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1.07 인생 - 최인호 여백 2013 03810
  2. 2012.05.03 바보 Zone - 차동엽
  3. 2011.01.05 바보존(Zone) - 차동엽 여백 2010 03320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다. 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덕분이다. 우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22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쓴 <완덕의 길> '정말 필요한 것이면 보아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30


어때서 일어나지도 않은 현상을 미리 가불해서 앞당여 근심하고 있단 말인가.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매 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5


선승 황벽(黃檗)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

주님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36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렵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38


일찍이 당나라의 선승 동산(洞山)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그러자 동산이 소리쳤다.

"이놈아! 추울 때는 그대를 더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더 덥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추우면 본능적으로 더운 곳으로 피하려 한다. 더운 곳으로 피하면 추위는 일시 가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근심이 있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다른 방법으로통해 고통을 피하려 한다. 피하고 잊는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추위를 피하려면 애써 더 추운 곳으로 찾아가라는 동산 스님의 말은 고통이 오면 더욱 그 고통을 직시하라는 뜻이다. 


중국의 도가서(道家書)인 <열자(列子)>에는 전설적인 신궁 비위(飛衛)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 기창(紀昌)이 찾아와 활쏘기를 배우려 하자 비위가 말한다. 

"활쏘기보다, 먼저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끝까지 보는 공부부터 하게."  58


이순신 장군도 말씀하셨다.

"살려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곧 살 것이다."


주님도 이렇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59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없다는 것은 못 느낀다. 두려움을 느기지만 평화는 못 느끼며, 갈증이나 욕망은 느끼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면 금세 잊어버린다. 마치 심한 갈증으로 허겁지겁 물을 마신 후에는 남은 물을 버리는 것처럼."  77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소화 데레사 성녀는 널리 알려진 대로 15세에 가르맬수도회에 들어가 24세에 선종함으로써 10년도 못 되는 짧은 수도원 생활을 한 새내기 성녀다... 봉쇄수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마룻바닥을 닦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에 전념했던 수도자였다.  97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아주 소소하고, 그러니까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늘 하나를 주울 때에도 주님에 대한 사라응로 주우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영혼 하나를 구원한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아주 작은 것도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성인의 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녀 소화 데레사가 발견한 '겨자씨'의 비밀이었다.  98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은 우리들의 수도우너인 가정 속에서부터 타올라야 한다.  100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때도 데레사처럼 사랑으로 하고, 자식들을 아기 예수처럼 대하고, 아내를 성모님처럼 공경하고, 남편을 주님을 대하듯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우리의 가정은 성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1


[두메꽃]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미나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 숨어서 피고 싶어라.  117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는 반드시 이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우선 유혹에 넘어가 그 죄를 응시하는 첫 발견 단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먹음직스럽다. 화려하다. 향기롭다. 감미롭다. 죄는 본능적인 감각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후에는 맹렬한 상상이 일어나고 쾌락에 대한 기대감이 용솟음친다. 이 과정을 <준주성범>은 '처음에는 마음에 단순한 생각만 하고, 그 다음에는 상상이 일어나고, 쾌락이 생기고, 잇따라 악한 중동이 발하고, 마침내는 승낙을 하게 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와가 느낀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은 악의 논리다. 결정적인 악의 정당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나마 유혹과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있지만, '딱 이번 한 번뿐인데', '이생은 원래 즐기는 거야', '사랑은 불나비야'라는 식의 악의 논리는 여지없이 충동적인 만용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따 줌으로써 악은 습관화(중독)되고 전염되어 온 세상에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127


미국의 CIA는 거짓말을 백색, 회색 그리고 흑색으로 분류하고 있다. 남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행하는 흑색 거짓말과 완전한 거짓은 아닌, 상대방을 위한 선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백색 거짓말, 그리고 그 경계가 애매한 회색 거짓말.  139


남전이 주석하고 있는 선당은 동서에 선방을 두어 동쪽의 선방에 사는 수자를 동당(東堂), 서쪽의 수자를 서당(西堂)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모든 납자들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서로 자기네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동당 고양이, 서당 고양이 하고 싸움이 벌어졌다.

다툼이 시끄러워지자 스승 남전은 무슨 일인가 나와 지켜보다가 싸움의 원인이 고양이 한 마리 때문임을 알고는 고양이의 목을 한손으로 쥐어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칼을 들어 모가지에 들이대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뭔가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이 고양이를 죽이지 않겠지만 말할 수 없다면 목을 베어 죽일 것이다."

서슬이 퍼런 스승의 선기에 압도되어버린 대중들은 입조차 달싹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의 목을 베어 죽였다.

그날 밤 외출에서 돌아온 제자 조주(趙州)가 스승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남전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네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겠느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말없이 자신이 신던 짚신 한 짝을 머리 위에 얹고 걸어 나갔다. 이에 스승 남전이 혀를 차며 말하였다.

"네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는 살 수 있었을 터인데."

그 이후부터 '불살생'의 계율을 파계하여 고양이의 목을 벤 남전의 칼은 애욕을 끊기 위한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그것이 분쟁의 원인인 고양이라 할지라도 하찮은 짚신조차 머리 위에 떠받으는 것처럼 섬기겟다는 조즈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로 불리게 되었다.  148-149


근세의 선승 혜월(彗月)은 1937년 죽기 전 선암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천하의 명검'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 말을 들은 헌병대장이 명검을 보고 싶은 욕망에 절을 찾아왔다. "그 칼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간청에 "물론입니다."하고 앞장서 걷던 혜월은 느닷없이 뺨을 후려쳐 헌병대장을 섬돌 아래로 떨어뜨렸다. 졸지에 수모를 당한 헌병대장이 허리에 찬 칼을 빼려 하자 혜월이 먼저 다가가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천하의 명검이오. 내가 때려 섬돌 아래로 떨어뜨린 손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손은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150


혀와 손과 생각은 모두 양면의 날을 가진 불칼임을.  155


불교에는 '불재가중(佛在家中)'이란 말이 전해져온다. 당나라 때 양보(楊補)라는 사람이 사천에 유명한 무제(無際)보살이 있다 해서 먼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던 양보는 "어디를 가오?"하고 묻는 노인에게 "무제보살을 스승 삼고자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보살을 찾아가느니 부처를 찾으러 가지 그래."하고 말했다. "부처가 어디에 있는데요?" 하고 양보가 묻자 노인은 대답했다.

"집에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나와서 맞아주는 분을 만나게 될 텐데, 그분이 바로 부처시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바 이불을 두른 채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뛰어 나오는 어머니 모습에서 비로소 양보는 '집 안에 있는 부처'를 견성(見性)할 수 있었던 것이다.  162


예수께서 저를 붙드신 목적은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 있는 하느님으로서의 '말씀'능력과 예수로서의 '행동'능력과 성령으로서의 '생각'능력, 즉 '지언행(知言行)'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170



스님, 정말로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까? _최인호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_법정



내가 좋아하는 선가(仙家)의 말 중에 '살아도 온몸으로 살고 죽어도 온몸으로 죽어라' 라는 말이 있다.  180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A. 모루아는 "병은 정신적 행복의 한 형식이다. 병은 우리들의 욕망, 우리들의 불안에 확실한 한꼐를 설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위대한 사상가였던 C. 힐티는 <행복론>에서 "강의 범람이 흙을 파서 밭을 갈듯이 병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파서 갈아준다. 병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견디는 사람은 보다 깊게 보다 강하게 보다 크게 된다."

강이 범람하여 홍수가 나지 않으면 대지는 황폐해진다.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 되기 위해서는 홍수로 땅이 뒤집혀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바닷물을 엎어버리지 앟으면 플랑크톤은 사라지고 물고기들의 먹이사슬은 끊어진다. 바다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태풍이 몰아쳐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병의 홍수와 태풍을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82-183


당나라 때 향엄(香嚴)이란 선사가 있었다. 등주(鄧) 사람으로 법명은 지한(智閑)이었다. 키는 7척이나 되고, 학문에 조예가 깊어 아는 것이 많고, 말재주가 능하여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스승 위산영우(僞山靈祐)를 찾아가 불법에 대해 묻자 위산은 이렇게 답하였다.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전부 남에게서 보고 들었거나 부처께서 말씀하신 삼장십이부경(三藏十二部經)의 뜻을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묻지 않겠다. 나는 그대에게 묻겠다. 아직 어머니의 배 안에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아라. 그것으로 그대의 공부를 가늠하겠노라."

향엄은 여러 가지로 대답했으나 위산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위산에게 가르침을 간청하자 스승은 "나의 말은 나의 견해일 뿐 그대 스스로의 안목으로 일러야 그대의 안목이 아니겠느냐." 하고 거절한다. 이에 향엄은 자기가 읽던 모든 책을 불살라버린 후 "이번 생에는 불법을 깨닫지 못했다. 오늘까지 나를 당할 사람이 없다고 느꼈는데, 스승에게 한 방망이 맞고 보니 그 생각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제부터 나는 그저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중이 되겠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스승과 작별하고 암자에 들어가 수행을 하였다. 

하루는 마당의 풀을 베면서 무심코 던진 기왓장 한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며 난 '딱'소리를 듣고 순간 크게 깨달았다. 이 장면을 선가에서는 향엄격죽(香嚴擊竹)리라고 부른다. 향엄은 스승에게 돌아가 깨달음을 인정받고 오도송을 읊었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去年貧 未是貧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로다. 今年貧 始是貧

작년에는 송곳꽂을 땅이 없더니 去年 無卓錐之地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더라. 今年 錐也無

이 선화에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화두, 즉 '그대가 아직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 얼굴'이란 공안인 것이다.  200-201


향엄 스님은 "이번 생애는 불버븡ㄹ 깨닫지 못하겠다."고 절망 했지만 용맹정진 끝에 무심코 던진 기왓장 한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딱' 소리에 크게 때닫고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참나, 즉 '본래면목'을 견성하엿다.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첫 일성으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언하셨다면 하늘나라는 이미 와 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면 어느 날 문득 어린이가 되어 하느님이 '빚어 만드신 최초의 참사람'으로 돌아가 원죄 없는 원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의 눈에서 바라보십시오."

심학규는 공양미 삽백 석이 있어야만 눈을 뜨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신을 위해 죽었던 심청이를 보고 싶다는 참사랑의 열망 때문이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시작도 끝도 없는 '이제와 항상 영원한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치마를 뒤집어쓰고 임당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심청이의 본래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나의 참모습을 견성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눈을 뜨는 데는 공양미 삼백 석과 같은 수천 년 세월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는 것은 <심청가>에 나오듯 '휘번쩍'눈을 뜨는 한 순간이다.  209-210


운동처방학을 전공하는 윤기운 교수는 운동선수들에게 세 가지 종류의 혼잣말 훈련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지켜본 후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혼잣말의 종류에는 '지도적 혼잣말'과 '동기적 혼잣말', '긍정적 혼잣말'등이 있는데 지도적 혼잣말은 '천천히' 혹은 '침착하게' 같은 교훈적인 것이며, 동기적 혼잣말은 '이번이야말로 최고의 기회야', '드디어 때가 왔어'같은 심리적인 동기부여를 가리키며, 긍정적 혼잣말은 '좋아, 할 수 있어', '난 내 자신을 믿어'와 같은 말인데 마음속으로 외우기보다는 실제로 입 밖으로 드러내어 혼잣말을 하는 실험대상이 그렇지 않은 상대보다 월등히 실제 행동과 학습효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215-216


중국의 당나라 때 절강성의 서암사라는 절에는 사언이라는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화두로 유명한 암두의 제자였다. 사언은 스승으로부터도 인정 받지 못했던 치둔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불린 데는 어느 날 공양 초대를 받아 신도 집에 갔을 때 주인이 유리와 구슬로 된 염주알을 바구니에 잠아 각자 골라 가지라고 햇던 데서 비롯되었다. 사언은 다른 스님들이 다 고른 후 마지막에 남은 가장 볼품없는 것을 집어 들고 "이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라고 흡족해하여 '바보선사'라 불리게 된 것이다. 

사언은 아침에 일어나면 판도방(큰방) 앞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아."

그러고 나서 사언은 대답했다

"네."

"정신차려라."

"네."

"앞으로도 속지 말아라."

"네."

사언의 자문자답은 자기 속의 자기야말로 만유의 근원적인 한 물건이자 본질 이전의 진아(眞我)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경책하는 벽력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216-217


웰만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은 나 자신이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벗도 나 자신이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나 자신 속에 있으며 나를 해치는 무서운 칼날도 나 자신 속에 있다. 이 두 개의 나 자신 중의 어느 나를 좇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217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였던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귀중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면서 신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추기경님은 그날 대담(2003년이엇던가. 새해를 맏아 동아일보에서 기획한 새해 특집으로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담)에서 내개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이 뭔지 안세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추기경님은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 도착하기엔 멀었소이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246-247


성경의 한 구절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거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러가.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사람의 정을 물리치지 말아라."  255


세속과 청산을 따져 무엇 하겠는가. 길상사건 대원각이건 굳이 어느 쪽이 옳은가 따져 무엇하겠는가. 봄볕이 비추면 꽃피지 않는 곳이 없지 않는가. 꽃피는 곳마다 부처 역시 살아나고 있는 것. 봄볕이 비추는 곳을 찾아갈 일이지 굳이 세속과 청산을 구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258


신문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성철 스님이 내린 법어가 실려 있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며 하늘과 땅이 무너진다 해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유형무형 할 것 없이 모든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들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함으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종말을 걱정하여 두여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원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러 온 것입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268


내가 "스님, 어느 책에선가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법정 스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진 모르지만 지금 새악으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77


법정 스님은 근대 불교계의 큰 어르신이셨던 효봉(1888~1966)의 애제자였다.

효봉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졌던 법기로, 우리나라 최초로 법관이 되었다. 36세가 되던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조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삶에 대해 큰 회의와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와 엿장수를 하며 3년간 방랑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인 38세에 불문에 귀의하셨던 늦깍이셨다. 법정 스님이 출가를 결정하고 여부를 묻자 효봉 스님은 생년월일을 묻고 간지를 짚어본 후에야 이를 허락하였으며, 훗날 새로 출가한 법정 사미만을 데리고 지리산 쌍계사 탑전(塔殿)에 가서 수행에 몰입할 만큼 법정을 각별히 아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의 일화 중에 한 토막.

어느 날 아침 공양 후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자 효봉 스님이 법정 사미를 부르며 빈 그릇하고 젓가락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법정 사미가 그릇과 젓가락을 가지고 우물가로 가자 효봉 스님은 설거지를 하며 버린 밥알과 시래기 줄기를 주워 담은 후 법정 사미가 보는 앞에서 밥알과 시래기를 물로 씻은 후 훌쩍 한 입에 들이마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출가해서 수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 아끼고 절약해서 시주한 사람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부자 살림이고 되도록 몸에 지니지 않는 무소유야말로 참으로 전부를 갖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법정 스님의 철저한 무소유는 바로 스승이셨던 효봉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280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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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ZONE

저자
차동엽 지음
출판사
여백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며, 바보처럼 모험하라!무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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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zone 은 새 책 코너에서 보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트에서 서평이벤트한다고도 본 적이 있다. 
무지개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의 책이기도 한데, 자꾸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도서관에 비치되면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도서목록에는 올려 놓지않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얼마전 어느 모임에서 나의 품에 들어왔다. 
참 신기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읽어야 할 목록들이 밀려 있어서 뒤로 제쳐 두고 있었는데, 어제(2011년 1월 4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있는 교보문고에서 계발서 인기도서에 1위로 올라 있는것을 보고 두껍지 않은 책이니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고는 ... 읽게되었다.

바보의 영역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바보의 정의는 어떻게 하는것이 옳을까?
지금 우리에게 바보의 의미는 무엇이라 하는것이 좋을것인가/

이 책은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의 함정이나 단편적이고 막연한 조장이라는 표현을 하는것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자기계발도서를 1000권 넘게 읽어 보았다.
그 많은 도서들의 내용이 얼마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얼마나 많은 내용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가?  라는 질문에 애써 답변하라면 얼마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해 보라고 하면 첫번째로는 의식의 변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계발서들은 삶의 의미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식을 가지게끔 도와주는 효과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의식이 있지만 패배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는 많은 이들의 실 생활을 접하면서 의욕을 가지게끔 해주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생각의 가지라고 표현하고 싶다.
계발서들을 많이 읽어가면서 몇가지의 부류로 나누게 되었는데, 우선 인문고전들을 많이 읽은 사람들의 책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책,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책과 조합하여 나온책... 등으로 구분해 보았는데, 나에게는 결국 인문고전에 더욱 생각이 꽂히게끔 해준 부류에 계발서들이 포함된다. 그렇기에 생각의 가지들을 새로이 뻗어가게 해주는 역학을 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애둘러 왔다고 할 수도 있다.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계발서들의 장점이 이러한 것들만이 있는것이 아니기에 굳이 애둘러 왔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ㅎㅎ 혼자만의 착각일지라도...

두서없는 서두가 진행되었는데, 책으로 돌아오면 .. 개인적으로 이 책의 첫 장들에서 나는 큰 매혹을 느꼈다. 
첫 장의 첫 내용은 노자의 표현인 '대지약우(大智若愚)'로 시작한다.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 임팩트 있게 들어갔다. 임팩트로 인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모두 읽어버렸다.
간결한 내용으로 전개하면서 여러 내용들을 넘나들면서 내용을 전개하며, 앞서 언급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 간결하였다. 임팩트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내용들이다. 그렇기에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계발서들을 보면 정말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왜 그렇게도 같은 말을 서로 다른 표현들을 해대는것일까?
계발이란것에 아주 많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을 하든지 맥은 상통하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많은 도서를 읽을 필요가 없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무지하기에 많이 읽는것을 선택하였다. 한 권을 읽어도 잘근잘근 씹어먹을 수 있다면 좋을것이다. 사람마다 통하는 사람이 있고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 어쩌면 나는 나와 잘 통하는 계발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헐~~ 아직도 못찾았다는건가??  결론을 말하면, 찾았다..그것도 꽤나 오래전에 
그러면 왜 계속찾으려 하는가? 글쎄...굳이 표현하자면 더 잘 통하는 책이있을 수도 있을것이고 내 뒤통수를 때려주는 책도 나올것이기에 ...친구가 단 한명 두명뿐일 필요가 있는건 아니지 않는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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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바보인가?
바보 블루칩은 잔머리가 아닌 큰 머리를 쓰는 지혜를 가르친다. 
바보 블루칩은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 이익을 거두는 지혜를 제시한다.
바보 블루칩은 일시적인 성공이 아닌 궁극의 성공을 이루는 지혜를 담보한다.  23

하나 바보 패러독스
대지약우(大智若愚)! -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 노자   28
인간의 귀는 '큰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인간의 눈은 '큰 형상'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의 머리로는 '큰 지혜'를 알아듣지 못하여 그것이 꼭 바보스럽게 여겨짐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마을 거꾸로 뒤집으면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 결국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29
누구든지 자기 수준에서 상대방의 말을 수용하는 법이다.  31
바보는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른다. 지금의 실패를 즐겨보라...  33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 혁신, 발견의 공을 세운 인물들을 보라. 그들의 창조적 발상은 하나같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바보 같은 발상'이라 손가락 질당하며 핍박받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창의적 도전이 기존의 사고, 관습, 제도 등에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의 벽을 깨는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34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졸업축사의 마지막 부분 'Stay hungry, stay foolish.'
'계속 배고프고, 계속 바보스러워라.'
'계속 배고프라'는 말은 계속 탐구하고 도전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바보스러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목적 발견'의 시대로 진입했기에 스티브 잡스가 '바보스러움'의 중요성을 강조한것이다.
목적 발견의 시대는 추구해야 할 목표 자체를 새로 창출해내는 것이 우선 과제인 시대를 말한다.  36-37
메시지는 늘 입체적이다. 그러기에 어느 한 차원에서의 의미가 포착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결론을 내리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39
거장들은 우직하게시리 한 우물만을 깊고 넓게 팠기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9
2009년 방한한 스탠퍼드 교수인 윌리엄 바넷은 '최고경영자(CEO)는 바보가 돼야 한다.'  45
약삭빠른 처세술은 단기일에 한탕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이윤 창출을 올리기에는 근본이 달려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점이 바보 정신의 진가를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47
wn1- 사람들은 항상 잃어봐야 '감사'를 알게 된다.
그전까지는 늘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더 이상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꼭 사망 선고를 받아야 감사를 알 것인가?
죽을 사람이 감사하고 노력을 알게 된다면 왜 살 사람이 강사와 노력을 몰라야 하는가?(p.49의 로젠버그 장군)
약삭빠르지 못해 노상 차이는 사람, 제 것을 챙길 줄 모르고 속 없이 퍼주기만 하는 사람,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이 좋아하면 그 만인 사람, 아무리 화낼 일이 있어도 오히려 웃음으로 넘기는 사람... 똑똑한 이들은 저런 사람들에게 '맹하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세상이 그나마 따뜻할 수 있는 건 이런 바보들이 있는 까닭 아닐까.  54
거인은 둔감하다!는 사실  68
소위 똑똑한 사람들은 어떤 눈앞에 닥친 일에 관하여 해결할 수 없는 수만 가지 가능성을 염두하고 걸러내어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들에게는 이전 경험과 기억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런데 바보에게는 해석이 없다. 일단 입력이 되면 '할 수 있다, 없다'의 개념이 아닌, '한다'의 개념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바보는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잇는 단 하나의 방안을 밀고 나간다.  72
16세기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도발적인 책 <우신예찬>에서 '자연적 바보'와 '의도적 바보'를 구분하여 다루었다.
'자연적 바보'는 사리판단 능력이 모자란다.
'의도적 바보'는 어릿관대와 같이 바보의 가면을 쓰고 자신이 뜻한 바를 관철시키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의도적인 바보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은 하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들을 풍자적으로 속 시원히 떠벌린다.  74
필자는 '의도적인 바보'에도 두 가지 부류가 있음을 본다. 바로'척하는' 바보와 '자발적'바보다.
척하는 바보는 계산된 바보이며, 처세술적 바보라고 이름 붙여도 좋다.
'자발적'바보는 아예 바보의 삶을 최고의 덕으로 알고서 자발적으로 바보가 된 사람을 일컫는다.  77


바보속의 거인
상식을 벗어난 사람을 너무 쉽게 '저런 바보'하고 뭉개버린다. 결국 창의력 넘치는 신(新) 발상을 지닌 사람을 바보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이디어트(idiot)'는 그리스어 '이디오테스(idiotes)'에서 유래했는데,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을 뜻한다.  104
<신메리카이 사전>에서 바보는 '사람을 놀릴 때 자주 사용하는 한편, 친밀한 사이에서 서로를 비판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105
정민 교수는 박제가의 말을 빌려 '미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이란 남들이 손가락 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이다.'  108
'치(痴)'는 '지(知)'력에 '병(녁=疒)' 이 있는 상태, 즉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것을 뜻한다.
왜 선조들은 자신의 호에 당당히 '치(痴)'자를 올리고자 했을까?
그들은 장인 내지 도인의 경지를 목표로 삼고서, 그레 비추어 자신의 모자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매진하여 발전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110

바보철학 12훈
블루칩1 - 상식을 의심하라.
바보들은 사람들이 빤하게 여기는 것을 의심한다. 또 바보들은 평범한 상식을 뒤집는 발상을 한다. 
상식 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정해 보고 어느 쪽이 더 옳은지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라는 것이다.  120
외국어를 모르고도 소통하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상식에서 자유로우면 우리으 ㅣ행동반경은 훨씬 넓어진다.  122
쫀쫀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한 번 자세히 살펴보라. 그들 중에는 꼼꼼하고 정확한 사람들인 경우가 대다수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24
블루칩2 - 망상을 품으라.
망상을 '쓸데없는 상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계속 품을 일이다. 그러고서 기회 있는 대로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실현을 모색해볼 일이다.  129
망상을 품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0%지만, 동시에 기적이 일어날 확률도 0%이다. 망상을 품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적어도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0%에 고착되지는 않는다.  130
400년전,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오기 어린 희망을 노래하였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135
블루칩3- 바로 실행하라.
바보는 우직하게 실행하여 결과를 보려 한다.
로마 속담에 '생각을 잘하는 것은 현명하고, 계획을 잘하는 것은 더 현명하고, 실행을 잘하는 것은 가장 현명하다'  137
이른바 명문 출신이 아니지만 금융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요직에 줄곧 발탁된 사람이 말하는 자신의 업무철학
첫째, 건강한 판단력! 모든 일을 다시 합리적으로 짚어보는 것입니다.
둘째, 즉각적인 실행! 그런다음 결정된 바를 미루지 않고 바로 바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셋째, 양심적인 기여정신! 자신이 받는 급여 이상으로 기여하겠다는 정신으로 근무에 임하는 것입니다.  145
블루칩4 - 작은 일을 크게 여기라.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작은 일'에서의 꼼꼼함이 필요하다.  149
한 사람에게 충실하다. 한 순간에 집중하라. 한 사안에 마음을 실으라.  153
블루칩5 - 큰 일을 작게 여기라.
바보는 '작은 일을 크게'여기는 미시적 관조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마치 망원경으로 큰 그림을 조망하는 듯이 거시적 관조의 달인이기도 하다.  154
커 보이는 일을 작게 보라.  154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 우리에게는 바보의 단순논리가 필요하다. 이것저것 재며 우물쭈물하면, 소탐대실하는 자충수를 둘 수 있다. 때론 최선의 논리요, 최상의 지혜인 직관의 대범한 명령에 순응해보라.  157
우리는 어떤 동기든 간에 버릴 때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큰 일을 작게 여겨야 한다.  159
블루칩6 - 미쳐라.
전 GE회장 잭 웰치는 '조용하고 합리적인 태도로는 전진할 수 없다.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엇엔가 미쳐 있는 우리는 이미 그 자체로 성취자요, 승리자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시간을 장악하자!  161
헤겔, 뉴턴, 베토벤, ... 미친사람들
'나'로 하여금 미치게 하느 목표가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166
블루칩7 - 남의 시선에 매이지 마라.
이 실천명제가 우리를 가장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168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 그때부터 자유를 잃는다.  168
한국인은 남의 시선을 굉장히 존중하는 문화권에서 성장한다. 그러다 보니 '남드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자꾸 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남의 꿈을 이뤄주려고 노력하며, '나'의 행복이 아닌 남의 행복을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꼴이 되었다.  171
어차피 인생을 사는것은 '나' 자신이다. 다시 '나'를 찾자. '나'는 소중하다.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다.  172
블루칩8 - 황소걸음으로 가라.
지성여신(至誠如神) - 지극한 성실은 신과 같은 힘이 있다.
우보만리(牛步萬里) - 소의 걸음으로 만리를 간다.
마부위침(磨斧爲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그만 두지 않으면 가능하다네.'
티티안, 파블로카잘스 ...
블루칩9 - 충직하라.
충직(忠直)은 자신을 향할 때는 신실이요, 부모를 향할 때는 효이며, 이웃을 향할 때는 의리요, 나라를 향할 때는 충성이 된다.  181
벤저민 디즈레일리, 중국의 미생, 톨스토이, 우장춘박사, 바보온달, 이순신장군 ...
블루칩10 - 투명하라.
상황이 꼬여 궁지에 몰렸을 때, 주변 사람을 움직이는 상책은 '투명'해지는 것이다. 추명해지는 것이 살 길이요, 최고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기에 격언은 말한다. '정직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다.'  193
블루칩11 - 아낌없이 나누라.
나눔은 말 그대로 현재 있는 것을 나누는 것.  203
바보는 억울한 일조차도 크게 수용하고 미련스럽게 관용한다. 그리하여 당함으로 이기고, 무언으로 진실을 밝힌다.  206
블루칩12 - 노상 웃어라.
바보는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웃을 일로 받아들이기에 웃는다.  210
심리학엣 밝혀낸 '상응의 법칙'을 활용, '내면과 외면은 상호 영향을 끼친다' 곧 '생각과 표정은 서로 상응한다'는 법칙이다. 생각으로 웃으면 표정이 웃는다. 역으로 표정이 웃으면 생각도 웃는다.  217


바보의 자유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디젤(DIESEL)'의 광고 문구 '.. 스마트한 이들에겐 뇌가 있지만, 바보들에겐 배짱이 있지. 스마트에게는 계획이 있지만, 바보에게는 이야기가 있지. 스마트한 이들은 비판을 하지만 바보는 행동하지. 당신은 바보를 앞설 수 없다. 바보는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른다...'  227
바보의 특징은 자꾸 묻는것이다.  244

聽(들을 청) - 왕의 귀(耳+王)로 듣고, 열개의 눈(十+目)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一+心)을 대하라.  252

철학자 칸트는 '시간은 하나의 인식 형식'임을 깨달았다. 삶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하나의 '인식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과학적으로 해명한다. 과거와 미래라는 것은 인간의 의식 안에만 존재할 뿐 우주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  261
'바쁘다'는 의미의 한자 '망(忙)'을 풀어보면 '마음(心)'과 '죽음(亡)' 즉, '마음을 죽인다'는 뜻이다.  262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인 '빨리빨리' 문화는 후발주자로 출발하여 선진국을 따라잡는 과정에서 조장된 현상. 
우리 민족은 얼마나 여유와 여백을 즐길 줄 알았던가. 그러면서 은근과 끈기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267

한 번에 한 사람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 마더 테레사
                                                                27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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