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여행을 떠나며 - 장소보다는 맛과 향에 가까운


인생은 당신이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 닐 도널드 월시  10


소설가 배명훈은 "영화든 술이든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정교한 눈금으로 대상을 보고 한번 정교해진 눈금은 쉽사리 무뎌지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랍의 어느 격언에 따르면 인간은 '움직일 수 없는 사람'과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11


무미건조하게 산다는 것은 감방 속의 삶이다. 삶이란 교실이고 권태는 자습 감독관이다. 그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열광할 만한 일에 몰두해 있는 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즉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뇌수를 삼켜버린다. - 루이 페르디낭 셀린드 <밤 끝으로의 여행>  16


우리네 인생은 시작은 다르지만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확실한 건 죽을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18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은 타바론 차는 티 소믈리에가 여러 가지 차를 섞어 그 손님만의 향을 만들어주는 차라고 합니다. 저도 '장소'라는 재료를 섞어서 저만의 여행을 만들어보았습니다.  21




하나. 행운 - 행운은 길을 벗어나길 바란다


패키지여행이 싫다며 자유여행을 떠나보지만 우린 결국 <론리 플래닛>을 철석같이 믿거나 스마트폰으로 쉼 없이 검색합니다. 뻔한 길을 가면서도 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여해은 어쨌든 달라야 하기에 허풍만 늘어납니다. 낚시꾼들이 자기가 잡은 물고기가 더 크게 보이게끔 카메라 쪽으로 팔을 쭉 뻗어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훈훈하게 맘리합니다. 하지만 <론리 플래닛>을 버리고 블로그에 소개되지 않은 길로 가야 '초행자의 행운'이 찾아옵니다. 행운은 우리가 길을 벗어나길 바랍니다.  36-37




둘. 기념품 -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오래간다


기념품을 뜻하는 Souvenir라는 말은 '특별한 시간과 경험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의 라틴어 subvenire를 어원으로 둔다고 합니다.  71




셋. 공항+비행 - 여해의 예고편을 맛보고 문턱을 넘다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히어로 블랙잭이 한 말-"몇 번 말해야 알겠어? 과거는 바뀌지 앟아. 포기해. 그렇지만 말이야.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103


비행기는 허공에 떠 있는 시간의 95퍼센트는 진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조종사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 바바라 애버크롬비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

'계획을 세우는 데 온통 힘을 써봐야 네 인생의 5퍼센트밖에 도움이 안 되거든. 그러니 범퍼카처럼 살아. 벗어나면 그때 바로잡아도 늦지 않아. 아니 그 방법밖에 없거든.  105




넷. 자연 - 또다른 빛과 색을 찾아서




다섯. 사람 -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거울


헬렌  니어링도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당혹스러울 만큼 평범한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것이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베푸는 가장 큰 호의는 역시 웃음이었습니다.  172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쪽 사람들은 "배고파?" "목말라?" "어디 가려구?" "아픈 데는 없어?" "기분 괜찮아?" "즐거워?" 처럼 꼭 필요한 것만 묻고 바로 해결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면 "몇 살이야?" "어디 살아?" "가족은 어떻게 돼?" "무슨 일 해?" 처럼 이른바 호구조사부터 합니다. 타고난 여행자인 어린왕자도 어른들은 나이나 몸무게, 아버지 수입 같은 숫자만 좋아할 뿐 정작 중요한 건 묻지 않는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주위에서 "그 애 목손리는 어때?" "무슨 놀이를 좋아해?" "나비를 수집하니?"라고 묻는 법은 결코 없다는 겁니다.  176


젠틀하다는 건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단 몇 분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189




여섯. 음식 - 씹은 만큼 상상한다네


여행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길을 떠나면 가장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물과 음식입니다. 낯선 사람보다 물갈이가 무섭고 절벽 사이에 걸쳐 있는 흔들다리보다 샹차이(香菜 향기향 나물채)에 더 몸서리칩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일수록 뭘 씹고 어디까지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과냄새도 걱정거리입니다. 뭔가 이상한 걸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입맛부터 떨어집니다. 인도네시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봉지와 일회용 그릇 쓰레기를 보며 수책구명속 머리카락이 떠오른다면 그날 점심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이란 비위와의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199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 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가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222




일곱. 방송 - 두 눈으로 경험하고 외눈으로 기록하기


마셜 맥루언은 매체에 빠진 육신 없는 인간들이 등장하리라는 걸 이미 1960년대에 예견하였습니다. '앤젤리즘Angelism'이라는  말로 정의하는데 이런 육체와 분리된 '전자적' 인간은 환상과 꿈 사이 어딘가를 좋아하고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합니다. 앤젤리즘에 빠질수록 페로몬이나 목소리와 몸짓, 인간관계 따위의 직접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런데 실제로 떠나 보면 이것들이 가장 필요한 덕목입니다. 사람을 만나 친해지고 목소리와 몸짓으로 이야기 나누고 페로몬으로 보이지 않는 매력을 뿜어내야 합니다.  231-232




여덟. 나눔 - 위아래보다는 양옆으로


수잔 손택도 말했듯 개입하면 기록하지 못하고 기록하면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276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보다 공평하게 대하는 자세라고 하였습니다.  288


캐나다 서부 해안에 살던 콰키우틀 인디언은 생일, 결혼, 장례에 포틀래치라는 특별한 의식을 벌였습니다. 의식의 주인공은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잔뜩 주었습니다. 그들은 빚을 내서라도 옷과 무기, 놋그릇을 최대한 많이 퍼주었습니다. 추장이 되려면 심지어 값비싼 모피를 태우거나 놋그릇을 부수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들은가지려고 하기보다 베풀어야만 자신의 위신이 높아진다고 믿었습니다.  289




아홉. 기록 - 카메라보다 몰스킨을 들고서


이제 '여행=사진 찍기'가 되어 카메라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지만 하드 용량만 축내기 일쑤입니다. 사진가 아라키의 말마따나 이젠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어서 찍어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98


오PD는 아무리 좋은 경치도 5분 이상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여행은 명사("여기가 바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야!")로 시작됩니다. 이내 감탄사("우와" "이야" "헐")로 바뀌고 곧이어 형용사("파랗고" "깨끗하고" "시원하고" "상큼하네")가 튀어나옵니다. 마지막엔 동사("하나, 둘, 셋! 물속으로 점프!")로 마무리됩니다. 처음 떠난 관강객일수록 '어디'에 가고 '무엇'을 볼지 집착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어땠는지' 수다를 떨고 고수가 될수록 뭐든 자꾸 '해보려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홍역을 앓듯 여독을 겪게 됩니다. 명사에서 동사로 옮겨갈수록 여독은 심해지지만 홍역 꽃이 진 뒤 흉터가 남듯 몸에 추억이라는 여행의 흔적이 남습니다.

관광이란 '내 눈으로 직접 보러 가는 것'입니다. 가보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올려 자랑해야 본전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놓지 않으면 관광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그저 외눈박이일 뿐 두 눈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카메라를 놓고 떠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음에 또 못 올지도 모르는데'라며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299-300


여행이란 창을 뛰어넘어 세상을 만지는 일입니다. 창이 있어 여기와 저기가 구분된 세사에서는 저 너머로 떠나는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창을 뛰어넘으면 나를 둘러싼 벽도 사라집니다.  300


소설가 메셸 투르니에는 일차적 인간과 이차적 인간을 나누었습니다. 이차적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참조하여 현재를 살아갑니다. 언뜻 현명해 보이지만 지나간 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벌어질 인들은 반드시 현재를 거칩니다. 반면 일차적 인간은 늘 현재에 머무릅니다. 날마다 아침마다 새로운 과거를 만드는 미래의 첫날을 맞이합니다.  302


여행이란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유목민 놀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껏 돌아다니고 마음껏 그리워하기위해 집을 나와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고 여행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마지막 장을 넘겼다고 책을 다 읽은 게 아니듯 말이죠.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기듯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남겨야 비로소 여행은 끝나게 됩니다. 여행에서 남긴 기록이 여행이 되는 셈입니다.  311-312


여행, 그것은 매우 유익하니 상상에 끊임없는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여타의 소득이란 실망과 피곤뿐이다. 우리들 각자의 여행은 순전히 상상적일 뿐이다. 그것이 여행의 힘이다. -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  313




도착. 여행을 마치며 - 변명거리는 충분해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는 서재에 박혀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자신은 반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저 '비사회적'일 뿐이라며 씩 웃습니다.  336

...

이제니 시인은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나를 달리게 하는 것은/ 들판이 아니라 들판에 대한 상상"이라고 하였습니다.  336


되레 집 안에 틀어박혀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보며 만족하는 사람이 환경을 지키는 실천가하로도 볼 수 있습니다.  337


처음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가이드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지금은 꼭 필요할 때만 함께 다닙니다. 때로는 여행 책자 하나 없이 떠날 때도 있습니다. 뭐랄까 적당히 믿고 적당히 의심하면서 여행을 즐깁니다...

세상은 넓고 시간은 없습니다.  341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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