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탈주 제보
“어이구, 이거 뉘신가 했드만 김 선생 아니시요?”
.. 상업학교에서 무슨 주임인가를 맡고 있는 조한규였다.
김범우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는 눈길을 돌렸다. 교육자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간교한 인상을 풍기는 조한규의 얼굴을 마주대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
그가 조한규를 싫어하는 것은 인상 때문만이 아니었다. 일제말엽에 조한규가 자행했던 일련의 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40여 명이 전부인 학생들을 줄을 세우고 구령을 붙여가며 신사참배를 다닌 그 유별난 열성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그는 두 학생을 가미카제 특공대로 설득, 자원시킨 공로로 서장의 표창을 받은 위인이었다.  27-28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모략이 진실을 살해할 수도 있었고, 중상이 순수를 파괴할 수도 있었고, 허위가 진실로 둔갑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34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당한 사회개혁의 절차를 거쳐 지주계급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주계급을 보호하고 있는 이남의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뿐 봉건사회의 답습이고 연장일 뿐입니다. 과감한 사회개혁 없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게 되면 사회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41

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와 불필요하게 긴말을 한 다음의 허탈이 무겁게 밀려왔다. 의식이나 인식의 차이는 어찌할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었다.(선우진 선생과의 대화 후)  42



24 분노의 소작인

정 사장은 .. 법이고 질서라는 것이야말로 돈과 힘의 편이라는 사실을 그는 확고부동하게 믿었다. 왜냐하면 법이나 질서라는 것은 언제 어느때나 돈과 힘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170



25 농민, 그 사무치는 설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땅이 촉촉하게 젖을 만큼 하염없이 내리는 세우였다. 하늘이 낮았다. 제석산 중턱이 묻히고 선수머리까지의 포구가 반나마 가릴 정도로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큰비라도 쏟아낼 것처럼 험상궂어 보였다. 바람기는 없었다. 어디서 행보를 시작했는지 모를 가랑잎들이 갈 길을 멈춘 채 함초롬히 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기온은 싸늘했다. 냉기 서린 실비게 읍내가 스사하게 젖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행인이 드물었다.  187


화순탄광의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마을마다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뭉쳐졌다. 미군정의 미곡수매에 반감이 쌓일대로 쌓이고, 그 정책을 강압적으로 수행하는 경찰들의 횡포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에게 화순탄광의 사건은 큰 충격인 동시에 행동에 불을 붙이게 하는 더없는 계기였다. 거기다가 인민위원회가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결속시켰다.
인민위원회에서는 전단을 뿌렸고, 농민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었다.
“공출제도 쳐 없애고 토지개혁 단행하라!"
"이북식 토지개혁 그것만이 살길이다!"
이런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각 마을사람들은 읍내로 몰려갔다.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은 큰길에서 합류했고, 그 구호는 더 한층 어기차게 11월의 하늘로 퍼져올랐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운이 오른 만큼 징소리 북소리도 크고 빠르게 울렸다.
농민들만이 나선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도 머리띠를 두르고 대열을 꾸몄다. 학생들은 팔을 치뻗어 주먹으로 하늘을 치며 외쳤다.
"미군정은 각성하라.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다!"
"경찰은 각성하라. 어느 나라 사람이냐!"
"민족을 살해하는 경찰을 타도하자!"
학생들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영세 상인들도 하나로 뭉쳐졌다.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된 사람들은 경찰서로, 읍사무소로 몰려갔다. 징소리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고, 북소리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오랜 굶주림으로 광대뼈가 불거져나오고 볼들이 패어 있었다. 광목 일색이다시피 한 입성들도 궁기가 흘렀다. 그러나 소리를 합친 구호는 힘이 넘쳐났고, 메마른 얼굴얼굴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지잉, 지잉, 지잉, 징징징...……… 징!
"공출제도 쳐 없애고 토지개혁 단행하라!"
“민족을 살해하는 경찰을 타도하자!"
둥둥둥둥.....… 두둥둥!
"이북식 토지개혁 그것만이 살길이다!"
"미군정은 각성하라.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다!"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그러나 경찰서나 읍사무소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결 방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총구멍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소방관·청년단원 들은 시위대가 가까이 가자 총을 쏘아댔다. 시위대의 전진이 멈춰지며 대열이 헝클어졌다.
"모두 진정하시오. 저건 공포요!"
빠지고 남자들이 앞으로 나오시오!""겁먹을 것 하나도 없어요. 우린 당당하게 우리 권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여자들은 모두 뒤로 빠지고 남자들이 앞으로 나오시오!”
인민위원회 청년들과 학생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묶고 있었다. 남자들이 앞으로 나서고 여자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대열은 곧 정비되었다. 사람들의 굳어진 얼굴에는 더 강한 결의가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는 이 기회에 기필코 우리의 권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다 같이 찰떡처럼 뭉쳐지면 틀림없이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똘똘 뭉칩시다. 구호도 더 크게 외칩시다. 그리고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찾도록 합시다. 갑시다. 경찰서로!"
경찰은 공포를 쏘아 시위대를 저지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피를 쏟으며 퍽퍽 쓰러졌다. 시위대에서는 비명과 아우성이 터져올랐다. 대열도 헝클어지고 흩어졌다. 대열은 다시 정비되지 않았다. 총 맞은 사람들을 수습하느라고 아까처럼 앞에 나서는 청년도 학생도 없었다.
대열은 흩어지고, 사람들은 총소리에 계속 쫓겼다. 경찰들은 공포를 쏘아대며 뒤쫓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기네 동네 쪽으로 각기 밀려가고 있었다. 총에 맞은 사람들에 대한 불안과 경찰에 대한 분노를 안고 사람들은 동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총 앞에서 맨주먹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그날 밤 총을 꼬나들고 각 마을을 덮쳤다. 주모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기습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런 수법을 일정 때부터 겪어온 데다가, 특히 화순에서 경찰이 저지른 행투를 알고 있는 인민위원회 사람들이나 학생들은 미리 피해버렸던 것이다. 경찰들이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며 폭행을 가하고 협박을 하고 해서 사람들의 분노는 더 뜨거워졌다.
다음날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내내 내는 조용했다. 그리고 모든 마을도 평온할 뿐이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제석산에 봉화가 타올랐다. 그 봉홧불을 따라 마을마다 둥둥둥 두둥 둥둥 두둥 두둥 두둥.....…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둠을 헤치고 마을 당산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무기는 각양각색이었다. 대창이 제일 많았고, 쇠스랑·괭이낫 같은 농기구를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무기들 말고 공통적으로 지닌 무기가 있었다. 그건 허리에 찬 망태기나 보자기에 담은 감자 크기만큼씩 한 돌들이었다. 경찰의 총알에 맞서는 그들의 총알이었다.
구호를 외치지 않고 어둠에 몸을 감추고 읍내로 밀려든 그들에게 경찰서와 읍사무소는 삽시간에 장악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미처 몇 방의 총을 쏘아보지도 못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낮의 조용함에 방심한 경찰에서는 서너 명만을 숙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들은 누구인지 모를 많은 발에 채이며 쏟아지는 욕들을 고스란히 먹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이 두 명을 죽이고, 여섯 명을 부상 입힌 것처럼 그들은 경찰을 죽이거나, 죽게 패지는 않았다. 그들은 경찰서와 읍사무소를 뒤져 미곡수집대장을 찾아내서 불 질러버렸다.
다음날부터 싸움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다른 지방에서 경찰병력이 밀려들었고, 그 뒤를 기관총을 단 미군 지프차들이 따랐다. 동네마다 들이닥친 경찰들이 젊은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 집집마다 남자들은 뒷산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경찰은 그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날 밤 다시 봉화가 오르고, 북소리에 징소리까지 울리면서 남자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은 또 어둠에 몸을 감추며 읍내로 나아갔다. 읍내에서는 오래도록 총소리와 사람들의 외침이 뒤섞여 울리고 있었다.
양쪽이 서로 죽고 다친 그날 밤의 싸움을 고비로 농민과 학생들의 기세는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이 인민위원회 사람들을 잡아내려고 혈안이 된 데다가, 젊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갔고, 읍내 안통으로 이어지는 길목길목에다가 모래가마니를 쌓아올리고 언제라도 총을 갈겨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싸움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힘을 합쳐 경찰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피했을 뿐 한두 마을씩이 합쳐져 여기저기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싸움이야말로 경찰들을 더 신경질나게 만들었고, 괴롭히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공격표적을 친일파나 악질지주로 바꾸었기 때문에 경찰은 피해를 입은 그들에게 항의를 받고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친일파들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기가 예사였고, 눈치 없이 불호령을 놓다가 대창이나 쇠스랑에 찔려 죽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악질지주들의 쌀창고는 문이 박살나 속이 텅 비어버리기 일쑤였다.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경찰들은 장터거리에서든 마을 고샅에서든 개머리판으로 사람을 개 패듯 했고, 청년단원들은 제철을 만난듯 몽둥이며 자전거 체인을 말아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들도 혼자서는 어느 마을에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혼자 나돌며 그런 짓을 했다가는 누구의 손에 당했는지 모르게 목숨이 끊어져 철둑에 버려지거나, 농가의 커다란 똥구덩이에 처박혔다. 처음에 그런 꼴을 당한 경찰이나 청년단원이 네댓이었다. 그 뒤부터 그들은 대여섯씩 패를 짜게 되었다.
젊은 남자들이 당하는 수난은 말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무조건 잡혀 들어갔고, 뼈가 부러지는 매타작을 당하며 주모자로 몰렸고, 결국에는 빨갱이가 되어 죽거나 감옥살이로 넘어갔다. 젊은이들은 경찰과 청년단의 무자비한 손길을 피해 도망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 군대였다.
새로 조직을 만들어놓고 자원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군대는 그들에게 더없는 좋은 은신처였다. 그리고 그들도 무장을 갖출 수 있는기회이기도 했다.
날이 날마다 들려오는 것이 소문이었다. 나주에서 수천 명이 일어났다고 하는가 하면, 다음날이면 해남에서 또 수천 명이 일어났다고 했고, 그 다음날이면 영산포에서 일어나 얼마가 죽었다고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무안에서 얼마가 일어나 얼마가 죽었다는소문이 잇따라 들려왔다. 11월이 저물어갈 때까지 그런 소문이 빠진 날이 거의 없었고, 소문의 반만 잡는다고 하더라도 한 달 동안에 죽어간 사람들의 수는 수천을 헤아렸다.결국 농민들만 수없이 죽어간 채로 11월의 커다란 싸움은 끝났다. 미곡수매는 더 강력하게 시행되었고, 경찰들은 더욱 인정사정없이 몰아쳐댔다. 기가 꺾일 대로 꺾여버린 농민들은 당장 끓일 쌀이 없어도 할당량을 채우기에 숨을 헐떡거려야 했다. 사람은 죽었으되 시체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한은 그 밑에 깔려 또 한 겹의 켜를 이루었다.
"그려라, 요리 말얼 혀바도 결국에는 천불만 끓어올께 말얼 허덜 말아야제라. 참말로 나넌 해방만 되면 배 안 곯고 사는 존 시상이 올 줄 알았는디………….”
목골댁이 어깨를 부리며 말끝을 흐렸다.
"염상진이 그 사람, 딱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구만."
남양댁이 느닷없이 말이었다.
"그 사람이 멀?"
조성댁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고, 장흥댁과 목골댁도 의문스럽게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 체면 보지 말고 술도가놈얼 그때 죽였어야 허는겨!"남양댁은 야멸치게 내쏘았다.
“워메, 저 뜸금없는 소리 허는 것 잠 보소. 겁나게 징허시"장흥댁이 놀란 얼굴로 어이없어했고, 조성댁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목골댁은 아랫입술을 문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못쓰겠다. 요리 앉었다가 집안 망칠 중죄인 되었다. 싸게 파허자."
장흥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망칠 집안이나 머 있고라?"
목골댁이 말을 받으며 따라 일어섰다.
"워따, 염병한다.”
조성댁이 목골댁의 어깻죽지를 치며 눈을 흘겼다.  202-209



27 우리의 국토를 양단시킴으로써 민족을 분열시키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려 한다 - 백범 김구

“하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ㄸ 상호간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질서와 지혜를 주셨지. 그 질서를 인간의 말로 하자면 먹이사슬이고 지혜는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나 갈무리가 되겠지. 그런데,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의 뜻을 거역한 존재가 일찍부터 있었어. 그게 바로 인간이야. 하늘이 내린 지혜를 활용하되 탐욕적 이기(利己)를 채우는 무기로 악용하기 시작한 거야. 인간의 역사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지혜를 악용해 가며 인간끼리 살육을 되풀이해 온 기록에 불과해. 뱀이나 개구리가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를 하나 다음 해 봄까지 빈사상태로 견딜 수 있을 정도만 하는 것이고, 개미나 벌이 겨우살이 갈무리를 하지만 마찬가지로 해동이 될 때까지 필요한 최소량의 먹이만을 보관해.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다음 해 봄까지가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위해,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손대대로 이어질 갈무리를 하고자 탐욕한 것이야. 그 탐욕의 부가 상대적인 빈을 낳게 되고, 더 큰 탐욕을 채우고 지키기 위해 필연적인 폭력이 조직화되고, 그 폭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또다른 힘이 결속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것 아닌가. 먹이다툼을 해서 동류끼리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인간뿐이야. 동물끼리 상대방의 생활터전이나 사냥터를 침범하지 않는 것은 모든 동물들의 불문율이네. 동물들이 동류끼리 싸우는 경우가 있긴 하지. 그러나 그건 먹이 때문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힘겨룸이지. 힘세고 건강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함으로써 우량한 새끼를 낳게 하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싸움이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한 신성한 의식 아닌가. 그런데 인간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뭐라고 했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신의 섭리를 거역한 존재로서 당연히 저지르게 된 자만이야. 탐욕과 자만으로 가득 찬 인간사회는 착취를 위한 폭력이 조직화되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노예화와 굶주림이 상습화되었네. 모든 만물은 신의 섭리에 따라 골고루 나눠 먹고 겨울을 무사히 넘기는데 인간만은 헐벗고 굶주려 죽어갈 수밖에 없게 된 거야. 그건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지옥이지. 그 지옥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겠나. 파멸이지. 그 극점에 이르러 하나님은 인간들을 일깨우고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신 거야.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며 고루 나누어 먹으라는 것이었네. 곧, '박애의 실천'으로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을 얻게 되리라는 일깨움이었지. 그러나 인간들은 그 일깨움을 알아듣지 못했어.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성직자들까지 인간의 탐욕과 자만을 키워 하나님을 욕되게 했네. 중세 암흑시대가 그 좋은 증거 아닌가. 성직자들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인간이란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지 회의로워. 나 스스로부터 말이야. 그런 회의를 바탕으로 하여 보자면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나, 물질중심의 가치체계로 인간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유물론이나 다 동의할 수가 없어 난 크리스천 입장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사관이나 마르크시즘을 상대적 감정으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야.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져온 인간사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그런 것들의 발생은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어. 또, 인간사의 모순을 해결하고 불합리를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런 것은 소중하고 값진 거지.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인간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탐욕과 자만을 근본적으로 버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인간이 탐욕과 자만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제아무리 새로운 주의나 사상을 내세워도 거기에는 또다른 모순과 불합리를 내포하게 마련이야. 마르크시즘은 핍박받는 민중을 혁명세력으로 응집시킴으로써 최초의 불꽃이 되었고, 혁명을 성취시킴으로써 최후의 불꽃이 되었네.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마르크시즘은 정작 살해당하기 시작한 거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지배계층이 형성되었고, 그에 따라 공산주의적 계급사회가 이루어지면서 공산주의적 귀족이 생겨나게 되었지. 그리고 전인류적 인민해방이라는 미명하에 코민테른이란 국제조직을 만들어 세력 팽창을 꾀했는데, 소련의 그 팽창주의가 황금만능이란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나로선 구분이 안 되는구먼.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네." 그래서 그분은 기독교사회주의의 실천이 그 길이라 믿고, 자신의 농토를 공동소유화해서 몸소 농사를 짓는 생활을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분을 교장 자리에 끌어내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나를 생각하며 손승호는 그분이 전에 했던 말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었다.  319-322



29 대나무 전설

“우리가 이렇게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것은, 아니, 싸운다고하는 것이 말이 될지 모르겠는데, 이게 대체 누구 잘못인가요? 꼭 미국이나 쏘련의 잘못일까요?”

“원장님 말씀은 …… 바로, 분단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느냐 하는 것인데요. 글쎄요. 그게 한마디로 하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지금 원장님께서 의문을 표시한 대목만 잡아 말하자면, 물론 미국과 쏘련만의 책임일 수 없습니다. 각 개인의 집에 주인이 있듯이 한 나라에도 분명 주인이 있스빈다 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이 든 것까지는 주인의 책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들어온 또둑에게 어떻게 대처하고, 무슨 방법으로 몰아낼 것이냐 하는 것은 주인의 책임입니다. 도둑을 맞아 한 집안이 망하게 되었을 때, 도둑은 그 집안을 망하게 한 원인일 뿐이지, 책임을 물을 대상은 아닙니다. 도둑은 직업상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다만 그 집안 사람들이 비겁하고 빙충맞아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도둑에게 전가시킬 수는 있겠지요. 아니면, 무식하고 아둔해서 원인과 책임을 구분조차 못하고 있거나 말입니다.”
“.. 그런데 도둑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들었는데 어째서 힘을 합쳐 도둑들을 몰아낼 생각은 안 하고 양쪽으로 갈랒 도둑들 편을 드나요?”

“먼저 외적인 원인과 내적인 원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적인 원인을 다시 열강들의 국제정치 역학과 이데올로기의 상충으로 나눕니다. 국제정치 역학은 세계 2차대전 전과 후로, 이데올로기의 상충은 미쏘의 냉전상황으로 세분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원인은 사회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으로 구분합니다. 사회적 측면은 다시 전통적 인습사회와 서구적 개조사회로, 정치적 측면은 식민지시대와 해방후 시대로 나눕니다. 또한 서구적 개조사회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식민지시대 저치는 보수적 독립운동과 진보적 독립운도으로, 해방후 시대 정치는 식민지시대 정치세력과친일세력으로 세분됩니다. 대충 이렇게 갈라놓고 보면 외적인 원인은 수평적이고 횡적이 되며, 내적인 원인은 수직적이고 종적이 되어 상호 교차하게 됩니다. 위에서 구분한 항목들을 따라 세밀하게 조사하고, 그것들의 상관관계를 따져가며 종합하게 되면 원인이 규명되지 않을까 생가하고 있습니다. ..”  391-393

있는 집 자식으로 아무런 고생을 모르고 자라 영문학을 전공했고, 지주의 기득권을 천부적 절대권인 것처럼 믿어 그 부(富)가 형성된 과정의 모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회의해 본 적이 없는 사나이. 그러므로 시대의 흐름이나 사회의식의 변화를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우리에 갇혀 불행을 키워가는 연약한 사나아. 가문의 재산이나마 보호되어 있으면 모르되 빈손에 혈혈단신이 되어버린 처지에 세파를 헤쳐나가기에는 부적격한 사나이. 김범우가 긴 복도를 걸어나오며 정리하고 있는 선우진이었다.  399



30 전라도

부처님이야 부부는 3천 년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하셨지만, 모자라는 소견으로 보면 제비뽑기 요행수 같은 것이 남녀의 만남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447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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