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8.10.24 대리사회 - 김민섭 와이즈베리 2016 03300
  2. 2018.09.19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 - A. S. 닐 아름드리미디어 2006 03370
  3. 2018.08.15 공부 공부 - 엄기호 따비 2017 03370
  4. 2018.07.25 공부중독(E-book) - 엄기호, 하지현 위고 2015 03300
  5. 2016.10.13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 혁명 - 켄 로빈슨 루 애로니카 21세기북스 2015 03370
  6. 2016.02.25 하류지향 - 우치다 타츠루 민들레 2014 03370
  7. 2016.01.18 학교의 슬픔 - 다니엘 페낙 문학동네 2014 03860
  8. 2015.02.07 슬로우 육아 - 헤르베르트 렌츠 폴스터 부키 2013 13590
  9. 2012.11.10 배움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가 ... <아름다운파괴> <수상록>
  10. 2012.09.09 맛살라 인디아 - 김승호 모시는사람들 2008 03910
  11. 2012.03.28 소셜 애니멀 - 데이비드 브룩스
  12. 2010.11.25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 - 문용린 갤리온 2006
  13. 2010.11.21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2 - 이덕일 고즈윈 2008
  14. 2010.11.11 (방배동 김선생의) 공부가 희망이다. - 김종선 이다미디어 2007
  15. 2010.11.06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 Chapter1. 역사, 흥륭과 쇠망의 이중주_흥륭사
  16. 2010.09.30 미국 교육 이야기 - 지경희 문예미디어 2007
  17. 2010.09.24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는 집 - 시지마 야스시, 와타나베 아키코 삼성출판사 2007
  18. 2010.09.13 '학습(공부)'의 의미 1
  19. 2010.08.26 나는 리틀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키웠다 - 진경혜 중앙M&B 2001
  20. 2010.08.10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양철북 토머스 고든 2002 2
  21. 2010.08.06 (아버지학교를 위한 강의식 교과서) 부모대학 - 추이화팡 휘닉스 2008
  22. 2010.08.03 이 코너를 시작하며


프롤로그 - 대리인간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며


타인의 운전석에서 나는 세 가지의 ‘통제’를 경험했다. 

우선 운전에 필요하지 않은 모든 ‘행위’의 통제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깜빡이를 켜는, 그런 간단한 조작 외에는 그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사이드미러나 백미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도 그럭저럭 운행할 수 있으면 그대로 두고, 의자의 기울기에도 몸을 적응시켜 나간다. 차의 주인이 자기 몸에 맞춰 조절해 놓은 것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에어컨이나 히터를 작동시키거나 음악의 볼륨을 조절하는 일 역시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말’의 통제다.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대리기사는 거의 없다. 차의 주인이 화제를 정하고 말을 건네면 반가이 화답하지만, 그가 침묵하면 나도 묵묵히 운전만 한다. 서로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제한적으로 “네, 맞습니다”라는 대답만 주로 하게 된다. 그의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웨남ㄴ해서는 그저 웃으며 동의한다. 특히 종교나 정치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차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마지막으로 ‘사유’의 통제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유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맴돌아 답답했지만, 나중에는 그런 대로 편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운전만하면 되었고, 손님이 뭐라고 하든 “네, 맞습니다”하고 영혼없이 대답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타인에게 질문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운전석은 이처럼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한다. 신체뿐 아니라 언어와 사유까지도 빼앗는다. 그런데 운행을 마치고 운전석에서 내려와도 나의 신체는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대리’라는 단어에 묶여 있었다. 8-9


지금껏 우리를 통제해 온 대리사회의 괴물이 있다. 그것은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견고한 시스템과 마주하는 일이다.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으로는 그 무엇도 나아지지 않는다. 온전한 나로서 사유하고, 또 주변의 또 다른 나를 주체로서 일으켜세워야 한다.  11




몸으로 배운 가치들은 삶의 태도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는 연습을 반강제로 시켰다. 그것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환희와 기쁨이었다. 그래서 ‘지방시’의 어느 장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든 육체노동을 반드시 하겠다”고 썼다. 거기에도 덧붙였지만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게 배운 삶의 태도를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었다.  18-19


책을 덮고 일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21


나는 대학에서 조교와 시간강사로 존재했던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리의 시간’이었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의 욕망을 위해 보낸 시간이었다. 실존에 대한 고민은 책상에서 일어섰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대학을 그만두고 몇 달의 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다시 배웠다.  21-22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괴물’이었습니다. 학부생, 대학원생, 시간강사로 이어지는 노동력 착취의 구조는 공고하며, 그 어떤 기업보다도 신자유주의적입니다. 사무실, 연구소, 기숙사, 대학의 어느 부처에 가든 재학생 근로 조교들이 있습니다. 4대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연봉 천만 원 남짓한 시간강사들이 강의의 절반을 책임집니다. .. 그뿐 아니라 학생들의 밥을 퍼준 이도, 강의동의 환경미화와 경비를 책임지는 이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처럼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으로 대학 행정과 강의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24


교수들은 종종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소극적이라고, 그래서 주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학생을 주체로 대하지 않는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은 알지 못한다.  33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며, 나의 신체를 되찾는다. 무엇보다 사유하고 발화할 자유를 되찾아 온다. 더 이상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주체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간편한 대화의 방식, 말하자면 ‘순응’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에 각인된 것이다. 누군가 나를 주체로서 대우한다고 해도 익숙해진 몸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어디에서든 주체로서 발화할 수 없게 된다. ‘순응하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34


부하 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35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비합리와 비상식과 마주하더라도 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대신 순응하지 않는 이들을 감시하고 격리해 나가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할 '대리국민'을 양산해 낸다. 그러한 국민/개인들은 국가/조직이 얼마든지 간편하게 통치/통제할 수 있다.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대리국민'이 된 이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스스로 나선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그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 몸소 싸워나간다.  35-36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평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책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성찰이다.  36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무넺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화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 모두는 '대리'가 된다.  53


스스로 물러서서 나를 둘러싼 구조와 마주하지 못하고 호칭이 주는 환각에 취해 살아왔다.  54


대학은 그 어느 기업보다도 더 기민하게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영합해 왔다.  77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안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  77


순간의 감정으로 욱, 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타인의 수고를 농락하는 이들이 더 많다. 양쪽에서 전화를 받아 누가누가 먼저 오나 경주를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요구에 따라 거리를 내달려 온 이들을 취소 문자 하나로 돌려세우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일상의 '갑질'이다. ..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고 해서 감정까지 대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그 어떤 비정함에 무뎌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주체로서 아파하고 주체로서 절망한다.  96


어쩌면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우리는 너를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주체와 대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아직 모든 가족을 주체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내하고든 아이하고든, 조금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 기꺼이 그들을 위한 대리의 삶을 살며, 그렇게 조금은 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105


연구자이면서 남편가 아버지도 되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장모님을 1년쯤 모시고 살면 어떨지 아내에게 물었다. 몸도 머리도, 그리고 감정도, 지칠 만큼 지쳤을 때였다. 하지만 아내는 장인어른이 그것을 견뎌낼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차로 20분 거리에 계신 장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 오가는 일도 버거워했다. 결국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1년 정도 아이 돌보는 것을 도와달라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너희가 맞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고 되물어싿. 그러면서 우리가 너희를 키울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엄살이 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머니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주변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모두 육아를 하는 데 양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항변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두 세대의 희생이 필요한 시대다. 아이의 부모는 일하고, 은퇴한 조부모가 손자를 돌보고, 이것은 어느덧 한 '집안'이 살아남는 방식이 되었다.  136


사회는 우리를 '대리인간'으로 만든다. 나아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한다. 그러한 대리사회의 욕망은 결국 모두를 집어 삼키고, 주체로서의 자리 역시 빼앗는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의 시간을 추억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138


아이를 보는 데는 두 사람의 하루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45


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유니폼을 위해 돈을 지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노동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노동'의 관계다.  172


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동자의 주체성을 농락한다. 자신을 대신해 내세울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에게 언제나 가혹하다. 그런데 그것은 명백한 위법이나 합법도 아닌,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법의 틈새를 이용한 '편법'이다. 인턴이라는 정체불명의 직함을 부여하고서는 무임금으로 사람을 부리고, 언제든지 해고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조차 보장하지 않아도, 기업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에 더해 국가/정부는 기업을 위한 법안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간다. 결국 노동자는 노동 현장의 주체가 아닌 대리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매장의/학교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수사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이것은 정말이지 파렴치한 역설이다.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탈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가 된 노동자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열정 착취'보다도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다. 노력뿐 아니라 행복과 만족까지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영혼 착취'라고 규정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노동은 '대리노동'이다. 노동자는 여전히 노동의 주체이면서, 또한 주체가 아니다 대리운전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동네 마트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그 어느 노동의 공간에서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대리인간'으로서만 존재한다. 지금 이 사회에서 타인의 운전석보다 나은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173-174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 반드시 폭언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수행자가 된다. 내 주변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역시,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행위인 것이다.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을은 계속해서 도원되고 희생될 것이다.  183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조직을/사용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195



화면을 바라보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즐겁다.  211


타인의 즐거움을 보며 대리로서 즐거워야 한다면, 역설적으로 나는/우리는 지금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남들이 먹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지금처럼 필요 이사으로 열광할 이유는 없다. ...

이전에는 출연자들이 외국을 배경으로 평생 먹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이국적인 음식을 먹고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의 맛집이나 거리로 간다. 평범한 냉장고에서 누구나의 집에 있을 법한 재료를 꺼내 몇 분 만에 요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상의 공간에까지 이제 그들은 침투했다. 그리고 익숙함을 무기 삼아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묻는다. "우리는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너도 그렇지?"

그들은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즐거워하고, 우리는 그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삶의 고단함과 절박함을 잠시 잊는다. 익숙한 공간이 재현되며 이전보다 더욱 주체가 되어 함께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대리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누구에게도 대리시킬 수 없는 허탈함이 찾아온다. 특히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에는 아무런 무넺가 없고, 남들처럼 즐거울 수 없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212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분노'와 '혐오'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213


대리사회의 괴물은 여전히 개인들이 그 분노를 온전히 발산할 수 없게 만든다. 대신 대리만족의 기제를 계속 내보내면서, 행복하지 않은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마취되고 나면 개인의 분노는 자신을 둘러싼 구조, 그 괴물에게 향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개인이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더욱 자극적인 마취/환각제를 원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강한 쾌락의 기제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아주 잠시 즐겁고, 오래 외롭다.  213-214


현실이 가혹하고 절박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상의 판타지가 강요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공감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저마다에게 외로움을 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분노를 토로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아마도 곧 노래와 음식을 넘어 또 다른 대리만족을 주는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다시 열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리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개인들은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분노할 것이다. 다만 그 분노가 개인을 향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익숙한 공간에까지 이미 침투한 대리사회의 괴물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강요된 환각에서 깨어나 온전한 나로서/우리로서 '즐겁게'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214-215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으니 누군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곧 잊고 있던 선을 기억해 내고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227



 - 운전을 시작하면 손님은 가족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지 않더라도 곧 전화가 오곤 한다. 그런데 "대리 불러서 가고 있어"라고 하는 이들이 있고, "대리 오셔서 가고 있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부르다'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고, '오시다'의 주체는 타인이다. '(내가) 대리를 불렀어'와 '(대리가) 왔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끔은 '대리...'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불렀어'하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 망설임은 아마도 상대방을 주체로 상상하기 위한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주체의 언어로 말하는 데 인색하다. 별것 아닌 말의 습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서 대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 '대리 오셨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보이는 그 삶의 태도에 대해 순수한 존경을 보낸다.  238


사실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 과정의 수고로움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결과만이 남는다는 점에서 노동 그 자체는 대개 은폐되기 마련이다.  241



에필로그 - 경계인에게만 보이는 것


사실 그동안 나아가는 법만 배워왔지 물러서야 한다고는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공간에서의 패배를 고백하는 것이고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에서 이탈해 고립되기를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경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런 평범한 개인이었다.  250


우리는 모두가 한 사람의 대리운전 기사다. 자신이 그 차의 주인인것처럼 도로를 질주한다. 하지만 조수석에는 이미 누군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시동을 걸기 이전부터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개인의 의지는 통제되고 검열된다. 차를 멈추고 운전석에서 잠시 내려,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느 균열의 지점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액셀을 더 강하게 밟는 데만 힘을 쏟는다. 단속 카메라가 보이면 브레이크를 밟고,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에 다시 도로로 올라오면서도, 자신이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 계속 운전대를 잡는다. 그렇게 대리사회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된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내가 그랬듯 밀려나고서야 자신이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다. 밀려난 개인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대리인간이 들어선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포위한 '대리올로기'의 서사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를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251-252


대학은 세상을 전부가 아닌 조금 특별한 일부일 뿐이다. 나는 대학 바깥에서 얼마든지 '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학을 나온 몇 개월 동안 몸의 언어로 배웠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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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A. S. 닐이 선구적인 자치 자유학교인 서머힐을 설립하고 운영해온 50년의 세월을 되돌아본 책이다. 8

 

서머힐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출 수 있는 구조를 갖추려고 했다는 점이다. 10

 

 

닐과 서머힐

 

목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동안에 완전하고 건강한 감정과 개인의 역량을 키워내는 것이었다. 닐은 아이들이 이런 완저함을 성취하기만 하면, 학문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려는 동기는 저절로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성장으로 이끄는 열쇠는 아이들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맘껏 놀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14

 

다른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가르치는 많은 것들을 서머힐에서는 일상생활의 과정 속에서 다루어나간다. 19

 

따뜻한 마음, 낙관주의, 독립심 그리고 자립성은 서머힐에서는 전염병처럼 쉽게 옮아가는 자질이다. 서머힐의 구조는 아이들을 자립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가장 훌륭한 가족이 그러하듯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21

 

 

들어가는 말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자치, 수업에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않을 자유, 필요하다면 며칠, 몇 달, 몇 년이라도 놀 수 있는 자유 , 종교나 도덕이나 정치를 막론하고 모든 교화로부터의 자유, 성격 틀에 맞춰 찍어내기(character oulding)로 부터의 자유. 25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를 나누는 장벽은 필요 없다. 그런 장벽은 아이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만든다. ...

독단적인 권위는 아이에게 평생토록 지속될 열등감을 심어준다. 26

 

아이는 작고 나는 크다. 왜 나는 나보다 작은 아이를 때리고 있는가? 27

 

아이의 무례함은 나를 그 아이의 수준으로 내려버렸다. 그것은 궁극적인 권위로서의 나의 위엄과 지위를 훼손했다. 28

 

서머힐에는 세대 간에 차이가 없다. .. 열두 살짜리 여자 아이가 교사에게 그의 수업이 따분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둘러 한마디 덧붙이자면, 교사 역시 어떤 아이에게 넌 형편없는 말썽꾸러기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유는 양쪽에 다 적용되어야만 한다.

교육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한 아이들을 길러내야 한다. 자치는 분명히 그것을 해낸다. 28-29

 

어떤 교사도 북을 시끄럽게 두드리는 아이를 치유할 권리는 없다. 꼭 이루어져야 할 유일한 치유는 바로 불행을 치유하는 것이다. 30

 

문제아는 불행한 아이다. 그 아이는 자신과 전쟁 중에 있다. 그 결과 그 아이는 세상과 전쟁을 벌인다. 31

 

 

서머힐의 사상

 

활동적인 아이들을 책상 앞에 붙들어 앉혀놓고 대개는 쓸데없는 과목들을 공부하게 만드는 학교는 분명 나쁜 학교다. 그런 학교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학교는 좋은 학교다. 그리고 돈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문명에 잘 어울리는 유순하고 창조성 없는 아이들을 바라는 창조성 없는 시민들에게도 그 학교는 좋은 학교다. 35

 

서머힐은 어떤 곳인가? 먼저, 수업은 아이들의 선택 사항이다. 아이들은 수업에 들어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원한다면 몇 년 동안 걔속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시간표는 있지만 그것은 교사들의 시간표다.

보통은 나이에 따라 학급을 편성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의 관심사에 따라서 학급이 편성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새로운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36

 

인간은 결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해 봄 나는 몇 주에 걸쳐 감자를 심었다. 그런데 6월 들어서 그 감자들 중 여덟 포기가 뽑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행동은 권위주의에 젖은 사람의 행동과는 다르다. 나는 단지 감자를 문제 삼았지만 권위주의에 빠진 사람은 선과 악이라는 도덕 문제까지 끄집어낼 것이다. 감자를 훔치는 건 나쁜 짓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내 감자의 문제로만 삼았다. 그건 내 감자이므로 다른 사람은 그 감자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그 차이를 분명히 하고 싶다. 42-43

 

자유로운 아이들은 쉽게 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다. 44

 

강조할 것은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아홉 살 난 아이가 공놀이를 하다 유리창을 깨면 나한테 와서 그 사실을 말할 것이다. 그 일로 내가 호통을 치거나 혹은 부도덕한 짓이라고 분개할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사실대로 말한다. 그 아이는 유리창 값은 물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훈계를 듣거나 벌 받을까봐 겁낼 일은 없다.

두려움이 없을 때 아이들은 낯선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진다. ...

아이가 할 일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44-45

 

 

전체회의

 

학교 생활 가운데 자치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낳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유가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 누가 음식을 조리하고 어떤 음식을 조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체회의의 투표로 결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교직원의 채용 문제는 아이들과 공식 협의를 거치지 않는다. .. 학생들에게 자치는 그들의 공동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상황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50

 

자치에서 어른들이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어른들은 이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바깥으로 물러나 있는 재주가 필요하다. 51

 

민주주의란 완벽한 제도가 아님을 나는 인정한다. 다수결의원리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독재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여러 해 동안 내가 놀란 것은 우리 학교의 소수자들이 다수의 판결을 잘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55

 

 

자치

 

민주주의는 아이들이 투표권을 가지는 나이인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거인 명부에 등록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59

 

아마 우리 민주주의가 민주 정치보다 더 공정할 것이다.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대단히 너그럽고, 아무런 기득권이 없기 때문이다. 59-60

 

자치를 하지 않는 학교는 진보학교라고 불리면 안 된다. 그건 일종의 절충 학교다. 아이들이 자기네 사회 생활에서 자치를 이루어나가는 데 완전한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자유로운 게 아니다. 우두머리가 있을 때는 진정한 자유가 없다. 이것은 엄격한 우두머리보다는 자비로운 우두머리에게 더 해당되는 말이다. 활기찬 아이는 모진 우두머리에게는 반항을 하지만, 부드러운 우두머리 밑에서는 오히려 유약해지고 자신의 진실함 감정을 분명하게 느끼지 못한다.

학교에서 자치가 잘 이뤄지려면 나이 든 학생 몇몇이 필요하다. 그들은 평온한 삶을 좋아하며, 악동이 아이들의 무관심이나 반감에 맞서 싸운다. 그들은 표결에서는 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자치제도를 진정으로 믿고 원하는 아이들이다. 한편 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은 자치제도를 잘 운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아직 사회 생활을 영위할 나이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머힐에서는 일곱 살짜리 애도 전체회의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유치원생들까지 투표권을 가지며 종종 훌륭한 발언을 한다. 62

 

모든 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아이들을 나이와 분리해서 대하는 태도다. 64

서머힐은 바깥 세상의 삶에서 도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머힐은 시대에 앞선 공동체 정신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지고 있다. 삽을 보고 땅도 잘 파지 못하는 형편없는 삽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삽을 가지고 도랑을 파는 사람만이 형편없는 삽이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0-71

 

 

놀이와 자율

 

놀이에 대한 이론은 많다. 그 중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은, 어린아이들이 나중의 삶을 위한 연습 행위로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즉 새끼고양이가 털실을 쫓아다니는 것은 미래의 쥐잡기를 준비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것은 새끼고양이가 발로 얼굴을 닦고 몸단장을 하는 데도 어떤 목적이 있음을 전제한다. 또는 그와 달리 동물의 행동에는 장차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신의 힘이 작용한다고 전제하기도 한다. 이런 두 가지 가정에 모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새끼고양이나 강아지가 놀이를 하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믿어야할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에 그 에너지는 타고난 육체적 에너지인 듯하다.

아동기는 성인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은 노는 시기다. 그런데 어떤 아이든 충분하게 놀지 못한다. 아이 때는 충분히 놀아야 앞으로 일을 시작해 나갈 수 있고 또 닥쳐오는 어려움에도 맞설 수 있다는 것이 서머힐의 이론이다. 74

 

내가 생각하는 놀이는 바로 공상과 관련된 놀이다. 조직되니 게임은 기술과 경쟁 그리고 팀워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보통 아이들의 놀이에는 기술이 필요 없으며 경쟁이나 팀워크도 거의 요구되지 않는다. 75

 

서머힐에서 여섯 살짜리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논다. 공상의 날개를 펴고서. 어린아이들에게 공상과 실재는 아주 가깝게 붙어 있다. 열 살 난 남자 아이가 유령 모습을 하고 나타나면 어린아이들은 좋아라고 비명을 질러댄다. 하얀 침대보를 뒤집어쓴 유령이 토미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유령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서워하며 비명을 질러댄다.

어린아이들은 공상 속에서 살면서 그 공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여덟 살에서 열네 살까지의 남자 아이들은 갱 놀이나 인디언 놀이를 하는데, 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무 비행기를 타고 하늘 여기저기를 날아다닌다. 어린 여자 아이들 역시 갱 놀이를 하는데 총이나 칼을 쓰지 않는 대신 인신공격 성향이 강하다. 메리의 패거리와 넬리의 패거리는 서로를 싫어한다. 그래서 서로 간에 말다툼과 거친 말이 오간다. 남자 아이들의 경우 상대 패거리는 오직 놀이에서 적일 뿐이다. 그래서 어린 여자 아이들보다는 어린 남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하다.

공상이 시작되고 끝나는 경계가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실재와 공상은 아주 밀접하다. 한 여자 아이가 장난감 접시에 음식을 담아 인형에게 줄 때 그 아이는 잠시라도 인형이 살아 있다고 믿는 걸까? 흔들목마를 아이들은 진짜 발로 생각하는 걸까? 어떤 남자 아이가 손들어!” 하고 외치며 총을 쏠 때 그 아이는 자기 총을 진짜 총으로 생각하는 걸까? 나는 아이들이 자기 장난감을 진짜라고 상상한다고 여기고 싶다. 어떤 감수성 둔한 어른이 끼어들어 그것이 공상임을 일깨울 때 비로소 아이들은 현실 세계로 풍덩 떨어진다.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은 놀이에 대한 생각이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논다. 여자 아이들은 놀이 자체보다는 공상 세계에 더 깊이 빠져드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남자 아이들은 거의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놀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은 갱 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한다. 나무 위에 오두막을 짓고 구멍과 참호를 파며 논다. 남자 아이들은 어린아이들이 보통 하는 그런 일을 다 한다. 75-76

 

서머힐에서는 게임을 장려하는지 사람들은 묻곤 한다. 우리는 정말 어떤 것도 장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모험과 공상으로 가득 찬 게임을 하면서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

나는 게임과 놀이를 구별한다. 나에게 축구, 하키 럭비, 야구 등은 진정한 놀이가 아니다. 그런 게임에는 놀이의 상상력이 없다. 자유로운 아이들은 공상 놀이(더 좋은 이름이 없어 이렇게 부르겠다)를 좋하하기 때문에 팀을 이루어서 하는 게임을 피하려 든다. 77

 

놀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장에서 아이들의 책에 관해 거론해서는 안되겠지만 어딘가에서는 한 번 언급되어야 할 이야기. 78

 

아이들이 읽는 책을 대체 얼마나 검열해야 할까? 잔인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학적인 이야기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어느 일요일 밤, 나는 학생들에게 모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식인종의 가마솥에서 마지막 순간에 구조되는 장면에 이르자 아이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79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의 마음보다 훨씬 더 깨끗해 보인다. 어떤 남자 아이는 헨리 필딩의 <톰 존스>를 읽도고 외설적인 구절을 발견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아이들을 성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면 어떤 책에나 있을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셈이다. 나는 어떤 연령층의 책들에 대한 검열도 단호히 반대한다.

언젠가 학교에 새로 들어온 열네 살짜리 여자 아이가 내 서가에서 <어느 소녀의 일기>라는 책을 뽑아 들었다. 그 아이는 안던니 킥킥 웃어대며 그 책을 읽었다. 여섯 달 후 아이는 다시 그 책을 읽었다. 그러더니 책이 이전보다 재미없다고 내게 말했다. 모르고 읽었을 때는 짜릿했던 것도, 알고 나서 읽으면 시시해지는 법이다.

프로이트가 어린아이들에게도 성욕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성욕에 관한 책은 여러 권 나왔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자율적으로 자란 아이들에 관한 책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80

 

자율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 즉 원죄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믿음을 내포한다. 자율은 어린 아기가 외부 권위의 강제 없이 자유롭게 사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그렇게 하고 싶을 때만 개끗한 옷을 입고, 혼이 나거나 볼기를 맞지 않으며, 늘 사랑받고 보호받는다는 의미다 물론 자율도 다른 이론적인 생각들처럼 일반 상식과 결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81

 

자율은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의미한다. 자율적으로 아이를키우기 위해서 따로 교육을 받거나 성품을 계발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노인이 된 스코틀랜드의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메리가 생각난다. 메리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평온한 사람이었다. 결코 안달하지 않았고 호통도 치지 않았다. 메리는 본능적으로 자기 아이들편에 섰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엄마가 자신들을 인정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병아리들을 돌보는 푸근하고 온화한 암탉과 같은 엄마였다. 메리는 남을 소유하려는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81-82

 

아이에게 장난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을 때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주지 말라. 이 문제에서 나는 조금 주관적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에게 꽤 많은 돈을 빚찐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값비싼 최고급새 경주용 자전거를 보내왔기 때문인데, 나는 그것이 싫다. 일반적으로 말해 오늘날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받아서 그만큼 선물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83-84

 

다른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너무 인색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여러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선물을 하는 부모는 흔히 자기 아이들을 충분하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아이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퍼부어 자신들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다. 84

 

아이들은 음악과 진흙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계단을 쿵쾅거리며 오르내리고 시골뜨기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가구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지나다니는 중에 고대 로마시대의 골동품인 포틀랜드 꽃병이 놓여 있으면 아이들은 그냥 뀌어넘어갈 것이다. 그것이 뭔지 쳐다보지도 않고.

문명의 폐해는 어떤 아이도 충분히 놀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모든 아이들이 어른의 나이에 이르기 전에 이미 어른이 되도록 온실 재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는 지극히 독단적이다.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이 아이들의 시간표를 짠다. 9시부터 11시까지 수업하고, 그 후 1시간 반 동안 점심 식사 하고, 다시 오후 3시까지 수업한다. 만약 자유로운 아이가 손수 자기 시간표를 짠다면, 그 아이는 분명히 노는 시간을 길게 잡고 수업 시간을 짧게 할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 어른들이 가지는 반감의 근원은 두려움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근심 어린 질문을 골백번도 더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 도대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시험에는 합격할까요?” 다음의 내 대담에 수긍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신 아이가 놀고 싶은 만큼 실컷 놀더라도, 이 년만 바짝 공부하면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삶의 요소로서 놀이가 지닌 가치를 무시하는 학교에서는 보통 입시 준비로 오 년, 육 년, 혹은 칠 년을 공부하지요.”

그 말 다음에 나는 꼭 이렇게 덧붙인다. “물론 그것은 그 아이가 시험에 합격하고 싶어할 때만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발레리나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 혹은 의상 디자이너나 목수가 되고 싶을지도.

그렇다, 아이의 미래를 두려워하는 마음때문에 어른들은 아이에게서 놀 권리를 빼앗는다. 아니,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놀이를 허용하지 않는 태도의 배후에는 모호한 도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라는 존재는 별로 좋은 게 아니라는 암시, 청소년들에게 어린애처럼 굴지 마라고 훈계하는 목소리에 담긴 암시가 그것이다.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가졌던 동경과 열망을 잊어버린 부모들, 어떨게 놀고 어떻게 공상하는지를 잊어버린 부모들이 불쌍한 부모들을 만들어낸다. 노는 능력을 상실한 아이는 신체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기와 사귀려고 다가오는 다른 아이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놀지 못했을 때 어떤 손상을 입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84-86

 

 

일과 정직

 

아이들의 공동체 의식, 즉 사회적 책임감은 적어도 열여덟 살은 지나야 충분히 발달한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당장 눈앞의 것에 있다. 아이들에게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89

 

아이가 지금 놀아야 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지낸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어려움에도 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인생관이 바로 정립된다면 직업이 어떤 것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90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자주 부려먹는다. "메리어느 달려가서 이 편지를 우체통에 놓고 와." 어느 아이든 이렇게 이용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91

 

아이들 스스로 관심이 일지 않는데, 억지로 관심을 가지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은 시간당 얼마씩 주기로 하고 아이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과 나는 같은 토대 위에 서게 된다. 즉 나는 내 텃밭에 관심이 있고, 아이들을 가욋돈을 버는 데 관심이 있다. 92

 

건전한 문명이라면 최소한 열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리라는 게 내 의견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여덟 살이 되기 전에 벌써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이들에게 놀이와 같은 것이며 아마 부모의 입장에서는 비경제적인 일일 것이다. 94

 

좋은 버릇은 일찍이 어린 시절에 몸에 배지 않으면 나주엥는 평생 발달하지 않을 거라는 일반적인 전제가 있다. 우리가 그 전제에 길들여져왔고 또 그 생각이 도전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 전제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다. 나는 그 전제를 부정한다.

아이들은 자유 속에서만 자기가 타고난 방식, 즉 좋은 방식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자유가 꼭 필요하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온 학생들에게서는 억압의 결과물들을 볼 수 있다. 거짓 공손함과 가식적인 예의를 드러내 보이는 그 아이들은 정직하지 못하다. 97

 

아주 어려서부터 자유롭게 자란 아이는 거짓된 태도를 취하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 98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아이들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98

 

 

문제아들

 

아이의 범죄는 모든 경우에 사랑의 부족에서 연유한다. 100

 

아이는 본래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떤 다른 것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에고가 충족될 때, 우리는 선이라고 불리는 것을 행한다. 에고가 굶주릴 때, 우리는 범죄라고 불리는 것을 행한다. 자기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자기 에고의 진가를 인정해주어야 할 사회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범죄자는 사회에 대해서 복수한다. 101

 

아이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은 힘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선하다. 사람은 선행을 하기를 원한다.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증오와 반항은 오로지 좌절된 사랑이요 좌절된 힘이다. 111

 

무엇이 처벌이고 무엇이 처벌이 아닌지를 결정하기는 정말 어렵다. 112

 

사랑은 다른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112

 

 

또 다른 문제들

 

자유로워지면 아이들이 거짓말을 별로 안 한다... 아이들은 대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가정일수록 아이들의 거짓말은 번성한다. 두려움을 없애면 거짓말도 사라진다. 115

 

나는 거짓말하는 것과 부정직한 것을 구별한다. 여러분은 정직하더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인생의 큰 문제에서는 정직하지만 사소한 문제에서는 가끔 부정직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에서 거짓말을 한다. ...

대개 어른들의 거짓말은 이타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거짓말은 늘 편협하고 개인적이다. 아이에게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를 평생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115-116

 

 

개인 상담

 

요즘 나는 정기 심리 치료를 하지 않는다. 신경증에 걸린 아이를 치유하는 것은 그 아이의 억눌린 감정을 풀어주는 일이다. 아이에게 정신의학 이론을 자세하게 설명한다거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방법으로는 아이를 조금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점점 더 나는, 아이들이 자유 속에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풀고 마음껏 지낼 때는 심리요법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34

 

장차 치유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할 것이 있다. 친구들에게는 심리요법을 사용하지 말라. 특히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위험하다. 미술 교사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잦다. "네 그림을 보니까 너는 엄마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하는구나." 그 그림에는 한 아이가 도끼를 들고 나무를 자르려 하고 있다.

상징을 해석하는 일은 십자낱말풀이처럼 재미있는 게임이다. 그것은 환자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많은 정신분석가들은 이제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하는 것이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왕도라고 했지만, 프로이트 이론을 추종하는 정신분석가들도 더 이상 꿈을 해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하튼 교사는 상징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가 심리학을 사용하려 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한다. 아이의 꿈을 해석하는 것보다는 아이를 직접 껴안아주는 일이 훨씬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교사는 심리학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135-136

 

내가 사용한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아이들을 대하는 잘못된 방법과 정반대로 햇다는 것이다. 보통 학교에서 도둑질을 하면 그 아이는 회초리로 맞거나 적어도 도덕적 훈계를 들어야 한다. 나는 도둑질을 도덕과는 무관한 문제로 만들었다. 세 학교에서 도망친 전력이 있는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서머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집에 갈 차비가 있다. 벽난로 위에다 놔둘 테니까,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이 돈을 달라고 해라." 그 아이는 서머힐에서 절대 도망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 태도 때문이었을까? 혹은 난생처음으로 자유를 맛본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성공만 한 것이 아니라 실패도 했다. 드레스덴에 있을 때였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여자 아이에게 상자를 만드는 데 너무 많은 못을 쓴다고 말했더니, 그 아이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신도 전에 만난 잘난 체하는 선생들이랑 똑같아." 나는 그 아이와 다시는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없었다. 아홉 살 난 레이먼드에게 용돈을 주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현관문을 훔친 벌로 6펜스의 벌금형이야." 그러자 레이먼드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사건 전에 나는 레이먼드에게 정신병 증세가 있다는 점을 알았어야 했다. 아홉 살 난 아이들에게 모험담을 들려주던 중, 우리가 발견한 금을 마틴이 훔쳐갓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마틴이 울면서 나에게 왔다. "난 절대 금을 훔치지 않았어."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악당으로 만들어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139

 

이제 노인이 된 나는 심리요법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나는 심리요법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못된 결과로 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심리요법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 프로이트는 아이들을 위한 자유를 믿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프로이트는 가부장주의를 고수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심리요법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이지 가족들이 신경증에 안 걸리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42

 

 

건강

 

아이들은 에티켓을 문제 삼는 일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예의라고 불릴 만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146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예의범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가치가 없다. 기껏해야 그것은 관습의 유물일 뿐이다. 진정한 예의범절은 저절로 우러나온다. 146

 

서머힐에서처럼 아이가 자신의 이기심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끔 자유로워지면, 그런 이기심은 점점 이타주의로 바뀌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배려로 변한다. 147

 

우유 문제를 다루어보자. 여러 해 동안 우리 학생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도싯, 웨일스에 있는 목장에서 짠 우유를 직접 받아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온 살균 처리된 우유 외에는 전혀 구할 수가 없다. 또다시 문외한은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저온 살균 처리된 우유는 맛이 없고 발효되지 않는다. 단지 상할 뿐이다. 살균 처리되지 않은 우유를 먹으면 결핵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가난한 아이들이 영양 부족 때문에 결핵에 걸린다. 우리는 늘 전문가들의 손안에서 놀아난다. 148

 

 

성과 남녀공학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을 잘 보냈다. 그들은 자위행위를 했다고 훈계를 듣거나 벌을 받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가정에서 벌거벗은 몸에 익숙했다. 대체로 성에 대한 태도가 건강하고 자연스러웠다. 168

 

남녀공학인 유명한 사립학교에서 온 청소년 몇 명에게, 그 학교에서 이성교제가 이루어지는지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그 대답에 내가 놀라자, 아이들이 말했다. "가끔 남자 애와 여자 애가 친구로 지내는 일은 있지만, 서로 사귀는 일은 전혀 없어." 나는 그 학교 교정에서 잘생긴 남자 아이들과 예쁜 여자 아이들을 보앗던 터라, 학교가 학생들에게 사랑에 반하는 관념을 강요하고 있으며, 대단히 도덕적인 학교 분위기가 성을 금기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 어느 진보학교의 교장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사귀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그가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문제아를 받지 않습니다."

조건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가끔 사랑할 능력을 상실한다. 섹스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소식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젊은이에게 사랑을 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인간적으로 커다란 비극이다. 168

 

젊은이의 사랑에 반대하는 주장들 중 이치에 맞는 주장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주장이 억압된 감정이나 삶에 대한 증오심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들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이며 독단적이고 외설적이다. 170

 

 

극장과 음악

 

연기는 교육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 연기는 대체로 자기과시다. 하지만 연기가 단순히 자기과시에 그쳤을 때, 서머힐에서는 그 배우를 칭찬하지 않는다. ..

연기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동일시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 ..

연기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177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율동은 모든 아이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180

 

 

교사들과 가르침

 

교사들은 나무 뒤의 숲을 보지 못한다. 그 숲은 풍성한 삶, 성격틀에 맞춰 찍어내기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교사들 대상의 강연을 할 때, 나는 교과나 규율 그리고 수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거라고 애초부터 말한다. 청중들은 한 시간 동안 쥐 죽은 듯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한다. 진심 어린 박수갈채 속에 강연을 마치면 사회자가 질문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질문 가운데 적어도 4분의 3이 교과나 가르치는 문제에 관해서다.

무슨 우쭐한 마음으로 이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교실 벽과 감옥 같은 학교 건물이 얼마나 교사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교육의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슬픈 심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목 위 머리 부분만 다룬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핵심 부분인 아이들의 감정은 그들에게 낯선 영역이 되고 만다.

부모들 역시 학교에서 학습이란 측면이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잘 깨닫지 못한다. 어른들처럼 아이들도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 상을 주고 점수를 매기고 시험을 보는 것은 모두 온전한 개성 발달에서 어긋난다. 학자연하는 사람들만이 책을 통한 학습을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학교에서 가장 중요성이 떨어지는 도구다. 아이들에게는 읽기, 쓰기, 산수 세 가지면 족하다. 나머지 필요한 것들은 공구, 찰흙, 운동, 극장, 그림, 자유 등이다.

이제 우리는 학교 공부에 대한 개념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수학, 역사, 지리, 과학, 약간의 예술, 특히 문학을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런 과목들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190

 

학습을 놀이에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게 한답시고 의도적으로 학습에 놀이를 가미해서도 안 된다. 191

 

아이에게 배움을 강제하는 것은 의회의 법령으로 종교를 강제하는 것과 똑같다. 그것은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192

 

청소년들이 하는 학교 공부의 대부분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인내력의 낭비일 뿐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서 놀고 놀고 또 놀 권리를 앗아간다. 아이들의 어깨 위에 늙은이의 머리를 얹는 꼴이다. '교육'은 아이들의 동기를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노려는 욕망, 자유로워지려는 갈망, 그리고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법을 모르는 어른들이 강제로 틀에 맞춰 키워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갈망을 '교육'은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모든 나라가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공들여 학교를 세운다. 하지만 존이나 피터나 이반이, 부모와 교사 혹은 우리 문명의 강압성이 가한 억압 때문에 입게 된 정서적 손상과 사회악을 극복하는 데 학교의 실험실이나 작업실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 교과들이 왜 그렇게 규격화되었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왜 역사는 있고 식물학은 없는가? 왜 지리학은 있는데 지지학은 없는가? 왜 수학은 있는데 시민학은 없는가? 늙은 퍼블릭스쿨 교장의 말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가 그것을 싫어하는 한,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든 아무 상관없다." 193-194

 

사범대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다보면, 쓸모없는 지식들로 가득찬 그 젊은이들의 미성숙함에 자주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많은 것을 안다. 논리에 뛰어나고 고전들을 인용할 줄도 안다. 하지만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에서 그들 대다수는 어린아이 수준이다. '아는 법'은 배웠지만 '느끼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절하고 유쾌하고 의욕에 차 있지만, 뭔가가 부족하다. 감정적 요소, 생각을 감정에 종속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들이 놓쳐버렸고 또 지금도 놓치고 있는 그 세계에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들의 교과서는 성격이나 사랑, 자유, 자기 결정 같은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책을 통한 지식 습득만을 목표로 하는 체계가 지속되고, 머리는 가슴에서 계속 분리되어간다. 199

 

우리네 교육에서 진정한 행위, 진정한 자기표현은 얼마나 될까? 손으로 하는 작업은 전문가의 감독 아래 접시를 만드는 게 고작이다. 유도식 놀이 체계로 유명한 몬테소리 교육법조차, 아이로 하여금 행위를 통해 배우게 만드는 인위적인 방식이다. 거기에는 창조적인 면이라곤 하나도 없다.

창조자들은 자신들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얻기 위해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 학습을 강조하는 교실 안에서 얼마나 많은 창조성이 죽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200

 

공부는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200

 

 

서머힐의 교직원

 

토요일 밤 전체회의에서는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다. 그런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공동체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면 아이들을 완전히 망쳐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간에 나이 많은 아이들 패거리가 늦게까지 자지 않고 웃고 떠들면 어른들은 싫은 소리를 한다. 해리는 자신이 한 시간이나 걸려 현관문에 쓸 판자를 만들어놓았는데, 점심을 먹고 와보니 빌리가 그것으로 선반을 만들어버린 것을 알고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나는 납땜 도구를 빌려가서는 되돌려주지 앟는 아이들을 비난한다. 나이 어린 세 아이가 저녁 식사 후 배가 고프다면서 빵과 잼을 가져갔는데 다음날 아침 복도에 빵 조각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아내는 흥분해 소리를 지른다. 피터는 도예실에서 아이들이 자기의 귀중한 찰흙을 던지며 장난친다고 몺 언짢아한다. 어른들의 입장과 아이들의 부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싸움은 결코 서로의 인격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개인에 대한 어떤 반감도 없다. 이런 갈등으 서머힐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 204

 

당신이 정말 아이의 편이라면 아이는 그것을 안다. 205

 

수업이 강제가 아닐 때, 아이들을 수업에 들어오게 하려면 정말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 물론 내가 원하는 교사는 어느 정도 유머가 있고 위엄은 전혀 없는 교사다. 두려움을 불러일으켜서도 안 되고 도덕가가 되어서도 안 된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아이들에게는 분명 위험한 존재다. 유머는 아이들에게 친근감, 존경을 표할 필요 없음, 두려움 없음, 다시 말해 어른들의 애정을 의미한다. 유머는 대개 위아래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교실이란 울터리를 벗어나 있다. 유머는 교사로서 요구하는 존경을 없애버린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함께 웃는 교사의 웃음은 그를 너무나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웃는' 사람이고, 가장 자쁜 교사는 아이들을 보고 '비웃는' 사람이다. 206-207

 

내가 서머힐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다른 재미난 아이들 사이에서 나도 한 명의 재미난 아이가 될 수 있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미는 수학이나 역사 그리고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다른 모든 교과목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유머는 일종의 정서적 안전판이다. 재미있게 웃을 수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에 죽어 일흔이 되어서야 땅에 묻힌다고 누군가가 썼다. 분명 유머가 없는 사람을 가리켜 한 말이다. 209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209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는 일은 숙련이 필요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212

 

 

종교적 자유

 

행복은 모든 아이들의 권리다. 미래의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을 대비한답시고 아이들에게 힘든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 216

 

아이들을 도덕적으로 훈계해야 할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심리학적으로 잘못이다. 어린아이에게 이기적이지 말라고 요구하는것은 잘못이다. 모든 아이들은 이기주의자다. 온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이다. 아이들의 열망은 강렬하다. 아이들을 오직 바라기만 하는, 세상의 왕이다. 사과를 손에 쥐면 오직 사과를 먹겠다는 바람 한 가지뿐이다. 그리고 엄마가 동생과 사과를 나눠 먹으라고 하면 아이는 동생을 미워하게 된다.

아이에게 이기적이지 말라고 '' 가르쳐도 이타주의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런데 아이에게 이기적이지 말라고 가르치면 아마 이타주의는 전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타적인 아이는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의 이기심을 억업하면 그 이기심은 고착된다. 충족되지 않은 바람은 무의식 속에 잠재한다. 이기적이지 말라고 가르침을 맏은 아이는 평생 이기적인 데 매달릴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훈계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219-220

 

내가 아는 가장 행복한 가정은 부모가 도덕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숨김없이 정직한 가정이다.... 거짓된 위엄과 강요된 존경은 사랑과 거리가 멀다. 강요에서 나온 존경에는 '' 두려움이 따른다. ..

잘 자란 아이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숨을 쉰다. 그것은 바로 아이가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표시다. 220

 

만약에 아이가 어떤 것을 죄악이라고 배운다면 삶에 대한 그 아이의 사랑은 분명 두려움과 증오로 바뀐다. 자신들이 자유로울 때 아이들은 결코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221

 

 

서머힐의 졸업생들

 

송공에 대한 나의 기준은 '즐겁게 일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230

 

"열한 살이 되었는데 아직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단 말이야!"하고 큰소리치는 아줌마들이 있게 마련이다. 바깥의 환경은 온통 놀이를 반대하고 공부에 찬성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렴풋하게 느낀다. 243

 

 

서머힐의 미래

 

나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지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익히려 들지 않거나 혹은 아예 그런 안목을 익힐 여지가 없는 부모를 만나면 화를 낸다. 267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면 소극적인 구경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 한편 나는, 어떤 아이가 여려 해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 보이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았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 내면의 본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성격 형성하기가 바로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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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설령 천하는 얻었다 하더라도

학생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열심히 공부하며 온갖 능력을 쌓고 있는데, 대부분 아는 건 많은데 다룰 줄 아는 것은 없는상태로 후퇴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이 수많은 지식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능력할까? 이 무기력과 무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노오력하며 자기를 계발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퇴행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기쁘기는 커녕 자기 자신을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을까? 13-14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를 인용해, “사람이 천하와 반목하더라도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편을 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은 정확히 정반대다. 14-15


이미 한국 사회는 세상을 돌보느라자기를 망각하고 망친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망각하고 망친 채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들이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모르는 세상을 만들었다. 18


훌륭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훌륭해지기 위해 자기를 돌보지도 않은 자가 다른 사람이 훌륭해지도록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 ...

역사 속의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했다. 지혜로운 자는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의미하지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공부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공부의 본질은 지혜에 대한 사랑에 있다. ...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망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공부를 통해 양성해야 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모르는 게 뭔지 알기 때문에 알고자 노력하고, 알고자 하는 그 노력이 바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20-21


철학자 존 듀이는 배움의 근본적인 특징이 의존성이라고 말하며 섣부른 독립을 경계했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살아간다는 게 곧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은 이미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의착하며 배우고 있다. 따라서 홀로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이미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의착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했을 뿐이다. 이게 배움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교만이다. 공부는 홀로라는 교만에 저항한다.

그렇기에 공부(工夫) 공부(共扶)가 된다. 더불어 돕는 게 공부다. 22


공부와, 공부를 통한 성장의 기쁨을 망가뜨린 현실에 저항해야 한다. 이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공부를 통한 성장의 기쁨을 다시는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공부가 어떤 기쁨을 주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24


나는 이 책을 통해 공부가 어떤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말하려 한다. 그것을 한계, 능수능란함, 자유, 탁월함, 멋짐, 향유라는 말로 설명할 것이다. 25




01 공부할 이유가 사라지다

01-1 신분 상승과 반학교 문화

상당수 학생은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 잘한다는 평가를 공적으로 받아본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자기가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하고 싶은 것이 뭐냐?”라는 말에 하나를 꼽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다. 그런데 그 가장 긍정적이고 확정적인 하나를 찾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이 경우에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뭐냐?”, “‘어떻게는 살기 싫은가?”라는 질문이 좀더 합리적이다.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나 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지난 경험 속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것이다. ..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 그것을 피해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의 범위를 좁혀가다 보면 마침내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부정성에 기초한 합리적 사유의 방식이다. 37-38


가르치는 사람이 학교 안에 갇히면, 그는 학교에 적응하고 최적화된 학생들에게만 다가설 수 있다. 39


예측 가능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계산을 하고 미래를 기획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예측 가능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과거를 보며 성찰하고 미래를 보며 기획한다. 성찰과 기획, 이것이 근대 사회에서 사유라고 불리는 것의 핵심을 차지한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찰하여 그 과거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과 남은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그것을 밑천 삼아 내 삶을 설계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 ...

기획은 늘 미래를 생각하게 해 사람을 허황되게 만들 수 있기에 기획 중심의 사유는 경할 필요가 잇다.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삶을 나쁜 의미에서 공학적으로 바라보며 현재를 억압하거나 차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경계한다면 기획 역시 성찰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교훈을 주고 배움을 촉진할 수 있다. 40


존 듀이의 경험론. 듀이는 인간의 경험은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다. 우리가 불에 손을 집어넣는 것은 능동적인 경험이다. 반면 불에 손을 데는 것은 수동적인 경험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불에 손을 넣으면 화상을 입는다. 그러니 다시는 불에 손을 넣지 말아야지.’라는 교훈을 얻는다. 듀이는 이때 얻는 교훈이, 손을 데는 수동적인 겪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이란 능동적인 이 아니라 수동적인 겪음에서 촉발되기 때문이다. 바지런히 무엇인가를 하는 동안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대상에 힘을 가하는 게 아니라 대상이 나에게 힘을 돌려줄 때, 그 반발력을 느끼는 것이 바로 겪음이다. 무엇인가를 한 것이 튕겨 나올 때, 이 대상에 부딪쳐 반발되는 것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 이게 왜 이러지?’하며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대상의 현존을 인식하며 그 대상의 힘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골똘히생각하게 된다. 그 힘의 실체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정신을 팔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벌어진 일에 집중한다. 이 집중이 다름 아닌 생각이다. 이렇게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겨우 가능한 게 신체를 최소한으로 활성화하는 산책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통해 교훈을 얻기 위해서, 가만히 있을 줄 아는 몸이 만들어져야 한다. 생각하기 위해 멈출 줄 하는 몸, 이 몸이 공부하는 몸이다. 43-44


폴 윌리스는 <학교와 계급 재생산>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자식들이 왜 역시 노동계급이 되는지 연구했다. 그 책에서 윌리스는 노동계급의 자식들은 일찌감치 교육의 이데올로기를 간파한다고 말한다. , 학교 공부는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그들이 학교 권윙 순응하게 만드는 지배의 도구다. 그 약속은 개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언정 전체 노동계급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꿰둟어 본다.

학교의 체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간파한 학생들은 학교에 반항(counter)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저항은 학교를 떠나는 것과 같은 전면적인 거부는 아니다. 대신, 학교 안에 머무르며 학교의 권위에 저항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수업 시간에 깐죽거리고 개긴다거나, 짓궂은 질문을 하다거나, 수업을 교란한다거나 무단 조퇴를 하거나 땡땡이를 치는 것 등이 반학교 문화의 특징이다. 학교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사회의 약속을 승인하기를 거부한다.

일차적으로 이들이 학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 권위의 원천인 지식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53


반학교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학생들의 교복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교복은 학교의 권위에 대한 순응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교복을 주어진 그대로 입는 것은 찐따같은 일이다. .. 교복을 얼마나 훼손하는지에 따라 자신이 학교의 권위에 얼마나 저항하는지가 드러난다. 55


반학교 문화가 가진 역설이 있다. 반학교 문화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문화적 현상이다. 따라서 반학교 문화에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세계의 전부다. 학교 바깥에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56



01-2 자아 실현과 탈학교 문화

저항 담론이 형태로 공부의 새로운 목적을 제시하는 흐름이 제도교육 안팎에서 나타났다. 제도교육 안에서는 전국 교직원노동조합과 참교육 학부모회로 대표되는 교육운동이 등장했다. 바깥에서는 공동육아, 대안학교와 같은 흐름이 만들어졌다. ..

이들은 교육이 신분 상승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공부가 좀 더 자유롭고 즐거운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공부가 절대다수의 학생이 자신의 꿈을 탐색하고 발견하고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9


신분 상승이 목적이던 시대에 욕망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었다.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윤리적/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 단적으로, 의대나 법대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부모의 바람과 달리 인기 없는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부모로부터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너는 네 생각만 하냐?”

따라서 그 시대에 개인이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추구하는 기준은 욕망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62


나는 OO가 되고 싶은데라는 말로 교육의 권위와 정당성에 도전한 것은 이런 욕망의 주체로서 개인이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64


국가의 일원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행복의 원천이라며, 사람을 개인으로 해방하자는 강력한 요구가 바로 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65


학교 자체가 무의미했지만 어른들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오는 것이 일이고, 학교에 오는 것으로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 교사들 역시 이들을 보며 오는 것만으로도수고했다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교사나 부모가 보기에 이들은 완전히 무기력했다. .. 학교를 벗어나면 이들은 살아났다. 71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자기 표현의 욕망을 드러냈지만, 학교는 여전히 획일주의적 군대 문화였으며 수업은 입시 위주의 암기식 공부였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에 몸을 어거지로 끼워 맞추고 있으니 교실에서 아무리 잠을 자고 팬클럽 활동을 한다고 해도, 학교는 기본적으로 폭력적이고 무의미하면서 고통만 유발하는 공간이었다. 학생들의 몸은 이 공간을 견디지 못했다.

이때부터 학교는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제도교육은 학교 붕괴, 교실 붕괴 담론에 시달렸다. 72-73


의사소통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문제를 함께 알아내고 해결해가는 경험이 필요했지만 여전히 학교 안에서의 의사소통은 일방적인 의사 전달이었다. 서로를 준중해가며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니 학교내의 관계가 폭력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74


학교 폭력에 관한 담론도 폭증했다. 물론 이 말이 학생 간의 폭력이 이 시기에 급증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전과는 달리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74-75


폭력에 관한 한 학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도고 있었다. 욕망이 분출되는 시기에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는 곳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있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나중을 위해 지금 당장은 참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75


1990년대 후반부터, 저항과 해방의 언어였던 꿈을 위한 교육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인상을 찌푸리며 꿈이 없다고 말하거나 꼭 꿈을 가져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학생이 생겼다.

꿈이 해방의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억압의 언어가 된 이유는 꿈을 묻는 교육이 간과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꿈을 묻는 이들은, 이 꿈이라는 게 긴 인생 중 어느 시기에 묻고 찾고 발견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질문하기 않았다. 진보적인 사람도 보수적인 사람도 그것은 당연히 청소년 시기에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대학 가기 전에 꿈을 발견하고 준비까지 맟쳐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비판했지만, 생애사적 기획의 관점에서 보면 꿈을 묻는 교육을 말한 사람들조차 이 모든 것을 열여덟살, 즉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 이전에 해내야 한다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75-76


나는 내 아이가 학교 공부를 잘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라며 항변하는 부모가 있다 그러나 이 부모들 역시 다른 방면에서 자녀가 폭풍 성장하리라 기대한다. 기타를 치면 기타에서, 농사를 지으면 농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대가 되어서도 자기 자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발견하지 못했거나, 하고 싶다고 말한 그 무엇을 잘하지 못하면,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정점에 이른다. 자녀가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되었을때 부모가 집중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잘하는 것이 하나는 있어야지, 너는 도대체 잘하는 게 뭐냐?”

이런 부모에게, 자녀가 어느 정도 잘하기를 바라느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이 비슷하다. “일등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지요.”라는 답이다.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다시 물어보면 최소 중간 이상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하는 것이 된다 영역이 학교 공부에서 다른 분야로 옮겨간 것일 뿐, 명시적으로 일등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 해도 사실상 중상위권 안에 들기를 바라는 일둥주의자들인 것이다.

그 결과, 탈학교 시대의 후반기로 갈수록 어린이/청소년을 해방하고자 한 언어인 은 본의 아니게 억압의 언어가 되었다. 꿈을 가지지 못하면 지질한사림이 되고, 꿈을 가지면 그 모든 준비를 열여덟 살 이전에 완수해야 하는 강압의 언어가 된 것이다. 오히려 입시에 의한 압박보다 꿈에 의한 압박이 사람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비참하게 만든다. 78-79



01-3 교육 불가능과 즐거운 학교

경제 성장은 1997년의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 이른바 생존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82


아이도 부모도 신분 상승이 가능하지 않다는것을 분명이 알고 있었다.

신분 상승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생존과 계급 재생산이다. 자식이 부모보다 잘살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83


학벌이 아래로부터 붕괴했다. 상위권 대학 중심의 대학 서열은 여전히 강고한 듯 보였지만 그 아래의 학벌은 무의미해졌다. ..

서울데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취직을 통해 경제자본이 될 수 있는 교육자본이다. 그 이하의 교육자본은 자본으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했다. 교육이 생존의 도구가 되었다는 증거다. 84

생존이 지상명령이 된 사회에서 중산층은 더욱더 교육에 올인했다. ..

부모가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이라 해도, 그 정도의 생활수준을 자식이 유지하려면 자식 역시 그런 전문직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중산층은 자식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건다. 거기에 그 가족의 계급적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교육 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전문직 중산층도 그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휘는 지경에 이르렀다. 85


이들은 사교육비가 이 정도 비싼 것이 교육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여 시골의 못살지만 공부를 잘하는학생들을 아예 배제하는 좋은 전략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살인적인 사교육비를 기꺼이 지출한다.

이 상태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도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공부에만 투자하도록 강요한다. 이전의 부모 사대와 달리 이들은 자녀가 책을 읽는다고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 그 책이 대학에 들어가는 데 유리할 때만 환영한다. ...

진보적인 부모가 바라는 것은 학교 공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입시와는 거리를 두지만, 그럼에도 자녀가 읽는 책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발달 단계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두고 평가하고 검열한다. “아직은 네가 볼 책이 아니야.”라거나 그거보다는 이 책이 나아.”라며 자녀가 읽을 책을 부모가 고르고 정한다. 86-87


정신의학자들은 사람의 성장이란 좌절을 경험하면서 좌절을 다루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능감은 어렸을 때 안정감을 갖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성장과 더불어 깨진다. 자신을 만능의 존재로 바라보다 좌절을 다룰 줄 아는 존재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좌절은 사람의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부 이외의 것을 부모가 다 알아서 해주고 자기는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며 늘 성과를 내다 보니, 만능감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화되며 좌절을 다루는 역량은 커지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93


<아이들의 숨겨진 삶>에서 저자는 또래집단을 통해 어린이/청소년이 추구하는 것은 인기와 우정이라고 말한다. 인기와 우정은 다른 것이다. 인기가 많다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고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다. 저자는, 어린이/청소년의 세계에서 인기가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라면 우정은 이면도로라고 말한다. 고속도로에서 서로 빨리 가기위해 질주하는 것처럼, 인기를 얻기 위해 서로 우열을 가르고 경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우정은 경쟁적이지 않다. 사람의 삶에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것은 우정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또래 집단에서 우정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기 역시 중요하다. 인기를 얻기 위해 경쟁함으로써 정치를 배우기도 하고 타협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기술도 배운다. 1장에서 말한, 삶을 통해 배우는 과정 중 하나가 또래집단 내부의 위세 경쟁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야합이나 배제, 그리고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자기 성향을 알게 되고 그 성향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한다. 94


다른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니다 내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에서 딱 중간이라고 불렀던 학생들이다. 과거에는 이들이야말로 학교에서 가장 고통받던 학생들이었다. ...

학교에서 이들은 존재감도 없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학교에서 사물함보다도 더 존재감이 없었다고 말한다. 교사들이 자기 이름을 외우는 경우는 초등학교 이후로 거의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니 교사들이 이들을 주목할 이유가 없었다. ..10년 전부터 재미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고통스럽지 않냐?”고 물어보면, 당황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이렇게 답하는 학생들에 관해, 다른 학생이나 교사는 그들이 전형적으로 딱 중간에 속하는 이들이하고 설명했다. 이들은 공부는 싫지만 그래도 학교 오는 것은 재미있다고 말했다.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다고, 지루한 수업 시간에는 자면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학교는 밥도 주는데 엄마가 해주는 밥보다 맛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

이 학생들에게 학교가 천국이 된 이유가 있었다. 학생이 사고를 치지 않으면, 학교는 어지간한 일에는 눈을 감고 못 본 척했다. .. 교장이나 관리자들도 굳이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통제한다고 해서 통제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공부하는 학생'들이 서울대데 가서 학교를 빛낸다면, 이들은 자기가 다치거나 남을 다치게 하지만 않아도 학교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게 중심이 아니라 서로 가급적 덜 건드리고 덜 괴롭혀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심이 되었다. 104-106


억지로 공부를 시키려 하는 대신 모른 척하면서 내버려두다 보니 '딱 중간'에 속하는 학생들에게 학교가 '재미있는' 공간이 되었다. 먹고 자고 노는 총체적인 삶의 공간이 된 것이다. 자조적으로 말하면, 진보적인 교육계 일각에서 학교는 공부하는 곳을 넘어 삶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것이 전혀 의도하지 앟게 뒤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107





02 자기계발의 공부에서 자기 배려의 공부로

02-4 폐기나 보완이 아니라 전환이 필요한 이유

더 이상 과거처럼 성장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 살밍 전환되어야 한다. 공부가 그 전환을 슬기롭게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삶을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며,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탐색하고 준비할 수 있는 공부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내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삶의 전환을 위한 공부의 전환이다. 116


모든 것을 바꾸자면서 아무것도 안 바꾸는게 바로 폐기의 니리다. 116


쓸모를 지금 당장’ ‘이라는 말에 종속싴버리는 순간, 공부를 하는 사람은 시간의 노예가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준비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며, 지금 나의 수준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의 속력으로 얻을 수 있는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지금 당장의 평가에서 성과, 스펙이 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117-118


이게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들이 하는 것은 일단 다 해놓고 봐야 한다는 초조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

실제적이라는 명목으로 공부의 목적을 이처럼 단기화하는 것이 당장은 학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어느 정도 공부로 유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긴 호흡의 공부를 통해서만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만들지 못한다. 공부를 지속할 힘이 있는 몸 말이다. 공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견디고 즐기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118


우리가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하는 것은 배울줄 아는 사람, 즉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배움의 주체다. 121


답을 스스로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제시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른다. ‘지금 당장 쓸모 있는 것을 요구하는 제자에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스승은 똑같은 말을 한다. “너는 배울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당장 돌아가거라.”

이게 한국에서 스승은 찾지 않고 자기계발서만 범람하는 가장 큰 이유다. 124


이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초조함이다, 단기간에 실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지금 배운 것이 시간나이비면 어쩌나 하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다. 좀처럼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 초조함이야말로 지금 사람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초조해서 긴 호흡으로 자기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구조적인 문제에 관한 고민과 토론을 관념적인 탁상공론으로 여기게 한다. 여기서는 해법을 찾을 수가 없다. 125


지금의 교육이 학생들이 자기 미래를 발견하고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도울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이 실제적 도움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여기에서 역설이 벌러진다. 실제적 도움을 강조하며 현재의 교육과정이나 교육 내용의 전면적 폐기 혹은 대대적 보완을 주장하는 입장은,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삶의 전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현재를 강화하는 공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현재의 미완의 무엇이지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것을 바꾸자고 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126


교육의 관점에서 노오력이라는 말을 들여다보자. ‘노오력이라는 말은 청년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청년들이 취직하지 못하거나 성공하지 못했을 때 그건 다 너의 잘못이라는 이 사회의 비난을 자조적으로 비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130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으면 네가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증거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과를 내야만 내가 노력을 다한 것이 된다. .. ‘성과주의.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노력해서 안 되면 더 노력해야 나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노력의 사이에 자만 늘리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노오력이다. ...

황당하겠지만, 를 무한대로 늘리면서 실패를 그 사람의문제로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교육의 이상이다. ..

교육이 만든 말이 무한한 잠재력이다. 131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이 교육적 배려의 마링 성과주의와 결합하면 지옥을 만들어 낸다. 사람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고, 노력을 하지 낞은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 서오과를 못 내고 그만둔다는 것은 바로 가장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자기 자신을 포기한 것이므로, 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132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교육적 언어였던 무한한 잠재력, 이처럼 사람의 성장을 도모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파괴하는 말로 돌변해 버렸다. 133


관건은 이 해도 안 된다는 것에 기초해 우리가 어떤 성장을 꿈꿀 수 있고 어떤 사회를 설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지금 교육의 폐기나 보완이 아니라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진로 교육보다 내가 어허게 살아야 내 삶을 돌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는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자아실현에서 자기에 대한 배려/돌봄으로의 전환이라고 제안한다. 134



02-5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것

자기 배려를 위한 공부이 중요한 두 측면.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자기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 자기에 관한 앎이 있어야 자기를 보호하고 배려할 수 있다. 자기에 관한 앎 없이는 자기에 대한 배려도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 ‘정신이다. 이것을 자기에 대한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한 망각이야말로 자기 배려의 적이다. 137


자기 재능의 한계가 어디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조금 허탈하겠지만, 잡은 충분히 햅았을 때. 내 한계까지 왔다는 것은 스스로 느낄 때까지 해보았을 경우에만 알 수 있다. 여기에 충분히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그게 충분한지 아닌지를 자기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이 그것이 충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157


스승의 역할은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가 재능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동행하며 그것을 깨우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제자가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스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158


현명한 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삶을 노예의 삶이라고 불렀다. ‘하고 싶은것에 끌려다니는 삶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의 현자들은 욕망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쳤다. 욕망의 주인이 되는 길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언제든 그것을 그만 둘 수 있는 것이다. 주인의 힘은 이루게 하는 힘이 아니라 그만 둘 수 있는 힘이다. 161


최고가 아니라 해도 각자의 재능 역시 이런 선물처럼 주어진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각자 하늘로부터 얼마나 풍성한 선물을 받았는지 비교하는 게 아니다. 관건은 그렇게 선물로 받은 재능을 각자 얼마나 잘 쓰고 있는가다. 이렇되면 주어진 것 자체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가, 그 선용의 정도가 탁월함의 기준이 되니다. 이것이 인간이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야 하는 탁월함이다. 162



02-6 자기를 배려하는 법

소크라테스는 자기에 관한 앎자기에 대한 배려를 강보하면서 자기/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자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나에게 속한 것이며, 마지막이 자기/나에게 속한 것에 손한 것이다. 이를테면 내 몸은 나에게 속한 것이다. 그리고 구두는 낭에게 속한 것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나에게 속한 것이지 자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자기 배려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나에 속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럼 배려의 대상인 는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대신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 바로 나에게 속한 것이다. .. 나에게 속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무엇보다 우선 재산, 즉 소유가 잇다. .. 내가 나를 대하는 법은 배려. 반면, 나이게 속한 것이나 내가 가진 것은 배려가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다. .. ‘는 나의 목적이지만 나에게 속한 것은 나를 돌본다는 목적으 위해 활용하는 수단이다. .. 소유에 넋이 나가는 순간 내가 노예가 된다.

둘째, 육체가 있다. .. 육체를 잘 돌보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 보다는 역시 육체로는 환원되지 않는 를 위한 것이다. 육체 자체가 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육체 역시 배려의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 지위나 정체성 같은 것이 있다... 지위나 정체성 같은 것은 사회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거이다. 이것 역시 나 자체일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은 나의 속성에 불과하다. ..

이런 것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 자신을 도구화하게 된다. ..

마지막으로, 욕망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나의 욕망이다. .

나를 곧 나의 욕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욕망을 실현하려는 삶은 욕망의 노예가 된 삶에 불과하다. .. 모두가 바라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며 사는 삶은 역설적이게도 자기가 아니라 자기 욕망이 주체인 삶이다. .. 이런 점에서 욕망은 배려가 아니라 다스림의 대상이다. 165-169


나에게 속한 것의 경계에 있는 것이 있다. 이름이다. ...

이름은 활용이 아니라 돌보아야 할 대상이다. .. 이름은 그 사람의 개체성과 그 개체성의 존엄을 보증한다. 나아가 이름에는 자기 자신의 뿌리와 터전의 존엄과 명예가 걸려 있다. 이런 점에서 이름이야말로 그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의 사회적 생명 전체라고 할 수 있다. 170-171


우리는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 이는 자기에 관해 생각해본 살맘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내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게 무엇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숭산 큰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고 말했다. .. 따라서 자기에 관해 안다는 착각이 자기를 망친다. 자기 아닌 것을 자기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 반대로, 내가 나에 관해 모른다는 자각이 자기를 배려하게 한다. 여기서 자기 배려의 중요한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177-178


자기 배려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모르는 존재, 알 수 없는 존재, 즉 철학에서 하는 타자다. 사르트르는 타자의 가장 큰 특징이 도대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을 제외하면 내가 그를 대할 다른 방법이 없다. .. 모를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 자기 말을 듣기, 이것이 자기 배려의 출발인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원래 이 말은 너 자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알라는 말이었다. 그 모르는 것 중의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면, 이 말은 이렇게 된다. 너 자신이 스스로에 관해 모른다는 것을 알라. ..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오직 그 아는 것을 활용하고 다룰 수 있다. .. ‘모름은 무지가 아니라 지혜의 원천이다. 자신이 모르는 게 뭔지 알고 다룰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아디인지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178-179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모르며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낯선 자기와의 만남은 기쁜 일이 된다. 내가 나에 관해 알고 있다는 착각과 미망에서 깨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180


자기를 배려한다는 것은 자기를 모른다는 사실, 모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모르는 자기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를 안다는 것을 배움의 과정의 문제로 전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배움의 과정에서 자기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아니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 중에서도 자기가 언제 세상을 배움의 자세로 대하는지에 관한 앎이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존 듀이가 말한 성장과 배움에 관한 이론이 유효하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배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이미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적응과 변용을 위해 현재의 상태와 변화를 읽어내고 적절한 대처법을 찾아내는 능력, 이것이 배움의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 아니 더 넓게 말해 생명체라면 모두 배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배우는 능력 자체는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선물(gifted)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배우는 방식은 다른 사람이 배우는 방식과 다르다. 각자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파악하고 그 원리를 이해한 후 그것에 맞추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배우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가 배우는 방법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다. 내가 어떻게 배우는지 모른다면 모르는 것을 중심에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기가 어떻게 배우는지 아는 사람만이 배움을 중심에 놓는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배우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배우는 법을 알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것처럼, 무엇보다 자기에게 집중해야 한다. 대상의 아름다움, 혹은 변화를 주고 싶은 대상에 넋이 나가버리면 자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배움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움의 과정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지식과 기술에 집중해 그것을 습득하는 속도에만 신경 쓰면, 그 속도가 기대보다 느릴 때 곧 흥미를 잃고 짜증을 내게 된다.

그게 아니다. 목적의식적인 배움의 과정에서는 자기가 어떻게 배우는지를 깨닫기가 좋다. 배움의 과정에서 자기에 집중한다는 것은 내 배움의 기술을 관찰하고 파악한다는 뜻이다. 어떤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지금 배우고 있는 그 지식과 기술의 기량만 느는 것이 아니다. 배움의 기술 자체를 동원하고 배우면서, 배움의 기량이 향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의 과정에서는 내 배움의 기술을 관찰하고 파악하기가 좋다. , 배움의 과정에서 자기에 집중한다는 것은, 자신이 배움에서 어떤 기술과 방식을 사용하는지 관찰하고 파악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탁월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사물과 사태를 관찰하는 힘을 키우는 게 매우 중요한 이유다. 전통 사회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배우는 방법과 힘을 알게 하기 위해 다양한 놀이를 만들어 권장했다. 예를 들어, 남자 어린이들이 주로 하던 전쟁놀이는 지형지물과 변화를 관찰하고 파악하고 이용하는 기예를 늘리는 데 탁월한 놀이였다. 어떤 놀이는 균형감각을 키워주고, 어떤 놀이는 협력의 기예를 키워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놀이를 해보는 과정에서, 어린이들은 자기가 어떤 놀이를 특히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지 구분하게 된다. 이 선호는 놀이 자체의 재미에서 기인하기도 했지만, 어린이가 자기 배움의 태도를 파악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반면, 어린이가 좋아하지 않는 놀이는 적응하고 파악하고 기예를 늘리는 데 서투른 놀이였다. 좋아하는 놀이는 재미를 넘어서 자신이 가진 배움의 힘과 방법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놀이였다. 이렇듯 놀이의 역할은 자기가 배우는 태도와 힘을 파악하고, 그 힘과 태도를 선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놀이는 재미뿐만 아니라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182-185


스스의 역할이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를 자 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의외로 내가 나를 잘 알기는 힘들다.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스승은 제자의 기량과 그 한계뿐만 아니라 제자가 배워나가는 태도를 관찰하고 파악하는 게 전문인 사람이다. 185


세상을 대하고 집중하고 그 집중을 지속시키는 나의 태도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자신에 관한 앎이다.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자기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알아간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듀이가 공부의 과정을 통해 사람은 학습하는 방법을 학습한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승산 큰 스님의 화두인 오직 모를 뿐’ ... 스님의 화두를 디딤돌 삼아 궁리하다 발견한 내 배움의 힘이자 방법, 태도는 오직 물을 뿐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었다. 질문이 주어지면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 질문이 타당한 질문인지, 의미 있는 질문인지, 질문에 관해 질문을 할 정도로 끊임없이 묻는 것이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185-186


자기를 배려한다는 것은 자기의 성장을 돌보고 지속적으로 도모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야 나의 삶이 서사적인 것이 되고, 그런 서사적인 삶이 되어야 그걸 자기 삶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삶에 이미 자기가 없는데 자기에 대한 배려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

자기를 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하는 자기 태도를 안다는 말이 된다. 그래야 자신의 성장을 목적의식적으로 도모하며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회피하여 무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9


자기를 배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에게 넋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를 배려할 수 있다. 190


부모들에게, 자식이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괴롭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면 다들 괴롭다고 대답한다. 그럼 그 괴로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는가를 물어본다. 그 무엇보다 어렵다고 대답한다. .. 그래서 다시 아니, 자기 마음도 못 다스리는 분이 어떻게 남의 마음을 바꾸겠다고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말문이 막힌다. 190-191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나쳐 자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넋을 놓는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자기도 배려하지 못하고 자식과의 관계도 망친다. 자기 자신이 성장해야 하는 문제를 자식의 공부 문제로 돌려버린다. 191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타자라고 하며, 타자의 ‘3대 마왕이 있다. 그 첫째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둘째가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이며, 셋째가 이 둘을 합쳐놓은 존재인 자식이다. 이들을 만날 때 깨닫게 된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말이다. .. 완전히 깨닫게 된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말이다. .

이 순간 사람은 타자의 끝판왕을 만난다. 3대 마왕의 뒤편에 숨어 있던 끝판왕 말이다. 그게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야말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타자의 끝판왕이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기예의 한계에 부딪치고 나서야 내가 내 마음 다스리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다. 나에게 집중할 때 이 문제를 다룸의 기예, 즉 자식이 아닌 내 배움의 문제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문제를 나 자신의 배움의 문제로 전환할 수 있는가. 이렇게 전환해야만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재능의 문제를 기예의 문제로 전환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 기예의 문제로 전환할 때,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문제를 배움의 문제로 전환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으며 해결할 수도 없다. 이것이 자기 배려의 초점이다. 전환의 배움은 문제를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192-193




03 공부, 재미에서 기쁨으로

03-7 공부, 성장의 기쁨

해치우는 것으로서의 공부에는 해보는 것만 넘쳐난다. 더구나 이 해치우는 것에는 해보고 난 뒤 결과가 돌아와 나에게 교훔을 주는, 그런 겪음이 없다. ..

이런 공부에는 연속성이 없다. 앞에 한 공부와 뒤에 하는 공부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과 연속성이 없다. 197


삶에서 배움은 필연적인 것(necessity)이다. 듀이가 쓴 <민주주의와 교육>의 옮긴이인 이홍우가 주석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necessity는 필요성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필연성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필요성으로 번역한다면, 이 말은 공부는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 갈 수 없다.한편 필연성으로 번역한다면, 이것은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의식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공부가 함께한다는 뜻이 된다. 전자는 살아가기 위해 목적의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 되고, 후자는 살아가는 한 자연발생적으로 사람은 배우고 있다는 말이 된다. ..

성장의 핵심은 연속성이다. 경험의 갱신을 통해 삶이 연속적으로 진행될 때, 우리는 그것을 성장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바로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삶의 연속성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목적의식적인 과정이 바로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교육이란 자기 경험을 연속적으로 바라볼 줄 알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성장의 기쁨은 연속성에 있다. 198-199


생각의 핵심은 연관 짓는 것에 있다. 지금 일어나는/하는 일과 뒤에 벌어질 일을 관계 지어 생각하는 것이 지적 활동이다. ...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 즉 연관성을 알게 될 때 무질서해 보이던 것의 질서가 보인다.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질서가보이면 내가 그 사이 어디에 개입해야 하는지 보여서 통재할 수 있다. 개입을 통해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힘이 지적 쾌감을 준다. ..

지적 쾌감은, 내가 알지 못했다면 연관 짓지 못할 것을 연관 지음으로써,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기량이 늘어나는 데서 온다. 따라서 지적인 흥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결과에 관한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한 사람만이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에 지적인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결과에 관심이 있어야 결과를 예상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현재의 조건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또한 가능한 대안들 사이에서 적절한 수단을 고른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머릿속에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하고 궁리를 한다. 이것이 지적인 활동이다.

결국 지적 활동이란 원인과 결과, 자기 행동과 영향의 연속성을 가늠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적 활동은 연속성에서 중간 과정을 발견한다. 사람이 지식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작 단계의 조건과 예상되는 결과 사이에 무엇인가있다는 것을 알 때다. 그 무엇을 알면 시작과 결과를 연결할 수 있다. ‘현재의 힘도달해야 할 목적사이를 연결하는 수단을 듀이는 중간 조건이라고 말한다. 듀이는 사람들이 중간 조건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바로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이 장차 예견되는 소망의 결과에 도달하는가의 여부가 그것에 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중간 조건을 알아야 과정을 통제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지적 활동이란 중간 조건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과정이다. 201-202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을 그저 경험의 수준으로 내버려두지 낞고 그 이치와 원리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지적 과정인 것이다. 203


초심자일수록 배움의 과정에서 그 배움의 결과가 자기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 예상되는 결과에 자신이 영향력을 가지고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204


배우는 이의 기량으로 시작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면, 현재 배우는 이의 삶/수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을 시작점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중간 조건을 발견하는 것 또한 배우는 자의 기량에 맞춰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배우는 자의 한계와 기량을 파악하고 아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205


학교와 가튼 교육현장이 배우는 곳이고 배움을 장려하는 곳이라면, 모르는 자의 용기를 환대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이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칭찬하는 곳이 배움의 공간이다. 따라서 배우는 사람이 모른다고 말할 때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보다 환대하며 기뻐해야 한다. 그 모르는 자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이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7


미래가 예측되지 않거나, 미래를 안다 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결코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214


진지하다는 건 재미를 파괴하는 짓이고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되는 세상이다 바로 이런 현상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생각이 깊어지면 설명충’, ‘진지충’, 나아가 씹선비라는 욕망 먹는다. 굳이 말을 하려면 세 줄 요약이 가능한 사이다같은 말만 해야 한다. 길게 이야기해서는 절대 안 되고 복잡하게 말해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이 서사적인 삶을 추구하기가 힘들어진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가 횡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이 시대에 성장의 기쁨을 느끼는 것은 괴로움을 감수할때만 가능하다. 자칫하면 고립되고 외로워질 수 있다. .. 공연히 어려운 이야기를 해서 좋은 자리를 망친다는 핀잔을 듣기 쉽다. ‘프로 불편러라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제목처럼, 이 시대에 성장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215-216


나는 앞으로 두 가지 기쁨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나는 자유와 창조의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향유의 기쁨이다. 사람은 배움으로써 이 두 가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의 법칙을 알고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는 선용을 넘어, 그것을 변용함으로써 사람은 자유로워지고 창조의 기쁨을 누린다. 창조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능수능란한 기예를 배우고 익히며 연마하는 과정이 바로 공부다. 한편, 인간은 창조하지는 못할지라도 여전히 공부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릴 수 있다. 창조하고 향유하는 삶, 이것이 멋진 삶이며, 멋지게 사는 것은 삶의 목표이자. 공부의 쓸모다.

창조와 향유, 이 모두에서 인간이 누리는 기쁨이 바로 성장의 기쁨이다. 216-217



03-8 공부, 자유와 창조의 기쁨

기예란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내가 얼마나 잘 다루는가의 문제다. 기예에서 탁월함은 다룸의 정도가 된다. 다룸에서 관건은 5분의 숨과 1분의 숨을 비교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인 1분의 숨을 얼마나 잘 다루고 그 숨으로 무엇을 하는지다. ...

그러므로 다룸은 능수능란함을 지향한다. 내게 주어진 것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 능수능란함이 주어진 것을 변용할 수 있게 하고, 그 변용을 통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19


새로운 것의 탄생을 보는 것만큼 기뿐 일은 없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왕자든 거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220


사람이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말이 가진 의미는 지대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직면한 근원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이미 잇는 것, 주어진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용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앎은 활용의 전제다. 221


우리는 주어진 것을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첫째 나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육체적 한계나 재능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이 있다. 신분이나 재산 같은 것이다. 이것은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의를 요구해야 할 문제다.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셋째, 인간을. 넘어서 존재 전체에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자연법칙이 있다. 자연법칙은 모든 존재에게 근원적인 한계로 주어진다. 221-222


앎은 활용의 출발점이다. 안다는 것은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출발점이 될 수 없다. ...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은 것의 경계를 아는 것, 그게 바로 자기 한계를 아는 것이다. 한계를 아는 사람만이 무리수를 두지 않고 자기를 배려할 수 있다. 223-224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난 다음에 구분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주어질 수 있는 것과 주어질 수 없는 것의 구분이다. 만일 우리가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않은 것만을 구분한다면, 사람의 삶에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결코 주어질 수 없는 것과 어떤 경우에는 주어질 수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후자를 포기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224


노력도 안 해보고 어떻게 아느냐, 지레 포기한 것 아니냐고 말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이 충분히 시도해보는 것이다. 내가 충분히, 원 없이 시도해보고 난 다음에는 알 수 있다. ...

충분히 해보면서 자신에게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225


중요한 것은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점. 226


재능과 같이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 주어진 것을 활용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회가 있다. 이런 경우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반드시 제기해야 한다. 227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에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바로 활용의 불평등이며 이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다. 228


좋은 사회란 주어질 수 있는데 주어지지 않은 것을 평등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보정하는 사회다. 좋은 사회란, 사회만 훌륭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별 볼일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훌륭해지는 것을 공공선으로 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228


앎은 활용의 전제다. 문제는, 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공부를 해본 사람은 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걸 해보려고 하면 생각대로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 이때 만나는 것이 서투른 자기.

이 서투른 자기는, 알기는 하되 활용할 줄은 모르는 상태다. ... 이때 그가 처하는 상태가 바로 부자유.. 자신이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것이다.

능수능란하게 도구를 다루고 싶다는 갈망이다. 이게 바로 자유다... 자유란 멋대로 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란 내가 다루는 도구들의 결을 알고 흐름을 타면서 내몸의 일부처럼 이질감 없이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이다. 229-230


미국의 인류학자인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이것을 생각하는 손이라고 불렀다. .. 배움은 머리-앎을 넘어 손-다룸으로 옮겨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배움이 사변적인 것이라면 익힘은 그 배움을 육화, 즉 물질로 만드는 과정이다. 육화되지 않는 배움은 쓸 수 없는, 그렇기에 쓸모없는 배움이다. 그렇기에 배움은 앎의 문제에서 다룸의 문제로 전환된다. 230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생각하는 손은 자유로운 손이다. 그 자유가 단지 자유자재와 동의어로서 능수능란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자유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에 갇힌 존재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한계다. 자신의 육체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구를 통해 자신의 육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 그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룸으로써 도구와 사람이 하나가 될 때, 그 사람은 인간의 근원적. 한게를 넘어서는 존재가 된다. 인간의 근원적 한계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231


능수능란함의 방법론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을 다루는 기본에 관해서 말할 수는 있지만 손의 힘을 조절하는 것은 자기가 해보면서 깨닫는 수밖에 업사다. 다룸은 익힘의 문제다. 익힘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익혀가는 경험 없이 다룰 줄 알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다룰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다...

익힘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스승이다. 스승이라고 방법에 관해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제자가 익혀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그가 주의해야 할 것과 좀 더 연마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 보지 않고서는 가르쳐줄 수가 없는 것이 익힘의 과정이다. 232-233


자연법칙에 관한 ... 법칙은 지키되 그 법칙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내가 법칙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자유의 척도가 된다. 234


생각하는 손이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이유는 이 자유가 새로운 양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자유란 뻐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여 새로운 양식을 만드는 것이라고했다. 법칙이 주어진 것이라면, 자유는 주어진 것의 바깥으로 탈출하는 게 아니라 그 주어진 것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걸림거침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양식이 된다. 이런 활용을 변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예(技藝)라고 부른다. 이렇게 자유로운 손을 만나 매혹되었을 때,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욕망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예술적 완성에 대한 욕망이다. 이런 매혹 없이 사람이 공부의 길로 들어서기란 불가능하다. 236-237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유를 성공으로 전도시킨 사회에서 살아간다.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를 배려하며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꼭 묻는다. 한계를 인정함년 자기 꿈과 이상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요리사와 같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든다. 그러면 동네 중국집 요리사가 되는 것도 요리사이니 꿈을 이루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면, 그건 아니라고 한다. 동네 중국집 요리사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자장면을 만드는데 그건 왜 아니냐고 물으면, 성공한 삶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답한다. 7성급 호텔 요리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꿈과 이상이라고 말하지만 그 실체는 사실 성공이다. 자유에 대한 매혹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매혹일 때 그건 자기를 파괴하는 지름길이 된다. 237-238


매혹은 또한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견디게 한다. 자유로워지려면 능수능란해져야 하고, 능수능란해지려면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익힘의 과정은 고단하고 지루하다.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고, 그 반복에서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쁨을 누리기 힘들다. 창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변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생각하는 손의 능수능란함에 대한 매혹 없이는 이런 익힘의 과정을 견딜 수 없다. 배움은 미적 매혹에서 시작하고, 이 매혹이 배움을 견디게 한다. ...

배움에 이어 익힘이 있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 자유러워지지 않는다. 238


창조는 앎의 문제에서 다룸의 문제로 공부의 초점을 이동시킨다.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룰 수 있을 때그것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을 때 새로운 양식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다룸이 바로 그 사람의 탁월함의 척도가 된다. 239


한국의 교육이 가진 문제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배우는 것은 많은 데 다룰 수 있는 것이 없다. 배우기만 할 뿐 익히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 정답만 외우는 공부를 하다 보니 익힘의 과정이 없어지고, 익히는 게 없다 보니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참혹한 것은, 이렇게 익힘이 생략된 채 배우는 것만 많은 상태가 10년 넘게 이어진 결과, 익힘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240-241


사실 익힘의 과정은 지루하다. .. 익히려고 할 때마다 좌절하게 된다. ..

익힘의 시작 단계에서 이 지루함을 견디게 하는 것은 매혹이다. 그러나 매혹의 힘이 끝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익힘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익히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익힘의 결과에서 과정으로의 전환이다. .. 익힘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기량이 생기는지 알기 위해 다시 한번 자기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익힐 때, 많은 경우 우리는 익힘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익힘의 결과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익힘의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게 되는 차원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넘어간다. 익힘 자체의 기예가 향상되는 것 말이다. 243


익힘의 과정에 있는 이는 익힘의 결과에 넋을 놓지 말고 익힘의 과정에 있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 익힘의 기예에서 가장 중요한 견디는 힘이 생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다. ..

물론 여기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이 견디는 과정에서 다시 자기 한계를 생각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지점, 견뎌서는 안 디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는 견딜 수 없다는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무작정 견디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

무작정 견디라고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고 착취다... 많은 회사나 기관이 배우고 익히게 한다는 핑계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모욕과 무시, 그리고 착취를 일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에 대한 배려다. 244-245


배움을 통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배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배우는 습관이 생긴 사람만이 계속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다. 245



03-9 공부, 지적 쾌감과 향유의 기쁨

멋진 작품을 만났을 때 우리는 경탄한다. 그것이 예술 작품이든 자연 작품이든 말이다. .. 그거 아름답다, 멋지다고 느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작품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작품 너머에 있는 기예를 고민하게 된다. 사람의 기예가 아니더라도 도대체 무엇이, 어떤 과정으로 이런 멋진 것을 만들어냈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 .. 이 기예에 눈이 가야 사람은 순간적인 경탄을 넘어 기예에 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경탄은 기예에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출발점이다... 공부를 시작하게 하는 첫걸음은 바로 경탄이다. 249


먼저 경탄에 관해 알 필요가 있다. 250


너무 아름다워 위협감을 느끼게 하는 이 감정은 유쾌하지 않다. 미학에서 이야기하는 바로는 숭고미에 가깝다. 칸트는 인간의 미적 체험을 숭고미와 아름다움으로 나눈다. 아름다움은 사람이 질서정연한 것을 보았을 때 나오는 쾌()의 감정이다. 쾌락의 캐다. 즐거운 감정이다. 반면 단적으로 큰 것을 만났을 때 느끼는 것이 경악이다. 내가 이전에 경험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만나면 사람은 경악하게 된다. 이 경악을 쾌가 아니라 불쾌의 감정이다....

그 괴로움은 그저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것을 만났다는 흥분에 넘치는 괴로움이었다. 칸트가 말하는 숭고미라고 볼 수 있다.

경탄 중에서도 이런 경악이 가장 강렬한 체험이며, 사람을 공부의 길로 이끄는 경탄이다. 공부라는 게 뭔가? 왜 그런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고 경악하는 것은 그걸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 경악은 내가 모르는 것, 절대적으로 모르는 것과 만나는 경험이다. 251-252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이어서 놀랍긴 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에 관련되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

경악이나 경탄의 실체는 바로 경이(驚異).(이 책에서 나는 경탄과 경악, 그리고 경이를 구분해서 사용하지만, 이 셋의 공통점은 말을 잊을 정도로 놀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이질적인 경험이다. 그것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알지 못하던 존재 타자이다. 254


이름이 있다는 것은 분별의 결과다.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255


지식의 가장 큰 힘이 바로 분별력이다. 경이롭지만 아직 분별하지 못하던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지식이 힘이다. 공부는 이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255


부는 분별의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분별의 힘이 있을 때 비로소, 대상에 압도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불쾌에서 쾌로 나아갈 수 있다. ...

알면 향유할 수 있다. 향유하는 과정에 앎이 배치되어야 한다. 256


모르는 자에게는 무질서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는 자에게는 그렇게 질서정연한 것이었다. .. 지식의 힘은 사물과 사리를 분별하는 것이고, 분별하는 자만이 경탄을 너어 향유할 수 있다. 257-258


무지하니 자유롭고 능수능란하게 향유하지 못한다. 충분히 즐길 수 없다. 그러니 무지하면 아름다움 앞에서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답답한 , 즉 슬픔을 느낀다. 이런 답답함이 공부를 시작할 마음을 먹게 한다. 258


자연은 경탄을 통해 향유로 나가게 하는 좋은 대상이며 향유의 언어는 수학적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분별하고 그 움직임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언어가 바로 수학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기하학을 모른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이라 말하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없다. 알람브라궁전에 흐르는 물의 배치와 흐름, 그리고 궁전의 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기하학을 모른다면 결코 향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기하학이라는 지식이 필요하다. 258-259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해서 모두가 그 경이로움을 배움으로 이어가는 것은 아니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260


듀이는 인간의 경험을 해보는 것겪는 것으로 구분했대 무엇을 할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겪는다. .. 그러나 겪는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인지되는 것은 아니다. 겪는 것들 중에서 대다수는 그저 지나간다. 이렇게 지나가는 겪음으로는 배움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겪음을 통해 사람이 배운다고 할 때 그 겪음은 내가 예기치 못한 것, 알지 못하는 것과 만나는 순간이다. 나를 압도할 정도로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261


이런 경험이 사람을 배움으로 이끈다.

겪는다고 바로 배움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중간에 또 다른 과정이 있다. 그것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첫째, 내가 예기치 못한 것을 겪었을 때 사람에게 반드시 떠오르는 것이 질문이다. “, 이게 뭐지?” “이게 왜 이렇지?” “어떻게 이렇게 되지?” 예상 하지 못한 것을 만나게 되는 순간 깨닫는 것은, 지금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르기 때문에, 그 반응은 일단 질문의 형태로 떠오른다. 다른 말로 하면, 질문이 발생하지 않는 겪음은 겪음이라고 할 수 없다. 겪자마자 그게 무엇인지 알면, 해결하면 그만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속담처럼, 사람은 아는 것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질문이 없다는 말이다. 질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해답으로 직행하게 된다. 262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생각이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기 위해 생가가하는 것은 이 과정 자체에 매혹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리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씨름하는 이 지적인 과정이 주는 쾌감, 즉 분별의 힘이 커지는 걸 경험한 사람만이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다. 263

경이로움에 충분히 젖고 난 다음에, 그 경이로움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때 호기심을 갖는다... 경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느끼고 질문이 떠오르면, 그것에 관해 생각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264


경탄이 공부의 춟라점이라고 할 때, 경탄은 감수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감수성이 좋은 이는, 다른 사람은 그저 그런 일로 넘어가는 것도 새롭고 경탄할 만한 일로 경험한다. .. 자극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는 바람에 역치가 높아져서,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경탄하지 않게 된 것이다. 모든 게 시시해져버려 경탄할 만한 것을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경우에도 배움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 265-266


기 드보르(Guy Ernest Debord)라는 프랑스의 철학자는 우리가 스펙터클, 즉 구경거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스펙터클은 시시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압도한다. 더 큰 크기로, 더 바른 속도로, 더 짜릿한 것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이런 식으로 스펙터클에 압도당하고 나면 다른 모든 것은 시시해지지 않을 수 없다.

스펙터클 사회의 더 큰 문제는 모든 것을 스펫터클, 즉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아무리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해도, 구경거리가 되면 더 이상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 스펙터클은 구경, 즉 소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배움도 마찬가지로 소비가 되고 있다. 지금은 대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것이 귀하고 드문 일이 아니다. ...

이처럼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배움의 과정이 구경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266


배우는 사람과 공부를 구경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지점에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배우는 사람은 자기에게 집중한다. 공부를 통해 나에게 늘어나는 것이 있는지, 그것이 잘 늘어나고 있는지 관찰한다. 배움의 목적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로부터 배우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에게 집중하는 게 배우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배우는 것이 없다. 반대로, 구경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특히 그가 잘 가르치는지 못 가르치는지에 집중하며, 그가 가르치는 것을 즐기고자할 뿐이다. 따라서 놀랍게도, 구경하는 사람은 자기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 자기에게서 무엇이 성장하는지 보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를 잘 접대(entertain)’ 하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다. 서비스가 좋으면 만족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만을 제기한다. 그래서 구경하는 사람의 말은 언제나 품평이다. 말하는/가르치는 사람에게 집중하니 그 사람에 대한품평만 있지 자기 성장에 관한 말은 없다. ...

품평을 통해 마치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

이것이 많은 배움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성인의 경우, 배우는 사람 스스로가 자기 배움의 현장을 구경거리로 만든다. 여기저기에서 인문학 강좌니 뭐니 듣고 배우는 자리는 많아졌지만, 그런 자리의 상당수는 공부를 구경거리로 만들어서 소비하고 품평하는 자리다.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그것이 뭘 배웠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강의에 관한 말만 넘쳐나는 게 그것이 구경이었다는 증거다. 267-268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기예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270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다. 향유와 문화자본의 관계다. 향유와 문화자본의 관계에 대한 긴장이 없으면 먹방이나 보고 있는 사람들을 속물이라고 경멸하게 된다. 대신, 문화자본이 많은 이들만 향유의 기예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층 계급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대부분 이 문화자본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학교에서도 옷을 촌스럽게 입거나 친구들의 문화끼지 못하는 학생이 소외되고 따돌림당할 가능성이 크다. 271


나는 학교가 해야 하는 일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한 것처럼, 배우는 이를 잘 관찰하고 그가 가진 향유의 기예를 발견해 같이 언어화하는 일이다. 그가 좋아하는 것, 혹은 흔히 취향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름다움의 향유라는 관점에서 보고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같이 찾아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배우는 이 스스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의 말을 통해 수학의 아름다움, 협력하는 기예의 아름다움, 윤리적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언어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르치는 일 아니겠는가.

다른 하나는, 학교가 학생들의 경제적/사회적 차이와 상관없이 모두 여러 가지 문화적인 것을 즐기고 그 향유의 기예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제도교육은 교육이다. 공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이를 걔급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시민으로 양성한다는 점이다. 귀족만 데려다가 귀족 취향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이 나라의 보편적인 시민으로서 누구나 어느 수준의 교양을 가지고 세상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문학이며 음악을 가르치는 게 이런 이치 아니겠는가

이것은 학교만의 문제나 사명이 아니다. 사실 학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제 역학을 해야 하는 것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274


세상은 아름다움을 향유한 사람들이 바꾼다.’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불러오는 도심 재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여행을 다니면서 슬럼화한 동네를 재생하는 곳에 가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이다. 도시 재생이 재개발이나 그럴듯한 벽화 몇 개 그린 후 관광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나고 교류하며 그 만나을 가꾸는 것이며 그게 아름답다는 걸 느끼고 돌아온 사람들이다.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에 이들은 눈에는 추한 것이 바로 들어온다.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흩어지게 하는 것이 추하다. 벽화 몇 개 그려놓고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이 추하다. 이들에게는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이 정화’, ‘미관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추하게 진행되는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추함에 맞서는 일도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이 없었다면 이런 저항이 가꿈, 돌봄, 재생의 방식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공부의 목적으로 실제적으로 쓸모 있는 것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로 교육이니 실용 교육이니 하는 말로 공부의 쓸모를 직업과 돈벌이 수단으로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공부의 의미와 목적을 너무나 도구화한다. 신분 상승이나 성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목적이다. 275-276


공부의 쓸모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276




나가며

설령 자기를 얻는다 하더라도 : 사회를 만드는 기예를 향하여

푸코는 훌륭한 삶이란 주어진 규칙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형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 공부는 자유롭기 위해 하는 것이다. 교육은 사람을 해방하는 과정이다.

문제는현대 사회에서 자유가 처한 운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흔히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자유/해방을 통해 사람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시대다. 자유를 억압함으로써만이 아니라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통치한다. 각자에게 표준적인 삶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권장한다. 그렇지 못한 삶은 지질하다고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래서 우리는 개성을 가진 존재가 되기 위해 각자 자기계발 하느라 노오력하며 살아야 한다.

여기에 이 시대의 자유의 딜레마가 있다. 한편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해방이 사람들의 삶을 위험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본문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노오력하며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잇느 것도 자유/해방이다. 마르크스가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농노들이 얻은 자유는 굶어 죽을 자유라고 말한 거서럼, 이 자유는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일회용으로 착취하고 폐기하며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다. 파탄에 몰린 이 자유로운사람들은 자기를 탓하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자기 노력과 능력의 부족을, 나중에는 많은 것을 물려주지 못한 부모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이번 생에서의 운명 탓으로 돌리며 죽어간다.

우리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처한 이런 공통의 운명에 관해 알아야 하고, 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281-282


이 시대의 교의인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통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자유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알고 다루며 스스로의 양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과정을 통치로 흡수함으로써, 자유를 추구하는 게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되는 딜레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사회를 외면한 자기 배려, 타인의 해방을 저버린 자유란 또 다른 자기계발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282-283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방되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공동선(共同善)이 되는 사회를 도모할 때 자유는 위험한 것도 아니고, 자유가 위험해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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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담집은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대담(20150810,902, 0918, 1002)을 엮었습니다.



대담을 시작하며

강의실에 들어서면 나는 한 마리의 ‘똑똑한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내가 펼치는 ‘화려한 언변’과 ‘풍부한 사례’에 학생들이 감탄한다. 그런데 그 감탄하는 눈동자들 속에서 배움과 성장을 찾기가 힘들다.


똑똑하되 멍청하며, 언변은 좋되 무능하다. 시험 문제는 잘 풀되 삶의 문제를 대하는 능력은 형편없으며, 남을 품평하는 데는 날카로운 날을 세우되 자신을 성찰하는 데는 무디기 짝이 없다.


우리는 배울수록 무능력해지고, 배울수록 화만 내는 처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가 삶의 문제를 푸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식민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는 사실 세상을 읽고 삶을 해석하는 언어라는 좋은 도구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내가 아는 공부는.. 어떤 지식 권력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공부였다. 삶은 언제나 지식보다 풍부한 것이고, 언어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미 권력화한 지식에 포획되지 않은 ‘삶’을 포착하려는 것이었고 그 삶이 지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공부였다. 그랬기에 공부는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었다. 삶이 공부의 식민지가 아니라 공부가 삶의 도구였다.


공부의 기쁨은 보편성의 발견이다.


시대의 암흑이라는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그 문제를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해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인이 형성된다. 이 동시대인을 형성해가는 것, 그것이 공부가 무능력한 개체들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엄기호)




1부 - 공부에 중독된 아이들


하지현 : 미국식 표현으로 ‘잔디깍기 맘’이라는 말이 있어요. 부모가 먼저 잔디깍기 기계로 풀을 깎아줘서 아이가 갈 길을 먼저 열어준다는 뜻이에요.

지금의 486 부모들은 공부를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기 몸으로 체득된 세대예요. 그러니까 부모들이 자신이 성공했던 방법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운이 좋은 세대였던 겁니다. 80년대 초반엔 졸업정원제가 있어서 그전에 비해 어렵지 않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취업할 무렵인 87, 88년도는 우리나라가 한창 경기가 좋을 때라 대기업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좋은 일자리 수에 비해 대졸자가 모자랄 정도였죠. 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손쉽게 집을 살 수 있었어요.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양적, 질적으로 엄청난 팽창과 발전을 하던 거시적 흐름에 이 세대는 올라탄 거예요. 일종의 ‘프리라이딩(free-riding)’ 운이 좋은 세대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 아직 시험을 안 친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시험을 친다는 건 내가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 친구들은 시험은 안 봐요.

시험을 안 보면 좋은 게 실제 내 능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나는 여전히 가능성 있고 굉장히 잘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거예요.


엄기호 : 사회적 관점, 즉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니까 너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라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시민들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모두에게 자리를 배분하면 사회가 안정되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자리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란 게 자리를 배분하는 게 아니라 자리를 배분받지 못한 이들에게 네가 왜 자리를 배정받지 못해슨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설명이 ‘네가 준비가 덜됐다’인 거죠.

두려움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체와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줘야 하는데 그런 정도의 자리를 만들어낼 능력도 의사도 없는 사회 시스템이 절묘하게 만나서 기가막히게 합의를 볼 수 있는 지점인 거죠.

이런 상태가 되면 불만이 밖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향하게 됩니다. 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라 준비가 안 된 자기를 탓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반란은 일어나지 않아요.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거야말로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입니다. 불만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죠.


하 : 원초적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 아이들은 항상 ‘공부 중’에 있어요.


엄 : 졸업한 상태에서 그렇게 1년이 넘은 뒤에 원서를 내면 회사에서 문제가 있다고 취급해요. 그런데 졸업을 하지 않고 1년을 휴학한 뒤 지원을 하면 문제 삼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학생은 공부 중이었으니까.

이런 직접적인 이유 외에도 졸업을 유예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는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불안이에요.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소속이 안 되어본 적이 없거든요. .. 제도적으로 무중력 상태가 되는 거예요. 리고 제도에 속하지 않으니 작가 뭘 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도 안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뭔가를 하는 것 같거든요.


엄 :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나한테 바로 배우면 배운 것 같지? 한 달이면 다 까먹는다. 네 것이 안 된다. 어떻게든 네가 찾을 때 그때 비로소 네 언어가 된다”라고 말하곤 해요... 요약정리 쫙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찾고 토론하고 이런 걸 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견디는 과정을 너무 못 참아요.


엄 : 저는 학생들이 이런 만능감을 갖게 된 또 다른 원인 중의 하나가 레퍼런스 그룹의 부재인 것 같아요. 사람이 실수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항상 옳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랬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가리는 것보다 내 주변의 레퍼런스 그룹이 나를 톡톡 쳐주는 것. “야, 지금 너 오버하고 있어, 워워”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학생들에게는 레퍼런스 그룹이 없어요. 정말 너무 없어요. 친구가 이상한 짓을 하면 “정신차려” 이런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안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혼자 앉아서 자기 혼자 고민하고, 자기 혼자 인터넷 뒤지고, 그러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놀랄 정도로 친구가 없고, 친구랑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몰라요. 물론 이건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사는 거의 대다수 사람들의 문제이지만요.


하: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이란 책을 쓴 가이 윈치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관계의 근육’이 쇠퇴한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인간관계의 기술은 사교, 의사소통, 입장 바꿔 생각하기, 공감 능력 같은 것인데 사회에서 연결 고리가 줄어들어 그 기술을 쓸 필요가 줄어들면 마치 근육을 안 쓰면 약해지듯이 그 능력도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고독의 문제를 깨닫고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근력이 약해서 벗어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는 건데, 저는 참 많은 공감이 되더라고요.


하: 하스퍼거라고 고기능 자폐가 있어요. 이 친구들을 위한 사회 적응 훈련법이 있는데, 가령, 이런 거예요. 전화를 하면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입니다. 누구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이런 걸 얘기해야, 누구를 사귀고 싶으면 밥을 먹으로 가자고 하기 전에 차를 먼저 마시자고 해라, 상대가 두 번 거절하면 한 번을 더 물어봐라, 두번째 까지는 정말 시간이 안 될 수도 있는 거다. 네가 싫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얘기들이 씌어 있어요. ‘뭐 이런 걸 다르쳐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하게 가르쳐줘요. 픽업아티스트들이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하 : 사회성을 익힐 겨를이 없는 거죠. 사회성을 익히려면 물리적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요.


엄 : 교육에서 얘기할 때 사람의 성장은 낯선 것, 타자와의 부딪힘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많이 말하거든요.


하 : 학습과 경험이 다른 것이듯, 면역력은 경험을 통해서 아파봐야 생기지 학습한다고 생기지는 않거든요. 물론 학습을 하면 덜 아플 수는 있겠죠.


엄 : 삶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때 배울 수 있습니다. 존 듀이가 말한 대로 하면 불에 손을 집어 넣어서 손을 데는 과정이 있어야 불에 손을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런 일체의 과정을 다 위험한 것이라고 불온시해요. 배우긴 배워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게 배워야 하는 것이죠. ... 겪는 것이 없이 그저 배우는 것이죠. 그런데 기스 하나 없이 말끔하게 배우는 게 가능할까요?

저는 사는 건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까지는 겪으면서 감당하는 거고, 감다할 수 없을 때 문제 제기가 되어야 하는데, 감당해나가는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엄 : 근대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자기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항상 두 가지 태도를 요구받습니다. 미래는 기획하고 과거는 성찰하는 태도입니다. 만사가 생각한대로 진행되지는 않기 때문이죠.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은 과거에 대해서는 성찰하며 교훈을 얻고 그 교훈에 입각해서 다시 미래를 기획합니다. 이중에서 하나만 빠져도 문제가 돼요.


엄 : 자아 중심성이 굉장히 강하니까 자의식은 무척높은데, 자기 의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고, 그러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어떤 결정을 할 때는 남 얘기에 쉽게 넘어가는 거죠. 자기 의견이 없게 돼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장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자기 말고 타인이 있다는걸 인지해가는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의견이 생겨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하 :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나를 구겨 넣는 방법, 맞추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환경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법이에요. 이 두 개를 적절히 조화롭게 사용하면서 우리는 적응을 해나가는 거겠죠. 그런데 이루부 친구들의 자아 중심성의 세계에서는 나를 구겨 넣을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환경을 바꾸고 싶지도 않아요. 환경이 알아서 바뀌어줬으면 좋겠는 거죠.


엄 : 공부를 ‘하는(doing)’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예요. .. 존 듀이가 말한대로라면 ‘언더고잉(undergoing)’ 즉 겪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라져버리는 거죠. 공부 ‘중독’이라고 하는데 중독될 ‘실재’는 없어요.


엄 : 굉장히 매끈하게 요약정리해서 정답을 향해 어떤 주저함도 없이 돌진하는 형태가 모든 공부의 전형이 되어 있고, 그런 식으로 공부해야지만 안심을 하고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이렇게 되다 보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의견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내 의견과 다른 의견들 속에 섞이지 못해 너무나 괴로워하는 거예요.


엄 : ‘최적화(optimizing)’의 논리인 거죠. 삶을 최적화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 최고의 기쁨이 되고 있어요. .. 시간도 공간도 계속 최적화해서 사는 것을 추구하고 거기에서만 기쁨을 얻다 보니 최적화되지 않은 것을 견디지 못해요. 최적화하려고 하면 할수록 의외성, 낯섦,타자는 사라져버려요.


하 : 이제 부모들도 서서히 그런 악순환의 한계를 깨닫고 있고, 판에서 나가거나 아니면 공감대가 일어나 판이 깨지는 시기가 와야 한다는 것을 감으로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미쳤어 미쳤어” 하면서도 나만 판에서 빠질 수는 없는 거예요. 이 라운드에서는 내가 이기고 나가고 새 라운드가 시작될 때 판이 깨지기를 바라죠.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와 내 아이는 이 판만 하면 끝나는 거거든요. 우리 모두 다 같이 하지 맙시다, 그러면 되는데, 내 애라는 관점에서 움직일 때는 난 몇 년 하고 퉁치고 나가면 되는 거예요. 굉장히 이기적이 되는 거죠. 이 판이 곧 깨지더라도 내가 생각한 전략대로 이기고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




2부 누가 공부에 욕심을 내는가


엄 :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즉 능력주의.

어떤 것은 능력이고 이떤 것은 능력이 아닌가? 능력이라는 것이 권력에 의해서 굉장히 이계화, 제도화되어 있잖아요. 공부하라고 할 때 이미 암묵적으로 떤 것을 공부하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공부고 다른 어떤 것은 공부가 아니죠. 왜 공부가 아니냐하면 그건 아무리 키워 봤자 능력으로 쳐주지 않으니까요.


하 : 얼만 전에 <미움받을 용기>의 기시미 이치로 선ㅅㅇ과 좌담을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과 일본의 젊은이들의 차이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분이 얘기한 첫 번째가 한국 젊은이들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는 거였어요... ‘이래야 된다’라는 표준화된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며 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몇 살이 되면 어디에 다녀야 하고, 뭘 해야 하고, 어디에 가야만 하고.


엄 : 이반 일리치의 개념을 가져와서 쓰면 한국 사회가 ‘스쿨링화된 사회(schooling society)’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전체가 학교가 되었다는 거죠. .. 한국 사회는 스쿨 자체가 굉장히 위계회된 학벌사회라서, 어디를 나왔는지가 그 사람의 능력과 그 밖의 모든 것을 검증해주고 보여준다고 보는 사회죠. 그래서 좁은 의미의 공부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생겼죠. 그런데 이게 사회적으로 보면 정말 비극이거든요.


하 : 학교의 가치, 역할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학교라는 게 근대 교육, 즉 프러시아부터 시작된 2백 년쯤 된 교육이잖아요? 말 잘 듣는 훌륭한 신민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된 균질화된 교유그 그전까지는 마이스터에 의한 1 대 1 교유그 도제 교육만 있었는데 산업혁명 이후에 글도 좀 깨우치고, 셈도 좀 가르치고, 남들 때리면 안 되는 거 가르쳐서 내보내니까 말 잘 듣는 신민이 되더라, 라는 사고 하에 만들어진 프러시아의 근대 교육 시스템이 지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학교 교육의 기본이죠.


엄 : 원래 근대 교육의 목적은 탁월한 살맘을 만드는게 아니라 평균을 높이는 것에 목적이 있었잖아요? 계속해서 평균적인 살맘을 만들고 그 평균을 조금씩 높이는 것이 목적인, 그런 점에서 보면 굉장히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이죠.


엄 : 한윤형씨가 썼던 표현ㄷ로 하면 ‘평균압’입니다. 평균에 대한 압력이죠. 한국은 적어도 평균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높은 사회라는 뜻입니다. 평균이 되지 못하면 탈락이고 낙오이며 패배한 인생이라는 말이 돼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이라는 건 절대 평균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무 높다는 거죠.


엄 : 이전에는 공부가 생애사적 기획을 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였죠. 그룬데 그게 잘 안 되는 상황이 되고 있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나와야 하는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출현해야 할 그 시점에 다양한 교육이 출현해버린 거죠. 그런데 다양한 교육이란 게 말 그대로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 다양한 영역을 식민화해버린 형태예요. ..

교육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가르칠 수 없고 배워야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르쳐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죠. 미분과 적분은 가르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필요한 것이고 교과과정이 필요하죠. 반면 인성은 가르칠 수는 없고 살의 과정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걸 지금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것이죠. 가르칠 수 없는 걸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 저는 이게 가장 정확하게 삶을 식민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엄 : 공부라는 것이 삶에 통홥되어 있어야 하잔하요? 그런데 근대 학교가 공부와 삶을 단계론적으로 분리시켜버렸어요. ‘공부를 하고 난 뒤에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사는 것이 아닌 게 된 거죠. 삶이 유예되는 거예요. 지금 학교가 딱 그런 공간이잖아요?

학교에서 우리는 친구랑 만나서 싸우기도 하고, 정치도 하고, 비열한 짓도 하고 그러면서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깨닫기도 하고 그래야 해요. 학교가 총ㅊㅈㄱ인 삶의 공간이 되어야 하죠. 그런데 학교를 삶의 공간으로 인지하지 않고,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라고 생각해왔어요...

공부를 한다고 해서 삶이 주어지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학교를 다르게 인지해야 하잖아요? 삶과 공부를 단계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자 그래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못 찾다 보니까 오히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공부하자’ 이런 형태로 나아가버리는 거죠.


엄 :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틀 밖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성공을 하고 나면 그것으로 죽 살아가면 되잖아요? 그것이 다른 사람들한테 훨씬 더 영감을 주거든요, 그런데 꼭 책을 씁니다. 학원을 해요. 결국 자신의 성공 방식을 매뉴얼화하는 거예요. 본인이 그러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죠. 결국 한국에서 블루오션은 공부밖에 없어요. 출판계도 레드오션이잖아요. 그런데 출판학교는 잘되고 있어요. 출판계는 망해가고 있는데 말예요. 이런 식으로 지금 공부 산업만 블루오션이 된 거죠.


엄 :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출현하려면 하나가 없어져야 해요. 바로 사회적 압력이죠. 표준화된 삶의 시나리오에 대한 압력이 사라져야 해요.


하 : 우리는 일반적으로 행선지가 정해져 있기를 바라죠. 정해져 있지 않으며 안 하고 싶어 해요. 사실 이제는 정해져 있는 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말이죠.


엄 : 넓게 보면 삶은 그 자체가 공부의 과정, 배움의 과정이잖아요? 인간은 살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늘 배울 수밖에 없죠. 그걸 우리가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반면 교육은 그것을 단계론적으로 구분하여 제도화한 것이고 할 수 있어요.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죠. 가르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공부 전체가 교육이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다르칠 수 없는 것도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리거든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 중독이란 사실은 교육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부 중독에서 해독으로


하 : 중도겡 빠져 있으니까 벗어나야 하잔하요. 지금은 공부를 공부로 이기려고 하는데, 공부디톡스를 하려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거든요. 프레임 자체에 대한 변화를 주는게 필요해요.


엄 : 대학 진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그 필요성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 변화가 실제로 감지되고 있고요. 대기업의 생산직 노동자,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잊 대학 진학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이 돈을 꽤 많이 벌거든요. 노동 계급의 대표는 아니고 중산층화된 노동 계급이죠. 이 사람들은 이제 대학 가 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정도며 ㄴ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중산층의 신분은 유지하되 생산직에서 사무직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방사립대를 갈 정도다 그러면 아예 전문대를 가라고 합니다. 지방국립대는 좀 헷갈려 하는데, 이렇게 보냈다가 중퇴시켜요. 4년제를 나오면 생산직에 못 들어가거든요. 생산직 보호조치 때문에 그래요. 아쪽에서는 대학을 보내도 소용없다는 걸 일치깜치 깨닫고 초등학교 고학녀에서 중학생이 되면 판가름을 해서 투자를 하지 말지 결정을 해요.

이들보다 조금 더 경제력이 낮은 생산직 노동자들, 자영업자들은 대학 보내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요. 이런 살맘들은 교육에 정말 관심이 없어요. 지방ㅇ서 교사들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교사들이 부모들을 만나고 싶어 해요. 학생을 공부를 시키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이 부모들은 "우린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하고 만다는 거예요.

사실 지금 대학을 보내려고 모든 걸 쏟아붓고, 대학에 엄청난 텐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문직 대기업 사무직, 조금 큰 규모의 자영업을 하고 있는 중산층이에요. 대학 진학은 한국의 중산층 게임이에요. 이 사람들이 대학을 어떻게든 보내려고 하는 거죠. 이 사람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이들한테는 공포가 있어요. 자기 자식대에서 계급이 재생산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가 있는 거죠.

중산층이 이렇게 대학에 목을 매는 건 자기 계급을 재생산해야 하는데 중산층의 부라는 것이 그것만 물려줘서는 재생산이 안 되고, 여기세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잔항요. 그게 바로 전문직이거든요. 아파트는 물려줄 수 있어요. ㅡ그런데 그것만 갖고는 안 되잖아요? 지속적으로 부를 창출할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이들이 대학에 대해 갖고 있는 텐션이 엄청나게 크고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거죠.

이들이 그동안 별수를 다 써본 거죠. 유학도 보내 봤다가, 사교육도 엄청나게 해봤다가, 요새는 명상도 시킨다고 하더군요. 마인드 컨트롤해야 한다고. 비용이 점점 증가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감당이 안 되는 밑에서부터 떨어져나가는 거죠. 대학 진학에 대한 텐션은 중산층이 아닌 다른 계층에서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계산이 너무 빤하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산층의 코어에서는 텐션이 점점 더 강해지죠. 거시적인 구조로 보면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엄 : 가장 합리적 선택이란 이기적 선택인데 그 선택이 이타적이기까지 하다면 좋고, 아니면 조금 섭섭한 거고, 하지만 어쨌든 최소한 그 이기적 선택이 남한테 피해는 끼치면 안 된다, 이 정도 선에서 선택 기준을 생각해본다면,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제가 볼 때 한국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계층은 대기업 생산직이에요.


하 : 그렇네요. 딱 그렇게 하고 있네요. 몸으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선택이 가능한 거겠죠. 그런데 그 선택은 중산층 지식인들에게는 자기가 안 가본 세계, 모르는 세계인 거예요. 그렇게 봤을 때 중산층 지식인들이 교육에 목을 매는 건 자기가 제일 잘했던 것이기 때문이죠. 그만큼의 과실을 얻었기 때문에 상층부에서 그 신화를 퍼뜨린 거예요. 공부를 잘해서 성공한 이들이 상층부를 차지해서 과실을 더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 뭐랄고 하지 마라, 즉 교육 시스템 안에서 자신들의 독과점을 합리화한 거죠. 그들은 그런 시스템에서 잘 해나갈 수 있는 능력치를 갖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그런 시스템을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까지 '오 그래야 되는구나'라고 믿게 만든 거죠. 이게 몸으로 잃는 것보다 훨씬 오래 가고 괜찮을 것 같다, 존경까지 받고. 그래서 모두 이 게임에 들어오게 되죠. 그런데 생각보다 판이 작아지면서 내 자식들한테 돌아가는 몫이 없고.

선생님 말씀대로 대기업 생산직들이 딱 보니까 아닌 거죠. 그래서 잽싸게 판을 깬 거예요. 이 살맘들은 이것 말고도 먹고살 길이 있거든요. 더구나 이 방법론이 원래 그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방법론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무직 근로자와 전문직인 세칭 중산층은 아는 도둑질이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판타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마ㅣ 모태 신앙과도 같은 거죠. 아무리 기독교에 진력이 나도 '그래도 나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거야' 같은. 그런데 우리 집은 종교가 없었는데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10년 다녀보니 교회에 신물이 나요. 그러면 금방 빠져나올 수 있거든요.


하 : 자식의 20년 후를 바라보는 그림을 바꿔야 해요. 자기를 중심으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삶의 안전판을 만들어야 해요. 은퇴 후 연금, 건강을 위한 대비 혹은 주거 생활의 안정과 같은 안전판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자식 때문에 포기하거나 그 안전판을 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삶의 우선순위에 올라야 합니다. ....

가소 싶은 게 없으면 "그냥 좀 있어 봐, 그 대신 이리저리 쑤시고 다녀봐"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해요. 쑤시고 다닌다는 게 곧 디투어링이죠. 그게 인생의 낭비는 아니다. 도리어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 그게 공부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엄 : 이제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자기 부모처럼 살지 않는 것이거든요.


하 :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범죄의 세꺠에 들어서지만 않게끔 하는 최소한의 케어. 정말 간절하게 아이가 원하는 게 있을때 한 번 정도 밀어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정도죠. 자기가 원하는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섯 살 때부터 차곡차곡 줄을 좍 그어놓고 그 길대로 가게 하도록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이에요. 그러지 말자는 거죠.


하 : 제가 이런 얘기를 강연에서 하면 나오는 특징적인 피드백이 있습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나 개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말은 맞으면서도 현실에 맞지 않는 허황된 얘기로 들린다"라는 것입니다. 사교육 안 시키고 그래서 좋은 대학 못 가고 그래서 취업이 안 되면 사회에서 '듣보잡' 취급받으면서 살 텐데 어떡하느냐는 거죠. 저는 그래서 더욱더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와 행동을 해낼 개인이 늘어나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공부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 상태에는 그 어떤 시스템적 변화를 주더라도 결국 또 그 안에서 공부를 중심으로 줄세우기가 만들어질 겁니다. 서울대를 없애고 전국의 국립대학교를 모두 서울대로 바꿔야 한다는 교육 전문가드르의 대책도 저는 조금 당황스럽고, 무엇보다 또다른 판타지 같았어요. 그러면 분명히 그 안에서 다시 줄세우기와 편가르기가 만들어질 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대로 공부를 중심으로 한 암묵자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동안은 백약이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한 명씩 한 명씩이라도 개인의 선택의 변화가 이어지고, 그 수가 어느 순간 무시할 수 없는 수가 된 다음에는 결국 상식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위상 전위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엄 : 그렇다면 중산층 밑의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 이 학생들도 중독의 폐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거든요.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죠. ...

공부에 목적이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학생들한테 무슨 공부가 필요한가를 보고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라 이 학생들에게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공부 가르치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하 :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공부가 필요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가 아니라 '뭔가를 알고 싶다'라는 욕구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공부.


엄 : 학교에서 상위 5~10%, 많이 봐야 20%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공부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좌절이에요. 이 좌절을 통해서 뭘 잃어비리느냐면, 앎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려요. '아는게 참 재미있는 것이다'라는 걸 잃어버리죠.

앎의 핵심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호기심이 발동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모르는 것을 만나면 두렵기만 하고 짜증이 나는 거예요. ...

대안학교가 그래서 만들어졌어요. 대안학교가 학생들을 자유럽게 뛰놀게 하자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앎에 대한 호기심을 회복하자는 것이거든요. 시험 문제를 틀렸다면, 나는 틀린 존재가 아니라 모르는 게 있는 존재인거고, 모르는 것을 발견하면 알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게끔 해줘야 하는 건데, 그것을 못했던 거죠.


하 : 공부라는 것,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데에는 동기가 필요하거든요. 동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절박감이에요. '이거 모르면 나 죽어', '어떻게든 알아내야해' 이런 것이죠. 두 번째는 경쟁심이에요. '쟤보다는 나았으면 좋겠어' 하는 욕구. 세 번째는 '그냥 하고 싶어', '알고 싶어' 이런 이상적인 목표가 있는 거예요.


하 : ‘솔부를 잘한다는 것은 뭘가’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첫 번째는 핵심, 맥락을 잘 잡아내는 거죠. 둘째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셋째가 진자 공부를 잘하는 것일 텐데, 이치를 깨닫는 것이죠. 큰 흐름 안에서 이게 뭘 의미하고 있고,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나아가서는 나하고 어떤 관계가 았는가까지 생각하 ㄹ 수 있는 것이게쬬.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공부는 둘째가 90%예요. 성적이 아주 잘 나오는 아이는 첫째 덕목인 맥락을 잘 잡아내서 요령이 좋죠. 정작 중요한 것은 셌째인데 거기에까지 마음이 미칠 여유가 없어요. .. 저는 순서로 볼 때 셋째를 목표로 하면서 첫째를 중심으로 흐름을 잡고, 그리고 둘째는 필요에 의해서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진짜 공부가 되고 쓸데없는, 독이 되는 공부를 줄일 수 있어요....

저능의 영역이란 낯선 상황에 잘 적응하기 위해 지그 ㅁ이곳이 굴러가는 보이지 않는 이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이거든요. 그 이치를 잘 깨달아서 나를 변화시키거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쌓는 것이 핵심이죠. ..

공부 과정의 끝은 사실 지혜를 얻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혜라는 것을 찾아낼 겨를도 없이 질려버리게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공부였어요.


하 : 발달이란 기본적으로 ‘나도 저러 ㄴ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일시의 욕구로부터 시작하거든요. 어찌 보면 그것이 공부의 원형이죠. 따라 하기. 그런 부분에서 짚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공부에 대해 착각하시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문화센터나 시민 학교에서 엮는 강좌에 중독되어 있어요. 저는 그게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엄 : 그렇죠. 그건 구경이죠.


하 : 사실은, 혼자서 괜찮은 책 찾아보고 나름대로 궁브를 하다가 진짜 궁금한 게 있으면 그 분야의 고수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그러는 과정이 진짜 공부인데.


엄 :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걸가요? 공부는 성장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이 신장되는 것이건, 인격이 성숙하는 것이건 또는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것이건 공부는 성장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의 공부는 성장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어요. 성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공부를 공부라고 하고 있고 그걸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학생들이 “이걸 공부한다고 제가 뭔가가 될 수 있나요?”라고 하는 말을 단지 실용적인 질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말을 직업을 구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데 혹은 살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를 묻는 것을 훨신 넘어서는 적극적인 질문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이걸 공부하는것이 자신을 무엇으로 어떻게 성장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이죠.

이 문제에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가 사람의 성장에 대해 ‘성공’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답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공부를 통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 수긍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들을 붙들어놓고 지금 ‘공부’를 시키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데도 그저 맹목적으로 공부를 시키고만 있어요. 공부를 하는 자가 아니라 공부를 시키는 자가 공부 말고는 시킬 수 있는게 없다 보니 그저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시키는 자의 ‘공부 중독’이에요.

삶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공부는 성장하는 삶을 위한 도구여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공부는 삶을 식민화하는 도구일 뿐이에요. 이런 공부를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대신 공부의 자리를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해요. 당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삶의 지혜. 기술을 익히는 과정으로서의 공부 말이에요.청소년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잘 모르고 있어요. 무능력하기는 어른들도 매한가지입니다. 공부라는 맥락에서 보면 어른과 청소년 모두가 처한 ‘동시대성’이겠죠.




대담을 마치며

공부라는 블랙홀에서 탈주하기 위하여 - 하지현

아무리 혁명적이고 과격한 처방이 나온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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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 혁명 - 켄 로빈슨 루 애로니카 21세기북스 2015  03370



실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독창적인 것을 해낼 수 없다. - 켄 로빈슨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자라면서 그 예술성을 지키는 것이 문제다 - 피카소




들어가는 글 - 자정 1분 전


이 책에서 나는 표준화 문화가 학생과 학교에 어떻게 해를 끼치는지 설명하면서 교육에 대한 차별화된 사고방식을 제시하려 한다. 또한 당신이 어떠너 사람이고 어디에 살고 있든 당신에게는 제도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8


나는 교사, 연구자, 강연자, 심사관, 자문관 등으로 활동하며 40년 넘게 교육계에 몸담아왔다. 그 과정에서 교육계의 온갖 사람들과 부딪히고 온갖 기관과 조직에서 일했다. 기업, 정부, 무노하단체와 두루두루 협력해보기도 했다. 학교, 교육구, 정부를 도와 실용적 구상을 이끌고 나가기도 했다. 대학에서 교편도 잡아봤고, 새로운 단체의 설립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을 펼치는 내내 나는 교육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더 균형 잡히고 개인 맞춤형이며 창의적인 접근법을 찾아왔다.  10


어떤 사람들은 나의 온라인 강연 영상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제도의 변화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아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대답은 세 가지다. 첫 번째, 대화 시간이 18분밖에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으니 너그러이 넘어가주기 바란다. 두 번째, 내 생각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그동안 내가 발표한 책, 보고서, 전략집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지 모른다. 마지막 세 번째, 바로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11


혼동을 야기하는 몇몇 용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자.

'학습(learning)' 이란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학습 욕구를 계속 북돋우는 일이야말로 교육 혁신의 열쇠다.

'교육(education)'이란 체계적인 학습 프로그램이다. 정규교육의 전제는, 청소년들 스스로에게 맡겨두면 터득하지 못할 것들을 알고,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training)'은 교육의 한 종류로서 특정한 기술의 습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말하는 '학교(school)'는 으레 아이들과 십대들을 위한 곳으로 여겨지는 전통적 시설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서로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공동체라면 뭐든 학교다. 즉 이 책에서 학교란 홈스쿨링, 언스쿨링(un-schooling : 집이나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 옮긴이), 직접적 대면 형태나 온라인 형태의 비공식적 모임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12-13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보수가 높고 자기만의 사무실이 있는 전문직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한편 지능이 비교적 떨어지는 학생들은 당연히 학교 성적도 떨어진다... 나름의 재능에 맞게 그런대로 괜찮은 서비스직이나 노동직에 들어가기도 한다. ..

전세계의 수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실제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 학교와 학부모와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상황을 외면한 채 현재의 교육제도가 건전하다고 믿는 듯하다.  14


이 이야기는 위험한 허상이다. 그토록 많은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허상 때문이다. ..

하지만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 왜일까? 이런 문제들은 대개 제도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15


문제를 해결하려면 증상과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 현재 교육 침체를 보여주는 수많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증상들은 그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결할 도리가 없다. 그런 문제 중에 하나는 공교육의 산업저 특징이다. 사실 대다수의 선진국은 19세기 중반에야 대규모의 공교육제도를 만들었다. 이런 제도의 발전은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측면이커서 대량생산의 원칙에 따라 구성됐다. 표준화운동(정부 주도로 표준 교육과정을 보급하려는 운동-옮긴이) ..  16


전통적 표준을 높이는 식의 교육 개선으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충족시키기 힘들다. .. 

표준화운동에 탄력이 붙으면서 훨씬 많은 학생들이 낙제의 희생을 치르고 있다.  17


어떤 식으로든 교육에 관련돼 있다면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비평,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비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변화론이다.  18


혁명은 입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교육에 연관돼 있다면 당신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다. 제도 내에서 변화를 일구거나, 제도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거나, 앞장서서 제도의 틀을 깨거나.  19-20





우리 교사들은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 앞에서 '다들 수학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죠. '밴드 활동을 하고 싶지? 수석 자리에서 연주하고 싶지? 수학을 잘하면 도움이 될 거야.' 부탁조로 말하는 게 좋아요.  35


과거에는 국가 교육정책이 주로 국내적 문제였는데 요즘에는 정부들이 각국의 교육제도를 국방정책만큼이나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다.  36-37


교육이 이렇게 뜨거운 정치적 이슈오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지난 25년 사이에 기업 형태에 혁신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제조, 서비스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됐다. ..

두 번째는 문화적 이유다. 교육은 공동체가 고유의 가치와 전통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주된 수단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 교육이 외부 세력에 맞서 문화를 지키는 수단이 되거나 문화적 관용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

세 번째는 사회적 이유다. 공교육의 공공연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배경과 환경의 차별 없이 모든 학생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으로 성공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교육에는 정부에서 바라는 실질적 목표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회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태도와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

네 번째 이유는 사적인 것이다.

실제로 교육의 공공정책 관련 문구를 보면 그것이 무슨 의식이라도 되듯,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성을 깨달아 만족스럽고 생산적인 삶은 살아야 한다는 등의 구절이 들어가 있기 일쑤이지 않은가.  39-40


학업이 국가 경제의 구세주로 부상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43


정규교육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커리큘럼, 지도, 평가다.  44


표준화운동이 지도의 측면에서 선호하는 방식은 조별 활동보다는 학급 전체를 모아놓고 사실에 입각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 정형화된 필기시험과 객관식 문제의 포괄적 활용을 중시한다.  45


시헙의 목표 중에 하나는 학생, 교사, 학교 간의 경쟁 강화다. 이는 경쟁이 높아지면 자연히 표준도 올라갈 것이라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45


2014년 4~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미국의 대학 졸업생은 평균 2만~10만 달러의 빚을 떠안고 있었다.  50


학력적, 직업적 카스트제도는 교육에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51


리더들이 직원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은 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창의성' 이었다.  54


미국은 세계에서 투옥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대략 성인 35명당 한 명이 수감, 보호관찰, 가석방의 형태로 교정제도의 관리 대상이다. ..

미국에서 한 명의 고등학생을 교육시키는 데 매년 평균 1만 1,000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교도소에 수감시킬 경우 1인당 연간 2만 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58


당신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고객의 3분의 1 이상이 빠져나간다고 치자. 이쯤 되면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즉 고객이 문제인지 당신의 회사가 문제인지 의문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59


표준화운동은 낮은 학업 성적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됐다.  60


아무튼 원인이 무엇이든 여러 조사와 실질적 경험을 통해 거듭 드러난 바에 따르면,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높여주는 결정적 요소는 학생 자신의 동기와 기대다. 학업성취도를 높일 최선의 방법은 지도의 질을 향상하고,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유익한 평가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치적 대응은 이와는 반대 방향을 향해왔다. 다시 말해 커리큘럼을 편협하게 짜고 교육 내용, 지도법, 평가를 최대한 표준화시켜 왔지만 이런 대응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61


표준화운동은 대부분 실패 중이며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

표준화운동이 추진 중인 원칙과는 다른 원칙에 기초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본이란 특정 과목도, 특정 지도법이나 평가 전략도 아니다. 원래 역할에 충실한 교육의 근원적 목적을 가리킨다.  62


대안교육 프로그램에서는 .. 자기가 똑똑하지 못하가도 생각했던 학생이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어른들의 관심, 열정, 전문지식 그리고 학생들의 신뢰, 의지, 헌신이 함께 필요하다.  71


대체로 유럽에서는 100여 년 전에 추진됐던 산업혁명의 일환으로 19세기 중반에야 공교육이 출현했다.  72


애초부터 대중 교육은 사회적 목적성도 높았다. ..토머스 제퍼슨은 "문명국가에서 국민들이 무지하면서도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삶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중 교육을 사회 통제의 한 방법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교육은 사회적 기회와 공평성을 촉구하는 수단이었다.  75


산업주의에서는 대학 졸업자보다 육체 근로자가 더 많이 필요했다.  76


산업 제조의 목적은 똑같은 상품을 동일한 형태로 생산하는 것이다. 

대중 교육제도도 학생들을 특정 조건의 틀에 짜 맞추려는 의도로 설계됐다... 산없적 방법에서는 특정 규칙과 표준에 따른 획일성을 요구한다. . 표준화운동만 해도 커리큘럼, 지도법, 평가에 대한 순응을 바탕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산업적 방법은 '선형(線形 줄선 형상형) 구조'를 띤다. 원재료가 연속적 단계를 통해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각각의 단계마다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관문으로서 일정 형태의 테스트를 거친다. 대중 교육도 일련의 단계로 설계돼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그 상위 단계의 교육까지 쭉 이어진다. 학생들은 전형적으로 출생일에 따라 별개의 학년으로 나뉘어 일괄적인 제도에 따라 진학한다. ..

산업 생산은 '시장 수요'와 결부돼 있다. 시장 수요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제조업자는 그에 맞춰 생산량을 조정한다. 산업 경제에서는 행정직과 전문직 근로자가 비교적 소수만 필요했기 때문에 대학 정원이 엄격히 통제됐다. 반면에 현재는 지적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학 진입의 문이 활짝 열리고 대졸자가 사회로 진입하는 물결이 증가 추세다. ..

학교, 특히 고등학교와 고등교육은 공장에서 흔히 그렇듯이 '분업' 중심의 구조로 짜여 있다. 고등학교는 일과가 대개 일정 간격으로 나뉘어 있다. 종이 울리면 모든 학생이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종종 교실을 바꿔 다른 수업을 받는다. 교사들은 특정 과목을 담당해 하루 종일 이 학급 저 학급을 가르친다.

이런 원칙은 상품을 제조하는 분야에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사람을 교육하는 분야에서는 온갖 문제를 유발하기 십상이다.  77-78


교육의 획일성이 문제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애초부터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78


내가 획일성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교육에서의 제도화된 경향, 즉 하나의 표준 능력으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그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저능아'나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으며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다. 이런 의미에서 획일성에 맞설 대안은 사회 분열을 묵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성을 살리는 방식이 되어야 맞다. ..

획일성이라는 편협한 관점을 들이대면 필연적으로 제도로부터 퇴짜 맞거나 구제 대상자로 낙인찍히는 비순응자들이 다수 양산되게 마련이다.  79


우리 인간은 적절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상상력과 창의력이 대단히 풍부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획일성의 문화에서는 이런 상상력과 창의력이 적극적으로 억제되며, 심지어 괘씸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선형 원칙은 제조 분야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사람에게 대입하면 그렇지 못하다. 연령별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제조일'이라는 가정에 따르는 셈이다.  80


산업적 농업과 마찬가지로 산업적 교육에서도 생산성과 수확이 중요시돼왔고 현재는 그 강도가 더 높아지는 추세다.  89


교육을 개선하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교육 역시 살아 있는 제도라는 점과 사람은 성장 환경에 따라 잘 자라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90


학교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문화로 끌어올려야 한다. .. 문화를 실현시키려면 무엇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까? 내 생각에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목적의 네 가지다.  91


경제적 목적 - 교육은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학교가 교육의 경제적 목적에 제대로 관여하기 위헤서는 청소년의 재능과 관심사를 아주 다양하게 길러줘야 한다. 학업과 직업훈련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두 분야를 똑같이 중요시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여러 종류의 직업 환경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직업 세계와의 실용적 파트너십을 촉진해야 한다.  91-94


문화적 목적 -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게 이끌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은 인간을 더욱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요소다. 모든 공동체는 자신의 문화와 더불어 다른 문화의 관행과 전통을 기림으로써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

학교가 문화적으로 우선시해야 할 세 가지는 학생들 자신의 문화를 이해시키고 나아가 다른 문화들을 이해시킴으로써 문화적 관용과 공존에 대한 인식을 장려하는 것이다. 학교들이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편협하고 빈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커리큘럼이다. 

94-97


사회적 목적 - 교육은 청소년이 능동적이고 온정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게 해줘야 한다.  97


개인적 목적 - 교육은 청소년이 주변의 세계뿐만 아니라 내면의 세계에소 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 .. 교육이 살아 있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다른 목적들도 충족될 수가 없다. .. 인간으로서 우리는 누구나 두 개의 세계에 산다. 먼저 당신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당신이 오기전부터 있었고 당신이 떠난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물, 사건, 다른 사람들로 이뤄진 당신 주변의 세계다. 또 하나의 세계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세계다. 당신 자신의 생각, 감정, 지각의 사적인 세계, 즉 당신 내면의 세계다. 이 세계는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 탄생됐고 당신이 숨을 거두는 순간 소멸된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세계를 통해서만 우리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감각과 생각을 통해 주변의 세계를 지각하고 분간하면서 비로소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100



원칙적으로 노스 스타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절망을 느끼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십대들을 위한 곳입니다...

사람을 그냥 내버려주는 것,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는 일에는 뭔가 심오함이 배어 있어요. 

이제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를 물어봅니다. 아이들도 아직은 잘 모르기 때문에 답을 찾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모든 것에 '아니요'라고 말하며 삶을 철저히 비워낸 다음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방법이에요 해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107-108


켄과 노스 스타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를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수 없으며, 가장 잘 맞는 학습 방법으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을 가르쳐 줄 때 학생들은 비약적으로 도약한다는 것을 잘 안다.  109


어떤 상황을 혁신시키려면 세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방법에 대한 비평,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비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방법에 대한 변화론이다.  111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의무적으로 예술, 과학, 수학, 언어, 인문과학, 체육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하고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따라야 하지만 그 수행 방법에 관해서는 학교와 교육구에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진다. 핀란드에서는 학교들이 실용적 프로그램, 직업훈련 프로그램, 창의성 양성에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 또한 교사들의 훈련과 발전을 위해 그동안 막대한 투자를 해왔소 덕분에 교직은 위상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학교 교장들은 학교 운영에 폭넓은 재량권을 갖는 한편 전문적인 지원도 받는다. 핀란드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경쟁보다는 협력을 장려하면서 자원, 아이디어, 전문 지식을 서로 공유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들이 지역 공동체와 학부모를 비롯한 학생의 다른 가족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도록 장려한다.

핀란드는 모든 국제적 평가에서 꾸준히 높은 표준 성취도를 보이고 있지만 고등학교 말에 딱 한 번 실시되는 시험 말고는 표준화된 시험이 없다.  113-114


교육은 산업적 제도가 아니라 유기적 제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116




아이들의 타고난 학습 능력은 얼마나 대단할까? 수가타 미트라는 1999년에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뉴델리 빈민가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벽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전원을 켜서 인터넷을 연결해놓은 다음 아이들이 이 컴퓨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그곳 아이들은 모두 컴퓨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웹브라우저는 아이들이 알지도 못하는 언어인 영어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컴퓨터 다루는 법을 아주 금세 뚝딱 배우더니 자기들끼리 서로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자기들만의 음악을 녹음하고 능숙하게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당시에 트위터가 있었다면 그 달 만쯤에는 아이들에게 50만 명의 팔로워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가타는 더 야심찬 실험을 시도했다. 이번엔 컴퓨터에 음성-문자 변환 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텔루구족 억양이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컴퓨터에게 자신들의 말을 해독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을 몰랐다. 수가타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 뒤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주고 떠났다가 두 달 뒤에 다시 찾아갔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던 영국의 억양에 맞춰 자기들의 억양을 교정한 상태였다.

얼마 후에 수가타는 인도 타밀어를 말하는 12ㅅ의 아이들이 영어로 생물공학을 독학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번에도 그는 두 달의 시간을 주었고 그 자신조차 결과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가서 시험을 보게 하면 당연히 0점을 받겠지. 교재를 주고 나중에 다시 가서 시험을 봐도 똑같이 0점이 나올 거야. 그러면 나는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두 달 후에 다시 가봤더니 26명의 아이들이 아주 아주 얌전한 표정으로 걸어왔어요. 제가 먼저 물었어요. '그래, 좀 봤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죠. '네, 봤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니?' '아니요, 전혀요.' '그랬구나, 얼마나 연습하다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매일 봤어요.' '두달 동안 아해도 안 되는 내용을 계속 봤다고?' 그 말에 한 여자아이가 손을 들더니'DNA 분자의 부적절한 복제가 유전병을 유발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해를 못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수가타는 정말로 많은 아이들이 효율적인 도구만 주어지면 혼자서도 학습할 수 있다는 증거를 그뒤로도 계속 발견하게 되었다.  134-136


아이들이 이처럼 타고난 학습자라면 학교에서 잘 따라오지 못하고 쩔쩔매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걸까? 학교 공부에 지루해하기만 하는 아이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을까? 여러 면에서 볼 때 학교에 만연된 제도와 관습이 문제다.  136


현재의 학업은 크게 세 요소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명제적 지식'으로 통하는 지식, 이른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1776년에 서명됐던 사실이 이런 명제적 지식의 예에 해당된다. 두 번째 요소는 개념, 절차, 가정, 추측 등의 이론적 분석의 강조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자유의 본질, 운동의 법칙 소네트의 구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 요소는 손재주, 신체적 기술, 눈과 손의 협응 능력, 도구의 사용 등이 수반되는 기술적이고 실용적이며 응용적인 공부 보다는 주로 읽기, 쓰기, 수리가 수반되는 책상머리 공부의 강조다. 

명제적 지식은 때때로 '노잉 댓(knowing that: 방법을 아는 것-옮긴이)'와 구별된다. 절차적 지식은 뭔가를 만들고 실질적 일을 할 때 활용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몰라도 미술사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음악 이론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는 있다. 미술 활동이나 음악 활동도 사실상 공부해야 할 부분이 있으므로, 방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절차적 지식은 공학에서부터 의학과 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실용적 분야에서 필수적이다. 사람에 따라 학문적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특정 분야의 학문에 열정을 느끼기도 하며 아이디어와 기술의 실용적 응용에 흥미를 느끼면서 특정 실용 분야에 열정을 갖기도 한다.  137-138


모든 학생에게는 학문적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138


우리의 학교제도를 떠받치는 조직적 의식과 지적 습관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적절히 반영해주지 못하는 탓이다.

단지 이런 식의 제도에 잘 맞지 않을 뿐인데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자신이 별로 똑똑하지 못하다거나, 학습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139


가족의 지지는 받았지만, 온전한 관심은 받지 못한..  142


개인 맞춤형 교육이란 어떤 교육일까?

 - 인간의 지능이 다양하고 다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 학생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관심사와 장점을 살릴 수 있게 해주기.

 - 시간표를 학생들의 저마다 다른 학습 속도에 맞춰주기.

 - 개인별 진도와 성취도를 격려해주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기.  147


우리 인간은 다른 종들처럼 세상을 직접적으로 살지 않는다. 즉 인간은 세상을 개념과 가치라는 틀을 통해 바라본다. 세상에 대한 개념과 이론을 세우고 그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며 그에 따라 스스로나 서로를 바라본다. 이런 상상과 창의성은 지구상의 다른 생물과 인간을 구별짓는 몇 가지 안 되는 특징이지만, 바로 그 특징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148


집에 새 가전기기를 들여놓고 모든 가족에게 작동법을 알아내보라고 하자. 당신의 배우자는 바로 제품 사용설명서부터 들여다보고, 한 아이는 온라인에 접속해 그 기기와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고, 또 다른 아이는 기기를 켜서 무작정 조작해볼지 모른다 이처럼 새로운 물건을 터득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은 각자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제각각인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법으로 그것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비효율적이다.  153-154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를 높이려면 학생들을 개개인으로서 수업에 참여시켜야 한다.  155


느린 교육 운동의 핵심은 어떤 방식이건 학습 과정을 개별화시키고 학습자에게 자신의 열정과 장점을 발견할 여지와 시간을 허용해주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느린 교육 운동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진심 어린 학습이 중요합니다. 교사와 학습자의 참여의 질이 학생을 재능과 시험 성적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이 포인트예요."  159


여러 형태의 놀이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놀이의 추방은 표준화교육이 밎은 대비극 중 하나다. 

생물 진화적 관점에서 놀이를 연구해온 보스턴대학교의 심리학 연구교수 피터 그레이에 따르면 아이들은 다른 책임들에 얽매이지 않으면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해 훨씬 많이 놀며, 이런 놀이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얻는다.  160-161


피터 그레이는 "아이들은 본래부터 어른의 간섭 없이 혼자 힘으로 놀고 탐험하도록 태어난 존재다.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가 없으면 괴로워한다. 자유롭게 놀고 싶은 충동은 기본적이고 생물학적인 충동이다."

그레이 박사의 말마따나 자유로운 놀이의 결핍은 음식, 공기, 물의 결핍처럼 육체를 죽이지는 않는다 해도 영혼을 죽이고 정신적 성장을 방해한다.

"자유로운 놀이는 아이들에게 학습 수단이다.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요령을 배운다. 또한 놀이를 통해 자신이 자라는 문화에서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신체적, 지능적 기술을 연습하고 습득하기도 한다. 그 무엇을 해준다 해도 빼앗은 자유를 보상해줄 수는 없다. .. 아이들이 자유로운 놀이 속에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들은 다른 식으로는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다."  162-163


'지름길은 없다'

"제가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면 저 자신이 가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습니다."  169


정규 교육의 3대 요소는 커리큘럼, 지도, 평가다. 대체로 표준화운동은 커리큘럼과 평가에 초점이 집중돼 있다. 지도는 표준을 전하는 역할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우선순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커리큘럼이 얼마나 상세한지, 시험에 얼마나 비용을 들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육 혁신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지도의 질이다.  172


표준화운동은 교사들에게 서비스직 종사자의 역할을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사들이 택배기사나 되는 듯이 표준을 '배달'하는 역할에 치중돼 있다.  173


아이들이 타고난 학습자라면 굳이 교사들이 필요할까? ..

교육은 살아 있는 과정으로서 농업이 가장 적절한 비유가 된다. 농부들은 자신들이 식물을 자라게 해주는 것이 아님을 안다. 농부들이 식물에 뿌리나 잎사귀를 붙여주거나 꽃잎에 색을 칠해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식물은 스스로 자란다. 농부가 할 일은 식물이 스스로 자랄 최적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174


아이들은 원래 호기심이 많다. 학습 의욕을 자극하려면 아이들의 호기심을 북돋워야 한다. 질문 중심의 실용적인 지도법이 큰 효과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련한 교사는 학생들이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의문을 품도록 자극해서 탐구 의욕을 부추긴다.  181


학생들은 유대감을 주는 교사를 필요호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믿어주는 교사를 필요로 한다.  184




커리큘럼은 정규 커리큘럼과 비정규 컬리큘럼으로 구분되는데 정규 커리큘럼은 의무적인 과정인 만큼 시험을 치르고 평가받는 절차가 수반된다. 비정규 커리큘럼에는 모든 자발적 활동이 포함된다. 

커리큘럼의 목적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들에 대해 일종이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커리큘럼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학교들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든 구성원의 시간과 공간의 이용을 어떻게 배열할지를 결정하는 데도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217


내 생각에 교육의 4대 기본 목적에 비추어 학교가 정말로 학생들의 성공적 삶을 돕고 싶다면 여덟 가지 핵심 능력을 개발해 주어야 한다. 

 - 호기심(curiosity)

   인간이 이뤄낸 성취는 탐구하고 시험해보고 싶은 욕망,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욕망, '왜'라는 의문과 '만약'이라는 의문을 풀고 싶은 욕망이 그 동력이다.

 - 창의성(creativity)

 - 비평(criticism)

   비평적 사고는 형식논리만으로 갖춰지는 능력이 아니다. 의도의 해석, 맥락의 이해, 감춰진 가치와 감정의 간파 동기 판단, 편견 간파, 간결하고 타당한 결론 제시 등도 갖춰야 할 능력이며 이 모두는 연습과 지도가 필요하다.

 - 소통(communication)

   우수한 읽기, 쓰기, 산술 능력. 이와 더불어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능력,, 일명 '구술 능력(oracy)' 역시 중요하다.

 - 협력(collaboration)

   학교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능력이 지역 공동체를 강화시키고 집단적 도전에 맞서는 데 중요한 요소다... 청소년에게 협력 능력을 키워주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호기심이 자극되며 창의성과 성취도가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이 촉진 된다.

 - 연민(compassion)

   연민의 뿌리는 감정이입이다. 단순한 감정이입만은 아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실제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의 실천이기도 하다.

 - 평정(composure)

 - 시민성(citizenship)

   청소년이 사회의 작동 방식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법적, 경제적, 정치적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그런 제도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 시민성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획일성과 현상 유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동등한 권리, 의견 차이의 가치,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잡기 등을 장려해야 한다.  222-230


학교의 커리큘럼 구상에 관해 나는 학과라는 개념을 훤씬 선호한다. 학과는 이론과 실용이 조합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231-232


내 견해로는 균형 잡힌 커리큘럼이 되려면 예술, 인문, 언어, 수학, 체육, 과학에 대해 공평한 자격과 자원을 부여해야 한다.  232


표준화시험이 교육의 주된 책무가 되면 커리큘럼을 정하고 지도의 초점을 맞추는 기준으로서 시험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교과목의 테스트 방법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방법의 모델이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교가 시험 준비 프로그램으로 전락하는 셈이죠."  260


시험을 강조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타고난 창의성과 모험가적 재능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61


전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할 것 같은 학생들을 낙제시킬 소지도 있다.  262


평가란 학생들의 발전과 성취의 정도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내가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 가지 법칙>에서도 주장했듯이 평가는 서술과 평가의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떤 사람이 1마일(약1.6km)을 4분 만에 달릴 수 있다거나 불어를 말할 줄 안다고 하면, 이것은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한 중립적 서술이다. 반면 어떤 여학생이 그 교육구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한다거나 원어민 뺨치게 불어를 잘한다고 말할 경우에는 평가가 된다. 평가가 서술과 다른 점은 개인의 실력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특정 기준에 대비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평가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우선 진단적 역할을 해서 교사가 학생들의 적성과 발달 수준을 파악하게 해준다. 또한 발달 형성적 역할을 통해 교사가 학생들의 공부와 활동에 대한 정보를 모아 발달을 북돋우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학업 프로그램 말기에 전반적 수행 능력을 판단하게 해주는 총괄적 역할을 한다. 

문자와 성적을 활용하는 평가제도의 문제는 대체로 서술의 비중이 약하고 비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때때로 그 의미도 잘 모른 채 성적을 받고 교사들은 때때로 그 이유를 확신하지 못한 채 성적을 매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문자나 숫자로는 복합적 평가를 총괄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 또한 문제다. 게다가 일부 성과는 이런 식으로는 적절히 표시할 수가 없다. 저명한 교육자 엘리엇 아이즈너(Elliot Eisner)는 말했다.

"중요한 것이라고 해서 모두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측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  272-273


실질적 학습은 상당히 다루기 힘든 일이다. .. 학교의 주된 초점을 성적이 아니라 학습에 맞추려면 학습과 사람들을 숫자로 전락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274


현재 전세계적으로 몇몇 교육구들이 문자와 숫자로 표시되는 성적을 폐지하고 보다 통합적인 평가 방식을 채택하는 시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283


학교에서 쩔쩔매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개인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들 특유의 장점이 발견되지 못하거나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의 깊게 살펴보는 부모라면 담임 교사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보다도 자신의 자녀를 더 잘 알기 마련이다.  326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다  327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참여는 사회경제적 위치나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동기부여와 성취에 직결된다. <증거의 새로운 물결>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들과 학교 문제를 얘기하고, 아이가 잘할 거라고 기대해주고, 대학 진학 계획을 도와주고, 과외 활동을 건설적으로 하도록 확인해주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더욱 실력 발휘를 한다.  328


홈스쿨링은 지난 수년 사이에 탄력을 얻으면서 한때는 별난 사람들의 전유물로 취급됐으나 이제를 주류로 들어서고 있다. 미국 교육부에 따르면 2011~2012학기에 학령기 아동의 약 3퍼센트가 홈스쿨링을 받았다고 한다. 홈스쿨링을 매력적 대안으로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한 가지만 들어보면, 앞에서 교육의 개인 맞춤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뤘던 여러 가지 문제를 홈스쿨링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즉 표준화시험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가장 끌리는 열정과 관심사를 발견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학습의 해>에서 저자 퀸 커밍스는 그녀의 딸 앨리스에게 홈스쿨링을 했던 체험담을 풀어놓았다. ' .. 딸이 지성을 한껏 과시하며 자신감을 펼치길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딱히 가야 할 곳도 할 일도 없이 멍하니 긴 우호의 따분함을 기분 좋게 즐기기도 바랐다.'  346-347




"저는 아이들이 세 유형으로 나뉜다고 봅니다. 먼저 기술의 수동적 소비자형이 있어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프로그램을 소비만 할 뿐, 기술은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이죠. 그다음으로 똑똑한 소비자형이 있어요. 분별력 있게 웹을 활용할 줄 아는 아이들이죠. 기술에 대해 더 잘 알지만 실천은 하지 않아요. 마지막 유형은 생산자형 아이들이에요. 오픈소스 활용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유형이죠. 아이가 창의성을 갖길 바란다면 프로그램 짜는 요령을 가르쳐줘야 해요. 컴퓨터가 없는 아이에게 컴퓨터는 정보기술 외 다른 학습으로의 활용 면이나,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면으로 활용도가 뛰어난 기구예요."  371


창의성의 풍토를 촉진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모든 관련자들을 찬찬히 살피며 "어떤 제안거리가 있는지 알아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저마다의 독특한 재능을 발견해주면서 성장을 유도해주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376




나오는 글 - 모든 사람을 위한 혁명


마리아 몬테소리는 의사이자 교육자였다... 다음과 같이 개인 맞춤형 교육을 강조했다. "교사는 아이가 흥미를 갖는지 안 갖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어떻게 관심을 보이고 얼마나 오래 관심을 보이는지 관심을 기울이며 얼굴에 드러난 표정까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교사는 자유의 원칙을 어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이에게 부자연스러운 활동을 부추길 경우 아이의 자연스러운 활동이 뭔지를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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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5일 비즈니스 카페 재팬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있었던 강연입니다. 비즈니스 카페 재팬은 나의 오랜 친구 히라카와 카츠미가 설립한 회사로, 컨설턴트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21



1. 공부로부터 도피하기


교육 받을 기회로부터 스스로 달아난다는 말은 머지않아 '하류사회'로 계층이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25


학령기 자녀를 둔 어른들은 무의적으로 자기 자식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의 학력이 내려가면 자기 아이에겐 이익이 된다는 기대감을 자기고 있다. 그런 무의식적인 욕망이 아이들의 학력저하를 심리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31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잠시 보류해 둠으로써 지성이 활성화되는 인간적인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는다.  36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모른다'는 것보다 이처럼 '모르는 것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위기의 징후로 여겨진다.  37


의미를 몰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38


어두운 밤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항해사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바다 위에 떠 있으면 긴장한다. 하지만 만약 시야게 들어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투성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에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또 하나 새로 등장한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40


'최근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돈이 들어가는 생활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각종 미디어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생활도 처음이다. 돈이 돈을 낳는 경제구조 속에 완벽하게 말려들어가 있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자립'의 감각을 체득하는 것도 이러한 경제 사이클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소비주체'로서의 확신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현재의 경제 구조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여과 없이 곧바로 받고 있다. 학교가 오늘날의 사회를 가르치고자 '생활주체'나 '노동주체'로서의 자립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은 어엿한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이미 경제적인 주체인데 학교에 들어가면 새삼스레 교육의 '객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스와 테츠지 <왕자와 공주가 되어가는 아이들>

이 부분은 내가 최근 십년 동안 읽었던 교육 관련 글 중에서 가장 계몽적이다. '아이들은 이미 취학 전에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과 삼십 년 전 아이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사회관계에 들어설 때 노동을 통해 들어가는가, 소비를 통해 들어가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사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우리들이 어렸을 때 사회적인 활동은 먼저 노동주체로서 자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어린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가사노동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밥그릇을 부엌까지 갖다놓거나, 마당을 쓸거나, 화초에 물을 주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나,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놓거나, 이처럼 가정에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었다. 부모는 당신들이 분담해야 할 가사노동을 아이들이 적게나마 줄여주니까 당연히 "고맙다"거나 "참 잘했어" 하고 칭찬해준다. 아이들은 그 칭찬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최초의 사회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유용한 구성원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부터이다. 작지만 가족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감사와 인정을 보상으로 획득하면서 어리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간다. 이러한 데서 예전에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을 밟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좀더 자라면 가사노동에 머물지 않고 바깥 사회활동에도 참가하는데, 타인에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감사와 사회적 승인이라는 대가를 받는 교환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의 기초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노동의 작은 분담자로서 사회관계 속에 자기를 등록하면서 아이들은 먼저 노동 주체로 자기를 세운다. 아니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자기를 세울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노동주체로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다르다. 지금 아이들은 노동 주체라는 형태로 사회적 인정을 받아 스스로를 세울 수 없다. 그럴 기회를 구조적으로 빼앗겼다.

둘러보면 오늘날 가사노동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남은 가사 일이라는 것도 그리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가령 청소나 빨래처럼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은 남아 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거나 성취감을 얻거나, 또는 사회성을 기르고 자연스레 학습과 연결되는 일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개를 산책시키고 화초에 물을 주고 풀을 뽑는 일상적인 일들은 자연과 연결되는 일로, 많든 적든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지만 이제는 가정에서 그런 일을 찾기가 힘들다. 부모들 입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가사노동을 시킬 수가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가사노동 분담이라는 작은 선물을 할 수도 없고, 가정이라는 시스템에 작게나마 자신도 공헌하고 있다는 기쁨을 누릴 기회도 없다. 

오히려 지금의 아이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체가 집안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소여서, 가능하면 그들에게 할당된 공간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헌이 되었다. 이런 가정이 매우 많다고 본다. "됐으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줄래!" 하는 엄마들의 화난 목소리는 요즘 다든 익숙할 정도로 많이 듣는 거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금지는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미약한 도움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고, 그 고사리 같은 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일본 속담에 '고양이 손이라도 비리고 싶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부탁할 만한 생산 활동이 거의 없어졌다. 반면에 아이들의 소비활동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촉발된다.  48-51


한 사람 몫으로 사회관계의 장에 등장하는 경우, 만일 그가 네 살짜리 어린아이라면 그를 교섭 상대로 대등하게 대우해줄 어른은 없다. 하지만 돈을 쓰는 사람으로서 등장한다면 그 사람의 나이나 식견, 사회적 능력 따위의 속인적 요소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쓰는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지, 돈을 쓰는 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돈의 투명성'이라는 특권적 성격이다. 사회적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어린아이가 여기저기서 쥐어주는 용돈을 가지고 소비주체로 시장에 등장할 때 처음 느끼는 소감은 '법을 뛰어넘는 전능함'일 것이다.  52-53


* 니트(NEET) : 용국 정부가 노동정책상 인구 분류로 정의한 용어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의 약자이다. 교육을 받지 않고, 노동을 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니트는 일반적으로 '일할 의욕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63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해라" 또는 "학원이나 가라"는 요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국영수 학원에 가거나 예체능 학원에 간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지쳐 말할 기운도 없고, 가족들을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그저 온몸으로 피로와 불쾌함을 표현함으로써,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엄마 아빠가 그렇듯이 자신도 충분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라는 것으로, 자신도 불쾌함을 견디고 있고 따라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음을 과시한다.

가족 중에서 '누가 가장 집안에 보탬이 되는가'를 '누가 가장 기분이 나쁜가'로 측정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 가정의 기본 규칙이다.  65


'시장 원리를 기초로 할 때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68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갖는지도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71


자신의 유아적 욕망을 가슴에 품고, 결코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말고 그저 소비주체로 안주할 것. 시장원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존재하길 요청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외계의 변화에 적응해 살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77


30센티미터 자로 잴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무게나 빛, 탄력 같은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진 거라곤 30센티 자밖에 없어 오로지 그 잣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계량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82




2.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얼마만큼 노력하면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노력과 성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 이것이 리스크 사회의 특징이다.  89


리스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생존 전략의 선택에 따라서 양극화는 더욱 진행된다.  90


리스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국민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라고 정부틑 선언하고 있음에도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정자와 교육행정 책임자, 대중매체 지식인들은 '리스크를 제거하라'고만 가르치지, 어떻게 '리스크를 방어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중앙교육심의회의 답신이나 교육학자의 제언 중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리스크 헤지 방법을 교육할 것인가'를 다룬 내용을 본 적이 없다. 리스크 사회가 도래했다고 경종을 울리면서 아무도 '리스크를 헤지하는 법'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105


우리들은 지금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실업을 당해도, 노숙자가 되어도, 병이 들어도 모든 것이 이러한 리스크가 있는 삶을 선택한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은 리스크란 개인적인 것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리스크 헤지는 자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05-106


중국인은 자식들을 일본이나 미국, 호주 등지로 뿔뿔이 유학을 보내 그곳에서 사업을 하게 한다. 어느 한쪽이 전쟁이나 공황으로 재산을 잃거나 인종박해로 추방을 당해도 다른 나라에 있는 친족이 지원하거나 받아줄 수 있도록 안전망을 쳐놓는다. 이것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갈고닦은 리스크 헤지의 기법이다. 

유대인도 마찬가지다. 로스차일드 재벌의 창시자 마이야 로스차일드는 다섯 명의 아들에게 유럽 네 도시에 은행을 열게 했다. 장남은 창업지인 프랑크푸르트 본점에 남겨두고, 둘째는 빈, 셋째는 런던, 넷째는 나폴리, 다섯째는 파리에 지점을 열게 했다. 그로부터 2백년이 흐르는 동안 본저모가 나폴리 지점은 폐업하고, 빈 지점은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 망했다. 하지만 런던 지점과 파리 지점은 살아남아서 일족의 이름을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과 두 차례에 걸친 유럽 대전에서도 살아남았기에 이것이야말로 리스크 헤지의 교과서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수 있듯이, 리스크 헤지는 '살아남기'를 목표로 집단이 합의한 계획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리스크 헤지를 하고, 발생한 리스크에 개인이 대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개인이 리스크 헤지를 한다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은 '살아남는 것을 집단의 목표로 내걸고 상부상조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 사회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자기가 결정하고 그 결과도 혼자서 책임진다'는 원리로 사는 게 결코 아니다. 자기가 결정하고 결과도 자신이 책임지라는 말은 리스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또는 죽음의 방식)이다.  107-108


고립된 아이가 혼자서 학교라는 시스템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기 가치관을 학교 시스템에 대등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이댄다. 스스로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는 배움을 거부한다. 이것이 자기결정이다. 배우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리스크를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사칙연산을 못하고, 알파벳을 모르고, 한자를 못 읽는다. 흥미 있는 영역에 대한 사소한 지식은 있을지라도 흥미가 없는 분야는 아예 모른다. 벌레가 파먹은 듯 의미의 구멍이 숭숭 뚫린 세상이 별로 불쾌하지 않다는 듯 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층 하강의 리스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115


오늘날의 교육 문제는.. 아이들이 나태해서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학력저하가 아이들의 나태와 주의산만의 결과라면 그 보정은 교육기술 차원의 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습을 포기하고 공부로부터 도피하는 데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 수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 문제는 교육기술이나 방법을 바꾸는 식의 기술적 차원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사회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120-121




3. 노동으로부터 도피하기


젊은 회사원에 대한 얘기다. 평소 그의 일솜씨를 높이 평가한 상사가 새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보라고하자 그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기 일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가지결정권에 대한 고착이다. 자기가 결정한 것이라면,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지라도 상관없다. 일종의 '자기결정 페티시즘'이다.  125


선택을 강제하면서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것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다.  128


니트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문제화된 사회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니트 문제는 영국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영국은 전형적인 계급사회여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취학 기회나 취업훈련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학습 의욕은 있지만 사회적으로 상승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이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인 사회에서 이민자의 아이들은 교육 기회와 문화자본에서 구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파리 근교에는 HLM(저가 임대 주택)이라는 거대한 주택단지가 있다. 그곳에는 이민자를 비롯한 빈곤층 주민들이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살고 있다. 예전에 이런 교외지역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던 프랑스 여성에게 들었는데, 이런 거대 단지에는 도서관이나 미술관, 책방, 극장, 콘서트홀 같은 문화시설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다고, 설령 예술적 재능이 있다 해도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기회 조차 없는 셈이다. ..

유럽의 니트는 계층화의 한 증상이다.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의 니트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느넫도 아이들이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자진해서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강화하는데 가담하는 방법으로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약자가 자신의 사회적 입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에서도 예외에 속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129-130


공교육의 이념은 유럽의 시민혁명기에 제창되었지만, 일찍이 제도적으로 정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0년 당시 미국 고등학교 (14세~17세) 취학률은 8.4%였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중등하굑 취학률은 3.8% 미만이었다. 그보다 반세기 전 1840년에 초등학교 취학률은 미국 전국 평균이 38.4%였다. 단, 이 경우 '취학자'는 단 하루라도 학교에 갔던 사람까지 포함하고 있고, 당시 미국의 보통학교 개강일은 연간 40일 정도였다(카리야 타케히코 <교육의 세기>)

근대의 초등교육 기관은 부모에 의한 사적 수탈과 지배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피난소'라는 공적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적인 공교육 사상을 기초로 한 일본 헌법에서는 교육받을 권리를 정한 제26조 다음에 '아동을 혹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제 27조가 따라온다. 헌법에 이러한 규정이 있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사회가 취학 기회를 갖지 못한 아동을 '저가노동'으로 혹사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131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 '권리'인지 '의무'인지를 묻는다면 아마 90%늬 아이들이 '의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대답에는 교육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일종의 정치적 이의제기'로 보는 시각도 성립한다....

'배움'이란 본시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을 고역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132


교육의 '권리'를 '의무'로 바꿔서 읽는 도착 행위가 일어난 이유는 경제적 합리성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했기 때문이다.  133


노동에의 가치에 비해 임금이 낮은 것은 원리상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임금이란 노동자가 창출한 노동가치에 비해 항상 적다.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이 이윤을 낼 수가 없고, 주주에게 배당도 할 수 없으며 설비투자도 불가능하고, 연구개발도 할 수 없다. 경제활동에 들어가는 자금은 모두 노동자로부터 '수탈'한 노동가치에서 조달된다.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노동가치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리다. 여기서 발생한 잉여가 교환을 가속시키고, 그 결과 시장이 형성되고 분업이 이루어지며 계급과 국가가 생겨난다.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왔다.  141-142


배움의 본질은 지식과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에 있기 때문이다.  155

 

졸업생은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송출한 '제품'이며, 이 제품을 기업이 '매입'한다는 또 하나의 소비모델이 존재한다.  157




4. 이들을 어떻게 도울까


히라카와 : 지식은 일본에서도 활용할 수 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교환 가능성에 입각하여 표준화됩니다. 모든 것을 표준화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앞에서 언급했던 '자기 찾기'가 꽤 화재를 모았는데, 모두가 표준화되면 이제 '나'라는 것은 없어집니다. 옆 사람과 나의 차이를 측정하는 도구로 경제적 잣대밖에 없다면, '자기다움'이란 애당초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붕괴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일한 척도인 돈을 양적으로 불려서 자기붕괴를 막고자 합니다.  168


우치다 : 아동학대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만, 이 현상은 육아를 등가교환 관점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낳은 피연적인 결과로 보입니다. 육아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엄마들은 육아를 긴 안목으로 생각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극히 짧은 안목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육아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은 자기가 만들어낸 '제품'이며, 부모의 서오가는 이 제품에 어떤 부가 가치를 덧붙이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오가가 평가를 받으면 부모는 '육아의 성고'이라는 형태로 사회적인 자기실현을 다했다고 여깁니다. 회사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의 매출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것과 같은 심리입니다.  

처음에는 똥오줌을 가린다거나, 말을 한다거나, 걸을 수 있다는 식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어를 구사한다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명문학교에 입학했다거나, 역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들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가된 가치를 부모인 자식의 '사업' 성과로 가시적, 외형적으로 과시하려고 하는 한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학력이나 자격과 같은 외형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누넹 보이는 성과' 이외의 것은 육아의 부가가치로 쳐주지 않습니다.

자식이 있으면 이해하시겠지만 본래 육아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일로, 육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20년이 걸려도 잘 모르는 법입니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육아 노동의 성과를 1~2년안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 보이라고 압력을 가해서는 곤란합니다. 짧은 시간에 측정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모들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수치화할 수 있는 형태로, 정량적인 형태로 육아의 서오가를 올리라고 재촉당하고 있습니다. 부모 스스로 이런 압력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또 가닭 모를 행동도 합니다. 이럴 때 "이 아이가 뭘 하는 걸까?"라며 아무 말 없이 그냥 바라보는 것이 옳은 양육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양육법은 오늘날 허용되지 않습니다. 

정시노가 의사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사춘기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기분이 좀 나빠요"라거나 "이건 싫어요"같은 불쾌한 메시지를 발신할 때 부모가 이런 메시지는 선택적으로 배제해버립니다. 아이가 심신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정보는, 말하자면 '제품'이 소음을 내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소음을 낸다는 것은 제품 공정에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부모는 자신의 '육아 실패'라는 기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귀를 막아버리는 것이지요. ...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오면 위험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 신호를 청취하면 자신의 육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발신하는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립니다. 이렇게 둔감한 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무너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가 느끼는 몸과 마음의 불쾌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보내오는 위험신호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신호가 아니라 소음으로 들리니까요. 하지만 여기에서 부모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바로 아이들이 발신하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시키는 일입니다.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게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내는 소음이 신호로 들리게 됩니다.

이것은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저오가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지속적으로 해주는 의미 불명의 말들을 분절하여 해독함으로써 마침내 모국어를 습득합니다. 다시 말해 무의미하게 들리던 소음이 의미 있는 신호로 바뀌는 것이지요. 이건 흔히 말하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되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목숨을 건 도약'입니다.  169-172


전후 6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약자의 안전망이었던 중간적인 공동체를 계속해서 무너뜨렸습니다. 지역공동체, 친족, 주종관계, 사제관계 전부 다 무너뜨렸습니다.  201


아이들이 노동주체로 출발할지 소비주체로 출발할지 학교에 들어가기전에 이미 결정됩니다.  211


요로 타케시(해부학자, 도쿄대 명예교수, 마음의 문제나 사회현상을 뇌과학, 해부학을 비롯한 의학, 생물학 영역의 다양한 지식으로 설명하는 저술 활동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얻고 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삶의 매뉴얼이 없는 시대여서 각자가 연구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1시간 30분 정도 강연을 하셨는데 한 질문자가 "선생님, 매뉴얼이 없는 시대에는 어떻게 살면 될까요?"라고 물어서 아연실색하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 때때로 강연을 하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받는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라고 말이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전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틀 속으로 모두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부분은 다 잘라버리고 자기 식으로 이해한 부분만 취합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이런 사고방식은 좋지 않다"고 거론한 부분을 거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런 건 경솔하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얘기했는데, 나중에 "좀 존에 선생님은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하면서 확인하러 옵니다. 그때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만 잘라서 듣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220


히라카와 : 체험교육이라고 할까 수련이라고 할까, 이런 전통적인 교육 기술을 통해 지금은 잃어버린 능력을 계발하는 방법을 어떻게 교육 시스템 안에 다시 한 번 프로그램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역사회에 합기도 도장을 연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설계한 교육 프로그램에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지만,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누구에게든 적용할 수 있는 좀 더 보편적인 형태로 전개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제자를 많이 길러내어 제 프로그램을 충분히 체험한 제자들이 도장을 열고 이를 통해 이런 내용을 널리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 서당식 체인점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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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부티의 쓰레기통


나의 미래는 아주 일찍부터 너무 위태로웠던지라 엄마는 나의 현재에 대해 결코 마음을 놓지 못했다.  13


그러니까 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날마나 학교에서 들볶이다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내 공책에는 선생님들의 꾸지람이 적혀 있었다. 반에서 꼴찌가 아닐 때는 꼴찌 바로 앞이었다.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었다!) 처음엔 계산, 그다음엔 수학에서 꽉 막혔고, 심각한 철자 습득 장애에다, 역사의 연대 암기와 지리의 장소 파악에도 먹통이었고, 외국어 습득 불능에다 (수업은 듣지 않고 숙제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라는 명성이 자자했으며, 음악이나 체육 혹은 그 외의 어떤 과목으로도 벌충하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16


"그러니까 학교에 관한 책이 또하나 나오는 거네? 그런 책은 꽤 많지 않아?"

"학교에 관한 책이 아냐! 모두들 하굑를 다루고 있고, 신구 논쟁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 학교의 프로그램, 학교의 사회적인 역할, 그 궁극적인 목표, 과거의 학교와 오늘의 학교... 그런데 열등생에 관한 책은 없거든!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그리고 그로부터 겪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을 다루는 책..."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  22-23


"요컨대 넌 핑계를 만들어냈던 거야,"

그렇다. 그게 바로 열등생의 속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열등함에 대해 굽이굽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난 한심해, 난 정대 할 수 없어, 그러니 노력해볼 필요도 없어. 이미 다 망했어. 내가 그랬잖아요, 학교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열등생에게 학교는 출입이 금지된 몹시 폐쇄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25


두려움은 분명 학창 시절 내내 나의 가장 큰 문제였고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뒤, 나의 급선무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두려움을 치료하고 방해물을 치워버려 앎이 스며들 기회를 갖게 해주는 일이었다.  30





2. 되다


어머니들 모두가 조금은 창피해하고, 모두가 자기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대체 이애가 뭐가 될까요?" 대부분의 어머니는 미래라는 강박적인 화폭에 현재를 투영해 그려놓은 것을 아이의 미래로 생각한다. 희망 없는 현재의 이미지가 터무니없이 비대하게 투영된 벽을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여기에 모든 어머니의 거대한 공포가 있다.  61


나는 우스운 이야기를 시도해본다.

"신을 웃기는 유일한 방법을 아세요?"

전화 저편의 머뭇거림.

"신에게 당신의 계획을 맗는 겁니다."

다시 말해 놀랄 것 없다는 것, 그 어떤 일도 예상대로 이렁나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미래가 과거가 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유일한 사실이다.

물론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쉽게 아물지 않을 상처에 반창고나 붙여주는 격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전화로는 그렇게 하고 있다.  62-63


어떤 미래도 없다. 

뭔가 되지 못할 아이들.

절망적인 아이들.

초등학생, 다음에는 중학생, 그다음에는 고등학생이 된 나 역시 그렇게 앞날이 없는 삶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것은 바로 공부 못하는 학생이 스스로를 설득하는 최초의 사실이다. 

"이런 성적으로 뭘 기대해?"

"중1이나 마칠 수 있을 것 같니?(중2, 중3, 중4, 고1, 고2는...?)"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 거 같아? 퍼센트로 따져 얼마나 될지 계산 좀 해볼래?"

혹은 정말로 즐거운 비명까지 질러가며 호언장담하던 중학교때 교장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다.

"페나키오니, 네가 중학교를 졸업하겠다고?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다. 알겠니? 절대로!"

그 여자는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69-70


나는 학교생활을 따라가지 못했고 언제나 그런 모습뿐이었다. 물론 시간은 지나갈 것이었고, 물론 성장할 것이었고, 물론 사건들도 일어날 것이었고, 물론 삶도 계속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결과에도 결코 이르지 못할 그런 실존을 횡단할 것이었다. 그것은 확신보다 더한 것이었고, 그게 나였다.

어떤 아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재빨리 설득당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각성시켜줄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실패에 열정을 쏟게 된다. 열정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72


겨울 저녁. 나탈리가 흐느껴 울며 학교 계단을 급히 내려간다.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슬픔...

선생은 생각한다. 이런, 학교의 슬픔이로군.. 

"선생님 ... 흑흑... 흑흑... 선생님... 저는 ... 저는 이해를... 이해를 못하겠어요."

"뭘 이해해? 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양... 양보..."

그리고 갑자기 병마개가 쑥 뽑히듯 단번에 답이 나온다.

"양보와 대립의 종속 접속절요."

침묵.

웃어선 안 된다.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양보와 대립의 종속 접속절? 그것 때문에 그렇게 울고 있는거야?"

안도감. 선생은 재빨리. 아주 진지하게 문제의 그 접속절을 생각한다. 이 아이에게 그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잘 몰라도 그 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한다...

".. 이건 아주 쉬운 거야. 자, 봐. 됐지, 알겠니? 그래, 예문을 하나 만들어봐. 아이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해한 것이다. 자, 이제 좀 괜찮니? 어! 그런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다시금 눈물을 흘리고 크게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제 나이 열두 살하고도 반년이 지났는데, 암것도 한 일이 없어요." ...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탈리의 아버지는 어느 회사 간부였는데 십 년간의 성실한 직장생활 끝에 얼마 전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부직 해고 사태의 첫 사례였다. 때는 8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직이란 말하자면 노동직 문화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의 자기 역학을 의심하지 않았던 모범적이고 세심한(작년에 나는 나탈리의 아버지를 자주 보았다. 그는 소심하고 자신감이 너무 부족한 딸 때문에 근심이 많았다) 젊은 간부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는 결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고는 가족들이 모인 식탁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73-76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살하는 일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이것이, 적어도 모든 면에서 나타나는 우리 교육의 균열이다.  86


들통난 거짓말, 선생님들의 분노, 부모의 슬픔, 비난, 처벌, 아마도 퇴학, 자아로의 복귀, 무기력한 죄의식, 모욕, 우울한 희열, 그들 말이 옳아, 나는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

난 한신한 놈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자신이 한심하다는 확신에 빠져 잇는 청소년은-이게 바로 체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최소한의 사실인데-하나의 멋잇감이다.  94-95


아이의 거짓말에 동조한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은 내 친구 B의 동생에게 일어난 일이다. 당시 B의 동생은 열두세 살쯤이었을 것이다. 그애는 수학 시험이 겁나서 단짝 친구에게 맹장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끔찍한 발작이 일어난 시늉을 하며 쓰러졌다. 학교 지도부는 그애의 말을 믿는 척하며 집으로 돌려보냈는지데. 어쩌면 그애를 치워버리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부모는-그애는 부모에게 다른 거짓말도 했다-별생각 없이 아이를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병원에서는 깜짝 놀라며 당장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핏빛의 기다란 뭔가가 담긴 병을 들고 나타난 외과의사는 순진하고 환한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수술하기를 잘했습니다. 하마터면 복막염이 될 뻔했어요!"

사회란 공유하는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100


가장 좋은 기숙학교는 선생님들도 함께 기숙하는 학교다.  102


열등생이 선생님으로 변신한 것은 무엇에서 기인한 걸까?

덧붙여, 알파벳도 깨치지 못하던 애가 소설가로 변신한 것은?

나는 어떻게 해서 뭔가가 되었을까?  108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를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와 '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111


최고 권력자들이 이미 파산선고를 내렸는데 죽어라 공부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보다시피 나는 궤변론자의 태도 같은 걸 키워가고 있었다. 이것은 선생이 된 내가 열등생 제자들에게서 한눈에 구별해내는 기질이다.

그 뒤에 나의 첫번째 구원자가 나타났다.

국어 선생님. 

중4 때.

당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보았던 분. 즉 명랑하게 자멸해가는 진지한 망상가로 말이다.

틀림없이 그 선생님은 가르쳐준 것은 배우지 않고, 숙제 못한 핑계를 어떻게 둘러댈까 늘 잔머리를 굴리는 나의 적성에 대경 실색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소설 한 편을 쓰라고 명령하고 대신 논술을 면제해주기로 작정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 장(章 글장)씩 써서, 한 학기에 소설 한 편을 끝내야 했다. 주제는 자유지만, 틀린 글자 하나 없는 소설을 내야 했다. 선생님은 "비평의 수준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소설 자체는 까맣게 잊어버렸는데도 그 표현만큼은 기억난다.) 그분은 교직 말년을 우리에게 바친 노교사였다. 더이상 궁핍할 수 없는 파리 북쪽 변두리 중학교에서 당신의 은퇴를 연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 낡아빠진 기품을 지닌 노선생이 내 안의 이야기꾼 기질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내게 철자 습득 장애가 있든 말든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열정적으로 소설을 썼다. 사전(그날 이후 사전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의 도움을 받아가며 조심스레 단어 하나하나를 고치고, 신문에 연재하는 전업 작가처럼 날짜를 지켜가며 매주의 분량을 갖다 냈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주 슬픈 이야기였고, 당시 내가 큰 영향을 받았던 토머스 하디풍의 글이었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들은 오해에서 재난으로, 재난에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운명에 대한 나의 취향을 매혹 했다. 출발선부터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 내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그해 내가 뭔가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학창 시절 처음으로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하나의 지위를 부여했고, 나는 계속 따라가야 할 노선이 있는 개인으로, 지속적으로 견뎌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눈에 학생으로 존재했다. 물론 나의 후원자인 노선생님이 미치도록 고마워쏘, 그가 꽤 거리를 두고 있었음에도 내 비밀스러운 독서를 털어놓을 만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래, 페나키오니, 요즘은 뭘 읽고 있니?"

나에겐 독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게 나를 구원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때의 독서는 요즘처럼 터무니없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시간 낭비이자 학업을 망치는 일로 평판이 난 소설 읽기는 수업 시간에 금지되었다. 책을 몰래 숨어서 읽는 내 취향은 거기서 비롯했다. 소설책을 교과서로 씌워 읽고, 되도록 모든 곳에 책을 숨겨두고 읽고, 야밤에 손전등을 켜고 읽고, 체육 시간을 면제받아 읽고, 혼자서 책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좋았다. 이런 취미를 길러준 곳이 바로 기숙사다. 나만의 세계가 필요했는데, 그게 책들의 세계였다. 집에 있을 때는 무엇보다 식구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관찰했다. 아버지는 파이프를 물고 안락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둥근 램프 아래, 나무랄 데 없는 가르마를 약지로 무심히 쓰다듬으며 읽었다. 베르나르 형은 방에서 다리를 구부린 채 옆으로 길게 누워 오른손으로 머리를 괴고 읽었다... 이런 태도들에는 행복 같은 게 있었다. 따져보면 나를 독서로 밀어붙였던 것은 책 읽는 사람의 이런 자태였다. 처음에는 오로지 그런 자세들을 따라해보려고, 그리고 다른 자세를 개발해보려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나 지속되는 행복 속에 신체적으로 정착했다. 무엇을 읽었나? <미운 오리 새끼>를 나로 여겨 안데르센의 동화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검과 말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동경으로 알렉상드르 뒤마도 읽었다. 그리고 셀마 라겔뢰프의 멋진 <예스타 베를링>, 주교에게 추방당한 그 훌륭한 술주정뱅이 사제는 에세뷔의 다른 기사들과 더불어 내 모험의 지치지 않는 동반자였다. 중3으로 올라갈 때 베르나르 형이 준 <전쟁과 평화>는 맨처음 나타냐와 안드레이 공작의 사랑 이야기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소설은 100페이지쯤으로 줄어든다. 중4 때 두번째로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나폴레옹식의 서시시로 읽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보로디노 전투, 모스크바의 화재, 러시아군의 퇴각(나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거대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수업 시간에 몰래 그렸던 그 작은 인간들을 학살당하게 했다). 이것은 기껏해야 200~300페이지로 압축된다. 고1 때 다시 읽었을 때는 피에르 베주호프의 우정이 눈에 들어왔다(이자는 또다른 미운 오리 새끼이긴 해도 생각보단 많은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3 때 소설의 전체가, 그러니까 러시아와 쿠투조프, 클라우제비츠 같은 인물이, 토지개혁이 그리고 톨스토이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디킨스-올리버 트위스트는 나를 필요로 했다-도 읽고 에밀리 브론테도 읽었다. 브론테의 모럴은 내게 구조를 요청했다. 또한 스티븐슨, 잭 런던,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읽었다. 당연히 <노름꾼>이 있었다(왜 그런지는 알아봐야 하는데, 도스토옙스키는 항상 이 <노름꾼>으로 시작된다). 나의 독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집 서재에서 찾아낸 책들로 이루어졌고, 물론 <탱탱> <스피루> 그리고 당시를 휩쓸었던 <흔적의 표시들> 혹은 <봅 모란> 같은 만화도 읽었다. 내가 학교로 가져가는 책들이 첫째 조건은 학교 독서 프로그램에 없는 것이어야 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누구도 내 어깨 너머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책의 저자와 나는 우리끼리 오롯이 머물렀다.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교양을 쌓아가고 있었다는 것, 그 책들이 내 안에 어떤 욕구를 일깨웠소 그 욕구는 책들이 잊히더라도 살아남을 거라는 걸 나는 몰랐다. 청소년기이 이러한 독서는 세상의 기호들을 향해 사방의 문을 열어놓으며 완수되었고, 그중에서도 네 권의 책이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이유로 내 안에서 밀접한 친족관계를 직조해냈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위스망스의 <거꾸로>, 롤랑 바르트의 <신화지> 그리고 페렉의 <사물들>이 바로 그 책들이다.

난 고급 독자는 아니었다. 플로베르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열다섯 살에 에마 보바리처럼 오로지 감각의 만족을 위해 책을 읽었고, 다행히 그 감각은 지칠 줄 모르고 나타났다. 나는 이러한 독서로부터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어떤 이득도 끌어내지 못했다. 모든 선입관과는 반대로 이처럼 삼키듯 읽은-그리고 아주 빨리 잊힌-수천 페이지의 글은 나의 철자법을 개선해주지 않았고, 철자법은 요즘도 내게 불분명한 채로 남아 언제 어디서든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아니다. 내 철자법의 실수들이 일시적으로나마(하지만 이 일시적인 것이 결정적으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극복되었던 것은 노선생님이 주문한 소설에서였다. 철자법에 신경쓰느라 독서 수준을 낮추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의 요구에 나는 틀린 글자 없는 원고를 갖다드려야만 했다. 요컨대 대단히 천재적인 교수법이었다. 아마도 오로지 나에게만 통했을, 그리고 오로지 그런 상황에서만 통했을 방법이지만, 어쨌든 천재적이다!

나는 이렇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생님을 중4와 고3 사이에 세 분 더 만났다.

한 분은 수학 자체였던 수학 선생님이고, 또 한 분은 역사 구현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놀라운 재능의 역사 선생님,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철학 선생님이다...

네 분의 선생님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구원했다.  112-118


요컨대 우리는 뭔가가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는다. 생긴 대로 된다.  123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뭔가가 된다.

예상대로 되는 일은 드물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뭔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때로 계획이 이루어지고 적성이 실현되고 밀래가 약속을 지키기도 한다.  130


우리는 뭔가가 되어간다. 살아가는 한 모두 뭔가가 되고, 때로는 뭔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이 되어 서로 마주친다.  131





3. 거기 혹은 '구현의 현재'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친다.  158


수업에 완전하게 몰두하는 선생님의 현존은 단번에 감지된다. 아이들은 학기 첫 순간부터 그것을 느끼며, 우리 모두가 그것을 경험했다. 선생님이 막 들어선다. 그는 절대적으로 여기 있다. 그것은 그가 바라보는 방식,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방식, 자리에 앉아 자기 책상을 차지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그는 아이들의 반응을 걱정하며 두리번거리지 않으며,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바로 자기 일에 빨려들어가 그 자리에 현존하고, 아이들 각자의 얼굴을 구별해내며, 학급은 즉시 그의 눈앞에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현존감을 얼마 전 블랑메닐의 어느 학교 교실에서 새롭게 체험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토록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에어니를 제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하는지 물었다.

"절대 아이들보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요. 그게 요령이죠." ...

"아이들과 함께 있거나 숙제를 검토할 때 나는 딴 데 가 있지 않아요."

"내가 다른 곳에 있으면 절대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죠." ...

"아이들 각자는 자기 악기로 소리를 내고 있는 건데, 그걸 거스를 필요가 없어요. 까다로운 일은 우리의 음악가들을 잘 꿰뚫어 보고 조화를 찾아내는 거죠. 좋은 학급이란 발맞춰 행진하는 군대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예요. 만일 그들이 땡땡거리기만 하는 작은 트라이앵글이나 브롱브롱 소리만 나는 갱바르드(말굽자석처럼 생긴 조그만 악기로, 하모니카처럼 입으로 물고 손가락을 튕겨서 소리를 낸다)를 물려받았다면, 적절한 순간에 최선을 다해 내는 그 모든 소리, 그들이 훌륭한 트라이앵글과 나무랄 데 없는 갱바르드가 되는 일, 그래서 각자의 기여가 전체에 부여한 음악의 질에 자랑스러워하는 일이죠. 조화에 대한 감각은 그들 모두를 발전시키고, 조그만 트라이앵글은 마침내 음악을 알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제1바이올린만큼 화려하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똑같은 음악을 체험하는 거지요." ...

문제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제1바이올린 주자만 중시하는 세상을 믿게 한다는 거예요." ...

"어떤 동료들은 자신이 카라얀인 줄 알고 시골의 마을 합창단 지휘를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베를린 필을 꿈꾸죠. 이해가 가는 일이에요..."  159-162


받아쓰기 - 우리의 받아쓰기가 맞춤법에 치중하여 초등 저학년에 한정된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철자와 문법 그리고 구문의 이해력까지 포함하며 성인들의 여가에까지 널리 활용되는 문학적 훈련을 의미한다.  170


나는 언제나 받아쓰기를 언어와의 완전한 만남으로 생각해왔다. 소리나는 대로의 언어, 이야기하는 대로의 언어, 사유하는 대로의 언어, 글로 쓰고 만드는 대로의 언어, 세심한 교정 훈련을 통해 분명해지는 의미. 왜냐하면 받아쓰기의 교정에는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에, 문법 정신에, 말들의 풍부함에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 말고 다른 것은 없기 때문이다.  172


아이들이 스스로를 형편없다고 고백한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향으로, 즉석에서 생각해낸 돌발 받아쓰기였다.

니콜라는 철자법에서 항상 빵점일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 유일한 이유는 한 번도 다른 점수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ㅍ레데리크, 사미, 베로니크도 같은 생각입니다. 맨 처음 받아쓰기 때부터 그들은 쫓아다니던 빵점이 그들을 뒤따라와 삼켜버린 것입니다. 그애들 말로는 저마다 빵점 속에 살고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자기들 주머니에 열쇠가 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도안, 아이들의 호기심을 흥겹게 일깨우려는 생각으로 각자에게 역할을 나눠주면서 문법적으로 설명할 것들을 고려했다. 동사 변화와 목적어의 위치, 보어의 위치, 보어 인칭댐ㅇ사의 위치, 주격 관계대명사 등등을.

받아쓰기가 끝나자 우리는 즉각 교정을 시작했다.

"좋아, 니콜라. 맨 첫 문장을 읽어봐라."

"'니콜라는 철자법에서 항상 빵점일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게 첫 문장이야? 거기서 끝나? 확실해?"

"....."

"주의해서 읽어봐."

"아! 아니에요. '그 유일한 이유는 한 번도 다른 점수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맨 처음 나오는 활용 동사는 뭐지?"

"'주장하는데'?"

"그래. 원형은?"

"'주장하다'요."

"몇 군 동사지?"

"어..."

"3군 동사지. 그건 좀 있다가 설명해주마. 시제는 뭐지?"

"형재형이요."

"주어는?"

"저요. 그러니까 '니콜라'요."

"인칭은?"

"3인칭 단수요."

"그래. '주장하다' 동사의 현재형 3인칭 단수지. 동사의 어미를 주의해라. 자, 이제 베로니크 차례다. 이 문장의 두번째 동사는 뭐지?"

"'못하다'요!"

"'못하다'? 확실해? 다시 읽어봐!"

"..."

"..."

"아, 아니에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받아보지'예요. 그러니까 '받다' 동사요."

"어떤 시제지?"

교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174-176


체계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암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는 작품의 진수를 이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187


"저는 앵무새가 아니에요!"

그들은 마지막까지 항의했고, 그건 정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그런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모들, 아! 그들은 어찌나 변했는지 부모들 스스로 때로 이렇게 말한다. "페나키오니 선생님, 아이들에게 텍스트를 외우게 한다면서요? 세사에, 제 아들은 이제 어린애가 아니랍니다!" 어머님, 언어에 잇어서 만큼은 아드님은 영원히 어린애일 것이고, 어머님 자신도 아주 어린 아기이며, 저는 우스꽝스러운 어린애입니다. 우리 모두가 문학의 구어적이 ㄴ원천이 넘쳐흐르는 거대한 강에 실려가는 잔챙이 물고 기인 한은 말입니다. 아드님은 언어 안에서 헤엄치는 걸 좋아하게 될 테고, 언어에 실려 목을 축이고 젖을 취하며,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말입니다. 아이를 믿으세요. 아이는 자기 입속의 말맛, 머릿속 생각의 빛나는 불꽃을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대단한 기억력, 그 무한한 유연성, 그 울림통,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노래하게 하고 가장 분명한 생각을 울려퍼지게 하는 놀라운 음량을 발견하게 도리 것입니다. 언젠가 기억 속의 그 끝없는 동굴을 발견할 때는 언어 속에 잠겨 헤엄치며 깊숙이 잠수해 텍스트들을 건져올리는 일을 좋아할 것입니다. 평생 그것들이 그곳에서 자기 존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즉흥적으로 그것들을 외울 수도 있고, 말들의 묘미를 위해 입 밖으로 소리내볼 수도 있다는 걸 좋아하게 될 겁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다시 입말이 된 문학의 전통을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공유하기 위해서든 유혹의 유희를 위해서든 잘난 척하기 위해서든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는문자 이전의 시간, 생각의 존속이 오직 우리의 목소리에만 의존하던 그 시간과 다시 연결될 겁니다. 어머님은 그것을 퇴행이라고 말씀하기지만, 저는 재회라고 말하겟습니다! 앎이란 무엇보다 육체적인 것입니다. 앎을 포착하는 것은 우리의 귀와 눈이고, 그것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입입니다. 물론 앎은 책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지만, 책은 우리를 벗어납니다. 생각이란 소란스러우며, 읽고자 하는 의욕은 말하려는 욕구의 유산입니다.  189-190


나는 아이들을 텍스트 속에 방치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그 속에 빠져든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의 텍스트 분석을 따라가면서, 가장 어려운 글을 함께 배우기도 했다... 아이들은 읽은 내용을 이해하게 되자 기억의 능력을 찾아냈고, ...아이들은 나열된 단어를 암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단지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언어의 지성, 즉 타자의 언어, 타자의 사유 안에서 소리를 낸 것이다. 단순히 <에밀>을 암기한 것이 아니라 루소의 추론을 복원한 것이다.  196


지식을 가지고 유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희란 노력의 숨고르기이고, 심장의 또다른 박동이며, 학습에 심각한 해를 끼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교과를 가지고 노는 일은 그것을 제어하는 훈련이 됩니다.  200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엄선해서 정원을 뽑은 한 학교에서 보낸 이 년을 제외하면, 내가 맡은 학생들 대둡분이 옛날의 나처럼 학교생활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었다. 가장 심한 상태에 이른 아이들은 그맘때의 나와 거의 같은 증상을 보였다. 자신감 상실, 모든 노력의 포기, 집중 불가, 산만, 과대망상, 불량배 패거리 조직. 가끔은 술도 마시고 마약도 했는데, 자기들 말로는 약한 거라고 했지만 아침에 보면 눈에 축축이 젖어 있곤 했다.  205


노력이라는 말의 개념을 다시 가르쳐주고, 결과적으로 고독과 침묵의 맛을 되찾아주고, 무엇보다 시간을, 즉 권태를 제어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때로는 아이들을 지속되는 시간 속에 앉혀 놓기 위해 권태를 연습하라고 충고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놀리도 말고, 먹지도 말고, 대화도 하지 말고, 공부도 하지 말고, 요컨대 진짜로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 이십 분간 권태 연습을 하는 거다. 공부 시작 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음악 듣는 것도 안 돼요."

"그거야말로 안 돼."

"이십 분이요?"

"그래, 이십 분. 시계를 손에 쥐고. 오후 5시 20분부터 5시 40분까지. 곧장 집으로 돌아가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말고, 도중에 딴 데로 새지도 말고, 게임기도 무시하고, 친구들도 못 본 체하고, 너희들 방으로 곧장 들어가 침대 옆 구석에 앉아 책가방도 열지 말고, 워크맨도 끼지 말고 게임기도 들여다보지 말고, 허공에 눈을 박고 이십 분을 기다려봐."

"뭐하러 그래요?"

"어떻게 되나 보게. 흘러가는 시간에 집중하고, 일 분도 놓치지 말고 어땠는지 내일 얘기하는 거야."

"우리가 했는지 어떻게 검사하실 거죠?"

"나야 할 수 없지."

"그리고 이십 분이 지난 다음에는요?"

"허기진 사람처럼 각자의 일에 달려드는 거야."  206-207


세상 누구도 무능함의 사과를 영원히 깨물고 있진 않는다!

가르친다는 일은 아마도 그런 것일 게다.  208


가르치든 교사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학생들이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세 가지다. 정답과 오답과 터무니없는 답.  213


터무니없는 대답이 오답과 다른 점은 어떤 추론의 시도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터무니없는 대답은 반사적인 행위일 뿐이다.

던져진 질문에 대답한 게 아니라 자기한테 질문이 던져졌다는 사실에 대답한 것이다.  215


선생님이 던진 질문을 겨우 이해만 할 뿐이다. 그걸 고백할 수 있나? 침묵을 선택할까? 아니다. 차라리 아무 대답이나 하는 게 낫다. 가능하면 천진난만하게. 제가 엉뚱하게 빗나갔나요, 선생님?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저 운을 한번 걸어봤고, 그게 실패한 것뿐이다. 저한테 빵점을 주시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터무니없는 대답은 무지에 대한 외교적인 고백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어떤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전형적인 반항 행위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선생님이 나를 귀찮게 굴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해. 선생님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까?

이 모든 경우 이런 대답에 점수를 주는 것-일테면 답안지를 교정하면서-은 아무 대답에나 점수를 주기로 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자체가 터무니없는 교육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된다.  215-216





4.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사실 가족과 선생님들이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가장 흔히 하는 비난 중 하나가 바로 그 불가피한 지적인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다. 직접적인 비난이든("핑계 대지 마.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수많은 설명에 뒤이은 분노든("세상에, 이럴 수는 없어.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제삼자에게 건네진 정보, 즉 혐의자가 부모의 방문 앞에서 듣고 놀라게 될 말이든("분명 그 녀석이 일부러 그러는 거야!") 간에 말이다.  233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어쨌거나 이 문장의 주인공은 일부러라는 부사다. 문법을 무시하고 그 부사를 대명사 너에 직접 연결하면, '너 일부러!'가 된다. 거야는 부차적이고 그러는은 완전히 무색무취다. 중요한 것, 즉 비난받는 사람의 귀에 울려대는 말은 누가 뭐래도 너 일부러라는 말이고, 이것은 꼿꼿이 세워진 검지를 떠오르게 한다.

죄인은 바로 너야.

유일한 죄인,

그것은 고의로 그런 죄인이지!

이것이 메시지다. 

어른들의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아이의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라는 말과 쌍을 이룬다.

격렬하지만 별 기대 없이 맞받아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는 거의 자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대꾸를 끌어들인다.

"그러길 바란다!"

"그나마 다행이네!"

"설상가상이군!"

이 반사적인 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세상의 모든 어른은 적어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반격이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에서 일부러는 그 위력을 조금 잃고, 그런은 어떤 힘도 얻어내지 못한 채 일종의 보조 역할로 남고, 그거는 여전히 벼로 중요하지 않다. 죄지은 자가 여기서 우리 귀에 울려주려고 애쓰는 말은 아니에요라는 부정어에 연결된 대명사 나다.

너 일부러라는 어른의 말에 아이의 나 아니에요가 대응하는 것이다. 

부사도, 목적어도 없이 나만 있고, 그 안에서 아니다에 들러붙은 이 나는, 이 경우, 나는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니, 분명코 넌 일부러 그랬어!"

"아니, 난 일부러 그러지 않았어요!"

"너 일부러!"

"나 아니에요!"

귀머거리들의 대화, 문제를 회피하고 파국을 연장할 필요. 우리는 해결책도 환상도 없이, 한쪽은 복종하지 않는다고, 다른 쪽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확신하고는 헤어져버린다.

여기서는 문법이 여전히 유용해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이 불화의 영역에 버려진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말, 즉 우리 대화의 모든 끈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던 그거라는 말에 관심을 갖기로 동의한다면 말이다.

자, 예전의 문법 연습을 조금 해보자. 내가 '개량'반 아이들과 했던 것처럼, 그냥 한번 보자는 거다.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원어는 Tu le fais expres)'라는 표현에서 그거(le)가 어떤 품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저요, 저요! 관사예요. 선생님!"

"관사? 어째서 관사지?"

"그거를 표현하는 le, la, les가 관사잖아요! 정관사요!"

의기양양한 어조. 뭔가 안다는 것을 선생에게 보여주었다는 표정... un, une, des는 부정관사이고, le, la, les는 정관사, 자, 봐요, 맞잖아요!

"그래? 정관사라고? 그러면 그 관사가 한정하는 명사는 도대체 어디 있지?"

"......"

찾아보지만, 명사는 없다. 난처함.

관사가 아니다. 

그럼 이 그거(le)는 뭔가?

"......"

"......"

"그건 대명사예요, 선생님!"

"브라보! 어떤 종류의 대명사지?"

"인칭대명사요!"

"그래?"

"보어대명사요!"

"그래. 아주 잘했다! 바로 그거다."

이제 교실을 떠나 우리 얘기로 다시 돌아와 어른들 사이에서 이 보어대명사를 분석해보자. 신중하게, 이 보어대명사들은 위험한 말이고, 분명한 의미 아래 깊이 숨어 있는 반(反 되돌릴반)인칭적인 폭약이라 뇌관을 잘 제거하지 않으면 여러분 얼굴로 폭발해버린다. 예를 들어 이 그거(le)..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라는 비난의 말을 하면서 그때의 그거라는 말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표현하는지 우리는 몇 번이나 자문해보았던가? 일부러 뭘 그런다는 것일까? 가장 최근의 바보짓? 아니다. 이 비난을 던졌을 때의 우리 어조(어조 또한 있기 때문이다!)는 그 죄인이 언제나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과, 매번 일부러 그러는데 최근의 바보짓은 그런 고집의 확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암시한다. 그렇다면 일부러 뭘 그런다는 것일까?

복종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않는다?

반항한다?

몹시 화가 나게 한다?

선생들을 화나게 한다?

부모들을 절망시킨다?

최악의 결점에 굴복한다?

현재를 망쳐 미래를 침몰시킨다?

세상을 조롱한다?

어, 그런 거야? 세상을 조롱하는 거야? 우리를 선동하는 거야?

그래, 말하자면 이 모든 거라고 하자.

그러면 부사의 문제가 떠오른다. 왜 일부러인가? 무슨 목적으로? 무슨 이유로? 그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뭐하러 일부러 그러는가?

순간을 즐기려고? 단지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하지만 불가피한 다음 순간, 즉 그가 나와 함께 보내는 다음의 십오 분은 내가 야단을 치기 때문에 아주 고약한 시간이다! 그는 야단맞는 일에 무심한 채로 게으름의 상태를 평온히 살고 싶은 걸까? 쾌락주의 같은 것? 하지만 그는 무위도식의 행복이 경멸적인 시선의 대가, 자기혐오를 낳는 결정적인 지탄의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러는가?

다른 열등생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열중하는 게 배신이라서? 젊은이가 노인에게 반항하듯, 일부러 선한 것에 대항하며 악을 즐기는 걸까? 자기 나름의 사회화 방식일까?

아무려나. 어쨌든 그것은 모더니티에 관한 가장 인기 있는 명제다. 무능한 이들의 소집단화 현상.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너나없이 불량배가 우글거리는 거대한 저지대로 도피하는 것. 이런 설명은 사회학적인 진실에 어느 정도 근거한다는 편리한 점이 있으며, 그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어떤 의구심도 없다. 하지만 이 설명은 무리의 현상이건 아니건 간에 언제나 독자적인 그 아이라는 개인을 몰아낸다. 아이는 이러저러한 순간 혼자 있게 되며, 자신의 실패를 홀로 마주하고, 자신의 미래를 홀로 마주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도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한다. 이제 아이를 살펴보자. 잘 바라보자. 그 아이가 행복할 거라는 데 단돈 한푼이라도 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이러한 설명 중 어느 것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모든 설명이 다시간 그럴듯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문법 규칙 같은 것은 접어두고, 그 대명사가 문장 외부의 어떤 대상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예컨대 우리 자신으... 우리 자신의 눈에 비친 우리 이미지의 하강. 우리의 이미지 또한 바람직한 거울을 많이 필요로 한다.

무능하고 초조한 어른, 이해할 수 없는 거절의 희생자인 어른의 이미지를 타인-여기서는 한심한 학생-이 나에게 되돌려 준다고 비난하는 듯한 그것. 그렇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주입시키려는 원칙들이 건전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흩뿌려준 앎이 정당하다는 것도! 

그 아이의 고독에 어른인 나 자신의 고독이 대답한다.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리고 그것이 반 전체의 문제가 될 때, 서른 명의 학생이 일부러 그러기 시작할 때, 교사인 나는 문화적 린치의 대사이 되고 있음을 확실히 체감한다. 그리고 그 대명사가 한 세대 전체-"우리 때는 그런 건 상상할 수도 없었어!"-에 영향을 미친다면, 연이은 세대들이 일부러 그런다면, 그때 우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의 마지막 대표들로, 젊은이들(그 시절의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전(前 앞전) 시대의 생존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노년의 삶에서 외로움을 절감한다. 물론 여전히 명석하고, 아주 세심하고, 얼마나 유능한데! 요컨대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젊었을 때는 문명화된 세대의 얼마 안 되는 증인이었던 우리가 생각은 여전히 제대로 하고 있는데도 현실로부터 어쩔 수 없이 소외된 것처럼.

소외된...

소외감은 단지 순환하는 수많은 원 밖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들, 즉 힘 있는 다수인 우리 역시 위협한다. 우리를 둘러싼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엉뚱한 분위기가 시류를 타는 순간, 소외감은 우리 역시 위협한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들을 지목하도록 밀어붙인다.

"너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고작 대명사 하나가 그토록 엄청난 고독을 말하다니!  234-241





6. 사랑한다는 말이 뜻하는 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잊게 하는 데는 한 분-단 한반!-의 선생님이면 충분하다. 

어쨌든 그것이 내가발 선생님네 대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다. 

그분은 내가 고2였을 때의 수학 선생님이다. 몸짓의 관점에서 보자면 키팅 선생과 정반대였다. 영화적인 구석이라곤 거의 없는 선생님이었으니까. 타원형 얼굴에 날카로운 목소리, 그리고 시선을 잡아끄는 특징이 전혀 없었다. 당신 책상에 앉아 우리를 기다렸고 다정하게 인사하고는 첫마디부터 우리를 수학에 들어서게 했다. 그렇게 우리를 잡아둔 시간을 무엇으로 메웠느냐고? 무엇보다 발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이자 그분이 자로잡혀 있는 듯 보였던 수학으로 메워졌다. 수학은 묘하게도 그분을 활기차고 차분하고 선량하게 만들었다. 지식 자체에서 탄생한 그 이상한 선량함, 자신의 정신을 매혹했던 '과목'을 우리와 고유하고 싶다는 그 자연스러운 욕망. 그분은 그 과목이 우리에게 혐오스러울 수 있다거나 단지 낯설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발 선생님은 자신의 과목과 제자들로 빚어진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수학의 요람에 사로잡힌 듯한 무언가가, 믿을 수 없는 순수함 같은 게 있었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스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또한 그분을 놀려대고 싶은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만큼 가르침에 대한 그의 행복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순한 청중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이 지부티의 쓰레기통 출신이었던 우리는 전혀 흥미로운 학생들이 아니었다. 나만 해도 야밤의 싸움질, 애정과는 거리가 먼 내면의 원한 청산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발 선생님의 문턱을 넘어서면 우리는 마치 수학에 몰입하여 성스러워진 듯했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테마티코스('수학'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어느 날, 우리 중 가장 형편없는 아이드이 자기들 낙제 점수를 자랑삼아 떠벌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미소 띤 얼굴로 자신은 '공(空)집합'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집합에 대해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우리의 단순한 대답을 아주 귀한 원석처럼 여겼는데, 이런 일이 우리를 아주 즐겁게 했다. 그러더니 칠판에 12라는 숫자를 쓰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영악한 아이들이 대답을 시도했다.

"손가락 열두 개요!"

"모세의 12계요!"

하지만 순진무구한 그의 미소는 정말이지 우리의 기를 꺾었다. 

"너희가 바칼로레아에서 받아야 하는 최소 점수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너희가 겁을 먹지 않는다면."

그러고는

"이런 얘기는 다시 하지 않으마. 우리가 여기서 몰두해야 할것은 바칼로레아가 아니라 수학이니까.

정말로 그분은 다시는 바칼로레아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한 해동안 우리를 무지의 심연에서 조금씩 끌어올리는 일에 주력했고, 그런 우리를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즐거워했다. 우리 자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그분은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늘 경이로워했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거든! 봐라, 페나키오니, 너는 네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니?"

물론 이러한 산파술만으로 우리 모두가 수학의 귀재가 되지는 못했지만, 발 선생님은 우리를 너무도 깊던 우물에서 그 우룸의 가장자리까지, 즉 바칼로레아의 평균 점수까지 끌어올려주었다. 

다른 많은 선생님들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다는 우리의 그 비참한 앞날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암시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318-321


그분은 위대한 수학자였을까? 그리고 이듬해에 만난 지(Gi) 선생님은 대단한 역사가였을까? 재수 때 나를 가르친 S선생님은 유례없는 철학자였나? 그러리라 추측하지만 솔직히 나는 모른다. 단지 이 세 선생님이 자기 과목을 전해주려는 열정에 빠져 있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선생님들은 그런 열정으로 무장하고서 낙담의 구렁텅이에 있는 나를 찾아왔고, 일단 내 두 발을 자신들의 수업에 굳건히 딛게 하고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그들의 수업은 내 인생의 전(前)단계가 되었다. 그분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나에게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분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나 못하는 아이들이나 공평하게 대했고, 단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해하려는 욕망을 되살려줄줄 알았던 것뿐이다. 그분들은 내 노력을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해주었고, 우리의 진전을 기뻐했으며, 우리의 느림에 조바심내지 않았고, 우리의 실패를 결코 개인적인 모욕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며, 가르치는 일의 특성과 일관성과 관대함에 근거한 더없이 엄격한 까다로움을 우리와 함께하는 가운데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하면 달라도 너무 다른 선생님들이었다. 발 선생님은 굉장히 차분하고 잘 웃는 상이라 수학 부처님 같았고, 지 선생님은 반대로 회오리바람처럼, 태풍처럼 게으름의 외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 자신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어갔다. 회의적이고 날카로운(뾰족 코, 뾰족 모자, 뽈롭 배) 철학자인 S 선생님은 잔잔한 얼굴의 통찰력으로 저녁마다 나를소란스러운 질문 속에 남겨두었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 안달했다. 나는 장황한 논술문을 제출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선생님은 교정자의 편의를 위해 좀더 간결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넌지시 덧붙였다.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수학을 해보면 어떨까, 페나키오니? 자,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그들의 과목 안에서-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또하나, 그분들에게는 하나의 스타일이 있었던 듯하다. 자신의 과목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예술가였다. 수업은 물론 소통 행위였지만, 그것은 거의 자발적인 창조로 통할 만큼 숙달된 지식의 소통이었다. 어찌나 편안하게 수업을 했던지 우리는 매시간의 수업 자체를 하나의 사건처럼 기억할 수 있었다. 지 선생님은 역사를 부활시켰고, 발 선생님은 수학을 재발견했으며, 소크라테스는 S선생님의 입을 통해 표현되었다! 수학공식, 평화조약, 철학개념 같은 것들이 마치 바로 그날 만들어진 것처럼 기념비적인 수업을 해주었다. 그분들은 가르치면서 사건을 창조했던 것이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력은 거기서 멈추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영향력은 그랬다. 교과목을 벗어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주려 하지 않았다. 부성(父性) 이미지의 부재로 고심하는 청소년에게 유효한 영향력을 끼치는 걸 영광으로 삼는 그런 선생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구조하는 스승이라는 의식만 가졌던 걸까? 우리는 그저 수학과 역사와 철학 과목에서 그들의 제자였고, 그게 다였다. 물론 우리는 폐쇄적인 클럽의 회원들처럼 그들의 제자라는 사실에서 약간은 속물적인 자만심을 끌어내긴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사십오 년 뒤, 그들 덕에 선생이 된 제자 하나가 동상을 세워줄 정도로 후계자를 자처하려 든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보다 먼저 놀라워할 것이다! 그분들은 블랑메닐의 첼로 연주자처럼,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답안지를 교정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는 것 말고는 우리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는 확실히 다른 관심사, 열린 호기심 같은 게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힘을 키워냈을 것이고, 이것은 무엇보다 교실 안에서의 그분들의 밀도 있는 존재감을 설명해주었다.(특히 지 선생님은 내가 보기에 세상사와 도서관들을 탐식한 것 같았다.) 이 선생님들이 우리와 공유했던 것은 단지 앎만이 아니라, 앎에 대한 욕망 자체였다! 그리고 나에게 나누어준 것은 그 앎을 전달하고픈 의욕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뱃속의 허기를 느끼며 그들의 수업에 들어가곤 했다. 우리가 그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 관심(요즘 젊은이들 말로 하자면 존중)을 받았고, 그 관심은 우리의 숙제에 써놓은 교정 문구들, 우리들 각자에게 일일이 건네주었던 그 코멘트에도 나타나 있었다. 그 분야의 본보기는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서 역사를 담당하던 봄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은 우리가 제출하는 논술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백지로 내게 해 각자의 글에 대한 자세한 교정 내용을-붉은색으로 빽빽하게-타이핑해 돌려주었다.

학창 시절 막바지에 만났던 이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일관성없는 공공의 군집으로 축소시키고 '그런 학급'을 극히 열등하다고 말하던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내 생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322-326


오늘날 지구상에는 다섯 종류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제 나라안에서 고객이 된 아이, 다른 하늘 아래서 생산자가 된 아이, 다른 곳에서 군인이 된 아이, 매춘부가 된 아이, 그리고 지하철 관고판의 죽어가는 아이. 굶주리고 체념한 그 아이의 모습이 정기적으로 우리의 권태로운 시선에 걸려든다.

다섯 모두 아이들이다.

다섯 모두 도구화된 아이들.  348

고객이 된 아이들 중에는 부모의 수단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돈을 받아 물건을 사거나 어떻게든 돈을 마련햇 사거나. 이 두 경우에 쓰이는 돈이 개인적인 노동의 산물인 경우는 드물 테니 어린 구매자는 대가 없이 소유권을 얻는 것이다. 아이 고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수많은 소비에서 부모나 선생과 동일한 영역(의복, 음식, 통신기. 음악, 전자기기, 교통수단, 여가...)을 가진 아이는 아무 어려움 없이 사적인 소유권을 얻는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자신의 교양과 교육을 담당한 어른들과 똑같은 경제적 역할을 하게 된다. 어른들처럼 시장의 거대한 한 부분을 구성하고, 어른들처럼 외화를 유통시킨다(그 외화가 아이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의 욕망은 부모의 욕망처럼 기계를 계속 돌리기 위해 늘 자극받고 새러워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이는 완전한 권리를 가진 중요한 인물이다. 어른들처럼. 

자율적인 소비자.

아이의 최초 욕망에서부터.

그 만족감은 아이가 받는 사랑의 측정치로 간주된다. 

어른들이 막아보려 한들 별수없다. 시장경제사회라는 게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너무도 바라던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의 탄생은 부모에게 끝없는 사랑의 빚 구덩이를 파게 한다)은 아이의 욕망을 사랑하는 일이며, 그 욕망은 대단히 중대한 욕구로 재빨리 표현된다. 사랑의 욕구와 물건에 대한 욕망이 거의 마찬가지인 까닭은 사랑의 징표가 물건의 구매로 통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욕망이란...  349-350


각각의 시대는 가족간의 사랑에 자신의 언어를 강요한다. 우리 시대의 언어는 사물들의 언어를 규정한다.  352


"너희 선생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너희에게 결핍된 건 무지한 상태에 대한 강의야! 모든 시험을 통화하고 온갖 지식의 경연대회를 통과했을 때, 그때 너희가 갖춰야 할 최초의 자질은 너희는 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내는 능력이어야 해!.."  361


요컨대 가르치겠다고 나선 자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가져야만 해. 우리를 무지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최소한의 기회라도 얻으려면 무지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느껴야 하거든!"  362-363


"감정이입 하지 마! 당신들의 감정이입 따위 관심 없거든! 당신들의 그 감정이입이 우리를 침몰시켜! 누구도 당신들에게 우리 입장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 않거든.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는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것뿐이야, 이해할 수 있겠어? 당신들의 모든 지식에다 무지에 대한 직관을 보태달라고, 그리고 열등생을 건져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게 당신들 일이야!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가르쳐주면 공부 못하는 학생도 스스로 헤쳐나갈거라고! 당신들한테 요구하는 건 그게 다야!"  364


"감정이입을 치워버리면, '그것'은 어떻게 치유하지?"

여기서 그는 엄청 주저한다.

다그쳐야 한다.

"말해봐,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어도 모든 걸 다 안다며? '그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고서도 가르치는 수간이 뭐야? 방법이 잇기는 한 거야?"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건 방법들뿐이지! 당신들은 언제나 방법들 속으로 숨느라 시간을 보내잖아. 그 방법들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마음속 깊이 잘 알면서 말이야. 뭔가가 빠져 있어."

"뭐가 빠져 있지?"

"말 못해."

"왜?"

"엄청난 말이거든."

"'감정 이입'보다 더해?"

"비교도 안 되지. 네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아니 대학이나 그 비슷한 곳에서는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야."

"뭔데? 해봐."

"아니, 정말이지 못하겠어..."

"자, 어서!"

"난 못한다니까! 교육을 말하면서 이 말을 내뱉었다간 넌 린치당할 거야."

"......"

"......"

"......"

"사랑."  36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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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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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이란건 결국 제도권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이 이 사회에서 말하는 사회성일 뿐. 
실제 삶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한 것이다. 성취라는 개념을 보더라도 성취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학업은 성취해야 하는게 아니라 익숙해져야 하는게 아닌가. 그 익숙함속에서 발전과 넘어섬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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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답을 찾기가 어렵지만 확실한 건 교육이 투기꾼들에게 잔디깔린 훌륭한 놀이터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정(假定 거짓가 정할정)들은 한눈에 들어오고 많은 이론을 끌어들여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오류라는 사실이다.  13

교육에 대해 토론할 때는 아이들이 수천 년, 아니 수십만 년에 걸쳐서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15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잠에서 깨어 나라느 외침과도 같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면 발달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새롭고 세련된 이론에따라 아이들을 그때그때 다르게 키우고 최신 유행 이론으로 시험해 왔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실험용 토끼로 만든 셈이다.  16-17

부모들의 대표적인 걱정거리
사실 그 무엇도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가운데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또 우리 부모는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리고 부모의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그 밖의 걱정들은 개롭게 우리에게 날아온 것이다. 부모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다음의 4대 걱정거리가 그것이다.
1. 버릇이 잘못 들지 모른다는 걱정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나중에 아이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특히 아이들을 너무 자주 안아 주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자고 큰소리로 울 때마다 안아 주고 오랫동안 젖을 물리면 "버릇이 잘못 들 수 있다."
2. 말 안 듣는 아이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 
아이들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려고 하는가?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한계를 정해 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들은 기싸움에 승리하여 무서운 '독재자'가 될 것이다.
3.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걱정
아이들의 발달은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부모가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면 아이의 발달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실수를 저지르면 어떻게 될까? 발달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아이는 평생 피해를 입을 것이다.
4. 자녀를 제대로 후원하지 못한다는 걱정
아이들이 훌륭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극과 후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
이 모든 걱정거리가 새로운 교육 이론의 원료가 된다. 부모들의 이런 걱정거리가 교육 시장의 투기꾼들에게 신선한 양식을 제공한다. 모든 걱정거리가 화려한 공중누각 같은 공허한 이론의 건툭 자재로 사용된다.
이 걱정거리들은 하나같이 아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긴 것들이다. 이 걱정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의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을 넘어 존재의 명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을 넘어 존재의 명맥을 이어 왔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에게 닥친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장점들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문제투성이와 약점덩어리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랬다면 어떻게 지난날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앞으로는 이 걱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아이에 대한 걱정들이 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으면 한다.  22-23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버릇 문제가 이야기되면서 부모들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한다. 바로 프로이트가 엄마의 과도한 애정이 아이의 성격 성숙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이후부터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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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반응해주면 습관이 된다는 것도, 반응해 줘야 된다는 것도, 모두다 심리학적 접근으로 설명한다. 어떤것이 옳은것인지를 떠나서 아이가 울음을 우는것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아이는 울음으로 밖에 자기 의사를 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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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울음에 반응이 없어 상처받은 아이가 무조건 잘못되는것도 아니고 반응이 있어 상처 받지 않은 아이가 무조건 잘 되는것도 아니다. 어린시절 뿐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처는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상처가 문제가 아니라, 늘 상세하고 자세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을 인정받고 나아가 해소의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잘되고 못되고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태교때는 태교만, 육아때는 육아만, 초등때는 초등만 중요한것처럼 떠드는 것은 의미없다. 다시마랳 부분최적화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전체를 조망해서 나아가는 전체최적화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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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생후 두 번째 되는 해, 부모와 좋은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에 고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1~2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고집을 부린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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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고집시기는 어쩌면 당연히 받아주어야 하는 과정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만 그런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런다는 것을 자연적인 흐름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애착관계가 강한 아이는 이 고집과정이 없거나 있더라도 대화로 풀어가면서 쉽게 지나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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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거부는 자신의 이해관계 다시 말하면 발달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혁명이다.  36

왜 우리는 고집스럽게 아이들의 행동 방식을 '권력의 문제'로만 해석하려는 걸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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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성장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훨씬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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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은' 정도로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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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표현이 부모에게 더 근심을 안겨준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도, 표현도 없다. 그러니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차피 기준도, 답도 없는것인데 전문가라는 집단은 자기 공부 자랑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발표해서 더 어렵게 끌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연구 조사가 때론 유익하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도움이 안되기도 하기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
판단은 부모가. 결국 부모의 판단력의 기준이 중요할 뿐 이들의 연구 발표는 나중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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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매일매일 내리는 결정은 가느다란 비단실과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과 고통은 그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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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시간에 잠자고, 일어나고, 특정한 시간에 먹어야 하고, ...
인간이 시간속에 살아가진 하짐나 시간이란 개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기에 우리가 자연적인 현상을 시간에 끼워 맞추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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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뒷머리는 원래 남작하지 않은 곡선 모양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기들을 항상 눕히지 않고 안거나 업고 다녔기 때문이다.  49

왜 우리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는 것을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아기를 안거나 업고 다닐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면서 새로 나온 유모차의 플라스틱 부풉에서 배출되는 수백 종의 화학 성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왜 우리는 다이옥신에 오염된 달걀에는 민감하면서 아기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플라스틱 물건에 대해서는 무감할까?  50

독립이 인간의 발달에서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인간에게 독립은 "고속도로에서 멋대로 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능숙하게 교류하는 능력에 근거를 둔다. 독립의 본질은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61

나이가 다양하게 섞인 집단의 아이들이 오히려 서로를 격려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다양하게 섞인 집단의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인내력과 창의력을 더욱 발휘한다.  79

손위 형제 자매와 친구들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쉬워진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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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에서 어떤 관계든 상처를 받게 된다.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또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받은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즉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상처가 어떤것이든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정도의 성숙함이 있다면 또는 그것을 기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래내용(p98)에서 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 즉 회복력이다. 그 힘을 기르려면 가족의 애착과 형제관계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친밀함을 유히자는 주위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후에 또래 아이들과의 조직이 필요하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래 집단에 앞서 형성해야할 회복능력이, 이후의 더큰 회복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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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회복력'이라고 정의한다. 회복력은 위기를 견디는 능력이나 내면의 힘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발달의 면역 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회복력을 강화하는 외부의 영향력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형제자매, 풍부한 사회적 관계의 그물, 가족 바깥에 있지만 친밀한 애착 관계에 있는 사람, 예를 들어 할머니, 이모나 고모, 또는 어른들이 바로 그런 영향력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아이 집단에서 사회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더 큰 회복력을 갖는다.  98

아이들을 사회적으로는 허약한 최고 점수 득점자로 망가뜨리지 않고, 그럼에도 아이들이 화면 앞에 앉아서 또는 장시간 이완 상태에 빠져 타락하지 않도록 해 주는 교육 방법은 없는 걸까? 부모가 헬리콥터처럼 아이의 주변을 뱅뱅 돌면서 일일이 간섭하고 조종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라"는 주장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그들을 후원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을 찾으려면 우리는 다시 아이들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124

아이들이 성장하는 환경은 매우 다양하지만 적절한 발달을 위한 토대는 항상 동일하다.
첫째는 확실한 애착이다.
둘째는 다른 아이들이다.
셋째는 공동체의 지원이다.  
넷째는 자유다.
다섯째는 균형 잡힌 세계다.  127-128

꽃잎을 자꾸만지면 아름다운 꽃이 피지 않는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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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교육이 좋기만 한 걸까?
적기 교육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분명 어린 나이에 많은것을 교육시키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3세에는 이것, 5세에는 이것을 가르친다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특정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의 장점을 설명하듯이 특정 전문가들이 적기 교육을 강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정한 연령대에 특정한 교육이라는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을까?
위의 전문가 집단들의 서로 다른 가설에 의한 실험 결과일 뿐이다.
이 책은 진화의 관점을 강조하며 설명한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이든, 창조의 관점이든,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교육이라는 개념이 시스템화 되지 않았어도 잘 자랐고, 성인이 되고, 자기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술 담배를 교육시키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다. 몸의 체계 형성도 되기 전에 파괴만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라면 당연히 그럴것이란 점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교육이라는건 그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아이를 아이가 아닌 하나의 개체로 인정한다면 시킬것도, 시키지 않을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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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완벽하고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후원도 이와 같은 뿌리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141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도대체 학교의 사명은 무엇일까?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의 발달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주의하기 바란다. 모든 아이들의 발달을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학교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대답을 하자니 망설여진다. 그렇다고도 또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지원하면서도 포기한다. 훌륭한 학교도 있고 낙제점인 학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교사들의 열과 성이 부족하거나 제안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학교의 교육 계획과 교과 과정의 변화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 딜레마가 있다.  146

병원은 어린 생명을 다루는 지식은 의학을 전공해야만 얻을 수 있고 전문가를 통해서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모들이 아기에 대한 책임을 병원에 떠넘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171

성인들도 '결합 속의 자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188

실제로 세계화 이후 독일에서 자녀가 있는 성인들의 실질 소득은 계속 하락했다. 적어도 중하층 가정에서 자녀는 빈곤의 위험을 의미한다. 실제로 성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자녀를 가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190

"정치가 꼭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다. 육아가 기쁘면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는 유럽 발달소아과학계의 원로 레모 라르고(Remo Largo)의 말이다.  191

좀 더 솔직해지자.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밑바닥 사람들의' 사회적 문제만은 아니다. 기득권층에게 통합 정신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한 계층 전체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문제다.  193

결정하는 사람은 엄마다.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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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늘날 아이 양육에서 결정자가 엄마일까? 부모일까?
아니다. 양육의 돌보미가 부모이고, 결정자는 기업과 사회이다. 기업은 전문가 집단 또는 전문가 개인을 이용해 아니 앞세워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이것을 해야 아이의 정서가 발달하고 창의성이 생기고, 사회성이 생기고, 리더십이 생기고, 독립적일 수 있고, 재밌어 하고, 행복해 한다고...
행복마저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세뇌를 시켜 결정자의 역할을 한다.
부모는 다만 내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마냥 전문가의 말이 신실한듯 따라간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전문가를 통해 조종하고 있는 결정자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 잘 알지 못하고 미래도 모르니 좀더 많이 아는 사람의 말을 진리라 생각하면서.. 
부모의 기준은, 전문가를 등에 업은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고 있는 사회의 기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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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교육은 기존의 지식, 다른 사람들에게 물려받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이 돼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만을 배웠다면 인류는 아마도 불을 다루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터넷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213

호모 사피엔스에게 교육이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행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것도 교육이다. 자기 학습, 자기 교육이 그런 것이다...
인생의 지식은 밑에서 위로 오르기도 한다.  214

아이들은 학습을 위해서 단순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은 관찰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겐 롤 모델이 필요하다. 
그들은 무턱대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치를 두고' 관찰한다.  215

사람이 처방전에 따라 살거나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듯이 교육도 처방전을 따라할 수 없다.  218

아이들에게는 집단의 경험이 필요하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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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가족제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집단의 경험이 이루어졌다. 또래들의 집단 어른들과의 집단, 모계집단, 부계집단등 대가족 아래서 다양한 집단 경험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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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고 하면 보통 '모르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등 이런 유사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먼저 알게 된 이들에 대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에 의해 좀 덜 어려운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그렇다고 노력이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시말해 배움은 노력을 통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이전 경험들과 어우러짐으로 지혜로 이르는 과정을 총괄하게 된다.

이상의 표현들은 누구나 들어왔었고 수차례 이상 접했을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배움에 대한 이 정도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 보다는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수상록I)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것 뿐이었다.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기원이나 어원 같은 것들만 각인시켰을 뿐이다.'(수상록II) 라고 지적하였다.


1500년대 사람, 1580년에 완성한 <수상록>은 500년이 넘게 지나온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배움에 대한 생각없음과 비뚤어진 목표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어느 시대에나 오류는 있어 왔고, 잘못된 적용이나 무지는 있어 왔다.

그 당시에도 무지에 의한 비뚤어진 교육에 대한 생각들은 있어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세태에 대해 몽테뉴는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발명과 발견들을 통해 그리고 시행착오들을 통해 인류는 진보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볼때 배움에 대해서는 진보되어가지 못한 것이 중요하다.


현 시대에는 이전보다 더 심한 비뚤어진 교육이 자행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중의 하나이다.

배움에 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곳은 첫번째는 가정이고 두번째는 학교이다. 두번째의 경우는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첫번째인 가정 내에서의 교육도 매우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두번째를 고려해 보고자 한다. 물론 가정에서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고 교육의 문제가 학교에서의 교육교육을 더욱 비뚤어지게 하는데 조장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배움은 개인적인 부면이지만 이 시대는 단체의 문제를 먼저 생각한다는 점을 보았을때 학교의 배움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인다. 몽테뉴의 표현 '오직 기억을 채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실과 얻고자 하는 의지를 뿌리채 뽑아버리는 현실은 우리에게 경각심 보다는 성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판단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배움에 대해서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비뚤어짐을 가진 것은 배움 자체를 매우 수동적으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지식을 들어왔다. 청소년 시절에 단 한번도 주어지는 지식에대해 의문을 품어본적이 없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의문이 들어도 순간일뿐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불교, 유교적인 스승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상은 우리를 더욱 조아리게 만들었지 우리가 하나의 개체로서 고민을 하고 생각을 통해 질문하게끔 만들지 못했다.

그렇기에 앉아서 받아쓰면서, 1은 1이고, 2는 2이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바빴고, 그것들에 대해 기억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중히 여기게 된 것이다.

물론 하나의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이유는 우리의 사고를 정지시킨 세뇌로써 가장 큰 작용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움의 질병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파괴>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콩나물은 부드러운 만큼 아주 민감해요.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금방 잔 뿌리가 많아져서 못쓰게 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도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내면의 개안(開眼)은 그래요. 시루에 놓인 콩나물이 하루에 몇 번씩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한 것처럼, 여러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얻는 지식이 꼭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콩나물은 절대로 물을 껴안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물이 콩나물 사이로 설렁설렁 지나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콩나물이 물을 안고 있다면, 금방 썩어버립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지식을 안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이 썩어버려요. 

적어도 인간의 내적인 성장을 염두에 둔 지식은 그렇습니다. 콩나물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아까워도 그냥 설렁설렁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콩나물 사이로 물이 설렁설렁 지나기지만 때가 되면 자라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마치 콩나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물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충실하듯, 여러분도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변화는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207-209)

저자의 콩나물에 대한 예는 우리에게 배움에서 기억이 지대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님을 적절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 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물을 잡고 있으면 썩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배움에 지식에 대한 내용이 필요하지만 그 지식만이 모든 것인양 잡고 있으려하면 기억일 뿐이지 배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움이란 것은 콩나물이 물을 지나가게 하면서도 잘 자라나가듯이 지식들을 통해 기억이아니라 그러한 지점과 자신의 체험적 사고와 경험들을 통해 그리고 이전의 지식들과의 어울림들을 통해 자신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마지막 줄에서처럼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배움은 듣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자신이 체험하여 자기의 것으로 체득, 체화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큰 역할을 차지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콩나물이 자라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기술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 즉, 스스로 경험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우리의 배움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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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교직과정을 이수해야 하는데 학부교직(B-ed)을 이수하면 보통 초중등 과정 교사가 되고 석사교직(M-ed)을 이수하면 고등과정 교사가 된다. 공립학교 교사로 임용되면 정년이 보장되지만 사립학교의 경우는 철저한 실력 위주의 선발로 항시 능력을 검증받고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우수한 교사들은 사립학교를 선호한다.

사립학교에서는 단순히 교직 이수 자격증뿐만 아니라 각 과목에 필요한 여러 분야의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연히 경쟁이 심한 사립학교의 교사들은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인도 수도 델리의 유명한 사립학교 중 하나인 바산트 밸리스쿨에서 5학년 영어수업을 맡고 있는 수렌드란 교사의 말에 따르면 사립학교에는 교사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우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들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속한 학교에서도 일 년에 한번씩 교사들의 해외 연구 워크숍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 분야의 최신 정보를 접하고 수준높은 영어로 유지하도록 한다고 한다.  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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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애니멀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출판사
흐름출판 | 2011-12-1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관계가 사람을 창조한다!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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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42주 연속 베스트 셀러인 책이라 한다. 10년쯤 전에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보보스'라는 표현으로 책을 내었던 저자이다.

지인의 추천을 통해 접하게 되고, 책을 읽었다.

첫 번째 눈에 띈것은 앞서 언급한 '보보스'의 저자이라는 점과 심리학적인 접근을 통해 일생을 관찰해 본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두 번째로는 책의 두께이다. 

세 번째는 책의 색이다. 무슨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지의 색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속에 색이 긍정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책은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무의식은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데,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첫 번째 교육기관인 가정내에서 형성된 관계를 통해 어린시절의 무의식 생성과, 성장해 가면서 두 번째의 교육기관인 학교를 통해 배움과 소통으로 형성된 무의식이 사람의 일생을 통해 나타나게 되고, 성인기의 생활속에서 추구하는 대부분의 생각을 좌우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방대한 심리학적 자료와 소설적인 전개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에리카와 해럴드라는 두 주인공이 태어나면서 부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환경과 교육이 성인이되어 가는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며, 그들의 자의식이 어떤 작용을 통해 전개되어가는지에 많은 심리학자와 철학자들의 표현을 통해 서술한다.

또한 그들이 서로다른 환경과 가치관속에서 일을 통해 만나게 되고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의 사랑이 어떤 작용들을 해 주는지.

사회생활에서 열정이 나타나는 방식, 노인기에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와 해럴드의 죽음까지를 그려내면서 인간이 무의식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으며, 관계의 소통이 사람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일일이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심리학 서적들을 꽤나 읽었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서술하였기에 낯 익은 표현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꾸미면서 소설형식을 빌리지 않았다면 매우 딱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인데 그렇더라도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을 거라 생각된다. 책의 판매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소 딱딱한 내용을 소설형식으로 인생전체를 다루어 줌으로 독자에게 가까이 그리고 따라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이성을 보려할 때 그의 부모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사랑에 눈이 멀면 잘 보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부모를 만나고 그들의 생활을 보게 되면 이성이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 그 범주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이 점을 보더라도 어린 시절의 환경은 한 사람의 거의 모든 일생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은 4살 이전에 태도를 거의 습득하게 되고, 초등학교 입학전에 부모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줄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두뇌의 발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어서 일까 .. 관찰해 보면 분명 틀리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태도를 보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어린시절에 그들이 부모와의 교류가 많았는지 적었는지는 알 수 있다.

책의 내용에서도 해럴드는 여유있는 집안에서 부모와의 소중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그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훌륭한 교육이 되었던 시절을 보낸다. 

그에 반해 에리카는 관심과 돌봄을 거의 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가졌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판단은 뒤로하고, 그들의 성인기의 전반에서 심리적 안정감과 평정은 틀리게 작동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해럴드는 학교에서 좋은 교사를 만나게 됨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알게 되지만, 에리카는 반대였다.

물론 에리카가 무기력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우리의 현실에서 에리카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자라온 사람들의 대다수는 무력감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기대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삶을 꾸려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성공에의 열망이 있었다.


성인이 된 그들이 에리카의 사업아이템으로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고 함께 하면서 사업을 운영하고 환경의 변화로 사업을 접게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는 부면에서 생각하게 될 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만나 살아가게 되면서 공통된 목표가 있음으로 크게 틀어지지 않았던것 같다. 또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에리카는 사업을 접고, 회사를 들어가면서 회사의 엘리트들의 사고와 생활에서 잘 못된 부면들을 관찰하게 되는 점들은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해럴드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는 도덕관념은 교육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해럴드와의 생활에서 해럴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운 부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무의식의 장점과 단점을 언급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작용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면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스스로가 장점을 극대화하기위해 조심해야할 부면들을 점검하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어린 시절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 성인이 되어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좋은 스승관계를 통해 그는 발전하고 안정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스승의 관계로는 친구도 있으며 선생도 있고, 선배나 이성일 수 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인간의 본성이 좋고 나쁨을 떠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인생의 어느 시점이든 성장 발전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누구나 좋은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계몽주의와 영국 계몽주의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우리에게 이성과 열정이 있으며 그것을 변화 발전하려는 의지는 무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교육을 통해 인간은 발전 가능하다는 심리학자들의 의견에 동의 한다.

물론 자신이 본성이 정해져 있기에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 책의 내용들이 꽤나 불편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본성이 있는 반면에 교육을 통해 변화 발전의 가능성도 열어둔다면, 적어도 50:50정도의 비중을 둔다면 이 책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의 인간의 환경과 교육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해럴드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 전에 해럴드는 삶을 마무리하면서 4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들이며,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하는 것들이다.

자신의 깊이, 무엇을 남기는지, 세상을 초월해보았는지, 그리고 깊은 사랑을 해보았는지..

인생을 마감하는 나이가 아니라 이런 질문들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진지하게 늘 고민해 보아야 할 부면이라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가공의 인물이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많은 것들이 내면에 남아 어떻게 작용하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희로애락을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내용들의 작용을 관찰해 보라고는 하지만 결코 쉽게만 생각하고 넘어갈 부면들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은 진지하고 충실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럴때 무엇이 나에게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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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서울대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공부를 즐기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다.  7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원칙과 철학을 갖춘 부모가 되자.  9

제1장 공부에 질린 아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자녀의 성적이 특출하지 않다고 해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제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기 전에 내 아이의 밥그릇에 어떤 재능을 채울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게 우선이다.  19

중요한 것은 여러 재능이 적절한 자극과 훈련이 있어야 제대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25

요즘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를 받아도 다른 학과로 다시 진학하거나 전혀 다른 직업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늦다는 말이다.  26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려면 무엇보다도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욕이 중요하다.  31

공부는 굳이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두 공부이다.  37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면 공부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39
공부란 바로 앎의 기쁨인 것이다.  40
한 가지에 빠지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다.  41

무조건 '공부해라'가 아니라 우리 아이에겐 어떤 공부를 시켜야 흠뻑 빠지고 잘 해낼 지 그걸 알아내는 게 바로 부모 된 자의 첫걸음이다.  42

목표가 확실하다면 공부가 즐거울 테고, 남들과 똑같이 공부를 했는데 나만 성적이 잘 나온다면 그 성취감에 공부가 즐거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 공부가 즐거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공부'라는 말을 쓰듯 뭔가 배우고 깨우쳐 나가는 것은 다 공부이다.  45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가장 즐겁게 하고 잘 할 수 있는 적성과 재능을 발견해 주는 것, 재능이 어떤 것이라도 아이를 믿고 그 재능을 개발시켜 주는 것이다.  48

좋은 부모란 '자녀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부모'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에 좋아하는 것을 잘 뒷받침해 최고로 만들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53

하지만 아이가 어떤 일을 잘 하고, 좋아하는지 알아내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54

사람 속의 잠재 능력은 발현되고 개발되는 시기가 중요한데 우리 부모들은 그 시기를 참 모른다. 단지 빨리 시키면 좋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갖고 있을 따름이다.  58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는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59

부모들은 별 뾰족한 재능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녀에게 쉽게 실망하면 안 된다. 계속해서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숨어있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 보아야 한다.  60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부모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61

앞으로의 세대는 평균 수명이 90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해서 즐겁고 해서 행복한 일이 있어야 한다. 돈과 상관없이 스스로 몰입하고 즐거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행복학 수 있다.  63

자발적 몰입 - 자기 안에서 생긴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몰입  63

미래는 즐기는 자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몰입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 취미를 직업으로 갖는 사람들이 판치는 신명나는 세상이 된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 아이만 무의미하게 직장을 오가는 생활인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67


제2장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15가지 쓴소리
사람에게 꿈이 없다면 망망대해를 목적지 없이 떠도는 배와 같다.  75
"꿈은 인생이라는 암벽 등반에서 밧줄과 같습니다. 아이가 암벽을 잘 오를 수 있도록 인새으이 꿈을 키워 주세요. 밧줄이 없이는 가파른 암벽을 오를 수 없습니다. 암벽 등반을 할 때 더 위로 올라가려면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가잖아요. 같은 이치입니다. 아이가 미래를 향해서 한발 한발 오를 수 있도록 밧줄을 만들어 주세요."  79
되고 싶은 것이나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는 부모가 먼저 나서서 아이 스스로 밧줄을 잡고 오를 수 있도록 차근차근 단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  80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아이는 큰 혼란에 빠지고 부모에 대한 신뢰감 또한 잃게 된다.  82
정작 중요한 진로나 기대, 꿈, 성격 등은 부모나 가족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84
이론대로 된다면 세상에 부모 노릇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87
부모는 아이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88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측 못한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위기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남는 '자생력'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런 시대는 섣부른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생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결핍'을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한다.  92

도덕성은 내면의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이다.  100
도덕성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올바른 지도 없이 저절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01
도덕성은 마음을 먹는다고 하루 아침에 갖춰지지 않는다. 착한 일도 연습하고 훈련해야 잘할 수 있다. 아이가 남게게 존경받는 리더로 바로 서길 바라는가.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행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아이에게 강조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돌이켜보라.  104

남의 감정을 헤아릴 줄 모르는 아이는 '감맹(感盲)'이다. 글자를 모르는 문맹과 다를 바 없다. 남의 감정을 헤아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대인관계의 기초다.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감맹은 오해려 문맹보다 더 심각하다.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감정을 교류하면서 아이는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 하는 법도 배우게 도니다. 화가 나도 참을 줄 알고, 사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어려운 일 앞에서도 의연해진다.  112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공감해 주어라.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화처럼, 코치가 선수에게 하는 것처럼 아이를 대하라. 공감과 칭찬, 격려는 자녀와 부모 사이의 벽을 허물고, 아이 안에 숨은 무한한 에너지를 이끌어낸다.  118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도움을 청해도 응답이 없을 때 몹시 힘들어 한다.  부모들은 자기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종종 자녀와의 대면을 피한다.  119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하우다. 그 노하우는 아이와 직접 부딪칠 때 얻을 수 있다. 단, 그 노하우를 얻는 데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아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121

'다운시프트(downshift)족' - 바쁜 일에 시달려 살던 사람들이 보수는 적을 지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을 비유한 말.(영국은 전체 노동인구의 10%, 선진국에서는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128
'해거리' - 나무는 가끔 아무 이유없이 열매를 맺지 않는 때가 있다고 한다. 땅문제도, 날씨문제도, 거름문제도 아닌데 열매를 맺지 않을 때는 해거리르 하는거라고. 몇 해 동안 열매를 맺느나 몸 안의 에너지를 다 소진한 나무는 1년간 열매 맺기를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데 그게 바로 해거리. 
나무에게도 그렇듯 사람에게도 휴식의 지혜가 필요하다.  129

공부도 창의성과 개성이 필요하다.  151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학생들이야말로 정말 똑똑한 학생들이다. 152

영아기 : 태어나서 한살까지, 그저 스킨십이 최고의 교육이다. 스킨십은 정서발달은 물론 두뇌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유아 전기(2~4세) : 아이의 독립심이 급격히 자란다. 말이 급격히 늘고, 대근육이 발달해 뛰어놀기 시작하며 간단한 미술교육이 지적 자극으로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아 후기(5~6세) : 우뇌와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로 품성 좋은 아이로 키우기 위한 인성교육을 시작할 때. 소근육을 이용한 종이접기, 색칠하기 등의 놀이가 성장 발달을 돕는다. 피오나, 바이올린, 수영 등의 교육이 정서과 신체의 발달에 효과가 있는 시기.
아동기(7~12세) :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과 수학, 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두정엽이 발달한다. 골격이 단단해지는 시기이므로 발레 등의 신체 운동을 해도 무리가 가지 않는다.   156

심리학자 파크(R.D.Parke)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계는 어머니가 보여주는 세계와 전혀 다르다. 아버지는 집 밖 세상에 대한 창문이며 상징적 대변자로 자녀의 사회적, 심리적, 정의적 발달에 영향을 준다. 또한 아버지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자록, 현실 감각이 발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극의 원천이다.'  165
아이와 함게 어울리는것도 훈련이고 습관이라는 사실. 피 섞인 가족이라고 해서 관계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167
아버지의 입으로 듣는 세상 이야기는 모두 다 신기하고 멋있게 느껴진다. 신나게 자기의 얘기를 떠들 줄 아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이다.
또한 자기가 이야기를 한 만큼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한다.  169


제3장 아이 기르기를 대나무 보듯하라.(대나무 교육론) 
모름지기 준비하지 않음은 탓해야 하지만 준비하는 시간은 탓하면 안 된다.  174

이순신 - 그의 어린 시절은 실수투성이 문제아였다. 간신히 급제한 나이가 32세, 전통적 문반 집안에서 무과를 선택하니 답답한 아이로 비취기도하였고 그가 무관으로 천재성을 발휘한 나이는 50이었다.

강수진 - 중학교에 들어가 발레를 접하였고, 유학을 떠나서는 '학교에서 제닐 발레 못하는 애'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발레를 사랑하는 마음에 밤잠을 줄여 연습했고 1986년 22세의 나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 1996년 프리마 발레리나로 등극하였다.  174-176

아이 기르는 데 있어 부모 역할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나는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을 부모가 100% 갖출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부모 시선 밖에서 일궈지는 아이의 삶도 인정하면서 그 삶이 제대로 꽃피워지도록 주변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  182

부모가 제대로 된 교육 환경만 만들어 주면 아이는 저절로 자란다. 즉, 아이가 무언가 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다음, 그것이 정말 해야겠다는 의지로 발전하게끔 유도 하라는 말이다.  187
다만 그 환경이라는게 비단 학습적인 게 아니라 학습, 정서, 인성적인 모든 것을 포괄한 의미여야 한다.  188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교육을 받앗던 간에 결국 자기 좋아하는 것을 좇아 살게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에게 나모가 다른 아이만의 특징이 무엇인지 서둘러 발견하고 지원하는 게 지혜로운 모습일 것이다.  195

조급한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조바심을 내고 뭐든 많이 가르쳐서 꽉꽉 채우려 하지만 그보다는 속을 비운 아이들이 더 강하고 발전 가능성도 크다. 채울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꾸만 비워주는 것은 단순한 버림이 아니라 더 많이 채우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 하겠다.  200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자녀를 품고 산다. 언젠가는 자식이 떠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202 


제4장  두 아이를 키운 아버지로서 부모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과연 부모인 당신의 소임은 무엇인가?

교육이 방향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부모인 당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기 철학과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에게 엄격한 부모가 되려면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부모가 자기는 원칙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아이들에게만 엄격하면 그 순간 아이들은 부모를 얕보게 된다.  
원칙에 엄격한 부모가 아이로부터 인기를 얻지 못할 수는 있어도 굳건한 믿음은 줄 수 있다는 사실. 아이들도 원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213

부모가 있더라도 부모에게 지극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부모가 없더라도 수준 높은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좋은 아이로 클 수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떤 부모냐는 것이다.
'자식에게 지극한 정성을 쏟지 않는 부모는 타인과 마찬가지이다.'  217

좋은 부모의 기준이란 것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부지런한 성찰만이 좋은 부모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처음 하는 부모 노릇이니 더디지만 조금씩 잘못들을 고쳐나가며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227

부모들은 대개 자기가 하는 말은 다 아이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의 생각을 알기도 전에 자기 생각부터 먼저 말해 버린다. 
자기 생각을 먼저 전함으로 해서 아이가 말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말문을 닫아 버리면 부모는 아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 제일 잘할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입을 닫아 버린 아이는 마음을 닫아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229

근엄형 -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통제와 간섭이 심한 부모
허용형 - 아이 중심으로 생각은 하지만 크게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부모
독재형 - 부모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통제와 간섭이 매우 심한 부모
방임형 - 모든 일을 부모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아이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부모  232

대화를 나누는 부모의 유형
협박형 - 부모 중심으로 '이따위로 하면~도 못해'식으로 협박하는 부모
설득형 - 감언이설로 아이를 설득하는 부모중심적 부모
호소형 - '제발~해 줘' 식으로 자식에게 읍소하고 호소하는 부모
타협형 -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절충해 나가는 부모                  235

대화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타협점을 찾아내고 결론을 낼 수 있는 토론형 대화가 가장 좋다. 이런 대화 화법이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함은 물론 바른 사고력과 이해력을 갖게 할 것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38

"정성을 다해 아이 키우시느라 애쓰시는 거 우리가 다 압니다.!!!!"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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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력을 많이 들여야 오래도록 명성을 누릴 수 있는데, 애당초 공력을 들이지도 않고 후세에 명성을 거두고자 하는 자가 많으니, 그 비속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가소롭다."  15

"게으른 것이 습성이 되어 비스듬히 누워서 보기를 좋아한다. 중국 책은 누워서 보기 편한 데 비해 우리나라 책은 불편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국 책을 휘하는 실정이다." 16

정조는 어떤 경우에도 백성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눈앞의 것만 바라보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제왕은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했다. 정조는 또한 백성들이 눈앞의 것만 바라보는 것 같아도 '지극히 신명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114

"밤에는 하루 일을 점검하고, 한 달이 끝날 때면 한 달 동안 한 일을 점검하고, 한 해가 끝날 때면 한 해 동안 한 일을 점검한다." 174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어서 외기(外氣)가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177

"법을 제정한다고 저절로 시행될 수는 없고, 말로 가르치는 것은 몸으로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허물이 없게 한 뒤에야 남을 비난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180

"바쁜 와중에 독서하려고 한다면 목표를 세워서 날마다 규칙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 년이면 몇 질(帙)의 경적(經籍)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몇 년간 쉬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간다면 칠서(七書)를 두루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독서할 날짜를 따로 얻고자 한다면 영영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195


wn1 - 나는 그를 잘 모른다..저자는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하고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글을 썼다. 
하지만 나의 아둔함으로는 이 한 권을 읽고 정조를 알 수가 없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일것이다.

그는 복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앞을 보는것이었고, 깊게 보려하는 것이었고, 넓혀 나가보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속에 화병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을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로 인해서 조선은 미래를 개방을 소통을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희생시켜 많은 빛을 생산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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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김선생의) 공부가 희망이다.

김종선 이다미디어 2007

나를 꿈꾸게 했던 아이들

- 책을 많이 읽히고 다양하게 생각하고 경험하도록 가르쳤고, 더불어 세상의 고마운 책들이 우리 아이들을 눈부시게 성장시켜주었다. 나는 돈이 없는 집에서 영재성을 그리 타고나지 않은 아이라도 엄마의 사랑과 노력으로 어떤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며, 자기만의 아름다운 꿈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1장 나는 언제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인가?

- 사는 게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아이들에게 현재의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현재의 소중함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매달리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공을 들인 만큼 잘 자란다. 나렌드라 자드하브(52세)는 집념이 강한 아버지의 헌신이 있었다.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천민(달리트)출신이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공부만이 신분의 벽을 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서 넓은 세상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열정을 쏟아서 공부에만 몰두했다. 나렌드라는 최상급 계급의 브라만이 쓰는 언어인 산스크리트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고, 만 25세에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자신의 실력 하나로 깨부순 셈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책을 읽을 전등불조차 사치인 하층민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장 낮은 신분이 바로 가장 강한 동기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

엄마라면 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자신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부엌의 식탁이건, 거실의 커다란 식탁이건, 공부방의 책상이건 중요한 사실은 공부하는 집안 분위기와 공부를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아이들의 자세이다. 이것만 잘 유지된다면 어디에서라도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잘할 수 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게 없는 부모이지만 떳떳치 못할 건 없다. 물려줄 재산이 없기 때문에 물고기 잡는 법이나 더욱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다.

* 엄마들이 꼭 명심해야 할 '스스로 공부법'

공부를 가르칠 때는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전을 이용해서 스스로 찾는 방법을 빨리 가르쳐야 한다. 공부도 되새김해야 완전히 소화가 되고 머리에 입력이 되면서 실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2장 어릴 때 공부 습관이 평생을 결정한다.

-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책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집중을 시키면 오히려 흥미를 잃어버린다. 아이가 그림을 보고 스스로 상상하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이가 처음에 책을 만나게 되는 계기는 아주 중요하다. 곧, 아무리 좋은 뜻으로 아이에게 책을 권해도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아이가 책을 장난감처럼 부담 없이 가지고 놀게 했다. 아이가 사용한 공책이나 문제집을 모두 보관해두면 날짜가 기록되어 있어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좋은 추억거리로 남게 된다.

집중력은 싫어하는 일이라도 어떤 일정한 과제를 일정한 시간 동안 몰두해서 제대로 해낼수 있는 능력이다. 집중력을 키우려면 남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을 똑바로 보고 눈을 맞추며 말을 했다. 아이가 내 말을 집중해서 듣게 하는 데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물론 나도 언제나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서 열심히 들어주었고, 또 재미있다가거나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집중력은 무엇인가를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아이가 질문을 하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늘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한다. 엄마는 언제나 아이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아이의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주거나 함께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의 질문에는 바로 반응을 하는 게 효과적인 교육법이다.

절대로 내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주지 않았다. 아이가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도 정답을 바로 말해주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문제를 푸는 데 이해를 돕는 설명만 해주고, 아이가 생각해서 문제를 풀 수 있게 해야 한다. 서로 의논하는 게 좋다. 의논을 할 때도 80% 이상을 아이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말하며 정할 수 있게 하고, 엄마는 듣는 쪽을 더 많이 택해야 한다. 만일 엄마가 '너는 내 손바닥 안에 다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어 자율적으로 계획을 실행하기가 힘들어진다.

한숨 돌리려는 핑계를 앞세우고 방에서 나오는 아이를 힐난해보라. 아이는 엄마에 대한 반발심으로 욓려 공부하기를 더 싫어할 수도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렵고 힘들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아이를 격려해주는 게 효과도 휠씬 더 크다. 목표가 없는 인내는 무의미하다. 아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효과적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문제는 아주 어릴 때부터 훈련으로 가꾸고 다져야 강해진다. "어려움을 참고 견딘 사람은 성공하고, 어려움을 참지 못한 사람은 실패하는 거야."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에 같은 일로 실수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고, 실수가 없는 성공은 없는 법이다." 교육은 엄마와 아이의 상호작용이다. 때문에 아이에게서만 문제를 찾을 게 아니라, 엄마라면 자신에게도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항상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아이를 키울 때 늘 신경쓸 부분은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놀떄는 노는 것에만, 먹을 때는 먹는 데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버릇은 어릴 때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부모, 특히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말하는 공부 습관이란, 무엇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어릴 때 충분히 길러줄 수가 있다.

"연습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복되는 연습은 모두들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연습은 죽을 때까지 매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위대한 연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가 장래의 요요마를 꿈꾸는 첼리스트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딱 잘라서 한 말이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해서 자기 것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익혀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되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하는 공부나 행동이 엄마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다. 또 아이의 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엄마가 대신 공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아이가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하고, 또 끊임없이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정말 재미있어하고 원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엄마가 더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아이에 대해 정확하고 냉정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행복한 초등학생 시절을 갖지 못한 아이는 불행하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에 대해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려서부터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을 관리할 가장 첫 번째 관문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를 잘 할 수 있어야만 아이는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의 딸이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 다니는데, 그 아이가 가장 혀를 내두르며 진저리치는 것이 미국 아이들의 체력이라고 했다. 어찌나 체력들이 좋은지 이틀씩 밤샘 공부를 한 후에도 샤워만 하면 거뜬하다는 것이다. 공부는 체력싸움이다.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라도 더 알려고 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정말로 중요하다.

공부에서만은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는다. 공부가 아니라도 인생은 즐거울 수 있고 할 일도 무궁부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남과 비교당하면 어른보다 훨씬 큰 상처를 입게 되어 자신의 능력을 펴보지도 않은 채 쉽게 포기할 수 있기 때문에 어른들이 주의해야 한다.


3장 당당한 엄마가 아이를 바르게 키운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태도가 일관되어야 한다.

- 자신감은 자존심과도 상관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지켜낼 수 있는 인내심이 있으면 자신에 대한 믿음도 더 커질 것이다. 끝까지 해보아도 안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겁을 먹고 안 될지도 모른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두면 실패하게 마련이다. 엄마의 눈높이를 아이에게 맞추고, 엄마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갖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놀이 속으로 함께 들어가 한 덩어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과 동요 테이프를 같이 듣고 노래를 할 때도 나는 아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부르며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아이들은 크면서 다양한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면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가치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미 'NO'라고 하면 강요할 필요가 없다. 엄마 마음은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건 아이가 스스로 재미있어하고 알고 싶어할 때가 아이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은 아이가 주도적으로 목표한 과제를 최대한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완수하기까지 앉아 잇는 시간을 말한다. 엄마가 조급함을 버리고 아이의 능력에 맞게 대처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사실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하기가 힘든 법이다. 어느 잡지에서 보니 조순 전 부총리도 학문을 해서 교수가 되고 싶다고 의논해 온 아들에게 "외로움을 이길 자신이 없으면 공부할 생각을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그런다. 공부나 가난은 모두 외로움과의 싸움이며 더 강해지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을 원하면 원할수록 엄마는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엄마가 자식에게 완벽하지 않듯이 모든 자식이 엄마에게 완벽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을수록, 또 아이를 사랑하면 할수록 엄마가 참고 기다려야 할 일은 많다. 아이가 무엇을 할 때 엄마가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면, 엄마가 볼 때는 열심히 하고, 보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는 버릇이 들기가 쉽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그 무엇이라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한다는 게 너무 평범한 방법이어서 그런지 엄마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그러나 진리는 평범한 곳에 있다.

엄마인 내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 아이도 자신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사소한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무엇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깨우쳐주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올바르게 생활하기. 자신의 자존심을 소중하게 지키는 방법에 대해 늘 아이와 함께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6남매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에게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라고 했다. 또 소중한만큼 한 번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하기 싫은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면서 남이 해주는 공부에 익수해질 뿐 자기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아이에게는 놀고 싶은 것을 참고 공부만하라는 것만큼 불합리한 억지도 없다.


4장 책 읽는 엄마가 책 읽는 아이를 만든다.

- 아이들은 견문이 넓어지면서 호기심도 더 많아졌다. 또 그 속에서 지식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다른 세계를 몹시 알고 싶어했다. 국어 공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독서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고도의 전략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읽는 단계도 잘 밟아야 한다.


글을 마치며...- 엄마의 사랑으로 아이들은 자란다.

엄마는 내 아이를 가장 정확하게 알지만 한편으로 내 아이에게 가장 눈이 먼 사람이 되기 쉽다.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제일 빨리 감지하고 결정하는 사람도 엄마이다. 반면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크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엄마이다. 그것이 나는 엄마의 무서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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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강건성세(康健盛世)는 강희제(康熙帝, 1661~1722), 옹정제(雍正帝, 1772~1735), 건륭제(乾隆帝, 1735~1795)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3대 133년간의 세를 칭하는 말이다. 
청나라 제4대 황제인 강희제가 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제5대 황제 옹정제는 건전한 기풍을 확립했고, 제6대 황제 건륭제는 선대의 정신을 계승해 강건성세를 완성시켰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부가 벤치마킹하려는 인물이 바로 강희제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강희제는 61년간이나 황휘를 지겼으며 청나라의 실질적인 창업주이기도 하다.
강희제 리더십의 원천은 무엇보다 이재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천리마는 어느 시대, 어디에는 있었지만 천리마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백락(伯樂 - 춘추시대 종자 좋은 말을 고를 때 귀신겉은 눈썰리믈 발휘했던 인물)은 언제나 드물다."
즉 인재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이는 드물다 또한 알아본다 해도 그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면 마음을 얻어야 한다.

강희제는 학구열이 높은 황제였다.
유학자들로부터 서양인 신부에게서도 배우는 등 학문의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문화활동에 까지 관여하였다. 
그는 주자학과 수학, 자연과학 등에도 정통한 호학인이었다.

강희제는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 였다.
탐구를 즐기고 천문학, 지도제작, 광학, 의학, 대수학 등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러시아와의 네르친스크 조약 때 예수회 선교사들을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히며 이들에 대한 신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한 손에는 서양 고전과 외국어를 무기로 든 탁월한 계몽군주였다.(개방적인 학구열을 지닌 인물)

그는 집무에 시달리면서도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점령했으며 러시아 군대를 패퇴시켜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고 티베트를 복속시키기도 하였다. 즉 강희제는 문무를 겸비한 군주였다.
강희제는 날마다 오늘이 끝일지 모른다는 각오로 살았다.

강희제는 가장 부유한 나라를 일구었으나 근검론을 쓰면서 근검절약하는 군주였다.
"모든 비용은 백성들의 피땀으로 얻어진 것이니 주인된 황제로서 절제하고 절제함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또한 그는 "한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지, 천하가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 '이름병'에 걸리지 앟고 물욕이나 명예욕을 탐하지 않았다.

신기미(愼機微) :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잡념들을 제거하고 자신을 단속한다
덕승재(德勝才) : 덕이 재주를 이긴다.(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덕이지 재주가 아니다.)
"천하의 위험을 구하는 자만이 천하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천하의 근심을 해결하는 자만이 천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천하의 화를 구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천하의 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강희제의 통치 철학이다.

그는 고별 상유에서 "나는 천하를 보살피는 데 내 마음을 다 쏟아 부었노라"고 고백하였다.
강희제는 좋은 리더(good leader)를 넘어선 위대한 리더(great leader)였다.


옹정제 또한 끊임없이 학습하는 리더였다.
"인재를 찾는 것이 제왕의 제일가는 고충"이라 말하며 인재 확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현장의 소리에 귀를 여는 황제였다. 그는 찾아오지 말고 황제게게 주접(奏摺)을 쓰라 명하고,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각지의 주접을 읽고 주비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인기 없는 정책도 과감히 밀고 나가는 실천 의지로 충만한 군주이자 '실행하는 리더'였다.(주관을 가진 실천형 리더)
또한 그는 늑대 사냥을 통해 늑대 무리의 속성을 간파하고 이를 통치에 활용하기도 하였다.(이론보다는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클 수 있다.)


건륭제는 강희제 때부터 축적된 재정을 바탕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원숙한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그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문무를 겸비하고 지혜와 용맹을 갖췄으며, 성격도 자유로운 편이라 18세기 지식혁명을 이끈 문화군주였다.
그는 아버지인 옹정제처럼 인재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서를 즐겨 읽고, 선대 황제를 깊이 연구하였다.
거안사위(居安思危) : 편안할 때 오히려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그는 또한 60년간 다스린 뒤 조부의 재위 기간을 고려해 자진 퇴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제 필요한 것은 적절히 섞이는 것이다. 또 그 섞임이 자극이 되어야 한다. 낯선 것을 만들어 기존의 것에 머물거나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고 챕터를 맺는다.

강희, 옹정, 건륭이 남긴 삼제(三題)
강희, 옹정, 건륭이 오늘날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최소한 다음 삼제(三題)만큼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신기미(愼機微)하여 국궁진력(鞠躬盡力)하라." - 마음속에 잡념들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몸을 굽혀 온힘을 다하라.
"위군난(爲君難)이니 견인불발(堅忍不拔)하라." - 군주가 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우니 굳게 참고 견디어 흔들리지 말라.
"대공지정(大公至正)하여 협화만방(協和萬邦)하라!" - 공평하고 지극히 바른 가운데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




우리네 역사를 돌아보아도 자극이 발전을 주었다.
자극을 단절하였을 때 나라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정체라도 되면 좋았을테지만, 퇴보하게 되었다.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도움은 결코 안락함이나 편안함이 아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자극이 되기 위한 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것을 찾고 안락함을 찾는다. 특히나 한국은 더욱 그러한 상황을 요한다.
윗세대들과 지금 세대들은 발전의 차이가 극명한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윗세대는 발전하는 시대를 살면서 안정적인것들의 최고라고 인식하고 있으나, 현재의 상태는 안정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지식의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보의 시대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밀레니엄 때나 했던 이야기들이다. 과거 100년동안 발전한 속도보다 지금의 5년 아니 3년의 발전의 속도가 더 빠르다.
지금의 많은 정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어야 하는 '문화창조 상상의 시대'이다.

우리는 지나온 지혜는 받아들이되, 현재의 상태에서 잘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통찰의 힘을 발휘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극의 시대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그렇게 할때 부드러운 시각을 가지고 행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그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끊임없이 학습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리 많은 양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학습의지를 나타냈다.
지금은 월간지 까지 합해서 하루에 나오는 책이 100여권이 된다고 한다.
일년이면 36500권이 된다. 
무수히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들이 쏟아지늗데, 그것을 선별하고 전략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그것마저 학습에 의해 축적해 나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자신을 자극해 나갈 때 자신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며, 이러한 생각과 행동들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경영의 핵심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강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재'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이 리더라면 인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거은 우선 리더의 마음가짐과 덕일 것이다.
능력, 열정 지략 관대.... 여러가지 요소들이 인재의 마음을 살 수 있느냐부터 고려한다면 리더는 그를 제대로 돌아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으며, 그에더해 강한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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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직 교사가 들려주는

미국 교육 이야기

지경희 문예미디어 2007

․ 교수님은 나이 어린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주시며 자신의 인생관을 나와 진지하게 나누셨다.(16)


․ 적어도 나는 K가 나에게 불안한 맘을 열어 보이고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마주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녀가 힘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7)


․ 그녀는 집에서 늘 책을 익는 아이여서 책을 이해하는 속도도 빨랐고 책 내용을 전체적인 느낌으로 이해하고 감을 잡아가는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었고 단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조금 서툴렀을 뿐이었다.(20)


․ 영어를 기필코 마스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문화와 언어를 자연스레 접하고 습득해보자. 습득한다는 의미는 배워서 반복한다는 의미이다.(21)


․ 태국에도 한국인의 교육 열기는 대단해서 좋은 학교는 한인 학생들로 꽉 차 있었고 이미 만원이라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했다.(27)


․ 어디서 살건 열심히 사는 부모님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자녀들도 역시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족의 한 부분임을 말하고 싶다.(28)


․ 제자들이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어떻게 학문에 성공하였는지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 박사는 S=X+Y+Z 라고 썼다. S는 Success(성공)의 머리 글자이고 X는 말을 많이 하지 말것, Y는 생활을 즐길것, Z는 한가한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라 설명했다.(32)


․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건 좋은데 실력을 갖추고, 세상을 비웃어도 괜찮은데 그저 불만만을 늘어놓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인생을 넓고 길게 바라보면서 생각을 높여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35)


․ 부모도 자녀와 함께 부딪히고 생각하며 가슴 아파사면서 성장해야 한다. 자녀의 힘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힘들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저 부모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자체만이라도 자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자. 나머지는 자녀의 몫이란 것도 기억하자.(39)

wn1 - 한국의 부모들은 제일 절실하게 필요한것이다.

한국교육의 폐헤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과정이 아니라 답만을 요구하고 가르친다는것.

지금 자녀의 시대에도.. 우리 시대에도 .. 부모의 시대에서도...그랬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는 철학이 더욱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부모는 바쁘다는 미명아래 돈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만 생각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부모들과 대화를 해 보면 ... 생각은 있다.. 하지만 생각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부모로써 당연히 해야할 것을 생각으로만 하고 ..현실에 빠져 살고 있다.

자녀는 우리 돈을 받고 위탁하는 곳에서 절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그것은 오로지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녀는 한걸음 성장을 하게 된다.

위의 글이나 아래의 글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알약으로 해결을 하려 하는 부모가 되지 말자..

그런 어떻게 해야 되냐고? ...

사실.. 답은 있다.. 잘 알고도 있다..그러나 기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순수한 동기이니 왜곡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이유는 바로 부모가 그것들에 깊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해 보고도 잘 모르겠으면... 방법을 정확히 알고 싶으면 그때 물어보라..

그러면 해법이 될 수 있는 것과 그 과정 그리고 자세까지 설명해 주겠다..


․ 우리는 잘못된 경험을 되풀이 하면서 정작 중요한 자녀 교육이 마치 알약 하나로 해결 된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자녀 교육은 붐의 생각과 행도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무언의 가르침이 자녀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인 것이다.

불쏘시개로 불의 강약을 조절해가며 은근히 데워진 구들목에 함께 엉덩이를 지져가며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그런 삶을 살아보자. (42-43)


․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달려온 과정에 기뻐하고 자족하며 훌훌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55)


․ 자녀 앞에 닥친 불을 당장 끄기보다는 앞으로 평생 해야 하는 공부를 순간 폭식하게 함으로 공부와 담을 쌓지 않게 하고 목마르게 학문을 찾을 수 있도록 자녀의 수준에 맞추어 적당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58)

wn1 - 우리는 아프면 병원을 간다... 병원에서는 어디가 아픈지 물어본다.

그리고 그에 맞게 처방을 한다... 

이것은 바로 '현상치료'이다.

그렇기에 여건이 되면 또 같은 병이 걸리기 쉽다.

그것은 바로 '근본치료'.... '근워치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녀교육도 그러하다... 우리같은 교육을 하는 사람도 아이들을 만나면 우선 하는것이 현재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

일단은 그것들 부터 시작을 한다...왜냐하면 부모들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기에..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치료를 한다... 그것의 답은 사실 부모들에 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해 줄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가 않다..부모들의 역할이 필요한데.. 많은 부모들이 그것을 무시하거나 알면서도 현실에 생활에 쫓겨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교육은 미래다.

이말에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자녀의 미래가 밝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지 않은 부모도 없다...

그런데 미래를 밝힐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부모는 거의 없다.

이것이 한국의 교육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들만 보아도 답은 꽤 있다..

제발 이것만이라도 보고 ...거기에 멈추지 말고 .. 왜 그런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 다시금 물어봐 주길 바란다..그때 상세하고 필요한 과정들을 알려드리겠다..


․ 인생에 있어 성공이란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이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세워놓은 목표를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목표에 얼마만큼 근접했는지, 그것이 자녀들이 이루어야 할 성공임을 이야기 했다. (73)


․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너무 상대방을 의식해서 자신에게 소홀히 하는 일은 없도록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라고 말해주고 싶다.(80)


․ 부모 교실을 하면서 매전 느끼는 것이지만 부모님이 자녀와의 대화가 힘이 든 것은 아무리 그들의 얘기를 들어 주려고 노력해도 자녀들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로 시작하여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부모 자신이 먼저 화가 치밀어 버리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 그저 자녀들이 힘든 세상에서 밥벌이라도 제대로 하고 살았으면 하는 그들의 소박한 바람을 저버리는 것 같아 자녀에 대한 섭섭함이 부모들을 더 힘들고 외롭게 하는 것이다.

자녀가 반듯하지 못한 것은 부모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죄책감에 자식 얘기하는 자리에서는 겉돌기만 하고 사람 대하는 것도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이다.

자녀와 서로 바라는 것이 다르니 그 관계에는 분노와 실망과 좌절감이 자리하지만, 사실 그런 마음을 가진 부모들은 “나는 나의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잘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생각하는, 자녀에게 헌신적인 부모라는 것이다. 단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명문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은 내가 훌륭한 부모여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녀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결과다. 자녀가 선택한 삶에 대해 너무 가슴 아파하지도,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자녀가 스스로 선택한 삶을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자. 부모니까.(87)


․ 불행하게도 부모님도 학생 자신도 학교 자체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89)


․ 자녀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자. 고등학교 졸업이 마지막이 아니라 지금부터 자녀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학 있는지 좀더 가깡이 다가가자. 우리의 일상적인 습관이 오랜 시간 하나씩 쌓여서 커다란 우리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처럼 긍정적인 생각, 바른 언어 습관, 그리고 나 혼자만 잘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그런 행복을 꿈꾸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도록 무리하게라도 기대해 보자.(91)


․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공부만’ 잘하는 자녀로 키우기보다는 ‘공부도’ 잘하는 자녀로 키우도록 욕심을 내보자. (98)


․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할 일은 자녀가 그들 본래의 모습을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숨겨진 역량을 맘껏 펼치기 위해 고비 고비마다 그 넘치는 사랑의 힘으로 견디고 또 견디는 거다. (114)


․ 부모님들에게 섣부르게 자녀 교육을 할 바에는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자라리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해주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115)


․ 우리 부모들도 자녀에게 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들의 능력에 맞는 방법으로 교육시키는 소신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균형과 조화로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눈 딱 감고 누구의 눈치도 체면도 보지 말고 자녀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소신껏 양육시켜야 할 일이다.(123)


․ 개인 에세이 역시 자신의 진솔한 생각이나 경험 등 원서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으 좋은 점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137)


․ 균형과 조화로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눈 딱 감고 누구의 눈치도 체면도 보지 말고 자녀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소신껏 양육시켜야 할 일이다.(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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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는 집

시지마 야스시, 와타나베 아키코 삼성출판사 2007


1장 머리 좋은 아이들은 어떤 집에서 살까?

1. 탁구대의 재발견

- 가족 간의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거실에 있는 탁구대..

- 가족들은 탁구대에서 거의 모든 일과를 보낼 수 있어서 가족이 함께 공유하고 화합하는 공간

2. 꼬마 방랑자의 노매드식 학습법

- 그날 그날에 따라 공부하는 곳을 방이며 거실이며 부엌이며 현관이 보이는 곳이며, 심지어는 화장실에서도 공부하는 방법

- 습관이 되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어도 간이 칸막이만 치고 공부를 한다.

- 가족이 함께 있다는 안락함을 느낀다.

3. 가족애가 돈독해지는 아이의 방

- 아이들의 방의 공간이 커서 엄마와 아빠까지도 공부하는 방에서 같이 있게 됨.

- 결국은 방이 거실의 역할을 하게되어 버림.

4. 부엌의 변신은 무죄

- 엄마가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과 아빠는 식탁에서 공부를 한다.

- 결국 부엌에 컴퓨터와 지구본 책꽂이까지 와 있게됨.

- 온 가족이 함께

5. 3층까지 수직으로 오픈된 집

- 좁은 3층 단독주택이라 밀폐될 수 있는 것을 층간 오픈 공간을 만들어줌.

- 아이들이 가족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줌

6. 3X의 법칙

- explore(탐구), express(표현), exchange(공유)

- 가족 책꽂이를 사용하여 아이의 견문을 넓혀준다..

7. 이동 책상의 힘

- 적당히 넓은 널빤지와 수납박스로 이동가능한 책상을 만들어.. 어느곳에서나 공부를 한다.

- 방에서 거실에서 현관이 보이는 곳에서 옥상에서도 가능하다.

- 어머니의 시선이 닿는 곳이 공부하는 곳.

8. 가족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집

-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와의 추억을 그대로 두어 그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게 됨.

9. 방이 없는 집

- 원룸 형태의 집에서 함께 생활함.

- 간단한 칸막이로만 구분지어 놓음

- 형과 동생의 책상을 마주보게하고 사이에 책꽂이를 두는데 책꽂이에 레일을 달아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하여 서로의 책상에서 마주보이게도 아니게도 할 수 있다.

또한 원룸형이라 가족간의 동선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10. 외딴 방이지만 괜찮아

- 고립형 아파트 구조이지만. 공부는 따로하고 잠은 자매가 같이 자게 한다.

- 옷을 갈아입는 경우가 아니면 방문을 닫거나 잠구지 않는다.

- 책상옆에 부모님 전용의자를 두어 당연히 들락날락할 수 있게 한다.

- 아이의 물건을 집 안 여기저기 분산해 두어 서로간에 얼굴을 더욱 자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다.

11. 주말에 만나는 대자연의 집

- 시골에 집을 지어서 1층에서는 주방으로 2층은 방으로 만들어 주말이면 온 가족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 절대 공부는 하지 않는다. 꼭필요한 과제정도만 하는데, 1층에서 한다.

- 가족이 함께 청소하고 수리하고 음식도 한다.

wn1 - 이 책에 나오는 예들은 특목고나 특목중에 가는 일본 학생들의 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1장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을 한 단어는 '소통'이다.

집 내부구조가 어떠하든 소통을 위한 여건을 만들어 내어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하였다..



2장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 단순히 교과서를 외워 푸는 문제보다 아이들의 생각을 묻고, 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기술하는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사고력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능숙하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소가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시모어 페퍼느 교수에 의새 처음 주장된 3X

eXplore(탐구하다) , eXpress(표현하다) , eXchange(공유하다)

당시 미국에서는 교육의 3대 요소로 3R Reading(독해),wRiting(작문), arithmetic(산술)을 꼽았다.

시모어 페퍼트 교수는 미국 교육의 기본 요소를 3R에서 3X로 변화시켰다.

3X는 곧 켜뮤니케이션이다.

- 한 학급에서 포스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는 집 안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게 했다고 한다. 그 포스터에는 '공부에 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라는 제목 아래 10가지 항목이 적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이 네 가지 조항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다.

2. '지금'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4. '지금'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만한 일은 없는지 생각해보라.

6. '지금'하면 언젠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없는지 생각해보라.

10. 자신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3장 우리 집도 머리 좋은 아이의 집이 될 수 있다

1. 아이 방을 고립시키지 마라.

아이 방의 문을 열어두거나, 방문 재질을 투명하게 바꾼다.

2. 집 안 전체를 공부방으로 만들어라

가족들 모두의 곤강인 거실, 부엌도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으로 꾸며준다.

3. 6개월에 한 번씩 이사하라

방을 맞바꾸거나 방 안의 배치를 바꿔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4.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을 연출하라

책꽂이에 가족들 모두의 책을 꽂아 가족의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을 만든다

5. 어머니의 공간을 멋지게 꾸며라.

어머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 부엌 등 어머니의 공간을 꾸미는 데 투자한다.

6.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게 하라.

아버지와 아이가 각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하도록 한다.

7. 종종 손님을 초대하라.

아이에게 가족 이외의 사람과 어울릴 기회를 준다.

8.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을 만들라.

거울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아이의 감각을 발달시킨다.

9. 글로 의사소통하라.

보드, 칠판 등 아이와 글로 의사소통할 장치를 만든다.

10.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라.

가족의 작품을 집에 전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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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학습입니다.
그렇다면 학습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학습은 한자로 쓰면 '學習' - 배울 학 , 익힐 습
뜻은 '배우고 익힌다' 입니다.
중학교 2,3학년이면 이정도의 한자는 알고 있으며, 현재는 초등학생들도 한자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라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겠습니다.
학습을 나누어 생각해 보지요.

우선은 학(學)  입니다.
배울 학 - 공부에는 먼저 배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누구나 학원에서 먼저 배우게 되지요. 지금은 학습의 의미를 탐구하는 시간이니 방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사교육의 불필요성에 대해서도..)
배움은 학교나 학원이나 교수법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은 동일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배움이 공부에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습(習) 입니다.
익힐 습 - '익히다' 는 사전에서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표현하면 익히는 것은 스스로 해야하는 과정입니다.(이 방법 역시 추후에 다루겠습니다.)
익히는 것은 공부에서 8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합니다.

두 한자를 퍼센트로 나누었다고 해서 중요도가 덜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실제적인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 빨리 적다보니 글씨가 엉망이네요...)
많은 학생들에게 정확한 의미를 주지시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학생들중에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좋은 성과를 내게 됩니다.
실제의 경험들에 의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학과 습을 온전히 구분 할 수 있어야 하고 '학'을 '습'이라 오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과목별로 모두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을 본다면
학교에서 수업을 또는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것은 '학'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일수록 집중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집중을 잘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중이란 것은, 선생님을 쳐다 보고만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수업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다른 생각들을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온전히 들어야 합니다..물론 힘듭니다...습관적으로 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 평균 집중 지속시간이 16분 정도밖에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집중지속시간은 늘어납니다...

집중을 하기위한 방법중에 한 가지는 수업시간에 무조건 펜을 들고 있어야 하며, 펜으로 선생님이 해주신 필기 뿐 아니라 필기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또한 받아 적는 것입니다..
물론 100% 다 적을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받아적으려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집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돌아보았을때 잡 생각이 많이 드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면 모두 받아적겠다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십시오...그렇게 하면 집중력이 커지며 지속시간도 꽤 길어질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학'입니다.. 길어보이지만 핵심은 말씀까지도 받아적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습'을 알아 보겠습니다..
위의 연속된 3개의 사진 중에 두번째 사진을 보면 적혀있습니다..
1. 쉬는시간 복습(5분정도)+야자또는 방과후 복습
2. 쉬는시간 복습
3. 야자 또는 방과후 공부
4. 다음날이후
.
.
1번은 가장 좋습니다... 5분 복습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들은것을 금방 망각해 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뇌는 '소우주'라고 불릴정도로 넓고 방대하다고 합니다...잊어버린것이 아니라 있긴한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렇기에 수업직후 5분 정도 필기한 내용을 읽어보는것(칠판필기 보다는 말씀을 받아적은것을 중심으로)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뇌의 어느지점에 있는지 표시를 해두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보는것이 중요합니다..
이때는 유사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그날 모두 해야 하는것입니다.
할것이 많아 보이지만 시간상으론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게 됩니다..

2번과 3번은 아무래도 1번에 비할바가 못됩니다..3번을 보시면 복습이 아니라 '공부'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미 수업시간의 50%정도는 잊어버리기 때문에 새로이 공부한다는 개념이 됩니다..
물론 2번 만으로도 오래 기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신것처럼 습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학을 예로 들었으니 수학에서의 '습'은 이렇게 하면서 수업후 일주일 내에 유사 문제들을 풀어보는 것 만으로도 6개월 정도 이상의 기억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수학의 특성은 '연계과목'입니다..풀어말하면 앞 단원의 내용을 잘 모르면 다음 단원의 내용도 어려워 진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앞 단원의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 다음 단원 또한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학'과 '습'이 중요합니다...

여기까지 학습의 개념을 대충은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공부에 대한 것들을  하나 하나 풀어보려 합니다...
자주는 아니래도 간간이 적어 올리겠습니다...
이글은 공부하려는 학생과 공부에 관해서는 좀 답답함을 느끼는 부모님들을 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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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틀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키웠다

진경혜 중앙M&B 2001

"공부를 의무로 생각하지 말라.

공부하는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너는 기쁨과 자유를 얻을 것이고,

이것은 나중에 네가 속한 사회에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 쇼의 책상에 붙어 있는 아인슈타인의 말 -

1장

-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면 남는 시간이 무척 많은데, 우리는 그 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 종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집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등 그때그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아이들 생각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wn1 - TV가 없으면 많은 시간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안책으로 인터넷을 통해 TV를 본다.. 그러면서 어디가면 "난 TV가 없어 .. "라고 한다.

TV를 없애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없음으로 소통을 하고 개인적인 계발을 하기 위해서 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 '저녁 시간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아이들은 대화를 하면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느낀다.

아이들은 아빠를 보자마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시시콜콜 수다를 떤다. 그럼 우리 부부는 '왜?'라고 되물으면서 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음을 알려 준다.

둘째, 배움에 대한 즐거움과 겸손함,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원래 무엇이든 혼자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것이 재미있는 법이다.

셋째,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아이들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큰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연구해 왔다. 100권의 책을 사 주기보다 정성을 기울여 고른 10권의 책을 100번 읽어주려 노력했고, 미술학원에 보내는 대신 아이와 함께 앉아 물감 놀이를 했다.

- 쇼가 글자를 빨리 익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어 주었기 때문인 듯싶다.

- 부모는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길러 주어야 한다.

- 내가 주장하는 것은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해서 개발해 줄 것이 있으면 힘써 도와주고, 없으면 없는 대로 인정하면서 아이를 기르자는 것이다.

wn1 -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열린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또한 소통꺼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함께 책을 보는 것은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게된다..

막상 시간은 있는데 소통할 꺼리가 없어서 몇 마디 하다가 농담좀 하고..각자의 것을 하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실제로는 이러한 가정이 매우 많다.. 

부모나 자녀나 막상 같이 있으면 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스스로 할꺼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없더라...

소통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마음을 열고 인내하리라 각오를 하는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소통의 꺼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다.. 말하고 싶은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확장을 시킬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말해야 하는 한가지를 정확하게 그리고 오해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자연스럽게 확장으로 들어서게 된다...'말도 안되는 소리 같다고?'

의심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 해보기 전에는 말도 안되는 일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말할 꺼리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들은 굳이 적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된다..일단은 해봐야 한다,,



2장

- 아이들이 매 맞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행동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돕슨 박사에 따르면, 매로 아이를 다스릴 수 있는 시기는 8세에서 9세가 되면 끝이 난다고 한다.

- 매를 대기 전에 아이와 대화를 하면 아이의 잘못을 훨씬 더 일깨워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모의 감정도 누그러져 때려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

wn1 - 부모들이 이 대목에서 많이들 실수를 하고 있다...실제로 아이들은 매를 무서워하면서도 순간뿐 뒤를 생각하지 않는게 사실이다..

그러니 매를 맞을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또다시 생각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근데 아이에게는 생각의 인과관계에 대해 알려주거나 학습시킨 적이 없으면서 결과만으로 아이를 평가하다보니 ...내 아이가 '너무 어리다'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매를 더욱 대게 된다...하지만 그것도 어릴때뿐...10대 중후반이 되면 '이젠 매를 대면 안되겠다'라고 생각을하고 매를 대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주 무시무시한 것이 등장한다..그것은 바로 "방관"이다..

매가 통하지 않는다는것을 언제가 되었든 알게 되었다면...그때부터 부모가 할 일은 아이의 마음속에 조금씩이라도 부모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하지않고 몰라서도 하지않고...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만으로 위안을 삼으려 한다..

제발 찾으라...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봐도 무수한 자료들이나 선배들의 경험이나 전문지식들이 넘쳐난다...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보고 잘못하면 어떠냐고?...제발 그런 변명은 이제 그만하자.

성이들이고 아이를 키워보았기 때문에 어떤것이 옳고 그른지는 당연히 판단이 된다.

자신은 못 믿겠는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옳은 일을 '설득'하는 것이고, 아이들이 설득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 규율을 통한 교육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효과적이다.

- 나는 예의와 질서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일조의 사회적인 약속이자 형식으로 부모가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울어도 좋고 실망해도 좋지만 그런 것 때문에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잡초처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거라' 라며 말해 준 아빠의 말씀을 오래 기억하겠다.


- 엄마들은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 남편은 아빠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정해 놓았다.

첫째,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준다.

둘째, 지금 하는 일을 즐겁고, 또 지혜롭게 해 나가도록 도와 준다.

셋째, 아빠도 실수가 많은 인간임을 인정하면서, 친한 친구처럼 언제든 상담할 수있는 아빠가 된다.

넷째, 세상은 늘 좋은 일만 생기는 곳은 아니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심어 준다.

다섯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임무, 즉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하고, 금전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가진 재능과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하지 않고 잘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wn1 -  책에서 저자는 엄마의 일과 아빠의 할 일이 다르다고 말한다...

어느정도 공감이 된다.. 부모로써 각자의 역할이 있듯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유의 영역도 있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키우는데...가장 좋은 것은 잘 맞든 안 맞든...부모 둘이서 같이 소통을 먼저 하는 것이다..

앞에서 부모가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둘이서 같이 자료도 찾아보고 대화를 하면서 고민한다면 더 좋은 방법들이 나올것이고,,,이렇게 소통을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자녀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인생에서 시간은 늘 연속적이고 이어져 있듯이...우리의 생활 역시도 이어져 있는 것이다.


-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좌절을 느끼고 조바심을 내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많다.

'가치 있는 성취는 각 개인의 능력이 자유롭게 개발될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가 주어진 환경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면서 오래 곱씹어야 할 말일 것이다.

- 각국의 정치, 경제, 문화가 따로 돌아가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 시대에,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과, 말해야 할 때 말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네 살짜리 꼬마에게도 집안일을 시킨다고 하면 한국의 엄마들은 '부모가 게을러 아이들을 부려먹는 구나'하고 아이들을 측은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나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재산이나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눈과 굳세게 살아갈 수 있는 의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자존심, 배움에 대한 겸손한 태도 등이라고 생각한다.

- 삶의 태도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 꾸준한 연습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준다. 나는 항상 쇼에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더구나 실수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용기를 배울 수 있다. 이 세상 누구나 실수와 실패 속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 타당한 이유 없이는 목표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균형 있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은 물 흐르듯 흘려 보내야 한다. 물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 실패에서 배우는 지혜도 필요하다.



3장

-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느끼는 게 아이들이다.

- 나는 '놀이를 통해 가르쳐라'라는 말에는 '계획성 있게 놀아라' , '엄마가 놀이에 참여해라' , '강요하지 말아라'라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 교육 전문가들은 사물의 다양한 용도를 발견해 활용하는 이런 놀이가 곧 지능 발달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 호기심은 창의력의 기초이기도 하지만 배움을 불러일으키는 힘이기도 하다.

- 명령만큼 아이들의 기를 꺾고 호기심을 소멸시키는 것이 없다.

-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이 많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 유지시키려면 아이의 질문에 "바쁘니까 나중에 대답해 줄게"라고 핑계를 대는 부모의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 수잔 존슨 이라는 소아과 의사가 텔레비전이 어떻게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치는지에 대해 쓴 짧은 논문을 보면, '사람의 시각은 우리가 보는 어떤 것이든 찾고 걸러 내고 집중해서 판별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할 수록 이런 능력에 결함이 생긴다'

- 책 읽기는 상상력을 발달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평생 긴요하게 쓰일 책 읽기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지속적인 지도가 있어야 한다.

- 음악과 뇌파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클래식 음악이 뇌에서 알파파가 생성되도록 도와 집중력을 강화시킨다고 한다.

- 우리는 아이들이 한 가지의 악기는 잘 다룰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왔다. 하나의 악기라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과 인내가 필요하고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

- 모든 교육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술 교육은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 우선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에필로그

- 나는 아이의 재능은 적당한 시기에 발견해 제대로 개발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능과 좋은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무용지물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아이의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기록해 가면서 필요한 것은 더 채워 주고 넘치는 부분은 낭비하지 않도록 칭찬과 격려로 교육을 해 왔다


wn1 - 중요한것은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직접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것은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 좋은 문구만을 올린것이다..

당신이 책을 본다면 분명 나와는 다른 곳에 줄을 긋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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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양철북 토머스 고든 2002

1장 부모 역할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 부모 역할 훈련(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십대의 반항기는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P.E.T.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경험은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었다.

Q. 이 방식은 자유방임주의 교육법의 일종인가?

A. 그렇지 않다. 지나치게 관대한 부모들은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만큼이나 문제가 될 수 있다.

- P.E.T.는 혁명적이다. 하지만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고, 가정의 불화를 방지하고, 부모는 부모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결탁하여 적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더욱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다.

- 부모는 '승자형', '패자형', '동요형'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아이에게 권위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구속하고, 한계를 정하고, 특정 행동을 요구하며 명령을 내리고 복종을 요구한다.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부모는 늘 부모의 의견을 관철하는 쪽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두 번째 유형 '패자형' 부모는 거의 언제나 아이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타입이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 두가지 방법중 하나만을 꾸준히 사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다. 엄격함과 관대함, 까다로움과 편안함, 구속과 자유, 이기기와 지기 사이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세 번째 유형인 '동요형' 인 부모들이야 말로 가장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런 부모의 자녀들이 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가장 높기도 하다.

2장 부모도 감정을 지닌 사람이다.

- 어떻게 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사람'일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줄 수 있을까?

-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음과 같은 직사각형(행동의 창-Behavior Window)안에 넣어 보자.

사각형 안에 금을 그어 이 둘을 구분하기로 하자. 사각형 위쪽에는 수용할 수 있는 행동을, 아래쪽에는 그렇지 않은 행동을 넣는다. 수용할 수 있는 행동이 많다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부모이고, 수용할 수 없는 행동이 많다면 상대적으로 '너그럽지 않은' 부모이다.

부모는 때로는 이랬다저랬다 할 수밖에 없다. 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일 수 없다. 부모 양쪽이 아이에게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수용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아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행동으로는 자지 않고 있어도 좋다고 말하면서 표정을 보면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는 혼란에 빠졌다. 자고 싶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 사랑도 받고 싶다.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이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는 늘 말을 부드럽게 하고 너그럽고 잔소리를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수용하는 듯이 행동하는 부모이다. 거짓 수용을 할 때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길게보면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친밀하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서 진짜 감정을 숨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제 감정과 태도 이상으로 수용의 범위를 넓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는 솔직한 감정을 감출 수도 있지만 감추어서도 안된다.
wn1 - 한국인 부모에게 가장 많은 것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굳이 한국의 부모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부모에게 사실 많은 편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요인들과 현상들로 인해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젠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되어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한국은 식민시절과 남북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나라안에서 전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그 부모님들을 통해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시절을 겪어낸 50-60대의 부모 그리고 그 자녀들 역시도 안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부모님에게서는 많은 부모역할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 자녀를 둔 30대 정도라고 보았을때 부모에 대한 역할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찰해 보아야 할 시기이다.
혹 외국 영화를 보면서 우리내와는 다른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찾아 보았는가?
그들과 여러가지 다르긴 하지만 큰 한 가지는 자녀의 독립정신을 부모가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에서 보이는 것은 .. 부모가 자녀를 어린자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잘 관찰해 보면 볼 수 있다... 그들은 자녀를 복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도 한 개인으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생활을 인정해 줌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녀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시킬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물론 유교의식이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것이 좋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녀들과의 대화에서도 부모로서 복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생각하는 바를 말해주고 결정은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물론 이러한 일은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에서도 그러한 문화의 가치를 같이 교육하기에 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의 부모 역할은 자녀가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기에 ... 가정에서부터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P.E.T. 모델의 핵심 개념은 누가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원칙이다. 먼저 수용할 수 없는 행동은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방해해서 부모가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가리킨다. 나머지 수용할수 있는 행동은 아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영역에 속한다. 문제가 아닌 행동은 아이와 부모 모두 아무런 문제 없이 함께 있을 수 있고, 같이 놀고 이야기하고 일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이다.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자기 것으로 인식하고 해결하게 한다. 때로는 아이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있지만, 멀리보면 가장 좋은 형태의 도움은 역설적이게도 돕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문제를 찾을 수 있게끔 책임을 지게 돕는 방법이다. 이것을 '듣는기술(Iistening skills)'이라한다. 부모에게 문제가 된다면 '대면 기술(confrontation skills)'이라고 한다. 부모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얘야, 문제가 있으니 좀 도와주렴." 아이가 문제를 안고 있을 경우엔 "너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구나. 도움이 필요하니?"라고 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각각의 상황을 구분하여 적극적으로 아이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대면하여 해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습관을 기르면 아주 좋을 것이다.


3장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대화의 법칙이 있다. - 수용 화법

- '수용 화법(language of acceptance)'이란 상대방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성장하여 어떻게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궁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을 흙을 제공하는 것처럼, 아이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래도 받아들이면 아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지금 상태로 정체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면 아이에게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유능한 치료사와 상담가란 방문한 의뢰인에게 자기를 받아 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개선시키고 변화시키는 '성공비결'이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질 수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행동이며,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감화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대화를 '대화 치료(therapeutic communication)라고 부른다. 먼저 부모들이 자신의 대화 습관을 해부하여 왜 이것이 해가 되거나 도움이 되는 방식이 되지 못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 비언어적 메시지로 의사를 전달하는 법

불간섭: 아이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수용을 표현할 수도 있다. 아이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 가만 두는 것만으로도,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수용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침묵, 소극적 듣기: 침묵, 혹은 소극적 듣기 역시 수용을 표현하는 강력한 비언어적 메시지의 하나이고 진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전문 상담가들도 환자와 면담할 때에 침묵을 자주 사용한다.


- 언어적 메시지로 의사를 전달하는 법

1) 명령, 지시

2) 경고, 주의, 위협

3) 훈계, 설교

4) 충고, 해결책 제시

5) 논리적으로 따지기

6) 비판, 비난

7) 칭찬, 동의

8) 매도, 조소, 모욕

9) 해석, 분석, 진단

10) 격려, 공감, 달래기, 편들기

11) 탐문, 질문

12) 한 발 물러서기, 비위 맞추기,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이러한 방식으로 부모가 자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이러한 방식으로 친구가 대응하면 친구와의 관계가 서먹해졌다고 밝혔다.

- 아이가 자기 감정이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응대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발전적인 방법 중 하나로 '말문열기'가 있다.

간단하고 별 뜻이 없는 표현들의 예

좀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표현들의 예

"그렇구나."

"어."

"응."

"저런."

"정말?"

"그렇군."

"진짜?"

"그랬구나."

"그래?"

"그 얘기 좀 해 봐."

"듣고 싶은데."

"얘기 좀더 해 봐."

"그거 재미있는 생각이네."

"얘기 좀 해 보자."

"네 생각을 듣고 싶어."

"계속 해봐."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지?"

'"너한테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이 말문을 트는 표현들은 아이에 대한 수용과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른들이라도 자기가 존중받고, 가치 있고, 중요하고, 받아들여지고 있고, 흥미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청자(廳者-듣는 사람)'를 '화자(話者-말하는 사람)'와 연관시키는 방법인 적극적 듣기는 소극적 듣기(침묵)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대화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화자의 메시지가 청자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청자나 화자 어느 쪽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 자기가 이해한 것을 아이에게 말했을 때 아빠는 적극적 듣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듣기란 결국 청자가 화자의 감정이나 화자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청자는 자기가 이해한 것을 자기의 말로 전단하여 화자가 확인하게 한다. 단지 자기가 받아들인 화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감정을 터놓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쉽게 괴로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은 감정해소를 적극적 듣기를 통해 유도할 수 있다. 누가 자기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이해해 주면 이야기를 한 사람은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고 말을 들어준 사람에 대해 따뜻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적극적 듣기는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이기 때문에 문제의 실마리를 쉽게 찾아 준다. 적극적 듣기는 아이가 부모의 의견과 생각을 듣고 싶게끔 만드는 방법이다. 누군가 자기 입장에 귀 기울여 주면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듣는 것도 쉬워지는 법이다. 적극적 듣기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게 만든다. 적극적 듣기는 따라서 자발적이고,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아이를 길러 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 적극적 듣기는 몇 가지의 기본적 태도를 실행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 아이가 하려는 말을 듣고 싶어해야 한다.

2) 그 순간에 아이의 특정한 문제에 관해 진정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야 한다

3) 어떤 것이든 문제에 관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4) 자기 감정을 다스리고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밖으로 드러난 감정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감정들은 아이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6)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으로부터 아이를 분리해서 생각할 때에만이 아이에게 쓸 만한 조력자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있어야 하지만, 아이와 '하나'가 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융통성 있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4장 듣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 적극적 듣기를 시도해 보고, 그 효과에 스스로 감탄하는 부모가 많긴 하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실제로 뛰어들어 실천을 해야만 한다. "일단 최선을 다해 시도해 보세요. 노력이 아깝지 않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 아이가 무언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아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진 것임을 기억하자. 적극적 듣기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때에는 유용하지만, 문제가 부모한테 속할 때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의 좌절, 당황, 박탈감, 고민, 실패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 대부분 부모들이 아이들 문제의 너무 많은 부분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전문 상담가들은 상담을 받는 아이들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책임감은 온전히 아이에게 남겨 두는 것이다. 적극적 듣기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도록' 영향을 주는 방법이다. 아이와 이런 종류의 대화를 할 때 부모들은 반드시 어떤 결론을 내리거나 마무리 지으면서 대화를 끝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전문가들의 상담도 이처럼 미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적극적 듣기가 일련의 사건들을 촉발할 수는 있지만, 그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부모들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 한참 동안은 결과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불평해봤자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공감하고 받아들여 주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쏟아 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감정을 존중해 주라.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놀랐는지 일단 부모가 알아준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아이는 울음을 그치는 것이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감정을 이렇게 이해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오직 자기가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은지를 부모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보통 질문의 형태로 까다롭게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이가 마음 속 깊이 고민하는 문제가 있음을 의미할 때가 많다. 선량한 의도에서 과시하기 위한 12가지 대화 방법을 한두 가지씩 사용할 수박에 없으며, 그러다 보면 아이가 대화에 관심을 잃게 되거나 말싸움이 시작되어서 서로 심한 말을 하고 감정을 다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적극적 듣기를 활용할 때 흔히 나타나는 실수들

1) 부모가 원하는 대로 이끌기 위해 적극적 듣기를 이용하는 경우

2)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경우

3) 적극적 듣기를 잘못 이해하고, 아이의 말만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경우

감정을 해석하지 않고 아이가 하는 말의 내용을 그래도 따로 읊다가 실패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그 의미는 부모가 해석해 내야 한다.

4) 듣는 것에만 치중하여 아이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경우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단지 듣기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까지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감정은 삶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지 비이성적이고 위험스러운 것이 아니다. 감정이 사라지게 하려면 부모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식한다는 사실을(공감을 담은)적극적 듣기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다.

5) 적극적 듣기를 남발하는 경우

아이의 감정 세계에도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므로 말을 하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모든 감정을 끝까지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시간이 있을 때가 아니라면 적극적 듣기를 시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이가 무언가 다른 형태의 도움을 바랄 때 적극적 듣기를 사용하려고 해서 아이가 저항하는 경우도 있다. 대게 아이를 관찰하면 언제 그만 두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치료사들은 적극적 듣기는 단지 아이가 문제 해결의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해줄 뿐이라고 한다. 감정을 분출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그 첫발인 것이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시작해서 결국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낸다.


5장 젖먹이 아이들과도 적극적 듣기를 할 수 있다.

- 아기를 가진 부모도 큰 아이의 부모가 그래야 하듯 아기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아기들은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분명 다른 종류의 듣기 방법이 될 것이다.


6장 아이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대처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 부모에게 아이가 문제를 안겨 줄 때에는 아이가 문제를 안고 있을 때와 전혀 다른 대화법이 필요하다.

- 문제가 부모에게 생길 때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1) 아이의 행동을 바로 잡으려 한다.

2) 환경을 바꾸어 보려 한다.

3) 자기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 본다.

이 장에서는 첫 번째 방법만을 다룰 것이다. 행동을 바로 잡는 방법을 살펴보자

- 부모가 아이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1) 명령, 지시

2) 경고, 주의, 으름장

3) 훈계, 설교

4) 조언, 제안, 해결책 제시

이러한 대꾸는 아이에게 부모의 해결책, 즉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부모가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부모가 주도권을 쥐고 지배하고 조정하고 명령한다.

아이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직접 지시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1) 아이들은 저항한다.

2) '나는 네가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

3) 부모의 욕구가 아이의 욕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반항하거나 방어적이거나 적대적으로 응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이들이 기가 꺾이고, 창피를 당한 것 같고, 억눌림을 당한 것처럼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기대하는 순종적인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 아이를 무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 비판, 비난, 나무라기

2) 매도, 조소, 망신주기

3) 해석, 분석, 정신분석

4) 가르치기, 교육하기

이런 메시지들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1) 죄책감과 가책을 느낀다.

2) 부모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

3) "엄마가 날 미워해."라며 자기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4) 반항하는 경우가 많다.

5) 부모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6) 풀이 죽고 자응심을 잃는다.

- 너-메시지가 아닌 나-메시지로 전달한다.

"피곤해서 놀고 싶지가 않아." "너 데리러 갔을 때 거기 없으면 아빠는 힘이 빠진다."

"부엌을 깨끗이 치워 놓았는데, 금방 다시 그렇게 어질러 놓으면 엄마는 정말 기운이 쏙 빠져."

- 나- 메시지의 세 가지 구성요소

나-메시지가 아래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잦추고 있다면, 아이가 자발적으로 자기의 행동을 수정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첫째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의 설명, 둘째 부모의 감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행동이 부모에게 미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이 그것이다. (행동+감정+영향)

1)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만을 설명한다.

아이의 행동의 단순한 묘사를 말한다. 부모를 성가시게 하는 아이의 행동을 그냥 그래도 전달하는 것이고, 부모의 평가나 판단은 들어가면 안 된다.

야단치지 않고 행동을 설명하기: "바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전화해서 늦을 거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2) 아이 행동에 부모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너-메시지로 이야기할 때에도 부모의 감정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 "바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전화해서 늦을 거라고 말해 주지 않아서, 걱정했다."

3) 아이 행동이 부모에게 끼치는 문제를 설명한다

아이의 행동이 부모에게 미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 말해 줄 필요가 있다. "바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전화해서 늦을 거라고 말해 주지 않아서 걱정했다 걱정이 되어서 엄마가 일을 못했어."

온전한 세 구성 요소를 갖춘 나-메시지는 부모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 영향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나-메시지가 특히 유용하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아이들을 대할 때 얼마나 근거 없이 제멋대로였는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였어요."

- 나-메시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바로 잡게끔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메시지는 솔직한 표현이기 때문에 아이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솔직하게 감정을 전달하도록 영향을 주기도 한다. 졸직한 나-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기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이다. 정직성과 솔직함은 친근감을 높여 준다. 아이는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도 솔직하게 터놓게 된다.


7장 나-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 행하기 쉬운 실수들.

1) 나-메시지를 가장한 너-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느낀다'라는 말만 앞뒤로 끼워 넣어서 너-메시지를 마치 나-메시지인양 포장해 전달하는 실수이다. 그냥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한다.

2) 부정적인 감정을 강조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라.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아이가 다치거나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등 말이다. 약속한 것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은 먼저 솔직한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난 후에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3) 부모의 솔직한 감정을 전해야 한다.

4) 화를 내기에 앞서 자기 감정을 체크한다.

분노는 언제나 어떤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나 화났어'라는 메시지는 대개 '너한테 화났어' 혹은 '너 때문에 화났어'라는 의미인 것이다. 거울을 앞에 놓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볼 것을 권한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든가 '아이의 행동 때문에 나의 어떤 욕구와 필요가 위협받고 있는가?' 또는 '나의 일차 감정은 무엇인가?'

- 실례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자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던 아이도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면 바로 사려 깊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느끼는지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면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의 욕구를 잘 헤아려 주는지, 우리가 아이들의 이런 면을 너무나 과소평가해 왔음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 문제 해결 방법

아이들이 부모의 나-메시지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특히 처음 이 방법을 시도할 때 그렇다. 첫 번째 나-메시지에 아무 반응이 없다면 다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좋다. 두 번째 메시지는 좀더 강한 감정을 담고 좀더 확고하고, 강하고, 크게 말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나-메시지에 대해 자기 자신의 나-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행동을 바로 고치는 대신에 자기 감정은 무엇인지 부모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이가 어떤 감정을 갖거나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는 적극적 듣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어 변속'이라고 부른다. '맞서 대응하기'에서 '듣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감정을 알아준다는 것을 일단 알고 나면 아이가 자기 행동을 바로 잡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부모가 아이를 칭찬할 때에는 거의 예외 없이 너-메시지의 형태로 표현된다. 아이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담고 있음에 유의하자.


8장 환경 변화를 통해 아이의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다.

- 환경을 바꾸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이 점점 더 즐거워질 것이고, 아이와 부딪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9장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불가피한 갈등이 있다. -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나?

- 갈등은 관계에 있어서 사실 가장 결정의 순간이다.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어떤 관계에서 한 사람의 욕구가 다른 사람의 것과 충돌하지 않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갈등은 관계의 현실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많은 부모들은 자기가 이기고 아이가 지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부모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런 이기거나 지는 방법 밖에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방법1: 부모 뜻대로 밀어붙이는 방법

억지로 시키려고 하니 부모도 힘이 들고, 아이가 자율적으로 성장할 기회도 없게 된다. 이 방법은 복종과 순종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에 대한 대가로 아이의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방법1'을 쓰면 또 다른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결정을 강제로 하고, 아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고, 잔소리를 하고, 재촉을 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힘과 권위를 이용해서 아이에게 무엇을 강요할 때마다 결국 자기 관리력과 책임감 있는 아이로 자라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방법2: 아이의 뜻에 따르는 방법

이런 아이들은 거칠고, 제멋대로이며, 말을 듣지 않고 충동적이다. 자기 행동을 잘 통제할 줄 모르게 되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바라는 것이 많은 아이로 자라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욕구를 존중할 줄 모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마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에 대해 마음 속 깊이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한 쪽 부모는 '방법1'에 많이 의존하고, 다른 부모는 '방법2'쪽으로 기우는 가정도 많이 있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경우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으로 어는 한 방법만 사용하는 것보다 일관성 없는 태도가 오히려 더 위험다다고 볼 수 있다.


10장 부모에게 권위가 반드시 필요한가?

- 아이들한테 결점이나 실수를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하고, "너한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엄마 아빠야."라든가 "너도 나이 들면 부모님 말씀이 다 옳았다는 걸 알거다."등의 말로 이런 믿음을 더 굳게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덜 무력하고, 덜 의존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부모는 점차로 힘을 잃게 된다.

- 부모의 권위 행사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1. 저항, 반항, 거부

2. 분개, 분노, 적대

3. 공격, 보복, 앙갚음

4. 거짓말, 숨기기

5. 다른 사람에게 책임전가, 고자질, 빠져 나가기

6. 지배하고 대장하려 들고, 괴롭히기

7. 이기고 싶어하고, 지지 않으려 함

8. 연대해서 부모에 대항

9. 복종, 순종

10. 비위 맞추기, 조르기

11. 순응적, 창의력 부족,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두려워 함, 확인해주고 격려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함.

12. 도피, 물러서기, 공상에 빠지기, 퇴행

기성 세대의 권위에 대한 아이들의 도전과 반항은 수세대에 걸쳐 반복되어 왔다.

분개, 분노, 적대: 아이는 자기에게 힘을 행사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 아이들은 자기 행동에 대해 부모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관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해야 부모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자기 행동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행동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항상 그렇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부모가 일관성을 잃으면 아이는 '적합한'(보상을 받는)행동을 배우고 '바람직하지 않은'행동을 피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사실상 부모의 권력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미리 지시한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더 힘센 사람에 강요당하거나 금지를 당하면, 그것은 설득된 것이 아니다. 권위나 권력이 사라지면 바로 아이는 원래의 행동으로 돌아갈 것이다. 힘을 사용하는 부모는 사실상 아이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권력은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11장 '무패 방법'이 왜 효과적인가?

- '방법3'은 서로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개인 간의 갈등을 해결할 때에 자주 사용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된 결정 사항보다는 의사 결정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결정한 사항에 대해 더 강한 실천 의지를 느낀다. '방법3'은 아이가 생각하게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여기 문제가 있으니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자. 좋은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이 다 마음에 들어 하는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나면 부모와 아이는 오히려 더욱 가까워진다. 갈등이 사라져서 기쁠 뿐 아니라, 자기가 손해 본 일이 없어서 또 기분이 좋다. 그리고 서로 욕구와 권리를 존중해 준 것에 대해 따뜻한 고마움의 감정이 샘솟게 된다. '방법3'을 사용하면 아이에게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어진다. 일단 해결 방법에 동의하고 나면 아이들은 보통 결정된 사항대로 실천한다. 이기거나 지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에서는 부모나 아이 어느 쪽도 힘을 쓸 필요가 없다. '방법3' 아이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어떤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방법3'은 접근 방식을 통해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아이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대신 아이도 부모의 욕구를 배려할 것임을 믿는다는 것 또한 말해 주게 된다.


12장 '무패 방법'에 대한 부모들의 두려움과 걱정은 무엇인가?

- 방법3'은 '회의'가 아니라 '방법'이다. 이 방법은 갈등이 일어나자마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갈등은 보통 온 가족 모두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부모와 한 아이 사이에서 일어날 때가 많다. 다른 가족들은 옆에 있을 필요가 없다. 부모와 아이는 동등한 입장에서 참여하고, 그들 공동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 타협이란 한 걸음 물러서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무기력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협상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지만 두려워서 협상하지는 말라."는 존F.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가 생각이 난다. '방법3'은 협상하는 방법이지만, 아이의 욕구뿐 아니라 부모의 욕구도 충족시키는 해결 방법을 찾도록 밀고 나갈 용기 없이 무기력하게 협상하는 방법은 아니다.

실제로 갈등의 대부분은 해결하는 데 십 분 이상이 걸리지 않는 즉시 해결해야 하는 '눈앞에 닥친', '당면한'문제들이다. 되풀이하고, 잔소리하고, 다그치고,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간이 절약된다.

'방법3'은 부모와 아이가 각각 서로에 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지게 한다. 자녀가 욕구가 생기면 부모에게 그 욕구를 표현하고 부모는 서로 조정할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바꾸기 힘든 태도가 바로 부모가 권위를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고 심지어는 그것이 부모의 책무라고까지 생각하는 태도였다. 부모가 더 많이 알고, 더 현명하며, 더 성숙하고, 더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부모가 아이들보다 현명한가? 아이에 관계된 많은 문제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취학 전 아이나 유아에게도 '방법3'이 놀랄 정도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기들에게도 '방법3'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 이 방법은 아이가 어렸을 때에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아이가 다른 사람과 민주적인 관계를 맺는 법, 다른 ㅏ람의 욕구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 욕구를 존중해 줄 때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법을 빨리 익히게 된다.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 사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존경은 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3장 '무패 방법'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언제 시작하면 좋을까? 가장 무리 없이 시작하는 방법은 다 같이 둘러앉아서 아이들에게 이 방법이 어떤 방법인지를 먼저 설명해 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설명해 주고 차이점을 일러 준다.

'무패 방법'의 여섯 단계

1단계: 갈등을 확인하고 정의한다.

부모들은 실제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이전에 미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해결책을 먼저 떠올리는 일이 많다. 욕구를 해결책과 구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은 역시 적극적 듣기이다. 스스로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하고 질문을 던져 보자.

아이와 부모의 숨은 욕구가 명확히 이해하고 표현되지 않으면 문제 해결 과정은 교착되어 버릴 것이다.

1) 아이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2) 아이의 욕구가 분명해지도록 적극적 듣기를 충분히 활용한다.

3) 갈등이나 문제를 이야기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아이와 부모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2단계: 가능한 여러 해결책들을 생각해 낸다.

1) 아이의 해결 방법을 먼저 듣는다. 부모의 것은 나중에 덧붙이면 된다.

2) 평가는 다음 단계에서 진행될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든 간에 받아들인다.

3) 더 이상 아무 것도 나올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계속해서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보게 격려한다.

3단계: 각 해결책을 평가한다.

보통 부모나 아이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않는 것들을 제거해나가다 보면 한두 개 정도로 좁혀지게 된다. 부모는 가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4단계: 가장 좋고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결정한다.

1) 결정된 것이 최종적이고, 다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 이렇게 한 번 해 보고,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자."

"이 방법에 모두 동의하는 것 같은데, 이제 모두 다 같이 실천해 보고 우리 문제가 정말 해결되는지 보자."

5단계: 결정된 것을 실천할 구체적 방법을 마련한다.

결정된 사항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사안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이것을 실천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또는 '언제 시작하면 좋을까?'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6단계: 이후에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확인한다.

이따금 아이에게 결정된 사항이 여전히 마음에 드는지 물어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모든 갈등 해결 과정이 질서정연하게 여섯 단계를 거쳐 진행되지는 않는다.

부모는 적극적 듣기를 열심히 사용하고 나-메시지의 형태로 말해야 한다. 이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경우에는 무패방법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이런 불신과 저항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단 문제 해결은 잠시 미루어 두고 아이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공감하며 들으려 애쓰는 것이다.

'방법3'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방법1'로 전환하는 경우 아이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고, 부모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 분노한다. '방법1'로 돌아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방법2'로 돌아가서 아이가 이기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방법3'으로 결정된 것을 실행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처벌을 연결시키지 않는 것이 훨씬 좋다. 아이가 먼저 벌을 정해 놓자고 제안하는 일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벌보다는 신뢰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무패 방법을 사용할 때에는 아이가 결정된 사항을 실천할 것임을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는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아이와 대면하는 것이 좋다. 이때에는 아이를 비난하거나 깎아 내리거나 위협하지 말고 나-메시지로만 이야기한다. 책임을 바로 아이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아이는 계속해서 미숙하고 무책임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른이 옆에 있을 때에는 아이들은 어른에게 의존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어른의 권위를 이용해서 다른 아이를 누르고 자기가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아이들 사이의 다툼을 무패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도와 주다 보면 말다툼이나 싸움이 생겼을 때에도 아이들이 부모에게 달려오는 일이 줄어든다.

세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하고 싶다고 하는 부모는 실제로는 정말 중요한 갈등이 있을 때에는 '방법1'을 사용할 권리를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는 아이들 의견을 반영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내 뜻대로 결정할 권리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wn1 - 13장에서의 내용을 비슷하게 적용하는 책이 있다..
앨리 골드렛 박사의 저서 'It's Not Luck'이다.
앨리 골드렛 박사는 물리학 박사이지만 경영학에 대한 실제적인 이론을 정리하고 실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골이라는 책은 생산 시설에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고 위에 언급한 행운은없다...는 사무직에서 갈등이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소설식으로 전개하면서 보여준다.. 그것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개인이 활용해 볼 수 있다. 



14장 부모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를 해임하거나 자격을 박탈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아예 끊어 버리는 일이 생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를 괴롭히고 나무라서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생각과 가치관을 버리도록 할 때에 부모를 버린다.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인권을 무시당했을 때 부모를 버린다. 이러한 유형을 가치관 충돌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치관 충돌의 문제를 갈등 해결 과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열이면 열 전부 실패할 것이다. 부모가 자기에게 실제로 방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바꾸어 보려고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면 결국 실제로 자기를 괴롭히는 문제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고 만다.

-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려고 드는 것은 어른이나 단체나 국가나 젊은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자유나 자유성을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온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권리를 무시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부모가 아이를 '소유'한다고 행각하는 뿌리 깊은 관념 때문이다.

- 부모가 상담가 역할을 해야 한다. 상담가가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하듯이 아이들에게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주는 방법이다. 제대로 된 상담가라면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고, 강요하는게 아니라 제안하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권한다. 상담가로 일할 때 가장 쓸모 있고 강력한 도구는 바로 적극적 듣기였다.

- 바꿀 수 없는 아이의 행동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15장 부모가 변해야 한다.

- 부모의 양육이란 누구나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양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부모 스스로 성장하고 발달하는 일도 수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자신의 많은 부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참지 못한다. '내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져보자. 독립적인 생산 활동을 통해 성취욕을 충족시키는 부모는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아이를 통해서 자신의 성취욕을 충족시키려 들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뜻대로 조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생각한 틀에 맞지 않게 아이가 행동할 때 못마땅해 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기와는 구별되는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도 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독립성을 많이 인정하면 할수록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필요도 적게 느끼게 되고, 상대의 개성에 대해서도 관용적이 되며, 차이에 대해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아이들이 있고, 이 아이들이 살아갈 얼마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는지를 깨닫는다면 아이에게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경험은 최고의 선생'이지만 경험은 언제나 옳은 것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옳다는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아이에게(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 효과적인 부모는 아이와 좀더 가벼운 관계를 맺는다. 이런 부모는 부부관계를 최우선에 둔다. 그러면 아이의 행동이나 성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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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학교를 위한 강의식 교과서) 부모대학

추이화팡 휘닉스 2008

머리말

- 뱃속의 태아일 때부터 시작해 여섯 살 때까지 가정교육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 소식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정부는 부모 자격증을 발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부모의 역할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성공적인 부모의 역할은 학습을 통해서 배양된다.

◎ 1학년 : 조기교육

- 조기교육은 결코 지능개발, 선행학습, 강도 높은 교육이 아니다.

1학기

첫째 주:환경조성

- 환경조성은 소리 없이 진행되는 교육이다.

환경은 크게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에서도 사회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 심리학자들은 가정을 사람의 인격을 발전시켜 주는 주춧돌로 본다. 환경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아이에게 적합한 거주환경을 조성하라.

아이의 심리상태와 태도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주변이 어지러우면 아이의 마음도 어지러워지지만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면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다.

- 좋은 가정 분위기를 만들라.

부모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교육은 연속적인 과정이다. 아이가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려면 부모가 기본적인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적극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최고의 방법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는 무의식중에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둘째 주:솔선수범

- 부모는 최초의 선생님이다.

부모의 모든 말과 행동은 아이에게 영향을 주고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따라한다. 러시아의 교육자인 비고스키(Lev S.Vygotsky)는 말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지도했다고 해서 아이를 교육시켰다고 착각하지 마라. 생활의 매순간, 심지어 부모가 집에 있지 않을 때도 아이는 교육을 받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기억해 둔다.

- 자신부터 바르게 하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교육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단연 최고는 당신의 행동이다." 공자는 "자식을 가르치려면 먼저 자신부터 바르게 하라." 부모가 아이를 깨우치는 스승이라면 아이는 부모의 반사경이다. 비고스키는 부모의 언행교육이 매순간 일어난다고 여겼다. 어떤 교육이건 간에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에게 스스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어떤 도리를 말해도 아이가 믿는다. 사실 부모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당장은 아이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훗날 아이가 커서 같은 거짓말로 부모를 속일 수 있다.

셋째 주:흥미 키워주기

- 흥미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흥미는 아이가 사물을 탐구하고 활동하는 원동력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피아제(Jean Piaget)는 "지적 능력을 사용하는 일은 모두 흥미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 모든 정신력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 아이의 흥미를 발견하고 인도하라.

현명한 부모는 아이가 특별한 활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흥미를 발견하고 존중해 준다.

- 아이의 학습흥미를 키워 주어라.

성격에 따른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성공의 체험은 아이에게 학습흥미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보잘것없는 발전이라도 아이는 성공의 체험을 함으로써 자신감과 자존심이 높아진다. 인정받고 싶어서이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을 인식한다.

넷째 주:열심히 연습하라.

- 부지런히 공부하라.

도연명이 말했다. "이 모는 매 순간 자라고 있다. 단지 자라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니라. 지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축적되는 것이기에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공부하면 지식의 양도 늘어난단다. 저 숫돌은 날마다 눙부들이 칼과 낫과 괭이를 가는 바람에 지금처럼 닳은 것이지 결코 어는 한 순간에 닳은 것이 아니다. 숫돌처럼 중도에 학습을 그만두면 당장은 그 손실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손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학습이 중간에 중단되면 그간 배운 지식을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단다."

-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부모는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이가 꿈을 포기하게 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장기적인 발전을 꾀해야 한다. 공부는 농사와 같아서 농부가 밭을 매지 않으면 아무것도 수확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다섯째 주:마음 이해하기

- 아이의 순수한 본성을 존중하라.

가장 중요한 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치를 깨우쳐주는 것이다.

-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연구에 따르면 한 살짜리 아이도 정서적으로 공감을 느낀다. 사랑은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정신적인 영양소이다. 아이는 자유가 있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 또한 흥미가 있기에 그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그 과정에서 집중하는 법을 배워 좋은 행동방식을 형성하게 된다. 마음은 서로 이해할 때 통하고, 감정은 이성이 있을 때 승화된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어른들의 칭찬과 존중과 믿음을 얻고 싶어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아를 긍정하고 발전시킨다.

- 아이의 동심을 보호하라.

부모가 부모로서의 위엄을 버리고 아이와의 심리적인 거리를 좁혀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부모가 스스로 동심을 가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의 시선에서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펑즈카이는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에 비유했다. 어른들에게 "아이를 대할 때 애벌레의 몸에 날개를 달려고 하지 말고 나비와 함께 비상하라고 가르쳐라. 이보다 더 옳은 것은 나비가 날개를 접고 애벌레와 함께 기어가는 것이다. 부모가 동심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의 동심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평소 아이들이 보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특별강의

- 잘 교육하면 보통 아이도 대단한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서 교육을 강요하고 압박해선 안 됩니다. 교육의 목적은 아이를 전체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지나치게 귀여워하는 것은 독립심 형성에 가장 큰 방해요소가 됩니다. 아이는 부모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고대로 따라 배웁니다. 아이들의 심리적인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내심이 필요해요. 눈에 띄는 발전이 없다고 아이를 바로 포기해 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실패한 교육이 되고 말죠. 스스로 자질과 지식수준을 높이려고 끊임없이 교육이론과 교육방법을 연구하세요.

2학기

첫째 주:칭찬으로 유도하기.

- 칭찬과 격려는 아이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가장 중요한 교육방법은 칭찬과 유인으로 아이가 실제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어릴 때 자주 해주는 칭찬은 아이의 전 생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

- 지나치게 아이를 책망하지 마라.

아이들은 칭찬받으면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더 강해져 부모와 선생님에게 칭찬 받으면 자신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적당히 기대하고 합리적으로 평가하라.

- 칭찬에도 방법이 있다.

어린아이들은 물질적인 이익으로 칭찬하고 청소년은 정신적인 격려로써 칭찬한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청소년은 묵묵히 믿음으로써 칭찬해 주는 것이 좋다. 칭찬받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기뻐할뿐더러 마음의 지혜도 같이 성장하게 된다.

둘째 주:예술로 교감하기

-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라.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존재한다. 부모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유롭게 아이의 생각을 수용하고 함께 토론하고 연구한다면 아이도 자신에게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할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한 의견이 다르더라도 온화한 태도로 토론하고 아이의 새로운 생각과 방법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 말을 잘 안 듣는 이유는 대부분 부모의 말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아이의 생각을 파악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려고 한다.

- 대화 방식에 주의하라.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불량한 조짐이 보이거나 잘못을 하면 일단 호되게 혼내고 본다. 그러면 아이가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하지만 자존심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은 나머지 부모를 극단적으로 믿지 못하고 부모의 뜻과 반대로 움직이며 다른 사람들을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화가 잘 안 통하는 이유는 부모에게 좋은 대화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부모가 마음을 새롭게 가지고 아이 친구의 입장에서 아이와 평등하게 교류하고 대화한다면 아이는 더욱 더 부모의 말을 잘 따를 것이다.

- 비언어 소통방식을 익혀라.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의 교류는 93%가 비언어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7%만이 언어로 소통한다고 한다. 비언어 소통 과정에서 55%는 얼굴표정, 몸짓, 손짓등 신체언어를 사용하고 38%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이용한다.

셋째 주:처세술

- 예절을 가르쳐라.

공자는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절은 한 사람의 사상, 도덕수준, 문화예술의 수양상태가 외부로 표출된 것이요, 공중도덕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써 한 사회의 문화수준, 도덕수준, 생활습관을 반영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때 중요한 것은 어른을 존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스승을 존경하는 것으로 이것은 동양의 오랜 전통미덕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예절이요, 개인의 뛰어난 인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라.

어떤 사람들은 사교력이 부족해서 사람들과 능숙하게 어울리지 못하는데, 이것은 자아능력의 결핍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인관계의 성공여부는 상대방이 자신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는 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대인관계에 성공하려면 먼저 존중, 믿음, 예절을 배우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과 행동을 예의바르게 하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한다.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해 주라고 지도해야 한다. 멋대로 중간에 말을 끊거나 맘을 콩밭에 둔 채 자신의 일에만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듣도록 지도해야 한다. 아이가 이익에 따라 사람을 사귀지 않고 먼저 양보하도록 하며 우정의 가치를 깨닫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넷째 주:재능개발

- 모든 아이들에게는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

근대 교육의 계몽가인 코메니우스(Johann Amos Comenius)는 잠재력을 마음의 힘이라고 불렀다. "마음의 힘은 무한해서 만물의 지식을 모두 습득할 수 있다."

- 아이의 재능을 개발해서 꽃피워라.

아이의 재능은 보석처럼 숨어 있어서 부모가 발견해서 빛을 발하도록 지도해주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한다. 잘 관찰해야 한다. 아이의 잠재된 재능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되므로 풍부하고 이채로운 환경을 조성해서 아이에게 다양한 활동과 표현의 기회를 주고 이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특출한 능력을 뽐내는지 발견해야 한다.

- 천성대로 키워라.

부모가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 고유의 독특한 개성을 무시한 채 아이가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일방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아이는 천성대로 발전하도록 두어야 한다.

다섯째 주:지능체조

- 대자연은 가장 훌륭한 스승

- 아이가 대자연에서 뛰어놀도록 잡은 손을 놓아라.

- 대자연을 이용해서 지능발달을 촉진하라.

대자연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관찰 장소요, 자연 속에 있을 때 아이의 천성과 능력은 마음껏 발휘된다. 사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이가 대자연을 알고 사랑하도록 안내하지 않을 뿐이다. 부모는 어떻게 해야 아이가 자연 속에 있는 학문을 배울 수 있을지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야 한다.

특별강의 : 영혼의 생활

1) 관용을 배워라!

2) 선하게 살아라!

3) 권위에 도전하라!

◎ 2학년 : 품행교육

제1학기

첫째 주:자신을 바로 세우기

다른 사람들을 바르게 하려면 자신부터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 제 자신을 매우 엄격하게 대했어요.

- 제물을 탐하지 마라.

- 청렴함을 가르쳐라.

둘째 주:절약과 소박함

- 절약은 미덕이다.

유비는 아들 유선에게 "악은 작은 것이라도 하지 말고 선은 작은 것이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옛말에 "삼척 두께의 얼음은 하루 추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근검절약을 가르쳐라.

"엄마, 아빠도 좋은 옷을 안 입으셨는데요? 옷은 입어서 따뜻하고 깨끗하면 돼요. 공부를 잘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라도 하지만 겉치장만 잘하고 공부를 못하면 그걸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절약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라. 물론 집집마다 경제형편이 다 다르지만 부모는 아이가 돈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게 하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유년기 아동에게는 책임지는 훈련을 좀 더 강화시켜야 한다.

- 경제적 어려움을 숨기지 마라

아이도 가족의 일원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정의 경제적인 상황을 알려주고 자신들이 돈을 힘들게 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아이가 돈의 소중함을 알고 절약한다.

셋째 주:자립자생

-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지 마라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지나치면 아이가 커서도 자립하지 못한다. 의지병에 걸린 아이들은 좌절감을 잘 느낀다.

- 자기 일을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을 스스로 하게끔 해야 한다. 아이는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할 때 성공적인 체험을 맛본다. 아이를 키울 때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라. 부모가 대신해 주지 말고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 설령 서툴더라도 부모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요구수준이 높으면 아이가 겁을 먹고 어려워하고 요구수준이 낮으면 아이가 흥미를 잃는다.

- 자립심을 가르쳐라.

스스로 하는 습관이 없는 아이는 독립적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만족, 지나친 사랑, 방종이 아니라 생존, 생활, 자립의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다.

넷째 주:진실 추구하기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데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알몸뚱이가 되더라도 거짓 수재가 되지 마라.

-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라.

1) 인간 됨됨이를 가르쳐라. 지식은 학교에 입학한 뒤에 배워도 되지만 인간 됨됨이의 도리는 되도록 일찍부터 배워야 한다.

2) 솔선수범을 보여라.

3) 아이가 진실한 세상과 직면하게 하라

4) 행동으로 진리를 추구하게 하라. 실천하라

다섯째 주:고난교육

- 고생으로 단련되어야 큰 그릇이 된다.

부모의 의무는 아이를 단련시켜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의 개성 있는 발전을 막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아이가 최대한 자기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단련시켜 스스로 가치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

- 아이를 고생시켜라.

미국의 일부 주립중학교는 학생이 돈을 휴대하지 않은 채 일주일 동안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졸업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규정은 아이의 생존력을 단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학부형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우위장(중국의 정치가. 교육가)은 자녀들을 열악한 환경에 보내 단련시키는 것을 가정교육의 혁명으로 보았다. 부모는 아이를 지나치게 보호하지 말고 때때로 고생도 시키며 좌절도 안겨주어야 한다.

특별강의 : 증국번의 가서

자손이 높은 벼슬에 오르길 바라지 않았어요. 그저 책을 많이 봐서 도리를 깨우친 군자가 되길 바랐죠.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는 생활에 즐거워한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일은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해야함. 본인이 본인의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아니까 노력해서 약점을 보완해야 해요 그래야 무엇이든 장점을 살려서 실력을 뽐낼 수 있어요. 공부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의지고 둘째가 의식이며 셋째가 꾸준함이예요. 뭐든지 꾸준히 하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가 없어요.

제2학기

첫째 주:독립심 단련시키기

- 지나친 사랑은 의존성과 무능함을 키운다.

독립적인 인격은 아이가 평생 써야 할 소중한 재산이다.

- 독립심을 단련시켜라.

아이는 어려도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하도록 맡기자.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부모는 그저 격려해 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어려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것은 순전히 부모들의 착각인데, 사실 아이들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내가 어릴 때 팅에서 일을 많이 시킨 것은 일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많이 움직이고 일을 많이 해보는 것이 아이의 지능과 성격을 발달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둘째 주:도덕교육

성공의 여부는 고귀한 인격에 달려 있다.

- 도덕교육의 중요성

베이컨(Roger Bacon)은 "미덕은 보석이라서 소박한 배경 속에 있을 때 더 화려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미덕을 갖춘 사람은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존경스러워 보인다." 도덕은 좋은 인격과 훌륭한 사람의 기초요, 부모들이 아이가 가장 가지길 바라는 미덕이다. 동정심은 도덕의 핵심이다. 양심은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강렬한 외침이다. 양심은 성실함, 책임감, 정직함과 같은 중요한 미덕이다. 자제력은 아이가 스스로 행동을 제약하고 바른 일을 하도록 돕는다. 또한 아이가 스스로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도록 해준다. 자제력은 아이의 지개와 선량함을 불러일으키는 미덕이다. 존중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장점을 감상하게 해준다. 자아존중감도 더 커진다. 선량함은 보살피고 친절을 베풀게 해준다. 관용은 인격을 존중하게 해준다. 공정은 넓은 마음으로 도덕적 민감성이 강해서 부당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의 이익을 용감하게 보호해주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 좋은 인격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결코 쉽지는 않다.

- 솔선수범이 좋은 인격을 만든다.

아이를 도덕적으로 키우는 것은 영원히 부모가 도전해야 할 임무다. 아이를 가르치고 좋은 인격을 키워주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에게 도덕을 가르칠 땐 인내심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자연스러운 습관이 된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부모는 먼저 자신에게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고 스스로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야 한다.

- 도덕적인 아이로 키워라.

도덕적인 신념은 이성과 감성이 서로 결합할 때 형성된다. 도덕적인 감정은 자신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타인의 행동에 대한 정서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도덕적인 행동은 후천적인 연습에 의해서 얻어진다. 부모는 달콤한 말로 아이를 속이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용감하게 인정해 스스로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야 한다.

셋째 주:인성교육

- 인격은 평생의 재산

아이의 일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인성교육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인격이 저절로 쌓이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좋은 인격은 인성교육을 받을 때 다져진다.

- 인격은 인격으로 변화시켜라.

훌륭한 인격은 좋은 교육과 습관에 의해서 형성되므로 둘 중에 하나가 빠져서도 안 된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충성스럽고 용감하며 부지런하고 절개가 굳다.

- '다른 반쪽의 교육'도 하라.

조기교육은 인격과 품행을 키워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넷째 주:품행교육

- 사물의 이치를 가르쳐라.

부모는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도 부모가 고생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50%가 넘는 아이들이 부모의 은혜를 모를뿐더러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왜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삼자경(三字經)》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낳되 가르치지 않으면 부모 잘못이요. 가르치되 엄하지 않으면 스승의 태만이다."

-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일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주차장이 아닌 곳에 차를 주차하면 바로 사람들이 달려와서 공중도덕을 지켜 다음 세대들에게 모범을 보이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가르치려면 부모가 먼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좋은 품행을 키워 주어라.

아이는 자라면서 진실과 선량함과 아름다움이라는 영양소로 거짓과 악한 것과 추한 것을 분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책임감은 개인이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는 데 기초가 된다.

다섯째 주:자신감 키워주기

- 자신감은 성공을 부른다.

자신감은 사람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발전하고 일을 훌륭하게 처리하도록 해준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으면 모든 면에서 적극성이 떨어진다.

-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 주어라.

심리학자에 따르면 자신감은 강력함 심리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기면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자신감을 잃으면 틀림없이 실패하고 만다. 적극적으로 칭찬해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칭찬으로 바꾸기는 쉬워도 질책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라. 부모가 비교해야 할 것은 아이가 과거에 비해서 얼마나 발전하고 노력했느냐이다. 아이의 자신감을 견고하게 해주는 데는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부모는 칭찬의 기회를 잡아 아이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자신감을 키워 주어야 한다.

특별강의 : 청소년의 컴퓨터 사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빌 게이츠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인터넷을 하면 아이가 좋은 내용과 나쁜 내용을 구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

3학년 : 전통교육

제1학기

첫째 주:기초교육

- 기초교육으로 기초를 다져라.

이상적인 사람은 인격, 건강, 재능 이 세가지가 하나인 사람이다.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은 아이를 전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 기초교육에 충실하고 균형 있게 발전시켜라.

둘째 주:나라 사랑하기

- 애국심을 심어 주어라.

-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심어 주어라.

셋째 주:자신을 바로 알기

- 재능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라.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잘못을 용감하게 인정해 이를 채찍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다.

- 아이가 자신에 대해서 알게 하라.

지기교육을 할 때 부모는 부모로서의 위엄을 버려야지 호통을 치며 아이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부모는 객관적인 문제도 잘 발견해야 하지만 아이의 내면세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잘 파악하고 이해해서 아이를 도와주어야 한다. 교육의 속도를 아이의 사고력과 이해력에 맞춰야 한다. 이치가 함축되어 있는 사물을 이용해서 아이를 깨우쳐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야기를 이용해서 아이를 가르쳐보자. 단, 쉬운 내용이어야 한다.

-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도록 하라.

아이는 자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에게 노력을 강조해야 한다.

넷째 주:평범한 위치에서 노력하기

- 특권을 주지 마라.

특권을 누리지 않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따라야 할 원칙이다. 부모가 겉과 속이 같고 약속을 지켜야 아이들에게도 위신이 선다.

- 평범한 사람으로 키워라.

의식이 있는 사람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미연에 사건을 방지하고 특권을 바라지도 않는다. 평범한 사람으로 지내되 꿈은 원대하게 가져라!

다섯째 주:조용히 생각하고 반성하기

배움은 고요하고 재능은 배워야 하니,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학문을 이룰 수 없으며 태만하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고 조급하면 성품을 다스릴 수 없다.

- 편안하고 맑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뜻을 세워라.

-조용히 생각하고 반성하도록 가르쳐라.

사람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식하면 자신의 결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으며 자아반성을 통해서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아이는 수시로 자신에게 "오늘 한 행동은 잘한 것일까?"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또 단점은 무엇일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까?" "다음번에는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까?" "엄마, 아빠의 말씀을 따라야 할까?"라고 반문해야 한다. 성공을 거두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특별강의 : 정훈격언 (강희)

어려서부터 길러 온 좋은 습관은 천성처럼 굳어진다. 아이를 귀여워 하는 것은 괜찮지만 결코 어리광을 받아 줘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배우고 솔선수범을 보인다.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닦고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밖으로는 겸손한 군자의 기개를 키우라.

제2학기

첫째 주:사랑과 엄격함

- 편애하지 마라.

-사랑과 엄격함을 동시에 보여 주어라.

사랑하는 마음은 가슴에 숨겨 두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세요. 아이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부모는 바로 도와주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어머니는 엄격하되 자상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식을 사랑하되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이가 계속해서 노력하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면 사랑을 베푸는 동시에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가르치고 고생시켜 아이가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의지를 단련시키도록 해야 한다.

둘째 주:공부방법

기록하는 습관, 생각하는 습관, 베껴 쓰는 습관, 부지런한 습관

- 책은 정신의 양식이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2~3세 때가 독서의 습관이 생기는 중요한 시기로써 이때 아이가 독서할 기회를 많이 접하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더 발달해 안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독서는 일종의 오락이므로 즐겁게 해야 한다. 아이의 성장에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즐겁지 않으면 건강하게 성장 할 수 없다.

- 책을 좋아하게 만들라.

먼저 좋은 독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 아이에게 좋은 독서습관을 키워 줄 수 있다. 독서의 흥미는 아이가 적극적으로 책을 읽으려는 의식경향이다. 부모는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독서의 흥미를 키워 주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가는 1~4세 때가 독서의 흥미와 습관이 만들어지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 독서방법에 유의하라.

주희는 "마음이 책에 있지 않고 눈으로 자세히 보지 않아 마음과 눈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입으로 읽어도 잘 외워지지 않고 억지로 외워도 그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 생각하며 배운다.

공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않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 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학습은 사고와 근면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셋째 주:엄격함에 관한 교육

- 가정교육을 엄하게 하라.

부모가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가 신나게 놀기만 해서 어른이 되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부모를 원망한다." 아이를 가르칠 땐 일관되게 엄격해야지 조금이라도 강도가 느슨해지면 먼저 한 노력의 효과도 반으로 줄어든다.

- 아이를 존중하고 응석을 받아 주지 마라.

- 몽둥이를 든다고 엄격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들은 종종 아이를 넘치게 사랑하거나 엄격함을 몽둥이로 때리고 벌주는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합리적으로 엄격해야 한다. 교육태도가 일관적이어야 한다. 벌을 줄 땐 뒤로 미루지 말고 바로 벌을 주어야 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어야 한다.

넷째 주:겸손에 관한 교육

- 겸손하면 이익을 보고 거만하면 손해를 본다.

겸손은 사람을 발전하게 하고 자만은 사람을 뒤처지게 만든다.

- 자만하지 않도록 가르쳐라.

하나만 아는 사람은 대체로 겸손하지 않지만 견식이 풍부한 사람은 반드시 겸손하다.

다섯째 주:탐구하기

- 아이의 탐구심을 죽이지 마라.

- 아이의 탐구심을 자극하라.

아동교육 전문가들은 아이가 질문하면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동시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환경과 조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아는 대로 행동하고 용감하게 탐구하라.

책속의 지식은 사람들이 실천한 경험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책만 봐서는 경험이 간접적이고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책 속의 지식을 파악했더라도 행동하거나 직접 체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완전하게 안다고 할 수 없다. 지식은 실천할 때 비로소 실질적으로 사진의 것이 된다. 아이의 행동력과 조작능력과 실천력과 탐구정신을 키워 주는 것은 모두 부모의 책임이다. 아이는 사물을 관찰하며 문제를 발견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사물을 많이 접할수록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

특별강의 : 권학 (순황)

지식을 얻으려면 인식의 과정이 필요해요. 공부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해요.

4학년 : 과학교육

제1학기

첫째 주:상황에 맞게 교육하기

-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서 가르쳐라.

상황에 따라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서 수시로 도리를 설명하고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 흥미에 따라 가르쳐라.

사람에게는 저마다 취미, 특기가 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고 어는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도록 아이의 개성과 특징을 잘 관찰하고 분석해서 장점을 더욱 살려주어야 한다.

둘째 주:아이에 맞춰 교육하기

- 아이의 본성을 살리고 특징에 맞춰 가르쳐라.

일률적으로 요구하면 개성이 억압되고 그 결과 학생들의 정신적인 에너지도 억압된다.

- 종합적인 맞춤식 교육

-맞춤식 교육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1) 반드시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야 한다.

2) 아이의 특징, 장점, 흥미에 따라 내용과 방법을 선택해 교육시킨다.

셋째 주:감성교육

희망을 잃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란다. 결코 그것이 인생에 침입하지 않도록 해라.

- EQ가 IQ보다 중요하다.

- EQ를 키워 주어라.

- EQ교육의 적기를 놓치지 마라.

최신 과학연구 발표에 따르면 3세 이전은 대뇌세포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이자 아이에게 EQ교육을 시킬 최적기라고 한다.

넷째 주:민주와 평등

- 아이와 평등하게 교류하라.

자녀교육을 하기에 좋은 시점을 찾으려면 먼저 부모가 아이의 좋은 친구가 되고 아이를 평등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아이와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와 소통하려면 부모가 먼저 권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한 위치에서 친구 같은 말투로 대화를 한다면 아이와 순조롭게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 아이를 존중해 주려면 입으로만 하지 말고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아이를 존중하려면 먼저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의 생각을 바르게 대해야 진심으로 아이를 존중하게 된다. 미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부모가 잘못했거나 자신이 한 약속을 어겼을 때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 자존심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습관도 키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를 품안에서 풀어 줘 사회를 알게 하고 아이에게 본받을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부모와 아이가 모두 좋아할 수 있는 활동을 함께 하며 마음껏 뛰어놀면 가족 간의 정이 더욱 깊어진다.

다섯째 주:예술성 개발

-아이는 타고난 예술가이다.

일본의 니혼의과대학 연구소의 연구결과 태아에게 스피커를 통해서 짧은 시를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 시를 다시 드려주면 아이의 심장박동수가 빠른 속도로 안정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시를 들려주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는 곧 아이가 시의 의미를 몰라도 태교를 통해서 시 속의 어휘와 엄마가 시를 읽어 줄 때 음성의 느낌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많은 부모들은 신생아의 대뇌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장과 같다고 생각한 나머지 대뇌에 숨겨져 있는 놀라운 예술적인 능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교육의 적기를 놓치고 만다.

- 예술의 소질을 키워 주어라.

아이들은 부모가 조성한 환경 속에서 자란다. 아이에게 부모는 첫 번째 환경이요, 가정은 두 번째 환경이요, 대자연은 세 번째 환경이다. 아이에게 예술 천국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아이의 마음에 아름다움과 미적감상과 미적 추구를 심어 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환경과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의식적으로 예술에 대한 민감성을 키워 주어야 한다. 대자연을 자주 접하게 해준다. 아이의 적극성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제2학기

Q : 반드시 조기교육을 해야 하는가?

A : 부모는 지식교육과 더불어 아이의 잠재력, 재능, 감성도 개발해 주어야 한다.

Q : 감성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그렇다면 감성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 장기적인 안목으로 아이의 심리상태와 생활력과 같은 비지적요소를 키워 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된다.

Q : 부모교육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가?

A : 부모교육이 다루는 내용은 우생학(사람을 유전적으로 개량시키기 위해서 연구하는 학문), 생리학, 위생학, 영양학, 심리학. 교육학, 인재학, 논리학. 사회학에 걸쳐 다양하다.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부모도 공부해야 한다.

Q : 좌절교육이 꼭 필요한가? 좌절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A : 좌절을 바르게 인식할 때 비로소 좌절을 극복할 수 있다. 아이가 좌절을 힘들어 할 때 부모는 인생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며 성공의 길에는 종종 고난과 좌절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자신감을 키워주고, 경청하고, 의지력을 단련시켜야 한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부모의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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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블로거 WN1 입니다.
이 코너는 학습에 대한 코칭을 하기 위해 만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초점을 가능하면 맞추려 하겠지만,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만이 보는 것은 아니구요 부모님들 역시 보셔야 할것입니다.
코칭이라는 단어가 있음을 확인하시구요..
코칭이란것은 답을 제시하기보단 고찰해볼 수 있는 질문을 통해 피코칭자가 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습에 있어서 코칭만을 하는것은 무리가 있기에 티칭도 함께 들어갈 것입니다.

아무튼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이 글을 보시는 분이 학생이시든 부모님이시든 아니면 학습과 관련된 분이시든 학습코칭과 부모코칭의 글들도 함께 보시면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일 많이 만드는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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