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읽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갇혀 있는 인간의 삶 저 너머에 있는 무한히 넓은 세상으로 흥미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신화 속에는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에 대한 의문과, 인간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영원한 세계와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에 대한 즐거운 상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8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민화를 그리는 일은 신을 명상하고 신에게 기도를 바치는 하나의 의식으로 여겨집니다.  10




베다 신화에서는 주로 자연물을 숭배하여 신격화했는데, 불의 신 아그니, 태양의 신 수리야, 새벽의 여신 우샤스, 천지를 유지하는 신 바루나 등이 찬양되었고, 아그니, 인드라, 수리야는 베다의 삼신으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의 삼식으로는 창조의 신 브라마, 보호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가 있다.  18


라마

<라마야나>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로 아요지아의 왕자 라마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시타가 그 주인공이다. 

<라마야나>는 효성과 복조으 용기와 힘, 인내와 희생, 단결과 충성, 그리고 우애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라마를 도와서 시타를 구해주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39

오늘날에도 수많은 인도인들은 매년 빛의 축제인 디왈리 기간 동안 라마와 시타의 승리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 촛불을 밝힌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착한 아들 라마, 남편에게 순종하며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락슈마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불의에 대항해 싸우는 원숭이 하누만 등이 등장한다.  57


크리슈나

크리슈나는 '검은' 또는 '구름처럼 어두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59


시바

몸에는 화려한 의상 대신 호랑이 가죽을 걸치고, 목에는 해골목걸이를 걸고 다니며, 머리에는 늘 치명적인 독을 지닌 코브라를 두르고 화장터에서 일하는 천민들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신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모든 신들이 힘을 합쳐도 그를 당해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신이다.  71

시바는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가운데 인도인들의 사랑과 경배를 가장 많이 받는 신 가운데 하나이다.  73


가네샤

그는 '장애물의 제거자'이다. 그래서 인도인들이 크거나 작은 문제 또는 어려움이 있을 때 그에게 의지한다.

무엇보다 가네샤는 지혜의 신이다.  90


두르가

인도에서는 9월에서 10월 사이에 '두르가 푸자'축제가 열린다. 벵골, 비하르, 오리사 등에서 나흘간 열리는 이 축제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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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쓰면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체가 표현했던 것처럼 나는 인도 여행기를 쓰면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며,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고, 예전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


엄마는 인도에 꼴까따만 있는게 아니라면서 방학만 되면 배낭 하나만 걸치고 인도의 곳곳으로 나는 데리고 떠났다. 가까이는 타고르의 고향이자 이상향으로 삼았던 산티니케탄으로, 멀리는불교의 성지인 부다가야로, 차로 유면항 다르질링으로, 인도인들이 마지막 귀의처로 여기는 바라나시로, 인도의 수도인 델리로,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멋진 곳이지만 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스리나가르 주의 카슈미르로 돌아다녔다.


막막히 기다리다보면 시간은 어느새 형체를 잃고 내 몸 속에 천천히 고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표현에 공감한다. '형이상학적 관념의 비약을 꾀하기 전에, 창문을 열어젖히고 아침의 인도와 마주하는 것이 좋았다. 아열대의 공기, 이상한 새들, 꽃과 차의 향기, 신전의 인상적인 지붕들, 사리를 휘감고 광활한 들판 너머로 신기루처럼 사라져가던 여인들, 그러한 것이 나는 좋았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바울은 '바람처럼 떠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왜 그렇게 옛날 언어를 힘들게 배우느냐고 나는 속없이 물어보았다. 마그다 이모(폴란드인)는 웃으면서 '쓸모'가 별로 없기 때문에 배운다는 말을 했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배운다니. 마그다 이모는 세상이 너무 쓸모 위주로만 흘러가고, 쓸모가 있는 것만 중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고 했다. 쓸모없는 공부를 하는게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모른다고도 했다. 세상에는 별 쓸모없는 공부일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쓸모없는 공부를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도 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넓고, 그 넓고도 넓은 세상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없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물리적인 시간의 개념을 아예 마음속에서 내려놓거나 미리 포기하는게 좋다.


부다가야는 북동부에 위치한 비하르 주의 한 마을답게 조용했다. 비하르 주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말로 깨달음을 보디(Bodhi)라고 한다. 보디를 한자로 보리라고 음사해서 쓰게 되었는데, 깨달음을 얻은 나무여서 보리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러 각도에서 타지마할을 찍으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타지마할의 대리석은 각도에 따라, 시기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달빛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은 정말로 고혹적이라고 했다.


높은 곳에서 보니 시재 집들 지붕이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래서 자이뿌르를 핑크시티라고 하나보다.


조드뿌르, 이곳은 블루 시티라고 한다.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잠무 카슈미르 주의 주도인 스리나가르는 아시아의 알프스로 소문난 아름다운 곳이지만, 지리적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 암살과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위험지대라는 사실이 조금은 두려웠다.


사리는 보통 폭이 1미터 정도 되고, 길이는 지방과 개성에 따라 다 다르다. 하지만 보통 5~6미터 되는 길이인데 길면 12미터를 넘기도 한다.

바느질 한 번 되어 있지 않은 한 장의 천으로 몸을 가리고 맵시를 내는 매우 실용적인 옷이 사리이다.


사리의 끝을 앞에서 뒤로 넘기는 것은 남쪽 사람들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뒤에서 앞으로 넘기는 방법은 북부 지방의 방식으로 유명하다.




난은 밀가루에 물과 소금만 넣고 평평한 세모 모양으로 빚어 탄두리라는 화덕에 구워 만든 빵이다.


필라프라는 볶음밥도 인기가 많은 음식 중에 하나다.

 

커리라고 하거나 까리라고 해야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린다.


맛살라라는 양념은 인도인들이 죽고 못 사는 음식 재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치 없이는 못 사는 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맛살라 없이는 못 살 정도.


달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부드럽게 삶은 코에 맛살라는 넣은 음식이다.


인도식 치즈인 빠니르


간식 중에 하나는 만두피 같은 것에 야채나 고기, 치즈등을 듬뿍 얹어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인도식 만두 사모사가 있다.


짜이는 찻잎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끓인 음료다.


라시 라는 음료가 잇는데 요구르트에 설탕과 물을 넣어 걸죽하게 만든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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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인도야?"

나 역시도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덜졌지만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인도로 떠나는 데 그럴싸한 이유는 없었다.

'손에서 나비가 나오는 수도승이 살고 있고, 전생을 볼 수도 있고, 코끼리도 탈 수 있는 나라.' 내가 읽어온 책에서 묘사된 인도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나라였고, 그 축제의 무대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자소였다.

유치하리만치 1차원적이었지만, 난 그렇게 인도로 향했다.


인도와의 첫 만남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코를 찌르다 못해 머리까지 띵한 악취, 숨쉬기조차 버거운 더위와 습도에 벌써부터 내 몸은 인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information 

뭄바이는 인구 1400만 명에 인도 100대 기업 가운데 52개의 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동시에 이곳에는 아시아 최악의 슬럼가가 공존하고 있다. 인구의 60% 이상이 집 없이 거리를 떠돈다.



그들의 눈빛은 그저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듯 고요했다. 억지로 잡으려 하지도 않고 억지로 거스르려고 하지도 않는 듯했다.  


고아의 석양이 그렇게 멋지다던데


인도에서는 전기를 아껴 쓰는 탓에 해가 떨어지면 이내 암흑천지로 변한다.  


인도에서 혼자 밤거리를 걷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지.


인도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여행할 수 있는 호락호락한 나라는 아니었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거친 파도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멋지게 타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나는 인도를 위해 나의 처녀성을 바쳤다. 얼마나 많은 준비와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한국을 떠나왔는데... 그런데 돌아온 것은 아름다움이나 감동은 커녕 끝없는 슬픔과 배신감. 그리고 거센 파도가 주는 아픔이었다.  


신은 내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까지 그 답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상처에 바를 약도 필요하고, 먹을 음식도 필요하고, 잠자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의 손길과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고, 희망이고, 절망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잔뜩 늘여와 봤자 어차피 그것은 가진 자만 말할 수 있는 오만이었고,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도,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인도를 갈 때마다 잠깐이라도 그 학교에 들러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손잡아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언제나 불행과 행복은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힌두교는 인도인 모두를 위한 종교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기득권만을 위한 종교이다. 


인도에서는 쉽게 감성적으로 변하고 쉽게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경험상 그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도의 약탈자들이었다.  


우다이푸르 - 인도인들은 이 도시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아름다운 도시'라며 매번 허풍을 떨어댔다.

인공호수 피촐라 호수에는 아침마다 꿈에서나 봄직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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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이지만 무엇보다 살의 기록이기도 하다.

과거의 삶을 진정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은 자신의 삶을 신기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사람을 만나는데 있다. 역사를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문화를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5



델리는, 그 지리적인 중요성으로 중세 인도의 5왕조(노예왕조 1206~90, 할지왕조 1290~1320, 투글루크왕조 1320

~1413, 사이이드왕조 1414~51, 로디왕조 1451~1526)의 주요 거점이었다.

1526ㄴ녀 무굴제국의 창건자인 바부르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도 델리의 영화는 계속되었다. 

황금의 삼각형이라고 불리는 델리-아그라-자이푸르의 화려한 건축과 미술은 거의가 무굴제국 시대의 산물이다.  11


바부르는 아그라로 진주해 아람박이라는 정원을 만들었다.  13


초대 황제 바부르는 정원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아들인 2대 황제인 후마윤은 당시의 문화선진국이었던 페르시아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무굴-사라세닉 건축의 기반을 만들었다.  15-16


아우랑제브 황제가 죽은 뒤 궁정문화의 중심은, 델리에서 러크나우와 하이데라바드의 궁정으로 서서히 옮겨가게 되면서 델리는 잠시 그 영화를 잃는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말한 것은 라캉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 시선에 부합하려 할 때 생긴다.  27


"스승이시여, 어찌하여 이곳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시옵니까?"

석가모니는 "여래가 태어난 곳은 북쪽의 룸비니이고, 깨달음을 얻은 곳은 동쪽의 보드가야니라. 최초의 설법지는 서쪽의 사르나트이다. 이 세곳의 중간에 쿠쉬나가르가 있다...."  57


증오에는 이유나 반항이 없었다.

그것은 앞뒤가 꽉 막힌 고무 호스안에서 점점 압력이 높아지는 물줄기와도 같았다.


'학대당하고, 맞고, 우는 아이가 이 지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어른들의 이유 때문에 학대당해야 하는 아이가 이 지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난 절대로 신을 인정할 수 없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187


인도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이해하기 힘든 일을 많이 본다. 다 이해할수도 없고 이해 목할 일도 아니기에, 그냥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2


20세기의 대표적인 종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신비주의를 낮은 형태의 신비주의와 높은 형태의 신비주의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낮은 형태의 신비주의란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힘을 통해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키는데요. 우리가 신비주의를 떠올릴 때 곧 바로 '비의적'이거나 '마술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 반면 높은 형태의 신비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진리에 대한 순수직관, 다시말하면 자기 자신을 절대자 혹은 그러한 섭리와 흐름에 온전히 내맡겨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상태라지요. 가장 깊이 잇는 자기의 존재를 완전히 구현한 상태 말이지요. 그래서 인도 종교의 기배적인 특징은 해탈의 투구에 있고 인도인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을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꿈꾼하도 합니다.

비단 인도뿐만 아니라 유럽의 신비주의 그리고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 혹은 민중신앙에서 말하는 신비주의는 신과의 몰아적인 친교를 통해 그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관계있다지요.  212-213


최근의 젊은 시인들 중에는 희곡을 써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 역시 미지의 참험가들처럼 시 자체가 아니라 시적인 어떤 기미를 찾아 경계를 넘나드는 멀고도 긴 여행길에 나선 거겠지요.

수백 개의 언어가 동시에 사용되는 인도는 하나의 국가가 아닌 큰 대륙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극과 극을 오가는 모순 된 세계가 마구 섞여 있는 땅이기도 하지요.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자이나교의 교리 한편에 종교 갈등으로 인간 폭력이 만연하고 있고, "세계가 한 가족"이라는 <베다>의 구절과는 상관없이 사우너에 드나들 자유마저 제한된 최하틍계급인 불가촉천민이 버젓이 존재하며 그러면서도 세계 최대의 의회 민주국가로 손꼽는 곳이 인도입니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궁색한 가난의 때를 벗지 못했지만, 국가 자체로 보자면 이미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고 핵실험에도 성공했으며 IT산업 최강국으로 초국가주의적인 정보망을 가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 혼재의 땅에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과 힌두교의 대중 신앙운동인 박티 사상이, 마더 테레사의 캘커타 거리와 달라이라마의 다름살라 망명정가 함께 공존하고 나란히 숨을 쉬고 있습니다.  237-238


암베르 카르는 독립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으로 불가촉천민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초안을 작성하였다. 힌두 민족주의와 카스트 제도 안에서 불가촉천민을 바라봤던 간디와 그 자신이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마르크시즘에 기대고 있던 암베드 카르는 인도 독립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인도 밖에서는 간디가 더 유명하지만, 인도에서는 암베드 카르에 대한 외경심이 강해 오히려 간디보다 더 많은 동상이 있다고 한다.  245


박티 요가는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고 오직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274



여행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얘기하는 것, 그들의 모습을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모습을 그들이 바라보는 것. 그러면서 그곳의 풍경들과 삶들과 내가 대화하는 것이리라.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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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신화의 시대는 갔다고 말하낟. 한없이 복잡다단해지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주의 근원이니 신이니 하는 알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갈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8


이슬람교는 신자도 (인도)전체 인구의 12% 이상(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인도 인구가 12억이니 1억 4천이 넘는 것이다)이며, 타지마할이나 쿠트브미나르, 자마 마스지드 등 대단한 건축 유산을 남기고 있다. 남인도의 고아 지방 같은 경우는 기독교의 세력이 만만찮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기독교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 자이나교의 유산도 인도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인도에 뿌리를 내린 모든 종교는 브라흐만교(바라문교)와 힌두교의 신화를 껴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10-11


자이푸르의 현대식 힌두교 사원인 락슈미 나라야나 사원 벽면에는 예수와 프란체스코, 공자의 상이 있다. 


인도 신화는 크게 베다 신화(브라흐만교 신화)와 힌두교 신화로 나뉠 수 있다. 인도 종교의 역사를 거칠게 나눠보면, 기원전 15~5세기는 브라흐만교, 기원전 6~5세기부터 기원후 8~9세기는 불교, 6~7세기 이후는 남인도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온 브라흐만교를 계슬 발전시킨 힌두교가 점차 불교를 완벽하게 흡수하였고, 12세기 이후는 이슬람교가 승하였다. 인도신화는 브라흐만교 시대와 힌두교 시대에 형성된 것을 말한다.  11


고대 인도인들은 자연과 싸우려 하지 않고 자연을 신으로 모셨다.

베다의 신화는 바로 자연물과 자연현상을 신격화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신화를 창조한 이들은 시인들, 곧 리쉬(Rsi)들이었다.  31


인도인은 착하고 고운 신보다는 힘 있는 신을 좋아한다.  41


인드라는 갈색이나 황금색 피부에, 네 개의 팔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두 손에는 창을, 한 손에는 바즈라(번개, 금강저)를, 그리고 나머지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잇으므로 우주의 모든 일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인드라와 나중에 나오는 천 개의 팔을 가진 라바나가 합치면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이 됨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44


인간에게 불을 준 신이나, 불을 주관하는 신을 섬기는 경우는 있지만, 불 자체가 신이 된다는 상상력은 오직 인도에서만 가능했던 것 같다. 자연 자체를 신성화했던 인도인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집안을 밝고 훈훈하게 해주는 불을 성스러운 존재로 여긴 것은 당연했다.  54-55


인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화장한다. 화장함으로써 자신이 신의 세계에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화장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장작을 충분히 사서 화장하는 것이다. 지금도 바라나시의 마니카르니카 가트에는 수많은 시체가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신에게로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고 있다.  62


오늘날 인도에는 베다의 자연신들이 없다.

베다 신화가 유목민인 아리아 족의 신화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아 족 이전에 인도에는 주로 드라비다 족이 살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헨조다로와 하랍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더스 문명이 곧 드라비다 족이 구축한 세계이다. 청동기를 쓰는 드라비다 족은 철기를 쓰는 유목민족 아리아인에게 정복당했고, 결국 인도의 주류신화를 아리아 신화가 되었다.  122-123


유목민인 아리아인이 구축한 베다 신화는 그러다보니 현세적인 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무서운 신들을 달랠 수 있는 것이 제사라고 믿었기 때문에 브라흐만교의 제사와 의식은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했다. 

브라흐마나 계급의 부패를 틈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왕조의 모습이 윤곽을 잡아나갔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다양한 물자를 제공할 상인 계급도 강력하게 부상한다.

브라흐마니즘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124-125


답이 사라진 인도 땅에 새로운 깨달음을 구하러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그들을 슈라만이라고 불렀다. 

돋보이는 인물이 두 사람 있었으니, 한 살마은 고타마 싯다르타요. 다른 한 사람은 마하비라였다.  125


마하비라는 극단적이고 철저한 고행을 통해 과거의 업을 제거하는 것이 또다른 업의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그럴 수 있을 때 해탈에 이른다고 말한다. 

집착을 거부함으로써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입장과는 달리, 이 우주에는 생명체의 수만큼이나 많은 자아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있는 곳에는 카르마(Karma, 業)가 존재하므로, 그 카르마를 고행을 통해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해탈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불교와 자이나교의 중요한 특징이자 공통점은 베다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정통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철학이요. 비정통은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는 철학이다.  126-127


기원전 6세기경부터 정통파 내에서도 브라흐마니즘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생겨서 자체적으로 정화해 나갔다. 중세 기독교가 부패하자 종교개혁이 일어났듯이, 브라흐만교의 근본적인 반성을 부르짖는 젊은 브라흐마니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경전이 바로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에 오면 베다 시대의 수많은 자연신은 하나로 모인다.  127


우파니샤드에서 브라흐만과 함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아트만(Atman)'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체 속에 현존하는 신성이 곧 아트만(참자아)이다. 

한자성어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하나다'라는 뜻이다.  128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브라흐마니즘이 철학화함을 알 수 있으며, 이로부터 브라흐마니즘이 발전한 힌두교에 이르면 비로소 다신교라기보다는 '유일신교'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철학화하면 브라흐만이라는 근본적인 '신성'을 믿는다는 것이 민중에게는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그 신성은 다시 신격화 또는 인격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가 탄생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인도 땅에서 만나는 수많은 신전은 대부분 이 세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비슈누와 시바는 인도의 도처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요가를 하는 자세로 우리를 맞이한다. 인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인도를 신의 땅이라 하는 것이다.  129-130


힌두교도는 삶의 세 가지 중요한 목표를 설정하여 일생을 매진한다. 

첫째는 아르타(Artha), 아르타는 '유일'이란 뜻으로 정치나 전쟁. 가정과 국가의 번영을 의미한다. 인도인은 일생에서 이 아르타를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둘째는 카마(Kama), 즉 에로스, 사랑을 추구한다. 사랑은 후손을 낳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삶의 윤활유가 된다. 그러기에 인도의 사원에는 성행위를 형상화한 미투나(Mithuna, 성행위를 묘사한 인도의 조각이나 회화)가 노골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셋쩨는 목샤(Moksa), 즉 해탈(解脫)을 추구한다. 윤회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의 경지에 진입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를 향해 인도인은 다르마(Darma, 法)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낟. 다르마는 두 가지 차원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이 그것인데, 개인적인 차원은 아슈라마(Asrama)이론, 즉 인생의 단계설로 정리되고, 사회적인 차원은 바르나(Varna), 즉 카스트 이론으로 정리된다.

아슈라마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네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첫째가 범행기(梵行期, Brahmacarya)인데, 심신이 훈련과 단련의 시기이다. 어린 시절 배움의 시기를 생각하면 되겠다. 

둘째 단계는 가주기(家住期, Garhastya)이다. 이 시기는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시기로,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을 출가시킬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셋째 단계는 임서기(林棲期, Vanaprasthya)이다. 이때부터는 영적인 훈련을 하는 시기로 고행과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는 시기이다. 

마지막 단계는 유행기(流行期, Samnyasa)로서, 삶을 정리하면서 해탈의 길을 걷는 시기이다.

이렇게 보면 힌두교는 불교나 자이나교에 비해 현세 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해탈을 지향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장년기까지는 지극히 현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나 자니아교 등 비교적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는 종교가 인도인의 의식을 끝내 붙잡지 못했던 이유는 아닐까?  129-132



브라흐마의 역할은 창조의 임무를 다하는 순간 실질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의 지위는 시비나 비슈누에 비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 여행 중 만나는 주요 신은 주로 시바와 비슈누를 비롯하여 그들과 관계 있는 신이다.  141-142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브라흐마를 주신으로 모신 사우너은 푸쉬카르의 브라흐마 사원 하나밖에는 없다.  162


인도의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의 말대로 "세계는 자기 파괴에 의해서 자기를 완성시킨다"는 것이 인도인. 그리고 인도신화의 세계관이다.  165


아무리 힘센 신일지라도 힌두교에서는 고행을 하지 않으면 그의 힘은 보잘것 없어진다.  259


아부 산에서는 마운트 아부 투어를 할 필요가 있다. 버스는 아부 산의 중요한 볼거리를 대부분 보여준다. 브라흐마 쿠마리 대학, 아다르 데비 템플, 구루 쉬카르 템플, 아차르가르 템플, 그리고 이름난 자이나교 사원인 딜와라 템플 등을 돈다.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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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너무 힘겨울 때면 니감보드 가트 화장터로 가서 죽은 자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고, 그의 가족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위스키를 두어 잔 털어넣는다. 델리에선 죽으모가 술이 인생을 살 만하게 해준다. - 쿠시완트 싱


오늘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왜 나는 거리의 친구들과 먼저 우정을 나누게 되는가.

그렇다 인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이끌고 아무데서나 노숙하는 걸인과 그들이 갈겨 놓은 배설물에 먼저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더러운 손을 기꺼이 잡아 주고 입맞출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가난까지도 포용하는 넉넉함이 필요한 것이다.  29


여기에선 아무도 걸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관리에겐 관리의 생활이 있고, 경찰에겐 걸인의 생활이 있다. 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타인의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수긍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34


다질링의 한 게스트 하우스의 노트에는 '여행이란 정말로 깊은 병이지.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벌써 다시 나올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인도 전역을 돌아볼 마음이라면 남인도의 마하발리푸람이란 곳을 권하고 싶다... 라자스탄 주의 명물 우다이푸르는 만약 혼자라면 가지 않는 게 좋아. 로맨틱이라는 칼에 찔려 영원히 숨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61


떠나야 했다. 길을 나선 여행자들에게 특정한 지역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얼마나 불경스럽고 위험 천만한 일인가. 그것은 그 동안 많은 여인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열병에 걸렸다가 빠져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이치이기도 했다.  66


인도인들의 '예'와 '아니오'는 몸짓만 보고는 잘 구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예'를 뜻할 때 고개를 옆으로 살짝 흔드는데,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그것을 '아니오'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순간의 표정과 '아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대체로 큰 어려움은 없다.  80


샨티 샨티 - 산스크리트어로 '온 우주와 그대에게 평화가 깃들이기를!'  90


어떤 의미에서 여행자들은 모두 바람둥이다. 그들은 특정한 장소에 안주하지 못하고 쉽게 실증내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머물던 장소로부터 계속 떠나는 거지. 한 여자에게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못하고 떠나는것과 여행자들의 심리가 유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건 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91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길을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100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바라나시엔 이들을 노리는 폭력 조직이 생겨났고 간혹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106


청년은 설명을 했다. 화장이 끝나려면 세 시간이 걸리며, 드문 일이지만 장작 값이 모자라는 가난한 사람은 중간에 강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코브라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화장하지 않는다. 코브라는 신성한 동물이어서 이미 신의 축복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두나 깨달은 사람도 화장을 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산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돌에 매달아 갠지스게 그녕 수장시킨다. 그래서 강엔 아이나 태우다 만 시체가 간혹 떠다니기도 한다.  109-110


바라나시는 여행자들의 섣부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해석이 아니라 겸손하게 수용하는 것만이 여행자들의 몫인 것이다.  116


불현듯 부다가야에 이어 다시 회의가 일었다. 인도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회의였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갈기를 세우고 미친 시간들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이고, 여기는 또 어디인가.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148


인도를 암울하게 만드는 슬픔의 근원은 3천년 전, 아리아인들이 만든 카스트에서 기인한다. 종교 의례를 담당하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 정치와 군사를 담당하는 왕족 및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상공업 활동에 종사하는 평민인 바이샤, 그 밑의 노예 계급에 속하는 수드라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접촉불가 천민으로 분류되는 하리잔이라는 불가촉천민.  180


힌두교도들의 신앙심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들은 현세보다는 내세의 삶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200

평생 동안, 단 한 번 이라도 방문할 수 있다면 힌두교인들에겐 최고의 기쁨이 되는 리시케시, 고단한 인연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죽기 위해 찾아가는 도시가 바라나시라면, 이곳 리시케시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 깨닫기 위해 방랑하는 성자인 사두들의 고향이었다.  202


여행은 때로 위험을 동반하는 모험이었다. 모험이 수반되지 않은 여행이란 사막처럼 지루하고 건조해서 별다른 감동도 없을 것이었다.  259


요이치와의 재담은 언제나 즐거웠다.. 내 별명을 가르쳐 줄까? 쓸모 없는 인간, 그것이 내 별명이다. 미국 친구가 공부하는 것 외엔 아무런 실용성이 없는 사람이라며 붙여 주었다. 나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든다. 그럴듯하지 않니?  261


요즘 젊은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돈보다 정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264


길을 나선 나그네에겐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게 상책이었다.  267


길을 끌어당기지 말고 다만 너의 길을 가라. 그러면 길이 네게로 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물을 의식 속으로 끌어들이지 말고 그 품에 안겨라. 그것이 진정한 나그네의 길이다.  309


호텔이나 열차도 고급일수록 먼저 만원이 됩니다. 그것은 외국인들 때문이 아닙니다. 빈곤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은 자리에 앉는 것도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고매한 인격을 지닌 기득권층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도의 물가는 싸도 싼 것이 아니며 비싸도 비싼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기준을 두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여행자들의 소비 패턴도 다양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333-334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해서 집중이 어려운 시대이다. 그래서 정적인 명상으로는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다. 참선은 유럽인들에게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오쇼가 현대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명상법을 개발한 것이다.  421


문명은 신과 사제들에 의해 움직여 왔다. 그러나 사제는 신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도덕이나 하나님을 구실로 민중을 지배하는 정치가들의 역할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내면은 도덕에 지배당하기 쉽다. 사제는 그들보다 더 교활하다.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을 구실로 죄책감을 느끼게 한 다음 정신적 노예로 길들이는 것이다.  427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되면 정치나 사제, 종교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 해결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질병을 앓거나 열등감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428

당신이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행위도 명상이 될 수 있다. 그 참맛을 알면 모든 게 명상이 될 수 있다. 삶 자체가 명상이다.  429


사람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을 동반한 여행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519


길에서 태어나 길을 가다가 길에서 죽는 게 인생인 바에야 어느 길에서 고꾸라지든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가 본들 거기도 또한 길이 아니던가.  521


나는 노트를 펴들고 남인도를 찾을 경우 다시 들러야 할 곳으로 고아와 함피에 이어 귈론을 적어 넣었다.  522


정말로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닷새를 꼬박 굶고도 짐을 꾸리는 내 가슴은 신천지 첸나이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 길에 미친 나그네여. 무엇이 이토록 아픈 몸을 이끌고 그대를 길 떠나게 하는가.  557


짐은 자유로운 삶의 훼방꾼일 뿐이다.  599

우정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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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여행관련 책을 읽은것도 오랜만이고, 이 책을 다시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책이 출간된 해에 읽었고, 다시 읽게 되었다.
우연하게 이 책이 소장되는 일이 생겨서 다시금 읽었다.
여행 무지 좋아한다.
저자처럼 배낭여행을 좋아한다. 워킹은 하지 못했지만 배낭여행으로 1년을 다니기도 하였다.
다녀본 나라를 세어보니 17개국 정도가 된다. 여러번 갔던 나라도 있었다.
그렇기에 여행관련 도서를 보면 재미보다, 지난추억보다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간만에 밤잠을 설칠것 같다.

여행이 주는것은 좋은 경치 좋은 사람들 새로운 문화와 음식 추억들을 주지만, 그것들 보다 더 큰것은 여행은 나에게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주었다.  
그래서 여행은 중독된다.
지금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중독자들이 그렇듯이 힘이 없고 마음이 안잡힌다.
불쑥 땡처리라도 뒤져서 짧게나마 다녀 오게 된다.
그럴때면 또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 아쉬움..
그 아쉬움은 유유자적하게 그들에게 흡수되지 못하는 아쉬움에 더 긴 여행을 꿈꾸게 된다.
여행은 일단 질러야 한다.
저자처럼 무모하리만치 질러보지 않으면 처음가는 사람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해보지 않은것에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일단 해보면 두려워할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여행도 그렇다.

떠나지 전에는 가지말아야 할, 가면 안될 이유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며, 그렇게 되면 압도되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자도 표현하였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여행이 결코 걱정하는 만큼, 걱정해주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만큼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위중인 시위대 옆에서 구경을 하였던 그 시간에도 나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고, 새로운 구경거리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시위는 대치하다가 부딪히기도 하였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여행이 결코 위험이 없는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필요로 한다.
또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정보가 있는만큼 여행은 더 즐겁고 알차고 비용절감을 시켜 준다.
또한 막연한 두려움도 막아준다.
이글을 쓰는 지금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 계속 눈이 간다.....


일단 가 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 경험상 보건대 무모함의 결실은 대개 달콤했다.  15

심장이 고동친다.  22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제대로 공부하고 떠나면 그만큼 시야가 넓어져 얻고 돌아오는 게 많다.  76

여행은 빈손으로 떠나도 돌아올 때는 항상 큰 보물을 얻어 온다.  78

눈에 보이는 표면적 사실만이 강력한 진실이 되고 마는 현대 문명권 사람들에게 갠지스 강은 타지마할처럼 심미안을 만족시켜 주진 않는다.... 여행에 있어 눈을 여는 것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88

인도를 일주일 다녀오면 블로그 하나를 만들고 한달을 다녀오면 책 한 권을 쓰지만, 1년을 다녀오면 인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인도는 그만큼 다양함이 존재하는 곳이다. 깊이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매력적인 땅.  119

여행 안내서에 안 나와 있으면 어떤가, 길을 좀 잃으면 또 어떤가. 다시는 못 올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하지 않을까?  153

여행을 떠나면 매일 매일의 일상이 새로움의 연속이다.  158

잘 못 자고 잘 못 먹어도 상관없다. 하루 종일 걷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꼭 하고 싶은 것, 하지 않으면 후회로 남을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163

여행은 만남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여행하지만 서로 다른 추억을 만든다. 각 사람들의 추억은 '뜻밖의 인연'으로 다르게 적히는 것이다.  219

길 떠날 채비 중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색안경을 벗으면 여행은 새로운 발견연속이다.  279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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