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에 루뱅 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어떤 지적 모험을 했다.  9


스승이 해야 할 가장 중차대한 일이란 학생들에게 자기가 가진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그들을 스승이 가진 학식의 수준만큼 차츰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잘 짜인 점진적 순서에 따라 가장 간단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정신을 이끌고 가면서 그 정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13


누구도 자신이 이해한 것 말고는 정녕 알지 못한다.  15


[옮긴이] 이 책에는 교육과 관련된 표현들이 여럿 사용된다. 주로 나오는 동사들 중 일부를 굳이 구분하자면 enseigner는 '가르치다'를, insruire는 '깨우치다'를, eduquer는 '교육하다'를, former는 '길러내다'를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동사들의 명사형인 enseignement은 '가르침 및 교육'으로, instruction은 '지도'로, education은 '교육'으로, formation은 '양성'으로 옮겼다. 그밖에 pedagogic는 '교육학이나 교수법'으로 옮겼다.  15


설명자가 가진 체계의 노닐를 뒤집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바로잡기 위해 설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 무능력이란 설명자의 세계관이 지어내는 허구이다...

교육자의 행위이기에 앞서, 설명은 교육학이 만든 신화다. 그것은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한 정신과 미숙한 정신,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똑똑한 자와 바보같은 자로 분할되어 있는 세계의 우화인 것이다.  19


교육학의 신화는 지능을 둘로 분할한다. 열등한 지능이 있고 우월한 지능이 있다. 

열등한 지능은 지각을 무작위로 등록하고, 기억해두고, 해석하고, 습관과 욕구의 좁은 고리 안에서 경험을 통해 되풀이한다. 이것이 어린아이와 보통 사람이 가진 지능이다. 

우월한 지능은 사물들을 이성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방법에 따라,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간다. 우월한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스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학생의 지적 능력에 맞추어 전달할 수 있고, 또 학생이 배운 것을 잘 이해했는지 검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명의 원리다. 

이것은 자코토가 말하는 바보 만들기(abrutissement)의 원리가 될 것이다.  20


바보를 만드는 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학생의 머릿속에 주입하는 늙어빠진 둔한 스승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유식할수록, 눈이 뜨였을수록, 선의를 가졌을수록 더 효과가 있다. 유식하면 유식할수록, 그가 아는 것과 무지한 자들의 무지 사이의 거리는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은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그 학생에게 항상 더 잘 설명해주어야 한다. 눈이 뜨인 교육자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꼬마가 이해할까? 이해 못 하지. 그에게 설명해줄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지. 원리에서 더 엄밀하면서도 형식에서 더 관심을 끄는 그런 방식을. 그리고 아이가 이해했는지 검증해 보아야지...

이 이해하다라는 슬로건이 바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그 단어 때문에 이성의 운동은 멈추고, 이성에 대한 신뢰는 파괴된다...

이해시키는 방식의 모든 개선(방법론자들과 개선론자들의 이 위대한 근심)은 바보 만들기의 진보가 된다.  21-22


조제프 자코토는 생각했다. 모든 추론은 사실에서 출발해야 하고, 사실에 따라야 한다고....

그의 학생들이 설명의 도움 없이도 프랑스어로 말하고 쓰는 것을 스스로 익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23


평등의 방법은 먼저 의지의 방법이다. 사람은 배우고자 할 때 자기 자신의 욕망의 긴장이나 상황의 강제 덕분에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도 혼자 배울 수 있다.  29


스승과 학생 사이에는 의지와 의지의 관계만 성립되었다.  30


인간, 특히 아이는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의지가 충분히 강하지 않을 때 스스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예속(sujetion)은 순전히 한 의지가 다른 의지에 예속되는 것이다. 예속이 하나의 지능과 다른 지능을 연결할 때 그것은 바보 만들기가 된다.  31


빠른 길이라고 해서 가장 좋은 교육의 길인 것은 아니었다. ...

가르치는/배우는 행위는 다양하게 조합되는 네 가지 한정을 따라 산출될 수 있다. 해방하는 스승이냐 아니면 바보로 만드는 스승이냐. 유식한 스승이냐 아니면 무지한 스승이냐.  32


[옮긴이]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무지한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알지 못하는 스승'이다. 둘째, 무지한 스승은 어떤 앎도 전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앎의 원인이 되는 스승이다. 셋째, 무지한 스승은 불평등을 축소하는 수단들을 조정한다고 여겨지는 불평등에 대한 앎을 '모르는 스승'이다.  32-33


학생을 해방한다면, 다시 말해 학생이 그의 고유한 지능을 쓰도록 강제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지능은 스스로에게 필연적으로 되어야지만 그 고리에서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무지한자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해방되어야만 하고, 또 그렇게 되기만 하면 된다. 즉 인간 정신의 진정한 힘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34


Age quod agis, 즉 네가 하는 것을 계속하라.

[옮긴이] "보편적 가르침은 모두가 하는 것, 우리가 날마다 하는 것, Age quod agis에 기초한다고 나는 내 제자에게 말한다. 오늘, 내일, 늘 네가 시작했을 때처럼 너의 교육을 계속하라. 네가 이날까지 따라온 절차에 따라 네 언어 공부를 완수하라. 그것을 바꾸지 마라. 너는 네가 알고 있는 문법의 기초들에서 [그 언어를] 배웠던 것이 아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라. 네가 혼자 익힐 수 있는 것을 너에게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마라. 그들은 너를 지연시킬 테니까."  36

그는 상호 지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무지한 자가 다른 무지한 자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것 말이다. ..

자코토에게 문제는 해방이었다. ...

해방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는 바보를 만든다. 그리고 해방하는 자는 해방된 자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할 일이 없다. 해방된 자는 그가 원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39


[옮긴이] 자코토는 보편적 가르침이 '개인'을 지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즉 우리는 혼자서만 해방될 수 있다.  40


가난하고 무지한 가장도 스스로 해방되기만 하면 설명해주는 어떤 스승의 도움 없이도 가지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옮긴이] 해방된 가장 - 자코토는 가르치는 자 자신이 먼저 해방되는 것을 보편적 가르침의 '필요조건'으로 본다.  41




"가르침을 받은 모든 사람은 반쪽 인간일 뿐이다."  50


지적 능력의 위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지적 능력의] 본성상의 평등을 의식하는 것이 바로 해방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것이 앎의 나라로 가는 모든 여행길을 연다.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더 잘 배우거나 못 배우거나, 더 빨리 배우거나 더 늦게 배우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61


"옛날 방식은 문자들부터 시작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지적 불평등의 원리에 따라, 더구나 아이들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원리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이다. 구식은 문자가 단어보다 더 구별하기 쉽다고 믿는다. 이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결국 구식은 그렇게 믿는다. 구식은 아이 같은 지능이 C, A, CA를 배우기에 알맞을 뿐, 칼립소를 배우려면 어른의 지능, 다시 말해 우등한 지능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62


불평등의 원리, 낡은 원리는 무슨 수를 쓰건 바보로 만든다.  63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는 다만 우리가 모르는것 전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학식도 필요치 않다. 무지한 자는 무엇이든 물을 수 있다.  67


무지한 자는 더 적게하는 동시에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는 학생이 찾아낸 것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구한 것을 검증할 것이다.

사람이기만 하면 [학생이] 공부한 것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옮긴이] 무지한 자는 학생이 작업한 결과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적게' 하지만, 학생이 들인 수고와 주의를 검증하고, 나아가 지능의 평등을 입증하기 때문에 '더 많이' 한다.  68


한 명의 무지한 자가 한 번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무지한 자들이 언제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지에는 위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한 자들과 유식한 자들이 모두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우리가 지적 존재의 힘이라고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평등의 힘은 이원성의 힘인 동시에 공통성의 힘이다. 하나의 정신과 다른 정신의 엉김, 묶음이 있는 곳에는 지능이 없다. 각자 행위하고, 자신이 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행위의 실제성을 입증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곳에 지능이 있다. 두 지능 사이에 위치한 공통된 것/사물은 이 평등을 보증하는 보증물이다. 그것은 이중의 명목으로 그러하다. 물질적인 것/사물은 먼저 "두 정신을 소통하게 해주는 유일한 다리"다. 다리는 통로이며, 또한 유지된 거리다. 책의 물질성은 두 정신에 똑같이 거리를 둔다. 하지만 설명은 한 정신으로 다른 정신을 무화시킨다.  70


타인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해방되어야 한다. 모든 다른 여행자와 비슷하게 정신의 여행자로서, 지적인 존재들의 공통된 역량에 참여하는 지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73


해방이란 모든 인간이 자기가 가진 지적 주체로서의 본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정식을 거꾸로 뒤집은 평등의 정식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곤 햇다. 이 대철학자의 훌륭한 생각은 보편적 가르침의 원리 중 하나다. 우리는 그의 생각을 뒤집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이 뒤집기는 인간 주체를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의 평등 안에 포함시킨다. 생각은 사유 실체가 가지 ㄴ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속성이다. "너 자신을 알라"를 모든 인간 존재의 해방 원리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금지에 맞서 <크라틸로스>의 환상적인 어원 중 하나를 가지고 장난을 펴야 한다. 인간, 즉 anthropos는 자신이 본 것을 검토하는 존재, 자신의 행위를 헤아리는 가운데 자신을 아는 존재다. 보편적 가르침의 모든 실천은 다음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편적 가르침의 모든 힘은 그 실천이 스승에게서 실현되는 해방, 학생에게서 생겨나는 해방을 의식하는 데 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앎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이 그것의 주체가 되는 지적 행위들을 검토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행위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의 힘을 쓰는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시작한다면 자기 자식을 해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의식은 먼저 무지한 자가 가진 지적 실력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무지한 자는 자신의 언어를 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상태에 맞서 항의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상태를 알거나 그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는 자들에게 질문하기 위해 그 언어를 쓸 줄 안다. 그는 자신의 직업, 자신의 도구, 그 도구의 사용법을 안다. 그는 필요할 때 그것들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능력들에 대해 반성하고, 그가 그 능력들을 획득한 방식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 반서에 대해 정확히 따져보자. 손과 인민의 앎들, 도구와 노동자의 지능을 학교의 학식이나 엘리트의 수사학과 맞세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건설했는지 묻고, 사회 질서에서 건축가와 생산자가 받아야 할 자리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반대로, 두 가지 지능은 없음을 인정하고, 인간의 기술이 들어간 모든 작품은 동일한 지적 잠재성이 실행된 결과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처에서 관찰하고, 비교하고, 조합하고, 만들고, 또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처에서 이 반성이, 이 자기로 되돌아가기가 가능하다. 반성이란 사유 실체가 하는 순수한 숙고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지적 행위에, 자기가 그리는 길에, 그리고 새로운 영토들을 정복하는 데 동일한 지능을 쏟아부으면서 그 길로 항상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에 무조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노동자의 손 그리고 [사회를] 먹여 살리는 인민이 빚어낸 작품을 수사의 구름들과 맞세우는 자는 바보로 남는다. 구름 제조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신발과 자물쇠 제조만큼의 일과 지적인 주의를 요구하는 인간 기술의 작품이다. 아카데미 회원인 레르미니에 씨는 인민의 지적 무능력에 대해 논한다. 레르미니에 씨는 바보다. 그러나 바보는 멍청이나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가 쓴 논고에서 나무, 돌, 가죽을 변형하는 사람들이 가진 것과 같은 기술, 같은 지능, 같은 일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바보가 된다. 오로지 레르미니에 씨가 한 일을 인정해야지만 우리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들이 빚어낸 작품 속에 발현된 지능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르노블 부근에 사는 시골 빈민들은 장갑을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장갑 12켤레에 30수(=1.5프랑)를 지불한다. 빈민들은 해방되고 나서 잘 만들어진 장갑을 보고,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몰두한다. 그들은 이 장갑의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짐작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12켤레에 7프랑을 버는 도시 여자들만큼 잘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위, 바늘, 실을 가지고 말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만이 중요하다. (인간 사회에서는)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만이 문제다."

언어의 물질적 관념성은 황금의 자손과 철의 자손 사이의 모든 대립을 반박하며, 손으로 일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과 사유를 발휘하기로 운면 지어진 사람들 사이의 모든 위계 - 설령 그 위계가 뒤집어진다 하더라도 - 를 반박한다. 언어로 빚은 모든 작품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행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지한 자는 자신을 알게 된 뒤부터 그가 읽을 줄 모르는 책에서 자기 자식이 한 탐구를 검증할 수 있다. 무지한 자는 그의 자식이 무슨 교과를 공부하는 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자식이 어떻게 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는 자식에게 한 가지만 주문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구할 때 도구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처럼 자식더러 단어와 문장을 이리저리 돌려보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77-81


자기 자식의 의지를 강제함으로써 가난한 가장은 그의 자식이 그와 같은 지능을 가졌고, 그와 마찬가지로 구하고 있음을 검증한다.  82


해방은 평등에 대한 의식이다...

인민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지도 부족이 아니라 인민의 지능이 열등하다는 믿음이다.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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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임팩트 맨

저자
콜린 베번 지음
출판사
북하우스 | 2010-05-1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환경에 임팩트를 주지 않고 살아가기 프로젝트!뉴욕 한복판에서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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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기록 보기 


지구상에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답변으로 줄기가 뻣어나간다. 하나는 창조론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진화론이다.

창조론은 성서에서 밝히는 하느님에 의해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로인해 인간은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적인 토대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인데, 자신이 어떠한 이론에 찬성을 하든 지금의 지구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그리 크지 않을 듯 싶다.

물론 학자들에게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창조가 되었든 진화가 되었든 지금의 지구가 앓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론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시초가 어떠했든 간에 인간은 인간이 살아가는 그 지점에서 환경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맞게 환경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서만 살아가기 위해 환경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 현재만을 바라보거나 아주 가까운 미래에만(미래라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까운 후의 시간) 관심을 가진 환경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야 80년이었기에.. 지금은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100세를 바라본다고 하지만 우리는 늘 그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길게 바라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무수한 이론중에 '무임승차' 이론이란 것이 있다.

많은 이들 중에 하나의 결정을 하여 단체로 움직이려 할 때 나하나는 괜찮겠지 하며 빠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은 간단한 것 같지만 매우 복잡 다단하며, 매우 편리하게 대중을 움직이기에 좋은 이론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영인은 경영인대로, 오피니언은 오피니언대로, 사장은 사장대로, 관리인은 관리인대로 즉, 소수의 기득권층은 이것을 잘 활용함으로 대중의 불만을 잠식시켜 버리고 그들에게서 자발적인 복종을 대중이 모르는 상태로 이끌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채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오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것과는 달리 아니 어쩌면 이러한 것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 삶의 환경에 대해서도 이 이론은 정확하게 적용되어 지구를 점점더 황폐시키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노 임팩트 맨'이다.  지구에게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최소한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실험이다. 그것도 시골이나 소도시가 아닌 대도시의 한 복판에서 저자와 그의 부인과 어린 딸아이와 함께 일년 동안 지구에 임팩트를 주지 않는 삶을 살아보면서 겪은 그리고 저자의 사유의 기록이다.

저자는 여러번 말한다. 우리가 꼭 이런 것들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볼 때 자신의 자리에서 환경에 악 영향을 덜 미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만이라도 찾아보자는 것이란 것을.


전 세계적은 꽤나 오래 전부터 환경에 경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앞서 언급한 '무임승차'이론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저자는 그의 실험에서 7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2.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기

3. 우리 고장에서 난 로컬 푸드를 먹기

4. 쓸데없이 소비하지 않기

5. 집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줄이기

6. 물을 아끼고 오염시키지 않기

7. 사회에 환원하기


자신의 실험들을 통해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의 과정이 글속에서 표현된다. 

그의 사유의 표현들은 어쩌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일지 모른다. 그는 그 실험을 자발적으로 해보았기에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것의 차이다.


그는 바란다.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구원받아야 하기를...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누구나 그 답을 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몇 가지 정도는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저자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 없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그는 그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실험이었다.

물론 1년이 지난 후에도 몇 가지들은 지속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꼭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정말 자신의 생활속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과 자신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임승차'가 아니라 일원으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하나하나 생각해 나가면서 실천할때 지금의 지구는 그나마 더 이상은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지구의 재생능력은 어느덧 좋은 환경으로 변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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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세계적인 기업을 일으킨 사업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정치 지도자, 별을 단 장군, 좋은 글을 남긴 작가나 위대한 예술가, 학자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들의 특성은 유복한 환경이나 높은 지능지수, 우수한 교육이나 비상한 재능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생을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다음은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요소이다


★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라 :

심은대로 거둔다.

즉 우리는 누구나 노력한만큼 보상을 받게 된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이것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따라서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이 취한 입장에 대한 칭찬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직시하고 진정으로 책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주성을 찾게 되고 발전 할 수 있는 것이다.



★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어 목표를 향해 매진하라 :

세익스피어의「햄릿」에서 폴로니우스는 그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네 자신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너는 다른 사람에게도 충실해 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어찌 할 바를 모를때가 많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내가 선택한 직업은 바른선택이었는지, 또한 나에게 맞는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계획은 부모나 스승, 친구, 돈에 의해 좌우되기 보다는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 피하지 말고 적응하라 :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성공의 열쇠는 적응력이다.

압박감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고 생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심지어 진정제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결국은 자신을 약화시켜 인생에 실패하게 만든다.

인생의 온갖 스트레스에 적응해 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스트레스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역경과 실패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경험이다. 인생의 승리자들은 자신의 발전을 운에맡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잠재력과 생에 대한 욕구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의 승리를 추구해 간다.

 

한마디로 말해 패자는 인생을 닥치는대로 살아가는데 반해 

승자는 인생을 창조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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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쇠붙이에 그치지 말고 면도날이 돼라"고 말한 바 있다.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으 낯설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솔루션을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를 언급하면서 <창의성의 즐거움>에서 말한 창의성의 발현 3요소를 언급한다. 일련의 상징적 규칙과 절차로 이뤄진'영역', 영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현장', 창의성을 발휘하는 '개인'

그러면서 예로써 영국축구 프리미어에 대해 언급하는데, 영역=축구, 현장=프리리어리그, 개인=플레이어로 표현한다.

창의성이란 거대한 벽에 부딪혔을 때, 반드시 그 벽을 넘고 말겠다는 도전 의식과 필사적인 자기 투쟁의 과정 속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성질에 가깝다. 

칙센트 미하이는 '창의성의 중심지'를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곳, 여러가지 생활방식과 지식이 융합하는 곳, 사람들이 새로운 사고를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을 조성해 주는 곳이다"

창의의 개념을 정리해보면, 창발(creativeness)은 발상의 프로세서, 창조(creation)는 발상의 프로세스를 거친 결과로서의 산물, 창의(creativity)는 발상의 프로세스와 그 산물이나 결과를 모두 포함한다. 사실상 이 3가지는 하나다.

세계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훨씬 많다. 창의성은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모방 -> 변화 -> 문화
창의성의 필수 사항이 있다면 '범상치 않은 호기심'뿐이다.

창조적 상상력을 체득하려면
첫째, 30 대 70의 원칙을 지켜라. 
자기 시간의 30%는 실질적인 업무에 쏟되, 나머지 70%는 재충저노가 여가 혹은 남들 눈에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투자해야 한다.
둘째, 고전을 많이 읽어라.
고전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깊이가 있다. 비단 책만이 아니라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곳에 가보는 것 즉 스스로를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낯설게 만들라는 것이다.
셋째, 몰입의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 
미쳐야 몰입할 수 잇고 몰입해야 뭔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의적 사고법 7가지
1. 호기심 - 호기심은 발며오가 발견의 발전소다.
2. 실험정신 - 무엇이든 의심하고 실험하라. 실수에서 배워라.
3. 오감 - 감각의 날을 세워라. 그만큼 세상도 열린다.
4. 낯섦 - 낯선 것에 도전하라. 낯선 것이 창의적 솔루션을 가져온다.
5. 전뇌사고 - 뇌 전체로 사고할 때 입체적인 생각이 가능하다.
6. 양손쓰기 - 육체적 성질을 고착시키지 말고, 양손 쓰기를 통해 균형 감각을 키워야 한다.
7. 연관 사고 - 모든 사물과 현상의 얽힘 속에 창의가 숨어 있다.

창의성의 발현은 일종의 정신적 레이스이며, 이것에는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첫째, 페이스를 잃지 말라. 오버페이스는 완주할 수 없게 한다.
둘째, 구간 기록을 체크해야 한다.
셋째, 지난 레이스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몰입하면 환호든 관신이든 야유든 신경 쓰지 않는다.
다섯째,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뛰어야 한다.
여섯째, 경쟁자가 아닌 목표를 보고 뛰어야 한다.
일곱째,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야 한다.

윈스턴 처칠은 "Never, Never, Never Give up!" 이라 독려했듯이...


창의성 발현을 위한 5가지 
첫째, 창의성의 족쇄를 풀어라. 고정관념을 깨고,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을 버려라.
둘째, 생각을 줄 세우지 말라. 선형적으로 읽지 말고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메모 또한 마찬가지로.
셋째, 야생의 사고를 자극하라. 내 안에 밀림 같은 놀이터를 만들고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뒹굴게 해야 한다.
넷째,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하라.
다섯째, 마인드 맵핑(mind mapping)을 하라.




창의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사람든은 많이 듣고 보기때문에 이 단어를 매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자신이 알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진정 안다는 것은 자신이 체득하여 느꼈을 때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들어본것이다.

창의적인 것은 어떠한 일에서도 발생된다. 아주 중요하고 큰 일에서도 가능하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 톰 피터스의 '리틀빅씽'은 경영학의 구루가 쓴 자기계발서이다.
여기서는 제목처럼 작지만 강한것을 중점으로 다룬다.
그도 사소한것의 강력함에 대해서 강조하는데, 탁월함을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창의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 성공한 기업들 중에는, 이러한 사소한 것부터 창의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갈갈이 삼형제에서 벌집삼겹살 대표가 된 이승환씨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가 말에서도 사소한 것부터 창의적이 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예로써 든 붕어빵 아저씨의 성공스토리는 "왜 안돼?"로 시작하여 차별화두고 붕어빵의 인식을 전환하게 함으로 고객이 반할 수 있는 것들로 시작 하였다고 한다.
복장 간판 포장지에서 부터 서비스 정신에 고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요소들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성공기업의 조건들을 작은 가게들에 심어 문화를 형성시켰다고 했다.

스타벅스 역시 그러한 창의적인 것들로부터 시작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미국 내에서 그들은 고객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감동을 줌으로 그들만의 공간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당시의 미국은 커피가 5센트에 마실수 있는 것이었지만 스타벅스는 8배가 넘는 돈을 받아 내면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처럼 창의적인 것은 남들과는 다른 것을 찾아내는 입체적인 사고와 연관된 사고를 하여, 늘 몰입함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창의적인것은 지금 당연시 받아들이는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여 더 좋아질 수 없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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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강건성세(康健盛世)는 강희제(康熙帝, 1661~1722), 옹정제(雍正帝, 1772~1735), 건륭제(乾隆帝, 1735~1795)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3대 133년간의 세를 칭하는 말이다. 
청나라 제4대 황제인 강희제가 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제5대 황제 옹정제는 건전한 기풍을 확립했고, 제6대 황제 건륭제는 선대의 정신을 계승해 강건성세를 완성시켰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부가 벤치마킹하려는 인물이 바로 강희제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강희제는 61년간이나 황휘를 지겼으며 청나라의 실질적인 창업주이기도 하다.
강희제 리더십의 원천은 무엇보다 이재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천리마는 어느 시대, 어디에는 있었지만 천리마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백락(伯樂 - 춘추시대 종자 좋은 말을 고를 때 귀신겉은 눈썰리믈 발휘했던 인물)은 언제나 드물다."
즉 인재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이는 드물다 또한 알아본다 해도 그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면 마음을 얻어야 한다.

강희제는 학구열이 높은 황제였다.
유학자들로부터 서양인 신부에게서도 배우는 등 학문의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문화활동에 까지 관여하였다. 
그는 주자학과 수학, 자연과학 등에도 정통한 호학인이었다.

강희제는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 였다.
탐구를 즐기고 천문학, 지도제작, 광학, 의학, 대수학 등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러시아와의 네르친스크 조약 때 예수회 선교사들을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히며 이들에 대한 신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한 손에는 서양 고전과 외국어를 무기로 든 탁월한 계몽군주였다.(개방적인 학구열을 지닌 인물)

그는 집무에 시달리면서도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점령했으며 러시아 군대를 패퇴시켜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고 티베트를 복속시키기도 하였다. 즉 강희제는 문무를 겸비한 군주였다.
강희제는 날마다 오늘이 끝일지 모른다는 각오로 살았다.

강희제는 가장 부유한 나라를 일구었으나 근검론을 쓰면서 근검절약하는 군주였다.
"모든 비용은 백성들의 피땀으로 얻어진 것이니 주인된 황제로서 절제하고 절제함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또한 그는 "한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지, 천하가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 '이름병'에 걸리지 앟고 물욕이나 명예욕을 탐하지 않았다.

신기미(愼機微) :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잡념들을 제거하고 자신을 단속한다
덕승재(德勝才) : 덕이 재주를 이긴다.(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덕이지 재주가 아니다.)
"천하의 위험을 구하는 자만이 천하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천하의 근심을 해결하는 자만이 천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천하의 화를 구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천하의 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강희제의 통치 철학이다.

그는 고별 상유에서 "나는 천하를 보살피는 데 내 마음을 다 쏟아 부었노라"고 고백하였다.
강희제는 좋은 리더(good leader)를 넘어선 위대한 리더(great leader)였다.


옹정제 또한 끊임없이 학습하는 리더였다.
"인재를 찾는 것이 제왕의 제일가는 고충"이라 말하며 인재 확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현장의 소리에 귀를 여는 황제였다. 그는 찾아오지 말고 황제게게 주접(奏摺)을 쓰라 명하고,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각지의 주접을 읽고 주비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인기 없는 정책도 과감히 밀고 나가는 실천 의지로 충만한 군주이자 '실행하는 리더'였다.(주관을 가진 실천형 리더)
또한 그는 늑대 사냥을 통해 늑대 무리의 속성을 간파하고 이를 통치에 활용하기도 하였다.(이론보다는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클 수 있다.)


건륭제는 강희제 때부터 축적된 재정을 바탕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원숙한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그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문무를 겸비하고 지혜와 용맹을 갖췄으며, 성격도 자유로운 편이라 18세기 지식혁명을 이끈 문화군주였다.
그는 아버지인 옹정제처럼 인재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서를 즐겨 읽고, 선대 황제를 깊이 연구하였다.
거안사위(居安思危) : 편안할 때 오히려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그는 또한 60년간 다스린 뒤 조부의 재위 기간을 고려해 자진 퇴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제 필요한 것은 적절히 섞이는 것이다. 또 그 섞임이 자극이 되어야 한다. 낯선 것을 만들어 기존의 것에 머물거나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고 챕터를 맺는다.

강희, 옹정, 건륭이 남긴 삼제(三題)
강희, 옹정, 건륭이 오늘날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최소한 다음 삼제(三題)만큼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신기미(愼機微)하여 국궁진력(鞠躬盡力)하라." - 마음속에 잡념들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몸을 굽혀 온힘을 다하라.
"위군난(爲君難)이니 견인불발(堅忍不拔)하라." - 군주가 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우니 굳게 참고 견디어 흔들리지 말라.
"대공지정(大公至正)하여 협화만방(協和萬邦)하라!" - 공평하고 지극히 바른 가운데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




우리네 역사를 돌아보아도 자극이 발전을 주었다.
자극을 단절하였을 때 나라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정체라도 되면 좋았을테지만, 퇴보하게 되었다.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도움은 결코 안락함이나 편안함이 아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자극이 되기 위한 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것을 찾고 안락함을 찾는다. 특히나 한국은 더욱 그러한 상황을 요한다.
윗세대들과 지금 세대들은 발전의 차이가 극명한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윗세대는 발전하는 시대를 살면서 안정적인것들의 최고라고 인식하고 있으나, 현재의 상태는 안정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지식의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보의 시대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밀레니엄 때나 했던 이야기들이다. 과거 100년동안 발전한 속도보다 지금의 5년 아니 3년의 발전의 속도가 더 빠르다.
지금의 많은 정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어야 하는 '문화창조 상상의 시대'이다.

우리는 지나온 지혜는 받아들이되, 현재의 상태에서 잘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통찰의 힘을 발휘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극의 시대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그렇게 할때 부드러운 시각을 가지고 행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그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끊임없이 학습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리 많은 양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학습의지를 나타냈다.
지금은 월간지 까지 합해서 하루에 나오는 책이 100여권이 된다고 한다.
일년이면 36500권이 된다. 
무수히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들이 쏟아지늗데, 그것을 선별하고 전략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그것마저 학습에 의해 축적해 나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자신을 자극해 나갈 때 자신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며, 이러한 생각과 행동들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경영의 핵심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강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재'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이 리더라면 인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거은 우선 리더의 마음가짐과 덕일 것이다.
능력, 열정 지략 관대.... 여러가지 요소들이 인재의 마음을 살 수 있느냐부터 고려한다면 리더는 그를 제대로 돌아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으며, 그에더해 강한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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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1 -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에는 젊음이 유지 된다... 이와 같은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예전의 일이지만 7개월여를 최소한만 움직이는 생활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집안에서만 생활하였고 필요물품을 사야하거나 할 때에만 밖으로 나갔으며 밖에서도 자동차로 움직였기에 실제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엔 별 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력해졌고.. 필요한것을 사러 나가면 걸음걸이가 좀 이상해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죠
그리고 심심하면 설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병원을 가면 장이 예민하다고 하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지요..

7개월 여가 지나고 몸을 움직이고 운동장을 걸으면서 점차 장이 튼튼해 졌고.. 다리에 힘도 들어갔으며 ... 무력함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신체를 움직이지 않으면 신체가 무력해 지고... 정신을 사용하지 않으면 정신이 무력해 지게 됩니다.
신체야 운도으로 쉽게 돌릴수 있지만... 정신이 멈추어 버리면 참으로 돌아오기 힘듭니다.
정신적인 무력감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특히 이 무력감이 편협한 사고와 만나면 '자신은 아무것도 잘 할 수 있는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신을 움직입시다..
정신을 움직인다는것은 새로운 관점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정해진것이라 하더라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창조하는 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 준다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죽음과 질병이 온다
.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 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 법정스님의 수상집 <산방한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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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확언(Affirmation)

창조적 시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

'긍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의미를 갖고 있다.

 

띠라서

긍정적확언은 자신에게

무언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는

강한 긍정의 말을 해주는

이다.

소망하는 것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거의 한순간도 쉬지 않고 마음속으로 내면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마음은 스스로에게 분주히 말을 걸면서 삶과 감정, 세계는 물론 우리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타인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는 말과 생각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이런 의식의 흐름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 마음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들'이 실재의 경험을 낳는 기본 토대가 되는데도 말이다.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내면의 대화는, 감정은 물론 일상적인 사건들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색깔을 입혀 준다. 이런 모든 일들을 불러오고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은 마음속의 생각들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살아오는 동안 굳어진 낡은 사고방식들을 테이프 레코더처럼 그대로 재생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래 전에 선택했던 낡은 '프로그램'이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난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야.' 라거나 '이건 절대 제대로 될 리가 없어.'처럼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자기 파멸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확언을 행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면, 이런 케케묵고 쓸모없는 내면의 지껄임을 보다 긍정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로 변화시킬 수 있다. 삶에 대한 태도와 기대의 많은 부분을 짧은 시간 안에 변화시켜서, 궁극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창조해내는 것까지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긍정적확언이기 때문이다.

 

긍정적확언(affirmation)말없이 속으로 할 수도 있고, 크게 소리내서 말하거나 노트 위에 적으면서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노래를 부르거나 읊조리는 식으로 해도 된다. 어떤 식으로 하든, 하루에 십 분씩만 해도 여러 해 동안의 낡은 습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다시 부정적인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에 젖어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 순간 바로 몇 분 동안 자신에게 긍정의 말을 해주도록 한다.

 

예를 들어, "쳇, 무슨 소용이 있겠어? 어차피 못 얻을 게 뻔한데." 하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있는 힘이 내겐 분명히 있어!" 라거나 "난 기필코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게 될거야." 등의 말을 스스로에게 해준다.

 

 

 

아주 일반적인 것이든 특수한 것이든, 긍정적인 말이면 모두 긍정적확언에 사용할 수 있다. 이해가 잘 되도록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긍정적확언에 사용할 수 있는 말들

 

△나는 모든 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어.

△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피어나고 있어.

△나는 지금 여기의 삶을 만끽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다 갖고 있어.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야.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내 안에 있어.

△난 지혜로운 사람이야.

△원래 나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존재야.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존중해.

△모든 감정들을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좋아해.

△나를 사랑하면 할수록, 타인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어.

△지금 나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어.

△나는 지금 따스하고 좋은 관계들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어.

△...와 나의 관계가 보다 즐겁고 만족스럽게 날로 무르익고 있어.

△나는 보수도 괜찮고 보람도 있는 직업을 갖고 있어.

△나는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며 살고 있어.

△나는 긴장을 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해.

△나는 언제나 분명하게 타인과 의사를 교환하고 있어.

△나는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 지혜는 물론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는 돈까지 갖고 있어.

△나는 언제나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게 맡겨진 일을 정확한 시간 안에 해내고 있어.

 

 

 

 긍정적확언을 할 때 기억해야 할 것들

 

1. 언제나 미래가 아닌 현재시제로 말한다.

 

소망을 얘기할 때에는 그것이 이미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예를 들어, "근사한 새 일자리를 얻게 될 거야." 보다는  "지금 근사한 새 일자리가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적인 행위가 아니다. 단지, 무엇이든 현실로 드러나기 전에 내면 속에서 먼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2. 가장 긍정적인 말

 

부정어들은 피하고, 가장 긍정적인 말로 소망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더 이상 늦잠을 자지 않을 거야." 보다는 "요즈음 난 아주 가뿐하게 잠에서 깨어나." 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가장 밝고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말을 써서 확언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 꼭 긴장해야 할 필요는 없어." 처럼 어떤 감정상의 문제나 나쁜 습관들을 걷어내려는 목적으로 긍정적확언을 할 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이 대개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바람이라도 위와 같이 말하는 것보다는 "지금 난 몸과 마음이 모두 다 편안하며 정신도 또릿또릿해. 덕분에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려나가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몇 배는 더 효과적이다.

 

 

3. 쉽고 간단한 문장으로

 

문장은 쉽고 간단하면서도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강하게 배어 있는 것이 좋다. 감정이 강하게 실린 문장일수록 마음속에 더욱더 선명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길거나 수다스럽고 이론적인 문장은 감정적으로 별 울림을 남기지 않으며, 공연히 머리만 더 어지럽게 만든다.

 

 

4.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자신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경우도 있다.

 

긍정적확언을 하면 기분이 밝아지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져야 하며, 무언가 찡하고 가슴에 와닿으면서 새로운 힘이 솟구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문장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거나 자신에게 딱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단어들을 고쳐 본다.

 

물론 어떤 내용이든 처음에는 거부감이 일 수도 있다. 우리의 의식에 실제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영향력이 큰 것일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이런 거부감은 변화에 성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5. 무언가 새롭고 신선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긍정적확언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고치거나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진행중인 것을 거스르는 것이며,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결국 갈등과 분쟁만 초래할 뿐이다.

 

자신의 삶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잘 처리함과 동시에 모든 순간순간들을 새로운 창조의 기회로, 소망을 그대로 일구어내기 시작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6. 긍정적확언은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거부하거나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애써 뱌꾸려고만 들지 말고 모든 감정들을, '부정적인' 것들까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자세로 긍정적확언을 해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싹트고 즐거운 경험들도 더욱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7. 바라는 대로 꼭 이루어지리라는 강한 믿음

 

긍정적확언을 할 때에는 의심이나 망설임 따위는 잠시(최소한 몇 분만이라도) 접어두고, 마음과 정신을 오로지 긍정적확언에만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도 회의적인 생각이나 거부감이 삐죽삐죽 솟아오른다면, 그런 생각들을 지워 버리거나 긍정적인 문장을 직접 써내려가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긍정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만 줄줄 외워대지 말고,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충분히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사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하고 못하고에 따라 긍정화의 효과는 천지차이로 달라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근원적인 말을 포함하는 긍정적확언이 가장 큰 효과와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이나 우주, 숭고한 힘, 대지의 여신 어머니, 신의 사랑 등 어떤 말이든 긍정적확언에 영적인 힘을 불어넣어 주며, 모든 존재들의 근원을 확인하게 해줄 것이다.

 

 근원적인 말을 포함하는 긍정적확언

 

◆내 안의 신이 내게 무한한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신의 사랑이 내 안에서 작용하고 있어.

◆내 안의 신이 내 삶에 기적을 낳고 있어.

◆보다 높은 자아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인도하고 있어.

◆신은 내 안에 있어. 나를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매일매일 먹을 것을 주고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대지의 여신에게 감사드려.

◆우주의 빛은 나를 감싸고, 우주의 사랑은 나를 안아 주며, 우주의 힘이 내 몸 속을 흐르고 있어. 내가 있는 곳마다 신이 함께해. 무엇을 걱정해?

 

 

[샥티 거웨인 / 창조적 시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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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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