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판 서문(1995)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궂은일들이 남기는 상처는 시간낭비와 함께 정신적 육체적인 손상까지 입힌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사람에 대한 회의, 그러나 그것마저 삶의 피할 수 없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며 소설의 자양으로 소화하려고 애썼다. 인간의 역사 위에 분명 훌륭한 사람들은 존재했었고, 소설은 어찌할 수 없이 인간 긍정의 작업이니까.  6

최근 사오 년 동안에 터무니없이 범람하고 남용되는 단어가 ‘문화’와 ‘철학’이다. 그 두 단어는 아무 말에나 붙어 복합면ㅇ사를 이루면서 허위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모호성을 가중시켜 혼란을 일으키게 한다. .. 그런 모호한 치장을 즐기는 사회심리는 무엇일까.  7


1 일출 없는 새벽

“나 대물림굿 하는 것 봤소.”
“야아?”
자신은 너무 놀라 얼결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바로 눈앞에 정하섭의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 있었고, 그 눈이 불이라도 붙은 듯한 뜨거움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길을 받아낼 수가 없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왜 무당이 됐소?”
“……”
“엄니가 시켜서 그랬소?”
“……”
“되고 싶어서 그랬소?”
“……”
눈물을 참느라고 목에 메었다. 정하섭은 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자신은 눈물을 넘기고 또 넘기며 ‘니같이 이뿐 애가 워째무당딸이 됐는지 몰르겄다’ 했던 어린 날의 정하섭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답답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왜 무당이 됐는지 대답 좀 해보시오.”
정하섭이야말로 정말 답답한 말을 묻고 있었다. 그럼 나더러 어찌하란 말인가 …… 자신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것이 지 운명이구만요.”
“운명 …… 운명 …… 운명 ……”
정하섭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은 새로운 눈물로 젖고 있었다.
“소화ㅏ가 무당딸만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하섭은 그런 말과 함께 자신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자신이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이름만 가졌지 그건 좀체로 누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그저 ‘무당딸’이었을 뿐이다.  29-30

그가 첫 수음을 했던 중학 3학년 때, 죄의식과 부끄러움과 전신 마디마디가 시리도록 저릿거리며 퍼지는 어지러운 자극의 쾌감에 신음하며 보았던 두 여자. 하나는 책방집 딸 정님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소화였다.  32

“임무수행 중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소. 술과 여자요. 그건 둘 다 독이오. 술은 감정을 해이하게 만드는 독이고, 여자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독이오. 철저히 경계하라. 단, 냉철한 당원의 이성으로 판단했을 때 사업에 절대이익을 줄 수 있는 여자까지 포함시키는 건 아니오. 그 판단기준은 당원의 이성에 맡기겠소.”
서울에서 세뇌교육을 받을 때 임철수라는 중간간부가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낮고도 일정한 음향의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36

“버마 전선에서 꼬박 나흘을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싸웠네. 모두 지쳐 쓰러져 있는데 소대장이 한다는 소리가, 지금 밥을 먹겠느냐 여자를 갖겠느냐, 하고 묻는 것이야. 그런데 다 여자를 갖겠다고 했네. 그게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인간의 기묘한 심리네. 인간이란 그렇게 복잡미묘한 것인데 어찌……” 김범우 선생의 말이었다.  37



2 가슴으로 이어진 물 줄기

그려, 다 이 못난 애비 죄여. 이 애비 원망을 속 풀릴 때꺼정 혀. 근디, 불쌍헌 내 새끼야, 니 팔자는 애비를 원망헌다고 풀리는 것이 아녀. 피 타고남스로 매듭매듭맺힌 한(恨)인디, 고걸 워째야 쓸끄나, 한은 맺히기만 혔지 풀리는 것이 아닝께 한인 법인디, 고건 풀라고 발싸심허먼 헐수록 헝클어진 실꾸리맨치로 얽히고 설키다가 종당에는 지 명(命)꺼정 끊어묵는 법인디……(판석 영감, 하대치 아버지)  42

나라가 금하는 일을, 그것이 제아무리 옳고 바르다고 해도 나라와 맞서 이기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판석 영감이 칠십 평생을 통해서 겪어온 경험이었다. 동학란이 그러했고 일정 때의 독립운동이 그러했다.
“니넌 이름땜 허니라고 그리 드세게 사는갑다. 큰 대(大)에, 다스릴 치(治), 애시당초 가당찮은 이름이었제. 느그 할아부지의 택읎는 욕심이었는디, 고 이름을 그대로 붙인 나가 더 큰 잘못을 저질른 것이여……”  43-44

하대치의 아내 들몰댁.  44

“요것은 니 애비가 동학 따라 집 떠남스로 이 할애비헌테 냄긴겨. 나가 살아서 니 아들헌테 붙여줬어야 헐 이름인디, 앞자가 큰 대자, 뒷자가 다스릴 치자라고 혔다. 고것이 느그 애비가 생전에 품은 한스런 맴이었는디…..”(판석 영감의 할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말)  49

나날의 생활이 아무리 고되어도 세월은 흘러가는 맛이 있어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52

학식을 깨우친다는 것이 병이 되는 것일까.  54

아들놈은 저희들이 하는 일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지만, 하고 또 해야 된다고 했었다. 아버지도 그런 마음으로 동학에 가담한 것일까. 판석 영감은 확연히 잡히지 않는 그런 어릿거림 속에서도 결코 아들을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는 않았다.  55

하대치가 오늘에 이른 것은 모두 염상진이 끼친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어온 것도 10년 세월이 넘어 있었다. 사범학교까지 나온 염상진은 하대치의 여백 많은 머릿속에다가 많은 모종으 ㄹ이식시켰다. 기질적으로 피의 농도가 짙고, 환경적으로 불만요인이 많고, 태생적으로 자학성이 강한 하대치는 그런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기름진 토양이었는지 모른다.  58

마누라였다. 들몰은 마누라의 친정이었다. 그래서 순심이라는 이름이 분명히 있는데도 사람들은 마누라를 들몰댁이라 불렀다.  68

경찰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도망할 줄은 몰랐고, 경찰이 없는 세상에 지주며 유지라는 것들이 또 그렇게 맥을 못 쓸 줄을 몰랐었다.  71



3 민족의 발견

아버지(김사용)가 읍내에서 손꼽히는 지주 중의 한 사람인 것은 강아지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건 인민이 정하는 기준이니까. 김범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민이 정하는 기준, 그건 넘어설 수 없는 난해한 벽이었다.  77

김범우는 아버지가 염상진을 마치 자식 이름 부르듯 하는 것을 듣자 가슴이 먹먹해오는 감정의 굴절을 느꼈다. 아버지는 염상진이 타고난 낮은 신분의 피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의 총명함과 사리분명함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염상진과 호형호제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마음의 진부(眞否)를 놓고 머뭇거리세 된 것이다.
“아무래도 아부님도 떠나셔야 헐 것 같습니다.”
“어허, 쓰잘디읎는 소리. 상진이 지를 못 믿겄으먼 이 애비도 피허라고 허드람서. 그 말이 무슨 뜻이냐. 상대방이 내보인 진심을 믿지 않는 것만치 큰 죄가 읎는 법이여. 그때부터 생사람 잡는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가그라, 싸게 떠나.”  78

김범우는 하나의 악마를 보고 있었다. ..
전혀 다른 두 모습의 문 서방, 그 어느 쪽이 진짜인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표변할 수 있는가. 그 어느 쪽이 진실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이중적일 수 있을까. 그때 퍼뜩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있는 자들은 자기들만 사람인 줄 알지. 더러 그렇지 않은 우등생도 있지만 말야. 난 그 단순한 자만을 고맙게 생각하네. 거기에 우리가 설 자리가 있고, 그게 그들 스스로가 빠져들어갈 함정이니까.” 염상진의 말이었다. 그렇다, 인간은 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감정의 줄기를 소유한 동물이다. 문 서방의 전혀 다른 두 모습은 그런 인간의 속성이 표출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모습은 다 문 서방의 참모습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따라 그것은 반응하는 것이다. 문 서방은 아버지에게는 선한 인간으로 반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한 인간으로 반응한 것뿐이다. 만약 아버지가 악한 지주였다면 문 서방은 여지없이 악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 서바으이 악은 악이 아니라 선인 것이었다. 88-89

그들이 무장투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군정의 무력탄압에 그 명백한 원인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위를 ‘폭력’으로 간주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방어적 폭력’이었고 ‘상대적 폭력’이었다. 미군정은 여운형의 조선인민공화국 부인, 친일파 핵심세력인 한민당의 옹호, 민족반역세력인 군 경찰 출신들의 재등용 비호, 공산당 활동 불법화, 청년단 구성과 백색테러 감행, 공산당원들의 무차별 체포와 조직 파괴공작,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폭력행위를 조직적이고 단계적으로 시행해 왔던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남로당은 지하활동 속에서도 수난과 피해로 얼룩진 세월을 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차별한 폭력 앞에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또다른 폭력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제국주의적 지배술수에 말려든 것일 수 있었고, 군정이 더 가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타당성과 근거를 만들어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쪽의 폭력이 상대의 폭력을 이기지 못할 때 그건 자멸의 길을 재촉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게 폭력의 생리이고 법칙이었다.  90

김범우는 그 ‘방어적 폭력’의 외로움과 한계성이 너무 답답할 뿐이었다.

“.. 나는 이제 OSS 첩보훈련원 톰슨이 아니라 조선인 김범우라는 사람인 것을 확실히 구분해 주기 바랍니다.”(김범우가 미군정 화이트 대위와 만나 대화중일부)  103

“사회주의 건설만이 그 길이야.”(염상진)
..
“좋아요,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정치적 택일이 아닙니다. 그건 한 민족이 국가를 세운 다음에나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김범우)
..
“자네 말은 아주 그럴듯해 보여. 그러나 그건 부르주아적 환상이야.”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국과 소련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긴가 이념인가 하는 것에 놀아나 민족이 서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뜻인데, 그게 부르주아적 환상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요?”
“우리에게 해방은 곧 인민혁명이야. 해방은 곧 새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고, 그 시작은 인민혁명을 통한 새 나라의 건설부터네. 그런데 자넨 시대역행적으로 케케묵은 민족이나 찾고 잇지 않느냔 말야.”
“그렇게 속단하지 마세요. 민족이라고 하니까 핏줄만을 중시해서 어중이떠중이 다 싸잡아서 말하는 민족인 줄 압니까? 현시점에서 친일반역세력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어요. 그런 부류들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절대다수의 민중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집단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굳이 ‘민족의 발견’이라고 했어요. 형은 그게 바로 인민혁명세력의 규합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닙니다. 그 민족에는 일체의 정치성이 배제되어야 합니다. 아니, 더 확실하게 말해 그 민족 아래 모든 정치이념들은 단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국과 쏘련에 점령당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소련은 자기네들 이익추구를 위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갈려 이념을 먼저 선택하면 우리 민족은 결국 분열밖에 할게 없다 그겁니다.”
..
“그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린가! 일정 때부터 쏘련만큼 우리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관심 쓰고 도와준 나라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과연 그럴까요? 내가 두 가지 사실만 지적해 볼게요. 첫째는 신탁통치 결의고, 둘째는 미군정이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탁통치라는 건 미국이 혼자서 결정한 일입니까? 그건 엄연히 쏘련이 두 개의 제국주의국가와 나란히 앉아 작당하고 야합해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장소까지 모스크바에서. 우리나라를 먹이로 놓고, 제국주의자들과 서로 이익을 분배하고 있는 쏘련의 처사가 과연 옳은 것입니까? 그런 쏘련이 어찌 우리 편일 수 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자네가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쏘련의 전략전술이야.”
“그래요? 철저한 그들의 대변자로군요.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보지 말고,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럼 그 모순과 허위가 보일 겁니다.”
..
“.. 둘째로 미군정이 인공을 부인했는데, 그게 미국이 현실적으로 힘을 쓰지 못해서 취한 처삽니까. 그건 곧 자기네 점령지구에서 공산주의를 부정한 것이고, 혁명을 부정한 것입니다. 이래도 미국이 힘을 못 쓰는 겁니까?”
..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행동통제를 받지 않는 포로로 특별취급을 받으며 수용소에서 내가 한 일이 뭔지 압니까? 미국과 쏘련의 세계전략에 관한 책들과 논평들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얻어진 것은, 미국은 제국주의적 팽창주의고, 쏘련은 그에 못지않은 공산주의적 패권주의라는 사실입니다. 그 두 개의 어마어마하게 큰 발에 짓밟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땅과 우리 민족입니다. ..”
“지름길을 두고 돌아갈 건 뭔가. 오늘 얘기로 자네가 사회주의를 버렸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확인했네. 자네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허황한 것인가는 곧 알게 될 거네. ..”
염상진은 일어섰다. 김범우는 염상진을 올려다보았다. 염상진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린 것 같았고, 김범우의 얼굴에는 쓸쓸함만이 머물러 있었다. ..
그의 머릿속에는 염상진과 함께 사회주의를 논했던 먼 기억이 가득 차 있었다. ..
“범우 자네 맘 내가 다 알어. 허나, 나는 자네하고는 피가 다르네.”  110-115



4 소화, 하얀 꽃이라는 이름의 무당

그녀는 미약한 한줄기 바람의 힘에 순종하여 떨어짐을 짓는 꽃잎처럼 요 위로 무너져내렸다.  120

“이 말은 자네(정하섭)가 제일 싫어하는 말일지 모르겠네만, 자넨 아마 광적인 사회주의자는 못 될 거야. 자네가 부잣집 아들로서 출신성분이 부적합하다는 말이 아냐. 부디 공부에 충실하고, 하나의 행동을 선택하기 전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생각이 앞서야 하네. 지금은 진정 어려운 시대야. 자네 같은 젊은 피들한테는 말이야……”
작별인사를 하러 갔을 때 김범우 선생이 자신의 마음을 환희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눈길을 보내며 한 말이었다.  150

염상진 위원장은 .. “김범우 선생은 참 좋은 분이다. 마음이 바르고, 인정이 있고, 학식이 풍부하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 환상적인 게 흠이지. 좋게 말해서 꿈속에 사는 이상주의자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하섭은 인간 김범우와 염상진을 저울질해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저울눈금은 언제나 수평이었다. 비슷하게 큰 키에 염상진의 인물도 기울지 않았다. 염상진도 마음씀이 컸고, 치밀하고 침착했고, 아는 것이 많으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런데 표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분위기였다. 김범우가 사색적이고 지성적이라면 염사진은 야성적이고 행동적이었다.  152-153

정하섭이 마른 볏단에 불붙듯 사회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염상진에 의해서였다. 좀더 순서를 잡아 말하자면, 염상진을 접하기 저넹 벌써 당의정을 빨듯 책방주인 문기수를 통해서 초벌구이는 되어 있었다.
정하섭은 책방집 딸 정님이에게 정신이 팔려 뻔질나게 책방을 드나들었고,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책을 사들고 나오고는 했다. 주인 문기수는 그 눈치를 어렵지 않게 챌 수가 있었다. 한다하는 부잣집 아들이 자기 딸을 좋아한다는 것이 문기수로서는 기분 괜찮은 일이었고, 족보로나 재력으로나 비교도 안 되는 처지였지만 그물에 제 발로 든 고기를 놓치기는 아깝다는 욕심이 동했고, 목적을 당성하자면 있는 집 자식의 장난기일지도 모르니까 정신부터 뜯어고치자 작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과 다른 친절을 보이고 관심을 쓰면서 서서히 사회주의의 분말을 딸년의 눈웃음에 버무려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기수는 자기의 힘으로는 벅찬 단계에 이르자 사상적 연관을 맺고 있는 염상진에게 넘긴 것이다.  153

족보와 더불어 세습되는 혜택 속에서 평생을 편안하게 사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154-155



5 조계산 숯막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북조선의 힘은 막강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혁명의 붉은 깃발을 세웠고, 이듬해에 지주와 부르주아 계급 말살과 함께 토지개혁을 완료한 북조선의 조직화된 공산주의의 힘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미군정하에서 시작된 남조선은 어떠했는가. 친일파와 지주계급이 군정과 어울려 득세를 했고, 새 시대의 국민을 위해 실시한다는 토지개혁은 해방 3년이 지나도록 단행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건 오합지졸이 모인 힘의 비조직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힘은 조직화될수록 강해지고, 그 힘은 공격을 감행할 때 더 강해지고,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을 때 그 힘은 절정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건 힘의 법칙이고, 힘의 미학이었다.  163

힘은 힘 앞에서만 굴복한다.  163-164

염상진은 깊이를 더해가는 회의를 떠쳐내려고 괴로운 신음을 물었다.  164

안창민은 염상진의 사범학교 후배이기도 했다. 염상진에게 3년이, 김범우에게 1년이 아래인 안창민은 두 사람을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들 셋은 사회주의 이념에 마음을 하나로 뭉친 때가 있었다.  169

안창민은 고읍들의 지주 안재윤의 하나뿐인 손자였다. 한말(韓末)까지 행정의 중심을 이루었던 낙안 고을에 대대로 뿌리를 내려온 안 씨 문중은 그 뼈대로나 재력으로나 넉넉히 큰기침할 만했다. .. 말년에 망나니 아들로 속을 썩일 대로 썩이다가 화병을 얻어 제명을 다 못 살고 죽었다. 그때 벌써 아들 안수규는 투전판을 들락거리고 주색에 빠져 재산의 반 이상을 날린 상태였다. 안재윤이 죽고 나자 가세는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졌다. 안서규는 방탕한 생활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마침내 전답 거의를 헐값에 팔아치워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것으로 안재윤의 집안은 겨우 논 30여 마지기를 가진 소지주로전락. .. 종적을 감춘 안서규는 3년이 미처 못 되어 남원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이 바람에 묻어 왔다. 안창민의 나이 열세 살 때였다.  171-172

염상진 .. “이눔아, 사람 한시상 사는 것이 똑 갱물 흐르디끼 허는겨. 큰 물줄기 따라감스로 지 몫아치 딱 잡고 앞만 보고 애써 살아가자먼 시나브로 풀리게 돼 있는겨. 무식헌 애비 말이라고 뒷등으로 듣지 말고 얼렁 맘 고쳐묵어. 이 애비야 암시랑 않다만 처자석 생각혀서 맘 고쳐묵고 선상질이나 열심히 허란 말이다. 이눔아, 선상님 지체먼 하늘에 별 딴 것이지 멀 더 바래는겨. 애비 말듣고 있는겨?” .. 그러나 길이 잘못 잡힌 큰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를 거부하는 그의 마음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보다 우선했다.  174

염상진의 아버지 염무칠이 지주 최씨네에서 꼴머슴살이를 벗어나 읍내의 숯가게에 취직한 것이 열여섯 살 때였다. 염무칠의 아버지는 낙안벌의 토호 최씨네의 가복이었다. 국법에 의해 노비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땡전 한 닢 없는 신세로 어디로 거주를 옮길 것이며, 이미 소작을 부치고 사는 작인들도 농지가 줄어들까 봐 급급하는 판에 소작인들 어디서 구할 것인가. 천생 소작을 얻게 되는 경우는, 주인이 그동안의 노고와 종리를 생각해서 소작 나가 있는 농토를 재조정해서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어느 만큼 마음을 쓰는 지주들은 다 그런 방법으로 거느렸던 가복들의 생활 대책을 세워주었다. 그런데 염뭋칠의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그런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 도리 없이 최씨네에 눌러앉아 문서 없는 가복 노릇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175-176

“날로 달로 개명혀 가는 시상이니께 농새만 짓고 한평생 살라고 허덜 말어. 이 애비가 산 시상허고 니가 살 시상허고는 생판 달블 것잉께.” 눈을 감기 전날 염뭋칠ㄹ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염무칠이 숯가게 배달원으로 취직을 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그 말을 좇아서였다.  176

본건사회의 세습제와 유교전통의 불문율인 장자(長子)제일주의 인습을 염무칠은 미련하도록 철저하게 지켰던 것이다. 두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염무칠은 장남과 차남의 위치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모든 것이 장남 본위, 장남 우선이었다.  181

염무칠이 세상을 떠난 것은 큰아들이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 다음해였다. .. 사람들은 두 아들놈이 불쌍한 염 서방을 잡아먹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큰 아들은 사범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나오고도 선생을 마다하고 농사일을 시작했고, 완전히 주먹패가 되어버린 작은 아들은 철교 아래 선창에서 칼부림을 해 일본 선원을 찔러죽이고 도망친 사건이 터진 것이다.  182

김범우의 아버지 김사용을 찾아가기로 했다.
염상진은 일본군국주의 정신을 주입하는 선생 노릇을 차마 할 수 없어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는 요지의 말을 김사용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정연하게 해나갔다.
“저에게 농사지을 땅을 좀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전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땅을 얻고자 하면 다른 소작인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개간을 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빌려주시가는 겁니다.”  183

“잔네의 그런 큰 결단 앞에 내 어찌 땅뙈기 내놓기를 주저허겄는가. 자네가 필요헌 만큼, 개간을 헐 수 있는 만큼 쓰도록 해줌세.” ..
“외레 내가 고마우네. 농담으로 묻는 말인디, 그래, 땅을 빌려 쓰면 사용료는 얼마를 어떤 방법으로 낼 심산인가?”
김사용이, 어디 보자, 하는 애정이 넘친 표정으로 염상진을 쓰다듬듯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어르신의 소작인이 되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사용료 같은 것은 없이 일정 기간 동안 빌려 쓴 다음 반환하기로 하겠습니다. 반환받으실 때는 박토가 옥토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184-185

상진이가 두 학년이나 차이가 나는 번우와 가까이 지내게 된 것은 바로 ‘김범준’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그 사람, 그건 꼭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 형을 가진 범우가 너무나 부럽고, 범우와 가까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다.  188

염상진, 김범우 ..
그들은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탐독했던 것이고, 거기서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 사회주의 서적을 접하는 데 있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인식의 차이가 내재해 있었다. 김범우는 지주의 아들로서 소작농들의 헐벗고 굶주리는 비참한 생활에 대하여 자책과 죄의식을 느끼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상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면 필연적으로 봉건계급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의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상진에게는 그런 자책과 죄의식의 과정은 아예 생략되었고, 이상세계의 빠른 실현을 위해 지주계급이나 경제적 지배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 무산자들의 힘의 조직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김범우가 인간생존의 양심을 밝히는 불씨를 얻었다고 한다면, 염상진은 인간생존의 방법을 뒤바꾸는 부기를 얻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3-194

염상진이 김범우를 동지일 수 없다고 판단 내린 것은 범우가 하병에서 돌아온 다음부터였다. 김범우도 똑같은 시기에 염상진의 극렬적 좌경을 체념해 버렸다. 염상진은 한때 김범우를 완전한 적으로 속단할 뻔했다. 김범우가 교직에 몸담으면서 좌익학생조직을 와해시키는 행동을 시작해서였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태워올리고 있는 불길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적 행위였다. 그건 재고의 여지가 없는 정면도전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 아래 감상적인 옛우정이란 한갓 두엄더미 옆에 구르는 똥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염상진이 김범우를 혁명의 적으로 단정하려 할 즈음에 김범우의 실체가 드러났다. 백범 김구식의 민족주의 통일노선을 김범우는 실현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범우는 경찰서고 군정청이고 드나들며 좌익계 학생들을 석방시키기에 바쁘고, 한편으로는 좌익 학생들을 설득시키느라고 진땀을 빼는 것이었다.  194-195

그가 지향하는 바나 행동하는 것은 그 나름으로 일관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의 동지도 아니었고 적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동지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었지만 그건 또다른 ‘주의’는 될 수 없었다.  195

읍내를 점령하기 전날 밤 굳이 김범우를 찾아가 피신하라고 일렀던 것도 그의 ‘민족 발견’을 위한 행위 때문이었다. ..
미리 피신시키는 것이 우정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김범우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했지만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김사용 어른을 인민재판의 단상에 세웠던 것은 두 가지 목적에서였다. 먼저, 지주인 그분을 보호하는 데 떳떳한 명분을 세우고자 함이었고, 다음은, 다른 지주들을 처단하는 데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196-197



6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요

김범우는 깊이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느리게 뿜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또 염상진이 생각났다. 김범우는 그의 생각을 떼쳐내려고 했다. 6일째 꼼짝없이 갇혀 지내는 동안 신물이 나도록 그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투철한 의식의 사회주의자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토록 성급한 공산주의자로 변할 줄은 몰랐었다. 그의 지성은 어디고 증발했기에 인민재판을 주도할 수 있었으며, 공개처형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죄지은 자의 죽음은 마땅하다 하더라도 그 즉흥적인 방법과 감정적 행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2

이념의 현수막을 내건 정치적 전쟁은 바야흐로 그 수레바퀴를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어느 쪽에서나 민족은 내세워졌으나, 정작 수레바퀴 아래 깔려야 하는 건 민족이었다.  203

벌교와 낙안에 걸쳐 뼈대나 재산을 자랑할 수 있는 집안들은 꽤나 있었지만 그 자식들이 독립운동에 몸 바치고 있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경사났다고 벌이는 잔치는 법관시험에 합격했다거나 은행원이 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04

벌교는 한마디로 일인(日人)들에 의해서 구성, 개발된 읍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 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벌의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던 갯가 빈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전라남도 내륙지방의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를 집중 개발시킨 것이었다.  205

“문 서방, 문 서방은 문 서방 이름으로 된 땅을 갖고 싶지요?”
“하먼이라, 살아생전에 안 되먼 저승에 가서라도 풀고 잡은 소원인디요.”
“그럴 테지요. 만약 그 소원이 풀려 열 마지기쯤 논이 생겨 농사를 지었는데 그 쌀을 몽땅 빼앗긴다면 어떻게 되겠소?”
“워따 워따, 그럴라면 염병헌다고 농새를 지어라?”
문 서방은 눈까지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렇지요, 농사지을 필요가 없지요. 그럼, 쌀을 그냥 빼앗긴 것이 아니라 다 나라에 내놓고 매달 배급을 타다 먹으면 어떻겠소?”
‘미쳤간디요? 지가 진 농새 죽이 끓든 밥이 끓든 지 손으로 간수허는 맛에 살제 무신 초친맛이라고 배급을 타다 묵어라, 닌장맞을. 동냥아치도 아니겄고, 고런 농새도 안 지어라.”
“그런 농사도 안 짓겠다면, 그럼 이런 것은 어떻겠소? 그 누구의 명의도 아닌 수백 마지기 논에 공동으로 동네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정해진 양을 배급 타먹는 것 말이요.”
“어허, 갈수록 태산이시웨. 아, 니 것도 내 것도 아닌 논에 그눔에 농새 아조 자알 되야묵겄소. 지 농새 짓대끼 쎄 빠지게 일헐 놈 하나또 읎을 것잉께 가실허고 나먼 쭉징이만 수불헐 농새 지나마나 아니겄소?”
“문 서방, 염상진이가 논을 분배한다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오.”
..
“.. 고것도 말이라고 헌당가? 그려서다 항꾼에 잘살게 된다고 떠들어쌓는감구만. 근디 고건 공염불이여. 시상 사는 이치를 몰라서 허는 소리제, 내 텃밭 배추가 쥔네 밭 배추보다 속살이 더 여물게 차는 이치가 먼지도 몰르고.”  209-210

농지개혁에 대비해서 지주들은 자기네 농토를 가난한 친척들 앞으로 명의변경을 해서 은폐시키거나, 타인에게 매도하거나 하는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 ..
“참말로 순사가 들었다 허먼 몽딩이찜질당헐 소리제만 서방님 앞이니께 허는 소린디, 사람덜이 워째서 공산당 허는지 아시요? 나라에서는 농지개혁헌다고 말대포만 펑펑 쏴질렀지 차일피일 밀치기만 허지, 지주는 지주대로 고런 짓거리덜 해대제, 가난허고 무식헌 것덜이 워디 믿고 의지헐 디 읎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다 쳐읎애고 그 전답 노놔준다는디 공산당 안 헐 사람이 워디 있겄능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212

지난 4월 19일 김구가 김규식과 함께 남북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있는 열성을 다 바쳤었다. 제발 서로가 정치적 욕심을 앞세우지도 말고, 강대국이 내세우는 이념에 얹혀 춤추는 꼭두각시 노릇도 하지 말고, 나라 잃어버리고 산 36년의 굴욕과 슬픔을 먼저 생각하며 민족이 똘똘 뭉쳐 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222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약소민족들의 자존이나 독립을 철저하게 우롱하고 기만하며 강대국들의 상호 이익 보호를 위한 연극적 대사였듯 연합국이라는 존재들이 해방된 한반도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깊이 회의하게 만들었다.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공동의 살을 방어하고 옹호하는 집단이어야 한다는 구체적 개념으로 바뀌어 있었다. .. 해방된 땅의 정치적 혼돈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백범 김구가 바로 자신과 똑같은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아, 백범! 김범우는 그 옛날부터 지녀왔던 그분에 대한 신뢰감 위에 감동의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후로 김범우는 백범에게 모든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분이 2월 10일에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반다하는 성명으로 발표한 <3천만 동포에 읍고함>이란 글은 민족의 현실과 장래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사랑하는 피가 통하는 진실의 기록이었다. ‘마음속에 삼팔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에 삼팔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 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칠심 유 삼인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 금일 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랴! 더구나 외국 군정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랴!’ 하는 대목에서 그분의 인간적 진실을 보았고,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하는 대목에서도 지도자로서의 외로움을 보았다. 그러나, 김범우가 소망했던 남북협상은, 5월 10일 남한에서 유엔 한국위원단 감시하에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고, 5월 14일 북한에서는 남한에 대한 송전을 중단함으로써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남한에서는 8우러 15일에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고, 북한에서는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로써 김범우의 소망은 그야말로 환상이나 망상이 되고 말았다. 40여 년 만에 가까스로 찾은 선택의 기회를 그처럼 망가뜨려버리는 현실 앞에서 그는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그의 망막 속에서 백범의 초상은 하얗게 표백되고 말았다. 그는 교단에서도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기계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 죄책감으로 학교를 떠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인가 되풀이했던 것이다.  223-224

자기 나름대로 억울하게 죽은 자가 남긴 피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저주하는 영혼인 것이다. 염상진은 코웃음치며 이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경찰서뿐만이 아니라 읍사무소고 세무서고 우체국이고 다 불 질렀다 한들 어떠랴. 인명을 어떤 객관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리 성급하게 살상하지 말고 그런 것들이나 다 태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핏자국이 나타날 때마다 김범우의 흔들리는 의식 속에서 염상진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가 소화다리를 다 건넜을 때는, 한 개의 작은 점으로 변해있던 염상진은 그의 의식 밖으로 사라져 갔다.  226

김범우는 염상구의 뒷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찝쩝 입맛을 다시고는 발을 떼어놓았다. 그는 염상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것도 그의 가슴을 덮는 우울이었다. 무슨 견원지간이라고 염상구는 또 형 염상진과 반대 입장에 서 있게 됐을까……. 230

염상구는 작년 9월에 결성된 대동청년단의 열성단원으로 좌익 지하조직을 파내는 데 적잖은 공을 세웠을 것이다. 그건 형 염상진이와 맞서 싸우는 일이었고, 그래서 염상구는 그 일에 더 신바람이 났을지도 모른다.  232

손승호 .. 그는 작년 6월까지만 해도 좌익에 발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우익의 탄압에 맞선 좌익 테러가 속출하면서부터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국제공산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지역을 불문한 세력확장의 도구고 사용되는 허구성을 발견하고는 사상적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를 버렸을 뿐 그 반대개념의 사상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상적 ‘전향’을 한 것이 아니라 사상의 공백상태에 있었다. 그가 괴로워한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주의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 사상의 실현을 위해서 인간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점이었다. 인간을 위한 주의가 아니라 어떤 주의를 위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변질을 그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설득과 이해의 균형이 없이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그 어떤 주의나 사상보다는 차라리 원시상태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손승호의 생각은 김범우의 생각과도 거리가 있었다. 김범우가 관심하는 ‘민족’이라는 자리에 손승호는 ‘인간’을 놓고 있는 셈이었다.  238-239

“아까 자네가 오기 직전에 무슨 말 했는지 아는가? 손승호 그 사람이 자네 형한테 붙들려 죽을 뻔했던 이야기를 하던 참이야. 자네 형은 다시 전향하라고 했고, 끝까지 말을 안 들으니까 총까지 들이대더라는 거야.”
“그 말을 워처케 믿냐니께요.”
염상구는 교활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입가에 바르고 있었다. 형의 이야기에 조금도 감정변화를 보이지 않는 차가움이었다.
“이 사람아, 그런 식으로 의심하자면 나는 어떻게 믿나?”
김범우는 두려운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집단화된 의식의 단면이었던 것이다.  240-241



7 그리고 청년단

다 식어빠진 고구마 위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그 투명하고도 섬세한 무늬의 날개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싸리나무의 명주실보다 가는 끝가지에 살폿 앉아 네 개의 투명하게 붉은 날개를 비스듬히 치켜세우고 허공에 미세한 율동이 파문을 일구던 여름의 생명력을 고추잠자리는 이미 잃고 있었다. 10월이 저물어가는 찬기운 서린 대기 속에서 고추잠자리는 한 생애를 살아낸 고단한 육신을 싸늘하게 식은 고구마 위에 부려놓고 있었다. 여자가 파리를 쫓듯 손부채를 부쳤지만 고추잠자리는 날아갈 줄을 몰랐다. 손바람에 늘어뜨린 날개가 둔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무신 놈에 잠자리가……” 여자가 중얼거리며 마디 굵은 손가락으로 고추잠자리를 잡아 무심하게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허공에 떠오른 고추잠자리는 본능적인 날갯짓을 했지만 몸은 비상을 하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만 떨어져내렸다. 푸른 음향이 맑게 흐를 것 같은 10월의 깊은 하늘만이 한 마리 고추잠자리의 임종을 침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253

철교 아래 선창에서 일본 선원을 찔러죽이고 도망쳤던 염상구가 읍내에 다시 나타난 것은 해방과 함께였다. 그는 이미 쫓김을 당하는 살인자가 아니었다. 일본놈을 용감하게 처치한 당당한 독립투사로 변해 있었다. 그가 물건 훔쳐내다가 들켜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254

염상구의 가슴을 뿌듯하게 했던 것은 읍내 치안대의 장악에 있었다. 그것은 해방과 동시에 여운형(呂運亨)이 발족시킨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벌교지부에 소속되기를 바라며 자생적으로 생겨난 조직이었다. .. 염상구로서는 여운형이고 건준(建準)(미군정이 시작되면서 해체됨)이고 알 바 아니었고, 지부에 소속이 안 되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목전에 펼쳐져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만이 중요한 현실이었다. 지안대의 실권자로서 염상구가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이 자신의 이력 변조였다.  257

이유야 어찌 되었건 40년에 이르는 일제의 지배를 받는 동안 벌교읍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근동에서도 일인을 살해한 것으로는 염상구가 유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258

그는 치안대가 해산되자 전국청년단체총동맹의 지부 실권자가 되었고, 1947년에 이르러서는 정치 발판을 굳힌 이승만이 결성한 대동청년단의 지부 실권직인 감찰부장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러한 권력지향성은 어찌할 수 없이 형 염상진과 대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58-259

아버지의 구박과 편애, 형의 자만과 무시 속에서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다독거림이 있어서였다. 어머니가 아무도 몰래 건네주던 콩누룽지를 받아들고 뒷산 팽나무 아래서 얼마나 목메어 울었던가. 콩누룽지 한 덩어리가 고마워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형만이 아니라 자신도 사랑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정이 고마워 목이 메었던 것이다.  259

염상구가 형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 것은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공산당의 모든 조직이 지하로 잠적하면서부터였다. 염상구로서는 공산당이나 사회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를 아예 느끼지 않았다. 그건 적이었다. 경찰에서 그렇게 단정했으니까 적이었고, 형이 가담해 있으니까 더욱 적이었다.  260

“머시냐, 아무리 무당딸이라도 이름은 있을 것인디, 이름이 머시요?”
“소화구만요.”
“소화? 소화? 밥 묵고 소화시킨다는 소화는 아닐 것이고, 무신 뜻이요?”
“흰 꽃이라는 뜻인디요.”
“흰 꽃? 허어, 참말로 누가 진 이름인지 생김허고 딱 맞아떨어지는 기맥힌 이름이시.”
얼결에 말을 해놓고 염상구는 그만 스스로 민망해졌다. ..
염상구는 서둘러 돌아섰다. 그러나 되돌아서 멀어져가는 소화라는 무당딸의 뒷모습을 음탕한 눈길로 지켜보고 서 있었다. 저, 저 살랑살랑 흔드는 방댕이 잠 보소. 무당춤 폴짝폴짝 얼싸얼싸 잘 춰대는 아랫심 씬 것 보먼 저년 니노지가 아매 낯짝 이쁘게 생긴 거맨치로 쫄깃쫄깃허고 옴죽옴죽헌 것이 꼭 겨울꼬막 맛일 거이다. 헌디, 신 내린 무당 잘못 건디렸다가는 급살을 맞등가 빙신이 된다니께 말이여. 화아, 저것 한번 조지고 급살을 맞을 수도 읎고, 운 좋아 급살을 면해야 빙신이 되는 건디, 와따메 참마로 사람 환장허겄네잉.  269-270

한 팔로 그녀의 목을 감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등을 더듬어내리고, 허리에 잠시 머무른 손은 둔부를 지나 허벅지까지 내려갔다. 그는 애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기억해 두고 싶은 욕구가 성욕에 앞서 있었다. 그의 손은 다시 그녀의 어깨로 올라왔다. 그녀를 끌어안았다. 꼭꼭 끌어안으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자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하는 평소의 자문(自問)이었다.  286

정하섭은 돌아섰다. 그리고 뒷산 쪽을 향하여 날쌔게 뛰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이내 어둠에 묻혔고, 눈을 부릅뜨다시피 한 소화의 시야에서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소화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의 가슴에서는 실타래가 풀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끝은 정하섭에게 묶여 있었다. 아무리 험한 길을 아무리 멀리 가도 끊어지지도 동이 나지도 않을 실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가슴에서 끝도 한도 없이 만들어지는 인연의 실이었던 것이다.  289-290



8 이념 이전의 인간

재판소의 이 판사. .. 일제치하에서 고등고시라는 것을 거쳐 판검사가 된 거의 모든 인간들이 그렇듯 그도 철저한 일제의 주구 노릇을 감행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친일한 거의 모든 인간들이 그러했듯 그도 아무런 속죄의 표현도 없이 군정과 함께 다시 그 뻔뻔스러운 얼굴을 들고 판사 노릇을 해먹고 있었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지난 5월에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애국을 부르짖은 것이었다. 일제치하에서 자신이 소작인의 권익옹호를 위해 분투한 것이 얼마며, 피해 받는 동포의 인권옹호를 위해 헌신한 것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건 친일지주 계급들이 자위책으로 한민당을 결성하여 신속하게 미군정을 등에 업었고, 그것도 불안하여 민중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인물로 이승만을 골라 당수에 앉히고자 했고, 민족개념이나 통일조국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집권욕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이승만은 굴러들어온 떡을 마다할 리가 없었고, 그리하여 그 힘이 전국적인 정치세력으로 확장되면서 그드르이 정치형태는 시궁창보다 더 더럽게 변해갔고, 마침내 이 판사 같은 인물이 애국자로 둔갑해 국회의원에 출마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293-294

처남 신석주와 좌익과 …… 그건 아무래도 걸맞지 않았다. 좌익을 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만큼 체질적인 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의’나 ‘사상’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한 그건 이미 ‘감상’이나 ‘환상’이 아닌 것이다. 그 어떤 주의나 사상이든 그 최종목표는 실천에 있었다. 첫째가 의식의 실천인 것이며, 둘째가 행동의 실천인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라는 것은 그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처남은 그런 조건에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298

“노상에서 이리 서 있지 말고 어디 다방에라도 좀 들어갑시다. 이렇게 얼굴 대하게 된 것마도 천행 아닙니까.”
선우진이 김범우의 팔을 끌었다. 그의 예사로운 것 같은 말이 김범우의 가슴에 찡한 파문을 일구었다. 그는 1946년 상반기에 황해도에서 월남한 사람이었다. 토지개혁 실시로 지주였던 그의 집안은 파탄을 맞아야 했고, 그는 삼팔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토지는 말할 것도 없고 값나가는 살림살이까지 몰수를 당하는 바람에 대학졸업장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 졸업앨범 하나만을 달랑 가지고 내려온 그의 일화는 선생들의 우스갯감이 되고는 했다. 감정 같아서는 다른 월남민들처럼 경찰에 투신해서 남한에 박힌 빨갱이들을 잡아내는 족족 쏴죽이고 싶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데 그는 총구멍만 보면 사지가 오그라붙는 것 같아 경찰에 투신을 못하고 졸업앨범을 졸업장 대신 내밀어 선생이 된 것이다. 토지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는 총구멍에 어지간히 혼쭐이 난 모양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의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봉건적 사회체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극복되어야 하고, 친일반민족세력을 냉정하고 엄정하게 처벌해서 민족단위의 국가를 만든 다음 모든 일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농민이 8할을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농지개혁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김범우와는 논리적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타향살이의 외로움 탓인지 김범우에게 계속적인 호감을 표시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300-301

“.. 선우 선생이 사회주의 사상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것이나, 그들이 자본주의 사상을 적대시하는 것이나 결국 확일주의이기는 마찬 가지니까요. 내가 놀라는 건 그들이 총살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봐요, 주의를 앞세워 서로가 서로를 원수 삼아야 하는 이 땅의 비극이 무엇을 위하는 것인지 말이오.”  303

“.. 선우 선생이 그냥 평범한 직업인이 아니고 ‘선생’인 한 그건 좀 곤란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선생은 더 말할 것 없이 학생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최소한 객관적 판단을 견지하면서, 정치적 견해도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선우 선생은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교육자 입장에서, 그리고 객관적 판단력을 가진 지식인 입장엥서 서청을 보아야 하고, 이번 사태도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서청의 행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비난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발생한 금년부텁니다. 반공을 앞세운 그들의 잔혹행위가 사회적 말썽을 일으킨 것은 그들이 확실한 공산주의자만을 처단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에 대한 개인적 감정에 휩쓸려 무고한 양민들까지 무분별하게 살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그런 잘못을 저지른 서청을 선우 선생이 무조건 지지하고 두둔한다면 학생들이 선우 선생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건 선우 선생의 사상 문제 이전에 인격 자체를 불신당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304-305

“..선우 선생은 역사 앞에서 최소한이나마 냉정을 회복한 다음,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월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를, 왜 그들이 경찰, 군인이 되고 또 서청 같은 단체를 조직했는가를, 그리고 왜 그들에 대해서 사회의 일반적 인식이 나쁜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모두 너무 자명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선우 선생이 찾아내지 못하면 선우 선생은 계속 불행할 겁니다. 내가 끝으로 한다미만 하겠습니다. 해방이 되고, 그게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었더라도 선우 선생은 지금과 똑같은 형편에 처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지주계급의 몰락, 그것은 올바른 역사의 흐름입니다. 친일반역세력의 척격, 그것 또한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입니다. 선생으로서 그 사실을 납득해야만 합니다.”
“그건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주장 그대로요. 김 선생, 도대체 당신 정체는 뭐요!”
선우진이 느닷없이 소리 지르는 바람에 김범우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가 그만 성냥을 도로 놓았다.
“알겠소, 그만 일어납시다. 난 아직 바쁜 일이 남아 있소.”
김범우는 체념적인 얼굴로 담뱃갑을 챙겨들었다. 선우진은 의혹스러운 눈으로 김범우를 쳐다보며 무겁게 따라 일어섰다.  306

“셰익스피어는 역시 인도하도고 안 바꿀 만큼 위대한 모양이네, 자네의 시간 때움을. 해줄 수 있으니 말야. 그 잡품이 어던 것이었나.”
김범우는 친근한 웃음을 띠어 보였다.
“햄릿을 그냥 뒤적이던 중이네.” 손승호는 무언가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라도 있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그런 자신의 태도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지 또 신경에 거실리기라도 한 듯, “셰익스피어가 위대한지는 몰라도 그런 비유법을 쓴 영국인들은 한심한 종자들이야. 그 과장의 정도야 아무래도 상관할 게 없지만, 비유의 대상을 한 나라로 잡았다는 건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야. 셰익스피어가 제아무리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한들 어찌 인도보다 더 위대할 수 있느냔 말야. 인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는 차치하고라도 거기엔 4억을 헤아리는 인간들이 엄영히 생존하고 있어. 그 생명들의 존엄성보다 셰익스피어가 더 위대하다니, 그따위 발상법을 가진 영국인들은 일본놈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식민주의자들이야. 물론 어떠 ㄴ유식한 자가 무심코 쓴 비유법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무심코’ 만족을 느낀 것이고, 자기네 민족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한 방법으로 계익스피어를 세계호ㅘ시키면서 또 그 비유를 ‘무심코’ 써먹은 거야. 셰익스피어가 분명 봉건 왕조시대의 작가지만 자기의 작가정신이 그처럼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으로 비유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그 반대였겠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그런 좋은 작품들을 써내지 못했을 테니까. 셰익스피어는 후대를 잘못 둔 셈이지.”  
손승호는 경멸적인 웃음을 입가에 물고 있었다.
김범우는 놀라운 눈으로 손승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그야말로 무심코 던진, 그 예사가 된 한마리를 붙들고 그처럼 긴 이야기를 하는 데 놀랐고, 자신으로서는 및치지 못했던 그 논리추출의 예리한 시각과 논리개진의 완벽한 방법에 놀랐다. 손승오희 그런 논리는 그가 왜 좌익의 테러화와 함께 사상적 전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건 문학적 인도주의를 사고의 바탕으로 마련하고 있는 손승호의 필연적 귀결인지도 몰랐다.  318-320

어떤 사실의 모순이나 왜곡에 대해서 아무리 논리적 비판을 가하고 이론적 규명을 한다 한들 현실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때 허망감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었다. 그 논리가 명징하면 할수록, 그 이론이 명확하면 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질 터였다.  320

“.. 그 누가 감히 그 현실적 삶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있겠는가. 역사 비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겠나. 다 지나가버린 세월, 아무리 열 올리며 비판한다고 해봤자 이미 그르쳐진 일이 바로잡힐 리가 있겠나. 그런데도 그게 계속이거든. 왜 그러겠는가. 인간은 현실을 살 수밖에 없는 동물이고, 그 과거적 삶 속에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비워주는 거울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자네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소릴 나야말로 부질없이 지껄여대고 있구먼.”
김범우는 담배를 빼들었다.
“사람 참, 별소릴……”
손승호는 김범우 앞으로 통성냥을 밀어놓으며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이고 있었다.  321

“자네도 알겠지만, 핵심 좌익들은 벌써 다 도망을 쳐버렸네. 물론 붙들려온 사람들 중에는 및처 피하지 못한 자들도 있긴 있을 것이고, 세포들도 끼여 있겠지. 그런 것을 가려내는 거야 경찰의 업무니까 말할 바 못 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 등의 감정이 개입돼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 염려가 있네. 그 피해를 최소한 막아보자는 거네.”  322

“범우,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네. 허나, 자네가 그런 제안을 했으니 내 생각을 마하려네. .. 자네나 나나 염상진 선배가 애초에 사회주의에 경도되었던 것은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는 아니잖은가.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것도 변질되기 시작했네. 금년에 남북 양쪽에서 서로 다른 주의를 앞세워 서로 다른 이름의 나라를 세우면서 우리 모두는 인간적으로 민족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살해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죄를 저질렀네. 그리고 나타난 현상이 뭐였나. 서로의 사상을 정치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인간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극렬적 충돌이었네. 그런 야만적 행위가 또 어디 있겠나. 난 완전히 환멸하고 절망했네. .. 범우 자네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행동적 동의를 할 수 없는 것은, 그런 경직된 상황 속에서 자네와 같은 뜻이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고, 자칫 잘못하다간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실수를 범할 것이기 때문이네. 날 비겁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네. 난 모든 것에 선행해 인간이고 싶네. 난 그걸 지키기 위해서 사회주의를 버렸고, 총을 들이댄 염상진의 위협에도 굽히지 않았네. 자네의 뜻이 바로 순수한 인간적인 것임을 아네만 현실은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좌익학생들을 위해 분투했던  때와는 상황이 너무나 다르네. 협조를 할 수 없어 미안하네.”  323-324

그는 인간의 인간다운 삶의 길을 위하여 사회주의를 택했었다. 그런데 결국 그가 만난 것은 인간부재의 현실일 뿐이었다.(손승호)  328

김범우는 그 어스름 속을 걸어가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손승호의 말이 새로울 것은 없었다. 주의가 정치적 대결자으이 무기로 변한 것도, 그 속에서 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가 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오해를 야기시킬 위험성도, 김범우는 이미 생각했던 바였다. 그러나 김범우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엇던 것은 주의가 정치 폭력화햇다는 점이었다. 미군정이 공산당 활동의 불법화 조치를 취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폭력대결은 정부수립을 기점으로 남쪽에서 공산주의라는 것은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북쪽에서의 자본주의라는 것은 절대 용납불가가 된 것이다. 그 결과의 표현이 바로 이번 사건이었다. 염상진이 겨우 5일 동안에 100명 이상의 인명 살상을 자행할 줄 상상이나 했던가. 그건 염상진이라는 개인의 뜻이 아니라 정치 폭력화한 주의의 충돌이었던 것이다. 염상진은 이미 주의를 지배하는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주의의 정치적 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변신한 것이었다. 정치라는 것만큼 본질을 전도하는 것도 없을 것이고, 염상진은 그 전도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100명쯤은 의당 죽일 수 있는 타당성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염상진이 그러했다면, 그 상대적인 힘은 두 배 이상의 가격을 할 권리르 얻게 되는 것이다. 정치 폭력의 역학이라는 것은 별것이 아닌 것이다. 일본 교사들이 조선인 학생들에게 즐겨 써먹었던 ‘서로 따귀 갈기기’의 처벌법이 갖는 가해성과 마찬가지였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점더 상대방을 세게 갈길 수밖에 없는 가해성, 그때 내가 때리고 있는 것이 내 친구라는 사실은 이미 망각해 버린다. 상대는 오직 나를 아프게 하는 적일 뿐이고,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공격성만 가속화하는 것이다. 김범우는 그 정치적 가해성은 외면하고 있었다. 그건 비탈길을 굴러내리기 시작한 수레바퀴의 불가항력적인 힘이었기 때문이다. 김범우의 관심은 그 수레바퀴 아래 멋모르고 깔려 압사해야 하는 민중들의 억울에만 쏠려 있었던 것이다.  328-330

사람의 운명이란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354



9 문딩이 가시내, 팔자도 참 험허게 변했다

“문딩이 가시내, 팔자도 참 험허게 변했다.”
점례는 멀어져가는 옛 친구 순심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360

방죽 위에는 관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관들의 수효만큼 여러 음색이 곡성이 뒤엉키고 있었다. 들몰댁은 숨을 헐떡이며 질린 눈으로 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스라쳐 놀라 돌아섰다. 들목댁은 방죽의 비탈을 구르듯이 내려갔다. 갈숲은 흰 꽃술을 달고 무성했다. 들몰댁은 갈숲을 휘젖기 시작했다.
..
“저 여자 왜 저러는겨?”
“보면 모르남? 뻔허제.”
“몰라서가 아니라 갈밭에는 인자 시체가 하나또 읎다는 말이시.”
“냅두소. 말해 줘도 소양읎을 것잉께. 지 눈으로 읎다는 것을 확인헐 때꺼정 저러고 댕겨야 허네.”
방죽 위에서 두 남자가 들몰댁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378-379

들몰댁은 경찰서를 찾아갔다. .. 그녀는 북국민학교를 찾아갔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떠밀어냈다. .. 다시 방죽을 향해 걸었다. .. 갈숲을 헤치자 헤치다 들몰댁이 방죽의 비탈에 지쳐 쓰러졌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했다. .. 고구마 두 개씩으로 점심을 때운 새끼들이 배가 고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
들몰댁이 동구에 들어선 것은 어둑어둑해서였다. 그녀는 비척거리며 고샅을 돌았다.
“엄니이!”
소리치며 뛰어오는 것은 길남이었다. ..
“엄니, 워디 갔다 인자 와. 할아부지가 오셨는디.”
“머시여?”
..
“참말이여? 은제여?”
그녀는 목멘 소리로 외쳤다.
“아까 점심때 지내서.”
“워메, 내년이 넋 빠진 년이다, 넋 빠진 년.”
..
들몰댁은 다급함 속에서도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시아버지는 아랫목에 반듯이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
들몰댁은 서둘러 보리쌀을 안치고 불을 지피면서야 맘 놓고 눈물을 흘렸다. 380-382

며칠 만에 되찾은 잠자리였다. 들몰댁은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처음 그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을 때는 꿈인가 했다. 그러나 두번째 그 소리를 듣고 들몰댁은 번쩍 잠이 깼다.
“이봐, 문 열어, 문!”  382

어둠 속에서 남자가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들몰댁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들몰댁은 끄는 대로 끌려 마루로 나왔고, 토방으로 굴러떨어졌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 하며 가슴이 컥 막혔다.
“경찰에서 풀려났다고 너희들 죄가 다 끝난 줄 알았다감 천만의 말씀이야. 우리가 누군 줄 알어? 하대치, 바로 그 악질 빨갱이새끼한테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이다. 지금부턴 우리가 내리는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런 말씀ㅇ야. 알아들어?”
마당에 버티고 섰던 다섯 개의 그림자가 몽둥이를 치켜들며 일제히 몰려왔다. 들몰댁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려박았다. 몽둥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들몰댁은 이빨을 뿌득뿌득 갈다가 결국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애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아슴푸레하게 들으며 끝내 까무러치고 말았다.
들몰댁이 깨어났을 때는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엄니, 엄니, 항아부지가 죽었어.”
..
“아부님, 아부님……”
들몰댁은 넋 나간 얼굴로 시아버지를 흔들었다.
“집집마다 댕김서 우리 할아부지, 엄니 잠 살려도라고 사정사정 했는디도 아무도 안 왔어.”
길남이가 울음을 추스르며 말했고, 비로소 들몰댁은 ‘아부님’을 섧게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384-385

그들의 보복행위는 벌써 사흘 밤째 감행된 것이었다. 처형을 당한 집들을 제외한 나머지 집들이 보복대상이었다. 그 정보는 쉽게 그들의 손에 들어왔다. 윤태주가 청년단장 아들 현오봉을 앞세워 염상구를 만났던 것이다.
“죽이지는 않겄다 그 말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염상구가 다짐하듯이 물었다. ..
“그렇구만요.”
윤태주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고것덜이 이뻐서가 아니고 다 쓸 디가 있어서 그냥 내보낸 것잉께 만약 죽으먼 느그덜이 당혀. 그 약속만 지킨다먼 나가 도와줄껴.”
염상구는 독기 서린 찬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저어…… 염상진은 감찰부장님 형님 아니십니까.”
“근디?”
..
“그 집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
“요것 잠 보드라고 대학상 양반, 워째 하나는 알고 둘은 몰르는가 그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고런 말씸이시. 알아들으시겄능가?”
..
“나 바쁜게 그만들 가보드락. 죽이지만 말고.”
염상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염상진의 집부터 시작해서 오늘 밤 하대치의 집까지, 사흘 밤 동안 일곱 집을 쓸었다. 밤마다 일을 마치고는 윤태주의 집에 모여 밤참을 먹고 다음날 일을 계획하고는 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젊은 핏속에는 쾌락적인 승리감과 함께 보복감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395-396




10 암약(暗躍)

“.. 투쟁은 무기로만 하는 게 아닌 것 또한 사실이오. 무기에 앞서 정신력, 여건, 환경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투쟁결과는 나타나게 되어 있소. 그 좋은 예가 바로 제주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투쟁이오. 그들은 골비된 섬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7개월째 투쟁을 계속하고 있소. 양키들이 발악적으로 비행기며 군함을 동원해 최신무기를 사용하고, 서청이고 군,경을 그렇게 토입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해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 말이오. ..”(염상진과 안창민의 대화중 염상민)  434

사람들은 스스로 한 덩어리가 되어 해방의 기쁨을 나누었던 힘으 ㄹ그냥 사장ㅇ시키지 않고 새 세상 만들기오아 새 나라 만들기의 힘으로 바꾼 것이었다. .. 민중들은 압제 속에 살면서 이미 그런 준비를 해왔음을 깨달아야 했다.
사람들의 그런 자발성에 따라 건준지부와 치안대가 탄생했다. 그리고 건준지부는 곧 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민위워노히의 여러 기구에 친일반역자들이 얼씬도 하지 못한 것은 더 말할 껏도 없었다. 5만을 헤아리는 읍민들 중에 9할이 농민이고, 그 농민들 중에서 8할이 넘게 소작인인 그들이 인민위원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했다. 신속한 토지문제의 해결이었다. 그 요구와 공산주이 혁명과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맞아떨어졌다. 해방된 땅의 전체 분위기는 똑같았고, 그건 곧 혁명으로 치달아가는 길이었다. 인민은 곧 혁명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연료로서 불꽃이 당겨지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팔선 이남을 미군들이 점령했고, 그들은 군정을 선포하면서 마침내 10월 10일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때부터 인민들의 욕구는 깨져나가기 시작했고, 공산당은 피나는 투쟁 속에서 세력의 약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440-441

강동식은 하대치와 함께 그 투쟁경력이 화려한, 염상진 휘하조직의 중추이며 골수분자였다. 그는 벌교 토박이로 회정리에서만 대대로 살아온 소작인 집안 자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하대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중도의 간척논 소작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소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논에서 발을 찔렸는데 그것이 덧나기 시작해서 반년이 넘게 고생고생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5학년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꿈을 버릴 수가 없어서 혼자 힘으로 나머지 소학교 과정의 공부를 마쳤다. 하대치보다 두 살이 많은 그는 하대치와 같은 시기에 염상진과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 징용을 끌려갔다왔고, 바로 사회주의에 빠져들었다.  444

하대치가 뜨거운 기질이라면 그는 끈질긴 기질이었다.  445

배성오는 칠동리에서 부자 축에 드는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그는 순천농업학교 출신이었다. 순천농업은 순천에 있는 학교들 중에서 좌익세가 제일 강한 학교였다. 공부가 별로 마음에 없었던 그는 운동에 열중하는 한편으로 좌익에 기울어졌다. 타고난 뼈대가 굵은 그는 유도에 남다른 솜씨를 보이면서 좌익학생세력의 중심부에서 움직였다. .. 그는 정하섭의 소학교 1년 후배였다. 그리고 같은 좌익활동을 할 뿐 아니라 염상진의 영향 아래 있었다. .. 정하섭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배성오는 정하섭을 적대시하고 있었다. 책방집 딸 문정님 때문이었다. 그는 문정님에게 눈독을 들인 채 기회만 엿보며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는데 정하섭과 그 여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다. 정하섭을 기운으로 해치울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의 피해의식은 적대감으로 바뀌어갔다.  446-447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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