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척점, 더 정확히 말해 정반대의 극(極 다할극)은 자주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과 우리네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때, 우리와 유사한 것보다는 다른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체념한 채 타인의 모습에 비친 자기 자신의 반영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않고,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면서만 살고 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이해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벼랑 끝에서 포기 직전까지 어렵사리 자신의 연구를 밀고 갈 때보다 남들이 벌인 탐구를 관찰할 때가 아니던가. 독서가 우리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이다. 독서는 고통을 주는 굴곡 많은 글쓰기 과정에서 우리를 구해주고, 계속 나아갈 힘을 실어준다.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FYJ)  5-6


AE : 내겐 두 가지 형태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리 계획된 텍스트들이 있고, 여기에는 [밖에서 쓰는 일기]와 [외적인 삶]도 포함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병행하여 오래전부터 행해온 잡다한 형태의 일기 쓰기가 있는데, 1982년 이래로 나는 내면일기와는 별도로 '글쓰기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와 의혹을 담는 일기로, 난 이것을 생략된 문장과 약자로, 이를테면 흘려쓰고 있습니다. 내 머릿속엣 이 두 형태의 글쓰기 방식은 조금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문학과 삶, 총체와 미완 사이의 대립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용과 수동성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31


AE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와 <탐닉>, 이렇게 단 두 권의 내면일기만을 출판했어요. 이 일기들은 모두 십 년 전에 씌어졌고, 실제로 그 기간에 살았던 삶은 이미 각각 <어떤 여자>와 <단순한 열정>이라는 자전적 이야기의 대상이 되었지요. 이 두 가지 상황- 십년이라는 유예기간과 그 기간에 상응하는 책의 존재 -가운데, 후자가 일기를 출판하도록 부추긴 좀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유예기간도 중요하겠죠. 그 세월이 내가 나의 일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50


AE : 내 작업방식은 주로 기억에 근거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기억은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할 요소들을 환기시킵니다.... 나는 '보고' '듣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어요. 그런데 내게 그것은 '다시 보기'이며 '다시 듣기'를 의미합니다.  53


FYJ : 당신은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추구함으로써 상당히 멀리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젠 당신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20세기에 소설 형식이 극한까지 가버린 이 시점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소설이라는 형태의 퇴락을 인정하는지요? 

AE : '소설'과 관련지어, 항상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이상 나의 지평 위에 있지 않습니다. ...

문학 교과서에서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나 중등교사 자격 시험의 문학 시험문제에서는 마치 '소설'이 하나의 본질인양, '예를 들면서' 소설에 관해 논술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 빈번하게 벌어지는 대담에서 '소설'이라는 단어는 점점 더 확장된 의미를 지니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거의 히스테릭한 태도로 '허구'를 옹호하는 자들도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품질인증표라고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지 않습니다.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어요. 강렬한 감동을 주고, 생각이나 꿈 혹은 욕망을 열어주고, 때로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있을 뿐입니다. 루소의 <고백록>,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브르통의 <나자>, 카프카의 <소송>,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 애초에 인증표를 달고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설사 그랬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상실해버린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72-74

AE : 내가 나라는 개인의 암흑지대에 마침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정신분석은 나와는 언제나 무관했습니다. 점처럼 고립된 몇몇 발견들이 내게 뭘 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글쓰기에서 그것들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말이죠. 독자들 가운데, 글을 쓰는 것 특히 자전적 글쓰기를 행하는 것이 정신 분석을 실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는 믿음을 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어떤 허망한 욕심이나 오해인 것 같아요. 자신의 문제로부터 전적으로 혼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열망, 즉 어떤 심리적-상징적 복권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뭐 그런 것 말이죠. 그건 오해예요. 글쓰기가 깊숙이 감춰진 무엇을 다시 찾으러 나서는 것이며 정신분석의 치료과정과 유사한 것이라고 믿는 거니까요.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는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냐 하는 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작업'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내가 어떤 것에서 치유되어야 한다면, 내게 그 치유는 오직 언어에 대한 작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정신분석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데 기여한 내용-그것은 정말 엄청나지요-에 관해서나, 문학에 접근할 때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로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때때로 경찰처럼 구는 구석이 좀 있지요. 무슨 일이 있엉도 자가의 심리적 구성 요소들을 낱낱이 적발해내고야 말리라는 의지를 품고, 텍스트의 고백을 마치 피고인의 진술인 양 몰아가잖아요. 그러고는 이 모든 게 바로 이것 때문이고, 난 이걸 다 알고 있지! 하는 식이에요. 이땐 실망스러워요. ...

이따금 나는 아도르노처럼 생각한답니다. 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정신분석이 개인 실존의 고통스러운 비밀들을 의례적인 진부함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말한 바 있지요.  78-80


AE : 대게 글쓰기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느 순간, 어떤 충동이 일어나 몇 페이지를 쓰도록 나 자신을 부추깁니다. 하지만 난 그 글에 아무런 목적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페이지들이 어떤 특정 텍스트의 도입부로 예정되어 있지는 않죠. 그 다음엔 멈춰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그 조각을 한동안 보류시켜 둡니다. 그러는 사이 계획은 좀 더 선명해지면서, 말하자면 그 조각에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조각은 그 계획 속에서 결정적 요소로 부각되기에 이릅니다. 이런식의 설명이 좀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내 책들이 각각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각 텍스트에 대한 구상(난 이것을 욕망이라고 말하겠어요)속에는 그러니까 각 텍스트에 대한 욕망 속에는 어쨌든 매번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183


FYJ : 글쓰기 작업의 구체적인 정황을 요약해보지요. 당신은 문단과 문장의 삭제와 덧쓰기, 첨가와 제거를 통해 일을 진행합니다. 어쨌든 덧쓰고 지우는 작업이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당신의 모든 텍스트에 적용되는 항구적 필요성에 부응한다면, 그 작업의 성격에 어떤 유형의 관념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첨가합니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작업을 합니까? 당신은 버전마다 '원고지 철'을 바꾸는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작업을 하는것 같은데요...

AE : 내 원고들은 마치 패치워크 같아요. 갈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원고가 씌어진 종이 위에는 단어들 위나 행간 혹은 여백에 각기 다른 색의 사인펜이나 검은 연필로 덧쓴 자국들로 온통 뒤범벅된 몇 개의 문단이 씌어 있어요. 그 문단들의 자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아서, 그것드로가 연관지어 참조해야 할 페이지 번확 표기되어 있지요. 예를 들어 10번 종이에는 10-2, 10-3 혹은 10-4 같은 식으로 종이들이 와서 붙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그 이상의 것을 시도해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포스트잇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잘 떨어지기 때문에 크게 신뢰하는 편은 아닙니다. 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싶거든요. 어느 날은 마음에 들지 않던 것이 그 이튿날에는 다시 좋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은 계획, 즉 계획을 구성하는 데 내가 몰입했을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죠. 한편으로는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언제든 일상적 삶에서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끊임없이 첨가하고 끌어들이는 식이죠. 삭제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단계에서 컴퓨터로 텍스트를 정리할 때는 많은 부분을 삭제합니다. 칠 년 전가지는 타자기를 사용했는데, 그때는 아무래도 정정하거나 수정하는 빈도에 한계가 있었죠. 텍스트가 인쇄되었을 때, 내 원고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종종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왜 지웠는지 스스로 물어본답니다. 그런데 그걸 설명할 수가 없어요. 수사본 연구가들이라면 과연 설명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의심스럽습니다. 텍스트를 매만지는 최종 단계에서, 나는 일종의 필연성에 따라 작업합니다. 하지만 일단 책이 완성되고 출판되면 그 필연성은 상실되고 말지요. 텍스트는 그 총체 속에서 하나의 자율적 생명체처럼 고려되어야 합니다. 텍스트는 내가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나와 한몸이지만, 결국 내 밖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거된 어떤 부분들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것입니다.  190-192


FYJ :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신에게, 프루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체험된 유일한 삶"이 되는 것입니까?

AE : 프루스트는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해명된' 삶. 따라서 실제로 체험된 유일하게 진정한 삶. 그것은 문학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난 "발견되고 해명된 삶"이라는 이 말을 강조하고 싶어요. 내 느낌에 이 말이 핵심인 것 같아요. 혹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어요.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또한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글쓰기가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도래하게 하는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글쓰기에는 공포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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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작가의 말


나는 세르지에 있는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가기로 결심했다.  9


나는 어머니가 아직 우리 집에 머물렀던 바로 그 기간 동안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머니의 여러 가지 행동들과 어머니가 한 말들을, 날짜도 쓰지 않은 채 종이 조각들 위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처럼 피폐되어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제발 미친 짓 좀 그만 하세요!"라며 고함지르는 꿈을 꾸었다. 그후로 나는 퐁투아즈 병원에서 어머니를 문병하고 돌아올 때면 점점 더 절박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말들과 모습을 어김없이 적어야만 했다.  10-11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그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12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13



1984년


1월


어머니는 더러워진 팬티를 베개 밑에 감추어둔다. 오늘밤 나는 예전에 어머니가 감추어두곤 했던 피투성이의 팬티들을 생각해보았다. 어머니는 세탁하는 날까지 창고 속에 넣어두는 더러운 속옷 더미 속에 그 팬티들을 깊숙이 파묻어두곤 했다. 그때 내 나이는 대력 일곱 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황홀에 겨워 피 묻은 팬티들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의 팬티는 똥투성이인 것이다.  18-19


나는 어머니가 전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19


토요일이다. 어머니는 커피를 토해내고는 기진맥진하여 꼼짝 않고 누워 있다. 한층 더 작아진 눈 주위가 붉게 가라 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려고 어머니의 옷을 벗겨보니 아직까지도 살결이 희고 부드러웠다. 옷을 갈아입힌 후 나는 울었다. 예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다름아닌 내 몸을 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20-21


2월 25일 월요일

우리가 응급실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들것에 실려 누워 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오줌을 누었다...우리가 진찰실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진찰대 위에 몸을 길게 쭉 펴고 누워 계셨다. 인턴이 복부까지 어머니의 잠옷을 걷어올리자 넓적다니, 음모가 없는 맨송맨송한 음부, 그리고 몇 군데 파열된 피부의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대번에 내가 그처럼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죽음 암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고양이는 죽기 전에 내 베개 위에다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20년전 낵가 유산했을 때 쏟았던 피와 분비물들도 생각났다.  21


3월 28일 화요일

쭈글쭈글 흉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두 손. 관절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집게 손가락은 새의 발톱과 흡사하다. 어머니는 손가락을 깍지낀 채 비비적거렸다. 난 어머니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4


4월 14일 토요일

어머니는 내가 가져온 딸기 파이를 먹고 있다. 크림 한가운데 들어 있는 과일을 파먹으면서 "여기서는 나를 소홀히 대접해. 검둥이처럼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잘 주질 않아" 하고 불평했다. 가난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어머니의 강박관념을 나는 잊고 있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독일 포로 수용소 부헨발트의 유령처럼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떤 여자가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릅뜬 채 아주 똑바른 자세로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잠옷을 들추자 기저귀 찬 팬티가 보였는데 음부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다면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한 이곳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인 것이다.  26


4월 부활절 일요일

어머니의 옆사람은 한 손을 팬티 속에 집어넣은 채 자고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모습이었다.  27


4월 29일 일요일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제장신이 들자, "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라고 말한 후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28


5월 13일 일요일

이곳 우스(발두아즈 내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에 사설 양로원이 있다)는 퐁투아즈보다 환경 조건이 여러모로 열악하다. 간병인이 내게 "당신 어머니가 오줌을 누었어요. 방안 여기 저기에 오줌을 누고 다니니 어쩜 좋아요, 그래"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오늘 내 안에서 비집고 올라왔던 사디즘적인 욕구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 다른 소녀들에게 느꼈던 가학적 욕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꾸 나를 공포에 떨게 하므로 보상심리에서 내가 가학적 욕구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30


6월 15일 금요일

내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찌푸린 표정으로 승강이 옆에 앉아 있었는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어머니는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당신의 병실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는 마카롱 과자를 주자 먹지는 않고 부스러뜨리기만 했다. 내게 이런 식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울고만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 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35


6월 23일 토요일

1층 로비에는 파자마를 입은 한 노인이 항상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전화를 걸려고 무척 애를 썼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종이 위에 적힌 전화번호를 내게 보여주길래 그대로 다이얼을 돌려주었지만 틀린 번호였다. 하루 종이 ㄹ이 노인은 아마도 어떤 단체 혹은 자식들 중의 하나인 듯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다. 거의 타인과 격리된 상태이다. 어머니는 이젠 개인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리고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모두 포기해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있을 때 화장품 도구 세트를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사물들에 집착함으로써 세상에 매달려 있고자 고군분투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손목시계도 화장수마저도 없어지고 지금 갖고 있는 것이라곤 먹을 것 밖에 없다.  36-37


8월 24일 금요일

난 지금, 나도 모르게 치솟아 오르는 감정에 편승한 채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42


9월 29일 토요일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여 있던 어머니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드실 비스킷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머리맡 탁자의 서랍을 열었다. 나는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당연히 과자라고 생각하고는 집어들었다. 그것은 똥덩어리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당황한 나머지 얼른 서랍을 도로 닫아버렸다. 곧이어 떠오른 생각은, 만약 내가 서랍 속에 똥덩어리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이를 발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얼마나 쇠퇴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은근히 바랬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종이로 싸서 화장실로 가져갔다.  48


12월 크리스마스

어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아프지 않도록 온갖 정성을 들여 조심스럽게 깎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지레 겁을 먹고 끙끙 신음소리를 낸다.  58




1985년 


1월 19일 토요일

어머니는 모든 기력을 총동원해서 게걸스럽고 억척스럽게 먹는 행동에 몰두한다.  61


6월 9일 일요일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은 자기의 벽장 속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반시간 동안이나 정돈한 다음 다시 전부 제자리에 갖다 넣는다. 도대체 이런 행동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집에서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실 무렵 어머니 또한 왜 이 노인처럼 행동하셨던 것일까? 그들의 정신 속에 부재하는 질서를 외부에서라도 바로 잡으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일까?...

어머니는 내 친구가 날 만나러 올 때면 "아니! 누가 찾아 왔다"고 하시며 기뻐하곤 했다. 어머니는 방문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것은 사랑의 증거이며 타인이 마음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77


9월 19일 목요일

어머니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인기를 누리고 싶어서 그림책과 사탕들을 나누어주길 좋아했었다. 그후론 준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 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는 방법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보앗던 광경이 떠오른다. 침대에서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누워 계신 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며 "예쁘지도 않네"라고 했다. 어머니의 음부, 즉 세계의 근원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90-91


10월 18일 금요일

어머니가 그랬듯이 시자에서 구걸하는 장님에게 적선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적선을 하는 어머니의 행위는 그 동냥자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단념시키는 일을 한 결과가 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 말은 청춘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터라 그때마다 얼마나 거부감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어머니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과 평상시에 입던 새하얀 블라우스 자락이 내 뒤에서 끊임없이 나부낀다.  94


10월 21일 월요일

어머니는 항상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던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곤 했다. "누구한테든지 말을 적게 해라"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사고방식과 사랑했던 방식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관점에 따르면 섹스란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인 악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95


11월 3일 일요일

어머니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양손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아 한참 헤맨 후에야 두 손을 맞잡을 수가 있었다. 오른손이 마치 낯선 물체를 잡고 있는 양 왼손을 꽉 쥐고 있다. 과자를 먹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입에 정확히 갖다 대지 못하고 빗나간다. 어머니의 손에 쥐어준 과자도 다시 떨어뜨리기 때문에 입 안에 넣어드려야만 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쇠약해졌고 그럴수록 동물적인 본능이 강하게 드러난다. 난 모든 것이 두렵다. 희미한 어머니의 눈빛, 어머니는 갓난 아이처럼 혀와 입술을 쪽쪽 빨아들였다 내밀었다 하다. 난 어머니의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고 머리를 묶을 고무줄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 손질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는 "난 네가 머리를 빗겨줄 때가 참 좋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말과 동시에 어머니의 모든 동물적 본능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말끔히 머리를 빗고 씻은 어머니는 다시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고 단장시켜주는 이 기쁨이여! 내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한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이 어머니의 목과 다리를 쓰다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살아 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는다는 것, 즉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96-97




1986년


4월 7일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괴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예측조차도 못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랬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14-115


4월 8일 화요일

일거수 일투족을 옮길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되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난 이렇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끌어내어 고갈시켜버리고, 지쳐버린 고통이 더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16


4월 10일 목요일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동전 지갑이 들어 있는 어머니의 여행용 가방과 흰색 여름용 핸드백, 머플러 몇 장이 있었다. 나는 여행용 가방을 벌려놓은 채 이러한 몇 가지 물건들을 앞에 두고서 멍하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몰랐다.

내가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들도 거기에 있었지만 난 그것을 펼쳐보고 싶지 않았다. 차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단지 두세 번 정도 이런 상태를 경험했다. 실연의 슬픔을 겪었을 때와 유산을 한 후에 나는 지금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118-119


4월 12일 토요일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10개월 된 어린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124


4월 20일 일요일

50세 때 찍은 어머니의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생기가 넘쳐 흐르는 얼굴과 적갈색의 금발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어머니는 꼭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서 마치 컬러 사진을 보고 있는 것같았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2주일 전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그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128


4월 28일 월요일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혀진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128-129




옮긴이의 말


이 작품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소재를 깊이 있게 응축하는 데 단문과 극도의 생략법을 사용하고 있다...명사 혹은 부사로 압축되어 끝나는 단호한 문장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인식해가는 작가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 작가의 침묵적 고백, 이것은 인간의 삶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실존적 고독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1-132


글쓰기를 통해 현실적 삶의 고통에 밀착되어 떠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는 독자로 하여금 소중하고 경건한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삶에 대해 끝없는 희망을 가질 의무를 부여해 준다.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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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어머니는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아버지와 한바탕 벌인 말다툼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주엥도 쉽게 멈춰지지 않았고, 식탁을 치우고 밀납을 입힌 식탁보를 훔쳐낸 뒤에도 그칠 줄을 몰라싿. 어머니는 연신 아버지를 비난하며 매번 화가 날 때마다 그랬듯이 쥐구멍만한 부엌-식당과 식품점을 겸하는 가게와 2층으로 연결된 계단 사이에 끼여있는-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는 묵묵부답 창가 쪽으로 고개를 발작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설고 탁한 목소리로 악을 쓰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주넉으로 때리며 식당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나는 2층으로 도망쳐 침대로 몸을 던지고는 베개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이내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살려!" 하는 목소리가 식당 쪽 지하로부터 들려왔다.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온 힘을 다해 악을 썼다. "사람 살려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개인지 목덜미인지를 틀어쥐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평상시 나무 둥치에 박혀 있는 낫이 들려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울음소리와 비명뿐이다. 잠시 후 우리 세 식구는 다시 부엌에 모였다.  7-8


아버지는 "넌 왜 울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자, 이젠 끝났다."라는 말을 했다.

1952년 6월 15일의 일이었다.

훗날 몇몇 사람에게 나는 "내가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털어놓고 싶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9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나는 자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기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실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란 그저 그때의 분위기나 부엌에서의 각자의 위치, 몇 마디 말뿐이었다.  10


나는 정신분석이나 가족 심리학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위압적인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죽음으로 위협해서 그녀에 대한 복종심을 파괴한 아버지 등등. 이러한 초보적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면 이미 옛날에 어렵지 않게 얻어냈을 것이다. '그건 가족에 대한 정신적 외상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라거나 '유년기의 신의 이미지가 그날부터 몰락한 겁니다.'와 같은 말은 그 장면에 대한 어떤 해석도 하지 못하며, 그 순간 내게 떠오른 '재수 옴 붙었네.'라는 표현만이 그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추상적 단어들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21


당연히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 이야기는 꾸며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한마디로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27


인생의 시간은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 나이'로 구분된다. 영세를 받을 나이, 손목시계를 선물 받을 나이, 여자 아이는 처음으로 파마 머리를 할 나이, 남자 아이들은 첫 양복을 입는 나이, 첫 월경을 하고 스타킹을 신는 나이.

식사주엥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 담배 필 권리가 있는 나이, 음담패설을 할 때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 

직장에서 일하고 댄스 파티에 가고 '데이트'할 수 있는 나이, 군대 갈 나이, 오락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 결혼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 검은 옷을 입는 나이, 더 이상 일하지 않는 나이, 죽는 나이.

이쯤 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완성 된다.  42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 '발전'되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는데, '발전'이란 거역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불가항력의 힘이라고 여겨졌다. 그 증거도 무수히 늘어나서 플라스틱, 나일론 스타킹, 볼펜, 소형 오토바이, 레토르트 수프, 그리고 의무 교육 같은 것이었다.

나의 열두 살은 이런 세상의 법칙과 관례 속에서 보내졌다. 다른 것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43


남들처럼 살자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이자 성취해야 할 이상이었다. 개성은 일탈, 심지어 조금 미친 것 같다는 증세로 간주되었다.  48


당시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실망했을 때는 '멍청했었지'. 불만이 있을때는 '나빴었지'같은 표현이 고작이었다.  51


(카톨릭 사립학교 시절) 사진이 있는 연애소설을 읽거나 일요일 오후 포토 회관의 댄스 파티에 가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번도 억압된 삶을 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63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그들의 궁핍한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6월 일요일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 이상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모멩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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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화처럼 살고 싶다(voglio vivere una favola) -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 계단에서 본 익명의 낙서에서



서문


1989년 11월 16일.. 나는 한 해 전에 모스크바, 트빌리시, 레닌그라드를 여행하는 작가들의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우리 여행의 수행역을 맡고 있었다. 우리는 레닌그라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우리는 관계를 지속했다. 우리의 행위는 의식처럼 일정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후나 저녁, 드물게는 그 다음날이나 이틀 후에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와서 단 몇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우리는 그 시간에 섹스를 했다. 그가 떠난 후, 나의 일과는 다음번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9-10


(그는) 고르바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지자라고는 했지만 술에 취하면 브레주네프(구소련의 정치가, 스탈린 이후 최장기인 18년 동안 소련을 통치함) 시대에 대한 향수와 스탈린에 대한 흠모를 감추지 않았다.  10


이 기간 동안, 나는 잡지사에서 청탁해오 ㄴ원고 외에는 아무 글도 쓰지 않았다. 사춘기 때부터 불규칙적으로 적어오던 일기가 나의 유일한 글쓰기의 장이 되었다. 그것은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견디는 방법이었고 동시에 에로틱한 몸짓과 말들을 기록함으로써 쾌락을 배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 

그가 프랑스를 떠난 후, 나는 내 온 존재를 기배했고 그때까지도 계속 내 안에 살아 있던 그 열정에 관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집필되었고 1991년에 쓰기를 마쳐 1992년 '단순한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1


2000년 1월인가 2월, 나는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S에 대한 나의 열정의 시간에 해당되는 일기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

나는 컴퓨터에 텍스트를 입력하면서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았다. 생각이나 느낌들을 포착하기 위해 순간순간 종이 위에 나열해놓은 단어들은 나에게 시간만큼이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그 단어들은 시간 그 자체다.  12




1988년


9월 


27일 화요일

S ... 이 모든 아름다움. 지난 1958년, 1963년, 그리고 P때와 똑같은 욕망, 똑같은 행위, 몽롱함과 무력감마저 똑같다.  17


나는 옛날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단지 아름다움, 열정, 욕망일 뿐.  19



10월 


3일 월요일

그는 나의 가장 '유치한' 부분, 그리고 가장 사춘기적인 부분을 대변한다. 별로 지적이지 않고, 큰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내 젊은 시절의 남자'이며, 금발이 약간 촌스럽다(손과 네모난 손톱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사랑은 나의 머리와 육체 속에서 한 가지일 뿐이다.  24


4일 화요일

그가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예쁘게' 치장하고, 준비하고,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25


5일 수요일

아직도 내 안에 그가 남아 있다. 나의 모든 비극이 바로 거기 있다. 그를 잊을 수도, 홀로 설 수도 없다. 나는 그의 말, 몸짓을 빨아들인다. 나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흡수한다. 이런 밤을 보낸 후에는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26


6일 목요일

그는 여자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성 정치가들에 대해 비웃음을 금치 못한다. 그 여자들은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등등. 그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재미있어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 그는 점점 <빈 장롱>에서 내가 묘사했던 이상형, '내 젊은 날의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로제르 골목에 세워놓은 자동차 안에서 그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입으로 그를 애무했다. 그런 후, 우리는 끝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며 나느 ㄴ어제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27


8일 토요일

"다음주에 전화할게." 이것은 '이번 주말에 당신을 만날 수 없어'라는 뜻이다. 나는 미소지었다. "알았어." 만남의 간격을 좀 두는 게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로 고통스럽다. 육체의 향연 후에 나는 다시 혼란 속에 빠진다. 내가 너무 달라붙는 것처럼 보일까봐, 너무 늙어 보일까봐(늙었기 때문에 다라붙는 것이다) 겁난다.  29


12일 수요일

나는 단순한 생물로서 이것이 언제나 마지막인 것처럼-게다가 그렇지 않다는 법이 또 어디 있나- 사랑을 나눈다.  30


18일 화요일, 19일 수요일

그(아니 우리)는 점점 더 강렬하고 격렬한 욕망으로 사랑을 한다. 말하고 보드카를 마시고 또 사랑을 하고... 네 시간 동안 세 번. ..

간간이 사랑의 순간들을 다시 생각한다(그는 나에게 돌아누우라고 요구한다. 누워서 오럴 섹스로 절정에 오른 순간, 그는 신음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당신 정말 기가 막히게 해." 그는 부드럽게 나를 자기 배 쪽으로 끌어당겨 사랑의 행위를 시작한다). 기억, 마비 상태,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그가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다. 다시 기다리기 시작한다.  33-34


25일 화요일

요즘처럼 내가 아름다웠던 적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어제 오샹(대형 슈퍼마켓 상호)에서도 그랬듯이 나를 유혹하려는 남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스무 살, 서른 살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37


27일 목요일

한밤에 불리는 내 이름, 쾌락의 신음 소리, 그의 성기에 대한 숭배. 그를 열렬히 애무하는 나를 보려고 그가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우리가 처음 관계 맺기 시작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십자가에서 떼어낸 나신의 예수 그림을 생각했다. 너무나 나른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에 관해서 쓰는 것, 너무나 신비롭고 짜릿한 '그것'에 관해 쓰는 것 말고는.

이제 나는 사랑 속에서 진실을 찾지 않는다. 관계의 완벽성, 아름다움, 쾌락을 찾을 뿐이다. 상처주는 것을 피할 것, 즉 그에게 기분좋은 말만 할 것.  40



11월


15일 화요일 

눈을 뜨면서 기다림이 시작된다. '그후에'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가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순간에 정지한다는 말이다. 그가 오직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끊이없이 나를 괴롭힌다. 끝없는 불안감 때문에 이 이야기는 아름답다.  52


25일 금요일

호우헤 프랭탕 백화점의 '섹스 코너'에 가서 책들을 들춰보았다... 나는 를뢰 박사의 <애무에 관하여>, 그리고 75개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80만 권이 팔렸다는 <부부와 사랑> <육체적 사랑의 테크닉>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내 뒤에 여자들이 서 있다. 나는 태연하다. 점원이 책을 포장했다. 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지 못하도록 은행 카드로 지불하지 않는다. 전철 안에서는 이 책들을 읽지 말아야지. 나는 완벽한 육욕과 승화를 위해 이 책들을 구입했다.  60



12월


6일 화요일

내게 세상에서 견딜 수 있는 두 가지는 오로지 사랑과 글쓰기다. 나머지는 암흑이다. 오늘 저녁에는 둘 중 아무것도 없다.  66


9일 금요일

내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봐, 특히 그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주지 못할가봐 두렵다. 하지만 이런 모든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내가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67


15일 목요일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지금과 비슷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어쩔 수 없이 1958년과 1963년이 떠오른다. 삶에 대한 흥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전화벨 하나면 충분하다. 언젠가 이 일기장을 읽게 된다면, "아니 에르노 작품에 나타난 상실감"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a) 초기에는 무관심, 더 나아가 혐오감까지도.

b) 주로 외모에 대한 '놀라운 발견'.

c) 잘 절제된 즐거운 관계. 가끔 싫증을 느끼는 시기도 있지만.

d) 고통, 중독으로 인한 끝없는 결핍감. 그러고는 극심한 고통(나의 현재 상태). 행복한 순간들은 미래의 고통일 뿐. 고통을 가중시키기만 함. 

e) 끝으로 이별. 가장 완벽한 단계인 무관심에 도달.  71-72


그를 생각하면, 내 방에 있었던 그의 나신이 보인다. 나는 그의 옷을 벗긴다. 그의 발기한 성기와 욕정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73


20일 화요일

혼외관계라는 틀 속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형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성적 집착도 있고, 약간 미친 듯도 하다. 그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P와 사귀었을 때보다 어렵다-은 매우 도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75


24일 토요일

나는 어머니가 노인병원에 있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이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77


27일 화요일 

물론(나는 기다렸지만...) 예상대로 그는 '내일이나 모레'에 전화히자 않았다. 울고 싶고 구토가 난다. .. 오늘밤, 그의 부재와 혐오감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누른다. 잠을 자야지, 자야지.  79


28일 수요일

한숨도 못 잤다. 끔찍한 상태다...

나는 굶주린 여인이다. 이것이 나에 관해 거의 유일하게 정확한 표현이다.  79-81


30일 금요일

이런 생각들로 꽉 찬 "나는 안나 카레니나다". 브론스키에게 미친 안나. 두려움.  82-83




1989년


1월 


1일 일요일

가끔 그랬듯이, S에게 편지를 쓸지도 모르겠다. 그가 오면 그 편지를 줄 것이다. 전화와 마찬가지로 편지도 보낼 수 없다! 좋은 소설감이다.  88


4일 수요일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사랑을 바라는가?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약속한 적이 없고 나 자신도 아름다움밖에 바라는 것이 없는데, 그러나 더이상 아름다움은 없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90


6일 금요일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 공세를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프루스트 <갇힌 여인>).  92


8일 일요일

S에 대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 중에서 확실히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지적으로 더 우월하고 약간의 질투심을 가진 여자와 함께 있는, 젊고 잘생긴 바람둥이(내 남편과 나의 경우). 둘째, 약간 내성적이고, 자기 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별로 바람을 피우지 않는 남자. 섹스할 때의 그의 태도나 경험 부족으로 봐서는 둘재 경우가 맞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 전에 나 혼자서는 결코 정확히 알 수 없으리라.  


9일 월요일

간절한 기다림. 내가 이런 세세한 것까지 기록하는 이유는 기억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93


12일 목요일 

서로 못 본 지 벌써 1주일이 넘었다. 나에겐 다음 약속 날짜말고는 다른 미래가 업삳. 그리고 다음 약속이 정해지지 않는 한, 미래도 없다.  97


28일 토요일

독일에서 돌아옴.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파리가 가까워올수록, 기다림과 욕망이 되살아난다.  104


31일 화요일

그가 결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징조들을 모두 모으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5시에 온단다...

21시. 그가 막 떠났다. 기진맥진한 육체. 이보다 피곤할 수 없다. 다른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웃음. 어린애 같은 웃음.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나 소파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그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을 안다. 그는 반쯤 옷을 벗고 눕는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의 머리서부터 성기까지 천천히 애무하고 나서 입을 맞춘다.  107



2월


1일 수요일

상대방의 몸을 배우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09


5일 일요일 

나는 전화로 그에게 "당신을 원해"라고 말했다. 그는 거북한 어투로 "아!"라고만 대답했다. 말해선 안 되는 것을 그가 드덱 하는 이상한 대화. "당신에게 말하는 게 나아, 안 그래?" "그래." 그가 대답한다. "말하는 게 나아,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게 나아?" "말하는 거." 하지만 그가 전화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처음인 게 확실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에로틱한 대화를 주도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110


10일 금요일

글은 욕망을 유지하게 한다.  112


24일 금요일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는다.  120


27일 월요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S와의 오늘 저녁은 너무나 열정적이어서, 마치 내가 용서받은 것 같았다. 다섯 달이 지난 후 또 새로운 쾌락을 발견했다(발견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부드러운 애무와 육체에 취한 나머지 아무 생각이 없다.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서 함께 얕은 잠이 들었다. 그는 남성다움과 나르시시즘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아한다.(나는 그의 뒤에서 손으로 그의 성기를 잡고 자위행위를 대신해준다. 그는 내 손만 볼 뿐, 나는 보지 못한다.) 에로티시즘과 많은 가능성을 발견해가면서...  122


28일 화요일

오후 내내 그를 용두질시키는 내 손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던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나는 그의 뒤에 있었다). 그는 사춘기였을 때의 행동을 되새기거나, 어쩌면 좀더 어렸을 때의 환상을 반추하는 듯하다. 그의 추억을 되살리고 그와 함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음에 행복감을 느낀다.  123



3월


10일 금요일

지나가는 푀조 405 또는 505 자동차를 볼 때면, S가 이런 유의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대형 승용차를 선호하고 출세에 몰두하는 나르시시스트, 그리고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섹스 생각이 날 때마다 만날 수 있는, 그의 물건을 불끈 달아오르게 해서 사정하게 해주는 예쁘장한 여자라고만 생각하는 남자.  127


18일 토요일

오직 나만의 내적 결핍,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내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시작된 필립과의 결혼생활... S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결코 사랑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의 젊음이며,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사람이며, 현 세계의 가장 큰 수수께끼인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점이다.  132


21일 화요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3주 동안 그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냉정하고 무관심하게 한다.  133


27일 월요일

노트 한 권에 다섯 달분의 일기밖에 적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분석을 많이 할수록 글을 더 많이 쓰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집착의 괴력, 그 자체에 관해서는 어떤 분석도 할 수 없다.  135-136


28일 화요일

내가 이 노트에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욕망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순서를 따라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아직도 이 열정으로부터 빠져나올 힘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매달리고 있는 것보다 좀더 확실하고 명확한 신호들이 있어야 한다. 모험을 하듯 결별의 편지를 써야 한나? 현재 상태는 필립 때와 비슷한 S의 무관심, 우유부단한 태도인 것 같다. 나를 버리려고? 그래.

편지를 쓰면 끝날 것이다. 그래서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137


30일 목요일

이 일기 속에서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S에 대해 '계속' 쓰고 싶다. 가능할까? 나의 꿈은 휴가를 모스크바에서 보내는 것. 그곳은 S와 휴가를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138



4월


4일 화요일

그가 방에서 옷을 다시 챙겨입는 끔찍한 침묵의 순간. 옷가지들 하나하나-내가 네 시간 전에 벗겼던 옷들-를 천천히 다시 입는다. 처음에 팬티, 메리야스, 그 다음은 바지, 혁대, 셔츠, 넥타이, 구두(양말은 절대 벗지 않는다). 이 의식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진다. 이별, 무한히 느릿한 슬로 모션...

그의 기둥서방 성향. 시바스리갈 위스키 반 병을 마시고, 뜯은 말보로 담배를 보루째 가져간다. 나는 어머니와 창녀를 겸한다. 나는 언제나 모든 역할을 다 맡는 걸 좋아했다.  141


13일 목요이

코펜하겐 넵튠 호텔의 방(1985년과 같은 호텔),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신약성서가 있고 텔레비전 위에는 포르노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놓여 있다. 호기심에서 '언제' 볼까 망성인다(계산서에 포함되어 드러날 테니까!).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배우기 위해서.  143-144


28일 금요일

그는 어제 11시쯤 왔다. 욕정. 그는 무릎을 꿇고 내 성기에 입맞추었다.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이다. 다정한 사랑의 표현.  151



5월


3일 수요일

결심 : 내가 저지(Jersey)로 떠나기 전에 그가 세르지에 오지 않는다면, 한 번만 더 만나고 결별을 한다. 아니면 전화로 끝낸다.  153


6일 토요일

오직 S만이 나의 관심사다. 나를 그에게 밀착시키는 이 힘은 아마도 그의 비밀스런 성격, 예측 불가능함, '기이함' 속에 있는 것 같다.

그가 침묵하는 원인에 대한 검토 :

1) 대사관 영화 시사회-나는 참석했고 그녀는 불참했던-와 관련해서 자기 부인과 다툼. 만약 내가 온 사실을 그가 감췄다면.

2) 내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의한 알렝N에 대한 질투심.

3) 권태(내 꿈에서처럼), 그리고 만나는 간격을 늘여가면서 나를 버린다.

4) 업무,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KGB가 아닐까?).  155


8일 월요일

저녁. 전화가 왔다. 아주 '평상시처럼'. 내 상상의 날개가 한꺼번에 꺾인다. 잠이 온다. 그와 결별하고 싶지 않다. 다음번까지..  157


12일 금요일

11시 445분. 그가 와서 다섯 시간쯤 머물렀다. 오래 전부터 이렇게 완벽한 시간, 이처럼 조화로운 시간이 없었다. 매번 다른 바업ㅂ으로 네 번의 정사를 나누다. (침실, 애널 섹스, 아주 부드럽고 오랜 애무 후에 아래층 소파에서 다정하게 남성 상위 체위로, 침실에서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내 정액을 당신 배 위에 쏟을 거야." 소파에서, 완벽한 일체를 이루었던 애널 섹스.) 우리 둘의 육체, 존재에 대한 끝없는 갈망.  158-159


13일 토요일

그가 8월에 떠나는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오늘 아침 시내에서 운전하는 동안 끝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처럼. 그리고 낙태 후 루앙 거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삶에서 비밀스런 의미를 지닌 굵직한 선들. 아직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동일한 상실, 오직 글을 통해서만 그것을 진정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159-160


16일 화요일

지금에야 나는 사랑을 사랑하고, 섹스를 사랑한다. 더이상 슬프고 고독한 것이 아닌 사랑을 사랑한다.  161


20일 토요일

나는 결코 사랑이라는 감정의 힘을 믿은 적이 없다. 보통 사회적인 여러 요인들이 다분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163


21일 일요일

도서박람회. 그를 보지 못했다. 저녁에도 무소식. 그가 목요일대사관 영화 시사회에도 가지 않는다면? 혹 다른 여자라도 생겼다면? 이 고통스런 기다림은 그가 또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수많은 여자들과.  164


27일 토요일

2년 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남자와 글 사이를 오가는 지옥 같은 순환.  170



6월


3일 토요일

지금 내 가슴을 뭉크랗게 만드는, 정액을 연상시키는 어떤 것-그전에는 혐오하던 냄새-들이 있다. 5월 12일에 그가 내게 한 말. "당신 배 위에 사정해도 돼?" 그후로 엄청난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이런 추억들은 매번 생각할 때마다 나를 전율케 한다. 그는 이제 오지도 않고, 이런 말들을 다시 하지도 않을 것이다. 러시아 식으로 짤막하게 발음하는 말들. 정액에 대한 혐오감이 그리움으로 변한 것으로 그에 대한 내 애착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밤에 르 루아레에서 온 S의 전화로 행복이 절정에 이른다.  173


11일 일요일

불면의 밤. 또 한 번 레닌그라드를 떠올린다. 그때의 기쁨, 그때의 감각들을 되살려본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내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 그저 하룻밤 상대였을 뿐. 내가 레닌그라드의 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그후 섹스를 한 수십번의 밤과 오후 때문이다... 요즘 나는 반쯤 마취 상태에 있다. 글을 쓸 의욕도 책을 읽을 의욕도 없고, 이제는 습관 같은 그의 무소식에도 걱정조차 되지 않는다.


15일 목요일

반쯤 의식이 들면서 깨어나는 순간에 끼어드는 진실들. S에게 나는 그저 섹스를 잘해서 가끔씩 만나볼 만한 여자일 뿐이다.  178 


17일 토요일

육체는 숨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무성(無性 없을무 성품성)의 생명이자 욕망이다.  180


19일 월요일

전화가 없는 날들에 점점 더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날짜를 꼽는다. 하지만 그는 아마도 시간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81


29일 목요일

두 가지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약속 없는 고통의 시간, 다른 하나는 오늘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곧 실현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실현될, 망연자실한 욕망의 시간이다.  188



7월


15일 토요일

그는 15시 25분, 30분경에 왔다가 20시 15분에 떠났다. 다섯 시간. 지난 겨울(11월)보다 약간 덜해진 그에 대한 욕정. 하지만 언제나 거듭되는 우리의 애무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어제 그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럴 땐 대화가 더 많아진다. 비극은 가눌 수 없는 피로감이었다. 어젯밤, 나는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돌같이 누워 있었다. 그가 스며든 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특히 글쓰기 작업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보름 만에 만났다. 이제 이게 평균적인 간격이다. 1주일 정도면 좋겠다. 부인이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나... 아니면 다른 여자인가? "여자들은 힘들어"라는 그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애썼다는 말인가, 아니면 힘들게 다른 여자와 성공했다는 말인가? 일반적으로 그가 여자를 쉽게 유혹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199-200


27일 목요일

나는 그에게 말한다. "Ta tebya lioubliou.(러시아어로 '당신을 사랑해'라는 뜻.)" 그가 내게 러시아 마로 대답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서 그에게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한다. "단지 마샤만 사랑해?" "응". 내가 대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떠날 거야. 하지만 당신은 슬퍼하지 않겠지. 강한 남자니까." 그가 대답한다. "그래 맞아." 그가 떠날 시간이었다. 어떤 말로도 덮을 수 없는 그 말이 내 가슴을 찢어놓았다. "다음주에 당신에게 전화할게. 집에 있을 거야?" 라는 말뿐. 일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를 거칠고(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즐기기만 하는(나쁠 것도 없지) 플레이보이 또를 고르비보이로 봐야 한다. 떠나며 탁자 위에 있는 말보로 담배 보루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묻는 그 남자를위해 내가 1년이란 시간과 돈을 잃었음을 확인했다. 스무 살에나 마흔여덟 살에나,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남자 없이, 삶 없이 무엇을 하겠는가?  205-206



8월 


3일 목요일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3일인 오늘 오후 16시 15분에 왔다(그리고 밤 10시에 떠났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지쳐 있다. 광적인 섹스로 얼이 빠져 있다. 예외적으로 그가 만난 지 1주일 만에 왔다.(과거보다는 미래, 즉 내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것과 비교해보기 위해 이런 것들을 기록한다.) 처음으로 내 베개 밑에 그의 것으로 젖은 팬티를 하나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예전과 달리 내 젖가슴을 삼킬 듯이 온 입으로 애무하고, 부끄러움 없이 벗은 채로 돌아다녔고, 지난번 내가 준 편지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직도 불투명하고, 사랑을 증명하지 못한다. 물론 사랑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209


11일 금요일

우리는 사랑하고, 먹고, 애무했다. 땀이 범벅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는 입술. 그래,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긴가. 나는 어제 쾌락에 꽌한 나의 한계들을 또 한 번 넘었다. 그에게는 아마 퍼포먼스 같기도 했으리라.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오직 욕망만이 중요할 뿐...

흐린 날씨다. 머릿속도, 가슴도 나는 언제나 스물두 살이다.  212-213


18일 금요일

카날 플뤼스(유료 텔레비전 채널. 시청하기 위해서는 디코더가 필요한데, 이 장치 없이 보면 화면이 흐릿하고 음향이 없다)에서 디코더 없이 포르노 영화를 봤다. 처음엔 클로즈업된 성기들을 보고 놀랐다(특히 카메라를 가까이 접근시켰을 때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너무 기계적이라 별로 흥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음향이 없어서 책보다 덜 에로틱했다. 끝까지 다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 영상들은 나를 쫓아다닌다. 그것들은 명백한 '사용법'을 보여준다. 행위를 보는 것은 언어를 통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행적(遂行的 드디어수 다닐행 과녁적)이다. 가장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장면은 남자가 여자 배 위에 사정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녀 위에 평화와 정액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성경)  216-217



9월


1일 금요일

생일이 온다. 마흔아홉 살. 곧 끔찍한 '50대'가 된다.  223


5일 화요일

그에게 그가 태어난 날에 발행된 신문을 선물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것이 그를 얼마나 행복하고 다정하게 만드는지. 이제 순조롭게 되어가는 건가?... "당신은 멋져"라고 그가 말했다. 그때처럼 우리는 서로 입술로 애무했다. 우리는 깊은 합일을 이뤘다. 나는 그가 나를 완전히 정복하여 내가 순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나를 등쪽에서 보고,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오럴 섹스. 아직도 그의 얼굴에 대한 기억들을 모으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금방 잊어버린다...

곧 1년이 된다. 새로운 키스 방법과 욕망을 해소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끝없이 고안해야겠다.  224-225


7일 목요일

피렌체. .. 열정의 추억들을 남겨놓고 이제 곧 프랑스를 떠나려는 한 남자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늘밤에도 나는 기차 안에서 끊임없이 지난 월요일의 장면들을, 그리고 내가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장면들을 떠올렸다.  226


16일 토요일

돌아온 후로 계속되는 이틀간의 침묵. 그가 목요일에 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죽음이고 암흑이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떠났다는 확신이 미친 듯이 나를 휘감으며, 그를 다시 볼 거라고 생각했던 피렌체에서 품었던 나의 기대가 혐오스러워진다.  240-241


28일 목요일

그를 보기 위해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소유이고 재산이며, 그 나머지 시간들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게 너무 어렵지만. 지금 나는 평소에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들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까? 등등.  247


29일 금요일

어제, 그와 함께 TF 1(프랑스 최대의 민영 방송국)의 멍청한 오락 프로그램들, 예를 들면 <정확한 가격 알아맞히기> 따위를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그가 얼마나 지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지를 발견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본 영화는 끝까지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찌나 지루해하는지, 끊임없이 몸을 뒤틀며 보기 드물게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249



10월


1일 일요일

이달이 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침묵. 다시는 러시아 악센트의 '아-니'도, 자동차 소리를 기다리는 것도, 오후의 발소리도 들을 수 없겠지.  250


10일 화요일

"현재란 무엇인가?" 현재는 이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버거운 미래와 두려움이다. 그를 볼 것이라는 행복감과 서너 시간의 만남이 흐른 후에 그를 더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감. 멍청한 노래 한 곡이 머릿속을 맴돈다.  253


12일 목요일

약간의 시간이 더 나아 있다... 그는 러시아 혁명 기념식 후에 떠난다. 사도마조히즘적 체험을 했다. 하지만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다(애널 섹스와 '정상 체위'의 혼합으로. 완전히 녹초가 됨. 한순간, 그 부분이 찡어지는 줄 알았다). 그가 말했다. "아니(Annie), 사랑해."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자히 않는다. 섹스를 할 때 한 말이니까. 그러나 어쩌면 유일한 진실은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254


19일 목요일

아직 샴페인 병은 가득 차 있고 위스키도 지난번보다 덜 마셨다. 사랑의 몸짓과 체위에 대한 끝없는 발명. 그의 성기 위에 샴페인을 부었다. 그런 것은 그가 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면서. 애널 섹스. "언제 어디서건, 당신이 무엇을 요구하건, 나는 당신을 위해 그걸 할 거야. 당신을 위해서 그걸 할 거야" 라는 나의 말에 당환항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 듯했다. 그가 먹고 있던 음식 조각을 내 입 안에 넣었을 때 그는 감동했다.

어쩌면 한 번 더, 단 한 번이라도 더... 모든 것, 애무, 희ㅣ한 말들, 또는 애정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각각의 신호를 다 기억할 수가 없다. 가죽 의자 위에서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하는, 놀라운 서커스 같은 체위. 나에게는 완벽주의적이고 창의적인 면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골몰하는 대상은 사랑이다.  258



11월


1일 수요일

5년 전부터 즐거움과 자신감(섹스, 질투심, 사회적 출신 성분 역시)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더는 수치심을 갖고 살지 않기로 했다. 수치심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내게 글 쓰는 작업은 도덕적 기능을 지닌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예전에는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의 모험을 원치 않았다. 오랫동안-아직도 그렇지만-글을 써왔기 때문에 쾌락적인 삶은 내게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내 남편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그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용서했다. 글을 쓰지 않는 인생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걸 빼고는.  266-267


3일 금요일

내가 한 남자를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268


7일 화요일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늙어빠졌을 거야." "내게 당신은 결코 늙지 않는 사람이야." "늙지 않도록 노력할게."

나는 왜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더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나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글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일 뿐.)  273


9일 목요일

"언제부터 언제까지 나는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로 시작하는 책을 쓰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할 경우 S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그에게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분히 한계가 있는 저술 계획뿐.  274


14일 화요일

아직 하루가 남았다. 나는 그의 좁은 미간과, 약간은 잔인해 보이는 치아로 거의 확실히 예견할 수 있었던 사실을 부정해보려고 애쓴다. 내가 그저 쾌락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 그렇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잊으려고 애썼다. 남편과 보낸 18년보다 1년을 지우는 것이 더 힘들까? 증오는 그 세월을 지우는 걸 쉽게 하지만 사랑은 그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277-278


15일 수요일

확실히 최악이다. 예전에 "아냐, 더이상 만나지 않을래, 더는 만나지 말자"라고 말하지 못했던 나의 나약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준 모든 것을 따져본다. 아주 치사하게. 뒤퐁 라이터, 파리에 관한 책, 고판화, 그가 태어난 날 발행된 신문, 말보로 담배 보루들, 수많은 위스키... 아마도 스무 병쯤, 최근에는 훈제 연어와 샴페인. 그는 세르지에 서른네 번, 스튜디오에 다섯 번 왔다. 아무 소용 없는 계산이다. 마흔 번이고 백 번이고 지금에 와서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끝났다는 것,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맑은 의식이 주는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다.  279-280


16일 목요일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거기 있는 것, 그리고 섹스하고, 꿈을 꾸고, 그가 또 오고, 섹스하고, 모든 것이 기다림일 뿐이다...

오샹 슈퍼마켓 정면 모퉁이에 있는 속옥 가게에서 보라색 브래지어와 가터벨트를 본다. 은행. 여자들이 내 앞에서 기다린다. 이 여자들은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 광적인 사랑을 잃는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을까. "아니(Annie), 당신을 사랑해." "당신 정말 멋져." "아니(Annie), 나 사정할 거야." 그녀들은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한다. 나도 그냥 습관적으로 시계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떻게도 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내겐 미래가 없다...

니콜에게 전화를 했다. 나 : "그놈은 나쁜 자식이야!" 그녀 : "아냐, 그는 불행한 거야. 그래서 일부러 전화 안 한 거야." 내가 화조차 낼 수 없게 하고 가당치 않은 미미한 희망을 갖도록 해석하는 그녀가 원망스럽다. 이건 더욱더 가당치 않은 해석이다.  281-283


18일 토요일

살아남는다는 것은 참혹하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잘못 걸려온 전화다. 이상한 말투를 쓰는 여자였다. 사는 동안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황당한 순간에라도. 니콜과 한 소녀에 관한 꿈을 꾸다. 아버지도 꿈에 보인다. 우리가 읽는 에로틱하고 노골적인 책들에 반발하는 아직 젊은 아버지의 모습. 아마도 오이디푸스 콜플렉스일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이다.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리라. 나를 구한 것은 그녀에 대한 책이었다. 지금 나는 그에 관해 쓸 '권리'가 없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1982년 10~11월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쓰게 될 책과 상실의 결합...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만큼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를 위해 나는 멋진 책을 쓰고 싶다.  285-286


24일 금요일

마지막으로 그를 본 지 18일이 지났다. 4월과 9월 가운데 24일간을 보지 않은 최고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기다리는 대상이 없다. 날짜를 꼽는 것이 이젠 아무 의미가 없다. 언젠가는 그를 본지 두 달, 석 달, 여섯 달이 되겠지. 우리가 마지막 만난 날 서재의 이중 커튼을 직접 치고 싶어한 그의 모습을 요즘 매일 저녁 커튼을 칠 때마다 생각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나 : "커튼 치는 게 어려워..." 그 : "내가 할 수 있어!"  290


28일 화요일 

오늘도 아무 희망 없이 보낸 하루. 옛날 에는 내게 아무 감흥도 주지 않았던 노래를 듣는다. "그래, 나야 제롬이야. 아냐, 난 변하지 않았어/나는 너를 사랑했던 그때 그 사람이야..."(누가 불렀지? 클로드 프랑수아?) 아침식사를 하다가 운다. 그 노래가 돌아온 사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나는 언제나 S의 모습을 생각한다. 키가 크고, 부드럽고, 발가벗은, 말하자면 우리가 만나는 동안 내게 고정된 그 이미지 그대로, 그가 모든 것을, 눈부시게 에로틱했던 날들을 모두 잊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부재, 추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긍정적인 점은, 내가S가 떠날 때처럼 차리고 있으면-내가 그를 언제나 입으려고 했던 이 검은 정장-아직도 남자들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때다.  292-293



12월


1일 금요일

잊기 위해서 재미있는 관계를 갖고 살고 싶은 욕망, 그냥 재미있는 관계(콘돔을 사는 것이 그 증상).  293


14일 목요일

문득문득, 끊임없이 떠오르는 S 생각, 솟구치는 눈물.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너무 힘들다. 물론 아무 희망도 없다. 그러나 이것을 쓴다는 것은 내가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이성적 판단과 마지막 몇 달을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가 떠난 시점이 우리 관계의 확실한 종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98


15일 금요일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나'라는 의문을 점점 더 냉정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 근본적으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 이야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1년 동안 내 관심을 끌었던 짧은 장면들이 생각난다. 로시아 호텔에서의 첫날 그의 얼굴과 미소, 그가 나를 포옹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까진 나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것... 1988년 11월, '프랑스-소련 친선의 밤'에서 그가 대사관 여직원 일행과 떠나면서 의도적으로 짓던 표정.  299





1990년


1월


19일 금요일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은 한꺼번에 몇 해를 늙는다는것, 그가 있었을 때는 흐르지 않았던 그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늙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상상속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늙는 것이다. 이 욕망은 내가 어쩌면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동화 같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315


31일 수요일

내일이면 2월이다. 월 초마다, 매달 15일마다-은행에서 잊를 챙기듯-S가 서유럽으로 다시 와서 내게 전화하길 막연히 기다린다. 이제 곧 석 달이 된다. 어쩌면 이렇게 회복이 더딜까, 모든 것이 느리고 무가치하다.  317



2월


2일 금요일

글 쓰기 행위는 나에게 언제나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 S에게 품은 것과 같은 그 열정과 글쓰기가 절대적 가치라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다. 그것들이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결부되어 있다는 생각과 함께.  319


29일 목요일

예전에는 '안정된 생활'을 위해, 그리고 '형제애'를 위해 남자를 찾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은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남자를 원한다. 즉, 글쓰기와 가장 가까운, 나 자신의 상실을 위해, 빈 곳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남자를 찾는다.  341





옮긴이의 말 - 고통과 열정의 외침

당시 35세, 아니 에르노는 48세였다.  346


자신의 애인이 작가라는 사실이 제일 중요한, 속물 같은 남자와의 육체의 향연에 에르노는 혼신의 정열을 기울인다.  346-347


그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거리의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기도 하고, 애인과의 완벽한 육체적 합일을 위해 포르노 영화나 사랑의 기교에 관한 책을 보고 연구하여 창조적이고 서커스 같은 체위를 직접 연출하기도 한다. 매번의 만남이 '쾌락의 한계를 넓혀가는' 시간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욕망과 에로티시즘에 '굶주린 여인'이다.  347


그런에도 점점 식어갈 수밖에 없는 열정에 대한 안타까움, 결별에 대한 두려움, 젊은 애인이 하눈팔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그의 아내에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질투심... 그녀의 일기에는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고통과 열정의 외마디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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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9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열여덟 해 동안의 결혼생활 뒤 다시 얻게 된 자유를 그가 처음부터 애타게 원했던 동거생활과 맞바꿀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싫증이 나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후로도 계속 전화 연락을 주고 받았고, 가끔씩 만나기도 했다. 어느 저녁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서 한 여자와 함께 살 거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감각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솟아올랐음을 깨달았다. 그순간부터 이 다른 여자의 존재가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녀를 통해서가 아니면 더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11-12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의 성과 이름, 나이, 직업을 알아내야만 했다. 개인을 정의하기 위하여 사회가 파악하는 이런 요소들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자 할 경우 별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라고 흔히들 경솔하게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13


내가 만나는 여성들의 육체가 그 여자의 육체로 탈바꿈하는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내 눈에는 '가는 곳마다 그 여자가 보였다.'  16


질투를 할 때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한 도시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쳤을 일이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17


나는 그와의 헤어짐으로 인해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게 사로잡힌 상태가 아닐 때면,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의미를 띠게 된, 우리가 함께 보낸 과거를 악착같이 상기시키는 외부세계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19


난 무엇보다도 우리 관꼐가 막 시작되던 무렵을, 내 일기에 적혀 있듯이 그의 페니스가 벌이는 '굉장한' 기교를 추억하곤 했다. 결국 내가 내 자기에 세워놓는 사람은 다른 여자가 아니라,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을 나, 사랑에 빠져서 그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 사이의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나였다.

나는 그를 다시 소유하고 싶었다.  22


시나리오가 어떻든 간에 여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여배우의 육체를 빌려서 끔찍스럽게 배가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고통이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영화가 끝나면 안심이 될 정도였다. 어느날 저녁에는 일본 흑백 영화를 보다가, 내 고뇌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느꼈다. 전후를 배경으로 한 그 영화에서는 끝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통이 펼쳐지는 것을 봐도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육 개월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싿. 사실, 열정의 폐해를 겪어보지 못한 살마들만이 카타르시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3-24


우리는 변함없이 카페나 내 집에서 만나곤 했다.  25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권총으로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31


다시 자유로워지는 것, 내 안에 자리잡으 ㄴ이 무게를 바깥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문제였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 목적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W가 나를 사귀게 되면서 버렸던 여자가, "바늘을 꽂아서 방자(남에게 재앙이 내리도록 귀신에게 비는 행위) 하겠어"라고 분노에 떨며 말했다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빵의 말랑말랑한 부분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핀을 꽂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이상 천치 같은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동시에, 두 손으로 빵을 주무르고 머리나 심장 자리에 정성들여 핀을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가엾고 순진한 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에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수그려 저 깊숙한 곳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바라볼 때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어쩌면 바늘을 꽂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32-33


그 여자와 W가 살고 있는 건무의 모든 입주장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미니텔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아 명단을 만들어두었다-은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또한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36 51(발신자 제한번호)을 누른 다음 꼼꼼하게 모든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35


전화를 걸어본 이름들 중에 자동응답기에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남겨놓은 도미니크 L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36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알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던 내게, 제쳐놓았던 단서들이 갑작스럽게 다시 의미심장한 것이 될 때가 있었다. 잡다하기 짝이 없는 사실들을 끼워맞춰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나의 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우리의 약속을 미루자고 한 날 저녁에 일기예보를 듣다가, 진행자가 "내일은 성 도미니크 축일입니다"라는 말로 일기예보를 마치는 순간, 그 여자의 이름이 도미니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 집으로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은 그녀의 축일이니 함께 레스토랑에 갈 것이고, 촛불을 밝히고 저녁 식사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을 해야 할 테니까. 이 추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도미니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은 나의 추론이 옳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러한 탐색과 광적으로 여러 단서들을 짜맞추는 행위를 보며 지능의 탈선적 사용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차라리 지능의 시적 기능, 문학과 종교 및 편집증엣 작동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그 기능이라고 하고 싶다.  38


나는 일기에다가 "다시는 그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라고 적었다. 이 말을 적는 순간에는 더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쓰기로 인해 고통이 가벼워진 것을 상실감과 질투가 끝난 것으로 혼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기장을 덮자마자,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으며, 그 여자에 관한 정보들을, 여전히 고통을 낳게 될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욕구에 다시금 시달렸다.  41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강박증과 고통을 여기에 노출하고 있는 행위와, 랍 대로에 가면 그들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출을 두려워하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글스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엣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나의 얼굴, 나의 육체, 나의 목소리, 나라는 인간의 특징을 형성하는 이 모든 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는 내팽개쳐버릴 누군가의 눈앞에 드러내는 것은 더없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이나, 지금은 내 강박증을 드러내고 헤집어보는 일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반항심도 전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43-44


유일하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그가 아직도 나를 만나고 있으며, 가령 얼마 전에 내 생일선물로 브래지어와 T팬티를 선물했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알게 되는 상상을 할 때였다. 그러면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고, 진실이 드러났다는 지극한 행복감 속에 잠겨들었다. 마침내 고통이 육체를 바꿔 탄 것이다. 난 그녀가 느낄 고통을 상상하면서 내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덜 수 있었다.  49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앴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사랑하거나, 음악이나 정치참여, 정원이 있는 집과 같은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하거나, 혹은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둠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육체적 사회적 고통에 비하면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물의를 일으킬 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치일지라도, 나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도 그 고통을 더 사랑할 것이다.  50


욕망이란 필요한 모든 것을 논거로 끌어다 사용하는 놀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잡지 속에나 굴러다니는 상투적이며 진부한 생각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의 딸이 엄마보다도 훨씬 어린 엄마의 연인을 참아내지 못해서, 혹은 딸아이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서 그들이 더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52


유일하게 진실한 것, 결코 말하지 않을 진실은 "난 당신과 섹스하고 싶고, 그 여자를 잊게 만들고 싶어"라는 말이었다. 그밖의 것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허구였다.  53


어느 일요일 오후, 프랑스에 잠깐 들른 L과 극장에 갔다. 그를 다시 보는 것은 친 년 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저절로 이끌려 그의 부모 집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 위에서 섹스를 했다. 그는 내가 아름다우며, 기가 막히게 잘 빨더라고 말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종종 성행위를 통해 얻고자 했던 '정념의 정화'-"아! 네 물건을 어서 넣어줘/ 그리고 끝장내버려/ 아!/ 그 이야기는 이젠 그만"과 같은 외설적 유행가가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성적 쾌락엣 모든 것을, 쾌락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 사랑, 융합, 무한, 글쓰기의 욕망, 이제껏 내가 그에게서 얻어냈다고 여기는 최상의 것, 그것은 냉철함으로, 감상주의에서 탈피해 갑자기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56-57


이제 나는 "당신, 페니스 좋아하지, 그렇지? 아무 페니스나 말고, 당신 거" 따위의, 예전엔 거리낌없이 서로 속삭이던 대화를 전화로 나누고 싶어져도 참게 되었다. 그런 말들이 지금의 그의 페니스를 부풀게 하기는 커녕 흥분을 싹 가시게 하는 외설스러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62


(학교에서 문학 텍스트의 구절들에 제목을 붙이듯이, 자기 삶의 순간들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씩, 순전히 의례적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것 역시 끝났다.

그의 페니스가 생각날 때면, 첫날 밤에 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눈앞에, 거대하고 강력하며 끝이 버섯 갓 모양으로 부푼 채 불끈 솟아 있던 그의 페니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낯선 사람의 페니스를 보는 것 같다.  67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고해하러가던 것과 유사한 습관으로, 일종의 정화의식이 되었다.

이젠 그 여자에 관해서 이름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알아내고 싶은 욕망이 조금도 없다(혹시라도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정중히 거절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이 그 여자처럼 보이는 일도 없어졌다. 파리의 거리를 걸을 때도 이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해피 웨딩]이 흘러 나와도 라디오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가끔씩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지만, 더이상 담배나 약물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사람과 흡사한 정도다.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을 간직하는 방식, 그러나 이제는 '사로잡힘'이자,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으로 변해버린 그것을 간직하는 방식이었다.  67-69





옮긴이의 말 - 질투의 심연에서 만난 치열한 글쓰기


'그'가 떠나갔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홀몸의 자유를 포기할 정도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미적지근한 연인관계를 유지해오던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한들, 그것이 '나'의 삶에 무에 그리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지만 '그'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라면? 갑자기 '그'에 대한 '나'의 빛바래가던 감정은 애초의 생생한 색깔을 되찾는다. '나'와 '그'의 관계를 규정짓던 타성과 습관은 어느새 그 힘을 상실하고, '그'를 되찾고자 하는 '나'의 무시무시한 눈먼 욕망만이 길길이 날뛴다.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이렇듯 '나-작가'가 겪은 질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73-74


에르노의 <집착>은 '자전적 허구'를 작가들의 노출 욕구나 배출 통로쯤으로 치부하던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예외로 다가온다. 우선, 에르노의 글은 치열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가장 내밀한 부분가지 올올이 드러낸다...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라고 못박는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난 시공간엣 행해야 할 작업이다.  75


에르노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계산할 줄 아는 작가이다. 끊임없이 군더더기를 떨어내고, 치밀하게 자르고 다듬어 완벽하게 아귀를 맞추어놓은 문장들 사이에는 세워놓은 바늘을 바라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균형이 자리잡는다.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주어와 동사를 품지 않은 문장들은 이 벼리기 작업의 가시적 결과이다. 에르노의 글은 푸근하지 않고, 정련된 문장들이 안져주는 정신의 긴장을 즐기는 독자들로부터 그래서 더욱 인정을 받는다.  77


작가는 '주요 관심사'나 '점령'을 의미하는 'L'occupation'이란 제목을 고름으로써, '질투'의 두 가지 양상을 겨눈다. 하나는 질투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뒤로 어떤 다른 일에도 정신을 쏟지 못하고 '그 여자'를 찾아내는 일이 '나'의 '주요 활동'이 되어버린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마치 무엇엔가 들리기라도 한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여자'의 존재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나'의 상태이다.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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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이야기를 글로 옮겨야만 할 것 같다.  8


아버지는 일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가끔 씻고 조금 먹고 하루 종일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현관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이별의 장면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는데 아버지는 도무지 제목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깊은 상처를 다시 들쑤실까 두려워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묵계였다. 아버지는 그 책을 구입한 뒤 외출할 때에는 윗도리 주머니에 넣고 나가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마치 알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책을 깔고 앉았다. 그 책은 아버지의 슬픔을 자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숨을 붙이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아버지가 책을 부엌 탁자에 놓고 나가서(일부러 내게 보여주려고 그랬을지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순한 열정>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동구권 국가의 외교관이자 자기보다 연하인 A라는 유뷰남을 사랑한 여자가 자신의 열정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자서전 형식을 빌려 하루하루 남자를 기다리는 심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10-11


우리는 곧바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외딴 장소를 찾았다. 한번은 소르본 대학 맨 꼭대기 층의 코쉬 대형 강의실 앞에서 누군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선 채로, 또 한번은 생 쉴피스 성당 안의 들라크루아의 그림 <천사와 야곱의 싸움> 아래에서, 그런 후에는 서로 앞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영화관이나 극장에 가면 그녀는 내 쪽은 보지 않은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내 코트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바지 단추를 끌렀다...

그런 날 저녁에 우리가 자주 가던 극장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나에 대한 특별한 욕망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 욕망이었다고 짐작된다.  34


나는 '성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그녀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시작했다. 

<단순한 열정>에 관련된 인터뷰 내용을 찾기 위해 그녀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나온 홍보자료를 검토했다. 

또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진실을 그녀의 말 속에서 찾아내길 기대하며 <단순한 열정>을 수사관의 독법으로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너무 여러 번 읽다 보니 결국 전체 문장을 외우게 되었다. 나는 대화를 하다가 그녀의 반응을 실험해 보려고 그중 몇 문장을 인용해보았다. 그녀는 마치 내가 자기 기억의 한 부분에 폭행을 가했다는 듯 돌연 입을 다물더니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라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혹시 내가 쓴 거 아니야? 그 책이 지독한 강박관념이 되었구나 그 책에 대해선 나보다 네가 더 잘아니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쓴 것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의식적으로 내가 그녀의 문체와 표현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에 물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소유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모든 글쓰기가 내 안에서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글쓰기가 이렇듯 얽혀서 서로 만나길 원했다.  87


우리 이야기는 책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그녀의 단어가 내 몸을 떠나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될 때 끝날 것이다.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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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며서 저노가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급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끔찍스럽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1


신문에서 그 사람의 나라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12


책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문장은 남녀관계를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런 내용은 내게 A에 관한 무언가를 가르쳐주었고,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들에 확신을 주었다. 가령,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옹할 때 눈을 지그시 감는다"라는 구절을 읽으면, A가 나를 안을 때 그렇게 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씌어 있는 그 밖의 다른 내용들은 그 사람과 다시 만날 때까지의 빈 시간을 메워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가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  13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해서 우리의 약속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15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침대에서 보낸 오후 한나절의 뜨거운 순간이, 아이를 갖는 일이나 대회에서 입상하는 일, 혹은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보다 내 인새에서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음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가서 문 위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후면 저 사람은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겠지"하는 말들을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하고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16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17


그날 밤을 나는 그 사람의 품 안에 잠들어 있는 듯한 반수(半睡 반반 잘수) 상태로 지냈다. 날이 밝자 그 사람이 내게 해준 말과 애무를 한없이 되새기면서 마비 상태로 또 하루를 보냈다...PER(파리와 외곽을 잇는 고속 전철) 안에서나 슈퍼마켓에서도 그 사람이 "당신 입으로 거길 애무해줘"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런 몽롱한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면, 나는 다시 전화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짜에서 멀어질수록 고통과 불안은 점점 커졌다...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한 채로 여러 날이 지나면 그 사람이 나를 떠난 게 틀림없다고 단정 짓곤 했다.  18


가끔, 이러한 열저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19-20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23


일상생활에서 가끔 일어나는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에도 나는 무덤덤했다...

나는 도로가 막히거나 은행 창구가 붐벼도 조용히 기다렸고, 직원들이 불친절해도 화는 내지 않았다.  24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5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나날들이 되풀이되겠지. 나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39


그 사람은 6개월 전 프랑스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45


몇 주 동안,

나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아침까지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생각을 할 수도 없는 몽롱한 상태로 있곤 했다. 푹 자고 싶었지만 그가 계속 내 몸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47


A가 떠난 지 두 달쯤 지난 후부터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A와의 관계에 관련된 것들은 무엇이든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열정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52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써 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59


그 사람이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65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663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66




해설 - 지난 세기말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문학의 흐름을 정리한 문학사는 이 시기의 주도적 현상을 '자아의 글쓰기'라는 용어로 요약했다.  69


문학사에 따르면 자전적 예술이 이토록 확대된 것은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이다. 우선 소위 거대 담론의 붕괴로 인해 작가의 시선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이동한 것이 그 첫번째 현상이라면, 이와 더불어 그간 예술적 관심사에서 외면당했던 평범한 개인의 낮은 목소리와 사소한 몸짓이 부각되면서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상이 그 두번째일 것이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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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과 취향,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 나도 함께한 바 있는 그 삶의 모든 객관적 표징을 모아 볼 것이다.

추억을 시적으로 꾸미는 일도, 내 행복에 들떠 그의 삶을 비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글이다.  21


그는 내가 온종일 책에 파묻혀 있다가, 그들에겐 딱딱한 얼굴로 신경질만 내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답답해했다. 저녁마다 내 침실 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내가 건강을 망쳐 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쥐어짜는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꽃다운 나이에 인생을 즐기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 그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89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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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머니는 이야깃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18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견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  51


(어머니는)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리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102


그들은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고, 그들에게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살고 싶어 했다. 끊임없이 성한 한쪽 다리에 의지해 일어서려고 애를 썼고, 자신을 붙잡아 맨 띠를 떼어 내버리려고 했다. 자신의 손이 미치는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늘 배고픔을 느꼈고, 갖고 있는 에너지는 온통 입에 집중되었다. 키스를 받기 좋아했고, 자신도 그러려고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는 어린 계집아이였고, 결코 자라지 않을 터였다.  104


이 글을 써내려간 10개월 동안 나는 거의 밤마다 어머니 꿈을 꾸었다. 한번은 내가 강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고, 내 양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배에서부터, 그리고 계집아이의 성기처럼 다시 매끈해진 내 성기에서부터 식물들이 구불구불 자라나 흐느적흐느적 떠다녔다. 그것은 단지 나의 성기만이 아니었고, 내 어머니의 성기이기도 했다.  108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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