하고, 의심한다. 하지만 초심은 열심히 발화하고, 물을 빨아들인다. 그 씨앗은 꽃을 피울 수도 있다. 그러면 새로운 초심을 찾으면된다. 새로운 초심, 새로운 씨앗이 우리의 열정과 함께 싹을 틔울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1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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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어느 날 펼쳐즌 <론리 플래닛>의 라오스 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남방 불교를 받는 라오스인들은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일하지 않는다. 고된 노동보다 카르카가 생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까닭이다.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인들은 쌀을 심는다. 캄보디아인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본다. 라오스인들은 쌀이 자라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라오스인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당신의 머리에 좋지 않다고 믿는다. 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들을 흔히 가엾게 여기곤 한다.'


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외계의 무엇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만 번 우리의 마음곁을 쓸고 지나갔던, 그러나 또 쉽게 잊고 지냈던, 세상 모든 존재들의 파장과 울림을 다시금 알현하는 일임을 소중하게 깨닫는다.  12


비록 여행 중이라 해도, 혹은 지루한 일상 중이라 해도, 아무리 바쁘다 해도, 혹은 가진 것이 넉넉지 않다 해도, <언제나>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숙이 선의를 가지고 관여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21


 

우리가 내리는 잠깐의 선택, 손끝을 지나쳐갈 뿐인 동전 하나의 용고, 잠시 마음을 사로잡은 범박한 생각... 

이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의 한 순간, 소중하다. 그 사소한 순간의 마디 마디가 하나의 결정(結晶)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너의 삶. 아껴라.



에어컨이 있는 버스에서 차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본다면 풍경은 그저 사진일 뿐이다. 길은 그저 평면일 뿐이다. 나는 직육면체의 공간 속에 보호받는 간접체험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곳 땅에서 나고 자라. 이 땅의 푸성귀 냄새를 풍기는 이들과 꼼지락대는 발가락을 맞대고 들키지 않게 탐색하는 수줍은 눈빛을 마주하며 달리는 이 길은 나를 사랑에 빠진 여인이게 한다.

바람은 여과 없이 다가와 신선함의 직격탄을 날리고 머리카락은 훨훨 날아 하늘에 닿을 듯하다. 나는 뒤따라오는 오토바이의 낯선 남자에게도 미소를 짓고 길가의 아이들에게도 일일이 손을 흔든다.  33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에 대해 웃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질문과 웃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속에 흔하게 숨어 있다.  84


우리는 언제나 winner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차분한 기다림이란 나태함을 의미한다.

라오스인들은 언제나 loser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순서의 문제일 뿐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진정한 winner도 loser도 없는 것이다. 

혹은 모두 다가 winner이며 모두 다가 loser인 것이다.

서두르거나 불편한다고 해서 인간의 힘으로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오직 변하는 것은 마음의 균형이 깨어지는 일뿐이라는 것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오랜 명상과 고도의 훈련을 통해 도달하는 정신의 경지에 이미 생태적으로 도달해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93-94


주어진 것이 적다 쉽게 지치지 말라. 삶의 고단함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것. 그대에게 적게 주어진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크게 주어진 것일지니, 두말없이 가진 것을 보듬은 것만이 그대를 나아가게 하리라.  105



이곳에서 밤길을 떠도는 여행자는 묻게 된다. 우리의 생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없으면 안 되는 것의 목록은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어두운 길가를 향해 열려 있는 문, 낡은 기타와 달빛에 젖은 그림자, 보았으나 보지 않은 척 하는 타인의 온유한 시선, 손 안에 쥐어진 다른 손의 온기, 어둠의 끝에서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는 아침. 

어쩌면 그런 것들, 그 단 몇 가지 것들.  



라오스 인들은 묘비명을 쓰지 않아요. 그들은 믿지요. 

사람이란 글로써 흔적을 남길 수 없는 존재라고.



여행이란,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이들의 불우함으로부터 당신의 자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친다면 여행의 힘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당신보다 양적으로 더 우월한 자들은 세사으이 저편에 얼마든지 있느이까요. 이들의 존재가 쉽게 당신을 일으켜 세웠듯 그들의 존재는 또 쉽게 당신을 넘어뜨리겠지요. 당신의 질문은 그 너머에 있어야 해요. 내 삶은 어찌하여 훨씬 더 나은 조건 속에서도 초조해하는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가, 쉽게 지치고 자신과 불화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에요. 진정한 여행의 힘, 그것은 주는 깨달음이란, 떠나 있을 동안만 당신을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133


나라면 말할 것이다. 흔들리는 짐 꾸러미 위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므로 낳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라면 말할 것이다. 아직 나무집 한채 변변히 없으므로 결혼하지 않겠어요.

흔들리는 짐 꾸러미나 나무집 한 채는 당신과 내가 <폼>으로 생각하는 제약조건들이다.

우리는 항상 <어디에서>에 집중한다.

물질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 물질의 우아한 배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라오스의 그녀라면 말할 것이다. 흔들리는 짐 꾸러미 위에서도 아이는 자란답니다. 

라오스의 그라면 말할 것이다. 뒷간 곁이라도 좋아요. 함께 있을 수 있으면 되는 거죠.

결코 넘치지 않으며, 나아가 종종 모자라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무엇을>에 집중한다.  

오직 <무엇을>에 집중하는 자들만이 다 끌어안고 갈 수 있다. 솎아내지 않고, 어리광부리지 않고.

삶이란 불가해한 것이다. 

통째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순순히 살아갈 수 없는 그 무조건성의 원칙이 라오스에서는 착실히 준수된다.  137-138


음식이란, 그 지역의 기후, 그 기후가 주관하는 농작물, 종교 혹은 터부나 미신, 뜨겁거나 차가운 민족적 기질, 색감이나 모양에 대한 고유한 미적 감각 등 그곳 문화의 총화이다.

그러하니 당신이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의 낯선 신념을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들 앞에서 펼쳐 보이지 말라.

당신이 채식주의자든, 동물애호가든, 유난히 민감한 후각을 지녔든, 귀족적인 미각을 지녔든, 한 그릇의 음식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지 말라.  178


라오스인들의 특징이에요.

예부터 라오스인들은 하루에 세 가지만 걱정했어요.

아침으로 먹을 게 있을까?

점심으로 먹을 게 있을까?

저녁으로 먹을 게 있을까?

그렇게 세끼를 먹고 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죠.

나머지 걱정들은 모두 다음 날로 넘어가는 거예요.  183


물질화는 어쩔 수 없이 전통과 자연을 파괴해요. 그동안 자신들이 수호해온 전통과 자연이 자신들을 가난하게 했다고 믿게 되니까요. 그러나 물질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이들은 더 이상 자여노가 전통이 파괴된다면 더 이상의 물질화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그리고 다시 라오스다운 것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해 골몰하게 되겠지요. 그것이 물질에 목마른 후진국들이 역사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수순이었으니까요.

그럴까요? 먼 미래에 이들이 자신의 본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요? 나는 방비엥이 저렇게 추한 외국인 거리가 되기 전에 여기 왔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는 더 나빠지기 전에 이곳에 온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이다음에 아이를 낳아서 함께 이곳에 왔을 때에도 지금처럼 이곳의 자연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TGV를 타고 나는 KTX를 탄다. 

라오스인들만이 계속해서 원시의 불편함과 순수함을 간진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가져 편안한 자의 이기심일 것이다.

비록 물고기가 그녀의 남자친구를 행복하게 하듯이 TGV와 KTX가 소피와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하느냐고 그들이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지라도...  184-185


'how'는 늘 나눌 것이 있는 자들의 고민이다. 가진 자들은 책상에 앉아 how에 대해 'talk'하지만, 정작 이들이 원하는 것은 'just do it' 이다.  208


소통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 몸과 마음 사이의 절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타인의 몸을 충분히 탐색하지 않은 유년은 반드시 뒤틀린 인간관으로 이어진다. 

판에 박힌 이미지로서의 성, 획인화된 미의 기준, 그것의 그릇되고 위험한 적용.

아이들은 '스스로' 몸을 터득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그들 누구라도 가르침 없이 비밀을 깨칠 수 있으므로.  230


남자들은 사랑을 <한다>. 면도를 <하고> 사업을 <하고> 산책을 <하>듯. 

그러나 여자들은 사랑에 생을 건다. <하는>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의 전부가 <된다>.

호흡을 하고 걸음을 내딛는 순간순간이 사랑과 결부된다.

사랑이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는 같은 여자여도 다른 여자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도록. 오직 사랑하는 대상만이 존재하도록.  243


여행에는 연습이 없다. 가장 격한 체험을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한다. 

이거될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거 된다! 싶어도 이미 늦었다. 가보는 거다. 본전 생각 없이. 예행연습은 일상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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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꾸준한 여행 동안 깨달은 것은, 멋있는 풍경을 봤다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거나, 넓은 세상을 봤다고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좋은 식당은 고급스럽고 비싼 곳이 아니라(비싸면 오히려 더 경직될 수도 있음) 여행자들이 그 안에서 만큼은 자신의 식사를 편히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다.  



두둥실 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내 주위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여행자들끼리의 은밀한 눈짓.

나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까요...



지나고 보면 시간과 망각이 모든 걸 치유해 주진 않은 것 같다. 단지 익숙해질뿐.



기억을 위한 기록을 하다보면 정작 즐겨야 할 순간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록과 기억에 대한 강박이 여행을 장식하지 않게 균형을 잡는게 가능할까?



기록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그것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아닐까. 여행의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사진 혹은 일기 속의 '박제된 나'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한 '지금의 나' 자신일 테니.

여행의 기록은, 당시의 자신을, 그리고 후에 그 여행을 돌아볼 미래의 자신을 감응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한 줄, 부지런하면 부지런한 대로 여러 장,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된다면 굳이 기록의 의미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애정도가 상승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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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세상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불확실하기에 자유로운 우리들은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의 만남을 미련 없이 뒤로 하고 뿔뿔이 헤어졌다. 



욕망, 그것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 혼자 사는 것도 힘들고 같이 사는 것도 힘들다. 욕망을 끊는 것도 어렵고 욕망을 추구하는 것도 어려우며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40대 중반까지 혼자 살며 그는 얼마나 많은 욕망에 시달렸고, 또 얼마나 노력했을까?

'욕심을 내지 말고,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

그 말은 어쩌면 그가 현재의 자신에게 다짐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나 역시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말은 쉽지만 실천이란 힘들다. 어쩌면 욕망으로 인해 태어나고,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완벽하게 욕망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 같다.



폴 라파르그(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사회주의자)가 쓴 <게으를 수 있는 권리> '게을리 하세, 모든 일을. 사랑하고 한잔하는 일만 빼고, 그리고 정말 게을리 해야 하는 일만 빼고.'



앞으로 나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답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일기를 쓰기도 했고 새벽이나 저녁에 인적 없는 바닷가에 앉아 명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붉게 가라앉는 해는 무거워 보였고 한밤에 백사장에 누워 바라본 별들은 바람에 날려 떨어질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해변에서 생택쥐베리의 <성채(Citdel)>를 읽다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이 왔다.

'나는 평화를 빙자하여 자신을 단순함 속에 몰아넣고 마음의 갈망을 억제하는 인간들을 경멸한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이 성장하려거든 논쟁과 맞서 자신을 소진시켜라. 그것이 세상을 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통이란 거름과 같은 것이다.'

또 이런 글도 있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먼 명상에 빠진 인간들은 유토피아의 공상 때문에 힘을 잃고 만다.'

아. 나는 생택쥐베리가 보기에 이런 인간이었구나. '평화를 빙자하여 자신을 단순함속에 몰아놓고 마음의 갈망을 억제하는 인간들을 경멸한다'라는 말에서, 평화라는 말 대신, '자유로운 삶을 빙자하여' 혹은 '깨달음을 빙자하여'라는 말로 바꾸면 딱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한때 자신을 발살랐었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졌을 때 나는 나 자신을 그 '구체적인 삶'에 소진시켰다. 거기에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샌가 익숙해진 그런 삶을 힘없는 '관념'으로 다룬 것은 아닐까? 과거의 혹은 미래의 유토피아적인 공상에 빠져 힘을 잃었던 것은 아닐까?

허허. '결국 내가 살아온 10년의 세월이 그 정도였구나'라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가슴 속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쳤다.

그래. 자신에게 솔직하자. 그것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벗어나고픈 울타리가 있는 법. 비록 그 울타리가 편안한 삶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내삶이 아닌 것 같은 울타리라면 울타리를 넘을 용기는 있어야 하겠지.



'모든 인도인들은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미화할 수는 없지만 '모든 가난한 인도인들은 불행하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욕망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골목길에서는 욕망이 추하지 않았다.



가끔 삶이 힘들고 허무하거나 권태스러워질 때 바라나시에 가보라. 꼭 초월과 명상을 노래하지 않아도 좋다. 바라나시는 한 번 가서 쉽게 그런 것을 느끼는 곳은 아니다. 화장터의 연기가 역겹고, 힌두교 순례자들의 찬송소리가 낯설고, 가트에 앉아 있을 때 찾아오는 거지가 귀찮게 느껴지면 이번에는 성벽 뒤의 골목기로 가라.

더럽고 비좁은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소 엉덩이에 받치고, 새똥을 맞으며, 원숭이와 싸우고, 상인들과 흥정하며 그들의 땀방울과 미소를 기억하고, 열살 남짓의 아이들의 치열한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삶의 열기를 느껴 보라. 그 순간 문득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겸허해진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는 순간, 정신의 기름기가 쏘옥 빠지며 가슴 속에서 삶의 열기가 팍팍 솟구쳐 오른다.

그때 알게 된다.

행복이란 저들처럼 열심히, 아기자기하게, 사소한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서 온다는 것을, 또한 진정한 명상이란 한곳에 앉아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정적이 아니라, 고뇌를 껴안고 눈을 부릅뜬 채 걸어가는 행위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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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이놈의 피리가 또 막혔어요. 여름밤은 너무 짧은데 말이에요.

- 넌 집에 안 가니?

- 아저씨는 여기서 뭐 해요?

- 기다려.

- 누굴요?

- 나도 몰라. 오지 않을 사람 같아.

- 한가한 사람이군요.

- 아니, 나는 바빠, 열심히 기다리고 있거든.

- 열심히 기다리는 건 좋은 기다림이 아니에요.

- 왜?

- 기다림은 의지와 결심으로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기다릴 것들은 당신의 바깥에 있어요. 당신에게 누군가 필요하다면 부디 아무도 기다리지 말아요.

- 저런, 네 말대로라면 공연히 무덤가의 꽃들만 시들었구나.

- 저 시든 꽃들요? 그건 다만 이 여름의 마지막 장미일 뿐이에요. 누굴 위해 피어난건 아니죠. 여기 있는 것들은 더 이상 자신을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홀로라는 말을 모른답니다. 이제 그만 이야기 할래요. 난 다시 피리를 불 거예요.  59-60



그래도 떠난 애인에게서 배운 말을 그대가 내게 하고, 나도 나의 떠난 애인에게서 배운 말을 그대에게 하지. 내가 그대를 떠나면 그대가 나에게 배운 사랑의 말을 나의 새 애인에게 건네고, 지구의 사랑은 아무래도 그렇게 현명해지고 있는 거지. 오랜 세월 세상의 광물과 다 접톡해서 현명해진 지하수처럼.

그래서 말이지, 나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보다는 그대에게 배울, 내 새 사랑의 말을 생각해 보는 밤이고 싶어.

사랑이 밀려오면 평온의 휴식은 끝나고, 나는 이내 가난해져 다시 또 길을 잃고.  102



순정이란 것은 자고로 연약한 마음이 아니라, 들끓는 닫힌 욕망의 체계이다. 순정은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극진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제 속의 이유로 그 사람을 독점하려는 욕망이다. 심지어는 그 욕망이 저지당하고 명백하게 그 끝을 보았을 때조차, 남자는 저 홀로 상처를 끌어안고 사랑의 끝을 모른 척하며, 여전히 제 속에 갇혀 사랑을 고수한다. 상대도 없고, 자신의 무너짐도 없이 오직 거울 속에 갇혀 홀로 사랑하는 일.

남자들아, 함부로 제 속에서 순정을 길어올리지 마라. 순정은, 이토록 사랑과 상처 사이에 기생하며 꿈틀대는 그대의 증상에 다름 아니니, 증상으로나마 제 욕망을 누리려는 마음은 더없이 쓸쓸한 것이다.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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