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 답게 살기
나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이 책을 썼다.

제1장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이 즐기는 놀이에는 한계가 없다.

문제는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니다. 왜,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했고 그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물질이나 지위,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밀고 나갔다.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부딪쳤다 인생이 성공했으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한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가면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세상은 제 갈 길을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재능의 본질은 즐기면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가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삶의 의미는 사회나 국가가 찾아주지 않는다. 찾아줄 수도 없고, 찾아주어서도 안 된다.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사람 자신에게 있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가방끈’이 길지 않아도 된다. 재산이 적어도 상관없다. 나이도 관계없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 타인의 위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도 개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지 삶의 환경을 조금 덜 냉혹하게 만들 뿐, 그 자체가 내 삶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자기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임이든 사회의 책임이든, 닥쳐온 고통은 일단 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세상을 원망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다. 누구도 그 짐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 각자 이겨내야 한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제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철학자 밀의 주장.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훌륭한 삶, 품격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삶과 함께 죽음도 알아야 한다. 죽음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삶을 망칠 수 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문명이 억압이라는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욕망을 억압하면서 규범을 따르는 일이 참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문을 더 넓게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범은 자기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따르면 된다.

칸트(Immanuel Kant)에 따르면 존엄한 것은 ‘가치(value)’를 따질 수 없다. 어떤 것의 ‘가치’는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는지, 인정한다면 얼마만큼 높게 평가하는지에 좌우된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자유의지를 발현할 때 지켜야 할 규칙 또는 도덕법이 있다. 칸트는 이 규칙을 이성이 내리는 ‘정언명령(Kategorische Imperativ)’이라 했다. 그는 경험의 도움이 없어도 사람은 이 규칙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도덕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준칙이라야 한다.” “둘째,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로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존엄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옳게 발현하려면 이 두 가지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사지가 마비된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죽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굶어서 죽는 방법은 택하고 싶지 않았다. 굶는 것이 특별히 나쁜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사지가 마비된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살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오로지 그것만이 허용된다면 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강제에 굴복하는 죽음은 존엄하지 않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가 원하는 벙법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 자기에게 수면제를 제공할 경우 형법의 자살방조죄로 처벌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가상 상황이 아니다. 그런 남자가 정말 있었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사지가 마비된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자유의지에 따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끝내고 싶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억압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정당한 권리이다. 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 역시 정당하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처벌하지 마라.’ 이 남자는 정부와 의회에 ‘안락사(安樂死)’를 허용하라는 입법청원을 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수많은 종교지도자, 의사 , 지식인들과 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된 여인이 몰래 가져다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그의 이름은 라몬 삼페드로(Lamon Sampedro), 스페인 남자였다. 그는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라는 책을 남겼다.
스물다섯 살에 물이 빠진 해변에 떨어져 일곱 번째 경추가 부러지는 사고가 없었다면 라몬 삼페드로는 열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스물 두 살때부터 노르웨이상선을 타고 세계 마흔아홉 군데 항구를 누볐던 이 청년은 여자 친구와 약혼을 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다가 해변가 바위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리고 정밀검사와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죽을 수도 없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라몬 삼페드로는 이때부터 30년 동안 똑같은 하루를 살았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침대에서 책과 신문을 읽고, 침대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침대에 누운 채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에 누워 창문으로 하늘과 바다를 내다보았다. 라몬은 휠체어 타기를 거부했다. 전신이 마비된 삶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죽기만을 원했지만 물과 음식을 끓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라몬의 투쟁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만들었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편지가 쇄도했다. 교황을 비롯한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설득하는 편지를 보냈다.  저명한 지식인들이 라몬의 생각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스페인 정부와 의회, 법원, 인권재판소는 심리를 회피하면서 대책 없이 시간만 끌거나 다른 기관에 책임을 떠넘겼다. 라몬은 펜을 입에 물고 편지를 쓰고 언론에 기고하였다. 방송에 출연해 자기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1995년 그는 이렇게 쓴 편지와 시, 산문을 한데 묶어 책을 냈다. 여기서 라몬 삼페드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휠체어를 타든 목발을 짚든 지팡이를 짚든 간에 그 삶은 언제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사라지면, 그래서 그것을 이성으로 깨닫게 되면 그때가 죽을때인 거지요. 전 지금처럼 살아가는 시간이 과연 저에게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이, 아주 많이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고통은 아무 가치가 없고 제 고통의 원인 역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제때 죽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면 그 아픔은 인간적인 수준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죽는다는 건 단지 그런 거예요. 태양이 제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새겨두는 것처럼 각자 가지고 있는 좋은 추억을 이 세상과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에 남겨두는 것, 잠드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슬픔도 원망도 없이 그저 피곤에 지쳐 고요하고 평온하게 눕는 겁니다. 그러나 죽음을 그렇게 느끼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인간적이길 바란다고 할 만큼 굉장히 자유롭고 선해야 하겠지요. 안락사, 또는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려면 진정으로 인간과 삶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선의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를 닦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fairness)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끝없이 “왜?”를 쏟아내는 아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더 창의적인 아이들은 덜 창의적인 아이들보다 부모를 더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의 규범으로 길들이면 아이는 호기심을 버리고 창의적이기를 그만둔다. 어떤 부모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자식에게 줄 수는 없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훌륭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부모만이 그것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어로만 소통하는 존재가 아니지만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언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을 하기 전에 아이들은 먼저 말을 알아듣는다.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문장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아이의 뇌 속에 음성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과 신경세포가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중해서 듣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을 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말과 더불어 진행된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한다. 부모가 반쪽짜리 ‘아기 말’을 쓰면 아기의 생각도 반쪽짜리가 된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큐가 높고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있는게 아니다. 사람의 경쟁력은 인지적,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 능력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삶에는 인과관계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일어나는 일이고, 일단 일어나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도척이 개 범 물어갔다”는 속담이 있다. 나쁜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우리 어머니가 쓰던 속담이다. 그 이름이 수천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은 도척은 누구인가? 도척은 중국 춘추 시대 혼란기를 주름잡았던 살인강도단 두목이다. 부하 9천 명을 거느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힘이 약한 제후의 성을 공격해 재물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했다. 사람을 죽여 간을 날로 먹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런데 도척도 나름 도(道)를 깨달은 자였다고 한다. <장자> [외편]에 따르면, 부하가 도둑질을 하는 데도 도가 있는지 물었다. 도척은 어디에 간들 도가 없겠느냐면서, 다섯 가지 도를 갖추지 못하면 큰 도적이 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남의 집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맞히는 것이 성인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이 의로움이다.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것이 지혜이다.
고르게 나누어 가짐이 어짊이다.

夫妄意室中之藏 聖也 (부망의실중지장 성야)
入先 勇也 (입선 용야)
出後 義也 (출후 의야)
知可否 知也 (지가부 지야)
分均 仁也 (분균 인야)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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