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좌파란 무엇인가


요동치는 이념의 스펙트럼 속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나는 한국 좌파들의 공통점은 '매우 격렬하게' 좌파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좌파로서의 삶이 격렬한 만큼이나, 어느 한순간 좌파 되기를 내려놓고 다른 길을 떠나는 자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좌파 노릇이라는 것이 한때의 신념이었고 직업이었으며 동시에 직장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한때 정신을 잃을 만큼 사랑의 신열 속에 몸을 떨다가 너덜거리는 심장을 부둥켜안고 뒤돌아서는 사람처럼.  6


2008년 프랑스로 돌아와 좌파에 대한 나의 의문을 그대로 이 사회에 투사했을 때 이들에게선 조금 다른 답드이 튀어나왔다. 단지 시대에 유행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듯한 이 사회의 다원적 특성처럼, 여기엔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흘러가는 일정한 흐름 대신 저마다 다른 오색찬란한 색깔의 좌파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반성장주의자, 전투적 페미니스트, 반신자유주의장, 아나키스트, 트로츠키주의자.. 예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구닥다리 이념정당에서부터 최신 버전의 전위적 좌파들, 혹은 뭐라 명명할 수 없으니 자본의 구심력에서 제 힘으로 벗어나 '마이웨이'를 휘적휘적 걷고 있는 자들이 사회 곳곳에 무수히 흩어져 있었달까. 목숨 바쳐 좌파 노릇을 하지도 않았고, 희생 따위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마치 걸치기 편한 옷마냥 좌파의 생각을 걸치고 누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6-7


여기에서도 여전히 좌파로 사는 일은 상당한 지구력과 신념을 요하는 일이다. 자본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싸움의 끝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7




노인을 위한 나라를 꿈꾸다 - 테레즈 클레르


바바야가의 집... 21명의 여자 노인과 네 명의 젊은이가 한 건물 안에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각자가 차지하는 공간의 규모에 따라 월세 시세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400유로(약 24만원~48만원)의 월세를 내며(거의 모든 프랑스 노인은 국민연금을 수혜하므로 이 정도의 집세는 큰 부담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노인 요양원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낮은 가격이다), 모든 거주자가 일주일에 5~10시간씩 공동체의 운영을 위한 노동시간을 제공한다. 각자의 공간에는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세탁실만 공동으로 쓴다.  17


"대학은 굳은 지식을 전하는 곳이야. 거기서 배운 지식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보다 가두는 경우가 더 많아. 하지만 운동가는 자신이 꾸는 꾸모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로 인해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방법을 모색하게 되지. 토론하고 선언하고 실천해 나가면서 온전히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는 지식과 지혜를 삶 속에서 얻고, 그것은 우리를 더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해방의 열쇠를 제공하지. .. 그러니 질문을 멈추지 말 것. 질문의 노마드(nomad : 유목민)로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이 활동가의 첫 번째 사명이야."

테레즈는 마흔한 살에 이혼한 후 단 한순간도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삶을 멈추지 않았다.  28




분홍 돼지 엽서를 그리는 남자 - 에릭 브로시에


디즈니 사가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를 무한복제하고 상업화해서 특정한 스타 캐릭터 속에 상상력을 가두고 이미지를 소비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을 온순한 자본주의의 노예로 길들인다면 에릭의 모든 작업은 축제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상상 속의 새로운 존재들을 창조한다.  35


하기 싫은 일이 뭔지 아는 것, 그래서 그 일을 하지 않는 건 쉽다. 일단 흥이 안 날 테고, 몸도 안 따라줄 테니, 그러나 무한히 열려 있는 선택지 앞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지 못하는 병은 네 개 중 하나의 정답, 그것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가 아니라 세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를 추정하는 훈련만 무수히 해온 사람드에게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병이다. 많은 이가 죽을 때까지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무수한 세상의 시선과 관심, 대세에 떠밀려 다닌다. 그러다가 결국 원하는 것이 뭐였는지도 모른 채 생은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죽는 날에도 유행하는 방식에 따라 자손들의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유행하는 수의를 입고 유행하는 관 속에 얌전히 들어가 주어야 하는 것이 수많은 평범한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들은 자유의 번잡함이 괴로운 나머지 자발적으로 선택지를 좁힌다. 자율화된 학생들의 복장은 교장들의 용단과 학부모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다시 교복 시대로 복귀하고, 세상의 미혼 남녀들은 자신의 직관과 느낌으로 짝짓기를 포기하고 결혼중계업체의 배를 불리는 선택을 한다. "자유는 싫어. 선택은 귀찮아. 그냥 정해줘. 그럼 시키는 대로 할게." 이런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린다. 최근 청소년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증상은 불같은 반항이 아니라 '무기력'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10년간의 짧은 민주화 경험이후 이토록 왕성하게 자라난 독재 시절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단지 부정선거의 결과만은 아닌 듯싶다. 절반 정도는 독재와 권위가 익숙하고 편한 사람들이 불러들인 재앙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종교가 되면서 자본의 논리는 지구촌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제압해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을 희망하기를 점점 잊어가는 중이다.  38-39




루브르박물광의 무료입장을 허하라 - 베르나르 아스크노프


박물관에 있는 모든 작품은 시민 모두의 것, 인류 모두의 것이다. 누가 누구의 저자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는가.


Q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승리의 경험을 종종 누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결과적으로 그렇다. 난 단지 폭로하는 데서 만족을 느끼고 저항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운동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그것이 실천되기를 희망한다.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불의를 폭로하고, 그 순간 언론의 조명을 받는 운동의 방식도 있다. 일시적으로 매우 만족스럽고 뿌듯하지만, 결국 뭔가를 바꾸기 위해선 폭로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난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그것을 얻어내는 경험들이 축적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57-58




세상의 좋은 것들을 자본가에게 뺏기지 마라 - 자크 제르베르


<르피가로>지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박근혜란 사람의 세계 인식은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느꼈다.  65


어머니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자본가들에게 좋은 것을 다주지 마라. 우리가 그것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은 네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았을 때 주저하지 말고 문을 열고 들어가라. 누가 '거긴 네 정원이 아니다'라고 말하거든 이렇게 대답해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모두의 것이라고." 나는 어머니의 말대로 행동했다.  69


프랑스 공산당이 더 이상 자기 개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자각했던 1979년 나는 당을 떠났다. 공산당은 심각하게 교조화되었고 자기 개혁에 실패하면서 급격히 퇴화해갔다. 그것은 이미 내가 동구 공산당원들에게서 보았던, 비대한 교조주의의 침침한 그림자였다.  


Q 탈당 이후의 삶은 전과 많이 달라졌나? 정치적 지향에도 변화가 있었나?

A 탈당 이후의 나는 '개인적인 공산주의자'로 살기 시작했다. '코뮤니즘(communism)'은 공유재산을 뜻하는 라틴어 '코뮤네(commune)'에서 따온 말로 공동소유, 나눔의 의미를 갖는다. 나는 근본적으로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하고 사유하는 것, 나 혼자만 갖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한때는 일상적 실천보다 모순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는, 이른바 혁명의 방식으로만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둘 다 필요하다. 피에르 라비가 말한 콜리브리정신, 즉 개개인이 각자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 ㅗㅕㅓ다. 흔히 일상에서의 실천을 말하는 사람들과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어야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개개인이 자신을 변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16세기 모럴리스트 라 보에시가 <자발적 복종>에서 한 말을 되새겨보자. "독재자가 그토록 커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의 무릎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선다면 더 이상 독재가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구조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도구를 우리에게 주었다면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각자의 내면을 해방할 수 있도록하는 도구를 주었다고 본다. 이 둘이 제공한 도구를 통해 우리는 집단과 개인이 덜 고통스럽고 덜 비굴하게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72-74


68혁명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파리 10대학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그에 반대하는 권위적인 대학 당국과 충돌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 사건은 드골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분노의 폭발로 이어졌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노동자들이 연대하면서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총파업이 이뤄졌다. '금지를 금지하라' '리얼리스트가 되라, 불가능을 요구하라' '욕망을 현실로 삼자' '텔레비전을 끄고 눈을 떠라' 같은 일련의 슬로건들은 당시 68혁명의 불길이 가톨릭적 전통과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대한 거부, 그리고 구태로부터의 해방으로 번져갔음을 보여준다. 

시위는 결국 4주의 유급휴가 획득, 최저임금 35% 인상, 급여 10% 인상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듬해 드골의 퇴임으로 매듭지어졌다. 이후 68혁명은 현대 프랑스 사회의 틀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어 프랑스에서는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교조적 좌파의 목소리가 거부되고, 아나키스트운동과 환경, 생태운동, 페미니스트운동,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또한 68혁명은 유럽 전역은 물론, 북미와 남미, 일본의 청년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82




내 지식이 자본가를 위해 쓰이기를 거부한다 - 카헬 자닉


2011년 캐나다에서 1년간 지내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되도록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은 돈을 주고 사는 대신 버려진 것들을 재활용하거나 혹은 직접 만들어서 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버려진 의자를 가져와 고쳐 쓰고 버려진 자전거도 주워서 고쳐 탔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쓸 만한 물건들이 수없이 버려진다는 사실에 눈떴고, 최소한의 기술만 가지고도 버려지는 많은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돈을 벌고, 직업을 벗어나는 모든 영역에서는 한없이 무능해져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는 사실이 어리석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과연 원시인에 비해 더 유능하고 현명한 인간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면서 나는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자립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삶으로 서서히 전환하게 됐다.  89


아무것도 손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지 ㄱ돈을 내고 뭔가를 사서 소모하고, 또 뭔가를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모델이 역겨워졌다.  92


더 이상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이미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생산돼 있다. 5년 안에 고장 나도록 설계되는 가전제품, 6개월 안에 다른 옷을 사도록 만들어지는 허름한 천들. 이제 자본주의사회는 엔지니어들에게 이런 기술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낭비하게 하는 그런 기술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산된 물건을 자신의 특정한 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산다. 집 안을 채우는 모든 물건을 돈으로 사고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인간은 실제로 얼마나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들인가...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어머니는 수학교사로 사셨고 별다른 일탈을 시도하지 않으셨지만 두 분 모두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능하셨고, 그 무엇도 낭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98




익숙해지지 말길, 그렇게 새로워지길 - 솔렌 페랑도


Q 당신에게 대체 좌파란?

A 첫째, 좌파는 익숙해지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

  둘째, 좌파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현상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반대만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그 반대하는 대상의 힘을 키워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지펴으로의 가능성을 찾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111-113




나의 양심은 총을 들 수 없었다 - 이예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선생님을 통해 정치의식에 조금씩 눈을 뜨면서 이러저러한 집회에도 참가했다. 거기서 의경을 보았다. 그들이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민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면서 군대라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미국을 위해, 우리와 상관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게 내가 본 우리 군대였다. 나라를 지킨다기보다는 권력자를 위해 합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하는 조직이라고 보았다. 거기서 총을 들고 죽이는 훈련을 받는다는 것, 군복무를 거부하면 범법자로 취급당하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그 폭력적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24




변신을 위해 양쪽의 세계가 필요하다 - 엠마누엘 갈리엔느


좌파는 소수자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함게 가지고 누려야 하는 권리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쉽게 반동주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이런 시절에 좌파란 지금까지 싸워 획득한 근본적인 권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사회적 권리와 보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동안의 투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열매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좌파의 몫이다.  150-151




한국 국정원이 나를 투사로 만든다 - 브누아 켄더


"당신은 좌파인가?"라는 나의 첫 질문에 그는 부모님의 이력을 먼저 소개하면서 "좌파의 가치를 자연스러운 지식인의 양심으로 받아들이시는 그분들 밑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 길로 들어섰다"라고 답한다.  174


각자의 입맛에 맞는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다.  176


Q 프랑스-한국친선협회가 북한으로부터 돈을 지원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A 국정원이 퍼뜨리고 다니는 전형적인 악선전의 하나다. 만약 그런 얘기를 하는 언론이나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허위 사실 유포와 중상모력으로 고발할 것이다. 우리 협회의 회원은 170명 남짓이고 그중 120명이 꼬박꼬박 연회비를 납부한다. 우리는 회원들의 연회비로만 운영되는 협회다.


Q 국정원한테 많이 당한 모양이다.

A 물론이다. 한번은 나를 불러서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한국 외교부가 프랑스 외교부를 통해 상원외교위원회에서 나를 쫓아내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우리 협회에 대해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시도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얌전하는 브누아 켄더도 이 대목에서는 이를 간다).


Q 그런 위협을 당하면서까지 협회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뭔가? 

A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별일 없었다. 조용했다. 이명박이 권력을 잡으면서부터 국정원 활동이 활발해졌고 우리를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2008년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가 불붙었을 때 우리도 사이트를 통해 이명박 정권을 비판했다. 국정원의 공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나에게 접근해왔던 한국인중에 적어도 서너 명은 국정원의 정보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활동을 그만둘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아니, 사실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있고 나서 이 일에 더 재미가 붙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더 심해졌다. 일단 파리에 주재하는 국정원 직원의 숫자가 더 늘어났다. 그들이 우리를 방해하면 할수록 우리가 하는 일이 뭔가 의미가 있었던 거구나 싶고, 그렇다면 더 열심히 해줘야지 하는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나는 프랑스의 고위공무원이다. 협회 활동이 내일에 어떤 지장도 초래하지 않는다. 상원에는 티베트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진 의원도 있고 베트남, 캄보디아, 대만 등 여러 나라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한국에 갖는 열정을 모두가 잘 알고 도와주려고 하지, 방해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나를 투사로 만든다. (웃음) 넬슨 만델라가 그렇게 오랜 세월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위대한 만델라가 될 수 없었을 것처럼.  182-183


Q 프랑스 공산당과 북한의 관계는 어떤가?

A 프랑스 공산당은 10년 전부터 북한과의 모든 협력을 끊었다. 북한 노동당은 오히려 프랑스의 우파 정당인 대중민주연합(UMP)이나 사회당(PS)과는 협력관계가 있어도 공산당하고는 없다. 1994년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들의 모델이 러시아의 10월 혁명이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선언하면서 쿠바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단, 베트남 공산당과는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185-186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앞선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으면 삶의 전반적인 수준이 동반 퇴보 한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 그게 가장 시급한 한국의 과제다. 또 한 가지,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잘 모르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한국이 아직까지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들의 문화로 국제사회를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케이팝이 조금 알려지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케이팝은 한국 음악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한 엔터네인먼트일 뿐이다.  186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목격하는 것은 그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사람들이 북한을 비판하는 가장 핵심 지점은 세습체제다. 김씨 일가로 이어지는 절대 권력의 세습에 대한 일반적인 프랑스 좌파의 시선은 명확하다. 바로 그 세습 때문에 프랑스 좌파들은 북한을 사회주의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왔고 여러 번 북한에 다녀온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그들은 우리와 매우 다른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들 나름으로는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고, 자본에 모드 ㄴ것을 맡기는 대신 국가계획경제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있다. 각각의 사회는 그들이 처한 현실과 역사적 배경에 맞추어 각자의 진보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은 지금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의 지점에 서 있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에 누구보다도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것이 북한이다. 각자가 선택한 우선 과제가 있고, 각자가 처한 사회적 바탕과 변화의 단계가 다르다. 여기에 우리의 잣대를 그대로 들이밀며 기계적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보다 합리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류하고 접촉하는 지점을 늘리는 것이 그들을 돕는 방법이다.  188-189


Q 당신에게 좌파란?

A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190




혼자서 맞는 해방은 없다 - 루이즈 포르


옛날 어느 숲에 큰 불이 났다. 동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 달아나고 멀리서 망연자실하게 불이 숲 전체를 삼키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싿. 그때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나뭇잎에 물을 떠다가 숲에 난 불을 끄려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이걸 보고 있던 신이 작은 새의 수선스러움을 보고 "너, 그래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 알아?" 하고 소리쳤다. 벌새는 대답했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  203


Q 당신에게 좌파는 어떤 사람인가?

A 다른 먼지들이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하고 있을때 '나'라는 먼지만 홀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옆 사람이 불행한데 나 홀로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작은 벌새에서 한 차원 더 내려와 이제 그녀는 우리의 존재를 먼지에 비유한다. 각자의 개별성보다 하나하나가 보여서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는 동양적 사고가 깊이 배어 있는 표현이다.  204


좌파란 또한 "세상 모든 일에 즉각적,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 무엇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한 간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206




나는 사회당을 지지하지 않는 '극좌파'다 - 이렌 장(가명)


"일정한 한계선을 그어놓지 않으면 활동가의 일은 거의 모든 자유 시간을 잠식해버리곤 한다."  

이렌의 고백, 활동가의 불타오르는 투지에 사로잡혀 있건만, 때로는 주말이면 전시장을 어슬렁거리던, 자신만 생각하면 되던 시절의 한가로움을 떠올리기도 하는 듯싶다.  235




이토록 아름다운 마녀들 - 폴린 일리에


페멘(FEMEN)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요란한 악명(!)을 떨치는 새로운 여전사 그룹.  240


반라의 몸 위에 구호를 적고 머리에는 화관을 쓴 채 가부장제에 포섭된 굴욕적인 세상에 맞서는 페니미스트 그룹. 이들은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탄생한다. 키예프에서 만난 네 명의 소녀는 자본주의에 힘없이 투항해버린 세상을 혐오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섹스 산업, 독재, 종교의 교조주의'야 말로 가부장주의가 발현시킨 3대 악이란 결론에 이르렀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단체인 페멘을 결성한다.  241


우리는 가부장제 사회를 전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평등사회'다. 우리가 가부장제의 질서를 부정한다고 해서 그 다음에 올 사회가 모계사회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243


우리는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남자들 뒤에 여자들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서서 세상을 함께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44


우리는 근본적으로 비폭력적이며, 평화를 지향한다. 가부장제의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은 단호 하지만 결코 가부장에의 주체들과 닮은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누구도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행동에 나서서는 곤란하다.  247


페멘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암살 협박을 받는다. 페멘을 공격하기 위한 카톨릭 계열의 극우 남성 단체 호멘(HOMEN)도 생겨났다. 우리랑 정반대의 목표를 내건 사람들이다.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하고 동성애자들을 모욕한다.  252-253


아직 많은 프랑스의 좌파들이 페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페멘에 대한 의견을 선뜻 말하기보다는 "페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1년 반 전에 답하지 못했던 페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젠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시스템에 무력하게 투항하는 대신 사자처럼 당당하게 포효하는 이 여자들은 옳다. 페멘은 여자의 적이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남자와 여자 모두의 적이란 사실, 자본주의와 독재와 종교는 바로 그 가부장제가 작동시키고 있는 구체적인 극복의 대상이란 사실을 지목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적할 무기는 폭력 혁명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철저히 굴복시킨 세상의 절반, 그 속에 감춰진 여성성이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그 파격적 당당함이 우리 속에 숨죽이고 있던 여신을 되살려낸다. 이 아름다운 마녀들을 지지한다.  256




반공은 모든 독재 정권이 시작되는 징후 - 심영길


Q 당신은 빈 라덴에게 경외감을 표한 바 있다.

A 나는 빈 라덴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인간형이라 생가한다. 그는 억만장자인 데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수많은 미인들에게 둘러싸인,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간단히 무리고 투사로 살기를 택했다. 아프가니스탄 골짜기에서 소련도 어쩌지 못한 미국을 상대로 무력 저항을 했으니 놀랍지 않은가. 

빈 라덴은 왜 투사가 되었을까? 분노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소련을 내쫓으면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국가를 세우는 데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빈 라덴 일가는 미국 정부의 말을 믿고 앞장서서 그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의 믿음을 철저하게 배반했고 빈 라덴은 반미투쟁에 투신했다. 

비행기로 뉴욕의 쌍둥이빌딩을 격파한 청년 19명은 대부분 명문가의 자제들로, 1년 이상을 미국에서 상주하며 조종 훈련을 받았다. 그들에게 목적을 성취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뜻했다. 그들은 이륙하는 법만 배우고 착륙하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미국처럼 정보망이 잘 구축된 사회에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았고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었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다. 그들은 돈을 대가로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움직인 힘은 분노였다.

분노의 힘은 매우 정직하고 폭발적이다. 분노의 나를 청춘으로 살게 하는 원천이기도 했다. 개개인이 오랫동안 품어온 분노는 화폐의 가치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하는 유일무이한 힘이다. 자본에 가장 강력하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의미에서 분노는 고귀하다. 하지만 분노가 이기적으로 작동할 때는 나를 독재자로 만들 수도 있다. 분노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273-274


북한이 3대 독재 세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는 있지만 미국 제국주의에 저항한다는 점에서만큼은 그들을 높이 평가한다.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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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5일 비즈니스 카페 재팬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있었던 강연입니다. 비즈니스 카페 재팬은 나의 오랜 친구 히라카와 카츠미가 설립한 회사로, 컨설턴트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21



1. 공부로부터 도피하기


교육 받을 기회로부터 스스로 달아난다는 말은 머지않아 '하류사회'로 계층이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25


학령기 자녀를 둔 어른들은 무의적으로 자기 자식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의 학력이 내려가면 자기 아이에겐 이익이 된다는 기대감을 자기고 있다. 그런 무의식적인 욕망이 아이들의 학력저하를 심리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31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잠시 보류해 둠으로써 지성이 활성화되는 인간적인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는다.  36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모른다'는 것보다 이처럼 '모르는 것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위기의 징후로 여겨진다.  37


의미를 몰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38


어두운 밤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항해사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바다 위에 떠 있으면 긴장한다. 하지만 만약 시야게 들어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투성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에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또 하나 새로 등장한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40


'최근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돈이 들어가는 생활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각종 미디어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생활도 처음이다. 돈이 돈을 낳는 경제구조 속에 완벽하게 말려들어가 있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자립'의 감각을 체득하는 것도 이러한 경제 사이클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소비주체'로서의 확신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현재의 경제 구조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여과 없이 곧바로 받고 있다. 학교가 오늘날의 사회를 가르치고자 '생활주체'나 '노동주체'로서의 자립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은 어엿한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이미 경제적인 주체인데 학교에 들어가면 새삼스레 교육의 '객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스와 테츠지 <왕자와 공주가 되어가는 아이들>

이 부분은 내가 최근 십년 동안 읽었던 교육 관련 글 중에서 가장 계몽적이다. '아이들은 이미 취학 전에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과 삼십 년 전 아이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사회관계에 들어설 때 노동을 통해 들어가는가, 소비를 통해 들어가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사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우리들이 어렸을 때 사회적인 활동은 먼저 노동주체로서 자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어린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가사노동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밥그릇을 부엌까지 갖다놓거나, 마당을 쓸거나, 화초에 물을 주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나,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놓거나, 이처럼 가정에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었다. 부모는 당신들이 분담해야 할 가사노동을 아이들이 적게나마 줄여주니까 당연히 "고맙다"거나 "참 잘했어" 하고 칭찬해준다. 아이들은 그 칭찬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최초의 사회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유용한 구성원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부터이다. 작지만 가족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감사와 인정을 보상으로 획득하면서 어리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간다. 이러한 데서 예전에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을 밟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좀더 자라면 가사노동에 머물지 않고 바깥 사회활동에도 참가하는데, 타인에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감사와 사회적 승인이라는 대가를 받는 교환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의 기초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노동의 작은 분담자로서 사회관계 속에 자기를 등록하면서 아이들은 먼저 노동 주체로 자기를 세운다. 아니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자기를 세울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노동주체로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다르다. 지금 아이들은 노동 주체라는 형태로 사회적 인정을 받아 스스로를 세울 수 없다. 그럴 기회를 구조적으로 빼앗겼다.

둘러보면 오늘날 가사노동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남은 가사 일이라는 것도 그리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가령 청소나 빨래처럼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은 남아 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거나 성취감을 얻거나, 또는 사회성을 기르고 자연스레 학습과 연결되는 일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개를 산책시키고 화초에 물을 주고 풀을 뽑는 일상적인 일들은 자연과 연결되는 일로, 많든 적든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지만 이제는 가정에서 그런 일을 찾기가 힘들다. 부모들 입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가사노동을 시킬 수가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가사노동 분담이라는 작은 선물을 할 수도 없고, 가정이라는 시스템에 작게나마 자신도 공헌하고 있다는 기쁨을 누릴 기회도 없다. 

오히려 지금의 아이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체가 집안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소여서, 가능하면 그들에게 할당된 공간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헌이 되었다. 이런 가정이 매우 많다고 본다. "됐으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줄래!" 하는 엄마들의 화난 목소리는 요즘 다든 익숙할 정도로 많이 듣는 거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금지는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미약한 도움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고, 그 고사리 같은 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일본 속담에 '고양이 손이라도 비리고 싶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부탁할 만한 생산 활동이 거의 없어졌다. 반면에 아이들의 소비활동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촉발된다.  48-51


한 사람 몫으로 사회관계의 장에 등장하는 경우, 만일 그가 네 살짜리 어린아이라면 그를 교섭 상대로 대등하게 대우해줄 어른은 없다. 하지만 돈을 쓰는 사람으로서 등장한다면 그 사람의 나이나 식견, 사회적 능력 따위의 속인적 요소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쓰는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지, 돈을 쓰는 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돈의 투명성'이라는 특권적 성격이다. 사회적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어린아이가 여기저기서 쥐어주는 용돈을 가지고 소비주체로 시장에 등장할 때 처음 느끼는 소감은 '법을 뛰어넘는 전능함'일 것이다.  52-53


* 니트(NEET) : 용국 정부가 노동정책상 인구 분류로 정의한 용어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의 약자이다. 교육을 받지 않고, 노동을 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니트는 일반적으로 '일할 의욕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63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해라" 또는 "학원이나 가라"는 요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국영수 학원에 가거나 예체능 학원에 간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지쳐 말할 기운도 없고, 가족들을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그저 온몸으로 피로와 불쾌함을 표현함으로써,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엄마 아빠가 그렇듯이 자신도 충분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라는 것으로, 자신도 불쾌함을 견디고 있고 따라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음을 과시한다.

가족 중에서 '누가 가장 집안에 보탬이 되는가'를 '누가 가장 기분이 나쁜가'로 측정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 가정의 기본 규칙이다.  65


'시장 원리를 기초로 할 때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68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갖는지도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71


자신의 유아적 욕망을 가슴에 품고, 결코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말고 그저 소비주체로 안주할 것. 시장원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존재하길 요청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외계의 변화에 적응해 살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77


30센티미터 자로 잴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무게나 빛, 탄력 같은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진 거라곤 30센티 자밖에 없어 오로지 그 잣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계량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82




2.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얼마만큼 노력하면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노력과 성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 이것이 리스크 사회의 특징이다.  89


리스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생존 전략의 선택에 따라서 양극화는 더욱 진행된다.  90


리스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국민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라고 정부틑 선언하고 있음에도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정자와 교육행정 책임자, 대중매체 지식인들은 '리스크를 제거하라'고만 가르치지, 어떻게 '리스크를 방어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중앙교육심의회의 답신이나 교육학자의 제언 중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리스크 헤지 방법을 교육할 것인가'를 다룬 내용을 본 적이 없다. 리스크 사회가 도래했다고 경종을 울리면서 아무도 '리스크를 헤지하는 법'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105


우리들은 지금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실업을 당해도, 노숙자가 되어도, 병이 들어도 모든 것이 이러한 리스크가 있는 삶을 선택한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은 리스크란 개인적인 것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리스크 헤지는 자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05-106


중국인은 자식들을 일본이나 미국, 호주 등지로 뿔뿔이 유학을 보내 그곳에서 사업을 하게 한다. 어느 한쪽이 전쟁이나 공황으로 재산을 잃거나 인종박해로 추방을 당해도 다른 나라에 있는 친족이 지원하거나 받아줄 수 있도록 안전망을 쳐놓는다. 이것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갈고닦은 리스크 헤지의 기법이다. 

유대인도 마찬가지다. 로스차일드 재벌의 창시자 마이야 로스차일드는 다섯 명의 아들에게 유럽 네 도시에 은행을 열게 했다. 장남은 창업지인 프랑크푸르트 본점에 남겨두고, 둘째는 빈, 셋째는 런던, 넷째는 나폴리, 다섯째는 파리에 지점을 열게 했다. 그로부터 2백년이 흐르는 동안 본저모가 나폴리 지점은 폐업하고, 빈 지점은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 망했다. 하지만 런던 지점과 파리 지점은 살아남아서 일족의 이름을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과 두 차례에 걸친 유럽 대전에서도 살아남았기에 이것이야말로 리스크 헤지의 교과서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수 있듯이, 리스크 헤지는 '살아남기'를 목표로 집단이 합의한 계획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리스크 헤지를 하고, 발생한 리스크에 개인이 대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개인이 리스크 헤지를 한다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은 '살아남는 것을 집단의 목표로 내걸고 상부상조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 사회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자기가 결정하고 그 결과도 혼자서 책임진다'는 원리로 사는 게 결코 아니다. 자기가 결정하고 결과도 자신이 책임지라는 말은 리스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또는 죽음의 방식)이다.  107-108


고립된 아이가 혼자서 학교라는 시스템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기 가치관을 학교 시스템에 대등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이댄다. 스스로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는 배움을 거부한다. 이것이 자기결정이다. 배우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리스크를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사칙연산을 못하고, 알파벳을 모르고, 한자를 못 읽는다. 흥미 있는 영역에 대한 사소한 지식은 있을지라도 흥미가 없는 분야는 아예 모른다. 벌레가 파먹은 듯 의미의 구멍이 숭숭 뚫린 세상이 별로 불쾌하지 않다는 듯 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층 하강의 리스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115


오늘날의 교육 문제는.. 아이들이 나태해서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학력저하가 아이들의 나태와 주의산만의 결과라면 그 보정은 교육기술 차원의 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습을 포기하고 공부로부터 도피하는 데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 수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 문제는 교육기술이나 방법을 바꾸는 식의 기술적 차원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사회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120-121




3. 노동으로부터 도피하기


젊은 회사원에 대한 얘기다. 평소 그의 일솜씨를 높이 평가한 상사가 새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보라고하자 그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기 일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가지결정권에 대한 고착이다. 자기가 결정한 것이라면,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지라도 상관없다. 일종의 '자기결정 페티시즘'이다.  125


선택을 강제하면서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것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다.  128


니트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문제화된 사회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니트 문제는 영국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영국은 전형적인 계급사회여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취학 기회나 취업훈련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학습 의욕은 있지만 사회적으로 상승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이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인 사회에서 이민자의 아이들은 교육 기회와 문화자본에서 구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파리 근교에는 HLM(저가 임대 주택)이라는 거대한 주택단지가 있다. 그곳에는 이민자를 비롯한 빈곤층 주민들이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살고 있다. 예전에 이런 교외지역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던 프랑스 여성에게 들었는데, 이런 거대 단지에는 도서관이나 미술관, 책방, 극장, 콘서트홀 같은 문화시설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다고, 설령 예술적 재능이 있다 해도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기회 조차 없는 셈이다. ..

유럽의 니트는 계층화의 한 증상이다.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의 니트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느넫도 아이들이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자진해서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강화하는데 가담하는 방법으로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약자가 자신의 사회적 입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에서도 예외에 속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129-130


공교육의 이념은 유럽의 시민혁명기에 제창되었지만, 일찍이 제도적으로 정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0년 당시 미국 고등학교 (14세~17세) 취학률은 8.4%였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중등하굑 취학률은 3.8% 미만이었다. 그보다 반세기 전 1840년에 초등학교 취학률은 미국 전국 평균이 38.4%였다. 단, 이 경우 '취학자'는 단 하루라도 학교에 갔던 사람까지 포함하고 있고, 당시 미국의 보통학교 개강일은 연간 40일 정도였다(카리야 타케히코 <교육의 세기>)

근대의 초등교육 기관은 부모에 의한 사적 수탈과 지배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피난소'라는 공적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적인 공교육 사상을 기초로 한 일본 헌법에서는 교육받을 권리를 정한 제26조 다음에 '아동을 혹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제 27조가 따라온다. 헌법에 이러한 규정이 있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사회가 취학 기회를 갖지 못한 아동을 '저가노동'으로 혹사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131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 '권리'인지 '의무'인지를 묻는다면 아마 90%늬 아이들이 '의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대답에는 교육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일종의 정치적 이의제기'로 보는 시각도 성립한다....

'배움'이란 본시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을 고역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132


교육의 '권리'를 '의무'로 바꿔서 읽는 도착 행위가 일어난 이유는 경제적 합리성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했기 때문이다.  133


노동에의 가치에 비해 임금이 낮은 것은 원리상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임금이란 노동자가 창출한 노동가치에 비해 항상 적다.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이 이윤을 낼 수가 없고, 주주에게 배당도 할 수 없으며 설비투자도 불가능하고, 연구개발도 할 수 없다. 경제활동에 들어가는 자금은 모두 노동자로부터 '수탈'한 노동가치에서 조달된다.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노동가치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리다. 여기서 발생한 잉여가 교환을 가속시키고, 그 결과 시장이 형성되고 분업이 이루어지며 계급과 국가가 생겨난다.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왔다.  141-142


배움의 본질은 지식과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에 있기 때문이다.  155

 

졸업생은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송출한 '제품'이며, 이 제품을 기업이 '매입'한다는 또 하나의 소비모델이 존재한다.  157




4. 이들을 어떻게 도울까


히라카와 : 지식은 일본에서도 활용할 수 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교환 가능성에 입각하여 표준화됩니다. 모든 것을 표준화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앞에서 언급했던 '자기 찾기'가 꽤 화재를 모았는데, 모두가 표준화되면 이제 '나'라는 것은 없어집니다. 옆 사람과 나의 차이를 측정하는 도구로 경제적 잣대밖에 없다면, '자기다움'이란 애당초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붕괴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일한 척도인 돈을 양적으로 불려서 자기붕괴를 막고자 합니다.  168


우치다 : 아동학대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만, 이 현상은 육아를 등가교환 관점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낳은 피연적인 결과로 보입니다. 육아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엄마들은 육아를 긴 안목으로 생각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극히 짧은 안목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육아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은 자기가 만들어낸 '제품'이며, 부모의 서오가는 이 제품에 어떤 부가 가치를 덧붙이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오가가 평가를 받으면 부모는 '육아의 성고'이라는 형태로 사회적인 자기실현을 다했다고 여깁니다. 회사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의 매출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것과 같은 심리입니다.  

처음에는 똥오줌을 가린다거나, 말을 한다거나, 걸을 수 있다는 식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어를 구사한다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명문학교에 입학했다거나, 역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들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가된 가치를 부모인 자식의 '사업' 성과로 가시적, 외형적으로 과시하려고 하는 한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학력이나 자격과 같은 외형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누넹 보이는 성과' 이외의 것은 육아의 부가가치로 쳐주지 않습니다.

자식이 있으면 이해하시겠지만 본래 육아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일로, 육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20년이 걸려도 잘 모르는 법입니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육아 노동의 성과를 1~2년안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 보이라고 압력을 가해서는 곤란합니다. 짧은 시간에 측정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모들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수치화할 수 있는 형태로, 정량적인 형태로 육아의 서오가를 올리라고 재촉당하고 있습니다. 부모 스스로 이런 압력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또 가닭 모를 행동도 합니다. 이럴 때 "이 아이가 뭘 하는 걸까?"라며 아무 말 없이 그냥 바라보는 것이 옳은 양육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양육법은 오늘날 허용되지 않습니다. 

정시노가 의사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사춘기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기분이 좀 나빠요"라거나 "이건 싫어요"같은 불쾌한 메시지를 발신할 때 부모가 이런 메시지는 선택적으로 배제해버립니다. 아이가 심신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정보는, 말하자면 '제품'이 소음을 내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소음을 낸다는 것은 제품 공정에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부모는 자신의 '육아 실패'라는 기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귀를 막아버리는 것이지요. ...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오면 위험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 신호를 청취하면 자신의 육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발신하는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립니다. 이렇게 둔감한 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무너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가 느끼는 몸과 마음의 불쾌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보내오는 위험신호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신호가 아니라 소음으로 들리니까요. 하지만 여기에서 부모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바로 아이들이 발신하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시키는 일입니다.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게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내는 소음이 신호로 들리게 됩니다.

이것은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저오가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지속적으로 해주는 의미 불명의 말들을 분절하여 해독함으로써 마침내 모국어를 습득합니다. 다시 말해 무의미하게 들리던 소음이 의미 있는 신호로 바뀌는 것이지요. 이건 흔히 말하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되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목숨을 건 도약'입니다.  169-172


전후 6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약자의 안전망이었던 중간적인 공동체를 계속해서 무너뜨렸습니다. 지역공동체, 친족, 주종관계, 사제관계 전부 다 무너뜨렸습니다.  201


아이들이 노동주체로 출발할지 소비주체로 출발할지 학교에 들어가기전에 이미 결정됩니다.  211


요로 타케시(해부학자, 도쿄대 명예교수, 마음의 문제나 사회현상을 뇌과학, 해부학을 비롯한 의학, 생물학 영역의 다양한 지식으로 설명하는 저술 활동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얻고 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삶의 매뉴얼이 없는 시대여서 각자가 연구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1시간 30분 정도 강연을 하셨는데 한 질문자가 "선생님, 매뉴얼이 없는 시대에는 어떻게 살면 될까요?"라고 물어서 아연실색하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 때때로 강연을 하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받는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라고 말이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전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틀 속으로 모두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부분은 다 잘라버리고 자기 식으로 이해한 부분만 취합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이런 사고방식은 좋지 않다"고 거론한 부분을 거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런 건 경솔하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얘기했는데, 나중에 "좀 존에 선생님은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하면서 확인하러 옵니다. 그때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만 잘라서 듣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220


히라카와 : 체험교육이라고 할까 수련이라고 할까, 이런 전통적인 교육 기술을 통해 지금은 잃어버린 능력을 계발하는 방법을 어떻게 교육 시스템 안에 다시 한 번 프로그램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역사회에 합기도 도장을 연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설계한 교육 프로그램에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지만,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누구에게든 적용할 수 있는 좀 더 보편적인 형태로 전개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제자를 많이 길러내어 제 프로그램을 충분히 체험한 제자들이 도장을 열고 이를 통해 이런 내용을 널리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 서당식 체인점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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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오늘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


근대의 '철학적 다이너마이트'였던 니체 철학은 현대라는 시점에서 '토대학으로서의 철학'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14


니체가 보여준 현대성의 길은 다방면에서 확인된다. 먼저 철학 영역에서 그가 제시했던 탈형이상학적 전환, 이성중심주의 모델과 절대주의 모델의 파기, 실체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의 전환, 다원주의 모델을 통한 일원론 극복 프로그램 등은 서양 철학에서 지각변동을 일으켜, 근대적 패러다임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것은 곧 현대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변동이었다. 니체 철학의 현대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영역은 예술이다. 이성적 경험과 심미적 경험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를 파기해버리고, 예술의 '탈미메시스'를 감행했던 니체에게서 예술가들은 다양한 꽅을 피울 수 있는 씨앗을 찾아냈다. 음악, 회화, 건축, 무용, 조각 등의 넓은 영역에서 그 씨앗들은 예술의 현대성이라는 아우라를 피워냇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영역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언어에 대한 회의, 문학과 역사의 관계, 예술과 실제의 관계, 심리 현상과 글쓰기의 관계에 대한 니체의 질문들은 현대 문학이 주목할 만한 소재를 제공했으며, 니체 작품 자체가 문학적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신의 죽음에 대한 니체의 선언을 둘러싼 신학담론들, 스스로를 철학적 심리학자로 자화자찬할 정도로 예리하게 세공된 심리분석의 내용을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 눈여겨본 것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근대 사회의 허무적 요소에 대한 통찰이나 권력국가와 법률국가에 대한 니체의 신랄한 비판은 사회학, 정치학을 넘어 이제는 법학 영역에서도 문제해결 과정에 영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듯 니체 철학은 현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철학이 되었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은 미래에도 여전히 고전일 것이다. 철학의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을 철학 자신의 수단인 비판을 통해 보여준 모범으로서, 철학이 삶의 창조적 가능성을 고취시켜야 하고 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 보여준 모범으로서,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정신의 높이를 자랑스러워하는, 거리의 파토스가 깃든 자유정신의 모범으로서, 삶을 사랑하고 세계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영혼의 모범으로서... 무엇보다도 인간과 사회의 건강성을 염려하고 그것의 확보를 과제로 삼는, 철학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모범으로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15-16




니체는 어떤 사상가인가 - 니체의 철학적 실존과 자화상


철학자들의 글과 삶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까?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은 그들의 삶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들의 사유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경우다. 글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철학자들은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홉스, 루소 등이 있다. 그런데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을 꼭 들여다보아야 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소크라테스, 파스칼, 키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이 그러하고, 니체 역시 여기에 속하며 그 전형적인 경우다.  21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읽기와 쓰기에 관하여]  22


삶과 철학의 통일적 관계를 보여준 니체에게서 철학은 인식적 차원의 지혜를 찾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철학은 이제 삶의 지혜를 찾는 실존적 행위가 된다. 그 지혜는 바로 디오니소스적 지혜다. 즉 건강한 삶의 본능에서 나오고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혜, 파괴와 창조라는 두 계기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생명성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아는 지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거대한 관계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깨닫는 지혜,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의미 잇고 모든 것이 필연적이어서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찰하는 지혜다.  25


니체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었을까? 

(1) 예술가-철학자, 니체 : 문헌학 교수였던 니체가 <비극의 탄생>이라는 철학적 저술을 집필할 때부터 이미 그는 자신을 예술가-철학자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의 예술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짓는 예술가적 실천을 하는, 좁은 의미의 예술가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철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예술가는 '위대하고도 고귀한 목표'를, 즉 위대한 문화와 위대한 인간과 위대한 미래를 '창조'해내려는 '과제'를 지니고, 그 과제를 건강성 회복을 수단으로 실제로 수행하는 존재다.  26


(2) 계몽가와 교육자, 니체 : 니체는 19세기 당대를 총체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자 했던 시대진단가이자 계몽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총체적인 의미 상실과 목표 상실의 시대, 인간의 생명력이 퇴화되어 병들어 있는 시대, 철학과 문화와 정신이 방황하는 시대로 진단한다.

시대와 인간과 문화가 앓고 있는 병증을 인간과 사회의 '건강성' 회복의 길을 제공하면서 치유하는 것이다.  28


(3) 자유정신, 니체 : 자유정신은 말 그대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시 소유하는, 자유롭게 된 정신"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자유정신을 위한 책]으로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 자유정신은 단순히 이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도 니체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유정신은 여러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지적 성실성과 정직성, 비판의 힘과 새로운 대안 제시의 힘,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자기 자신을 믿는 '용기', 자신에 대한 '긍지' 등 수많은 덕목들이 거기에 속한다.  29-30


(4) 철학적 심리학자, 니체 : 니체는 자신을 '타고난 심리학자' 혹은 '영혼의 분석가'로 이해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들러나 융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이 프로이트보다 한 수 위라고 찬탄할 정도로.  30


니체 철학은 낭만적 시기(<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실증적 시기(<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즐거운학문>), 창조적 시기(<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후)로 구분될 수 있다.  31


1881년을 기점으로 니체의 철학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생성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 프로그램이 본격화됨.  31-32




1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는 실험철학의 과제


실험철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실험적이다. 첫째, '지금까지의 철학의 주체'를 '새로운 척도와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여 해명한다. 새로운 척도는 바로 '건강한 삶'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세계를 긍정하는 삶으로, 오로지 이 척도에 의해 모든 것이 재평가된다. 이때 실험철학은 둘재, 질문의 방식을 변경한다. 평가대상 '그 자체'에 대해 묻지 않고, 평가대상의 '가치'에 대해 묻는다. 즉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와 기능을 점검한다. 그래서 실험철학의 질문방식은 '그것은 무엇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삶을 위해 그것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이다. 평가척도와 질문방식을 변경하여 실험철학은 셋째, 기존의 자명성의 '토대'를 점검하는 실험을 시작한다. 서양의 온갖 자명성의 토대가 될 정도로 가치 있다고 여겨졌던 것들의 '가치'를 의문시한다. 그런데 그 실험적 이문은 매우 부정적인 답변을 듣게 된다. 그 가치들이 삶에 대한 부정의식에서 출발했고 삶의 건강성을 해치고 있는 실상이 목격된 것이다. 그래서 실험철학은 '기존 가치의 탈가치화(Entwertung)를 수행하는, 파괴와 해체의 망치를 든다. 여기서 실험철학의 네 번째 실험적 성격이 확보된다. 기존 가치의 탈가치화가 심리적 공황 상태를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즉 토대의 상실은 곧 의미근거와 가치근거의 상실이며, 이것은 다시 '왜?'. '무슨 목적으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을 두고 위 인용문에서의 '부정의 말에, 부정에, 부정에의 의지'에 머무르는 '허무주의의 가능성을 선취'한 것으로 표현한다. 결국 실험철학 스스로 망치를 들어 기존 가치들을 탈가치화시키면서 허무주의라는 장을 시험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실험철학은 다섯째, 그런 허무적 상태를 넘어서는 또 한 번의 실험을 한다. 새로운 의미근거와 가치의 토대를 제공하게 만드는 실험을, 그것은 인용문이 말하듯 '정시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뎌내는가? 얼마나 많은 진리를 감행하는가?'를 척도로 진행되는 실험이다. 그것은 곧 '인간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건강한 인간은 진리를 수없이 감행하고, 수많은 진리를 견뎌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스스로 건강한 삶을 위해 진리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다시 건강한 삶의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는 삶의 건강성을 척도로 새로운 가치체계를 구성해낼 수 있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의 힘이 강하다. 결국 허무적 상태를 넘어서게 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건강한 디오니소스적 인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며, 이것이 실험철학이 감행하는 '가치의 척도(Umwertung)라는 실험의 목적이다.  41-42


자기 삶에 대한 사랑을 니체는 운명애라고 부른다. 운명애는 이미 결정되어 주어져 있는 삶에 대한 숙명적 체념과는 다르다. 오히려 운명애는 자신이 창조적 주체로서 구성해가는 삶에 대한, 스스로 구성해가는 운명에 대한 그야말로 운명적인 필연성을 지닌 사랑이다.  45


디오니소스적으로 삶을 마주한다는 것,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니체 자신의 해명을 들어보자.

"삶의 가장 낯설고 가장 가혹한 문제들에 직면해서도 삶 자체를 긍정한다 ; 자신의 최상의 모습을 희생시키면서 제 고유의 무한성에 환희를 느끼는 삶에의 의지-이것을 나는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다." -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46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첫째, 창조와 파괴, 대립과 싸움을 통해 형성되고, 그 어떤 계기라도 불필요하지 않으며, 그런 것으로서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성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생명은 매순간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파괴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생명은 즉 파괴와 창조라는 모순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모순성은 생명의 생성적 성격을 보증해준다. 그런데 니체는 생명의 이런 모순성을 삶에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힘에의 의지로서의) 삶에의 의지가 매순간 자신이 구현해놓은 '최상의 모습'을 스스로 파괴하고, 삶에의 의지의 파괴작용은 곧 삶에의 의지의 새로운 창조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생명의 지속은 곧 삶에의 의지의 무한성 및 영원성에 대한 증거가 된다. 이렇게 해서 니체는 생명 그 자체의 모순성 및 모순적 생명의 무한서오가 영원성을 각각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모순적이기에 디오니소스적이며, 모순으로서 무한하고 영원하기에 디오니소스적이다...

둘째, 디오니소소즉인 것은 기쁨과 환희로 전환된 고통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통에서 발생한 환희"다. '자신이 구현해놓은 최상의 모습'을 파괴해야만 하는 생명은 파괴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니체는 생며을 가능하게 하는 삶에의 의지는 파괴의 고통을 피해야 할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기쁨이다. 생명의 모순적 구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디오니소스적인 것은-수사적 표현이기는 하지만-"넘쳐흐르는 살모가 힘의 느낌"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생명의 모순성과 지속은 생명력(삶에의 의지)이 결여되거나 결핍 상태에 있을 때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것이 계속 유지되고 고갈되지 않고 풍요로워야 가능하다...

넷째,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최고의 긍정 양식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니체는 이 점을 "디오니소스적 상징 안에는 긍정이 그 궁극적인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긍정의 여러 양식 중에서 최고의 긍정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성이 보여주는 모든 계기에 대한 조건 없고 유보 없고 예외 없는 긍정을 하기 때문이다.  47-50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갖는 의미는 힘에의 의지를 방법적 개념으로 삼은 니체의 후기 사유에서도 여전히 지속된다. 이제 그것은 힘에의 의지와 동의어가 된다. 힘에의 의지의 복수(plural)적-상승적-관계적 수행은 영원히 지속되는 모순적 생명성, 그 과정이 보여주는 고통의 기쁨으로의 전환, 생명력의 지속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63


후기 사유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것이 갖는 긍정의 함의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이야말로 '고통 자체와 삶 자체의 모든 의문스럽고도 낯선 것들에 대한 아무런 유보 없는 긍정'의 전제인 것이다. 긍정의 철학은 그래서 '긍정하는 인간'에 대한 철학이 된다. 니체가 그런 인간을 육성하는 과제를 절실한 철학적 과제로 상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후기 사유 전체는 바로 그런 '긍저하는 인간'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도 할 수 있다.  64




2 '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신의 죽음에 대한 고발'


<즐거운 학문>에서 미친 사람의 입을 빌려 처음 고지된 신의 죽음은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방향타 역할을 한다. '인간이 신을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 그리스도교 교회는 살아 있는 신의 집이 아니라, 죽어버린 신의 무덤과 묘비에 불과하다는 것'.  69


사제들의 권력추구 욕망 때문...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지 못할 때, 그리스도교가 제시한 신 개념은 전략적으로 인간에 의해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70


인간이 태양을 잃은 세계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신의 '역할'을 대신하여 존재와 의미와 가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럴 정도로 강해져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자신의 힘을 긍정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자시을 건강한-디오니소스적 인간으로, 위버멘쉬로 고양시켜야 한다.  7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나귀의 축제]에서 재등장하는 더없이 추악한 자는 '신을 다시 믿는 자'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그가 믿는 신은 옛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신의 '나귀'를 섬긴다. 이것은 최악으로 뒤틀린 심사에서 나온, 신에게 보내는 비웃음이자 신엑 최대의 모욕을 안겨주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을 '철저히' 살해한다. '나귀'는 이제 그가 찾아낸 새로운, 지상에 있는-국가든, 돈이든, 과학이든-우상이다. 이것을 그는 다시 신격화한다. 병리적 인간인 그가 자기부정이라는 병리적 상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형하고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 주체로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지도,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지도 못한다.  76-77




4 건강한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대명사, 위버멘쉬


인간을 '우연과 사제'의 손에서 해방시키고,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길을 철학적으로 확보한다. 니체의 철학적 야심은 이것이었다. ..

'누가 있어 긍정의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인가?' 니체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방황하는 정신을 지닌 무기력한 "인간 말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 [머리말]  133


위버멘쉬는 오로지 인간이기 때문에, 오로지 인간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134


위버멘쉬는 기본적이면서도 일차적인 의미의 항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이다. 즉 자신의 현 상태를 늘 넘어서는 '자기극복'의 노력을 의식적-의지적으로 기울이는 인간이다.  135


인간존재의 의미이자 이상적인 실존의 모습인 위버멘쉬, 그것의 의미는 먼저 '자유정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획득된다. 자유정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파토스를 지니고 가치의 새로운 중심을 제시할 수 있는 정신의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136


자유정신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획득할 수 있는 자다...

"..평가라는 것을 통하여 비로소 가치가 존재하게 된다. 귀담아듣도록 하여라. 창조하는 자들이여! 가치의 변천, 그것은 곧 창조하는 자들의 변천이기도 하다.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는 끊임없이 파괴를 하게 마련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 [천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137


여기서 창조는 가치평가작용 혹은 의미창조작용, 즉 '해석(Interpretation)'을 말한다.  138


인간이 '그의 세계'를 더 이상 구성하지 않는 경우는, 다으모가 같은 경우들일 것이다. 그의 창조력이 무기력해졌을 경우, 혹은 자신이 구성해낸 세계를 세계 그 자체와 동일시하여 절대화시켜버리는 경우,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구성된 가치와 의미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여버리는 경우. 이 경우들이 모두 '크나큰 피로'의 증후이며, 그것은 삶의 지속적인 창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인간, 니체가 '해석자'라고도 부르는 그가 자신의 삶의 상승을 위해 해석을 할 때, 그는 이제 위버멘쉬의 조건 하나를 갖춘 것이다.  139


도대체 이성활동과 지각활동, 그리고 의식층은 어느 정도로 관계적이며, 어느 정도로 힘에의 의지의 규제를 받는 '도구'인 것인가? ..

니체는 이것에 대한 전통철학의 논의가 형이상학적으로만 진행되어 왔으며, 그래서 매우 제한적이면서도 비과학적이었다고 비난한다. 의식이나 정신은 신체의 특수한 기능에 대한 명칭이며, 신체는 육체성과 심리성의 구분 자체가 어려운 '관계적 유기체'다. 그래서 의식과 정신에 대한 물음은 곧 인간 유기체 전체에 대한 물음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철학적-생물학적-생리학적-심리학적 등 개별적 탐구방식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그런 총체적인 탐구에 의해서도 완전한 파악으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형이상학적의식 탐구의 결과가 "정신과 의식을 과대평가"하는 "엄청난 실책"에 불과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험성과 육체성을 무시하고 간과하는 "반과학적 정신"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신경계와 세포와 혈행과 근육계 등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모든 기관과 기능과 현상 전체를 고려해보면, 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은 첫째, 단일체가 아닌 흐름이고, 둘째, 그 과정은 우리에게 의식디는 부분과 의식되지 못하는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잇지만, 셋째, 그 구분은 고정되거나 확정된 불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의식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의식되는 부분들로 이행하는 것이고,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달리 진행된다는 것 등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의식과 의식 이전의 층은 진행의 정도에 따른 구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의식되는 부분을 '의식-이라는 명사형으로 이해한다. 마치 의식이 단일한 어떤 것처럼, 의식 이전적 현상과 분리 가능한 어떤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방식일 뿐이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해져 '생각행위와 느끼는 행위와 욕구행위의 담지자'로서의 의식, '정신적 원인'으로서의 의식이라는 생각을 도출시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어적 표현에 불과할 뿐, 사실은 아니다.  143-144


창조자이자 해석자이며 신체적 존재라는 자의식의 소유자, 삶의 창조적 구현을 매순간 이루어내는 존재, 파괴와 창조를 하는 자유정신의 눈, 이성의 수단적 성격 및 의식의 기호적 속성과 한계를 인지하는 인간, 그러면서 자기극복의 과정을 이어가는 인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위버멘쉬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장들에서 추가될 위버멘쉬의 다른 특징들-주권성, 귀족성, 주인의식, 책임과 자유 등-을 부가하지 않아도, 이미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렵고도 고단하다. 도대체 왜 이런 쉽지 않은 일을 니체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일까? 그래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고, 인간의 존재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그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147-148


위버멘쉬적 삶을 사는 것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고단함과 어려움은 어느 순간 위버멘쉬로의 노력을 중단하게 할 수 있다. 니체도 그런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실존적 결단을 내리라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실존적 결단을 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148




5 관점주의라는 인식 모델 : 절대적 진리? 해석적 진리!


니체는 '같지 않은 것을 같게 만드는' 작용이라고 부른다. 영원한 흐름 속에 있는 생성세계를 포착해내고 파악해내고 붙잡아내어 한 가지 면으로 고정시키는 것, 여러 경험들 중에서 특정한 것만 받아들이는 것, 비교하고 도식화하고 예속시키고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것, 그래서 특수성과 개별성보다는 범주성과 일반성에 주목하는 것, 이런 모든 일들이 지성뿐만 아니라 감각기관을 포함한 우리 신체 전체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고 친숙한 형태의 것으로 포섭시켜 유형화해서 말이다. 그래야 우리가 낯설고 친밀하지 않은 새로운것들 속에서 생기는 불안감과 공포를 떨치고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지 않은 것을 같게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삶을 위한 전략적 행위다. 우리 인식이 이런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기에, 해석은 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묘사나 기술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주관적 필요에 의해, 우리에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 구조조정되어 있다. 그것은 결국 삶의 상승이라는 우리의 실천적 욕구들이 반영된 오류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오류들을 통해서만 세계와 소통하고, 이런 오류들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삶에 대한 유용성 전략은 해석의 필연적 오류성을 이미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5




6 자유와 평등을 원하는가? 먼주 주권적 존재가 되어라


니체는 .. '인간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

'오로지 주권적 존재만이 약속도 할 수 있고, 책임도 질 수 있다. 따라서 오로지 주권적 개인만이 자유와 평등을 요구할 수 있다. 약속과 책임과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이렇듯 주권적 개인만이 획득 가능한 특권이다.'  177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이 바로 약속권리에 있다고 니체가 생각.  178


기억은 앞으로의 자신의 사고와 행위를 산정하고, 그것을 규칙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것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드는 인간의 능력이다. 이 능력에 의해서 약속도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렇기에 기억은 약속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려는 인간의 (망각보다) 고급한 기능일 수 있는 것이다. 기억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에게 보증할 수 있다. 그런데 니체는 이런 기억을 '의지'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일단 의욕한 것을 계속하려는 의욕, 즉 본래적인 의지의 기억인 것이다." - <도덕의 계보>  180


누구나 다 자신의 해위와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임질 수 있음은 그래서 특권이다.  183





맺음말


그는 인간과 세계의 병증을 진단하고 치유하는의사, 건강하게 살기를 가르치고 권유하는 교육자이자 계몽가다. 

먼저 네 자신을 창조할 수 있어야, 세계가 네 작품이 된다. 네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세계도 지배할 수 있다. 네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할 줄 알아야, 세계가 너의 화원이 된다. 네 자신에 대한 긍지를 지녀야, 세계도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먼저 네 자신이 되어라!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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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이 여행을 마음먹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연애, 평범한 사람들의 적당한 자린고비 배낭여행,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라면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

나는 길 위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다. 

지치고 고독한 여행이면 더 좋다.  6



잘 살아가기 위한 걱정이 아니라 잘 사는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다.

고민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고민하는 모습은 불안해 보일 수도 있다.  16



가끔 오지선다형 보기 내에서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다른 사람의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환호하지만 평범한 삶의 발버둥에는 핀잔을 보낸다. 결과만 인정한다.  39



여행은 객관식의 삶을 주관식으로 바꾸는 여정이다.  40



행복은 저축되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43



사랑은 이름 붙여 부르지 않아도 사랑이다.  94



가끔 세상에서 혼자 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113



여행에서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벽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 그 경계를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118



명동의 백화점에서 하지 못할 행동은 외국에 나가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122



언제 어디서든 스승을 만날 수 있다.  139



정성스레 드라이크리닝 된 정장을 입고 간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의 이름도 모른 채 뷔페 접시를 나르는 것보다 진실 어린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게 아름다운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다.  166



시간이 지나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내가 더 여물수록 커지는 감동이 있다.  220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더 소중해질 수 있는 것.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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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책에 니체가 일한 곳들의 모습, 니체가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원고를 준비하거나 교정을 본 지방과 장소의 풍경을 담았다.  4



서문

니체는 왕의 은혜로 목사 자리를 얻게 된 시골 루터교 목사의 아들, 귀족을 공경하고 서민을 경멸하는 아이로 남아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현대의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거의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럽인(특히 독일인), 민족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에 대한 주요 비평가 중 한 명이었다.  9


아주 일찍부터 니체는 자신이 '단지'독일인일 뿐 아니라 유럽인이라고 생각했다. 열다섯 살 때는 남부 이탈리아인, 스위스인, 북부 독일인 주인공들이 각자의 운명을 펼치는 [카프리와 헬골란트]라는 단편을 썼는데, 이야기 초반에 북부의 영웅인 폰 아델스베르크는 "우리는 이 세상의 순례자다. 우리의 조국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곳에도 없다. 우리 모두는 같은 태양이 비춘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민들이다. 지구가 우리 왕국이다!"(니체 초기 작품집)라고 선언한다.  10


1880년대 중반에 니체는 자신을 "고국이 없는" 유럽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FW, 377;3, 628~631)  11


니체는 글을 쓰기위해, 그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즉 서구 문화(종교, 과학, 학문, 권력욕)를 종말로 몰아가고 있는 금욕주의의 계보와 그러한 금욕주의를 굴복시킬 수 있길 바라며 발전시킨 사상('같은 것의 영원회귀')을 쓰기 위해 유럽이 필요했다.  12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글을 더 잘 쓴다는 것은 더 나은 생각을 한다는 의미다. 전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항상 생각해내고 실제로 그것을 전하는 법을 안다는 의미다.(MAM2, WS 87, 2, 592~593)  13


니체는 좋은 유럽인이 되려면 내면에 대한 순종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은 자신이 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를 들은 뒤 그것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로 서둘러 가야 한다.  14


니체는 자연에 대해 박물학자라기보다 우주론자였고 도시에 대해서는 건툭가라기보다 문화비평가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 방대한 역사 지식, 고도의 문학 감수성, 고대 신화의 세계와 문화에 대한 친밀함, 이 모든 것이 니체와 자연, 도시의 유대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19




제1장 시작과 끝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방해받지 않고 내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J1, 8)

열여섯 살 때 쓴 기록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려준다. "아주 일찍부터 내 안의 다양한 특성이 나타났다. 나는 사색적이고 과묵한 편이어서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열정이 표출되기도 했지만."(J1, 279)  46


글쓰기와 작곡은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일들로 보인다. 열네 살 때 니체는 "나는 항상 혼자만을 위한 작은 책을 쓰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이 소박한 허영에 사로잡혀 있다"(J1, 11)라고 썼다. 니체는 마흔 살 때도 다시 같은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니체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읽히기 위한 책을 썼지만 한편으로는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책을 쓴 것이다.  73


엄격한 질서를 내세운 학교에서 학생들을 동질화시키는 훈육이었다. 

이런 식의 훈육은 집단 전체의 효과를 노리고 짜여졌기 때문에 개인을 냉정하고 추상적으로 다룬다.  78


"..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할 수 있는 한 스스로 견딜 만한 존재로 자신을 위장하는 일일까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적당히 노력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좁은 테두리 안에서 사는 데 익숙해지는 겁니다. 정신이라는 초의 심지를 멋지게 잘라내고 부를 좇고 세상의 오락을 즐기며 사는 것이지요. 아니면 인생의 추잡한 면과 우리가 인생을 즐기려 할수록 오히려 더 인생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 인생의 좋은 것들을 단념하고 포기를 연습할 수도 있어요.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드에게는 우호적으로 대하면서도.(우리는 누추한 우리 동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니까요.) 한마디로 오늘날의 지나치게 달콤하고 모호한 기독교가 아니라 원래 기독교의 엄중한 요구에 따라 사는 것이지요. 기독교는 지나는 길에 "동행하거나", 유행이니까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인생은 견딜 만할까요? 예, 그렇고말고요. 인생의 짐이 계속 가벼워지고 어떤 끈도 더 이상 우리를 그 짐에 묶어놓지 않으니까요. 괴롭지 않게 포기할 수 있으니 인생은 견딜 만한 것이 됩니다."(B2, 95~96)  83-84


본에서 라이프치히로 옮겨갈 무렵 니체는 헤겔의 철학을 두루 섭렵했다...

니체는 랠프월도 에머슨의 독일어 번역본을 오랫동안 읽었다. 에머슨은 여러해 동안 니체의 충실하고 지속적인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헤겔은 곧 칸트와 쇼펜하우어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87


'우리 학자 대부분이 학식을 너무 꽉 채우지만 않는다면 학자로서 더 가치가 높아질 거야.'(B2, 205~206)  90




제2장 나는 신이 되느니 바젤의 교수가 될 것입니다


니체는 대학에서 그리스 문학사, 플라톤 이전의 철학, 그리스와 로마의 수사학, 고대 그리스 종교, 플라톤의 생애와 가르침, 아이스킬로스의 <공양하는 여자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을 가르쳤다. 김나지움에서는 플라톤의 <변명>, <파이돈>, <파이드로스>, <향연>, <국가>, <프로타곻라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엄선된 책들, 아이스킬로스의 <포박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바카이>를 읽고 디오니소스 숭배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보고서로 써야 했다.  139-140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를 준비하며 쓴 기록에서 니체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대충 가르치거나 애매하게 설명했다면 모든 학생이 내게 더 많은 설며오가 해석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교사는 모든 수준의 학생들을 이해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140


김나지움과 대학의 많은 학생이 니체의 능변과 탁월한 명석함에 대한 증언을 남겼지만 개인적인 면에 대한 묘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동료들은 니체에게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실제로 동료들은 1874년에 니체를 학과장으로 선출했는데, 니체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어도 그를 신뢰했음을 알 수 있다. 니체는 지루한 디너파티에서 빠져나가려고 변명을 해야 하는 일이 불만스러웠다. 그는 혼자 바깥에서 산택하는 편을 훨씬 더 선호했다. 니체의 고독과 자기수양은 아마도 나중에 그가 금욕적인 이상이라고 분석한 것의 결실일 것이다.  142


니체는 학창 시절 초기에 존재의 균열을 느낀 적이 있었다. 특히 슐포르타에서는 예술과 음악에 대한 끌림이 비판을 받아 억제되었다. 보노가 라이프치히에서는 문헌학이 그를 신학으로부터 구해주었지만 '포기'와 '체념'의 삶을 선고받았다. 마지막으로 바젤에서는 일상의 고되고 단조로운 일이 그의 에너지를 빼앗아갔고 트립셴을 방문할 때도 지성과 취향에 있어서 많은 걸 타협해야 했다. 답답한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자 니체의 건강은 더 악화될 조짐을 보엿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은 여행을 가는 것이엇다.(여행이 항상 니체의 첫 번째 대응 방법이었다).  165


니체는 루가노에서 <비극의 탄생>을 탈고하면서 이미 자신의 직업적 자아, 교수로서의 자아에 균열, 분열 혹은 정신분열의 압박감을 느꼈다. "나는 스스로 문헌학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예리하게 느끼고 있다. 그것도 완전히 심각한 상태다. 찬사와 비난, 내가 이쪽에서 받았던 실로 가장 고귀한 찬미가를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그래서 나는 서서히 철학적 존재로 옮겨가고 있고 이미 자신에 대한 믿음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 될 준비도 이미 되어 있다."(B3, 190)  171


니체는 유대인의 종교와 도덕률에 대해서는 계속 양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유럽의 고급문화를 대체로 유대인들이 만들어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176


인간은 투병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과 한계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 어떤 일에 집중하고 신중하게 계획을 세울 기회를 얻는다. 다른 한편 병이 들면 약해지고 낙담하여 어떤 진지한 계획을 세울 용기를 잃어버린 채 망성이고 위축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니체는 한 음악가 친구에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이유를 잊은 채 사는 병든 생황이다"라고 써싿. 1875년 8월 11일에는 파리의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에게 편지를 썼다.

".. 우리가 완전히 낫기 위한 비법은 둔감해지는 것입니다. 그 방법만이 우리 내면의 엄청난 연약함과 고통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이지요. 적어도 외부의 어떤 것도 우리와 충돌하여 쉽게 해를 끼칠 수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동시에 내부와 외부 양쪽의 불과 맞서야 하는 것보다 제게 더 힘든 일은 없습니다."(B5, 104)  191-192


'골똘히 생각하고 글을 끼적거리는 문제 많은 습성은 지금까지 내 건강을 해쳤을 뿐이다. 내가 단순히 학자 입장이었을 때에는 건강을 해쳤을 뿐이다. 내가 단순히 학자 입장이었을 때에는 건강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음악에 관한 것들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철학과 별 의미도 없는 수만 가지 일이 나를 걱정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교사가 되고 싶다.'(B2, 250)  211

.

1877년 12월 3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출판용 제목과 내용이 준비되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심리학적 질문이 주를 이루고 형이상학적 질문이 부차적인 책으로, 어쩌면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계보를 탐구하는 니체의 성향이 마침내 꽅을 피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11-213


스위스 '시민권'을 포기하면서 그에게는 다시 집이 없어졌다. 니체는 새로운 아침을 찾아 더 멀리 산속으로 달아났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묘사했던 바로 그 방랑자가 된 것이다.

방랑자. 조금이라도 이성의 자유를 얻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상에서 스스로 방랑자라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가는 여행자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방랑장게는 그런 목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방랑자는 세상의 모든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살필 것이다. 그래서 방랑자는 어떤 특정한 일에 지나치게 애착을 가져서는 안된다. 오로지 변화와 무상함에서 기쁨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한다.  217




제3장 높은 산의 고독


니체의 유랑생활에는 주기가 있었다. 겨울은 지중해에서, 여름은 고지 엥가딘의 산에거 보냈다. 여름에는 먼저 제노바에 갔다가 니스로 향했고, 겨울에는 항상 질스마리아에서 지냈다.  24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1부에서 4부까지 모두 1883년과 1885년 사이에 쓰이고 출판되었다(4부는 자비로 출판했다). 니체의 편지들이나 철학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사람을 보라>는 <차라투스트라>가 니체의 가장 위대한 성취이자 걸작임을 알려준다.  266


'이제 나는 <차라투스트라>가 나오게 된 내력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 책의 기본 개념인 영원회귀 사상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긍정 형식이며, 1881년 8월에 떠오른 사상이다. 이것은 "인간과 시간의 6000피트(1830미터)저편"이라고 서명된 종이에 적혔다.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 호수 근처의 숲을 산책하다가 주를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옆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곳에서 이 사사이 내게로 왔다.'(W6, 355)

영원회귀 사상의 고향이 질스의 산속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탈리아 리비에라에서 탄생했다.  267


<차라투스트라> 1부를 완성한 니체는 하인리히 쾨셀리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을 "일종의 설교"이자 자신의 최고작, "자신의 영혼에서 굴러나온 보석 같은" 책이라고 불렀다. "내 손에서 나온 책 중에서 이보다 더 진지하거나 역동적인 것은 없네. 나는-다른 색과 섞어 사용할 필요가 없는-이 색이 지금부터 내 '본래의' 색이되길 진심으로 바라네."  268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1884년 2월 6일에는 오버베크에게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전반적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수십 년 동안 내 안에 쌓여온 힘이 폭발한 것일세. ...'(B6, 475)  272


니체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악의 저편>을 "내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일종의 논평"이라고 말했다.(B7, 270) 나중에 게오르크 브란데스에게는 <선악의 저편>이 자신의 모든 저작의 "열쇠"이므로 자신의 철학을 전체적으로 공부하려면 그 책으로 시작하라고 권했다...

쾨셀리츠에게(B7, 166~167)쓴 편지다. "나는 책을 쓰면서 힘들게 지난 겨울을 보냈네. 용기, 그 책을 출판하는 데 필요한 용기가 때로 마구 흔들렸다네. 이 책에는 다음 제목을 붙였네."

<선악의 저편>

미래 철학의 서곡  278 


<선악의 저편>에서는 철학자들의 편견, 특히 분명하게 정의된 가치들의 대립에 대한 철학자들의 순진한 믿음, 신앙(특히 그리스도교)의 기원, 도덕의 '자연발생사', 학문과 학문적 훈련의 현 상태 및 함께 학문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덕',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귀함의 의미 등을 다루었다. 니체는 이 책에서 플라톤 이후 서구의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모든 전통을 수용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279


1887년 11월 <도덕의 계보>가 출판. 6월 10일에서 17일 사이에 <도덕의 계보>를 썼다. 이 책은 형식 면에서는 1880년대 초기의 아포리즘 작품들보다 1870년대에 쓴 <반시대적 고찰>과 더 유사하다. <도덕의 계보>의 세 논문은 각각 (1) '선과 악' '좋음과 나쁨' (2) '죄'와 '양심의 가책' (3) 서구의 종교, 도덕 체계, 학문, 철학에서의 '금욕적 이상'의 의미를 다룬 일관되고 세심하게 구성된 명상이다. 그러나 문체는 이전의 어떤 글보다 상당히 더 예리하고 심지어 신랄하기까지 했다.  282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선악의 저편>의 부록 혹은 보충서라고 불렀지만 이 책의 발단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흔한번째 생일인 1885년 10월 15일에 니체는 하인리히 폰 슈타인 남작에게 최근 '양심'에 관한 파울 레의 책을 읽었다고 쓰면서 "얼마나 공허하고 지루하며 오류가 많은지!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해야 합니다"라고 부르짖었다.(B7, 99) ...

20세기 들어 많은 사상가, 특히 미셸 푸코, 질 들뢰즈가 니체의 도덕의 계보 작업을 확장했다. 이들에게는 니체의 '논쟁'이 분명 그의 가장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였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선악의 저편>ㅗ가 비교하면서, 후자는 음조가 "중립적이고" 아주 천천히, 심지어 머뭇거리며 리듬이 발전한다고 묘사한 반면, <도덕의 계보>는 "노골적이고 가공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열정"으로 알레그로 페로체(빠르고 거칠게)로 쓰였다고 말했다.(B8, 245)  283


니체 자신은 수월하게 술술 쓰였던 <우상의 황혼>이 자신의 사상을 잘 소개해준다고 생각했다. "그 책은 내 철학의 완벽하고 총체적인 입문서다."(B8, 414) ..

실제로 니체는 <우상의 황혼>이 특히 <안티크리스트> 입문서로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291


<안티크리스트>

가장 유명한 장으로는 '소크라테스의 문제' '어떻게 참된 세계가 결국 한갓 꾸며낸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등이 있고 가장 신랄한 장으로는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방법에 관한 다음의 충고가 포함된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을 꼽을 수 있다.

'인간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지향하는 것은 고결한 문화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눈을 평온과 인내, 일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게 놔두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판단을 미루고 특정한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탐색하고 검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비철학적인 용어로 강한 의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강한 의지에서 본질적인 것은 결정을 보류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춤을 배우려고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법도 배우려고 해야 한다. 생각은 일종의 춤이다. (..) 발로도 춤출 수 있지만 개념과 단어로도 춤을 출 수 있다. 펜으로도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사람들이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꼭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W6, 108~110)  291-292


니체가 고지 엥가딘에서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 것은 고독이었다. 고독은 여행객들과 단절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부의 한 기록에서 여행객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여행객-그들은 동물들처럼 말없이 땀에 젖어 산을 기어오른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길가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고 말해주는 것을 잊어버렸다.'(W2, 641) 하지만 여기에는 가족과 친구들, 혹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간헐적이고 주의 깊게 조정된 인맥과의 단절도 포함되었다. 니체는 고독과 외로움 사이의 악명 높은 가느다란 줄 위에 자리잡기 위해, 즉 사람이 아무도 없는 땅에서 살기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301


1884년 여름에 니체는 자신의 '문헌', 즉 <비극의 탄생>부터 <차라투스트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쓴 모든 책을 읽었다. 마흔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던 니체는 자신의 30대를 평가하며 40대의 계획을 세우는 데 몰두했다.  308




제4장 바다와의 친밀한 대화


<아침놀>의 서문에서 니체는 독자들에게 옛 문헌학자, 즉 이성(logos)을 사랑하고 "천천히 읽는 법을 가르치는 교사"를 위해 이 책은 느린 박자로 천천히 읽으라고 당부했다.(W3, 17) 또한 <즐거운 학문>의 서문은 이 책을 즐거움, 즉 "되돌아온 힘, 다시 한번 열린 바다에 대한 갑작스런 느낌과 예감에 직면해 터져나오는 환호성"이라고 선언했다.(W3, 346)  360


라팔로와 니스, 즉 이탈리아 리비에라와 프랑스 리비에라는 모두 <차라투스트라>의 주요 집필 장소였다. 우리는 종종 차라투스트라를 산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초인과 영원회귀에 관한 생각을 가르치기 위해 인간들에게 갔으며 산에서 내려갔을 때는 바다에서 가장 자주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367


니체는 유랑생활을 했던 10년 동안 실명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도 니체는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모든 학술서, 형이상학, 지식론, 종교와 도덕의 역사에 관한 책들뿐 아니라 시와 소설도 읽었다. 니스에 있을 때였기에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니체를 사로잡았다. 니체는 도스토옙스키가 스탕달 이후 자신과 재능과 통찰력을 공유한 유일한 심리학자라도 주장했다.  380


바닷가에서건, 높은 산에서건 1880뇬댜애 니체를 괴롭힌 풀리지 않는 딜레마는 고독과, 사람들과의 교류의 필요성이었다. 특히 1880년대 중반에 니스에서 지내면서 니체는 남을 가르치고 싶은 깊은 욕망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고 전해야 했다. 그러나 니체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은 종종 "평번한 애호가들"로 판별되었고, 타렵적으로 교제하는니 완전한 고독이 나아 보였다. 따라서 니체의 편지들에서 우리는 심한 고독과 고독의 부재, 불충분한 교제와 과도한 교제에 대한 상충되는 불만이 공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384


메타 폰 살리스는 니체가 이야기를 매우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주변의 단순한 일도 무시하지 않았다"고 전한다.(N2, 529~530) 한 예로, 잔 두리쉬가 추수기 직전에 황소의 발굽과 입에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자 니체는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체제 전복적인 일을 한다 해도 니체에게는 누군가와 자신의 열정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이 니체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폰 살리스는 "그는 상냥하고 상처입기 쉬운 사람이었다. 또한 화합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고 말한다. "반면 그가 하는 작업은 준엄함을 요구하고 타협을 금했으며 그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비통함을 가져다주었다."(N2, 530)  386


'지금 저는 세계사에 남을 만큼 냉소적으로 제 자신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라는 제목의 이 책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최소한의 죄책감도 없이 암살합니다. 이 책은 기독교적인 모든 것, 혹은 기독교에 감염되어 청력과 시력을 잃어버릴 모두를 공격하는 천둥과 번개로 끝납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그리스도교를 분석하는 최초의 심리학자입니다. 늙은 포병이 된 저는 어떤 그리스도교 반대자도 상상하지 못한 강력한 총을 꺼내들 수 있습니다. 이 책 전체는 완성된 채 제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가치의 재평가>의 서문입니다...'(B8, 482~483)  412-413




옮긴이의 말

이 책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니체의 삶, 니체가 머물렀던 공간, 인간관계를 니체가 쓴 글들과 교차시켜가며 엮어내고 있다.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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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교사로 자기 차고에서 목을 맸던 나이 지긋한 남자가 "아웃사이더"가 자살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살을 두고 누구나 하게 되는 한 가지 행동은 자살에 대해 설명하는 겁니다. 설명하고, 판단을 내리죠. 남겨진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매우 무시무시한 일이에요. 자살에 대해 견해가 필요할 정도로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죠. 어떤 사람들은 범죄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영웅적이고 용기 있는 행위로 여기는 관점도 있죠. 그다음으로 결벽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 삼는 건 이겁니다. 정당한 자살인가,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가?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좀더 임상적인데, 징계하려 하거나 이상화하혀 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살자의 정신 상태를, 자살할 때 그가 어떤 정신 상태에 있었는지를 설명해 보려 하죠."  23-24


페긴이 그의 집에 드렀다. 버몬트 주 서쪽에 있는 규모는 작지만 진보적인 여자대학인 프레스콧에 최근 강사 자리를 얻은 페긴은 학교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빌린 조그만 집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액슬러가 사는 곳은 거기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로, 주 경계선 건너편의 뉴욕 주 외곽에 있었다. 방학 동안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던 발랄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를 본 게 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이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몸이 유연하고 가슴이 풍만한 마흔 살의 여자가 있었다...

그 첫날 오후, 액슬러는 페긴을 집 안으로 들이다 발을 헛디뎌 널찍한 돌계단 위로 세게 넘어졌는데,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구급약은 어디 있어요?" 페긴이 물었다. 그가 말해주자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찾아들고 나와 과산화수소를 묻힌 솜으로 상처를 씻어내고 반창고 두어 개를 붙였다. 그리고 물도 한 컵 가져다주었다. 누가 그에게 물을 가져다준 것도 몹시 오랜만이었다.

그는 저녁을 먹고 가라며 그녀를 붙들었다. 결국 그녀가 저녁을 준비했다. 누가 그에게 저녁을 차려준 것도 몹시 오랜만이었다. 그가 주방 식탁에 앉아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맥주 한 병을 비웠다. 냉장고에는 파르메산 치즈 한 덩이와 계란, 베이컨, 크림 반 통이 있었는데, 그것들과 파스타 1파운드로 그녀를 둘이 먹을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의 주방에서 그녀가 자신의 주방인 것처럼 편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그녀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기였을 때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몸이 탄탄하고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생기 가득한 존재였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재능을 잃은 채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더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행복했다. 뜻밖의 기분이었다. 보통 그는 저녁식사 때 하루 중 가장 우울했다. 그녀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그는 거실로 가서 브랜들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음반을 얹었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들으려 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시절에는 늘 음악을 틀어놓았었다.

"아주머닌 어떻게 된 거예요?" 스파게티를 먹고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신 뒤 그녀가 물었다.

"아무렴 어떤가. 너무 지루한 사연이네."

"아무도 없이 여기서 혼자 지낸 지 얼마나 된 거예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여기 앉아서 내가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흐르리라는 생각을 하면 때로 놀랍기도 해. 내가 죽었을 때도 그럴 테지."

"배우 일은요?" 그녀가 물었다.

"난 이제 배우가 아니야."

"그럴 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것도 자세히 이야기하기엔 지루한 사연이지."

"은퇴한 거예요,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돌아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가 일어서자 키스했다.

그녀는 놀라 미소를 짓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난 성적으로 평범하지 않아요. 여자랑 자요."

"그건 알아채기 어렵지 않더군."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두번째로 키스했다.

"그런데 뭘 하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안다고 말하진 못하겠는걸. 남자하곤 한 번도 없었나?" 그가 물었다.

"대학 때요."

"지금도 여자와 지내나?"

"대체로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저씬요?"

"난 아니야."

그는 근육이 발달된 그녀의 팔에서 힘을 느꼈고, 그녀의 묵직한 가슴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다시 한번 키스했다. 그런 다음 그녀를 거실 소파로 이끌어싿.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청바지를 벗었고,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남자와 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레즈비언과 했고.

몇 개월 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 오후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왔지?" "당신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사나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보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라고 안 될 게 있나?" "늘 그런 식으로 계산하며 사나?" "계산이 아니에요. 원하는 걸 추구하는 거죠." 그녀는 덧붙였다. "더는 원치 않는 걸 추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58-65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그들 사이를 알게 되길 원치 않았다. 그들은 매우 속상해할 게 분명했다.  69


그럼에도 어느 날 아침식사 때 액슬러는 이렇게 말했고, 그 말에 그녀만큼이나 그 자신도 놀라고 말았다. "이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건가, 페긴? 그동안 서로 즐겁게 지냈고, 색다른 기분도 강렬했고, 감정도 격렬했고, 쾌락도 만끽하긴 했지만, 난 지금 당신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궁금하네."

"그럼요, 알아요. 난 이 생활이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끝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내 말뜻을 알겠지?"

"그럼요. 나이 문제, 성적 이력의 문제, 당신과 우리 부모님의 오래된 관계. 이것 말고도 스무 가지는 더 있을걸요. 하지만 그 가운데 날 괴롭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당신을 괴롭히는 게 있어요?"

"여러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기 전에 우리가 물러서는 게 좋지 않을까?" 그가 대꾸했다.

"행복하지 않아요?" 그녀가 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은 정말 위태로웠네. 이젠 희망이 산산 조각나는 걸 견뎌낼 힘이 없어. 결혼생활은 불행할 만큼 불행했고, 그전에도 여러 여자와 이별을 경험했네. 그건 늘 고통스럽고, 늘 가혹하지. 그래서 이쯤 살고 보면 그런 걸 자초하고 싶지 않아."

"사이먼, 우린 둘 다 버림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나락에 떨어진 상태였는데, 부인은 당신 혼자 감당하라고 내버려둔 채 짐을 꾸려 떠나버렸죠. 난 프리실라한테 배신당했고요. 나를 떠났을 뿐 아니라, 잭이라는 이름의 수염 난 남자가 되기 위해 내가 사랑했던 몸도 버렸어요. 혹시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들 때문도 아니고 당신이나 내 과거 때문도 아니고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당신에게 모험을 하라고 권하고싶진 않아요. 당신에겐 이 상황이 모험인 걸 알아요. 어쨌거나 우리 둘 다에게 모험이에요. 나도 모험이라고 느끼니까. 물론 당신하곤 종류가 다르지만요.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당신이 날 떠나는 거예요. 이제 당신을 잃으면 난 견디지 못 할 거예요. 그래야만 한다면 견뎌보겠지마, 모험인 게 문제라면, 우린 이미 모험이 기렝 들어섰어요. 이미 저질러버렸다고요. 물러서서 피해가기엔 너무 늦었어요."

"그러니까, 잘 지내는 동안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인가?"

"바로 그거예요. 난 당신을 원해요. 알잖아요. 당신이 내 사람이라고 믿게 됐어요. 나한테서 억지로 떠나려 하지 마요. 난 지금 이대로가 좋고, 이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아요. 그것 말고는 할말이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이 노력한다면 나도 노력하겠다는 것뿐이에요. 이젠 잠깐의 외도 같은 게 아니에요."

"우린 모험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우린 모험의 길에 들어섰어요." 그녀가 대꾸했다.

이 네 마디 말은 그에게 버림받는다면 그녀가 최악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필요하다면 연속극에 나올 법한 말이라도 하겠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프리실라가 준 충격과 수차례에 걸친 루이즈의 최후통첩으로 아직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으니, 저러는 걸 기만이라고 할 순 없지. 우리가 본능적으로 택하는 전략이니까. 하지만 결국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액슬러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관계를 끝내버릴 수 있는 더 강한 위치에 올라서고 나는 너무 우유부단해서 이 관계를 지금 끊어버리지 못한 탓에 힘업슨 위치로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녀가 강해지고 내가 약해졌을 때 가해질 타격을 나는 견뎌내지 못하겠지. 

그는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이 명료하게 적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예상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래를 바꾸기에 지금 그는 무척 행복했다.  71-73


척추 통증 때문에 그는 그녀와 섹스할 때 그녀 위로 올라갈 수 없었고 심지어 옆에서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반듯이 눕고, 그녀는 체중이 그의 골반에 실리지 않도록 무릎과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그녀는 남자 위에서 하는 법을 다 잊어버려 그가 두 손을 사용해 그녀에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줘야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페긴이 수줍게 말했다. "당신은 말 등에 앉아 있는 거야." 액슬러가 설명했다. "말을 타봐." 그가 그녀의 항문에 엄지손가락을 밀어넣자 그녀는 쾌감으로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누가 거기에 뭔가를 집어넣은 건 처음이에요."  "그럴 리가."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그곳에 성기를 삽입하자 그녀는 더 밀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받아들였다. "아픈가?" 그가 물었다. "아파요. 하지만 당신이잖아요." 끝나고 나면 그녀는 자주 손바닥에 그의 성기를 올려놓고 발기가 풀리는 것을 응시하곤 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물었다. "이건 꽉 채워줘요." 그녀가 말했다. "딜도나 손가락으론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이건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존재예요." 그녀는 곧 말 타는 법에 숙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날 때려요." 그가 그녀를 때리면 그녀는 조롱하듯 말했다. "지금 그게 때린 거예요?" "얼굴이 이미 빨개졌잖나." "더 세게." 그녀가 말했다. "좋아, 그런데 왜?'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아프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어린 여자애 같은 느낌이 들고, 내가 창녀 같은 느낌이 드니까. 어서 해요. 더 세게."

어느 주말 그녀는 섹스 기구들이 담긴 작은 비닐주머니를 가져와서는 침대에 들려 할 때 시트 위에 쏟아놓았다. 딜도 같은 것이라면 그도 볼 만큼 봤지만, 가죽 벨트로 몸에 딜도를 단단히 고정해서 한 여자가 다른 여자 위로 올라가 삽입할 수 있게 만든, 그 마구처럼 생긴 걸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그 장난감들을 갖고 오라고 부탁한 것은 그였다. 그는 그 기구를 양 허벅지에 꿰어 엉덩이 위로 끌어올린 다음 벨트처럼 단단하게 몸에 채우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옷을 입고 있는 총잡이 같았다. 거드럭거리며 걷는 총잡이 같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신의 음핵 위치에 홈이 있는 벨트에 초록색 고무 딜도를 끼워 넣었다. 알몸에 그것만 입은 채 그녀는 침대 옆에 섰다. "당신 것도 보여줘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팬티를 벗어 침대 가장자리 너머로 던져버렸고, 그녀는 베이비오일을 미리 발라놓은 초록색 음경을 움켜쥐고 남자처럼 자위하는 흉내를 냈다. 그가 감찬조로 말했다. "그럴듯한데." "내가 이걸로 한번 해주면 좋겠죠." "고맙지만 됐어." 그가 말했다. "안 아프게 할게요." 그녀가 어르듯, 교태를 부리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약속해요. 아주 부드럽게 해줄게요." "재밌겠군. 하지만 부드럽게 해줄 것 같진 않은데." "겉모습에 속으면 못써요. 아이, 하게 해줘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게 될걸요. 이건 신천지예요." "당신이 좋아하겠지. 됐어, 난 당신이 내 걸 빨아주면 더 좋겠는데." 그가 말했다. "내 음경을 단 채로." 그녀가 말했다. "좋지." "커다랗고 두꺼운 초록색 음경을 단 채로."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난 커다란 초록7nh 7nh 7nh 7nh 7nh 7nh 7nh 7nh색 음경을 달고 있고, 당신은 내 젖꼭지를 가지고 노는 거예요." "그거 괜찮은데." "그리고 내가 당신 걸 빨아준 다음에는,"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내 걸 빨아주는 거예요. 내 커다란 초록색 음경을 입안에 넣는 거예요."

"그건 할 수 있지."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단 말이죠. 희한하게 선을 긋네요. 여하튼 나 같은 여잘 보고 성적으로 흥분하는 걸 보면 당신도 아직 엄청 꼬여 있는 남자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내가 꼬인 남자일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은 더는 당신 같은 여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이제 아닌가요?" "이백 달러짜리 머리를 한 채로는 아니지, 그런 옷들을 입고서도 아니지.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따라 구두를 사게 된 이상 아니지." 그녀의 한 손이 계속 딜도를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당신 정말로 지난 열 달 동안 내 안에서 레즈비언을 몰아냈다고 생각해요?" "요즘도 여자하고 잔다는 건가?" 그가 물었다. 그녀는 그저 딜도만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거야, 페긴?" 자유로운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가 물었다. "두 번요." "루이즈하고?" "미쳤어요?" "그럼 누구하고?"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차를 몰고 학교로 가는데 야구장에서 여자 소프트볼부가 경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차를 세우고 내려 그쪽으로 가서 벤치 옆에 서 있었죠."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털어놓았다. "경기가 끝난 뒤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투수랑 같이 집으로 갔어요." "그럼 두번째는?" "그 투수의 상대팀 투수요." "그런 식이었다면 꽤 많은 선수들이 언제 자기 차례가 오나 기다렸겠는데." 그가 말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여전히 초록색 음경을 애무하며 그녀가 말했다. "아무래도 페긴 마이크." [서부의 플레이보이]에서 연기한 이후 사용한 적 없었던 아일랜드 억양으로 그는 말했다. "다시 그럴 계획이라면 나한테 말해주는 게 좋겠는데. 당신이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녀를 붙잡아두고 독차지하기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열정이 우스꽝스러워졌다는 걸 알면서도, 아일랜드 사투리 뒤에 애써 감정을 숨기면서 그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그러고는 정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입을 다물길 바랐기 때문인지 그녀는 천천히 그의 성기를 끝까지 입에 밀어넣었다. 그의 시선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녀의 음경에 붙들려 있었고, 그러는 동안 둘의 연애가 헛되고 어리석다는 생각, 페긴이 살아온 내력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생각, 페긴이 그의 손에 닿지 않는데 있다는 생각, 새로운 불행을 자초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 들이, 그리고 그의 내면의 무력감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사람은 이런 이상한 결합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이함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공포도 있었다. 또다시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제2의 루이즈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비난하고 발광하고 복수하는 전 애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  101-105


액슬러는 트레이시를 페긴과 함께 뒷좌석에 태우고 텅 빈 캄캄한 시골길을 따라 집으로 차를 몰았다. 꼭 트레이시를 유괴하는 것 같았다. 페긴이 신속하게 행동에 들어간 것에 그는 놀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침실에 들어가자 페긴은 비닐주머니에 든 기구들을 침대에 쏟아놓았다. 그중에는 아주 부드럽고 가느다란 검정 가죽끈 다발이 달린 채찍 같은 기구도 있었다.  121-122


페긴은 그 기구를 입고 가죽 벨트를 조정해 단단히 고정하고는 딜도가 똑바로 앞을 향하도록 끼웠다. 그런 다음 트레이시 위로 몸을 숙이고 그녀의 가슴을 주무른 다음 아래쪽으로 미끄러져내려가 딜도를 부드럽게 트레이시에게 삽입했다. 페긴은 트레이시가 몸을 열도록 힘쓸 필요가 없었다. 

초록색 음경이 그 아래 널브러진 풍만한 나신 속으로 처음에는 느리게, 이윽고 보다 빠르고 세게, 그다음에는 한층 더 세게 찌르고 들어갔다 나왔다 했고, 트레이시 몸의 모든 굴곡이 그 움직임과 일체가 되어 움직였다.  123


그의 심장이 흥분으로 쿵쾅거렸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음탕한 눈길로 몰래 엿보는 판(그리스 신화에서 호색한으로 묘사되는 반인반수의 목신(牧神 칠목 귀신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페긴은 트레이시 옆에 등을 대고 누워 쉬며 조그만 검정 가죽 채찍으로 트레이시의 긴 머리칼을 빗질하듯 쓸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앞니 두 개를 보이며 예의 그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액슬러를 건너다보며.. "당신 차례예요. 이애를 더럽혀줘요." 그러곤 트레이시의 한쪽 어깨를 잡고 "조련사가 바뀔 시간이야"라고 속삭이고는 낯선 여인의 커다랗고 따스한 몸을 액슬러 쪽으로 부드럽게 굴렸다.  124


자정 무렵 그들은 트레이시를 그녀의 차가 세워져 있는 호텔 옆 주차장으로 다시 데려다줬다. 

"두 분은 이런 거 자주 하세요?" 트레이시가 뒷좌석이ㅔ서 페긴의 품에 안긴 채 물었다.

"아니." 페긴이 말했다. "넌?"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래서 어땠어?" 페긴이 물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요. 머릿속에 생각해야 할 온갖 것이 꽉 차 있어요. 회로가 끊겨버린 기분이에요. 약을 한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이런 짓을 할 객기는 어떻게 낸 거야?" 페긴이 트레이시에게 물었다. "술 기운에서?"

"당신이 입은 옷 때문에요. 당신 외모가 주는 인상 때문에요. 두려워할 필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잖아요. 남자분, 그 배우 맞죠?" 투래아사눈 액슬러가 그 차 안에 없기라도 한 것처럼 페긴에게 물었다.

"맞아." 페긴이 대답했다.

"바텐더가 말해줬어요. 당신도 배우예요?" 그녀가 페긴에게 물었다. 

"이따금은." 페긴이 말했다.

"미친 짓이었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맞아." 페긴이 대답했다. 단순히 서투른 애호가가 아니었던, 상황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채찍을 휘두르는 딜도 전문가 페긴이.

작별 인사를 나눌 때 트레이시는 페긴에게 열정적으로 키수했다. 페긴도 열정적으로 화답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이 만났던 호텔 옆 주차장에서 두 사람은 잠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런 다음 트레이시가 자기 차에 올랐고, 액슬러는 그녀가 차를 몰고 떠나기 저넹 페긴이 그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조만간 보자."  125-126


스스로 자신에게 가하던 고통은 끝났다. 그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비통함을 밀어냈고, 지긋지긋한 두려움을 몰아냈다. 그에게서 달아났던 모든 것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인생 재건이 어디선가 시작되어야 했는데, 그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 일을 위해 고용된 여자인 듯한 페긴 스테이플퍼드에게 그가 빠져든 순간 시작되었다.  130


그는 자그마한 몸집의 시블 밴 뷰련을, 교외 주택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부로 체중이 100파운드(45킬로그램)도 안 나가지만 자신이 작정한 일을 해치운, 무시무시한 살인자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그녀를 떠올려보라고 자신을 다그쳤다. 그래,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악귀 같은 존재였던 남편에게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할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면, 나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무자비한 최후를 계획해 실행한 그녀의 강인함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하며 별거중인 남편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아가서,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초인종을 누르고, 사냥총을 들어올리고, 그리고 남편이 문을 열었을 때 주저 없이 코앞에서 두 발을 발사하기 위해 그녀가 동원한 무정한 광기를.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시블 밴 뷰련이 용기의 기준이 되었다. 마치 간단한 한두 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일을 실행할 수 있게 해주기라도 한다는 듯 그는 그 격려의 말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마침내 연극에서 자살을 하는 것인 척하면 되겟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체호프의 희곡을 연기하는 것처럼. 이보다 더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이것으로 다시 연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레즈비언의 십삼 개월간의 실수이자, 터무니없고 치욕스럽고 허약하고 하찮은 존재이므로 이일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걸 걸어야 할 것이다.  149-150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주 후반에 청소를 하러 온 여자가 다락방 바닥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의 옆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콘스탄틴 가브릴로비치가 총으로 스스로를 쏘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갈매기>의 마지막 대사였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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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함께 읽고 함께 쓰다


조정래 작가는 "영혼의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말했다.  5


저녁이 있는 삶  7






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 따르면, 체험은 너무 개별적이고 특이해 설명이 불가능한 반면, 경험은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누군가를 깨닫게 할 수 있다. 경험은 오직 관계를 맺을 때 일어난다. 즉 남는 게 없는 읽기란 책과의 관계 맺음에 실패한 체험에 불과하다.  13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저고가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마치 책의 모든 내용인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을로 만드렁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 <니체의 말>  19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18세기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근대적 인간'과 '중세적 인간'으로 나눈 것인데, 이를 다시 내 식대로 적용해 보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를 물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라고 물을 때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남기 때문이다.' - 홍세화 <생각의 좌표>  41-42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은 모두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이제 경험하고 있으며,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회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 데카르트 <성찰>  44


공감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간접경험의 확률 또한 높아진다. 문제는 공감력이 부족한 독자, 어떤 책을 보든 자기 문제가 아니면 몰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45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거나, 규율을 꼭 지켜야 하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표현력이 금세 좋아지지 않는다.  67


요즘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튄다고 생각되면 냉소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특별해보이길 원하면서 친구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 아이들은 놀리거나 냉소하며 상대의 개성을 묵살한다.  71


독서토론의 가장 큰 목적은 책을 잘 읽는 것이다. 여가서 잘 읽는다는 의미는 '넓고 깊게'로 해석할 수 있다.  71


독서토론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가장 큰 가치 또한 자기관찰이다.  72


배움의 공동체 숭례문학당은 '100권 읽고 토론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80


수다로 끝나는 도서모임은 만족시키지 못했고 성장시키지도 못했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고급 독서토론 모임.  81


학습공동체 '숭례문학당'은 2008년에 문을 연 rws인스티튜트로부터 시작됐다. 독서가 '책(reading)'으로 끝나지 않고, '글(writing)'과 '말(speech)'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서점 아니면 출판사, 그 외에는 직업으로 할 만한 게 없어서 취미인지 사업인지 경꼐도 불분명한 '일'을 시작했다.  121


너무 진지한 것만도 아니고, 너무 소비적이지도 않은 모임.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하는 학습공동체!

독서는 힐링이나 자기계발 차원에서 머물던 수동적인 독서에서 자기 성찰과 토론을 통해 주관을 확보하는 능동적인 독서로 발전해야 한다.  124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너무 '각론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세어 인문학의 위기가 오고 기술을 우선시하는 현상도 그 자장안에 있다. 총론의 방향성은 차치하고 각론의 성급함한 요구한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얻고자 한다.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만 기대하는 꼴이다.  134


양이 쌓여야 질이 올라간다  146


존 로크가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의 힘"이라고 말한 이유도 바로 독후활동, 독서를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147


소비적인 독서를 하곤 한다. 이른바 독서쇼핑이나 강연소핑처럼.  147


숭례문학당이 설계한 독서토론은 '미투지투(味2智2 맛미 지혜지)'를 지향한다. 재미와 의미, 메시지와 에너지를 모두 담을 수 있도록 모델화했다.  176


독서토론을 하는 이유는 .. 사고를 확장하고 자신이 보지 못한 새로운 이면을 보기 위해서다.  193


독서토론은 시끄러워야 재미가 있다.

다양한 의견과 논리적인 근거들로 시끄러워야 한다.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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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 '보통 사람'이라는 뜻.  63


흙은 관의 나무 뚜껑 위에 떨어지면서 사람의 존재 안으로 빨려드는 소리를 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64


아버지를 묻는 이 일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65


예순다섯 살이었으며, 막 퇴직을 했고, 이제 세번째로 이혼한 상태였다. 그는 메디케어(의료보험의 한 종류)를 받았으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고, 변호사와 함께 앉아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것-그것은 나이가 드는 것, 심지어는 아마도 죽어가는 것에서 가장 좋은 부분일 것이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시간이 흐르면 갱신하고 수정하고,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것.  68


이 사악한 새끼들!(그의 아들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102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역효과를 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108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는 깯라았다. 더군다나 기적적으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112


(피비, 둘째 부인)"이 여자는 당신한테서 세실리아를 없애주고, 훌륭한 딸을 낳아주고, 당신 인생을 완전히 바꿔줬어. 그런데 당신은 그 여자를 위해 뭘 해야 좋을지 몰랐어. 덴마크 년하고 그 짓을 하는 것 말고는 말이야... 모든 일의 기초는 신뢰야. 안 그래? 안 그래?"  126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한느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도잉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이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빌어먹을 거짓말이란 말이야. 야, 이런 짓을 계속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런 일은 다 너무 잘 알려진 거잖아.  127


"뜨거움은 사라졌어. 아내도 나이가 들어 예전의 그 여자가 아니거든. 하지만 아내는 육체적 애정이 있는 걸로 충분해. 그냥 침대에 남편과 함께 있는 거. 아내는 남편을 안고, 남편은 아내를 안고, 육체적 애정, 부드러운 태도, 동지애, 친밀함... 하지만 남편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남자는 없으면 살 수가 없거든. 그래, 하지만 이봐요, 당신은 이제 진짜로 없이 살게 될 거예요. 많은 것 없이 살게 될 거야. 없이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제대로 알게 될 거야!"  128


어떤 의미에서는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이게 각오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집에 와보니 이미 쓰러져서 죽은 상태더라고요. 끔찍한 충격이었어요.  148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자신의 에스프리를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앗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자책에 박자를 맞추어 쳤다. 신장제세동기를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빗나갔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랜디나 로니보다 훨씬 잘 알 수 있었다. 보통 냉정하던 이 사람은 마치 기도하는 광신자처럼 사납게 자기 가슴을 쳤다. 이 실수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실수, 모든 뿌리 깊고, 멍청하고, 피할 수 없는 실수들로 인한 가책에 시달리다-자신의 비참한 한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면서도, 마치 삶의 모든 파악할 수 없는 우연을 스스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하위도 없어! 이렇게, 심지어 하위도 없이 끝이 나다니!"  164-165


그는 세 번 이혼했다. 한때 헌신보다는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했던 연쇄 남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계속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할 터였다. 이제부터는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166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밀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





옮긴이의 말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작가인 필립 로스 자신이 충분히 공감하는 말, 나아가서 그 자신이 소설을 쓰는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느낌도 든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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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도시


대합실.. 퀸은 혹시 오른편 젊은 여자 쪽에는 읽을 만한 것이 있을까 해서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 안팎으로 보였고 왼쪽 뺨에는 분홍색 화장분으로 덮어 감추기는 했지만 여드름이 몇 개 나 있었다. 그녀는 쩍쩍 소리를내며 껌을 씹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검붉은 색의 표지로 된 문고판 책을 읽고 있어서 퀸은 제목을 보려고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참으로 뜻밖에도, 그것은 바로 그가 쓴 책이었다. 맥스 워크가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인 윌리엄 윌슨의 <강요된 자살>. 퀸은 종종 그런 상황,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자기의 독자와 만나는 즐거운 상황을 상상해 보았었다. 아니, 심지어는 그다음에 이어질 대화를 생각해 보기까지 했다. 낯선 사람이 자기 책을 칭찬하면 상냥하게 삼가는 태도를 보이다가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어 겸손하게 [굳이 원하신다니] 하면서 속표지에 서명을 해주기로 동의하는, 그런데 이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그는 몹시 실망스러웠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자기가 그처럼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던 그 페이지들을 건성으로 훑어 내리는 태도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퀸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 그녀가 책을 읽느라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면서 글줄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그녀의 눈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마도 그가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에 그녀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이렇게 물은 것을 보면.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아무 일 아닙니다." 퀸이 애매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단지 그 책이 마음에 드는지 알고 싶어서요."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퀸은 그쯤에서 이야기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그대로 물러서려고 들지를 않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나지도 전에 먼저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 책 재미 있습니까?"

여자가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 요란스럽게 껌을 씹었다. "그저 그래요. 탐정이 돌아 버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좀 무섭고요."

"똑똑한 탐정인가요?"

"네. 똑똑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많아요."

"아가씨는 행동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그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째서 계속 읽고 있는 거죠?"

"몰라요." 그 여자가 어깨를 다시 한 번 으쓱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겠죠. 어쨌든 별것 아닌 일이잖아요. 이건 그저 책일 뿐이에요."  63-65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눈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론적으로는 사진에 나와 있는 소년의 눈을 보고 노인이 된 뒤의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퀸은 정말로 그럴지 의심스러웠지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진뿐이었고, 그것이 현재와 연결된 유일한 다리였다.  65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은 이 세상과 부합하지 못하고 있소. 사물들이 온전했을 때 사람들은 인간의 언어가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그 사물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부서져서 혼돈 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만 거요. 그런데도 우리의 언어는 예전 그대로요. 말하자면, 언어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뭔가 본 것을 말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가 표현하려고 하는 바로 그 사물을 왜곡시켜 잘못 말하게 되는거고. 그 때문에 모든것이 다 엉망이 되고 말았소. 하지만 댁도 알다시키, 언어는 변할 수가 있는 거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느냐 하는 거지. 바로 그래서 나는 지금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 아주 단순해서 어린애라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 작업하고 있소. 어떤 사물을 가리키는, 이를테면 [우산]이라는 말을 한번 봅시다. 내가 [우산]이라는 말을 하면 댁은 마음속으로 그 물건을 떠올릴 거요. 꼭 대기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금속 살들이 붙어 있어서 펼치면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방수 천의 뼈대가 되는 막대기처럼 생긴 물건 말이오. 이 마지막 부분이 중요한 거요. 우산은 사물일 뿐만 아니라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는 물건이오. 잠시 생각해 보면 오든 물건이 어떤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우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연필은 글을 쓰기 위한 것이고, 구두는 신고 다니는 것이고, 자동차는 타고 다니는 것이고. 그런데 이제 내 의문은 이런 것이오. 어떤 물건이 더 이상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여전히 똑같은 물건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이 되었는가? 우산에서 방수 천을 찢어 낸다면 그 우산을 여전히 우산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우산살을 펼쳐서 머리 위에 쓰고 빗속으로 걸어 나간다면 흠뻑 젖을 터인데도? 그래도 이 물건을 우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그걸 우산이라고 부르지요. 이껏해야 그 우산이 망가졌다고나 할 테고, 내가 보기엔 이것이 아주 심각한 오류,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그 우산은 이제 우산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우산과 닮은 것, 한때 우산이었던 것일 수는 있지만, 지금은 뭐낙 달느 것으로 바뀌었소. 그런데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고. 따라서 그 이름으로는 더 이상 그 물건을 표현할 수 없소. 그건 부정확하고 거짓되고, 그 물건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감추는 말이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흔한 물건들의 이름조차 짓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대한 얘기를 과연 무슨 수로 할 수 있겠소?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서 변화의 개념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길을 잃게 될 거요.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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