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의 구조

'삶'이란 무엇일까?

아까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복잡다단한 이 세상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충만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리라.

'삶'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선인들의 지혜에 귀기울이는 한편 그 지혜를 과학이 꾸준히 축적해 온 앎과 접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의 시점에서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길을 깨달을 수 있다.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현실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우리가 보낸 하루하루를 모두 더하였을 때 그것이 형체 없는 안개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예술 작품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느냐는 바로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


2. 경험의 내용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는 자기가 하는 일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경험의 내용과 더 관계가 깊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행복감만은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도 삶의 질을 좌우한다.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주는 목표를 개발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정력을 충분히 써먹지 못할 경우, 우리는 좋은 감정의 극히 일부만을 맛보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지향점 또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표현한다. 목표를 얼마나 끈질기고 일관되게 추구하느냐는 동기 부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도, 목표, 동기부여는 심리적 반엔트로피를 조성한다. 정신력을 한곳에 집중시키고 작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면서 의식 안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내적 동기 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상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준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자아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 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의식의 내용으로 감정 ? 목표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은 사고의 인지적 과정이다.

사고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력에 질서가 갖추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신의 작용을 깊이 있게 파고들려면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은 논리적 인과 관계에 따라서 가지런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다.

노력을 한 곳으로 모으지 못하면 사고는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진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몰입 활동의 또 하나 특징은 되먹임, 곧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니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일이 마무리된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좀더 신바람 나는 몰입의 상태로 넘어갈 수 있을까? 답은 자명하다. 실력 연마에 좀더 힘을 쏟아야 한다.

몰입 경험은 배움으로 이끄는 힘이다. 새로운 수준의 과제와 실력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다.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활동의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사람은 어떤 활동에서도 몰입을 맛보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3. 일과 감정

삶의 질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이 저마다 하는 행동은 경험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정말로 성숙해지려면 대화를 통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긴요한 것은 결국 고독을 견디는 능력, 아니 고독을 즐기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어떤 활동을 하느냐, 누구와 함께 있느냐 못지않게,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도 우리가 갖는 경험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경험의 질에 창조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누구와 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여건에서 하느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는가다

눈부신 일상 생활은 결국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인생은 이런 식으로 살라고 누가 정해 놓은 규칙이 있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다.


4. 일의 역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면, 6학년 아이들은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다. 재미있는 건, 청소년들은 대체로 다신이 일로 여기는 활동을 할 때 이 일이 자신의 앞날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것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자부심을 높여 준다고 대답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필요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과 쓸모없지만 즐거운 일을 확연히 구분 할 줄 안다. 


미국 고등학교 1학년생의 57퍼센트, 고등학교 3학년생의 86퍼센트가 봉급을 받고 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다.


청소년들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건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걸 할 때 가장 괴로워한다.

청소년은 하루 시간의 35퍼센트를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하면서 보낸다.


이렇다 할 수입도 없이 한가로움만 주어진다면 그 사람은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고 참담함에 젖는다.

흔히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목표 의식과 도전 의식이 없이는, 자기 절제가 아주 뛰어난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의미있는 삶을 누리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기가 어렵다.


우리가 하는 활동 중에서 게임에 가장 가까운 성격을 가진 것이 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잘 간과한다. 일에는 명확한 목표와 규칙이 있다. 

일은 산만함을 누르고 집중력을 살린다. 이상적인 경우는 일의 난이도가 일을 하는 사람의 실력과 엇비슷할 때다.


여가 시간이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불행하게도 여가 시간 그 자체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여가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기란 예상보다 쉽지 않다.

객관적 작업 환경과 우리의 주관적 태도,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일이 즐겁다는 생각을 좀처럼 갖기 어렵다. 하지만 문화적 편견에 좌우되지 않고 일을 개인적으로 의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아무리 범속한 일이라 하더라도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다 보면 어려움도 많고 내면의 갈등도 심할 수밖에 없지만 미지의 영역으로 정신을 넓히는 데서 느끼는 희열은 보통 사람 같으면 벌서 은퇴하고도 남았을 노령의 연구자들마저도 항상 느끼는 즐거움이다.


일이 한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다. 문제는 일을 어떻게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서 어떤 경험을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5. 여가는 기회이며 동시에 함정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로 사람이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SM 연구 조사에서 우리는 사람이 어떤 목표 하나에 집중할 때 심지어는 몸까지도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은 게으름이 사람의 천성이 아님을 시사한다.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감만 조성하는 해결 불능의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은 드라마, 연애소설, 추리소설, 도박, 섹스, 술, 마약 등

이것들은 의식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짧은 시간 안에 줄여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감과 불쾌감이다.

내부에서부터 정신력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람의 기분은 몰입 상태에 있을 때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도전을 이겨내어 문제를 해결한 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몰입을 낳는 활동은 대부분 명확한 목표, 정확한 규칙, 신속한 피드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런 외적 조건들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집중하고 긴장한다.


능동적 여가와 수동적 여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며 심리적 효과도 당연히 판이하게 나타난다.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나같이 처음에 어느 정도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그 다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몰입을 낳는 활동은 까다롭고 어려워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자주 있다. 수동적 여가 활동은 불안을 거의 낳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사람을 이완시키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여가 시간을 수동적 활동으로 채우면 아주 즐겁지는 않아도 어쨌든 골치 아픈 상황은 피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수동적 여가 활동의 바로 이런 점에 끌리는 듯하다. 

수동적 여가가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그것이 자유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편으로 쓰이는 순간부터다.


목입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TV를 적게 보는 사람이며, 몰입 경험을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은 책은 거의 안 읽고 TV로 소일하는 사람이었다.

살아가면서 이렇다 할 몰입의 대상을 찾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부담스럽지 않은 수동적 여가에 의지하는지도 모른다.

수동적으로 여가를 보내는 습성은 이전에 누적된 문제들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봉쇄하기에 이른다.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오늘의 소수민들은 스포츠나 연예 분야로 진출하여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루겟다는 꿈에 젖어 있다. 농구 ? 야구 ? 권투 ? 대중음악은 부와 명예를 약속하면서 사람들의 남아도는 막대한 정력을 흡수하고 있다 입장에 따라서는 이것을 두 가지의 전혀 상반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마르크스가 종교를 두고 한 말을 끌어오자면 여가가 ‘인민의 아편’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뾰족한 대안이 없는 위험스러운 상황 앞엣 창조적으로 나온 반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여가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정력을 쏟아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이 알차려면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여가 활동이 사회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원인과 결과로서 동시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흥미진진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그걸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6. 인간관계와 삶의 질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행동 중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남들과의 교제다.

인간관계가 우리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 남들과의 어울림이 그초록 중요하다면 타인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시하고, 그 영향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 경험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관계엣 마음이 무질서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질서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목표와 다른 사람의 목표 사이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선택한 것은 그와 나의 목표에 합치점이 있어서이며 서로 평등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서로에게 득을 준다. 외적 강제 관계가 아니다. 이상적 우정은 늘 새로이 정서적 ? 지적 자극을 주어 권태나 무감각이 스며들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달리 깊이 사귈 만한 대상이 없는 사람은 자기처럼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데, 이 경우 우정은 파괴적을 작용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기가 워낙 어려워서인지 미국에서는 부모 ? 배우자 ? 자식이 친구처럼 지내는 새로운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다.

가족 관계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력은 너무나 막중해서 글로 엮는다면 무궁무진하게 나올 것이다.

아주 일반화시켜서 말하자면 사람이 하루 중에 느끼는 감정의 기복에서 조절판 역할을 하는 것이 가정이라 할 수 있다.


남자는 아직도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관심을 두는 반면, 여자는 아이들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가를 중시한다.


원만한 가정을 꾸러나가는 비결이 무엇인가? 

식구 하나하나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정에는 두 개의 거의 상반된 특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원칙과 자발성, 규율과 자유, 높은 기대와 무조건적 사랑의 공존이다.


보통 사람은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의 삼 분의 일을 혼자서 보낸다.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사람도 문제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적은 사람도 문제가 있다.

고립된 망상이나 비현실적 공포에 빠져들기 쉽다는 점을 많은 사회과학자들도 지적한다.


혼자 있을 때 유일하게 올라가는 경험의 요소는 집중력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고독을 즐기건 즐기지 않건 어느 정도의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지 앟으면 안 되는 시대다. 생각을 모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한데 주변의 불필요한 말 한마디에, 다른 사람에게 주목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좀체 집중할 수가 없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혼자 있는 걸 싫어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개발 할 수가 없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연구소에서 실험을 하려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창조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해를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과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연구할 때 나는 문을 열어 둔다.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자꾸 어울려야만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하지만 집필은 전혀 다르다. 글을 쓸 때 나는 문을 닫는다...”


창조적인 개인들이 삶을 헤쳐나가는 방식에서 우리는 사람이 외향적이면서 동시에 내향적일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읽는다.



7. 삶의 패턴을 바꾼다.

자신의 정력을 잘만 활용하면 누구보다도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는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장벽들을 보란 듯이 극복 한 예 

 - 안토니오 그람시 : 주위의 기대없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탁월한 문필가와 이론가가 됨.

 - 라이너스 폴링 : 독서광이며 탐구심이 많았지만 형편으로 어렵게 친구의 부모를 통해 대학을 가고 온갖일을 하면서 학업에 정진하여 노벨화학상과 평화상을 받음)


전보다 몰입 경험을 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난 청소년들은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수동적 여가에 시간을 조금 투자했으며, 몰입 경험의 빈도가 줄어든 청소년들보다 집중력 ? 자부심 ? 희열 ? 적극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몰입 경험이 늘어난 청소년들이 줄어든 청소년들보다 “행복하다”는 응답을 더 많이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몰입할 가능성이 더 많은 활동들에 정신력을 투자함으로써 삶의 질을 현실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직장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

첫째, 하나마나한 일을 한다는 불만.

둘째,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불만.

셋째, 직장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

사람이 자기 일에서 만족을 얻느냐 못 얻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보수나 안정성보다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인이다 


선뜻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힘겨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우리에게 있다.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체 맥락을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미칠 영향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직업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자기 일을 묵묵히 하면서 주변의 무질서를 줄이는 데 이바지한 직장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웃음 띤 얼굴로 와이퍼를 갈아주면서 그런 사소한 친절에 대해서는 돈을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나의 사례를 거부한 주유소 직원, 집을 사고 몇 년이 흘렀어도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았던 부동산중개인, 다른 직원들이 모두 공항을 떠난 다음에도 끈까지 남아 손님이 분실한 지갑을 찾으려고 애쓰던 승무원....

이 모든 사례에서 직무의 가치가 크게 올라간 것은 근무자가 자기 일에 남들보다 더 정성을 쏟아부어 거기서 남다른 의미를 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무 수칙에 규정된 수준 이상으로 생각을 하고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관심도 자연히 높아지기 마련이며 이러한 관심이야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자산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지겨운 일은 계속 지겨운 일로 남기 마련이다. 

어느 한구석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직무에 임하면서, 이런 조치는 과연 필요한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면 더 잘,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할 수는 없는가, 어떤 조치를 곁들여야 내가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더 가치가 생길 수 있는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불필요한 구석을 없앰으로써 일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무성인지를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시안적 전략이다. 같은 정력을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을 생각하는데 쏟아붓는다면 일엣 느끼는 즐거움도 커질 테고 직장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누군가가 상황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 우리의 삶을 뒤바꾸는 중대한 발견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이 워낙 흐트러져 있어서 무슨 일이 터져도 그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간다.


사소한 변화에 주목하면 위대한 발견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지긋지긋하고 넌더리나던 일이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기다려지는 환상적 활동으로 변모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지금의 방식이 업무에 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셋째, 대안을 모색하면서 더 좋은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실험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문제를 푸는 데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제 수긍이 갈 것이다. 몰입 경험에는 스트레스가 암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맨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머리를 어지럽히는 각종 요구들 속에서 우선 순위를 매기는 일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자기가 처리해야 하는 사항을 메모로 조목조목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일처리에 순서를 정하고 일을 끝내는 데 필요한 내용을 부석하며 해결 전략을 수립하는데 좀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통제력을 잃지 않아여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자기가 원하는 쪽에 일을 맞추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이미 깔려 있는 길을 밟은 것이 아니라 걸어가면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 냈다.

아무리 단순한 일을 하더라도 창조적인 사람들을 본받아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면 엄청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스톡홀름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종야생물학자 게오르크 클라인은 자기일을 좋아하지만 질색으로 여기는 두 가지일이 있다. 하나는 공항 대합실에서 즐을 서는 일, 또 하나는 정부 앞으로 연구비 지원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 둘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를 하나로 결합시키려 했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연구비 지원 신청서를 쓰기로...

휴대녹음기를 이요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연구비 지원 신청서 내용을 구술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처리해야 하는 일은 그대로지만 통제력을 발휘한 덕분에 그것을 거의 놀이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사람의 집중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일단 어떤 한 가지 목표에 주의를 빼앗기면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차원(일, 인간관계) 가운데 어느 하나를 무시하면서 행복을 누리기는 어렵다 


어느 집단에서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음식, 따뜻함, 신체적 보살핌, 돈이 제공하는 물질적 에너지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정신적 에너지이다.(정성)


같이 있는 시간이 정말로 즐겁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목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모두가 공통의 목표에 정성을 쏟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도록 돕는 것이 사실은 자기에게도 가장 득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일과 인간관계에서 몰입을 경험하는 사람의 삶은 질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특별한 묘책도 없고 손쉬운 지름길도 없다. 자기한테 찾아온 기회를 함부로 내버리지 않고 잠재력을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하면서 삶을 풍부한 경험으로 가득 채우려는 사람만이 드높은 삶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



8.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사람의 성격을 자기목적성으로 충만해 있다고 말한다.


자기목적성을 뜻하는 영어 ‘autotelic’은 그리스어 ‘auto(자기)’ 와 ‘telos(목적)’가 결합한 말이다. 그 일 자체가 좋아서 할 때 그 일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를 우리는 자기목적적이라고 한다.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보상이 되기에 별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외부적 보상이 없어도 무방하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여한다. 삶의 흐름에 깊숙이 빠져들 줄 안다는 소리다.


어떤 사람이 자기목적성을 가진 인간형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가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과제의 난이도가 높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이 있을 때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목적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사람은 몰입을 낳기에 좋은 활동, 곧 정신노동이나 능동적 여가 활동을 할 때 비로소 몰입을 경험하다.


자기목적성이 있는 청소년들은 집중을 더 잘하고 즐거움도 많이 느끼며 자긍심도 높고 자기가 하는 일이 미래의 목표 달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더 행복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복잡한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자신에 대한 만족감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자기목적성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유달리 많다는 점이다.

가정이 보호막과 함께 적절한 자극도 주는 상당히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만 이러한 ‘사회적 미숙’ 기간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남들보다 더 많은 걸 알아차리며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자기목적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나라는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어 삶 자체를 향유할 수 있는 정식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창조적인 사람은 대체로 자기 목적성을 중요시한다. 획기적인 업적이 그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이유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에도 정력을 쏟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목적성을 중시하는 사람의 관심사가 수동적이거나 관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중요한 것은 이런 관심을 사심 없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기울이는 관심의 내용이 당사자의 목표나 야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을 때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할 기회를 잡게 된다.

관심을 사심 없이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말로 하기는 쉽지만 사실 그 원칙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건성으로 임할 게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여 처리하는 습관부터 몸에 익히도록 하자.

단순한 일도 충분한 정성을 기울이면 응분의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정말로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은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관심을 흐트려놓는 판에 박힌 일들을 잘 추려서 우선 순위를 매긴다면 지금처럼 시간이 없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올까?‘

빠져나가는 시간을 수수방관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늘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먼 훗날 재산을 불리고 안정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삶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다.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흥미를 느끼는 건 그 만큼 거기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건 아니다.

정보는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여 그 현실성을 인정한 다음, 우리가 선택한 다른 대상으로 하루빨리 관심을 돌릴때만 우리는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태도이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 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관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유전 명령과 사회 관습, 우리가 어릴 적에 익힌 버릇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우리 의식에 어떤 정보가 들어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역은 나 자신이 아니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9. 운명애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는 게 좋다. 목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목표가 없으면 한곳으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렵고 그만큼 산만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니체 철학의 중심 개념이라 할 ‘운명애’에서 잘 들어난다

“운명애를 가진 사람은 위대하다는 게 나의 신조다. 운명애는 살아갈 날에서도, 살아온 날에서도, 달라지지 않기를, 아니, 영원히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세다.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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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FLOW미치도록행복한나를만난다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한울림,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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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기록 보기


칙센트 미하이 박사의 '몰입' 그는 제목으로 Flow 라 하였다..
즉 물흐르듯이 흐르다... 흐름... 
진정한 몰입은 말 그대로 흐름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 듯 하다.
그의 표현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책을 읽으며 정리해 놓은 내용(아래내용)을 프린트하여 다이어리에 끼워 한 번씩 내용을 읽고자 노력한다. 
스스로 마음을 잡아가는 것이 어렵거나 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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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몰입의법칙성공한사람들이목숨을걸고지키는자기운명창조공식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이지성 (맑은소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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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몰입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책이다.
사실 몰입은 누구나 하고 있다...그리고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누구나 길게 하는것은 아니다.
사실 몰입에 대한 내용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의 책을 통해서다.
그의 책은 참 재미있다... 물론 내생각이다..,, 재미없다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정말 몰입에 대해 고민을 하였던 적도 있다.
그러면서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나 몰입을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확신하게 해준 책이 18시간 몰입의 법칙이다..
4번은 읽었다..매우 술술 읽히는 책이기도 하고 기억을 더 하고싶어서 ...그리고 내가 방만해 졌을때 읽었다..
그 가운데 내가 인상적으로 생각하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이것도 내가 인상적이니 다른 이들은 아닐수도....


첫째, 지금 네 상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크고 높은 꿈을 품어라. 그리고 그 꿈을 죽어도 포기하지 마라.
wn1 - 몰입을 위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열망하는 그 무언가가 몰입을 시켜준다. 
굳이 그것을 표현하면 '목표'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바가 생긴다면 그것으로 몰입을 하게 된다.. 
어린 아이를 관찰해보면 그들은 순순하게 몰입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때를 관찰하면 정말 몰입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바로 그것이다. 몰입을 해야지 해야지 보다는 마음에서 진정 원하는것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몰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18시간 몰입의 법칙'과 '3(4)시간 수면의 법칙'을 실천하라.

셋째, 꿈의 성취를 돕는 마음의 기술을 사용하라.
wn1 - 위의 표현들은 어쩌면 기술적인 내용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시말해서 몰입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 역할을 할지언정 저것 만으로 지속적으로 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위에서 적은(빨간글씨)내용의 시작으로 그것을 지속시키기에 좋은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표현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현실을 보는 대신 꿈을 봅니다.
wn1 - 현실 대신 꿈을 본다.. 이말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
현실을 무시하는것이라기 보다는 현실속에서의 부단한 도전과 압박들을 미래의 내 현실에 비추어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표현한것이 아닌가 한다..
 



"꿈을 크게 가져라. 그러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게 된다."
wn1 - '꿈 ..꿈..하는데 난 대체 왜 꿈이 없을까?'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내가 만나본 사람들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별 생각 없이 있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왜 꿈을 가지지 않고 있으까? 
.
.
경험이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일까?.. 꿈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어떠한 이유에서 일까..?
혹 꿈이란것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또는 커야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는건 아닐까? 
대체 왜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일까? 
어릴 때로 돌아가보라 .. 그 어린 시절에는 궁금한것도 많았고 해보고 싶은것도 많았다.그러나 사회와 때론 가정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꿈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게 되었고 .. 현재 까지 왔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사회에 또는 부모님이나 스승에게 한탄만 하고 있으면 되는것일까?
누구나 이 질문에 아니라는 답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는 걸까?
자기 계발을 위한 내용들에 나오는 당연한 말은 생략하더라도 ..
'막연한 두려움' 이라도 버려야 할 것이다...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찾으면 또 다른 나의 마음은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수십가지는 찾아보고 있고..그것을 나의 뇌로 전달해 주고 있다.. 결국은 호기심을 쉽게 무너뜨리게 된다.
사람이 걱정하는 것의 4%외에는 절대적으로 변경시킬 수 없다고 한다.. 96%의 비현실적인 내 망각에서 허우적 거리기 보다는 차라리 잘 되든 안되든 그것을 해보는것 만이 답을 알 수 있다..
사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은 '안된다' '어렵다' 결론내릴때 그것이 가능함을 실행해보았고 결과로 인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가두려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라 ... 왜 나를 가두는 생각만이 내 머리속에 가득한지를..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리고 선로옆을 걷다가 문득 별에 붙은 글을 보았다... 
'정말 화가나서 한번 치고 싶을때, 이렇게 생각해 보라..."이러면 내가 행복해질까?"'
걸어가면서 순간적으로 본 짧은 글이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표현이었다.
정말 자신이 두려움을 가져 포기할때 '내가 이것을 포기하면 행복해 질까? 아니면 결과야 어떻든 해보는게 더 행복해 지게 할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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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Mihaly Csikszentmihalyi


Chapter 1. Happiness Revisited (행복, 다시 생각해 보기)
p.23

행복은 직접적으로 찾을 때가 아니라 좋은 싫든 간에 우리 인생의 순간 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을 때만이 행복이 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성공에 집착하지 마라. 성공에 집착할수록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성공이란 것도 의식적으로 얻으려 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은 자기 자신의 이해보다 더 큰 목표에 헌신할 때에 얻어지는 부산물일 뿐이다.”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최적 경험들을 하나둘씩 축적하다 보면 어느덧 자기가 인생의 내용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주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플로우(Flow)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곧 이때의 경험 자체가 매우 즐겁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어지간한 고생도 감내하면서 그 행위를 하게 되는 상태이다.

인간이 행복을 얻기가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여러 신화들과는 달리, 우주는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좌절을 인생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기본적 욕구들이 채워지는 순간 또다시 우리는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이런 만성적인 불만족이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더 이상 이런 것들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새로운 욕구와 욕망이 샘솟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욕망의 패러독스를 경험하고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즐기며, 죽는 순간까지 배우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 지루한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무엇을 하든지 즐길 수 있으며, 삶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 과거의 경험들이 어떠했던 간에 지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미래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외적 여건이 어떻든지 간에 스스로 즐거움과 삶의 목적을 발견해 나가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쉽다고 할 수도 있고 어렵다고 할 수도 있다.

쉽다는 것은 이렇게 하는것은 오로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점이고, 어렵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도 쉽지 않을 자기 단련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경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에 관하여 자기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에머슨은 “살아가려고 바동대기는 하지만, 정말 삶을 살고 있는것일까?”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가 제공하는 보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를 위해서 어떻게 사회적 보상들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보상으로 대체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욕구를 이용해 우리를 조절하는 이 사회의 자극 - 반응 양식에 순종하는 한, 우리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통제될 뿐이다.

우리의 의식에 해방을 가져다 주는 현명함이라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그 첫 번째 이유이다. 이것은 앎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지식은 문화와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것이다.


Chapter 2. The Anatomy of Consciousness (의식에 관해서 알아보기)
p.59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식이란 의도적으로 순서화된 정보(intentionally ordered information)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의식의 정보들을 순서화하는 힘을 의도(intention)라고 부른다.

오늘날 인간은 약 8퍼센트의 시간을 식사를 하기 위해 보내고, 거의 비슷한 시간을 기본적인 생리적 요구(씻기 옷입기 머리빗기 화장실가기 등)를 위해서 사용한다. 둘을 합치면 인생의 약 15퍼센트의 시간에 해당하는데,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중요한 신경을 써야 하는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주의(attention)라는 것이 지천에 깔려 있는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자기 의식을 통제하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의 의지대로 주의 집중을 할 수 있는가,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차단할 수 있는가 그리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집중을 계속할 수 있는 목표가 이루어지면 다시 일상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의 능력이 있는가를 보면 된다.

삶의 모야오가 내용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주의를 사용하는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무엇보다도 자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쌓아 왔던 내 자신의 목표들에 대한 위계적 순서를 가지고 있다.

주의는 자아를 형성해 가고, 자아는 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경험은 심리 에너지를 배분하는 방법, 즉 주의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서 달리 이루어짐을 알았다.

심리적 엔트로피(entropy)라고 불리는 내적 무질서 상태, 즉 자아 기능의 효율성을 손상시키는 상태를 맞게 된다. 이런 상채가 지속되면 우리의 자아는 주의를 집중하여 목표를 수행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가 처리하는 하나의 정보들은 자아와의 관련성에 따라서 평가 분석된다. "이 정보가 우리의 목표 성취를 방해하는가?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중립적인 정보인가?"

새로운 정보는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따라서 의식의 무질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하여 목표 수행을 도울 수도 있다.

심리적 엔트로피의 반대 상태는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적 경험이란,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또한 자아를 방어해야 하는 외적 위협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상태를 바로 플로우(flow)경험이라고 이름 붙였다.

플로우는 심리적 엔트로피의 정반대 개념인데, 이런 까닭으로 네겐트로피(negentropy : neg(반대의) + 엔트로피)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가능한 한 자주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의식을 조절하면 삶의 질은 저절로 향상되게 마련이다.

플로우를 경험하고 나면, 이전과 비교해서 우리는 더욱 복합적인 자아로 발전한다.

복합성(complexity)은 두가지 심리적 과정을 거친 결과인데, 분화(differentiation)와 통합(integration)을 말한다.

분화는 자신이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하는 생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고, 또한 본인을 다른이들로부터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경향을 말한다.

통합은 반대의 경우로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아이디어들과 합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복합적 자아란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자아를 일컫는다.

분화만 되고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은 큰 개인적 성취를 이루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친 이기주의가 되기 싶다.

통합만 이루어지고 분화가 되지 못한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지만, 자율적인 개성은 갖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한 개인이 그의 심리적 에너지를 이 두 가지 과정을 위해서 균등하게 배분할 때에. 그 결과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순응적이지 않을때 그의 자아는 복합성을 갖추게 된다.

플로우에 도달하는 지름길은 없다. 그러나 플로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잘 알게 되면, 불안과 권태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삶을 좀더 조화 있고 에너지가 넘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Chapter 3. Enjoyment and the Quality of Life (즐거움을 통해 삶의 질 향상하기)
p.93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주요 전략 첫 번째는 외적 조건들을 삶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외적 조건들이 우리의 목적에 더욱 잘 부합되도록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전략은 따로 사용될 때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삶의 질이라는 것의 실체는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 혹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느끼는가 이다.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일상 생활이 어떻게 조화롭고 더욱 만족스러워질 수 있는지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며, 체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사람이 이전에 기대했던 바를 성취하거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켰을 때 생긴다.

즐거움이라는 현상은 여덟 가지의 주요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본인이 완성시킬 가능성이 있는 과제에 직면했을 때 일어난다.

둘째, 본인이 하고 있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수행하는 과제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넷째,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일상에 대한 걱정이나 좌절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깊은 몰입 상태로 행동할 때이다.

여섯째, 본인의 행동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일곱째,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

여덟째, 시간의 개념이 왜곡된다.

어떤 활동이든지 간에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회와 도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절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에게 활동은 하나의 도전이 될 수 없고 무의미할 뿐이다.

도전을 찾기 위한 한 가지 단순한 방법은 경쟁적인 상황에 뛰어드는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우리와 대적하는 자는 우리의 정신을 강화시켜 주고 우리의 능력을 다듬어 준다. 적은 결국에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는 자이다."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할 때 주어지는 피드백을 제대로 인식하고 평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결코 그 활동을 즐길 수 없다는 규칙 말이다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못하는 창의적 활동을 할 때, 사람들은 본인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강한 개인적 감각을 발달시켜야 한다.

즐거운 활동은 현재의 작업에 주의를 완전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이다.

집중을 요구하는 모든 활동은 유사하게 좁은 주의의 시간 폭윽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집중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우 선택적인 정보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로우를 경험할 때의 집중은-명확한 목표와 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의식에 질서를 제공하여 즐거운 마음 상태인 네겐트로피를 제공한다.

타성에 박힌 일과의 안전함을 포기하지 않고는 진정한 통제감을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즐거운 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능력에 너무 의존하고 그 결과 다른 것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통제, 즉 의식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자의식이 없어진다는 것이 자아가 없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아에 대한 인식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Chapter 4. The Conditions of Flow. (플로우의 조건들 알아보기)
p.139

- 이번 장에서는 최적 경험을 유발하는 활동들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쉽게 플로우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연구를 통해 플로우 활동들은 이것이 경쟁적이든, 확률적이든, 또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든 간에 분명한 특징을 공통 분모로 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즉 이들은 개인에게 발견의 느낌,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듯한 창의적 깨달음을 준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아를 좀더 복합적으로 만들어서 변형시킨다.

플로우 활동의 핵심은 '자아의 성장'에 있다.

일단 한 문화의 규범과 습관이 되면, 그때부터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굳게 믿는다.

사람이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할 때, 학습을 한다거나 진정한 즐거움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사회적 무질서(anomie)'와 '소외'는 플로우 경험을 어렵게 하는 조건이다.

개인적 수준에서 볼때 무질서는 불안과 일치하는 것이며, 소외는 지루함에 대응되는 것이다.

최적 경험을 유발하는 특정 가정 환경 유형의 특징 다섯 가지.

첫 번째는 명료성 -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명료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족의 상호 작용엣 목표와 피드백이 명확하다.

두 번째는 중심성 - 이것은 부모가 자녀들이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지금 현재 자녀들이 하고 있는 일의 구체적인 경험과 감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는 자녀의 지각이다.

세 번째는 선택성 -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면 부모가 세운 규칙도 깰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는 신뢰성 - 자녀가 부모의 보호 아래 충분히 편안함을 느껴 자기가 관심 있는 어떤 것이든 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섯 번째는 도전성 - 자녀들에게 점차 복합적인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의 헌신을 말한다.

자기 목적적 환경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더 행복하고, 강하고, 명랑하고, 만족스러워했다.

이 차이는 아이가 혼자서 공부할 때나,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나타났다.

난관속에서도 성공적인 경험을 전화했던 이들은 자신의 환경에서 가장 사소해 보이는 세부 사항에 집중을 하여, 주어진 환경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행동의 기회를 그 상황에서 찾아냈다.

그러고 나서 자신들이 처한 위험 상황에서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들이 받았던 피드백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는지 꼼꼼히 살펴 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목표에 도달하면 난이도를 올렸다. 즉 자신을 위해 점차 복잡한 도전을 한 것이다.

역경이 우리를 마비시킬 정도로 위협적일 때도 심리적 에너지를 투입하는 데 새로운 방향을 찾음으로써, 즉 외적인 힘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목표를 발견하여 통제할 필요가 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자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객관적으로 볼 때는 노예의 신분이더라도 주관적으로는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다.

주로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자기애적 개인주의자들은 외적 조건이 위협적일 때 쉽사리 좌절한다.

버트란드 러셀은 "점점 나는 내 자신과 나의 결점들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법을 배웠다. 점차 내 주의의 중심은 외부의 대상, 즉 만물의 상태, 다양한 지식의 영역, 내가 애정을 느끼는 개인들에게 맞추어졌다."


Chapter 5. The Body in Flow. (우리 몸을 통해 플로우 얻기)
p.179

간혹 과학자들이 흥미 삼아 우리가 지닌 신체의 가치가 얼마쯤 될가 계산해 보려고 시도한다.

화학자들은 피부, 살, 뼈, 털 그리고 이 안에 포함되어 있는 무기물 및 소량의 함유물들의 가치를 아주 꼼꼼하게 합계를 내본 후, 그 가치가 불과 몇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정교한 정보 처리 과정 및 학습 능력 등을 고려하여 매우 색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즉 그만한 기능을 갖춘 정교한 기계를 제작하려면 수억 달러 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신체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리고 신체 감각에 그 어떤 질서를 부여할 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의식 안에는 엔트로피 대신 감각들의 즐거운 조화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리 하찮은 목표라 할지라도, 완벽한 기술의 추구를 위한 운동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 된다.

가장 단순한 신체적 행위도 플로우를 생성해 낼 수 있도록 변형시킬 수 있다면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그 변화 과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① 궁극적 목표를 세운 후 그에 맞는 실행 가능한 하위 목표들을 최대껏 많이 설정한다.

② 설정한 목표들의 달성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③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며, 그 활동과 관련된 도전 목표들을 최대한으로 세분하여 구분 짓는다.

④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연마한다.

⑤ 해당 활동이 지루해지면 목표를 계속 높여간다.

재미는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신체가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걸을 때의 목적을 설정하고 걷기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면 매우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즐거움이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의 여부에 따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육체적인 관계만으로도 플로우를 유지하기 충분하지만, 로맨스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성정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곧 시들어 버릴 것이다.

복합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자기 자신의 그릭고 상대방의 잠재력을 개발해야 한다. 잠재력의 개발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주의를 집중해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감정과 꿈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주의를 집중해서 귀를 열고 들을 때만


Chapter 6. The Flow of Thought (지적 활동을 통해 플로우 찾기)
p.220

세계적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플로우 활동은 독서일 것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페이지를 읽고 난 후에는 집중도가 떨어져서 딴 생각을 한다. 그 시점에서 만일 책을 계속 읽고자 한다면 관심을 다시 책으로 돌리려는 의도적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잘 깨닫지 못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일로 관심이 모아진다.

실제 혹은 가상의 고통이나, 최근에 유감스러웠던 일, 또는 오래된 갈등 등에 관심이 쏠린다. 이런 쓸모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엔트로피가 바로 정상적인 의식의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 현재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로 -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 머릿속을 채움으로써,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가,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막대한 시간을 텔레비전 보는 일에 소모하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준다.

플로우는, 한편에서는 근육과 신경의 사용을, 또 한편에서는 의지, 사고, 감정을 언제나 필요로 한다.

기억을 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의식에 질서가 성립되기 때문에 기억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된다.

이야기 ․ 시 ․ 노랫말 ․ 야구기록 ․ 화학공식 ․ 수학적연산 ․ 역사적날짜들 ․ 성경구절 그리고 지혜가 담긴 인용구들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이런 기술을 연마하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의식은 주변 환경의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다. 혼자서도 언제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으며, 자신의 정신에 담겨 있는 내용에서 의미를 찾는다.

내적 동기가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어떤 사실에 진정으로 간심이 있고, 환경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의식을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지루하고 따분한 존재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보를 정리해 주는 체계가 없다면, 가장 명석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의식의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에게는 언제나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사고하는 즐거움이 그 동기가 되어 왔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 관계를 풍부하게 해주며, 그와 같은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익살이 가장 낮은 수준의 유머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언어를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언어의 가장 창의적 사용은 시이다.

매일 밤 시집을 읽는 것은, 근력 강화 운동을 할 때 우리의 신체가 단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을 단련시켜 준다.

산문을 쓰는것도 이와 비슷한 혜택을 준다.

글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창조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외부의 통제를 받는 지식은 마지못해 습득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측면이 흥미를 주는가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연구해 보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 깊은 자료와 세부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면서 발견하는 사실들을 개인적인 스타일로 맞게 기록해 나가는 순간,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어엿한 플로우 경험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아이디어와 씨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존의 인간 사고 방식의 대혁신이 일어난다.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에게는 , 그들이 각 분야에서 ‘전문가’도 아니고 대대적 지원을 받는 명망 있는 인물도 아니었지만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데 어떠한 장애물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즐겼을 뿐이다.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플로우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과학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본래 ‘지혜를 사랑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추어 철학자들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결정하고 난 후에 제일 먼저 거쳐야 할 단계는 그 분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배우는 일이다.

현실의 기본적인 특질 - 볼프, 칸트, 후설, 하이데거

선과 악에 관련 -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니체

미적인 것 - 바움가르텐, 크로체, 산타야나. 콜링우드

전문화는 어떠한 사상아든 그 사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여기서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분명해야 한다. 즉 전문화는 한층 더 깊은 사고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추어 과학자가 되는 목적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들과 경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징적 훈련을 통해서 정신적 기술을 발전시키고 의식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자만심을 높이거나 물질적 이득을 얻기 위해 그 지식을 사용하는 순간 서투른 모방가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 과학적 방법의 기본이 되는 회의론이나 상호 비평에 관한 적절한 훈련도 없이 편견을 가지고 지식에 뛰어드는 아마추어는 가장 타락한 학자보다도 더 무자비하고, 진리와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배움을 포기하는 이유는, 13-20년에 걸친 교육이 외적 동기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배운다는 것이 불유쾌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의력이 오랜 기간 동안 외부에 의해, 즉 교과서와 교사들에 의해 조종되어 왔기 때문에 그들은 졸업을 첫 자유의 날로 간주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징적 기술의 사용을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자유로워 질 수가 없다. 그의 사고는 이웃의 의견이나 신문의 사설 그리고 텔레비전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전문가’의 조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외적 동기에 의한 교육이 종결되는 시점을 내적인 동기로 교육을 받게 되는 출발점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 시점에서 공부의 목적은 더 이상 학점을 받거나 졸업장을 타는 것 그리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 그리고 자기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사상가는 심오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경험한 이와 같은 기쁨을 『필레부스』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처음으로 그 샘물을 마신 젊은이는 마치 지혜의 보고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그 기쁨에 도취된다. 그는 어떤 이야기든 그 속에 담긴 사상을 끌어내 하나로 통합하고 나서는, 그것을 다시 분해하여 작은 부분들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선 그 자신에게 수수께끼와도 같은 문제를 던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 노소를 분문하고 그의 근처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그와 같은 문제를 제시해 그들을 괴롭힌다. 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대상이 된다. ...”


Chapter 7. Work as Flow (일 속에서 플로우 경험하기)
p.263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만족하기보다는 변화를 갈망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제약을 참기 어려워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복합성이 증가할수록 즐거움도 더해진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기회를 찾아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하는 경험의 질은,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며 삭막한 현실의 제약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것일 뿐 아니라 훨씬 더 발전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제약을 기회로 변화시켜 자신의 직업을 풍요롭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것.

노동 경험의 질을 우리 의지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직 깨달을수록 우리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훨씬 빠르게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을 찾고 그들 스스로 감당해 내지 못할 만큼 최첨단의 복잡한 시술을 하고 싶어한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하는 요소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 목적적 성격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일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상호 보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 하나는 사냥 ․ 가내 직조 수공업 ․ 수술 등과 같은 플로우 활동과 최대로 비슷해질 수 있도록 일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행동의 기회를 파악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합당한 목표를 설정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 목적적 성격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경영진이나 감독직에 있는 사람들(64%)은 사무원들(51%)이나 육체 노동자들(47%)보다 직장에서 플로우를 경험하는 확률이 높았다. 육체 노동자들이 여가 활동에서 플로우를 경험하는 확률(20%)은 사무원들(16%)이나 경영진(15%)보다 높았다. 그러나 자동 조립 노동자들도 여가 활동 때보다 공장에서 일을 할 때 플로우를 경험하는 확률이 높았다(47%:20%).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을 하면서 무감각을 보고한 빈도는 노동자들이 경영진보다 높았으며(23%:11%), 여가 활동 중에는 경영진이 육체 노동자들보다 높았다(61%: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보다는 여가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들은 직접 경험의 질은 무시해 버리고, 일에 대한 깊은 문화적 고정 관념에 의거해 자신의 동기를 결정 짓는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과업에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것은 심리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인들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 세 가지를 보면, 세 가지 모두 직장에서 겪는 전형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첫 번째 원인은 다양성과 도전감의 결여

두 번째 불만은 직정에서 겪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 특히 상관과의 갈등

세 번째로는 심신의 소모, 즉 자신을 위한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

스트레스는 우리가 그것을 느껴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완전히 지쳐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책은 그러한 스트레스를 전반적 경험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정신이 산만해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설정해 놓은 목표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리적 참여는 시간을 낭비하는 데서 오는 공허함을 일시적으로나마 달래 줄 수 있다.(음악듣기 경기보기 그림감상 등..)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플로우 경험은 성장을 하게 해주는 반면, 수동적인 여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일을 즐길 수 있고, 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이 전반으로 훨씬 더 가치 있게 되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Chapter 8. Enjoying Solitude and Other People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을 즐기기)
p. 299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애정과 승인에 너무도 많이 의존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는가에 따라 극심한 영향을 받는다.

외롭다는 것은 어째서 그렇게 부정적인 경험이 되는 것일까?

내적인 정신의 질서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계속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외적인 목표와 외적 자극 그리고 외적 피드백이 필요하다.

경험의 질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주의력을 조직해 줄 만한 외적 요구도 없이 혼자 있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의 여부이다.

의존할 어떤 것도 없이 혼자만 남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암울한 기분이 서서히 몰려들 때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가? 아니면 즐거울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아를 성장시켜 주는 활동을 찾아서 하는가?

혼자 있는 시간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그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특히 젊은 시절에 더욱 중요하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복잡한 형태의 정보에 집중을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얼마 안 지나 어려운 책의 내용을 떠나 좀 더 즐거운 생각을 하려 한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억압하거나 회피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배움의 기회로 그리고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자신만의 질서를 부과해야 한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통제력을 우지하며 사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것.

사람은 고속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엔트로피가 정신을 와해 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의력을 조직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혼자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할 수 없는 목표들을 성취하는 기회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외로움을 느낒 않고 오리혀 고독을 즐기게 될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도 있다.

관계를 시작하면서 개인의 목표를 조정하기를 꺼릴 때, 그 관계로 인해 그 사람의 의식에 혼란이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키케로는 인간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일련의 법규의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고 저술한 바 있다. 다시말해, 제약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가정 생활을 플로우 활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사진에 고려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플로우를 제공하려면 가정에는 그 존재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들이 심리 에너지를 공통적 과업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긍정적 목표들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 목표들이 각 가족 구성원의 복합성을 증진시켜 주는 상호작용을 낳기 위해서는 그 가정이 '분화'되는 동시에 '통합'이 되어야만 한다.

분화란, 각 가족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개발하고, 기술을 최대화하며, 개인적 목표를 설정하도록 장려함을 의미한다.

통합이 된다 함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의 일이 다른 성원 도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의미한다.

장기적은 목표 외에도 끊임없이 단기적 목표를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가족 모두가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목표가 없다면, 가족 구성원들이 즐거운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피드백을 위해서 의사 소통의 채널을 언제나 개방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층 더 보람 있는 전략은 계속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활동을 찾는 것이다.

부모들이 자신의 이상이나 꿈에 대해서 더욱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일만으로도-이런 일들이 종종 좌절감만을 안겨다 주었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안일한 생활 방식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야심을 갖도록 해줄 수 있다.

공동의 목표가 있고 의사 소통의 채널이 항상 열려 있는 가정, 또한 신뢰가 바탕이 되는 환경 속에서 점차 확대되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가정이 될 때, 그 가정 안에서의 생활은 즐거운 플로우 활동이 된다.

무제한적 관심의 투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무조건적인 수용, 가족 서로간의 완전한 신뢰가 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친구 관계는 대체로 공통된 목표와 공동의 활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즐거운 일이다.

친구 관계가 주로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 의식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되면, 그 관계는 즐거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즐거움, 즉 성장을 장려하는 즐거움은 줄 수 없다.

강한 가정적 결속이 결핍된 십대 청소년들은 친구들 그룹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나머지 그 그룹 속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려 든다.

진정한 친구란 때로는 파격적인 일도 함께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언제나 틀에 박힌 행동만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않는 그런 친구이다.

가정이 주로 정서적 보호를 해주는 곳이라면, 우정은 대체로 신비롭고도 새로운 양상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한층 더 위대한 도전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설정하고, 심리 에너지를 집중하며, 피드백에 관심을 갖고, 과제의 도전과 본인의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지를 확인하는 일들이다. 그렇게 되면 조만간에 그와 같은 상호 작용이 활기를 띠게 될 것이며, 곧 플로우 경험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법을 먼저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Chapter 9. Cheating Chaos. (혼란에서 벗어나기)
p. 349

보통 사람들이라면 참을 수 없을 만한 상황을 의미 있고 즐거운 생활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약해지는 사람도 있는 반면, 오리려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도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희망이 없는 상황을 통제 가능한 새로운 플로우 활동으로 변화시킬 줄 아는 사람은 매사를 즐길 수 있으며, 고난을 겪음으로 인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 능력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1. 자의식 없는 자신감(unselfconscious self-assurance)

자신의 운명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절대적 신념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과연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한번도 품은 적이 없다.

신기하게도 자만심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자기 중심적이지도 않다. 자신의 환경을 정복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환경 안에서 조화롭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방법을 찾는 일에 더욱 많은 에너지를 집중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수준의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작 자시노가 환경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믿음을 자겨야 한다.

2. 세계로의 관심 전환

관심의 초점은 역시 개인의 목표에 의해 설정되지만, 자신의 목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느 ㄴ외적 사건들일지라도 그것을 주목하고 그에 맞게 적으을 해나갈 만큼의 개방적인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개방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객관적이 될 수 있고, 가능성 있는 다른 대안들도 발견하며, 주의를 둘러싼 세계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환경과의 동화는 즐거운 플로우 경험이 도리 뿐더러 역경을 극복하는 데 중추적인 기제가 된다. 우선, 관심의 초점이 자아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진다면, 충족되지 목한 욕구로 인한 좌절이 의식을 침해할 가능성이 그 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심리에너지를 통해 자신을 환경과 연결지음으로써 그 환경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체제의 특성들을 이해하게 되어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한결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3. 새로운 해결책의 발견

정신적 엔트로피를 유발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자신의 목표에 방개가 되는 장애물에 주의를 집중하여 그 장애물을 제거한 후 의식 속의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접적인 접근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도 포함한 상황 전체에 주의를 집중하여 다른 대안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가의 여부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상황이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기회를 파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대체적 전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기본적으로 간단하다.

자의식 없는 자신감을 갖고 주변 환경에 대해 언제나 깨어 있으면서 그 안에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면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이다.

'자기 목적적 자아(스스로 만들어 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자아)'의 소유자는 위협의 소지가 되는 요일들을 즐거운 도전으로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

자기 목족족 자아를 개발 할 수 있는 규칙들

1.목표를 설정하기

목표 설정은 어떤 것을 도전으로 인식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자신이 어떠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특정한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피드백을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목적적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어떻 목표를 추구하고 있든 그 목표를 선택한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에 더욱 충실해진다는 것이다.

2. 활동에 몰입하기

현재 하고 있는 눈앞의 일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행동의 기회들과 자신이 보유하고 잇는 기술간의 균형을 잘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몰입은 집중력에 의해 크게 촉진된다.

3. 주변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기

집중을 하면 몰입을 하게 되며, 이와 같은 몰입은 지속적인 주의력의 투입이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자기 목적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몰입을 지속할 능력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신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상호 작용에 주의를 집중하는 사람은 역설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독립된 개체로 트끼지 않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자아가 한층 강화되는 것이다.

4. 지금 현재의 경험 즐기는 법 배우기

정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어떤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일이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력을 얻기 위해서는 결의와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생활을 플로우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지 매순간의 의식 상태를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일상의 삶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각 목표들의 전후 관계를 파악하는 일 역시 필요한 것이다.


Chapter 10. The Making of Meaning. (의미 창조하기)
p.389

의미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어떤 것의 목적(purpose)내지 중요성 드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두 번째로 어떤 사람의 의도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세 번째로 정보를 정리할 때 사용된다. 즉 각기 다른 단어의 뜻과, 사건들간의 관계를 나타내 주어 서로 무관하거나 상충되는 정보를 정리하고 명료히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다 차지할 만큼 어려우면서도 해볼 만한 목표(goal), 즉 그들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목적의 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노력을 분산하거나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바라기는 하되 행동하지 않는 자는 해악을 낳는다." - 블레이크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잘 알고, 그것을 위해 목적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위들은 서로 잘 어우러져서 그 사람은 결국 내적인 조화를 성취하게 된다.

우리들이 이처럼 복합성을 높여 자율적이며, 자립적이고, 자신의 개성과 한계를 의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더욱 연마하는 일에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개인적 한계를 능가하는 힘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인식하고, 이해햐며, 찾아내는 데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목표들로 인해 온갖 종류의 난관을 겪게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본래의 목표를 포기해 버리고 좀더 힘이 덜 드는 것을 찾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목표와 그 목표를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에는 밀접한 상호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목표들이 그 목표를 위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을 정당화해 주지만, 나중에는 바로 그러한 노력들이 목표를 정당화해 준다.

우리의 심리 에너지를 과연 어디에 투자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까?

각자가 자신의 궁극적 목적을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시행 착오를 통해 그리고 집중적인 수련을 통해 우리는 서로 뒤얽혀 있는 목표들을 정돈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행동의 목적이 될 만한 것도 선택할 수 있다.

스스로를 아는 것-너무도 오래되어 그 가치를 쉽게 망각하게 되는 고대의 처방-의 과정을 통해 상충되는 삶의 선택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꼭 필요한 요구들을 추려내서 그 요구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할당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 행동적인 삶(목표들을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과 관조적 삶(초연한 자세로 경험을 관조하는것, 신중하게 고려해 보는것)이 서로 보완하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목적과 결의에 따라 인생을 살아나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내적 조화이다. 이는 의식의 내용 속에 역동적인 질서가 수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대인의 과제를 인식하고 이를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는데, 이것은 각 개인의 인생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목표 지향적인 행동들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인생주제(life themes)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진정한 프로젝트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경험을 이성적으로 평가한 후 그에 기초한 개인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인생 주제를 의미한다.

허위의 프로젝트란,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자신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들이다.

자신이 발견한 인생의 주제가 있는 사람은 개인적 경험과 선택에 대한 인식에 입각해 자신의 행동을 위한 대본을 직접 쓰는 사람이며, 받아들인 인생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오래전에 이미 작성해 놓았던 대본에 미리 규정되어 있는 역할을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 두 종류의 인생 주제들 모두 인생에 의미를 주기는 하지만 각각 그 나름대로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전략이란, 옛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서 자신의 마음속의 혼란을 피할 수 있는것들을 추출해 내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속에는 이러한 용도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지식, 다시말해 잘 정돈된 정보들이 축적되어 있다. 누구나 위대한 음악 ․ 건축 ․ 미술 ․ 시 ․ 연극 ․ 무용 ․ 철학 ․ 종교 등을 통해서 혼돈 속에서 조화를 창조해 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간과해 버리고는, 자신들만의 기제로 삶의 의미를 창조해 내고자 한다.

혼자서 해보겠다는 것은 마치 각 세대마다 맨 처음부터 물질 문화의 구축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복합성을 가진 인생의 주제를 발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몹시 존경하여 귀감으로 삼았던 연장자나 역사적 인물을 가지고 있다.

문학에는 행동, 귀감이 되는 목적 그리고 의미 깊은 목적을 푯대 삼아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에 관한 정보들이 정리되어 담겨 있다.

단지 문학의 예일 뿐인데, 음악 ․ 미술 ․ 철학 그리고 종교는 또 어떠하겠는가?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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