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비 씨는 콩고의 문베는 콩고만의 문제가 아니고, 아프리카의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국주의 시절, 유럽 열강이 심어 놓은 분쟁의 씨앗이 오늘날 아프리카 문제의 뿌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35


사람들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떤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이해의 폭을 갖고 살아간다.  209


최종 판결일은 2008년 2월 20일.

드디어 2월 20일 아침이 밝았다. 선고는 오전 10시였다. 김종철 변호사와 아브라함이 함께 내곁을 지켜 주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종철이 내 손을 한 번 꽉 잡았다. 아브라함이나 김종철이나 나만큼 긴장하며 또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판사가 내 사건 번호와 이름을 호명했다. 

"이번 사건은 원고 승소하였습니다."

"와!"

옆에 있던 김종철 변호사와 아브라함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얼싸 안았다. 

'내가 이겼다. 아니, 우리가 이겼다!'

그 순간 우린느 한 형제나 다름없었다. 법정인 것도 잊었고, 창피한 것도 잊었다. 함께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해맑게 웃는 아내의 얼굴과 라비, 조나단, 파트리시아가 기뻐서 펄쩍 뛰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보, 애들아! 우리 이제 만날 수 있겠구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238-239


내가 [피난처] 사람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난민을 도와주는 건 좋지만 난민에 관한 정보는 그 누구와도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할 경우에는 먼저 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도 될지 물어보는 게 순서라고 얘기했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늘 선의로 끝나지 않는 게 난민들의 세계다.  268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를 알아가고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과 콩고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국이 오랜 세월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콩고도 벨기에에 의해 철저하게 수탈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두 국가 모두 내전과 쿠데타, 독재 저권을 경험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역시 주요한 '난민 발생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 사람 대부분이 전쟁 난민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지우너의 손길을 받았다. 그중에는 <유엔난민기구>와 유사한 <유엔한국재건단(UNKRA)>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불우했던 과거는 잊혀졌다. 지금의 한국을 보면서 50년 전의 한국을 떠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278


왜 난민은 더 나은 삶을 꿈꾸먄 인 되는가? 왜 난민은 배움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가? 나는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하는 친구들에게 도리어 묻고 싶었다.

배워야겠다는 열정은 단지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갖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한국을 배워 콩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가족의 안정만큼이나 콩고의 미래도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아이들에게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사 주고, 학원도 보내 주고픈 마음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 가족이 조금 여유로워진다고 해서 매년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는 콩고의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넬리에게 조금만 더 우리를 희생하자고,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훗날 콩고를 위해 쓰자고 이야기했다. 넬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고 또 미안했다.  280


피부색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일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298



 - 얼마 전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한 축구 팬이 "인종차별금지법"에 따라 영국 검찰에 기소되었습니다. 만약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302



나는 나처럼 운 좋은 난민이 다시 없기를 바란다.  307


난민의 지원은 한 나라의 겨엦적인 수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차라리 인권 의식이 어느 정도냐의 문제와 더 관련 있는 것 같아요.  323




욤비 : 한국은 외국인이 설 자리가 없는 나라예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외국인은 따로 있죠. 돈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투자하러 온 외국인들이요. 그래서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쓰죠. 나머지 사람들, 특히 우리 같은 유색인종 사람들은 사람대접을 못 받아요.  325


욤비 : 이 책, 책에 담긴 이야기, 책에 있는 말들이 나만의 책,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말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이 책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예요. 우리는 크든 작든, 비슷한 고민, 비슷한 어려움, 비슷한 고통 속에 삽니다. 그중에서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값진 사랑을 배웠으니까요. 대부분의 난민은 어쩌면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난민이 된다는 건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에요. 난민은 또 난민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슬프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쳐 난민이 됐을 뿐이에요.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자들을 보세요. 여러분이 세계 초강대국의 국민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난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난민은 불쌍한 사람도,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닙니다. 난민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1980년 5월 18일에 한국인들이 독재에 맞서 '아니오'라고 외치며 들고 일어섰듯이 난민 역시 자유를 위해, 권리를 위해,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 더 소중한 다른 가치를 위해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말한 사람들입니다.  327-328



<유엔난민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이 약 30%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2011년 1,011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340명만이 난민 심사를 받았으며 그 가운데 47명만을 난민으로 인정했습니다. 난민 인정률이 13%에 불과한 것이죠.  333


우리에게는 난민을 보호할 '법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에서는 정부가 비준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92년 난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난민협약"을 비준했습니다. 그러니 난민들을 위한 적절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입니다.  337-338


난민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난민의 사회 통합입니다. 여기서 통합이란, 자신이 문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 사회의 핵심 가치를 수용해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통합은 한 사회의 문화를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줍니다. 

난민의 사회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난민에게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합니다.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시혜의 객체에 머문다면, 난민들은 한국 사회에 섞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자신들만의 공동체에 머물 것입니다. 난민들이 자율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한다면, 그들은 한국 사회에 통합하려는 어떠한 동기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사회 통합의결정적인 계기란 개인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환대의 마음으로 난민을 대하고 난미의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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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면서 낭비한 시간은 낭비한 것이 아니다.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라"

재미는 가볍고 생각 없는게 아니니까.


위대함의 근본은 사소함.

사소한 일상,

사소한 순간,

사소한 주변,

사소한 사람들.

사진작가 구본창은 

위대함을 찾기 위해 

사소함을 본다.


마들렌에서 위대함을 찾아낸 소설가 프루스트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모습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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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탈.선.하.다.

길을 벗어나 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새 길을 낼 수 있을까요?  9


노인은 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청소년 역시 든든한 후원자들과 잘 늙어 가는 어른들이 곁에 있을 때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9


십 년 전에 쓴 글이 지금 이야기처럼 읽힌다면 실은 사회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말일 겁니다. 표면 구조는 변했지만 심층 구조가 변하지 않은 게지요.  10


대중문화와 소비 사회의 선봉에서 '난리'를 치던 십대들이 최근 들어 온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 표현에 따르면 '찌질이'가 된 것이지요.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 까요? 한편에서는 급격하게 무기력해지는 '찌질이'들이 생겨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저씨'에게 '2만원짜리 3분 키스'를 파는 청소년들이 나타났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아이들이 늘어난 한편, 브랜드 옷을 사 줄 수 있는 부모에게 절대 복종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무엇보다 무기력한 청소년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 무기력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그들에게 모델이 없다는 점일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형과 언니들을 보면서 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이들은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보다 어딘가 기댈 곳을 찾는 데 급급합니다. 학교라는 '제도'에 남아 있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영리한 십대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어른들보다 일찍 간파한 듯합니다. 제멋대로 나가다가는 빌어먹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순지한 형과 오빠와 언니들을 보면서 해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사춘기적 저항의 양상은 좀 변할 것 같습니다.  11-12


이 책에서 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권유를 하고 있습니다.  14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제 착한 국민 콤플렉스에서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23


사실상 도덕적 엄숙주의와 선정적 상업주의는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천민자본주의를 계속 굴러가게 하는 '한 몸체의 두 얼굴'이다. 지금 언론에서는 이 아이들을 구제 불능한 '나쁜 아이들'로 낙인을 찍어 격리시키려 하고 있지만 바로 그 언론이 시간이 얼마 흐른 후에 이들을 스타로 치켜세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상업주의 시대의 문법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정작 상업주의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이 있다. 부모 중에 가장 무책임한 부모는 아이를 두고 통탄하는 부모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던 부모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부모 아닌가? 그렇다면 자라나는 세대의 세태를 두고 통탄을 하는 나라의 '어른'들은 어떤가? 지금 일고 있는 '십대 때려잡기' 움직임을 보면서 정작 염려스러운 부분은 십대가 아니라 바로 '호통'치는 어른들의 세계다. 

배가 고픈 시대에는 식욕과 물욕이 삶의 동기가 되고, 관계의 끈이 끊어져 가는 시대에는 성욕이 삶의 동기가 된다. 압축적 경제 성장기를 거친 우리 사회는 지금 '식욕 중심적' 기성세대와 '성욕 중심적' 신세대가 서로를 무슨 낯선 짐승 대하듯 바라보고 있다. 농경적 시간에서 탈근대적 시간까지를 한 세대 안에 여행해야 했던 이들에게 그 엄청난 변화를 다 소화해 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틀림없다. 그러나 달리 피해 갈 길은 없지 않은가? 통탄과 호통의 소리는 합리적 해결에 반비례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밀어 내치지 않고 끌어 안을 수 있는 어른들이다. 폭력과 섹스를 통해 존재의 허무와 순수를 말할 수밖에 없는 21세기적 문법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그들과 의사소통하려는 의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48-49


전통 사회에서 '공동체 굿'을 했듯이 함께 해결 방안을 마련하면서 학교에 떠도는 나쁜 기운을 맑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52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아이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자기 삶의 공간을 회복할 줄 아는 능력이다.  52


근래까지 가정 내 폭력의 희생자인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자기가 폭력 남편이 되거나 아니면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에게 폭력 행사를 해서 복수를 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패턴이 깨지고 있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타인에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위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54


'내 아이'와 '우리들의 아이'의 테두리를 넓히며 더불어 사는 터전을 만들어 가는 것 외에 우리가 안전한 삶을 되찾을 방도는 없다. 부모들은 이제 '나/우리'의 아이를 위해 지역 모임을 만들고 국회의원 후보자 중 폭력 남편은 없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부모들은 이제 폭력 문화와 폭력적 정치판을 뒤바꿀 운동에 적극 나서는 새로운 시민 세력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56


상품이 홍수를 이루는 소비 사회란 바로 '소비가 미덕인 사회'를 말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에서는 잘 써 본 사람이 잘 번다. 좋은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 일류 호텔의 주방장이 되고, 맵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아이가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된다. 다양한 문화 활동에 몰입한 경험이 있는 아이가 문화 기회자가 되고 또 유능한 매니저도 된다. 후기 근대를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되는 '생비자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소비게 치중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아끼라고 말하기보다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어릴 때부터 심부름을 하면서 돈을 벌고, 학교에서 학예회라도 기획해서 부모 친지들에게 표를 팔아 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아이들은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돈을 그렇게 헤프게 쓰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기회를 주지도 않고 돈 관리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나무란다. 소비 사회의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그것을 얻어 내기가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하면 아이들은 자원을 독점한 기성세대에 적대감과 불신감을 갖게 된다. 돈을 마구 쓰고 몸을 마구 굴리게된느 것은 지금 어른들이 자원을 독점하고 아이들을 자기 식대로 관리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빈 마음으로 자원을 나누자. 스스로 돈 관리, 몸 관리를 할 수 있는게 자율의 공간을 마련해주자.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이 있듯이, '과잉의 시대'에 살아남는 전략이 있다. 그 전략은 금지와 금욕이 아니라 체허모가 자기 기획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57-58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아이들은 다시 순종적이 되기로 했고, 학교는 입시 학원고 학부모와 모종의 '결탁'을 함으로 입시 교육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65


이제 '똑똑한' 학생들은 "조금만 참아라, 곧 잘 될 것이다."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 

기존 조직에 들어가서 고스란히 써먹히고 퇴출당하거나 과로사를 하느나, 라면만 먹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즐겁게 살아 볼 궁리를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71


많은 것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각자가 자기 현장에서 시대적 전환을 이루어 낼 작은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끊어진 의사 소통의 끈을 다시 맺는 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버전 업'의 시작일 것이다.  71-72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교육의 내용이 정해져 있던 '계몽주의' 시대의 교육은 간단명료했다. 조금 먼저 안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르치면 되었다. 그것이 바로 대량 생산 학교 체제였다. 거대한 교사 양성소와 거대하 ㄴ학생 양성소로 충분했다. 

그러나 조금 먼저 안 사람의 지식이 금방 적절성을 잃어버리는 급변하는 시대의 교육은 그 전 시대와는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순한 모방 학습의 형태가 아니라 개개인의 동기 유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일 것이다.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말한다. 너무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서 그렇다고 한다. 정말 그 말이 맞을까? 그들이 부모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누린 세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좀 덜 부족한 경제 상황에서 살았다고 해서 다른 것도 덜 부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것은 물질주의자들이나 할 생각이다.

사실상 지금 십대나 대학생들을 보면 다른 부족한 것이 아주 많은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그 다른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경제 사정으로 좌절한 경험이 많은 부모일수록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경험과 그 세대의 '안경'에 갇혀서 아이들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에게 '살고픈 의지'는 결핍을 메우려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유학을 가는데 자신이 못 가면 유학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집 없는 서러움의 기억은 집을 사기 위한 강한 동기를 심어 주었다. 부모 세대의 삶은 대부분 돈이 없어서 힘든 것이 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들에게 힘닿는 데까지 밀어줄 테니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무감각한 부모가 바보 갗고 원망스럽다. 사실상 부모 세대는 경제적 부족으로 좌절을 경험했지만, 실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길렀고 삶에 대한 애착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 의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때로는 사회적 저항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치열함 경험도 했다. 부모 세대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적절한 실패와 성취의 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진보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미 집이 있었고, 자기 방이 있었고, 부모의 취미가 있었고, 부모의 꿈이 있었다. 경제 성장기를 잘 살아 낸 중산층 부모는 가족계획을 해서 낳은 한두 명의 아이를 어떻게 기를지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에 따라 아이를 길렀다. 아이들은 행복했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누구인지 묻게 된다.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싶어지는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방황한다. 사회 운동을 열심히 한 진보적 부모는 아이들의 '반항'마저도 다 잘 '이해' 하다고 한다.

아이는 갑자기 어느 것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해 보려 하는데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다. 공부 외에는 어떤 것에도 몰두해서는 안 되는 상황만이 그 앞에 있는 것이다. 부모는 유학 교육 보험까지 들어 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자신이 그런 것을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내 본 적이 없는 자신을 보게 된다. 자신이 그것을 원하고 있는가? 

설혹 부모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랬다고 취직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취직해서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하고, 세상은 테러 사건 등으로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경우 이 문제는 오히려 덜 심각하다. 자기 부모보다 더 잘살 수 있게 되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며, 결핍으로 인해 생긴 동기 부여가 여전히 작용하기 때문에. 그러나 부모가 성공한 경우일수록 아이의 불안은 커진다. 

게다가 세상은 하루가 멀다고 바뀌고 있다. 지금 가장 좋다고 말하는 의사 직업이 20년 후에도 가장 좋은 직업일까? 어쩌면 가장 좋다는 직업은 아직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은 어떤 새로운 것일지 모른다. 아직 정확한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직종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섣불리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또 정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지금 자기가 갈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의 학습은 그런 길 찾기를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 길 찾기'를 돕는 학교, '자기 주도적'이 되는 것을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81-84


부모 세대의 사람들은 다 그리 믿고 있지만 지금 이삼십대 중에 세상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울리히 벡은 이러한 상황을 '위험 사회'라는 단어로 표현했는데, 이는 위험이 가득한 사회라는 뜻이 아니라, '무모한' 시도들이 난무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하면 된다'는 시대가 아니라, '하면 더 망치는 시대'라는 말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벡은 적어도 기존의 방식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롭게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성찰성'이라는 이 시대의 핵심어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를 풀려고 아등바등할수록 더욱 문제가 심각하게 꼬이는 사회, 사실, 이럴 때는 뭔가 하려는 사람보다 남을 해치지 않고 노는 사람이 더 훌륭한 주민이 된다 많은 이들이 다시 신화를 읽고 판타지 소설에 탐닉하는 것도 모두 이런 '비약'을 요구하는 전환기적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88


미국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페미니스트들이 중심이 되어 '딸들을 일터로!'라는 모토의 행사를 열어 왔다. 아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게 하려는 취지의 행사인데, 그날이 되면 앵커맨 옆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야무지게 앉아 아빠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택시 기사는 딸을 태우고 영업을 한다. 생물학 교수는 이 운동에 동참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딸을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유전공학에 뜻이 있는 지역 내 모든 중고생들을 초대한다. 이런 일은 교육부와 노동부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가정과 학교와 직장의 벽을 허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산,학,민 모두에게 공유될 때 가능한 일이다. 

새 제도는 현장에서의 유연성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실행될 때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  101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배움의 체계를 만들어 가려는 어른이 있다면 그 모든 곳이 학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 체제에 적응을 잘 못한 만큼 대안적 학습의 방식을 찾아낼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대안 학교들은 20~1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학교일 것이다. 학교 건물은 비어 있는 동사무소여도 되고 주택가의 이층 전셋집이어도 된다 대안 학교를 위해서는 구태여 그린벨트를 훼손하면서 학교를 지을 필요도 없다.  104


대안 학교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의 시점을 지나 '무엇을 향한 자유' 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116




전환의 시대라 한다. 전 인류를 거대한 공장 체제로 끌어들인 20세기는 바야흐로 퇴장하고 있다. 20세기가 낳은 천재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스]라는 영화에서 선명하게 보여 주었듯이, 산업 혁명 이후 인류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대량 생산을 위한 기계적 시계에 맞추기 시작했다. 훈육과 제복의 시댄느 시작되었고, 유토핑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자신의 몸을 기계에 길들여 갔다. 

다행히 인류는 컨베이어 벨트 속에서 일할 인공 지능 체제를 만들어 냈다 한다. 이제 인류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컨베이어 벨트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체제와 창의적인 인간이라고 한다. 새로운 생산 양식을 만들어 내고 규정들을 바꾸어야 하는 때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규정집을 경전처럼 받들면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는 이들을 '왕따' 시키고 있다 대량 생산 체제에 길들여진 속도와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변화는 분명 오고 있다. '기계 시간'에 맞추다가 허망하게 과로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미 '똑똑한' 이들은 '체제 탈출'을 꾀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외곽에서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유기체적인 몸을 보존하겠다는 사람들이다. 혼미한 중세 말기에 선각자들이 선택한 것이 '머리'였다면 후기 근대의 선각자는 그래서 '몸'을 선택한다.  124-125


실은 백 년 전에 폴 라파르그(1842~1941)라는 통찰력 있는 지구인이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우리는 지금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 

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  125-126


고도 관리 사회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은 '몸' 하나뿐임을 감지한 이들은 패션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며, 온갖 놀이와 운동과 명상을 통해 새로운 놀이적 몸을 만들고, 서로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파티를 열면서 '노동하는' 몸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피어싱과 문신도 이런 시대적 표현의 일종으로 부상된 문화적 행위다. 이들은 이런 행위를 통해 도구적 합리성으로 점철된 '근대'에 대해 성찰해 내고 있다. 여기서 '성찰'이란 단순한 반성을 말하지 않는다.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없음을 인식하고 새 길을 내기 위해 혼란의 여정에 기꺼이 들어가서 새로움을 탄생시키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이들은 이제 일과 놀이에 대해 근원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성찰, 놀이와 쾌락의 복권. '웰빙'에 대한 감각의 회복, '저속 기어'로 가면서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 세계를 다시 구축하자고 말한다. 스스로 소생하면서 사회를 소생시키기. 이것이 바로 '놀이하는 몸'을 갖고 싶어 하는 후기 근대인들이 해내려는 작업이다.  133


다행히 마을을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들이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대안 학교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143


지금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돌봄과 학습이 있는 주거'를 상상할 때다. 그간 서구 사회가 복지(welfare)에서 노동 복지(workfare)를 거쳐 학습 복지(learnfare)를 거쳐 왔다면, 압축적 변동 과정을 거치는 우리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주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집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두 세기 전부터 친족과 고향을 버리고 국가에 충성하기로 맹세한 익명의 '애국 국민들'을 어떻게 다시 관계의 소중함을 아는 마을 주민,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구촌의 주민으로 변신시킬 수 있을까? 자신을 '소모성 건전지'라 부르는 피곤에 찌든 직장인들을 어떻게 의미를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할 것이며, 마을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 주민의 삶에 필요한 가게, 노인들을 돌보는 '느림의 일'등에 관여하게 할 수 있을까? 욕망의 화신이 되어 버린 수동적 소비자가 스스로 욕망을 조절하는 적극적인 '생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마을의 자원은 어떤 것일까? 고도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앞만 보고 살아온 '산업 역군'들이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후기 근대적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어떤 것일까?  144-145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노는 것이 곧 많은 창의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공유 지대가 있는 사회 만들기. 나는 그 방법론으로 '작은 마을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주거를 제안한다.  145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생산해서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있다. 세계적 공항들이 똑같고 세계적 도시들이 판박이가 된 것도 바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이런 획일 사회에서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은 시간의 때가 묻어 있는 곳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165




'돌연변이'로 나타난 변종들이 없이 진화는 불가능합니다.  186


배움의 근본을 확실히 하고 길을 다져 갈 때지요.

첫째로 배움이란 만남입니다. 대상과의 만남을 통한 '세계 만들기',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친구 만들기',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을 통한 '자기 만들기'입니다. ...

두 번째로 배움은 돌봄입니다. 도구적 돌봄이 아닌 상생의 돌봄. 어른과 아이가 모두 서로를 돌보는 것, 서로를 진정으로 돌보기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고, 더 많은 학습을 하게 되는 동네가 곧 학교입니다. 세대 간의 돌봄이 도구적 돌봄이 아니라 상생적일 때 그 사회는 되살아납니다.  190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 모두가 힘드러하고 있스빈다. 이런 시대일수록 실험적 작업이 중요합니다.  213


아이가 비판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게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비판을 잘한다고 달라질 세상이 아니기에 '소통 능력'과 '일머리'를 갖게 하는 것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안에 애정과 관심, 곧 돌봄의 능력이 키워져야 가능한 일이지요.  219


비판적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비판적 창의력이란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때로 상당히 잘못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창의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고 타인을 위하는 사회 성원을 기르기보다 자칫 시시비비 따지는 사람을 기르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앞으로의 교육 목표는 그래서 '비판적 창의력'보다 타인을 돌보고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함께 잘 되는 일을 생각해 내는 '돌봄적 창의력'을 기르는 것일 겁니다.  220

인간 사회는 갈등과 협력이 그 생동의원천이지요. 성미산학교 역시 갈등이 없을 수 없는 동네일 겁니다.  222


몇 가지만 당부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갈등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핫'한 성질로 싸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의 '궁극적 원인'을 찾으라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그냥 슬그머니 가라는 말도 아닙니다. 일단 '쿨'하게 거리를 두고 보면서 상황을 파악해 가면 합니다.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갈등 회피형' 사람들이 많으면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않지요. 학교를 만든 따뜻한 분들 가운데는 불행하게도 갈등 회피형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쿨하게 문제를 해결하며넛 대승적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고 갈 수 있으면 합니다. 상생의 효과를 얻기 위해 갈등을 드러내고 토론하는 훈련을 부지런히 하셔야 합니다. 

둘째는 책임질 팀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고 시스템을 진화시킬 팀이 없으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모두가 불안하기만 할 겁니다.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가면 늘 혼란 속에 있을 겁니다. 초등과 중등을 나누게 된 것도 능력을 갖춘 팀이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 책임을 지겠다는 팀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내부에 신뢰가 있다는 말일 겁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소통이 잘 안 되어서 일어나는 갈등인데 신뢰가 있으면 그래도 결국 그 갈등을 해결하면서 팀이 굴러갈 수 있지요. 신뢰가 안 가는 살마과는 애초에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천천히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책임지는 기획 진행팀이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성급함은 금물이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가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니까요.  223


셋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항상 마음을 열어 두고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하면서 배우는 체허모가 깨달음의 자율 공간이 필요합니다. 목마르다는 말을 하기 전에 물을 주지 마십시오. 목 마르다는 말을 할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니까요. 아이들은 자신이 쓰임새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골몰하면서 문제를 풀어 가는 즐거움을 알고 그래서 스스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들이 자기 시대를 넘어서야 하지요. 항상 배우면서 가면 합니다. 지금 시대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들일 겁니다.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성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서로 소통하는 능력이 만사의 기본입니다.  224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이 기본이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225


마음이 생기면 행동이 저절로 되는 '계몽의 시대'가 아니라 행동이 생기면 마음이 생기는 '탈계몽의 시대'라는 점 숙지해 주면 합니다.  229




에필로그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들 말하지요.

그런데 생각을 바꾼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더군요.

누구도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바벨탑의 시대에 

계몽의 말은 진부하고 지루합니다.

따뜻한 말, 친밀한 감정, 신뢰의 눈길이 힘이 되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야 할 때인 것이지요.

환경, 일상의 조건을 바꾸어야 뭔가가 제대로 달라집니다.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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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무튼 손님이 읽고 싶은 책이 그곳에 놓여 있는 계기와 상황을 서점원이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POP는 그것을 연출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이토 씨는 잡지 판매대를 아침, 저녁으로 다르게 새로 진열했다. 서점을 찾는 손님의 연령층이 아침, 저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32-33


이미 잘 팔리고 있는 책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팔릴 수 있는 책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매장에서 일구는 단계를 밟지 않은 것은 진짜 판 책이라고 할 수 없다.  46


서점원이 직접 책을 읽고 매장에서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만한 시기를 가늠해 어떤 책에 어떤 의견을 첨부해서 홍보를 전개할지 고민해야 한다. .. 페잔점 매장에서 팻말과 POP를 동원해 소개하는 책은 우리가 팔고 싶은 책이다. 만일 그럴 생각이 없는 서점에 POP만 가져댜 놓는다면 그곳 서점원에게는 자신들이 팔고 싶은 책이 아니라 '팔아주는 책'이 되어 버린다.  47


차근차근 일궈서 우리 서점에서는 그 책이 달리 보이는 POP를 매장에 걸면 어떻게 될까. 정말 책이 움직인다.  48


책 한 권을 팔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해야.. 서비스도 신경 쓰고 서가 관리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손님 입에서 한 번 "이건 아닌데."라는 말이 나오면 그 손님은 더 이상 서점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매장 관리에 항상 신중을 기해왔다. 그 일을 게을리한 순간 동네 서점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 어떻게 손님에게 지지받을까, 한 권 한 권 어떻게 팔까.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그 무엇보다 즐거운 시간이다.  57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팔리지 않는다. 이거다 싶은 책에 어떠헥 시간과 열정을 쏟을까. 그 책을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팔지, 시간의 추세를 생각해야 한다. 손님이 그 책과 어떤 식으로 만나면 그 책의 매력을 최대한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서가를 만드는 서점원이 추측해야 한다.  64


사람들로부터 "책을 파는 즐거움이 뭐예요?"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늘 느끼는 일인데, 책은 읽은 사람에게 상호작용을 유발해 변화를 일으킨다. 꼭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독자인 손님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만한 책을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 손님이 어떤 책이 필요할지 상상해서 스스로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 길을 만드는 것이 서점의 역할이자 즐거움이다.  69


서점의 개성에는 그 동네의 개성이 녹아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얼마나 사느냐로 서점에서 우선하는 책이 다랄지고 구색을 갖추는 상품의 폭도 넓어진다. 그 지역만의 서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동네가 서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78-79


지금은 데이터로 반품이 자동으로 가능하다. 며칠 팔리지 않으면 며칠 후에 반품한다고 데이터화되었다. 이래서는 서점원에게 한 권 한 권 그 책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팔리는 이유와 팔리지 않는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어진다. 데이터가 매장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버릴 우려가 있다. 그리고 데이터의 조종을 받을면 책은 결국 그것들이 '팔아주는' 것이 되어 버린다. 거기에 서점원의 판단이 개입할 수 없어서 '판다'라는 의식이 사라진다. 이래서는 일이 재미있을 수 없다. '책이 좋다'는 단순한 생각이나 데이터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책을 팔고, 팔리면 그 이유를 파악한다.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늘 주목하고 늘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114


- 홋카이도의 이와타 서점에는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는 '1만 엔 선서' 서비스가 있다. 서점 주인 이와타 씨가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진지하게 선정한 '책'을 1만 엔어치 골라 담아주는 독자적인 기획인데, 책을 고르기 전에 주문한 사람의 가족구성과 직업, 지금까지 살면서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읽은 책의 평가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눠 그 사람이 가장 기뻐할 책을 보낸다고 한다.  121


이전에는 가능했는데 이제는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려도 앞으로 이런 것을 해볼 수 있을까 하며 제안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하는 물음의 답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129


독서의 즐거움은 독자가 직접 책을 선택하는 데서부터 시작 된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는 것 또한 독서의 일부다.

책을 읽는 이유에는 기능적인 독서, 오락적인 독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독서는 마음을 일구어 자신 안에서 자라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생각들을 결실로 수확한다. 독서로 자신이 변화하고, 마음에 새롭게 생겨난 무언가를 키우고, 읽은 내용을 일상과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책 한 권 한 권을 어떻게 만날까. 또 읽고 싶은 책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체험의 축적이 독서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책과의 만남의 장은 어디든 상관없다. 인터넷, 서점의 매장, 텔레비전, 잡지, 어느 누군가의 추천 등 한 권의 책에서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며 읽어보고 싶다는 자극을 주는 계기는 많을수록 좋다. 하나의 흥미와 호기심에서 다른 책으로이어지는 여정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것이 책의 매력이다.  165


그 서점의 얼굴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으면 소규모 서점은 침몰한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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