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 답게 살기
나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이 책을 썼다.

제1장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이 즐기는 놀이에는 한계가 없다.

문제는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니다. 왜,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했고 그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물질이나 지위,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밀고 나갔다.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부딪쳤다 인생이 성공했으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한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가면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세상은 제 갈 길을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재능의 본질은 즐기면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가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삶의 의미는 사회나 국가가 찾아주지 않는다. 찾아줄 수도 없고, 찾아주어서도 안 된다.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사람 자신에게 있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가방끈’이 길지 않아도 된다. 재산이 적어도 상관없다. 나이도 관계없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 타인의 위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도 개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지 삶의 환경을 조금 덜 냉혹하게 만들 뿐, 그 자체가 내 삶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자기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임이든 사회의 책임이든, 닥쳐온 고통은 일단 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세상을 원망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다. 누구도 그 짐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 각자 이겨내야 한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제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철학자 밀의 주장.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훌륭한 삶, 품격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삶과 함께 죽음도 알아야 한다. 죽음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삶을 망칠 수 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문명이 억압이라는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욕망을 억압하면서 규범을 따르는 일이 참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문을 더 넓게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범은 자기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따르면 된다.

칸트(Immanuel Kant)에 따르면 존엄한 것은 ‘가치(value)’를 따질 수 없다. 어떤 것의 ‘가치’는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는지, 인정한다면 얼마만큼 높게 평가하는지에 좌우된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자유의지를 발현할 때 지켜야 할 규칙 또는 도덕법이 있다. 칸트는 이 규칙을 이성이 내리는 ‘정언명령(Kategorische Imperativ)’이라 했다. 그는 경험의 도움이 없어도 사람은 이 규칙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도덕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준칙이라야 한다.” “둘째,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로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존엄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옳게 발현하려면 이 두 가지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사지가 마비된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죽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굶어서 죽는 방법은 택하고 싶지 않았다. 굶는 것이 특별히 나쁜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사지가 마비된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살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오로지 그것만이 허용된다면 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강제에 굴복하는 죽음은 존엄하지 않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가 원하는 벙법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 자기에게 수면제를 제공할 경우 형법의 자살방조죄로 처벌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가상 상황이 아니다. 그런 남자가 정말 있었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사지가 마비된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자유의지에 따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끝내고 싶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억압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정당한 권리이다. 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 역시 정당하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처벌하지 마라.’ 이 남자는 정부와 의회에 ‘안락사(安樂死)’를 허용하라는 입법청원을 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수많은 종교지도자, 의사 , 지식인들과 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된 여인이 몰래 가져다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그의 이름은 라몬 삼페드로(Lamon Sampedro), 스페인 남자였다. 그는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라는 책을 남겼다.
스물다섯 살에 물이 빠진 해변에 떨어져 일곱 번째 경추가 부러지는 사고가 없었다면 라몬 삼페드로는 열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스물 두 살때부터 노르웨이상선을 타고 세계 마흔아홉 군데 항구를 누볐던 이 청년은 여자 친구와 약혼을 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다가 해변가 바위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리고 정밀검사와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죽을 수도 없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라몬 삼페드로는 이때부터 30년 동안 똑같은 하루를 살았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침대에서 책과 신문을 읽고, 침대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침대에 누운 채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에 누워 창문으로 하늘과 바다를 내다보았다. 라몬은 휠체어 타기를 거부했다. 전신이 마비된 삶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죽기만을 원했지만 물과 음식을 끓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라몬의 투쟁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만들었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편지가 쇄도했다. 교황을 비롯한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설득하는 편지를 보냈다.  저명한 지식인들이 라몬의 생각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스페인 정부와 의회, 법원, 인권재판소는 심리를 회피하면서 대책 없이 시간만 끌거나 다른 기관에 책임을 떠넘겼다. 라몬은 펜을 입에 물고 편지를 쓰고 언론에 기고하였다. 방송에 출연해 자기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1995년 그는 이렇게 쓴 편지와 시, 산문을 한데 묶어 책을 냈다. 여기서 라몬 삼페드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휠체어를 타든 목발을 짚든 지팡이를 짚든 간에 그 삶은 언제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사라지면, 그래서 그것을 이성으로 깨닫게 되면 그때가 죽을때인 거지요. 전 지금처럼 살아가는 시간이 과연 저에게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이, 아주 많이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고통은 아무 가치가 없고 제 고통의 원인 역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제때 죽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면 그 아픔은 인간적인 수준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죽는다는 건 단지 그런 거예요. 태양이 제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새겨두는 것처럼 각자 가지고 있는 좋은 추억을 이 세상과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에 남겨두는 것, 잠드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슬픔도 원망도 없이 그저 피곤에 지쳐 고요하고 평온하게 눕는 겁니다. 그러나 죽음을 그렇게 느끼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인간적이길 바란다고 할 만큼 굉장히 자유롭고 선해야 하겠지요. 안락사, 또는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려면 진정으로 인간과 삶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선의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를 닦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fairness)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끝없이 “왜?”를 쏟아내는 아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더 창의적인 아이들은 덜 창의적인 아이들보다 부모를 더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의 규범으로 길들이면 아이는 호기심을 버리고 창의적이기를 그만둔다. 어떤 부모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자식에게 줄 수는 없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훌륭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부모만이 그것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어로만 소통하는 존재가 아니지만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언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을 하기 전에 아이들은 먼저 말을 알아듣는다.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문장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아이의 뇌 속에 음성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과 신경세포가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중해서 듣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을 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말과 더불어 진행된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한다. 부모가 반쪽짜리 ‘아기 말’을 쓰면 아기의 생각도 반쪽짜리가 된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큐가 높고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있는게 아니다. 사람의 경쟁력은 인지적,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 능력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삶에는 인과관계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일어나는 일이고, 일단 일어나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도척이 개 범 물어갔다”는 속담이 있다. 나쁜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우리 어머니가 쓰던 속담이다. 그 이름이 수천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은 도척은 누구인가? 도척은 중국 춘추 시대 혼란기를 주름잡았던 살인강도단 두목이다. 부하 9천 명을 거느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힘이 약한 제후의 성을 공격해 재물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했다. 사람을 죽여 간을 날로 먹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런데 도척도 나름 도(道)를 깨달은 자였다고 한다. <장자> [외편]에 따르면, 부하가 도둑질을 하는 데도 도가 있는지 물었다. 도척은 어디에 간들 도가 없겠느냐면서, 다섯 가지 도를 갖추지 못하면 큰 도적이 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남의 집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맞히는 것이 성인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이 의로움이다.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것이 지혜이다.
고르게 나누어 가짐이 어짊이다.

夫妄意室中之藏 聖也 (부망의실중지장 성야)
入先 勇也 (입선 용야)
出後 義也 (출후 의야)
知可否 知也 (지가부 지야)
分均 仁也 (분균 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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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 '보통 사람'이라는 뜻.  63


흙은 관의 나무 뚜껑 위에 떨어지면서 사람의 존재 안으로 빨려드는 소리를 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64


아버지를 묻는 이 일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65


예순다섯 살이었으며, 막 퇴직을 했고, 이제 세번째로 이혼한 상태였다. 그는 메디케어(의료보험의 한 종류)를 받았으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고, 변호사와 함께 앉아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것-그것은 나이가 드는 것, 심지어는 아마도 죽어가는 것에서 가장 좋은 부분일 것이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시간이 흐르면 갱신하고 수정하고,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것.  68


이 사악한 새끼들!(그의 아들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102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역효과를 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108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는 깯라았다. 더군다나 기적적으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112


(피비, 둘째 부인)"이 여자는 당신한테서 세실리아를 없애주고, 훌륭한 딸을 낳아주고, 당신 인생을 완전히 바꿔줬어. 그런데 당신은 그 여자를 위해 뭘 해야 좋을지 몰랐어. 덴마크 년하고 그 짓을 하는 것 말고는 말이야... 모든 일의 기초는 신뢰야. 안 그래? 안 그래?"  126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한느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도잉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이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빌어먹을 거짓말이란 말이야. 야, 이런 짓을 계속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런 일은 다 너무 잘 알려진 거잖아.  127


"뜨거움은 사라졌어. 아내도 나이가 들어 예전의 그 여자가 아니거든. 하지만 아내는 육체적 애정이 있는 걸로 충분해. 그냥 침대에 남편과 함께 있는 거. 아내는 남편을 안고, 남편은 아내를 안고, 육체적 애정, 부드러운 태도, 동지애, 친밀함... 하지만 남편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남자는 없으면 살 수가 없거든. 그래, 하지만 이봐요, 당신은 이제 진짜로 없이 살게 될 거예요. 많은 것 없이 살게 될 거야. 없이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제대로 알게 될 거야!"  128


어떤 의미에서는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이게 각오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집에 와보니 이미 쓰러져서 죽은 상태더라고요. 끔찍한 충격이었어요.  148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자신의 에스프리를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앗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자책에 박자를 맞추어 쳤다. 신장제세동기를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빗나갔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랜디나 로니보다 훨씬 잘 알 수 있었다. 보통 냉정하던 이 사람은 마치 기도하는 광신자처럼 사납게 자기 가슴을 쳤다. 이 실수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실수, 모든 뿌리 깊고, 멍청하고, 피할 수 없는 실수들로 인한 가책에 시달리다-자신의 비참한 한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면서도, 마치 삶의 모든 파악할 수 없는 우연을 스스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하위도 없어! 이렇게, 심지어 하위도 없이 끝이 나다니!"  164-165


그는 세 번 이혼했다. 한때 헌신보다는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했던 연쇄 남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계속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할 터였다. 이제부터는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166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밀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





옮긴이의 말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작가인 필립 로스 자신이 충분히 공감하는 말, 나아가서 그 자신이 소설을 쓰는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느낌도 든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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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외국의 낯선 도시를 홀로 걸어본 적 있나요?

종종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낯선 도시 안에 갇히길 소망합니다. 

나에게 낯선 도시는 만남인 동시에 헤어짐이고, 

피난처인 동시에 탈출구입니다.

때로는 캄캄한 밀실이었다가 눈부신 광장이고, 

눈물인 동시에 환희입니다. 

낯선 언어를 듣고 낯선 공기를 마시며

홀로 걸을 때 가만히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결국,

돌이켜보면 그 낯선 도시에서

나는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식당 주인과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어느새 나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야? 아님 타투가 하고 싶은 거야?"

남자가 나에게 반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우리 만난 적 있나요?'라고 물을 뻔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어깨에 있는 레터링 말이에요."

"데스 쉘 해브 노 도미니언. 무슨 뜻인지 알아?"

"죽음은 우릴 지배하지 못하지. 아니에요?"

"맞아. 스무 살에 처음으로 했던 타투야."

"멋있네요. 근데 왜 자꾸 나한테 반말해요?"

...

And death shall have no dominion. 죽음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이 문장은 진저색 헤어 애인이 가장 사랑하던 딜런 토머스의 시구였다.  21


정말 우리의 이 인생에 정답이 있기나 할까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모든 생각은 끝없이 또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와 머릿속은 한없이 복잡해지고 말지요.  38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건 사실 핑계였다. 나는 이제껏 많은 나라와 도시를 떠돌았지만, 한 줄도 쓰지 못했다.  45


낯선 나라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자신도 모르게 평생 각인되어 버리는 일이라 신중해야만 한다.  55


너는 나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뭔가를 쓴다는 핑계로 온종일 좁은 방 천장을 보고 누워 너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네가 말한 '나의 자유'는 정말 나에게도 자유였을까. 나는, 그저 너의 그 바쁜 하루가 부러웠다.  64


누르는 순간 그것은 흘러가는 과거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친절한 카메라의 셔터음.  67


생각 없이 살다가 참외 껍질처럼 영야가 없는 남자를 만나고 염소똥 같은 얘기를 하다가 오슬오슬 추워져 서로를 껴안는 일 따위 역시 나쁘지 않다.  100


사랑은 텅 빈 상자와 같았다. 조심조심 공을 들여 포장을 뜯어보면 그 속은 늘 텅 비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에 또 한번 속느니, 차라리 내가 사랑을 글로 지어내는 게 확실하겠다.  113


몇 시간째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결국 강물이 내게 답을 주었다. 강물을 깊이 들여다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 자신을 너무 들여다보지 말 것. 그러니까 나는 그 동안 나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봤던 것이다.  115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졌다.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이제 나는 거두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각을 낳지는 않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들은 지금처럼 끈질기게 내 발목 아래에서 질척일 테니.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메인 로드로 향했다. 그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말없이 흐르는 저 강물처럼 살자.  116


흘러가는 대로 흐르지 말아야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밤새 뒤척였다. 그렇게 다시 무서운 밤이 찾아왔다.  117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글만 쓰는 일이 가능할까?  124



처음 만난 우리는 모든 얘기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는 사이였다. 

함께 있을 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135-136


그날.. 푸근하디 푸근한 일상을 닮은 여행을 했다.  157


눈으로만 익혔던 서로의 입술  158


활주로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는 비행기처럼 남자가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점점 빠르게 움직였고 나도 자연스레 남자의 움직임에 조금씩 몸을 맞췄다. 껴안은 남자의 등이 땀으로 조금씩 젖어왔고 움직임은 더욱 강해지고 빨라졌다. 나 역시 거친 숨소리를 뱉다가 형체 없는 언어를 쏟아냈다. 나와 남자의 알 수 없는 언어가 뒤섞이다가 모든 움직임이 끝났을때, 나는 그 느낌이 정말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느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여행이 '시작돼버렸음을 아는 기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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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의 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없다. 사실 일자리를 잃을 때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27


사랑한다면 끝까지 곁에 있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뭐 그런 거?  77



"그쪽은 그쪽이 더 잘 안다고 생각했겠죠. 다들 나한테 뭐가 필요한지 자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해..."  81



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짜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84



세상에는 훨체어를 탄 사람과 같이 다니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잇다. 하나는 포장도로 상태가 얼마나 거지 같은가 하는 실감이다. 여기저기 푹푹 파인 데를 엉망진창으로 땜질해 놓았거나 아예 울퉁불퉁하다..

또 하나는 사려 깊은 운전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보도 진출입로를 아예 막고 주차를 하거나 너무 빽빽하게 차를 붙여 놓아서 실제로 훨체어가 도로를 건널 길이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98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14



"당신은 지나치게 똑똑해. 지나치게 흥미 진진하고." 그는 나를 보던 눈길을 돌렸다.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사는 거요.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  277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찾아서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를 알아내고, 그 두 가지 일이 가능한 직업의 훈련을 받은 겁니다."

"당신 말만 들으면 참 간단해 보이네요."

"간단해요. 문제는, 굉장히 힘이 든다는 겁니다. 글너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291



"사람들은 대체로 나처럼 사는 게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혼자 숨을 쉴 수도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고, 말도 못 하게 될지도 몰라요. 순환계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죠. 무한정 입원하게 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사실 산다고 하기엔 형편없는 삶이지만, 클라크.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어떤 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진짜로 숨이 안 쉬어지기도 해요."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런 거 알아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거. 아무도 두렵다든가, 아프다든가, 무슨 멍청하고 뜬금없는 감염으로 죽게 될까봐 무섭다는 얘기는 원치 않아요. 다시는 섹스를 할 수 없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요리를 다시는 먹을 수 없고 절대 자기 자식을 안아볼 수 없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휠체어에 이렇게 앉아 있다보면 가끔 죽도록 답답해져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싶어진다는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 살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 내가 용서가 안 돼요. 동생은 이번에도 또 나 때문에 자기가 뒷전이 됐다는 사실 때문에 날 원망하고 있지만... 내가 불구가 됐다는 얘기는, 어렸을 때부터 죽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제대로 미워할 수도 없다는 뜻이죠. 우리 아버지는 그냥 싹 다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들은 다 밝은 면만 보고 싶어 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야 하는 거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재앙에도 밝은 면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꼭 필요한 거죠."  358-359



".. 그 친구가 행복하기를 세상 그 무엇보다 바라지만 나는... 나는 도저히 그가 하려는 일을 감히 내 잣대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그건 그 친구가 선택할 일이에요. 그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444


"아니요. 그 친구가 살면 좋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 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445-446



"어떻게든 되겠죠."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예요."

내가뭘 원하는지 깨달은 흐로, 그 말이 내 캐치프레이즈였다.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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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다. 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덕분이다. 우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22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쓴 <완덕의 길> '정말 필요한 것이면 보아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30


어때서 일어나지도 않은 현상을 미리 가불해서 앞당여 근심하고 있단 말인가.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매 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5


선승 황벽(黃檗)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

주님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36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렵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38


일찍이 당나라의 선승 동산(洞山)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그러자 동산이 소리쳤다.

"이놈아! 추울 때는 그대를 더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더 덥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추우면 본능적으로 더운 곳으로 피하려 한다. 더운 곳으로 피하면 추위는 일시 가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근심이 있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다른 방법으로통해 고통을 피하려 한다. 피하고 잊는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추위를 피하려면 애써 더 추운 곳으로 찾아가라는 동산 스님의 말은 고통이 오면 더욱 그 고통을 직시하라는 뜻이다. 


중국의 도가서(道家書)인 <열자(列子)>에는 전설적인 신궁 비위(飛衛)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 기창(紀昌)이 찾아와 활쏘기를 배우려 하자 비위가 말한다. 

"활쏘기보다, 먼저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끝까지 보는 공부부터 하게."  58


이순신 장군도 말씀하셨다.

"살려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곧 살 것이다."


주님도 이렇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59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없다는 것은 못 느낀다. 두려움을 느기지만 평화는 못 느끼며, 갈증이나 욕망은 느끼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면 금세 잊어버린다. 마치 심한 갈증으로 허겁지겁 물을 마신 후에는 남은 물을 버리는 것처럼."  77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소화 데레사 성녀는 널리 알려진 대로 15세에 가르맬수도회에 들어가 24세에 선종함으로써 10년도 못 되는 짧은 수도원 생활을 한 새내기 성녀다... 봉쇄수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마룻바닥을 닦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에 전념했던 수도자였다.  97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아주 소소하고, 그러니까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늘 하나를 주울 때에도 주님에 대한 사라응로 주우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영혼 하나를 구원한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아주 작은 것도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성인의 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녀 소화 데레사가 발견한 '겨자씨'의 비밀이었다.  98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은 우리들의 수도우너인 가정 속에서부터 타올라야 한다.  100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때도 데레사처럼 사랑으로 하고, 자식들을 아기 예수처럼 대하고, 아내를 성모님처럼 공경하고, 남편을 주님을 대하듯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우리의 가정은 성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1


[두메꽃]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미나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 숨어서 피고 싶어라.  117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는 반드시 이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우선 유혹에 넘어가 그 죄를 응시하는 첫 발견 단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먹음직스럽다. 화려하다. 향기롭다. 감미롭다. 죄는 본능적인 감각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후에는 맹렬한 상상이 일어나고 쾌락에 대한 기대감이 용솟음친다. 이 과정을 <준주성범>은 '처음에는 마음에 단순한 생각만 하고, 그 다음에는 상상이 일어나고, 쾌락이 생기고, 잇따라 악한 중동이 발하고, 마침내는 승낙을 하게 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와가 느낀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은 악의 논리다. 결정적인 악의 정당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나마 유혹과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있지만, '딱 이번 한 번뿐인데', '이생은 원래 즐기는 거야', '사랑은 불나비야'라는 식의 악의 논리는 여지없이 충동적인 만용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따 줌으로써 악은 습관화(중독)되고 전염되어 온 세상에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127


미국의 CIA는 거짓말을 백색, 회색 그리고 흑색으로 분류하고 있다. 남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행하는 흑색 거짓말과 완전한 거짓은 아닌, 상대방을 위한 선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백색 거짓말, 그리고 그 경계가 애매한 회색 거짓말.  139


남전이 주석하고 있는 선당은 동서에 선방을 두어 동쪽의 선방에 사는 수자를 동당(東堂), 서쪽의 수자를 서당(西堂)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모든 납자들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서로 자기네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동당 고양이, 서당 고양이 하고 싸움이 벌어졌다.

다툼이 시끄러워지자 스승 남전은 무슨 일인가 나와 지켜보다가 싸움의 원인이 고양이 한 마리 때문임을 알고는 고양이의 목을 한손으로 쥐어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칼을 들어 모가지에 들이대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뭔가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이 고양이를 죽이지 않겠지만 말할 수 없다면 목을 베어 죽일 것이다."

서슬이 퍼런 스승의 선기에 압도되어버린 대중들은 입조차 달싹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의 목을 베어 죽였다.

그날 밤 외출에서 돌아온 제자 조주(趙州)가 스승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남전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네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겠느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말없이 자신이 신던 짚신 한 짝을 머리 위에 얹고 걸어 나갔다. 이에 스승 남전이 혀를 차며 말하였다.

"네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는 살 수 있었을 터인데."

그 이후부터 '불살생'의 계율을 파계하여 고양이의 목을 벤 남전의 칼은 애욕을 끊기 위한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그것이 분쟁의 원인인 고양이라 할지라도 하찮은 짚신조차 머리 위에 떠받으는 것처럼 섬기겟다는 조즈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로 불리게 되었다.  148-149


근세의 선승 혜월(彗月)은 1937년 죽기 전 선암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천하의 명검'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헌병대장이 명검을 보고 싶은 욕망에 절을 찾아왔다. "그 칼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간청에 "물론입니다."하고 앞장서 걷던 혜월은 느닷없이 뺨을 후려쳐 헌병대장을 섬돌 아래로 떨어뜨렸다. 졸지에 수모를 당한 헌병대장이 허리에 찬 칼을 빼려 하자 혜월이 먼저 다가가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천하의 명검이오. 내가 때려 섬돌 아래로 떨어뜨린 손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손은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150


혀와 손과 생각은 모두 양면의 날을 가진 불칼임을.  155


불교에는 '불재가중(佛在家中)'이란 말이 전해져온다. 당나라 때 양보(楊補)라는 사람이 사천에 유명한 무제(無際)보살이 있다 해서 먼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던 양보는 "어디를 가오?"하고 묻는 노인에게 "무제보살을 스승 삼고자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보살을 찾아가느니 부처를 찾으러 가지 그래."하고 말했다. "부처가 어디에 있는데요?" 하고 양보가 묻자 노인은 대답했다.

"집에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나와서 맞아주는 분을 만나게 될 텐데, 그분이 바로 부처시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바 이불을 두른 채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뛰어 나오는 어머니 모습에서 비로소 양보는 '집 안에 있는 부처'를 견성(見性)할 수 있었던 것이다.  162


예수께서 저를 붙드신 목적은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 있는 하느님으로서의 '말씀'능력과 예수로서의 '행동'능력과 성령으로서의 '생각'능력, 즉 '지언행(知言行)'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170



스님, 정말로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까? _최인호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_법정



내가 좋아하는 선가(仙家)의 말 중에 '살아도 온몸으로 살고 죽어도 온몸으로 죽어라' 라는 말이 있다.  180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A. 모루아는 "병은 정신적 행복의 한 형식이다. 병은 우리들의 욕망, 우리들의 불안에 확실한 한꼐를 설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위대한 사상가였던 C. 힐티는 <행복론>에서 "강의 범람이 흙을 파서 밭을 갈듯이 병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파서 갈아준다. 병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견디는 사람은 보다 깊게 보다 강하게 보다 크게 된다."

강이 범람하여 홍수가 나지 않으면 대지는 황폐해진다.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 되기 위해서는 홍수로 땅이 뒤집혀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바닷물을 엎어버리지 앟으면 플랑크톤은 사라지고 물고기들의 먹이사슬은 끊어진다. 바다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태풍이 몰아쳐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병의 홍수와 태풍을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82-183


당나라 때 향엄(香嚴)이란 선사가 있었다. 등주(鄧) 사람으로 법명은 지한(智閑)이었다. 키는 7척이나 되고, 학문에 조예가 깊어 아는 것이 많고, 말재주가 능하여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스승 위산영우(僞山靈祐)를 찾아가 불법에 대해 묻자 위산은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전부 남에게서 보고 들었거나 부처께서 말씀하신 삼장십이부경(三藏十二部經)의 뜻을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묻지 않겠다. 나는 그대에게 묻겠다. 아직 어머니의 배 안에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아라. 그것으로 그대의 공부를 가늠하겠노라."

향엄은 여러 가지로 대답했으나 위산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위산에게 가르침을 간청하자 스승은 "나의 말은 나의 견해일 뿐 그대 스스로의 안목으로 일러야 그대의 안목이 아니겠느냐." 하고 거절한다. 이에 향엄은 자기가 읽던 모든 책을 불살라버린 후 "이번 생에는 불법을 깨닫지 못했다. 오늘까지 나를 당할 사람이 없다고 느꼈는데, 스승에게 한 방망이 맞고 보니 그 생각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제부터 나는 그저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중이 되겠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스승과 작별하고 암자에 들어가 수행을 하였다. 

하루는 마당의 풀을 베면서 무심코 던진 기왓장 한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며 난 '딱'소리를 듣고 순간 크게 깨달았다. 이 장면을 선가에서는 향엄격죽(香嚴擊竹)리라고 부른다. 향엄은 스승에게 돌아가 깨달음을 인정받고 오도송을 읊었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去年貧 未是貧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로다. 今年貧 始是貧

작년에는 송곳꽂을 땅이 없더니 去年 無卓錐之地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더라. 今年 錐也無

이 선화에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화두, 즉 '그대가 아직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 얼굴'이란 공안인 것이다.  200-201


향엄 스님은 "이번 생애는 불버븡ㄹ 깨닫지 못하겠다."고 절망 했지만 용맹정진 끝에 무심코 던진 기왓장 한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딱' 소리에 크게 때닫고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참나, 즉 '본래면목'을 견성하엿다.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첫 일성으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언하셨다면 하늘나라는 이미 와 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면 어느 날 문득 어린이가 되어 하느님이 '빚어 만드신 최초의 참사람'으로 돌아가 원죄 없는 원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의 눈에서 바라보십시오."

심학규는 공양미 삽백 석이 있어야만 눈을 뜨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신을 위해 죽었던 심청이를 보고 싶다는 참사랑의 열망 때문이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시작도 끝도 없는 '이제와 항상 영원한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치마를 뒤집어쓰고 임당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심청이의 본래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나의 참모습을 견성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눈을 뜨는 데는 공양미 삼백 석과 같은 수천 년 세월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는 것은 <심청가>에 나오듯 '휘번쩍'눈을 뜨는 한 순간이다.  209-210


운동처방학을 전공하는 윤기운 교수는 운동선수들에게 세 가지 종류의 혼잣말 훈련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지켜본 후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혼잣말의 종류에는 '지도적 혼잣말'과 '동기적 혼잣말', '긍정적 혼잣말'등이 있는데 지도적 혼잣말은 '천천히' 혹은 '침착하게' 같은 교훈적인 것이며, 동기적 혼잣말은 '이번이야말로 최고의 기회야', '드디어 때가 왔어'같은 심리적인 동기부여를 가리키며, 긍정적 혼잣말은 '좋아, 할 수 있어', '난 내 자신을 믿어'와 같은 말인데 마음속으로 외우기보다는 실제로 입 밖으로 드러내어 혼잣말을 하는 실험대상이 그렇지 않은 상대보다 월등히 실제 행동과 학습효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215-216


중국의 당나라 때 절강성의 서암사라는 절에는 사언이라는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화두로 유명한 암두의 제자였다. 사언은 스승으로부터도 인정 받지 못했던 치둔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불린 데는 어느 날 공양 초대를 받아 신도 집에 갔을 때 주인이 유리와 구슬로 된 염주알을 바구니에 잠아 각자 골라 가지라고 햇던 데서 비롯되었다. 사언은 다른 스님들이 다 고른 후 마지막에 남은 가장 볼품없는 것을 집어 들고 "이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라고 흡족해하여 '바보선사'라 불리게 된 것이다. 

사언은 아침에 일어나면 판도방(큰방) 앞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아."

그러고 나서 사언은 대답했다

"네."

"정신차려라."

"네."

"앞으로도 속지 말아라."

"네."

사언의 자문자답은 자기 속의 자기야말로 만유의 근원적인 한 물건이자 본질 이전의 진아(眞我)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경책하는 벽력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216-217


웰만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은 나 자신이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벗도 나 자신이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나 자신 속에 있으며 나를 해치는 무서운 칼날도 나 자신 속에 있다. 이 두 개의 나 자신 중의 어느 나를 좇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217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였던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귀중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면서 신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추기경님은 그날 대담(2003년이엇던가. 새해를 맏아 동아일보에서 기획한 새해 특집으로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담)에서 내개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이 뭔지 안세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추기경님은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 도착하기엔 멀었소이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246-247


성경의 한 구절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거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러가.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사람의 정을 물리치지 말아라."  255


세속과 청산을 따져 무엇 하겠는가. 길상사건 대원각이건 굳이 어느 쪽이 옳은가 따져 무엇하겠는가. 봄볕이 비추면 꽃피지 않는 곳이 없지 않는가. 꽃피는 곳마다 부처 역시 살아나고 있는 것. 봄볕이 비추는 곳을 찾아갈 일이지 굳이 세속과 청산을 구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258


신문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성철 스님이 내린 법어가 실려 있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며 하늘과 땅이 무너진다 해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유형무형 할 것 없이 모든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들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함으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종말을 걱정하여 두여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원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러 온 것입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268


내가 "스님, 어느 책에선가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법정 스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진 모르지만 지금 새악으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77


법정 스님은 근대 불교계의 큰 어르신이셨던 효봉(1888~1966)의 애제자였다.

효봉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졌던 법기로, 우리나라 최초로 법관이 되었다. 36세가 되던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조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삶에 대해 큰 회의와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와 엿장수를 하며 3년간 방랑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인 38세에 불문에 귀의하셨던 늦깍이셨다. 법정 스님이 출가를 결정하고 여부를 묻자 효봉 스님은 생년월일을 묻고 간지를 짚어본 후에야 이를 허락하였으며, 훗날 새로 출가한 법정 사미만을 데리고 지리산 쌍계사 탑전(塔殿)에 가서 수행에 몰입할 만큼 법정을 각별히 아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의 일화 중에 한 토막.

어느 날 아침 공양 후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자 효봉 스님이 법정 사미를 부르며 빈 그릇하고 젓가락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법정 사미가 그릇과 젓가락을 가지고 우물가로 가자 효봉 스님은 설거지를 하며 버린 밥알과 시래기 줄기를 주워 담은 후 법정 사미가 보는 앞에서 밥알과 시래기를 물로 씻은 후 훌쩍 한 입에 들이마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출가해서 수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 아끼고 절약해서 시주한 사람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부자 살림이고 되도록 몸에 지니지 않는 무소유야말로 참으로 전부를 갖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법정 스님의 철저한 무소유는 바로 스승이셨던 효봉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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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재앙처럼 충격을 주는 책, 깊이 슬프게 만드는 책,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숲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언제나처럼, 즐거움과 도피를 위해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잊기 위해서도 읽는다. 반 시간만이라도 언니가 겪고 있는 현실을 잊기 위해 읽었다. 언니는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무자비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고통과 함께 무력감, 공포감이 뒤따랐다.  17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조용하지 않은 무덤>



내 경우는 갈수록 더 커지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을 가졌는가? 언니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삶의 카드는 왜 내게 주어졌으며, 난 이걸로 뭘 해야 하는가?

달아나기를 멈추어야 했다.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작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둘로 나뉜 나를 다시 합쳐야 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20세기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는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활용하고 싶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으로 되돌아가는 도피 말이다. 나는 책에 풍덩 빠졌다가 다시 온전해져 나타나고 싶었다.  35


나는 공책을 갖고 다니면서 내 생각들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난 교외의 이웃들을 염탐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공책에 쓰는 편에 더 흥미가 있었으니까.  37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고 한다. 독서에는 즐거움도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어떤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 가버릴 수 있다. 읽고 싶은 만큼 읽지 못할 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도피는 불가능하다. 청소해야할 먼지라든가 개켜야 할 옷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우유도 사야 하고 저역 식사도 마련해야 하며 설거지도 해야 한다. 하지만 1년 동안은 그런 일이 절대로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1년 동안 달리지도 않고 계획도 세우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1년 동안 '.... 하지 않기'를 하려 한다. 걱정하지 않기, 규제하지 않기, 돈을 벌지 않기. 물로 ㄴ우리 가족은 다른 수입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한 사람의 수입으로만 살아왔으니 한 해 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외의 지출은 뒤로 미루고 지금 가진 것으로 지낼 것이다.  43


내 계획에 따르면 매일 책 한 권씩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마흔 여섯 살 생일에 시작된다. 그날 첫째 권을 읽고 다음 날 첫 서평을 쓴다. 한 해 동아느이 계획은 단순했다.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일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전쟁과 평화>는 안 되겠지만 톨스토이의 최후작인 <위조 쿠폰>은 읽을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언니와 내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면 좋겠다.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동의했을 법한 책이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히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알 것이다. 그런 열성이야 당연히 좋지만, 어른들에게는 왜 매일 읽으라고 닦달하지 않는가? 왜 어른들에게는 매일 책 읽기를 권장하지 않는가?  44


사람들은 여기서 지금 살아간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들이 과거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주저 앉지 않고 즐거운 순간을 누리는 것을 부러워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을 회상하고 다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경험, 이미 살아본 삶이다.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종으로서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이 능력에 달려 있다(어떤 나무 열매는 먹지 말 것, 이빨 가진 큰 동물에게는 접근하지 말 것, 불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하되 건드리지 는 말 것등등). 하지만 우리 내면의 자아의 생존 역시 기억데 달려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예리한 후각을 가졌겠는가?  55


병이 위중하면서도, 자신도 조만간 죽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언니는 자신은 자살 충동을, 스스로 생명을 끊게 만드는 우울함에 대한 완전한 굴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끝내는 걸까?"

그녀가 옳았다. 절망에게 해줄 대답은 항상 있다. 장래에있을 아름다움에 대한 약속이 그것이다. 과거에 아름다움을 보았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안다.  62-63


뒤를 돌아보면 내 현재 삶의 전체가 보인다. 지금 있는 곳에 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아직 내 앞에 남은 삶에서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큰 그림, 넓은 전망.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알기 위해 뒤를 돌아봄으로써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64


'뒤돌아 보기'는 지혜를 얻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나도 나의 한 해를 계속할 것이다. 현재의 독서, 과거의 기억, 미래의 지혜이다.  65


나는 내가 찾은 모든 행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75


슬픔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향유는 기억이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진통제는 죽기 전에 존재했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그들이 되돌아오지 않고, 또 너무 일찍 죽은 사람에게 그들이 잃은 삶의 가능성을 모두 보상해주기에는 불충분하다. 하지만 기억은 회복력의 몸뚱이 주위에 구축되는 뼈대이다....

삶의 진실은 죽음의 불가피성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살았다는 경이에 의해 입증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로부터 삶의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그 진실을 승인한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복을 찾지 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온 삶의 가치, 산다는 것의 순전한 가치가 그것이다.  100



누군가의 어깨에 일단 올라앉은 죄책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 마틴 코릭 <우연히>



<우연히>의 첫머리에는 다음의 물음을 던진다.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면 소설의 주제는 뭔가? 그저 시간 때우기 용인가?" 하지만 그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위대한 문학의 목적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 있는 것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118


우리가 좋아하여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131



한 권을 끝내기 싫어 가슴이 찢어진 적이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고 한참 뒤까지도 계속 당신의 귀에서 속삭이고 있는 그런 작가가 있었는가?  - 엘리자베스 매과이어 <열린문>



아버지가 하신 말씀. "삶에서 행복을 찾지 말아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거든."  146


감옥을 방문한 동안 그랜트는 제퍼슨이 대모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상관없다고요." 

대모는 대답한다. "내게는 상관있어, 제퍼슨...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해지는 것. 다른 모든 존재 중에서 내게 중요한 하나의 존재. 뭔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어떤 것을 한 인물이 설명해줄 수 있다. 우리는 변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한 사람에 대한 욕망은 그 고유한 평가와 그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것과는 다르며, 애정과도 다르다. 욕망은 커졌다가 시들고, 애정은 오랜 헌신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넌 내게 중요해"라는 것은 긴 기다림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부터 쭉 너를 데려가고, 안아주고, 갈채를 보낼 것이다. 너는 내게 의지할 수 있다. 너를 보살피기 위해 내가 여기 있을 것이다. 네가 가고 난 뒤에도 난 여기서 너를 기억할 것이다.  163-164


잊힌다는 것은 용서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172


온갖 종류의 인간의 경험을 목격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하는 것, 누가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규정하는 데 그것은 필요하다.  177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나쁜 일이 오더라도 그것이 부담은 될 수 있겠지만 올가미는 아닐 것이다. 책은 삶을, 내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제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인간의 회복 능력의 대가이자 증거하는 사실을 이해한다. 

상상한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경험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않을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상이한 개릭터들과 그들의 선택이 낳는 결과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삶의 슬픔과 기쁨을 영위하는 새롭고도 분명한 방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178


욕구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읽고 있던 책에 따르면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자극의 여러 지점에서 온다. 말은 가슴을 쓰다듬는 손길만큼이나 확실하게 열정을 휘저어놓는다. 하지만 욕구를 붙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욕구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 오며, 두 사람 사이의 연대를 복구시키기도 한다.  201


언니를 기억함으로써 나는 가장 지독한 죽음에도 저항하는 보증서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재미있는 행동을 기억하면서 웃고, 친절함을 생각하면서 미소짓고, 내일과 앞으로의 나날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기억이 있는 곳에 진공은 없다.  210


인간은 희망과 사랑이 있는 곳에서 성장한다.  217


최악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라는 것이다. 실망에 맞서는 회복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221


언제든 좋다. 무엇이든 좋다. 모든 게 다 좋다. 

내 반응은 내게 달려 있다. 적절한 종결이란 삶이 그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삶이 주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삶이 빼앗아가는 것에 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언니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반응 역시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  246


우리는 질서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한다. 책에서든 친구에게서든 가족에게서든 아니면 믿음에서든 말이다. 질서는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는 삶이 제시하는 것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의해 창조된다. 질서는 모든 물음에 답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발견 된다.  247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을 서로 나누는 분열에 다리를 놓아주는 친절함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비슷하다.  256



무슨 책이든 읽으라. 그것을 다시 집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렇게 하라.  - 닉 혼비 <집안일과 더러움의 대결>



매일의 책을 읽는 것은 항상 기쁨이었다. 독서의 한 해 내내 하루도 아픈 적이 없었다. 즐거움에 흠뻑 젖은 덕분에 면역성이 생겼다.  259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삶의 유일한 의미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삶의 한 가지 사실이라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남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는 것들이다.  278


책을 통해 나는 내 삶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있는 방법을 배웠다. 

나 자신과 주위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힘든 짐'이 그저 지나가기를 애쓰도록 말이다.  279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슬픔은 질병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며, 우리가 삶 그 자체를, 그 모든 경이와 전율과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긍정이다. 슬픔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살아가는 것이다.  280


"우리는 경이감 속에서 살고, 열정과 염려의 순환 속에서 타오른다." 나는 시인 캐럴린 키저의 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안다.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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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7


지금도 드센 성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시발'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부인 듯하다.  13


아버지는 숙맥이 맞았지만 무모하고 모험심 강한 숙맥, 말하지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숙맥이었다.  15


책은.... 읽으려다 이내 때려치웠다. 어떤 상황에서건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는 거였다.  35


"어... 나는. 애가 꿈이 있는 아이였음 좋겠어. 너는?"

어머니가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기대를 한껏 담아 말했다.

"음.... 나는 얘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어머니를 나무랐다. 

"야, 그거 쉬운일 아니다."

어머니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왜? 아기들한테는 그것만큼 쉬운 일이 없을걸? 그리고 우기가 그렇게 만들면 되잖아."  36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응."

"뭘 잘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말이야."

"응."

"건강하지만 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잠시 눈을 굴렸다. 그러곤 너무 차분해서 어딘가 슬프게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거면 되겠다."  37


나의 늙음은 텅 빈 노화였다.  53


두 사람은 배워야 할 게 많았다. 한 존재를 먹이는 법, 재우는 법, 씻기는 법, 그리고 이해하는 법까지 ... 마치 내가 아닌 자기들이 태어난 양,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나하나 깨우쳐가야했다.  60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

자기가 보지 못하 ㄴ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79-80


"이런 말 하긴 좀 뭣한데, 세상엔 자기 부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효도하는 살마들도 많아."  90


"그럼 얼마 동안 아팠던 거지?' 

"음, 십사년요."

"그래, 십사년."

"......."

"근데 그동안 씩씩하게 정말 잘 견뎌왔지? 지금도 포기 않고 이렇게 검사받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편도선 하나만 부어도 얼마나 지랄발광을 하는데. 매일매일, 십사년.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  101


내가 새끼 노릇 하느라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내 어휘가 얼마나 풍부하고 내 문장이 얼마나 유려한지 알면 두 분 모두 깜짝 놀랄 터였다.  107


'데인 것처럼...' 맞아.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다고 했어요.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뭐가?"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134-135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이 네 속에 가득 구겨져 있다고.  183


"제가 저번에 물어봤거든요? 형! 형은 오토바이 탈 때 무슨 생각해요?하고."

"어."

"그랬더니 '아무생각안해' 그러더라고요."

"거봐라! 쯧쯧..."

"그래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그 형이 비장하게 답하더라고요."

"뭐라고?"

"생각하면 죽으니까....하고."

"허, 참!"  206-207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보는 습관이 든 거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물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더 성급해지고 경솔해져도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상대가 장씨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대답 속엔 누군가의 삶이 배어 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당신들의 시간을 조금 나눠갖는 기분이었다.  208


'죽음'보다 나쁜 건 '늙음'이다.  211


둘 중 하나를 선택했으면서 아무것도 안 가진 척하는 것도 기만일 수 있다고..  215


엄마와 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던 일상적인 풍경이야. 그때 우리는 '이웃에게 희망을'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어. 근데 엄마가 숟가락으로 국을 뜨다 말고 갑자기 그런말을 하더라?

저 사람들이 저렇게 된 데는 아무 이유도 없는 것 같지 않으냐고. 나는 영문을 모른채 가만 고개를 끄덕였지. 그랬더니 엄마가 그렇다면 우리 식구한테도 아무 이유 없이. 또 근거없이 저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하더라. 자긴 그게 너무 불안하다고.  216


어쨌든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게 나를 두근대게 해.  272


"그럼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287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 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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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펴냄 | 2003-10-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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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살아갈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잉태된 때부터 삶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가지려해서 가진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것이다.

의지의 본성은 무엇일까? 그 의지를 꺽어버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신변원이란 특수한 공간의 설정으로 '미쳤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로써 우리가 살아갈 의지를 무엇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미친것은 미친거일 뿐이다. 어떻게 미쳤는가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어쩌면 똑같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미친 사람이, 미쳐있는 것이 더 나은 상태일 것이다.


누구나 동일해 지기를 원하는 것은 그렇게 할 때 동일함에 안전감을 얻게 되기 때문일까 

우리는 그렇게 교육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동일함은 비교 대상이 존재행야만 가능한 단어이기에,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결국 스스로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게 만든다.


경전의 내용을 자주 담아내는 저자는 '항상 저질러버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포기했던 실수들을 저질러가며 공포가 다시 엄습해올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죽지도 기절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기껏해야 날 지치게 하는 게 고작일 그 공포와 맞서 싸워가며. 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현자가 되기 위해 미치광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을 거야. 난 그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 거야!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구약성서를, 회교도들에게는 코란을, 유대인들에게는 토라(모세 오경, 모세의 율법)를, 무신론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들을 인용해줄 거야... 그들이 남긴 글들은 모두 '살아라!'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 똑같은 잎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부인이 다르다는 걸 미친 걸로 생각하죠. 그래서 빌레트에서 지내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살아야 하게 창조된 인간이며, 다르게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몫을 정하고 있을까

자신의 삶에 대한 몫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갈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에 자신의 몫이란 것이 존재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각자의 것이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서의 결정에 의한다.

우리가 삶을 좀더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볼 때, 아니 좀더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는 자신을 찾는데 도움을 받지 않을까..

'사실,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젊음이란 ... 부딪힘이다.

저항에 부딪히는 것 자체가 우리의 열정을 일깨우고 그 열정이 자신의 심장에 열기를 불어 넣는다.

그건 각자의 생활과 환경에서 모두 틀릴 수 밖에 없으니..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몫은 존재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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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무슨 짓을 해서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죽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각자가 자기 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27


그녀는 겁이 나기 시작햇다. 약을 먹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숨이 끊어지는 것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본 뒤 죽음을 기다리며 닷새나 한 주를 보내야 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48


"여긴 감옥인가요?"

"아뇨, 정신병원이에요."

"난 미치지 않았어요."

간호사가 웃었다.

"여기선 다들 그렇게 말해요."

"좋아요. 그럼 난 미쳤어요. 그런데 미쳤다는 게 도대체 뭐죠?"  50


미쳤다는 게 뭐지? 사람들이 그 단어에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51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정신분열증 환자, 성격이상자, 편집광처럼 말이야. 다시 말해 뭇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지."(제드카의 말)

"당신처럼요?"

"하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고 그 둘의 결합만 있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 또는 대양 저 너머에 절벽이 아니라 다른 대륙이 있다고 확신햇던 콜럼버스, 또는 인간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장담햇던 에드먼트 힐러리, 또는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해냈고 다른 시대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던 비틀스, 아마 너도 이미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을 거야.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았어."  53


".. 난 미친 여자로 남고 싶거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거든. 바깥에, 빌레트의 담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

"같은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요."

"그래, 바로 그거야.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자신을 정상이라고 믿지. 나도 이제 그 우물물을 마신 척할 거야.  55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67


이제 이 삼 일만 지나면 그녀는 이빨을 닦을 필요도, 머리를 빗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그녀는 가끔씩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하루하루가 지겹도록 똑같았던 건 바로 내가 원했기 때문이라는 걸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아마도..."  71


최근에 발견된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은 인간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이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집중하고, 자고, 먹고,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는 능력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물질이 아예 없으면, 인간은 절망, 비관주의, 자신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느낌, 과도한 피로, 불안, 결단력 결여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완전한 무기력 상태, 나아가 자살에 이르는 만성적인 우울에 빠져들었다.  82-83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92


"도대체 뭐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지?"

"아마 비겁함이겠죠. 아니면 잘못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영원한 두려움이거나. 몇 분 전만 해도 난 행복했어요.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죠. 그런데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다시 깨닫게 되자. 더럭 겁이 났어요."  97


그랬다.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많은 일을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고 나갔다. 하지만 모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과만 하면 간단히 끝날 불화를 계속 끈다거나, 관계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끝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허약했고, 학업이나 운동시합에서 결코 두드러진 성적을 거둔 적이 없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도 못했다.

그녀는 자잘한 결점들과 싸우느라 지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독립심 강한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내심으로는 같이 지낼 사람을 열렬히 갈구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녀는 대개 홀로 밤을 보냈다. 수도원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녀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는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에게는 자기 자신-누구나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데 써야 할 힘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같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98-99


교육은 우리에게 오로지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갈등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베로니카는 모든 것을, 특히 자기 속의 수없이 많은 베로니카들. 매력적이고, 끼로 넘치고, 호기심 많고, 용기있고, 언제든 위험을 무릎쓸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베로니카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온 삶의 방식을 증오했다.  100

 

교도소가 죄수를 훈화하기는커녕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도록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병원도 입원한 환자들이 모든 것이 허락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세계를 점점 더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108


이고르 박사는 캐나다-최근 미국의 한 신문이 전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인정한-에서 온 한 연구 논문을 집어들고 읽어내려갔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15세에서 34세 사이 인구의 40%, 

35세에서 54세 사이 인구의 33%,

55세에서 64세 사이 인구의 20%가 

이미 어떤 종류의 정신질환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캐나다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현재 어떤 종류의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고, 여덟 명 중 한 명은 일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정신장애로 변워에 입원하게 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훌륭한 시장일세. 여기보단 백 번 나아! 인간들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불행해지는구먼." 그가 중얼거렸다.  111-112


"넌 미친 사람들의 단순한 장난에도 주눅이 들고 말았지. 왜 더 멀리까지 가보지 않았어? 네가 잃을 게 뭐가 있는데?"

"내 자존심이요. 날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자존심이란 게 뭔데? 모든 시림들이 널 착하고 예의 바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으로 여기길 바라는 게 자존심이야? 자연을 봐. 동물 다큐멘터리를 더 자주 보라구. 짐승들이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해봐. 우리는 모두 네가 그 사람의 뺨을 때리는 걸 보고 통쾌해했어."  142


"우리 모임(형제클럽)은 금지된 모든 것들을 체험해보기로 결정했어.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줄곧 정부는 우리에게 정신적 탐구는 인간을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이탈시킨다고 가르쳐왔지. 하지만 대답해봐.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현실적인 문제 아냐?"  143


"젊음이란 그런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149


그는 빌레트에서 달아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겉보기에는 아주 엄격해 보여도, 빌레트의 보안에는 많은 틈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오면 더이상 바깥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틈들은 틈이면서도 틈이 아니었다.(에뒤아르)  211


사실,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216


"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에뒤아르. 항상 저질러버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포기했던 실수들을 저질러가며 공포가 다시 엄습해올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죽지도 기절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기껏해야 날 지치게 하는 게 고작일 그 공포와 맞서 싸워가며. 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현자가 되기 위해 미치광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을 거야. 난 그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 거야!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구약성서를, 회교도들에게는 코란을, 유대인들에게는 토라(모세 오경, 모세의 율법)를, 무신론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들을 인용해줄 거야... 그들이 남긴 글들은 모두 '살아라!'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 네가 산다면, 신께서도 너와 함께 살리라. 네가 위험을 무릅쓰길 거부한다면, 신께서도 하늘로 물러나 철학적 공론(空論)의 한 주제로 남으리라..."  217


네 몫의 삶  219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죽어.  232


"제가 나았나요?"

"아니요.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게 심각한 병인가요?"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그건 신경증, 정신장애, 편집증을 유발시켜요. 자연을 왜곡하고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 똑같은 잎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부인이 다르다는 걸 미친 걸로 생각하죠. 그래서 빌레트에서 지내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부인은 모두와 닮아 있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합니다."  241


남자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미친 짓은 바로 사랑이야.  275


한 영국 시인이 쓴 시. "언제나 똑같은 물을 품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넘쳐 흐르는 샘처럼 되라.  282



옮긴이의 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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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인상적인 표현이다.
'세계는 지금처럼 주유한 적도 없었지만 지금처럼 가난한 적도 없었다'
(이 표현을 보면서 물질적인 기아에 대한 생각과 정신적인 기아에 대한 생각이 함께 떠오르기도 하였다)


프랑스 인문 예술 주간지인 <La Vie 라비>의 편집장을 지냈던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기아'에 주목하고 2005년부터는 절박한 기아의 실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첫페이지에서 책은 기아추방행동(ACF, Action Contre la Eaim)의 지원을 받아 출판될 수 있었다는 표현처럼 그는 좀더 체계적으로 기아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가능하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려 노력한것 같다.
읽는 이로 하여금 실상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극적인 요소는 없다. 그러면서도 서로다른 주장을 하는 내용들을 함께 다룸으로 읽는이로 하여금 편파적이 되지 않도록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당연한것일지 모르지만 데이터에 의한 자료와 실제적인 문제점이 한 두가지의 요인이 아니라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다루고 어쩌면 실제적인 현 주소를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극적인 요소가 여러가지 들어있고 데이터와 경제문제들(특히 신 자유주의체제의 문제성)을 통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기아가 발생한 이유와 예전의 기아와 현재 기아의 차이점 그리고 현대의 상세한 데이터 등을 조금은 더 체계적으로 다루어 주고 있다. 
이 두 책을 함께 읽는다면 기아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하고 생각해볼 점들을 머리속에서 그려볼 수 있을 듯싶다.

기아의 해결에 대한 모범 답안은 어쩌면 없을 수 밖에 없다.
발전하는 세계화와 기아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절대 정비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열악한 자연조건 때문에 기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인간들 때문이다.
책은 '무조건 이래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하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개인에게 호소한다.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 가장 마지막 문장은 나에게는 가장 와 닿은 표현이다.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174)

문득 이 표현은 이렇게도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말을 듣지 않기위해 관심 자체를 끊어버리면 되는 것, 삶이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한다고...
또는 당장 내 주변도 돌아보기 힘든 세상인데 ..
또는 <왜 ..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표현처럼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십자가 있잖아'...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눈 앞만 보고 있는 아니 눈 앞에 것만 보게만드는 세상에 세뇌되었기 때문일것이다.
멀리 보라. 
관련 책들이 한결같이 언급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이런 고통은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니 더 중요한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후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음에도 피한다면 그것만큼 아둔한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 철학자의 표현처럼,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위해 주저 앉아서 피한다는 생각이 들어 꺼림직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앉은 자리에 있는 작은 꽃을 바라보며 그것에 집중하는 그런 모습으로 숨어버린다면 그 고통은 점점 더 커져서 어느 순간 그 앉아 있어도 피할 수 없고 피신처처럼 보이던 작은 꽃 마저도 사라져 그때서 '아! 그때 반응을 했더라면 지금의 고통의 이십퍼센트도 없었을 걸'하며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후회하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표현은 인간의 게으름과 회피정신을 야단친다. 
생각해야만 할 문제이다.



추천서문 - 기아에 대해 아는 것, 그것이 행동의 시작이다. (장 크리스토프 뤼팽, 의사이자 작가며, 기아추방행동의 명예 회장)
일부 사람들은 기아를 진부하다 못해 낡아빠진 1960년대 화제로 치부한다. 
통계수치를 들여다보면, 기아가 그런 인식과는 반대로 최근 수 십년간 가장 주목해야 할 (가장 비극적인) 불변상수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7
모든게 바뀌었는데 기아는 그대로다.  8
기아는 ... 인간 사회와 나란히 가면서 그 사회의 불평등을 폭로하는, 현재 엄연히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며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9
기아 문제에 있어서는 아는 것, 바로 그것이 행동의 시작이다.  11


1부 기아라는 말 뒤에 숨은 잔혹한 현실 
모든 사람은 식량을 포함하여 자신 미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유지하는 데에 충분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세계인권선언 제25조(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채택)  23
2000년 9월 열린 새천년개발목표(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에서 첫째로 내건 정치적 약속은 세계의 절대 빈곤과 기아를 감소시키겠다느 것이었다.
'지금부터 2015년까지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세계 인구 비율과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율을 절방느로 줄이고,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의 비율 역시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일 것을 결의한다.'
이 말은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작성된 세계인권선언에서부터 포함되었던 내용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세계 인구 일곱 명 중 한 명은 식량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  27
'FAO 사무총장 자크 디우프가 연구서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개발도상국의 기아 인구는 1990~1992년간 산출된 기아 인구에 비해 300만 명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통계 오차로 봐도 될 만큼 너무나 적은 숫자다.' -<세계 식량 불안의 현황, 세계 기아추방, 세계 식량 정상 회의 10년 결산>, 2006년
* 세계 식량 정상 회의의 목표는 밀레니엄 정상 회의의 첫 번째 목표보다 더 야심적이었다. 왜냐하면 세계 인구의 지속적 증가로 인해 영양 결핍 인구 비율이 절반보다 훨씬 더 많이 감소되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때문이다. 새천년개발 제1목표가 2015년에 달성된다 하더라도 영양실조 인구는 여전히 약 5억 8,500만 명이 남게 되며, 세계식량정상 회의의 목표가 달성되면 그보다 1억 7,300만이 적은 4억 1,200만 명이 남게 된다.  29





FAO가 집계한 후진국 영양 결핍 인구는 1990~1992년 중에는 8억 2,300만이었고 2001~2003년 중에는 8억 2,000만이었다. 사실상 같은 수치나 다름없긴 하지만 인구에 따른 영향이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하는데, 같은 시기의 세계 인구가 1996년 58억에서 2006년 66억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5억 8,200만 명은 2015년에도 여전히 기아로 고통받을 것이고, 1996년 정상 회의의 목표가 달성된다 하더라도 4억 1,200만 명이 고통받을 것이다.  32
세계 인구 일곱 명 중 한 명은 배고플 때 먹지 못하며, 20억 명은 철분이나 비타민A, 요오드, 아연 같은 미량영양소 결핍에 의한 '보이지 않는 기아'에 시달린다.  33
1년에 사망하는 약 6,000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아나 영양 결핍에 따른 질병으로 죽는다. 따라서 기아 추방은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이다.  35
오늘날의 대(大)기아는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위기의 산물이다.  38
현재 우리는 기후변화를 탓할 수 없는 반복되는 기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크메르루주 정권(캄보디아 공산당, 현재는 민주 캄푸챠당이란 이름)의 캄보디아나 김정일 정권의 북한에서 국민을 굶주리게 만든 것은 바로 중앙정권이다.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에서는 경쟁 세력들간의 내전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지아가 자연의 힘에 의한 대량 참사인 것은 여전하지만, 가장 비극적으로 발현되는 기아의 뒤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모가 자리하고 있다.  39
현재 WHO의 전문가들은 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2,100~2,200킬로칼로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계, 즉 기초대사량은 1,200~1,300킬로칼로리로 본다. 서구 국가의 '표준적인' 1일 열량 섭취량은 성인은 2,400, 청소년은 2,900, 7세 아동은 1,830킬로칼로리로 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그 수치는 평균 1,700으로 내려간다. 그런 '1일 열량 섭취량'은 적어도 기초대사량에 필요한 에너지의 1.4배는 되어야 하며, 또한 탄수화물 55%, 지방 30%, 단백질 15%의 비율로 구성되어야 이상적임을 고려해 균형있고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기아는 단지 음식을 충분량 먹지 못하는 상황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FAO가 집계한 현재 세계 영양 결핍 인구 약 8억 5,400만 명 가운데 92%가 그런 '만성 기아'에 놓여 있으며, 나머지 8%는 기근에 따른 '급성 기아'를 겪고 있다.  42
질적 접근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결핍으로 나타나는 많은 수.
마라스무스에 걸린 아이는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비쩍 마른 몸에 '늙은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콰시오커(kwashiorkor)는 피부 손상을 동반한 양측성(兩側性) 부종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아이들은 마라스무스와 콰시오커가 혼합된 소모성 콰시오커 증상을 보인다.  47

2부 기아는 도대체 왜 발생하나?
굶주림은 분명 일련의 요인들이 빚어낸 결과다.  59



영양실조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찰하는 접근법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둘다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 
하나는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에게 남는걸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73
기아에 이르는 과정에서 숙명적인 요소는 별로 없다. 
기후, 메뚜기 떼의 습격, 거듭되는 가뭄은 우선 보기에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영양실조의 원인은 대부분 인간의 공모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해당 국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기아의 개념적 도식의 테두리 안에서 연구하면 유익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오랜분쟁이나 민족적 종교적 차별이 원인이 된 경우도 드러난다. 오늘날 식량 위기의 대부분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요소가 원인이다.  75-76
기아에 대한 개입은 긴급한 상황뿐만 아니라 모든 개발 영역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79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근근이 살아가도록 방치되어 있는 이들을 구해내는 일은 세계적인 결속을 통해서만 기대할 수 있다.
국민들 앞에 약속한 진보를 위해 일할 책임은 각 개발도상국 정부에게 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 국제사회의 지원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93
기아 문제는 인류 발전을 위한 전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94

3부 세계 곳곳에 포진한 기아의 현주소
영양 결핍의 세계를 1,000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마을로 가정해 본다면 주민 248명(전체 인구의 4분의 1, 2억 1,200만 명)은 인도 사람일 것이고 241면(역시 4분의 1, 2억 600만 명)은 아프리카 사람일 것이다. 나머지 절반 중에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소속이 190명(1억 6,200만 명), 중국 사람이 176명(1억 5,000만 명), 중남미나 카리브해에 소속된 사람이 61명(5,200만명), 근동이나 마그레브에 소속된 사람이 45명(3,800만 명)일 것이다. 29명(2,500만 명)은 구소련 같은 체제 전환국 출신의 사람이고, 10명(900만 명)은 선진국 출신의 사람이다.  97



다르푸르, 문제의 땅
네팔, 마오주의와 봉건주의 사이
몽골, 기후적 기아?
니제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기아로의 복귀
라이베리아, 거듭되는 위기
미얀마, 민족 차별이 부른 기아
아프가니스탄, 실추된 인도주의
(소제목들만 올린다. 실제 내용은 읽어보거나 관련서적들에 다양하게 올라와 있기에 직접 읽어볼 때 상태의 심각성이나 실질적인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원인과 새로운 원인이 중첩되어 있는 오늘날 새로운 기아의 모델이다.  115

4부 기아와의 전쟁
수출을 위해 세계시장을 자유화하려는 선진국과 지역 농업을 지키려는 후진국 사이에 뚜렷한 대립이 생기기에 이른다.  135





한편에서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또 다른 한편에서 주장하는 식량 주권.
오늘날 재해 중의 재해에 해당하는 기아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은 그 두 가지 용어 안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41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세계화 체제의 중심을 부가 아닌 빈곤에 다시 맞추어야 한다.  144
현재 좋은 반응을 억고 있는 마이크로크레디트와 공정무역이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하지만 아직도 미미한 정도이다. 
선진국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연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공정 무역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후진국 생산자들을 실제적으로 돕는 방법에 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154
일상적인 테두리 안에서든 인도주의적 위기의 테두리 안에서든, 피해가 큰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160
(조제된 치료용 우유 F100, 포동포동 살찐 땅콩이라는 뜻의 폴럼피너트같은 고열량 식품으로 대체하여 영양실조를 치료하는등의..)

2015년에 실현하려는 새천년 목표의 첫 번재 약속인 기아의 제거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선택이다.
물론 개발도상국이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낭비, 부패, 독재, 파벌주의 역시 빈곤과 영양실조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중의 활동에 속하며 국제사회의 의무인 동시에 후진국 정부들의 의무다.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이다.  모든 인권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66-167

맺는글 -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
'세계 8억 5,000만 명의 사람들이 굷주림에 절규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로 당신은 어떻습니까?' - ACF 홈페이지(www/actioncontrelafaim.org)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169
기아로 고통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도 기아의 존재는 논리에 맞지 않는다.  171
'사람들의 생계 수단을 보전, 보호하고 성장과 다양화와 발전을 위해 자체적인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개발도상국 정부들의 개입 원칙이 무역 자유화와 규제 완화, 민영화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 1996년 식량 정상회의 10주년 기념 선언  172
그러므로 행동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  174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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