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이 힘겹게 겨우겨우 흘러갔다. 저녁이면 먼 섬들 사이로 저무는 햇살에 갯고랑 물비늘이 반짝였고, 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소멸하는 날들은 기진맥진했다.  31


육군이 수로를 따라 내려올 리는 없겠지만, 내려오지 않을 리도 또한 없었다. 길은 항상 임자가 따로 없는 것이어서, 영산간은 내륙의 적을 겨누는 나의 물길일 수도 있었다.  34


적의 살기가 제풀에 흩어질 때 나는 함대를 집중했다. 적이 항로를 오인해서 길 물목으로 들어설 때 나는 집중했다. 함대를 몰아적을 물목 안으로 깊숙이 밀어넣었다. 좁은 물목 안에서 적의 종심은 길어졌다. 거북선 한 척이 그 종심을 깊이 찔렀다. 돌격장이 거북선을 지휘했다. 거북선은 적의 종심을 따라 깊이 찔러 들어가면서 양쪽의 적의 대열을 좌충우돌로 휘저었다. 적의 대열은 흐느적거렸고 지휘 체계는 작동되지 않았다. 나는 집중된 선두로 돌아선 적의 후미부터 잡아나갔다. 서너 척의 화력을 적의 한 척에 온전히 집중시켜 가며 한 척씩 잡아나갔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58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 함대가 이동할 때, 적을 겨누는 나의 조준선은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59


나는 임진년 5월 4일 새벽에 여수 전라 좌수영에서 판옥전선 24척으로 발진했다. 협선 15척과 어선 46척이 뒤따랐다. 기나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나는 해전 경험이 없었다. 장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이 들어온 포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적을 찾아서 동진했다. 나는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다만 적이 깊숙이 다가왔으므로 나아갔다. 함대는 해안과 섬 사이의 협애 수로를 따라 항진했다.  62-63


병들고 다친 자들은 귀향시키고 나머지는 우수영으로 보내 협선의 격군들로 배치했다. 검불처럼 앙상한 노인들이었다. 나의 노와 적의 노를 번갈아가며 저어야 하는 백성을 생각하면서, 나는 머리의 비듬을 긁었다. 나는 찬 청정수를 마시고 싶었다. 조선인 포로 1천여 명은 적의 순천 요새에 전진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적에게 둘러싸였고 백성들에게 둘러싸였다. 바다에는 지나간 것드르이 흔적이 없었다. 붙잡힌 백성들을 앞세우고, 적은 또 다가오고 있었다.  91


도요토미는 죽기 전에 조선 철병을 명했고, 그의 철수 명령은 이미 조선에 파병된 적의 장수들에게 전달되었다.  148

그가 조선에 출병한 깊은 뜻은 천하를 가지런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149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득 고요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190-191



칼에 새긴 길 -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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