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11


에이드리언..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88


에이드리언..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95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ㅂ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106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106-107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게 된다.  120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165


'축적의 문제'라고 에이드리언은 썼었다. 축적의 문제. 어떤 말에 돈을 걸고, 그 말이 이기면, 그 상금을 다음번 경기의 다음번 말에게 건다. 이런 식으로 승리는 축적된다. 그렇다면 패배도 축적되는 걸까? 경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저 첫 번째 노름 밑천을 잃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는? 다른 법칙을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관계에 승부를 걸었으나 실패로 끝난다. 계속해서 다음번 관계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이때 잃는 건 단순히 두 번 뺄셈을 하고 난 값이 아니라, 우리가 내걸었던 것의 배수이다. 아무튼 그런 기분일 것이다. 인생은 단순히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다. 상실의, 혹은 실패의 축적과 곱셈이다.  180-181



옮긴이의 말 - 예감하지 못하는 모든 평범한 이들을 위한 서글픈 면죄부


왜곡이 본질인 기억과 우연과 무상성이 본질인 시간의 담합이 만들어낸 파국이 아닐 수 없다.  264


젊은 시절,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 했지만, 노년에 이르러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고 번복한다.  266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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