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관찰을 통해 나는 인간이 영혼과 동물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일지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에 완전히 포섭되거나 딱 겹쳐지기도 한다. 따라서 둘을 확연히 구분 지으려면 영혼이 동물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예전에 한 선생이 플라톤은 물질을 타자(他者 다를타 사람자)로 지칭했었다는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참으로 어울리는 명칭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명칭을 영혼과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는 동물성에 갖다 쓰기로 한다. 동물성이라는 실체야말로 타자이며, 아주 요상하게 우리 인간을 희롱하기 때문이다.  30


동물성이 영혼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영혼이 동물성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입각해 보면 한쪽은 입법권을, 다른 한쪽은 집행권을 지닌 셈인데, 이 두 권력은 곧잘 충돌한다. 뛰어난 이들은 자신의 동물성을 조련하는 데 가장 신경 쓴다. ..

이 점에 대해서는 예가 필요할 것 같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흥미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 그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기계적으로 글자와 문장을 따라갈 뿐, 이미 책은 안중에도 없을 때가 있다. 무엇을 읽었는지도 모르고 방금 읽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한 채 책장만 넘긴다. 당신의 영혼은 자신의 짝인 동물성에게 책을 읽으라고 명령은 해 놓은 채, 정작 자신은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면 타자는 영혼이 더는 귀 기울이지 않는 책 읽기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31-32


물질에서 벗어나 영혼이 언제든 홀로 여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하고도 유용한 일이다.  37


아, 왜 우리는 근심 걱정과 고통스러운 야망을 타자에게 넘기지 않는 걸까? 가엾은 그대여, 이리 오라. 그대가 지은 감옥의 문을 부숴 버리고 내가 그대를 인도할 천상과 낙원의 저 하늘 위에서 홀로 부와 명예를 좇는, 세상에 던져진 그대의 동물성을 내려다보라. 세상 사람들 속에서 그대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지 보라. 세상 사람들은 예의상 서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각자 홀로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안을 배회하여도 사람들은 그대에게 영혼이 깃들어 있기나 한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42


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친 뒤 벽난로 선반 위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참으로 아늑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긴 여행길에서 어쩔 수 없이 한곳에 머물러야 할 때 이보다 더 유용하고 편한 자세가 있을까.  66


독자 여러분은 시시콜콜하다고 나에게 뭐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행자들이 좀 그렇지 않은가. 몽블랑을 오르거나 쫙 벌어진 엠페도클레스의 무덤으 오를 때면 소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 일행은 몇 명이며, 노새는 몇 마리인지, 챙겨 간 음식의 맛은 어떠한지 그리고 일행들은 얼마나 잘 먹었는지부터 노새가 발을 헛디뎌 비틀거린 얘기에 이르기까지 노트에 꼼꼼히 다 기록할 것이다.  69


진솔한 자세로 이론을 개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쓸 때는 어조가 단정적이 되곤 하는데, 이는 글쓴이가 제가 회하를 옹호할 때 그랬던 것처럼 겉으론 공정한 척하면서 미리 어떤 암묵적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쓴 길은 반박을 낳을 수밖에 없고, 결론은 미심쩍을 수밖에 없지요.  103


나의 하인과 나의 개에게 철학과 인도주의를 배우고 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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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권리 장전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인간 기본권의 밑바닥에는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가 깔려 있다. 독서할 권리, 그것은 양도할 수 없고 박탈할 수도 없는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기본권이다.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독재정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유로운 독서의 권리를 박탈해왔다. 학교와 가정은 그런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자유로운 책 읽기를 방해하고 특정의 책 읽기를 강요해왔다. 이에 신성불가침한 독자의 권리를 천명하는 독자 권리 장전을 선포함으로써 독자의 권리에 대한 일체의 간섭과 규제를 배제하고자 한다.


1. 책을 읽을 권리

인간은 나이, 성별, 종교, 국적에 관계없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놓고 읽을 권리를 갖는다. 누구에게나 글을 배우고 책을 읽을 권리, 언제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과 사회단체 들은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누구라도 원하는 책을 읽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책을 읽지 않을 권리

모든 독자는 아무리 강요해도 읽고 싶지 않으면 읽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책을 읽으면 삶이 바르고 풍부해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러나 봉인이 원하지 않을 때 강요해서 책을 읽게 할 수는 없다. 그건 성인만이 아니라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교육적 목적을 제시하더라도 강요와 강압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바탕으로 특정의 책을 읽으라는 권유는 허용할 수 있다.


3.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기면 집 안팎 어디엣라도 책을 읽을 권리를 갖는다. 서재나 도서관의 책상 앞만이 아니라 침대, 식탁, 거실, 복도, 화장실, 공원, 수영장, 운동장, 음식점, 길거리, 기차, 비행기, 배, 버스, 지하철, 교도소, 병원, 내무반 등 어디라도 독서의 장소로 허락되어야 한다.


4.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누구라도 독자가 책을 읽는 시간을 제한할 수 없다.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늦은 밤 언제라도 책을 읽을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학교 기숙사, 교도소 감방, 군대 내무반, 병원 병실 등의 경우 소등 시간은 지켜져야 하지만, 기관의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마련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5. 책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책이 지루하면 중간중간 읽지 않고 넘어갈 권리를 갖는다. 누구라도 독자에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저자가 쓰고 싶은 것을 자기 방식대로 쓸 권리를 갖듯이 독자는 읽고 싶은 것을 자기 방식대로 읽을 권리를 갖는다. 지루한 책을 무턱대로 차례대로 다 읽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교사와 부모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6.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모든 독자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중도에 덮어버릴 권리를 갖는다.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신적 고문에 해당한다. 세상의 모든 고문이 즉시 사라져야 한다면 중도에 읽고 싶지 않게 된 책을 끝까지 읽으라는 강요도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7. 다시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한번 읽은 책을 마음이 내키면 다시 읽을 권리르 갖는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인간 본연의 특성이다.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 읽었을 때 재미있었거나 무언가 마음에 남긴 것이 있어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되풀이해서 읽을 권리가 있다.


8.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무엇이든 다 읽을 권리를 갖는다. 사랑의 대상이나 결혼 상대를 본인이 선정해야 하듯이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동의 없는 강제결혼이나 강요된 중매결혼이 인권침해이듯이 어떤 책을 읽으라고 강요도 인권침해에 해당된다. 어떤 책을 나쁜 책이라고 규정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못 읽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 세상에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가를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 판단은 성인 각자에게 맡겨야 한다.


9.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필독서가 되어서 많은 살마이 읽는 책을 꼭 읽을 필요는 없다. 누구라도 그런 책을 읽지 않았다고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유행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관심에 따라 스스로 원하는 다양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10. 책에 대한 검열에 저항할 권리

누구라도, 어떤 이유에서라도 어떤 책이 위험하다거나 불온하다는 이유로 책을 감추거나 훼손하거나 폐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세상의 독자들은 국가권력이나 학교체제 또는 부모들이 책을 검열하고 압수하고 폐기처분하는 일에 분연히 저항할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


11. 책의 즐거움에 탐닉할 권리

모든 독자는 책이 주는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중독될 권리를 갖는다. 책에 탐닉하거나 중독되는 일을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책 읽기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가장 높은 문명의 단계이다. 그러므로 책 중독은 그 자체로 최대한 권장되어야 할 중독이다. 그로 인해 학업이나 사업상의 문제가 발생 한다 해도 그 권리는 절대 억압할 수 없다.  


12.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책을 꼭 처음부터 읽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독자는 책을 아무데나 펴서 읽다가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도중에 그만둘 수도 있다. 책 중간의 삽화나 사진에 관심이 간다면 그것만 보고 책을 덮을 권리도 주어진다.


13. 반짝 독서를 할 권리

모든 독자는 단 몇 분간이라도 책의 어느 구절을 군데군데 읽을 권리를 갖는다. 책은 집과 같다. 집을 살 때는 예외지만 어느 집을 방문할 때 그 집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포도밭에 들어가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포도알을 따먹듯이, 모든 독자에게는 우연히 책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오는 구절만 읽을 권리가 있다.


14. 소리내서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원할 때면 언제나 책을 낭독할 권리를 갖는다. 오늘날 소음은 공해의 하나다. 그러나 책 읽는 소리를 자동차 엔진 소리와 동이랗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만이 아니라 대학생이나 최고 수준의 학자라도 때로 소리내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럴 권리를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만 타인의 조용히 있을 권리와 충돌할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조정될 필요가 있다.


15. 다른 일을 하면서 책을 읽을 권리

모든 독자는 독서와 다른 일을 동시에 할 권리를 갖느다. 모든 독자는 독서에만 몰두할 권리를 갖듯이 다른 일과 동시에 독서할 권리도 누린다. 방에 CD플레이어를 틀어놓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볼 권리는 물론, 집이나 식당에서 혼자 식사할 경우 식탁 한편에 책을 펴놓고 읽을 권리가 있다. 길을 걸어가면서 책을 읽는 것도 허용되지만 그럴 경우 독자는 충돌사고에 주의할 의무가 있다.


16.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권리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의견을 말할 권리와 더불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묵비권은 독후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말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글로 쓰는 독후감은 말할 것도 없고 말로 하는 독후감의 경우에도 묵비권은 최대한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17. 책을 쓸 권리

모든 독자는 어떤 내용 어떤 형식으로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써 책으로 펴낼 권리를 누리나.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라도 책을 쓸 권리를 막을 수 없다. 가족과 학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누구라도 책을 읽고 쓸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쓴 책을 출판하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 위의 독자 권리 장전은 앞으로 모든 독자의 의견을 고려하고 충분히 토론한 후에 확정되어야 할 시안으로서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이 <소설처럼>에서 초안한 '독자의 절대적 권리 선언'을 보완한 내용입니다.  9-17




읽지 않고 놓아둔 한 권의 책은 종이 뭉치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펴들고 읽는 순간 책은 살아 움직이며 읽는 이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므로 양서예찬은 곧 독서예찬이 된다.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예찬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19


송나라의 문인 장횡거는 "책은 이 마음을 지켜준다. 잠시라도 그것을 놓으면 그만큼 덕성이 풀어진다"며 독서를 예찬했고 14세기 일본의 선승 요시다 겐코는 "혼자 등불 아래에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전혀 모르는 옛날 사람들을 벗삼는 일이야말로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라고 독서의 즐거움을 고백했다. 벼슬자리를 마다하고 낙향한 퇴계 이황은 새벽에 일어나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하루종일 책을 읽는 일로 인생의 후반기를 보냈다. 보길도에서 귀양살이하던 윤선도가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자신의 다섯 친구라고 노래했지만, 정작 사랑방에 홀로 앉아 책을 읽을 때는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책뿐인가 하노라"라고 읊었을 것이다.  20



책은 생각의 집이다. 우리는 집을 짓듯이 '책을 짓는다'라고 말한다. 책을 쓴 사람을 지은이라고 말한다. 책은 지은이가 생각으로 지은, 생각이 사는 집이다.  46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하는 게 아니라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독서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독서할 시간을 만들어낸다.  64


책을 읽으려면 시간의 여유에 앞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퇴계 이황은 벼슬길에서 빠져나와 은거하며 서재의 벽에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고요함만한 것이 없고, 졸렬함을 벗어나는 데는 부지런함만한 것이 없다"는 구절을 써붙이고 끊임없는 독서에 매진 했다.

책을 읽으려면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고요한 마음을 마련해야 한다.  65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잘 생각하고 잘 말하고 잘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한 수많은 사실을 모아 질서 있게 배열하면서 조리 있고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는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논리적 사고력이 생기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소설을 읽다보면 저절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건 독서를 하다보면 부차적으로 얻게 되는 결과물이지 결코 독서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독서의 중요성은 그런 실용적 목적을 넘어서, 세상을 넓고 깊게 보고 자신의 삶을 고귀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 있다.  74-75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나이들면서 할 일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88




한 사람의 서재에 진열된 책들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 니콜 라피에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눈을 피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157


도서관은 미술과, 박물관과 더불어 범속한 일상사와 이해갈등으로 점철된 먼지 나고 시끄러운 현실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와 다른 세계로 날아갈 수 있는 자기 완결적 공간이다. 읽고 싶은 좋은 책으로 가득찬 도서관은 언제나 벅찬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열락의 공간이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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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의 목표는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다.  17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책은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다. 약간의 고요함과 약간의 체계, 그리고 약간의 경외심이 필요할 뿐이다.  18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언제 어디서건, 아끼는 펜이 있건 없건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기본적인 조건만큼은 인정하고 넘어가자. 

'의자, 테이블, 닫힌 문, 컴퓨터 혹은 노트, 약간의 경외심, 창문을 가릴 커튼, 가볍게 흥분한 두뇌'  21


적당한 모든 공간에서, 그리고 적당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서도 글을 써보라.  29



일부 시간은 형편없는 글일지언정 반드시 글을 써라.  43


글쓰기는 생각하기, 느끼기, 그리고 갈겨쓰기에 관한 것이며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서도 충분히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53


당신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꽤나 위험할 수 있다.  62


작가에게 기다림이란 위험하고 치명적인 게임이다. 그러나 기다리지 말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라보면 어떨까?

네 시간에 한 번씩, 말하자면 약 먹을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듯이, 오전 8시와 정오와 오후 4시와 저녁 8시에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지금 내가 처한 바로 이 상황에서, 15분 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

만약 대답이 "아니오"라면 왜 안된다는 대답을 했는지 자신에게 설명해보라. 만약 대답이 "그렇다"이긴 한데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지 않다면 왜 글을 쓸 수 있는데도 쓰고 있지 않은지 물어야 한다. 대답이 "그렇다"이고 글을 쓰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만약 이런 식의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정말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있었을까?"

이 실험을 시도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다음처럼 말한다.

"그렇다고 네 시간에 한 번씩 꼭 글을 쓰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너무 인위적이고 강압적이잖아요. 제 하루 일과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이루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글쓰기를 더 많이 의식하긴 했어요. 그래서 이 시간제 글쓰기 활동을 하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 전보다는 더 많이 쓰게 되는것 같아요."  62-63


지금 비록 다리미판을 꺼내고 인터넷 뱅킹으로 고지서들을 처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항상 글쓰기를 내 마음의 가장 앞이나 중심으로 꺼내놓고 있으면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63


짧지만 규칙적인 글쓰기 시간을 정해놓으면 어찌 되었건 그 시간에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찾아오고 내면과 대화를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해서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몇 배나 낫다.

소설가인 조안은 말한다. 

"글을 쓰겠다는 목적의식을 계속 품고 있으면 글쓰기가 생활 전면에 더 자주 등장하게 되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음 문단을 고민하고 틈틈이 머릿속으로 글을 다듬고 내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생각합니다. 이런 규칙적인 '목적의식 인식하기'는 자유로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실제로 글을 쓰고, 또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65


우리는 삶이 아무 의미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피드가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삶의 질이다. 

글쓰기 공간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꿈을 꼭 붙잡고 글쓰기에 전념하면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74


스승과 제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걸어가다 수심이 깊고 빠른 냇가 앞에 다다랐을 때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치마를 적시기 싫어서였는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그녀는 스승에게 자신을 안고 냇가를 건너달라고 부탁했다. 제자는 그들의 그욕주의적인 신조에 따라 스승이 당연히 안 된다고 말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승은 그녀를 안아서 건네주었다. 스승과 제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갔고 제자는 스승이 여자를 안았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부러움마저 잃었다. 사원에 돌아오고 나서 제자는 스스엥게 따져 물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지요? 우리는 여자를 만져서도 안 되잖습니까!"

스승은 순진하게 웃어 보였다.

"너는 아직까지 그 여자 생각을 하고 있느냐? 나는 아까 강둑에서 그 여자를 내려주고 왔다. 너는 지금가지 그 여자를 계속 안고 다니고 있구나?"  105


쓸데 없는 잡념에 지배되지 않은 자유로운 뉴런은 차분히 다른 일에 할애할 수 있는 뉴런이다. 모든 뉴런을 다시 돌아오게 하자. 그렇게 하면 우리에겐 침묵의 시간, 실존하는 시간, 상상력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너무 많은 뉴런을 도둑질 당한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실재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106


창조적 마음챙김.

당신이 케이크를 먹고 있다고 치자. 이때 마음챙김의 목표는 오로지 케이크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창조적 마음챙김의 목표는 케이크 먹는 일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소설을 계속 쓰는 것이다. 케이크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120-121


자아는 지속적으로 성숙시키지 않는다면 퇴행하게 되어 있다. 우울증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중독이 승리하기 시작하며 상상력은 시들시들해지고 결과물은 줄어들고 소외감은 커지고 절망이 깊어진다.  157



그곳이 당신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고, 앉아 있고, 바라보고, 걷고, 글을 쓰는 상상이 당신 마음을 휘젓는다면 그곳이 바로 글을 쓰기 위해서 꼭 가야 하는 장소이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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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컨셉은 오로지 밑줄을 그은 내용을 기록해 놓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내 생각을 배제하고 밑줄 그은 내용들을 올려놓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올리면서 어느때부터인가 내 느낌과 생각을 조금씩 붙이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중에 하나는 내 생각은 새로운 카페를 하나더 개설하여 그곳에다 올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도 아닐뿐더러 생각이나 느낌을 안 적기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코너를 만들어 본다.
두 개의 블로그로 분할하여 내용을 기록하는 곳과 내 생각이나 느낌들을 정리하여 글을 쓰는 곳을 구분하기전에 중간적인 개념으로 약식분류를 해 본다.

이미 '숟가락 올리기' 코너를 통해 짧은 글들에 내 생각을 함께 올리기는 하고 있다.
여러가지를 시도하면서 결국엔 통합하여 블로그 분할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 많은 신경을 쓴다면 지저분하게 하지 않고 깔끔하게 분할을 할 텐데... 지혜의 부족으로 가지를 많이 뻗어나가게 된다..ㅡ.ㅡ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 옆에 있는 누군가가 말을 한다.
'글을 더 많이 올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꼼수다.'

그래 꼼수 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꼼수가 아니라는 것만은 진실이다.
단지 내용을 정리하고 느낌을 정리하는데 조금은 더 비중을 두고자하는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용의 깊이가 깊어질것 같지는 않지만...
밑줄이 있기에 생각은 대충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밑줄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분을 지어 책을 읽고 내용을 좀더 생각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꼼수가 아니다.
생각은 자유라지만 ... 꼼수라니.. 
꼼수라는 단어가 요즘 유행이라고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이지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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