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낭만주의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 때다. 12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27


그(라비 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28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한다. 30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 줄 아는 우리의 능력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35-36


성욕은 처음에는 단지 생리적 현상, 호르몬을 깨우고 신경 말단 을 자극한 결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감각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생각,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끝날 거라는 기대와 관련이 있다. 41


성 해방에 관한 온갖 담론에도 불구하고, 성을 둘러싼 비밀과 어정도의 부끄러움은 사실 늘 그래왔듯이 지금도 존재한다. 우리는 여전히 누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부끄러움과 충동 억제는 단지 우리의 조상들과 절제의 종교들이 ㅇ매하고 불필요한 이유로 붙들고 있었던 것들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상수로 존재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낯선이가 우리의 방어를 풀고, 한때 몰래 죄를 짓는 마음으로 갈망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것을 바랄 수 있게끔 허하는 (일생에 몇 번뿐일지 모를)그 진기한 순간들이 그렇게 큰 힘을 갖게 된다. 44


우리는 흥분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연인이 나의 본모습에 드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족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45


역사가 시작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논리적 이유로결혼을 했다. .. 합리적 결혼은 어떤 진실한 관점엣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으며, 자주 편의주의적이고, 편협하고, 속물적이고, 착취적이고, 모욕적이었다. 이를 대체한 것 - 감정에 의거한 결혼 - 이 그 존재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면제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57


결혼이 실용적인 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58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에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년의 관계 안에서 재현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맛본 사랑이란 보다 파괴적인 다른 역학들과도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통제 불능의 어른을 도와주고 싶은 느낌, 아빠나 엄마가 다정하지 않다거나 그들의 분노가 두렵다는 느낌 또는 철없는 소원을 자유롭게 표현할 만큼 집안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느낌과도 뒤얽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우리가 어떤 후보군을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 - 왠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성숙하고 분별 있고 믿음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 거부하게 되는 것도 얼마나 필연적인가. 심정적으로 이러한 올바름은 이질적이고 누군가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자극적인 사람을 쫓는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더 조화로울 것이라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그 삶에서 겪을 좌절의 양식이 안심하리만치 친밀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63-64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65




2부 그 후로 오래오래


낭만주의는 직관의 합의를 중시하는 철학이다. 진실한 사랑에서는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쓰느라 수고할 필요가 없으며,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마침내) 둘 다 세계를 완전히 같은 눈으로 보는 경이로운 상호 감정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72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국제무역, 이민, 종양학 등)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나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76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그가 자신이 몰두하고 실망하는 바를 더 예리하게 파악하는 살마이었다면, 이불 밑에서 (실내 온도와 관련하여)이렇게 설명했을지 모른다. "당신이 한겨울에 창문을 열어놓고 싶다고 말할 때면 난 두렵고 속이 상해. 신체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인 이유에서 말이야. 앞으로 소중한 것들이 짓밟힐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그럴 때면 당신에겐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가학적인 금욕주의와 너무 왕성한 용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잠재의식의 차원에서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건 상쾌한 공기가 아니라, 당신 특유의 매력적이지만 무뚝뚝하고 합리적이고 사람을 위축시키는 방법으로 나를 창밖으로 밀어내는 것일까 두려워."

이와 마찬가지로 커스틴도 시간을 엄수하려는 자신의 태도를 면밀히 들여다봤다면,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라비에게(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운전기사에게) 가슴 뭉클한 연설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건 결국 공포 증상이야. 그게 내가 무질서하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세계에서 불안과 정체불명의 지독한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개발해낸 기술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권력을 갈망하는 거나 내가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거나 매한가지야. 안전의 욕구와 다르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고려하면, 비록 조금이지만 그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아? 온전한 정신을 지키려고 하는 나만의 미친 방법인 거야."

이렇게 각자 욕구의 맥락을 살피고 서로가 상대방의 믿음에 깔린 원인을 이해했다면 새로운 융통성이 뒤따랐을지 모른다. 78-79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없으면 비통해진다. 원인도 잊은 채 화가 나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는 쪽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려고만 하고, 잔소리를 듣는 쪽은 자신의 반발이 합리적 반론이나 그도 아니면 가엾고 용서받을 만한 성격상의 결함에서 나온 것임을 더는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양 당사자는 그들에게 똑가팅 지루하기만 한 이 문제가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79


우리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 우리 커플이 훨씬 나쁜 일들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불행할 뿐 아니라 우리의 불행이 대단히 드물고 기형적인 것이라 착각한다. 더 나아가 종국에는 우리의 싸움들이 기본적으로 전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결혼 생활의 증거라기보다는, 우리가 뭔가 드물고 근본적인 실수를 범한 징표라고 믿게 된다. 81-82


이 둘은 두 개의 믿을 만한 치유책 덕에 지속적인 비통함에서 벗어난다. 첫째는 나쁜 기억력이다. 목요일 오후 4시쯤 되니 전날 저녁에 택시에서 무엇 때문에 격노했는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별 이유 없이 일찍 퇴근해야겠느냐는 그의 말에 커스틴이 경솔하고 달갑지 않게 반응한 것과 그녀의 설핏 경멸하는 듯한 말투와 관련이 있다는 건 알지만 불쾌함의 정확한 윤곽은 이미 초점이 흐려졌다. 이는 아침 6시에 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살, 라디오에서 재잘거리는 스키 리조트에 관한 정보, 가득 찬 이메일 수신함, 점심을 먹으며 주고받은 농담, 회의 준비와 웹사이트 디자인에 관한 두 시간짜리 미팅 덕분이다. 이것들이 합쳐져 성숙하고 솔직한 대화를 한 것 못지않게 둘 사이를 거의 바로잡는 효과를 낸다.

두번째 치유책은 보다 추상적이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하면 너무 오랫동안 분노를 안고 가기가 어렵다. 이케아 사거 ㄴ이후 몇 시간이 흐른 오후 나절에 라비와 커스틴은 에든버러 남동쪽에 있는 레머뮤어 구릉으로 오래전에 계획한 산책을 나선다. 출발할 때는 둘 다 말이 없고 시큰둥하지만, 자연이 동정심이 아니라 숭고한 무관심을 통해 그들을 서로에 대한 적개심에서 서서히 해방시킨다. 82-83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6-87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토라진 사람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표적이 되었을 때에도 온화하게 웃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진짜 메시지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느 ㄴ아직 젖을 먹는 아기이니, 지금 당장 나의 부모가 되어줘야 해. 당신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를 정확히 헤아려주어야 해. 내가 아기였을 때, 사랑에 대한 관념들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말이야."

토라진 연인게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이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어리게 취급하면 거만하게 윗사람 행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 탓에 우리는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 그리고 용서해주는 - 것이 가끔은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89-90


사랑이 있을 때에만 섹스가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견해는 기독교가 서양 세계에 남긴 가르침이다. 이 종교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몸을, 눈길을 아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낯선 사람을 성적으로 생각하면 사랑의 참된 정신을 저버리고 신과 자신의 인간성을 배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한 그런 가르침들은 한때 그 토대를 이웠던 믿음이 쇠한 지금에도 완전히 증발하지 ㅇ낳았다. 확고했던 유신론적 근거는 사라졌지만 낭만주의 이데올로기가 그 가르침들을 흡수해, 사랑에는 정절이 내포되어 있다는 개념에 여전히 고귀한 지위를 부여했다. 세속의 세계 역시 일부일처제를 헌신적인 감정과 고결함을 표하는 필요하도고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선언해왔다. 우리 시대는 지나간 종교의 중요한 경향, 즉 참된 사랑에는 완전한 정절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고스란히 유지해온 것이다. 93-94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자유분방하지만, '기이함'과 '정상'의 차이가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그 차이는 언제너처럼 확고하며, 사랑과 섹스의 규범적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을러서 경계선 안으로 밀어 넣는다. 요즘은 짧은 반바지를 입거나 배꼼을 노출하거나 동성과 결혼하거나 재미로 포르노를 좀 보는 것도 '정상'으로 간주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단혼제에 있고 욕망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믿는것 역시 여전히 확고부동한 '정상'이다. 이 근본 원칙에 반기를 들려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혹독하고 수치스러운 낙인이찍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변태라고 말이다. 99


의사 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의사 전달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나 성적 취향 또는 일반적이지 ㅇ낳고 거북할 수 있는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감을 잃거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숙고할 줄 안다. 그들이 명료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대체로 원만한 사람이라는 대단히 가치있는 인식을 길러낸 덕분이다. 그들은 적정한 수준의 인내심과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단만 갖추고 있다면 다른 살마의 호의를 받을 만하고 또한 받을 수 있다고 능히 믿을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의사 전달을 잘하는 이런 사람은 어릴 적, 모든 면에서 적절하고 완벽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도 아이를 사랑할 줄 아는 보호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축복을 누렸음이 ㅣ분명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이 - 적어도 한동안은 - 가끔 이상하거나, 난폭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심술궂거나, 기이하거나,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수용할 줄 알고 그래도 가족의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줄 안다. 그렇게 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솔직히 고백하고 대화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을 심어준다. 100-101


잘 들어주는 사람은 잘 말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의 비결이다. 이는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을 말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3


우리는 의식에서 거의 지워져버린 위기들이 오래전에 만들어놓은 대본에 따라 행동할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져 폐물이 된 논리에 따르고,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밝히지 못할 ㅢ미를 좇는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고, 정확히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으며, 앞에 있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곁에 두기에 약간 고달픈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12-113


마음이 전이에 말려들면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믿어주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불안에 빠져 즉시 과거가 지정해놓은 최악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과거의 혼란에 의거하여 지금 벌어지는 일을 해석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초라하고 꽤 굴욕적인 일이 느껴진다. 우리의 파트너와 실망스러운 부모, 남편이 잠시 지체하는 것과 아버지의 영원한 유기, 더러운 빨랫감 몇 개와 내전의 차이를 설마 모르겠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을 그 출발점으로 송환하는 일은 사랑의 가장 섬세하고도 필요한 과제다. 전이의 위험성을 인정하면 짜즈오가 비난보다 공감과 이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두 사람은 갑자기 폭발하는 불안이아 적대감이 항상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그러니 그런 폭발에 매번 분노나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격분과 비난이 동정심에게 자리를 내준다. 114-115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116


사랑의 모든 가정들 중 아주 얄팍하리만치 불합리하고 미숙하고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장 흔히 볼 수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서약한 사람이 우리의 감정적 실존의 중심일 뿐 아니라 - 그 로가로서, 또한 대단히 이상하고 객관적으로 비상식적이고 아주 부당한 방식으로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그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에는 기이하고 병적인 특권이 있다. 122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들은 딱히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세상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부당한 말들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꾸러진 징표다. 분별 있고 예의 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뿐이다. 123-124


혹독한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교사가 단지 미쳤거나 성질이 나쁜 것이고 그래서 그 자신들은 논리상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기댈 여지를 준다.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판정을 들으면, 우리는 파트너가 악랄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이나마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위안을 얻는다.

감정에 치우쳐 우리는 배우자의 부정적인 평가와-조금이라도 비교할 만한 요구가 지워져 있지 않은-친구 및 가족들의 격려하는 어조를 대비시킨다. 사랑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사랑과 가르침의 관계를 바라보는 유용하고도 시류와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그들이 보기에 사랑은 무엇보다 먼저 타인의 훌륭한 점을 찬탄하는 감정, 고결한 특질과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흥분이었다.

그 결과 사랑의 깊어짐은 항상 보다 고결해지는 방법-화를 잘 참거나 관대해지는 법, 탐구심을 키우거나 더 용감해지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욕구를 수반하게 됐다. 성실한 연인이라면 상대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 수용은 관계의 목적을 나태하고 비겁하게 통째로 배신하는 행위였다. 그런고로 우리 자신을 향상하고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줄 것들은 항상 존재할 터였다.

이 고대 그리스의 렌즈를 통해 본다면 연인이 상대방의 성격으로 인해 불행하서나 불편한 점을 지적해도 그가 사랑의 정신을 포기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파트너의 자아를 더 발전시키려는, 사랑의 본질에 아주 충실한 일을 하려 했다고 축하받아야 한다. 현재보다 더 진보한 세계, 그리스식 사랑의 이상에 조금 더 깨어 있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알려주고자 할 때에 어색함과 두려움과 공격성이 약간 줄어들고 피드백을 받을 때에도 다소 덜 호전적이고 덜 예민해질 것이다. 관계 안에서 교육이란 개념이 불필요하게 섬뜩하고 부정적이었던 함의를 벗게 될 것이다. 신뢰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에서는 두 프로젝트-가르치기와 배우기, 상대방의 결점을 환기하고 상대방의 비판을 허용하기-가 결국 사랑의 참된 목적에 충실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137-138




3부 아이들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그들의 철저한 의존서으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146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사랑이란 말은 갈수록 부정적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와 자기충족에 빠진 문화는 만족과 타인의 부름에 응하는 행동을 쉽게 등치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없다. 더 자란 아이들이 가끔 큰 불안을 느끼며 판단을 내리듯이,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기 때문에-어떤 보받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장점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약점에 대한 동정, 즉 인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고 한때 나 자신의 것이었고 결국 나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취약성을 동정하는 사랑으로 인도되낟. 자율과 독립성을 늘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어 하는 와중에 이 무기력한 피조물은 아무도 결국은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문자 그대로-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남의 종이 되는 것이 굴욕이 아니라 정반대라는 것을 배운다. 나 자신의 왜곡되고 만족을 모르는 본성에 끊임없이 응해야 하는 피곤한 의무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부여받았다는 위안과 특권을 알게 된다.  147-148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어려운 관례다.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느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155


사랑을 위한 노력이 그들을 녹초로 만든다.  156


라비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이렇게 까탈을 부린 적이 없었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서 진심으로 사랑을 받는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166


좋은 부모의 역할에는 중요하면서도 무척 까다로운 요건이 딸려 있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소식을 끊임없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는 필히 아이의 장기적 이익을 폭넓게 지켜줘야 하는데, 아이들로서는 부모의 생각이 유익하다고 흔쾌히 동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양치질, 숙제, 방 정돈, 취침 시간, 마음 넓게 쓰기, 컴퓨터 사용 제한에 대해 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재미가 정말 시작되려는데 삶의 달갑지 않은 면들을 들이미는 싫고 짜증 나고 따분한 배역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듯 사랑을 드러나지 않게 실행한 결과로, 좋은 부모는 그 실행이 잘된 경우에 강렬한 분노와 적개심의 표적이 되고 만다.  167-168


성적 흥분은 결국 옷을 벗은 상태와 거의 무관한 듯하다. 그 동력은 열렬히 열망하고, 전에는 금지되었으나 이제는 기적적으로 접근 가능해진 상대를 소유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가능성에서 나온다. 성적 흥분은 고립과 단절이 만연한 세계에서 그 손목, 허벅지, 귓불과 목덜미가 마침내 우리 눈앞에 당도했다는 데 대한 거의 불신에 가까운 경탄의 표현이다. 다시 한 번 기쁨에 차 만지고, 채우고, 드러내고, 벗기며 우리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우리의 연인은 얼마나 멀고 독립적으로 느껴졌는지 계속 몇 시간마다 확인하고 싶다는 특수한 개념이다. 성적 욕구는 확고히 친밀해지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오며, 그렇기에 사전의 거리감을 전제로 하고, 그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매우 독특한 기쁨과 안도감을 선사한다.  184


자위의 판타지에서 무작위로 만난 낯선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낳은 순위의 모티프가 된다는 사실은 낭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논리를 획득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바로잡고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랑과 섹스의 냉정한 분리, 바로 그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이용하면 분노, 감정적 취약성, 상대방의 욕구를 신경 써야 할 의무를 우회할 수 있다. 우리는 비난이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선까지 특이하고 이기적으로 굴 수 있다. 모든 감정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이해되기를 바라는 일말의 소망도 없고 따라서 잘못 이해될 위험도 없으며 그 결과 괴로워하거나 실망하게 될 위험도 전혀 없다. 마침내 삶의 소모적이고 거치적거리는 나머지 부분을 침대로 가져갈 필요 없이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87-188


어떤 관점에서는, 공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대신에 판타지를 지어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대개 다수의 모순된 소망으로부터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다. 판타지가 존재하는 덕분에 하나의 현실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현실에 거주할 수 있다. 판타지는 완전히 무책임하고 무섭도록 기이한 우리의 충동으로부터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켜준다. 판타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성취이자 문명의 결실이며, 친절한 행동이다.  189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정확히 똑같게 계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거나 속죄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언제라도 진지한 경쟁에 돌입할 수 있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194


오늘날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위신을 분배하는 방식 탓에 발생한다. 부부는 매시간 실용적인 요구에 시달릴 뿐 아니라, 그런 일이 굴욕적이고 시시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단지 요구를 견뎌냈다는 이유마능로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칭찬해주는걸 꺼린다. '위신'이란 말은 등하교시키기와 세탁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들린다. 그런 특성은 수준이 높은 정치나 과학 연구, 영화나 패션 같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고 가르친 해로운 훈련 때문이다. 그러나 거품을 제거하고 핵심을 보면 위신은 단지 인생에서 가장 고결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우리는 인류의 영광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회사를 설립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얇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에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수십억 인구 사이에 널리 분포된 능력이라 하더라도) 생후 몇 달 된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떠먹이고, 사라진 양말을 찾고, 변기를 청소하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 식탁에 굳어 있는 기름때를 닦아내는 능력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195


라비와 커스틴이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접한 예술이 그런 싸움을 공감하며 반영하는 걸 좀처럼 보지 못하는 데에도 있다. 예술은 오히려 이들이 마주하 ㄴ문제를 얕잡아 보고 유치하게 놀리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참을성 없이 짜증을 부리며 몸을 꿈틀거리는 아이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려고 애쓰는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는다. 코트의 단추를 늘 잘 채우고 모자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집 안을 정갈하게 유지할 때, 그리고 매일매일 가장 작지만 까다로운 이 사업을 협력해 이끌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바깥에서 저명해지거나 큰돈을 벌지 못할 테고, 무명 인사로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월계관을 써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럼에도 문명의 질서정연함과 연속성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곳에서 말없이 수행하는 노동에 작지만 필수적으로 의존한다.  196




4부 외도


중년의 유혹자가 솔직한 것은 자신감이나 오만함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처량한 인식에서 나오는 일종의 조급한 절망감 때문이다.  204


배우자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불륜에 뛰어드는 경우는 드물다. 파트너를 배신하는 수고를 감내하려면 대개 파트너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207


다른 종류의 행동들은 거의 다 쉽게 묵인하는 사람들에게도 간통은 하늘이 노할 위반이자, 사랑의 가장 신성한 전제들을 깨뜨리는 섬뜩한 행위다. 

첫 번째 전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든 함께하는 삶이 소중하다고 주장하면서-길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사랑은 없었다.  212-213


두 번째 전제 : 간통은 우리가 익히 아는 불성실과는 종류가 다르다. 세상은 벌거벗음을 수반한 계율 위반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지각변동에 버금가는 엄청난 종류의 배신이라고 말한다. 바람피우는 짓은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공언하는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극악 행위다.  214


세 번째 전제 : 일부일처제에 충실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깊이 배려하고 그의 번영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다. 이를 고수하는 것은 상대방의 최선의 이익을 진심으로 염려한다는 확실한 징표다.  215


네 번째 전제 : 일부일처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모습이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항상 한 사람과 사랑하기를 원한다. 일부일처는 정신 건강의 기준점이다.  216


다른 사람에게 가끔 욕망을 느끼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그래서 어떤 절박한 호기심으로 단 한 명의 동시대인보다 더 많은 독특한 관능적 개성을 탐험해야 할지 깨닫지 못하고 유혹을 느끼는 데 실패한 것, 사실은 '잘못된 것' 아닐까? ... 간통의 발생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은 곧 인생의 풍요로움을 부정하는 셈 아닌가? 반대로, 어떤 특정 상황엣 부정한 행위에 정말로 일말의 호기심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신뢰하는 게 합리적인 것일까?  217


성숙해지면 소유욕을 초월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질투는 아기들에게나 어울린다. 성숙한 사람은 어떠 ㄴ사람도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현명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온 교훈이다. 잭이 네 소방차를 갖고 놀게 해주렴, 그 아이가 한 번 갖고 논다고 해서 남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화가 난다고 바닥을 뒹굴면서 네 작은 주먹으로 카펫을 내리치지 마라, 네 여동생이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이듯 너도 아빠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사랑은 케이크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줄어들진 않는다. 사랑은 집안에 아기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계속 커진다. 

나중에 이 주장은 섹스를 둘러싸고 훨씬 더 합당해진다. 파트너가 한 시간 동안 당신을 떠나 신체의 특정 부위를 낯선 사람의 제한된 부위에 비볐다고 왜 파트너를 나쁘게 생각하겠는가? 어쨌든 그들이 모르는 사람과 체스를 두거나 명상 그룹에서 촛불을 켜놓고 친밀한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229-230


질투는 그 우둔함 때문에 우리가 설교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군침 도는 표적이 된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게 좋다. 대단히 볼썽사납고 어리석긴 해도 순간의 질투는 우리를 빗겨 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술을 만지거나 손이라도 스쳤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누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우리가 과거에 어쩌다 바람을 피웠을 때 가졌을 매우 진지하고 충실한 생각과는 상반되고 논리에 어긋난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다. 현명하다는 것은 도저히 현명해질 수 없는 순간을 아는 것이다.  230-231


상대방의 충실함이 무의식을 가득 채워주는 한 외도라는 문제에도 태연자약 할 수 있다. 한 번도 배신당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신의를 계속 유지하기에 좋으 전제조건이 못 된다. 보다 진실하고 충실한 사람이 되려면 적절한 예방 접종을 겪어봐야 한다. 한동안 극한의 공황과 모욕을 겪고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가봐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배우자를 배신하지 말라는 명령이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영구히 뚜렷하게 빛을 발하는 도덕적 의무로 변모한다.  232


사랑의 열병은 망상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목을 가누는 방식은 실제로 그 사람이 자신 있고, 심술궂고, 예민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누군가는 그의 눈이 암시하는 유머와 지성, 그의 입이 넌지시 말하는 상냥함을 실제로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열병의 오류는 좀 더 교묘한 문제다. 우리가 다양한 단점을 꿰뚫고 있는 현재의 파트너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우리가 더 많은 시간으 함게 보낼 때 드러날 상당히 심각한 결점, 황홀했던 처음의 감정을 비웃음거리로 만들 만한 결점도 있다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진리를 잊게 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236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237


아무것도 희생되지 않는 깔끔한 해결 방안은 어디에도 없다. 모험과 안전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알았다. 사랑이 넘치는 결혼 생활과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성욕을 죽이고, 외도는 결혼 생활을 죽인다. 두 패러다임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자유사상가인 동시에 결혼한 낭만주의자가 될 순 없다.  238


우울감은 치료를 요하는 병이 아니다. 우울은 처음부터 이 각본에는 실망이 적혀 있었다는 확신과 마주할 때 밀려오는 일종의 지적 슬픔이다.  239


어떤 관계도 온 마음을 다해 친밀하고자 하는 헌신 없이는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여전히 수많은 생각들을 혼자 간직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정직성에 너무 감명하는 탓에 정중함의 미덕들을 망각한다. 아끼는 사람이 우리의 본성에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면과 항상 전명적으로 마주치지는 않게 하려는 욕구 말이다.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자기 편집에 조금 열성을 보이는 억제 능력은 솔직한 고백 능력 못지않게 당연히 사랑에 포함된다. 스스로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또한 파트너가(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간밤에 어디에 있었는지 등등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어도(우리의 관계가 훌륭하다면 주기적으로 그럴것이다), 날카롭고 무자비한 심문자처럼 굴지 않는 편이 좋다. 그저 눈치채지못한 척하는 편이 더 친절하고 더 현명하고 사랑의 참된 정신에 더 가까울 수 있다.  241-242


역사의 거의 전 기간 동안 사람들이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약간의 재산을 지키고, 가문의 통합이 유지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 아주 다른 기준이 서서히 세상을 장악했다. 그에 따르면 부부는 둘 사이에 진실한 열정, 욕망, 충족감 같은 몇몇 감정들이 통용되는 한에서만 함께 있어야 했다. 이 새로운 낭만주의의규칙에서 배우자들은 부부의 일상이 지루해졌거나, 아이들이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섹스가 더 이상 마음을 끌지 못하거나, 어느 쪽이든 최근 들어 약간 불행하다고 느껴왔다면 당연히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243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


1950년대에 영국의 존 볼비와 그의 동료들이 전개한 애착 이론은 우리가 맨 처음 경험하는 부모의 보살핌에서부터 관계의 긴장과 갈등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서유럽과 북미 인구 3분의 1이 생애 초기에 부모에 대한 실망을 경험하고(C. B. 바실리, 2013), 그 결과- 견딜 수 없는 불안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원초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신뢰와 친밀함의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위대한 저직인 <분리 불안>(1959)에서 볼비는 최초의 가정환경에서 실망을 겪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 관계의 어려움이나 모호함에 직면 할 때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볼비가 '불안정 애착'이라 명명한, 두려워하고 집착하고 지배하는 행동 양식이고, 둘째는 '회피 애착'이라 명명한, 방어 및 후퇴 작전이다. 불안정한 사람은 파트너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질투심을 분출하고,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깝지' 않은 것을 슬퍼하며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쉽다. 한편 회피적인 사람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때때로 성적 친밀함에 대한 요구를 힘겹게 느낄 수 있다. - 조애나 페어베언 박사, <부부 관계에서의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 :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  251-252


불안정 애착의 징후는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즉시 모욕이나 악의적인 공격과 같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 경솔한 말, 부주의를 파탄의 전조라도 되는 양 불길하고 강력한 위협으로 느낀다. 좀 더 객관적인 설명은 와 닿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그들이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은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약함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심술궂다거나 성마르다거나 잔인하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253-254


회피 애착 유형은 정서적 피룡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회피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쉽게 가정한다. 자리를 피해 도개교를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유감스럽게도 회피적인 사람은 두려움에 찬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파트너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의 소원하고 무덤덤한 행동들 뒤에 숨어 있는 이유들은 안개 속에 싸인 채 진실과는 정반대로 무정하고 무심하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킨다. 회피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뿐,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깊이 염려한다. 257-258


하잔과 셰이버가 최초로 고안한 이 설문 조사(1987)는 애착 유형을 평가하는 데에 널리 이용된다.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응답자는 아래의 세 진술 중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게 된다

'나는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상대방이 종종 뚜렷한 이유도없이 실망스럽거나 이기적으로 나온다. 나는 스스로 타인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용인하면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나는 혼자 지내도 괜찮다.'(회피 애착)

'나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지기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소중히 여길까 하고 걱정한다. 그 때문에 아주 속이 상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불안정 애착)

'나는 비교적 쉽게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진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데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안정 애착) 260


한 사람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번의 실수로 갑자기 그렇게 된다. 상황이 몇 번만 꼬이거나 외부 압박을 어느 정도 받으면 그 역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가 자신을 제정신이라 여길 수 있게 하는 화학적 행운이란 부서지기 쉬우며, 인생이 제대로 시험해보기로 한다면 그 자신이 비극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267-268


옛날에는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이정표에 도달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집, 리넨으로 가득 채운 혼수, 벽난로 위에 진열된 자격증, 또는 소 몇 마리와 얼마만큼의 땅을 소유하는 것이 그런 이정표였다.

그런 뒤 낭만주의 사사의 영향으로 이런 실질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금전을 따지고 계산을 하는 행위가 되었고, 초점이 감정적 특질로 이동했다. 올바른 감정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 상대방이 나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느낌, 다시는 상대 말고는 다른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 중요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278


이제 라비는 낭만주의 개념들이 재난을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의 준비된 마음을 완전히 다른 기준들에 기초한 결과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278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근본에 있어서는 불완전할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 옛 동창생, 인터넷에서 사귄 새로운 친구 등도 우리를 실망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삶의 현실은 우리의 모든 본성을 변형시킨다. 상처 없이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이상에 못 미치는 양육을 받았다. 우리는 설명하기보다 싸우고, 알려주기보다 들볶고, 고민거리를 분석하기보다 초조해하고, 거짓말을 하고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린다.

이렇게 우험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는 와중에 완벽한 인간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낯선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기 전에 그들을 깊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를 내는지 즉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몇 해가 걸릴 수도 잇다). 이론상 그 존재는 처음부터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재앙일 이유는 없다. 진보한 낭만적 비관주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일 수는 없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또 다른 타락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현실에 나 자신을 적응시킬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

정착을 하기 전에 몇 명의 애인을 사귀어보는 것도 이 깨달음을 깊이 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 '제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조금씩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접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견할 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278-280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잇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280


만일 수시로 자신이란 사람이 당황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자기 이해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281


결혼이라는 새장 안에서 집안 살림, 친인척, 청소 분담, 파티, 식료품 같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당연히 '까다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허물이 아니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일 뿐이다. 애개 난감한 것은 결혼이란 제도이지, 관련된 개인들이 아니다. 281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처음에는 '사랑받기'에 대해서만 알고 인생을 시작하낟. 아주 그릇되게도 사랑받는 일이 표준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마치 부모가 항상 온정 어린 마음으로 흔쾌히 그들을 위로해주고 인도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먹여주고 씻겨주는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개념을 성년기까지 갖고 간다.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고 다 받아들여지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마음속 은밀한 구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예측하고, 우리의 심정을 읽어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모든 면엣 더 나아지게 해줄 연인을 그린다. 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281-282


중요한 여러 분야에서 파트너가 우리보다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고 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기를 바라야 하고, 그들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 또한 다른 순간에는 최고의 교사로서 모범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방도 알리라 지레짐작하지 않고 우리의 제안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완벽한 사람만이, 서로 가르친다는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고 일축할 수 있다. 283


낭만주의 결혼관은 '제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짝'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는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283-284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싸움과 갈등은 금세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291-292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293




옮긴이의 말 - 진짜 러브스토리


결혼이 사랑의 결실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결혼 생활의 진정한 동력은 무엇일까? 295


일상의 비끗거림은 맹독으로 작용하기 쉽지만 성찰에 담그면 묘약으로 연금된다.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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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 단위로 생각할 주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모모코, 국가 교육이라는 건 애초에 잘모소디었어. 미국을 좀 봐라. 세계 곳곳엣 전쟁을 벌여 죄 없는 민중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자기들만이 정의라고 하고 있잖아. 그거야말로 국가적인 사상 교육의 결과야. 일본은 그런 미국의 앞잡이 격이라고."

 

"그 섬은 어느 누구의 통치도 받지 않아.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고, 전쟁도 없고, 모두가 자유야. 아니, 국가 같은게 아니라니까. 그냥 커뮤니티야. 사람들의 모임, 어느 나라의 영토에도 속자히 않으려고 지도에 실리는 것도 거부한 거야. (중략) 호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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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모르는 자가 바다를 얕본다. 바다를 얕보는 자, 바다에 데기 마련이었다.  31


은주는 해질녘 놀이터에 익숙한 아이였다. 아이들과 그들의 활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도 익숙했다. 어두운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등에 업은 막냇동생을 재우는 일이 갓 여덟 살이 된 그녀의 일상이었으므로, 다섯 살배기 여동생 영주는 가로등 밑에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두 살 배기 기주는 별사탕 같은 손으로 은주의 머리칼을 마구 잡아당기곤 했다. 은주는 그 따분하고 쓸쓸한 시간을 간절한 기도로 보냈다. 시간이 마구 점프하기를, 하루빨리 어른이 되기를, 그리하여 이 지겨운 집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폐차버스를 개조해서 탁자 몇 개 놓고 막걸리를 파는 왕대폿집도 '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지니네 왕대포'의 여주인 지니는 젓가락장단의 고수였다. '목포의 눈물'을 이난영보다 더 간드러지게 부르는 여자였다. 불망 한복저로기 깃이 다 들릴 만큼 젖가슴이 큰 여자였다. 가슴골로 손이 들어오든, 돈이 들어오든 사내의 것이라면 사양하지 않는 여자였다. 코를 찡긋거리며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어주는 여자였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오리처럼 둥싯둥싯 걷는 여자였다.  18


제 몸 간수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딸에게 제각각 씨가 다른 여동생과 갓난쟁이 남동생을 떠안긴 여자였다. 은주를 낳은 여자였다.

은주는 막내인 기주가 잠들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은주는 지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아마도 도덕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칠판에 적더니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다."

그날 은주는 자신을 꼼꼼하게 평가해봤다. 가진 밑천이 무언지, 잘할 수 있거나,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일이 뭔지, 무엇을 갖춰야 하고 갖출수 있는지. 손바닥만 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자신이 배우가 될 재목이 아님을 인정했다. 귀여운 구석이야 있었지만 지나가는 남자를 기절시킬 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수재가 아니라는 건 성적표를 통해 확인했다. 예술이나 운동에도 재능이 없다는 걸, 수업을 통해 깨우쳤다. 그녀는 음치였고, 몸치였고, 일기 한 줄 그럴싸하게 쓰지 못했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타고난 근성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 정도면 자신의 미래를 믿을 근거로 충분한 것 같았다.은주는 계획을 세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열여덟 살까지 지니네 왕대폿집에 붙어 있을 것. 지니의 빨강 브래지어를 훔쳐다 팔아서라도 고교졸업장을 손에 쥘 것. 취직에 필요한 자격증을 모두 따둘 것. 취직하면 바로 튈 것. 3년 안에 전세방을 얻을 것. 폐차버스를 돌아보지 말 것.  131-132



그의 손은 은주의 뺨으로 날았다. 은주는 이삿짐 사이로 날아가 떨어졌다. ...

그는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자신이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웠다. 무작정 걷다가 도착한 곳이 동네 소줏집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한 남자가 기억났다. 술만 마시면 살림을 뒤엎고 처자식을 죽사발로 만들던 구척 거한. 월남에서 돌아온 용감한 '최상상'. ..

은주 표현에 의하면, 통제가 안 되는 그의 왼손은 힘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모르는 '오랑우탄'이었다. 최상사가 그의 몸에 남긴 유전자였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최상사의 아들임을 상기시키는 저주의 징표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최상사처럼 살지 않았다. 다르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142-143



아이들 말로, 세령은 '전교생의 왕따'였다. 5년째 다니는 미술학원에서도 외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

그의 세계에 속한 세령과 세상에 속한 세령의 모습이 딴판으로 다르다는 것. 그가 아는 세령은 제 엄마 축소판이었다. 고집 세고, 영악하며, 당돌한 계집애. 세상 속 세령은 지나치게 내성적인 아이였다.  147



난 말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참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야. 내 맘대로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고.  289-290



한 집안의 가장 노릇하는 미래가 제 앞에 있었어요. 그것이 삶이긴 하겠지만 과연 나 자신일까, 싶었던 거죠. 나와 내 인생은 일치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거든요.

현수는 자신의 손끝에서 깜박거리는 담뱃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323


몇 달 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처제부부가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선물이라고 사온 것이 칼바도스였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술이라 형부 생각이 나서 샀다고 했다. 그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처제부부가 돌아간 뒤, 은주는 있는 대로 성미를 부렸다. 분노의 몸통은 아니꼬움이었다. '집도 없는 것들이 유럽씩이나 나다니는 정신 나간 행태'에 속이 뒤집혀 있었다.  328



그 시절엔 집안일이 다 내 몫이었어. 동생들 치다꺼리에 집안 청소, 아버지 식사 차려드리는 일. 어머니가 퇴근을 해야 비로소 거기서 해방이 되는 거지. 문제는 내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 일상이 불편해졌다는 거야. 운동을 하고 집에 가는 날마다 죽도록 매를 맞았어.  372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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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전에우리가하는말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생각의나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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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사랑한다는건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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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인 <너를 사랑한다는 건>. 이 책은 원제가 <Kiss & Tell>이다.
그리고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말들>의 원제도 <Kiss & Tell>이다.
다시 말해 같은 저자의 동일한 책인데, 번역자가 달라서 한글 제목이 다를 뿐이다.
물론 내용을 보면 해석자의 개성에 따른 표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맥락은 같다.
번역자의 번역능력을 판단할 정도의 능력은 되지 않기에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러한 점은 빼고서, 내가 읽은 책은 <너를 사랑한다는건>이었다.
그리고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말들>을 손에 넣어 펼쳤는데 같은 내용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표지를 보면 두 권 모두 분명하게 원제를 표현해 놓았는데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약간의 실망을 안고 한 권을 읽었으니 한 권은 일단 보류하자고 생각을 하였다.
어느책의 표현이 좋고를 떠나서 원 저자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다시금 읽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처럼 다른 분들도 정보없이 책을 손에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리 비교를 해보고 한 권만을 읽어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표현하면 읽지 않은 번역자에게 미안한 표현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 권의 책에 한 명의 번역자만이 번역을 해야 하는것일까...개인적인 생각은 '그렇지 않다'이다.

고전을 검색해 보면 여러명의 번역자들의 책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조금 더 낳은 표현이 있고 조금 더 딱딱한 표현이 있다. 흐름을 더 잘 이어가는 번역자의 책이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좋다.
그리고 그렇게 분류하게 되면서 번역자들 스스로도 더 좋은 표현으로 원작에 버금가는 깔끔한 흐름과 원작자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런경우에 원제를 그대로 옮겨 번역하게 되어 독자들이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어있는데. 
위의 책들은 한글 제목이 다르니 직접 책을 펼쳐 보기 전에는 내용을 알기가 힘들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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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사랑일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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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기록 보기


저자의 3부작 소설이라 불리는 책의 두 번째이다.
이 책 역시 원제와 번역서의 제목은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은 잘 어울리기도 한다.
원제의 뜻을 내용에 맞춰 생각해 보면 '낭만적인 사람의 행동 또는 움직임'이라고 하면 좋을까..

번역자의 제목이 3부작 중에서는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든다.
나머지 두 책의 번역자와 이 책의 번역자는 다르다.
개인적으론 3부작 중에 이 책의 번역이 소설적인 성향이 강하게 가미되어 보기에는 좋았다.

원서를 보지 않았기에 누가 잘 번역했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그런 능력도 안되지만), 이 책은 소설책같은 형식이었다. 다른 두 책은 소설형식을 지닌 에세이이다. 
실제 원제를 보면 에세이와 비밀폭로하는 제목이다. 

아무튼 이 책은 소설의 형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면서 저자 특유의 지적인 면을 발휘하고 있다.
재밌게 빠져들고 생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현재의 사랑은 마지막 사랑을 통해 나온다는 표현처럼 우리는 늘 사랑을 통해 배워나가고 더불어 벽을 높이 쌓아가며 자기 방어를 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통하기 어려운 존재일 뿐인지 아니면 대화와 타협으로 애정을 쌓아가는 존재인지는 개개인의 사랑에 대한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책은 광고회사를 다니는 사회 초년생 앨리스가 파티에서 만난 에릭과의 관계를 통해 그들이 겪어가면서 길들여져가고 회피하기도 하고 배워가기도 하고 알아 가기도 하는 장면들을 보며, 우리도 경험했던 또는 경험할 만한 점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저자는 남자와 여자의 심리상태와 인식 차이,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성장 한경에 따른 문화의 차이등을 제 삼자의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며, 저자 특유의 방식인 철학과 인용등을 통해 해설해 나가고 있다.
남자인 저자가 어찌 이리도 양쪽 성의 심리를 꾀뚫어 나갈 수 있는지 매우 놀라웠다. 그에더해서 여자의 심리적인 상태와 상황에 대한 마음을 깨달아가는 시간도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인 경험들을 떠올리고 지금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알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늘 느끼는 것은 상대를 인정해 나갈 수 있는 나의 역량을 돌아보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표현에 따르면 '남녀가 부부로 살아가면서 딱 맞는 부면은 많아도 14%에 그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다른 구조이고, 다른 환경이고, 다른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큰 부면 중에 하나는 상대를 인정해 나가는 것이다.
이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혼이란 단어는 매우 어색한 단어일 것이고, 이혼한 커플은 분명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너무 어려운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을 해본다.

과연 자신의 사랑은 어떠한 스타일인지 책을 통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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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대뜸 '몽상가'란 말이 나왔다.
앨리스는 '관계'라는, 의사 불소통의 우스운 연속을 익히 잘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아왔다. 식품점 통로에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일 때, 통근 열차에서 신문 부고 난을 훑어보는 순간, 청구서 봉투에 붗이려고 달착지근하면서도 쌉싸래한 우표에 침을 바를 때와 같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자신의 반쪽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유치하지만 고집스럽게 잃지 않았다.  7
앨리스는 사랑을 실용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싫었다.  8

세상의 현상[아기가 태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개구리가 알을 낳고, 화산이 분출하고, 정치가들이 거짓말하고]이 만드는 이질적인 거품과 직면해서, 철학자들은 실재하는 물질이냐 정신이냐 선택하도록 끝없이, 물론 매번 독특하게, 권유했다. 
탈레스의 경우 실재는 만물의 근원이며 물질의 기본 원소인 물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잍스는 실재의 본질이 불에 있다고 했다. 플라톤은 이성에,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에, 홉스는 운동에, 헤겔은 정신의 진보에, 쇼펜하우어는 의지에, 보바리 부인은 사랑에, 마르크스는 해방을 향한 계급투쟁에...  18
앨리스는 실재에 대한 보바리 부인의 판단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오직 사랑할 때에만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선언할 수도 있었다.  19

남자가 시간과 공을 들여서 키스하는 것, 남자가 에로틱하고 대단히 섬세하게 입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을 앨리스는 높이 평가했다.  25
행복에 이르는 길에는 갈등이 많다. 계급 차이와 나이 차를 뛰어넘어야 하고, 여자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이들 사이를 반대한다.  40

그 남자의 매력에는 위기도 비켜 가는 듯 보였다. 전형적으로 유혹적인 이탈리아 남자처럼 굴었다. 그 남자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서투르고 모호하게 사랑을 속삭이느라 평생을 허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조용히 자살하고 마는, 창백한 북구 남자들[베르테르 같은]의 접근 방식과는 대조되는 현란함이었다.
하지만 에릭이 자신의 의도를 인정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 효과도 알 것이었다.
"좋아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그 남자가 선수를 쳤다.
"지금 이 시간을 즐기며 웃음을 터뜨리지만. 나를 믿어도 될지 몰라서 신경이 쓰이지요? 당신은 이렇게 생각해요. '이 남자가 진짜 괜찮은 거야, 아님 형편없는 자식이야? 몽땅 다 농담이야, 아님 진지한 구석이 있는거야?'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죠. 다 농담이라면 상관할 바 없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장난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죠. 유혹하는 남자를 믿느냐 마느냐는 여성들의 영원한 고민이지요. 남자를 믿지 못한 채 좋아할 수도 있지만, 또 상처받는 것은 피하고 싶을 테구요."  60

"당신은 아마 나 같은 사람은 몹시 의심하겠지요."
에릭이 말했다.
"어째서죠?"
"지금껏 상처를 받았으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그랬을 걸요. 당신이 고민을 가볍게 치부하는 것뿐이죠. 아무도 당신의 상처를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당신은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깊게 받아들이지요. 그래서 보호막을 만들어야 했을 테구요. 그러느라 힘이 많이 들지요. 잔뜩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깨를 그렇게 움츠리고 있는 거예요."  61
점성술이나 그 밖에 개인의 운명을 예언하는 방법들이 오래전부터 인기 있었던 것을 보면, 이해받고픈 욕구가 사람을 과연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덮어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를 알아준다고 믿고 싶어하고, 자신에 대한 권위적인 설명을 들으면 녹아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62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 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65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성생활의 역사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겠지만, 심리적으로 그것은 복잡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성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과 성행위를 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을 차거나 그 사람에게 채였다는 뜻이었다. 좀 어두운 면에서 보자면 섹스 기교의 역사는 실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66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열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을 사랑하는 연인은 단순히 X가 멋지다고 여기지 않고, 'X처럼 멋진 사람을 찾아냈다니 대단하지 않아?'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에릭이 배터시 다리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구두끈을 맬 때, 앨리스는 '구두끈을 매는 모습이 귀엽잖아?'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귀엽게 구두끈을 매는 사람을 찾아내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74


1856년,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르뷔 드 파리(Revue de Paris)>에 <보바리 부인>을 연재하면서 세계 최초로 '섹스와 쇼핑 소설'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적어도 <보바리 부인>이 섹스와 쇼핑이라는 두 가지 활동을 명확하고 심리학적으로 결합해서 그린 첫 번째 소설임은 분명하다. 당시의 대중은 에마의 간통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의 몰락은 유행하는 의상을 구입하는 데 중독되어 큰 빚을 진 것과 관계가 깊다. 보바리 부인에게 돈을 쓰는 일은 덧문 달린 마차를 탈 때와 같은 위험이 깔린 선정적인 행위였고, 똑같은 쾌감을 주는 일이었다.
플로베르는 섹스와 쇼핑을 인정했을까? '보바리는 바로 나'라고 한 그의 말은 낭만적인 기질에 대한 공감뿐 아니라 소비의 유혹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까? 
산업 자본주의가 진행되던 바로 그 시기에, 보바리 부인이 상업적이고 성적인 오르가슴 때문에 파멸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는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이 칭하는 소비 혁명이 등장하던 때였고, 19세기의 청교도주의가 여성의 자유를 향한 진보적 발전을 방해하던 때였다. 이 소설에 대한 판금 조치는 단순히 성뿐 아니라 쇼핑을 근본적으로 억압하려는 도덕주의적인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윽고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교를 반대하는 주장은 종교적인 위력을 잃기 시작했고, 필요 없는 소비에 반대하는 주장은 한층 열기를 띠었다. [<보바리 부인>이 발표된 지 겨우 11년 후인 1867년에 마르크스의 <자본>이 나왔다.] 필요 없는 쇼핑에 대한 도덕적인 공격과 출산 없는 성교에 대한 도덕적인 공격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이 있다. - 두 가지 다 쾌락을 검열당해왔으며, 특히 모자르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들이 여성의 쾌감을 겸열했다.  100-101
앨리스의 욕망을 끌어내는 견인차는 매달 보는 수많은 잡지인 듯했다. 
그녀는 "잡지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농담을 자주 하여, '자신의 세계가 잡지화'하기를 바라는, 가치 전도된 소망을 표명했다.  101
잡지는 앨리스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의상 난을 보면 자신의 옷장에는 없는 옷 때문에 서글펐고, 여가 난을 보면 자신이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의 햇살 눈부신 장소들이 떠올랐다.  102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했고, 자연히 외부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햇다. 카디건을 사려고 한 것은 혼란스러운 자신을 기왕에 존재하는 스타일에 맞추려 한 시도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상(像)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 했다. 그것은 고상하고돈이 많이 드는 흉내 내기였고, 잠재적으로 무한한 특성을 몇 가지 핵심 사조로 축소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행태에 안주할 수 있었으니까.  104

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인을 받아야만 자라는. 불안전한 구조였다-원하는 걸 얻거나,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었다.  114
"아니면 중국 음식을 먹고 싶어요? 물론 카레도 먹을 수 있어요. 어떡할래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겠지만, 그녀는 문득 에릭에게 "나 좀 안아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피자나 카레, 국수는 그만두고 [매우 이성적이지 않지만] '슬퍼서'라거나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울고 싶었다. 허약해진 기분이 엄습해서, 세상의 요구에 적절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을 바랐다. 다시 마음을 수습할 때까지 누군가의 품에 조용히 안기고 싶었다.
"어. 저기 있죠, 못 먹겠어요.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아무 말 안 해도, 그 남자가 바라보면서 "그래요, 알아요."라고 속삭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115

에릭이 동양에 대해 말할 때 입에 올리는 단어가 가벼움, 질서, 정연함, 깔끔함, 여백들이었다.
"세상은 너무 번잡하고 복잡해요. 내가 동양의 미학을 좋아하는 것은 그 여백, 그리고 일종의 합리성 때문 같아요. 어지러운 사무실에서 집에 돌아오면 오아시스에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아파트를 그렇게 꾸몄어요..."  121


그 남자는 삶을 기능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인생도 아파트처럼 잘 배열되기를 바랐다- 사교 생활, 재정 문제, 연애와 섹스가 모두 조화롭고 합리적이기를 원했다.
그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정돈된 상태인 것 같지만, 사실 남보다 더 무질서를 두려워하고 의식한다고 볼 수 있었다.  123
그녀는 실내 장식에 대해 기능보다는 감정을 주요시했기에, 물건의 가치도 얼마나 제 기능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억이 담겨 있느냐로 판단했다. 
하트 모양 쿠션은 부모가 이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그때의 이탈리아 여행을 앨리스는 정겨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127
에릭은 여러 면에서 어른스러웠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곧 완전무결함-을 타인이게 기대한다는 점에서는 이상하게 어린아이 같았다. 그 남자는 자기 능력으로 타인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의 잘못을 용서하는 부모와 같은 태도를 취할 줄 몰랐다.  130
에릭은 강화 숲에서 벌거벗은 채 뛰노는 것을 좋아할지는 몰라도, 감정의 벌거숭이가 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다급하게 상징적인 '가운'을 찾아 헤맸다. 
자아는 육체에 갇혀 있으므로, 감정의 수줍음을 알아보고 옷을 벗기는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감정을 잘 벗지 못하는 살마은 옷을 잘 벗지 못하는 사람만큼 많지만.  135
우리는 건축가들을 낭만파와 지성파로 나눌 수 있다. 지성파 건축가는 건물의 무게를 여러 기둥[많을수록 좋다]에 분산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아,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기둥들이 무너진 기둥의 몫을 나누어 지도록 한다.


그 남자에게는 개입하기를 꺼리는 구석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게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하고 있나?' '다음 주말에 우리는 무엇을 할까?' 라고 자문하고 관계 속의 자기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망설였다.  138
그 남자는 앨리스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는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거나 등이 아파 죽겠다고 말했다. 이런 행동 뒤에 있을지 모르는 진짜 아픔을 인정하기보다는 그쪽이 편했다.  140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서는 나쁠 수가 있다-사랑이란 일부분은 빋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143-144

"만난 지 얼마나 됐는데?"
"이런 세상에, 벌써 몇 달이나 되었네. 6개월쯤 됐나봐."
"섹시해?"
"응, 그런 것 같아."
"어떤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냐고?"
"그래, 알잖아."
"사실은 모르겠어."
"모르다니 무슨 말이야? 너 그남자랑 사귀잖아."
"글쎄, 그이는 .....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그 사람은 ..... 그 사람은 좀 이상해."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예상치 않게 이상하다는 말이 흘러나온 데에 웃음을 터뜨렸다.  145-146
에릭은 내놓고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을 나폴레옹처럼 생각하지도 않았고, 샤워 캡을 쓰고 잠자리에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행동에 왠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앨리스는 그 남자의 반응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타인을 상대할 때, 대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고 행동한다. 
'내가 X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이 사람은 Y라는 반응을 보이겠지'라는 전제하에 움직이는 행동의 틀이다. 이 틀이 웬만큼 복잡한 상황까지 아우를 수있을 만큼 풍성해지면,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고 다소 가설적인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146
그녀는 줄곧 그 남자의 특성을 지도로 그렸고, 그 남자의 성격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마다 그려온 지도들을 재검토해야 했다. 그녀가 이런 혼란상을 최선의 경우로 해석하려고 애쓰는 의지 내지 힘이 바로 사랑의 증거였다.  151
그 남자는 멀리서는 잘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백만 개나 되는 파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154

어떤 사람이 비서한테는 친절하지만 배우자에게는 야수처럼 굴 수 있고, 수학은 잘하지만 감정 처리에는 무능하며, 수플레는 잘 만들지만 양고기에는 젬병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야생동물 보호 모임에 가입하여 사회적인 책임감을 덜면서도, 히틀러가 어린이와 동물을 사랑했다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백설공주>를 보면서 우는 자신을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여기지만, 독재자 이디 아민이 그 영화를 제일 좋아했다는 말은 싫다. 독일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연합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하러 들어갔을 때 독일 친위대 장교들의 소지품에 괴테의 책들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편치 않다. 단지 <시와 진실>에 나오는 구절에 감명 받았다는 이유로자신은 대량 학살범이 될 잠재성을 벗어버렸다고 생각하는 편이 유쾌하지 않은가?  155-156
'에릭이 진짜 성미 고약한 자식이라면, 자기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겠어?' 그녀는, 자기 결점을 아는 것은 그 결점이 없는 것과 같다고 믿는 오류를 범했다. '진짜 나쁜 사람이라면 자기가 나쁜 사람인 줄 모를 거야. 에릭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정말 그런 사람일 리가 없잖아?'
남들이 싫어할 만한 점을 어느정도 자각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을 대부분 피할 줄 안다.  160
러시아 심리학자 파블로프 반응하도록 훈련하던 신호에 충분한 혼란을 주면 개가 몸을 떨고 대소변을 보면서 신경증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밝혔다. 종을 울리고 먹이를 주다가 갑자기 종을 울리고 빈 접시를 주면, 개는 몇 번 같은 경험을 한 끝에 빈 접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종이 울리고 나서 때로는 먹이가 나오고 때로는 안 나오는 식으로 불규칙하게 진행되면, 개는 이제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고, 음식과 빈 접시의 연관선을 파악할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 개는 천천히 관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161

사랑의 영속성 시나리오는 현수교에 비유할 수도 있다. 다릿 기둥은 사랑의 확인을 상징하고, 냉잠한 기간은 기둥 사이에 몇 미터씩 늘어진 케이블이다. 머리에 하는 키스, 애정 어린 눈길은 다릿기둥이고, 말 없는 식사, 응답 없는 전화는 기둥 사이의 케이블이다. 
사람마다 확인이 필요한 정도가 다르고, 따라서 애인 관계에 개입된 케이블의 길이도 각각 다르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167


케이블이 얼마나 길게 늘어질 수 있느냐는, 애인의 성격과 내력에 좌우될 터이다. 자기가 사랑스럽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상대의 기둥 없이도 케이블을 수백미터 늘어뜨릴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하지만 앨리스의 경우, 기둥이 훨씬 촘촘히 박혀야 했다. 그녀의 기본 감정은 항상 '당신이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겠어?'였기 때문이다.  168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176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177

에릭은 책을 많이 읽긴 하지만, 그 동기가 호기심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남자는 세상사를 알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사와 부대끼는 것을 피하고자 책을 읽었으니까, 그 남자는 겁이 나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과 관계된 책은 외면하는 식으로, 현실과 맥이 닿는 것을 피했다.  242
책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처럼 직접 말을 걸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말을 걸어주는' 듯한 책에 익숙하다.  243

흔히 아픔과 고민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예컨대 우리는 탁자 다리에 발가락을 찧으면 비로소 발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발가락이든 더 큰일이든 문제가 생기거나 아플 때에만 따로 생각하게 된다. 심리 과정을 그려보면 이렇다.


쉽게 말하면 앞의 것은 지성인의 주장이고, 뒤의 것은 자연주의자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햄릿은 문제가 생겼기에 그렇게 생각이 많았는가? 아니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겼는가?
지성인들은 햄릿의 생각이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문제에 생각이 비롯되었다고 대답할 터이다.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책이라는 맹신-'생각이 모든 것을 위로한다'는 샹포르의 금언에 대한 믿음-을 두러내는 주장이다.
한편 자연주의자라면, 생각은 문제를 해결할 방책인 체하지만 실은 그것이 바로 문제를 일으키는 질병이라고 볼 터이다. 생각은 심리적인 우울증의 한 형태였다-햄릿은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고통을 느꼈다. 자연주의자라면 그에게 정신 활동을 극소화해야만, 이성이 망가뜨린 자연스런 단숨함과 편안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충고할 터였다.  267-268
에릭의 정서적 자연주의는 상식주의의 일종으로 낮춰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단순함을 지혜의 핵심으로, 진리는 '당연하기에' 분석할 수 없는 것으로 축소하는 경향이다. '삽을 삽이라고 한다'는 기치하에 상식주의자들은 정원용 연장 전체를 삽이라고 불렀다. 그것들을 다 구별하려면 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간단명료화'라는 이름을 단 축소화였다. 
왜 전쟁이 일어나고, 왜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거나 빠져나오는지, 왜 그렇게 복잡한 일들이 매일 되풀이되는지 물으면, 상식주의자들은 단순히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땜누이라고 답할 것이다. 상식주의에서는 복잡성이 아니라 과도한 단순함과 순전한 명백함을 바탕으로, '사유 너머'의 영역을 표시한다. 에릭은 앨리스와 대화하고 싶지 않으면, 둘 사이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가 아니라 너무 뻔한 일이라서 숨 돌릴 가치도 없다고 자신에게 둘러댔다. 
눈에 보이게 굶주리고, 집이 없거나 한쪽 다리를 잃은 게 아니라면, 다른 고민은 본인이 지어낸 것이며 따라서 따지고 들 가치가 없다는 게 인간 심리에 대한 그 남자의 관점이었다. 바베이도스에 도착한 다음 날, 앨리스가 읽는 책을 가리켜 그 남자가 '자기관찰을 빙자한 제멋대로 개똥철학'이라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들이 휴가 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묘한 것은, 에릭이 그녀의 독서 취향을 비난한 까닭은 잘난 척하는 문체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책이 지나친 쾌락, 용납할 수 없는 쾌락의 일종으로서 다양한 자아도취를 유도하기 대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스쿠버 다이빙니나 피냐 콜라다를 마시는 일은 제멋대로인 자기 관찰과 관계가 없을까? 그것은 자아도취적으로 자신을 즐기는 일이고, 자위행위[늘 떳떳하지 못한 성교의 사촌뻘]의 한 형태이고, 자신에 대한 종교적인 경멸을 고대로부터 내포하고 있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을 구분하면서,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시를 만들엇다고 주장했다.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신을 경멸하는 것은 지상의 도시, 신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경멸하는 것은 천상의 도시.'-자아도취가 결여된 '나는 가증스럽다'라는 문구를 쓰면서 파스칼이 차용한 주제].  270-271

여자들은 까탈을 부리도록 타고났다는 오랜 통념에 근거하여, 여자가 까탈을 부리는 원인을 제공하는 남자들은 면죄부를 얻었다.  274

여행은 흥미롭게도 지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활동으로 읽을 수 있다-외적인 여정은 내적으로 욕망하는 여정의 은유다. 네팔에서 히말라야를 오르고, 카리브 해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로키 산맥에서 스키를 타고, 오스츠레일리아에서 파도타기하고, 이러한 것들은 이국적이고 유익하지만, 훨씬 심오한 동기를 가리는 시시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 동기란 여행을 예약하는 자신이 이런 활동을 즐기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여행사는 비행기 표와 호텔 방 예약, 보험 가입 같은 사소한 일을 처리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드르이 기본 업무는 여행 상품을 사면 기적처럼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게 되리라는 미묘한 환상에 근거한다. '나'가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여행이 '나'를 바꿔주리라는 생각이다.  288-289

리넨 드레스를 산 일이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나, 앨리스는 고전적인 소비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가 어렵게 번 80파운드를 드레스와 수영복에 쏟아 부으면서 원했던 것은 꼴같잖게 비싼 옷이 아니었다. 냉소적이고 재능 없는 디자이너가 만들고 패션 잡지가 과대 선전해준 옷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그걸 입은 사람의 존재였다 - 우스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델이 입은 옷이 아니라 모델 자체였다.  292-293
그리스어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이다.  293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긴ㄷ. 그가 보는 번화가나 우체국 창구의 정상적인 풍경, 정상적인 저녁 뉴스와 세금 환급 신청서 양식, 친구와 인사하고 침구를 펴고 버터 빵을 먹고 집안을 청소하고 가구를 고르고 음식을 주문하고 차 안에 카세트를 배열하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여행지를 결정하고 전화를 끊고 토요일 계획을 짜는 정상적인 방식들.  298

비트겐슈타인(오스트리아 태생인 영국 철학자)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잇는 사람이 된다. 그드르이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318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우리에게 적당한 자아상을 반사 해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해서. 에릭은 앨리스에게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 어떻게 그것을 알려주는가? 모든 게 머릿속 생각일 뿐인지 실제로도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 남자와 있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앨리스는 돈을 함부로 쓰고, 지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데 매달리고, 타인을 귀찮게 하는 의타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319

"많은 사람이 단지 혼자 있기 두려워서 결혼하는 것 같아요."  323
대화의 흐름을 나무의 형태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가지가 매우 다르게 뻗어갈 수 있다.  325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라메트리(1709~1751)가 1748년 자서 <인간기계론>을 출판하자 교육받은 대중은 분노했다. 라메트리는 인간은 실제로는 복잡한 기계일 뿐이라고 야만스럽게 [당시는 아직 종교적인 시대였으니] 주장했다. 출입문, 배수로, 톱니, 도관, 원자 등드의 집합체 이상 아니라는 것이었다-파충류나 아메바, 항해용 정밀시계가 그렇듯이.
'인간은 기계이며, 전 우주는 다양하게 변형되는 단 한 가지 재료로 되어 있다.'라고 라메트리는 주장했다. 물론 이 재료는 초라한 물질이다. 이것은 이원론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은 물체와 영호으로 구성된다는 이원론은 플라톤 이후 별다른 이견없이 군림해왔다.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한지는 명백했다. 인간에게 생명과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은 영혼이었다. 영혼이 없다면 인간은 단순한 기계가 되어, 주주 총회에서 치명적인 심장 발작을 일으킬 경우 영원한 죽음을 맞을 터였다. 
그러면 이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1969년 처음으로 인간을 태우고 달에 착륙한 로켓의 꼭대기에 달린 우주선과 같았다. 우주선은 거대한 아폴로 2호의 세 부분 중 한 부분에 불과했다. 아폴로의 총 길이는 111미터였지만, 8일간의 임무 수행을 마치고 우주 비행사들이 귀환했을 때는 로켓의 꼭대기 부부느 곧 높이가 3미터 조금 넘는, 작은 원뿔만 가지고 왔다. 나머지 부분은 우주 비행사들을 궤도로 쏘아 올리는 기능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활동성이 있는 부분은 거기 탄 우주 비행사들이 간신히 서 있을 정도 크기밖에 안 된 궤도선이었다.


영혼 이론가들은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란 크지만 쓸모없는 몸과 작지만 비할 데 없이 귀한 영혼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몸은 로켓과 같아서, 영혼을 움직이게 하고 잡곡 빵과 더블 치즈버거를 소비함으로써 발사됐다. 몸이 매우 인상적인 경우도 있지만[그래도 키가 111미터나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결국에는 지상에서 소명을 수행하는 데에 불필요한 요소가 됐다. 수십년 인생 여행을 한 끝에는 작은 영혼-우주선만 남을 테니까. 영혼은 초강력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철학자들 대부분은 인간이 영원한 로켓-육체로 나뉜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가치 있는 우주선에 누가 혹은 무엇이 앉아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우주선에 있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테지만, 그건 정확히 무엇으로 구성 될까?
프라톤은 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철학의 새 장을 열고, 영혼을 이상적인 우주선으로 보는 선례를 남겼다. 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우주선을 신에게 속ㅇ한 것, 천국을 열망하는 것으로 보았다-이것은 그 후 몇 개기 동안 우주 비행사들과 민간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계몽주의가 나타나면서 신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신학적인 면에서 영혼의 역할 역시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영혼인데 신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면, 영혼은 무엇에 바쳐져야 하나?
물론 영혼-우주선에 걔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과학자들과 라메트리처럼 콧대 높은 철학자들은 유물론자로서 충성심을 발휘해, 영혼에 대한 논의를 격하하기로 불퉁스럽게 합의했다. 영혼-우주선을 채우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신비주의 사상가들과 순진한 시인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들은 곧 영혼-우주선에 감정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영혼은 인간이면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이었지만 이제 사람에 따라 더 많이, 더 적게 갖는 것이 되었다-얼마나 느끼느냐에 따라서. 오페라 공연 중에 코를 풀고 트림을 하며 시를 멸시하는 천박한 사람들은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예전에는 가장 비찬한 얼간이만 듣던 말이었다. '영혼이 없는 사람'이란 미술, 문학, 음악 같은 분야에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을 의미했다. 이는 극작가 존 드라이든[1631-1700]이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현대와 고대를 망라해서 그는 가장 크고 이해심 깊은 영혼을 지닌 시인이었다.'라고 쓴 까닭을 설명해준다. 키츠에 따르면 영혼에는 나름의 자양분[여기서는 더블 치즈버거를 말하는 게 아니다]이 있다. 그 자신과 출판사에게 편리하게도 이것은 시의 형식을 타고 왔다. '시는 위대하고 겸손하여라, 인간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것....'
성적(性的)으로 보면, 영혼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몸-로켓 때문에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로 보이게 되었다-침실에서는 그 두가지가 똑같이 한숨으로 마무리 지을지 모르지만, 매릴린 먼로(1926-1962)는 영화 산업의 도덕적 붕괴를 보여주고자, 영혼에 대한 계몽주의 이후의 견해를 천명하며 이런 말을 했다. 할리우드는 '당신의 키스에 천 달러를 내고,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50센트를 내는 곳입니다.'  328-332
낭만주의 시대에 영혼의 개념이 감정과 연결되었다면, 감정은 곧 쾌감보다는 아픈 감정으로 통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강렬한 경험이라 하면, 행복해서 샤워를 하면서 휘파람을 불거나 정원에서 노래하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곧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335
미국인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1863-1952)는, 아픔을 통해서만 영혼이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혼 역시 처녀성이 있어, 피를 흘려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시릴 코널리는 고통을 겪는 것이 작품 탄생의 필요조건 [영웅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만 아니었으면 보들레르나 랭보가 되고 싶었을 거라고 말했다. 예술가들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이겨내고 창작하는게 아니라, 바로 고통을 겪기 때문에 창작한다는 가설이었다.  336


옮기고나서
사랑은 소설이란 장르가 시작될 때부터 소설의 제재나 주제가 되었다. 공상 과학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까지도 모든 이야기에는 등장인물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으면 이런저런 감정이 얽히며 관계가 형성되고, 거기서 사랑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세상의 작가들은 사랑의 여러 면을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통해서 보여주지만, 알랭 드 보통처럼 독특한 태도로 사랑이란 주제에 접근하는 작가는 드물 듯하다.  405
작가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개인의 성장 배경에 따른 문화의 차이 등을 때로 철학이론 등을 동원하며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담아 펼친다.  406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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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작품 몇 권을 읽고 그 중에 <불안(Status Anwiety)>이란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 후에 저자의 작품들을 검색하여 여러권을 더 읽고 있다.
물론 한꺼번에 읽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여건상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ㅈ자의 작품중에 한국에 번역되어 들어온 모든 작품에 대한 검색과 도서관에 책 내용들을 훑는 작업은 하였다.
저자의 사랑에 관한 소설형식의 3부작중 첫 번째 작품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를 읽었었고, 두번째 작품(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이 아닌 세번째 작품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여러 책들을 살펴보면서 이 책을 먼저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책 내용에 대해 소개 내용을 읽은 것도 아니다. 다만 중간쯤에 실제 인물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한 생각으로 지금의 부인과의 사랑에 대한 관찰과 생각을 담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읽었다.
물론 이때까지는 한국말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그러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원서의 제목을 보고는 한국엔 제목부터가 역시 다르구나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대치와 기대방향에 대해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내생각 뿐일지는 모르나..
원제는 <Kiss & Tell>이다. 언뜻보면 키스와 대화정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폭로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헤어진 연인의 과거를 공개함'이라고 표현할 수 도 있을 듯하다. 직역을 하는것보다는 사람들에게(여기서 독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을 주의하기 바람) 먹히는 제목이 들어와야 하는건 당연한것일 지도 모르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불안>에서 원제를 먼저 확인하고 책을 보았기에 기대치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았었는데, 이 번 책은 그러지 못했다. 이건 분명 나의 잘못이다.
저자의 내용에 매력을 느꼈고, 사진을 먼저 보면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으니..^^

저자의 개인사를 모르기에 지금의 책이 가족인지 아니면 정말 지나간 연인과의 내용인지를 잘 모르겠으나, 실제 사진이 들어가 있기에 놀랍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출판이 가능했을까.. 상대에게 동의를 구할때 동의해 줄까.. 아니 실제 지금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쉽게 동의를 할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출판이 되었다고 해도 사회적인 파장이 꽤나 클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헤어진 이전 연인에게서 '너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사람이 그렇게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자신에게 강박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말이야.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밖에 사랑할 수 없어. 나도 남자들이 대부분 소통의 실마리를 잘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의 무능력은 짜증날 정도로 특별했어. 너는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떤 것이든 전혀 존중하지 않았어. 모든 것에 늘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로 접근했지.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 자기 귓불보다 멀리 있는 어떤 것에도 공감을 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나는 너무 긴 시간을 낭비했어...'(11)이란 내용의 편지를 통해 여성에게 더욱 다가가기 위해 '이사벨'과의 시간들을 통해 관찰해가면서 알아가려 많은 대화와 자신의 생각들을 서술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전기 작품의 형식을 빌어와 그 작품들에 들어갈 내용들과 저자들의 생각들을 이사벨의 전기형식 작품으로 변환해 나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많은 지식과 사유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즐거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는것이 저자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정말 저정도 까지 연인에게 질문들을 해도 괜찮은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알아가려면 차라리 저정도의 질문을 자신의 의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던지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읽어 나간다.
나 또한 남자 이기에 여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고 생각을 한다. 관련책들도 여러권 읽어보았으나 그것만으로 나와 다른 구조를 가진 부류를 이해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직접 겪어봐도 아직 그들에 관해 30%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언제쯤 70%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정도면 그들과 큰 마찰 없이 긴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헤어짐을 예시하면서 끝난다. 완전 공감한다. 
저정도까지 질문하는 건 넘어선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맞은건지, 아니면 이사벨이 다른 복합적인 이유들을 더 많이 가진건지 모르지만 헤어짐을 마주하면서 내용이 끝이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서도 여자에 대해 지식이나 지혜가 크게 늘어난것 같지는 않다. 책의 원제처럼 폭로를 통해 저자는 어떠한 생각들을 하였으며 그 생각의 부분 부분 들이 마음에 닿았기는 했다.
부러운것은 이들의 사고방식이 우리내 보다는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배워나가는데는 도움을 많이 받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여성들이 한숨을 쉬지 않을까..하는 갑작스러운 의문이 든다.
'이런 내용을 보고도 여자에 대해 모르다니'하면서 한 숨을 쉬는 그림이 그려지는건 혼자만의 우려일까..??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무디다' , '눈치없다' , '너무 모른다' 이러한 표현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생각이 드는걸까.. 어쩌면 앞서 언급한 저자의 옛 연인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 나에게 적용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더욱 열심히 보려 한 것일지도.. 나의 무의식이 이 책을 먼저 읽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나의 무의식은 다 읽고 난 지금 나에게 어느 정도나 실망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이해해보고, 나 자신을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에 푹 담가보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린 시절과 꿈을 통해 어떤 사람을 따라가보고, 라파엘전파에서부터 과일 맛이 나는 셔벗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향을 추적해본다는 생각. 나 스스로 전기를 써보면 어떨까?  18
오직 위인만이 전기의 적합한 소재가 될 수 잇다는 가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200년 전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 곤혹스러운 만장일치를 잠깐 흔들었지만 이내 무시되고 말았다. 존슨 박사는 '적절하고 충실한 이야기에 담아낼 가치가 없는 삶이란 없다. 모든 사라에게는 그 자신과 똑같은 조건에 잇는 사람이 아주 많으며, 그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실수와 실패, 회피와 임기응변은 직접적이고 확실한 쓸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태란 장식과 위장을 떼어내고 생각하면 매우 균일하여, 인류에게 공통된 것을 제외할 경우 좋든 나쁘든 다른 자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

나는 유년기를 선형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전기를 시작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내 전기가 철저하기를 바랐지만, 그럼에도 여기에는 과거만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고 또 현재로부터 나타나는 특정한 방식이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3
절대 인생에 대한 관점(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에번스턴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오래전 살았던 한 아일랜드인을 보는 관점) 자체를 쓰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오히려 편견이나 엉성한 학식에서 나온 관점으로 인한 왜곡으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운 상태에서 삶 자체를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단지 하나의 삶만 있다면, 저닉 작가들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에고와 미뢰의 쓸데없는 간섭에서 멀리 떨어져, 그 삶이 조심스럽게 편견 없이 재구축되도록 하는것이 핵심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다.  39
전기의 고상함을 인간적 애착이라는 저열한 영역과 절대 뒤섞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응을 해야 한다면, 애착과 전기를 쓰고자 하는 충동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즉 다른 사람을 완벽히 알고 싶은 충동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애착이 전기를 써나가는 다소간 의식적인 과정(날짜, 특징, 좋아하는 세탁 주기와 간식 등을 파악해 나아가는 것)을 포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전기는 작가와 대상 사이의 다소간 의식적인 감정적 관계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책을 마무리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프로이트는 '전기 작가들은 그들의 주인공에게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고착되어 있다. 많은 경우 그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그 주인공을 선택한 것은-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유로-처음부터 그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뒤에 그들으 ㄴ이상화라는 과제에 에너지를 쏟아, 주인공의 인상에서 개별적인 특징들을 지워버린다. 그 주인공이 평생에 걸쳐 내적이고 외적인 저항들과 싸워온 흔적들을 매끄럽게 다듬어버리고, 그에게 인간적 약점이나 불완전성의 자취를 용납하지 않는다.'  65-66

특정한 벽장이나 다락방 때문에 예정된 경로에서 벗어나 옆길로 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도대체 그녀의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바람을 피웠냐고 이사벨에게 물을 때 옆길로 새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그런 호기심은 (흔히 그렇듯이, 또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듯이) 나 자신의 삶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내고, 남들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더 선명하게 도드라질 어떤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느 ㄴ사람이나 전기에 대한 관심 가운데 그 근본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친구나 나폴레옹이나 베르디나 W.H. 오든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문제, 따라서 간접적으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하는 문제의 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난 부분이 얼마나 될까?  89
자, 그럼 댁의 인생을 갖고 뭘 하고 계시는지 자세히 이야기 좀 해주실래요?  92

누군가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재촉하는 것은 총을 들이대고 재채기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정한 기억은 재채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25
실제로 과거를 기억할 때는 그런 것들과는 달리 손에 분명히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이 우리를 쫓아다닌다. 심지어 어떤 사건 같은 확실한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잇다. 이야기는 쏙 빠져버리고, 기분과 분위기만 기억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거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이사벨과 내가 목요일 퇴근 후 파링던 로드 근처 커피숍에 있을 때 그녀는 바로 그런 예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둘 다 사무실에서 종일 수다를 떨고 난 날이면 찾아오곤 하는 침묵의 분위기에 싸여 있있지만, 나는 그녀의 침묵의 길이가 문제의 신호일 수도 잇다는 느낌이 들어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가 대답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 있잖아, 이런저런 것들.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됐어."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마 잠 다음으로 그것이 가장 인기 있는 소일거리일 것이다.  132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 한 두 가지 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서 전개되는 혼란스러운 과정을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133
".. 지금 나는 사실 별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냥 구름 속에 파뭇혀 있었을 뿐이야."  136

남들에 대한 호기심은 자기 성찰을 피해가고자 할 때 애용하는 방법이다. 내적인 투쟁을 덮어버리고 인용을 할 권리나 편지 내용을 사용할 허가를 얻기 위한 싸움을 앞세울 수 있는 것이다.  150
섹스가 친밀성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사람이 친밀해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상징은 오히려 자신이 상징하는 상태의 실현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서로 알아가는 더 힘든 과정을 피하는 방법으로 상대와 잘 수도 있으니까. 마치 책을 읽는 일을 면하기 위해 책을 사는 것처럼.
"그럼 행복해지려면 뭔 해야 한다는거야?"
"나도전문가는 아니야. 그냥 상대와 미리 친밀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 같이 자버리는 게 반드시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얘기일 뿐이야."
"예를 들어 어떤 경험?"
"있잖아, 질투를 하고, 욕을 하고, 교활한 면을 보여주고, 토하고, 코를 풀고, 발톱을 깎고."
내가 둔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네 발가락에 무슨...?"
"아냐, 아무 문제 없어."
"그런데?"
"뭐, 발톱을 깎는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건 좀 사적인 거니까. 발톱이 발에 붙어 있으면 그건 괜찮아. 하지만 일단 떨어져 나가면 그건 쓰레기잖아. 예를 들어, 사람 머리에 난 머리카락을 보는 것하고 욕조에 붙어 잇는 머맅카락을 보는 건 다르잖아."
"그런데 왜 발톱을 깎는 게 섹스를 하는 것보다 더 친밀한 거야?"
"섹스를 하는 상대는 그 앞에서 발톱을 깎아도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일 뿐이야."  153
삶의 사적인 부분은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실제 이상으로 과시하려고 한다.  155
하지 못하는 키스가 하는 키스보다 더 흥미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190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자체의 특질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 상태와 더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94

공감의 핵심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 행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은 비뚤어진 시각 때문에 대체로 왜곡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운이 좋고 민첩하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적어도 잠시라도 우리의 상대성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197

이사벨은 그 무렵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를 다 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걸작이 매우 감동적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교환했다. 나는 어떤 책도 이 책만큼 죽음이라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 적이 없다는 그녀의 의견에 공감했지만, 그럼에도 나느 ㄴ그녀가 이반 일리치를, 그리고 그가 살았던 집과 그의 부인이나 가족의 얼굴을 어떻게 상상했느냐 하는 괴상한 질문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반적인 문학적 토론을 넘어, 단지 도덕성, 상징, 파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사람들, 또 방을 어떻게 보았느냐, 그런 무대용 소도구들이 너의 삶의 어디에서 유래했느냐 하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206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주파수가 다르고, 주어진 환경에서 눈여겨보는 것도 다르다.  208
사람들이 상황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런 뒤에 해석보다는 상황을 놓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방식을 증후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성적(rational)'이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이 말은 이사벨의 사전에서는 이런 뜻이고 내 사전에서는 저런 뜻이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매우 '이성적'이라고 칭찬하면 그녀는 그 말이 욕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녀의 사전에는
'형용사 
1. 따분하고 현학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2. 감정에 대립되며, 전통적인 가족의 이분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여동생은 감정적인 사람이고,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3. 가이가 그녀에게 한 적이 있는 욕이다.'
그러나 내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내 사전에서 정의된 항목이다.
'형용사
1. 고귀한 정신에게 바치는 찬사.
2. 조지 엘리엇, 마리퀴리, 버지니아 울프는 이성적이다.
3. 감정과 양립하고, 감정을 고양할 수 있다.'
이런 차이에서 발생한 작은 갈등은 하나의 사건이 서로 다른 설명을 낳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209-210

존슨박사는 '우리 모두 똑같은 동기에 자극을 받고, 똑같은 오류에 속고 희망에 힘을 얻고, 위험에 막히고, 욕망에 휩쓸리고, 쾌락의 유혹을 받는다.'
존슨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똑같은 단일한 가족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인간 공동체로 가는 여권을 기초로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당신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내 베개 밑에서 비슷한 동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똑같은 경험을 발견하여 당신의 경험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사랑 때문에 얼마아 괴로웠는지 안다. 나 또한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저녁을 견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질투를 인정한다. 나 또한 나의 부족한 면으로 인해 겪은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32-233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서 느낄 만한 것을 생각하여 그들이 영향을 받는 방식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 형제가 고문을 받고 있다 해도, 우리 자신이 편안하다면 우리는 그가 겪는 고통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오직 상상에 의해서만 그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상상에 의해 우리 자신을 그의 상황에 집어넣고 우리 자신이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상상으로 남들과 함게 고통을 겪는 것의 미덕에도 불구하고, 베개 이론의 우울한 전제는 남들의 경험을 진정으로 상상하려면 충분한 경험이 축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축적된 경험만으로는 절대 우리 자신을 넘어선 곳에서 만나는 감정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전제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233
사람들은 자신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우리가 그들의 경험이 어떤 것이지 알아야 한다는 가정 때문에 자기 경험의 본질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삐치기 잘하는 사람은 말을 하거나 비유를 들거나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 이전의 더 친밀한 수준의 소통이 좌절되었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직관이 고장이 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목청으 ㄹ가다듬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의 외로움을 일깨울 위험이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직접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235

누구나 감추는 것이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면을 알면 그 후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 뒤에는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이 알려지면 우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놓여 있다. 그래서 속임수를 쓰는 바람에 이따금씩 비밀이 드러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게 되면 부모 앞에 선 아이처럼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투명성에 대한 공포, 다른 사람이 선태긔 여지를 주지 않고 우리의 비밀을 알아낼 것이라는 공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공개를 좌우하는 주인이라는 생각, 우리가 남들보다 우리 자신을 잘 안다는 생각 때무넹 점차 줄어들게 된다.  240-241

어떤 사람의 행동이 중요할수록 그 사람의 하찮은 것들도 흥미를 자아낸다.  301
인간은 세 가지 전기적 범주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i] 특별하지만 평범한 일(의자에 앉거나, 자식을 낳거나)을 하는 것.
[ii]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살인을 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을 하는 것.
[iii] 평범하면서 평범한 일(포테이토칩을 먹거나 우표를 사거나)을 하는 것.  302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노부인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한쪽 여자의 남편에게 줄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래리한테 뭘 해줄 거야?"
"모르겠어. 올해는 아무 생각이 안 떠오르네."
"책을 사주는 게 어때?"
"그럼 무슨 얘기가 나올지 뻔해."
"뭐라고 하는데?"
"이럴거야. '내가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것도 모자라, 술꾼으로 까지 만들려는 거야?'"
굳이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하게 아는 것. 이것이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잘 안다는 완벽한 상징 아닐까? 가끔 오랜 결혼 생활의 우울한 특징으로, 바람을 피우거나 도예 강좌에 등록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조짐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시작한 말을 정확하게 마무리하는 드문 기술에는 큰 지혜가 담겨 있다.  316

"나도 왜 내가 머리를 올리지 않는지 모르겠어. 어쩌면 올려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건 내가 왜 치즈를 정육면체로 자르는지, 내 우편번호의 끝자리가 무엇인지, 나무 빗을 어디서 샀는지, 직장까지 거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내 자명종에 어떤 배터리가 들어가는지, 왜 나는 화장실에서 뭘 못 읽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야. 낳산테는 나도 이해 못하는 게 많아. 솔직히 말하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많고. 왜 너한테는 모든 게 그렇게 분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마치 사람들의 삶이 그 말도 안 되는 전기 안에 요약 정리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나한테는 나 자신도 납득할 수 없고 당연히 너한테도 납득이 안 될 괴상한 것들이 가득해. 나도 독서를 더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TV 보는 게 더 편해. 나한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툴툴거리는 사람들이 한번 달려들어보고 싶다는 의욕을 더 자극해. 나는 동정심을 발휘하고 싶지만, 행복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만, 차가 더 편해. 아기를 낳고 싶지만, 어머니가 되는 게 무서워. 내 인생에서 무너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8시 15분이 지났기 때문에 이러다 지하철을 놓치는 게 아닌가 안달하고 있을 뿐이야."  330-331


옮기고 나서
사람들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공감하게 되고, 공감하면 사랑하게 되느 ㄴ것일까? 다시 말해서, 아는 만큼 공감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 그관계를 떠나, 이 가정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332
'내 글은 모두 일종의 자서전이죠. 나는 늘 독자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련을 맺는 것,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아시아나 기내지 2010년 4월 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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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정의할 때 속성을 열거하며 기술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대상의 본질을 명시적으로 기술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 20세기의 생명과학이 도달한 답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5
생물을 무생물과 구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인류의 생명관의 변천과 함께 고찰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9

바이러스를 단순한 물질과는 분명히 구분 짓는 유일한, 그러고 가장 큰 특성이 있으니 바로 스스로를 증식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기생해야만 복제가 가능하다.  34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무엇이다. 만약 생명을 '자기를 복제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바이러스는 틀림없이 생명체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달라붙어 그 시스템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모습은 기생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 입자 단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기계적 오브제에 지나지 않아, 생명으로서의 움직임은 전혀 느쪄지지 않는다. 
바이러스를 생물의 범주에 넣어야 하느냐 무생물의 범주에 넣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봐도 좋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경계선이 있는 것일까?
짧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바이러스를 생물이라 정의하지 않는다. 즉 "생명이란 자기 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다."라는 정의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35

당시 과학자들은 어차피 DNA는 세포 내의 구조를 지지하는 밧줄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세포에서 DNA를 추출하는 일은 간단하다. 세포를 싸고 있는 막을 알칼리 용액으로 녹인 후 휘에 뜬 맑은 액체를 중화시켜 염과 알코올을 첨가하면 시험관 안에 하얀 실 모양의 물질이 나타난다. 이것이 DNA다. 유리 막대로 이 실을 돌돌 말아 올리면 DNA를 추출하는 게 된다.  45
A, C, G, T로 표현되는 알파멧은 화학 용어로 말하자면 뉴클레오티드라고 불리는 DNA의 구성 단위다. 이러한 구성 단위(알파벳)와 그 연결이라는 원리는 생명현상 전반에 걸친 공통적 구조이기도 하다.  53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생각에 집착한다. 가령 자신의 생각과 다른 데이터가 나왔을 때 일단은 관특 방법이 틀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데이터를 얻기 위해 관측(혹은 실험)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렇게 집착하던 자신의 생각은 거의가 환상이다.  60
DNA는 자외선이나 산화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열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ATAA라는 부분 배열이 없어졌다 해도 상보적인 다른 한쪽의 사슬에 TATT라는 구조가 보존되어 있다면 자동적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다. 사실 DNA는 일상적으로 손상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복구되고 있다. 이렇게 정보를 보유하고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일부러 DNA를 쌍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64
DNA가 스스로 전체를 복제하는 역할도 한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하여 생긴 두 개의 딸세포에 이 DNA를 한 쌍씩 분배하면 생명은 자손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 할 수 있는 것이다.  65

오래된 대학의 교수실은 어느 곳이나 죽은 새 냄새가 난다.  76

DNA를 구성하는 요소인 네 종류의 뉴클레오티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려보면 항상 A(아데닌)의 함량과 T(티민)의 함량이 같고, G(구아닌)와 C(시토신)의 함량이 같다.(샤가프의 법칙)  94

원자의 지름은 대체로 1에서 2옹스트롬이다. 옹스트롬이란 1미터의 100억 분의 1이다.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최소 단위인 세포조차 그 지름은 거의 30만~40만 옹스트롬.  120
우리의 몸은 가운데로 척추가 지나가고 그 척추를 중심선으로 좌우 대칭 구조르 하고 있다. 척추에는 분절 구조가 있고, 신경 배선도 이 분절을 따라 분류되어 있다. 이것이 축추 동물의 기본 구조다.  126
분절에 의한 기능의 분담이나 반복 구조에 따르는 물질 이용의 효율화 혹은 손상을 입었을 때 그 분절 범위 내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점, 그로인한 빠른 회복 속도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분절을 갖는 생물은 보다 더 잘 환경에 적응하고 분절을 갖지 않는 생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127
슈뢰딩거는 생명이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을 거스르고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부의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엔트로피가 불규칙성의 척도라면 부의 엔트로피란 불규칙성의 반대, 즉 '질서' 그 자체인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늘린다.  131

우리는 종종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인사할 때 "여전하네."라는 말을 하는데, 반년 혹은 1년 정도 만나지 않았다면 분자 차원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너무나도 여전하지 않은 게 되고 만다.  142
루돌프 쇤하이머 -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모든 물리 현상에서 나타나는 엔트로피(난잡함) 증대의 법칙에서 벗어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의 특질임을 지적했다.... 증명하지는 못했다.  45

생명이란 동적 평형산에 있는 흐름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는 생명이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생명은 끊임없이 파괴되면서 어떻게 원래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단백질의 형태가 몸소 보여주는 상보성에 있다. 상보적으로 인해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동적인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154
늘 합성과 분해를 반복함으로써 상처가 난 단백질, 변성된 단백질을 제거하고 이들이 축적되는 것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동적 평형은 이러한 이상 단백질을 제거하고 재빨리 새로운 부품으로 대체하도록 한다.
폐기물의 축적 속도가 배출 속도보다 빨라... 전형적인 예가 구조적인 단백질병으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이나 광우병, 야콥병으로 대표되는 프리온병이다.  158

위상기하학이란 한마디로 하면 '사물을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센스'라 할 수 있다.  165

세포막의 안과 밖 혹은 그 주변에는 미세한 단백질이 다수 존재하는데, 항상 세포막과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단백질은 각각 고유의 구조에서 유래하는 상보성이 있다. 그 상보성으로 인해 어떤 단백질이 링 모양의 환을 형성하면 부드러운 세포막은 잘록해질 것이다. 소포체막과 결합한 단백질 A가 세포막과 결합한 단백질 B와의 사이에서 열쇠와 열쇠구멍 같은 특이한 결합을 일으킨다면 소포체막의 그 부분은 세포막의 특정 부분으로 쏙 들어갈 것이다. 또한 또 다른 막 결합형 단백질군이 세포막의 안쪽을 따라 그 상보적 관계에 기초한 소쿠리 모양의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면 세포박은 소쿠리 곳곳에 실로 꿰매서 덮어씌운 얇은 천처럼, 어떤 경우에는 구면으로, 어떤 경우에는 아메바 같은 부정형으로, 때로는 적혈구처럼 옴폭 들어간 곡면을 만들 것이다.  181

세포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 또 다른 내부를 만들어 그것을 외부로 삼는다. 이러한 구획 책정은 그것마으로도 질서의 창출이 된다. 구획 안과 밖에서 개개의 환경을 만들어내고 각각 개별적으로 반응하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5

요즘 세상에는 유전자공학 기술이 발달해 이런 작은 DNA 세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고 잇고 교환하는 일은 문자 그대로 풀과 가위로 종이 공예를 하는 것처럼 간단하다.  226
우리의 생명은 수정란이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행진이 시작된다. 그것은 시간의 축에 따라 흘러가며 후퇴할 수 없는 일방통행이다. 
그런 과정에서 특정 장소, 특정 타이밍에 만들어져야 할 조각 중에 한 종류가 출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동적인 평형 상태는 가능한 한 그 결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평형점을 이동시켜 조절하려 한다. 그런 완충 능력이 동적 평형이라는 시스템의 본딜이기 때문이다. 평형은 자신의 요소에 결함이 생기면 그것은 메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과잉 상태가 되면 그것은 흡수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228
동적 평형이 그 발걸음을 멈췄을 때 엔트로피의 법칙은 가차없이 엄습한다. 세포 덩어리는 스스로 용해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모체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즉 이런 치명적인 유전자 녹아웃 실험의 결과는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229

기계에는 시간이 없다.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 번 접히면 다시는 펼실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생명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235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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