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하는데... 안락한 자리만을 바라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마음은,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말지." -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9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 예찬>에서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착란 1]에 나온 시구를 빌려 와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어디 사랑만이 그러하겠는가. 랭보의 시 역시 시의 재발명이었고, 오늘날 하염없이 스러져 가는 세월 속에서도 놀라운 자태를 뽐내는 동서고금의 미술 작품 역시 재발명된 회화, 조각들이다. 영화 또한 재발명되어야 한다. 재발명된 것들이 모여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재발명'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루이스 부뉴엘의 <비리디아나>, 피에르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모두 (우리의 삶을 둘러싼) 기존의 영역을 재발명한 영화들이다. 이들 감독의 재발명 방법은 매우 강력하다. 그들은 사랑에 대해, 종교에 대해, 사디즘과 카니발리즘에 대해, 폭력과 도덕에 대해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고 나갔다. 저 영화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구토하게 하고, 혐오감에 빠지게 하며, 심지어 영화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 우리는 이러한 재발명을 꿈꾼다.  10


여기서 다워진 영화들은 기존 영화가 지닌 통념과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새롭게 구현된 재발명은 우리들 스스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무엇인지, 사랑은 무엇인자, 성은 무엇인지, 폭력은 무엇인지, 종교는 무엇인지, 나와 너는 누구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새로운 예술은 항상 재발명의 방식을 통해 재질문하고, 재사유하게 한다.

이 책이 단순히 '교양'이나 '입문' 수준에서 읽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이 삶을 재발명하고, 섹스를 재발명하고, 사유를 재발명하게 하는 '본격적인 재발명 도구'가 되기를 원했다.  11


오늘날 우리는 재발명된 영화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 까닭은 영화가 더 이상 재발며으이 영역이 아닌, 산업 시스템에 사로잡혀 기성품 복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발명이 아니라 통속적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다. 진정으로 재발명된 영화는, 쾌적한 극장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달콤한 시간을 누리고 싶어 하는 관객의 기대감을 배신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배신(영화의 대중 배신)은 위험천만한 일로 여겨지고 있으며, 사람들 또한 안온한 극장이 제공하는 향락을 즐기다가 더욱 안전한 집으로 귀가하기를 선택한다. 강렬함을 잃은 영화는 금세 잊힌다. 물론, 영화는 아무것도 구원하지 못한다. 다만 하나의 충격파로서 우리를 흔들어 깨울 것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을 보여 주리라. 그럴 때 영화는 친구가 된다.  12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섹스 - <감각의 제국> 1976 일본, 프랑스 108분, 오시마 나기사


<감각의 제국>은 1976년에 만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입니다. .. '감각'이라는 말은 작지만 큰 울림을 지녔어요.  21


동시대를 대표하는 괴물은 '좀비'예요. 좀비의 가장 큰 특징은 감각이 없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나요. 혹은 어떤 무감각에 빠져 있나요.  22


<감각의 제국>은 1936년도에 실제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치정 사건을 재현하면서도(내부를 들여다보면서도), 바깥의 시스템(국제 합작)을 통해 주제 의식에 다가선 셈이니까요.  27


많은 이들이 사랑은 금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어요. 불륜이 대표적인 사례죠. 

그런데 사랑과 불륜 중 어떤 것이 더 큰 범주에 속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사랑이 더 큰 범주에 속할 겁니다. 상위 범주에 해당하는 사랑은 금기가 아닌데, 그 하위 개념인 불륜이 금기에 속한다는 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요.  29


현실을 들여다보면 사랑에 대한 금기가 참으로 많아요. 불륜도 그렇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커플로 잏상한 눈으로 바라봐요. 동성애에 대한 갑론을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금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금기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대단히 협소한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금기를 넘어서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여기게 되는 겁니다. ..

인간의 자유를 품은 사랑은 '모든 것을 무릅쓰고' 실천하는 행위예요. 이 영화가 위험하고도 지독한 사랑을 다루는 건 협소한 통념을 까발리기 위함이에요.  30


<감각의 제국>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중요한 겁니다. 이들의 강렬한 러브 스토리는 통념에 의해 마비된 감각을 흔들어 깨우니까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사다는 기치의 성기를 자릅니다. 흔히 상대를 파괴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그런데 기치는 기꺼이 그 순간을 용인합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까지 상대를 용인할 수 있을까요. .. 저로서는 감히 못 할 일이기에, 이들의 사랑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게 바로 <감각의 제국>의 출발점입니다.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31


나의 알몸은 상대에 대한 솔집함과 사랑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반면, 전적으로 타인인 누군가의 알몸은 정상적인 것을 벗어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타인이 '옷'으로서 드러나기를 바라죠.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인간 사회가 지닌 인식의 문제와도 깊이 연관돼 있어요. 옷은 타인의 경제력, 신분, 직업, 성별 등을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벌거벗은 몸은 '존재 그 자체'로 다가오기에, 우리는 그 타인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 없어요. 그게 불편한 겁니다.  32


'벌거벗음'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요. 일종의 평등주의적 태도죠. 어쩌면 '복면 시위'도 이와 같은 맥락이겠죠.  32-33


그들의 나체는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불쌍한 것일 수도 있어요. 벗은 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까요. 항상 그 벗은 몸으로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거죠.  34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던 유명한 '무인도 농담'이 있어요. 한 농부가 무인도에 아름다운 슈퍼 모델과 단둘이 갇혔어요. 상황이 좀 그렇다 보니, 결국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갖게 됐죠. 그 후 슈퍼 모델이 농부에게 좋았느냐고 물어봐요. 그러자 농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좋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느냐.'라고 대꾸하죠. 그는 슈퍼 모델에게,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밀짚모자를 쓴 채 곁에 와 달라고 부탁해요. 슈퍼 모델은 그 청을 들어줍니다. 그녀는 약속한 대로 남장을 하고 농부의 곁에 와 앉죠. 그러자 농부가 슈퍼 모델을 툭 치며 말을 걸죠. '어이, 친구! 방금 내가 멀 했는지 알아? 그 유명한 슈퍼 모델과 잤다고!'

기치와 사다. 이들 두 사람도 그래요. 끊임없이 자신들의 결합을 과시하고 싶어 해요. .. 페이스북에 '아무개와 연애 중'이라고 자신의 '상태'를 공개하는 것도 같은 심리예요...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상태를 노출합니다. 자신들의 관계가 은밀하기를 원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노출되기를 원하는 거죠.

사다와 기치를 변태라고 욕하지 마세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자신을 노출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노출한 신체를 누군가가 봐 주기를 강렬히 희망합니다.  34-35


<감각의 제국>에 등장하는 사다와 기치의 벗은 몸에 대해 부끄러움이나 불편함을 느끼셨다면, 그건 분명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도 이만큼 나아가 볼 수 있을까, 사랑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밀고 가 볼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그러지 못할 겁니다. 수치심은 아주 끈질기게 인간의 판단과 사유의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까요.  37


조르주 바타유가 쓴 <에로티즘>을 참고 문헌.


왜 인간은 이토록 섹스를 하고, 일체감을 얻으려고 할까요. 바타유는 동물과 인간의 섹스를 구분합니다. 동물의 섹스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산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섹스는 생산에 관심이 없어요. 우리들 모두 '자손을 꼭 남기고 말겠어!'라고 생각하며 섹스를 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섹스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죠. 바타유에 따르면 인간은 에로티즘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유일무이한 동물이에요.  40-41


인간은 쾌락을 위해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는 격한 에로티즘을 추구하기도 해요. .. 단지 벗는 행위뿐 아니라 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금기가 존재하고,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제도화하죠. 에로티즘이 야기하는 '쾌락의 혼돈'을 억누르기 위함이에요. 동시에 미묘한 건, '에로티즘은 금기가 없으면 추구될 수 없다.'라는 바타유이 말입니다. 금기를 위반하는 것만큼 짜릿한 쾌락이 없거든요. 그래서 에로티즘과 금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붙어 있습니다.  41


에로티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감각의 제국>은 두 사람 사이의 쾌락을 극단적으로 밀고가는 영화예요. 그들을 둘러싼 금기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이들은 더 강한 쾌락에 중독될 수밖에 없죠.  42


아무리 사랑이라도, 그 본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는 힘들죠.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쓰고 맛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포장하면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없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랑은 금기인가?'라는 질문을 드렸죠. 사랑이 금기가 아니라고 여기는 건 우리가 '포장된 사랑'을 주로 봐왔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 주듯, 날것 그대로의 사랑을 마주하면 사실 역겨워요.  43


종교의 금기가 공동체의 금기를 깨는 영화보다 더 자극적인것은 섹스라는 금기를 다루는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 섹스는 여전히 거부감과 결합된 묘한 흥분을 줄 것입니다.  49


들뢰즈처럼 '개념의 창조'를 해보자면 이 영화는 '섹시힐리즘', 즉 '섹스'와 '니힐리즘'을 합친 새로운 개념으로 읽을 수 있어요. 사실 아주 쉽죠. 소유욕의 화신인 사다와 인생이 허무한 남자 기치의 이이기예요.  50


사다의 상황은 빤해요.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남편과 헤어졌고요. 건강하죠. 나이도 분명 20대 초반일 것 같아요. 사다는 갈 데까지 가려고 하고, 소유하고 독점하려고 하죠. .. 사다는 알아요. 이 남자의 허무를 채울 수 없다는 걸요. 그래허 계속 섹스를 원하죠.  .. 진짜 슬픈 건 기치가 사정하고 난 다음이에요. 더 큰 허무가 그를 덮치고 말겠죠. ..

단도직입적으로 섹스가 허무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있어요. 이 영화의 지침은 거기에 있어요. 섹스로 허무를 달랠 수 있지만, 없애지는 못해요.  51


첫 경험을 하고 나면 누구나 섹스에 대해 품고 있던 큰 판타지가 깨져요. 그래도 그 허무를 채우려고 섹스를 계속 이어 가죠. 인간의 섹스는 그래요. 동물의 발정기와 다르기 때문에 매번 더 몰입하죠. 그 순간적인 충만감을 느끼려고요.  52-53


사실 우리가 금기라고 하는 건 말초적인 것들이에요. 어찌 보면 유치하죠.  53


제가 정의를 잘하지 않았나요? '섹시힐리즘', 섹스+니힐리즘이에요. 허무한 남자를 사랑하는, 허무를 잡으려고 했던 한 여자의 이약. 마지막에 사다는 이 남자를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닫죠. 딱 한 번뿐인 사랑, 목을 조르고 성기를 자르기 직전의 그 마지막 사랑이 그들의 유일한 섹스였을지도 몰라요.  54


결국 중요한 것은 섹시힐리즘에 대한 통찰이 아닐까 해요. 우리는 때때로 허무주의를 달래기 위해 섹스에 몰입합니다. .. 섹시힐리즘은 섹스가 가진 강도와 충만감으로 자신이 느끼는 허무를 채우려는 정신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해요. 허무는 일종의 무기력입니다. ..

치명적인 섹시힐리즘은 자신의 허무를 오직 섹스로만 채우려고 할 때 작동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행동이든 자꾸 반복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젖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더 새로운 섹스, 더 기묘한 섹스,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한 변태적 섹스가 나타나게 되는 거죠. 이럴때 섹스는 이제 그 자체의 즐거움을 잃고, 일종의 절대적인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마침내 섹스마저도 허무주의의 먹이가 되는 거죠.  55


어쩌면 사랑은 기꺼이 더러워지는 것, 타자와 섞이는 일인지도 몰라요. 타액을 섞고, 피부를 어루만져야 정신적으로도 더 많은 걸 공유할 수 있어요. 텔레파시같이 정신적으로, 아무런 접촉도 없이 교감할 수 있는 건 실상 없어요. .. 

롤랑 바르트도 서로의 대화가 애무라고 했죠.  58


한 사람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모습, 이미 그 자체로 에로틱한 사건'이라고요! ..

섹스를 말초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대화는 더 섹시한 성기일 수 있어요. 더 육감적인 향기일 수도 있고요. .. 플라토닉러브? 웃기지 마세요. 플라토닉에 집중하지 말고, 러브에 집중해요. 자신감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게 플라토닉러브예요. ..

사랑과 불륜이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사랑이라 생각하면 밀어붙이고, 불륜이라고 느껴지면 관계를 포기할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요. 수차례 말씀드렸다시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륜은 매우 흔한 테마일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인류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 유형 중 하나예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죄악은 아닌 거죠.  59-60


본인의 마음속 울림이 더 중요하잖아요. 제가 하라고 한들, 하지 말라고 한들 뭐가 대수겠어요?

불륜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세요. 이 단어는 '아니 불(不)' 에 '무리 륜(倫)'자로 이뤄져 있어요. 사랑의 핵심에는 늘 불륜성이 도사리고 있어요. .. 불륜이라는 건 무리에서 떠나는 행위입니다. 그 땜ㄴ에 우리가 불륜을 저주하는 건 고착화된 욕망이에요. 기존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죠.  60


사랑의 핵심은 기성의 해체와 새로운 것을 향한 전망이죠. 그걸 감당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 문제예요. 예전 관계에 너무 많이 의존해 있으면 해체하지 못해요. 그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에요.  61


즉각적인 혐오에 따라 판단하지 말고, 무엇이든 숙고해 봐야 해요.  63


회자정리(會者定離 모을회 사람자 정할정 떠날리). 만난 것들은 반드시 이별해요.  66


음란한 사람일수록 섹스를 지나치게 신성시해요. 차라리 매춘부들이 가장 플라토닉한 사랑을 하지요.  69



제 주변엔 안타까운 여자 선배들이 많아요 페미니즘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돌연 어떤 남자랑 한 번 자고 나더니 결혼해 버리고 말았어요. 그게 성숙한 걸까요? 유치한 사람일수록 자기 수준을 모르면서 성숙한 줄 알아요.  72





비정상적 영혼의 정상화를 위한 폭력 - <시계태엽 오렌지> 1971 영국 137분, 스탠리 큐브릭


"사람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그는 이미 사림이 아니지." - 등장인물 신부의 대사  87


1971년에 선보인 <시계태엽 오렌지>는 앤서니 버지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죠.  91


큐브릭은 '미래3부작'을 선보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인류가 달에 가기 1년 전에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리고 <시계태엽 오렌지>가 그것입니다.  92


폭력은 단순히 폭력으로만 끝나지 않죠. 결국 섹스와도 연결이 되고, 정치와도 연결돼요.  96


금기는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이에요.  97


루드비코 프로그램은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그러한 욕망을 품기만 해도 고통받도록 만들어 버린 거예요. 즉, 루드비코 프로그램은 '욕망'을 처벌합니다.  98


이 영화가 논란을 일으킨 건 '우리는 모두 선이 긍정적이고 아름답다고 배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야. 인간은 악이든 선이든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해. 그것이 인간이야!'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에요. 약물을 주사하든 거세를 하든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자유 의지를 박탈당한 인간이 과연 인간인가, 하는 거예요.  98-99


무엇을 금기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선뜻 선택할 수 없을 때 바로 금기가 되는 거예요. 선택 할 수 없는 것, 그게 다 금기예요 고를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뿐이라, 선택이 배제된 것 말이죠.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가 금기인 거예요. 인간은 금기조차도 금기가 아닌 듯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이 영화가 보여 주는 핵심적 주제거든요.  99


인간이 가진 가장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망하는 게 가장 쉽거든요. 그 순간 나는 뭐가 되느냐 하면 바로 선한 자가 되는 겁니다. 니체는 이걸 '노예 감정'이라고 말했어요.

'주인'은 원망하지 않아요. 주인은 문제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원망하기보다 해결하고 타계할 길을 궁구하죠. ..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얼마나 허용됐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안의 금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요. .. 알렉스가 악마였던 이유는(영화 전반부에 나오듯) 그가 욕망을 '행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역시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어요. 다만 그걸 다 표출하지 않을 뿐이죠. 꿈은 자유롭게 꿀 수 있지만, 모든 꿈을 행하지는 않잖아요.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금기가 작동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오직 금기만 남는다거나 강력한 금기에 붙들리면 문제가 돼요. 자유를 빼앗기게 되니까요.  100


금기의 문제. 첫째,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을 때 금기가 우리 내부에서 작동하기 시작해요. 둘재, 모든 것을 원망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노예'가 되고 말죠. 도덕은 태곳적부터 정해진게 아니에요. 단지 그것이 쌓이고 두터워져 금기가 되는 거예요. 한데 보통 대중매체는 이런 금기를 건드리지 않아요. 불편하니까요.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면서 인간의 자유를 드러내는 영역이에요. ..

사유는 쾌락이 아니라 불쾌함의 여지, 즉 '부정성'을 통해 찾아옵니다. 부정성은 왜 이 영화가 불편한지 묻게 하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게 합니다. .. 그것은 금기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금기를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드러나는 부정성입니다.  104


타인에 대해 너무 쉽게 정죄하지 말고, 함부로 판단하지 맙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벌어지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이야기했습니다. 윤리적, 도덕적 잣대는 대개 약자들이 맹싢는 거예요. '나는 순수하다.'라고 믿는 거죠. 가난한 자는 순수해요. 힘이 없어 큰 죄를 저지를 수 없거든요.  106


선은 영원한 선이고 악은 영원한 악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어요. 그런데 니체는 <선악의 저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에게 선(good)과 악(evil)은 없다. 단지 좋은 것(good)과 나쁜 것(bad)만 있다."라고요. 나한테 어떤지가 중요해요. 독을 써서 죽는 사람이 있고 치료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원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한다면 선생님, 아버지, 체제, 사회가 주장하는 선악일 뿐이죠. 따라서 우리에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걸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뭐가 맞는지 물어보죠. 그러다가는 평생 남의 명령만 받다가 죽는 거예요.  106-107


우리 모두 '폭력'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 뉘앙스는 다 다르죠. 명확히 규정해야 해요. '오십보백보 모두 다 폭력이다.'라고 말하면 잘못된 거예요. 권력자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에요. 폭력이 나쁘다는 교육을 받다 보니, 정당방위마저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물론 최소한의 폭력에도 균형 감각은 꼭 필요하죠.  108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딱 한 가지예요. 외적인 지배가 모든 개인에게 금기나 금지를 내면화시킨다는 것! 그 내면화가 완성되는 순간, 한 생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거죠. '나는 고유한 나'라고 생각하는 건 헛소리예요.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 모두 전부 비슷하게 살고 있잖아요.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요.  113


학창 시절만 봐도 '성적 일등'과 '주먹질 일등'이 학교의 권력을 양분해요. 그들은 서로이 영역을 나눠 갖고 침범하지도, 치고받지도 않아요. 상대의 권력을 인정하는 거죠. 흥미롭지 않나요? 경쟁을 강요해서 일등을 상찬하는 사회 구조에서는 일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주먹 일등, 게임 일등, 저항 일등, 공부 일등, 섹스 일등 ... 일등만이 모든 인정과 존경을 독점하는 사회! 아렉스는 바로 이런 사회가 길러 낸 괴물, 아니 이런 사회가 낳은 적장자라고 할 수 있지요.  115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느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어요. 정치권력에는 개기지 못하니 성적 쾌락에만 몰입하는 시대잖아요. 본디 '코미디'란 금기 체계를 건드려서 희열을 주는 거예요. 광대들은 그 옛날에도, 지엄한 왕에게조차 마음대로 시비를 걸 수 있었어요. 그게 광대(피에로)의 역할이었죠. 결국 코미디는 정치와 성(性), 이 모든 것을 건드려야 재미있어져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그러니 <SNL>등 온갖 개그 프로그램에 오직 '섹스 코미디'만 오르내리는 겁니다. 알렉스의 경우,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통해 정치적 검열을 당한 거죠. 이제 그는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할 거예요. 따라서 그에게 남은 건 <싱잉 인 더 레인>의 세계뿐이죠. 미국적 자본주의의 세계, 뮤지컬의 세계 말이에요. 어쩌면 스탠리 큐브릭은 이러한 부분들을 건드리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알렉스는 정치적 영역에서 거의 '거세'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는 섹스를 꿈꿀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치유됐다.'라고 선언하죠. 정말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탄생한 것이구나.'하고 깨달았어요.  121


세뇌는 곧 마비입니다. 자기 스스로 어떤 대상에 다가갈 수 없게, 욕망할 수 없게 하는 거예요. 각종 매체를 통해 획일화된 문화가 대량으로 살포되면서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잊게 돼요.  127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그것에 반복적으로 노출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상처 난 데를 또 다치면 아프지, 무감각해지지는 않잖아요. 단지 매체의 힘으로 무감각해질 뿐입니다. 현실의 폭력과 매체가 다루는 폭력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물론 현실의 폭력에 대해서도 무각각해질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때의 무감각은, 매체를 통해 습득한 무감각과는 완연히 다릅니다.  128


검열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자신의 솔직한 모습, 진솔한 욕망을 방출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129


선택을 할 때는 두 갖를 고려해야 해요. 하나,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방향.

둘, 내 삶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 .. 어떤것을 선택하려면 그 선택의 단점을 모두 감당할 것, 그리고 버린 선택의 장점을 전부 포기할 것!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해요.  131





배신하지 않는 동물의 왕국을 꿈꾸는 정치 - <살로, 소돔의 120일> 1975 이탈리아 114분,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파솔리니 감독의 논문 <시의 영화>는 오늘날에도 영화 이론을 연구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문헌으로 통해요.  153


금기라는 주제를 다룰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사드 후작이죠.  154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라 할 수 있는 걸 인용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건 단순히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들의 말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성욕, 식욕을 능가하는, 즉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보여 주죠.  160-161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 앎의 의지>에서 권력의 문제를 흥미롭게 성찰합니다. 군주의 주권적 힘을 '생살여탈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왕이나 군주가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인간이 타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그런 권력은 분명 신적인 쾌락을 줄 겁니다. 파시스트들은 이러한 상황에 흥분합니다. 그래서 파시스트가 행하는 권력과 폭력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질 수밖에 없어요.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말이죠. 맞아요.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그것이 주는 쾌락에 중독되어 가는 거예요.

자본주의도 비슷하죠. 돈이 곧 권력이 되는 시대인 겁니다. 돈이면 못 할게 없다는, 즉 갑질의 야망을 품게 돼요.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지죠. 파시즘이 인종주의로 모든 사유를 차단했듯, 자본주의는 돈을 통해 모든 생각을 단순화합니다. "돈 주면 될 것 아니야!" 파시즘과 자본주의는 모두 '한 가지'로 세상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재편하는, 권력의 놀라운 횡포를 보여 줍니다.  162


파시스트들은 소년과 소녀들을 사물로 취급합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아름다은 엉덩이를 선별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거이죠. 이러한 시선은 파싯트만 지닌 게 아니에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물화해요. 그런 면에서 파시즘과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을 사물처럼 대하는 파시즘은, 생며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등가를 이루죠.  165


<살로, 소돔의 120일>은 파시즘의 행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예요. 그런데 이걸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면 진짜 세상에 대해선 아예 편히 눈감아 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171


'리베르탱(libertin)'이라는 말입니다. 이걸 검색해 보면 '자유연애주의자'라고 나올겁니다.  174 


우리는 열심히 사랑해야 저항할 수 있어요. 남자가 손을 의연히 들어 올리는 장면, 그게 파솔리니가 말하려고 했던 것의 전부라고 봐요. 파시즘에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강간당하고 똥을 먹게 되고, 누군가를 고발해 가며 죽여야 해요.  178


온몸으로 체험해 본 우여곡절이 없으니, 남의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거예요.  186


'절차적 민주주의'라는게 있죠? 이 절차들이 우리를 죽여요. 가령 우리가 시위를 한다고 해 봐요. 헌법에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으니, 당당하게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도로 교통법'을 더 우선시하죠. 씨발, 이게 뭐야? 그래서 불만을 제기했더니, 옳다구나 하면서 소송을 걸어 보래요. 지금 시위하기도 바쁜데, 대법원까지 가야겠어요? 절차를 복잡 미묘하게 만드는 게,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특징이에요. 

소송이 발생하면 대기업이나 자본가들은 당장 변호사를 사죠. 하지만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변호사를 만날 수조차 없어요. 그러니 소송 과정에서 우리는, 약자들은 진이 빠질 수밖에요. 대기업은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기고 다른 일을 하는데, 우리는 생업을 제쳐 두고 재판에 몰입해야 해요. 설령 소송에서 이기도라도 우리는 망한 거죠. 그중 제일 치사한 게 파업했다고 업무 방해죄로 고소하는 놈들이죠. 정말 법대로 끝까지 가면 결국 노동자가 이길 테지만, 법정에서 소송을 이어 가는 수년 동안 그 사람은 뭘 먹고살겠어요? 어느 광고 문구처럼 '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는 거죠.  187-188


이탈리아 철학자 중에 그람시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람시가 가장 문제시했던 게 바로 '투표를 통해' 무솔리니를 뽑았다는 사실이었어요. 뻔히 전쟁을 일으킬 미친놈을, 무려 선거로 뽑은 거예요! 우리로 따지면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왜 대통령으로 뽑았느냐, 하는 수준의 문제랄까요. 누가 봐도 정리 해고를 하고 임금 피크제를 시행할 사람들인데도 찍잖아요. 그가 또 지적한 게 있었는데, 이탈리아 대중이 크로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나라에 맞게 말하자면, 왜 사람들이 이문열과 신경숙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의문을 품었던 거죠. 그러니까 좀 진보적이고 삶에 진짜 도움이 되는 쓰디쓴 이야기는 싫어하고, 보수적이고 대중적이기만 한 글을 좋아하느냐는 거였어요.  193-194


사실 우리가 보는 많은 영화들, 그중에서도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는 영화들은 몽땅 파시즘적이에요. 남편이 부인을 때리고, 아버지가 자식의 결혼에 반대하는 것도 일종의 파시즘이에요. 파시즘이 아닌 건 '수평적 관계'예요. 가령 파시즘의 허구성을 다룬 게 있다면, 바로 홍상수의 영화예요. 가부장적 권력을 휘두르려는 남자 주인공들이 정말 보잘것없이 그려지잖아요.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정치를 다루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감독들은 다 그런 걸 만든다고요. ..

예술과 인문학의 궁극적 귀결은 자유와 사랑이에요. ..

홍상수 감독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생활 속의 파시즘을 고발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아요. 반면 이문열과 신경숙의 문학은 비난을 피할 수 없죠. 이문열에게는 뿌리 깊은 영웅주의가 있고, 신경숙에게는 남성에게 복종하며 정신 승리만 해 대는 태도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만 읽으려고 해요. 자신의 얘기, 나를 위로해 주는 이야기만 듣고 싶은 거예요. 비정규직이 많다. 취업이 불안하다. 통탄하면서 오히려 그런 책을 읽죠. 가슴을 후벼 파는 작품은 외면하고요. 결국 똥을 던질 수밖에!  194-195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는 종교 - <비리디아나> 1961 스페인 90분, 루이스 부뉴엘


그가 극도로 혐오한 것은 종교적 도그마, 맹신주의, 교회의 위선과 억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4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건 '줄넘기'예요. 

첫 번째 장면에서 하녀의 딸이 혼자 줄넘기를 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비리디아나가 소녀와 함께 줄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줄넘기는 숙부가 자살할 때 목을 매는 도구로 쓰입니다. 숙부의 집으로 돌아온 비리디아나가 줄넘기를 목격하고, 곧장 장면이 바뀌더니 다시 줄넘기를 넘는 소녀가 나옵니다. 그때 영기 관리를 돕는 남자 하인이 나타나 소녀를 나무라지요. "왜 죽은 사람이 쓴 줄넘기를 가지고 노느냐."라며 말이죠. 그러자 소녀는 "그건 제 것이니까요."라고 당돌하게 대꾸합니다. 결국 소녀는 아랑곳없이 줄넘기를 넘죠. ..

영화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줄넘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비리디아나는 숙부의 유산을 가지고, 마을 걸인들과 부랑자들을 모아 일종의 생활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부엌에 있던 줄넘기를 가져다가 자신의 허리끈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후 이 줄넘기(혹은 허리끈)는 비리디아나가 부랑자들에게 추행을 당하는 장면에서 또다시 등장합니다. 비리디아나가 완력을 쓰는 부랑자들에게 저항하며 붙드는 것이 바로 그 줄넘기인 겁니다.  221-222


한 사회가 경직되고 금기를 강하게 통제할수록 '이건 꼭 이 방법으로만 써야 한다.'라고 규정을 내려 버립니다. 법의 적용도 마찬가지죠. 사회가 강퍅해지루록 원칙만 강조해 댑니다. 여하튼 사물에는, 근본적으로 맥락이 없어요.  223


줄넘기는 단순한 놀이 기구였어요. 그런데 숙부가 그걸로 목을 매단뒤부터, 줄넘기는 죽음과 관련된 하나의 터부가 됩니다. 이제 줄넘기는 죽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대상이 된 겁니다. 하지만 소녀로서는 황당했을 겁니다. 줄넘기는 분명 자신의 소유물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무엇이 문제냐며 반문하는 거죠. 이 저항은 뭔가 불쾌하고 미묘한 

느낌을 주는 장면입니다. 이런 느낌은, 영화 후반부에 줄넘기가 부랑자의 허리띠로 전용(轉用 구를전 쓸용)되면서 더 큰 불쾌감으로 증폭됩니다.

줄넘기가 소녀의 손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저 잠깐의 놀이 기구였겠죠. 자살의 도구도, 성폭력의 도구도 아니에요. 그저 하나의 줄일 뿐인데 우리는 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상한 용도로 사용하지요. 이건 부뉴엘이 사물을 통해 우리의 통념을 흔드는 방식입니다. '줄넘기는 놀이 도구에 불과해.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신이 장면 장면마다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보라고. 당신은 줄넘기를 제대로 가지고 놀 줄도 모르잖아. 줄넘기는 한 사람의 자살 도구이면서, 성적 뉘앙스를 지닌 폭력의 흉기이기도 해. 그게 사물의 본성이야. 사물은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애초에 부여된 본성은 아무것도 없어.  223-224


부뉴엘은 사물에 대한 의미 부여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소녀와 같은 아이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물에 대한 집착을 페티시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물건을 신격화하는 미신, 중독적인 욕망까지 아우르는 꽤 광범위한 의미가 들어 있어요. 흔히 페티시즘을 변태 성욕쯤으로 여기는데요. 가령 여성의 팬티에만 유독 집착하는 남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의 욕망을 가리켜 페티시즘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사실 페티시즘은 사물에 집착하는 모든 욕망을 가리켜요. 

비리디아나는 예수의 가시 면류관, 십자가, 칼 같은 것들에 집차과죠. 종교적 집착, 성물(聖物 성스러울성 만물물)에 대한 집착도 페티시즘이에요. 

페티시즘은 단순히 변태 성욕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돈을 숭배한다면, 돈에 페티시가 있는 거죠.  ..

페티시는 특정 사물에 집착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우상화 작업이에요. 

부뉴엘은 이러한 페티시즘이야말로 현대인의 본질이라는 점을 보여준 거죠. 동시에 이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덧없고 무의미한 일인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숙부가 지닌 여자 다리에 대한 집착도 당연히 페티시즘이지요. 페티시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결국 자기만의 우상을 품고 있는 겁니다. .. 줄넘기하는 소녀를 달아야 해요. 사물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저 사물일 뿐이에요.  224-225


비리디아나가 집을 비운 사이에 부랑자들이 만찬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며 포즈를 취했을 때 나타난 화면 구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과 똑같습니다. ..

인간은 원본을 훼손시키는 걸 참지 못하죠. 그런데 패러디를 활용하는 예술의 가장 놀라운 점은 원본을 '모독'하면서 전혀 새로운 흥미와 가치를 유발한다는 데 있습니다. 

초현실주의가 기치로 내걸었던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수많은 예술적, 미적 영역을 훼손하고 모독하는 것이었어요. 모독이 왜 중요하냐고요? 모독은 우리를 원본주의나 절대주의로부터 자유럽게 해 주거든요. 그래서 대통령을 희화한 작품이 많은 곳일수록 민주적 사회인 겁니다.  225-226


일단 어떤 대상을 비판하려면 거기에 매혹돼야 해요. 대뜸 보자마자 생리적으로 '저건 무조건 싫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대상에 흠뻑 빠져 본 사람만이 안팎을 넘나들며 잘 비판할 수 있어요. .. 최악의 비평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호불호만 던지는 거예요.  228


우리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무조건 착하다.'라는 테제에 빠지기 쉬워요. 부자가 나쁘다는 통념처럼, 가난하고 힘없으면 무조건 착하다는 생각 또한 통념이라는 사실을 부뉴엘은 건드리고 있는 거예요. ..

성직자든 누구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위선적인 모습을 가진다는 겁니다.

약자나 소수자는 (약하고 소수이기 때문에) 선할 수밖에 없다는 진영 논리가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이러한 논리가 더 위험할 수 있죠. 그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비좁은 테두리 안에 가두는 일이니까요.  231


라캉은 '여자는 히스테리 환자고 남자는 강박증 환자다.'라고 말했어요. 히스테리라는 단어의 어원은 '자궁'이에요. 엄마 말을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내는 거 있죠. 그런 게 바로 히스테리입니다. 히스테리에 걸리는 사람의 특징은 타인의 욕망만 중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데에 있어요. 참고 참다가 갑자기 자신의 욕망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바로 이럴 때를 가리켜 '히스테리를 부린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히스테리가 유독 여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굳게 믿다가 갑자기 자신의 진짜 욕망을 발견하는 거예요. 

반면 남자는 강박증이에요. 자기 욕망만 중요하다고 여기죠. 가족끼리 산에 가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죠. 오히려 딸들이 항상 산을 잘 올라요. 가족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 남자들은 등산을 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퍼져요. 그러고는 아버지한테 이러겠죠. '아우 씨발, 존나 힘들잖아!' 그러면 가족들이 달래요. 그렇게 법석을 놓아도 남자는 쫓겨나지 않아요. 그게 다 가부장제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자들은 집안일을 도우며 부모의 욕망을 잘 맞춰요. 하지만 아들은 안 그래요.  241


비리디아나의 운명도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언제쯤 그녀는 자각하게 될까요? 남자와 자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힘 있는 남자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그래서 비리디나아는 숙부가 가장 원하는 모습에 계속  맞춰 주려고 하고, 호르헤가 바라는 모습에 결국 자신을 맞추고 마는 히스테릭한 면모를 보이는 겁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는 성별에 관계없이 비리디아나인지도 모릅니다. 모 두가 히스테리 증상을 가지고 있는 거지요.  243-244


결혼을 왜 해요? 결혼은 '부르주아 제도'예요. 상대의 '성기'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예요. 차라리 연애만 하든가, 쿨하게 헤어지든 해야죠. 나중에 이혼하더라도 위자료를 받으면 괜찮다고요? 여러분의 10년, 20년 세월을 1억, 2억에 팔래요? 그런데 대부분 팔아 버리고 말죠. 지금까지 자신의 성기를 사용해 온 사용료를 모두 받아 내는 겁니다. '애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요. 이게 마지막 자존심인데도 품위를 지키긴 힘들죠. 오만 가지 얘기를 다 하죠. 돈 몇 푼으로 뭘 하려고 그래요? 순간적으로 보면 돈을 받는 게 좋긴 해요.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딜레마입니다. ..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결혼하지 마세요. 그냥 하나님과 순수한 사랑이나 나누세요. 아가페를 하며 살아요. 모든 신은 강한 남성성을 가져요. 내 남자 친구는 늘 바쁘다 하고, 다른 사람한테 눈도 돌려요. 사람이니까. 그러니 인간한테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내게 완전히 오지 않죠. 그런데 신은 기도만 하면 내 옆에 있어 줘요.  246


순수가 유지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순수는 순간적인 것일 뿐이에요. 그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지나치게 깨끗함만 추구하려다 보니, 아예 자기 영역에 아무도 안 들이는 사람조차 있어요. 오직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순수를 지향하는 건 미친 짓이에요. 환대를 위해 순수를 추구해야 맞죠.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친구가 편하게 지내도록 해야지.'라고 생각해야지, '집이 깨끗이 청소되었으니, 너는 함부로 어지럽히면 안 돼!'라고 하는게 말이 되나요? 누군가가 오면 처오를 해야지 나 혼자 깨끗하게 있으려고 노상 쓸고 닦는다면 미친 거 아닌가요?  248


나를 위한 청소만 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청소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그때부터 종교가 탄생하는 거예요. 나만을 위한 총소, 나만을 위한 순수, 그것이 바로 종교의 감각이니까요...

또 아이가 새로운 마음으로 집 안을 어지럽히길 바라며 청소를 하는 부모가 돼야 해요. 아이한테 집에 오자마자 '발 씻어! 손 씻어!'하면 그 애가 집에 오고 싶겠어요? 괴로울 뿐이죠. 타인을 위한 순수가, 결국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엔 분명 순수의 요소가 들어가지만, 사랑 자체가 순수인건 아닌 셈이지요. ..

단순하게 정리해 보자면, 사랑이 싹트는 과정은 '더러워지는 것'이에요. 만지고 더듬고, 키스하고 침을 섞는 과정인 거죠. .. 감염되고 섞여야 해요. .. 표백된 사랑을 순수하고 보면 안 돼요.  248-249


인간은 적당히 위선적이고 적절히 위악한 게 맞아요. 관념이 앞서면 힘들죠. 관념이 생긴다는 건, 사실 인간은 선하지만 않다는 걸 반증하는 거예요.  250


필요한 건 솔직해지는 거예요. 위선적이라는 말 자체가 솔직하지 않다는 뜻이죠. 어떤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땐 어렵다고 말하면 돼요. 솔직한 게 제일 좋아요. 위선적으로 살지 않으려면 '나는 못 생겼다.' '엄청 무식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시인하면 돼요. 순간순간 닥쳐오는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나아가 그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거죠. 어쨌든 완벽하게 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긴 정말 어려워요.  250-251


남한테 욕을 들어도 되고 인정을 안 받아도 되면 위선적이지 않게 돼요. 타인의 인정, 점수, 평가에 민감할수록 약자이고, 미성숙한 겁니다. '누가 감히 날 평가해?' 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은 완전한 자아를 가진 거예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해탈이라고 하죠. .. 국가와 체제가 우리를 조련하는 방법이 무엇인 줄 아세요? 상과 벌입니다. 칭찬받고 싶어하고 욕먹는 걸 싫어한다는 점을 이용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 왔잖아요. 부모, 국가가 원하는 것만 죽어라 하고 살잖아요. 미셸 푸코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타인의 칭찬에 기뻐하지 말고 남의 욕에 화내지 말라고요. 그럼 정말 완벽한 거죠. 이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요.

칭찬과 비판, 이 모든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면 안 돼요. 나보다 힘이 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위선이에요.  251


좌우지간 욕먹었다고 상처받지 말아요. 전부 잊어야 해요. 무슨 말을 들었든 거기에 휘둘리면 안 돼요.  252





마치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낯선 곳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여행이 주는 달콤함은 우리 내면을 지배하던 신이 사라진 그 자리에 살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260




OUTRO - 시험해 보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착한 사람은 남의 말을 그대로 듣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가리켜 착하고 선량하다고 말한다. 결국 착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의지에 따라 혹은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 혹은 부모든 선생이든 경찰이든 타인이 금지하는 걸 어기지 않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부당한 조건인데도 계약서만 믿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 어른들의 몰상식한 대우에도 참고 따르는 고등학생, 갑작스러운 멀미와 현기증이 찾아왔는데도 노약자 지정석에 앉지 못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여고생, 후미진 곳에서 오줌을 누라고 해도 화장실이 없다며 고추를 잡고 서 있는 어린아이...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사실 착한 사람은 길들여진 사람일 뿐이다. 외부에서 강제한 규칙, 혹은 금기가 아예 한 살마의 내면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제 외부에서 누군가가 완력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내면에 자리를 잡은 규칙이 착한 사람의 행동을 착하게끔 강제하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면 외부의 직접적인 강제가 없기에, 착한 사람은 스스로 양심껏 행동하고 있다고 믿기 쉽다. ..결국 착한 사람은 남이 하라는 것만을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인생을 주체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자발적 복종' 상태의 핵심은, 바로 '복종'에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처음 자신에게 규칙을 강요했던 부모님, 선생님, 혹은 국가 기구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착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각인된 초자아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며 살 것이다. 다니엘 디포가 쓴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갇히고 나서도 영국에서 통용되던 여러 격식들을 자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267-268


타인들이 나쁘다고 했을 때에만, 우리의 행동은 타자의 이익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 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평가에 따라 행동하게 될 테다. 자신의 삶에 진짜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혹은 자신에게 유쾌한지 불쾌한 일인지를 알려면, 우리는 어떤 규칙이나 금기에 연연하지 말고 직접 도전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 우리는 더 당당하게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시험해 보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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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네 멋대로 해라 (청소년 인권)


'지랄 총량의 법칙'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쨋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8


착각할 수 있는 나이에는 착각을 하면 됩니다. 그 착각에 너무 깊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헤어나올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늦어진다면? 늦어지면 됩니다. 10대나 20대에는 인생이 남들보다 3~4년 늦어지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몇년 빠르고 늦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시기마다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딸만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한 욕심입니다. 청소년기에 그런 미망(迷妄 미혹할미 망령망)의 시기를 보내지 않고는 성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24-25


교육을 위한 제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제약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합니다...

불과 30년 전까지 우리나라는 길 가는 멀쩡한 어른들의 머리를 자르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쟀습니다. 그때는 그게 모두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0




2장 - 왜 이렇게 불편할까? (성소수자 인권)  


'다름'에서 온 것입니다.  59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 합니다.  65


특별한 논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 중에 논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까닭입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려면 우선 어떤 사랑(예컨대 이성애)이 다른 사랑(예컨대 동성애)보다 더 우월하고 가치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증명도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동성애자 차별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가정의 가치입니다.  70


동성애자들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71


동성애는 일종의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오랜 세월 서구사회를 지배해왔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징벌로 AIDS라는 치명적인 질병이 생겨났다는 믿음도 동성애 반대의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72


어디까지나 혼인과 가족생활은 오직 양성 사이에서만 보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헌법은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제도의 최소한의 규정한 것이지, 최대한을 규정한 것이 아닙니다.  73


결국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와 동일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것은 비윤리적이며, 따라서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76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서 관계 자체가 지니는 보편성과 개별관계의 특수성을 관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81


순전히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동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제도적, 법률적 차별의 장벽은 앞으로 점점 무너져갈 것이 분명합니다. 차별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의 장벽입니다.  87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는 것이 바로 인권의 황금률입니다.  88




3장 - 뺨따귀로 사랑 표현하기 (여성과 폭력) 


명절 때 잠깐씩 부엌 근처에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저는 천하에 없는 좋은 남편이 됩니다. 그러나 명절 내내 부엌을 지키는 어머니와 아내의 노동은 언제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작은 차이 같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박은 이런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권입니다.  94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을 존중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107


평등권 확보라는 기존의 노력을 계속하되, 여성 개인이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다양한 노력도 인정할 필요가 있겠지요.  117




4장 - 공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장애인 인권) 


장애인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도 결국은 권력의 문제, 철학의 문제입니다...

장애용어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장애에 관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입니다.  147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자검사를 흔히 '기형아'검사하고 부릅니다. 마치 '장애인'과 구분되는, '기형아'라고 하는 범주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형'은 장애를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153-154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불가능성 패러다임에 기초한 교육과 근로기회의 박탈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일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만들어버린 것뿐입니다.  161




5장 -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언제 나올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노조원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노조가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고, 노조지도부가 '귀족'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급증한 후에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조의 단결뿐입니다. 그래서 헌법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돈도 권력도 없는 노동자들이 노조까지 잃게 되면 그의 신분은 노조원에서 노예로 급락합니다. 일단 한번 추락하고 나면 다시 노조원의 지위를 회복하기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영국은 그렇게 노동자들이 다시는 목소리를 회복할 수 없었던 좋은 예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보수당 정권과 보수언론은 1984~85년의 탄광노조 파업에 대해 '폭력이 난무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불명료한 선동구호만 넘쳐서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미지를 심어왔습니다. 이 파억이야말로 '영국병'을 상징하는 노조지도자 스카길의 무리수였고, 새처 총리가 이를 과감하게 진압함으로써 영국병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그대로 한국까지 전해져 지금도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나 <브래스트 오프>는 이런 일방적인 선전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합니다.  178-179


지능적인 공격  179


어차피 사람들은 진실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180


1980년대 후반부터 대법원은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회사 마음대로 아무 때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존재하고, 회사는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어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정리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자를 선별해야 하고, 해고에 앞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통지를 하고 이들과 성실한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런 요건들은 1996년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 개정에 의해 근로기준법 안에 수용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해고 자유의 원칙으로 넘어가기 위한 우회로에 불과했습니다.  184


기간제노동자의 고용기간이 2년을 넘게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도록 의무화하여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했더니, 기업들은 2년동안 부려먹은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아예 2년이 되기 전에 잘라버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186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마저 귀찮아지자 기업들은 '파견근로자제도'라는 편법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187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노조와 소규모 노조,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이로제로(以勞制勞 써이 일할로 억제할제 일할로)'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191




6장 - 1년에 600명의 청년들이 교도소에 가는 나라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종교란 매우 비정상적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인간의 삶과 동행해온 일상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209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기본권 중에서 종교의 자유가 특별히 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비정상성'에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외형적으로 가장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한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로 한 것이 근대헌법의 가장 위대한 결단입니다.  210




7장 - 영화 화면을 자르는 사람들 (검열과 표현의 자유) 


시대의 억압이 도피를, 도피는 중독을 낳습니다.  242


지금 대한민국에는 제한상영관이 하나도 없습니다. 

네가 성인이든 아니든 간에 제한상영가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영화는 등급을 받아야 하고, 그중의 어떤 영화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는데, 대한민국에는 현재 제한상영가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사전검열이 아니라면 세상에 사전검열이란 어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248


무엇보다 사전검열을 통해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251


음란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그런 수준 낮은 작품들을 구매하지 않는 튼튼한 청소년들을 길러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252


미국은 영화의 역사만큼 오래된 검열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영화는 시나 소설 같은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일종의 비즈니스로 취급되었습니다.  253


영화등급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 알아서 잘 매기고 있겠지'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그 등급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이 영화등급 역시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권력의 오남용이 시작됩니다. 당장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일까지 신경쓰나 생각하고 자꾸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그 일이 내 문제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지요. 내 문제에 대해 남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가슴을 쳐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권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주목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261


부모들은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라, 아이가 던지는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변할 마음의 준비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273




8장 - 누가 앵무새를 죽였는가? (인종차별의 문제) 


소설 속에서 애티커스 핀치가 딸에게 주는 가르침의 핵심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92




9장 - 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우리는 수만명이 폭격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제노싸이드로 부르려면 최소한 100만명쯤은 죽어야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국제법 전문가였던 라파엘 렘킨(1900~59)이 처음 만들어 끈질긴 노력 끝에 유엔 제노싸이드 범죄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에 포함시킨 정의에 따르면, 제노싸이드는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범해지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332


제노싸이드가 되기 위해 반드시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의도를 입증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량학살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게 제노싸이드라고 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설명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폭격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고 둔감한 이유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333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에서 연쇄살인 피해자가 늘어날 때마다 공포에 몸을 떨면서도,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10만명이든 100만명이든 일종의 숫자놀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들입니다.  334


약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그런 숨겨진 비밀은 영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입니다.  335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

국가는 우리에게 국방, 교육, 사회보장, 치안, 사법 등을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가를 고마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에서 인권의 유린이 시작됩니다.  349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혼자 훔쳐본 권력자는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착각하게 되고, 한번 맛들인 그 놀라운 정보의 노예가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은밀하게 감춰져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손쉬운 기회를 훨씬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권력자가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351


괴물이 된 국가씨스템을 움직이는 데는 많은 악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두명의 악마와 수많은 평범한 복종자들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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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독립 이후에 언어 분포를 조사하였는데, 인도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가 179개이고, 방언도 544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현재 인도 정부가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산스크리트어(Sanskrit, 범어梵語)를 포함해서 18개에 이른다.

이 많은 언어를 크게 구분하면, 북부의 인도아리아 어군(語群)과 남부의 드라비다 어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인도아리아어'는 인도 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산스크리트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도 아리아어도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힌디(Hindi)는 인도의 북부 지방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체 인구의 40.22%가 사용하는 언어다. 수도 뉴델리(주민의 81.6%)를 비롯해서 하리아나(91%), 우타르프라데시(90.1%), 라자스탄(89.6%), 히마찰프라데시(88.9%), 비하르(80.9%), 마디아프라데시(85.6%), 찬디가르(61.1%) 등에서 주(州)의 제1공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 네팔에서도 800만 명이 힌디를 사용한다.

2. 벵갈리(Bengali, 벵골어)는 캘커타(현재의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벵골 지방과 방글라데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8.3%가 사용한다. 웨스트벵골 주의 공식어로서 이 주의 주민 86%가 벵갈리를 사용한다. 

3. 우르두(Urdu)는 펀자브 지방과 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모슬렘) 언어로, 이 언어의 문자와 말은 아라비아어와 비슷하다. 인도 전체 인구의 5.18%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4. 구자라티(Gujarati, 구자라트어)는 서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구자라트 주민 91.5%가 사용한다. 그래서 구자라티는 '인도의 비즈니스맨의 언어'라고도 불린다. 구자라티는 인도 전체 인구의 4.85%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6,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5. 마라티(Marathi, 마라티어)는 인도의 경제 수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언어로, 이 주의 주민 73.3%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인도 중부의 데칸 지역에서도 이 언어가 많이 쓰인다. 인도 전체 인구의 7.45%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6. 오리야(Oriya)는 동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오리사 주민 82.8%가 사용하며, 많은 방언과 지방 사투리가 있는 것이 이 언어의 특징이다. 

인도이ㅡ 남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드라비다어는 인도 인구의 30% 정도가 사용하는 언어다. 드라비다어도 몇 가지로 구분된다. 

7. 텔루구(Telugu)는 동부 지방의 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84.8%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또한 인도 제2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하이데라바드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다.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7.89%가 사용한다.

8. 타밀(Tamil)은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언어다. 또한 타밀나두 주민의 86.7%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인도 전체 인구의 6.32%가 사용하는 언어다. 

9. 칸나다(kannada)s는 남서부의 마이소르(카르나타카 주)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시리콘밸리 방갈로르에서 사용되며, 인도 전체 인구의 3.91%가 사용한다. 

10. 말라야람(Malayaram)은 인도의 가장 남쪽 케랄라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3.62%가 사용한다.

그 밖에도 11. 펀자비(Punjabi)는 펀자브 주민의 92.2%가 사용하고, 인도 전체 인구의 2.79%가 사용하는 언어다.

12. 아싸미스(Assamese)는 아삼 주민의 57.8%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1.56%가 사용한다.

13. 신디(Sindhi)는 구자라트 주 등,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 사는 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한다.

14. 네팔리(Nepali)는 네팔의 국어다. 이는 네팔 인구의 90%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하는 언어다.

15. 콘카니는 고아 주민의 51.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21%가 사용한다. 

16. 마니푸리는 보석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마니푸르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이 지역 주민의 60.4%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15%가 사용한다. 

17. 사큐미리(Kashmiri)는 잠무카슈미르 주에서 주민의 5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01%가 사용하는 언어이다.  32-35


2001년 발표된 인구 조사를 보면 인도의 주택 수는 모두 1억 7,900만 개이다. 평군 잡아 한 집에 6명이 사는 셈이다.  35


4만 루피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한국의 화폐로 약 1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5~10배의 소득 효과가 잇다.

최근 인도인은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경제에 눈을 뜬 것이고, 그래야 자식 교육과 자신의 노후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9


1999년 현재, 350만의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감염자가 있다고 하고, 일부 비정부 기구에서는 800만의 감염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42


웬만한 중산층 가정의 경우 제대로 된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려면 신랑에게 '산트로(현대자동차)'정도는 지참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낼 수도 없다. 인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것을 큰 수치로 받아들이고 있고, 독신 여성을 사회적으로 천시하고 있다.  48


사트푸라 마을에서는 차란 부인의 '사티'를 포함해서 지난 50여 년동안 4건의 '사티'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사티 기록을 대단한 자랑과 명예로 여기고 있다.  50


미망인이 끝까지 자결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천한 사람으로 낙인찍혀서 집안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다. 버림받은 미망인은 죽을 때까지 힌두교 사원에 가서 가장 천한 막일을 하거나 심지어 창녀로 일해야 하며, 이렇게 해서 번 돈은 힌두교 사원에 바쳐야 했다.  51


인도에는 "과부가 먹다 남긴 음식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과부가 다시 시집가는 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과부는 시집에서만 아니라 친정에서도 배척을 받는다.

과부들이 브린다반의 사원에 모여들게 된 것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실제로는 남편이 죽자 집안에서 버림을 받고 브린다반으로 쫓겨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52


인구 비례로 따지자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4!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70%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76



인도 역사를 크게 4시기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힌두시대, 이슬람시대, 영국식민지시대, 오느르이 독립국가시대이다.

인도의 한 소설가가 4가지 시대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소설가는 인도 민중을 참새 부부에 비유한다. 각 시대를 연대순으로 힌두 시대를 '금으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고, 이슬람 시대를 '은으로 만든 새장',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새장', 오늘날의 독립국가 시대를 '삼색기(三色旗)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였다.

필자는 '힌두시대'를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1시기는 아리아인이 인도에 정착한 시기인 '베다시대'이고, 2시기는 '도시국가'와 '영역국가'가 서로 경합을 벌이던 시대이며, 3시기는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서 통일을 이룬 때이고, 4시기는 '굽타 왕조'에 의해서 고전적 힌두 문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대이다.  81-82


힌두교의 성격으로는 대체로 다음의 6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베다 종교를 계승한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多神敎)이다. 둘째, 힌두교는 다신교이지만,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最高神)을 설정한다. 이것이 브라흐마 비슈누 쉬바의 삼신일체(三神一體)로 나타난다고 한다. 셋째, 힌두교에서 아바타라(avatare, 化身)의 관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비슈누가 여러 신 인간 동물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서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통일할 수 있었다. 넷째,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특징이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 비해서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적다. 이는 '아바타라'의 관념에서 파생한 것이다. 다섯째, 힌두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단(異端)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통과 이단의 대립을 거의 볼 수 없다. 여섯째, 힌두교에 이단이 없다는 점은 힌두교가 다른 종교, 사상과 접촉하는 점에서 관용을 발휘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대립하는 모든 종교, 사상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자기영역에 있으면서 대항하지 않거나,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흡수하였다. 예컨대 사회적 신분제도에 저항했던 '불교'도 힌두교의 한 파(派)로 간주되어, 불타(佛陀)는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지만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시타 토착적 요소가 어울려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힌두교도로서 그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카마(kama)는 적당한 감각적 쾌락과 성적 향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정의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한 것이 <카마수트라>이다. 둘째, 아르타(artha)는 재물과 재산의 향유와 이득을 뜻한다. 이는 인생에서 부(富)의 추구가 인간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셋째, 다르마(dharma)는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마누 법전>과 여러 법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해탈(moksa)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열반에 들어가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와 상응해서 인새으이 4주기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범행기는 스승의 지도 아래 <베다>등의 학문을 배우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시기다. 둘째, 가주기는 결혼해서 가정을 돌보는 시기다. 이때 자식을 낳고 부를 추구하는 생활을 하면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마누법전>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에게 주어진 의무는 신, 브라만, 조상 등에게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다. 셋째, 임주기는 재가자의 삶을 마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 명상과 금욕생활을 하는 시기다. 이는 세속을 떠나 청정한 종교생활을 하는 시기다. 넷째, 유행기는 숲속에서 수행이 끝난 뒤에 탁발(걸식)하며 돌아다니는 시기다. 이때에는 모든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고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140-142


힌두교(브라만교)의 흐름은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에서 6파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1. 우파니샤드(Upanisad)는 '가까이 앉는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는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대화로 비밀스런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개괄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brahman)'과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atman)'이 같다는 것(梵我一如)이 <우파니샤드> 사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에서는 5단계의 아트만을 주장한다. 첫째, 물질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음식을 가리킨다. 둘째, 동물과 식물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식물과 동물에 공통된 생명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셋째, 동물에만 공통된 지각 활동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넷째,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인식활동으로 된 자아이다. 다섯째, 희열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인간의 깊은 곳에있는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희열이야말로 자신의 참 자아이며 우주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같다는 주장이 의미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2. <바가바드기타>은 힌두교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중요한 문헌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바수데바(Vasudeva)를 신봉하는 종파에서 작성한 시편(詩篇)인데 나중에 <마하바라타>에 편입되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숭배할 만한 자'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의미이고, '기타'는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체계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저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성격이 강한 종교적 작품이고, 또한 요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3가지 요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지(知)의 요가(jnana-yoga)이다. 이는 뒤에 소개할 상키야학파처럼 영원한 정신으로서 '참 자아'와 '물질적 현상적 자아'를 구분하는 것이고, 또는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한 것처럼 범아일여(梵我一如)와 신을 아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신애(信愛)의 요가(bhakti-yoga)이다. 이는 신에게, 특히 비슈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셋째, 행(行)의 요가(karma-yoga)이다. 이는 윤리와 해탈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참다운 체념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라 '행위 하는 가운데 체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행위를 하지만 욕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행위하는 한, 업보(業報)를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 상키야(Samkhya)학파에서는 2원론을 주장하낟. 이 학파에서는 진정한 자아 푸루샤(purusa)와 현상적인 자아 물직적 근원인 프라크리티(prakrti)를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프라크리티를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잇다. 이것은 잘못이고 진정한 자아는 푸루샤라는 것이 이 학파의 주장이다. 이 학파에서는 프라크리티에서 육체와 세계가 전개되는 것을 설명한다.

4. 요가(Yoga)학파에서는 상키야학파와 형이상학을 같이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마음의 잠재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무지(無知)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구체적 수행 방법으로 요가를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5. 바이셰쉬카(Vaisesika)학파는 다원론의 입장에 선다. 이 학파에서는 6범주 또는 7범주를 말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항목인 실체이다. 이 학파에서는 실체에 9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 수, 화, 풍, 공, 시간, 공간, 의근, 자아이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허공'은 소릴는 성질이 어딘가에 있어야 하므로 이 점에 근거해서 추론되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와 젊음과 늙음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추리되는 것이며, '공간'은 여기, 저기, 가깝다, 멀다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추론되는 것이다. 의근(意根)은 내적 감각기관이다. 눈과 코 등의 외적 감각기관이 바깥 대상을 인식하듯이, 의근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다. 지각은 의근이 작동해야 이루어진다. 자아(영혼)는 인식현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실체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 영혼인데, 이는 의지 욕망 기쁨 아픔 등의 여러 가지 정신적 상태에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안다"와 "나는 아프다"라는 말을 통해서 자아가 의식에 속하는 실체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최고 영혼으로서 신이다. 이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영혼으로서 모든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난 존재이고 세계의 창조자라고 추리되는 존재이다.

6. 니야야(Nyaya)학파에서는 바이셰쉬카학파와 형이상학의 내용은 거의 같이한다. 이 학파에서는 괴로움의 근원이 그릇된 지식에 있다고 보고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한 인식 방법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논리학이 발달하였다.

7. 미맘사(Mimamsa) 학파에서는 <베다>에서 명령하는 행위를 왜 실천해야 하는지 그 의무에 대해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무전력(無前力, apurva)을 주장한다. 베다에서 말하는 제사의 행위는 잠깐 동안 이루어지고 이내 끝나기 때문에 제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이 학파에서는 가설로서 '무전력'을 인정하면 제사의 행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제사 지내는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무전력'을 생기게하고, 이 힘이 제사 드리는 주체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업에 해당하는 과보를 반드시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베다 성전을 '제사부'와 '지식부'로 구분하고 있다. '제사부'는 브라만교의 제사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중시한 학파가 미맘사학파이다. 뒤에 소개할 베단타 학파는 베다 성전의 '지식부', 곧 <우파니샤드>를 중시하는 학파이다.

8. 베단타(Vedanta) 학파는 힌두교(브라만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이 학파는 과거 1,000년 동안 다른 학파의 활동을 누르고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의 '끝' 혹은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엇는데, 이는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베단타'라는 말이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베단타학파는  샹카라, 비슈누파, 쉬바파로 구분된다.

이 학파의 근본경전은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이 경전에서 말하는 내용은 브라흐만과 합일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을 얻는 방법으로, 명상을 통해서 브라흐만을 알게 되는 지(知)를 얻고, 이 '지'를 얻은 사람은 죽은 뒤에 신의 길을 따라 최후에 브라흐만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한다는 것이다.

이 <브라흐마 수트라>는 문구가 대단히 간결해서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러 주석서가 나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샹카라, 라마누자, 마드바이다. 샹카라는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했는데, 이는 영혼과 물질세계는 브라흐만이 나타난 것이어서 영혼과 물질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현설'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일원론에 속한다. 라마누자는 전변설(轉變說)을 통해서 영혼과 물질세계가 신에 의존해 있는 것이지만, 영혼과 물질세계에는 독자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라마누자는 영혼과 미세한 물질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라마누자의 주장은 2원론에 속한다. 마드바(Madhva)는 '가현설'과 '전변설'을 부정하고 현실의 차별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마드바는 다원론을 주장하였다. 라마누자와 마드바는 비슈누파에 속한다.  143-148


자이나교의 사상

초기 자이나교의 가르침은 7체(諦)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혼(jiva)은 모든 만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이 영혼은 청정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정한 영혼이 업(業)에 의해서 속박당해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영혼에 반대되는 비영혼(非靈魂, ajiva)을 설명한다. '비영혼'에는 5가지가 있다. 그것은 물질, 법, 비법, 허공, 시간이다.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법(法)은 원자가 움직이게 하는 원리이며, 비법(非法)은 원자가 정지하게 하는 원리이고, '허공'은 우너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다. '시간'은 초기 자이나교에서 조금 뒤에 추가된 것인데, 원자가 시간 속에서 작용한다는 의미다. 셋째, 유입(流入, asrava)은 몸, 이브 마음의 업으로 미세한 물질인 비영혼이 영혼을 둘러싸는 것이다. 넷째, 계박(繫縛, bandha)은 영혼을 둘러싼 미세한 물질이 미세한 신체를 이루어서 영혼을 속박하는 것이다. 다섯째, 제어(制御, samvara)는 영혼이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업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미 들어온 업은 없애는 것이다. 과거의 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고행이 필요하다. 새로운 업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 위해서는 '5대서(五大誓)'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살생하지 않는 것, 진실한 말을 하는 것, 도둑질하지 않는 것. 음행하지 않는 것, 무소유이다.

여섯째, 지멸(止滅, nirjara)은 수행이 완성되어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곱째, 해탈(解脫, moksa)은 업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156-157


자이나교단은 뒤에 백의파와 공의파로 나뉘어졌다. 백의파(白衣派)는 흰옷을 걸치는 종파이고, 공의파(空衣派)는 옷을 걸치지 않는 종파이다.  157


불교는 한국인에게 친밀한 종교이지만, 인도의 불교에 대해서 한국인이 잘 알지는 못한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불교는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이다. 물론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인도불교를 근간으로 한 것이므로 크게 보아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분명히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인도 불교에서 논리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또한 카스트제도를 비판하는 진보적 성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161


불교사상의 전개 과정

1. 초기불교의 사상은 3가지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사성제(四聖諦)이다. 이는 4가지 성스러운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고(苦)'는 인생의 현실은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집(集)'은 인생이 고통스러운 원인은 잘못된 욕망에 있다는 것이며, '멸(滅)'은 인생의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고, '도(道)'는 인생의 고통을 없애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도'는 팔정도(八正道)로 구성된다.

둘째는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이다. '법인'은 불교의 징표, 불교의 증거라는 의미다. 이는 제행무상 등의 3가지 또는 4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가르침을 올바른 불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라는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이므로 그만큼 이 명제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모든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무아(無我)라는 것이고, 열반(涅槃)의 경지는 고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연결해서 보면, 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집착하면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에는 진정한 자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것이 변하고 고통스럽고 무아임을 자각할 때, 진정한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이다.

셋째는 연기설(緣起說)이다. 이는 사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상호 의존성'을 말하는 것인데, 경전에서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멸(滅)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滅)한다"라고 한다. 이는 이 세상 어떤 사물도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삶이 가능한 것은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물건들은 내가 돈을 주고 사용하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철저히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상호의존성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이 연기설을 더욱 발전시켜 12항목의 연기설을 주장한다. 그 요점은 중생이 고통을 겪고 윤회하는 원인은 지혜가 없는 무명(無明)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경전은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역본과 팔리어본이 있다. 팔리어본은 '니카야(Nikaya)'라고 한다.

2. 불교 고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어진다. 이는 계율문제를 두고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누어진 것이다. 상좌부(上座部)는 보수파인데 불타가 정한 율(律)을 그대로 지키자는 쪽이고, 대중부(大衆部)는 진보파로서 불타가 정한 율이라고 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10가지 문제를 놓고 대립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핵심적 사항은 금은을 보시(기증) 받을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상좌부는 금은을 보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쪽이고, 대중부는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금은을 보시 받아도 된다는 쪽이다. 이렇게 2개의 부파로 나누어진 다음에 18개 부파로 나누어져 모두 20개 부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로 전파되었다. 

3. 대승(大乘)불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 활발한 힌두교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출현한 불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普薩)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범부(凡夫)보살인데 대승불교경전에 나오는 미륵, 관세음, 문수, 보현보살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대보살은 이미 수행을 완성한 존재이고 한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 대보살은 힌두교에서 토착신앙을 포섭하고 대중성을 확보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제시한 것이다. 미륵(彌勒)은 미래에 태어난다는 부처님인데, 다음 생(生)에 부처가 되는 것이 결정되어 있고, 현재는 보살로서 도솔천(兜率天)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慈悲)를 상징하는 존재이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실천행(實踐行)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에도 변화가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불타의 개념이 일반화하였고, 구제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불타가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중에서도 아촉불(阿?佛),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는 많은 사람이 귀의하는 대상이었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경전을 제작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전>, 반야경전 계열, <유마경>, <승만경>, <해심밀경>, <열반경>이다. <화엄경(華嚴經)>은 불타가 되는 수행단계를 50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화엄종(華嚴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법화경(法華經)>은 소승(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조화를 말하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은 중생을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한다는 내용의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정토종(淨土宗)의 근본경전의 하나가 되었다.

반야(般若)경전 계열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공(空)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경전이다. <유마경(維摩經)>은 출가하지 않는 재가 거사 유마힐(維摩詰)이 등장해서 불교이 가르침을 말하는 경전이다. 이는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유마경>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승만경(勝?經)>은 출가하지 않은 재가의 여인 승만(勝?) 부인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가르침을 말한 경전이다. 이것도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고,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성향이 강한 인도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경(涅槃經)>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경전이다. <열반경>은 경전이지만 논서의 치밀함을 보이는 경전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인도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으로 심층무의식으로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하고 있다. <능가경(楞伽經)>은 모든 중생이 여래(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사상과 유식학파의 사상을 결합한 경전이다. 이 <능가경>은 중국에 전해져 초기 선종(禪宗)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이 되었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2대 학파가 있다. 그것은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이다. 중관(中觀)학파에서는 공(空)사상을 강조하고 범부의 집착을 논리적으로 깨뜨리려고 하였다. 그 대표적 저술이 용수의 <중론(中論)>이다. 유식(唯識)학파에서는 범부의 마음에 주목해서 8식설을 주장하였다. 세친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 유식학파를 대표하는 저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승불교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전파되었다.

4. 기원후 7세기와 8세기에 접어들어 힌두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주류 문화가 되자 이에 대응하고자 나타난 불교의 흐름이 밀교(密敎)이다. 대승불교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이다. 밀교를 대표하는 경전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이다. <대일경(大日經)>은 중관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고, <금강정경(金剛頂經)>은 유식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다. 그 뒤를 이어서 무상유가(無上瑜伽) 탄트라가 등장했는데, 이는 인도의 탄트라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밀교 계열의 가르침이 티베트에 전래되었다.  161-166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점

불교는 인도의 문화 토양에서 자라났지만, 힌두교(브라만교)와는 4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첫째, 불교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와 남녀차별을 부정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인도의 문화와 토양에 국한되는 '인도의 종교'로 머물렀지만, 불교는 인도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는 세계 종교로서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국제적인 포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힌두교에서는 통일된 교리가 없고 믿음의 체계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면, 불교는 가르침이 명료하고(철학적 내용은 복잡하지만) 교리체계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넷째, 힌두교는 통일된 조직이 없는 느슨한 종교이지만, 불교는 교단을 구성하고 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종교활동과 포교활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166


시크교

시크교는 힌두교에 기초를 두고 이슬람교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이 두 가지 사상을 결합시킨 개혁종교이다. 이 종교를 처음 일으켜 세운 사람은 나나크(Nanak, 1469~1539)이다. 그는 카비르(Kabir, 1440~1518)의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이슬람교 신비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나크는 진정한 종교는 내면성에 있고 또한 진정한 종교는 신을 만나기 위한 심성의 준비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형식적인 의례를 부정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고행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나크는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카스트와 성적 차별도 부정하였다. 그래서 시크교에서는 어떠한 카스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동일한 음식물을 먹고 음식물에 관한 금지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또한 나나크는 내면적 청정의 중요성, 곧 종교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그래서 술, 마약, 담배를 금지하였고, 보통의 직업에 종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자아에 결사적으로 집착하여 탐욕과 분노와 집착과 자만에 지배당하고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러한 자기중심성을 극복할때 평호를 얻어 자기 자신의 본래적 원만함에 돌아오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신(神)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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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그게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외면의 것이든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마주치는 모든이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2.05.55)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진리는 이전 문맥을 통해 해석해 보아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대한 용기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우선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하려는 용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이다. 익숙한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안주하는 것만큼 편한 생활은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익숙한 것은 그것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주게 되어 인간의 정신을 고정시킨다. 그러니 그만큼 안락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움에 대한 극한의 반대 입장으로 진실한 눈으로 보는것을 방해하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으로의 배움이란것은, 새로운 아니 이미 존재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것들을 통해서 옳은 것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또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다는 다양성의 받아들임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경험의 접목은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된다. 첫번째 내용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과정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전제로 하기에 새로움의 자극은 깨달음 즉, 조금더 진리에 다가가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정하여 자신을 용서하는것. 갖혀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바라보더라도 비뚤어진 사고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강박적인 해석을 뒤따르게 할 수 있기에 자신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벽을치고 타인을 모두 틀리다고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 인정한다는 것은 잘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양성의 공존에 의해 모두 옳을 수도 모두 그를수도 없다는 점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 즉 심적 상태의 넓고 깊은 평온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다양한 것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알고 깨닫게 되는 것들에 의한 평온함의 깊이있어짐과 넓어짐이라 표현하게 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표현한 '진리'를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행은 새로움에 대한 놀라움과 그것들과의 소통으로 인한 인정과 올바른 비판적 수용 그리고 그러한 것들로 인한 새로운 해석과 앎.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부드러워짐과 인간적 불완전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견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진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유일하며, 이슬람, 힌두 관점에서도 비슷하고, 불교, 유교적 관점에서 깨달음에 의한 성장이기도하다. 이러한 것들로 볼때 이러한 종교적 진리 또한 어느정도 이상의 해석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말해 유일신에 의한 진리적 유일성이 아니라면, 깨달음의 과정이 중요하다. 더해서 유일한 진리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우리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현재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 인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서양의 산업발달에 의한 정상적 상태로 바라보면 기독교는 분석하고 판단하여 꿰둟어보는 통찰력을 길러서 그것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는 것. 종교에 대한 해석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절이 지나가며 이제는 그에대한 부작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중용이 필요하고, 마음 정신적 수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이 동양적 사상에 심취하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서양 사상을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면서 조금보태는 것이다. 즉 보완시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여행은 종교적으로 해석한 진리에 대한 의미도 포함할 수 있는 '진리'의 영역을 설명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개풀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라, 여행은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전통과 사상을 접하고 체험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러한 경험은 통찰력에 가까운 해석력과 수용능력을 배양하여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고대의 여행도, 지금의 여행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라면 이정도 되는 것이 아닐까.. 관광이 아닌 여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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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행복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다.
행복이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행복이란 것이 누구나 비슥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행복은 그 자체만으로 모든것을 상쇄시키는 것일까?
행복이 무엇과 구분되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고자 엮은것이라 생각이 든다.
제목처럼 행복에 대한 이론들이 들어있다.
인도에서 중국에서 그리스에서 중세에서 유대에서 기독교에서 불교에서 유교에서 철학에서 운동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행복에 대한 많은 생각들과 이론들이 거론된다.

행복은 쾌락과는 구분될 것이다. 쾌락만을 위한 쾌락은 결코 행복이 되기에 부족함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물질적인 것들이 행복에 해당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의 영속성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때론 사람의 마음과 육체가 더 힘들어질 수 있기도 하다.
철학적인 생각들이 행복을 발견하게 하기는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그것은 깊이의 부재의 시대에 더욱 한계를 드러내게 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부면에서도 행복을 논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의지의 면에서 행복이라 표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행복이라하기에는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으로 무언가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여러가지를 논하고 현대까지 논한후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의 가치기준의 차이로 행복의 느낌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위한 자신만의 잣대가 있을 수 있으며, 있어야 한다.
책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 자기계발서 같은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의 실행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책에서 여러 각도의 행복론에 대한 내용들을 통해 행복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행복은 만족인가?
어쩌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족한다고 모두 행복해 지는 건 아니기에 ...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다.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완전한, 완벽한 행복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에 조금더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며, 그렇기에 만족은 필요하다. 또한 어느정도의 쾌락도 필요하다.
그리고 깊이있는 생각들을 통해 좀더 영속적이 될 수 있는 방법과 생각들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행운이나 불운에 영향을 받지만, 운의 변화에 익숙해지면 누구나 자기가 타고난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주위 환경에서 행복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15
진정한 행복이란 단순히 '주관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삶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23
우리가 행복을 얻었는지 어떤지를 자문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을 자문하다 보면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만큼 행복할 자격이 잇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럴 자격이 없을 가능성을 돌이켜 보게 되기 때문이다.  26
성찰이 비관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않는다면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다.  28

불교에서는 어떻게 행복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불행이나 고통을 피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으로 인간 조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 행복은 좀 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고통의 조건을 피한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34
따라서 윤리적, 정신적인 노력의 최고 목표는 고통의 원인과 그것을 없애는 수단을 알아내어 고통의 부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삶은 고통이고, 고통은 욕망에서 나오며, 따라서 욕망을 버리면 고통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도 철학자들은 '니르바나'(nirvana :열반, 해탈)라고 불렀다.  37
힌두 철학자들은 '해탈'을 궁극적인 지복(도덕적 또는 정신적 완성과 동의어)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42
궁극적인 지복은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접촉과는 관계없이 영혼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측면을 깨닫는 것이다.  44

중국읜 3대 사상 - 도교, 유교, 불교 -은 모두 '복' 보다는 '락'을 더 자주, 더 폭넓게 고찰했다.  49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속담이 있다. '지족자상락(知足者常樂)'이라는 속담인데,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늘 즐겁다.'는 뜻이다.  이 사상의 원천은 노자의 무욕(無慾)철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52
장자는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자는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았는가? 지위를 지키기 위해 늘 불안에 사로잡혀 밤낮으로 힘들게 애쓰는 귀족은 육체적 생명을 돌보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필연적으로 슬퍼할 운명을 타고났으니, 오래 살면서 불행과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면 슬픔이 연장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57
중국 문화는 종교적 의미에서 신에 초첨을 맞추지 않는다. 중국의 철학과 종교는 뚜렷한 경계선이 없이 하나로 합쳐진다. 딸서 중국인들은 종교적으로 철학을 생각하고 철학적으로 종교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67

플라톤은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삶 자체가 바람직해야 하고, 그 자체로서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며, 현자가 가장 원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욕망만 만족시키는 삶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가능한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모든 생물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기능이고, 행복은 이 기능을 잘 수행하는 데 있다.  98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여가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99

수피는 순간에 산다는 뜻이다. 이는 순간을 '위해' 쾌락주의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본질과 핵심을 찾는 일에 완전히 헌신하는 것이다.  143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궁극적인 최대의 행복이라는 것은 중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78

페트라르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고전시대의 철학을 교묘하게 뒤섞어 행복을 다룬다.  183
너는 교황의 지위나 제국, 또는 권력과 부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댜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 페트라르카  185
조지프 홀주교(1574~1656)는 1608년에 출판된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에세이에서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세상을 알면서도 세상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19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평생 동안 최고의 미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최고의 미덕은 철학적 명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194
플라톤은 행복이란 영생불멸의 영혼이 육체에 갇혀 있다가 죽음으로 육체에서 해방된 뒤 신을 명상하며 즐기는 것이다.  195
데카르트읜 견해에 따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완전히 만족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199

18세기 사상가들은 열정적으로 인간학 연구에 달라붙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추동력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208

'통제감'은 우울한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습득된 무력감'의 정반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느낌.  237
낙천주의는 개인의 행복 수준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건강과 면역 체계의 상태와도 상관관계가 있다.  238
가장 중요한 사교술은 자기 자신이 사귈 만한 가치와 보람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42

흥미로운 결과는 '삶에 대한 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가 자살률도 가장 높다는 것이다.  255
영국 런던 대학의 조지 브라운과 티릴 해리스가 1970년대에 처음 시작한 중요한 연구는, 절친한 친구는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막아준다고 지적했다.  258
부부 불화의 원인을 조사해보니, 부부 양쪽의 행복 수준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태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주의적'태도를 가진 여성들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배우자와 대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겪게 된다고 여겨진다. 반대로 '전통적인' 여성들은 갈등이 생길 때 '감정 조작' 같은 기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겪게 된다고 여겨진다. 가장 행복한 아내는 이 양극단 사이의 중도 노선을 걷는 아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263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가장 강렬한 행복감은 사랑에 빠졌을 때 생겨난다. 그 밖의 행복한 사건으로는 결혼이나 약혼, 자녀 출산, 휴가, 학위 취득, 승진 등이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영역은 가정생활이고, 그 다음이 우정, 3위는 일, 4위가 여가 활동이다.  276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예외적인 정신 건강은 다음 여섯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1. 자아실현자들은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친구들은 그들이 역동적이거나 매력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력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논다.
2. 그들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동시에 현실적이다.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에게는 반성적인 면이 있다. 때문에 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따라서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3. 그들은 삶에 대해 열정을 갖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다른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정력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들은 현재를 위해 살고, 다가오는 날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발성과 기력이 넘쳐 흐른다.
4. 그들은 독립된 개인이다. 생각이 깊고 열정적인 그들은 옳다고 생각할 때만 남의 의견에 따른다. 그들은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래서 개인주의자로 여겨진다.
5. 그들은 타인의 욕구에 민감하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타인의 욕구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타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6. 그들은 영적 체험을 한다. 자유나 진선미 같은 숭고한 대상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있기 때문에,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이런 신비적 체험을 인식할 가능성이 더 높다.     277-278

우울증 환자는 치료하기 위해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전투에서 절반은 이긴 셈이다.  283
인지행동 요법은 우리의 기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290
필라델피아의 에어런 벡은 사고방식을 바꾸도록 환자들을 훈련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환자들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을 탓하지 않고(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힘에 부치는 일을 너무 무리하게 벌이지 않고(처음부터 지나친 야심을 갖지 않으면 시패할 확률도 그만큼 줄어든다), 현재에 좀더 정신을 짖중하는(과거에 연연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훈련을 받는다.  291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인생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한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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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학문인 인문학을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인간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고 소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인간이 인간은 이해하고 살아간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엄청난 발전의 속도 속에 그것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어쩌면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라고 하면 누구나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인문에서의 생각은 생활에서 무의식속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선택에 의한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깊이있는 생각 공감하고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생각, 그것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으며, 그것이 가능해 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인문학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문사철' 문학과 역사와 철학..
인문의 틀이다. 세 가지에 대한 고루한 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한 분야라도 고려해 보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이 책은 잘 정리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인문학의 어려움을 기본적인 지식의 부족에서 시작하는데, 저자는 15개 테마의 기본지식을 고려하고 있다. 표현대로 하자만 '바탕지식'이다.
기본적인 틀을 알고 깊이 있게 가자는 주제로 15개의 바탕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체계적인 강의나 토론회가 아니라면 모든 테마를 두루 살피기는 그것도 개인적으로 살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탕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관심있는 테마들을 하나씩 선정하여 알아가면서도 이웃테마들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세상 어느 지식 하나 인문학이 아닌 것이 없다. 어느 분야 하나 인간을 위하지 않은 지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5

서양인을 만난다면 그들 문화를 형성해온 두 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철학과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14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중요한 능력으로 'High Concept'(창의성)과 'High Touch'(좋은 인간관계를 설정하는 능력)을 들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는 <부유한 노예>에서 다니엘 핑크의 두 인간형을 'Geek'(엉뚱한 사람, 기발한 사람)와 'Shrinks'(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는 사람, 인간을 잘 이해하는 사람)로 표현한다.  15
수학여행의 기원은 18세기 영국 귀족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의 귀족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사를 붙여 교육에 힘썼고, 소년기를 벗어나면 유럽 대륙으로 수학여행을 보냈다. 기간은 3년으로 프랑스, 독일과 같은 국가들을 돌며 여러 가지 경험과 함께 문물을 배웠다. 이때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지성인들과의 만남이었다.  18

모든 게임의 시초는 전쟁의 역사로부터 비롯된다.  33
사마천은 '대게 서민들은 상대방의 부가 자기 것의 10배가 되면 이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이를 모서워하여 꺼리며, 1,000배가 되면 그의 심부름을 기꺼이 하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노복이 된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라고 말한다.  52

신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다.  59
동양삼국에 고사성어가 있다면(표의문자), 서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표음문자)  65
동양의 고사성어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면, 서양의 신화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69

성경에서는 조직경영의 중요 원칙 중 하나인 'Span of Control(통제범위의 원칙)' 즉 한 사람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원칙이다.  79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름 아닌 연기(緣起)다. 연기의 의미는 나와 다른 이들이 모두 연결되어 우리 모두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이고, 나아가서는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의미다. 하나는 같은 입장을 의미한다.  158

1997년 영국은 18년 만에 노동당 정권으로 토니 즐레어 총리는 정치 스승인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을 반영해 18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제 2의 길인 신자유주의에 부분적인 수정을 가한다.
규제를 없애 사회 구석구석까지 경쟁체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빈곤계층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 역시 사회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 것이다. 
신 자유주의에서 약간 방향을 튼 새로운 정책은, 자기 상승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교육과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의료과 같은 부문은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복지정책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제1의 길인 복지개념, 제2의 길인 신자유주의에 이어, 제3의 길로 부르는 이 길은 신자유주의와 같은 명확한 개념이 없다.  225
현실적으로 힘을 가진 미국과 같은 나라가 생각을 바꿈으로써 신 자유주의는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이 극단적으로 노출되어 호되게 당하고 난 뒤 할 수 없이 방향을 틀 수도 있다.  226
IMF는 2차 대전 직후에 설립된 국제기구인 만큼 당시 국제사회의 패권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긴급금융과 같은 주요 사안은 85% 이상의 의결을 필요로 하는데, 미국이 바로 절묘하게도 17%의 결정권을 쥐고 있다.  234

16세기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계약을 주장한 홉스(1588~1679년)가 개인의 생명보호를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내세웠다면, 로크(1632~1704년)는 한 걸음 더 나가 사회계약의 중심을 재산권보호에 두었다.  243
사회계약이 장자크 루소(1712~1778년)로 넘어가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이제부터는 '자유'가 중심 사상을 이룬다.  244

일본의 역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국가 형태이전(BC1만년~ AD3세기)
2 천황통치시대(4세기~1192년)
3 막부시대(1192~1868년)
4 메이지 유신 이후(1868~현재)    259
전쟁은 기본적으로는 전력 싸움이다. 그리고 그 전력의 바탕은 다름 아닌 지식욕과 학습이다.  273

우리나라 역사는 크게 7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삼국시대 이전( ~BC18년)
2. 삼국시대(BC18~676년)
3. 남북조시대(676~936년)
4. 고려시대(936~1392년)
5. 조선시대(1382~1910년)
6. 국권피탈기(1910~1945년)
7. 대한민국(1945~현재)

중국의 역사는 삼황5제의 전설시대와 하 은 주 진 네 왕조시대를 거쳐 
1. 한(BC207~AD220년)
2. 위진남북조(220~581년)
3. 수(581~618년)
4. 당(618~907년)
5. 오대십국시대(907~960년)
6. 북 남송시대(960~1279년)
7. 원(1279~1368년)
8. 명(1368~1644년)
9. 청(1644~1911년)
10. 중화민주 및 중화인민공화국(1911~현재)

일본의 역사는 청황통치시대를 지나 막부시대를 맞이하는데, 막부는 
1. 가라쿠마 막부(1192~1333년)
2. 무로마치 막부(1338~1467년)
3. 전국시대(1467~1573년)
4.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73~1603년)
5. 에도시대(1603~1868년)     306

성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항상 3대 또는 최소 2대가 걸린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두 왕의 재위기간 100년(391~491년)
백제는 동성왕, 무령왕, 성왕 3대 재위기간 75년(479~554년)
신라는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3대 76년(500~576년)에 걸쳐.  320
재주복주(載舟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324


의미를 따지고 전례를 찾고 논리를 동원하고 큰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는 인문학이 적격이다.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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