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근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관습들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는다.  21


몇 세기 동안 절대다수에게 지켜져 내려오는 신념을 굳게 신봉하는 사람들이더라도 어떤 일에 틀릴 수 있다는 가르침. 사람들이 틀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동성의 특성을 꼬집기 위해서 소클테스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사는 것을, 도자기를 굽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에 비유햇다. 직관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도자기나 구두는 상상조차 할 수없다. 하물며 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더욱 복잡한 일을 어떻게 근거나 목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31


소크라테스는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검증하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플라톤의 초기와 중기의 대화편에서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투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투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 부유하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에 꿋꿋하게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 있다.

4. 최초의 진술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 용기 있는 행동은 전투에서의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또다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리는,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잇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존재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그 주장에 담긴 오류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무엇을 빗대어 말햇든지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더 우월하다.  35-37


소크라테스에게 직관에서 나온 진실은 버팀대도 없이 옥외 대좌(臺座)에 놓인 조각상과 같았다. 그 조각상은 강한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론에 대한 자각과 이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진실은 쇠줄로 땅에 고정된 조각상과 같았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방법 한 가지를 약속했는데, 그런 여론이라면 우리는 비록 폭풍우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끄떡없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38-39





소크라테스는인간 존재란 살다보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도 있기 때문에 간혹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진실과 인기가 없는 것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 더 덧붙였다. 곧,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오류라고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기가 없는 현상 그 자체에 관심의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인기를 잃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44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혹평을 할까?

우리는 비평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45


진정한 체면은 다수의 의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논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48


비록 그 문제가 수사학 선생이나 막강한 장군, 혹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테살리아 출신 귀족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49


소크라테스 :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비난, 그리고 의견에 마구잡이로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아니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의견에만 관심을 가지겠는가?

크리톤 :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존중한 필요 없이 단지 몇 명의 의견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훌륭한 의견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이야말로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으 ㄹ갖춘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민중이 우리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의의 문제에 대해서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겠지.' <크리톤>  50-51


특정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힘.  53


'만약 그대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면, 그대들은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오.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자면, 사실 나라는 존재는 신에 의해서 글자 그대로 이 도시에 달라붙어 있소. 아테네로 말할 것 같으면, 커다란 순종 말(馬)처럼 거대한 몸집때문에 게을러지기 쉬운데 그래서 쇠파리의 자극이 필요한 곳인 것 같소... 만약 그대들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대들은 나의 생명을 구해주겠지요. 그러나 나는 곧 그대들이 졸음에서 깨어나서 성가셔하면 아니토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격에 나를 해치우고는 계속 잠을 청하리라 생각하오.' <변명>  55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자신의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중하게 처신하다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수줍음은 간혹 교만으로, 남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은 아첨으로 오해받는다. 누구나 그런 오해를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은 바짝 타들어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의도했던 것들이 아니기가 십상이다. 가혹한 적들은 힘있는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무고한 철학자에게 불공평하게 쏟아지는 혐오에서 우리는, 정의를 실천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달리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을 확인할 수 있다.  60


우리는 편견이 사라지고 질투가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옳지 못한 명분을 품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못되었다고 비난받을 때 무조건 자신이 옳다는 식으로 어린 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거부의 정당한 명분보다는 단순히 거부하는 자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61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두 가지 강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두 가지 환상이란 바로 대중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과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2




II.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사모스라는 초록빛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300권의 책을 집필햇다. 비록 잇따른 재난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져버렸지만.

그의 철학이 단번에 두드러지게 되었던 것은 감각적 쾌락을 강조한 점 때문이었다.  71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가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그때까지 유쾌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이처럼 진솔하게 털어놓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와닿았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철학 학교를 열었다. 학교는 모두에게 입학을 허락했으며 함께 어울려 살면서 쾌락을 연구하도록 장려했다.  72


'쾌락(pleasure)'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면 쾌락을 얻는 어떤 삶의 방식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75


쾌락주의(Epicureanism)의 핵심에는, "무엇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까?"라는 질문 못지않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대답하는 데에 우리 모두가 서툴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76


'의학의 경우, 육체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면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듯이, 철학 역시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단상>

에피쿠로스의 시각에서 보면, 철학의 임무는 우리 각자가 원인 모를 우울증과 욕망의 충동을 해석하도록 도와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때에 그릇된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돌보아주는 것이었다.  78


그곳에는 으리으리한 집도 없었다. 음식도 소박했다. 에피쿠로스는 포도주보다는 물을 마셨으며, 빵과 채소와 한줌의 올리브로 꾸며진 만찬으로도 행복해했다. "마음 내킬 때마다 잔치를 베풀 수 있도록 내게 치즈 한 단지를 보내주게"라고 그는 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그렸던 한 남자의 진솔한 취향은 이러했다.  79


행복, 에피쿠로스의 구매 리스트

1. 우정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주요 교설>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세네카의<서한집>에서 인용  80

진정한 친구들은 절대로 우리를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이 ㄴ자아이다.  81


2. 자유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에피쿠로스가 친구 메노이케우스에게 설명했듯이,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82


3.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집적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83


"실제로 일어날 시점에 아무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어떤 일(죽음/역주)을 두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했다. 인간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어떤 상태를 두고 미리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살마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냉정한 분석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은 에피쿠로스의 친구들에게 "정원"밖의 무분별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 그들을 괴롭혔을지도 모를 많은 내밀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83-84


부유하다는 것이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펼쳤던 주장은,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3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욕망이 있다.' <주요 교설>  84


세가지 분류는 행복이란 몇몇 복합적인 심리적 재상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지, 물질적인 결과물과는 상대적으로 관계가 적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85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86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또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값비싼 물건을 갈망하는 순간에 그것을 사는 것이 옳은지를 자신에게 엄숙히 물어야 한다. 

'모든 욕망에는 다음과 같은 조사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갈망해마지않는 것들이 성취될 경우, 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그 욕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티칸 어록>  88


조사방법은 적어도 다섯 단계를.

1.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한 가지 세워라.

 - 휴일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별장에 살아야 한다.

2. 그 설계가 잘못일 수도 잇다고 상상해보자. 욕망의 대상과 행복을 연결하는 것에서 예외적인 것들을 찾아보라. 욕망의 대상을 소유해도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 별장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쓰고도 여전히 불행할 수 수도 있지 않을까?

 - 별장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휴일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3. 한 가지 예외라도 발견된다면, 그 욕망의 대상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 예컨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별장에서도 비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예컨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나는 텐트에 묵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4. 행복을 엮어내는 데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설계는 지금까지 나타난 예외까지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 호화 별장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다만, 그 행복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한에서, 나는 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5. 이제 진짜 필요한 혼란스러웠던 애초의 욕망과는 매우 다른 것인 것 같다.

 - 행복은 훌륭하게 장식한 별장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  89-90


값비싼 물건들이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지 못하는데도, 우리가 그런 것들에 그렇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두개골 옆면에 구멍을 뚫게 만든 편두통 환자가 저지른 것과 비슷한 오류 때문이다. 말하자면 값비싼 물건들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91


우리 인간이 그토록 쉽게 암시에 걸려드는 존재가 아니라면, 아마 광고가 그처럼 널리 유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5


'기분을 모든 선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면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쾌락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사회적 부의 축적이 행복의 증대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값비싼 재화들이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욕구들은 우리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 그런 욕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98


행복은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는 대부분 금전적인 것이 아니다.  100




III.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 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12


세네카에 따르면 분노는 열정의 통제 불가능한 촉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추론의 오류에서 나온다. 이성이 언제나 루이의 행동을 관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그도 인정했다. 만약 차가운 물 세례를 받으면 우리에게는 몸을 부르르 떠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두 눈 앞으로 손가락을 홱 움직이면 우리는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노는 육체적 반사(反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이성적인 사고를 거쳐 고수하게 된 어떤 관념들에 근거하여 터져나올 수 있다. 그렇지 깨문에 그 관념들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화를 쉽게 내는 성격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좌절에 봉착할 때, 우리가 얼마나 서투르게 반응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것을 정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단적으로 결정된다. 

가장 격한 분노는 존재의 기본 원칙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일어날 때 터져나온다.  114


우리는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불완전성과 화해해야만 한다. '심술궂은 존재들이 심술궂은 짓을 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아니면 당신의 적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에게 성가시게 굴고, 또 당신의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당신의 하인이 못된 짓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말인가?' <분노에 관하여>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117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예상치 못햇던 것에 가장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또 따라서 모든 것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운명의 여신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없으므로"), 우리는 늘 마음속에 재앙을 당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제안했다.  119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두려운 것이기는 해도 - 세네카가 과감하게 말했듯이 -  결코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악(惡)들이 실제로 자신에게 닿기 전에는 절대로 악을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장례행렬이 문 밖을 지나가도 우리는 절대로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때 이른 죽음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장례를 설계한다. 아이가 어떤 옷을 입을까, 군에서는 어떻게 처신할까,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어떻게 물려받을까 등등.'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23


우리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124


세네카의 사전 숙고

'[현명한 사람들은] 하루를 생각으로 연다...' <분노에 관하여>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운명도 도시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있다.' <도덕에 관한 서한>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고, 우리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아이를 낳게 되오.'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모든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으로 어떤 일이든 다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야 한다.' <분노에 관하여>  125


금심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경우 당사자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최선의 결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과, 최악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게 된다. 짐작컨대 근심에 빠진 사람은 당연히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문화적, 성적, 사회적 행위에서도 즐거움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130


'철학자들은 돈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누구도 지혜로운 자에게 가난의 운명을 지우지 않았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그리고 그의 실용주의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이르러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운명의 여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경멸할걸세.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보다 좋은 반쪽을 선택할걸세.' <행복한 삶에 관하여>  133


'현명한 사람은 아무것도 잃을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불변성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자족할 것이다... 만약 질병이나 전쟁으로 한쪽 손을 잃게 되거나, 사고로 한쪽 다리 혹은 두 다리를 모두 잃는다고 해도 현명한 사람은 남은 것에 자족할 것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세네카가 "자족한다"라는 표현으로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세네카의 말은 모순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한쪽 눈을 잃은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쪽 눈을 잃는다고 해도 삶은 가능할 것이다. 눈이나 손의 정상적인 숫자는 단지 만들어진 관념일 뿐이다. 그런 입장을 말해주는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난쟁이이더라도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더 크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현명한 사람은 친구 없이 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친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족적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34


무생물의 조롱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지거나 서랍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경우 우리는 종종 짜증을 내곤 한다. 연필이나 서랍과 같은 무생물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좌절로 이어지고 이러한 좌절감은 한갓 무생물이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이 추가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은 마치 주인이 애착을 가진 어떤 지식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주인에게 부여한 지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암시를 전하는 듯하다. 


생물체의 조롱

다른 사람들이 말없이 자신의 성격을 비웃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에도 앞의 경우처럼 예리한 아픔을 느낀다. 

스웨덴의 한 호텔에 도착한 직후, 나는 짐을 들어주겟다는 호텔 종업원과 함께 방으로 갔다. 그 종업원은 "당신 같은 남자에게는 짐이 버거울 것 같군요"라고 짓궂게 "남자"를 강조하며 (단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암시하면서) 싱긋 웃는다. 그 사람은 북유럽 특유의 금발이고(아마 스키 타는 사람, 아니면 엘크 사냥꾼일까. 먼 옛날이엇다면 전사였을 것 같다), 말씨는 단호하다. "무슈는 이 방을 좋아하게 될 거요"라고 그가 말한다. 또 "될 거요"라는 표현에는 명령의 냄새까지 풍긴다. 나중에 그 방이 차량의 소음으로 늘 시끄럽고 샤워 시설이 신통치 않으며 텔레비전이 고장난 것으로 확인될 때, 그 종업원의 암시들은 음모의 증거로 돌변한다.

달리 숫기가 없고 과묵한 사람이었다면, 야비하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기분에 부글부글 끓다가 급기야 소리를 지르거나 난폭한 행동은 물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것이 당연히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and)"로 연결되는 절(節)이 들어 있는 문장을 버리고 "... 하기 위하여(in order to)"로 연결되는 절이 든 문장을 취하고 싶어진다. "연필이 책상에서 떨어졌고 그리고 지금 나는 약이 올라 있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and now I am annoyed)"는 생각에서부터 "나를 골려주려고 연필이 책상에서 떨졌다(The pencil fell off the table in order to annoy me)"라는 의견으로 도약시키려는 유혹을 느낀다.  135-137


세네카는 그런 판단착오레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정신의 나약함"과 관계가 있다.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는 그들의 성향 뒤에는 자신이 조롱당할 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해코지의 표적이 되고 잇다고 의심할 때에는 누구든 혹은 무슨 일이든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게 된다.

'"그렇고 그래서 오늘 나를 만나주지 않았군.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면서 말이야." "그 자는 거만하게 퇴짜를 놓은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비웃었어."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기는 커녕 테이블 아래쪽 자리를 주었어." <불변성에 관하여>  139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는다' <도덕에 관한 서한>  140


자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과자 장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자를 팔기 위해서라고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사진에서 처럼) 로마의 한 호텔 1층에 있는 건축업자는 벽을 수리하는 척하고 있을지 모른다(1). 그러나 그의 진짜 의도는 위층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남자를 괴롭히는 것이다(2).

비열한 해석 : 건축업자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다. 

우호적인 해석 : 건축업자가 망치를 두드리고 있고 내가 그 소리에 괴로워하고 있다.  141



외부의 소음과, 그것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속의 생각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을 엉뚱한 대본에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바깥의 모든 것들이 미친 짓거리라도 좋다. 내 마음에 불안의 요소만 없다면.' <도덕에 관한 서한>  142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여행가방이 운송 도중에 분실되엇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몇 조가 지나면 체념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자의 창시자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잃엇을 때 어떻게 처신햇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보고했다. 

'제논은 배가 조난되어 그의 모든 짐이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물질에 조금 더 초연한 철학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로군."' <영혼의 평정에 관하여>  147


'겨울은 차가운 기후를 몰고온다. 그러면 우리는 몸을 떨어야 한다. 열기를 몰고 여름이 돌아오면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기후는 건강을 훼손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병에 걸려야 한다. 어쩌다가 야생 짐승을, 아니면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파괴적인 인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법이다. 이 법을 우리는 따라야 하고, 준수해야 한다... 당신이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도덕에 관한 서한>  151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Quid opus est partes deflere?  Tota flebilis vita est.'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52




IV.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통증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의지하기만 해도 된다.' <수상록>III

'가장 행복한 삶은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다.' - 소포클레스  158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된 결과,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정과 안식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상록>I  163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크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이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상록>III  164


'만약 [남녀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첫번의 실패로 그만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보다는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더 낫다....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사람은 다양하고 부담 없는 감정 분출을 통해서 전주곡처럼 몇 차례 가볍게 시험을 거쳐야 한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는 영원히 성교에 적절치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완고하게 매달려서는 결코 안 된다.' <수상록>I  169-170


몽테뉴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배제하려는 전통적인 인간의 초상을 흠잡았다. 그 자신이 직접 책을 쓰기로 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수정하려는 뜻에서였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은퇴햇을 때 그는 책을 쓰고 싶었지만, 어떤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점차로 그의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자리잡아갔는데, 그 책은 너무나 엉뚱하여 그의 서재의 반원형 서가에 꽂혀 있던 천 권 가량의 책과는 달랐다. 

몽테뉴는 자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저자로서 엄청난 수치심을 감수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 활동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묘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수상록> 서문에 그 뜻을 밝혔다.

'아직도 자연의 중요한 법칙들의 달콤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묘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그대들이게 분명히 밝힐 수 있소.' <서론>의 주  173-174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두 개의 진영으로, 말하자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눌 때 드러나는 그 오만함과 신속함이다. 우리의 경험과 믿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곧잘 무시당하곤 한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말 그래? 참이상하군!" 하고 말하면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종의 경고를 하는데, 그런 말에는 우리의 정당성과 인간성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약간 담겨 있다.  178


여행하면서 몽테뉴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관념들이 지방에 따라서 얼마나 뚜렷하게 달라지는 지를 관찰했다.


바젤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타지 않았으며 저녁식사때는 예닐곱 가지의 코스 요리를 즐겼다. 바덴에서는 매주 수요일은 생선으로만 식탁을 꾸몄다. 스위스의 가장 작은 마을이었던 바덴은 고작 2명의 경찰에 의해서 치안이 유지되었다. 독일인들은 15분마다 종을 울렸고, 심지어 1분 단위로 종을 울리는 마을도 있었다. 린다우에서는 모과로 만든 수프를 내놓았으며, 고기 접시는 수프에 앞서 나왔고, 빵은 회향(茴香)으로 만든 것이었다.  178-179


몽테뉴를 괴롭혔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나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사가 검증을 거치지 않고도 꿋꿋이 고집하는, 자신들의 난방장치가 상대의 난방장치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그 맹신이었다.

'어느 나라 할것없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야만스럽거나 충격적으로 비치는 관습이나 관행이 있게 마련이다.' <수상록>III  182-183


학살의 이면에는 추잡한 추론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분리하는 작업은 전형적으로 귀납법의 형태로 진행된다. 그 방법에 따르면 특별한 예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추론한다(논리학자들의 설명처럼, 관찰을 통해서 A1이 0이고, A2도 0이고, A3도 0이라는 결론을 얻으면, 우리는 모든 A는 0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지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만났던 지적인 사람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을 찾는다. 그래서 만약 <그림1>처럼 보엿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림2>처럼 보였던 지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리고 <그림3>처럼 보였던 또 다른 지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우리는 지적인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검정 옷을 즐겨 입고, 엄숙하게 보이는 존재들이라고 결정짓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4>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리석은 존재라고 얕보고 훗날 그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  19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무엇이든 야만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자기 나라의 관습이나 사고방식 외에는 달리 진실이나 올바른 이성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 자기 나라에서 완벽한 종교와 완벽한 정치 형태,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가장 발전되고 완벽한 방법을 찾게 된다.' <수상록>I

가치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관습들이 결점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국적과 친숙함을 선(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


프랑스에서는 코가 막히면 손수건에다 코를 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런데 몽테뉴의 한 친구는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코가 막히면 바로 손에다가 푸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면서... 그는 나에게 지저분한 콧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콧물을 받기 위해서 미리 깨끗한 리넨 손수건을 곱게 접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도 그의 말이 전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관습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관습을 보았더라면 흉측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낯설음을 깨닫지 못했다.' <수상록>I  193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수상록>II  194

우주의 진실을 논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의문스럽다고 느껴지면, 몽테뉴는 비슷한 방식으로 고대의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우주 이론들을 몽땅 모아놓고 비교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그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모든 질신을 꿰뚫고 있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에서 어이없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비교 연구햇으나, 몽테뉴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고 빈정거리듯이 고백했다.  195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 담긴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룬 중요한 인물드에게서조차 엄청난 오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I  196


'흔한 친구나 우정이라고 브르는 것들은 우연 혹은 유사함으로 연결되는 친밀한 관계나 면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들은 서로를 격려한다. 그러나 직ㅁ 내가 이야기하는 우정에서는 영혼들이 서로 한데 우울리며 녹아들기 때문에 두 영혼을 결합한 솔기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상록>I

만약 만흥ㄴ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몬테뉴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많은 것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면, 우정이 그토록 소중하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199


그의 책은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발걸기였다 그는 서점을 찾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의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개인에게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나는 대중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의 가장 은밀한 사고들을 꿰뚫고 있는 서점의 진열대를 나의 가장 충직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수상록>III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역설에 감사해야 한다. 저자들이 말을 걸 사람들을 찾지 못한 까닭에 씌어진 책들의 수를 감안하면, 서점이야말로 그런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목적지가 아닐까?  201


만약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것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할 때,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유익하고 적절한지를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수상록>II

우리로 하여금 더 낫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만이 배우고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205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어의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켰다...' <수상록>II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 <수상록>I  207


나는 어떤 일로도, 심지어 그렇게나 소중하다는 학문을 얻는 일로도 머리를 싸맬 생각은 없다. 책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만약 책을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부분을 곰곰 생각하느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결코 없다. 한두 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어떤 책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 <수상록>II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서가에 책을 1,000권이나 꽂아두고,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통달한 사람의 입장에서 장난스레 젠체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 몽테뉴 자신이 철학적 해설을 풀어놓으면서 독자들을 졸리게 만드는 그런 애매모호한 신사로 비치기를 즐겼다며느, 그것은 엉큼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게으름과 느림을 되풀이하여 선언했던 것은 지식과 훌륭한 글쓰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허물기 위한 전략적 방법이었다.

몽테뉴가 암시했듯이, 인문학 분야의 책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지루한 내용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213


어려운 책들은 예외 없이 우리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명쾌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자를 무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든지, 아니면 책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을 우둔하다고 결론 내리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몽테뉴는 우리에게 차라리 저자를 책망하는 쪽을 택하도록 부추겼다.  214


평이하게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쉽게 읽히지 않는 산문이야말로 지식의 표상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어리석은 존재로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5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서 아이디러를 얻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들을, 우리 자신들마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심리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저자들을 만나면 누구나 그드르이 글을 인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우리르 더 잘 아는 것 같다.  218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안다. "이건 키케로가 말한 거야" "이건 플라톤의 도덕률이야" "이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것들이야"라고,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면, 앵무새도 우리만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록>I  224


몽테뉴의 암시에 따르면,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서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은 학식만 높고 현명함에서는 크게 처지는 산더미만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책들에 대해서 쓴 책이 많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들을 서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모든 책들은 해설로 가득채워져 있다. 진정한 저술가가 없는 실정이다.' <수상록>III

몽테뉴는 흥미로운 지혜란 어느 인생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제아무리 소박하다 하더라도, 옛날의 그 많은 책에서보다 우리 자신에게서 더 위대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25-226


'당신은 보다 풍성한 요소를 갖춘 삶만이 아니라 당신의 평범한 개인적 삶도 도덕철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수상록>III  227




V.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염세주의자로 성장하는 쇼펜하우어.

자살이 분명한 아버지의 죽음이후, 열일곱 살 소년 쇼펜하우어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큰 재산을 물려받는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내 나이 열일곱이던 때, 학교 교육은 한번도 받지 않은 채 나는 석가모니가 젊었을 적에 병든 사람이나 노인,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랬던 것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지냈다. 진실은...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만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악마의 작품인 것 같은데, 그 악마는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생명체들을 존재하도록 했다. 나의 경험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그렇다는 믿음이 늘 나를 지배했다."  234-235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철학교수 자리를 얻으려고 시도한다. 그는 "철학개론", 즉 "이 세상과 인간 정신의 정수에 관한 이론"이라는 강의를 맡는다. 학생 다섯 명이 수업을 듣는다. 가까운 건물에서는 그의 라이벌인 헤겔리 300명의 청중에게 강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239


이 철학자는 하루를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매우 엄격하게 지낸다. 그는 아침에 세 시간 글을 쓰고, 한 시간 동안 플루트(로시니)를 연주하고, 그리고 말을 파는 시장인 로스마르크트에 있는 영국식 식당 엥리셔 호프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흰색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다. 그는 식사를 할 때면 다른 소님들이 알아보는 것을 꺼려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면 경우에 따라서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클럽인 인근의 카지노 소사이어티의 도서관을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그는 이 세상의 비참함을 가장 잘 알려준다고 느끼고 있던 신문 <더 타임스>를 읽는다. 저녁 무렵이 되면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개와 함께 마인 강변을 따라 두 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밤에는 오페라 공연장이나 극장을 방문한다.  242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할 경우에 대비한 위안이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버림받을 때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위안이 그것이다. 우리는 단 며칠 간 희망을 품은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좌절의 깊이에 낭패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262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본래부터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성격도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고, 얼굴도 못생기지 않았다.

당신은 언젠가는 (당신의 턱과 그의 턱이 생에 대한 의지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조합을 이룬다는 이유로) 당신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연스러움을 느낌으로써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살마들을 용서하는 법을 일찍이 배워야 한다.  263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인류사에 종의 번식을 위해서 애 쓰느라 다른 인간을 사랑했던 수많은 인간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273




VI.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나움부르트에 있던 홀어머니와 열아홉 살의 여동생에게 편지를 쓸 때, 니체는 자신의 식사와 학업 진도에 대한 보고 대신에 자제와 체념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요약하여 보냈다.

'삶이란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또 삶을 즐길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삶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것을 얻기를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해야 합니다.'  280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비법... 밑그림.. 매일매일 일상의 일화들을 적어두어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92


모든 삶은 다 힙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을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뇌는 정신적 공활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니체가 존경했던 몽테뉴가 <수상록> 마지막 장에서 설명했듯이, 삶의 기술은 역경에 처할 때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조화처럼, 달콤하고 거칠고, 예리하고 단조롭고, 부드럽고 떠들썩한, 다양한 음색뿐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구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수상록>III

그리고 약 300년 뒤, 니체는 그런 사상으로 회귀했다.

'우리가 만약 비옥한 들판이라면, 어떤 것이든 다 흡수하지 않고 그저 흙바닥을 통과하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어떤 사건이나 사물, 사람에서도 유익한 비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1-302


'재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그다지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서도 훌륭한 업적은 남긴 사람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그들은 부족한 자질을 일궈가면서 스스로 위대함을 획득하여 (우리가 표현하는 것처럼) "천재"가 되었다. 그들 모두 장인(匠人)의 근면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어서 감히 훌륭한 완성품을 내놓기 전에 각 부분들을 정확하게 구축하려고 애쓴다. 그들이 그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황홀한 완성품이 주는 효과보다, 보잘것없고 신통치 않은 것들을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작업 그 자체에 보다 많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05


'미움과 시기, 탐욕, 그리고 지배욕이라는 감정들은 삶의 지배적인 감정인데....이런 것들은 삶이라는 총체적인 경제에서는 기본이며 필수이다.' <선악을 넘어서>

부정적인 뿌리들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것은, 동시에 한참 뒤 그 뿌리에서 자라날 식물 줄기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질식시켜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부터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일구지 못하는 사실에 당혹해야 한다.  307


그리스인들은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피하려 하지 않고 세련되게 활용했다.

'모든 열정에는 단지 재앙으로 작용하는 단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열정은 당사자를 어리석음의 무게로 짓누른다. 그리고 조금, 아니 한참 지나면 열정들이 영혼과 결합하여 스스로를 "영성화"하는 단계가 찾아온다. 아주 옛날에는 열정의 어리석음 때문에 사람들은 열정 그 자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열정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열정과 욕망이 지닌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에서 연유하는 불쾌한 결과를 피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인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모조건 뽑아버리는 치과 의사에게 우리는 더 이상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우상의 황혼>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라고 요구했다.  310


니체 또한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행복이란 고통을 치르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314


높은 곳을 오르는 등정의 고통을 감내하기를 요구했다.  315


모든 괴로운 상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재앙이다... 나쁜 기후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비슷하게 우둔한 짓이다.

'인간의 병 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시르는 방식에서 비롯되엇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이른바 위안들이 어리석게도 실질적인 치유책으로 생각되었다. 알려지지 앟은 사실은... 고통을 곧장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일반적으로 더욱 깊이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서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328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철학


소크라테스(470-399 기원전)는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올바른 지적 인식을 통하여 진리를 실천함(지행합일知行合一)으로써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참으로 그에게 부당하게 언도된 사형을 그가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용기"라는 미덕 때문이었는데, 그 용기마저 지식, 득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에피쿠로스(342?-270 기원전)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로 오해하고 있는 쾌락을, 쾌락의 첫째 항목으로 그가 들었던 위(胃)의 쾌락마저, 양이나 희귀성에서 찾지 않고 그 자신에게 가장 맛있는 것에서 찾았다. 그의 쾌락은 욕망을 절제하고 친구들과 안온하고 겸허한 생활 속에서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지는것, 즉 "올바른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쾌락이었다.

자신이 가정교사를 했던 네로의 명령에 의해서 자진(自盡)해야 했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 기원후 65)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세네카의 이성은 세네카에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는 준엄한 도덕성과 의무의 준수를 모토로 한 스토아 학파의 대성자였으나, 그의 사생활은 안락과 부(富)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에 따른 아파테이아(apatheia : 당당하고 유연한 심경)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스토아 학파의 실천자였으며, 순명(順命)의 현자였다.

몽테뉴(1533-1592)는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한 에세이스트로서, 파스칼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랄리스트(moraliste)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의 힘이 주도하던 철학 세계에서 인간의 벌거벗은 자연의 모습, 곧 육체와 본능의 힘을 해방시켰다. 섹스의 언급을 금기시한 당대의 위선을 뛰어넘은 몽테뉴의 용기는 "국경"이라는 국민적 편견의 장벽까지 서슴없이 돌파하고 있다. 이런 사상적 궤적을 보여주는 몽테뉴 역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염세주의 철학자로서 알려진 쇼펜하우어(1788-1860)는 끝없는 욕망의 연쇄로서의 생(生)은 고통이며 그 고토으로부터의 해방은 죽음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가 인간 종(種)의 존속을 위해서 작용한다고 파악함으로써 사랑이 생을 지배하는 이유를 발견한 철학자가 되었다. 사랑의 감동에 냉담하기만 했던 철학의 역사에서 사랑으로 인한 슬픔을 치유해주는 유례없는 철학자가 되엇던 것이다.

강자의 도덕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초인"을 "힘에의 의지"의 상징으로서 구체화한 니체(1844-1900)는 행복은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을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절한 고독과 무명(無名), 나쁜 건강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니체는 우정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명성과 부와 행복을 공격하지 않았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이빨을 무조건 뽑아버리는 의사가 결코 아니었다.  330-331


행복은 올바른 인식에 의해서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고 삶을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길에서 동반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이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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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책장에 책들이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책장은 시위를 벌인다. 근래에 나오는 책장은 속은 비었을지 몰라도 일단은 보기에 두껍다. 몸통도 뼈대도 모두 두꺼워서 책을 꽂아도 든든하게 버틸것 같이 보인다. 

근데 집에 있는 책장은 다들 오래된 것들이라 몸통은 작지 않지만 뼈대가 다들 얇다. 그래도 책을 가지런히 꽂아두면 보기 좋다. 하지만 책을 가지런히만 꽂아둘 수가 없다. 윗칸과 아랫칸 사이 비는 공간에 책을 쌓아서 넣는다. 보기 좋게 색상도 좀 맞추고 꽂아 두었던 책들은 이미 무너졌다. 높이가 비슷한 것들끼리 짝을 지어서 꽂고 쌓아야 더 많이 들어간다. 

빈곳없이 쌓아넣었다. 모두 채우고 나서 보니 책장이 그리 크지 않게 여겨진다.('너 책 많다는걸 은근히 말하고 싶은거냐?'는 말이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면 그리 많지 않다. 혹 책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똑똑하거나 지혜로워진다면 빚을 내서라고 책을 쌓아 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건 누구나 알고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게다. 그러니 지금 나는 책이 많고 적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이러고 나니 시간이 갈 수록 책장이 수평이 아니라 아래로 볼록해져 가는것 같다. 책장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럼 책장을 사면 되지 않냐고? 그렇지 그러면 되는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장 사는데 드는 돈을 너무 아까워 한다. 그렇다고 돌아다니며 버린 물건 줍는 스타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책장은 누가 버린게 있으면 주워오고 싶다. 아니 실제로 주워 온것도 있다. 

물론 나름대로 기준을 두고, 기준에 맞는 책장일때만 들고 온다. 오래되든 아니든 일단 외관상에 깨끗해 보이는것으로 주워온다. 쉽게말해 중고 가구점에서 팔만해 보이는 책장일때 들고오는 거다. 그럼 누가 버리겠느냐.. 희안하게 나는 그런 책장을 주워와서 깨끗이 닦아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길을 다닐때 종종 쳐다 본다. 

부디 돈 많은 분들이 자주 버려주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현재 책장이 모자란다. 그래서 읽어야 하는 책들은 그냥 한켠에 쌓아두고 있다.

그런데 하필 그녀석들이 책상 옆쪽으로 벽에 붙어 쌓여있다. 거기에 놓을 수 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책상에 앉으면 그녀석들이 자꾸 쳐다 보면서 있다. 그리고 책상 위 책들의 반대편에는 컴퓨터가 있기도 하다. 책상에 앉으면 양쪽에서 유혹의 신호를 마구 보내는데 나는 매번 컴퓨터의 유혹에 더 잘 넘어가버린다. 컴퓨터를 끄고 책상에서 일어나면 책들이 나를 쳐다 보고있다는 사실에 뜨끔한다. 그래서 최근에 카페나 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책들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한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좀이 쑤실때쯤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책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저자의 책들을 꽤나 읽어본것 같은데 이 책은 눈에 익은 이름이긴 한데 읽은 기억이 나질 않는것도 같아서 펼쳤다. 

옮긴이의 표현에 의하면 '펭귄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의 책'이란다.

이 표현은 분명 본 기억이 있다. 시리즈로 또 내는것인가 싶어서 목차를 본다. 흠... 분명 이 내용들은 읽은 것 같다. 

저자의 책이 오래전에 나왔다 해도 나는 그리 오래전에 저자의 책을 읽지 않았기에 도서관내의 컴퓨터로 블로그에 접속해서 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나오질 않지만 다른 이름의 책이 나온다. <동물원에 가기>이다. 

클릭을 해보니 목차가 같다. 근데 출판사와 출판연도가 다르다. 아... 그랬구나! 나는 이 책을 이미 읽어보았다. 내용은 같으나 제목이 다른 당연히 출판사가 다르고 아마도 옮긴이도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저자의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기에 이렇게도 여러번 출판을 하는걸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책 중에 이 책이 아닌 다른 책도 한 권 더 본 적이 있다. 

일전에 한번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키스하기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란 제목과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정도 이다. 또 다른 책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출판사와 옮긴이 그리고 출판 연도가 다르기에 한글판의 표현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치만 나는 그 정도까지 내용을 보는 실력이 있지 않기에 똑같게만 보인다..표현 하나하나의 차이와 감정과 느낌을 알 수 있는 해안을 가져야지 알 수 있을 텐데....ㅎ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위의 동일한 저자의 다른 제목의 번역서라는 이야기인데, 왜 관련 없는 서론을 길게 뺐을까하는 의문이 나도 든다.

근데 이 책을 보게되면서 글을 올리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로 표현해 보았다. 

책을 검색해서 내용이나 감상을 보고자 하셨다면 죄송하다. 


사실 많지 않은 책장에 빼곡히 쌓아둔 책 중에 이런 책들이 몇 권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무슨 제목이든 책을 읽었다는게 중요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 번역자의 책을 읽었는냐가 중요할 수도 있고, 언제 읽었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 읽었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다빼고 그냥 없는 살림에 책장이 책들을 모두 품을 수 없는 상태의 나에게 동일한 내용의 책이 여러권있는게 어찌보면 부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슬픔이 주는 기쁨>과 <동물원에 가기>는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내용의 옮긴이와 출판사와 출판연도가 다른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밑줄이 보고 싶으신 분은 <동물원에 가기> 제목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다.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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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유명한 책이다. 저자의 책은 여러권을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6,7년쯤 전이라고 기억한다.(물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읽으면서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에게 더 많이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책은 저자의 처녀작이기도 하고 20대 중반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통찰적 부면은 가히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한국 사람에게는 더욱 크게 와 닿을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교적인 효 사상에 입각하여 교육을 받았기에 감정을 표출해내는데 매우 서툴다. 그러기에 어느새 감정의 새새함을 잊고 있는데 이 책은 그것을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는 표현들이 곳곳에서 박견될 수 밖에 없다. 
쉽게 읽히면서도 깊은 표현과 철학적인 사유가 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표지를 찾기위해 책을 검색해보니 '2010 대학 신입생 추천 도서'라고 한다.
신입생때 읽고 졸업하고 읽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지적인 성장 사유의 성장을 이루었는지 가늠해보기에도 좋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새해 첫 책으로 읽은 것은 시기에 맞게 책이 들어왔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해보기 위해서 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이전 사랑의 모습을 간직한채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수동적으로 한 걸음 뒤에서 할 수 있는것이 비교 관찰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는 관찰자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렇지 않나 생각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해 보기위해 책을 선택하였다.

다시금 저자의 내면의 감정 서술에 감탄해 가면서 더불어 나의 생각들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자 후기에서는 이 책이 95년도에 <로맨스>(한뜻출판사)라는 책으로 번역이 되었었다고 한다.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표지의 영문 제목을 보았다. <Essays in Love> 이다. 미국에서의 제목은 <On Love>라고 한다.
95년도의 번역은 미국식으로 제목을 정했다. 지금은 위의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제목이 참 우리에게 깊은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11
클로이를 만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딱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2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1905-94 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작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19
클로이의 휴가 이야기는 지루했다. 그러나 지루함은 이제 흠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일상 대화의 세속적 논리에 따라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22-23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 슬픔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냐 단순한 망상이냐? 시간[이 또한 그 나름으로 거짓말을 하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26

가장 매력을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39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잇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게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41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본능적이고, 반성하지 않으며, 자연발생적이다. 이에 반해 생각은 신중하고, 말려들지 않으려 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내가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성적 교류의 근본법칙을 어긴 것이다.  52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65
클로이가 나와 함께 자고 나에게 잘해줌으로써 오히려 그녀에 대한 내 평가 점수가 낮아졌다면, 그것은 혹시 그녀가 그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심한 전염병에 감염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68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딸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72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절대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맑은 눈으로 물의 깊이와 성질을 완전히 조사할 때까지는 도약을 유보한다. 부모 노릇, 정치, 예술, 과학, 부엌에 비치할 적당한 간식에 관하여 철저하게 의견 교환을 한 뒤에라야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현실 [우리가 알기 전에 태어나는 사랑]에서는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 유토피아가 현실과 위험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75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78

왜 나는 나의 일용할 양식을 파는 신문 판매소 주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93
신문 판매소 주인의 샌들은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서 신문과 우유를 얻고 싶을 뿐이지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내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그의 신발은 나에게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95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 [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97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 무한히 많은 사람드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맞은편 욕조에 누워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왜 우리의 욕망이 이 특정한 얼굴, 이 특정한 입이나 코나 귀를 선택했는지, 왜 이 목의 곡선이나 보조개가 우리의 완벽성의 기준에 그렇게 정확하게 응답했는지 묻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의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들의 얼굴 풍경만큼이나 독창적이고 특색있는 방식으로 매력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재규정한다.  98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119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120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나의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연인 사이에 실제로 일치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120
사랑은 내가 그녀의 몸짓, 세이프웨이에서 우리와 함께 줄을 섰던 사람들에게는 달리 해석되었을 수도 있는 몸짓에 내가 부여하기로 결정한 어떤 것일 뿐이다.  121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122
연인들은 의심하고 캐물으려는 철학적 충동에 대립되는, 믿고 신앙을 가지려는 종교적 충동에 굴복한다.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130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143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이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나비를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나는 나비에 관심이 많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144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많은 부분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로 구성된다.  169
나는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으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한시적인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73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대나 기억이라는 보호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 [천국의 개입은 논외로 하고]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헌신릉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이 비유를 사랑으로 옮긴다면,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181
사랑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무시무시한 의문이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이냐 하는 의문이다. 이것은 마치 건강과 힘이 충만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려는 것과 같다.  186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할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192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또 훠씬 덜 즐거운]질문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완전한 오만으로 기울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한 겸손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겸손한 연인은 자신이 무엇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거부당하는가?' 배반당한 연인은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서 오만하게도 절대 자신의 몫이 아닌 선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사랑을 베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이 답을 듣게 되면 질문을 했던 사람은 자만과 우울 사이에서 위험하게, 예측할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1-202
모든 삐침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209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너그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죄책감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달라고 삐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210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야. 느끼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강렬해진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220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이 비도덕적 행동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고통이나 쾌락과는 관계없이 의무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무감에만 인도되어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는 도덕적이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도덕률에 일치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행동이 도덕률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질의 결과로 이루어진 행동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칸트 이론의 핵심은 도덕성이란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동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예상되는 보답에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랑을 줄 때에만 도덕적이다.  223
나는 나에게 쾌락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에 따라서 클로이에게 어떤 도덕적 딱지를 붗일 것이냐를 결정했다. 나는 세계와 그녀가 이 세계 속에서 가지는 의무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학자였다.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뿐이다.  225-226
사랑이 없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자유라는 것이 버림받을 자유를 의미한다면 자유란 대체 무엇인가?  226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 무방비 상태에, 아무런 권리도 없이, 도덕률도 초월해서, 충격적일 정도로 어설픈 요구만 손에 든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228

고통을 겪으면서 무한히 지혜로워진 나는 물론 그녀가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녀를 용서하고, 동정하고, 그녀에게 선심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무한한 안도감을 주었다.  247
클로이가 떠나는 바람에 나는 죽을 뻔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도덕적으로 높은 자리라는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순교자였다. 
예수 콤플렉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정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자기 증오에서 생겨난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나는 나를 받아들이려는 어떤 클럽의 회원이 되지 못했다. 예수 콤플렉스 역시 나를 클럽 문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자기 사랑의 결과이며, 내가 클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내가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49
자기 혐오를 피해가려고 약점을 미덕으로 바꾸는 연금술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업삳. 나의 고통이 예술 콤플렉스로 진화환 것에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 건강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 혐오와 자기 사랑 사이의 미묘한 내적 균형에서 이제 자기 사랑이 우세한 위치에 있었다. 클로이가 나를 버린 것에 대한 나의 최초의 반응은 자기 혐오적인 것이었다. 우리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계속 클로이를 사랑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러나 예술 콤플렉스가 생기면서 그 등식이 뒤집혀, 이제 클로이가 나를 찬 것은 클로이를 경멸할 만한, 잘해야 동정할 [기독교 미덕의 모범] 만한 증거로 해석되었다. 예수 콤플렉스란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 어떤 여자보다 클로이를 사랑했는데, 이제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내가 그 견딜 수 없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엇다. 그러나 버림받아 절망적인 상태일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행복에 겨운 오르가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텔 방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정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251

헤어짐이 없었던 것 같은, 우리가 여전히 함께하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지기도 햇다.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서 오디온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가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져서 나는 클로이가 없는 현재로 거세게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길에 욕실에 클로이가 빗을 두었던 자리가 이제는 비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빗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찌르는 단검처럼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고,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253
변화의 거부는 세계가 내 영혼을 반영하지 않는단는 것, 내가 거기 살든 살지 않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살아 있든 죽었든 관계없이 움직여가는 독립된 실체임을 일깨워주었다.  255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나는 잊기 시작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몇 달 뒤, 나는 런던의 그녀가 살던 동네에 갔다가,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56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들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아니면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실수를 무한히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식사, 죽음, 돈에 지혜로워질 수 있듯이 사랑에도 지혜로워지고 싶다는 야심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  259
지혜는 사랑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사랑은 커피나 담배처럼 완전히 끊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포도주 한 잔이나 초콜릿처럼 가끔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랑은 지혜가 대표하는 모든 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일까? 현자들도 사랑 때문에 이성을 잃게 될까, 아니면 몸만 어른이지 정신을 아이인 사람들만 이성을 잃는 것일까?  260
복잡한 문제들을 파고들다보면 가끔 도달하게 되는 순진한 상식으로 나는 가끔 묻곤 했다.[마치 답을 봉투의 뒷면 정도에 다 적을 수 있는 것처럼]. "왜 우리는 그냥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262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낭만적 실증주의가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유일하게 유효한 지혜는 다시 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금욕주의적 충고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첼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사무실 생활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나는 그녀의 눈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나는 금욕주의적 철학을 내팽개치고 클로이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모조리 되풀이하는 이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270
사랑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사랑이 지혜롭지 못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금욕주의는 다른 사람과의 애정에서 생기는 위험 사막에서의 삶보다 더 큰 인내심이 있어야만 직면하게 되는 위험에 대항하는 서툰 방어였다. 금욕주의는 감정적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도사적 존재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적 요구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할 뿐이었다. 금욕주의자가 아무리 용감하다고 할지라도 최고의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 즉 사랑의 순간에는 결국 겁쟁이에 불과했다.  27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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