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목록'에 해당되는 글 971건

  1. 2012.03.09 부모 역할 훈련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 토머스 고든
  2. 2012.03.08 부자들의 대통령(그들만의 리그 사르코지와 부자친구들) - 미셀 팽송, 모니트 팽송-샤를로 프리뷰 2012 03300
  3. 2012.03.08 Leverage Reading(다독술) - 혼다 나오유키
  4. 2012.03.08 창의성의 즐거움(Creativity)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5. 2012.03.07 유쾌하게 자극하라. - 고현숙 올림 2007
  6. 2012.03.07 18시간 몰입의 법칙 - 이지성 맑은소리 2004
  7. 2012.03.06 10대,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 제인 미들턴 모즈 2006 한언
  8. 2012.03.06 1%로 승부하라 - 이근미 21세기북스 2008
  9. 2012.03.06 (아버지학교를 위한 강의식 교과서) 부모대학 - 추이화팡 휘닉스 2008
  10. 2012.03.06 이 코너를 시작하며... 20120306
  11. 2012.03.05 사랑의 모순 1
  12. 2012.03.04 읽기의 힘, 듣기의 힘 - 다치바나 다카시외 열대림 2007 03800
  13. 2012.03.03 2012년 2월에 참석한 독모
  14. 2012.03.03 무관심은 도박
  15. 2012.03.02 동물원에 가기 - 알랭 드 보통 이레 2006 03840
  16. 2012.03.01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 알랭 드 보통 생각의 나무 2005 03800
  17. 2012.02.29 2012년 2월에 읽은 책
  18. 2012.02.28 1, 2월의 나의 특강
  19. 2012.02.27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A week at airport:A Heathrow Diary)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9 03840
  20. 2012.02.26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 알랭 드 보통 이레 2009 03840
  21. 2012.02.23 분노하라(INDIGNEZ-VOUS!) - 스테판 에셀 돌베개 2011 03340 1
  22. 2012.02.22 너를 사랑한다는 건(Kiss & Tell) -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 03840 1
  23. 2012.02.21 세 얼간이 - 체탄 바갓 북스퀘어 2011 03840
  24. 2012.02.20 마음의 해부학(I'm ok - You're ok) - 토머스 해리스 21세기북스 2008 03180
  25. 2012.02.17 불안(Status Anxiety) - 알랭 드 보통 이레 2005 03840
  26. 2012.02.16 새로운 기아 - 크리스티앙 트루베 알마 2009 03300
  27. 2012.02.15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 해럴드 블룸 을유문화사 2011 03800
  28. 2012.02.14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신영복 돌베개 2004 03820
  29. 2012.02.11 유효기간
  30. 2012.02.10 (영상소설) 세 얼간이 - 라지쿠마르 히라니각본 황승윤 북스퀘어 13800
부모역할훈련
카테고리 인문 > 교육학
지은이 토마스 고든 (양철북, 2002년)
상세보기


부모 역할 훈련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감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심리학적인 요소로 접근하여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인정해 줌으로 지원한다는 감정을 전달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할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당연한 말을 하는것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치부한적이 있었다..그리고 나도 꽤나 심리학에대해서 알고 있으니 사람의 심리적인 요인들을잘 활용한다고 자만하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이것이 나만의 자만심일뿐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열린(적극적)듣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을 올리면서 정리해 놓은 내용을 다시 보면서 그때의 감사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혹 이 책을 읽기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아래의 내용을 먼저 읽어보고 책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내용에 대해서 여기를 클릭) ..물론 아래의 내용은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정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정리한 것과 읽으면서 중요하게 보이는 것을 구분해 본다면 더욱 유용하게 이 책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때로는 이랬다저랬다 할 수밖에 없다. 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일 수 없다. 부모 양쪽이 아이에게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수용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아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행동으로는 자지 않고 있어도 좋다고 말하면서 표정을 보면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는 혼란에 빠졌다. 자고 싶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 사랑도 받고 싶다.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이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는 늘 말을 부드럽게 하고 너그럽고 잔소리를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수용하는 듯이 행동하는 부모이다. 거짓 수용을 할 때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길게보면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친밀하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서 진짜 감정을 숨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제 감정과 태도 이상으로 수용의 범위를 넓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는 솔직한 감정을 감출 수도 있지만 감추어서도 안된다. 
wn1 - 한국인 부모에게 가장 많은 것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굳이 한국의 부모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부모에게 사실 많은 편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요인들과 현상들로 인해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젠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되어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한국은 식민시절과 남북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나라안에서 전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그 부모님들을 통해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시절을 겪어낸 50-60대의 부모 그리고 그 자녀들 역시도 안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부모님에게서는 많은 부모역할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 자녀를 둔 30대 정도라고 보았을때 부모에 대한 역할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찰해 보아야 할 시기이다.
혹 외국 영화를 보면서 우리내와는 다른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찾아 보았는가?
그들과 여러가지 다르긴 하지만 큰 한 가지는 자녀의 독립정신을 부모가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에서 보이는 것은 .. 부모가 자녀를 어린자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잘 관찰해 보면 볼 수 있다... 그들은 자녀를 복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도 한 개인으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생활을 인정해 줌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녀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시킬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물론 유교의식이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것이 좋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녀들과의 대화에서도 부모로서 복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생각하는 바를 말해주고 결정은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물론 이러한 일은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에서도 그러한 문화의 가치를 같이 교육하기에 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의 부모 역할은 자녀가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기에 ... 가정에서부터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Posted by WN1
,

2011년 프랑스에서 최고의 책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사건들도 참 많은데 외국의 정치까지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사르코지는 해외토픽으로 종종 보았던 젊은 미모의 아내 또는 스캔들.. 이런것들 뿐이었다.

처음 책 제목을 듣고는 느낌이 좋지 않았으나 애써 인간적으로는 기대하지 않아도 본을 보인 내용들이 어느정도 이상은 나올꺼야라는 말도 안되는 기대를 하였다.
물론 내심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대를 하고 싶은 제목도 아니었다.

한국보다는 7개월여 빨리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대선.. 7개월여 먼저 대통령직을 숳행하는 프랑스..
그런데 7개월 빠른 시간에 대한민국의 정권을 선행한 정권이었다는 점에 기가막혔다.
프랑스 국민들에 대해 괜히 정이 간다. 가재는 개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그들의 고통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내용을 읽으면 읽을 수 록 왜 프랑스 대통령이 아니라 지금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읽는듯한 느낌이 들었을까..아~~ 애둘러 쓰려니 머리가 아프다.

읽을 수록 책에 짜증이 났다.
'왜 내가 이런걸 읽어야 하지?' , '굳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 뭐하러 번역하나' 번역자에 혼자서 짜증을 부려보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책이야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나온것인데, 정작 읽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것 같다.
책의 말미에도 나오지만 소수의 기득권은 진입장벽을 만들며, 대다수의 소시민들을 바쁘게 만들어 생각하지 못하게, 알지 못하게, 알아도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증을 증가시켜 놓는다. 그러니 알 수 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별 수 없는 사람중에 한 명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부자들의 행태를 연구하는 학자이며 학계에서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부부학자이다.
이들은 글을 쓰고 사례들을 연구 조사하면서 얼마나 무기력함을 느꼈을까.
마지막 챕터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위해 그들은 사례들을 싣고 내용들을 전해가면서 가슴을 쳤을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자들에 의한 과두권력은 결코 사르코지주의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는다. 사르코지는 어떻게 교묘하게 잡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비굴하게 그들에게 굴복해야 한다. 그렇게 반면교사가 되어가야 한다. 물론 그러면 더 교묘하게 정권을 휘두를 존재가 나타나게 되지는 모르지만.  
책에서 우리는 멍청하고 비굴하며, 살아남기 위해 교활함만 발휘하는 한 정치인을 보는것이다. 


과연 민주주의가 정답인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나마 제일 나은것이기에 따를 뿐이다. 다시말하면 모순투성이이지만 조금은 덜 하다는것일뿐.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생각해야만 하는 시점에 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지만 더러운 내용이라 읽기 싫다면 '시작하는 글'의 4장짜리 서문만 읽어도 다 읽은 것이라 생각이 든다.(그래도 조금 적다 싶으면 그전에 나오는 목수정 작가의 추천글에 모든 내용들이 요약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무엇을 할 것인가'만 읽으면 될 것이다. 저자는 무슨 의도로 이 내용을들 서술했는지 모든 내용이 집약되어 있다.
이런 문제에 뚜렷한 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뚜렷하진 않아도 해볼만한 결론은 있다.
다만 소수의 기득권은 그런 해결책에 대한 방어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해볼만할 수 있다.

표지에는 "반면교사 사르코지를 통해 MB를 본다" -파리에서 작가 목수정
"소통없는 정권이 민주주의에 드리우는 불안한 그림자" - 르몽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일지 모른다.
한국에서 한국 작가를 통해 이런 책이 쓰여진다면 지금의 한국에서 책이 출간되었을때 어느정도의 여파가 일어날까..
당신의 상상에 맞긴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암담하다.)
암담함을 이기려면 답은 결국은 뭉치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여러곳에서 반복해서 듣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여 뭉쳐지지 않을까... 제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드리는 추천의 글 - 목수정
"계급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내가 속한 부자 계급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쌍무에서 이기고 있다."  - 워런 버핏
계급투쟁은 언제나 크고 작은 폭으로 역사 속에서 진행 중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계급 투쟁은 매우 노골적이며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2
사회 저소득계층의 저조한 투표율, 그리고 부자계층이 맹렬히 연대하는 높은 참여수준의 계급투표  15

시작하는 글
이 불확실한 투쟁에서는 상대의 수단과 방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 문을 약간 열어 줄 것이다.
그들은 그저 가장 힘 센 사람들일 뿐이다.  22
엘리트들의 음모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것이 첫 번째 투쟁목표이다. 그리고 좌절한 서민들을 상대로 단호한 심리전을 전개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투쟁이다.  24


19세기 정치가 프랑수아 기조가 외쳤던 그냥 '부자가 되자'는 메시지에 더 가까웠다.
부자들은 자기들 가운데서 더 유능한 자의 승리,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자신의 우수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한 사람의 승리를 축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32

2007년 테파법(TEPA)이라는 이름의 '노동고용 및 구매력에 관한 법'이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더 우대하고 있다.  34
"납세자에게 자기 수입의 절반 이상을 국가에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틀 일하고 그중 하루치를 국가에 바치라는 게 말이 되는가?" 대통령이 짐짓 순진한 체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그럴 듯한 주장은 세 가지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첫째, 잡세 대상이 되는 수입 가운데 노동으로 번 수입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수입에서 많은 부분은 이익배당이나 재산 가치상승, 기타 유가증권, 공동투자 펀드 같은 동산과 토지, 건물 등의 부동산, 자본수입니다.
둘째, 조세상한제의 이름으로 혜택받는 것은 소득총액이 아니다.
셋째, 세금 계산 때 납세자의 사회비용 분담금을 조세 상한선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35-36

흥미롭게도 2007년 9월 30일, 2722 가구만이 조세상한선 실시전 세율로 납부한 세금을 환불해 달라는 신청을 함.
환불 요구 권리 있는 9만 3천 가구의 2.9%에 불과한 숫자이다.
한 세무전문가의 설명은 "조세 상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조세 담다 관리 앞에 본인이 직접 나가서 모든 것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무 관리들은 무언가 숩ㅁ긴 것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신고내용을 철저히 검토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세 상한 혜택을 신청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사회의 열등생들이다. 납세 관련 조항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정말 약삭빠른 사람은 그런 싱청을 하지 않는다."  38-39

참으로 수치스러운 사례 하나를 소개하면, 2009년 12월 이후 근로사고 희생자들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이 소득으로 간주되고, 그래서 과세 대상이 됐다. 거센 분노를 불러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파렴치한 제안은 채택됐다. 이 항목으로 과세될 세금 액수가 2억 3천만 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이 국민의 이름으로 제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위임일인 2007년 5월 6일부터 "나는 국민들로부터 이런 변화를 추진하라는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42

스스로 자신들을 필요불가결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부자들은 곧잘 프랑스를 떠나겠다고 위협한다.  43
지배층은 항상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계급 전쟁을 이끌어 간다.  44

2003년에는 감세할 수 있는 틈새의 수가 418개로 추산됐다. 그런데 2008년에는 이 숫자가 48개로 늘어났다.  46

권력이 집단을 형성해 서로 긴밀한 과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손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을 과두권력이라고 부른다.  58


니콜라 사르코지, 만약에 그가 2012년에 재선되지 못하면 권력 네트워크는 그의 진영이나 다른 진여에서 언제든지 그의 대타를 찾을 것이다.
우익이나 좌익 진영 모두 금융자본주의에 제일 유리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최고의 책임 있는 지위를 맡을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다. 니콜로 사르코지도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과두권력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지도자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있다. 1980년대에 은행 국유화를 단행한 것이 사회주의자들이었지만, 얼마 후 은행을 다시 민영화한 것도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67-68

이념전쟁에서 텔레비전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주제이다. 이 이미지 상자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조종하는 가공할 도구이기 때문이다.  92
"이제 위선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프랑스 텔레비전의 제1주주가 국가인데 왜 내가 그 사장을 임명해서는 안 되는지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은연중에 '짐이 국가다'라고 말한 루이 14세처럼 행동했다.  97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이익을 받은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계에서 성장한 상류계급의 자녀들은 성년이 되어서도 같은 특혜를 기대하도록 성격이 형성된다.
권위에 대한 선망도 독서나 음악에 대한 선망처럼 만족과 쾌감을 주고, 더 내면적인 자기 자신의 성취감을 느끼게 하며 제2의 천성이 된다.  114

좌파 정치인 장-피에르 브라르는 "사르코지는 우리의 건망증을 이용한다. 그는 놀라운 성과를 약속하는 탁월한 계획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대단한 결과는 고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의 발표를 조금 기억하거나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결과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91

명문 귀족가족과 유서 깊은 부르주아지 가족은 예나 지금이나 코스모폴리탄주의 생활방식으로 살아 왔다.  204

긴축정책으로 가장 혹독하게 고생하는 것은 서민층과 중산층이다. 그러한 부채가 최고 부자들의 무책임한 투기로 빚어진 것일 때도 고통을 받는 것은 서민들이다.  205

자체가 목적이 된 돈은 사람들의 가치를 돈으로 측정한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부와 사회적 성공을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사르코지주의이다.  210


결론-무엇을 할 것인가?
체계적 불평등. 분명히 지배계급은 힘을 규합해서 잘 조직화 된 세력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수가 적다.  212
우리의 목적은 권력을 잡고 있는 과두체제의 기능을 거부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를 몰아내는 것은 단순히 한 정치인을 교체하는 것에 그칠 수가 있다.  213

- 부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찾자
대상을 한정한 지원조치가 사회정책을 대신한다.
예방 대신 치료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공공 자선행위로 국가의 잘못을 땜질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정으로 정책을 대체하는 것이다. 권리와 법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력관계의 산물이다.  215

시민들은 자신들의 권리, 즉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218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도해 보는 가운데 사회생활 내에서 자신의 위치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개인적인 생활로부터 좀 거리를 두고 자신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배제되기도 하는 복잡한 관계 속에 들어가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시청과 기업 도서관은 경영진들의 네트워크에 관한 유익할 정보가 포함된 참고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돼 있다.  219

끝으로 인터넷 사이트는 무궁무진한 정보의 원천이다.  220
경계심과 호기심을 갖는 태도, 그리고 이런 문서들을 검토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투쟁에 속한다.  221

-정치 무관심을 부추기는 현실
-무시당하는 서민들의 표심
(이 외에도 여러가지 안을 내 놓고 있다.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는것이 좋을 것이다.)

해제 - 프랑스와 한국의 닮은꼴 대통령(장행훈, 언론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파리의 한 잡지는 <부자들의 대통령>이 과장된 표현을 절제하면서도 사르코지의 정책과 사람 됨됨이를 생채해부 한 책으로서 지금까지 나온 사르코지 책 중에서 완결판이라고 높이 평가.
저자들은 학자의 양심에서 책을 통해 다시는 '부자 대통령'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42
이 책은 부자들의 대통령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는지, 소수 부자집단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단결하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민주주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247


부자들의 대통령 십계명
1. 재벌오너들과 친구로 지내라
2. 세금으로 부자들을 보호하라
3. 누가 뭐래도 측근을 챙겨라
4. 공과 사를 구분하지 말라
5. 편법을 두려워하지 말라
6. 검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라
7. 언론을 장악하라
8. 토목공사로 승부하라
9. 부자동네에 투자하라
10. 이념은 상관말라 정권만 지키면 된다
 
Posted by WN1
,
레버리지리딩100배의이익을창출하는다독의기술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혼다 나오유키 (미들하우스, 2008년)
상세보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시간이 생겨난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경험이나 지혜로부터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wn1 - 개인적으로 책을 꾸준하게 읽는것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읽을때 몰아서 읽어낸다.. 그것을 한 분기정도하면 한 분기 정도는 책을 거의 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나면 또 한 분기정도는 몰아서 읽는다...실은 이렇게 해도 일 년이면 130-150권 정도의 책을 읽게 된다..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예전엔 책을 읽어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책을 읽는데, 난 왜 달라지는것이 없어 보일까?..혹 내가 너무 짧은 기간만 책을 읽어서 그것이 축적되지를 못해서 그럴까'...생각하여 긴 시간이 지나면 허전한 느낌은 사라 지리라 위안을 하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허전함은 크게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마음속에 자리잡은 그 느낌은 시간이 더 흐른뒤에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다.. 읽어만 내려 갔지 그것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증폭시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니 허전함이 사라 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좋은 내용 밑줄긋고 그것을 다시 옮겨보기도 하며 다시금 보고 복습을 하면서 시간이 모자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시간이 생겨난다는 저자의 표현에 공감을 하게 된다.. 책을 읽게 되면 시간이 더 많이 나더라.. 

.
.

솔직하게 당연한 말이지 않는가...
그 당연한 말을 자신에게 맞게 적용하는 것은 자신의 과제인것이다..
여러번 읽어보면서 그것을 자신에게 맞춰 나간다면 책을 열권 읽는것보다 훨씬 좋은게 아닐까...
  
Posted by WN1
,
창의성의즐거움'창의적인간'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더난출판사, 2003년)
상세보기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의 책..
개인적으로 미하이 교수의 번역서들은 모두 보았다... 매우 인상적이었고.. 자극도 해주었으며 실제 필요한 것에 대한 생각의 변화도 가져다 주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그는 위대해 질 수 있다.
그것은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일 것이다..
나는 창의성의 즐거움을 읽으면서도 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빨리 읽을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꼼꼼하게 읽어야 할 것도 아닌듯싶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창의성이란 어떻게 나오는걸까?
창의성이란것이 특정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걸까?



Posted by WN1
,
유쾌하게자극하라사람을키우는리더의코칭스킬
카테고리 자기계발 > 비즈니스능력계발
지은이 고현숙 (올림, 2007년)
상세보기



코칭관련 책 중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하나이다..
코칭뿐아니라 학생들에게 맞는 질문을 많이 생각나게 해주었던 책이다..
그래서 줄을 그은 부분도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부모들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많이 그은것 같다... 또한번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정리하면서도 많이 생각을 자극 시켜 주었다...

사실 사회의 모든 일들은 학생이면 학생의 환경에서 회사면 회사의 환경에서 모두 동일한듯 하다
학생때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나 직장에서 인정받기위해서나 내용을 보면 동일한 내용을 요한다..
그렇다면 .... 


----------

인생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하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당신이 진정 하고싶은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동일한 것이다.
표현의 차이일 뿐..

코칭을 하면서 절실하게 여기고 있는 것 중의 한 가지가 이것이다.
어떠한 표현의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생각을 자극하는 양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코칭을 하지 않더라도 평상시에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어떠한 표현을 사용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시키기도 파도가 일렁이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쾌하게 자극하고, 유쾌하게 표현해 줄 수 있을때 관계 즉 소통의 끈은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지 않을까..!!

Posted by WN1
,
18시간몰입의법칙성공한사람들이목숨을걸고지키는자기운명창조공식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이지성 (맑은소리, 2009년)
상세보기




몰입
몰입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책이다.
사실 몰입은 누구나 하고 있다...그리고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누구나 길게 하는것은 아니다.
사실 몰입에 대한 내용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의 책을 통해서다.
그의 책은 참 재미있다... 물론 내생각이다..,, 재미없다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정말 몰입에 대해 고민을 하였던 적도 있다.
그러면서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나 몰입을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확신하게 해준 책이 18시간 몰입의 법칙이다..
4번은 읽었다..매우 술술 읽히는 책이기도 하고 기억을 더 하고싶어서 ...그리고 내가 방만해 졌을때 읽었다..
그 가운데 내가 인상적으로 생각하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이것도 내가 인상적이니 다른 이들은 아닐수도....


첫째, 지금 네 상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크고 높은 꿈을 품어라. 그리고 그 꿈을 죽어도 포기하지 마라.
wn1 - 몰입을 위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열망하는 그 무언가가 몰입을 시켜준다. 
굳이 그것을 표현하면 '목표'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바가 생긴다면 그것으로 몰입을 하게 된다.. 
어린 아이를 관찰해보면 그들은 순순하게 몰입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때를 관찰하면 정말 몰입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바로 그것이다. 몰입을 해야지 해야지 보다는 마음에서 진정 원하는것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몰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18시간 몰입의 법칙'과 '3(4)시간 수면의 법칙'을 실천하라.

셋째, 꿈의 성취를 돕는 마음의 기술을 사용하라.
wn1 - 위의 표현들은 어쩌면 기술적인 내용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시말해서 몰입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 역할을 할지언정 저것 만으로 지속적으로 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위에서 적은(빨간글씨)내용의 시작으로 그것을 지속시키기에 좋은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표현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현실을 보는 대신 꿈을 봅니다.
wn1 - 현실 대신 꿈을 본다.. 이말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
현실을 무시하는것이라기 보다는 현실속에서의 부단한 도전과 압박들을 미래의 내 현실에 비추어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표현한것이 아닌가 한다..
 



"꿈을 크게 가져라. 그러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게 된다."
wn1 - '꿈 ..꿈..하는데 난 대체 왜 꿈이 없을까?'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내가 만나본 사람들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별 생각 없이 있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왜 꿈을 가지지 않고 있으까? 
.
.
경험이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일까?.. 꿈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어떠한 이유에서 일까..?
혹 꿈이란것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또는 커야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는건 아닐까? 
대체 왜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일까? 
어릴 때로 돌아가보라 .. 그 어린 시절에는 궁금한것도 많았고 해보고 싶은것도 많았다.그러나 사회와 때론 가정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꿈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게 되었고 .. 현재 까지 왔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사회에 또는 부모님이나 스승에게 한탄만 하고 있으면 되는것일까?
누구나 이 질문에 아니라는 답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는 걸까?
자기 계발을 위한 내용들에 나오는 당연한 말은 생략하더라도 ..
'막연한 두려움' 이라도 버려야 할 것이다...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찾으면 또 다른 나의 마음은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수십가지는 찾아보고 있고..그것을 나의 뇌로 전달해 주고 있다.. 결국은 호기심을 쉽게 무너뜨리게 된다.
사람이 걱정하는 것의 4%외에는 절대적으로 변경시킬 수 없다고 한다.. 96%의 비현실적인 내 망각에서 허우적 거리기 보다는 차라리 잘 되든 안되든 그것을 해보는것 만이 답을 알 수 있다..
사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은 '안된다' '어렵다' 결론내릴때 그것이 가능함을 실행해보았고 결과로 인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가두려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라 ... 왜 나를 가두는 생각만이 내 머리속에 가득한지를..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리고 선로옆을 걷다가 문득 별에 붙은 글을 보았다... 
'정말 화가나서 한번 치고 싶을때, 이렇게 생각해 보라..."이러면 내가 행복해질까?"'
걸어가면서 순간적으로 본 짧은 글이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표현이었다.
정말 자신이 두려움을 가져 포기할때 '내가 이것을 포기하면 행복해 질까? 아니면 결과야 어떻든 해보는게 더 행복해 지게 할까?'를.. 
 


Posted by WN1
,
10대너만의명작을그려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제인 미들턴 모즈 (한언, 2006년)
상세보기


나의 10대는 명작을 그리기 위해 무언가를 했었던가?
솔직히 아무런 생각자체도 없었다...어떻게 하면 핑계를 대고 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오락실이라도 갈 수 있을까..지금은 ,pc방일 테지만...
솔직히 10대 시절을 떠올려보면 내가 주인공이었다..늘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원하기만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생각만 했었다..
생각한 대로 움직이기 위한 어떠한 상상도 해 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여러 책들을 읽으면 많은 이 들은 어린 시절이 상상의 시절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동기부여가 되고 행동들을 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며 생각나는 첫 번째 사람이 '마지막강의'의 저자 랜디포시이다.. 췌장암이 걸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어린 자식들을 위해 준비했다던 마지막 강의 2008년쯤 그의 강의 동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감동도 받고...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그중에 꿈이란 것이 허황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 거의 모두 현실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상상을 시각화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꿈이 될 것이다..
10대가 아닌 내가 10대의 책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Posted by WN1
,

+1%로승부하라몰입으로차이를만든고수들의성공메시지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이근미 (21세기북스, 2008년)
상세보기




당연한 말인가...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그 당연함으로 승부를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것에 따라간다..
근래에 여러명의 사람들에게 한 가지 내용에 대해 자신이라면 어떠할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반적인 대답을 한다.. 거의모든 사람이..단1%만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예전에 방송으로 1%를 찾아라는 코너를 기억한다.
그것도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1%의 사람들은 기발한 행동을 하였다.. 매우 흥미로운것도 있었으며, 신선하기도 하였다..
1%로 승부하라를 읽으면서 매일의 상황하에서 나는 과연 타인들과 다르면서도 더욱 진보된 선택을 하고 실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아래의 내용도 오래전에 읽으면서 파일로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나름대로 내가 인상적이라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였다..



Posted by WN1
,
부모대학아버지학교를위한강의식교과서
카테고리 가정/생활 > 자녀교육
지은이 추이화팡 (휘닉스, 2008년)
상세보기



아래는 앞전의 올려놓은 내용이다.
이 글을 제일 먼저 올리는 것은 ..메이저 도서가 아니기에..
난 부모가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이란것에 관심이 많다..오래전에 노트에 적던것을 컴퓨터로 쓰기시작하며 제일 먼저 쓴 책이 부모대학이다.. 

사실 누가 읽더라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질것이라 생각 된다..하지만 그것을 다시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욱 느낄 수 있다..
이 글의 제일 마지막을 보면 '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부모의 직업이다.'라고 썼다..
사실 부모만이 아니지 않는가.. 어른이라면 누구나 '아이는 미래의 가치'라는 말에 동감한다..
그렇다면 내 아이만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이 나라의 대표들 일것이다..
그들에게 좋은 것을 알리기 위하는 마음이 필요할것이다.. 


 
횟수로 16년간 학생들을 만났고, 부모들을 만났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7년이 지나니 학생들을 만나서 20분정도 이야기를 해 보면 대략적인 생활방식을 알았고, 짐작한 내용의 95%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을 통해 직접 부모에 대해 듣지 않아도 부모의 생활방식을 예측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
'너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방식은 너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부모님의 잘못이 90%이상이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해 불안하거나 죄스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잘못된 생활방식이 20대 중반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은 99% 너 자신의 잘못이다.'
부모는 자녀를 올바른 습관형성시키는데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학창시절에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은 90%이상이 부모의 책임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00%가 부모의 책임이다. 지금 이 시대는 더욱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정을 벗어나면 많은 잘못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것마저도 가정 내에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과 배려와 올바른 애정으로 치유해야 한다.

물론 부모는 신 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돈을 벌기위해 더 바쁘다는 것은 모르는바가 아니다. 그렇기에 너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부모이긴 하지만,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에 부모가 돈에대한 욕심보다는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도 이 책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역할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의 공동의 몫이다.

꽤 긴 시간동안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연구하고 경험하면서 생각하는 한 가지이다.
Posted by WN1
,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컨셉은 오로지 밑줄을 그은 내용을 기록해 놓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내 생각을 배제하고 밑줄 그은 내용들을 올려놓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올리면서 어느때부터인가 내 느낌과 생각을 조금씩 붙이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중에 하나는 내 생각은 새로운 카페를 하나더 개설하여 그곳에다 올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도 아닐뿐더러 생각이나 느낌을 안 적기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코너를 만들어 본다.
두 개의 블로그로 분할하여 내용을 기록하는 곳과 내 생각이나 느낌들을 정리하여 글을 쓰는 곳을 구분하기전에 중간적인 개념으로 약식분류를 해 본다.

이미 '숟가락 올리기' 코너를 통해 짧은 글들에 내 생각을 함께 올리기는 하고 있다.
여러가지를 시도하면서 결국엔 통합하여 블로그 분할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 많은 신경을 쓴다면 지저분하게 하지 않고 깔끔하게 분할을 할 텐데... 지혜의 부족으로 가지를 많이 뻗어나가게 된다..ㅡ.ㅡ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 옆에 있는 누군가가 말을 한다.
'글을 더 많이 올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꼼수다.'

그래 꼼수 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꼼수가 아니라는 것만은 진실이다.
단지 내용을 정리하고 느낌을 정리하는데 조금은 더 비중을 두고자하는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용의 깊이가 깊어질것 같지는 않지만...
밑줄이 있기에 생각은 대충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밑줄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분을 지어 책을 읽고 내용을 좀더 생각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꼼수가 아니다.
생각은 자유라지만 ... 꼼수라니.. 
꼼수라는 단어가 요즘 유행이라고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이지 말아주시길...^^
 
Posted by WN1
,
사랑에 눈을 뜨면
사랑에 눈이 먼다.




모순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랑마저 모순일 줄이야.
기분좋은 모순.
불안한 모순.
콩깎지가 벗겨질 때 그때 어떻게 할까.
그것이 불안하여 사랑초자 못해보는 바보스러움보다 멋지게 부딪혀야 하는거지.

.
.

인간 세상사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우리는 매번 그 사실을 잊고 살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양의 유교적인 교육은 인간사는 영원하게 한 길로 가야한다고 세뇌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자주 잊을지도 모르지.
거의 모든 수학 공식이 생성되어 변하지 않은것처럼,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사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은 진실이며 진리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영원성을 부여하려 할까...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때를 알지 못한것이 불안의 요인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워만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것이 집착이 되어 우리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중시키게 되는것이다.
사랑마저도... 
영원하지 않을 것인데 마치 영원해야만 하는 것으로 각인한다면 진리를 알면서도 부인하려는 인간의 도전일까.

자신이 마음을 잘 잡는것이 중요한것이지 상대가 마음을 잘 잡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 자신이 충실했다면 불안의 요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는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사랑의 모순이 더 큰 모순이 되기 전에....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까워 진다는 것  (0) 2012.04.14
외로움  (0) 2012.04.13
무관심은 도박  (0) 2012.03.03
유효기간  (0) 2012.02.11
답다  (3) 2012.02.09
Posted by WN1
,

'그림책, 아동문학 연구센터' 주최 제 10회 문화 세미나 '읽기, 듣기'(2005년 11월 20일)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를 검색하여 알게 되었다.
그의 여러 책들 중에 읽은 책도 몇 권 있지만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기에 다시금 정리하면서 여러권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본 후에 제목에 끌려 잡았다.

읽는것과 듣는것, 우리는 무의식중에서도 이 두가지를 계속하면서 생활한다.
그처럼 무의식중에 입력된 것들이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아 나를 만들기도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의식중에 입력되는 것들일 수 있는데, 우리는 단편적으로 읽는 것과 듣는것으로 그치는 것의 무의미함을 지적해 주고 있기도 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자주 언급하는 표현가운데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인가?'가 있다.
어딘가에서 들어서 또는 보아서 아는것은 진정 자신이 아는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두 번 얼굴을 봐온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사람을 안다. 
하지만 무엇을 아는가?
진정 알고 있다고 표현할 수 는 없다.
우리가 '안다'고 표현할 때는 진정 자신이 경험하여 체득한 것이 포함되어야 진정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에서도 그 점을 언급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지 세 명의 대화와 강의 가운데서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쉽게 읽혀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결코 쉽게만 읽고 넘어가서는 안 될 내용들이 그들의 70년이 넘는 삶과 경험의 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으면서 여러 정보를 듣는 셈입니다. 무언가를 읽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저렇게 한느 것이 낫지 않을까? 하며 '행간 읽어내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간 읽기' 속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이 점을 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다가 아니라, 이 사람과 만난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또는 나의 무의식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  35-36
단지 책 자체만 읽고서 "이 책은 별로야"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몰입해 읽어야 합니다.  37
책도 스스로를 몰입해 읽다 보면 몸이 반응을 보입니다.  38
진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며, '읽어내기'위해서는 언어의 감춰진 부분, 즉 배후를 읽어내야 합니다.  45

글을 쓰려면 그에 앞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해 놓아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며, 또다른 하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49
글을 쓴다는 작업은 먼저 자료 확보가 있은 다음에 그 자료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를 생성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나 자신에게 '정보를 투입하는 과정(Input)'과 '밖으로 꺼내는 과정(Output)'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을 일반적으로 'IO비'라고 합니다.
IO비가 높을수록, 다시 말해 자료를 최대한 많이 투입하여 적게 배출하면 그 압박비가 높은 만큼 많은 정보가 쌓여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50

굶주림과 책
몇 만 명이나 되는 인간이 무리를 지으려 하고 
책 한 권 없는 곳이 있다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고
몇 만 권이나 되는 책이 있는 곳이 있다 
다 읽으면 먹을 수 있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존은 말하지만
굶주려 있으면 읽기도 전에 먹어치울 것이다
내가 있고 싶은 곳은 깎아지른 절벽 위
그곳에 책 한 권만 가져가
소리내어 읽는다
바다와 하늘에게 인간이 쓴 책이라는 녀석을 
읽어준다
  - <시를 보낸다는 것은> 중에서  74

숲에게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할 말을 잃고
읽는 사람의 손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80

바람
잡목 숲
낙엽 위
외발 등나무 의자
당신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날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책 한 권을 펼치고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당신은 책을 읽고 있었다
부드러운 가을 햇빛을 받으며

그리고....
문득 얼굴을 들어 나는 향한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늘 색 바랜 사진 속에서

당신은 젊은 모습 그대로
나이든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는 읽는다
그날 당신이 보고 있던 세계를 
나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가져보면서  82

사랑에 빠진 남자
연인의 짓궂은, 미소 띤 얼굴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그는 연애론을 읽는다
펼쳐든 페이지 위에 있는 사랑은 
향도 감촉도 없지만
의미들로 넘쳐난다

그는 책을 덮고 한숨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유도 연습시간에 맞춰 나간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
코치의 질타가 날아든다

그날 밤 연인에게 키스를 거절당하고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은 읽어야 하는 것투성이야
사람의 마음 읽기에 비해
책 읽기는 누워서 떡먹기군

그러나 언어가 아닌 것을 읽어내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은 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다시 연애론을 펼쳐든다
한숨을 쉬면서
콘돔을 서표(書標) 대신 삼아  86

독서라는 것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선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찾아 파고드는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144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147
뇌의 본능을 고려해 볼 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생각하면 대개 실패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반사신경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면 정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2


후기
'읽기'와 '듣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다양하며 우리 인생에 풍요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174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란 실제로 삶을 살아온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에 의한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다치바나 다카시)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의 배후에는 '산다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176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는 언제나 만남의 연속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  177

옮기고 나서
세 사람은 인간의 지적 도구인 언어를 구성하는 문자가 그 편리성만큼 인간의 심적 움직임을 제한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감성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문자가 가진 우수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무언가를 읽거나 듣는 행동에서 벗어나 감성을 되살려, 언어 이상의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181
우리 인생이 만남의 연속이듯, 정보 또한 삶 속에서 갖게 되는 하나의 만남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선택 기준을 마련해 인간이 쌓아온 지혜를 믿고 활용한다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지식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82


Posted by WN1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계획, 여행, 연애, 연구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미래에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끝없이 미루는 우리의 게으름은 이것들을 숨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루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하는 위협이 생기면, 삶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 까요... 대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것도 하지 않을 테지요... 거기서는 무관심이 소망을 죽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뇌는 일 만권의 책의 모든 글자를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생에 우리의 뇌의 3%도 쓰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수치로 단순하게 계산을 한다면 일 만권의 3%는 300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에 300권에 달하는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핵심은 빠짐없이 300권의 글자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라면 우리가 망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 있습니다.

위의 인용글에서는 '무관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에 맞추어 생각해 보면 3%만 쓰는 뇌는 300권의 모든 글자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인데, 관심을 끊음으로 아니 가지지 않음으로 우리는 더 작은 일부만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무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아니 모든 동물은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사람은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을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어린시절 부모의 관심을 받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성인이 되었을때 자존감과 자신감을 비교해 보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동물 뿐만이 아니라 식물들도 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시들시들해져 가면서 결국은 죽게 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물만 주는 꽃과 관심을 가져주는 꽃은 피는 꽃의 양과 크기와 빛깔이 틀리다고 합니다.
이토록 '관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하면서 정작 우리는 자신의 삶에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낸다는 것은, 스스로가 죽이는 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는것은 가장 큰 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 큰 일이 벌어져야만 우리는 우리를 돌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후의 생활에서 아름다움과 풍성한 생활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큰 일 이라는 것이 생명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후의 삶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력없는 사람이 도박꾼들과 함께 도박을 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대체로 도박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걸고 도박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아이러니 일까요...??

경영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염두에 두는 것은 미래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회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24시간을 모두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 무엇이 올지 모르기에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하고 또 예측하면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초점을 흐리지 않는 기능이 쉬지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영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시류에 쓸려 사라져가는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망각은 인간의 기능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망각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망각하려는 기능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간다면, 망각해도 되는것은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잡는다면 우리의 생활은 분명히 달라 질 것입니다.


'행복할때 무지한 것은 아마도 그저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로움  (0) 2012.04.13
사랑의 모순  (1) 2012.03.05
유효기간  (0) 2012.02.11
답다  (3) 2012.02.09
글자 하나의 요술  (0) 2012.01.24
Posted by WN1
,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150페이지도 안되는 내용이었다.
제목만으로는 저자의 동물원 탐방기라고 생각을 하였다. 과연 동물원에서 그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을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제목과는 좀 떨어진 내용이라는 점을 알게 되고, 이 책 이전에 저자의 책을 읽은 내용들이 꽤나 나오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래서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어 보았다.

'이 책은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들 가운데 한 권이다. 드 보통은 70번째라는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하며 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보통이 쓴 글들 가운데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목들을 추려내 독립적으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손을 보고 보완한 것들이다...'(142-143)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글 중에서 추려낸 글들이기에 낯이 익은 글들이 많았다. 저자의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권을 읽으면서 보았던 내용들이 많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책의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니 저자와 다시금 가까워져 가는 것 같다.
옮긴이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입구같은 역할을 할것이라 한것이다.
나의 경우는 반대가 되었지만, 꽤나 의미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복습을 하는듯 그리고 다시금 읽어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저자의 책에서 좀 멀어지는것이 필요할까하는 생각 즉, 저자의 글쓰는 방식에 지루해져가는 시점에 읽은 내용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니 지루함도 어느정도는 멀어져 가는 느낌도 든다.
저자의 모든 책을 읽을 생각은 아니지만 몇 권 더 읽을 수 있게 될 것같다.


슬픔이 주는 기쁨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걸 - 세네카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벽에 걸어야 할 것은 쓸쓸한 도로변 휴게소 그림인지도 모른다.  10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김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은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풀려나가곤 한다. 정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각뿐일 때는 제대로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남의 요구에 따라 농담을 하거나 다른 사람 말투를 휸내 내야 할 때처럼 몸이 굳어버린다. 그러나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외려 생각도 쉬워진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을 눈으로 좇을 때. 우리 정신에는 신경증적이고, 검열관은 기억이나 갈망이나 내성적이고 독창적인 관념들을 두려워하고 행정적이고 비인격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이나 풍경은 이 정신의 검열관이 잠시 한눈을 팔게 하는 것 같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수도 있지만, 열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기차를 타고 가다 우리는 순간적이지만 남의 사적인 영역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기차를 어떤 여자가 부엌 찬장에서 컵을 꺼내는 순간을 보여주었다가, 이어 테라스에서 어떤 남자가 자고 있는 모습을 구경시켜주었다가, 공원에서 누군가가 던진 공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아이의 움직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18-20

공항에 가기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 보들레르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활주로 출발선에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기계 안에서 창밖을 보면 풍경이 익숙한 크기로 길게 내다보인다. 도로, 기름탱크, 풀밭, 구리 색조의 창문이 달린 호텔들. 우리가 늘 알고 있던 땅 그대로다. 우리가 차의 도움을 받아도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곳, 종아리 근육과 엔진들이 산꼭대기에 이르려고 애를 쓰는곳, 500미터 정도 앞에는 언제나 나무나 건물이 막아서서 우리 시야를 제한하는 곳, 그때 갑자기 엔진의 억제된 진동과 더불어 우리는 완만하게 대기 속으로 솟아오르며, 아무런 방해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대한 지평이 열린다. 지상에서라면 한나절이 걸릴 여행을 눈을 아주 조금만 움직이는 것으로 끝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이륙에는 심리적인 쾌감도 있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형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ㅈ거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수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점(視點)은 풍경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한다. 도로는 산을 피하느라 곡선을 그리고, 강은 호수로 향하는 길을 따르고, 고압선 철탑은 발전소에서 도시로 이어지고, 땅에서 보면 제멋대로인 것 같은 도로들은 잘 짜인 격자로 드러난다. 눈은 자신이 보는 것을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일치시키려 한다. 익숙한 책을 새로운 언어로 판독하려는 것과 같다. 그러는 동안 내내 우리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우리 눈에 감춰져 있었다 뿐이지, 사실 우리 삶은 저렇게 작았다는것.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는 있지만 실제로 볼 기회는 드문 세상이다. 그러나 매나 신에게는 우리가 늘 그렇게 보일 것이다.  34-35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것을 심오한 철학을 가르치는 스승이라 부를 만하다.  38

진정성
이 모든 소란과 안달은 왜일까? 왜 이리도 잘박하고 어수선하고 번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런 하잖은 것이 왜 이다지도 중요해진 걸까? - 쇼펜하우어
"포도주 좀 드실래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글쎄요. 포도주 좋아하세요?" 그녀가 되물었다.
"드시겠다면 난 상관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원하시는 대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무 쪽이나 좋은데요."
"나도 찬성이에요."
"그럼 마실까요, 말까요?"
"너, 나는 안 마시는 게 좋겠어요." 클로이가 말했다.
"그래요, 나도 별로 마시고 싶지 않군요."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럼 포도주는 마시지 말기로 하죠."
"좋습니다. 그럼 물만 마시죠."
진정한 자아는 누구와 같이 있든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클로이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시도를 되풀이했다.  46
침묵은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는 고발장이었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48
피하기 위한 거짓말과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 유혹과정의 거짓말은 다른 영역의 거짓말과 매우 다른 면이 있었다. 내가 경찰에게 자동차 속도를 거짓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이유 때문이었다. 벌금이나 체포를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에는 괴상한 가정이 수반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 [따라서 다른 사람과 다른] 특징을 비워버려야만 상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 관계에 있다고 [따라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태도다.  60-61

일과 행복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대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 너의 도시들을 베수비오 산기슭에다 세우라! - 니체
능력주의 시대에는 천한 직업을 가진 것이 단지 가엾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직업은 그 반대의 기분 돟은 직업과 마찬가지로 능력에 따라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서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고, 또 그 대답에 아주 신중하게 귀 기울이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76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과 기대의 관계에 관하여 예리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는 모든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일을 못했다고 해서 늘 수치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일의 성취에 자존심과 가치를 투자했을 때에만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수치감을 느낀다. 우리가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고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하는 이야기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갖고 있다고 상상하는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 =  이룬것 / 내세운 것
만일 일에서 행복을 얻기가 그렇게 힘들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있다고 내세우는 것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자리에서 프로이트나 루스벨트가 맛보았던 만족감의 일부라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77-78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The Commnist Manifesto)>(1848)에서 부르주아지와 그드르이 새로운 과학인 경제학이 대규모로 "부도덕"을 자행한다고 비난했다. '[경제학은] 노동자를 일하는 동물로 밖에 알지 못한다 - 최소한의 육체적 요구만 남은 짐승으로 아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에 따르면 피고용인에게 주는 임금은 '바퀴가 계속 돌아가도록 칠하는 윤활유와 같다. 일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다.'  79
일이 행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우리의 슬픔을 그나마 다독일 수 있을 테니까.  83

동물원에 가기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테렌티누스
동물원에 가 보면 십인십색이라는 속담이 실감난다. 모든 동물은 어떤 것에는 놀랄 만큼 적응이 되어 있는 것 같지만, 다른 것에는 가망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가 않는다.  89

독신남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나하면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은 없다. 정신을 팔 일이나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본질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이싿. 전화기가 옴짝달싹도 안 했던 주말, 매끼 통조림을 따서 식사를 하고 귀에 거슬릴 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BBC 해설자의 목소리-케냐 영양의 짝짓기 습관을 설명하고 있다- 를 들으며 주말을 보낸 뒤에야 우리는 왜 플라톤이 사랑이 없는 인간은 팔다리가 반뿐인 생물과 같다고 말했는지(<향연> 기원전 416년) 이해 할 수 있다.  97
사람은 아주 하찮은 것으로도 사랑헤 빠질 수 있다. 뭐 사랑이라는 말이 좀 그렇다면, 기질에 따라서는 반한 상태, 병, 착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향하여 뜨겁게 고조된 그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98

따분한 장소의 매력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파스칼
귀스타프 플로베르는 루앙에서 자랐는데, 그곳은 호수만 빼면 취리히와 비슷한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따분해, 따분해, 따분해" 플로베르는 젊은 시절 일기에 그렇게 썼다. 그는 프랑스에, 특히 루앙에 사는 것이 정말 지겹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108
나는 자신의 내부가 흥미로워 굳이 도시까지 '흥미롭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원했다. 정열의 샘에 늘 가까이 있어 도시가 '재미'없다 해도 상관하지 않을 사람을 원했다.  109
근대 세속 사회를 바라보는 한 영향력 있는 입장에 따르면, '남들처럼' 되는 것만큼 창피한 운명은 없다. '남들'이란 평범한 사람들과 순응적인 사람들, 따분한 사람들과 교외에 사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드르이 목표는 군중으로부터 두드러지고, 자신의 재능이 허용하는 대로 어떤 방식으로든 '튀는' 것이다. 공공 부문에서 제공하는 주택, 운송, 교육, 의료가 시원찮으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집단과 섞이는 것을 피하게 되며, 높은 담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 뒤에 들어가 살려고 하게 된다. 보통이라는 것이 존엄과 안락에 대한 중간적인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일 때는 높은 지위를 향한 욕망이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110-111
취리히가 이 세상에 주는 독특한 교훈은 어떤 도시가 그냥 따분하고 부르주아적이기만 해도 진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119

글쓰기(와 송어)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 프루스트
맞춤법은 시간이 가면 정확해지지만,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단어들을 배열하는 데는 꽤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붙들어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디에 갔고 무엇을 보았는지 목록을 작성한다. 그러나 다 적고 펜을 내려놓을 때면 우리가 묘사하지 못한 것, 덧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라지고 만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라져버린 것이 하루의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124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역설적을 나 혼자 파악하려 할 때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책에 있는 말을 읽다 보면 전보다 더 생생한 느낌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세계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126


Posted by WN1
,

원제는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이다.
표지에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
'드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삶을 낭비하지 않고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는 실천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보고, 프루스트를 일상에서 실행할 수 있는 '문학적 참고서'로 새롭게 조명한다. 전기와 평론이라는 형식을 빌려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



하나.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계획, 여행, 연애, 연구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미래에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끝없이 미루는 우리의 게으름은 이것들을 숨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루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하는 위협이 생기면, 삶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 대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것도 하지 않을 테지요... 거기서는 무관심이 소망을 죽입니다.'  13

둘. 자신을 위한 독서법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36
'만약 천재의 새로운 걸작을 읽게 된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경멸했던 우리 자신의 성찰들, 우리가 억압햇던 기쁨과 슬픔, 우리가 깔보았지만 그 책이 문득 우리에게 그 가치를 주는 감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42

셋. 여유 있게 사는 법
예술 작품의 위대함은 겉으로 보이는 소재의 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전적으로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프루스트는 주장한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모든 것이 예술의 풍부한 소재이며,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만큼이나 비누 광고에서도 귀중한 발견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57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는 아마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63
천천히 생각할 때 더 큰 연민이 생길 수 잇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쳤군'이라고 한 마디 하고 신문을 넘길 때보다는, 정신이상자 반 블라렌베르그 씨의 범죄에 대해 기다란 성찰의 글을 쓸 때 우리는 그를 더 많이 동정하게 된다.  64
교훈은? 공연에 몰두할 것, 신문기사를 마치 하나의 비극적 또는 희극적 소설의 일부인 것처럼 읽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는 잠드는 것을 묘사하는 데 30페이지를 쓸 것. 그리고 만약 시간이 없다면, 적어도 올레도르프 사의 알프레드 윔블로나 파스켈 사의 자크 마들렌이 취했던 태도에 저항할 것. 프루스트는 이러한 태도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할 시간이 없다'라는 건 '바쁜' 사람들이-아무리 그들의 일이 어리석을 지라도-느끼는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66

넷.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어떤 사람이 가진 생각이 지혜로운 것인지 평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의 정신과 건강상태를 주의 깊게 검토해 조는 것이리라.  67
'내가 진정 슬플 때 위안이 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75
프루스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문제가 있기 전까지는, 즉 우리가 고통에 빠지고 우리가 희망했던 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병 하나만으로도 우리느 ㄴ주목하고 배우게 되며,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을 과정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매일 밤 침대 위에 눕자마자 즉시 잠에 들어서 깨어 일어나는 순간까지 죽은 듯이 자는 사람은, 반드시 위대한 발견일 것까지는 없지만, 분명히 수면에 관한 작은 관찰조차도 꿈꿔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고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한다. 약간의 불면증은 우리가 잠에 대해 감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없지 않다. 기억을 잘하는 것은, 기억이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 그다지 큰 이점이 아니다.'
프루스트가 제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때에만 천저한 탐구심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 그리고 고통을 더 큰 맥락 속에 위치시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땜누에 우리는 생각한다. 생각은 고통의 기원을 이해하고, 그것의 여러 특성ㅇ들을 포착하고, 그 존재를 체념하고 인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92
그는 개인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선생을 통해서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럽게 얻는 지혜가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93
'지혜란 가르칠 수 있는게 아니다. 누구도 우리 대신 가줄 수 없는 여정을 통해서, 누구도 우리 대신 해줄 수 없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행복은 몸에 좋다. 그러나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라고 프루스트는 말했다.  94
만족보다는 불행이, 그리고 플라톤이나 스피노자를 읽는 것보다는 고통스러운 연애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천재보다는, 우리가 욕구하고 우리를 앓게 하는 여성이 훨씬 더 심오하고 생생하게 우리에게서 온갖 종류의 감정을 끌어낸다.'
행복할 때 무지한 것은 아마도 그저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95
고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이란 그것이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탐구의 가능성-아주쉽게, 그리고 가장 자주 간과되고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는 것일 뿐이다.  99
'삶의 기술 전부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개별자들을 이용하는데 있다.'  100
언제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101

다섯. 감정을 표현하는 법
"당신의 소설에는 몇 가지 훌륭하고 장엄한 장면들이 그려집니다"라고 프루스트는 섬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좀더 독창적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해질녘에 하늘이 불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너무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고, 어슴푸레한 달빛은 시시하고 둔감한 표현입니다."(가브리엘의 <연인과 의사>라는 소설의 원고를 읽은 평)
상투어의 문제는 잘못된 관념을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훌륭한 관념들을 피상적으로 조합해 낸다는 데 있다. 해는 해질녘에 불타고 달은 어스레한 빛을 내지만, 우리가 해나 달과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이 주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첫 번째 말이라기보다는 최종적인 말이라고 결국 믿게 되고 말 것이다. 상투어들은, 한편으로는 단지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어떤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처음에 어떻네 경험하는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123-124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마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신만의 '음색'을 창조해야 하듯이...형편없이 쓰는 독창적 작가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 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아마 이게 약점일 수는 있지만-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창적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했다는 전제하에서만 그들은 잘 쓸 수 있습니다. 정확함과 완벽한 문제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든 착오를 겪은 후에야 독창성의 이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독창성과 같은 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창성의 면에는 정확성-'어슴푸레한 달' , '미소짓는 착한 마음' , '모든 연도 중에서도 가장 불쾌했던 해"-이라는것은 조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스트로스 부인!'  130-131

여섯. 좋은 친구가 되는 법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내용과 타인의 관심사가 쉽게 일치하는 것이 친교라고 가정한다.  165
프루스트는 한번은 친교를 독서에 비유하였다. 왜냐하면 두 가지 활동 모두 타자와의 교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독서에 결정적인 우위가 있다고 덧붙였다.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서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173

일곱. 일상에 눈을 뜨는 법
모든 것에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라고 권했을 터이다. 이는 좋은 삶이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고 헛되이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했다.  190
왜 우리는 사물들을 더 풍부하게 음미하지 않는가? 이것은 부주의나 게으름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이미지들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은 데서 유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우리 자신의 세계에 충분히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안내하고 우리에게 착상을 불어 넣을 수 있다.  199

여덟.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무언가를 박탈당했을 때 우리는 그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박탈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것을 결핍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우리가 그것을 결핍하고 있지 않을 때도 그 교훈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 연인과의 오랜 교제로부터 권태감이 생기고, 그 사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제는 우리가 그를 충분히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다. 처음 사귈 때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무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후로 연인의 곁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 우리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감각해질 정도로 진정 친숙해진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같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가짜 친숙감에 불과할 것이다.  224

아홉. 책을 치워버리는 법
우리는 책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까?
프루스트는 책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생기는 위험들, 아니 책을 물신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취할 때 생기는 위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책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예창작의 정신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237
그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244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정하지는 않는다.'  246
'우리 속 깊은 곳에 있지만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알지 못했던 집의 문을 마법의 열쇠로 열어주는 한, 우리의 삶에서 독서의 역할은 유익한 것이다. 반며에 독서가 정신에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지 않고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면, 그것은 위험해진다.'  247
'(독서를) 학문 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책들조차도 결국에는 내팽개쳐야만 하게 마련이다.  270

Posted by WN1
,
 1.  (영상소설) 세 얼간이 라지쿠마르히라니 북 스퀘어 2011
 2. (나의동양고전독법) 강의 신영복 돌베개 2004
 3. 흑산 김훈 학고재 2011
 4. 새로운기아 크리스티앙 트루베 알마 2009
 5. 불안 알랭 드 보통 이레 2005
 6. 마음의 해부학 토머스 해리스 21세기북스  2008
 7. 세 얼간이 체탄 바갓 북스퀘어 2011
 8. 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
 9.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돌베개 2011
10.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이레 2009 
11.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9
12.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생각의나무 2005
 

'나를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3월에 참석한 독모  (0) 2012.04.01
2012년 2월에 참석한 독모  (0) 2012.03.03
1, 2월의 나의 특강  (0) 2012.02.28
오랜만에 들린 센트럴 영풍문고  (0) 2012.02.02
2012년 1월의 독서모임  (0) 2012.02.01
Posted by WN1
,

1, 2월의 나의 특강

2012. 2. 28. 08:3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이 책을 고른건 옮긴이의 글에서 저자가 일주일 동안 공항에서 생활하면서 관찰한 기록이라는 내용을 보았기에 선택하게 되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저자의 책들을 검색하고 여러권들을 읽으려 마음먹은 후이기에 그 중에 먼저 보고 싶었던 책인것이다.
이 책이 먼저 읽고 싶은 책이 된 이유는 '여행'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행복한 단어이다. 나에게 만큼은.
내 여행은 조금은 독특하고, 모험적이기에 다른이들이 들으면 입을 다물지 못하기도 하고, 놀랍다는 표현을 한다.
여행을 통해 많은 통찰력을 기를 수 있었고, 포용력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먼저 잡아야 하는 책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먼저 잡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시점이 늦어졌기에 그렇다.

아무튼 여행은 나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라는 점, 그에 더해 여행의 시작과 끝은 항상 공항이라는 점이다. 
책을 읽기전에 공항에 대해 구석구석 설명이 되었을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여행을 통해 들렀던 공항이 몇 개나 되는지 꼽아보았다.
28군데의 공항을 들렀다. 그런데 이상한건 공항을 떠올리면 여러가지가 생각이 나긴 하지만 한 번도 공항을 살펴보았던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첫 여행을 떠날때 조차도 처음들어가보는 공항이었는데도, 그곳을 둘러보거나 관찰해 본적이 없었다.
떠날때는 목적지에 대해 생각을 했었기에 그러했던것 같고, 돌아올때의 공항에서는 여행의 피로와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 조용히 있었던 것 같다.(첫 여행지는 태국이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만만한 금액이고 전 세계 여행자들의 집결지인 카오산로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다양한 나라들을 배낭여행으로 떠났으나 공항을 구경해 보았던 기억이 없다.
필요한 것이 있을때 면세점을 잠시 들렸다. 그것도 살것만 사기위해 찾아갔다. 그리고는 매번의 여행은 라운지에서 안락한 의자에 앉아 음식과 음료들을 먹으면서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했었다.
가장 최근에 갔다온 2011년 12월에도 이것이 다였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내용에 집중한것보다 내가 지나갔던 공항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데 더 집중한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 즐거움을 더 주었다.
그리고 모든 공항은 아니겠지만 구경해 볼만한 공항은 이제부터라도 구경을 하면서 관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안락한 여행은 크게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나인데(물론 휴양지를 선택했을때는 안락함을 추구한다) 지금까지 공항에서만큼은 안락하게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느낀다.

굉장히 부럽다. 어떤 경로로든 작가는 공항을 내집처럼 누비며 제한구역까지 들락거리며 관찰하고 체험하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쳐가는 그곳에서 합법적으로 그렇게 지내면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것이 부럽다. 

책의 내용중에 '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지나쳐가는 공항을 거의 잊는다. 생각을 떠올리면 공항의 구조는 어떻고, 화장실은 어디고, 티켓팅 데스크는 어디며, 게이트는 어디인지는 떠올릴 수있긴하지만 공항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찰해 본적이 없기에 자신이 거치는 라인 이외에는 잊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하는 것들은 모든 공항들이 가지고 있고 형태도 비슷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서 여행지는 관찰하려고 눈을 부릅뜨기는 하지만, 나처럼 공항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의 인천국제공항은 규모면에서도 뒤지지 않는 공항이며 구석구석 이용객들의 편의시설들도 매우 많이 있다. 그럼에도 그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막상 공항에 가면 여러곳에서 안내 팻말을 통해 알려주고는 있으나 사람들은 공항 자체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때문에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란 동물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관찰하고 알기위해 노력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에게 공항 자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면에서만이라도 이 책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 한다..^^



나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 황제를 위하여 쓴 <분노에 관하여(On Anger)>라는 논문,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하여, 존재에 풍토병처럼 따라다니는 좌절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열쇠를 잃어버리거나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열쇠가 절대 없어지지 않고, 여행계획이 늘 확실하게 이행되는 세계에 대한 믿음,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순진한 믿음을 드러낼 것이다.  58-59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우리가 마음속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를 주는 거죠."  119

"이 세상의 노고와 소란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부, 권력, 탁월한 위치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에서 그렇게 묻고 스스로 대답을 했다. "공감하고, 만족하며, 찬동하면서 곤찰하고,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이다."  123

세계의 익명의 공간들을 헤매고 다니는 동안 우리가 보통 취하는 엄숙하게 경계하는 태도를 곧바로 버리는 것은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흼한 미소를 지을 여지는 남겨두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187

우리는 우리가 찾아갔던 여행지들에 부탁할 수도 있다. "내가 더 관대해지고, 덜 두려워하고, 늘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와줘. 나와 내 혼란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해줘. 나와 내 수치감 사이에 대서양 전체를 넣어줘." 지혜로운 여행사라면 우리에게 그냥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으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텐데.  201

승객들이 도착 라운지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위층의 출발 라운지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새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3

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205


옮기고 나서
알랭 드 보통에게 조금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공항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 것이다. 돌이켜보면 클로이를 처음 만난 곳도 비행기 안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공항은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기도 하고, 각 사람의 지위와 그에 따른 불안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며, 현대 건축의 백미이기도 하고, 일의 기쁨과 슬픔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화성인이 온다면 구경시켜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로 공항을 꼽는다는 저자의 말은 전혀 농담이 아닌 것이다.  213

Posted by WN1
,


'일은 어떤 거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것 같다. 일 안에 완전히 묻혀 있으며, 그 의미는 커녕, 즐거움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말이 나오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일을 원경으로 멀리서 보아야만 할 듯하다. 곧 관찰자의 시점으로 물러난다는 뜻인데, 우리가 일의 관찰자가 되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일에서 떠나 있게 되거나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물 때이다. 만일 다수가 타의에 의해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이것이 지금 우리의 큰 문제이기도 하거니와-그것은 일의 비극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373)라고 한 옮긴이의 말에 공감한다.
일이 기쁨일까 슬픔일까를 생각해본적이 과연 있을까?

저자는 일을 따라가면서 글을 썼다. 
때로는 탐방을 통해 때로는 관찰을 통해 때로는 참관을 통해 일을 바라보는 소설가적인 입장으로 묘사를 하고, 때로는 특정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곁들이고, 때로는 그들과의 대화를 기술하면서 우리에게 일을 바라본 저자의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일을 이야기하는데'있어서 우리가 바라보지 않는 관점을 때로는 사소한것에서 때로는 독특한 것에서 때로는 일반적인 것에서 기술한다.
저자의 관점에서 우리의 관점까지 덧붙여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듯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권태, 기쁨 그리고 가끔씩 느껴지는 공포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특히 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그 엄청난 주장을 한 번 파헤쳐보고 싶었지요.'

일의 아름다움이란 표현. 나는 일을 아름답게 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일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의미를 주느냐에 따라 일은 아름다워 질 수 있다.
일에 의미를 둔다는 것 자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다시금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1. 화물선 관찰하기
그레이브젠드의 방파제 끝에는 남자 다섯 명이 비를 맞으며 함께 서 잇다. 방수 비닐 재킷에 창이 두춤한 장화 차림이다. 그들은 말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안개에 덮인 강을 내다보고 있다. 어떤 형체를 좇는 중이다. 시간표를 보고 이미 그것이 '그랑드 니제리아'호임을 알고 있다. 또 그 배가 라고스로 가고 있으며, 화물창에는 아프리카 시장에 팔포드 자동차 부품이 가득하고, 줄처 900 디젤 엔진 두 대로부터 동력을 얻고 있으며, 이물에서 고물까지 길이가 214미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이 잃게 꼼꼼하게 조사를 해야 할 실용적인 이유 같은 것은 엇다. 다음에 탈 사람을 위해 배의 침상을 정돈할 책임이 잇는것도 아니고, 근처의 통제탑에 있는 직원처럼 이 배가 북해로 나아갈 때 사용할 뱃길을 지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이 배 자체에 감탄할 뿐이며, 그냥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 항구에 삶을 연구하는 데 쏟는 그들의 열정은 종종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사하라 서부 끝을 돌아 굴대를 운송하는 데에도 임파스토(유화에서 물감을 겹쳐 두껍게 칠하는 기법) 기법으로 여성의 누드화를 그릴 때와 같은 창조성과 지성이 필요하다고 믿는 듯하다. 이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싫증을 내며 카페테리아에 관심을 보이고, 선물 가게에 마음이 흔들리고, 틈만 나면 벤치에 앉고 싶어하는 박물관 관람객들은 얼마나 변덕스러워 보이는지. 사실 먹을 것이라고는 보온병에 든 커피가 전부인 채로 '헨드리키에 바딩'이라는 이름의 배 앞에서 폭풍우를 맞으며 두 시간을 보낸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물론 배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상상력으로 열광 대상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통계다. 그들은 운행 날짜와 항해 속도에 에너지를 집중하며, 터빈 숫자와 샤프트의 길이를 기록한다. 마치 깊은 사랑에 빠져 여인에게, 내 감정에 따라 행동해도 좋으냐고, 당신의 팔꿈치와 어깨뼈 사이의 거리를 재도 좋겠냐고 묻느 ㄴ남자 같다.  29-30
배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근대 이전 여행자들의 습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그 나라의 곡물창고, 도수관, 항구, 작업장에 특별한 호기심을 드러내곤 했다. 노동 현장을 관찰하는 것이 무대나 교회 벽을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광이라고 하면 바로 노는 것을 연상하고, 그래서 알루미늄 공장과 하수 처리 시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우리 눈길을 빼앗아 뮤지컬이나 납인형 진열관의 널리 떠벌려지는 즐거움 쪽으로 몰고 가는 현대의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
강가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런 현대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화물의 움직임과 컨베이어 벨트의 우르릉거리는 소리에 대한 관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지나가던 구경꿈이라면 그들이 서 잇는 부두의 같은 자리에 선다 해도 공장 마당에서 나오는 트럭 세 대밖에 못 볼지 모르지만, 이들은 배에 실린 브라질 산 사탕수수의 오디세이의 다음 장을 예특할 수 있다. 이 사탕수수는 화물선 '발레리아'호를 타고 건너와 이제 설탕으로 변신했으며, 실버타운에 잇는 테이트 앤드 라일 정제 공장을 떠나 건포도 케이크를 만드는 더비의 시설로 가고 있다. 이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류학자와 비슷한 만족감을 느낀다. 조류학자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파란색과 잿빛이 섞인 보통 새라고 여기고 곧 고개를 돌려버릴 새를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상아 해안의 늪지대 서식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여 6천 킬로미터가 넘는 여행을 한 끝에 쉬고 있는 필로스코푸스 트로킬루스(연노랑솔새)를 올해 처음 만낫다며 기뻐하지 않는가.
그들에 비하면 우리 대부분은 얼마나 무지한가.  32-33
나는 부두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노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일이 우리에게 사랑과 더불어 삶의 의미의 주요한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는 그 특별한 주장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34


2. 물류
현재 우리는 많은 물건을 실제로 손에 넣을 수 는 있지만, 그런 물건들의 제조와 유통 과정이 어떠한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소외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죄책감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물류(logistics)'라는 말은 군데 용어로는 병참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로지스티코스(logistikos)' 즉 군대에서 식량과 무기의 조달을 책임지는 병참 장교라는 말에 뿌리를 둔 것이다.  39
지구의 기울어 있는 축 때문에 고객이 음식에서 만족을 느끼는 일이 지연되는 사태를 슈퍼마켓은 앞으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딸기는 한겨울에는 이스라엘, 2월에는 모로코, 봄에는 스페인, 초여름에는 네덜란드, 8월에는 잉글랜드, 9월부터 크리스마스 사이에는 샌디에이고 뒤의 과수원에서 들어온다. 딸기를 따는 순간부터 잿빛 곰팡이의 공격에 굴복하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여유는 96시간뿐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어른이 이 부드럽고 통통한 과일의 엄중한 요구에 굴복하여 어쩔 수없이 게으름을 떨쳐내고, 창고들 사이에 화물 받침대를 깔아옿거나 우르릉거러는 디젤 트럭 안에 앉아서 기다린다.
창고 소유자들의 상상 속에서 보안에 대한 걱정이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않는다면, 창고는 완벽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  49
내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이런 성취에 대하여 거의 음모를 꾸민 듯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자, 이 물고기 한 마리에서 출발하여 이 물고기가 이곳까지 올 때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로 다시 바다까지 거슬러 이곳까지 올 때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로 바다까지 거슬러 가보고 싶은 욕망마저 생긴다.  53


3. 비스킷 공장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로렌스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로렌스는 슬라우에 있는 한 호텔에 선문 대상자 몇 명을 모아놓고 이 비스킷을 만들었다. 그는 일주일에 걸쳐 그들의 생활에 관해 질문했다. 그들에게서 감정적인 갈망들을 끄집어내, 새로운 제품의 조직 원리로 통합해내려는 것이었다. 템스 리비엘 호텔의 어느 회의실에 모인 저소득층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공감, 애정, 그리고 로렌스가 경구처럼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대로 '내 시간'에 대한 갈망을 토로했다. '모먼트' 비스킷은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한 그럴 듯한 해결채긍로 모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심리적 갈망에 응답을 하겠다는 계획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로렌스는 그런 계획이 노련한 브랜딩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면 비스킷의 폭, 형태, 코팅, 포장, 이름 등으로 구체화되며, 이런 결정에 따라 비스킷도 위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상황에 어울리는 미묘한 느낌을 발산하는 인격을 부여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로렌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비스킷이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원과 여성성과 전체성이 서로 연겨로디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쾌적한 탐닉의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작은 건포도 조각과 초콜릿 칩이 들어가는 것도 필수였다. 그러나 노골적인 퇴폐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은 막아야 했기 때문에 크림은 넣지 않았다. 
로렌스는 그 뒤 반년 동안 동료들과 포장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단순하게 비스킷 아홉 개를 검은 플라스틱 트레이에 넣은 다음 광택이 나는 24센티미터 길이의 판지 상자에 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로렌스는 이 비스킷의 이름을 두고 토론을 시작했다. '리플렉션' , '리트리트' , '딜라이트' , 그리고 비스킷의 기초가 되었던 개념인 '마이 타임' 등이 물망에 오르다. 로렌스에게 적당한 이름이 떠올랐다. 번쩍이는 영감이 찾아왔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제 글자체의 선택에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왔다. 디자이너의 최초 레이아웃은 상자를 가로질러 로맨틱 에드워디언 글자체로 'Moments'라는 단어를 적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임원은 이 디자인이 현실 생활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쾌적한 보완물이 되고자 하는 이 제품의 본래 의도보다 너무 멀리 나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현실로부터 잠시 풀려날 기회를 주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현실을 존중하는 스낵에 어울리도록 마지막 순간에 m과 s를 좀 더 수직으로 세우는 쪽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80-84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느 ㄴ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86
정신이 고결하고 도덕적인 야심이 있는 구성원들은 사회의 방종에 경악했다. 그들은 소비주의를 매도하면서 대신 아름다움과 자연, 예술과 우애를 찬양했다. 그러나 비스킷 회사는 초콜릿 비스킷의 효율적인 생산을 무시하고, 사회의 가장 유능한 구성원들이 혁신적인 마케팅 프로모션 기법을 개발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것을 엄하게 막는 나라들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늘 직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잇는 곳이다. 그런 나라들은 가난하다. 너무 가난해서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도 없고,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국민을 돌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이런 나라의 국민은 기근이나 전염병에 목숨을 빼앗긴다. 고상한 나라들은 국민이 굶주리게 놔두는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한 나라들은 도넛과 6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덕분에 산과 병동과 두개골 스캐닝 기계에 투자할 자우너을 갖추고 있다.
암스테리담은 건포도와 꽃의 판매를 기반으로 건설되었다. 베네치아의 궁들은 양찬자와 향료 교역에서 생긴 이윤으로 지었다. 설탕은 브리스톨을 건설했다. 상업적인 사회는 종종 비도덕적인 정책을 펼치고, 이상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자유주의에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물건이 많은 상점과 돈이 그득한 금고를 갖추어 신전이나 고아원을 건설할 자금을 댈 수 있다.
나는 오스텐드 외곽의 도로변 휴게소 창가에 앉아 트럭 한 대가 두루마리 화장지를 싣고 덴마크로 출발하느 ㄴ것을 지켜보다가 포티에가 작별 선물로 준 모먼트 한 상자를 뜯으며 우리 사회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사회는 우리의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요구와 관계가 없는 산업, 그 결과 컴퓨터 터미널 앞과 창고 안에서 우리를 의미 상시의 위기로 몰아넣기 십상인 산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졵ㅇ하지 않을 수 없엇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과 절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초콜릿 코팅을 한 끈적끈적한 모먼트가 뜻밖에도 위로가 되었는데, 거기에는 그런 모든 생각들이 담겨 잇는 것처럼 느껴졌다.  112-114


4. 직업 상담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강력하고 우리 회사들이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느 ㄴ널리 퍼진 믿음이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은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116
시먼스의 책상 위에는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틀라스의 노예>라는 제목으 미완성 조각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사진에는 원재로에서 박물관에 들어갈 작품으로 여행을 하던 중간에 멈춘 조각이 포착되어 잇었다. 아직 머리가 없는 인간 형체가 대리석 토막으로부터 빠져 나오려 애쓴느 모습이었다. 시먼스는 직업 상담이 우리 모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이 미완의 작품이 매혹적이 ㄴ비유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도록 돕는 일이었다.  128
지금보다 더 위계적이었던 사회에서는 개인의 운명이 대체로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 결정되었다. 성공과 실패가 나는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선언을 동반한 실력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능력주의적인, 또 사회적 이동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지위는 자신감, 상상력,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을 설득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출세를 할 가능성 때문에 금욕과 체념의 철학들은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잇다. 시끄럽게 부추겨대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자신이 저급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겠다는 의지>같은 제목이 붙은 책을 고자세로 경멸햇다가 필생의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비관주의적 자부심 때문에 인생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34
나는 시먼스의 회사를 나오면서,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느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 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운명에서 갈망과 오류를 위해 마련된 자연스러운 자리를 부정하여, 우리가 경솔하게 결혼을 하고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느 ㄴ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142


5. 로켓 과학
나는 근대를 살아가려면 고통스러운 심리적 적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과학이 제공하는 잠재력을 존중하면서도 그 혜택이 좁은 틀 안에 갇혀 공혹스러울 정도로 제한적일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활동이 공학처럼 흥분을 자아내고 엄격성을 고수하기를 바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런 유혹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의 성취에 지나치게 감동을 받아 저열한 형태의 오류와 부조리가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 다닌다는 사실까지 간과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87


6. 그림
테링러는 자신이 설정한 도전의 성격이 제한적임을 인정한다. 5년간의 그림을 모은 전시회에 맞추어 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 거의 모든 시간에 물리적 세계를 관찰하는 일을 해왔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은 해를 볼 때와 해에서 고개를 돌릴 때 일어나는 빛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자기비하와 과대망상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야심을 요약한 말이다.  200


7. 송전공학
미국 작가 랄프 월도 에머슨은 1844년에 발표한 '시인'이라는 제목으 ㅣ에세이에서 그의 동료들이 아름다움을 너무 좁게 정의한다고 개탄했다. 시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과거의 유명한 화가나 시인의 작품에 나오는 전원적인 풍경, 또는 때 묻지 않은 목가적 장면에만 한정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에머슨 자신은 산업 시대에 새벽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철도, 창고, 운하, 공장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다른 형식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가능성에 여지를 주고 싶었다. 에머슨은 노스탤지어에 젖어 구식 시에 헌신하는 사람들과 그가 진정한 현대적 시 정신을 자겼다고 판단한 사람들-그들이 실제로 쓴 것보다는 편견이나 편애 없이 세상에 접근하고자 하는 태도 때문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비교했다. 에머슨은 구식의 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공장톤과 철도를 보면서 그것들 때문에 풍경의 아름다움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들이 읽은 책에서 그런 것들이 아직 거룩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정한 시인은 공장톤이나 철도가 벌집이나 기하학적인 거미줄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자연 질서 안에 포함된 것이라고 본다. 자연은 그 생명력 넘치는 품 안에 그것들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미끄러져 가느 ㄴ자동차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  246


8. 회계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유의 끝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의심과 집념과 변덕스러운 욕망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회계사의 만 가지 가능성도 이제 마음에 드는 몇 가지로 줄어들었다.  266


9. 창업자 정신
나는 영감과 동시에 벌을 받은 기분으로 창업자들의 모임을 떠났다. 나는 모센 바마니(물에 뜨는 신발 발명가) 같은 비전을 품은 사람들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의 갓 태어난 사업은 한층 주류에 속하는 기업들이 간과하는 욕망을 포착하여 그것을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력적인 사람들이 설정한 목표가 호수를 건너거나 포테이토칩을 먹는 문제, 욕실에 물건을 보관하고 불을 끄는 문제에서 실제로 보통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빛이 바랜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322
우리(그러니까 니체의 말처럼 아직 나 자신이 되지 못한 많은 수의 우리)는 혼자 있을 때면 우리가 해보고 싶어하는 여러가지 일을 그려보면서 스스로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자신에게 더 도취되어 있을 때면, 심지어 가게 처마는 어떤 모양이어야 하고, 새로운 서비스의 광고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까지 꼼꼼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런 유쾌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백일몽은 우리 인격 가운데 한 측면,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부엌 한구석에 식료품점을 차려놓고 기뻐하거나 정원에 판지 상자로 호텔을 짓고 만족하던 바로 그 측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어떤 열망과 통찰에 창업이라는 형식을 부여하고 싶은 인간적 충동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 동안 끈질기게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24-325

Posted by WN1
,

먼저 우리가 분노를 해야 하는 시대에 있다는것이 가슴아픈 일이다. 94세의 할아버지가 현재를 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젊은 시절 사르트르를 선배로 만났고 독일인으로서 자신의 신념으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고 유대계 독일인이라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람. 
전쟁이 끝나고는 외교관으로 대사로 인권위원회 대표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쌓아온 자신의 열정과 경험으로 세상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그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권과 환경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일까. 이정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살아 숨쉬는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저자는 '분노'라고 표현한다. 막연하게 분노를 느끼고 원초적인 방식의 폭력적 분노가 아니라, 삶을 올바로 바라보고 배우고 관찰하여 마땅히 분노해야 하는것에 인도적인 분노를 나타내라는 것이다. 
2차 대전때 레지스탕스는 분노때문에 일어난것이라 한다. 자유를 위한 동력으로 분노를 일으키고 투쟁을 한것. 지금의 시대에 총대를 넘겨 받아. 정치 경제 지성계에서의 사명을 다 해나가는 면에서 부당함이 있을때, 인류가 아닌 개인의 이기심을 볼 때...마땅한 분노는 역사의 흐름을 올바르게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 분노할 것은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있는가?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이유는 가리워져 있어서이다. 알아도 생활에 끌려가고 있어서 신경쓸 여유가 없다. 
'나'만 생각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기득권의 노림수에 빠져 있어서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의 눈은 가리워져 있고, 귀는 닫혀져 있으며, 그도 아니면 삶에 치이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사실이 아닌 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실제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 고통을 피해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는 안타까운 현실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200만부가 넘게 읽히고 많은 유럽으로 그리고 세계속으로 번역되어 가고 있는 이 책이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읽힐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읽혀 그들이 곧 기득권이 되어 세상이 아닌 그들만이 변화되어 간다면 소용이 있는것일까..
뜬금없을지도 모를 이런 생각이 든다.

특히나 동양 문화권에서 참을성을 배워온 우리들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러한 문제를 받아들이는것이 쉽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은 생각하면 어렵지 않지만 생각하기 전이 문제이다. 매우 어려울것처럼만 보이는 두려움과 무력감이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표현에도 나왔듯이 짧지만 강력한 내용(한국어판으로 4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을 전달하는 이 책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계기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행동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의 계기를, 행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여러가지 방법의 길이 있음을 깨우치는 계기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음을 알아채는 계기를, 여러가지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이 드러나 보이게 할 수 있는 계기들을 주는 원동력이 된다면 아주아주아주 조금은 더 나은 내가 그리고 내 주위가 그리고 나라가 그리고 세계가 되지 않을까.
너무 과한 표현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사는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내용의 책을 읽어서 이런 표현을 막 내뱉고 잇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래야지. 그럼그럼 그렇게 되어야해. 시대를 거꾸로 가는 이 나라를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것이야.'
이러한 생각이 들어 내뱉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 돌아보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많이도 있다. 내것도 없는데 그런것까지 신경쓸 수는 없다고 볼 수 도 있지만, 환경 파괴가 결국은 우리에게 아니 우리의 자손에게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사실 하나를 다시금 떠올려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해 나가는 과정이 어쩌면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조그만 분노일지 몰라도 그것은 '나비효과'처럼 커져서 돌아온다. 
진정 불쌍한 사람들에게 말이 아니라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작은 도움을 베풀때 돌아오는 내 마음속의 편안함과 뿌듯함, 그것에 더해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미래에 어떤식으로라도 다시 돌아오는 고마움이 될 것이다.
사소하면서도 작은 따뜻한 분노부터, 인도적인 큰 분노까지 우리의 삶에 조금씩 자라 잡아가는 그러한 생각은 각박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아닐까.
나 자신이 둘러볼 수 있는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





프랑스 해방 이래로 창출되는 부의 양은 괄목할 만큼 증가했는데...
이제 민영화된 은행들은 우선 자기들의 이익배당과 경영진의 고액 연봉 액수에나 관심을 보일 뿐, 일반 대중의 이익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극빈 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이 구체적으로 실천방안까지 명시한 이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누구라도 이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14-16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 권력이나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참여해야 한다.  19

맞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의 상대는 광활한 세계이며,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 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고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커다란 도전이 두 가지이다.
첫째,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 가로놓인,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격차.
둘째, 인권, 그리고 지구의 현재 상태.  21-22
나는 젊은이드에게 말한다. "주변을 둘러봐요. 그러면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 -이민자, 불법체류자,집시들을 이 나라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등등- 이 보일 겁니다. 강력한 시민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 상황들이 보일 겁니다. 찾아요. 그러면 구할 것입니다."  26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31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우리는 그 길을 따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분노를 촉발해 마땅하다.  34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38-39




편집자 후기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나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왔다."  50


저자와의 인터뷰
도덕이란 타인들과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말하자면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아주 일찍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무라도 지우듯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 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젠가는 정신분석 전문가한테서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신인 줄 아시나 보내요." 물론 이건 농담이겠고..  54
나의 비결, 그것은 물론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따로 또 같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자행되는 곳에 압박을 가하는것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55
어쨌든 내 인생은 긍정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었다고 봅니다.
당시에야 끔찍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긍정적이라는 것이죠.
굉장한 연애도 해 보았고..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베풁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56
이 책은 프랑스에서만 200만 부 가까이 팔렸고,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번역본이 나왔거나 현재 준비 중입니다. 유럽 이외의 국가로는 한국, 일본, 브라질, 미국 등이 있고, 심지어 중국에서도 올해 6월에 이 책의 번역본이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59
우리는 시민 대중이 보기에도 매우 불안해진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59
바로 이 시점에 시민 대중은 묻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겨우 본문 20쪽밖에 안 되는 제 책이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것은 전 세계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절감하고 있는 문제제기에 화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60
이 책을 잘 표현한 글이 최근 <르몽드> 지 서평 머리기사로 게재된 다으모가 같은 제목의 글입니다. "레지스탕스, 현재를 감전시키다 - '분노하라!' 는 현재의 우리들이 적절히 포착해 이용할 대상으로서, 전달의 몸짓으로서 더욱더 관심을 모으는 책이다." 왕년에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었던 한 노인이 역사에, '그들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기위해 노심초사하는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61
잘 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모든 시민에게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 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
세 단어로 짧게 줄이면 여전히 이것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
그런데 역사의 어느 시기에는 이 가치들이 다른 때보다 더욱 심각하게 문제시됩니다. 지금의 현실이 그러합니다. 
유명한 작가이자 경제학자인 호세 루이스 삼페드로는 '설령 다시 살 수 있다 해도 나는 지금 여기서, 당신 앞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전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옛날 레지스탕스 당시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상의 각종 네트워크(SNS)를 자유 자재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62-63
나는 호소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개혁하자고, 폭력은 거부해야 합니다. 우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 버리게 합니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빰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65
참여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정당..
어떤 특별한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기구, 협회, 운동 등에도 참여를 해야 합니다. 예컨대 세계인권연맹,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또 그린피스 같은 환경운동 단체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합(組合) 활동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항상 잘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교육도 부족하지만 정치적 창의성도 부족합니다.  66
극도의 빈곤 문제가 생태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테러리즘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68


'분노'와 '평화적 봉기'가 세상을 바꾼다(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분노는 삭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삶의 지혜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분노하라!"라는 직설적, 선동적 메시지는 생경하게 들릴 수 있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수시로 일어나는 심화(心火)를 직시하고 가라앉히는 것의 중요함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음공부'가 '공분(公憤)'과 '의분(義憤)'의 불씨를 마음속에서 꺼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화의 뿌리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일 때는 그 공적인 원인을 해결할 때만 화는 사라진다.  71
1970~1980년대 우리는 군사독재에 맞서 '군사적'으로 싸웠다. 거칠었다고, 과격했다고 비난해도 좋다. 폭압적 정치권력과 천민 자본주의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화운동의 기본 동기는 실로 분노였다. 수많은 열사와 투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처참하고 비통했다. 그리하여 각자가 방식으로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참여"했다. '국가폭력'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고 짱돌을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 '대항폭력'의 행사는 '사회적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로 인해 사람이 다칠 때는 몹시 자괴하고 고민했다.
당시 우리는 무엇을 꿈꾸었는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대표자를 직선으로 뽑는것, 시민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 야당과 자유로운 언론의 존재가 보장되는 것, 국가권력이 시민의 인권을 자의적으로 박탈, 제약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당시 우리들의 절박한 꿈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덕분에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이후 이꿈의 상당 부분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대거 그리고 급속히 후퇴하고 있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네티즌을 감옥에 넣고, 정부 통상정책의 문제점과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 작가, 기자, 피디와 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에 쥐를 그려 놓은 대학강사를 처벌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과잉범죄화'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검찰이다. 한편 정부는 정보기관의 불법적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대표적 시민운동가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걸고, 국방부의 '불온문서' 지정에 의문을 품고 헌법재판소로 달려간 군법무관을 파면한다. 참으로 천박하고 한심하다. 권위주의가 좀비가 되고 유령이 되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정치적 민주주의 근본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민주화를 이끈 대중의 분노와 그에 기초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적 민주화로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되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는 약자와 소수자 집단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의 대의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잇다. 몇 년에 한 번씩 투표자를 뽑는 기회를 가졌다고 민주주의 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의제가 엘리트나 강자가 자신의 지배를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정당화하는 장치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한편 "이제 국가의 최고 영역까지 금권의 충복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금권이 전에 없이 이기적이고 거대하고 오만방자"하게 위세를 부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삼성왕국'인지 헷갈리는 현실! 생물학적 기준에 따라 세세손손 시장권력을 대물림하면서도 견제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재벌의 모습은 '맘몬'(mammon)에 다름 아니다. "은행들은 우선 자기 들의 이익배당과 경영진의 고액 연봉 액수에나 관심을 보일 뿐, 일반 대중의 이익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은행 문턱은 서민에게 그 얼마나 높은가. 그런데 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은행은 재벌의 사금고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가.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최저 임금 상태를 표시하는 '빅맥지수'를 사용하자면, OECD 최저 수준의 한국 최저 임금 시급 4,320원으로는 맥도널드 빅맥세트를 사 먹을 수조차 없다. 정규직과 동일한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임금은 반 토막을 받는 비정규직이 무한정 양산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상위 20%가 부의 80%를 소유한다는 빌프레도 파레토의 '20대 80 법칙'은 확고히 자리를 잡앗다. 아니 한국 사회에서는 '10대 90 법칙' 또는 '5대 95 법칙'으로 변화하여 관철되고 있을지 모른다. 자산, 소득, 교육, 건강 등 여러 측ㅂ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정글이 되었다. 돌아보건대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진보건 보수건 간에 민주공화국의 원칙과 가치에 입각한다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고소영' 및 '강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는 데 여념이 없고, 이 정책을 비판하면 '좌파'라고 몰아세우기에 바쁘다. 이러하니 진보주의자 외에 합리적인 보수주의자, 상식을 존중하면서 성실히 살고 있는 중산층도 이명박 정권에 대하여 실망을 넘어 개탄을 표하고 있다. 이제 대중은 민주화운동의 후예들에게 시선을 옮기며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은 정치적 민주화를 위하여 싸우면서도, 동시에 "경제계,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 "특정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고 "노동계가 창출한 부를 정당하게 분배하는 일을 금권보다 중시"하는 체제의 수립을 꿈꾸었다.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 역시 꿈꾸었다.
당시 권위주의 정권은 이러한 꿈에 대해 '급진좌경' , '친북좌빨' 등의 딱지를 붙이고 처벌했지만, 이 꿈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꿈은 다 어떻게 되었는가? 자유로운 투표권이 확보되면 민주주의는 그냥 완성되는 것이던가. 진보의 본역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는 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잊혀버린 꿈을 되살릴 때다. 사실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정당한 대가의 확보, 부의 세습 방지, 일자리 주거 노후문제의 해결 등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던가.
한편 이러한 사회경제적 민주화 외에 어떠한 과제가 놓여 있는가. 수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에셀이 언급한 세 가지는 해결해야 한다. 먼저 언론개혁이다. 현재 :언론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되어 있다고 하면 과장인가. 신문은 물론 종합편성 태널까지 확보한 주류 언론은 사주와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급급하면서 빈자와 약자의 꿈과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공평무사한 정론직필을 스스로 포기하고 특정 당파의 선전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은 어느정도 수준인가. 독립은 커녕 정치권력, 시장권력 및 외세와의 공모와 공생을 질기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교육개혁이다. 현재 교육체제는 "'학교'의 이상과 너무 거리가 멀며, 부유층만을 위한 것으로 더 이상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충분히 계발시킬 수 없"음은 대다수의 시민이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입시경쟁에 내몰려 이 학원, 저 학원을 뺑뺑이 돌아야 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사육(飼育)이며 제도적 학대다. 학생이 성적에 따라 차별받고 '알짜-예비-잉여'로 등급화되는 학교 현실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긍심과 연대의식이 키워질 리 없다. 그리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방향으로 고착되고 있는 교육체제는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셋째, 소수자의 인권 보장 수준을 높여야 한다 OECD 가입국이자 G20에 속하느 ㄴ나라임을 자랑하짐나, 한국 사회의 다수자의 마음에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소수자에는 여러 집단이 있지만, 여기서는 외국인 노동자만 언급하기로 하자.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개구리처럼, 한국은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값싼 노동력이 다량 필요하기에 불법체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거칠게 말해 단물을 빼먹은 후 추방하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체제 아닌가.
이러한 진보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첫 번째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즉, "'항상 더 많이'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과속경쟁 사회는 구성원을 항상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구성원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다. 이제 '앞'만 아니라 '옆'과 '뒤'도 보는 사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때 "윤리, 정의, 지속가능한 균형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한다.
그렇다. 이제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 맞서서 "평화적 봉기"를 일으킬 때다. 이 '평화적 봉기'의 수단은 다름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종 기본권이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자. 온라인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과 횡포,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고 비판하자. 단호하게 그리고 발랄하게, 또한 무조건 투표하자. 투포하지 않는 자는 "암묵적인 찬동자"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현재의 상태를 묵인, 방조하겠다는 의사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이는 '중용'과 '중도'를 조언한다. 자신의 사유와 행동을 성찰하고 반대편과 소통하고 그 입장을 존중하고 공유점을 확보하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존 F. 케네디 역시 단테의 <신곡>을 재해석하며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자.  72-79


옮긴이의 말 - 어느 행복한 투사의 분노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목소리다.
기본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부디 분노하라고.  81
'레지스탕스(resistance)'는 동사 '저항하다(resister)'의 명사형이다. 분노할 실마리를 잡아서 분노할 줄 알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저항할 줄 안되, 마음속에는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82
왜 하필 '분노'인가? 분노(憤努)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여 벌컥 성냄이 아닌가? 여기에 번역의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인 명령문 '앵디녜부(Indignez-vous)!'를 처음에는 '분개하라!'로 번역하고자 했다. 프랑스어에서 '분노하다'를 의미하는 동사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 's'indigner'라는 동사의 뜻은 평정을 잃지 않은 채 '분개'하는 쪽에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정의에 어긋난 일에 비분강개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적인 원한에 복받쳐 욱하는 것이 아니라 옳지 못한 일에 '의분'을 표출하는 것이다. 
다만 상황과 맞물리는 호소력이 적잖이 축소된다고 보아 분노하라고 하게 되었다.  84





아래는 2014년 5월에 이 책을 다시 읽고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자랑스러운 사회일 수 있도록 그 원칙과 가치들을 다 같이 지켜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잉다. 이른바 '불법체류자' 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10

특정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며, 노동계가 창출한 부를 정당하게 분배하는 일을 금권(金權)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지스탕스가 제안한 것은 '파시스트 국가들의 모습을 본떠 구축된 전문적 독재에서 놓여난,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이었다.  11

진정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독립된 언론이다.
모든 어린아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12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업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15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16

무엇이 파시즘을 초래했는지, 프랑스가 무엇 때문에 파시즘의 침탈을 받았고 비시 정권이라는 괴뢰 정권이 세워졌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렇게 혼잣말을 하게 된다. '가진 자들은 이기적인지라 볼셰비키 혁명을 지독히 두려워했다'고. 그들은 그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생각없이 행동했다. 그러나 만약 그때처럼 오늘날 행동하는 소수가 일어선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17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 
사르트르의 저서 <구토> <벽> <존재와 무(無)>는 나의 사상 형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주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이것은 절대자유주의의 메시지였다.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 권력이나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참여해야 한다.  18-19

헤겔 철학은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의미 있는 어떤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그 의미란 인간의 자유가 한 단계 한 단계씩 진보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연이은 충격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도전을 염두에 둔 생각이다. 수많은 사회들의 역사는 좀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여 종국에는 인간이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됨으로써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국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를 이와 다르게 보는 관점도 있다. 자유, 경쟁, '언제나 더 많이' 갖기 위한 질주.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진보란 마치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폭풍처럼 체험될 수도 있다.  19-20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21-22

세계 인권 선언에 영어권 국가의 대표들이 제안한 '국제적(international)'이라는 말 대신 '보편적'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르네 카생 덕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이 당시에는, 인류를 겁박하던 전체주의의 위협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위협에서 해방되려면 유엔 회원국들로부터 이 선언에 나오는 보편적 권리들을 존중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내야 했다. 한 국가가 자국 영토에서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하면서도 버젓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강변을 깨부수는 하나의 방법이 바로 이 인권 선언이었던 것이다.  24

겉으로는 동참한다고 공온하면서 실제로는 약소국 정복을 일삼는 국가들의 위선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며, 신속히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나는 절감하고 있었다.  25

어떤 민족이 자신의 역사에서 교휸을 얻은 예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30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한다면, 폭력이란 도저히 용납 못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내린 유감스러운 결론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한다면, 테러리즘이 격분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격분은 부정적 표현이다.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 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격북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31

우리는 여전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39



저자와의 인터뷰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관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53

도덕이란 타인들과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말하자면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무라도 지우듯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젠가는 정신분석 전문가한테서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신인줄 아시나 보네요라고.  54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자행되는 곳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55

"나 나름으로 어떻게 문제해결에 참여할 것인가" 이 참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삶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하며, 마음 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56

이미 10여 년 전부터 우리는 세계화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더 이상 개개인의 노력에 응분의 보답을 해주지 않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신뢰하지도 않는 체계 속에 어느새 편입되어버렸습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의 믿음을 자아내는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사람들이 기꺼이 참여를 하고, 일들도 순조롭게 이루어져 갑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는 사람들이 이런 독백을 합니다. '아니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거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기가 바로 이런 시기입니다.  59-60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전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3

튀니지아 이집트의 문제들은 바로 이런 문제들입니다. 사람들은 압제 속에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행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튀니지의 젊은이들,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압박을 받으면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이슬람 문명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문명이라면, 그 문명 속에 갇힌 채 무력하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  64

제 이야기는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 혁명들은 대개 안 좋은 방향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나는 호소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개혁하자고, 폭력은 거부해야 합니다. 우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 폭력 행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증오만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며 복수심이 더욱 불타오를 뿐입니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 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책에도 썼듯이 제가 보기엔, 혹시 폭력적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희망뿐입니다.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참 어려운 구축(構築)작업입니다. 이 점, 우리 서양인들은 아시아 사회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65

'창조적 저항의식'으로 무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방법이 있을까요?
참여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중에 간단한 방법은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함으로 확실히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통해 지지를 표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형태의 참여 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어떤 특별한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기구, 협회, 운동 등에도 참여를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실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들이 숱하게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고 기권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도들이 민주적으로 잘 돌아가게 되기까지 시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일반인들이 항상 잘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교육도 부족하지만 정치적 창의성도 부족합니다.  66-67



추천사 - '분노'와 '평화적 봉기'가 세상을 바꾼다.(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분노는 삭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삶의 지혜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분노하라!"라는 직설적, 선동적 메시지는 생경하게 들릴 수 있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수시로 일어나는 심화(心火)를 직시하고 가라앉히는 것의 중요함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음공부'가 '공분(公憤)'과 '의분(義憤)'의 불씨를 마음속에서 꺼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화의 뿌리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일 때는 그 공적인 원인을 해결할 때만 화는 사라진다.  71

적어도 에셀이 언급한 세 가지는 해결해야 한다. 먼저 언론개혁이다. 현재 "언론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되어 있다고 하면 과장인가. 신문은 물론 종합편성 채널까지 확보한 주류 언론은 사주와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급급하면서 빈자와 약자의 꿈과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잇다. 공평무사한 정론직필을 스스로 포기하고 특정 당파의 선전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독립은 커녕 정치권력, 시장권력 및 외세와의 공모와 공생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교육개혁이다. 현재 교육체제는 "'학교'의 이상과 너무 거리가 멀며, 부유층만을 위한 것으로 더 이상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충분히 계발시킬 수 없"음은 대다수의 시민이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입시경쟁에 내몰려 이 학원, 저 학원을 뺑뺑이 돌아야 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사육(飼育)이며 제도적 학대다. 학생이 성적에 따라 차별박고 '알짜-예비-잉여'로 등급화되는 학교 현실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긍심과 연대의식이 키워질리 없다. 그리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방향으로 고착되고 있는 교육체제는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셋째, 소수자의 인권 보장 수준을 옾여야 한다. OECD 가입국이자 G20에 속하는 나라임을 자랑하지만, 한국 사회의 다수자의 마음에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소수자에는 여러 집단이 있지만, 여기서는 외국인 노동자만 언급하기로 하자. 올챙이 시절을 까맟게 잊어버린 개구리처럼, 한국은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가 되고 잇다 값싼 노동력이 다량 필요하기에 불법체류 여부를 가리지 앟고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드르이 인권을 침해하고, 거칠게 말해 단물을 빼먹은 후 추방하고 잇는 것이 한국 경제체제 아닌가.
이러한 진보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첫 번째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즉, "'항상 더 많이'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과속경쟁 사회는 구성원을 항상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구성원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다. 이제 '앞'만 아니라 '옆'과 '뒤'도 보는 사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때 "윤리, 정의, 지속가능한 균형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이제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 맞서서 "평화적 봉기"를 일으킬 때다. 이 '평화적 봉기'의 수단은 다름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종 기본권이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자. 온라인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과 횡포,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고 비판하자. 단호하게 그리고 발랄하게, 또한 무조건 투표하자.  77-79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존 F. 케네디 역시 단테의 <신곡>을 재해석하며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79 



옮긴이의 말 - 어느 행복한 투사의 분노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고,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고...
보편적인 권리, 기본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부디 분노하라고, 감정적인 외침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는 결기 어린 외침이다....
재앙의 화근에 분노하라는 것이다.  81

레지스탕스 정신은... 분노할 실마리를 잡아서 분노할 줄 알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저항할 줄 알되, 마음속에는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82

'앵디네부(Indignezvous)!'를 처음에는 '분개하라!'로 번역하고자 했다. 프랑스어에서 '분노하다'를 의미하는 동사는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s'indigner'라는 동사의 뜻은 평정을 잃지 않은 채 '분개'하는 쪽에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정의에 어긋난 일에 비분강개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적인 원한에 북받쳐 욱하는 것이 아니라 옳지 못한 일에 '의분'을 표출하는 것이다.  84


스테판 에셀의 <참여하라> 내용

스테판 에셀의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내용

스테판 에셀의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내용

Posted by WN1
,

저자의 작품 몇 권을 읽고 그 중에 <불안(Status Anwiety)>이란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 후에 저자의 작품들을 검색하여 여러권을 더 읽고 있다.
물론 한꺼번에 읽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여건상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ㅈ자의 작품중에 한국에 번역되어 들어온 모든 작품에 대한 검색과 도서관에 책 내용들을 훑는 작업은 하였다.
저자의 사랑에 관한 소설형식의 3부작중 첫 번째 작품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를 읽었었고, 두번째 작품(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이 아닌 세번째 작품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여러 책들을 살펴보면서 이 책을 먼저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책 내용에 대해 소개 내용을 읽은 것도 아니다. 다만 중간쯤에 실제 인물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한 생각으로 지금의 부인과의 사랑에 대한 관찰과 생각을 담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읽었다.
물론 이때까지는 한국말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그러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원서의 제목을 보고는 한국엔 제목부터가 역시 다르구나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대치와 기대방향에 대해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내생각 뿐일지는 모르나..
원제는 <Kiss & Tell>이다. 언뜻보면 키스와 대화정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폭로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헤어진 연인의 과거를 공개함'이라고 표현할 수 도 있을 듯하다. 직역을 하는것보다는 사람들에게(여기서 독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을 주의하기 바람) 먹히는 제목이 들어와야 하는건 당연한것일 지도 모르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불안>에서 원제를 먼저 확인하고 책을 보았기에 기대치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았었는데, 이 번 책은 그러지 못했다. 이건 분명 나의 잘못이다.
저자의 내용에 매력을 느꼈고, 사진을 먼저 보면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으니..^^

저자의 개인사를 모르기에 지금의 책이 가족인지 아니면 정말 지나간 연인과의 내용인지를 잘 모르겠으나, 실제 사진이 들어가 있기에 놀랍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출판이 가능했을까.. 상대에게 동의를 구할때 동의해 줄까.. 아니 실제 지금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쉽게 동의를 할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출판이 되었다고 해도 사회적인 파장이 꽤나 클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헤어진 이전 연인에게서 '너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사람이 그렇게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자신에게 강박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말이야.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밖에 사랑할 수 없어. 나도 남자들이 대부분 소통의 실마리를 잘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의 무능력은 짜증날 정도로 특별했어. 너는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떤 것이든 전혀 존중하지 않았어. 모든 것에 늘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로 접근했지.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 자기 귓불보다 멀리 있는 어떤 것에도 공감을 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나는 너무 긴 시간을 낭비했어...'(11)이란 내용의 편지를 통해 여성에게 더욱 다가가기 위해 '이사벨'과의 시간들을 통해 관찰해가면서 알아가려 많은 대화와 자신의 생각들을 서술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전기 작품의 형식을 빌어와 그 작품들에 들어갈 내용들과 저자들의 생각들을 이사벨의 전기형식 작품으로 변환해 나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많은 지식과 사유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즐거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는것이 저자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정말 저정도 까지 연인에게 질문들을 해도 괜찮은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알아가려면 차라리 저정도의 질문을 자신의 의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던지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읽어 나간다.
나 또한 남자 이기에 여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고 생각을 한다. 관련책들도 여러권 읽어보았으나 그것만으로 나와 다른 구조를 가진 부류를 이해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직접 겪어봐도 아직 그들에 관해 30%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언제쯤 70%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정도면 그들과 큰 마찰 없이 긴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헤어짐을 예시하면서 끝난다. 완전 공감한다. 
저정도까지 질문하는 건 넘어선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맞은건지, 아니면 이사벨이 다른 복합적인 이유들을 더 많이 가진건지 모르지만 헤어짐을 마주하면서 내용이 끝이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서도 여자에 대해 지식이나 지혜가 크게 늘어난것 같지는 않다. 책의 원제처럼 폭로를 통해 저자는 어떠한 생각들을 하였으며 그 생각의 부분 부분 들이 마음에 닿았기는 했다.
부러운것은 이들의 사고방식이 우리내 보다는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배워나가는데는 도움을 많이 받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여성들이 한숨을 쉬지 않을까..하는 갑작스러운 의문이 든다.
'이런 내용을 보고도 여자에 대해 모르다니'하면서 한 숨을 쉬는 그림이 그려지는건 혼자만의 우려일까..??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무디다' , '눈치없다' , '너무 모른다' 이러한 표현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생각이 드는걸까.. 어쩌면 앞서 언급한 저자의 옛 연인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 나에게 적용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더욱 열심히 보려 한 것일지도.. 나의 무의식이 이 책을 먼저 읽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나의 무의식은 다 읽고 난 지금 나에게 어느 정도나 실망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이해해보고, 나 자신을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에 푹 담가보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린 시절과 꿈을 통해 어떤 사람을 따라가보고, 라파엘전파에서부터 과일 맛이 나는 셔벗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향을 추적해본다는 생각. 나 스스로 전기를 써보면 어떨까?  18
오직 위인만이 전기의 적합한 소재가 될 수 잇다는 가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200년 전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 곤혹스러운 만장일치를 잠깐 흔들었지만 이내 무시되고 말았다. 존슨 박사는 '적절하고 충실한 이야기에 담아낼 가치가 없는 삶이란 없다. 모든 사라에게는 그 자신과 똑같은 조건에 잇는 사람이 아주 많으며, 그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실수와 실패, 회피와 임기응변은 직접적이고 확실한 쓸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태란 장식과 위장을 떼어내고 생각하면 매우 균일하여, 인류에게 공통된 것을 제외할 경우 좋든 나쁘든 다른 자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

나는 유년기를 선형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전기를 시작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내 전기가 철저하기를 바랐지만, 그럼에도 여기에는 과거만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고 또 현재로부터 나타나는 특정한 방식이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3
절대 인생에 대한 관점(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에번스턴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오래전 살았던 한 아일랜드인을 보는 관점) 자체를 쓰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오히려 편견이나 엉성한 학식에서 나온 관점으로 인한 왜곡으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운 상태에서 삶 자체를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단지 하나의 삶만 있다면, 저닉 작가들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에고와 미뢰의 쓸데없는 간섭에서 멀리 떨어져, 그 삶이 조심스럽게 편견 없이 재구축되도록 하는것이 핵심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다.  39
전기의 고상함을 인간적 애착이라는 저열한 영역과 절대 뒤섞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응을 해야 한다면, 애착과 전기를 쓰고자 하는 충동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즉 다른 사람을 완벽히 알고 싶은 충동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애착이 전기를 써나가는 다소간 의식적인 과정(날짜, 특징, 좋아하는 세탁 주기와 간식 등을 파악해 나아가는 것)을 포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전기는 작가와 대상 사이의 다소간 의식적인 감정적 관계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책을 마무리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프로이트는 '전기 작가들은 그들의 주인공에게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고착되어 있다. 많은 경우 그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그 주인공을 선택한 것은-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유로-처음부터 그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뒤에 그들으 ㄴ이상화라는 과제에 에너지를 쏟아, 주인공의 인상에서 개별적인 특징들을 지워버린다. 그 주인공이 평생에 걸쳐 내적이고 외적인 저항들과 싸워온 흔적들을 매끄럽게 다듬어버리고, 그에게 인간적 약점이나 불완전성의 자취를 용납하지 않는다.'  65-66

특정한 벽장이나 다락방 때문에 예정된 경로에서 벗어나 옆길로 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도대체 그녀의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바람을 피웠냐고 이사벨에게 물을 때 옆길로 새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그런 호기심은 (흔히 그렇듯이, 또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듯이) 나 자신의 삶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내고, 남들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더 선명하게 도드라질 어떤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느 ㄴ사람이나 전기에 대한 관심 가운데 그 근본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친구나 나폴레옹이나 베르디나 W.H. 오든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문제, 따라서 간접적으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하는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난 부분이 얼마나 될까?  89
자, 그럼 댁의 인생을 갖고 뭘 하고 계시는지 자세히 이야기 좀 해주실래요?  92

누군가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재촉하는 것은 총을 들이대고 재채기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정한 기억은 재채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25
실제로 과거를 기억할 때는 그런 것들과는 달리 손에 분명히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이 우리를 쫓아다닌다. 심지어 어떤 사건 같은 확실한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잇다. 이야기는 쏙 빠져버리고, 기분과 분위기만 기억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거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이사벨과 내가 목요일 퇴근 후 파링던 로드 근처 커피숍에 있을 때 그녀는 바로 그런 예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둘 다 사무실에서 종일 수다를 떨고 난 날이면 찾아오곤 하는 침묵의 분위기에 싸여 있있지만, 나는 그녀의 침묵의 길이가 문제의 신호일 수도 잇다는 느낌이 들어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가 대답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 있잖아, 이런저런 것들.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됐어."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마 잠 다음으로 그것이 가장 인기 있는 소일거리일 것이다.  132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 한 두 가지 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서 전개되는 혼란스러운 과정을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133
".. 지금 나는 사실 별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냥 구름 속에 파뭇혀 있었을 뿐이야."  136

남들에 대한 호기심은 자기 성찰을 피해가고자 할 때 애용하는 방법이다. 내적인 투쟁을 덮어버리고 인용을 할 권리나 편지 내용을 사용할 허가를 얻기 위한 싸움을 앞세울 수 있는 것이다.  150
섹스가 친밀성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사람이 친밀해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상징은 오히려 자신이 상징하는 상태의 실현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서로 알아가는 더 힘든 과정을 피하는 방법으로 상대와 잘 수도 있으니까. 마치 책을 읽는 일을 면하기 위해 책을 사는 것처럼.
"그럼 행복해지려면 뭔 해야 한다는거야?"
"나도전문가는 아니야. 그냥 상대와 미리 친밀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 같이 자버리는 게 반드시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얘기일 뿐이야."
"예를 들어 어떤 경험?"
"있잖아, 질투를 하고, 욕을 하고, 교활한 면을 보여주고, 토하고, 코를 풀고, 발톱을 깎고."
내가 둔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네 발가락에 무슨...?"
"아냐, 아무 문제 없어."
"그런데?"
"뭐, 발톱을 깎는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건 좀 사적인 거니까. 발톱이 발에 붙어 있으면 그건 괜찮아. 하지만 일단 떨어져 나가면 그건 쓰레기잖아. 예를 들어, 사람 머리에 난 머리카락을 보는 것하고 욕조에 붙어 잇는 머맅카락을 보는 건 다르잖아."
"그런데 왜 발톱을 깎는 게 섹스를 하는 것보다 더 친밀한 거야?"
"섹스를 하는 상대는 그 앞에서 발톱을 깎아도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일 뿐이야."  153
삶의 사적인 부분은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실제 이상으로 과시하려고 한다.  155
하지 못하는 키스가 하는 키스보다 더 흥미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190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자체의 특질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 상태와 더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94

공감의 핵심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 행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은 비뚤어진 시각 때문에 대체로 왜곡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운이 좋고 민첩하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적어도 잠시라도 우리의 상대성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197

이사벨은 그 무렵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를 다 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걸작이 매우 감동적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교환했다. 나는 어떤 책도 이 책만큼 죽음이라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 적이 없다는 그녀의 의견에 공감했지만, 그럼에도 나느 ㄴ그녀가 이반 일리치를, 그리고 그가 살았던 집과 그의 부인이나 가족의 얼굴을 어떻게 상상했느냐 하는 괴상한 질문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반적인 문학적 토론을 넘어, 단지 도덕성, 상징, 파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사람들, 또 방을 어떻게 보았느냐, 그런 무대용 소도구들이 너의 삶의 어디에서 유래했느냐 하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206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주파수가 다르고, 주어진 환경에서 눈여겨보는 것도 다르다.  208
사람들이 상황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런 뒤에 해석보다는 상황을 놓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방식을 증후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성적(rational)'이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이 말은 이사벨의 사전에서는 이런 뜻이고 내 사전에서는 저런 뜻이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매우 '이성적'이라고 칭찬하면 그녀는 그 말이 욕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녀의 사전에는
'형용사 
1. 따분하고 현학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2. 감정에 대립되며, 전통적인 가족의 이분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여동생은 감정적인 사람이고,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3. 가이가 그녀에게 한 적이 있는 욕이다.'
그러나 내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내 사전에서 정의된 항목이다.
'형용사
1. 고귀한 정신에게 바치는 찬사.
2. 조지 엘리엇, 마리퀴리, 버지니아 울프는 이성적이다.
3. 감정과 양립하고, 감정을 고양할 수 있다.'
이런 차이에서 발생한 작은 갈등은 하나의 사건이 서로 다른 설명을 낳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209-210

존슨박사는 '우리 모두 똑같은 동기에 자극을 받고, 똑같은 오류에 속고 희망에 힘을 얻고, 위험에 막히고, 욕망에 휩쓸리고, 쾌락의 유혹을 받는다.'
존슨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똑같은 단일한 가족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인간 공동체로 가는 여권을 기초로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당신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내 베개 밑에서 비슷한 동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똑같은 경험을 발견하여 당신의 경험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사랑 때문에 얼마아 괴로웠는지 안다. 나 또한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저녁을 견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질투를 인정한다. 나 또한 나의 부족한 면으로 인해 겪은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32-233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서 느낄 만한 것을 생각하여 그들이 영향을 받는 방식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 형제가 고문을 받고 있다 해도, 우리 자신이 편안하다면 우리는 그가 겪는 고통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오직 상상에 의해서만 그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상상에 의해 우리 자신을 그의 상황에 집어넣고 우리 자신이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상상으로 남들과 함게 고통을 겪는 것의 미덕에도 불구하고, 베개 이론의 우울한 전제는 남들의 경험을 진정으로 상상하려면 충분한 경험이 축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축적된 경험만으로는 절대 우리 자신을 넘어선 곳에서 만나는 감정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전제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233
사람들은 자신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우리가 그들의 경험이 어떤 것이지 알아야 한다는 가정 때문에 자기 경험의 본질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삐치기 잘하는 사람은 말을 하거나 비유를 들거나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 이전의 더 친밀한 수준의 소통이 좌절되었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직관이 고장이 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목청으 ㄹ가다듬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의 외로움을 일깨울 위험이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직접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235

누구나 감추는 것이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면을 알면 그 후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 뒤에는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이 알려지면 우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놓여 있다. 그래서 속임수를 쓰는 바람에 이따금씩 비밀이 드러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게 되면 부모 앞에 선 아이처럼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투명성에 대한 공포, 다른 사람이 선태긔 여지를 주지 않고 우리의 비밀을 알아낼 것이라는 공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공개를 좌우하는 주인이라는 생각, 우리가 남들보다 우리 자신을 잘 안다는 생각 때무넹 점차 줄어들게 된다.  240-241

어떤 사람의 행동이 중요할수록 그 사람의 하찮은 것들도 흥미를 자아낸다.  301
인간은 세 가지 전기적 범주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i] 특별하지만 평범한 일(의자에 앉거나, 자식을 낳거나)을 하는 것.
[ii]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살인을 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을 하는 것.
[iii] 평범하면서 평범한 일(포테이토칩을 먹거나 우표를 사거나)을 하는 것.  302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노부인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한쪽 여자의 남편에게 줄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래리한테 뭘 해줄 거야?"
"모르겠어. 올해는 아무 생각이 안 떠오르네."
"책을 사주는 게 어때?"
"그럼 무슨 얘기가 나올지 뻔해."
"뭐라고 하는데?"
"이럴거야. '내가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것도 모자라, 술꾼으로 까지 만들려는 거야?'"
굳이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하게 아는 것. 이것이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잘 안다는 완벽한 상징 아닐까? 가끔 오랜 결혼 생활의 우울한 특징으로, 바람을 피우거나 도예 강좌에 등록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조짐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시작한 말을 정확하게 마무리하는 드문 기술에는 큰 지혜가 담겨 있다.  316

"나도 왜 내가 머리를 올리지 않는지 모르겠어. 어쩌면 올려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건 내가 왜 치즈를 정육면체로 자르는지, 내 우편번호의 끝자리가 무엇인지, 나무 빗을 어디서 샀는지, 직장까지 거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내 자명종에 어떤 배터리가 들어가는지, 왜 나는 화장실에서 뭘 못 읽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야. 낳산테는 나도 이해 못하는 게 많아. 솔직히 말하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많고. 왜 너한테는 모든 게 그렇게 분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마치 사람들의 삶이 그 말도 안 되는 전기 안에 요약 정리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나한테는 나 자신도 납득할 수 없고 당연히 너한테도 납득이 안 될 괴상한 것들이 가득해. 나도 독서를 더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TV 보는 게 더 편해. 나한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툴툴거리는 사람들이 한번 달려들어보고 싶다는 의욕을 더 자극해. 나는 동정심을 발휘하고 싶지만, 행복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만, 차가 더 편해. 아기를 낳고 싶지만, 어머니가 되는 게 무서워. 내 인생에서 무너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8시 15분이 지났기 때문에 이러다 지하철을 놓치는 게 아닌가 안달하고 있을 뿐이야."  330-331


옮기고 나서
사람들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공감하게 되고, 공감하면 사랑하게 되느 ㄴ것일까? 다시 말해서, 아는 만큼 공감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 그관계를 떠나, 이 가정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332
'내 글은 모두 일종의 자서전이죠. 나는 늘 독자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련을 맺는 것,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아시아나 기내지 2010년 4월 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Posted by WN1
,

'Aal iswell' 세 얼간이 하면 떠오르는 표현이다. 
영화를 보면 이 표현이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본것은 2009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도 개봉을 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얼마전 <(영상소설) 세얼간이>를 보았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 책을 보면서 영화를 다시금 떠올리고 책을 읽은 후에 바로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영화는 매우 재밌다. 유쾌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 인도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영화로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인데, 보다보면 지금의 한국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왜 이런 표현을 쓰는지는 영화를 보면 누구나 공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영화에서 중점을 둔것으로 '공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친구'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있었다.

원작 소설인 이 책은 표지에는 영화의 포스터가 나와 있지만 실제로 영화의 내용과는 다소 떨어져 있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 소설을 접한 나로서는 처음 책을 덥었을 때 영화보다는 밍숭밍숭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내용을 정리해보면서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영화만큼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에서와 원작에서 공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에 두 가지가 위에서 언급한 '공부'와 '친구'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표현중에 '친구는 여자의 젖이다'란 표현이 나오는데, 책에서는 동일한 표현은 없지만 '친구'란 어떠한 존재이며, 자신이 진정한 친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에서보다 친구들은 더욱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함을 가진 존재들로 나오는데 더 현실적인 면이 강하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느낌으로 친구에 대한 생각을 재 정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친구이기에 친구라서 친구이다. 진정한 친구란 정말 어떠해야 할까...
선을 그어 표현한다는것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선을 그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우리들은 선을 그어 보려는 범주를 생각해 보려는 시도부터 필요하다. 
'나는 진정한 친구 인가?' 자문해 보는 시간이 었다.
이들이 함께 어이없는 일들을 꾸미거나 함께 할 때도 이들은 친구이기에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들은 얼간이라 보기 힘드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원작소설에서는 정말 이들은 얼간이 들이 맞다.
이들은 상식적이지 않은 얼간이 짓들을 함께 해나가면서 친구들의 우정과, 성장을 함께 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공부를 위한 공부인가, 자신이 원한는 것을 위한 공부인가?'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며 끌려 가고 있다.
온갖 자기계발서들이 주장하는 것 주의 하나이다.
맞는 말인지 알면서 우리는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음을 꼬집어 주는 내용들을 통해 반성의 시간과 다시금 고민해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
'우리의 세 주인공들은 고등학생 시절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수재들이다. 하지만 누구나 우러러보는 인도 최고의 대학, 입학만 하면 미래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바로 그곳에서 이들은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 점수였다.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과 인성을 갖고 있는지, 그으 ㅣ꿈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이미 논외가 되었다. 인도 공과대학(IIT)의 학생들은 단 하나의 목표,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에 현재으 삶을 기꺼이 희생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나는 이러한 질문을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보고 싶다. 당신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옮긴이의 말중에서 334)
우리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중심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끝없이 노력하고 배우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간다.
과연 그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래야 나이들어서 고생하지 않는다. 늙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아야만 한다.
누구나 한치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 돈만이 살길이라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과연 이러한 사실들의 근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기득권의 세뇌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위해 조금만의 노력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신경제와 약간의 철학과 산업사회 이후의 역사흐름을 알게되면 그러한 사실을 간파해 낼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해도 여러 분야의 내용이라 지래짐작으로 겁을 낼 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알수 있는 내용들이란 사실이다.
누군가 신문은 '사실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사실만 알고 진실을 알지 못하는 생활을 꼬집고 있는 책을 통해 즐거운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열망으로 벌써 영화를 본 횟 수가 8번을 넘어 간다..



'이 겁쟁이 같으니라고,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지, 끝내고 나면 분명 엄청나게 기분 좋을 거라고,'  39

'IIT가 배출한 위대한 공학자 혹은 과학자가 몇 명이나 되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수많은 최고 경영자나 기업가들이 IIT 출신이잖아.'
'내 말은 IIT가 인도 최고의 대학으로 치부된다는 거야. 10억 인구가 사는 이 나라의 최고 공과대학으로 말이야. 그런데 IIT가 뭐 특별히 발명해 낸 거라도 있어? 아니면 인도에 기술적으로, 기여한 거라도 있느냔 말이야.'  47

'질문은 딱 하나야. 넌 인생에서 뭘 원해? 2분 줄 테니까 생각해 봐.'
인생에 대해선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121

'IIT의 시스템은 4년간 생쥐들이 경주를 벌이는 것처럼 머리 쓰는 일도 없이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게 합니다.'  124

라이언은 그의 윤활유 연구 제안서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라이언이 무너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좀 우울했다. 녀석은 일주일에 3일 가량을 컴퓨터 센터나 도서관에서 밤을 보냈다. 게다가 낮 동안에는 유체역학 실험실에서 윤활유를 이것저것 섞어 보며 지냈고, 그런 다음 그것들을 자기 스쿠터로 시함해 봤다. 나는 라이언에게 상반신을 홀딱 벗은 장면이 여섯 번도 더 나오는 영화가 프리야 극장에서 상영중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녀석은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다시 새 칵테일 제조법으로 녀석을 꾀어 보앗지만 이 자식은 하룻밤에 그저 커피 여섯 잔을 연속으로 들이켜기만 했을 뿐이다.  149

얘들은 모두 벽과 벽돌에 단단히 둘러싸여 있어. 그래서 정말 자신이 누구인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고 있지. 난 걔들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어.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데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 전에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라고 말이야.  166

Posted by WN1
,

심리학 도서들을 꽤 읽은 편이다. 그렇다고 많이 알지는 못한다. 읽을 때 마다 자신에게 비추어보는 수준뿐이지만, 읽어나가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며, 그렇게 조금씩 발전하면 조금은 더 나은 자신이 될 수있을것이란 기대를하면서 읽는다.

이번책은 1부를 읽어나가면서 매우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조금은 논문적인 글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이해가 쉽고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심리학 도서를 읽어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며, 실제로 아는 내용들이다. 다만 그것을 도식적으로 표현함으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나 'P-A-C'라는 부모자아와 어른자아 그리고 아이자아에 대해 구분하며 그것들이 정상적인 작용이 아니라 편견(오염)과 망상(배타)의 과정을 가질때 우리의 반응은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들은 소통에 필요한 자신의 문제점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교차적인 의사소통이 한쪽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 볼 수 있었다.

40여년 전에 씌여진 책이다. 그만큼 오래된 책이라 검색을 해봐도 책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나오지 않는다. 먼저 오래된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내가 알기로 이 내용에서 발전되어 가지들이 뻗어져 나갔다. 여러 책들을 읽어보면 그러한 내용들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의 정신분석학의 발전인데 책 내용에서 이전의 심리학적인 치료들이 잘못된 부분을 꼬집어 주고 있는데, 그 내용을 비추어 정신분석학의 발전의 깊이와 시간이다. 
그들은 오랜시간 반복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을 기억에 두고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일반적인 시민들의 생활에서 그들의 발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부러운 점이다.
분석적인 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적용이 그만큼 오랜 시간을 거쳐 발전해 나왔기에 한참 뒤떨어져 따라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동양은 유교적 불교적 문화가 지배하기에 어쩌면 분석적인 것보다 모호한 부분은 있지만 더 뛰어난 정신수양을 배양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때론 맹목적으로 따라가기에 분석적인 방법이 더 좋은것 처럼 보일 수 있다.
조금은 더 객과적인 눈으로 두 방법을 바라본다면 더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이러한 정신분석학 책들을 여러권 보면서 객과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을 관찰해 보곤한다.
일단은 그들의 생활에서의 모습들이 부러운 부분들이 많다. 또한 그 시스템이 그만큼 교육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부러운 부분이다.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 인간의 의사소통과 행동방식에 관한 이론체계인 동시에 이에 관한 치료 방법인 교류분석은 전통적인 심리치료의 모호함과 난해함에 절망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것은 순응이 아니라 변화를 원하는 사람드에게, 적응이 아니라 탈바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답을 제시해 주었다. 교류분석은 과거에 벌어진 일과 상관없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책임ㅇㄹ 져야 한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치료법이다. 또한 교류분석은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게 해주고, 자제심과 자발성을 기르게 해주며, 선택의 자유라는 엄연한 현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6
정신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도 자아에 대한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  7
교류분석이 가장 궁극적으로 꼽는 인생의 태도는 '나도 옳고 남도 옳다'는 자기긍정-타인긍정의 태도이다.  13

'내부의 인격들'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 있으며, 정신분석 사상가들의 견해를 담은 수백 권의 책들은 내부의 인격들에 대한 내용임을 자처했음에도 적절한 답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20
전문가 세계에서 통용 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심리학자들의 말이 진실이고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을까?  21

이 책의 목적은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지식의 절반도 활용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답을 밝히는 것이다.  23

인간의 '행동역학(dynamics of behavior)이라는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이론이 있긴 한 것일까?  23

'측두렵의 자극으로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회상은 과거의 경험을 하나도 틀리지 않게 고스란히 담고 있다.'  29
결론은 인간의 뇌는 고성능 녹음기와도 같아서 출생 시점부터 심지어는 태어나기 전부터 겪은 모든 경험을 테이프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 무언가에 의식적으로 집중할 때마다 그는 이와 동시에 좌우의 측두엽 중 한곳에도 그 일을 기록한다.  30
'측두엽을 자극하면 착각(illusion)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인지적인 착각(illusion of perception)에 속한다.'  31
교류분석이란 '내가 어떠한 행동을 보여주면 너도 이에 반응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교류를 분석한 뒤, 인간의 다양한 본성 중 어떤 부분이 '등장하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34



부모자아
부모자아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부모나 부모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보인 행동이나 의견이 이 '기록 테이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고 들은 부모의 행동과 말이 부모자아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 5년 동안 외부의 자극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부모자아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39
부모자아에는 아이가 부모와 생활하면서 보고 들은 모든 훈계와 규칙, 법칙이 기록되어 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갓난아기 시절에 부모의 어조나 열굴표정, 포옹, 그 외의 애정표현 등을 통해 비언어적으로 해석하고 입력한 의사소통에서부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부모에게서 들은 각종 훈계와 규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부모 자아에 기록되어 있다.
부모자아에는 행복에 겨워 내뱉는 엄마의 즐거운 탄성과 자부심에 가득 찬 아버지의 들의양양한 표정도 기록되어 있다.  41
부모 자아에 존재하는 기록의 재생은 평생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부모자아의 또 다른 특징은 기록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모는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한다.  42
부모자아의 데이터는 스테레오 사운드처럼 양방향에서 기록되어 잇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 군데에서 나오는 소리가 조화를 이뤄서 함께 흘러나온다면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43
부모자아는 실제 부모 외에 다른 곳에서도 데이터를 얻는다. 아이는 하루에 몇 시간씩 TV를 보면서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한다.  
손위의 형제자매나 주위의 다른 어른들과 함께한 경험 역시 아이의 부모자아에 기록된다. 아이가 외부상황에 대해 이의나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 외부 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부모자아에 그대로 기록된다. 물론 아이가 겪는 모든 외부경험이 부모자아에 전부 기록되지는 않는다.  46

아이자아
자신이 직접 보고 들으면서 보인 반응도 기록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언어전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보이는 반응은 '감정'이 고작이다.  47
자신을 향해 찡그린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데이터 저장소에 또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추가한다. 내 잘못이야. 내가 또 잘못했네, 난 항상 이래. 내가 원래 그렇지. 난 왜 이럴까.  48
'훌륭한' 부모를 둔 아이가 자기부정의 아이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이 아이의 부모가 실제로는 아이를 완전히 무시했거나 학대했거나 잔인하게 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49
아이자아에는 창의성, 호기심, 탐구심,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를 비롯해 무언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순수한 기쁨에 대한 기록이 모두 담겨 있다.
엄마가 기분 좋게 안앚주면서 얼러준 경험과 좋아하는 담요릐 부드러운 촉감을 느낀 경험 등 호의적인 외부사건을 접하면서 생겨난 긍정적 반응 역시 훗날의 교류에서 그대로 재생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 모두를 관찰한 결과, 우리는 행복한 감정보다는 자기부정의 감정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부정의 아이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50

어른자아
10개월쯤 되면 아기는 자신만의 뜻과 생각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이 시작되면서 어른자아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생각한 개념을 발전시킨다.  52
어른자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에게 어른자아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효과적인 기능을 발휘한다.  532
'조각조각 입력된 자극을 정보로 전환한 뒤, 과거의 경험에 따라 이런 정보를 처리하고 취합'하는 것이 어른자아의 주된 역할이다. 
어린아이는 어른자아를 통해 자신이 배우고 가르침 받은 삶(부모자아)과 느끼고 꿈꾼 삶(아이자아), 그리고 혼자 힘으로 이해한 삶(어른자아)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54
어른자아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터와 같다.
부모자아나 아이자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입장에서 이 두 자아를 검토하는 것이 어른자아의 목표이다.  54
부모의 명령과 훈계가 현실에 맞을 경우 아이는 어른자아를 통해 전체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옳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는 이리저리 시험해 본 뒤 시험대상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56
어른자아의 또 다른 기능은 확률 예측이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확률 예측의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잇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연습하고 사용하면 어른자아의 크기와 효율성이 증가할 수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른자아가 손상되면 감정이 지배적인 힘을 휘두를 수 있다.  57
경험이 똑같이 재현될 것 같다는 신호가 물밀듯 밀려오면 경계선이 무너질 수 있다.  58
어른자아는 오래된 데이터를 체크해서 그것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한 뒤 이것을 미래에 사요하기 위해 재정리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행한다. 이일이 원만히 진행되고 과거에 주입받았던 삶과 현재의 삶 사이에 모순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른자아라는 컴퓨터는 창의성이라는 중요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59
부모자아의 데이터 없이 모든 행동을 할때마다 처음부터 일일이 복잡한 결정을 내려햔 한다면, 우리의 컴퓨터의 창의적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60

아기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 반복해서 아기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 다시말해 스트로크가 필요하다. 스트로크가 없으면 아기는 죽는다. 심리적으로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  69
교류분석에 의하면 개인은 다음 네 가지 삶의 태도 중 하나에 머무르면서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결정한다. 
1. 자기부정-타인긍정(I'm not ok-You're ok)
사람들이 이 태도를 평생 동안 유지하려고 할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첫 번째 방법은 자기 부정의 상태를 확인해주는 인생각본(life script)에 맞춰 사는 것이다.
좀더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부모자아 데이터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대항각본(counterscript)'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부정의 태도가 인생각본을 만든다면, 타인긍정의 태도(당신처럼 되고 싶어)는 대항각본을 만든다.  74-75
2. 자기부정-타인부정(I'm not ok-You're not ok)
자기부정-타인부저으이 태도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아무 희망도 없는 그는 삶을 단산히 견뎌낼 뿐이다.  
몇몇 학자들은 평상시보다 훨씬 적그적으로 스트로크를 행할 때 아기가 이런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7-78
3. 자기긍정-타인부정(I'm ok-You're not ok)
아주 오랫동안 부모의 학대를 받게 되면 아이에게 처음으로 자기긍정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자기긍정-타인부정 태도를 지닌 사람은 스트로크 결핍에 시달린다. 스트로크를 행해주는 사람이 옳은 범주에 들어갈 때에만 긍정적인 스트로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틀린 사람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스트로크가 전혀 없다.  81
4. 자기긍정-타인긍정(I'm ok-You're ok)  
처음 세 가지 태도를 형성하는 토대는 감정이다. 네 번째 태도를 형성하는 토대는 사고, 믿음 그리고 행동결과이다. 처음 세 가지는 '왜'와 관련이 있다. 네 번째 태도는 '왜 안돼?'와 관련이 있다.  82 
부정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긍정적 태도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 세 가지 태도를 형성하게 된 원인인 어린시절의 비극적인 경험을 파헤치고 현재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이런 태도를 영원히 굳히는지 입증하는 것이다. 
자기긍정-타인긍정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임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 아무리 결심한다 해도 아이자아에 존재하는 부정적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85
자기긍정-타인긍정의 태도를 취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긍정적인 감정태도가 즉시 자리 잡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결심만 한다면 우리가 선택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방해하려는 낡은 기록이 재생되는 것을 방지할 수는 있다.  85-86

부모자아와 아이자아의 데이터는 과거의 데이터이다. 어른자아의 데이터는 외부의 현실을 반영한다.  88
어른자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만이 인종위기가 자신의 행복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어른자아만이 추가적인 데이터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른자아만이 오예제도가 아주 나쁜 것이며, 흑인들이 시위를 일으킨 것은 물건 취급을 당한 굴욕감과 절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링컨의 말처럼 어른자아만이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원칙으로는 현재의 분란을 잠재우지 못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어른자아만이 '모든'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다.  90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의지대로 변화할 수 있는 자유, 반복적인 자극과 새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는 자유를 얻게 해주는 것이 교류분석의 목적이다.  92
교류분석의 치료목적은 변화의 자유를 되찾는 것이다. 부모자아와 아이자아에 어떤 데이터가 들어 잇는지 파악하고 이런 데이터가 현재의 교류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 변화의 자유가 발생할 수있다. 또한 변화의 자유를 회복하려면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진시, 다시 말해 '증거'를 얻어야 한다. 
변화의 자유를 얻으려면 '알 수 있는'분야뿐 아니라 확립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어른자아의 또다른 기능인 확률 예측을 적절히 이용할 때에야 이런 탐구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94
인간은 세 가지 요인 때문에 변화를 원한다.
첫째로는 크게 상처 입을 때이다.
둘째로 사람들은 천천히 다가오는 절망감. 다시말해 권태감이나 따분함을 느낄 때 변화를 원한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셋째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한다.  95-96

어른자아의 힘을 기르려면 무엇보다도 부모자아와 아이자아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잇어야 한다.  133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힘은 자제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어른자아의 힘은 부모자아와 아이자아의 반응을 제지하는 데 있다.
부모자아와 아이자아를 식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내부의 대화를 모니터하는 것이다. 134
어른 자아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는 것이다.  135
에리히 프롬은 '건설적인 성격(어른자아)을 가진 사람은 준다는 것에 대해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주는 것은 자신의 힘을 최고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무언가를 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힘과 부와 권력이 잇음을 절감할 수 있다. 내 힘과 생명력을 최대한 실감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내게 넘쳐 흐르는 것을 베풀고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에 나는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큰 기쁨을 선사한다.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가장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자기긍정)'  137



















































































(138페이지는 어른자아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하여 6가지로 나누었는데,.. 나의기준으로 3가지로 압축한다.)
첫째, 신호를 파악하는 방법을 익힌다.(아이자아와 부모자아에 대한)
둘째, 현실과 분리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한다.
셋째, 가치체계를 개발한다.  138

(그림27)
(a) 부분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검토되지 않은 부모자아 데이터로 인해 어른자아가 오염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편견이다. 선입관.  141
(b) 부분은 아이자아에 의한 어른자아의 오염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래전에 겪었던 감정이나 경험을 현재도 겪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때 발생하는 오염이다. 망상과 환각이다. 망상은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다.  142
환각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발생한다.
'배타' - 배타는 위협적인 상황에 닥쳤을 때 개인이 계속 유지하는 정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태도를 의미한다. 각각의 다른 두 가지를 보완하지 못하고 서로 완전히 배타적으로 굴 때 불변의 부모자아, 불변의 어른자아, 불변의 아이자아가 만들어지게 된다.  143


즐길줄 모르는 사람 (그림28)



어른자아가 아이자아에 완전히 오염되어서 부모자아를 차단한 사람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진짜 부모나 부모 역할을 한 사람이 매우 잔인하고 무섭게 굴었을 때, 또는 이와 정반대로 부모가 아이의 응석을 있는 대로 다 받아 주었을 때 이런 상태에 빠지기 쉽다.  146
자신이 붙잡힐 것인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다른 사람이 얼마나 고통받을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147




양심이 없는 사람 (그림29)

어른자아가 완전히 차단된 사람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정신질환자이다. 그들은 어른자아가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감각이 전혀 없다.  148











황금률이 적절한 안내지침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이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가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그것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268
의미치료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은 오늘날 젊은이들의 절망에 대해 논하면서 그들은 소위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실존적 공허 속에서 각각의 개인은 자신만이 우주의 중심이므로 아무리 합리적인 주장일지라도 자신을 '배제한 체'행해지는 주장을 일체 부인한다. 이런 실존적 공허에서는 주관적인 도덕성만이 존재한다.  270
객관적인 도덕질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덕질서란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든 아니면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해서든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그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잇게 해주는 수단을 의미한다.  271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이냐는 질문에 존스 홉킨스 대학교 정신과 교수 제롬 프랭크 박사는 '우리 인간은 가끔씩만 합리적으로 굽니다. 저는 우리 인간이 떠안고 있는 아주 많은 두려움과 감정적 긴장이 명확한 사고를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306

Posted by WN1
,


'불안'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음' , '분위기 따위가 안정되지 않고 뒤숭숭함'이다.
이 단어를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인간 존재의 밑 바닥에 자리잡은 허무(虛無)로부터 비롯하는 위기적 의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심리적인 것이다. 불안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적 단어이다.

우리는 불안을 늘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은 자신이 해 보지 않은 것을 하려 할때 언제나 불안감이 언습한다. 또한 일상에서도 자신이 늘 하는 것과 거리가 있는것일 수록 불안감을 더 느끼게 된다.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거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도 한다.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면 우리는 불안이 엄습하는 느낌을 가진다. 이유를 모르기때문이다. 즉 우리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 발생할 때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저자의 원인 규명과 해법을 서술한 책이다.
'불안'이란 단어는 매우 포괄적이다. 
책의 제목은 단순하게 불안이란 표현을 하였지만, 원서의 제목은 <Status Anxiety> 즉,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저자는 불안 중에도 인간이 많이 느끼는 것 중의 하나인 지위에 대한 인간적인 불안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원인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안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원인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며, 그에 대한 해법으로는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이다.
한국사람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저자의 철학적 사색과 철학자들의 사색을 통해 우리는 위안과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계화에 의한 발전과 압도적인 신자유주의자들의 등살에 대한민국은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그것은 더 나은 직업과 더 나은 지위를 얻지 못하면 안 된다는 심리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의 기득권층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만의 즐거움과 권력을 위해 같은 세대간의 경쟁, 세대간의 경쟁, 진입장벽등을 통해 억누르고, 교육을 통해 이겨야만 한다는 세뇌를 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신세계>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이미 태어나고 무의식상태로 세뇌되어 태어날때부터 자신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고 느끼는 그러한 상태가 지금의 이 시대에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심리적인 무력감에 기인한다.

우리가 조금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보고 주입된 주관성이 아니라 좀더 넓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그것이 보이게 된다.
보통의 생각과 접근을 따라가면서 객관성에 조금더 가까이 가게 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이 간 내용들은 철학과 보헤미안이며,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던 부분은 예술과 기독교 였다.



정의 
지위 -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지위(status)는 신분이라는 뜻의 라틴어 statum('서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stare의 과거분사)에서 파생되었다.
        - 좁은 의미에서 이 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가리킨다(기혼자, 중위등).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키며, 이 책에서는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自我像)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안타까운 것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지위는 자신의 실수와 실패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우리의 가치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명제 - 지위에 대한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잇다.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자극하며, 남들보자 나아지도록 고무하며, 남에게 해를 주는 괴팍한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며, 공동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결합한다. 그러나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7-10


원인
I. 사랑결핍
지위와 관련된 사랑을 받는 사람 역시 낭만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16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The Theory og Moral Sentiment)>에서 "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삶의 조건의 개선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게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18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22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겨겨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23




II.속물근성
'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옆에 sine nobilitate(이것을 줄인 말이 's.nob.'이다), 즉 작위가 없다고 적어놓는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28
신문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 진다. 속물은 독립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33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35
젊은 시절에 속물근성에 분개했다고 해서 그 뒤에 스스로 속물이 되어가지 말란 법도 없다. 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36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38

III. 기대
18세기 초 영국에서 서양의 위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농경 기술 덕분에 생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산업과 교역이 늘게된다.
증기기관과 면 역직기로 사회적 기대가 바뀌었다. 도시 규모가 급격히 팽창했다. 
사치품은 일반용품이 되었으며 일반용품은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46
유럽과 미국 전역에 거대 백화점이 문을 열고, 과학기술 발명품이 속속등장한다. 
전역에 쇼핑몰의 발전은 새로운 갈망들이 생겨났다. 1970년대에 이르자 미국인들은 일터와 쇼핑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55
어떤 것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準據集團),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설사 웃풍이 심하고 비위생적인 오두막에 살면서 크고 따뜻한 성에 사는 귀족의 지배에 시달린다 해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사는 것을 본다면 우리의 조건은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57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겨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투할 사람도 늘어난다.  60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1835)의 '왜 미국인은 번영 속에서도 그렇게 불안을 느끼는가'라는 제목의 장에서 불만과 높은 기대, 선망과 평등의 관계를 끈질기게 분석한다.
"..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자살률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살은 드문 대신 광증이 다른 어느 곳보다 흔하다고 한다."  67
하버드 심리학 교수인 제임스는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체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 = 성공/잠재력'
제임스의 방정식은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71
장-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에서 다들 야만인과 근대의 노동자 가운데 노동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정말일까 하고 물었다.
루소의 주장은 부에 대한 명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근대 사회는 첫 번째 방법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욕망에 줄기차게 부채질을 하여 자신의 가장 뛰어난 성취의 한 부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발전하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80-81

IV. 능력주의 
예수가 전도를 시작한 서기 약 30년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미에 대하여 세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그것을 믿을 수만 있다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불안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 -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두 번째 이야기 -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세 번째 이야기 -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기 30년부터 1989년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그것들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86-95
안타깝게도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괴로운 이야기 세 가지가 생겨나 꾸준히 영향력을 늘여가면서 앞의 이야기들에 도전하게 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있다.
버나드 맨드빌은 운문으로 쓴 소채자 <벌의 우화>를 발표했고, 이것이 부자와 빈자를 바라보는 방법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97
두 번째 이야기 -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세 번째 이야기 -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새뮤얼 스마일스는 <자조>(1859)에서 궁핍한 젊은이드에게 높은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고, 신중하게 돈을 쓰라고 권한 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돕는 정부는 비난했다. '사람들 대신 일을 해주면 그들에게서 스스로 그 일을 할 동기와 필요를 빼앗게 된다. 법을 인간 발전의 동인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과대평가다. 아무리 엄중한 법이라도 게으른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 수 없고, 낭비벽이 심한 살마을 검소하게 만들 수 없고, 주정뱅이가 술을 끊게 만들 수 없다.'  116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119

V. 불확실성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생계를 우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위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① 변덕스러운 재능
지위가 성취에 의존한다면 성공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은 재능과 그 재능을 믿을 만하게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124
② 운
우리의 지위는 '운'이라는 말로 느슨하게 얽어 넣을 수 있는 어떤 범위의 우호적 조건들에 의존하고 있다.  125
승자는 운을 만든다. 이것이 현대의 주문(呪文)이다.  127
③ 고용주
삶의 조건의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의 지위 문제가 고용주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  127
④ 고용주의 이익
고용의 안정성은 조직 내의 정치만이 아니라 회사가 시장에서 계속 이윤으 ㄹ내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132
⑤ 세계 경제
회사와 종업원들의 생존은 경제 전체의 성적 때문에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134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136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엊지 않는 법이다.  137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느 것,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142-143



해법
I. 철학
명예의 문제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 결투하는 관습)  비난하는 눈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그러는 우리도 그런 사람들의 정신구조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공휴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경멸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 역시 다른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도 성질 급하게 결투에 나서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152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쇼펜하우어 <소품과 단편집>(1851)
'자연은 나에게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할 뿐이다. -샹포르 <격언집>(1795)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라기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에픽테토스 <어록>(100년경)  154
철학은 외부의 의견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다. 상자를 하나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살마들의 인식은 모두 이 상자에 먼저 들어가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참이면 더 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만일 거짓이면, 웃음을 터뜨리거나 어깨를 으쓱하고 털어버리는 것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철학자들은 이 상자를 '이성'이라고 불렀다.  


철학은 성공과 실패의 위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과정을 재구성할 뿐이다.  159
감정은 과녁을 넘어가거나 못 미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이성을 이용하여 감정을 적절한 목표로 이끌라고 충고해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데미아 윤리학>(기원전 3590년경)에서 인간 행동은 제어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보통 극단으로 흐르는 오류를 범한다고 예를 들어 설명한 뒤, 지혜로우면서도 침착한 중도(中道)를 이상으로 제시하면서, 이성의도움을 받아 중도에 이르는 것을 행동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160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서글픈 동시에 묘하게 위안이 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야기해왔다. 어떤 문제이든 다수의 의견에는 혼란과 오류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샹포르는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아첨을 하듯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단순화와 비논리, 편견과 천박함으로 얼룩뎌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가장 터무니없는 관습과 가장 어처구니없는 의식들이 '하지만 그것이 전통이야'라는 말로 용인되고 있다.'  163
철학적인 접근 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번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164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느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적 연세주의의 중요한 모범을 보여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165
쇼펜하우어는 묻는다. 정말로 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
'만일 청중 한두 사람만 빼고 모두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우렁찬 박수 갈채를 받는다 해서 연주가가 기분이 좋을까?'  166
이렇게 인간성을 통창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166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줄어 들수록 더 낫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67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168

II. 예술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많은 논평자들이 이런 답을 내 놓았다. 별 쓸모가 없다.  171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영국 문단에서 시인이자 비평가인 매슈 아널드는 제안한다.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예술가들이 이런 갈망을 늘 노골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스스로 그런 갈망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174


(저자는 소설 그림 비극 희극 유머를 예로들며 예술작품이 인간의 균형을 위한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비극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평소보다 훨씬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잡품을 통해 실패의 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많이 아는 것은 곧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211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1905)에서 '우리는 농담을 통해 장애 때문에 공개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적의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
'농담의 형태가 아니라면 결코 듣지 않을 사람의 귀에도 들어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농담을 특별히 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23
만화가들의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적 목표는 유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런 식으로 조롱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234

III. 정치
지위를 분배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244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246
부를 축적한 사람은 일단 주요한 미덕이 적어도 네 가지는 있다고 칭송을 받는다. 그 네 가지란 창의성, 용기 지능 ,체력이다. 
돈에는 윤리적 가치가 부여된다. 돈은 그 소유자의 미덕의 증거다.  248
이런 이상이 아무리 자연스러워 보인다 해도.. 이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이다.
소스틴 베블런의 <유한계급론>(1899)에서 한 말에 따르면, 상업 사회에서는 덕은 잇지만 가난한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무리 물질주의적인 태도와 거리가 먼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도 부를 축적하여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불명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요구를 느낄 것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불안한 마음과 책임감에 시달릴 것이다.  249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필수품'으로 꼽히게 되었다.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으면 아무도 품위 있는 살마이라고 여기기 않으며, 따라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50
근대으 성공적 삶이라는 이상은 돈과 선(善)을 연결시킬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연결도 시도한다. 즉 돈과 행복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념은 세 가지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로 근대 문명에서 접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직업과 소비재가 우리의 행복과 별 관계없이 욕망만 부추기는 번지르르한 소모적 전시품이 아니라, 실제로의 가장 중요한 요구 몇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쓸 수 있는 돈이 많을 수록 제품과 용욕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258
이런 가정들에 반박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읽기 쉬운 책은 여전히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다.  259
선사시대에는 인간이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에서 살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숲에 살면서 장을 보지도 신문을 읽지도 않았다. 루소는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더 수비게 이해했으며, 만족스러운 삶의 핵심적인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상상한다.  260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68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269
존 러스킨은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삶'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  271
토머스 칼라일도 <미다스(Midas)>에서 '우리는 삶의 호화로운 장식은 소유하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 사는 것은 잊어버렸다... 우리는 현금 지불이 인간들의 유일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273-274

사회적 위계 때문에 아무리 기분이 상하거나 난처해지더라도 우리는 그런 위계가 너무 뿌리가 깊고 너무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 위계를 지탱하는 공동체나 신념들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이런 위계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여 체념을 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275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들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이런 과념들은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면 결코 지배를 할 수가 없다.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사회에 방출된다. 그것은 신문, 광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교과서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느 ㄴ자신이 편파적인, 어쩌면 비논리적이고 부당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자신은 그저 오래된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며, 오직 바보나 미치광이만이 여기에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278
'꼭 이래야 하는가?'
억압적 상황은 영원한 고통을 겪으라는 자연의 심판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변화 가능한 어떤 사회 세력들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잇다. 이렇게 되면 죄책감과 수치감은 이해로, 지위의 더 평등한 분배 방식에 대한 탐구로 바뀔 수도 있다.  279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시자에게 묻게 된다.  281
정치적 관점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다. 분석을 통하여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그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어리둥절한 채 우울한 표정으로 대응하던 태도를 버리고, 눈을 똑똑히 뜨고 그 원인과 결과를 계보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84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 준다. 그 결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288

IV. 기독교
죽음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의미있는 활동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기독교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생각은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 진정한 사회관계, 자선에 대한 강조는 공통되는 것 같다. 또 권력, 군사적인 힘, 금전적인 야욕, 명예에 대한 관심을 비판하는 것도 공통되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생각 옆에 갖디 놓으면 어떤 행동들은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다.  301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도서>의 저자는 그렇게 탄식한다(1장 2절)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1장 4절)  303
기독교 도덕가들은 불안을 달래려면 낙관적인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천장은 무너져 내리고, 은행은 폐허가 되고, 우리는 죽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사라지고, 우리가 이룬 것들, 심지어 우리의 이름마저 땅에 짓밟힐 것이다. 이런 생각이 위로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위에 대한 우리으 ㅣ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320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321

(그림1과 2는 58페이지에 언급된 내용이며, 그림3과 4는 321페이지에 있다.)


물론 기독교는 세속 도시와 그 가치를 없애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도 서양에서 사람들이 부와 미덕을 구분한다면, 또 중요한 사람이냐 아니냐만 따지지 않고 선한 사람이냐 아니냐도 따진다면, 그것은 많은 부분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자원과 위신을 이용하여 지위의 의로운 분배에 대한 몇 가지 특별한 관념을 옹호해온 기독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342

V. 보헤미아
19세기 초 서구와 미국에서 새로운 집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박한 옷을 입었고, 도시의 싼 지역에 살았고, 책을 많이 읽었고, 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다수는 우울한 기질이었고, 사업이나 물질적 성공보다는 예술과 감정에 충실했고, 가끔 단발이 유행하기 오래전에 단발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앙리 뮈르제가 파리의 다락방과 카페의 생활을 그린 <보헤미안의 생활>(1851)을 써서 성공을 거둔 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품위라는 부르주아적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광범위한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351
아서 랜섬은 <런던의 보헤미아>(1907)에서 '보헤미아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라고 말했다.  352


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지가 대표하는 거의 모든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으며, 그들을 무절제하게 모욕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353
보헤미아와 부르주아지를 궁극적으로 갈라놓는 것은 대화의 화제나 후식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누가 높은 지위를 얻을 자격이 있고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문제엿다.  354
부르주아지는 상업적 성공과 공적인 평판에 기초하여 지위를 부여한 반면, 보헤미안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당연히 더 중요했던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감정의 주요한 저장소인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실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 순교자적 인물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또는 여행이나 친구와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안정된 정규 직장과 사회의 존경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355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는 돈으로 명예를 얻지 못하듯이 소유로도 명예를 얻지 못한다. 그것은 오만과 천박의 상징이다.  360
1845년 7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보헤미안 가운데 한 사람인 헨리 소로는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 근처 월든 호수에 자신이 손으로 지은 통나무집으로 이사했다. 
소로는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은 필요하지 않다.'  364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보헤미안들의 통찰이다. 
보헤미안들은 대도시에 살면서 지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피하고 대신 진정한 친구들과 매일 접촉할 수 있는 동네에 모여 살았다.  364
보헤미안들은 또 실패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재규정했다.
보헤미안들은 세상이 어리석음과 편견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여 외적인 실패를 버로 해석하지 않았다.  366
오해를 받고 거부를 당하며 살지만 그럼에도 인사이더보다 우월한 아웃사이더라는 신화는 보헤미아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 다수의 삶을 반영하거나 그 삶을 규정한다.  367
집단과 그 전통은 열등하다는 보헤미아의 믿음과 더불어 개인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으며, 이와 더불어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다.
빅토르 위고는 <에르나나>(1830)의 서문에서 '이제 규칙은 없다. 재능 잇는 사람이 개인적 독창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신이 하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에세이 <자립>(1840)에서도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 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372

보헤미아의 과도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보헤미안들이 영적인 관심을 삶의 전면에 내세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실제적인 문제를 태만히 햇다. 이 대문에 그들은 생존할 만한 일을 찾는 데 안간힘을 써야 했으며, 이렇게 되자 영을 생각할 시간은 줄어들고 몸 생각을 해야 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심지어 물질주의적이라고 욕하던 바쁜 판사나 약사보다 나을 것이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380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 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 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그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집단의 판단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복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각 세대마다 높은 지위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들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패자나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잔인한 규정과는 다른 규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성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결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384-385


Posted by WN1
,

표지의 인상적인 표현이다.
'세계는 지금처럼 주유한 적도 없었지만 지금처럼 가난한 적도 없었다'
(이 표현을 보면서 물질적인 기아에 대한 생각과 정신적인 기아에 대한 생각이 함께 떠오르기도 하였다)


프랑스 인문 예술 주간지인 <La Vie 라비>의 편집장을 지냈던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기아'에 주목하고 2005년부터는 절박한 기아의 실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첫페이지에서 책은 기아추방행동(ACF, Action Contre la Eaim)의 지원을 받아 출판될 수 있었다는 표현처럼 그는 좀더 체계적으로 기아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가능하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려 노력한것 같다.
읽는 이로 하여금 실상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극적인 요소는 없다. 그러면서도 서로다른 주장을 하는 내용들을 함께 다룸으로 읽는이로 하여금 편파적이 되지 않도록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당연한것일지 모르지만 데이터에 의한 자료와 실제적인 문제점이 한 두가지의 요인이 아니라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다루고 어쩌면 실제적인 현 주소를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극적인 요소가 여러가지 들어있고 데이터와 경제문제들(특히 신 자유주의체제의 문제성)을 통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기아가 발생한 이유와 예전의 기아와 현재 기아의 차이점 그리고 현대의 상세한 데이터 등을 조금은 더 체계적으로 다루어 주고 있다. 
이 두 책을 함께 읽는다면 기아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하고 생각해볼 점들을 머리속에서 그려볼 수 있을 듯싶다.

기아의 해결에 대한 모범 답안은 어쩌면 없을 수 밖에 없다.
발전하는 세계화와 기아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절대 정비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열악한 자연조건 때문에 기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인간들 때문이다.
책은 '무조건 이래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하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개인에게 호소한다.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 가장 마지막 문장은 나에게는 가장 와 닿은 표현이다.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174)

문득 이 표현은 이렇게도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말을 듣지 않기위해 관심 자체를 끊어버리면 되는 것, 삶이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한다고...
또는 당장 내 주변도 돌아보기 힘든 세상인데 ..
또는 <왜 ..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표현처럼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십자가 있잖아'...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눈 앞만 보고 있는 아니 눈 앞에 것만 보게만드는 세상에 세뇌되었기 때문일것이다.
멀리 보라. 
관련 책들이 한결같이 언급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이런 고통은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니 더 중요한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후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음에도 피한다면 그것만큼 아둔한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 철학자의 표현처럼,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위해 주저 앉아서 피한다는 생각이 들어 꺼림직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앉은 자리에 있는 작은 꽃을 바라보며 그것에 집중하는 그런 모습으로 숨어버린다면 그 고통은 점점 더 커져서 어느 순간 그 앉아 있어도 피할 수 없고 피신처처럼 보이던 작은 꽃 마저도 사라져 그때서 '아! 그때 반응을 했더라면 지금의 고통의 이십퍼센트도 없었을 걸'하며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후회하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표현은 인간의 게으름과 회피정신을 야단친다. 
생각해야만 할 문제이다.



추천서문 - 기아에 대해 아는 것, 그것이 행동의 시작이다. (장 크리스토프 뤼팽, 의사이자 작가며, 기아추방행동의 명예 회장)
일부 사람들은 기아를 진부하다 못해 낡아빠진 1960년대 화제로 치부한다. 
통계수치를 들여다보면, 기아가 그런 인식과는 반대로 최근 수 십년간 가장 주목해야 할 (가장 비극적인) 불변상수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7
모든게 바뀌었는데 기아는 그대로다.  8
기아는 ... 인간 사회와 나란히 가면서 그 사회의 불평등을 폭로하는, 현재 엄연히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며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9
기아 문제에 있어서는 아는 것, 바로 그것이 행동의 시작이다.  11


1부 기아라는 말 뒤에 숨은 잔혹한 현실 
모든 사람은 식량을 포함하여 자신 미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유지하는 데에 충분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세계인권선언 제25조(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채택)  23
2000년 9월 열린 새천년개발목표(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에서 첫째로 내건 정치적 약속은 세계의 절대 빈곤과 기아를 감소시키겠다느 것이었다.
'지금부터 2015년까지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세계 인구 비율과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율을 절방느로 줄이고,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의 비율 역시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일 것을 결의한다.'
이 말은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작성된 세계인권선언에서부터 포함되었던 내용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세계 인구 일곱 명 중 한 명은 식량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  27
'FAO 사무총장 자크 디우프가 연구서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개발도상국의 기아 인구는 1990~1992년간 산출된 기아 인구에 비해 300만 명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통계 오차로 봐도 될 만큼 너무나 적은 숫자다.' -<세계 식량 불안의 현황, 세계 기아추방, 세계 식량 정상 회의 10년 결산>, 2006년
* 세계 식량 정상 회의의 목표는 밀레니엄 정상 회의의 첫 번째 목표보다 더 야심적이었다. 왜냐하면 세계 인구의 지속적 증가로 인해 영양 결핍 인구 비율이 절반보다 훨씬 더 많이 감소되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때문이다. 새천년개발 제1목표가 2015년에 달성된다 하더라도 영양실조 인구는 여전히 약 5억 8,500만 명이 남게 되며, 세계식량정상 회의의 목표가 달성되면 그보다 1억 7,300만이 적은 4억 1,200만 명이 남게 된다.  29





FAO가 집계한 후진국 영양 결핍 인구는 1990~1992년 중에는 8억 2,300만이었고 2001~2003년 중에는 8억 2,000만이었다. 사실상 같은 수치나 다름없긴 하지만 인구에 따른 영향이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하는데, 같은 시기의 세계 인구가 1996년 58억에서 2006년 66억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5억 8,200만 명은 2015년에도 여전히 기아로 고통받을 것이고, 1996년 정상 회의의 목표가 달성된다 하더라도 4억 1,200만 명이 고통받을 것이다.  32
세계 인구 일곱 명 중 한 명은 배고플 때 먹지 못하며, 20억 명은 철분이나 비타민A, 요오드, 아연 같은 미량영양소 결핍에 의한 '보이지 않는 기아'에 시달린다.  33
1년에 사망하는 약 6,000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아나 영양 결핍에 따른 질병으로 죽는다. 따라서 기아 추방은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이다.  35
오늘날의 대(大)기아는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위기의 산물이다.  38
현재 우리는 기후변화를 탓할 수 없는 반복되는 기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크메르루주 정권(캄보디아 공산당, 현재는 민주 캄푸챠당이란 이름)의 캄보디아나 김정일 정권의 북한에서 국민을 굶주리게 만든 것은 바로 중앙정권이다.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에서는 경쟁 세력들간의 내전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지아가 자연의 힘에 의한 대량 참사인 것은 여전하지만, 가장 비극적으로 발현되는 기아의 뒤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모가 자리하고 있다.  39
현재 WHO의 전문가들은 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2,100~2,200킬로칼로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계, 즉 기초대사량은 1,200~1,300킬로칼로리로 본다. 서구 국가의 '표준적인' 1일 열량 섭취량은 성인은 2,400, 청소년은 2,900, 7세 아동은 1,830킬로칼로리로 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그 수치는 평균 1,700으로 내려간다. 그런 '1일 열량 섭취량'은 적어도 기초대사량에 필요한 에너지의 1.4배는 되어야 하며, 또한 탄수화물 55%, 지방 30%, 단백질 15%의 비율로 구성되어야 이상적임을 고려해 균형있고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기아는 단지 음식을 충분량 먹지 못하는 상황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FAO가 집계한 현재 세계 영양 결핍 인구 약 8억 5,400만 명 가운데 92%가 그런 '만성 기아'에 놓여 있으며, 나머지 8%는 기근에 따른 '급성 기아'를 겪고 있다.  42
질적 접근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결핍으로 나타나는 많은 수.
마라스무스에 걸린 아이는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비쩍 마른 몸에 '늙은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콰시오커(kwashiorkor)는 피부 손상을 동반한 양측성(兩側性) 부종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아이들은 마라스무스와 콰시오커가 혼합된 소모성 콰시오커 증상을 보인다.  47

2부 기아는 도대체 왜 발생하나?
굶주림은 분명 일련의 요인들이 빚어낸 결과다.  59



영양실조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찰하는 접근법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둘다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 
하나는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에게 남는걸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73
기아에 이르는 과정에서 숙명적인 요소는 별로 없다. 
기후, 메뚜기 떼의 습격, 거듭되는 가뭄은 우선 보기에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영양실조의 원인은 대부분 인간의 공모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해당 국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기아의 개념적 도식의 테두리 안에서 연구하면 유익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오랜분쟁이나 민족적 종교적 차별이 원인이 된 경우도 드러난다. 오늘날 식량 위기의 대부분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요소가 원인이다.  75-76
기아에 대한 개입은 긴급한 상황뿐만 아니라 모든 개발 영역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79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근근이 살아가도록 방치되어 있는 이들을 구해내는 일은 세계적인 결속을 통해서만 기대할 수 있다.
국민들 앞에 약속한 진보를 위해 일할 책임은 각 개발도상국 정부에게 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 국제사회의 지원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93
기아 문제는 인류 발전을 위한 전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94

3부 세계 곳곳에 포진한 기아의 현주소
영양 결핍의 세계를 1,000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마을로 가정해 본다면 주민 248명(전체 인구의 4분의 1, 2억 1,200만 명)은 인도 사람일 것이고 241면(역시 4분의 1, 2억 600만 명)은 아프리카 사람일 것이다. 나머지 절반 중에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소속이 190명(1억 6,200만 명), 중국 사람이 176명(1억 5,000만 명), 중남미나 카리브해에 소속된 사람이 61명(5,200만명), 근동이나 마그레브에 소속된 사람이 45명(3,800만 명)일 것이다. 29명(2,500만 명)은 구소련 같은 체제 전환국 출신의 사람이고, 10명(900만 명)은 선진국 출신의 사람이다.  97



다르푸르, 문제의 땅
네팔, 마오주의와 봉건주의 사이
몽골, 기후적 기아?
니제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기아로의 복귀
라이베리아, 거듭되는 위기
미얀마, 민족 차별이 부른 기아
아프가니스탄, 실추된 인도주의
(소제목들만 올린다. 실제 내용은 읽어보거나 관련서적들에 다양하게 올라와 있기에 직접 읽어볼 때 상태의 심각성이나 실질적인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원인과 새로운 원인이 중첩되어 있는 오늘날 새로운 기아의 모델이다.  115

4부 기아와의 전쟁
수출을 위해 세계시장을 자유화하려는 선진국과 지역 농업을 지키려는 후진국 사이에 뚜렷한 대립이 생기기에 이른다.  135





한편에서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또 다른 한편에서 주장하는 식량 주권.
오늘날 재해 중의 재해에 해당하는 기아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은 그 두 가지 용어 안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41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세계화 체제의 중심을 부가 아닌 빈곤에 다시 맞추어야 한다.  144
현재 좋은 반응을 억고 있는 마이크로크레디트와 공정무역이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하지만 아직도 미미한 정도이다. 
선진국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연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공정 무역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후진국 생산자들을 실제적으로 돕는 방법에 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154
일상적인 테두리 안에서든 인도주의적 위기의 테두리 안에서든, 피해가 큰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160
(조제된 치료용 우유 F100, 포동포동 살찐 땅콩이라는 뜻의 폴럼피너트같은 고열량 식품으로 대체하여 영양실조를 치료하는등의..)

2015년에 실현하려는 새천년 목표의 첫 번재 약속인 기아의 제거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선택이다.
물론 개발도상국이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낭비, 부패, 독재, 파벌주의 역시 빈곤과 영양실조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중의 활동에 속하며 국제사회의 의무인 동시에 후진국 정부들의 의무다.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이다.  모든 인권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66-167

맺는글 -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
'세계 8억 5,000만 명의 사람들이 굷주림에 절규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로 당신은 어떻습니까?' - ACF 홈페이지(www/actioncontrelafaim.org)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169
기아로 고통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도 기아의 존재는 논리에 맞지 않는다.  171
'사람들의 생계 수단을 보전, 보호하고 성장과 다양화와 발전을 위해 자체적인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개발도상국 정부들의 개입 원칙이 무역 자유화와 규제 완화, 민영화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 1996년 식량 정상회의 10주년 기념 선언  172
그러므로 행동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  174

 

Posted by WN1
,

'셰익스피어에서 헤밍웨이까지 작품으로 읽는 문학독법'이란 부제를 달고 문학 독서의 방법에 대해 자신의 읽기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서평이라 표현하거나 리뷰라 표현할 수도 있는 방식을 통해 고전문학 독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 책 읽는 사람들이 늘 생각하는 질문인 '왜 읽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 부분만을 생각해 본다.





서문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나 위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독서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를 내적 수련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문학 비편은 이론적이기 보다는 경험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16

프롤로그 - 왜 읽는가?
자신의 판단과 견해를 형성할 능력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읽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의 목적 중 하나는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며 가장 마지막 변화는 안타깝지만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맞이하는 것(죽음)이다.
나는 독서를 홀로 행하는 실천으로서 수행한다.  19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이러한 확장을 즐거움으로 경험하게 된다.
독서의 즐거움은 사실 사회적이기 보다는 이기적이다. 개인의 상상력을 성장시킴으로써 타인에 대한 배려가 증가 되리라는 전통적인 사회적 희망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며 홀로 행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공익과 연관 짓는 모든 주장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다.  21

지금 책을 읽는 방식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은
첫째, 머릿속에서 은어(隱語, cant)를 제거하라. 
경건하지만 상투적인 표현으로 넘쳐나는 말을 의미한다.
둘째, 독서를 통해 자신의 이웃이나 주위 사람을 개선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자기 계발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계획이다. 정신은 자신의 원초적인 무지가 제거될 때까지 자신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 섣불리 외출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며 독서에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셋째, 학자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욕망으로 타오르는 촛불이다.
당신이 진정한 독자가 된 후 당신의 노력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당신이 타인에게 계몽적 역할은 하고 있음이 확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잘 읽기 위해서는 발명가가 되어야 한다.
'창조적 독서'를 나는 '오독(誤讀)'이라고 이름 붙인 적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거듭나는 것으로서 다년간의 깊이 있는 독서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러니의 회복을 제안한다.
아이러니는 일정 기간의 집중력과 상호 모순된 관념들을 그 충돌에도 불구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독서에서 아이러니를 제거해 보라. 그러면 엄격함과 놀라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그러면 그것은 아이러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2-27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인간의 정서를 읽으려면 인간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여러분은 각자의 신념이 무엇이건 간에 이데올로기 이상의 존재이다.  28
 
우리가 깊이 있는 독서를 하는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익숙한 이유들이다.
즉, 우리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거나,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필요가 있다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알기 원한다는 등등의 이유다.
그러나 현재 너무나 많이 오용되고 있는 전통적인 정전(正典)을 깊이 읽으려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진실한 동기는 쉽지 않은 즐거움에 대한 갈망이다.
내가 보기에 즐거움을 주는 난제는 숭고함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의(定義)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차원적인 즐거움은 독자의 모험의 영역에 남아 있다.
독자가 경험하는 숭고함이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세속에서 경험하는 유일한 초월의 경험인 듯하다. 
진정으로 당신에세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진심으로 권유한다.
깊이 읽으라. 그것은 믿기 위해서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반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쓰고 읽는 본성을 공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WN1
,

'관계론' 에 대해 일관적으로 진행하는 내용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5천년이 넘는 기가긴 기간동안의 동양 철학의 진수를 호미로 긁는 것일 뿐인 내용'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서양의 존재론과 대조할 수 있는 동양의 관계론에 대한 서술을 하고 있다.
관계 즉 인간관계는 늘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져 담론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 그리도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우리는 깊은 생각을 해볼 시간이 별로 없다.
세세한 담론을 전개해 나가지는 않지만 경전들의 특징중에 하나인 큰 틀만 언급해도 세세한 가지치기는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관계에 관해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을 담고 있다.

저자가 처음으로 동양고전을 접한것은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사랑방에서였다. 그리고 잊혀진 고전은 20여년간의 옥고 생활에서 이어진다.
두껍고 상대적으로 읽기 힘든 동양고전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수형생활에서 3권의 책만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더욱 빠지게 되고, 급기야 아버지께 부탁하여 여러권을 한 권으로 제본하여 들고 들어오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읽는 것과는 분명 틀렸다.
우리는 종종 철학과 고전은 해설이 없는 책을 보는것이 좋다고 듣는다.
이유는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분명 그러한 시간을 충실히 보냈음을 내용을 통해 깊이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내용 그 내용에 대한 저자의 해설 그리고 독법을 어찌 하는 것이 좋을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본을 배울 수 있었다.

시(詩)와 언(言), 주역(周易), 논어(論語), 맹자(孟子), 노자(老子), 장자(莊子), 묵자(墨子),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불교(佛敎), 신유학(新儒學),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명학(陽明學) 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담겨 있다.
강의를 한 것을 책으로 엮었기에 제목도 강의다.
자신이 긴 시간동안 고전을 읽으며 생각하고 느꼈던 점들 중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관계론'에 입각한 해설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고전을 통해 우리에게 설파한다.
모든 내용들을 길게 다룬 건 아니고 길게 다룬 내용들도 있고 짧게 언급하면서 넘어간 내용들도 있다.
또한 이 고전들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자신에게 다가온 내용중에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엄선한 내용일 것이다.

다만 읽는 우리는 그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또한 자신도 사유를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이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세상을 접하고 새로운 관점을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임과 동시에 가까운 것은 가까이 하였으나 멀리 있었던 고전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들이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내가 동양고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할아버님의 사랑방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까지였어요.
나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지요. 너무 어렸습니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층의 정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6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옥방(獄房)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을 다시 읽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 었어요.  17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시한 문안도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
고전 강독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 담론을 주제로 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이 화두(話頭)를 걸어놓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걸어놓은 화두는 '관계론(關係論)'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23
근대사회의 사회론(社會論)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4

욕심입니다만 고전 예시 문안을 여러분이 다 암기하면 좋지요. 암기는 못하더라도 혼자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5

최근 동양학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이와 같은 성찰적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가 인문주의인 것은 사실이며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는 구조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관심입니다. 과도하게 축적된 초국적 자본이 자본주의 시장권에서 분리되어 있던 동구권과 러시아 대룩에 이어서 다시 관범한 중국 시장에 쏟는 관심, 이것이 주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33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34
서양에서는 철학은 Philosophy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智)에 대한 애(愛)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道)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입니다. 도(道)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辵)과 수(首)의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착(辵)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6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서양의 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7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38
자연의 개념과 특히 자연을 생기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동양적 체계에서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의 문제는 바로 생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근대 사회의 신념 체계인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는 물론이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서구의 인본주의(人本主義)자체가 반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9

일반적으로 동양 사상의 특징으로서 인간주의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인문적 가치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40
최고의 가치가 바로 사람과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논어>에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41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自己)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으 ㄹ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42

오래된 시(詩)와 언(言)
<시경(詩經>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  52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절반이 넘는 양이 국풍입니다.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採詩官)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기원전 12세기 말부터 춘추(春秋) 중엽인 기원전 6세기까지 약 600년간의 시(詩)와 가(歌)를 모아 기원전 6세기경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경>은 제후국 간의 외교 언어로 소통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공통 언어가 성립되고 나아가 중국의 문화적 통일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56
<서경(書經)>은 2제(요堯, 순舜) 3왕(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 또는 무왕武王)의 주고 받은 언(言), 즉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67
<서경>, <춘추>와 같은 기록 문화는 후대의 임금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집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어떠한 제도보다도 강력한 규제 장치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68

<주역(周易)>의 관계론
<주역>은 대단히 방대하고 난해합니다.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기로 합니다.  87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觀相)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四柱八字)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아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89
<주역>을 읽고자 할 때는 십익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십익은 해설서기 때문에 <주역>의 전체 구성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92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8괘(八卦)를 낳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8괘 중에서 태극기에 있는 네 개의 괘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8괘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를 효(爻)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효과 괘를 중심으로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93
<주역>에는 8개의 소성괘와 64개의 대성괘가 있습니다. 이 64개의 대성괘마다 괘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성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효마다 효사가 붙어 있습니다. <주역>의 경(經)은 8괘, 64괘, 괘사, 효사의 네 가지라고 했지요.  95
이 8괘의 이름과 성격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역>독법의 기본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97


1년 내내 겨울이 지속되는 극지(極地)나 반대로 상하(常夏)의 열대 지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사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주역>은 변화에 관한 사상이고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관계론적 철학 사상이 이러한 사회 역사적 지반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 역시 그 이전의 여러 문화 사상의 총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7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이것이 천지의 법칙이다.'  113
내가 붓글씨로 즐겨 쓰는 구절을 소개하지요.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하지 않으면 진미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나는 우리드르이 삶과 사회의 메커니즘을 다시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이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 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29
<주역>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避苦取樂)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130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느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1

<논어(論語)>, 인간관계론의 보고
요컨대 과거란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편의를 위한 관념적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49
덕치주의(德治主義) ...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153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교통순경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 네다섯 대중에서 한두 대만 딱지를 끊자 적발된 차량 운전자가 당연히 항의를 하였지요. 저 애도 위반이라는 것이지요. 교통순경의 답변이 압권이지요. '어부가 바닷고기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는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墮落論)>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의 지표로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집단적 타락 증후군도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선 이 교통법규 위반 사례와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적발된 사람만 재주 없는 사람이 되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고소함을 느끼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거나 추락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지요. 타인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과 추락에 대하여, 그것도 사회유명인의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단계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정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전략적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156
동양학에서는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경우 그 개념 자체를 상술(詳述)하거나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보다는 그와 대비되는 개념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뜻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160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3
"극좌(極左)와 극우(極右)는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 격동기에 도처에서 확인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나는 극좌와 극우가 다 같이 동(同)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라는 극우 논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극좌 논리는 둘 다 강철의 논리이며 존재론적 구조이며 결국 동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극좌와 극우는 그 근본적인 구성 원리에 있어서 상통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이 동의 논리와 결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화(和)의 논리는 자기오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164-165
우리의 삶에 잇어서 인간과 관련이 없는 지식이 과연 존재하는가? 없습니다.
자연과학적 지식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적 당파성에 기초해 있는 것이지요. 모든 지식은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는 법입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어떤 측면에 주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하고 그 사람에 관한 파일을 구하거나 그 살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대상물과는 달리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쌍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와 관계가 있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174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래하 진정한 의미의 지(知)라는 사실입니다.  175
상품미학이란 상품의 표현형식입니다. 상품이 잘 팔릴 수 있도록 디자인된 형식미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로 설명하고 이를 상품의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가치가 본질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상품은 한마디로 말해서 팔리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상품미학은 광고 카피처럼 문(文), 즉 형식이 승(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감성이 상품미학에 포섭된다는 것은 의상과 언어가 지배하는문화적 상황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지요.
형식미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미의 끊임없는 변화에 열중하게 되고 급기야는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 상품 사회의 문화적 상황입니다. 상품의 구매 행위는 소비 이전에 일어납니다. 상품의 브랜드, 디자인, 컬러, 포장 등 외관 즉 형식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광고 카피 역시 소비자가 상품이나 상품의 소비보다 먼저 만나는 약속입니다. 광고는 그 상품에 담겨 있는 사용가치에 대하여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소비 단계에서 그 허위가 드러납니다. 이 약속이 배반당하는 지점, 즉 그 형식의 허위성이 드러나는 지점이 패션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은 여러번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96-197
지(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樂)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하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 호, 낙의 차이를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각각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 속에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圓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전체와 부분이 혼연한 일체를 이룬 어떤 질서와 장(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는 역지사지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호는 대상을 타자라는 비대칭적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와 호를 지양한 곳에 낙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전 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은 관계의 최고 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이 가능한 것이지요. 
세계 인식이 정보 형태의 파편적 분석지(分析知)에 머물거나 이데올로지적 가치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낙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에서 호로, 호에서 낙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199-201

<맹자(孟子)>의 의(義)
<논어>가 선어(禪語)와 같은 함축적인 글임에 비하여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입니다.  213
오늘나르이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만남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리 없는 것이지요.
식품에 유해 색소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식품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처럼 한 점에서, 그것도 순간에 끝나는 만남이지요. 엄격히 말해서 만남이 아니지요.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관계없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2차대전 이후 전쟁이 더욱 잔혹해진 까닭이 바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첨단 무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237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깍듯이 예우합니다. 노인이 타면 얼른 일어나 자리로 안내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쩌다 미처 노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꾸중을 듣는다고 합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들려준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이 지하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어요. 그것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한 젊은이한테 물어보았지요. 물론 잘 아는 젊은이였지요. 이 지하철을 만든 이가 바로 저 노인들인데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들의 답변 또한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어요.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 참으로 충격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모스크바의 지하철이건 서울의 지하철이건 젊은이들이 만들지는 않았지요. 노인들이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똑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모스크바의 젊은이와 서울의 젊은이가 판이한 대답을 하는 까닭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똑같은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까닭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241
모스크바의 젊은이와는 판이한 우리나라 젊은이의 대답은 인간관계가 세대간에 어떻게 단절되고 잇는가를 보여주는 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대 간의 관계가 그만큼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는 종횡으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42

<노자(老子)>의 도와 자연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 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自然)입니다. 노자의 귀(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3-254
노자 사상은 상식과 기존의 고정과념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고도의 철학적 주제입니다.  262
'성인은 무위의 방식으로 일하고 무언으로 가르쳐야 한다.
 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 법이며 간섭할 필요가 없다. 
 생육했더라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했더라도 뽐내지 않으며
 공(功)을 세웠더라도 그 공로를 차지하지 않아야 한다.
 무릇 공로를 차지하지 않음으로 해서 그 공이 사라지지 않는다.'  276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277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있음(無)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잇음(無)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無)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수레를 타고, 그릇을 사용하고, 방에서 생활하지만 그것은 수레나 그릇이나 방의 있음(有)에만 눈을 앗기어 막상 그 있음의 배후(無)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숨어 있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292
현상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293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소통은 화자와 청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연상 세계와 청자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말을 더듬고 느리게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화자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면 청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되지요. 느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언어란 불충분한 표현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지요. 언어는 무엇을 지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찾아내고 그 대상에 대한 청자와 화자의 합의가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언어를 적게, 그리고 느리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302

<장자(莊子)>의 소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야 살기 때문이다." 이 것은 <장자> 외편(外篇)의 추수(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309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수많은 담론의 와중에서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것이 결국은 패권 경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장자> 독법의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하지요.  311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도(道)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合一)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情)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를 깨닫는 것은 이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요. 정서적 공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이해가 못 된다고 해야 합니다. 정서적 공감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장자의 이리화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사실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교실과 책과 시험으로 채워진 학교 시절을 끝내고, 싱싱한 삶의 실체들과 부딪치며 살아가기 시작하면 이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28
"내가 스승에세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329
장자의 논거는 오늘날의 논의와는 그 장을 달리 합니다.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종속적 지위로 전락하고,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경멸적 문화가 자리 잡는 그러한 일련의 반 노동 과정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지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는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支出)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니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 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331
자본주의적 채용 형식이 아니라면 기계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기꼐는 그 효율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여가를 가지게 하고 그 생산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로 인한 실업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가와 소비의 증대가 인간성의 실현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곧 장자의 문제의식입니다.  332
'세상에서 도(道)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形)과 색(色)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名)과 성(聲)일 뿐이다.'  338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步行)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343

<묵자(墨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가는 유가(儒家)와 함께 당시에는 현학(顯學)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비주류로 물러났습니다만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주류 학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께서 말씀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82
순자는 묵자를 비판하여 '실용에 눈이 가려 문화를 모른다' 즉 문화라는 소비가 생산을 증대시킨다는 반론을 폈다. 
절용이 미덕이다. 아니아.. 오늘날도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과 소비 수준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 축적 논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390

<순자(荀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는 대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학문적 권위나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여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소략합니다. 그가 유가의 이단(異端)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유학은 객관파(客觀派)와 주관파(主觀派)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天理)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기학파(氣學派)와 이학파(理學派)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순자는 예(禮)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덕(德)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계승하여 예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先王)의 주례(周禮)가 아니라 금왕(今王)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국 말기가 급격한 변혁기였음은 물론입니다. 순자의 예는 법의 의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를 법가(法家)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전국 말기의 상황에서는 순자의 주장이 패자(覇者)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와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순자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지요.  404-405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어가는 법이 없으며, 땅은 사람이 먼 길을 싫어한다고 하여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군자는 소인이 떠든하고 하여 할 일을 그만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으며, 땅에는 변함없는 규격이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함없는 도리가 있는 것이다.'  407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 체계입니다.  
순자의 체계에서 하늘을 칭송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으 ㅣ도리 여하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409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우리는 본성론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선악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로 자연을 재단하는, 이른바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414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담론 환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것이 바로 인간 본성 문제입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것이지요. 시장 원리를 뒷받침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제도가 바로 '역사의 종말'이라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묵자는 인간 본성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것입니다. 묵자는 소염론(所染論)에서 인간의 본성은 물드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16
순자의 성악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논리의 일환입니다. 순자의 이론 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禮)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한 성(性)을 교정함으로써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仁義)와 법도(法度)를 알 수 있는 지(知)의 바탕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17
순자의 인문 철학... 예란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순자의 예론의 기본적 내용은 법과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법과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케 하기 위해서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도량(度量)과 분계(分界)가 안정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교육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교육론입니다.  421
'나는 말한다. 학문이란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뽑은 것이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먹줄을 받아 곧은 나무도 그것을 구부려서 둥근 바퀴로 만들면 컴퍼스로 그린 듯 둥글다. 비록 땡볕에 말리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 단단히 구부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하면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알지 못하고 싶은 골짜기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꺼운 줄 알지 못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선비는 선왕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앟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  422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26
대부분의 유가가 치인(治人)에 앞서서 수기(修己)를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치인이 순자의 체계에서는 예(禮)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수기보다는 치인을 앞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양에 앞서 제도의 합리성과 사회적 정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개량주의적 이기보다는 개혁주의적입니다.  424
그에게 일관되고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입니다.  425

<한비자(韓非子)> 법가와 천하 통일
법가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법가의 현실성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성이란 점에 있어서 다른 학파와 어떠한 차별성을 갖는 것인가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431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 인식입니다.  433
한비자가 주장한 법의 기본 성격을 종함해보면 첫째 법의 성문화, 둘째 전국적으로 공포된 공지법, 셋째 전국적인 법의 통일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444
춘추전국시대란 무도한 시대이며 혼란의 극치를 보이는 시대입니다. 임금을 죽인 것이 36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2번이었습니다. 이러한 하극상과 혼란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가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관료에 대한 견제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관료는 언제든지 제후나 대부의 지위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료들의 이반(離叛)을 통제하고 견제하지 못하는 한 전기(前期)의 모순과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군주의 술치는 군주의 은밀하고 부정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관료제라는 새로운 제도의 작동 원리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462

Posted by WN1
,
빵이나 우유는 물론 운전면허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신용카드나 할인쿠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그러나 지갑 속 주민등록증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유효기간이 지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주민증에는 유효기간이 없지만 사라에게는 유효기간이 있다.
허나 그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된다. 하지만 시점이 정해져 있지 않을 뿐이다.
죽음에 이르면 유효기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문제는 죽지 않았는데도 유효기간이 다 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는 있으나 유효기간 된 사람처럼.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게 아닐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죽은 것이나 진배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를 쓴다 > 숟가락 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모순  (1) 2012.03.05
무관심은 도박  (0) 2012.03.03
답다  (3) 2012.02.09
글자 하나의 요술  (0) 2012.01.24
진짜 불쌍한 사람  (0) 2012.01.22
Posted by WN1
,

영화 '3 idiots'는 한국에서 개봉하기 전에 보았다.
재미있다는 소개로 우연하게 보게된 영화였고, 영화 자체의 구성은 좀 엉성한 면이 있었지만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영화였다.
그리고 2011년에 한국에서도 개봉을 하였다. 이전에 본 영화는 2시간 50여분짜리 였고, 개봉한 영화는 2시간 20분짜리 였다. 인도영화 특유의 노래와 춤이 몇 군데 빠지고 중간에 짧막하니 편집이 되어 있었다. 개봉한 영화는 좀더 어색하게 엉성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핵심적인 내용들은 들어 있긴 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도 재미있었다는 평과 함께 유익하다. 아이들도 봐야할 영화라 생각된다고 하였다.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다. 뻐꾸기는 둥지를 틀지 않고 다른 둥지의 알을 떨어뜨린후에 알을 깐다는 바이러스의 표현처럼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대학의 모습과 일류가 되지 못하면 기억하지 않는다는 무한경쟁시대의 지금.
그렇기에 생각없이 기계처럼 공부해야 하는 현 시대를 잘 대변하고 있었고, 그것이 삶의 일 순위가 아니라는 주인공 란초의 대립으로 영화는 전개 된다.
3명의 바보인 란초와 파르한과 라주는 결국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생각을 변화시켜 주게 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내용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시대에 우리의 일상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고, 이 세명의 모습들에서 이 시대에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어린시절만 해도 경쟁보다는 우애를 더 생각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는 그의 옆에 있어 주는가하는 생각을 영화 전체에서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의 생각해 볼것들이 있었다.

영화를 본 후로 우연하게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또 우연하게 책을 보게 되었다. 원래의 체탄바갓의 소설이 원작이고, 이 책은 영화 각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책이다.
책을 보면서 영화의 영상이 머릿속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이름도 영상 소설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이 영화를 보았다. 
우리는 잘못된 질서 속에서 왜곡되어 가는 자신의 꿈을 바로 잡는데 이 영화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할 수있다..고
재밌는 하나의 영화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는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란초와 비슷한 '조이'라는 인물이 잠시 나오는데 그는 아버지의 병 간호로 두 달 동안 졸업 작품을 준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늦게라도 바이러스에게 기회를 구했으나 바이러스는 두 달동안 밥먹는걸 잊거나 씻는걸 잊은적 없으면서 이것만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준비하던 헬리곱터를 버려 버렸다. 그리고 얼마후 자살을 택한다.
조이는 궁리해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자 망연자실하여 발코니에서 부른 노래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내 것이 아니었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내 인생을 살고 싶어.
내게 햇살을 보내 주세요.
비를 내려 주세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기회를 주세요.
내게 햇살을 보내 주세요.
비를 내려 주세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기회를 주세요.  41
 
조이의 장례식에서 란초는 바이러스에게 조용히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은 학교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러스는 란초의 이의에 그럼 니가 교수를 하라며 강의실로 데려갔다. 
란초는 두 단어를 적고 30초 동안 정의를 찾으라고 한후 마감하고 말을 한다.

"아무도 못 찾았나요? 시간을 1분 전으로 되돌려 보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던졌을 때 설레었나요? 호기심이 생겼나요? 새로운 걸 배운다는 사실에 흥분됐나요? 어때요, 교수님? 모두들 미친 듯이 레이스만 펼쳤죠. 이런 방식이 무슨 소용 있나요? 그게 지식을 늘게 해 주나요? 아뇨, 스트레스만 줄 뿐이죠. 여긴 대학이지, 스트레스 공장이 아니에요. 서커스 사자도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훈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는 안 합니다."  50

그러자 바이러스는 여긴 철학수업이 아니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소리말고 단어의 정의를 말하라고 닥달 한다.
단어는 친구인 라주와 파르한을 표현한 것이다. FARHANITRATE   PRERAJULISATION.

"마음에서 우러나서 공부를 하는 거지. 점수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 이런 얘기가 있어. '공부는 부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 봐. 그럼 성공은 뒤따라올 거야."  70

"차투르가 그건 안 가르쳐 주디? 친구는 남자의 중요한 젓이라고!"  85

"자살 충동이 들면 란초가 이 사진을 보랬어요. 아들의 시신을 보게 될 부모님 표정을 상상해 보라고 했어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싶은 거지, 협박하는 게 아니에요."  132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우리는 정말 알 이즈 웰이 필요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망각의 동물 답게 망각 다운 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없이..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의 내용은 공부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하라는 표현들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들은 진정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휴식(休息) 이란 한자어를 보면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고, 스스로 마음을 생각해 보라는 뜻 풀이가 가능해 진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란 뜻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