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10-09-2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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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책소개
돈과 삶이 함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까?'앎과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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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의 책은 그린비 인문학 프로젝트에서 이미 2권(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을 통해 만나보았다. 
2권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고민하지 않고 읽었다.
개인적인결론을 먼저 말하면 앞의 2권을 통한 기대치가 있어서 였는지는 몰라도 좀 미흡하였다고 생각한다.

호모 코뮤니타스는 경제학 서적이 아니다 그렇기에 방법론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런면에서 좋았다.
하지만 카오스 경제학의 표현을 사용하며 증여에 대해서 강조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한 설명이 있었으면 했다.
돈의 시대에서 돈의 달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는것이 참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명확하게 다양한 측면에서의 제시가 있었으면 했다.(물론 내생각..^^)

저자는 분명 돈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빠지지 않아야 할 함정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 준다.
도한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한다.
개인적으론 위에서 말한것처럼 앞선 2권에비해서는 미흡한 감이 있긴하지만 또다른 생각들을 자극하는 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젊은이 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것, 그리고 돈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에대해서 적절한 지적을 해주는 면에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한방주의, 많을 수록 좋다는 신 자유주의에 대한 정확한 지적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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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08-11-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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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연애불능시대,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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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연애.. 우리는 늘 이것을 바라고 기다리고 어쩔땐 직접 찾아나서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이것을 상상하기도 한다.

과연 사랑은 무엇이고 연애는 어떻게 하는것일까?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대체로 비슷한 코스에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일까?
사랑은 언제나 변하는 것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을 알게 되었을때 ...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유는 사랑과 연애의 비법을 그리고 기술들을 나열한 책이려니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뒤 우연히도 이 책의 표지를 다시금 보게 되었을때.. '인문학'이란 표현을 보게 되고 이것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놓았다면 어떠한 내용들을 싫었을까 궁금했다. 

목차에서 '에로스는 쿵푸다'란 표현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의 표현이다. 
쿵푸스는 실제로 스스로가 경험하고 겪으면서 체득하는 부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에로스도 그러한 맥락이란건지 궁금했다. 
결국 이 책을 보았다. 위의 호모 쿵푸스의 저자가 이 책을 썼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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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그린비 | 2007-05-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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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난 공부, 호모 쿵푸스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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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 출판사의 인문학 프로젝트 초창기에 나온 책이다.
일전에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를 재밌고 의미있게 읽었었다.
당시 꼭 인문학 프로젝트 시리즈를 모두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속으로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다른책들에 밀려 있었다.
모처럼 마음먹고 시리즈 몇 권을 들고와서 읽었다.
그중에 한 권인 호모 쿵푸스
저자는 공부에 관한 인문학적인 개념과 자신의 사유에 의한 글들을 적어 놓았는데..
길지 않는 내용이지만 좋은 내용들로 만족스러운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존 공교육의 문제와 사교육의 문제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공부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혀있다.
그 내용들에 꽤나 동조하기도 하고 있다.
저자는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고 표현한다. 
과연 그 의미는 무엇일까...??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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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다시 인문학을 논하며
자신의 생각을 그려내고 기록하면서 삼의 고민들을 공유 - 인간의 고뇌는 지식과 지혜로 발전하였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 왔다.  유인촌   5

책을 열며 - 인문학 열전? 인문학 열정!
인문학이란 한가한 고담준론(高談峻論)이 아니라 내일의 삶을 개척하는 에너지원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인문학자들은 강조합니다.  10
인문학의 이해는 '성찰'과 '지식습득'이라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다시말해 개인적 경험의 집적이 모두 인문적 내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삼아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문성이 왜 일반인의 관심사여야 하는지를 알리고, 그 필연성과 필요성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입니다.  13

우리 인문학의 길 - 김경동  김기현
바로 높은 층위에 있는 이념과 삶의 의미와 관련된 사고, 이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자기 삶의 의미를 알고, 삶을 포과적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23
독서에 관해서도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깊이 성찰해야 할 측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27
오늘날은 학문의 통섭이 이루어지는 시대인 만큼, 사회과학자나 자연과학자도 인문학자드로가 함게 토론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데에도 참여합니다만, 이런 움직임이 좀더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28
세계철학자대회는 5년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로 100년의 전통이 있스니다.  31
(2008년 서울에서 세계철학자대회를 치름)
인문학은 그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생존의 필요조건인 공통의 가치관이자 문화이고,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대중에게 인문학은 하나의 바람이 아니라 저변으로서, 우리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리라 봅니다.  34
가정에서 책을 많이 읽자, 교양이 살아 있는 교육.  35
철학자들은 지식의 추구는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도구적 효용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숭고한 가치로서 인간을 규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인식론>에서  36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상황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거쳐서 대응한다는 점이다.  37


새롭고 낯선 유혹, 통섭 - 최재천
통섭(通涉) - 통할 통(通) 자에, 건널 섭(涉) 
통합은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데 묶어놓은 것입니다.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47
통섭은 그냥 거기 섞여 있는 상태로, 녹아 있는 상태로 멈춘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뭔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번식하는, 생물학적인 어떤 합침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통섭은 그저 합쳐지는 데서 그치면 안 되고,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야 합니다.  48
통섭이 일반인들에게도 필요한 이유는? - 온갖 사회문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인간 사회가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은 어느 한 분야가 답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50
생태학 강의실에 철학과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이 도서관에서 미분 방정식을 한 달 공부하면 수업을 따라올 수 있나? 어림도 없다!!
국문과 학생을 물리학과 교실에 앉혀 놓고 양자역학 원서를 주면 한 쪽도 못 읽습니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입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복잡한 수학 문제를 내주면,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뭐고,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서 따라가야 하는지를 알아요.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기를 갖우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이죠.  58
윌리엄 휴얼은 그냥 작은 지류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룬다는 비유를 하면서 작은 분야의 이론들이 언젠가 한데 모여서 뭔가 큰 것을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60
'현재 산업국가들과 세계 경제를 한데 묶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연과학의 통합이다.'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서  65


미래의 대학, 학문의 미래 - 김광웅
행정학자는 행정 문제를 풀지 못하고, 교육학자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 학문이 서로 교류하면 문제의 정곡에 다가갈 수 있는데 담을 너무 높이 쌓아서 그게 안 된다는 거지요.  71
1945~2000년까지 미국의 GDP는 세 배나 늘었지만, GPI(Genuine Progress Index, 국민총생산(GNP)이나 국내총생산(GDP)의 개념에 시장가치로 나타낼 수 없는 경제 활동을 덧붙여 만든 경제지표. 시장가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사노동, 육아등의 경제활동가치와 범죄, 환경오염, 자원 고갈 등의 비용등 모두 26개 요소의 비용과 평익을 포괄하는 개념이다.)는 그대로 였다는 겁니다. 더 잘살려고 경쟁한 결과가 그렇다면, 이제 어떡해야 하느냐. 자아실현이나 삶의 질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만큼 남의 삶의 질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만큼 남의 살이나 생각도 존중해야지요.  78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 달랑베르는 학문을 분류하면서 인간의 이해에는 기억의 축, 상상의 축, 이성의 축이라는 세 가지 축이 있다고 함.
기억의 축을 대표하는 학문이 역사이고, 이성의 축을 대표하는 학문이 철학이라면, 상상의 축을 대표하는 학문이 바로 시학(詩學)이라고 했어요. 다시말해 창조적인 상상력을 말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시, 소설, 디자인, 음악과 같은 것들입니다.
제가 과학자들에게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logy Technology), NT(Nano Technology)는 잘 아시지만, RT가 뭔지 아시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RT는 관계기술입니다. Relations Technology. 디지그노는 분산된 것을 융합해서 더큰 부가가치, 더 역동적인 힘을 끌어내어 아름답게 구미는 지혜와 심미안을 말합니다.  82
흥어시 입어예 성어락(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 사람은 시로써 흥하고, 예로 서고, 락으로 이룬다. 즉, 사람은 시로써 일어나고, 논리와 실증적인 지식을 전수받고 공부함으로써 시작하고, 예로써 서면 도덕적 인간으로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회에 참여하며, 락으로써 논리 너머의 미학적 감수성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이다.  83
미래 리더십은 '너와 내가 함께하는' 리더십이지, 내가 앞서가고 너는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리더 - 팔로워(Leader-follower)의 리더십 개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태평성대에는 태상부지유지, 임금은 있는 듯 없는듯 아랫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지일 좋은 거거든요. 
물론 리더는 열심히 노력하고, 융합의 관점에서 많은 것을 알고, 측히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에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하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94
뭐든 사랑할 줄 알아야 지도자지, 내것만 챙기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어요.  95
어떤 변화가 시미사회에 요구되는 걸까요?
우선, 자신을 안다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남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남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쌓인다고 해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소 실천해서 남의 경험을 얻어서 깨우치면 내가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고, 합리적(reasonable) 사고만이 아니라, 서로 통용될 수 있고, 관용하고,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reasonable)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98

넘치는 교육 열정, 아이의 행복은? - 문용린

우리 나라 말에 아주 좋은 표현이 있는데,

삶과 앏의 복합어 였습니다. 이것이 진짜교육의 의미였단 말이죠.  105

삶의 지혜가 담긴 가르침을 통해 앎과 삶이 결합한 교육. 그래서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 사람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잖아요.  106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학덕을 쌓은 것이 훗날 출세와 성공으로 이어져서 바람직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그 사람 개인의 행복도 되고, 그 사람이 사는 사회에도 공헌 할 수 있는 능력(competency)이 되어야 합니다.  107

동양에서는 교육이 하느님의 사업이 아니라 패밀리 비즈니스였지만, 서양에서는 일직부터 교욱이 퍼블릭 비즈니스였던 겁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유일신이 있기에 학교 교육에는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 같은 것이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에서 하니까요.

그러나 동양의 유교적 사고로는 부모가 자기 자식을 교육해야 하거든요. 국가는 평가제도만 운용해서 시럼을 보게 하고 똑똑한 인재를 뽑아서 관리로 임용만 하면 된다는 식이죠. 우리나라 전통적인 과거제도가 바로 그런 개념입니다.  

그러나 교육의 서양화가 되면서 유교적인 관습도 남아있다보니 헷갈리게 되는것.  110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너무 '중요하다'는 겁니다. 왜 중요하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으로 당대에 신분 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11

한국, 대만, 일본의 부모는 자식 교육에 대해 '공부는 누구나 하면 된다'는 생각이 철저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미국 부모는 '공부는 아무나 해서 되는게 아니라 소질과 적성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113

'다중지능이론' -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육은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 내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학교라는 집중적인 과정에서는 학생의 내면에 숨이 있는 그 학생만의 소질, 적성,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116

(사진은 클릭하면 원본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내 아이에 대해서는 나만의 철학을 갖자는 것입니다.  121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모두 그 자체로 공부입니다.'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중에서  123


인문학적 상상을 통한 종교문화 읽기 - 정진홍
자기 종교만 절대화하기보다는 인간은 왜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종교적인 삶이란 무엇인가를 조금 거리를 두고 이해햐려는 자세가 필요한 거죠.  129
종교를 객관화해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문화라면 우선 다양성을 전제할 수 있겠죠. 시간과 공간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가지는 현상이라는 점,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검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에는 초월적인 차원이라든가, 인간의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신비와 같은 전제가  있게 때문에 그 전제에 공감하지 않으면 종교 현상을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129
해답은 끊임없이 열려 있는 해답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삶 자체가 정태적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에 무딪힙니다.  132
사유나 의지나 믿음이나 모두 함께 움직이는데, 믿음에는 조금 다른 특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주어진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넘어서는 힘, 추동력이라고 할까요?
지성적인 판단, 이성적인 길이 끝나는 데서 믿음이 시작된다.  134
우물 속의 개구리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이 동전만 하다고 말한다면, 개구리로서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실만을 말한 겁니다. 그런데 하늘은 동전보다 큽니다. 문제는 그 개구리의 정직성이나 성실성이 개구리가 범한 이른바 '지적 과오'를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능력이 있지요. 게다가 모든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 성찰하도록 유도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38
기본적으로 종교 언어는 설명의 언어가 아닙니다. 내가 느끼고 의미를 부여한 경험을 고백하는 언어입니다. 또 그런 고백을 일상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설법도 하고 설교도 하고, 그런 것을 효과적으로 시니게 하려고 주문(呪文)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38
새로운 종교적 몸짓
첫째, 종교가 몸을 폄하하는 경향. 부처님은 몸을 학대하는 금욕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깨달음의 경지는 몸을 학대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셨죠. 그 전통이 2500년을 지속했는데 금욕적인 몸의 학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둘째, 우리는 정신을 드러내는 도구로서 몸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사고나 사상으로 충족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고, 그것은 몸짓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를 이해하려면 사상적인 면도 봐야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제식적 몸짓을 연희하는 지도 봐야 합니다.  139-141
종교인이든 비 종교인이든 상상력의 공간을 확보했으면 좋겠어요.
변화도 수용하는 열린 상상력이 필요하겠죠.  146
'자신의 정직성을 스스로 신뢰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온갖 것을 자기 나름대로 물을 수 있고, 또 다듬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그러한 사람만이 학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열림과 닫힘>중에서   147
앎과 믿음은 서로 갈등관계에 있지 않다. 앎은 우리에게 정직한 자세를 갖추게 해주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삶을 감사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둘은 늘 함께 있어야 한다.  148


새로운 시대의 윤리 -황경식
철학이 다른 분야에 비해서 매우 유용한 몇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가 바로 개념의 분석입니다. 언어의 의미를 분석하는 거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 개념의 의미가 모호할 때 불필요한 소모가 발생합니다. 철학은 개념을 분석해서 의미를 명료하게 규정하여 담론이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게 하지요. 논변이란 어떤 주장이 있을 때 그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고 논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근거있는 주장이 바로 논변인데 우리가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려면 반드시 논변을 통해야 합니다. 
둘째는 철학은 논변(論辯)을 중요시합니다. 철학의 역사를 '논변의 역사'라고도 하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철학의 기능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근본을 바라보고,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궁극적인 관심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152-153
우리가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려면 핵심적인 도덕은 반드시 공유해야지요. 그러나 그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각 개인의 생각에 관용을 베풀어야 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이고, 또 그것이 새로운 윤리가 아닌가 합니다.  156
의무 윤리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덕(德)의 윤리가 되살아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의무만 가지고 윤리적인 실천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기에 윤리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 즉 두잉(doing)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품과 성푸므 존재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비잉(being)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덕의윤리는 바로 그 실천을 특히 강조하는 새로운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1
공자와 맹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수양(修養)입니다. 유혹이 와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나의 소신대로 당당하게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도덕적인 용기와 의지력으로 무장하는 것이 도덕적 실천에서 아주 중요한데, 그 점을 요즘 덕 윤리학자들이 강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163
윤리적 실천에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지(知), 정(情), 의(意)  163
덕 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164
한국에서는 태권도, 유도, 검도 등 무술에 '도(道)'자를 붙이지 않습니까?  이 도라는 게 바로 덕을 닦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 덕(道 德)'이라고 이야기하죠. 도를 닦는 것은 덕을 함양하는 겁니다.  165
문제상황을 두고 두루두루 궁리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가장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 미리 따져두면 실제 상황에 부딪혀도 당황하지 않고 슬리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166
미국에서는 30년 전부터 교육개혁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어린이 철학 교육인데, 특히 논리 교욱을 많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논리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아주 윤리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167
성의 문제는 인생에 대한 자세와 밀접하게 간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을 가볍게 여기면 삶 자체가 진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성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데 대해 가장 많이 논의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172
누구나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지만, 정작 논의를 시작하면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172
정해진 틀을 가지고 교조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을 조금 부정적인 뜻으로 '도덕론자, 모럴리스트(moralist)'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철학적인 윤리학은 모럴리즘이 아니라, 상당히 개방적인 학문입니다.  174
인문학이 언뜻 보기에는 무용지물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삶에서 겪는 어려움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 즉 무용한 듯이 보이지만 큰 쓰임이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겉모습보다 근본적인 뿌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면, 현실적인 문제에 거리를 두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176


내가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기는 원치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기를 바라거든요. 거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욕망이 개입하기 때문이죠.
그런 이중잣대로 재단해서 그 카오스적인 힘을 그냥 소모하고 마는게 아닌가 싶어요.  180
청춘을 이렇게 황폐한 사랑으로 보내고 나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가장 소중한 자신의 삶을 대가로 치르면서 그런 걸 쿨하다, 연애 선수다, 작업의 달인이다, 이런 식으로 포장하는게 역겹고 안쓰럽습니다. 자기 존재가 이렇게 메말라 버리는데, 그 대가로 도대체 무엇을 얻을까요?  182
신체가 온전하게 흔들리는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어떤 타자(他者)를 강렬하게 욕망하게 되었을 때거든요. 그럴 때 우리는 전율을 느끼고 심장이 뛰고 잠을 못 이루는 경험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일상의 감정과는 분명히 다른 것인데, 바로 이때 우리가 새로운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이런 폭풍이 한 번 지나간 다음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요. 
일반적으로는 그런 광기나 흥분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다시 원래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식으로 사유하는 것 같아요. 한바탕 이제 홍역을 치르고 나면 달라진 게 아니라 그냥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고, 또다시 그런 폭풍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내가 폭풍을 경험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몇 번의 삶을 체험하게 하는 아주 대단한 기회가 되겠죠.  191
사랑과 성이 맺는 관계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이 자기 존재, 자기 삶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문제는 분명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192
삶이 통째로 소통되고 서로 교감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195
제게는 공부가 에로스적 힘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해요. 저는 앎이 주는 기쁨이 에로스적인 것보다 더 강렬하다고 믿고, 또 배움은 원초적으로 즐겁고, 인간의 본능은 기본적으로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없으면 배움이 아니라고 믿어요.  199
양명학의 대가 왕심재(王心齎, 1483~1540)는 <낙학가(樂學歌)>에서 이렇게 말했다.
'즐겁지 않으면 배움이 아니고, 배우지 않으면 즐거움도 없다. 즐거운 연후에야 배운 것이고, 배운 연후에야 즐겁다. 고로 즐거움이 배움이고, 배움이 곧 즐거움이다. 아아! 세상의 즐거움 중에 이 배움 만한 것이 또 있을 것인가.'  199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는 말은 그 사랑을 통해서 자기 삶을 온전히 긍정할 힘을 얻기 바라는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에 자신을 가두고 살기보다는 그 사랑이 거절당하든, 배신당하든, 또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든 간에 한 걸음 내디뎌서 자기 존재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승리가 아닐까요?  203


뇌는 과연 윤리적인가? - 김효은
신경윤리에서는 항상 맥락을 중요시하죠. 일괄적으로 안락사는 된다, 안 된다는 단정적인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211
우리에게는 모두 장기기억(long term memory)과 단기기억(short term memory) 그리고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 있습니다.
작업기억은 기억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능력을 말하는데, 단기기억이 정보를 잠시 유지하는 수동적 개념이라면 작업기억은 그곳에서 여러 작업이 일어나고 있음에 초점을 둔 능동적 개념입니다. 의식으로 들어오면 그와 연관된 장기기억의 정보가 떠오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이미 기억하는 정보를 떠올려 새로 습득한 정보와 연관시키기도 합니다. 그 의식의 역동성에 초점을 둔 개념이 작업기억입니다.  221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통념이었고, 이성과 감정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인지작요엥는 감정의 영향이 매우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인간을 이성적, 합리적 존재라기보다는 감정이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25


온생명으로 태어나다 - 장회익
사르트르는 '시대적 삶에 동참하고 동시대인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말했다.  234
원래 물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자연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기본 원리를 찾는 거거든요.  236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고, 인간 삶의 편의는 놀랍게 증가 했는데, 생명의 위기는 훨씬 더 고조되었죠. 발저노가 위기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길항하는 역할을 해온 것 같습니다. 237
우리가 살아 있는 것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죠.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것의 '살아 있음'이라는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 성격을, 우리는 흔히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든 토끼든 박테리아든 그 안에 생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안에 들어 있다는 생명이 도대체 뭐냐? 어떤 상황에서 그것이 생명이 되느냐?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유가 뭔가 봤더니 생명이란 것의 개념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제가 깨달은 사실은 기존의 관념으로 이해할 수 없고, 훨씬 더 큰 체계로 파악해야 한다, 생명이 이루어지려면 각각의 개체를 뛰어넘는 더 큰 모습의 전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온생명이라고 부른 거죠.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모여야 비로소 생명이 되느냐는겁니다. 생명이라는 것도 결국 그 어떤 물질적 요소들이 모여 일정한 체계를 구성할 때 나타나는 것인데, 무엇이 어떻게 모였을 때 생명이란 현상이 나타나고, 그렇지 못할 때 생명이 되지 못하는 그 경계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이것이 곧 생명 현상이 성립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소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자는 거지요. 그것을 봐야 생명의전체 모습이 보이거든요.  238-239
생명체 내부를 구성하는것과 생명체 외부 곧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거죠. 이들이 함께 관련을 맺을 때 비로소 생명 현상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239
기술로 자연을 변형하다 보니까, 온생명의생리를 거스르는 결과를 낳는 겁니다.  240
누군가 자기 팔을 움직이면, 흔히 자기 힘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것은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는 거거든요. 태양 에너지가 녹색식물에 흡수되고 그 에너지가 음식을 통해 내 몸으로 들어와서 그 팔을 움직여 주는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전체 과정을 한 묶음으로 봐야 합니다.  245
온생명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두뇌를 구성하고 의식을 담당하는 존재는 다른 생물종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라는 겁니다.  246
지금까지 낱생명을 그냥 '생명'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생명이 될 수 없기에 반드시 뭔가가 함께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보생명입니다. 보생명과 낱생명이 합쳐진 전체가 온생명이라는 거죠.  248
우리의 몸이 사시은 온생명인데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떨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거죠.  250
앎이란 개인적인 목적이나 수단으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폭넓게 전체를 연결하는 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삶이 즐겁고 공부가 즐거워야 앎을 얻을 수 있어요.  256


숨의 생면, 생명의 숲 - 차윤정


인간은 매 순간을 늘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잖아요. 그러나 나무는 상황이 좋지 않으면 사는걸 멈춥니다. 살아 있는 기간과 정지한 기간을 합치면 그들에게 1년은 10년 단위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5000년을 산다는 거죠.  275

나무는 전 조직이 수백 년을 살지 않지요. 살아 있는 조직과 죽은 조직이 공존하지요. 죽은 조직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다른 생물들에게 이용됩니다. 그래서 나무를 그 자체로서 서식지가 되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276






왜 '책' 이어야 하는가? - 도정일
책 읽는 사회의 설립취지는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자'라는 데 있습니다.  293
인문학은 쓸모가 많은, 쓸모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 쓸모의 중요성을 따질 때 아주 위대한 정신습관, 태도, 학문입니다.  294
인문학적인 관심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관심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295
겉보다는 안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입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인문학 전공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모든 이의 관심사니까요.  296
우리 사회를 어떤 사회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기보다는 우선 나부터 성공하고 보자는 추세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젊은 세대가 스스로 경계해야 할 정신의 함정 아닌가 합니다.  299
고전을 ... 강제로라도 읽게 해야 합니다.  309
고전 교육이 왜 강제되어야 하느냐. 교욱은 절대로 민주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신세대든, 구세대든 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어휘나 개념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만나게 하는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310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지금 시점엣 왜 옛날 책을 읽어야 하는가 - 아무리 사회가 달라져도, 인간에게는 바뀌지 않는 경험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311
양심의 경험이라는 게 있습니다. 양심의 경험을 하게 하는 삶의 조건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습니다.  314
어떤 책을 고전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첫째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역사의 책임을 느끼게 하는 책, 인간 경험의 근본적 조건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둘째는 역사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책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책입니다.  314
매학기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첫째, "나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어 하는가?"
둘째,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셋째, "내가 할 수 잇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사회적 사유를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317


판옵티콘, 그 안의 권력 - 박정자
판옵티콘 - 한 눈에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그런 구조물을 말합니다.  327

판옵티콘의 측징이 시선의 비대칭성이라 하는데, 오늘날 사회도 같은 맥락에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판옵티콘이 규율 권력에 아주 효율적인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학생이건 노동자건 수감자건 간에 통제받는 주체를 철저히 대상화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피감시자를 조건화할 수 있습니다.
감시자가 있든 없든 늘 있다고 믿게 마련입니다.
셋째는 자동성입니다. 장치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누가 작동하든지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333
왕조시대에는 온 백성이 왕 한 사람을 마치 태양처럼 우러러봤습니다. 다수가 소수를 바라보는 시대였던 거죠. 그런데 근대 이후 현대까지는 시선의 관계가 역전되어서 판옵티콘의 간수가 여러 죄수를 감시하듯이 소수가 다수를 바라보는 시대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관계가 다시 역전된 듯합니다.  342






유토피아를 꿈꾸다 - 김영한
어떤 학자는 유토피아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모든 것을 기획하고, 설계하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359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작품을 통해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즉, 정의로운 사회, 행복한 사회가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임을 분명히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베이컨은 토머스 모어의 작품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진 않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한 회의를 품었던 것 같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단지 바람직한 사회의 유형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으로 그런 사회를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지 방법론이 전혀 개진되지 않았다. 그러니 공허하다.'  370
토머스 모어가 지향하는 평등의 이념과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향하는 자유나 풍요의 가치관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바람직한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후발국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과제는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로 산업화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과제가 서양처럼 조화를 이루며 명행되었다면 문제가 없는데 우리 한국 사회는 짧은 기간 내에 시간과 경쟁하면서 이 두가지를 실현하다 보니까, 결국 어느 한 쪽이 희생당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안정이냐 자유냐, 성장이냐 평등이냐, 순수냐 참여냐, 이런 문제로 늘 갈등해 왔던 거죠.
정권도 지난번엔 진보 정권이 집권했다가 이번엔 다시 보수 정권이 들어섰는데, 우리 사회도 이처럼 정당정치에 의해서 노선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습니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갈등은 어히려 깊어졌지요. 결국, 자유와 평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 순수와 참여가 어떻게 공존할 수가 있느냐, 이런 문제인데 지금 유럽도 같은 문제로 고심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대립하는 두 가치를 넘어서는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박애(博愛)가 아닐까 합니다. 375-376
모든 인간 행동의 발상을 크게 보면 자애(自愛)와 타애(他愛)의 요소로 나눌 수 있겠지요.
모든 행동이 대체로 자애, 즉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어요.  377
인문적 상상력이 없다면 문명이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잃게 될 것이고, 과학의 힘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꿈과 상상력은 백일몽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아무리 과학만능의 시대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과학을 이끌어가는 인문적 상상력임을 새롭게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381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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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참을 수 엇는 욕망으로 삶을 불태워버리거나 아니면 '무소유'라는 초월적 장으로 도피해 버린다. 이 책은 이 양변을 떠나 제3의 길을 찾고자 하는 갈증의 소산이다.

프롤로그 - 돈에 대한 '아주 원초적' 질문 셋
하나 - 청춘의 꿈, 10억?
그냥 고액의 연봉, 다시 말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뜻일 뿐이다.
대체 그 돈으로 뭘 할 건데?  그러면 갑자기 표정들이 멍해진다.  12
둘 - 미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돈에 대한 적대 혹은 무관심.
돈의 새로운 용법을 배우거나 그것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생각은 도통 하질 않는다는 뜻이다.  13
셋 - 낙타와 포대화상.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불교 - 북한산의 도선사에 가면 불상이 하나있는데, 이름이 포대화상!
몸매가 통통한데 2.5등신 정도이며 얼굴표정은 천진난만 그 자체.
커다란 포대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탁발하여 포대가 꽉 차면 사람드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탁발하였다.   16
'진정한 경제학은 최상의 윤리적 기준과 갈등하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


1부 문제는 돈이다? - 돈타령 '천태만상'
고등학생들이 대학과 학과를 고르는 기준은 절대적으로 돈이다.  24
전 계층의 돈에 대한 태도는 거의 동질화되어 간다. - 한방에 다다익선!  이것은 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유포한 정서적 기제다.  32
대중들은 부에 대한 판타지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왜? 성공의 이미지가 늘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는 언제나 벼락부자 혹은 미다스의 손들이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무대를 채우는 배우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대중들은 그걸 감지하지 못한다. 달빛만 보고 그 이면을 보지 못하듯이. 
다시말해서, 부의 정점,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65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신분적 차별이 사라진 대신, 소유가 곧 인격이자 정체성이 되어 버린 시대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란 '사적 소유와 자아'가 그대로 '혼연일체'를 이루는 체제라 할 수 있다.  65

2부 돈 - 잘! 벌고 잘 쓰는! 실전 '노하우'
'잘' 번다는 건 돈을 버는 것과 나의 자존심이 오버랩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벌면 벌수록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높아지는 것, 그것이 제대로 잘 버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돈은 쓰기 위해 버는 것이다. 쓰면 쓸수록 더더욱 삶이 풍요러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71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에서는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돈부터 벌지 말고 해병대나 명상센터에 가서 마음수련을 먼저 하라는 대목이 있다.  75
'경쟁, 경쟁'하지만 그 속내를 따져 보면 그 이면엔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걸 기준점으로 삼으면 거의 대부분이 헐떡일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라이프스타일에선 왜 그토록 몰개성한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게 자신의 인생이라면 그에 걸맞은 개성을 연출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할 것 없이 그냥 자기가 선 자리에서 시작하면 된다.  81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이치가 딱 이렇다. 걸음을 떼기 위해선 일단 넘어져야 한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은 세상에 없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넘어져야 일어선다. -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82
우주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한 사람이 평생 감당해야 하는 고생의 양과 질도 대강 정해져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젊었을 때 겪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젊었을 때 요리조리 피해 가거나 부모의 덕으로 대충 넘어가면 결국 중년이나 노년에 그 고난의 문턱을 다시 마주치게 된다.  82
고생의 핵심은 몸이다  83
돈을 벌어서 외로움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그냥 어렸을 적부터 우정과 친밀감을 터득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98
돈을 버느라 친구를 다 잃어버리고 나서 그 외로움을 달래기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친구와 돈 - 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라는 뜻이다.  99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뿐이다.  100
사람과 배움에 대한 열정, 문제는 그것이다.
친구들 사이의 일상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돈은 저절로 이 루트를 따라 흐르게 되어 있다.  106
무지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동요를 낳는 법. 이런 '몽메한'상황을 타파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돈에 대한 공부 역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113
터놓고 말하기! - 자기 안에서 분열이나 간극이 없어야 타인과도 소통이 가능한 법. 안팎이 서로 '통'한다는 건 이런 의미일 터이다. 평소에 툭 터놓고 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필요한 건 오직 일상에서의 끈기 있는 훈련뿐이다.  115
최소한의 화폐로 다양한 삶을 연출해 낸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가치와 효용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돈놀이'의 진수다.  121
돈의 달인이 되려면 돈 대신 몸을 잘 쓰면 된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비행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125
젊은이가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설명에 한마디로 역겨움을 느낀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고귀한 것이어서 취업시장에 나가기 위해, 또는 인생을 고용주를 위해 바치느라 커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325쪽  138
인간은 원초적으로 프리랜서다. 평생 동안 한 직장에서 쳇바퀴처럼 살기를 원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 아닌가.  138
미국의 유명한 대체의학자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창의적이고 풍요러워진다는 것은 돈과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다... 돈은 우리가 생명에너지와 바꾸고 있는 물질이다. 따라서... 당신의 일을 생명 에너지로 환산할 때 어느 정도의 대가르 치러야 하는지를 계산해 본다. 고된 노동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값비싼 휴가와 빈번한 병치레를 요구한다면 결국 당신은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422-423쪽  140
현대인들은 운명을 극복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잘 따져 보면 출세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귀의 내용은 대부분 쾌락 아니면 방탕이고, 여기에 본선의 문제는 빠져 있다. 이런 경우 그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귀를 위해 내 몸과 삶을 바친 것일 뿐! 성공이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본성과 경제가 얼마나 일치되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경제학이다.  143

3부 돈에대한 우주적 상상력 - 카오스 경제학을 향하여!

























아래는 저자의 인터뷰 내용들과 동영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제대로 쓰는 것은 충분히 벌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늘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쓸 겨를없이 계속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동안 행복하게 쓰면서 살 수는 없을까요? 돈을 '잘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왜 없을까요?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의 저자 고미숙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에 대한 일반적인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돈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도 나왔지만, 강연요청을 받을 때 미리 금액을 물어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까운 사이여도 돈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은데, 왜 돈 이야기는 특히 투명하게 말하기 어려울까?

돈에 대해 투명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는 정서는 근대 이전, 자본주의 이전에는 돈 외의 다른 가치가 있었고, 이러한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 지금 돈에 대해 투명하지 않은 것은 자기 소유에 대한 욕망을 남에게 숨기고자 하는 은밀함이라서 인성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연요청을 할 때 강연료를 숨기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느낌이 들고, 그런 경우는 늘 강연료가 적다. 스스로 적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돈을 떠나서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하고 돈과 상관없이 해주기를 바라거나 자기들 입장만 이해해달라고 시작하면 안 되는 거다. 돈의 액수를 떠나서 돈의 용법을 모르는 것이다. 

돈을 쓰는 용법에 대해 아직 막막하다. 기억에 남은 ‘돈 쓴’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달라.
미국에서 생활할 때 센트까지 나눠서 더치페이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로 부담을 안 주겠다는 호의가 담겨 있는 건 알겠는데, 그 자체로 너무 각박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관계가 계약적인 것 이상을 넘어갈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 관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만날 외롭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고, 소외당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 모순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그 중 하나가 더치페이 습관을 깨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후배들뿐 아니라, 거기에 있던 지식인들과도 다양한 교류를 하게 되었고, 돌아올 때는 미국에서 번 돈을 다 털고 왔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의 뒷부분에 부록에 있는 44만 원 세대 청소년, 88만 원 세대 직장인, 청년백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싣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는 내가 할당을 해서 글을 쓰라고 했다. 해완이에게는 44만 원 세대는 어떻게 돈을 쓰는지 인터뷰를 해봐라, 88만 원 세대인 임군과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된 청년 백수는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느냐 이 이야기를 물어본 건데, 본인들도 그 테마가 궁금해진 거다. 그래서 해완이도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시성(졸업한 지 한참 된 청년 백수)이도 어떻게 ‘수유+너머 구로’에서 활동하게 됐는지 정리하게 됐다. 임군이 쓴 이야기는 정말 내게 소나기 같았는데, 나는 그런 88만 원 세대를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들을 보고 ‘아 이제 글을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책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가 돈을 쓰고 실험했던 건 있는데, 구체적인 현장이 너무 없어서 그게 항상 목말랐다. 그 글들을 보고 현장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삶과 괴리되지 않고,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돈 쓰는 ‘용법’을 어떻게 발명해야 할까?
돈에 대해 생각하면서 참 놀랐던 것이 다른 분야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강조하면서, 돈의 용법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많이 버는 것,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화폐와 교환한다 그런 거 말고는 없다. 자본주의에 찬성하는 사람이건, 자본주의와 평생을 걸고 싸우겠다고 하는 사람이건, 젊은이건, 노인이건 다 똑같다는 점인데 이게 너무 신기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 돈을 좋아하고, 백만 원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그걸 어떻게 쓸지 궁리하느라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그래서 수유+너머 연구실을 시작하기 전에 돈을 모으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돈을 잘 모으지도 않지만 모아서 거침없이 쓴다고 하면 명품매장에 가서 그냥 덜커덕 구매하는 게 기본모드가 됐다고 들었다. 이렇게 쓰는 방식이라면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빈부의 격차가 줄어든다고 한들 결국 제도의 코스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돈의 액수가 얼마로 바뀌느냐지, 돈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길은 있을 수가 없다. 백만 원을 가지고 천만 원, 일억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다양하게 쓰는 법. 돈의 달인! 정말! 그래서 이제 ‘쓰는 것이 버는 것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어떻게 쓸지에 대해 상상력을 작동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달인 시리즈’ 세 권을 냈다. 공부, 사랑, 돈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공부와 사랑, 돈. 모두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기술로 써야 된다. 존재의 명령은 하나다. “행복해라.” 근데 행복은 그냥 들으면 닭살 돋는 감상적인 가치처럼 보이는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를 얻어야 한다. 자유는 뭐냐 하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공부가 나를 가로막는다면 공부법이 잘못된 것이고, 연애 때문에 허덕인다면 당연히 벗어나야 된다. 돈이 나를 억압한다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런 과정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행복해라.” 이것은 “스스로 자유를 터득하라”고 하는 존재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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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과 성의 윤리적 배치란 과연 어떤 것일까? 탈주와 전복이라는 코뮌의 비전과 그것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최초의 응답이다.  6

프롤로그
복수혈전이 펼쳐진다는 건, 나는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유혹에 의해 엮인 것이라고 하는. 그리고 역시 상대한테 속아서 억지로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했다고 하는. 요컨대, 원인이 모조리 상대에게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14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15
사랑은 무상하다.  16
실연은 행운이다!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미리미리 길을 '비켜 준' 존재들한테 축복 있기를!!  17
'사랑도 공부를 해야 하나?'가 아니라, 사랑이야말로 공부가 필요하다.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앎의 열정이 없는 존재가 운명적 사랑을 한다는 건 우주적 이치상 불가능하다.
주류적 척도로부터 멋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정, 자본과 권력의 외부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공, 공부는 무엇보다 이 열정과 내공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18
"오직 배우는 마음만이 열정이 넘칩니다."  19


1부 오만과 편견, 사랑과 성(性,sex)에 대한
홀로 갈 수 없다면, 정대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 혼자 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가벼워야 한다. 망상은 무겁다. 갖가지 오만과 편견으로 존재를 한없이 무겁게 얽어 맨다.  23
사랑이 다양한 관계를 망라하는 보편적인 명칭이라면, 연애는 1920년대에 수입된 신조어다. 'Love'의 일본식 번역어다. 
사랑이 수많은 의미의 생산이 가능한 용어라면 연애는 남녀 사이의 이성적 관계라는 의미로 압축된다. 
그럼 작업은? IMF 이후 등장한 신조어이다. 연애보다 더 의미가 축소되어 아주 특정한 방식의 연애행태를 지칭한다.  27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하는 일, 그리고 또 다시 그와 같은 순간이 오기를 몽상하는 일. 추억하거나 몽상하거나. 이들 순정파들은 한마디로 이런 유의 낭만적 궤도 안에 갇힌 '고매한 족속들'이다. 그들의 연애 또한 늘 실패한다.  31
야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식(특히 폭식)은 외로움의 신체적 표상이다. 정신적 공허를 채우기 위한 몸적 반응이 바로 허기이기 때문이다.  35
우리의 마음은 사랑과 연애, 섹스에 대한 무수한 망상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고유의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 이상을, 그 외부를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  37
'사시사철 두리번 두리번 살금살금하면서,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대인이 안고 있는 마음의 병이야. 문명의 저주인 거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541-542쪽  42
이 자의식은 문명의 저주다.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 막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42
머리를 굴려 대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자의식을 침범당하는 게 두려워서다.  43
충동과 열정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충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래서 늘 중독적 상태로 치닫는 힘이다. 나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지만, 그 원인은 늘 외부에 있다. 그러므로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는 노예적으로 끄달리게 된다.
열정은 아무리 뜨겁게 솟구친다 해도 삶의 의지와 연동되어 있다. 그러므로 절대 중독되지 않는다. 열정은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한다.  45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성욕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47
여성들은 여전히 다수의 남성들로부터 프러포즈를 받는 걸 '인생의 큰 의미'라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이러니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결국 찼는가 차였는가로 귀결될 밖에. 허나, 따지고 보면 이런 논법만큼 무지한 것도 드물다.  52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점쟁이들이 무려 45만이라고 한다.
청춘남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은 운명적 파트너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딱 맞는 반쪽이 있다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맹목적 믿음에 근거한다. 
결론 부터 말하면, 반쪽이는 없다!  59
중요한건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는 일이다.  60
정말로 사랑에 목숨을 거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솔직히 현실적으론 사랑을 위해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망상 속에서 그렇게 동경할 따름이다.  64
참고 견딘다는 건 속에다 꾹꾹 눌러 담는 것이지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67
희생이라는 포장 속에 어설픈 평화를 누리기보다 솔직하게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화끈하게 전투를 벌이느 것이 사랑의 본래 면목에 더 가깝지 않을까. 고로, 희생과 헌신이라는 미덕만큼 사랑과 거리가 먼 항목도 없다.  68
감정적 간극이 벌어지게 되면 자주 투닥거리게 되고, 어느새 결별의 상황에 이르고, 그러면 또 다시 새로운 짝을 찾아 헤맨다.  69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말은, 곰곰이 따져 보면, 사랑은 늘 처음의 그 격정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변한 것, 아니 변절에 해당한다.  70
이런 망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사랑이란 추억 아니면 몽상으로만 존재한다.
추억은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고, 몽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다.
말로는 아름답다, 순수하다, 아직도 그리워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뿐이다. 막상 만날 기회가 오면 거의 대부분 달아나 버린다. 왜? 아름다운 추억이 망가질까봐.  71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한다. 단 한순간도 '지금, 여기'의 사랑을 누리지 못한다.  72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랑의기술>13쪽  73
남자들은 오직 권력과 돈, 여성들은 성적 매력과 몸치장에 몰두한다. 마치 그것만 갖춰지면 사랑은 절로 굴러온다는 듯이 말이다.  73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은 절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공부는 근본적으로 몸과 우주에 대한 탐구이다.  73
우리 주변엔 실전연애 노하우에 대한 숱한 책들이 널려 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이런 식으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걸까?기교라고 쳐도 참으로 유치한 수준 아닌가. 그만큼 연애가 힘들다는 뜻일터. 
순정파건 냉소파건 다들 나름대로 테크닉에 골몰하는 건 틀림없다.  75
요즘 커플들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터.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 간다.  77
사람은 평생 단 하나의 병만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 신체적으로 볼때, 하나의 약한 고리를 중시으로 다양한 병들이 변주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사람은 평생 단 한 종류의 연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위안이나 동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 진정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헌데, 문제는 다들 상담을 받거나 점쟁이를 찾아가려 하지 스스로 깨우치려고 하질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이니, 사랑에 관한 한 성숙해진다는 관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79
솔직히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유치하기 짝이 없다면 그건 일종의 발달장애에 해당한다. 헌데, 그것이 졸지에 순수함으로, 그리고 다시 사랑의 미덕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80
 

2부 청춘의 '덫'. 국가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
20세기 초 서구문명이 이 땅에 도래할 즈음, 당대를 주름잡던 계몽가들은 가종 신문매체를 통해 엄숙하게 경고했다. 조선이 망한 건 열대여섯 살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을 억지로 혼인시켰기 때문이라고.  93
그럼 지금은? 만약 스물두 살쯤 된 청년이 결혼이나 동거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택도 없는 소리다!
지금의 경제조건에선 최소한 서른은 되어야 사회적으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견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94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선진문명을 이룰수록 청춘들의 원초적 욕망은 계속 지체되어야 하다니 말이다.  96
지난 100년간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건 '성에너지의 국가적 몰수'라는 대가를 치렀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98
세상에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도 없고, 사랑이 필요없을 만큼 강한 존재 또한 없다!  103
'엄마의 늪' 우리으 청춘들은 아직 엄마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105
온실과 정글. 엄마의 관리와 보호가 미치는 곳은 온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맨몸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곳은 정글.  105
요즘 청년들에게서 열정이나 패기를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외모나 체격은 눈부시게 개량(?)되었지만, 청춘이 내뿜는 특유의 포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아주 일찌감치 '삭아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정글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두 발로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전방위적 마크하에서 그런 신체적 능력을 터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11
"젊음이란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연령에 걸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것이다." - 들뢰즈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쟁을 치르고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자시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마음이 연구와 학문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노년보다 더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126
어떤 종류의 관계든, 어떤 활동영역이든 존재의 자유와 충만감이 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에로스다!  142


3부 청춘이여, 욕망하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146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한 가장 일차적인 행동지침은 자신의 몸과 능동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147
질의 차이가 없다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150
니체는 말했다.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 있는가?" 나를 멸망시킨다는 건 바로 지금까지의 나, 자아 혹은 자의식의 성채를 무너뜨리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  152
이것은 미쳐 날뛰는 광기나 변덕스런 충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광기나 충동은 절대 폭풍을 일으키지 못한다.  153
상상하는 연애에서 관찰하는 연애로!
"연애를 하는데 남자친구 때문에 너무 괴로워해요. 근데, 왜 해어지지 않느냐구 했더니 대답이 아주 재밌어요. 몇 년이나 사귀었지만, 이 남자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최소한 이해를 한 다음에 헤어질 작정이다. 그래야 인생에 대해 뭔가 알게 되지 않겠냐 이거죠."
 이 정도의 뚝심은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관찰하는 연애다.  157
나를 관찰하고 상대를 관찰하고 몸과 마음의 간극을 줄이는 것!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나와 같은 시공간 속에 있는 '친구'이다. 그 친구를 공부하는 것이 곧 그를 향한 최고의 '사랑법'이 아닐까?  158
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그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욕망의 구조가 있을 뿐이다.  162
중요한 건 자유다. 쾌락을 즐기건 금욕을 하건 누구든 자기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몸과 우주가 소통하는 그만큼 자유의 곤강이 열릴 것이다.  170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가? 그거야말로 내 몸이 특별한 리듬과 강도를 갖게 된 것인데, 그게 왜 창피한 일인가? 그렇게 느끼는 건 전적으로 사랑과 성을 권력관계로 보게끔하는 망상구조 탓이다.  182
우리시대의 연애가 썰렁해진 건 무엇보다 '차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준은 물론 학벌, 가족관계, 거기다 외모까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어떻게 열정이 폭발하겠는가.  194
사랑이 탈주선이 되려면, 무엇보다 이 쇼 망상의 그물을 가차없이 해체해야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기념일 챙기는 것부터 걷어 치워라. 세상에 그런 멍청한 짓거리가 어디 있는가. 대체 사랑의 시작점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시작점을 헤아리는 건 끝날 때를 미리 대비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뭣 때문에 카운트다운을 하는가 말이다.  195
진짜 소중한 선물에는 '삶의 서사'가 묻어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일상의 리듬과 무관한 선물이란 그야말로 쇼에 지나지 않는다.  197
쇼! 하지마라! 쇼! 
그럼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래서 창의성이 필요하다. 나의 사랑이 지닌바 특이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는 사랑법을 창안하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법을.  198
걷고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고 삶의 서사 혹은 일상의 활발한 기운을 서로 선물하고, 이것이 기본기라면, 그 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코스가 있다. 책읽기 혹은 공부하기.  203
지성과 에로스는 절대 따로 놀지 않는다.  204
대장금  205
연애 중독증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209
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전령사다.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매트릭스, 아주 이질적인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그것이 곧 책이다.  211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존재의 크기다.  212
가장 좋은 건 늘 누군가와 세미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본래적으로 네트워킹이다. 홀로 서재에서 끙끙거리며 남을 지배하기 위해 하는 건 경쟁을 위한 도구지, 절대 공부가 아니다. 즉, 공부를 한다는 건 무조건 친구들과 함께 세미나를 한다는 뜻이다.  213
연인 사이가 끝난다고 그와의 모든 인연이 종결된다면, 더구나 함게 공유했던 배경까지 몽땅 잃어버려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215


4부 에로스와 '운명애'
에로스와 지적 능력의 함수관계 - 지성에서 비롯된 매력은 위이 사라지지 않는다. 장금이가 그랫고, 루쉰이 그랬고, 사르트르가 그러했다. 우리는 흔히 '매력'을 멋지고 세련된 외모와 일치시키지만, 사실 네루다와 조르바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게 그들이 '잘생겼'기 때문이던가? 이 '사랑의 달인'들이 가진 공통점은, 지성과 서사가 흘러넘쳤다는 사실이다. 고로, 공부하라, 그러면 사랑은 절로 따라올 테니!  222
사랑을 원한다면 혹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서사의 능력을 키우도록 하라. 서사는 화술이 아니라, 나의 삶과 외부가 맺는 관계성의 문제다. 따라서 서사능력을 키우려면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생생한 힘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  225
건강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과, 사건들과 맞닥뜨리고 관계하는 방식입니다. 관계의 건강성, 바로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이렇다. 사랑은 나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라의 원인이 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234
사랑의 창조, 그 궁극적 지점은 다름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235
유머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과도 접속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떠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유머러스한 신체'가 되어야 한다.  240
그 사랑은 미련도, 회한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한편으론 자나간 것, 곧 추억에 매달리고, 다른 한편으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몽상 속에서 정작 '지금, 여기'에 온전히 기투하지를 못한다. 대개는 자신으 ㅣ과거 또는 상대방의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249


에필로그
"모든 인간은 자신으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사랑도 똑같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사항이 하나 있다. 이 능력의 차이를 위계화하지 말것. 각기 다른 방식의 사랑법이 있을 뿐이다.  260
중독된다는 건 삶과 분리되어 오직 쾌감의 증대를 향해 치닫는 것이다.  261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386쪽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262-263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느 에로스,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원동력이다.  263
혁명이 광장에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표현되는 것이라면, 코뮌은 그 혁명의 일상적 형식이다. 일상 속에서 자본과 권력의 코드를 벗어난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 가는 . 그럼. 코뮌과 에로스는 어떻게 연동되는가?  264
사랑의 독점적 지배하에선 우정도 절대 싹을 틔우지 못한다. 
사랑과 우정이 왜 적대적인가? 사랑하는 연인이란 가장 좋은 친구라는 의미도 들어 있지 않은가. 이탁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변주하면.. "연인이면서 우정을 나눌 수 없다면, 연인이 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사랑보다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사랑이 원숙해지면 누구나 친구 같다고 하고, 사랑에 멍든 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친구 같은 연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평소 우정의 지혜를 많이 터득해 두어야 한다.  266
우저에도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아주 다른 삶, 낯설고 창발적인 사유와 생활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고 ㅏ우정 사이의 매끄러운 흐름, 그것이 바로 코뮌주의자의 사랑법이다.  267
흔히 도(道)와 에로스느 적대적이라고 간주한다. 에로스적 충동을 억눌러야만, 다시 말해 가능한 한 탈성화되어야만 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원초적 본능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지 않고서 어찌 생사를 넘는 해탈이 가능할 것인가? 사랑이 생명의 원초적인 뿌리이자 원동력이라면, 마땅히 인간의 우주적 경지인 도와 이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름하여, 사랑의 절대적 탈영토화!!!  269
행복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자유와 해방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에 관한 오만과 편견, 자의식을 둘어쌍 망상의 그물망을 벗어나 한걸음, 단 한결음만 내디딜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백척간두진일보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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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참, 희안하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 어째서 학교는 여전히 전쟁터인가.  6
진정 놀라운 건 그 누구도, 어떤 청소년도 이런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그게 더 끔찍한 일이다.  6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7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7
일단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책을 애인보다 더 가까이 끼고 살아야 돼... 책 중에서도, 인류 최고의 고수들이 쓴 고전들을 읽어야 해.  9

대중 지성을 움직이는 힘은 오직 앎에 대한 열정이다. 생명과 존재, 삶과 세계에 대한 끊임업슨 물음들, 그것만이 그들을 지배한다.  26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는 것.  33
근대적 학교제도의 산물 - 동일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같은 장소에 몰아넣고 같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세대간 균질을 만드는건 학교의 일률적인 쪼개기때문..)  35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 즉,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40
세대간 장벽을 허물어 뜨리는 운동이 공부가 되어야 한다.  47
한 사회가 공동체적 리듬을 가지려면, 노인은 청녀노가 함께 섞여야 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노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49
제갈량, 허생, 정약용, 박지원... 그들은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었다.  51-52
논술을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55
다양한 활동이 신체와 '통'하려면 무엇보다 근기(根器)가 튼실해야 한다. 근기란 쉽게 말하면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의 분포도'같은 것이다. 그릇이라고도 하고,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바로 이 근기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길은 단언컨대 독서밖에 없다!!  57
요즘 대학생들의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58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학교가 유포한 환상 중에 가장 나쁜 것이 사람들을 제도적 서비스에 길들이는 것이라 한다.
좋은 집에 산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삐까번쩍한 외양이 아니라, 환경과 주체 사이의 능동적 교감이다.  63
진정한 창의성은 폼나는 공간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습 주체와 공간이 어우러져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아주 강도 높은 학습의 장을 연출하는 것.  65
콩도르세는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66
자율성과 창의성은 나란히 간다. 자율적이지 못하면서 창의적 사고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까닭이다.  67
토론이건 체험학습이건 그것이 강도 높은 학습의 과정이 되려면 고도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바꾸겠다는 치열한 의지도 뒤따라야 한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69
우월감과 열등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70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학벌, 위계, 돈과 명예 따위는 말끔히 잊어버려라! 필요한 건 다만 두려움 없는 용기와 지칠 줄 모르는 끈기뿐. '노하우'는 책과 우정!  75
고전이란 시대의 통념과 억압을 뚫고 삶과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탐색한 전위적 텍스트를 말한다. 고전이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망을 구성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전위적 열정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전이야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77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81
학교는 태생부터 제도로 출현했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더더욱 그런 속성이 강화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누구도 학교가 배움터 혹은 앎의 코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82
무엇보다 고전의 지혜를 적극 응용해야 한다. 즉, 자기가 선 자리를 제도적 울타리가 아니라, 스승을 만나고 벗을 부르는 매움터로 전환해야 한다.
고전의 시대에 좋은 부모란 자식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주는 존재였다.  83
앎의 코뮌에 접속하고, 암송과 구술을 익히고, 그걸 통해서 리더십을 터득하는,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독서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105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고 싶지 않은 꼬마들, 성적의 위계와 입시의 중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청소년들, 기성세대의 고루한 관습에 저항하고 싶은 청년들, 시각의 지배에 예속되기를 원치 않는 직장인들, 매너리즘에 찌든 일상의 회로를 벗어나고 싶은 아줌마들, 삶의 비전과 지혜를 통찰하고 싶은 노인들 - 이 모든 '대중지성'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독서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106
얼굴도 멋있어지고, 몸도 건강해지면서 동시에 삶의 비전이 확 열리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독서이다. 
유비는 그냥 한눈에 제갈량의 그릇을 알아봤다. 그의 얼굴과 몸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허생은 다짜고짜 장안 최고의 갑부 변부자를 찾아가 만 냥을 빌려달라고 하자, 변부자는 이름도 묻지 않고 즉석에서 만 냥을 내준다. 허생의 내공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들은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신체가 된 것이다.  108
선비가 하루만 글을 읽지 아니하면 얼굴이 단아하지 못하고, 말씨가 단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장기 두고 바둑 두고 술 마시고 하는 것이 애초에 어찌 즐거워서 했겠는가? - <연암집>  111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116
일단 나보다 훨씬 폭넓게, 강렬하게 살았던 분들이 쓴 책이어야 할테지? 또 저자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책, 생가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이어야겠지?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책 등등.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117
독서의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고 싶다면, 먼저 고전을 문학, 그것도 서양 문학 중심으로 사유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119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옥루몽> 등과 같은 장편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프루스트나 보르헤스 등 사상적 깊이를 갖춘 서양 소설과 함께 읽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노자오 ㅏ장자, 사서삼경 등 동서양의 사상사를 넘나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119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서 몽땅 이해되는 책은 당장 덮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그건 저자의 수준이 나랑 똑같다는 뜻인데, 그런 책으로부터 대체 뭘 배울 수 있단 말인가?
10대들이 열광하는 일본의 하이틴 소설, 직장 여성을 겨냥한 삼류 연애담이나 감상적 에세이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탐정소설류, 재테크나 성공의 신화를 적당히 가공한 책들. 이런 건 독서의 범위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그건 그야말로 취미 활동에 불과하다. 특히 여기에 몰입해서 다른 장르를 멀리하게 되면 그건 게임 중독이나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 그런 조짐이 느껴질 경우 당장 멈추어야 한다.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지면 다른 음식을 먹을 능력이 없어지는 것처럼 그런 야들야들한 책에 맛들이다 보면 신체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120-121
'너 자신의 눈으로 자료를 보라.'
'너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설정하라.'  131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35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139
집단 속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약속과 시간을 지킨다. 눈과 귀를 몽땅 열어둔다. 즐겁게 공부한다. 배운 만큼 실천한다.  140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문자와 몸과 세계가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앎은 행위에서 시작되고, 행위는 앎의 완성"(왕양명)이 되는 '지행합일'의 경지, 이것이 바로 고전의 학인들이 지향했던 공부의 진경이다.  145
먹고 살고 번식하고 하는 일이야, 뭐 박테리아도 하지 않는가. 적어도 공부라고 하면 존재 자체가 특별한 단계에 도달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145
책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존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책으로 변환 - 책을 읽으면 삶이 보이고, 일상을 잘 관찰하노라면 책의 지혜가 확연해진다.  146
자기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만 있다면, 삼라만상이 다 신비로운 기호로 가득 찬 문장이라는 것을 절로 터득하게 된다.  147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행복조차도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154
요즘 신데대 커플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156
가장 문제적인 건 서로에 대한 집차고가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향이다.  160
'사이에서 존재하기'랑 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배움과 가르침의 흐름 속을 유영하는 것이 아닐까.  193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195
무엇을 공부하건 공부는 그 자체로 혁명이다.  196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했듯이, 시간을 견뎌내고, 일상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단언컨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란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의 시작은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공부. 이 공부를 통해 삶의 통찰하는 힘이 생길대 비로소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199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201
섹스가 아무리 짜릿하다 해도 그 쾌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 날마다 해도, 평생 해도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누구나 평생 공부해야 한다.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 
고로, 공부에 외부는 없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203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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