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해당되는 글 542건

  1. 2015.07.06 책과 집 - 데이미언 톰슨 오브제 2011 13980
  2. 2015.03.11 소비를 그만두다 - 히라카와 가쓰미 더숲 2015 03300
  3. 2015.03.09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 열린책들 2012
  4. 2015.03.07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민음사 2004 04800
  5. 2015.03.0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2012 03840
  6. 2015.03.04 자발적 복종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생각정원 2015 03300
  7. 2015.02.27 여행 정신(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삐딱한 안내서 -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 책세상 2013 03800
  8. 2015.02.09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 로버트 고든 펜타그램 2014 13980
  9. 2015.02.07 슬로우 육아 - 헤르베르트 렌츠 폴스터 부키 2013 13590
  10. 2015.01.05 엄마 무릎 학교 - 하정연 위고 2014 13590
  11. 2015.01.02 아빠 양육2 - 강현식 youRBook 2012 13590
  12. 2015.01.01 엄마랑 아이랑 제주에서 한 달 - 이연희 미디어 윌 2014 13980
  13. 2014.12.31 아지아빠의 좌충우돌 초보 불량 육아일기 - 장정수 푸르름 2014 13370
  14. 2014.12.30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 홍창욱 북하우스 2014 13590
  15. 2014.12.29 닥치고 군대 육아 - 김선미 RHK 2014 13370
  16. 2014.12.27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 - 김선미 무한 2012 13370
  17. 2014.12.26 태평육아의 탄생 - 김연희 양철북 2012 03810
  18. 2014.12.24 아빠를 키우는 아이 - 박찬희 소나무 2013 03810
  19. 2014.12.23 분노한 사람들에게 - 스테판 에셀 뜨인돌 2012 03340
  20. 2014.12.22 아크라 문서 -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3 03870
  21. 2014.12.20 단테의 신곡 - 다니구치 에리야 엮 황금부엉이 2004 03830
  22. 2014.12.19 마흔의 서재 - 장석주 한빛비즈 2012 13320
  23. 2014.12.18 철학자와 하녀(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 고병권 메디치 2014 03100
  24. 2014.12.17 삶을 위한 철학수업(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 이진경 문학동네 2013 04100
  25. 2014.12.16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 임승수 시대의창 2010 03130
  26. 2014.12.15 철학에게 미래를 묻다 - 안광복 휴머니스트 2012 03100
  27. 2014.12.12 자기 앞의 생(生) -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003 03860
  28. 2014.12.11 망각과 자유, 장자 읽기의 즐거움 - 강신주 갈라파고스 2014 03100
  29. 2014.12.10 나는 길들지 않는다(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 마루야마 겐지 바다출판사 2014 03800
  30. 2014.12.09 다윗과 골리앗: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 말콤 글래드웰 21세기북스 2014 13320



들어가는 말 

서가를 들여다보면 주인의 흥미와 성격이 보인다. 

캐나다 소설가 로버트슨 데이비스는 말했다. "진정 위대한 책은 어려서 읽고, 커서 다시 읽고, 점심 때 보고, 달빛 아래 다시 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들이 집안 장식은 필요한 만큼의 책꽂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작가 애나 퀸들러(Aanna Quindle)



"책은 가구가 아니지만 그만큼 집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것은 없다." 19세기 중반 성직자 헨리 워드 비처의 말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전부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보는 눈이다." 에머슨



우리가 평생 동안 읽은 책들은 우리의 취향, 관심사, 과거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데, 그런것을 내보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평가 애너톨 브로야드의 말, "나는 책을 빌려줄 때, 결혼하지 않고 남자와 동거하는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된다."



"책을 친구 삼으라. 그대의 책꽂이가 유원지가 될게 하라." 12세기 유대인 철학자 유다 이븐 티본



미국 성직자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은 <읽지 않은 책들> 에서 책꽂이가 부족해 목수를 불렀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목수가 그에게 "정말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도구 상자에 있는 도구들을 다 쓰시오?" 물론 아니다. 도구란 나중에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재는 읽은 책을 보관해두는 곳이 아니라 필요할 때를 대비하는 공구상자에 가깝다.  



서적광-그는 독서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은 서재를 채우기 위한 사냥을 포기하지 못한다. 책에 대한 열망은 가려운데도 긁을 수 없는 부위와도 같다. 작가 발터 베냐민이 보았듯 "어떤 사람들은 책을 잃어버렸을 때 환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책에 대한 욕망 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좀 더 균형 잡힌 수집가들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책을 수집한다.  



100여년 전 하버드 대학 총장 찰스 W. 엘리엇은 정전의 개념을 한층 다듬었다. 그는 하루 15분 동안 정선된 책 50권을 읽으면 누구나 훌륭한 '교양 교육'을 받은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 50권의 책은 이후 하버드 클래식 '5피트짜리 책꽂이' 시리즈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플라톤, 밀튼, 벤저민 프랭클린, 다윈, 단테, 애덤 스미스,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앤 패디먼은 매력적인 에세이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 자신과 남편의 책 정리법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남편의 책은 문학이라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깃발 아래 자유롭게 뒤섞여 있다. 수직으로 세워진 것도 있고 수평으로 뉘어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다른 책 뒤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내 책은 국적과 주제별로 발칸 반도처럼 분열되어 있다."

이런 문제에 간단히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은 장르별(예를 들면, 예술, 여행, 과학, 디자인)로 책을 나누고, 같은 장르 내에서 다시 작가명 순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보기 좋은 쪽이 사용하기 좋은 쪽보다 중요하다면) 새뮤얼 피프스가 자신의 책 3천 권을 정리했던 방법대로 크기별 혹은 색깔별로 정리한다.



독자가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면, 책은 영혼의 음식이다. 

1980녀대 말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의 확산을 반대하며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한 카를로 페트리니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아르마니 바지를 입는다 해도 바지가 내 일부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햄 한 조각을 먹으면 햄이 내가 된다. 그것이 내가 음식에 돈을 쓰는 이유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사무실에서 힘든 한 주를 보낸 뒤, 멍청한 텔레비전 앞에 앉아 괴상한 즉석식품을 먹으며 쉰다. 하지만 이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전자레인지의 '띵'하는 소리, 미리 녹음된 TV의 웃음소리는 정성껏 조리된 찜요리와 잘 쓰인 소설 한 편이 주는 심오한 만족감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소설가 해럴드 브로드키는 좋은 책에 빠지는 것을 연애에 비유하면서, 책 읽기란 "그 경험 안에 파묻혀 있고, 곧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임신과도 비슷하다고 햇다. 한 세기 전에 랠프 월도 에머슨은 "책은 치료 효과가 좋고, 가혹하고, 혁명적이고, 믿을 만하다는 점에서 인생으로 치면 부모와 애인, 연애 경험들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고 썼다.  



"책이 없는 집은 창이 없는 방과 같다. 책을 살 돈이 있는데도 아이들 주변에 책을 두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청소년기에는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책이 인생의 진로뿐만 아니라 인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탈로 칼비노가 썼듯이, "그것은 미래의 경험에 하나의 츨을 제공하여 하나의 모범, 비교의 대상, 분류의 틀, 가치 척도, 미의 전형을 마련해 준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읽은 책은 내용을 잊어버려도 영향력이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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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소비자본주의가 전성기를 맞은 지금, 소비에 관해 정면으로 부딪히며 따져보고, 생각한 바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실감했다.  9



사람은 무언가 물건을 보고 그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소비를 하게 된다. 무슨 물건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면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법이다.  19


먹고사는 데 돈을 쓰는 행위를 '소비'라 불러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소비'는 살아가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고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어서 쓰는 행위를 가리킨다.  21


적어도 나는 '빈자는 아름답고, 부자는 저속하다'는 가치관 속에서 자랐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가난한 사람이 멸시 받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같은 변화는 누군가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지시도 아닌데 마치 종교를 바꾸기라도 하듯 사람들의 가치관은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24


최근에는 노동자도 물건을 생산하기보다는 자신을 얼마나 비싼 값에 팔 것인가, 즉 자신을 소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강하다....

핵심은 돈이 가장 중요해졌다는 것.  26


돈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물론 입증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근거가 되는 신앙 내지 신념 같은 것이다. 이런 신념은 극도로 경쟁적이고 야박해지는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 또 조금이나마 신중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해준다. 생활에 규범과 기준이라는 것을 제공한다는 얘기다.  27


쇼핑몰에는 매일 상품이 쌓인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바로 그곳에서 필요도 없는 물건까지 사도록 부추김을 당한다. 똑같이 필요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우리 어머니의 경우와 현대 소비자의 경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이차적인 행위이고, 상점가 사람들과의 친밀감이 우선이었으나 현대 소비자의 소비는 공허한 욕망을 물건으로 채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소비는 채워지지 않는 생활을 반영하며 한편으론 정신적인 허기를 채우기 위한 보상행위로 변질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 소비병에서 탈출해야 한다.  29


어떤 의미에서는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대단히 어렵겠지만 소비 사회에 일격을 가하고, 거기서 탈피하기 위해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32


'스펜드 시프트(spend shift, 소비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 경제위기와 재해 등을 겪으면서 과거보다 지역과 공동체를 더 윤택하게 하고,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데 가치곤을 두는 방향으로 소비와 생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개념이다.)'다. 선책하는 물건을 바꾸고, 사는 장소를 바꾸며, 사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가 가진 근본적 문제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스펜드 시프트이다.  33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반드시 사야하는 물건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34


전에는 돈 쓰는 일이 악덕이었으나 서서히 미덕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이 정의로 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다. 바로 거기서부터 '소비화'의 물결이 단숨에 밀려든 것이다.  44


돈의 최대 특징은 교환가치만 있을 뿐 사용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사회는 돈의 특징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요구된다. 한마디로 유동성 선호 현상에 지배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언제든지 쉽게 이동할 수 있고, 교환가능한 존재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다.  57


편의점의 계산대에서는 말도 필요 없고 얼굴도 필요 없다. 표시된 금액을 확인하고 지갑에서 돈만 꺼내면 된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오가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능적 언어일 뿐이다. 점원이 고객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듯(기억하지 않듯) 고객도 점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얼굴과 이름은 순수한 상품교환에는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익명의 소비자. 이제껏 존재한 적이 없는 집단이다. 하지만 출현한 후에는 역설적이게도 다른 소비자와의 차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인간이란 원래 타인과의 차별화를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차별의 지표는 개개인의 개성이어야 하지만, 익명의 소비자에게는 돈의 많고 적음만이 차별의 지표가 된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씀씀이가 좋은지 아닌지가 다른 소비자와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58


소비화의 과정을 다른 말로 바꾸면 도시화의 과정이다.

도시 자체는 익명을 전제로 이루어져 있다.  59



세계 각국은 저마다 발전 단계가 다르고,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른바 글로벌 표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결코 공평하지도 않거니와 합리적이지도 않다.  116


따지고 보면 국가도 인간이 생존전략상 선택한 창조된 허구라고 할 수 있다. 소위 근대 국민국가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 프랑스어로 작성된 평화조약으로 '국제법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을 계기로 탄생했다.

그 이전의 30년간 유럽의 봉건 영주들은 영토를 둘러싸고 쉼 없이 분쟁을 일으켰다(30년 전쟁). 봉건 영주들이 유럽 안에 뒤얽힌 영지의 지분을 다투고 영주가 사망할 때마다 서로 간여하다 보니 더 이상은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30년 동안이나 같은 일을 겪은 끝에 봉건 영주들도 지칠 대로 지쳐 두 손을 들고 협상한 것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영토를 확정해 국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정간섭 불가에 관한 규칙을 정한 것이다. 그래야 서로 살 수 있다는 생존전략에 따른 판단이었다.

그 결과 국가는 전쟁을 치를 이유가 없어졌고, 자국 산업 육성의 기운이 싹텄다. 그러다 보니 자유무역보다는 관세장벽을 만든느 편이 국가에 더 이익이 되었는데, 그 장벽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펼치는 기업에게는 그야말로 장애물로 작용했다.  119-120


인구란 기업에게는 시장 그 자체이며, 이익의 원천이다. 인구감소는 시장의 축소를 뜻한다. 시장이 축소되면 경제성장은 지속적 상향 곡선을 그릴 수 없다.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그 같은 사태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렵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축소 현상은 주식회사 시스템의 존망 및 생존과 관련되는 문제다. 그래서 기업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살아남기 이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다.  122-123


초조해진 기업들이 내세운 전략 중 하나가 국가라는 틀을 깨고 시장을 재구성하겠다는 발상이다. 전 세계를 다시 한 번 휘저으면 주식회사라는 체제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세계는 아직 인구 증대 국면에 있기 때문이다.  123


기업의 국가 점령은 리먼 사태 이후 미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는 엄청난 사기성 '상품'으로 인해 세계 경제르 위기로 몰아넣은 금융업계의 수장들은 누구 하나 형사상 기소되지 않았다. 버보가 정의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흔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뒤, 그 엄청난 국부를 탕진하고도 당사자인 도쿄전력엣 누구 하나 체포된 사람이 없었다. 리먼 사태가 터졌을 때 '너무 커서 무너뜨릴 수 없는' 기업이 국고 지출을 통해 구제되는 것을 보고 미국 사회의 병리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125


인류 역사에 있어서 진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진보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다. 그것이 거대한 문명사의 현대적 의미다. 이미 과학기술의 진보도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갈 곳을 잃는다. 이름 없는 소비자로서 그저 기업을 살찌우기 위해, 새장 속의 통닭 같은 존재가 되어 돈을 쓰고 기업의 이익을 창출시킨다. 

이런 구도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탈소비자'를 지향하는 길이다.  127


미국은 소비문화로 상징되는 사회다.

소비문화의 핵심은 소비자 개개인이 익명의 존재라는 점이다. 거대한 소비자 집단을 필요로 하는 생산자에게 소비자는 그저 숫자로서의 의미만 가진다.

소비자 측도 서로의 입장을 특징짓는 지표, 기호로서 돈과 브랜드에만 주목한다. 소비사회는 거대 기업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사회다. 그런데 소비자도 자진해서 소비사회를 희망한 측면이 있다. 여러번 언급했다시피 소비사회 이전의 사회는 지연이나 혈연에 얽매이는 성가시고 자유롭지 않은 사회였기 때문에 지갑만 있으면 자유로운 삶이 가능한 사회에 대한 기대가 높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익명의 소비사회에서는 얼굴이 있는 인간관계는 경시된다. 상대가 가난하지만 재미있는 사람이니까 만난다는 관계성이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돈이 있으면 유능한 인간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능하고 존재가치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비상식일지라도 편한 설정을 믿으려 한다.  146-147


거기서 벗어나려면 소비자가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무조건 싼 상품을 원하는 성향이 터무니없는 사기사회를 만든다.(PB수법, 위약금제도, 회원가입 등) 따져보면 싸지도 않다. 싸게 보일 뿐이다.  174


사기에 가까운 상술이 횡행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 없는 물건까지 억지로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시장이 축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곡선을 그리던 과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기업 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그래서 기업은 쪼그라드는 시장 안에 또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시장 창조'다. 없어도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는 물건을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해 사게 하는 것이 시장 창조인 셈이다. 그러니 사기에 가까운 요소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정직하게 판매해서는 소비욕이 환기될 리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문제다. 대기업의 수법에 고스란히 속아 넘어가면서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카드를 긁어 빚을 내면서까지 물건을 사들인다.  175


유익성만이 인간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무익하더라도 아니, 지금 당장에는 무익하더라도 사람이 위해서는 필요한 자양분이라는 것이 있다.  177


철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말했듯, 인간이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문제는 인간이 남과 같아지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 다르기를 원하는 모순된 존재라는 데 있다...

타인을 욕망함과 동시에 타인의 욕망이 되기를 욕망하고, 자신은 또 다른 물건을 탐내는, 이런 모순된 욕망 구조가 소비사회를 쉬지 않고 달리게 한다. 그 같은 욕망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기에 그 욕망을 채우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인간은 점점 늘어난다.  179


사기 같은 상술에 기대는 기업이 겁내는 것은 소비자의 불매운동이다. 소비자의 행동에는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184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가치관을 바꿈으로써 소비행태를 바꿀 수 있다.  192


중요한 것은 돈벌이가 아니라 살아가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살기 위한 전략으로 '탈소비자'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193


동네 가게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생각이 싹트면 직접 그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소비행태를 조금씩 바꾸어보는 것이다. '스팬드 시프트'를 일으키자는 얘기다.  194


현재의 상품경제 속에서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성립되는 증여경제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196


근대화란 오로지 쾌적함을 찾아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이었다. 쾌적함이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요로 다케시 교수는 말했다. 원래는 더워졌다 추워졌다 해야 정상인데 인간은 석유를 펑펑 태워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인위적으로 질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202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를 재설계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에 남은 유일한 해결책이다. 경제성장이라는 지표로 세상을 바라보면 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은 도태되어야만 한다.  206


인간이 불안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미래가 지금보다 나빠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지금과 같다면 지루할지는 몰라도 신경증적 불안에 빠지는 일은 없다...

사람은 욕심이 많은 존재다. 주변에 욕망을 오나전 긍정하는 소비문화가 있으면 평온한 삶에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욕망을 내려 놓기 위해 주변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는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있는 것에 만족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자신의 신체와 자연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실마리는 자기 주변에 있다. 지금 가진 무언가를 내려놓으면 틀림없이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10-211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선은 진보와 진화라는 개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구조주의(structuralism, 수학, 언어학, 생물학, 정신분석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친 20세기 철학 사조. 모든 현상은 근본 요소들의 상호관계 위에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를 통해 개인과 사회,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주의)자들이 밝혀낸 성과다. 구조주의자의 대표 주자인 레비스트로스는 근대사회와 부족사회를 각각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라 불렀다. 근대인은 물이 끓듯 사회가 진보, 발전을 거듭하는 뜨거운 사회를 살았다. 한편 미개 부족사회처럼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순화형 차가운 사회도 지구상에는 존재했다. 

근대화, 또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인은 진보를 옳다고 여기는 사회를 살아왔다. 그 귀결로 공동체는 무너졌고, 개인이 사회의 구성단위로 등장했으며, 돈이 사회를 살아가는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가족을 만들지 않고 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저출산 현상이 그것이다. 

저춣산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개인이 혼자서도 살 수 있게 된 결과 가족을 만들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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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인들이 사는 섬은, 중앙이 너비 2백 마일로 가장 넓고, 양쪽 끝 부분이 가장 좁습니다. 섬 전체가 5백 마일의 곡선을 그리며, 양쪽 끝이 서로 가까이 마주하고 있어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11마일쯤 서로 떨어져 있는 초승달의 양쪽 끝 부분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넓은 만이 형성되어 있지요.  81


이 섬에는 규모가 크고 웅장한 도시가 모두 쉰네 개가 있는데, 언어와 관습과 제도와 법이 모두 동일합니다. 지리적인 여견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도시들이 동일한 설계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외양도 동일합니다.  83


10년마다 추첨을 통해서 집을 바꿉니다.  89


이 나라 사람들이 입는 옷은, 남녀의 차이와 기혼과 미혼의 차이를 제외하면 수백 년이 지나오도록 스타일이 같습니다. 옷이 멋있으면서도 몸동작에 방해가 되지 않고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입을 수 있는, 각자 집에서 만드어 입을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92-93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여섯 시간만 일을 합니다.  93


유토피아 사람들은 단 한 벌의 망토로 만족해하며, 그걸로 대개 2년 동안 입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유용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아무도 과소비를 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99


모든 피조물이 탐욕스러워지는 것은 결핍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만심 때문에, 소유의 과시로 타인을 제압하는 것에서 승리를 맛보는 자만심 때문에 탐욕스러워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악덕은 유토피아의 생활 양식에서는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102


뉴토피아인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별도 볼 수 있고 태양도 볼 수 있는데 어찌하여 작은 보석이나 밝은 돌조각이 발하는 약한 광채를 보고 기뻐하는지 불가사의해합니다. 특별히 좋은 양모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남들보다 더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에는 경악합니다. 양모가 아무리 곱다고 해도 한때는 양이 걸쳤던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무용한 물품인 금은 어디에서나 하도 높은 가치를 부여받아서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금에 이러한 가치를 부여한 인간 자신은 이제 금보다 가치가 훨씬 적다는 사실에 이 사람들은 놀라워합니다. 어리석은 것에 못지않게 부정직한 데다 나무토막 같은 두뇌를 가진 멍청이가 어쩌다가 막대한 양의 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현자와 선인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 멍청이가(뜻밖에 당하거나 혹은, 법이란 운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반전을 초래할 수 있으니까, 법적인 사기에 휘말려) 문중에서 가장 비열한 악당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게 되면,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이 금전에 부착되어 있었고 금전을 따라 움직이는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즉시 악당의 하인들중의 하나가 된다니요. 이보다 더욱 유토피아인들을 경악시키는 것은 부자에게 빚을 진것도 없고 아무런 의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를 거의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숭배자들이 감격해하는 것은 단순히 상대가 부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자란 지독히 인색하고 욕심이 많아서 살아생전에는 자신이 쌓아 놓은 돈더미에서 단돈 한 푼도 절대로 남의 손에 들어가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는 그러한 어리석음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사회제도 내에서의 성정과 교육과 좋은 독서를 통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각 도시에서 노동을 면제받고 학문에만 몰두하도록 지정되는 사람들의 수효는 비록 많지 않지만(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두뇌와 학문에의 헌신을 보여 준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드이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가지며,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녀 모두 일생 동안 여가 시간을 독서로 보냅니다.  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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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무로가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27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31


"선생님, 저 사랑에 빠졌습니다."

"별 심각한 일은 아니군. 다 치료법이 있으니까."

"치료법이라고요? 치료법이 있다 해도 차라리 아프고 말겠어요. 사랑에 푹 빠져버렸단 말이에요."  41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없어."  63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혹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67


"내가 편지 읽는 것보다 자네가 쪽지 읽는 게 더 오래 걸리는군."

"장모님은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삼켜버리잖아요. 글이란 음미해야 하는 거예요.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죠."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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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11


에이드리언..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88


에이드리언..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95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ㅂ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106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106-107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게 된다.  120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165


'축적의 문제'라고 에이드리언은 썼었다. 축적의 문제. 어떤 말에 돈을 걸고, 그 말이 이기면, 그 상금을 다음번 경기의 다음번 말에게 건다. 이런 식으로 승리는 축적된다. 그렇다면 패배도 축적되는 걸까? 경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저 첫 번째 노름 밑천을 잃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는? 다른 법칙을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관계에 승부를 걸었으나 실패로 끝난다. 계속해서 다음번 관계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이때 잃는 건 단순히 두 번 뺄셈을 하고 난 값이 아니라, 우리가 내걸었던 것의 배수이다. 아무튼 그런 기분일 것이다. 인생은 단순히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다. 상실의, 혹은 실패의 축적과 곱셈이다.  180-181



옮긴이의 말 - 예감하지 못하는 모든 평범한 이들을 위한 서글픈 면죄부


왜곡이 본질인 기억과 우연과 무상성이 본질인 시간의 담합이 만들어낸 파국이 아닐 수 없다.  264


젊은 시절,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 했지만, 노년에 이르러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고 번복한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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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 복종할 것인가. 자유로울 것인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그 말은 얼마나 자주 우리를 악마와의 거래로 인도했던가.  7


자발적 복종이라는 병균을 담은 물.. 대체 언제부터 이 검은 물은 우리의 발밑으로 밀려오기 시작한 것일까?

그 원죄는 우리가 한 번도 깨끗이 밀어내지 못한 유교적 봉건적 질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고,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구이념을 가졌던 이 나라. 그러나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이성계가 나라를 지배할 사상적 무기로 유교사상을 택한 후 무려 5백여 년간 충과 효가 결합되고 사농공상(士農工商)과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뒤범벅되어 빚어낸 옹골진 수직의 질서가 우리의 삶에 고착된다. 

20세기에 이르러 마침매 붕괴되고 만 이 봉건의 질서를 대신한 것은 일제 35년, 이 치욕의 시절과 해방 이후 친일파들에게 다시 권력을 맡기게 된 치명적 역사의 오류는 기회주의가 가장 현명한 삶의 해법임을, 힘 있는 자 밑에 엎드려 마름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생존의 전략임을 제대로 주입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일제의 충성스러운 개로 살았던 자가 18년간 이 땅에서 총칼로 휘둘렀던 독재 시절, 우리는 공포에 장악되었다. 자유, 평등, 정의 따위는 '개발'과 '반공'의 불도저로 밀어버렸고, 순응하지 않는 살마들은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먼 곳으로 유배당한다. 박정희 독재를 잇는 또 다른 군부의 독재는 피와 땀을 거리에 뿌린 시민의 힘으로 극복되었으나, 이번에는 자본의 독재가 우리를 삼켜버렸다. 

20세기 말 한국사회를 점령한 외환위기는 한국인들을 더 내려갈 곳이 없을 것만큼 완벽하게 바닥에 주자앉혔다. 상점을 지키는 젊은 처자들의 목소리가 공장에서 태엽이 감겨 나온 장난감들의 음성을 똑같이 내고 있는 것을 목격했을 때, 정신적인 노예화가 우리의 육체까지 변형시켜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8-9


천민자본주의이 최첨단 국가로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가속화되던 끝에, 자서성가한 부자라는 매력을 높이 평가받으며 이명박이 새 지도자로 당선되었고, 그가 자신의 재주를 오로지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쓰고 권좌를 유유히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곤 유신(維新)의 딸이 다시 청와대로 들어간다. 박근혜의 청와대 입성은 한국인의 머릿속에 '정의는 없다'라고 명확히 각인시키는 사건이었다.  10


2014년 4월 16일,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많은 아이들을 포함한 3백여 명이 거대한 배와 함께 서서히 수장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린 비로소 후최해온 모든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받고, 시대를 배반하고 국민을 유린한 자들을 심판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느꼈다. 함께 분노했고, 함께 절규했다.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낸 부모들은 회유와 협박 앞에서 굳건했다. 단호하게 오직 진실을 알 것을 권력에게 요구했던 그들은 아직 고개를 똑바로 들고 두 발로 선 사람들의 중심이 되어, 거짓으로 뒤덮인 양아치 권력집단에 맞섰다. 

그러자 그들 앞을 겹겹이 가로막고 나선 건 자발적으로 복종한 자들이었다. "너희가 노예임을 잊었냐, 당신들이 뭔데 진실을 원한단 말이냐. 감히 어디서 정의를 말하냐.."고 그들은 유족들을 꾸짖으며 상상을 초월한 행패를 자행한다. 이후 언론은 정해진 수순처럼 유족들의 얼굴을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발목에 찰랑이던 검은 물은 이제 무릎을 넘어 배꼽까지 차올랐다.  12-13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동료를 대신해 오너의 딸의 행패에 원칙대로 대응한 사무장을 지지하기 위한 대한항공 동료들의 그 어떤 집단행동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너 일가가 행해온 그간의 만행을 일거에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대한항공 직원들은 깊이 침묵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발길에 차이고 짓밟혀도 더 굳건한 충성을 바칠 뿐이라면, 계속 밟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오늘의 위상을 만든 것은 바로 복종해온 그들 자신이었다. 

이 사건을 화제에 올렸던 모든 대화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대목은, 대한항공 직원들은 왜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받아들였는가였고, 홀로 회사와 맞서게 된 사무장을 지지하기 위한 파업이 없다는 지점에서 그들은 바로 그 해답을 찾았다. 한국판 재벌 자본주의가 빚어낸 이 슬픈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단 한 사람, 박창진 사무장은 방송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이 싸움에 나서는 건.. 나의 존엄을 내가 지키기 위해서다."  13-14


자유인이 되는 것,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나의 존엄을 내 손으로 지키기만 하면, 내 모든 권리와 자유를 압류했다고 착각하는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고객이라는 이유로 진상을 부리지 않고, 소비로 점철되는 삶을 거부하는 것.  15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6세기였다. 18세 청년의 손에서 나온 이 짧은 글이 오늘까지 생생하게 살아남아, 현대사회의 모순을 해석ㅎ는 데 핵심적인 영감을 주는 언설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것은 불행하게도 인류가 여전히 자발적 복종의 자세에서 자신들을 지배해줄 독재자를 기다리는 일을 되풀이해왔음을 증명한다. 굴종의 독배를 기꺼이 들이켜며, 지배자가 너무 멀리 가면 새로운 지배자를 맞이해왔던 사람들.  16


자유를 애써 쟁취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주어져도 참기 힘들어하는 민중은 끊임없이 독재와 파시즘의 출현을 허락한다. 거기에 인류의 비극이 있다.  24


라 보에시가 말하는 복종의 가장 큰 이유는 '습관'이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망각'이다.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채 이미 모든 선택이 차단되고 종속이 일상화된 상태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밑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유를 알지 못한다. 누려보지 못한 것을 갈망할 수는 없는 노릇. 그 세대는 처음부터 종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은 복종이 강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25


자발적 복종이 작동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용기도 함께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은 자는 존엄과 자존도 함께 상실한다. 당연히 그들은 고통스럽지 않게 비굴 모드를 취하게 된다...노예의 삶을 받아들이는 한 삶의 그 무엇도 절실할 수 없다. 삶은 그저 살아내야 하는 고통의 과정일 뿐이다. 인생의 계획자도 실행자도 아니다. 거대한 기계를 굴리기 위해 박혀 있는 나사 하나에 불과하다.  27-28




복종, 인간의 놀라운 악습


독재자의 권력이란 그 권력에 종속된 다른 모든 이들이 그에게 건네준 힘일 뿐이다. 다른 모든 이들이 독재자를 참고 견디는 한, 그의 권력이 부리는 횡포는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지 않더라도, 단지 견뎌내기를 멈추기만해도, 독재자는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다.  36-37


두 명이나 서너 명이 한 명을 대적하지 못한다면 좀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치부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백 명, 1천 명이 단 한 명 때문에 괴로움을 감수한다면 그들은 그 한 사람에게 저항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기보다 감히 대적해보려는 의사 자체가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에게는 비겁함이 아니라 굴욕이나 경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40-41



자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


나는 사람들이 소유하길 희망하는 재산의 목록에서 한 가지가 늘 빠져 있음을 목격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 본질적인 욕망의 목록에서 어떻게 그것이 빠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바로 '자유'다. 

우리가 자유를 잃으면 온갖 악행들이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너하기만 한다면 취득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49-50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감정을 가진 모든 세상 만물은 구속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이 끼치는 해악을 느끼며 자유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다.  61



독재자의 유형


독재자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민중의 선출로 권력을 부여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자, 무력으로 나라를 차지해 통치하는 자, 권력을 상속받아 군림하는 자.

전쟁으로 나라를 얻은 독재자는 정복한 영토 내의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한다. 태생부터 왕으로 태어난 군주들은 전쟁으로 나라를 얻은 독재자보다 나을 것이 거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독재의 가슴에서 양육되어 젖을 먹을 때부터 독재자의 근성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발아래 놓인 국민을 상속 노예처럼 간주한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기질에 따라 야박하거나 혹은 인심 후하게 내키는 대로 국가를 상속받은 재산처럼 다룬다. 

국민의 선출로 국가를 맡게 된 군주는 그나마 가장 견뎌내기 쉬운 편이다. 앞으로도 그리 생각하겠지만, 이들 역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위대함이라 불리는 그 무엇에 홀려 기고 만장해지고, 급기야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기로 작정하면서 흔히 국민에게 위임받은 귄세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 후계자들은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악행과 도를 벗어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다. 

이 세습된 독재자는 새로 구축된 체제를 더욱 안전하게 굳히기 위해 억압의 범위를 확대하고, 민중을 자유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킨다. 아직 그들이 누렸던 자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민중의 머릿속에서 자유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그러니 세 유형의 독재자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는 사실 알 수가 없다. 통치 권력에 도달하는 방법은 달라도 통치하는 방식은 항상 거의 동일하다. 선거로 권력을 쥔 지배자들은 민중을 마치 사나운 황소를 길들이듯 취급한다. 정복자들은 백성을 노획물로 여기며, 권력을 세습받은 자들은 백성을 그들의 당연한 노예로 간주한다. 

지금 막 새로운 인간들이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예속에 길든 적도 자유를 누려본 적도 없는, 말하자면 지금까지 인간의 삶의 조건을 겪어보지 못해 어느 상태가 더 생존에 적절한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노예 신분이나 자유인 신분을 제안하면 그들은 각각의 신분이 요구하는 룰에 따라 자신을 맞추려 할지도 모른다.  63-65



습관, 자발적 복종의 첫 번째 이유


멍에를 지고 태어나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69


관습은 우리가 굴종을 거부감 없이 삼키게 함으로써 더 이상 굴종의 독으로부터 쓴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가 좋고 나쁜 일을 판단하고 행하는 데, 타고난 본성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관습이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는 이르지 못한다. 타고난 성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이 제대로 가꿔지지 않고 후천적으로 받은 교육이 그 천성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소멸하고 만다. 자연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씨앗들은 너무 작고, 고착된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억압하는 아주 작은 교육의 타격만으로도 싹트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수 있다.  70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또한 그 상태로 계속 존재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그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도니다. 인간이 지니는 모든 것들-무엇을 먹고 살며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등-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타고난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타고난 본성이 그러할 뿐, 이후 사람이 갖추게 도는 성품은 교육과 양육 방식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자발적 복종의 일차적 근거가 습관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말이 길드는 과정과 같다. 말에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 재갈을 갖고 장난질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장비와 장신구를 뽐낸다.  81



맑은 오성, 굴종의 관습을 깨부수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복종하는 백성이었다고. 조상들은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 고통을 참고 견디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고, 이대로 자손을 낳으며 살아야 한다고. 그들은 심지어 복종 상태가 지속된 시간의 길이를 통해 그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의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결코 악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폐해를 늘려갈 뿐이다.  82


반듯한 오성과 맑은 정신을 지닌 이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발치 앞만을 바라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들은 사안의 전후를 살피는 데 주의를 기울이며,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통찰하기 위해 과거를 떠올린다. 정돈된 두뇌의 소유자는 탐구와 지식으로 사고의 힘을 더욱 연마한다. 자유가 완전히 사라져 세상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때조차 이들은 자유를 상상하고 정신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자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어 아무리 잘 포장해서 들이대도 굴종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83


폭군은 자신의 치하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하고 말하는 자유, 심지어는 생각하는 자유마저 박탈한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 속에만 머물러 있도록 억압한다.  84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첫 번째 이유는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가 추가된다. 독재하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비겁해지고 나약해진다.  87-88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유를 잃으면 용기도 함께 잃고 만다. 종속된 사람들은 투쟁에 대한 열의도, 다부진 결기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위험에 처하면 결박된 사람처럼 마지못해 움직인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우들 사이에서 장렬한 죽음으로 명예와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유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갈망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89



백성을 잠들게 하라


키루스 대왕은 리디아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를 정복하고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Kroisos)를 체포해 포로로 만들었다. 

사르디스 주민들은 이에 저항했다.

키루스는 병력을 투입해 이들을 한 손에 진압할 수도 있었다...

키루스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묘안은 사르디스에 사창가와 술집, 공중도박장 등을 허가하는 것이었다. 이 방침을 왕령으로 발표하고 국민들도 그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모든 국민이 이 정책을 환영했다. 그러자 더 이상 국민들을 다스리는 데 무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련하고도 비참한 국민들은 점점 더 많은 놀이에 빠져들어 갔다. 라틴어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말 가운데 놀이 혹은 심심풀이를 뜻하는 라틴어 'LUDE'는 리디아의 지명에서 유래하기도 했다.

어떤 독재자도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들을 유약하게 만들 계략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전제군주들이 물밑에서 백성들을 어리석고 나역하게 만들기 위한 술수를 모색했고, 다양한 방법들을 실행으로 옮겼다.  93-94


연극 구경, 광대, 검투사, 낯선 짐승들, 훈장, 그림, 기타 또 다른 마약 같은 것들이 고대 사람들에게는 복종에의 미끼요 자유를 파는 값이었다. 고대의 독재자들은 백성을 예속 상태에 빠뜨리기 위해 이들을 잠재우는 유혹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 독재의 도구들을 사용했다. 그렇게 길든 사람들은 바보가 되어 마약 같은 놀이와 구경거리에 중독되어버리는 것이다.  94-95


로마의 폭군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자주 민병대(군대에 등로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군인으로 일하지 않고 필요한 때만 군인의 역할을 했던 로마 시민들로, 상비군은 아니지만 잦은 전투 경험과 정기적인 훈련으로 전투 태세를 잘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황제에게 복종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일종의 급여를 지급받았다. 이들은 로마군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의무라기보다 시민으로서 누리는 하나의 특권으로 간주했다.)에 성대한 파티를 베풀었다. 복종하는 근성에 젖은 비천한 무리들에게 무엇보다 식탐을 충족해줌으로써 부하로 만드는 술책을 부렸던 것이다.  95


폭군들은 지지자를 얻기 위해 또 다른 방법, 이를테면 곡식과 술, 돈을 뿌리기도 했다. 이대 선물을 받은 자들이 외치는 "폐하 만세!"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가련한 노릇이었다. 본래 자신의 것이던 물건이 다시 돌아온 것뿐인데도 아둔한 사람들은 그것을 왕의 호의라고 착각했다. 


오늘란에도 통치자들의 태도는 나아진 것이 없다. 통치자들은 대형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언제나 공공의 복지와 안녕을 수렁으로 빠질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달콤하게 달랜다. 우리는 그들의 이 간교한 술책, 이 상투적인 화법을 잘 알고 있다.  99


어리석을 백성들은 스스로 거짓말을 지어내고 나중에는 자신들이 지어낸 거짓말을 믿는다.  101



지배의 공식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제군주의 지배 원동력이자 그 비밀이다. 


도끼나 창, 경비병, 헌병대가 독재자를 지킨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오산이다. 독재자들이 이 세 가지를 사용하는 것은 신뢰해서라기보다 일종의 형식과 겁박 효과 때문이다...

독재자를 보호하는 것은 기마대도 보병대도 아니며 무기도 하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언뜻 믿기지 않겠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언제나 대여섯 명이 독재자의 권력을 떠받들고 그것을 유지한 바로 이 대여섯 명의 신하가 온 국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왕의 귀 노릇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왕에게 접근했거나 왕의 부름을 받고 왕의 잔악한 짓을 공모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다. 이들은 왕의 쾌락을 위한 동반자고 왕의 애욕을 채우기 위한 뚜쟁이며 왕의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국민들의 살림을 약탈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공범이다. 이들은 군주 본연의 악함을 넘어서 측근들 자신의 악함까지 모두 삼키게 하려고 군주를 제대로 길들인다. 

이 여섯 명은 수하게 조력자 6백 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이 6백 명은 여섯 명이 왕에게 하는 그대로 여섯 명에게 반복한다. 6백 명은 그들 수하게 다시 6천 명의 부하를 거느린다. 6백 명은 부하 6천 명이 지방 총독이나 관리가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자신들의 엄청난 물욕과 잔인한 행각으로 나라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너무도 많은 죄를 저지르는 까닭에 상관의 그늘에서나 보신할 수 있으며 상관의 덕으로 법의 심판과 징벌로부터 놓여날 수도 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쳐진 그물망의 규모는 엄청나다.  108-110



군주와 신하들, 그 인간 이하의 삶


사랑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제국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121


그러니 배우자. 옳게 처신하기 위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자. 우리의 명예를 위해, 우리의 미덕에 대한 사랑을 위해.  131




역자후기-"반공주의는 독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다."


라 보에시는 독재자의 가장 패악적인 범죄는 민중을 우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에 무지하고 무감각하게 민중을 길들이면서 선량한 국민으로 교화하는 것이라고 감언이설로 교묘하게 둘러대는 것이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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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라고 어느 현자를 말했다. 

남들이 백 번도 더 지나간 길에서, 틀에 박힌 생각에서, 그림엽서처럼 뻔한 풍경과 집단 수용 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연'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하고 본래의 권위를 돌려줘야 할 때가 왔다.  9




딴 데 가서 알아봐 - 프랑스인들은 '딴 데 가서 알아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성가신 사람을 멀리 쫓아낼 때 쓰는 이 표현은, 누구라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라면, 이 '딴 데 가서 알아봐'는 여행자의 지상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정작 당신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여행은 망쳤다는 뜻이다.  16-17


은인 - 한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만 한 방법이 없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친절과 배려는 가이드가 늘어놓는 청산유수 같은 설명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경계심을 품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분별이 관건이다.  21


출항 - 프랑스 소설가 폴 니장(Paul Nizan)은 "여행은 돌이킬 없는 상실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26


오지 - 낯선 지역, 어쩌면 덜 알려진 지역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 이런 지방은 관광지 바깥에 위치한다. 이처럼 가게 뒷방에 깊이 숨겨진 보석 같은 고장에 찾아가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뒤른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26



"여행은 젊은이를 가르치고 노년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



짐 - 비행기에 탈 때 짐이란 짐은 다 덜어내도 마음의 짐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니 불행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짐의 무게는 어느 항공사에서도 재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나 할까?  38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들 마음은 풍성처럼 가볍게 숙명은 결코 떨치지 못한 채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늘 '가자!라고만 말하네." - 샤를 보들레르(Baudelaire Charles, 1821~1867)



베르베르족 속담 - 여행은 자기 삶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41


지도 -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자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쉬아레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63


기분 전환 -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이폴리트 텐(프랑스의 비평가, 역사가)  71


사냥꾼 - 홀로 나와 바람 냄새를 맡으며 우연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은 '즉흥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길을 가다 자신이 원하는 것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만남도 얻는다.  71


길 위에서 - 여행은 삶과 같다.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서둘러 갈 권리도 있겠지만, 길가에서 경험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72


중국 속담 - 진정한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75


세상 끝에 사는 친구 -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세상 끝까지 가서 말 한마디라도 나눠보려고 훌쩍 떠나는 이가 아닌가!" 쥘 바르베 도르비이(프랑스의 소설가)  82


호기심 - 두뇌와 오감을 사용하는 여행이야말로 호기심 많은 사람이 맛보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경이에 대한 욕구가 없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길가에 널린 놀라움을 거둬들일 줄 모른다면, 자기 방에서 멀리 떠나 모험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87


현지에서 작업 걸기 - 어떤 나라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현지인과 살을 맞대보거나 적어도 감정이 오가는 관계를 만드는 게 최고다. 현지 풍속과 언어를 속속들이 알기 위한 이런 여행 방식이 기혼 여행자의 정조 관념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면, "항구마다 기다리는 애인 한 명씩은 만들어라"라는 유명한 말은 진정한 탐험가들이 응당 마음에 품을 법한 것이며 앎에 대한 목마름에 훌륭히 부합한다고 하겠다.  106


여행작가 - 여행작가와 글도 쓰는 여행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행 작가의 시선은 깐깐하다 못해 열정과 비판으로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글도 쓰는 여행자는 보통 타협적이고, 자신이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최상급 형용사들을 줄줄이 늘어 놓는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사로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111-112


깨어남 - "자신이 꿈꾸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다운 여행이 아니다. 이때 말하는 꿈은 정신을 잠재우는 꿈이 아니라, 땀에 흠뻑 젖고 목이 메면서, 수염이 자라 덥수룩해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며 깨어나게 되는, 이야기할 수 없는 꿈,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이를 먹는 것조차 멈춰버리는 그런 꿈이다." 다니엘 메르메(프랑스의 언론인, 작가)  120


청년 교육 - "여행은 젊은이들을 가르친다"라고 몽테뉴는 말했다.

현재를 눈부시게 만들고 자기 앞의 생을 환히 밝히기 위해 여행을 하다 보면 내면이 풍요로워진다.  125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 - 빅토르 위고(Hugo Victor, 1802~1885)



"또다시 우리의 울퉁불퉁한 여행 가방이 보도 위에 쌓였다. 우리 앞에는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길이야말로 삶인 것을." - 잭 케루악(Kerouac Jack, 1922~1969)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집에만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 러디어드 키플링(Kipling Rudyard, 1865~1936)



세계를 읽다 -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쪽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외젠 다비(프랑스 소설가)  170


거꾸로 여행 - "진정한 여행은 어딘가에 가는 행위 그 자체다. 일단 도착하면 여행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위고 베를롬(프랑스 작가)  171


책 - "모든 책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세상에 한 권뿐이며, 세계 모든 나라의 국경을 열어주는 8절판의 작은 책, 바로 내 여권이다." 알랭 보레(프랑스 비평가, 여행 작가)  177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 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 - 알퐁스 드 라마르틴(Lamartine Alphonse, 1790~1869)



"여행은 문과 같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현시렝서 나와 꿈처럼 보이는 다른 현실,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 기 드 모파상(Maupassant Guy de, 1850~1893)



무어인 속담 - 여행하지 않는 살마은 인간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196


앙리 드 몽프레 - "삶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며, 우연과 행운과 운명을 신뢰하라. 길을 떠나 다른 공간과 다른 희망을 정복하라. 그러면 나머비는 덤으로 주어지리라."  203


테오도르 모노 -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는 잘 알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길로 그곳에 이르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미리부터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203


미셸 에켐 드 몽테뉴 - "왜 여행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하는지는 잘 알지만, 내가 무엇을 찾는지는 잘 모른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두뇌에 문질러 다듬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해야 한다."  203


베트남의 해변 도시, 나짱 - '삶의 운치'를 즐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다른 모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당신을 떠밀어대는 안내책자의 프로그램은 그럴 계획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음 기회에... 이런 식의 여행은 '바보 같은 여행'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딱할 뿐이다.  206-207


프랑스 최대 여행사, 누벨 프롱티에르 - 오늘날 고객은 한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특별히 피하는 곳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이 특정 브랜드를 고수하지도 않고, 그저 일종의 소비요겡 이끌려 '기획 상품'만 찾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210


길을 잃을 자유 -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 랍비 나흐만 드 브라트슬라브가 남긴 이 경구는 진정한 여행자, 곧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에게 마음의 지주가 된다.  232


페르시아 속담 - 우리가 여행에서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기념품은 건강하고 무사한 자기 자신이다.  234


긴 여정, 짧은 산책 - 한가로이 거닐면서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우연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 그 자체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노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 덕분에 완전히 거꾸로 여행할 수 있게 된 만큼, 그러니까 한 걸음에 천리 길을 갈 수 있게 된 만큼, 수천 킬로미터 거리를 훌쩍 날아간 뒤에 한 발짝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여행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235-236


해변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임을 내세우는 곳은 수십군데지만,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42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Proust Marcel, 1871~1922)



추구 - "여행은 동기가 없어도 된다. 여행 그 자체만으로 족하다는 것이 이내 입증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이 당신을 만들거나 당신을 해체하는 것이다." 니콜라 부비에  252


만남 - "우리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  268


추억 - 여행은 추억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가장 빛나는 추억은 현재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때때로 망각할 정도다. 기억은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는 만큼 지금 이 순가에 머물기를 잊고 추억을 모으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껍데기만 남는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먼 곳까지 가서 찾고 느끼려했던 것들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야 한다. 받아들일 줄만 안다면 덧없는 한순간보다 더 지속적인 것도 없다.  2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나는 어딘가에 가려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여행한다. 그러니까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삶의 필요서오가 난처함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이다."  284


여행자의 인사, "스토 칼로" -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그리스의 인삿말이다. '스토 칼로 나파스(Sto kalo nappas)'의 준말인 이 표현은 선(善)과 아름다움을 향해 가라'라는 뜻이다. 여행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줄 만한 좋은 말이다.  285


티베트 속담 - 여행은 본질로의 회귀다.  296


투아레그족 속담 - 첫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발견을 하고, 두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299


관광객 - '관광객'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산책 수첩에 "어느 관광객의 회상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스탕달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후 그의 뒤를 이어 떠나는 방문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때로는 이들이 낯선 곳의 '점령자'가 되는 지겨엥 이르렀다. 이 점령자들이 자신이 방문하는 장소를 변화시킬 때 여행자는 새로운 발견의 여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여행자는 풍경에 어우러지기보다는 풍경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돼버린다.

여행의 민주화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진보의 정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온전한 풍경을 더 이상 일그러뜨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302-303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폴 발레리(Valery Paul, 1871~1945)



여행필수품 -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으로 이끄는 길은 없다. 행복이 바로 길이다.", "여행자여, 길은 바로 그대의 발자취다."  321


잔스카르 속담 - 여행은 그대의 아버지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찾았을 때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그 땅은 그대의 어머니다.  339


에밀 졸라의 겉치레 말 - "여행만큼 지성을 함양하는 것은 없다"라고 이 작가는 말했다. 관광산업의 유혹에 넘어가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 다니기를 낙으로 삼는 이들이 흡족해할 만한 말이다.  하지만 그저 움직였다고 여행을 한 것일까? 예전에는 어떤 사람의 지성이 그가 주파한 거리와 비례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불행히도 이런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341-342




옮긴이의 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떠나며 꿈꾸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여행과 정반대의 여행이 있다. 마음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이곳이 아닌 다른 하늘 아래로 몸을 피해야 숨이라도 겨우 쉴 듯한,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여행.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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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 인류학적 관점이 어떻게 해외여행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이 책은 짧은 체류 기간 동안 "문화적 이해"라는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들려는 사람들이나, 해외에서 비교적 장기간 살면서 현지인의 관습과 문화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여행자들은 스스로를 청년 배낭여행자 또는 요새 늘어나고 있는 플래시패커(flash-packers)로 정의한다. 플래시패커란 연령대가 조금 높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30대 배낭여행객을 가리킨다. 7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읽은"것의 10%, "들은"것의 20%, "본"것의 30%, "보고 들은"것의 50%, "말한"것의 70%, "하면서 말한"것의 90%를 기억한다고 한다. 다른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듣고, 보고, 행하고, 냄새 맡고, 느끼고, 맛보고, 들이마시고, 집어넣고, 신용 카드로 산"것의 100%를 생각해 낸다고 한다. 13


현재 대부분의 학습은 수동적으로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참여와 활동이라고 오인하곤 하는 정보 접근과 정보 검색인 것이다. 13


기억과 지식을 내면화하지 못하면 보통 너무 피상적이 되고 지적인 허세로 이어지고만다. 14


여행은 관계망을 만들어 내고, 비금융적 자산을 계발해서 귀중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창출할 수 있게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유명한 말처럼 "진정한 발견에 이르는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볼 때 이루어진다."

여행하는 동안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이 더욱 중요하다. 16-17


미국인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천성 탓이라고 보면서, 자신들의 행도은 외부 조건에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여긴다. 17


자기가 내린 판단이 자민족중심주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도, 적어도 현지에 있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능력을 익혀야 한다. 어쩌면 영원히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말이 쉽지 실천하기 아주 어려운 일이긴하다. 19


이론이나 철학은 실천 속에서 구체화된다. 20


심층 지식을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배운 것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이며, 해외에서 배움을 얻는 비결은 겸손함을 보여 주고 자기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러려면 용기를 내서 스스로를 낯선 타인의 친절에 좀 더 맡겨야 할 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그렇게 해서 겸손함을 배우게 될 것이다. 21-22



1. 인류학적 관점이라 불리는 괴물

- "우리는 바로 우리라는 적을 만났다." - 포고(Pogo, 미국 만화가 월트 켈리가 그린 만화 주인공)


"문화적 상대주의"는 자기 문화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다른 문화의 행동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자민족 중심주의"와 반대 개념이다. 43


현장에서 중요한 정보는 우연히 등장할 때가 많다. 45



2. 우리는 왜 해외로 나가는가

-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절대 살아가지 못하리라."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마약 같은 효과를 낳는다고 한다. 중변연계에서 관장하는 보상 체계에서 만족감에 해당하는 신경의 레버를 눌러 화학적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57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는 이유라고 말하는 것 중 다수는 물론이고, 심지어 실제 해외에서 하는 경험조차 "키치"할 수도 있다. 키치(kitsch)는 진부하고 뻔하고 흔해 빠졌고 보통 싸루려이면서 대체로 악취미적인 무언가를 묘사하는 데 쓰는 용어다. 사실 이런 키치함은 주로 처음에는 물건을, 그러다가 현재는 경험을 대량 생산한 결과고 생겨났다. 도처에 존재하는 키치성은 현대 소비 자본주의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다. 키치는 행복이나 지식조차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번성한다. 키치에는 지적인 수고가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키치는 지식과 이해를 추구하는 풍토보다는 안락한 소비 지상주의에서 번창한다. 아마 키치가 가진 가장 위험한 측면이라면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적 정서와 이해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광범위하게 퍼뜨린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키치의 일부가 생활 방식의 정치화다. 62-63


대학들이 여행을 장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유학 프로그램의 ㅅ어장은 단과대학과 종합대학교에서 외국어 프로그램에 등록하는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상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는 어떻게 여행 키치가 조장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지표이다. 해외여행이 키치화하고 있다는 또 다른 지표는, 적어도 내가 있는 미국 대학교에서는, 유학 중인 일부 외국인 학생들이 하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인 학생들과 때로는 대학 당국까지도 피상적 수준 외에는 그들 조국에 대해 아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불평한다.

사실 정확한 여행 동기는 스스로도 확실하지 않을 게 분명하며, 확실해지는 날도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자아 발견과 다른 요인들이 섞여 있다는 게 다일 것이다. 처음에 나는 키치화한 여행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게 내 개인적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피상적 동기에 맞서는 게 우리가 "당연시하는" 가정들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가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더 철저하게 파고들수록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그런 가정들이 더 큰 구조적 문제의 일부라는 것, 또 인류학자들은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는 게 지적으로 정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해외여행이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게 사실인지에 때때로 의문을 제기해 왔다는 것이다. 63-64


초보 여행자들이 편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실용적인 조언. 

데이터 수집에 다각적인 접근법을 이용하고, 큰길을 벗어나 걸어서 다녀 보고, 틈틈이 여기저기 들러 보고, 소탈해지려 노력하고, 비수기에 가 보고,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구역을 벗어나서 시간을 보내 보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을 하고, 귀 기울여 들으로, 늘 똑같은 사람들과 판에 박힌 교류를 하는 데서 벗어나라. 다양한 집단 특히 보통은 의견을 묻지 않는 종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라. 67


고치에 싸인 채로 여행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여행 방식을 만들어 내고 결정짓는 광범위한 구조적 요인들을 고려해서 그런 요인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엄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67-68


플래시패킹(flash-packing, 노트북, 아이팟, 디지털카메라 등 전자 기기를 들고 여행을 다니면서 와이파이 등의 기술을 이용해 여행 경험을 블로그 등의 SNS나 실시간 방송 등으로 공유한다.) 70


관광에는 많은 유형이 있어서 학자들이 명실상부한 유형 분류 체계를 만들어 내기도했다. 에릭 코언(Erik Cohen)이 개발한 첫 번째 유형 분류 체계는 관광이 가진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지금까지도 편리하게 쓰인다. 코언은 참신한 경험을 선호하느냐 아니면 친숙한 경험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단체 대중 관광객"이다. 친숙한 것을 선호하고, 투명한 거품 속에 있는 것처럼 "특별 구역" 안을 돌아다니는 유형으로, 기본적으로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호텔로 옮겨 다닌다.  

두 번 째 유형은 "독자적인 대중 관광객"으로, 역시나 친숙한것을 고수해서 프랜차이즈 호텔에 묵고 평범한 관광 코스를 다니지만 행동을 독자적으로 한다. 

그 다음은 "탐험가" 유형이다. 참신함과 친숙함을 버무린 여행 방식을 택하고, 현지문화 탐구에 과감히 나서지만 언제든 "특별 구역"으로 돌아올 출구 전략을 갖고 있다.

마지막 유형은 단체 대중 관광객과 정반대 부류로, 일반적인 관광 코스를 피해 가능한 한 현지인과 섞이는 걸 선호한다. 방랑자는 현재 배낭여행객과 플래시패커로 자연스럽게 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여행조차도 거의 도처에 손길을 뻗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과 러프 가이드(Rough Guide) 덕에 제도화되어 있다. 이런 제도화는 현지인과 현지 음식과 관습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고, 인지된 위험(perceived risk, 구매가 가져오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희석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면에서 배낭여행객과 플래시패커는 탐험가와 방랑자를 결합한 형태이다. 이들은 인류학자처럼 해외여행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종류의 여행자다.  74-75



3. 스스로를 본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보라" 로버트번스


여행자들은 출신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해외에서는 현지인들보다 부유하지만 하면 그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으로 봐 줄 때가 많다. 결국 이들은 인기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매력적 성격보다는 이런 부유함이다.  87


여행자들은 기동성과 부를 가졌기 때문에 출국이라는 선택권을 발휘해서 마음에 안 드는 곳은 떠나 버린다. 이런 출국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여행자와 현지인 간에 존재하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이다. 이 말을 여행자는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로 인한 결과 또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들을 반드시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88


배낭여행자들은 현지어를 하나도 못 하면서도 자기가 어떤 환대를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하나쯤은 누구든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교류"란 현지에서 베푸는 환대를 받고도 숙박료를 내지 않는 걸 의미했다.  97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흔히 있게 마련이다. 비록 교훈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보통 이런 일은 일종의 탁월한 재밋거리로 여길 수도 있다. 여행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생명에 위협이 될 만큼 심각한 수준부터 단순히 창피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02


여행자들은 이야기를 할 때 부인하기 일쑤이지만, 봉이 되는 느낌은 뼈저리게 아프다.

사기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상당히 가지각색이다. 그런 공포를 참고 넘길 만한 여행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여행자들은 그러지 못해서 이런 공포가 지나친 경계심으로 바뀐다.사건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돌이켜 보면서 "좀 더 분별 있게 행동했어야 했다"고 반성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교육적이다. 이런 경험들이 새로운 행동, 새로운 자기 탐구, 자기 수양을 하게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위기에 대한 모의실험 같은 것으로, 우리는 천하무적의 존재가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103



4. 여행 의례와 개인적 변화

   - "사람들은 이런 저런 누구는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자아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토머스 사저


배낭여행자들은 사롱을 입거나 머리를 땋는 등 "현지인처럼 살려고"하는 시도는 통하지 않는다.


모험은 비일상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118

위험 감수는 모험의 본질이다.  119


알베를 카뮈(Albert Camus)는 "여행을 가치 있게 하는 건 두려움이다. 여행은 일종의 내면 체계를 붕괴시킨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모든 걸 빼앗고, 가면을 벗겨 버린다... 우리는 완전히 껍데기만 남는다."  121


지멜에게 모험은 경험 체계이다. "모험은 특유의 성격과 매력 면에서 볼 때 경험의 한 가지 형태라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경험하는 내용 때문에 모험이 되는 게 아니다."  122


중요한 것은 여행자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 행동을 현지인들이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그렇다면 여행자는 반드시 유연성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일반화도 피할 필요가 있다.  134


여행에 계몽적 영향력이 있다고 덮어놓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겠지만, 여행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외국에 있는 동안 모은 여행 사진, 옷, 공예품을 진열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과 여행 경험 간에 확실한 연결 고리를 만든다.  135-136




5. 여행안내 책자를 해석하는 법

   - "진정한 발견에 이르는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볼 때 이루어진다." 마르셀 프루스트


계획에는 상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장소가 어떤 곳일지 상상해 볼 때 인지적 도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상상한 목적지와 실제로 체험하는 목적지는 당연히 천양지차다.

여행자는 목적지에 대해 가진 지식이 제한적이다.  142


전해 들어 알게 된 이야기(story)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서구 사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보는 것을 우선시한다...

사진은 암암리로든 노골적으로든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여겨진다.  144


소비 중심 사회가 시각적 이미지에 지나치게 지배당하면서 때로는 렌즈가 시선을 대체하기도 한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안내서, 지도와 더불어 문서로된 가장 흔한 정보원 중 하나가 여행안내 소책자(brochures)이다. 여행안내 소책자는 드러내 놓고 특정 여행지로 여행을 떠나도록 유도 하거나 설득한다...

안내 지도는 대체로 현지에서 구해서 여행지를 보다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  145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시각 자료가 얼마나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감안할 때 여행안내 소책자는 분명 행선지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극히 단순화되어 있으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46


여행안내 소책자는 평범한 일상을 담은 이미지는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에 화려한 볼거리와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점을 둔다. 이때 묵살해 버린 것, 즉 드러내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147


아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학 광고 소책자를 살펴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토 윤곽 안의 합성 사진 사용법에 주목해 보라. 중심에서 약간 비껴나 위치해 있는, 아기에게 뽀뽀하고 있는 젊은 여성 사진이 어떻게 사랑스러운 아프리카를 암시하고 있고 얼마나 눈에 확 들어오는지 눈여겨보자. 야생 동물들과 학생들이 화기애애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하자. 아기를 빼면 현지인들과 교류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즉 어린아아와 같은 아프리카는 절대 위협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다.  151


역사적으로 폭풍우 곶(Cape of Storm)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여기서는 안전한 항구로서, 소비재를 구입하는 주용 관광 명소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은 폭력도 가난도 없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실업률이 40%에 육박하고, 살인 발생률과 HIV/에이즈 발생률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곳 중 하나라는 것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처한 현실인데도 말이다.  152


켈리 케이턴(Kellee Caton)과 칼라 산토스(Carla Santos)는 해상학기 프로그램(a Semeser at Sea program, 1963년에 처음 시작된 해외 유학 프로그램. 학부생들이 전용 유람선을 타고 일정 기간 해외 여러 지역을 방문한다.)동안 학생들이 찍은 사진.

케이턴과 산토스는 유람선에서 열린 학기 말 사진전 출품 사진들이 "식민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인 탐험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관계들"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동의하든 아니든 이러한 이들의 언급은 성찰적인 여행자라면 진지학 고려해 볼 만하다.  155-157




6. 여행을 준비할 때 고려할 문제들

   - "한 나라에 대해서 당신이 그곳에 있는 첫 두 주일 동안 알게 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은 결코 알 수 없다." 아이티 미국 국제개발처 사무소의 간판문구


여행자에게 큰 걱정거리라면 보통 전쟁과 테러로 대표되는 정세 불안, 건강, 범죄다. 세 가지 모두 관련 정보를 얻어 그에 따라 조치를 취하면 상당히 잘 대처할 수 있다.  165


자기가 모은 정보와 자료를 부모와 배우자 또는 연인과 공유하자. 분명히 걱정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안심시킬 수 있고, 이렇게 정보를 함께 나누면 그들도 여행 과정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166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에 대해 상당히 미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항공 보험에 들면 비행기 추락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기라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운명을 믿지 않으면서도 운명은 감히 시험하려 들지 않는 게 좋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 보험을 들면 아플 일이 없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확신으로 스스로를 기만한다. 보험에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는 이런 믿음은, 재난이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겨서 그런 일이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에 생긴다. 보험으로 신들을 달래겠다는 태도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성관계를 피하거나 염소를 제물로 바쳐서 효험을 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167


의사소통이 얼마나 용이한지가 여행지 결정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만 보통 여행자들의 현지 언어 구사력은 창피할 정도로 수준이 낮다...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목적을 정하면 좋다. 지역 사회에 잘 녹아들기 위해서라든가, 연구를 위해서라든가 하는 식으로 계획을 세우면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현지 문화 이해에 대한 순수한 관심도 현지어를 알아듣고 말하려는 시도에 도움이 되고 동기 부여가 된다.  169


마라톤이 그렇듯이 언어를 배우는 데도 많은 훈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171


현지어를 더 쉽게 배우려면 확실히 동행이 있는 것보다 혼자 여행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  173


혼자 들 수 없는 건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게 원칙이다.  173


프랑스 작가 콜레트(Colette)는 이렇게 썼다. "진정한 여행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다." 걸을 때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은 대개 단순함에서 온다.  176


혼자서 여행해야 할까, 아니면 동행이 있는 게 좋을까  178


혼자 여행하면 주변 환경에 대한 인지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모든 감각이 환기되어 지역 사회와 더 친밀한 교감이 가능ㅎ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친구 관계를 끊는 것보다 친구를 만드는 것이 더 쉽다는 걸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혼자라는 조건은 최선을 다해 현지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또 혼자 하는 여행은 가장 자유로운 여행 방식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맞춰서 움직일 필요가 없고,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을 형편에 맞게 이용하 수도 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믿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도 있으므로 계획 수립, 건강과 안전 문제에서 자립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타인의 호의에 더 많이 기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친화력은 물론이요,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온갖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히 유머 감각도 기를 수밖에 없다.  179


고독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해지게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사무쳐 오는 강렬한 감각은 기억 속에 경험을 아로새기는 역할을 한다. 또 사물과 자기 자신과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고독은 너무 지나칠 때를 제외하면 소중한 것이다.  179


동행이 있으면 경험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친구를 데려가면 일을 분담해서 책임질 수 있고, 좀 더 효율적으로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자신감이 커지는 데다, 함께 무언가 독특한 경험을 하면서정과 유대감이 돈독해지는 보상도 뒤따른다. 그러나 여행에는 고생과 스트레스가 반드시 수반되다 보니 우정과 관계도 가혹한 시험을 받게 마련이다. 서로 좋아하는것, 싫어하는것, 공포의 대상, (비)융통성, 낯선 것에 대한 (불)관용, 유머 감각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여행을 같이 하면 친구들끼리 결속력이 강화되든지, 친구 사이가 끊어지거나 멀어지든지 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180-181


기대를 안고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은 아주 신나는 단계이므로 이때 여행 일지를 쓰기 시작하는 게 좋다. 평범하고 세세한 준비 과정과 더불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이 여행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적어야 한다. 기대감을 묘사하고,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밝히고, 나가야 하는 이유를 기록하라. 예상되는 환경, 걱정, 공포를 상상해 보자. 이런 여행 일지에는 외국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느낌과 기대를 기록해도 좋다.  183


해외에서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유머 감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184


적응력이 지나치면 여행이 결코 끝나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말은 결국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84



7. 짐을 가볍게 하고 여행하기

   -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짐이 가벼워야 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특별히 혜책 받은 최첨단 세상에서는 경험을 전달하기는 쉽지만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현재 온갖 통신 장치 덕분에 사람들은 직접적인 경험은 거의 하지 않지만 세사엥 대한 경험을 경험한다.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해외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험보다는 전달로 바뀌고 있다. 즉 전달이 여행의 목적이 되었다.  194


여행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전자 기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기회다.  197


지루함은 혼자 힘으로,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197


사진은 기록 장치로서, 비망록으로서, 해외에서 보낸 경험의 산물인 상품이나 에세이나 책의 일부분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사진 촬영은 보이는 세계를 보여 주는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사진은 이야기만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효과적인 증거가 되며, 말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기록의 진실성을 입증한다.

늘 그렇듯이 사진 기술을 이용하는 것에도 장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사진이 여행의 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첫째로 고려하는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며, 윤리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카메라는 여행을 보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02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이다. 해외에서 자기가 한 경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경험을 실제로 보여 주기 위해서는 어떤 사진을 써야 할까? 카메라를 이용해서 피사체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모습뿐 아니라, 더 중요한 피사체의 세부도 보여 줘야 한다.  204


사진에 이름을 붙이고 목록을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날짜와 장소를 기록한 일지를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람을 찍은 사진에는 가능하면 그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첨부하는 것이 좋다.  205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윤리적 문제도 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taking picture)"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수전 손태그(Susan Sontag)는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을 찍는 다는 행위는 어딘지 약탈과 같은 면이 있다. 사람들을 찍는다는 건 그들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찍히는 사람들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그들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절대 갖지 못한 그들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은 상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대사으로 바뀐다.'  206-207


에드워드 브루너(Edward Bruner)가 말했듯이 카메라는 관광객이 쓰는 가면이다.  207



8. 현지인과 수다 떨기

   -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일단 알지 못하는 것을 대면하고 나면 공포는 아는 것이 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해외여행은 모르는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을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된다. 민감한 여행자라면, 해외여행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잘하면 인생관 및 인생철학까지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단체 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자는 한 가지 중요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바로 어슬렁거릴 자유이다.  215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지낸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믿고 일단 좋은 ㅉ고으로 해석해야 한다. 히피 방랑객이었던 에드 번(Ed Buryn)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갈라놓는 중요한 요소는 두려움이다. 해를 입을까 봐 두려워하고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창피를 당할까 돠 두려워하고 두려워질까봐 두려워한다. 따라서 사람들을 만날 때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그들을 덜 두려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때로는 퇴짜를 맞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자.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심각하게 우울해 해서는 안 된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면 그뿐이다.'  

두려움은 상상력과 여행의 숨통을 죈다. 사람들은 걱정이 되면 불쾌한 새악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분노가 일면 풍경을 봐도 음미하지 못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친밀감을 쌓아 가는 것이 좋다.  215-216


경계는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을 열라. 두려움에 반드시 굴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비책은 항상 세워야 한다.  217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 중에는 낯선 음식을 즐기고 싶다는 것도 있다. 

외국에 가 본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자기가 먹은 음식이 얼마나 별나거나 역겨웠는지를 가지고 서로를 이기려 들곤 한다. 일반적으로 요리가 "역겨운" 것이었을수록 우위에 설 수 있다. 음식으로 모험을 해야 하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여행자가 레스토랑이나 시장에서 그 요리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로, 어디까지나 돈을 주고 사 먹는 상황이다 보니 여행자가 그 별미를 먹거나 거부할 선택권을 갖고 있는 경우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것은 두 번째인데, 여행자가 묵는 곳 주인이 손님을 예우하는 의미에서 특별 대접을 하거나 잔치를 벌이기로 한 경우다. 그런 대접에는 딱정버레 애벌레나 메뚜기에서부터 모파니 애벌레나 쥐나 동물 내장이나 황소 음경 등에 이르는 어떤 진귀한 지역 별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225-226


사회의 기원은 음식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반자(companion)"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빵과 함께"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콤 파넴(com panem)"에서 왔다.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사회적인 행동이다.  226


만나는 모든 사람이, 겉으로는 따분해 보일지 몰라도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따라서 언제나 귀 기울여 듣고 새로운 뭔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자.  245


경청은 아주 중요하다.  249



9. 건강과 안전문제

   - "죽을 가능성이 없다면 모험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라인홀트 메스너


청결에 대한 개념은 문화마다 다르며, 심지어는 한 문화 안에서도 차이가 있다.  259


샤워는 반드시 매일 해야 한다는 개념도 최근에 아서야 생긴 것이다...

세계 많은 곳에서 매일 하는 샤워는 터무니없는 사치다. 

완벽한 청결은 보통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반면 신체 특정 부분들, 즉 구멍들과 무엇보다 손은 가능하면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260


소변과 대변에 대한 태도는 세월이 흐르며 변한다. 고대 로마 여성들은 얼굴에 대변을 발랐다. 젊은 피부를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란 믿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회에서 대변, 구체적으로는 왕과 그 밖의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의 대변은 약효가 있다고 여겨 다친 상처나 염증 부위에 바른다. 로마 여성들은 소변으로 목욕을 하고 입을 헹구기도 했다. 중세 유렵에서 태피스트리가 인기를 끈 이유는 궁정에서 귀족 남자들이 튀지 않게 소변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변은 커튼과 옷을 빠는 데 사용하는 다목적 액체였다. 지금도 미군 생존 수업에서는 소변을 응급 살균제로 쓰라고 한다. 사실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자기가 눈 소변을 마시는 게 장수 비결로 통하기도 했다.  261


이미 마개를 연 음료수를 받는다면 주인과 바꾼 후에 이게 "우리나라 풍습"이라고 말하라.  275



10. 좋은 여행 이야기 쓰는 능력을 높이는 방법

   - "진정한 여행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다." 콜레트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해외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여긴다. 그러나 가치 있는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글을 쓸 때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더 깊은 성찰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여행 경험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겪은 것을 글로 써서 되돌아보는 것이다.  281


자기 취향과 선호에 상관없이 일지나 기록 작성을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282


몇 가지 증거에 따르면 단시간씩 몇 번에 나눠서 쓰는 게 오랜 시간 동안 몰아서 쓰는 것보다 더 생산적일 수 있는 것 같다...

경험을 기록하고 작성하는 데 올바르거나 일반적으로 용인된 방식은 없다...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의 인생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단서들을 이용해서, 보통은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미루어 짐작한다.  283


글 쓰는 재주를 가지려면 대개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이야기와 통찰은 빈틈없는 기록에 달려 있다. 기록을 상세히 하면 분석과 분류가 가능하다...

기록이 뛰어나고 철저할수록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284


일지는 개인적으로 이용하려고 쓰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 맞춤법과 문법에 구애되거나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나중의 일로, 명확한 대상을 상정하고 이야기를 쓰거나 말을 할 때다.  287


자기가 한 기록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거나 논문을 쓸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288


성찰 과정은 현장 노트를 정서하는 동안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대체 성찰은 어떻게 하는 것이며 과연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보통 성찰을 세심한 고찰의 결과로 나온 이미지나 생각이나 아이디어라 정의한다. 그러나 성찰이 가진 또 다른 의미도 흥미를 자아낸다. 즉 반사면이 되비추는 이미지라는 정의다.  288-289


성찰 대상은 자기 자신부터 타인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을 어떻게 다루는지부터 자기가 방문한 곳과 그곳 사람들에 대해 알아낸 것까지 다양하다. 성찰은 또한 양측이 어떻게 서로 쌍방향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보여 줘야만 한다. 그러려면 이전에 가졌던 기대치와 목표를 검토해서, 그게 얼마나 만족되었는지 또는 아닌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289


자기가 쓴 기록을 훑어볼 때는 나타나는 패턴과 법칙, 즉 주제에따라 관찰 내용과 데이터를 분류해서 기록을 재구성한다. 그렇게 해서 전후 순서뿐 아니라, 패턴이나 주제와 관찰 내용들 간의 연관성도 반영하도록 노력하라.  290


성찰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궁금하다면 단순한 비교나 대조에서 출발하자. 이런 환경을 고국에서의 환경과 비교하면 어떤가? 이 상황은 아침과 오후, 낮과 밤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까? 관찰자의 성별이 이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91


스토리텔링은 매우 성찰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292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남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대화를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 희곡 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잘 표현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머릿속에서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진정한 사고란 바로 이런 것이다."  293


내 생각엔 글쓰기를 미루는 버릇이 생기는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어떤 게 나올지 알 수가 없어서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의식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글을 쓰기 전에 더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거나 조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머릿속에 있는 단 하나의 초안을 키보드로 바로 옮긴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보통 이야기나 논문이나 책은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손봐야만 하는 여러 초안이 필요하다. 294




여행을 끝내며 - 인간은 우주 속 티끌 같은 존재

인류학자처럼 여행하면 비판적인 자의식을 갖게 된다.  305


성공적인 해외여행을 위한 중요한 열쇠는 여행자가 자기 자신의 교육과 경험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떠먹여 주기만 바라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자기가 이미 갖고 있던 것과 곧잘 상반되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때 열쇠는 겸손함이다.

해외여행에 성공하려면 실수를 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게 끔찍한 실패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필수적 단계인 동시에 사실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여행에는 새로운 생각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307



역자후기 - 인류학자처럼 여행하라! 여행과 삶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은 해외여행객 연간 1400만 명 시대다.

전통적인 여행안내서는 여전히 정형화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치중하고 있으며, 책을 통해 전하는 여행지의 문화와 현지인들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피상적이거나 우월주의에 젖어 있다. 아마추어들이 디지털 장비로 올리는 여행기나 에세이식 여행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적 감상 위주로 피상적이고 개인화되어 있거나 전통적인 여행안내서처럼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나 관념을 계속 답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24-325


인류학자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뛰어난 장점은 인류학에 기반을 둔 여러 가지 주체적인 여행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로운 여행이라고 착각하고 무턱대고 아무 계획 없이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며 뭐든 얻어걸리기만 바라는 또 다른 의미의 수동적인 여행을 경계하고 있다. 저자는 엄밀한 인류학적 방법론에 기초헤서 진정한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이해,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꼼꼼한 계획부터 세우라고 강조한다.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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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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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이란건 결국 제도권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이 이 사회에서 말하는 사회성일 뿐. 
실제 삶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한 것이다. 성취라는 개념을 보더라도 성취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학업은 성취해야 하는게 아니라 익숙해져야 하는게 아닌가. 그 익숙함속에서 발전과 넘어섬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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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답을 찾기가 어렵지만 확실한 건 교육이 투기꾼들에게 잔디깔린 훌륭한 놀이터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정(假定 거짓가 정할정)들은 한눈에 들어오고 많은 이론을 끌어들여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오류라는 사실이다.  13

교육에 대해 토론할 때는 아이들이 수천 년, 아니 수십만 년에 걸쳐서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15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잠에서 깨어 나라느 외침과도 같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면 발달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새롭고 세련된 이론에따라 아이들을 그때그때 다르게 키우고 최신 유행 이론으로 시험해 왔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실험용 토끼로 만든 셈이다.  16-17

부모들의 대표적인 걱정거리
사실 그 무엇도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가운데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또 우리 부모는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리고 부모의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그 밖의 걱정들은 개롭게 우리에게 날아온 것이다. 부모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다음의 4대 걱정거리가 그것이다.
1. 버릇이 잘못 들지 모른다는 걱정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나중에 아이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특히 아이들을 너무 자주 안아 주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자고 큰소리로 울 때마다 안아 주고 오랫동안 젖을 물리면 "버릇이 잘못 들 수 있다."
2. 말 안 듣는 아이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 
아이들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려고 하는가?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한계를 정해 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들은 기싸움에 승리하여 무서운 '독재자'가 될 것이다.
3.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걱정
아이들의 발달은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부모가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면 아이의 발달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실수를 저지르면 어떻게 될까? 발달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아이는 평생 피해를 입을 것이다.
4. 자녀를 제대로 후원하지 못한다는 걱정
아이들이 훌륭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극과 후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
이 모든 걱정거리가 새로운 교육 이론의 원료가 된다. 부모들의 이런 걱정거리가 교육 시장의 투기꾼들에게 신선한 양식을 제공한다. 모든 걱정거리가 화려한 공중누각 같은 공허한 이론의 건툭 자재로 사용된다.
이 걱정거리들은 하나같이 아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긴 것들이다. 이 걱정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의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을 넘어 존재의 명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을 넘어 존재의 명맥을 이어 왔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에게 닥친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장점들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문제투성이와 약점덩어리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랬다면 어떻게 지난날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앞으로는 이 걱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아이에 대한 걱정들이 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으면 한다.  22-23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버릇 문제가 이야기되면서 부모들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한다. 바로 프로이트가 엄마의 과도한 애정이 아이의 성격 성숙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이후부터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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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반응해주면 습관이 된다는 것도, 반응해 줘야 된다는 것도, 모두다 심리학적 접근으로 설명한다. 어떤것이 옳은것인지를 떠나서 아이가 울음을 우는것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아이는 울음으로 밖에 자기 의사를 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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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울음에 반응이 없어 상처받은 아이가 무조건 잘못되는것도 아니고 반응이 있어 상처 받지 않은 아이가 무조건 잘 되는것도 아니다. 어린시절 뿐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처는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상처가 문제가 아니라, 늘 상세하고 자세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을 인정받고 나아가 해소의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잘되고 못되고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태교때는 태교만, 육아때는 육아만, 초등때는 초등만 중요한것처럼 떠드는 것은 의미없다. 다시마랳 부분최적화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전체를 조망해서 나아가는 전체최적화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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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생후 두 번째 되는 해, 부모와 좋은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에 고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1~2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고집을 부린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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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고집시기는 어쩌면 당연히 받아주어야 하는 과정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만 그런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런다는 것을 자연적인 흐름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애착관계가 강한 아이는 이 고집과정이 없거나 있더라도 대화로 풀어가면서 쉽게 지나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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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거부는 자신의 이해관계 다시 말하면 발달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혁명이다.  36

왜 우리는 고집스럽게 아이들의 행동 방식을 '권력의 문제'로만 해석하려는 걸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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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성장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훨씬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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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은' 정도로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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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표현이 부모에게 더 근심을 안겨준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도, 표현도 없다. 그러니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차피 기준도, 답도 없는것인데 전문가라는 집단은 자기 공부 자랑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발표해서 더 어렵게 끌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연구 조사가 때론 유익하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도움이 안되기도 하기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
판단은 부모가. 결국 부모의 판단력의 기준이 중요할 뿐 이들의 연구 발표는 나중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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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매일매일 내리는 결정은 가느다란 비단실과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과 고통은 그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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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시간에 잠자고, 일어나고, 특정한 시간에 먹어야 하고, ...
인간이 시간속에 살아가진 하짐나 시간이란 개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기에 우리가 자연적인 현상을 시간에 끼워 맞추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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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뒷머리는 원래 남작하지 않은 곡선 모양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기들을 항상 눕히지 않고 안거나 업고 다녔기 때문이다.  49

왜 우리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는 것을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아기를 안거나 업고 다닐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면서 새로 나온 유모차의 플라스틱 부풉에서 배출되는 수백 종의 화학 성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왜 우리는 다이옥신에 오염된 달걀에는 민감하면서 아기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플라스틱 물건에 대해서는 무감할까?  50

독립이 인간의 발달에서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인간에게 독립은 "고속도로에서 멋대로 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능숙하게 교류하는 능력에 근거를 둔다. 독립의 본질은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61

나이가 다양하게 섞인 집단의 아이들이 오히려 서로를 격려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다양하게 섞인 집단의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인내력과 창의력을 더욱 발휘한다.  79

손위 형제 자매와 친구들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쉬워진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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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에서 어떤 관계든 상처를 받게 된다.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또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받은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즉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상처가 어떤것이든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정도의 성숙함이 있다면 또는 그것을 기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래내용(p98)에서 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 즉 회복력이다. 그 힘을 기르려면 가족의 애착과 형제관계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친밀함을 유히자는 주위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후에 또래 아이들과의 조직이 필요하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래 집단에 앞서 형성해야할 회복능력이, 이후의 더큰 회복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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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회복력'이라고 정의한다. 회복력은 위기를 견디는 능력이나 내면의 힘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발달의 면역 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회복력을 강화하는 외부의 영향력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형제자매, 풍부한 사회적 관계의 그물, 가족 바깥에 있지만 친밀한 애착 관계에 있는 사람, 예를 들어 할머니, 이모나 고모, 또는 어른들이 바로 그런 영향력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아이 집단에서 사회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더 큰 회복력을 갖는다.  98

아이들을 사회적으로는 허약한 최고 점수 득점자로 망가뜨리지 않고, 그럼에도 아이들이 화면 앞에 앉아서 또는 장시간 이완 상태에 빠져 타락하지 않도록 해 주는 교육 방법은 없는 걸까? 부모가 헬리콥터처럼 아이의 주변을 뱅뱅 돌면서 일일이 간섭하고 조종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라"는 주장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그들을 후원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을 찾으려면 우리는 다시 아이들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124

아이들이 성장하는 환경은 매우 다양하지만 적절한 발달을 위한 토대는 항상 동일하다.
첫째는 확실한 애착이다.
둘째는 다른 아이들이다.
셋째는 공동체의 지원이다.  
넷째는 자유다.
다섯째는 균형 잡힌 세계다.  127-128

꽃잎을 자꾸만지면 아름다운 꽃이 피지 않는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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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교육이 좋기만 한 걸까?
적기 교육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분명 어린 나이에 많은것을 교육시키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3세에는 이것, 5세에는 이것을 가르친다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특정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의 장점을 설명하듯이 특정 전문가들이 적기 교육을 강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정한 연령대에 특정한 교육이라는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을까?
위의 전문가 집단들의 서로 다른 가설에 의한 실험 결과일 뿐이다.
이 책은 진화의 관점을 강조하며 설명한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이든, 창조의 관점이든,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교육이라는 개념이 시스템화 되지 않았어도 잘 자랐고, 성인이 되고, 자기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술 담배를 교육시키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다. 몸의 체계 형성도 되기 전에 파괴만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라면 당연히 그럴것이란 점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교육이라는건 그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아이를 아이가 아닌 하나의 개체로 인정한다면 시킬것도, 시키지 않을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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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완벽하고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후원도 이와 같은 뿌리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141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도대체 학교의 사명은 무엇일까?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의 발달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주의하기 바란다. 모든 아이들의 발달을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학교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대답을 하자니 망설여진다. 그렇다고도 또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지원하면서도 포기한다. 훌륭한 학교도 있고 낙제점인 학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교사들의 열과 성이 부족하거나 제안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학교의 교육 계획과 교과 과정의 변화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 딜레마가 있다.  146

병원은 어린 생명을 다루는 지식은 의학을 전공해야만 얻을 수 있고 전문가를 통해서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모들이 아기에 대한 책임을 병원에 떠넘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171

성인들도 '결합 속의 자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188

실제로 세계화 이후 독일에서 자녀가 있는 성인들의 실질 소득은 계속 하락했다. 적어도 중하층 가정에서 자녀는 빈곤의 위험을 의미한다. 실제로 성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자녀를 가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190

"정치가 꼭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다. 육아가 기쁘면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는 유럽 발달소아과학계의 원로 레모 라르고(Remo Largo)의 말이다.  191

좀 더 솔직해지자.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밑바닥 사람들의' 사회적 문제만은 아니다. 기득권층에게 통합 정신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한 계층 전체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문제다.  193

결정하는 사람은 엄마다.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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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늘날 아이 양육에서 결정자가 엄마일까? 부모일까?
아니다. 양육의 돌보미가 부모이고, 결정자는 기업과 사회이다. 기업은 전문가 집단 또는 전문가 개인을 이용해 아니 앞세워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이것을 해야 아이의 정서가 발달하고 창의성이 생기고, 사회성이 생기고, 리더십이 생기고, 독립적일 수 있고, 재밌어 하고, 행복해 한다고...
행복마저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세뇌를 시켜 결정자의 역할을 한다.
부모는 다만 내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마냥 전문가의 말이 신실한듯 따라간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전문가를 통해 조종하고 있는 결정자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 잘 알지 못하고 미래도 모르니 좀더 많이 아는 사람의 말을 진리라 생각하면서.. 
부모의 기준은, 전문가를 등에 업은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고 있는 사회의 기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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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교육은 기존의 지식, 다른 사람들에게 물려받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이 돼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만을 배웠다면 인류는 아마도 불을 다루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터넷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213

호모 사피엔스에게 교육이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행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것도 교육이다. 자기 학습, 자기 교육이 그런 것이다...
인생의 지식은 밑에서 위로 오르기도 한다.  214

아이들은 학습을 위해서 단순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은 관찰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겐 롤 모델이 필요하다. 
그들은 무턱대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치를 두고' 관찰한다.  215

사람이 처방전에 따라 살거나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듯이 교육도 처방전을 따라할 수 없다.  218

아이들에게는 집단의 경험이 필요하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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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가족제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집단의 경험이 이루어졌다. 또래들의 집단 어른들과의 집단, 모계집단, 부계집단등 대가족 아래서 다양한 집단 경험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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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획기적인 육아, 새로운 육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본이 되는 육아는 분명히 있습니다. 16세기 교육학자 코메니우스는 <대교수학>에서 태어나서 만 6세까지는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엄마 무릎 학교'는 엄마의 품, 가족의 품, 자연의 품을 주는 학교입니다. 5 요즘의 육아 문화는 아이를 자꾸만 엄마 품에서 떼어놓으려 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세 가지 품, 즉 엄마의 품, 가족의 품, 자연의 품에서도 엄마의 품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아이가 살아가면서 두 가지 능력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스스로 살아가는 힘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입니다. 그런데 만 3세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더불어 살아가는 힘이 부족합니다. 아니, 이 또래 아이들은 아직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의 놀이 단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 1, 2세는 '혼자 놀이'를 하는 시기입니다. 18 근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메니우스는 엄마의 무릎이야말로 어린아이에게 가장 좋은 학교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0~6세 때는 아이가 엄마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엄마 무릎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세상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아교육학자 에릭슨은 만 1, 2세 영아는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엄마와의 안정된 애착 관계 속에서 엄마를 믿을 만한 존재라고 인식한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대해서도 신뢰감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어떤 유아교육전문가도 만 3세 이전에 친구를 만들어주라는 주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아이의 사회성을 고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뜻이죠. 21-22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드는 성장이 더딘 영아는 엄마와 입을 맞추거나 껴안고 쓰다듬는 등의 신체적 접촉이 적었고, 엄마가 다가오는 아이를 꾸짖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합니다. 부모 특히 엄마와의 신체적 접촉은 아이가 세상을 느끼고 이해하는 첫 번째 창이며, 아이 발달의 전반적인 토대가 됩니다. 엄마와의 접촉을 통해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자신감을 얻고, 그 따뜻함을 통해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라고 믿게 됩니다. 32 육아 용품을 고를 때 그 물건이 아이와 엄마의 신체 접촉을 도와주는 것인지 아니면 방해하는 것인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34 아이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안기고 싶다고, 만지고 싶다고 말입니다. 아이가 신호를 보내다 지치기전에 엄마가 먼저 아이를 보듬어주세요. 38-39 단군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육아법인 단동십훈(檀童十訓)이 있고, 퇴계 이황 선생이 고안한 건강 체조인 도인법(導引法), 호랑이, 곰, 학, 원숭이, 사슴 등 다섯가지 짐승의 몸짓을 형상화한 오금희(五禽戱)등이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몸짓놀이인 단동십훈은 단군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돌도 안 된 어린 자손들을 가르치던 열 가지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리도리 짝짜꿍입니다. 사실 예전에 우리가 어릴 때에는 집에서 할머니, 엄마와 함께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잼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과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심심하면 언제, 어디서나 하던 몸짓입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수입한 체조나 프로그램이 더 과학적이고 세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도리도리 짝짜꿍보다는 서양의 체조를 하게 되고, 아이들이 스스로 기고, 일어나 앉고, 걸음마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보다 보행기에 앉혀서 아이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42 - 불아불아(不亞不亞) :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세워서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며 "부라부라"라고 노래합니다. "귀하고 귀한 우리 아가 무럭무럭 자라 세상을 비추는 밝은 빛이 되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시상시상(侍想侍想) : 아기를 세우거나 마주 앉게 해서 앞뒤로 밀었다가 당기며 "시상시상" 또는 "달강달강"이라고 노래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라"라는 의미입니다. - 도리도리(道理道理) : 아기 머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도리도리"라고 노래합니다. "세상의 도리를 깨우쳐 슬기롭게 살아라"라는 가르침입니다. - 지암지암(持闇持闇) :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잼잼"하고 노래합니다. "옳고 그름을 잘 헤아려 바른 행동을 하고 바른 사람이 되라"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 곤지곤지(坤地坤地) :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콕콕 찍으면서 "곤지곤지"라고 노래합니다. "땅의 이치를 본받아 덕을 쌓으며 살아라"라는 가르침입니다. - 섬마섬마(西摩西摩) : 아기를 어른의 손바닥 위에 일으켜 세우며 "섬마섬마" 또는 "따로따로"라고 노래합니다.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서 굳건히 살아라"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 업비업비(業非業非) : 아이가 좋지 않은 행동, 위험한 행동을 할 때 두 팔을 앞으로 뻗어 손바닥을 흔들면서 "에비에비"라고 합니다. 섭리에 맞는 행동을 일깨우는 말로,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삼가라"라는 뜻입니다. - 아함아함(亞含亞含) : 손바닥으로 입을 막으며 "아함아함" 소리를 냅니다. 아이가 작은 우주임을 알리는 뜻입니다. - 작작궁 작작궁(作作宮作作弓) : 두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내면서 "짝짜꿍 짝짜꿍"하고 노래합니다. "착한 마음, 기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라는 뜻입니다. - 질라아비 훨훨(質羅阿備 活活) : 두 팔을 활짝 벌려 크게 흔들며 "질라아비 훨훨"하고 노래합니다. 이제 천지우주의 모든 이치를 깨달았으니 "땅의 기운을 받아 아무런 질병 없이 활기차게 살아가라"라는 뜻입니다. 44-46 아이들 건강의 본질은 움직임입니다. 47 아이에게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찾아보세요... "하지마"보다는 "이렇게 해볼래?" "안돼"보다는 "그러면 엄마가 걱정이 돼" "뛰지 마"보다는 "걸어서 가볼까" "시끄럽게 하지 마"보다는 "작은 개미처럼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51 아이들은 엄머의 표정에 무척 민감해서 수시로 엄마의 표정을 살피곤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대할 때는 표정에 신경을 쓰고 진심을 다해 안아주세요. 52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가장 가깝고 누구보다 아이를 지지하는 엄마, 아빠로 부터 인정을 받아야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의 토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진지하고 따뜻한 반응만으로도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말을 들어줄 때 아이가 말하는 시간보다 엄마가 말하는 시간이 길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55 아울러 아이의 말을 들을 때 사이사이에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할 일은 아이의 말을 반복해주는 것입니다. 56 엄마가 자신의 기분을 잘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단지 속상하고 기분 나쁜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표현한 것뿐입니다. 거기에 대해 엄마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만 전달하면 됩니다. 57 아이의 자존감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칭찬입니다. 그런데 엄마들은 무엇을 칭찬해야 할지 모르겟다는 말을 곧잘 합니다. 아이가 잘해야지 칭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꼭 잘하는 무언가가 뚜렷하게 있어야만 칭찬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중에서 잘하고 있는 점을 찾아 칭찬해주는 건 어떨까요? 69 우선, 아이에게 기대하는 수준을 낮춰야 합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죠... 무엇보다 칭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70 아이는 모두 다릅니다. 기질, 성격, 사회성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발달 단계에서도 뚜렷하게 개인차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면만으로 단순하게 비교해서 우리 아이는 처지는 아이, 다른 아이는 똑똑한 아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비교를 한다면 아이의 예전 모습과 비교하세요. 그러면 아이를 칭찬할 거리가 무궁무진해집니다. 71 "그만큼 한 것도 정말 잘한 거야"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긍정적인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아이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73 아이를 심하게 꾸짖으면 실패를 감추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꾸중에 익숙해지면, 더 규칙을 지키지 않게 됩니다. 74 아이의 어리광은 엄마의 사랑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76 "아직도 애기처럼 어리광을 부려?"라고 면박을 주기보다는 아직 엄마의 사랑이 고픈가 보다 생각하고 아이에게 사랑 표현을 더 많이 해줘야 합니다. 78 아이 스스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독립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독립심은 아이들의 마음이 안정되어야 가능한 심리입니다. 유아기는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의존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어리광을 부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아이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 깊은 인간관계르 맺게 됩니다.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79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아이의 어리광을 받아줄 경우, 아이는 자기 조절력이 부족한 아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자기 조절력은 사회성의 기본입니다. 81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줘야 합니다. "동생한테 색종이를 조금 나눠줘봐. 그럼 동생이 네가 접고 있는 종이는 찢지 않을 거야"하고 말입니다. 87 세 가지를 염두하고 신중하게 꾸짖는다면, 의도하지 않게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은 피할 수 있을것입니다. 첫째, 꾸짖지 않아도 될 일을 꾸짖고 있지는 않은가요? 둘째, 나이에 따라서 꾸중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자기가 왜 꾸지람을 듣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꾸지람을 해봤자 역효과만 나기 때문입니다. 세살이 될 때까지는 아이에게 규칙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세 살을 넘기면 아이들은 "싫어" "안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자아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꾸짖는 것보다는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네 살을 넘기면 ..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면 아이는 점점 포기도 하고 참을 수도 있게 됩니다. 다섯 살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규칙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엄마는 무엇이 바른 행동이고 나쁜 행동인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이해시키고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이라고 꾸짖을 때가 많습니다. 87-89 아이가 해야 할 일은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입니다. 이것이 유아들의 삶의 기본이고 핵심입니다. 96 아이를 올곶게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의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보육 현장에 학부모 참여가 많을수록 아이의 성장은 알찹니다. 97 일관성 있게.. 유아교육기관에서 인스턴트식품, 가공식품을 먹이지 않는 교육을 하고 있는데, 주말 동안 아이와 함께 햄버거나 피자를 사 먹으러 다닌다면 기관에서 하는 교육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으며 아이는 평생 인스턴트식품, 가공식품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101 아이들의 권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놀 권리입니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바깥'에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세요. 공원이 있고, 숲이 있습니다. 실제로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지식은 많은데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이 서툰 아이들이 있습니다. 109 아이들 손을 잡고 서점으로 향하는 만큼 마음껏 노는 것을 지켜봐주고 함께 놀아줘야 합니다. 유아기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가장 치열하게 놀아야 하는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14 현재 학제의 기반이 된 코메니우스의 교육 이념에 따르면 0~6세까지는 '엄마 학교'에서 배워야 하고, 6~12세까지는 모국어를 외국어보다 우선해서 교육받아야 하며, 12~18세에 비로소 외국어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고 합니다. 119-120 아이가 자라는 데는 순서가 잇습니다. 많은 유아교육학자들이 유아기에는 감각적 체험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아이들의 수준에 가장 적합하다는 말입니다. 몸의 감각이 먼저 자라고, 그 다음에 머릿속의 사고가 자란다는 것이죠. 123 아이와 외출할 때, 스마트폰에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몇 편을 저장해서 유모차의 스마트폰 거치대에 올리고, 물과 간식만 챙기면 어떤 놀이터에서 놀리는 것보다 아이 보기가 낫습니다. 128 -------------------- 편한것이 독이다. 편한것은 덜 움직이면서 즐기는 것이고, 그것은 감각을 수동으로 만든다. -------------------- 스마트폰 속의 게임과 동영상에 자주 노출되면 빠르고 강한 자극에는 반응을 하지만 현실에서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팝콘 브레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도 아이 앞에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130 정작 아이들의 집중력은 자신이 원하는 '진짜 놀이'를 하고 놀 때 생깁니다. 아이들에게 진짜 놀이란 집 안이나 교실 안보다는 바깥에서 하는 놀이입니다. 134 국내 뇌의학 연구의 권위자 서유헌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뇌는 크게 세 부위, 즉 생명의 뇌(본능), 감정의 뇌(정서욕구), 지식의 뇌(교육)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 세 부위는 적절한 시기에 차례대로 발달합니다. 따라서 발달 시기에 맞게 적절한 교육을 해줘야 뇌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138 0~3세는 감정의 뇌가 발달하는 시기로, 감정이 최고로 발달하게 자극해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뭔가를 배우기보다는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넘어지는 등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이죠. 3~6세는 전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로 주의집중을 하는 힘, 장기적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하는 힘 등이 이때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부모가 억지로 시키는 과외활동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선택하게 해야 동기부여가 되고, 이때 동기부여가 잘되면 나중에 학교에 가서도 알아서 잘 합니다. 이때 끈기 있게 뭔가를 하는 습관을 익혀야 공부할 때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때는 뭔가를 가르치는 시기가 아니라 태도를 가르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놀이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139 무엇보다 장난감이 없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친구와 자연과 어울려 노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146 궁하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장난감 없는 '심심할 틈'을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고 놀이를 찾아내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합니다. 147 처음부터 시간을 딱 정해놓지 마세요. 아이의 놀이가 무르익기도 전에 "이제 들어가자. 아까 약속했지?"하고 번번이 놀이를 끊어버리면 아이는 자신의 놀이를 발전시켜나갈 기회를 제대로 갖기 못합니다. 바깥에 나갔을 때 먼저 싫증을 내는 쪽은 언제나 어른입니다. 아이의 놀이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주세요. 148-149 학원이... 아이만의 독특함을 흐린다고 생각. 157 ---------------- 아이들은 천재다. 우린 어른의 입장에서 버려진 천재성을 모르고 아이의 천재성도 버리는 교육을 시킨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라며.. 우린 우리의 천재성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아이는 아이의 천재성이 있다. 기억할 것은 우리처럼 만들지 않는 것이다. ---------------- 그림을 수학공식처럼 그려냅니다. 그래서 미술학원을 다닌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그림을 섞어놓으면 대부분 구별이 가능합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158-159 오랜 시간 구조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답에서 벗어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160 ---------------- 교육은 틀 속에 넣어버린다. 우린 틀이 없는 자연속에서 태어났음에도 말이다. 옛 교육들은 틀을 벗어나게 가르쳤다. 그것이 새로운 깨달음이되고 과거시험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즉 깨달아 알게 했다. ----------------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도롱뇽의 꿈틀거리는 몸부림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도롱뇽을 그릴 수 있고, 바람의 내음을 맡아보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바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161 아이들은 교실에서는 시간을 자주 묻지만 숲에서는 묻지 않습니다. 교실에서는 걸핏하면 선생님을 찾지만 숲에서는 잘 찾지 않습니다. 163 숲의 자연은 '미완성'이어서 아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갈 여지가 있습니다. 164 아이들은 어디서든 본능적으로 알아서 놀이를 만들어 냅니다. 가만해 지켜보고 있으면 아이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 흠뻑 빠져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66 아이의 사고력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아이는 책을 통해서 몸으로 체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간접 경험하고 복합적인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되죠. 그러나 아이의 사고력이 반드시 책만 많이 읽는다고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아이는 바깥에서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172 또 하나,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빈둥거릴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혼자 생각할 수 있는 틈이 필요합니다. 173 소리 명상도 재미있습니다. 주변의 소리나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공유해보는 것이죠. 175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는 오히려 맑은 감성으로 주변을 탐색합니다. 탐색은 아이로 하여금 궁리하게 하고, 궁리는 수많은 질문과 사색을 낳게 합니다. 176 아이들이 몰입하고 궁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미리 주제를 설정해 아이들을 끌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따라가면서 같이 고민하고 궁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왜?"라고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을 선생님은 묵묵히 지켜볼 뿐입니다. 혼자서 생각에 빠질 틈을 갖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왜"를 묻지도 않고 답을 찾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178 시각, 후각, 청각은 몸에서 한 치 떨어진 대상을 체험하는 것이라면 촉각과 미각은 몸에 직접 맞닿은 채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181 아이와 함께 집안일을 하면 아이가 재미있는 놓이를 즐기는 와중에 이런 좋은 점들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어른이 하는 일을 같이 하니 어른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둘째, 일을 시작해서 잘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책임감이 싹틉니다. 셋째, 손끝이 야물어집니다. 넷째,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유대감이 커집니다. 184 주의할 점은 아이가 엄마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아이는 핵심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번거롭더라도 아이에게 '진짜' 일을 맡게 해주세요. 185 ------------------ 집안일을 재미있게 여기려면, 평소 부모의 모습에서 지루함이나 불만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서로 즐겁게 하는 경험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함께 해 나갈 수 있다. 결국 아이를 집안일에 동참시키려면 부모는 그것에 부정적인 느낌을 심겨주면 안된다. ------------------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우리의 손은 보이는 뇌와 같다"라고 말했듯이 손과 뇌는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87 선생님이 평소에 자수를 놓거나 뜨개질을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물어봅니다. "이거 뭐예요?" "뭐 하려고 해요?" 마지막에는 "나도 해보고 싶어요"라는 말로 끝이 납니다. 188 ---------------- 선생님이 취미로 즐기고 있을 때, 아이들은 그 즐거움에 호기심이 생기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혹이 생길 수 있다. ---------------- 위험하다고 못하게만 하거나 중요한 과정은 엄마나 아빠가 해버리면 아이의 큰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191 "넌 어려서 못해" "위험해"라는 말로 아이들의 독립심과 창의성을 오그라들게 하기 일쑤입니다. 194 ----------------- 아이도 하나의 객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이러한 표현은 하지 않게 된다. ----------------- "도시 아이들이 눈 똥에는 파리도 앉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등을 많이 먹는 도시 아이들의 똥에는 독성 물질이 많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과자를 권하느니 담배 한 대를 권해라"라는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서 먹는 과자나 빵, 음료의 유해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197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제철 음식은 다양합니다. 200 유기농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고 퇴비와 천연 재료만으로 짓는 농사입니다 화학비료는 사용하되 약을 치는 횟수를 줄인 저농약, 화학비료를 일부 사용하되 농약은 일절 쓰지 않는 무농약, 화학비료와 농약은 쓰지 않았으나 아직 땅이 완전히 살아나지 않은 전환기농 단계등이 있는 것을 보면 유기농으로 가는 단계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202 유아기에 자연의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는 돌아갈 맛의 고향이 있습니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자연의 음식을 먹었던 습(習)이 있기 때문입니다. 205 -------------------- 인스턴트를 끊고 싶지만 자꾸 생각이 날때가 문제이다. 이럴때는 자연식 재료들을 이용해 대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 인스턴트의 맛보다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져 가야 하는 것. 타협이 없어야 한다. -------------------- 육류와 채소의 섭취 비율을 송곳니와 어금니의 비율로 이야기학기도 합니다. 사람은 어금니와 송곳니의 비율이 4대 1로, 채소나 곡물을 4, 고기를 1로 먹으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7 흙을 접하게 해야 합니다. 흙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213 농작물을 가꾸면서...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214 싱그러운 바람, 따뜻한 햇살, 풀냄새, 나무 그늘, 부드러운 흙덩이의 감촉, 깻잎의 향기, 고추의 톡 쏘는 냄새는 아이들의 감각을 풍요롭게 합니다. 215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을 어떻게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까요? 216 육아는 연습이 아니기에 그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볼 수 없습니다. 한 방향을 택해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 육아입니다. 224 ----------------- 명확하고, 정립된 기준이 있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압박도 견딘다. ----------------- 어른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를 바라봐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기르다 보면 아이가 자기 길을 찾아갑니다. 227 부모 사이가 좋은 가정의 아이는 대체로 발랄하고 아이답습니다. 거리낌이 없고 그늘이 없죠. 241 놀 친구, 놀 공간, 놀 시간을 찾아주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돌아온 아이에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놀고 싶은지 물어보고 아이의 하루를 들어주는 아빠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48 ----------------- 사춘기로 접어들면 어떻게 될까? 또래를 찾아주고, 어땠는지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춘기를 넘길 수 있을까? 또래가 필요한 만큼, 또래 아닌 친구들도 필요하다. 그게 더 정서적이지 않을까. ----------------- 요즘 아빠들은 자상하고 따뜻하고 친근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아이에게 아빠가 큰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줘야 합니다. 249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따라하는 데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기질과 성격 같은 유전적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행동과 태도까지 그대로 닮아갑니다. 253 "아이는 부모의 눈으로 보고, 부모의 귀로 듣고, 부모의 몸으로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까탈을 부리는 아이 뒤에는 까다로운 부모가 있습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아이 뒤에는 느긋하고 사려 깊은 부모가 있습니다. 산만한 아이 뒤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는 부모가, 아이다움을 지닌 아이 뒤에는 천진난만한 부모가 있습니다. 254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죠.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이들은 부모의 흉한 뒷모습을 보고 따라 배웁니다. 그러니 신독(愼獨)하는 마음으로 매순간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55 ----------------- 노력하는 것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마냥 노력한ㄴ 것이 아니라 노력이 몸에 베여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뒷 모습역시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이가 세상에 오기전에 가다듬고 있어야 한다. '부모자격증'이란 표현처럼. ----------------- 결혼하고 나서 근검절약하는 시집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생활할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258 ----------------- 절약도 경험에서 온다. ----------------- 조금 '없어 보이긴'해도 아이들의 표정만은 건강하게 살아 있죠. 소박함은 정신의 습관입니다. 262 ----------------- 많이 없어보여도 된다. 그러면 애처로워 생기는 것도 많다. -----------------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양성(兩性) 3세대, 즉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아이들이 같이 생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족 구조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고 해도 양육의 주도권은 엄마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의 책임을 모두 부모가 지고 있는 것입니다. 271 나오며 육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육아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잡다단한 여정입니다. 275 아이를 키울 때 고려해야 할 대상의 범위를 넓히고 긴 시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부모는 담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간 크게 마음을 먹고 소신 있게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276 육아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순간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은 버리고 내가 선택한 길을 소신껏 밀고 나가는 뚝심을 가져야 합니다. 277-278 ------------------ 자식 농사 일 이년 아니다. 족히 20년이상 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켜보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 유도리있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때 아이와 함께 하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 ----------------------- 저자는 코메니우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글을 전개한다. 맞는 말이 많다. 그런데 코메니우스는 현대 교육의 지표이다. 결국은 초중고의 학교 시스템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내 생각과는 좀 다른 부면들이 있었다. 아이를 놀이 환경에 빠져 있게 하는 부분을 동감하지만, 7세 이전에 책보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은 공감하지 않는다. 아이가 자연스러운 모습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면 자연스러움속에 학교 시스템이 존재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활동적이며 매 순간이 놀이스러움 속에 살아가면서 동시에 아이속의 그리고 놀이 속의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때로는 복습적으로 접하면서 지내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한 그런 과정속에서 새로운 상상력 즉, 경험을 틀을 벟ㅅ어난 상상력이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야만 아이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없이도 잘 자랄 수 있다. '시스템'. 이 단어 역시 자연스러움은 아니지 않는가. 많은 학자들이 교과 과정을 만들었다지만 이것 역시 인공적인 소산물일 뿐이다. 결국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장에서 찍고 만들어지는 시간을 12년이상 거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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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알고 있다. 자신이 부모로부터 양육받은 대로 자식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9


아빠가 되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아빠라는 역할이 덜컥 주어졌다...

기쁨과 두려움, 탄식과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나보다는 아내의 적응이 훨씬 빨랐다.  14


나는 아빠로 태어났다.  15


아빠 효과(father effect)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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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문 보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의 경험이 없는 아이가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엄마는 좋은 선생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빠 역시 선생이 아니겠는가. 아이의 주위가 모두 경험치 증가 요인인데 왜 논문이 필요할까. 아빠 효과는 아이의 중요한 2대 요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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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1. 자녀에 대한 아빠의 무관심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 현상이다?

아니다. 아빠가 경제활동에만 전념하고 육아를 아내의 몫으로 떠넘긴 계기는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화 이전에 부부는 공동 작업자이자 공동 양육자였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명문가일수록 자녀의 학업과 진로 결정은 아빠의 몫이었다. 조선시대의 가부장제는 아빠의 무관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빠가 자녀양육과 집안일에 중심이 된다는 의미였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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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자로서의 아빠는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오늘날 보편적인 생각일 뿐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시간'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활동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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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5. 아이에게 좋은 아빠는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다?

아니다. 무조건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능사는 아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면 된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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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해력이 필요한 부분아닐까. '짧은 시간'이란 개념의 문제이다. 정말 짧은 시간으로도 가능할까? 아이와 아빠의 교감상태가 있을 때. 아니 충실할 때 가능한 것이다. 

부부나 연인이 짧은 시간만으로 질적인 것을 추구하면 문제 없이 이어져 갈까?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질투를 한다. 성인도 그러한데 아이가 가능하다고 본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질적으로 가능할 만큼 많은 시간을 두고 공감력을 높여야만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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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원하는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일 텐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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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권의 책에서 아이와의 시간은 불과 짧은 시간이란 표현이 나온다. 5년이건, 10년이건. 

우리가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내가 죽는날까지이다. 중간에 변수가 없을때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원하는 시간은 그 기간보다 더 길어야 정상아닐까. 내가 없어도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아 힘들때 의지가 되어주는 존재. 기쁠때 한켠에 떠올릴 수 있는 존재.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부모가 없을 때 힘들어 자살을 하고 싶어지더라도 추억을 가지고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끈을 잡는것. 주위의 다른 어떤것도 힘디 되지 않을 때 힘이되어 주는 것. 나는 아이와 그런 관계를 유지해 가고 싶다.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아이와의 시간을 보상받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모험이다. 잘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아이는 아이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에 빠져 찾지 않게 될 수도 있지만,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그것이 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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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아빠!!!!!!  28


아이들을 종일반에 맡기고 벌 수 있을 때 더 벌라고 말한다.  30



"나중에 좀 크면 그렇게 하고, 지금은 우리가 골라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그러다가 결국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이가 원하는 책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책을 사주더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말이 되는 소리르 한다고 생각해?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집어도 사주자는 거야?"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해야 아이도 점차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니까!"

"지금 시기에 읽어야 할 책이 있다고!"  .....  34


아이들은 '자기중심성'이 강해서 모든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부모의 갈등(싸움, 이혼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36


큰틀에서.. 아빠건 엄마건 자녀가 잘 되고 행복하길 바라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본질적이라기보다는 방법에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7


서로가 가지고 있는 '부모상'이 다를 뿐더러, 게다가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모든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38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까 아아의 환경은 엄마, 엄마의 환견은 아빠더라. 무엇보다 아내에게 잘 해야 해. 그래야 아이도 행복하지."  39


양가만 가면 우리 부부의 양육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46


지금 조부모님들 중에는 예전 자녀를 키울 때 먹고 사는 일로 바빠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47


가장 좋다면 양가 부모님들을 만나 부부의 양육원칙을 설명 드리고 도와주십사 요청하는 것이 좋다...

우리 부부역기 부모님에게 양육 원칙을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  48


자녀에게 미치는 아빠의 영향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중립은 없다.  55


연구 결과 아빠가 행복하게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적응 능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길 했지만, 아빠로부터 따뜻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자녀의 적응 능력이 가장 낮게 나왔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빠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나 자신들에게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보고한 남자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불안정하다고 인색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할 수 있죠."  56


엄마는 언어, 아빠는 행동을 통해 주고 아이와 상호작용한다.  64


상황에 따라 유연할 필요는 있지만,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68


부모들은 처음부터 '아이에게 좋은' 양육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에게 편한' 양육법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계속 고민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84


행동수정 - 강화(reinforcement), 처벌(punishment), 소거(extinction)

비록 심리학자들이 강화와 처벌, 소거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햇지만, 이 방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부모들이 사용해 온 것들이다. 자녀가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한다면 칭찬이나 선물을 주면서 또 그런 행동을 하기를 기대한다. 강화를 사용하는 것이다. 강화란 이처럼 어떤 행동을 더 자주 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자극을 제시하거나 제거한다. 

처벌과 소거는 이와 반대로 어떤 행동을 없애거나 빈도를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처벌과 소거의 목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르다. 처벌은 어떤 자극을 제시하거나 제거하는 보다 적극적 방법이라면, 소거는 의도적으로 관심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수동적 방법이다. 만약 자녀가 잘못했다면 부모들은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든다. 자녀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처벌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보기 싫은 행동을 하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데, 이는 소거를 사용하는 것이다. 

세 가지 중에 부모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무엇일까? 바로 처벌이다. 처벌은 시공간을 초월한 대표적인 행동 통제 방법이다.  93


심리학자들은 처벌보다는 강화와 소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나쁜 행동을 없애기보다는(처벌), 나쁜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소거) 그 행동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좋은 행동을 키워주라는 것이다(강화).  94


아이가 좋지 앟은 행동을 할 때 처벌이 아니라 소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부모가 그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가정이다.  95


인지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왜 혼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1


처벌은 너무 약하면 강화로 작용하고, 너무 강하면 마음의 상처가 남는다.  109


언어적 설명  111


"책에서 읽었는데, 아기들은 30분 이상 못 운데, 우리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정말 아기는 울다가 지쳤는지 소리가 잠잠해 지더니 이내 잠들었다.  122


자기 자식이 바로 앞에서 울거나 때를 쓰거나 무언가를 요구할 때, 이를 무시하는 것은 부모에게 고역과도 같다.  123


엄마는 놀이를 통해서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며 일정한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언어를 통해 아이와 상호작용을 한다. 반면 아빠는 일정한 규칙이나 특 없이 마구잡이 놓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언어보다는 몸으로 아이와 상호작용한다. 이 같은 아빠의 놀이방식이 아이 수준에 딱 맞기 때문에 아이들은 놀이 대상으로 아빠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210


끈기란 즐겁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지,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다.  222


여러 중독분야에서 일하고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바로 중독을 잘 예측하는 변인 중 하나는 시작연령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술을 먹어도, 게임을 해도 중독자가 되지 않는 사람과 쉽게 중독에 빠지는 사람의 차이 중 하나는 언제부터 그것을 시작했느냐였다.  234


가급적 아이들 앞에서는 스마트 기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보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236


집안일은 아이들의 두뇌를 자극시키는 훌륭한 교육이자 놀이다.

몸을 사용해야 한다.  244


여행은 한편으로 자신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다.  255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콤플렉스를 버리고, 사실적으로 좋은 아빠가 되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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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엄마들 중에도 가끔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특징은 계획이 없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19 올레길을 걷다가 아이가 바닷가 모래사장을 만나니 주저 앉아 놀기 시작한다. 갈 길이 멀다고 아이를 재촉하는 대신 엄마도 털썩 주저앉아 바다를 본다... 어떤 마음으로 제주도에 오는가에 달렸다. 20 지금까지의 여행 패턴은 일명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분류된 관광지나 맛집을 정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가봐야 할 곳 리스트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 21 대부분의 엄마들은 말로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푹 쉬자." 해놓고 꼭 한 두 가지씩의 예외사항을 둔다. '다른 건 몰라도 일기는 쓰자' '공부는 습관이니까 학습지 두 장씩만 풀자' '영어 단어 다섯 개씩만 외우자'하고 말이다. 31 창의력 향상 놀이, 자기주도학습 같은 것을 잘하는 아이로 만들려면 아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스스로 책을 펴서 들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심심해 몸을 뒤틀고, 방바닥을 파며 구르더라도 스스로 놀 거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자. 32 전문가들은 아이가 어른이 되길 원한다면 어른으로 대접하라고 한다. 특히 아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려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해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35 툭하면 약을 먹이는 아이들에 비해 살짝 방치한 아이들의 면역력이 훨씬 좋듯, 괴로움과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한 아이들이 결국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살아나가는 성인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 ... 우리 나라에는 아이를 전학시키지 않고도 다른 지역의 학교에 한 달씩 보낼 수 있는 '위탁교육제도'라는 것이 있다. 36 당연한 얘기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돼 있다. 51 규칙을 세우면 예외를 두지 않아야 아이들이 따라준다. 55 딱히 혼날 짓을 한 건 아니지만 내 맘에 들지 않았을때, 특히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내 감정 상태가 예민한데 아이마저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라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이다. '빨리 해'라는 재촉도, '그만해'라는 금지도 결국은 나의 속도와 행동방식을 기준에 놓고 아이를 재단하려 들 때 나오는 말들이다. 59 잔소리도 습관이다. 좀 더 느긋한 엄마가 되겟다는 다짐이 다짐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아이들과 약속을 하고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61 '불평없는 세상 프로젝트'. 미국 캔자스시티의 한 목사가 시작한 이 캠페인은 '모든 불행은 불평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도서 <불평 없이 살아가기>) 62 제주도에서 같은 곳을 함께 여행했더라도 아이가 본 풍경과 엄마가 본 풍경은 다를 것이다. 78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상관 없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대상이 되는 풍경을 보고 관찰햇다는 것이 중요하다. 80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갖다 바치는 그 정성과 관심만큼, 엄마들이 스스로에 대해 정성을 쏟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왜 이리도 사는 게 헛헛한지 불쑥불쑥 짜증이 솟구치고 불안한 마음이 되는 이유는 뭔지.. 조용히 귀 기울이기.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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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라고 했다. -한국워킹맘연구소 이수연소장



0세의 육아교실 -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하고 좋은 육아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풍부한 대화'라고 합니다. 아기와 함께 대화하는 것 자체가 가장 좋은 것이라 하고요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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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가 없는 제주에 이주한 4년간의... 가족 성장기입니다.  5


제주도 특유의 '연세'라는 제도.

제주도에서는 전셋집 개념이 거의 없고 월세 1년 치를 한 번에 내는 연세가 정착되어 있었는데, 20년이 다 된 낡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내야 하는 연세 370만 원이 너무도 아깝게 느껴졌다.  20


아이가 울 때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째는 배가 고파서, 두 번째는 기저귀가 젖었을 때다. 한 달이 넘어가자 놀고 싶어서가 세 번째 이유가 되었다.  47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얼굴을 익힘으로써 가족 이상의 관계를 펼쳐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56


'얼굴만 아는 이웃'에게 육아와 관련된 부탁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이 할 일을 돈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마을에서만큼은 편하게 부착할 수 있고 또 책임을 지고 부탁한 것을 채워준다. 아이에게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정서발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57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는 것은 나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는 일이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복원하는 일인 것 같다.  63


<한겨레21>의 독자 편집위원이 되어 김형태(황신혜밴드)씨와 하게 된 인터뷰였다.

"... 생활에서 조금만이라도 벗어나면 낙오될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벗어나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워지죠."  69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가짐이란 무엇일까?  110


우리 가족에게는 나름 독서육아에 대한 원칙이 있다. 억지로 책을 읽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그 나이 때에 읽어야 할 책을 선택하여 읽히되 다독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 원칙이다...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원칙을 만들었다.  113


가끔 "아이를 어떻게 키웠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늘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집에서 벌레가 나오면 항상 잡아서 없애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벌레 또한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아기'라고 생각하니 차마 마이 앞에서 죽일 수가 없다.  15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몫'이 있다. 그 '몫'을 자신만이 떠맡으려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  200


지금까지도 어려운 부분이 바로 '아이를 관찰하는 법'인데 시간이 충분하더라도 아이의 행동을 잘 알아보고 이를 유추해서 해석하고 아이의 성장과정에 맞는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데까지는 한참 부족하다.  215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의 힘을 믿으려면 부모부터가 시간을 관조하는 힘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있다.  218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아이가 사고를 치지 않는지'. '제재할 거리가 없는지'를 살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영양은 제대로 섭취하는지, 사고의 위험요소를 없는지를 적극적으로 살피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때그때 바로 처방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관찰'이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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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장난 아니다. 

'군대 육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8


책육아는 일반 군대도 아닌 해.병.대.  9


내 손으로 애 키워야 내가 어른이 돼.  47


육아가 능숙해져서 손에 익어야 여유도 생기고 느긋함도 생기면서 즐겨지는 거더라고.  70


어릴 때는 애랑 몸으로 놀아주는 게 '유머'야. 애들은 정신과 몸이 같이 가거든. 몸으로 느끼는 사랑이 더 크게 다가가고 뿌리 내려.  71


너님도 알고 나님도 알고 귀신도 알잖니. 나가면 사게 돼. 나가지 마. 나가더라도 백화점, 마트 쪽팔려서 못 드러가게 후지게 입고 나가. 아디다스 삼선 쓰레빠 직직 끌고~ 

컴퓨터 켜지 마. 스마트폰 열지 말구, 보면 사게 돼. 그게 우리네 인생의 본능이거든.

애들은 타고난 천재들이라 아무것 없어도 기똥차게 놀 거리를 찾아내. 그렇게 자라야 나중에 커서도 소비로 행복을 찾으려는 후진 인간이 안 되는 거라구. 스스로 맨땅에서 놀 거리를 찾아내고, 가진 게 없어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무'에서 '유'를 찾아내게 돼 있어. 그게 바로 창의력이야. 행복력이구..  76


3~4세(18~38month) = 미친 반항기

5세(37~48m) = 잠깐 황금기

6~7세(49~60m) = 또라이 무법자 시기

8세(60~72m) = 삽시간의 천사기

사천만의 아이들이 모두 다 거쳐 가는 요 생리적, 심리적 발달단계를 인지하고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육아가 생기옥이 돼.  78


태교를 잘했건 못했건, 사랑을 무진장 퍼부어주면서 키웠건 아니건, 간디의 자식이건 마더 테레사의 자식이건 간에 반드시 반항기와 무법자 시기는 거친다는 거야. 그게 자연의 이치이고 우주의 원리야. 

중요한 건 그 미친 짓이 너무나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기 때문에 모두다 받아줘야 한다는 거야.  79


애는 그냥 지 생각이 있었던 건데... 자기가 생각하는 순서와 규칙과 시선이 있었던 것뿐인데..

녀석의 시선이 아닌 내 싯건으로, 내 사고에 의거해 훈계하고 가르치고 꾸짖고.. '훈육'이라는 개뼉다구 같은 면분으로... 80


책육아는 더더욱 아들이 이기는 게임이야. 알아?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자동차 책' 사주면 끝나. 책 치눗ㄱ기 없이 바로 진입! 세 살쯤 되면 '공룡 전집' 때려 넣어주면 또 끝나. 책의 바다 바로 오는 거지. 그거만 죽어라 읽으며 한글 떼고, 그림 그리고, 만들며 책육아 꿈나무로 쑥쑥자라. 대여섯 살 되면 '똥, 오줌, 코딱지, 트림, 방귀, 변기' 나오는 책 긁어모아 넣어주면 그거 또 빠져 살면서 읽기독립되고 또 그리고 만들고 만한 반복...

그 몰입이 반복되면서 안 보던 다른 분야 전집으로 몰입이 번져 들어가는 그야말로 'T자형'몰입 인재로 거듭나는 거라고..  88


내 자식이 부족해 보이는 엄마의 시선이 문제인 거지. 내 자식 하나만 보지 못하고 인터넷 속 영재들이랑 비교하고 답답해하던 내가 문젠 거야. 보지를 말아야 해.  89


시간이 쳐남아 돌아야 지들 스스로 해보면서 깨우치는 거거든.  93


하은이가 수영을 스스로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기초 체력 운동을 열~~~나게 해왔다는 거야. 

'뻘놀이, 미친 듯할 놀기.'  95


'책 & 뻘놀이'

이 두 가지. 대충 알아낸 시스템 아니다. 애랑 나랑 피 철철 흘리며 온몸으로 깨달은 거다.  101


길게 보고, 멀리 보고, 깊게 볼 것~!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을 것!

그거 된 사람만 책육아 시작~!  103



만나면 비교하고, 통화하면 확인하고, 모임 나가면 애 쳐 잡는 전자동 시스템이 항상 가동되기 때문이라는 거지.  107


머리로 이해되니 몸이 자연스레 따라가.  129


엄마가 성장하지 않으면 애 절대 잘 못 커.

진정한 육아란 내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키우며 내 자식을 따뜻하게 바라만 보면 되는 것. 이상!  139


언제나 그랬듯 감탄 연발하고, 칭찬하고, 믿어주고, 귀 기울여주면서...  144


멍 때리지 못하면 애들은 죽거든.  146


아주 그냥 전 인류가 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 친절한 지옥, 아 놔~ 왜들이래. 내가 알아서 잘 키우고 있구만. 무시해라.  157


누누이 말하지만 애가 읽어달라고 들이댈 때 뜯어내며 억지로 재우지만 않아도 내 아이는 알아서 잘 거. 

여자 인생에서 가장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육아 기간'이거든. 그 지옥 같은 전투를 아이와 온몸으로 치뤄나가면서 사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깊은 깨달음과 내면 성찰을 이루어낼 수 있어.  159


어줍지 않은 독서와 지식은 교만함의 상징이야. 어느 정도 읽고 내공을 쌓기 전까지 차라리 입을 닫아.  169


육아는 꼭대기에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등산이 아니야. 파도타기지. '내 아이'라는 파도를 타는 거야.  174


사랑은 엄마가 주고 싶을 때만 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할 때 주는 거야. 그러려면 엄마가 무언가에 홀려 있으면 절대 안돼.  186


내가 멋진 사람이 되려면 뭔가를 하려 하기보다 내 인생을 좀 먹는 쓸데없는 습관들을 솎아내면 돼.  187


육아는 소비가 아니야. 사랑이어야지.  190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돈은 이제 그만~

어줍지 않은 품위 유지 따위 잊어버려.  198


육아라는 게. 그 과정 자체로 성장이고, 눈부신 깨달음의 과정이거든.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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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맘 육아의 기본 철칙 7계명

1. 내 아이는 정답이다. 아이의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다.

2. 책은 밥! DVD는 반찬! 나들이, 목적 잇는 놀이는 사랑이다.

3. 영어 포함 사교육 전혀 필요 없다.

4. 한 달에 전집 한 질만 들이기.

5. 내 책 1년 50권 이상 읽기!

6. 엄청난 칭찬과 무한 감탄의 생활화!

7. 아이의 삶보다 엄마의 삶이 더 중요하다.



녀석의 삶은 거의 모든 게 중고였다.  19


내 승질머리가 못되 처먹어서 그러는 줄만 알았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애미가 잠을 안 자서! 잠 안자고 뻘짓 해서!'

물론 애 꽥 잠들고 나면 그 새벽에 그 여유가 너무너무 귀하고 아까워서 

졸린 눈 까뒤집어가며 머라도 하고 싶지. 나도 그 마음 잘 안다.

쥐시장이라도 뒤적거리고, 케이블 틀고 드라마라도 내리 봐줘야 

낮 시간 젖소, 식고, 도우미로 전락했던

내 자신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거 같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잠만 푹~ 자도 육아가 쉽다.  26


애 DVD 틀어주고 드러누워 육아서 한 페이지라도 보다 쪽잠을 자는게 애 잘 키우겠다고 밤새 인터넷 파도타기 하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27


애를 낳았으면 잘 키워야한다.  28 


초등학교 입한 전에 아이가 갖춰주어야 할 진정한 사회성은 애미와 자식, 단 둘만의 긴밀한 애착! 그거면 땡이다. 습자지 한 장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빡빡한 애착이 둘 사이에 맺어져 있지 않는 한 죽었다 깨나도 온전한 사회성은 심어줄 수 없다!  33


쉽지 않은 길, 너무 쉽게만 가려하면 결국엔 쉽게 무너진다.

녀석이 널뛰는 감성과 고집에 맞춰 미친뇬 칼춤추듯 같이 너울대면 되는거다.  35


나랑 애랑만 갔어야 되는 거였다. 나도 체력 되고, 애도 몸 상태 괜찮은 날. 그냥 즉흥적으로! 37


나들이의 본질을 깨닫자.  40


육아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행이 고행이 또 있을까?  45


이 땅에 투하된 특수공작원과도 같은 내 자식과 겨루는 치열한 게릴라전에서 서로 피 철철~ 흘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무난하게 서로를 인정하며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가는 과정이다. 결국 내 아이를 양육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양육되어지지 않은 바로 나 자신을 약육해가는 과정'이 육아다.

'노력은 성취와 변화를 위한 필수과정이지만,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 박경철의 <자기혁명> 중  47


애미가 읽고 앉아 있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큰다.  48


노력없이 날로 먹으려 하면 결국 무너지는 게 애 키우기다.  51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면 실행으로 가는 길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해보지 않고 고민해봤자 해결되는 거 아무것도 없다.  52



엄마표 영어란?

엄마가 집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노출 환경을 만들어주고 뒤로 살짝 빠져 있는 거다.  62


엄마는 절대적으로 '영어 노출'만 해주면 된다.

이 땅에 엄마표 영어 성공하는 집안은 별로 읍다. 이유가 뭔지 아나?

'영어 노출 환경의 부재!' 이거 하나다.  82


애가 원하는 건 정확한 해석이 아니라, 엄마의 기민하고 감격적인 반응이다.

영어의 첫 단추는 그렇게 따뜻해야 한다.  92


영어는 귀가 먼저 뚫리면 눈이 뚫리고, 입이 트이면, 쓰기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93


영어책은 영어공부 교재가 아니라 책 자체라는 진리의 깨달음이 있어야 할 뿐.  98


동선의 최소화, 행동의 간소화!  104  ---- simple is power.


육아는 '환경의 게임'이다. 얼마나 편한 환경을 구성해 놓느냐!  106


애보다도 책을 많이 읽어야하는 사람이 애미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애가 커 가면 커갈수록 핏줄을 타고 느껴진다. 그래야 자연스레 애도 책을 잡는다는 걸.  108


책육아와 일반육아의 차이는 말하자면 '종교의 차이'와 맞먹는다!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마인드로 사는 것이다...  121


멍 때리는 시간도, 빈둥거리고 뻘짓하는 시간도 많아야..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게 하려고 엄마의 사회성, 욕구, 소비, 유흥 등을 잠시 유예시키고 끼고 앉았던 거였다.  121


뭐 하지 말라는 표시에 유난해 환장을 해서 그런 표시만 나오면 그대로 멈춰서 한참을 머리 처박고 읽고 쪼매난 글씨까지 다 읽을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애미는 기미 생성해가며 그지같이 기다려줘야 했다.  126


짜장면집 전단지 떼와 애랑 같이 오리고 놀란 말이다.

애가 먹다 놔둔 칸쵸 상자에도 한글나라 수업 1년 치를 뻥 까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 오려서 스케치북에 붙이다 보면 마구 떠오를 테니..  128


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읽어주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어야지...

하은이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난리블루스를 피며 같이 놀다가도 책 보고 싶으면 풀썩 주저앉아 책을 읽었다. 폭풍속에 고요를 찾아낼 줄 안다.  131


부지런해지지 말고 지혜로워져라!

독서는 아이의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게 목적.  137


누차 강조하지만 애가 책을 월할 때 모든 걸 멈추고 읽어주면 된다.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으면 된다. 

아이들은 부족한 수면, 체력, 식욕 지들이 다 알아서 보충한다.  140


아무 책이나 사서 읽어 달라고 할 때까지 읽어주면 된다.  149


실컷 놀아본 놈이, 질리도록 놀이에 몰입해 본 놈이 학업에도 삶에도 인간관계에도 놀라운 재능과 집중력을 발휘한다.  150


아이는 엄마의 인내를 먹고 자란다.

책과 함께 놀고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아가는...  157


책에 빠져들게 하기 위해 녀석이 아침잠이나 낮잠에서 깼을 땐 항상 누운 채로 내 무릎에 슬쩍 눕듯이 앉혀 책을 읽어줬다.  159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몰라야 한다.

빗물이 바위를 뚫는 걸 바위는 모르는 게 맞다.

천천히 가되 뜨겁게 가야 한다. 

많이 놀아주자.  160


많은 책장 덕분에 집에 화장대도 없고, 서랍장, 콘솔, 장식장 아무것도 없다.  166


18개월에서 36개우러까지의 제1 반항기 때는 그 어떤 아이들도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말 안 듣고 떼쓰고 변덕이 죽 끓듯한다는 사실.  175


여유란 읍다. 안 생긴다. 왜냐,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당신이 그 시기가 지나도 그만큼 또 쓰거든요.  181


정말 진도 쫙쫙~ 나가며 눈에 띄게 잘하고 있는 친구들의 공통점이 바로 컴퓨터와 멀다는 거다.

책과 내 자식의 눈빛!

그 딱 2가지에만 내 시선을 내 시간을 내 열정을 집중할 때다. 그러기에도 시간이 짧다.  204


애들은 좀 읍씨 키워야 잘 큰다.  209


모든 걸 빠르게 접하게 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요즘. 

절대적으로다가 유아유치 시절에 충분히 가해져야 할 노출은 책과 놀이밖에 없다.  211


책육아.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책의 바다는 커녕 책과 친숙해지지도 못한 채 평생 이어질 사회 생활을 시작해버리는 거다.  218


'책육아' 그리 만만한 거 아니다.  222


'내는 니 자식 절대 못 본다'며 없는 동창모임에 복지관 노래교실까지 개근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시는 것도 애 보는게 힘든 걸 알아서 그러시는 거다.  223


육아라는 거 절대 쉬울 수만은 없다.

무한 반복일지라도 아이와 함게 부둥켜안고 참고 노력하며 이겨내야 한다. 

육아에 지름길 따위는 없다.  224


내 아이를 알기 위해 밤이 지새도록 책을 읽고 2살이든 4살이든 7살이든 내 자식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하고, 사과하고 니 마음 어떤지 얘기해달라고 묻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징징대는지

옆집 엄마가 아니라, 컴퓨터 속 유명 블로그가 아니라 육아서와 내 아이의 눈빛 속에서 해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225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애미의 체력'이다.  228


어디서 힘을 주고 어디서 힘을 빼야하는지 강약조절을 배워가는 과정이 바로 육아다.  230


전문가의 손길이 꼭 필요해서 보내는 거라구?

안 보내면 안 부르면 내 자식만 뒤떨어질 거 같아서? 웃기고들 있네!

놀아주기 싫으니까 귀찮으니까 힘드니까 그런 거 모르는 줄 알아? 귀신을 속여...  234


'청결'을 조금만 포기하면,

'생활습관'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기본, 단계, 남의 시선' 이런 말을 잊어버리고 내려만 놓으면 녀석을 붙들고 악을 쓸 일도 자근자근 씹을 일도 불안과 공포가 뒤엉킨 시선으로 녀석을 두려움에 떨게 할 일도 없었을 텐데...  249


애를 낳고 누구나 미친 듯이 뛴다. 전력을 다해.

헌데 뛰는 방향이 'Go to the 낭떠러지'다.  265


책육아 10년을 지나오니 그 책이 '엄마의 책'이라는 것과 책보다도 중요한 게 '엄마의 행복' 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그 본질을 깨닫게 하고 싶은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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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돈 안 쓰고도 신나고 재미있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명체는 지금과 가은 사회적 불임시대에 누군가는 증명할 중차대한 사회적 과제라며, 혼자만의 사명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7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코 많은 투입이 많은 산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보시가 많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느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어서, 나모가 다르게 살 용기가 없어서 못할 뿐이다.  8


소비를 줄이면 관계도 증폭된다. 예를들어 대물림과 같은 비자본 공동체 경제에 접속하면 그동안 말로만 하던 '더불어 살기'를 쉽고 우아하게 실천할 수 있다. 물건을 물려받는 과정을 통해서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이 작은 행동으로부터 협동과 연대라는 공동체 의식이 싹트게 된다. 뭐든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뭔가 부족하면 불편하기 마련인데, 그 불편함 속에 꺄알 같은 재미가 가득하다. 돈을 안 쓰다 보면 궁색해지기 쉬운데, 점점 풍요로워진다.  9


나는 농사에서 육아의 지혜를 많이 얻는 편이다. 

"농사는 누가 짓죠?"

"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겁니다."

선문답 같지만 진리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늘 관심과 애정은 가지되, 최대한 자연의 순리대로, 인위적인 투입은 줄이고, 욕심과 기대는 버려야 한다. 태평육아의 탄생이다.  10


사고도 쳐야 변화가 생긴다.

그냥 어쩌다 임신, 출산, 육아의 세계를 여행하다가 쓴 육아견문록일 뿐이다.

발품 팔아서 골목골목 누벼서, 숨겨진 재미를 발견한 배낭여행기라고나 할까?  11



"어떻게 하면 돈 안 쓰고 애를 키울 수 있을까?"  14


'적극적인 피드백'은 추가 기부를 부르는 기술이다. 물건을 불려받았다면, 기회가 날 때마다 물려받은 물건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보여주면 추가 기부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보답을 물질로만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가 벌어질 수 있다. 비 물질적인 립서비스, 식사 초대, 시기적절한 품앗이 등은 좋은 보답이 된다.  16


이게 바로 물려 쓰는 재비다. 물건만 물려받는 게 아니라 이야기, 관계도 함께 물려받는다. 헌 물건은 사연이 있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17


부부 사이의 대화는 아이 얘기로만 가득 차게 된다. 어떤 때는 아기 얘기를 빼면 둘이 딱히 할 이야기가 없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같이 보면서는 서로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24



나의 통제가 적어지는 만큼 아이도 자유롭고 신난다.  30


젊은 한의사였는데, 상담과 처방이 참 엉뚱(!)했다.

아이를 어떻게 가지게 됐고, 어떤 환경에서 키우고, 부부관계는 어떻고, 주 양육자는 누구고, 아이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뭘 먹고, 주말은 어덯게 보내는지 등등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놓게 했다. 내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애 키우는 이야기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첫날 상담을 거의 두 시간이나 했다.

증상만을 없애기 위해 치료하는대증치료가 아니라, 삶 전체를 살피고 그 원인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33


두 돌배기 우리 아기의 하루 일과는 책으로 시작하여 책으로 끝난다. 엄청난 책벌레 납신 것 같지만, 실상은 집에 놀거리가 궁하니 벌어진 일이다.  39



회를 거듭할수록 정다운 부녀놀이. 아빠와 딸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책을 꽂는데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41


농사는 육아의 원형이고, 육아에 상당한 지혜를 공급한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산능력을 회복하고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겟다는 선언이다. 또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철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되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협동하고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하나씩 회복하는 삶을 살다 보니 마치 다른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세계로 이동해온 것 같다. 다 아기 때문이다. 아기라는 무게 중심이 생겼고, 아기는 각자의 삶을 살던 남편과 나의 생활을 묶어주는 공통의 지반이 되어주었다. 그동안 잃어버렷던 본능을 되찾아주고, 무너졌던 삶의 균형을 바로 잡아주었다. 육아는 아기를 키우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46



옛날식 기저귀.

내가 이 기저귀를 택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기저귀를 빨랫줄에 걸어놓으면 시각적으로 보기가 좋다. 새하얀 기저귀가 바람에 팔랑거리는 걸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두 번째는, 빨리 마르기 때문이다. 소창 기저귀는 얇아서 널어놓으면 한 두 시간 만에 바싹 마르기 때문에 회전이 빠른 편이다. 똥 기저귀는 삶아야 하지만, 오줌 기저귀는 나올 때마다 흔들어 빨어서 널어놓으면 자주 삶을 필요도 없다. 세 번째는, 빳빳하게 마른 기저귀를 갤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네 번째, 기저귀는 다용도다. 베개로도 쓰이고, 여름에 배 덮는 이불로도 쓸 수 있고, 급할 땐 수건이나 아기를 엎는 보대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나중에는 잘라서 행주나 걸레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손바느질해서 면생리대로도 사용할 수 있다.  47-48


조산원에서 애 낳고, 늦도록 젖 먹이고, 천 기저귀 쓰고, 포대기로 업는 등. 내가 애 키우는 걸 보고 '전통 방식으로 키운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전통을 고수하고 지키는 수구보수적인 인간이 아니다. 전통적이라서 그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방법을 택하다 보니 그게 전통 육아방식이었을 뿐이다.  50


본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1


내가 고안한 방법이 아예 젖가슴을 풀어놓고 자는 거다. 수유복 지퍼만 열어두면, 아기가 스스로 젖을 찾아 물었다. 수유복 지퍼만 열어두면, 아기가 스스로 젖을 찾아 물었다.  53


모유수유.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도 닦은 것도 아닌데 무성욕의 경지에 이른다는 거다. 모유수유를 (오래)하면 성용기 감퇴된다는 말이 잇는데, 내 경우 실제로 그랬다.  56


우리나라 임산부들의 초음파 촬영 횟수는 평균 10.7회 정도 되는데, 이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편이라고 한다. 다른 건 선진국, 선진국 하면서 이건 왜 안 따라 하는 걸까? 외국에서 출산한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많이 해야 세 번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과다한 초음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일부 의사들이 모인 협회 같은 데서 성명을 낸다. 초음파는 전반적으로(?) 태아에게 위해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이고,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적게 하는 것은 많이 하고 싶어도 비싼 의료 수가 때문에 많이 못하는 거란다. 바꿔 말하면,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거고, 태아에게 완전히(!) 무해하다는 증거도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똑똑한 분들이 왜 그러시는지... 심지어 몇 해 전 식약청까지 나서서, 초음파 검사가 유해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반복적인 검사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진단 목적이 아닌 기념영상을 만들거나 호기심에서 하는 검사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긴 요즘에는 초음파 사진을 모아서 앨범이나 동영상을 만들어주고, 심지어 입체 초음파 사진을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자는 아기를 자극해서 깨우기도 한다고 한다.  72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는가? 사실 다달이 일어나는 내 몸의 변화, 아기의 움직임 등 보이지 않는 사인들이 더 중요할 수도...


<만들어진 모성>이라는 책을 쓴 프랑스 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당초 모성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 것인데, 이 이데올로기는 19세기 들어 중상주의 정책에 따른 노동력 수요 증가로 국가가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강요한 데서 나왔다고 분석한다. 이후 사회적 학습ㅇㄹ 통해 점차 강화된 모성애는 오늘날 모든 어머니의 본능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83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86


예방접종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신경써야 하는 문제는 면역력, 자기치유력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88


이유식을 생략하면서 딱 한 가지 단점이라면, 유동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무른 음식, 특히 죽은 잘 먹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죽이야 잘 안 먹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97


집안마다 음식문화가 다르고 아이들마다 발달이나 소화 능력이 다르니, 거기에 따라 이유식도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어찌 보면 '이유식'이라는 또 하나의 시장 창출을 위해서 많은 부분들이 조장되고 만들어진 게 아닐까?  98


장난감은 많되 놀이는 없는 경우가 많다. 물질은 풍요로울지 모르나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102


요즘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자르고 돈줄을 붙이고 산다.  105


한계에 괴로워하지 말고, 한계를 즐기는 '효연지기'가 필요하다. 

세상이 강요하는 대로 살면 베이비 푸어가 되지만, 내 잘난 맛에 내 방식대로 살면 누가 뭐래도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106


아기의 관점에서 아기의 세계를 탐구하고, 아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117


(반항기)

부정어가 는다는 것은 자기 생각, 자기 의지, 곧 자아가 강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맘때 아이들의 부정어와 긍정어의 비율이 14대 1이라고 한다.  165


몸으로 하는 생활공부는 욕심이 난다. 모든 걸 소비에만 의존하며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은 생산할 줄 아는 생활 균형감이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169


작은 손놀림, 말투, 무의식적인 표정까지, 아이들은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배우고 모두 따라 하고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결론은, 내가 키우고 싶은 대로 나부터 그렇게 사는 게 우선이다. 반대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바라지 않기!  170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계속'떼는' 과정이다.  179

탯줄, 젖, 기저귀, ...


시공간을 초월한 상상도 허락한다. 특히 생활 속의 물건의 힘이 강력하다. 골동품처럼 너무 귀한 것이라서 장롱 깊숙이 보관해두고 가끔 존재와 가치만 확인하는 물건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막 사용하면서 언제든지 추억을 불러오는 그런 일상의 물건들이 훨씬 강력하다.  213


아이들은 고립되기 시작했고, 함께 해야만 하는 놀이 문화도 사라졌다. 고립은 소비문화와 짝이다.  221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그 철학에 기초한다.  224


올더스 헉슬리의 유토피아 소설 <아일랜드>에는 '상호입양모임'이라는 게 나온다.  225


돈에 의존하지 말고, 체면, 자격지심, 고정관념 따위 던져보리고, 조금 다르게 살면 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좀 못해도 태평하게, 좀 못 벌어도 당당하게! 기존에 살던 방식은 개나 주고, 조금 다르게 살아보는 거다. 아주 신난다.  23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어린 시절의 5분은 어른이 되었을 때 5년과 같다. 인생에서 어린 시절은 짧고 어른으로 살아야 할 시간은 길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239


남편의 옆구리를 계속 찔렀다. 그래도 남편이 망설여서 더 강하게 설득했다. 언제까지 입으로 하는 일(컨설팅)만 할 거냐. 망하더라도 손과 발로 하는 일을 시작해보자.  244




끝맺으며 - 엄마에게 용기를!

엄마 노릇을 하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철저히 자기의 몫이다. 국가가 아이 키우는 데 돈은 조금 보태줄 수는 있엉도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는 고민해주지는 못한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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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했다.

"지금 남는 장사하는 거예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거죠. 아이가 만 세 살 때까지 엄마나 아빠하고 어떻게 지내느냐가 아이의 운명을 바꾼대요. 아이와 잘 지내면 아이의 인성도 좋아지고 나중에 사춘기를 겪더라도 잘 극복할 테고 무엇보다 아이를 평생 내 친구로 만들 수 있잖아요. 이렇게 따져도 춘분히 남는 장사죠."

2년이 지난 지금은 한 가지를 덧붙인다.

"아이만 크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른도 같이 커요.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얻었어요."  4


아내가 아리를 가졌다고 알려 주는 순간 기쁨으로 펄쩍 뛰는 순간도 잠시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앞선다...

내가 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려고 했을 때 어떤 거창한 철학이나 특별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디선가 들었던 "아이는 적어도 만 세 살 때까지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 좋다"는 말을 밑천으로 삼았다.

육아는 몸과 마음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아이를 위해 내주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5


즈럭움의 원천이면서도 그만큼 스트레스 덩어리이기도 한 육다. 하지만 놀랍게도 육아 최대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6


오랫도안 어른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아이도 오른을 키운다. 아니 아이가 어른을 키운다.  7


16개월인 딸과 마흔 두 살인 아빠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62



아내는 자기의 경험감을 들려주었다.

"나도 서령이를 낳고 2주 정도 산후 우울증이 왔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하다못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이게 뭔가 싶었어.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이하고 있을 때는 아이만 생각하자. 아이하고 잇는데 다른 것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갈등이 생기잖아.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야. 그러면서 우울증이 사라졌어. 한 생명을 온전하게 키우는 일은 이런 것 같아."

"나는 내 마음대로 어디를 갈 수 없다는 게 힘들어. 내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라고 할까. 술 한잔 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잖아. 저녁 냑속하려면 번거로운 일들이 너무 많고. 당신 말대로 포기할 건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화가 튀어나오는 거야."

서령이를 키운다는 말은 지금까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누려왔던 것을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일과 같았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는 포기하지 못하고 누리고 싶은 것들이 남아 꿈틀댔다. 아내 말대로 서령이와 있을 때는 내 욕구를 낮추고 서령이에게 집중하자.  70-71


왜 삐뚤어진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을까? 삐뚤어진것은 문제가 있다는 고정관념과 당장이라도 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는 조급증과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이러다 보니 한동안 서령이 윗니만, 그것도 삐뚤어진 모습만 보았다.

이가 삐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판단은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이 만들어냈다.

아이 키우기는 가치판단을 그쳐야 할 때 그칠 줄 알고 불안감과 조급증을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72


아이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아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독특한 느낌마저 들었다.  73


직접 경험하는 것과 그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78


아이에게 젖을 뗀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젖떼기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던 아내가 말했다.

"아이에게 젖떼기는 파라다이스를 잃는 것과 같대.."  84


젖떼기는 엄마의 일방적인 결정과 행동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와 함께 하는 일이다. 

젖을 떼기로 한 날은 원래 계획보다 늦어졌다. 아내는 막상 젖을 떼려고 보니 서령이 젖 먹는 모습이 눈에 밟혀 결행하지 못했다. 오늘까지만 먹이고, 오늘까지만 먹이고, 엄마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사실 서령이가 젖을 먹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었어. 하지만 내일은 젖을 떼야지."  85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도 놀자고 떼를 쓸 때면 하던 일을 먼저 해야 할까. 먼저 놀아야 할까. 여러 번의 경험 끝에 서령이와 먼저 놀고 나중에 일을 하는 쪽으로 정리했다. 내가 귀찮을 뿐이지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아이들의 욕구는 즉각적이지만 욕구가 충족되면 아빠를 놓아준다는 것을 알았다.

서령이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그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도 큰 고민이었다.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책에서는 경계에 대한 원칙은 일관성있게 지키라고 조언한다. 어디가 경계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원칙을 지키는 일에 목을 맬 필요까지는 없는것 같다. 절대적으로, 혹은 무조건이라는 말에 얽매이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서령이에게 경계를 알려주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최선입니까?"  93


'지금 이 나이에'라는 쑥스러움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다해 놀면 그것은 곧 서령이의 놀이이며 나의 놀이이고 우리의 놀이가 된다. 놀아 주지말고 같이 놀아야 한다. 놀아주기는 금방 싫증이 나지만 같이 놀기는 오래 해도 즐겁다. 놀아 주기는 억지로 하지만 같이 놀기는 내가 좋아해서 한다. 놀아 주기는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지만 같이 놀기는 그 시간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같이 놀다 보면 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정말 재미있다. 신난다."

유년시절에 했던 바로 그 말이다. 근사한 놀이터나 멋있는 장난감도 필요 없다. 놀이 천재인 아이와 열렬히 놀 준비가 된 아빠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99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112


지난 몇 달 동안 서령이의 변화는 독립을 위한 여정이었다. 나는 흥미롭고 경이롭고 즐겁기도 했지만 낯설고 짜증이 나기도 햇다. 나도 어렸을 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고 익혔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했다. 이럴때면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는 머리 감기를 싫어하는 서령이를 안고 서령이가 머리를 감겠다고 스스로 말할 때까지 40여 분을 기다렸다. 아내는 서령이에게 억지로 강요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뒤로 넘어질 정도로 자지러지는 서령이를 꼭 안아 주며 서령이에게 머리를 감아야 하는 이유를 수십 번도 넘게 이야기해 주었고 하기 싫은 서령이의 마음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때 아내의 얼굴은 감정의 동요 없이 평온했다.  126


지금은 아이들을 제대로 '놀게 하기 위해서라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마을과 골목길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놀이터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생겼다. 한집에 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고모가 가라졌고 어린 동생을 키우는 형과 언니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 동안 한 마을 안에서, 한 가족 안에서 대대로 이루어졌던 일들이 순식간에 분업화라는 이름으로 흩어졌다. 육아의 경허모가 지혜는 끊어졌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육아에 관한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지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가족과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회화,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될 수밖에 없는 당혹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부모의 불안감도 커졌다.  129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는 누구랄 것도 없이 간절히 휴식을 원한다. 하지만 늘 아이 옆에 있어야 하고 배우자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니 그저 희망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136


어린 시절 겪은 상처일수록 깊고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더욱더 알기 어렵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에는 상처받은 아이가 자리 잡고 있다. 격려와 지지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 슬프고 화가 난 아이다. 이 아이에게는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그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라는 진심어린 한마디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상처받은 아이는 웃을 수 있고 진정한 어른이 된다. 나는 어떤 아이를 품고 있을까.

'그랬구나 그랬어' 나도 모르게 찬식이 흘렀다. '착한 아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가 되고자 했다.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나 나를 설명해 주는 상징어였다. 법 없이도 살 그런 아이로 나를 포장했고 그 아래 숨었다.

하지만 착한 아이로 살면서 치러야 할 대가가 많았다. 내 욕구를 억누르고 다른 사람에게 맞추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평판을 중요시하다 보니 나를 존중하지 못한 채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이 많았다. 내 감정을 욱누르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데 서툴렀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다 보니 과감하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주어진 형식과 틀에 안주하다 보니 내 자신의 결정보다는 다른 사람이 결정해 주기를 기다렸다.  138


나는 처음 보는 독일 사람과 손짓 발짓으로 아야기를 나누었고 헤어질 무렵에는 친구가 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일행들은 개그맨을 보는 듯 깔깔대며 웃었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 순간 사람들을 만나면 어색하고 당황해하며 피하려고만 하는 나의 껍질 하나가 깨졌다는 것을 

"큰 사고를 당해도 6개월이 지나면 자기 성격이 나온대요. 긍정적인 사람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사람이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요."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분이 '삶의 태도가 삶을 결정한다'는 말에 덧붙여 말했다. 그동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그렇게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나, 사람을 잘 믿지 못했나,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아마도 그런것 같았다.  139-140


어른들은 어느날 갑자기 아이들이 바뀐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변화는 겉보기에는 '어느날 갑자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수많은 나날들이 모여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역할 놀이 전에는 흉내 내기 단계가 있었다. 엄마 아빠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공원에서 만난 언니 오빠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다른 살마들에게 질문하기 단계를 거쳤고 지금도 여전히 하는 중이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귀엽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서령이는 꼭 "언니가(할머니가, 아줌마가) 서령이 예쁘다고(귀엽다고) 말하는 (웃는) 거예요?"라고 물어봤다. 이러한 물음은 다른 사람들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듯싶다. 역할 놀이 역시 거쳐야 할 과정을 겪은 후 자연스레 하게 되는 행동인 것 같다. 어른들 눈에는 아이의 여러 가지 행동이 어느날 불쑥불쑥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순간순간에도 끊임없이 성장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중이다.  168-169


요즘 서령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듣기에 부정적인 말들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듣고 왔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실은 많은 부분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온다는 사실이다. 밖에서 원인을 찾기 전에 나를 먼저 잘 살펴봐야겠다.

언어는 단지 문장 그 자체의 사전적인 의미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말을 할 때 취했던 행동과 마음속으로 가졌던 감정까지 함께 전해진다. 그래서 서령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서령이와 눈을 맞추고 공감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서령이 말을 귓등으로 듣거나 훈계하려고 하면 서령이는 귀신같이 그 분위기를 알아채고 더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말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하는데, 이건 생각보다 어렵다. 좀 더 경험하며 알아가야겠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화가 날때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점이다. 서령이의 말에 감정이 격해지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서령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화가 날 때는 심호흡이 도둠이 되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러다 보면 화도 점점 가라앉는다.

부모가 좋은 말을 쓰면 아이도 예쁘고 고운 말을 쓴다. 나부터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을 지녀야 서령이도 밝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174-175


아이와 교감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애정만을 쏟은 부모들은 사춘기가 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231


"음식을 같이 만드는 가족은 대부분 행복해요. 음식 같이 만들기가 일종의 치유예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려면 남자들이 육아에 꼭 참여해야 해요. 특히 아이가 어렸을 때 더 필요하구요. 그리고 부모가 된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부모가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점은 그대로 자신의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특히 육아가 그래요. 아는 것과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자기가 하고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이 크지요."  233


육아서 몇 권 읽고 보니 방식은 조금씩 다랄도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비슷한 듯했다. 당신이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부모 내면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라.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후 말하라. 아이마다 고유한 성장 속도가 있으니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려라. 이 말들은 육아의 핵심이다. 

하지만 실천하기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 가끔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정말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썼나 반문하고 싶어진다.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인식하기도 어렵고 바꾸기도 쉽지 않다. 조급증을 키우고 빨리 빨리 의식을 부추기는 한편 어릴 때부터 또래와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기도 어렵다. 

옛날 우리네 엄마들은 육아서 한 권 읽지 않고서 아이를 잘 키웠다. 그때 엄마들이 지금 엄마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때는 대대로 쌓인 경험과 지혜가 살마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분업화되면서 그러한 경험과 지혜도 사라지고 말았다. 날마다 발표되는 최신 육아 연구, 그 연구 성과를 포장하는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나의 조급증과 염려증을 자극하는 옆집 아줌마의 한마디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증을 만들어낸다.

초보 엄머, 아빠에게 육아서는 유용하다. 하지만 책은 정보를 줄 뿐 판단은 결국 부모가 할 수밖에 없다. 책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다 보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면 부모가 일관성이 있어야 아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렇다. 사실 몇몇 부모를 빼면 대부분 이리저리 흔들린다. 흔들리지 말라는 지침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였다면 나는 벌써 죄책감ㅇ에 머리가 터져버렸을지 모른다.  256-257


부모의 책 읽기와 관련해서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정작 자신을 위한 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면 아낌없이 돈을 쓰고 집요하게 정보를 찾는 열정이 자신에게는 멈춰 버린 경우를 많이 보앗다. 우리나라 성인 1인당 1년 평균 독서량은 채 두 권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책은 육아서만이 아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인문학이나 환경 관련 책 등도 두루 필요하다.  257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런 저런 육아서를 읽은 나보다 독서에 게으른 아내가 서령이와 헐씬 잘 지낸다. 아내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많은 책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록 어린 아이라도 독립된 생명으로 보고 존중하는 태도가 육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오늘은 책이 아닌 서령이 엄마에게 한 수 배웠다.  258



'그대로 흐르게 하라.'  272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 선풍기에 익숙해져 있다 에어컨에 맞들이면 이미 선풍기는 퇴물이 된다. 컴퓨터도, 핸드폰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이 그렇다. 새로운 삶은 현실이 되고 지나간 과거는 불편하고 버려야 할 기억으로 고정된다. 이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자원과 에어지를 소비한다. 그래서 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불편하지만 안전하게 살 것인가, 편리하지만 잠재적인 공포 속에서 살 것인가.  289



우리 가족은 같은 꿈을 꾼다. 꿈을 공유하는 일은 또한 함께 나누는 일이다. 꿈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가족은 더욱 든든한 끈으로 이어지겠지. 여행을 꿈꾸는 일 그 자체가 여행이다. 잠깐 동안의 몽골 여행으로 1년 내내 즐거웠더랬다. 여행 자체는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6개월, 여행을 다녀온 뒤 추억하는 6개월 내내 즐거웠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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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를 묶어 주는 것은 인권의 보편적 실현, 민주적 참여, 모두를 위한 복지의 원칙에 부합하는 전 지구적 평화라기보다는 악(惡)과 고통.  5


모든 지구민들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합니다.  10


이 시대의 정점에서 의식 있게 살기! 그것이 스페탄 에셀의 요구다.  14


바뀌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우리는 꿈꿀 수 있고 꿈꾸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실패한 것은 꿈꾸기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어요. 멋진 말이죠. 우리는 꿈꾸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꿈이 우리가 바라는 만큼 실행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룬 것으로 살아가고, 그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하고 참여하는 소수를 필요로 합니다. 역사의 시기 시기마다 그런 소수가 있었어요.  50


오늘날 참여할 수 있는 방버은 최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비정부기구, 즉 NGO에 참여하는 방법이죠.  54


지정부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정당으로 들어가 정부에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55


나는 요즘 지구상에 곡물과 식수가 부족해지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기후 변동이 심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다루는 책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들을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어나게 될 겁니다.  74





분노하라


참여하라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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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함마디 문서.

이 파피루스 문서들은 기원전 1세기 말에서 기원후 180년 사이에 작성된 텍스트의 그리스어 번역본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정경(正經)이 아닌 외경(外經)으로 분류된다.  13


콥트인 "우리의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절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난관들을 직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식을 의미한다...지금 내가 언급하는 지식은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이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지식이다."  23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리 중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루하루는 좋은 순간들과 나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24



- 패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거쳐가야 할 단계가 있을 뿐이다.  30


이번에도 승리하지 못하면 다음번을 기약하면 된다. 다음번에도 안 되면 그다음에는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33



-패배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패배자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다.

실패는 아예 싸우러 나가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37


한 번대 패배한 적 없는 사람들, 그들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난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난 싸움에서 이겨봤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믿는 자신만의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들은 세상의 부당함과 괴로움에 눈감아버린다.  38-39


패배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행복하고 우월하며 진리에 통달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그런 진리를 얻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도 없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다툼에 휘말리지 마라. 지기만 할 뿐이다. 늘 스스로를 의심하면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널 공격해도 화내지 말고, 되받아쳐서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지 마라. 인생엔 그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39



- 고독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고독이 없으면, 식물이나 동물은 살아남을 수 없고, 흙도 그 비옥함을 유지할 수 없으며, 어린 아이는 인생을 배울 수 없고, 예술가는 창작을 할 수 없고, 작품이 성장해 새로이 탈바꿈할 수도 없다.

고독은 사랑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고독은 사랑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고독은 사랑을 보완해주는 구실을 한다.

고독은 벗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고독의 순간에 우리 영혼은 우리에게 자유로이 말을 걸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43-44


홀로인 때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면 내면의 공허를 두려워하게 된다.  44


우리는 늘 말한다. "난 그일을 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하질 못했어."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훨씬 안전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는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44-45



세상이 심각한 문제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젊은이들은 언젠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보리라는 꿈을 꾼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견해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넌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참 몰라."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더 잘 알 수 있을 거다."

노인들은 경험을 통해 원숙해졌고, 인생의 어려움들을 호되게 배우며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깨달음을 가르치려고 하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노인들에게 말한다. "세상이 달라졌어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배우시고 젊은이들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은 나이를 불문하고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으며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엔 너란 존재가 필요치 않아."  53-54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다. 그저 충실히 살려고 노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상황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걸음은 영혼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하라. 그대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그대의 영혼이다.  55-56


진정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은 억지로 쓸모 있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유익한 삶을 이끌어갈 뿐이다.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모범을 보이며 살아간다.  56



- 변화를 두려워해서 여길 떠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저 산과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굳건하고 의연한 삶 말입니다."

하지만 밤이면 문득 잠에서 깨어 생각한다. '나도 저 새들처럼 살고 싶어.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로 날아갔다가 내가 월할 때 돌아오고 싶어.'  62


산이 변함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틀렸다. 산은 지진으로 생겨나 바람과 비에 풍화되고,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나무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틀린 생각이다. 나무는 겨울에는 헐벗고 여름에는 옷을 껴입고 살아간다. 새드로가 바람이 씨앗을 퍼뜨리므로 나무는 원래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자연은 우리에게 "변화하라!"고 말한다.  64


'어려움'이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오래된 도구의 또다른 이름이다.  68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음의 방문을 받는다.  69



-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사람들은 늘 "외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외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지 않다면, 어째서 꽃들은 그토록 아름답게 꾸미고 벌을 유혹하려 할까? 어째서 빗방울들은 무지개로 탈바꿈하여 태양을 맞이하려 할까? 자연은 아름다움을 간절히 원하고, 만물이 아름다움을 드높일 때 비로소 만족한다. 내적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외적 아름다움이다. 내적 아름다움은 우리 눈에서 흘러나온 빛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옷차림이 형편없다거나, 일반적인 우아함의 기준에 맞지 않다거나, 남들에게 잘 보이려 신경쓰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은 영혼의 거울이므로 몸안에 숨겨진 영혼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또한 거울처럼, 그 눈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영혼 또한 보여준다. 따라서 타인의 눈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영혼이 어둡다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추함만을 보게 될 것이다.  73-74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정하곤 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변의 그럴듯한 대상을 모방하려 한다.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닮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보면 우리 영혼의 빛은 바래고, 의지는 약해지며,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은 시들어버린다.  74


아름다움은 같음이 아닌 다름 속에 존재한다.  76



-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묻는다.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어떤 이들은 그 질문을 놓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답을 알 수 없어, 같은 고민을 했더 ㄴ사람들이 써놓은 글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옳다고 판단되는 나름의 답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답의 노예가 되고 많다. 존재의 유일한 이유라고 믿게 된 바를 타인에게 강요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어낸다.

어떤 이들은 그 질문이 함정임을 단박에 알아챈다.

어른들의 조언과 상관없이 자신이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일을 찾아낸 그 일에 일생을 바친다.  

이는 열정이 신성한 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능하면 직감에 따르고, 직감으로 안 될 때는 규율에 의지한다. 

남즐 눈에 그들은 미친 것 같다. 가끔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참된 사라오가 의지는 어떤 목표를 추구해야 하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준다.  82-83



- 사랑은 늘 내 곁을 지나가버립니다.


사랑이 하는 말을 들으려면 사랑이 가까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89


우리는 주는 만큼 받는 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주는 만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 

사랑은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이지 교환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다. 억지가 개입되면 사랑은 의미를 잃고 태양도 빛을 잃는다.  90


인생의 큰 목표는 사랑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91



- 공동체가 이미 우리의 운명을 정해놓았습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앞으로 나아 가야 한다.  

내일 해가 뜨면 그대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을 내 인생의 첫날로 여기리라. 

내 곁에 가족들이 있음을 기뻐하며, 그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리라. 그동안 숱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해하지는 못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고요히 공유하리라. 

지평선에 처음 모습을 보인 여행자 무리에게 다가가 행선지도 묻지 않고 합류하리라. 그리고 좀 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즉시 그 무리를 떠나리라. 

구걸하는 거지를 보면 그 거지에게 돈을 주거나, 돈을 줘봐야 술이나 마시는 데 쓸 것이라 생각하며 그냥 지나가리라. 그냥 지나가면 거지는 나에게 욕을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나와 소통하는 거지의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리라.

다리를 부수려는 사람을 보면 가서 말리거나, 그가 다리를 부수려는 이유를 알아보리라. 다리 건너편에서 그를 기다려줄 이가 아무도 없어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함임을 이해하리라.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처음 보는 듯이 바라보리라. 특히 그 동안 너무 익숙해진 탓에 그것들을 둘러싼 마법에 대해 잊고 있었던 소소한 것들을 처음처럼 바라보리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의해, 내가 알지 못하는 힘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의 모래가 바로 그런 것이다. 

늘 갖고 다니는 양피지에는 어차피 잊어버리지도 않을 내용을 괜히 기록하느니 차라리 시를 쓰리라. 한 번도 시를  써본 적 없고 다시는 쓰게 되지 않더라도, 내게 감정을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잘 아는 작은 마을에 찾아가서도 평소와는 다른 길로 미소를 지으며 마을로 들어가리라. 그러면 그곳 주민들은 이렇게 쑥덕거릴 것이다. '저 사람 살던 곳이 전쟁과 파괴로 황폐해져서 정신이 나갔나봐.'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여기는 게 재미있으니, 나는 계속 미소지으리라. 내가 미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 몸은 파괴할 수 있겠지만 당신들은 내 영혼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오래 신어 내 발의 일부가 된 샌들처럼, 익숙한 사물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며 그 신비를 깨달으리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 순간부터, 내 샌들에 나 있는 흠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 이 흠은 예전에 내가 박을 헛디뎌 생겨난 것이니.

내 손이 닿는 모든 것, 내 눈이 본 모든 것, 내 입으로 맛본 모든 것은 각기 다르면서도 똑같다. 정지 상태에서 풀려나 생명을 얻은 그것들은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렀던 이유를 내게 설명해 줄 것이다. 일상 속엣 순하게 닳은 감정드로가 재회하는 기적을 내게 보여줄 것이다.

남들이 맛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느라 입에 대본 적 없는 차를 마시리라. 남들이 재미없는 곳이라고 해서 가본 적 없는 거리를 걸어보리라. 다시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지 아닌지를 스스로 단판하리라...

내 머리 위의 하늘에 관해,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설명을 달아놓았다.

별들에 대해 그동안 내가 배운 내용을 모두 잊으리라, 그러면 별들은 천사나 어린아이, 혹은 내가 믿는 무엇으로든 모습을 바꾸어주리라. 

시간과 삶은 내게 만물에 관한 온갖 논리적인 설명들을 안겨 주었으나, 내 영혼이 갈구하는 것은 신비로움이다. 내게는 신비가 필요하며, 내가 천둥의 울림 속에서 듣고 싶은 것은 성난 신의 목소리다. 여기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은 이단이겠지만 말이다. 

내 삶을 또다시 공상으로 채우리라. 자연 현상에 대한 현자들의 논리적인 설명보다, 성난 신이라는 공상이 훨씬 낯설고 무시무시하며 흥미로우니까.

기쁨은 죄가 아니니, 처음으로 죄책감 없이 미소지으리라.

괴로움은 미덕이 아니니, 나를 괴롭히는 것을 처음으로 피하며 살리라. 

삶에 대해 '모든 게 늘 똑같고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라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오늘이 내 생의 첫날인 것처럼,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리라. 

수없이 지나온 그곳을 지나며 늘 보던 사람들에게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인사하더라도, 오늘의 '좋은 아침이에요'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예의상 주고받는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비극이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더라도 살아 있음의 가치를 깨닫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축복의 ㅁ라일 테니까.

근심으로 영혼이 무거워진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나는 거리에서 음유시인이 부르는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 하지만 사랑의 왕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네. 비밀의 장소를 알려면 우선은 사랑에게 복종해야 한다네.'

내 영혼이 머무는 은신처의 문을 용감하게 열어젖히리라. 

부디 내 육신과 내 영혼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부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남들처럼 걷고 느끼고 말하고 이런저런 단점들도 고스란히 갖고 있지만, 용감한 사람이기도 한 나를.

부디 낯선 이에게 말을 걸 때처럼 나 자신의 단순한 몸짓에 감탄하기를. 바그다드에서 불어온 바람이 내 얼굴에 흩뿌린 모래를 느낄 때처럼 나의 가장 평범한 감정에 감탄하기를, 곁에 누워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아내가 꾸는 꿈을 상상할 때처럼 따뜻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감탄하기를.

만일 침대에 홀로 누워 있게 된다 해도, 나는 일어나 창가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로움은 거짓된 감정임을 확신하리라. 우주가 저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벗이 되어주고 있으니.

그리고 하루 매 시간을 놀라움의 연속으로 살아가리라. 이제 나는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가르침에 의해 만들어지 ㄴ사람이 아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으로 새로이 거듭나 만물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사람이므로."  98-103






순종은 곧 '나는 당신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조화를 이루려면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순종이라는 위험한 길로 과감히 함께 뛰어들어야 한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108



자신이 그대보다 강하고 믿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한다.

자신의 약점을 내보이는 것을 꺼리지 않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그들은 자신감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고, 실수를 약점으로 보지 않고 인간미로 보는 사람들이다.  116


그대가 실수했을 때, "나 같으면 다르게 했을 텐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 비난할 자격도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116


우정은 강물과 같다. 강물은 바위들을 빙 돌아 골짜기와 산에 적응하여 흐르다가, 때로 움푹 들어간 곳에 고이기도 하낟. 그러다 웅덩이가 차오려면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목적지가 바다임을 강물이 잊지 않듯, 참된 우정은 그 존재 이유가 타인에 대한 사랑임을 잊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만 조금 더 가볼 필요가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 그들은 이미 아는 범위를 넘어 계속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117


노래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 눈빛이 행복으로 반짝이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행복은 전염성이 있다. 논리는 이미 저질러진 잘못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 그치지만, 행복은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낸다.  118




- 우아함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어떤 옷을 입느냐가 아니라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우아함이 결정된다. 

칼을 잘 휘두르느냐가 아니라 전쟁을 피할 수 있게끔 대화를 잘 끌어가느냐에 따라 우아함이 결정된다.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단순함과 집중에 초점을 맞추면 우아함을 얻을 수 있다. 자세가 단순할수록 더 좋고, 수수할수록 더 아름답다.

단순함이란 무엇일까? 단순함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고운 이유는 한 가지 색깔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멋진 이유는 표면이 고르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래와 바위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심오하고 완전한지를 알게 되고 그 귀함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 단순한 것들은 스스로 그 가치를 드러낸다.  122


마음이 단순해질수록 자유로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을 할 때는 대담해질수록 몸짓 하나하나에서 우아함이 배어 나온다.  123



- 우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생활을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만 훗날 그 시간을 돈으로 되살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언젠가 쉬게 될 날을 꿈꾸며 일생을 보낸다. 마침내 그런 날이 왔을 때 그들은 너무 늙어 인생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여기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쩔 수가 없었어."

둘째, 마찬가지로 생활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타인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충실히 이행하는 일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일을 우리는 '봉헌'이라고 칭한다. 가령 두 사람이 같은 재료를 사용해 같은 요리를 한다고 하자. 한 사람은 요리에 사랑을 쏟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저 배나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요리를 한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게를 달 수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만들어낸 요리는 확연히 다르다.  128



-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운이 좋은 겁니까?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공이란 그대들이 애정을 기울여 심은 씨앗에서 나온 열매다.  135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만 하지 말고 땅을 더욱 비옥하게 하고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행동을 하며 나아가야 한다.

때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심어놓은 나무에 과일이 열렸다고 설익은 것을 너무 일찍 따버리면, 먹는 이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한다. 반대로 두려워서든 불안해서든 열매를 따 봉헌해야 할 시기를 너무 미뤄버리면, 열매는 썩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파종에서 수확까지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변화의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밀이 화덕에 들어가 익기 전에는 빵이 될 수 없다. 

단어들이 잘 어우러져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시가 될 수 없다.

사람의 손이 실을 잣기 전에는 천이 만들어질 수 없다.  138



- 기적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리의 마음을 불현듯 사랑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143



- 불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불안이 삶의 일부이기는 하나, 불안에 잠식되지는 말아야 한다.  155


죽기 살기로 일을 많이 하며 사는 삶이 생산적인 삶이라고, 불안이 설득하려 들면 이렇게 말하라. "영감을 받고 내 일을 더 잘 할 수 있으려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어야 해."

불안이 굶주림의 유령으로 그대를 위협하면 이렇게 말하라.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야. 신의 입에서 쉼없이 흘러나오는 말씀이 있어야 해."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불안이 속삭이면 이렇게 말하라. "내 연인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녀의 것이야. 그녀는 양떼들에게 풀을 먹이려고 강가의 초원에 가 있어. 멀리서도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려.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피곤해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거야. 나는 그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잠든 그녀의 곁을 지킬 거야."

그대가 베푼 사랑을 아들이 우습게 안다고 불안이 속삭이면 이렇게 말하라. "지나친 경고는 영혼과 마음을 망쳐. 살아가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는 늘 사랑으로 귀결되지."

이렇게 불안을 멀찌감치 떨어뜨려놓아야 한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는 것들을 사로잡아 우리가 그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인생의 큰 지혜를 얻는 것이다.  156



- 완전히 수세에 몰렸을 때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무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우리를 움직이는 힘들에 대해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한다.  175


진정한 친구는 "오늘 넌 나한테 상처를 줬어. 그래서 슬퍼"라고 말하는 살마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아마 너도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오늘 넌 나한테 상처를 줬어. 하지만 내일은 네가 날 도와줄 테니까 난 슬프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소신대로 말해주다니 넌 충실한 친구구나. 무조건 감싸기만 한다면 충심 어린 우정이라고 볼 수 없겠지."

가장 파괴력이 강한 무기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창이 아니다. 성벽을 무너뜨리는 공성포가 아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말은 핏자국 한 점 남기지 않고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으며, 말로 인해 생겨난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  176



- 적들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합니까?


세상을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로 나뉜다.

강한 자들은 승리했을 때 아량을 베푼다.

약한 자들은 승리했을 때 무리를 지어 패자들을 괴롭힌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약해 보이는 자들을 골라 괴롭힌다. 그들은 승리와 패배가 일시적인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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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길리우스가 말했다.

"저들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사는 놈들이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신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멍하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놈들이라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왜 탄식하고 있는가요?"

"천국에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라네. 벌거벗은 채 등에와 벌에 쏘여 퉁퉁 부어오른 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오로지 남을 저주만 하고 있는 거지."  32


나는 한 사람씩 그 사연을 들으면서 걸었다. 들으면 들을 수록 참으로 많은 사연과 죄가 있었고, 인간이란 이렇게도 다양하게 거짓말을 하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46



"이런 높고 험한 곳에 서려면 날개가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힘든 일이야. 날지 ㅇ낳고 오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날개가 없어.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역시 뛰어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믿음을 가지고 발 아래를 잘 살피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을 지워버릴 것... 조금 전까지 밑바닥에 있던 우리가 이렇게 높은 곳에 올랐다는 것은, 우리가 날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린 시절의 일이지만, 무슨 일에 열중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너무 멀리까지 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와 똑같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단테여, 그리 마음에 둘 것까진 없다네. 연옥의 산과 이 오르막길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가면 갈수록 쉬워진다네."  190


지금, 세상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도의도 이성도 사라지고 말았지요. 오히려 악이 번성하고 있다고 할까요. 왜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면, 또는 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면..."

마르코는 내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아, 하고 고통스럽게 슬픈 탄식을 하고 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가 가득하다네. 눈을 활짝 뜨고는 있지만 결국 그것을 못 보고 있는 게지. 그런데도 자네들은 '왜?'하고 그 이유를 찾으려 하고 있어. 그 이유를 알아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더. 알건 모르건 결국은 하늘의 찻으로 돌릴 텐데 말이야.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신의 뜻이라고 '한다면', 하고 자네들은 말하지. 그것이 섭리라고. 그렇게 되도 정의, 그렇게 되지 않아도 정의라고. 그렇다면 자네들이 살아야 할 길은 없지 않겐는가. 문제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라네, 만물이 모두 신의 뜻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하늘이 자네들을 움직이게 한다네. 그러나 그것을 알고, 그것을 빛으로 삼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간다면, 자네들은 하늘의 작용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야. 그것이 바로 자유가 아니겠는가. 혼란은 자네들 마음속에 있을 따름이야."  226


"사랑이란 좋아하는 감정과 닮은 것이라네.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유가 없으므로,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라네. 사랑이란 그런 감정의 흐름, 뭔가에 끌리는 혼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게야. 그러므로 그런 감정 모두를 사랑이라 하고, 선이라 한다면, 그게 바로 오류의 근원이 되겠지..."  230


"야망이란 점점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고, 물질이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다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가난하게 하는 일인데..."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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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책을 읽는 행위는 인풋(input)이고, 책을 써내는 ㅇ리은 아웃풋(output)이다. 인풋의 밀도가 촘촘해야만 아웃풋도 좋아 진다. 당연한 일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선생님의 말처럼 "인생은 뒤돌아볼 대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서 나이가 들수록 서재는 인생에서 중요성이 더 커진다. 책은 인생을 돌아보고 곰곰이 씹어보는 데 유용하지만, 그보다 앞을 향해 살아가는 지침을 구하고 예지력을 키우는 데 더 쓸모가 있다.  


더 자주 책을 읽어라. 더 자주 웃어라. 더 자주 사랑하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 아직 삶에 채워넣어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축복이다... 중요한 건 살아야 할 이유와 보람이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보람을 찾는 일에 노력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늙을 시간이 없다.  - 가와기타 요시노리 <마흔 살의 철학>  15-16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결정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것들. 그게 남겨야 할 짐들이다. 짐을 가볍게 하라!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제 손으로 삶을 정돈한다는 것, 외적 혼란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 삶의 주된 목저고가 무관한 많은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여행의 이익은 단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처음 보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평소 낯익은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 것에 경이를 느끼고 새롭게 다시 보는 데 있다... 여행하는 사람은 행하는 자가 아니라 보는 사람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순수하게 관상적으로 됨으로써 평소 이미 알고 있는 것, 자명한 것이라고 전제하던 것에 대해서 우리는 새롭게 경이감을 느끼거나 호기심을 느낀다. 여행이 경험이며, 교육인 것도 이 때문이다.  - 미키 키요시 <어느 철학자가 보낸 편지>  19


오로지 사람만이 경이를 느낀다. 더 많은 경이를 느끼는 사람이 더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다. 경이는 예민한 감응력이 있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파동이다.  20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다고 했다. 억측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고루하지 않고, 아집을 버렸다.  26


청나라 초기의 문장가 장조(張潮)는 "하루의 계획으로 파초를 심고, 한 해의 계획으로 대나무를 심고, 십 년의 계획으로 버들을 심고, 백 년의 계획으로 소나무를 심는다."고 햇다. 시 쓰기는 파초를 심는 것이고, 책 읽기는 백 년의 계획으로 소나무를 심는 것에 견줄 수 있겠다.  34


지켜지지 않은 것, 수정해야 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과감하게 인생의 초안을 수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마음 안에 새 꿈을 써 붙여야 한다.

비움은 마음에 채운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36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다 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나와 남은 불이(不二)이다.

비우려는 자는 먼저 맹목적인 탐욕을 버려야 하고 자발적 가는에 처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37


즐거움은 물질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있다.  39


쉼은 빈둥거림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바쁜 시간이다.  41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헬가 노보트니는 "휴식은 나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 사이의 일치를 뜻한다"라고 말한다. 덜 바빠야 더 행복하다.  42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많은 사람이 물질적인 부를 자기 인생의 반영이자 자신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여긴다. 이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정체서오가 이미지를 자기가 소유한 것과 연결짓는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게 탐욕의 대상이 된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55


'삶의 본질은 물건을 통해 구현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것을 절제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려면 정신적이고 지적인 짐 가방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 많이 소유하지 않으면 실제로 삶의 질이 개선된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58


시골에 들어온 첫 해에 나는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금광호수의 물을 날마다 바라보았다. 물은 언제나 물로써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 변화 없음을 지루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변화 없음 속에서 번득이는 변화들을 보았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이 물을 밀면서 나아가고, 바람이 없는 날에 물은 잔잔했다. 물을 바라보면서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마음 안에 있는 마음을 분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있는 그대로 보라! 무분별의 분별 속에 있을 때 내려다보는 물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커다란 모름 속의 앎으로 오롯할 때 평화롭고 고요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도 않고 더 나쁜 사람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다. 본디 그러함 속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두고자 애썼을 뿐이다.  76


더러는 읽은 것들이 걸을 때 새로워진다. 사유와 산책은 한짝이다. 걷는 사람은 대개는 사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의 걷는 모습에서도 마음은 작열한다.  77


시골집에서 혼자 밥을 끓이고 사는 내게 사람들은 외롭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자주 던진다. 외롭지는 않다. 읽어야 할 많은 책들, 듣고 싶은 음악들, 산책한느 길들, 그리고 숙고해야 할 인생의 후반부가 오롯하게 남아 있다.  79


시인 릴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고독, 위대한 내면의 고독 말이다.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자신 속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이다.  82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심리적 피난처"를 찾는 일이다. 대개 작가나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스스로 고립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내 고독을 추구한다. 이때 고독은 "위안과 새로운 활력, 내적 평온"이라는 선물을 준다. 명상, 휴식, 기도와 같은 황동도 고독을 동반한다. 이때 고독은 일상의 번잡함에 매여 지친 영혼을 다래고 내적인 여유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또 다른 고독으로 사회적 고독과 감정적 고독이 있다. 고독은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고립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83-84


고독은 그 본질에서 혼자 있는 능력이다. 혼자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고독의 위로>) 창의성의 발현과 개인 자아의 발달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혼자 있는 능력 속에서 길러진다.

자발적 고독은 욕망과 두려움의 지배에서 벗어나 심ㄹ리적 평형 속에서 안정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의 태도이다.  85


"고독을 회피하는 것은 나 자신을 회피하는 것"(<고독의 심리학>?. 차라리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는 태도를 배우라. 고독을 즐기고 그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려면 먼저 있는 그대로의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것,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 것,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것,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될 것 등이 필요하다.

고독은 질병이 아니다. 고독은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적 시간을 선물로 마련한다.  86



잘 살기 위한 바탕은 끊임없이 '생각함'이다. 늘 새롭게 생각함 속에서 좋은 삶이 나온다.  101


양적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102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 주도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 번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베이스캠프가 낮으면 산 정상에 도달하는 게 더 힘들죠. 집효한 학습으로 지식의 총량이 많아지면, 즉 판단력의 기준 바탕이 높아지면 삶의 예측은 더 정확해집니다.

두 번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질문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죠. 예부터 선사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를 깨치기 위해서는 의심 덩어리가 커야 하고, 강렬한 내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의심 덩어리를 함부로 노출한다든지 간단히 해결했을 때는 공부, 학습의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질문은 만들기도 어려우며 한번 얻은 질문은 적어도 5년, 10년 이상 내적으로 질문의 강도를 높여서 학습의 추진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질문의 힘으로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 질문이 스스로 답을 찾죠.

세 번째, 학문에 미쳐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친 듯이 몰아붙여야 하는 겁니다. 보통은 5년, 좀 더 어려운 분야는 10년 단위로 계획하여 스스로 각 분야를 조망할 만큼 학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자연과학이 되었든 어떤 분야를 5년, 10년씩 완결하여 50년 공부할 것 같으면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다른 분야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가 중요합니다. 학습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의 비율을 7 대 3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수학이라는 것은 숫자를 헤아리는 데서 출발하죠. 우리는 수 개념을 본능적으로 파악합니다. 뇌의 진화 덕분이죠. 자연과학은 40대가 되기 전에 공부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시작할 수 없습니다. 철학이나 문학 같은 분야는 나이가 들어서도 등단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미분, 적분, 일반상대성이론을 6, 70 먹은 노인이 취미로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다섯 번째, 목표량이 중요합니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양은 질로 바뀝니다. 그 임계치를 책으로 치면 3천 권 정도 될 것입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 7 대 3으로 해서요. 50대가 될 때까지 3천 권 정도 집요하게 읽다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 되면서 정보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이 질로 바뀌는 거죠. 그리고 좋은 정보와 좋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 때부터 학습에 가속이 붙습니다.' - 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103-104


책을 읽는 행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프로세스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과 훈련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책을 읽으려면 "주의와 기억 그리고 시각, 청각, 언어 프로세스"(<책 읽는 뇌>)를 작동하면서, '나'라는 존재 지평을 넘어가야 한다.  117-118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주의, 지각, 개념, 언어 및 운동의 프로세스로 이루어진" 인지 수준(cognitive level)에서 "언어 정보와 개념 정보를 모두 연결한 뒤 당신은 각자의 배경 지식과 관여(engagement)에 기반을 두고 나름대로 고유한 추론과 가설을 생성"(<책 읽는 뇌>)해야만 한다. 뇌의 뉴런 회로들을 책을 읽기에 필요한 수준으로 최적화시켜야만 한다. 한 마디로 책 읽는 뇌로 포맷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한 쪽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118


반가통(半可通 반 반, 옳을 가, 통할 통)이 사물의 이치를 어렴풋하게 깨닫는 세계라면, 전가통(全可通 온전할 전)은 사람이 깨치고 알아야 할 사물의 이치와 앎들을 분명하게 추구하는 세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반가통만으로 통용되는 사회이다.  125


비움은 내 안의 것을 덜어냄이지만, 덜어낸 것을 남에게 베풀 때 더욱 빛난다. 비움의 능동적 실천이야말로 저를 고귀하게 한다.  163



천재란 뇌 속에 보다 많은 지식이 아니라 보다 큰 느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살마을 가리킨다.  174


깊이 생각함 없이 사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문자를 모른체 사는 것과 같다. 생각의 문맹자들은 의외로 많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즉물적인 삶을 산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이나 돈되는 것의 밖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모란과 작약은 왜 봄마다 꽃을 피우는 것인지, 파도는 왜 왔다가 돌아가는지, 달은 왜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는지, 지구의 자전축은 왜 항상 태양계의 공전 궤도면에 대해 23.5도의 각도를 유지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하다. 그들은 오로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즉 주식, 부동산, 음식, 쾌락에 함몰되어 있다. 왜 그럴까. 미래가 중요하지 않기 땜누이 아니라 미래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지나치게 버겁거나 영혼에 음악이 없을 때 우리는 미래를 회피한다.  175


우리는 사색 속에 자신을 누일 수 있어야 한다. 사색은 삶의 수평을 맞추며 우리를 내적 평형으로 이끌고 우리 안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나게 한다.  176


사색이란 마음, 의식, 생각의 작동이다.

사색의 기반은 고요함. 177


정말 게으름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들이 공리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퍼뜨린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여긴다....

게으름에도 분명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부분이 있다. 게으름은 일손을 놓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게으름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무(無) 속에 방임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타고난 바 자유를 누리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겨보는 느림 속의 자기 방기가 바로 게으름이다.  202


'말하자면,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렇나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어 있다.  - 피에르 쌍소 외 <게으름의 즐거움>  203


쓰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 보니 쓰지 못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라.

일하지 않는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라.  205



나날의 욕구와 필요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에게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다. 대개는 편협한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이고 그들의 자아는 단단하게 개별적인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다만 성욕과 식욕과 사치스런 생활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데 써버린다. 금욕과 고행의 가치에 대해 전혀 모르며 그렇기 때문에 탐욕에 쉽게 빠지는데, 그것은 곧 자아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나와 너는 연결된 존대이다. 더불어 소통하고 함게 살도록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와 네가 마음을 닫고 불통한다면, 그런 세계가 잇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나의 행복이 너의 불행을 담보해야만 한다면 나는타자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니 소규모의 끔찍한 재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한 시인의 어법을 빌려 나는 너에게 가서 꽃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소통해야 한다. 마음을 열지 않고, 손을 잡고 나란이 걷지 않는다면, 우리는 겨울의 추위와 잿빛 하늘 아래서 저마나 신음하다가 죽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ㄹ고 손을 잡아야만 비로소, 봄은 온다.  240


사람은 낱낱으로 분리되어 '자기성'에 갇힌 섬이 아니다. 살마은 '자기성'에 갇힌 존재이면서 동시에 숱한 타자들과 연루되고 그 연관성에 놓인 맥락에서 산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이 세계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나 아닌 타인을 향해,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

타인을 '영접'하고 '환대'함으로써. 타자의 필요와 욕망에 반응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감응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은 사람됨의 증표이다.  241


''배움'은 외면을 가리키며 사물을 알아가는 것을 뜻한다. 반면 '생각'은 내면을 말하며 이치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밖으로는 배움을 추구하고 안으로는 성창하는 것, 인생의 길을 걸을 때도 이 두 가지가 반드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 동리자 엮음 <논어의 인생박물지>  256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잇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이다.  261



즐풍목우 -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로 목욕한다는 말.  273


장자는 칠원리(漆園吏 옻 칠, 동산 원, 아전 리)라는 말단 관식에 종사하면서 초야에 은둔하여 가는을 낙으로 삼고 살았던 철학자이다.  275


'잔꾀를 부리는 사람은 불성실하게 되고 모든 일에서 지름길을 찾고자 하며 그 어떤 고생도 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향락을 누리고자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를 닦고자 하며 본인은 두 가지 모두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결국은 향락도 도 닦기도 모두 실패한다.  - 자오유얼 <인생사계>  301


'과대망상에 빠진 만물박사, 거드름쟁이, 헛똑똑이, 이것이 인간의 현 모습이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살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도시에 외톨이이기도 하다. 전쟁꾼이면서 평화중재자이고, 베풀면서 빼앗아 가고, 파괴하면서 재건하고, 풍요 속에 있으면서 빈곤하고, 행복하면서도 절망하고, 구도자이면서 찾기를 단념한 이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또 호기심이 많지만 발견의 기쁨을 상실한 자, 단 몇 시간 내에 아름다운 지구 전체를 활활 타오르며 폭발하는 지옥의 불덩어리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구를 살아 있게 하고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지구로부터 야금야금 빼앗아 가는 유일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 게랄트 휘터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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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9


경험이 내게는 철학이다.  11



1장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든 것을 잃은 지옥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음을, 아니 모든 것을 잃었기에 오히려 인간이 가진 참된 것이 드러난다는 걸 철학은 말해준다. 깨달음은 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20


스님을 뵐 기회가 있어 꿈 이야기를 했다. "저는 관음보살이 부러워 죽겠는데 지장보살께 잡혀서 한 대 맞았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관음보살은 오늘날로 따지면 재벌 회장 같은 분입니다. 정말로 가진 게 많지요. 그것을 모두 나눠줍니다. 그 이름만 부르면 누구에게나 줍니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줄 게 없지요. 그런데 지장보살은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곁에 있어 줍니다."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문득 '있어준다'는 그 말이 한없이 큰 선물처럼 다가온다. 지장보살, 그는 부처 없는 시대에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한다는 보살로, 모두가 성불할 때까지, 다시 말해 지옥이 텅텅 빌 때까지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묘한 역설이다. 서원대로라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늦게 성불할 존재이다. 하지만 그런 서원을 세운 걸 보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성불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어떻든 지옥에 단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성불할 때까지 곁에 있겠다는 그 무지막지한 서원 때문에 '업보가 정해져 있다'거나 '해탈 불가능한 존재가 있다'거나 하는 말들은 모두 힘을 잃어버렸다.  24


'있어줌' 이 말에서는 '있음'과 '줌'. 다시 말해 '존재'와 '선물'이 일치한다.  25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초조함이다.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한다. 초조한 자는 문제의 진행을 충분히 지켜볼 수 없기에 어떤 대체물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맘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해진다.  28-29


카프카는 <죄, 고통, 희망 그리고 진실한 길에 관한 성찰>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모든 죄를 낳는 인간의 주된 죄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초조함과 무관심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고 무관심 때문에 거기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주된 죄가 단 한 가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조함일 것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추방되었고 초조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그의 문학은 이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탐구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철학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여담 삼아 말하자면, 고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죄의 정체도 초조함이었다.  29-30


길 위의 존재로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곤란이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길이 갑자기 나뉘어 어느길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길이 막다른 곳에 이르러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길을 모르거나 길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내가 떠올리는 글이 하나 있다. 바로 중국 작가 루쉰이 쓴 어느 편지이다.  31


루쉰이 그의 연인 쉬광핑에 보낸 편지. 엄밀히 말하자면 연인에게 보낸 것은 아니고, 이 편지로부터 그들의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루쉰은 1923년 가을에서 1925년 봄까지 북경여자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의 소설사 수업을 듣던 학생 중의 하나가 쉬광핑이었다. 당시 쉬광핑은 군벌과 결탁해서 학교를 수구적으로 읶르어가던 총장에게 맞서 싸우던 학생들의 대표였다. 

쉬광핑은 당시 교육계의 타락, 그리고 졸업 후 안정된 지위에 연연해서 쉽게 타협하는 학생들의 처신에 울분을 토하며, 평소 누구보다 강직하다고 믿었던 선생 루쉰에게 긴 편지를 썼다. 게다가 모호한 답변은 사양이라며 선생을 꽤나 곤혹스럽게 했다.  32


(루쉰은) 사실은 자기 역시 쓰디쓴 현실을 위로해줄 '설탕'같은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백지 답안지를 내는 수밖에 없겠다"고 고백한다. 

'별수 없다'는 답변을 한 뒤 루쉰은 "이제부터는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철학에 대해 말하려고 하니 참고"하라고 적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쉽게 부딪히는 나노간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갈림길, 즉 기로에 서는 겁니다. 갈림길 앞에서 묵적(묵자) 선생은 슬피 울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라면 결코 울며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우선 갈림길 입구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잠 자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내가 갈 길을 정하여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 자비로운 이를 만나면 그의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지언정 결코 그에게 길을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 역시 앞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랑이를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호랑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호랑이가 꼼짝 않고 서서 가지 않으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을 겁니다. 나무에 허리띠로 몸을 묶어서 설령 그대로 죽는다 해도 호랑이가 내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나무가 없다면? 그러면 별수 없지요. 호랑이에게 통째로 삼켜진다 한들 어쩌겠어요.

두 번째 난관은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완적(위나라 시인)은 통곡을 하며 돌아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막다른 길 또한 갈림길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헤쳐 나가야지요. 온통 가시덤불로 뒤덮여 도저히 갈 수 없으 ㄹ정도로 험난한 길은 아직 본 적이 없으니까요. 나는 이 세상에 본디 막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이제껏 그런 난관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것 같군요." 참고로 내가 인용한 문장은 <루쉰의 편지>.  33-34


사실 루쉰은 쉬광핑에게 한마디를 더 건넸다. 쉬광핑에게 그는 '무작정 앞서는 용사들'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참호 안에서 때로는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 노래도 부르고 카드놀이도 하다가" "불시에 총성이 울리면 어넺 그랫냐는 듯 즉각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그런 '참호전'이라는 것도 있다고 했다.  35


조금 여유를 갖고 다만 포기하지 않는 것.  36


중국 남송 시대의 선사인 대혜스님은 시끄러운 곳으 ㄹ떠나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려는 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간의 번뇌는 활활 타는 불과 같으니, 그 불길이 어느 때 멈추겠습니까. 시끄러운 곳에서 바로 공부하는 일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40


공부하는 이들은 시끄러운 곳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지만, 아마도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를 얻는 것에 있을 것이다. 세사오가 거리 두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거리 두기를 해야 하며, 세상에서 벗어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공부일 것이다.  41




2장 배움 이전에 배움이 일어난다  45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이하 <논고>). 책의 서문에서 그는 철학적 문제들이란, "언어의 논리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 책이 담은 메시지는 다음의 짧은 문장들로 다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52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 개략적으로 <논고>의 주장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통상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에서 펼친 주장을 '논리적 그림이론(theory of logical portrayal)'이라고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란 사물들이 아니라 사실들(사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제가 아니다'). 예컨대 사과라는 사물 자체는 없으며, 세상에는 '빨간 사과' '둥근 사과' '깨진 사과'같은 게 존재한다. 즉 '이 사과는 빨갛다' '이 사과는 둥글다'는 사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 속에 존재하는 연결('사과'와 '빨강' 연결)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명제이다. 언어와 사물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빨갛다'는 말은 전혀 빨갛지 않다), 사물로서의 '사과'와 '빨강'이 연결되듯 '사과'라는 말과 '빨강'이라는 말도 연결된다. 그러니까 명제('이 사과는 빨갛다)란 현실에 존재하는 '빨간 사과'를 언어로 그린 그림 같은 것이다. 반대로 '노래하는 사과'라는 표현에서 '노래'와 '사과'는 말로서는 연결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연결(입 없는 사과와 입으로 부르는 노래는 불가능한 연결이다)이므로 애당초 명제가 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명제들을 다 모으면 세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명료한 생각, 즉 사고(thought)가 된다고 했다.

연주자가 기호로 표시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처럼, 혹은 반대로 연주된 곡을 작곡자가 다시 악보로옮겨놓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는 세상의 일을 논리적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 자체로는 소리 나지 않는 악보가 멜로디로 전환될 수 있고, 소리인 멜로디가 그 자체로는 기호에 불과한 악보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둘 사이에 무언가 공통된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52-53


"우리가 하나의 명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명제가 참일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용을 명료하게 해주는 활동이라고 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불필요한 사다리를 걷어차듯 철학계를 떠났다. 그런데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다니더 ㄴ프랭크 램지라는 청년이 문제를 제기했다. 

램지와 편지를 몇 차례 교환했다. 그러는 중에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54


결국,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철학계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점은 모두가 찬탄했던 그 아름다운 건축물을 부수는 데 있어서 그가 아무런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을 통째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입장과는 사실상 정반대 편에서 전기만큼이나 위대한 철학적 입장을 개진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탄생했다.  55


비트겐슈타인의 일기에는 <논고>의 요류를 지적햇던 갬지에 관한 짦은 메모가 있다. 

"훌륭한 반대는 전진하는 것을 돕지만, 피상적인 반대는 비록 그것이 타당한 것일지라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램지의 반대 의견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피상적인 반대는 문제를 그것의 생명이 있는 뿌리부터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바깥쪽에 있어서, 비록 그 문제가 틀렸더라도 아무것도 고칠 수 없다. 훌륭한 반대는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가게 하지만 피상적인 반대는 일단 극복된 후에는 한쪽으로 치워버릴 수 있다. 마치 나무가 계속 자라기 위해 줄기의 마디에서 구부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57



데카르트는 진리를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모루'와 같은 '사전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것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준비 없이 곧바로 진리를 얻는 일에 착수해서는 안된다고.

그에 대해 스피노자는 진리를 얻기 위한 사전 준비는 없다고 말한다. 준비는 그 '준비를 위한 준비'의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고, 마치 공부를 한다면서 연필만 깎고 있는 학생처럼, 인식은 지연되고 결국에는 회의주의자들처럼 우리에게는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62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자면 앎을 생산하기 위한 선행조건 같은 것은 없다. 방법이란 공부의 선행물이 아니라 공부의 결과물이다.  63


내가 가진 것이 자가로가 나뭇가지뿐이어서 아직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공부를 늦추는 핑계일 수는 있어도 공부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아니다.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바로 시작함으로써만 시작되는 것이다. 공부란 자신이 가진 미약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앎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고 진리가 가는 길이 진리의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란 그 길을 스스로 내면서 나아가는 일이다.  64


중요한 것은 배움의 과정 중에 스스이 어디쯤에서 어떻게 개입하는가이다.  68


바보는 다만 '욕구가 멈추어버린 자들', '의지가 꺾인 자들'이다. 

'바보'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살마이 아니라, 현실적 차별을 그대로 인정하고 심리적으로 수긍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부인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69


생애의 모든 순간에 잘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또한 생애의 모든 순간에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71


칸트는 규모라든가 화려함 같은 것에 속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사건은 처음에는 작아 보였는데 대단한 것이었다든가, 대단한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별 볼 일 없는 것이었다든가 하는 그런 사건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사건, 우리에게 인류의 개선과 미래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는 사건은 어찌 보면 너무 조용하게 일어난다. 

칸트는 구경꾼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맘속에서 일어난 일에 주목한다. "거대한 정치적 변동의 드라마가 일어나는 동안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드르이 태도", 진짜 혁명은 거기서 일어난다.

이해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조차 감수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행도엥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맘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맘속에 공감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느끼는 것이다.  74



리영희 선생은 70-80년대 대학을 다닌 많은 이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불렸고, 검찰 공안부에게는 '의식화의 주범'으로 통했다. 그랬던 그가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과 관련해서 재판정에 서야 했던 적이 있었다. 사건의 주동자들이 그의 책을 읽고 촉발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생 자신은 그들의 행도엥 동의하지 않는다고 햇다. 그러니 선생이 동의하지 않는 일이 성생에게 감화를 받아 일어난 셈이다. 

이때 나는 리영희 선생이 사상의 은사로서(혹은 '의식화의 주범'으로서) 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앗다. 그가 사사으이 은사, 즉 '생각의 스승'이었다면 그것은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80


장애(disability)란, 어떤 본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든, 취업이든, 사랑이든,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불가능(disability)의 체험이며, 그때 자신에게 생겨나는 '무능'과 '포기'의 정서이다. 어떤 불가능성의 체험,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나는 자기 무능과 자기 포기의 정서를 겪을 때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된다. 그리고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가 커질수록 그는 중증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81




3장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철학자 디오게네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의 소유물이다. 그런데 철학자(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것은 신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끼리는 물건을 서로 나워 쓰지 않던가. 그러므로 철학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거나 다름없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지혜롭다는 것은 만물과 사귀는 것(만물을 대하는 법을 아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그 자신이 만물인 신과 사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신의 친구가 되는 만큼, 다시 말해 내가 만물과 사귀는 만큼, 그만틈이 내 것이고 내 세계이다. 따라서 '만물이 이미 내 것'이라는 말은 극한의 소유가 아니라 소유의 불필요나 불가능을 가리킨다. 

'만물을 소유했다'는 디오게네스의 말이 일종의 '관계 맺음'에 대한 것이라면, 근대 사적소유권의 핵심은 '관계 처분'에 있다. 

만약 처분할 수 없다면 내 소유물이란 기껏해야 내 향유의 한계를 나타낼 뿐이다.  96


카를 마르크스가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했던 경고였다. 그가 사적 소유에 반대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를 너무나 둔감하고 일면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직 '가졌다(haben)'는 감각 하나만 남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관조하고 지각하고 바라고 활동하고 사랑하는 것" 다시 말해 모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감각들이 다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97


내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음악을 듣는지, 어디가 아픈지, 위생은 어떤지, 기후는 어떤지, 이것들은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것들이다. 내 일상을 돌아볼 때 그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내 삶에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떠받드는 어떤 것 때문에 그것들을 소홀히 한다. 추상적인 인류 평화보다 내가 요즘 듣는 음악이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철학이란, 그것들으 다루고 가꾸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101-102


니체는 '모든 것의 가치전환'이라는 표현을 종종 썼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반대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는 지혜로운 자는 저렴한 비용으로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02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금욕하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내가 고대 금욕주의 를 끌어들인 것은 욕망을 줄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욕망하라는 것이었다. 현재의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것 못지않게, 현재와는 다른 삶을 욕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117


"대답은 이미 다 했소.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이 순간이고, 당신이 할 일이란 바로 저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요."

톨스토이가 쓴 단편 <세 가지 질문>의 내용.

나는 이 이야기를 함석헌의 글 <이제 여기서 이대로>에서 읽었다. 

무엇을 하든, 모든 때는 똑같이 소중하다. 우리 삶에 '각별한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각별한 때'는 우리가 모든 순간을 소중히 생각할 때 찾아온다.  119


"정말 믿는 사람에게는 '때가 장차 오지만,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옳습니다."

'장차의 그때'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나는 아직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 그런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는 무척 겸손한 사람일 수 있고, 제 허물을 돌아볼 줄 아는 양심의 인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겸손과 양심이 종종 행동을 늦추는 핑계, 어떤 소심함을 감추는 위장막이 될 수도 있다. 

양심의 가책은 사람을 창백하게 만든다.  120


함석헌은 이렇게 말했다. "잘못을 좀 잊읍시다. 양심이 둔해져서가 아니라, 날카로우면서도 잊는 겁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말인가. 그런 망각이야말로 건강의 징표이다.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있으면 가급적 그때에, 그날에, 그달에, 그해에 결산을 보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꾸 되돌아보지 않기 위해 과감하게 꺾쇠를 쳐버려라.  121




4장 함부로 모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 제2권의 서문에서 "대 작업의 동기는 아주 간단했다...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나의 수고는 단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런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허용해주는 그런 호기심 말이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런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우리 인생에는 '성찰과 관찰을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다르게 지각할 수도 있다'는 의문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렇다면 철학(철학적 행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걸 정당화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  

교양을 쌓는 호기심이 아니라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호기심,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지식욕.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비판적 사유, 푸코는 그것을 철학이라 불렀다.  133


칸트가 '계몽'의 비밀을 지능이 아닌 '용기'에서 찾았듯이,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꿇는짓을 해서는 안 된다.  

쉽게 굴복한다는 것은 스스로 따져볼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이니 그에게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 바탕이 없는 것과 같다.  149


(그때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단어는 진실한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절대로 무릎을 꿇고 굴복하지 않는다네.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네. 그것은 우리보다 먼저 죽은 이들이 우리에게 진실한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은 세상에서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라네."

사령부는 커피를 마실 것인지, 계속 '굴복하다'에 적절한 단어를 진실한 언어에서 찾을 것인지를 이 땅 치아파스의 전통에 따라 표졀에 부친다. 만장일치로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누구도 굴복하지 않는다.

 - 마르코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내가 이 이야기를 정성껏 필사해두고 적어둔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얼마나 위대한 무지인가. 굴복을 모른다는 것. 이 부족에게는 굴복이 없고 커피가 있다.'  152


아무런 저항도 없는 세계. 그것은 모든 권력자가 꿈꾸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153


정신분석에서 저항하지 않는 환자란 말하지 않는 환자와 같다. 그렇게 되면 분석가는 편안하게 자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다.

프로이트.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은 남의 말을 들음으로써만 배울 수 있습니다."  154


'저항 없는 세상'을 꿈꾸고 '독백'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무엇을 놓치며, 스스로 어떤 한계에 갇히는지, 그래서 어떤 위험에 빠지게 되는지를 생각 해야 한다. 시끄럽다고 귀를 닫으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저항의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편하고 좋겠지만, 그것은 무지의 위험 속에서 누리는 안락이다. 그리고 그 위험은 누구보다도 그 안락을 누리는 자를 향하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저항을 소중히 생각하고, 저항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55-156




5장 우리는 자본주의 수용소에 살고 있다  159


사회적 약자들은 어떤 상황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어차피 상황은 권력자가 그것을 어ㄸ허게 해석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이를 '해석 노동(interpretive labor)'이라고 불렀다(<역순의 혁명>)  160-161


커피 전문점의 아르바이트생은 고객과의 다툼이 생겼을 때 이 다툼이 점장에게 어떻게 비칠지 상상하며, 교실에서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학생들은 그것이 교사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상상한다. 집안이 가부장적이라면 엄마는 오늘 일어난 일을 저녁에 돌아온 아빠가 어떻게 생각할지 온종일 고민할 것이다. 이처럼 타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노동은 그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 준다.  162


제품을 생산할 때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을 높이 치면서, 인간관계를 생산할 때, 즉 사람이 사람을 생산할 때는 낮은 지위의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구조적으로 강제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평등한 사회의 특징이다.  


상급자가 하급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점장이 종업원의 마음을 헤아리고, 교사가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다시 말해 권력자가 인간관계에서 해석학적 노동을 수행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164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과 달리 신자유주의 정부는 매우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시장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지만, 시장을 위한 개입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181




6장 야만인이 우리를 구한다  197


당신의 놀람과 나의 놀람

2010년 11월 10일, 런던의 트라팔가(Trafalgar) 광장에 5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뛰쳐나와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국은 물론이고 주최 측도 예측할 수 없었던, 심지어 지난 수십 년간 영국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시위였다. 광장에 나온 학생들은 곳곳으로 행진해서 몇몇 건물을 점거하기도 했다. 운동가들은 집권 보수당의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탄 젊은이도 있었다. 

시위가 특별한 지도부도 없이 이곳저곳으로 번져나가자 당국은 시위를 무책임한 '난동'으로 몰아갔다. 경찰은 강경 진압에 나섰고 토끼몰이하듯 시위대를 몰아서 9시간 넘게 길거리에 가두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학생들은 한 달 내내 대학 강의실을 비롯한 곳곳을 점거했고 블로그, 트윗, 페이스북을 하며 서로의 분노와 아이디어를 엮어갔다. 12월 9일, 등록금 인상과 관련된 의회 표결이 이루어진 날에 시위는 절정에 달했다. 경찰은 삼엄한 경계를 폈지만 수많은 학생이 의회 광장에 모여들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매킨타이어(Jody Mcintyre)도 그 광장에 있었다. 조디는 11월 10일 보수당 건물 옥상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12월 9일 시위대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때가 되면 나오는 그런 '전쟁 반대' 시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시위라고는 참석해본 적도 없는 열네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그런 살마들도 많았어요. 이 젊은이들의 마음에는 아무런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나온겁니다."

조디는 휠체어를 굴리며 동생과 함께 광장에 섰다가 점차 시위대 앞쪽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공격했다. 조디의 표현을 빌리면, 많은 살마들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경찰의 곤봉에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네 명의 경관이 조디의 어깨를 잡더니 휠체어에서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는 끌고 갔다. 동생과 친구들 역시 구타당하면서 다른 쪽으로 끌려갔다. 얼마간의 폭행이 이어진 후 경찰들은 그들을 놔둔 채 사라졌고 동생과 동료들을 만난 조디는 놀랍게도 다시 의회 광장으로 나아갔다. 거기에는 폭동진압 경찰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그들을 뚫고 나가던 조디는 폭동징압 경찰과 기마 경찰 사이에 자신과 동생이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앞서 자신을 끌어내리고 폭행을 했던 경관 중 한 명이 그를 보고는 다시 다가왔다. 경찰은 휠체어를 기울여 그를 바닥으로 내리꽂더니 다시 인도까지 끌고 갔다. 그 순간, 그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경찰에 소리를 지르며 항의 했다.

누군가 이일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이는 영국 사회의 큰 논쟁 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것은 경찰의 폭력도, 거기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아니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조디의 답변이었다. "그 사건에서 살마들이 정말로 물어야 했던 것은 왜 그 경관이 나를 휠체어에서 끌어냈는가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그것에 그렇게 놀랐느냐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정말로 내가 당한 일이, (그날 벌어졌던)바닥에 누워있던 열다섯 살 소녀의 배를 걷어차는 것보다, 아니면 학생들의 머리를 난타해서 응급실로 보내는 것보다, 그러니까 하마터면 뇌출혈로 죽을 뻔했던 그들의 경우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습니까?"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날 경찰이 보인 행동은 그렇게 놀라운 게 아닙니다. 정부를 지키는 게 그들의 일이죠. 11월 30일에 우리가 본 학생 시위에서는 수천 명의 학생이 경찰의 허가도 받지않고 런던 중심부를 관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요. 그런 시위보다 이 정부에 더 위협적인 일은 없습니다. 그런 시위가 이 정부에 직접적 위협이 되었고 결국 그들은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을 보낸 것뿐이죠."

참 쿨한 답변이었다. '그는 진짜 장애인이 아닐지 모른다'거나 '왜 하필 위험한 곳에 갔느냐'는 식의 보수 언론의 공격에도 조디는 마찬가지로 쿨하게 답했다. 요컨대 그는 해당 언론들이 경찰과 다를 바 없는 집권세력의 수호자들이기에, 그들에게 자신을 정당하게 다루라고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경찰과 언론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경찰과 언론의 폭력이 그다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는 듯 대했다. 오히려 인터뷰할 때마다 그는 인터뷰어에게 묻곤 했다. "왜 당신은 내가 당한 일에 그렇게 놀랍니까? 왜 영국의 대중은 이런 사건에 놀라는 거죠? 내게 일어난 일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내 일에 놀라는 바로 당신들입니다."

조디의 맘속을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일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문제 삼는다면 두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첫째, 어떤 점에서 보면 장애인의 삶에서 폭력은 특별하지 않다(특히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당신이 장애인을 휠체어에서 밀쳐낸 폭력을 보고 경악했다면 당신은 그동안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폭력에 대해 이 정도의 감수성을 가졌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더 끔찍한 폭력들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이 보여준 분노는 어제까지 당신이 보여준 침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둘째, 장애인의 일을 '특별히' 안타까워해 주는 사람들의 분노는 장애인이 제기하는 문제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일반의 문제라는 걸 가려버린다. 장애인에게 행사된 폭력은 장애인에게만 해당 하는 특수폭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행사되는 일반적 폭력의 일단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조디는 "길바닥에 끌려간 내 일에는 그렇게 크게 분노하면서, 머리가 깨져서 응급실에 가는 학생들에게 언론은 왜 주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싸움은 장애인만의 특별한 이익과 관심을 요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사회 일반의 해방을 위한 싸움이다. 

조디에게는 아마도 이 두 번째 측면이 중요했던 것 같다. 그가 어느 기자에게 털어놓았듯이 그에게도 "휠체어에서 끌려나간 것은 아주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잔인한 폭력이다. 하지만 그는 엄연한 운동가였다. 어쩌다 시위 현장에서 재수 없게 폭력을 당한 사람이 아니라 거기에 정면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밤마다 마을을 공격했어요. 실탄을 쏘면서요. 그에 비하면 런던의 경관이 저지른 행동은 내게 겁을 줄 수 있는게 못 됩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열여덟의 낭이에 남미에 갔다고 한다. 체 게바라의 삶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3개우러을 머문 뒤 전운이 감도는 팔레스타인에 들어갔고, 운동을 벌인 사람이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놀라는 거죠?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시위에서 경찰이 하는 역할을 몰랐던 것처럼, 인생 내내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보여요." 사람들은 '장애인' 조디를 걱정하고 '장애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을 비난했지만, 사실 그는 전체 대중의 일반적 이해를 위해 나선 투사이다. 그는 다양한 의제들에 개입하면서 여러 시위에 참여해왔다. 그의 블로그 <휠체어 위의 삶(life on Wheels)>의 부제는 한때 "혁명을 향해 걷는 한 사람의 여정(One man's journey on the path to revolution)"이었다.(지금은 "권력은 거기 맞서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느다(Power concedes nothing without demand)"는 말이 부제로 적혀 있다)

가장 선두에서 가장 보편적인 요구를 담아 투쟁하는 사람에게 연민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지금 그는 싸우고 있다. '장애인'에게 어떻게 그런 폭력을 쓰느냐고 경찰을 향해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조디가 의아해하느 ㄴ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조디는 그들에게 놀라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 같다. 시위대라 대중의 삶을 파탄 낸 집권 세력과 싸우는 게 이상한 건지, 아니면 그 집권 세력이 보낸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게 이상한 건지, 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 게 이상한 건지. 아니면, 정말 그것이 아니면, 시위 중인 한 운동가가, 사회의 변혁을 원하는 한 명의 투사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게 이상한 건지.  197-202




에필로그

세상에 말들은 부족하지 않다. 누군가는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사라지는 말들의 운명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우리 삶을 가꾸는 데 필요한 좋은 말들은, 인류의 역사가 부지런히 생산해온 위대한 인물들 덕분에, 여전히 정신의 계주를 이어오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말의 운명은 다른 것이다. 언어학자의 관심과 철학자의 관심이 여기서 나뉘는 걸까. 말들의 수량과 수명보다 내게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말들의 방황'이다. 한마디로 '겉도는 말'의 문제다  247


때로는 무릎을 치게 하고 때로는 가슴에 와 닿아 어딘가에 적어두기까지 한 그 '좋은 말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안에 잠시 머물기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그것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왜 그 '좋은 말씀'들은 순간의 짜릿함만을 안기는 탄산음료처럼 그냥 그때뿐인 걸까?

아마도 우리가 그 좋은 말들을 위장으로 직접 소화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그 말들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구경만 했을 뿐, 그것들을 진지하게 체험하지 않았다.  248


우리는 무소유 정신을 갈파한 어느 스님의 책을 백만 권 넘게 사지만 정작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앎은 어떻게 해서 우리의 피가 되는가? 앎은 언제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가?  249


체험해야 한다.

'깨우침' 일반이 그렇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일을 그대로 떠올리지만, 그것을 달리 느끼고 달리 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깨우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내가 내 식으로 체험하지 않는 말이란 한낱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하다.  251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었다면 최소한 한 번은 내 목소리로 그것을 다시 들어야 한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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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비루해지기 쉬우며, 자칫하면 찌그러지고 찌질해지기 쉬운 일상적인 삶이야말로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한 곳이고, 그곳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자처하는 철학이 달려들어야 세계라고 저는 믿습니다.  8


독재나 억압이 더욱 나쁜 것은 마치 그것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유로워질 것 같은 환상을 유포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금기가 더욱 나쁜 것은 마치 그것이 사라지면 동성애자들이 자유로워지리라는 안이한 발상을 배양하기 때문이다. 그믹와 거리가 먼 이성애자는 모두 자유롭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자유를 위해 모든 구소고가 억압이 사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이 때문이다.  13


제약이나 구속 대신 필연성과 대립되는 상태가 자유라고 믿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필연성이란 피할 수 없는 구속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필연성과 대비하여 '가능성'이,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자유의 폭으 ㄹ결정한다고들 한다.  13


돈이 많아 노동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사람은 자유로울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 자유로울 거라고?

자유를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돈 쓰는 걸 부러워하는 것이다. 자유란 돈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지 돈을 실컷 쓰는 게 아니다.  13-15


자유란 이런저런 조건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발행되는 자판기 티켓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든 나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세공품이다.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억압이나 구속은 그 자체로 자유와 반대되는 상태가 아니라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이 가동되는 출발선에 불과하다.  15


자유를 위해선 자신의 '자유의지'만이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16


한 줌의 용기가 없다면 사실 자유로운 살밍란 말해봐야 공허한 것이고, 들어봐야 '남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용기는 고통을, 자유를 위해 넘어서야 할 저항으로 바꾼다. 

용기는 모든 것을 거는 어떤 도박적인 내기가 아니라 단지 '한 줌'의 용기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17


단 한 번의 거대한 결단보다 더 어려운 것은 매 순간의 삶에서 자유로운 걸음을 걷는 것이다. 매 순간을 갈 만한 길로 가는 것이고, 매일매일 살 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진행되는 삶 자체를, 매번 내딛는 발걸음을 자유로운 삶으로 스스로 믿고 가는 법. 그것이 철학을 통해 배워야 할 삶의 지혜다.  19


이런 의미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삶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필로-비오스(philo-bios)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믿는다.

옳다고 주어지는 것이 정말 옳은지 다시 생각하고, 자신이 정말 긍정할 수 있는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은 이 한 줌의 용기로 시작한다.  20



사건과 자유 -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진" 사건에 대하여


가령 교통사고는 물리학이나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노래 한 곡 들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신체적 변화를 야기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얼른 치료하여 이전의 삶으로 되돌리려 한다. 그것 이전의 삶으로 최대한 되돌아가려 한다. 반면 그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고 아닌 사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고'란, 그것이 실제로 나를 애초에 바라던 거소가 다른 곳으로 밀고 가더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어떤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두 지점 간 간극의 폭은 그가 느끼는 불행의 크기를 뜻한다. 사고란말에 부정적인 색채가 담겨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그게 '사건'이 되는 것은 그로 인한 변화를 나의 새로운 삶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함으로써다. 그것을 받아들인다 함은, 피할 수 없이 이미 내게 밀고 들어온 그것이 내 삶 안에 자리잡았음을 받아들임이며, 그것을 긍정한다 함은 그것으로 인한 변화를 새로운 삶의 기회로, 또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긍정함이다.

사건이란 어떤 일로 인해 발생한 곡절, 애초의 궤적에서 벗어난 이탈에 대한 긍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고가 많은 인생은 그 사고의 수와 크기만큼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 사건이 많은 삶은 그 사건의 수와 크기만큼 풍요롭고 행복하다.  27



긍정과 자유 - 기적 같은 삶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다큐 영화 <서칭 포 슈가맨>

처음에 음반 제작자가 찾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을 것인가.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며 사는 멋진 삶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게다. 대중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도,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은 성공이 손을 내미는 것이리라 생각했을 게다. 그만큼 그것이 제작자도 놀랄 만한 실패로 끝났을 때 그가 느꼈을 실망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참담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패 이후 로드리게스는 잠시 꿈꾸었던 무대 위의 화려함을 얼른 포기하고 어쩌면 남들보다 훨씬 어둡게 느껴졌을 무명의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좋아하던 음악을 접고 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극히 평범한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공장에서 동료드로가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운동을 한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반복해서 떨어지는 선거에 출마하고, 자식들을 책이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그런 삶을 산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다가올 머나먼 타국에서의 기적 같은 부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바로 그 삶을, 큰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노래가 어떤 인기나 성공도 주지 못할 때, 그런 행운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희소한 일인지를 안다면, 정말 이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기적이고 아무도 모르는 기적이다. '비밀의 기적'이다.  33-34


각자에겐 각자의 자유가 있다. 좋든 싫든 자신이 안고 살아가야 할 각자의 몸이 있고, 그 각각의 몸에 깃든 능력이 있고, 각자의 몸이 펼칠 각자의 삶이 있다. 그 삶마다 가능한 각자의 자유와 행복이 있다. 각자가 서 있는 곳마다 다를 게 분명한 자유와 행복의 길이 있다. 모든 자유와 행복은 자신의 현재, 지금의 모모가 지금의 조건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 몸과 조건을 자기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자유와 행복의 가능성은 시작된다.  39



고통과 자유 - 피할 수 없는 고토으 그 '운명적인' 만남에 대하여


고통이란 '유기체'의 부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한 기관이나 세포들의 호소와 항의의 목소리고, 질병이란 그 부적절한 삶의 방식에 잠식된 신체의 비명소리다. 이 비명이나 항의의 몫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의식으로 신체 전반의 움직임을 장악한 '유기체'가 자신의 세포나 기관에 대해 무대포의 일방적인 독재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재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모든 억압된 것은 되돌아온다는 ㅍ로이트의 말처럼, 억압된 세포와 기관의 고통 역시 되돌아온다. 유기체의 생명과 분리된 채 오직 자기만의 생존을 전면에 내세우며 증식하는 세포들로, 그런 세포를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세상에선 '암세포'라고 명명한다.  43-44


삶이란 어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있는게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삶 전체를 걸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다 함은 삶 자체와 대면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47


고통이 삶을 심오하게 하는 것은 단지 고통에 익숙해지는 훈련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배우려 하지 않는 자에겐 위대한 스승이나 책이 아무것ㅅ도 가르쳐줄 수 없듯이,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에서 배우려 하지 안흔 한, 고통은 삶의 깊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고통은 고통을 긍정할 수 있는 자에게만, 삶의 심오함을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온다. 고통을 통해 삶에 물음을 던지며, 고통을 스승으로 삼아 다른 방식으로 살기 위한 길을 찾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고통은 지혜로운 삶의 안내자가 된다. 

삶에 던지는 그 물음과 더불어, 그때마다의 답을 들고 현재 속으로 반복하여 되돌아올 때마다, 나는 다른 나로 되돌아온다. 이전의 나와 다른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  48


강자와 약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과 만나고 대면하는 방식의 차이가 그 둘을 갈라놓는다. 약자는 가지보다 강한 자들에게서도 약점이나 단점을 찾지만, 강자는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서도 강점이나 장점을 찾는다.  50


논평이나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약자들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자신의 약함을 알기에 항상 방어하려는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이고, 또한 자신의 약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날을 세워 듣기 때문이다. 반면 강자는 비판이나 비난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칭찬 또한 가볍게 넘긴다.  51


세상에 오직 두 가지 길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필경 거짓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대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53



기쁨과 자유 - 기쁨의 윤리학과 웃음의 비행술


스피노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양태(mode)'라고 부른다. 사람도 양태, 개도 양태, 컴퓨터도 양태, 물도 양태다. 세상사란 모두 양태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56


신체와 영혼에 발생하는 변화는 어떤 경우든 이 두 가지 방향뿐이다. 수많은 감정들은 강도나 양산을 달리하며 나타나는 이 기쁨과 슬픔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감정이나 정서를 크게 둘로 나눈 것이다.  57



꿈과 자유 - 꿈꾸는 영혼의 감옥


돈을 잘 벌면서도 돈 버는 것 말고는 꿈꿀 줄 모른다면 우리의 영혼은 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가족밖에는 꿈꿀 줄 모른다면, 우리의 영혼은 가족에 갇혀 있는 것이다.  77



매혹과 자유 - 술병 속의 연인이 내미는 매혹의 손


사물을 인간의 이 목적성 안에서 본다는 것은, 사물이 갖고 있는 힘과 생명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사물이 내미는 손을 감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사물과 만나는 어떤 사건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뜻대로 쓰다가 맘에 안 들면 주저 없이 내버리는 이들에게서 사물의 '주인'으로서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다가오 ㄴ이의 매력으 ㄹ알아보지 못하는 안목 없는 이의 무능력을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89



선물과 자유 - 아,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면...


의무가 된 선물, 답례의 의무를 통해 '교환'되는 선물은 과연 선물일까? 데리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답례가 의무가 되는 순간, 선물은 되갚아야 할 채무가 되기 때문이다.  124


  

돈과 자유 - 헝그리 정신과 궁상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려면, 돈을 적게 벌어야 하고, 그러러면 돈을 적게 써야 한다.  133


자본주의와 부에 대해 속속들이 연구했던 맑스는 이런 '경제적 부' 개념과 대비하여, '실질적인 부'란 필요노동시간(먹고사는 데 필요한 비용을 버는 데 사용되는 시간) 이외의 가처분시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정치경제학 비판요강2>). 쉽게 말하면, 돈을 버는 데 투여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라는 것이고, 그런 시간이 많은 이들이 '부유한 자'라는 것이다.  135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선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니라 돈도 필요하고 그걸 할 수 있는 조건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36


부유함에 대한 이런 관념은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시간을 대개 뻔한 방식으로 패턴화된 소비를 위해 사용하게 한다. 밀리는 자동차 안에서 시간을 보낼 게 뻔함에도 주말이면 자동차를 끌고 나서는 것은, 다른 돈 있는 이들처럼 여가나 레저를 즐기고 있다는 관념을 향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잘 알려진 관광지를 돌며,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 거기 있음을 확인하고, 이미 익숙한 방식의 소비와 향유 바익을 반복하는 그 패턴화된 소비는 이제 일종의 의무가 된 것 같다. 모두가 하고 있기에 나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핍감과 불안함을 느끼게 되어 어떻게든 동참해야 할 것 같은, 또다른 '일'이 된 듯하다.

나는 실질적 부를 돈을 비롯한 '가처분자원'이나 맑스가 말한 가처분시간보다는 오히려 그런 것을 자신의 삶을 위해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가처분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있고 돈이 있어도, 능력이 없다면 그것들은 자유를 위한 자원이 아니라 단순한 소비와 소모의 대상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139


헝그리 정신은 돈을 쓰지 않는 법이 아니라 돈을 쓰는 법이다. 돈을 잘 쓰기 위한 삶의 원칙이고 이념 내지 철학이다.  142


헝그리 정신은 무엇보다 돈에 대해 '능동적'임을 뜻한다. 돈에 대해 능동적이라 함은 돈을 자기 뜻대로 부리며 산다는 뜻이다...

궁상을 떠는 것은 '대타적으로는' 남들 앞에서 없는 티를 내는 것이고, '대자적으로는' 궁핍 앞에서 사고나 행동이 위축되거나 빈약해지는 것이다...

반면 헝그리 정신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의 삶을 위해 능동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가난 앞에서 당당하다.  143


항상 검소하게 살고자 하고 엔간하면 돈 쓸 일을 안 만들지만, 써야 할 일이 있을 때 머뭇거리면 안 된다.  145



감각의 자유 - 감각의 자유, 혹은 피 냄새가 나지 않는 비상의 방법에 대하여


감각의 갑옷만큼 우리의 일상적 삶을 구속하고 자유로움을 제한하는 것도 찾기 힘들다. 감각의 구속은 종종 너무 자연스러워서 때로 우리는 구속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기 어렵다. 그 구속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150


철학자 들뢰즈는 진정한 '넘어섬의 경험', '초월의 경험'이란 지각 불가능한 것과의 피할 수 없는 만남엣 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차이와 반복>). 감각적으로 피할 수 없게 닥쳐왔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없는 어떤 것과의 만남, 그것이 지각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의 나의 감각이나 지각능력을 벗어나 있어서일 것이다. 그 지각될 수 없는 것을 향해, 그 알 수 없는 것의 지각을 향해 나의 감각을 밀고 나아갈 때, 나는 나의 감각능력을, 나의 경험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을 경험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예컨대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예술작품이나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알기 어려운 책들은, 그것을 피하고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감각능력이나 사고능력을 확장해준다. "문제는 감각의 착란을 통해서 미지의 것에 도달하는 것이다."(랭보)  155-156


자유란 비장한 결단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혀용된 영웅들의 문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 각자에게 주어진 각자의 문이다. 그런데도 그리 들어가는 이가 적은 것은, 카프카의 유명한 우화 [법 앞에서]의 농부처럼, 그게 자신을 위한 문임에도 평생 그 앞에서 들어갈 수 있을지 찔러보고 그게 정말 나를 위한 문인지 물어볼 뿐, 밀치고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농부처럼 다들 그 앞에서 늙어죽기 때문이다. 

감각의 자유란 익숙하지 않은 것, 새롭고 이질적인 것들 안에 깃들어 있는 어떤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불편하기에 피하고 싶은 어떤 것을 향해 귀를 여는 작은 용기면 누구나 올라가기 시작하 수 있는 평번한 계단이다. 따라서 어떤 것 앞에서 그저 편안하다면 그것은 혹시 구속의 징표는 아닌지 한번쯤 의심해야 한다.   156-157



감정과 자유 - 이 은밀한 복수의 드라마를 어떻게 정지시킬 것인가?


'능동적인 것'은 먼저 자극하느냐 나중에 반응하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능동적 감정은 반동적 감정의 자극에 다르게 '반응'하는 방식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166


'능동적인' 의미의 사랑이란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능동적인 우정이란 친구의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믿고 좋아하는 것 아닐까? 결코 쉬운인은 아니겠지만.  168



지성과 자유 - 누구에게나 주어진, 누구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선물에 대하여 


'유식한' 스승은 자신이 아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데 그치지만, 무지한 스승은 학생 스스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게 한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  173



욕망과 자유 - 언제까지 우리는 '그들의 삶'을 살 것인가?


나는 10년 이상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거의 모든 강의엣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첫째 질문에 '저는 이러저러한 것을 잘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한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둘째 질문에서는 약간의 단서를 단다. 지금 밥 먹고 싶다, 요즘 연애하고 싶다, 장래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식의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걸 물으려는 게 아니라고. 무언가를 진정 하고 싶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지, 최소한 10년이나 20년 정도는 '아, 이거 하고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게 있을 때 그렇다고 답해야 한다고, 이 질문은 앞의 것보다 좀더 쉬운 편인지, 지금까지 다섯 명 정도가 답을 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다섯 명 정도라니, 정말 놀라운 숫자 아닌가! 

이 질문을 받으면, 많은 경우 대답 이전에 자신이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고, 자신의 능력과 욕망에 대한 질문인데, 그것조차 자신이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셈이니까.  207


어떤 것을 해보지 않고선 내가 그걸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해본다는 것도 그렇다. 잠시 맛이나 보듯, 혹은 며칠짜리 캠프에 들어가보듯, 찔러보듯이 잠시 해보는 것으로는 그걸 정말 좋아할 수 있을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처음엔 재미있어 보여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어떤 것도 때론 단조로울 수도 있고 때론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힘겨운 터널을 필경 하나는 지나가야 한다. 즉 어떤 일을 정말 잘할 수 있을지, 좋아할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선, 특별한 재능이나 인연이 있는 게 아니면, 필경 고통이나 지루함을 수반하는 어려움의 문턱과 대면하고 그것을 넘어선 깊이까지 들어가보아야 한다.  211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로 대변되는 '그들'의 욕망에 의해, 또한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보험회사 직원이 되어 일을 했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자 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다. 밤, '그들'의 욕망이 잠드는 시간에, 그는 자신이 하고 싶던 것을 했다. <아동의 탄생>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역사가 필리프 아리에스는 '일요 역사가'를 자칭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대학원에 가지못하고 출판사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일요일'로 표현된느, 노동이 중단되는 시간에 자신이 정작 하고 싶었던 역사 연구를 계속했다. 카프카도 아리에스도, '그들'이 말하는 삶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그들의 욕망 사이에 있는 빈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216


나의 삶을 시작하기에 '이미 늦었어'의 시제란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늦었다고 해도 시작하지 않고 끝낼 순 없는 거 아니냐고.  219



인정욕망과 자유 - 날 선 자존심과 '그저 웃는' 자긍심의 차이에 대하여


'나의 욕망'이라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사실상 엄마, 아버지, 사회 등 '타자'의 욕망이란 것이다. 인정욕망이 ㅡㄱ 타자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삼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심층의 깊이에까지 침투한 타자의 욕망이다. 라캉이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224


인간의 본질로까지 소급해서 보면, 칭찬이나 직접적인 인정을 구하는 경우는 물론, 그렇지 않은 욕망까지 모두 인정욕망이 된다. 사실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우리는 필경 남의 인정을 구하는 삶을 사는 존재가 되고 만다. 이는 그들의 삶, 그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과, 남의 시선을 의식해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행동을, 둘 다 어차피 그게 그거라고 말해도 좋을까? 실은 그걸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단지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결정적인 것 아닐까?  225


자긍심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긍지의 표현이다. 그것은 남이 아닌 자신의 시선, 자신의 척도에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남의 인정을 구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에 비추어 자신이 잘했는지, 잘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삶에 자긍심을 가진 이라면, 가난을 감추고자 하지도 않을 것이며, 가난이 드러난다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자신이 선택한 것의 일부고, 자신이 긍정하려는 것이니까. 왜 그런 식으로 사느냐고 누가 물으면, 굳이 해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누가 오해할까 걱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김상용의 시에서처럼 "왜 사냐건 웃지요" 식으로 여유 있는 웃음 한 번이면 충분할 것이다. 오직 자기가 세운 기준만이 자기를 흔들 것이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자 그럼 다시 한번'하며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스스로를 일으켜세우고 새로 시작하도록 촉발할 것이다.

자존심은 약한 자들이 자신의 약함을 가리기 위한 방어기제고, 자긍심은 강한 자들이 스스로 갖고 있는 힘에 대한 긍정이다. 전자는 남을 향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기를 향한 것이다.  232


긍정의 긍정.

첫번째 긍정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두번째 긍정은 그렇게 자신이 긍정하여 선택한 삶으로인해 야기되는 어떤 결과도 긍정하는 것이다.  233


자유로운 삶, 그것은 두 번의 긍정에서 온다.  234



속도와 자유 - 속도의 강박증과 춤추는 신체의 시간


함께 산다는 것은 속도를 맞추어 사는 것이다. 걸음걸이의 속도를 맞추지 않고선 함께 걸을 수 없는 것처럼, 속도를 맞추지 않고선 함께 행동할 수 없고, 함께 대화할 수 없으며, 함께 생활할 수 없다. 물론 속도를 맞춘단느 것은 숫자로 표시되는 어떤 크기를 같은 값이 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신체와 영혼마다 각기 다른 속도가 있기에, 그것을 어느 하나에 일치시키려 한다면 '일치'는 자기 속도에 대한 억압이 된다.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가령 걸음이 빠른 이가 같이 가는 느린 이의 속도에 자기 속도를 '맞추려고'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며, 앞서 갔다면 기다려주는 것이다. 느린이도 평소보다는 빨리 걸으며 속도를 '맞추려고'할 것이다.  240



공부와 자유 - 공부와 학인, 혹은 학생부군손오공신위


학습은 머리로 하는 것이라면, 공부는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에 붙지 않은 것, 몸으로 실철한 수 없는 것은, 절대적 진리라도 '죽은 문구(死句)'에 지나지 않는다.  254


공부는 학습보다 훨씬 어렵다. 알아도 아는 게 아니니 말이다. 항상 자신의 물음을 던지고, 자신의 감각과 생각으로 따져보고 몸에 붙여야 그 일부라도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는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하기 어렵다'는 걸 이유로 배우고 알려는 노력을 냉소해선 안 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며 사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그렇진 못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애쓰며 산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공부하는 학인의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앴는 마음을 흔히 향상심(向上心 향하다 향, 윗 상, 마음 심)이라 한다. 그 향상심이, 옳다고 아는 것을 조금식 몸에 붙여가는 힘일 것이다.  255


공부를 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뜻한 대로' 몸을 움직여 원하는 것을 이루는 능력이나 기술에 머문다면, 그것은 아직 공부를 시작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몸을 움직이는 자신의 '뜻'을 주시하면서 그것을 다스리고 연마하지 못한다면, 몸에 붙은 기예는 재앙의 원천이 될 것이다...

공부는 몸의 연마, 기술의 연마에서 마음의 연마로 넘어갈 때, 밖을 향하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시작된다.  257


밖을 향해 있던 선이 안을 향한다 함은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향해 돌리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몸은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향하게 된다. 장인적인 기술이나 술법의 숙련은 필요한 동작을 아무생각 없이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습관적인 움직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익숙해진 순간, 습관적으로 행하게 한다. 습관이 되고 나면 생각 없이 행하게 하고, 관성의 선을 따라가게 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그 습관적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행(行)을 닦는다(修)'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부는 '수(修)-행(行)'이다. 그것은 삶에 던진 시선을 통해 길어올린 다른 삶의 가능성,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의 가능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공부란 그런 식으로 다른 삶을, 도래할 삶을 만들어 낸다.  259


도래할 삶을 만드는 것은 이전의 삶에 기대어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난감한 딜레마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습관이나 기억에 기대면서 동시에 그것에 의해 유지되는 동일성을 벗어나야 한다.  261



무아와 자유 - 나 없는 자유의 유쾌한 웃음을 위하여


차이의 철학이란 차이의 긍정을 주장하는 철학이다. 이것의 가장 단순하고 통속적인 버전은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자기가 옳다는 믿음이 강하면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269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차이의 긍정이란, 나와 다른 어떤 것과의 만남을 긍정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차이를,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을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척도로서의 나를, 아상(我相 나 아, 서로 상)을 내려놓을 때, 차이의 철학은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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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았을 때 종교, 그러니까 관념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던사람들이 지배층, 곧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유물론적 관점을 기반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36


유물론자들은 항상 물질세계 및 현실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유행을 선도할 것이고, 관념론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관념이라는 틀에다가 현실을 끼워 맞춰서 세상을 바라볼 테니 유행에 뒤처지고 낡은 것을 고수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겠군요.  38


개인의 읫기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보는 견해를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합니다. 반면 플라톤의 이데아나 기독교의 신처럼 초개인적이고 초감각적인 정신적 실재를 가정하여 모든 것의 근원으로 삼는 견해를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하고요.  40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세상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어떤 변하지 않는 틀을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49


변증법적 세계관은 세상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50


헤겔이 변증법을 연구하면서 쓴 '모순'


'모순'이 변화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

어떤 현상에서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파악해내는 것이 중요.

그래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화와 발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을 테니까.  55



양적 변화가 특정 정도를 넘어서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양질 전화의 법칙'은 모순에 따른 변화와 발전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법칙입니다. 모순에 따른 변화 발전은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양적 변화가 계속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입니다.  73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고 느리게 보이며,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반면에 질적 변화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급격하고 불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77


부정변증법. '변증법적 부정'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발전 과정에서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의 의해서 '부정'되는 것.  80

새로운 것이라는 게, 기존의 낡은 것과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생판 다른 것은 아닙니다.  81


사물이나 현상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83


연속된 부정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변화 발전, 곧 진보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부정이라는 단어를 되풀이 쓴 것이지요.  84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진리란 인간이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피안(彼岸 저 피, 언덕 안)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적 진리란 절대적 진리의 일부 측면이락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것이지요.  123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132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게 되는 의식을 '사회적 의식'이라고 합니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사회적 의식'을 공유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놓인 환경이 같기 때문입니다.  135


'존재'가 원인이고 '의식'이 결과인 이상, 역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면 '의식'의 배후에 작용하는 '존재' 양식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됩니다.  144


설명을 듣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인간은 다양한 존재 양식에서 살고 있고요. 고온 건조한 기후와 물이 부족한 토양에 산다는 것이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존재'양식입니다. 이러한 존재 양식이 그들에게 조장이라는 풍습, 그러니까 새에게 인간의 시신을 내어주자는 '의식'을 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멕시코의 마야인들이 옥수수 신을 최고신으로 섬긴 이유는 그들의 주식이 옥수수이기 때문입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마야인들의 '존재'양식은, 옥수수 신이 최고신이라는 '의식'을 낳았습니다.  145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든지, 바람이 많이 분다든지, 주변에 강이 흘러서 토지가 비옥하다든지, 비가 많이 온다든지, 주변에 철광석이 많다든지, 아무튼 우리 의식에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 양식의 요소들은 참으로 많고도 다양합니다.  146


역사 유물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변수들 가운데 역사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인을 찾아내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역사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입니다.  148-149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생산 활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설명하는 개념들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형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생산력'이라고 합니다.  150


생산력 = 노동력 + 생산수단


노동하는 능력이 바로 '노동력'입니다.

필요한 원료와 시설이 '생산수단'입니다.


생산수단 = 노동대상 + 노동수당


기계는 노동수단이고 원료는 노동대상.  151-152


생산관계란, 인간 사회에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질 때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말합니다.  152


생산관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54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통틀어서 그 사회의 '생산양식'이라고 합니다. 


생산양식 = 생산력 + 생산관계  157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은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이었고요.  160


생산력이 발전하면 낡은 생산관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161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함께 통일되어 존재하면서 생산양식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한 사회에 생산양식의 구성요소로서 함께 존재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 사이에서 모순이 생겨납니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162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바뀌는 시기를 우리는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부르지요.  163


지금 전 세계에 물자는 넘치고 있어요.

'공황'이 일어나는 순간 그 넘쳐나는 상품들이 팔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171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私的 사사로울 사, 과녁 적) 성격 사이의 모순'에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생산력과 관련이 있고 '소유의 사적 성격'은 생산과계와 관련이 있는데요. 

생산이 사회적 성격을 띈다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 활동이 이미 개인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죠. 곧 생산의 사회적 성격이 강해진 것입니다.

소유 형태는 거의 완전히 개인적인 형태, 곧 사적 소유가 주를 이룹니다.  172-173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변화 발전을 거쳐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생산력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관계의 사회적 성격과 맞아떨어져서 공황이라는 파괴적 현상이 없어지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182



'토대(base)'와 '상부구조(superstructure)'


어떤 사회의 '토대'란 그 사회의 생간관계 총체를 말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나 봉건적 생산 관계등을 떠올리면 됩니다.  189


상부구조란 것은, 앞서 얘기한 그 사회의 '토대'위에 서 있는 정치적, 도덕적, 예술적, 종교적, 철학적 견해 및 그에 상응하는 기관이나 조직 등을 말합니다.  190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토대'가 수많은 '상부구조'들을 낳고 있어요. 농노처럼 토지와 신분제에 얽매이지 앟은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은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생산수단을 자본가 개인의 소유로 단단히 보장하기 위해서 사유재산 보호를 보장하는 법률이 생겼고요. 이런 법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토대'에 기반을 둔 상부구조인 것이죠.  191


제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재미있는 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던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을 찾아가서 지능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부족 사람들 각각에게 검사 용지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각자 개별적을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문제지를 놓고 다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하지 뭡니까. 서양 사람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 각자가 따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랬더니 권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의논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자꾸 각자가 따로 해결하라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이 원주민들에게는 문제를 각자가 따로 해결한다는 상황 자체가 전혀 생소할 뿐더러 이해도 되지 않앗습니다. 이 원주민 부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부족의 구성원들이 함께 도와가면서 생활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생존'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수렵이나 채집 활동을 통해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맹수나 다른 부족과 싸워가며 '생존'하려면 함께 똘똘 뭉쳐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공동체 생활을 잘해야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의 법칙이 있는 곳이 원시공동체 사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함께 도와가면서 사는' 삶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런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같은 '이기심'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얻은 지시고가 정보를 빨리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자신이 구한 먹을거리도 함게 나눠 먹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기심'은 그 사회에서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195-196


자본주의 '게임의 법칙'. 더럽고 아니꼽더라도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장이나 토지, 원료, 기계 등 이른바 '생산수단'이 자본가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지요. 노동자는 노동력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도안 필요한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이기심'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197


자본주의 사회 -> 모든 것이 상품으로 된 사회.  200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알아야 우리의 혀재를 판단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죠.  204


새로운 토대가 낡은 상부 구조를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낡은 상부구조가 적극적으로 새로운 토대를 거부할 수도 있다.  207



계급이란 것을 들여다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피지배계급 간에는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착취가 존재하는 사회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싱이 있습니다. 바로 빈부 격차지요.  

구조적으로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빼앗는 사람은 늘 빼앗고, 빼앗기는 사람은 늘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214


전 세계에서 수많은 농민이 봉건 지주에 맞서 봉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동학농민운동도 그렇고, <삼국지>에 나오는 황건적의 난도 같은 맥락입니다.  221


계급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회를 변혁하는 근본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계급투쟁이라고 하면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는 것으로만 새악하지요. 하지만 착취계급에 대한 피착취계급의 투쟁은 항상 새로운 사회를 여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수많은 농민이 봉건적 질서를 해체하는 데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223


지배계급은 불안정한 상황을 억누르고 지배 체제를 계속 유지해야만 자신들의 부를 지킬 수 있겠지요. 화가 난 노예들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노예주들은 권력을 잃고 말 테니 말이에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가'입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기구, 지배계급의 권력기구로 보았습니다.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합니다. 그러한 경제적인 권력으 가지고 잇기 때문에 피지배계급을 예속시킬 수 있죠. 하지만 그 사이에는 계급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억누르고 계속 복종시키기 위해 조직된 힘이 필요합니다. 군대나 경찰, 법원, 감옥같이 조직된 폭력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이러한 국가의 폭력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군대와 경찰은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지만, 사회의 나머지 성원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불법 행위가 됩니다. 이런 폭력기구들의 조직을 통해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정치적을 지배합니다.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국가기구를 통해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면서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발생은 계급 사회의 발생과 맞물려 있습니다. 국가라는 것이 계급 억압 기구이기 때문에 계급의 존재 자체가 국가라는 기구가 존재하기 이한 전제 조건인 셈이죠.  225-226


우리는 국가가 사회의 전체 세력을 중립적으로 대변한다고 생각하도록 배워왔습니다.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법률이 제정되고, 그 법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227


혁명은 지배계급의 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뒤따릅니다.  237


진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민중이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틀어쥐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그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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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믿고 있을 뿐 진리는 아닌, 상식이라 여겼던 것이 '어리석음'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많다.  6



옛사람들으 '감정'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감정은 감추고 눌러야 하는 것이었다.  25


'감정 노동'에 바져든다. 속마음을 감춘 채 상냥하고 친절하게 상대를 대한다.  30


잘 모르는 사람들과 계속 마주쳐야 하니, 언제나 '알맞은'감정 상태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31



"별로 일하지도 않으면서 음식만 많이 먹으면 욕정만 살아납니다... 농부들은 흑빵과 크바스(호밀로 만든 맥주), 양파를 먹습니다. 이 정도만 먹고도 농부는 생기 넘치게 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마다 800그램이 넘는 쇠고기와 새고기 그리고 열량 넘치는 음식을 먹어 댑니다. 그게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정욕만 만들어 내겠지요."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38


'효과적으로 욕망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인 것들부터 다스려야 한다. 그러니까 복잡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보다 근원적인 욕망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복답한 욕망이란 몸을 꾸미는 것, 스포츠, 오락, 호기심 등등이다. 근본적인 욕망이란 식탐, 게으름 그리고 정욕이다. 지나치게 많이 먹는 인간은 게으름과 싸워 이길 수 없다. 엄청나게 먹어 대면서 게으르기까지 한 사람은 정욕에 맞서지 못한다. 따라서 도덕적이 되려면 식탐부터 이겨 내야 한다. 즉 절식(節食 마디 절, 밥 식)이야말로 절제의 첫걸음이다. - 톨스토이 <첫걸음>에서  38-39


1870년에는 교육법에 의해 의무 교육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부모에게 자식은 짐이 되었다. 권리는 줄고 의무만 잔뜩 짊어지게 된 것이다. 부모라는 자리가 인생의 무덤처럼 여겨졌다.  44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출산율은 높게 마련이다. 정절 의무에 큰 가치를 두는 이슬람교나 가톨릭 문홪권에서는 다산이 일반적이다.

자유연애를 앞세우는 사회일수록 아이 갖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널리 퍼진다.  46


왜 가족이 사라지고 있을까?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Elizabeth Beck Gernsheim)은 그 이유를 간단하게 풀어 준다. 가족을 꾸리는 일이 경제적으로 손해인 탓이란다.  53


사람들은 예전엔 가족에게서 얻던 것을 이젠 국가에 바라며, 가족에게 했던 헌신을 사회에 해야 한다고 여긴다.  55


독재자는 결코 국민들을 여유로운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전쟁 준비, 사회 기반 시설 건설 등의 이유로 항상 국가 경제를 쪼들리게 한다. 그러고는 배고픈 시민들에게 큰 시혜라도 베푸는 양 복지 예산을 풀어 놓곤 한다. 자기 말에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57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일단 집중력을 잃고 산만해지면 다시 그 일에 집중하기까지 25분 남짓이 걸린단다.  59


깊은 행복감을 느끼려면 끈기있게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집중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오랜 노력을 이어 가게 만드는 꿈이 없다.

'프리터(Freeter)'란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벌고 게임이나 하며 하루를 때우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61




미셸 푸코에 따르면, 감시 기술이 좋아질 때 공개 처형은 줄어든다.  81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조금씩 서서히 길들여 나간다.

권력자들은 생활을 잘게 쪼갠다. "무단 횡단하지 말라", "세금을 제때 내라", "아무 데서나 소리 지르지 말라" 등 각각의 규칙에는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받아야 할 벌칙이 따른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규칙들이 모여 때로는 개인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는다.

지켜야 할 규칙이 세세하게 조개져 있으면 불만을 터뜨리기 어렵다.

보통 사람의 생활을 잘게 쪼개어 길들이려면 감시도 철저해야 한다. 내가 무단 횡단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나를 처벌하겠는가? 그래서 권력자들은 감시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킨다. 정치학자 렉 휘태커(Reg Whitaker)에 따르면, 감시는 더 철저한 감시를 부르게 마련이다.  82


역사상 우리 시대만큼 감시가 철저한 때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렉 휘태커는 그 까닭을 "우리 스스로 감시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는다. CCTV 카메라는 대부분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설치된다. 더 안전하게 길거리를 다니고 싶어서다. 돈을 빌리고 갚는 일이 전산으로 처리되면 나의 금융 거래가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이는 곧 권력자들이 작정만 하면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산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얻는 편리함이 만만찮은 까닭이다.  83


CCTV 카메라는 권력자들의 자못을 잡아내는 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리 힘센 사람도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다...결국 우리는, 권력자들은 시민을 감시하고 시민은 권력자를 감시하는 '거울 같은 세상'에서 사는 셈이다.  85




절대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하나로 통일하는 일이 간단했다.  89


기계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여 최고의 효과를 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인간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합리적 절차는 풍요롭고 투명하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절대 가치가 제공해 주던 '삶의 의미'는 채워 주지 못하는 듯하다.  93




상업이 지배하는 세상은 '타인 지향형(other directed type)' 사회다.  111


상업이 중시되는 시대에는 모든 것이 흔들리고 변화한다. 이익을 남기려면 세상의 변화를 잘 읽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시대를 여는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정반대다. 자기만의 소신과 믿음으로 새로운 길을 연다.  112




간디는 공장에서 만든 옷은 일부러 입지 않았다.

공장의 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곧이어 자유를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성장을 중시하는 경제는 만족할 줄 모른다.  182




사회학자 이반 일리히(Ivan Illich)는 학교가 필요한 이유를 삐딱하게 일러 준다. 학교는 한마디로 '주제 파악'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사회에는 잘나가는 이도 있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만약 어떤 이가 잘난 부모 덕분에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구나 가난하고 힘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하지만 "네가 공부를 못해서 지지리 궁상으로 살게 되었다."라고 하면 어떨까? 경쟁에서 진 겨로가이니 마지못해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학교는 이렇게 세상의 '신분'을 굳혀 나간다. 

학교는 사람들이 차별을 쉽게 받아들이게끔 이끈다.  207


이제 학교는 공부보다 '생활하는 곳'으로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교육 기능은 오히려 학교 밖에서 기대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학원에 기대는 이들도 셀 수 없이 많다. '평생 교육'에 대한 강조도 마찬가지다. 그 이면에는 학교보다는 기업과 사회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더 중시하는 마음이 숨어 있지 않을까?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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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느라고 그러지, 모모야."  11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  28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법이다.  37


"하밀 할아버지, 나는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훌륭한 뚜쟁이여서 엄마를 잘 돌봐주면 좋을 텐데 말예요."  47


그녀(로자아줌마)는 사람이 가진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점점 더 믿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54


"엘리 하브 알라라 이브리 기루 수반 아드 다임 라 이아줄."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58


(지하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피난처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엔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69


로자 아줌마는 동물세계의 법이 인간세상의 법보다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인간 세상에서는 아이를 입양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입양된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친엄마가 아이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나서면 아이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땐 위조서류가 최고다. 만약 자기 아이가 남의 집에서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이 년쯤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나타나서 아이를 찾아가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파렴치한 엄마가 있다면, 위조서류를 내보이며 쫓아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친엄마는 절대로 아이를 되찾지 못하고 오히려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로마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73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거지."  93


어떤 때는, 파리 중앙 시장의 꽃수레에서 미모사를 한 포기씩 훔치기도 했다. 그 꽃들에서는 행복의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98


나는 마약에 대햇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년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 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99


언젠가 르 마우트와 함께 경찰을 아버지로 두는 것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르 마우트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그런 상상은 아무 쓸모 없는 짓이라고 말하더니 가버렸다. 약물중독자와는 토론할 수가 없다. 그들은 세상 일에 대해 호기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121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173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4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203


네 살을 더 먹지만 않았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 것이다.  238


나는 누군가를 인질로 붙잡아 죽이는 것말고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바강스 장소를 산과 바다 중에서 선택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듯이,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 전쟁같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증에 사는, 과거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유태인 노파 같은 건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몇백만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돈이 적게 드는 일 일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245-246


나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네 살이나 더 먹었기 때문에 참았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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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완성된다."

오직 장자만큼은 길이 미리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길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당돌하게 외쳤습니다.  5


길의 끄트머리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이곳에 우리는 바로 타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장자가 우리에게 만들라고 이야기했던 길은 다른 것이 아닌 타자에게로 향하는길이었던 셈입니다.  6


장자가 매번 망각을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오직 망각만이 우리 삶을 좀먹는 기억들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망각은 하나의 통과의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최종 목적은 사랑과 연대를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억들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


장자의 망각은 철학사상 가장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그렇습니다. 망각이란 타자로 비약하기 위한 가벼움과 경쾌함을 얻기 위한 노력입니다. 간혹 장자가 비움을 뜻하는 '허(虛 빌 허)'라는 글자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8


타자로 비약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무거운 것들을 비운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우리가 타자에게 건너가는 데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망각과 비움은 타자에게 비약하는 데 있어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9


망각이나 비움이라는 개념.

장자가 문제 삼았던 것은 타자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우리의 판단 혹은 추측이라는 거지요.  23


장자의 소통(疏通 트일 소, 통할 통)이란 개념.

흔히 소통이라는 것은 마음과 뜻이 전해지는 것, 즉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통이란 개념은 이보다 더 복잡한 것입니다. 이 개념은 '트다'라는 뜻의 '소'와 '연결하다'는 뜻의 '통'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막혔던 것을 터서 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한다는 작용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왜 이 '소'라는 글자를 강조했는지 아시겠지요.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에서 건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망각 혹은 비움과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24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에게 비약하는 것뿐입니다.  26



서양 철학이 망각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망각은 이미 니체(F. W. Nietzsche, 1844~1900)에 의해 진지하게 숙고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플라톤으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났던 철학자로 기억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한 '상기'나 '기억'을 그것에 대한 '무지'나 '망각'보다 탁월한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36


니체가 이야기하는 망각은 기억을 초월하려는 능동적 힘, 기억을 벗어나려는 치열한 투쟁.  38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49


우리는 물이 빨아들이면 그것에 저항하고, 혹은 물이 밀어내면 그것에 저항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과는 달리 땅은 우리를 빨아들이거나 밀어내지 않습니다.

물의 복잡하고 다양한 흐름들에 맞추어 '감각-운동'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51


땅에서 편안해하던 주체가 물에서도 편안해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기억 혹은 주체의 동일성을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52


망각은 타자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의식의 자기동일성'만을 잊으려는 것이지, 삶 자체의 능동성을 잊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63


장자느 우리도 일종의 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피리라면, 우리는 타자와 마주쳐서 그에 걸맞은 소리를 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소리를 내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 바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속이 꽉 막힌 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9


남곽자기의 섬세함 묘사.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걱정, 염려, 변덕, 고집, 아첨, 오만, 허세, 가식 등과 같은 사람의 마음은 음악이 비어 있는 곳에서 나오고 버섯이 습한 데서 나오는 것처럼, 밤낮으로 우리 앞에 번갈아 나타나지만, 그것이 어디서부터 싹터서 나오는지 알지 못하겠다!' 세계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람도 하나의 피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피리를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나무는 바람을 만나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비어 있는 구멍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79-80


결국 타자와 마주치지 않았는데도 발생한 소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소음일 뿐입니다.  80


우리는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소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81


비워질 때에만 나는 마주치는 타자에 걸맞은 소리를 낼 수 있는 피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피리는 오직 그 경우에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겠지요.  82


소통(疏通)이란 개념은 '트다'는 뜻의 '소'와 '연결된다'는 뜻의 '통'이라는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말입니다. 막혔던 것이 터서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그리고 막힌 구멍을 터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된 피리를 생각해보세요. 남곽 자기의 입을 빌려 장자가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소통'이란 글자에 응축되어 있던 셈입니다.  83-84


'지인(至人 이를 지, 사람 인)의 마음씀은 거울과 같아 일부러 보내지도 않고 일부러 맞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대로 응할 뿐 저장해 두려 하지도 않는다.' 자신 앞에 사람이 도래했는데도 거울이 직전에 비추고 있던 나무의 상을 지니고 있으려 한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거울이 아닐 것입니다.  87


거울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고, 철저하게 현재 마주친 타자를 지각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지각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88


장자가 이야기하는 '지인(至人)'이란 바로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의 작용에서 가능해지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비워버린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인이란 일체의 허구적 매개 없이 혹은 미리 사변적으로 정립된 본질 없이 직접적으로 타자와 직면해서 조우해야 하는 삶의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9


기존의 생각, 혹은 기존의 의미를 비웠기 때문에 지인은 어떨 수 없이 새로운 의미를 채워야 할 숙명에 놓이게 된다고, 물론 새로운 의미는 타자와 마주쳐서 이 공백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92


'A=-A'는 A라는 규정과 -A라는 규정이 겹쳐지는 공간, 그래서 언어와 그것에 의해 작동하는 사유의 분별작용이 불가능해지는 공간입니다. 장자는 이 공간을 '도추(道樞 길 도, 지도리 추)'의 공간이라고 규정합니다. '도추'란 글자 그대로 '도의 지도리'를 의미합니다. '지도리'란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의 회전축을 뜻합니다. 결국'도추'란 도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나 조건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장자에게 있어 도란 미리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도는 우리가 걸어 다녀야 이루어지는 것"(도행지이성 道行之而成)이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115-116


사르트르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항상 내가 아닌 자로 존재하고, 나는 항상 내가 존재하는 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118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이 원수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그 원수이 키우는 사람도) 있는 그대로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키고, '천균'에 편안해 한다. 이를 일러 '양행(兩行 두 양, 다닐 행)'이라고 한다.  143


'알 수 없다'는 경험 혹은 실존의 상태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판단을 중지하고,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니, 이제 타자의 거동에 자신을 조율할 수밖에 없게 된 거지요. 장자는 이것을 '인시(因是 인할 인, 바를 시)'라고 부릅니다.  147


'롷고 그름(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킨다"는 표현이 '타자성의 테마'없이는 이해불가능한 것이라면, "천균(天鈞 하늘 천, 서른근 균)에서 편안해 한다"라는 표현은 '판단중지의 테마'없이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자에게 있어 이 두 가지 테마는 "둘이 함께 가는(兩行)"것입니다. 다시말해 타자성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일종의 판단중지 상태에 이르게 되고, 역으로 일종의 판단중지 상태에 있게 되면 우리는 타자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지요.  151-152


판단중지에 대한 경험을 기술한 후 바로, 장자는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장주일 때 날개를 휘저으며 날갯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나비일 때 인생에 대해 철학적 성찰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장자에게 어느 경우든 "구분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상태는 타자와의 소통은 커녕 일종의 착각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6-157


우리 자신과 타자 사이에 엄청난 틈을 긍정하고 이 심연을 건너가려고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이 지니는 깊이와 근본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길은 걸어 다녀서 이루어진다" '길'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어감'이 먼저 있습니다. 태초에 '길'이라는 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음'이라는 행동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162


자타(自他) 사이의 심연을 건너기 위해서는 일종의 결단과 비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약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충분히 가벼워야만 합니다. 심연을 건너기에 충분히 가볍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비워야만 하는 거지요.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심연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물처럼 가지고 있었던 것들(선입견, 오만, 자의식, 사변적 사유 등등)과 경건하게 작별의식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심연을 건너는 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비워야만 우리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벼움과 경쾌함, 도약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163-164


비움의 수양은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일 뿐 결코 타자와의 소통을 필연적으로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164


시간을 '지속'이라는 존재론적 원리로까지 승화시켰던 베르그손의 입장을 살펴보지요.

'모든 의식은 기억이다. 즉 현재 속에서의 과거에 대한 보관과 축적이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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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내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아들의 태도 역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고의 강자는 어머니라고 믿고 있었기에.

보통 남편들의 실상은 한심하다는 한다미면 족하다. 겉모습은 남자이나 속은 남자가 아니다.  46



회사의 부도와 해고 바람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난 자들은 시야가 좁고 자신감도 없는 탓에 또다시 고용인 신세로 돌아가는 것밖에 염두에 없다.  59


무언가를 추구하는 인생에는 미래가 있고, 도망치는 인생에는 과거밖에 없다.  60


국가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직장이 있어 당신이, 가정이 있어 당신이, 친구가 있어 당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이 있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사는 기본은 거기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인생의 기반과 원점이 확고하게 거기 있어야 친구도 있고,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국가도 있는 것이다.  76



자유와 변화에는 위험이 따른다.

진정한 젊음, 자립한 젊음은 농후하고 위험한 자유에만 존재한다. 그런 자유를 쟁취하려면 잠재능력을 다 끌어내고 온 힘을 다해 부딪치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90


정신적인 만족감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행복을 뒷받침하는 최소 조건에는 의식주 문제가 있다. 그리고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98


수입은 줄고 있는데, 크고 작은 영행이 이렇게나 유행하는 것도 집이 좁은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집에서 쉴 수 없는 것이 참기 어려워져 정기적으로 발작하듯 뛰쳐나가는 것이라면 여행은 풍요로움의 상징이 아니라 비참함의 증거라 해야 할 것이다.  99


매스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으로 정확하고 공정한 의견이 유지되는 요즘 세상에서는 절대 오보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는 것은 너무도 낙관적이다. 여전히 자립한 젊음을 박탈당한 국민.  104


그때그때의 풍조에 떠밀리며 영향을 받을 뿐이다. 

보도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통찰력을 발휘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들도 고용인 신세에 불과하다.  105


세상은 늘 경박하고 단순하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을 외면하고 논리를 생리적으로 꺼리며 통찰을 멀리하고, 직감과 정서와 같은 상대 못할 척도에 의지해서 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만큼 아주 중요하고 큰 문제를 결정하려 한다.  109



당신이 진심으로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야생동물로서의 진정한 젊음을 되찾아 늘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생애를 마치기를 진정 바란다면, 설령 객지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더라도 미소를 머금고 떠날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지금까지의 의존적인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게으른 자신과 철저하게 싸울 각오를 굳혀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또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좀 더 손쉽게, 빨리 변신할 수는 없을까 하는 조급함은 성공의 길을 스스로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자립한 젊음을 좌우하는 것은 의지의 힘이다.  121-122


육체를 방치한 채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은 해이한데 육체만 단단히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육체는 정신을 여실히 반영하는 거울이며, 정신은 육체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133


국가가 습관성이 있는 마약류를 단속하는 것은 그런 약물들이 단시간에 폐인을 양산하고, 그 의존성 환자들이 약물 값을 구하기 위해 범죄로 치닫는 비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밀매업자들에게 모이는 자금이 자본가들의 자금을 훨씬 넘어서 입장이 역전되기 때문이다. 또 충실하고 순종적이며 우수한 노예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그들의 헌신과 노동력으로 필요 이상의 풍족함을 누리고 있는 특정 소수 계층에 해가 미칠 것을 극도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단속만 하면 언젠가는 노동자 계급이 부당한 처우에 정의로운 분노르 폭발시켜 봉기로 몰고 갈 것이다. 노예들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적정선의 마약, 그것이 바로 술이다. 술 정도는 너그럽게 봐 줘야 자신들의 위치가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들 자신도 술에 지배당해 있는 것이다.  137


인생은 시련의 장이며 싸움의 연속이다.  142



당신이 추구하고 찾는 것은 현실의 거친 파도를 피하기 위한 매뉴얼과, 현실 속의 감동과 동전의 양면인 공포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가상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164


현실은 별거 아니다. 아무 재미없는 현실은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그렇게 골치 아픈 세상일에 일일이 관여하고 신경 쓰면서 나이를 먹어 가다니, 딱 질색이다.  171


당신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이 있는 자는 당신 자신뿐이다. 그러니 당신 고뇌의 일부분이라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나누자고 해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타인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문제로 벅차기 때문이다.  179


영웅을 응원하기 전에, 당신은 자신을 응원해야 마땅할 것이다.  180



진정한 명예는 있는가. 물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다.  191


청년기에 혼자서 하는 여행만큼 정신에 강렬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서재에 틀어박혀 수춘 권의 책을 독파했다 한들 절대 얻을 수 없는 발견이 있고,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중대한 무엇과의 만남도 있다.  193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럴싸한 것을 하고서 그것을 했다고 생각지 말라고. 표면적인 자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립을 지향하라고. 타인에게 보이거나 폼을 잡기 위한 겉모양뿐인 자립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타인의 말을 우려먹기만 할 뿐 실천이 따르지 않는 자는 배우도 아니면서 화장을 하고 싶어 하는 남자처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얼간이라고.  195


끝까지 노력하지 못하고 도주에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범인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엉터리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자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립의 진가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아주 흔한 좌절이지, 범인의 정의 운운하는 것은 어린애 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198


무의식중의 끊임없고 쉴 새 없는 사고와 상념은 산 자의 대표적인 특질이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이다.  203


위인도 없거니와 범인도 없다. 있는 것은 자신을 버린 자와 자신을 주워 든 자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자는 진정 살아 있는 자이고, 타인에 기대 살아가려는 자는 가짜 산 자이다. 전자는 '살아 있는 자'이며 후자는 '살아 있지 않은 자'이다. 

요는 살아 있을 것이냐, 살아 있지 않을 것이냐이다.  207


자립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첫째 조건. 그것은 절대 속지 않는 것이다. 속지 않으려면 모든 권력과 권위를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수 조건이다.  208


타인에게서 강요된 위치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은 스트레스에 지나지 않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 얻은 지위에서 오는 긴장감은 생기의 분출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9



국가의 법률이 있기 전에 나 자신의 법률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자를 우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즉, 누군가가 멋대로 정한 일을 일일이 얌전하게 따를 마음은 없다는 뜻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세상에 맞추는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이라서, 예로부터 내려온 관습이니까, 일본의 문화니까, 그런 추상적인 이유로는 절대 따르고 싶지 않다.  222


존재하는 자로서의 자아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가지고 자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본능인가. 아니면 본능에 반기를 드는 이성인가. 또는 정신까지 포함한 육체 전부인가. 사실은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지나치게 기본적인 이 질문에 대해 철학도 의학고 물리학도 지금까지 절대적인 해답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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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 우리 시대 보통 사람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근거

약자가 강자를 능가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전랽적 방법론을 생생한 현실 사례들을 통해 보여 준다.

글래드웰은 강자가 갖는 '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라고 주문한다.

강한 자는 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힘을 사용하는 데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 선대인  10-11


머리말 - 다윗은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읅까?

<다윗과 골리앗>, 여기에서 '거인'이란 군대와 힘센 전사에서부터 장애, 불운, 그리고 압제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강력한 적을 뜻한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탐구해보려 한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은 이런 식의 일방적 우위를 점한 충돌 속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둘째, 우리는 항상 이런 종류의 충돌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거인에게 힘을 주는 원천인 것처럼 보이는 요소는 종종 커다란 약점을 낳는 원천이기도 하다.  20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해 보이는 승리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우리의 언어 속에 고착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건에 대한 이런 식의 설명이 거의 모두 틀렸다는 점이다.  23


고대의 군대에는 세 종류의 전사가 있었다. 첫 번째 부류는 기변으로 말 또는 전차를 탄 무장 군인이었다. 두 번째 부류는 보병으로 갑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든 군인이었다. 세 번 째 부류는 발사병으로 오늘날 개념으로는 포병에 해당하는데, 궁수와 가장 중요한 투석병이 여기에 속했다. 투석병은 긴 밧줄 양쪽 긑에 매아놓은 가죽 물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물매 안에 돌 또는 납 구슬을 넣고, 이를 휘돌려서 점점 크고 빠른 원을 그렸다. 그리고 밧줄의 한쪽 끝을 놓으면 돌은 앞으로 날아갔다. 

숙력된 병사의 물매는 아주 치명적인 무기였다. 중세 시대의 그림을 보면 투석기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아일랜드의 투석병은 눈으로 볼 수 만 있다면 어떤 거리에 있는 동전이든 맞힐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심지어 투석기 공격을 받은 가엾은 군인의 몸에서 돌을 제거할 목적으로 만든 집게 도구 세트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24


역사학자 바루크 할펀(Baruch Halpern)은 투석이 고대 전쟁에서 세 종류의 병사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균형의 한 축을 이룰 만큼 중요 했다고 주장한다. 마치 가위바뷔보와도 같다는 것이다. 보병은 긴 창과 갑옷으로 기병에 맞설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기병은 발사병을 무찌를 수 있었다. 말의 움직임이 빨라서 고대의 포병 부대가 목표를 제대로 조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사병은 보병에게 치명적이었는데, 무거운 갑옷 때문에 움직임이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는 보병은 약 100미터 거리에서 공격하는 투석병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인 공격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골리앗은 중보병이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점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외쳤을 때, 주목할 구절은 '내게로 오라'다. 그의 말뜻은 근거리에서 맞붙어 싸울 수 있도록 바로 자기 앞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25


다윗은 투석병이었고, 투석병은 손쉽게 보병을 쓰러뜨렸다. 

역사학자 로버트 도렌웬드(Robert Dohrenwend)는 "다윗과 맞선 골리앗이 가진 승산은 칼로 무장한 정동시대의 전사가 45구경 자동 권총을 가진 적과 맞섰을 때와 마찬가지다"라고 쓰고 있다.(전 이스라엘 국방바 장관 모셰 다얀(Moshe Dayan) 또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 관한 에세이를 남겼다. 그에 따르면 "골리앗과 싸운 다윗은 열세가 아니라 우세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의 위대함은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나간 것에 있지 않다. 그의 위대함은 나약한 사람이 장점을 파악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무기 활용법을 잘 아는 데 있었다.")  27


어째서 그날, 엘라 계곡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그렇게도 오해가 많았던 것일까? 

우리의 고정 관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잘 보여준다. 사울 왕이 다뒷의 승산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다윗은 작고 골리앗은 컸기 때문이었다.

좀 더 심오한 문제가 있다. 사울과 이스라엘은 골리앗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골리앗을 대충 가늠해보고 그가 어떤 능력을 가졌을지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28


더 이상한 것은 그가 왜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성경은 골리앗이 얼마나 느리게 움직였는지를 강조했는데, 무진장 힘이 센 전쟁 영웅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 치고는 이상하다.

그는 다윗의 지팡이를 발견하고 나서도 다음과 같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들을 들고 내게로 나아오는 것이냐?" 

막대기'들'?

다윗이 지닌 지팡이는 하나뿐이었다.

많은 의학 전문가는 골리앗이 심각하게 안 좋은 건강 상태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모습이나 말은 뇌하수체의 악성종양이 원인인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유사하다. 

게다가 말단 비대증의 흔한 합병증 가운데 하나가 시력 문제다. 뇌하수체 종양은 시신경을 압박할 정도로까지 커질 수 있으며, 그 결과 말단비대증을 가진 사람은 종종 시야가 심각하게 좁아지고 한 개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증(複視症 겹칠 복, 볼 시, 병 증세 증)을 앓는다. 왜 골리앗은 보조병을 데리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을까? 그 병사는 골리앗의 눈을 대신하는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29-30


모든 종류의 거인과 맞서는 전투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교훈이 여기에 있다. 강력하고 힘센 것들이 언제나 겉보기와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잘못 말해왔다. <다윗과 골리앗>은 이런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30




제1장 상대의 예상을 무너뜨리는 언더독의 전술


한쪽은 인구와 군사력에서 적어도 열 배는 많다고 하자. 큰 나라가 얼마나 더 많이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치학자 이반 아레귄-코프트(Ivan Arreguin-Toft)가 몇 년 전에 계산한 결과는 71.5% 였다.  35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전쟁에서 약소국이 다윗이 한 것처럼 비전통적 또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해 강대국이 원하는 전쟁 방식을 겁한 경우에는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경우에 약소국의 승률은 28.5% 에서 63.6% 까지 급등한다.

우리는 약자의 승리를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작거나 가난하거나, 덜 숙련된 사람은 무조건 불리하다고 자동적으로 가장하는 것일까?  36


많은 군인과 무기와 자원을 가진 건 분명 강점이다. 그러나 기동성이 떨어직 방어적 태세를 취하게 만든다.

물적 자원이 있어서 얻는 강점이 있는가 하면, 물적 자원이 없어서 얻는 강점도 있다. 그리고 약자가 행동에 나설 때 자주 승리를 거두는 이유는, 물적 자원이 없어서 얻는 강점이 종종 물적 자원이 있어서 얻는 강점과 맞먹기 때문이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로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교훈이다. 그 이유는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아주 완고하고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실제로 별 쓸모가 없는 것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현실 속에서 우리를 더 강하고 현명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쓸모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39


약자가 다윗처럼 싸웠을 때는 일반적으로 이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약자는 다윗처럼 싸우지 않았다. 아레귄-토프트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는 202건의 한쪽으로 치우친 교전에서 약자들이 전통적 방식으로 골리앗과 정면으로 맞선 경우가 152번이었는데, 이 중 119번은 패했다.  47


우리는 명성과 자원을 얻고, 엘리트 기관에 소속되는 게 우릴르 더 잘살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반면 물질적인 이점이 우리의 선택을 제한한다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을 쓰지 않는다.  53



제2장 작은 학급이 공부를 더 잘할까?


부모는 '안 돼, 못 사'에서 '안 돼, 안 사'로 바꿔야 합니다.

'안 돼, 안 사'라고 말하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가능한 일이 항상 옳은 일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는 솔직한 마음과 기술도 필요하다.  69




업무 부담이 적은 환경에서 교사가 수업 스타일을 바꾸는 경우에만 더 작은 교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74


우리 모두는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부유해지는게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이득이 된다고 가정한다. 82











제3장 아웃사이더의 자아 관념


'큰 물고기-작은 연못' 이론은 심리학자 허버트 마시(Herbert Marsh)가 개척했다. 

"많은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선별된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마시는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현실은 복합적입니다."  103


동료들이 더 똑똑할수록 자신은 더 바보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수록 과학 전공을 중도 포기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108


경제학 박사과정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존 콘리(John Conley)와 알리 시나 왼더(Ali sina Onder)의 연구에서 나온 결과.

최상위권 대학원을 졸업한 괜찮은 학생들보다 평범한 대학우너의 최상위권 학생들을 뽑는 게 거의 언제나 더 나은 선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굉장히 반직관적이라는 점은 알고 있다.




이번에는 평범한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살펴보자.


30위 이하의 학교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은 1.05편의 논문 발표 실적을 보였다. 이는 하버드, MIT,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스탠퍼드, 시카고의 최상위권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보다 상당히 더 좋은 실적이다. 아주 작디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를 채용하는 편이 큰 연못엣 중간 크기 물고기를 뽑는 것보다 낫겠냐고? 두 말할 나위 없다.  112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엘리트 학교들 중에서 큰 연못이 안고 있는 위험에 대한 사실 자체를 인식하고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하버드다. 1960년애에 입학처장을 맡았던 프레드 글림프(Fred Glimp)는 '행복한 하위 4분의 1'로 알려진 정책을 도입했다. 취임 후 그의 첫 메모 중 하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반에는 하위 4분의 1이 있다. 아주 능력 있는 집단 안에서조차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느끼는 심리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위 4분의 1에 머물러 있더라도 '행복'하거나 대부분의 교육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심리적이거나 또는 뭔가 다른 내성을 지닌 학생들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을까?" 그는 큰  연못이 최상위권을 제외하고는 모두의 기를 꺾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글림프에게는 자신이 할 일이란 교실 바깥에서는 강인하고 이미 충분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이 하버드라는 아주 큰 연못의 아주 작은 물고기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하버드는, 학문적 능력은 다른 학생들보다 많이 뒤처지지만 재능 있는 운동선수들을 상당수 받아들이는 관행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이 정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교실에서 누군가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면,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다른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마도 가장 좋을 것이라는 이론적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114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은 작은 연못이다.  117




제4장 잃을 게 없는 지점


우리는 보통 문제가 명확하고 단순하게 제시되었을 때 문제를 더 잘 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술술 읽기 힘들게"만들면 사람들은 "마주하고 있는 것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것이다. 그들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더욱 깊이 있게 처리하거나 더욱 신중하게 생각한다. 장애물을 극복해야 할 경우에, 사람들은 좀 더 힘들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장애물을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132


데이비드 보이스(David Boies)-그는 난독증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다면,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읽을 수가 없고 남의 말을 들음으로써 배우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은 문제를 기초 수준까지 단순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척 강력합니다.  138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잘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읽는 데 쉽게 익숙해진 아이는 계속해서 더 많이 읽게 되고 더욱 잘 읽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많은 것을 읽어야 하는 분야로 가게 된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학습은 자본화 학습니다. 이는 쉽고 분명하다. 

반면 '보상 학습(Compensation Learning)'은 정말로 힘들다.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 어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나중에 주위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그 말들을 재현하려면 자신의 한계와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안감과 굴욕감을 극복해야 한다. 단어들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집중해야 하며, 성공적인 재현을 위해서는 당당해져야 한다. 심각한 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든 단계를 마스터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마스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 더 잘할 수 있다. 필요해서 배운 것은 쉽게 배우게 된 것보다 필연적으로 더욱 강력하기 때문이다.  141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맞춘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집요하게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146


개리 콘(Gray Cohn) "내가 자라온 과정은 내가 실패에 대해 편해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아는 많은 난독증 환자가 가진 한 가지 특성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즘에는 실패를 다루는 능력이 매우 극도로 발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을 볼 때 단점보다 장점을 훨씬 더 많이 봅니다. 우리는 단점에 아주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그런 것으로는 겁먹지 않습니다. 그 점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로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나에게 난독증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절대로 그 첫 번째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재 그는 골드만삭스의 회장이다.  153-154




제5장 결핍과 용기


사이렌 소리를 듣고,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적의 폭격기를 보며, 폭탄이 터지는 굉음을 듣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폭탄은 거리 저쪽 또는 다음 블록에 떨어졌다. 이들에게 폭탄 공격의 결과는 '거의 맞은 뻔한 사람들' 그룹과 정확히 정반대다. 이들은 살아남았고, 이런 일이 두세번 되풀이되었을 때 공격과 관련된 이들의 감정은 "불사신의 느낌을 맛보면서 흥분에 빠지게 된다"

대공습에서 살아남은 런던 시민들의 일기와 회고록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수많은 사례가 발견된다. 그 중 하나를 보자.

'처음으로 사이렌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정원에 파놓은 방공호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게 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채 상황이 해제됐다. 방공호에서 나온 이래로 나는 그 무엇도 우리를 해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62-163


우리 모두는 공포에 쉽게 빠질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는 상태가 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포를 극복하면 희열감을 얻는다. 우리가 공습으로 공포에 빠질까봐 두려워해왔다면, 실제 상황이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침착한 겉모습만 내보인다.  164


맥커디에게 대공습은, 정신적 외상을 남기는 경험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즉 똑같은 경험이 한쪽 집단에는 크나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반면, 다른 집단은 한결 더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  165


우리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무엇인가에 대한 반응이 딱 한 가지 종류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버리는 잘못을 똑같이 저지른다. 그렇지 않다. 반응은 두 가지다.  166


용기는 힘든 시기가 시작될 때부터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용기는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 그 시간이 어쨌거나 아주 힘겹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얻게 된다.  182




제6장 물어뜯겨도 물러서지 않는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질서 있게 행동하기를 원한다면 이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를 '정당성의 원칙'이라고 하며, 정당성은 세 가지 원칙에 바탕을 둔다. 우선, 권위를 따르도록 요청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다는 생각, 다시 말해 그들이 목소리를 내면 상대는 들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둘째, 법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내일의 규칙이 오늘의 규칙과 대략 같은 것이라는 합리적인 예측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 권위는 공정해야 한다.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차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

모든 좋은 부모는 이 세 가지 원칙을 은연중에 이해하고 있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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