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 2장 - 포이어바흐를 넘어서 도달한 곳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게 내재된 추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본질이란 말뜻처럼 불변하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내는 앙상블과도 같다는 것이다. ... 개별 연주자들이 최상급 연주 실력을 뽐내도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에 녹아들지 못하면, 연주는 불협화으믕로 끝나고 만다. 앙상블 연주로는 완전히 실패한 셈이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인간을 솔로 연주자로 보지 말고 앙상블에 참여한 개별 연주자로 보자는 것이다. ... 마르크스는 ‘본질주의(Essentialism)’, 즉 개인이나 사물 안에는 본질이 내재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해체하고자 한다. 겉보기에 아ㅜ리 달라 보여도 서양철학 전통 일반은 모두 이 본질주의에 발을 걸치고 있다.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질주의 대신 마르크스는 ‘관계주의(Relationalism)’라고 부를 만한 입장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관계주의는 개인이나 사물 등 우리 눈에 식별되는 대상들이 아니라 직접 눈에 띄지 않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223-224
식사를 하던 아이가 귀가 가려웠는지 젓가락으로 귓속을 긁는다. 식탁에 있던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아이를 나무란다. “젓가락은 음식을 집어먹는 거야. 귀를 파고 싶으면 귀이개를 써야지.” 익숙한 밥상 풍경이지만, 여기에도 보질주의와 관계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젓가락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음식을 집어먹는 것’리다. ... 본질주의가 삶에서나 정치엣 항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주의는 본질이란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224-225
자유란 별게 아니다. 어떤 사물과 하나의 관계만 가능한 사람보다 서너 가지의 관계가 가능한 사람이 더 자유로운 법이다. 아이는 의자가 없어도 근사한 바위에 앉아서 쉴 수 있고, 사용하지 않는 냄비에 흙을 담아 꽃씨를 묻을 수도 있다. 물론 급하게 소변을 보고 싶으면, 아이는 신속하게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시원하게 소변을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어머니나 선생임의 훈육으로 사회적 규범에 동화되고 만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사회구조가 지정한 관계로만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말한 초자아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초자아라는 내적 검열지구가 작동하자마자, 모든 사물은 하나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이제 사물은 본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225-226
남편이 있는 아내나 아이의 엄마만을 강조하는 순간, 이 사람의 본질은 여성이 되고 만다. 혹은 이 삶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만 강조되는 순간, 이 사람의 본질은 프롤레타리아,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최악의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227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일조으이 본질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방적기, 목화솜, 공장, 그리고 노동자등 개별적인 대상들만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과 노동이란 관계, 원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본가는 돈으로 공장을, 방적기를, 목화솜을, 그리고 노동자를 산다. 면직물을 만들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반면 노동자는 일체의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박탈당해 노동력만 가지고 잇다.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한 노동자는 면직공장에 취업해야만 한다. 228
억압과 수탈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보자.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누군가 독점하는 순간, ‘3P의 삼각형(the triangle of 3P)’으로 작동하는 지배관계는 탄생한다. 먼저 소수가 부유해지면서 다수는 가난해진다. 첫 번째 P는 재산(property)이고 두 번째 P는 가난(poverty)이다 부유한 소수는 가난한 다수를 지배하게 된다. 세 번째 P는 권력(power)이다. 권력은 재산과 가난 사이의 관계를 영속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이자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이 원초적 관계를 지키려는 힘이다. ‘재산-가난-권력’으로 이루어지는 ‘3P의 삼각형’은 대부분의 인간을 자기 안에 감금해 피지배계급으로 포획한다. 3P의 삼각형이 만들어지면, 지배관계는 공고화된다. 그러니 권력을 해명하고 싶다면, 우리는 재산과 가난의 문제를 우회해서는 안 된다. 재산을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권력과 가난의 문제를 숙고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난을 해결하고 싶다면, 우리는 권력과 재산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재산과 가난이 분열되면서 권력을 낳고, 재산과 권력이 결합하면서 가난을 지속시키고, 마지막으로 권력이 가난을 적대시하면서 재산은 안정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사유해야 한다! 이것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배계급 이데올로그들은 소수의 재산과 다수의 가난이 서로 무관하다고, 소수의 재산과 소수의 권력이 서로 무관하다고, 나아가 소수의 권력과 다수의 가난이 서로 무관하다고 역설한다. 이 궤변을 다수의 가난한 자들이 받아들이는 순간, 억압과 착취의 체제는 승리를 구가하게 된다. 245-246
억압과 착취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소작농이 지주가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새로운 소작농을 양산하는 길일 뿐, 불평등한 관계 자체를 소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자본가가 생산과 생계의 절대적 수단, 즉 돈을 독점했기에, 노동자들에게는 팔 수 있는 노동력만 남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가-노동자’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의 처지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꿈은 단순하다 많은 임금을 받기를 꿈꾸거나 아니면 언젠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자본가가 되는 걸 꿈꾸게 된다. 자본가가 있기에 자기 삶이 비참해졌다는 것을 알았다면 노동자가 이런 헛된 꿈에 매진할 리 없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노동자’ 관계가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압받는 자들은 폐부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한다.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사유하라! 불평등한 관계가 다수를 “눈물의 골짜기”에 던져 넣었다면, 그 억압적 관계를 우리는 돌파해야만 한다. 넘어진 곳이 바로 우리가 일어나야 할 곳이다. 247
마르크스는 ‘인간의 감성’ 이외에 ‘실천적 활동’이란 의미를 강조했던 것이다. “실천적인 인간적-감성적 활동”으로서 감성은 우리의 몸적 인식이자 실천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언가 했더니 사람이로구나”라는 인식이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바위구나”라는 인식도 이미 이런 몸적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니 지성의 판단이나 개념의 자발성도 결코 몸과 무관한 정신만의 고유한 기능이 아니라, 엄격히 말하면 몸적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피지렌’이란 독일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비가 얼굴에 떨어지면 우리는 그걸 느낀다. 비가 우리를 촉발한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면 우리는 그걸 느낀다. 태양이 우리를 촉발한 것이다. 매혹저긴 향내가 나면 우리는 그걸 느낀다. 향기가 우리를 촉발한 것이다. “직관이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우리가 대상에 의해서 촉발되는 방식만을 포함한다는 것은 우리 본서으이 필연적 결과다.” 여기까지 칸트의 말은 옳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다. 그렇지만 우리 몸이 비오는 날 집 밖에 있었다는 사실, 우리 몸이 여름날 바닷가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몸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만큼 중요하다. 온몸으로 물을 느끼려면 대홍수가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저 계곡물이나 바닷물, 아니면 욕조물에 몸만 담그면 된다. ‘아피지렌!’ 그것은 무엉ㅅ보다도 특정 시공간을 점유하는 몸들 사이의 마주침이 전제된 것이다. 일단 마주쳐야 타자든 나든 상대방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53
산길을 걷다가 “무언가 했더니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이 인식을 바꾸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 “마음의 수용성을 감성”이라고 정의하면서 감성의 의미를 축소했던 칸트의 입장을 밀어붙이면 된다. 다시 말해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해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있으면 된다. 칸트가 감성의 능력을 ‘직관’이나 ‘관조’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직관’이나 ‘관조’를 뜻하는 독일어 ‘안샤우웅(Anschauung)’은 원래 동사 ‘안샤우엔(Anschauen)’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거나 바라본다’는 의미이기에 보통 ‘관조한다’는 말로도 번역된다. 결국 대상을 직관하거나 관조하는 칸트식 감성이 작동하려면, 우리 몸은 결코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X를 관조하면 “무언가 했더니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은 수정될 여지가 없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감성을 ‘직관’이나 ‘관조’의 기능에 국한하지 않고 “실천적인 인간적-감성적 활동”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칸트의 감성이 수동적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의 감성은 수동성과 능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몸적 인식, 혹은 실천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감성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지 않으면, ‘바위구나’라는 새로운 인식이 만들어질 여지가 없다. 254-255
역사적 인식은 무언가 사라지고 무언가 새롭게 생기는 과정에 대한 앎이다. 무엇이 사라졌을까? 무엇이 새롭게 생겼을까? 왜 사라졌을까? 이런 의문은, 오직 무언가 없어지고 무언가 새로 생기는 일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260
잊지 말자. 피지배계급의 무기력을 조장하거나 증폭시키는 주범은 항상 지배계급이라는 사실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배계급은 항상 원한다. 자기 의지가 관철된 모든 것을 피지배계급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관조하고 순응하기를, 이런 식으로 소수의 지배계급은 다수를 배제한 채 역사의 주체로 등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이어바흐적 관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수 피지배계급이 소수 지배계급에 필적할 만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다. 266
역사의식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토대로 우리가 실천의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의 공식처럼 기억해두자. 역사의식이 사라지면 우리는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 266-267
“우리는 단지 유일한 과학, 역사의 과학만을 알 뿐이다.” 마르크스가 남긴 유명한 명언 중 하나다. 이 문장이 담긴 전체 단락이 없어질 뻔했다니 섬뜩한 일 아닌가? 역사의 과학이다! 이것을 흔히 역사학이라고 불리는 과목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의 과학이란 정확히 말해 관조의 과학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역사의 과학이란 말은 인간의 모든 학문과 인식이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반면 역사학은 과거의 역사를 불변하는 팩트로 고정시킨다. 결국 역사의 과학이 가변성과 실천성을 강조한다면, 역사학은 불변성과 관조성에 기반을 둔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학마저 시대에 따라 부팀을 거듭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의 역사학과 지금 시대의 역사학이 동일한 과거를 다뤄도 그 함의가 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68-269
지금 배운 진리가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자각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적인 과학도들인 셈이다. 이들은 자연의 법칙을 새롭게 해명해 언젠가 교재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법칙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제 물리학은 ‘물리에 대한 역사 과학’, 화학은 ‘물질 변화에 관한 역사 과학’, 그리고 생물학은 ‘생물에 관한 역사 과학’의 줄임말이라고 생각하자. 진정한 물리학자는 물리를 관조하지 않고 실천적으로 개입하고, 진정한 화학자는 변화를 관조하지 않고 변화에 참여하며, 진정한 생물학자는 생물을 관조하지 않고 생명체의 거동에 관여한다. 과학자들의 이런 실천적 참여로 해당 과학의 내용은 급변한다. 그래서 자연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과학사라고 할 수 있다. 269-270
‘인류가 지구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시대’라는 뜻의 인류세는 1990년대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크뤼천(Paul Jozef Crutzen, 1933~)이 사용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 1900년에 16억 명이었던 인구는 2000년에 돌입하면서 60억 명을 돌파한 뒤 지금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다른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걷거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인간은 엄청난 규모의 숲도 없애고 거대한 댐도 만들고 대도시도 확장하고, 심지어는 기차와 자동차로 대지를, 비행기로는 대기를, 대현 선박으로는 대양을 가로지르고 있다. 환경오염 외에도 다른 종들이 살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협소해진 것이다. 현재 기린은 약 8만 마리, 늑대는 20만 마리, 침팬지는 25만 마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한정된 땅덩어리에 인류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생태 환경이 파괴됨에 따라 다른 생물들은 멸종으로 떠밀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나무늘보를 포함한 동물원의 동물 대부분은 멸종 위기 상태에 있다. 바로 이것이 인류세의 풍경이다. 인류가 멸종한 뒤, 다른 지적인 생명체가 지구의 역사, 혹은 자연의 역사를 탐구한다고 해보자. 아마 그들은 인류세를 방사능 물질, 이상화탄소, 그리고 플라스틱의 시대였다고 말할 것이다. 혹은 그들은 인류세를 보여주는 지층에서 엄청난 닭 뼈를 발견하고 경악할지도 모른다. 인류는 한 해 평균 600억 마리의 닭을 먹어치우니, 수백 년 동안 지층에 쌓인 닭뼈의 양은 무시무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274-275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류세라는 용어가 낳을 수 있는 오해와 관련된 것이다. 마치 인류가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나올 수 있으니까. 사실 중요한 것은 소수의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억압사회다. 대다수 인류를 생태 파괴의 현장으로 몰아넣고 동시에 그들을 자연 재앙에 제일 먼저 노출시킨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소수의 지배계급이다. BC3000년 전후 인간이 문자로 자기 역사를 기록한 이후 인류의 힘은 비약적으로 커졌고 문명은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억압체제는 외양만 바뀌었을 뿐 구조적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농업혁며으이 시대냐 산업혁명의 시대냐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농업경제 기반의 억압사회가 산업경제 기반의 억압사회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토지가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이란 절대적인 지위를 돈에 양보하고, 지주는 지배계급의 권좌를 자본가에게 물려주고, 그와 동시에 농민, 천민, 혹은 여성 등은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박탈된 새로운 인간형, 즉 노동자라는 새로운 피지배계급이 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지배계급은 두 종류의 착취를 지속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하나는 동료 인간을 착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지배계급을 매개로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세라는 표현은 수정이 필요하다. ‘지주-농민’이란 사회적 관계를 대신해 등장한 ‘자본가-노동자’란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토양과 하천, 나아가 바다까지 오염시키는 방사능 물질. 대기를 치명적으로 교란하는 이산화탄소. 깊은 바닷속 어패류의 소회기관에까지 침투한 플라스틱 조각들. 농업경제 시절 짐작도 못할 정도로 인류는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진정한 원인은 인류 전체가 자본주의체제에 포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자본세(capitolocene)’로 바꾸자는 논의가 나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 용어는 스웨덴의 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마름(Andreas Samuel Magnus Malm, 1977~)이2009년 처음 사용했지만, 그와 무관하게 해러웨이(Donna J. Haraway, 1944~)가 2012년 대중강연에서 독립적으로 사용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환경 파괴의 원인을 막연히 인간 전체로 돌릴 위험이 있다. 이 용어는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이 사라져야 생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인류세라는 용어보다 자본세가 더 좋다는 것이다. 생태계 교란과 파괴의 책임은 자본주의체제를 주도하면서 잉여가치에 대한 맹목적 충동에 사로잡힌 자본계급에게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자본계급이 다수의 인간과 지구 환경을 수탈하고 착취하고 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 아닌가? 이에 비해 자본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노동 계급, 나아가 자본주의체제와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환경 파괴의 피해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어떻게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할 것인가?” 2015년 해러웨이가 자본세라는 용어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스루센(Chthulucene)’이란 용어를 다시 만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간이 부분으로 속해 있는 힘들(forxe)과 역능들(powers),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지구와 함께하는 이런 힘과 역능들에는 하나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나는 주장했다. 물론 지금 이 지속성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아마도, 정말 아마도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들이 풍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시대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과거든, 현재든, 그리고 미래든 이런 시대를 커스루센이라고 부르고 있다. 커스루센은...... 지구 도처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촉수적인(tentacular) 역능들과 힘들, 그리고 서로 모여 사는 사물들(collected things)을 본떠 만든 말이다. ...... 커스루센은 적어도 하나의 (물론 하나 이상의 함의를 갖는) 슬로건을 요구한다. ...... “아이를 만들지 말고 친족을 만들어라(Make kin not Babies)!” ...... 지구를 함께 공유하면서 (sym-chthonically),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면서(sym-poetically) 우리는 친족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를 지구에 속한 것들과 함께 만들고 생성하고 구성해야만 한다. 나는 친족의 확장과 재구성이 모든 지상의 것들이 가장 깊은 의미에서 친족이라는 사실로 긍정된다고 생각한다. ...... 모든 생명체는 수평적으로, 기호학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공통된 ‘살(flesh)’을 공유하고 있다. 조상들은 매우 흥미로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친족은 (우리가 가족이나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바깥에 있기에) 익숙하지 않고, 기묘하고, 매력적이고, 능동적인 것이다. 작은 슬로건에 너무 많은 것을 부여했다는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노력해야만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지나면 아마도 이 혹성의 인간종은 다시 20억이나 30억으로 줄어들고, 동시에 지금까지 목적만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다양한 인간 존재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니라, 친족을 만들자!’ - <인류세, 자본세, 플렌테이션세, 대지세 : 친족 만들기(Anthropocene, Capitalocene, Plantationocene, Chthulucene : Making Kin)>
<환경 인문학(Environmental Humanities)>(2015, 6번째 권)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자연의 역사, 즉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산업 자본주의체제와 거기에 포획된 인류의 힘을 우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시대를 규정하려는 다양한 용어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류세란 용어가 막연히 인류의 힘을 강조했다면, 자본세는 자본주의체제의 무한한 탐욕을 강조한다. 나아가 2014년 덴마크 오르후스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에는 플래ㅐㄴ테이션세라는 용어가 제안된 적이 있다. 이 용어는 제3세계 국가에 다국적 자본들이 만든 수많은 플랜테이션들이 생태 파괴의 주범이라는 걸 강조한다. 플랜테이션이라고 불리는 기업화된 농장들은 생태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거의 노예제에 가까운 노동조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했으니까. 플랜테이션세라는 용어는 전체 인간 세계가 하나의 자본주의체제로 묶이면서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 사이의 관계에도 ‘자본가-노동자’라는 관계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자신들의 공장을 제3세계 국가들로 이식하면서, 유럽에만 국환된 생태 문제를 전 지구적 문제로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인류세든 자본세든, 아니면 플래네이션세든 모두 지구 환경 파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하는 용어다. 인류세가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고, 자본세가 자본주의체제의 폐단을 강조하고, 플랜테이션세가 자본의 세계화가 낳은 재앙을 경고한다. 이런 용어들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해 생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커스루센’이란 근사한 용어를 고안한 것이다.
2016년 저서 <곤경과 함께하기(Staying with the Trouble)>에서 그녀는 커스루센이란 용어가 ‘지상의’, 혹은 ‘대지의’라는 뜻의 희랍어 ‘크토니오스(khthonios)’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굳이 번역하자면 ‘대지세’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지세는 하나뿐인 지구에 모든 생명체가 서로 공존하며 사는 시대,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들이 풍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시대”를 가리킨다. 여기서 대지세라는 용어가 인류세나 자본세, 혹은 플랜테이션세와는 다른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산업자본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걸 극복한 싣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인류세, 자본세, 그리고 플랜테이션세가 ‘구성적인(konstitutiv)’ 용어였다면 대지세는 ‘규제적인(regulativ)’ 용어였던 셈이다. 대지세는 산업자본주의시대를 해명하려는 용어가 아니라 산업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 이루어야 하는 시대를 뜻하니까 말이다. 해러웨이가 대지세를 위한 실천적 강령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를 만들지 말고 친족을 만들어라!” 해러웨이의 요구를 친족이 아닌데 친족을 억지로 만들라는 이야기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에 따르면 “모든 지상의 것들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친족이고, ...... 모든 생명체를 수평적으로, 기호학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공통된 ‘살’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공통된 살! 그건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지구를 가리킨다. 죽은 몸이나 혹은 무생물에게는 살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과 무관하게 지구가 살아 있다는 의미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생명체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있기에 지구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친족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라고 요구한다. 인간은 이미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확인되는 인간중심적인 사유, 인간은 자연 바깥에 존재하며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존재라는 사유에서 벗어나라는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다른 종의 생명체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며체는 수평적으로, 기호학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공통된 ‘살’을 공유하는” 대등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녀가 왜 아이를 만들기보다는 친족을 만들라고 요구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내 아이’, 혹은 ‘우리 아이’라는 소유의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농업경제 시절 생겼단 오래된 인간중심주의다. 아이들, 특히 남자 아이를 선호한 이유는 그만큼 농사일을 감당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맥에서 부모와 자식은 양유고가 부양이란 교환관계에 묶이고, 이로부터 가족이란 배타적인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런 배타성이 어떻게 “공통된 살”을 공유하는 삶과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와 ‘친족’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 낳은 아이든, 남이 낳은 아이든, 아니면 나무늘보든 가시연꽃이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공통된 살을 공유하는 친족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렇게 친족이 많아지면 인간이 구태여 많은 아이를 낳을 이유가 있을까? 자기편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 해러웨이가 꿈꾸는 대지세에서 인간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친족관계를 이루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은 충만함에 둘러싸일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대지세에 돌입한 지구의 미래를 조심스레 다음처럼 묘사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지나면 아마도 이 혹성의 인간종은 다시 20억이나 30억으로 줄어들고, 동시에 지금까지 목적만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되었던 다양한 인간 존재들과 다른 생명체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275-281
친족이 된다는 것! 해러웨이의 칸트식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을 “단지 목적만이 아니라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말 그것들과 친족이 되면, 어떻게 우리가 자본주의체제에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잉여가치 확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다수의 인간뿐 아니라 자연 전체를 수단으로 치부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체제니까. 282-283
거리를 두고 사람을 관조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삶에 뛰어드는 것!
후자는 전자가 줄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그중 중요한 것 두 가지만 언급해보자. 첫째, 타인들의 삶에 뛰어들면 누구나 자신의 과거 관계를 자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그 누구도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에 돌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자신처럼 타인들도 자신만의 고유한 관계와 역사를 전제한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첫인상이나 직업 등 그에 관한 표면적인 정보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그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과거에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 역사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가야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걸, 나아가 자신이 특정 삶의 형식에 따라 살았다는 걸 자각하는 법이다. 결국 타인들의 삶이 낯설어 보였던 이유는 우리 자신이 특정 사회관계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낯선 도시를 관광하는 것보다 그곳에 사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낯선 사람들이 내면화한 관계와 우리 자신이 내면화한 관계가 우리 자신이 내면화한 관계가 모두 드러나니 말이다. 290-291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영위되는지에 관한 진실 말이다. 이렇게 되물어보자. 지금 우리의 일상적 삶은 관광객이 아니면서도 관광객처럼 영위되고나 있지 않은지. 292-293
이제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우리는 관광객이지 않은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생산하는지, 그리고 그 상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지 않으니까. 심지어 우리는 직장 동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잇는지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업무상 관계로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달러나 신용카드처럼 월급은 직장관계의 유일한 혈액이 된다. 가족들과 함께할 때도 우리는 관광객이지 않은가? 시부모가 친정부모도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들을 고립된 개인들로 식별하고 관조하고 있으니까. 돈과 선물이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가느다란 끈이 되고 만다. 편의점이나 카페, 극장 등에 들를 때도 우리는 관광객이지 않은가? 계산을 해주는 젊은 이들이나 안내를 해주는 젊은이들의 내면과 그들의 역사를 읽으려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돈을 받은 만큼 그에 어울리는 서비스를 행해야만 하는 사람들로 보일 뿐이니까. 여기서는 돈과 신용카드가 유일한 연결 줄이 된다.
여기에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 우리의 관광객 모드는 그야말로 정점을 찍게 된다. 파리의 시위 현장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것처럼, 이제 액정화면은 마치 영화를 보듯 세상을 관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댓글을 달면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 공감하고 악당을 욕하는 행위와 어떻게 다른가? ‘사변적 관조’가 아니라 ‘감성적 활동’이다. 관광객적 인식이 아니라 주체적 인식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모두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규정되어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다. 소망스럽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모색하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이 어떤 관계에 포획되어 있는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293-294
관계의 변화가 바로 역사의 동력이다. 아니 더 단호하게 말한다면 관계의 변화 자체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94
그렇다고 관계와 역사를 파악하는 일이 만만하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고립된 두 개체만 보일 것이다. 한 사람은 안경을 착용한 30대의 젊은 여성으로 청바지를 입고 있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타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편안한 차림의 캐주얼 복장을 한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여기까지가 포이어바흐의 직관적 유물론이 적용되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나아가 두 사람이 각각 과거에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아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주 천천히 두 사람을 관찰해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남성이 손을 들어 여성의 어깨를 감싼다면, 우리는 쉽게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둘은 언제 어디서 만났을까? 둘은 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연인일까, 아니면 부부일까? 그것도 아니면 불륜관계일까? 벤치의 관찰마으로 해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관찰해야 하고, 나아가 그들이 남긴 과거 흔적들을 찾아 헤매야만 한다. 294-295
‘3P의 삼각형’을 기억해보라. 권력(power)은 재산(property)과 가난(poverty)을 통해서 형성되고 재산과 가난 사이, 즉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 사이의 위계를 지키는 기능을 한다. 297
1863년 1월 1일 당시 미국 북구 비역의 지지를 받던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노예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발표한다. 1861년 4월 12일 시작된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이 북부 지역이 승리로 끝나리라는 확신을 링컨이 피력한 셈이다. 흔히 남북 전쟁은 인권과 자유의 전쟁이고, 링컨은 민주 투사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남북전쟁의 이면은 인궈느 자유, 혹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북전쟁은 산업자본주의체제에 맞게 값싼 노동자가 필요했던 미국 북부 지역과 목화농장을 위해 400만의 흑인 노예가 필요했던 미국 남부 지역 사이의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고대사회와 부르주아사회가 기이하게 병존했던 신대륙 국가 미국은 1965년 4월 9일 북부 지역의 최종 승리로 400만 흑인 노예를 흑인 노동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해방된 흑인 노예뜰은 이미 노예로 태어난 노예 1세대의 까마득한 후예들에 지나지 않는다. 1619년 처음으로 흑인 노예 19명이 영국 식민지였던 북미대륙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들어온 이후로 수많은 노예선이 엄청난 흑인 노예를 실어 날랐다. 조상들의 땅 아프리카는 상사도 할 수 없는 그저 까마득한 전설의 땅에 지나지 않았기에, 해방된 흑인들 대부분은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가진 것이 몸뚱어리밖에 없었던 그들로서는 노동계급으로, 그것도 쵷ㅎ하의 노동계급으로 편입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것이다.
관계의 변화가 역사의 핵심이다! 문제는 그 관계가 억압적 관계라는 데 있다. BC 3000년부터 지금까지 지배계급은 억압의 양상을 변화시키면서 억압적 관계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해왔다. 역사의 발전을 외치는 모든 지식인이 기본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그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과거보다 지금이 낫고, 지금보다 미래가 낫다는 진보의 이념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극복하고 농노제가 들어온 것도 진보이고, 농노제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체제가 들어온 것도 진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수 지배계급과 다수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된 근본적 억압구조는 조금도 변한 적이 없지 않은가. 단지 지배계급이 노예주에서 영주로, 그리고 자본계급으로 그 스타일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노예는 목줄에서 벗어났지만 땅에 묶인 농노가 될 수밖에 없었고, 땅에 묶인 농노는 돈에 목을 매는 노동자가 되었을 뿐이다. 300-301
3P의 삼각형이 노예 재의 얼굴로 나타나자, 그 자유정신은 노예제와 맞서 싸웠다. 로마제국의 노예제에 도전했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Spartacus, BC 111?~71)와 6만의 해방된 노예들이 바로 그들이다. 3P의 삼각형이 농노제로 변형되자, 이번에 그 자유정신은 농노제와 맞서 싸웠다. 1534년 에서 1535년까지 제빵사 얀 마티스(Jan Matthys, 1500?~1534)와 재단사 얀 반 레이덴(Jan van Leiden, 1509~1536) 등이 이끄는 재세례파가 독이 ㄹ뮌스터에 억압이 없는 공동체, 즉 코뮌을 구성해 봉건체제와 맞서 싸웠던 것이다. 3P의 삼각형이 이번에는 자본주의체제로 변신하자, 다시 자유정신은 이 자본주의체제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 1871년 3월 18일에서 5월 28일까지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 1805~1881)의 정신으로 무장한 파리 시민들이 파리 코뮌으로 부르주아 정권과 맞섰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조금의 오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스파르타쿠스 군단은 노예제 대신 농노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얀 마티스와 얀 반 레이덴이 농노제 대신 자본주의체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파리코뮌 전사들 역시 자본주의체제 대신 스탈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원했던 것은 코뮌, 즉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였을 뿐이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스파르타쿠스가 1871년 파리에 있었다면 자본주의체제와 맞서 싸웠을 것이고, 얀 마티스와 얀 반 레이덴이 BC 72년 로마에 있었다면 자유군단에 속했을 것이고, 블랑키가 1535년 독일 뮌스터에 있었다면 봉건체제의 포위를 뚫으려고 분투했을 것이다. 301-303
노예제는 노예가 스스로 자유인이 되었을 때 소멸되는 것이지, 누군가가 자유를 부여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니까. 남이 허락한 자유는 언제든 바로 그 사람에 의해 취소될 수 있다. ... 자유인은 스스로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그래야 누군가 자유를 뺏으려 할 때 그에 맞서 싸울 수 있으니까. 308
포이어바흐! 그는 관계도, 그리고 역사도 인식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저 자신 앞에 있는 것을 관조했던 순진한 철학자였다. 그가 로마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노예는 노예로, 귀족은 귀족으로 보았을 것이다. 노예는 귀족의 발을 씻겨주고, 귀족은 역사와 삶을 논하는 풍경을 그저 당연한 이치로 여겼을 것이다. 주인뿐만 아니라 로마제국과 맞섰던 스파르타쿠스를 보았다면, 그는 이걸 일회적 사건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사실 노예가 주인에게 반기를 드는 사건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권력이 귀족들의 노예 소유권을 공권력으로 확실히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노예와 자애로운 귀족 사이의 조화와 평화, 그리고 질서는 이렇게 억압적으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는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로마 제국의 피 묻은 뼈대, 즉 고대사회의 사회적 관계와 그 역사를 백일하에 폭로한 사건이다. 포이어바흐는 스파르타쿠스를 통해 고대사회 전체를 지탱했던 억압구조를 간파했어야 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것을 일시적 일탈로만 보았으리라.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유물론자인 한 포이어바흐는 역사를 다룰 수가 없고, 역사를 고찰하는 한 그는 결코 유물론자가 아니다. ... 마르크스의 이야기처럼 포이어바흐의 직관적 유물론은 “역사와는 완전히 결별되어”있는 절름발이 유물론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309-310
불행한 것은 봉건사회에 태어났어도 직관적 유물론자로서 포이어바흐의 길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귀족의 거대한 농장에서 농노들이 올리브를 수확하는 장면이나 아니면 귀족의 저택에서 주인의 발을 씻겨주는 농노의 부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조화롭고 평화로운 풍경화처럼 보였을 것이고, 여우 사냥을 즐기러 나온 영주를 보고 잠시 농사일을 멈추고, 경의를 표하는 농노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화로 들어왔을 테니 말이다. 물론 간혹 소작료에 저항하는 농노도 나오겠지만, 포이어바흐는 이것도 일시적 일탈로 치부했을 것이다. 영주와 농노를 관조하는 그에게 땅을 미리 독점해 무위도식할 수 있는 영주의 계급성이 보일리 없으니까. 직관적 유물론의 맹점은 부르주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미 부르주아사회로 돌입한 19세기 부르주아국가 독일에서 태어났기에 포이어바흐의 눈에는 도자기공장, 자기 장인과 아내와 같은 자본계급, 그리고 노동자들이 평화로운 풍경화처럼 들어온다. 아내와 자신은 가까운 냇가에서 돗자리를 깔고 일몰을 응시하고 도자기공장에서 노동자들은 휴식시간에 해맑게 대화를 나눈다. 혹은 그가 공장에 들르기라도 하면 그곳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밝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인사는 건넨다. 물론 그 자신도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걸 잊지 않는다. 자본가는 자본가이고 노동자는 노동자일 뿐이고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수탈관계를 볼 수 없기에 그의 마음은 편하기만 하다. 파업이라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져도, 포이어바흐에게 있것은 노동자들의 일시적 일탈로 보일 뿐이다. 그는 노동자의 파업이 부르주아사회의 억압적 구조가 드러나는 징후라는 걸 알 수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세계를 관조했던 대가는 이렇게 치명적이다. 자신도 모르게 포이어바흐는 부르주아사회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310-311
실천이 아니라면 삶에서 남는 것은 과조일 뿐이다. 312
‘낡은 유물론의 입장(Standpunkt)은 ‘부르주아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장은 ‘인간사회(menschliche Gesellschft)’ 또는 ‘사회적 인간(gesellschaftliche Menschheit)’이다. -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 10
...
마르크스의 “사회적 인간”이란 개념. .. 인간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사회에 참여하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고,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인간사회”는 “사회적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생각이다. 312-313
스파르타쿠스 군단이, 뮌스터코뮌이, 파리코뮌이 원했던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혹은 마르크스의 새로운 유물론이 서고자 했던 인간사회는 단호하게 분업체계와 배타적 활동을 거부하는 공동체다. 318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가 지향하는 두 가지 원칙만 확인하면 되니까. 첫째,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 한 사람이 생산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전체가 생산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는 그 일을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자유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생산의 사회성과 노동의 자유! 인간사회, 혹은 사회적 인간의 두 다리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참된 현실적 공동체(der wirklichen Gemeinschaft) 속에서, 각 사람들은 그들의 연합(Assoziation) 속에서, 그 연합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자유(Freiheit)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19
BRIDGE - 다시 불러보는 인터내셔널의 노래
<인터내셔널 찬가>
일어서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여!
일어서라! 기근의 죄수들이여!
이성은 화산처럼 요동친다.
이것은 종말의 분출이다.
과거를 백지로 만들자.
노예가 된 대중들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세계의 토대가 바뀌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다.
<코러스 ; 마지막 싸움이다.
함께 모이자, 그리고 내일
인터내셔널은
인류가 되리라.>
최상의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도 아니고, 케사르도 아니고, 호민관도 아니다.
생산자들이여! 스스로를 구하라.
공동의 구원을 포고하라!
도둑이 자기가 먹은 것을 토해내고
정신이 자기 감옥에서 풀려나올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풀무질을 하고,
뜨거울 때 쇠를 두드려라.
<코러스>
국가는 억압하고, 법은 기만하고
세금은 피 흘리게 한다, 불운한 자들을.
어떤 의무도 부유한 자에게 부과되지 않고
가난한 자의 권리는 공허한 말일 뿐.
감시는 충분히 힘들 만큼 견뎠다.
평등은 다른 법을 원한다.
의무 없이는 권리도 없다고 새로운 법은 말한다.
평등하게 권리 없이는 의무도 없다고.
<코러스>
찬양에 몸을 숨긴
광산의 왕들과 철도의 왕들!
그들은 지금까지 노동을 훔치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했었나!
도둑들의 견고한 금고 안에는
노동이 창조했던 것들이 들어가 있다.
그 도둑들에게 그걸 되돌려주라고 명형하자.
민중들은 단지 자기 몫만 원할 뿐.
<코러스>
왕들은 우리를 연기에 취하게 했다.
우리 안의 평화, 폭군에 대한 전쟁!
군대들이 파업해,
진압을 포기하고 서열을 해체하도록 만들자!
만일 그들이 완강히 버틴다면, 이 카니발들은
우리를 영웅으로 만들 것이고,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총탄이
우리 장군들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코러스>
일꾼들이여! 농민들이여! 우리는
노동자들의 가장 큰 부분이다.
대지가 인간들에 속할 때만.
게으른 자는 다른 곳에 머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살을 그들은 소진시켰는가?
그러나 성직자들, 고리대금업자들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태양은 언제나 항상 빛나리라.
<코러스>
- <인터내셔널 찬가> (1871) 323-325
역사철학 2강 - 파리코뮌을 보아버렸던 시인 랭보
70여 일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된 파리코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찬란했던 순간에 랭보는 코뮌의 핑크빛 후광을 받은 파리와 파리 시민들을 가장 자연적으로 그리고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겁니다. 그러나 70여 일이 지나 파리코뮌이 괴멸되고 과거의 위계 질서가 복원된 뒤 돌아보면, 1881년 3월 18일에서부터 5월 28일까지 존속했던 그 찬란했던 시간은 마치 꿈인 것처럼, 마치 상징인 것처럼, 마치 초현실적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냥 간단히 이렇게 정리해보죠. 파리코뮌 시기에 랭보의 시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자연적인 것이었다고, 그렇지만 그 찬란했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이제 그의 시는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이런 착시효과는 현재 우리의 의식에도 그대로 적용되죠. 파리코뮌의 인문주의나 민주주의에 온몸으로 공명하는 독자라면 랭보의 시는 심장을 바로 뛰게 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감동을 바로 전달할 겁니다. 반대로 권위적인 정치질서나 신자유주의로 노골화된 자본주의체제에 적응한 독자라면 래보의 시는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으로, 그만큼 난해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간신히 머리로만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343
지배계급의 눈치를 보면서 피지배계급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는 순간, 문학은 그리고 시는 억압체제에 대한 찬가가 됨. 352
‘주관적 시’는 객관에 대한 투철한 인식 없이, 그냥 주관이 백일몽을 꾸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강철 덩어리가 물에 둥둥 뜨는 몽상에 빠지고 희희낙락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죠. 반면 ‘객관적 시’는 실현 불가능한 백일몽이 아니라, 세상을 변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객관적 시’는 강철의 속성들을 정확히 알고, 그 속성을 어기기는커녕 그걸 이용해 물에 뜰 수 있는 강철 배를 설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객관적 시’가 가능하려면, ‘객관(=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인식이 없다면 아무리 ‘객관적 시’를 썼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 ‘주관적 시’로 전락할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객관(=대상)’을 정확히 인식한 사람이 없다면, ‘객관적 시’는 불가능한 법입니다. 바로 이것이 랭보가 “저는 시인이 되고 싶고, 스스로 견자(見者, voyant)가 되려고 분투하고 있다”(<1871년 5월 13일 이장바르에게>)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견자는 글자 그대로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 의지나 바람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나 바람을 좌절시키면서 내 앞에 주어진 것을 봐야 합니다. 만일 내 의지나 바람, 혹은 감정에 따라 본다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관적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대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지 않더라도 대상이 보라고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견자입니다. 결국 견자가 되려면, 우리는 이미 훈육되어 익숙한 사유나 감정들, 혹은 우리 내면에 이미 각인되어 작동하는 견해나 감정, 그리고 의지를 해체해야만 합니다. 랭보가 견자가 되는 방법으로 “모든 감각들의 착란”을 이야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354
이것만 보고 저것은 보지 말라고 하는 체계는 우리를 훈육하고, 그 결과 우리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것마저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보지 말라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에게는 불안감과 불쾌감이 엄습할 겁니다. 보이는 대로 보려면, 아니 정확히 말해 이렇게 보라고 강요하는 대상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감각의 질서를 규정하는 지배적인 사유체계와 가치체계를 전복해야만 합니다. 결국 견자가 된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로 태어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노예로 자처했던 노동자들이 당당히 주인이라고 선언했던 것이 파리코뮌이라면, 체제가 강요하는 감각들의 질서를 뒤죽박죽 만드는 것이 바로 랭보의 견자였던 셈입니다. 감각들의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되었을 때, 그가 보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가 보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이것이 랭보가 말한 ‘미지(l’inconnu)’입니다 한국어로 ‘미지의 것’으로 번역된 프랑스어 ‘랭코뉘(l’inconnu)’는 이외에도 ‘보잘것없는 것’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무언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미지’라는 뜻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란 의미가 훨씬 더 랭보가 말한 ‘랭코뉘’의 뜻에 가까울 듯합니다. 355
랭보가 제안했던 ‘견자의 미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자유로운 주체, 즉 견자가 되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을 보게 된다고 말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을 보게 된 견자가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랭보가 말한 ‘객관적 시’는 바로 이렇게 탄생하게 되지요. 356
그(랭보)에게 “시인은 진실로 불의 도둑”. 제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프로메테우스! 시인은 바로 프로메테우스 같아야 한다는 겁니다. 권력자나 지배계급의 불이 힘이 있는 이유는 다수 피지배계급에게 불이 없어서 입니다. 어둠 속에서 공포와 탄식의 삶을 피지배계급이 영위하는 것도 지배계급이 불을 독점했기 때문이죠. 프로메테우스처럼 그 불을 훔쳐 피지배계급에게 가져와 암흑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이 갈 길을 명료히 보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소임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죠. “인류, 심지어는 동물까지도 모두 짊어지는 것!”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그리고 1871년 랭보가 감당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357-358
랭보는 관료들과 글쟁이들을 작가, 창작자, 시인과 구별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규칙, 기존의 이성, 혹은 기존의 사유에 따라글을 쓰는 사람들이 바로 관료들이나 글쟁이들입니다. 그러나 감각들을 착란시켜 기존의 규칙, 이성, 사유를 전복시켜서 감각들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글들이 출현할 수 없는 법이지요. 바로 이래야 진정한 시인, 혹은 진짜 시인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요. 반대로 가짜 시인도 존재하죠. 그것은 관료처럼 글을 쓰는 시인들, 과거 위대한 시들에서 규칙과 테크닉을 축출해 그에 따라 시처러 ㅁ보이는 시들을 쓰는 시인일 겁니다. 진정한 시인은 이런 식으로 탄생할 수 없습니다. 358-359
기존 사유에서 해방된 감각, 혹은 착란된 감각으로 세계를 느끼는 사람이 견자라면, 이렇게 느낀 세계에 새로운 언어를 부여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작가이자 창작자, 그리고 랭보의 경우에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들의 착란으로 기존 사유가 붕괴됩니다. 자유와 해방은 바로 여기서 가능해지는 셈이지요. 바로 이 해방된 감각들의 힘으로 견자는 세계를 보게 됩니다. 359
관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주관적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견자의 삶이나 시는 무언가’비규범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고, 당연히 저주받고 모욕당하기 쉽지요. 359-360
파리코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나 지금 새로운 코뮌을 꿈꾼느 사람들의 눈에는 랭보의 작품은 너무나 규버적이고 쉬워 보일 겁니다. 반대로 파리코뮌을 부정하거나 애써 회피하면서 자본, 국가, 종교에 포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랭보의 시는 비규범적이고 난해해 보일 테죠.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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