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장르소설과 순문학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장르소설은 단 한 권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물론 탐정추리소설을 단 한 권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마 탐정추리소설의 재미는 각 소설 간의 호응과 간섭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탐정추리소설도 무협소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작품이 상호 연결되는 장르의 기반을 따르는데, 그 상호 연결 기반은 크고 복잡하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이 분야의 전통은 벨기에, 프랑스, 미국, 일본, 이탈리아, 스웨덴 등으로 이어졌지만 모두 다른 흐름을 형성했다. 신기한 것은 각각의 흐름이 결국 원래의 기반을 따르고, 서로를 증명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는 점이다.


코넌 도일


‘추리소설’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일본에서도 원래는 없던 표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이런 유형의 소설을 ‘탐정소설’과 ‘미스테리’라고 불렀다.
‘탐정소설’과 ‘미스테리’는 모두 서양에서 왔다. ‘미스테리’는 영어의 ‘mystery’ 를 가타가나로 적은 것이고, ‘탐정소설은 영어 ‘detective story’를 일본어로 옮긴 말이다.

‘추리’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유행한 새로운 이름으로 영문으로는 적절한 표현이 없으며, 이 점 역시 일본인이 이룬 중요한 공헌이다. 일본인은 미스터리 작품에서 얻은 새로운 결론을 ‘추리’정신에 결합시켰다.

‘탐정’같은 말은 추리 소설이 기본적으로 범죄와 관련된 소재를 다루지만, 범죄를 조사하는 사람과 범죄를 조사하는 행위를 통해 범죄에 접근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 추리소설은 범죄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범죄라는 요소가 없으면 추리소설은 성립하기 어렵다. 추리 소설은 보통 하나의 범죄에서 시작된다.
추리 소설의 기원은 어째서 19세기일까? 이 시기의 유럽에서 범죄는 더 이상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 현상이 되었기 때무닝다. 이 시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sin’(죄악)에서 ‘guilt(죄악감)로 옮겨 갔다. 이전에는 ‘죄’에 대한 징벌이 인간 세상의 법률이 아닌, 죽은 뒤에 하느님과 마주했을 때 받는 것이었다. 이는 기독교 전통의 핵심 개념과 근본 가치인 동시에 교회를 없어서는 안 되는 기구로 존재하게 하는 토대였다.

‘이 세상’에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 사회의 수단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인식이 바뀐 것이 19세기에 완성된 거대한 변화였다.
또한 19세기의 유렵에는 도시화가 폭넓게 일어났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친족이나 이룻과 단단한 유대를 맺지 않는 생활로 들어서면서 범죄가 발생할 여지도 늘었다. .. 도시 이주가 시작된 후 누구도 나를 모르고, 누구도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은 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미스터리’는 추리 소설이 성립하는 다른 조건인 ‘there is something mysterious’(뭔가 이상하다)를 알려 준다. 추리 용어로 말하자면, 소설에느 반드시 ‘수수께끼’가 있어야 한다. 소설이 시작되면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다. 사건의 전체 혹은 일부가 일반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탐정’, ‘미스터리’, ‘추리’가 가리키는 세 가지 조건은 우리에게 추리소설이 무엇인지, 추리소설을 읽을 때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나아가 추리소설을 읽기 전에 어떤 준비, 즉 ‘독자의 약속’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장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 장르소설에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작품을 읽는 독자 사이에 이미 약속된 특수한 사항이 있다. 장르가 만들어지면 작가와 독자는 장르의 관습에 딸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읽을지 예상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런 소설에는 무엇을 읽게 되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의 소설을 읽을 사람이 어떤 예상과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가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장르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작가와 독자 사이의 묵계다.


코넌 도일은 세심하게도 전지적 시점과 일인칭 시점 사이, 객관과 주관 사이에 놓이는 신선한 서사 방법을 발명했다. 소설의 문자오가 사건 기록은 모두 왓슨의 시점을 거친 것으로 주관적 판단과 강한 호불호가 뒤섞인 그의 정서가 독자에게 전달되어 독자의 마음에 스며든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홈스의 시건 조사와 모험 과정을 알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왓슨과 함께 경험한다.
왓슨은 우리에 가깝고, 우리처럼 평범하다. 적어도 홈스처럼 비범하지는 않다.

코넌 도일의 최대 공헌은 추리소설과 독자 사이에 합리적이고 안정된 관계 형태를 만들어 낸 데 있다. 사실이라는 환상은 소설을 둘러싸고 틀을 만들어 독자가 비정상적인 범죄와 극적인 플롯에 의심을 품거나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다.

코넌 도일은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고 믿고자하는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레이먼드 챈들러


‘뽐내지 않음’의 가치관은 ‘하드보일드 맨’의 특질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가 ‘하드보일드 탐정’을 이해하고자 할 때 명심해야 할 기본이다.

‘Hard-boiled’는 보통 달걀을 익힐 때 쓰는 말로, 미국인은 이 단어를 보면 자연스럽게 아침 식사에 나오는 ‘hard-boiled egg’를 연상한다.

벽과 비교하면 ‘hard-boiled egg’는 여전히 약한 달걀일 뿐이다. 다른 점이라면 그렇게 약해 보이지 않는 척한다는 것이다. 날달걀과도 다르고 다른 일과도 다르다. ‘Hardboiled egg’는 벽에 부딪힌 순간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쏟아내 참담하게 패배한 불쌍한 모습을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벽에 대항할 수 있고 벽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알과 비교해 ‘hard-boiled egg’는 단단하다. .. 스스로 꽤 단단하다고 여겨 이따금 벽처럼 단단한 상대에도 대항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벽 앞에서 ‘hard-boiled egg’는 여차하면 강한 척하는 달걀로 돌아갈 뿐이다.

우리가 소설의 인물이고 업무 통지를 받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갔는데 웬 엘리베이터의 문 앞에 안내되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거대한 거실 같은 내부가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우리는 놀라고 당황하고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당장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걀이지 ‘hard-boiled egg’는 아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난생처음 보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몹시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어쨌든 이 세상에 거실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도 있을 수 있다며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은 큰 소리로 떠들 만한 일을 놀라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이런 태도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전통.

‘하드보일드 맨’의 인물 형상을 구축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준 인물이 잇으니 바로 헤밍웨이다. 헤밍웨이-해밋-챈들러는 명백하고도 공공연한 문학 계보를 이룬다. (새뮤얼 대실 해밋(1894~1961)은 미국 작가로 냉혹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창시자)

헤밍웨이의 독특한 소설 스타일을 가리켜 ‘빙산 이론’이라고 한다. 얼음의 질량은 물보다 가벼워 얼음덩어리를 물에 넣으면 십분의 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십분의 일만 수면 위로 드러난다.

우리가 있는 세계, 특히 사람이 구성하는 범위는 이처럼 복잡해서 겉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안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것에 비해 훨씬 적다. 비유해 보자면, 소설가 프루스트는 잠수부다. 그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특이한 잠수 실력으로 깊은 바다까지 잠수해 여기저기를 탐색하여 구십 퍼센트의 빙산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고, 뭍으로 올라와 우리에게 묘사해 준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빙산’을 형용된다. 그가 오로지 수면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만을 썼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대단한 성취는 모더니즘 소설의 세례를 거친 시대에도 겉으로 보이는 행위만 쓰고, 복잡한 표현 없이, 심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소도 독자를 끌어들이고 비평가를 설득하는 소설 작품을 썼다는 데 있다.
헤밍웨이는 독자에게 이 사람이 무엇을 했다고만 알려줄 뿐 왜 그렇게 했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서사와 대구(對句)를 골라 내용을 한정하는 독특한 재능이 있어서, 독자가 ‘이 일은 이게 다가 아닐 거야, 그저 이렇지만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는 독자에게 무엇을 알려 주기보다 독자 스스로 추측하고 보충하도록 자극한다. 헤밍웨이가 어떤 현상의 일부를 설명하면, 그 뒤에 그가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느낀 독자가 흥미로운 눈빛을 하며 내용을 상상해 채운다.
그렇다고 해서 헤밍웨이의 소설이 조이스나 프루스트의 소설보다 쓰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

헤밍웨이의 화자는 보통 ‘말수가 적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렬히 느끼게 된다. 그들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차라리 숨기려고 한다. 우리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비밀을 가진 사람이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우리는 그의 비밀에 호기심을 느끼는 한편, 그가 말한 내용에 자연스레 의심을 품게 된다.

헤밍웨이는 ‘빙산’ 유형의 화자, 즉 ‘하드보일드 맨’에게 그가 본 세계를 말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에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헤밍웨이의 펜 아래에서 만들어진 ‘하드보일드 맨’의 형상은 훗날 해밋과 챈들러에게 영향을 주었고, 두 사람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으며 무슨 일에든 놀라지 않는 캐릭터를 그렸다.
이 캐릭터들에게는 항상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는 놀라는 일이 없다. 우리라면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칠 법한 일이 일어나도, 심지어 자기가 얻어맞아 쓰러지는 일이 있어도 그의 반응은 한결같다. ‘세상은 늘 그렇지 항상 그래. 이런 일이 터지는 걸 피할 수 없어.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호들갑을 떨어도 소용없잖아.’ 언제나 이런 태도와 말투다.
그들은 뽐내지도 않는다.

챈들러는 말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일곱 권 썼는데, 이 일곱 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말로의 말투와 그가 사건을 설명하는 습관에 익숙해지지만 그의 삶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일을 자세히 알기는 꽤 어렵다.

그는 분명히 다양한 사건과 풍랑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아무리 이상하고 곤란한 일을 마나도 늘 ‘이게 뭐 말할 만한 가치가 있어?’ 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을 이해하는 방식 가운데 한 가지는 셜록 홈스와 비교하는 것이다.
첫째, 하드보일드 탐정은 홈스처럼 똑똑하지 않다. .. 홈스는 우리가 모르는 일을 과학적으로 일사불란하고 의심의 여지없이 풀어 보여 준다. .. 홈스는 과학의 이데아를 대표하며, 과학 추리의 능력으로 안개 속을 헤치고 진상을 드러낸다. .. 홈스는 완벽하며, 사실을 복원해 드러낼 수 있다. 그는 19세기 과학의 꿈을 대표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은 이런 조건이 없다. 조금도 과학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물증을 수집하고 물건을 검사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고 조사하면서 수수께끼를 풀고자 동분서주한다.
둘째, 그들은 홈스처럼 범죄자보다 위에, 심지어 영국 경찰청의 경감 위에 있지 않다.
난제에 부딪힌 영국 경찰청의 경감이 막다른 길에 이르러 공손히 협조를 청하고, 홈스는 그들을 도와 답을 찾아낸다. 하지만 챈들러가 그리는 세계에서 경찰은 사립탄정을 막고 오도하며 이용하기도 한다. ..
챈들러의 말로는 운이 없다. 미녀를 정복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미녀를 만나면 일이 꼬인다.
셋째, 하드보일드 탐정 곁에는 숭배하는 마음으로 사건 해결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왓슨이 없다. 챈들러가 쓴 말로 시리지는 모두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홈스는 하나의 현상이고 놀라운 광경이다. 우리는 왓슨의 눈을 통해 이 놀라운 광경을 우러러본다. 왓슨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특수한 관점을 제공하는. .. 말로의 일인칭 서술을 읽으면서 우리는 말로의 주관과 편견을 피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챈들러가 강조하려는 내용은 이렇다. 상상의 문학, 고상한 문학은 인간 세상에서 벗어난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쓸 수 있지만 만약 실제 거리, 실제 세상을 쓰려고 한다면 다른 전략을 써야 하고 다른 주인공을 써야 한다. 이 주인공은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아야 하며, 진실한 동시에 이상적이어야 한다.

헤밍웨이에서 해밋과 챈들러까지, 그들은 ‘영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했다. 챈들러는 특히 진지하게 탐색했다. ‘지금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웅이란 무엇인가?’

말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평범한 사람이어야 우리와의 선명한 연결이 끊어지지 않아 그에게 이렁난 일을 어떤 머나먼 허구의 동화나 환상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홈스는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탐정이다. 범인이나 사건을 일으킨 사람과 섞여 들어가는 일이 없다.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은 그렇지 않다. 그가 사건을 조사하면서 보고 만나는 용의자는 그 자신과 절대적인 차이가 없다. 말로는 그들과 함께 할리우드 거리에 살고 있고, 그들과 밀접한 상호 관계를 반복해 맺으며 사건을 조사한다. 그가 특히 똑똑해서 범인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범인, 범인일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 사이에 ‘지대지(地對地, 땅 위에서 땅 위로 향함)’의 가까움과 익숙함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의 이야기는 범인을 잡아서 해결되는 내용이 적다. 전체 사건의 맥락을 분명히 하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밝히는 일이 나쁜 일을 벌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챈들러는 말로가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을 뿐이다. 말로에게는 좋은 사람이 보통 갖고 있는 기질이 없다. 그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일부러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갖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가 가진 원칙의 마지노선은 상황이 다르다고 바뀌지 않는다.

사립 탐정인 말로는 사건이 얼마나 위험하든 조사가 얼마나 어렵든 사건에 얼마나 많은 이익이 걸려 있든 언제나 고객에게 하루에 이십오 달러를 지급하라고, 추가로 필요한 금액은 결산 때 보고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그의 손에서 얼마가 나가든 일당 이십오 달러만 받는다. 사건을 맡기로 하면, 그는 나주엥 어떤 변수가 나타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의뢰인이 죽어서 일당 이십오 달러는 받을 수 없을 것 같더라도 일을 완수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시 ㄴ카카가 바로 우리 이웃에 산다. 그녀의 차는 매일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간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본래 이런 반응을 보일 법한 우리는 말로의 눈을 거침으로써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매일 지나가야 하는 길을 오가며, 이웃집 문 앞을 지날 뿐이다. 놀랄 일이 뭐가 있는가.
‘그럴 줄 알았어.’ ‘그렇군. 이제 잘 알겠다.’ 더욱 이상한 일은 하드보일드 맨은 대단히 좋은 일과 대단히 나쁜 일을 한결같이 이런 태도로 대한다는 점이다.


추리소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범죄 행위를 추리하여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나쁜 행동을 했는지 밝히는 종류, 다른 하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죄 행위 뒤에 있는 동기를 추리하고 누군가가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는가 묻는 종류다.
챈들러의 말로 시리즈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소설은 말로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말로가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 대한 정보는 한정된다. 말로는 자신의 추리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대부분 조사 행위, 그러니까 어떤 곳으로 달려가 이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거나 저기로 가서 저 사람에게 얻어맞아 기절했다거나 이상한 곳에서 아름다운 여자에게 끌렸다는 정도로, 이런 조사가 그에게 어떤 단서나 답을 주었는지는 마음속에 숨긴 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말로 곁에는 그에게 따져 묻거나 설명을 기다리는 왓슨이 없다.

그는 말로가 만나는 일들을 독자가 따라가다 마지막에 스스로 단서를 이어 추리 과정을 풀길 기대한다.
이는 어쩌면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런 글쓰기는 챈들러의 소설에서 사건을 어떻게 저지르고 숨겼는지 같은 경과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할리우드 감독이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허려고 시나리오 작가를 찾아 각색하면서 챈들러에게 협조를 구했다. 시나리오 작업이 절반 정도 이르렀을 때 작가가챈들러를 찾아와 난처해하며 물었다. “차 안에서 죽은 인물을 도대체 누가 죽인 건지 아무래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챈들러가 딱 잘라 대답했다. “못합니다. 저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에코의 출판계 친구는 ‘아마추어 탐정소설’ 시리즈를 출판해 이탈리아 독자에게 불붙은 추리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계획이었다. ‘아마추어’는 소설의 탐정이 아마추어라는 뜻이 아니라 소설을 쓴 저자가 아마추어라는 뜻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에코가 말했듯 이탈리아에 거론할 만한 탐정소설 전문 작가가 애초에 없기 때문.

그들이 에코를 찾아간 이유는 그가 평소 탐정소설을 즐겨 읽어 자기 나름의 생각과 의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제안을 들은 에코의 첫 반응은 이랬다. 작고 얇은 탐정소설 같은 걸 어디다 쓰게? 탐정소설을 쓰려면 오백 쪽은 써야지, 작고 얇은 양에 탐정추리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
에코의 말에 출판계 친구는 재미있는 여극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에코를 부추겼다. 그럼 어디 한번 오백 쪽짜리 탐정추리소설을 써봐! 그리하여 ‘살해된 교황’ 붐위기에 고무된 에코는 정말로 썼고, 정말로 오백 쪽을 썼고, 아니 오백 쪽으로도 다 담지 못한 대작을 썼다.


<장미의 이름>을 쓰기 전에 에코는 서구 학계와 문화계에 약간 이름 있는 기호학자이자 중세사가였다.

탐정추리소설을 14세기인 1320년대로 설정했다. 이 시기는 기독교회 역사상 ‘대분열’이 재난이 일어났던 시기다.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나타나 서로 싸우는 기괴한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대였다.

에코는 자신의 풍부한 중세사 지식을 소설 속에 한껏 써먹을 수 있었다.

에코는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확실히 과시할 만한 재료가 들어 있다. 에코는 우리가 책을 읽는 동안 그의 박학을 알아주길 바란다.

우리는 책을 읽는 내내 에코가 ‘이거 압니까? 이거 모르지요?’하고 말하는 걸 분명하게 느낀다. ..
이러한 박학이 중세 역사의 세세한 요소를 쌓아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는 드러난 과시라면, 숨은 과시도 있다. 그는 드러내지 않은 채 추리소설 전통의 ‘상호 텍스트’(intertextual)를 암시하는 내용을 엮었다. .. 숨은 과시는, 잊지 마시라, 그가 열정적인 미스터리 팬이라는 사실이다.

<장미의 이름>을 쓸 무렵 기호학은 서구 학계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기호학과 밀접하게 호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도 나타났다. 기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연결점은 기표와 기의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여, 기표와 기의를 우연하고 인위적이며 사회적으로 약속된 관계로 환원하는 데 있다.

빈 것은 채우고 찬 것은 비워, 우리가 기호에 대해 당연히 연상하는 것을 부수고 뒤집기.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 사고다.

에코는 난이도가 높은 소설 내용을 설정했다. 그는 지금 우리 시대의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 발생할 리 없는 살인 사건을 쓰고자 했고, 그러면서도 우리를 충분히 이해시키고자 했다. .. 그 시대의 신앙 분위기와 조직 구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장미의 이름>은 역사가 들어간 추리소설도 아니고, 추리가 들어간 역사소설도 아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역사추리소설이다. 그 추리는 특수한 역사 배경 아래에서만 성립되는데, 뒤집어 말하면 시대의 특수한 믿음과 풍습이 살인 사건과 추리를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미야베 미유키


독자는 소설의 등장인물을 통해 이런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생활에서는 이런 정류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다가가서 보고 느끼고 싶어 한다.

진정한 허구란 거짓의,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내 머리로 조종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신으로 변신해 현실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완전한 이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본격파 추리소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설정하고 모든 단서를 펼쳐 독자에게 자신의 추리 능력을 시험하게 한다는 본격파의 가정은 게임 혹은 시합의 개념에 가깝다. .. 마지막에 수수께끼를 풀고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은? 그의 기능은 참고서 뒷면에 붙어 있는 해답에 비교적 가깝다. 독자가 자신이 추리한 결과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도록 해 주고 틀렸다면 어디가 틀렸는지 알려 준다.

추리소설의 스펙트럼에는 본격파와 정반대의 자리에선 사회파가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사회파 추리의 개조(開祖)이자 일본 사회파 추리에서 오늘날까지 추격당해 본 적이 없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
마쓰모토 세이토는 전쟁(2차대전) 후 일본의 혼란과 모색 사이에서 일어난 사람으로 그것을 깊이 관찰하고 느꼈으며, 사회파 추리소설을 창조해 시대가 그에게 준 것에 구체적으로 보답했다. ..
그는 추리를 미끼로 삼아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엄숙한 사회 메시지를 전하고,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사고하도록 요청하고 심지어 강요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펜 한 자루에 의지ㅣ해 홀로 매일 성실하게 평균 구천 자의 원고를 써 소설로 내며 독자에게 반복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동기로 이런 죄를 지었다면, 당신은 어떻세 보시겠으며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본격파에서 범인을 찾으면 범인은 그저 범인일 뿐이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범인을 찾는 일은 ‘이 사람은 어떻게 범인이 되었는가?’라는 또 다른 의혹의 시작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모방범>(미야베 미유키)의 서사 구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제1부에는 범인과 경ㅊ찰과 사회의 수수께끼(mystery)가 완전하게 펼쳐진다. ..
제2부의 시작에서 그는 추리소설의 의혹을 다루는 방식을 철저하게 위반하는 글쓰기로, 범인을 등장시키고 범인의 자리에 서서 전지적 시점으로 다시 한 번 사건을 말한다. 그러니까 미야베 미유키는 제1부에서 경찰, 피해자, 방관자 들이 모르고, 그래서 간절히 간구하던 정보인 범인은 누구인가, 어떻게 사건을 저질렀는가, 왜 사건을 일으켰는가 그리고 그 과정엣ㅓ 그들은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빠짐없이 우리에게 알려 준다. ..
제2부에서 다시 말하는 것은 그저 ‘어떻게’를 설명할 뿐이다. 왜 방송국에 전화를 했을까? 왜 먼저 건 전화와 나중에 건 전화의 말투가 달랐을까? 제1부에 나타났던 일들이 제2부에서 반복되면서 ‘왜’를 설명한다.

추리소설을 소개할 때 가장 어렵고 금기시되는 점은 절대로 핵심이 되는 사건을 알리지 않는 것인데, 독자가 수수께끼를 풀 재미를 부숴서는 안 되지 때문이다. 그러나 <모방범>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모방범>에서는 도리어 탐ㅈ덩이 오리무중에 있고, 독자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뿐 아니라 그들이 사건을 저질렀을 때부터 연막 작전을 쓰기까지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알고 있다.

다카이 가즈아키라는 등장인물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해 이야기 속에 배치했다. 다카이 가즈아키가 있어 <모방범>은 단순히 추리소설에 그치지 않고 심리소설이자 나아가 사회소설이 될 수 있었다.

제3부의 의혹은 우리의 독서에 던지는 시험이다. 즉 정의에 대한 의혹이다.

우리는 나중에 정의가 실현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제2부에서 구리하시 히로미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줄곧 구리하시 히로미가 어릴 때 지어 준 별명 ‘피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제3부에 이르러서야 아미카와 고이치라는 본명이 나온다.

수수께끼를 푸는 의혹과 정의에 대한 의혹은 여기에서 하나가 된다. (우리 독자가 아니라)오로지 그들이 진상에 다가가고 드러낼 방법을 찾아야만 다카이 가즈아키의 누명과 억울함을 벗길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43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보조인물이 없다. .. 독자는 43명의 등장인물의 주관적인 시야로 거의 들어가다시피 하며, 소설은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또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분노하는지 보여 준다.

미야베 미유키는 소설에 추리가 아닌 주제를 더해 죄와 벌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해와 소통을 탐구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모방범>의 놀라운 특색은 이 작품이 주인공 없는 소설, 특히 추리하는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초기에는 홈스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똑똑한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나중에는 말로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운이 없고 백배는 고통스러운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또는 달리 선택의 여지없이 사건 조사와 추리가 자신의 일인 형사, 검사 혹은 검시관이 주인공을 맡기도 한다. ..
<모방범>에는 이런 주인공이 없다.

‘절대악’을 대표하는 아미카와 고이치에 대해 미야베 미유키는 그가 대체 어떻게 자랐는지, 성장하면서 어떤 일을 당했기에 ‘절대악’을 믿고 추구하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의 기교는 표현이나 묘사뿐 아니라 독자의 반응, 즉 독자가 누구에게 이입할지, 누구를 반대할지, 누구를 탓하고 이해할지를 예상하고 조종한다. 소설 기법에서 오랜 세워에 걸쳐 검증된 하나의 원칙은 한 사람의 어린 시절에 대해 쓰면, 그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 아이였을 때에는 누구나 천진하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은 한 사람의 나쁜 성향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때이고, 천진이 악으로 변하는 이유와 요소가 나타나는 때이다. 이러한 이유와 요소가 그의 책임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의 나쁜 행동이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면 그를 멸시하고 미워할 수 없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부러 독자가 아미카와 고이치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도록 두지 않았다. 어떤 악은 일정 정도에 이르고,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이런 방식으로 해설될 수 없다. 해석할 수 없는게 아니라 도덕적으로 해석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해석하지 않음은 하나의 가치 태도다. 악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지만 어떤 행위의 한계선은 해석과 합리화가 섞이는 것을 절대 거부하도록 한다. 우리가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란 해석을 하면 이 사건 나름의 논리가 가진 의미를 따라갈 수밖에 없고, 악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경아고가 혐오와 비난 또한 감소하게 된다. 소설에는 도덕적 책임이 있고, 적어도 소설가로서 미야베 미유키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도덕적 입장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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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를 기리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찍이 “챈들러는 나의 영웅”이라 말했으며, 최근까지도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와 챈들러를 한 권에 담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저서에서 챈들러를 읽으며 문체를 공부했다고 언급했다. 그 외 폴 오스터, 마이클 코널리, 하라 료 등 수많은 작가들과 마틴 스콜세지, 코언 형제 등 유명 감독들이 챈들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정유정 작가는 문체나 문장에서 챈들러를 스승으로 삼았다고 했고, 정이현 작가는 “가장 내 타입인 탐정은 필립 말로”라고 했으며, 류승완 감독은 평소 챈들러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10

이 책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자유롭게 쓴 편지를 발췌, 편집한 서간집이다.  10

이야기라는 방패를 집어던진 있는 그대로의 챈들러는 신랄하지만 정의롭고, 까다롭지만 합리적이며, 지적이지만 낭만적인 사람이고, 그런 챈들러는,  자신이 창조한 탐정 필립 말로보다 더 매력적이라 단언하겠다.  11

챈들러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문구를 인용하며,
‘그러나 이 비열한 거리로 한 남자는 걸어가야 한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고, 타락하지도 않으며, 두려움도 없는 채로, (……) 마일 그 같은 사람이 많다면, 이 세계는 지나치게 따분하지 않으면서도 살아가기에 아주 안전한 공간이 되리라.” - <심플 아트 오브 머더>중에서

챈들러의 이상은 바로 이 말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사회가 타락한다 한들, 누군가는 그 안에서 개인적인 양심을 수호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런 인물이 있는 한 어쩌면 세상에는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는, 그 이상적인 인물은 얼핏 챈들러 자신과도 닮았다.  17



제1장 작품론

등장인물의 감정을 배체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사실을 묘사하는 방식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 불리며, 문학적으로는 헤밍웨이가 구축했고, 대실 해밋을 통해 추리소설에 접목되면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낳게 된다.  23

펄프 소설 - 192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펄프 잡지(Pulp Magazine)에 실린 소설들을 말한다. 저렴한 펄프지에 인쇄한 이 잡지들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들의 모태가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잡지는 챈들러의 데뷔작을 게재하기도 한 <블랙 마스크>로, 편집장 조셉 쇼(혹은 조 쇼)는 특히 대실 해밋을 아꼈으며, 이후 챈들러를 비롯한 펄프 작가들에게 해밋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모든 수사를 재베하고 ‘행동’만을 우선하는 글쓰기를 요구했다.  40

저명한 시인이자 평론가인 위스턴 오든(Wystan Auden, 1907~1973)이 <하퍼스 매거진> 1948년 5월호에 발표한 에세이.. 이 글에서 오든은 탐정소설에 대한 챈들러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았지만, 챈들러의 작품에 대해서는 “내가 볼 때 챈들러는 탐정소설이 아니라 범죄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쓰는 데 관심이 있다. 강렬하지만 극도로 우울한 그의 작품들은 도피 문학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읽혀야만 한다”고 평했다.  43

하드보일드 소설은 내가 고안한 게 아닙니다. 해밋이 공(公)의 대부분, 혹은 전부를 가져가야 한다는 내 생각을 숨긴 적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시작할 때는 모방을 하죠. 스티븐슨이 말하길, “노력하는 유인원”(<지킬 작사와 하이드 씨>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자신의 에세이에서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유인원 행위(Ssdulous ape)를 통해 글을 배웠다”고 쓴 이후 이 표현 자체가 ‘모방하다’는 의미로 굳어졌다.)이라고 했지요.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가 개인적인 기교, 자신의 글쓰는 수완, 자기만의 표현 수법, 소재에 대한 접근 방식을 향상시키려는 시도가 지나치게 멀리 나아가다 보면 표절이라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45

추리소설에는 아주 강한 환상적 요소가 있죠. 어떤 종류의 글이든 그 안에는 적절한 공식 내에서 움직이는 요소가 있어요. 추리소설가의 재료는 멜로드라마입니다. 사람이 실제 삶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폭력과 두려움을 과장하는 겁니다. (나는 일반적이라고 했습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을 일반화하는 작가는 없습니다.)  52-53

매일 무얼하며 지내냐고요?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안 쓰죠. 대개 아침이나 이른 오후 무렵에 글을 씁니다. 밤이면 무척 현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지속은 안 돼요. 오래 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죠.  55

나로 말하자면,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굳이 영감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지만요.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 의도적인 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어요.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바닥에서 뒹굴어도 좋아요. 다만 바람직하다 싶은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됩니다. 글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훑어보거나, 수표를 쓰는 것도 안 돼요.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학교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입니다.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라도 무언가를 배우려 하죠. 이게 효과가 있답니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이에요.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55-57

탐정은 완전한 존재로 어떤 사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탐정은 탐정으로서 이야기 밖에, 이야기 너머에 있고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먹고 자고 자기 옷을 보관할 장소를 소유하는 것 외에, 탐정은 연애를 하지도 않고, 결혼을 하지도 않고, 어떤 사생활을 누리지도 못하는 겁니다. 탐정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힘은 보수 외에는 얻는 게 없는데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무고한 자들을 보호하고, 약자를 수호하며 악당을 쳐부술 것이라는데서 나옵니다. .. 프로는 도시 문명이 가하는 모든 압박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압박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일을 해야만 합니다. 법이 아니라 정의를 대변하기 때문에 때로는 법을 무시하거나 어겨야만 하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기만당하거나 속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필요하다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탐정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물론 이런 탐정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죠. ..
탐정소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탐정에 대한 소설은 아닐 겁니다. 탐정은 오로지 촉매제로 이야기에 첨가될 뿐입니다.  58-59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내 경험을 바탕으로 경고하자면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 분석하고 모방해 봐요. 다른 교육은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해요.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걸 위해 돈을 내야 한다면 대체로 수상쩍은 겁니다. ..
글을 쓰기 전에 아주 세세하게 플롯을 구상하는 작가들이 있지요. 하지만 나는 그런 작가가 아닙니다.  70


<기나긴 이별>이라고 이름 붙인 소설. .. 구만이천 단어 정도예요. ..
어쨌거나 이번 이야기는 쓰고 싶었던 대로 썼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쓸 수 있으니까요. 미스터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가 하는 점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신경을 썼지요. 그리고 정직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결국에는 어떻게 감상적으로, 내지는 더 없는 바보로 보이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도. 72-73

우리 중 최고의 작가들도 새 책을 쓸 때 매번 바닥부터 시작해요. 돈벌이로 글을 쓰는 작가란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줄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기능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죠. 내가 만난 어떤 추리소설가도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좀 더 잘 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나는 어쩌다 운이 좋은 사람들 쪽에 서게 되었는데, 정말이라니까요, 이 일에는 운이 필요하답니다.  76

과거에 이룬 성과가 무엇이든, 작가는 지금 현재 하려고 하는 일 앞에서 다시 아이가 됩니다. 아무리 상투적인 기교를 많이 익혔다 한들, 작가에게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열정과 겸손함뿐입니다.  78

페리 메이슨 시리즈로 큰 인기를 누렸던 얼 스탠리 가드너(Earl Stanley Gardner, 1889~1970)는 당시 작품량이나 판매량에서 해밋이나 챈들러를 압도하는 작가엿다. 챈들러는 가드너의 소설을 읽으며 글 쓰는 법을 연구했다고 여러 번 언급했으며, 가드너에게 직접 “나는 당신 이야기의 시놉시스를 아주 세밀하게 정리해서 그걸 다시 글로 쓰고, 그런 다음 내가 쓴 것과 당신 작품을 비교해 보고 고치고 다시 좀 더 쓰고 그렇게 계속 반복했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1939. 5. 5.)



제4장 필립 말로

필립 말로에게 사회적 양심이라고는 말(馬)이 가진 것만큼이나 없어요. 다만 개인적 양심이 있을 뿐이죠. ..
필립 말로는 대통령이 누군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 필립 말로와 나는 상류층 사람들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그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그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입니다.  168-169

그에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많은 기회가 마땅히 있다고 가정할 때, 그는 왜 턱없이 적은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이 이 전체 이야기입니다. .. 정직한 사람이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한 싸움이죠. 이길 수는 없어요.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워지고, 농담과 사소한 불법으로 무마해 가며 살거나, 혹은 할리우드 제작자처럼 타락하고 사교적이며 무례해질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전문직 두세 종을 제외하면, 이 시대에 한 남자가 어느 정도 타락하지 않고, 성공이란 언제 어디서나 부정한 돈벌이이게 마련이라는 냉혹하고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에서 적절한 풍족함을 누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죠.  170-171

말로는 커피를 잘 끓이죠. 이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커피를 잘 끓입니다. .. 그는 자기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넣지만 우유는 넣지 않아요. 때로는 설탕 없이 블랙으로 마시기도 하죠. 아침 식사는 스스로 만들어 먹지만 다른 끼니는 직접 하지 않습니다. 늦잠을 자는 편이지만, 필요할 때면 일찍 일어나기도 하지요. 우리 모두 그렇잖아요?  175

타락한 사회에 반항하는 것이 미숙한 것이라면, 필립 말로는 극단적으로 미성숙하지요. 더러운 면을 더럽다고 보는 것이 사회적 부적응이라면, 필립 말로는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물론 말로는 실패자이고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어요. 그가 실패자인 이유는 가진 돈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장애가 없는데도 괜찮은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실패자이기 마련이고 대개는 도덕적인 실패자이죠. 하지만 아주 훌륭한 사람들도 실패자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들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자옷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게 보자면 우리는 모두 실패자일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런 식이 되지는 않았겠죠.  182-183



제5장 일상

(여기서 조금 냉정해지자면) 결혼이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만 하는 것임을 알기를. 결혼 생황에는 언제나 훈련이 필요함을 알기를. 신혼 생활이 아무리 완벽해도, 언제든 그런 때가 올 것이니, 아내가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바랄 날이 올 것임을 알기를, 아내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시간만 준다면 그런 감정도 지나가는 법.  237

사랑해야만 하는, 혹은 증오해야만 하는, 혹은 그 둘 다 번갈아 해야 하는 장소에 대해 쓴다는 것은 대개는 마치 한 여성을 사랑하는 것 같죠.  240-241

여자를 사랑하는 법
나는 항상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 주고, 타에 타도록 도왔지요. 한 버ㄴ도 그녀에게 무얼 가져오라고 한 적이 없어요. 항상 내가 가져다주었죠. 나는 한 번도 그녀보다 먼저 문을 나서거나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어요. 노크 없이 그녀의 침실에 들어간 적도 없고. 이런 일들은 다 사소한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꽃을 계속 보내거나, 그녀의 생일엔 항상 일곱 가지 다른 선물들을 준비하고, 기념일에는 항상 샴페인을 마시는 것처럼, 그런 것들은 한편으론 작은 일이지만, 여자란 아주 부드럽고 사려 깊게 대해야만 하지요. 왜냐하면 여자니까요.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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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니시무라 우미에와 사이메이 여학원의 이사장 .. 한족은 관념이라는 인공정원에 스스로를 속박했고, 다른 한쪽은 권력이라는 바위 속에 자신의 육체를 이식하려고 한다.


20
“.. 우리는 죽음을 각오한 사람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데다가, 자신의 살인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인간이 설마 이면에 다른 살인을 은닉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지. ..”


26
육체를 잃은 여자. 당신은 스슬로 관념의 괴물이라 불렀다. 당신이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당신에겐 요리코도, 니시무라도, 꼭두각시 인형처럼 자유자래로 조종할 수 있는 등장인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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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란 살인의 우의(寓意, 다른 사물에 빗대어 의도한 뜻을 드러내거나 풍자함)에 불과하다. 성행위는 바로 살인이다. 남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의 몸을 쓰다듬고, 핥고, 깨물고, 때론 난폭하게 고통을 준다. 그리고 몸속 깊숙이 자신의 창을 찔러 넣는다. 남자는 모두 여자를 죽이고 탐하기 위해 태어났다.  51-52

우리 가족만은 자신의 사랑으로 굳게 뭉쳐 있다고 마사코는 믿었다.  150

열등감이야 많건 적건 누구나 있는 것이고, 그 뿌리의 깊이는 본인 이외에는 알 수 없다.  209

“.. 다른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죽음을 바라는 본능이 아니라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은 욕망이란 의미에서요. 타나토스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타나토스 이론에 따르면 죽음을 향한 본능 때문에 스스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 공격 충동의 배출구를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있고, 그 결과 남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고 합니다. ..
제가 생각하는, 타나토스 콤플렉스라고나 불러야 할 현상은 전혀 다른 겁니다. 무덤에 흥미가 있는 아이. 벌레를 죽이는 아이. 죽음을 소재로 하는 농담 등등.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죽음에 관심을 보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생명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은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기는 왜 태어나는 걸까? 나는 어떨게 태어난 걸까?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아이들에겐 참으로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묘지는 멀리 밀려나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벌레가 없어서 곤충채집을 할 수 없고, 아파트에서는 애완동물을 기를 수도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아이들은 죽응ㅁ이라는 것으로부터 격리되고 맙니다. 한편 매스미디어에는 죽음이 넘쳐납니다. 형사 드라마나 시대극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도 있지만 물론 실제 죽음인 살인이나 사고 뉴스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 스타들이 아주 가깝고도 먼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가깝고도 먼 존재죠. 어떤 의미에서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유명한 아이돌 탤런트가 자살했을 때, 아이들이 다투어 그 뒤를 따랐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본능이냐 아니냐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 타나토스, 즉 죽음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죠. “
“네크로필리아, 시체성애 또한 타나토스 콤플렉스의 한 형태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들은, 네크로파일들은 죽음을 동경하죠. 그 충동이 자신을 향하면 자해 행위나 자살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감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걸로 만족하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 충동을 외부로 돌립니다. 시체를 만져보고 싶다, 시체와 하룻밤 지내고 싶다, 섹스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벌써 30년 전 일이지만 도쿄 나카노 구에서 일어난 소년 토막 살인 같은 게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스물여섯 살 먹은 소년애자가 열두 살 사내아이를 유괴해 토막을 내서 유리 용기에 넣고 포르말린에 담아 진열해 두였죠. 범인은 비정상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자기가 기르던 열 두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을 토막 내고 먹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여기에는 상대방에게 업신여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열등감이 영향을 미칠 여지도 없습니다. 상대는 고양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고양이나 소년을 토막 내어 감상하지 않을 수 없었죠. 확고한 신념을 지닌 네크로파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파리에서 인육을 먹었다는 사람에게는 그런 경향이 희박합니다. 시간도 한 것 같지만 그를 지배하던 것은 명백하게 인육을 먹고 싶다는 욕망, 즉 카니발리즘 환상이었으니까요.”  231-233

네크로파일.
시체를 강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많건 적건 사디즘 경향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폭력적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맙니다. 시체를 훼손시키죠. 또 거기서 쾌감을 얻고요. 이번 범인은 쾌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체의 일부를 도려내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일부분이라도 괜찮으니 자기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페티시한 시체 애호자죠. 생명이 없어져서 단순한 살덩이가 되어도 사랑할 수 있는 남자입니다.
미국의 에드 게인이란 남자는 10년 남짓한 기간에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또 아홉 명의 여성 시체를 무덤에서 파내 집으로 옮겨 성적 만족을 얻었습니다. 늘 보름달이 뜨는 밤에 저질렀다고 하죠. 그는 시체의 일부를 먹거나 목을 잘라냈을 뿐 아니라, 벗겨낸 피부로 조끼를 만들기도 하고, 가죽 의자를 수리하는 데 쓰기도 하고, 허리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1972년부터 모두 여덟 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계속해서 시간한 에드먼드 켐퍼(1948~. 프로파일링 관련 책에서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 마지막으로 살해한 사람이 어머니였고, 어머니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라는 미국 남자도 있습니다 이 남자도 영국의 크리스티와 마찬가리조 살아 있는 여자를 상대로는 성교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 모양이더군요. 피를 씻어낸 시체와 갖가지 성행위에 탐닉해, 목이 없는 시체와도 섹스를 했다고 합니다. 이번 범인이 도려낸 성기를 섹스 도구로 사용한다면 켐퍼를 능가하는 네크로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234-235

2월 말이 되자 미노루는 당연하다는 듯이 거리로 나갔다. 사랑이 필요했다. 사랑이 없으면 그는 바싹 말라 주름투성이 노인이 되어버린다. 그녀의 …… 그녀들의 유방이 그렇게 된 것처럼.
나는 그 여자들로부터 사랑을 흡수해서 더 나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틀림없다. 에토 사치코를 사랑하기 전의 나를 떠올려보라.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이었던가. .. 사랑이 얼마나 훌륭한지 안 뒤에는 보다 깊이 그 사랑의 원천을 탐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생명의 근원도 더듬을 수 있었다. ..
나는 변태가 아니니까. 나는 그저 진실에 눈을 떴을 뿐이다.  244-245

처음에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라고까지 여겼던 모든 것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 애가, 바로 그 애가 살인마. 우연히 만난 여자를 호텔로 데리고 가 관계를 갖고, 목 졸라 죽인 뒤에 유방을 도려내는 살인마.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다.
병이다. 단순한 범죄와는 다르다. 정신이상은 병이니 그런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의 법이다. 하지만 만약에 경찰에 체포되어, 그 여자 어린이 살인범처럼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과 분노 앞에 내던져진다면 그 애는 물론이고 우리도 살아갈 수 없다. 체포되자마자 사형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가족 모두에게 내려진다. 판사보다 언론과 국민들이 먼저 우리의 숨통을 죈다.
견뎌낼 수 없다. 그런 일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딸은 평생 결혼도 못 하리라. 남편은 직장을 잃게 될 테고 이 집에서도 살 수 없다.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거기서도 소문이 나서 또 다른 곳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질 뿐만이 아니다.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지금까지 죽을힘을 다해 이루어온 모든 것이, 애정으로 맺어진 가족의 끈이 시기와 증오로 변해버린다.
살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되어서까지 살아갈 수는 없다.
병이 죄가 되지 않는 거라면 우리도 그런 벌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말하자면 그 애가 병이 나아 더는 사람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문제없다. 법의 정신에서 이야기하자면 이게 훨씬 더 이치에 맞지 않을까?
그야 모든 게 병 때문이니까. 나쁜 것은 그 애가 아니니까.  
..
무슨 수든 써야 한다. .. 병세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길이 없다. ..
살인만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감금? 그러려면 가족의 협력이 필요한데, 이야기하면 식구들이 이해해줄까?
증거다. 증거를 보이면 다들 잡득을 하겠지. 그리고 그 애를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식구들이 힘을 모아 돌봐주자. 가족의 단결도 가능하고, 모두가 애정을 기울이면 마음의 병이야 금방 낫는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전보다 더 훌륭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 애가 외출하면 방을 철저하게 뒤져보자. 갖고 나가지 않는 한 비디오테이프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다른 뭔가가 발견되지도 모른다.
마사코는 마음을 굳히고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이다. 남편 탓이다. 아버지의 부재. 동일화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부재했기 때문에 그 애가 이상해지고 말았다. 임포텐츠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정상적인 이성과 교제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틀림없다.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몸의 일부를 잘라내다니. 너무 착하고, 너무 섬세한 아이라 살벌한 입시 전쟁 속에서 그 애의 마음이 병들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책임은 사회에 있는 게 아닐까. 살해된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애도 피해자가 아닐까.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은 사회이지 내 아들이 아니다.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화를 내면서 마사코는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285-287




참고문헌
시모카와 고시 <살인평론>
콜린 윌슨 <살인백과> <살인 케이스 북> <현대 살인백과>
A 스토 <성의 일탈>
<IMAGO(지금은 폐간된 일본의 정신분석학 전문지)> 1992년 3월호  345







작품해설 - 가사이 기요시(추리소설가, 추리소설 평론가)
<살육에 이르는 병>은 현재 아비코 다케마루의 최고작이다. 동시에 현대 본격 추리문학의 서술 트릭 작품 가운데 최고봉이기도 하다.  347

현대 본격이란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본격 탐정소설을 의미한다. 일본 미스터리 문학사의 흐름에서 이야기만다면 <환영성(1975년부터 1979년에 걸쳐 발행된 일본 추리문학 전문지)> 이후다. 잡지 <환영성>은 오랜 기간 사회파 미스터리에 눌려 미스터리 무대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던 본격 탐정소설을 새로운 테마와 모티브로 현대에 되살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환영성>출신 작가 중에서 대표적인 작가가 렌조 미키히코인데, 텍스트 트릭을 자주 쓰는 작풍이라는 점에서도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서부터 오리하라 이치까지, 현대 본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반의 침체기를 거친 뒤, 현대 본격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1987)으로 획기적으로 비약한다. 아야츠지 이후의 현대 본격 작가는 저널리스틱하게 신본격이라고도 불렸다. 아비코 다케마루 또한 신본격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데뷔했다.
<환영성> 작가 가운데서도 연장자인 렌조 미키히코나 아와사카 쓰마오(<그늘의 도라지>, 대표작<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의 작품에는 희박했던 요소가, 연배가 아래인 다케모토겐지의 <상자 안의 실락>이나 구리모토 가오루의 <우리들의 시대>에서는 중심에 위치한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브로일러(broiler, 여기서는 대량 살육되는 닭의 의미)처럼 강제적으로 사육되는 삶에 대한 결핍감, 공허감, 질식감, 말하자면 대량생(大量生, 20세기 소설의 특징을 논할 때 언급되는 가사이 기요시 나름의 철학 개념) 시대의 병리적인 현상이다. 그것이 다케모토의 작품이나 구리모토의 작품에서는 범죄의 동기가 되는 등, 작품 공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환영성> 시대에는 분리되어 있던, 다케모토=구리모토적인 주제성과 렌조적인 방법 의식을 신세대의 발상으로 결합했다는 점에서 <십각관의 살인>의 참신함이 있다.
대량생 시대의 병리는 1980년대 10여 년 동안 대부분의 일본 사회 전체를 집어삼켰다. 예를 들어 아야츠지는 <십각관의 살인>에서 학생들의 집단 음주에 의한 중독사 사고를 다뤘다. 또한 노리즈키 린타로는 <밀폐교실>을 통해 학교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망 사건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모두 1980년대에 빈발해, 현대 사회의 병리적 징후로 주목받은 형태의 사건이다. 물론 상황은 1990년대인 오늘까지 기본적인 변화가 없다. 이지메 자살사건의 증가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악화 되고 있다.   347-349


몽매한 평자로부터 자주 몰사회적이란 비난을 받은 아야츠지 이후의 현대 본격 작품에, 실제로는 80년대라는 시대의 병리적 징후가 필연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아야츠지, 노리즈키에 이어 등장한 아비코 다케마루가 금속 배트사건(1980년 11월에 가나가와 현에서 20세의 재수생이 금속 야구방망이로 부모를 때려죽인 사건)으로 막을 열고 미야자키 사건(1988년에서 1989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으로 이 작품 내에서 여자 어린이 연쇄 살인사건으로 표현되고 있다)으로 막을 내린 1980년대의 평범한 가정을 잠식하는 병리를 도려내려 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살육에 이르는 병>이란 작품 이면에는 이와 같은 시대 배경이 있다.
현대 가정의 황폐화와 공동화는 미국에서는 스티븐 킹의 모던 호러나 조너선 캘러먼(미국의 임상병리학자 겸 추리소설가)등의 사이코 서스펜스를 크게 유행시켰다. 그러나 <살육에 이르는 병>은 호러도 서스펜스도 아니다. 현대의 본격 탐정소설로 쓴 작품이다. 게다가 본격 탐정소설에서는 주제성을 주인공의 관념이나 행동을 빌어 그린다고 하는, 근대소설에서는 일반적인 창작 방법이 아예 금지외어 있기도 하다. 소설 작품으로서 시대성이나 사회성과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본격 작품으로서도 탁월하다는 이중성은 쉽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의 경우에는 그러한 매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결정적인 무기로서 서술 트릭을 활용하고 있다. 서술 트릭에서는 작중 인물이나 시간 혹은 공간을 의도적으로 혼란시키는 방법이 자주 사용된다. 고이즈미 기미코(1934~1985, 번역가 추리소설가, 대표작 <변호 측 증인>)의 대표작은 인물 트릭, 오리하라 이치의 대표작은 시간 트릭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궁극의 텍스트 트릭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선구로 하는 서술 트릭이다. 이 트릭은 독자 앞에 놓인 텍스트의 성격에 의도적인 혼란을 집어넣어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다케모토 겐지의 주요 작품에는 텍스트 트릭의 요소가 농후하다. 서술 트릭이 철저해졌을 때, 본격 탐정 소설은 20세기의 전위문학 세계에 접근하게 된다.  349-351


<살육에 이르는 병>의 기본은 인물 트릭이다. 그것도 아버지를 아들로, 아들을 아버지로 오해하게 만드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 트릭이 장치된다. 현대 본격의 서술 트릭 작품으로서는 심플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이나 시간, 공간에 각각 이중 삼중의 서술 트릭을 장치한다면 마지막까지 독자를 기만하기는 비교적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구성이 너무 복잡해지고, 수수께끼 풀이의 카타르시스가 희석될 위험성이 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인물 트릭이라는 한 가지에 쏟아부은 작가의 기백이 독자를 압도하는 걸작이다.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가정 폭력은 현대 가정의 황폐화를 상징하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두 나라는 기본적인 경향으로서 가정 폭력의 성격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아버지가 모자에게, 혹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자식이 어머니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매우 잦다. 핵가족화의 진행에 따른 지나치게 밀착된 모자 관계가 일본적 가족 병리 현상의 배경에 잠복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금속 배트 사건 같은 가정 폭력 사건과 동시에 미야자키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범죄에도, 일본 고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농밀한 모자 관계의 밀착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에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감은 필연적으로 희박하다. 거꾸로 아버지의 부재가 지나친 모자 밀착을 가져온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것은 여러 계몽적인 심리학 서적에서도 지적될 만큼 매우 일반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이러한 심리적 도식을 그대로 소설화해본들 읽을 만한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살육에 이르는 병>의 결말에서는 목 졸라 죽인 나이 든 여자를 시간(屍姦, 시체를 간음함)하는 남자를 목격하고, 아내인 마사코가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다. “아아, 아아, 무슨짓이야! 여보! 어머님께 무슨 짓을!” 이 절규를 통해 비로소 가모우 미노루의 정체가 독자들 앞에 폭로된다. 작가가 장치한 인물 트릭이 완성되고, 마지막까지 기만당한 독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독자의 멍한 느낌에는 또 하나의 이면이 있다. 지은이의 서술 트릭에 넘어가 미노루=아들이라고 믿어온 독자는 미노루=아버지라는 예상 밖의 진상을 접하고 경악한다. 동기에 결말에서 자시고가 아버지의 역할 교환은 아들=아버지라는 기분 나쁜 등식을 부정할 수 없으 ㄹ만큼 선명하게 독자의 인상에 남긴다.
아들=아버지의 등식. 그것은 현대 일본에 있어서 가정 황폐화의 배경으로서, 여러 심리학자가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바로 연쇄 엽기 범죄자인 미노루가 그렇듯이 현대 일본의 아버지란 아버리로서의 성숙을 거부한 영원한 아들이다. 그것이 가정에 있어서 아버지의 부재를, 지나친 모자 관계의 밀착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서술 트릭에 성공한 덕분에 자체로는 평범했을 심리학적 인식에 선명한 소설적 발견을 가져다 준다. 독자는 결말에서 작가가 장치한 서술 트릭에 놀라고 동시에 아들=아버지의 도식으로 상징되는 현대 일본의 가족병리에 직면한다. 읽은 뒤의 멍한 느낌은 이 두 가지가 중첩된 것 아닐까?
아비코 다케마루는 서술 트릭 시론에서 서술 트릭에는 단순히 독자를 속일 뿐만 아니라, 때때로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착각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독자는 내내 등장인물이나 무대의 속성에 대해 오인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속임수와 작품의 테마가 일치했을 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걸작이 태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아비코 자신이 쓴 <살육에 이르는 병>에도 충분히 해당된다 할 수 있다.  35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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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4평방 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런 단독 사무실이 특권이라면 굳이 열심히 일해서 승진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이곳은 그야말로 사다리 꼭대기에서 더는 올라갈 곳이 없는 사람을 위한 공간 같았다.


“정치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게임입니다.”(시장의 말)
..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권력을 잡지 못하면 불가능하지요. 표가 없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고, 민심을 외면하면 표를 얻을 수 없어요. 그래서 대중을 달래기 위해 선의를 희생ㅇ해야 할 때도 있죠.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정치라는 거.”
..
시장은 예전에 그를 향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냈고, 노골적인 공작을 벌여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는 대중을 자극했다. 그는 울프가 부도덕의 상징이라는 식으로 줄기차게 묘사했다. 시장에게 울프는 사람들이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적절한 희생양이었다.
턴블 시장이 헛발질만 하는 런던 경찰을 비난하고 나서자, 시장의 지지율은 끝없이 치솟았고, 그에 힘입어 시장은 획기적인 ‘경찰 개력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경찰들 앞에서 울프를 법정 최고 형량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기브 칼리드가 두 번째로 체포된 후로는 상황이 코미디처럼 역정되었다. 그러나 시장은 이번에도 울프를 이용하며, 울프처럼 ‘용감하고 위대한 경찰’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는 정치인의 지휘 아래 지지자들은 결집했다 울프의 피를 요구했던 시장의 지지자들이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어 그를 복직시켜야 한다는 청원 운동을 벌였다.
시장의 영향력과 ‘추락한 영웅’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대대적인 운동이 없었더라면 울프는 여전히 철창 안에 갇힌 신세였을 것이다. 하지만 울프가 그에게 갚아야 할 빚 따위는 없었다.
..
“이해합니다. 다들 자기 일을 했을 뿐이에요. 기자들도, 변호사도, 칼리드에게서 저를 떼어내려고 제 손목을 부서뜨린 법정 경위도요. 압니다.”(울프의 말, 윌리엄 올리버 레이튼 폭스 경사)

  
“자네도 나처럼 여기 오래 있다 보면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게 될 거야. 슬플 뿐이지. 내가 수사관 생활을 하며 배운게 있어. 누군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결국은 그쪽에서 반격한다는 사실이야.”
“울프를 변호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하지만 그동안 ‘착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끔찍한 짓을 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어. 바람피우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인 남편, 학대하는 배우자에게서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 결국은 깨닫게 되지……”
“뭘요?”
“‘착한’ 사람은 없다는 것. 아직 지나치게 몰아붙여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야.”


“어디 한번 말해 봐. 네가 악마라면 나는 뭐가 되지?”(울프가 연쇄살인범 매스와 싸우다가 하는 말. 이 말을 한 이유는 책을 봐야만 알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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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버지는 집에서 되도록 잡음을 내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 기분에 맞추려고만 했지요.]
[어머니를 두려워하셨나요?]
[평화를 원했지요.]
그녀의 말투에서 약간의 경멸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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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주정뱅이였을 때,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굶주리고 지쳤으면서도 자존심만은 잃지 않았을 때가 더 좋았다. 아니, 정말 그럴까? 어쩌면 내가 좀 더 나은 처지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6

[나는 나약한 놈이야. 배짱도 없고 야망도 없지. 황동반지를 골라놓고 금반지가 아니라서 놀라는 놈이야. 나 같은 놈은 삼녀서 딱 한 번 절호의 기회를 만나는데, 높이 매달린 그네를 타고 완벽하게 묘기를 선보이는 순간이랄까. 그러고 나면 길가에서 시궁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여생을 보내지.]  39

커피메이커의 물이 막 끓는 참이었다. 나는 불을 줄이고 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리 대롱 하단에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불을 조금 키웠다가 남은 물이 마저 올라가자 재빨리 도로 줄였다. 커피를 저어 주고 뚜껑을 덮었다. 타이머를 3분에 맞췄다. 말로는 대단히 꼼꼼한 놈이니까. 커피 끓이는 솜씨를 발휘할 때만은 아무것도 방해할 수 없으니까. 절망에 빠진 사내가 지니고 있는 권총조차도.
나는 술을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그대로 앉아 있어. 한마디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으라고.]
그는 둘째 잔은 한 손으로 들고 마셨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재빨리 세수를 했다. 부엌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타이머벨이 울렸다. 불을 끄고 커피메이커를 식탁 위의 밀짚 받침에 옮겨 놓았다.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까지 시시콜콜 늘어놓는 이유가 뭐냐고? 분위기가 너무 긴장돼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연극의 한 장면처럼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모든 움직임이 선명하고 대단히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무의식적인 행동조차도 -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습관적으로 되풀이했건 상관없이 -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치르게 마련이다. 마치 소아마비를 앓고 나서 걷기 연습을 하는 사람과 같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당연시할 수 없다.
커피가 다 내려오자 여느 때처럼 소란스럽게 공기가 쉭쉭밀려들고 커피가 부글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커피메이커의 상부 유리병을 떼어 내고 뚜껑 구멍에 꽂아 건조대에 놓았다.
커피 두 잔을 따르고 그의 잔에는 술을 섞었다. [테리 자네는 블랙으로 마셔.] 내 잔에는 각설탕 두 개를 넣고 크림도 넣었다.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리는 듯했다. 언제 냉장고를 열고 크림을 꺼냈는지 의식하지도 못했으니까.  44-45

몇몇 사실이 그의 참모습을 다 말해 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145

[나는 글쟁이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를 마땅히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아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베린저박사에게서 구출되어 나올때, 웨이드가 했던말.)  223

[말로? 왠지 당신이 좋아질 것 같소. 당신도 조금은 개자식이니까. 나처럼.]  225

[.. 범죄와 사업의 차이가 바로 그거야. 사업을 하려면 자본이 필요하거든. 가끔은 그게 유일한 차이가 아닐까 싶어.](할릴 포터 회장의 말)  283

‘달은 보름날에서 나흘이 지난 형상이고, 벽면에 비친 네모난 달빛이 크고 희부연 맹인의 눈처럼 나를 바라본다. 벽눈(사팔눈, 말의 푸른 눈, 눈이 큰 물고기 등의 의미)이다. 이건 농담. 젠장, 시시껄렁한 직유법이다. 작가라는 놈들은 참. 뭐든지 다른 것과 빅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 머리는 생크림처럼 흐물흐물하지만 그리 달콤하지 않다. 또 직유법을 써버렸다.(웨이드가 말로에게 부인몰래 버려달라고 했던 종이 내용중에서)  306

[..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이른바 민주주의 사회요. 다수가 지배하는 세상이란 말이오. 제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이상적인 제도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투표는 대중이 하더라도 공천은 정당이 하는데, 정당이 성장하려면 돈을 많이 써야 되거든. 누군가는 돈을 내놓아야 하는데, 개인이든 기업이든 노동조합이든 뭐든 간에 모종의 대가를 기대하기 마련이오. ..](할릴 포터 회장의 말 중에서)  351

[돈에는 야릇한 특징이 있소.] 그가 말을 이었다. [많이 모이면 자기만의 생명력을 얻고, 심지어 자기만의 판단력까지 갖는다는 사실이고. 그렇게 되면 돈의 힘을 관리하기가 몹시 어려워지지. 인간은 옛날부터 돈을 섬기는 동물이었소. 불어난 인구, 막대한 전쟁 비용, 가혹한 세금의 끝없는 압박, 그런 것들 때문에 더욱더 돈을 섬기게 되지, 보통 사람은 누구나 지치고 두려워하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은 이상을 품을 여유가 없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이 시대에 우리는 사회 윤리와 개인 윤리가 무시무시하게 추락하는 과정을 목격했소. 삶의 질이 떨어져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는 없소. 대량 생산된 제품에서 품질을 기대할 수도 없고. 품질이 좋으면 너무 오래 써서 곤란하지. 그래서 겉모양만 자꾸 바꿔 주는데, 일부러 물건을 모두 구닥다리로 만들어 버리는 상업적 속임수요. 대량 생산 체제에서는 오랳 생산한 제품이 내년쯤에는 벌써 낡아 보이도록 만들지 못하면 새 제품을 팔아 먹지 못하니까.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새하얀 부엌과 가장 반짝거리는 화장실을 갖추고 살지. 하지만 그렇게 새하얓고 근사한 부엌에서 일반적인 미국 주부들은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지 못하고, 반짝거리는 근사한 화장실은 탈취제, 설사약, 수면제, 그리고 사기꾼 집단이나 다름없는 화장품업계의 온갖 제품을 보관하는 창고에 지나지 않소. 제품 포장 하나는 우리가 세계 최고요, 말로씨. 내용물은 대부분 허접쓰레기지만.]  353

[.. 내 책은 다 길지. 독자들이 긴 책을 좋아하거든. 멍청한 독자들은 장수가 많으면 거기에 황금이 잔뜩 묻혔다고 믿는단 말이야. ..]  366

[.. 나는 늙은 경찰이고 늙은 경찰은 애물단지야. 웨이드 사망 사건에서 몇 가지가 마음에 걸려.]
..
[.. 그 사람이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
[웨이드 책상을 뒤져 봤어. 자기 앞으로 편지를 썼더군. 쓰고 또 쓰고 또 썼더라고. 취했거나 말거나 마냥 타자기만 두드렸나 봐. 더러는 터무니없고 더러는 좀 우습고 또 더러는 슬프더라. 그 사람 마음속에 분명히 뭔가 있었지. 그런데 계속 변죽만 울리고 끝내 말하지 않더라니까. 그런 친구라면 자살할 때 적어도 두 장짜리 유서는 남겼을 거야.]
내가 다시 말했다. [그때는 취해 있었다니까.]]
[아무리 취해도 뭔가 끼적거리던 사람이잖아.] 올즈가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또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하필 그 방에서 일을 저질러 부인이 발견하게 했다는 거야. 그래, 취하긴 했지. 그래도 마음에 걸려. 또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하필 쾌속정 소음 때문에 총소리가 묻혀 버릴 만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거야. 그런다고 본인한테 달라질 게 있나? 그것도 우연일까? 그렇다면 부인이 하필 하인들이 쉬는 날 열쇠를 두고 나갔다가 집에 못 들어와서 초인종을 눌러야 했던 일도 우연이겠군.]
..
[.. 증인석에서 부인은 자네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어. 웨이드가 살아 있었더라도 서재에서 방음 시설을 해놨으니까. 하인들은 외출했어. 목요일이니까. 그런데도 다 잊었대. 열쇠를 잊어버렸듯이.]  419-420

[.. 반론 있나?]
[범행 동기는?]
[그래, 그게 문제야.] 그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421

[나는 낭만주의자요, 버니 선배. 한밤중에 비명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그래봤자 한 푼도 못 벌어. 똑똑한 사람은 그럴 때 창문을 닫고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지. 가속 페달을 냅다 밟으며 멀리 내빼든지. 남의 일에 끼어들기 싫으니까. 그래 봤자 나만 손해니까. 테리 레녹스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내 집에 마주 앉아내 손으로 끓인 커피를 함께 마시고 담배도 함께 피웠소. 그래서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부엌에 가서 커피를 끓였는데, 그 친구 영전에 커피 한 잔 따라 주고, 담배한 개비에 불붙이고, 커피가 식어 버리고 그 담배가 타버렸을 때 작별 인사를 했소. 그래 봤자 한 푼도 못 벌어. 선배라면 그렇게는 안 하겠지. 그래서 선배는 좋은 경찰이고 나는 사설탐정 노릇이나 하는 거라고, 아일린 웨이드가 하도 남편걱정을 하기에 내가 찾아 집으로 데려다줬소. 한번은 로저가 연락해서 문제가 생겼다기에 부리나케 달려갔고, 잔디밭에 쓰러진 그 친구를 낑낑거리며 침대로 데려다 눕혔지만 역시 한 푼도 못 벌었소. 수고비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지. 오히려 걸핏하면 면상이나 얻어터지고 깜빵에 처박히고 멘디 메넨데스 같은 깡패한테 협박이나 당하기 일쑤라니까. 그래도 돈은 한 푼도 못 벌었어. 금고 속에 5천 달러짜리 지폐가 있지만 그 돈은 반 푼도 못 쓰겠지. 내 손에 들어온 과정이 좀 꺼림칙해서. 처음에는 그 돈을 가지고 놀기도 했고 요즘도 가끔 꺼내서 들여다봐. 하지만 그뿐이야. 한 푼도 못 쓰겠더라고.]  422-433

[이거 알아?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자네는 그냥 멍청한 거야. 벽에 비친 그림자처럼 빤하다고. 나는 20년 동안 경찰 노릇을 하면서 오점을 남긴 적이 없어. 누가 날 속일 때마다 알아차리고 누가 뭘 감출 때마다 알아차리거든. 똑똑한 체하는 놈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속일 뿐이야. 내 말 명심하라고. 겪어 봐서 잘 아니까.]  424

고함만큼이나 크게 들리는 적막도 있는 법이다.  458

[.. 범죄는 질병이 아니라 증상이야. ..]  532

[결혼을 싫어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1백 명 중 두 명한테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도 있겠죠. 나머지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그렇게 20년쯤 지났을 때 남자한테 남는 거라고는 차고 안에 들여놓은 작업대 하나가 고작이거든. 미국 아가씨들이야 끝내주지. 그런데 미국 유부녀들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해서 탈이에요.]  548

아침에 내가 일어나 커피를 끓일 때도 그녀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입었다. 그때 비로소 그녀가 깨어났다. 우리는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나는 택시를 부르고 그녀의 여행 가방을 계단 밑으로 옮겼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택시가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았다. 다시 계단을 올라갔고 침실에 들어가 침구를 걷어내고 새것으로 갈았다. 베개 밑에 긴 갈색 머리카락 한 올이 남아 있었다. 가슴속에 납덩이가 쿵 떨어지는 듯했다.
프랑스인들이 그런 느낌을 잘 표현했다. 젠장, 그 인간들은 모든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  551



작품해설 - 지친 탐정에게 보내는 연서(김용언, <미스테리아>편집장)

미국에서 발달한 하드보일드라는 장르 자체가 백인-노동자-남성을 주요 독자로 설정했고, 온갖 펄프 잡지에 미친 듯이 글을 발표하면서 원고료로 먹고사는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나도 당신들과 같은 노동자>라는 점을 대놓고 어필했다. 작가와 탐정, 독자의 삼위일체가 자아내는 동질감이야말로 하드보일드의 폭발적인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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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여일 동안 일본 작가들의 추리소설과 제일교포 작가들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일본은 출판 강국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장르문학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은 분명 배워야 할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전문적인 추리소설 분야는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분야의 소설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물론 이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본격 추리소설(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탐정처럼 풀어나가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물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만 존재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사회적인 문제점들을 꼬집으면서 추리소설을 진행함으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차호 찾아다니면서 서서히 실체를 풀어나가는)은 사회의 문제점을 적확하게 꼬집어 냄으로 생각해야만 함을 강조하고 있다.
몇 권을 소개하면 


시미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일본에서 신본격파 추리소설 장르를 일으켜 내었던 책이다.
미라타와가 냉소적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유추하여 사건을 해결하는데, 다섯 명으로 여섯 시체를 만들어낸 기발한 내용은 '소년탐정 김전일'의 육각촌 살인사건에서 패러디를 할 정도였다.














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요시키 시리즈 중에 한 권인데, 사회파 소설로 일본이 묵과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고통받은 한인들을 생각해보지 않고서 미래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를 감추는 것일뿐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노인이 기발한 발상을 한것이라기 보다는 그의 한이 발상으로 연결되어 하늘을 움직였으리라 짐작해 보게 된다.
작가는 마지막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당신은 양초를 많이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왜였지?"
"노숙할 때 제일 필요한 것은 불이니까...전부터 모으고 있었습니다."
"노숙을 하면서 동생과 함께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서였나?"
그가 천천히 끄덕였다.
"한국에, 고향에 돌아가고 싶나?"
그러자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눈물이 후드득 흘러넘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격렬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나....."
요시키는 가슴이 무척 아렸다. 그러나 동생의 원한을 풀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 일본에 머물렀던 것이다.
"고향에는 .... 아내가 있습니다."
속삭이듯이 그는 말을 계속했다. 아내가 있던 것인가! 요시키는 다시 충격을 느꼈다.
"저는 이제 됐습니다..... 하지만 사할린에 저 같은 사람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
.

요시키는 유치장을 나가 담당자에게 잠금장치를 걸게 하고 의자를 3층 복도 구석에 돌려 놓았다. 그리고 철창 너머러 여태영을 바라보았다. 여태영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가만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요시키는 그가 얼굴을 들기를 잠시 기다렸지만 그럴 것 같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
"지독한 꼴을 당하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유치장 앞에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노인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보이지는 않았다.  506-507


"세상은 너 따위가 머릿속에서 짜 맞추는 스토리대로 돌아가지 않아. 바보는 바보, 범죄자는 범죄자다. 쓰레기는 쓰레기라고. 이번 일로 잘 알았겠지?"
요시키는 주임을 쫓아가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어깨를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려 멱살을 잡고 주임의 등을 시멘트벽에 확 밀쳤다. 계단 전체가 쿵 하고 진동했다.
주임의 겁먹은 눈이 요시키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는 몸을 허우적거리며 외쳤다. 
"이 자식, 평생 형사 짓이나 해먹고 살아라!"
"상관없어."
요시키는 나직이 대답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으스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떤 깡패 자식에게 평생 존댓말을 해도 상관없고,  권력지향 따위 요만큼도 없는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이렇게 온순한 나를 때때로 당신같은 남자가 광포하게 만들어. 당신은 이 사건이 문지 알고 있나? 이 사건이 일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나 있느냔 말이다! 아직도 치매 걸린 노인이 소비세의 의미를 몰라서 발작적으로 여주인을 죽인 사건이라 생각하겠지."
요시키는 입술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노인에 대한 자신의 무력함이 사무쳐 있었던 것이다.
"공부하지 않고, 일하려고 하지 않고, 추적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놈드링 꼭 우쭐거리며 타인을 경멸하려 들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하고 싶으면 해라, 나는 상관없으니까. 그러나 그 처사만은 참을 수 없어! 나를 바보라 부르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 노인을 쓰레기라 부르며 이 이상 힘들게 하는건 참을 수 없어. 가만히 놔둘 수 없단 말이다!"
주임을 노려보니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바보겠지. 언제나 돈 한 푼 되지 않는 일에 힘이나 쓰고, 뻐겨도 되는 녀석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가장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에게 호통을 치지. 그러나 이 성격은 고칠 수 없어. 틀렸다고 생각하면 경시총감에게라도 확실하게 말해준다. 아무리 나쁜 패를 뽑아도 내 신념대로 갈 수밖에 없어. 당신에게 알아달라고는 안해. 그러나 그냥 놔둬. 내 바람은 단하나, 내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만나는 일에 대해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라고 말하며 죽어가고 싶어. 다만 그뿐이다. 방해하지마."  50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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