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목록'에 해당되는 글 971건

  1. 2012.02.09 답다 3
  2. 2012.02.02 오랜만에 들린 센트럴 영풍문고
  3. 2012.02.01 2012년 1월의 독서모임
  4. 2012.01.31 2012년 1월에 읽은 책
  5. 2012.01.30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조선 후기 시직 패러다임의 변화와 문화 변동) - 정민 휴머니스트 2007 03900
  6. 2012.01.28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사계절 2011 03100
  7. 2012.01.26 사기 본기 - 이인호 사회평론 2004 04910
  8. 2012.01.25 사기 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 - 이인호 살림 2005 04080
  9. 2012.01.24 글자 하나의 요술
  10. 2012.01.23 정조 치세어록 - 안대회 푸르메 2011 03810 1
  11. 2012.01.22 진짜 불쌍한 사람
  12. 2012.01.21 누구나 10초 안에 살인자가 될 수 있다 - 폴 발렌트 생각연구소 2011 03180
  13. 2012.01.14 사기1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 - 김진역편역 서해문집 2002 04820
  14. 2012.01.13 경력의 반대말 2
  15. 2012.01.12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아잔 브라흐마 이레 2008 03840
  16. 2012.01.11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17. 2012.01.10 신데렐라맨 Cinderella Man - 제레미샤프 생각의나무 2005 03840
  18. 2012.01.09 서산에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
  19. 2012.01.08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 김혜남 중앙M&B 2002 03810
  20. 2012.01.07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 이상주 다음생각 2011 03900
  21. 2012.01.0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2 03840
  22. 2012.01.04 문제와 답
  23. 2012.01.03 2011년 독서 목록 파일
  24. 2012.01.03 2011년 독서를 점검해 본다
  25. 2012.01.02 몸이 마음에게 1
  26. 2012.01.02 2011 12월에 읽은 책 1
  27. 2011.12.31 2011년 11월에 참석한 7번의 독모와 인문강좌
  28. 2011.12.01 2011년 11월에 읽은책
  29. 2011.11.27 마왕 - 이사카 코타로 웅진지식하우스 2006 03840
  30. 2011.11.25 <상처 받지 않을 권리>에서 더 읽어볼 책으로 추천하는 도서들

답다
조용필답다. 열정적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서태지답다. 새로움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신해철답다. 날카로움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윤도현답다. 믿음직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김장훈답다. 따뜻함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이름 뒤에도 답다를 붙여보세요.
떠오르는 그림이 있나요?  없다면 다행입니다.
지우고 그리는 것보다 백지 위에 그리는 것이 훨씬 쉬우니까요
, 오늘부터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을 그려가는 겁니다
당신답게





'답다'가 있나?
연기일 뿐인것 아닐까.. 다운게 있다면 연기일 뿐이다.
사람이 그렇게 일관적으로 살아가나?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아까와 지금이 다른데, 오죽하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때가 다르다'하지 않는가.
'답다'에 끼워 맞추는 자신이 너무 힘들게 된다.
어제는 좋다가 오늘은 싫어지는게 사람인데...
그 마음을 다 잡아 나간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하는게 아니다.
변한척 할 뿐.. 그 마음은 얼마 안있어 다시 올라 올것이다.
그렇게 싸워나가 인간 승리하여 다른이들이 일관적이라 평해주면 그것이 만족이 되나?
자신이 자신을 세뇌시키는게 만족인가?
어느 정도 세뇌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답다'는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답다 보다는 어느 정도 다워지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의 여러면을 인정하고 보담아주는 인간미와 따뜻함이 공감시키는 능력을 갖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게 필요한 것 아닐까..
언급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일 뿐이다.
'답다'의 감옥, 족쇠를 풀어보자.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살아가자.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관심은 도박  (0) 2012.03.03
유효기간  (0) 2012.02.11
글자 하나의 요술  (0) 2012.01.24
진짜 불쌍한 사람  (0) 2012.01.22
경력의 반대말  (2) 2012.01.13
Posted by WN1
,
간만에 들린 영풍이다.
아니 서점을 한 3주만에 들린것 같다. 그리 자주가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들렸다. 
오랜시간 머물러 있지 않았기에 눈에 띄는 책들을 잠시 담아보았다.


간만에 압구정 베네에 들렀다..




'나를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2월에 읽은 책  (0) 2012.02.29
1, 2월의 나의 특강  (0) 2012.02.28
2012년 1월의 독서모임  (0) 2012.02.01
2012년 1월에 읽은 책  (0) 2012.01.31
2011년 독서 목록 파일  (0) 2012.01.03
Posted by WN1
,

2012년 1월의 독서모임

2012. 2. 1. 08:1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 조선 명문가 독서 교육법
 3. 신데렐라 맨
 4.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5. 사기1
 6. 사기2
 7. 사기3
 8. 누구나 10초 안에 살인자가 될 수 있다
 9. 정조 치세어록
10. 사기 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
11. 사기 본기
12. 철학이 필요한 시간
13.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14.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나를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에 들린 센트럴 영풍문고  (0) 2012.02.02
2012년 1월의 독서모임  (0) 2012.02.01
2011년 독서 목록 파일  (0) 2012.01.03
2011년 독서를 점검해 본다  (0) 2012.01.03
2011 12월에 읽은 책  (1) 2012.01.02
Posted by WN1
,

논문식 글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후기, 그 중에도 정조 시대 유학자들에 대한 책을 꽤 내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자신이 연구하고 종합 정리한 것을 엮은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중간 결산이라고 한다.
저자의 책 중에 여러권을 읽었기에 이 책의 내용은 배경지식으로 도움이 되었다. 
18세기 조선에 중국에서 엄청난 서적들이 들어오고 사신행렬에 끼여 탐방한 사람들을 통해 많은 문물이 들어오고 경험하면서 이전의 조선 문화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문체반정으로 대표되는 전통을 지키는것, 나라의 근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하였으나, 깨어있는 지식인들을 통해 여러가지 많은 쟁이들이 생겨나고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대략이라도 전반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다양한 책들을 통해 문물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렇기에 기준이 모호해져서 우왕좌왕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넘쳐 나는 정보들을 자신에 맞게 섭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집과 아집이 넘쳐 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올바름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깨어있는 사람들은 올바름을 잃지 않고, 취할것은 취하고 버릴것은 버렸으며,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한 인식도 나타내었다.
다양성과 독창성을 잃지 않으며 창조적인 생각과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도 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오늘날과 비슷하다.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이 올바름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나 길거리에서 눈을 뜨게 된 장님의 우화는 저자도 여러번 강조한 것처럼 생각할 꺼리를 남겨주고 있었다.





서설
18세기 미친 바보들
18세기 조선에서는 갑자기 '벽(癖 적취 벽)' 예찬론이 쏟아져 나온다. 무언가에 미친다는 뜻의 '벽'.
박제가(1750-1805)는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또 '치(癡 어리석을 치)', 즉 바보, 멍청이를 자처하고 나서는 경향도 생겨났다.
설치(雪癡), 치재(癡齋), 매치(梅癡), 간서치(看書癡), 석치(石癡) 등 치 자가 들어간 이름이나 호가 부쩍 많아지는 건 그 방영이다.  13
18세기의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힘은 정보화에 있다.  14
18세기에는 무언가에 단단히 미친 사람이 많았다. 이런 비 정상적인 몰두와 집착을 그들 스스로는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 벽이 없는 인간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했고,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벽은 확실히 이 시기 지식인들을 특징짓는 중요한 코드였다. 
김덕형의 <백화보(百花譜)>에 박제가는 서문을 이렇게 썼다.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건 벽이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 아아! 저 벌벌 떨고 빌빌대며 천하의 큰일을 그르치면서도 스스로 지나친 병통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은 이 책을 보고 경계로 삼을진저.' 벽도 없이 무언가에 미칠 줄도 모르면서, 나는 저런 멍청이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고 기뻐하는 자들에게 이 책을 보고 부끄러운 줄 좀 알라고 일갈한 것이다.  22-23
이 시기에는 이렇듯 백과전서적 지식 경영이 크게 성행했다. 주체와 목표만 정해지면 이들은 모든 정보를 조직화하고 편집해냈다.  25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정보량의 폭발적 증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26
박지원이 들려주는 재맹아(再盲兒) 설화는 의미심장하다. 길 가다보니 웬 젊은이가 울고 섰다. 왜 우느냐고 물었다. 원래 어려서 장님이 되어 20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길 가다 눈이 떠졌다. 너무 기뻐 집으로 가려 하니 골목은 갈림길이 많고 대문은 다 같아 제 집을 못 찾아 운다고 했다. 처방은 이렇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장님은 기뻐하며 지팡이를 더듬어 문제없이 제집을 찾아갔다. 
너는 그저 장님 주제로 살란 말이 아니다. 한번 떠진 눈은 다시 감기지 않는다. 문제는 집에서 눈 뜨기 않고 도중에 눈 뜬 데 있다. 그래서 눈을 뜨는 순간 다시 눈이 멀고 말았다. 박지원의 생각에 눈 뜬 장님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었다. 눈만 뜨면 뭣 하는가? 정작 자아의 주체를 주체를 세울 수 없다면 눈을 뜬 기쁨은 새로운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길 잃고 헤매지 않으려거든 도로 눈을 감아라. 본래의 시작일 뿐이다. 길 잃고 헤매지 않으려거든 도로 눈을 감아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 좌표축을 세워 출발하라. 확장된 세계, 혼돈스런 정보 앞에서 주체의 확립보다 절박한 건 없다. '나'없는 세계는 카오스일 뿐이다. 이 점은 인터넷 시대라고 다를 게 없다.  32
디드로가 <철학적 사고>에서 '사람들은 왜 정열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면 이성을 모욕하는 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위대하게 고양시킬 수 있는 건 위대한 정열뿐이다.'  52
박제가는 '세상에 무언가에 미치지 않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53
 

18세기의 문화 개방과 조선 지식인의 세계화 대응
'무찌르자 오랑캐'의 북벌을 국시로 하던 세상에서 살다가 처음 북경에 도착한 조선의 젊은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사방으로 죽죽 뻗은 넓은 도로에 넘쳐나는 재화, 으리으리한 건축물들, 거리를 가득 메운 서점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쌓여 있는 서책들, 고딕식 서양 성당과 서구 과학기술 정보들까지 있었다. 그들이 직접 목격한 청나라는 애초에 조선이 무찌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지켜왔던 성현의 이념가치들이 청나라에서는 이미 철 지난 유행가였다. 북벌의 강고한 이데올로기는 어느 순간 북학(北學)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58
18세기의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힘은 정보화, 세계화에 있다. 문화의 개방과 소통에 따라 취급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61
갑작스레 밀려드어온 선진문물 앞에서 주체를 확립하여 제정신을 차리기는 어려웠다. 박지원은 '눈 뜬 장님'의 유명한 비유를 들어 문화종속에 따른 주체의 실종을 경고했다. 장님이 눈을 뜨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집에서 뜨지 않고 길 가는 도중에 뜨게 되면 오히려 제집을 잃고 길에서 울게 되니, 집을 찾아가려면 도로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다.  62
18세기는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의 질이 문제가 되는 시대였다. 
모든 지식이 새롭게 편집되고 재배열되었다.
18세기 새로운 지식 경영에 의한 저작들 주에는 한 작가 안에도 실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공존한다.
이들 저작을 관통하는 저술 원리는 한 가지다. 널려 있는 정보를 수집 배열해서 체계적이고 활용 가능한 지식으로 탈바꿈한다는 것.  63
토론과 돌려 읽기를 통해 정보를 확충하고 관점을 조정해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65
모방은 어느새 창조의 에너지로 점화되었다.  74
중국의 학자들은 사신행차에 참여해 북경을 밟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중국의 아류가 아닌 좀더 조선적인 저작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 과정을 거쳐, 진정한 경쟁력은 중국의 모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독자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점차 절감하였다.  76
자고나면 모든 것이 바뀌어 있는 이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식 경영에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반성할 점도 많다.
첫째, 18세기 지식인들은 정보가치의 우선순위를 바꿔 지식 경영의 중요성을 강화했다.
변화의 맥락을 읽어내는 정확한 안목이 중요하다. 바꿔야 할 것을 과감히 바꾸고 바꿔선 안 될 것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 둘을 혼동할 때 변화는 곧 파국을 의미한다. 무조건 바꾸고 보자는 식의 변화 지상주의는 오히려 회복 불능의 상태로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80
둘째, 18세기의 지식인들은 외국문화를 개방된 자세에서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중요한건 개방성이 아니라 주체성이다. 제대로 하고 나대로 하고 나름대로 해야지, 멋대로 하고 덩달아하고 따라해선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셋째, 18세기 지식인들은 그들이 경험했던 정보화사회에서 지식 경영의 다양한 모델을 실천적으로 제시했다.  81
틀을 세워 정보를 선별하고 토론과 적용을 거쳐 목표에 도달하는 이들의 작업 방식은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과정의 결과여야 한다.
넷째, 18세기 지식인들은 다양한 문하 콘텐츠를 개발하여 주체적 문화역량을 강화했다. 
세계화란 우리 것을 버려 남을 따르는 데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의 색깔과 개성을 지닐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문화는 변화할 뿐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82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벽'과 '치' 추구 경향
'벽'과 '치'의 추구가 나타나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벽'이나 '치'는 모두 병들어 기댄다는 뜻의 '녁(?)'자를 부수로 하는 글자이다. 이 밖에 의미의 '비(庇)' '비(?)' '고(痼)' 같은 어휘도 자주 사용되었다. '벽'은 의학적으론 오른쪽 갈비뼈 아래 비장(脾臟)에 나쁜 기운이 쌓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것에 대한 기호나 집착이 너무 지나쳐 이성적으로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였다.
전 시기까지 이 '벽'은 군자가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벽이 '상지해기(喪志害己)' 즉 바른 뜻을 잃게 하여 마침내 몸을 해친다고 본 것이다. 이는 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경계하는 유가의 전통적인 '완물상지(玩物喪志)'의 논의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런데 이러한 벽에 대한 인식이 18세기에 이르면 일부이기는 해도 지식인들에게 타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미덕으로 변모하게 된다.  92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처럼,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박제가는 <백화보서(百花譜序)>에서 '사람에게 벽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이란 글자는 '병(病)'이란 글자에서 나온 것이니, 지나친 데서 생긴 병이다. 그러나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건 왕왕 벽이 있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다.'  93
정조의 사위였던 홍현주(1793-1865)는 <벽설증방군효량>에서 '벽이란 병이다. 어떤 물건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좋아함이 지나치면 '즐긴다[樂]'고 한다. 즐기은 사람이 있어 즐김이 지나치면 이를 '벽'이라고 한다.'
미친 듯 몰두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는 몰입의 상태를 말한다.  95
홀로 걸어가는 정신이란,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이다 이리저리 재고, 이것저것 따지기만 해서는 어느 한 분야의 특출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힘이 바로 멱이다.  97
홍현주의 <벽설증방군효량>의 뒷부분에서 '내가 평소에 달리 좋아하는 바가 없지만, 오직 그림에 대해서는 벽이 있다. 옛 그림으로 마음에 차는 것을 한번이라도 보면, 비록 화폭이 온전치 않고 장정이 망가졌더라도 반드시 비쌍 값에 이를 구입하여, 목숨처럼 애호하였다. 아무개가 좋은 그림을 지녔다는 말을 들으면 문득 심력을 다해서 반드시 찾아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녹여, 아침 내내 보고도 피곤한 줄 모르고, 밤을 새우고도 지칠 줄 모르며, 밥 먹는 것도 잊고 배고픈 줄도 알지 못하니, 심하도다 나의 벽이여! 앞서 말한 부스럼 딱지를 즐기거나 냄새를 쫓아다니는 자와 흡사한 부류라 하겠다.'  99
'치'에 대해서는 남경의(南景義)가 <치암설(癡庵說)>에서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치라는 것은 멍청함이 좀 심한 것이다. 멍청함은 교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전(傳)에서는 '비록 어리석어도 반드시 현명해질 것'이라고 햇고, 영무자의 어리석음을 두고 성인께서도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고 여기셨다. 그렇지만 '치'같은 것은 사라에게 고칠 수 없는 고질이 된다. 그래서 그 글자가 '질(疾)' 자에서 나왔다. 어리석음이 심한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감히 망령되이 '치'란 이름을 얹지 못한다. 대개 세속에서 서로 욕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치'란 상식적으로 볼 때 어리석은 정도가 지나쳐 바보로 보이는 상태다. '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의 눈에는 그들의 상태가 '치'로 밖에 보이지 않늗다.  100-101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 변모와 그 방향성
문화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이 시기 지식인들의 읫기을 강렬하게 지배한 변화의 축은 크게 세 방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도(道)'를 추구하던 가치 지향이 '진실'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들은 변치 않을 도에 대한 맹복적 신뢰를 거두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눈앞의 진실에 더 큰 관심을 쏟았다. 변치 않을 진리란 것이 존재한다는 걸 그들은 회의했다. 
둘째, '옛날'로 향하던 가치 지향이 '지금'으로 선회했다. 추구해야 할 이상적 가치가 과거에 있다고 믿었던 퇴행적 역사관은 이제 힘을 잃었다. 대신 그 자리에 지금 눈앞의 세계를 중시하는 진보적 역사 인식이 자리 잡앗다. 지금과 무관한 어떤 옛날도 무의미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셋째, '저기'에 대한 관심이 '여기'를 향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즉 중국을 기준으로 삼던 사고가 조선 중심의 사고로 변모한다. 이러한 변화는 겉으로 보아 사소하지만 그 으미는 크다.
가치관의 이러한 변화는 개인적인 문제제기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전반적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결과, '그때 저기'의 '도'를 추구하던 이전의 가치관은 '지금 여기'의 '진실'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갈등을 빚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모해간 반면 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더 보수화되어 갔다. 제도는 변모된 의식을 포용할 여유가 없었고, 지식인들은 변화를 포용하지 못하는 제도의 억압을 답답해했다.  111-112
당시 청나라로부터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던 신문물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길 가다 눈 뜬 장님과도 같은 혼란을 부추겼다. 아예 눈을 감아 외면해버리거나, 눈을 크게 뜨고 휩쓸려버리거나 하는 건 어느 것도 문제의 바른 해결 방법일 수 없다. 눈을 뜬 것이 장님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백배 낫다. 하지만 그것이 겆잡을 수 없는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수반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여기서 자기정체성 또는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자세와 위치의 확보가 요구된다.  115
이러한 가치관의 혼돈 상황을 박지원은 <낭환집서>에서 다른 비유로 이어간다. 임제(林悌)가 술에 취해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하인이 그 사실을 지적하자, 그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길 오른편에서 나를 본 사람은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할 터이고, 길 왼편에서 본 사람은 내가 나막신을 신었다고 할 터이고, 길 왼편에서 본 사람은 내가 나막신을 신었다고 할 터이니 무엇이 문제인가?" 그냥 걸어가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을 짝짝이 신발이, 말 위에 올라타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그 사람의 짝짝이 신발은 달리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당시는 저마다 자기가 본 것만을 진실로 여기는 상황이라고 박지원은 생각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둘 다 틀렸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는데, 그 중간 지점에는 아무도 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 뜬 장님은 길에서 울고 있고, 짝짝이 신을 신은 취객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활보하는 혼란스런 상황이 펼쳐진다.  116
박지원은 <녹천관집서>에서 제자 이서구와의 문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씨의 아들 낙서(洛瑞)가 나이 열여섯인데, 나를 좇아 배운지 여러 해이다. 심령이 맑게 열려 지혜가 구슬 같다. 한번은 자신의 <녹천고(綠天稿)>를 가지고 와 내게 물었다.  "아! 제가 글 지은 지 겨우 몇 해이지만 남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습니다 한 마디 말만 새롭고 한 글자만 이상해도 문득 '옛날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하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낯빛을 발끈하여 '어찌 감히 이 따위를 하는 게야?' 합니다. 아아!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하러 다시 합니까? 원컨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두 손을 이마에 얹고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며 말했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수 있겠구나. 창힐(蒼頡)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어떤 옛날을 모방했던가? 안연(顔淵)은 배우기를 좋아했지만 유독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진실로 옛것을 좋아하는 자로 하여금, 창힐이 글자 만들 때를 생각하면서 안자(顔子)가 비처 펴지 못했던 뜻을 짓게 한다면 글이 비로소 바르게 될 것이다. 네 나이 아직 어리니, 남이 성 내거든 '배움이 넓지 못해 미처 옛것을 살피지 못했습니다.'라고 공정히 사과하거라. 그런데도 힐문하기를 그치지 않고 성냄을 풀지 않거든 조심스레 이렇게 대답하여라. '<서경(書經)>의 은고(殷誥)와 주아(周雅)는 삼대(三代) 적의 당시 글이고, 이사(李斯)와 왕츼지도 진(秦)나라와 진(晋)나라의 시속(時俗) 글씨였습니다'라고 말이다."  122-123
<서경>은 성현이 남긴 경전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건 그 문체의 난삽함이나 필치의 난해함이 아니라, 그 당시엔 백성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문장이요, 편한 글씨였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지금 내가 쓰는 글이 후대에 기림을 받으려면, 난삽한 옛 문체를 흉내 내지 말고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지금 여기의 정서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124
가짜 나를 버리고 참 나로 돌아오는 과정은 결국 '나만의 나'를 추구하는 개성론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이덕무는 흔해빠진 '명숙(明叔)'이란 자를 '무관(懋官)'으로 바꾸면서 개명의 변을 이렇게 적었다.
'내 나이 16세 때 관례를 치르고 명숙을 자(字)로 하였으니, 명숙이란 자로 살아온 것이 12년이다. 하지만 자라는 건 본디 남과 나를 구별할 수 있어야지 서로 뒤섞여서는 안 되고, 하나뿐이어야지 서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 같으면 혼동되고, 혼동되면 기피하게 되고, 기피하게 되면 갈라지게 마련이다. 옛날의 명현은 말할 것도 없고, 지위가 높은 재상, 늘 맞상대하는 벗들, 지위가 낮은 아전이나 백성 등 열 집 사는 마을이나 한 무리가 모인 곳에 명숙이란 자를 가진 사람이 너무도 많다. 한번은 과거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명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길래 불현듯 대답했더니 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거리를 자니는데 명숙이라고 부르는 자가 있어 언뜻 돌아보면 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혹 여러 번 불러도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더니 이번에는 진짜로 나를 부른 것이었다. 대답해도 잘못되고, 대답하지 않아도 또한 잘못되니, 그 어디에 구별하여 서로 뒤섞이지 않음이 있겠는가?'  126-127
남종현(1783~1840)은 자신의 호를 버리겠다고 선언하는 글을 남겼다. <거호서(去號序)>이다. '배움은 나를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알고 모르고는 남에게 달린 것이지만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고는 내게 달린 문제다. 나는 내가 나를 닦아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사람이다. 어찌 세상 사람들처럼 간악하고 위선적이 ㄴ짓을 하여, 속으로는 마음에 부끄러우면서도 남이 알지 못하는 것만 다행으로 여기는 자이겠는가?'
이름을 바꾸는 것이나 이름을 버리는 것이나 모두 '남들의 나'가 아닌 '나만의 나'를 추구하겠다는 다짐에서 나온 행동이다.  129
정약용은 "나는 조선 사람이니, 즐겨 조선의 시를 짓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햇다. 박지원은 또 내 시를 읽은 사람이 내 시에서 조선 사람만의 체취와 풍습을 볼수 없다면 그런 글을 쓰나 마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짜 나를 버리고 참 나를 찾겠다는 추구가, 이 시기 작가들에게 '지금 여기'의 현실에 눈을 돌리게 했다.'
다만 그들은 여전히 소수였고, 기득권을 쥔 계층의 폭력적 억압은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시기 지식인들의 담론에서 유난히 우정의 문제가 강조되는 건 이 때문이다.  131

18,19세기 문인 지식인층의 통변 인식과 그 경로
도(道)가 아닌 진(眞)을, 고(古)가 아닌 금(今)을 , 피(彼)가 아닌 아(我)를 문학이 담아야 할 가치로 내세우는 주장이 보편적 설득력을 얻었다.  134
홍양호(1724~1802)가 <계고당기(稽古堂記)>에서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요, 지금은 후세의 옛날이다. 옛날이 옛날로 되는 건 연대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 만약 옛것만 귀하다 하여 지금 것을 천히 여기는 것은 도리를 아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옛것에 뜻이 있다는 자들은 그 이름만을 사모하여 그 자취에 빠지고 만다. 이는 비유컨대, 음악을 배우는 자가 상고 적의 악기인 쇠북 추려(追蠡)를 잡고 질장구 토고(土鼓)를 두드리면서도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와 주무왕(周武王)의 음악인 무(武)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또 맛을 좋아하는 자가 옛날식으로 땅을 파 술동이를 대신해 술잔질을 하고, 아무 조미도 하지 않은 대갱(大羹)을 마시면서 정작 음식의 간을 맞추는 건 모르는 것과 같다. 이러하면서도 남에게 외쳐 말하기를, 
나는 옛것을 잘 안다, 나는 옛것에 능하다"고 한다면 되겠는가?'  135-136
옛날에 대한 정의를 바꾸면 옛날만 옛날의 아니요, 지금도 옛날이 될 수 있다. '말로 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바로 이것이다.  136
심노숭은<여신생천능(與愼生千能)>에서 '내가 일찍이 세상의 글한다는 자를 본건대, 문득 스스로 '고문이다 고문이다'라고 일컫는다. 지금 사람이 어찌하여 고문을 하겠는가. 옛사람의 이전에도 또한 고문은 있었으니, 옛사람이 어찌 옛것만 좋아하고 지금 것은 미워했겠는가? 만약 지금 사람이 지구의 껍데기 사이에 힘을 쏟아 그 비슷함을 추구하여 절절하게 스스로 좋아하더라도, 비슷함을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더 비슷하기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사람이 어째서 지금 글을 쓰지 않고 옛글을 쓰는가? 이것이 그가 정면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다. 옛사람은 옛사람을 흉내 내지 않았다. 그들이 더 옛날을 흉내 내싿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은 모두 똑같아야 옳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하나도 같지 않고, 다 다르다. 내가 옛글을 배워 옛날과 같아진다면, 거기에는 옛사람의 껍데기만 있고, 비슷함만 있고, 나의 알맹이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나고 옛사람은 옛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옛사람과 같아질 이유가 없고, 같아져서도 안 된다.
박지원은 <녹천관집서>에서 옛날과 비슷해지려고만 드는 풍조를 매섭게 질타한 뒤, "대저 어찌 비슷함을 구하는가?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건 진짜가 아닌 것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비슷해지려고 하지 말아라. 비슷한 것 속에 나는 없다. 겉모습만 같은 건 같은 것이 아니다. 겉모습은 전혀 달라도 알맹이가 같아야 한다.  137-138
말과 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다. 중요한 건 옛날이냐 지금이냐의 구분이 아니라, 유용한가 아닌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이 판단과 자각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옛것을 모방해선 안 된다면 새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옛것과 다르면서도 사실 그 알맹이는 같은 '새것'의 창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41
도로 눈을 감으라는 처방은 눈을 뜬 맹인에게 계속 장님으로 살라는 주문이 아니다. 이 우화의 핵심은 길 가는 도중에 눈을 뜨는 바람에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맹인이 비극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놓여 있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눈을 뜬 기쁨보다 눈을 뜸으로써 제집을 찾을 수 없게 된 비극적 현실에 있다. 지벵 있다가 눈이 떠졌다면 그가 길을 잃고 울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의 눈이 길가는 도중에 문득 떠진 데 있다. 눈을 뜨는 순간 세계는 그에게 혼돈 그 자체였다. 방향도 좌표도 없이, 한 걸음도 더 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니 도로 눈을 감으라는 처방은 분수를 알아 소경 주제로 살라는 얘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방향과 좌표를 되찾은 뒤에 눈을 다시 뜨라는 주문이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눈을 뜨는 건 더 큰 비극의 시작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한번 떠진 눈은 다시 감기지 않느다. 하지만 좌표를 상실한 맹인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주문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가 정신을 차리려 들면 들수록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 눈을 감으라는 것이 그에게 구시대에 안주하라는 요구일수 없다.
당시 청나라로부터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던 신문물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길 가다 눈을 뜬 장님과도 같은 혼란을 부추겼다. 아예 눈을 감아 외면해버리거나, 눈을 뜨고 휩쓸려버리거나 하는 건 어느 것도 문제의 바른 해결일 수 없다. 눈을 뜬 것이 장님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백배 낫다. 하지만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수반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여기서 자기 정체성 또는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자세와 위치의 확보가 요구된다. 그 위치를 위의 이야기에서는 '본분'이란 말로 표현했고, '도로 눈을 감으라'는 방법을 제시했던 것이다. 
도로 눈을 감으라는 건 주체성을 회복하라는 말이다. 남 따라하지 말고 나름대로 하라는 주문이요, 그대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요구다. 이 시기의 글 속에서 비대해진 자의식 앞에 막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고뇌하는 자아의 형상이 자주 보인다.  144



Posted by WN1
,

개인적으로 저자의 책은 <철학, 삶을 만나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자들과 그 내용들에 대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신선함을 느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책을 모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책을 모두 읽고 인터넷 서점에서 저자의 도서들을 모두 검색해 보았고, 도서관에서도 검색을 해 보았다.
인기가 있는지 대출중인 책들도 있었다.
철학자의 철학적 해설서가 대출 중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보기 쉽지는 않다. 그런면에서 인기가 있나보다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우연하게 저자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첫 느낌은 생각하던 것 보다는 젊어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은 자유로움 이었다. 
젊은 진보적인 철학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강의 스타일 역시 첫인상처럼 이었다.
신선하고 깔끔했으며 말의 힘이 논리적이며 설득적인데 크게 치우침이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읽은 책은 <상처 받지 않을 권리>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어 그의 해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것인지에 대해 언급해 주고 있다. 이 책 역시 즐겁게 읽었다.

이후로 <철학vs철학>이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도 발췌독하기도 하였다. 이 책들도 앞으로 정독을 하려 생각중이다.

이 책은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또한 최근에 나온 책중 하나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권의 책들보다는 가볍에 접근하고 있었다.
물론 해설서에 가까운 책들이기에 철학책으로 보기에는 모두 가벼운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본 책들 중에서만 보면 가장 가벼운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스타일은 그대로 묻어났다.
새로운접근방법이라든지 가볍에 읽으면서도 생각을 자극해 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48명의 철학자가 언급되면서 그들에 대한 철학중에 한 부분을 발췌하는 내용이기에 어렵지 않다. 그리고 다양한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내용들이 철학자들의 주된 내용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조금씩은 더 근접해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이 된다.


머리말
저는 책을 읽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책을 집필하는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책이란 무엇ㅇ니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책이란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점에 들러 새롭게 출간된 책들을 뒤적이가닥, 제 마음을 동요시키는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책들이 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소수의 책만이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이런 경우 누가 저의 마음을 엿보기라도 하듯이 저는 서둘러 책을 구입하여 서점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장 한 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곤 합니다. 
삶의 고뇌가 쌓인 민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고 했던가요? 페이지 마다 절절하게 아로새겨진 알지 못하는 저자의 고뇌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제 마음에 젖어듭니다 저자는 1,000여 년 전의 사람일 때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저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나 아주 먼곳에 살고 있는 사람일 때도 있습니다. 엄청난 시공간을 넘어 책이란 매체를 통해서 저자가 저와 접속되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5-6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쉽게 풀어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누구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불행히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가 페르소나(persona)라면, 후자는 맨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14-15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니체... 그는 갇혀 있지만 갇혀 있는 줄 모르는 이웃들, 혹은 갇힌 줄 알지만 그것에 익숙해진 이웃들의 정신을 깨우는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철학자이다.  21
세계관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세계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22
니체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가 순간의 굴욕과 비겁을 선택할리는 없다.
들뢰즈(Gilles Deleuze retour 1925-1995)는 영원회귀로 응축되는 니체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윤리적 강령으로 해석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 -<차이와 반복>  25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유롭고 싶은가?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6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 라캉 <에크리>
우리는 금지된 것만 욕망한다.  30
라캉은 정신분석학의 사명을 '세상에 태어날 때 주체는 타자(the other)로부터 욕망되는 자로서건 아니면 욕망되지 않는 자로서건 간에 타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잇어야만 한다. 정신분석의 방법을 고안함을써 프로이트가 밝인 진리의 본성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 <에크리>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당신이 소망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과거 타자가 욕망했던 것, 혹은 금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31

페르소나와 맨얼굴 - 에필테토스 <엥케이리디온>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 로마 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햇다고 한다. 바로 이 가면이 페르소나이다.  33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맨얼굴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의 맨 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맨얼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34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잇는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 - <엥케이리디온>  38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잊지 말자! 맨얼굴이 없다면, 페르소나를 쓰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에게 맨열굴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맨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불핸히도 맨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39

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 - 이지 <분서>
진정한 인문학자는 일체의 허영과 가식을 걷어내고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을 볼 수있는 아이와 가은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1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스비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 <속분서(續焚書)> 성교소인(聖敎小引)  43
이지의 글을 읽다 보면 니체를 떠올리게 된다.
니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대목, 즉 정신의 자기 변형을 다루고 있느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우리 정신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는 '낙타'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일체의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딸는 정신이다. 마치 낙타가 주인이 등에 짐을 올리면 아무런 저항 없이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사자'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낙타와 달리 사자의 등에는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어떤 짐도 올릴 수가 없다. 짐을 올리려면 사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일체의 억압을 부정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 즉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정신이다.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ㅎ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44

자유인의 당당한 삶 - 임제 <임제어록>
죽은 아이 때문에, 그리고 미래의 부와 명성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과연 행복이 가능할까?
스님 임제(臨濟 ?-867)sms '이미 일어난 생각은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그대들이 10년 동안 행각(行脚)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불법에는 복잡한 것이 없다. 단지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 <임제어록>  47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 <임제어록>  50

쇄락의 경지 - 이통 <연평답문>
'일찍이 저는 '사태를 만났을 때 고체(固滯)가 조금도 없다면, 곧 쇄락(灑落)의 경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 마음이 확연히 크게 공정해져 남과 나라는 편벽되거나 치우친 생각이 없게 되면, 아마도 도리에 대해 하나로 꿰뚫게 될 것입니다. 가령 일에 당해 꿰뚫지 못하여 마음속에 편벽되거나 치우친 바를 조금이라고 벗어나지 못한다면, 곧 고체와 관련된 것이니 모두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 <연평답문>  54
누군가와 관계할 때, 충돌과 대립으로 힘든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잇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잇따.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이토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얼음처럼 고착된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까? 공정함을 잃어버리고 남과 나를 구별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인가?
우리가 할 수있는 최선은 부단히 자신의 마음이 좁아져 있지 않은지 반성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과 삶은 이전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56

공이란 무엇인가 - 나가르주나 <중론>
모든 집착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부재하게 될 때 발생한다.  57
불교는 이런 우리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空)의 지혜를 알려준다. 공이란 순야타라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어로 옮긴 말이다. 불교에서는 공을 깨닫게 된다면, 모든 집착을 버리고 외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경지를 진여(眞如 tathata)라고 표현한다.  58
'내가 없는데 어찌 나의 것이 있을 것인가. 나와 나의 소유가 없으므로 그는 나라는 의식도 없고 소유하려는 의식도 없는 자가 된다 ....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라는 새악이 없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집착은 없어질 것이다.' - <중론>
'나'는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불변하는 자아를 말한다.  61
나이 들어 주름진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젊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주름을 보면서 자신이 마주쳤던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는 삶, 그것은 젊고 탱탱한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62

해탈의 지혜 - 혜능 <육조단경>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집착을 낳는 경우가 많다. 집착은 항상 부재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63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든 집착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닦느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불교가 강조했던 자비(慈悲)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집착은 우리 자신을 고통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고통에 빠진 타인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68

습관의 집요함 - 라베송 <습관에 대하여>
'만들어진 습관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있다. 변화가 지나가버린 것이라면, 습관은 그것을 낳은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다. 게다가 습관은 그것이 습관인 한에서 그리고 그 본질 자체에 의해 그것을 낳는 변화에만 관계될 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그런 변화가 존재하지 않아도 존속하는 것이다 ... 바로 이것에 의해 습관이냐 아니냐가 가려진다. 습관은 따라서 단지 어떤 상태일 뿐만 아니라 어떤 경향이자 어떤 능력이기도 하다.' - <습관에 대하여>  76
우리의 동일성(identity)을 규정하는 제일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80

생각의 발생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다.  82-83

관점주의의 진실 -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 되어 잇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있음에서 함으로>  93
관찰자로서 내가 존재하는 한 내가 보는 세계도 존재하는 것이고, 관찰자로서 내 친구가 존재하는 한 그가 보는 세계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세계일까?  95

언어 너머의 맥락 -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나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 철학적 탐구
우리는 '나느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적이 있을까?  100
'어떤 낱말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추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낱말의 적용을 주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 <철학적 탐구>  101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04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하다 - 맹자 <맹자>
'사람의 일을 모두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106
'천명'이란 무엇이며, 나아가 그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107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난 뒤, 조용히 그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  110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메노이메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12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 - 칸트 <실천이성비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 사실 '자유=책임'의 논리는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121
칸트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인간이 자유로울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햇던 철학자이다.
'이성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순수하고 실천적인 법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 다시 말해 자유의 자율을 표현한다.' - <실천이성비판>  122
어떤 행위가 사회적 통념에 맞느냐 그르냐가 쟁점이 아니라, 행위자가 자율적인 선택을 했느냐 타율적 선택을 했느냐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123
칸트는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고 부르고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타율적인 사물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124

집단의 조화로부터 주체의 책임을 -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타자를 자신과 얼굴을 맞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자로 인식하는 집단성이다. - <시간과 타자>  128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 사르트르 <존재와 무>
상대바이 현재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가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를 버리는 것도 역시 그의 자유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라고 햇던 것이다.  138

타인에 대한 배려 - 공자 <논어>
자공이 물었다. '평생동안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 <논어> 위령공편  142

사유의 의무 -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라혀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천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으모가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잇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 <예루살렘 아이히만>  154
아렌트는 더불 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155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156

기쁨의 윤리학 - 스피노자 <에티카>
삶에서 만날 수박에 없는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현장에서 기쁨과 유쾌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162

선물의 가능성 - 데리다 <주어진 시간>
'선물이 주어지는 조건으로서의 이런 '망각'은 선물을 주는 쪽에서만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는 쪽에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는 주체에게 선물을 되갚아지거나 혹은 기억에 남겨지거나, 아니면 희생의 기호, 다시 말해 상징적인 것 일반으로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상징은 즉시 우리를 또 다른 상환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은 주는 쪽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선물로 드러나지도, 선물로 의미되지도 않아야만 한다. - <주어진 시간>  166

사랑의 지혜 - 장자 <장자>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타자란 우선 나와는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소통(疏通)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소통이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트다'라는 뜻의 '소(疏)'와 '연결하다'는 뜻의 '통(通)'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통이란 개념은 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통은 구체적으로 막혔던 것을 터서 물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무로가 같은 것이 흐를 수 없다.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으로 선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비움'이나 '잊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워야만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타자에 대한 선입견은 나와 타자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는 것, 그래서 타자와 연골되기 위해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타자와의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 자신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즉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비우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194-195

웃음이 가진 혁명성 - 베르그송 <웃음>
'유연한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생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기성적이 ㄴ것 그리고 집중에 반대되는 방심, 요약하자면 자유스러운 활동성에 대립되는 자동주의, 이것이 결국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고 하는 결점이다. - <웃음>  219
누군가 우리의 행동을 보고 웃는 다면, 분명 그것은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 우리는 자신의 삶이 기계적이고 무반성적으로 영위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상대방의 웃음을 통해 유연하고 활동적인 삶을 회복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220

운명은 존재하는가 - 왕충 <논형>
낚싯줄을 던지지 않느다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불확실한 결과가 충분히 예견될지라도 과감하게 낚싯줄을 던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잡으려고 했던 물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오만할 일도 아니고, 잡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두 일을 하고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려라!  259

미꾸라지의 즐거움 - 왕간 <왕심재전집>
'도를 얻으려는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생선 가게에서 그는 우연히 드렁허리가 잔뜩 들어있는 대야를 보았다. 드렁허리들은 서로 얽히고 눌려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보았다. 미꾸라지는 드렁허리들 속에서 나와 아래로 위로, 혹은 좌측으로 우측으로, 혹은 앞으로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신묘한 용과 같았다. 그러자 드렁허리들은 몸을 움직이고 기운이 통해서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되었다. - <왕심재전집> 추선설  261
'드렁허리들의 몸을 움직이도록 하고 그들의 기운을 소통시키고 그들의 삶의 의지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삶의 의지를 회복시킨 것은 모두 미꾸라지의 공이었다. 미꾸라지가 즐겁게 움직인 이유는 드렁허리들을 동정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드렁허리들의 보답을 바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미꾸라지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그렇게 햇을 뿐이다.' - <왕심재전집> 추선설
그저 미꾸라지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싶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소통과 공감은 동정심이나 혹은 일체의 보답 의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삶을 가장 즐겁게 영위할 때 소통과 공감은 기대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263
지금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만으로 소통과 공감의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의식적인 노력은 어느 순간 우리를 지치게 하고 무디게 만들 수 있다. 왕간이 걱정했던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지속 가능한 소통과 공감의 세계를 꿈꾸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삶과 자신의 내면을 더 치열하게 성찰해야 한다. 타인과 공감하며 공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에 부합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까지 말이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세계에 삶의 의지를 가져다주는 즐거운 미꾸라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64-265

결혼은 미친 짓이다 - 헤겔 <법철학>
결혼을 했든 아이를 낳았든 간에 상대방의 자유를 긍정하지 않늗다면, 사랑은 그만큼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서 이성복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너'가 자유로운 결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까지 말이다. 이런 기다림을 유지한다면, 다시 말해 사랑하는 타자의 자유를 긍정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항상 푸르게 유지될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295

우발성의 존재를 위하여 - 들뢰즈 <천 개의 고원>
'사랑'은 '마주침' 이전에 결정되어 있는 숙명적인, 혹은 필엱거인 것일까? 아니면 사랑은 마주침이 일어난 뒤에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물음은 철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추상화될 수 있다. '의미가 마주침에 선행하는가? 아니면 의미는 마주침 뒤에 오는가?' 혹은 다음과 같이 풀 수도 있다. '필연성(necessity)이 우선적인가? 아니면 우발성(contingency)이 우선적인가?'  298
사랑을 숙명적이라고 본 다는 것은 나무의 이미지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10년 동안 매주 토요일 떠나간 연인을 기다릴 수 잇는 아름드리 고목과도 같은 삶,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오지 않더라도, 아니 오기 전에 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은 나의 사랑이야.' 반면 사랑을 우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들뢰즈가 제안햇던 리좀의 이미지를 딸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여행을 계속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서, 자신의 기쁨이 지속되는 한 그 사람과의 마주침을 끈덕지게 될 것이다. 물론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한때 기쁨을 주었던 그 사람에게 결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300-301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서 -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하위징아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쁜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잇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가 두 가지 의미로, 혹은 두 가지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놀이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 자체로 향유되고 긍정되는 현재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경우처럼 미래를 위해 소비되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현재이다. 우리에게는 첫 번째 현재, 즉 긍정적인 현재가 필요하다. 오직 이런 현재로 충만한 삶만이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303-304

진정한 진보란 무엇일까-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진정한 진보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만이 아니라 앞으로 여기에 살게 될 후손들에 대한 관심이 있느냐의 여부로 결정될 수 있다.
'인간이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며, 따라서 변화된 인간은 다른 환경과 변화된 교육의 산물이라는 유물론적 학설은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이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설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두 가지 부분-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은 사회를 초월해 있다.-으로 나눌 수밖에 없게 된다. -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316


에필로그
독서라는 여행을 위하여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행을 제대로 다녀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일상생활이 바빠서인지, 그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이 여행지를 다녀온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제대로 된 여행일까?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여행으로부터의 배움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음식도 그들의 행동도 모두 낯설게 느껴질 테지만, 애정을 갖고 그들과 살을 부대끼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그들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행으로부터 배우는 두 번째 배움은 첫 번째 것보다 더 심오하다.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320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 가지 차이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여행을 가는 일과 유사하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 이중적인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과 저자의 속내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차츰 책과 저자에게 충분히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차이에 대한 감각을 얻게 될 것이다.  321
진정으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독서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삶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배움의 경험을 제공하는 독서도 있을 수 있다.
영민하고 섬세한 철학자 들뢰즈는, 두 가지 종류의 독서법이 있다고 전한다.
첫 번째 독서법을 '우선 책이란 속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자라고 생각하고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든가 혹은 썩고 타락한 사람들이라면 어휘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는 책은 전번 상자에 담긴 상자, 혹은 그것을 담는 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석을 담고, 해석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결국 책에 대한 책을 쓰게 되고, 같은 식으로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 <대담>
첫 번째 독서법은 놀이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은 책을 어휘나 의미를 찾는 것과는 무관한 하나의 기계(machine)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작용을 하는가, 어떻게 작용을 하는가?" 하느 것만이 문제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 만일 작용이 없으면, 감응이 없으면, 그럼 다른 책을 집어 들면 된다. 바로 이것이 강렬한 독서이다. 무엇인가 발생하든가 아니면 아니든가, 그뿐이다. 아무런 설명할 것도, 이해할 것도, 해석할 것도 없다.' - <대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 좋다는 말을 듣고 그곳 명승지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안달루시아와 감응하고 있는가? 만약 안달루시아가 우리에게 작용을 한다면, 우리는 그곳에 머물면 된다. 반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안달루시아가 어떤 작용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안달루시아로부터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안달루시아를 갔어도 가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삶을 흔들어버리는 책이 있다. 나의 허영을 부수고 내 맨얼굴을 보도록 만드는 책이다. 혹은 내가 고뇌하는 것의 실체를 때로는 절망적으로, 때로는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책일 것이다. 이런 책을 읽을때 우리는 노동하는 독서가 아니라 감응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 '강렬한 독서'법이다.  322-325

Posted by WN1
,


'<사기>의 가치는 방대한 역사기록이나 최초의 정사라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거의 공백상태가 되어 버린 중국 고대사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계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선진(先秦) 학술의 윤곽을 밝히는 데도 필수 도서로 취급되고 있다. 
한편 객관적인 서술이 생명인 역사서에서 진실을 왜곡하지 앟으면서도 진한 감정을 투영시킨 문학적 서술.
현실의 부정부채를 과감히 비판하고 정의와 의리를 찬송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역사서는 사마천 이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외에도 사마천은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되새기며 인류의 보편적 과제인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탐구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기>를 읽으며 인생의 의미, 처세의 태도, 인간간계 등에 대해 깊이 사색하게 된다.
단 한 권의 책이 문학, 사학, 철학을 포괄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속에서 강자의 부당한 핍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그와 동시에 약자에 대한 인류애적 동정심을 진하게 표현했다는 점은 경이롭다. 
사마천의 사기가 2,000여 년 전의 중국 역사책이지만, 인류 전체의 고전(古典)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책의 머리말에 있는 표현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이루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책이며, 꼭 읽어보지는 않았더라도 이름을 여러번 들었을 책이다.
역사고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면서, 저자의 표현처럼 문학 사학 철학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책이기에 이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사기 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에서처럼 해설서로 읽어 나가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앞 부분은 <사기 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의 앞 부분의 설명과 중첩되기에 읽지 않아도 될 정도 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이 먼저 출간되었으니 <사기 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를 읽지 않아도 된다는 표현을 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아무래도 뒤에 출간된 책이기에 해설이 추가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나처럼 출간순서에 역행하여 읽는 사람이라면 이 책 <사기 본기>의 앞 부분 해설은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책은 본기를 다루면서 본기에서 우리가 부가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더 이해할 수 있는 해설을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라는 코너로 첨부해 놓았다.
그렇기에 좀 딱딱할 수 있는 본기에 도움을 준다. 

간단하게 본기를 살피고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다.


본기 자체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른 저자의 본기를 더 읽을 계획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밑줄 긋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해설과 함께 이전에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재미있게 읽어 나갔다. 인상적인 사람들과 그들의 업적들을 되새기고 저자의 해설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얻어가면서 ...

<사기>라는 책을 읽어가면서 서로 다른 편역자들의 책을 통해 사마천이란 한 사람에 대해서 점점 가까워 져 감에 따라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편역자들도 사마천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추측한 것이긴 하지만 설득적인 내용들도 있고 조금은 덜 설득적이지 않은 내용들도 있지만 ...
사마천은 애처로운 시절을 살아간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의 판단 착오를 일으켰을 수도 있고 눈치를 너무 본 것일 수도 있는 삶이다.
어쩌면 억울하여 더 잘보이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을 어필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사마천을 더 알아가면서 사기가 아닌 사마천이란 사람에 대해 더 연구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Posted by WN1
,

살림에서 고전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 안내서이다. 'e시대의 절대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고전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판한 책이다.
그렇기에 책은 읽기가 편하다. 
개인적으로 1부의 내용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사기를 접하게 된 계기로 시작하여 사기가 어떠한 도움을 주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에 대해 그리고 사기 전체 130편의 형식에 대한 설명들이 쉽지 않은 사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사기의 형식을 설명하는 파트는 열전 70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것 같다.
시대적인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기에 전후 문맥을 모두 비교해 보면서 읽은 몇개의 장 이외에는 연결이 잘 되지 못하였는데, 설명을 보면서 시대적인 구분과 열전의 종류들을 구분해 보면서 좀더 사기에 다가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선정했을 때 총 3부의 구성 중에 1부의 부분만을 보려 했다. 
사기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명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2부인 본문 발췌 부분도 읽고 싶어 졌다. 그리고 마지막 3부의 사마천 연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사기를 읽으면서 좀 난해 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사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고전이 고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고, 깊이도 있다는 점을 알게해준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좀 더 독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을 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해설. 
그것이 1부에 있기에 분명 미숙한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해설서에 따라 여러 챕터를 나누어서 읽어본다면 덜 힘들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사기를 접했을때의 생각이 난다. 무작정 덥벼들어 고행하듯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렇게라도 끝까지 읽어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중도에 덥어버렸다면 다시금 사기를 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이므로 이제 우리 입장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째, 현실적인 중국인의 코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문화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셋째, 중국인의 통일 관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33-43
(사실 이부분은 밑줄 긋는게 큰 의미가 없다 11페이지 전체를 읽어야 좋을것이라 생각든다)

'항우 휘하에서도 계포는 용맹으로써 이름을 날렸으니 장사이다. 그런데도 구차하게 노예가 되다니 무슨 망신인가. 그러나 계포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기에 그렇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태연했다. 언젠가는 실력을 발휘할 날이 있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제국의 명장이 되었다. 생각이 있는 자는 함부로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찮은 인간들이 감상에 젖어 자살하곤 하는데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몰려 뭘 더 해보려고 해도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유심히 읽어보면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49

<사기>를 읽으면 실패한 인생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띕니다. 역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데 <사기>에는 왜 이렇게 실패한 인생이 많을까요? 사마천은 세속덕인 성공과 실패에 착안하여 인물을 선별한 것이 아닙니다. 설령 실패했다 하더라도 실패한 인생으로부터 역사적 의미를 발굴하여 그들이 현실에서 당한 고난과 고통을 후세의 명예로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54


알고 보면 간단한 <사기>의 형식
본기(本紀)
우선 12편의 '본기(本紀)'를 설정하여 황제(黃帝)로부터 한무제까지 12명의 제왕을 기준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연대별로 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편년체로 이루어진 공자의 <춘추>형식을 인물 위주로 개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기'는 무슨 뜻일까요? 본(本)은 근본, 기(紀)는 기(記)의 뜻으로 기록. 그러므로 본기는 '근본이 되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본기'에는 정책의 반포 및 개정, 관리의 임명과 파면, 정잰이나 자연 재해, 외교 등의 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건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와 관련된 결정권은 항상 항제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서술하면서 연관된 국가 대사를 언급하면 가장 근본적인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본기는 시대순으로 배열된 것입니다. 
사기는 통사이고 '본기'는 기본적으로 편년체 형식이므로 중간에 연도가 비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기> 12본기에는 진본기, 항우본기, 여태후본기 도 있습니다. 물론 당시 천하의 권세가 항우와 여태후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26-127

표(表)와 서(書)
10개의 표(表)를 만들었습니다. 태사공자서에서 그는 '같은 시대인데도 연도 표기가 달라서 연대를 명료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10표를 짓는다.
예를들어 춘추전국시대 각 제후국들은 제각기 연도를 기록했기 때문에 상호 공유하는 사건의 흐름이나 인물의 행적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각 제후국의 연ㄷ를 통합하여 표로 만들어 주면 언제 무슨 대사건이 발생했는지 훑어만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사마천이 표를 만든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표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본기나 세가 혹은 열전 등과 상호 보완되도록 기획하였습니다.  130
8개의 서(書)를 마련하여 국가의 중요한 제도를 테마별로 정리하였습니다.  133

세가(世家)
세대 세(世), 집 가(家). 대대손손 이어지는 가문이란 뜻입니다.
북극성과 바퀴 축은 '12 본기'에 등장했던 황제 혹은 패왕을 말하며, 28개 별자리와 30개 바퀴살은 그 황제나 패왕을 보필했던 제후 왕, 혹은 공신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34

열전(列傳)
전형적인 인물을 통하여 시대상을 보여주는 참신한 역사 기술 형태입니다.
열(列)은 열거하다, 전(傳)은 전하다. 그러므로 '열거하여 전한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열거하여 누구에게 전한다는 것일까요? 의로운 사람, 탁월한 사람, 기회를 포착하여 대성한 사람들의 행적을 열거하여 후세에 전한다는 뜻입니다.

백이, 숙제, 노중련, 굴원과 같은 인물은 의로운 사라에 속합니다. 
관중, 범저, 여불위, 이사와 같은 인물은 기회를 포착하여 대성한 사람에 속합니다.
손자, 오자서, 소진, 장의, 인상여, 유경과 같은 인물은 물론 탁월한 인물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잔혹한 혹리(酷吏)나 곡학아세의 공손홍, 그리고 호모에 가까운 영행 집단, 조폭에 가까운 유협(遊俠)집단, 코미디언에 가까운 골계(滑稽)집단, 심지어 점쟁이 군상들은 과연 어디에 속할까요? 그러므로 '열전'의 인물은 윤리 도덕적 판단으로 선정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역사적 의미를 기준으로 기록했던 것입니다. 

열전의 인물은 누구 하나라도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 점을 파악해야 <사기>를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전'이 '본기'나 '세가'보다 훨씬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전'에 기록된 인물의 신분을 극히 다양합니다. '본기'에 기록된 제왕, '세가'에 기록된 후작들을 제외한 인물 중에 의롭거나 탁월하거나 대성한 사람들이 '열전'에 수록되엇ㅅ브니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활약했던 기록이므로 '본기'나 '세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흥미진진한 것입니다.  139-141

열전 70편의 배열 원칙, 시대순 밑 역사적 사회적 의미
연대를 기준으로 하되 인물의 성격이나 사회적 의미를 참고하여 배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연대 별로 7대 범주로 나누고 그 의미를 약술해 보기로 하지요.

1. 백이열전,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사마양저열전. 손자오기열전, 오자서열전, 중니제자열전(7편)
상고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인물입니다. '백이열전'을 첫머리로 장식한 것은 심오한 뜻이 담겨 있지요. '열전'의 작성 기준과 의미를 담았으므로 요즘으로 말하면 책 첫머리의 '일러두기'라 봐도 무방합니다. 관중과 안영은 법가, 노자는 도가, 사마양저와 손자 그리고 오기는 병법가로서 춘추시대의 탁원한 인물들입니다. 오자서는 춘추시대의 명재상이며, 중니(공자)의 제자들은 춘추시대의 유가 학파들이죠.

2. 상군열전, 소진열전, 장의열전, 저리자감무열전, 양후열전, 백기왕전열전, 맹자순경열전, 맹상군열전, 평원군우경열전, 위공자열전, 춘신군열전, 범저채택열전, 악의열전, 염파인상여열전, 전단열전, 노중련추양열전, 굴원가생열전(17편)
전국시대 인물들입니다. 전국시대의 국제정세는 진(秦)나라가 주도했으므로 진나라 인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상군(=상앙)은 진나라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수훈을 세웠고, 소진은 합종 전략, 장의는 연횡 전략을 각각 구사했던 바 모두 진나라가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저리자, 감무, 양후, 백기, 왕전 등은 모두 진나라의 명재상이거나 맹장ㄷㄹ로서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진나라를 제외한 함곡관 동편의 여섯 제후국 인물들입니다.
맹자와 순자(=순경)는 전국시대 유가 학파의 계승자 겸 집대성자였으며, 맹상군, 평원군, 위공자(=신릉군), 춘신군은 모두 진나라에 대항했던 각국의 귀공자들이었습니다. 범저와 채택은 객경(客卿)으로서 진나라 귀족 양후를 축출하고 대성했으므로 그 뒤에 수록했습니다. 악의는 연나라 명장이며, 염파와 인상여는 조나라 명장 및 명재상이었고, 전단은 제나라 명장으로 그 나라의 흥망성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걸출한 인물이었습니다. 노중련과 굴원은 의로운 인물이었는데, 노중련열전과 추양과 가생을 더불어 기록한 이유는 비슷한 계열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3. 여불위열전, 자객열전, 이사열전, 몽염열전(4편)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이 임박했던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격변과 관련되 인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상으로서 진시황제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여불위, 진시황제를 암살하려 했던 형가의 행적, 진시황제의 천하통일과 통일후 일련의 역사적 조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이사, 진 제국의 건설 및 만리장성 축조와 관련되 몽염 등을 차례대로 기록하였습니다. 

4. 장이진여열전, 위표팽월열전, 경포열전, 회음후열전, 한신노관열전, 전담열전(6편)
진 제국이 무너지고 항우와 유방의 초한(楚漢)쟁패가 시작 되었습니다. 항우와 유방은 이미 '본기'에서 다루었으므로 이 시기에 활약했던 전국시대 각 제후구그이 후예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조나라, 위표는 전국시대 위나라, 한신은 전국시대 한나라, 노관은 전국시대 연나라, 전담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후예들로 각기 연고지이ㅔ서 활약하였습니다. 한편 팽월과 경포 그리고 회음후는 모두 유방을 도와 한 제국 건립에 공한한 비유씨(非劉氏) 제후 왕들이며 모두 반란죄로 처형되었습니다. 이상 6편의 열전을 초한쟁패의 혼란기에 활약했던 풍운아들입니다.
 
5. 번역등관열전, 장승상열전, 역생육가열전, 부근괴성열전, 유경숙손통열전, 꼐포난포열전(6편)
한고조 유방이 한 제국을 건립할 때 음양으로 수훈을 세웠던 공신들이며 한고조에 이어 여태후 시절까지 충성을 다하여 한 제국의 유지 및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입니다.

6. 원앙조착열전, 장석지풍당열전, 만서장숙열전, 전숙열전, 편작창공열전, 오왕비열전, 위기무안후열전(7편)
한 제국 효문제와 효경제 시절의 문신과 무장들을 다루었습니다. 

7. 한장유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위장군표기열전, 평진후주보열전, / 남월열전, 동월열전, 조선열전, 서남이열전, 사마상여열전, 회남형산열전, / 순리열전, 급정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 대원열전, 유협열전, 영행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 화식열전(22편) 
한무제 시절의 다양한 인물을 기록하였습니다. 위 22편을 인물의 성격이나 행적으로 다시 세분하면 대략 5개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장유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위장군표기열전, 평진후주보열전 등 5편은 북방 기마민족 흉노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남월열전, 동월열전, 조선열전, 서남이열전, 사마상여열전, 회남형산열전 등 6편은 흉노를 제외한 주변 이민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순리열전, 급정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등 4편은 한무제 시기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인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월열전, 유협열전, 영행열전, 골계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등 6편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인물 중심으로 엮은 것입니다. 마지막 화식열전은 한무제 시기를 중점적으로 서술했지만 경제를 중심축으로 하여 사마천 시대까지의 중국경제 문제를 인물에 기대어 서술한 내용입니다.  142-146

열전의 표제 기준
열전의 표제는 일정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관직으로, 작위로, 봉읍지로, 호치으로, 성명으로, 성씨만으로, 시호로, 생(生)이나 자(子)는 '선생님'의 뜻으로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관직, 작위, 봉읍지, 시호 등으로 명명한 것은 일종의 예우며, 생(生)이나 자(子)로 불러주는 것도 일종의 존칭이라 하겠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사마천은 그대로 채용했을 것입니다.  147-148

열전의 종류 : 전전, 합전, 유전, 부전

전전(專傳) : 전적으로 한 명만을 기록
'전전'이란 오로지 한 명만을 전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오자서열전, 상군열전, 소진열전, 위공자열전, 전단열전, 여불위열전, 회음후열전, 한장유열전, 사마상여열전 등이 그러하지요.

합전(合傳) : 둘 이상을 대등하게 기록
'합전'이란 두 사람 이상을 대등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손자오기열전, 중니제자열전, 저리자감무열전, 백기왕전열전, 맹자순경열전, 평원군우경열전, 범저채택열전, 염파인상여열전, 노중련추양열전, 굴원가생열전, 정이진여열전, 위표팽월열전, 한신노관열전, 번역육가열전, 부근괴성열전, 유경숙손통열전, 계포난포열전, 원앙조착열전, 장석지풍당열전, 만석군장숙열전, 편작창공열전, 위기무안후열전, 위장군표기열전, 평진후주보열전, 회남형산열전, 급정열전 등이 그러하죠. 
표제부터 두 명 이상의 인물 성씨 혹은 성명을 나열했기 때문에 첫눈에 '합전'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합전'으로 처리했을까요? 
대략 다음 4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합전의 4가지 이유
첫째, 학술적으로 연관된 인물.
노자한비열전, 손자오기열전, 중니제자열전, 맹자순경열전, 편작창공열전 등이 그러합니다. 한비자는 법가이나 그 원류는 도가의 노자입니다. 손무, 손빈, 오기는 모두 병법가입니다. 공자의 제잗르은 당연히 공자를 원조로 삼았습니다. 맹자와 순자는 전국시대 유가학파의 거벽입니다 편작과 창공은 명의들입니다. 이들의 학문은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으므로 합쳐서 서술한 것이죠. 
비슷하거나 관련된 학술 인물을 합쳐서 서술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노자한비열전처럼 원류로부터 영향까지 그 맥락을 살필 수도 있고, 중니제자열전처럼 해당학파 제자들의 활약상을 통하여 유가사상이 중국의 정치 및 사회이ㅔ서 주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업적이 비슷한 인물. 
관안열전, 백기왕전열전, 번역등관열전, 역생육가열전, 유경숙손통열전, 장석지풍당열전, 위장군표기열전 등이 그러합니다. 관중과 안영은 제나라 명신들로 진시황제의 천하 통일에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 등은 전투로 유방을 보좌하여 한 제국 건립에 공한하였습니다. 역이기, 육가는 변사로서 정적을 설복하거나 정책을 제시항 한 제국의 건립 및 안정에 공헌하였습니다. 유경은 관중 땅에 도읍지를 정하는 문제 및 흉노와의 선린 정책을 건의하였고, 숙손통은 조정과 종묘의 예법을 마련한 점에서 모두 한 제국의 안정에 공헌하였습니다. 정석지와 풍당은 한문제에게 직언하며 공정한 법 집행과 사심 없는 행정으로 청명한 정치를 일구었고, 위청과 곽거병은 한무제의 친척으로 흉노와의 전투에서 수훈을 세웠습니다. 이렇듯 업적이 비슷한 인물을 합쳐서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처리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업적이 비슷하므로 중복된 사건은 간명하게 처리하면서 편폭까지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해당 시기에 어떤 인재와 어떤 정책이 주효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삶이 비슷한 인물. 
범저채택열전, 염파인상여열전, 위표팽월열전 한신노관열전, 회남형산열전, 장이진여열전, 원앙조착열전, 위기무안후열전, 평진후주보열전 등이 그러합니다. 범저와 채택은 모두 변사로서 진나라에서 대성했다가 적절한 시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산뜻하게 물러났습니다. 염파와 인상여는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며 조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위표와 팽월은 초한상쟁 시절에 전국시대 위(魏)나라 지역을 근거지로 항우와 대항하여 한 제국의 건립에 간접적으로 공헌했습니다. 한왕 신과 노관은 흉노에 투항했고, 그 자손들은 다시 한 제국에 귀의하였습니다. 회남여왕 유장 및 회남왕 유안, 그리고 형산왕 유사는 모두 한고조 유방의 종친으로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습니다.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위(魏) 지역의 명사들이니데 문경지교에서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원앙과 조착은 질투와 알력으로,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은 외가 신분으로 암투를 벌이다 자멸하였습니다.. 공손홍과 주보언은 주변 이민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견의 합치와 불일치로 암투를 벌이다 공멸하였습니다. 이들의 삶은 상호 긴밀하게 ㅇㄴ관되었거나 업무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죠.
삶이 비슷한 인물을 합전으로 처리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기전체란인물 위주의 서술입니다. 그런데 사건을 서술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관련된 인물을 언급하게 됩니다. 중요한 인물일수록 같은 사건을 동일하게 되풀이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중복 서술은 불가피해집니다. 이런 경우 삶이 비슷한 인물을 합전으로 처리하면 관련된 사건이나유사한 사건의 경우 일괄 서술할 수 있으므로 사건의 전후맥락을 분명하게 전개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편폭 또한 크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넷째, 성품이나 인생관이 비슷한 인물.
계포와 난포는 모두 협객으로 한때 노예로 전락했으며 의리와 신의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만석군 집안과 장숙은 모두 신중한 성격과 돈후한 인품으로 그 당시 군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급암과 정당시는 인품을 도야하며 청렴한 정치에 힘써 세인의존경을 받았습니다. 노중련과 추양은 평민으로서 세도가에게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였습니다. 굴원과 가의는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추었지만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울적하게 생을 마감했으며 두 사람 모두 사부(辭賦)의 대가였습니다.
성품이나 인생관이 비슷한 인물을 합전으로 처리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해당 시기에 어떤 인재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햇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인물 군상이 간명하게 정리되므로 다연히 편폭도 깔끔하게 줄어듭니다.
이상으로 보건대, 두 사람 이상을 묶어 한 편으로 처리했던 기준은 학술적인 관계, 비슷한 업적, 비슷한 삶, 비슷한 성품이나 인생관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손자오기열전, 백기왕전열전, 노중련추양열전, 굴원가생열전, 편작창공열전 등에서 보다시피 수십 수백 년 떨어진 인물을 한 편으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여러 명을 한 편으로 처리하면서도 어떻게 흔적 없이 통합시켰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를 보는 안목과 문학적 수양이 관건인데 이런 문제에 있어서 사마천의 혜안과 박력이 돋보입니다.

부전(附傳) : 덜 중요한 관련 인물을 덧붙여 첨부
'부전'이란 중심인물 밑에 덜 중요하나 인물을 첨부하여 서술하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 '합전'과는 구별됩니다. 역사에는 중요한 인물과 사건 이외에도 덜 중요한 인물이나 덜 중요한 사건이 있게 마련이죠. 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동일한 비중으로 모두 살리려다 보면 기전체와 같은 인물 위주의 역사 기술에서는 편폭이 폭증하여 전체적으로 잡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 인물의 행적을 집중적으로기록하면서 그와 관련된 인물을 가볍게 언급해주면 편폭이 간결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도 경제적으로 안배할 수 있게 됩니다. '부전'은 기저체 형식에서 이렇듯 무척 경제적인 서술법이므로 비단 열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본기, 세가, 서, 표에서도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관안열전은 관중과 안영을 중심인물로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숙아와 월석보도첨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포석아와 월석보는 관안열전에 첨부되면서 그 인물과 행적이 후세에 전해진 셈입니다. 오자서열전의 신포서와 백공, 상군열전의 공숙좌와 조량, 맹상군열전의 풍환, 평원군우경열전의 모수와 이동, 위공자열전의 후영과 주해 그리고 모공과 설공, 춘신군열전의 이원과 주영, 범저채택열전의 수가와 위제, 염파인상여열전의 조사와 조괄 그리고 이목, 전단열전의 태사교녀와 왕촉, 여불위열전의 노애, 이사열전의 조고, 장이진여열전의 관고와 조우, 회음후열전의 괴통, 역생육가열전의 주건, 원앙조착열전의 등공, 평진후주보열전의 서락과 엄안 등등이 모두 관안열저노가 마찬가지로 관련된 인물을 덧붙여 서술해준 경우입니다.
'부전'에서 첨부하는 인물은 그저 관련된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 인무로가 비슷한 유형의 인물도 덧붙여 언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자손이나 친척을 더불어 언급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전(類傳) : 비슷한 직업이나 유형의 인물을 통합하여 기록
'유전'이란 비슷한 직업이나 유형의 인물을 모아 기록한 열전입니다. '유전'의 유(類)는 종류의 뜻으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성어를 떠올리면 쉬비게 이해될 것입니다. 자객열전, 순리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유헙열전, 영행열전, 골계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화식열전 등 10편이 이에 해당됩니다. '유전'의 명칭만 봐도 특수한 계층이나 집단이 역사와 사회에 간과할 수 없는 존재로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전'의 설정은 전체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감하고 섬세하게 분류하여 간명하게 통합해야 된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예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유전'은 그저 비슷한 유형의 인물만을 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인물 집단이 역사와 사회에 하나의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또한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집단은 하나도 없습니다.  148-158

사마천의 의도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아니엇으나 결과적으로 인물 위주의 역사기록 형식 중에서 <사기>보다 완벽한 모습이 없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정사(正史)의 모델로 여거 대대로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고러사>도 <사기>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170

Posted by WN1
,
구두는 그냥 구두입니다. 빨간구두, 노란구두 다 그냥 구두입니다. 굽이 높은 구두, 낮은 구두 다 그냥 구두입니다. 그러나 구두 앞에 새 라는 글자 하나가 붙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구두가 아닙니다. 설렘입니다. 새집, 새차, 새옷,... 어떤 물건도 새 라는 글자 하나만 붙이면 요술처럼 설렘이 바뀌고 맙니다.
헌 구두에 설렘이 없듯 헌 생각에도 설렘이 없습니다. 설렘이 없다는 것은 의욕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생각 앞에도 새 라는 글자 하나를 붙여 요술을 부려 보세요. 무겁던 생각이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를지도 모릅니다.


new .. neo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시간, 새로운 순간. 
맞다. 우리의 시간은 순간과 순간과 순간과 순간과 순간과 순간과 순간과 순간과 순간들이 무수히 이어져서 만들어 진것이다. 
그 순간 순간이 내가 느끼기에는 이어져 보일뿐 분명 순간과 순간과 무수한 순간들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순간이 새롭다면 우린 정말 희열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난 어제도 그 생각을 했고 오늘도그 생각을 했다고 같은것이 아니다. 
주위 환경도 다르고 나의 자세도 관점도 거의 모든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제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일뿐, 분명 새로움이 더해진 생각이다. 이럴때 '발전'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제보다 발전된 비슷한 생각이다.
짧게 표현하면 새로운 생각인 것이다.
그러니 해도 해도 똑같다는 생각 아니 착각을 버리면 '새'가 희망을 준다.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효기간  (0) 2012.02.11
답다  (3) 2012.02.09
진짜 불쌍한 사람  (0) 2012.01.22
경력의 반대말  (2) 2012.01.13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0) 2012.01.11
Posted by WN1
,

조선시대하면 떠오르는 왕들 중에 단연 으뜸은 세종 영조 정조 임금이다. 
물론 조선을 건국한 태조도 있고 여러 왕들이 있지만 조선시대에서 가장 태평 선대한 시절로 꼽는다. 특히 전기에는 세종, 후기에는 영조의 기반을 바탕으로 정조 임금이 부흥시대를 열었다.
한국의 사극에서도 세종과 정조 임금을 바탕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다.
그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왕이었으며, 어질고 바름의 본을 세운 왕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종의 이야기는 어린시절에 많이 접하게 되었고, 정조는 성장하여서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조 임금에 대한 책을 더 많이 본 기억이 있다.
이산(李祘)의 어린 시절은 참 불행하였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할아버지의 혹독한 가르침 그에 더해 반대 세력의 암살까지도 경험하게 되며, 죽지 않으려 늦게까지 책을 볼 수 밖에 없는 시절도 경험하였다.
그렇게 어려운 성장과정 속에서 책을 좋아하기도 하였고, 책을 볼 수 밖에 없기도 하였다.
그러한 과정이 그를 더욱 성장 시켰고, 그것이 치세를 하는 밑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정조만큼 글을 많이 쓴 왕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렇듯이 정조는 자신의 생각들을 직접 글로 표현하고 편지도 많이 썼으며 많은 사람들과 학문을 논하고 백성들을 직접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정조 임금은 진정한 아비의 마음으로 나라를 돌보기 위해 애를 썼다. 책을 통해서도 그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은 결국은 통한다는 점을 세삼 강조하고 있다.
책을 통해 임금 정조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면서 그와 더 가까워 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글머리에
정조가 돌아간 이후 사람들은 그가 통치한 시대를 건릉성제(健陵盛際, 건릉은 정조의 왕릉 이름이고 성제는 융성한 시대라는 뜻)로 불러 조선 후기의 태평성대로 추억하였다.  8
왕조가 사라진 지금까지도 호감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국왕이 바로 정조대왕이다. 그와 대결할 만한 국왕으로는 오직 세종이 있어 전기의 세종, 후기의 정조를 서로 짝을 이뤄 성군(聖君)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9
한국의 역대 통치자 가운데 글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 바로 정조다. 
정조처럼 글을 많이 쓴 통치자는 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10
정조는 글과 말이란 수단을 활용하여 사색당파로, 지역 간 이해관계로, 신분의 차별로 조각난 나라를 슬기롭게 통치하였다. 정조는 신하들이나 백성들로 하여금 국왕이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한 가지 재능만 갖고 있어도 국왕은 자기를 인정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자신이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그렇지 능력만 갖춘다면 우리 대왕은 자기를 등용하리라고 기대하였다. 건릉 성제의 백성들은 계층과 지역을 떠나 우리는 소외되지 앟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15-16

1장 나라의 근간이 되는 힘, 공부
분발하여 끼니도 잊은 채 즐길 일을 찾았다면, 그 무엇인들 도(道)에 들어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허나 그중에서 스스로 터득한다는 자득(自得)이란 두 글자가 특히나 절실합니다. 이유인즉, 독서에도 법칙이 잇고, 도를 보는 데도 기술이 있어섭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연구하여 대상에 정신을 몰두하면 자연히 대상을 정확하게 꿰뚫어볼 때가 생기니 이것이 이른바 자득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4
"마음에 드는 경치 좋은 곳을 얻어서 세상의 잡다한 일이 닿지 않게 하여 잡다한 생각을 말끔히 씻어버린다. 방 한 칸을 깨끗이 치우고서 자유롭게 생각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경사(經史)를 논한 서적을 읽는다면 참으로 즐거운 일이겠다."  27
(학문과 독서에 취미를 가진 군주였기 때문에 빈말로 보이지 않는다.)  29
학문을 하는 것은 마치 일백층 높이의 보탑(寶塔)에 오르는 것과 같다. 한 층 한 층 따라 올라가면 남에게 묻지 않아도 저절로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다.  30
정조는 생애 처음 접하는 가르침에서 '올바른 말을 듣고 올바른 일을 보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성인의 자질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교육의 근본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 정조의 생각이었다.  38

3장 임금의 길
"내가 초계문신 제도를 처음 시행한 뜻은 신하들의 학업을 권장하려는 데 있다. 내가 몸소 앞정서서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많은 문신들을 부지런히 배우도록 유도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습성이 본래 이런 일을 좋아한다. 종일토록 뽑아서 기록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85-86
학문에 힘쓰고 태평한 정치를 이루려는 것만은 작은 완성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더욱 힘써 정진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탄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리라."  89
임금된 자의 도량은 .. '나'라는 한 글자를 버리고, 꺼리지 않고 말하도록 문호를 넓게 열어 숨김이 없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남의 결점까지 산의 숲처럼 숨겨주고, 더러운 것까지 강과 바다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슴속에 쌓아둔 것을 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마치 강에서 떼 지어 물을 마실 때 제각기 양껏 마시도록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107
성(城)이란 옛 사람들이 갑작스런 난리에 대비하려는 목적에서 쌓은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껴안는 것은 무형(無形)의 성이다. 3천 명이 한마음이었기에 주나라 무왕(武王)은 성을 쌓아 흥했고, 장성(長城)을 만 리나 쌓아 난을 대비했으나 진시황은 그 때문에 망했다. 명철한 제왕들이 하나같이 무형의 성을 앞세우고 유형의 성을 뒤로 돌린 진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6

4장 인재에 대하여
군주가 인재를 쓰고자 할 땐 제 아무리 작은 재간을 가졌어도 버려도 좋은 만한 사람은 없다. 흠결이 있는 큰 인물과 장점이 있는 작은 인물까지 다 거두고 끌어안아, 포용하고 양성하는 나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누군들 버리고, 누군들 쓰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가르쳐도 따르지 않고 이끌어도 따르지 않는다면, 이들이 개과천선하면 다시 기용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이다.  128

5장 나라를 다스리는 법
이치를 따질 때에는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힘써 탐구하여야 한다. 의심할 것이 더이상 없는 곳에서 의심을 일으키고, 의심을 일으킨 곳에서 또 다시 의심을 일으켜 더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바짝 다가서야 비로소 시원스럽게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일도 이와 같다. 정황이나 법조문에서 털끝만큼도 의심을 일으킬 만한 거리가 없다고 해도 의심할 것이 더이상 없는 곳에서 또 의심을 일으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도달한 뒤에라야 비로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이렇게 확대해 나간다면 잘못 처리한 사건이 드물 것이다.  166
(의심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다시 의심을 일으키라는 구절은 정조가 사건을 처리할 때 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통치기간 25년 동안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결과가 바로 <심리록>(<홍재전서>중 권135 이하의 전국의 중죄인들에 대한 판례 모음집)에 보인다.  168

6장 신하에게 이르는 말
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사람은 기어코 큰일을 해내는 법이다. 이것이 면전에서 잘못을 따지는 사람 가운데서 절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찾는 이유이다. 오늘날의 사대부 가운데 '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유소불위(有所不爲) 네 글자를 부적처럼 차고 다니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의지할 말한 신하가 될 것이다.  197
(유소불위(有所不爲)란 말은 본래 공자와 맹자가 한 말이다.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을 하는 자는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파렴치한 짓거리를 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따르는 명예와 지위가 주어지기 때문에 구차하게 제 몫을 챙기지 않는 금도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이 같은 태도를 요구했다. "사대부는 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국사를 행할 수 있다"고도 했고, "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능히 하는 것이 있고, 하지 않으려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하려는 것이 있다" 고도 했다. 고위직을 맡은 자가 권력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는 행위를 염려하고 미워하고 금지하려는 강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98
대개 인정이란 조금만 편안하면 소홀해지기 쉽다. 옛 말에 '척박한 땅의 백성은 부지런하고 기름진 땅의 백성은 게으르다'고 했는데, 나는 '풍년든 해의 백성은 게으르다'로 말하겠다.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 부지런한 것이 이롭고 게으른 것이 해롭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어떻게 권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205
세상 고금(古今)의 일들은 서로 다른 것으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비슷한 데가 없을 수 없다. 사람의 천성과 감정이 같기 때문이고, 시대의 흐름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추세가 대충 비슷하기 때문이다.  208
남들은 다들 재주 탓을 하는데 나는 재주보다 의지가 문제라고 본다. 의지만 확고하면 재주는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정녕 힘껏 노력한다면 왜 옛 사람을 못 따라가겠는가? 인생을 즐기는데 빠져 학업을 폐하고,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서 편한 것만 추구하면서 걸핏하면 재주가 없다고 핑계를 댄다.  211
봄에 만물이 처음 소생할 때에는 지극한 이치를 볼 수 있다. 꽃봉오리가 아직 맺히지 않아 빛깔과 형상이 다 갖추어지지 않았으나 생명의 의지는 그래도 그 속에 들어 있다. 우리 사람으로 치자면 감정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을 때이다. 꽃잎이 비로소 열리면 홍색과 자줏빛이 나뉘어 나무마다 각각의 꽃을 피운다. 사람으로 치자면 마음이 움직인 뒤의 기상이다. 안개가 꽃을 뒤덮어 꽃이 안개 속에 있을 때 안개 밖에서 꽃을 보면 희미하여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바짝 다가서서 보면 또렷하게 꽃이 보인다. 안개가 걷히고 꽃이 드러나면 꽃은 본래 그 자리에서 잔과 다름없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비록 세상의 때가 묻어 더럽혀졌다고 해도 본성 자체에는 회복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멀리서 온갖 꽃들이 피고 질 때 가까이 마음에서는 고요하게 느낌이 인다. 어디를 가든 이러한 이치가 아님이 없다니, 모름지기 몸소 깨달아야 한다.  219
무릇 정치는 분발함을 앞세우고 학문은 용맹정진함을 귀하게 여긴다. 정치를 하자면 분발한 뒤에야 융성한 교화를 이룰 수 있고, 학문을 하자면 용감하게 정진한 다음에야 인재를 양성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근세 이후로는 고식적인 태도가 습관으로 굳어졌다. 정치하는 자는 모두 늘어지고 게을러져 문제가 생기면 임시방편으로 틀어막느라고 세월만 보내고, 학문하는 자는 자포자기에 안주하여 그렇저럭 시간만 보낸다. 생각의 틀이 구차하여 크고 장구한 계획이 없고, 기상이 나약하여 분발하고 추진하는 의지가 부족하다.  221
이러고서 어떻게 융성한 시대를 만들고 인재를 양성하는 효과를 바라겠는가? 
벌떡 일어나 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홀로 궁벽한 집에서 비탄만 내뱉고 있으니 학문이 흥성하지 않는다.  222

7장 공정한 나라를 위함
정조는 늘 자신의 나라를 위기에 처한 나라라고 보았다. 개혁하지 않으면 위기에 봉착할 나라라고 분석하여 위기를 극복할 대책을 내어놓으라고 늘 신하를 채근했다.  249

Posted by WN1
,
못 먹는 사람, 못 입는 사람, 못 자는 사람, 못 보는 사람 그리고 못 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더 먹으려는 사람, 더 입으려는 사람, 더 자려는 사람, 더 보려는 사람 그리고 잊을 추억도 없는 사람.


나는 진짜 불쌍한 사람이다. 더 먹으려 하지 않는다. 더 입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잊을 추억도 많이 가지고 있다. 더 자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다만 더 보려한다. 
여행을 가도 호기심에 뽈뽈거리고 돌아다닌다. 다리가 아플만큼 아니 그 이상 아플만큼 다니며 보려한다.
쓸데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은 모르겠으나 이 호기심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보게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길도 궁금하면 본다. 일상에서도 나는 보려한다. 많이 보려하는 호기심이 좋은 것도 그렇게 좋지 않은 것도 보려고 시킨다. 나는 그런것에는 별말없이 잘도 따른다. 그러니 진짜 불쌍한 사람이 많다. 표현대로라면 ...
하지만 나는 이런 진짜 불쌍한 사람으로 계속 남고 싶다. 아직은 그런 생각이다. 
당분간은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내꺼 말고 다른 것들은 정말 불쌍해 보인다.
'더'라는 글자가 이럴땐 정말 불쌍해 보인다.
'욕심'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하지 않겠나... 욕심은 끝이 없다.
나도 경험해 보았고, 경험하는 그리고 했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지금도 보고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여러가지를 잃게 된다. 

내가 불쌍한데 다른 불쌍함을 걱정하는 것이 이상하다.
역시 난 불쌍한게 맞다. '똥묻은 놈이 겨묻은 놈 나무란다'
                                 '빵구 낀놈이 성질낸다'는 말처럼...


과연 우리는 얼마나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답다  (3) 2012.02.09
글자 하나의 요술  (0) 2012.01.24
경력의 반대말  (2) 2012.01.13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0) 2012.01.11
서산에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  (0) 2012.01.09
Posted by WN1
,

'착한 사람을 괴물로 뒤바꾸고, 평범한 일상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인간 심리의 비밀' 이라는 부제의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표지의 그림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처음엔 심리 치유서로서 소설형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제목은 첫 챕터에 나오는 표현일 뿐이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틀리지는 않겠지만 제목만으로 책을 골라 실망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거라 생각을 한다.
다시금 표지의 원제를 보았다.
'In Two Minds'
그렇다. 책 내용은 원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번역한 이 책은 제목과 표지의 마케팅이었다.

저자는 40여년간 상담과 실험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파괴적 상처를 밝혀내었던 사례들을 실어놓았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개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발단은 어린시절 부모의 영향을 통해서인 이유가 가장 크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과 상담을 통해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 놓고 있다.
이미 이런 서적들은 시중에 많이 깔려 있다.
이런 류의 책들과 비교해 볼 때 딱히 눈에 띄는 차이점은 없다.
단지 복습하는 의미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 기억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부면들은 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통해 끄덕거렸던 것들이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 이상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모른면서 큰 일이 벌어질 때이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현상에 대한 치료만 하다보면 결국 무기력해지게 된다.
그 무기력감은 스스로 길들여 왔기에 바꾸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 그것이 우리가 심리적인 부면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책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는 토끼의 모습을 한 거북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런 책들은 읽는이에게 조금더 자신에게 다가가서 내면을 관찰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실 과학적인 접근의 심리 치유 상담과 동양의 마음 수양은 통하는 부면들이 꽤 많이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를 함께 보는 것이 더 많은 도움을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여 더 좋았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단 10초 안에 살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역시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 다운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창밖에서 한 남자가 당신 아이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게 보인다 칩시다. 막 방아쇠를 당길 참이에요. 당신에게도 총이 있고 당신이 먼저 그 녀석을 죽일 수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나라면 녀석을 죽일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단 10초 안에 살이자가 될 수도 있었다.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죽인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죽을 것이냐, 죽일 것이냐...  38

화상을 입고 물집이 생겼을 때, 우리는 몸에 생긴 물집을 그냥 덮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을 경우,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죽은 피부와 타버린 살이 세균에 감염되고 종기가 생기기도 한다. 처음에 생겼던 물집보다도 훨씬 더 큰 통증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물집을 터트리고 죽은 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종기가 나고 더욱 광범위한 문제들이 발생가히 전에, 정신적 물집도 터트리고 마음의 그을린 부분을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72

만약 환자에게 적절한 질문을 적절한 방법으로 물으면 스트레스가 많은 질병의 원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117
사람이 슬픈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 우울해져요.  122
관계 문제와 공감. 사랑의 결핍과 사랑을 베푸는 것. 의학에서 사랑이 설 자리가 있을까? 그러기엔 사랑이 비과학적이지 않을까? 심지어 위험한 것은 아닐끼?
그런데 막상 환자들, 버림받은 사람, 갈망하는 사람, 누군가를 여읜 사람, 배신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보면 그들 대부분이 부족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들이 항의하는 것들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사랑을 무시할 수있겠는가? 그리고 정신과 의사에게 공감이란 무엇인가? 한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기꺼이 귀담아 들어주려는 의지이다. 환자가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을 때, 상상 속의 팔로 그들을 감싸주는 것이다. 환자가 상실감에 빠졌을 때,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떤 기분인지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물어봐 주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환자를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환자가 어떠한 벽도 느낄 수 없도록 나를 내려 놓아야 하고 환자에 맞춰서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하지만 동시에 환자로부터 배울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환자들이 의사를 믿고 기꺼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본인의 왜곡된 마음을 바꿔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닐까?  132-133

나는 밤도 낮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재도 존재만큼, 무의식도 의식만큼이나 중요했다. 생존 전략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증상들을 드러낼 때, 이 생존 전략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속에 품고 있는 정보들을 눈에 보이는 생존 전략의 구성 요소들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드러나지 않은 것도 나는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 둘의 근원까지도 전부 추적해야 했다.  159
" 왜 그 애를 쏘았는지, 왜 슬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사악했던 것이 틀림없어요. 내 이야기를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땐, 살면서 죄스럽다고 느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죄스러웠어요."
"나쁜 행동에 대해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좋아요. 당신이 어렸을 때, 아무도 당신이 나쁘게 행동할 때 고쳐주지 않았고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당신이 어떤 식으로 미안해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잖아요. 왜 당산에게는 돌봐줄 부모가 없었는지 그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보면 당신은 버림받았고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었어요. 도가 지나쳤어요. 그래서 당신은 감각을 잃고 차가워진 겁니다. 뭔가를 느끼기 위해서,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손목을 그었던 거라고요. 아마 그 같은 이유로 그 소년도 쏘았을 거예요."
"그 같은 이유라면?"
"뭔가를 느끼려고,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고요. 당신이 딱히 뭐라고 부를 수 없는 그 무엇이요. 그런데 만약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뭐가 잘못 되었던 것인지, 무엇 때문에 당신이 그토록 필사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160-161

나는 진짜 첫 질문을 던졌다.
"많은 걱정거리 중에서 가장 걱정되는 일이 무엇인가요?"  169
문제의 핵심은 폭력과 성이 아니었다. 사랑의 부족이었다. 화면 앞에서 자위를 하는 수많은 남자들을 생각해보자. 노출증 환자들과 페티시스트(fetishist, 이성의 육체 일부나 속옷, 스타킹, 구두 등에서 성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페티시즘 경향의 사람들), 유혹하는 자들과 포식자들, 갱과 군대, 모두 남들에게서 사랑을 뜯어내려고 애를 쓰는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다음 세대에 사랑이 없는 매정함을 물려줄 뿐이었다. 
어째서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이렇게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거나, 욕심을 부리고 상대에게 강압적인 것일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을 구하기가 왜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어쩌면 과거의 트라우마로 가득한 세상이 여전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세상에서 일부 운이 좋은 사람들만이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에 메말라 있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202

인간이 감당해낼 수 없는 지나친 진실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233

설령 우리에게 문제가 좀 있으면 어때요?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문제가 남들 것보다 심각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290
개인적인 트라우마든, 집단적인 트라우마든 그 누가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측정할 수있겠는가?  297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직 당신 자식의 목숨을 구하려고 할 뿐입니다. 자식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는 묻지 않아요. 자식을 구하려고 하는 본인의 행동 때문 에 자식이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면 부모의 주의가 흐트러집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부모들은 여전히 생존을 걱정했고 따라서 자식들을 과보호하게 된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좋은 삶을 제공했다는 점만 알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기가 부모로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은 거죠."
"부모들만 그랬던게 아닌 것 같아요. 홀로코스트, 그리고 그때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나도 부모님에게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 질문 때문에 부모님의 고통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았어요. 내가 괴롭다고 말해서 부모님에게 고통을 더 안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고통은 부차적인 것이고 나는 고통에 관해서 생각하기 싫었어요. 그냥 고통을 내 속에 깊이 묻어버렸습니다. 잘못된 말 한 마디, 잘못된 몸짓 하나, 단 한 번의 감정 표현이 우리 모두에게는 죽음을 뜻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않는 법, 생각하지 않는 법, 말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어요. 나는 부모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만약 부모님이 나에게 그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물었다 해도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단지 일상생활을 잘 꾸려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부모와 자식, 모두 각자의 생존 및 방어 모드에 있었던 거군요."  300-301
"침묵은 곧 살인이에요."  302
전쟁이 있고 난 후부터 우리는 두 개의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상황을 거의 이해하는 이성적인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를 모방하고 동시에 부모에게 반항하며, 그러면서도 그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감정적인 마음입니다."  304
"분열된 마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절반은 토끼의 모습을 한 거북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끼의 모습을 한 정상적인 우리 존재의 일부는 앞을 향해 뛰어가서 안정적인 삶과 직업을 성취합니다. 반면에 거북이의 모습을 한 나머지는 응어리이자 보호막이기도 한 딱딱한 껍질을 등에 이고 있어요. 등껍질은 매우 무겁고 균형을 잃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런 등껍질을 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늘밤 그랬던 것처럼 오직 우리가 마음을 편안히 하고 우리의 껍질 밖으로 나올 때만이 그동안 우리가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앞서 가던 우리 자신을 따라잡을 수가 있고..."  305

내 증언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었다. 다른 일들에 마음을 쓰느라, 우리의 평소 모습이 가려져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모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모습을 한 내가 증언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352


옮긴이의 말
"이 지구상의 다른 어떤 생물과도 달리, 인간은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거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J. K. 롤링, 2008년 6월 하버드 졸업식 연설 중에서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우리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그녀의 엄마. 태어나는 순간, 본인의 선택권 없이 덜렁 주어지고 죽을 때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런 인간 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354
현재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다소 모호한 일상 생활에서 비교적 정상이라고 부를 만한 행동을 매일 같이 유지하고 있지만 ... '나'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린 다양한 상처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자기 계발의 첫 걸음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상대가 보인 행동을 기꺼이 이해하려는 마음, 그런 행동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에 필요한 인내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위로와 격려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355

Posted by WN1
,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면서 아직은 어린 나이라면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올해 20살이 되는 누군가가 무슨 책을 읽느냐 묻기에 사기를 읽는다고 하니, '흠 내가 아는 사기는 사기치는 건데..'하며 말꼬리를 늘렸다.
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사기>는 모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는 역사서이다.
워낙 유명하기에 사마천의 삶도 대부분 알고 있다. 궁형 즉, 거세되는 형벌을 당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하여 아버지인 사마담에게서 물려받은 역사서를 완성한다. 그것이 유명한 <사기>이다.  

몇 년만에 이 책을 다시금 읽는다.
책을 선정한 이유는 최근에 사기를 다시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계획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예전에 읽은 <사기>의 내용이 별로 기억나질 않고 그때와 지금 읽는 것은 차이를 가질 것이란 생각으로 그런 생각을 하였다. 이전에는 을유문화사의 사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번에 책을 선택한 건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면서 미처 책 선정을 하지 않고 갔서 책을 둘러보다가 사기를 고른 것이다.
두꺼운 책들 사이에 얇은 책이 있다. 그것이 이 책이다. 물론 3권으로 엮여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나는 얇은 사기라는 생각에 책을 선택한 것이다.
책이 잘 넘어간다. 들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기에 골랐다. 3권을 모두 대출하고 예전에 읽은 을유문화사의 사기열전도 함께 대출하여 돌아왔다. 집에서 내가 이 책들을 모두 읽을것 같지는 않고 무엇을 할까 하고 다시 생각하다가 처음에 택한 얇은 사기를 선택하자하고 펼쳤다.
사기의 본기(12권) 열전(70권) 표(10권) 서(8권) 세가(30권) 을 모두 담았을리 없을 두께이기에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지 넘겨보는데, 본기 열전 세가를 딱히 구분하지 않고 서술함으로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만들어 진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권마다 부록이나 설명들을 첨부하여 구성되어 있다.
3권을 모두 합하면 60권의 내용을 담고 있다. 

1권에서는 전체 사기의 대략적인 설명과 중국 역사의 큰 흐름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사기를 시작한다.
중국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앞서 소개되기에 <사기>를 좀 더 편하게 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삼황오제 부터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서주,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나라, 한나라 까지 간단한 설명이지만 흐름을 보여줌으로 <사기>의 내용을 따라 가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어서 사기의 17가지의 내용이 나오고 책이 마친다.

읽은 소감으로는 쉽게 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3권을 읽고나면 다시금 <사기>전편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사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곳곳에 <사기>로 시작된 고사성어들이 나오는데 2권의 부록에서 정리를 해두었기에 여기서 기록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유없이 몇 가지만 적어본다.

탕은 '맑은 물을 바라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백성들을 살펴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39

춘추시대는 제후들간의 각축이 치열했다. 하여도 그 근저에는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제거한다는 봉건적 질서가 깔려 있던 시대였다. 즉 왕을 보호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패권을 잡은 제후들도, 상대방을 멸망시키기 보다는 공존하면서 질서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는 명목상의 대의명분마저 사라지고 오직 먹느냐 먹히느냐의 사력을 다한 생존의 싸움만이 남게 되었다.  57

청나라의 학자 고염무는 그의 저서 <일지록(日知錄)>가운데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차이를 설명한다.
첫째, 춘추시대에는 예(禮)를 숭상하고 신(信)을 중히 여겼으나, 저눅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둘째, 춘추시대에는 주 왕실을 숭앙하였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다.
셋째, 춘추시대에는 제사를 중시하고 빙향(聘享)을 중히 여겼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넷째, 춘추시대에는 가문을 존중하고 성(姓)과 씨족을 따졌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섯째, 춘추시대에는 나라 사이의 교제에 연회가 있었으며 시를 읊을 만한 여유가 있었으나, 전국시대에는 그러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여섯째, 춘추시대에는 외교적 차원에서 부고책서(赴告策書, 신임장)가 있었으나, 전국시대에는 없어졌다.  58

고조는 서기전 195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기간은 천하통일 후 고작 8년이었다. 그러나 한 왕조는 전한 후한을 합하여 400여년에 걸쳐 중국을 지배하였다. 한나라가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어서 한(漢)이라는 글자는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글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도 중국의 문물을 말할 때 한문(漢文), 한족(漢族)등으로 표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67


소진과 지백은 그 지혜가 출중(出衆)했지만 이익을 탐하는 데 마음이 빠져 있었기에 죽음을 당했소. 일이 매우 잘 되어갈 때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 낮은 자리에 만족하거나 물러나 자중해야 하오.  241

슬기로운 사람도 천 가지 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한 가지 실수가 나오고(천려일실 千慮一失), 어리석은 사람도 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유익한 일을 하게 된다.  337

속담에도 '남의 수레를 얻어 탄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몸에 실어야 하고, 남의 옷을 얻어 입은 자는 그의 근심을 함께 안아야 하며, 남의 음식을 얻어 먹은 자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했소, 이익에 사로잡혀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오.  344

노자가 말한 '최고의 덕이란 언뜻 보아서 덕으로 보이지 않기에 더욱 덕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365



Posted by WN1
,
경력을 거꾸로 읽어 보세요.
그냥 얻어지는 경력은 없습니다.



경력을 쌓으려면 역경을 견뎌내야 하는것인가.. 역경이 경력을 쌓아주는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꼭 그런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역경 아니 모든 경험 자체는 경력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옳은 길을 쉽게가더라도 어렵게 가더라도 그것은 분명 경력이 되어 돌아온다.
다만 우리가 지레짐작으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럴것이다.
무엇이든 걱정 때문에 포기말고 일단 해보면 그 역경이 역경이든 아니든 경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
.

문제는 역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역경스러워 보여 무서운가 .. 그것은 내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정말 그런지는 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자 하나의 요술  (0) 2012.01.24
진짜 불쌍한 사람  (0) 2012.01.22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0) 2012.01.11
서산에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  (0) 2012.01.09
문제와 답  (0) 2012.01.04
Posted by WN1
,

'몸·마음·영혼을 위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영국에서 태어나 신실한 기독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17세 때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고 자신이 이미 불교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대학을 마친고 교사로서 1년을 근무 한 뒤 태국을 건너갔고, 친구와 함께 왓농파퐁에서 그의 스승니 아잔 차를 만나 9년을 함께 생활했다. 
그런후 호주로 돌아와 직접 벽돌을 쌓고 용접을 배워하며 남반구 최초의 절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그의 특유의 유머와 통찰력이 가득한 법문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책의 내용이 참 간단하다.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서적은 아니다. 그렇기에 종교적인 색채가 별로 없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종교적인 색채가 다분하다. 그렇지만 부제의 표현처럼 안내서로서 그는 읽는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그의 수행을 통해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실수와 잘못들을 통해 이야기 한다.
'인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면은 자신의 잘못들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들이었다.
밝히기 쉽지 않은 내용들을 통해 자신 역시 부족한 한 인간이며 우리모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가면서 우리는 더 나아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내용들을 읽으면 분명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은 재밌기도 하고 계속 읽어 내려가게 한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쉽게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알지만 하지 않는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아니 모르는 것이 더욱 많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는 것들도 실천하기가 힘들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책감을 가지거나 그것을 묵살함으로 자책감 마저도 가지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위안을 삼는것은 우리는 불완전하다는 것,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무기력해져 가는 것이다.

책의 내용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그것이 무조건 나쁜것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기력해지는 대신에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마음의 포용력이 넓어지며,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한 차이의 인정과 그것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최소한으로 다가오게 함으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정을 유지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불교수행자들의 생활은 교도소 수감자들의 생활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러면 교도소가 더 나은가?
그것은 아니다. 이유는 스스로의 선택이냐 아니냐의 차이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선택하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선택에서 그렇게 결정내리게 된 이유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익히거나 세뇌되어간 결과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선택임에도 자신의 선택이 아닐수 있다.
저자는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그러한 선택에서 자신이 깨달음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기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리라. 우리가 수도자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수행을 할 수 있다.
무언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연히 선택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술취한 코끼리를 길들일 수 있는가?
술취한 코끼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건강이기도 하고 물질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고....
우리는 길들일 수 있는가? 그렇다.
어떻게 길들일 수 있는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진정 자신의 생각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세뇌에 의한 따름인지에 대해..

책은 인생 전반에 대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언급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이 시간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클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 읽고 몇 가지의 점들에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몇 가지는 지금 현재 내 삶에서 여유와 즐거움을 배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유는 지금의 내 심적 집착에서 아주 조금은 떨어진 상태를 느끼기에, 더 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알기에 그러하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으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귑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중국의 옛시

포기할 수 있는 마음.... 코끼리를 간절히 갈구하면 언젠가느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세상은 말하낟. 하지만 그것은 결국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왜냐하면 거기 언제나 더 멋지고 아름다운 코끼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욕망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우리는 늘 욕망의 자유, 곧 선책의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제 그것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날마다 들려오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과 같다.  10-11
'왜 그렇게 하는거요? 한 두 개 먹었으면 칠리가 얼마나 매운 줄 잘 알거 아니오? 그런데도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해서 먹는 이유가 뭐요?'
'혹시 단맛이 나는 칠리 고추가 있을지도 모르잖소.'
혹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12
결국 당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다.
실제의 불만족과 행복의 부재를 심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다.  13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 어떻게 그 모든 감각적 즐거움들을 누릴 수 있겠는가.  15
이 세계에서 당신을 묶고 있는 온갖 구속, 매듭, 계획과 일들을 내려놓고 때로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명상해야 한다.  16
진정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고타마 붓다가 깨달은 첫번째 진리가 '행복의 부재'였다면, 그의 두번째 진리는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음을 깯다고, 행복을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므로.  17

우리 눈은 오로지 잘못된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잘못된 것뿐이고, 우리는 그것만이 그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두 장의 잘못 놓여진 벽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각자 안에는 그 잘못된 벽돌보다 완벽하게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훨씬 많다.  29
'우리 건축가들도 늘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객에게 그것이 이웃의 다른 거물들과 차별화를 시켜 주는 그 건물만의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다음 수천 달러는 더 청구하지요.'
당신 집의 특별한 점은 어쩌면 실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자기 자신 안에서 , 상대방 안에서, 또는 삶 전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당신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주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당신이 오로지 그것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을 중단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30
만일 우리가 아직 남아 있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미 자신이 해낸 일을 본다면, 지금까지 한 것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7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
자기 비난의 감옥에서 자유롭게 걸어 나오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평화로워지는 일이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54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런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한다.  55
결혼에는 3개의 반지가 있다는 말이 있다. 약혼반지, 결혼반지, 그리고 고통의 반지!
결혼 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수 없다.  56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조화이다.  59
'결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이 사실을 꼭 기억하게. 만일 애초에 그런 결점들이 없었다면 내 딸아이는 자네보다 훨씬 나은 남자와 결혼했을 거야!'  60
사실 이성과의 사랑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을 사랑할 뿐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다.  63

청중이 내 강연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하지 말고, 내 자신이 즐겁게 강연하기로 결심했다. 나 스스로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결심한 것이다.  75

야생의 코끼리를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짓밟고 돌아다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 코끼리를 정복하지 않으면 삶은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생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속 코끼리이다.  92
화를 내는 것은 영리한 반응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하며, 행복한 사람은 화 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화를 내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다.  93
화를 내는 대부분의 경우는 기대가 무너진 데서 촉발된다.  95
문제는 화를 낼 때 우리가 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화에는 중독성이 있고 묘한 쾌감이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쾌감을 주는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화에는 위험도 뒤따르며, 그 겨로가는 쾌감의 정도를 능가한다. 분노의 열매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의 연관선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화내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것이다.  100
때로는 당신의 배우자가 '분노를 먹고 사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배우자에게 화를 내보라. 그러면 그는 더 나빠질 것이다. 더 독해지고, 더 냄새가 나고,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더 공격적이 된다. 당신이 그에게 화를 낼 때마다, 심지어 생각 속에서 화를 내도, 문제는 한 뼘씩 커져 간다. 아마도 이제 당신은 자신의 실수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102
분노는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를 주위 사람들로부터 갈라 놓는다.  103
갈 곳이 아무데도 없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달아나는 대신 문제와 마주한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105
누군가가 우리를 상처 입혔을 때, 우리 자신이 직접 그들을 처절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110
스스로에게 말해주라. '사랑하는 나의 미친 마음이여,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든 내 마음의 문은 너에게 활짝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오라. 네가 나를 파괴하고 파멸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에게 어떠한 나쁜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나의 마음이여,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당신의 미친 마음과 싸우는 대신, 그 마음을 평화롭게 대하라.  115-116

불유쾌한 일들이 삶에는 일어난다. 그 일들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행복한 사람과 절망에 빠진 사람과의 유일한 차이는 그들이 재난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이다.  129
한 트럭 분량의 소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반응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번째 방식은 소똥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소똥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부정적인 마음, 다시 말해 분노와 좌절 등에 빠지는 것의 은유다.  130
두번째 방식은 우리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작업을 시작한다. 정원에 파묻는다.
날마다 조금씩 우리는 소똥을 퍼 나른다. 소똥 더미는 날마다 줄어든다.  131
'소똥을 퍼 나르는 것'은 그 비극들을 삶을 위한 거름으로 환영해 맞아들이는 것의 비유다. 그것은 우리가 혼자 해야만 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  132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140
물살이 당신보다 더 강할 때 그때는 물살과 함께 흘러갈 때이다. 당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온 에너지를 쏟아 부을 때이다.  141

'그대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그대의 온 존재를 바쳐라.'
일할 때 그 일에 자신의 온 존재를 바치고, 휴식할 때 그 휴식에 온 존재를 바치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 대화에 온 존재를 기울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 것에 온 존재를 바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조용히 앉아 있는 법을 모르는 데서 온다.'  149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삶에서 해결책이 없는, 따라서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일들을 걱정하느나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가?  150
1.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 지금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삶에서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당신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당신 자신에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자각하는 최초의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가? '좋은 아침이야. 멋진 하루를 보내기 바라!' 나는 날마다 그렇게 한다.
3.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
    - 보살핌과 배려  154-158
보살핌과 배려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  169
'어리석은 뱀이여, 실로 바보 천치로구나! 내가 물지 말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쉭쉭거리지도 말라고 하진 않았지 않은가!'
때로 삶 속에서는 성자라 할지라도 쉭쉭거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물 필요까지는 없다.
친절을 아름다운 새에 비유한다면 지혜는 그 새의 날개와 같다. 지혜가 없는 친절은 결코 날아오를 수 없다.  172

지혜는 배움이 아니라, 결코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192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욕망의 자유이고, 또 하나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이다. 현대 서구 문화는 첫 번째 자유, 곧 욕망의 자유만을 인정한다. 그러한 자유를 국가 헌법이다 인간 권리 헌장 맨 앞에 모셔두고 숭배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근본 신조는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국민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에 사는 국민들이 그다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두 번째 자유, 곧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몇몇 종교적인 공동체 안에서만 찬미를 받는다. 그들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오는 만족과 평화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내가 머물고 있는 절처럼 금욕적인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212-213

우리들 각자는 삶의 표현이다. 삶은 친절한 스승이면서 동시에 가혹한 스승이다.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수많은 타인들을 거쳐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다.  222
우리 모두는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길수록 덜 자주 실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37
누군가 당신을 바보라고 부른다면, 당신이 기분 나빠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고 당신이 믿기 때문이다.  239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오.'  245
신참승은 '신참승의 애환'을 갖고 있었고, 고참승은 '고참승의 고통'을 갖고 있었다. 고참승이 되었을 때 나는 단지 한 가지 형태의 고통을 또 다른 형태의 고통과 교환환 것뿐이었다. 이것은 독신자가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결혼한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과 똑같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결혼을 할 때 우리는 단지 '혼자 사는 사람의 고통'을 '결혼한 사람의 고통'과 맞바꾼 것이다. 그러다가 이혼을 했을 때 우리는 단지 '결혼한 사람의 고통'을 '혼자 사는 사람의 고통'과 맞바꾼 것이다.  249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은 단지 한 가지 형태의 고통을 또 다른 형태의 고통과 맞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당신에 만족할 때, 그때 당신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250

슬픔은 우리가 죽음이라는 큰 상실에 덧붙이는 감정이다. 그것은 학습에 의해 배운 반응이며, 몇몇 문화들에서만 특별하게 발달한 것이다. 그것은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262

Posted by WN1
,

택시 운전사에게 기사님 운전 참 잘하시네요. 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그 기사는 운전을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빠르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입에게 나를 자랑하는 일을 시키지 마시고 남을 칭찬하는 일을 시키십시오. 그것이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입니다. 내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근질거리면 그냥 긁어주십시오. 내 자랑은 남의 입이 해줄 것입니다
.


'자화자찬', '말이 씨가된다' 이와 같은 표현은 여러가지가 있다. 아니 매우 많은 표현들이 있다. 
성경에도 그런 표현들이 있더라. 불교 경전에도 그런 표현들이 있더라.
그만큼 입이, 혀가 제어하기 힘들며 매우 이기적이란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누구나 말 실수를 했었다. 그리고 한다. 그리고 할 것이다.
칭찬하는 것은 매우 쉽다. 그렇지만 매우 매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잘 하지 못한다. 매우가 두개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니까.
이상하게도 이렇게 어려은 칭찬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완전한 돌연변이일까. 분명 이들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의 삶은 훨씬 풍요하고 즐겁고 생기있다.
당연히 그 어려운 것을 했으니 그래야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낙타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사자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호랑이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원숭이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참새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토끼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돼지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강아지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고양이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 칭찬은 ... 칭찬은 지구상의 동물을 춤추게 한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마음의 수양을 하는데 있어서 내려놓기가 필요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 예가 남편에게 늘 맞고 사는 부인이 어느날부터 사랑으로 그를 대하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으로대하고 안아주고 입을 맞춰주었다고 한다. 시간은 많이 소요되었지만 7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관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좋은 애정을 유지하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게 과연 쉬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해볼 만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매우 주기적으로 화가나거나 욱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린다는게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
입으로 칭찬하기를 시작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이 변해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급하게 변하기는 어렵지만, 서서히 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욱하는 마음까지 자신이 감싸주면 더 편할 것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해보아야만 알 수 있다.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불쌍한 사람  (0) 2012.01.22
경력의 반대말  (2) 2012.01.13
서산에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  (0) 2012.01.09
문제와 답  (0) 2012.01.04
몸이 마음에게  (1) 2012.01.02
Posted by WN1
,

신데렐라 맨은 2005년에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땐 아무런 생각없이 꽤나 유명한 배우의 영화이기도 하고, 권투영화이기도 하여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는 이 영화에 매료되었다.
우선 실화를 바탕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연기력이 뛰어났다. 또한 1920-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의 배경이라 한국의 배경과 유사한 부면도 있는듯했다. 거기에 더해 주인공의 서민적인 생활과 역경들을 통해 힘든 삶이 다가왔다. 자신의 업인 권투로 훈련을 계속 하는것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생활이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우연치않게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약점이 개선되어가고 더 튼실하게 다져지는 역할까지 하여 다시금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정도 좋았다.
부인역으로 나온 르네 젤위거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었다. 당시에 르네 젤위거는 좋아하는 배우였고, 그녀의 연기는 분위기에 잘 어우러져 있었다. 남편의 직업자체를 싫어하여 그만두기를 원했지만 결국은 삶의 소용돌이 앞에서 돌아가게끔 할 수 밖에 없는 부인의 심정을 잘 표현하였고, 남편을 끝까지 지키려하는 부인의 모습이 많이 다가왔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는 매료되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여러번 보았다. 작년에도 신데렐라 맨을 보았다. 기억으로는 5, 6번은 보았다. 앞으로도 다시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영화나 책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은 그 내용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거나 이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내용이 이상향을 가지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개인적으로는 꽂힌게 맞다. 
여러 부면들에서 나에게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되어 주는 그런 영화이다.

그냥 꽂힌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아쉬움은 브래독의 인생에서 짧은 부면만 다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꽂힌 이상 그 영화가 좋았고 내용이 좋았다. 이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찾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년초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다. 아주 우연하게 북카페에 잠시 들러 책을 둘러보다가 책이 꽂혀 있었다. 
혹시 영화 신데렐라 맨의 내용인가 하며 책을 빼내었을때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것 같은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책을 구해서 읽었다.
책을 읽으니 그간 깊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영화에서 무언가 이해되지 않았거나 의문을 가지던 것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배경지식들 그의 성장기와 그가 초창기에 어느정도의 인정을 받았는지, 왜 한 물간 복서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긴 시간동안 부둣가의 일을 하였는지, 왜 그간 이긴 경기들에서 돈을 꽤 벌었을텐데 대공황에 그렇게 어려웠는지, 단기간에 맥스 베어와의 경기가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이유 등등을 알게 되면서 영화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와 그의 매니저 조 굴드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믿고 신뢰하였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미 영화로 꽂혀 있었기에 책은 너무 금방 읽었다.
빠져서 읽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과 영화의 제목이 신데렐라 맨 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는 감동적인 영화고 마음에 들어온 영화이며 감동적인 책이며, 감동을 준 인물이다.
물론 책을 통해 영화를 통해 받은 감동이 좀 줄어드는 느낌은 든다.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어 주었기에 영화의 극적인 장면들이 제거되면서 그랬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는 한번으로 인생역전을 이루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런 의미로 브래독에게 지어지는 별명인데, 그는 그에대한 답변으로 이렇게 말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천정까지 관중들이 가득 찬 걸 보면 사람들은 메인이벤트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정말 재수가 좋다고 생각하죠. 혹시 다음번에 그런 생각이 들면, 복서는 하룻밤 새에 갑자기 가든에 들어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은 그때까지 아주 길고 고된,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행로를 걸어온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복서인생을 보면 분명 몇 년의 시간을 통해 잊혀졌다가 갑자기 부상하게 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별명처럼 급부상하긴 했지만, 이면에는 처절한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거운 짐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작업장까지 5-6km를 걸어가야했고,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하는데 당시에 그는 오른손이 부러져 깁스를 한채 왼손으로만 일을 했어야 했다. 그나마 그곳에서 일자리를 찾으면 하루의 일당을 벌 수 있으나 일이 없으면 그는 다시금 3-4km를 걸어가서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일을 구하든 구하지 못하든 그는 하루에 10~20km를 걸어서 이동해야만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걸어보면 알겠지만 5km정도 운동이라 생각하고 걷는것만도 결코 쉬운 거리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 거리으 최소 2배에서 4배까지의 거리를 매일 걸어서 이동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일당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그가 다시금 사각 링에 올라갈때 그의 마음가짐은 누구나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돈이 필요했다. 이기고 지는것에 앞서 돈이 필요했다. 그의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얼마나 큰 비장함이었을지 짐작가능하리라.
또한 그는 이겨야만했다. 이유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겨야 다시 다른 시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시 돌아온 링에서의 첫 게임 묘사가 자세하지는 않지만 영화에서는 좀더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 지는 것과 맷집이 더 좋아진것, 그리고 앞전에는 왼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손이었으나 지금은 그 왼손이 또다른 오른손의 역할을 한다는것.
자신의 펀치를 받은 상대를 보면서 매니저도 놀라고 자신도 어리둥절해 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결국은 그것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를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도있었다.

그는 데미지가 있는 펀치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아빠이고 남편이기에 그렇다. 
복싱 선수로 복싱에 대한 자부심보다 더 앞서 있는 이유였다. 이런 그를 누가 이겨내기 쉽겠는가. 결국에 그는 헤비급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는 극적으로 작용하지만 책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책의 내용이 극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대한 설명들이 있기에 극적인 느낌은 분명 적다.
맥스 베어의 훈련이나 그가 처음에 원하던 경기도 아니었다는것. 
그리고 도전자가 브래독 밖에 있을 수 없었던 이유도 언급이 되어 있다.

영화는 브래독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의 생애중 단 5년 내의 언급만 있다.
이와는 달리 책은 짧더라도 태어난 배경부터 그가 챔피언 타이틀을 내어 준 내용까지 언급되어 있다.
좀더 인간적이며, 그 시대의 복서들에 대한 언급들을 통해 연결 고리들을 더 잘 맞출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의 부제는 '제임스 브래독, 맥스 베어, 위대한 복서들'이다.
이처럼 그 시절 많은 복서들의 이야기도 함께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브래독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건네준 맥스 베어의 이야기는 브래독 만큼이나 양을 차지하고 있다.
두 사람이 비교되는 것은 맥스는 타고난 복서라는 것과, 브래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노력을 하여 얻어냈다는 것의 차이때문에 내용을 더 재미있게 연결해 주었다.


현재는 권투가 그리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야구 축구 농구 골프 ... 등에 가려져 뒤로 많이 쳐져 있지만, 당시는 권투가 가장 인기 스포츠였다.
현시절로 돌아와서도 어릴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당시까지도 권투가 엄청난 인기 스포츠였다.
어린시절의 기억에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를 여러번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의 체격도 체격이지만 맞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챔피언으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는데 1라운드 시작되어 1분여 만인지 그 이전인지 게임이 끝났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타이슨이 여러가지 문제로 교도소에도 가고 사건사고가 있은 후에 홀리필드와의 경기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가 게임이 풀리지 않아 홀리필드의 귀를 물었던 장면을 TV를 통해 보았었다.
처음엔 왜 갑자기 홀리필드가 날뛰는지 몰랐다. 이후에 자료화면들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선수인데 헤비급은 아니었고, 백인선수로 매우 잘생긴 외모의 선수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몇 개의 체급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다.
그의 경기도 중계를 통해 여러번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그런 경기 중계를 보면서 무슨 사람이 저렇게 많이 구경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이전시대 권투가 황금기를 누릴때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했었을지는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게된다.

잊혀지지 않는 영화와 그 책이 기분 좋게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1935년 6월 13일, 복서로서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위치로 도약한다. 그리고 마침내 침피언 타이틀을 따냈을 때, 그는 역대 챔피언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브래독이 링 안에서 보여준 비범함 때문도, 링을 뛰어넘어 보여준 카리스마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대중에게 그렇게 어필할 수 있었던 건 평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짐 브래독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스포츠 동화의 원형이 되었고,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기 전 저널리스트 데이먼 러니언(Damon Runyon)은 그에게 '신데렐라 맨'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6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역대 어떤 매니저와 복서에 비춰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W.C. 하인즈는 '겉으로 보기엔 머트와 제프(미국의 만화 주인공인 키다리와 꼬마)같았고, 행동으로 봐서는 다모노가 피티아스(고대 그리스에서 목숨을 걸고 맹세를 지킨 두 친구) 같았다.'
두 사람은 마치 부부처럼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죽을 때까지 늘 함께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종종 부부로 묘사하기도 했다.  78



아래를 영화 포스터 이다.


아래는 책의 앞에 나오는 몇 장의 사진들이다.

 




Posted by WN1
,
조용히 앉아 열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동쪽으로 돌아 앉는다.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국가 움직이기에 태양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앟기도 한다. 
지구라는 녀석은 한시도 태양을 피하지 않고 어느면인가는 보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만큼의 속도나 크지 않기에 우리 있는 자리에서 보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만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에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돌아 앉으면 태양이 다시금 보인다는 착각을 한다.
우리는 언제나 착각을 쉽게 한다.
자신이 하는 착각을 인지 한다면 우리는 덜 화나게 되고 덜 싸우게 되지 않을까...

.
.
 
조용히 돌아 앉는것만으로 세상은 변한다.
낮에서 밤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악에서 선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혼자에서 여럿으로, 추위에서 따뜻함으로, 더위에서 시원함으로, 음지에서 양지로.. 
옛말에 '사람의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른다'고 한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우리 모든 삶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매우 쉽기도 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틀속에서만 판단하려는 우를 범하기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쉬운데 내 안의 사고의 틀이 그것을 어렵게 가지고 갑니다.   넌센스 퀴즈처럼..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찾아보는 노력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것입니다.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력의 반대말  (2) 2012.01.13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0) 2012.01.11
문제와 답  (0) 2012.01.04
몸이 마음에게  (1) 2012.01.02
내가 접었지만 내가 접지 않은  (0) 2011.10.19
Posted by WN1
,

정신분석 전문가들의 책은 여러권 읽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의 책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읽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가는 분석적인 측면에서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여러권 읽게 되면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부면들이 꽤 있다. 그런것이 분명 우리에게 많이 필요한 부면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집필된 책이다.
우리는 이성을 만나고 헤어지는 횟수가 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방어벽을 치게 된다.
처음 좋아했던 사람에게 너무 빠져 있다가 헤어나오는게 너무 힘들고 많은 것을 잃게 되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사랑에 대해 두려움과 일정 선을 유지하려는 방어벽을 띄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알지만 자신도 모르게 치게 되는 방어벽이다.
그렇기에 사랑의 감정은 있으나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음으로 헤어질 것을 대비하고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장애가 되어 상대는 떠나가는 상황을 만들게 되고 그러한 반복에 의해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사랑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불신은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깝지만 가깝지 않은 그러한 사람으로 변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사랑의 감정 따위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냥 살아간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신이 있다면 신이 준 능력이고 자연발생적이라면 본능적인 인간의 탐구는 이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어쩌면 불행한 어쩌면 서글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각자가 판단할 몫이겠지만 나는 좋은 일이라 생각지 않는 부류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분석철학이 무조건 옳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한계를 동양에서 찾지 않을 테니까. 
우리의 생활방식이 너무 서양화 되면서 비만인구만 증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 상태의 혼돈도 엄청나다. 
그렇기에 서양식 분석 철학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상태를 철저하게 관찰해 보면서 자신이 지금 어느 지점에서 있으며 헤매고 있는 건지 평안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됨으로 막연함이 사라지는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랑... 평생 풀어도 다 풀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많이 풀어내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면 조금 더 불안함을 떨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프롤로그
우리의 마음속엔 저마다 지워지지 않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어린아이의 시선과 두려움과 공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이.
그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는 길은 성장을 멈추어 버린 그 아이에게 다시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랑은 바로 그 아이를 성장시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5
안타깝게도 요즘 사람들은 지독한 외로움으로 사랑을 절실히 원하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한다. 사랑이란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친밀해지는 것조차 두려운 것이다
상처를 두려워하면 사랑을 할 수가 없다.  10

1. 사랑을 시험하는 것들
운명(Destiny)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사랑을 과거의 문이 쾅 닫히며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24
프로이트는 낭만적인 사랑이나 성인의 모든 인간 관계는 이전 감정의 재편집이며, 아이가 생후 초기 어머니와 가졌던 유대감과 나중에 에디푸스 갈등과 관련된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의 재현이 바로 사랑의 끌림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에게 '모든 사랑은 재발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사랑은 무의식의 운명이다.  25
짝을 잘 만난 경우는 상대방이 가진 자질을 올바로 파악한 것이다. 반면 실패한 '필(feel)'은 외모나 분위기로 상대의 모든 부분을 혼자 유추하여 자기 내부에 있는 어떤 대상을 다짜고짜 투사시켜 받는 느낌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26
옥타비오 파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랑이란 존재의 위험과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도,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지도 않지만, 인간에게 시간을 확장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실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사랑안에서는 몇 분이 몇 세기로 바뀌고 그 질량을 측정할 수 없게 되면서 인간은 찬나나마 죽음의 질병에 대한 잠정적 치유책을 발견 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인간에게 이처럼 잠정적이나마 존재론적 구원을 베풀어 주기에 사랑은 지구사에서 축복받은 자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사랑은 비록 상처를 받을지라도 하는 게 낫다. 
'운명적인 만남'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만 무의식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임을 말이다.
모든 사랑의 감정은 진실하다. 다만 첫눈에 반한 사랑에 대한 과대 포장은 당신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30

사랑(Love)
혹시 사랑의 장애물로 사랑 그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잇는지. 사랑이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가 유일하게 믿고 기대게 되는것이 바로 사랑이지만 사랑은 결코 믿을 만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사랑을 시험하게 만든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슬픔과 외로움, 미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빋어지는 현상이다.  36
사랑이라는 것은 성인으로서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시작,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곧 내가 과거에 사랑했더 부모나 가족과의 결별을 뜻하기 때문에 슬플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슬픔은 사랑으로 인해 생겨나지만 사랑이 결코 채워 주지 못한다.
가슴 한쪽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메아리를 울리고 있다.  37
나와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는 상대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끼면서 비로소 사랑은 성숙해지고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됨을 견디지 못하고 부정하면, 상대에게 매달리고 끊임없이 확인을 요구하며, 서로를 피로와 혐오 속에 몰아 넣을 수도 있다.  38
슬픔과 미움과 외로움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랑을 하기 위해선 그 친구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40

섹스(Sex)
요즘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상처받을까 봐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때그때 자신들의 감정에 따라 관계를 맺는다.  47
성과 사랑을 분리하는 사람들에게 상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상대반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처럼 끝없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48
정상적인 여성들도 50% 정도는 성교 행위만으로는 오르가슴에 이르지 못한다.  49
에로틱한 욕동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즐거움을 추구한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하고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마치 그가 된 듯 상대와 동일시함으로써 합치감의 희열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 성의 에디푸스적 구조에서 유래된 금기를 극복하는, 일종의 반란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51
밀접하게 친밀해진다는 것은 서로의 내부에 있는 원초적 욕망이나 공격성이 변형되거나 승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상대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잇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섹스에서 서로의 경계를 지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섹스에의 강렬한 충동을 성적인 유희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부드러움이 필수가 된다.  52
결론적으로 섹스의 위험성을 막아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53
육체적인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과 분명히 다르다.  54
사랑이 없으면 서로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그들의 관계는 소유와 집착과 파괴로 바뀌어 버린다.  56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한닥 해서 인간 본연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섹스가 가진 모순 때문이다.
자기의 확고한 경계를 의식하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반면 자기를 초월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57
사랑이 두려워 섹스만 하고 싶은, 섹스를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내 존재조차 버거워 결국 섹스도 사랑도 떠나게 되는 그들의 초라한 모습.  58

21세기(The 21 century)
넘쳐나는 자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의 마음은 자신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순간순간의 욕구 충족을 좇게 한다. 모든 것 -우리의 정신조차도- 은 파편화해 총체선과 통합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순간마다 각자의 '전체적 자기(whole self)'가 아닌 '부분적 자기(part self)'로 관계할 뿐이다. 
'마리보적 존재(marivaudian being)'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인간으로서,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  63
아이들은 열등하고 무기력한 진짜 자기 모습을 감추려 하고, 없어도 있는 듯이 위자을 하고, 못하는 것도 잘하는 양 으스댄다. 그리고 점점 성장해 감에 따라 무기력하고 약한 자기의 모습을 방어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들을 발달시키는데, 이것이 몸에 익은 '과대 자기'의 모습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과시적인 만족은 실체가 없는 거품 같은 것, 물속에 비친 자기 환영과 같은 것이다.  64
자신만의 성을 높이 쌓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를 유지하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메아리 없는 세상에서 숨죽이고 사는 나르시시스트들, 그들이 하는 사랑의 특징은 감각적이고, 순간적이며, '감정이 배제된 성'이 사랑을 대치한다.
그들은 '자기 이상(ego-ideal)'을 상대에게 투사시켜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자기의 이상이 실현되는 듯한 착각을 즐긴다. 즉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속에 투사된 자기의 이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65
순전히 성을 위해 존중되는 성은 미래에 대한 모든 관계를 상실하고 영속적인 관계에 대한 어떤 희망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영속적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만을 가져올 뿐이다.  67
병적인 자기 과대가 발달한 그들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헤어질 때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아예 자신의 감정을 거두어 버리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쉽게 돌아서선 곧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69

결혼(Marriage)
최초의 열정과 사랑을 관계의 핵심으로 여기는 사람드은 결국 환멸을 느끼거나 이혼하기 쉽다는 연구 결과.
미네소타 대학의 사회 심리학자 엘렌 버셰이드는 열정적인 사랑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버트랜드 러셀도 낭만적인 사랑을 찬양하면서도 그것이 행복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의 토대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77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낭만적 사랑은 결혼이라는 마차를 이끄는 첫 부분일 뿐임을 명심하고, 결혼 생활의 문제를 모두 낭만적인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고 돌리는 태도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다.  79
보통 사람들은 사랑하면 으레 '사랑에 빠지는 것(falling in live)'만을 떠올린다.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을 하는 것(being)'을 거쳐 '사랑에 머무는 것(sraying in love)'이란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거친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라에 빠진 연인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틀고, 자기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서서히 맞추어 가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 머무는' 상태는 그들의 사랑하느 관계가 외부 세계와 격리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견디어 나가는 단계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라에 머무는 것이다.  80
애정 어린 결합은 사랑의 열정이 희미해진 후 남게 된다.  81
사랑에 머물면서 그들은 같이 인생을 걸어가는 상대방을 소중히 하고, 그와의 경험을 소중히 한다. 충절의 표현이다.
라쉬 교수는 사라에 머물면서 서로가 이러한 애정으로 결합되는 것을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이라 표현했다.
최적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자율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둘만의 결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연인들에게 최적의 거리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텅 빈 느낌 없이 주기적으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요, 서로의 친밀감 안에서 자신을 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82
열정적인 관계는 부부 사이에도 각자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계속해서 피어날 수 있다. 우선 둘 사이에 서로 열정적인 사라에 빠지겠다는 합의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사람만의 노력은 둘 사이에 더 큰 상처만을 남기기 십상이다.  84


2.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는다면 문제는 당시에게 있다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사실 열 사람이 어떤 사건을 동시에 목격한다 해도, 그들이 사건에 대해 말하는 느낌은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것은 그것이 저장될 당시의 그대로가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저장될 때, 그것은 그 본질과는 조금 다르게 변형되어 저장되는 경우가 많다.  91
기억은 주관적이며,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와 무의식적 소망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92
남녀가 사랑을 할 때는 두 사람의 성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인간이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인간이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재료를 사용하여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97
우리가 사라을 할 때 빠지는 대부분의 오류는 상대를 자신의 기준과 시각에서 해석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자싱이 가진 가치 기준을 가지고 상대의 태도와 감정을 재단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항상 상대편이나 외부적인 환경에서 찾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겪게 되는 갈등의 원인 대부분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단지, 그 갈등의 원인이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경우엔 자기 자신조차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98

사랑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당신에게
사랑 중독증...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사라에 의존하게 되는 것.  102
사랑 중독즈에 빠진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다가, 곧 그 사랑이 식어지면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을 반복한다.  
반복될 수록 자신감은 더 없어져 가고 그러한 불안감 때문에 더욱더 다른 사람의 사랑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된다.  103
사랑 중독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필요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104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상대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맞추어 가며, 그 안에서 자신과 상대를 발견하고 같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105

상대를 있는 그대로 못 보는 당신에게
피그말리온식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한마디로 자신이 창조한 상대를 독점하고 지배하려 하는 데에 있다.
조작할 수 없는 것을 조작하려 하고, 강압할 수 없는 것을 강압하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타락시키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신 또한 상대를 자꾸만 의심하게 될 테니까.  113
어쩌면 피그말리온은 어떤 사랑에서든 일반적으로 조금씩은 발견되는 얼굴일는지 모른다.  114

희생만이 기쁜이 되는 당신에게
어떻게 보면 '준다'는 행위는 내 자시에게 나를 과시할 수 있고, 그러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확인시켜 주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것이다. 사랑을 통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주는 경험을 한다는 건 아주 뜻깊은 일이다.  118
마조히즘이라 불리는 '피학적인 사랑'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자신을 처벌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구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상대에게 내어주어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학대하게끔 유도한다. 노예같이 상대에게 예속되면서 절망적인 사랑으로 치닫는 것이다.  120
왜 학대받는 관계를 참고 견딘 것일까? 이것은 부모로부터 거절당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대인 관계의 결함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함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죄책감이다.  123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으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만을 기쁨으로 아는 당신, 혹시 당신은 열등감이나 박탈감을 숨기려고, 사랑을 가장하여 상대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목적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합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합치를 위해서는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고 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에게 예속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125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는다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
'사랑을 못하는 것은 사랑을 할 만한 상대가 안 나타나서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당신이 기다리는 그 누군가가 캐럴이나, 마술적인 상대가 아니었는지 묵고 싶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 누구를 만나도 만족하지 못하고 내 반쪽은 따로 있을 거라고 의심할 것이다.
사랑의 마술은 마술적인 상대를 만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모두 나처럼 외롭고 약한 존재이다.  131

당신이 사랑을 밀어내 버리는 방식
방어 기제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정신 역동인데,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방어 기제를 쓴다.  136
독립적인 사람은 상당히 의존적인 배우자를 선택하기 쉽다. 왜냐하면 자신이 과거에 억압하던 의존 욕구를 재경험을 통해 충족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되면 다시 자신의 세계에서 의존적인 배우자를 쫓아내려 한다.  141
누구나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문제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느냐에 있다. 만약 당신이 돌이켜 보건대 사랑을 함에 있어 과다한 방어 기제의 사용으로 사랑을 그르쳐 왔다면, 그리고 매번 같은 태도를 반복해 왔다면 그것은 위험 수위일지 모른다.  142


3. 사랑을 하려거든 사랑할 수 있는 능력부터 키워라
어쩌면 당신은 사랑 불능자 일지도 모른다
'사랑 불능자?'
미국의 정신 분석가 컨버그에 따르면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눈다.(두 가지만 다룬다)
첫 번째 유형은 내게 없는 걸 가지고 있는 상대를 시기하고,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사랑에 빠지기 힘든 사람들 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그 시작도 물론 어렵지만 설령 사랑이 진행된다 해도 자기 자신에 도취되어 있어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 '자기애적 인격장애'는 바로 이러한 인격적 결함을 병적으로 가진 사람들의 장애를 지칭하는 말이다.  147-148
두 번째 유형은 자아가 탄탄하지 않아서 상당히 충동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채워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데, 이들의 문제는 가까워지는 것, 즉 친밀감을 견디지 못하는 데 있다.  150
사랑 불능은 치유될 수 있다.  152
필요한 것은 사랑을 하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다.  153

상처없는 사랑이란 없다
소모적인 싸움은 갈등을 본질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싸움을 '진짜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진짜 갈등은 그들이 속해 있는 내적 현실의 깊은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62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로 도움은 안 돼도 사랑은 할 수 있다며 갈등을 회피해선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서로의 상처만 깊어질 따름이다.  166

사랑을 하려거든 사랑할 수 있는 능력부터 키워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와 내가 분리된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상대가 내 속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분리된 아주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그에게 어찌 감사한 마음이 안 들겠는가.  170
'사랑받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하지 않을까?'
사랑받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하려거든 사랑할 수 있는 능력부터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173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탓을 상대에게 돌리지 않고, 그 전에 나를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성숙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성숙을 이끄는 성숙 과정의 한 기능이기도 하다.  174

소홀히 넘겨 버리는,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에서 여우는 왕자에게 '특별한 관계'를 원한다면 '내가 너를 신뢰 할 수있도록 해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간의 사랑 역시 서로 다른 둘이 만나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면에서 그것과 다르지 않다.  183
자신과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사랑이 괴로워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뢰가 부족한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나타나는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상대와의 '공감'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감 대신 '동정'을 한다. 상대의 감정으로 들어가 아예 하나가 되어 버림으로써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지 만 다시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에 같이 휩쓸리지 않고, 그 감정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184
그러나 무엇보다 신뢰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친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 있다.  185

정신분석에서 배우는 사랑의 지혜
오래된 연인드의 특징 하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그것이 더 이상 알게 없다, 혹은 익숙해지니까 식상하고 지루하다는 생각과 연결된다는 데에 있다.
'사라을 통해 내가 결국 나중에서야 깨달은 건 너와 나는 타인이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런 문구를 읽으면서 나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할 때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190
무굴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같이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서로를 깊게 받아들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연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와 성숙의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197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네 가지 방법
어쨌든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 거짓됨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데미안이 말했던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4
첫째, 과거를 재구성하라
자신이 늘 구박만 받았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되살리면서 굉장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냈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많이 사랑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다는 것. 엄마 입장이 되어 보고, 아빠 입장이 되어 보니 부모가 애초부터 자신을 미워하고 상처를 주려고 한 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그때 그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부모에 대한 분노를 거둘 수 있었다.  205
둘째, 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
붐노를 너무 자주 폭발시키는 사람만큼이나 전혀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도 문제다.  206
마음속에 분노를 담아 두지 말자. 상대에게 자신이 느끼는 불만을 털어놓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상대에게 전달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더 이상 아닌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분노를 적절하게 터뜨릴 줄 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208
셋째, 'all good, all bad'에서 벗어나라.
'all good, all bad'에서 벗어난다는 것의 의미는 좋고 싫은 감정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만큼이나 나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타인을 장단점이 혼재한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  
'all good, all bad'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9
넷째, 'So, it's me'
'그래, 그것이 바로 나다(So, it's me)'
자기 자신의 상처까지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담담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210
프로이트는 정상의 기준을 '약간의 히스테리(a little hysteric), 약간의 편집증(a little paranoid), 약간의 강박(a little obsessive)을 가진 것'이라 했다. 이것은 곧 어떤 사람도 이런 것들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왜 모든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하는가? 왜 모든 사람이 열정적인 사랑을 해야 하는가? 어떤 모습이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고 편안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211

죽음보다 더한 고통, 실연은 이렇게 떠나보내라
실연의 산을 무사히 넘은 사람은 이제 다른 산을 잘 오를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고, 산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됨으로써 다음 산행에서 위험을 피할 수 있으며, 어떤 산이 오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또 진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여력을 가진다. 그리고 실연의 산 정상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아 다음 산행을 더욱 의미 있게 계획하기도 한다. 문제는 인생을 살면서 가끔 마주칠 수 있는 이 산행에서 어떤 것을 배우며 얻어 가느냐 하는 것이다.  214
실연의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고통은 아무에게도 버여 주지 않던 자신의 깊은 내면을 상대에게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215


4. 사랑을 온몸으로 껴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당신도 혹시 첫사랑을 찾고 있는가?
아마도 첫사랑은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애태우던 기억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게 아닐까.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28
첫사랑은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기억인지 모른다. 동시에 첫사랑은 성장이라는 여행길에서 우리가 성인의 사랑으로 진입하기 위해 지나쳐야 한 땅이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영토이기도 하다.  231
첫사랑, 그것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기에 우리에게 계속 꿈으로 남으며, 메마르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마른 목을 적혀 주어 다시 힘을 내게 만드는 오아시스가 된다.  232

플라토닉 러브가 반쪽짜리 사랑인 이유
플라토닉 러브의 개념이 지금처럼 자리잡힌 것은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금욕 주의로 점철되어 있던 그때 '플라토닉 러브'는 순서한 정신적 사랑만을 강조하는 최고의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로 추앙받았다.  233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데 왜 굳이 육체적인 면을 무시하고 정신적인 사랑만을 고집해야 하는지.  234
사랑이란 '에로스(욕망)'와 '프시케(영혼)'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상태다. 사랑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측면은 어느 한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중요하다. 정서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합쳐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황홀한 경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236
나는 플라토닉 러브를 현실의 사랑이라기보다는 꿈속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랑의 가장 높은 단계라고 말하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플라토닉 러브는 이상화한상대를 향한 사랑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측면만을 동경하고 갈망함이며, 성적인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억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238

에디푸스 콤플렉스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
에디푸스 콤플렉스를 잘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사랑의 유형이 바로 삼각관계 안에서만 사랑을 느끼는 경우다.  245

사랑 없이는 정말 살 수 없는 걸까?
사람은 사랑이 있어야만 제대로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 운명을 지녔다. 그리고 사랑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지어 주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가족이든 혹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든, 아니면 예술이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든.... 결국 어떤 형태로든 모두 사랑을 하고 사는 것이다.  256

사랑을 온몸으로 껴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현명한 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결국 자신이 가장 만족스러운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는 선택은 곧 자기 파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책임의 문제는 따른다. 책임에 대한 마음의 준비 없이 취하는 선택은 성숙한 판단이라고 하기 어렵다. 때로는 그 선택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처벌도 달게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랑이 강렬한 만큼, 그 고통도 그만큼 따르는 것이다 생각하면서...  267
비가 오면 지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세요. 그럼 아마 그 바람은 서서히 잦아들지 않을까요?
웃는 건 바보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다. 
눈물을 흘리는 건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남의 일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참 모습을 들킬 위험이 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기획과 꿈을 발표하는 건 그것들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산다는 건 죽을 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
희망을 갖는다는 건 정말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시도를 하는 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으려는 것이니까.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자신의 두려움에 갇힌 그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자유는 '갇힌 자유'다.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 작자미상  268-269
사랑은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지도 모른다. 더 이상 사릉으로 인해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역설적이지만 상처를 오픈하고 사랑을 온몸으로 껴안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를 얻게 되지 않을까?  269
사랑을 온몸으로 껴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에게 허락된 삶의 마지막까지, 나는 노력할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다 갈 수 있도록...  270



김혜남의 정신분석 카페
마음의 키를 재는 척도, 사랑
마음의 키는 언제까지 자랄까? 
최근의 정신분석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숙하고, 그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적응하고 성장한다고 한다.  257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좌절을 견디는 능력, 적어도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사랑을 마음의 키를 재는 척도라고 말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58

Posted by WN1
,

'평범한 자녀를 최고의 인재로 키워낸'

조선시대는 선비들의 일이 공부이다. 그 공부가 독서이다.
독서를 말함에 있어서 분명 오늘날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그 시대의 독서와 오늘날의 독서는 분명히 다르다. 
시대적으로 책이 많지않던 조선 초기와 상대적으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 중기와 후기의 독서에 대한 방식이나 독서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기와 비교해도, 후기와 비교해도 분명히 틀리다.
쉽게 독서하지 못하는 환경도 있지만, 쏟아지는 책의 양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을 하는 책보다는 읽으면서 바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실용서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들이 많이 읽힌다.
이러한 전체적인 환경 속에서 어떤 책이든 읽은 수가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레 읽는 방법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독서의 확장을 하게 되는데, 우선 독서 방법등에 대한 내용들을 찾게 된다. 
그렇게 독서에 대한 방법으로서 이 책은 제시하는 조선시대 학자들의 교훈을 담아 내고 있다.
정독형도 있고, 다독형도 있다. 또한 경험형도 있고, 고민형, 사유형도 있다. 
여러가지의 유형을 가진 많은 학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몇 가지 중의 하나는 '생각'이다.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이다.
읽고 생각할 것인가 많이 읽고 생각할 것인가 생각하고 읽을 것인가... 순서는 틀리더라도 생각 즉 사유의 시간이 많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더없이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에 있기에 더욱 필요성을 강하게 느껴야 한다.
독서란 눈으로 읽는 것이라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읽어내야 하며 머리로 그것들을 정리하고 해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 과정이 우리에게 절실함을 다시 한 번 공감하게 된다.





고려 때까지 책은 몇몇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상류층이라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엔 책이 넘쳐났다. 호학군주인 세종과 성종 등은 책 간행을 독려했고, 학자들은 문집을 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특히 후기에는 인쇄술의 발달과 산업의 진흥, 청나라로부터 책의 대량 수입이 이뤄지면서 문예부흥이 일어났다. 이는 독서의 양상을 바꿨다.  5 
조선 전기까지는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조선 후기에는 정독 경향이 나타난다.  6

1장 삶인가, 죽음인가
전쟁 때도 책을 놓지 마라 - 유성룡
유성룡은 마흔 살에 얻은 아들 유진에게 직접 글을 가르쳤다. 아들이 열 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그 속에서도 틈틈이 글을 알려주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 본격적으로 지도를 했다. 그 결과 아들 유진은 스물여덟 살에 진사시험에서 장원을 했다. 
그는 아들에게 글을 주며 당부했다.
'비록 세상이 어지럽고 위태로워도 남자라면 공부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16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빠른 성공만을 원한다. 마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처럼 빠르게 성공하는 기술만 찾는다. 옛 성현의 글이 담긴 책들은 다락방에 처박아두고, 매일처럼 남의 비위나 맞추는 글을 찾는다. 그리고 그 말을 도둑질해 시험 감독관의 눈에 띄도록 글을 지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독서란 생각이 중심이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그치는 수준밖에 안 된다. 그러면 많은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다섯 수레의 책을 입으로는 줄줄 외지만 글의 뜻과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18
'욕심을 내거나 인색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라. 젊어서 공부할 때 깊이 생각하고 실천을 위주로 해라.'
세상의 좋지 못한 모습에 빠지지 말고 실천을 하는, 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한 것이다.  19

3대에 걸친 독서 유언 - 김수항
김수항은 어린 손자들에게 유언을 읊었다.
가득 차 넘침은 귀신의 시기를 부르고
영예로운 이름은 재앙의 뿌리가 되노라
모름지기 '겸손할 겸' 한글 자를 주노니
새기고 새겨 여러 손자들은 경계토록 하라.  35

아버지를 살리려면 독서를 해라 - 정약용 
정약용 자신은 천재였지만 독서 만큼은 노력을 강조했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해도 나중에는 알게 되고, 머리가 뛰어나지 않아도 한 번 알게 되면 쉬 소통되고, 어리석어도 꾸준히 하면 알게 된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된다.'  43
독서를 등한시하는 두 아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나는 어렸을 때 연초에 1년 동안의 공부계획을 세웠다. 가령,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옮겨 적을까를 계획한 뒤 실행에 옮겼다. 때때로 예상치 않은 일로 인해 몇 개월 뒤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햇지만 선을 좋아하고 더 발전시키려는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까지 너희에게 편지로 독서를 장려했다. 그런데 너희는 책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이나 예악에 대한 궁금증, 역사에 대한 논란거리에 대해 단 번도 물은 적이 없다. 어째서 너희는 내 말을 허투루 듣는다는 말이냐.'  45-46
정약용은 독서하는 방법을 다섯 가지로 보았다. 다산시문집 <오학론2(五學論2)>에 실려 있다.
'널리, 넓게 배운다는 박학(博學)이다. 다음은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이고, 세 번째는 신중히 생각하는 신사(愼思)다. 네 번째는 명백하게 분변하는 명변(明辨)이고, 마지막으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독행(篤行)이다.'  48

나라를 유지하는 힘은 책에 있노라 - 영조
'오늘의 공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50
'만 권의 책을 읽는다 해도 그 뜻을 확실히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 토론에 익숙해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앵무새와 다를 바 없다... 아침저녁으로 책을 읽고 밤낮으로 글을 익혀 마땅히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참된 공부는 나를 위하는 것이고, 거짓 공부는 남을 위한 것이다. 참된 공부와 거짓 공부는 나라의 일로나 개인적인 일로나 의리나 이익이나 서로 다르기에 가히 두려워해야 한다.'  51
정조의 어록인 '일득록'에는 독서 피서법이 소개돼 있다.
'더위를 이기는 데는 책읽기가 최고다. 독서를 하면 몸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마음의 중심이 선다. 그래서 외부의 기운이 들어오지 못한다.'  54

죽음을 각오한 결심으로 공부하라 - 권양
나이가 들어서도 학문에 대한 애착을 보인 그는 가훈의 학업 편에서 공부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공부는 순서가 있다고 했다. 먼저 인간성을 살리는 덕을 쌓는 공부를 한 뒤, 경서와 역사를 읽는 문예의 공부를 주장했다.  61
권양은 <소학>과 <가례>는 비롯 무사라 하더라도 공부하라고 했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춘 뒤 전문분야를 공부하라는 뜻이다.  62

붓과 벼루가 아닌 칼을 물려주는 까닭을 생각하라 - 김성일
김성일만의 이색 교육법이 있다. 김성일이 하루는 아들들에게 붓과 벼루가 아닌 칼을 주고 말했다.
'칼을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라. 이는 의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의리와 개인적인 욕심의 관계를 끊어 의리를 취할 일이다. 공부를 하면서 버릴 것을 분명히 하라.'
암기하고 이해하는 공부를 넘어 인간에게 중요한 의리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한 것이다.  75
김성일은 공부에 전념하지 않으면서 결과를 바라는 것은 곡식을 키우면서 뿌리를 북돋우려 하지 않고, 잡풀을 없애려고 한다면서 호미질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유했다. 
한 걸음 걸을 때는 마음이 한 걸음에 있고, 두 걸음 걸을 때는 마음이 두 걸음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고,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오로지 노력한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오로지 노력한 만큼의 결실이 가능하다는 교육이다.  76
내 평생에 한 마디 말을 간직했으니
내 허물을 말하는 사람이 곧 스승이요
내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람은 곧 도적이라
이 열네 글자로 
항상 나를 경계하고 노력하리라.  77


2장 정독인가, 다독인가
서재가 새둥지처럼 작다고 탓하지 말라 -이만수
그는 많은 책을 보관하는 것에 대해서는 손을 내저었다. 읽을 책만 책상에 꽂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만수는 자신의 서재를 서소(書巢)라고 이름 지었다. 새의 둥지처럼 아주 작고 볼품없는 것을 뜻하는 서소는 많은 학자들이 겸손 차원에서 서재는 물론이고 호로도 사용했다.'  82
의지가 강하고 바른 생각을 한다면 쓰러지는 초가집에서도 글공부를 하고 시를 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의 권 수가 적지만 중국의 태평성대라는 요순시대와 문왕, 무와, 공자, 주자의 말씀, 뛰어난 역사가의 판단 등, 수천 수백 년 내려온 지혜가 쌓인 책들을 갖고 있네. 이 책들을 서재에 꽂아놓고 평생토록 읽고 또 읽어도 충분할 것일세. 군자가 책을 꼭 많이 구비해야만 하는가. 많지 않아도 되네.'
삶에 지침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인생 필독서를 읽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84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많은 책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책을 보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진 이만수는 경서나 역사서, 문집 등 각분야 대표서적 13종만을 서재에 비치했다. 지혜의 보고인 이 책들만 평생을 읽어도 된다는 신념이었다.  85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적는다 - 기대승
임금에게 독서에 소홀함이 없을 것을 진언한 그는 책 읽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서는 옛 사람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반복하여 읽어 마음을 깊이 붙여야 한다. 어느 순간 마음에 얻는 바가 있으면 스스로 알게 된다. 그러니 그 뜻을 언어에만 의지하지 말라.'
읽고 읽어 자구에만 얽매이지 말고 행간을 이해하라는 뜻이다. 
부모의 가르침이라는 '과정기훈(過庭記訓)'에서 기대승은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또 반드시 외워야 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읽고 생각한 뒤 글을 짓는 게 순서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88

열흘의 노력이 위대한 습관을 만든다 - 홍대용
처음 독서할 때 누구나 힘들다. 이 괴로움을 겪지 않고 편안함만 찾는다면 재주와 능력을 계발하지 못한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인내하면 열흘 안에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다. 이렇게 하면 힘들도 어려움은 점점 사라지고 드넓은 독서 세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사람은 100년을 살지 못한다. 그나마 근심과 재앙, 고난이 쉬지 않고 찾아든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독서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면 타고난 재주와 능력을 살리지 못한다. 결국 인생 말년에 어려움을 당해도 원망할 사람조차 없게 된다.  95

책 이불과 책 병풍을 아는가 - 이덕무
스물한 살 때 쓴 <간서치전(看書痴傳)>에서 '남산 아래 산 바보는 말 재주가 없고, 성품은 게으르고 옹졸하여 세상을 알지 못했다. 바둑이나 장기 등 잡기는 더더욱 몰랐다. 남들이 욕을 해도 말하지 않았고, 칭찬해도 우쭉대지 않았다. 오직 책 보는 즐거움으로 인해 추위도 더위도 배고픔도 아픈 줄도 아주 몰랐다.'
그의 독서 열망은 그의 서재인 구서재(九書齋)에서도 엿보인다. 구서는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抄書), 책을 바로잡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評書), 책을 쓰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曝書)를 말한다.
이는 단순히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책에 관련되 모든 것을 이루어 내겠다는 큰 포부다.  98 


1억 1만 3천 번을 읽어 내려가다 - 김득신
재주가 다른 이에게 미치지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에는 이루었다.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109

책이 있는 곳이 지상낙원이다 - 허균
허균의 독서는 3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책을 읽고, 그 중에서 좋은 문장을 메모했다. 다음에 메모된 것을 내용별로 분류해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엮어진 게 생활교양서인 <한정록>이다.  114

나는 책벌레가 되련다 - 장유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그는 '진나라의 저술가인 황보민은 나이가 스물이 되도록 공부에 관심이 없다가 뒤늦게 글을 시작해 여러 학문에 두루 능통하여 현안선생으로 불리었다. 당나라 문장가인 진자앙은 부유한 집의 아들이지만 십칠팔 세때까지 글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뜻을 세워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당송팔대가로 추앙받는 소순은 성인이 되어서도 글을 알지 못했다. 그는 스물일곱 살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고, 5-6년 뒤 명성을 얻었다.
이로써 보면 공부는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지, 일찍 시작하고 늦게 시작하는 것은 논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130
'나는 어려서 마음이 넓지 못하고 생각도 작았다. 별 재주가 없던 나는 오직 책읽기와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만약에 독서와 글짓기에 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수양해야 남의 물질을 기다리지 않는다. 자립한 뒤에야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절조가 있어야 남을 따르지 않는다. 불의를 부끄럽게 여겨야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어질지 못함을 미워해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의로움과 이익됨을 구분하는 삶을 말한다.'  135


3장 환경인가, 요령인가
공부 분위기는 스스로 만든다 - 이덕형
'말과 행동이 배울  게 있어야 하고 분명해야 한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해라. 어느 순간에나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고 쉴 때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책을 오래 읽지만 금세 잊는 경우는 뜻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귀로 듣기만 한 결과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선입견에 집착하지 말고 반드시 새로운 뜻을 알 때까지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깊은 생각은 밤중에 하는 것이 좋고 아무리 바른 자세로 앉아 그 뜻을 익혔더라도 열심히 외우지 않으면 다시 잊어버리게 된다.'  162

공부 장소로는 어디가 좋은가 - 이황
그가 자주하던 공부를 장려하는 말이 '하처 불가독 하시 불가학(何處 不可讀 何時 不可學)'이다. 언제 어디서나 책 읽기를 멈추지 말고, 항상 공부하고 배우라는 뜻이다.  167
'책을 읽고 공부하는 데 장소를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서울에서 공부하든 시골에서 책을 읽든 성패는 오직 뜻을 세우는 것에 달려 있다. 최선을 다해 매일 공부해야 한다.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된다.'  168
제자인 김성일에게는 독서 방법을 제시했다.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글을 읽고 또 읽어 음미하라고 했다. 그래야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충 읽고 말하면 깊이가 없고, 비록 천편의 글을 읽고 말한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낮에 읽은 것을 밤에 깊이 고민하고 풀어보는 게 공부하는 방법임을 말했다.
퇴계선생 언행록에는 공부법으로 숙독이 나온다. 
'책은 숙독을 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글의 뜻을 알았다 해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읽자마자 잊어버리게 된다. 또 마음에 깊이 간직할 수 없다. 반드시 배운 것을 거듭 복습하고 깊이 익히는 공부를 해야 비로소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다. 더불어 글의 맛과 성현의 말씀을 충분하게 음미할 수 있다. 낮에 읽은 것은 반드시 밤에 다시 읽으면서 사색하고 풀어보아야 한다.'  169

독서는 보수적으로 하라 - 안정복
<순암집>에서 권철신에게 보낸 편지 '그대는 독서에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여 굳이 글 뜻을 깊고 높게만 해석하려고 하였네. 이런 습관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하나의 이치를 생각할 때도, 먼저 그대의 견해를 주장하고 글 뜻을 거기에 맞추려고 하였네. 이는 주변의 상황을 폭넓게, 깊게 공부하는 것에 눈감은 것일세. 이 같은 좋지 않은 독서 습관을 버리게나. 이런 행동이 오래되면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큰 공부를 하기 어렵네.'
다른 편지에서 고전의 글을 인용하여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것을 질타한다.
'책을 읽을 때는 왜 그럴까라는 생각이 필요하네. 이 생각이 있어야 공부가 제대로 되네. 주자는 책을 읽으면서 배경을 생각하면 크게 발전한다. 처음엔 단순하게 읽다가, 다음에는 점차 생각이 깊어지고, 갈수록 구절구절 원리 탐구를 하고 싶어진다. 이런 과정을 한 차례 거친 뒤에는 깨닫게 되고 이해를 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공부 라고 하셨소. 이것이야말로 독서에 대한 현명한 정의라고 생각하오. 큰 학자들의 말씀이 모두 분명하고 쉬우니, 너무 빠져 들어 색다른 뜻을 찾다가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지 마오. 퇴계 선생은 독서 때 별다른 뜻을 깊이 찾을 필요가 없고, 본문에서 현재 있는 뜻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소. 이 말이 아주 쉽고 적당한 표현인 듯하오. 잘 생각해 보시오.
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떤 이는 자기 입장에 맞는 것을 취하오. 그대가 옛 글에서 생각이 다른 게 있으면, 그 다른 곳의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헤아려보시게. 그러면 좋은 답이 나올 것일세. 선입견에 묻혀 큰 학자의 학설을 그대의 생각에 짜 맞추는 것은 옳지 않소. 그렇게 하려면 그대의 생각대로 글을 쓰면 되지, 왜 큰 학자가 쓴 책을 읽는 것이오.'  189-190

질문이 모든 공부의 기초다 - 허목
'독서에서 가장 크게 걱정할 일은 단계와 순서를 뛰어넘어 빨리 이루려는 마음이다. 이는 개인적인 욕심이 독서의 본뜻을 가리기에 진정한 이해에 다다를 수 없다. 개읹거인 욕심을 앞세우고 독서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욕심으로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산란할 때 경이로운 마음이 아니면 무엇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겠는가. 경이로움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에 집중하면 근심과 걱정이 저절로 사라진다. 
책을 보는 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이치를 구한 다음에 앎과 실천이 함께 나아가야 된다. 사람의 길인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과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은 근본이 서지 않은 것이다. 이때는 기본이 탄탄하지 않기에 갑자기 얻었다가 갑자기 잃게 된다. 바람직하지 앟은 것들만 넘쳐 흘러 아무 이익이 없다. 또 단계나 순서를 뛰어넘어 높은 데를 엿보아서는 안 된다. 샘이 졸졸 흐르고 불이 서서히 타오르는 게 자연의 이치이듯 공부도 마찬가지다.'  204
허목은 또 다른 글에서는 '의문이 나면 반드시 묻는 것은 옛 사람의 공부 자세다. 앎에 이르기 전에 성실함이 필요하고, 안 뒤에는 더 성실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요즘 사람은 실천이 아니라 의견부터 내세운다. 게다가 지나치게 과격하고 가볍다. 이에 비해 옛사람들은 작은 것이라도 실제 보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실천해 아는것과 행동에 차이가 거의 없다'라고 했다. 즉 차분한 독서를 하여 아는 것을 행도에 옮길 것을 말한 것이다.  205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 홍길주
평소 사색을 많이 한 그는 책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보인다. 책을 사유의 수단으로 보았다. 책 읽기를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과 내, 구름, 새, 짐승, 풀, 나무 등의 세상 만물과 일상의 세세함 속에 독서가 있다.'라고 말했다.
독서는 고작 글을 읽는 것만이 아닌 세상 모든 만물을 살펴보고 이해하는 경험임을 밝히고 있다. 수많은 사유를 통한 직관과 통찰력이 좋은 독서라는 주장이다.  219
'책 한 권은 대략 70~80면 쯤 된다. 역기에서 핵심을 뽑아내면 10여 면에 불과하다. 어떠 ㄴ이는 책을 처음부터 다 읽지만, 그 핵심은 알지 못한다. 오직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대충 읽는 듯해도 핵심이 되는 곳에 눈길을 고정한다. 그래서 단지 10여 면만 보아도, 전부 읽은 사람보다 보람이 두 배나 된다. 이런 까닭에 남들이 두 세권 읽을 적에 나는 이미 백 권을 읽을 수 있다. 또 아는 것도 남보다 두 배는 된다.'  220


4장 수행인가, 실용인가
독서는 수행이다 - 송시열
그는 참다운 독서는 '궁리'라고 생각했다.  229
<송자대전<宋子大全)>에서 '책을 읽는 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생기는 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일세. 무릇 글을 읽는 데 처음에는 의구심이 나는 줄 모르다가 읽을 수록 고개가 더욱 갸우뚱거려지네. 또 아주 많이 읽으면 의구심이 점차 풀려 아예 없어진다네. 이제 비로소 참다운 독서가 되네.'  230

먼저 뜻을 세워라 - 이이
'책을 읽을 때는 몸을 가지런히 하고 맘을 정갈하게 한다. 본 내용을 완전히 익힌 뒤 다름 책을 본다. 많이 읽는 것과 외우는 것에 연연하지 말라. 또 책을 고를 때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저급류는 삼가라.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거문고를 타고 활을 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도박 등에 빠져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234
이이는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큰 뜻을 세우지 않고, 굳건한 의지없이 배우겠다고만 하면 자칫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뿐 스승이나 제자에게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부에는 목표가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그는 책을 읽은 뒤에는 토론을 통해 본뜻을 찾으라고 했다.  235
이이는 공부를 위해 버려야 할 낡은 습관으로 여덟 가지를 들었다. <격몽요결>(어리석음을 없애는 비결이라는 의미)의 '혁구습(革舊習)'이 그것이다.
'첫째, 게으르고 편안함만 추구하고 의지가 강하지 못해 자기절제를 하지 못하는 악습이다.
둘째, 조용하게 앉아있지 못하고 밖으로 분주히 드나들고 쓸데없이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는 행동이다. 
셋째, 유행에 민감한 부류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끔 공부 결심을 해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 두려워 금세 포기하는 습관이다.
넷째, 책읽는 것을 과시하고, 멋진 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허세만 하는 버릇이다.
다섯째, 겉멋에 연연하는 글씨와 편지 쓰기에 신경 쓰고, 음악과 술에 빠지는 생활 습관이다.
여섯째, 바둑이나 장기 등 잡기에 빠지고, 먹고, 논쟁만 일삼는 버릇이다.
일곱째,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은 것을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생각이다.
여덟째,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돈과 노래와 이성친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237

공부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 강종열
글을 보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깨우쳐야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는 겉으로의 모습, 즉 지식이 느는 것이요, 또 하나는 마음의 모습,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강종열은 이를 음식에 비유 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을 알지 못하면 밥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책을 볼 때 희롱하는 말을 삼가도록 했다. 희롱하는 말은 문자의 겉모습,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이는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48

역사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 임징하
'독서는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다. 다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함을 말한다. 역사책을 잘 읽어보면 옛날 일을 통해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257

책을 빨리 쓰려는 마음을 경계하라 - 홍만종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스스로 마음을 정갈히 하는 '자경문(自警文)'에 잘 나타나 있다.
'나에게는 세 가지 습관이 있다. 재주가 별로 없지만 책보기를 좋아하는 게 첫째요, 글씨는 내세울 게 없지만 다른 이의 좋은 서체를 연구하는 게 둘째요, 몸이 건강하지 않지만 산과 물 등 자연을 좋아함이 셋째다.'
홍만종은 산책을 통해 건강을 지키면서 책을 열심히 보고, 유면인의 글에 대해 깊이 공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빨리 쓰려는 마음을 경계하라.' 하며 자신과 후손에게 공부를 많이 한 뒤 내용이 깊은 책을 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274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책읽기는 필요없다 - 정제두
'책을 읽어 반드시 지식을 구하되 꼭 그 내용을 간략하고 자세하게 익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필요도 없는 것을 넘치도록 읽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책에서 교훈을 얻으면 죽을 때까지 이로움이 많겠으나 다만 많이 읽는다고만 해서 과연 무엇이 이롭겠는가.'  276
정제두가 후학에게 남긴 말 중의 하나가 '의연후취(義然後取)'다. 욕을 버리고 의롭고 정당하다는 것을 안 후에 취하라는 것이다. 
그는 <하곡집(霞谷集)>등에 아들과 제자들에게 받들 말을 많이 남겼다. '먼저, 학문하는 이는 행동 습관을 사치와 방자함에서 멀어지게 하라. 또 교육과 훈계는 진실을 바탕으로 할 것이지,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 밖에서 구할 게 아니다. 마음에서 큰 뜻을 찾아야 한다. 아는 것과 행동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277

공부를 했으면 정치에 적용하라 - 이수광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스승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스스로 하는 것이기에 남의 힘을 빌리는 것에는 손을 내저었다. 또 공부는 잠깐 하는 게 아니기에 지속하는 힘이 필요하고, 이리저리 재고한느 게 아니라 절대 믿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임을 설명했다. 그렇기에 공부는 배를 부수고, 가마를 깨는 용기가 있어야 이룰 수 이쓴 것으로 파악했다. 공부는 쉽게 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봉유설>의 초학에서 '매일 하루에 읽을 독서량을 정하고 실천을 꾸준히 하면 스스로 얻는 게 있다.'라고 했다. 계획 독서와 실천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이수광은 독서 때는 세 가지가 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마음이고, 둘째는 눈이고, 셋째는 입이다.  282


5장 우연인가, 필연인가
인간의 완성된 업적은 책 쓰기다 - 최한기
그의 독서관은 단연 경험론이다. 눈, 귀, 입, 손 등 몸으로 느낀 것에 생각을 얹는 과정을 추측(推測)으로 표현했다. 또 추측하는 힘이 있어야 독서에 요령이 있어 효과적이라고 했다. 읽은 내용을 잘 이해하고 핵심에 곧바로 도달할 수 있으려면 요령이 필요한데. 그것이 경험으 바탕으로 한 추측이라는 의미다.  327

행복의 3대 조건을 아는가 - 이하진
'좋아하는 사람을 알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다.'
'처음 보는 책을 읽을 때는 좋은 친구를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책을 읽은 후엔 옛 친구를 만난 것같이 기뻐하라.'  335

Posted by WN1
,

 참 유명한 책이다. 저자의 책은 여러권을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6,7년쯤 전이라고 기억한다.(물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읽으면서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에게 더 많이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책은 저자의 처녀작이기도 하고 20대 중반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통찰적 부면은 가히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한국 사람에게는 더욱 크게 와 닿을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교적인 효 사상에 입각하여 교육을 받았기에 감정을 표출해내는데 매우 서툴다. 그러기에 어느새 감정의 새새함을 잊고 있는데 이 책은 그것을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는 표현들이 곳곳에서 박견될 수 밖에 없다. 
쉽게 읽히면서도 깊은 표현과 철학적인 사유가 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표지를 찾기위해 책을 검색해보니 '2010 대학 신입생 추천 도서'라고 한다.
신입생때 읽고 졸업하고 읽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지적인 성장 사유의 성장을 이루었는지 가늠해보기에도 좋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새해 첫 책으로 읽은 것은 시기에 맞게 책이 들어왔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해보기 위해서 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이전 사랑의 모습을 간직한채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수동적으로 한 걸음 뒤에서 할 수 있는것이 비교 관찰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는 관찰자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렇지 않나 생각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해 보기위해 책을 선택하였다.

다시금 저자의 내면의 감정 서술에 감탄해 가면서 더불어 나의 생각들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자 후기에서는 이 책이 95년도에 <로맨스>(한뜻출판사)라는 책으로 번역이 되었었다고 한다.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표지의 영문 제목을 보았다. <Essays in Love> 이다. 미국에서의 제목은 <On Love>라고 한다.
95년도의 번역은 미국식으로 제목을 정했다. 지금은 위의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제목이 참 우리에게 깊은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11
클로이를 만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딱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2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1905-94 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작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19
클로이의 휴가 이야기는 지루했다. 그러나 지루함은 이제 흠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일상 대화의 세속적 논리에 따라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22-23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 슬픔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냐 단순한 망상이냐? 시간[이 또한 그 나름으로 거짓말을 하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26

가장 매력을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39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잇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게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41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본능적이고, 반성하지 않으며, 자연발생적이다. 이에 반해 생각은 신중하고, 말려들지 않으려 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내가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성적 교류의 근본법칙을 어긴 것이다.  52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65
클로이가 나와 함께 자고 나에게 잘해줌으로써 오히려 그녀에 대한 내 평가 점수가 낮아졌다면, 그것은 혹시 그녀가 그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심한 전염병에 감염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68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딸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72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절대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맑은 눈으로 물의 깊이와 성질을 완전히 조사할 때까지는 도약을 유보한다. 부모 노릇, 정치, 예술, 과학, 부엌에 비치할 적당한 간식에 관하여 철저하게 의견 교환을 한 뒤에라야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현실 [우리가 알기 전에 태어나는 사랑]에서는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 유토피아가 현실과 위험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75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78

왜 나는 나의 일용할 양식을 파는 신문 판매소 주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93
신문 판매소 주인의 샌들은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서 신문과 우유를 얻고 싶을 뿐이지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내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그의 신발은 나에게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95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 [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97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 무한히 많은 사람드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맞은편 욕조에 누워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왜 우리의 욕망이 이 특정한 얼굴, 이 특정한 입이나 코나 귀를 선택했는지, 왜 이 목의 곡선이나 보조개가 우리의 완벽성의 기준에 그렇게 정확하게 응답했는지 묻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의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들의 얼굴 풍경만큼이나 독창적이고 특색있는 방식으로 매력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재규정한다.  98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119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120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나의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연인 사이에 실제로 일치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120
사랑은 내가 그녀의 몸짓, 세이프웨이에서 우리와 함께 줄을 섰던 사람들에게는 달리 해석되었을 수도 있는 몸짓에 내가 부여하기로 결정한 어떤 것일 뿐이다.  121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122
연인들은 의심하고 캐물으려는 철학적 충동에 대립되는, 믿고 신앙을 가지려는 종교적 충동에 굴복한다.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130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143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이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나비를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나는 나비에 관심이 많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144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많은 부분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로 구성된다.  169
나는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으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한시적인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73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대나 기억이라는 보호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 [천국의 개입은 논외로 하고]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헌신릉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이 비유를 사랑으로 옮긴다면,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181
사랑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무시무시한 의문이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이냐 하는 의문이다. 이것은 마치 건강과 힘이 충만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려는 것과 같다.  186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할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192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또 훠씬 덜 즐거운]질문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완전한 오만으로 기울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한 겸손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겸손한 연인은 자신이 무엇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거부당하는가?' 배반당한 연인은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서 오만하게도 절대 자신의 몫이 아닌 선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사랑을 베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이 답을 듣게 되면 질문을 했던 사람은 자만과 우울 사이에서 위험하게, 예측할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1-202
모든 삐침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209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너그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죄책감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달라고 삐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210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야. 느끼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강렬해진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220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이 비도덕적 행동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고통이나 쾌락과는 관계없이 의무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무감에만 인도되어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는 도덕적이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도덕률에 일치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행동이 도덕률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질의 결과로 이루어진 행동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칸트 이론의 핵심은 도덕성이란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동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예상되는 보답에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랑을 줄 때에만 도덕적이다.  223
나는 나에게 쾌락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에 따라서 클로이에게 어떤 도덕적 딱지를 붗일 것이냐를 결정했다. 나는 세계와 그녀가 이 세계 속에서 가지는 의무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학자였다.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뿐이다.  225-226
사랑이 없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자유라는 것이 버림받을 자유를 의미한다면 자유란 대체 무엇인가?  226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 무방비 상태에, 아무런 권리도 없이, 도덕률도 초월해서, 충격적일 정도로 어설픈 요구만 손에 든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228

고통을 겪으면서 무한히 지혜로워진 나는 물론 그녀가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녀를 용서하고, 동정하고, 그녀에게 선심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무한한 안도감을 주었다.  247
클로이가 떠나는 바람에 나는 죽을 뻔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도덕적으로 높은 자리라는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순교자였다. 
예수 콤플렉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정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자기 증오에서 생겨난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나는 나를 받아들이려는 어떤 클럽의 회원이 되지 못했다. 예수 콤플렉스 역시 나를 클럽 문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자기 사랑의 결과이며, 내가 클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내가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49
자기 혐오를 피해가려고 약점을 미덕으로 바꾸는 연금술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업삳. 나의 고통이 예술 콤플렉스로 진화환 것에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 건강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 혐오와 자기 사랑 사이의 미묘한 내적 균형에서 이제 자기 사랑이 우세한 위치에 있었다. 클로이가 나를 버린 것에 대한 나의 최초의 반응은 자기 혐오적인 것이었다. 우리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계속 클로이를 사랑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러나 예술 콤플렉스가 생기면서 그 등식이 뒤집혀, 이제 클로이가 나를 찬 것은 클로이를 경멸할 만한, 잘해야 동정할 [기독교 미덕의 모범] 만한 증거로 해석되었다. 예수 콤플렉스란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 어떤 여자보다 클로이를 사랑했는데, 이제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내가 그 견딜 수 없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엇다. 그러나 버림받아 절망적인 상태일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행복에 겨운 오르가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텔 방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정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251

헤어짐이 없었던 것 같은, 우리가 여전히 함께하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지기도 햇다.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서 오디온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가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져서 나는 클로이가 없는 현재로 거세게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길에 욕실에 클로이가 빗을 두었던 자리가 이제는 비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빗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찌르는 단검처럼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고,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253
변화의 거부는 세계가 내 영혼을 반영하지 않는단는 것, 내가 거기 살든 살지 않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살아 있든 죽었든 관계없이 움직여가는 독립된 실체임을 일깨워주었다.  255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나는 잊기 시작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몇 달 뒤, 나는 런던의 그녀가 살던 동네에 갔다가,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56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들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아니면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실수를 무한히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식사, 죽음, 돈에 지혜로워질 수 있듯이 사랑에도 지혜로워지고 싶다는 야심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  259
지혜는 사랑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사랑은 커피나 담배처럼 완전히 끊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포도주 한 잔이나 초콜릿처럼 가끔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랑은 지혜가 대표하는 모든 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일까? 현자들도 사랑 때문에 이성을 잃게 될까, 아니면 몸만 어른이지 정신을 아이인 사람들만 이성을 잃는 것일까?  260
복잡한 문제들을 파고들다보면 가끔 도달하게 되는 순진한 상식으로 나는 가끔 묻곤 했다.[마치 답을 봉투의 뒷면 정도에 다 적을 수 있는 것처럼]. "왜 우리는 그냥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262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낭만적 실증주의가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유일하게 유효한 지혜는 다시 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금욕주의적 충고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첼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사무실 생활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나는 그녀의 눈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나는 금욕주의적 철학을 내팽개치고 클로이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모조리 되풀이하는 이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270
사랑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사랑이 지혜롭지 못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금욕주의는 다른 사람과의 애정에서 생기는 위험 사막에서의 삶보다 더 큰 인내심이 있어야만 직면하게 되는 위험에 대항하는 서툰 방어였다. 금욕주의는 감정적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도사적 존재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적 요구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할 뿐이었다. 금욕주의자가 아무리 용감하다고 할지라도 최고의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 즉 사랑의 순간에는 결국 겁쟁이에 불과했다.  272
Posted by WN1
,

열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이중 나머지 단어와 관련 없는 단어 하나를 찾아보세요
치과, 이빨, 잇몸, 스케일링, 충치, 치약, 서울역, 칫솔, 사랑니, 틀니 이상입니다.
어려운가요? 어렵지 는 않지만 왜지 당신이 생각한 답이 정답은 아닐 것 같은가요? 그게 정답이라면 이런 문제를 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시나요?정답은 서울역입니다당신이 생각한 답과 같은 서울역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는 답을 몰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자신 없어 하거나 주저하다가 못 푸는 것이지요. 지금 당신이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당신이 알고 있는 답 그대로 행동하시면 다 풀 수 있습니다. 돌아가거나 비켜가려 하지만 않는다면




몰라서 못 푸는게 아니라 깊이 생각한다는변명으로 우물 쭈물 거리다 풀지 못하게 되는 것이 너무 많다.
결단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잡다한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양심, 그 양심에게 맞긴다면 쉬운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하게 될 것이고 옳은 것은 단순하게 만들어 우물쭈물 거리지 않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올바르게 살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이유는 뭘까?
너무 많이 생각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옳은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다.
올바른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귀찮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쉽고 빠르고 편한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0) 2012.01.11
서산에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  (0) 2012.01.09
몸이 마음에게  (1) 2012.01.02
내가 접었지만 내가 접지 않은  (0) 2011.10.19
지름길  (0) 2011.10.18
Posted by WN1
,

2011년 독서 목록 파일

2012. 1. 3. 11:53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1년은 총 138권(참조한 책이나 발췌독한 도서는 뺌)을 읽었고 92권의 리뷰를 올렸다.
페이지로 정리해 보면 
 1월 : 4,202
 2월 : 3,555
 3월 : 4,513
 4월 : 5,000
 5월 : 5,586
 6월 : 3,785
 7월 : 3,095
 8월 : 2,383 
 9월 : 4,666
10월 : 3,807
11월 : 3,062
12월 : 0  

올 한해 읽은 페이지 수는 43,654 페이지이다.
12월에는 8월과는 달리 이동중에 책을 전혀 읽지 않았고 돌아와서도 읽지를 않았다.
2011년을 시작하면서 계획한 책의 수는 100권 이었고, 페이지 수는 35,000페이지 였다.
달성을 하긴 했으나 올해 독서모임을 너무 많이 참석하면서(참여한 독서모임 횟수 61번) 시간에 쫓겨 읽은 책들이 있기에 달성에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 든다.
2012년에는 독서모임들을 조절하고 새해 계획에 맞게 나가야 할 듯하다.

'나를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1월에 읽은 책  (0) 2012.01.31
2011년 독서 목록 파일  (0) 2012.01.03
2011 12월에 읽은 책  (1) 2012.01.02
2011년 11월에 참석한 7번의 독모와 인문강좌  (0) 2011.12.31
2011년 11월에 읽은책  (0) 2011.12.01
Posted by WN1
,
나는 조금 더 움직일 테니 ......
너는 그만 좀 움직여.




참 생각이 많다. 참 고민도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걱정도 많다.....

그러나 피하고 싶다. 하기 싫다
알면서도 하기 싫다
막상 하려 들면 겁도 많이 나며 무슨 핑계거리는 그리도 많을까.
근데 시작하면 말이야
걱정하던것 모두다 의미없다는 것을 알게 돼.
그리고 어렵다 하더라도 행동하면 이상하리만치 답을 찾아가게 되고 결국은 찾아내게 된다.
그러니 마음은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 녀석은 할거리 걱정거리 무지하게 늘어놓는게 특기고 하려할땐
못하게 하는 그럴듯한 이유들이 세배쯤 나오게 하는 녀석이야.
해야 하는 것이 생기면 그때 무조건 마음을 잡고 무조건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정말 쉽지 않지 ..!!
말은 쉬우나 이게 하는게 쉽지 않아 그러니까 그 마음까지 잡아야해.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0) 2012.01.11
서산에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  (0) 2012.01.09
문제와 답  (0) 2012.01.04
내가 접었지만 내가 접지 않은  (0) 2011.10.19
지름길  (0) 2011.10.18
Posted by WN1
,

없음

해외 

'나를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독서 목록 파일  (0) 2012.01.03
2011년 독서를 점검해 본다  (0) 2012.01.03
2011년 11월에 참석한 7번의 독모와 인문강좌  (0) 2011.12.31
2011년 11월에 읽은책  (0) 2011.12.01
신문사와 인터뷰 하다.  (0) 2011.11.24
Posted by WN1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1. 안중근 평전 김삼웅 시대의 창 2009 990 596  
2.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이학사 2006 100 312 
3. 안중근 평전 황재문 한겨레 출판 2011 900 430  
4.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스티븐슨 새움 2003 840 264 
5.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 이덕일 김영사 2004 900 278  
6. 불안증폭사회 김태형 위즈덤하우스 2010 300 307 
7. 올더스헉슬리-오만한 문명과 멋진신세계 김효원 살림 2006 080 94 
8. 상처 받지 않을 권리 강신주 프로네시아 2009 100 454 
9. 마왕 이사카 코타로 웅진씽크빅 2006 830 327 


그외 
논어(홍익출, 김형찬)
멋진신세계(문예)
회사다니며 해외여행10번 나가기
트래블홀릭
스타일리시 싱글여행
enjoy 베트남
특별한 해외 여행 백서 
책은 도끼다
자발적 가난 
Posted by WN1
,

일본 작가들의 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책은 처음 읽게 되었다. 
젊은 세대에게 꽤 인기를 끌어가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책을 읽은 첫 느낌은 구조적인 면으로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꽤 괜찮은 느낌이다.
화자의 변화라든지 계몽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판타지적인 느낌.
정치적인 부면을 가지고 가면서 민중의들 길들여짐에 관한 지적 ... 등등 
짧은 내용안에 여러가지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치밀하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할 꺼리와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의도한 작가의 계산은 좋았다고 생각된다.
서두에는 저자의 인터뷰 내용중에 한 문장이 들어있는데, '나 자신이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라 한다.
그러면서 인용을 하고 있다.
'어쨌든 시대는 변하고 있다' - 밥 딜런,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다.' - 다자이 오사무, <고뇌의 연감>

저자의 의도는 매우 다양한듯 하다.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건 아닐까..
역사의 흐름은 계속 반복되어 간다. 그러한 역사속에서도 이 시대는 매우 유기적으로 사회를 형성하고 있기에 그전 역사와 역사와 현재의 유기적 흐름을 보는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1부 마왕 - 형 안도의 이야기
"나 말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선거하러 간 적이 없다." 시마가 포스터에 눈을 붙들어 맨 채 말했다.
"'자랑은 아니지만'이 아니라 '부끄럽지만'이라고 해야지."  
"그렇기는 한데, 나 하나 투표를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안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거야."  13-14

시마는 "앞날이 없는 늙은이가 앞날을 생각할 수 있겠어? 앞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언젠 젊은이들이야."하고 말을 이었다.  15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나간다면?"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 네가 말했잖아... 세상을 바꾸겠다는 패기가 없다면 살아 있을 의미가 없어."  17

체념과 탄식 긑에는 무엇이 찾아올까? 나는 요즘 이 생각을 하느라 어두운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20

'일본 국민은...' 나는 어느 책엔가 쓰여 있던 문장을 기억 해냈다. 파지즘에 대해 설명한 책이었는데 '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는 일은 끝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쓰여 있었다. 바로 이 순간 그 말이 머리를 스친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역시 우리는 길들여져 있는 거로구나"하며 공감했던 것이다.  30

"사실 인간이란 금지된 것들을 부수면서 성장해 왔잖아. 금지된 것일수록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법이지. 인간을 충동질하기에 가장 손쉽고 빠르고 강력한 건 성욕이고. 다시 말해서 인간이 진화해 올수 있었던 최강의 무기는" 하고 나(형인 안도)는 말한다.
"무기는?" 시오리(동생 준야의 여자친구, 2부에서는 준야의 부인이 되고 2부의 서술가 된다)가 몸을 앞으로 쭉 뺀다.
"호기심이야"하고 나는 대답한다.  35

나는 몇 살까지 어떤 패기를 품고 살아갈 작정일까.  41

이누카이 "정치인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희박하고 국민들은 나태하고 제멋대로죠. 나라가 망해도 자신만은 살 수 있을 거라고 국민들은 물론이요 정치인들까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45

이누카이 "미국에 의존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 당신들의 눈을 뜨게 하고 싶은 겁니다.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누군가가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전통대로, 전례대로, 관료들이 시키는 대로. 그런 것들이 정치인이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밥 먹는 것도 목욕도 일도 연애도, 생각없이 그냥 할 뿐이에요. 그렇게 자각 없이 무위도식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주제에 인생은 짧다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앉아서 이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만 궁리하죠. 권리만 주장하고 참을 줄은 몰라요..."  47

이누카이 "비리라든가 스캔들, 선거 패재 같은 것들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총리는 있었지만 나라의 앞날을 망쳐놓았다는 이유로 사퇴한 총리는 없습니다. 왜죠? 선거에서 졌다는 이유로는 사퇴하면서도 다른 이유로는 사퇴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잘못이 없다는 겁니까? 미래로 가는 과정은 항상 옳았습니까? 정치인들은 왜 책임을 지지 않습니까? 국민들은 이제 포기했겠지요. 더구나 젊은이들은 태도가 더 분명합니다...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해도 어차피 잔꾀나 부리겠지, 하며 기대도 하지 않아도... "  48

준야.."요즘 시대엔 뭐든 편의점에서 살 수 있잖아. 비타민 음료수도 공연 티켓도. 전구나 피임도구까지도. 다분하잖아. 그래서 말이야, 편의점에서는 절대로 팔지 않는 걸 사고 싶더라고. 안 그러면 어쩐지 편의점에 지배당하는 것 같아서" 하고 말했다.
"그게 수박이야?"
"그게 수박이야."  51

시마가 한바탕 웃어 젖히더니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안도 너, 이누카이한테 정말 민감하네. 이 귀여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이누카이의 속셈이란 말이야?"
"국민이 이누카이가 뜻하는 대로 끌려가는 거야.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데 저 좋을 대로 해석해서 넓은 이해심을 발휘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당치도 않은 곳으로 이끌려 가는 거지. '아직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하고 철석같이 믿는 사이 당치도 않은 일이 벌어지지.."  73

대중이 움직이는 때라는 것은 모두가 미리 약속하고 움직인느 때가 아닌 법이다. 저마다가 저마다의 판단으로 발을 내디뎠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식이 아닐까? 무심코 한 동작이 파도를 일으키고 격류를 만들어 낸다. 유능한 선동가란 그렇게 본인들도 깨닫지 못하는 흐름과 조수를, 그리고 세상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능란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75

매력적이고 힘이 있는 말은 언제고 선동가에게 이용당한다.  105

시마.."나 말이야, 내가 학창 시절에 되고 싶어했던 그런 어른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 이것밖에 대답할 말이 없다.
"난 말이다, 나 자신한테 기대를 하고 있었거든. 근사한 어른이 될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야."
"가슴 큰 여자랑 여고생을 밝히지 않는 그런 어른?" 나는 일부러 농담하듯 말했지만 그는, "그게 아니라"하며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한동안 뜸을 들이나 싶더니 "있잖아" 하고 중얼거린다. "이 나이에 세계라든가 미래라는 말이 한물 간 단어던가?"
"아직은 괜찮지 않나?"
"그래? '간세'구나."
"간세가 무슨 말이야?"
"간신히 세이프라고."  
"한물이 갔는지 아닌지 신경 쓰기 전에 바른말이나 써."
"안도, 나는 좀더 싸우는 어른이 될 생각이었어. 대결해서 세상을 바꿀 정도로 말이야."
넌 어때? 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싸울 것인가?
"졸업하고 고작 5년밖에 안 지났잖아."
"하지만 말이야, 앞으로 몇 년 더 이 길로 나아가 봤자 근사한 어른은 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더니 시마는 가게 입구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제군은 이 시원스러운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가!"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106-107

"예전에 읽은 책이고. 사람이 살인을 할 때의 심리에 관해 적어 놓은 책."
지배인은 눈을 감는다. 어서 계속하라고 재촉하는 신호 같다. 
"사람은 원래 살인에는 저항감을 갖는다고 해요. 아니, 대부분의 동물이 그런 모양이더군요. 그 책에 따르면 동물은 상대가 동족일 경우 되 수 있으면 죽이지 않으려고 하는 모양이에요. 다시 말해서 인간은 설사 강대방이 적이라고 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쪽을 선택하려고 한다는 거죠."
"하지만 전쟁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그러니까 살인을 실행하려면 몇 가지 요인이 필요하대요. 예를 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적혀 있던데,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에게 '왜 사람을 쏘았나?' 하는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뭐냐 하면,"
"죽지 않기 위해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그 책에 따르면."
"따르면?"
"명령을 받았으니까."
"그럴싸하군."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을 실험한 것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 모양이에요. 사람은 명령을 받으면 그것이 제아무리 괴로운 일이더라도 결국은 실행을 한다고."
"다른 요인은?"
"집단일 것." 그렇게 말하는 순간 수박씨, 라이브클럽의 청중, 대열을 만들어 행진하는 군대 따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집단은 죄의식을 가볍게 만들어주는데다가 서로가 감시하고 견제하게 되지요. 명령이 실행되는 것을 지원해 주는 셈이지요."
"집단이라."
"그 공연의 청중들 틈에서 이리저리 시달리다 보니 바로 그 공포가 느껴졌어요. 무대 위에서 청중을 부추기는 록밴드, 죄의식을 실감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 숫자, 그리고 통일감에서."  129-130

"민주주의는 선인가? 민주주의는 몇 명을 죽였지? 사회에는 곱게 자라서 콧대만 높아진 젊은이와, 오직 자신한테만 관심이 있는 인간들만 등장했어. 인터넷을 통하지 않으면 사회와 접촉하지 못하는 녀석들뿐이야. 정보로 머릿속을 마비시키고 있어. 주택가에서는 끊임없이 아이들이 유괴를 당할 처지에 놓여 있고, 10대들 사이에 성병이 만연하고 있지. 과연 이런 세상이 올바른 세상인가?"  132

우리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밖에 알지 못한다. 뒤죽박죽으로 얽힌 대량의 정보 중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는지, 우리가 과연 선별할 능력이 있을까?  159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가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161

슈베르트의 <마왕>. 당시 나는. 아니 음악실에 있던 우리 모두는 노래의 내용을 배운 뒤 경악했다. 그 구원할 길 없는 절망감과 두려움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운 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말을 몰고 있다. 그가 아들에게 묻는다. 그런 노래다.
"아들아, 왜 얼굴을 가리느냐?"
"아버지, 보이지 않아요? 관을 쓴 마왕이 있어요." 하고 아들이 대답한다.
"그건 안개란다."
"아버지, 들리지 않아요? 마왕이 무언가 속삭여요."
"마른 잎의 소리란다. 진정하렴."
"아버지, 보이지 않아요? 마왕의 딸이 있어요."
"보이지만 저건 버드나무란다."
"아버지, 이제 마왕이 나를 붙잡고 있어요."
마침내 아버지도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가하고 전속력을 다해 말을 몬다. 죽을힘을 다해 집에 당도한다.
'그것과 닮았다'고 나는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가곡 속의 아이는 바로 지금의 나다. 나는 마왕의 존재를 알아채고 울부짖으며 소란을 피우고 전율하고 있지만, 주위에 있는 다른 모든 살마들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
슈베르트의 <마왕>에서는 마지막에 아이가 어떻게 됐지? 나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캐묻는다. 스스로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어떻게 됐지?" 하고 추궁한다.
"죽었잖아."하고 나는 대답한다. 노래의 마지막, 아버지가 말을 몰아 집에 도착했을 때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이일 수밖에 없는 나는 그 사실에 지독한 공포를 느꼈다. '양치기 소년'처럼 제 입으로 한 거짓말이 불러온 비극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가 왜 죽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왕의 존재를 알아채고 아버지에게 호소했지만, 아이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167-168

복화술은 안도가 쓰려고 할때...
"그런데 고작 그런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의 흐름을, 이 홍수를 막을 수 있을까?"  183


2부 호흡 - 동생 준야의 이야기
"예를 들어 아이가 난치병에 걸렸다든가 부모의 폭력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헌법이나 자위대에 신경 쓸 여력이 있겠어?"
"세상의 문제보다 눈앞에 닥친 자신의 문제라..."  242

'만일 당신의 생각이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이나 평론가 의견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면, 나는 당신한테서 환멸을 느낄 거요. 당신은 당신이 누군가의 짝퉁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해.'  268

"이 나랄 사람들은 계속해서 분노하거나 계속해서 반대하는 데 약해."  271

"생각하지만, 생각하지 않는다."  285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 되었다는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되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나는 그때 그 삶이 놓인 상황을 상상하고는 그 담력에 숨이 막혔다. 주위에서는 틀림없이 무슨 짓이냐면서 성을 냈겠지. 무섭지 않았을까? 네놈은 저 여자를 편드는 거냐, 하며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뒤두른다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대단하지." 미츠요 씨는 소중한 물건에 숨을 불어넣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살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줄 아는, 뭐 그게 무리라면 치마를 바로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
"커다란 홍수는 막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은 잊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두 사람으로 보였습니다요."  286-287

"... 어찌 되든 관심 없다거나 나와는 상관엇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하다가 도망치겠지요. 무책임하게 의견을 번복하겠지요..."  297

"내 생각에는 이누카이 같은 천재 정치인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픈건."
"무슨 소리야?"
"대중이야, 그것도 대중으로서 제 할 일을 망각한 대중이지. 말하자면 대중의 재능이 없는 대중이야. 머리가 좋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사람들이 가장 골치 아파."  309

"무진장 큰 규모의 홍수가 났을 때, 그래도 나는 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언제까지고 꿈쩍도 않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315


옮긴이의 말
<마왕>은 생각없는 세상에 맞서는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색'아닌'검색'

'획일성'과 '자각 없는 집단행동'  323

'무언가를 한결같이 믿고 대상과 정면으로 마주할 줄 아는' 순수함이다.  324

이 작품에서 그는 구름 속에 있으면서도 비가 오기 전에는 비가 올 것을 짐작조차 못하는 어리석은 군중에게 '생각하라'는 문제의식을 던져 주면서 동시에 그가 추구해 오던 유머와 재미도 함께 선사해 주고 있다.  326


Posted by WN1
,

64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12일에 서점을 갔다..  (0) 2010.08.27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