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 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드로가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9-10


가치 있는 무언가가 담신 책이라면 분서의 화염 속에서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테니까.  10-11


삼십오 년째 나는 책과 폐지를 꾸려왔고, 십오 대에 걸쳐 사람들이 글을 읽고 써온 나라에서 살고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그보다 더 큰 슬픔이 담긴 생각과 이미지를 머릿속에 차근차근 쌓아가는 습관과 광기가 항시 존재해온 유서 깊은 왕국에 나는 거주한다. 단단히 동여맨 한 보따리의 개념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고 있다.  11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가 반드시 신사일 필요도, 그렇다고 살인자일 필요도 없다는 헤겔의 생각에 나 여교시 동의하니까. ...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 책은 내게 파괴의 기쁨과 맛을 가르쳐주었다. 세차게 퍼붓는 비와 건물 폭파 기사들을 나는 사랑한다. 거대한 타이어에 바람을 넣듯 폭파 기사들이 지보가 거리를 송두리째 날려 보내는 광경을 나는 몇 시간이고 서서 지켜본다. 벽돌과 돌과 지주가 몽땅 들리는 그 첫 순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뒤이어 집들이 고요히 내려앉는다.  12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 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마신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

뒤이어 나를 위한 미사인 독서 의식을 행하고, 내가 만든 꾸러미 안에 그렇게 읽은 책을 올려놓는다. 각각의 꾸러미를 아름답게 꾸며 하나하나에 나의 개성을 부여하고 내 서명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14


종이 더미 발치에 있던 나는 손에 책을 든 채 수풀 속에 숨은 아담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에 질린 시선으로 낯선 주변 세계를 둘러본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식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찾아낸 수많은 책들, 내 가방 속에 든 책들 생각에 골몰해 길을 걷는다. 전차와 자동차와 보행자 들을 피해가면서, 녹색등이 켜지면 기계적으로 길을 건넌다. 행인이나 가로등과 부딪치는 일도 없이 걸어간다. 몸에서 맥주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시끌벅적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법이 없다. 의식의 문턱에서 반쯤 졸며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날 하루 압축한 꾸러미들의 모습이 내 안에서 서서히 스러져갈 때문 내 몸이 바스러진 책 꾸러미처럼 여겨진다. 내 안에서 한줄기 불꽃이, 온수기나 증기 응결기의 불꽃과도 흡사한 작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다. 작업을 하면서 어쩌다 읽게 된 책들, 그 안에 든 사고의 기름으로 내가 날마다 영원한 야등을 밝히는 책들을 이제 집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16-17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19


탈무드의 구절들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26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인간의 전쟁만큼이나 전면적인 회색 쥐들과 검은 시궁쥐들의 전쟁과 관련해 그들이 쓴 기사였다. 그 전쟁 중 하나가 회색 쥐들의 오나벽한 승리로 막을 내린 참이었다. 쥐들이 지체 없이 두 개의 무리, 두 개의 종족, 두 개의 조직화된 사회로 나뉘어 싸웠던 것이다. 프라하의 하수구와 시궁창에서는 쥐들이 생사를 건 대전쟁을 벌이는데, 승리하는 쪽이 포드바바까지 흘러가는 배설물과 오물을 전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변증법의 논리대로 승자가 다시 두 진영으로 나뉜다는 것도 그 고매한 하수구 청소부들이 내게 알려주었다.  37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은 내가 헤겔에게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소름 끼치는 일은 굳고 경직되어 빈사 상태에 놓이는 것인 반면, 개인을 비롯한 인간 사회가 투쟁을 통해 젊어지고 삶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단 한가지 기뻐할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37-38


내가 맥주를 네 단지째 비우고 있을 때 압축기 근처에 우아한 젊은이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그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예수였다. 연이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그의 곁으로 와 섰다. 노자가 아니면 누구랴.  50


그들의 사고를 통찰하는 데 그들 각자의 나이를 아는 게 필수 조건임을 깨달은 건 처음이었다.  51


산등성이를 쉬지 않고 오르는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노자는 이미 산 정상에 올라 있었다.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적인 젊은이와 체념 어린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는 노인. 삶의 근원으로 회귀함으로써 안감을 두둑이 댄 영원의 옷이 만들어진다. 예수는 기도를 통해 현실을 기적으로 만들려고 한 반면, <도덕경>의 노자는 순진무구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법칙들을 유일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51


청년들과 아름다운 처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빛을 발하는 젊은 예수에게서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 맥주를 단지째 들이켰다. 반면 노자는 홀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덤을 찾고 있었다. 피 묻은 종이에 극도의 압력이 가해지면서 곤죽으로 짓이겨진 파리떼와 뒤섞인 핏방울이 튀는 외중에도 예수는 그윽한 황홀경에 빠져 있고, 노자는 깊은 우수에 젖어 무심하고도 거만한 자세로 압축통 모서리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믿음이 가득한 예수가 산 하나를 들어 옮기는 동안, 노자는 내 지하실에 불가해한 지성의 그물을 펼쳐놓았다. 예수가 낙관의 소용돌이라면, 노자는 출구 없는 원이다. 예수가 극적인 갈등 상황과 싸우고 있다면, 노자는 도더고가 관련된 상반되는 요소들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조용히 명상한다.  52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progressus ad futurum. 미래로의 전진)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regressus ad originem. 근원으로의 후퇴)이었다.  59


내 직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나선과 원이 상응하고,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과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 뒤섞인다. 그 모두를 나는 강렬하게 체험한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행복이라는 불행을 짊어진 사람인데,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progressus ad originem. 근원으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regressus ad futurum. 미래로의 후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며 <프라하 석간신문>을 읽듯이, 이제 나는  그런 생각들을 소일거리로 삼는다.  69-70


쇼펜하우어가 나타났다. 사랑은 지고의 율법이며, 이런 사랑은 연민이다.  76


은하수 모양의 어린 집시 여자 하나가 내 몽상의 물결 위로 어김없이 나를 만나러 왔다. 내 젊은 시절의 사랑.  77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 집시 여자와 함께 살았다.  80


나는 땅거미가 지는 해질 무렵을 너무도 사랑했다. 하루 중에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닥칠 것만 같은 기분에 젖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이런 불확실한 시각에는 모든 거리와 장소가 평소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도 명상에 잠긴 듯 온화해졌고, 그 순간만은 나 역시 아름다운 청년이 된 것 같은 환사에 빠졌다. 거울이나 상점 진열창을 힐끗거리면 주름살 하나 없는 내 모습이 보였고, 놀란 내 손가락들이 얼굴을 더듬었다.... 날마다 해질녘이면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문이 열렸다.  81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을 켠 뒤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헛일이었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한 개비 장작처럼, 성령의 숨결처럼 단순했던 내 어린 집시 여자. 내 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여자. 건물 잔해 속에서 찾아낸 무거운 널빤지들을 커다란 나무 십자가처럼 어깨에 메고서 끌고 오던 여자. 감자 스튜와 말고기 소시지면 족했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가을 하늘에 커다란 연을 날리는 것 외에는 더이상 바라는 게 없었던 여자.

나중에, 훨씬 나중에야 나는 게슈타포가 그녀를 다른 집시들과 함께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마이다네크 혹은 아우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서 태워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83-84


그들이 사회주의 노동단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업체측 비용으로 금요일이면 버스 한 대가 그들을 크르코노셰의 별장으로 데려다준다는 것과 지난여름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방문했단느 것도 알 수 있었다. 올해는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짧게 다녀올 계획이라고, 그들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르며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여행에 빠짐없이 참여하도록 서로를 부추겼다.  92-93


부브니의 사회주의 노동단원들은 일이 밀리는 법이 없었다. ... 불안에 곤두선 책장들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가치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냉정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누군가가 쓴 책들이었다. 누군가가 교정을 보고, 읽고, 삽화를 넣고, 잇달아 인쇄에 들어가 제본되어 나온 책들일 것이다. 누군가가 가독성이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검열하고, 쓰레기장으로 보낸 책들이었다. 그렇게 책들은 트럭에 실려 이곳에 왔을 것이다.노란색과 오렌지색 장갑을 낀 노동자들이 책들의 내장을 꺼내 곤두선 책장들을 무정한 컨베이어 벨트 위로 던진다. 그것들은 거대한 피스톤 밑으로 조용히 흘러들어 보따리 크기로 압축된 뒤 제지 공장에서 생을 마친다. 거기서 글자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새 종이로 탄생해 머지않아 새로운 책들로 인쇄죌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93-94


나는 끝내 리부시의 닭 가공 공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는 살아 있는 닭들의 내장을 숙련된 동작으로 뜯어내던 여공들도 저 아이들과 똑같았다. 그 젊은 여자들도 웃고 농담을 하며 작업을 햇다. 반쯤 죽거나 살아 있는 닭돌로 가득한 무수한 닭장이 슬로프를 타고 내려왔다. 달아난 몇 마리가 트럭 위에 내려앉아 있는 동안 다른 몇 마리는 닥치는 대로 모이를 쪼아댔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여공들의 손에서 형제들의 목이 꼬챙이에 꿰이는 순간에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나느 고개를 떨구었다.  94-95


그리스에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난 스타기라에서 경베를 올릴 것이다. 그런 다음 올림피아 경기장을 한 바퀴 돌 테지. 장식 술이 촘촘히 달린 긴 반바지를 입고 올림픽경기의 우승자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며 달릴것이다. 그리스에 갈 수만 있다면.. 저 사회주의 노동단원들과 함께 그리스로 떠날 수 있다면 그들에게 건축과 철학 강의를 하고, 자살한 이들과 데모스테네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 대한 강의도 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새 시대, 새 세상으로 진입했고, 그런 것들은 그들의 이해를 헐씬 넘어 선다. 저 젊은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게 확실했다.  97


나는 쓰레깃더미를 치우듯 그것들을, 슬그머니 눈길이 가닿은 <도덕 형이상학>마저 내 압축기 속에 처넣었는데, 그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익명의 꾸러미들을 미친듯이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고대나 현대 화가의 복제화 따위도 염두에 없었다. 고대나 현대 화가의 복제화 따위도 염두에 없었다. 나는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예술과 창조, 미으 창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속도로 일하면 혼자서도 사회주의 노동단원이 되어 연 50%의 생산성 향상을 약속할 수 있을 것 같앗다. 기업이 소유한 별장도 이용할 수 있겠고, 여름휴가를 그리스에서 보내며 속바지를 입고 올림피아 경기장을 돌거나 스타기라에 가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나는 우유를 병째 들이마시며 일했다. 부브니 사람들처럼 무심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99-100


카페 '검은 양조장' 카운터에 기대앉아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이봐, 오늘부터 넌 혼자야. 홀로 세상에 맞서야 해. 마음이 안내키더라도 사람들을 보러 나가 즐기고 연기를 해야 할 거야. 이땅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은 말이야. 오늘부터는 수심에 찬 언들만 소용돌이치는군... 전진이 곧 후퇴인 셈이지. 그래,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119


솔로몬 왕의 봉인. 그의 젊은 시절 작품인 <아가서>와 노년의 결산인 <전도서>가 고백하는 바니타스 바나타툼(vanitas vanitatum. '헛되고 헛되니'라는 뜻의 라틴어. 전도서 12:2) 사이의 균형.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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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인생을 뒤바꾼 '여행', 교육의 터닝 포인트 '여행'


이 책은 여행으로 교육하기를 원하는 부모를 위한 책입니다. 6


모든 걸 만족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는 포기해야지요. 바로 우리 머릿속의 생각입니다. ..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은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합시다.  9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활동은 아마 '교육'일 겁니다. 내 아이를 교육하고 싶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입으로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건 모순입니다.  9-10




Chapter1. 아이교육, 여행이 답이다


경험의 축적은 새로운 인식을 빚어냅니다. 이것이 곧 여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4


여행 중에 경험하는 관계는 ..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니라,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가며 만나는 관계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지요. 상점 주인과의 흥정, 기차에서 만난 누군가와의 대화, 길을 가르쳐준 이름 모를고마운 사람과의 만남, 숙소에서 함께한 어떤 여행자와의 노닥거림,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과의 인사 등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배웁니다. 여기에 보너스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이루어낸 자신의 모습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 자신감을 얻는 거지요.  29


시냇물과 강물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듯 세상을 여행함 낯선 것과 부딪힐 때 비로소 더 큰 생각에 닿을 수 잇습니다. .. 낯선 것을 많이 접해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용기를 냅니다.  32


당연히 낯선 것들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용기내어 낯선 것과 마주하는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여행은 낯설음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주변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서면 필연적으로 낯선 것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33


여행으로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한 번에 오랜 기간 여행하거나 짧더라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여행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아이와의 여행은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한 번에 오랜 기간 여행하는 게 좋고, 체력이 약한 아이는 정기적으로 꾸준히 여행하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아이가 스스로 나설 만큼 여행을 즐겁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리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여행하더라도 본인이 즐겁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지요.

셋째, 여행을 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교육 철학이 명확해야 합니다. 여행으로 아이를 교육하고 싶다면 어른부터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어른이 갈팡질팡하면 아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행의 결과를 너무 강조하면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소중히 여기면 충실한 여행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건 뻔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그 뻔한 사실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따야 하는 운동선수가 아닙니다. 과정이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여행해야 할지 당장 답이 나옵니다.  42-43




Chapter2.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의 여섯 가지 원칙


법정 스님이 쓴 <버리고 떠나기>에는 '미련 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르게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53


'몸으로 하는 여행'입니다. 우리가 흔히 '관광'이라고 부르는 것과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전적으로 비슷한 뜻입니다. 관광은 '다른 지방이나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한다'는 뜻이고,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두 단어가 지닌 이미지는 조금 다릅니다. 대체로 관광은 '나이 드신 분들이 버스 타고 다녀오는 단체 여행'같은 이미지라면, 여행은 '젊은이들이 배낭 메고 떠나는 개별 여행'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관광의 ... 가장 큰 장점은 준비하는 데 드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겁니다. .. 가장 큰 단점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두고 '주마간산'식 여행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요. 주마간산이란 '말을 타고 달리며 산천을 구경한다'는 뜻인데 자세히 살피지 않고 대충대충 보고 간다는 겁니다.  76


장피에르 나디르와 도미니크 외드가 쓴 책 <여행 정신>에는 '여행은 삶과 같다.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목표를 향해 서둘러 갈 권리도 있겠지만, 길가에서 경험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중략) 이는 즉흥적으로 살고, 예상치 못한 일에 황홀해 하며, 깜짝 놀라기도 할 줄 안다는 의미다. 효율성과 안전, 시장 경제라는 씁쓸한 핑계 아래 여행자들은 점점 더 무리 지어 다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에 제약을 받는다. 차라리 이런 시스템에 고장이라도 나서 여행자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77


걷기 여행은 계절이나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체력적인 부분까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여행지를 날 것 그대로 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가장 오래된 여행 방식입니다. '여행의 원조'라 할 만하지요. ..걷기 여행은 느리게 한발씩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다가가는 여행입니다.  78-79


아이를 무시하는 부모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대체로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이 때문에 아이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가 되지요. 아이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느니 내가 직접 빠르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이 일은 내 아이가 해낼 수 없는 일이야'라고 여기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를 무시하는 태도는 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85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해결하되 여행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분명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89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흉내만 내는 여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귀찮으니까 남들 가는 것처럼 갔다 오면 되겠지 생각하면 아이는 '여행이란 이렇게 지겨운 거구나'하면서 여행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99


문제를 해결하고 적응해나가는 능력은 경험하지 못했던 일에 도전해 성공하거나 실패하면서 생깁니다. 성공을 통해 성취감과 재미를 얻습니다. 실패를 통해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합니다.  110


다케우치 히토시는 "여행을 하는 것이나 병에 걸리는 것, 이 둘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점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병에 걸려 아플 때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듯, 여행을 하면서 겪는 고생스러움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125


약 300년 전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잘산다고 자부하는 상류 계층에서 유행하는 여행이 있었습니다.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던 이 여행은 영국 상류 계층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여행이었지요.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곳을 돌아보며 상류 사회의 각종 예법과 언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상류층 자녀를 위한 엘리트 교육인 셈이었지요. .. 짧게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여행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가정교사 2명과 하인 2명 이상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가정교사 1명은 주로 학문을 가르쳤고, 다른 1명은 승마, 펜싱, 춤 같은 활동을 가르쳤습니다. ..

여행 코스는 대체로 프랑스에서 시작해 스위스를 겇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일정이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한 분위기에서 영국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키느니 차라리 뛰어난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보내 교육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여행이 교육의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른 순간이었지요.  128-129




Chapter3.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약속


아이와의 대화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마음가짐은 '진정성'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아이가 오롯이 느낄 수 있게 진정성 담긴 이야기를 시작해보세요. .. 그냥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린아이들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금방 빠져듭니다. 동화나 옛날이야기도 좋지만 부모의 삶이 담겨 잇는 이야기는 더 좋습니다.  151


실컷 이야기하고 훈계로 끝맺으면 다음엔 부모 이야기를 듣기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 끝내는 게 좋습니다. 대신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살짝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지요.

아이에게 부모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이해할 수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152


중요한 것은 대화할 때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를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 그럼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1. 나의 태도, 언어, 모습 : 지금 나는 어떤 태도(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로, 어떤 언어(긍정적 언어를 사용하는가)를 사용해서, 어떤 모습(표정, 목소리, 행동)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아이의 태도, 언어, 모습보다 나의 것에 집중해야 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2. 질문의 방향 : 질문은 아이와 나의 관계를 진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질문과 대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관계 회복이 먼저입니다. 적절한 질문은 아이를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도록 이끕니다. 내가 던진 질문, 아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의 방향에 집중하고 대화해야 핵심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재미 : 대화가 재미없나요? 재미없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유머감각이 없어서? 아이가 무감각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다 아닙니다. 재미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재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이야기하면서 손톱만큼이라도 재미있을 만한 소재가 있다면 그걸 붙잡고 재미를 느껴보세요. 내가 재미를 느껴야 아이도 재미를 느낍니다. 웃긴 이야기, 센스 있는 입담까진 없어도 됩니다. 아이의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재미를 발굴해보세요. 재미에 집중하면 대화가 쉬워집니다.

4. 아이의 감정 : 어린아이일수록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감정에 집중하고 그 감정을 존중해주세요. 대화할 때 감정은 생각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 코팅을 잘해주면 아이의 삶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5. 아이의 생각과 의도 : 어른이라면 아이의 생각과 의도를 잘 읽어내야 합니다. 아이와 똑같은 수준에서 이야기하면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지금 어떤 생각과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넓은 시야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155-156


우리는 대부분 '꿈=직업'이라는 착각을 하며 삽니다. 직업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꿈이 될 수 있는데 말이지요. .. 어른들은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는 아이가 대답이 없으면 "꿈 없어? 의사, 변호사, 선생님 이런거 말이야"라고 이야기합니다. ...

꿈이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꿈을 무엇으로 정할지는 아이가 할 일입니다.  168-169


요즘 아이들이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도 제대로 꿈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생각하는 시간'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체험학습은 그저 체험으로 끝납니다. 그리고는 생각할 여유도 그 어떤 계기도 허용하지 않는 바쁜 생활로 돌아가지요. 체험은 추억으로만 남습니다...

아나톨 프랑스는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172


공자는 "시를 읽음으로써 바른 마음이 일어나고, 예의를 지킴으로써 몸을 세우며, 음악을 들음으로써 인격을 완성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여행도 음악을 통해 완성될 수 있으니,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 멋진 배경 음악을 한번 깔아보세요.  176


일하는 것의 반대는 노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일하는 것'의 반대는 '일하지 않고 쉬는 것'입니다. '노는 것'의 반대도 '놀지 않고 쉬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은 쉬지 않고 행하는 여러 가지 활동입니다.  180-181


7살 정도 된 아이가 집에서 연필을 잃어버렸습니다. 엄마에게 연필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겠지요? 엄마는 묻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어?"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언제 연필 썼는지 기억 안 나?"

"네."

"혹시 거실에 둔 거 아니야? 어제 거실에서 숙제했잖아."

"아, 맞다. 그렇지! 찾았어요."

잃어버린 연필을 찾은 건 아이일까요 엄마일까요? 아이는 혼자 연필을 찾을 수 없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연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찾은 거죠. 아이는 다음에 연필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할까요? 아마 거실이든 자기 방이든 마지막으로 숙제했던 곳에서 찾아볼 겁니다. 이렇게 아이는 엄마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연필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고츠키는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에서 "오늘의 근접발달영역이 내일의 실제적 발달 수준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오늘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할 수 있었던 일이 내일은 혼자서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은 뭘까요? 바로 엄마의 도움입니다. 교육 심리학에선 이런 도움을 비계(scaffolding)라고 표현합니다. 비계는 원래 건축 공사할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설치한 임시시설을 말하는데, 아이가 과제를 잘 수행하도록 어른이나 또래가 도움을 주는 걸 이르는 말이지요.

비계 설정의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1 아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

2 아이의 능력에 따라 '도움의 양'을 조절하는 것

3 아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

4 질문을 유도하고 아이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 등이 있습니다. 교육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이런 방안은 아이가 스스로 여행할 수 있게 이끈느 구체적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193-194


놀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놀이의 요소로는 자발성, 재미,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196


김정운 교수는 강의에서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이 대화와 의사소통의 근본이 되는 능력"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208


'Cook's Tour'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마간산 식 단체 관광 여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단어만 보면 언뜻 '쿡은 요리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단어의 유래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41년 토머스 국이라는 영국인이 런던에 세계 최초의 여행사를 차렸습니다. 그의 아들 존 메이슨 쿡이 사업을 함께하면 서 여행사 이름을 토머스 쿡 앤드 썬(THomas Cook and Son)으로 바꿉니다. 사람들은 이 여행사에서 개발한 여행 상품을 Cook's Tour라고 불렀습니다. 

이 여행 상품은 여행사에서 모든 일정을 짜고 여행자는 그 일저에 따라 단체로 이동하는 패키지여행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여행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에 여러 장소를 들릴 수 있어서 편하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정이 늘면 늘수록 이동하는 차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잠깐 내려서 둘러보는 식으로 여행했는데, 이 때문에 Cook's Tour는 주마간산 식 여행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패키지여행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요.  212-213


어른들은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더라도 삶 자체를 확연히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을 고정된 삶의 패턴 속에서 살아왔거든요. 이 패턴을 통째로 바꾸려면 대단한 결심과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갓 올라온 새싹처럼 쑥쑥 자라고 있기 때문에 배움이라는 물을 꾸준히 주면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계속 성장하는 과정이어서 배우면 배울수록 삶이 달라질 가능성도 커지지요.  225


아이와 여행하는 부모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막연히 여행을 다녀오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생각하는 것과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다릅니다. 이것을 알아야 여행 중 무엇에 힘써야 할지 알게 되고, 아이의 성장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배움이 곧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워야 성정할 수 있습니다. 배움은 성장의 기회지요. 여행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성장의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225-226


삶의 실체, 태도, 목적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이것을 배우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여행지에서 뭐든지 자세히 보고, 따라 해보고, 생각해보게 하는 겁니다. 자세히 보면서 삶의 실체를 이해하고 따라하면서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은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지요.  227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은 '여행을 통해 삶과 친해진다'는 의미입니다.  228


아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라는 말이지요. ... 마주 본다는 것은 대화의 기본자세입니다.  232


부모는 아이보다 시간을 짧게 느끼고 항상 시간이 없어 쫓겨 다닙니다. 반면 아이는 부모보다 시간을 길게 느끼고 무한한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할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느려터진 행동을 보이면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로서는 빨리 끝내고 놀면 될 것을 왜 저러나 싶고, 아이 입장에서는 하고 있는데 왜 저러나 싶지요. 이렇게 입장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실제로 같은 시간도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234


아무리 많은 교육 서적을 읽고 좋은 강좌를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내 아이를 마주 볼 수 있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235


지혜는 요령이 아닙니다. 상황을 꿰뚫어보는 눈이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가 빛나는 생각입니다.  248


오늘날 필요한 교육이란, 아이들을 어딘가에 가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길 위를 뛰어다닐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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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64-65


"아빠, 깜둥이들을 변호하세요?"

"그렇단다. 스카웃, 그런데 '깜둥이'라고 말해선 안 돼. 그 말은 품위 없는 말이거든."

"학교에서는 모두 다 그렇게 부르는데요. 뭐."

"이제부턴 다른 사람이 다 그래도 너만은 그러지마라." ....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변호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왜 하시는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읍내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군을 대표해서 주 의회에 나갈 수 없고, 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

"..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로써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기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일이란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146-149


"로즈 에일머는 어떻게 지내요?" 오빠가 물었습니다.

로즈 에일머는 잭 삼촌의 고양이 이름이었습니다. 그 고양이는 털이 노랗고 예쁘게 생긴 암컷인데, 삼촌은 그 녀석이 언제까지나 참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여성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153


"... 앵무새를 죽이는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 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거야."  174


"분별 있는 사람이알면 자기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 법이란다." 모디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188


"이제 여름이 오면 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당면할 텐데 그때도 이성을 지켜야 할 거야... 너와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야 할 경우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건 ...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어른이 되면 어쩌면 조금은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되돌아볼 거라는 사실이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을 말이다, 아주 주용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아빠, 아빠가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신느 것 같아서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200


"..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  213




2부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캘퍼니아)  237


"딜, 넌 지금 잘못 말하고 있는 거야.. 네 식구들은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다만 너한테 조금 소홀한 것뿐이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 줄게."

어둠 속에서 딜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야.. 내가 없으면 그분들은 훨씬 잘 지내신다는 거야. 내가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소홀하신 게 아냐.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다 사주시거든. 하지만 '이제 이것 갖고 나가서 놀아라'하는 식이지. 물건들이 방에 가득해. '그 책을 사줬으니 그거나 읽어라'하는 식이란 말이야."...

"아니, 그분들은 소홀하시지 않아. 아침이면 '잘 잤니?', 저녁이면 '잘 자!', 어디 갈 때는 '잘 갔다 와'하시면서 입맞춤과 포옹을 퍼부어 주시거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시고.. 스카웃, 우리 아기나 하나 데려오자."  268


"형, 저 아저씨는 봉지에 든 뭔가를 마시고 있는데." 딜이 말했습니다.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가 그러고 있는게 분명했습니다...."저 아저씨는 코카콜라 병에다 위스키를 가득 담아 가지고 조잉 봉지 안에 넣어 둔 거야. 여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말이지. .."

"그런데 왜 흑인드롸 같이 앉아 계신 거야?"

"언제나 그러셔. 우리보다는 흑인들을 더 좋아하나 봐. 멀리 군경계선 근처에 혼자 사시지. 흑인 여자를 얻어서 온갖 혼혈아들을 낳았어..."

"아저씨는 '백인쓰레기' 처럼 보이지 않는데." 딜이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냐. 강둑 한쪽 땅이 모두 아저씨거야. 게다가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거든."

"그런데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시는 걸까?"

"그게 아저씨의 방식이니까."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아저씨는 결혼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서 그러신단느 거야. 누구더라.. 그렇지. 스펜서네 집안 여자하고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나.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데. 결혼식 예행연습을 마친 뒤 신부가 2층에 올라가서 자기 머리통을 날려 버린 거야. 엽총으로 말이지.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왜 그랬는지 밝혀졌어?"

"아니, 돌퍼스 아저씨 말고는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대."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아저씨 한테 흑인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는 거지. 아저씬 그 여자를 그냥 둔 채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였고, 그 뒤로 줄곧 아저씨는 술에 절어 지내셔. 하지만 아저씬 자기 아이들에겐 진짜 잘해 주시고."

"오빠 혼혈아가 뭐야?"내가 물었습니다. 

"백인 피가 절반, 흑인 피가 절반인 사람이야. 스카웃, 너도 봤잖아. 잡화점에서 배달하는 빨간 곱슬머리 애. 걔가 바로 혼혈아인데 정말로 비참해."

"뭐가 비참하다는 거야?"

"그 사람들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으니까. 흑인 들은 반쪽이 백인이라고 배척하고, 백인들은 반쪽이 흑인이라고 배척하거든. 그러니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느 어정쩡한 상태지. 돌퍼스 아저씨는 자기 아이들 중 둘을 북쪽으로 보내 버렸대. 북쪽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는다나 봐." ....  299-300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딜, 그 사람들은 길머 검사님이 세운 증인이었으니까 그렇지."

"어쨌든, 핀치 변호사님은 메이엘라와 유얼 영감을 반대 신문하실 때 그런 식으로 대하진 않았어. 그런데 그 사람은 그를 계속해서 '젊은이'라고 부르며 비웃고 그가 답변할 때마다 배심원들을 휘둘러 보고..."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딜, 그건 길머 검사님의 방식일 뿐이야. 그분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해. 넌 아직 그분이 누군가를 혹독하게 다루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말이야, 그게 언제더라... 오늘 말이야, 긺 검사님은 평소 때보다 반도 안 되었던 것 같아. 내 말은 대부분의 검산느 모두가 다 그런 식이라는 거야."

"핀치 아저씨는 그렇지 않잖아."

"딜, 아빠는 표본이 아니지, 아빤..."

나는 모디 앳킨슨 아줌마가 한 멋들어진 말을 생각해 내려고 더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 말을 생각해 냈지요. "너희 아빠는 큰길에 있을 때나 법정에 있을 때나 늘 한결같으셔"라는 말 말입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딜이 말했습니다.

"얘야,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리 뒤쪽에서 들렸습니다. 나무둥치에서 들려오는소리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무 뒤쪽에 있다가 고개를 돌려 돌아보셨습니다. "너희들은 낯가죽이 두껍지 않아. 그래서 구역질이 나는 거지?"  367-369


"자, 여기 있다. 한 모금 힘껏 빨거라. 그러면 좀 진정될 거야." 빨대가 꽃혀 있는 종이 봉지를 딜에게 내밀며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딜은 빨대를 빨고는 씩 웃더니 한참 후에 입을 뗐습니다.

"히히." 레이먼드 아저씨는 분명 아이 하나를 타락시킨 것을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딜, 너 조심해." 내가 딜에게 경고했습니다.

딜이 빨대를 놓으면서 싱긋 웃었습니다. "스카웃, 이건 그냥 코카콜라야."

...

"아저씨가 종이 봉지에 넣고 마신 것이 콜라였단 말씀이에요? 그냥 콜라였어요?"

"그렇단다, 꼬마 아가씨." ... "평소에 마시는 바로 그거란다." ..

"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아 그건, 내가 왜 사람들을 속이냔 말이지? 글쎄다. 사실 아주 간단하지."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 제놈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ㅇ낳든 개의치 않아. 난 정말이지 제놈들이 좋아하든 좋아히지 않든 상관하지 않아, 정말이야- 그럼에도 그들더러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우리는 "아저씨,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마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러니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서 말이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아저씨, 그건 정직하지 않잖아요. 지금보다도 아저씨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다가 이미.."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거든. 핀치 아가씨,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난 술을 잘하지 못해. 하지만 내가 원해서 지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전혀,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한다."

혼혈아들을 낳았고 누가 그것을 알아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 죄 많은 아저씨 말을 듣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한테는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었습니다. 고의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왜 아저씬느 가장 깊숙이 숨겨 둔 비밀을 울리에게 털어놓고 계신 걸까요? 그래서 그 이유를 여쭤 봤습니다.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저 애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아저씨는 딜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뭐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생각한 것도 아닌데 백인이 흑인에게 안겨 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아빠는 흑인을 속이는 것은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나쁘다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동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중얼거리며 말했습니다.  371-373


".. 테일러 판사님이 그 청년을 변호하도록 너희 아빠를 임명하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니? 테일러 판사님이 너희 아빠를 임명하신 데는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는 걸 말이야." ...

모디 아줌마가 계속 말씀했습니다. " ..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398-399


"..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넌 일상생활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속이는 걸 매일매일 보게 될 거다. 하지만 네게 말해 주고 싶은 게 있구나.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 백인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 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아빠는 너무나 조용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말이 우리들 귀에 부딪쳐 바스라졌습니다.  408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왜 걱정을 해요?" 오빠가 물었습니다.

"그게 말이다. 가령 레이첼 아줌마 자동차에 모디 아줌마가 다쳤고, 그 손해 배상금을 링크 디스 아저씨가 결정해야 한다고 치자. 링크 아저씨는 자기 가게에 어느 아줌마 고객도 잃고 싶지 않겠지? 그래서 아저씨는 테일러 판사님에게 배심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할 거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동안 가게를 돌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그러면 테일러 판사님은 그 아저씨를 배심원에서 빼줄 수밖에 없거든. 화를 내면서 면제해 줄 때도 있어."  409-410


"그들이 좋은 사람ㄷ르이라면, 도대체 왜 제가 월터에게 잘해 주면 안 되나요?"

"잘해 주지 말라고는 안 했어. 그 애한테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해 줘야 한다. 누구한테나 점잖게 행동해야 돼. 하지만 그 애를 집에 초대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고모, 그 애가 우리 친척이라면요?"

"일단 그 앤 우리 친척이 아냐. 설령 그렇다 해도 내 대답은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자 오빠가 내 편을 들고 나섰습니다. "고모, 아빠가 말씀하시길,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도 집안은 선택할 수 없댔어요. 친척은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친척일 수밖에 없으니, 인정하지 않으면 아주 어리석어 보인다고 하셨거든요."

"또 너희 아빠 타령이구나. 다시 한 번 말한다만, 진 루이즈, 넌 월터 커닝햄을 집에 초대해서는 안돼. 만약 그 애가 너의 겹동서의 겹동서라고 해도 일 때문에 아빠를 찾아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집에 들일 수 없어. 이제 이것으로 그 일은 결정된 거야."

고모는 이렇게 "안돼"라고 확실히 말씀하시고 나서 다음번에는 그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고모, 전 월터랑 놀고 싶어요. 왜 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모는 안경을 벗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습니다. "놀아선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지." 고모가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애는 .. 쓰레기 같은 애니까. 그러니까 너는 그 애하고 놀아선 안 되는 거야. 난 네가 그 애하고 어울리며 행동거지나 본받고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게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지금 현제로도 넌 네 아빠한테 충분히 골칫거리거든."  415-416


"이 읍내에는 공정한 게임이란 백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 공정한 재판은 우리 백인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또 흑인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태어났을 텐데, 하고 겸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모디 아줌마  436


"히틀러를 증오해도 되는 거죠?"

"아니, 그렇지 않아. 어느 누구도 증오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아빠가 대답하셨습니다. 

"아빠,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게이츠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히틀러가 지금 하는 행동은 끔찍하다고 하시면서 진짜로 얼굴이 새빨갛게 되셨어요."

"아마 그러셨을 거다."  ...

"뭐 물어볼 게 있어."

"말해 봐." 오빠는 읽던 책을 내려놓고 두 다리를 쭉 뻗었습니다.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 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닝을 볼 수 없었지 -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454-455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적이 있습니다.  514


아빠의 두 손이 이불을 잡아당겨 내게 덮어 주시느라고 내 턱 밑에 있었습니다.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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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과의 대비를 통해 당시 영국의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을 고발하고자 했다. ..

우리는 지금 여기,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16


농민들의 처지에서도 좋은 점이 있었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민들이 마음대로 영지를 이탈할 수 없는 것처럼 지주, 즉 영주계급도 마음대로 농민들을 자기 땅에서 내쫓을 수 없었다. 심지어 토지가 매매되거나 상속되더라도 그 땅에서 경작하는 농민은 그대로였다. 토지의 소유자가 바뀐다는 것은 단지 지대를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농민에게는 누가 영주가 되든 상관없이 그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가 관습적으로 보장되었다. 농민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 아들과 손자에까지 이 권리는 이어졌다. 18


양모 가격의 폭등은 이 모든 안정적이던 기존 질서를 뒤흔들어놓았다.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그 대가로 지대를 받는 것보다 그 땅에 양을 키워 양모를 판매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주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농민들을 강제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농민들이 수 세대 동안 관습적으로 보장받던 권리를 모두 부정했다. 19


인클로저란 토지의 경계에 울타리를 친다는 뜻으로,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울타리치기 운동’이라고 하겠다. 인클로저 운동은 여러 번에 걸쳐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양을 키우기 위해 일어난 16세기의 목양 인클로저와 대규모 농업 경영을 위한 18세기의 농업 인클로저였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비판한 것은 바로 양을 키우기 위한 울타리치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당시의 영국 사회이다. 20


르네상스 운동은 크게 아트 르네상스(Art Renaissance)와 휴머니즘 르네상스로 구분하는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 아트 르네상스이다. 문학에서는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가, 미술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등이 아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다. ..

아트 르네상스가 인간의 감정과 육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휴머니즘 르네상스를 주도한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자 했다. ‘인문학’이라는 용어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휴머니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사상가가 바로 모어와 에라스뮈스이다. 접근하는 방식과 수단이 서로 달랐을 뿐 아트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르네상스의 공통된 관심은 바로 ‘인간’이었다. 42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좀바르트는 자본주의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농업이 아니라 상업에서, 건전하고 성실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사치와 향락에 빠진 소비 생활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47


우리가 아는 중세는 절제와 검약을 미덕으로 하는 경건한 신앙심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 좀바르트는 이러한 변화가 바로 십자군 전쟁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십자군전쟁이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남녀 관계의 변화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출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설명햇다.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윤리적인 태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이었다. 48

십자군전쟁을 계기로 유럽인들은 사랑을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로, 거결함이 아니라 쾌락의 추구로 ‘세속화’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인간의 벌거벗은 육체를 그렸다. 인간 본연의 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는 다른 한편 인간 본연의 육체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다. 50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사치와 전쟁에서 찾았다. 52


십자군 전쟁은 유럽 사회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당시 유럽은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면 외부 세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폐쇄적인 사회엿따. 십자군 전쟁은 그런 유럽인들이 처음 경험하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슬람 세계(동방 세계)는 유럽(서방 세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화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53


또 하나는 상업의 발달이었다. ..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인들은 동방 사회에 있던 금은 등의 귀금속과 값비싼 재화들을 약탈함으로써 부를 축적했다.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약탈한 전리품을 유럽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여러 곳에 상업상의 거점을 건설하고 교통망을 정비해야 했다. 또 원정 비용을 지불하고 군수물자와 전리품들을 거래하기 위해 화폐의 사용이 늘어났다. 이 모든 요인이 유럽의 상업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54-55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푹스는 르네상스를 인간의 육체 특히 벌거벗은 여체에 대한 탐닉의 시대로 보았다.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실은 자본주의 문화, 부르주아 문화란 처음부터 퇴폐와 욕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56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지중해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도시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였다. ..

유럽 상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십자군 전쟁 이후에도 그들이 장악한 상권이 여전히 지중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중해 너머의 여러 왕국들은 이슬람 상인들의 상권이었다. 63


유럽 상인들은 직접 동양의 여러 왕국과 무역할 수 있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 64


애점 스미스의 <국부론>은 너무나 유명한 핀 공장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무리 솜씨 좋은 장인이라도 혼자서 하루에 10개의 핀을 겨우 만들었는데, 철사를 늘이고 자르고 갈고 핀 대가리를 붙이고 두드리는 공정들을 나누어 일했더니 전혀 숙련되지 않은 10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들더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그 이전에 있었던 다른 경제체제들과 구분하는 주요한 차이 가눙ㄴ데 하나는 바로 엄청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생산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많은 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상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상품들을 도대체 어떻게 유통하고 누가 소비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물론 140녀 년 전 이제 겨우 산업혁명에 접어들던 시대의 영국과 현대 사회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기준에서 보자면 대량샌상의 시대와 처음 마주친 영국인들의 충격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엄청났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이 엄청난 생산력이 어디서 오는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물론 매일 4800개의 핀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스미스 혼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직접 핀을 만들었고 사업가들은 그 핀들이 자신에게 줄 이익을 계산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목격하고 직접 참여한 그 장면의 의미를 애덤 스미스만큼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98-99


<에밀>은 흔히 교육에 관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루소는 여러 쪽에 걸쳐 분업과 교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업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접근은 당연히 경제학적이다. 반면에 루소의 접근법은 사회학적이고 교육학적이다. 106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을 동정심, 즉 ‘공감(sympathy)’의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116


<인구론>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두 가지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식량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다. 둘때, 이성 사이의 정욕은 필연적이고앞으로 현재의 상태가 대체로 지속될 것이다. 맬서스는 이러한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인구는 자연의 제한 법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1, 2, 4, 8, 16, ... 과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의 생산능력은 1, 2, 3, 4, 5, ...와 같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년이 지나면 이 차이는 256대 9가 되며, 300년이 지나면 4096대 13이 된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인구의 증가르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치명적인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맬서스는 두 가지 대책을 제시했는데, ‘예방적 억제(preventive checks)’와 ‘적극적 억제(positive checks)’가 바로 그것이다. 예방적 억제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 따르는 곤란을 걱정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간통으로 욕정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낙태와 영아 살해 등을 말한다. 적극적 억제는 사후적으로 어린이의 영양실조, 극도의 빈곤,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 등의 방법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126-129


다윈은 다양한 종들이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한다는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를 <인구론>에서 착안했다. 왜 어떤 종은 살아남고 어떤 종은 도태해 멸종하는가? 자연에 적응하는 종은 생존하며, 그렇지 못한 종은 도태한다는 것이다. 138


위대한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인구론>은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의 화두를 던져준다. 인구와 식량의 관계를 성장과 자원 또는 성장과 환경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맬서스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

성장은 자원을 사용하고 환경을 파괴한다. 물론 자연은 스스로 자원을 재생산하고 환경을 복구하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자원과 환경의 회복은 산술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성장을 위한 남용과 파괴는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57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 기술은 오직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원 낭비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 기술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지만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기술체계는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되어야 하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158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한 위대한 발견으로 역사적 유물론과 잉여가치론 두 가지를 꼽았다.

역사적 유물론은 인류의 역사와 사회 발전의 원리를 규명한 마르크스 사상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 기초이다. 그러나 정작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없다. 하기야 마르크스는 그의 철학적 기초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책을 쓴 적도 없다. 다만 자신의 모든 저술에서 변증법적 유문론의 방밥을 일관되게 사용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모든 저작에서 역사적 유물론을 적용했다. 가령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 인류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그렇다면 역사적 유물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교과서는 무엇일까? 바로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다. 172-174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계급이 없던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원시 공동체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산수단과 노동 생산물을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했다는 사실이다. 즉 생사눌을 공동으로 생산할 뿐만 아니라 공동으로 소비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 소유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화된 현상이 아니라 생산력이 지극히 낮아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인간 생존의 조건이었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는 생산력이 아주 낮아서 잉여 생산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동체 내의 일부 성원이 생산물을 독점한다는 것은 다른 성원의 생존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생산물을 독점하는 것도, 그것에 기초한 계급의 분화도, 사적 소유도 아직 출현할 수 없었다. 계급 사회가 출현하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사건이었다. 이 시기를 원시 공산주의 사회라고 부르는 것도 이때문이다.

사유재산과 국가는 물론 가족까지도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엥겔스의 설명은, 역사적 유물론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계급 사회이전의 공동체에서는 내 것이라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내 가족이라는 관념도 없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도 실은 사적 소유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176


사적 소유가 처음 출현했을 때 이는 탐욕, 축적, 지배가 아니라 권리였다는 사실이다. 177


분노한 노동자들은 기계에 모래를 붓거나 부속품을 망가뜨려 작업을 방해했다. ..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일으킨 최초의 집단 저항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러다이트 운동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자본가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계의 자본가적인 사용이다 기계가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노동시간이 줄고 노동의 강도는 낮춰질 것이다. 179


영국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합법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824년에 ‘단결금지법’(799년 제정)이 철폐되면서부터이다. 전국적인 노동조합 조직은 1830년대 들어 나타나게 되는데, 1834년 로버트 오언의 지도 아래 결성된 ‘전국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은 조합원 수가 50만 명을 넘었다. 그 당시 전국노조의 요구사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0시간 노동제’였다. 181


잉여가치론은 바로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비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론이다. 183-184


애넘 스미스는 재화의 가치가 노동에서 나온다고 말했지만, 또한 재화의 가치가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를 합산한 것이라는 말도 했다. 스미스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답게 리카도는 임금과 지대와 이윤이 각각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매우 치밀하게 분석했다. 노동자가 임금을 가져가듯 자본가가 이윤을 가져가는 것도 정당하다는 뜻이다. 재화의 가치가 오직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된다면, 도대체 자본가의 이윤이나 지주의 지대는 어디에서 나올까?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자본가가 이윤으로 가져간다면 그것이 어떻게 정당한 분배일까? 184-187

스미스와 리카도라는 두 위대한 경제학자가 자기 이론의 근본적인 모순을 전혀 또는 거의 자각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계급의 이익, 즉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의 이익에도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사회체제라는 신념을 너무 깊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7


마르크스는 리카도와 마찬가지로 모든 재화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는 노동자 자신이 임금의 형태로 가져가는 필요가치와 자본가가 가져가는 잉여가치로 나뉜다. 이 잉여가치는 다시 자본의 여러 분파와 지주들에게 산업이윤과 상업이윤 및 기대로 분배된다. 말하자면 이윤은 하나의 허상이며, 그 본질은 잉여가치인 것이다. 잉여가치 역시 노동자가 생산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것이 마치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수인 것처럼 기만하기 위해 잉여가치가 아니라 이윤의 형태로 취득하는 것이다.

피룡가치와 잉여가치가 각각 어떻게 분배되는가는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필요가치는 노동자가 사용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상품의 양이 결정한다. 그러나 현실의 착취율, 즉 필요 노동에 대한 잉여노동의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계급추쟁이다. 계급투쟁이라는 말을 대단히 과격하고 무시무시한 무엇인 양 들을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인류의 역산느 모두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때의 그 계급투쟁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의 10월 혁명처럼 노동자계급이 총을 들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과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언제나 더 많은 몫을 가져가기 위해 대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얼마로 결정할 것인가, 통상 임금에 무엇을 포함시킬 것인가가 바로 현실의 계급투쟁이라는 뜻이다.  187-191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1930)이라는 글에서 100년 뒤에는 자본축적의 증진과 기술의 진보로 주 15시간만 일하면 누구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6


노동은 인류에게 내린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고 말았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는 더 발전하는데 노동자들은 왜 더 많이 일하면서도 왜 더 빈곤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과 축적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노동자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 되고, 그 생산물이 노동자들 자신의 풍요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저주일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육체를 쇠진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의 정서도 타락시킨다. 시민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찰할 여유를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몇몇 기업가들조차도 인정했다. 물론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양심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단지 생산성을 올려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한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설령 후자일지라도 자본가가 더 많은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이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자들에 비하면 그들은 충분히 양심적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물질적으로 적당히 풍족하면서 시민으로서 자신을 성찰할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과연 몇 시간의 노동이 적당할까? 라파르그는 하루에 3시간의 노동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197-198


소외(Entfremdung)라는 개념은 얼핏 매우 현학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경제학 -철학수고>에서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마르크스가 본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하고도 본질적인 현상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이러한 인간소외는 정치적 자기소외, 경제적 자기소외, 종교적 자기소외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특히 경제적 자기소외가 사유재산과 자유경쟁이라는 근대 자본주의의 두 가지 제약 조건 때문에 나타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라는 이 체제하에 살며넛 노동자들은 먼저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이 노동한 결과물임에도 그 생산물의 소유로부터도 소외된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유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질로부터도 소외되고 만다는 것이다. 

경제적 계급적 소외의 첫째 유형은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이다. 간단히 말해 노동자가 생산한 물건이 그것을 창조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타인, 즉 자본가의 소유물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노동자 궁핍화론'이 등장하는데,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노동자가 부를 더 많이 생산할수록 노동자는 그만큼 더 가난해진다는 말이다.

계급적 소외의 두 번째 유형은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이다. 노동자는 예전의 독립 생산자처럼 생산 활동에 자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그의 지배와 통제 아래에서 노동하므로 본질적으로는 강제 노동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노동은 인간 본래의 생명 활동이 아니라 다만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마르크스는 보았던 것이다.

셋째는 유적 본질로부터의 소외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유(類 무리류)적 존재라고 불렀느넫, 여기서 유적이란 인간이 홀로 존재하고 홀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유적 존재로서 생활할 때에만 인간은 자신의 참모습, 즉 유적 본질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계급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 대상과 노동 생산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자신의 유적 본질을 박탈당한다. 

마지막으로 소외의 최후 형태인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이다. 인간이 자신이 유적 본질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본래 인간답게 공동생활을 해야 할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사회에서는 유산자와 무산자 모두가 인간적 본질에서 소외당하고 있지만, 노동자는 이러한 소외에 괴로워하며 상실한 인간적 본질을 회복하려 한다. 반면 자본가는 이 인간소외 위에 안주해 퇴폐의 길을 걷는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네 유형의 소외는 결코 개별적으로 열거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급적 인간소외에 대한 인식이 의미하는 것은 자본과 노동의 분리, 즉 계급적 대립이 자본주의적 인간소외의 근본 원인이며, 동시에 이러한 인간 소외에 의해 계급 대립 그 자체가 유지되고 재생산된다는 사실이다. 본질을 상실한 소외된 인간은 불구화되고 파편화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202-205


현대 경영학은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rick Winslow Taylor, 1856~1915)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한 과학적 노동 관리는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분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공장의 작업반장이었던 그는 초시계로 노동자들의 손동작, 발걸음, 그리고 심지어는 호흡까지 일일이 측정하고 계산해 가장 효율적인 작업 동작을 고안해내었다. 

테일러는 오늘날 테일러주의라고 불리는 자신의 과학적 노동 관리가 노동자드르이 생산성을 높이고 더 많은 임금을 받게 해줄 것이므로 당연히 노동자들이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모든 작업장에서 테일러주의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맞닥뜨렸다. 노동자들이 저항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고용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심오한 면에서 나동자들이 테일러주의를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들의 인격과 자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206-208


테일러의 과학적 노동 관리에 대해 노동자들은 감독자들이 정한 작업 방식대로 획일적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숙련과 경험에 의존한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테일러주의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할 방법을 고안햇다. 바로 컨베이어 벨트이다. 컨베이어 벨트는 노동자들에게 정해진 작업 방식과 주어진 작업량을 강요했다. 영화 <모던 타임스(1936)>에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것처럼, 컨베이어 벨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정해진 작업 방식과 속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노동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이다.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사람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저항하지 못한다. 공장의 문 밖에는 해고와 실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주의와 컨베이어 벨트의 결합은 흔히 '포드주의(Fordism)'이라고 불린다. 포드자동차의 생산 공장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성년 남자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일당 2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자동차왕으로 불린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는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과 함께 5달러의 임금을 주었다. 이 때문에 포드는 다른 자본가들로부터 심지어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높은 임금을 받는 대신 노동자들은 단지 작업장에서 더 고된 노동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 술과 도박을 끊고 저녁식사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은 물론 일요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가야 했다. 포드는 노동 과정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활과 그들의 인격조차도 통제하고자 했다. 히틀러가 포드에게 철십자훈장을 수여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11-213


포드는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포드는 히틀러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기부했고, 히틀러는 "미국의 파시즘 지도자"에게 가장 영예로운 철십자훈장을 수여했다.  214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면 할수록 노동자계급은 더 빈곤해진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바로 자본가들이 생산수단 즉, 자본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진보와 빈곤:부의 증진에 따른 산업 불황과 빈곤 증가의원인에 대한 조사>(1879)라는 책에서 같은 질문에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조지는 사회가 진보할수록 대중이 더욱 빈곤해지는 이유는 바로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지대가 더 큰 비율로 상승하므로 임금은 더 낮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18-220


헨리 조지가 내놓은 것은 토지의 몰수가 아니라 토지단일세이다. 굳이 토지를 몰수하지 않더라도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를 정부가 세금으로 전부 환수한다면 똑같은 효과를 얻을 있기 때문이다.  222


미국의 북부와 남부는 독립 당시부터 구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북부에서는 비교적 공업이 발달하고 있었으나, 남부는 영국에 면화를 수출하고 값싼 공산품을 수입했다. 따라서 남부의 농업자본가들에게는 자유무역이 유리했다. 반면에 북부의 산업자본은 영국과의 경재을 피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이유에는 이러한 무역체제의 차이도 크게 작용했다. 어찌 보면 남북전쟁이야말로 북부의 산업자본이 마음껏 성장하도록 해준 가장 주용한 계기이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빠르게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변화했다. 원래 미국은 영국의 요매넹 비유되는 독립자영 농민들을 토대로해서 건설된 사회이다. 산업화는 이러한 자영 농민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버렸다. 특히 남북전쟁 뒤 서부 개척이 진행되고 철도 붐이 일어나면서, 돈과 건력을 앞세운 철도회사들은 농민들의 토지를 폭력적으로 매수했다. 정부도 철도회사에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서 철도회사에 싼값에 불하했다. 밴더빌트나 카네기 같은 강도귀족(robber baron)들이 그토록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남북전쟁과 철도 붐 덕분이었다. 이른바 강도귀족들의 '황금시대'가 열린것이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볼 때 그것은 번쩍거리기만 할 뿐 허위에 가득 찬 '도금시대'에 불과했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친구이자 작가인 찰스워너와 함께 쓴 <도금시대:우리 시대의 이야기(1873)> 는 토지의 수용과 그를 둘러싼 협잡, 부정부패 등 미국 사회의 추악하고 부끄러운 이면을 고발한 작품이다.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존 왕(King John, 1595)>에 나오는 "금에 도금칠을 하거나 백합에 색칠을 하는 것은 낭비이고 어리석은 짓일뿐이다"라는 대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226-228



조금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 봉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100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봉건제도가 안정되고 변화가 거의 없는 사회구조였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는 그와 정반대이다. 자본주의는 흔히 달리는 자전거로 비유되는데, 페달을 밟지 않으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쓰러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자본주의에서 변화는 거의 본질적이고 숙명적인 것이다.  233


고전이 위대한 이유,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그 책들과 저자들이 당시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도 주기 때문이다.  234


독점자본주의의 구조와 특징을 처음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은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 1877~1941)의 <금융자본론(1910)>이다. <금융자본론>이 '<자본> 이후의 <자본>'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마르크스의 이론과 분석 방법을 따르면서 마르크스 이후의 자본주의를 분석했기 때문이다.  236


독점자본주의 이전에도 자본주의는 경제적 권력이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집중된 사회였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출현은 이제 자본가들 가운데서도 더욱 극소수의 독점자본가들이 그러한 경제적 권력을 배타적으로 장악하고,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 계급은 물론 다른 자본가들까지도 지배하고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과 산업과 정부의 권력자들은 금융과두제(金融寡頭制:금융과두제는 소수의 서대한 금융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제도를 말한다. 레닌은 이것을 제국주의 단계에서 나타나는자본주의의 징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를 형성해 오직 자신들 안에서만 권력을 공유하고 배분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사회에서도 권력이 이처럼 소수의 집단에게 독점된 적은 없었다.  238


<금융자본론>이 '<자본>이후의 <자본>'이라면 <제국주의>는 '<금융자본론>이후의 <금융자본론>'인 셈이다. 

이 책에서 레닌은 금융자본이 결국 제국주의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이지만, 부패하고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리므로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이기도 하다고 보앗다.  240


레닌은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지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산업과 은해에서 독점체 출현. 둘째, 산업 독점과 은행 독점의 결합과 금융과두제의 출현. 셋째, 자본수출. 넷째, 국제적 독점체에 의한 세계의 경제적 분할. 다섯째,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세계의 정치적 분할. 첫째와 둘째 지표가 바로 힐퍼딩이 <금융자본론>에서 분석한 내용이라면, 이어지는 세 가지 지표는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왜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해준다. 마지막 두 가지는 바로 제국주의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준다.  240-242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아래엣부터 자본가로 성장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독점자본의 시대에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 결합이 일반화되고 기업 경영에 대한 금융자본의 배타적 지배가 확산되면서 평범한 중산층이 기업가나 경영자로 상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중소 자영업자들, 비교적 높은 소득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들, 은퇴한 관리자 등과 같이 약간의 저축이 있지만 직접 자본가가 될 만큼의 자금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직접 기업을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대신 자신의 저축을 안정적으로 투자해 이자를  받는 거이었다. 루돌프 힐퍼딩은 이들을 '금리생활자(rentier)'라고 불렀다.  248


마르크스는 자본의 축적이 진행될수록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한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자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자율은 안정적이거나 도리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금리생활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더 많이 착취해야 한다. 이 때문에 힐퍼딩과 동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금리생활자를 자본주의의 가장 퇴폐적이고 기생적인 현상이라고 비난했다.  249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th, 1908~2006)는 흔히 베블런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베블런 이후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제도의 진화를 분석하고자 했다. 그의 주요 저작 가운데 하나인 <풍요한 사회(1958)>가 <유한계급론>의 속편이라면, 다른 저작 <새로운 산업사회(1967)>는 <영리기업의 이론>의 속편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면 갤브레이스 자신은 그것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속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72


아무튼 <풍요한 사회>에서 갤브레이스는 인간의 욕구를 생활에 꼭 필요한 절대적인 욕구와 그 이외의 상대적 욕구로 구분했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본래의 목적은 절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을 더 얻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욕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마치 내가 그 상품을 원해서 소비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나의 욕구가 기업들의 광고에 의존하고 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이를 '의존 효과(dependency effect)'라고 불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계급들도 마치 유한계급들처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새로 나온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소비한다. 얼핏 보면 이런 대중 소비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 더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제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만 자본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생활에서조차 그들의 이윤을 늘려주기 위해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274


카를 멩거의 제자이자 신자유주의의 사성적 원조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에들러 폰 미제스(1881~1973)는 언젠가 케인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매우 훌륭한 경제학자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고. 그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란 바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용인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근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이다. 물론 시장이 언제나 균형 상태이지는 않다. 일시적으로 시장이 불균형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은 모든 경제학자가 인정한다. 다만 주류 경제학은 시장은 언제든 그러한 불균형을 스스로 조정해 균형 상태로 돌아갈 능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이러한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신뢰와 신념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경제학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거이다. 

케인스가 주류 경제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든 것은 그의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경제학의 근본적인 신념에 대한 비판이었다.  290




자본주의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올까? 마르크스와 그 지지자들은 자본주의가 내부의 모순 때문에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01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와 논리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한 경제학자가 잇다. 바로 조지프 슘페터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슘페터는 평생 단 한 순간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런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으니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서 참으로 심오한 측면은, 자본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주의로 발전하리라는 것이다.  302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소유의 문제로 파악했지만 슘페터는 관리의 문제로 파악했다. 가령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기업의 형태가 주식회사로 바뀌더라도 생산수단을 여전히 소수가 독점하고 잇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이다. 반면에 슘페터는 누가 주식을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누가 기업을 경영하고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기업이 사회적으로 관리되며, 결국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슘페터는 또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도 지지하기에, 더욱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가와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농민, 상인, 자영업자 같은 중간계급도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해 기업이 거대해지고 기업의 활동 영역이 확대될수록, 중간계급의 지위는 하락해가고 그들의 역할도 축소된다. 따라서 이런 중간계급들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무산계급의 혁명에 의해 타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요구에 따라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동의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눈부신 성공 때문에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주장이다.  305


슘페터의 저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은 역시 <경제발전의 이론(1912)>일 것이다. 슘페터는 경제체제의 운동 양식을 순환과 발전의 두 가지로 분류했다. 슘페터는 순환을 일정한 정태 체계 내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된느 경제 행위의 총체로, 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결코 일정한 체계를 벗어나지 않는 연속적인 변화로 파악했다. 이에 비해 발전이란 순환을 제약하는 여건을 다소 바꿈으로써 나타나는 변화로, 이는 연속적인 경제변동이라기보다는 경제체제 자체의 비약적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슘페터는 경제의 내적 요인에서 나타나는 비연속적인 기술 혁신이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즉 기업가가 창조적이고 영웅적인 기술 혁신을 수행함으로써 경제는 정태 균형에서 순환의 과정을 벗어나 동테적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308-309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innovation)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혁신이란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과정이다.  309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을 슘페터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새로운 상품의 발명. 둘째, 새로운 생산 방식의 발명. 셋째, 새로운 원료의 개발. 넷째, 새로운 시장의 개발. 다섯째, 새로운 시장 구조로의 전환이다.

슘페터의 혁신 개념은 다분히 지나치게 광범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가령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것은 새로운 생산 방식을 발명한 혁신의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 포드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가 자본주의의 생산 방식에 중요한 혁신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식민지 시장을 발견한 것은 과연 네 번째 유형의 혁신인가? 그렇다면 독점자본이 경쟁 기업들을 도태시키고 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다섯 번째 유형의 혁신인가? 아무래도 슘페터의 사회주의는 지나치게 관용적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도록 기업에 유인을 더 많이 제공하고 기업에 유리한 경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기업가 정신이 없는 사업가들은 결코 혁신할 수 없다. 그저 기업가들을 모방할 뿐이다. 모방하고자 해도 모방할 기업가 정신이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막다른 길은 아닐까?  310-31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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